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읽는 영성] 32. 로마의 어릿광대(하)](//cpbc.co.kr/CMS/newspaper/2013/05/rc/453222_1.0_titleImage_1.jpg)
[책으로 읽는 영성] 32. 로마의 어릿광대(하)기도는 자기 반성이 아닌 하느님과의 대화(헨리 나웬 지음/가톨릭대학교출판부) 사도 바오로에게 기도는 숨을 쉬는 것과 같았다. 기도는 삶의 한 부분이 아니라 삶 전체였고, 잊어서는 안 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항상 간직해야 하는 것이었다. 사도 바오로는 자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중단하지 말고 기도하라고 단호히 말했다. 낮이나 밤이나,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일할 때나 놀 때나 기도하기를 당부했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7-18).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은 하느님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 삶의 방향을 바꿔 예수님을 따르도록 도와준다. 헨리 나웬 신부는 기도가 자기 반성이 되는 것을 경계했다. "자기 반성이 긍정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라도, 우리 자신의 생각과 느낌, 감정의 복잡한 관계 안에 우리를 끌어들여 우리가 더 많은 편견을 갖도록 유도한다. 기도는 우리 자신의 생각과 느낌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우리를 끊임없이 대화에 초대해 주시는 분의 목소리를 조심스럽게 경청하는 것이다." 끊임없는 기도가 삶이 되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매일 기도 시간과 장소를 따로 정해 놓는 습관은 매우 중요하다. 나웬 신부는 "끊임없는 기도는 단순히 원한다고 자동으로 얻어지거나, 어쩌다 한 번 기도함으로써 쉽게 얻어지는 생활양식이 아니다"고 했다. 우리가 몸과 마음을 다해 하느님 현존 안으로 들어가는 연습을 매일 하지 않으면, 우리 삶 전체를 기도로 만드는 일은 그저 꿈꾸는 이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기도에 세심한 정성을 쏟고 적절한 훈련을 수행한다면, 우리를 산만하게 만들고 어지럽히는 많은 생각이 하느님을 향한 찬양으로 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잘 훈련된 기도의 공통점은 모든 초점이 오로지 하느님께만 향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그분께 숨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기쁜 확신이 뒤따른다. "정녕 당신께서는 제 속을 만드시고 제 어머니 배 속에서 저를 엮으셨습니다. 제가 오묘하게 지어졌으니 당신을 찬송합니다. 당신의 조물들은 경이로울 뿐. 제 영혼이 이를 잘 압니다"(시편 139편).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cpbc2013.05.14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16>한스 큉(상)](//cpbc.co.kr/CMS/newspaper/2013/09/rc/471941_1.1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한스 큉(상) 교회 기초는 제도 조직 아니라 그리스도 신앙의 고백 열정과 논쟁의 신학자한스 큉(Hans Kung, 1928~ ) 신부는 광범위하고 다양한 신학적 연구를 열정적으로 수행하면서 많은 저서를 집필한 신학자다. 우리 시대에 중요하게 부각된 거의 모든 신학적 주제를 탐구해 신론, 그리스도론, 교회론, 종말론, 신학적 방법론, 세계 윤리, 세계 종교들, 그리고 종교와 문학의 관계를 다룬 저작을 남겼다. 큉의 저서가 세계 주요 언어로 번역되고 수많은 사람에게 읽히면서 그는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신학자가 됐다. 우리말로 번역된 단행본만 해도 스무 권에 가깝다. 그는 또 다른 이유에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는데, 신학적 이견 때문에 교회 교도권과 공개적인 갈등과 마찰을 빚은 것이다. 이에 따라 그를 평가하는 관점도 열렬한 지지와 격렬한 비판으로 엇갈린다. 이런 맥락에서 1993년 그의 65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출판된 신학 논총에서 "한스 큉은 20세기 신학에서 하나의 독특한 현상"이라고 평가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한스 큉 신부의 생애를 단계별로 살펴보면서 그의 신학이 어떻게 전개됐는지를 조명해본다. 한스 큉은 1928년 스위스 수르제에서 태어나 루체른에 있는 김나지움(인문계 중등교육기관)에서 수학했다. 전통적인 가톨릭 분위기에서 성장했던 큉에게 김나지움 교육은 근대 문학과 예술은 물론 근대 정신 전체에 열린 자세를 갖게 해줬고, 같은 학교에서 수학하는 개신교, 유다교 학생들 간 교류를 가능케 해줬다. 이런 교육은 나중에 큉이 근대 정신과 화해를 추구하고, 적극적으로 교회일치와 타 종교와 대화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신학을 전개하는 데 씨앗이 됐다. 1948년 김나지움을 졸업한 큉은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에 진학해 1955년까지 철학 과정과 신학 과정을 이수한다. 이 기간 예수회가 운영하는 독일어권 신학생을 위한 신학원 '게르마니쿰'에 머물면서, 트리엔트공의회(1545~1563) 정신에 따른 엄격한 사제 양성 교육을 받는다. 그는 처음에 당시 신스콜라 신학과 규율에 철저히 순응하는 자세로 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교황청과 신학의 경직성, 신학원의 일부 융통성 없는 규율에 의문을 품으면서 비판의식을 갖게 됐다고 고백한다. 로마에서 교육이 끝날 무렵인 1954년 큉은 사제품을 받는다. 로마에서 신학 기본 과정을 마친 큉은 프랑스 파리로 자리를 옮겨 소르본대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다(1955~1957). ▨개신교 신학 거장 칼 바르트와 의화론 큉의 박사학위 논문 「의화론」은 스위스 출신 20세기 개신교 신학의 거장 칼 바르트(K.Barth, 1886~1968)의 의화론과 트리엔트공의회에 나타난 가톨릭의 의화론을 비교한 것이다. 큉은 이 논문에서 두 의화론이 근본적으로 일치하며, 차이는 교회 분열을 일으킬 만큼 큰 것이 아님을 밝혀냈다. 가톨릭과 개신교 벽이 아직 매우 높았던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 상황을 고려할 때, 종교개혁 시발점이 됐던 의화론에서 양편의 의견 일치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 큉의 논문은 신학계에서 비상한 주목을 받게 된다. 칼 바르트는 큉의 논문에 "만일 당신이 당신 논문의 두 번째 부분에서 로마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이라고 전개한 의화론이 실제로 로마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이라면, 나는 나의 의화론과 당신의 의화론이 일치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라며 매우 긍정적인 답변을 보냈다. 한편 칼 라너(K.Rahner, 1904~1984) 신부는 큉의 의화론이 가톨릭의 통상적인 신학에서 벗어나는 면이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론 가톨릭 의화론에 속한다고 평가했다. 큉은 칼 바르트가 타계할 때까지 그와 신학적, 인간적 교류를 지속했다. 큉 스스로 바르트에게 받은 신학적 영향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바르트의 용어로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소위 무한한 차이'라고 표현되는 하느님께 대한 엄청난 경외심 △'항상 더 크신 하느님'은 결정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셨다는 사실 △인간은 이 계시 사건을 '오직 신앙을 통해서 적합하게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교회론 연구 한스 큉은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스위스 루체른으로 돌아와 한 성당에서 1년 반(1957~1959) 보좌신부를 지낸 뒤 본격적으로 학문 활동을 시작한다. 독일 뮌스터대 가톨릭 신학부에서 교의신학 조교로 있다가 1960년 독일 튀빙겐대 가톨릭 신학부 교수로 초빙받아 부임했다. 1964년에는 동 대학 부설로 새로 설립된 교회일치신학연구소 소장 직책을 겸임했다. 큉은 같은 대학의 개신교 신학부 교수들, 특히 신약성서학자 에른스트 캐제만(E.Kasemann, 1906~1998)과 만남을 통해 역사-비평적 성서주석학을 적극 수용하게 되는데, 이는 향후 큉의 신학, 특히 교회론과 그리스도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큉의 튀빙겐대 교수 부임 2년 후인 1962년 10월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열렸고, 그는 공의회 신학 자문위원으로 활동한다. 이 시기 그는 교회론에 집중하며 「공의회와 재일치. 쇄신, 일치에로의 부름」(1960), 「교회의 구조들」(1962), 「공의회에서의 교회」(1963) 등을 출판했다. 큉의 교회론 연구는 1967년에 출간한 「교회」에서 정점을 이룬다(이 책의 축소판 「교회란 무엇인가」는 1978년, 원저는 2007년 우리말로 출판됐다). 그는 역사-비평적 성서주석학의 연구를 종합한 역사적 예수의 모습을 근거로 교회를 이해하고자 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 공동체로서,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교회의 본질적 요소다. 교회 기초를 이루는 것은 고유한 예식이나 제도, 특정한 직무를 포함한 고유한 조직이 아니라 오로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고백이다. 예수의 핵심 관심사는 하느님 나라였다. 따라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신자 공동체인 교회는 당연히 하느님 나라의 선포를 이어가야 한다. 교회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전령(傳令)으로서, 하느님 나라에 철저히 봉사해야 한다. 교회는 자신이 아니라 종말에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해야 하고, 강제와 무력을 배제한 헌신적 봉사를 수행하며, 죄를 멀리하더라도 결코 죄인을 내치지 않는 자비의 공동체가 돼야 하고, 자신의 업적에 의존하지 말고 철저히 하느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공동체가 돼야 한다. 큉은 교회가 신앙인 공동체임을 강조함으로써 교회를 교계제도와 동일시했던 공의회 이전 시각을 극복하고자 했다. 그는 이런 맥락에서 과거에 소홀히 다뤄졌던 모든 신자의 보편 사제직을 부각시킨다. 또한 교계 직무는 성령의 다양한 카리스마 중 하나로서 교회 공동체 전체를 위한 봉사 직무로 이해한다. 교황직에 관해서는 교회론 마지막 부분에서 다루면서 그것은 교회 일치를 위한 봉사로서, 교황 수위권은 법적 권력이나 지배가 아니라 '봉사 수위권''사목 수위권'이 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20세기 교회론의 대가 콩가르(Y.Congar, 1904~1995) 추기경은 큉의 교회론이 이룩한 가장 큰 공헌은 바오로 신학에 근거해 교회의 카리스마적 차원을 부각시킨 것이라고 평가한다. 또한 과거의 교회론이 교회를 가시적인 머리인 교황으로부터 연역해서 생각했지만, 큉이 교회 발달에 대해 먼저 관심을 두고, 교계제도와 교황을 마지막에 다룬 것은 정당하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콩가르는 큉이 교회 전통과 직무에 대해 충분하게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교부들의 교회론이나 교회의 성사적 측면이 거의 언급되지 않았고, 교회 전체의 사도적 계승만을 강조한 나머지 교회 직무자를 통한 사도적 계승의 측면은 소홀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큉의 교회론에 찬성 못지않은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도 컸다. 비판의 목소리에는 교황청 신앙교리성도 포함돼 있었다. 1967년 12월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조사를 위한 '대화'가 있기 전에 이 책의 보급과 번역을 금지한다고 통보했고, 그 다음 해 9월 큉을 소환했다. 하지만 큉은 공정한 '대화'를 위한 조건이 선결돼야 응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의견조율을 위한 양편의 협상이 시작됐다.교황 무류성 논쟁 큉은 「교회」에서 전개한 교회론의 실천적이며 비판적 측면을 1968년 「진실성, 교회의 미래를 위하여」에 담아 출간했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의 교황 무류성 교의 선포 100주년을 맞아 1970년 출간한 「무류라고? 하나의 질문」에서 그의 비판은 실천을 넘어 교의 문제로 향한다. 큉의 입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의 유한성과 역사성 때문에 무류적 문장이나 표현은 있을 수 없다. 절대적 무류성은 오직 하느님에게만 속하는 것으로서 공의회도, 교도권도 무류적 문장을 만들 수 없다. 교회가 진리 안에 머물러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무류적 문장이나 제도와 결부시킬 필요는 없다. 교회는 인간들의 오류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약속 덕분에 복음의 진리 안에 유지된다.' 큉의 주장은 가톨릭 신학계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대표적으로 칼 라너는 1971년 한 신학 잡지 기고문을 통해 단호한 반대 의견을 밝힌다. 교회가 하느님 계시 진리를 올바로 이해하고 그것을 개념이나 문장을 통해 참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을 큉이 부정한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자유주의적 프로테스탄트'나 '회의적 철학자'와 다를 바가 없다고 공격한다. 같은 해에 신앙교리성은 조사 대상에 「무류라고? 하나의 질문」<사진>도 추가했고, 독일 주교회의도 이 책에 대한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손희송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구장, 가톨릭대 교의신학 교수) ▲1986년 사제 수품(서울대교구) ▲1992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 신학 박사학위 과정 수료 ▲1996년 가톨릭대 대학원 교의신학 전공. 신학박사 ▲저서 : 「일곱 성사, 하느님 은총의 표지-성사 각론」,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등 ▲번역 : 「희생양은 필요한가?-성경에 나타난 폭력과 구원」 cpbc2013.09.03
![[출판]2012년 출판계를 돌아보다](//cpbc.co.kr/CMS/newspaper/2012/12/rc/435166_1.0_titleImage_1.jpg)
[출판]2012년 출판계를 돌아보다하느님 말씀으로 이끄는 성경 서적 풍성 2012년 올 한 해 출판계에는 성경 관련 서적들이 다양하게 선보여 신자들이 하느님 말씀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안내했다. 요한복음 해설서 「비참과 자비의 만남」(바오로딸), 「요한복음 그 산에 오르다」(사람과 사랑), 「성경말씀 맛들이기-구약성경」(기쁜소식), 「공관복음서와 사도행전」(바오로딸) 등이 출간됐다. 또 「성경 인물에게 배우는 나이듦의 영성」(바오로딸)과 「오정희의 이야기 성서」(여백), 「성경의 노래」(바오로딸) 등은 성경 해설서의 폭을 넓혔다. 유명 저자들의 저서도 잇달아 발간됐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나자렛 예수」 시리즈 3권을 올해 마무리지었고, 차동엽 신부는 「주님의 기도」로 독자들과 만났다. 황창연 신부는 환경 에세이 「북극곰! 어디로 가야 하나?」로 가톨릭 매스컴상 출판부문상을 받기도 했다. 전 제주교구장 김창렬 주교는 「은수잡록」(가톨릭출판사)으로, 한국교회 석학 정의채 몬시뇰은 「인류공통문화 지각 변동 속의 한국」 등을 통해 교회와 사회를 향해 어른의 목소리를 냈다. 이 밖에도 원전과 풍부한 사료를 담은 「세계교회사여행」(1ㆍ2권/가톨릭출판사)이 호평을 받았고, 「하느님과 얼굴을 맞대고」(위즈앤비즈)ㆍ「희망과 기도」(여백)ㆍ「기도와 관상」(분도출판사) 등 기도 관련 서적 출간도 꾸준했다. 그렇다면 올 한 해 교계 출판사마다 어떤 책이 가장 많이 팔렸을까. 가톨릭출판사가 발간한 가톨릭 청년교리서 「YOUCAT」은 10월 시작된 신앙의 해 열풍에 힘입어 출간 두 달 만에 출판사 올해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정기적으로 「YOU CAT」 공부모임을 갖는 본당이 점차 느는 추세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청년들이 함께 모여 「유캣」을 공부하며 신앙을 나누길 바란다"고 당부한 바 있다. 「가톨릭교회교리서」를 청년 눈높이에 맞게 제작한 이 책은 30개 나라에서 200만 권이 넘게 팔린 세계적 베스트셀러다.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책은 김창렬 주교의 「은수잡록」. 올해 설립 50주년을 보낸 분도출판사에서는 50주년 기념도서로 선보인 「성경역사지도」가 가장 많이 팔렸다. 전면 컬러로 나온 이 책은 성경에 나온 지역에 관한 상세한 해설을 곁들인 지도는 물론 등장인물 이동경로, 풍부한 자료사진 등으로 '성경 옆에 둬야 할 첫 책'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정가 9만 5000원이라는 높은 가격에도 기꺼이 독자들 지갑을 열게 했다. 베스트셀러 2위는 역시 50주년 기념도서 중 하나인 노르베트르 베버 아빠스의 1911년 한국 기행기 「고요한 아침의 나라」다. 바오로딸에서는 십자성호, 성수, 수호천사, 화살기도 등 가톨릭교회 아름다운 전통과 신심의 의미를 일깨워준 「가톨릭 신앙의 40가지 보물」이 독자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 명망있는 개신교 신학자였던 저자 스콧 한(55, 미국) 박사는 미사에 매료돼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가톨릭 신앙에 담긴 성경적ㆍ역사적 의미를 쉽고 명료한 해설로 풀어냈다. 두 번째로 사랑받은 책은 신앙의 해를 기념해 최근 발간된 교황 베네딕토 16세 저서 「나자렛 예수」다. 생활성서에서는 8남매를 키우는 아버지(전문석 레미지오)의 신앙일기 「최고의 선물」이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8남매 하상이네 신앙 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10가족이 신앙으로 똘똘 뭉쳐 사는 모습을 담고 있다. 아이 한 명 낳기도 버거워하는 요즘, 자녀 여덟 명을 낳아 성가정을 이뤄가는 여정이 생생히 펼쳐진다. 결론은 자녀는 하느님 최고의 선물이라는 것. 2위는 이현주 목사가 쓴 「하루기도」. 성바오로에서는 오상의 성 비오 신부(1887~1968, 이탈리아 카푸친 작은형제회) 어록을 정리한 「평화를 누리십시오」가 가장 많이 팔렸다. 성 비오 신부의 위로와 용기의 말을 담은 이 책은 최근 우리 사회를 강타한 힐링 열풍을 반영한다.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책은 고독을 다룬 책 「고독하되 고독하지 않게」.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박수정2012.12.18

찍고, 듣고, 맛보고 즐기며 환경 소중함 깨달아바오로딸출판사, 「북극곰! 어디로 가야 하나?」출간 기념 생태피정"온 가족이 모여 환경문제를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계기가 됐습니다. 우리 가족 모두 작은 실천을 통해 환경보호에 동참하자고 결심했습니다." "신부님 책을 읽으면서 환경문제 심각성을 깨달았습니다.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9월 21~23일 강원도 평창 성필립보 생태마을에서 열린 '생태피정'에 참가한 이들은 한목소리로 환경보호에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 이번 생태피정에 참가한 이들은 바오로딸출판사가 황창연(수원교구, 성필립보 생태마을 관장) 신부 환경에세이 「북극곰! 어디로 가야 하나?」 출간을 기념하며 개최한 '북극곰! 어디로 가야하나? UCC 공모전' 당선자다. 「북극곰…」은 다양한 환경문제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며, 환경문제 심각성뿐만 아니라 환경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일깨운 책이다.생태피정 참가자들이 단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바오로딸출판사는 6~7월 환경 캠페인으로 '북극곰! 어디로 가야하나? UCC 공모전'을 열고 독자들이 책을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환경 UCC를 만들어 환경의 소중함을 널리 알리도록 독려했다. 황 신부는 공모전 개최를 환영하며, 당선자 전원에게 성필립보 생태마을 피정 초대를 약속했다. 공모전에는 초등학생부터 70대 어르신 등 다양한 연령대가 응모했고, 가족 단위 응모자와 미신자도 많아 눈길을 끌었다. 당선작은 모두 15작품이지만 이번 피정에서는 피정에 참가한 당선자 작품 12개가 소개됐다. 책을 읽고 난 소감, 일상에서 손쉽게 실천할 수 있는 환경운동 사례, 아름다운 자연풍경 등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꾸며 환경에 관한 관심을 호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부모와 함께 북극곰 그림을 그리고, 가족사진을 활용한 UCC '북극곰을 찾아서'를 만든 한승훈(티모테오, 초5, 안동교구 울진본당)ㆍ유진(실비아, 초1) 남매는 "빙하가 녹아 북극곰이 살 수 없게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슬펐다"며 "전기를 절약하면서 환경을 살리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최고령 당선자 박상규(70, 서울 연신내본당)씨는 북한산 숲해설가로 활동하면서 찍은 숲 사진을 UCC로 만들어 숲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소개했다. 박씨는 "책을 읽으면서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는 신부님 지식과 영성에 놀랐다"면서 "환경오염이 심각하지만 모든 사람이 함께 노력하면 환경을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고 했다. 바오로딸 수녀들 역시 UCC 제작에 동참해 쌀뜨물로 화분에 물주기, 안 쓰는 전기제품 플러그 뽑기 등 수녀원에서 실천하는 다양한 환경운동을 보여줬다. 바오로딸출판사 홍보책임 주민학(베르나데트) 수녀는 "작은 불편이 큰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임을 느꼈다"면서 "성필립보 생태마을에서 아름다운 자연을 직접 느끼며 환경에 대해 나눌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생태피정은 UCC 공모전 당선작 상영 및 나눔, 환경강의, 두부 및 인절미 만들기, 고추따기, 미사 등으로 진행됐다. 황 신부는 UCC 공모전 당선자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자연을 지키며 건강하고 밝은 사회를 만드는 데 함께 노력하자"고 말했다. 황 신부는 "UCC를 보며 많은 감동을 받았고, 앞으로 책을 더 잘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자연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아름다운 세상을 가꾸는 데 앞장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박수정2012.09.25
![[가톨릭 여성운동 단체를 소개합니다] (2)막달레나 공동체](//cpbc.co.kr/CMS/newspaper/2013/04/rc/451074_1.0_titleImage_1.jpg)
[가톨릭 여성운동 단체를 소개합니다] (2)막달레나 공동체성매매로 상처받은 여성들의 보금자리막달레나 공동체가 2010년 성매매 여성 등 소외된 여성을 위해 문을 연 국수전문점. 서울시 지원을 받아 사회적 기업으로 운영했지만, 자금난으로 현재 문을 닫은 상태다. 평화신문 자료사진 막달레나공동체(대표 이옥정)는 1985년 이옥정(콘세크라타) 대표와 문애현(메리놀수녀회) 수녀가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도움으로 서울 용산에 성매매 피해여성을 위한 지원 단체 '막달레나의 집'을 설립하면서 출발했다. 당시 막달레나의 집은 말로만 '집'이었지 식당 건물 2층에 화장실도 없는 방 한 칸이 전부였다. 그러나 마음 붙일 곳 없던 여성들에겐 더없이 소중한 보금자리였다. 이곳을 거쳐 간 성매매 여성들은 막달레나의 집을 △힘들 때 안기고 싶은 집 △나를 존중해주는 집 △내 인생 최고의 날이 일어난 집 △꿈꾸지 못했던 것을 꿈꿀 용기를 준 집 △첫 아기를 낳았을 때 친정엄마보다 더 먼저 생각났던 집으로 기억한다. 막달레나공동체는 우리나라 최초로 성매매 여성을 위한 실천의 걸음을 뗐다. "막달레나공동체는 성매매로 상처받은 이들의 행복과 삶의 권리에 주목하며 나눔, 존중, 상생을 통한 희망의 역사를 추구한다. 하느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으로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여성들의 다양한 삶의 역사와 권리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한다. 성매매 경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에 대항하며 이들의 잠재력과 강점개발에 집중한다"는 것이 설립 목적이다. 성경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일곱 마귀에 들렸던 여인이다. 사람들에게 멸시당하며 가장 천대받았지만, 예수님껜 가장 사랑받았다. 예수님께선 부활 후 막달레나에게 제일 먼저 나타나셨다. 막달레나는 나자렛 예수를 만나 용서와 치유를 경험하고 가장 깊은 사랑을 드린 존재다. 성매매 여성을 위한 공동체를 '막달레나의 집'으로 이름 지은 것은 성매매 여성들이 막달레나 성녀처럼 잃었던 희망을 다시 가꾸고 절망 속에서 실낱같은 빛 한줄기를 찾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막달레나공동체는 성매매 피해 여성 긴급 상담 및 구조, 생활상담, 법률과 의료 지원에 앞장섰다. 성매매 종사자와 용산지역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베론글방'을 운영했고, 국내 처음으로 노령ㆍ장애 성매매 여성 지원 시설 '보듬네'를 설립했다. 성매매 방지에 목소리를 높이며 여러 단체와 연합해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1985년 전국 성매매 관련 단체와 개인을 모아 '성매매 근절을 위한 한소리회'를 결성, 성매매 실태와 피해 상황을 알리는 데 이바지했다. 1999년에는 대통령 직속 여성특위 지원으로 한소리회와 함께 다큐멘터리 '성매매 거리에서 쓴 꿈에 관한 보고서' 제작에 참여해 성매매 문제를 알리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성매매 여성의 사회 복귀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데도 적극 나섰다. 막달레나공동체가 만든 '성매매 여성의 인간 관계 개선 훈련' 프로그램은 1999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우수 프로젝트로 선정되기도 했다. △전ㆍ현직 성매매 여성 필드워커 양성을 위한 동료 교육 프로그램 △10대 성매매 유입방지를 위한 가출청소년 파일럿 상담 사업 △전ㆍ현직 성매매 여성의 직업 전환을 성한 훈련 시스템 운영 및 모형화 개발 사업 등을 진행했다. 이 밖에도 강연, 출판, 영상물 제작 등을 통해 성매매 여성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헌신했다. 막달레나공동체는 앞으로 성매매 경험을 가진 장애ㆍ중장년ㆍ노년 여성에 대한 지원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여성들 자립에 가장 필요한 주거 공간 마련 사업을 지속하며, 탈성매매 여성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를 제공할 할 것이다. 정리=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퇴사자22013.04.30
![[출판]혼돈의 시대 사랑과 생명으로 이끌어야](//cpbc.co.kr/CMS/newspaper/2012/12/rc/433656_1.0_titleImage_1.jpg)
[출판]혼돈의 시대 사랑과 생명으로 이끌어야정의채 몬시뇰, 신학적 바탕으로 국내외 인류문화 흐름을 가톨릭적 시각으로 설명인류공통문화 지각 변동 속의 한국(정의채 몬시뇰 지음/위즈앤비즈/2만 5000원) 대선을 앞두고 정국은 사분오열이다. 국민들은 지난 10년간 '진보와 보수 정권의 혼란'을 겪으며 삶이 더 팍팍해졌다고 아우성이다. 주위를 둘러봐도 마땅한 돌파구가 없어 보인다. 과거와 현재를 통찰하며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지닌 '어른'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교회와 사회 원로이자 '20세기 가톨릭 최고 지성'으로 존경받는 정의채 몬시뇰(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은 「인류공통문화 지각변동 속의 한국 1」에서 시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고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는 어른의 지혜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정 몬시뇰은 책에서 노무현ㆍ이명박 정부의 공과(功過)를 살펴보고 9ㆍ11테러, 미국 및 유럽 재정위기, 아랍의 봄 등 세계사적 흐름을 폭넓게 다루며 세계 속 대한민국 위상을 점검한다. 이와 함께 생명문화와 사랑에 바탕을 둔 새로운 인류공통문화 창출을 제안하고 있다. 그간 방송과 신문, 강의를 통해 피력했던 정 몬시뇰 고견을 한데 모은 이 책은 신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국내외 인류문화의 흐름을 하느님 창조의지에 비춰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발간될 2ㆍ3권에서는 한국 가톨릭교회 현실과 미래를 조망할 예정이다. 1권만 해도 800쪽에 가까운 방대한 분량이기에, 정 몬시뇰의 제안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3000년대, 가톨릭교회 역할 더욱 강조돼 흔히 종교와 사회를 성(聖)과 속(俗)으로 구분하지만, 정 몬시뇰은 이러한 이분법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교 정통 교리에 근거해 성이든 속이든, 모두 거룩함 자체인 하느님에게서 창조된 것이기에 종교질서와 세상질서 모두 성(聖)에 속한다고 본다. 정 몬시뇰은 "사람들이 구별해 말하는 영적 질서와 물적 세계질서 모두 하느님 창조의지에 따라 유지, 발전돼야 하기에 두 질서가 올바로 서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1세기로 문을 연 3000년대는 하느님 창조계획의 새로운 단계가 실현되는 시기다. 3000년대를 이끌어갈 인류사조의 근본 흐름을 '사랑'과 '생명'에서 찾은 정 몬시뇰은 세계가 공생(共生)과 공조(共助), 공영(共榮)으로 나아갈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처럼 사랑과 생명을 지향하는 시대에서 사랑의 화신인 가톨릭교회 역할은 절대적으로 강조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 몬시뇰은 성직자들의 정치참여에 대해선 부정적이다. 사회생활 전반은 평신도 고유 영역임을 분명히 인식하며 정치권력과는 불원(不遠) 불근(不近)의 입장이어야 한다고 했다. #미래의 희망, 청년 젊은이들 문화를 대표하는 한국 대중가요(K-POP) 문화는 한류바람을 타고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문화 동력을 이끌어내고 있다. 대중문화뿐만이 아니다. 예술과 체육, 기술연구 분야에서도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세계를 한 손에 휘어잡는 담대한 능력을 자랑하고 있다. 물론 어두운 단면도 있다. 청년 실업률과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정 몬시뇰은 "청년들이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활로를 열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또한 하느님 창조계획의 시대적 실현을 위해 한국 젊은이 20만 명을 세계로 파견할 것을 제안했다. 세계를 위해 봉사하는 마음을 지닌 한국 청년들이 전 세계에 포진해 있다면,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민간외교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3000년대 인류문화의 중심은 아시아, 그리고 대한민국 정 몬시뇰은 3000년대 들어 인류문화의 중심이 서구에서 동양으로 옮겨 오고 있다고 했다. 가장 깊은 사상과 가장 오래된 종교를 발생시킨 아시아가 새로운 인류문화의 문을 열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 의미에서 정 몬시뇰은 2년 전 우리나라에서 열린 G20 서울정상회의 의미를 높이 평가했다. 또 "새 천년대 중심 역할을 한국이 맡아야 한다는 사명을 하느님께로 받은 것"이라면서 우리나라가 사랑과 생명의 문화를 전파하며 세계 여러 나라에 모범이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출판기념회 열어 한편 정의채 몬시뇰 미수연을 겸한 「인류공통문화…」 출판기념회가 11월 27일 서울 로얄호텔에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와 이용훈(수원교구장)ㆍ유수일(군종교구장) 주교, 사제, 수도자를 비롯한 제자와 평신도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정 몬시뇰은 "올해가 미수(88살)인지도 몰랐는데 후배 사제들 덕분에 잔치까지 열게 됐다"면서 "생명을 주시고 지금까지 건강을 허락하신 하느님께 가장 감사드리며, 나이가 들수록 기도만이 유일한 힘이라는 것을 느낀다"고 기도를 부탁했다. 신학생 때 정 몬시뇰에게서 철학을 배웠다는 염수정 대주교는 축사를 통해 "강의를 들으며 몬시뇰님의 학문적 깊이에 감탄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면서 "지금도 젊은이 못지 않은 열정을 가지신 몬시뇰님께서 앞으로도 우리를 이끌어주셨으면 한다"고 축하했다. 제자 이용훈 주교는 "신학과 철학ㆍ영성ㆍ사목ㆍ청소년 문제는 물론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정확한 분석과 이정표를 제시하시는 이 시대의 큰 어르신"이라고 스승을 기렸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박수정2012.12.04

가톨릭 사회교리에 입각, 핵발전에 대한 교회 가르침 제시주교회의 가을 정기총회 주요 결정사항주교회의 추계정기총회에 참석한 주교들과 주교회의 사무처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최기산ㆍ장봉훈ㆍ이병호 주교, 김희중 대주교, 강우일 주교, 오스발도 파딜랴ㆍ염수정ㆍ조환길 대주교, 김지석ㆍ이기헌 주교. 가운데 줄 왼쪽부터 이성효ㆍ김종수ㆍ안명옥ㆍ김운회ㆍ이용훈ㆍ권혁주ㆍ유흥식ㆍ유수일ㆍ조규만ㆍ옥현진 주교. 뒷줄 왼쪽부터 이기락(사무처) 신부, 박현동 아빠스, 정신철ㆍ손삼석ㆍ황철수 주교, 류한영(이하 사무처)ㆍ변승식ㆍ이정주 신부. 임영선 기자 주교회의가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핵(원자력)발전에 대한 가르침을 발표했다. 주교회의가 추계 정기총회에서 출판을 승인한 「핵기술과 교회의 가르침-핵발전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의 성찰」은 △핵발전과 안전 △핵발전과 평화△핵과 교회의 가르침 △교회의 바람 등 9장으로 이뤄져 있다. 핵발전 찬성 측 주장을 먼저 소개하고 비핵ㆍ탈핵을 모색하는 반론, 핵기술ㆍ핵발전에 대한 교회 가르침과 우리 사회, 국민이 선택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는 17일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신자들이 책자를 통해 기술적ㆍ현실적으로 복잡한 문제를 스스로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했다"면서 "가톨릭 사회교리에 입각해 교회가 핵기술과 관련된 문제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제시하고, 교회와 세상이 추구해야 하는 근본적 가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핵발전에 관한 가르침을 비롯한 주교회의 가을 정기총회 주요 결정사항을 살펴본다. ▶핵발전에 대한 가르침 발표 이번 가르침 발표는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사고 이후 비교적 안전한 기술이라고 여겼던 핵발전의 위험성이 알려졌고, 교회 내에서도 핵발전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주교들은 2011년 11월 일본 센다이교구에서 '생태신학'을 주제로 열린 제17회 한일주교교류모임에서 핵발전을 비롯한 환경문제를 폭넓게 논의했다. 모임을 마치고 일본 주교단은 핵발전 폐지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한국 주교들은 개별적으로 지지 의견을 표명했다. 지난해 10월 열린 추계 정기총회에서는 한국천주교여자장상연합회가 탈핵ㆍ탈원전에 대한 주교회의 가르침을 요청했지만 입장 표명을 보류했다. 주교회의의 입장 발표가 자칫 정치적으로 해석돼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주교회의는 2010년 3월 춘계 정기총회 후 교회 가르침을 바탕으로 정부의 4대강 사업 추진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후 정치적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하지만 핵발전 문제는 특정 정파에 관계없이 찬반의견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 정치적 논란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강 주교는 "하느님께서 만들어주신 귀중한 보물인 자연을 온전히 지키면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핵발전으로 인해 발생하는 방사성 폐기물을 후대에 무책임하게 물려주는 것은 미래세대에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2차 국가에너지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민관 합동 워킹그룹은 2035년까지 핵발전 전력생산 비율을 현재와 비슷한 수준인 22~29%로 유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정책권고안을 발표했다. 이명박 정부가 2008년 수립한 제1차 국가에너지 기본계획(핵발전 설비 비중 41%)과 비교하면 핵발전 비중이 현저하게 낮아진 것이다. 이에 대해 강 주교는 "핵발전 비중을 줄이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전력소비가 급증하고 있는 시대에 현재 핵발전 비율을 유지하려면 핵발전소를 더 건설해야 한다"면서 "우리나라 국민과 전 세계 안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 사실상 확정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이 사실상 확정됨에 따라 주교회의는 시복식 준비위원회 구성을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위원장 안명옥 주교)가 준비하도록 했다.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의 포지시오(Positio, 시성성 통상회의에서 안건의 최종 결정을 위해 보고관이 작성하는 최종 심사자료)는 지난 3월 교황청 시성성 역사위원회를 통과한 데 이어 지난 1일 시성성 신학위원회 심의를 통과했다. 신학위원회를 통과하면 보통 3개월 이내에 시성성 추기경 회의에 시복안건이 상정되고, 시복안건이 통과되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최종판결이 이뤄지게 된다. 강 주교는 "추기경 회의는 세세한 내용 검토를 하는 자리가 아니라 (시복 과정에서) 형식적 단계로 알고 있다"면서 "추기경 회의를 통과하는 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이른 시일 내에 시복에 관한 통보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식은 내년, 늦어도 2015년에는 거행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명도회 장학금 운영 주교회의 평신도기금운영위원회(위원장 김희중 대주교)가 설립한 '명도회 장학금'은 평신도 인재 양성의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위원회는 평신도 사도직 단체가 기탁해 조성된 재원을 바탕으로 2008년부터 운영된 평신도기금으로 그동안 공소 선교사, 군 선교사업, 평신도 선교사 단체 등을 지원해 왔는데, 내년부터 이 기금이 명도회 장학금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명도회 장학금 지원 대상자는 천주교 관련 학문을 전공하는 재학생(대학 입학 예정자)과 천주교와 관련된 연구를 하는 석박사 학위 과정 학생이며, 다른 기관 장학금을 지급받지 않는 학생이어야 한다. 다만 50% 이하 장학금을 받는 학생은 지원이 가능하다. 천주교 관련 분야를 연구하는 전임강사 이상 교원과 대학 부설 및 각종 연구소에 종사하는 연구원도 신청할 수 있다. 김희중 대주교는 "평신도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는 현실에서 교회가 평신도 인재양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면서 "훌륭한 평신도들이 교회 울타리 안에서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천주교 신자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데 명도회 장학금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드러냈다. 위원회는 산하에 인재양성위원회를 구성해 인재양성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장학금 첫 지원 대상자들은 내년 1월 20일 평신도기금운영위원회 회의에서 선정한다. 장학생 4명, 학술지원 2명을 선정할 예정이다. 김 대주교는 "많은 분들이 장학기금에 관심을 갖고 도움을 준다면 더 많은 평신도 인재들이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관심을 요청했다. ▶승인 및 보고 사안 주교회의는 생명윤리위원회(위원장 장봉훈 주교) 회칙 수정안과 교육위원회(위원장 최기산 주교) 회칙 개정안을 승인했다. 또 한국가톨릭스카우트(담당 이승현 신부, 서울대교구)의 전국 단체 설립을 승인했다. 한국가톨릭스카우트는 전국 11개 교구 가톨릭스카우트 전국 단위 협의체로 활동하게 된다. 주교회의는 △민족화해위원회가 지난 7월 26~8월 1일 개최한 'DMZ 평화의 길 걷기' 행사 △7월 17~28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제28회 WYD(세계청년대회)' 참과 결과 △(재)한국 카리타스 인터내셔널의 대북 지원ㆍ해외 원조사업 △교황청 전교기구 한국지부 활동 등에 대한 보고를 들었다.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 총무 신정훈 신부 한편 주교회의는 성서위원회 위원장으로 손삼석(부산교구 총대리) 주교를 선출했다. 손 주교는 당분간 문화위원장을 겸임한다. 또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 총무로 신정훈(가톨릭대 교수, 사진) 신부를 임명했다.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난 신 신부는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유학을 떠나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학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박고 2001년 사제품을 받았다. 2009년 독일 뮌헨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신 신부는 서울 연희동본당 부주임을 거쳐 2011년부터 가톨릭대 교수로 봉직하고 있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cpbc2013.10.22
![[서울 우리농 제9기 하늘땅물벗 일본 연수]<중>유기농 생산 소비, 지구 환경을 위한 실천의 시작](//cpbc.co.kr/CMS/newspaper/2013/10/rc/479522_1.1_titleImage_1.jpg)
[서울 우리농 제9기 하늘땅물벗 일본 연수]유기농 생산 소비, 지구 환경을 위한 실천의 시작 소비자들 요구로 유기농 재배 농가도 차츰 늘어 유기 농산물 생산과 소비, 학계의 뒷받침은 단순히 '안전한 먹을거리'만을 위한 건 아니다. 생명과 환경을 돌아보며 현대 문명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통해 대안적 생활공동체를 이뤄냄으로써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성찰의 여정이다. 서울대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본부장 조해붕 신부)의 제9기 하늘ㆍ땅ㆍ물ㆍ벗 일본 연수도 이같은 뜻에 초점이 맞춰졌다.고베시 아카와다니조에서 유기농산물을 재배하는 시부타니씨가 9월 30일 자신의 비닐하우스에서 키우는 채소를 뽑아 그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안전한 먹거리 추구하는 모토메르회 1일 효고현 고베시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다카라즈카시. 일본 그리스도교 연합 교단 소속 다카라즈카(寶塚)교회에 생산자들이 트럭을 댔다. 한창 가을걷이 시기로 접어드는 탓인지 채소가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피망이나 가지, 호박, 열무 등 각종 채소와 과일류, 쌀과 유정란, 우유, 쇠고기, 돼지고기 등이 하나둘 내려진다. 교회에 모여 있던 주부들과 하늘ㆍ땅ㆍ물ㆍ벗 일본 연수단이 힘을 합쳐 먹을거리를 각 가정별로 분류한 뒤 장바구니에 담아 교회 옆 공터에 내려놓았다. 이 먹을거리는 각 가정별로 직접 가져가거나 장애인들이 배송을 한다. 장애인들 배송비는 한 가정당 100엔, 우리 돈으로 1085원에 불과하지만, 여러 집을 돌면 쏠쏠한 수익이 된다. 이를 주도하는 모임은 식품공해를 추방하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추구하는 모임, 약칭 '모토메르회(求める會)'다. 1974년 고베학생청년센터에 모인 주부들이 농약에 오염돼 가는 먹을거리와 유해첨가물 등 식품 공해를 추방하고자 결성했다. 지역별 소모임이 70여 개, 회원도 300가구나 되는 모토메르회는 공동구매와 공동분배를 원칙으로 '생산자와 얼굴을 마주하는 관계'를 맺으며 일주일에 한 차례씩 유기 농산물과 축산물을 나눈다. 소비자든, 생산자든 사람과의 만남이 중요하다는 뜻에서다. 회원들은 그래서 다들 주기적으로 농촌에 나가 유기농을 하는 농부들과 함께 풀뽑기를 하고 벌레를 잡으며 연대를 한다. 이 모임 역시 최근 들어 일본을 뒤흔든 방사능 오염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핵 발전 문제에 대해 공부하며 각 가정과 학교 식탁에 오르는 식재료를 대상으로 한 방사능 검사에 힘을 쏟고 있다. 이 모임 설립자 중 한 사람인 노부나가 다카코(信長たか子, 57) 전 대표는 "산업계에선 전력 수급의 어려움 때문에 원전을 재가동하자는 목소리를 높이지만 우리는 방사능 오염이 너무 불안하다"며 "후쿠시마 농산물뿐 아니라 방사능이 대기 중으로 번지는 만큼 타 지역 방사능 오염 여부에 대한 식품 전수검사가 절실하다"고 회원들과 함께 입을 모은다. 이같은 유통 모임이 가능한 것은 유기농 재배농가가 있기 때문이다. 효고현 유기농업연구회원으로, 농대를 나온 아들 시부타니 요시카즈(澁谷嘉一, 38)씨와 함께 농사를 짓는 시부타니 후키오(澁谷富喜男, 64)씨는 고베시 이카와다니조에서 시금치와 브로컬리, 콩, 토마토, 가지, 피망 등 유기농산물만 50여 종을 생산한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유기농산물을 생산한 건 아니다. 관행농법에 젖어 농약을 뿌리고 화학비료를 남용하곤 했다. 하지만 도시 소비자들이 찾아와 유기농산물을 생산해 줄 수 없느냐고 요청한 것을 계기로 유기농 재배에 들어갔다. 쌀겨와 두부찌꺼기로, 동물원에서 나온 동물배설물로 퇴비를 만들어 뿌리고 일일이 벌레를 잡아가며 유기농산물을 생산했다. 생산성뿐 아니라 상품성도 떨어지는 농산물을 계속 생산할 수 있었던 건 이런 농산물을 소비해준 소비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유기농 생산 방식 보급 이처럼 주먹구구식으로 농사를 짓는 유기농 생산자들을 보다 못해 농학자들이 나섰다. '일본 생협의 선구자'로 꼽히는 야스다 시게루(保田茂, 73) 고베대 농학부 명예교수 겸 효고(兵庫)농어촌사회연구소 대표는 대학에서 퇴직한 2007년 유기농 자재 생산 연구에 들어가 최근 생산에 성공했다. 쌀겨와 비지, 어분(魚粉), 유기석회(굴껍질), 물을 각각 6:3:2:1:2의 비율로 섞어 저온에서 발효시키는 방법을 적용했다. 효고농어촌사회연구소와 자신의 이름 첫 글자를 따 HYS저온발효유기자재로 명명한 퇴비는 농사에 무지했던 주부조차도 성공적으로 양파를 수확할 정도로 성공을 거뒀다. 이에 힘을 얻은 야스다 교수는 무려 40년이 지났는데도 크게 확산되지 않고 있는 유기농 생산 방식 보급에 팔을 걷어붙였다. 야스다 교수는 "현재 일본에서 유기농이 전체 농업 가운데 차지하는 비율이 1%에 안팎에 불과한데 유기농 퇴비 개발을 계기로 유기농업 추진법에 따른 각 부나 현별 발전 계획 수립과 시행을 가속화해 나가겠다"며 "가능하다면 한국에 가서 유기농 생산농가에 퇴비 생산방법을 전수해주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쓰고 버리는 시대를 생각하는 모임' 설립자 츠치다 다카시 전 교토대 교수 1일 교토(京都)를 찾아 NPO(비영리단체)법인 '쓰고 버리는 시대를 생각하는 모임'을 설립한 츠치다 다카시(槌田召 , 78, 사진) 전 교토대 교수를 만나 강연을 들었다. 국내에서도 번역된 「지구를 부수지 않고 사는 방법」(한살림) 「공생공빈(共生共貧), 21세기를 사는 길」(도서출판 흙과생기) 등 저작으로 유명한 츠치다 교수의 강연은 '소비자는 왕'이라는 인식이 만연한 사회에서 환경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듣는 자리였다. 특히 저명한 핵물리학자로 일본 내 원전 건설에 이바지한 츠치다 교수가 이제는 유명한 탈핵 활동가로 나선 사연도 듣는 자리였다. 츠치다 교수는 역사에 대한 자성으로 자신의 강연을 시작했다. 전쟁 전 일본 역사는 한국와 타이완, 중국, 동남아에 이르기까지 큰 아픔을 준 창피한 역사였는데 전후에도 일본은 참회는커녕 '물질적 풍요로움'이라는 잘못된 길로 들어선 부끄러운 역사라는 것. 6ㆍ25전쟁 당시 고등학생으로 반전주의자가 된 그는 교토대 이학부 화학공학과에 진학, 미국 유학을 거쳐 핵물리학자가 됐고 모교 교수로 부임했지만 환경문제를 고민하다가 모교 교수직에서 물러나 교토 세이카(精華)대학으로 옮긴 뒤 '쓰고 버리는 시대를 생각하는 모임'을 설립, 본격적 환경운동과 함께 핵발전소 건립 반대 캠페인을 전개해왔다. 츠치다 교수는 "풍요로움이 행복을 누리게 해줄 수는 없고, 물질적 풍요만을 추구하는 문명은 결국 파탄을 가져올 것"이라고 질타한다. 이어 "한국도 시간차를 두고 일본을 뒤따라오는 느낌인데 풍요로움이 행복을 보장해줄 수 있을 것 같으냐"고 반문했다. 츠치다 교수는 "계속 고민만 하기보다 현장에서 몸을 움직이며 실천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모임을 만들고 텃밭을 일구며 폐지를 회수하는 '바보 같은 일'에 나서게 됐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그렇지만 자신이 아는 세상과 다른 세상을 만나는 것, 곧 농사와 유통, 자원재활용, 환경운동은 굉장한 행복을 가져왔다며 "고민만으로 결론을 도출할 수 없다면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하는 게 낫다는 점에서 행복했다"고 그는 털어놓았다. 츠치다 교수는 이어 "과학문명은 석유나 석탄, 지하자원에 의해 유지되는데 그 자원은 쓰면 없어지는 것이고 없어질 수밖에 없다"며 "누구도 다시 만들 수 없는 지하자원을 마음대로 쓰는 건 미래에 대한 죄"라고 경고했다. 그래서 그는 "일본의 깊은 죄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며 "그 죄를 갚는 길은 돈의 원리가 아니라 생명의 원리를 따르는 데 있고, 그것은 생명에 기반하는 농업을 통해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교토대 교수직을 버리고 대학을 옮기면서까지 안전농산물공급센터라는 단체를 만들어 생산자는 즐겁게 일을 하고 소비자는 건강한 식탁을 갖도록 하는데 주력했다는 것. 츠치다 교수는 그러나 "그렇게 대단한 일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1400명밖에 안 되는 작은 모임이지만 다들 지구 환경을 먼저 생각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스스로 찾고 고민하고 있기에 절망적이지만은 않다"고 고백했다. 이어 "요즘도 매달 11일이면 교토역에서, 간사이(關西)전력 앞에서 탈핵 관련 시위와 집회를 계속해오고 있는데 원자력발전에 의한 에너지 수급은 이제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역사적으로 보면 일본의 원전 가동이 멈춘 건 두 번째인데, 앞으로도 이 원전이 재가동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교토 '쓰고 버리는 시대를 생각하는 모임' 안테나숍(antenna shop) 7층 옥상에 조성한 텃밭을 소개한 츠치다 교수는 "10년 넘게 흙을 40㎝ 정도로 쌓아 조성한 옥상 텃밭을 가꾸며 연간 30여 종의 채소를 재배해왔다"며 "도시인들이 농사를 경험하고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의의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세택 기자 cpbc2013.10.22
![[20세기를 빛내 신학자들]<18>한스 큉(하)](//cpbc.co.kr/CMS/newspaper/2013/09/rc/474984_1.2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내 신학자들]한스 큉(하)종교 간 대화와 세계 윤리 정립에 힘써 1978년에 발간된 「신은 존재하는가?」는 「그리스도인의 실존」보다 신학계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가톨릭 철학자 에머리히 코레트(E.Coreth, 1919~2006) 신부는 책의 전반부, 곧 데카르트에서 시작해 니체에 이르는 근대 사상과 겨루면서 화해와 극복을 추구한 부분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도 계속된 교회 교도권에 대한 큉의 비판에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큉은 근대 무신론조차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 유독 가톨릭교회의 제도와 교도권에 대해서만 왜 그렇게 비판적인지 묻고 싶다." 큉과 교회 교도권과의 해묵은 갈등은 결국 파국으로 끝난다. 1967년 「교회」로 시작된 교황청 신앙교리성과의 갈등은 1970년에 발간한 「무류라고?」로 인해 더욱 고조된다. 신앙교리성은 조사를 위한 '대화'에 큉을 부르지만, 큉은 '대화'의 공정한 규정을 선결조건으로 내세웠다. 그 후 협상은 지루하게 진행되다가 1975년 2월 조건부로 마무리된다. 큉이 앞으로 교황 무류권을 언급하지 않는다면 신앙교리성에서도 더 문제 삼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갈등은 수습됐다.교회 교도권과 마찰 하지만 1978년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으로 즉위한 직후, 큉은 다시 교황 무류권을 언급했다. 1979년 초 발간한 「진리 안에 보존된 교회?」라는 소책자에서 교황 무류권에 관한 자신의 주장을 반복하면서, 새 교황에게 이 문제에 관한 대화를 요청했다. 신앙교리성은 이를 1975년에 맺은 합의를 깬 것으로 간주하고, 1979년 12월 18일 성명을 통해 "한스 큉 교수는 자신의 저작들에서 가톨릭교회의 온전한 진리에서 벗어나 있다. 그러므로 그는 가톨릭 신학자로 간주될 수도, 가르칠 수도 없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큉은 가톨릭교회의 이름으로 더 이상 가르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사제직은 그대로 유지됐다. 이 사건은 세계적으로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지만,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결국 큉은 튀빙겐대 측과의 조율을 거쳐 독자적 지위를 얻게 된다. 가톨릭 신학부 소속이 아닌 총장 직속의 교회일치 신학 교수로서, 그 직책과 연관된 교회일치연구소 소장직을 계속 유지하고 대학 전체를 대상으로 강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스 큉은 이렇게 특별한 조건에서 활동하다가 1995년 12월에 정년 퇴임했다. 가톨릭 교수 자격을 박탈했음에도 큉의 학문 활동은 왕성하게 계속됐는데, 연구 초점은 가톨릭교회와 신학 울타리를 넘어 좀 더 넓은 분야로 확장된다. 세계 종교의 기초 연구 우선 전통적 신학 주제를 대상으로 한 저서는 종말론을 다룬 「영원한 생명?」(1982), 교회일치를 지향하는 자신의 신학적 방법론을 제시한 「새로운 출발점에 선 신학」(1987), 사도신경 해설서 「믿나이다」(1992) 정도다. 이에 비해 종교와 문학, 특히 여러 종교에 대한 저작들을 다수 출판했다. 「그리스도교와 세계 종교」(1984), 「문학과 종교」(1985), 「신학과 문학」(1986), 「그리스도교와 중국의 종교」(1988), 「인간성의 변호인들」(1989) 등이다. 1990년에 출간한 「세계 윤리 구상」(1992년 우리말 번역)에서 큉은 원대한 계획을 드러냈다. 그는 현재 인류 상황을 고찰해볼 때 생존을 위해선 인류 전체를 위한 윤리가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이런 측면에서 대 종교들이 인류를 위해 공헌할 바가 매우 큰데, 세계 윤리는 윤리 담지자인 세계 종교들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협력을 위해선 종교 간 대화가 필수적이다. 큉은 자기 생각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세계 윤리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종교의 평화 없이는 세계의 평화도 없고, 종교의 대화 없이는 종교의 평화도 있을 수 없다." 큉은 종교 간 대화를 위해 각 종교에 대한 기초 연구가 필수적이라고 봤다. 그리고 긴장과 다툼이 많은 세 종교, 곧 아브라함에게 기원을 둔 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에 대한 기초 연구를 다음과 같은 관점에서 실행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인간이 2000년대에 돌입하면서 대 종교들의 취지는 어떠한 것일까? 무엇이 지속돼야 하고, 무엇이 변화돼야 하는가? 영속적인 신앙의 요체는 무엇이며 변화하는 징후는 무엇인가? 종교 사이의 적대는 어디에 있으며, 병존과 분화, 수렴과 갈등의 진원지 그리고 대화의 씨앗은 어디에 있는가?" 큉은 세 종교에 대한 연구 결과를 차례로 발표했다. 1991년에는 「유다교」, 1994년에는 「그리스도교」(2002년 우리말 번역), 2008년에는 「이슬람」(2012년 우리말 번역)을 썼다. 큉은 이 책에서 패러다임 분석을 통해 각 종교가 어떻게, 또 왜 오늘날의 모습이 됐는지를 고찰하고 바람직한 미래 모습을 제시했다. 큉은 자신이 주창한 세계 윤리 구상이 실현되도록 적극 활동했다. 1993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종교협의회가 제정한 '세계 윤리를 위한 선언'의 산파 역할을 했다. 이 선언은 장차 세계 윤리의 기초가 되는 4가지 기본 원칙을 담고 있다. △모든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비폭력의 문화 △정의로운 경제 질서와 연대성의 문화 △진실한 삶과 관용의 문화 △남녀의 평등과 동반의 문화를 의무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1995년 세계 윤리 구상의 구체적 실현을 돕는 '세계윤리재단'이 설립됐고, 큉은 초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2012년 4월에는 큉이 명예교수로 있는 튀빙겐대에 '세계윤리연구소'가 세워졌다. 큉 신학의 핵심은 그리스도 중심주의 큉은 가톨릭 교수 자격이 박탈된 후, 자신의 신학을 변호하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철두철미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논하는 신학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신앙의 독특함을 드러내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중심주의'로 표현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집중은 신학 연구 초기에서부터 일관성 있게 이어졌다. 하지만 그의 그리스도 이해는 동일하게 머물지 않고 큰 변화를 겪는다. 칼케돈공의회의 교의 결정에 근거한 전통적 그리스도론, 이른바 '위로부터 그리스도론'에서 현대의 역사-비평적 성서주석학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한 역사의 예수에 초점을 둔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으로의 변화가 그것이다. 큉은 그리스도교 신학과 삶은 성경에 토대를 둬야 한다고 확신하는데, 그 성경의 중심은 역사의 예수라고 주장한다. 이런 전제하에 성경에서 출발해 교의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고, 성경의 중심인 역사의 예수를 신학의 근본 규범으로 삼아 교회 전통 요소들을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해 의미를 축소하거나, 제외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 방법론은 큉의 대표작 「그리스도인의 실존」에서 확실히 드러난다. 큉은 이 책을 통해 목표하는 바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역사적으로 정확하면서도 오늘의 현실에 부응하고 최근의 연구 현황에 바탕을 두면서도 누구나가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그리스도교 설계의 결정적 특징을, 그리스도교적 실천을 위해서 도출하는 것이다. 이 설계가 원래 2000년의 먼지와 쓰레기에 덮이기 전에 무엇을 뜻했었으며, 이 설계가 오늘 새로이 조명될 때 각자에게 뜻있고 보람찬 삶을 위해 무엇을 뜻할 수 있는가를 고찰하는 것이다. 또 다른 복음이 아니라 오늘을 위해 유일한 옛 복음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다!" 이 시도는 환영만이 아니라 교회와 전통을 소홀히 한다는 거센 비판도 받는다. 바로 여기에 큉이 극한 찬반 양론을 불러일으키면서 교회 교도권과 심각한 마찰을 빚은 이유가 있다. 교황 무류권에 대한 논쟁은 많은 물의를 빚었지만, 그가 이유 있는 질문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없는 문제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이 주제에 내재한 문제를 끄집어내 공론화시켰다는 것이다. 또한 큉이 시도한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은 전통 그리스도론의 핵심 내용을 불충분하게 반영했다는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그 자체가 문제시되지는 않았다. 질문과 시도는 정당하지만 해결책은 목표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가톨릭 신학자 하인리히 프리스(H.Fries, 1911~1998) 신부는 현대인들, 특히 의심과 물음이 많은 이들에게 그리스도 신앙을 설득력 있게 전하려는 큉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큉으로 인해서 불안을 느끼는 신자들 외에도 아주 많은 수의 사람들이 큉의 저서, 특히 「그리스도인의 실존」과 「신은 존재하는가」를 통해 자신의 신앙을 위해 진정한 도움을 발견하거나 신앙을 강화하고, 신앙 이해와 획득을 위해 새롭고 신뢰할만한 입구를 찾았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많은 사목자와 교리교사, 설교자에게 위에 언급한 두 책은 진정 귀중한 보고(寶庫)가 됐다. 큉은 자신의 말과 글을 통해 교회 변두리에 자리한 사람과 그리스도인, 그리스도교 신앙과 거리를 두고서 교회를 비판적으로 대하는 이들에게 도달한다." 교황 무류권 문제로 큉과 격렬한 논쟁을 벌였던 칼 라너 신부도 비슷한 취지로 얘기했다. "나는 큉의 여러 입장을 비판적으로 거부하는 견해를 밝혔고 나름대로 항변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한스 큉의 긍정적 의미와 자유주의적이고 대중적이며 회의적인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그리스도교를 전해주려는 그의 성실한 노력을 존중하는 사람들 중 하나다." 1981년 12월 칼 라너는 다른 여러 신학자와 함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게 큉과 단절을 극복하기 위한 대화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한스 큉 신부가 교회 교도권과 심각한 마찰을 빚고 결국 가톨릭 교수 자격을 박탈당했다고 해서, 또 여전히 비판의 목소리를 낮추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신학적 노력과 성과의 긍정적 측면을 거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금도 계속되는 세계 윤리 정립을 위한 그의 노력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주목할 만한 시도다.손희송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장, 가톨릭대 교의신학 교수)cpbc2013.09.24
![[창립 25돌 특집] 평화신문 24시](//cpbc.co.kr/CMS/newspaper/2013/05/rc/452055_1.2_titleImage_1.jpg)
[창립 25돌 특집] 평화신문 24시기쁜 소식 있는 곳에 평화신문 기자들이 있다한 주간의 신문을 만들기 위해 회의하고 있는 평화신문 취재부 기자들. '남편 따라 투신자살' '예비노인 자녀에게 쏟아붓고 빈털터리' 'ㅇㅇㅇ, 요즘 뭐하나 봤더니'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접속하면 클릭을 부르는 뉴스들이 즐비합니다. 세상에는 무섭거나 재밌거나 자극적인 뉴스들이 넘쳐납니다. 평화신문 기자들이 세상에 그물을 던져 길어 올리는 취재거리는 다릅니다. 기쁜 소식이 될 뉴스들이지요. 평화신문의 이념은 모든 이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이 땅에 그리스도의 평화를 실현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평화신문이 1988년 5월 15일 창간호를 발행한 후 2013년 5월 12일자(제1215호) 신문을 발행하기까지 25년이 흘렀습니다. 그리스도의 진리와 사랑이 머무는 현장을 누비고, 취재 및 기사 작성과 편집을 거쳐 신문을 제작하기까지 평화신문 기자들의 일주일을 소개합니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취재부터 배달까지 "하느님, 성령의 빛으로 저희 마음을 이끄시어 바르게 생각하고 언제나 성령의 위로를 받아 누리게 하소서." 서울 중구 삼일대로 평화방송ㆍ평화신문 사옥 10층 수요일 오전 9시. 평화방송 라디오가 9시 정각을 알리면 사내에는 '일을 시작하며 바치는 기도문'이 흘러나온다. 출근한 직원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일어서서 함께 기도한다. 매주 수요일은 한 주 신문을 제작하는 첫날이다. 주일 날짜로 발행하는 신문을 제작하기 위해 기자들은 월요일에 모든 기사를 마감한다. 화요일에는 인쇄에 들어간다. 기도를 마친 취재기자들은 각자 정해진 출입처를 방문하거나 취재 현장으로 향한다. 홍성남 신부의 '아! 어쩌나'와 '생활 속의 복음' '사도직 현장에서' '나의 묵주이야기'처럼 사목ㆍ영성면 기획물들은 필자에게 글을 받아 정리한다. 공동체ㆍ문화ㆍ사람들ㆍ사회사목면은 대부분 현장에서 발로 뛰는 기사다. 취재부 기자 9명의 출입처는 생명, 사회사목, 문화ㆍ출판, 청소년ㆍ가정 등으로 나뉘어 있다. 16개 교구 담당 기자들이 정해져 있어 전국 뉴스를 다룬다. 취재부 기자들은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교회 기관과 성당을 비롯한 취재 현장을 누빈다. 그날 취재한 기사는 빨리 써내야 마감날 기사로 체하지 않는다. 월요일은 일주일 중 가장 바쁘고 정신없는 날이다. 주일까지 취재를 마친 기자들은 기사 마감에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 편집국은 조용하지만 가장 분주한 시간이다.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해진다. 취재기자가 써낸 기사들은 취재 데스크의 검토를 거쳐 편집부로 넘어간다. 편집 기자들은 회의를 거쳐 면별로 분류해 놓은 기사들을 신문지면에 일목요연하게 배열한다. 독자의 시선을 끌 제목을 뽑고, 짜임새 있는 지면을 짜는 것이다. 취재기자들이 써낸 기사를 키우고 줄이는 것은 편집기자 손에 달려 있다. 취재기자들이 취재하고 기사 쓰는 과정이 요리하기 전 '장을 보고 단품 요리를 만드는 과정'이라면 편집기자들이 기사를 토막 내고 사진을 배치하고 제목을 뽑는 일은 '이 요리들로 먹음직스럽게 한 상을 차려내는 과정'이다. 화요일 오후 4시, 오탈자를 찾아내는 교열 과정을 거치면 중구 태평로1가 서울신문사로 가서 인쇄용 PS판을 출력한다. 인쇄소에서 인쇄된 따끈따끈한 신문들은 포장돼 전국 독자들에게 배달된다. #기쁜 소식 전하는 평화의 일꾼들 평화신문 기자들이 취재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꼭지는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다. 2001년부터 지금까지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를 통해 578명에게 67억여 원을 성금으로 전달해 소외된 이웃의 눈물을 닦아줬다. 기자들은 생활형편이 어려운 가정을 방문,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안타까운 사연을 지면에 소개한다. 독자들이 십시일반 조금씩 보내온 성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이웃들에게 살아갈 힘과 용기를 안겨준다. 이 밖에 기자들은 전례력에 맞게 신자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기삿거리를 찾아 심층 보도한다. 매 주일 복음을 풀어주는 '생활 속의 복음'도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 사회의 공동선 증진을 위해 투신하는 사회사목 현장도 담아낸다. 평화신문 취재부 막내인 강성화(미카엘라, 25) 기자는 "일간지들은 갈등을 극대화하는 뉴스들을 확대재생산하지만 평화신문은 밝은 뉴스를 취재, 보도함으로써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문화가 번져나가는 것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강 기자는 "어려운 이들을 소개하는 기사를 쓸 때마다 도움을 주고 싶다는 독자들 전화를 받는다"면서 "우리 사회에 온정의 손길이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기쁘다"고 덧붙였다. 올해 14년 차인 백영민(스테파노, 40) 기자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신앙인들이 많지만 이분들이 인터뷰를 극구 사양해 지면에 소개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처럼 기쁜 소식이 있는 곳에 평화신문 기자가 있다. "이 세상 풍파와 혼란의 소용돌이서도 말씀의 빛으로 올바른 길을 가면서…. 우리가 전하는 말씀에 귀 기울이는 이는 행복하여라. 하늘에 영광 땅에는 평화, 평화방송 평화신문."(구상 시인이 작사한 '평화방송ㆍ평화신문' 사가 중에서) 평화신문 기자로 살아간다는 것…기획취재부/ 남정률(요한사도) 기자 세상 이치가 그렇듯 좋은 점만 있을 수는 없다. 평화신문 기자라는 직업도 마찬가지다. 좋은 것부터 살펴보자. 취재는 보통 만남을 통해 이뤄진다. 평화신문 기자가 만나는 이들은 대부분 신앙의 본보기가 될 만한 모범적인 가톨릭 신자다.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한마디로 신문에 날 만한 사람들이다. 책을 한 권 소개해도 마찬가지다. 구구절절 주옥같은 신앙서적들이다. 신앙 공부가 따로 없다.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 진리, 사랑, 평화, 생명…. 평화신문 기사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이런 단어들로 구성된 기사를 쓰는 것 자체가 하나의 신앙행위다. 머리에 늘 거룩한 것들을 이고 산다. 안 좋은 점은 이런 것들이다. 만나는 이들이 신부, 수녀를 포함해 가톨릭 신자라고 해서 모두 날개 없는 천사들인 것만은 아니다. 취재를 하다 보면 때로는 상처를 받는 일도 생긴다. 평화신문 특성상 상대방에게 목소리를 높이기도 어렵다. 일간지처럼 출입처에 군림(?)할 수 있는 신문이 아닌 까닭이다. 속상한 일이 생기면 회사에 있는 성당에 가서 조용히 묵상할까? 꼭 그렇지는 않다. 술집으로 많이 간다. 안주가 필요 없다. 물론 매일 아침마다 미사는 있다. 그리고 평화신문 기자는 바쁘다. 바빠도 너∼무 바쁘다. 매주 월요일 마감은 어찌 그리 빨리 돌아오는지. 써야 할 기사량이 엄청나다. 스트레스가 만만찮다. 취재해 달라고 전화는 자꾸 오는데, 몸이 세 개쯤 되면 모를까 다 쫓아다닐 수가 없다. 죄송할 따름이다. 이 자리를 빌려 양해를 구한다. 결론은? 평화신문 기자는 행복하다. 힘든 건 여느 직장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신앙으로 바라보고 신앙으로 해석하는 눈이 생기는 것 같다. 수많은 만남과 취재, 그리고 머리를 쥐어짜는 기사 작성을 통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세상만사 모든 일에 하느님의 숨결이 배어 있음을 깨달아가는 것은 평화신문 기자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싶다. 밥벌이 직장생활이 곧 신앙생활인 직업이 평화신문 기자다. 글자 그대로 하느님께서 주신 천직(天職)이다. 퇴사자22013.05.07
[출판단신] ▨성령 안에 머물러라 거룩함을 갈망하는 이들, 성덕으로 나아가고 싶은 이들, 영적 감각을 꽃피우고 싶은 이들을 위해 성령 안에 머무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저자 자크 필립(프랑스) 신부는 내적 수용성, 즉 일상에서 성령이 함께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성령의 초대에 민감하게 따를 것을 강조했다. 또 영적 감각의 성장을 위해 충실한 기도, 하느님께 대한 신뢰, 겸손, 감사, 하느님 은총을 향한 열린 마음 등을 실천해야 한다고 했다.(자크 필립 지음/조안나 옮김/바오로딸/6000원) ▨나날의 삶을 하느님과 함께 일상 속에서 하느님 신비를 보고 그 신비를 살았던 신비가 모리스 젱델(1897~1975, 스위스) 신부의 피정 강의록이다. 젱델 신부는 인간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을 바탕으로 인권, 종교 자유, 노동 문제 등에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오늘날 당면한 문제를 신앙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며 성찰의 길로 이끈다. 더불어 신앙생활이 어떻게 새로워져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다.(모리스 젱델 글/밀양가르멜여자수도원 옮김/성바오로/1만 5000원) ▨신비가 프란치스코 프란치스코 성인은 기도에 관해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가르침을 남기진 않았지만, 그의 삶 자체가 곧 기도였다. 그러한 삶이 가능했던 이유는 계속되는 기도와 잦은 관상으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하느님과 친교를 체험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재성(작은형제회) 수사가 로마 안토니아눔대학에서 프란치스코 신비 영성을 주제로 쓴 석사학위 논문으로, 2011년 출간한 것을 보완했다. 프란치스코 신비 체험과 영성의 핵심을 알 수 있다.(이재성 지음/프란치스코출판사/1만 2000원) 박수정 기자 박수정2012.04.25
![[장애인의 날 특집] 장애인·비장애인 한데 어우러지는 교회 공동체로 거듭나야](//cpbc.co.kr/CMS/newspaper/2013/04/rc/448404_1.0_titleImage_1.jpg)
[장애인의 날 특집] 장애인·비장애인 한데 어우러지는 교회 공동체로 거듭나야가톨릭시각장애인선교회·가톨릭농아선교회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가톨릭교회는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라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안팎의 장애인과 함께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장애인의 날을 맞아 교회 내 장애인과 가장 가까이 지내는 사제들을 만났다. 사제들은 한 목소리로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 하느님 앞에서는 같은 아들·딸임을 강조했다. 이정훈기자 sjunder@pbc.co.kr서울가톨릭시각장애인선교회 담당 및 서울 성라파엘사랑결준본당 주임 고형석 신부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부모님 때문인가?' 많은 장애인이 갖는 질문입니다. 저는 말씀 드립니다. 하느님께서 특별히 당신을 통해 당신 영광을 더 드러내시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선 다른 누구보다 더 당신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12일 만난 서울가톨릭시각장애인선교회 담당 및 서울 성라파엘사랑결준본당 주임 고형석 신부는 먼저 장애인들을 격려했다. 그들이 겪고 있는 마음속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 신부는 "선천성보다 후천적인 사고 등으로 시각장애를 갖고 우울과 고통 속에 살아가는 이들의 비율이 훨씬 높다"며 "그들이 교회 안에서도 외면당한 채 냉담하고 홀로 생활하는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고 신부는 2011년 선교회 담당 사제로 부임해 시각장애인 회원들의 신앙생활을 돕고, 신자ㆍ미신자 가정을 방문해 하느님 사랑을 전하고 있다. 아울러 지난해 준본당으로 승격한 성라파엘사랑결준본당의 성전 건립을 위해 힘쓰고 있다. 고 신부는 "부임한 첫날 시각장애인 신자들은 미사 후 너도나도 다가와 손으로 제 얼굴을 더듬으며 반가움을 표시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까지만 해도 평생 어둠 속에 살아가는 그들에 대해 잘 몰랐다"면서 "그들과 함께 살면서 조금만 더 사랑으로 이끌어주면 함께 신앙생활하는 데 더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 개포동의 한 건물에 있는 준본당은 감실도 없는 지하 강당을 성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교리실과 회합실도 없어 신자들은 다른 시설의 교육실을 빌려 겨우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점자로 번역된 교회 서적과 성경이 적어 신자 재교육에 어려움이 많다. 고 신부는 "최근 지어진 성당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유도블록과 점자표지판 등을 설치하고 있지만, 미사 참례와 고해성사 때엔 여전히 다른 이들의 도움이 절실하다"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성전이 마련된다면 많은 어려움을 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 신부는 "하지만 시각ㆍ청각장애인만을 위한 성전을 따로 건립하는 것보다는 모든 장애인이 함께할 수 있는 교육ㆍ피정센터를 건립해 장애ㆍ비장애인이 한데 어우러져 미사와 교육, 피정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애인은 다른 누군가의 도움으로 따뜻한 주님 사랑을 느낍니다. 비장애인은 그들을 위한 사랑과 봉사를 통해 그들에게서 또 다른 사랑을 배웁니다. 주님 안에 모두가 더욱 함께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길 기도드립니다." 후원 문의 : 02-451-0333■서울가톨릭시각장애인선교회 1979년 4월 13일 성금요일에 살레시오 수도원에서 22명의 시각장애인 신자들이 모여 창립한 '가톨릭맹인선교회'는 점자회보 '글로리아'와 점자 성가집 '글로리아 성가집' 발간 등으로 공동체를 이어오다가 1981년 2월 1일 서울 명동 서울대교구 사회사목센터에 사무실을 열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주일미사를 시작했다. 이후 가톨릭 녹음도서관 개관, 가톨릭맹인선교회 후원회 발족 등을 통해 꾸준히 성장해온 선교회는 각 교구 선교회 창립을 도왔다. 선교회는 1989년 사회복지법인 하상복지회를 인가받고, 1993년 하상장애인종합복지관을 개관한 데 이어 2004년 선교회 이름을 '서울가톨릭시각장애인선교회'로 바꿨다. 선교회는 특히 점자 성경 보급(2006년)과 점자 전례서(기도서ㆍ성가집) 출판(2008년), 온소리 LOGOS 1.0(점자정보단말기용 소프트웨어, 성경ㆍ기도서ㆍ성가 수록) 보급에도 앞장서 시각장애인들 신앙생활을 돕고 있다. 현재 선교회 등록회원은 600여 명이며, 후원회원 500여 명과 봉사자 3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 담당 박민서 신부 "청각장애인 신자들은 주일마다 선교회 사무실에 모여 밤 늦게까지 머물며 일주일간 마음속에 담아뒀던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갑니다. 그들에게 성전은 말 그대로 주님의 안식처입니다." 14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 사제관에서 만난 박민서 신부는 손끝으로 열심히 청각장애인 신자들을 대변했다. 2007년부터 선교회 담당 사제로 청각장애인 신자들과 동고동락하는 박 신부는 아시아교회 최초 청각장애인 사제이기도 하다. 박 신부는 "선교회가 설립한 지 55년이 지났는데도 청각장애인들이 제대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이 마련되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교리실조차 없는 이곳에서 신자들은 식당과 작은 방에 한데 모여 단체 모임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교회는 현재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수녀원 건물을 빌려 20년 넘게 선교회 사무실과 성전으로 이용하고 있다. 건물 2층에 있는 성당은 80명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비좁아 선교회원 200여 명이 동시에 미사에 참례할 수 없다. 회합실은커녕 교리실도 모자라 회원들은 지하 식당 등에서 모임을 하고 있으며, 건물이 낡아 비가 오면 사제 집무실에 물이 샌다. 박 신부는 새 성전 건립을 위해 각 본당을 다니며 도움을 호소하고 있으며, 준본당 승격과 후원회원 증대 방안도 꾸준히 모색 중이다. "지금껏 21개 성당을 다니며 선교회 성전 건립의 중요성을 알렸습니다. 수화로 전하는 제 이야기에 귀 기울여준 신자들은 본당에 내야 할 교무금까지 손에 쥐여줍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한 형제임을 느꼈기 때문이죠." 박 신부는 비청각장애인에 비해 대체로 생활능력이 부족한 청각장애인 신자들을 위해선 교회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박 신부는 "전국 각지에서 온 청각장애인 신자들이 저를 만나 본당 사제에게 털어놓지 못한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고 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소통이며, 소통하려는 마음이라는 것을 느꼈다"며 "본당에서 청각장애인 신자를 만나면 손과 발로 말하려는 그들의 소리에 조금이라도 귀 기울여주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박 신부는 수화 아카데미를 열어 교회 내 청각장애인 신자에 관한 관심과 배려를 촉구하는 데 힘쓰고 있으며, 현재 수화로 하는 미사 통상문을 펴내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선교회는 5월 5일 오전 10시 선교회에서 교구장 염수정 대주교와 함께하는 일일 바자를 연다. 후원 문의 : 02-995-7394■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 선교회는 1957년 독일인 허 까리따스(1913~2005,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수녀가 서울 돈암동본당에서 청각장애인들에게 교리를 가르친 것을 계기로 시작됐다. '농아인의 어머니'로 불리는 허 수녀는 청각장애인을 위해 국수ㆍ인형공장까지 운영하며 이들 자립을 도왔다. 선교회 초대 담당 정순오(서울 한강본당 주임) 신부는 1989년부터 18년간 선교회를 이끌었다. 돈암동본당 농아부가 1965년 설립된 명동본당 농아부와 1990년에 합쳐져 현 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로 개편하고, 서울 수유동 지금의 사무실로 이전했다. 가톨릭농아선교회는 전국적으로 교구 및 지역별로 18개가 있으며, 서울에는 현재 200여 명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퇴사자22013.04.16
![[출판] YOUCAT(가톨릭 청년 교리서) 한국어판 출간](//cpbc.co.kr/CMS/newspaper/2012/09/rc/427088_1.0_titleImage_1.jpg)
[출판] YOUCAT(가톨릭 청년 교리서) 한국어판 출간이시대 청년들을 위한 삶과 신앙 안내서 신앙이란 무엇인가. 예수님은 진짜 기적을 행하신 걸까, 아니면 꾸며낸 이야기일까.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데, 지옥은 왜 있는 걸까.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는 뭘까…. 신앙을 가진 이들이라면 한 번쯤 고민했을 법한 질문이다. 특히 삶의 의미를 찾고 존재의 근원을 고민하며 일상과 신앙 사이에서 갈등하는 젊은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럴 땐 누군가 명쾌한 정답을 알려주면 좋겠지만 '누군가'와 '명쾌한 정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교리서로 눈을 돌려보지만 신학과 교회 가르침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면서 가톨릭적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밝혀주는 책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 「YOUCAT」(유캣)은 가톨릭교회가 이러한 고민을 토로하는 청년들 목소리에 귀 기울여 청년들 눈높이에 맞춰 발행한 가톨릭 청년교리서다. 책 제목 '유캣'은 'YOUth 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가톨릭 청년 교리)에서 따왔다. 오스트리아 주교회의가 수년간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이 책은 지난해 초 발간됐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지난해 8월 열린 스페인 마드리드 세계청년대회 참가자 전원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청년들이 이 교리서를 공부하며 신앙에 관해 계속 대화하길 바란다"고 했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올해 신앙의 해 개막을 앞두고 이 책을 추천도서로 선정하기도 했다. 책은 현재 전 세계 30개국 언어로 번역돼 200만 권 이상이 팔렸다. 한국어판은 최근 가톨릭출판사(사장 홍성학 신부)가 발행했다. 독일에서 신학을 전공한 번역가가 원문 번역에만 꼬박 6개월을 매달리며, 정확한 신학 개념 전달과 매끄러운 표현에 공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가톨릭교회교리서 중 500여 개 문답형식으로 간추려원본, 지난해 초 나와 세계 30개국 언어로 번역 출간교황청 신앙교리성, 신앙의 해 앞두고 추천도서로 선정다양한 자료, 사진 곁들여 쉽게 읽고 이해하도록 도와 ▨어떻게 구성됐나=노란색 표지가 인상적인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청년의, 청년에 의한, 청년을 위한' 가톨릭 교리서라는 점이다. 199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승인, 반포한 「가톨릭교회교리서」 내용 가운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궁금해하는 삶과 신앙에 관한 궁금증을 500여 개로 추려 문답형식으로 구성했다. △무엇을 믿고 있는가(교의) △그리스도의 신비를 어떻게 거행하는가(성사) △그리스도를 통해 어떻게 생명을 얻는가(윤리)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기도와 영성) 등을 다뤘다. 좀 더 깊이 있는 해설을 원하는 청년을 위해 각 문답에 해당하는 「가톨릭교회교리서」 항목을 표기해 둬, 원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도왔다. 이와 함께 모든 쪽에 문답과 관련된 성경 구절, 성인과 교부들 말씀, 격언 등을 실어 함께 묵상할 수 있도록 했다. 다양한 자료사진과 청년들 취향에 맞춘 편집으로 '쉽게 읽히는' 책이다. 서울대교구 청소년국은 자료사진을 제공하며, 책 발간을 적극 지원했다. 서울대교구 청소년담당 교구장대리 조규만 주교는 유캣 한국어판 발행을 축하하며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진리를 알고, 진리가 주는 자유를 누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유캣이 발간되기까지=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가톨릭교회교리서」를 두고 "가톨릭 교리를 온전하고 완전하게 설명한다"고 극찬했지만 1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과 신학적 깊이로 일반 신자들이 소화하기엔 벅찬 책이었다. 이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3년 당시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이던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현 교황 베네딕토 16세)을 의장으로 하는 특별위원회를 꾸려 교리서가 더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도록 하라는 임무를 내렸고, 2005년 요약편으로 그 결실을 봤다. 교황청은 「가톨릭교회교리서 요약편」 출간을 축하하며,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판 기념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때 한 여기자가 "내 자녀에게 교리서를 사주고 싶은데, 이 교리서는 아이들이 보기엔 너무 어렵다"며 "왜 청소년과 청년을 위한 교리서가 없느냐"고 물었다. 빈대교구장 쇤보른 추기경을 중심으로 한 오스트리아 주교회의는 이후 청년을 위한 교리서 제작에 돌입했다. 또 종교에 관계 없이 15~25살 청년 52명을 선발, 청년들 이야기를 직접 듣고 책을 제작해 온전히 청년들 언어로 풀어낸 교리서를 만들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책 발간을 기념하며 전 세계 청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열정과 끈기를 갖고 이 교리서를 공부하라"고 당부했다. 더불어 스터디 그룹이나 네트워크를 만들고 인터넷을 이용해 의견을 교환할 것을 권고했다. 교황은 "젊은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믿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이해해야 한다"며 "이 시대 도전과 유혹에 결연하고 힘 있게 대처하려면 부모님 세대보다 훨씬 더 깊이 신앙에 뿌리내려야 한다"고 했다. 한편 전 세계 청년들은 「유캣」 발간을 환영하며, 교황이 당부한 대로 유캣 공식 누리방(www.youcat.org)과 페이스북(www.facebook.com/youcat.org)을 통해 온라인상에서 신앙나눔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박수정2012.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