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의 길목에 \'노래\'라는 이정표 세워\'천상을 노래하는 수녀들\' 성바오로딸수도회 성가대가톨릭성가집에 수록된 성가곡 중 성탄시기곡 12곡을 골라 ‘첫 성탄’ 앨범 제작에 들어가 한창 녹음작업 중인 성바오로딸수도회 성가대. 이번 음반은 특히 수도자들의 합창과 현대음악, 고전음악이 어우러지면서 지구촌 사계절의 성탄 풍경을 그리는 편곡이 특징이다. “그들은 세상으로 향하는 길목에 ‘노래’라는 사랑의 이정표를 세웠다.” 96년 ‘사랑의 이삭줍기’, 2001년 2집 격인 ‘행복한 과일가게’를 통해 교회 안팎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성바오로딸수도회 성가대(단장 최명애 수녀). ‘3대(代)음반’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어린이부터 청장년,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금세 친숙해지는 노래들, 싱그러운 바람처럼 명징한 노랫말에 청아한 가락, 대중가요를 표방하면서도 전혀 통속스럽지 않은 우리 노래를 들려주는 수도자들을 만나 봤다. 때마침 출시한 성탄성가앨범 ‘더 훠스트 노엘(The First Noel, 첫 성탄) 얘기도 들어볼 겸 해서 11월19일 오후 서울 미아9동 본원에서 만난 수도자들의 모습은 한결같이 해맑다. 가끔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조차 꽃봉오리가 막 터지는 것 같고, 인터뷰 도중 들어본 성탄 성가 또한 예수 아기 곁으로 이끌어주는 것 같다. 70년대 앨범인 ‘세상에 외치고 싶어’(74년), ‘기쁨은 빗줄기처럼’(75년), ‘저마다의 먼 길을’(76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비결이 뭘까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박미라(에밀리아나) 수녀의 답변이 아주 적절하다. “합창에서 겸손을 배웁니다. 각기 다른 목소리가 어우러질 때 아름다워지죠. 자신의 목소리를 절제하고 다른 이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된다는 점에서 ‘함께’의 의미를 새기는 계기가 됩니다. 노래를 하는 것도 수도생활의 일부지요. 수도자들이 노래를 부르는 매력 중의 하나가 바로 ‘함께함’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늘 함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연습 시간은 매주 토요일 오후 7시 저녁식사 이후 1시간쯤에 불과하다. 각자의 사도직이 출판, 협력자담당, 광고촉진, 인터넷발송, 영상 등으로 다양하기 때문에, 성가대 참석 인원 또한 들쭉날쭉하다. 이럴 때마다 가장 힘이 되는 것은 역시 수도회 전공동체의 정성 어린 기도다. 이번에 나온 앨범은 예수 성탄의 진정한 뜻이 퇴색해가는 세상을 향해 던지는 사랑의 씨앗 같은 음반. ‘한 밤의 목자들’을 제외하고는 가톨릭성가집에 수록된 성탄시기곡을 골라 허수현(백석예술고 강사)씨의 편곡으로 타이틀곡 ‘첫 성탄’ 등 12곡을 선곡해 정성스럽게 녹음을 마쳤고, 가톨릭성가집에 실린 성탄노래 중 신자들이 자주 접할 수 없었던 곡도 많이 선곡했다는 게 특징이다.(카세트테이프 4500원, CD 1만원) 이제 성바오로달수도회 성가대는 ‘사랑의 이삭줍기’ 3집 앨범 준비에 들어간다. 사도직업무가 많아져 갈수록 힘이 들지만,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드러나게 되기를 바라는 한결 같은 마음으로 늘 ‘함께’ 하고 서로가 복음적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기도하면서. cpbc2002.11.26
최승룡 신부의 교회사 산책 (25) “저를 변호하여 주십시오”1921년 3월29일 황해도 사리원에서 이기준 토마스 신부“주교님께 성가책 한 권을 바칩니다. 제가 이 책 50권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만들었습니다. 저희 보통학교에는 남 녀 학생들이 있는데 교우들뿐 아니라 외인 아이들도 공부하러 오며 이들이 성체 강복 때 성가를 부릅니다. 부활 주일에 창 미사를 지냈는데 성가를 하도 잘 불러서 미사 참례한 교우들이 마치 이미 천당에 온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사리원에서는 천지 창조 이래 처음으로 이런 미사가 있었기 때문에 교우들은 이런 아름다운 노래를 듣고 감탄하여 마지 않았습니다. 제가 한 번 보시라고 바친 책에는 제가 알고 있던 많은 조선어 성가들이 수록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조선어 성가들을 성당에서 성체강복때 부를 수 있는지 또한 주교님의 인가가 필요한지 의심스럽습니다. 뮤텔 주교님께는 혹시 책망을 들을까 두려워 감히 책을 바치거나 말씀 드리지도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사실을 숨기기 보다는 책망 듣는 것이 낫다고 생각되어 주교님께서 홍콩에서 돌아오시면 책 한 권을 바치겠습니다. 만일 제가 책망을 듣게 될 경우 주교님께서 저를 변호하여 주십시오.” 조선말로 된 성가책으로 ‘천지 창조 이래 처음’으로 부활절 미사를 창(娼)미사로 봉헌하고 마치 ‘천당을 경험한 듯 했다’는 이신부의 보고서 내용은 조금 과장되기는 했지만 미루어 짐작이 가는 바다. 목소리가 아직 갈라지지 않은 아이들의 목소리로 그 아름다운 그레고리오 미사곡을 우리말로 불렀을 터이니 말이다. 1921년 3월의 이 보고서는 한국 천주교회 스물 두 번째 사제 이기준 신부가 자신이 만든 성가책에 대한 인준 여부를 조심스럽게 여쭙는 내용이다. 이 조선어 성가책은 1916년 사리원 본당을 설립하고 주임으로 활동하던 이 신부의 ‘앞서가는 의식’과 ‘열정적 사목’을 대변해주는 하나의 사례. 실제로 이 신부는 일제 하에서 중단되었던 각종 교리, 신심서를 출간, 신자들의 신앙교육을 꼼꼼하게 챙기는, 남다른 의욕과 열정의 소유자였다. “저는 음악에 정통하지 않습니다. 실제 저자는 수문품을 받은 김 시몬이고 저는 책을 만든 일군에 불과합니다. 이런 일에 있어서 주교님의 인준이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저 사리원의 제 아이들이나 가르치려고 만들었습니다. 만일 다른 신부들이 안다면 이 성가책을 청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몇 몇 신부들이 다 되면 한 권 보내달라고 청하였지만 주교님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몰라 감히 보내지 못합니다.” 교구장 뮤텔 주교의 부재중 보좌 유 주교에 올린 보고서에서 이 신부는 두 번에 걸쳐 인준 여부를 꼼꼼히 확인하면서 만일의 경우 ‘변호해 주십사’ 하는 요청의 말씀도 빼놓지 않고있어 미소 짓게한다. 다음의 유 주교의 답서는 ‘이 신부의 성가책’을 공적 예식에서 사용할 수 없음을 정중하게, 또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다. ‘사전(事前)인준’에 대한 아쉬움과 더불어 성가책 제작 노력에 대한 ‘약간의’ 칭찬을 첨부한 유 주교의 답서. 왠지 따뜻한 느낌과 함께 뮤텔 주교의 책망을 적극적으로 변호해 줄 것 같은 생각마저 들게 한다. “김 시몬과 같이 저술한 성가책은 등사한 기술이나 갖가지 성가들을 수집한 노력에 대하여 기쁘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 책을 등사하기 전에 인준을 청했어야 더 좋았을 것입니다. 교회법 1389조에서 1390조까지 자세히 보면 명백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시성이나 시복을 받지 아니한 우리나라 치명자들을 위해서는 기도나 노래가 성당에서 공적 예식인 미사나 성체 강복 때에 허락되지 않습니다. 사적으로는 상관없습니다. 그런 이유로 203,204,205,206,207쪽에 있는 노래들은 삭제합니다. 삭제된 책은 누구에게든지 줄 수 있습니다. 민주교께도 한 권 보내십시오. 칭찬하실 것입니다. 또 한가지 말씀드릴 것은 여섯 달 후에 원 신부(라리보)가 우 신부(빌모)와 함께 그와 같은 성가집을 출간할 예정이니 조선 성교회를 위하여 성가집 하나가 필요합니다.” *이기준 토마스 신부(1884~1977)는 충북 진천 배티 출신. 경기도 양성 미산리(미리내)에서 성장했으며 1899년 강도영 신부 추천으로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입학, 1913년 5월 사제로 수품됐다. 그 해 6월 평북 용천군 산태 본당 주임으로 사목을 시작, 황해도 검수 본당 주임을 거쳐 서흥 본당, 사리원 본당을 설립하면서 교세신장에 큰 몫을 담당했다. 춘천 약사리(현 죽림)본당에 이어 황해도 신천 본당, 장연 본당 주임을 역임한 바 있는 이 신부는 1942년 노기남 대주교가 서울교구장에 취임하자 명동 본당 5대 주임 겸 서울교구 부주교에 임명되었으며 일제말기와 해방 등 혼란의 시기에서도 신자 사목에 심혈을 기울였다. 1947년 교구 출판부 대신 가톨릭 출판사를 설립, 각종 교리 신심서를 출판하면서 한국교회 지적성장에 기여한 이 신부는 59년 은퇴 후에도 고해신부로 활동하다 1977년 노환으로 선종, 용산 성직자묘지에 안장됐다. cpbc2003.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