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느님 경외함을 바탕으로 한 지혜와 처세술 담겨[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48) 잠언 잠언은 ‘하느님을 경외함’을 지혜의 근본이며 지혜가 추구하는 교육의 근원이라고 가르칩니다. 따라서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도덕적이고 종교적으로 전인적 사람이 되라고 권고합니다. 성년식을 치르는 한 유다인 소년이 토라에 입맞춤을 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잠언(箴言)은 ‘가르쳐서 훈계하는 말’ 또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교훈이 되고 경계가 되는 짧은 말’을 뜻합니다. 구약 성경의 제1경전인 히브리어 타낙 성경은 잠언을 ‘미쉴레 쉘로모’라고 하며 ‘성문서’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우리말로 ‘솔로몬의 잠언’이라는 뜻입니다. 헬라어 구약성경 칠십인역은 히브리어 성경 제목을 그대로 옮겨 ‘파로이미아이 살로몬토스’(Παροιμιαι Σαλωμωντοs)라고 합니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도 마찬가지로 ‘파라볼레 살로모니스’(Parabolae Salomonis)라고 표기합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우리말 성경은 ‘잠언’이라고 표기하고, 교회 전통에 따라 ‘시서와 지혜서’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잠언은 “이스라엘 임금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잠언”(1,1)으로 시작합니다. 지혜로운 솔로몬 임금을 잠언의 저자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솔로몬 임금을 잠언과 코헬렛, 지혜서, 아가의 저자로 등장시킵니다. 성경은 잠언의 저자 솔로몬을 ‘이스라엘 임금’과 ‘다윗의 아들’로 소개합니다. 유다인들에게 있어 이스라엘 임금은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임금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중개자로서 ‘하느님 신탁의 전달자’입니다.(잠언 16,10-15) 또 잠언의 저자가 ‘다윗의 아들’이라고 명시함으로써 세속적인 영역에만 머물러 있을 수도 있는 내용을 담은 잠언에 일종의 신성을 부여합니다. 다윗은 ‘주님의 기름 부음 받은 이’로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계약, 그리고 그분께서 당신 백성에게 내리신 약속을 상기시킵니다. ‘다윗의 아들’의 권위 아래 선포되는 잠언의 지혜는 매우 종교적인 신학을 통해 특히 이스라엘의 고유한 유일신 사상이 근본 바탕을 이룸으로써, 구약 성경의 잠언은 다른 잠언들과 구별된다.(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주석 성경」 1708-1709쪽 참조) 잠언의 저자로 솔로몬을 내세우는 이유는 그가 통치자의 자질과 문학의 재질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금언을 지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1열왕 3,3-14. 16-28; 집회 47,14-17) 또한 잠언 내용 가운데 3개의 묶음에 ‘솔로몬의 잠언’이라는 표제가 제시돼 있어서입니다.(잠언 1,1; 10,1; 25,1) 그렇다고 해서 솔로몬 임금을 잠언 전체는 물론이고 이 모음들의 실질적인 저자 또는 편집자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아울러 솔로몬 임금이 잠언의 핵심 부분을 직접 지었거나 일부를 수집했을 개연성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이스라엘의 지혜 문학이 솔로몬 임금을 중심으로 본격 시작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이에 시편을 다윗에게 귀속시키듯이 솔로몬 역시 지혜 문학의 대부로서 잠언의 일부 또는 전체의 저자로 불릴 수 있는 정당성을 지닙니다. 잠언은 총 31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머리글(1,1-7)과 나쁜 친구들과 낯선 여자를 삼가라는 훈계(1,8─9,18), 376개에 이르는 도덕적 삶에 관한 솔로몬의 잠언집(10,1─22,16), 현인들의 첫 번째 잠언집(22,17─24,22), 현인들의 두 번째 잠언집(24,23-34), 히즈키야 임금의 신하들이 수집한 솔로몬의 두 번째 잠언집(25─29장), 마싸 사람 아구르의 잠언들(30,1-14 ), 수(數) 잠언(30,15-33), 마싸 임금 르무엘의 잠언(31,1-9), 훌륭한 아내에 대한 찬양(31,10-31) 9개의 잠언 묶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잠언의 내용은 의인은 복을 받고 악인은 벌을 받는다는 인과응보의 원칙을 기반으로 세상을 성공적으로 사는 처세와 삶의 비결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도덕적이고 종교적으로 지혜로운 ‘전인적 사람’이 되라고 잠언은 권고합니다. 잠언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하느님을 경외함’은 지혜의 근본이며 지혜가 추구하는 교육의 근원입니다. 지혜는 사람이 지녀야 할 자질로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지혜는 인간을 악과 죽음에서 보호하고, 하느님을 경외함과 거기에서 나오는 모든 좋은 것으로 인도합니다.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일정한 도덕적 바탕이 요구됩니다. 곧 마음의 준비를 갖추고 주의를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하느님을 믿고 주님의 지혜를 얻어 생명의 길을 선택하고 죽음에 이르는 내리막길을 피하라고 권고합니다. 그리고 속임수와 편법으로 성공하려 하지 말고, 부지런히 일하며 올바르게 행동해 후회 없는 삶을 살라고 당부합니다. 다시 말해 잠언은 지혜는 하느님께 속하고 하느님께서 당신 지혜로써 이 세상을 만드셨으니, 그 지혜의 길을 따라야 생명에 이르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잠언은 시편처럼 구약 성경 거의 모든 역사를 통해 형성되고 다듬어지고 전승됐습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잠언의 뿌리를 이스라엘 공동체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구두로 전승돼 오던 조상들의 지혜를 수집해 기록해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 바로 잠언이라고 합니다. 이 수집 작업은 솔로몬을 중심으로 왕정시대 때부터 시작됐지만, 바빌론 유배 이후 31장의 잠언으로 편집됐다는 것이 일반 견해입니다. 잠언의 내용은 가톨릭 신앙에도 반영됩니다. 교회 이렇게 선포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자제력과, 진리와 선을 향해 자신을 다스릴 능력을 주시는 창조주의 지혜와 선에 참여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954항)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11.08

모든 형태의 우상숭배와 물질주의를 단죄하다[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51)지혜서 지혜서는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충실성을 드러내는 책이다. 그러면서 지혜서는 우상 숭배는 사람들의 삶을 부패시키기 때문에 우상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야콥 빌렘스 데 베트 1세, ‘우상들에게 제물을 바치는 솔로몬’, 1640년께, 유화, 릴미술관, 프랑스. 지혜서는 구약 성경 제1경전인 타낙 성경에는 포함되지 않은 책입니다. 지혜서 외에도 토빗기, 유딧기, 마카베오기, 집회서, 바룩서, 에스테르기 일부와 다니엘서 일부가 제1경전에 없습니다. 제1경전에 없으나 가톨릭교회 구약 성경에 포함된 책들을 제2경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유다교 구약 성경은 제1 경전을 토라, 예언서, 성문서로 구분합니다. 토라는 구약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모세 오경을 말합니다. 예언서는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열왕기 등 전기 예언서와,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에제키엘서, 12 소예언서 등 후기 예언서를 말합니다. 그리고 토라와 예언서에 속하지 않는 모든 책(시편, 욥기, 잠언, 룻기, 아가, 코헬렛, 애가, 에스테르기, 다니엘서, 에즈라기. 느헤미야기, 역대기)을 성문서로 분류합니다. 지혜서는 헬라어 구약성경에서 ‘Σοφια Σαλωμων’(소피아 살로몬)이라 합니다. ‘솔로몬의 지혜’라는 뜻이지요. 서기 2세기부터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지혜서는 거룩한 책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Sapientia’(사피엔시아)라고 표기합니다. 가톨릭교회는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년)에서 신ㆍ구약 성경 정경을 확정하고 지혜서를 ‘시서와 지혜서’에 포함시킵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성경」은 ‘지혜서’라고 표기하고, 교회 성경 분류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유다교는 전통적으로 솔로몬을 지혜서의 저자라고 합니다. 지혜서에 ‘솔로몬’이라는 이름이 직접 나오지 않지만, 내용상 유다교에서 ‘현인’ 그 자체로 여겨졌던 이 임금이 많은 부분을 말하는 것으로 돼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서는 솔로몬이 하느님께 청해 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솔로몬은 태어날 때에는 일반인들과 똑같았지만(지혜 7장), 하느님께 기도를 올리자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지혜가 그에게 주어졌습니다.(지혜 9장, 1열왕 3장 참조) 그러나 성경학자들은 헬라어에 능통한 유다교 전통을 지닌 자라고 추정합니다. 그리고 성경학자들은 고대 로마의 아우구스투스가 이집트를 점령한 기원전 30년부터 시작되는 로마 제국 시대 때 알렉산드리아 유다인 공동체에서 지혜서가 저술됐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 이유는 지혜서 저자가 유다교와 헬레니즘 문화를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구약 성경을 인용할 때도 헬라어로 번역된 「칠십인역」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지혜서 저자는 그리스 철학과 로마 문학에도 정통했습니다. 유다인들은 프톨레마이오스 라지드 왕조(기원전 282년께)가 통치하던 때부터 이집트 여러 지역으로 이주해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해외 유다인 공동체인 ‘디아스포라’를 형성해 율법과 유다교 전통을 지키면서 헬레니즘 문화에 적응해 사는 이방 민족과 구별된 삶을 살았습니다. 당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는 지중해 지역에서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알렉산드리아 디아스포라는 헬레니즘 사상에 빠져들지 않고 고유한 유다교 전통과 사상을 지켜나가고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젊은이들에게 유다교 신앙과 지혜를 전수하려 노력했습니다. 지혜서가 저술된 동기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라고 성경학자들은 추정합니다. 지혜서는 ‘하느님께서 주관하시는 인간의 운명’(1─5장), ‘지혜 찬가’(6,1─11,4), ‘이집트 탈출에 관한 숙고’(11,5─19,22) 세 부분으로 구분됩니다. 지혜서 1─5장은 본디 히브리어로 쓰였습니다. 지혜서의 다른 부분 저자가 이 내용을 헬라어로 번역해 합쳤습니다. 이 단원에서 인간의 운명은 의인과 악인으로 대조됩니다. 지혜서는 하느님께서 순수한 영혼들을 위해 불사불멸을 준비해 놓으셨고, 지혜의 적들은 그에 합당한 벌을 받는다고 합니다.(2,21─3,12) 그리고 의인들은 하느님에게 영광을 받는 것을 보게 될 것이며(4,7─5,14), 의인들은 영원히 살면서 심판 뒤에는 하느님의 보호를 받는다고 합니다.(5,15-23) 지혜 찬가는 솔로몬이 노래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솔로몬은 임금의 직무를 수행하는 데에 지혜가 도움을 베푼다고 합니다. 지혜만이 하느님의 뜻을 알고 사람을 구원할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찬양합니다.(9장 참조) 그리고 지혜는 창조 때부터 이집트 탈출에 이르기까지 창세기가 전하는 모든 일화를 통해 자기가 역사의 주인임을 드러냅니다.(10,1─11,4) 지혜서의 마지막 단원은 탈출기의 재앙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 히브리인들과 이집트인들의 운명을 비교합니다. 지혜서 저자는 유다교의 가치들을 옹호하면서 하느님께서는 더없이 공정하게 심판하시는 분이심을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우상 숭배는 사람들의 삶을 더할 나위 없이 부패시키기 때문에 이스라엘인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상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당부합니다.(14장)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지혜서는 모든 형태의 우상 숭배와 물질주의적 철학을 단죄합니다. 이처럼 지혜서는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충실성을 드러내는 책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와 콜로새서, 히브리서에 지혜서를 인용해 하느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선포했습니다.(로마 1,20-23; 콜로 1,12.15.17; 히브 1,2-3)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11.30

그리스도 신앙이 급속히 퍼지자 교회 박해 일어나[저는 믿나이다] (12) 박해가 시작되다 사도들의 복음 선포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이 급속히 전파되자 유다인 지배층인 사제들과 사두가이파 사람들, 그리고 헤로데 아그리파 1세 임금이 교회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프란치스코 데 수르바란 작 ‘성 야고보의 순교’, 유화, 1640년, 프라도 미술관, 스페인 마드리드. 두 차례에 걸쳐 초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과 성사, 그리고 은사를 공유했고, 재산을 공동 소유했으며 사랑을 함께 실천했음을 확인했습니다. 사도들의 복음 선포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이 급속히 전파되자 교회를 경계하고 그리스도인을 적대시하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유다교 사제들과 성전 경비대장,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사도들을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제들은 성전에서 제사를 집전하는 이들이고, 성전 경비대장은 말 그대로 성전 경비를 담당하는 최고 책임자로 대사제 다음 가는 사제가 그 직책을 맡았습니다. 사두가이파는 헬레니즘에 개방적인 귀족층의 유다인들로 사제 가문과 부유한 상인들이 주류를 이뤘습니다.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모세 오경에 분명히 포함되지 않은 교의들을 부정하고, 구전 전승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으로 그들은 ‘죽은 이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들 세 무리 곧 성전과 관련된 유다교 사제 집단이 예루살렘 솔로몬 주랑에서 설교하고 있던 베드로와 요한 사도를 체포해 감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그들은 사도들이 백성을 가르치면서 예수님을 내세워 죽은 이들의 부활을 선포하는 것을 불쾌히 여겼기 때문입니다.(사도 4,2 참조) 감옥에 갇힌 베드로와 요한 사도는 이튿날 유다교 최고 통치기구인 ‘산헤드린’으로 끌려갔습니다. 그 자리엔 “한나스 대사제와 카야파와 요한과 알렉산드로스와 그 밖의 대사제 가문 사람들도 모두 있었습니다.(사도 4,5-6 참조) 한나스는 서기 6~15년, 카야파는 한나스의 사위로 18년부터 36년까지 대사제직을 수행했습니다. 한나스는 로마 당국에 의해 대사제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카야파는 예수님의 재판과 처형에 직접 관여한 인물입니다. 베드로와 요한 사도는 산헤드린에서 하느님께서 죽음에서 살리신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라고 담대하게 선포합니다.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사도 4,12) 산헤드린 의원들은 “다시는 아무에게도 그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경고한 뒤 두 사도를 풀어줍니다.(사도 4,14-18 참조) 하지만 얼마 안 가 모든 사도가 체포됩니다. 사도들이 산헤드린의 경고를 무시하고 유다인들 가운데에서 많은 표징과 이적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대사제 카야파가 주동이 되어 사두가이파를 움직여 사도들을 체포해 공영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다음날 산헤드린으로 끌려간 사도들은 죽을 위기에 처했지만 온 백성에게 존경받던 율법 교사 가말리엘의 변호로 매질만 당한 채 풀려났습니다. 물론 “다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사도 5장 참조) 그런데 왜 가말리엘은 사도들을 변호했을까요? 바오로 사도의 스승인 그는 바리사이였습니다. 바리사이는 안티오코스 4세 시대에 율법과 전통의 이름으로 마케도니아인들에게 항거하던 하시드인들을 계승한 자들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율법과 구전 전승을 열심히 준수하던 율법학자들로 중산층에 속했으며 백성들 사이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들은 사두가이파와 달리 죽은 이의 부활을 믿었습니다. 바리사이에게 적대자는 율법과 전통을 충실히 따르는 한 예수님과 그들의 제자들이 아니라 로마인과 율법과 전통을 어기는 모든 이였습니다. 그 단적인 사례가 사도행전 15장에 나옵니다. 바리사이였다가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 몇이 나서서 하느님을 받아들인 이민족들에게 “할례를 베풀고 또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명령해야 합니다”라고 사도들에게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이 일로 예루살렘 사도 회의가 열리게 되죠.(15,5-6 참조) 마침내 공권력이 교회 박해에 가세했습니다. 헤로데 아그리파 1세가 요한 사도의 형 야고보 사도를 칼로 쳐죽이고 베드로 사도를 잡아들입니다.(사도 12,1-11) 그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관여한 갈릴래아 영주 헤로데 안티파스(루카 23,6-12 참조)의 조카로 서기 41년에 로마 총독이 통치하던 유다와 사마리아를 다스리는 임금이 됩니다. 그는 단순히 유다인들의 환심을 얻기 위해 교회를 박해하고 야고보 사도를 참수하였습니다. 요한 사도의 형 야고보 사도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사도와 구별해 ‘대(大) 야고보’라고도 합니다. 그는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에서 복음을 선포하다가 스페인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길의 주인공인 바로 그 야고보 사도입니다. 헤로데 아그리파 1세가 44년 4월에 죽었기에 학자들은 야고보 사도가 44년 초 또는 42~43년에 순교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헤로데 아그리파 1세는 야고보 사도를 처형한 것에 대해 유다인들이 좋아하는 반응을 보이자 베드로 사도를 잡아들여 무교절, 곧 파스카 축제가 끝나면 처형할 작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4명씩 4개 조를 짜서 베드로가 갇힌 감옥을 밤낮없이 지키게 했죠. 교회는 베드로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교우들의 간구가 하느님께 전해졌는지 처형 전날 밤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빠져나옵니다. 탈옥한 베드로 사도는 요한 마르코의 어머니 집으로 숨어들었습니다.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 선임2025.01.21

예루살렘 교회, 주님 은총 아래 이방인 선교 활발[저는 믿나이다] (14) 이방인 선교 베드로 사도는 환시를 통해 깨닫고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준다. 이는 이방인에 대한 선교가 사도들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이뤄졌음을 증거한다. 프란치스코 트레비사니 작 ‘코르넬리우스에게 세례를 주는 베드로 사도’, 유화, 1709년. 개인 소장. 사도행전 8장은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에서 떠남으로써 복음이 이곳저곳으로 두루 퍼져나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필리포스는 사마리아인들에게(사도 8,5-40), 베드로 사도는 카이사리아의 이방인들에게(사도 9,32―11,18),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들은 안티오키아에(사도 11,19-26) 복음을 선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다”는 복음은 이제 예루살렘과 팔레스티나를 넘어 땅끝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으로 선포됩니다. 아울러 그리스도교는 유다교와 두드러지게 구별되기 시작합니다. 이런 이유로 사도행전 8장 1절에 ‘예루살렘 교회’라며 교회가 처음 지리적으로 한정된 지역 신자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됩니다.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들은 로마를 향해 뻗은 도로를 따라 도시로 이동하면서 그곳에 사는 유다인들에게 들불처럼 복음을 전했습니다.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는 물론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디아스포라 공동체까지 복음이 선포됐습니다. 서기 49년께 로마에는 이미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유다교 율법을 지키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규칙적으로 기도하며 신앙을 유지하려 했던 유다계 그리스도인들과 달리 이에 얽매이지 않았던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들은 유다인 사회를 넘어 이방인들에게까지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교회가 이방인에게 눈을 돌린 것은 선교에 엄청난 활력을 불어넣었을 뿐 아니라 교회 구조와 조직, 신학 전반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루살렘 밖에서의 선교는 그리스계 출신 필리포스에 의해 시작됩니다. 그는 스테파노와 함께 사도들로부터 일곱 봉사자로 임명된 인물 가운데 한 명입니다. 그는 사마리아 고을로 가서 마술사 시몬을 비롯해 그곳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풉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유다인들과 같은 혈통입니다. 할례도 당연히 받고요. 솔로몬 임금이 죽은 후 나라가 남 왕국 유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로 쪼개지면서 사마리아는 북 이스라엘의 수도이자 왕국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북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페르시아 등 제국의 침입을 받아 이민족 문화와 우상을 숭배하면서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순수함을 잃어버리고 유다인들과 완전히 갈라졌다는 점입니다. 필리포스는 유다인에게 멸시의 대상이던 사마리아 사람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세례를 베푼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사마리아까지 와서 확인한 것(사도 8,14-17)으로 보아 필리포스의 선교는 상당한 성과를 보인 듯합니다. 사도행전은 필리포스가 더러운 영을 몰아내고 중풍 병자와 불구자를 치유한 것이 선교에 도움이 됐다고 합니다. 오늘날 신학자들은 이에 덧붙여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을 이미 호의적으로 맞이했고(요한 4,39-42 참조), 복음을 전한 이가 그리스계 선교사였기에 호감을 샀을 것이라 해석합니다. 예루살렘 성전과 유다인 사제 계급에 대한 혐오가 대단하던 사마리아인에게 그리스 출신 그리스도인은 그들의 불신을 없애는 데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풀이합니다. 필리포스는 이어 에티오피아 칸다케 여왕의 내시를 만나 그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줍니다.(사도 8,26-39) 유다인도 아닌 그가 하느님을 경배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왔으며 돌아가는 마차에서도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다고 하니 할례를 받고 유다교로 개종한 자가 아닐까 짐작합니다. 필리포스는 기세를 몰아 아스돗과 카이사리아에 이르는 여러 고을에서 복음을 선포합니다.(사도 8,40) 베드로 사도는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에게 처음으로 세례를 줍니다. 대상은 바로 카이사리아에 주둔하던 로마군 백인대장 코르넬리우스와 그의 친척, 친구들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들을 만나기 전 환시를 봅니다.(사도 10,11-16 참조) 그는 환시를 통해 유다교 정결법 때문에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방해하지 말라는 명을 받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코르넬리우스를 만난 후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제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사도 10,34-35) 사도행전 저자는 코르넬리우스의 세례를 더 극적으로 표현합니다. “베드로와 함께 왔던 할례 받은 신자들은 다른 민족들에게도 성령의 선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사도 10,45) 시리아의 수도 안티오키아에선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쫓겨났던 디아스포라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키프로스와 키레네 출신 그리스도인들이 안티오키아에 사는 유다인들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했습니다.(사도 11장 참조) 키프로스 출신 중 대표 인물이 바르나바와 므나손이고, 키레네 출신으로는 루키오스가 있었죠. 또 사도들에게 임명된 일곱 봉사자 가운데 니콜라오스는 바로 이곳 안티오키아 출신입니다. 이곳에서의 선교 성과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그리스도인’(Χριστιανοs, 크리스티아노스), ‘그리스도인들’(Χριστιανοι, 크리스티아노이)이라는 말이 새로 생겨날 정도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사마리아에서의 선교 성과를 확인하고자 베드로와 요한 사도를 보냈던 것처럼 안티오키아에 바르나바를 보냅니다. 사도행전은 “그곳에 도착한 바르나바는 하느님의 은총이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며, 모두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계속 충실하라고 격려하였다”(사도 11,23)며 예루살렘 교회에 보낼 보고를 대신합니다. 사도행전은 이방인에 대한 복음 선포는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의 뜻에 따라 이뤄진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적극적인 개입, 곧 은총으로 주어진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선임2025.02.11

남녀의 사랑에서 하느님 사랑을 보다[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50)아가 아가는 구약 성경에서 유일하게 ‘남녀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책이다. 아가는 진정한 육체적 사랑을 계약의 언어와 함께 서술하는 데 이는 당신 백성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모든 사랑의 전형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사진은 뉴욕의 한 신혼부부가 교회 안에서 혼인성사를 받고 있다. OSV 아가의 히브리어 타낙 성경 명칭은 ‘쉬르 핫쉬림’입니다. 쉬르 핫쉬림은 우리말로 ‘노래 중의 노래’,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구약 성경 제1경전인 타낙 성경은 아가를 성문서로 분류해 ‘룻기’와 ‘코헬렛’ 사이에 배치해 놓았습니다. 헬라어 구약 성경 「칠십인역」은 쉬르 핫쉬림을 직역해 ‘Ασμα Ασματων’(아스마 아스마톤)으로,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 역시 ‘Canticum Canticorum’(칸티쿰 칸티코룸)으로 표기합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아가’(雅歌)라고 부릅니다. ‘지고한 노래’, 곧 최고로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이지요. 그리고 「성경」은 가톨릭교회의 성경 분류법에 따라 아가를 ‘시서와 지혜서’로 분류하고 코헬렛과 지혜서 사이에 편집해 놓았습니다. 아가는 8개 장으로 이루어진 ‘사랑 노래 선집’ 곧 연가집(戀歌集)입니다. 아가 표제는 ‘솔로몬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아가 1,1)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를 근거로 유다교는 전통적으로 솔로몬이 아가의 저자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학자들은 솔로몬이 아가의 저자가 아니라는 견해를 분명히 합니다. 아가에는 ‘티르차’(아가 6,4)라는 고대 도시가 등장할 뿐 아니라, 페르시아와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단어가 나오기 때문입니다.(아가 1,6.7.11.17; 2,9.11.13; 3,2.8; 7,3 참조)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아가가 이스라엘 초기 역사에서 최종 편집 시기인 기원전 3세기까지 유다인들에게 잘 알려졌던 사랑의 노래를 집대성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아가는 구약 성경에서 유일하게 ‘남녀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책입니다. 하느님과 율법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고 오로지 남녀의 관능적 사랑을 노래하는 아가가 구약 성경 정경으로 선정된 것은 표제에 언급된 솔로몬의 이름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아가의 저술 편집 장소는 팔레스티나 입니다. 아가는 사랑의 배경 장소로 예루살렘(1,5; 2,7; 3,5.10; 5,8.16; 8,4), 시온산(3,11), 다윗 탑(4,4), 엔 게디 포도원(1,14), 사론 평야 (2,1), 길앗 비탈(4,1; 6,5), 티르차(6,4) 등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가는 약속의 땅 팔레스티나와 예루살렘을 이상적인 사랑의 장소로 제시합니다. 아가는 유다교 축제 때 읽히는 다섯 두루마리 ‘멜길롯’(룻기ㆍ아가ㆍ코헬렛ㆍ애가ㆍ에스테르기) 중의 한 권입니다. 아가는 서기 6세기께부터 유다인들의 가장 중요한 축제인 파스카 축제 때에 읽도록 선정됐습니다. 아가가 파스카 축제 때 읽히게 된 이유는 아마도 아가에 등장하는 사랑 이야기와 파스카 때 기억하는 하느님 사랑이 유사하며, 아가의 배경이 되는 계절이 파스카 계절인 ‘봄’이기 때문이라고 성경학자들은 추정합니다. 아가는 성경학자들의 관점에 따라 크게 우의(寓意)ㆍ제의(祭儀)ㆍ자의(字義)ㆍ극(劇)적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의적 해석은 유다인과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까지 즐겨 사용하는 가장 오래된 해석 방법으로 신랑인 하느님과 신부인 이스라엘 사이의 사랑, 또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을 노래한 것이라고 보는 관점입니다. 제의적 해석은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제사 의식의 찬미가로 보는 관점입니다. 고대 근동인들은 남신과 여신의 성혼을 통해 새해의 풍요와 다산을 촉진한다고 믿었습니다. 농경 사회의 축제였던 누룩 없는 빵의 축제가 파스카의 역사적 신앙을 표현하기 위해 재해석됐듯이 다소간의 수정을 거쳐 이교의 풍요 다산을 비는 제의가 이스라엘 신앙에 적용됐다고 봅니다. 자의적 해석은 말 그대로 남녀의 사랑을 다룬 작품으로 보는 관점입니다. 근래의 해석 관점으로 남녀의 깊은 사랑이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극적 해석은 아가를 일종의 연애극으로 이해하는 관점입니다. 아가는 성 그 자체보다는 사랑에 대한 충실성과 성실성에 더 관심이 있음을 드러냄으로써, 이 책을 솔직 담백한 사랑의 묘사로 이해합니다. 이러한 해석상의 어려움 때문에 아가 안에 들어 있는 노래들을 구체적으로 누가 불렀는지 분명하게 말할 수 없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아가’를 이렇게 해석합니다. “아가의 사랑은 인간적인 것으로서 성적이며 동시에 거룩한 것일 수 있다. … 인간적인 사랑을 하느님의 선한 창조 사업 안에서 그 자체로서 목적을 지닌 것으로 서술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 아가는 완전히 탈신성화한 사랑 곧 극히 인간적인 현상으로서 성과 사랑을 노래한다. 이는 성의 신성화, 또는 신을 성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던 구약 성경의 종교적 입장에서 볼 때, 신학적으로 큰 중요성을 갖는 공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당시 사람들이 갈구하던 자연의 풍요 역시 인간들이 대행한 신적인 성의 재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백성과 사랑의 계약을 맺으신 주 하느님, 그분 홀로 성취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가는 진정한 육체적 사랑을 계약의 언어와 함께 서술하는 데 이는 당신 백성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모든 사랑의 전형을 보여주려는 것이다.”(「주석 성경」 1850쪽)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11.22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풀어낸 구원 역사[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38)역대기 역대기의 중심 사상은 유다 공동체 안에 펼쳐지는 이상적인 신정 왕국이다. 예루살렘의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과 만나기 위한 유일한 성소이다. 역대기는 하느님의 구원 역사가 성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고 한다. 이스라엘 박물관에 설치된 예루살렘 성전 모형. 역대기의 히브리어 성경 이름은 ‘디브레 하얌밈’입니다. 우리말로 ‘나날의 행적들’, ‘시대의 사건들’로 옮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헬라어 번역본인 「칠십인역」은 디브레 하얌밈을 사무엘기와 열왕기를 보충하는 책으로 인식해 ‘파랄레이포메논’(Παραλειπομνων, 옆에 빼놓아둔 것, 곁들여 전해진 것, 간과된 것)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그리고 본디 한 권이었던 디브레 하얌밈을 상ㆍ하권으로 나눴습니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 역시 칠십인역 목록 이름을 음역해 ‘파랄리포메논(Paralipomenon) ⅠㆍⅡ’라고 표기했습니다. 하지만 불가타 성경을 번역한 예로니모 성인은 이 책을 “하느님의 거룩한 역사 전체의 연대기”라고 설명했습니다. 한국 주교회의가 발행한 가톨릭 「성경」은 예로니모 성인의 제안에 따라 ‘역대기’(歷代記)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역대기는 본디 한 권의 책이었다고 했습니다. 나아가 역대기 하권 36장 22-23절과 에즈라기 1장 1-3절이 서로 겹쳐 ‘역대기-에즈라기-느헤미야기’를 하나로 묶을 수도 있습니다.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 역시 처음에는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 정경 안에서는 내용상 역대기가 에즈라-느헤미야기보다 앞서야 하지만 그 뒤에 편집돼 있습니다. 아마도 역대기가 에즈라, 느헤미야기보다 늦게 유다교 정경 안에 받아들여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날 성경학자들은 구약 성경 역사서를 ‘신명기계 역사서’와 ‘역대기계 역사서’로 구분합니다. 이 둘 가운데 먼저 형성된 역사서가 신명기계 역사서입니다.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열왕기가 신명기계 역사서에 속합니다. 신명기계 역사서는 기원전 587년 예루살렘 함락까지의 역사를 다룹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과 유다가 멸망한 것은 임금들이 하느님과 맺은 계약에 불충실했기 때문이며, 유다인들이 바빌론으로 유배가 포로 생활을 하는 것은 그에 따른 징벌이라고 강조합니다. 역대기계 역사서는 신명기계 역사서보다 훨씬 더 늦은 시기에 쓰였습니다. 성경학자들은 기원전 330-250년 사이에 역대기계 역사서들이 쓰였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역대기, 에즈라기, 느헤미야기가 역대기계 역사서에 속합니다. 이 책들은 모두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풀려나 귀향한 후 쓰였습니다. 역대기계 역사서가 신명기계 역사서와 가장 차이를 보이는 것은 역사를 ‘아담부터’ 서술한다는 것입니다. 역대기계 역사서는 아담에서 시작해 바빌론 유배 이후 에즈라와 느헤미야에 의해 예루살렘과 성전이 재건된 시대까지 유다인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역대기는 ‘아담에서 다윗까지의 조상들 족보’(1역대 1─9장), ‘다윗 통치사’(1역대 10─29장), ‘솔로몬 통치사’(2역대 1─9장), ‘솔로몬 죽음부터 바빌론 유배와 예루살렘으로의 귀환 직전에 이르는 유다 왕국사’(2역대 10─36장) 네 부분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역대기는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다윗 왕조를 중심으로 서술합니다. 그중에서도 다윗과 솔로몬의 이상적 통치를 핵심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역대기는 열왕기와 달리 다윗의 오점을 싣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충실하게 따른 모범적인 임금으로만 소개합니다. 이런 이유로 역대기는 다윗 왕조를 이어받지 못한 북 왕국 이스라엘의 역사를 취급하지 않습니다. 다윗 왕조만이 유일하고 합법적인 왕조이며, 다윗의 후손만이 하느님 백성의 합법적인 임금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역대기는 다윗과 그의 후손들은 하느님을 대신해 주님의 백성을 다스리는 대리자일 뿐이라고 강조합니다. 역대기는 또 솔로몬을 처음부터 다윗의 유일한 후계자로 선택된 인물로 소개합니다.(1역대 29,23-25) 더욱이 솔로몬은 다윗과 달리 평생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완전하고 충실한 삶을 산 임금으로 평가합니다. 또 솔로몬은 하느님께 성전을 지어 봉헌한 인물이고, 성전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을 신앙 공동체로 결속시킨 인물이라고 합니다. 역대기는 다윗과 솔로몬 후계자들의 역사는 성전을 재건하고 경신례를 개혁한 임금들을 비중 있게 다룹니다. 아사(2역대 14ㅡ16장), 여호사팟(2역대 17ㅡ20장), 히즈키야(2역대 29ㅡ32장), 요시야(2역대 34ㅡ35장)가 그런 임금입니다. 역대기는 아울러 레위인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입니다. 레위인들은 아론 집안 출신의 사제들이거나, 다른 집안으로서 레위 지파 출신의 레위인들입니다. 모세 오경 전체는 사제들에 관해 27번 언급하는 데 반해, 역대기는 76번이나 언급합니다. 역대기는 ‘예루살렘 성전’과 ‘경신례’를 중시합니다. 하느님께서 예루살렘을 직접 당신이 머무를 장소로 선택하셨고(2역대 6,6), 이곳에 세워진 성전이 ‘하느님의 이름을 위한 집’(1역대 22,7)이며 ‘하느님의 성소’(1역대 22,19)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과 만나기 위한 유일한 성소이며, 그곳에서 거행되는 경신례는 유일한 공적 제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역대기는 하느님의 구원 역사가 ‘성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고 합니다. 역대기의 중심 사상은 유다 공동체 안에 펼쳐지는 이상적인 신정 왕국입니다.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봉헌되는 유일하고 합법적인 경신례는 하느님 백성이 사제들과 레위인들의 도움을 받아 그들의 임금이신 하느님께 충성과 기쁨, 찬양입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일은 주님의 백성이 매일의 삶 안에서 지켜야 할 첫 번째 의무입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08.23
![[성탄 특집 방송] 아기 예수 탄생의 기쁨과 희년 맞이는 cpbc와 함께](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12/17/SNg1734418573746.jpg)
[성탄 특집 방송] 아기 예수 탄생의 기쁨과 희년 맞이는 cpbc와 함께cpbc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의 TV와 라디오가 아기 예수님께서 오신 주님 성탄 대축일을 맞아 사랑과 평화로 가득찬 다양한 특집 프로그램을 방송한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 주님 성탄 대축일 전례 특별 생중계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가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주례하는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를 특별 생중계한다. ▶방송 : 24일 오후 11시 50분(TV·유튜브), 24일 밤 12시(라디오) 바티칸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희년의 문을 열다’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주례로 거행되는 주님 성탄 대축일 미사를 TV와 유튜브로 특별 생중계한다. ▶방송 : 25일 오전 2시 50분, 재방송 : 오후 9시 30분 주님 성탄 대축일 낮 미사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가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주례하는 주님 성탄 대축일 낮 미사를 생중계한다. ▶방송 : 25일 낮 12시(TV·유튜브·라디오) ■ TV 프로그램 가톨릭 명화극장 ‘프란치스코, 예수회’ 베스트 셀러 「The Jesuit」를 원작으로 한 프란치스코 교황, 즉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의 삶을 담았다. 예수회에 입회해 허약한 몸에도 복음화를 향한 열정으로 사제의 길을 걸어가는 베르골료의 여정을 조명한다. ▶방송 : 21일 오후 11시, 재방송 : 22일 오후 4시 / 23일 오후 9시 30분 / 27일 밤 12시, cpbc플러스 23일 공개 예정 영화 ‘마리아’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친구였다면? 둘의 관계를 세상과 교회 모습으로 대비해 가면서 마리아의 일생을 보여준다. ▶방송 : 1~2부 24~25일 오후 4시, cpbc플러스에서 시청 가능 만화 ‘홀리몰리’ 성경 속 이야기가 생동감 넘치는 만화로 아이들을 찾아간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친근하게 풀어내 아이들 마음속에 믿음의 씨앗을 심어주는 내용. ▶방송 : 24일 오후 8시 30분, 재방송 : 에피소드 중 ‘성탄’ 편만 26일 오전 6시 50분 / 낮 12시 50분 / 오후 6시 50분, cpbc플러스에서 시청 가능 만화 ‘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의 꿈’ 초대 조선대목구장 바르톨로메오 브뤼기에르 주교의 삶과 신앙, 그리고 조선을 향한 그의 깊은 사랑을 애니메이션에 담아냈다. ▶방송 : 24일 오후 9시 30분, 재방송 : 27일 오후 11시 / 28일 오전 11시 10분 / 30일 오후 4시 40분, cpbc플러스 24일 공개 예정 다큐 ‘죽음에서 돌아오다, 메일린의 기적’ 2012년 프랑스 리옹에서 일어난 한 사고와 이어진 놀라운 기적 이야기. 의학적으로 사망 판정을 받았던 소녀 메일린이 다시 살아난 날을 돌아보며 그가 전구를 청했던 복자 폴린 자리코의 삶을 추적했다. ▶방송 : 24일 오후 9시 50분, 재방송 : 25일 오후 1시 30분 / 29일 오전 10시 / 1월 1일 오후 7시, cpbc플러스 24일 공개 예정 다큐 ‘아르투로 마리, 교황의 사진사’ 18살 때부터 역대 교황들과 함께하며 교회사를 사진으로 기록해 온 아르투로 마리. 요한 23세 교황부터 바오로 6세·요한 바오로 1세·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이르기까지 그가 렌즈에 담은 교황들의 모습을 생생히 전한다. ▶방송 : 25일 오전 10시, cpbc플러스에서 시청 가능 다큐 ‘요한 바오로 2세가 본 세상’ 복음화 사명을 깊이 새기며 온 세상을 누빈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사목 방문했던 아일랜드·폴란드·인도·멕시코를 찾아갔다. 교황을 만났던 이들은 그를 어떻게 기억할까? ▶방송 : 25일 오전 11시, cpbc플러스 1월 공개 예정 이해인 수녀 수도생활 60주년 기념 콘서트 연가곡집 ‘편지’ 이해인 수녀가 수도자로 지낸 60년 여정을 돌아본다. 이 수녀의 신앙과 삶의 고백이 담긴 시 18편에 멜로디를 입혀 탄생한 가곡들을 들을 수 있다. ▶방송 : 25일 오후 7시, 재방송 : 26일 밤 12시 / 28일 오후 4시 / 29일 오후 10시 30분 송년 특집 ‘함께 가요!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한국 교회는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향한 순례 여정에 올랐다. 서울 WYD 지역조직위원회 총괄 코디네이터 이경상 주교와 교회 젊은이들이 한 해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여정을 나눈다. ▶방송 : 31일 오후 7시 30분, 재방송 : 1월 3일 오전 1시 / 1월 4일 오전 10시 / 1월 5일 오후 10시 30분 ■ 라디오 프로그램 이 주의 책 ‘어쩌면, 성탄을 기쁘게 하는 것들’ 가톨릭 사제이자 작가인 방종우 신부와 다가오는 새해를 바라보며 삶을 견디게 하는 위로와 희망을 나눈다. ▶방송 : 22일 오전 8시 장일범의 유쾌한 클래식 ‘Funny Christmas’ 성탄의 기쁨을 가득 담은 클래식 캐럴이 관악 6중주 선율로 울려 퍼진다. 청취자를 위한 특별한 성탄 선물도 있다. ▶방송 : 24일 오전 11시 오수진의 행복을 여는 아침 ‘사랑은 선물을 타고’ 선물처럼 주어진 일상의 고마움을 떠올려보는 따뜻한 시간. 성탄을 맞아 김리온 작가, 이서원 교수, 성탄 선물 협찬기업 대표 등 특별 초대 손님과 더욱 풍성해진 이야기로 행복을 전한다. ▶방송 : 24~25일 오전 7시 음악이 있는 저녁풍경 김형중입니다 ‘애즈원과 캐롤을!’ 크리스마스 때마다 음악 차트에 오르는 한국 캐럴 명반의 주인공 애즈원 민과 함께하는 캐럴 라이브. ▶방송 : 24일 오후 7시 참 좋은 오늘, 은빛수녀입니다 ‘참 좋은 성탄, 은빛나는 이야기!’ 예수님께서 아기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날을 기억하며, 흥겨운 캐럴과 은빛수녀의 강연으로 성탄 아침을 따뜻하게 채우는 시간이 준비된다. ▶방송 : 25일 오전 9시 기도의 오솔길 ‘성탄, 특별한 기도밥상’ 전진 신부와 전영금 수녀가 아기 예수님 탄생의 기쁨을 담아 정성껏 차리는 기도밥상이 청취자들을 찾아간다. ▶방송 : 25일 오후 4시 ■ 2024 명동 겨울을 밝히다 - 공개방송 성탄 특집 라디오 공개방송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 cpbc는 24~25일 서울대교구청 마당에 ‘cpbc 미디어존’을 마련해 신자 및 시민들과 성탄의 기쁨을 함께한다. cpbc 오픈 스튜디오에서는 ‘新(새로운)! 신신우신’이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아 다채로운 출연진과 함께 성탄의 감동을 선사한다. 5인조 혼성 아카펠라 그룹 DIA와 신신우신의 선곡마트 라이더 양채윤(엘리사벳)씨, 뮤지컬 배우이자 피아니스트 에드윈 킴이 결성한 프로젝트팀이 감동적인 라이브 무대를 펼친다. ▶방송 : 24일 낮 12시 15분, cpbcTV 유튜브 라이브스트리밍으로 동시 공개 성탄 특집 라디오 공개방송 ‘2시N뮤직 김빛나입니다’ 성탄의 기쁨과 따뜻한 음악으로 꽉 채워진 ‘2시N뮤직 김빛나입니다’도 cpbc 오픈 스튜디오 공개방송으로 청취자들과 함께한다. 뮤지컬 배우 박영주씨와 가수 신현희·이승훈·이솔로몬씨가 전하는 라이브 음악과 감동 이야기가 추운 겨울을 따스하게 녹인다. ▶방송 : 24~25일 오후 2시, cpbcTV 유튜브 라이브스트리밍으로 동시 공개 2024 명동, 겨울을 밝히다 2015년부터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일대에서 펼쳐지는 대표 성탄 축제 ‘명동, 겨울을 밝히다’가 올해에도 찾아왔다. 최현정 전 아나운서 진행으로 세계 젊은이와 성탄 문화를 나누고, 특별한 사연이 담긴 애장품 경매를 마련한다. cpbc는 사도회관 외벽에 성탄의 기쁨을 빛으로 표현하는 미디어파사드도 선보인다. ▶방송(라디오) : 24~25일 오후 5시, cpbcTV 유튜브 라이브스트리밍으로 동시 공개신문취재팀 박예슬2024.12.17

구약의 축제를 통해 알게 되는 예수님[신간] 요한 복음에 나오는 구약의 축제들을 아십니까? 요한 복음에 나오는 구약의 축제들을 아십니까? 김동규 신부 기쁜소식 이스라엘에는 하느님께서 명하신 일곱 가지 축제와 유다인이 정한 자체 축일들이 있다. 이 일곱 개의 핵심 축제는 당시 가나안에서 농사를 짓는 풍속에서 유래되었으나 이집트를 탈출하게 하신 구원의 하느님과 연결되면서 결국 ‘하느님 백성들의 구원에 관한 축제’로 드러나게 되었다. 그런데 요한 복음은 신약인데 왜 구약의 축제들을 묻는 걸까? 요한 복음서의 배경이 구약시대의 안식일을 포함해 핵심 축제인 파스카와 초막절·성전 봉헌 축제 등으로, 중요한 사건들이 이들 축제의 장소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주간절에는 새 밀로 구운 빵 2개를 봉헌한다. 갓 구운 빵을 살펴보는 유다인. OSV 초막절에는 예루살렘을 찾아 제물을 바친다. 사진은 예루살렘의 구 시가지 모습. OSV 김동규(대전교구 갈마동본당 주임) 신부는 “요한 복음의 초미 관심사인 예수님이라는 분이 하느님을 알리고 증언하는 역할을 맡아 등장하는 곳이 항상 이스라엘의 핵심 축제”라며 “구약의 축제에 함축되어 있는 예언적 의미들을 당신의 몸으로 완성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고 전한다. 김 신부가 쓴 「요한 복음에 나오는 구약의 축제들을 아십니까?」에서는 이스라엘 핵심 축제들의 원체험이 기록된 탈출기와 축제의 제례를 자세히 다룬 레위기, 율법의 내용을 담은 신명기의 내용을 요한 복음의 내용과 연계하면서 그 축제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어떻게 예수님의 자기 계시(그리스도론)로 드러나는지 풀어간다. 즉 구약의 축제에 계시된 내용을 토대로 태초부터 예언되어 오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설명한다. “요한 복음 19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날이 파스카 축제 준비일’(요한 19,14 참조)이었다고 언급하고 있고 (중략) 이스라엘의 해방을 기념하는 파스카 축제가 시작될 바로 그때, 새로운 해방을 주실 하느님께서 인류의 죄를 속죄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십니다. 이를 통해 속죄양의 완전한 ‘희생 제물’을 당신의 몸으로 완성해 당신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요한 6,22-58 참조)이심을 말씀해 주십니다.”(34쪽) “새롭게 봉헌된 성전은 ‘아버지를 만날 유일한 성전’이신 그분, 메시아로 오실 예수님을 암시하고 있는데 이것이 성전 봉헌 축제가 함축하고 있는 예언적 의미입니다. 요한 복음 저자는 10장에서 ‘그때에 예루살렘에서는 성전 봉헌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때는 겨울이었다’(요한 10,22)라고 하며 성전 봉헌 축제가 한창 열릴 때 예수님께서 성전 내 ‘솔로몬 주랑에 계시며 걸으셨다’(요한 10,23 참조)는 내용을 기술하고 있습니다.”(92쪽) 책에는 요한 복음서가 집필된 사목적·역사적 배경과 복음서에 언급되지 않은 다른 축제들도 시기별로 설명돼 신구약 성경의 맥을 연결하며 깊이를 더한다. 저자는 예비신자를 위한 「보물을 찾아 다 함께 가는 길 동행」, 신자 재교육 및 견진자를 위한 「구원을 향해 다 함께 가는 길 동행」 등의 책도 펴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4.05.14

솔로몬의 ‘두 얼굴’… 뛰어난 정치가, 불충실한 우상숭배자[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17) 솔로몬 출처=구글 솔로몬이 다윗의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열왕기 상권 1─2장은 솔로몬이 왕위 계승 서열 1번인 아도니야 대신에 왕좌를 차지하게 되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아도니야는 요압 장군과 에비야타르 사제의 지지를 얻어 다윗의 왕좌를 계승하려 했습니다. 나탄 예언자와 차독 사제, 다윗의 경비대장 브나야 등이 이에 반기를 들어 다윗과 밧 세바의 아들 솔로몬을 임금으로 세웁니다. 솔로몬은 임금이 되자 여느 권력자처럼 형제들과 반대자들을 모두 숙청합니다. “이리하여 솔로몬의 손안에서 왕권이 튼튼해졌다”(1열왕 2,46)고 성경은 밝힙니다. 솔로몬이 임금이 된 것은 사울이나 다윗처럼 카리스마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신분과 동조자들의 정치 영향력 때문이었습니다. 목동 출신인 다윗은 군인으로 온갖 풍파를 거친 뒤 어렵게 임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왕자로 태어나 궁전에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임금이 되어 죽는 날까지 절대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그는 부족 중심의 이스라엘의 전통 제도를 허물고 왕권을 강화했습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처럼 뛰어난 군인은 아니었지만 빼어난 정치력과 능란한 외교술로 이스라엘을 부흥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최고 번성기 솔로몬 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상 최고 번성기였습니다. 영토도 가장 넓었습니다. “솔로몬은 유프라테스 강에서 필리스티아 땅까지, 그리고 이집트 국경에 이르기까지 모든 나라를 다스렸다. 그들은 솔로몬이 살아 있는 동안 내내 조공을 바치며 그를 섬겼다.”(1열왕 5,1-2) 열왕기 상권 3─11장은 솔로몬 시대를 소개합니다. 성경은 이 부분을 ‘솔로몬의 실록’(1열왕 11,41)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솔로몬이 다스린 40년을 ‘평화의 시대’라고 정의합니다. 열왕기를 기록한 신명기계 역사가는 솔로몬 통치 기간을 “유다와 이스라엘은 그 수가 바다의 모래처럼 많았다. 그들은 먹고 마시며 행복하게 지냈다”(1열왕 4,20-21)고 평가합니다. 또 “솔로몬 임금은 부와 지혜에서 세상의 어느 임금보다 뛰어났다.”(1열왕 10,23)라고 칭송했습니다. 솔로몬의 가장 뛰어난 재능은 ‘외교술’이었습니다. 그는 최우선으로 실리 외교를 하였습니다. 그는 정략혼인을 통해 영토를 넓히고 나라를 안정시켰습니다. 그는 이집트 21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인 프스센네스 2세의 딸과 혼인해 가나안인의 땅인 게제르를 지참금으로 받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모압ㆍ암몬ㆍ에돔ㆍ시돈ㆍ히타이트 등 여러 나라의 왕족들과 혼인해 아내 700명과 후궁 300명을 뒀습니다. 솔로몬은 또 활발한 무역 활동으로 엄청난 부를 쌓습니다. 그는 해양에서 내륙으로 이어진 아라비아 대상들의 주요 무역로로 곳곳에 세관을 설치해 세금을 취했습니다. 아울러 솔로몬은 해양민족인 티로의 임금 히람과 동맹을 맺고 홍해 아카바만 에츠욘 게베르에 상선대를 두고 지중해 페니키아인들과 무역을 했습니다. 이 상선대는 팔레스티나에서 구할 수 없는 각종 귀금속과 향료, 무기 등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이처럼 솔로몬은 대외적으로 실리 외교를 통해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한편 대내적으로는 병거대 주력의 군대를 재편성해 국방력을 강화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 밖과 하초르, 므기또, 게제르에 성읍을 세우고 병거대와 기병대를 주둔시켜 요새로 만들었습니다. 솔로몬은 아울러 개화 정책을 펴 이스라엘의 문화를 상당히 발전시킵니다. 솔로몬은 왕실에 전문 역사 기록관을 두어 여러 전승을 정리했습니다. 모세 오경 야휘스트 사료가 편집된 것도 바로 이때입니다. 성경과 전승에 따르면 솔로몬은 시편이나 음악에도 뛰어난 소질이 있었고 무엇보다 지혜가 깊었다고 합니다. “그는 잠언을 삼천 개나 지었고, 그의 노래는 천다섯 편이나 되었다. 솔로몬은 레바논에 있는 향백나무부터 담벼락에서 자라는 우슬초에 이르기까지 초목들에 관하여 이야기할 수 있었으며, 짐승과 새와 기어 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관하여도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모든 민족들에게서 사람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왔다.”(1열왕 5,12-14) 성전과 궁전을 짓다 솔로몬은 국력을 바탕으로 20년에 걸쳐 성전과 궁전을 짓는 토목공사를 추진합니다. 열왕기를 저술한 신명기계 역사가는 솔로몬의 토목공사 중 성전 건축을 가장 중대한 사업으로 여겨 상세하게 기록하였습니다.(1열왕 5─7장 참조) 솔로몬은 시온 북쪽에 있는 산마루에 주님의 집 곧 성전(聖殿)을 짓습니다. 그의 아버지 다윗이 제단을 차리기 위해 샀던 땅이었습니다.(2사무 24,18-25 참조) 성전 크기는 길이 약 27m(60암바), 너비 약 9m(20암바), 높이 약 13.5m(30암바)입니다.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이 길이 69m, 너비 28m, 지붕 높이 23m, 종탑 높이 45m이니 솔로몬이 지은 주님의 집은 대략 명동대성당의 대략 3분의 1 크기였습니다. 하느님 계약 궤를 모실 성전 안 지성소는 길이, 너비, 높이 모두 약 9m(20암바)의 정방형으로 지었습니다. 솔로몬은 레바논의 향백나무로 지은 지성소를 순금으로 장식하였습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지 480년, 자신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4년째 되던 해 지우 달, 곧 둘째 달에 주님의 집을 짓기 시작해 7년 만에 성전을 완공하였습니다. 그는 다윗 성에서 하느님 계약 궤를 성전으로 옮겨와 사제들과 온 이스라엘 공동체의 정성 들인 의식으로 지성소에 안치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솔로몬은 하느님께 장엄 기도와 친교 제물을 바치고 주님의 집을 봉헌하였습니다.(1열왕 8장 참조) 주님의 집을 지어 봉헌한 솔로몬은 자신과 아내를 위한 궁전도 여러 채 지었습니다. ‘레바논 수풀 궁’이라고 이름 지은 궁전은 길이 약 45m(100암바), 너비 약 22.5m(50암바), 높이 약 13.5m(30암마)로 성전보다 2배나 길고 넓었습니다. 공사 기간도 주님의 집을 짓는 기간보다 거의 곱절인 13년이 걸렸습니다. 주님께서 진노하셨다 “주님께서 솔로몬에게 진노하셨다. 그의 마음이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에게서 돌아섰기 때문이다.”(1열왕 11,9) 솔로몬에 대한 열왕기 저자의 평가입니다. 신명기계 역사가의 눈에 솔로몬은 훌륭한 임금이 아니었습니다. 솔로몬이 한 분이신 하느님을 온전히 섬기지 않고,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충실하게 지키지 않은 임금이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두 가지 큰 잘못을 저지릅니다. 첫째, 솔로몬은 우상과 이교 풍습을 이스라엘 땅에 들여왔습니다. 솔로몬은 정략혼인으로 외국의 이교도 왕족 딸들을 아내와 후궁으로 맞아들였습니다. 솔로몬은 1000명이나 되는 자신의 여인들에게 그녀들이 섬기던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종교의식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산당(山堂)도 마련해 주었습니다. 솔로몬의 이런 행동은 이스라엘인들에게 참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율법은 이교인과의 혼인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다른 신들 곧 우상을 섬기게 될 위험 때문이었습니다. 율법 중 임금이 지켜야 할 규정(신명 17,14-20)도 솔로몬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런 이유는 신명기계 역사가는 솔로몬이 율법을 어기고 우상 숭배를 허용해 이스라엘 신앙을 쇠퇴시키고 타락시켰다고 비난합니다. 둘째, 솔로몬은 이집트의 파라오들처럼 과도한 세금과 과중한 노역을 부과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리고 자유를 억압했습니다. 솔로몬은 막대한 토목공사비를 세금으로 충당하기 위해 왕국을 열두 행정구역으로 나누었습니다.(1열왕 4,7-19) 세금 거두는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함이었죠. 그리고 레바논에서 예루살렘까지 건축자재를 나르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 3만 명을 징발했습니다. 또 돌까는 작업에 8만 명, 짐 나르는 노역에 7만 명을 동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임금의 권력에 의해 자유가 무자비하게 박탈당하고, 세속화되고, 계약 공동체의 바탕이 흔들릴 것이라는 이스라엘 첫 예언자 사무엘의 경고가 그대로 실현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 때문에 백성들의 원성은 커졌습니다. 특히 남쪽 유다 지파의 다윗 왕가에 대한 북쪽 10개 지파의 반감이 폭발 직전까지 팽배하였습니다.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솔로몬은 재위 내내 종교 혼합주의를 추구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전통과 외래 종교 문화를 융합 발전시키려 한 것이죠. 그 대표 사례가 성전과 궁전 건축입니다. 솔로몬은 바알 신을 섬기는 티로 히람 왕실의 건축가들이 설계하고 감독한 성전에 하느님 계약 궤를 모셨습니다. 가나안 이교 문화가 이스라엘인의 신앙과 생활에 스며든 명백한 증거입니다. 조상들의 신앙을 소중히 여긴 이스라엘인들은 솔로몬의 외국 문화 수입에 충격을 받았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영향을 받은 신명기계 역사가는 솔로몬의 통치가 하느님의 심판을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솔로몬은 기원전 약 972년께부터 40년간 통일된 이스라엘 임금으로 통치하다가 기원전 933년께 선종합니다. 솔로몬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지혜와 부귀영화의 대명사로 입에 오르내리고 있지만, 신명기계 역사가는 하느님께 불충실한 우상 숭배자로 평가합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03.28

동방 박사 성해(聖骸) 모신 ‘주님 공현 대축일의 성지’ 쾰른 대성당[차윤석 중세 전문가의 간 김에 순례] 10. 독일 쾰른대교구 주교좌 쾰른 대성당 쾰른 대성당. 동방 박사 성유물 순례자를 위해 1248년에 새로 짓기 시작했으나, 1520년 이후 종교 개혁 여파로 공사가 중단됐다. 1842년 독일 민족의 자긍심으로 시민들이 기금을 모아 13세기의 설계도에 따라 공사를 재개해 1880년에 완공했다. 2005년 쾰른 세계청년대회(WYD)의 구심점이었다. 필자 제공 850년 순례 역사의 쾰른 대성당 하늘을 찌를 듯한 쾰른 대성당은 독일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꼽힙니다. 1248년에 짓기 시작해 1880년에 완공된 독일 고딕 양식 성당의 걸작입니다. 첨탑 높이가 157.4m로 1884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고, 너비 대 높이 비율에서는 가장 큰 성당이며, 1996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관광지로선 큰 매력 포인트입니다. 실제 하루에 관광객 2만여 명이 다녀갑니다. 그런데 가톨릭 신자들에게 쾰른 대성당은 어떤 곳일까요? 쾰른 대성당은 13세기부터 유럽에서 손꼽히는 순례지였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별을 따라 그리스도께 경의를 표하러 온 세 명의 동방 박사 또는 왕이라 불리는 성인들의 성해가 모셔져 있기 때문입니다. 성유물함은 주제단 바로 뒤에 있습니다. 하지만 높은 천장,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와 장식들, 모자이크 바닥들에 시선이 꽂혀 여느 큰 황금 상자 중 하나라고 여기고 지나치기 일쑤입니다. 저도 처음에 그랬는데요. 목적 없이는 순례가 될 수 없었습니다. 동방 박사 성유물함(1190~1125). 베르됭의 니콜라스가 삼랑 형식의 바실리카 모습으로 제작했다. 길이 220cm×너비 110cm×높이 153cm, 무게 500kg, 참나무·금·도금한 은과 구리로 만든 유럽에서 가장 큰 금세공 작품이다. 주님 공현 대축일부터 주님 세례 축일까지 전면의 격자 패널을 열어서 성인들의 두개골을 현시한다. 필자 제공 1164년 밀라노의 세 동방 박사 성유물이 쾰른으로 동방 박사 성유물의 역사가 곧 쾰른 대성당의 역사입니다. 쾰른은 지금까지 우리가 본 순례지와 다릅니다. 베네딕도회 수도원을 시초로 형성된 도시가 아니라 라인강 요충지에 세운 군사기지로 출발한 로마 제국 도시입니다. 그래서 다른 로마 도시처럼 일찍부터 교회가 로마인의 주거지에 있었을 것입니다. 서기 313년 쾰른 주교가 마테르누스였다고 합니다. 대성당 세례대는 적어도 6세기 이곳에 큰 성당이 있었다고 알려 줍니다. 873년 여느 성당처럼 카롤루스 왕실의 지원으로 구(舊) 대성당이 들어섰고, 이후 측랑 등을 확장해나갔습니다. 1164년 라이날트 폰 다셀 대주교 때 쾰른을 뒤흔드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밀라노에서 세 동방 박사의 성해(聖骸, 성인의 유골)를 쾰른으로 옮겨온 겁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선제후 7인의 투표로 로마-독일왕으로 선출된 후 이탈리아 로마로 가서 황제 대관식을 거행했습니다. 이때 이탈리아 북부 도시들을 지나면서 제국의 통치를 확인했는데, 쉽게 말해 도시마다 낼 세금액을 확정했지요. 이때 이탈리아 왕국 대재상을 겸임하던 쾰른 대주교가 중재에 나서곤 했습니다. 그런데 프리드리히 바바로사가 원정 중 행정청을 설치해 지배력을 키우려 하자 밀라노는 반기를 듭니다. 결국 황제는 무력으로 밀라노를 점령했고, 당시 자기 편에 선 대주교에게 산테우스토르지오 대성당에 있던 성해를 선사한 겁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쾰른은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순례지로 부상했을 뿐 아니라 도시 명성과 평판도 높아졌습니다. 가대석의 ‘동방 박사 펜스’(14세기 초). 왼쪽의 두 장면은 성경 속 동방박사 이야기, 그 뒤 세 장면은 요하네스 폰 힐데스하임 수도원장의 성담(聖譚) 「축복받은 세 왕의 이야기」(1364년경)로 알려진 동방 박사의 삶과 토마스 사도의 만남, 나머지 세 장면은 성유물이 콘스탄티노플·밀라노를 거쳐 쾰른까지 오게 된 과정이 묘사됐다. 필자 제공 중세에 널리 퍼진 동방 박사에 대한 신심 동방 박사의 성해로 무슨 호들갑인가 싶겠지만, 가스파르·멜키오르·발타사르 세 명의 왕은 아기 예수님을 직접 뵌 성인들이었습니다. 하느님을 인식한 최초의 이교도였기에 구원의 빛이 모든 민족에게 비추고 있음을 드러낸 산증인인 동시에 민중에게 이들에 대한 공경은 간접적인 아기 예수님 경배였던 것이죠. 그래서 성해를 모신 행렬이 쾰른에 도착했을 때, 도시 전체 성직자들과 남녀노소가 모두 달려와 찬미가와 노래를 부르며 하늘에서 보낸 보물을 구 대성당에 모셨던 겁니다. 세 왕의 성해를 모실 화려한 장식을 갖춘 유럽 최대 크기의 성유물함도 만들었습니다. 이후 독일 왕들도 아헨에서 대관식을 거행한 후 ‘최초의 그리스도 신자’ 왕들인 동방 박사를 경배하기 위해 바로 쾰른을 방문했습니다. 오토 4세는 화려한 왕관을 기증해 세 왕의 유골을 장식하기도 했죠. 이런 배경에는 교황과의 갈등에서 신성로마제국에 직접적으로 정당성을 부여받는다는 정치적 함의도 있었습니다. 대성당 내진(內陣)의 동방 박사 소성당 스테인드글라스(1250/1260년경). 가장 오래된 스테인드글라스로 순례자들에게 구원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준다. 상단의 솔로몬왕을 찾아온 시바 여왕 사건과 동방 박사 경배처럼 구약과 신약 이미지가 좌우로 쌍을 이룬다. 필자 제공 성해가 쾰른 대성당 건립의 원동력 무엇보다 동방 박사의 성해는 새로운 주교좌 성당 건립에 결정적인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순례자가 물밀 듯이 밀려들면서 1248년 콘라트 폰 호흐슈타덴 대주교는 구 대성당을 철거하고 더 나은 건물을 재건축하기로 합니다. 오늘날 고딕 양식 대성당의 초석이 그렇게 놓인 것이죠. 1322년 지금 모습대로 내진(內陣)이 완성된 후 지금의 위치에 성유물함을 모셨습니다. 세 현자의 유골 외에도 성 펠릭스·성 나보르·스폴레토의 성 그레고리오의 유골도 같이 안치했습니다. 특히 주님 공현 대축일과 같은 특별한 날에는 전면 격자무늬의 패널을 열어 성해를 현시했는데, 순례자들은 이 시기를 큰 은총으로 여겼습니다. 순례자들은 동방의 성인들에게 자신의 고민과 사랑하는 이의 아픔과 질병을 치유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면서 성해와 접촉한 종이나 천으로 만든 일종의 ‘순례증’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갔죠. 순례증에는 동방 박사의 경배 그림과 이 증서가 병을 치유하고 위험에서 보호해준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쾰른 대성당은 오랜 역사만큼 역사적 굴곡이 많습니다. 선제후가 신교로 개종해 성지가 사라질 뻔하기도 했고, 프랑스 혁명군을 피해 피신해야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융단폭격 속에 무사한 건 기적이었죠. 하지만 짙은 어둠 속에서도 이곳을 찾는 순례자들에게 구원의 빛이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 결실 중 하나가 2005년 쾰른 세계청년대회(WYD)였을 겁니다. ‘우리는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 2,2)란 주제처럼 전 세계에서 80여만 명의 청년들이 쾰른 대성당을 방문해 경배했고, 그 후 쾰른대교구 청년들은 매년 대성당 봉헌일(9월 27일)에 맞춰 ‘동방 박사 순례’를 합니다. 2025년이 우리에게도 내면의 빛을 따라 길을 나서는 순례의 한 해가 되길 빕니다. “20+C+M+B+25!”(Christus Mansionem Benedicat, 2025년 새해에도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집을 축복해주시길!) <순례 팁> ※ 쾰른 중앙역은 유로스타(파리 3시간 15분, 브뤼셀 2시간), ICE/IC(암스테르담 2시간 45분, 프랑크푸르트 1시간 15분)가 정차한다. 주차는 CONTIPARK Tiefgarage Am Dom이 편하다. ※ 대성당 보물실(10~18시), 상트 우르술라 성당의 황금의 방(대성당에서 700m) 방문도 순례의 일종. ※ 대성당 미사 : 평일 6:30·7:15·9:00· 18:30, 주일 7:00·08:30·10:00·12:00· 18:30, 저녁 기도 : 평일 18:00, 주일 17:30. cpbc2024.12.31

이콘에서는 왜 ‘하느님의 빛’을 검푸르게 그릴까[김형부 마오로의 이콘산책] (6)빛의 감각의 현현- 부정의 미학 (작품1)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일부: 모자이크 이콘, 565~566경, 성 카타리나 수도원, 시나이. 인간의 개념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하느님 지구의 모든 존재 중 최고의 지성을 가진 인간은 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하느님이 계심을 알고, 또 내 안에 그분의 영이 존재함을 믿어왔습니다. 그렇기에 두 손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기도하며 찬미가를 부릅니다. 그렇다 해도 하느님을 안다는 것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단 하나의 얼굴’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에 대해 많은 것을 비유를 들어 소상히 가르치십니다. 따라서 이콘에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 모습을 표현합니다. 다음 이야기는 표현의 한계를 설명합니다. 어느 날 두 친구가 밖을 내다보며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야! 밖에 하얀 눈이 내려서 정말 아름답고 깨끗하게 보이네!” 그렇지만 한 친구는 시각장애인이었기에 하얀 눈이 차갑고 손바닥에서 녹는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지만, 하얀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하얀 것이 어떤 것이야?” 친구는 색을 어떻게 설명할까 생각하다가 말했습니다. “응, 하얀 것은 백조와 같지. 백조는 하야니까.” “백조는 어떻게 생겼는데?” “백조는 이렇게 생겼지”하며 친구가 오른 손가락을 모으고 팔목을 구부려 새 모양을 만들고 친구에게 만져보게 했습니다. 친구의 손과 팔뚝을 만져본 다른 친구는 이해했다는 듯 “아하, 하얗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라고 말했습니다. 그 친구는 과연 하얀 것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했을까요? 하느님의 빛은 ‘빛나는 어둠’ 하느님에 관해 설명할 때 인간의 개념으로 표현할 수 없는 언어적 공백이 생깁니다. 이럴 때, 부정(否定)이라는 방법을 사용하게 됩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에 대해 굳이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 즉 억지로 표현하려는 것을 ‘제한한다’는 것입니다. 이콘에서 표현하는 하느님의 빛에 대해 살펴보면, 하느님의 빛은 세상의 빛과는 다르게 어둡게 표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빛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물리적 빛(태양 빛, 전기나 불빛)으로 표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현현(顯現)하실 때는 오히려 어둠이 동반되는 경우를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콘에서는 하느님의 알 수 없는 빛을 짙은 검푸른 색으로 표현하며, 이를 ‘빛나는 어둠’이라 부릅니다. 그 어둠은 태초 이전의 빛, 아마도 우주 탄생 이전의 빛으로 유한한 인간이 보는 빛과는 다른, 무한하신 하느님과 연결되는 빛으로 보이는 장면입니다. “해 질 무렵, 아브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는데, 공포와 짙은 암흑이 그를 휩쌌다. 그때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창세 15,12-13) 하느님과의 계약을 위해 아브람은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동물들을 반으로 갈라 양쪽으로 마주 보게 차려놓았습니다. 그러나 온종일 기다려도 하느님께서는 오시지 않았습니다. 독수리 떼들이 피 냄새를 맡고 하늘을 떠돌아, 그는 새들을 쫓기에 바빴습니다. ‘해 질 무렵’은 아직도 해가 있으므로 어두울 리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공포와 암흑이 그를 휩쌌다’는 것은 하느님의 현현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하느님께서 현현하실 때는 ‘공포와 깊은 잠과 암흑’이 동반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밖으로 드러난 성자 하느님으로 표현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이러한 내용이 나옵니다. 솔로몬 왕은 하느님의 성전을 짓고 계약의 궤를 모시는 의식을 열었습니다. 사제들이 성소에서 나올 때 구름이 주님의 집을 가득 채웠는데, “주님의 영광이 주님의 집에 가득 찼다”면서 솔로몬이 나오며 말합니다. “그때 솔로몬이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짙은 구름 속에 계시겠다’고 하셨습니다.”(1열왕 8,12) 이콘에서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와 예수 승천에도 하느님의 현현을 의미하는 어두운 광휘를 그립니다(작품1 참조). 물론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의 경우 성경에서는 빛이 눈부시게 예수님을 감쌌다고 기술했습니다. 그러나 이콘은 특정한 경우, 예수님을 밖으로 드러난 성자 하느님으로 표현합니다. 따라서 복음서 저자 이콘에서는 그분을 중심으로 짙은 구름을 기하학적인 단순화 작업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작품2 참조). (작품1)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를 살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제자들의 대답은 세례자 요한이라고도 하고, 엘리야라거나 일부는 어느 예언자 중 하나가 부활했을 거라고 대답합니다.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베드로가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마태 16, 16) 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을 위해 많은 기적을 베푸시고 사랑을 보여 주셨어도 그들은 알지도 깨닫지도 못했으며, 돌아오지도 못했습니다. 이유는 ‘그들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광보다는 인간이 주는 영광에 더 이끌렸기 때문’이라고 성경에서 말씀하십니다.(이사 6,10 참조) 예수님은 산(타볼) 위로 오르십니다. 산은 하느님을 상징합니다. “산들을 향하여 내 눈을 드네. 내 도움은 어디서 오리오?”(시편 121,1)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곱과 요한만을 데리고 산에 오르시고, 수난 저녁에 겟세마니 산에도 이 세 제자만을 데리고 산에 오르십니다. 그리고 빛의 모습과 동시에 어둠이 어떤 것인지 알려 주십니다. (작품2) ‘성자 하느님과 지혜의 천사군단’: 템페라, 18x16cm, 트레차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러시아. 예수님 둘러싼 짙은 구름은 성령의 추상적 형태 예수님의 얼굴과 옷은 태양과 같이 빛나고 주변의 모든 것은 그분에서 나오는 빛으로 ‘어둠 속으로 비치면서’(요한 1,5) 밝아졌습니다. 어둠은 믿음의 어둠을 상징화하고, 하느님의 현현을 상징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현현하실 때 ‘그분은 어두워진다’를 이콘에서는 보여 주며 이를 ‘빛나는 어둠’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른손 엄지와 약지로 인성과 신성을 보여 주시며 하느님의 이름으로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아무도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지만, 하느님과 똑같으신 그분이 하느님을 알려주시며(요한 1,18; 12,45-46), 따라서 그리스도는 천상과 지상의 연결점 역할을 담당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는 형태(만돌라)로 둥근 것은 짙은 구름이지만, 우리가 흔히 보는 구름이 아니고 성령의 추상적인 구름 형태입니다. (작품2) ‘성자 하느님과 지혜의 천사군단’을 살펴보겠습니다. 옥좌에 앉아계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면서 성자 하느님으로 표현합니다. 어두운 만돌라 형태로 둘러싸여 있으며, 붉은색으로 그려진 네 군데의 동물은 네 복음서를 상징합니다. 천사 모습은 예수님의 족보부터 시작하며 마태오 복음서를 상징합니다. 사자 모습은 마르코 복음서를 나타내고 시작은 사자처럼 소리치는 요한 세례자의 설교로 시작합니다. 루카 복음서는 희생 제물을 상징하는 소와 함께 사제의 역할을 하는 즈카르야가 처음부터 등장합니다. 독수리는 하늘을 나는 동물로 영성적인 면을 처음부터 도입한 요한복음서를 의미합니다. 발판은 관을 의미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나타내며, 발판의 붉고 둥근 원은 옥좌의 천사이며 수많은 눈이 박혀있습니다. 만돌라 안의 짙은 구름 안에는 수많은 지혜의 천사(케루빔)가 주님을 호위하고 있습니다. 들고 있는 성경의 내용에는 여러 가지 내용이 있을 수 있으며, 그중 많이 그려진 것은 ‘짐 진 자는 나에게 오라’(마태 11, 28)라는 내용입니다. 김형부 마오로/ 전 인천가톨릭대 이콘담당 교수 cpbc2024.01.31

하느님께 불충한 이들, 벌을 받다[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37) 열왕기 열왕기는 통일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지고 멸망한 것은 임금들이 하느님을 올바로 섬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면서 하느님께 순종할 것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하예즈, ‘예루살렘 성전 파괴’, 1867, 유화, 갤러리에 델 아카데미아 베네치아. 열왕기의 히브리어 성경 이름은 ‘멜라킴’입니다. 우리말로 ‘왕들’이라는 뜻이죠. 열왕기는 사무엘기처럼 본디 한 권의 책이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옮긴 「칠십인역」 번역자들은 멜라킴을 사무엘기의 후편으로 여겨 사무엘기를 두 권으로 나눴던 것처럼 둘로 나눠 ‘바실레이온 감마’(Βασιλειων Γ, 제3왕국기), ‘바실레이온 델타’(Βασιλειων Δ, 제4왕국기)로 이름 지었습니다. 1열왕 1,1─2,46이 사무엘기 하권의 ‘다윗 왕위 계승’(2사무 9,1─20,26) 내용과 연결되고, 사무엘기와 열왕기 모두 연속되는 이스라엘의 왕조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칠십인역을 따르지 않고 ‘ⅠReges’(1열왕기) ‘ⅡReges’(2열왕기)라 했습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가톨릭 「성경」은 히브리어 타낙 성경과 라틴어 불가타 성경에 표현에 따라 ‘열왕기 상권’과 ‘열왕기 하권’으로 표기합니다. 열왕기는 기원전 970년 다윗의 재임 마지막 해부터 기원전 561년 여호야킨 임금이 바빌론 감옥에서 풀려난 사건까지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왕국 유다 임금들의 실록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임금들이 어떻게 하느님께 불충했는지 이에 하느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벌하셨는지를 들려줍니다. 이 시기는 이탈리아에서 로마가, 아프리카에서 카르타고가 건국하고, 바빌로니아가 아시리아를 정복하던 격동기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0년 왕조 시기 동안 흥망성쇠를 거듭합니다. 통일 이스라엘은 기원전 932년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왕국 유다로 갈라집니다. 유다 왕국에서는 다윗 왕조의 승계를 유지하지만, 이스라엘 왕국에서는 약 200년 동안 9번의 쿠데타가 일어나고, 그때마다 왕조가 바뀌는 혼란을 겪습니다. 그러다 기원전 722년 북 왕국 이스라엘은 아시리아 살만에세르 5세의 침공으로 멸망하고, 백성들은 아시리아로 끌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합니다.(2열왕 17장) 남 왕국 유다는 기원전 587년 신바빌로니아 네부카드네자르의 군대에 짓밟혀 패망합니다. 예루살렘은 불탔고, 성전은 파괴됩니다. 다윗 왕조의 통치도 멈춥니다.(2열왕 25장) 그리고 유다 백성들은 바빌론으로 끌려가 유배살이를 합니다. 유다교는 예레미야 예언자가 열왕기를 저술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성경학자들의 일반 견해는 신명기계 역사서 편집자들이 열왕기를 최종 편집했다고 봅니다. 학자들은 기원전 561~538년 사이에 열왕기가 최종 편집됐으리라 추정합니다. 열왕기 마지막 부분인 2열왕 25,27에 네부카드네자르의 아들 에윌 므로닥이 바빌로니아 임금으로 등극하던 해(기원전 561년)에 유다 임금 여호야킨을 감옥에서 풀어줬다는 내용만 있지, 유배자들에게 예루살렘 귀환을 선포하는 키루스의 칙령(기원전 538년)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입니다. 열왕기 저자는 이 책의 편집을 위해 세 가지 사료, 곧 ‘솔로몬의 실록’(1열왕 11,41), ‘이스라엘 임금들의 실록’(1열왕 14,19), ‘유다 임금들의 실록’(1열왕 14,29)을 사용했다고 밝힙니다. 하지만 오늘날 성경학자들은 열왕기가 바빌론 유배 이전 요시야 임금 때 기록된 본문들(1열왕 8,8; 2열왕 8,22; 17,24-34)도 있지만, 많은 부분 바빌론 유배 후반기에 기록됐다고 주장합니다. 열왕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솔로몬 통치’(1열왕 1─11장), ‘이스라엘 수도 사마리아 멸망까지의 남북 두 왕국 역사’(1열왕 12장─2열왕 17장), ‘예루살렘 멸망까지의 남 왕국 역사’(2열왕 18─25장)입니다. 열왕기는 늙고 기운을 잃은 다윗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아도니야가 다윗을 이을 야망에 불탔으나 동생 솔로몬이 궁정 음모를 통해 후계자가 됩니다.(1열왕 1,5-53) 이어 솔로몬의 치세는 그가 지은 죄들에 대한 부정적 기록으로 끝맺습니다.(1열왕 2장─11장) 이후 임금들의 실록이 이어집니다. 열왕기는 임금 대부분을 부정 평가합니다. 임금들에 대한 평가 기준은 히즈키야와 요시야 임금이 시행했던 종교 개혁 규정이었습니다. 곧 하느님과 맺은 계약에 얼마나 충실했느냐에 따라 임금들을 평가했습니다. 열왕기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임금들 역사만을 전해주는 책이 아닙니다. 임금들과 함께했던 예언자들도 등장합니다. 나탄과 아히야, 엘리야, 엘리사, 미카야, 훌다가 그들입니다.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백성을 다스리는 임금이 하느님께 충실하지 못할 때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다시 하느님께 돌아올 것을 촉구합니다.(1열왕 18,17-40; 2열왕 17,13) 또한 그들의 죄에 대한 하느님의 처벌을 선포합니다.(1열왕 14,7-11; 2열왕 22,16-17) 예언자들은 하느님과 율법에 충실하라고 합니다. 열왕기는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이 분열되고 멸망한 것은 하느님을 올바로 섬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임금들이 바알을 숭배해 백성들은 하느님과 멀어지는 길로 이끌었기에 그 죄에 대한 벌로 나라가 망했다고 합니다. 열왕기는 임금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께 순종할 것을 호소합니다. 아울러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올바로 섬기는 이들을 보호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08.16

하느님의 사랑 아래 현재에 충실하며 행복하게[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49) 코헬렛 코헬렛은 지혜로운 사람은 현재의 삶에 성실하고 하느님의 섭리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사람이라고 가르친다. 지난 8월 리스본 세계청년대회에 참여한 젊은이들이 함께 십자가를 지고 행렬하고 있다. OSV 구약 성경 제1 경전인 히브리어 타낙 성경은 ‘코헬렛’을 성문서로 분류해 ‘아가’ 다음에 배치해 놓았습니다. 코헬렛이 무슨 뜻인지 명확지 않습니다. 다만 회중을 모으거나 집회를 이룬 공동체 안에서 가르치는 직책이나 직무를 맡은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헬라어 구약 성경 「칠십인역」은 코헬렛을 ‘Εκκλησιαστηs’(에클레시아스테스)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우리말로 ‘회중을 가르치는 설교자’라는 뜻입니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칠십인역 명칭을 그대로 계승해 코헬렛을 ‘Ecclesiastes’라고 표기합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구약 성경 제1 경전의 전통을 이어받아 ‘코헬렛’으로 표기합니다. 그리고 가톨릭교회 성경 분류법에 따라 ‘시서와 지혜서’에 분류해 놓았습니다. 한국 교회는 「공동번역 성서」에서 코헬렛을 ‘전도서’라고 번역해 표기한 바 있습니다. 책 이름이 코헬렛으로 불린 이유는 표제에 “다윗의 아들로서 예루살렘의 임금인 코헬렛의 말이다”(코헬 1,1)이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다교 전승에 따르면 솔로몬 임금이 노년에 코헬렛을 지었다고 합니다. 다윗의 아들로서 예루살렘의 임금은 ‘솔로몬’뿐이기 때문입니다.(코헬 1,1. 12 참조) 하지만 코헬렛의 실제 저자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팔레스티나를 다스리던 때인 기원전 3세기께 예루살렘에서 지혜를 가르치던 현인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코헬렛에 아람어와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히브리어가 나오고 있을 뿐 아니라 기원전 2세기에 일어났던 마카베오 항쟁에 관해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또 기원전 2세기에 편집된 집회서의 저자가 코헬렛을 이미 알고 있었고(집회 14장 참조), 기원전 2세기 중엽에 제작된 쿰란 필사본에 코헬렛의 몇 구절이 기록돼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코헬렛이 실제 저자에 의해 최종 완성된 것이 아니라 후대 편집자의 손을 거쳐 완성된 것으로 봅니다. 코헬렛은 표제(1,1)와 머리말(1,2-11), 코헬렛의 자기 반성과 인생에 대한 반성(1,12─2,26), 인간 현실의 부정적 면과 한계(3,1─6,12), 인간 실존 문제들(7,1─12,8), 맺음말(12,9-14)로 구분됩니다. 코헬렛은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1,2)라는 말로 시작해 같은 말로 끝맺습니다.(12,8) 이처럼 코헬렛은 모든 것이 허무라고 합니다. ‘허무’로 표현되는 히브리말 ‘헤벨’은 본래 ‘숨’, ‘입김’, ‘실바람’을 뜻합니다. 추상적으로는 ‘허무’, ‘허망’, ‘무상’, ‘덧없음’, ‘공허’, ‘헛됨’을 의미합니다. 간과해선 안 될 것은 헤벨의 숨은 뜻입니다. 헤벨은 곧 사라질 것 같은 무상함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숨’은 모든 생명을 유지하는 필수 요소입니다. “곧 히브리어 헤벨은 생의 갖가지 요인(부귀, 명예, 쾌락 등)이 숨처럼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한 조건일 수 있지만 동시에 숨과 마찬가지로 찰나적이어서 찰나적인 것을 삶의 본질인 양 좇고 영원히 소유하려는 노력만큼 무상하고 무의미한 것도 없음을 가리킵니다.”(김혜윤 수녀, 「시서와 지혜서」 180쪽) 코헬렛은 그러면서 태양 아래에서 인간의 삶이 왜 헛되고 허무한지를 순환하는 자연의 모습과 인간 역사를 들어 설명합니다. 코헬렛은 인생이 허무한 이유는 인간이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한다고 해도 결코 그것을 완전히 소유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코헬렛은 삶 자체를 싫어합니다.(2,17) 살아 있는 사람보다 오래전에 죽은 이들이 더 행복하고, 이보다 더 행복하기로는 아예 태어나지 않아 이 세상에서 자행되는 불의와 허무한 일들을 보지 않는 인간이라고 합니다.(4,2-3) 코헬렛은 또 인간사의 모든 것은 정해진 때가 있으며, 이는 하느님의 섭리이며 선물이라고 가르칩니다. 코헬렛은 지혜, 정의, 여자, 권력, 운명, 사회 관계와 같은 인간 실존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를 다루면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현실과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 인생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강조합니다. 현재를 가장 좋은 때로 인식하고 살아갈 때 인간은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코헬렛은 ‘즐김’은 삶의 본질과 진수를 누리며 현재에 전적으로 충실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면서 코헬렛은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켜라”(12,13ㄴ)며 모든 가르침을 마무리합니다. 정리하면, 코헬렛은 단순히 현실을 즐기는 쾌락주의를 권고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에 성실할 것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성실해야 하는 근거는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인 경외에 있다고 합니다. 하느님 없는 인생은 무의미하므로 주님께 대한 믿음을 절대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인간은 하느님의 섭리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켜라. 이야말로 모든 인간에게 지당한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좋든 나쁘든 감추어진 온갖 것에 대하여 모든 행동을 심판하신다.”(코헬 12,14)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11.15

구약 성경이 함축된 찬양가이자 탄원가[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47) 시편 시편은 구약 역사 전반에 드러난 하느님의 계시가 집약돼 있어 ‘구약 성경의 요약집’이라고 정의한다. 한 유다교 랍비가 시편을 읽고 있다. osb 제공 시편은 히브리어 타낙 성경에서 ‘세페르 테힐림’으로 표기돼 있습니다. 우리말로 ‘찬양가들의 책’이란 뜻입니다. 구약 성경 제1경전인 타낙 성경은 시편을 성문서의 첫 자리에 배치할 만큼 중시합니다. 유다인들이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기억하기 위해 기도와 전례 안에서 읊은 찬가가 바로 시편이기 때문입니다. 헬라어 구약 성경 「칠십인역」은 시편을 ‘프살모이’(Ψαλμοι)라고 합니다. 우리말로 ‘현악기(하프)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라는 뜻입니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프살모이를 그대로 옮겨 ‘프살무스’(Psalmus)라고 표기합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시편(詩篇)’으로 이름 붙였습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시편의 다른 이름으로 ‘성영(聖詠)’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우리말 「성경」은 시편마다 두 개의 번호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 시편 번호를 기본으로 헬라어 칠십인역 시편 번호를 괄호 안에 별도 표기하고 있습니다. 헬라어 칠십인역은 히브리어 시편 9-10편, 114-115편을 9편과 113편으로 하나로 묶고, 116편을 114-115편으로, 147편을 146-147편으로 나눴습니다. 그래서 시편 번호 표기가 차이 납니다. 시편은 고대 왕정 시기(기원전 12세기) 이전부터 마카베오 시대(기원전 2세기)까지 1000년이 넘는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서 150편으로 수집 편집돼 정착된 찬양가 모음집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시편이 예루살렘 제2성전 시기에 사용되던 전례 성가집의 일부분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시편은 구약 성경의 가르침을 집대성한 결정체입니다.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해 형성된 이스라엘의 종교 심성 전반이 시적 운율 안에서 결정을 이룬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시편에는 이스라엘의 율법과 역사, 지혜, 예언 등 구약 성경을 형성하는 주요 구성 요소들을 녹여놓았습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시편은 구약 역사 전반에 드러난 하느님의 계시가 집약돼 있다고 말하며 ‘구약 성경의 요약집’이라고 평가합니다. “시편은 유배 혹은 그 이전부터 있었던 억압의 상황과 부조리의 현장에서 이스라엘을 하나로 묶어주던 민족 정서의 총체였다. 그 안에는 고통과 기쁨, 불신과 신뢰, 탄원과 찬양, 불안과 평화, 거부와 다가감, 불평과 감사 등 인간 내면의 모순된 감정과 세상에서 체험하게 되는 모든 정서가 집약적으로 표현되어 있다.”(김혜윤 수녀, 「시서와 지혜서」 24쪽) 시편 저자는 유다인의 전통 안에서 다윗 임금으로 알려졌습니다. 다윗 임금을 시편의 저자라고 간주하는 데는 150편의 시편 가운데 73편에 ‘레 다윗’이라고 표현돼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레 다윗’은 ‘다윗의’라는 뜻뿐 아니라 ‘다윗에게’ ‘다윗을 위한’ ‘다윗에 관한’이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말 「성경」은 전치사 ‘레’를 번역하지 않고 ‘다윗’으로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 74편에는 ‘성전’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시편 137편은 바빌론 유배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시편 전체의 저자를 다윗 임금으로 인정하기에는 부적합합니다. 따라서 성경학자들은 시편 저자를 다윗 임금뿐 아니라 코라의 자손들, 아삼, 솔로몬, 제라 사람 헤만과 에단, 모세, 여두툰, 작가 미상도 있다고 봅니다. 코라의 자손들은 다윗 시대 용사로 활약했고(1역대 12,7), 성전 문지기로 봉사하기도 했습니다.(1역대 9,19) 레위 지파에 속한 이들은 성전에서 음악을 담당했기에 시편의 많은 부분을 지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삽과 제라 사람 헤만, 에탄은 다윗 시대 성가 책임자들이었습니다. 아삽은 시편 50편과 73─83편의 머리글에 이름이 나옵니다. 헤만은 1역대 2,5과 1열왕 5,11에 등장하는데 솔로몬 때 활동했던 유명한 현자로도 소개됩니다. 여두툰은 역대기와 느헤미야기에 등장합니다.(1역대 9,16; 25,1; 2역대 5,12; 느헤11,17) 그는 성전에서 음악을 담당했던 이로 시편 39편과 62편, 77편 머리글에 나옵니다. 시편 150편을 집대성해 편집한 이들은 유다 히즈키야 임금의 명을 받은 레위인들로 추정됩니다. “히즈키야 임금과 대신들이 레위인들에게 다윗과 아삽 선견자가 지은 노랫말로 주님을 찬양하라고 이르니, 레위인들은 몹시 기뻐하며 찬양하고 무릎 꿇어 경배하였다.”(2역대 29,30) 총 150편의 시편은 모세 오경처럼 다섯 권의 책에 수록돼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다섯 권의 노래집’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다섯 권의 책은 서로 구별하기 위해 각 권의 마지막에 ‘아멘’을 표기해 두었습니다. 1권(1─41편)ㆍ4권(90─106편)ㆍ5권(107─150편)은 하느님의 이름을 ‘야훼’로, 2권(42─72편)ㆍ3권(73편─89편)은 ‘엘로힘’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시편은 크게 ‘찬양시’와 ‘탄원시’로 나뉩니다. 찬양시는 첫음절에 ‘하느님을 찬양하라’고 권고하고, 하느님을 찬양하는 이유를 노래합니다. 탄원시는 기도자가 하느님을 부른 다음 자신의 처지를 하느님 앞에 하소연하고,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합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11.02

이스라엘, 나라는 분열되고 우상숭배 성행[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18) 이스라엘 두 왕국으로 갈라지다 이스라엘은 솔로몬이 사망한 후 남 왕국 유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로 갈라진다. ‘프라고나르,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고 있는 예로보암’, 1752년, 아카데미 데 보자르, 파리, 프랑스. 남 왕국 유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 기원전 933년께 솔로몬이 죽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하브암이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군합국’(君合國)이었습니다. 군합국은 최고 권력인 한 임금 아래에 둘 이상의 왕국이 결합해 이루어진 나라를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남북의 지파가 합해져 이뤄진 왕국이었습니다. 남쪽 지파는 유다와 벤야민 지파를 말합니다. 북쪽 지파는 나머지 열 지파를 일컫습니다. 다윗이 먼저 유다 지파의 왕으로 선출된 다음 북쪽 지파 원로들이 다윗과 계약을 맺으면서 그를 왕으로 인정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합니다.(2사무 5,1-5) 이처럼 누군가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려면 먼저 남북으로 양립된 열두 지파의 지지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유다 지파 출신인 르하브암은 북쪽 지파의 지지를 얻기 위해 스켐에서 지파 원로들을 소집합니다. 이 자리에서 북쪽 지파 원로들은 르하브암에게 솔로몬 치하의 과중한 공물 징수와 강제 노역을 감해 달라고 청합니다. 르하브암은 이 요구를 거절합니다. 그러자 북쪽 지파 원로들은 르하브암의 왕위 계승을 인정하지 않고 느봇의 아들 예로보암을 자신들의 왕으로 선포합니다. 이로써 이스라엘은 남 왕국 유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로 갈라집니다.(1열왕 12장 참조) 유다와 이스라엘 두 왕국은 사해 북쪽 벳 아라바에서 유다 광야의 와디 엘 켈트와 와디 수웨이니트의 서쪽 산악 지역, 게바 북쪽과 벳 호론 남쪽, 아얄론 북쪽 필리스티아인의 영토를 경계로 분열됐습니다. 르하브암 르하브암은 41살에 즉위해 기원전 913년까지 유다를 다스립니다. 그는 북쪽 지파들이 자신을 임금으로 인정하지 않자 군사 18만 명을 동원해 무력으로 진압하려 했습니다. 그러자 스마야 예언자가 르하브암에게 “동족끼리 싸워서는 안 된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1열왕 12,22-24; 2역대 11,1-4) 다행히 르하브암은 스마야가 전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이스라엘을 치지 않습니다. 대신 그는 예루살렘에 살면서 베들레헴과 헤브론 등 유다와 벤야민 지파 땅 15곳에 요새를 짓고 군대를 배치합니다.(2역대 11,5-12) 르하브암의 어머니는 암몬 출신 나아마였습니다. 이교인이었죠.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르하브암은 하느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곳곳에 산당을 지어 아세라 목상을 세워 백성들에게 우상 숭배를 하게 했고, 신전 남창들이 그곳을 지키게 했습니다. 성경은 르하브암이 주님의 율법을 저버리고 하느님을 배신하였다고 비난합니다.(2역대 12,1-2) 그 결과 르하브암 재위 5년 때 이집트 파라오 시삭이 유다를 침략해 예루살렘을 약탈했습니다. 주님의 집은 물론 왕궁이 모조리 털렸습니다.(2역대 12장 참조) 르하브암은 기원전 913년께 사망합니다. 예로보암 북 왕국 이스라엘의 태조인 예로보암은 에프라임 지파 출신입니다. 예로보암은 우리말로 ‘백성은 위대하다’는 뜻입니다. 실로 출신 아히야 예언자는 예로보암에게 이스라엘의 임금이 될 것이라면서 다윗처럼 하느님의 명령하는 바를 모두 귀담아듣고, 주님의 길을 걸으며 하느님 눈에 드는 옳은 일을 하고, 주님의 규정과 계명을 지키는 임금이 되라고 당부했습니다.(1열왕 11,38 참조) 하지만 예로보암은 왕위에 오르자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 정반대의 길을 걷습니다. 예로보암은 베텔과 단에 예루살렘 성전을 대치하는 이스라엘 왕국의 성소를 세웁니다. 그리고 그는 성소에다 금송아지를 두고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신다”면서 백성들에게 우상을 숭배하게 하고, 레위인이 아닌 자들을 사제로 임명해 자기가 마음대로 정한 축제일에 금송아지에게 제물을 바치게 했습니다.(1열왕 12,28-32) 예로보암이 이 같은 짓을 한 이유는 축제 때마다 희생 제물을 바치러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을 버리고 유다 임금인 르하브암을 따르지 않을까 불안했기 때문입니다.(1열왕 12,26-27) 이 일로 예로보암 집안에는 하느님의 무자비한 재앙이 내려집니다. 하느님께서 예로보암에 속한 모든 사내를 치셨습니다. 성 안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어 치우고, 들에서 죽은 자는 새가 쪼아 먹을 만큼 예로보암의 집안에 속한 이는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1열왕 14장 참조) 예로보암은 이스라엘을 22년간 통치하다 기원전 910년께 사망했습니다. 르하브암과 예로보암 중 누가 이스라엘 왕국 분열에 대한 책임이 더 클까요? 시기에 따라 평가가 달라집니다. 기원전 550년께 쓰인 신명기계 역사서 가운데 열왕기는 르하브암을 별로 탓하지 않고 오히려 예로보암을 비난합니다. 그 이유는 예로보암이 베텔과 단에 성소를 짓고 금송아지를 세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상을 숭배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기원전 180년대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하는 집회서는 르하브암과 예로보암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르하브암은 백성 가운데 우둔하고 지각없는 자로서 그의 정책 때문에 백성이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다. 느밧의 아들 예로보암도 이스라엘을 범죄로 이끌었고 에프라임에게 죄악의 길을 걷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의 죄악이 무척 불어나서 그들은 자신들의 고향에서 떠나게 되었다. 그들은 온갖 악을 따르다가 마침내 자신들에게 징벌을 불러들였다.”(47,23-25) 집회서는 르하브암이 스켐 회의에서 백성들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여줬으면 솔로몬 통치 기간에 생겨난 불만들을 해소해 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합니다. 집회서는 르하브암이 무지하지 않았다만 이스라엘 왕국은 분열은 없었을 것이라고 탓합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03.31

입체파 그림처럼… 한 작품에 담긴 여러 의미와 시선 [김형부 마오로의 이콘산책] (16) 방주의 틀 - 영원을 향한 창문(3) (작품 1) 모든 성인 : 템페라, 74 x 49 cm, 17세기 말, 개인 소장, 파리, 프랑스. 화면에 병치·대치·여러 개의 공간 등이 망라된 이콘의 사례다. 하느님의 초월성 표현 위해 구성 방식에 중첩·병렬·대치를 활용하거나 의도적으로 미학적 형식 왜곡 하느님 세계에는 하느님의 빛만이 존재하기에 그림자가 없고 인물 눈동자에 흰점 찍지 않아 3. 이콘의 구성 동양사상에서 등장하는 무(無)의 개념과 서방에서 등장하는 초월성을 설명하기란 어렵습니다. 전부이면서 아무것도 아니고 어느 곳에도 없으면서 동시에 어느 곳에나 있는 것을 어떻게 표현할까요? 구약에서 바람은 하느님의 영이며 생명을 주시는 숨이고, 하느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로 해석합니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붑니다. 보이지 않는 공기의 움직임을 바람이라고 하며, 하느님의 초월성을 느낄 수 있는 대리 역할이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초월성을 표현하기 위해 이콘은 부정주의·정적주의·신화사상을 종합하여 독특한 미학을 형성하였습니다. 등장 인물의 경직성, 그림의 고요함, 피부의 갈색, 빛의 표현, 일정하게 굽이치는 머리카락, 직선과 평행선처럼 움직이는 옷 주름들, 바라보는 눈의 위치, 원근법의 반대 현상, 색깔의 의미, 금의 사용과 의미, 몸에서 발산하는 빛 등은 앞서 언급한 신학 사상의 회화적 표현입니다. 이콘의 구성과 처리 방법에서도 그것이 드러납니다. 각각의 사건과 인물의 위치와 의미에 따라 개별 공간을 두어 구성하고, 화면 전체를 여러 겹으로 겹치거나(중첩) 또는 나란히 늘어놓거나(병렬), 혹은바라보는 방향을 여러 개로 응용하여 배열합니다. 이러한 방법은 현실 세계와 맞지 않는 모순(矛盾)이발생합니다. 이러한 구성은 좁은 화면에서 많은 내용을 보여주면서도 질서를 유지하게 합니다. 이는 이콘 이미지의 구성 방식에 시각적 응용과 미학적 형식을 의도적으로 왜곡시킴으로써 초월적 대상을 느끼게 하려는 것입니다. 장엄함은 크게, 숭고함은 높게, 종말론적 의식은 미완성으로, 초월적인 상태는 여백으로, 아름답고 충만한 소리는 침묵으로 표현합니다. 그 외에도 과장을 의도적으로 생략하고 여러 개의 시선을 표시하는 다중점·왜곡 등을 써서 나타냅니다. 이콘 ‘모든 성인’(작품 1)은 병치·병렬·대치·여러 개의 공간 등으로 구성한 것입니다. 이콘의 맨 윗부분에는 붉은 글씨로 ‘모든 성인’이라고 쓰여있습니다. 이 이콘은 최후의 심판과 연결됩니다. 이콘의 가운데에 붉고 푸른 둥근 공간이 있습니다. 가운데에는 황금빛 광채와 더불어 하느님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앉아계십니다. 황금색 원 왼편에는 불쌍한 영혼을 위해 청원하는 성모 마리아(성자 하느님 옥좌의 오른편)가 있고 오른편에 요한 세례자가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구세주 탄생 이후의 영혼들을 위해, 요한 세례자는 구세주 탄생 이전 구약의 영혼들을 위해 하느님께 청원하는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의 머리 위에 팔각 후광이 있는 천사 모습으로 ‘지혜’께서 서 계십니다. 지혜 주위에 천사들의 군단이 있습니다. 창궁의 위아래에는 해와 달·별들이 빛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는 최후의 심판 때 오실 주님을 위해 준비된 옥좌가 있습니다. 그 옥좌 위에는 청색의 천이 놓여있습니다. 옥좌 뒤에는 그리스도에 의해 윗부분이 가려진 갈색 십자가가 걸쳐 있습니다. 옥좌 앞에는 아담과 하와가 무릎을 꿇고 하느님을 경배합니다. 성자 하느님 좌우에는 군중이 다섯 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천사 군단 아랫부분에는 왕·예언자·구약의 성조들이 있고, 그 밑에는 예수님의 사도들이 있습니다. 그 아래 계층은 교부·주교·사제들입니다. 그 밑의 왼쪽은 순교자들, 오른쪽은 은수자들과 수도자들입니다. 가장 아랫부분 왼편에는 성덕이 가득한 귀부인들이 있고 맞은 편에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반 나신의 늙은 여인이 있는데 이 여인은 이집트의 마리아이며 속죄와 참회 여인으로 성녀들과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성자 하느님의 옥좌 주위에 복음 사가들의 상징인 사람(마태오)·사자(마르코)·소(루카)·독수리(요한)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콘의 맨 윗부분 왼쪽 가장자리에 다윗왕이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환호하여라. 올곧은 이들에게는 찬양이 어울린다”(시편 33,1)라고 적힌 두루마리를, 오른쪽에는 솔로몬왕이 “저희의 하느님, 당신께서는 어지시고 진실하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만물을 자비로 통솔하십니다”(지혜 15,1)라고 적힌 두루마리를 펴는 모습이 보입니다. 하단부에는 나무와 꽃들이 만발한 천국에 노인 두 명이 있습니다. 왼쪽(하느님 시각의 오른쪽)은 아브라함, 오른쪽은 야곱입니다. 그들은 금색이 어우러진 옥좌에 앉아서 회백색의 천을 들어 올려 수많은 영혼을 품 안에 거두고 있습니다. 그 영혼들은 밖을 바라보고 있으며 의로운 영혼들입니다. 아랫부분 가운데에는 하체만을 가린 채 긴 붉은 십자가를 어깨에 걸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 처형을 받고,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천국을 허락받은 착한 도둑입니다. 이 이콘은 마치 입체파 그림처럼 여러 개의 의미와 시선을 한 작품 안에 담아 총체적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품 2) 성모님의 얼굴(일부) : 템페라, 94.5 x 80.3cm, 14세기, 성 클레멘스 성당, 오흐리드, 마케도니아. 4. 눈동자에 반사하는 흰 점은 찍지 않는다 이콘은 눈동자에 반사하는 흰점을 찍지 않습니다. 반사하는 반사광을 사용한다면 사실적이고 좀더 생생한 느낌을 줄 수 있는데도 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탈물질화를 다룬 장에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실제 모습을 사실 그대로 표현하지 않는 이유도 있지만, 하느님 세계에서는 하느님의 빛만이 존재한다는 성경 내용이 이콘 세계에도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빛은 물리적인 빛, 즉 태양 빛이나 전기나 불빛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공간과 관계없이 두루 퍼져 있습니다. 또 빛은 그의 창조물 모든 곳을 비추기 때문에 화면 내부에는 그림자가 생길 수 없게 됩니다. 하느님의 도성에서는 하느님 빛만이 존재하기에(묵시 21,23 참조) 그림자가 없으며, 인물 눈동자에도 흰점을 찍지 않습니다. 이렇듯 이콘은 모든 시간이 모여있다는 개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치 그리스도의 재림 때와 같이 전 인류가 동시간(同時間)에 하느님과 함께합니다. (작품 2) (작품 3) 천장화 : 모자이크, 5세기, 성 요한 세례당, 피렌체, 이탈리아. 내용은 최후의 심판이며 온 우주의 창조자는 예수님으로 표현되어 있다. 5. 이콘의 배치 교회 역사 안에서 성화에 대한 논란 후 이콘이 용인되면서 서방교회에서는 주로 가르침이나 교육적인 목적으로 이콘이 쓰였습니다. 동방교회에서는 성인 성녀를 함께 현존시킴으로써 공동체의 증인으로, 또 공동체 삶에 동참하고 장려하려는 의도로 그려졌습니다. 또 교회 벽을 장식함으로써 전례에 나타나는 사실들, 즉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제대 위는 하늘을, 제대 밑은 땅을 나타냅니다. 하늘과 땅, 하느님과 인간의 만남인 전례 안에서 특히 미사 중에 성모 마리아와 성인들을 현존시킴으로써 인간이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 보호 안에 들어가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물의 창조자(Pantokrator)로 천장화에 나타냈습니다. 그분은 만물을 지배하시는 권위자로 군림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고 받아들이시는 구세주로서 축복하는 모습입니다. (작품 3) 김형부 마오로cpbc2024.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