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불운이라 여겼던 순간의 은총](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3/11/Ech1773205078846.jpg)
[신앙단상] 불운이라 여겼던 순간의 은총 재작년 가을 어느 날, 나는 이상한 체험을 했다. 그날따라 유독 안 좋은 일이 연달아 생겼다. 가족 중 한 명이 병원에 입원했고, 진행 중이던 작품의 출판 과정에도 문제가 생겼다. 무거운 마음으로 차를 운전하는데, 편집부에서 계속 전화가 걸려 왔다. 평소에는 운전할 때 매우 조심하는 편이라 전화도 받지 않는다. 그러나 계속 이어지는 벨 소리에 잠깐 멍해진 사이 차선을 놓쳤다. 우회전 구간이 보여 급히 차선을 바꾸는 순간, 옆 차선에서 달려오던 차와 부딪쳤다. 차선 변경 전에 사이드미러로 흘깃 확인했지만, 그 차는 사각지대에 있어 미처 안 보였던 모양이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에어백이 터졌다. ‘왜 자꾸 나한테 나쁜 일이 생기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귀에 또렷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닌데? 보호해준 건데?” 나는 곧바로 ‘정말 그러네!’ 하고 수긍하며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중얼거렸다. 차는 망가졌지만, 나도 상대방도 다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옆 차선에 큰 차가 달려올 수도 있고, 사고가 연쇄 추돌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가벼운 충돌이라도 크게 다칠 수 있었고. 나는 차에서 내려 먼저 상대방의 안전을 확인했다. “바로 병원에 가셔서 검사하시고 조금이라도 아픈 데가 있으면 치료받으시라”고 말했다. 본의 아니게 폐를 끼쳐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상대방도 언성을 높이지 않고 보험사에 연락한 덕에 사고는 원만히 처리되었다. 한숨 돌리고 나니 사고 직후 들었던 그 목소리가 새삼 신기했다. 머릿속 생각이라기에는 청각적으로 너무 생생했다. 이후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사실을 누군가 알려 줬고, 그 덕분에 감사한 마음으로 상황을 차분히 수습할 수 있었다. 다음 날 한 동화작가 후배와의 전화를 통해서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제 사고 때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언니, 그건 성령께서 말씀하신 게 아닐까요.” 신실한 천주교 신자인 후배가 말했다. “정말? 어머, 그런가 봐!” 무지에서 번쩍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자연 만물 안에 존재하시는 하느님을 자주 느꼈던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우연처럼 보이는 오묘한 섭리에 감탄할 때도 많다. 그러나 ‘성령 체험’이라는 말은 어딘가 낯설었는데, 후배의 설명이 명쾌하게 마음에 와 닿았다. 교통사고는 분명 좋지 않은 일이다. 보험료가 올라 경제적 손실도 생겼다. 그러나 그 일을 통해 나는 한 가지를 배웠다.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내가 좋고 나쁘다고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됨을 지식이 아니라 몸으로 체득했다. 작년 연말에는 넘어져 오른팔이 부러졌다. 아프고 불편했지만, 불평하지 않았다. 아무리 조심해도 사고는 생길 수 있다.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병원에 다니며 많은 환자를 만났다. 산업재해로 치료받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많았다. 그때부터 내 기도는 자연스럽게 환자들과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바쳐졌다. 오른팔에 깁스해 운동을 못 하니 겨우내 아파트 계단 걷기를 했다. 날마다 묵주기도를 하며 25층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니 기도 근육도 그만큼 더 생긴 것 같다. 꺾이고 아픈 만큼 겸손과 감사를 새로 배우는 시간. 올해 사순 시기가 내게는 그런 은혜의 시간이 되고 있다. cpbc2026.03.11

무슬림 사회 속 규제와 검열에도30년간 꺼지지 않은 가톨릭 등불[아시아 가톨릭 미디어를 가다] (3) 헤럴드 말레이시아 헤럴드 편집국이 위치한 쿠알라룸푸르대교구 사목센터 전경. 말레이시아는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다민족·다종교 국가다. 인구 3240만 명 가운데 무슬림이 63.5%다. 불교 신자 18.7%, 그리스도교 신자가 9.1%로 뒤를 잇는다.(2020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그리스도인 가운데서도 가톨릭을 믿는 이들은 120만 명 남짓으로 추산된다. 무슬림 사회에서 가톨릭 신자는 소수 공동체다. 이같은 현실에서 가톨릭 언론은 단순한 교회 소식지를 넘어선다. 흩어져 살아가는 신자들의 연결 고리이자, 교회 공동체의 존재를 확인해주는 등불이 돼주기 때문이다. 쿠알라룸푸르대교구 사목센터에 자리한 ‘헤럴드(HERALD)’ 말레이시아가 그런 역할을 해왔다. 4개 언어 지면으로 교회 일치 증언 쿠알라룸푸르 시내 한복판, 오래된 사목센터에 자리한 헤럴드 편집국은 그리 크지 않았다. 상주 직원은 패트리샤 페레이라 편집장과 산드라 앤 인바라즈 부편집장을 포함해 한 손에 꼽을 정도다. 취재 기자와 소셜미디어 담당자, 그래픽 디자이너, 회계 담당자가 편집국을 지키고 있다. 각 교구나 본당 주요 행사 소식이나 교리교육·성경 해설·외신·논평은 시민 기자단과 분야별 전문가들이 보내오는 기사와 기고로 꾸리고 있다. 인바라즈 부편집장은 “AI 활용이 보편화되면서 사실 확인에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며 “이젠 뉴스 전달을 넘어 설명하고 교육하며 신앙을 나누는 기사에 더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헤럴드는 ‘소식을 알리는 사람’, ‘선포자’란 뜻이다. 1994년 9월 8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에 창간한 헤럴드는 영어판 격주간지(12개면)로 출발했다. 초대 편집장은 로렌스 앤드류(예수회) 신부였다. 쿠알라룸푸르대교구에서 시작한 헤럴드는 이후 말레이반도(서말레이시아)와 보르네오섬 북부 사바·사라왁주(동말레이시아)까지 독자층을 넓히며 교구 신문을 넘어 말레이시아 가톨릭 공동체 전체를 잇는 매체로 자리 잡았다. 말레이시아 교회는 말레이반도에 쿠알라룸푸르대교구·페낭교구·말라카-조호르교구가 있으며 동말레이시아 사바주에 코타키나발루대교구·케닝아우교구·산다칸교구, 사라왁주에 쿠칭대교구·미리교구·시부교구 등 9개 교구로 이뤄져 있다. 특히 동말레이시아 지역은 말레이반도보다 가톨릭 공동체 기반이 뚜렷하다. 동말레이시아 일부 교구에는 가톨릭 신자 비율이 10%를 훌쩍 넘는다. 헤럴드는 영어 외에 중국어·타밀어·말레이어(바하사) 담당자를 두고 각 언어 지면을 함께 발행한다. 네 가지 언어를 한 신문에 담아 언어·문화가 다른 신자들이 하나의 교회 안에 있음을 지면으로 증언해 온 셈이다. 인바라즈 부편집장은 “언어는 번역 수단에 그치지 않고 교회 일치를 위한 핵심 도구”라고 강조했다. 헤럴드는 현재 총 32개 면을 발행하고 있으며 영어 19개 면을 중심으로 중국어 3개 면, 타밀어 2개 면, 바하사어 8개 면으로 구성돼 있다. 헤럴드 사무실은 전례주기에 맞춰 꾸민다. 올해 초 사순 시기에 맞춰 보라색 천과 나뭇가지로 만들어진 십자가상으로 장식한 사무실 입구. ‘알라’ 용어 사용으로 발행 중지 위기 헤럴드는 2001년 격주간지에서 주간지로 전환했다. 더 자주, 더 꾸준히 신자들에게 교회 가르침을 전하고, 신앙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창을 제공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해 웹사이트를 개설하며 새로운 독자층과 만날 길을 열었다. 그러나 헤럴드가 걸어온 길이 늘 순탄했던 건 아니다. 헤럴드가 말레이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 알려진 계기는 신문이 겪은 가장 큰 시련이었다. 헤럴드 말레이어 지면에 사용했던 ‘알라’(Allah)라는 단어가 발단이었다. 알라는 아랍어로 하느님, 곧 유일신을 뜻한다. 무슬림에게 ‘알라’는 신앙의 핵심 언어이자, 이슬람 공동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적 표현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도 오래전부터 하느님을 가리킬 때 이 말을 사용해왔고, 말레이어 성경과 교회 전통 안에서도 ‘알라’는 하느님을 뜻했다. 창세기 1장 1절 ‘창조주 하느님’을 가리킬 때도, 마태오 복음 27장 46절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을 부르짖을 때도 말레이어 성경은 하느님을 알라로 표기해왔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2007년 헤럴드 말레이어 지면의 ‘알라’ 사용을 문제 삼았다. 가톨릭 신자들이 쓰는 표현이 무슬림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논쟁은 헤럴드의 발행 허가 문제로까지 번졌다. 정기간행물은 정부의 출판 허가를 받아야 했고, 교회는 해마다 이를 갱신해야 했다. 알라 논쟁 직후 헤럴드의 허가 갱신은 지연됐고, 발행 중지 압박도 커졌다. 쿠알라룸푸르대교구는 법적 대응에 나섰고, 당시 편집장 앤드류 신부는 이 사안을 국제사회에 알렸다. 무슬림 사회에서 가톨릭 소수 공동체가 홀로 맞서기엔 힘든 싸움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종교와 민족 정체성, 신앙과 출판의 자유가 맞물리며 알라 논쟁은 말레이시아 사회를 넘어 세계 교회의 관심사가 됐다. 쿠알라룸푸르 고등법원은 2009년 가톨릭교회의 손을 들어주며 헤럴드에 ‘알라’ 사용의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판결 직후 일부 성당과 가톨릭 시설을 향한 공격이 벌어졌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항소에 나섰고, 오랜 법정 다툼 끝에 2013년 항소법원은 고등법원 판결을 뒤집었다. 헤럴드는 결국 ‘알라’를 지면에 쓸 수 없게 됐다. 인바라즈 부편집장은 “이는 헤럴드지에만 해당되는 사안으로 미사나 전례, 성경에서 사용되는 것까지 막은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은 하느님을 부르는 말조차 공적 논쟁과 법적 제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무슬림 사회 속 가톨릭 언론이 처한 현실을 보여줬다. 인바라즈 부편집장은 “말레이시아 정부는 인종(Race)·종교(Religion)·왕실(Royalty), 이른바 3R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이와 관련된 표현이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거나 공공질서를 해칠 수 있다고 보고 강하게 검열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앙의 자유·인권·사회 정의·사회적 약자를 위한 우선적 배려 문제는 가톨릭 사회 교리와 직결되는 주제지만, 3R 영역과도 맞닿아 있다. 헤럴드는 대립의 언어보다는 신중하고 절제된 표현을 택했다. 침묵하지 않되 갈등을 키우지 않고, 교회 가르침을 전하되 사회적 긴장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균형을 지켜온 것이다. 헤럴드 편집국 직원들. 왼쪽부터 산드라 앤 인바라즈 부편집장, 레이첼 샤르마 행정 담당, 패트리샤 페레이라 편집장, 아만다 마 그래픽 디자이너. 팬데믹·독자 감소에도 교회 가치 실천 코로나19 팬데믹은 헤럴드의 또 다른 위기였다. 2020년 3월 이동 제한과 사회적 거리두기 영향으로 교회 공동체 일상도 멈췄다. 미사가 중단되고 신자들이 성당에 모일 수 없던 시기에 신문을 인쇄하고 배포하는 일도 어려워졌다. 헤럴드는 신문 인쇄를 멈추고 전면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결단을 내렸고, 2022년 9월부터 종이신문을 다시 발행했다. 신문 독자가 줄고 제작비, 우편료 부담이 커진 상황에도 헤럴드가 인쇄를 재개한 것은 디지털 접근이 어려운 신자들과 종이신문을 기다리는 이들이 여전히 있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유튜브를 비롯해 다양한 SNS 플랫폼을 운영하며 여러 세대와 접점을 넓혀가고 있다. 2024년 창간 30주년을 맞은 헤럴드는 나무를 심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강조한 ‘공동의 집 돌봄’에 응답하는 일이었다. 사바주 수카우의 로워 키나바탕간 야생동물보호구역에 나무 100그루를 심고, 신자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생태 캠페인을 마련했다. 신문을 만들고 배포하는 일을 넘어 교회가 말하는 가치를 실천하는 시도였다. 30년 넘게 헤럴드는 신자들이 더 넓은 교회와 연결돼 있음을 알게 하고, 교회가 세상 안에서 무엇을 보고 말해야 하는지 식별하게 하며, 소수자의 자리에서도 신앙의 언어를 잃지 않도록 앞장서왔다. 말레이시아 가톨릭 공동체가 자신들의 언어와 전통을 잃지 않도록 헤럴드는 오늘도 네 개 언어로 목소리를 이어가고 있다. 말레이시아=박수정 기자 catherine@ 첫 여성 평신도 편집장 - 패트리샤 페레이라 “복음에 뿌리 둔 진실 전한다” 2021년 패트리샤 페레이라(Patricia Pereira) 편집장의 취임은 말레이시아 교회에 변화를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헤럴드 창간을 이끌고 27년간 편집장을 맡아온 로렌스 앤드류(Lawrence Andrew, 예수회) 신부 이후 첫 여성 평신도 편집장이기 때문이다. 페레이라 편집장은 자신의 임명에 대해 “교회가 리더십과 식별, 선교 영역에서 평신도, 특히 여성의 역할을 새롭게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인사였다”고 평가했다. “교회는 성직자만이 이끄는 공동체가 아니니까요. 가톨릭교회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각자 역할을 맡아 함께 책임지는 공동체입니다.” 이는 말레이시아 사회에도 교회가 시대에 발맞춰 포용성을 넓히고, 여성의 역량과 리더십을 인정한다는 메시지를 줬다. 페레이라 편집장은 취임 후 ‘알리고, 양성하며, 영감을 준다’는 헤럴드 사명을 이어가며 현장 목소리를 더 많이 담으려 노력했다. 그는 “신자들의 생생한 삶의 경험, 공동체의 다양한 의견을 전하는 데 더 무게를 두는 변화를 추구했다”며 “스토리텔링의 렌즈가 다양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학에서 홍보학을 전공하며 교구와 본당 일을 돕곤 했다. 졸업 후엔 주말마다 헤럴드에서 번역하던 인연이 이어져 1996년 헤럴드 기자 겸 부편집장으로 합류했다. 2006년까지 10년간 기자로 일하다 일반 기업 카피라이터 겸 홍보 담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재정적 이유에 따른 선택이었지만, 성과와 속도를 중시하는 기업에서 여러 고객을 만나며 새로운 소통방식을 배웠다. 그러다 쿠알라룸푸르대교구 요청으로 2017년 다시 교회 현장으로 돌아와 교구 커뮤니케이션 및 대외 협력 업무를 맡았다. “일반 기업과 교회 기관의 가장 큰 차이는 ‘근본적 동기’에 있습니다. 기업은 수익과 성과를 좇지만, 교회는 사명·가치·사목적 돌봄을 지향하죠. 교회는 기업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기업은 교회의 인간 존엄성과 삶의 의미를 배우며 상호 보완할 수 있습니다.” 페레이라 편집장은 가톨릭 언론의 정체성을 “양심을 지닌 저널리즘”이라 설명하며 “단순히 사실을 보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복음에 뿌리를 두고 진실을 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가톨릭 언론은 사람들에게 정보를 주고 영감을 주며 성찰로 초대해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전문 사도직’”이라고 덧붙였다. 헤럴드 역시 신문 독자 감소와 디지털화라는 세계 언론의 공통된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그는 이를 위기가 아닌 새 도약의 기회로 바라봤다. 온라인 입지를 강화하고 젊은 세대와 소통하며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해 기사를 보도하겠다는 구상이다. “헤럴드가 가톨릭 공동체에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서로를 연결하며, 영감을 불어넣는 ‘신뢰받는 목소리’로 남길 바랍니다. 나아가 사회와도 의미 있는 대화를 이어가는 매체가 돼야 합니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변화무쌍한 미디어 환경에서 단순히 살아남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언제나 흔들림 없이 빛을 비추는 ‘희망과 진실의 등대’로 굳건히 서는 것입니다.” 말레이시아=박수정 기자박수정2026.06.09

책꽂이 나는 그림인가? 그림이 나인가? / 유안진 / 비지아이 「나는 그림인가? 그림이 나인가?」는 「지란지교를 꿈꾸며」의 저자 유안진(클라라, 서울대 명예교수) 시인이 미술을 전공한 딸 김문정(가타리나)씨의 1주기를 맞아 펴낸 작품집이다. 딸이 남긴 글과 일상적인 대화를 연결하고, 어린 시절 붓글씨부터 편지·판화·드로잉·퀼트·조각 붙이기 등을 한데 모았다. ‘화사철(畵史哲)’, 즉 그림에 모국의 생활문화사와 역사의식, 공동체 의식이라는 철학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말했던 작가의 작품들도 확인할 수 있다. 김문정씨는 2025년 서울대교구 방배동성당 하랑갤러리에서 하느님께 봉헌할 첫 전시회를 준비하던 중 지병으로 46년의 짧은 생을 마쳤다. 그 새가 왜 거기 있었을까 / 전성호 / 레벤북스 언뜻 보면 시적이고 다른 한편으론 무척 딱딱한 제목의 이 책은 고등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전성호(베르나르도)씨가 과학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인문학적 세상 이야기다. 과학은 세상과 인간,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창이어야 한다고 믿는 저자는 과학 교사답게 물리학·화학·생명과학·천문학과 지구과학의 창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현미경을 통해 아주 작은 생물체 속에 숨겨진 우주의 질서를, 자그마한 휴대전화 화면 너머 실제 하늘에 펼쳐지는 광대한 우주의 크기와 그 안에 존재하는 천체들의 질서를 소개한다. 이를 통해 생명이란 무엇이고 왜 소중한지, 삶이란 왜 가치 있어야 하는지, 스스로에 대한 겸손함과 소중함을 깨우치게 한다. 본지에 연재했던 ‘과학과 신앙’ 칼럼을 발췌해 다듬었다. 대화가 필요한 순간 / 류지현 / 서교출판사 류지현(안나) 아나운서가 방송과 언론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말과 대화가 인간관계와 삶에 미치는 영향을 짚은 책이다. 말하기를 단순한 기술이 아닌 이해와 공감의 태도로, 대화를 일방적인 전달이 아닌 상호 작용의 과정으로 설명하며 현대사회에 필요한 커뮤니케이션의 기본 원칙과 실천 방법을 정리했다. 책은 △사람의 마음을 여는 △유능하게 보이는 △신뢰감 있어 보이는 △당신의 가치를 높여주는 대화의 기술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직장 내 보고와 회의, 공식 발표와 강연, 일상적인 대화와 관계 회복 등 다양한 사례와 바로 활용할 수 있는 대응 방식을 함께 제시해 실용적이다. 스마트폰 메시지 대화 요령, 마음가짐과 목소리 관리 등에 대한 팁도 더했다. 범의 길 / 박흥식 / 꿈꿀자유 봉오골 전투와 청산리 전투의 영웅, 9척 장신에 사격의 명수인 홍범도 장군. 「범의 길」은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 그리고 그와 함께 싸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각본집이다. 영화 ‘탄생’을 비롯해 ‘역전의 명수’ ‘경의선’ ‘두 번째 스물’ 등을 만든 박흥식(프란치스코) 감독이 썼다. 시나리오는 영화 발표 전에 공개되는 경우가 없지만, 박 감독은 읽기 위한 시나리오 ‘레제스쩨나리오(Lese-szenario)’ 장르를 열었다. 한 편의 영화를 보듯 읽히는 시나리오에서 1920년 독립전쟁의 영웅 홍범도 장군의 일대기와 그 이면의 인간다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와 함께 싸웠으나 역사의 망각 속에 스러져간 또 다른 영웅들을 금강산 단발령, 두만강, 개마고원과 연해주 등에서 불러내 다시 뜨겁게 살아 숨 쉬게 한다. 윤하정 기자윤하정2026.05.05

시그니스 아시아, 공동선 향한 미디어 연대 나선다필리핀에서 ‘희망의 속삭임’ 주제로 총회 열고 가톨릭 언론인·커뮤니케이터 사명 되새겨 시그니스 아시아 총회 참가자들이 10월 21일 필리핀 마닐라대교구 주교좌 마닐라대성당에서 개막미사를 봉헌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아시아 가톨릭 언론인과 커뮤니케이션 종사자들이 갈등 시대 속에서도 온유한 소통으로 세상과 대화하며, 신뢰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로 다짐했다. 아시아 가톨릭 언론인, 커뮤니케이션 종사자 모임인 시그니스 아시아는 10월 21~24일 필리핀에서 ‘희망의 속삭임’을 주제로 총회를 열고 가톨릭 언론인과 커뮤니케이터로서의 사명과 책임을 되새겼다. 참가자들은 24일 총회를 마치고 발표한 성명에서 “평화와 화합, 신뢰의 메시지를 전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대화와 상호 협력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또 모든 형태의 매체를 통해 공동선을 추구하며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데 헌신할 것을 약속했다. 이들은 특히 “전쟁과 갈등으로 수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고, 굶주림과 가난으로 어린이들이 고통받으며, 폭력적 콘텐츠에 많은 젊은이가 중독되고, 가짜 뉴스가 확산하는 아시아의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면서 “사람들이 의미 있고 건설적인 미디어 활동에 참여하도록 이끄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어 “새로운 미디어 환경 속에서 희망의 선교사로서 부름 받았음을 인식하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한 ‘온유한 소통’을 실천하는 희망의 전달자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시그니스 아시아는 교황 홍보 주일 담화에 맞춰 해마다 총회를 열고 아시아 지역 언론인과 커뮤니케이션 종사자의 활동을 격려하며, 서로 소통하고 연대하는 장을 만들어왔다. 올해 총회를 주관한 시그니스 필리핀은 △디지털 시대와 교회의 역할 △부르심과 정체성 △희망을 속삭이는 청년 △분열된 사회와 희망 건설 △행동하는 희망을 주제로 다양한 강연과 토론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각국의 정치·사회적 현실과 교회 상황을 공유하며 매체 간 협력과 연대를 통한 상호 이행 방안을 모색했다. 이번 총회에는 아시아 지역 11개국에서 75명이 참석했으며, 한국에서는 시그니스 아시아 이사회 재무담당 이로물로(로물로) cpbc 미디어본부장과 KBS 가톨릭 교우회 회장 윤성도(가브리엘) PD가 참석했다. 시그니스(SIGNIS)는 언론과 출판, 미디어 등 커뮤니케이션 분야에 종사하는 가톨릭 신자로 이뤄진 평신도 단체다. 2026년 시그니스 아시아 총회는 8월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열리는 시그니스 세계 총회로 대신할 예정이다. 필리핀=박수정 기자catherine@cpbc.co.kr박수정2025.10.29

사옥·직원 대신 협력·연대로 아시아 교회 소식 연결하는 태국의 허브[아시아 가톨릭 미디어를 가다] (4) 태국 ‘라이카스 뉴스’와 ‘주교회의 사회커뮤니케이션부(CSCT)’ 2019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태국 사목 방문 당시 현장 취재에 나선 라이카스 뉴스 기자단. 라이카스 뉴스 제공 주교회의 아래 두 조직, CSCT·라이카스 CSCT, 태국 내 교회 소식 태국어로 전달 라이카스, 영어 뉴스 제작·해외 언론 대응 태국 중산층의 주거단지가 다수 들어서 있는 방콕 얀나와(Yan Nawa) 지역. 평범한 주거 지역처럼 보이는 이곳이 태국 교회의 구심점인 태국 주교회의가 자리한 곳이다. 이곳은 태국 교회의 중심인 동시에 ‘아시아 가톨릭 뉴스 통신사’ 태국 라이카스 뉴스(LICAS News)의 사무실이 위치한 곳이다. 다만 보통의 언론사처럼 이 사무실에 ‘라이카스 뉴스의 편집국’이 자리한 것은 아니다. 이곳은 그저 임직원들의 사무 공간일 뿐 라이카스에는 일반 언론사와 달리 ‘유형의 편집국’이 없다. ‘라이카스 뉴스’ 이름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은 뉴스를 제공하는 온라인 홈페이지(www.licas.news)뿐이다. 이처럼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아시아 교회 소식을 전하는 ‘아시아 가톨릭 뉴스 통신사’로 자리매김한 라이카스의 ‘리더’ 피터 라차다 몬티안비치엔차이 상무이사(executive director)를 4월 24일 태국 주교회의 사회커뮤니케이션부(CSCT) 사무실에서 만났다. 라이카스 뉴스 라이카스 뉴스 피터 라차다 몬티안비치엔차이 상무이사가 4월 24일 방콕시 태국 주교회의 내 CSCT 스튜디오에서 열린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CSCT 제공 교황 방문 소식 세계에 전한 ‘라이카스’ 해외 언론사들과 네트워크 유지·연대 지속 바티칸 뉴스에 기사 제공하는 등 큰 성장 팬데믹 때 협력사 배려로 운영 위기 극복 콘텐츠 공유 확대 위해 저작권 수익 포기 불교 신자 책임자 통해 객관적 시각 반영 과거 김수환 추기경은 가톨릭 미디어를 설립하는 일을 일컬어 ‘무형의 성전을 짓는 일과 같다’고 했다. 교회가 매체를 세워 복음 전파하는 일은 눈에 보이는 유형의 성전을 짓는 것만큼이나 사람들 마음속에 신앙과 사랑을 심어주는 영적이고 보이지 않는 성전을 짓는 중요한 사업으로 정의한 것이다. 실제 전 세계 가톨릭교회는 이처럼 매체를 설립해 복음 전파 사명을 열심히 수행하고 있다. 라이카스는 유형의 번듯한 사옥 없이 보편 교회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미디어 사명을 이어가고 있다. 편집국, 스튜디오, 심지어 자체 고용한 기자나 PD, 방송 실무 인력도 없다. 해외 뉴스 역시 각지에 지부를 만드는 ‘외형적 확장’ 대신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아시아 전역에서 활동하는 전문 기자와 사진작가·영상 제작자들이 자발적으로 제작해 보내온 콘텐츠를 복음의 기준으로 선별·편집해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라이카스 뉴스는 태국 교회의 일원입니다. 다만 일반 언론과는 그 모습이 좀 다릅니다. 라이카스에 소속된 직원은 저를 포함해 우리나라와 아시아 다른 나라에서 일하는 이들 5명이 전부입니다. 주로 이들과 뉴스 제작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범위를 넓히면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나아가 한국에서도 우리 사명에 공감해 가톨릭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라이카스의 일원이라고 할 수 있죠.” 2019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태국 사목 방문 당시 현장 취재에 나선 피터 라차다 몬티안비치엔차이(맨 왼쪽) 상무이사와 라이카스 뉴스 기자단. 라이카스 뉴스 제공 프란치스코 교황 태국 방문 앞두고 설립 라이카스는 2019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태국 사목 방문을 앞두고 각 교구와 주교회의 지원을 받아 설립됐다. 그 전까지 태국에서 가톨릭 관련 콘텐츠를 만드는 곳은 주교회의 사회커뮤니케이션부(CSCT)가 유일했다. 다만 CSCT는 태국 내 신자·비신자들을 대상으로 태국어 콘텐츠만을 제작해왔기에 영어로 가톨릭 콘텐츠를 만드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에 영어에도 능통한 신자·비신자 언론인들을 모아 ‘라이카스 뉴스’를 설립하게 됐다. 라이카스 기자들은 CSCT의 노하우와 지원을 받아 교황이 방문하는 현장 곳곳을 누볐고, 이를 영어 기사로 작성해 교황의 태국 방문 소식을 전 세계에 전했다. 태국 교회라는 한 몸에 각기 다른 얼굴의 두 조직은 여전히 긴밀한 관계로 제 역할을 하고 있다. “외부에서 보면 제가 라이카스 뉴스 책임을 맡고 있기에 매체를 이끄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저는 라이카스의 소유주가 아닙니다. 그저 교회로부터 임명된 관리자일 뿐이죠. 라이카스는 교회의 것입니다. 태국 교회 소식을 담당하는 건 CSCT입니다. 라이카스는 태국 소식을 영어로 전하거나 해외 언론에 대응하기도 하고 다른 지역 교회 소식을 태국으로 가져오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CSCT의 스튜디오나 인력을 빌려와 자체 콘텐츠를 만들기도 하고요. 사실 CSCT와 라이카스는 하나의 조직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자체 제작·해외 제공 콘텐츠 묶는 플랫폼 라이카스 뉴스가 제작하는 콘텐츠는 CSCT의 인력과 자원으로 만든 자체 콘텐츠와 해외 언론과 협력해 제공받은 각 지역 교회의 뉴스 등으로 구분된다. 라이카스는 각자 언어로 제작된 기사와 콘텐츠를 한데 묶는 일종의 ‘영어 뉴스 플랫폼’이다. 이 온라인 기반 신생 언론사가 1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아시아 전역과 세계를 무대로 하는 국제 미디어로 성장한 원동력도 여기에 있다. 태국 교회의 지원에 힘입어 피터 상무이사가 보편 교회와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며 가톨릭 언론인들과 열심히 교류해온 것도 라이카스 뉴스가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 큰 힘이 됐다. 특히 태국 교회가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의 허브 역할을 한다는 점은 교류의 물꼬를 트는 데 결정적이었다. 라이카스는 태국 교회의 ‘대외 창구’로서 타 아시아 지역 교회 언론사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태국 방문 당시 협력했던 언론사들과 지금까지도 연대를 이어오며 현재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인도네시아의 가톨릭 매체인 ‘세사위(Sesawi)’, 인도의 ‘매터스 인디아(Matters India)’가 대표적이다. 필리핀에서 활동하는 가톨릭 언론인 조 토레스씨는 라이카스 뉴스의 필리핀 지역 담당으로 사실상 뉴스 편집장 역할을 맡고 있다. “라이카스 뉴스의 가장 큰 특징은 ‘공동체’를 통째로 조직 안으로 들여왔다는 것입니다. 일반 회사라면 직원을 고용하고, 기자재를 구매하면서 조직을 만들어가겠죠. 하지만 저희는 교회 사명을 중심으로 협력을 통해 전문성을 갖춘 이들과 연대하는 모델을 지향합니다. 이는 분명히 어려운 일이지만, 색다른 방식이기도 합니다.” 2019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태국 사목 방문 당시 라이카스 뉴스 기자단이 취재를 하고 있는 모습. 라이카스 뉴스 제공 아시아 넘어 국제 미디어로 발돋움 라이카스 뉴스라는 이름에는 ‘희망(빛)의 이야기를 전하는 평신도’란 뜻이 담겨 있다. ‘LICAS’는 비슷한 발음의 그리스어 ‘라이코스(Laikos)’가 평신도를 의미하는 데에서 착안한 것으로, ‘아시아 가톨릭을 위한 빛(Light for Catholic in Asia)’을 줄인 말이다. 교회 일원인 동시에 언론이라는 정체성을 모두 담았다. “라이카스라는 이름에는 우리의 ‘사명’을 잊지 않겠다는 각오가 담겨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첫 보도였던 교황님의 태국 방문 취재에서도 드러납니다. 무엇보다 교황님 방문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데 집중했죠. 자카르타에서 교황님을 기다리고 있던 합창단 소녀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지금도 라이카스 뉴스는 평신도의 시선에서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대표 가톨릭 통신사로 자리 잡은 라이카스 뉴스는 2023년부터 보편 교회 소식이 하나로 집약되는 ‘바티칸 뉴스’에도 기사와 사진을 제공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교회는 물론, 인도·파키스탄 등 남아시아와 한국·일본·홍콩 등 아시아 교회 전체 소식이 라이카스 뉴스라는 허브를 통해 보편 교회로 전해지고 있는 셈이다. 피터 상무이사는 “2019년에 라이카스 뉴스가 만들어지고 몇 년 뒤 바티칸에도 뉴스를 제공하는 매체가 되리라고 누가 상상할 수 있었겠느냐”며 “오직 성령께서 도와주셨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여긴다”고 말했다. 탄탄대로를 걸어온 것 같지만, 위기도 있었다. 창립 후 2년여 흘렀을 때 코로나19 팬데믹이 닥친 것이다. 위기와 함께 후원을 통해 지원받던 자금도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해외 협력사에 당장 지급해야 할 원고료조차 줄 수 없을 정도였다.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교회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마찬가지로 어려웠기에 ‘성령을 믿으라’는 말씀뿐이었죠. 실망한 마음에 필리핀에 전화를 걸었더니, 대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계속 서버를 운영해달라더군요.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들은 한 성당의 지하에서 기사를 쓰고 있었죠. 협력사들이 라이카스 뉴스에 바라는 것은 ‘얼마를 줄 수 있느냐’가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세상에 어떻게 우리 콘텐츠를 전할 것이냐’였던 거죠.” 2019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태국 사목 방문 당시 현장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라이카스 뉴스 임직원들. 오른쪽 세번째가 피터 라차다 몬티안비치엔차이 상무이사다. 라이카스 뉴스 제공 상업 이익 내려놓고 정체성 확립에 집중 라이카스 뉴스의 가장 큰 특징은 상업적 이익을 전혀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창립 초기부터 저작권 수익을 전면 포기하고 ‘모든 콘텐츠를 공유하겠다’고 선언했다. 실제 라이카스는 저널리스트들이 제작한 사진과 기사를 무료로 제공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홈페이지에도 흔한 광고 하나 찾아볼 수 없다. 라이카스 구성원들 역시 별도 임금을 받지 않고 활동한다. 대부분 재원은 후원금과 소정의 교구 지원을 통해 마련한다. 기사나 사진을 제공하는 이들에게 소정의 대가를 지불하기는 하지만, 일반 단신·행사 기사에는 원고료를 지급하지 않는다. 비용을 지급하는 것은 기획 기사를 제공했을 때뿐이다. 단순히 긴 기사가 아니라 복음의 시각에서 사건과 소식의 전반을 깊이 있게 다룬 기획 기사의 경우, 기사의 깊이나 뉴스 가치에 따라 500~1000달러가량의 원고료를 지급하는 식이다. 이런 콘텐츠들은 홈페이지 내 ‘스포트라이트(Spotlight)’ 세션을 통해 별도로 소개되고 있다. ‘교회 언론’으로서 라이카스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이를 이어가기 위한 일종의 투자 차원이다. “단순히 ‘수녀님들이 나무를 심는다’는 식의 뉴스는 다루지 않습니다. 대신 기후변화로 농작물이 죽어가는 절망적인 현실, 그 속에서 수도자가 농민들과 연대해 희망을 일궈내는 과정에 집중해 콘텐츠를 만듭니다. 그 안에 존재하는 한계점도 가감 없이 보여주죠. 모든 것이 다 진실한 희망의 목소리를 전하는 과정입니다.” 신자 여부에 얽매이지 않고 연대 확대 비신자의 관점이 제작에 반영된다는 점도 특징이다. 이는 대다수 아시아 국가에서 가톨릭교회가 소수인 현실과 함께 전통 불교국가인 태국에서 서로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공감할 기사와 콘텐츠 제작에 주력하고자 함이다. “라이카스가 처음 출발했을 당시 저희는 교황님 말씀, 특히 여성의 권리와 아동 보호에 관해 당부하신 말씀을 중점 보도했습니다. 이를 본 비신자께서 ‘기도 방식만 다를 뿐 교황 말씀은 저희도 귀담아 들어야겠네요’라고 했을 때 큰 희망을 느꼈습니다. 희망을 전하는 이야기라면 누구에게나 공감을 일으킬 수 있음을 깨달았죠. 지금도 저희 마케팅 최고 책임자(CMO)는 불교 신자입니다. 그가 콘텐츠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왜 다루는지 설득되지 않으면 글을 다시 쓰죠. 그는 마케팅뿐만 아니라 콘텐츠 제작에서도 객관적 시각을 제공합니다.” 유형의 공간과 자산보다 플랫폼과 함께하는 정신으로 무장한 라이카스 뉴스는 ‘연대가 곧 성장’임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라이카스 구성원들은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통계학적 변화와 인공지능(AI) 시대 앞에서도 ‘복음 전파의 사명이 곧 가톨릭 언론의 미래’임을 증명하겠다는 각오로 오늘도 현장을 누비고 있다. “우리는 지금도 지역의 다양한 미디어 전문가들과 연대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분들을 통해 세상에서 스스로 목소리 내기 어려운 이들과 교감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합니다. 이 일이 지속 가능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복음을 전한다는 우리 사명은 지속 가능하죠. 교회 언론이 사명을 잊는다면 모두의 정체성은 사라지는 겁니다.” 태국 주교회의 사회커뮤니케이션부(CSCT) 태국 방콕시내에 위치한 태국 주교회의 사회커뮤니케이션부 사무실과 스튜디오. 이곳은 라이카스 뉴스의 공식적인 사무실이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태국 교회 공식 가톨릭 미디어 1967년 창립·태국 교회 소식 자국 전달 주간지 등 출판물 발간·SNS 통해 소통 라이카스 뉴스와 ‘두 지붕 한 가족’ CSCT 취재 소식, 라이카스 통해 세계로 라이카스와 사무실·인력 함께 쓰는 관계 라이카스 뉴스가 전 세계 신자들에게 아시아 교회 소식을 전하는 데 특화돼 있다면, 태국 교회 소식을 자체적으로 전하는 역할은 태국 교회 공식 가톨릭 미디어인 태국 주교회의 사회커뮤니케이션부(CSCT)가 수행하고 있다. 1967년 창립된 CSCT는 사실상 태국 교회 내에선 ‘유일한’ 공식 가톨릭 미디어라 할 수 있다. CSCT는 태국어로 주간지와 월간 매거진, 가톨릭 서적 등을 발간해 교회 소식을 자국 신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또 태국어 팟캐스트·유튜브 방송 등 SNS 채널을 운영하며 다양한 매체를 통해 ‘기쁜 소식’을 전한다. 각 교구와 신자를 대상으로 한 미디어 교육도 주요 역할 중 하나다. 특히 CSCT가 운영하는 가톨릭 서점은 ‘소수 종교인’인 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만남의 광장’과 같다. 생명·AI 등 교회가 관심을 지닌 주요 사안에 대해 태국 사회에 가톨릭 사회 교리 등 교회 가르침을 전하는 것 역시 CSCT의 임무다. 올해로 19년째 CSCT에서 미디어 사목을 담당하고 있는 아누차 차이야데즈 신부는 “CSCT는 태국 교회의 미디어로서 온·오프라인 플랫폼을 통해 신자들이 일주일 내내 교회 소식을 접하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비그리스도인이 많은 태국 사람들에게서 교회 사명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 역시 우리 역할”이라고 소개했다. 태국 주교회의 사회커뮤니케이션부(CSCT) 담당 아누차 차이야데즈 신부가 4월 24일 방콕시 태국 주교회의 내 CSCT 스튜디오에서 열린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CSCT 제공 CSCT가 자국민을 위한 가톨릭 미디어라면, 라이카스 뉴스는 이를 기반으로 전 세계와 소통하는 창구로 볼 수 있다. 뉴스 성격이나 보도의 대상, 운영 방식은 다르지만, 태국 내 소식이 라이카스 뉴스를 통해 전 세계에 전해지기도 하고, CSCT 또한 보편 교회 소식을 라이카스 뉴스에서 바로 접하며 소통한다. 아누차 신부는 ‘두 지붕 한 가족’ 같은 두 매체의 관계에 대해 “라이카스와 CSCT는 특정 계약에 묶인 사이가 아니라 서로 마음과 마음이 연결된 관계”라며 “라이카스가 우리 사무실이나 인력을 빌려 쓰는 것 역시 비공식적으로 별도의 절차 없이 그때그때 판단에 따라 이뤄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불교 신자가 대다수인 태국에서 대중에게 가톨릭교회를 소개하는 일은 CSCT의 가장 큰 임무이기도 하다. 아누차 신부는 “태국은 불교 문화권인 만큼 불교에서 비롯된 용어가 공식 언어로 많이 쓰인다”며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신부’를 칭할 때 ‘쿤퍼(father)’라 부르지만, 공식 석상에선 일종의 높은 스님에서 비롯된 용어인 ‘밧루앙(baat-luang)’으로 표기해야 하는 식인데 모두 불교 문화권의 비신자들에게 교회를 잘 설명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CSCT가 발행하는 주간지 ‘우돔산 위클리(UDOMSARN WEEKLY)’ 지면. CSCT는 이러한 인쇄 매체를 통해 신자들에게 교회의 다양한 소식을 전하고 있다. CSCT의 최근 관심사는 젊은이 사목이다. 불교 문화가 주를 이루는 태국 사회에서 교회가 본당 공동체를 넘어 사목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환경이다. 하지만 미디어를 통한 사목은 경계가 없기에 교회에 새로운 선교의 기회를 제공한다. CSCT는 다양한 매체 활용에 적극적인 젊은이들에게 복음의 매력을 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아누차 신부는 “미디어 사목의 가장 큰 특징은 더 넓은 범위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고, 그 영향이 어디까지 미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라며 “우리는 하느님께서 채워주시는 것이 우리가 준비한 것보다 크고,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뤄짐을 알기에 당장 결과는 보이지 않을지라도 하느님이 주신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계속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태국 방콕=장현민 기자 memo@cpbc.co.kr장현민2026.06.23

측은지심으로 차린 ‘밥상의 문학’ 고통받는 이들을 향한 위로가 되다[빛과 소금, 이땅의 평신도] 문학을 통한 사도적 삶, 박완서 정혜 엘리사벳 - (5·끝)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박완서·김홍신 작가가 1993년 12월 27일 본지가 주최한 제1회 신춘평화문학상 응모작을 심사하며 대화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작품 속 음식 통해 삶의 고단함 위로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목소리 내고 유니세프·성 라자로 마을 등 후원 “부의금 받지 말라”던 평소 유언 따라 문학인장 대신 소박하게 가족장례식 ‘한국인은 밥심이다.’ 이 말을 문학 작품 안에서 가장 잘 그려낸 작가를 꼽으라면 단연 박완서다. 그의 작품에는 서민 가정의 밥상에 오르는 나물 반찬, 된장국 같은 소박한 음식부터 화려하면서도 기품 있는 양반가의 음식까지 작가 특유의 감각적인 언어로 묘사되어 있다. 제육을 몇 점 썰어 넣어 뚝배기에 끓인 호박김치찌개(대하소설 「미망」), 배불뚝이가 뒷짐을 진 것 같은 모습이 유머러스한 개성식 만두(등단 단편 「나목」), 비 오는 날 먹었던 메밀칼싹두기와 어린 시절 할머니가 해주셨던 수수팥떡(자전 수필 「호미」) 등 음식들은 각 작품 속에서 주인공과 시대적 배경을 긴밀히 묘사하는 장치로 쓰였을 뿐 아니라, 밥상을 대하는 것 자체가 삶의 고단함을 녹여주는 위로의 행위로 표현된다. 「대범한 밥상」이라든가 「후남아, 밥 먹어라」처럼 제목에 밥이 등장하는 소설 작품도 있다. 박완서에게 밥은 어릴 적 떠나온 고향을 떠올리는 그리움의 이름이자 푸근한 어머니의 품이다. 처마를 맞댄 이웃 간에 나누는 정(情)이며 따뜻한 위로다.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고통에 몸부림칠 때 내 안에 오신 주님을 느낀 것이 바로 ‘밥’이었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어머니의 손맛을 그리워하며 「엄마의 부엌 :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을 펴낸 맏딸 호원숙(비아)은 ‘엄마의 치맛자락에 늘 희미하게 배어 있던 음식 냄새는 여지껏 나를 지탱해 주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안온한 사랑의 힘이 되었다’고 썼다. 생전 어느 강연회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청중의 질문에 박완서는 ‘밥’이라 대답했다. 또 그는 성경 가운데 음식에 관한 예수님의 일화를 좋아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행한 마지막 의식도 제자들과 식사를 나누는 것이었는데, 이 최후의 만찬이 가장 슬프고 숙연한 식사라면 가장 장엄한 대만찬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인 기적의 만찬이라는 것이다. 기적에 앞서 예수님이 행하신 일은 인간이 느끼는 고통 중에 가장 큰 배고픈 서러움을 마음속 깊이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전통적으로 인간이 타인에 대해 가져야 하는 마땅한 태도로 가르쳐 온 유교의 측은지심(惻隱之心)과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그는 또 만약 예수님을 실제로 만난다면 으리으리한 성찬이 아닌 소박한 집밥 한 상을 차려드리고 싶다고 말한다. 그분은 화려한 식탁이 아니라 정성이 담긴 음식이면 좋아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1993년 유니세프 친선대사 활동의 일환으로 방문한 에티오피아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박완서 작가(뒷줄 서 있는 이). 박완서디지털문학관 제공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생전의 박완서는 문인들 사이에서도 소박한 삶을 살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 문단의 거목이면서도 문단 행사에는 잘 나서지 않았다. 학연을 따지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따르는 후배 문인이 많았다. 소질이 있어 보이는 후배라면 적극적으로 추천하였으며 스스럼없이 후배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다. 그러면서도 세상 일에 목소리를 내는 데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1980년대 권위주의 정권에 맞섰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현 한국작가회의)가 어려울 때마다 수백만 원씩 사비를 털어 재정을 도왔다. 출판사 ‘창비’가 정부에 의해 강제 폐간되었을 때에는 지식인 2853명이 서명한 문서를 소설가 황순원·이호철 등과 함께 당시 문화공보부에 내기도 했다. 생전에 “내가 죽으면 찾아올 후배 문인 중에 가난한 이들이 많으니 부의금을 받지 말라”고 당부해 2011년 1월 그의 빈소가 차려진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는 ‘부의금은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안내문이 세워졌다. 애초 문학인장으로 치러지려던 장례식은 주위에 폐를 끼치지 말고 소박하게 치러달라는 고인의 바람대로 생전에 신앙생활을 하던 경기도 구리시 토평동성당에서 가족장으로 거행되었다. “천주교는 유명한 사람도 보통의 신자들과 똑같이 대하고 종교를 강요하지 않아 좋았다”는 그의 말처럼 평생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남을 감싸안았던 그의 모습 그대로 조용하면서도 남을 돕는 따뜻한 신앙인이었다. 1993년부터 유니세프 친선 대사로 활동했고, 한센인 자활 시설인 ‘성 라자로 마을’을 20년 넘게 후원하였으며 2006년 호암상 예술상 수상으로 받은 상금 중 일부를 이곳에 기부하기도 하였다. 또 ‘성 라자로 마을’로 인연을 맺은 고(故) 이경재 신부를 도와 은퇴 사제들을 위한 거주 시설인 ‘사제마을’의 초대 후원회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평생을 청빈하게 살며 신자들을 위해 봉사한 은퇴 사제들이 말년에는 편안한 시설에서 돈 걱정 없이 여유롭게 지내며 마지막까지 사목 봉사를 하는 데 전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2005년 4월 8일 바티칸에서 거행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장례미사에 참석한 후 로마에서. 박완서 작가(가운데) 왼쪽이 한승수 전 국무총리, 오른쪽이 고 이해찬 전 국무총리다. 오른쪽 두 번째에 봉두완 전 앵커도 보인다. 박완서디지털문학관 제공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지난 2005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장례미사에 대한민국 민관합동조문단의 일원으로 로마 바티칸에 다녀온 박완서는 소회를 이렇게 밝힌 바 있다. “교황을 애도하는 몇백만 조문객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비통하기만 한 것도 경건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성가는 영혼을 속세에서 해방시켜 들어 올리듯 황홀했고, 교황의 업적을 낭독하는 동안 광장에서 터져 나온 십여 차례의 박수와 환호성, (⋯) 그건 애도라기보다는 환호에 가까웠다. 슬픔과 환희가 이렇게도 잘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해 본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일이었다.” 매일 아침 저녁 명상하듯 기도 시간을 갖는다던 박완서는 2011년 1월 22일 평소처럼 명상을 하듯이 편안한 모습으로 주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장례미사에는 여러 문인 후배와 성직자, 수도자, 동료 신자와 유족들이 함께해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그 가운데 생전에 깊은 교분을 나눈 이해인 수녀도 있었다. ‘수녀 시인’으로 유명한 이해인(클라우디아) 수녀는 박완서와 자매처럼 지내며 정을 나누었고 1988년 그가 가족을 연이어 잃는 고통을 겪을 때 수녀원으로 초대해 슬픔을 위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종 직후부터 장례일까지 내내 빈소를 지켰으며 ‘꽃이 된 기도’라는 송별시로 추모했다. ‘갑자기 오느라 작별인사 못했어요 / 너무 슬퍼하면 제가 미안하죠 / 거기도 좋지만 여기도 좋아요 / 항상 기도 안에 만납시다, 우리’(이해인 수녀의 ‘꽃이 된 기도’ 중) 2011년 1월 22일 선종한 박완서 작가. 한국가톨릭문인회 담당 조광호 신부가 장례미사에서 고인의 관에 성수를 뿌리며 고별예식을 주례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생전에 ‘내가 죽었을 때 받고 싶은 대접은 천주교식의 장례미사’라고 했던 박완서 정혜 엘리사벳은 이제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절망보다, 큰 평화 안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40살이라는, 당시로써는 다소 늦은 나이에 등단했지만 ‘머릿속에 늘 다음 작품을 생각하고 있다’며 ‘머릿속에 아무 생각이 없다면 주머니에 동전 한 푼 없는 것보다 더 비참할 것’이라던 박완서. 죽는 날까지 작가로서 ‘영원한 현역’으로 남고 싶어 했던 그는 이제 주님의 품에서 어떤 글을 쓰고 있을까. 정혜린 클라라(프리랜서 작가)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가톨릭평화신문 공동기획cpbc2026.02.10

청년·청소년 곁을 지킨 두 신부의 기록상처 입은 청춘의 좌절과 회복 담은 책 두 권 나란히 출간사회적으로 청년과 청소년을 지칭하는 연령대에는 차이가 있지만, 사용하는 한자는 ‘푸를 청(靑)’으로 같다. 노년을 뜻하는 ‘황혼’이라는 표현과 비교하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 찬란함이 와 닿을 것이다. 하지만 그 푸르른 시기가 유독 힘든 이들이 있다. 가정의 해체나 경제적·심리적 어려움으로 상처받고 좌절한 푸르른 이들을 따뜻하게 껴안고 섬세하게 복원해 온 사제들의 이야기가 나란히 출간됐다. 청춘이라는 레시피 / 이문수 신부 / 생활성서 ‘청년밥상문간’ 운영해 온 이문수 신부가 만난 청년 열여덟 명의 이야기 「청춘이라는 레시피」는 이문수(글라렛선교수도회) 신부가 만난, 개성도 사연도 다른 청년 열여덟 명의 이야기다. 이 신부가 청년들이 부담 없이 찾아갈 수 있는 김치찌개 맛집 ‘청년밥상문간’을 운영하고 있으니 ‘레시피’라는 단어가 딱 달라붙는다. 고단한 청년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이고자 2017년 서울 정릉동에 문을 연 ‘청년밥상문간’이 방송과 언론에 소개된 이후 이 신부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함께 걷는 ‘청년희망로드’, 청년들의 목소리를 영화로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2030청년영화제’, 어르신의 자서전을 청년의 손으로 만드는 출판 프로젝트 ‘세대공감잇다’ 등 다양한 활동으로 다채로운 청년을 만나고 있다. 이 신부는 그들을 통해 우리 사회 구석구석,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드리운 그림자를 만난다. “이미 주민센터와 노숙인 쉼터 등 여러 곳의 문을 두드렸지만, 이런저런 규정과 조건의 벽에 부딪혀 번번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는 그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그늘을 드러내 주었습니다.”(34쪽) 그러나 힘들고 어두운 이야기만 써내려가지는 않았다. 외롭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성장과 성숙의 길을 걸어가는 빛나는 청춘들의 모습도 담았다. 이 신부가 청년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사랑이 담겨 있기에 책은 청년들의 삶을 응원하는 따뜻한 마음과 애정 어린 메시지로 연결된다. “세상에 혼자뿐인 그가 용기를 잃지 않았다는 게 얼마나 고맙고 고마웠던지 남몰래 눈물짓습니다. 많이 외로웠을 테고 앞으로도 외로움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에 그의 소명과 분투에 응원을 보내며 저는 기도합니다.”(77쪽) 송원섭 신부와 별바라기 이야기 / 송원섭 신부 / 인생산책 가정 밖 청소년들이 겪는 심리·정서·경제적 자립의 현실 구체적으로 보여줘 이 책은 가정 밖 청소년의 자립을 돕는 현장에서 그들과 함께 걸어온 한 신부의 기록이다. 청소년자립지원관 ‘별바라기’의 관장 송원섭(인천교구) 신부는 가정해체·상처·외로움·삶의 무게 등으로 주저앉은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지 세상에 알리고자 한다. 그러나 그 속에서 발견한 용기와 희망, 회복과 변화의 순간 역시 놓치지 않았다. 열다섯 명의 ‘별’이 전하는 고백은 각자의 상처를 어떻게 보듬고 스스로를 이해하며 세상과 연결되어 나아갔는지, 자립의 본질이 무엇인지 제시한다. 송 신부는 특히 자립청소년들이 겪는 심리적·정서적·경제적 자립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며 독자들에게 단순한 지원을 넘어 따뜻한 동행을 제안한다. 자립이 단지 혼자 살아가는 기술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다림 속에서 가능해지는 회복의 여정임을 깨닫게 한다. “별바라기의 진짜 과업은 청소년들이 자기 자신을 믿게 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하는 일이다. 이 여정은 오래 걸릴 수 있다. 때로는 되돌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그 길 위에서 함께 걸어주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도 우리는 믿고 있다.”(57쪽) 송 신부는 직접 청소년지도사·사회복지사 등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며 자립지원관 제도 초기부터 시스템 구축에 기여했다. 또 자립지원관 업무 매뉴얼 개발과 청소년자활작업장 운영 모델 구상에도 적극 참여했다. 그 헌신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국민포장을 받았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5.09.16

17세기 상본이 낳은 기적의 도시 독일 케벨라어 성모 성지[중세 전문가의 간 김에 순례] 42. 독일 케벨라어 성모 성지 케벨라어의 은총 소성당(앞)과 성모 마리아 바실리카(뒤). 브라반트의 셰르펜회벨 은총 소성당을 본떠 1654년에 육각형 돔 형식으로 세운 소성당으로, 지나가는 순례자가 바깥에서 위로의 성모님을 뵐 수 있도록 설계됐다. 바실리카는 첨탑이 90m인 네오고딕 양식의 순례자 성당으로 19세기에 건설됐다. 1923년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준대성전으로 지정됐다. 우리 주변에서 상본(像本)을 자주 봅니다. 기도와 묵상을 돕는 이미지로, 사제서품식 때 출사표처럼 기념 성구를 넣어 신자들에게 선물로 주기도 하고, 축일 때 책과 함께 카드처럼 선물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본 문화는 14~15세기 유럽 라인강 지역에서 주로 시작됐습니다. 글을 모르던 이가 대다수였던 당시 성화나 상본은 한 장짜리 ‘가난한 이들의 성서(biblia pauperum)’였습니다. 신앙 교육 자재이자 하느님을 체험하는 수단이었죠. 특히 먼 길을 떠나온 순례자가 성지에서 구한 성화 한 장은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었습니다. 성지를 자기 집으로 옮겨오는 특별한 일이었지요. 그 일은 때로 엄청난 기적을 낳았습니다. 바로 오늘 가볼 순례지인 케벨라어에서 말입니다. 케벨라어는 독일 북서부 라인강 하류 쪽 네덜란드 국경과 가까운 조그만 마을이었습니다. 작은 성모님 상본 하나로 거대한 순례의 파도가 일어나, 매년 80만 명이 찾는 ‘성모님의 도시’가 됐지요. 은총 소성당에 모셔진 1640년도 룩셈부르크 성지에서 가져온 ‘고통받는 이들의 위로자’ 원본 상본(왼쪽)과 1649년도 케벨라어 성지의 상본(오른쪽). 성모자상은 거의 비슷하나 배경이 된 도시와 소성당, 아래 문구가 다르다. 성모 마리아 바실리카의 주 제대. 1992년 새롭게 봉헌된 제대로 성녀 우르술라와 성 토마스의 성유물이 옮겨 안치되어 있다. 주변으로 슈툼멜(1859~1919) 공방이 제작한 벽화들이 보인다. 룩셈부르크의 고통받는 이들의 위로자 상본 신·구교 간의 30년 전쟁이 한창이던 1641년 성탄 무렵, 상인인 헨드리크 부스만은 케벨라어 들판에 세워진 십자가 앞에 기도하던 중 ‘여기에 나를 위한 작은 경당을 세워라’라는 신비로운 목소리를 듣습니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었죠. 일주일 뒤 다시 그 앞에 이르렀을 때 같은 목소리를 듣습니다. 며칠 후에도 똑같은 일을 겪자 언젠가 소성당을 짓겠다고 맹세합니다. 몇 달 뒤, 부스만의 아내는 한밤중에 집 안에서 빛 속에 나타난 성모님과 소성당 환시를 봅니다. 그 모습은 얼마 전 길에서 만난 두 명의 병사가 보여준 작은 상본(약 7.5×11㎝) 속 성모님과 같았습니다. 병사들은 상관에게 전해줄 상본을 들고 있었는데, 그중 한 장을 팔려고 그녀에게 보여준 것이죠. 부스만은 처음에 반신반의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 자기 집이 환히 빛났다는 소문을 주위에서 듣고는 이 모든 일이 자신이 겪은 일과 이어져 있음을 느끼고, 결국 그 상관에게 상본을 사들입니다. 그 상본은 바로 전에 소개한 룩셈부르크의 ‘고통받는 이들의 위로자’(‘간 김에 순례’ 27회) 상본이었습니다. 케벨라어 본당 신부는 1642년 6월 1일 성령 강림 대축일 전 주일에 아내가 환시에서 본 모습대로 부스만이 세운 경당에 이 상본을 모십니다. 그날부터 인근 마을에서 많은 이가 모여들었고, 기적이 일어나면서 순례가 시작됐다고 합니다. 전쟁으로 불안한 시기였지만, 순례자의 수는 해마다 늘어났습니다. 교구는 순례자를 위해 촛불 소성당을 세웁니다. 각 지역의 순례자가 거대한 초를 가져와 봉헌하는 전통이 있는데, 장소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30년 전쟁이 절정에 치닫던 1643~1645년에 성당이 세워졌다는 사실은 당시의 신앙과 희생이 어떠한지 잘 보여주지요. 1647년 교구 시노드는 부스만의 진술을 확인하고 조사 후 케벨라어를 공식 순례지로 인준합니다. 이례적인 신속한 결정은 신자들의 자발적 성모 신심과 순례자의 폭발적 증가 덕분이었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새로운 케벨라어 상본이 독일·네덜란드·벨기에 등지로 퍼져나갑니다. 성모 마리아 바실리카 본랑. 길이 약 70m, 폭 28m의 삼랑식 구조 네오고딕 양식의 성당이다. 금별이 새겨진 천장과 제단 주변의 서사 패널이 인상적이다. 가대와 후진부터 측랑까지 구원사의 사건들로 벽화가 꾸며져 있다. 촛불 소성당. 순례자를 위해 처음 만든 소성당이다. 매년 주변의 순례자 행렬이 성당에 큰 초들을 봉헌해 왔는데, 촛불 아래 새겨진 문장은 이러한 행렬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음을 보여준다. 특히 리스 공동체는 1643년에 케벨라어를 처음 조직적으로 순례해 초를 봉헌했다. 도심 속 위로와 희망의 장소 케벨라어 역에 가까워지면 회색 지붕들 위로 불쑥 솟은 첨탑이 눈에 들어옵니다. 90m 높이의 성모 마리아 바실리카입니다. 역과 가까운 도심 한복판에 은총 소성당과 촛불 소성당이 있고, 그 맞은편으로 성모 마리아 바실리카와 고해성사 소성당·성체성사 소성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1654년 부스만의 경당 자리에 은총 소성당을 세우고 그곳에 상본을 모십니다. 은총 소성당은 바깥으로 반원형 시선창이 나 있어, 밖에서도 순례자가 위로자이신 성모님을 보며 기도할 수 있는 열린 구조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순례자들은 남쪽으로 난 세 개의 문으로 성당에 다시 들어와 제대 뒤 상본을 가까이서 볼 수 있지요. 한동안 상본은 부스만이 만든 나무판 위에 그대로 붙어있었으나, 1664년에 금세공 공방에서 봉헌한 은제 액자에 모십니다. 지금 액자는 1681년 외팅겐 공작이 봉헌한 것입니다. 케벨라어 은총 소성당 제대(위)와 바깥 시선창에서 본 은총의 상본(아래). 먼저 소성당 바깥에서 위로의 성모님을 뵙고, 내부에서 기도한 뒤, 제대 뒤쪽 통로로 성화를 좀 더 가까이 대면할 수 있다. 소성당은 천정 육각 볼트와 벽면을 활용해 구원사에서 성모님의 신학적 위치를 집약적으로 그린 벽화와 스투쿠로 장식되어 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네오고딕 양식의 성모 바실리카는 1858년 착공해 1884년 완공됐습니다. 이 성당은 길이 약 70m, 폭 28m의 삼랑식 구조로 서쪽 첨탑은 90m에 달해 성지의 상징으로 우뚝 서 있습니다. 내부에 들어서면 장대한 벽화들이 제대 주변으로 펼쳐집니다. 프리드리히 슈툼멜과 그의 제자는 성모 마리아의 생애, 교회 구원사, 성경·전례 장면을 유기적으로 배치해 순례자들이 눈으로 구원의 서사와 그 안에서 성모님의 역할을 묵상하도록 했지요. 그 정점은 주 제대입니다. 제대 위 중앙에는 성모 마리아와 성 삼위를 주제로 한 조각과 화려한 장식이 놓여있고, 순례자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위쪽 ‘천상모후의 관을 쓰는 성모’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바실리카 전체가 성체성사와 성모 신심을 하나로 묶어내고 있는 것이죠. 17세기 독일 라인강 지역은 인쇄술의 발전으로 종이 상본이 널리 퍼졌습니다. 케벨라어에서는 한 장의 상본이 은총의 상징이자 이 도시의 정체성이 되었고, 우리에게 순례의 길을 열어주었죠. 이 전통은 21세기 다른 모습으로 이어지는 듯합니다. 9월 7일 우리 교회는 카를로 아쿠티스를 성인품에 올렸습니다. 성인은 온라인으로 복음을 전한 ‘하느님의 인플루언서’였고, 그가 만든 웹사이트는 전 세계 순례자들의 가상 성체조배 공간이 되었습니다. 17세기 판화로 찍은 상본으로 성모 신심을 전했던 것처럼 21세기 성 카를로는 직접 코딩한 웹사이트라는 ‘디지털 상본’을 통해 성체의 기적을 사람들에게 전했던 것 같습니다. 매개는 다르지만, 목적은 같음을 케벨라어에서 느낍니다. <순례 팁> ※ 쾰른·뒤셀도르프·크레펠트에서 기차로 이동하면 좋다. 역에서 은총 소성당까지 도보 10분. ※ 성모 마리아 바실리카 미사: 주일과 대축일 8:15·10:00·11:45·18:45, 평일 10:00, 9월 8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을 크게 지낸다. ※ 유럽의 다른 순례지에 관한 알찬 정보는 「독일 간 김에 순례– 뮌헨과 남부 독일」(분도출판사 2025) cpbc2025.09.10

찬양 문화 활성화 위해선 저작권 등 하나씩 풀어나가야가톨릭찬양사도협회 창립 18주년 기념 포럼 ‘찬양 문화 생태계, 길을 묻다’ 가톨릭찬양사도협회가 6월 28일 개최한 창립 18주년 기념 포럼에서 세션 2 ‘건강한 찬양 문화 생태계를 위한 여러 제안들’이 진행되고 있다. 기도의 언어이자 복음을 전하는 성가. 시대에 맞게 다양한 형태의 생활성가곡이 때마다 나오고 있지만, 신자들 입에 오르내리는 생활성가는 20년, 길게는 40년 전에 멈춰있다. 생활성가의 활성화는 현실적으로 통용되기 어려운 저작권 문제까지 겹치며 한국 가톨릭교회의 숙원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에 가톨릭찬양사도협회(회장 강훈)는 6월 28일 서울 중곡동 주교회의에서 ‘찬양 문화 생태계, 길을 묻다’를 주제로 창립 18주년 기념 포럼을 개최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했다. 저작권 문제와 현실 주교회의 성경 저작권 사용 규정 등 혼선 애매한 규정으로 보급에 어려움 전례에 맞는 성가 보급의 필요성 강조 영적 울림 담을 수 있는 음악 환경 조성돼야 지속 가능한 찬양 문화 조성 위해선 뮤지션들의 생계 가능한 장기적 관점 필요 체계적 교육·양성과 예산 투자 등 이뤄져야 문화 사목 아우르는 기구·조직 있어야 교회 현장에서 “찬양사도들이 부른 노래는 왜 성가집에 없어요?” 살레시오교육사목센터장 겸 선교위원장 유지훈 신부는 “살레시오 청소년센터 보호치료 시설에서 매주 열리는 성가연습 시간에 아이들은 지르고 싶은 만큼 목소리를 높이며 성가를 부른다”며 “이는 단순한 음악활동이 아니라, 영적 해방의 시간”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유 신부는 상처받은 청소년들마저 감동한 찬양사도의 곡들이 교회 전례 체계 안에서 자리를 찾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고민을 나누며 “찬양 문화는 복음을 접촉하게 하는 좋은 도구이기 때문에 제도와 현실 사이를 잇는 다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서울대교구 성음악아카데미 CCM 작곡과 교수 겸 본당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는 박하얀(에우세비아) cpbc TV 음악감독도 전례에 충실하면서 함께 부를 수 있는 성가가 부족한 현실과 오류·저작권 문제에 봉착해 있는 공식 악보 구입의 어려움 등을 토로했다. 애매한 저작권 문제 가톨릭교회의 성가가 각종 찬양집이 넘쳐나는 개신교에 비해 매우 제한돼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이날 포럼에서는 성가가 실려 있는 책의 출처와 악보 보급의 어려운 현실을 그 이유 중 하나로 꼽았다. 이번 포럼 역시 2016년 주교회의가 승인한 ‘성가 작곡을 위한 성경과 전례문 등의 저작권 사용 규정’을 협회원 작품집에 적용하고 해석하는 가운데 생긴 논란에서 시작됐다. 자신이 작곡·작사한 성가가 어느 순간 ‘주교회의’ 작사로 변경돼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고서다. 성경 구절을 인용했기 때문에 작사는 성경의 저작권을 지닌 주교회의에 귀속된다는 이유다. 이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며, 전문가들마저 복잡하고 애매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가톨릭찬양사도협회 영성지도 유상우(부산교구, 가톨릭대학교 교회법대학원 연학) 신부는 “저작권 사용 규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의 항 안에서도 다른 논조가 발견되거나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고, 애매한 규정이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애매하다는 말은 권한을 가진 자의 해석이 자유롭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규정이 더 구체화되고 현실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개별 창작자가 저작권 문제를 고민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과정과 재정 등 복잡한 문제 앞에서 (사)인천가톨릭문화원이 나섰다. 저작권 문제 해결부터 출판·유통에 이르기까지 일괄 책임을 맡아 진행하기로 계약한 것이다. 사제중창단 ‘위로’ 대표 한덕훈(인천교구 대야동본당 주임) 신부는 “하지만 제작·검수·보관·유통·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한 곳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보니 정확한 체계나 시장 점검이 불가능하다”며 “성가를 조금 더 친숙하고 편안하고 다양하게 보급할 수 있는 차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위해서라도 악보집 편찬 작업은 중요하다”며 “지면으로 만드는 책을 비롯해 전자책이나 애플리케이션 등 다양한 접근으로 성가를 향유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한 신부도 “이는 한 개인이나 한 단체 정도가 착수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가톨릭찬양사도협회가 6월 28일 개최한 ‘찬양 문화 생태계, 길을 묻다’ 주제 창립 18주년 기념 포럼에서 찬양사도들이 성가를 부르고 있다. 가톨릭찬양사도협회 창립 18주년 기념 포럼이 6월 28일 주교회회의에서 ‘찬양 문화 생태계, 길을 묻다’ 주제로 열리고 있다. 찬양사도들이 말하는 현실 일부 사목자들은 성가가 활성화되기 위해 전례 안에서 수용될 수 있는 곡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가톨릭찬양사도협회 영성지도사제 신기룡(안동교구 예천본당 주임) 신부는 “말씀과 찬양으로 이뤄진 개신교와 달리 천주교는 성찬례의 중요성이 크고, 전례 시기에 맞게 움직인다”며 “성가도 전례에 맞는 보급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1세대 찬양사도 김정식(로제)씨는 “교회는 창작자들을 교리와 전례 안에만 국한해서는 안 된다”며 “더 많은 음악적 깊이와 영적 울림을 담을 수 있는 음악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복잡한 가사 저작권 협의나 불분명한 정산 기준은 창작 의욕을 위축시키고, 실질적으로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지도 못하고 있다”며 “교회가 창작자에게 보내는 따뜻한 긍정과 실질적인 배려는 단지 한 개인을 위한 일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새로운 노래’를 통해 하느님 현존을 더 깊이 체험하는 통로를 여는 일”이라고 밝혔다. 가톨릭생활성가 찬양그룹 ‘열일곱이다’ 보컬 팀장 안두호(레오)씨는 교회 내 공식적인 매체가 부족한 상황에서 대부분 개별 인맥을 이용해 활동하고 있는 찬양사도들의 열악한 현실을 전했다. 안씨는 “성가 음원 제작에는 예상보다 많은 비용과 기술적인 여건이 필요한데, 대부분 생업을 유지하면서 모든 과정을 찬양사도 개인이 감당하고 있다”며 △교구 차원에서 창작·음원 지원사업 도입 △성가 음원·악보·영상 아카이브 플랫폼 구축 △찬양사도와 본당을 연결하는 ‘쇼케이스 콘서트’ 추진 등을 제안했다. ‘디이에스 워십’ 리더 겸 프로듀서 김성빈(대건 안드레아)씨는 수원교구 WYD 발대미사 후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밴드와 함께 부른 찬양이 가장 인상 깊었다’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전했다. 특히 찬양뿐 아니라 음향의 중요성을 높게 평가했다고 전했다. 그는 “찬양은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힘이 있고, 신앙의 깊이를 확장시킬 수 있다”며 “음향도 큰 몫을 차지하지만 개인 찬양사도 중 음향시설을 갖추고 활동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찬양사도 스스로도 신앙과 음악 사이의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고 자조 섞인 목소리를 냈다. 찬양 문화 형성을 위해 저작권과 홍보·재정 문제 등 찬양사도 개인이 해결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 ‘찬양 문화’를 형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가족찬양중창단 신상옥 패밀리 신상옥(안드레아)씨는 “찬양 자체는 단순한 음악을 넘어 복음의 전달자”라며 “신학·성서·역사·정치·경제 등 다양한 영역과 본당 단체들의 피정이나 신앙교육의 밀접한 연계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지속 가능한 찬양 문화를 위해 재능있는 뮤지션들이 생계까지 가능하도록 장기적 관점에서 체계적인 교육과 예산 투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cpbc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 이로물로(로물로) 미디어본부장은 “찬양의 범주보다 확장된 가톨릭 문화적 관점이 필요하다”며 찬양 문화의 발전 및 지속 가능한 구조를 위해 ‘교구 차원의 문화 사목 담당 부서’ 설치를 제안했다. 또 찬양을 비롯해 연관된 문화 사목을 아우르는 전국 단위 네트워크 구축과 음악·신학·전례 교육을 포함한 가톨릭 문화의 리더 양성과정 확대도 제안했다. 강훈(바오로) 회장은 “오늘날은 교회 내 봉사와 더불어 시대상을 반영한 직업으로서 교회 음악가에 대한 공동체 전체의 고민이 필요한 시기”라며 “찬양 전문가들은 음악적 소양이 커진 현대인들에게 가톨릭 영성이 깃든 성가들을 제공할 수 있고, 이는 교회 문화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성경 저작권은 비단 문화예술계뿐 아니라 방송·출판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활발한 선교를 위해 저작권은 주교회의가 가지되 창작자들이 자유로이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줬으면 한다”고 요청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박민규2025.07.01

폭염에 지친 마음 독서로 다독다독삼복더위에 휴식·위로 주는 책삼복더위가 시작됐다. 한 해의 절반 넘게 달려온 데다 무더위까지 더해져 몸과 마음이 지쳤다면 책장을 넘기며 휴식을 취해 보면 어떨까. 책 속에서 피정도 여행도 순례도 하며 위안을 얻어보자. 리추얼, 하루의 리듬 / 안셀름 그륀 신부 / 황미하 옮김 / 가톨릭출판사 안셀름 그륀 신부의 신간 「리추얼, 하루의 리듬」이 나왔다. 리듬과 라임을 맞춘 듯 리드미컬하게 들리는 ‘리추얼’은 무슨 뜻일까. ‘리추얼(Ritual)’의 사전적 의미는 ‘(특히 종교상의) 의식 절차, (제의적) 의례’. 결국 이 책은 일상에 조화로운 흐름을 선사하는 의식에 관해 이야기한다. 무언가 대단한 의례가 아니라,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소박하지만 의미있는 의식들을 통해 숨 가쁘게 흘러가는 현대사회에서 자기만의 삶의 리듬을 찾도록 안내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하루와 제 삶을 축복합니다. 이는 저만의 의식입니다. 이로써 ‘그저 살아지는 하루’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삶’임을 확인합니다.”(11쪽) “밤은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입니다.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며, 언제 어디서 하느님을 만났는지, 무엇에 감사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오늘 하루를 특별한 날로, 하느님과 함께한 날로 묵상해야 합니다.”(38쪽) 저자는 사회학자 칼 가브리엘의 말을 인용해 “단순한 형태로 반복해서 표현하는 행위가 우리의 일상을 새롭게 바꾸며, 이것이 의식”이라고 말한다.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의식, 리추얼을 통해 삶의 정돈된 리듬을 찾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방법을 제시한다. 더불어 교회 전례력에 따라 거행되는 다양한 의식과 개인의 소소한 의례를 통해 하느님 현존을 체험하는 영적 여정으로 초대한다. 주님의 기도로 피정하기 / 파블로 도밍게스 프리에토 신부 / 강기남 신부 옮김 / 성바오로 ‘피정’은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성당이나 수도원 같은 곳에서 묵상이나 기도를 통해 자신을 살피는 일이다. 그렇다면 대부분 성당이나 수도원에서 생활하는 사제들은 어떻게 피정할까? “사실 피정에서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기도를 통해 주님과 깊이 만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13쪽) 「주님의 기도로 피정하기」는 스페인 산 다마소 신학대학 교수였던 파블로 도밍게스 프리에토(1966~2009) 신부가 세상을 떠나기 25일 전 콜롬비아교구 사제들을 위해 피정을 지도하며 강의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사제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책에 담긴 묵상과 성찰은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다른 사제들을 위한 피정 지도에 특별한 소명을 느꼈던 파블로 신부가 제시하는 좋은 피정을 위한 지침은 △침묵을 지키는 일 △개인 기도를 꾸준히 드리면서 주님 앞에 머무는 시간을 가지는 것 △피정에서 얻은 소중한 깨달음과 배움을 메모하고 정리해 두는 것 △전례에 성실히 임하는 일이다. 파블로 신부는 또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사람이 드릴 수 있는 어떤 기도도 주님의 기도 안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 없다. 더불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 즉 주님의 기도보다 더 효과적으로 드릴 수 있는 기도는 없다’라고 말씀하셨다”며 ‘주님의 기도’를 묵상할 것을 강조한다. 독일 간 김에 순례 / 차윤석(베네딕토) / 분도출판사 유럽에는 일상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순례지가 곳곳에 있다. 인기 관광지로 알려진 곳 외에도 지역민의 신앙심이 수백 년, 때로는 세기를 넘겨 깊게 뿌리내린 성지와 신앙의 명소가 많다. 「독일 간 김에 순례」는 책 제목대로 출장이나 여행 등으로 독일에 갈 일이 있다면 원래 일정에서 자투리 시간을 마련해 하느님을 만나는 순례를 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이번 책에서는 종교개혁의 거대한 물살에서 가톨릭 신앙을 고수한 뮌헨을 비롯한 독일 바이에른 지역의 수도원과 성당들을 소개한다. 성모 신심의 도시 뮌헨, 검은 성모자상으로 유명한 알퇴팅, 유럽 초창기 복음의 선구자로서 각 지역 신앙의 보금자리였던 베네딕도회 수도원 등이 그림 같은 주변 풍경과 함께 펼쳐진다. 곳곳을 세세하게 보여주는 사진부터 웬만한 여행 가이드 책보다 많은 지도와 교통 및 맛집 정보 등은 저자에게 누적된 콘텐츠를 가늠케 한다. 특히 순례지의 미사와 숙소 등 순례자에게 필요한 실용적인 내용도 눈에 띈다. 저자는 서울대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거친 뒤 독일 뮌헨대학교에서 중세문학을 공부했다. 가톨릭평화신문에서 ‘차윤석 중세 전문가의 간 김에 순례’를 연재하고 있다. 스페인을 순례하다 / 전용갑(요셉) / 휴인 스페인의 성지라 하면 무릇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라 불리는 ‘엘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맨발의 가르멜회 창립자들인 예수의 성녀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의 성지가 모여 있는 스페인 중부와 남부 지방(카스티야·안달루시아)부터 예수회를 설립한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와 성 프란시스코 데 하비에르의 자취가 남아 있는 북부와 동부 지방(바스크·나바라·카탈루냐), 사라고사의 필라르 성모, 국토수복전쟁의 시발점이 된 코바동가 성모 등 의미있는 성지가 많다. 「스페인을 순례하다」는 구성이나 분량에 있어 다소 묵직한 책이다. 스페인의 이들 성지를 모두 담아 실용적인 안내서를 펴내려던 당초 계획을 변경해 우선 예수의 성녀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만을 묶었다. 성인과 성지에 대한 전기적·역사 문화적인 서술이 많고, 삶과 시대상이 얽히다 보니 서술 구조가 복잡해져 조금은 학술적인 형식을 띤다. 저자는 그러나 “이 책이 ‘무늬만 학술서’일 뿐 순례객을 위한 안내서라는 원래의 취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며, 특히 성지에 대한 내용은 2023~2024년 여름마다 답사를 통해 체득한 내용을 중심으로 수록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한국외대에서 스페인어로 학·석사 과정을 마치고 스페인 마드리드 콤플루텐세대학교에서 라틴아메리카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외대 스페인어통번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5.07.16

초대 교회부터 현재까지 사도들의 길을 따라서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이면서 교황 주일이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말씀은 어떻게 로마까지 전달됐을까. 2천 년 전의 이야기들은 어떻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을까. 초대 교회부터 오늘날까지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고 행하는 사도들의 길을 책과 함께 따라가 본다. 사도들-사도들 시대 / 마이크 아퀼리나 / 김하정·박찬용 옮김/ 인천가톨릭대학교 출판부 “사도들은 교회의 관리자들 그 이상이었고, 단순한 직무자들과 감독자들 그 이상이었다. 사도(apostle)라는 단어 자체는 역동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파견·사명·외부로의 움직임을 뜻한다. 사도들의 삶들은 활동에 의해 두드러진다. 사도행전이라는 표제를 붙인 책은 아주 적절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전한다.”(44쪽) 가톨릭 작가인 마이크 아퀼리나의 「The Apostles and Their Times」(2017)를 번역한 「사도들-사도들 시대」가 출간됐다. 우리와 초기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는 2천 년의 시간이 흐른다. 그 기간 인류는 사상과 예술, 그리스도교의 양상 하나하나를 묘사할 모든 종교적 용어를 다듬어갔다. 그러나 사도들과 그 사도들을 알았던 이들은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려 애썼을 뿐, 당시에는 오늘날의 전문적인 의미들·오랜 전통·찬란한 예술은 존재하지 않았다. 저자는 그들은 당대의 실화를 이야기했고 그 의미를 모든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일상 언어로 이야기했다며, 우리가 사도라 부르는 이들이 어떤 사람이었고 무엇을 했는지 이해하려면 그들의 일상 언어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고대 문서와 최신 고고학적 발견, 과학적 연구 등을 토대로 사도들이 교회를 처음 만들며 지나갔던 고대 거리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또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성찬례,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그들의 가르침, 그들의 교회 예배가 오늘날 미사와 어떻게 유사한지, 로마가 어떻게 그리스도교의 영적 중심지가 되었는지 안내한다. 교회의 탄생 / 송봉모 신부 / 바오로딸 “바오로가 쓴 편지들이 각 지역 교회의 정보를 주기는 하지만, 루카가 사도행전을 쓰지 않았다면 초대 교회에 대한 정보는 너무나 빈약했을 것이다. (중략) 만일 루카가 역사가의 시각으로 사도행전을 쓰지 않고 공상과 상상으로 이루어진 소설식의 사도행전을 썼다면, 우리는 초대 교회의 연대기 추적을 가능케 하는 귀중한 정보들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20쪽) 송봉모(예수회) 신부의 ‘사도행전 산책’ 시리즈 첫 번째 책인 「교회의 탄생」이 나왔다. 이 시리즈는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가 활동했던 시절, 즉 오순절 성령강림이 이루어졌던 30년경부터 두 사도가 로마에서 순교했던 66년경까지의 ‘초대 교회’에 관한 내용이며, 교회의 탄생부터 교회가 온 세상으로 뻗어 나가는 여정을 다룬다. 저자는 사도시대 초대 교회의 방대한 맥을 쉽고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당시의 문화적·정치적·사회적 배경에 관한 설명은 물론 풍부한 예화를 활용해 사도행전 1~2장을 풀어낸다. 특히 사도시대 교회의 삶과 영성을 통해 역사적인 내용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 안내한다. 이태석 신부 서간집 / 김선필(베드로) 엮음 / 돈보스코미디어 올해 이태석(1962~2010) 신부 선종 15주기를 맞아 「이태석 신부 서간집」이 나왔다. 돈보스코미디어와 (사)이태석신부의 수단어린이장학회가 함께 엮은 책에는 이 신부가 살레시안, 친구와 동료, ‘수단이태석신부님’ 카페 회원 등에게 보낸 81통의 편지와 110여 장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살레시오회에 입회해 양성을 받던 시기부터 선교사를 준비하던 기간, 실제 선교 활동을 펼친 시기, 마지막으로 죽음을 준비하면서 작성했던 편지들이 사진과 함께 실렸다. 특히 2002~2008년 남수단 톤즈에서 구호·의료·교육 등에 힘쓰며 복음을 선포하던 시기에는 현지 상황을 한국에 전하고 도움을 요청하며 가장 많은 편지를 남겼다. 서간집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되는 이태석 신부의 편지는 그의 신념과 영성을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또 그가 선교사로서 어떤 고민을 했고 교육자로서 어떤 신념을 가졌으며, 그의 선교 여정에 늘 가족과 살레시오회 형제 회원·은인·후원자들이 함께했음을 시사한다. 즉 이태석 신부 또한 우리 곁에 살다간 형제이면서 하느님의 자녀임을 깨닫게 한다. 에파타! 시노드에 응답하는 농인 교회 / 박민서 신부 / 으뜸사랑 “에파타(열려라)!”는 예수님께서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치시며 하신 말씀이다.(마르 7,34 참조) 「에파타! 시노드에 응답하는 농인 교회」가 출간됐다. 아시아 최초의 농인 사제인 박민서 신부가 시카고 가톨릭연합신학대학원에 제출한 실천신학 박사학위 논문을 우리말로 번역한 책이다. 책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제시한 시노드 정신에 따라 교회의 ‘실존적 변방’에 있는 농인 신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고 있다. 박 신부는 서울대교구 농인 가톨릭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아시아 지역 농인 신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신앙 경험과 교회에 대한 바람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특히 1986년 서울 주교좌 명동대성당과 돈암동본당 농인들이 설립한 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부터 2019년 설립된 에파타 농인본당까지 농인들이 어떻게 주체적으로 신앙 공동체를 형성해 왔는지 기록했다. 이를 통해 농인들이 사목적 돌봄의 대상이 아닌, 고유한 언어(수어)와 문화를 가진 언어적 소수자로서 교회의 온전한 일원임을 보여준다. 또 농인 교회의 실체와 과제를 신학적으로 성찰했다. “우리도 복음을 선포할 수 있다. 수어는 구화와 마찬가지로 농인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이다. 오순절에 사도들에게 내려오신 성령께서는 수많은 언어 가운데 분명 수어도 알고 계셨을 것이다.”(61쪽) 가장 낮은 곳의 등불, 테레사 수녀/ 조영경·임하라 / 깊은나무 “저는 하느님 손에 있는 작은 몽당연필에 지나지 않습니다. 글을 쓰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지요. 저는 그저 하느님의 뜻대로 움직일 뿐입니다.”(120쪽) 「가장 낮은 곳의 등불, 테레사 수녀」는 ‘가난한 사람들의 어머니’로 불리는 성녀 마더 데레사(1910~1997)의 일생을 담은 책이다. 어린이 독자를 위해 쉬운 문체와 일러스트로 구성했고, 성녀가 품은 소외된 사람들과 그들에게 실천한 하느님 사랑을 소개한다. 데레사 성녀 탄생 115주년을 맞아 우리나라와의 인연 등도 추가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으나 평생 종교와 인종에 상관없이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위해 헌신한 데레사 성녀는 197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2016년 성인품에 올랐으며, 유엔은 성인이 선종한 9월 5일을 ‘국제 자선의 날’로 제정해 평화와 나눔 정신을 기리고 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5.06.25

서울평협 ‘2024 한반도 화해 평화 대토론회’ 개최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부위원장 정수용 신부의 주제발표를 토론 참가자들이 듣고 있다.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는 한반도에서 지속 가능한 평화를 모색하는 토론회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 1980년대 이후 40여 년간 계속된 교회의 대북 기조 수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6월 25일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열린 ‘2024 한반도 화해 평화 대토론회’에서 청와대 정책조사비서관을 지낸 서명구(아우구스티노) 박사는 ‘평화와 화해’(2024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한 가톨릭의 역할’(2018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등 교회 내 문헌과 출판물, 논문 등 20여 건을 분석해 의견을 제시했다. 서 박사는 “2024년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가 발표한 ‘평화와 화해’를 보면 가해자의 사과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품으려는 의지를 강조하면서 독일의 만행을 용서한 폴란드 교회를 예로 들었다”며 “이는 나치 붕괴 및 자유민주주의 체제 변화, 독일이 다시는 침략과 살상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약속한 상황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은 아직 체제 변화 및 회개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과거 잘못을 되풀이할 수 있는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공개적인 화해를 추진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밖에 2018년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가 발간한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한 가톨릭의 역할’ 에서 ‘남한은 항상 북한을 핑계로 무기를 구입했다’(박한식/한반도와 평화통일)란 주장에 대해서도 “아무런 위협이 없는데도 한국이 마치 북한을 핑계로 무기를 증강해왔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는 “ ‘평화를 원하면 평화를 준비하라’는 말이 언제나 통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평화를 준비하면 평화가 올 수도 있지만, 전쟁이 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부위원장 정수용 신부는 ‘남북한 평화를 위한 가톨릭교회의 사명과 역할’이란 발표에서 “1980년대를 기점으로 한국 교회가 북한 교회에 대한 인식을 적에서 형제로 전환했다"며 “그러나 남과 북은 여전히 분단체제로 인한 갈등이 계속되고 있고, 상대를 악마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반도의 갈등 문화 극복을 위해 가톨릭교회 구성원들은 북한에 형제의 시선을 갖는 평화의 사도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평화나눔연구소 고광영(에발도) 박사는 “2024년 북한은 남북관계를 동족이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로 재정의했고, 한국 사회 내에서도 서로를 종북이나 극우로 규정하는 극심한 이념 대립이 만연해 있다"며 "우리 사회 안에서, 또 가톨릭 신자 안에서 한반도 문제를 놓고 성향이 다른 사람들 간 화해와 협력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따라서 교회는 여러 목소리를 경청하고 사회적 아픔을 달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토론회에는 서명구 박사와 정수용 신부의 발제, 전동혁 신부(마산교구 지세포본당 주임), 홍태희 교수(서강대 대우교수·평협 부회장), 고광영 박사(평화나눔연구소 상임연구원)의 지정토론, 그리고 질의응답 순으로 진행됐다. 행사에는 탈북민 출신 신자를 비롯해 100여 명이 참석해 활기찬 토론이 이어졌다. 이상도 선임기자 raelly1@cpbc.co.kr이상도 선임2024.07.03

“가난은 경제적 문제만이 아니라 아이들의 성장 욕구 망가뜨려”[타인의 삶](22)베스트셀러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강지나 작가 10여 년간 가난한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기록한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의 저자 강지나 작가. 교사로서 대물림되는 빈곤 앞에서 무력해지지 않기 위해 했던 결심이 현재 사회에 다양한 목소리로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가난, 개인의 문제 넘어 집단의 문제 교사로서 아무 역할 할 수 없음에 퇴직 고민하다 학교 사회복지 공부 ‘빈곤 대물림’ 박사논문 준비하며 10여 년간 아이들 8명 인생 동행 수많은 독자 응원 편지 보내와 영혼의 고갈 채워주는 게 교회 역할 피정이나 캠프, 청소년에 도움 될 것 강지나(베로니카) 작가는 10여 년간 주변 가난한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기록해 지난해 책으로 출간했다. 지금도 사회분야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는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의 저자다. 그는 25년 경력의 중고등학교 영어 교사이자 청소년 정책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여러 편의 관련 논문을 쓴 연구자이기도 하다. 교단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그의 눈에 더 힘들고 어렵게 사는 아이들이 깊이 들어왔던 걸까. 초임교사 시절, 대물림되는 빈곤의 고리 앞에서 무력해지지 않기 위해 했던 결심이 그를 이 시간까지 이끌었다. 그리고 이 오래된 주제는 다시금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목소리로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사회는, 어른은 가난한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난은 무엇인가. 강 작가가 오랜 시간 고민하고 던진 질문을 따라가 봤다.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에 등장하는 17살 소희는 영구임대아파트에서 가족과 살고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전형적인 도시빈민이었다. 외할머니는 술 먹고 행패를 부리기도 했는데, 어머니 목에 칼을 들이대고 죽인다고 위협했던 사건을 목격한 적도 있다. 외할머니는 생계를 위해 급기야는 큰딸인 소희 어머니를 어린 나이에 다른 집 식모로 보내버렸다. 지금도 어머니는 글을 읽지 못한다. 소희 어머니는 우울증을 오랫동안 앓아왔다. 아버지는 소희가 다섯 살 때 이혼한 후 집을 나갔다. 초등학생 때 새 아버지가 생겼지만, 조현병이 있었고 술을 자주 마셨다. 툭 하면 어머니에게 욕하며 때리곤 했다. 두 살 터울 오빠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고, 게임에 중독돼 고등학교도 다 못 마쳤다. 누구도 소희가 대화를 나누거나 마음을 의지할 만한 대상이 되지 못했다. 24살 소희는 겉으로는 여느 대학생과 같아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관계 맺기가 어려웠고, 학교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28살이 된 소희는 대학 졸업 후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도 취득했다. 다만 자기가 현장에서 계속 일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해결되지 않는 외로움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포근히 안아줄 관계에 대한 갈망이었다. 누구도 밑바닥까지 소희를 이해하고 같은 편이 돼 줄 사람은 없어 보였다. 빈곤층 청소년들과 10년간 동행한 작가 강 작가는 교사가 되기 전까진 가난을 옷이 부족하거나 학원을 못 다니는 정도의 피상적 개념으로 생각했다. 그러다 2000년 경기도 외곽 소도시에서 교사생활을 하던 중 성장하고 싶은 욕구를 망가뜨리는 문제의 본질이 가난임을 알게 됐다. 공공성이 부족하고 희망을 발견하기 힘든 지역의 사회 문화 특성상 학생들도 무기력하고 동기가 잘 생기지 않았다. 즉 가난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집단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강 작가는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자극을 줘서 가르침을 끌어내는 게 쉽지 않았다”며 “동기 유발이 전혀 되지 않는 분위기에 교사로서 절망했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큰 위험에 처한 아이들도 있었다. “할머니가 자기 아들이 돈을 안 갚는다는 이유로 손자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어요. ‘밥은 제대로 줄까? 신체나 정서적 학대는 없었을까?’ 생각했죠. 가난이라는 게 경제적 문제만이 아니구나. 영혼을 갉아먹고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교사로서 아무 역할도 할 수 없었어요.” 이같은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고 함께한 강 작가는 교사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던 차에 친구에게서 학교 사회복지라는 제도에 대해 들었다. 빈곤층 아이들을 직접 도와줄 수 있다는 얘기였다. 강 작가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공부를 병행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학교 사회복지는 제도적으로 잘 정착되지 못했다. 그래도 공부는 꾸준히 이어갔다.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빈곤 대물림에 관한 박사논문을 준비했다. 2012년 아이들과 첫 인터뷰를 시작했고, 책 출판까지 이어지면서 2022년 마지막 인터뷰까지 10여 년간 8명의 아이들 인생을 동행했다. 빈곤의 고리를 끊기 위해 “빈곤은 단순히 재화의 부족이 아니라 자유로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려는 역량의 박탈입니다.” 강 작가는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아마티아 센 교수의 말을 빌려 이같이 말했다. 곧 빈곤의 대물림은 박탈의 경험이 대를 이어 축적되고 불평등한 사회구조로 고착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걸 경제적인 수치로 계산하려고만 합니다. 사회 안에서 어떻게 자기 역할을 하고 행복하게 살 것인지에 대해선 얘기하지 않아요. 돈 얘기만 하고 끝내버리죠. 누구나 자기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게 중요합니다. 그게 안 돼 있는 상황이 빈곤입니다. 자기 역량을 잘 발휘하기 위해선 건강해야 하고, 안전해야 하고, 교육도 충분히 받아야 하죠. 결국 사회가 안전망이 돼줘야 합니다.” 교사로서의 정체성도 되짚었다. 그는 “배고픈 아이에겐 아무리 좋은 얘기를 한들 귀에 들어가지 않는다”며 “배고픔에는 물리적 배고픔뿐 아니라 정신적 배고픔, 영혼의 고갈도 포함된다”고 했다. “입시에만 신경 쓸 게 아니라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안전한지, 자아 정체감을 잘 형성하고 있는지 두루 살펴봐야 합니다. 생각하거나 성찰하는 시간, 영혼을 채우는 시간도 중요하죠. 저는 청소년기에 성당에서 그 부분을 많이 채웠던 것 같습니다. 피정이나 캠프가 도움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교회가 정신적 빈곤과 영혼의 고갈을 채워주는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책표지. 예상 뒤엎고 대중적 반향 일으켜 강 작가는 지금까지 나온 인세 모두를 빈곤층 청소년을 위한 곳에 기부했다. 그가 책을 낸 이유도 10년간 인터뷰를 해준 아이들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었다. 강 작가는 “빈곤은 오래된 주제이기도 하고, 대중적인 반향을 일으키리라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예상을 뒤엎고 반응은 뜨거웠다. 교사와 사회복지사, 어르신 등 수많은 독자가 편지를 보내왔다. “알고 있었지만, 사회적 이슈로 끄집어내 줘서 고맙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특히 빈곤을 겪었던 청년들로부터 연락이 많이 왔습니다. 여전히 힘들다고,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말입니다.” 강 작가는 “가난이라는 주제에 이처럼 관심이 많은 게 단순한 호기심은 아닌 것 같다”며 “발견 못 했을 뿐이지, 다들 도와주려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사회에 필요한 문제를 제기한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책 속 주인공들이 그렇게 여기고 있습니다. 사실 정말 많은 부분이 바뀌어야 하는 어려운 문제이긴 합니다. 그럼에도 조금이나마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저도 제 자리에서 하던 대로 아이들과 또 열심히 살아갈 거고요.” 박민규 기자 mk@cpbc.co.kr박민규2024.08.21

안동교회사연구소, 김치진의 「척사론」 발간 “하느님이 전능하고 자비롭다면 그저 사람들을 한 번 명령으로 구원으로 이끌면 될 것이지, 구태여 서역 땅 한구석에 예수를 내려보내 수난을 겪게 하는가? 예수를 통한 구원이 이루어졌는데 왜 여전히 사람들은 예수가 살아있을 때 제자들이 배반한 것처럼, 예전과 다르지 않은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비신자로부터 받아봤을 법한 날카로운 질문이다. 그러나 이 신랄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19세기 경북 상주에 살던 김치진(1822~1869)이다. 조정의 박해로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목숨을 잃던 시절. 김치진은 유학자로서 질서를 위협하는 천주교를 ‘제대로’ 비판해 민중을 계몽하고자 교리를 낱낱이 파헤치기로 했다. 신자들 사이에 잠입, 교리 서적을 입수해 읽고 또 읽은 끝에 27개 조목에 걸쳐 유학적 논리로 그 내용을 비판하는 책을 펴냈다. 그간의 단순한 ‘척사’(사악한 것을 물리침) 구호를 넘어, 천주교 교리와 교의를 뒤흔드는 시도로 평가받는 「척사론」이다. 안동교회사연구소(소장 신대원 신부)는 최근 총서 7번째 책으로 김치진의 「척사론」을 완역, 발간했다.(신대원 신부·원재연 교수 공동 역주/도서출판 동명) 안동교회사연구소가 천주교를 이토록 통렬히 비판한 유학자의 책을, 그것도 최초로 출판한 배경은 무엇일까. 이는 「척사론」이 맹목적이고 피상적인 기존 비판과 달리, 천주교와 유교 논리를 학문적으로 비교 검토할 수 있는 자료인 까닭이다. 아울러 21세기를 사는 신자들에게도 여전히 큰 효용을 준다. 김치진이 제기한 것과 같은, 신앙의 핵심 요소에 관한 질문을 끊임없이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연구소장 신대원 신부는 “「척사론」은 천주교 신자를 포함한 일반인들이 올바른 식별을 하도록 도울 것”이라며 “신자와 비신자들 사이의 인식 차이를 극복하고, 다양한 종교와 문화적 소통의 문제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데 필요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는 추천사에서 “교리 지식이 얕은 신자들은 자칫 신앙에 대한 혼동을 불러올지도 모르기에 김치진의 배척 논리들을 잘 식별해야 할 것”이라며 “식별을 분명히 가질 수 있다면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확실한 천주교인으로 자리매김하고, 다른 이들에게도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파할 수 있으리라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이학주2024.04.24

“하느님께서 여러 번 살려주신 이유? 좋은 일 하라는 소명”[타인의 삶] (24)‘한국 교회의 자선가’ 이성우 안토니오 한국 교회의 숨은 자선가 이성우 대표이사. 그는 남양성모성지 후원회장이자 바티칸 정원에 모자이크 성모화를 봉헌하기도 했다. 수차례 넘긴 ‘죽을 고비’ 다섯 번의 대형 교통사고 뇌졸중으로 쓰러져 의식불명… 큰 후유증 없이 보너스 같은 삶 대물림하고 싶은 ‘기부’ 30여 년 전 부모님이 봉헌한 진동 가르멜 수도원 축복식에서 기부하는 삶 살아야겠다 다짐 “줄 수 있어 감사” 마뗄암재단 오랜 후원자이자 남양성모성지 후원회장 바티칸 정원 한국 성모화 봉헌 등 수많은 곳에 후원·기증 “저는 인터뷰는 안 합니다. 대신 맛있는 밥 한끼 사드릴게요.” 그를 처음 만난 건 지난해 9월 바티칸에서였다. 역대 교황들의 산책로인 바티칸 정원에 한국의 성모를 담아낸 모자이크 성화 ‘평화의 모후’(심순화 작)가 걸렸는데 그 작품의 축복식이 열린 날이었다.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 주례로 축복식이 거행됐고, 이 작품을 봉헌한 이성우(안토니오, 69, 성은실업 대표이사)씨도 참석했다. 그는 유흥식 추기경에게 교황 축복장을 받았다. 그의 떨리는 목소리는 바티칸 정원에 울려 퍼졌다. “바티칸 정원에 아름다운 한국 성모님화를 봉헌하게 되어 기쁘고 감사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다섯 번의 대형 교통사고를 당했고, 12년 전에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40분간 의식을 잃었지만 아무런 후유증 없이 잘 생활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여러 번 저를 살려주신 이유는 이렇게 좋은 일을 하라고 하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한 해를 넘긴 지난 1월 중순. 그를 인천시 강화군 마니산로에 있는 마뗄암재단 강화쉼터에서 다시 만났다. 이곳에서 이영숙(베드로,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녀와 함께하는 것이 인터뷰 조건(?)이었다. 강화쉼터는 암 환자들의 요양시설이다. 이영숙 수녀는 암환자와 사별가족을 위한 기도와 피정을 해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수녀는 이 대표의 어머니(고 이수희 아가타)가 딸처럼 여길 만큼 돈독한 사이였다. 어머니의 신앙 유산 ‘기부’ “바티칸 정원에 평화의 모후를 봉헌했을 때 어머니께서 하늘에서 무척 기뻐하셨을 거 같아요. 이렇게 자선할 수 있는 탤런트를 제게 물려 주신 어머니한테 감사드려요. 내가 남을 도와줄 능력이 되는 게 참 감사해요. 돕고 싶어도 능력이 안 되면 못하잖아요. 저는 그저 하루 밥 세끼 잘 먹으면 되고요.” 3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난 그는 연세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사업을 시작했다. 1986년 미국 LA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는 1989년 부모님이 봉헌한 경남 창원의 진동 가르멜 수도원 축복식에서 부모님 이름이 새겨진 대리석을 보고 ‘나도 잘 되면 부모님처럼 좋은 일 하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서울대 교수였던 아버지(고 이경형 요셉)는 이공계 서적 출판사를 운영했다. 신앙심이 남달리 깊었던 어머니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도하고 기부하는 분이었다. 한국순교복자수녀원이 서울 청파동에 들어설 때 수도방 17곳을 가족들 이름으로 봉헌했고, 강남구에 새로 짓는 본당 일곱 군데에 각 1억씩 봉헌했다. 이름 남기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어머니는 ‘그저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이라고 가까이 지낸 이영숙 수녀에게만 털어놨다. 어머니의 신앙 유산인 ‘기부’를 물려받은 그는 마뗄암재단의 오랜 후원자이면서 남양성모성지 후원회장이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과 한국 순교자 124위 시복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나전칠화 ‘일어나 비추어라’도 기증했다. 지난해 10월 한국가톨릭문화원에서 열린 가수 바다(비비안나)의 첫 성가 발표 음악회도 후원했다. 오는 5월 남양성모성지에 설치될 ‘천사의 상’이 이탈리아에서 제작 중이다. 모두 그가 기부한 돈으로 이뤄진 일이다. 서울대교구 한남동본당 총회장도 지낸 그는 차량이 없는 호스피스 봉사자 수녀에게 차량을 선물하고, 한국순교복자수녀회가 중국에서 운영하는 신학교의 형편이 어려운 신학생 7명도 후원했다. 이 중 4명이 사제가 됐다. 한국에서도 형편이 어려운 한 신학생이 사제가 될 때까지 학자금 전액을 뒤에서 대줬다. 본당에서는 15년째 주차봉사를 하고 있다. 이성우 대표가 기부하는 삶을 결심하게 한 진동 가르멜 수도회의 대리석. 수도원을 봉헌한 부모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다섯 차례의 교통사고와 의식 불명··· ‘덤으로 주어진 삶’ 그는 2012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40분간 의식을 잃은 적이 있다. 호텔에서 회의하다가 잠시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는데 한 초등학생 아이가 다가와 “아저씨, 담배는 몸에 나쁜데 왜 피우세요?”라고 했고, 그는 “담배를 끊겠다”고 약속한 후 아이를 돌려보냈다. 식사 후 담배를 피우는데 머리가 빠개지듯 아프더니 몸에 힘이 풀려 쓰러져 119에 실려갔다. “그 아이 얼굴은 기억이 안 나는데, 청바지에 초록색 스웨터를 입었어요. 지금은 대학생이 됐을 거예요. 50년 동안 피웠던 담배를 그 사고 이후에 끊었죠. 담배를 한 대 더 피우고 그 아이와 약속을 지켰어요.”(웃음) 그는 뇌졸중 후유증으로 말이 살짝 어눌해지고, 왼쪽 발의 감각이 약간 둔해졌다. “큰 교통사고를 여러 번 당했어요. 유리창·핸들이 다 부서졌는데 몸에 피 한 방울 안 난 일도 있었고요. 사고를 당할 때마다 하느님께 ‘왜 저를 계속 살려주세요?’라고 되물었죠. 어머니가 기도를 많이 하셔서 살았다고 느껴요. 좋은 일을 하라고 보너스 같은 삶을 계속 주시는구나 생각합니다.” 거액의 기부를 하고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가 요즘은 가끔 이름을 남긴다. 그는 1989년 부모님이 봉헌한 진동 가르멜 수도원 축복식에서 부모님 이름이 새겨진 대리석을 보고, 그도 자녀들에게 기부라는 유산을 물려주고 싶어졌다. 그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제가 도와드려도 될까요?”라고 되묻는다. 그에게 누군가의 요청은 하느님이 시키시는 일이다. 지금까지 어느 기관에 총 얼마나 기부했는지 일목요연한 답을 듣고 싶었지만, 금액을 물을 때마다 이 대표는 “액수는 쓰지 말아달라”며 “오늘 인터뷰는 없던 걸로 하자”고 인터뷰를 여러 차례 고사했다. 결국 기사에 돈 액수는 쓰지 않기로 했다. 이 대표는 일주일에 두 차례 새벽 미사를 봉헌한다. 매일 남산에서 1시간 동안 산책을 하며 묵주기도 20단을 바친다. 한 단 한 단 기도가 필요한 지인들을 떠올리며 기도한다. “기부하면 좋아요. 나를 통해 다른 누군가가 혜택을 받는 것을 보면 정말 좋습니다. 남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뻐요. 나는 전혀 기억을 못 하는데 받은 사람은 기억하더라고요. 본당에서 청소년분과장을 하며 아이들 밥을 많이 사줬는데, 한 어머니가 저에게 그러더군요. ‘우리 아들이 군대에 가 있는데, 어렸을 때 분과장님이 밥을 많이 사주셨다고, 자기도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알았죠. 나는 준 걸 잊었지만 받은 사람은 기억해주는구나.” 그는 “좋은 일을 더 많이 하고 싶고, 할 일도 많다”고 했다. 2027년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청년대회도 남의 일이 아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이지혜2025.03.05
![[신간] 오늘의 기도 : 극복해야 할 도전 / 시편으로 드리는 기도](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08/27/wv91724747058798.jpg)
[신간] 오늘의 기도 : 극복해야 할 도전 / 시편으로 드리는 기도기도의 은총 풍성히 누리고 싶다면… 안젤로 코마스트리 추기경 / 김영훈 신부 옮김 / 성서와함께 잔프랑코 라바시 추기경 / 안소근 수녀 옮김 / 성서와함께 프란치스코 교황, 올해 ‘기도의 해’ 선포 교황청, 기도 소책자 시리즈 8권 발간 성서와함께, 1·2권 잇따라 펴내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4년을 ‘기도의 해’로 선포했다. 2025년 희년을 향해 가는 여정에서 ‘기도의 위대한 가치와 절대적 필요성을 재발견하는 데 전념’하기 위함이다. 교황은 “기도는 하느님을 믿고 자신을 맡기는 이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침묵 속의 외침과도 같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뜻대로(루카 18,1) 낙심하지 않고 개인과 공동체의 기도가 끊임없이 바쳐질 때 하느님의 나라가 자라나고, 주님의 사랑과 용서를 간구하는 모든 이에게 복음이 선포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를 위해 교황청 복음화부는 신자들이 모든 활동의 바탕이 되는 기도에 더 마음을 모아 기도의 은총을 풍성히 누릴 수 있도록 ‘기도 소책자’ 시리즈를 발간했다. 전 8권으로 국내에서는 주교회의가 다섯 권을, 도서출판 성서와함께가 세 권을 발간한다. 성서와함께는 최근 1권 「오늘의 기도 : 극복해야 할 도전」과 2권 「시편으로 드리는 기도」를 잇달아 펴냈다. 「오늘의 기도 : 극복해야 할 도전」의 저자 안젤로 코마스트리 추기경은 성 베드로 대성전 전 수석 사제이자 바티칸시국 총대리로, 영성 분야의 저명한 저술가다. 추기경은 이 책에서 성경의 가르침, 겸손과 성실로 기도의 열매를 맺은 성인들의 증언, 영적인 영감이 가득한 시인·소설가·철학자의 글을 통해 기도의 열망에 불을 지핀다. 용서와 자비로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걸음에 희망을 북돋운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란 하느님께서 참으로 자신을 비우시고 강생하시어 우리 가까이 오셨다는 놀라운 말씀을 늘 가슴에 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란 죄로 인해 짓눌리고 상처 입은 자녀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때 체험하는 사랑과 위로의 눈물입니다. 아버지 앞에서 눈을 들어 바라보면 원망은 찾을 수 없고 오히려 미소를 보며 아버지의 한없는 온정과 따스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이렇게 시작합니다.”(64쪽) 2권 「시편으로 드리는 기도」는 교황청 문화교육부 명예위원장인 잔프랑코 라바시 추기경이 집필했다. 책은 영혼의 호흡인 기도에 관한 일반적인 고찰을 시작으로, 시편 본문들을 개관하고, 교회 전통과 전례에서 특히 소중히 여겨지는 시편들을 짧게 해설한다. 저자는 희년을 향해 가는 우리들이 강렬한 영성의 시간을 지나고 있음을 역설하며, 시편 본문은 끊임없이 기도자를 재촉하여 사랑의 자리·연대의 자리로 옮겨가도록 이끈다고 강조한다. “시편에는 고통의 색깔이 지배적으로 나타납니다. 기쁨의 색깔보다 분명 더 많습니다. 시편의 거의 3분의 1이 탄원과 고통을 특징으로 합니다. 삶에 행복보다 어둠이 더 많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37쪽) “시편 기도가 지금도 전례 안으로 흘러들어 그 안에서 강하게 표현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공동체 없이 고립된 채 혼자 기도하는 개인은 없습니다. 그 개인은 언제나 계약의 하느님,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하느님과 대화하는 선택된 백성의 일원입니다. 계약과 ‘거룩한 민족’이라는 후광이 주님께 목소리를 높여 기도하는 모든 사람을 감쌉니다.”(46쪽) 5권 「기도의 비유」는 9월 중 출간될 예정이며, 3권 「예수님의 기도」, 4권 「성인과 죄인의 기도」, 6권 「기도 안의 교회」, 7권 「마리아와 성인들의 기도」, 8권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신 기도 : 주님의 기도」도 독자들과의 만남을 예고하고 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4.08.28
![[책꽂이] 「수험생을 위한 100일 은총 성경 쓰기」 외 3권](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08/20/HAI1724137079392.png)
[책꽂이] 「수험생을 위한 100일 은총 성경 쓰기」 외 3권 수험생을 위한 100일 은총 성경 쓰기 / 생활성서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오는 11월 14일 치러진다. 석 달이 채 남지 않았다. 수험생은 물론이고 이를 지켜보는 가족과 지인들의 마음도 초조할 수밖에 없다. 「수험생을 위한 100일 은총 성경 쓰기」는 은총과 지혜의 원천인 성경을 필사하며 묵묵히 수험생의 여정에 동참하도록 돕는다. ‘성경 쓰기’는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단순한 필사를 넘어서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성경 안에서 사랑으로 당신 자녀들과 만나시며 그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신다”(「계시 헌장」 21항)라는 교부들의 가르침대로, 성경을 쓴다는 것은 곧 하느님과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특별한 지향을 갖고 성경 필사를 하면 혼자서는 지치기 쉬운 마음을 하느님께 온전히 맡겨 드리고 그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다. 더구나 가족을 위해 바치는 진심 어린 기도에 담긴 마음을 가장 잘 아시는 분은 하느님이심을 잊지 말자. 청진상륙작전 / 김정선 / 서교출판사 6·25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의 기만작전 중 하나인 청진상륙작전을 소재로 70여 년간 묻혀 있던 비화를 엮은 소설이다. 신학생 출신인 최병해(마르코, 1914~1994) 중령은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에 사흘 앞서 이뤄진 청진상륙작전의 유일한 생존자다. 이 작전에서 최 중령이 이끈 특공대 500명은 전원 사망했다. 지원을 약속했던 미군의 함포사격도, 후속부대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해 10월 최 중령은 미주리호 함상에서 한국군 가운데 최초로 미국 대통령이 수여한 동성훈장을 받았지만, 죽은 부하들을 떠올리며 바다에 버렸다. 같은 이유로 한국군에서 수여한 금성충무무공훈장과 종군기장도 받지 않았다. 70년이 지난 2020년에야 최 중령의 유가족인 세 딸(최효선 수녀 등)에게 이 훈장들이 전달됐다. 저자는 “세 자매가 선친에 대한 전기문을 써달라며 그동안 모은 자료들을 주섬주섬 꺼냈다”며 “조국을 위해 산화한 최병해 중령과 500인의 지워진 영웅들이 이룬 청진상륙작전이 현대사에 선명한 한 줄로 기록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겪어보면 안다 / 김홍신 / 해냄 굶어보면 안다, 밥이 하늘인 걸 코 막히면 안다, 숨 쉬는 것만도 행복인 걸 일이 없어 놀아보면 안다, 일터가 낙원인 걸 불행해지면 안다, 아주 작은 게 행복인 걸 … 「겪어보면 안다」는 소설가 김홍신(리노)이 인생을 살아가며 수없이 경험하고 깨달은 삶의 소회를 엮은 책이다. 작가의 139번째 출간작이자 4년 만에 선보이는 산문집으로, ‘아프고 잃고 떠나보낸 뒤 비로소 깨달은 인생의 참된 행복’을 주제로 40여 편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환경이 변하고 세대가 달라져도 사는 일에 대한 고민은 크게 다르지 않은 세상에서, 따뜻한 옆집 할아버지 같은 노작가의 진솔한 고백이 깊은 감명을 선사한다. 별다올 아침 산책 / 오세윤 / 북나비 저자 오세윤(토마스 아퀴나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80여 년 세상 한 번 어지럽게 산 남자의 삶에 대한 수필이다. 1938년생인 저자는 38선 인접 북녘 바다 마을에서 태어나 해방을 맞았고, 공산 정권을 피해 월남했다 전란의 생지옥을 겪었으며, 어렵게 학업을 이어가 소아과 의사로 한평생을 살았다. 굴침스레 살아내며 보고 느끼고 사랑하며 산 세상을 글로 엮어 꾸준히 펴내고 있다. 이번 책에서도 사람 사는 이야기, 살아야 할 의미에 대해 썼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4.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