"추위야 물렀거라! 스카우트 나가신다"명례방 스카우트, 연소 지도자 동계훈련 '솔로몬 캠프'명례방 스카우트 대원들이 지도자로부터 지도 읽기법을 배우고 있다. 강원도 횡성의 한 야영장. 이따끔씩 들리는 새소리가 오랜 적막을 깨뜨리곤 하는 외딴 이곳이 지난 1월말 청소년들의 우렁찬 함성으로 가득찼다. 명례방 스카우트(육성 단체장 이기우 신부)가 1월26일부터 6박7일간 마련한 연소 지도자 동계 훈련 '솔로몬 캠프'에는 중학생 대원 32명이 참가, 스카우트 활동에 필요한 설영(設營)작업, 나침반·지도 읽기, 밧줄 매듭법 등을 배우고 야간 하이킹, 개척물 제작, 국궁 등 전통놀이를 함께 하며 스카우트 대원만의 남다른 열정과 패기를 마음껏 발산했다. 훈련 첫날 이들을 맞이한 건 살을 에는 듯한 영하의 날씨와 초록색 풀 한포기조차 낯선 허허 들판뿐. 하지만 스카우트 대원들에겐 불가능이란 없다. 일주일간 이곳에 꽁꽁 묶여(?) 있을 암담한 생각에 입을 다물지 못하던 몇몇 대원들도 금세 다른 대원들과 힘을 모아 들판에 보금자리인 천막을 세우고 손수 밥도 지어 먹으며 하루하루 자립심을 키워 나갔다. 새까맣게 타버린 밥을 먹어도, 몇겹 이불로도 막을 수 없는 혹한 추위에도 웃을 수 있는 건 스카우트 대원이 아니면 경험해 볼 수 없는 특권에 대한 자부심이 때문이다. "밤에 너무 추워서 며칠 잠도 제대로 못잤지만 스카우트 대원으로서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어야죠. 집에 돌아가면 부모님을 위해 설거지며 빨래는 제가 다 할래요." (박아람, 아녜스, 중2) 훈련 기간 중 대원들의 협동심과 끈기가 가장 두드러진 때는 개척물 제작 시간. 8명씩 4개반으로 나뉜 대원들은 삼각·수직 망루, 세줄다리, 평행추문 중 배정된 해당 개척물을 완성하는 데 함께 힘을 모았다. 오후 2시경 만들기 시작한 개척물이 컴컴한 밤이 돼서야 완성됐지만 대원들은 힘든 기색없이 완성된 개척물을 보자마자 감격스런 환호성을 지르며 기쁨을 만끽했다. "훈련 기간에 배웠던 모든 내용들이 앞으로 스카우트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힘들었던 만큼 기억에 더 오래 남겠지요."(노성호, 세례자요한, 중3) *명례방 스카우트란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가 98년 빈민지역의 청소년들에게 자립심과 개척 정신을 길러주고자 창설했으며, 현재 푸른솔대·유토피아대(북부), 반딧불대(동부), 무지개대(서부), 꽃누리대(남부), 사랑손대(장애인 스카우트) 등 지구연합회 산하 6개 지역대로 구성돼 있다.cpbc2004.02.03
이달의 교계 잡지 ▨가톨릭 디다케='당신을 기다립니다'라는 제목으로 △설렘 △돌아봄 △쉼 △맞이함 등을 특집으로 싣고, '영화읽기'에서는 '선생 김봉두'를 소개했다.(서울대교구 교육국, 3500원) ▨경향잡지='원로를 찾아서'는 교회가 처한 현실을 진단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데 헌신해온 신치구(베르나르도) 가톨릭신앙생활연구소장을 만났다. 최요안 선교사의 '연변에서 온 편지'는 중국 오지에서 열린 사제서품식 광경을 그렸다.(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800원) ▨내친구들=구약의 인물들을 만화로 만나는 '구약성서 이야기'의 이번호 주인공은 지혜의 왕 솔로몬이다. 김남철 신부가 연재하는 '알수록 재미있는 성화 이야기'는 엘 그레코가 그린 '오르가즈 백작의 장례'를 다뤘다.(다솜, 3000원) ▨레지오 마리애='이별'이 특집 주제. '내 인생의 레지오'는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양철화)와 '바쁜 일상 속에서'(김제중)를 실었다. 성 빈센트가 '가톨릭 인물 이야기'의 주인공.(한국 세나뚜스 협의회, 1800원) ▨들숨날숨='잠'을 특집으로 △잠으로의 초대 △예수님과 잠 △왜 밤에 잠을 잘까? △24시간 잠자지 않는 사회 △잠, 짧은 죽음 등을 게재했다. 이밖에 읽을거리로는 '열린 손이 주는 평온'(안셀름 그륀)과 '신화를 깨면 교육이 산다'(이관춘) 등이 있다.(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4500원) ▨성모기사='좋은 사람 좋은 만남'은 '사랑이 불타는 젊은이를 그려요'라는 제목으로 젊은이들에게 성체조배의 맛을 알리기 위해 애쓰는 이유경(마리안나)씨를 만나봤다. '지구촌 성지를 찾아서'가 찾아간 곳은 이탈리아 시라쿠사에 있는 눈물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다.(성모기사회, 1000원) ▨사목='노인과 인권'이라는 주제로 △죽음으로 내몰리는 노인들 △우리나라 노인복지정책 현황 △2003년, 한국 노인이 선 자리에서 노인학대를 말한다 △노인을 위해서 본당은 무엇을 할 것인가 등을 싣고, '사목 인터뷰'는 차동엽 신부를 만나 평신도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 들었다.(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3500원) ▨생활성서=위령성월을 맞아 11월호는 △연도의 역사와 현재 △체험기·연도와 나 △연도에 관한 아홉가지 궁금증 △진정한 일치의 기도가 되기를 등 '연도'로 특집을 꾸몄다. '현대 영성가 시리즈'는 가난한 영혼들의 동반자 헨리 나웬을 소개했다.(생활성서사, 3900원) ▨성서와 함께='죽음을 삼키고'가 특집 주제다. '경전과의 만남'(박용조)은 불교 핵심사상인 공(空)을 통한 하느님 이해를 다뤘다. '이콘 감상'(장긍선 신부)의 주제는 '11월의 성인'.(성서와 함께, 3000원) ▨소년='하느님은 나에게 어떤 선물을?'이라는 주제로 특집을 꾸몄다. '우리학교 최고'는 서울 금성초등학교 인라인 스케이트반을 탐방했으며, '이 한마디 살아있는 말씀'은 공자의 '네가 싫은 짓은 남에게도 하지 마라'에 담긴 뜻을 설명했다.(가톨릭출판사, 4000원) ▨야곱의 우물='표지인물'은 '하늘의 절반을 위해'라는 제목으로 여성사학자 신명숙씨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송봉모 신부의 '요한복음 산책'은 '행복한 주님의 도구, 세례자 요한'을 소개하고, '교회와 사회'는 돌팔매질할 자격이 없는 한국 언론의 문제점을 짚었다.(바오로딸, 2000원)cpbc2003.10.29
몬테 카시노, 수비아코1. 몬테 카시노 수도원 전경. 해발 519m 산정에 세워진 이 수도원은 가로 100m, 세로 200m의 웅장한 건물이다. 2.수비아코 수도원 성당은 예수 그리스도오의 생애와 성 베네딕토의 일생을 그린 테라스코 벽화로 장식돼 있다. 3.몬테 카시노 수도원 대성당 내부는 온통 금으로 치장돼 화려함이 눈부실 정도다. 평화신문 주최 제1기 유럽 수도원 순례단 19명이 2월20일부터 11박12일 일정으로 로마와 이탈리아, 알프스와 도나우강 일원의 수도원을 순례하고 귀국했다. 성염 주 교황청 한국대사의 환영을 받으며 바티칸 대성전을 시작으로 장도에 오른 순례단은 대자연과 하느님을 찬미하는 장엄한 수도원 전례, 그리고 순례자들에게 주머니까지 털어주는 수도자들의 겸손된 삶 속에서 모든 이의 모든 것으로 오시는 하느님을 바라볼 수 있었다. 평화신문은 6회에 걸쳐 유럽 수도원 순례기를 연재한다. 수도원을 방문한 이방인 순례자에게 한 노(老) 수사가 물었다. "곤 니찌와! 니혼진데스까?" "꼬레아노!" 단음절로 무뚝뚝하게 대답하자 노 수사는 미안한듯 "성베네딕도 왜관 수도원을 잘 안다"며 친밀감을 표했다. 그리고 나서 노 수사는 손짓과 함께 알아들을 수 없는 이탈리아어로 한참을 뭐라 말했다. 안내원이 아주 간단하게 통역해 주었다. "몬테 카시노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몬테 카시노(Monte Cassino). 어릴적부터 이 말만 들으면 묘한 환상에 잠기곤 했다. 유년시절 수도생활을 동경했던 내게 몬테 카시노는 유토피아 같은 존재였다. 검은 수도복을 입은 수도자들이 그레고리오 성가로 하느님을 찬미하면서 신비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수도생활에 대한 몽환적 최면에 걸리기에 충분했다. 몬테 카시노는 이탈리아 중부, 로마와 나폴리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다. 오전 10시30분에 아빠스가 집전하는 주일미사가 있다고 해서 새벽부터 서둘렀다. 로마에서 나폴리까지 뻗어있는 라티나 도로(Via Latina)로 2시간여를 달려가니 140km 지점에 '카시노'라고 큼지막하게 쓴 도로 표지판이 나왔다. 표지판을 따라 시 어귀로 접어들자 왼편에 우뚝 솟은 산정에 마치 중세 고성처럼 웅장한 수도원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해발 519m에 자리잡은 몬테 카시노 수도원이다. 몬테 카시노는 원래 라치오 지방 카시노시에 있는 산(Monte)이란 뜻이다. 평범한 이 산이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 것은 성 베네딕토가 529년쯤 이곳에 수도원을 세우고, 수도생활의 이상과 목표를 제시한 <수도규칙>(Regula Benedicti)를 저술했기 때문이다. 성 베네딕토가 이곳에 정착했을 때는 그의 나이 50이 다 됐을 무렵이다. 베네딕토는 산 정상에 있는 아폴로 신전 자리에 수도원을 세우고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성 베네딕토가 활동하던 시대는 게르만 민족의 계속된 침입으로 서로마 제국이 패망(476년)해 정치체제가 붕괴되고 윤리적으로 퇴폐의 길을 걷던 불안한 시기였다. 교회 역시 이교 민족의 계속된 침입으로 존립에 위협을 받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베네딕토는 '순명' '겸손' '침묵'을 중시하면서 공동생활을 하며 '기도'와 '노동'을 하는 수도회를 창설했다. 노동은 노예와 같은 하층민들이나 하는 천한 일로 여겼던 시대였다. 당시 유럽인들의 일반적 사고와 생활방식에서 벗어난 베네딕토의 노동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큰 환영을 받았고, 그가 설립한 수도회는 '중세 초기 암흑기'에 영적 중심지로서뿐 아니라 유럽 사회의 도덕과 윤리, 문화 중심지로도 자리잡았다. 전날 밤부터 하루 종일 내린 비 때문에 몬테 카시노는 산허리까지 안개로 덮여 있었다. 큰 글씨로 '팍스'(PAX-평화)라고 씌어 있는 수도원 정문 앞에는 우리보다 일찍 도착한 인도 수녀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화강석과 흰색 대리석으로 지어진 몬테 카시노 수도원은 그 크기가 가로 100m, 세로 200m가 되는 어머어마한 건물이다. 수도원을 비롯해 대성당, 성 베네딕토와 여동생인 성녀 스콜라스티카의 무덤, 박물관, 도서관, 문서보관소 등을 갖추고 있으며 방만 100개가 넘는다고 한다. 1066년에 주조됐다는 청동문을 열고 대성당으로 들어갔다. 제단과 천정은 금으로 화려하게 치장돼 있고, 벽과 바닥은 색색의 천연 대리석으로 장식돼 있다. 조명이라고는 제대 촛불뿐인데도 눈이 부실 정도다. 몬테 카시노 대수도원장 베르나르도 도노리오 아빠스를 비롯해 이곳에 살고 있는 20여명의 수도자들과 함께 주일미사를 봉헌했다. 수사들이 부르는 그레고리오 성가를 들으며 어릴적 몬테 카시노에 대한 몽환적 동경을 떠올렸다. 베르나르도 아빠스는 미사 후 한국 순례자들에게 서명한 상본을 하나씩 선물로 주면서 성지순례를 잘 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었다. 축복을 받은 후 다음 미사 시간 전까지 몬테 카시노 수도원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보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중앙 제대 밑에 있는 성 베네딕토와 성녀 스콜라스티카의 무덤에 모여 기도하고, 성당 곳곳에 있는 성화를 감상했다. 그리고 수도원 뜨락에 있는 하늘 높이 양팔을 뻗으며 임종했던 성 베네딕토의 동상을 보면서 "하느님께 자신의 죽음을 자신있게 내맡길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빗줄기가 더욱 강해지자 서둘러 수비아코(Subiaco)로 향했다. 수비아코는 로마에서 동쪽으로 약 73km 떨어진 아니에네 강변에 위치한 해발 410m의 마을로 성 베네딕토가 수도생활을 시작한 곳이다. 이탈리아 중부 누르시아의 자유 시민 가정에서 출생한 베네딕토는 청년이 되어 로마로 유학을 떠났다. 문학에 심취했던 그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당시 로마에 회의를 느끼고 23살 무렵 이곳 수비아코 산중으로 들어와 가파른 절벽 중앙에 나 있는 동굴에 들어가 3년간 기도와 묵상으로 은수생활을 했다. 이 동굴을 '사크로 스페코'(Sacro Speco) 즉 '거룩한 동굴'이라고 부른다.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수비아코의 사크로 스페코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4시쯤. 벌써 어둑어둑해졌다. 울퉁불퉁한 바윗돌 사이로 나 있는 가파른 돌계단을 따라 몇 분을 올라가니 안개 속에 숨어있던 사크로 스페코 수도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절벽을 따라 올라가면서 지은 수도원 건물은 말 그대로 사크로 스페코였다. 벽화로 장식된 회랑을 지나 수도원 성당으로 들어갔다. 성당 안쪽에는 성 베네딕토가 기도하던 동굴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좁은 동굴 안에는 흰 대리석으로 조각한 청년 베네딕토상과 돌로 만든 십자가, 빵 바구니, 그리고 장궤틀 하나가 놓여 있다. 성당 내부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성 베네딕토의 일생을 그린 프레스코 벽화로 온통 장식돼 있다. 동굴 밖에는 베네딕토가 이곳에서 은수생활을 하던 중 육정을 이기기 위해 알몸으로 딩굴었던 장미 정원이 그대로 있다. 겨울이라 볼품없는 앙상한 줄기밖에 없는 장미 정원이지만 사크로 스페코보다 더 오래 머물게 발목을 잡았다. 베네딕토는 자신의 육정보다 세상의 화려함을 짓누르고자 알몸으로 장미밭에 뒹굴지 않았을까? 솔로몬의 영화보다 더 화려함을 자랑하던 들꽃들을 온몸으로 짓이기면서 세상과의 단절을 스스로에게 선언한 것은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에 머리가 복잡한데 순례단 중 최고령자인 김만술(가타리나,70) 할머니가 손뼉을 치며 노래를 흥얼거리며 다가왔다. 조용히 하라는 표시로 검지 손가락을 입에 대며 왜 그렇게 즐거워하느냐고 묻자 "감사합니다. 여기서 천국을 보았습니다" 한다. 몬테 카시노(Monte Cassino). 성 베네딕토(480~547년경)가 마지막으로 정착해 <수도규칙>을 저술한 곳으로 성 베네딕도수도회의 요람이다. 베네딕토는 529년경 몬테 카시노 정상에 있던 로마 신전 자리 위에 수도원을 세워 이곳에서 지내면서 540년경 룗수도규칙룘을 저술한 후 정식으로 성 베네딕도회를 창설하고, 여동생 성녀 스콜라스티카와 함께 이곳에 묻혔다. 581년경 롬바르드족 침략으로 파괴된 후 약 140여년간 방치됐다가 717년 교황 그레고리오 2세(715~731)에 의해 복구. 이후 1349년 지진으로 다시 한번 파괴됐고, 교황 우르바노 5세(1362~1370)에 의해 1362년 재건립됐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무렵 독일군이 로마와 나폴리 중간 지점에 있는 수도원을 점령해 요새화하자 로마 진출을 꾀하던 연합군의 융탄 폭격으로 초토화됐으나 전후 이탈리아 국민들이 낸 성금으로 재건립됐다. 교황 바오로 6세(1963~1978)는 1964년 10월24일 완공된 몬테 카시노 수도원을 방문해 축성하고, 성 베네딕토를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다. 한편, 몬테 카시노 수도원은 스테파노 9세(1057~1058), 빅톨 3세(1086~1087), 젤라시오 2세(1118~1119) 등 3명의 교황을 배출했다. 수비아코(Subiaco) 성 베네딕토가 처음으로 은수생활을 하던 곳. 수비아코는 네로 황제의 별장 '수블라궤움'(호수 아래)에서 유래한다. 베네딕토는 수비아코 뒷산에 있는 동굴에서 3년간 은수생활을 하고 이곳에서 12개의 수도원을 세웠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수도원은 베네딕토 성인의 여동생 이름을 딴 스콜라스티카 수도원과 사크로 스페코 수도원뿐이다. 오늘날 수비아코 수도원을 모원으로 하는 수비아코 연합회는 성 베네딕도회 21개 연합회 중 가장 큰 연합회다. 성 베네딕토와 성녀 스콜라스티카 성 베네딕토(480년~547년경)와 성녀 스콜라스티카(480년~547년경)는 이란성 쌍둥이로 이탈리아 움브리아 지방의 누르시아에서 부유한 자유시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오빠인 베네딕토가 로마 유학을 접고 수비아코로 가서 3년간 은수생활을 할 때 동생 스콜라스티카도 오빠를 따라서 수비아코의 한 수도원에서 생활했다. 이후 몬테 카시노 수도원을 설립한 베네딕토는 수도원에서 약 8km 떨어진 피우마롤라에 수녀원을 설립하고 이곳을 동생 스콜라스티카에게 맡겼다. 이로써 베네딕토는 가톨릭 수도회의 아버지이자 성 베네딕도수도회의 창설자가 됐고, 스콜라스티카는 성 베네딕도수녀회 첫 수녀이자 원장이 됐다. 베네딕토와 스콜라스티카는 매년 한 차례씩 만나 영적 담화를 나누었는데 주로 스콜라스티카가 오빠를 찾아왔다고 한다. 스콜라스티카가 마지막으로 베네딕토를 방문했을 때 일이다. 성녀는 예년과 같이 오빠를 방문하였지만 수도원에 들어갈 수 없었기에 베네딕토가 몇몇 수사들을 데리고 나와 인근 어느 집에서 만났다. 그들은 늘 하던 대로 함께 기도하고 영적 대화를 나누었다. 밤이 되자 스콜라스티카는 오빠에게 다음날 아침까지 함께 있기를 간청했으나 베네딕토는 수도규칙에 충실해야 한다며 거절했다. 스콜라스티카가 이에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자 곧 세찬 비바람이 몰아쳐 베네딕토 일행이 한 발짝도 밖으로 나갈 수 없어 그대로 머물게 돼 밤새도록 영적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이 만남이 있은 지 3일 후 베네딕토는 여동생의 영혼이 육신을 떠나 비둘기 모양으로 승천하는 환시를 보고 스콜라스티카의 죽음을 알게 됐고, 동생 시신을 수도원으로 옮겨 자신을 위해 마련해 둔 무덤에 안장했다. 베네딕토도 얼마 안돼 선종, 동생 스콜라스티카가 묻혀 있던 자신의 무덤에 안장됐다. 성 베네딕토는 유럽 전체 수호성인으로, 성녀 스콜라스티카는 성 베네딕도수녀회 주보성녀로 공경받고 있다.cpbc2004.03.11
분열의 씨를 뿌린 솔로몬 솔로몬은 다윗이 부하 우리야를 죽이고 취한 바쎄바의 소생이었다. 야훼께서는 예언자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셨다. “예언자께서 어인 일이신지?” “다윗 임금님, 하느님께서 당신의 회개를 어여삐 보시고, 새로 얻은 아들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름을 ‘여디디아’로 지으십시오.” “여디디아요?” “하느님께서 사랑하는 아이라는 뜻입니다.” “아, 네….” 다윗도 솔로몬을 특히 사랑했다. 다윗에게는 왕자가 여러명 있어서 왕위 계승 문제가 조금 복잡했으나 예언자 나단, 사독 등의 도움으로 솔로몬이 왕위를 계승했다. 그때 나이 21세로 솔로몬은 이후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했다. 그는 나라를 잘 다스려 지혜와 부귀의 왕으로 불렸으며 이스라엘 성전도 건축하여 이스라엘 왕국의 부흥을 누렸던 왕이었다. 그런데 부전자전으로 솔로몬도 호색가였다. 그는 수많은 외국 이방인 여인들과 사랑을 나누었다. 그는 하라오 왕의 딸뿐 아니라 모압 여인, 아몬 여인, 에돔 여인, 시돈 여인, 헷 여인 등 온갖 외국 여인들을 후궁으로 맞아들였다. 그런데 일찍이 야훼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외국인들과의 결혼을 금지하신 바 있다. “너희는 절대 외국 여인이나 외국 남자를 부인이나 남편으로 맞아들이지 말아라.” “왜요?” “그들은 반드시 너희 마음을 꾀어 그들의 신에게 너희를 유인해 갈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국경도 초월한다고 했던가, 솔로몬은 외국 여인들과 깊은 사랑에 빠졌던 것이다. 솔로몬은 무려 700명이나 되는 후궁을 거느렸고 그 외에 수청드는 여자만도 300명이나 되었다. 솔로몬은 주색의 구렁텅이에 빠지면서 판단력이 흐려졌고 진실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임금님, 우리 나라에서 믿고 모시는 신을 한번 섬겨보세요. 분명히 좋은 일만 있을 거예요….” “안된다. 우리 민족은 야훼 하느님만을 섬겨야 한다.” “아이,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니, 한번만 믿어 보세요.” 끈질긴 이방 여인들의 요청에 나이가 든 솔로몬은 판단력을 상실하게 된다. 젊은 시절엔 지혜의 왕이라 추앙받던 솔로몬이 늙어서는 천추의 한을 남기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말았다. 솔로몬은 결국 시돈인의 여인 아스도렛을 섬겼고 암몬인들의 우상 밀곰을 숭배했다. 한 술 더 떠서 예루살렘 동편 산 위에 이방인의 신당을 건설했다. 솔로몬은 그 신당에서 제물을 바치고 분향을 드렸다. 또 솔로몬은 성전 왕궁을 건축하면서 백성들에게 강제 노역과 과중한 세금을 부과했던 터라 민심이 흉흉했다. 야훼 하느님께서 솔로몬에게 화가 많이 나셨다. “네 이놈, 너는 내가 그토록 신신당부했는데도 내 말을 헌신짝 버리듯 듣지 않았다. 너는 이제 끝장이다. 나라를 쪼개어 너의 신하에게 주겠다.” 결국 솔로몬의 적들이 반란을 일으켜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분열되는 길로 치닫게 된다. 이스라엘의 가장 전성기요, 가장 지혜로운 왕이었던 솔로몬 시대에 왕국의 분열이 시작되었음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솔로몬은 이스라엘 왕국의 중흥가요, 지혜의 왕이며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한 위대한 왕이라는 빛나는 영예를 차지하면서도 왕국 분열의 씨를 뿌린 장본인이란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사람은 성공하여 잘 나갈 때 오히려 더 조심하고 겸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능력과 장점이 오히려 자신을 망치는 걸림돌이 되어버린다. 솔로몬은 지나친 풍요와 성공을 누린 것이 오히려 그를 타락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인생에선 항상 겸손하고 감사한 마음을 지니는 것이 중요하다는 새삼스런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cpbc2001.09.20
서울 신월동본당 ME부부들의 \'솔비\' 키우기\"키우다니요? 재롱둥이와 더불어 사는 것이지요.\"2월22일 오후 모처럼 이철원, 김성희씨 전 서울대교구 신월동본당 ME 부부(솔비를 중심으로 오른쪽과 왼쪽)의 집에 모여 솔비의 재롱에 즐거워하는 ME 부부들. “솔비야! 이리온―.” 22일 오후, 서울 양천구 신월동 삼우연립주택 B동 102호. 김솔비(마리안나)를 보고 싶어 횟집 영업을 끝내고 난 새벽 1시 심야에도 달려오곤 하는 김기철(46, 솔로몬)씨가 모처럼 낮에 이철원(48, 다미아노), 김성희(44, 아가다)씨 부부의 집에 들러 솔비를 찾았다. 현관을 들어서면서 나지막이 박수를 치며 부르자, 솔비는 쏜살같이 기어 순식간에 달려온다. 너무도 재빠른 동작과 앙증맞은 표정을 보며 거실에 모여든 서울대교구 신월동본당 ME 부부들은 모두들 한결같이 웃으며 기뻐 어쩔 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9월초 솔비가 이철원, 김성희 신월동본당 전 ME 대표부부의 집에 왔을 당시 낯을 가리며 이틀 밤낮을 잠도 자지 않고 꼬박 울기만 해 애를 먹은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 솔비는 그러나 6개월이 지난 지금은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걸귀’처럼 너무 잘 먹어서 탈이 날 정도. 지난 겨울엔 두 번이나 독감에 걸려 애를 먹이더니만, 꽃소식이 들려오면서 한결 기운을 차린 느낌이란다. 솔비가 이씨의 집에 오게 된 것은 생모 나현임(33)씨가 지난해 4월 솔비를 낳기 친정이 있는 대전에 갔다가 임신중독으로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것이 원인. 엄마가 의식불명 상태인 상황에서 태어난 솔비는 그래서 아직까지 엄마 얼굴 한번 보지 못했다. 벽돌공인 아빠 김용식(40, 예로니모)씨 또한 아내 병구완에 생업이 바빠 솔비를 키울 수 없어, 결국 인근 신월4동 한빛종합사회복지관에 솔비의 육아를 의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김씨의 형 또한 IMF로 실직해 가정이 파탄 나 막내 동생이 조카 둘을 키우고 부모를 모시면서 아홉 식구를 먹여 살리는 상황이었던 것도 솔비가 복지관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얘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하고 울먹이는 병든 친할머니와 졸지에 홀로 된 솔비를 보고 안타까웠던 김활란(살레시오수녀회) 수녀가 신월동본당 ME부부들에게 ‘SOS’를 쳤다. 이에 화답해 ME 부부들은 회합을 갖고 ‘일주일이 됐든, 한달이 됐든’ 각 가정마다 돌아가며 솔비를 키우기로 결정했다. 물론 결정이 쉬웠던 것만은 아니다. 솔비 엄마가 언제 깨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육아의 어려움이 충분히 예견됐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솔비를 키우기로 한 ME부부들은 당시 대표부부였던 이씨 부부의 집으로 먼저 데려갔다. 하지만 ‘돌아가며 키운다’는 결정이 솔비의 정서 발달이나 교육을 위해서도 적절치 못하다는 공감대가 이루어지자, 이들은 이씨 부부가 솔비를 키우도록 했다. 대신 육아 비용은 박병희(50, 필레몬), 신창순(46, 베로니카)씨 현 대표부부 등 나머지 열여섯 부부가 십시일반으로 도왔다. 이에 신월동본당(주임 전형의 신부)은 물론 서울대교구 가톨릭 운전기사 사도회에서도 도움을 주어 분유값을 보탰다. 본당 ME부부들은 또 최근엔 사순시기만이라도 술과 담배를 끊기로 하고 솔비 엄마를 위해, 나아가 모든 병자들을 위해 기도를 바치면서 그 비용을 ‘솔비몫’ 저금통에 저축하고 있다. 이씨 부부가 1∼2년이 될지, 아니면 10년이 될지 모를 솔비를 키우기로 한 것은 집안에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만은 아니다. 인도해외은행에서 근무하는 이씨에게는 딸린 식솔만 6명. 올해 아흔다섯살의 처조모에 아내와 동생, 대학 2학년생인 맏딸, 고3이 되는 아들,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늦둥이 막내딸이 23평짜리 낡은 연립주택에서 애면글면 살아가는 형편이다. 하지만 이씨 부부는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소명 의식에서 솔비를 맡아 키우기로 하고,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는 맏딸 현희(바실리아)에게 안방을 비워 주고 거처를 거실로 옮겨 지내고 있다. ‘솔비’는 본당에서도 화제다. “아니, 언제 넷째 늦둥이를 봤느냐?”며 농을 거는 신자들이 있는가 하면, “좋은 일을 한다”며 격려해 주는 신자들도 많다. 그래도 이씨는 마냥 겸손하기만 하다. “아이들이 싫어하면 어떻게 할까 하고 걱정이 컸는데, 다행히 아이들도 모두 좋다고 해서 키우게 됐어요. 무슨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에요. 다른 이들은 ‘천사가 출현했다’들 말씀하시는데, 제가 무슨 천사입니까. 남들은 맞벌이를 하니까 못하지만, 우리집은 집사람이 집에 있으니까 솔비를 보살펴 주는 것일 뿐이죠. 엊그제도 솔비 얘기하면서 모두들 울었습니다. 솔비 엄마는 얼마전 또 없는 살림에 1000만원을 들여 뇌에 찬 물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고 하는데, 아직도 의식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고 해요. 곧 완쾌되어 솔비 재롱을 봐야 할텐데 너무 안타깝습니다. 혹시 솔비 사진을 보면 상태가 호전될까 싶어 사진도 보내봤는데, 참 안 되네요.” 제각기 큰아빠 큰엄마, 작은아빠 작은엄마를 자처하는 신월동본당 ME 열일곱 부부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가 없어 앞으로 더 문제”라며 걱정이 크다. 하지만 이들은 “주님께서 (솔비를) 다 돌봐 주실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솔비를 살핀다. “사랑하는 솔비야! 이렇게 많은 엄마와 아빠, 삼촌, 작은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네가 부르는 우리 ME 부부의 사랑이라면, 아마 커서도 삐뚤어지지 않고 세상의 올바른 빛으로 자신을 태우는 촛불처럼 자기 희생을 통해 남을 도와가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우리는 확신한다.…”(솔비를 사랑하는 ME부부 작은 아빠 솔로몬이) cpbc2002.02.27
성서속 이야기 화려한 영상으로 되살려생활성서사, ‘어린이 그림자 성서’ 번역 출간그림자극처럼 환상적으로 펼쳐지는 성서 속의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화려한 영상으로 되살아났다. 생활성서사는 최근 프랑스 갈리마르 쥬네스 출판사의 ‘어린이 그림자 성서’(전12권)를 번역해 선보였다. 종교담당 기자와 프랑스 문학교사를 지낸 쟈클린 발롱이 쓴 이 책은 언론의 찬사를 한 몸에 받은 책으로, 간결하면서도 정직한 문장과 아름답고 따뜻한 그림, 갈피 갈피마다에 배어있는 정성이 돋보인다. 한마디로 이미지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기획과 그래픽으로 프랑스 출판시장에서 새바람을 일으켜온 갈리마르의 역작이다. 구역 46권의 성서 가운데 중요한 부분을 뽑아 12권으로 엮은 ‘어린이 그림자 성서’ 시리즈는 어린이들이 성서 속에서 마음껏 뛰놀면서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등장 인물과 배경을 그림자로 표현해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한다. 창조를 비롯해 카인과 아벨, 노아, 바벨탑, 아브라함, 요셉, 모세(3권), 다윗과 골리앗, 솔로몬, 요나 이야기를 전체 컬러 그림자 삽화와 곁들여 읽고 보는 동안 아이들이 그 안에서 모세가 되기도 하고 요나가 되어보면서 성서의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다. ‘어린이 그림자 성서 시리즈’는 특히 아이들로 하여금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와 그 인물들에게 창의적인 방법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이끌어 줄 것이다. 더군다나 성서 원문을 최대한 살리면서 이해를 돕기 위해 꼭 설명이 들어가야 할 부분은 이야기의 흐름을 단절시키지 않는 한도 내에서 저자가 ‘개입’한다. 예를 들면 예언자가 누구이며, 번제물은 어떻게 쓰이는지, 또 이스라엘 장로들은 왜 꿈을 해석하고자 하는지 등에서 저자의 역할을 확인할 수 있다. 【오세택 기자】 cpbc2001.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