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경외함을 바탕으로 한 지혜와 처세술 담겨[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48) 잠언 잠언은 ‘하느님을 경외함’을 지혜의 근본이며 지혜가 추구하는 교육의 근원이라고 가르칩니다. 따라서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도덕적이고 종교적으로 전인적 사람이 되라고 권고합니다. 성년식을 치르는 한 유다인 소년이 토라에 입맞춤을 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잠언(箴言)은 ‘가르쳐서 훈계하는 말’ 또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교훈이 되고 경계가 되는 짧은 말’을 뜻합니다. 구약 성경의 제1경전인 히브리어 타낙 성경은 잠언을 ‘미쉴레 쉘로모’라고 하며 ‘성문서’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우리말로 ‘솔로몬의 잠언’이라는 뜻입니다. 헬라어 구약성경 칠십인역은 히브리어 성경 제목을 그대로 옮겨 ‘파로이미아이 살로몬토스’(Παροιμιαι Σαλωμωντοs)라고 합니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도 마찬가지로 ‘파라볼레 살로모니스’(Parabolae Salomonis)라고 표기합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우리말 성경은 ‘잠언’이라고 표기하고, 교회 전통에 따라 ‘시서와 지혜서’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잠언은 “이스라엘 임금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잠언”(1,1)으로 시작합니다. 지혜로운 솔로몬 임금을 잠언의 저자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솔로몬 임금을 잠언과 코헬렛, 지혜서, 아가의 저자로 등장시킵니다. 성경은 잠언의 저자 솔로몬을 ‘이스라엘 임금’과 ‘다윗의 아들’로 소개합니다. 유다인들에게 있어 이스라엘 임금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임금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중개자로서 ‘하느님 신탁의 전달자’입니다.(잠언 16,10-15) 또 잠언의 저자가 ‘다윗의 아들’이라고 명시함으로써 세속적인 영역에만 머물러 있을 수도 있는 내용을 담은 잠언에 일종의 신성을 부여합니다. 다윗은 ‘주님의 기름 부음 받은 이’로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계약, 그리고 그분께서 당신 백성에게 내리신 약속을 상기시킵니다. ‘다윗의 아들’의 권위 아래 선포되는 잠언의 지혜는 매우 종교적인 신학을 통해 특히 이스라엘의 고유한 유일신 사상이 근본 바탕을 이룸으로써, 구약 성경의 잠언은 다른 잠언들과 구별된다.(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주석 성경」 1708-1709쪽 참조) 잠언의 저자로 솔로몬을 내세우는 이유는 그가 통치자의 자질과 문학의 재질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금언을 지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1열왕 3,3-14. 16-28; 집회 47,14-17) 또한 잠언 내용 가운데 3개의 묶음에 ‘솔로몬의 잠언’이라는 표제가 제시돼 있어서입니다.(잠언 1,1; 10,1; 25,1) 그렇다고 해서 솔로몬 임금을 잠언 전체는 물론이고 이 모음들의 실질적인 저자 또는 편집자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아울러 솔로몬 임금이 잠언의 핵심 부분을 직접 지었거나 일부를 수집했을 개연성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이스라엘의 지혜 문학이 솔로몬 임금을 중심으로 본격 시작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이에 시편을 다윗에게 귀속시키듯이 솔로몬 역시 지혜 문학의 대부로서 잠언의 일부 또는 전체의 저자로 불릴 수 있는 정당성을 지닙니다. 잠언은 총 31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머리글(1,1-7)과 나쁜 친구들과 낯선 여자를 삼가라는 훈계(1,8─9,18), 376개에 이르는 도덕적 삶에 관한 솔로몬의 잠언집(10,1─22,16), 현인들의 첫 번째 잠언집(22,17─24,22), 현인들의 두 번째 잠언집(24,23-34), 히즈키야 임금의 신하들이 수집한 솔로몬의 두 번째 잠언집(25─29장), 마싸 사람 아구르의 잠언들(30,1-14 ), 수(數) 잠언(30,15-33), 마싸 임금 르무엘의 잠언(31,1-9), 훌륭한 아내에 대한 찬양(31,10-31) 9개의 잠언 묶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잠언의 내용은 의인은 복을 받고 악인은 벌을 받는다는 인과응보의 원칙을 기반으로 세상을 성공적으로 사는 처세와 삶의 비결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도덕적이고 종교적으로 지혜로운 ‘전인적 사람’이 되라고 잠언은 권고합니다. 잠언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하느님을 경외함’은 지혜의 근본이며 지혜가 추구하는 교육의 근원입니다. 지혜는 사람이 지녀야 할 자질로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지혜는 인간을 악과 죽음에서 보호하고, 하느님을 경외함과 거기에서 나오는 모든 좋은 것으로 인도합니다.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일정한 도덕적 바탕이 요구됩니다. 곧 마음의 준비를 갖추고 주의를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하느님을 믿고 주님의 지혜를 얻어 생명의 길을 선택하고 죽음에 이르는 내리막길을 피하라고 권고합니다. 그리고 속임수와 편법으로 성공하려 하지 말고, 부지런히 일하며 올바르게 행동해 후회 없는 삶을 살라고 당부합니다. 다시 말해 잠언은 지혜는 하느님께 속하고 하느님께서 당신 지혜로써 이 세상을 만드셨으니, 그 지혜의 길을 따라야 생명에 이르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잠언은 시편처럼 구약 성경 거의 모든 역사를 통해 형성되고 다듬어지고 전승됐습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잠언의 뿌리를 이스라엘 공동체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구두로 전승돼 오던 조상들의 지혜를 수집해 기록해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 바로 잠언이라고 합니다. 이 수집 작업은 솔로몬을 중심으로 왕정시대 때부터 시작됐지만, 바빌론 유배 이후 31장의 잠언으로 편집됐다는 것이 일반 견해입니다. 잠언의 내용은 가톨릭 신앙에도 반영됩니다. 교회 이렇게 선포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자제력과, 진리와 선을 향해 자신을 다스릴 능력을 주시는 창조주의 지혜와 선에 참여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954항)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11.08
모든 형태의 우상숭배와 물질주의를 단죄하다[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51)지혜서 지혜서는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충실성을 드러내는 책이다. 그러면서 지혜서는 우상 숭배는 사람들의 삶을 부패시키기 때문에 우상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야콥 빌렘스 데 베트 1세, ‘우상들에게 제물을 바치는 솔로몬’, 1640년께, 유화, 릴미술관, 프랑스. 지혜서는 구약 성경 제1경전인 타낙 성경에는 포함되지 않은 책입니다. 지혜서 외에도 토빗기, 유딧기, 마카베오기, 집회서, 바룩서, 에스테르기 일부와 다니엘서 일부가 제1경전에 없습니다. 제1경전에 없으나 가톨릭교회 구약 성경에 포함된 책들을 제2경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유다교 구약 성경은 제1 경전을 토라, 예언서, 성문서로 구분합니다. 토라는 구약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모세 오경을 말합니다. 예언서는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열왕기 등 전기 예언서와,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에제키엘서, 12 소예언서 등 후기 예언서를 말합니다. 그리고 토라와 예언서에 속하지 않는 모든 책(시편, 욥기, 잠언, 룻기, 아가, 코헬렛, 애가, 에스테르기, 다니엘서, 에즈라기. 느헤미야기, 역대기)을 성문서로 분류합니다. 지혜서는 헬라어 구약성경에서 ‘Σοφια Σαλωμων’(소피아 살로몬)이라 합니다. ‘솔로몬의 지혜’라는 뜻이지요. 서기 2세기부터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지혜서는 거룩한 책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Sapientia’(사피엔시아)라고 표기합니다. 가톨릭교회는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년)에서 신ㆍ구약 성경 정경을 확정하고 지혜서를 ‘시서와 지혜서’에 포함시킵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성경」은 ‘지혜서’라고 표기하고, 교회 성경 분류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유다교는 전통적으로 솔로몬을 지혜서의 저자라고 합니다. 지혜서에 ‘솔로몬’이라는 이름이 직접 나오지 않지만, 내용상 유다교에서 ‘현인’ 그 자체로 여겨졌던 이 임금이 많은 부분을 말하는 것으로 돼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서는 솔로몬이 하느님께 청해 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솔로몬은 태어날 때에는 일반인들과 똑같았지만(지혜 7장), 하느님께 기도를 올리자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지혜가 그에게 주어졌습니다.(지혜 9장, 1열왕 3장 참조) 그러나 성경학자들은 헬라어에 능통한 유다교 전통을 지닌 자라고 추정합니다. 그리고 성경학자들은 고대 로마의 아우구스투스가 이집트를 점령한 기원전 30년부터 시작되는 로마 제국 시대 때 알렉산드리아 유다인 공동체에서 지혜서가 저술됐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 이유는 지혜서 저자가 유다교와 헬레니즘 문화를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구약 성경을 인용할 때도 헬라어로 번역된 「칠십인역」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지혜서 저자는 그리스 철학과 로마 문학에도 정통했습니다. 유다인들은 프톨레마이오스 라지드 왕조(기원전 282년께)가 통치하던 때부터 이집트 여러 지역으로 이주해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해외 유다인 공동체인 ‘디아스포라’를 형성해 율법과 유다교 전통을 지키면서 헬레니즘 문화에 적응해 사는 이방 민족과 구별된 삶을 살았습니다. 당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는 지중해 지역에서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알렉산드리아 디아스포라는 헬레니즘 사상에 빠져들지 않고 고유한 유다교 전통과 사상을 지켜나가고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젊은이들에게 유다교 신앙과 지혜를 전수하려 노력했습니다. 지혜서가 저술된 동기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라고 성경학자들은 추정합니다. 지혜서는 ‘하느님께서 주관하시는 인간의 운명’(1─5장), ‘지혜 찬가’(6,1─11,4), ‘이집트 탈출에 관한 숙고’(11,5─19,22) 세 부분으로 구분됩니다. 지혜서 1─5장은 본디 히브리어로 쓰였습니다. 지혜서의 다른 부분 저자가 이 내용을 헬라어로 번역해 합쳤습니다. 이 단원에서 인간의 운명은 의인과 악인으로 대조됩니다. 지혜서는 하느님께서 순수한 영혼들을 위해 불사불멸을 준비해 놓으셨고, 지혜의 적들은 그에 합당한 벌을 받는다고 합니다.(2,21─3,12) 그리고 의인들은 하느님에게 영광을 받는 것을 보게 될 것이며(4,7─5,14), 의인들은 영원히 살면서 심판 뒤에는 하느님의 보호를 받는다고 합니다.(5,15-23) 지혜 찬가는 솔로몬이 노래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솔로몬은 임금의 직무를 수행하는 데에 지혜가 도움을 베푼다고 합니다. 지혜만이 하느님의 뜻을 알고 사람을 구원할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찬양합니다.(9장 참조) 그리고 지혜는 창조 때부터 이집트 탈출에 이르기까지 창세기가 전하는 모든 일화를 통해 자기가 역사의 주인임을 드러냅니다.(10,1─11,4) 지혜서의 마지막 단원은 탈출기의 재앙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 히브리인들과 이집트인들의 운명을 비교합니다. 지혜서 저자는 유다교의 가치들을 옹호하면서 하느님께서는 더없이 공정하게 심판하시는 분이심을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우상 숭배는 사람들의 삶을 더할 나위 없이 부패시키기 때문에 이스라엘인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상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당부합니다.(14장)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지혜서는 모든 형태의 우상 숭배와 물질주의적 철학을 단죄합니다. 이처럼 지혜서는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충실성을 드러내는 책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와 콜로새서, 히브리서에 지혜서를 인용해 하느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선포했습니다.(로마 1,20-23; 콜로 1,12.15.17; 히브 1,2-3)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11.30
남녀의 사랑에서 하느님 사랑을 보다[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50)아가 아가는 구약 성경에서 유일하게 ‘남녀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책이다. 아가는 진정한 육체적 사랑을 계약의 언어와 함께 서술하는 데 이는 당신 백성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모든 사랑의 전형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사진은 뉴욕의 한 신혼부부가 교회 안에서 혼인성사를 받고 있다. OSV 아가의 히브리어 타낙 성경 명칭은 ‘쉬르 핫쉬림’입니다. 쉬르 핫쉬림은 우리말로 ‘노래 중의 노래’,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구약 성경 제1경전인 타낙 성경은 아가를 성문서로 분류해 ‘룻기’와 ‘코헬렛’ 사이에 배치해 놓았습니다. 헬라어 구약 성경 「칠십인역」은 쉬르 핫쉬림을 직역해 ‘Ασμα Ασματων’(아스마 아스마톤)으로,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 역시 ‘Canticum Canticorum’(칸티쿰 칸티코룸)으로 표기합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아가’(雅歌)라고 부릅니다. ‘지고한 노래’, 곧 최고로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이지요. 그리고 「성경」은 가톨릭교회의 성경 분류법에 따라 아가를 ‘시서와 지혜서’로 분류하고 코헬렛과 지혜서 사이에 편집해 놓았습니다. 아가는 8개 장으로 이루어진 ‘사랑 노래 선집’ 곧 연가집(戀歌集)입니다. 아가 표제는 ‘솔로몬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아가 1,1)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를 근거로 유다교는 전통적으로 솔로몬이 아가의 저자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학자들은 솔로몬이 아가의 저자가 아니라는 견해를 분명히 합니다. 아가에는 ‘티르차’(아가 6,4)라는 고대 도시가 등장할 뿐 아니라, 페르시아와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단어가 나오기 때문입니다.(아가 1,6.7.11.17; 2,9.11.13; 3,2.8; 7,3 참조)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아가가 이스라엘 초기 역사에서 최종 편집 시기인 기원전 3세기까지 유다인들에게 잘 알려졌던 사랑의 노래를 집대성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아가는 구약 성경에서 유일하게 ‘남녀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책입니다. 하느님과 율법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고 오로지 남녀의 관능적 사랑을 노래하는 아가가 구약 성경 정경으로 선정된 것은 표제에 언급된 솔로몬의 이름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아가의 저술 편집 장소는 팔레스티나 입니다. 아가는 사랑의 배경 장소로 예루살렘(1,5; 2,7; 3,5.10; 5,8.16; 8,4), 시온산(3,11), 다윗 탑(4,4), 엔 게디 포도원(1,14), 사론 평야 (2,1), 길앗 비탈(4,1; 6,5), 티르차(6,4) 등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가는 약속의 땅 팔레스티나와 예루살렘을 이상적인 사랑의 장소로 제시합니다. 아가는 유다교 축제 때 읽히는 다섯 두루마리 ‘멜길롯’(룻기ㆍ아가ㆍ코헬렛ㆍ애가ㆍ에스테르기) 중의 한 권입니다. 아가는 서기 6세기께부터 유다인들의 가장 중요한 축제인 파스카 축제 때에 읽도록 선정됐습니다. 아가가 파스카 축제 때 읽히게 된 이유는 아마도 아가에 등장하는 사랑 이야기와 파스카 때 기억하는 하느님 사랑이 유사하며, 아가의 배경이 되는 계절이 파스카 계절인 ‘봄’이기 때문이라고 성경학자들은 추정합니다. 아가는 성경학자들의 관점에 따라 크게 우의(寓意)ㆍ제의(祭儀)ㆍ자의(字義)ㆍ극(劇)적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의적 해석은 유다인과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까지 즐겨 사용하는 가장 오래된 해석 방법으로 신랑인 하느님과 신부인 이스라엘 사이의 사랑, 또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을 노래한 것이라고 보는 관점입니다. 제의적 해석은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제사 의식의 찬미가로 보는 관점입니다. 고대 근동인들은 남신과 여신의 성혼을 통해 새해의 풍요와 다산을 촉진한다고 믿었습니다. 농경 사회의 축제였던 누룩 없는 빵의 축제가 파스카의 역사적 신앙을 표현하기 위해 재해석됐듯이 다소간의 수정을 거쳐 이교의 풍요 다산을 비는 제의가 이스라엘 신앙에 적용됐다고 봅니다. 자의적 해석은 말 그대로 남녀의 사랑을 다룬 작품으로 보는 관점입니다. 근래의 해석 관점으로 남녀의 깊은 사랑이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극적 해석은 아가를 일종의 연애극으로 이해하는 관점입니다. 아가는 성 그 자체보다는 사랑에 대한 충실성과 성실성에 더 관심이 있음을 드러냄으로써, 이 책을 솔직 담백한 사랑의 묘사로 이해합니다. 이러한 해석상의 어려움 때문에 아가 안에 들어 있는 노래들을 구체적으로 누가 불렀는지 분명하게 말할 수 없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아가’를 이렇게 해석합니다. “아가의 사랑은 인간적인 것으로서 성적이며 동시에 거룩한 것일 수 있다. … 인간적인 사랑을 하느님의 선한 창조 사업 안에서 그 자체로서 목적을 지닌 것으로 서술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 아가는 완전히 탈신성화한 사랑 곧 극히 인간적인 현상으로서 성과 사랑을 노래한다. 이는 성의 신성화, 또는 신을 성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던 구약 성경의 종교적 입장에서 볼 때, 신학적으로 큰 중요성을 갖는 공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당시 사람들이 갈구하던 자연의 풍요 역시 인간들이 대행한 신적인 성의 재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백성과 사랑의 계약을 맺으신 주 하느님, 그분 홀로 성취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가는 진정한 육체적 사랑을 계약의 언어와 함께 서술하는 데 이는 당신 백성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모든 사랑의 전형을 보여주려는 것이다.”(「주석 성경」 1850쪽)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11.22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풀어낸 구원 역사[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38)역대기 역대기의 중심 사상은 유다 공동체 안에 펼쳐지는 이상적인 신정 왕국이다. 예루살렘의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과 만나기 위한 유일한 성소이다. 역대기는 하느님의 구원 역사가 성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고 한다. 이스라엘 박물관에 설치된 예루살렘 성전 모형. 역대기의 히브리어 성경 이름은 ‘디브레 하얌밈’입니다. 우리말로 ‘나날의 행적들’, ‘시대의 사건들’로 옮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헬라어 번역본인 「칠십인역」은 디브레 하얌밈을 사무엘기와 열왕기를 보충하는 책으로 인식해 ‘파랄레이포메논’(Παραλειπομνων, 옆에 빼놓아둔 것, 곁들여 전해진 것, 간과된 것)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그리고 본디 한 권이었던 디브레 하얌밈을 상ㆍ하권으로 나눴습니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 역시 칠십인역 목록 이름을 음역해 ‘파랄리포메논(Paralipomenon) ⅠㆍⅡ’라고 표기했습니다. 하지만 불가타 성경을 번역한 예로니모 성인은 이 책을 “하느님의 거룩한 역사 전체의 연대기”라고 설명했습니다. 한국 주교회의가 발행한 가톨릭 「성경」은 예로니모 성인의 제안에 따라 ‘역대기’(歷代記)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역대기는 본디 한 권의 책이었다고 했습니다. 나아가 역대기 하권 36장 22-23절과 에즈라기 1장 1-3절이 서로 겹쳐 ‘역대기-에즈라기-느헤미야기’를 하나로 묶을 수도 있습니다.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 역시 처음에는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 정경 안에서는 내용상 역대기가 에즈라-느헤미야기보다 앞서야 하지만 그 뒤에 편집돼 있습니다. 아마도 역대기가 에즈라, 느헤미야기보다 늦게 유다교 정경 안에 받아들여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날 성경학자들은 구약 성경 역사서를 ‘신명기계 역사서’와 ‘역대기계 역사서’로 구분합니다. 이 둘 가운데 먼저 형성된 역사서가 신명기계 역사서입니다.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열왕기가 신명기계 역사서에 속합니다. 신명기계 역사서는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 함락까지의 역사를 다룹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과 유다가 멸망한 것은 임금들이 하느님과 맺은 계약에 불충실했기 때문이며, 유다인들이 바빌론으로 유배가 포로 생활을 하는 것은 그에 따른 징벌이라고 강조합니다. 역대기계 역사서는 신명기계 역사서보다 훨씬 더 늦은 시기에 쓰였습니다. 성경학자들은 기원전 330-250년 사이에 역대기계 역사서들이 쓰였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역대기, 에즈라기, 느헤미야기가 역대기계 역사서에 속합니다. 이 책들은 모두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풀려나 귀향한 후 쓰였습니다. 역대기계 역사서가 신명기계 역사서와 가장 차이를 보이는 것은 역사를 ‘아담부터’ 서술한다는 것입니다. 역대기계 역사서는 아담에서 시작해 바빌론 유배 이후 에즈라와 느헤미야에 의해 예루살렘과 성전이 재건된 시대까지 유다인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역대기는 ‘아담에서 다윗까지의 조상들 족보’(1역대 1─9장), ‘다윗 통치사’(1역대 10─29장), ‘솔로몬 통치사’(2역대 1─9장), ‘솔로몬 죽음부터 바빌론 유배와 예루살렘으로의 귀환 직전에 이르는 유다 왕국사’(2역대 10─36장) 네 부분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역대기는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다윗 왕조를 중심으로 서술합니다. 그중에서도 다윗과 솔로몬의 이상적 통치를 핵심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역대기는 열왕기와 달리 다윗의 오점을 싣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충실하게 따른 모범적인 임금으로만 소개합니다. 이런 이유로 역대기는 다윗 왕조를 이어받지 못한 북 왕국 이스라엘의 역사를 취급하지 않습니다. 다윗 왕조만이 유일하고 합법적인 왕조이며, 다윗의 후손만이 하느님 백성의 합법적인 임금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역대기는 다윗과 그의 후손들은 하느님을 대신해 주님의 백성을 다스리는 대리자일 뿐이라고 강조합니다. 역대기는 또 솔로몬을 처음부터 다윗의 유일한 후계자로 선택된 인물로 소개합니다.(1역대 29,23-25) 더욱이 솔로몬은 다윗과 달리 평생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완전하고 충실한 삶을 산 임금으로 평가합니다. 또 솔로몬은 하느님께 성전을 지어 봉헌한 인물이고, 성전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을 신앙 공동체로 결속시킨 인물이라고 합니다. 역대기는 다윗과 솔로몬 후계자들의 역사는 성전을 재건하고 경신례를 개혁한 임금들을 비중 있게 다룹니다. 아사(2역대 14ㅡ16장), 여호사팟(2역대 17ㅡ20장), 히즈키야(2역대 29ㅡ32장), 요시야(2역대 34ㅡ35장)가 그런 임금입니다. 역대기는 아울러 레위인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입니다. 레위인들은 아론 집안 출신의 사제들이거나, 다른 집안으로서 레위 지파 출신의 레위인들입니다. 모세 오경 전체는 사제들에 관해 27번 언급하는 데 반해, 역대기는 76번이나 언급합니다. 역대기는 ‘예루살렘 성전’과 ‘경신례’를 중시합니다. 하느님께서 예루살렘을 직접 당신이 머무를 장소로 선택하셨고(2역대 6,6), 이곳에 세워진 성전이 ‘하느님의 이름을 위한 집’(1역대 22,7)이며 ‘하느님의 성소’(1역대 22,19)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과 만나기 위한 유일한 성소이며, 그곳에서 거행되는 경신례는 유일한 공적 제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역대기는 하느님의 구원 역사가 ‘성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고 합니다. 역대기의 중심 사상은 유다 공동체 안에 펼쳐지는 이상적인 신정 왕국입니다.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봉헌되는 유일하고 합법적인 경신례는 하느님 백성이 사제들과 레위인들의 도움을 받아 그들의 임금이신 하느님께 충성과 기쁨, 찬양입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일은 주님의 백성이 매일의 삶 안에서 지켜야 할 첫 번째 의무입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08.23
구약의 축제를 통해 알게 되는 예수님[신간] 요한 복음에 나오는 구약의 축제들을 아십니까? 요한 복음에 나오는 구약의 축제들을 아십니까? 김동규 신부 기쁜소식 이스라엘에는 하느님께서 명하신 일곱 가지 축제와 유다인이 정한 자체 축일들이 있다. 이 일곱 개의 핵심 축제는 당시 가나안에서 농사를 짓는 풍속에서 유래되었으나 이집트를 탈출하게 하신 구원의 하느님과 연결되면서 결국 ‘하느님 백성들의 구원에 관한 축제’로 드러나게 되었다. 그런데 요한 복음은 신약인데 왜 구약의 축제들을 묻는 걸까? 요한 복음서의 배경이 구약시대의 안식일을 포함해 핵심 축제인 파스카와 초막절·성전 봉헌 축제 등으로, 중요한 사건들이 이들 축제의 장소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주간절에는 새 밀로 구운 빵 2개를 봉헌한다. 갓 구운 빵을 살펴보는 유다인. OSV 초막절에는 예루살렘을 찾아 제물을 바친다. 사진은 예루살렘의 구 시가지 모습. OSV 김동규(대전교구 갈마동본당 주임) 신부는 “요한 복음의 초미 관심사인 예수님이라는 분이 하느님을 알리고 증언하는 역할을 맡아 등장하는 곳이 항상 이스라엘의 핵심 축제”라며 “구약의 축제에 함축되어 있는 예언적 의미들을 당신의 몸으로 완성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고 전한다. 김 신부가 쓴 「요한 복음에 나오는 구약의 축제들을 아십니까?」에서는 이스라엘 핵심 축제들의 원체험이 기록된 탈출기와 축제의 제례를 자세히 다룬 레위기, 율법의 내용을 담은 신명기의 내용을 요한 복음의 내용과 연계하면서 그 축제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어떻게 예수님의 자기 계시(그리스도론)로 드러나는지 풀어간다. 즉 구약의 축제에 계시된 내용을 토대로 태초부터 예언되어 오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설명한다. “요한 복음 19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날이 파스카 축제 준비일’(요한 19,14 참조)이었다고 언급하고 있고 (중략) 이스라엘의 해방을 기념하는 파스카 축제가 시작될 바로 그때, 새로운 해방을 주실 하느님께서 인류의 죄를 속죄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십니다. 이를 통해 속죄양의 완전한 ‘희생 제물’을 당신의 몸으로 완성해 당신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요한 6,22-58 참조)이심을 말씀해 주십니다.”(34쪽) “새롭게 봉헌된 성전은 ‘아버지를 만날 유일한 성전’이신 그분, 메시아로 오실 예수님을 암시하고 있는데 이것이 성전 봉헌 축제가 함축하고 있는 예언적 의미입니다. 요한 복음 저자는 10장에서 ‘그때에 예루살렘에서는 성전 봉헌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때는 겨울이었다’(요한 10,22)라고 하며 성전 봉헌 축제가 한창 열릴 때 예수님께서 성전 내 ‘솔로몬 주랑에 계시며 걸으셨다’(요한 10,23 참조)는 내용을 기술하고 있습니다.”(92쪽) 책에는 요한 복음서가 집필된 사목적·역사적 배경과 복음서에 언급되지 않은 다른 축제들도 시기별로 설명돼 신구약 성경의 맥을 연결하며 깊이를 더한다. 저자는 예비신자를 위한 「보물을 찾아 다 함께 가는 길 동행」, 신자 재교육 및 견진자를 위한 「구원을 향해 다 함께 가는 길 동행」 등의 책도 펴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4.05.14
솔로몬의 ‘두 얼굴’… 뛰어난 정치가, 불충실한 우상숭배자[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17) 솔로몬 출처=구글 솔로몬이 다윗의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열왕기 상권 1─2장은 솔로몬이 왕위 계승 서열 1번인 아도니야 대신에 왕좌를 차지하게 되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아도니야는 요압 장군과 에비야타르 사제의 지지를 얻어 다윗의 왕좌를 계승하려 했습니다. 나탄 예언자와 차독 사제, 다윗의 경비대장 브나야 등이 이에 반기를 들어 다윗과 밧 세바의 아들 솔로몬을 임금으로 세웁니다. 솔로몬은 임금이 되자 여느 권력자처럼 형제들과 반대자들을 모두 숙청합니다. “이리하여 솔로몬의 손안에서 왕권이 튼튼해졌다”(1열왕 2,46)고 성경은 밝힙니다. 솔로몬이 임금이 된 것은 사울이나 다윗처럼 카리스마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신분과 동조자들의 정치 영향력 때문이었습니다. 목동 출신인 다윗은 군인으로 온갖 풍파를 거친 뒤 어렵게 임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왕자로 태어나 궁전에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임금이 되어 죽는 날까지 절대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그는 부족 중심의 이스라엘의 전통 제도를 허물고 왕권을 강화했습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처럼 뛰어난 군인은 아니었지만 빼어난 정치력과 능란한 외교술로 이스라엘을 부흥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최고 번성기 솔로몬 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상 최고 번성기였습니다. 영토도 가장 넓었습니다. “솔로몬은 유프라테스 강에서 필리스티아 땅까지, 그리고 이집트 국경에 이르기까지 모든 나라를 다스렸다. 그들은 솔로몬이 살아 있는 동안 내내 조공을 바치며 그를 섬겼다.”(1열왕 5,1-2) 열왕기 상권 3─11장은 솔로몬 시대를 소개합니다. 성경은 이 부분을 ‘솔로몬의 실록’(1열왕 11,41)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솔로몬이 다스린 40년을 ‘평화의 시대’라고 정의합니다. 열왕기를 기록한 신명기계 역사가는 솔로몬 통치 기간을 “유다와 이스라엘은 그 수가 바다의 모래처럼 많았다. 그들은 먹고 마시며 행복하게 지냈다”(1열왕 4,20-21)고 평가합니다. 또 “솔로몬 임금은 부와 지혜에서 세상의 어느 임금보다 뛰어났다.”(1열왕 10,23)라고 칭송했습니다. 솔로몬의 가장 뛰어난 재능은 ‘외교술’이었습니다. 그는 최우선으로 실리 외교를 하였습니다. 그는 정략혼인을 통해 영토를 넓히고 나라를 안정시켰습니다. 그는 이집트 21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인 프스센네스 2세의 딸과 혼인해 가나안인의 땅인 게제르를 지참금으로 받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모압ㆍ암몬ㆍ에돔ㆍ시돈ㆍ히타이트 등 여러 나라의 왕족들과 혼인해 아내 700명과 후궁 300명을 뒀습니다. 솔로몬은 또 활발한 무역 활동으로 엄청난 부를 쌓습니다. 그는 해양에서 내륙으로 이어진 아라비아 대상들의 주요 무역로로 곳곳에 세관을 설치해 세금을 취했습니다. 아울러 솔로몬은 해양민족인 티로의 임금 히람과 동맹을 맺고 홍해 아카바만 에츠욘 게베르에 상선대를 두고 지중해 페니키아인들과 무역을 했습니다. 이 상선대는 팔레스티나에서 구할 수 없는 각종 귀금속과 향료, 무기 등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이처럼 솔로몬은 대외적으로 실리 외교를 통해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한편 대내적으로는 병거대 주력의 군대를 재편성해 국방력을 강화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 밖과 하초르, 므기또, 게제르에 성읍을 세우고 병거대와 기병대를 주둔시켜 요새로 만들었습니다. 솔로몬은 아울러 개화 정책을 펴 이스라엘의 문화를 상당히 발전시킵니다. 솔로몬은 왕실에 전문 역사 기록관을 두어 여러 전승을 정리했습니다. 모세 오경 야휘스트 사료가 편집된 것도 바로 이때입니다. 성경과 전승에 따르면 솔로몬은 시편이나 음악에도 뛰어난 소질이 있었고 무엇보다 지혜가 깊었다고 합니다. “그는 잠언을 삼천 개나 지었고, 그의 노래는 천다섯 편이나 되었다. 솔로몬은 레바논에 있는 향백나무부터 담벼락에서 자라는 우슬초에 이르기까지 초목들에 관하여 이야기할 수 있었으며, 짐승과 새와 기어 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관하여도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모든 민족들에게서 사람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왔다.”(1열왕 5,12-14) 성전과 궁전을 짓다 솔로몬은 국력을 바탕으로 20년에 걸쳐 성전과 궁전을 짓는 토목공사를 추진합니다. 열왕기를 저술한 신명기계 역사가는 솔로몬의 토목공사 중 성전 건축을 가장 중대한 사업으로 여겨 상세하게 기록하였습니다.(1열왕 5─7장 참조) 솔로몬은 시온 북쪽에 있는 산마루에 주님의 집 곧 성전(聖殿)을 짓습니다. 그의 아버지 다윗이 제단을 차리기 위해 샀던 땅이었습니다.(2사무 24,18-25 참조) 성전 크기는 길이 약 27m(60암바), 너비 약 9m(20암바), 높이 약 13.5m(30암바)입니다.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이 길이 69m, 너비 28m, 지붕 높이 23m, 종탑 높이 45m이니 솔로몬이 지은 주님의 집은 대략 명동대성당의 대략 3분의 1 크기였습니다. 하느님 계약 궤를 모실 성전 안 지성소는 길이, 너비, 높이 모두 약 9m(20암바)의 정방형으로 지었습니다. 솔로몬은 레바논의 향백나무로 지은 지성소를 순금으로 장식하였습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지 480년, 자신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4년째 되던 해 지우 달, 곧 둘째 달에 주님의 집을 짓기 시작해 7년 만에 성전을 완공하였습니다. 그는 다윗 성에서 하느님 계약 궤를 성전으로 옮겨와 사제들과 온 이스라엘 공동체의 정성 들인 의식으로 지성소에 안치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솔로몬은 하느님께 장엄 기도와 친교 제물을 바치고 주님의 집을 봉헌하였습니다.(1열왕 8장 참조) 주님의 집을 지어 봉헌한 솔로몬은 자신과 아내를 위한 궁전도 여러 채 지었습니다. ‘레바논 수풀 궁’이라고 이름 지은 궁전은 길이 약 45m(100암바), 너비 약 22.5m(50암바), 높이 약 13.5m(30암마)로 성전보다 2배나 길고 넓었습니다. 공사 기간도 주님의 집을 짓는 기간보다 거의 곱절인 13년이 걸렸습니다. 주님께서 진노하셨다 “주님께서 솔로몬에게 진노하셨다. 그의 마음이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에게서 돌아섰기 때문이다.”(1열왕 11,9) 솔로몬에 대한 열왕기 저자의 평가입니다. 신명기계 역사가의 눈에 솔로몬은 훌륭한 임금이 아니었습니다. 솔로몬이 한 분이신 하느님을 온전히 섬기지 않고,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충실하게 지키지 않은 임금이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두 가지 큰 잘못을 저지릅니다. 첫째, 솔로몬은 우상과 이교 풍습을 이스라엘 땅에 들여왔습니다. 솔로몬은 정략혼인으로 외국의 이교도 왕족 딸들을 아내와 후궁으로 맞아들였습니다. 솔로몬은 1000명이나 되는 자신의 여인들에게 그녀들이 섬기던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종교의식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산당(山堂)도 마련해 주었습니다. 솔로몬의 이런 행동은 이스라엘인들에게 참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율법은 이교인과의 혼인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다른 신들 곧 우상을 섬기게 될 위험 때문이었습니다. 율법 중 임금이 지켜야 할 규정(신명 17,14-20)도 솔로몬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런 이유는 신명기계 역사가는 솔로몬이 율법을 어기고 우상 숭배를 허용해 이스라엘 신앙을 쇠퇴시키고 타락시켰다고 비난합니다. 둘째, 솔로몬은 이집트의 파라오들처럼 과도한 세금과 과중한 노역을 부과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리고 자유를 억압했습니다. 솔로몬은 막대한 토목공사비를 세금으로 충당하기 위해 왕국을 열두 행정구역으로 나누었습니다.(1열왕 4,7-19) 세금 거두는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함이었죠. 그리고 레바논에서 예루살렘까지 건축자재를 나르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 3만 명을 징발했습니다. 또 돌까는 작업에 8만 명, 짐 나르는 노역에 7만 명을 동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임금의 권력에 의해 자유가 무자비하게 박탈당하고, 세속화되고, 계약 공동체의 바탕이 흔들릴 것이라는 이스라엘 첫 예언자 사무엘의 경고가 그대로 실현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 때문에 백성들의 원성은 커졌습니다. 특히 남쪽 유다 지파의 다윗 왕가에 대한 북쪽 10개 지파의 반감이 폭발 직전까지 팽배하였습니다.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솔로몬은 재위 내내 종교 혼합주의를 추구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전통과 외래 종교 문화를 융합 발전시키려 한 것이죠. 그 대표 사례가 성전과 궁전 건축입니다. 솔로몬은 바알 신을 섬기는 티로 히람 왕실의 건축가들이 설계하고 감독한 성전에 하느님 계약 궤를 모셨습니다. 가나안 이교 문화가 이스라엘인의 신앙과 생활에 스며든 명백한 증거입니다. 조상들의 신앙을 소중히 여긴 이스라엘인들은 솔로몬의 외국 문화 수입에 충격을 받았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영향을 받은 신명기계 역사가는 솔로몬의 통치가 하느님의 심판을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솔로몬은 기원전 약 972년께부터 40년간 통일된 이스라엘 임금으로 통치하다가 기원전 933년께 선종합니다. 솔로몬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지혜와 부귀영화의 대명사로 입에 오르내리고 있지만, 신명기계 역사가는 하느님께 불충실한 우상 숭배자로 평가합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03.28
이콘에서는 왜 ‘하느님의 빛’을 검푸르게 그릴까[김형부 마오로의 이콘산책] (6)빛의 감각의 현현- 부정의 미학 (작품1)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일부: 모자이크 이콘, 565~566경, 성 카타리나 수도원, 시나이. 인간의 개념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하느님 지구의 모든 존재 중 최고의 지성을 가진 인간은 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하느님이 계심을 알고, 또 내 안에 그분의 영이 존재함을 믿어왔습니다. 그렇기에 두 손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기도하며 찬미가를 부릅니다. 그렇다 해도 하느님을 안다는 것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단 하나의 얼굴’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에 대해 많은 것을 비유를 들어 소상히 가르치십니다. 따라서 이콘에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 모습을 표현합니다. 다음 이야기는 표현의 한계를 설명합니다. 어느 날 두 친구가 밖을 내다보며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야! 밖에 하얀 눈이 내려서 정말 아름답고 깨끗하게 보이네!” 그렇지만 한 친구는 시각장애인이었기에 하얀 눈이 차갑고 손바닥에서 녹는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지만, 하얀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하얀 것이 어떤 것이야?” 친구는 색을 어떻게 설명할까 생각하다가 말했습니다. “응, 하얀 것은 백조와 같지. 백조는 하야니까.” “백조는 어떻게 생겼는데?” “백조는 이렇게 생겼지”하며 친구가 오른 손가락을 모으고 팔목을 구부려 새 모양을 만들고 친구에게 만져보게 했습니다. 친구의 손과 팔뚝을 만져본 다른 친구는 이해했다는 듯 “아하, 하얗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라고 말했습니다. 그 친구는 과연 하얀 것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했을까요? 하느님의 빛은 ‘빛나는 어둠’ 하느님에 관해 설명할 때 인간의 개념으로 표현할 수 없는 언어적 공백이 생깁니다. 이럴 때, 부정(否定)이라는 방법을 사용하게 됩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에 대해 굳이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 즉 억지로 표현하려는 것을 ‘제한한다’는 것입니다. 이콘에서 표현하는 하느님의 빛에 대해 살펴보면, 하느님의 빛은 세상의 빛과는 다르게 어둡게 표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빛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물리적 빛(태양 빛, 전기나 불빛)으로 표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현현(顯現)하실 때는 오히려 어둠이 동반되는 경우를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콘에서는 하느님의 알 수 없는 빛을 짙은 검푸른 색으로 표현하며, 이를 ‘빛나는 어둠’이라 부릅니다. 그 어둠은 태초 이전의 빛, 아마도 우주 탄생 이전의 빛으로 유한한 인간이 보는 빛과는 다른, 무한하신 하느님과 연결되는 빛으로 보이는 장면입니다. “해 질 무렵, 아브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는데, 공포와 짙은 암흑이 그를 휩쌌다. 그때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창세 15,12-13) 하느님과의 계약을 위해 아브람은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동물들을 반으로 갈라 양쪽으로 마주 보게 차려놓았습니다. 그러나 온종일 기다려도 하느님께서는 오시지 않았습니다. 독수리 떼들이 피 냄새를 맡고 하늘을 떠돌아, 그는 새들을 쫓기에 바빴습니다. ‘해 질 무렵’은 아직도 해가 있으므로 어두울 리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공포와 암흑이 그를 휩쌌다’는 것은 하느님의 현현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하느님께서 현현하실 때는 ‘공포와 깊은 잠과 암흑’이 동반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밖으로 드러난 성자 하느님으로 표현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이러한 내용이 나옵니다. 솔로몬 왕은 하느님의 성전을 짓고 계약의 궤를 모시는 의식을 열었습니다. 사제들이 성소에서 나올 때 구름이 주님의 집을 가득 채웠는데, “주님의 영광이 주님의 집에 가득 찼다”면서 솔로몬이 나오며 말합니다. “그때 솔로몬이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짙은 구름 속에 계시겠다’고 하셨습니다.”(1열왕 8,12) 이콘에서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와 예수 승천에도 하느님의 현현을 의미하는 어두운 광휘를 그립니다(작품1 참조). 물론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의 경우 성경에서는 빛이 눈부시게 예수님을 감쌌다고 기술했습니다. 그러나 이콘은 특정한 경우, 예수님을 밖으로 드러난 성자 하느님으로 표현합니다. 따라서 복음서 저자 이콘에서는 그분을 중심으로 짙은 구름을 기하학적인 단순화 작업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작품2 참조). (작품1)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를 살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제자들의 대답은 세례자 요한이라고도 하고, 엘리야라거나 일부는 어느 예언자 중 하나가 부활했을 거라고 대답합니다.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가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마태 16, 16) 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을 위해 많은 기적을 베푸시고 사랑을 보여 주셨어도 그들은 알지도 깨닫지도 못했으며, 돌아오지도 못했습니다. 이유는 ‘그들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광보다는 인간이 주는 영광에 더 이끌렸기 때문’이라고 성경에서 말씀하십니다.(이사 6,10 참조) 예수님은 산(타볼) 위로 오르십니다. 산은 하느님을 상징합니다. “산들을 향하여 내 눈을 드네. 내 도움은 어디서 오리오?”(시편 121,1)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곱과 요한만을 데리고 산에 오르시고, 수난 저녁에 겟세마니 산에도 이 세 제자만을 데리고 산에 오르십니다. 그리고 빛의 모습과 동시에 어둠이 어떤 것인지 알려 주십니다. (작품2) ‘성자 하느님과 지혜의 천사군단’: 템페라, 18x16cm, 트레차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러시아. 예수님 둘러싼 짙은 구름은 성령의 추상적 형태 예수님의 얼굴과 옷은 태양과 같이 빛나고 주변의 모든 것은 그분에서 나오는 빛으로 ‘어둠 속으로 비치면서’(요한 1,5) 밝아졌습니다. 어둠은 믿음의 어둠을 상징화하고, 하느님의 현현을 상징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현현하실 때 ‘그분은 어두워진다’를 이콘에서는 보여 주며 이를 ‘빛나는 어둠’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른손 엄지와 약지로 인성과 신성을 보여 주시며 하느님의 이름으로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아무도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지만, 하느님과 똑같으신 그분이 하느님을 알려주시며(요한 1,18; 12,45-46), 따라서 그리스도는 천상과 지상의 연결점 역할을 담당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는 형태(만돌라)로 둥근 것은 짙은 구름이지만, 우리가 흔히 보는 구름이 아니고 성령의 추상적인 구름 형태입니다. (작품2) ‘성자 하느님과 지혜의 천사군단’을 살펴보겠습니다. 옥좌에 앉아계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면서 성자 하느님으로 표현합니다. 어두운 만돌라 형태로 둘러싸여 있으며, 붉은색으로 그려진 네 군데의 동물은 네 복음서를 상징합니다. 천사 모습은 예수님의 족보부터 시작하며 마태오 복음서를 상징합니다. 사자 모습은 마르코 복음서를 나타내고 시작은 사자처럼 소리치는 요한 세례자의 설교로 시작합니다. 루카 복음서는 희생 제물을 상징하는 소와 함께 사제의 역할을 하는 즈카르야가 처음부터 등장합니다. 독수리는 하늘을 나는 동물로 영성적인 면을 처음부터 도입한 요한복음서를 의미합니다. 발판은 관을 의미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나타내며, 발판의 붉고 둥근 원은 옥좌의 천사이며 수많은 눈이 박혀있습니다. 만돌라 안의 짙은 구름 안에는 수많은 지혜의 천사(케루빔)가 주님을 호위하고 있습니다. 들고 있는 성경의 내용에는 여러 가지 내용이 있을 수 있으며, 그중 많이 그려진 것은 ‘짐 진 자는 나에게 오라’(마태 11, 28)라는 내용입니다. 김형부 마오로/ 전 인천가톨릭대 이콘담당 교수 cpbc2024.01.31
하느님께 불충한 이들, 벌을 받다[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37) 열왕기 열왕기는 통일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지고 멸망한 것은 임금들이 하느님을 올바로 섬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면서 하느님께 순종할 것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하예즈, ‘예루살렘 성전 파괴’, 1867, 유화, 갤러리에 델 아카데미아 베네치아. 열왕기의 히브리어 성경 이름은 ‘멜라킴’입니다. 우리말로 ‘왕들’이라는 뜻이죠. 열왕기는 사무엘기처럼 본디 한 권의 책이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옮긴 「칠십인역」 번역자들은 멜라킴을 사무엘기의 후편으로 여겨 사무엘기를 두 권으로 나눴던 것처럼 둘로 나눠 ‘바실레이온 감마’(Βασιλειων Γ, 제3왕국기), ‘바실레이온 델타’(Βασιλειων Δ, 제4왕국기)로 이름 지었습니다. 1열왕 1,1─2,46이 사무엘기 하권의 ‘다윗 왕위 계승’(2사무 9,1─20,26) 내용과 연결되고, 사무엘기와 열왕기 모두 연속되는 이스라엘의 왕조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칠십인역을 따르지 않고 ‘ⅠReges’(1열왕기) ‘ⅡReges’(2열왕기)라 했습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가톨릭 「성경」은 히브리어 타낙 성경과 라틴어 불가타 성경에 표현에 따라 ‘열왕기 상권’과 ‘열왕기 하권’으로 표기합니다. 열왕기는 기원전 970년 다윗의 재임 마지막 해부터 기원전 561년 여호야킨 임금이 바빌론 감옥에서 풀려난 사건까지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왕국 유다 임금들의 실록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임금들이 어떻게 하느님께 불충했는지 이에 하느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벌하셨는지를 들려줍니다. 이 시기는 이탈리아에서 로마가, 아프리카에서 카르타고가 건국하고, 바빌로니아가 아시리아를 정복하던 격동기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0년 왕조 시기 동안 흥망성쇠를 거듭합니다. 통일 이스라엘은 기원전 932년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왕국 유다로 갈라집니다. 유다 왕국에서는 다윗 왕조의 승계를 유지하지만, 이스라엘 왕국에서는 약 200년 동안 9번의 쿠데타가 일어나고, 그때마다 왕조가 바뀌는 혼란을 겪습니다. 그러다 기원전 722년 북 왕국 이스라엘은 아시리아 살만에세르 5세의 침공으로 멸망하고, 백성들은 아시리아로 끌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합니다.(2열왕 17장) 남 왕국 유다는 기원전 587년 신바빌로니아 네부카드네자르의 군대에 짓밟혀 패망합니다. 예루살렘은 불탔고, 성전은 파괴됩니다. 다윗 왕조의 통치도 멈춥니다.(2열왕 25장) 그리고 유다 백성들은 바빌론으로 끌려가 유배살이를 합니다. 유다교는 예레미야 예언자가 열왕기를 저술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성경학자들의 일반 견해는 신명기계 역사서 편집자들이 열왕기를 최종 편집했다고 봅니다. 학자들은 기원전 561~538년 사이에 열왕기가 최종 편집됐으리라 추정합니다. 열왕기 마지막 부분인 2열왕 25,27에 네부카드네자르의 아들 에윌 므로닥이 바빌로니아 임금으로 등극하던 해(기원전 561년)에 유다 임금 여호야킨을 감옥에서 풀어줬다는 내용만 있지, 유배자들에게 예루살렘 귀환을 선포하는 키루스의 칙령(기원전 538년)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입니다. 열왕기 저자는 이 책의 편집을 위해 세 가지 사료, 곧 ‘솔로몬의 실록’(1열왕 11,41), ‘이스라엘 임금들의 실록’(1열왕 14,19), ‘유다 임금들의 실록’(1열왕 14,29)을 사용했다고 밝힙니다. 하지만 오늘날 성경학자들은 열왕기가 바빌론 유배 이전 요시야 임금 때 기록된 본문들(1열왕 8,8; 2열왕 8,22; 17,24-34)도 있지만, 많은 부분 바빌론 유배 후반기에 기록됐다고 주장합니다. 열왕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솔로몬 통치’(1열왕 1─11장), ‘이스라엘 수도 사마리아 멸망까지의 남북 두 왕국 역사’(1열왕 12장─2열왕 17장), ‘예루살렘 멸망까지의 남 왕국 역사’(2열왕 18─25장)입니다. 열왕기는 늙고 기운을 잃은 다윗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아도니야가 다윗을 이을 야망에 불탔으나 동생 솔로몬이 궁정 음모를 통해 후계자가 됩니다.(1열왕 1,5-53) 이어 솔로몬의 치세는 그가 지은 죄들에 대한 부정적 기록으로 끝맺습니다.(1열왕 2장─11장) 이후 임금들의 실록이 이어집니다. 열왕기는 임금 대부분을 부정 평가합니다. 임금들에 대한 평가 기준은 히즈키야와 요시야 임금이 시행했던 종교 개혁 규정이었습니다. 곧 하느님과 맺은 계약에 얼마나 충실했느냐에 따라 임금들을 평가했습니다. 열왕기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임금들 역사만을 전해주는 책이 아닙니다. 임금들과 함께했던 예언자들도 등장합니다. 나탄과 아히야, 엘리야, 엘리사, 미카야, 훌다가 그들입니다.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백성을 다스리는 임금이 하느님께 충실하지 못할 때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다시 하느님께 돌아올 것을 촉구합니다.(1열왕 18,17-40; 2열왕 17,13) 또한 그들의 죄에 대한 하느님의 처벌을 선포합니다.(1열왕 14,7-11; 2열왕 22,16-17) 예언자들은 하느님과 율법에 충실하라고 합니다. 열왕기는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이 분열되고 멸망한 것은 하느님을 올바로 섬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임금들이 바알을 숭배해 백성들은 하느님과 멀어지는 길로 이끌었기에 그 죄에 대한 벌로 나라가 망했다고 합니다. 열왕기는 임금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께 순종할 것을 호소합니다. 아울러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올바로 섬기는 이들을 보호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08.16
하느님의 사랑 아래 현재에 충실하며 행복하게[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49) 코헬렛 코헬렛은 지혜로운 사람은 현재의 삶에 성실하고 하느님의 섭리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사람이라고 가르친다. 지난 8월 리스본 세계청년대회에 참여한 젊은이들이 함께 십자가를 지고 행렬하고 있다. OSV 구약 성경 제1 경전인 히브리어 타낙 성경은 ‘코헬렛’을 성문서로 분류해 ‘아가’ 다음에 배치해 놓았습니다. 코헬렛이 무슨 뜻인지 명확지 않습니다. 다만 회중을 모으거나 집회를 이룬 공동체 안에서 가르치는 직책이나 직무를 맡은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헬라어 구약 성경 「칠십인역」은 코헬렛을 ‘Εκκλησιαστηs’(에클레시아스테스)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우리말로 ‘회중을 가르치는 설교자’라는 뜻입니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칠십인역 명칭을 그대로 계승해 코헬렛을 ‘Ecclesiastes’라고 표기합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구약 성경 제1 경전의 전통을 이어받아 ‘코헬렛’으로 표기합니다. 그리고 가톨릭교회 성경 분류법에 따라 ‘시서와 지혜서’에 분류해 놓았습니다. 한국 교회는 「공동번역 성서」에서 코헬렛을 ‘전도서’라고 번역해 표기한 바 있습니다. 책 이름이 코헬렛으로 불린 이유는 표제에 “다윗의 아들로서 예루살렘의 임금인 코헬렛의 말이다”(코헬 1,1)이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다교 전승에 따르면 솔로몬 임금이 노년에 코헬렛을 지었다고 합니다. 다윗의 아들로서 예루살렘의 임금은 ‘솔로몬’뿐이기 때문입니다.(코헬 1,1. 12 참조) 하지만 코헬렛의 실제 저자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팔레스티나를 다스리던 때인 기원전 3세기께 예루살렘에서 지혜를 가르치던 현인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코헬렛에 아람어와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히브리어가 나오고 있을 뿐 아니라 기원전 2세기에 일어났던 마카베오 항쟁에 관해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또 기원전 2세기에 편집된 집회서의 저자가 코헬렛을 이미 알고 있었고(집회 14장 참조), 기원전 2세기 중엽에 제작된 쿰란 필사본에 코헬렛의 몇 구절이 기록돼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코헬렛이 실제 저자에 의해 최종 완성된 것이 아니라 후대 편집자의 손을 거쳐 완성된 것으로 봅니다. 코헬렛은 표제(1,1)와 머리말(1,2-11), 코헬렛의 자기 반성과 인생에 대한 반성(1,12─2,26), 인간 현실의 부정적 면과 한계(3,1─6,12), 인간 실존 문제들(7,1─12,8), 맺음말(12,9-14)로 구분됩니다. 코헬렛은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1,2)라는 말로 시작해 같은 말로 끝맺습니다.(12,8) 이처럼 코헬렛은 모든 것이 허무라고 합니다. ‘허무’로 표현되는 히브리말 ‘헤벨’은 본래 ‘숨’, ‘입김’, ‘실바람’을 뜻합니다. 추상적으로는 ‘허무’, ‘허망’, ‘무상’, ‘덧없음’, ‘공허’, ‘헛됨’을 의미합니다. 간과해선 안 될 것은 헤벨의 숨은 뜻입니다. 헤벨은 곧 사라질 것 같은 무상함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숨’은 모든 생명을 유지하는 필수 요소입니다. “곧 히브리어 헤벨은 생의 갖가지 요인(부귀, 명예, 쾌락 등)이 숨처럼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한 조건일 수 있지만 동시에 숨과 마찬가지로 찰나적이어서 찰나적인 것을 삶의 본질인 양 좇고 영원히 소유하려는 노력만큼 무상하고 무의미한 것도 없음을 가리킵니다.”(김혜윤 수녀, 「시서와 지혜서」 180쪽) 코헬렛은 그러면서 태양 아래에서 인간의 삶이 왜 헛되고 허무한지를 순환하는 자연의 모습과 인간 역사를 들어 설명합니다. 코헬렛은 인생이 허무한 이유는 인간이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한다고 해도 결코 그것을 완전히 소유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코헬렛은 삶 자체를 싫어합니다.(2,17) 살아 있는 사람보다 오래전에 죽은 이들이 더 행복하고, 이보다 더 행복하기로는 아예 태어나지 않아 이 세상에서 자행되는 불의와 허무한 일들을 보지 않는 인간이라고 합니다.(4,2-3) 코헬렛은 또 인간사의 모든 것은 정해진 때가 있으며, 이는 하느님의 섭리이며 선물이라고 가르칩니다. 코헬렛은 지혜, 정의, 여자, 권력, 운명, 사회 관계와 같은 인간 실존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를 다루면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현실과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 인생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강조합니다. 현재를 가장 좋은 때로 인식하고 살아갈 때 인간은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코헬렛은 ‘즐김’은 삶의 본질과 진수를 누리며 현재에 전적으로 충실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면서 코헬렛은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켜라”(12,13ㄴ)며 모든 가르침을 마무리합니다. 정리하면, 코헬렛은 단순히 현실을 즐기는 쾌락주의를 권고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에 성실할 것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성실해야 하는 근거는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인 경외에 있다고 합니다. 하느님 없는 인생은 무의미하므로 주님께 대한 믿음을 절대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인간은 하느님의 섭리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켜라. 이야말로 모든 인간에게 지당한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좋든 나쁘든 감추어진 온갖 것에 대하여 모든 행동을 심판하신다.”(코헬 12,14)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11.15
구약 성경이 함축된 찬양가이자 탄원가[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47) 시편 시편은 구약 역사 전반에 드러난 하느님의 계시가 집약돼 있어 ‘구약 성경의 요약집’이라고 정의한다. 한 유다교 랍비가 시편을 읽고 있다. osb 제공 시편은 히브리어 타낙 성경에서 ‘세페르 테힐림’으로 표기돼 있습니다. 우리말로 ‘찬양가들의 책’이란 뜻입니다. 구약 성경 제1경전인 타낙 성경은 시편을 성문서의 첫 자리에 배치할 만큼 중시합니다. 유다인들이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기억하기 위해 기도와 전례 안에서 읊은 찬가가 바로 시편이기 때문입니다. 헬라어 구약 성경 「칠십인역」은 시편을 ‘프살모이’(Ψαλμοι)라고 합니다. 우리말로 ‘현악기(하프)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라는 뜻입니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프살모이를 그대로 옮겨 ‘프살무스’(Psalmus)라고 표기합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시편(詩篇)’으로 이름 붙였습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시편의 다른 이름으로 ‘성영(聖詠)’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우리말 「성경」은 시편마다 두 개의 번호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 시편 번호를 기본으로 헬라어 칠십인역 시편 번호를 괄호 안에 별도 표기하고 있습니다. 헬라어 칠십인역은 히브리어 시편 9-10편, 114-115편을 9편과 113편으로 하나로 묶고, 116편을 114-115편으로, 147편을 146-147편으로 나눴습니다. 그래서 시편 번호 표기가 차이 납니다. 시편은 고대 왕정 시기(기원전 12세기) 이전부터 마카베오 시대(기원전 2세기)까지 1000년이 넘는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서 150편으로 수집 편집돼 정착된 찬양가 모음집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시편이 예루살렘 제2성전 시기에 사용되던 전례 성가집의 일부분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시편은 구약 성경의 가르침을 집대성한 결정체입니다.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해 형성된 이스라엘의 종교 심성 전반이 시적 운율 안에서 결정을 이룬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시편에는 이스라엘의 율법과 역사, 지혜, 예언 등 구약 성경을 형성하는 주요 구성 요소들을 녹여놓았습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시편은 구약 역사 전반에 드러난 하느님의 계시가 집약돼 있다고 말하며 ‘구약 성경의 요약집’이라고 평가합니다. “시편은 유배 혹은 그 이전부터 있었던 억압의 상황과 부조리의 현장에서 이스라엘을 하나로 묶어주던 민족 정서의 총체였다. 그 안에는 고통과 기쁨, 불신과 신뢰, 탄원과 찬양, 불안과 평화, 거부와 다가감, 불평과 감사 등 인간 내면의 모순된 감정과 세상에서 체험하게 되는 모든 정서가 집약적으로 표현되어 있다.”(김혜윤 수녀, 「시서와 지혜서」 24쪽) 시편 저자는 유다인의 전통 안에서 다윗 임금으로 알려졌습니다. 다윗 임금을 시편의 저자라고 간주하는 데는 150편의 시편 가운데 73편에 ‘레 다윗’이라고 표현돼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레 다윗’은 ‘다윗의’라는 뜻뿐 아니라 ‘다윗에게’ ‘다윗을 위한’ ‘다윗에 관한’이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말 「성경」은 전치사 ‘레’를 번역하지 않고 ‘다윗’으로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 74편에는 ‘성전’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시편 137편은 바빌론 유배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시편 전체의 저자를 다윗 임금으로 인정하기에는 부적합합니다. 따라서 성경학자들은 시편 저자를 다윗 임금뿐 아니라 코라의 자손들, 아삼, 솔로몬, 제라 사람 헤만과 에단, 모세, 여두툰, 작가 미상도 있다고 봅니다. 코라의 자손들은 다윗 시대 용사로 활약했고(1역대 12,7), 성전 문지기로 봉사하기도 했습니다.(1역대 9,19) 레위 지파에 속한 이들은 성전에서 음악을 담당했기에 시편의 많은 부분을 지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삽과 제라 사람 헤만, 에탄은 다윗 시대 성가 책임자들이었습니다. 아삽은 시편 50편과 73─83편의 머리글에 이름이 나옵니다. 헤만은 1역대 2,5과 1열왕 5,11에 등장하는데 솔로몬 때 활동했던 유명한 현자로도 소개됩니다. 여두툰은 역대기와 느헤미야기에 등장합니다.(1역대 9,16; 25,1; 2역대 5,12; 느헤11,17) 그는 성전에서 음악을 담당했던 이로 시편 39편과 62편, 77편 머리글에 나옵니다. 시편 150편을 집대성해 편집한 이들은 유다 히즈키야 임금의 명을 받은 레위인들로 추정됩니다. “히즈키야 임금과 대신들이 레위인들에게 다윗과 아삽 선견자가 지은 노랫말로 주님을 찬양하라고 이르니, 레위인들은 몹시 기뻐하며 찬양하고 무릎 꿇어 경배하였다.”(2역대 29,30) 총 150편의 시편은 모세 오경처럼 다섯 권의 책에 수록돼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다섯 권의 노래집’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다섯 권의 책은 서로 구별하기 위해 각 권의 마지막에 ‘아멘’을 표기해 두었습니다. 1권(1─41편)ㆍ4권(90─106편)ㆍ5권(107─150편)은 하느님의 이름을 ‘야훼’로, 2권(42─72편)ㆍ3권(73편─89편)은 ‘엘로힘’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시편은 크게 ‘찬양시’와 ‘탄원시’로 나뉩니다. 찬양시는 첫음절에 ‘하느님을 찬양하라’고 권고하고, 하느님을 찬양하는 이유를 노래합니다. 탄원시는 기도자가 하느님을 부른 다음 자신의 처지를 하느님 앞에 하소연하고,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합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11.02
이스라엘, 나라는 분열되고 우상숭배 성행[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18) 이스라엘 두 왕국으로 갈라지다 이스라엘은 솔로몬이 사망한 후 남 왕국 유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로 갈라진다. ‘프라고나르,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고 있는 예로보암’, 1752년, 아카데미 데 보자르, 파리, 프랑스. 남 왕국 유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 기원전 933년께 솔로몬이 죽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하브암이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군합국’(君合國)이었습니다. 군합국은 최고 권력인 한 임금 아래에 둘 이상의 왕국이 결합해 이루어진 나라를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남북의 지파가 합해져 이뤄진 왕국이었습니다. 남쪽 지파는 유다와 벤야민 지파를 말합니다. 북쪽 지파는 나머지 열 지파를 일컫습니다. 다윗이 먼저 유다 지파의 왕으로 선출된 다음 북쪽 지파 원로들이 다윗과 계약을 맺으면서 그를 왕으로 인정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합니다.(2사무 5,1-5) 이처럼 누군가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려면 먼저 남북으로 양립된 열두 지파의 지지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유다 지파 출신인 르하브암은 북쪽 지파의 지지를 얻기 위해 스켐에서 지파 원로들을 소집합니다. 이 자리에서 북쪽 지파 원로들은 르하브암에게 솔로몬 치하의 과중한 공물 징수와 강제 노역을 감해 달라고 청합니다. 르하브암은 이 요구를 거절합니다. 그러자 북쪽 지파 원로들은 르하브암의 왕위 계승을 인정하지 않고 느봇의 아들 예로보암을 자신들의 왕으로 선포합니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남 왕국 유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로 갈라집니다.(1열왕 12장 참조) 유다와 이스라엘 두 왕국은 사해 북쪽 벳 아라바에서 유다 광야의 와디 엘 켈트와 와디 수웨이니트의 서쪽 산악 지역, 게바 북쪽과 벳 호론 남쪽, 아얄론 북쪽 필리스티아인의 영토를 경계로 분열됐습니다. 르하브암 르하브암은 41살에 즉위해 기원전 913년까지 유다를 다스립니다. 그는 북쪽 지파들이 자신을 임금으로 인정하지 않자 군사 18만 명을 동원해 무력으로 진압하려 했습니다. 그러자 스마야 예언자가 르하브암에게 “동족끼리 싸워서는 안 된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1열왕 12,22-24; 2역대 11,1-4) 다행히 르하브암은 스마야가 전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이스라엘을 치지 않습니다. 대신 그는 예루살렘에 살면서 베들레헴과 헤브론 등 유다와 벤야민 지파 땅 15곳에 요새를 짓고 군대를 배치합니다.(2역대 11,5-12) 르하브암의 어머니는 암몬 출신 나아마였습니다. 이교인이었죠.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르하브암은 하느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곳곳에 산당을 지어 아세라 목상을 세워 백성들에게 우상 숭배를 하게 했고, 신전 남창들이 그곳을 지키게 했습니다. 성경은 르하브암이 주님의 율법을 저버리고 하느님을 배신하였다고 비난합니다.(2역대 12,1-2) 그 결과 르하브암 재위 5년 때 이집트 파라오 시삭이 유다를 침략해 예루살렘을 약탈했습니다. 주님의 집은 물론 왕궁이 모조리 털렸습니다.(2역대 12장 참조) 르하브암은 기원전 913년께 사망합니다. 예로보암 북 왕국 이스라엘의 태조인 예로보암은 에프라임 지파 출신입니다. 예로보암은 우리말로 ‘백성은 위대하다’는 뜻입니다. 실로 출신 아히야 예언자는 예로보암에게 이스라엘의 임금이 될 것이라면서 다윗처럼 하느님의 명령하는 바를 모두 귀담아듣고, 주님의 길을 걸으며 하느님 눈에 드는 옳은 일을 하고, 주님의 규정과 계명을 지키는 임금이 되라고 당부했습니다.(1열왕 11,38 참조) 하지만 예로보암은 왕위에 오르자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 정반대의 길을 걷습니다. 예로보암은 베텔과 단에 예루살렘 성전을 대치하는 이스라엘 왕국의 성소를 세웁니다. 그리고 그는 성소에다 금송아지를 두고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신다”면서 백성들에게 우상을 숭배하게 하고, 레위인이 아닌 자들을 사제로 임명해 자기가 마음대로 정한 축제일에 금송아지에게 제물을 바치게 했습니다.(1열왕 12,28-32) 예로보암이 이 같은 짓을 한 이유는 축제 때마다 희생 제물을 바치러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을 버리고 유다 임금인 르하브암을 따르지 않을까 불안했기 때문입니다.(1열왕 12,26-27) 이 일로 예로보암 집안에는 하느님의 무자비한 재앙이 내려집니다. 하느님께서 예로보암에 속한 모든 사내를 치셨습니다. 성 안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어 치우고, 들에서 죽은 자는 새가 쪼아 먹을 만큼 예로보암의 집안에 속한 이는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1열왕 14장 참조) 예로보암은 이스라엘을 22년간 통치하다 기원전 910년께 사망했습니다. 르하브암과 예로보암 중 누가 이스라엘 왕국 분열에 대한 책임이 더 클까요? 시기에 따라 평가가 달라집니다. 기원전 550년께 쓰인 신명기계 역사서 가운데 열왕기는 르하브암을 별로 탓하지 않고 오히려 예로보암을 비난합니다. 그 이유는 예로보암이 베텔과 단에 성소를 짓고 금송아지를 세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상을 숭배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기원전 180년대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하는 집회서는 르하브암과 예로보암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르하브암은 백성 가운데 우둔하고 지각없는 자로서 그의 정책 때문에 백성이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다. 느밧의 아들 예로보암도 이스라엘을 범죄로 이끌었고 에프라임에게 죄악의 길을 걷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의 죄악이 무척 불어나서 그들은 자신들의 고향에서 떠나게 되었다. 그들은 온갖 악을 따르다가 마침내 자신들에게 징벌을 불러들였다.”(47,23-25) 집회서는 르하브암이 스켐 회의에서 백성들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여줬으면 솔로몬 통치 기간에 생겨난 불만들을 해소해 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합니다. 집회서는 르하브암이 무지하지 않았다만 이스라엘 왕국은 분열은 없었을 것이라고 탓합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03.31
입체파 그림처럼… 한 작품에 담긴 여러 의미와 시선 [김형부 마오로의 이콘산책] (16) 방주의 틀 - 영원을 향한 창문(3) (작품 1) 모든 성인 : 템페라, 74 x 49 cm, 17세기 말, 개인 소장, 파리, 프랑스. 화면에 병치·대치·여러 개의 공간 등이 망라된 이콘의 사례다. 하느님의 초월성 표현 위해 구성 방식에 중첩·병렬·대치를 활용하거나 의도적으로 미학적 형식 왜곡 하느님 세계에는 하느님의 빛만이 존재하기에 그림자가 없고 인물 눈동자에 흰점 찍지 않아 3. 이콘의 구성 동양사상에서 등장하는 무(無)의 개념과 서방에서 등장하는 초월성을 설명하기란 어렵습니다. 전부이면서 아무것도 아니고 어느 곳에도 없으면서 동시에 어느 곳에나 있는 것을 어떻게 표현할까요? 구약에서 바람은 하느님의 영이며 생명을 주시는 숨이고, 하느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로 해석합니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붑니다. 보이지 않는 공기의 움직임을 바람이라고 하며, 하느님의 초월성을 느낄 수 있는 대리 역할이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초월성을 표현하기 위해 이콘은 부정주의·정적주의·신화사상을 종합하여 독특한 미학을 형성하였습니다. 등장 인물의 경직성, 그림의 고요함, 피부의 갈색, 빛의 표현, 일정하게 굽이치는 머리카락, 직선과 평행선처럼 움직이는 옷 주름들, 바라보는 눈의 위치, 원근법의 반대 현상, 색깔의 의미, 금의 사용과 의미, 몸에서 발산하는 빛 등은 앞서 언급한 신학 사상의 회화적 표현입니다. 이콘의 구성과 처리 방법에서도 그것이 드러납니다. 각각의 사건과 인물의 위치와 의미에 따라 개별 공간을 두어 구성하고, 화면 전체를 여러 겹으로 겹치거나(중첩) 또는 나란히 늘어놓거나(병렬), 혹은바라보는 방향을 여러 개로 응용하여 배열합니다. 이러한 방법은 현실 세계와 맞지 않는 모순(矛盾)이발생합니다. 이러한 구성은 좁은 화면에서 많은 내용을 보여주면서도 질서를 유지하게 합니다. 이는 이콘 이미지의 구성 방식에 시각적 응용과 미학적 형식을 의도적으로 왜곡시킴으로써 초월적 대상을 느끼게 하려는 것입니다. 장엄함은 크게, 숭고함은 높게, 종말론적 의식은 미완성으로, 초월적인 상태는 여백으로, 아름답고 충만한 소리는 침묵으로 표현합니다. 그 외에도 과장을 의도적으로 생략하고 여러 개의 시선을 표시하는 다중점·왜곡 등을 써서 나타냅니다. 이콘 ‘모든 성인’(작품 1)은 병치·병렬·대치·여러 개의 공간 등으로 구성한 것입니다. 이콘의 맨 윗부분에는 붉은 글씨로 ‘모든 성인’이라고 쓰여있습니다. 이 이콘은 최후의 심판과 연결됩니다. 이콘의 가운데에 붉고 푸른 둥근 공간이 있습니다. 가운데에는 황금빛 광채와 더불어 하느님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앉아계십니다. 황금색 원 왼편에는 불쌍한 영혼을 위해 청원하는 성모 마리아(성자 하느님 옥좌의 오른편)가 있고 오른편에 요한 세례자가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구세주 탄생 이후의 영혼들을 위해, 요한 세례자는 구세주 탄생 이전 구약의 영혼들을 위해 하느님께 청원하는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의 머리 위에 팔각 후광이 있는 천사 모습으로 ‘지혜’께서 서 계십니다. 지혜 주위에 천사들의 군단이 있습니다. 창궁의 위아래에는 해와 달·별들이 빛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는 최후의 심판 때 오실 주님을 위해 준비된 옥좌가 있습니다. 그 옥좌 위에는 청색의 천이 놓여있습니다. 옥좌 뒤에는 그리스도에 의해 윗부분이 가려진 갈색 십자가가 걸쳐 있습니다. 옥좌 앞에는 아담과 하와가 무릎을 꿇고 하느님을 경배합니다. 성자 하느님 좌우에는 군중이 다섯 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천사 군단 아랫부분에는 왕·예언자·구약의 성조들이 있고, 그 밑에는 예수님의 사도들이 있습니다. 그 아래 계층은 교부·주교·사제들입니다. 그 밑의 왼쪽은 순교자들, 오른쪽은 은수자들과 수도자들입니다. 가장 아랫부분 왼편에는 성덕이 가득한 귀부인들이 있고 맞은 편에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반 나신의 늙은 여인이 있는데 이 여인은 이집트의 마리아이며 속죄와 참회 여인으로 성녀들과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성자 하느님의 옥좌 주위에 복음 사가들의 상징인 사람(마태오)·사자(마르코)·소(루카)·독수리(요한)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콘의 맨 윗부분 왼쪽 가장자리에 다윗왕이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환호하여라. 올곧은 이들에게는 찬양이 어울린다”(시편 33,1)라고 적힌 두루마리를, 오른쪽에는 솔로몬왕이 “저희의 하느님, 당신께서는 어지시고 진실하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만물을 자비로 통솔하십니다”(지혜 15,1)라고 적힌 두루마리를 펴는 모습이 보입니다. 하단부에는 나무와 꽃들이 만발한 천국에 노인 두 명이 있습니다. 왼쪽(하느님 시각의 오른쪽)은 아브라함, 오른쪽은 야곱입니다. 그들은 금색이 어우러진 옥좌에 앉아서 회백색의 천을 들어 올려 수많은 영혼을 품 안에 거두고 있습니다. 그 영혼들은 밖을 바라보고 있으며 의로운 영혼들입니다. 아랫부분 가운데에는 하체만을 가린 채 긴 붉은 십자가를 어깨에 걸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 처형을 받고,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천국을 허락받은 착한 도둑입니다. 이 이콘은 마치 입체파 그림처럼 여러 개의 의미와 시선을 한 작품 안에 담아 총체적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품 2) 성모님의 얼굴(일부) : 템페라, 94.5 x 80.3cm, 14세기, 성 클레멘스 성당, 오흐리드, 마케도니아. 4. 눈동자에 반사하는 흰 점은 찍지 않는다 이콘은 눈동자에 반사하는 흰점을 찍지 않습니다. 반사하는 반사광을 사용한다면 사실적이고 좀더 생생한 느낌을 줄 수 있는데도 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탈물질화를 다룬 장에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실제 모습을 사실 그대로 표현하지 않는 이유도 있지만, 하느님 세계에서는 하느님의 빛만이 존재한다는 성경 내용이 이콘 세계에도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빛은 물리적인 빛, 즉 태양 빛이나 전기나 불빛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공간과 관계없이 두루 퍼져 있습니다. 또 빛은 그의 창조물 모든 곳을 비추기 때문에 화면 내부에는 그림자가 생길 수 없게 됩니다. 하느님의 도성에서는 하느님 빛만이 존재하기에(묵시 21,23 참조) 그림자가 없으며, 인물 눈동자에도 흰점을 찍지 않습니다. 이렇듯 이콘은 모든 시간이 모여있다는 개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치 그리스도의 재림 때와 같이 전 인류가 동시간(同時間)에 하느님과 함께합니다. (작품 2) (작품 3) 천장화 : 모자이크, 5세기, 성 요한 세례당, 피렌체, 이탈리아. 내용은 최후의 심판이며 온 우주의 창조자는 예수님으로 표현되어 있다. 5. 이콘의 배치 교회 역사 안에서 성화에 대한 논란 후 이콘이 용인되면서 서방교회에서는 주로 가르침이나 교육적인 목적으로 이콘이 쓰였습니다. 동방교회에서는 성인 성녀를 함께 현존시킴으로써 공동체의 증인으로, 또 공동체 삶에 동참하고 장려하려는 의도로 그려졌습니다. 또 교회 벽을 장식함으로써 전례에 나타나는 사실들, 즉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제대 위는 하늘을, 제대 밑은 땅을 나타냅니다. 하늘과 땅, 하느님과 인간의 만남인 전례 안에서 특히 미사 중에 성모 마리아와 성인들을 현존시킴으로써 인간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 보호 안에 들어가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물의 창조자(Pantokrator)로 천장화에 나타냈습니다. 그분은 만물을 지배하시는 권위자로 군림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고 받아들이시는 구세주로서 축복하는 모습입니다. (작품 3) 김형부 마오로cpbc2024.04.24
[김광숙 노엘라의 생명의 빛을 찾아서] 41. 모래사장 / 자연생태김광숙 노엘라(국제가톨릭형제회 AFI) “고향~”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강변에 끝없이 펼쳐진 하얀 모래사장이다. 모래사장 가장자리는 포플러 버드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고, 동네 민물이 강으로 흘러들어 가는 길목에는 송사리 떼들이 신나게 놀고 있었다. 어른들은 모래사장에 큰 우산을 받쳐놓고, 누워서 모래찜질을 한다. 아이들은 백사장에서 놀다가 힘들면 버드나무 숲, 샛강에서 물놀이를 한다. 강변 모래사장은 우리의 쉼터였고, 놀이터였다. 홍수 나는 여름이면 이쪽 끝과 저쪽 끝이 보이지 않던 강이 겨울이면 온 강바닥이 모래사장으로 덮인다. 모래톱에 덮여서 강물은 어디에 붙어있는지 보이지 않는 샛강처럼 된다. 이런 모습을 눈만 뜨면 평생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4대강 사업으로 수천, 수만 톤의 모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날마다 모래를 실어나르던 수십 개의 트럭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니던 그 모습이 떠오르면 가슴이 미어진다. 다시 몇만 년, 몇억 년의 세월이 흘러야 모래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꼬미 마을의 자산 중의 자산이었던 그 모래사장을 잃고 몇 년간 분노했었다. 수만 년 동안 강과 함께 살아온 모래들의 아우성이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모래를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 바람과 비, 천둥과 번개, 홍수와 가뭄, 서리와 이슬 등 자연이 만든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인간이 저지르고야 말았다. 모래사장이 없으니 새들이 앉아서 쉴 쉼터로 근근이 찾은 것이 수문보 난간이다. 이제 더 이상 밀려날 곳이 없으니 여기는 그들의 자리라고 표시라도 해둔 듯이 하이얀 새똥으로 영역 표시를 해두었다. 안타깝기도 하고, 마음이 짠하기도 하다. 보가 생긴 후, 몇 년이 지났다. 녹조라떼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환경단체들이 강력히 요구하니 수문을 열어주었다. 시간이 흘러 흘러 두어 군데 모래톱이 생겼다. 모래톱 하나는 하트 모양으로 생겼다. 그 위에서 새들도 옹기종기 모여서 “이것이 웬 득템이냐”는 듯 여기저기를 날아다니며 기쁘고 즐거워서 축제를 하는 듯했다. 모래를 다시 바라보는 그 마음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햇살과 모래가 어울려 은빛, 황금빛으로 빛나는 광경을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속에도 사랑의 꽃이 피어올랐으리라. 어느 날, 쓰라린 가슴을 안고, 그 옛날 모래의 흔적이라도 발견할 수 있을까 싶어서 강가로 갔다. 물가로 갈려면 모래 속으로 발이 폭폭 빠져 들어가는 긴 모래사장을 타박타박 걸어가야 해서 그 길이 지루하게 느껴졌는데, 이제는 참으로 그리운 풍경이 되었다. 약간의 풀숲길을 지나면 바로 물가다. 하얀 모래는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었고, 파쇄석처럼 생긴 돌들 사이에 진흙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모래가 그리워서 그나마 맨질맨질한 돌 몇 개를 주워왔다. 잠시 강을 바라보고 앉아 있노라니, 눈물이 그냥 줄줄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아름다운 자연과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구나! 지금도 금빛 모래사장을 생각하면 눈가에 이슬이 절로 맺힌다. 수만 년 동안 자연이 만들어 낸 그 모래와 애도의 시간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자연을 빼앗긴 트라우마도 생길 수 있음을 느끼게 하는 시간이다. 이제 꼬미 백사장 모래한테서 배우는 시간이 사라졌다. 한때는 발전과 물질적 진보가 우리의 희망이고, 꿈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덜 일하고, 덜 소비하고, 덜 서두르는 생태적 회심으로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오늘도 ‘덜하는’ 것으로 회심하는 날이다. “하느님께서 솔로몬에게 지혜와 매우 뛰어난 분별력과 넓은 마음을 바닷가의 모래처럼 주시니.”(1열왕 5,9)cpbc2023.10.19
[생활 속의 복음] 연중 제22주일-깊이 있는 사랑 생각에도 깊이가 있듯이 사랑에도 깊이가 있습니다. 사랑이 깊을수록 상대를 위해 희생은 물론 고통과 죽음까지도 감수하려는 마음이 큽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고통을 감내하기 때문에 부모의 사랑은 하늘만큼 높고 바다같이 깊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깊이 있는 사랑을 실천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인간, 그것도 죄지은 인간들의 구원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시고 십자가 수난과 죽음의 길을 가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스승의 길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당신 계획을 미리 알려주십니다. 당신이 주로 활동하셨던 갈릴래아를 떠나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가시면서 거기서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했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큰 충격과 혼란에 빠집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과거 다윗과 솔로몬 임금처럼 군사적 승리와 정치적 성공을 이루는 메시아를 기대해 왔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을 붙들고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립니다. 이 반응에는 스승에 대한 충심도 분명 담겨 있었을 텐데, 예수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매몰차게 내치십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여기서 사탄은 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만나셨던 그 사탄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때 사탄은 물질로, 권력과 영화로 백성을 휘어잡고, 자신의 명예와 이익을 위해 하느님을 도구처럼 이용하라고 예수님을 유혹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악마의 제안이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보시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방패로 삼아 모든 유혹을 이겨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승리와 성공의 메시아 상을 고집하면서 십자가를 거부하는 것은 당신의 구원 계획을 방해하려던 사탄의 유혹과 같다고 여기시면서 단호하게 내치신 것입니다. 세상은 고통 없는 사랑, 십자가 없는 영광을 원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은 달라야 합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고통과 십자가를 회피하려는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고통마저 감수하는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우리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산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제2독서) 이 길은 예레미야 예언자가 갔던 길처럼 힘들고 험할 수도 있습니다.(제1독서) 하지만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예레 20,11) 우리 곁에 계시기에 용기를 내서 갈 수 있는 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교황 선출 다음 날 추기경단과 함께 거행한 미사에서 하셨던 강론 말씀을 떠올려 봅니다. “우리가 십자가 없이 걷고, 십자가 없이 뭔가를 짓고, 십자가 없이 그리스도를 고백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제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세속적이면 우리는 주교일 수도, 사제일 수도, 추기경일 수도, 교황일 수도 있지만, 주님의 제자는 아닙니다. 손희송 주교 (서울대교구 총대리) cpbc2023.08.25
다윗 시대부터 1000여 년에 걸쳐 정리된 경전[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6)구약 성경 형성 과정 구약 성경은 다윗 시대부터 구약 말기에 이르기까지 1000여 년에 걸쳐 여러 사료와 자료가 수집 정리돼 편집한 경전들이다. 사진은 이스라엘 쿰란 공동체에서 발굴한 히브리어 성경 두루마리. 구약 성경의 세계에 빠져들기에 앞서 먼저 이 경전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간략히 살펴봅시다. 구약 성경은 다윗 시대부터 구약 말기에 이르기까지 약 1000여 년에 걸쳐 여러 사료와 자료가 수집 정리되고, 수정 첨가하면서 편집한 경전들입니다. ‘토라’인 모세 오경뿐 아니라 경전 대부분은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예로, 탈출기에는 기원전 1000년께 다윗 시대의 법률이 수록돼 있는가 하면, 기원전 500년께 바빌론 유배기의 법률도 포함돼 있습니다. 또 시편에 수록된 150편의 시 가운데 가장 오래된 시와 제일 늦게 쓰인 시는 800년이라는 시차를 보여줍니다. 이는 구약 성경이 이스라엘 민족의 장구한 역사를 반영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구약 성경은 시대적으로 크게 세 단계에 걸쳐 형성됐습니다. 첫째, 기원전 1000년께부터 기원전 750년까지로 이스라엘 왕정 시대입니다. 이스라엘을 통일한 왕은 다윗입니다. 그리고 다윗을 이은 솔로몬 왕 때에 이스라엘 왕국은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솔로몬 왕 시기인 기원전 950년께 이스라엘 남부 유다 지역에서 뛰어난 학자들이 그때까지의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정리했습니다. 족장 시대부터 구전된 전승들을 체계적으로 글로 정리한 것이지요. 이들은 자신들이 쓴 사료 안에서 하느님의 이름을 “야훼”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이를 ‘야휘스트 사료’라 부르며, 알파벳 ‘J’로 표기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으로 멸시했던 이방 신들을 섬겼고, 백성에게 과도한 세금을 징수하고, 불공평한 부역을 강요하는 폭정을 펼쳤습니다. 이에 북쪽 10개 지파와 남쪽 2개 지파가 지역 갈등을 겪었고, 백성들은 왕에게 불만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래서 솔로몬 사망 후 이스라엘 민족은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왕국 유다로 쪼개졌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두 왕국으로 갈라진 뒤 북 왕국 이스라엘은 기원전 9~8세기 다시 한 번 자기 조상의 역사를 정리해 사료를 만듭니다. 이 사료를 엮은이들도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사료에서 하느님의 이름을 “엘로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이들 사료를 ‘엘로히스트 사료’라고 하며, 약어 ‘E’로 표기합니다. 둘째, 기원전 750년께부터 기원전 500년까지로 남북 왕국 패망과 바빌론 유배 시대입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은 기원전 721년 아시리아에 패망했습니다. 또 기원전 587년 남 왕국 유다가 바빌로니아에 멸망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층 인사들은 모두 바빌론으로 끌려가 유배 생활을 했습니다. 북 왕국이 망하기 얼마 전부터 바빌론 유배 시기까지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는 예언자들이 나타나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대였습니다. 구약 성경 예언서들의 주요 내용이 이 시대에 설교 되거나 기록됐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상ㆍ하, 열왕기 상ㆍ하의 주요한 줄거리도 이 시대에 엮어졌습니다. 특히, 북 왕국 이스라엘이 패망한 뒤 학자들이 남 왕국 유다로 피난 와서 기원전 650년께 율법을 새로이 정리했고, 그 내용을 모세의 유언으로 꾸몄습니다. 바로 ‘신명기’(申命記)입니다. 한자로 ‘율법을 펼쳐놓은 책’인 신명기는 헬라어로 ‘Δευτερονμιον’(데우테로노미온), 라틴어로는 ‘Deuteronomium’(데우테로노미움)이라고 하는데 우리말로 ‘두 번째 법’이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이 사료를 쓴 이들을 ‘신명기계 학파’라 하고 약어 ‘D’로 표기합니다. 신명기계 학파는 신명기뿐 아니라 앞서 말한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열왕기를 저술했습니다. 이 책들을 ‘신명기계 역사서’라고 합니다. 신명기계 학파는 이스라엘 민족의 멸망 원인을 찾으려 이 책들을 기록했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가르침 곧 ‘하느님의 율법’을 충실히 살지 않아서 자신들이 멸망했다는 것을 민족들에게 일깨우고 있습니다. 또 기원전 587년 남 왕국 유다 멸망 후 바빌론으로 끌려간 예루살렘의 사제(제관)들은 유배지에서 깊은 성찰을 하고 많은 공부를 하며, 이스라엘 민족의 여러 사료를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 나름의 관점에서 새로운 사료도 엮었습니다. 특히 예루살렘 성전 파괴로 더는 성전에서 하느님께 제사를 드릴 수 없어서 제관들의 제의에 관해 자세히 기록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사료를 ‘제관계 사료’라 하며 약어 ‘P’로 표기합니다. 셋째 단계는 기원전 500년부터 기원전 200년까지 바빌론 유배 이후 시대입니다. 기원전 5세기 중반 에즈라와 느헤미야 시대 때 오늘날 우리가 읽고 있는 토라 곧 모세 오경이 저술됐습니다. 이 시기 율법 학자들이 야휘스트와 엘로히스트 사료에 신명기께 사료를 덧붙인 후 제관계 사료를 합해 우리가 구약 성경에서 보고 읽고 묵상하는 모세 오경을 편찬했습니다. 또 바빌론 유배 시대 이후 예언자들의 전승들이 정리돼 예언서들로 편집됐습니다. 그리고 시편과 지혜서들도 다듬어졌습니다. 이러한 작업들은 대략 기원전 200년께 마무리됩니다.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의 유다교 성경,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구약 성경의 제1 경전이 편찬된 것입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01.03
[이소영 평화칼럼] 가장 아름다운 노래이소영 베로니카(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때때로 붙잡고 있던 옷깃을 놓친 것 같은, 세상이 나를 밀쳐낸 듯 느껴지는 시기가 있다. 그해 겨울이 내겐 그러했다. 당시 누군가 「시편」을 읽어보라 권했다. 그걸로도 마음이 어떻게 안 되거든 「욥기」를 찾아 읽으라고, 거기서 필요로 하는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거라 했다. 그날 밤 잠들기 전 「시편」을 펼쳤다. 그런데 읽다가 ‘저를 미워하는 자들’이 등장하는 구절들에 다다르면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누구나 저마다의 입장과 서사가 있을진대 자신은 가련한 피해자로, 상대방은 덤불 속 사자 같은 가해자로 묘사하며 주님이 그들을 짓부수어 주십사 청하는 것이 과연 옳은 기도일까. 성경을 제대로 공부해보지 못한 자의 불경한 의문일 수도 있겠으나, 사람들이 자신을 잡아 죽이려 몰려드는 와중에조차 한 시종의 잘린 귀에 손대어 고쳐주셨던 주님이 “저를 적대하는 자들은 수치로 옷 입고 창피를 덧옷처럼 덮게 하소서”(시편 109,29)의 저주 섞인 탄원을 듣고 어떤 심정일지 싶었다. 이어서 「욥기」를 읽었다. 신앙이 얕고 신학에 무지한 나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위안을 얻을 수 없었다. 신도, 신의 아들도 아닌 인간 욥이 올곧음을 시험당하며 받은 무시무시한 고통이 돌덩이처럼 내면을 짓누르는 듯했다. 절대자는 그간 내게 감미로운 음악과 따사로운 볕처럼 오셨고, 별들과 나무들 안에 계셨다. 그렇다면 “진창에다 내던지시니 나는 먼지와 재처럼 되고 말았네”(욥기 30,19)의 저 차갑게 돌아선 단단한 등은 누구의 것일까. 그렇게 가위눌린 마음으로 읽다 페이지를 잘못 넘겨 「아가」의 구절에 닿았다. “나의 연인이 문틈으로 손을 내밀자 내 가슴이 그이 때문에 두근거렸네. 나의 연인에게 문을 열어주려고 일어났는데 내 손에서는 몰약이 뚝뚝 듣고 손가락에서 녹아 흐르는 몰약이 문빗장 손잡이 위로 번졌네. 나의 연인에게 문을 열어주었네. 그러나 나의 연인은 몸을 돌려 가 버렸다네. 그이가 떠나 버려 나는 넋이 나갔네. 그이를 찾으려 하였건만 찾아내지 못하고 그이를 불렀건만 대답이 없었네. 성읍을 돌아다니는 야경꾼들이 나를 보자 나를 때리고 상처 내었으며 성벽의 파수꾼들은 내 겉옷을 빼앗았네. 예루살렘 아가씨들이여 그대들에게 애원하니 나의 연인을 만나거든 내가 사랑 때문에 앓고 있다고 제발 그이에게 말해 주어요.”(아가 5,4-8) 붙잡아주던 손이 사라진 듯한, 이유 모른 채 버려진 것 같은 순간이 이따금 있다. 누구에게나 그럴 것이다. 종교를 갖고 있든 그렇지 않든. 「아가」는 이렇듯 캄캄한 순간을 절대자가 노여워 나를 벌하거나 진창에 내던지는 장면으로 묘사하지 않은 듯했다. 좋아하던 이가 문 앞에서 몸을 휙 돌려 가버려 어쩔 줄 모르는, 사랑 때문에 애달파 앓는 마음으로 표현한 것 같았다. 잃은 게 아니라 잠시 앓는 것. ‘밀당’을 알지 못하는, 상대가 장난스레 밀어내고 숨어버리면 그대로 엎어져 울음 터뜨리는, 아직 서툴고 미숙한 사랑의 마음. 혹시 무얼 잘못해서 나를 떠난 걸까 싶어 마음이 풀처럼 시든 이에게 짓궂은 연인마냥 불쑥 다시 나타나려고 잠시 저 모퉁이에 숨어 기다리고 계신가보다. 그렇게 상상해 보았다. 그 상상은 욥이 마침내 주님으로부터 양 만사천 마리와 낙타 육천 마리, 겨릿소 천 쌍과 암나귀 천 마리를 선사 받던 장면보다 몇 배나 위로가 되었다. 신성을 지나치게 주관화한 것 아니냐 할지 모르겠다. 성냥팔이 소녀가 켠 성냥불의 환상처럼 그건 네가 그려낸 너만의 하느님이라고.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믿으려 한다. 솔로몬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 「아가」에서 그러셨듯 그분은 ‘노루처럼, 젊은 사슴처럼 되어’ 서둘러 다시 오실 것임을 말이다. 내게, 그리고 이 순간 두려움과 고통 중에 있을 그대들에게. cpbc2023.09.18
귀향한 유다인들, 성전 짓고 믿음을 새롭게[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23) 귀환과 예루살렘 재건 에즈라는 예루살렘 재건 시기 유다교를 율법 중심으로 개혁한 사제이다. 신바빌로니아는 키루스 임금이 이끄는 페르시아인들의 침입으로 기원전 539년 멸망합니다. 키루스 임금은 티그리스 강가 오피스(오늘날 바그다드)에서 단 한 번의 승리로 신바빌로니아를 무너뜨리고 대 제국을 건설합니다. 어떤 저항도 받지 않고 바빌론으로 입성한 그는 복속된 백성의 지지를 얻기 위해 그들의 전통을 존중하고 우호 정책을 폅니다. 키루스 임금은 기원전 538년 칙령을 반포하고 유다인들을 해방시킵니다. 그러나 해방령에도 불구하고 많은 유다인은 그대로 바빌론에 남아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고 집도 있고 생계를 꾸릴 일자리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아무런 간섭없이 자유롭게 신앙생활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과 달리 하느님께 대한 신앙에 충실했던 사람들과 고향을 그리워한 이들은 고국으로 귀환합니다. 유다 제후 세스바차르는 키루스의 명을 받고 유다인 4만 2360명, 그들의 남녀 종 7337명, 음악가 200명 등 총 4만 9897명을 바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옵니다. 그리고 그는 키루스 임금으로부터 예루살렘 성전 기물도 되돌려받았습니다.(에즈 5장)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배자 중에는 즈루빠벨, 예수아, 느헤미야, 스라야, 르엘라야, 모르도카이, 빌산, 미스파르, 비그와이, 르훔, 바아나가 있었습니다.(에즈 1─2장) 귀환자의 지도자 역할을 한 이는 바로 즈루빠벨이었습니다. 그는 고국에 돌아온 이들과 곧바로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착수합니다. 이 성전은 기원전 515년에 겨우 준공해 봉헌합니다. 그것도 하까이와 즈카르야 예언자가 질타하며 독려했기에 마무리될 수 있었습니다. 성전 건립 공사가 더뎠던 까닭은 사마리아 귀족들의 반대로 페르시아 키루스 대왕의 뒤를 이은 크세르크세스 1세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가 예루살렘 성전 재건 공사를 중지시켰기 때문입니다.(에즈 4,6-7; 23-24) 그러다 페르시아 다리우스 임금이 바빌론 문서고에서 키루스의 칙령을 발견한 후 성전 재건 공사를 다시 시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배에서 돌아온 이들과 유배를 가지 않고 그대로 고국에 남아 있던 이들 간의 땅 소유 문제로 충돌이 잦았습니다. 남 왕국 유다를 멸망시킨 신바빌로니아는 사제와 귀족, 지식인, 기능인들을 바빌론으로 끌고 간 후 그들의 땅을 유배 가지 않은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줬습니다. 50년이 지난 후 고향으로 되돌아온 이들이 땅 소유를 주장하니 분쟁이 잦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고국에 남아있던 유다인들은 다른 종족들과 혼인해 이교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유배지에 끌려가 냉대를 받으면서도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지켜온 귀환자들에게 이들은 이방인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봉헌한 성전은 솔로몬 성전만큼 화려하진 못했지만, 이스라엘 민족의 중심이 되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이 성전을 ‘제2 성전’이라 부릅니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이 이스라엘 민족의 첫 번째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제2 성전 시대’라고 표기할 경우는 제2 성전을 봉헌한 기원전 515년부터 로마군에 의해 성전이 파괴된 서기 70년까지를 지칭합니다. 페르시아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임금의 술 시중 담당이었던 느헤미야가 기원전 445년 유다의 제후 곧 지방관이 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야훼께서 위로하시다’는 뜻인 그의 이름처럼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민족의 위로가 되어줄 예루살렘 재건에 힘씁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벽을 52일 만에 다시 쌓고 요새화했습니다. 그는 또 예루살렘 성 안에 사는 유다인들의 안전한 생활을 위해 규칙을 제정해 사회 개혁을 단행하고, 백성들에게 살 집을 마련해 주기 위해 인구 조사도 시행했습니다.(느헤 7장, 11장 참조) 느헤미야는 약 10년 동안 예루살렘을 통치합니다. 그후 페르시아로 갔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예루살렘 재건 시기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에즈라입니다. 사제이며 율법학자인 그는 율법 중심으로 유다교 개혁을 단행합니다. 느헤미야가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를 재조직했다면 에즈라는 유다교 쇄신을 주도했습니다. 에즈라는 느헤미야의 후원으로 공적인 신앙 집회를 열고 많은 유다인들을 모아놓고 율법을 낭독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말을 잊어버린 이들을 위해 협력자들이 아랍어로 통역해 주었습니다. 에즈라는 온종일 이스라엘 민족에게 예루살렘 성전에서 율법을 근거로 하느님의 백성다운 공동체를 구성해야 한다고 울면서 호소했습니다. 그리고 이민족과의 혼인을 금하도록 설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즈라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이민족 아내를 내보고 안식일과 십일조를 열심히 지키기로 약속했습니다. 이때부터 유다인들은 국가도 아니고 제의 공동체도 아닌 오직 율법을 충실히 지키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형성하게 됩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에즈라를 ‘제2의 모세’라고 칭송합니다. 신앙적으로 완전히 죽었던 이스라엘 민족을 율법을 통해 다시 일어서게 했다고 했기에 이렇게 부른 것입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05.01
의인 욥의 십자가가 갖는 의미는[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46) 욥기 욥기가 제시하는 고통에 대한 긍정적 자세는 ‘십자가를 통한 구원’이라는 그리스도교 교의를 잘 설명해 준다. 레오 보나, ‘욥’, 유화, 1880년, 오르세 미술관, 파리. 욥기의 히브리어 유다교 타낙 성경 명칭은 ‘욥’이며, 성문서로 분류돼 있습니다. 히브리어 ‘욥’은 우리말로 ‘미움받다’, ‘증오하다’는 뜻으로 하느님께 저항하는 욥의 모습과 그로 인해 시련을 겪는 욥의 처지를 반영한 이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욥은 ‘돌아오다’는 뜻의 아람어 ‘아바’에서 유래하기도 해 ‘하느님께 돌아온 사람’이라는 뜻을 지니기도 합니다. 또 욥기를 헬라어 구약성경 「칠십인역」은 ‘ΙΩΒ’으로,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JOB’이라 표기합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펴낸 가톨릭 「성경」은 ‘욥기’라고 표기하며 가톨릭 성경 분류표에 따라 ‘시서와 지혜서’에 포함해 놓았습니다. 욥기는 하느님께 축복을 받은 의인이라고 여겨지지는 흠 없는 사람인 욥이 아무 이유 없이 사탄의 시험대에 올라 갖은 시련을 겪다 하느님과의 대화를 통해 인간의 지혜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신비를 들은 후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 모든 것을 이전 이상으로 회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욥기는 시련을 겪는 욥(1─2장), 욥과 테만 사람 엘리파츠, 수아 사람 빌닷, 나아마 사람 초파르와의 대화(3─31장), 부즈 사람 바라크엘의 아들 엘리후의 연설(32─37장), 주님과 욥의 대화(38,1─42,6), 모든 것을 회복하는 욥(42,7-17) 다섯 부분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욥기가 고통을 겪는 한 의인에 대한 고대 민중 설화를 토대로 엮어진 책이라고 봅니다. 이 고대 민중 설화는 기원전 2000년대 말기 근동 지방의 현인들 사이에 말로 전승되다 기원전 11~10세기 사무엘-다윗-솔로몬 시대 때 히브리어로 옮겨졌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러다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가 유배 생활을 하던 중에 유다인들 중 어떤 이가 이 민중 설화를 토대로 당시 잘 알려진 수난받는 의인 욥 이야기(에제 14,14. 20 참조)를 토대로 욥기를 엮었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욥기는 산문체와 운문체, 문화 배경과 종교 개념이 다양하게 드러나 단 한 번에 저술되지 않았습니다. 그 예로 욥기에는 하느님을 ‘야훼’ ‘엘’ ‘엘로하’ ‘샷다이’ ‘아도나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하게 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욥기가 적어도 세 과정을 거쳐 엮였을 것이라고 봅니다. 먼저 욥의 이야기가 말로 전해져 내려왔고, 다음으로 이 민중 설화를 다른 이야기와 합치는 중간 편집 단계를 거칩니다. 이 과정에서 욥의 시련 이야기에 욥과 세 친구의 대화, 하느님과 욥의 대화, 욥기 28장의 ‘지혜 찬가’가 추가됐으리라 추정합니다. 끝으로 최종 편집자가 엘리후의 연설을 삽입해 욥기를 세상에 내놓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성경학자들은 이렇게 욥기가 엮어진 시기를 기원전 5~1세기 사이였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럼 욥기의 최종 편집자는 누구일까요? 성경학자들은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가 유배생활을 하던 유다인 중 예레미야의 고백(예레 11,18-20; 12,1-4)을 잘 알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불렸던 시편이나 유다 임금들의 궁전에서 전해지던 잠언들을 외우고 있었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욥기의 저자가 예레미야의 제자일 것으로 추측합니다. 욥기는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해방돼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배자들이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작품입니다. 욥기는 모세오경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유다인들에게 무엇이 지혜인지 가르쳐 주는 책입니다. 욥기의 핵심 주제는 ‘하느님과의 진정한 관계성’입니다. 욥은 하느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시련을 당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 시련을 받았습니다. 욥기가 제시하는 고통에 대한 긍정적 자세는 ‘십자가를 통한 구원’이라는 그리스도교의 교의를 잘 설명해 줍니다. “그리스도는 고통을 없애러 오신 분이 아니라 어떤 고통 중에도 우리와 함께 계심으로써 그 고통을 극복하게 하시고, 결국 고통을 넘어서는 구원으로 이끄신다는 종말론적 희망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김혜윤 수녀, 「시서와 지혜서」 143쪽) 욥기는 하느님을 창조주이며 역사의 주님으로 고백합니다. 또한 욥기는 하느님의 권능이 모든 피조물을 향한 각별한 배려와 사랑으로 드러난다고 가르쳐줍니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축복과 피조물들을 향한 선의를 알아채지 못합니다. 욥기는 인간의 지식이 제한적이고 단편적이며 항구성이 없다는 것을 깨달으라고 촉구합니다. 더불어 지혜는 오직 하느님께 속해 있고 인간의 지식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가르쳐줍니다. 성경학자 김정훈 신부는 욥기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욥은 시련을 극복하면서 솔직하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하느님께 드러내고, 하느님 앞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 결과적으로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신뢰는 인간을 더욱 굳건하고 확실한 믿음으로 이끌었으며,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변함없는 신앙은 세상과 역사의 현장에서 인간을 하느님의 동반자가 되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시서와 지혜서」 46쪽)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