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숙 노엘라의 생명의 빛을 찾아서] 41. 모래사장 / 자연생태](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8/14/oYo1691988841762.jpg)
[김광숙 노엘라의 생명의 빛을 찾아서] 41. 모래사장 / 자연생태김광숙 노엘라(국제가톨릭형제회 AFI) “고향~”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강변에 끝없이 펼쳐진 하얀 모래사장이다. 모래사장 가장자리는 포플러 버드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고, 동네 민물이 강으로 흘러들어 가는 길목에는 송사리 떼들이 신나게 놀고 있었다. 어른들은 모래사장에 큰 우산을 받쳐놓고, 누워서 모래찜질을 한다. 아이들은 백사장에서 놀다가 힘들면 버드나무 숲, 샛강에서 물놀이를 한다. 강변 모래사장은 우리의 쉼터였고, 놀이터였다. 홍수 나는 여름이면 이쪽 끝과 저쪽 끝이 보이지 않던 강이 겨울이면 온 강바닥이 모래사장으로 덮인다. 모래톱에 덮여서 강물은 어디에 붙어있는지 보이지 않는 샛강처럼 된다. 이런 모습을 눈만 뜨면 평생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4대강 사업으로 수천, 수만 톤의 모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날마다 모래를 실어나르던 수십 개의 트럭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니던 그 모습이 떠오르면 가슴이 미어진다. 다시 몇만 년, 몇억 년의 세월이 흘러야 모래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꼬미 마을의 자산 중의 자산이었던 그 모래사장을 잃고 몇 년간 분노했었다. 수만 년 동안 강과 함께 살아온 모래들의 아우성이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모래를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 바람과 비, 천둥과 번개, 홍수와 가뭄, 서리와 이슬 등 자연이 만든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인간이 저지르고야 말았다. 모래사장이 없으니 새들이 앉아서 쉴 쉼터로 근근이 찾은 것이 수문보 난간이다. 이제 더 이상 밀려날 곳이 없으니 여기는 그들의 자리라고 표시라도 해둔 듯이 하이얀 새똥으로 영역 표시를 해두었다. 안타깝기도 하고, 마음이 짠하기도 하다. 보가 생긴 후, 몇 년이 지났다. 녹조라떼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환경단체들이 강력히 요구하니 수문을 열어주었다. 시간이 흘러 흘러 두어 군데 모래톱이 생겼다. 모래톱 하나는 하트 모양으로 생겼다. 그 위에서 새들도 옹기종기 모여서 “이것이 웬 득템이냐”는 듯 여기저기를 날아다니며 기쁘고 즐거워서 축제를 하는 듯했다. 모래를 다시 바라보는 그 마음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햇살과 모래가 어울려 은빛, 황금빛으로 빛나는 광경을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속에도 사랑의 꽃이 피어올랐으리라. 어느 날, 쓰라린 가슴을 안고, 그 옛날 모래의 흔적이라도 발견할 수 있을까 싶어서 강가로 갔다. 물가로 갈려면 모래 속으로 발이 폭폭 빠져 들어가는 긴 모래사장을 타박타박 걸어가야 해서 그 길이 지루하게 느껴졌는데, 이제는 참으로 그리운 풍경이 되었다. 약간의 풀숲길을 지나면 바로 물가다. 하얀 모래는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었고, 파쇄석처럼 생긴 돌들 사이에 진흙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모래가 그리워서 그나마 맨질맨질한 돌 몇 개를 주워왔다. 잠시 강을 바라보고 앉아 있노라니, 눈물이 그냥 줄줄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아름다운 자연과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구나! 지금도 금빛 모래사장을 생각하면 눈가에 이슬이 절로 맺힌다. 수만 년 동안 자연이 만들어 낸 그 모래와 애도의 시간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자연을 빼앗긴 트라우마도 생길 수 있음을 느끼게 하는 시간이다. 이제 꼬미 백사장 모래한테서 배우는 시간이 사라졌다. 한때는 발전과 물질적 진보가 우리의 희망이고, 꿈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덜 일하고, 덜 소비하고, 덜 서두르는 생태적 회심으로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오늘도 ‘덜하는’ 것으로 회심하는 날이다. “하느님께서 솔로몬에게 지혜와 매우 뛰어난 분별력과 넓은 마음을 바닷가의 모래처럼 주시니.”(1열왕 5,9)cpbc2023.10.19
![[생활 속의 복음] 연중 제22주일-깊이 있는 사랑](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8/29/oxQ1693285380596.jpg)
[생활 속의 복음] 연중 제22주일-깊이 있는 사랑 생각에도 깊이가 있듯이 사랑에도 깊이가 있습니다. 사랑이 깊을수록 상대를 위해 희생은 물론 고통과 죽음까지도 감수하려는 마음이 큽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고통을 감내하기 때문에 부모의 사랑은 하늘만큼 높고 바다같이 깊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깊이 있는 사랑을 실천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인간, 그것도 죄지은 인간들의 구원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시고 십자가 수난과 죽음의 길을 가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스승의 길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당신 계획을 미리 알려주십니다. 당신이 주로 활동하셨던 갈릴래아를 떠나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가시면서 거기서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했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큰 충격과 혼란에 빠집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과거 다윗과 솔로몬 임금처럼 군사적 승리와 정치적 성공을 이루는 메시아를 기대해 왔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을 붙들고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립니다. 이 반응에는 스승에 대한 충심도 분명 담겨 있었을 텐데, 예수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매몰차게 내치십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여기서 사탄은 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만나셨던 그 사탄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때 사탄은 물질로, 권력과 영화로 백성을 휘어잡고, 자신의 명예와 이익을 위해 하느님을 도구처럼 이용하라고 예수님을 유혹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악마의 제안이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보시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방패로 삼아 모든 유혹을 이겨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승리와 성공의 메시아 상을 고집하면서 십자가를 거부하는 것은 당신의 구원 계획을 방해하려던 사탄의 유혹과 같다고 여기시면서 단호하게 내치신 것입니다. 세상은 고통 없는 사랑, 십자가 없는 영광을 원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은 달라야 합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고통과 십자가를 회피하려는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고통마저 감수하는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우리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산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제2독서) 이 길은 예레미야 예언자가 갔던 길처럼 힘들고 험할 수도 있습니다.(제1독서) 하지만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예레 20,11) 우리 곁에 계시기에 용기를 내서 갈 수 있는 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교황 선출 다음 날 추기경단과 함께 거행한 미사에서 하셨던 강론 말씀을 떠올려 봅니다. “우리가 십자가 없이 걷고, 십자가 없이 뭔가를 짓고, 십자가 없이 그리스도를 고백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제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세속적이면 우리는 주교일 수도, 사제일 수도, 추기경일 수도, 교황일 수도 있지만, 주님의 제자는 아닙니다. 손희송 주교 (서울대교구 총대리) cpbc2023.08.25

다윗 시대부터 1000여 년에 걸쳐 정리된 경전[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6)구약 성경 형성 과정 구약 성경은 다윗 시대부터 구약 말기에 이르기까지 1000여 년에 걸쳐 여러 사료와 자료가 수집 정리돼 편집한 경전들이다. 사진은 이스라엘 쿰란 공동체에서 발굴한 히브리어 성경 두루마리. 구약 성경의 세계에 빠져들기에 앞서 먼저 이 경전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간략히 살펴봅시다. 구약 성경은 다윗 시대부터 구약 말기에 이르기까지 약 1000여 년에 걸쳐 여러 사료와 자료가 수집 정리되고, 수정 첨가하면서 편집한 경전들입니다. ‘토라’인 모세 오경뿐 아니라 경전 대부분은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예로, 탈출기에는 기원전 1000년께 다윗 시대의 법률이 수록돼 있는가 하면, 기원전 500년께 바빌론 유배기의 법률도 포함돼 있습니다. 또 시편에 수록된 150편의 시 가운데 가장 오래된 시와 제일 늦게 쓰인 시는 800년이라는 시차를 보여줍니다. 이는 구약 성경이 이스라엘 민족의 장구한 역사를 반영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구약 성경은 시대적으로 크게 세 단계에 걸쳐 형성됐습니다. 첫째, 기원전 1000년께부터 기원전 750년까지로 이스라엘 왕정 시대입니다. 이스라엘을 통일한 왕은 다윗입니다. 그리고 다윗을 이은 솔로몬 왕 때에 이스라엘 왕국은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솔로몬 왕 시기인 기원전 950년께 이스라엘 남부 유다 지역에서 뛰어난 학자들이 그때까지의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정리했습니다. 족장 시대부터 구전된 전승들을 체계적으로 글로 정리한 것이지요. 이들은 자신들이 쓴 사료 안에서 하느님의 이름을 “야훼”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이를 ‘야휘스트 사료’라 부르며, 알파벳 ‘J’로 표기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으로 멸시했던 이방 신들을 섬겼고, 백성에게 과도한 세금을 징수하고, 불공평한 부역을 강요하는 폭정을 펼쳤습니다. 이에 북쪽 10개 지파와 남쪽 2개 지파가 지역 갈등을 겪었고, 백성들은 왕에게 불만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래서 솔로몬 사망 후 이스라엘 민족은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왕국 유다로 쪼개졌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두 왕국으로 갈라진 뒤 북 왕국 이스라엘은 기원전 9~8세기 다시 한 번 자기 조상의 역사를 정리해 사료를 만듭니다. 이 사료를 엮은이들도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사료에서 하느님의 이름을 “엘로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이들 사료를 ‘엘로히스트 사료’라고 하며, 약어 ‘E’로 표기합니다. 둘째, 기원전 750년께부터 기원전 500년까지로 남북 왕국 패망과 바빌론 유배 시대입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은 기원전 721년 아시리아에 패망했습니다. 또 기원전 587년 남 왕국 유다가 바빌로니아에 멸망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층 인사들은 모두 바빌론으로 끌려가 유배 생활을 했습니다. 북 왕국이 망하기 얼마 전부터 바빌론 유배 시기까지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는 예언자들이 나타나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대였습니다. 구약 성경 예언서들의 주요 내용이 이 시대에 설교 되거나 기록됐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상ㆍ하, 열왕기 상ㆍ하의 주요한 줄거리도 이 시대에 엮어졌습니다. 특히, 북 왕국 이스라엘이 패망한 뒤 학자들이 남 왕국 유다로 피난 와서 기원전 650년께 율법을 새로이 정리했고, 그 내용을 모세의 유언으로 꾸몄습니다. 바로 ‘신명기’(申命記)입니다. 한자로 ‘율법을 펼쳐놓은 책’인 신명기는 헬라어로 ‘Δευτερονμιον’(데우테로노미온), 라틴어로는 ‘Deuteronomium’(데우테로노미움)이라고 하는데 우리말로 ‘두 번째 법’이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이 사료를 쓴 이들을 ‘신명기계 학파’라 하고 약어 ‘D’로 표기합니다. 신명기계 학파는 신명기뿐 아니라 앞서 말한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열왕기를 저술했습니다. 이 책들을 ‘신명기계 역사서’라고 합니다. 신명기계 학파는 이스라엘 민족의 멸망 원인을 찾으려 이 책들을 기록했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가르침 곧 ‘하느님의 율법’을 충실히 살지 않아서 자신들이 멸망했다는 것을 민족들에게 일깨우고 있습니다. 또 기원전 587년 남 왕국 유다 멸망 후 바빌론으로 끌려간 예루살렘의 사제(제관)들은 유배지에서 깊은 성찰을 하고 많은 공부를 하며, 이스라엘 민족의 여러 사료를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 나름의 관점에서 새로운 사료도 엮었습니다. 특히 예루살렘 성전 파괴로 더는 성전에서 하느님께 제사를 드릴 수 없어서 제관들의 제의에 관해 자세히 기록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사료를 ‘제관계 사료’라 하며 약어 ‘P’로 표기합니다. 셋째 단계는 기원전 500년부터 기원전 200년까지 바빌론 유배 이후 시대입니다. 기원전 5세기 중반 에즈라와 느헤미야 시대 때 오늘날 우리가 읽고 있는 토라 곧 모세 오경이 저술됐습니다. 이 시기 율법 학자들이 야휘스트와 엘로히스트 사료에 신명기께 사료를 덧붙인 후 제관계 사료를 합해 우리가 구약 성경에서 보고 읽고 묵상하는 모세 오경을 편찬했습니다. 또 바빌론 유배 시대 이후 예언자들의 전승들이 정리돼 예언서들로 편집됐습니다. 그리고 시편과 지혜서들도 다듬어졌습니다. 이러한 작업들은 대략 기원전 200년께 마무리됩니다.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의 유다교 성경,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구약 성경의 제1 경전이 편찬된 것입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01.03
![[이소영 평화칼럼] 가장 아름다운 노래](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8/16/RoS1692145570527.jpg)
[이소영 평화칼럼] 가장 아름다운 노래이소영 베로니카(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때때로 붙잡고 있던 옷깃을 놓친 것 같은, 세상이 나를 밀쳐낸 듯 느껴지는 시기가 있다. 그해 겨울이 내겐 그러했다. 당시 누군가 「시편」을 읽어보라 권했다. 그걸로도 마음이 어떻게 안 되거든 「욥기」를 찾아 읽으라고, 거기서 필요로 하는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거라 했다. 그날 밤 잠들기 전 「시편」을 펼쳤다. 그런데 읽다가 ‘저를 미워하는 자들’이 등장하는 구절들에 다다르면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누구나 저마다의 입장과 서사가 있을진대 자신은 가련한 피해자로, 상대방은 덤불 속 사자 같은 가해자로 묘사하며 주님이 그들을 짓부수어 주십사 청하는 것이 과연 옳은 기도일까. 성경을 제대로 공부해보지 못한 자의 불경한 의문일 수도 있겠으나, 사람들이 자신을 잡아 죽이려 몰려드는 와중에조차 한 시종의 잘린 귀에 손대어 고쳐주셨던 주님이 “저를 적대하는 자들은 수치로 옷 입고 창피를 덧옷처럼 덮게 하소서”(시편 109,29)의 저주 섞인 탄원을 듣고 어떤 심정일지 싶었다. 이어서 「욥기」를 읽었다. 신앙이 얕고 신학에 무지한 나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위안을 얻을 수 없었다. 신도, 신의 아들도 아닌 인간 욥이 올곧음을 시험당하며 받은 무시무시한 고통이 돌덩이처럼 내면을 짓누르는 듯했다. 절대자는 그간 내게 감미로운 음악과 따사로운 볕처럼 오셨고, 별들과 나무들 안에 계셨다. 그렇다면 “진창에다 내던지시니 나는 먼지와 재처럼 되고 말았네”(욥기 30,19)의 저 차갑게 돌아선 단단한 등은 누구의 것일까. 그렇게 가위눌린 마음으로 읽다 페이지를 잘못 넘겨 「아가」의 구절에 닿았다. “나의 연인이 문틈으로 손을 내밀자 내 가슴이 그이 때문에 두근거렸네. 나의 연인에게 문을 열어주려고 일어났는데 내 손에서는 몰약이 뚝뚝 듣고 손가락에서 녹아 흐르는 몰약이 문빗장 손잡이 위로 번졌네. 나의 연인에게 문을 열어주었네. 그러나 나의 연인은 몸을 돌려 가 버렸다네. 그이가 떠나 버려 나는 넋이 나갔네. 그이를 찾으려 하였건만 찾아내지 못하고 그이를 불렀건만 대답이 없었네. 성읍을 돌아다니는 야경꾼들이 나를 보자 나를 때리고 상처 내었으며 성벽의 파수꾼들은 내 겉옷을 빼앗았네. 예루살렘 아가씨들이여 그대들에게 애원하니 나의 연인을 만나거든 내가 사랑 때문에 앓고 있다고 제발 그이에게 말해 주어요.”(아가 5,4-8) 붙잡아주던 손이 사라진 듯한, 이유 모른 채 버려진 것 같은 순간이 이따금 있다. 누구에게나 그럴 것이다. 종교를 갖고 있든 그렇지 않든. 「아가」는 이렇듯 캄캄한 순간을 절대자가 노여워 나를 벌하거나 진창에 내던지는 장면으로 묘사하지 않은 듯했다. 좋아하던 이가 문 앞에서 몸을 휙 돌려 가버려 어쩔 줄 모르는, 사랑 때문에 애달파 앓는 마음으로 표현한 것 같았다. 잃은 게 아니라 잠시 앓는 것. ‘밀당’을 알지 못하는, 상대가 장난스레 밀어내고 숨어버리면 그대로 엎어져 울음 터뜨리는, 아직 서툴고 미숙한 사랑의 마음. 혹시 무얼 잘못해서 나를 떠난 걸까 싶어 마음이 풀처럼 시든 이에게 짓궂은 연인마냥 불쑥 다시 나타나려고 잠시 저 모퉁이에 숨어 기다리고 계신가보다. 그렇게 상상해 보았다. 그 상상은 욥이 마침내 주님으로부터 양 만사천 마리와 낙타 육천 마리, 겨릿소 천 쌍과 암나귀 천 마리를 선사 받던 장면보다 몇 배나 위로가 되었다. 신성을 지나치게 주관화한 것 아니냐 할지 모르겠다. 성냥팔이 소녀가 켠 성냥불의 환상처럼 그건 네가 그려낸 너만의 하느님이라고.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믿으려 한다. 솔로몬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 「아가」에서 그러셨듯 그분은 ‘노루처럼, 젊은 사슴처럼 되어’ 서둘러 다시 오실 것임을 말이다. 내게, 그리고 이 순간 두려움과 고통 중에 있을 그대들에게. cpbc2023.09.18

귀향한 유다인들, 성전 짓고 믿음을 새롭게[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23) 귀환과 예루살렘 재건 에즈라는 예루살렘 재건 시기 유다교를 율법 중심으로 개혁한 사제이다. 신바빌로니아는 키루스 임금이 이끄는 페르시아인들의 침입으로 기원전 539년 멸망합니다. 키루스 임금은 티그리스 강가 오피스(오늘날 바그다드)에서 단 한 번의 승리로 신바빌로니아를 무너뜨리고 대 제국을 건설합니다. 어떤 저항도 받지 않고 바빌론으로 입성한 그는 복속된 백성의 지지를 얻기 위해 그들의 전통을 존중하고 우호 정책을 폅니다. 키루스 임금은 기원전 538년 칙령을 반포하고 유다인들을 해방시킵니다. 그러나 해방령에도 불구하고 많은 유다인은 그대로 바빌론에 남아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고 집도 있고 생계를 꾸릴 일자리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아무런 간섭없이 자유롭게 신앙생활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과 달리 하느님께 대한 신앙에 충실했던 사람들과 고향을 그리워한 이들은 고국으로 귀환합니다. 유다 제후 세스바차르는 키루스의 명을 받고 유다인 4만 2360명, 그들의 남녀 종 7337명, 음악가 200명 등 총 4만 9897명을 바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옵니다. 그리고 그는 키루스 임금으로부터 예루살렘 성전 기물도 되돌려받았습니다.(에즈 5장)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배자 중에는 즈루빠벨, 예수아, 느헤미야, 스라야, 르엘라야, 모르도카이, 빌산, 미스파르, 비그와이, 르훔, 바아나가 있었습니다.(에즈 1─2장) 귀환자의 지도자 역할을 한 이는 바로 즈루빠벨이었습니다. 그는 고국에 돌아온 이들과 곧바로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착수합니다. 이 성전은 기원전 515년에 겨우 준공해 봉헌합니다. 그것도 하까이와 즈카르야 예언자가 질타하며 독려했기에 마무리될 수 있었습니다. 성전 건립 공사가 더뎠던 까닭은 사마리아 귀족들의 반대로 페르시아 키루스 대왕의 뒤를 이은 크세르크세스 1세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가 예루살렘 성전 재건 공사를 중지시켰기 때문입니다.(에즈 4,6-7; 23-24) 그러다 페르시아 다리우스 임금이 바빌론 문서고에서 키루스의 칙령을 발견한 후 성전 재건 공사를 다시 시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배에서 돌아온 이들과 유배를 가지 않고 그대로 고국에 남아 있던 이들 간의 땅 소유 문제로 충돌이 잦았습니다. 남 왕국 유다를 멸망시킨 신바빌로니아는 사제와 귀족, 지식인, 기능인들을 바빌론으로 끌고 간 후 그들의 땅을 유배 가지 않은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줬습니다. 50년이 지난 후 고향으로 되돌아온 이들이 땅 소유를 주장하니 분쟁이 잦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고국에 남아있던 유다인들은 다른 종족들과 혼인해 이교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유배지에 끌려가 냉대를 받으면서도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지켜온 귀환자들에게 이들은 이방인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봉헌한 성전은 솔로몬 성전만큼 화려하진 못했지만, 이스라엘 민족의 중심이 되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이 성전을 ‘제2 성전’이라 부릅니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이 이스라엘 민족의 첫 번째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제2 성전 시대’라고 표기할 경우는 제2 성전을 봉헌한 기원전 515년부터 로마군에 의해 성전이 파괴된 서기 70년까지를 지칭합니다. 페르시아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임금의 술 시중 담당이었던 느헤미야가 기원전 445년 유다의 제후 곧 지방관이 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야훼께서 위로하시다’는 뜻인 그의 이름처럼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민족의 위로가 되어줄 예루살렘 재건에 힘씁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벽을 52일 만에 다시 쌓고 요새화했습니다. 그는 또 예루살렘 성 안에 사는 유다인들의 안전한 생활을 위해 규칙을 제정해 사회 개혁을 단행하고, 백성들에게 살 집을 마련해 주기 위해 인구 조사도 시행했습니다.(느헤 7장, 11장 참조) 느헤미야는 약 10년 동안 예루살렘을 통치합니다. 그후 페르시아로 갔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예루살렘 재건 시기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에즈라입니다. 사제이며 율법학자인 그는 율법 중심으로 유다교 개혁을 단행합니다. 느헤미야가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를 재조직했다면 에즈라는 유다교 쇄신을 주도했습니다. 에즈라는 느헤미야의 후원으로 공적인 신앙 집회를 열고 많은 유다인들을 모아놓고 율법을 낭독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말을 잊어버린 이들을 위해 협력자들이 아랍어로 통역해 주었습니다. 에즈라는 온종일 이스라엘 민족에게 예루살렘 성전에서 율법을 근거로 하느님의 백성다운 공동체를 구성해야 한다고 울면서 호소했습니다. 그리고 이민족과의 혼인을 금하도록 설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즈라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이민족 아내를 내보고 안식일과 십일조를 열심히 지키기로 약속했습니다. 이때부터 유다인들은 국가도 아니고 제의 공동체도 아닌 오직 율법을 충실히 지키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형성하게 됩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에즈라를 ‘제2의 모세’라고 칭송합니다. 신앙적으로 완전히 죽었던 이스라엘 민족을 율법을 통해 다시 일어서게 했다고 했기에 이렇게 부른 것입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05.01

의인 욥의 십자가가 갖는 의미는[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46) 욥기 욥기가 제시하는 고통에 대한 긍정적 자세는 ‘십자가를 통한 구원’이라는 그리스도교 교의를 잘 설명해 준다. 레오 보나, ‘욥’, 유화, 1880년, 오르세 미술관, 파리. 욥기의 히브리어 유다교 타낙 성경 명칭은 ‘욥’이며, 성문서로 분류돼 있습니다. 히브리어 ‘욥’은 우리말로 ‘미움받다’, ‘증오하다’는 뜻으로 하느님께 저항하는 욥의 모습과 그로 인해 시련을 겪는 욥의 처지를 반영한 이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욥은 ‘돌아오다’는 뜻의 아람어 ‘아바’에서 유래하기도 해 ‘하느님께 돌아온 사람’이라는 뜻을 지니기도 합니다. 또 욥기를 헬라어 구약성경 「칠십인역」은 ‘ΙΩΒ’으로,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JOB’이라 표기합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펴낸 가톨릭 「성경」은 ‘욥기’라고 표기하며 가톨릭 성경 분류표에 따라 ‘시서와 지혜서’에 포함해 놓았습니다. 욥기는 하느님께 축복을 받은 의인이라고 여겨지지는 흠 없는 사람인 욥이 아무 이유 없이 사탄의 시험대에 올라 갖은 시련을 겪다 하느님과의 대화를 통해 인간의 지혜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신비를 들은 후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 모든 것을 이전 이상으로 회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욥기는 시련을 겪는 욥(1─2장), 욥과 테만 사람 엘리파츠, 수아 사람 빌닷, 나아마 사람 초파르와의 대화(3─31장), 부즈 사람 바라크엘의 아들 엘리후의 연설(32─37장), 주님과 욥의 대화(38,1─42,6), 모든 것을 회복하는 욥(42,7-17) 다섯 부분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욥기가 고통을 겪는 한 의인에 대한 고대 민중 설화를 토대로 엮어진 책이라고 봅니다. 이 고대 민중 설화는 기원전 2000년대 말기 근동 지방의 현인들 사이에 말로 전승되다 기원전 11~10세기 사무엘-다윗-솔로몬 시대 때 히브리어로 옮겨졌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러다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가 유배 생활을 하던 중에 유다인들 중 어떤 이가 이 민중 설화를 토대로 당시 잘 알려진 수난받는 의인 욥 이야기(에제 14,14. 20 참조)를 토대로 욥기를 엮었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욥기는 산문체와 운문체, 문화 배경과 종교 개념이 다양하게 드러나 단 한 번에 저술되지 않았습니다. 그 예로 욥기에는 하느님을 ‘야훼’ ‘엘’ ‘엘로하’ ‘샷다이’ ‘아도나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하게 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욥기가 적어도 세 과정을 거쳐 엮였을 것이라고 봅니다. 먼저 욥의 이야기가 말로 전해져 내려왔고, 다음으로 이 민중 설화를 다른 이야기와 합치는 중간 편집 단계를 거칩니다. 이 과정에서 욥의 시련 이야기에 욥과 세 친구의 대화, 하느님과 욥의 대화, 욥기 28장의 ‘지혜 찬가’가 추가됐으리라 추정합니다. 끝으로 최종 편집자가 엘리후의 연설을 삽입해 욥기를 세상에 내놓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성경학자들은 이렇게 욥기가 엮어진 시기를 기원전 5~1세기 사이였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럼 욥기의 최종 편집자는 누구일까요? 성경학자들은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가 유배생활을 하던 유다인 중 예레미야의 고백(예레 11,18-20; 12,1-4)을 잘 알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불렸던 시편이나 유다 임금들의 궁전에서 전해지던 잠언들을 외우고 있었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욥기의 저자가 예레미야의 제자일 것으로 추측합니다. 욥기는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해방돼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배자들이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작품입니다. 욥기는 모세오경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유다인들에게 무엇이 지혜인지 가르쳐 주는 책입니다. 욥기의 핵심 주제는 ‘하느님과의 진정한 관계성’입니다. 욥은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시련을 당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 시련을 받았습니다. 욥기가 제시하는 고통에 대한 긍정적 자세는 ‘십자가를 통한 구원’이라는 그리스도교의 교의를 잘 설명해 줍니다. “그리스도는 고통을 없애러 오신 분이 아니라 어떤 고통 중에도 우리와 함께 계심으로써 그 고통을 극복하게 하시고, 결국 고통을 넘어서는 구원으로 이끄신다는 종말론적 희망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김혜윤 수녀, 「시서와 지혜서」 143쪽) 욥기는 하느님을 창조주이며 역사의 주님으로 고백합니다. 또한 욥기는 하느님의 권능이 모든 피조물을 향한 각별한 배려와 사랑으로 드러난다고 가르쳐줍니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축복과 피조물들을 향한 선의를 알아채지 못합니다. 욥기는 인간의 지식이 제한적이고 단편적이며 항구성이 없다는 것을 깨달으라고 촉구합니다. 더불어 지혜는 오직 하느님께 속해 있고 인간의 지식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가르쳐줍니다. 성경학자 김정훈 신부는 욥기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욥은 시련을 극복하면서 솔직하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하느님께 드러내고, 하느님 앞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 결과적으로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신뢰는 인간을 더욱 굳건하고 확실한 믿음으로 이끌었으며,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변함없는 신앙은 세상과 역사의 현장에서 인간을 하느님의 동반자가 되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시서와 지혜서」 46쪽)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10.25

하느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법[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45) 시서와 지혜서 시서와 지혜서는 하느님의 가르침에 대한 인간의 응답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콘은 시편의 저자로 일컬어지는 다윗 임금. 가톨릭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구약 성경 정경 46권은 오경ㆍ역사서ㆍ시서와 지혜서ㆍ예언서 순으로 배열돼 있습니다.(유다교 성경은 토라, 예언서, 성문서 순으로, 개신교 구약 성경은 오경, 역사서, 지혜서, 예언서 순) 그중 시서와 지혜서는 욥기, 시편, 잠언, 코헬렛, 아가, 지혜서, 집회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배열한 이유는 주요 인물들의 활동 시기를 순서대로 나열했기 때문입니다. 욥기는 고대 인물인 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시편은 다윗 임금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잠언과 코헬렛, 아가는 솔로몬의 작품으로 소개되고 있지요. 이어 구약 성경 시대 말엽에 저술된 것으로 알려진 지혜서와 집회서가 배치됩니다. 시편과 욥기, 잠언, 아가는 유다교 히브리어 타낙 성경 정경에 속해 성문서로 배열돼 있습니다. 하지만 지혜서와 집회서는 제1경전인 히브리어 구약성경 정경에 없어 제2경전이라고 하지요. 가톨릭 구약 성경은 시서로 시편과 아가를, 지혜서로 나머지 5권을 분류합니다. 가톨릭교회가 시서와 지혜서를 예언서 앞에 배열한 까닭은 구약 성경 다음으로 신약 성경이 바로 연결된다는 점과 연관이 있습니다. 메시아의 도래를 알리는 예언서들을 구약 성경 마지막에 배열해 신약 성경의 네 복음서와 직접 연결하려는 교회의 편집 의도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 전체 내용은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야훼께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시고, 이스라엘은 그분의 백성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유다교 신앙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이 신앙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계약으로 성사됩니다. “‘주님’께서 오직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당신을 계시하셨고 이 백성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셨다는 데에는 늘 일치를 보인다.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모세의 인도로 자신들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셨고, 그를 통하여 계약을 체결하셨으며, 끝내 성조들에게 약속하신 바로 그 땅으로 자신들을 이끌어 가셨음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경신례를 통하여 현재화시켜 나갔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처럼 유일하신 주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특별한 관계 속에서 펼쳐진 역사였으며, 이 관계 자체가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확립시켜 주었다.”(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주석 성경」 1359쪽) 구약 성경 중 오경과 역사서, 예언서는 이처럼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특별한 관계 속에서 펼쳐진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시서와 지혜서의 경우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서 내용이 전개됩니다. 곧 계약과 율법, 사제와 성전에 관한 관심보다 하느님을 어떻게 하면 잘 찬미할 수 있고, 참 지혜를 간구해 슬기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에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서와 지혜서는 “주님을 경외함은 지식의 근원”이라고 노래합니다.(시편 111,10; 욥 29,28; 잠언 1,7; 집회 1,14 참조) 이처럼 시서와 지혜서는 하느님의 가르침과 말씀에 대한 인간의 응답을 더 관심을 기울입니다. 바빌론 유배 이후 유다인들 사이에 지혜 문학이 발전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이미 유다교는 조국이나 성전, 왕조와 같은 역사적이고 물질적인 속박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이스라엘을 재건하겠다는 마음은 이미 없어졌습니다. 당시 유다인들은 나라를 잃고 노예살이를 했지만, 율법을 통해 하느님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또 역사적이고 물질적인 속박에서 벗어나 노예살이를 면하고 자기 땅으로 돌아와 비록 옛날처럼 왕국을 건설하지 못했지만 해방된 민족이었습니다. 이제 그들에겐 어디에 사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선민이라는 의식 대신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된 사람들이란 의식이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민족이 우선이 아닌 개개인을 중시하는 풍토가 유다 사회 안에 확산됩니다. 그러면서 하느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지혜 문학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지혜서는 인간의 지혜가 하느님에게서 기인한다고 고백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지혜로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시편 104,24; 잠언 3,19), 창조된 세상 안에 내재하며 그 안에서 활동하는 하느님의 지혜는 세상과 하느님을 연결시킵니다.(잠언 8장 참조) 따라서 하느님을 경외하는 자만이 지혜를 선물로 받을 수 있습니다.(욥 28,28; 잠언 9,10; 집회 1,14) 유다인들은 바빌론 유배 생활을 하면서 자신들을 구원하고 해방시켜주실 하느님께 희망의 시를 지어 노래했습니다. 찬양과 탄원, 신뢰와 감사, 교훈 등 다양한 주제가 담긴 시편 기도는 이스라엘의 경신례에 자리 잡게 됐고, 그 전통을 이어받아 지금도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중요한 기도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시서는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해 형성된 이스라엘 민족의 종교 심성을 시적 운율 안에서 결정체를 이룬 문학 작품입니다. 따라서 시서에는 구약 이스라엘 역사 전반에 드러난 하느님의 계시가 집약돼 있습니다. 그래서 시서를 특히 ‘시편을 구약 성경의 요약집’이라고 합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10.19

하느님께서는 하느님 그 자체로 존재하신다[김형부 마오로의 이콘산책] (7) 빛의 감각적 현현 - 부정의 관계 이론 (작품1) 부활하신 그리스도: 프레스코 이콘, 13세기 중반, 코라 성당, 콘스탄티노플. 하느님의 불가해성 어두운 빛으로 표현 앞에서 언급한 어두운 구름을 빛이라고 하는 개념은 그분은 원천적인 빛이시라는 하느님의 불가해성(不可解性)을 대변합니다. 실상 우리 인간이 빛이라고 부르는 것은 태양에서 나오는 빛 또는 불빛, 전기에 의한 빛인 물리적인 빛이고, 그 빛이 필요한 것은 생물체들입니다. 그러나 교부들은 하느님에 대해 부정적(否定的)1)으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여기서 부정적이라는 것은 하느님에 대해 우리가 이렇다저렇다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에 따르면 ‘신’이란 개념(槪念)은 인간적 개념이기 때문에 모든 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정확한 해석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에 대비되는 신학으로는 하느님에 대한 긍정적2)인 서술로서 “하느님은 …이다. 또는 하느님은 …이다”라고 설명합니다. 즉 신의 실재에 대한 논리적인 이성과 교리적인 이해를 통해 신을 인식하는 신학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면,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하느님은 정의이시다’라고 하느님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러나 부정신학에서는 하느님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하기에는 인간들의 언어가 부족하다고 봅니다. 즉 인간의 언어로 된 하느님에 관한 설명은 일부분, 또는 외연(外緣)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긍정적인 언어보다 부정적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오도(誤導)의 확률이 적다는 것입니다.(필론, 클레멘스, 오리게네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우리는 신 자체가 아니라 신이 아닌 것들을 통해서 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고, 니사의 그레고리우스는 “하느님은 본질적으로 보이지 않는 분이지만 당신의 활동을 통해 보이게 되십니다”라고 언급하였습니다. 활동을 통해 모습 드러내는 하느님 다마스쿠스 요한네스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표현으로 이미 신의 불가해성(不可解性)을 알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인간이 아는 한 원천적으로 ‘스스로 있다’라는 개념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구별할 때 다른 대상과 무엇이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 알아냅니다. 그러므로 ‘나는 나’라는 자기동일성(自己同一性)은 자신이 다른 것에 의해 구별되지 않는 자립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 는 나’라는 것은 어떠한 다른 대상과 비교할 필요없는 절대적 존재를 의미합니다. 아주 간단한 예를 들어봅니다. 아버지가 밤늦게 집 문을 열어달라고 두드릴 때, “누구세요?”라고 가족 중 누군가가 묻게 됩니다. 아버지는 “나다”라고 대답합니다. 그 목소리만 들어도 가족들은 다른 아버지들과 비교할 필요없는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경우에 견주어 보면 하느님에게는 온 우주와의 관계에서 비교 대상이 필요없는 초월자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하느님께서는 온 우주에 ‘나다’ 하실 수 있습니다. 부정신학에서 강조하는 것 하느님을 안다는 것과 하느님은 본질적으로 알 수 없는 분이라는 두 주장의 흐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에 대해 카파도키아의 교부 대 바실리우스는 ‘하느님의 능력으로부터 그분을 안다고 합니다. 그분의 능력은 인간에게 내려오지만, 그분의 본질에 대해서는 가까이할 수 없는 채 남아 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자연을 초월해 계시며, 모든 존재 위에 계시기 때문에 다른 존재와는 구별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을 통해 느끼게 되고, 그분의 능력으로부터 오는 은총을 통해 그분을 알게 됩니다. 히포의 주교 아우구스티누스(354~430년)는 ‘우리의 한계적 지성(限界的 知性)에 의해 온전히 이해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하느님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부정신학에서 강조하는 것은 하느님의 신비에 대한 영역을 남겨두고 접근의 한계를 부각하는데 초점을 둡니다. 부정적 언어를 사용해 도를 설명한 노자 비슷한 예로 동양 사상에서 노자는 신(神)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신성(神性)이라는 비인격적인 것을 도(道)라 했습니다. 그는 도를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고 하면서, 도를 도라 하면 이는 이미 도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도는 말로써 표현되지 않으므로 언어적으로 설명할 때는 ‘~도 아니고 ~도 아닌’ 것과 같은 부정적 언어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는 하느님에 대한 지식은 제한적이라 했는데, 그 이유는 하느님께서 모든 지식을 넘어 알 수 없는 어둠에 싸여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알 수 없는 암흑에 도달해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도 큰 깨달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본성은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그분의 두 본성이 ‘뒤섞이지 않으며, 변화하지 않으며, 나뉘지 않으며, 분열되지 않으며’ 등의 표현으로 정의되었는데, 이는 부정적인 서술 방법으로서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대상에 대하여 방법론적으로 표현한 결과였습니다. ‘알 수 없음’을 아는 것도 큰 깨달음 ‘하느님을 찾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교부들은 다른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인간의 유한한 한계성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그분과 닮은 인간의 본성은 끊임없이 그분을 찾으려 합니다. 따라서 부단한 노력으로 하느님을 찾으면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에 대해 조금씩 깨닫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3)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 어떻게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해도 하느님께서는 하느님 그 자체, 그 본질로 존재할 따름입니다. 그 안에는 인간 지식이 끼어들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신비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에 관한 논리 신앙적 차원서 접근 따라서 교회는 하느님에 관한 논리는 이성적 차원이 아닌 신앙적 차원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아주 쉬운 예 중 하나로 세상의 비극적 사건과 악이 횡행해도 하느님께서 인간의 고통을 아파하시면서 왜 침묵하시는 것인지를 세상은 그 과정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에 뛰어넘을 수 없는 부분은 믿음으로 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그분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금욕, 고행, 헌신, 자기 성찰 등과 같은 수덕생활, 자기 비움과 윤리적, 도덕적 삶을 통해 정신과 영혼에 더 가치를 두게 되었습니다. 어둠으로 빛나는 구름에 둘러싸인 예수 (작품1)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벽화로 그려져 있는 코라 성당의 이콘 작품은 많은 의미를 전달합니다. 여기서 ‘코라’라는 의미는 ‘초월적 존재가 머무는 무한의 공간’, 즉 ‘하느님이 계시는 곳’이란 뜻입니다. 물론 공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삼차원 공간은 아닙니다. 신앙고백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저승에 가신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주님이 하신 일은 어둠 속에서 오른손은 아담을, 왼손은 하와의 손목을 잡아 죽음에서 일으키십니다. 따라서 아담과 하와는 죽음의 관에서 일어나는 모습입니다. 이는 총체적으로 사람(아담)을 죽음에서 구하시는 모습입니다. 아담 뒤편에는 요한 세례자와 다윗 왕, 솔로몬 왕이, 하와 뒤편에는 다니엘과 많은 예언자가 서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어둠으로 빛나는 구름에 기하학적 삼층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맨 위의 문자는 ‘아나스타시스’, 부활을 의미합니다.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자기 비움’으로, 이 또한 구원계획의 과정으로 여겼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로 그의 빛을 받아 우리도 부활하리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지옥문과 온갖 속박을 없애신다는 의미로 지옥문과 자물쇠가 부서져 구덩이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부서진 두 문짝 사이에는 죽음이 묶여있습니다.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1코린 15,55) 각주 1)부정신학(Theologia Apophatica) - 역설의 언어 2)긍정신학(Theologia Kataphasis) 3)부정신학은 성 디오니시오스가 정리하였다고 추정되는 5세기의 저서이다. 그러나 저작자의 불확실성 때문에 ‘위 디오니시오스’라 부른다. 김형부 마오로/전 인천가톨릭대 이콘담당 교수 cpbc2024.02.14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의 아름다움성서학자 안소근 수녀, 아가 해설본 「사랑에 취하여라 교부들이 본 아가」 출간 사랑에 취하여라 - 교부들이 본 아가 안소근 수녀 지음가톨릭출판사‘사랑’이란 무엇일까?우리는 흔히 육적인 사랑을 ‘에로스’, 영적인 사랑을 ‘아가페’라 부른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당연히 아가페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다음 구절은 어떤가? “먹어라, 벗들아. 마셔라, 사랑에 취하여라.”“아, 제발 그이가 내게 입 맞춰 주었으면! 당신의 사랑은 포도주보다 달콤하답니다.”영화 제목이나 고전 연극의 대사일 법한 이들 구절은 각각 아가 5장 1절, 1장 2절의 말씀이다. 아가는 남자와 여자가 등장하는 사랑 노래다. 그래서 이러한 내용을 문자적으로만 이해하면 아가가 성경에 속한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아가가 단순히 남녀의 사랑만을 말하고 있다면 과연 성경에 수록될 수 있었을까?“아가는 히브리어로 ‘쉬르 하쉬림’,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노래들의 노래’입니다. (중략) ‘노래들의 노래’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뜻한다고 생각하여 우리 성경에서도 ‘아가 雅歌’라고 옮깁니다.” (34쪽) 초대 교회 교부들의 아가 해석을 되짚어본 「사랑에 취하여라」가 출간됐다.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수학하고 대전가톨릭대학교와 가톨릭 교리신학원에 출강 중인 안소근(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수녀가 쓴 책으로, 저자는 아가를 남녀의 사랑을 노래한 것으로 보는 해석이 주류를 이루는 요즘 아가가 거쳐 온 다채로운 해석사의 첫 시기인 타르굼, 히폴리투스, 오리게네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의 해석을 소개한다. 유다교의 전통적인 해석이 담긴 타르굼은 아가의 남녀가 신랑이신 하느님과 신부인 이스라엘을 나타낸다고 보았고, 로마의 히폴리투스는 유다교의 아가 해석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이스라엘이 신약에 이르러서는 복음을 받아들인 교회로 대체된다고 해석했다. 아가 관련 우의적 해석의 이론적 토대를 제시한 오리게네스는 아가를 솔로몬이 썼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이 책을 일종의 연극으로 본다. 그는 혼인 축가로 이해된 본문의 문자적 의미를 짧게 제시하고 곧이어 그 본문을 교회에, 그리고 개별 영혼에게 적용한다. “성경에서 제시하는 순서대로 솔로몬의 책들을 읽는 사람은 먼저 잠언을 통해서 분별을 얻고 올바른 행동이 어떤 것인지를 배우게 되며, 그다음에 코헬렛에서 사물의 본성과 원인들을 구별하고 헛된 것과 영원한 것을 알아보게 됩니다. (중략) 이렇게 준비된 독자는 아가를 읽으면서 이 책이 단순히 육적인 사랑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90쪽)니사의 그레고리우스는 아가를 남녀의 사랑을 노래한 것으로 여기는 해석을 배척하고, 아가를 통해서 무한한 하느님을 향한 유한한 영혼의 여정, 즉 ‘에펙타시스’를 강조한다. 책은 약 1세기에서 4세기에 있었던 주요 해석들을 통해 아가가 어떤 사랑을 노래한 것인지 다채롭게 살펴본다. 성경에서 말하는 아가페와 에로스도 설명하고 있다. 책을 읽은 뒤 함께 실린 최민순 신부가 번역한 「아가」를 보면 하느님의 사랑이 담긴 아가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설령 아가의 저자가 남녀의 인간적 사랑을 노래하려 했다 하더라도, 그가 사랑에 대해 말한 많은 것들은 다른 사랑을 이해하는 데에도 큰 가치를 지닙니다.”(140쪽)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문채현2022.07.12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그 자체가 기적인 비잔티움 건축물[김광현 교수의 성당 건축 이야기] 29. 하기아 소피아 <상> 하기아 소피아 내부. 출처=Piotr Redlinski 하기아 소피아 외관. 출처=Burak Kara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건축물 중 하나 하기아 소피아(Hagia Sophia)는 튀르키예어로는 아야 소피아(Ayasofya), 라틴어로는 상크타 소피아 또는 상크타 사피엔자(Sancta Sophia, Sancta Sapientia)다. 그리스어로 하기아 소피아라 부르는 것은 325년에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새 수도를 옮기고 라틴어가 아닌 고전 그리스어로 불렀기 때문이다. ‘거룩한 지혜’라는 뜻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1코린 1,25) 하기아 소피아는 이스탄불에 있는 중요한 비잔티움 건축물일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건축의 하나다. 이것은 6세기(532~537) 유스티아누스 1세 때 콘스탄티노플(현재 이스탄불)에 건설된 그리스도교 성당으로 지어졌다. 보스포러스 해협을 내려다보는 높은 곳에 선 아름다운 성당의 둥근 지붕은 도시 경관의 중심이었다. 360년경에서 1204년까지는 정교회 대성당이었다. 1204년 제4차 십자군에 의해 약탈당했다. 많은 비잔틴 모자이크가 베니스로 옮겨졌고 1261년까지 로마 가톨릭 성당이 되었다. 다시 1261년에서 1453까지는 정교회 대성당이었다. 그러다가 1453년에서 1934년까지는 모스크로, 1935년에서 2020년까지는 박물관으로 쓰였으나, 2020년부터는 다시 모스크가 되었다. 이렇게 하기아 소피아는 수 세기에 걸친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종교적 변화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하기아 소피아가 있는 땅에는 본래 이교도 사원의 기초가 있었다. 325년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에는 그 위에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을 건설하라고 명령했다. 그의 아들 콘스탄티우스 2세가 350년경에 짓기 시작하여 360년에 도시 최초의 대성당을 봉헌했다. 지붕을 목재로 짠 일반적인 바실리카식의 성당인 마그나 에클레시아(Magna Ecclesia, Great Church)였다. 그러나 이 성당은 당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대주교였던 성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모스가 두 번째로 추방된 뒤, 잇따라 일어난 폭동 중에 발생한 화재로 404년에 손상을 입었다. 콘스탄스 1세는 이를 확대하여 두 번째 성당을 다시 지었고, 415년에 테오도시우스 2세에 의해 다시 봉헌되었다. 그러나 532년 1월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에 대해 시민이 일으킨 1주일간의 니카(Nika, 그리스어로 ‘정복’) 반란으로 황제 궁전 일부, 하기아 이레네 성당과 함께 하기아 소피아 성당은 다시 불타버렸다. 하기아 소피아 평면. 출처=Wikimedia Commons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종교적 변화 겪어 폭동을 진압한 지 불과 39일 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도시를 재건되기 시작하면서 제국의 위신을 되찾기 위해 완전히 새롭고 이전의 두 성당을 훨씬 능가하는 대규모의 장려(壯麗)한 세 번째 성당을 짓고자 했다. 이번에는 화재에 잘 견디도록 불연화한 석조나 벽돌로 만들게 했다. 지금처럼 중랑(中廊)의 스팬이 33m나 되는 거대한 성당에서는 목조의 트러스로는 불가능했으므로, 조적조의 아치나 볼트, 돔의 기술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소아시아에서 온 안테미우스(Anthemius)와 이시도루스(Isidorus)에게 계획과 공사를 맡겼다. 이들은 이교도였다. 더구나 그들은 건축가가 아니라 기술자로 기록되어 있다. 그때까지 본 적도 없는 대담한 구조물을 실현하려면 건축가보다 기술가가 더 어울렸기 때문이다. 이것은 수정궁을 설계한 조셉 팩스톤, 에펠탑을 설계한 귀스타브 에펠과 같은 엔지니어가 근대 건축을 본격적으로 연 것과 비슷하다. 이때 건설노동자 1만여 명과 현장 감독 100명이 일했으며, 감독 한 명이 100명을 맡아 현장 지휘하게 했다. 또 이들을 반으로 나눠 각각 건물의 오른쪽과 왼쪽에서 맡아 경쟁적으로 일하게 했다. 이렇게 하여 저 거대한 성당은 불과 5년 11개월에 완공되었다. 하기아 소피아는 양쪽의 측랑을 열주랑으로 분리한 3랑식 바실리카인데, 건물의 가로 세로는 73mx82m이다. 중랑 위 중앙에는 지름 약 31m, 높이 56m인 거대한 돔을 얹었다. 336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 당시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돔이다. 그래서 이 돔은 하느님께서 한 천사를 시켜 지어지도록 이끄셨다고 한다. 이런 거대한 중랑 위 중앙에 돔을 얹고, 돔의 동서 방향으로는 반(半) 돔을 얹어 중랑(中廊)을 확장했다. 이로써 중심형이면서 동서의 축이 강조된 장축형이기도 한 비잔티움의 걸작이 되었다. 판테온은 원형 평면에 원형 돔이 올라가지만, 하기아 소피아는 정사각형 평면에 원형의 돔이 얹혀 있다. 사각형의 네 변은 아치가 받치게 되는데, 그러면 아치의 원호와 돔 평면의 원호 사이에는 정사각형 평면에 외접하듯이 올라가는 삼각 곡면이 생긴다. 이것이 펜덴티브(pendentive)다. ‘매달려 있다’는 말에서 나온 용어다. 전설에 의하면 유스티아누스 황제는 537년 이 성당을 봉헌하며 약 1500년 전에 지은 첫 번째 예루살렘 성전을 언급하면서 “오, 솔로몬이여! 내가 당신을 능가했습니다”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얼마나 큰지 그 장려한 돔 아래에서 전례에 봉사하는 이들은 성가대를 포함하여 525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그의 자랑은 불과 몇십 년밖에 가지 않았다. 하기아 소피아의 중앙 돔. 출처=Stanford University 아름답고 장대하며 과감한 성당 건축물 553년에 지진으로 동쪽 아치의 머리가 약해졌다. 4년 뒤 557년 지진이 있었으나 부서진 곳을 수리하는 데 실패했다. 이듬해인 558년에 동쪽 대(大) 아치와 반 돔이 무너졌고, 중앙 돔은 절반쯤이 내려앉았다. 곧바로 재건 공사를 시작했으나 남아 있던 돔의 서쪽 부분도 주저앉았다. 이 무렵 안테미우스와 이시도루스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이시도루스의 조카인 같은 이름의 이시드루스라는 건축가(?)가 돔 전체를 다시 만들면서, 돔의 추력을 줄이기 위해 높이를 6.4m로 높이고, 40개의 리브를 추가하며 반원에 가까운 돔을 만들었다. 돔은 단단한 돌이나 콘크리트보다 더 가볍고 가소성이 강한 벽돌 골재로 건설했다. 4년 후인 562년에 복원되었다. 돔 베이스에는 40개의 창문을 뚫었다. 모자이크로 가득 찬 돔은 이 창을 통해 들어온 빛으로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건물 전체를 6년에 지었던 것이 비하면 새로운 돔을 정말 신중하게 얹었다. 다만 돔의 추력에 견디도록 육중한 석조 버팀벽이 추가되어, 외관은 산을 마주 대하듯이 대단히 무겁다. 이 돔은 10세기에 발생한 두 번의 지진으로 다시 손상을 입었는데, 아르메니아 건축가 트르다트(Trdat, 940~1020)가 이를 고쳤다. 하기아 소피아는 아름답고 장대하며 과감한 성당이다. 그러나 바로 그 과감함 때문에 구조 설계에 무리가 있었고, 황제가 준공 시기를 서둘러서 공사를 강행한 탓에 무리를 거듭하며 지어졌다. 그러니 하기아 소피아가 오늘날에 남아 있는 것은 그 자체가 기적이다. 그런 하기아 소피아가 1453년 이슬람 모스크가 되었고 같은 해에 도시는 이스탄불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때 하기아 소피아에서 전례에 참석한 마지막 회중의 탄식은 어떠했을까? 그러다가 2020년 7월 24일 금요일 85년 만에 도시 새벽을 깨우는 무슬림의 기도 소리가 다시 퍼지기 시작했다. cpbc2023.07.16

종려 가지 흔들고 ‘호산나’ 외치며 예수님 환영[사순 시기] 복음서로 보는 주님 수난 (1) 예루살렘 입성 전례력으로 ‘사순 시기’가 시작됐다. 사순 시기는 주님의 부활을 준비하는 때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시기 40일 동안 크게 두 가지 형태로 주님 부활을 준비한다. 하나는 희생과 보속을 통해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복음서를 통해 주님의 수난과 죽음의 신비를 묵상하는 것이다. 주님 부활을 잘 준비하는 사순 시기와 성주간이 될 수 있도록 다섯 주간에 걸쳐 네 복음서가 증언하는 한 주간 주님 수난 행적으로 정리해 소개한다.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 ▨ 예루살렘 입성 마르코(11,1-11)ㆍ마태오(21,1-11)ㆍ루카(19,28-38)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공생활 중에 단 한 번 예루살렘에 가신 것으로 묘사한다. 바로 수난 때이다. 마태오와 루카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여러 번 예루살렘에 들른 것을 암시(마태 23,37; 루카13,34)하지만 수난 직전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전에는 절대로 예수님께서 그곳에 갔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요한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공생활 중에 예루살렘을 다섯 차례나 방문하셨다고 증언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9~10월에 지내는 ‘초막절’(7,1-36)과 초막절 석 달 후 겨울에 지내는 ‘성전 봉헌절’(10,22-42)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의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는 ‘파스카 봄 축제’(과월절, 무교절) 때 예루살렘에 가셨다. 요한 복음서는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파스카 축제에 세 차례 참여한 것으로 기록한다. 예루살렘에서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 파스카 축제 때 ‘성전을 정화’(2,13-25)하셨고, 두 번째 파스카에서는 ‘벳자타 못 가에서 병자를 고치셨다.’(5,1ㅡ6,4)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 부활의 파스카 축제였다.(12,12-19. 19,1ㅡ20,23)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입성 전 올리브 산 동쪽 끝 예루살렘 성벽에서 약 3㎞ 떨어진 베타니아에 있는 한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셨다.(마태 26,6-13; 마르 14,3-9; 루카 7,36-50; 요한 12,1-11) 이 집을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서 저자는 ‘나병 환자 시몬의 집’이라고 하고, 루카 복음서 저자는 ‘바리사이의 집’이라 하며, 요한 복음서 저자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오빠 라자로의 집’이라고 한다. 이때 ‘어떤 여자’, ‘그 고을에 죄 많은 여자’, ‘라자로의 여동생 마리아’는 예수님께 값비싼 향유를 머리와 발에 붓고 경의를 표했다. 요한 복음서 저자는 이날이 파스카 축제 6일 전, 곧 토요일 저녁이라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여인의 행동을 나무라자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준비하려고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장례는 유다교에서 권장하는 선행 가운데 하나이다. 여인의 향유 부음은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을 통해 그 의미가 드러난다. 이를 지켜본 유다 이스카리옷은 예수님을 배신하기로 작정하고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이튿날(요한 12,12) 예수님께서는 베나티아에서 올리브산 정상을 통과해 예루살렘으로 향하셨다. 교회는 이날을 ‘주님 수난 성지 주일’로 기념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올리브산 동쪽 비탈에 자리한 벳파게(무화과 숲의 집) 마을 근처에 도착하자 두 제자를 보내 어린 나귀를 빌려오게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다. 제자들과 수많은 군중이 자기 겉옷과 나뭇가지를 길에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이스라엘의 임금님은 복되시어라” 환호하며 주님을 맞았다. 제자들이 어린 나귀 등에 겉옷을 걸치고 거기에 예수님을 올라타게 한 것은 솔로몬이 아버지 다윗의 왕좌에 올림을 받는 장면을 연상시킨다.(1열왕 1,33-34) 제자들의 이러한 행동은 다윗 왕조의 전통에 따른 ‘즉위식’에 해당하는 것으로 예수님을 다윗 왕조의 임금으로 세운 것이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은 ‘메시아’의 징표인 종려나무 가지(1마카 13,51 참조)를 흔들며 예수님께 “호산나!”(도와주세요)를 외쳤다. 이 도움의 청원 ‘호산나’는 다윗 왕조의 통치와 그 안에서 이루어졌던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 통치가 새로이 이루어질 것에 대한 희망의 환호였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즈카르야의 예언처럼 나귀를 타고 오는 평화의 임금이실 뿐 아니라 다른 이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죽임을 당하는 목자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가장 짧은 길을 택해 올리브산 경사면을 내려가신 후 다시 키드론 골짜기를 올라 예루살렘 성문 가운데 ‘아름다운 문’이라 불리는 동쪽 문으로 들어가셨을 것이다. 오늘날 이 문은 늘 잠겨 있고 ‘금문’(Golden Gate)으로 불린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2023.02.12

하느님이 선택한 이스라엘의 첫째 임금[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14) 사울 1 이스라엘 첫째 임금은 벤야민 지파 출신으로 키스의 아들인 사울이다. 하지만 그는 절대 군주인 멜렉이기보다 영도자이며 군 통수권자인 나기드였다. 그림은 사무엘이 하느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뽑힌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축성하고 있다. 사진 출처 구글. 이스라엘의 첫째 임금은 사울입니다. 히브리어 사울은 우리말로 “요구된 사람”, “바쳐진 사람”이란 뜻입니다. 사울의 헬라어식 이름이 ‘바오로’입니다. 사울의 족보는 사무엘기 상ㆍ하권과 역대기 상권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습니다.(1사무 14,51; 1사무 31,2; 2사무 2,10; 1역대 8,33 참조) 정리하면 사울은 벤야민 지파 출신으로 키스의 아들입니다. 아내는 아히마아츠의 딸 아히노암이고요. 자녀는 8명입니다. 여섯 아들은 요나탄, 이스위, 말키수아, 아비나답, 에스바알, 이스 보셋이고, 두 딸은 메랍과 미칼입니다. 요나탄과 아비나답, 말키수아는 필리스티아인들과 벌인 길보아 산 전투에서 전사합니다. 이스 보셋은 사울이 죽은 후 아브네르에 의해 임금으로 추대되어 2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작은딸 미칼은 다윗의 아내가 되었다가 사울의 미움을 받아 갈림 출신 라이스의 아들 팔티에게 버려집니다. 사울의 족보가 불확실하고 복잡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답을 풀기 위해선 먼저 구약 성경의 역사서들이 어떻게 분류되는지 알아야 합니다. 구약 성경 역사서는 ‘신명기계 역사서’와 ‘역대기계 역사서’ 그리고 ‘기타 역사서’로 나누어집니다.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열왕기가 신명기계 역사서에 속합니다. 가장 먼저 구성된 이 신명기계 역사서는 남왕국 유다가 멸망한 후 쓰였습니다. 역대기, 에즈라기, 느헤미야기가 역대기 역사서로 분류됩니다. 이 책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후 집필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타 역사서에는 룻기, 토빗기, 유딧기, 에스테르기, 마카베오기가 있습니다. 사울의 이야기가 나오는 사무엘기 상ㆍ하권과 역대기 상권의 저자들은 남왕국 유다의 역사가들이었습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유다 지파 출신의 다윗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다 왕조의 태조인 다윗을 현양해야 했기에 사울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었고 호의적이지도 않았습니다. 당연히 사울의 족보도 다윗의 족보만큼 중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울은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되어 이스라엘의 첫째 임금이 됩니다. 하느님의 명에 따라 사무엘은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붓고 입을 맞춘 다음 “주님께서 당신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그분의 소유인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우셨소”(1사무 10,10)라고 선포합니다. 사무엘의 이 말처럼 사실 사울은 이스라엘의 ‘멜렉’(히브리어로 임금)이라기 보다 ‘나기드’(히브리어로 영도자)에 가까운 인물입니다. 나기드 곧 영도자는 구약 성경에서 사울에게 처음으로 주어진 호칭입니다. 일부 성경학자들은 나기드는 절대 군주라는 개념보다 ‘군 통수권자’라고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사울은 다윗이나 솔로몬과는 달리 이스라엘의 12지파 부족 구조를 중앙집권 체제로 바꾸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울은 왕정제를 반대한 사무엘의 우려(1사무 12장 참조)와 달리 백성들에게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징병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원병만 참전시켰습니다. 또 관료제를 만들거나 후궁을 두지도 않았습니다. 사울은 하느님의 영을 받은 영도자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기 권위를 내세웠을 뿐 고대의 절대 군주가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의 영을 받은 사울은 암몬족을 물리치고 요르단 건너편에 있는 ‘야베스 길앗’이라는 도시를 구합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의 온 백성은 필리스티아인들의 억압에서 자신들을 구출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사울을 임금으로 추대합니다.(1사무 11장 참조) 사울이 30살에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뽑혀 활동한 시기는 기원전 1030년에서 기원전 1010년께라고 추정합니다. 사울은 판관이 활동하던 구질서가 무너지고 신체제인 왕정이 확고히 수립되기 전까지 과도기의 이스라엘을 통치한 인물입니다. 그는 구질서를 대표하는 마지막 판관 사무엘과 새롭게 떠오르는 다윗 사이에서 이스라엘의 첫째 임금이라는 운명적인 삶을 살아야 했던 비극의 영웅이었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임금이 된 후 재임 기간 내내 끊임없이 전쟁합니다. 그의 임무는 나기드로서 ‘하느님의 전투를 치르는 것’이었습니다. 사울은 임금이 된 후 네 차례 큰 전투를 치릅니다. 첫 번째는 필리스티아인들과의 전투입니다. 이 전투는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미크마스와 베텔, 게바에서 펼쳐졌습니다. 전투는 사울과 그의 장남 요나탄이 이끄는 부대가 게바의 필리스티아인의 전초 부대를 공격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산악 지대에서 게릴라전을 펼친 사울은 필리스티아인들을 아얄론까지 내쫓습니다.(1사무 13─14장) 두 번째 전투는 아말렉족과 펼쳤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과 아말렉족이 적대 관계임을 여러 번 알려줍니다.(탈출 17,8-16; 민수 14,43-45; 신명 25,17-19; 판관 3,13 참조) 사울 임금은 예언자 사무엘의 지시에 따라 브에르 세바에서 멀지 않은 아말렉 성읍 텔 메소스와 하윌라에서 이집트 동쪽 수르까지 쳐서 아말렉 임금 아각을 생포하고, 엄청난 전리품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이 전투에서 하느님께 대한 그의 충성심이 시험대에 오르고 결국 하느님께서는 그를 버리십니다. teotokos@cpbc.co.krundefined리길재2023.03.10
![[시사진단] 봄봄봄을 기다리며(최영일, 빈첸시오, 공공소통전략연구소 대표)](//cpbc.co.kr/CMS/newspaper/2022/02/rc/819081_1.0_titleImage_1.jpg)
[시사진단] 봄봄봄을 기다리며(최영일, 빈첸시오, 공공소통전략연구소 대표) 설과 대보름을 지내고도, 입춘과 우수를 지내고도 아직 겨울이다. 하지만 경칩이 지나고 곡우가 오면 아무리 동장군이 심술을 부려도 계절은 돈다. 봄은 오고야 마는 것이다. 절기란 그런 것이고, 자연의 이치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봄은 왔지만 봄이 아니라는 모순적인 옛말은 또다시 우리 마음을 어둡게 만든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그렇다면 봄의 특징은 무엇인가? 봄은 따뜻하다. 언제나 봄을 떠올리면 어릴 적 학창시절, 입학식이 있거나 새 학기가 시작되거나 며칠 꽃샘추위를 견디면 교정과 통학 길,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쪼이고, 춘곤증으로 졸음이 사르르 몰려오며 새싹이 돋고, 나무마다 새잎이 돋고, 꽃봉오리가 맺혔다가 꽃이 피는 과정을 보게 되었던 기억이 각인되어 있다.2022년 다시 돌아온 계절에 우리 마음에 그 따뜻함이 있는가? 우리 공동체는 따뜻한가? 따뜻하지 않으면 아직 봄이 아니다.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축제라는 대선의 주인은 누구인가? 여당인가, 야당인가, 이 후보인가, 저 후보인가. 국민을 따뜻하게 보듬어야 할 사람들이 국민을 이리저리 갈라친다. 대통령은 호칭이 거창하지 그 일은 사실 정원사, 가드너와 같은 것이다. 이 사회라는 숲에는 굵고 큼직한 나무도 있고, 나약한 풀도 있다. 우람한 꽃도 있고, 하늘하늘한 꽃도 있다. 시원해야 잘 자라는 식물, 더워야 신이나 열매를 맺는 식물도 있다. 한 마디로 다양하다. 이 다양한 개체들이 공존하는 정원을 저마다 개성에 따라 공정하게 성장하고 번식하고 살아가도록 세심하게 보살피는 정원사를 뽑는 일이다. 마음이 따뜻하지 않으면 농사꾼이나 정원사가 될 수 있겠는가?또 다른 봄의 특성은 이미 말해버렸지만,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생명이 소생하고, 그 생명이 활짝 분출되는 시기라는 점이다. 올봄은 그냥 봄이 아니다. 무려 삼 년째 우리 삶의 터전을 침탈하고, 나라를 꽁꽁 옭아매고, 21세기에 그 어느 역사적 시기보다 긴밀하게 연대한 세계를 갈가리 분리한 코로나라는 가시덤불이 엄습했던 시기를 견뎌 터널의 끝자락에 서 있는 봄이다. 그러니 올해 우리 사회 각 분야의 농사는 여느 해의 농사가 아닌 것이다. 새로운 씨앗을 파종하고, 다시 인류가, 나와 내 가족이 새로운 미래,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힘껏 열어젖혀야 한다. 잃었던 것들을 같은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개척해야 하는 척박한 시대의 위대한 첫걸음이 절실한, 절박한 봄이다. 그 길을 탐색해야 하는 길잡이를 우리 중에서 뽑는 일이다. 그러니 우매해서는 안 된다. 영민해야 한다. 과거에 했던 방식을 답습하려는 이는 안된다. 창조적 파괴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는 혜안을 지녀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다소 암울하다. 우수하고 유능한 길잡이를 뽑아야 하는데 서로 손가락질하며 저 사람이 되면 공동체를 말아먹을 듯 이야기한다. 국민 주권자들에게 솔로몬의 지혜, 솔로몬의 판결을 요구하는 대선판을 만들어 버렸다. 권력이라는 아기를 칼로 둘로 갈라주랴? 이렇든저렇든 3월 9일 대선의 결과는 나온다. 시간은 흐르기에 결과는 나온다. 최악이냐 차악이냐가 문제이지. 시인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의 첫 구절처럼 4월이 잔인한 달이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이 척박한 봄에 우리에게 좋은 지도자를 허락하소서. 평화신문2022.02.23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36) 여행지 : 구세사 2](//cpbc.co.kr/CMS/newspaper/2021/12/rc/815503_1.9_titleImage_1.jpg)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36) 여행지 : 구세사 2마리 파울리타 수녀(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십계명 돌판을 들고 있는 모세, 렘브란트, 1659년.하느님께서는 한번 맺으신 언약을 끝까지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성실하지 못해도 그분께서는 언제나 성실하시기 때문입니다.”(2티모 2,13) 이집트에서 노예 살이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신 하느님은 그들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키십니다. 그들은 이집트 탈출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경험하였지만, 그들을 이끌어주신 하느님을 자주 잊어버리고 쉽게 주변 국가가 섬기는 우상을 숭배하며 하느님을 거듭 배신합니다. 예언자들의 끊임없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반복되는 불신과 죄 속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 즉 그들을 구원할 메시아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럼 ‘두 번째 구세사’ 퀴즈 여행을 떠나볼까요?퀴즈 여행 1.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의 이름은? 2. 여호수아가 죽고 판관들이 다스렸는데, 몇 명의 판관이 있었는가? 3.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첫 번째 왕으로 세운 마지막 판관은? 4. 두 번째 왕인 다윗은 이스라엘 12 지파 중 어느 지파에 속하는가? 5. 하느님의 집,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한 왕은? 6. 유다의 왕 르하브암에 맞서서 북부 이스라엘 왕국을 세운 사람은? 7. 남부 유다는 어느 나라에 의해 멸망하고 그 나라로 유배를 가는가? 8. 하느님과의 계약을 어길 때마다 나타나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은? 9. 바빌론으로 유배를 간 이스라엘 백성이 어느 왕의 칙령으로 고국으로 돌아오는가? 10. 헬레니즘 시대의 종교 박해에 대항하며 싸운 유다인 가문은? 답란1. 십□□ 2. □□명 3. □무□ 4. □다 5. □□몬 6. 예□□□ 7. □□론 8. □□자 9. 키□□ 10. □카□□(정답은 ‘가이드 설명’에서 확인하십시오) 가이드 설명1. 십계명 하느님께서는 모세의 인도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구하셨습니다. 이제 이들은 해방되어 몸은 자유로웠지만, 하느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몰랐기에,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십계명을 주시지요.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며,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되기로 계약을 맺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율법(십계명)을 지킴으로써 주님만을 섬길 것을 약속하지요. 2. 판관 시대(BC 1200~1030년)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유랑생활을 하였습니다. 40년이란 기간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신앙을 다지기 위한 성찰의 시간이지요. 모세는 죽고 여호수아가 그들을 데리고 가나안에 들어갑니다. 100~150여 년에 걸쳐 전쟁을 치르면서 그 땅을 점령하고, 열두 지파별로 땅을 나눠 갖지요. 왕정 수립 전까지 판관 시대였는데, ‘판관’이란 정치ㆍ군사ㆍ종교 지도자를 말하며, 모두 열두 명의 판관이 있었습니다. 3. 첫 번째 왕 사울(BC 1030~1010년) 사무엘이 나이가 많아지자 백성들이 와서 임금을 세워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이들이 판관으로 만족하지 못하였기에, 결국 사무엘이 벤야민 지파인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첫 왕으로 세우지요. 사울은 왕권을 차지하고 주변 국가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고 백성의 지지를 받았지만, 다윗을 질투하게 되고 점차 주님의 눈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게 되었고, 결국은 필리스티아인들과의 싸움에서 전사하고 맙니다. 4. 유다 지파의 다윗 왕(BC 1010~970년) 사무엘은 하느님께서 밀쳐내신 사울 대신 유다 지파의 가문인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축성합니다. 다윗은 국가 조직을 정비하여 남북의 세력을 합치고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정하고, 빼앗겼던 계약의 궤도 예루살렘으로 옮겨오지요. 다윗이 이웃 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다윗 왕가의 영원한 번영이 약속되는데, 다윗은 우리야를 죽이고 그의 아내 밧 세바를 차지하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5. 최고 전성기를 누린 솔로몬 왕(BC 970~933년) 밧 세바가 낳은 솔로몬이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됩니다. 그는 하느님께 ‘분별력’을 청해 지혜로운 왕이 되었고, 세상에 그 이름을 떨쳤지요. 솔로몬은 다윗의 숙원 사업이었던 하느님의 집, 예루살렘 성전을 지어 바쳤고, 화려한 궁전도 지었습니다. 하지만 과도한 세금 부여와 정략결혼으로 다른 나라의 신들을 숭배하는 죄를 저질러, 그의 사후에 왕국은 분열되지요. 6. 북부 이스라엘(BC 933~722년) 솔로몬이 죽은 후 그의 아들 르하브암이 예루살렘에서 왕으로 즉위하였습니다. 솔로몬의 부하였던 예로보암은 반기를 들고, 르하브암에게 불만을 품은 북쪽의 열 지파와 함께 나라를 세웁니다. 이로써 왕국은 북부 ‘이스라엘’과 남부 ‘유다’로 갈라졌지요.(BC 933년) 북부 이스라엘은 베텔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우며 하느님께 죄를 많이 지었고, 아홉 차례나 왕조가 바뀌며 정세가 불안하다가, 강대국 아시리아에 패망하였습니다.(BC 722년) 7. 남부 유다(BC 933~ 587년) 남부 유다의 모든 왕은 다윗 왕조의 혈통이었지만, 많은 왕이 선왕 다윗의 길을 충실히 따르지 못하였습니다. 대표적 선한 왕은 13대 히즈키야, 종교 개혁을 강행한 16대 요시야였고, 대표적인 악한 왕으로 하느님보다 강대국 아시리아를 섬긴 12대 아하즈를 들 수 있지요. BC 597년과 587년 두 차례 바빌론의 공격을 받아 예루살렘이 함락되면서 많은 백성이 바빌론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습니다. 8. 예언자 예언자란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과의 계약을 어길 때마다 나타나 하느님의 메시지와 경고를 줬습니다. 북부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예언자로는 엘리야와 엘리사, 남부 유다에서는 이사야 예언자가 있었지요. 이사야는 다윗 후손 중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가 올 것이라는 ‘메시아 사상’을 백성에게 전했습니다. ▶참조 이샤야 예언서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짐: 1―39장(제1이사야, 유배 이전), 40―55장(제2이사야, 유배 시기), 56―66장(제3이사야, 그 이후). 9. 예루살렘 귀환(BC 538년~ ) 바빌론은 페르시아에 패망했고, 페르시아 왕 키루스는 유배 온 이스라엘 백성을 예루살렘으로 귀환시킵니다.(BC 538년) 하느님께 충실하고 고국을 그리워하던 사람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고 종교 개혁을 위하여 노력하였지요. 대표적인 사람이 예수아, 즈루빠벨, 에즈라, 느헤미야입니다. 10. 헬레니즘 시대의 마카베오 항쟁(BC 167년~ )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임금이 지중해 연안을 통일하면서 이스라엘은 그리스의 통치하에 들어가게 됩니다.(BC 332년) 그리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4세’가 유다인을 헬레니즘화(化) 시키기 위해 종교 박해를 가하자, 이스라엘은 167년 ‘마카베오’ 가문을 중심으로 독립항쟁을 시작했지요. 이스라엘은 잠깐 독립 국가를 이루다가(BC 142년~ ) 로마의 침입을 받아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BC 63년) 여행옵션: 구세사 연대표여행 기념품이스라엘 역사는 끊임없는 배반과 회개의 역사입니다. 왕조 시대의 예를 들어보면, 하느님께 평생 충실한 왕 또는 평생 불충실한 왕이 있었으며, 처음에는 충실하였다가 나중에 불충실하게 된 왕, 처음에는 불충실하였다가 나중에 충실하게 된 왕이 있었습니다.나의 역사 안에서 하느님께 충실한 적은 언제였습니까? 불충실한 적은 언제였습니까? 하느님께서는 그런 부족한 나를 끊임없이 구원으로 이끌고 계심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마리 파울리타 수녀(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cpbc2021.12.18

“시노드 정신으로 '은총 체험의 해' 산다” 한국평협 정기총회, 24대 회장에 이병욱 서울평협 회장 선임… 가톨릭대상 시상식 거행 한국평협은 5일 제38회 가톨릭대상 시상식을 거행했다. 왼쪽부터 서울대교구 사목국장 조성풍 신부, 손희송 주교, 최요안 선교사, 박영희 봉사자, 김성이 간호사, 손병선 회장. 사랑생명 특별상 김성이 간호사정의평화 특별상 박영희 봉사자선교문화 특별상 최요안 선교사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는 5일 명동 가톨릭회관 1층 강당에서 제55회 정기총회 및 제38회 가톨릭대상 시상식을 했다. 손희송(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는 기념 미사 강론에서 “하느님의 일꾼이라면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과 영광을 위해 솔로몬이 청했던 분별력, 예수님이 보이셨던 측은지심과 자비심을 지닐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4대 한국평협 새 회장으로는 서울평협 이병욱 회장이 선출됐다. 이 회장은 “시노드 정신으로 서로가 기도 속에서 겸손하고 식별하며 문제를 풀어나가려고 노력해야 한다”며 “혼자서는 어렵지만 각 교구 평협, 회원단체 여러분들과 함께한다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임 23대 손병선 회장은 “영육 간의 부족함을 재충전하고 앞으로도 신앙인의 본분을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4년간 한결같이 따뜻한 마음으로 버팀목이 되어준 여러 회장님께 감사드린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한국평협은 올해 새로운 활동 지표를 ‘시노드 정신으로 살아가는 은총 체험의 해’로 삼고 경청, 식별, 성찰, 소통을 실천하기로 했다. 특별히 기도 운동을 시작으로 가경자 최양업 신부의 시복을 위한 활동을 활발히 펼치기로 했다. 이어 제38회 가톨릭대상 시상식에서는 사랑생명 부문 특별상에는 간호사 김성이(스텔라), 정의평화 부문 특별상은 박영희(젬마), 선교문화 부문 특별상은 선교사 최요안(요한)씨가 수상했다. 김성이 간호사는 에이즈 감염에 대한 편견 개선을 위해 힘쓴 공로가, 박영희 봉사자는 10년 넘게 교정 사목 봉사자로 활동한 점이, 최요안 선교사는 중국에서 18년간 선교 활동을 한 공적이 인정됐다.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cpbc2022.02.09
![[생활속의 복음] 사순 제1주일 - 광야에서도 우리 곁에 계시는 주님](//cpbc.co.kr/CMS/newspaper/2022/03/rc/819491_1.1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사순 제1주일 - 광야에서도 우리 곁에 계시는 주님 이스라엘 유다 광야 전경. 호사다마(好事多魔)란 말이 있습니다. 좋은 일에는 방해가 많이 따른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경우도 예외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 동안 단식하시면서 인류 구원의 길을 준비하셨는데, 악마가 다가와 방해 공작을 편 것입니다.먼저 악마는 예수님께 돌을 빵으로 바꿔보라고 요구합니다. 물질로 백성의 마음을 얻으라는 유혹입니다. ‘하느님은 모세의 백성에게 빵을 내려주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시지 않았던가? 메시아라면 백성에게 먹을 빵과 살 땅을 보장해 줘야 하지 않는가?’ 의식주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빵이 절대화되고 물질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생각, 경제 제일주의의 유혹은 경계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신명 8,3)이어서 악마는 자신에게 엎드려 절하면 세상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막강한 세상 권력과 눈부신 영화로 백성의 마음을 휘어잡으라는 유혹입니다. ‘다윗과 솔로몬은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적 번영으로 부강한 나라를 만들지 않았던가?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라면 마땅히 그런 권세와 영화를 갖춰야 하지 않는가?’ 하지만 세속 권력과 영화를 절대시하면 반드시 큰 폐해를 낳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응대하십니다.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예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신명 6,13 참조)마지막으로 악마는 성경까지 유혹의 도구로 삼습니다, 시편 91편 11절-12절에서 하느님께서 천사들을 시켜 의인을 보호해 주신다고 했으니,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요구합니다. 하느님의 능력을 빌려 메시아임을 공개적으로 입증하여 백성의 마음을 사로잡으라는 유혹입니다. ‘엘리야 예언자가 하늘에서 불을 내려오게 함으로써 참된 하느님을 드러냈듯이(1열왕 18,20-40), 메시아도 그래야 하지 않는가?’ 하지만 내 명예와 이익을 위해 하느님께 기적을 요구하는 것은 신앙을 거스르는 짓입니다. 하느님의 일꾼이 되어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하느님을 나의 일꾼으로 삼아 내 뜻과 욕망을 채우려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유혹도 단호하게 물리치십니다.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떠보지 마라.”(신명 6,16 참조) 우리 인생 여정에는 광야처럼 힘든 시간이 종종 있습니다. 그때마다 유혹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하느님보다는 재물과 권력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 나의 명예와 이익을 위해서 하느님까지 이용하고자 하는 욕심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유혹에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광야에서도 그분은 우리 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몸소 유혹을 당하고 극복하셨던 그분은 우리도 하느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유혹의 목소리를 떨쳐버리도록 도와주고 격려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제2독서)손희송 주교(서울대교구 총대리) cpbc2022.03.01

종려 가지 흔들고 ‘호산나’ 외치며 예수님 환영[사순 시기] 복음서로 보는 주님 수난 (1) 예루살렘 입성 전례력으로 ‘사순 시기’가 시작됐다. 사순 시기는 주님의 부활을 준비하는 때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시기 40일 동안 크게 두 가지 형태로 주님 부활을 준비한다. 하나는 희생과 보속을 통해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복음서를 통해 주님의 수난과 죽음의 신비를 묵상하는 것이다. 주님 부활을 잘 준비하는 사순 시기와 성주간이 될 수 있도록 다섯 주간에 걸쳐 네 복음서가 증언하는 한 주간 주님 수난 행적으로 정리해 소개한다.▨ 예루살렘 입성마르코(11,1-11)ㆍ마태오(21,1-11)ㆍ루카(19,28-38)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공생활 중에 단 한 번 예루살렘에 가신 것으로 묘사한다. 바로 수난 때이다. 마태오와 루카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여러 번 예루살렘에 들른 것을 암시(마태 23,37; 루카13,34)하지만 수난 직전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전에는 절대로 예수님께서 그곳에 갔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그러나 요한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공생활 중에 예루살렘을 다섯 차례나 방문하셨다고 증언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9~10월에 지내는 ‘초막절’(7,1-36)과 초막절 석 달 후 겨울에 지내는 ‘성전 봉헌절’(10,22-42)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의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는 ‘파스카 봄 축제’(과월절, 무교절) 때 예루살렘에 가셨다. 요한 복음서는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파스카 축제에 세 차례 참여한 것으로 기록한다. 예루살렘에서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 파스카 축제 때 ‘성전을 정화’(2,13-25)하셨고, 두 번째 파스카에서는 ‘벳자타 못 가에서 병자를 고치셨다.’(5,1ㅡ6,4)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 부활의 파스카 축제였다.(12,12-19. 19,1ㅡ20,23)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입성 전 올리브 산 동쪽 끝 예루살렘 성벽에서 약 3㎞ 떨어진 베타니아에 있는 한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셨다.(마태 26,6-13; 마르 14,3-9; 루카 7,36-50; 요한 12,1-11) 이 집을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서 저자는 ‘나병 환자 시몬의 집’이라고 하고, 루카 복음서 저자는 ‘바리사이의 집’이라 하며, 요한 복음서 저자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오빠 라자로의 집’이라고 한다. 이때 ‘어떤 여자’, ‘그 고을에 죄 많은 여자’, ‘라자로의 여동생 마리아’는 예수님께 값비싼 향유를 머리와 발에 붓고 경의를 표했다. 요한 복음서 저자는 이날이 파스카 축제 6일 전, 곧 토요일 저녁이라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여인의 행동을 나무라자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준비하려고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장례는 유다교에서 권장하는 선행 가운데 하나이다. 여인의 향유 부음은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을 통해 그 의미가 드러난다. 이를 지켜본 유다 이스카리옷은 예수님을 배신하기로 작정하고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이튿날(요한 12,12) 예수님께서는 베나티아에서 올리브산 정상을 통과해 예루살렘으로 향하셨다. 교회는 이날을 ‘주님 수난 성지 주일’로 기념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올리브산 동쪽 비탈에 자리한 벳파게(무화과 숲의 집) 마을 근처에 도착하자 두 제자를 보내 어린 나귀를 빌려오게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다. 제자들과 수많은 군중이 자기 겉옷과 나뭇가지를 길에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이스라엘의 임금님은 복되시어라” 환호하며 주님을 맞았다. 제자들이 어린 나귀 등에 겉옷을 걸치고 거기에 예수님을 올라타게 한 것은 솔로몬이 아버지 다윗의 왕좌에 올림을 받는 장면을 연상시킨다.(1열왕 1,33-34) 제자들의 이러한 행동은 다윗 왕조의 전통에 따른 ‘즉위식’에 해당하는 것으로 예수님을 다윗 왕조의 임금으로 세운 것이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은 ‘메시아’의 징표인 종려나무 가지(1마카 13,51 참조)를 흔들며 예수님께 “호산나!”(도와주세요)를 외쳤다. 이 도움의 청원 ‘호산나’는 다윗 왕조의 통치와 그 안에서 이루어졌던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 통치가 새로이 이루어질 것에 대한 희망의 환호였다.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즈카르야의 예언처럼 나귀를 타고 오는 평화의 임금이실 뿐 아니라 다른 이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죽임을 당하는 목자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가장 짧은 길을 택해 올리브산 경사면을 내려가신 후 다시 키드론 골짜기를 올라 예루살렘 성문 가운데 ‘아름다운 문’이라 불리는 동쪽 문으로 들어가셨을 것이다. 오늘날 이 문은 늘 잠겨 있고 ‘금문’(Golden Gate)으로 불린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2.03.08

마크 샤갈, 거장의 그림에 녹아든 ‘성경’ 이야기샤갈 특별전, 샤갈 앤 더 바이블... 성경 단독 주제로 열린 첫 전시, 4월 10일까지 마이아트뮤지엄 샤갈의 ‘예루살렘 통곡의 벽’(1931) “예술과 삶에서 이룰 수 있는 완벽함은 성경에서 나옵니다.” (마크 샤갈)독창적인 소재와 화풍으로 미술사에 발자취를 남긴 화가 마크 샤갈. 샤갈의 회고전이자 샤갈에게 가장 중요한 예술 창조의 원천이었던 ‘성경’을 주제로 한 ‘샤갈 특별전, 샤갈 앤 더 바이블(Chagall and the Bible)’이 4월 10일까지 서울 강남구 대치동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열린다. 러시아 유대인 출신인 샤갈은 프랑스에서 활동했다. 다채로운 색감과 몽환적인 화풍을 바탕으로 삶과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전파했다.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등과 함께 20세기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이번 전시 주제는 기존 국내에서 여러 차례 진행된 샤갈 전과 달리 그간 단독으로 다뤄지지 않았던 ‘성경’이다. 샤갈의 유족이 소장하고 있는 ‘강기슭에서의 부활’, ‘푸른 다윗 왕’ 등 유화와 과슈를 포함한 명작 19점과 아시아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4m에 육박하는 대형 태피스트리 2점 등 220여 점의 오리지널 작품이 공개된다.전시는 △샤갈의 모티프 △성경의 백다섯 가지 장면 △성경적 메시지 △또 다른 빛의 향하여 등 4가지 섹션으로 구성된다. ‘샤갈의 모티프’에서는 1957년경 제작된 샤갈의 석판화 안에서 그가 주로 다뤄온 모티프인 자화상, 고향, 마을, 축제, 동물, 악기, 연인, 성모자, 파리 등의 키워드로 나누어 그들이 상징하는 바를 탐구한다. 여러 모티프 중에서도 샤갈이 제2의 고향으로 여겼던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모아 선보인다. ‘성경의 백다섯 가지 장면’에서는 샤갈이 처음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남긴 예루살렘의 풍경과 그가 구약성경에서 선별한 105점의 장면들을 에칭으로 만든 ‘성경(The Bible)’ 연작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나본다. 창조주가 인간을 창조하는 모습부터, 예지몽을 꾸고 이집트의 재상이 되어 가족들을 모두 이집트로 데려오는 요셉, 이집트의 핍박으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을 구출한 모세의 이야기 등 구약성경의 이야기가 펼쳐진다.‘성경적 메시지’에서는 인간 창조,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 십계명을 받아든 모세, 체구의 열세를 딛고 거인 골리앗을 전략으로 이긴 다윗, 지혜로움으로 알려진 솔로몬 왕 등 샤갈이 성경에서 여러 차례 반복해 주로 그려낸 성경적 모티프들을 주제별로 엮었다. 유화, 과슈화, 석판화, 대형 태피스트리까지 작품 매체의 경계를 넘어 한 자리에서 만나본다. 샤갈이 동시대에 겪은 삶과 전하고 싶은 메시지들을 성경을 주제로 그림 속에 담은 부분과 성경 안 인물들의 희로애락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 한 부분을 주목할 만하다.마지막 ‘또 다른 빛의 향하여’에서는 샤갈의 문학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도록 샤갈의 삽화와 시를 같이 공개한다. 그 밖에도 샤갈의 메츠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기념하며 ‘모세가 십계명을 들고 있는 모습’이 담긴 포스터를 비롯해 샤갈이 제작한 감각적인 포스터들을 선보인다. 아흔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적 창작욕을 엿볼 수 있는 말년의 작품들도 만나본다. 특히 샤갈이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으로 알려진 ‘또 다른 빛을 향하여(1985)’는 생의 마지막까지 예술혼을 불태웠던 샤갈의 열정을 잘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는 월~금 오전 11시와 오후 2시, 오후 4시, 오후 6시, 토~일 오전 11시와 오후 2시, 오후 4시에 전시 해설을 하는 도슨트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작품을 친숙하고 재미있게 느낄 수 있도록 오디오 북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오디오 클립 콘텐츠, ‘나만의 샤갈 아틀리에’를 통해 샤갈의 모티프로 구성된 스탬프를 찍으며 각자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준비돼 있다. 문의 : 02-567-8878, 마이아트뮤지엄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cpbc2021.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