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로하시는 하느님[월간 꿈 CUM] 테마로 읽는 성경 _ 위로 (03) 삽화 _ 김 사무엘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너희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예루살렘에게 다정히 말하여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죗값이 치러졌으며 자기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주님 손에서 갑절의 벌을 받았다고 외쳐라.(이사 40,1-2) 제2 이사야 예언자(전통적으로 이사야서는 기록 시기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1-39장을 제1 이사야서, 40-55장을 제2 이사야서, 56-66장을 제3 이사야서라고 부릅니다)가 나라가 망한 뒤 이방 땅으로 유배를 끌려간 유다 백성에게 전한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뿌리 뽑힌 당신 백성을 염려하고 위로하시려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 들은 이들이 어찌 감동하지 않았겠습니까? 이 말씀의 배경은 기원전 540년경입니다. 기원전 587년 신바빌로니아에 의해예루살렘이 정복당해 나라의 주권을 잃은 지 한 세대 이상의 시간이 흐른 상태입니다. 특히 철저히 파괴되어 여전히 황폐해진 상태로 남아 있는 성전은 유다 백성에게서 하느님을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마저 빼앗아 갔습니다. 성전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 가운데 머무시는 처소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유배를 끌려간 유다 백성은 고향에서 추방당한 고통을 겪었으며 이방 땅에서 자신들의 문화와 종교마저 박탈당하는 시련을 맛보았습니다. 유다 포로들의 비탄을 시편 137편이 증언합니다. 바빌론 강 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우네. 거기 버드나무에 우리 비파를 걸었네. 우리를 포로로 잡아간 자들이 노래를 부르라, 우리의 압제자들이 흥을 돋우라 하는구나. “자, 시온의 노래를 한가락 우리에게 불러 보아라.” 우리 어찌 주님의 노래를 남의 나라 땅에서 부를 수 있으랴?(시편 137,1-4) 이들은 더는 시온의 노래, 즉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를 수 없었습니다. 이방 땅에서 하느님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이 극단적인 시련의 시기에 이사야 예언자의 선포가 이루어집니다. 이방 신들의 땅에서 예언자는 이 세상의 주권을 가진 유일한신은 하느님뿐이심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하느님께서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으셨기에,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씌워진 바빌론의 멍에를 벗겨주시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 주실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예언자의 이 선포를 통해 하느님은 고통 중에 있는 유다 백성을 위로하십니다. 예언자의 선포가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라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시작하는 사실에 주목합시다. 이 말씀은 현재형입니다. 하느님께서 바로 지금 당신의 말씀을 듣는 이들에게 직접 반복해서 약속하고 계십니다.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움직이시겠다고 말입니다. 약속에 충실하신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의 해방을 위해서 한 이방 임금을 이용하십니다. 기원전 538년 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 임금이 바빌로니아를 정복하고 포로로 끌려와 있던 유다 백성을 고향으로 돌려보내 준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키루스는 놀랍게도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을 돕기까지 합니다. 이 역사적 사건은 하느님께서 온 세상의 하느님이심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바빌로니아보다 강한 페르시아조차 하느님의 도구라면, 당연히 유다가 바빌로니아에 멸망한 것이 하느님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바빌로니아가 유다의 죄를 심판하기 위한 하느님의 도구였다는 사실의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이렇게 이사야의 예언, 즉 하느님의 약속은 그대로 실현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위로는 그저 연민을 드러내는 부질없는 말 몇 마디가 아니라 실제로 절망으로부터의 구원을 이루어 내는 힘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앞의 글에서 위로를 가리키는 히브리어에는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느님의 위로로 유다 백성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숨은 곧 생명입니다. 들숨과 날숨의 이어짐이 생명을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숨이 끊어졌다고 표현하죠. 창세기는 하느님께서 흙덩이에 숨을 불어넣으시자,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늘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펼치신 분 땅과 거기에서 자라는 온갖 것들을 펴신 분 그곳에 사는 백성에게 목숨을, 그 위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에게 숨을 넣어 주신 분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이사 42,5) 하느님의 위로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죽음의 고통을 겪던 유다 백성에게 생명을 돌려주었습니다. 글 _ 함원식 신부 (이사야, 안동교구 갈전마티아본당 주임, 성서신학 박사) 1999년 사제서품 후 성경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를 위해 프랑스로 유학, 파리 가톨릭대학교(Catholique de Paris)에서 2007년 ‘요나서 해석에서의 시와 설화의 상호의존성’을 주제로 석사학위를, 2017년 ‘욥기 내 다양한 문학 장르들 사이의 대화적 관계’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삽화 _ 김 사무엘 경희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건축 디자이너이며, 제주 아마추어 미술인 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주 중문, 강정, 삼양 등지에서 수채화 위주의 그림을 가르치고 있으며, 현재 건축 인테리어 회사인 Design SAM의 대표이다.2025.11.12
![[출판] 책꽂이- 미사통상문을 위한 라틴어 등](//cpbc.co.kr/CMS/newspaper/2013/02/rc/441382_1.1_titleImage_1.jpg)
[출판] 책꽂이- 미사통상문을 위한 라틴어 등 미사통상문을 위한 라틴어 황치헌 신부 지음/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2만 5000원----------황치헌(수원가톨릭대) 신부가 신학생들을 위해 만든 라틴어 교재다. 여느 교재와 달리 라틴어 미사통상문을 중심으로 라틴어를 익힐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미사통상문에 나오는 라틴어 기도문과 예식들을 해석하며, 상세한 문법 설명을 곁들였다. 또한 미사통상문에 나온 단어 외에도 라틴어로 된 신학 및 교리 용어, 철학용어, 라틴어 전례성가를 풀이했다. 신학, 철학, 전례를 공부하는 신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라틴어 교과서다. 교부들의 성경주해-구약성경Ⅸ, 잠언ㆍ코헬렛ㆍ아가 J,로버트 라이트 엮음ㆍ토머스 C.오든 책임편집/ 박영식ㆍ배승록 옮김/분도출판사/4만 8000원------------ 초기 교부들은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모습을 취하시기 이전부터 존재해온 삶의 심오한 문제들에 대처하는 가장 뛰어난 지혜가 잠언과 코헬렛, 아가서에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교부 주해서 84편에서 발췌한 1385개 본문을 수록하고 이를 세밀하게 분석, 해설했다. 「교부들의 성경주해」는 신ㆍ구약 성경에 관한 교부들의 사상과 신앙 정수(精髓)만을 뽑아 현대어로 옮긴 총서다.주님께 말할래요 소곤소곤 데레사 아메알 글/하케엘 핀예이루 그림/ 김동주 수사 옮김/성바오로/5500원------ '내 아이의 첫 기도'라는 부제처럼 어린이들이 기도할 때 첫걸음을 잘 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기쁠 때 바치는 기도 △화가 날 때 바치는 기도 △여행할 때 하는 기도 △무서울 때 하는 기도 △친구들을 위한 기도 △공부할 때 바치는 기도 등을 소개하면서 일상생활 모든 것이 기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예쁜 그림과 함께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기도문이 수록돼 있어 아이들이 즐겁게 기도하도록 이끈다.순례자의 기도와 노래김건정 지음/으뜸사랑/1만 4000원--------- 성가대 지휘자의 산티아고 도보 순례기다. 전례음악합창단 상임지휘자이자 전례음악 인터넷 카페(http://cafe.daum.net/patritius) 운영자인 김건정(파트리치오, 66)씨는 지난해 3월부터 약 한 달간 산티아고 길을 걸은 여정을 책으로 펴냈다. 성가대 지휘자답게 방문하는 성당마다 오르간을 유심히 살피고, 수도자들이 부르는 미사곡을 따라 부르며 묵상한 순례기가 눈에 띈다. 김씨는 "평생 바친 기도보다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바친 기도가 더 많았다"고 회고했다.가족의 탄생 이설아 지음/북하우스/1만 4000원--------- 생후 한 달 된 남자아이와 다섯 살 된 여자아이를 입양해 키운 엄마가 솔직하게 들려주는 가족 탄생 이야기다. 입양한 두 아이와 완전한 가족으로 거듭나기까지 과정을 가감없이 그려내 감동을 더했다. 엄마 이설아씨는 "그동안 아무도 공개적으로 얘기하지 않았던 입양의 맨 얼굴, 낯선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겪어내야 할 가슴 아픈 과정을 솔직하게 담아내고자 했다"면서 "보다 현실적인 입양 과정을 입체적으로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수정 기자 조은일2013.02.19

창세기 속 여성 ‘대등한 존재’로 번역한 선종완 신부 선종 50주기 학술심포지엄 한국 최초 근대 성서학자 재평가 사목 유산 조명, 시복 추진 속도 서울대교구 총대리 겸 시복시성위원회 위원장 구요비 주교를 비롯한 선종완 라우렌시오 신부 선종 50주기 학술 심포지엄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제공 “사람이 저홀로 있음이 좋지 않으니, 그와 대등(對等)한 돕는 이를 만들어 주겠노라.” 1958년 한국인 최초로 히브리어 구약 성경 본문을 우리말로 옮긴 선종완(라우렌시오, 1915~1976) 신부는 창세기의 여자를 남자와 ‘대등한 존재’로 해석했다. 이는 20년 뒤 서구 여성신학계에서 나온 ‘그에게 어울리는 짝’이라는 표현보다도 한 걸음 앞선 여성 시각의 번역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 선 신부가 학력과 경제적 형편 때문에 수도 생활의 기회를 얻기 어려웠던 여성들을 위해 1960년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를 설립한 것은 한국 가톨릭교회가 교육 사업을 통해 실천해온 복음 정신의 연장선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선 신부 선종 50주기를 맞아 11일 경기 과천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본원에서 ‘말씀으로 산 사제, 선종완 라우렌시오 신부’를 주제로 열린 학술 심포지엄에서다. 주제 발표를 맡은 이환진(감리교신학대학교 명예교수) 목사는 선 신부를 4세기경 불가타(대중 라틴어 성경)를 번역한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에 빗대 ‘동아시아의 예로니모’라고 불렀다. 이 목사는 “성경을 번역하기 위해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를 설립하고 수녀들과 함께 성경을 번역한 선 신부는 성 예로니모를 닮았다”면서 “성인이 바울라 성녀의 헌신으로 불가타를 번역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의 성경 번역 역시 수녀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동아시아 성경 번역 전통에서 이렇게 여성과 함께 번역하면서 여성 시각의 번역 성경을 내놓은 번역가는 찾기 어렵다”며 “‘그와 대등한 돕는 이’(창세 2,18)라는 번역이 대표적인 예”라고 말했다. 현재 가톨릭 성경은 해당 히브리어 본문 표현을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민석(대건 안드레아) 한국교회사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선 신부는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를 설립해 성경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공동체적 모델을 제시했다”며 “이는 성경을 학문적 연구 대상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살아 있는 규범으로 구현하고자 한 시도”라고 역설했다. 이어 “그는 배우지 못한 여성들도 수도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길 바라며 성경 번역으로 얻은 수익금으로 수녀회를 설립했다”며 “의료 봉사·교육·사회사업 때문에 학력 등을 입회 자격으로 요구했던 여느 수도회와 달리, 초등학교 졸업 정도의 학력만 갖추면 받아들여 수련을 받게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는 선 신부가 신학교에 다녔던 일제강점기, 한국 교회가 학생들의 어려운 사정을 고려해 무료 교육을 시행하고자 한 분위기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며 “선 신부의 생애는 용소막이라는 굳건한 신앙 공동체와 한국 가톨릭교회의 신학교 교육이라는 역사적·제도적 기반 속에 형성된 결과”라고 풀이했다. 주원준(토마스 아퀴나스)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선 신부의 1948~1952년 로마·예루살렘 유학 시절 육필 노트 44권과 구약 성경 번역본 「선종완역」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노트에는 히브리어·그리스어뿐만 아니라 아람어·수메르어·아카드어·이집트어 등 고대 근동 언어를 체계적으로 학습한 내용과 발굴 유물을 스케치한 기록이 담겨 있다. 주 연구원은 이를 토대로 “선 신부는 가톨릭과 개신교를 통틀어 고대 근동학과 본문 비평을 가장 먼저 수용한 ‘한국 최초의 근대적 성서학자’라고 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선종완역」은 한국 최초의 근대적 성서 입문서”라며 “가톨릭 전승에 충실하면서도 ‘야훼’나 ‘판관기’ 등 수많은 번역어를 참신하게 제시한 연구서”라고도 말했다. 이날 심포지엄은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와 선종완신부시복추진위원회가 마련했다. 선 신부의 제자인 서울대교구 총대리 겸 시복시성위원회 위원장 구요비 주교가 축사를 맡았다. 선 신부는 말년에 원주교구 소속이었으나 1976년 서울 명동 성모병원(현 가톨릭회관 건물)에서 선종했으므로, 그의 시복시성 안건의 관할 주교는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다. 정 대주교는 올해 초 선 신부의 시복시성 추진 요청을 받아들였으며, 청구인인 말씀의성모영보수녀회 총원장 정복례 수녀가 수녀회 소속 노경숙 수녀를 안건 청원인으로 지명한 것을 승인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이학주2026.07.22
![[출판]책꽂이- 미사 성제, 그리스도교 삶의 중심](//cpbc.co.kr/CMS/newspaper/2013/05/rc/454191_1.1_titleImage_1.jpg)
[출판]책꽂이- 미사 성제, 그리스도교 삶의 중심 ▨미사성제, 그리스도교 삶의 중심 (베네딕토 16세 지음/김한수 옮김/가톨릭대학교출판부/1만 2000원)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 미사 강론집으로 미사와 미사의 핵심인 성찬례의 참뜻을 일깨운 강론을 소개했다. '생명의 빵' '주일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성체성사: 사랑의 샘이자 배움터' '성찬 공동체인 교회' 등 목차만 훑어봐도 전임 교황이 강조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전임 교황은 2005년 이탈리아 전국 성체대회 폐막미사 강론에서 "주일 의무는 어깨에 짊어진 멍에가 아니라 성체를 통해 양식을 얻는 시간"이라며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들과 함께 친교를 체험하는 예식에 참여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에게 기쁨이 되고 꼭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교회사Ⅱ/1 (에른스트 다스만 지음/하성수 옮김/분도출판사/2만 원) 교회역사학자 에른스트 다스만(82) 신부의 「교회사」 3부작 가운데 두 번째 책이다. 분량이 많아 1,2권으로 나눠 발행됐고, 2권은 곧 나올 예정이다. 「교회사Ⅱ/1」은 4~6세기 교회사를 다뤘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시대부터 고대 후기가 끝날 때까지 역사를 장식한 교회 정치적 사건에 집중했다. 교회와 국가 간 논쟁, 교회와 사회 집단과 관계를 명쾌히 해석했다. 교황이나 황제를 중심으로 한 '위로부터 역사' 기술이 아닌 교부 문헌에 나오는 글을 중심으로 '아래로부터 역사'를 전개한 것이 특징이다. ▨하느님 말씀 2 (J.라레아 지음/전주교구 옮김/바오로딸/2만 원) 인도 살레시오수도회 J.라레아 신부가 쓴 다해 주일 말씀 해설 두 번째 권이다. 삼위일체 대축일부터 그리스도 왕 대축일까지 복음 해설을 담았다. 라레아 신부의 말씀 해설 책은 성경에 뿌리를 두고 성경말씀을 통해 하느님 뜻을 정확히 전달하고 있어, 강론을 준비하거나 성경을 가르치는 이들에게 필독서로 꼽힌다. 구약과 신약을 넘나들며 전례시기 특성과 의미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놨다. 교구 사제들이 번역했다. 전주교구장 이병호 주교는 "성경을 바탕으로 설교를 준비하는 데 도움을 주는 최고의 책"이라고 극찬했다. ▨오늘은 5월 18일 (서진선 지음/보림/1만 800원) 5ㆍ18 광주 민중항쟁을 다룬 동화. 초등학생 막내가 쓴 일기 형식으로 1980년 5월 광주 이야기를 풀어냈다. 친구들과 총싸움을 즐기던 막내는 동네에서 진짜 총을 든 군인들을 보게 된다. 총을 든 군인들이 멋있어 보였지만, 밤새 들려오는 총소리는 무섭기만 했다. 누나는 집을 나간 뒤 며칠 째 들어오지 않았고, 아빠 엄마는 누나를 찾으러 다니며 울기만 했다. 5ㆍ18 당시 고3이었던 동화작가 서진선(마리아 막달레나)씨는 "그때 처음으로 죽음과 가족들 슬픔을 목격했고 시간이 흘러 이제야 이야기보따리 하나를 풀어놓는다"고 말했다. ▨그분이 말씀해 주실 거야 (호세 마리아 살라베리 신부 지음/안영주 옮김/마리아회유지재단/8000원) '하느님의 종' 파우스티노(1946~1963) 생애를 그린 책이다. 스페인에서 태어난 파우스티노가 16년 7개월이라는 짧은 삶을 살면서 하느님 부르심에 응답하는 과정을 담았다. 파우스티노는 13세 때 성소를 발견하고, 마리아회에 입회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일년 뒤 림프암에 걸려 혹독한 투병생활을 하다 숨을 거뒀다. 책은 파우스티노가 쓴 일기와 주변 사람들 증언을 통해 파우스티노가 지닌 신심을 보여 준다. 저자는 파우스티노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호세 마리아 살라베리 신부로, 그는 "파우스티노는 삶을 항상 기뻐했다"고 말했다. 박수정 기자 조은일2013.05.21

유혹과 구원의 상징[신지현의 ‘성서와함께’ 가꾸는 기도의 정원] 17. 사과 성서와함께 제공 중요한 이야기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등장하는 과일, 바로 사과다. 백설공주의 독 사과, 뉴턴의 눈앞에 떨어진 사과, 빌헬름 텔의 어린 아들 머리 위에 얹힌 사과. 최근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영화 ‘오디세이’의 서막인 트로이 전쟁을 발발시킨 것도 다름 아닌 파리스 왕자의 황금 사과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과는 아담과 하와가 따먹은 사과일 것이다.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유한한 삶을 살도록 한 원흉이니 말이다. 그런데 성경 속 에덴동산의 선악과가 실제로 어떤 열매였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성경에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로만 언급될 뿐이며, 서양 회화와 문학 작품에서 사과로 흔히 묘사되다 보니 그 통념이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선악과가 석류·무화과·모과 또는 살구라고 주장한다. 성경을 라틴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사과가 되었다는 가설, 중동에서 나는 감귤류인 에트로그(etrog, 시트론)가 고대 그리스에서 ‘페르시아 사과’·‘황금 사과’라고 불리다가 서양 문화권에서 사과로 잘못 알려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쨌든 사과는 지난 수백 년 동안 다양한 예술 작품에서 선악과를 대표하는 과일로 묘사되었다. 창세기 3장의 내용을 그린 성화에서 사과는 유혹과 인간의 타락을 상징하며, 정물화에 썩은 사과가 하나 또는 여러 개 있을 때 이는 원죄를 나타내는 소재로 해석되곤 한다. 반면 성화 속 어린 예수님이나 성모 마리아가 손에 사과를 들고 있는 경우에는 구원·구속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 사과가 성경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가서에는 “나의 연인은 숲 속 나무들 사이의 사과나무”(아가 2,3), “사과로 내 기운을 북돋아 주셔요”(아가 2,5) 등 사과라는 이름이 직접적으로 언급된다. 여기서 사과는 야생에서 자라는 원생종으로 추정되며, 오늘날 우리가 소비하는 사과는 오랜 세월 수많은 교배를 거쳐 만들어진 품종들로 현재 사과나무속에는 무려 7500가지 이상의 재배종이 있다. 한편 예수님과 황금 사과에 대한 재미있는 전설도 있다. 이탈리아의 성녀 아분단시아가 여덟 살 어린 소녀였을 때, 그녀는 황금 사과를 들고 있는 성화 속 어린 예수님을 보며 그 황금 사과를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천진난만한 마음이 사랑스러워 보였던 것일까. 그림 속 예수님께서 아분단시아에게 사과를 건네주었다. 너무 기뻤던 아분단시아는 예수님께 무언가를 드리고 싶어서 한겨울 추위에도 밖으로 뛰쳐나갔는데, 놀랍게도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해 있어 꽃을 꺾어 제대에 바쳤다고 한다. 신지현cpbc2026.09.09
창조의 하느님: 그리스도교 창조론과 환경보호운동](//cpbc.co.kr/CMS/newspaper/2011/09/rc/388997_1.1_titleImage_1.jpg)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14)창조의 하느님: 그리스도교 창조론과 환경보호운동인간, 환경 보전의 책임 지녀환경은 우리 시대 큰 화두다. 인간에게 행복한 미래를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했던 과학과 기술은 편리함만큼이나 재해와 두려움을 가져다주고 있다. 인간 이기심이 인류 파멸이라는 불행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그 대표적 사례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환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또 앞장서야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교 창조론에 담겨 있는 하느님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일부 환경운동가들과 구별되는 입장도 지니고 있어야 한다. ▨ 그리스도교 창조론은 인간의 창조보전 책임을 말한다 하느님께서 보시기 좋게 창조한 세상을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나는 누구인가?''어디서 왔는가?'하는 세상과 인간 자신의 기원에 대한 해답을 갈구한다. 그리스도교 신앙과 신학이 그에 대한 답을 제시한 것이 창조론이다. 창조론은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한때 계몽주의와 대립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교회는 지동설을 주장하던 자연과학자 갈릴레오를 단죄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성경에 나타난 창조 진술이 과학적 지식과 아무런 관련 없이 종교와 믿음에만 상관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지면서 갈등이 잦아들고 있다. 환경이 파괴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창조신앙을 새롭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맡기신 에덴동산을 돌보고 관리할 책임이 있음을 깨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창세기는 '흙을 소재로 한 인간 창조'를 언급하고 있다. 황무지에서 첫 창조물로 인간이 생겨나고 인간은 흙으로 만들어짐으로써 인간과 흙이 밀접한 관계를 지닌 것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많은 신화에서도 볼 수 있다. 아담은 하느님 말씀을 거스른, 죄지은 구체적 개인이기도 하지만 종(種)으로서 인간 전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땅은 인간이 생활하는 환경을 말한다. 인간은 물질적인 것으로 만들어졌고(창세 2,7), 땅은 야생식물과 경작식물을 돋아나게 하고 인간과 동물이 생존할 수 있는 양식을 산출한다(창세 2,8-15). 여기서 가르치고자 하는 바는 인간은 물질과 연결된 존재이자 땅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 존재라는 점이다. 동시에 인간은 인간 창조주의 호의와 은혜를 받은 존재로서 하느님 정원을 경작하고 돌봐야 할 의무를 지닌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어렵고 귀찮은 노동의 의무를 면제시키지 않는다. 여기서 인간 노동에 대한 본질적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이 때 말하는 일이나 노동은 농사일이나 노동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삶 전 영역에서 하느님 이름으로 하는 모든 일, 인간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유지하고 보전시켜 나가는 모든 일을 의미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인간은 분명 환경보전에 대한 책임을 지니고 있다. ▨ 그리스도교 창조론은 인간 중심을 강조한다 오늘날 생태주의 옹호자들은 성경의 인간 중심주의에 반론을 제기한다. 그들은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창세 1,28)는 성경 구절을 환경파괴 주범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국가가 성경에 근거해 자연과 환경을 파괴한 책임을 고백해야 한다면 그리스도교 국가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는 무엇을 근거로 환경을 파괴했는지 묻고 싶다. 성경은 창세기와 시편에서 하느님이 인간에게 세상을 다스리도록 하셨다고 표현했다. 이 지배권에는 봉사의 의미가 포함돼 있다. 창세기에서 인간이 동물에게 행사하는 다스림은 땅을 정복하는 것과는 구별된다. 동물을 다스리는 것도 결코 착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때문에 오늘날 인간은 생태계 파괴에 책임이 있다. 하느님 선물과 인간 사명으로서 지배권은 인간이 땅을, 즉 세상을 돌보라는 것이었는데 오히려 자연을 파괴한 것이다. 성경의 인간 중심주의가 잘못이 아니라, 잘 다스리지 못한 인간에게 책임이 있다. 하느님께서 주신 인간 생명은 다른 살아 있는 피조물들에 주신 생명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인간은 마치 우주의 절정과도 같고 모든 피조물 중에 최상의 것인 아름다움을 지닌 존재다. 토마스 아퀴나스 역시 영혼을 지닌 인간은 다른 혼을 지닌 생물보다 탁월하다고 했다. 교회는 인간 중심을 표명하지만 교회는 분명 인간 이외의 생명과 자연도 소중하게 여긴다.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는 낙원으로부터 추방당하고, 이후 인간은 생의 마지막 날까지 수고로움을 겪게 됐다. 그러나 하느님 뜻 안에서 우리는 은총을 발견할 수 있다. 여인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받고, 그의 임신은 하느님에게서 받은 하나의 축복이 됐다. 하느님은 그들이 추방되는 순간에도 가죽으로 된 옷을 만들어 입혀 주신다. 이러한 은총은 카인과 아벨, 홍수설화에서도 발견된다. 결국 하느님을 창조주로 드러내는 창세기는 인간 범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비를 베푸시는 자비의 하느님, 은총의 하느님을 보여준다. 이는 하느님께서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는 세상과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함이란 것을 드러낸다. 정리=김은아 기자 euna@pbc.co.kr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는 평화방송 라디오(FM 105.3㎒)에서 매 주일 오후 6시 5분에 방송되며, 평화방송TV에서는 매주 화요일 오전 8시(본방송), 수요일 새벽 4시와 저녁 9시, 금요일 오후 4시, 주일 오후 6시에 재방송된다. 인터넷 다시 보기 www.pbc.co.kr조은일2011.09.06

헛된 위로[월간 꿈CUM] 테마로 읽는 성경 _ 위로 (02) 삽화 _ 김 사무엘 인간의 위로는 종종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욥의 경우를 봅시다. 욥은 흠 없고 올곧으며 하느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이였습니다.(욥 1,1 참조) 하느님께서도 욥을 땅 위에 다시 없을 사람으로 인정할 정도였습니다.(욥 1,8 참조) 그런데 사탄은 욥의 의로움에 불순한 동기가 숨어있을 수 있다고, 즉, 의로운 행위의 결과로 주어지는 복 때문에 욥이 그렇게 행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인간의 이익을 위한 욕망에 이용당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사탄에게 욥에 대한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그 결과 욥은 재산을 잃고, 자녀를 잃고, 건강마저 잃습니다. 이렇게 고통 중에 있는 욥을 친구 엘리파즈, 빌닷, 초바르가 찾아옵니다. 방문의 목적은 위로입니다. 욥의 세 친구가 그에게 닥친 이 모든 불행에 대하여 듣고, 저마다 제 고장을 떠나왔다. 그들은 테만 사람 엘리파즈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초바르였다. 그들은 욥에게 가서 그를 위안하고 위로하기로 서로 약속하였다.(욥 2,11) 친구들이 고통 중에 있는 욥 앞에서 첫 번째로 취한 태도는 침묵입니다. 그들은 이레 동안 밤낮으로 그와 함께 땅바닥에 앉아 있었지만, 아무도 그에게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의 고통이 너무도 큰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욥 2,13) 때로는 침묵이 가장 좋은 위로 혹은 유일한 위로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친구들은 욥의 고통에 공감해 주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 결국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합니다. 친구들은 욥의 고통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알려주려 합니다. 그들의 생각에 욥은 죄를 지어서 하느님의 벌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욥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하느님의 용서를 받으면 고통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욥은 친구들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은 죄가 떠오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친구들의 말은 오히려 욥의 고통을 가중할뿐입니다. 친구들은 욥을 위로하는 데 실패합니다. “자네들은 모두 쓸모없는 위로자들이구려.”(욥 16,2) 이제 하느님께서 직접 등장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변호자를 자처하며 위로자 대신 고발자가 되어버린 친구들을 비난하시고, 욥의 의로움을 인정하십니다. “이 모든 것은 너희가 나의 종 욥처럼 나에게 올바른 것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욥 42,8) 비록 하느님께서 욥의 고통의 원인을 밝히지는 않으시지만, 적어도 친구들의 말처럼 자신의 죄 때문에 겪는 고통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욥의 자녀와 재산을 이전보다 더 풍성하게 돌려주심으로써 그를 위로하십니다. 이렇게 욥기는 진정 위로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심을 보여줍니다. 하느님께서 욥을 위로하신 다음 그제야 가족과 친구들이 욥을 위로한답시고 몰려오는 장면은 해학적입니다. 그의 형제들과 자매들과 옛 친구들이 모두 그의 집에 와서 그와 함께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에게 들이닥치게 하셨던 모든 불행에 대하여 그를 동정하고 위로하며, 저마다 은전 하나와 금 고리 하나를 그에게 주었다.(욥 42,11) 시편은 위로자를 찾을 수 없는 절망적인 현실을 말합니다. 모욕이 제 마음을 바수어 저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동정을 바랐건만 허사였고 위로해 줄 이들을 바랐건만 찾지 못하였습니다.(시편 69,21) 코헬렛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는 또 태양 아래에서 자행되는 모든 억압을 보았다. 보라, 억압받는 이들의 눈물을! 그러나 그들에게는 위로해 줄 사람이 없다. 그 억압자들의 손에서 폭력이 쏟아진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위로해 줄 사람이 없다.”(코헬 4,1) 이것은 코헬렛 저자 개인만의 말이 아니라, 기원전 587년 나라의 멸망과 바빌론 유배를 겪은 유다 백성 전체의 절망적 부르짖음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애가도 정복당하고 파괴된 예루살렘과 성전을 두고 한탄합니다. “시온이 두 손을 내뻗었건만 위로해 줄 이 아무도 없다오.”(애가 1,17) “그들은 제가 탄식하는 것을 듣건만 아무도 저를 위로해 주지 않습니다.”(애가 1,21) 어떤 사람에게서도 위로를 찾을 수 없어 절망에 빠진 이들을 누가 위로할 수 있을까요? 오직 한 분 하느님만이 참으로 위로하실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고통, 버려짐,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심으로써 위로해 주십니다. 글 _ 함원식 신부 (이사야, 안동교구 갈전마티아본당 주임, 성서신학 박사) 1999년 사제서품 후 성경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를 위해 프랑스로 유학, 파리 가톨릭대학교(Catholique de Paris)에서 2007년 ‘요나서 해석에서의 시와 설화의 상호의존성’을 주제로 석사학위를, 2017년 ‘욥기 내 다양한 문학 장르들 사이의 대화적 관계’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삽화 _ 김 사무엘 경희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건축 디자이너이며, 제주 아마추어 미술인 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주 중문, 강정, 삼양 등지에서 수채화 위주의 그림을 가르치고 있으며, 현재 건축 인테리어 회사인 Design SAM의 대표이다.2025.10.23
 아버지이신 하느님; 아빠, 아버지](//cpbc.co.kr/CMS/newspaper/2011/09/rc/390163_1.1_titleImage_1.jpg)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15) 아버지이신 하느님; 아빠, 아버지모든 인간들의 아버지 하느님 구약성경에서 복합적 요소를 지닌 신의 면모가 야훼 표상 안에 수용된 것과 같이 신약성경에서 단일적 성격을 띤 하느님 면모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어느 때는 하느님 심판에 대해, 또 어느 때는 하느님 자비에 대해 언급한다. 또는 심원한 간격을 지닌 하느님,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아무도 보지 못한 하느님을 예수님께서는 친히 보여주시고 명백한 말씀으로 알려주신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찬란한 빛이요, 하느님의 본질을 그대로 간직하신 분"(히브 1,3)이다. 그러므로 신약의 하느님은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나 뵐 수 있는 분이 된다. 이러한 기록은 하느님은 오직 한 분밖에 안 계시다는 것을 분명하게 하는 한편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버지로 소개하신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로 시작하는 신경과 하느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가르치신 것에서 알 수 있다. 이처럼 하느님의 자기 계시가 예수 그리스도 생애와 말씀을 통해 직접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은 새로운 사실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점이 이스라엘 민족에 의해 전수돼 온 하나의 신앙이 이스라엘 사람들 사상과 그리스도인들 사상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이 된다. 야훼 하느님께서는 한때 이스라엘 민족을 당신 백성으로 삼았지만 이제는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들을 당신 백성으로 만들었다. 신약의 하느님도 구약의 하느님처럼 말씀하시고 활동하시는 인격적 하느님이시다. 특히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예배드림으로써 하느님 인격성은 더 새롭게 드러난다. 하느님은 예수님을 세례와 거룩한 변모를 통해 '하느님의 아들'로 불렀고, 예수님 또한 하느님을 '압바' 또는 '아버지'라고 불렀다. 특히 '압바'란 말은 아람어로서 일차적으로 가정에서 어린 아이가 아버지를 부를 때 사용하는 매우 정다운 호칭이다. '아버지'라는 단어에 주의를 기울여보자. 이 단어는 종교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오랜 역사를 통해 'genitore(생식적 차원에서 생명을 준 사람)'를 의미한다. 생명의 창조자, 생활의 부양자, 보증자인 것이다. 신이 아버지라는 사상은 아주 보편적이지만 구약에서는 하느님을 가리켜 '압바' '아버지'라고 부른 적이 없다. 구약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은 스스로를 하느님 아들로 여겼다. 물론 여기서 '아들됨'은 신화적 의미에서가 아니다. 역사 안에서 구원 업적에 대한 구체적 체험을 바탕으로 인식된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것을 특권으로 생각하고 즐겼다. 신약성경은 그 완성을 보여준다. 구약성경이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생각해왔던 것을 신약성경은 바로 하느님이 아버지라고 확정지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하느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누구나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분으로 계시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이와 같은 모습은 루카복음 '잃었던 아들'의 비유에 구체적으로 잘 묘사돼 있다. 예수님 강생은 하느님 아버지로서의 사랑이 실제 사건이 되게 한 것이다. 특히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마태 11,27)라는 말씀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말씀으로 하느님이 아들 예수님을 통해 모든 인간들 아버지이심이 선언됐기 때문이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하느님 자녀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 자녀가 되는 데는 옳은 사람, 옳지 못한 사람의 구별이 없다. 선한 사람 악한 사람, 여성과 남성의 차별도 있을 수 없다. 예수님은 오히려 대접받지 못한 당시 여성들에게 극히 이례적인 존경심을 갖고 대하셨고, 힘없는 어린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애정을 갖고 그들을 받아들였다. 병자나 소외된 인간일수록, 장애자일수록 그들을 위해 필요한 자로 처신하셨다. 하느님은 모든 인간의 의식주는 물론 머리카락 하나까지 돌보신다. 모든 인간이 예외없이 귀한 존재인 까닭이다. 때문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일지라도 그에게 베푸는 선행은 하느님께서 세상 창조 때부터 준비한 상급으로 베풀어진다. 우리는 구약성경이 어렴풋이 보여준 하느님 부성을 예수님에게서 명료하게 보게 된다. 신약의 커다란 특징은 성부의 종말론적 계시가 예수님이라는 인격 안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났다는 점이다. 아버지로 계시된 하느님께 이제 누구나 온전한 신뢰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열어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은 부성애로 인간을 감싸주시고 보살펴주시는 아주 자상한 분이라고 믿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소박한 신뢰성과 경외감을 동시에 잘 표현해주고 있는 좋은 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하느님 권위와 주권을 자발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전인적 행위로써 하느님께 대한 경외감을 심화시켜준다. 하느님은 만민의 심판관인 동시에 아버지로서 악에 대한 진노를 참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버지로서 자비로운 하느님과 준엄한 하느님 모습을 분명하게 드러내신다. 그러므로 하느님 진노도 자비와 함께 인간에 대한 하느님 부성애라고 말할 수 있다. 즉 하느님 진노는 인간 죄에 대해 무관심할 수 없는 사랑의 한 측면이다. 하느님이 아버지라고 해서 하느님 정의와 공정성이 배제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하느님을 경외함으로써 모든 행실에 있어서 하느님 자녀다운 모습을 드러내도록 촉구하고 있다. 정리=김은아 기자 euna@pbc.co.kr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는 평화방송 라디오(FM 105.3㎒)에서 매 주일 오후 6시 5분에 방송되며, 평화방송TV에서는 매주 화요일 오전 8시(본방송), 수요일 새벽 4시와 저녁 9시, 금요일 오후 4시, 주일 오후 6시에 재방송된다. 인터넷 다시 보기 www.pbc.co.kr조은일2011.09.20
![[전국 교구장 새해 사목교서] 서울대교구-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신앙의해](//cpbc.co.kr/CMS/newspaper/2012/12/rc/435834_1.2_titleImage_1.jpg)
[전국 교구장 새해 사목교서] 서울대교구-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신앙의해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 하느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구민 모두에게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전임 정진석 추기경님은 2011년도 사목교서를 통해 2020년을 전망하며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를 말씀하셨습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자의교서 「믿음의 문」을 발표하고 신앙의 해를 선포하셨습니다. 저는 두 분의 뜻을 이어받아 올해를 신앙의 해에 초점을 맞추면서 새로운 복음화를 추진하고자 합니다. 새로운 복음화는 새로운 열정과 방법, 표현으로 시대적 상황과 조건에 맞는 복음화의 길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새롭게 복음화하기 위해서는 교회에 속한 이들이 먼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기쁨과 행복을 체험하면서 사랑과 친교의 공동체를 이뤄야 합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해 주님 초대에 감사한 마음으로 응하고 신앙을 살아갈 것을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성실히 신앙을 증거하는 삶을 사는지는 의문스럽습니다. 지난해 발간한 「서울대교구 본당사목 활성화를 위한 기초자료 수집 설문조사 보고서」에는 우리 신자들 신앙생활의 기초가 매우 약하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이 그리스도께 대한 굳건한 신앙으로 사랑과 친교의 공동체를 이룬 것처럼 우리 교구는 새해 한 해 동안 '신앙의 기초'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첫째, 성경을 통해 하느님께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을 통해 하느님께서 어떻게 세상 만물을 창조하고 당신 백성을 구원으로 이끄는지 알게 되며, 신약성경을 통해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 죽음과 부활, 성령의 파견, 그리고 사도들의 놀라운 신앙 증거와 열정을 배우게 됩니다. 둘째,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더욱 가까워져야 합니다. 기도는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머무는 곳마다 하느님과 대화했고, 모세 역시 기도를 통해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 하느님께 자주 기도했습니다. 또한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초대교회 공동체 역시 기도하는 일에 전념했습니다. 셋째, 교회 가르침을 배워야 합니다. 하느님 뜻은 교회를 통해 분명히 드러났기에, 교회 가르침에 충실해야 합니다. 교회 가르침에 충실함으로써 우리는 신앙을 더욱 굳건히 다질 수 있습니다. 특히 「가톨릭교회교리서」는 교회가 2000년 동안 받아들이고 지키고 제공했던 소중한 가르침입니다. 넷째, 미사에 자주 참례해야 합니다. 미사는 그리스도교 생활의 원천이자 정점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먹는 우리는 그리스도와 친교와 일치를 이루며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룹니다. 일치의 성사인 성체성사를 더욱 정성껏 봉헌하기 위해 미사 전에 성실히 준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다섯째, 사랑의 실천을 통해 신앙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사랑 안에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갈라 5,6)이고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야고 2,17)입니다. 진정한 신앙인이 되려면 그리스도의 손과 발이 돼 세상에 나가 봉사함으로써 신앙을 증거해야 합니다. 조은일2012.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