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까까머리 훈련병(홍진호, 제노, 첼리스트)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던 대학교 신입생 시절, 이제 막 적응한 학교와 친구들을 뒤로하고 1학년 1학기를 마치자마자 입대를 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입대에 교수님도 친구들도 적잖이 당황했지만,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다녀오라는 아버지의 권유와 악기 연주자로서 출퇴근 가능한 군 복무 배치는 고민의 여지 없이 입대하게 만들었습니다. 입대를 한 달여 앞두고, 배낭여행을 떠났습니다. 당시 너도나도 유행처럼 다니던 분위기에 저 또한 용기를 내어, 첫 학기에 아르바이트로 모았던 돈으로 독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준비 없이 무모하게 떠난 여행이라 크고 작은 사건 사고도 많았지만 여행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된 마냥 자존감과 성취감은 최고조에 달했고 멋있는 남자가 되어 간다는 착각에 빠져 입대까지 이어지는 여정에 꽤 만족했던 것 같습니다. 입국하고 며칠 뒤 남자답게(?) 쿨한 척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훈련소에 입소해서 문제없이 훈련을 받기 시작했는데, 2주 차에 접어들며 몸에 이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휴식 없이 입대까지 이어진 무리한 일정 때문인지 그만 심한 감기·몸살 증상이 왔습니다. 경계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동기가 고열과 오한으로 괴로워하며 자고 있는 저를 발견했고, 저는 결국 중대 의무실로 옮겨졌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저는 병상에서 수액을 맞고 있었고 이제야 살 것 같다는 안도감을 느끼려는 찰나, 반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눈을 뜨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일반 병사들과 의무병들은 구경거리라도 생긴 마냥 하나둘 모여 저를 둘러싸고 폭언을 퍼부으며 갈굼(!)을 시작했습니다. ‘여기에서는 몸이 아픈 게 죄가 되는구나. 여기가 지옥이구나.’ 괴로워하며 잠깐이라도 혼자 있을 방법을 찾다 어렵게 허락을 구하고 화장실로 몸을 피했습니다. 소음에서 자유로워진 저는 거울 속에 비친 저의 모습 - 주삿바늘을 꼽고 서 있는 까까머리 훈련병을 보고 그만 서러움에 쏟아지는 눈물을 삼켰고, 저도 모르게 ‘하느님!’ 하고 입 밖으로 소리를 내어 그분을 찾았습니다. 인생에 처음이었습니다. 룰루랄라 모든 게 순조롭고 행복했던 시간 속에서는 찾지도, 부르지도 않던 하느님을 지옥 같은 상황이 되어서야 찾는다는 것이 그렇게 죄스럽게 느껴졌던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하느님’을 찾았다고 해서 그 뒤에 상황이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제가 그분을 간절하게 부른 그 순간부터 하느님은 남아 있던 훈련 기간 내내 저와 함께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호된 경험을 하고 앞으로는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지만 부끄럽게도 여전히 힘들 때만 기도를 하고 기쁠 때는 찾지도 않는 경솔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반성하며 행복한 순간 또한 하느님과 함께 나누리라는 또 한 번의 다짐을 하게 됩니다. cpbc2022.05.11
[신앙단상] 엄마의 기도 일기(홍진호, 제노, 첼리스트) 그레고리안 찬트, 바흐의 칸타타, 어린이 성가대, 무반주 모테트를 비롯해 양희은, 이선희, 이상은, 조용필 등 어린 시절 집 스피커에서는 쉴 새 없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흘러나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음악을 켜놓고 청소하시는 시간이 시부모님을 모시며 바깥일과 집안일을 병행해야 했던 고단한 어머니의 일상에 몇 안 되는 나름의 힐링 시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교직 생활을 하셨던 어머니가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시면 어머니의 곁을 졸졸 쫓아다니며 옆에서 크레파스로 그림도 그리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바닥에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 따위를 집으며 한시도 어머니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던 그때가 생각납니다. 그날도 역시 집안을 가득 채웠던 음악은 그저 생활의 일부일 만큼 익숙해져, 별다른 감흥 없이 가끔은 익숙해진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숙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에 울려 퍼졌던 낯선 야수의 음악이 저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는 시발점이 됐습니다. 첼로 연주였습니다. 방바닥을 통째로 흔들며 가슴속을 무언가로 박박 긁어 대는 듯한 강렬한 소리는 고작 열한 살이었던 어린 저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그와 동시에 저런 소리를 내는 게 무엇인지 궁금하게 했으며 더 나아가 저 소리를 내고 싶다는 욕심까지 생기게 했습니다. 한 달 가까이 식음을 전폐하며 첼로를 배우게 해달라고 난데없이 생떼를 부리는 철부지 아들에게 풍족하지 않았던 경제적 상황과 훌륭한 클래식 악기 연주자로 성장하기에는 다소 늦은 감이 있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고려해 부모님께서는 취미로 한다는 전제하에 마침내 첼로 수업을 받게 해주셨습니다. 처음으로 악기를 손에 쥐고 활을 그었을 때 고스란히 가슴에 전달되던 첼로의 울림은 방바닥까지 흔들며 포효하던 야수의 울림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첼로와 급속도로 사랑에 빠진 저는 음악과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 마냥 순탄치는 않았지만, 이제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떼어낼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제가 첼로 연습을 하거나 공부를 할 때마다 다른 방에서 묵주 기도를 하시던 어머니는 종종 기도 제목을 기록하시기도 했는데 어머니의 기도 일기에는 늘 남을 아끼고 배려하는 아이로 성장하게 해달라는 간절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첼로에 욕심이 생기면서 남보다 더 잘해야 하고 빨리 성장해서 친구들의 악기 실력을 따라잡아야겠다는 욕심만 커지던 저를 보며 걱정이 많으셨던 것 같습니다. 부끄럽게도 이런 욕심을 아직 완전히 버리지 못했지만, 현재도 진행 중인 차곡차곡 쌓여가는 어머니의 기도 일기처럼 저 또한 조금씩은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통화할 때마다 이어지는 어머니의 잔소리에 오늘도 또 한 번 마음이 따듯해집니다. 평화신문2022.05.04
[신앙단상] 하느님으로 향하는 길(홍진호, 제노, 첼리스트) 2016년 독일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귀국 독주회를 시작으로 오케스트라 활동, 예술 중·고등학교와 대학교 강의까지 종횡무진 바쁜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사회인으로서 첼로 연주자 생활은 음악에만 집중하면 그만이었던 유학생의 생활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고, 당시만 해도 세상 물정을 전혀 몰랐던 터라 낯설고 고된 현실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도 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시 유럽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오스트리아 빈으로 날아가 실내악 연주자 과정 입학시험을 보고 학교 등록까지 하는가 하면, 마침 러브콜이 있었던 체임버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기로 결심하고 독일로 되돌아가는 등 정착하지 못해 방황하는 나날들을 꽤 긴 시간 동안 보냈습니다. 그런 저를 한국에서 정착하도록 도와주었던 건 다름 아닌 종교의 힘이었습니다. 마음 둘 곳이 필요했던 저는 오랜 과제를 풀듯 마침내 성당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어릴 때부터 성당을 드나들고(?) 하느님을 가까이 느끼며 살았지만, 정식으로 교리를 듣고 세례를 받지 않았던 저로서는 큰 용기가 필요했던 일입니다. 6개월의 예비자 교리를 통해 들었던 다른 교우들의 삶의 이야기와 하느님 말씀은 혼자서 감당하고자 했던 고통과 시련이 결코 나만의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오히려 그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하느님의 말씀을 접할 때 얼마나 삶에 큰 위로가 되고 버팀목이 되는지 가슴 깊이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교리 기간 출결 사항으로 불안했던 순간들도 많았지만, 긴 여정을 무사히 마치도록 도와주신 담당 수녀님께서 고생이 많으셨지요. 마침내 2018년 6월 17일 저는 제노(ZENO)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아 가톨릭 신자가 되었고, 여전히 출결 사항이 형편없는 부끄러운 신자지만 기쁘고 힘든 순간에 가장 먼저 주님을 부르며 하느님께로 향하는 길을 기쁜 마음으로 찾아가는 중입니다.신앙을 찾고 저는 놀라운 일들을 많이 체험했습니다. 클래식 음악만을 향해 걸어가던 중에 만난 낯선 세계의 음악들,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밴드의 음악까지 하게 됐지요. 클래식 악기, 클래식이라는 음악 장르를 더욱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에 지원했던 JTBC ‘슈퍼밴드’라는 프로그램에서 한 우승은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을 더욱 사랑하게 해줬고, 첼로 연주자로서의 책임감 또한 무겁지만 기쁘게 감내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 ‘말씀의 이삭’ 코너에 글을 기고하도록 제안을 받았을 때 신앙심이 턱없이 부족한 제가 감히 주보에 글을 실어도 괜찮을지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진솔하게 털어놓았던 5월 한 달간의 저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작은 행복이 되었기를 바라며 저의 마지막 이야기를 이렇게 마무리하겠습니다. 평화신문2022.05.25
[신앙단상] 나의 첫 여름 성경학교(홍진호, 제노, 첼리스트) 어린 시절, 친척 형들과 노는 게 마냥 좋았던 저는 할머니가 열심히 다니셨던 교회와 친척 형들이 다니던 성당을 동시에 왕래하며 줏대 없는(?)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철없고 순수했던 어린아이의 감성에는 두 종교의 비슷한 듯 다른 모습이 오히려 재미있게 느껴져서 미사와 예배를 하나의 놀이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저를 예뻐해 주셨던 신부님, 수녀님 그리고 목사님, 장로님, 호칭부터 체계 등이 많이 다른 두 곳에서 저는 무엇을 배우고 경험하였는지,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떠한 의지와 힘이 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서툰 글솜씨지만 용기를 내어 글을 기고하게 됐습니다. 온 천지가 푸릇푸릇한 식물로 가득했던 작은 분교였습니다. 성당 주최의 여름 성경학교에 처음으로 참가했던 날, 전날 밤부터 기대에 부풀어 잠을 설쳤지만, 피곤한 기색도 없이 야무지게 짐을 챙겨 도착한 곳에는 수녀님과 지도 선생님들께서 흐뭇한 미소로 친구들을 맞아 주고 계셨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해서 친척 형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녔는데, 조별 미션을 수행하면서 조원들과 급속도로 친해졌습니다. 거의 마지막 미션에 다다른 저희 조는 땀을 뻘뻘 흘리며 지쳐있었지만, 꼭 1등을 차지해야 한다면서 서로를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왼쪽 귀에서 뭔가 이상을 느꼈습니다. 움직일 때마다 귓속에서 물이 파도를 치는 느낌이 나면서 나중에는 어지럼증까지 느꼈습니다.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고 알았던 사실이지만 중이염이었습니다. 아마도 쉬는 시간에 물장구를 치며 놀다가 그만 귀에 물이 들어갔던 것 같았습니다. 고통이 심해져 친구들의 부축을 받으며 응급 처방을 위해 양호실로 옮겨졌고, 결국 저희 조는 저 때문에 미션을 끝까지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그 길로 병원으로 가 적당한 치료를 받고 나서야 같은 조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친구들을 찾아가 미안했다고, 그리고 고마웠다고 이야기를 해야지 결심하고 몇 주 뒤에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이 저를 환호로 맞아주며 커다란 도화지에 빨리 나아서 같이 놀자는 글과 함께 수료식 사진을 선물로 주는 바람에 저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어쩜 그렇게 맑고 순수했을까요. 무슨 큰일이라도 치른 것 마냥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었는데, 친구들이 만들어준 그때의 그 장면은 저에게 꽤 중요한 순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단체 생활을 하면서 누군가로 인해 손해가 생긴다면 다 큰 어른이 된 지금도 상대방의 안위보다는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훨씬 더 클 것 같습니다. 신앙 안에서 자연스럽게 익어 가는 따듯한 마음씨,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토록 반짝이고 예쁜 기억이 저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자리 잡고 있음이 얼마나 귀하고 값진 하느님의 은혜인지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뭉클합니다. 평화신문2022.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