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침묵 피정, 자유 찾는 데 좋은 길잡이 될 것송차선 신부와 함께하는 1박 2일 대침묵 두 번째 피정 자유로운 영혼을 위하여송차선 신부 / 분도출판사 / 1만 원출판계가 불황이라지만, 좋은 책은 독자들이 먼저 알아본다. 책이 아무리 안 팔린다지만, 좋은 책은 그래도 사서 본다. 송차선(서울대교구 석관동본당 주임) 신부가 2010년 펴낸 「화해와 치유」(분도출판사)는 지금껏 5쇄를 넘기며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화해와 치유」는 혼자서 혹은 소규모로 1박 2일간 대침묵 피정을 하며 나 자신과 이웃과 화해하며 마음속 상처를 치유하도록 이끌어 준다. 대침묵을 하는 동안 무슨 기도를 바쳐야 하는지, 어떤 성경 말씀을 읽고, 무엇을 묵상해야 하는지를 자세하게 일러주는 데다, 아예 피정 시간표까지 제시해 줬다. 책만 있으면 누구라도 홀로 피정할 수 있도록 해 신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화해와 치유’ 말고도 다른 주제로도 피정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독자들의 요청이 끊이질 않았다. 송 신부는 「화해와 치유」 이후 7년 만에 새 책 「자유로운 영혼을 위하여」로 응답했다. 이번 책에서는 화해와 치유를 넘어 자신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도록 독자들을 안내한다. 책 주제를 ‘자유’로 정한 데에는 송 신부의 체험이 바탕이 됐다. “제가 몇 년 전에 암 수술을 했어요. 수술실로 향하는 동안 병원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 전혀 무섭거나 두렵지가 않았어요. 살고 죽는 것에 집착이 없었죠. 의사가 수술실에 웃으면서 인사하고 손 흔드는 환자는 처음 봤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저를 보고 사람들이 ‘아픈데도, 뭐가 그리 자유롭니’라고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많이 묵상하고 생각했어요. ‘내가 자유로운가? 무엇에서 자유로운 거지? 죽음에서? 고통에서? 무엇 때문에 자유로운 걸까. 그럼 자유란 게 진짜 뭘까’ 하고요.”송 신부는 철학에서 말하는 어렵고 딱딱한 ‘자유’가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자유’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보좌 시절 본당 주임 신부에게 매운 ‘시집살이’를 겪은 사연, 성당을 새로 지으면서 신자들과 겪었던 갈등, 커피와 컴퓨터 게임에 빠졌던 중독 등 자신의 삶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과거를 가감 없이 고백했다. 그러면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선 자유를 향한 열망을 가지고 간절하게 찾아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람들은 모두 무언가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바라죠. 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를 얻길 바라고요. 바라는 데서만 그쳐서는 안 됩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찾아 나가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때론 아프고 깨질 수도 있겠지요. 대침묵 피정은 자유를 찾는 데 좋은 길잡이가 돼 줄 것입니다.”송 신부는 침묵의 중요성에 목소리를 높였다. 하느님을 만나는 피정에서 핵심은 침묵이라고 했다. “꼭 1시간은 반드시 침묵하며 묵상하기를 권합니다. 그래야 하느님 소리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으면 않는 대로 있으면 됩니다. 점차 익숙해지다 보면 어느 순간 하느님과 대화할 수 있을 겁니다.”송 신부는 또 자유로우려면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현재에 머무르기를 당부했다. 과거에 얽매이거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지금, 여기의 기쁨과 행복을 놓치는 잘못을 경계했다. “현재를 살아가는 것은 과거에 마음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과거에 만들어진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죠. 또 불확실하고 보장 없는 미래에 마음이 사로잡혀 있으면 오늘을 보지 못하고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느님께 모든 걸 맡기면 됩니다. 그분 사랑 안에선 모든 것이 자유롭습니다.”한편, 분도출판사는 19일 오후 7시 석관동성당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위하여」 출판 기념 저자와의 만남 시간을 마련한다. 저자 송 신부의 체험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자리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평화신문2017.05.10

신자 눈높이 맞춰 풀어쓴 ‘교부들의 삶과 말씀’황인수 신부, 정통 신앙 토대 확립한 교부 10명 문헌 엮어 출간황인수 신부는 "우리 모두 교부가 될 수 있다"며 "지금도 살아 숨쉬는 교부들의 말씀에 심취해 보길 권한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끝없는 길 언제나 새로운 길 황인수 신부 지음 / 1만 3000원 / 성바오로출판사 교부들의 문헌을 읽은 적이 있는지. ‘교회의 아버지’라 불리는 교부(敎父)는 그리스도교 진리를 널리 전파한 존경받는 위대한 사상가를 일컫는 칭호다. 그리스도교 초기부터 중세기까지 그리스도교 정통 신앙의 토대를 확립한 많은 교부들의 문헌은 여전히 ‘신자들이 접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게 사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 ‘교부들과의 친밀도’가 한껏 높아진다. 황인수(성바오로수도회 준관구장) 신부가 펴낸 「끝없는 길 언제나 새로운 길」(성바오로출판사/1만 3000원)은 사도 시대부터 수 세기에 걸쳐 정통 신앙을 수호한 교부 10명의 빛나는 문헌과 감동적인 삶을 독자 눈높이에 맞춰 엮었다. ‘기도’, ‘이웃 사랑’, ‘깨어 있음’, ‘말씀’ 등 가장 필요한 주제들을 다뤘다. 황 신부는 “교부들은 성경 말씀을 자기 삶으로 주석해낸 성인들”이라며 “교부들의 말은 당대 현실 문제와 직면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생명력을 지닌다”고 강조했다. 책 주인공은 대바실리오(329~379)부터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1090~1153)에 이른다. 교부들은 평생을 하나같이 그리스도의 진리를 깊이 깨닫는 데 매진했고, 말씀의 의미를 주해해 설교했다. 또 부패한 황실, 부유해진 권력과 잘못된 세태에 맞서 싸우기도 했다. 황 신부는 “오늘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신앙적으로 현실을 짚고, 이웃사랑과 실천을 강조하시듯 교부들 또한 개인 영성에 국한하지 않고, 사회 정의와 평화를 위해 사회적 발언도 서슴지 않으며 목숨까지 내놓았다”고 했다. 실제 부패한 권력층을 향해 “소유물이 소유자의 것이 되어야지 소유자가 소유물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고 외쳤던 암브로시오 성인은 결국 주교직을 박탈당하고 유배지에서 순교했다. ‘황금의 입’(金口)으로 불리는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 또한 폭군을 질타하다 쫓겨나 순교한다. 대바실리오도 추종을 강요한 황제에 당당히 맞섰다. 황 신부는 “교부들은 하느님 사랑을 깊이 체험했기에 이 같은 모범과 실천이 가능했던 것”이라며 “이분들의 모습에서 하느님의 모상인 사람을 제대로 알고,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진리를 꿰뚫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책은 교부들의 성경 주해서와 서간, 그리고 삶에 담긴 아름다운 신앙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늘 깨어 있는 사람이 되라”고 강조한 대바실리오는 “지상에서 천사들의 합창대를 모방하는 것보다 더 복된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고 시편을 찬양했다.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란 표현을 처음 쓴 대그레고리오 교황은 지병으로 목소리를 내기 힘든 상황에서도 교황직을 수행하면서 ‘개인 기도’와 ‘이웃 섬기기’의 균형을 강조했다. 하느님 신비를 깊이 꿰뚫어본 ‘은총의 박사’ 아우구스티노 주교와 예로니모 성인이 갈라티아서의 해석을 놓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겸손한 논쟁’을 펼친 일화도 흥미롭다. “모든 이를 돌보는 영혼의 의사이신 그분”(대바실리오),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영적인 재산을 분배하는 데도 불의할 것입니다”(예로니모), “그리스도를 마시십시오. 그분은 생명의 샘입니다”(암브로시오)와 같은 주옥같은 글귀도 읽을거리다. 로마 아우구스티니아눔에서 교부학을 전공한 황 신부는 “수원가톨릭대 신학생 시절, 스승의 날 신학생들이 교수님께 꽃을 달아드렸는데, 그분께서 글쎄 의자를 가져다 갑자기 칠판 위 예수님께 달아드리더라”며 “당시 교부학을 가르치셨던 이성효 주교님의 이 모습에서 ‘아, 이것이 참 신앙이구나!’를 느끼고 교부학에 매진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사실 교부란 꼭 이처럼 대단한 분들만 지칭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에게 생명의 신앙을 전해준 모든 이는 교부입니다. 제게 세례를 준 신부님,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병환 중에도 마지막까지 강론대 앞을 떠나지 않았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도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교부는 가까이 있습니다. 신앙을 전수하는 우리도 모두 교부인 셈입니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김지항2017.08.09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63·끝) 56. 목자를 따라서](//cpbc.co.kr/CMS/newspaper/2017/05/rc/680357_1.0_titleImage_1.jpg)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63·끝) 56. 목자를 따라서노랫말에 담은 ‘되찾은 양의 비유’ ‘목자를 따라서’ 작사가 보나르. 56번 성가 ‘목자를 따라서’는 연중시기에 가장 많이 부르는 성가 중 하나다. 이 성가는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라는 이사야서 53장 6절과 더불어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라는 말씀이 담긴 마태오 복음 18장의 ‘되찾은 양의 비유’가 가사의 배경이다.이처럼 이 성가는 당신을 떠나 죄악의 길로 헤매는 이들을 애타게 찾아다니시는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부르는 성가이며, 동시에 하느님의 생명의 길에서 벗어나 종살이를 하면서 애타게 구원을 기다리던 이들의 구원에 대한 갈망을 마음속에 품고 부르는 성가이기도 하다.이 성가의 원래 제목은 ‘나는 방황하던 양이었습니다(I was a wandering sheep)’이다. 작곡자는 독일 호흐도르프에서 출생한 오르가니스트 겸 작곡가 준델(John Zundel, 1815~1882)로서, 그는 에스링겐의 신학교에서 음악교사를 하다가 러시아와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오르가니스트로 일했으며, 1855년 미국에서 첫 성가집인 「플라이마우스 성가 선곡집(Plymouth Collection of Hymns)」을 출판했다. 이 성가는 그때 나온 성가로 타이틀은 ‘레바논(Lebanon)’이다. 작사가는 스코틀랜드의 개신교 성직자이자 시인 보나르(Horatius Bonar, 1808~1889)이다. 스코틀랜드의 비(非) 국교회의 연합회 의장직을 수행하기도 했던 그는 많은 책을 저술하고 약 600여 편의 찬미가를 써서 ‘스코틀랜드 찬미 시인 중의 왕자’라고 불리기도 한다.이 성가의 가사는 1843년에 그가 쓴 총 5연의 시인데, 시집 「황무지의 노래들(Songs in the Wilderness)」에 수록 출판됐다. 이 노래와 관계된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다음과 같다.중년의 전과자인 톰 에네킹은 이미 13살 때 범죄의 삶을 살기로 결심했고 일급 살인죄로 10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그런 그는 캘리포니아 감옥 독방에 수감되어 있을 때 냉정하게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비록 내 나이는 쉰두 살이지만 여전히 열다섯 살 때로 머물러 있구나.” 어느 날 미사가 거행된다는 소리를 들은 그는 갑자기 미사에 가고 싶어졌는데, 안전을 위해 몸수색을 받기 시작할 때 불쾌하게 여기며 다시 돌아가야겠다고 되뇌었지만 스스로 옷을 벗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후에 그는 그때 자신은 성령의 감도 아래 있었다고 고백했다. 미사 중에 자리에 앉아 성가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 성가가 바로 ‘목자를 따라서’였다. 그는 회개에 대한 강론을 듣고 “내가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고 이후 새로운 삶을 찾기 시작했다.감옥을 나온 후 그는 소년원에 있는 아이들을 위한 봉사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의 이 삶은 ‘목자를 따르는 양의 무리 안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며,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따르는 삶’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를 드러내 주는 것이었다. <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 교수>※그동안 ‘성가 이야기’를 집필해 주신 이상철 신부님과 애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김지항2017.05.02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61) 444. 나는 주를 의지하리라](//cpbc.co.kr/CMS/newspaper/2017/04/rc/678982_1.0_titleImage_1.jpg)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61) 444. 나는 주를 의지하리라성인과 같은 삶 살아온 영국 문학가 하버걸 작사가톨릭성가 444번 '나는 주를 의지하리라'의 작사가인 영국의 문학가 하버걸.신앙인들에게 있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은 바로 주님이심을 일깨워주는 성가는 444번 성가 ‘나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원제목은 ‘주 예수님 당신을 신뢰합니다(I am trusting Thee, Lord Jesus)’이다. 이 성가는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님의 품 안에 안겨있는 것처럼 주님께 의지하고 의탁한다는 내용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실제로 성가 작사가는 바로 그런 삶을 살았다. 영국의 여성 문학가 하버걸(F. R. Havergal, 1836~1879)이다. ‘거룩한 시인’, ‘성가계의 가장 달콤한 목소리’로 불린 그는 평생에 걸쳐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과 주님께 대한 신뢰의 삶을 보여줬다. 이미 3살 때 글을 읽을 줄 알았고, 7살 때에는 시를 쓸 줄 알았으며, 영어뿐만 아니라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라틴어,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도 할 줄 알았던 대단히 지적인 여성이었다. 성경에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으며, 구약 일부분과 신약성경을 외울 정도였다. 또한 뛰어난 피아니스트였고, 음악에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노래까지 잘했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의 주님께서 음악적 선율이나 아이디어를 주신다고 믿어 왔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분을 쳐다보고 기쁜 마음으로 감사드리며 작업을 계속 하지요. 이것이 내가 성가를 쓰는 방식입니다.” 임종을 앞에 두고는 “천국의 문에 가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눈부신 일인지요”라고 했으며, 43세의 나이로 숨을 거둘 때는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제 영혼을 당신께 맡깁니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그의 삶은 마치 성인과도 같은 삶이었다고 전해지는데, 444번 성가의 가사는 1874년 스위스에서 썼다. 작곡자는 영국 성공회 사제였던 불링거(E. W. Bullinger, 1837~1913)다. 그는 그리스어와 히브리어에 능통했다. 문자적 성경 해석을 바탕으로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대하시는 것이 일정한 기간들로 나뉜다고 보는 신학 사상(세대주의)을 신봉했던 ‘극단적 세대주의자’였다. 그는 여러 권의 저서와 몇 곡의 성가 작품을 남겼는데,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유일한 성가가 바로 444번 성가이다. 이 성가 선율은 그의 이름을 따서 ‘불링거’라 불리며, 1874년에 작곡돼 1878년에 처음 출판됐다. <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 교수> 김지항2017.04.19

카파르나움에서의 예수님 모습 소설 형식 빌어 생생히 묘사 그분에 대해 말해 주세요- 카파르나움 이야기 그분에 대해 말해 주세요- 카파르나움 이야기파비오 차르디 지음/국춘심 옮김/분도출판사/1만 원예수님은 어떤 분인가! 어떻게 생겼을까? 키는 컸을까 작았을까? 피부색과 눈동자는 무슨 색일까? 목소리는 맑았을까 아니면 중후했을까? 예수님의 얼굴은 분명 화가들이 그린 생김새는 아닐 것이다. 오블라띠 선교수도회 파비오 차르디 신부가 지은 「그분에 대해 말해 주세요- 카파르나움 이야기」는 예수님을 찾는 여정에 새로운 실마리를 제시한다.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분에 대해 말해 주세요.” “이미 여러 번 그분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잖아요.” “또 해 주세요.”예수님에 대해 수없이 듣고 읽고 보고 했지만 “또 해 주세요” “그분에 대해 말해 주세요”라고 요구하는 이들에게 저자는 생생한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준다.저자가 예수님을 알려주기 위해 이끌고 간 곳은 카파르나움이다. 예수님께서 지금도 사시는 고을, 예수님의 집이 있는 곳이다. 예수님은 이 고을에서 베드로, 안드레아, 야고보, 요한, 세리 레위를 제자로 부르셨다. 또 열병에 걸린 베드로의 장모, 야이로의 딸, 하혈하는 부인, 중풍병자, 백인대장의 병든 종을 치유하셨다. 그리고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고,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도 이곳에서 행하셨다. 저자는 카파르나움에 있는 베드로의 장모 집을 배경으로 이곳에서 생활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소설 형식을 빌어 보여준다. 성경의 딱딱하고 간결한 묘사가 아니라 예수님을 직접 만난 사람들이 그분의 인간적이고 따뜻한 면모를 실감 나게 이야기한다.“단식을 하고 광야의 고독 속에 살던 엄격한 고행자 세례자 요한과 같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먹고 마시고 사람들과 어울렸지요. ‘먹보요 술꾼’이라고 험담꾼들이 말했듯이요. 그분은 먹보도 술꾼도 아니었습니다. 기쁨과 아픔, 꿈과 희망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뿐이었습니다”(79쪽).저자는 “그분에 대해 말해 주세요”라는 요구에 그분의 손을 잡고 새 생명을 얻은 사람, 옷자락만 만졌을 뿐인데 오랜 병이 나은 사람을 통해 “그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한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백영민2016.12.14

세 사제가 전하는 삼색(三色) 사목 이야기사제들의 에세이를 모았다. 오랜 세월 묵묵히 사제직을 수행해온 이들은 성사를 통해 삶은 곧 사람이고, 사람은 곧 사랑이라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머문 자리에 있는 이웃을 소중히 여기고 긍정적인 삶으로 인생을 즐기라고 권한다. 한 개의 초로 다른 많은 초에 불을 붙여도 처음의 촛불 빛이 약해지지 않듯 사제는 그 삶의 자리가 어디이든 거룩하고 고귀하다. 서로 다른 삶의 자리에 있는 세 사제의 세 이야기를 소개한다. 또 다른 사랑법 ▧ 또 다른 사랑법최근 사목 일선에서 물러난 호인수(인천교구 원로 사목자) 신부가 40년 사목 생활의 성찰과 고백을 담은 「또 다른 사랑법」(분도출판사 / 1만 6000원)을 선보였다. 그는 40년간 본당 사제로만 지냈다. 도심 변두리, 산간벽지, 도서 지방의 크고 작은 성당에서 여러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왔다. 그 속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 병든 이, 부자와 권력자들에게 불의하게 피해를 보고 상처받는 이들을 발견했다. 그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요, 복음을 선포하는 사제로서 이들과 영적으로뿐만 아니라 온몸으로 함께 했다. 그는 교회와 사회에 쓴소리를 마다치 않았고, 교회의 사회 참여를 적극 옹호했다. 정권이 저지르는 부조리에 목소리를 냈고, 교회는 침묵하지 말고 억압받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암울했던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고, 인천 지역 노동자와 시민 활동가의 정신적 지주가 됐다. 책은 은퇴를 앞두고 지난 40년의 사제 생활을 성찰하고 감사하는 글을 담고 있다. 또 교회와 사회에 대한 걱정과 당부도 실려 있다. 인생의 2막을 열고 있는 호 신부의 가감 없는 성찰과 고백이 우리에게 작은 위로와 희망을 안겨준다.▧ 삶 껴안기사람과 자연이 공존하고,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앞장서는 황창연(수원교구 성 필립보 생태마을 관장) 신부가 에세이 「삶 껴안기」(홍익출판사 / 1만 3800원)를 펴냈다. 황 신부는 쉬운 단어와 친근한 이야기, 재치 넘치는 비유와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한 명쾌하면서도 깊이 있는 메시지로 교회 안팎에서 명 설교가로 알려져 있다. 「삶 껴안기」에는 관용과 나눔의 세상을 위한 황 신부의 따뜻한 제안이 담겨 있다. 황 신부는 책에서 우리 국민이 경제 기적을 이룬 대신 기쁨을 잃었다고 진단한다. 저속한 자본주의에 물들어 이웃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잊어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무엇보다 남의 허물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관용’, 나보다 부족한 사람을 돕고 업신여기지 않는 ‘존중’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황 신부는 행복해지려면 관용의 자세부터 갖추라고 조언한다.대부분 사람은 열심히 노력해서 목표한 바를 이루면 행복이 뒤따라올 것으로 생각한다. 황 신부는 이 통념이 잘못된 것이라 단호하게 말한다. 누구에게나 주변에 행복의 요소들이 차고 넘치는데, 불만스러운 일상에 휘둘리는 이유는 상대적 행복에만 익숙하고,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황 신부는 남과 비교하지 말고 현재의 자신을 인정하면서 나중이 아닌 지금을 살라고 권고한다.어떤 처지에 있더라도 지금 삶의 자리에서 비관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힘껏 껴안고, 다른 사람까지 두루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 때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 현재를 희생해서 부유한 미래를 꿈꾸지 말고, 지금 당장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황 신부는 이처럼 행복을 찾고, 행복을 공감하기 위해선 자신에게 힘을 주는 자기애와 이웃을 존중하는 관용, 그리고 나눔의 정신이 뒤따라야 한다고 조언한다.황 신부는 “돈이나 힘으로 만들어지는 가짜 행복이 아니라 관용, 배려, 이해, 양보, 용서 같은 따뜻한 나눔의 말들이 일상인 세상에서 우리 모두 진짜 행복을 누리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 음악은 나의 기도가톨릭대학교 총장 원종철 신부가 에세이 형태의 클래식 음악 입문서 「음악은 나의 기도」(가톨릭대학교출판부 / 1만 8000원)를 선보였다. 원 신부는 어린 시절부터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들어왔기에 특정 곡과 관련한 자신만의 추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그렇게 함께한 음악이 이제는 삶의 일부가 됐고, 사제 생활 30년 동안 큰 위안과 도움이 됐다. 클래식 음악과 관련한 자신의 추억과 경험, 성찰을 단상으로 남기는 걸 게을리하지 않은 원 신부는 어느 순간 음악의 복음적, 영성적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음악에는 인간의 희로애락이 녹아 있고 모든 것을 이겨낸 긍정의 힘이 숨어 있다. 음악은 이처럼 인생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그 자체로 극복과 승화, 내면의 승리와 기쁨, 찬미와 영광 등으로 점철된 복음적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를 자극한다.”원 신부는 이런 점에서 음악은 그리스도교의 핵심 주제인 ‘참행복 선언’과 근본적으로 일치한다고 말한다. 가난함에도 행복할 수 있고 가난함으로써 행복할 수 있는 신앙의 가치관, 죽음의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음악에서 배웠다고 고백한다.“음악은 사제로서의 나의 기도 생활과 영성 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 원 신부는 이 책을 크게 기다림, 기쁨과 희망, 고통과 슬픔, 행복 등 네 주제로 분류해 다양한 클래식 음악을 소개하고 있다.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백영민2017.02.01
![[고통받는 교회를 도웁시다] 파키스탄 (2) 차별과 박해(Ⅱ)](//cpbc.co.kr/CMS/newspaper/2017/06/rc/685132_1.0_titleImage_1.jpg)
[고통받는 교회를 도웁시다] 파키스탄 (2) 차별과 박해(Ⅱ)종교적 편견·증오가 야기한 ‘21세기 순교사’가 펼쳐지는 곳 파키스탄 교회에서 7년째 종교 간 대화위원회에 몸담고 있는 리아즈 고살 신부와 차를 타고 가다가 휴게소에 들렀다. TV에서 영국 맨체스터 공연장 폭탄 테러 뉴스가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극단주의 무장 세력을 추종하는 이슬람 청년들의 눈먼 증오심이 공연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부상자들이 피범벅이 된 채 울부짖는 장면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파키스탄 국민은 저 사건을 어떻게 보느냐”고 고살 신부에게 물었다.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통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대다수 국민이 영국과 미국 등 서구 국가들을 적으로 생각한다.” 글·사진=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눈먼 증오심’의 뿌리를 봐야 우리는 서구 세계의 눈으로 이슬람을 보는 데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맨체스터 테러도 극단주의자들의 광기라고 맹비난할 뿐 그 원인이나 실체에 대한 고민은 피하려 한다. 그들의 폭력은 용납될 수 없지만, 그 증오심의 뿌리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야 이슬람 세계에서 고통받는 그리스도인을 이해할 수 있다. 십자군 전쟁 이후 크고 작은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슬람과 서구 사회는 적어도 19세기까지는 오늘날과 같은 적대적 관계가 아니었다. 우리가 수니파 시아파 구분하지 않고 이슬람을 중동 종교로 보듯이 무슬림들은 가톨릭 개신교 가리지 않고 그리스도교를 서구 종교로 간주한다. 따라서 무슬림과 그리스도인은 1300년 동안 그런대로 평화롭게 공존했다고 말할 수 있다.라호르대교구의 한 원로 사목자는 “멀리 갈 것도 없이 내가 사목 현장에 있을 때만 해도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의 관계가 이 정도는 아니었다”며 “극단주의자는 소수이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항상 크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갈등은 서구 열강, 특히 영국이 제1차 세계대전 후 중동에 친서방 국가들을 인위적으로 세우면서 시작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이 몇몇 이슬람 국가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벌인 테러와의 전쟁은 불더미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됐다. 이슬람 정치 지도자들이 정치적 이익을 위해, 때로는 강력한 신정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종교를 이용한 점도 가볍게 볼 수 없다. 그리스도인을 억누르는 반그리스도교 정서는 반서방 제국주의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테러리즘은 종교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 궁지에 몰린 이들의 정치적 표현 수단일 뿐이다. 폭력을 정당화하고, 지지를 얻기 위해 신의 이름을 외칠 따름이다. 익명을 요구한 A 신부는 전국에 1만 개가 넘는 이슬람 사립학교 마드라사(Madrassa)를 극단주의 온상으로 지목했다. 마드라사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면서 편향된 이슬람 사상을 주입한다. A 신부는 “일부 학교들이 테러범을 영웅으로 칭송하고, 힌두인이나 그리스도인과 대화하는 것은 수치라고 가르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차별과 폭력에 짓눌린 그리스도인들 파키스탄 교회는 가난보다 차별과 폭력으로 인한 고통이 더 크다. 근본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인을 서슴없이 배척하고 모욕한다. 마호메트의 이름을 더럽히는 언행은 죽음으로도 씻을 수 없는 죄악으로 간주하고 반발한다. 타 종교인 암살과 그리스도인 마을 방화가 횡행하는 이유다. 대표적인 희생자가 2009년 동네 아낙네들과 말싸움을 하다 신성 모독죄로 체포돼 사형수가 된 가톨릭 여성 아시아 비비(Asia Bibi)다. 사람들 눈을 피해 그의 남편과 두 딸을 만났다. 하지만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낫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외국 언론과 인권단체들이 이 사건을 집중 조명하면서 석방 압력을 가하는 바람에 형 집행과 석방 어느 쪽도 쉽지 않은 상황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사법부가 석방 결정을 내릴 경우 이슬람주의자들의 반발과 동요는 걷잡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그의 석방을 호소하던 정치인 두 명이 살해됐다. 펀자브 지방의 살만 타시르 주지사와 소수인종(종교)부 사바즈 바티 장관이다. 비비의 둘째 딸이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엄마가 개종을 선언하면 밖에 나가 새살림을 차리게 해주겠다는 제안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신앙을 버리지 않을 분이다. 그런 엄마가 자랑스럽다.”시내 모처에서 비비 가족을 보호하고 있는 교구 정평위 관계자는 “교도소는 외부 물품 반입 금지이기 때문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2년 전 비비에게 전해 주라고 한 묵주를 여태껏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사바즈 바티 장관도 기억해야 할 인물이다. 인권과 종교 자유 증진을 소명으로 여기고 살아온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자신도 언젠가 광기의 희생자가 될 것을 예견했기에 독신으로 살면서 약자 편을 들었다. 파키스탄 교회는 그를 순교자로 인정하고 시복시성을 추진 중이다. 성당에서 만난 그의 누나는 “동생은 하느님의 일을 하다 쓰러졌다”며 “동생의 안식과 파키스탄 교회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편견과 증오의 희생 제물이 된 동생을 떠올리는 늙은 누나의 얼굴이 무척 슬퍼 보였다. 맨손으로 정의 위해 싸우는 사람들- 라호르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라호르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의 하루하루는 ‘악전고투’라는 말이 딱 맞다. 경찰서와 법원으로 뛰어다니며 종교적 편견의 희생자들 변호하랴, 교육자료 만들어 배송하랴 정신이 없다. 몇 안 되는 직원들은 언제 어디서 테러를 당할지 모른다. 목숨 걸고 일한다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그러나 근본주의자들의 위협보다 바닥난 통장 잔액을 더 힘들어한다. 꼭 필요한 사업이지만 여력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다 단념하는 일이 허다하다. 무일푼인 피해자가 나타나면 변호사 비용을 구하러 다닌다. 수감된 그리스도인들의 옥바라지와 재판도 거들어야 한다. 최근 초중고교 교과서에서 종교적 편견을 조장하는 부분을 찾아내 시정을 촉구하는 일을 시작했다. 출판 비용을 마련하면 이를 바로잡아 알리는 책자도 찍어낼 계획이다. 아이들에게 A는 ‘Apple’, B는 ‘Boat’하는 식으로 영어 알파벳을 가르치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J에 ‘Jihad(성전)’라는 단어를 달아놓은 책이 많다. 이슬람 신앙을 수호하기 위해 벌이는 성스러운 전쟁을 뜻하는 단어다. 과학책도 “산소와 수소가 결합하면 알라의 뜻에 따라 물이 된다”는 식으로 서술한다. 1990년대 말 김수환 추기경이 파키스탄 사형수 석방 노력을 기울일 때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 정평위 담당 유사프 신부는 “우리는 맨손으로 정의와 평화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라며 “한국 신자들이 응원해 주면 할 수 있고, 또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너무나 많다”고 말했다. 성금 계좌 : 우리은행 1005-303-232450 (예금주 사단법인 에이드투더처치인니드)고통받는 교회 돕기(Aid to the Church in Need)는 어려움을 겪는 가톨릭교회를 지원하는 교황청 직속 단체로, 한국 교회도 1960, 70년대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2015년 아시아 최초로 한국 지부(이사장 염수정 추기경)를 개설했다.cpbc2017.06.14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29> 436번 주 날개 밑](//cpbc.co.kr/CMS/newspaper/2016/08/rc/649206_1.0_titleImage_1.jpg)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436번 주 날개 밑주님께 의탁하는 자녀의 모습 그려 436번 성가의 본래 제목은 ‘Under His Wings’다. 이 성가는 시편 17장 8절을 바탕으로 주님께 의탁하는 자녀의 모습을 그리는 아름다운 곡이다.이 곡을 작곡한 이는 미국의 성가 작곡가인 생키(Ira David Sankey, 1840~1908, 성가책에 표기된 L은 잘못된 표기)다. 그의 가족들은 그가 어렸을 때부터 자주 벽난로 주위에 둘러앉아 전해 오는 성가들을 함께 부르곤 했는데, 이것이 후에 그가 성가 가수가 되는 바탕이 됐다고 한다.그는 남북전쟁 당시에도 동료 군인들을 모아 신앙집회를 주관하고 함께 성가를 부르며 기도 모임을 주관하기도 했다. 퇴역한 뒤에는 국세청에서 근무하며 간간이 성가 가수로 활동하다가 무디 목사(Dwight L. Moody, 1837~1899)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성가 가수로 순회 전도사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그는 1200여 곡의 성가를 작곡했을 뿐 아니라, 그의 활동에 힘입어 ‘복음성가’(Gospel Song)라는 장르가 정착했다는 평가도 있다. 그의 이름은 미국의 복음성가연합회에 의해 명예의 전당에 올라 있다.한편 이 곡의 작사가인 쿠슁(Will iam O. Cushing, 1823~1902)은 삼위일체를 부정하고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개신교 일파인 유니테리언(Unitarian)교의 목사였다. 작가인 오스벡에 의하면 쿠슁은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목소리에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해 목사직을 사임하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한다. 이에 그는 좌절해 설교할 힘도 잃고, 영적으로도 심한 방황을 하던 중 어떻게 계속 당신을 위해 일할 수 있는지 하느님께 물은 뒤 복음성가 작사가가 돼 성가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300편이 넘는 작품을 냈는데, 436번 성가의 가사는 1896년에 쓴 것이다.이 성가는 생키가 1896년 출판한 성가집인 「Sacred Songs No. 1」에 수록돼 세상에 나오게 됐는데, 바탕이 되는 성구 “당신 눈동자처럼 저를 보호하소서. 당신 날개 그늘에 저를 숨겨 주소서”(시편 17,8)를 묵상하고 쓴 가사다. 그는 이 성가와 얽힌 이야기를 이렇게 들려주고 있다.“어느 목사가 젊은 환자를 방문했다. 기도가 끝난 뒤 목사는 그 환자에게 좋아하는 노래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그는 ‘주 날개 밑’이라 대답했고, 이 대답은 그에게 세상을 마치기 전 주님께로 돌아가고자 하는 회개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목사는 성가를 불러 줬고 잠시 뒤에 그는 주님의 날개 아래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게 됐다.”예수님께서는 이렇게 탄식하셨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루카 13,34) 그분의 보호 아래에서 우리는 사도 바오로의 말대로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로마8,37) <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 교수>※가톨릭 성가곡들은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www.catholic.or.kr)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백영민2016.08.17

하느님 자비 앞에 의심병이 자꾸 도진다면…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파우스티나 성녀의 삶, 성경의 자비와 성모님 자비·교회가 전하는 자비 설명엽서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를 만났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를 만났습니다크리스토프 쇤보른 추기경 지음/신동환 옮김/바오로딸/1만 원하느님 자비는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새롭고 또 놀랍다. 고통의 순간엔 ‘하느님께서 정말 자비하신가’라는 의구심이 들다가도 끝내는 ‘하느님께선 진실로 자비로우신 분이시구나’를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하느님 자비를 의심한다. ‘하느님이 자비하시다면, 왜 전쟁이 나는가’ ‘예수님은 왜 누구는 병을 고쳐주고, 누구는 고쳐주지 않는가. 자비하다면 모든 이들을 낫게 해줘야 하지 않는가’ ‘하느님 자비에 연연하는 건 인간이 나약해서 아닌가.’ 책은 이러한 하느님 자비에 의문을 던지는 이들에게 “하느님 자비를 올바르게 알지 못해서 그렇다”고 일러준다. 또 하느님 자비 신심이 올바르지 못하면, 자비의 실천이 교만과 오만으로 나타난다고 경고한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자비의 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자비의 행태를 비판하는 올바른 목소리에도 마땅히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 겉보기에 자비로운 행위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역기능적인 행동방식을 감추는 위장 수단입니다”(20쪽).책은 ‘자비의 교황’이라 불리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자비의 성녀’로 널리 알려진 파우스티나 성녀를 통해 자비 신심에 관한 올바른 신학적 해석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이어 성경에서 자비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예수님은 어떻게 자비를 실천했는지, 바오로 사도는 어떻게 하느님 자비를 증거하고 전도했는지를 다룬다. 이와 함께 자비의 성사인 고해성사, 가톨릭 교리에서 말하는 자비, 성모님의 자비 등도 빼놓지 않고 설명한다. 저자는 오스트리아 빈대교구장 크리스토프 쇤보른 추기경이다. 쇤보른 추기경은 2008년 로마에서 열린 ‘하느님 자비의 세계 사도대회’를 맡아 준비하면서 하느님 자비 신심을 알리기 위해 신자들을 대상으로 매달 하느님 자비에 대한 교리 교육을 했다. 책은 당시 강의 내용을 담았다. 그는 “하느님 자비를 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하느님께 은총을 간절히 청해야 합니다. 기도를 하면서 청원하고 사랑의 봉헌을 하면 하느님께서 은총을 선사해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누군가 당신의 자비를 ‘청원하기를’ 간절히 기다리십니다”(260쪽).한편 출판사는 책 발간 기념으로 ‘대전의 명물’ 성심당과 함께 ‘자비의 빵’ 캠페인을 펼친다. 자비의 해를 선포하며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느님 자비를 나눌 것을 강조한 프란치스코 교황 뜻에 따라 책과 빵을 나누기로 한 것. 책에서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을 바오로딸 서원에 비치된 엽서에 써내거나, 출판사 인터넷 홈페이지(www.pauline.or.kr)와 페이스북에 댓글로 올리면 된다. 출판사는 엽서 한 장당, 댓글 한 개당 200원씩 기부해 이 기부금으로 결식아동센터와 무료급식소 등에 책과 빵을 보낼 예정이다. 자비의 빵 캠페인은 5월 30일까지 진행된다.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백영민2016.03.24

알파고는 못 두는 인간의 한 수 ‘영적 돌봄’ 「헬스케어 영성 - 제1권 건강과 영성의 전통」 번역 출간한 4인방…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적 돌봄’ 강조 「헬스케어 영성」을 번역한 김주후 교수(왼쪽부터), 박준양 신부, 용진선 수녀, 조재선 교사. 영적 돌봄의 표준 교과서이자 입문서박준양 신부·용진선 수녀·김주후 교수·조재선 교사가 2년간 번역‘알파고’와 이세돌의 세기의 바둑 대결 뒤 인공지능 열풍이 불고 있다. 예상을 뛰어넘은 인공지능 기술 개발 수준에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됐고,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신하는 미래에 관한 전망이 쏟아져 나왔다. 전망엔 희망과 우려가 교차했다. 인간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갖춘 기계의 등장은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인간이 기계에 지배당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 같은 알파고 시대에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여기 있다”며 자신 있게 목소리를 높이는 신부와 수녀, 교수와 교사 4인방이 만났다. 박준양(가톨릭대 신학대 교수) 신부, 용진선(가톨릭대 간호대 교수 겸 호스피스연구소 소장) 수녀, 김주후(요한 보스코, 아주대 교육대학원) 교수, 조재선(베드로, 서울 신도봉중학교) 교사다. 이들을 한데 모이게 한 것은 2012년 미국 옥스퍼드대 출판사가 펴낸 「Oxford Textbook of Spirituality in Healthcare」(헬스케어 영성)다. 책은 환자의 전인적 치유를 지향하는 ‘영적 돌봄’에 관한 새로운 전망을 제시, 이 분야에 이정표를 세웠다고 평가받는다. 건강과 영성을 주제로 60명이 넘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한 영적 돌봄의 표준 교과서이자 입문서다. 역사적, 종교적 관점에서 바라본 건강 개념에 관한 분석에서부터 영적 돌봄의 핵심 이해와 영적 돌봄이 이뤄지는 수많은 현장 사례까지 영적 돌봄의 종(縱)과 횡(橫)을 모두 아우른다. 책의 진가를 간파하고 2년간 번역에 뛰어든 이들은 최근 「헬스케어 영성 - 제1권 건강과 영성의 전통」(가톨릭대학교 출판부)을 선보였다. 제2권 영적 돌봄의 개념은 오는 6월 초 발간 예정이며, 제3권 영적 돌봄의 실무, 제4권 영적 돌봄의 연구, 제5권 정책과 교육, 그리고 미래의 도전은 내년까지 차례로 나올 예정이다. 역자들은 이미 지난 10년간 영적 돌봄과 관련한 세계적 흐름에 발맞추며 다학제간 연구와 현장 실천에 앞장서 왔다. 그 결과를 담은 여러 논문을 국제 학술지에 게재했다. “의학이 기술 발전에 힘입어 질병 치료와 생명 연장에 큰 기여를 했지만, 치료 기술에만 집중한 나머지 병을 앓고 있는 인간에 대한 이해는 소홀했습니다. 육체적 질병의 치료와 함께 영적 고통의 치유를 통해 환자의 온전한 회복을 돕는 영적 돌봄이야말로 ‘의술’이 아닌 ‘인술’이 지향하는 바고, 앞으로 의학이 나아가야 할 길입니다.”이들은 “미래 의료기관의 정체성과 기능은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며 “수술과 같은 치료의 전통적 기능보다는 환자에게 영적 돌봄을 어떻게 해주느냐에 의료기관 생존이 달려 있다”고 내다봤다. 의학의 기술적, 치료적 부분은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담당하게 되고, 의료진은 영적 돌봄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미 세계보건기구 WHO도 영적 돌봄의 중요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WHO는 영적 돌봄에 관한 지침을 발표할 겁니다. 의료진 양성은 이제 영적 돌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합니다.의학계가 의료 너머에 있는 영성에 주목하기 시작한 건 불과 이삼십 년 전부터다. 헬스케어(보건의료) 측면에서 영성이 정의되고 영적 돌봄의 개념이 정립된 건 그나마 최근의 일이다. “영성 개념을 보건의료체제로 통합하기 위한 노력이 세계적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치료자, 원목자, 교육자, 사회복지사, 철학자, 정책입안자 등 영적 돌봄에 관한 다학제간 연구가 이뤄지고 있고요. 질병의 고통을 넘어서는 인간 존엄성을 높이는 일이기도 합니다.”실제로 병과 싸우는 환자는 자존감이 낮다. 암에 걸린 사람들은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얼마나 잘 못살았길래 이런 병에 걸리나’라는 죄의식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다. 역자들은 “간단히 말하면, 암 치료와 함께 죄의식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치유를 동반하는 것이 영적 돌봄”이라면서 “영적 돌봄은 병의 고통을 덜어주면서 환자가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준다”고 말했다. “환자들뿐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영적 돌봄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영적 존재니까요. 고통받는 이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치유해주는 일은 기계나 인공지능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영적 인간만의 고귀한 일입니다. 이 책을 계기로 영적 돌봄이 널리 알려지길 바랍니다.”그동안 국내엔 영적 돌봄에 관한 책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학술지에 관련 논문 몇 편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원서를 한 줄 한 줄 함께 읽고 토론하며, 때론 저자에게 메일을 보내 번역이 미심쩍은 문장을 일일이 확인하는 수고도 마다치 않은 이들은 “이 책이 국내 영적 돌봄 연구와 교육에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백영민2016.03.30
![[나의 신앙 나의 기업] (14)조상호 토마스 아퀴나스 (주)나남 대표](//cpbc.co.kr/CMS/newspaper/2015/08/rc/589634_1.0_titleImage_1.jpg)
[나의 신앙 나의 기업] (14)조상호 토마스 아퀴나스 (주)나남 대표사람 만드는 책 만들기·나무 심기… 그가 복음을 사는 법 “조금 불편하게 사는 것이 올바른 길일 때도 있다”는 조상호 대표는 그 길이 대개는 “양심이라는 이름의 나의 신(神)의 목소리가 인도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이창훈 기자 대학 시절 지하신문을 만들다 제적됐다. 기자의 꿈은 접었지만 출판으로 언론 기능을 수행하고자 출판사를 차렸다. 우연히 시작한 나무 심기는 세파의 유혹을 견디고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해준 출구가 됐다. 조상호(토마스 아퀴나스, 65) 나남출판 대표 이야기다.그는 전남 장흥 출신이다. 고려대 법대 2학년이던 1971년 지하신문 「한맥」 편집장이었다. 청계천 개발에 밀려 경기도 광주로 쫓겨난 이들의 아픈 삶을 취재한 내용이 문제가 됐다. 제적과 함께 징집돼 최전방 철책선에서 소총수로 36개월을 보내야 했다. 어렵사리 복학해 대학을 마쳤다. 1976년 우여곡절 끝에 수출입은행 공채 1기로 취직했다. 하지만 3년 후인 1979년 5월 그는 나남출판사를 차렸다. 첫 책으로 「갈매기의 꿈」 저자 리처드 바크의 「어디인들 멀랴」를 냈다. 이듬해 초엔 출판에 전념하고자 직장을 그만뒀다. 버트란드 러셀의 「희망의 철학」을 냈다. 당시 한국 사회의 모습을 여실히 반영하는 듯한 책이었다. 출판사는 책이 잘 팔려야 하지만 잘 팔릴 희망은 없어 보였다. 1년 후 뜻밖에도 한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하겠다고 해서 4000권을 새로 찍어냈다. 부제였던 ‘희망의 철학’을 제목으로 달았고, ‘나남신서’ 1호를 붙였다. ‘나남신서’는 36년 세월이 흐르면서 1800호를 훌쩍 넘어섰고, 나남출판은 사회과학 전문 출판사로서 굳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1980년대 중반 커뮤니케이션 분야 책을 본격적으로 출판하면서 ‘나남의 책이 없으면 신문방송학과 커리큘럼을 짤 수 없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이 분야에서도 독보적 입지를 굳혔다. 사회복지학 총서도 100권이 넘는다. 베스트셀러보다 스테디셀러그렇다고 나남의 책이 사회과학 분야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나남양서’ ‘나남문학선’ ‘나남창작선’ ‘나남시선’ 등 인문, 문학 부문에도 관심을 갖고 꾸준히 양서를 펴내고 있다. 그동안 나남이 낸 책은 3000종이 넘는다. 특히 조상호 대표가 큰 스승으로 평생을 사숙(私淑)하고 있는 조지훈의 전집 9권을 낸 것이나, 박경리의 소설 「토지」 21권을 양장본으로 출간한 것 등은 조 대표여서 해낼 수 있는 업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토지」는 밀리언셀러가 됐다. 조 대표가 출판업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출판 언론을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언론이 제 기능을 하기 힘들었던 군부 독재 시절, 출판을 통해 우회적으로 언론의 역할을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출판 언론의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진일보(進一步)하는 자세로 자강불식(自强不息)의 삶을 살아야 했다. 나무 심기는 이 험난하고 고달픈 삶에 숨통을 틔우는 활력소가 됐다. 그는 30여 년 전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 기념으로 옛집 아파트 입구에 커다란 느티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 이렇게 시작한 나무 심기는 1990년대에 들어와 파주 적성의 1만 5000평에 묘목밭을 가꾸는 것으로 이어졌고, 2008년에는 포천에 20만 평의 나남수목원을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묘목을 심고 죽이기를 거듭하면서 조 대표는 깨달음을 얻었다. 나무를 심는 일은 세월에 대한 정직한 보상이고, 생명에 대한 애착임을. 세파에 시달리고 인간의 탐욕에 실망할 때마다 조 대표는 나무를 심고 나무와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을 추스르곤 한다. 나남에는 두 가지 캐치프레이즈가 있다. ‘나남의 책은 쉽게 팔리지 않고 오래 팔립니다’와 ‘나남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듭니다’다. 쉽게 팔리지 않고 오래 팔리는 책을 만드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남은 그런 지향으로 책을 만들어왔다. 1년에 100~200권 팔리는 전문 서적들. 그것이 나남을 지탱해온 밑거름이 됐다. ‘나남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듭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에는 어느 필자의 표현처럼 ‘나남이 사람을 만든다’는 당돌함이 들어 있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좋은 해몽을 잘 받아들이고 자기 것으로 소화할 때 꿈보다 더 좋은 결과를 실제로 낼 수 있다. ‘나남’이라는 이름이 그렇다. ‘나와 남이 어우러진다’는 뜻으로 풀이한다면 해몽이 좋은 것이다. 원 의미는 조 대표의 고향인 ‘전라남도’의 줄인 말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나와 남이 어우러짐’의 의미로 받아들인다. 나와 남이 어우러져 하나가 되는 대동 사회는 조 대표가 그리는 사회이기도 하다. 그런 사회를 위해 조 대표는 할 일이 많다. 그는 이를 ‘자연채무’(自然債務)라고 부른다. 법적이고 강제적인 효력은 없지만 양심에 비춰 진 빚이 있고 따라서 갚아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조지훈 전집을 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2001년부터 지훈상(지훈국학상, 지훈문학상)을 제정해 해마다 시행하고 있는 것이나, 매년 열리는 박경리 토지문학제에 협찬을 하는 일, 로터리 클럽을 통해 장학금을 내고 모교에 도서를 기증하는 일 등은 또한 자연채무를 갚는 일환이다. 독실한 처가, 그리고 신앙의 삶 조 대표는 2000년 대희년을 1년 앞둔 1999년 봄에 서울 양재동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주변의 권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처형이 수녀일 정도로 처가가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어서 그 압력을 많이 받았다. 제적당하고 최전방에서 3년 동안 복무할 때 관물대에 나뒹구는 영한대역 성경을 독서욕을 채워주는 유일한 위안거리로 삼았다는 조 대표는 그때 성경을 읽은 기억이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한다. “고통의 길에서도 부드러움의 평화로 반려가 되어준 아내(황옥순 베로니카)에게 조금이라도 대속이 되었으면 싶었다”는 말로 세례받았을 당시를 떠올린 조 대표는 자신의 신앙과 관련, “생활 신앙”이라고 말한다. “‘미사가 끝났으니 복음을 전합시다’ 하지 않습니까. 복음을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자는 것이지요. 이것이 (복음의)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평화신문2015.08.26

주님 따른 25년 사제의 삶 음반에 담아 봉헌「하느님, 당신은 내가 살아가는 이유」 음반 낸 유종만 신부 유종만 신부 “임 쓰신 가시관을 나도 쓰고 살으리라~♪”생활성가 가수 신상옥(안드레아)씨의 가장 유명한 생활성가곡 ‘임 쓰신 가시관’을 남성 듀엣으로 부르면 어떨까. 결론은 ‘깊이가 더해진다’이다. 낮게 깔리는 신씨의 목소리 다음으로 그에 못지 않은 중후한 음성이 따라와 겹쳐졌는데, 평소 듣던 느낌과는 또 색다르다. 가수 못지 않은 음성의 주인공은 사제생활 25년 삶을 노래로 고백해 최근 음반 「하느님, 당신은 내가 살아가는 이유」로 낸 유종만(서울 홍제동본당 주임) 신부다.유 신부는 시인이자 사진가, 미술가로 활동해오고 있는 ‘종합 예술가’ 사제다. 사제생활을 하며 느낀 진솔한 삶을 글로 쓰니 시가 되어 한 편의 시집 「빗방울을 위한 협주곡」(성바오로출판사)이 됐고, 틈나는 대로 사진에 예술혼을 담아 전시도 열었다. 2010년 ‘사제의 해’ 폐막 기념 사진전, 2014년 ‘빛의 광시곡’ 개인전 등으로 사진 속 주님 뜻을 전했다. 현재 한국가톨릭사진예술인협회 담당 사제로도 활동 중이다. 그의 페이스북에는 커다란 화폭에 그림을 그리는 모습도 있다. 신자들은 그를 ‘탤런트 백화점’, ‘만능 엔터테이너’라고 부른다.“하느님께서 주신 재능을 썩히면 죄가 될 것 같아 음반 작업에도 도전하게 됐습니다. 조금씩 펼쳐온 저의 재능 가운데 노래로 제 마음을 표현한 것이죠. 성당에서 봉사하는 신자들도 모두 자기 재능을 주님 위해 쓰는 거잖아요. 같은 맥락이에요.”이번 음반은 유 신부 사제수품 25주년 은경축을 기념해 내놓은 작품이다. 생활성가부터 ‘아베 마리아’, ‘넬라 판타지아’, ‘오 솔레미오’ 등 장르를 넘나들며 부른 사제의 노래 총 16곡이 실렸다. 특히 3번 ‘작은 희망’은 유 신부의 시집에 있던 ‘사제일기4’에 곡을 붙여 부른 노래다. 누군가를 잊는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노래한 이 시는 1998년 시집을 낼 당시 본당을 옮겨 다니며 신자들과 늘 이별해야 하는 그의 말 못할 슬픔을 적은 작품이다.유 신부 스스로 음반에 “아마추어리즘의 미덕을 빌었다”라고 언급했지만, 관중들의 이목과 박수를 끌어내기 충분하다. 신상옥씨를 비롯해 성악가 오영주(가브리엘라)ㆍ유영소(로사)씨, 본당 지휘자 한동일(스테파노)씨 등 기획과 노래에 여러 음악가의 재능도 합쳐졌다.유 신부는 “노래를 결코 잘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동안 축일 등 자리가 마련될 때마다 노래해 온 것을 이번에 주님께 제대로 답해드린 것뿐”이라며 “갖춰진 녹음실에서 헤드폰 끼고 부르려니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25년 사제 생활 동안 어떻게 하면 더 예수님 닮은 사제로 살아갈지 고민해왔습니다. 이렇게 많은 은혜를 주셨는데, 주님께 더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함께 노래 들으시면서 성가정이 되는 데에도 작은 보탬이 되길 바랍니다.”유 신부 음반 기념 음악회는 27일 오후 8시 서울 홍제동성당에서 열린다. 문의 : 02-396-7771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 백영민2015.06.10
![[빛과 소금 20세기 이땅의 평신도] 가진 바를 나눈 참 교육자 김익진 프란치스코 <10>](//cpbc.co.kr/CMS/newspaper/2015/01/rc/552556_1.0_titleImage_1.jpg)
[빛과 소금 20세기 이땅의 평신도] 가진 바를 나눈 참 교육자 김익진 프란치스코 장님이 된 프란치스코내심낙원 출간.수입이 거의 없어서 가재도구와 아내의 패물들이 팔려 나갔다. 자식들은 스스로 알아서 공부해야 할 지경이었다. 간간이 글을 써서 받는 고료가 수입의 전부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초근목피라는 말이 연상되던 어느 봄날이었다. 반가운 편지 한 통이 배달됐다. ‘… 영어판 「레지오 마리애」 교본을 한국어로 번역해주시기 바랍니다. 번역료로 500달러를 미리 보내드립니다. … 1955년 3월 15일. 광주교구장 현 하롤드 주교.’ 작년까지 광주교구장 서리로 목포 산정동본당에서 사목했던 주교였다. 1953년 5월 31일에 현 신부는 우리나라 최초로 산정동본당에 레지오 마리애 남성, 여성, 혼성 쁘레시디움을 세웠다. 말하자면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산파역이었다. 번역 의뢰는 모든 걸 나눠주고 떠난 나를 위한 배려였다. 아니, 하느님이 베풀어준 은혜였다. 나는 곧바로 번역에 착수해 이듬해 유월에 「레지오 마리애 직무 수첩」을 냈다. 그것이 한국 교회에 레지오 마리애가 널리 퍼지는 계기가 됐다. 그 무렵 나는 미국 예수회의 주간지 「아카데미」에 실린 서평을 보고 꼭 번역하고 싶은 책이 한 권 있었다. 우징숑(吳經熊)의 「동서의 피안」이었다. 저자는 사상 편력 끝에 느지막이 가톨릭에 귀의한 중국의 법리학자였다. 그 책에서는 유교, 불교, 도교의 가르침과 성경의 말씀을 비교하며 진리를 찾고 있었다. 동서양의 종교 사상을 비교 분석하여 동서를 초월한 피안의 세계가 바로 그리스도교임을 제시했다. 일종의 자기 신앙고백서였다. 나는 당시 미국에서 연구하고 있던 우징숑 박사에게 인편으로 편지를 보냈다. ‘… 저는 일본과 중국에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그리고 불교 등을 섭렵하다 가톨릭에 귀의했습니다. 선생님도 저와 비슷한 길을 걷다 가톨릭에 입문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부디 선생님의 귀중한 책을 번역해 한국의 지식인들이 영적으로 깨우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얼마 후 답장이 왔다. ‘… 형이 영세하신 것이 저와 같은 해이기는 하지만, 주님께 나아가기를 저보다 두 달이나 먼저 하셨습니다. 이는 곧 하느님의 뜻이기에 마땅히 형으로 모시겠습니다.’ 참으로 겸손한 저자였다. 나보다 일곱 살이나 위인 그는 나를 영적인 형으로 불렀다. 그에 화답이라도 하듯 나는 그 책을 번역하는 데 꼬박 7년이란 세월을 들였다. 영어판 책을 적당히 의역하고 싶지 않았다. 한문으로 쓰인 원문을 꼼꼼히 대조하며 번역해나갔다. 미심쩍은 대목이 있으면, 그 분야의 전문가인 신부와 교수들을 찾아가 의견을 들었다. 마침내 1961년 12월에 가톨릭출판사에서 번역판이 나왔다. 지식인들은 동서고금을 아우른 걸작에 환호했다. 나는 여세를 몰아 우징숑의 또 다른 신심 서적인 「내심낙원」 번역에 착수했다. 저자는 그 책에서도 동양 철학을 통해 그리스도교 사상을 탐구했다. 극기, 온유, 박애, 평화, 기쁨을 통해 사랑의 발아, 개화, 결실 과정을 그리고 있었다. 저자의 삶과 견해가 나와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낄수록 더욱 신중하게 번역에 임했다. 1966년 4월, 성바오로출판사에서 소포가 도착했다. 드디어 「내심낙원」 번역본이 세상에 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웬일일까! 소포를 뜯는 순간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눈알이 쏟아질 것 같이 흔들리고 아프기 시작했다. 앞이 희미하게 보였다. 안과 의사의 목소리가 근엄했다. “왼쪽 눈은 완전 실명! 오른쪽 눈은 망탈(網脫), 안저생혈(眼底生血)입니다.” 신경과로로 인한 고혈압 때문이었다. 번역을 위해 일 년 동안 객지에서 주야로 과로한 탓이었다. 나는 이미 「동서의 피안」 번역에 몰두하던 6년 전에 왼쪽 눈을 실명한 처지였다. 그때도 신경과로가 원인이었다. 그런데 나머지 한 쪽 눈마저 그리되었다니……. 앞이 잘 보이지 않고 눈이 아파 글을 통 쓸 수 없었다. 처음에는 억울하고 울화가 치밀었다. 하느님을 원망하며 따지기도 했다.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겁니까?” 그러나 그때 어두움 속에서 분명하게 깨달은 게 있었다. 시력을 잃어 고생하고 있는 건 회심에 필요한 주님의 은총이라는 사실이었다. 내게 진정한 통회의 생활을 하라는 계시였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묵상 기도 중에 들려오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세속에서 멀리 떠나 내심의 낙원을 더욱 절실히 맛보아라!” 나는 하느님이 내려주는 고통의 은혜를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자 했다. 내 통회와 보속이 끝나는 날 건강을 되돌려 줄 것이라 믿었다. 그날 다시 정신을 가다듬어 문서 전교에 힘을 쏟으리라 다짐했다. 내 영적 지도자이자 동반자인 오기선 신부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셋째 딸 화영이를 지팡이 삼아 사제관을 방문하자 오 신부가 혀를 차며 말했다. “어허! 큰일 났군요. 두 눈이 저렇게 어두워서야…….” 나는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답했다. “내 주보이신 오상의 프란치스코 성인께서도 봉사가 돼 세상을 마치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눈을 잘 못 보는 것까지도 그분을 닮으렵니다.” 1967년 초겨울, 아내와 나는 대구 대명동에 있는 대지 40평에 건평 15평의 시멘트블록 집으로 이사했다. 가르멜 수도원 근처였다. 나는 매일 2㎞를 걸어가 수도원 성당에서 성체조배와 묵상을 했다. 모든 걸 내려놓고 하느님에게 의탁하는 시간이었다. 텅 빈 껍데기에 밝은 빛이 넘치도록 가득 차면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하루에 한 시간씩 노인들에게 시조창을 배웠다. 목소리를 길게 빼기도 하고 떨기도 하며 천천히 시조를 읊조렸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마음이 유쾌해졌다. 뿐만 아니라 심호흡을 하면서 내장 운동을 하게 돼 소화에도 도움이 됐다. 우리 것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여백의 미를 즐겼다. 날이 갈수록 지치고 힘들었지만, 지나온 날을 성찰하며 지복직관의 희망을 꿈꾸었다. “아버지!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세요?” 화영이의 목소리에 빛바랜 사진첩이 스르르 닫힌다. 애련한 음성이 찻집 분위기와 어울린다. 은은한 차향이 감미롭다. 비발디의 ‘사계’가 대미로 치닫고 있다. “자비하신 하느님께서는 내 선종 준비로 눈병을 허락하신 게 틀림없구나. 난 삼왕이 아기 예수를 찾아오신 날 떠나고 싶어.” 수녀가 안경을 벗고 눈가를 훔친다.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오래 오래 저희 곁에 계셔주세요.” 나는 짐짓 호탕하게 웃으며 약속한다. “우리 수녀님이 원하면 그러지 뭐.” 난 그날 화영이와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한 달 뒤인 1969년 12월 29일에 고혈압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결국 정신을 되찾지 못하고 64세 되던 1970년 1월 6일에 눈을 감았다. 삼왕내조축일(지금의 주님 공현 대축일)이었다. 인자한 주님이 내 소원을 들어준 모양이었다. 부잣집 막내아들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았다. 일본과 중국 유학을 하며 진리를 찾아 방황했다. 마침내 프란치스코 성인을 만나 가톨릭을 알게 됐다. 주님을 통해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을 찾았다. 그 뒤 가진 걸 나누고 봉사하며 빛과 소금처럼 살고자 애썼다. 평생 지니고 다녔던 곰방대와 만년필만 남겼다. 나를 인도한 맨발의 프란치스코 성인을 본받긴 한 건가. 후세의 우리 가톨릭 교회 신자들은 나와 같은 평신도가 이 땅에 살다갔다는 걸 자랑스럽게 여길까. 아니, 기억이나 해줄까. 내 장례 미사는 대구 계산동 주교좌성당에서 거행됐다. 하느님의 자녀이자 예수님의 제자가 된 덕분에 범물동 성당묘지의 묘비명이 참 길다. ‘天主公敎會友方濟各安東金公益鎭之墓(천주공교회우방제각안동김공익진지묘)’ <끝> 다음 호부터는 김홍섭(바오로) 판사 편이 소개됩니다. 백영민2015.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