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문화산책] 건축(4) 나르텍스, 구원을 바라며 정화하는 장소거룩한 곳으로 가기 전 거치는 참회의 장소, 열린 공간 하느님을 찬미하기 위해 하느님의 집 안에 있는 거룩한 영역, 곧 회중석에 들어서려면 잠시 멈추고 문과 회중석 사이에서 나를 정화하는 장소를 거쳐야 한다. 성당의 문은 이쪽과 저쪽, 안과 밖을 구분하는 곳이다. 이 문이 열리면 거룩한, 그래서 두려운 저쪽을 향하며 구원을 향한 희망을 준비하는 장소가 나타난다. 그래서 새 성전이 봉헌될 때 주교는 성당 문턱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문턱을 넘어서는 모든 이가 여기에서 구원과 축복, 도움과 위로를 얻을 것입니다." 이를 두고 종교학자 반 델 레우는 "사람이 제일 처음 하는 거룩한 행위는 정화"라고 말한 바 있다. 오늘날에는 성당 안쪽 문에 둔 성수대가 거룩한 영역에 들어가기 위한 이러한 정화 행위를 표현해주고 있다. 본래 초기 그리스도교와 비잔틴 바실리카나 성당 앞에는 사람들이 모이는 중정이 있었는데, 그 성당 정면에 붙어 있는 중정의 아케이드는 성당의 입구도 된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산탐브로지오(Sant' Ambrogio) 성당 정면에 붙은 열려 있는 중정의 아케이드가 그렇다. 그러던 것이 성당 앞 중정이 없어지면서 로마의 산타 아그네제(Santa Agnese) 성당처럼 그 안에 옆으로 긴 공간이 하나 더 나타나게 됐다. 이렇게 생긴 입구와 회중석 사이에 있는 부분을 나르텍스(narthex)라고 불렀다. 나르텍스가 건물 안쪽에 있으면 에소나르텍스(esonarthex), 바깥쪽에 있으면 엑소나르텍스(exonarthex)라고 불렀다. 베즐레 수도원 성당(프랑스). 솔로몬 성전은 3개의 방으로 돼 있었는데, 그것은 각각 세속의 세계, 새로운 지상의 낙원, 하느님의 나라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솔로몬 성전 동쪽에는 현관인 울람(ulam)이 있고, 그 현관과 성소 사이에 있는 첫 번째 방을 통해 성소(hekal)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방과 성소 사이는 벽으로 완전히 분리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성전과 그 앞마당을 엄격하게 분리했다. 현관에 두 기둥을 세우고 오른쪽 기둥은 야킨, 왼쪽 기둥은 보아즈라 했고, 그 기둥 꼭대기에는 나리꽃 모양으로 만든 것을 얹었다(1열왕 7,21-22). 이것을 보면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의 나르텍스는 울람과 성소 사이에 있는 '세속의 세계'를 이어받은 것이다. 로마네스크 성당에서는 서쪽 정면 좌우에 높은 탑을 두었으므로 이 앞부분의 아래쪽은 나르텍스로 사용됐다. 이곳은 기둥이 많아서 어두웠기 때문에 밝은 안쪽 회중석과 제대와는 크게 구별됐다. 1000년 무렵부터는 성당 서쪽에 아트리움을 두지 않게 되면서 나르텍스는 성당을 특징짓는 서쪽 현관 쪽으로 발달했다. 클뤼니(Cluny)나 베즐레(Vezelay) 수도원 성당에서는 나르텍스가 13세기까지 사용됐다. 그러던 것이 고딕 건축에 들어와서는 나르텍스가 사라졌다. 그 대신에 그 자리에 세 개의 출입구가 생겼고, 그때부터 벽 없이 기둥으로만 열려 있는 곳을 포치(porch, 현관)라고 부르게 됐다. 나르텍스와 포치가 서로 혼동돼 설명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나르텍스는 아직 적당한 번역어가 없지만, 그렇다고 '현관'이라고 번역할 수는 없다. 세례를 받아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몸을 영하는 이들은 회중석(nave)에 모일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아직 세례를 받지 못했을지라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예비신자들은 단지 주님의 몸을 영하지 못할 뿐이지 당연히 회중석에 앉을 수 있다. 그러나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나 비잔틴 교회에서는 세례를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성당 안에서 구분됐다. 예비신자나 회개하는 자들은 말씀 전례가 끝나면 회중석에서 나가 있었는데, 나르텍스는 이들이 나가 서 있는 장소였다. 또 나르텍스에서는 세례를 줬다. 세례대는 오늘날에도 성당의 바깥쪽 또는 안쪽 입구에 종종 놓이는데, 미국 오하이오의 성 미카엘 대천사 성당에서는 나르텍스에 십자가 형태의 세례대를 뒀다. 때문에 이미 세례를 받은 사람은 이 장소에서 세례로 거듭난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다. 동방 정교회에서는 성주간의 소시간경과 같은 참회예절을 회중석이 아닌 나르텍스에서 거행하기도 하며,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장례식을 이곳에서 한다. 이곳에서는 구마도 이뤄졌고 초도 살 수 있었다. 이렇듯 나르텍스는 전통적으로 참회와 갱신의 장소였다. 나르텍스는 대개 폭이 길고 깊이가 얕으며, 회중석과는 낮은 벽이나 스크린으로 구분돼 있었다. 이곳은 각 사람이 전례를 더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마음을 준비하며, 거룩한 저쪽으로 넘어가기 위한 중간 지대와 같은 곳이다. 프랑스 베즐레의 로마네스크 순례 성당에서 볼 수 있듯이, 회중석으로 들어가는 입구 위에는 위엄 있는 조각이 얹혀 있기도 했다. 시편은 "저의 하느님 집 문간에 서 있기가 악인의 천막 안에 살기보다 더 좋습니다"(시편 84,11)라고 노래하고 있는데, 이 말씀을 사용한다면 나르텍스는 '하느님 집 문간'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나르텍스는 구분만을 하기 위한 장소가 아니었다. 미사에 참례하지 못하고 성체를 영할 수는 없는 이들도 이곳에서 복음과 가르침을 들었다. 나르텍스는 교회의 성사적 부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교회 바깥도 아니었다. 따라서 나르텍스는 예비신자와 아직 교회의 지체가 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장소, 성체성사의 신비에 허락되지 못한 참회자나 아직 일치를 이루지 못한 이들을 위한 장소, 피난처이자 이들을 초대하는 장소였다. 오늘날엔 이 신중한 의미를 지닌 공간이 거의 다 사라져 버렸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전례에 참례할 수 없는 사람이나 참례하려 하지 않는 사람 등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깊은 뜻을 가진 영역이었다. 교부들에게 나르텍스는 죄가 완전히 사해지지 못한 세계의 상징이었다. 그것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이방인의 뜰' 또는 '바깥 뜰'과 비교됐다. 이곳은 성전 안에 있는 1m 남짓한 낮은 벽이나 난간으로 둘러싸인 장소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곳은 이방인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개방돼 있었으며, 이 낮은 벽이나 난간을 통해 그 안을 볼 수는 있었다. 그렇지만 유다인은 성전 안에 들어갈 수 있었고, 이방인들은 그 이상 들어갈 수 없었으므로 이 뜰이 유다인과 이방인을 분리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낳았다. 정결법에 따라 거룩한 돈인 옛 히브리 화폐로 성전세를 내려고 환전해 주던 곳이 '이방인의 뜰'이었다.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요한 2,13-22)고 하시며 상인들을 쫓아내시고 환전상의 탁자를 엎어버리신 곳이 이곳이었다. 가톨릭 개혁 이후에는 세례를 받지 않은 이들을 분리해 나르텍스에 있게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교회 건축가들은 회중석에 들어가기 전에 방 하나를 계속 만들어 두었다. 그리고 이 방이 회중석의 일부이면 이곳을 '안쪽 현관'(vestibule)이라 불렀고, 확실하게 구분되면 '바깥 현관'(porch)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회중석에 들어가게 되었는데도 전통적인 이름을 사용해 회중석에 들어가기 전 구역을 나르텍스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성당에서 나르텍스는 왜 중요한가? 그것은 바깥 세계에서 하느님의 집 안에 들어가기 위한 도입부이며 일종의 완충 지대요 환영의 장소다. 성당 제단을 향해 가기 전 멈춰 서서 미사의 의미를 되새기는 나르텍스가 있기에 사람들은 더 큰 기쁨으로 제대를 향할 수 있다. 또 미사를 드리러 가기 전이나 미사를 마친 후 모든 신자가 함께 모이는 공간이기도 했다. 이처럼 나르텍스는 전례를 마친 후에는 일상생활 속에서 미사의 신비를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곳이다. 오늘 우리의 성당에는 이런 깊은 의미를 가진 공간이 아예 사라져 버렸다. 나르텍스라는 이름은 없어지고 그 대신 그곳을 홀이라 부른다. 거의 모든 성당이 면적을 절약하다 보니 문에서 들어오자마자 몇 발만 걸으면 금방 회중석으로 이어지고, 그 홀조차도 좁고 짧다. 이런 홀도 회중석의 중심축 위에 있지 않고 측면에 놓이게 되면 결국 긴 복도가 회중석 뒤에도 이어지는 셈이 된다. 이 홀에는 주보나 성가책, 헌금 봉투 등이 놓이고 게시판도 걸린다. 그러나 일상 공간에서 전례 공간으로 넘어가는 곳, 성당에 들어서기 전 다시 세례와 미사의 의미를 되새기는 곳, 내가 정화되는 곳, 세례를 받은 이든 그렇지 않은 이든 모든 이가 구원의 희망을 가지게 되는 장소였던 나르텍스의 진정한 의미를 이제라도 우리의 성당 건축 속에 다시 살려내야 한다.김광현(안드레아, 건축가,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조은일2013.05.29
[윤일마 수녀의 신나는 성경공부] 옛날 옛날에(마르 7,1-5) 사람의 눈이 아닌 하느님의 눈으로 필리프 드 샹파뉴의 '모세와 십계명'. 하느님이 십계명을 주신 것은 인간이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려는 것이다.나라마다 전통이 있듯이 유다인에게도 전통이 있다. 유다교의 핵심 사상은 성전과 땅, 율법이다. 지금은 성전이 없지만 유다인에게는 성전이 민족의 삶의 심장이었다. 종교, 정치, 사회, 문화 이 모든 것의 구심점을 이루는 것이 성전이다. 성전이 도시를 거느리고 있다고 표현할 정도로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은 도시의 25%를 차지했다.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계신 곳이자 하늘과 땅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는 곳이다. 제사를 바치고 사제직을 수행하는 곳이자 하느님과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는 곳이다. 성전의 역사는 제1, 2성전 시기로 나뉜다. 제1성전 시기는 솔로몬 시대부터 바빌론 유배 시기까지다. 제2성전 시기는 유배 후 기원전 520년에 재건축된 때부터 로마인에게 완전히 함락된 기원후 70년까지다. 성전에는 매일 예배와 안식일 예배가 있었다. 안식일 예배는 사회적 구심점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충성을 결정짓는 표시 중 하나였다. '쉐마'와 '18개의 기도문'은 유다인의 자아의식을 지탱해주는 것 중 하나였다. 쉐마와 18개 기도문의 핵심 내용은 오직 하느님만이 계시고, 이스라엘은 그의 백성이며 하느님은 그들을 구원하러 오실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유다인들은 율법을 통해 믿음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은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땅이었다. 이 땅은 빵과 포도주, 가축을 길러내는 하느님의 축복이 이뤄지는 현실 장소다. 또 이들은 율법을 하느님의 법, 하느님의 지혜라고 생각했다. 율법은 하느님 백성인 이스라엘의 계약 헌장으로, 땅에 관한 약속과 축복의 성취를 위해 지켜야 할 규율을 제공했다. 율법을 지키는 실천적 사항 세 가지는 할례와 안식일, 정결례였다. 이는 유다인들을 이방인들과 구분해주는 표징이었다. 율법의 근본정신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예수님은 율법에 매여 계실 분이 아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뛰어넘어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 유다인들이 율법을 목숨처럼 지키는 이유는 율법은 하느님의 백성에 속해 있다는 표지이자, 구원의 약속을 앞당길 수 있는 충성의 표시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구원이 이뤄졌을 때 자신의 신원을 보증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전은 유다인들에게 사회ㆍ종교적 삶의 중심이었다. 유다인들에게 성전은 하느님의 현존이며 하느님은 성전에서 당신의 백성을 보호해주고 축복해 주신다고 믿었다. 하느님의 집이 있는 예루살렘을 하느님의 도성이라고 불렀다. 예루살렘과 성전은 하느님 백성과 유다교를 대표하는 것 중 하나였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는 무엇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왔을까. (어쩌면 그들이 생각하기에) 갈릴래아에 남다른 권위를 지니고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는 랍비가 출연했다는 소문을 듣고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유다인들은 공동체 의식 때문에 제자가 잘못하면 스승이 책임을 진다. 예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을 본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는 예수님께 따지듯 물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마르 7,5). 율법에는,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 나아가기 위해 정결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레위기 11-15장에는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 △산모의 정결례 △사람에게 생기는 악성 피부병 △악성 피부병 환자의 정결례 △남자와 여자가 부정하게 되는 경우 등의 정결규정이 있다.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어야 한다는 규정은 레위기나 율법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손 씻는 규정은 '조상들의 전통'(마르 7,5)이라 불리는 관습법에 속한다. 하느님께 나아갈 때는 정결해야 한다는 규정은 하느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법을 충실히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해 인간이 만들었다. 하느님을 위해 만들어 놓은 전통법이 부작용을 낳았다. 이는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것인지 아닌지 판단하기보다 먼저 사람의 눈에 합당한지 합당치 않은지를 따지는 규정으로 변질됐다. 설에 부모에게 세배하는 것은 우리나라 전통이다. 세배를 안 했다고 해서 고해성사 봐야 하는가. 아니다. 우리도 때론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가치관과 전통이 있다. 그 고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예수님이 주시는 자유를 누리지 못했다. 이들은 예수님이 인간을 죄에서 해방시키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스스로의 노력과 힘으로 구원받는다고 생각했다. 하느님이 처음 십계명을 주신 것은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행복을 주고 생명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율법은 사람을 심판하고 생명을 빼앗는 도구로 전락했다. 종교 지도자들이 다 떠난 다음 예수님은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마르 7,14-15).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마르 7,20-23). 우리 마음이 깨끗하면 좋지 않은 것이 들어와도 물리칠 수 있다. 마음이 악한 것으로 가득하면 거룩하고 아름다운 것이 들어와도 그것을 발견하지 못한다. 정리=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방송시간 : (화) 오전 8시, (수) 새벽 1시/오후 1시 40분, (금) 밤 8시, (토) 밤 10시 ※교재 문의 : grace@paul ine.or.kr, 02-944-0945 cpbc2013.08.20
성체성사 제정되고 성령강림 통해 교회 탄생한 거룩한 산[사진으로 떠나는 이스라엘 성지기행] 7. 시온산 시온산은 예루살렘 남서쪽 힌놈 골짜기와 티로포에온 계곡 사이에 위치한 해발 765m 동산으로 유다인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에게도 귀중한 성지이다. 시온산은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최후 만찬을 거행하시면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곳이다. 또 부활하신 예수께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두 차례 찾아오시어(요한 20,19-23; 20,24-29) '사죄권'을 부여하시고 토마스의 의심을 풀어주신 장소이기도 하다. 아울러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는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보내주시어 교회를 탄생시킨 곳이 바로 이곳 시온산이다. 또한 성령강림 때에 성모 마리아께서 사도들과 함께 이곳에 계셨으며(사도 1,12-14) 사도들과 함께 이곳에서 마지막 여생을 보내셨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시온산은 또 첫 공의회인 예루살렘 공의회(사도 15,1-35)가 열린 장소이며, 335년 '예수 부활 성당'이 건립되기 전까지 예루살렘 유다계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중심지인 주교좌가 있었던 곳이다. 우리말로 '봉우리'란 뜻의 시온은 원래 예루살렘 남동부에 자리 잡은 '다윗성'을 가리키는 이름이었으나, 다윗이 이곳에 '계약 궤'를 옮겨와 제단을 쌓으면서 이곳을 '거룩한 산'이라 부르게 됐다(2사무 6,12-18; 시편 2,6). 이후 솔로몬이 모리야산에 성전을 세우면서 시온이라는 명칭은 이 성전까지 포함하는 이름이 됐다(이사 18,7; 미카 4,7). 시온은 또 예루살렘 시민 또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시편 126), 신약성경에서는 '하느님의 도성' '천상 예루살렘'(히브 12,22; 묵시 14,1)을 가리킨다. 신약 시대에는 시온산이 성벽 안에 있었지만, 오스만튀르크 술레이만 대제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1536~1542년)하면서 성벽 밖에 자리하게 됐다. 오늘날 시온산 지역에는 최후 만찬 경당과 동정 마리아 영면 기념 성당, 닭울음 성당(베드로 회개 기념 성당) 등이 있다. 이스라엘 정부 귀속 후 어떠한 종교적 장식도 없는 최후 만찬 경당 내부 모습. ▨ 최후 만찬 경당 예수께서 행하신 최후 만찬 일시에 관한 복음서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공관복음서(마르코ㆍ마태오ㆍ루카)와 요한 복음서가 다르게 보고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공관복음서는 예수님과 제자들은 파스카 양을 잡는 '무교절 첫날 저녁'에 최후 만찬을 하신 것으로 기록돼 있다(마태 26,17-19; 마르 14,12-16; 루카 22,7-13). 반면 요한복음서는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요한 13,1)에 최후 만찬을 한 것으로 나온다. 성경학자들은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을 심문할 때 유다 권위자들은 아직 파스카 음식을 들지 않았으며, 이를 위해 전례적으로 깨끗함을 유지해야 했다는 사실(요한 18,28)을 통해 요한의 보고가 정당하다고 보고 있다. 또 십자가형이 축제일이 아니라 축제 하루 전에 거행됐다는 점(예수께서 성전에서 파스카 양들이 도살된 시각에 돌아가셨다는 것을 의미)을 또 다른 증거로 제시한다. 안타깝게도 네 복음서는 최후 만찬 장소를 정확히 밝히고 있지 않다. 하지만 교회 전승에 따라 오늘의 최후 만찬 기념 성당 터는 비잔틴 시대 때부터 성지로 개발됐다. 4세기에 첫 성당이 건립됐으나 614년 페르시아군에 의해 파괴됐고, 이후 십자군 시대 때 다시 성당이 지어졌지만, 또다시 이슬람군에 의해 파괴됐다. 1333년 나폴리 왕 로베르토가 이집트 술탄으로부터 이 터를 사들여 작은 형제회에 봉헌했고, 작은 형제회는 이 터에 수도원과 고딕 성당을 지어 지상층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 기념 경당' '다윗 무덤 경당'(사도 2,29) '사도 토마스 경당'(요한 20,24-31)을, 2층에 '성령 강림 기념 경당'과 '최후 만찬 기념 경당'을 마련했다. 이 성당은 1517년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오스만튀르크에 의해 모스크로 바뀌었고, 1948년 이스라엘 건국 후 정부재산으로 귀속됐다. 라틴말 '체나쿨룸'(다락방)으로 불리는 최후 만찬 경당 터에는 성 목요일과 성령 강림 대축일에 행하는 말씀 전례 외에는 그 어떠한 예식도 허가되지 않고 있다. ▨ 동정 마리아 영면 성당 시온산 작은 형제회 수도원 바로 옆 골목길 어귀에 자리한 '동정 마리아 영면 성당'은 원죄에 물들지 않으신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 지상 생활의 여정을 마치시고 육신과 영혼이 하늘의 영광으로 올림을 받으신(교회헌장 59 참조) 것을 기념해 지은 성당이다. '성모 승천'에 관한 교회 전승은 초세기 사도들의 전승을 모아 전하고 있는 2세기 위경들에 이미 나타난다. 4세기부터는 성모 승천을 고백했고, 5세기 들어 예루살렘에서는 8월 15일을 '천주의 어머니 날' 축일로 지냈다. 13세기에는 성모 승천이 보편 믿음으로 신앙생활에 자리했다. 이러한 교회 전승에 따라 1950년 교황 비오 12세는 '성모 승천'을 믿을 교리로 반포했다. 현재 독일 베론 성 베네딕도회가 관리하고 있는 이 성당은 원형 돔과 종탑이 어우러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화려한 성당으로 시온산에서 가장 큰 성당이다. 성당 안에는 복된 잠에 빠져 있는 동정 마리아상이 있다. ▨ 닭울음 성당(베드로 회개 기념 성당) 시온산 남동쪽 키드론 골짜기와 게헨나(힌놈)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라틴말로 '갈리칸투'(닭울음 성당)라고 하는 베드로 회개 기념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 자신을 부인할 것이라는 예수님의 예언이 그대로 이뤄지는 것을 알고 사도 베드로가 통곡한 곳(마르 14,53-54; 마태 26,57-66; 루카 22,66-71; 요한 18,12-24), 바로 대사제 카야파의 집터다. 이 터에서 물 저장 시설과 감옥으로 사용했던 동굴, 히브리 도량형과 맷돌 등 유물이 발굴됐다. 이 동굴 중 하나는 예수님께서 카야파에게 신문을 받은 후 조롱받고 주먹질 당한 후 갇혀 있던(마태 26,67) 장소다. 닭울음 성당에서 또 하나 귀중한 보고는 예수 시대 윗도시와 아랫도시로 이어지는 로마 시대 돌계단이다. 예수께서는 성 목요일에 시온산에서 제자들과 최후 만찬을 나눈 후 이 계단을 걸어 내려가 겟세마니로 기도하러 가셨고, 또 율법학자와 원로들에게 체포된 후에는 이 길을 통해 카야파의 집으로 끌려가셨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오늘날 성당은 1931년 승천수도회가 건립한 것이다. 글ㆍ사진=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cpbc2013.08.20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21)구약성경의 다양한 나무들참나무·향엽나무, 성소 알리는 표지 구약성경에 나오는 세 가지 나무인 참나무, 향엽나무, 돌무화과나무에 대해 살펴보자. 구약성경에서도 참나무와 향엽나무는 비교적 자주 등장하는 거룩한 나무다. 두 나무에 얽힌 고대 이스라엘인의 종교심도 비슷한 점이 많다. 참나무를 뜻하는 히브리어 '엘로온'과 향엽나무를 의미하는 '엘라'는 높다, 세다, 첫째 가다를 뜻하는 고대 셈어 어근에서 파생한 단어다. 이 나무들의 이름을 직역하면 '드높은 나무' 또는 '우두머리 나무' 정도 된다. 창세기 12장에서 스켐의 성소는 '모레의 참나무가 있는 곳'이었다. 참나무는 곧 성소를 알려 주는 표지다. "그리하여 스켐의 모든 지주와 벳 밀로의 온 주민이 모여, 스켐에 있는 기념 기둥 곁 참나무 아래로 가서 아비멜렉을 임금으로 세웠다"(판관 9,6). 모레의 참나무는 널리 알려진 지명으로 쓰였다. 마치 명동성당처럼 누구나 아는 명소를 안내의 기준으로 삼듯이 당시 참나무가 그 같은 역할을 했다. 참나무는 또 임금을 세우는 대관식이 열리는 곳이었다. 또 흥미롭게도 장례가 열리는 곳이기도 했다. "그때 레베카의 유모 드보라가 죽어, 베텔 아래에 있는 참나무 밑에 묻혔다. 그래서 그곳의 이름을 알론 바쿳(통곡의 참나무)이라 하였다"(창세 35,8). #거룩한 나무-참나무와 향엽나무 향엽나무도 참나무와 종교적 쓰임새가 비슷하다. 여호수아의 시대에 유서깊은 성소인 스켐에서 하느님과 백성이 새로 계약을 맺었다.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는 백성이 맺은 계약의 증거로 큰 돌에 모든 말씀을 기록한다. 그리고 그 큰 돌을 가져다 '향엽나무 밑'에 세웠다. "여호수아는 이 말씀을 모두 하느님의 율법서에 기록하고, 큰 돌을 가져다가 그곳 주님의 성소에 있는 향엽나무 밑에 세웠다"(여호 24,26). 참나무가 장례 요소로 쓰인 것처럼 사울의 시신을 수습한 곳도 향엽나무 밑이었다. 향엽나무는 참나무처럼 장사 지내는 곳이었으며, 아울러 주님의 천사가 내려와 앉아 하느님 뜻을 전하는 거룩한 곳이었다. 고대 근동의 다양한 민족들도 이 나무들에 깃든 거룩한 의미를 공유했다. 이 나무들 아래에서 의례를 거행했고, 나무를 깎아 신상을 만들었다. 구약성경은 일부 이스라엘인들도 이방인의 풍습을 따라 이 나무들 아래에서 이방신을 섬기는 제의를 거행했음을 전한다. 또 이 나무들로 우상을 만들었다는 대목도 여러 차례 나온다. 신명기계 신학자들은 이스라엘이 고난받는 이유가 하느님께 충성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성찰했다. 그러면서 주님께 불충한 이유가 "참나무들 때문"이라고 표현했다. 또 가까운 미래에 고난받을 이스라엘의 모습을 "시든 향엽나무처럼"이라고 말했다. 두 나무는 이스라엘의 죄와 고난을 표현하는 데에도 쓰인 것이다. "너희가 좋아하는 그 참나무들 때문에 너희는 정녕 수치를 당하리라. 너희가 선택한 그 정원들 때문에 너희는 창피를 당하리라. 너희는 정녕 잎이 시든 향엽나무처럼 되고 물이 없는 정원처럼 되리라"(이사 1,29-30). 두 나무에 대한 구약성경의 태도는 양면적이다. 거룩한 성소나 하느님의 현존과 연관됐을 때는 긍정적이지만 우상, 이방 신과 관련됐을 때는 단호하게 부정적이다. 이스라엘인은 두 나무에 대한 고유한 신학적 성찰을 발전시켰다. 이스라엘 민족이 겪을 역사적 고난과 수치가 이 나무들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고난을 견디고 남을 미래도 역시 이 나무들의 그루터기로 상징됐다. #돌무화과나무 고대 이스라엘인은 고대 근동의 중요한 종교적 상징을 완전히 탈신화했다. '돌무화과나무'는 이집트에서는 '거룩한 나무'였지만, 구약성경에는 그저 '재산'이나 '목재'다. 특히 값이 싸고 부실하고 보잘것없는 의미로 쓰인다. "솔로몬 임금 덕분에 예루살렘에서는 은이 돌처럼 흔해졌고, 향백나무는 평원 지대의 돌무화과나무만큼이나 많아졌다"(1열왕 10,27; 2역대 1,15; 9,27). 아모스 예언자는 스스로를 촌뜨기라고 겸손하게 표현한다. 여기서도 이 나무는 아모스의 직업과 관련된 것일 뿐 특별한 종교적 심성을 찾아볼 수는 없다. 돌무화과나무나 가꾸는 사람은 보잘것없는 사람이다. "그러자 아모스가 아마츠야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아모 7,14). 그러나 이스라엘에 큰 영향을 끼친 이집트에서 돌무화과나무는 강한 신성을 지닌 나무였다. 멤피스인들이 섬기던 대중적인 하토르 여신의 표상이었고, 18왕조와 19왕조 시대에는 하늘의 여신 누트를 상징했다. 하지만 위에서 보듯 이런 이웃 종교의 상징성은 구약성경에서 탈색됐다. 단 한 번도 성소나 의례와 연관되지 않았고, 우상 숭배와도 관련 없는 그저 값싼 나무일 뿐이다. 하지만 이집트 종교와의 관련성을 염두에 두면 아래 구절에서 희미한 상징을 느낄 수 있다. 하느님이 이집트에서 일으키신 기적을 찬미하는 시편 78편은 이집트인들의 중요한 재산인 포도나무와 돌무화과나무가 못 쓰게 됐다는 점을 말한다. 돌무화과나무를 그냥 재산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집트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우박으로 저들의 포도나무를, 서리로 저들의 돌무화과나무를 죽이셨다"(시편 78,47). 정리=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은 평화방송 TV 홈페이지(www.pbc.co.kr) 강좌/성경 꼭지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퇴사자22013.07.02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12) 바람은 하느님의 종이다하느님 나타나심의 징조 '바람' 우리는 바람이 공기의 흐름이라 알고 있다. 하지만 구약성경을 읽을 때는 과학적 시각으로 바람을 이해하기보다 신학적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고대 근동 세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바람 신은 큰 힘이 없었지만, 이집트에서는 강력한 바람 신 '슈'가 있었다. 구약성경에 바람에 날개가 달렸다는 표현이 나온다는 것을 지난호에서 말했다. 이런 상상의 동물이 성경에 나온다고 해서 비과학ㆍ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당시 사람들은 신학적 의미를 부여해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우리 또한 우리 세대에서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하느님을 섬기고 있듯이 그 시대 사람들도 당시 생활 속 언어로 하느님을 찬미한 것이다. #완전 수 4와 10의 의미 고대 근동의 상징 숫자인 '4'는 동서남북 온 세상을 상징하는 완전한 수로 사용됐다. 완전 수이자 길한 숫자인 '4'에 '10'이란 또 다른 완전 수를 곱한 '40'은 더욱 완벽하고 충만한 시간을 표현하는 데 사용됐다. 그래서 구약성경을 보면 히브리 사람들이 이집트를 탈출해 광야에서 40년 세월을 보냈고,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십계명을 받기 전 40일 단식한 모습이 나온다. 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하기 전 광야에서 40일간 유혹을 받았다. 고대 근동인들에게 40이란 숫자는 이처럼 온전히 충만한 시간을 뜻했다. 40을 채웠다는 사실은 주님이 마련해주신 시간을 다 채웠다는 뜻도 된다. 솔로몬과 다윗은 이스라엘의 훌륭한 임금이었다. 주님이 허락하고 마련해주신 시간을 꼭 채워 40년간 다스렸다. 구약성경에는 네 개의 바람이 등장한다. 이는 사방에서 불어오는 온전한 바람을 표현한 것이다. 예레미아 예언자는 '하늘 네 끝에서 오는 네 바람'을 하느님의 명령을 받는 존재로 묘사했다.(예레 49,35-36 참조) 네 가지 바람을 하느님이 쓰시는 무기로 표현한 것이다. 유배 이후에 나온 다니엘서에서도 하늘에서 불어오는 네 큰바람이 큰바다를 휘저었다는 표현이 등장한다.(다니 7,2 참조) 사방의 바람은 하느님께서 조정하신다. #바람은 하느님의 종이다 이집트 탈출 사건에는 10개 재앙이 나온다. 이 중 8번째 재앙인 메뚜기 떼 재앙은 바람(동풍)이 일으킨 것이다.(탈출 10,13 참조) 공포심을 느낀 파라오는 모세에게 메뚜기를 거둬달라고 부탁한다. 이에 하느님은 바람(서풍)으로 메뚜기 떼를 없애셨다.(탈출 10,19 참조) 하느님은 이처럼 동풍, 서풍 등 바람을 마음대로 조정하셨다. 탈출기에서 하느님은 파라오와 싸웠다. 당시 신으로 여겨진 파라오는 하느님의 힘에 힘을 쓰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 또한 하느님은 우주에서 큰 분이시란 것을 알고 있었다.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바람)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창세 1,2). 하느님의 영은 바람을 뜻한다. 하느님은 천지창조 때부터 바람을 부리셨다. 하느님의 영이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는 것은 하느님이 바람으로 혼돈을 제어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우리에게 권능을 나타내기 이전부터 하느님은 바람을 제어하셨다. 하느님을 믿는 이들에게 바람은 하느님이 나타나신다는 징조로 받아들여졌는데, 이는 신의 자리를 잃고 그저 하느님 도구로 '탈신화화'했던 바람의 '재신화화'라고 할 수 있다. 주님이 엘리야 예언자에게 나타나실 때 몇 가지 징조 중 첫 번째가 루아흐(바람)이다. 루아흐는 주님 현현의 첫 번째 표징이었다.(1열왕 19,11-13 참조) 하지만 바람이 파괴의 도구가 될 때도 있다. 하느님이 우리를 바람으로 꾸짖으신다. '그분께서는 그를 내몰고 내쫓으시어 벌하시고 샛바람이 부는 날 그를 거센 바람으로 몰아내셨다'(이사 27.8), '주님의 바람이 불어오리니 그의 샘은 마르고 우물은 메말라 버리리라'(호세 13,15). 구약성경에서 동풍, 샛바람은 이처럼 하느님 꾸짖음의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마음에 있는 바람(소망)을 하느님 바람으로 가득 채워주시길 기도하자. 정리=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평화방송 TV 방송시간 : 수요일 오전 9시(본방송), 금요일 저녁 9시(이하 재방송), 일요일 저녁 9시, 월요일 오전 4시ㆍ오후 3시퇴사자22013.04.16
[성경 속 궁금증] 59. 성경에서 팔레스타인은 어떤 곳인가이스라엘 중심으로 한 지중해 동해안 일대 가나안으로 불리다 로마인들이 지명 바꿔다윗이 필리스티아 장수 골리앗을 쳐 죽인 이야기를 그린 '다윗과 골리앗'(구에르치노 작, 17세기). 얼마 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교전 소식은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유엔은 최근 총회 결의를 통해 팔레스타인의 국가 자격과 독립국 건설을 65년 만에 인정했다. 이로써 국제사회에서 팔레스타인의 발언권이 강해지고 이스라엘로부터의 독립 움직임도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에 이스라엘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새로운 충돌의 계기를 만든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따른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지중해의 동해안 일대를 일컫는다. 이 지역은 이스라엘과 레바논, 요르단과 시리아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분쟁이 끊이지 않는 이 지역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리스도교, 유다교, 이슬람교에서 모두 거룩한 땅으로 여기는 곳이다. 팔레스타인은 '필리스티아 사람들(Philiscines)'이라는 히브리어에서 유래했다. 필리스티아인은 바다를 떠돌던 해양민족이었는데, 지중해 연안에 도시를 세우고 정착한 것이다. 이들은 차츰 내륙으로 들어왔고, 당연히 이스라엘 민족과 부딪혔다. 초기에는 그들 군사력이 더 강했다(판관 13-16장 참조). 이후 필리스티아 민족은 B.C 11~12세기에 영토 팽창 정책을 펼쳤다. 바다에서는 가나안의 시돈, 티로, 비블로스와 해상무역 주도권을 다퉜고, 내륙에서는 이스라엘 민족과 크고 작은 싸움을 끊임없이 벌였다. '필리스티아인들이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때'(판관 14,4)에 삼손이 등장해 눈부신 활약상을 보이기도 했다(판관 13-16장).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이었던 야훼의 계약궤를 빼앗기도 했다(1사무 4,1-11). 필리스티아 민족은 다윗 왕 때 이르러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패하게 됐다. 그들은 더 이상 이스라엘에 위협을 주는 세력이 될 수 없었고, 이후부터는 이스라엘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솔로몬 임금은 이집트와 조약을 맺고 교류를 강화했다. 틈새에 끼인 필리스티아는 점점 무력해졌고, 강국들의 지배를 받다가 마침내 역사에서 사라졌다. 필리스티아인들 땅이라는 뜻의 팔레스타인이란 지명만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온다. 팔레스타인은 로마인들이 들어오기 전에는 가나안으로 불리었다. 로마인들도 처음에는 가나안의 유다지방이라 불렀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독립전쟁을 평정한 뒤에는 팔레스타인으로 지명을 바꾼다. 유다인과의 전쟁에 질린 나머지 연관성을 없애려는 의도였다. 로마인들은 유다인들의 끈질긴 저항과 마지막 독립전쟁(A.D 132~135)을 분쇄한 뒤 일부러 팔레스타인이라는 지명을 사용했다. 이제부터 이 땅은 이스라엘과 아무 연관이 없다는 강력한 표현인 셈이다. 이스라엘인들은 팔레스타인을 하느님이 계시한 구원과 약속의 땅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본래 이곳에 살던 소수 민족들에게도 팔레스타인은 포기할 수 없는 삶의 터전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영토분쟁이 끝나고 중동 지역이 평화와 안정을 찾는 날은 언제쯤 오게 될까.퇴사자22012.12.25
[르포/성서주간 특집]'영원한도움 성서연구소 학습관'을 가다"이! 그게 이거구나"... 성경 궁금중 단박에 해결한국 가톨릭 교회 첫 성경 학습관지도,사진,유물모형 시기별로 전시하느님 말씀 이해하는 데 큰 도움 '성경을 알려면, 이스라엘과 근동 지도와 지형, 모형, 사진을 봐라.' 지난 6월 서울 정릉3동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 본원 이세의 집 2층에 문을 연 영원한도움 성서연구소(소장 최안나 수녀) 학습관에 가면, 이같은 조언에 맞갖은 성경 보조자료를 다 만날 수 있다. 성서주간을 앞두고 찾아간 학습관은 성경과 관련된 것이라면 '없는 게 없다' 싶을 정도로 알차다. 지도와 사진, 지형ㆍ유물 모형 및 복제품, 컬러도판, 국내외 성경, 태블릿PC까지 망라했다. 공간은 168.59㎡(51평)에 불과하지만 3개관으로 나눠 '예수님의 어머니와 함께 성서를 읽는'(요한 2,1-12, 19,25-27)데 부족함이 없다. 1관은 입문(入門)관으로 기원전 3500년에서 기원후 4세기까지 이스라엘과 이집트, 바빌로니아 등 주변 패권국 역사와 고고학 기록을 정리한 연표와 고대근동지도, 노아민족분포도, 예수님시대 총독들 인명록 등을 담았다. '팔레스티나관'으로 명명된 2관은 성경에 등장하는 지명과 지형에 토대를 두고 팔레스타인과 인근 지역, 특히 산맥과 계곡, 호수, 도시, 내륙도로ㆍ해안길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3관 '예루살렘관'은 예루살렘 지형 모형과 성막 모형을 통해 하느님 현존을 눈으로 보며 체감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씀 안에서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며 영적 힘을 얻도록 이끄는 성경교육의 장이다.노아 민족 분포도다. "노아는 셈과 함과 야벳, 이렇게 세 아들을 두었다"(창세 6,10)는 성경 기록에 근거한 이 분포도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을 똑같은 크기로 그렸다. 세세히 살피다보면, 성경을 많이 읽은 이들일수록 '아! 그게 이거구나'하는 감흥에 젖지 않을 수 없다. '낯설고 물선' 땅 이름이 어찌나 친근하게 다가오는지 신기하게 느껴지는 체험도 하게 된다. 일례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쓰는 '백두에서 한라까지'라는 말과 유사한 '단에서 브에르 세바까지'라는 표현이 왜 나왔는지도 지도를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성지를 순례해도 보지 못하는 걸 학습관에선 볼 수 있다. 이스라엘 박물관과 현지에서 입수해온 유물 모형도 빼놓을 수 없다. 성경에 등장하는 성막과 계약의 궤 모형, 제1성전(솔로몬성전)ㆍ제2성전(헤로데성전)ㆍ현대 성전 산과 그 부근 모형, 종 기물, 그릇 등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유다인 율법ㆍ관습ㆍ의식의 총체인 토라, 포도주 암포라, 석류 모양 제대용 그릇, 용골형 그릇, 사해 문헌 복제품, 필리스티아 여신상 아스도라, 라틴어ㆍ히브리어ㆍ그리스어 성경 등도 망라했다. 학습관을 찾기에 앞서 영원한도움 성서연구소가 엮고 쓴 「성경지도」(성서와함께)를 읽고 나면 훨씬 더 생생하고 재미있게 학습관을 볼 수 있다. 관람은 매주 금요일 오후 2~5시. 소장 최 수녀의 상세한 설명을 들으며 관람하려면 매달 넷째 주 수요일 오전 10시에 가면 된다. 문의 : 02-941-4626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12.11.20
제29회 한자리 축제 성황장애인들 얼굴에 함박웃음 꽃미사 후 열린 문화체험 행사에서 시각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에게 안마를 해주고 있다. 장애인들 얼굴에 화창한 날씨만큼이나 밝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서울가톨릭장애인복지협의회(회장 김정영)는 장애인의 날을 맞아 4월 29일 경기도 과천 서울랜드에서 '너와 나 우리 다 함께'란 주제로 제29회 한자리 축제를 열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하나 되는 시간을 가졌다.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회장 정성환 신부) 소속 60여 개 기관 이용자와 자원 봉사자, 본당 재가 장애인 등 1200여 명이 참석한 축제는 기념 미사와 장애인체험, 문화체험 등으로 이어졌다. 교구 서서울지역 교구장대리 조규만 주교는 기념미사 강론에서 "나보다 더 어렵고 약한 이들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깨달으며 살자"고 당부했다. 미사 후엔 모범 장애인 최민종(솔로몬, 43, 지적장애)ㆍ정영희(마리아 막달레나, 61, 시각장애)ㆍ이인용(요한 사도, 67, 청각장애)ㆍ안중민(요한 사도, 51, 지체장애)씨와 모범 봉사자, 장애인 부모 등 11명에게 감사패와 표창장을 수여했다. ▶관련기사 27면 한자리 축제는 장애인식 개선과 사회통합을 위해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가 1983년부터 개최해온 행사로, 이번 축제에 앞서 4월 한 달간 각 본당 등에선 갖가지 장애체험 행사가 벌어졌다.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이정훈2012.05.01
[문화] 더위야 가라, 오페라ㆍ뮤지컬이 온다가톨릭 신앙과 문화 소재 공연들 잇따라 한여름, 가족이 문화 나들이를 떠나보면 어떨까. 시원한 공연장에서 더위도 식히고 문화생활도 즐기면 일거양득이다. 특히 가톨릭 신앙과 문화를 소재로 한 공연은 더 의미가 있다. 뮤지컬 '넨센스' 한 장면. 다섯 명의 수녀들이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역동적인 춤을 선보이고 있다. ▨오페라 '다윗왕' 인씨엠예술단이 6년 동안 준비한 야심작 오페라 '다윗왕'은 9월 23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다. 창조적 연출로 주목받는 방정욱씨가 연출하고, 이탈리아 로비고극장 음악감독 스테파노 로마니씨가 지휘를 맡았다. 총 3막으로 구성된 오페라는 다윗이 임금이 되기까지 역사적 과정과 배경, 임금이 된 이후 이스라엘 왕국의 기초를 다지는 과정, 곡절 많은 가족사, 성전 건축의 염원을 품은 채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세상을 떠나기까지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특히 관객 눈높이에 맞춰 '신앙의 모범' 다윗왕을 쉽고 흥미롭게 그려냄으로써 한결 친근감을 느끼게 해준다. 다윗역에 테너 프란시스코 아닐레, 사울역에 바리톤 노희섭, 소프라노 김인혜, 밧세바역에 소프라노 강민성 등 정상급 뮤지션이 출연한다. 문의 : 02-2659-4100 ▨오페라 '잔니스키키&수녀 안젤리카' 영화 한 편 값으로 즐기는 대학 오페라도 눈여겨볼 만하다. 국민대 학생들이 만든 오페라 '잔니스키키&수녀 안젤리카'가 9월 4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관객들을 맞는다. 단막극 2편을 묶은 옴니버스식 오페라다. '잔니스키키'는 재벌가 도나티의 임종을 앞두고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벌어지는 암투를 그린 희극 오페라다. 1918년 뉴욕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코믹한 구성으로 현재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라우레타가 아버지에게 결혼 승낙을 애원하는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는 감미로운 아리아로 영화와 광고음악으로 많이 사용됐다. 푸치니가 17세기 이탈리아 수녀원을 배경으로 작곡한 '수녀 안젤리카'는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은 죄를 회개하기 위해 수녀원에 들어간 안젤리카의 죄와 회개, 모성애와 하느님 용서를 다룬 비극 작품이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비통함을 표현한 아리아 '엄마도 없이'가 관객의 마음을 울린다. 문의 : 02-580-1300 ▨뮤지컬 '넌센스' 왈가닥 수녀들의 요절복통 해프닝을 유쾌하게 그려낸 코믹 뮤지컬 '넌센스'가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AN아트홀에서 공연된다. '넌센스'는 1991년 6월 초연된 이래 8638회 공연을 통해 500만 명 관객을 끌어 모았다. 집단 식중독으로 숨진 동료 수녀들의 장례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자선공연을 계획한 다섯 수녀의 좌충우돌 이야기를 경쾌하게 그려내 초연 당시부터 많은 화제를 모았다. 박정자, 하희라, 신애라, 윤석화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이 무대를 거쳐갔고, 뮤지컬 흥행과 함께 '넌센스 2''넌센스 잼보리' '넌크래커''넌센세이션' 등 지금까지 모두 6개 버전이 잇따라 소개됐을 정도다. 문의 : 070-8817-5490 이서연 기자 kitty@pbc.co.kr이서연2012.08.14
염수정 대주교 서울대교구장 임명 축하글-김충수 신부겸손하고 온화하지만 뚝심있는 친구 나는 염수정 대주교가 누구인지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알아왔으니, 지금까지 학생으로서 12년 지기, 사제로서 42년 지기, 모두 54년째 친구로 지내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신부가 되면서부터 지금까지 서로 맞고해하며 살아왔기에 누구보다 염 대주교를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한마디로 겸손하고 온화한 친구다. 겸손과 온화함이 그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러면서도 착한 고집이 있어서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누가 뭐래도 뚝심 있게 밀고 가는 성격이다. 행동은 다소 느릿하지만 지구력과 판단력은 돌같이 탄탄하고 솔로몬같이 위대하다. 무엇보다 그는 역사ㆍ지리ㆍ문화에 탁월한 안목이 있어 세상사를 보는 눈이 월등하다. 그는 또 인사에 관한 기억들이 뛰어나서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왜 그랬는지까지 잘 기억하는 천재적 기억력을 갖고 있다. 그는 대인관계가 절대적으로 원만한 까닭에 적이 없다. 그를 만나는 이는 누구나 그의 친구가 될 수 있고, 그를 좋아하게 된다. 성품이 따뜻하고 너그러워서 남녀노소 누구나를 불문하고 모든 이들이 그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 천생 사제일 수밖에 없다. 그의 따뜻하고 온화한 미소는 모든 이의 마음을 녹이고도 남을만한 참 좋은 모습이다. 그래서 감히 말하노니 사제로서 이보다 더 좋은 인품은 없다고 생각한다. 대외적으로 볼 때 인물하면 한 인물하고, 목소리하면 또 한 목소리하는 훌륭한 사제가 서울대교구 교구장 대주교님이 되신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에게 준비된 자리인 것 같다. 그러니 어찌 축하하지 않을 수 있으며, 하느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염 대주교의 서울대교구장 임명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건강하시길 바란다.김충수 신부(서울대교구 암사동본당 주임)박수정2012.05.15
[전례력에 따른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 3. 대림 제3주일- 기쁨 희망의 메시아를 기쁨으로 기다리고 있는가요한 세례자는 메사아가 곧 오시리라는 기쁜 소식을 선포했다. 그림은 이스탄불 성 소피아 성당에 있는 요한 세례자 벽화."요한은… 백성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루카 3,18). 대림 제3주일 전례의 주제는 기쁨입니다. 고대하던 메시아께서 가까이 오시니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누구이기에 메시아 오심이 기쁜 소식일까요? ◇살펴봅시다 ㉠메시아(436~440항) : 메시아는 '기름부음 받은 이'를 뜻하는 히브리어입니다. 이 히브리어 메시아를 그리스어로 표기한 것이 '그리스도'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에서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위해 봉헌된 사람들에게 하느님 이름으로 기름을 부었습니다. 사울과 다윗과 솔로몬 같은 이스라엘 왕들이 이렇게 기름부음을 받았고, 사제들도 그랬습니다. 때로는 예언자도 기름부음을 받았는데, 엘리사 예언자를 꼽을 수 있습니다(1열왕 19,16 참조).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당신 나라를 결정적으로 세우기 위해 메시아를 보내주시겠다고 이스라엘 왕 다윗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2사무 7,12-14). 그리고 그 이후에도 예언자들을 통해 거듭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때가 차면 보내 주실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이 메시아는 왕이며 사제이자 또한 예언자로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습니다. 나아가 이 메시아는 그냥 기름부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이였습니다(436항 참조).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는다는 것은 성령으로 감싸진다 혹은 성령을 충만히 받는다는 것과 같은 뜻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691, 695항 참조). 요한 세례자가 곧 오실 분으로 선포한 이가 바로 이 메시아였습니다. 이 메시아에 대해 요한은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며,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분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하고 말합니다(루카 3,16). 교회는 "사제, 예언자, 왕의 삼중 임무 안에서 메시아에 대한 이스라엘의 희망을 채워 주신 분이 예수님"(436항)이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다. 하느님께서 그분에게 성령과 능력을 부어 주셨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시며 '이스라엘 사람들이 희망해 온' 분이시다"(453항). ㉡예수(430~435항) : 약 2000년 전 베들레헴에서 마리아의 아들로 태어나신 나자렛 사람의 이름이 예수입니다. 예수는 히브리어로 '하느님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천사는 처녀 마리아를 찾아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예고하면서 아들 이름을 '예수'로 하라고 지시합니다. 또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될 이 아기가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 불리고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며 다윗의 왕좌를 물려받아 이스라엘 집안을 영원히 다스릴 것이라고 말합니다(마태 1,18-25; 루카 1,26-38 참조). 천사가 마리아에게 한 이 말들은 예수님이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메시아이심을 암시합니다. 실제로 예수님 일생이 이를 알게 해줍니다. 우선 예수님께서는 독특한 방식으로 하느님께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태어나신 것 자체가 온전히 성령의 기름부음 받음을 통해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 세례자에게 세례를 받으셨을 때 성령께서 내려오신 것은 성령의 기름부음 받으심의 대표적 상징입니다. 예수님께서 치유와 구마 같은 이적들을 행하신 것은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였습니다. 같은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695항 참조).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의 용서는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통해 '너의 죄는 용서받았다'고 하시며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십니다. 이는 바로 예수님의 인격 안에 구원하시는 하느님께서 계심을 의미합니다. 나아가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치는 십자가 희생을 통해 대사제의 직분을 수행하십니다. 예수님 부활은 예수님께서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인류 구원을 위한 메시아이심을 확인해 준 사건입니다. 이미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예수님을 알아보고 기뻐한(루카 1,41) 요한 세례자가 곧 오신다고 예고한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입니다. ◇알아봅시다 ㉠원복음(410~411항) 이스라엘의 메시아 기대 사상은 첫 조상 아담의 불순명으로 타락한 인간을 그냥 버려두시지 않으시고 다시 일으켜 세우고자 하신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창세기 3장은 하느님의 이 원초적 구원 계획을 밝혀 줍니다. "주 하느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창세 3, 15). 창세기의 이 구절은 '구속자 메시아'에 대한 첫 예고, 곧 뱀과 여인 사이 싸움과 이 싸움에서 마침내 이 여인의 후손이 승리하리라는 것을 처음 알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원복음(原福音), 곧 첫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그리스도교 전승은 창세기의 이 대목을 또한 '새로운 아담'의 예고로 봅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써 아담의 불순종을 넘치게 보상한다"는 것입니다. ㉡원죄 없으신 잉태(411, 490~493항) 많은 교부들과 교회학자들은 이 '원복음'에서 예고된 여인을 '새로운 하와'인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로 생각합니다. "마리아는 최초로 그리고 특별한 방법으로 그리스도께서 거두신 죄에 대한 승리의 은혜를 입으신 분"입니다. 은총을 가득히 입은 그분은 잉태되는 순간부터 구원받은 분입니다. 이것을 고백하는 것이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리입니다. 1854년 교황 비오 9세는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잉태되시는 첫 순간부터 전능하신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과 특전으로, 인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실 공로를 미리 입으시어, 원죄에 조금도 물들지 않게 보호되셨다." 교회는 교회력(전례력)에서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9월 8일) 아홉달 전인 12월 8일을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로 지냅니다. ◇생각해 봅시다 -나는 구세주 오심을 기쁨으로 기다리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기쁨은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열매이고(1832항), 그리스도인은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이들이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퇴사자22012.12.11
[가톨릭 문화산책] 성음악(1) 성음악의 모태, 시편전례, 기도 중 부르는 시편, 주님 향한 찬미 감사 탄원의 노래 독일 작가 프리츠 아이헨베르크의 구약 주제 목판화 시리즈 10점 중 '12현 수금을 타는 다윗'. 이 작품은 2011년 4월 미국 워싱턴주 동부 스포캔 곤자가대학교 박물관 갤러리에서 공개됐다. 【워싱턴=CNS】 교회의 전통적 설명에 따르면, 종교(Religio)란 '다시(re) 묶는다(ligare)'에서 유래한다. 그 말이 적절한지, 부적절한지를 떠나 우리 인간이 하느님과 관계를 올바르게 유지하고자 함이 교회가 추구하는 목적임은 확실하다. 그래서 영성신학자들도 기도를 '하느님과의 대화 혹은 정담'이라 했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자이신 하느님께 마음대로 접근할 수 없다. 하느님께서 먼저 이야기를 걸어줘야 가능하다. 우리가 그 말씀에 대답을 하면 서로의 관계, 즉 친교가 생기고 유지된다. 하느님께서는 사실 우리에게 이야기를 걸었는데, 그 말씀을 기록해 '성경'이라고 부른다. 성경은 하느님 말씀이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갖가지 반응을 보일 수 있다. 하느님께 찬미를 드릴 수도 있고, 또는 고맙다는 표현을 할 수도 있다. 혹은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 수도 있고, 무언가 도와달라고 청할 수도 있다. 이 찬미와 감사, 속죄, 청원이 기도의 4가지 요소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간의 응답은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 성경 가운데서 드물게 인간의 대답을 기록해 둔 부분들이 있다. 시편집이 대표적인 책이다. 흔히 이스라엘 민족의 두 번째 왕이자 가장 훌륭했다고 전해지는 다윗왕이 썼다고 하는 시편집은 노랫말집이다. 이 시편은 히브리어로 '터힐림'이라 하는데, '찬양가들'이라는 뜻이고, 그리스어로는 '프살모스', 즉 '하프 반주에 맞춰 부르는 노래'라고 한다. 둘을 종합하면 찬양과 노래라는 뜻이다. 기도의 네 요소처럼 시편 150편도 크게 분류하면 찬양시편과 감사시편, 탄원시편, 일반시편으로 나뉜다. 이 시편집 외에도 솔로몬이 지었다는 아가서와 예레미야ㆍ애가서, 탈출기에 나오는 모세의 노래(탈출 15,1-18), 사무엘기 상권에 나오는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노래(1사무 2,1-10), 다니엘서에 나오는 세 젊은이의 노래(다니 3,52-90) 등이 더 있다. 노랫말은 이렇게 전해오지만 어떤 음악적 옷을 입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시편에 자주 성가대와 악장, 악기 등이 언급되기는 하지만, 당시에는 악보라는 기보법이 발달하지 않아서 선율이나 리듬이 전해지지는 않는다. 이런 노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늘 부르던 노래다. 예루살렘으로 도보순례를 떠나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님의 집으로 가세!' 사람들이 나에게 이를 제 나는 기뻤네. 예루살렘아, 네 성문에 이미 우리 발이 서 있구나"(시편 122,1-2)하고 노래한다. 죄를 짓고는 "하느님, 당신 자애에 따라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시편 51,1)하고 노래한다. 바빌론 유배생활을 하면서는 "바빌론 강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우네"(시편 137,1)하고 노래한다. 특히 임금 즉위식이나 성전 예식 중에 백성들은 성가대와 함께 온갖 악기 반주에 맞춰 노래했다. 파스카 축제의 정점인 파스카 만찬예식 때에도 식구들이 모여 음식을 먹는 중간 중간에 시편 113장부터 118장까지, 경우에 따라서는 138장까지도 노래로 부르곤 했다. 당연히 예수님도, 제자들도 시편을 노래했다. 그러나 시편 자체를 성음악이라 부르기엔 아직 일렀다. 성음악이란 교회(Eccle sia, 敎會)의 전례용 음악을 뜻하며, 교회는 구약시대나 예수님 시대를 말하기보다는 성령강림 사건을 기점으로 하기 때문이다. 초대교회에서 구약 전통을 따라 전례에서 시편을 노래하기 시작하면서 시편은 비로소 성음악의 중심을 이루기 시작한다. 테르툴리아노(160~225) 교부의 초기 그리스도교 전례를 묘사한 「초대 교회 법령집(Constitu tiones Apostolorum)」에 이미 전례 중에 시편을 노래한다는 표현이 나타난다. 성 암브로시오나 성 아우구스티노 등 교부들의 기록에도 역시 전례 중 시편 노래에 대한 표현이 나온다. 교회에서는 일찍부터 시편을 노래하는 구체적 방법도 발달했다. 대응창법(Anti phona)과 화답창법(Responsorium)이 그것이다. 대응창법은 신자들이 두 편으로 갈라져 시편을 한 절씩 교대로 주고받는 창법으로,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연도를 바칠 때 시편을 노래하는 방법과 같다. 화답창법은 현재 미사 화답송을 노래하는 방법과 같다. 선창자가 시편을 메기면, 전 교중은 계속 같은 후렴으로 응답하는 방식이다. 미사전례 형식이 갖춰지면서 3대 행렬노래인 입당송과 봉헌송, 영성체송 등은 대응창법으로 시편을 불렀다. 그리고 제자리에서 하는 화답송, 복음 전 환호인 알렐루야는 화답창법으로 불렀다. 그러니까 미사전례 중에 부르는 노래는 거의가 시편노래들인 셈이다. 초대교회 미사전례뿐 아니라 시간전례(성무일도)에서도 시편은 그 중심을 이뤘다. 원래 유다교나 기원전 1세기께 사해 북서안 쿰란 지역에 본거지를 두고 활동한 유다교의 한 분파인 쿰란공동체 전통에서는 하루 세 번씩 기도하던 관습이 있었다. 이를 본떠서 초세기 교회 신자들은 저마다 일정한 시간을 정해 기도를 드렸다. 이것이 차차 공동기도로 발전해 아침기도와 저녁기도로 발전했다. 또 사도시대에는 날마다 오전 9시(사도 2,15), 정오(사도 10,9), 오후 3시(사도 3,1)에 기도하는 모습도 발견된다. 이같은 시간기도는 당연히 시편기도로 꾸며졌다. 성 안토니오(251~356)에 의해 수도원 체제가 생겨나고, 성 베네딕토(480~547)에 의해 수도원 규칙이 확립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모습의 수도원들이 생겨났다. 이 수도생활에서는 시간전례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시간전례의 주 내용은 시편기도였고, 이 전통에 따라 지금도 시간전례에서 시편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미사전례서에서는 약간 변화가 있지만, 그래도 신자들이 같이 불러야 하는 부분의 노래는 시편이 주를 이룬다. 또 요즘은 시간전례를 매일 하는 신자들도 꽤 많다. 우리는 알고 하건, 모르고 하건 간에 시편 노래에 젖어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러기에 시편은 그리스도교 성음악의 모태요 영원한 원천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윗왕 이야기 어느 날 밤 다윗왕은 자기 부하 장수 우리야의 아내가 목욕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녀를 범했다. 한 번 실수였지만, 그 여인은 아기를 가졌다. 다윗은 겁이 나 전쟁에 나가 있는 우리야를 불러 아내와 잠자리에 들 기회를 여러 번 줬지만 계속 실패했다. 결국 다윗은 그를 전쟁터에서 죽게 만들었고, 과부가 된 그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이제 모든 문제는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언자 나탄이 찾아와서 이야기를 꺼냈다. "양과 소를 많이 가진 어떤 부자가 있습니다. 그 옆에는 암양 한 마리를 키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그 암양을 자식들과 같이 데리고 자고 같이 먹고 하였습니다. 마치 딸 같았습니다. 하루는 그 부자에게 길손이 왔습니다. 그러자 그는 제 양이나 소를 잡고 싶지 않아서 가난한 사람이 애지중지하는 그 암양을 빼앗아 손님 대접을 했습니다." 왕은 그런 나쁜 놈을 당장 잡아들이라 소리쳤다. 그러자 나탄이 말했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왕은 즉시 용상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재를 뒤집어쓰고 참회하며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가 유명한 시편 51장이다. 위령기도(연도)를 열심히 하는 신자들은 다 외워서 하는 시편 "하느님, 당신 자애에 따라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에 따라 저의 죄악을 지워 주소서"(시편 50,3)이다. 다윗이 거룩한 왕이라 불리고, 또 훗날 오실 구세주 메시아의 전형으로 꼽히곤 하는데, 이는 그가 죄를 모르는 완전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비록 죄를 지었지만 겸손하게 죄를 인정하여 고백하고 회개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부족해 죄를 짓는다. 그러나 우리도 죄를 지으면 변명을 늘어놓거나 부인하지 말고, 인정하고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의 부서지고 꺾인 마음을 업신여기지 않으시는 주님이시다. 그래서 시편 51장은 우리 모두가 외워서 부를 시편 중 하나이다. "하느님, 당신 자애에 따라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에 따라 저의 죄악을 지워 주소서. 저의 죄에서 저를 말끔히 씻으시고, 저의 잘못에서 저를 깨끗이 하소서"(시편 51,3-4). 백 남 용 신부 (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 전 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장) 조은일2013.01.22
[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24〉세상 속의 교회-(2)무엇이 교회를 교회답게 할까?참된 인간화·사회화를 봉헌물로#교황 회칙에서 본 교회의 역할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사회를 인간다운 발전으로 이끄는 데 있다. 이를 위해 교회는 그리스도와 일치해야 하고, 또한 사회와도 일치해야 한다. 이것이 교회의 투신이다. 예로부터 교회는 사회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과 일치하기 위하여 교회의 '남은 것' 뿐만 아니라 '요긴한 것'을 가지고도 나누었다.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잘 것이 없어서 가난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있는데 교회가 하느님께 드리는 경신례(敬神禮)를 위해서 값비싼 장식을 마련한다든가, 화려한 성전(聖殿)을 짓는다든가 하는 일은 교회의 신앙이 아니다. 소유의 노예가 된 세상 사람들에게 존재의 복음을 가르쳐 주어야 할 교회가 더 소유하기 위하여 애를 쓴다면 이는 교회의 길을 벗어나는 일이다. 교회의 발전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에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소수의 소유가 다수의 존재, 즉 인간됨을 손상시키는 사회 현실에서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사회적 관심」 31항) #백성을 하느님처럼 섬기는 지도자 지난 호에 이어서, 사목의 내용과 성격을 살펴보자.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하느님 마음에 드는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하느님을 섬기듯 백성을 섬기는 이들이었다. 모세가 그랬으며, 다윗과 솔로몬이 그랬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지도자의 전형을 볼 수 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대에 사람 축에 끼지도 못할 사람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보셨으며, 제자들을 벗으로 삼으셨다. 그분에게서는 신분이나 인종에 의한 차별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하느님께 대한 순종을 보잘것없는 이들에 대한 섬김으로 드러내셨다. 그분은 사람을 지도하는 일만 하신 것이 아니라 차별 없이 모두와 동행하셨다. 특히 약하고 힘없는 이웃을 당신과 동일시하셨으며, 그들을 섬기는 것이 곧 당신을 따르는 길임을 분명히 밝히셨다. 사목이란 그런 것이다. 그리고 사제직은 이 세상을 거룩한 제물로 만들어 하느님께 봉헌하는 직무를 의미한다. 그것은 세상 사물 질서 안에 하느님 정의와 사랑을 심어 그 열매를 맺음으로써 이 세상을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모습으로 발전시키는 것을 말한다. 불완전한 이 세상에서 하느님 이름을 거룩히 빛내며, 하느님 나라를 세우며, 하느님 뜻을 이룸으로써, 이 세상을 하느님께 거룩한 제물로 봉헌하는 것이다. 경신례는 중요하다. 그러나 겉치레뿐인 예배는 위험하다. 마음을 다해 정성껏 바치는 제사는 중요하다. 그러나 마음뿐인 제사는 위험하다. 삶으로 드러나지 않는 마음이나 겉치레뿐인 경신례는 부정과 불의의 죄를 면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같은 위험은 얼마든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이 침략전쟁이든 정당방위전쟁이든 종교적 예식을 치르고 나서 얼마나 많은 살육의 전쟁이 있었던가! 필자는 예비신자 교리시간에 "만일 우리가 월화수목금토요일에는 온갖 불의와 부정을 저질러놓고, 주일에 두 눈 감고 두 손 모아 경건하게 미사에 참례한다면, 하느님께서 우리가 봉헌하는 이 미사성제를 어여삐 받아들이실까요?"하고 묻는다. 아직 "그렇습니다"하고 답하는 예비신자를 만난 적이 없다.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우리는 '신앙 따로 생활 따로' 현상을 흔히 볼 수 있다. 얼마 전 총선이 있었다. 꽤 많은 그리스도인 후보자가 출마했다. 그 후보자들은 저마다 교회를 찾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하느님 뜻과 교회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신앙 감각으로 정치 분야에서 활동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우리 현실에서는 난망하다. 반대로 그리스도인 유권자가 하느님 뜻을 실현할 정치인에게 투표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 역시 무리다. 신앙과 정치를 철저하게 분리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기도의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소서"는 철저하게 빈말에 불과하다. 실제 그렇다면 이는 알맹이 없는 신앙, 껍데기뿐인 신앙일 뿐이다. 교회라는 건물 안에서 행하는 경신례가 겉치레에 불과하지 않으려면, 땅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땀 흘려 헌신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경제생활과 정치생활, 문화생활, 국제관계 따위에서 참된 인간화와 참된 사회화를 이루려는 노력으로 거둔 결실을 경신례 제대 위에 봉헌물로 바쳐야 한다. 이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그리스도와 함께 제물로 기꺼이 받아주시고 축복하실 것이다. 세상을 거룩하게 하여 하느님께 봉헌하는 사제직은 그런 것이다. 교회는 세상 한가운데서 예언직과 사목직과 사제직을 수행할 임무가 있으며, 이 임무의 수행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이기도 하다.퇴사자22012.06.19
[재미있는 가톨릭 교리] (6)성경의 배경굴곡 많은 이스라엘의 역사 성경은 이스라엘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알면 성경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성조시대 이스라엘 민족은 노아의 아들 셈족의 후손이다. 유목민이던 성조 아브라함은 하느님 부르심을 받아 가나안에서 정착생활을 시작했다.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 곧 이사악과 야곱 그리고 야곱의 열두 아들 시대를 성조시대라고 한다. 1아브라함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땅과 자손의 번영을 약속하셨고 그와 계약을 맺으셨으며, 아브라함은 계약에 충실했다. ②이사악 하느님과 아브라함의 계약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사악에게 계승됐다. 이사악의 아들 중 맏아들의 권리는 형 에사우가 아닌 동생 야곱에게 계승됐다. ③야곱 야곱은 형 에사우의 복을 가로챈 탓에 하란으로 도망갔고, 그곳에서 라반의 딸들과 혼인해 열두 아들을 낳았다. 야곱은 하느님과 씨름해 승리함으로써 하느님께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받았다. ④야곱의 열 두 아들 야곱의 열 두 아들 이름은 르우벤ㆍ시메온ㆍ레위ㆍ유다ㆍ이사카르ㆍ즈불룬ㆍ요셉ㆍ벤야민ㆍ단ㆍ납탈리ㆍ가드ㆍ아세르이다. 이들은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기원이 된다. ▶출애굽시대 야곱과 열두 아들은 "이집트 땅 고센지방에 머물게 되었다. 그들은 그곳에 소유지를 얻어 자식들을 많이 낳고 크게 번성하였다"(창세 47,27). 그러나 이집트의 억압이 심해지자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 부르짖었고 그 결과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무사히 이집트를 탈출했다. 출애굽, 즉 이집트 탈출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체험한 결정적 사건으로, 이스라엘 신앙의 근본이자 핵심이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세대대로 파스카 축제를 지낸다. ▶광야 유랑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유랑생활을 하고,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하느님 말씀을 거역하고 모세에게 반항하며 금송아지를 숭배해 계약을 깨뜨렸다. 그 후 그들이 저지른 죄를 반성하며 하느님 백성으로 새로 나는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판관시대 광야 유랑생활을 마침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지휘로 가나안에 들어갔다. 100~150여 년에 걸쳐 전쟁을 치르면서 그 땅을 점령했고 열두 지파별로 땅을 나눠 가졌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정 수립 전까지 판관시대를 거쳤다. 판관이란 정치ㆍ군사ㆍ종교 지도자를 말한다. ▶왕정시대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임금의 필요성을 깨달아 첫 왕조 사울 왕국(기원전 1020~1000년경), 다윗 왕국(기원전 1000년~961년경), 솔로몬 왕국(기원전 961~922년경)을 세웠다. ▶왕국 분열시대 이스라엘은 솔로몬 임금 사후(死後) 강제노역과 과중한 세금 때문에 생긴 갈등으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졌다. 북이스라엘에서는 엘리야와 엘리사 등의 예언자가, 남유다에서는 미카와 스바니야 등의 예언자가 활동했다. ▶왕국 멸망과 바빌론 유배시대 북이스라엘은 기원전 721년 아시리아에 패망했다. 남유다는 기원전 597년과 587년 두 차례 공격을 받아 신 바빌로니아에 패망했다.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솔로몬 성전이 파괴됐으며 많은 지도자들이 바빌론에 유배를 갔다. ▶예루살렘 귀환과 왕국 재건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원전 538년 바빌론 유배에서 해방돼 예루살렘으로 귀환했고, 하까이, 예수아, 느헤미야 등을 중심으로 성전과 성벽을 재건했다. 그동안 하느님과의 계약에 불충실했던 자신들과 조상들의 삶을 반성하고 종교ㆍ사회적 개혁을 단행했다. ▶헬레니즘시대 기원전 333년 알렉산더 임금이 지중해 연안을 통일하면서 이스라엘은 그리스의 정치ㆍ경제ㆍ문화적 영향을 받게 된다. 기원전 167년까지 이스라엘을 지배했던 셀레우코스 왕국의 안티오코스 4세가 박해를 하자 이스라엘은 마카베오 가문을 중심으로 독립항쟁을 시작했다. 마침내 기원전 142년 유다 마카베오가 예루살렘 성전을 탈환, 이스라엘은 자주 독립국가로 인정받아 하스모네아 왕국을 건설했다. ▶로마시대 기원전 63년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에 입성해 이스라엘은 다시 로마 지배를 받았다. 로마 최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 재위 시절, 베들레헴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다. 이스라엘은 기원후 70년 로마에 의해 완전히 함락됐다. 이때부터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 전 세계로 흩어졌다. 제공=서울대교구 사목국조은일2011.07.05
[성경 속 궁금증] (5) 유다인은 왜 사마리아 사람들을 경멸했나?순수 혈통 보존 못했기 때문유다인들은 혼혈민족이라는 이유로 사마리아인들을 멸시했다. 그림은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착한 사마리아인'(1890년). 예수님 시대 이스라엘 땅 제일 북쪽에는 갈릴래아가 있었고, 중간에는 사마리아, 남쪽에는 유다 지역이 자리 잡고 있었다. 북쪽 갈릴래아에서 남쪽 유다 지역으로 가는데 사마리아 땅을 통과하면 사흘밖에 걸리지 않지만 유다인들은 사마리아 땅을 밟지 않고, 요르단 강을 건너 두 배나 되는 먼 길을 돌아다녔다. 당시 유다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접촉하거나 대화하는 것이 금지돼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방인 지역이라 알고 있는 사마리아 지역도 본래는 유다인들 땅이었다. 사마리아인들도 이스라엘 중부 팔레스티나 지방에 살았던 이스라엘 민족의 한 분파였다. 어쩌다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그토록 적대시하게 됐을까. 본래는 통일 왕국이었던 이스라엘은 솔로몬 왕 이후 북이스라엘 왕국과 남유다 왕국으로 분열됐다.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 왕국의 수도였으며, 오늘날 북이스라엘을 부르는 통칭이기도 하다. 사마리아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교통 요지였으며, 주변 평지보다 100m 정도 솟아오른 해발 430m에 있는 천혜의 요새 도시였다. 또 왕궁을 상아로 꾸미고 값비싼 향유를 맘껏 쓸 정도로 경제적 번영을 누리기도 했다(아모 6,4-6). 이러한 사마리아가 기원전 8세기 아시리아에 점령당한다. 아시리아는 타민족 정복정책으로 정복한 민족의 씨를 말려버리는 정책을 사용했는데, 그 방법으로 타민족과 혼인, 즉 혼종(混種)정책을 썼다. 북이스라엘 왕국을 정복한 아시리아는 북이스라엘 유다인들 일부를 자기들이 정복한 타지역으로 강제 이주시키고, 타정복지 민족들을 북이스라엘로 이주시켜 서로 혼인하게 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 왕국에서는 순수한 혈통 유다인들은 자취를 감추고, 예수님 시대 이방인이라 일컬어지던 혼혈민족 사마리아인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순수한 혈통을 지닌 유다인들은 남쪽 유다왕국 후손들뿐이었다. 이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약속받은 땅을 공유하는 자신들 민족으로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았다. 순수한 혈통을 보존하지 못한 사마리아인들을 심지어 '개 같은 놈'이라 부르며 멸시하고 천대했다(요한 4,1-42). 사마리아인들 역시 아시리아 임금 보호를 받으며 나라를 유지한 유다왕국 유다인들이 자신들을 이방인처럼 대하자 원한을 품었고, 결국 유다인과 사마리아인들은 원수지간처럼 지내게 됐다. 그러다 기원전 587년 유다왕국도 바빌로니아에게 멸망당하고, 유다인들은 유배 후 반세기만에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당시 예루살렘은 성벽조차 제대로 남지 않은 폐허가 된 도시였다. 귀향한 유다인들은 예루살렘 재건을 위해 성전 재건 작업을 시작한다. 이때 사마리아인들이 자신들도 성전 건설 작업에 참여하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이 거룩한 성전 건설 작업에 함께할 수 없다고 거절한다. 이 사건으로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에 놓인 적개심의 골은 더 깊어졌다. 사마리아인들은 유다인들을 계속 적대시했고,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미친 백성, 비열한 백성으로 철저히 무시하고 천대했다. 이러한 관계가 예수님 시대까지 이어진 것이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퇴사자22011.09.06
[출판] 하느님의 길, 인간의 길하느님과 인간의 눈높이로 풀어쓴 이스라엘 역사정진석 추기경 지음/가톨릭출판사/1만4000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이 이스라엘 역사를 하느님과 인간의 눈높이로 풀어쓴 「하느님의 길, 인간의 길」을 펴냈다. '성경을 토대로 살펴본 이스라엘 예언자들과 임금들'을 부제로 달았다. 「하느님의 길, 인간의 길」은 변천과 흥망을 반복한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하느님이 선택한 민족에게 약속한 것을 구현하는 섭리와 사랑의 흔적을 기록했다. 기원전 933년 솔로몬에 이어 임금이 된 르하브암이 무거운 세금과 강제노역에 허덕이는 백성들의 요구를 묵살하자, 북쪽 열 지파가 예로보암을 북쪽 이스라엘 왕국의 임금으로 세우면서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갈렸다. 이후 엘리야를 비롯해 나탄, 스마야, 아히야 예언자들이 나타나 종교 부패와 사회 불의를 비판하지만, 임금들은 대부분 우상을 숭배하며 악행을 서슴지않는다. 결국 북쪽 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 남쪽 유다는 기원전 587년에 멸망하고 이스라엘인들은 바빌론으로 유배를 간다. 이 책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 이후 남북으로 분열된 이스라엘이 멸망하기까지 과정과 원인을 담았다. '이스라엘의 영도자들' '남북 분열 초기 임금들과 예언자들' ' 바빌론의 침략과 예루살렘 함락' 등 모두 12장으로 짜여졌다. 하느님의 길을 보여주며 충고하는 예언자들과 그 충고를 무시한 채 인간의 길을 걸어간 이스라엘 임금들의 삶을 보여준다. 시대 흐름에 따라 연대와 특징을 정리하고, 독자들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림과 지도를 실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자손들은 광야에서 육체적 고난과 배고픔을 참지 못했습니다.(중략) 이집트의 노예로 살면서 그들의 우상 숭배를 보고, 듣고 체험했던 세대는 비록 물질적 혜택이 없는 광야에서라도 주님을 마음껏 경배할 수 있는 자유인의 영적 풍요로움을 인식하지 못한 것입니다."(19쪽) 정 추기경은 하느님께 선택된 이스라엘 민족들은 흥망성쇠의 길을 걸었지만, 그 길에는 사랑의 끈으로 연결된 하느님의 구원 손길이 머물고 있음을 분명하고 사실적으로 전달해준다.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은 하느님과 씨름하여 이스라엘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 이름은 '하느님께서 당신을 강하게 드러내시기를!'이라는 뜻입니다."(15쪽) 정 추기경은 머릿말에서 "갈등과 증오로 인한 전쟁이 정의라는 명분을 내세워 잔인무도한 살상과 인종 말살의 만행을 날마다 자행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고 개탄하면서, "인간은 작디작은 시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작은 먼지에 불과하지만, 그 유한함 속에서도 우주를 인식하고 그 근원을 생각할 수 있는 위대한 존재다"고 말했다. 이어 정 추기경은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길을 걸어가라고 충고하는 예언자들과 그 충고를 경시하고 인간의 길을 걸었던 이스라엘 임금들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하느님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는다"며 하느님께서 인류를 창조하고 구원하시는 경륜을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기를 기대했다. 부제 때부터 1년에 한 권씩 책을 내고 있는 정 추기경은 교회법 해설서 15권을 저술한 교회법 권위자로, 올해로 역서를 포함해 모두 49권의 책을 펴냈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이지혜2010.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