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복음] 연중 제32주일 (마태 25,1-13)집 안의 도둑을 보는 사랑의 지혜서울대교구 화곡본동본당 주임 정연정 신부 오늘은 연중 제32주일입니다. 예수의 성녀 데레사께서는 수도회원들에게 “세속을 떠나고 친척을 떠나고 이곳에 깊숙이 갇혀 살고 있으니 이제는 할 일 다 했고, 무엇과 싸울 필요도 없다고 생각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자매들이여, 잠을 자서는 아니 됩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집 안 도적이 그중 나쁜 것이고,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인 것입니다”라고 강조하면서 ‘깨어 있음’을 권고하셨습니다. 지혜는 바래지 않고 늘 빛이 난다(지혜 6,12 참조)최근에 화제가 된 ‘김생민의 영수증’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는데, 시청자가 보낸 한 달 치 영수증을 보면서 개그맨 김생민씨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분석하고 평가하는 내용입니다. 그는 불필요한 소비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스튜핏!(Stupid, 어리석어!)”이라고 따끔하게 지적하고, 아주 잘한 소비 행위에는 “그뤠잇!(Great, 훌륭해!)”라고 추켜세웁니다. 과연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훌륭함’, 더 나아가서 ‘지혜로움’은 무엇일까요?오늘 제1독서는 지혜서의 내용입니다. 성서학자 질베(M. Gilbert) 신부님은 「솔로몬의 지혜2」에서 “지혜는 하느님의 영, 즉 ‘인간을 사랑하는 영’이다. 지혜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지혜가 가지고 있는 하느님의 사랑도 체험할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인간은 다른 모든 것보다 더 좋아하는 절대적인 사랑으로 지혜를 사랑해야 한다”(지혜 6,12; 7,10; 8,2)고 새겨 주십니다. 모름지기 인간은 오직 하느님 안에서 지혜로운 삶을 찾을 수 있습니다.희망을 가지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슬퍼하지 마십시오(1테살 4,13)요즘 제 주변에는 “이 상황에서 도대체 어떤 희망을 얘기할 수 있을까?” 하고 자문(自問)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제 고작 쉰 살인데 대장암 때문에 선종하기를 기다리는 형제님, 얼마 전에 갑작스럽게 뇌종양 판정을 받고 꼬박 한나절 동안 수술을 받은 봉쇄 수도회 수녀님 등. 하지만 그 와중에도 두 달 동안이나 중환자실에서 죽음의 고비를 수없이 맞으셨다가 이제는 일반 병실로 옮겨온 형제님을 보면서,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희망을 말할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테살로니카 교회 성도들에게 “함께 데려가실 것, 내려오실 것, 맞이할 것, 함께 있을 것”(1테살 4,14-17 참조)과 같은 미래적인 표현들로써 “그리스도인이 슬퍼하지 않는”(1테살 4,13 참조) 이유를 선포하십니다. 그래서 베네딕토 16세께서는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에서 “우리는 미래가 있다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특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래가 확실한 실재라는 확신이 서야지만, 현재도 살 수 있는 법입니다”라고 깨우쳐 주셨습니다.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마태 25,1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른바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하여 하늘나라를 향한 우리의 마음가짐과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가르쳐주십니다.2013년 4월 일반알현 때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오늘 복음과 관련해, “신랑은 주님이십니다. 신랑의 도착을 기다리는 때는,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우리 모두에게 당신의 자비와 인내를 베풀어 주시는 때이고 깨어남의 때입니다”라고 가르쳐 주시면서, “잠들어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기쁘지 않고 우울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만난 기쁨으로 행복해야만 합니다. 잠들지 맙시다!”라고 권고하셨습니다. 하느님, 저는 새벽부터 당신을 찾나이다(시편 63(62),2 참조)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에서 “사랑, 지성 그리고 의지의 경향이 사람을 특정한 행위로 움직여 가게 하는 원리다”라고 설명합니다. 교형 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늘나라를 희망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등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고, ‘안 된다’고 했던”(마태 25,4.9 참조) 슬기로운 처녀들이 지녔던 ‘준비성(사랑)과 판단력(지성)과 지혜(의지)’를 배워야 합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나라를 향한 사랑의 지혜가 더욱 충만하기를 빕니다. 아멘. 문채현2017.11.09
수도서원 30주년 맞이, 주님 향한 세레나데 발표심재영 수사가 수도서원 30주년 기념 음반 1집 ‘당신을 사랑합니다’를 들어 보이고 있다. ‘그대를 보며 그댈 그리워하는 이 마음을 그댄 아나요. 사랑이 깊어가며 나의 마음은 한결같은데 목마른 그리움으로 그댈 찾아보지만, 그댄 어디에 있나요….’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연애편지 문구 같다. 그런데 ‘그대’를 ‘하느님’으로 바꾸면 이처럼 애틋한 신앙고백이 있을까 싶다. 성바오로수도회 심재영(예로니모, 성바오로미디어 기획 제작 책임자) 수사가 작사한 ‘당신을 사랑합니다’(Song of Songs) 가사 일부다. 노래 중의 노래(Song of Songs)는 사실 성경에서 ‘솔로몬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고 일컫는 아가서(3,1-4 참조)를 이르는 말로, 여기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1987년 첫 서원을 한 심 수사는 올해 수도서원 30주년이자 환갑을 맞아 ‘당신을 사랑합니다’(성바오로미디어 / 1만 2000원)와 수도자의 노래인 ‘사랑은 아름다워라’(성바오로미디어 / 1만 2000원)라는 두 음반을 잇달아 발표했다. 음반에는 하느님을 향한 사랑 고백이 담겨 있다. 음반 제작에는 생활성가 가수 박소정(알비나)씨를 비롯해 첼리스트이자 음악감독 이보선 SMC 대표, 데빈 리, 작곡가 이병욱 교수, 이수나 수녀, 김다위씨 등이 참여했다. 수록곡 ‘하늘 아래 사람아’는 가족 수도회인 스승예수제자수녀회 이춘자(M. 임마꿀라따) 수녀 작품이다. ‘사랑의 꽃’은 고 이태석 신부 추모곡이며, ‘하늘 아래 사람아’는 바오로 가족 창립자이자 인터넷의 수호성인인 복자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 헌정곡이다. “수도생활을 돌아보니 감사하고 행복했던 순간, 사랑 가득한 기억, 고마운 얼굴이 떠오릅니다. 어떤 날은 넘어져 상처도 났고 마음속 다짐도 폭우 속 꽃잎처럼 흩어지기도 했어요. 저에게 사랑과 생명을 주신 주님께선 하느님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주셨습니다. 우리가 사랑에 충실하면 사랑이 솟아올라 손길 닿는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어요.” 1988년부터 가톨릭교리신학원의 ‘임의노래연구회’ 1&2집을 시작으로 이태석 신부의 ‘묵상’ 곡이 수록된 수원가대 갓등중창단 1집 ‘내 발을 씻기신 예수’, 교황청립 성음악 연구소 합창단과 함께한 전례 시기별 ‘그레고리안 성가 미사곡 1~7집’ 등 그의 손을 거친 음반만 150여 개에 이른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자신의 음반을 낸 적이 없었다. 어린 시절 신심 깊은 큰어머니 손에 이끌려 성당에 나가기 시작한 그는 중학생 때 세례를 받은 후 복사단과 레지오 마리애 단원 등으로 열심히 활동했다. 집안에 천주교 신자가 없었는데 심 수사 덕분에 부모님과 5남매가 하느님 자녀로 거듭났다. 학창시절 가톨릭학생회 ‘셀(Cell)’ 모임에 참석했으며, 직장인 시절에는 점심시간에 늘 명동대성당 성모동산에서 기도하던 젊은이였다. 하느님께서는 끊임없이 기도하던 그를 수도회로 이끄셨다. 1991년부터 5년간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선교사로 지낸 적도 있다. 아프리카의 극심한 말라리아와 선교지에서 몇 차례 죽음의 위기를 성모님의 보호로 살아난 은총에 감사하며 ‘거룩하신 어머니’, ‘평화의 묵주’라는 묵주기도 음반을 제작했다. 심 수사는 2010년 돌발성 난청으로 왼쪽 귀 청력을 잃고 한때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을 겪었다. 끊임없는 피정과 기도를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느님 사랑을 알아가는 방법을 깨달았다. “앞으로도 소임을 다해 하느님과 세상,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진정 사랑과 평화만이 이 세상의 등불이기 때문입니다.” 글·사진=이힘 기자 lensman@cpbc.co.kr문채현2017.09.06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50) 12세기 ④ - 기사 수도회의 출현칼과 십자가 들고 예루살렘 향한 외줄에 오르다 새로운 수도회의 출현은 가톨릭 교회가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자 하는 시대의 요청에 응답하려는 방법이었습니다. 다양한 상황에 처한 시대적인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했던 수도자들의 응답들은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헤아렸던지 대부분 지금까지 유효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응답이 변질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십자군 원정에 참여한 수도회들은 수도 서약과 군사적 임무의 조화를 꾀했지만, 일부 수도 기사단들은 수도회로서의 본질을 저버리기도 했다. 십자군 전투 장면을 담은 그림. 【CNS】 성지 수호와 순례자 보호를 명분으로 출정한 십자군중세 중기 서방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비교적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 대중 신심 운동 중 하나로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했습니다. 비록 아랍 무슬림 세력이 7세기부터 팔레스타인 지역을 점령했지만, 서방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방해받지 않고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할 수 있었고, 동방 교회 그리스도인들도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큰 어려움 없이 신앙 생활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수니파 무슬림인 셀주크 왕조는 1037년 중앙 아시아에 제국을 설립하고, 1071년 팔레스타인 지역까지 세력을 확장하면서 순례 중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위협을 가했습니다. 정치적 위협을 느낀 동로마 비잔틴제국은 종교적인 이유를 앞세워 서방 교회에 도움을 요청했고, 교황 우르바누스 2세(Urbanus PP. II, 재임 1088~1099)는 1095년 클레르몽(Clermont) 교회 회의에서 예루살렘 성지를 수호하고 순례자들을 보호하자는 명분으로 제1차 십자군(Crusade) 원정(1096~1099)을 선언했습니다. 십자군 원정대는 1099년 예루살렘 성지를 점령하고 예루살렘 제국을 건설해 그리스도의 무덤을 지키는 성묘(聖墓) 수호자가 되었습니다.하지만 무슬림 세력이 예루살렘 제국을 위협하고 1187년 멸망시키자 서방 교회는 다시 제3차 십자군 원정(1184~1192)을 떠났으나 예루살렘 성지를 탈환하지 못했습니다. 제6차 십자군 원정(1228~1229)에서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Friedrich II, 재위 1212~1250)는 외교력으로 예루살렘 성지를 회복했으나, 1244년 다시 빼앗겼습니다. 물론 제7차 십자군 원정(1248~1254) 및 제8차 십자군 원정(1265~1272)도 있었으나 예루살렘 성지를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서방 교회는 1291년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십자군 점령 지역을 모두 빼앗겼습니다.수도 서약과 군사적 임무를 함께 수행하는 기사 수도회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가 충돌했던 십자군 원정 시절에 그리스도교 안에서 ‘기사 수도회(Military Order)’라고 불린 특수한 수도회가 설립되었습니다. 기사 수도회는 수도자로서 수도 서약을 하고 청빈, 정결, 순명의 복음삼덕을 실천했으며, 순례자를 보호하고 성지를 수호하고자 중세 유럽 기사(騎士)처럼 무력 사용을 통해 무슬림 세력으로부터 그리스도 왕국을 지키는 군사적 임무도 함께 수행했습니다.첫 번째 기사 수도회는 1023년 아말피공국(Ducato di Amalfi)이 예루살렘 내 그리스도인 거주 지역에 세례자 요한에게 봉헌하며 설립한 아프거나 상처 입거나 가난한 순례자들을 돕는 병원을 운영하던 ‘구호 기사단(Knights Hospitaller)’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런데 제1차 십자군 원정이 끝나던 1099년에 원정대는 요한 병원에서 순례자들을 보호하고 병자들을 간호할 목적으로 ‘예루살렘의 성 요한의 구호 형제회(Ordo Fratrum Hospitalis Sancti Ioannis Hierosolymitani)’를 발족시켰습니다. 이 형제회는 1120년 교황청 설립 ‘요한 기사 수도회’(Knights of Saint John)로 개편, 군인 수사와 간호 수사가 순례자들을 보호하고 간호했습니다.가장 대표적인 기사 수도회는 ‘성전 기사단(Knights Templar)’이었습니다. 제1차 십자군 원정 이후 예루살렘 도성 안 치안은 비교적 안정되었지만, 성지를 향해 오는 길목은 비적들로 들끓었습니다. 프랑스 기사 위그 드 파앵(Hugues de Payens, 1070~1136)은 1119년 순례자들을 보호할 기사 수도회를 설립하자고 제안했고, 동료 8명과 예루살렘 솔로몬 성전 터에서 성전 기사 수도회를 창설했습니다.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두스(Bernardus Claraevallensis, 1090~1153)는 저서 「새 군사들의 찬미에 관한 책(Liber de Laude Novae Militiae)」에서 수도 서약과 군사적 임무가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기사 수도회 이념의 정당성을 제시했습니다.이교도 선교로 목적을 확장한 기사 수도회또 다른 주요 기사 수도회는 독일 사람들이 주축이 된 ‘독일 기사단(Teutonic Knights)’입니다. 제3차 십자군 원정 시절 예루살렘 왕국 북쪽 아크레(Acre)에 위치한 원정대를 지원」하는 야전 병원에서 1190년 ‘예루살렘의 성모 마리아의 독일 형제회(Ordo Fratrum Domus Sanctae Mariae Teutonicorum Ierosolimitanorum)’가 발족됐는데, 1198년 독일 기사 수도회로 개편되었습니다. 독일 기사 수도회 일부 구성원들은 1211년부터 이교도 선교를 목적으로 동유럽 지역으로 진출했으나, 포악한 점령군으로 변했습니다.한편 리가(Riga)의 주교 알베르트 1세(Albert I, 재임 1199~1229)는 리보니아(Livonia) 지역의 그리스도인을 보호하고 이교도들을 선교하겠다는 목적으로 1202년 독일 군인수사들로 구성된 ‘리보니아의 그리스도 기사 수도회(Fratres Militiæ Christi Livoniae)’를 설립했고,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Innocentius PP. III, 재임 1198~1216)는 1204년 ‘칼의 기사 수도회(Knights of Sword)’ 설립을 승인했습니다. 하지만 칼의 기사 수도회는 그리스도인 보호보다 이교도 착취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결국 리투아니아(Lithuania)에서 치른 전투에서 크게 패한 후 1237년 살아남은 수사들은 독일 기사 수도회로 편입됐습니다.이외에도 이베리아반도에서 살았던 이슬람계 무어인(Moors)으로부터 그리스도교를 수호하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를 순례하는 그리스도인을 보호하는 기사 수도회들이 설립됐습니다. 1146년 베네딕도회 규칙을 따른 포르투갈(Portugal)왕국의 ‘아비즈 기사 수도회(Military Order of Aviz)’, 1158년 시토회 규칙을 따른 카스티야(Castilla)왕국의 ‘칼라트라바 기사 수도회(Military Order of Calatrava)’와 1166년 레온(Len)왕국의 ‘알칸타라 기사 수도회(Order of Alcntara)’, 1170년 아우구스티누스 의전 사제단 규칙을 따른 레온 왕국과 카스티야 왕국의 ‘칼의 성 야고보 기사 수도회(Military Order of Saint James of the Sword)’가 설립됐습니다. 뒤늦은 1317년 시토회 규칙을 따른 아라곤(Aragon) 연합왕국의 ‘몬테사 기사 수도회(Order of Montesa)’도 설립됐습니다.1291년 십자군 원정대의 마지막 주둔지였던 아크레마저 무슬림 세력에 함락당하자 여러 기사 수도회들은 각기 다른 운명을 맞이했습니다. 요한 기사 수도회는 몰타 기사 수도회(Knights of Malta)로 재편해 병자를 돌보는 일을 계속 했습니다. 성전 기사 수도회는 설립 목적을 상실함으로써 1312년 빈(Vienne) 공의회에서 교황 클레멘스 5세(Clemens PP. V, 재임 1305~13014)가 해산시켰습니다. 독일 기사 수도회는 그리스도교를 전한다는 명분 아래에서 군사적 행동을 감행하면서 기사단 국가를 건설하려고 시도, 수도회로서의 본질을 저버렸습니다. 그 외의 기사 수도회도 수도회 모습을 상실하고 왕족과 귀족에 속한 기사단이 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십자군 원정은 교회 안팎에서 많은 결과를 가져왔으며,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영적인 응답의 어려움을 새삼 느끼게 했습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백영민2017.11.14
[성경 속 기도] (7) 솔로몬의 기도겸손한 마음으로 지혜를 청하다 솔로몬은 한 나라의 왕으로서 필요한 지혜와 능력을 청하는 기도를 항상 바쳤다. 율리우스 카롤스펠트 작, ‘솔로몬의 재판’. 출처=「아름다운 성경 솔로몬 하면 지혜의 왕으로 떠올린다. 그는 이스라엘 역사에서도 가장 화려하고 풍족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솔로몬은 다윗과 밧 세바 사이에서 태어났다. “다윗은 자기 아내 밧 세바를 위로하고, 그에게 들어 잠자리를 같이하였다. 밧 세바가 아들을 낳자 다윗은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였다. 주님께서 그 아이를 사랑하셨다”(2사무 12,24). 다윗 왕에게는 왕위를 이어받으려던 나이 든 아들이 많이 있었다. 반면에 솔로몬은 많은 형제 가운데 아주 어린 동생이었기 때문에 왕위를 이어받을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솔로몬의 어머니는 다윗이 불의하게 취한 여인인 밧 세바였다.그러나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윗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솔로몬은 왕으로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에 힘썼다. 솔로몬은 한마디로 ‘기도의 사람’이었다. 솔로몬의 기도는 지속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의 기도 배경에는 바로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있었다. “솔로몬은 주님을 사랑하여, 자기 아버지 다윗의 규정을 따라 살았다. 그러나 그도 여러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고 향을 피웠다”(1열왕 3,3). 솔로몬은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첫째 계명을 잘 지켰고 아버지 다윗의 가르침에 순종했다. 한 나라의 왕으로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능력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자리임을 알고 하느님께 기도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임금은 제사를 드리러 기브온에 갔다. 그곳이 큰 산당이었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그 제단 위에서 번제물을 천 마리씩 바치곤 하였다”(1열왕 3,4). 솔로몬은 기브온에 있는 산당으로 기도하러 갔다. 기브온 산당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산당이었다.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에서 번제물을 천 마리씩 드렸다는 것은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를 온 힘과 정성을 다해 드렸다는 의미이다.솔로몬은 하느님께 많은 백성을 잘 통치할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청하였다. 하느님께서도 솔로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다. “‘그러니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어느 누가 이렇게 큰 당신 백성을 통치할 수 있겠습니까?’”(1열왕 3,9). “또한 하느님은 솔로몬이 구하지도 않은 부와 영광까지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또한 나는 네가 청하지 않은 것, 곧 부와 명예도 너에게 준다. 네 일생 동안 임금들 가운데 너 같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1열왕 3,13). 기도는 바로 이런 것임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솔로몬의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그가 기도할 때 이미 주님의 응답을 믿었다는 것이다. 즉, 믿음으로 구하는 기도였기에 하느님께서 이루어 주실 줄을 믿었던 것이다. 그래서 솔로몬은 하느님께 먼저 감사를 드렸다. 이처럼 솔로몬의 기도 생활은 항상 겸손했다.기도는 겸손한 사람들의 몫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연약과 자신의 무지를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때가 많다. 자신이 부족하고 잘 알지 못하다고 생각하기에 하느님께 겸손한 마음으로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자기 한계를 받아들이는 사람이야말로 하느님 보시기에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6.03.22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36) 예수님을 거부한 마을(루카 9,51-56)예루살렘 향해 사마리아 마을 거쳐가려 했으나…이번 호부터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상경기를 보게 됩니다.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9,51-56) 예루살렘 상경기는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9,51)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하늘에 올라가실 때”란 거룩한 변모 기사의 “세상을 떠나실 일”(9,31)을 가리킵니다. 이는 그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까지를 포함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이 일은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져야 하기에(9,31 참조),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의 주 활동 무대는 갈릴래아와 그 주변 일대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예루살렘을 향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심부름꾼들을 앞서 보내시고, 그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들어갑니다.(9,52) 예수님 시대에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고 하지요. 하나는 사마리아 지역을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사마리아 지방을 피해 요르단 강 동쪽을 따라 내려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었습니다. 사마리아를 통해 예루살렘으로 가는 데는 3~4일이면 됐지만 사마리아 지방을 피해 에둘러서 가면 훨씬 더 많은 시일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상종하는 것을 꺼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인들의 마을을 거쳐 가기로 작정하십니다. 유다인들이 사마리아인들에게 갖고 있는 편견을 부수고 두 집단 사이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서라고 봅니다. 아니면 예루살렘에서 이룰 일을 생각하면서 그 길을 서둘러 가고 싶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심부름꾼을 먼저 보내신 것도 같은 맥락에서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런데 사마리아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이 싫어하는 유다인들의 성도 예루살렘으로 가시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루카는 기록합니다. 그러자 야고보와 요한 형제가 나섭니다. 하늘에서 불을 내려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는 저 사마리아 사람들을 불살라 버리면 어떻겠느냐는 겁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고 일행은 다른 마을로 갑니다.(9,53-56) 야고보와 요한이 하늘에서 불을 내려 사람들을 불살라버리면 어떻겠냐고 예수님께 여쭌 것은 빈말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들을 다 보았을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모습이 변해 엘리야와 모세와 함께 이야기하시는 것도 직접 목격했습니다.(8,28-36 참조)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별명처럼 다혈질적인 그들은 구약의 위대한 예언자 엘리야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신 자기들의 훌륭한 스승이 사마리아인들에게 거부당하자 화가 치밀어올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불살라 버리자는 험악한 말까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의 머릿속에는 엘리야 예언자가 사마리아 임금 휘하의 오십인 대장과 그 부하들을 불살라 버린 일화(2열왕 1,10-12)가 떠올랐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나눈 대화는 당신이 “세상을 떠나실 일”(9,31), 곧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했듯이, “당신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으로 새로운 탈출을 실현시키실”(「주석 성경」) 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이루시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시는데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해 사람들을 불살라 버린다니 말이 안 되는 소리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꾸짖으시지요. 예수님의 예루살렘 상경기를 시작하면서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서 하신 일과 앞으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이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은 이 일화와 어떤 관계를 이루는지를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서 하신 활동은 나자렛의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서를 통해 선포하신 말씀에서 잘 드러납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이것이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일대에서 하신 일, 달리 표현하면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4,43)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시면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제자들에게 두 번이나 예고하십니다. 루카는 그 일을 이루시려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첫머리에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겪으실 일에 대한 복선을 깔아놓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화가 난 제자들이 하늘에서 불을 내려 반대자들을 불살라 버리자고 청하는 제자들을 꾸짖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앞으로 예수님께서 겪으실 배척과 반대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를 암시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알아 둡시다 : 유다와 사마리아 예수님 시대에 유다 사람과 사마리아 사람들은 사이가 아주 좋지 않았습니다. 거기에는 역사적 이유가 있습니다. 사마리아는 원래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 민족이 솔로몬 왕 이후 남쪽은 유다 왕국으로, 북쪽은 이스라엘 왕국으로 갈라진 후 기원전 890년쯤부터 북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로 건설된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북부 갈릴래아와 남부 유다 사이의 요르단 강 서쪽에 자리 잡고 있는 지역을 가리키게 됩니다. 사마리아인이나 유다인은 원래가 똑같은 유다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가 북부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 사마리아를 함락시킨 후 이스라엘 사람들을 아시리아로 끌고 가고 대신에 아시리아 사람을 비롯한 다른 이방 민족들을 사마리아에 살게 하면서, 사마리아 지역에 살던 유다인들의 순수성이 훼손됐습니다. 게다가 야훼 신앙을 저버리고 우상 숭배에 빠져 지냄으로써 사마리아 사람들은 남쪽 유다인들에게 점점 멸시를 받게 됩니다. 그러다가 바빌론 유배(기원전 587~538) 이후 사마리아인들이 유다인들의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반대하면서 앙금의 골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나중에 예루살렘 성전 대신 사마리아의 그리짐 산에 성전을 세워 예배했는데, 이 성전을 유다인들이 파괴하면서 갈등이 더욱 심화됩니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 시대에 사마리아인들과 유다인들의 사이는 아주 좋지 않았지요. 문채현2017.10.26
[아버지의 집, 아름다운 성당을 찾아서] (5)서울대교구 중계양업성당청동십자가 따라가 만난 아담한 하느님의 집 프랑스 고고학회 회장이며 미술사학자인 알랭 에르랑드 브랑당뷔르는 성당을 ‘빛과 색이 있는 건축물’이라고 정의했다. 브랑당뷔르의 말처럼 아름다운 성당 건축물을 짓기 위해선 우수한 설계자와 빼어난 조적공과 미장공, 솜씨 있는 예술가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름다운 성당을 짓는 참 건축가는 바로 그 본당 신자들이다. 성당을 지을 빈터에 신자들의 기도로 만든 벽돌이 쌓아지고, 그들의 희생으로 빚은 성 미술품들이 공간을 채울 때 비로소 하느님의 집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성당 건립하며 신자들 매일 묵주기도 바쳐 배추밭에 지어진 아담한 서울대교구 중계양업성당(주임 김주영 신부)이 아름다운 것은 3년 6개월간 신자들의 기도와 희생으로 손수 지은 성당이기 때문이다. 이 성당 터 안에 있는 모든 것에는 1년간 빈 병을 주어 모은 7만 원 돈을 봉헌한 할머니의 정성과 주일마다 폐품과 음식을 팔고,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고 성경을 필사한 신자들의 헌신적 희생이 배어있다. 불암산을 병풍처럼 두고 있는 중계양업성당은 아파트와 학교가 있는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위압적이지도 않고 초라하지도 않다. 성당과 인도를 구분하는 얕은 담장엔 소나무를 비롯한 여러 수목으로 꾸며져 있다. 중계양업성당에선 ‘돌’과 ‘청동’ 그리고 ‘나무’와 ‘색유리화’라는 전통적인 성당 건축 재료를 모두 볼 수 있다. 성당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청동 성미술품을 만나다. 성당 지붕 위 청동십자가가 설치돼 있어 처음 방문하는 이도 성당 찾기가 어렵지 않다. 조각가 한진섭(요셉) 작가의 작품으로 사방 어디에서 보아도 똑같은 모양으로 멀리서도 성당을 알아볼 수 있다. 한국 순교자 현양 정신 담아 정문에 들어서면 본당 수호자인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신부의 청동상이 반갑게 맞아준다. 최태훈 조각가의 작품으로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힘있게 걸어가는 최양업 신부를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최양업 신부의 주요 사목지였던 배티성지에도 설치돼 있다. 성당 출입문은 한국 교회에선 보기 드문 청동문으로 장식돼 있다. 역시 최태훈 조각가의 작품으로 좌측 문은 51가지 구약 성경 사건을, 우측 문은 52가지 신약 성경 주제를 담은 부조로 장식돼 있다. 좌ㆍ우측 둘의 성경 주제를 합치면 한국 순교 성인 103위와 같은 수다. 성당이 한국 순교자들을 현양하고 있음을 상징으로 보여준다. 청동은 인류가 발명한 최초의 합금이다. 솔로몬 성전에서 사제들의 몸을 씻는 정결례 물을 담는 제기의 재료로 사용됐다. 중계양업성당을 찾는 이들이 청동십자가를 따라 성당에 들어서면 본당 수호자인 최양업 신부의 청동상을 만나고 청동문을 통해 성당에 입장하도록 꾸며놓은 것은 어쩌면 솔로몬 성전의 청동 정결례 물통처럼 성당에 들어서기 전에 먼저 정결한 몸과 정화된 마음을 갖추라는 표지가 아닐까 싶다.성당에 들어서면 색유리화가 성전으로 안내한다. 김남용 작가가 ‘성령으로 가득한 성당’을 표현하고자 만든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단순하며 중간중간 둥근 모양의 포인트를 주어 현대적 감각을 느끼게 했다. 작가는 이 둥근 원을 예수님의 생애를 추상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색유리화 작품은 성전 양쪽 벽면 상단에도 절제된 형태로 장식돼 경내를 신비로운 빛으로 채운다.김남용 작가는 성전 입구의 공간을 성령으로 채우기 위해 솔로몬 왕이 성전 지성소 문을 향백나무로 장식했듯이 원목 성전문을 만들고 오른편 고해소 문도 색유리화에서 보여준 성령을 다시 나타내 같은 모양의 그림으로 장식했다. 성전 내부 온통 하얀 돌로 꾸며 성전은 돌로 꾸며져 있다. 성당 내부 마감은 백색 인조석이다. 경건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김송필 조각가가 직접 인조석을 제작해 하나하나 붙여 만들었다. 제대와 감실, 제대 십자가, 독서대, 해설대, 성수대, 사제석은 모두 통돌을 깎아 만들었다. 한진섭 작가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익산 대리석으로 만든 이 성물들은 미사 전례의 장중함을 더해 준다. 아울러 성전 벽과 제단 모두를 하얀 돌로 통일해 미적으로나 시각적으로 조화를 꾀했다. 성전 내부가 빛을 상징하는 하얀색이어서 다소 밋밋해 보일 수 있지만, 한진섭 작가는 성전 정중앙 제단 십자가와 양측 벽면 십자가의 길 14처를 검은색 대리석으로 장식해 화룡점정의 포인트를 줬다. 그러면서 영적 에너지도 함께 느끼게 했다. 성당은 단순히 아름다워서만 되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하거나 미사를 올릴 때 마음의 평화가 찾아들어 하느님을 편안하게 만날 수 있어야 한다. 미술사가 고종희(한양대 실용미술과) 교수는 서울 중계양업성당에 대해 “그냥 지나친 구석이라곤 도무지 없는, 모든 것에 예술가의 혼이 배어있는 성당”이라며 “성당은 기도와 미사 전례를 통해 주님과 만나는 곳으로서 그 목적과 기능이 명확한 건축물인데 중계양업성당은 이같은 기능에 합당하게 지은 아름다운 성당”이라고 평가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cpbc2016.10.19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46.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사도 3,15)‘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세상에 전한 제자들마솔리노 작 ‘불구자를 고친 성 베드로와 타비타의 소생’중 일부, 1424-25년쯤, 프레스코, 브란카치 경당,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 피렌체, 이탈리아.성령 강림 후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 예수님의 행적 요약하는 내용 담아 걷지 못하던 사람 일어나도록 치유 사도들 증언 통해 교회 형태 정착 모든 일이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며 구약성경에 예언되어 있음을 전해복음서의 인물 중에서 베드로는 사도들의 으뜸이면서 인간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사도입니다. 예수님께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마르 8,29)라고 처음 고백하지만 뒤이은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 예고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도행전이 전하는 베드로 사도의 모습은 사뭇 다릅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예는 사도행전 초반에 담겨있는 베드로의 설교입니다. 사도행전이 전하는 베드로의 설교는 예수님의 사건을 요약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중심이 되는 이런 내용을 ‘케리그마(kerygma)’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이 말을 들으십시오.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자렛 사람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여러 기적과 이적과 표징으로 여러분에게 확인해 주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통하여 여러분 가운데에서 그것을 일으키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과 예지에 따라 여러분에게 넘겨지신 그분을, 여러분은 무법자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음에 사로잡혀 계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사도 2,22-24) 오순절의 성령 강림 이후에 전하는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는 사도들이 이해한 예수님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십자가 죽음과 부활’입니다. 이 모든 일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안에 포함되는 것으로 이제 약속된 성령을 통해 지속됩니다.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는 성령 강림의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내는 훌륭한 연설입니다. 또한, 구약성경의 여러 구절을 인용하는 것에서 당시의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라는, 준비된 하느님의 계획 안에 구약성경이 있었음을 강조합니다. 사도들은 단지 예수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예수님의 활동을 이어갑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예는 병자의 치유입니다. 베드로는 태어나면서부터 걸을 수 없었던 사람을 성전에서 치유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사도 3,6) 유다인들이 하느님의 거처라고 생각했던 성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자를 치유하는 베드로의 모습은 사도들을 통해 이 땅에서 예수님의 활동이 여전히 지속됨을 보여줍니다. 이 치유와 함께 있었던 솔로몬 주랑에서의 설교는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고,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사도 3,15) 한 가지 독특한 점은 이 설교 안에서 죄의 용서에 대한 언급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여러분의 죄가 지워지게 하십시오.”(사도 3,19). 사도들의 활동은 이처럼 예수님의 업적을 이어가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사실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제자들이었지만 부활과 성령 강림은 그들은 완전히 바꾸어놓는 계기가 됩니다. 사도들은 이 모든 일이 하느님의 계획에 따른 것이고 이미 구약성경에서 예언되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선포합니다. 이 선포 안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물론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이제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증인입니다. 이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교회’입니다. 성령 강림은 교회의 시작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뽑으실 때부터 이미 교회는 준비되었지만, 그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성령 강림 이후입니다. 사도행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인 사도들의 활동을 통해 교회가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내용은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에서도 표현됩니다.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를 믿나이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김지항2017.04.26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47.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사도 7,59)죽음으로 예수 따른 ‘거룩한 순교’안니발레 카라치 작 ‘성 스테파노의 순교’, 1603-04년, 파리 루브르 박물관, 프랑스. 예수의 죽음·부활 선포한 제자들 유다인은 ‘하느님 모독’으로 여겨 초기 그리스도교인들 박해 시달려 출신 다른 신앙인들 간 갈등 발생 공동체 내부 결속 도울 부제 선발 일곱 부제 중 첫 순교자 스테파노 구약 통해 유다인·종교지도자 비판사도들이 중심이 되어 이끌어갔던 초기 교회 공동체는 다양한 모습과 함께 역동적으로 소개됩니다. 예수님의 활동은 사도들을 통해 지속되고 공동체는 자신들의 체험을 삶으로 이어갑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 항상 기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도들의 활동과 신앙생활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던 것은 바로 ‘박해’입니다. 박해는 비단 초기 공동체의 활동 시작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신약성경이 기록될 당시에 공통적으로 배경이 된 것은 박해입니다. 신약성경은 모두 이러한 박해의 상황 속에서 기록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들이 잡혀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유다인들이, 종교 지도자들이 십자가형에 처한 예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하나의 사건이지만 사도들과 신앙인들에게 주는 십자가 사건의 의미와 종교 지도자들에게 주는 의미는 달랐습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은 자신들을 박해하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선포합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영도자와 구원자로 삼아 당신의 오른쪽에 들어 올리시어,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십니다.”(사도 5,30-32) 사도들의 복음 선포는 종교 지도자들을 격분하게 만듭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한 가장 큰 이유는 하느님을 모독한 것인데 사도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하느님의 업적으로 선포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리스도교와 유다교는 서로 구분됩니다. 초기 공동체가 지닌 외적인 어려움은 이렇듯 박해였습니다. 하지만 내적인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출신의 신앙인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은 이렇게 전합니다. “그 무렵 제자들이 점점 늘어나자,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히브리계 유다인들에게 불평을 터뜨리게 되었다. 그들의 과부들이 매일 배급을 받을 때에 홀대를 받았기 때문이다.”(사도 6,1)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가면서 또 양적으로 커지는 공동체를 위해 새로운 제도들이 생겨납니다. 내부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도들과 공동체는 ‘부제’들을 뽑습니다. 이렇게 공동체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일곱 명의 부제를 뽑아 안수한 다음 그들에게 직무를 맡깁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복음 선포에 전념합니다. 공동체가 커가면서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들이 생겨나지만, 이것을 슬기롭게 풀어가는 과정을 통해 역설적으로 공동체는 더욱 성장했다고 사도행전은 기록합니다. 부제들 중에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은 스테파노입니다.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스테파노는 예수님의 죄목과 비슷하게 “모세와 하느님을 모독”한 죄로 최고 의회에서 신문을 받습니다. 이에 대한 대답처럼 기록되어 있는 스테파노의 설교는 사도행전에서 가장 긴 설교로, 구약성경의 내용을, 이스라엘의 역사를 요약하여 전합니다. 마치 구약의 내용을 통해 암시적으로 유다인들, 특히 종교 지도자들의 잘못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이 설교는 크게 두 가지의 주제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모세를 중심으로 한 해방의 이야기입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구원하셨는지, 어떻게 이집트에서 해방시켜 약속된 땅으로 이끌어가셨는지를 설명합니다. 다른 주제는 성전과 관련된 것입니다. 광야의 증언의 천막에서 시작된 하느님의 거처는 다윗과 솔로몬에 이르러 성전으로 세워집니다. 유다인들은 이렇게 하느님의 집을 지었지만 정작 하느님의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았다는 내용입니다. 이 설교로 스테파노는 순교합니다. 순교 당할 때 스테파노의 모습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모습과 많이 닮았습니다.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주십시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루카복음이 전하는 십자가 위에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그대로 스테파노의 순교 때에도 표현됩니다. 루카는 첫 순교자인 스테파노의 죽음이 예수님을 따른 것임을 강조하는 듯합니다.<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김지항2017.05.05
[안소근 수녀와 함께 떠나는 구약 여행] (56) “내 아들아, 아버지의 교훈을 들어라”(잠언 1,8)하느님 지혜로 이끄는 성공 비결서, 잠언 루카 조르다노 작, ‘솔로몬의 꿈’, 1693년, 스페인 마드리드미술관 소장. 고전적 지혜. 구약 성경의 지혜 문학 가운데 가장 오래된 책인 「잠언」은 대대로 전해진 오랜 가르침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 가르침들이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의 잠언집을 한 사람이 수집한 것도 아니지만, 한 사람이 모았다 해도 잠언들은 어느 한순간에 쓴 글들이 아니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가르침들입니다. 속담이나 격언들에 대해서 처음 그 말을 한 사람을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잠언도 마찬가지입니다.잠언 1장 1절에서는 “이스라엘 임금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잠언”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막상 뒷부분으로 가면 “현인들의 말씀”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부분도 있고(22,17; 24,23), “유다 임금 히즈키야의 신하들이 수집한 것”(25,1)으로 되어 있는 부분도 있으며, 심지어 외국인의 이름으로 된 “마싸 사람 야케의 아들 아구르의 말”(30,1)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책 전체의 표제를 “솔로몬의 잠언”이라고 하는 것은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지혜를 대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잠언 외에도 「코헬렛」과 「지혜서」가 솔로몬을 저자로 내세우고 있고, 「아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책들 가운데 실제로 솔로몬이 쓴 책은 없습니다. (잠언의 경우 혹시 정말 솔로몬 시대의 잠언이 여기에까지 전해진 경우가 있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다윗이 처음 왕조를 세우고 영토를 정복하고 예루살렘으로 수도를 정하는 등의 일들에 바빴다면 솔로몬 시대는 이제 어느 정도 틀이 잡힌 나라에서 문화와 경제가 발전한 시대였기에, 그리고 솔로몬 자신도 지혜로운 사람으로 유명했기에 이 책들이 솔로몬의 권위에 의지하는 것입니다.잠언의 내용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인생의 지혜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내용이 다양하다 보니 좀더 세속적이어서 “인생의 성공 비결”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부분도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 부지런한 사람과 게으른 사람, 겸손한 사람과 오만한 사람 등을 대비시키면서 바른 인생길을 알려주는 가르침들을 제시하기도 합니다.그리고 이러한 가르침들의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은 ‘인과응보’의 원칙입니다. 잠언은 의인은 복을 받고 악인은 벌을 받는다는 원칙을 믿는 고전적인 지혜를 대변합니다. “착한 이는 주님에게서 총애를 받고 교활한 자는 단죄를 받는다”(잠언 12,2). 이와 유사한 잠언들이 매우 많습니다. 흥부 놀부식의 가르침들입니다. 더구나 그 복과 벌은 모두 현세에서 이루어집니다. 초기의 지혜 문학에서는 아직 내세에 대한 희망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정말로 의인은 복을 받고 악인은 벌을 받습니까? 더구나 현세에서, 그 원칙이 정확하게 성립됩니까? 꼭 그렇지는 않지요. 욥이 이 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것입니다. 욥은 바로 잠언에 표현되어 있는 전통적인 가르침이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주장하고, 그래서 지혜 문학에서 잠언보다 더 늦은 시기의 단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잠언의 저자라고 현실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제비는 옷 폭에 던져지지만 결정은 온전히 주님에게서만 온다”(잠언 16,33). 그러나 그가 역설하려 하는 것은 이 세상의 질서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느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그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시기 때문에 세상은 혼돈과 무질서일 수 없고 불의를 저지르는 사람이 끝까지 잘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잠언의 저자를 보고 너무 순진하고 현실을 모른다고 말할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제멋대로 굴러가게 내맡겨두지 않으시고 자연 질서와 이 세상의 정의를 지켜가시는 하느님을 경외하지 않는다면 과연 어떤 삶이 가능할까요. 잠언의 신앙은 우리가 딛고 서 있는 땅과도 같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에서라도, 발밑에 땅이 있다는 믿음이 우리의 발걸음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이들에게 바른 삶을 가르치려 할 때에 그러하듯이 잠언의 저자는 지혜의 스승으로서 아직 미숙한 그의 제자들에게 이러한 원칙에 대한 믿음을 가르칩니다. 때로는 열심히 노력한 끝에 실망을 겪게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선과 악에 대한 갚음을 생각하며 살아가라고 권고합니다. 속임수와 편법으로 성공하려 하지 말고, 부지런히 일하며 올바르게 행동하여 후회 없는 삶을 살라고 말합니다.마지막으로 주목할 것은 1─9장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지혜’라는 여인의 초대와 ‘우둔함’이라는 여자의 초대를 제시하면서 선택을 촉구합니다. 지혜는 번잡한 길목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부르며 초대하며, 사람들에게 “너희는 와서 내 빵을 먹고 내가 섞은 술을 마셔라”(잠언 9,5)라고 초대합니다. 10장부터 이어지는 지혜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입니다. 지혜는, 임금들이 세상을 잘 통치하는 것도, 하느님께서 세상을 질서 있게 창조하고 섭리하시는 것도 바로 그 지혜를 통해서라고 말합니다. 지혜는 하느님께 속하고 하느님께서 당신의 지혜로서 이 세상을 만드셨으니, 그 지혜의 길을 따라야 생명에 이르게 되리라고 말합니다. 이런 전제들이 앞에 붙어 있음으로써, 단순한 인생 성공 비결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마저도 신앙생활의 가르침으로 변모됩니다. 축적된 인생의 경험만을 바탕으로 처세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잠언의 첫 부분에 나오는 지혜의 초대는 잠언의 다양한 가르침들이 인간이 생명과 행복에 이르기 위하여 하느님의 뜻을 따라 걷도록 인도해 주는 지침임을 제시해 줍니다.<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평화신문2016.01.26
[위대한 신앙의 신비,기도] (8) 구약에 나타난 기도- 다윗, 임금의 기도 백성들에게 기도의 모범된 다윗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친 이들은 주로 백성의 지도자들, 곧 왕과 예언자들이었습니다. 교리서(2578~2580항) 는 임금의 기도에 대한 본보기로 다윗의 기도를 이야기합니다. 교리서는 다윗 임금의 기도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하느님 말씀에 따라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임금으로 세운 예언자 사무엘을 먼저 언급합니다. 사무엘은 어머니 한나에게서 주님 앞에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그리고 스승인 사제 엘리에게서는 어떻게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마음이 쓰라려 흐느껴 울 정도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그 기도는 속마음을 털어놓는 기도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들(사무엘)을 주십니다. 그리고 한나는 기도하면서 주님께 약속한 대로 아들을 주님께 바칩니다(1사무 1장 참조). 사무엘은 이런 어머니에게서 어렸을 때부터 주님께 기도 바치는 법을 배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 말씀을 듣는 법은 사제 엘리에게서 배웁니다. 그것은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 3,9) 하는 자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도의 몇 가지 중요한 자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편의상 순서를 매기자면 기도는 ① 간절한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간절함은 하늘을 울립니다. ② 속마음을 털어놓아야 합니다. 기도는 진솔해야 합니다. 또 진솔하지 않으면 간절함도 없습니다. 진솔하지 않은 기도를 간절하게 바친다는 것은 가식이고 위선입니다. ③ 마음을 열고 경청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라는 응답은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기꺼이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느님께서는 만사를 좋게 이끄신다는 확신과 신뢰가 전제돼 있습니다. 교리서는 다윗을 “누구보다도 하느님 마음에 드는 훌륭한 임금”(2579항)이라고 소개합니다. 다윗은 “백성을 위하여 또 백성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목자입니다. 지도자의 첫째 덕목은 자신이 아닌 백성을 위해 사는 삶입니다. 이는 기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이 누구보다도 하느님 마음에 드는 훌륭한 임금인 것은 그가 도덕적으로 더할 나위 없서가 아닙니다. 하느님 뜻을 따르는 순명과 하느님께 바치는 찬미,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참회 때문입니다. 그래서 임금인 다윗의 순명과 찬미와 참회는 또한 백성에게 기도의 모범이 됩니다. 하느님의 뜻을 찾고 따르려는 자세,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놀라운 은총에 대한 찬미, 그리고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겸손하게 뉘우치는 마음, 우리의 삶 자체가 이러한 기도의 삶으로 이루어진다면 우리 또한 ‘하느님 마음에 드는 자녀’가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집, 기도의 집을 지어 바치겠다는 다윗의 뜻을 하느님께서는 물리치십니다. 그의 뜻은 아들 솔로몬이 현실로 만듭니다. 교리서는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하면서 바친 기도(1열왕 8,10-61 참조)와 관련, 임금의 기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제시합니다. 왕은 겸손한 자세로 그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쳐들고 △자신과 온 백성을 위해 △미래의 후손들을 위해 △백성의 죄에 대한 용서와 매일의 필요를 위해 △백성의 마음이 온전히 주님을 향하도록 기도합니다. 지도자의 기도, 가장의 기도 역시 이런 기도이면 좋겠습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백영민2016.07.20
[안소근 수녀와 함께 떠나는 구약 여행] (65)“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지혜 2,23)지혜에 귀 기울이고 영원한 생명 얻으라 헤르만 골 작,‘ 알렉산드리아의 파괴’, 불멸! 지금까지 구약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주제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주제가 나오는 것은 지혜서가 구약 성경의 책들 가운데 가장 작성 연대가 늦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전통적으로는 흔히 이 책을 “솔로몬의 지혜”라고 일컫지만, 솔로몬은 이 책의 저자일 수 없습니다. 내용상으로 볼 때 이 책의 앞부분은 헬레니즘 시대의 가치관과 유다교의 전통적 가치관 사이의 갈등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유다교와 그리스-헬레니즘 문화를 모두 잘 알고 있으며, 구약 성경을 인용할 때에도 그리스어로 번역된 70인역을 사용하고 그밖에도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과 문학에도 정통한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아마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식 교육을 받은 유다인들 사이에서 생겨난 것으로 보입니다. 작성 연대는 기원전 1세기 중반에서부터 로마가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한 기원전 30년 사이가 됩니다.한동안 떠나 왔던 지혜문학으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의인은 복을 받고 악인은 벌을 받는다는 것이 잠언이 말하는 고전적인 지혜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욥기와 코헬렛은 그 원칙에 의문을 품었습니다. 불행하게 살다 죽는 의인들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세에 대한 희망은 아직 없었습니다. 여기에서 인간의 지혜는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이 세상의 질서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지혜서에서는 이 벽을 넘어섭니다. 인간 지혜의 한계 문제에서 벽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이미 집회서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지혜에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집회서에서 벤 시라는, 하느님께서 홀로 지혜를 갖고 계시고 그 지혜를 율법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셨다고 말했습니다(집회 24장 참조). 지혜서에서는 솔로몬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그가 하느님께 청하여 지혜를 받았음을 강조합니다. 솔로몬도 태어날 때에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인간이었지만(지혜 7장), 하느님께 기도를 올리자 인간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지혜가 그에게 주어졌습니다(지혜 9장). 솔로몬이 다른 무엇보다 지혜를 청했다는 이야기는 열왕기 상권 3장에 나오지요. 지혜서 9장에서는 그의 기도를 제시합니다. “당신께서 지혜를 주지 않으시고 그 높은 곳에서 당신의 거룩한 영을 보내지 않으시면 누가 당신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지혜 9,17).다음으로 인과응보 문제에 있어서, 지혜서는 불멸을 말합니다. 어떻게 하면 불멸을 누릴 수 있을까요? 지혜서의 대답은 지혜를 추구함으로써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받아들임으로써 인간은 불멸을 누리게 됩니다. 이제는 의인이 이 세상에서 복을 누리지 못하거나 아니면 일찍 죽는다 해도 그것 때문에 인과응보의 원칙이 뒤흔들리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죽은 의인은 내세에서 복을 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욥기의 마지막에서는 욥이 잃어버렸던 재산을 되찾고 자녀들도 다시 얻게 되지요(욥 42장). 만일 이러한 회복이 없이 그대로 욥이 죽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지혜서에 따르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내세에 대한 믿음이 없었을 때에는 오래 사는 것과 후손이 많은 것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대의 복이었지만, 이제는 악인으로 오래 사는 것보다 의인으로 일찍 죽어 영원한 복을 누리는 것이 낫다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지혜 4장). 어리석은 이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 같이 보일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하느님 안에 있다고 말하는 지혜서 3장은, 장례 미사 때와 순교자 축일에 읽는 독서이기도 합니다.그러면, 불멸은 얻기 어려운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지혜서는 창세기로 돌아갑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당신 모상대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본래 하느님의 본성을 닮아 불멸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인간이 죽는 것은 인간 스스로 죄를 지음으로써 죽음을 자신 안에 끌어들이기 때문입니다.이 세상에서 살고 또 죽어가는 인간들을 바라보면서는, 인간은 본래 사멸할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지요. 다른 문화들의 신화에서도 신들과 인간의 차이는 신들은 죽지 않는 데 비하여 인간은 죽는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멸할 인간은 정말 힘써 노력해야만 간신히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지혜서가 말하는 것은 그와 다릅니다.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고 산 이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존재하라고 만드셨으니 세상의 피조물이 다 이롭고 그 안에 파멸의 독이 없으며 저승의 지배가 세상에는 미치지 못한다”(지혜 1,13-14). 엄청난 말씀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전혀 새로운 말씀은 아닙니다. 지혜서는 다른 곳이 아니라 창세기에서 그 근거를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닮은 인간의 위대함과 죄에 떨어진 인간의 나약함, 인간의 그 두 모습 가운데 창세기는 인간의 선한 본성을 먼저 이야기합니다. 비록 죄로 손상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의 본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혜서에서도, 지혜를 찾고 불멸을 얻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지혜는 “다정한 영”(지혜 1,6), 어원적으로 말하면 ‘인간을 좋아하는 영’입니다. 인간이 지혜를 찾기 전에 먼저 지혜가 인간에게 오고 싶어 합니다. 비뚤어진 생각과 간악한 마음으로 그 지혜의 길을 막지 않는다면(지혜 1,3-4), 지혜는 우리에게 옵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토대로 지혜서는, 성경 말씀 안에서 지혜에 귀를 기울이고 영원한 생명을 찾으려는 이들에게 영원한 희망을 말합니다. <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평화신문2016.04.12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58) “허무로다, 허무!”(코헬 1,2)주님 경외하며 작은 행복에 만족하라 유스투스 판 겐트 작 ‘솔로몬 스무 살 젊은이가 코헬렛을 이해하기는 어려울지 모릅니다. 열 살 어린이라면 아무리 설명해 주어도 아마 공감에 이르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환갑이 지나고 칠순이 지나면 좋아지는 책이 코헬렛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썼다고 전해지는 여러 책 가운데서도 코헬렛은 솔로몬이 노년에 썼다고 하는 것일까요? 코헬렛에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현인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욥과 코헬렛은 서로 대비되면서도 사실은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욥은 자신이 누리던 복을 다 잃었을 때에 이 세상의 질서에 대해, 하느님의 정의에 대해 항변했습니다. 반면 코헬렛은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은 모두 누려 보았습니다. 코헬렛 역시 솔로몬을 저자로 내세우고 있는데, 실제 저자가 솔로몬인 것은 아니지만, 이 저자는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많은 업적도 이루었고 누구보다 뛰어난 지혜도 깨달았고 많은 부를 모으기도 했으며 그 어느 것도 잃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코헬 1,2; 12,8)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맙니다. 코헬렛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지요. 욥과 같은 불행을 당하지 않았어도, 현세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얻었다 하더라도 결국 인간은 비슷한 결론에 도달하게 마련인 모양입니다.코헬렛이 모든 것이 허무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애쓰고 수고한 사람에게 그대로 그 보람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투자에 대해 확실하게 열 배의 수익이 있다면 사람들은 정말 빚을 얻어서라도 투자를 할 것입니다. 힘이 드는 일이라 하더라도,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 명백하다면 수고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노력의 결과가 확실치 않다면? 아니, 이득이 없음이 확실하다면? 그렇다면 작은 수고조차 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온 세상을 다니며 많은 경험을 쌓아 본 코헬렛은,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모든 일이 바람을 잡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수고하며 애쓰는 것에 대해 그만큼의 이득이 있을 것인지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지혜가 있으면 어리석은 것보다는 낫겠지만, 그나마 죽으면 모든 것이 사라지고 맙니다. 죽음, 이것이 코헬렛에게는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이었습니다. 잠언에서와 마찬가지로 코헬렛에게도 내세에 대한 희망은 아직 뚜렷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평생 무엇인가 이루려고 노력을 하고 또 실제로 무엇을 이룬다 해도 그것은 어느 순간 나에게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코헬렛은 “삶을 싫어하게 되었다”고까지 말합니다(2,17). 욥과 같은 고통 때문에 삶을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지상의 행복을 최고도로 누리고 있으면서도 그 모든 것이 헛되이 사라져 갈 것임을 보는 것입니다.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코헬렛은 놀랍게도 우리에게 인생을 즐기라고 말합니다. 즐겁게 음식을 먹으며 즐기고, 사랑하는 아내와 행복하게 살고, 젊었을 때는 젊음을 즐기라고 초대합니다. 모두 현세적이고 일시적인 작은 행복들입니다. 그 모든 것이 사라져 갈 것임을 알면서도 그것을 즐기라고 말합니다. 그는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천국의 끝없는 행복에 대해서 말하지 않습니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그가 알 수 있는 영역 밖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코헬렛은 누구보다도 인간의 한계를 잘 알았던 사람입니다. 임금의 권력을 갖고 있고 엄청난 보화를 갖고 있고 뛰어난 지혜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인간은 유한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코헬렛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오늘 우리에게 주어지는 작은 행복들을 즐기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덧없는 인생에 주어진 하느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코헬렛은 이 즐거움이 영원한 가치, 최고의 가치라고 믿지 않습니다. 그저, 그것이 지상에서 인간에게 허락된 몫이라고 알기에 영원하지 않은 그 즐거움이 사라지기 전에 그 즐거움을 누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욥기와 코헬렛은 비슷한 단계의 신학을 보여 줍니다. 여기에서 인간의 지혜는 한계에 부딪힙니다. 잠언에서는 이 세상의 질서를 말했고 인간이 어느 정도는 그 질서를 파악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전제하고 있었지만, 욥기와 코헬렛은 인간이 알 수 있는 영역보다는 알 수 없는 영역을 바라보며 인간의 한계를 절감합니다.그리고 욥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코헬렛은, 인간 앞에 놓인 벽 앞에서 믿음을 선택합니다. 벽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코헬렛은 자신에게 알도록 허락된 그 영역 너머로 손을 내뻗으려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 위에 있으니”(5,1). 코헬렛은, 인간이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어 그에게는 인생이 온통 고생처럼 보일지라도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도록 만드셨다”(3,11)고 믿습니다. 인간이 그 하느님의 영원하신 계획을 깨달을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코헬렛은 그런 믿음으로 자신이 파악할 수 없는 영역은 하느님께 맡기고 그분께서 주시는 작은 즐거움들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지상과 천상, 현세와 내세의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의 믿음이 코헬렛의 믿음보다 더 가치 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인간 지혜의 한계를 인정하기에 “책을 많이 만들어 내는 일에는 끝이 없고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은 몸을 고달프게 한다”(12,12)고 하면서 오히려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켜라”(12,13)라고 권고했던 코헬렛은 진정한 신앙인이었습니다.<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평화신문2016.02.16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18) 4세기 ⑤ - 니사의 그레고리우스의 신비 사상갈망과 열망으로 사랑한다면 신비체험도 가능카파도키아의 3대 교부 중 한 분이며 바실리우스의 친동생이었던 니사의 그레고리우스(Gregorius Nyssenus, 335/40~394 이후)는 수도 생활 신학뿐 아니라, 신비 생활 신학 정립에 탁월한 기여를 했습니다. 그레고리우스는 오리게네스의 제자로서 오리게네스 예찬자였지만 4세기 삼위일체 교리 형성 과정에서 신 플라톤 사상의 영향으로 불거진 이단 논쟁을 극복하는 가운데 오리게네스와 닮은 듯하면서도 닮지 않은 신비 신학을 구축했습니다. 오히려 그레고리우스는 삼위일체 교리 논쟁의 영향으로 필론 및 중기 플라톤 사상과 닮은 부정신학의 관점에서 신비 신학을 전개했습니다.니사의 그레고리우스.수도 생활에 대한 권고 친형님이었던 바실리우스는 평신도 그리스도인으로서 결혼 생활을 하는 친동생 그레고리우스에게 동정 생활을 주제로 한 작품 저술을 부탁했습니다. 따라서 그레고리우스는 저서 「동정론(De Virginitate)」에서 하느님께서 정욕 없이 당신의 모상을 닮은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창조 신학의 관점으로 동정의 가치를 조명했습니다. 특히 그레고리우스는 삼위일체 신비가 동정 생활의 기초 원리라고 강조했습니다. 이후 그레고리우스는 저서 「마크리나의 생애(Vita Macrinae)」에서 큰누이 마크리나를 완덕에 다다른 완벽한 수도자의 모델로 소개하면서 수도자가 완덕에 다다르기 위한 통합적인 영적 여정을 제시했습니다. 결국 수도 생활을 후원하던 바실리우스 사망 이후에 그레고리우스는 수도자를 돌보고 후원하는 일을 도맡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레고리우스는 저서 「히포티포시스(Hypotyposis)」에서 수도자의 영적 여정 및 수도 공동체의 올바른 생활을 언급했습니다. 특히 그레고리우스는 수도 공동체가 신비 생활로 나아갈 것을 격려했습니다. 상승의 여정으로서의 신비체험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는 그레고리우스가 오리게네스 신비 사상의 부족한 점을 극복하고 자신의 신비 사상을 펼치는 데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먼저 니케아 공의회가 재확인한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는 인간 영혼이 하느님과 본질이 같아서 합일할 수 있다고 주장한 오리게네스의 신비 사상을 정면으로 반박할 수 있었습니다. 즉, 인간 영혼도 피조물이기에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서는 저절로 일치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창조주께서는 피조물 세상으로 건너오실 수 있으며, 강생의 신비가 신비체험의 열쇠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 영혼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하는 것뿐입니다. 한편 니케아 공의회와 381년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사이에서 지속됐던 삼위일체 교리 논쟁은 그레고리우스가 자신의 신비 사상을 전개할 방향을 정립하는 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 시기에 아리우스주의(Arianism)는 성부만 유일하게 신의 본질을 지녔고, 성자는 신과 동일한 본질을 지니지 못한 피조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에우노미우스주의(Eunomianism)도 태어난 적이 없는 성부의 본질과 태어난 성자의 본질은 같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아리우스주의에 동조했습니다. 그레고리우스는 저서 「에우노미우스 논박(Contra Eunomium)」에서 에우노미우스(Eunomius, 325?~394)가 성자와 성령의 존재를 거부하는 은유법을 사용할 뿐 아니라 성경과 공의회의 전통적인 용어를 포기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삼위일체 논쟁이 거듭될수록 그레고리우스는 삼위일체 신비는 적극적인 설명보다는 우회하는 설명이 더 적절하다고 느꼈습니다. 따라서 그레고리우스는 자신의 신비 사상에서 초월적 존재인 ‘하나’로 수렴하는 신 플라톤 사상의 영향으로 상승의 여정을 전개했으며, 삼위일체 신비를 통한 하느님 인식의 문제를 부정신학적 방법론으로 접근했습니다. 부정신학적 신비체험 그레고리우스는 저서 「모세의 생애(De vita Moysis)」와 「아가 강해(In Canticum canticorum homiliae)」에서 그리스도인의 완덕과 영혼의 영적 상승을 묘사하면서 자신의 신비 사상을 제시했습니다. 먼저 그레고리우스는 「아가 강해」에서 솔로몬의 지혜서로 불리는 세 권의 성경인 「잠언」, 「코헬렛」 및 「아가」를 인간의 성장 시기와 대조하여 유년기, 청년기, 성숙기에 적용하여 인간 영혼이 걷는 상승의 세 단계로 묘사했습니다. 그런데 그레고리우스에 따르면, 세 번째 단계는 최종 목적지인 관상의 상태가 아니라 이제야 본격적으로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신비체험의 시작점이라는 것입니다. 즉 끊임없이 나아가도 인간 영혼은 하느님을 만날 수 없지만, 하느님의 활동이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을 조금 알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한편 그레고리우스는 「아가 강해」를 통해 하느님을 찾는 여정에서 인간 영혼이 빛, 구름, 및 어둠의 세 길을 걸어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생애」에선 이 세 개의 길을 모세의 중요 생애와 비교, 설명했습니다. 첫 번째 빛의 단계는 불타는 떨기 속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느님에 관한 일화를 통해 설명했습니다. 인간 영혼에게 비춰진 신비스러운 진리의 빛은 인간이 파악할 수 없는 하느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구름의 단계는 홍해를 건넌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는 일화를 통해 설명합니다. 구름에 휩싸인 산을 오른다는 것은 하느님을 관상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어둠의 단계는 하느님을 만나는 순간으로 설명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둠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시기에 인간 영혼은 가시적인 모든 것을 버려야만 어둠 속에 하느님을 뵐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레고리우스의 부정신학적 신비 사상은 처음부터 불가지성(不可知性, 지성으로는 알 수 없음)만을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그레고리우스는 하느님께서 알려주시는 빛에서 시작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는 어둠으로 옮겨갔습니다. 또한 영혼의 거울, 영적 감각, 내재하시는 말씀의 세 가지 측면을 통한 체험을 언급하면서 가지성(可知性)의 경계를 넘나들기도 했습니다. 결국 인간의 지적 활동으로 인식할 수 없는 하느님이시라도 인간 영혼이 갈망과 열정으로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하느님과 일치하는 신비체험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레고리우스는 삼위일체 교리 논쟁에서 인간의 이성이 하느님을 온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을 목격했습니다. 그레고리우스는 인간이 안다는 것을 포기할 때 오히려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레고리우스는 부정신학적인 방법론으로 하느님께 다가가는 영적 여정을 주장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레고리우스의 부정신학적 신비 사상은 훗날 여러 세기를 걸쳐 많은 영성신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침으로써 ‘부정-신비 신학’의 계보를 만들었습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cpbc2017.03.30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11) 3세기 ②-오리게네스의 신비사상그리스도인의 영적 여정에 방향을 제시하다 오리게네스는 구약성경의 「아가」를 영성적 관점에서 해석하며 인간 사이에 사랑의 감정에 대한 비유적 언어로 신비체험과 애덕과의 깊은 관계를 쉽게 설명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에 속한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Origenes, 185~254)는 우의적 의미를 추구하던 성경 해석 방법을 어떻게 영성 생활 발전에 적용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탁월한 성경 주석가였던 오리게네스는 성경 본문을 문자적 의미, 윤리적 의미, 영적 의미로 해석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영적 여정을 체계적으로 설명했습니다. 특히 오리게네스는 그리스도인이 아직 살아있는 동안에 하느님과 일치하는 체험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여 제시한 첫 번째 그리스도교 신비 사상가였습니다.하느님과 일치하는 신비체험사실 그리스도교 영성 생활은 그리스도인이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하는 수덕 생활의 측면도 있지만, 결코 인간의 노력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때로는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그리스도인을 이끌어 주셔야 하는 신비 생활의 측면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은총의 도움 속에서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신비체험’(mysticism)을 하게 됩니다. 신비체험은 사도 베드로(사도 10,9-16 참조)와 사도 바오로(2코린 12,1-4 참조)의 경험에서처럼 ‘무아경’ 속에서 ‘환시’나 ‘말씀’을 동반하는 경우도 있지만, 신비체험의 과정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2000년 역사 안에 수많은 신비 체험가들이 있었던 만큼 그들의 신비체험 과정을 설명하려던 수많은 신비 사상가들도 있었습니다.오리게네스의 신비사상은 기본적으로 플라톤 사상과 중기 플라톤 사상의 영향으로 ‘영혼 선재(先在) 사상’과 ‘삼분법’의 색채를 띠었습니다. 오리게네스는 인간 영혼이 이미 신의 영역에 존재했었기 때문에 인간 영혼과 신의 본질이 같은 ‘동족’(同族) 관계를 이룬다고 강조했습니다. 즉, 본질이 같은 두 물질은 서로 섞이기도 쉬울 뿐 아니라 서로를 이끄는 성질도 있기 때문에, 인간 영혼은 하느님과의 일치를 간절히 원할 뿐 아니라 하느님과의 일치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다만 오리게네스는 물질적 차원에서 사는 인간 영혼이 초월적 차원에 존재하는 신을 향해 상승의 여정을 걸어가야만 하느님과 일치한다고 설명했습니다.상승의 여정으로서의 신비체험먼저 오리게네스는 저서 「아가 강론」(Homiliae in Canticum Canticorum) 서문에서 구약성경 시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배경 삼아서 인간이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상승의 여정을 일곱 단계로 구분하여 묘사했습니다. 즉,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은 홍해를 건넌 후에 첫 번째 노래를(탈출 15,1), 이스라엘 백성들은 브에르에 있는 제후들이 판 우물에서 두 번째 노래를(민수 21,17), 모세는 요르단 강둑에서 세 번째 노래를(신명 32,1), 판관 드보라는 가나안 임금의 손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한 후에 네 번째 노래를(판관 5,2), 다윗은 자신의 원수들과 사울의 손아귀를 벗어난 후에 다섯 번째 노래를(2사무 22,2), 이사야 예언자는 여섯 번째 포도밭 노래를(이사 5,1),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영혼은 더 높게 올라가 신랑과 함께 일곱 번째 노래인 「아가」를 부른다는 것입니다. 결국 세례성사를 받은 그리스도인은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며 영적 여정을 무사히 통과하여 하느님과의 일치 속에서 기쁨의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또한 오리게네스는 저서 「아가 주해」(Commen tarium in Canticum Canticorum) 서문에서 세상 학문 분야와 솔로몬 왕의 작품으로 여기는 구약성경을 짝지어 ‘정화’, ‘조명’, ‘일치’의 단계를 거치는 상승의 여정을 설명했습니다. 즉, 덕행의 습득을 다루는 ‘윤리학’과 창조질서에 순응하며 세상 본성을 다루는 ‘자연학’ 및 천상적인 것을 다루는 ‘형이상학’은 삶의 규범을 다루는 「잠언」과 헛되거나 유익한 것을 구별하는 지혜를 다루는 「코헬렛」 및 천상을 향한 신랑과 신부의 사랑을 다루는 「아가」와 각각 짝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성 생활을 갈망하는 그리스도인은 「잠언」에서 계명을 배우고, 「코헬렛」에서 영원한 것에 마음을 두며, 「아가」에서 하느님 사랑에 빠지는 상승의 여정을 걷습니다.사랑-신비사상이렇게 오리게네스는 구약성경의 「아가」를 영성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면서 인간 영혼이 하느님과 일치하는 과정을 다루는 신비사상을 펼쳤습니다. 즉, 「아가」에 등장하는 ‘신랑’을 그리스도로, ‘신부’를 인간 영혼으로 해석하면서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을 향하는 상승의 여정을 신부가 신랑을 찾는 과정으로 비유했습니다. 이후 「아가」를 바라보는 오리게네스의 시각에 영향을 받은 많은 영성가들과 영성신학자들은 그리스도교 신비체험과 「아가」를 연관 지어 묵상하고 주석하면서 ‘영적 혼인’의 개념을 발전시켰습니다.게다가 「아가」에 나타난 인간 사이에 사랑의 감정에 대한 비유적 언어 때문에, 오리게네스는 신비체험과 애덕과의 깊은 관계를 쉽게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의 주제를 강조한 오리게네스의 신비사상은 ‘사랑-신비사상’ 혹은 ‘신부-신비사상’이라고 일컬어지면서 훗날 ‘혼인-신비사상’ 계보의 시작이 되었습니다.그리스도 중심적 신비사상한편 오리게네스는 플라톤 사상의 한계를 극복하고 그리스도 중심적인 신비사상을 전개했습니다. 오리게네스는 「아가 주해」 제4권에서 하느님께서 모세를 바위 굴 안에 넣고 뒷모습만 볼 수 있게 하신 것처럼(탈출 33,22-23), 그리스도께서 바위틈을 통해 하느님을 알려 주셔서(아가 2,14 참조) 그리스도인이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또한 오리게네스는 「아가 주해」 제2권에서 다섯 개의 영적 감각 기관에 감지되는 그리스도가 ‘하느님 말씀’이라고 주장했습니다.(아가 1,12 참조) 즉, 그리스도는 영적 청각에 들리는 ‘말씀’이시고, 영적 미각으로 맛보는 ‘생명의 빵’이시며, 영적 후각이 냄새 맡는 ‘말씀의 향기’이시고, 영적 촉각으로 느끼는 육신을 취하신 ‘생명의 말씀’이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른 감각 기관으로 느낀 각기 다른 대상은 결국 동일한 하느님 말씀입니다. 따라서 하느님 말씀에서 퍼지는 거룩한 은총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후각을 지닌 영혼만이 완전히 정화되어 성화됨으로써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습니다.사실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본질과 피조물인 인간 영혼의 본질이 결코 같을 수 없기 때문에, 오리게네스의 신비사상은 훗날의 시각에서 보면 오류를 지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리게네스는 그리스도의 도움으로 인간 영혼이 하느님과 일치하는 수동적인 측면과 하느님에 대한 사랑에 고무되어 상승의 여정을 걷는 능동적이며 실천적인 측면을 균형 있게 언급함으로써 알렉산드리아 학파를 대표하는 신비 사상가로 오래 기억되었습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cpbc2017.02.08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여행] (21)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루카 9,53)이방인들에게도 두 팔 벌리신 예수님 유다인과 사마리아인은 오랫동안 적대적인 관계였다. 하지만 네 복음서 중 루카 복음에서는 나병 환자를 고쳐준 사마리아인 이야기 등 사마리아인에 대한 긍정적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림은 반 고흐 작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1890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가톨릭 굿뉴스 제공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루카 9,51). 루카 복음은 이제 갈릴래아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해 가시는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표현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보다 먼저 사마리아 마을로 가지만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사마리아는 역사적으로 유다인들과는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반목의 역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유배 시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솔로몬 왕 이후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분열됩니다. 북쪽 지역은 북이스라엘로, 남쪽은 남유다로 서로 다른 왕국을 세웁니다. 이스라엘의 분열된 왕국은 모두 시간 차이를 두긴 하지만 비극의 역사로 끝납니다. 기원전 722년경 북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 의해 점령당합니다. 아시리아는 사마리아에 살던 이들을 이주시키며(2열왕 17,6) 정책적으로 그 땅에 이방인들이 살도록 합니다(2열왕 17,24). 이러한 과정에서 사마리아는 이방 종교의 영향을 받고 또 민족의 순수한 혈통을 지키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게 됩니다. 그 이후 이스라엘의 정통을 이어가고자 했던 남유다 역시 바빌론의 침략으로 성전을 잃고 유배를 경험하게 됩니다(기원전 587년경). 비슷한 역사적인 배경을 가졌던 이들이지만 유배 이후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의 갈등은 점점 커지고, 기원전 450년경 사마리아는 자신들의 땅 그리짐 산에 성소를 세우게 됩니다. 이런 사건 이후로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종교적으로도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고, 유다인들은 이런 이유로 사마리아인들을 이방인처럼 취급하게 됩니다. 같은 민족이었지만 전쟁과 침략을 거치면서 서로 다른 민족처럼 반목하는 역사를 보여줍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이러한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사마리아인들을 이방인으로 여긴 유다인들은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에도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지역을 지나지 않았을 정도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사마리아 지역에 예수님에 대한 복음이 선포됐다고 처음 전하는 것은 사도행전 8장 4-25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지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고자 했다는 루카 복음의 이야기는 특별해 보입니다. 당시의 일반적인 여정과는 맞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루카 복음만이 이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리고 유독 루카는 사마리아인들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가진 복음서이기도 합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루카 10,29-37)나 예수님께서 고쳐주신 열 명의 나병 환자 중에 사마리아 사람만이 유일하게 돌아와 감사를 드렸다는 내용(루카 17,11-19)은 루카 복음이 전하는 고유한 이야기입니다. 루카의 고유한 이야기들은 다른 복음서와 구분되는 특징을 잘 드러냅니다. 루카 복음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기록된 복음서입니다. 더욱이 복음서의 저자가 바오로 사도의 동반자였던 루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복음서의 초점이 이방인들에게 맞춰져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루카 복음은 복음서의 시작에서부터 유다인들이 아닌 모든 이들을 복음 선포의 대상으로 삼습니다(루카 4,16-30 참조). 혈통이나 출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믿음에 의해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지나고자 했다는 루카의 이야기는 부정적으로 끝납니다. 비록 그들이 아직은 예수님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에서도 복음을 선포하길 원하셨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루카는 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누구든지 믿음을 통해 구원될 수 있다는 선포는 혈통을 중시했던 유다인들에게는 불편한 것이지만 이방인들에게는 새로운 기쁜 소식입니다. <가톨릭대 성신교정 성서학 교수> 평화신문2016.10.26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6) 2세기 ① - 사도 교부 시대 영성 생활그리스도로 무장한 그리스도인 공동체 유배지에서 기적을 행한 죄로 닻에 묶인 채 흑해에 빠져 순교한 클레멘스 1세를 그린 피에르레오네게치 작 ‘성클레멘스의 순교’. 그동안 우리는 신약 성경을 통해서 초세기 그리스도인 영성 생활을 엿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초세기 말엽에서 2세기 중엽 사이에 위치한 사도 교부 시대 영성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물론 사도 교부 시대 작품들은 그렇게 많지 않지만, 그나마 남아있는 작품들을 통해서 지금으로부터 2000여 년 전에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영성 생활을 실천했는지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사도 교부는 열두 사도들의 직제자이었거나 사도들의 가르침을 직간접적으로 받았습니다. 사도 교부는 지역 교회 주교로서 사목 활동을 하면서, 신자들을 격려하고 신자들 사이에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목적인 저술 활동도 겸했습니다. 로마의 교황 클레멘스(Clemes Romanus, ?~96/97), 안티오키아의 주교 이냐티우스(Ignatiua Antiochenus, 105?~135?), 스미르나의 주교 폴리카르푸스(Polycarpus Smyrnensis, ?~167), 및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파피아스(Papias Hierapolitanus, 60?~120?)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한편 비슷한 시기에 익명이나 가명 혹은 잘 알려지지 않은 저자가 저술한 몇몇 작품들도 사도 교부 시대에 속한 작품으로 간주되어 이 당시 상황을 짐작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디다케(Didache ton dodeka apostolon)」, 「바르나바의 편지(Epistula Barnabae)」, 「헤르마스 목자(Pastor Hermae)」 및 「솔로몬의 송가(Odae Salomonis)」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그리스도 중심적인 영성사도 교부 시대 영성의 첫 번째 특징은 그리스도 중심적인 영성입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던 유다교와는 달리 예수님을 구세주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는 그리스도교는 일부 나타났던 유다교화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당분간 교회 분위기를 하느님 중심보다 그리스도 중심으로 이끌어 가야 했을 것입니다.“우리의 자녀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교육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과 함께 순수한 사랑의 힘과 겸손의 능력을 배워야 하고 순수한 정신으로 그분 안에서 거룩하게 살고 있는 모든 것을 구원하시는 그분께 대한 아름답고 큰 경외심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합니다.”(클레멘스,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 21,8)“우리가 지금까지도 유다교를 따라서 살아간다면 이는 우리가 은총을 받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것이 됩니다. 하느님과 가까운 사람들인 예언자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았습니다.”(이냐티우스, 「막네시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8,1~2)“누가 여러분에게 유다교에 관하여 가르치려 할 때 여러분은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할례받지 않은 사람에게서 유다교에 관해 듣는 것보다 할례받은 사람에게서 그리스도교에 관해 듣는 것이 더 낫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말하지 않는다면, 둘 다 제게 있어서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놓은 묘비나 죽은 자들의 묘소에 불과합니다.”(이냐티우스, 「필라델피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6,1)전례 중심적인 영성두 번째 특징은 전례 중심적인 영성입니다. 예루살렘 모교회 신자들은 공동체 안에서 빵을 떼어 나누어 먹으면서 날마다 성찬례를 거행했습니다. 이후 주님의 복음이 전달된 모든 곳에서 그리스도인은 성찬례를 거행하며 전례 안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실현하고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발생한 이단자들은 성찬례와 성찬례를 통해 오는 주님의 은총을 거부했습니다. 따라서 사도 교부들은 각지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성찬례 안에서 그리스도와 일치할 수 있다는 점을 널리 알려야 했을 것입니다.“이 빵조각이 산들 위에 흩어졌다가 모여 하나가 된 것처럼, 당신 교회도 땅끝들에서부터 당신 나라로 모여들게 하소서. … 주님의 이름으로 세례받은 이들이 아니면, 아무도 여러분의 감사(례)에서 먹지도 마시지도 말아야 합니다.”(「디다케」 9,4~5)“심지어 천상 존재들, 영광의 천사들 그리고 눈에 보이는 통치자들과 볼 수 없는 통치자들이라도 그리스도의 성혈을 믿지 않는다면 그 또한 심판받을 것입니다. … (예수 가현 이단자들은) 성체와 기도를 멀리합니다. 저들은 성체가 우리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살임을 고백하지 않습니다. 성체야말로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수난하신 그리스도의 살이요, 아버지께서 자애로이 일으키신 그리스도의 살인데도 말입니다.”(이냐티우스, 「스미르나인들에게 보낸 편지」 6,1; 7,1)“그 한 덩이 빵으로 말하면 불사의 약입니다. 죽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살게 하는 해독제입니다.”(이냐티우스,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20,2)수덕 생활 실천의 영성이 시대 영성의 세 번째 특징은 수덕 생활을 실천하는 영성입니다. 이미 바오로 사도도 나쁜 악습을 끊어버리고, 좋은 덕행을 증진시키도록 수덕 생활 실천을 권고한 바 있습니다(갈라 5,13-26 참조). 특히 사도 교부들은 수덕 생활이 이념 논쟁과 이단사상을 극복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라고 여겼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성덕을 완성하기 위하여 수덕 생활의 여정을 걸어야 했을 것입니다.헤르마스는 저서를 환시, 계명, 비유의 세 부분으로 구성했는데, 거의 모든 부분에서 덕행과 악습을 비교 나열하면서 윤리 도덕적인 실천을 권고했습니다(「목자」, 셋째 환시; 여섯째~여덟째, 열두째 계명; 아홉째 비유 참조). 도덕적인 완성 없이는 그리스도의 성덕을 본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의로운 것에 뜻을 둔다면 그의 영예는 하늘에 쌓이고, 그가 하는 모든 일은 분명히 주님의 마음에 들 것이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악한 것에 뜻을 두고 있는 이들, 특히 이 세상 것을 얻기 바라고 부를 자랑하며, 앞으로 선을 위해 온 힘을 기울이지 않는 이들은 스스로 죽음과 속박을 부른다.”(「목자」, 첫째 환시, 1,8)폴리카르푸스도 ‘의로움’이라는 주제로 글을 쓴다고 밝히면서, 그리스도인의 윤리 도덕적인 삶을 강조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 덕들을 갖추고 있다면, 그는 의로움에 관한 계명을 완성한 것입니다. 사실 사랑을 갖춘 사람은 모든 죄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필리피인들에게 보낸 편지」, 3,3) 따라서 그는 여러 곳에서 악습과 덕행 목록을 비교 나열했습니다.(「필리피인들에게 보낸 편지」 2,2; 4,3; 5,2;6,1; 12,2 참조)새로운 종교적 신념을 확립하려면, 이념적인 무장뿐 아니라 실천이 따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교부들은 그리스도로 무장한 그리스도인이 공동체로는 전례 안에서, 개인으로는 수덕 생활 안에서 영적 여정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입니다. 백영민2016.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