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산 이들의 하느님](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3/18/ZFV1773800245402.jpg)
[생활속의 복음] 산 이들의 하느님사순 제5주일 요한 11,1-45 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 ‘라자로의 소생’, 1517년~1519년. ‘카나의 혼인 잔치’를 시작으로 일곱 표징을 배열하는 요한 복음은 ‘죽은 라자로의 소생’을 마지막 표징으로 소개한다. 이 표징 때문에 최고 의회는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11,45-57 참조)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11,3)이며 “친구”(11,11)인 라자로를 살린 표징에서 예수님의 ‘눈물’(슬픔)이 눈길을 끈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면서 우는 장면(루카 19,41 참조)과 대조하여, 예수님은 죽은(잠든) 친구 때문에 ‘마음이 북받치고 산란해져’(11,33 참조) “눈물을 흘리셨다.”(11,35) ‘예수님이 참 하느님’(1,1 참조)임을 도입부터 주창한 요한 복음은 눈물을 통로로 ‘예수님이 참 인간’임을 공표하였다. 예수님은 아픔과 슬픔을 느끼는 ‘연약한’ 인간이었다. “흙에서 나온 것은 무엇이나 흙으로 돌아가듯”(집회 41,10)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죽음은 자연의 이치다. 인간의 죽음은 의학적 관점에서 심폐 혹은 뇌 기능의 영구적 정지로 정의된다. 그리스도교는 이와 다른 관점에서 죽음을 이해한다. 신앙 언어의 고유 의미가 일상 언어와의 혼용으로 인해 곡해되는 사례들이 발생하는데, 대표적 예가 죽음이다.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마르 12,27)은 세상 창조 후 ‘세상 밖에서’ 방관하는 하느님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활동하는 하느님이다.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라는 전례 문구가 이를 표명한다. 하느님의 지속적인 창조 업적에 대응하여, 슬픈 숙명인 피조물의 죽음에 대한 적절한 해명이 요청된다. 성경은 첫 인간의 죄로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다고 보도한다.(로마 5,12 참조) 죄는 일차적으로 세상 안에서 활동하는 하느님과의 ‘친교 거부’이며, 그 결과인 죽음은 ‘단절 상태의 연속’(하느님 밖)이다. 반면 생명은 ‘하느님 안’에 있는 상태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는 죽음과 관련하여 이렇게 부연한다.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루카 15,24) 하느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죽음 안’(무덤)에 갇힌 인간을 ‘생명 안’(부활)으로 해방하였다.(에페 2,5 참조) 인간은 ‘죽음 전’(이승)과 ‘죽음 후’(저승)의 분리에 익숙하다. 부활을 믿는 신앙인은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위령 감사송 1)이라고 고백한다.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1코린 15,28) ‘산 이들(생명)의 하느님’은 ‘죽음 안’(어둠/거짓 속)에서 ‘생명 안’(빛/진리 속)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사망진단이 내려진 망자가 ‘생명 안’에 있을 희망을 제시하는 사후세계 교리는 ‘생명’(하느님 안)과 ‘죽음’(하느님 밖)의 경계에 선 이들에게 결단을 촉구하면서 ‘죽음 후 생명 안’(천국)에 있기 위해 ‘죽음 전 생명 안’(사랑)에 있기를 재촉한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죽음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1요한 3,14) 라자로를 무덤(죽음 안)에서 나오게 하였듯, 태초부터 ‘생명 안’(아버지 안: 10,38 참조)에 있는 예수님은 믿는 이에게 ‘영원한 생명’, 곧 ‘생명 안’(아들 안: 3,15 참조)을 선사한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참 인간’으로 죽고 묻히셨으며, ‘참 하느님’으로 부활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 cpbc2026.03.18

속죄와 참회로 지내는 사순 시기 사순 의미와 전례 특징 “사람은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십시오.”(창세 3,19) ‘재의 수요일’은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첫날이다. 성경에서 ‘재와 먼지’는 속죄와 참회의 상징으로,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은 참회와 슬픔을 표현할 때 머리에 재를 뒤집어쓰고 자루 옷을 입었다.(2사무 13,19; 에스 4,1) 이러한 참회 예식이 교회 전통 안으로 받아들여지며 재의 수요일이 형성됐다. 이날 재의 예식에서는 지난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축복한 나뭇가지를 태워 만든 재를 신자들의 이마나 머리에 얹는다. 이를 통해 인간은 흙에서 와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겸손과 회개의 삶으로 돌아가도록 초대받는다. 재의 수요일은 단식재와 금육재를 함께 지켜야하는 날이기도 하다. 재의 예식의 핵심 의미는 단순한 참회를 넘어 궁극적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준비를 하라는 데 있다. 하느님 뜻에 따라 회개하고, 하느님께 향한 삶을 충실히 살아가라는 권고가 담겨 있다. 올해 재의 수요일(18일)은 설 명절 공휴일과 겹친다. 재의 수요일은 보편 교회가 동일한 날짜에 지내는 전례일로, 변경할 수 없다. 재의 예식에 참여하려면 당일 미사에 참여해야 한다. 재의 수요일로 시작되는 사순 시기는 참회와 속죄를 통해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는 기간으로, 5주간 이어진다. 이후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을 맞이하며 전례력 중 가장 거룩한 시기인 성주간이 시작된다. 성주간 중 성목요일부터 성토요일까지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의 신비를 기념하는 파스카 성삼일이다. 전례력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성목요일에는 성유 축성 미사와 주님 만찬 미사가 거행되며, 성금요일에는 미사 없이 말씀의 전례와 십자가 경배, 영성체로 구성된 수난 예식만 거행된다. 성토요일은 예수님의 무덤 곁에 머물며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날로, 해가 진 뒤 파스카 성야 예식을 통해 부활의 기쁨을 맞이한다. 이날은 시간전례 외에 다른 전례가 없는 유일한 날이다. 사순 시기 전례의 특징은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한다는 의미에서 알렐루야와 대영광송, 사은 찬미가를 바치지 않는 것이다. 제의는 회개를 상징하는 보라색으로 바뀌고, 성인 축일도 이 시기에는 기념하지 않는다. 교회는 이 기간 동안 말씀과 성사, 전례를 통해 신자들이 신앙을 더욱 깊이 성찰하도록 이끈다. 특히 십자가의 길 기도와 고해성사를 통해 하느님과 화해하고 공동체와 다시 결합하도록 권고한다. 사순 시기의 단식과 고행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과 이웃에 대한 자선, 수난과 죽음 너머에 있는 부활의 영광에 대한 희망과 깊이 연결돼 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박민규2026.02.10

서툰 가위질에서 희망의 박음질로… 난민 자립 일구는 ‘함께’ 공동체부활르포 - ‘함께’ 공동체 의정부 엑소더스 ‘평화공간’에서 2024년 재봉틀 교육으로 시작 패브릭 브랜드 ‘함께’로 성장 수익보다 ‘성장 가치’에 무게 둬 재봉틀로 이주민·난민의 경제적 자립을 꿈꾸는 핸드메이드 패브릭 브랜드 ‘함께’ 공동체 구성원들이 한국 봉사자들과 함께 동두천성당 내 작업실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전쟁과 기후위기, 종교 박해로 전 세계 난민은 1억 명을 훌쩍 넘어섰다. 난민 문제는 현재 국제사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로 꼽힌다. 우리나라도 난민협약 가입과 난민법 시행으로 대응해왔고, 교회 역시 이들을 ‘가난한 이 가운데 우선되는 형제자매’로 보며 보호와 환대를 강조한다. 레오 14세 교황은 교회와 사회를 새롭게 하는 ‘희망의 선교사’로서 이들이 단순히 도움이 필요한 대상이 아니라 교회와 사회를 새롭게 하는 주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법도 교황의 메시지도 현실 안에서 손을 내밀어 주는 이들이 없다면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만다. 제도가 닿지 못한 빈자리를 아무 조건 없이 메워주는 이들 덕에 새 생명이 움튼다. 부활 시기를 맞아 이주민·난민들이 재봉틀로 희망을 꽃피운 ‘함께’ 공동체를 찾았다. 이주민·난민들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신앙 매주 토요일 의정부교구 동두천성당 지하 교리실 한편에선 아프리카 이주민·난민들의 재봉틀 작업 소리와 함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오른쪽 상단이 조금 비뚤어졌네요. 여기를 잡고 더 내려서 박음질해야 해요. 이건 합격! 오늘 공임비는 10만 원이에요. 고생했어요.” 일주일간의 작업을 마친 이들은 꼼꼼한 검수를 거쳐 보람을 확인한다. 공임비를 받아든 순간, 아프리카 특유의 리듬에 몸을 맡기며 기쁨을 표현한다. 처음엔 직선 긋기조차 어려웠던 손끝이 1~2년 만에 재봉틀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들이 만든 결과물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제품은 매일미사·성경·성무일도 커버와 묵주 파우치다. 한 땀 한 땀 손끝에서 시작된 공동체의 온기가 신앙인의 기도로 이어지고, 다시 제품을 만드는 거룩한 순환이 이곳 ‘함께’에서 이뤄지고 있다. 함께’ 소속 아프리카 출신 이주민들이 작업물을 들어 보이고 있다. 우연한 시작 시작은 ‘우연’이었다. 서성희(안젤라, 의정부교구 마두동본당)씨는 동두천에 있는 의정부 엑소더스 ‘평화공간’에서 사용하지 않는 재봉틀 5대와 자재를 발견했다. 코로나19로 중단된 재봉 교실의 흔적이었다. 그 자리에서 이주민들이 재봉에 관심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곤 바느질 잘하기로 소문난 본당 교우 주현영(엘리사벳)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통역은 주씨 남편 김장섭(프란치스코)씨가 맡으면서 3명의 봉사자가 아프리카 출신 이주민·난민 5명을 대상으로 2024년 2월 17일 재봉틀 교육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재봉틀 사용법과 기초 바느질 기술을 교육하는 4~5주 과정으로 끝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가위질조차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정밀한 수작업을 요구하는 재봉과 바느질은 결코 짧은 시간에 익힐 수 있는 기술이 아니었다. 다음 기수 참여를 희망하는 이들도 생기면서 자연스레 2기, 3기 교육이 이어졌다. 선한 사람들 미약한 시작이었기에 과정도 순탄하지는 않았다. 봉사자와 교육생 모두에게 난관의 연속이었다. 늘지 않는 실력에 그만두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그러나 선한 일을 하면 그 뜻에 동참하는 이들도 생기기 마련이다. 교우들의 후원으로 중고 재봉틀을 기증 받았고, 교육생들은 가정에서도 연습할 수 있었다. 봉사자들도 누구나 따라 할 수 있을 정도의 교육 영상을 제작해 한글과 영어 자막으로 공유했다. 원단 수급이나 기타 비용 문제가 생길 때도 적절한 조력자가 나타났고, 작지만 후원회도 꾸려졌다. 그렇게 선한 이들의 뒷받침 속에 교육생들의 기술은 눈에 띄게 향상됐다. 교육을 수료한 이주민이 강사가 되는 경우도 생겼다. 이주민·난민이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함께’가 만든 매일미사 커버 야훼이레 단기 교육으로 시작했지만, 제품을 판매해도 좋겠다는 데 뜻이 모였다. 마침내 교육 시작 7개월 만인 2024년 9월 29일 ‘엑소더스 축제’를 통해 핸드메이드 패브릭 브랜드 ‘함께’가 첫 선을 보였다. 이후 교구 봉사자 연수와 피정, 본당의 날 등 다양한 현장에서 판매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성물 판매소와 소품 매장 등과도 협력해 계속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최근에는 갑곶 성지에서 상설판매도 시작했다. 품목도 앞치마와 손수건·스카프 등 40여 개로 늘어났다. 가나 출신 글라디스씨는 “취미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직업 의식마저 생겼다”며 “재봉 일만으로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면 좋을 것 같다”고 열정을 보였다. 열정에 답하듯 지난해 1월에는 모든 사용 비용을 무상으로 지원받으면서 동두천성당 지하 교리실로 작업장을 이전했다. 현재까지 6기, 30명이 참여했고, 그중 13명이 활동하고 있다. 4월 1일 7기가 시작됐다. 서성희씨는 “야훼이레,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일이라고밖에 설명이 안 된다”고 말했다. “사실 이 일을 하기 전까진 이주민과 이렇다 할 접점이 없었어요. 부끄럽지만 관심이 크게 없었죠. 지금은 저희 봉사자들 집이 원단으로 가득 차 있을 만큼 ‘함께’는 삶의 일부가 됐습니다.” 가족 공동체 ‘함께’ 짐바브웨 출신 아폴로니아씨는 세 자녀와 함께 작업실을 찾는다. 모임에 가지 못하는 날이면 아이들이 먼저 아쉬워할 정도다. “여기서는 모두가 함께 아이를 키우는 느낌입니다. 제가 바느질 기술을 배우면, 아이들은 소통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 덕에 자폐가 있는 첫째 아이도 이곳에서 많이 좋아졌습니다.” 이슬람 무장세력의 종교 박해를 피해 한국에 정착한 나이지리아 출신 기프트씨는 2기 교육생으로 참여해 현재 강사가 됐다. 그는 “한국 교회의 환대 덕에 자리를 잡아 아들도 복사를 서고 있다”며 “‘함께’ 공동체 일원이 되면서는 더 끈끈한 가족애가 생겼다”고 했다. 이웃사랑과 관심으로 신앙도 더욱 단단해진 것이다. “처음에는 너무 어려워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한국 봉사자분들과 남편 격려로 다시 나올 수 있었어요. 하다 보니 욕심이 나더군요. 실력을 키워 가르쳐주신 보람을 안겨드리고 싶었습니다. 제 손으로 만든 성경 커버를 보고 선생님이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거든요.” 기프트씨를 처음부터 이끌어온 주현영씨는 눈물을 글썽이며 두 손 크게 하트를 만들어 화답했다. 서성희씨도 “돌려받지 않아도 줄 수 있는 사랑을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교육생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 큰 걸 받고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봉사자 선주민과 교육생 이주민은 서로가 서로의 행복을 바라고 있었다. 이렇듯 ‘함께’는 이주민·난민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공동체면서, 일주일에 한 번 한자리에 모이는 가족 공동체 역할도 하고 있다. 희망의 선교사 하지만 공동체가 커지고 판로가 늘어나면서 봉사자 인원 부족과 판매 구조의 지속 가능성, 재정 안정성 등 구조적 한계도 드러났다. 이에 ‘함께’는 사회적협동조합 설립을 꿈꾼다. 법적·재정적 지원을 확보하고, 조직 운영의 안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김장섭씨는 “단순한 수익 창출을 넘어 이웃에 제품을 기증하는 ‘상생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며 “이 과정을 통해 이주민은 도움받는 대상에서 자신의 노동으로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는 ‘희망의 선교사’이자 사회적 가치 창출의 주체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미 저희 모습 안에서 시작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낯선 땅에 뿌리내리며, 서툰 손끝으로 한 땀 한 땀 새 삶을 꿰매온 이들이다. 어둠 끝에 비치는 부활의 빛처럼, 그렇게 바늘이 지나간 자리마다 공동체는 ‘함께’ 살아나고 있다. 후원문의: 0505-566-0001 박민규 기자 mk@cpbc.co.kr박민규2026.04.07

하느님의 지혜를 삶의 근본으로 삼아야[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90) 야고보 서간 야고보 서간은 하느님의 지혜이신 말씀이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를 지탱해 주는 힘이라고 강조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실천함으로써 완성되고 구원받는 사람들입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 주교이며 야고보서 저자로 전해지고 있는 주님의 형제 야고보 성인 이콘. 신약 성경 가운데 야고보 서간과 베드로의 첫째·둘째 서간, 요한의 첫째·둘째·셋째 서간, 그리고 유다 서간을 ‘가톨릭 서간’이라고 부릅니다. 이 일곱 서간을 가톨릭 서간이라 부르는 이유는 특정인이나 개별 교회를 위해 쓴 것이 아니라 보편 교회의 모든 신자에게 쓴 편지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들 서간 첫머리에 수신자가 나옵니다. 야고보 서간은 “세상에 흩어져 사는 열두 지파”(야고 1,1), 베드로 서간은 “폰토스와 갈라티아와 카파도키아와 아시아와 비티니아에 흩어져 나그네살이를 하는 선택된 이들”(1베드 1,1), 요한의 둘째 서간은 “선택받은 부인과 그 자녀들”(2요한 1절), 요한의 셋째 서간은 “가이오스”(3요한 1절)이라고 수신인이 명시돼 있지만, 바오로 사도 서간의 수신인보다 훨씬 보편적인 교회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들 서간을 ‘가톨릭 서간’으로 처음으로 부른 이는 2세기 말 아폴로니우스입니다. 그는 2세기 중엽 소아시아 프리기아 지방에서 종말론에 심취해 곧 그리스도께서 재림하니 세상을 멀리하고 회개해 단식과 생식을 하고, 독신 생활을 하며 성생활을 자제하고, 자선과 순교를 권했던 몬타누스 이단에 맞서 정통 신앙을 수호했던 교부입니다. 야고보 서간(이하 야고보서)의 저자는 자신을 “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1,1)라고 밝힙니다. 야고보는 히브리어로 ‘야곱’입니다. 이사악의 아들이자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과 같은 이름이죠. 예수님과 사도 시대 당시 팔레스티나 지방에서는 야고보 곧 야곱이라는 이름이 매우 흔했습니다. 신약 성경에는 세 명의 야고보가 등장합니다.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요한 사도의 형인 야고보(마태 10,2; 마르 1,19-20)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마르 3,18; 루카 6,15; 사도 1,13) 그리고 바오로 사도가 “주님의 형제”(사도 12,17; 15,13-21; 21,18-25; 갈라 1,19)이자 “교회의 기둥”(갈라 2,9)이라고 불렀던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 야고보입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주님의 형제 야고보가 야고보서를 저술했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성경학자들은 주님의 형제 야고보는 팔레스티나 사람으로 헬라 문화와 상당히 거리가 멀었기에 헬라어와 헬레니즘 문화와 사상에 능통한 그의 협력자가 야고보의 말을 대필했거나 그의 이름을 빌려 썼다고 봅니다. 그는 62년께 순교했고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이 대략 50년께 쓰인 것으로 보아 50년대 말에 야고보서가 쓰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헬라어 신약 성경은 ‘Ιακωβου’(야코보),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Iacobi’,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야고보 서간’으로 표기합니다. 야고보서가 “세상에 흩어져 사는 열두 지파”에게 인사하는 것으로 보아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팔레스티나 지역을 떠나 세상에 흩어져 사는 유다계 그리스도인들 특히 유다교 회당과 계속 관계를 유지하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서간입니다. 아울러 부자들을 혹평하고(5,1-6), 가난한 사람들이 믿음의 부자가 되어 하느님 나라를 상속하게 되었다(2,5)는 내용, 그리고 누추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보다는 금가락지를 끼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과 어울리려 했고(2,1-4 참조),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을 주지 않았다(2,15-16 참조)고 나무라는 것을 보아 부자는 아니더라도 먹고 사는 데는 걱정이 없는 일반적인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쓴 서간인 듯합니다. 총 5장으로 구성된 야고보서는 유다계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분열이나 반목을 해결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야고보서는 믿음으로 사는 삶이 어떠한지를 제시합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은 시련과 시험을 통해 모든 면에서 모자람 없는 완전하고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려면 하늘에서 오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늘에서 오는 지혜는 순수하고 평화롭고 관대하고 유순하며 자비와 좋은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3,17) 그러하기에 그리스도인은 끊임없이 하느님께 지혜를 청해야 합니다. 아울러 지혜에서 오는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착하게 살아, 자기의 실천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3,13) 야고보서는 또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과 다른 가치관을 갖고 살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사람을 차별해선 안 되고 교만하지 않고, 자비를 베풀어야 하며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는 지고한 법을 이행해야 합니다.(2,1-13 참조) 야고보서는 나아가 그리스도인은 자기들 안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겸손한 이들에게 은총을 베푸십니다.(4,6)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지혜는 다툼과 분열을 가져다주고 참신앙과 거리가 멉니다.(4,1-12 참조)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무엇보다 형제를 심판하지 말며, 자만하지 말고 허세를 부리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재림을 인내하며 기다리고, 고통을 겪는 이들, 아픈 이들, 죄지은 이들, 교회 원로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권고합니다.(5장 참조)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 선임2024.09.24

영원한 생명 희망하도록 생의 마지막 동반청년들을 위한 생명 지킴 안내서(50·끝) 영화 ‘리스본 특급’에 출연했던 배우 알랭 들롱의 생전 모습. 위키미디어 커먼즈 제10장 삶의 끝에서 – 죽음과 고통의 문제 결론 현대 사회의 문화적 분위기에서는 사실 죽음은 최대한 피하고 싶은 것이며, 피할 수 없다면 안락사와 같은 방법으로 고통의 시간을 줄이는 것이 현명한 것처럼 여기게 됩니다. 이는 더 많은 돌봄과 관심을 받아야 하는 말기 환자의 삶과 생명을 경시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때때로 그렇게 해 주는 것이 그를 위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마지막까지 그가 희망을 잃지 않고 인간으로서 품위 있는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동반하고 지지하고 위로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도움을 위해서는 말기 환자 자신뿐만 아니라, 그를 돌보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죽음을 넘어서는 희망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며 우리도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할 수 있다고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드높은 소명은 인간의 존엄성을 더욱더 밝혀 주며, 영원한 삶으로 넘어가려고 하는 이들의 마지막 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 줍니다. 성경은 그 희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하여 왔으므로 부활도 한 사람을 통하여 온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1코린 15,20-22) 죽음을 넘어선 희망은 결코 맹목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이성을 지닌 우리는 세상의 온갖 불의와 억압을 볼 때,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불의한 현실에 희생된 무죄한 이들의 삶이 그냥 그렇게 끝나 버린다는 것은 참으로 불합리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마음 안에는 이미 영원한 삶의 씨앗이 심겨 있습니다. 믿는 이에게 죽음은 그냥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활짝 열린 문이며, 주님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원한 삶은 우리의 모든 소망이 이루어지는 행복의 순간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영원한 삶에는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묵시 21,4)라고 가르쳐 줍니다. 생의 말기를 보내는 이들과 그 가족들에게 이러한 신앙과 희망은 어떤 것보다 큰 위안을 가져다주며,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그들을 위해서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줍니다. 추천 도서 1. 김형숙, 「도시에서 죽는다는 것」, 뜨인돌, 2013 2.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 「신에게 보내는 편지」, 김민정 역, 열림원, 2013 3. 군나 두트게·신동일 공편,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의 존엄성」, 세창출판사, 2016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25 덧붙이는 묵상 지금은 선종했지만 세기의 배우 알랭 들롱은 생전 “노화는 끔찍하다”며 안락사를 원했습니다. 젊은 시절 화려한 인생을 보냈던 그에게 나이 들고 병환에 지쳐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건 끔찍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 많은 이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마치 고통 속에 몸부림치거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게 되느니, 차라리 짧은 고통 속의 죽음이라는 처방전을 선택하는 듯합니다. 소위 ‘조력 존엄사’라는 이름으로 죽음을 고통의 치료제로 생각하곤 합니다. 그런데 고통을 없애기 위해 고통받는 사람을 세상에서 지워버리는 것이 진정한 치료이자 사랑일 수 있을까요? 또 세상에서 쓸모가 없어 보인다고 해도 과연 그가 진정으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이유가 될까요. 이런 시선은 인간을 효용 가치로만 따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의 백성이고, 하느님 모습을 닮은 존귀한 인간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렇기에 고통받는 이들에게 진정한 처방전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약물이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희망과 신앙을 잃지 않고 인간으로서 품위 있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우리가 건네야 할 것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가 혼자가 아님을 확인시켜 주는 동반이지, 죽음이라는 절망이 될 순 없습니다. 그 고통의 시간조차 사랑으로 동반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신앙인에게 죽음은 삶의 허무한 붕괴이거나 벽이 아닙니다. 고통 속에 있더라도 우리 손으로 억지로 열어야 할 문도 아닙니다. 죽음을 넘어선 희망이 있기에 우리는 인위적인 끝냄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그 순간까지 생명을 껴안고 사랑할 용기를 내어야 합니다.cpbc2025.12.16
![[금주의 성인] 성 론지노 (10월 16일)](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10/08/Sdc1728367346049.jpg)
[금주의 성인] 성 론지노 (10월 16일)+1세기경, 출생 미상 및 튀르키예 선종, 순교자, 성경 인물 그리스도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는 론지노 성인. 사진=굿뉴스 전설에 의하면 론지노 성인은 빌라도 총독의 지시를 받고 예수님께서 매달린 십자가 곁에 서 있다 창으로 주님의 옆구리를 찌른 군인입니다. 그는 주님의 상처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했습니다.(요한 19,34) 예수님의 오상(五傷) 가운데 창에 찔려 마지막으로 생긴 다섯 번째 상처 이야기는 공관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고 오직 요한 복음서에만 나옵니다.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예수님을 찌른 군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실 때 그분을 지키고 있던 다른 이들과 함께 지진 등 여러 가지 일들을 보고 두려워하며 “참으로 이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라고 말한 백인 대장이라고 합니다.(마태 27,54) ‘롱기누스’라는 이름도 「빌라도 행전」으로 알려진 「니코데모 복음서」라는 외경(外徑)에서 처음 나왔습니다. 학자들은 대체로 그 이름이 요한 복음 19장 34절에서 ‘창’을 뜻하는 그리스어가 라틴어로 바뀌면서 파생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론지노가 신앙을 갖게 된 계기나 기적 이야기 등은 13세기 제노바의 주교이자 연대기 작가인 야고보 데 보라지네 복자가 편집한 「황금 전설」에서 전해집니다. 여기서 론지노는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른 군인들의 백인 대장으로, 예수님 상처에서 나오는 피와 물을 본 뒤 그리스도를 믿게 됩니다. 하지만 그가 확고한 믿음을 갖게 된 것은 나이 들어 병으로 시력을 거의 잃었을 때, 예수님을 찔렀던 ‘창’에서 흘러내린 피를 눈에 갖다 대자 즉시 시력이 회복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후 론지노는 군인 생활을 그만두고 사도들의 제자가 되었고, 오늘날 튀르키예인 카파도키아의 카이사레아에서 28년 동안 수도생활에 전념하며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습니다. 그러다 박해를 받았는데, 지방 장관은 우상 숭배를 거부하는 론지노의 이를 뽑고 혀를 자르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론지노의 설교를 중단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론지노는 도끼를 들고 이교도의 신상을 부수며 “이것이 무슨 신들인가!”하고 외쳤습니다. 신상이 부서지면서 쏟아져 나온 마귀들은 지방 장관을 사로잡아 그의 눈을 멀게 만들었습니다. 론지노는 자신이 죽어야 지방 장관의 눈이 나을 것이라 했는데, 그 말대로 론지노가 참수형을 당해 순교하자 지방 장관의 시력이 회복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지방 장관은 그리스도교로 개종해 남은 생애 동안 선행을 실천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론지노의 유해는 직접 십자가 아래에서 모은 그리스도의 피가 담긴 유물과 함께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지방 만토바의 성 안드레아 대성당에 모셔졌습니다. 이외에도 여러 지방과 성당에서 그의 유물을 보존하며 공경하고 있습니다.cpbc2024.10.08
![광야에서 들려오는 침묵의 음악 [류재준 그레고리오의 음악여행] (87)](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05/07/fdT1715067341708.jpg)
광야에서 들려오는 침묵의 음악 [류재준 그레고리오의 음악여행] (87) 사순 시기는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40일 동안 단식과 시험을 겪으신 사건을 기념하는 시간이다. ‘사순(四旬)’이라는 말 자체가 ‘마흔’을 뜻하며,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는 중요한 사건을 앞둔 준비와 정화의 기간을 상징한다. 모세는 십계명을 받기 전 시나이산에서 40일을 지냈고, 엘리야 역시 호렙산으로 향하는 길을 40일 동안 걸었다. 광야에서의 40일 역시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기존의 삶이 해체되고 새로운 사명이 태어나는 과정을 의미한다. 선지자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향했던 광야는 일상 질서가 완전히 사라진 공간이다. 광야에 홀로 고립되면 유혹과 두려움·절망·지독한 향수에 시달리게 된다. 유목 민족에게 가장 무서운 형벌이 ‘광야로의 추방’이었다는 사실만 봐도 그 공포와 고통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극한의 고행 속에서 얻는 자기 정체성은 단순한 깨달음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비상을 만들어낸다. 문학에서 광야는 오래전부터 빼어난 소재다. 특히 ‘황무지’로 대표되는 T.S. 엘리엇의 시 세계는 현대 문명의 정신적 광야를 상징한다. 그가 말하는 ‘오지 않는 비’는 구원의 부재를 뜻하며, 파편화된 시어들은 20세기 문명의 분열과 붕괴를 드러낸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문학은 더 이상 선형적 서사를 고집하지 않고, 구조·파편·인용이 중심이 되는 현대적 글쓰기로 나아간다. 프랑스의 올리비에 메시앙은 작품 ‘기도(Oraison)’에서 광야에서의 기도와 침묵을 극단적으로 느린 시간 속에 담아낸다. 이 음악에는 멜로디를 따라가려는 욕망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고독과 갈구가 묘하게 얽혀 들을 때마다 심연의 외로움을 불러낸다. 유리를 공명시킬 때 들리는 듯한 소리, 공기 자체가 떨리는 것 같은 음향은 음악의 ‘바깥’이 아니라 ‘안쪽’으로 끌어들인다. 메시앙 - 기도 러시아 출신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시편 교향곡’에서 흔히 말하는 ‘비 없는 기도’, 즉 황무지적인 종교성을 정면으로 드러낸다. 그는 작품의 첫 장에 “신의 영광을 위해 작곡된 교향곡”이라는 문구를 적어넣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편성이다. 스트라빈스키는 교향곡에서 가장 윤택하고 표현력이 풍부한 악기군인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의도적으로 제외했다. 그 결과 따뜻함 대신 메마름을, 풍요 대신 고독을 들려준다. 네덜란드 라디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폴란드 작곡가 헨릭 구레츠키는 ‘교향곡 3번’에서 절규 이후의 텅 빈 공간을 형상화한다. 이 작품은 발표된 지 14년이 지난 1991년 빌보드 클래식 차트에 등장해 무려 31주 동안 1위를 차지했다. 50분을 넘기는 연주 시간과 세 악장 모두 ‘렌토(Lento, 아주 느리게)’로 진행되는 작품이 대중적인 반향을 일으킨 사실은 기적 같다. 이 음악은 흔히 ‘슬픔을 치유하는 음악’ ‘고독을 넘어서는 기도’로 불린다. 적막한 광야를 가로질러 다가오는 주님의 발걸음이 있다면, 아마도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펜데레츠키가 지휘하는 구레츠키의 ‘슬픔의 노래’ 작곡가 류재준cpbc2026.02.24

조선 교회의 ‘성가정’, 신앙 잇고 순교자 길러내다[한국 교회 주역, 청년들] (22) 박해 시기 그리스도인 가정 한국 가톨릭교회 순교자들은 가정 안에서 조부모와 부모에게 기도와 신앙 교육을 배우며 성장했다. 문학진(토마스 아퀴나스), ‘103위 순교 성인’ 일부, 서울 혜화동성당. 신앙의 씨앗을 뿌리는 곳은 ‘가정’이다. 하느님 말씀이 사람이 되신 육화의 신비는 ‘나자렛 성가정’뿐 아니라 모든 가정과 연결돼 있다. 참하느님이시고 참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하느님의 생명을 모든 인간에게 주시는 구세주이시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그리스도인 가정의 부모는 자녀들에게 단지 신앙의 모범을 보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꾸준히 신앙을 권면해야 하며 가정을 ‘성가정’으로 가꿔야 한다. 이것이 교회가 권고하는 그리스도인의 가정상이다. 선교사 없이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여 신앙 공동체를 이룬 것이 한국 가톨릭교회의 큰 자랑이다. 이것 못지않게 자랑스러운 것이 있다. 바로 수많은 가정에서 순교자들을 배출하고 복자와 성인을 탄생시켰다는 사실이다. 성인·복자 배출한 한국 가톨릭교회 성가정들 정약종(아우구스티노) 가족 모두는 순교자이다. 정약종과 장남 정철상(가롤로)은 복자품에, 정약종의 부인 유 체칠리아와 아들 정하상(바오로), 딸 정정혜(엘리사벳)는 성인품에 올랐다. 정철상의 장인 홍교만(프란치스코 하비에르)과 처남 홍인(레오), 홍교만의 사촌 서(庶)동생 홍익만(안토니오), 홍익만의 사위 홍필주(필립보)와 그의 어머니 강완숙(골룸바) 역시 복자다. 유항검(아우구스티노) 가정 또한 순교자 집안이다. 유중철(요한)·유문석(요한)이 아들이고, 이순이(루갈다)가 며느리이다. 유중철·이순이는 동정부부다. 그리고 유중성(마태오)은 조카다. 이들 모두 복자로 공경받고 있다. 부인 신희 또한 순교자로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돼 있다. 이순이의 오빠 이경도(가롤로)와 동생 이경언(바오로)도 복자다. 이들 세 남매의 어머니 안동 권씨가 하느님의 종 권철신(암브로시오)·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동생이다. 따라서 이들 세 남매는 권일신의 자녀인 복자 권상문(세바스티아노)·권 데레사 남매와 외척 간이다. 세 남매의 아버지 이윤하(마태오) 또한 초기 조선 가톨릭 신앙공동체의 핵심 인물이었다. 한국 가톨릭교회 첫 순교자인 복자 윤지충(바오로)은 복자 윤지헌(프란치스코)의 형이고, 복자 권상연(야고보)과는 이종사촌 간이다. 또 정약종 일가와는 고종사촌 간이고, 유항검 일가와는 가까운 인척이다.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와 아버지 김제준(이냐시오), 당고모 김 데레사가 성인이고, 증조부 김준후(비오)와 작은할아버지 김종한(안드레아)이 복자다.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신부의 아버지는 성 최경환(프란치스코)이고, 어머니는 복자 이성례(마리아)이다. 복자 최해성(요한)도 최 신부의 먼 친척이다. 허계임(막달레나)과 딸 이영희(막달레나)·이정희(바르바라), 외손녀 이 바르바라, 시누이 이매임(데레사) 모두 성인이다. 이광헌(아우구스티노)·권희(바르바라) 부부와 딸 이 아가타, 동생 이광렬(요한) 모두 성인품에 올랐다. 최창흡(베드로)·손소벽(막달레나) 부부와 딸 최영이(바르바라), 사위 조신철(가롤로) 또한 한 가족으로 성인이 됐다. 복자 현계흠(바오로)은 현경련(베네딕타)·현석문(가롤로) 성인의 아버지다. 남명혁(다미아노)·이연희(마리아), 남이관(세바스티아노)·조증이(바르바라), 박종원(아우구스티노)·고순이(바르바라) 부부 세 쌍은 모두 성인품에 올랐다. 유진길(아우구스티노)·유대철(베드로), 조화서(베드로)·조윤호(요셉) 성인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고, 한영이(막달레나)·권진이(아가타), 이 가타리나·조 막달레나 성인은 어머니와 딸 사이다. 박큰아기 마리아·박희순(루치아), 김효임(골룸바)·김효주(아녜스), 이영덕(막달레나)·이인덕(마리아) 성인은 자매들이고, 홍병주(베드로)·홍영주(바오로) 성인과 복자 김대권(베드로)·김화춘(야고보)은 형제다. 아울러 복자 최인길(마티아)·최인철(이냐시오) 형제는 복자 최창현(요한)의 아저씨뻘이다. 복자 김이우(바르나바)·김현우(마태오) 형제의 배다른 형이 김범우(토마스)다. 윤유일(바오로)은 윤유오(야고보)의 형이며, 윤점혜(아가타)·윤운혜(루치아) 자매의 사촌 오빠로 이들 모두 복자다. 또 윤운혜의 남편 정광수(바르나바)와 시누이 정순매(바르바라) 역시 복자품에 올랐다. 교회 가르침 충실히 지키며 가정 내 신앙 교육 한국 가톨릭교회처럼 교회 안에서 공적으로 공경하는 성인과 복자가 가족과 혈연으로 얽혀 있는 예는 보편 교회 안에서도 거의 없다. 이는 가정에서의 신앙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증명해주는 본보기다. 조선 왕조 치하 박해 시대 그리스도인 가정은 매일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 삼종기도, 아침·저녁 기도뿐 아니라 성경과 기도서를 읽고 외우며 주일과 축일의 의무를 충실히 지켰다고 제4대 조선대목구장 베르뇌 주교는 증언했다. 그리스도인 가정의 이런 분위기가 103위 성인과 124위 복자의 상당수 집안에서 3~4대에 걸쳐 순교자를 배출했고, 때로는 배교를 했다가도 다시 신앙을 회복하는 원천이 됐다. 복자 이경언(바오로)은 순교를 앞두고 자녀들에게 다음과 같이 유언을 남겼다. “내 아들과 딸아,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고 어머니께 효의 도리를 다하는 데 힘을 쏟도록 하여라. 모든 사람을 상냥하게 사랑으로 대하고, 너희가 이 세상에서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는다면 너희는 당연히 천국에 오를 것이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6.05.26
![가족의 수호자, 그 이름 아버지 [류재준 그레고리오의 음악여행] (89)](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05/07/fdT1715067341708.jpg)
가족의 수호자, 그 이름 아버지 [류재준 그레고리오의 음악여행] (89) 3월 19일 ‘성 요셉 대축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양부이자 성모 마리아의 배필인 성 요셉을 기념하는 날이다. 성 요셉에 관해 성경이 전하는 기록은 많지 않다. 그러나 그 적은 기록 속에서 그는 과묵하고 이해심 깊은 남편, 순종과 침묵의 인물, 노동의 존엄성을 실천한 사람, 그리고 가족의 수호자이자 책임 있는 아버지의 상징으로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5월 8일을 ‘어버이날’로 정해 부모를 함께 기념하지만, 다수의 서양 국가들은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의 날’, 6월 셋째 주 일요일을 ‘아버지의 날’로 나눠 기념한다. 모두 20세기 초 미국에서 시작된 기념일이다. 어머니의 날은 안나 자비스가 자신의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시작한 운동이 계기가 되었고, 아버지의 날은 소노라 스마트 도드가 홀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경험을 바탕으로 제안한 것이다. 남북전쟁 참전 용사로서 여섯 자녀를 홀로 키운 아버지의 헌신에 감사하기 위한 이 기념일은 지역 교회를 중심으로 확산되었고, 결국 어머니의 날과 함께 미국 사회의 중요한 가족 기념일로 자리 잡았다. 흥미롭게도 당시 미국은 오늘날과 같은 초강대국은 아니었기에 이 두 기념일은 미국의 생활문화가 세계로 전파된 초기 사례로 언급되기도 한다. 그런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더 친근하게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흔히 어머니의 사랑은 ‘감싸는 사랑’, 아버지의 사랑은 ‘떠받치는 사랑’으로 설명된다. 아버지의 역할이 문제 해결, 규칙 제시, 보호와 책임에 치우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동양 문화권에서 아버지의 존재는 더욱 엄격하고 거리감 있게 그려진다. 「논어」에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화가 등장한다. 공자의 아들 백어에게 제자 진항이 “아버지에게서 특별히 들은 가르침이 있느냐”고 묻자, 백어는 평생 동안 들은 말이 단 두 가지, ‘곧 시를 배우라’, ‘예를 배우라’는 말뿐이었다고 답한다. 이를 들은 진항은 군자는 자신의 아들을 엄격히 가르쳐야 한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클래식 음악에서 성 요셉을 직접적으로 기리거나 소재로 삼은 작품은 매우 드물다. 그중 비교적 분명하게 성 요셉이 등장하는 작품으로 마르크-앙투안 샤르팡티에(Marc-Antoine Charpentier)의 ‘주님 탄생을 위한 노래(In nativitatem Domini Canticum) H.414’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예수 탄생 장면에서 목자와 천사, 그리고 성 요셉의 대화를 풀어낸다. 성 요셉 대축일에 미사 봉헌곡으로 자주 연주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youtu.be/DllzSso5fcY?si=QN4ZdZHRMZVN71jh 우리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 역시 어쩌면 인간이 상상해 온 엄격한 보호자의 형상을 반영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자니 스키키’에 등장하는 불멸의 아리아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O mio babbino caro)’는 매우 상징적이다. 이 노래는 완고한 아버지를 향해 딸이 목숨을 걸고 호소하는 내용이다. 아름답고 순수한 선율과는 정반대의 가사가 만들어내는 이 강렬한 대비는 음악의 마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youtu.be/Sf-tjXevlyQ?si=4CMPwRS8Gm3R9nTk 작곡가 류재준cpbc2026.03.10

21세기 교황들, 젊은이에게 이 이야기는 꼭 했다 ‘매일 성경을 읽고 항상 기도하며 자주 성사를 보라.’ 21세기에 베드로 사도의 직무를 수행한 성 요한 바오로 2세·베네딕토 16세·프란치스코 교황이 청소년과 청년, 곧 젊은이들에게 당부한 공통된 권고다. 세 교황은 젊은이들에게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토대로 삼아 현재와 미래를 설계하고 성장하라고 당부했다. 청소년 주일(25일)을 맞아 전임 교황들이 젊은이들을 향해 남긴 주요 메시지를 다시 살폈다. 세 교황이 젊은이들에게 우선으로 성경을 권유한 이유는 성경을 읽으면 그리스도를 아는 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을 자주 읽으면서 주님을 만날 것을 권유합니다. 여러분이 아직 성경 읽기에 습관을 들이지 않았다면 복음서에서 시작하기 바랍니다. 매일 한두 줄을 읽으십시오. (⋯) 기도 안에서, 성경을 읽는 가운데, 그리고 형제자매로 사랑하는 삶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면 여러분은 주님과 여러분 자신을 더 잘 알게 될 것입니다.”(프란치스코 교황, 2015년 제30차 청소년 주일 담화 중) 세 교황은 기도하면 성령을 깊이 알게 된다고 했다. 기도가 신앙생활을 증진시켜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장을 이끌기 때문이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99년 제15차 청소년 주일 담화에서 “기도하기를 즐겨 교회의 살아 움직이는 지체가 되고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돼라”고 당부했다. 성사는 신앙을 굳건히 해준다. 특히 견진성사는 온 삶을 바쳐 하느님을 증언하고 하느님께 영광드릴 수 있는 특별한 힘을 준다. 세 교황은 젊은이들에게 견진성사를 꼭 받길 권고했다. 아울러 성체성사에 자주 임할 것을 요청했다. “성찬례 거행에 자주 참여하고 시간을 할애해 성체조배를 할 때에 사랑의 원천인 성체에 힘입어 여러분은 복음을 따르는 삶을 살겠다는 기쁜 결심을 하게 될 것입니다.”(베네딕토 16세 교황, 2008년 제24차 청소년 주일 담화 중) 세 교황은 젊은이들에게 영적 공허에서 깨어나 ‘일어나라’라고 했다. 교황들은 젊은이들이 넘어질 때마다 온 인류가 넘어지는 것처럼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일어나 증언하라!”고 촉구했다. “일어나라! 기죽어 있거나 너 자신 안에 갇혀있지 마라. 일어나라! 인간관계 안에 사랑과 존중을 증언하라. 일어나라! 사회 정의, 진리와 공정, 인권을 지켜라. (⋯)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심을 기쁘게 증언하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에, 학교와 일터에, 디지털 세상에, 모든 곳에 그리스도의 사랑과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라.”(프란치스코 교황, 2021년 제36차 세계 젊은이의 날 담화 중) 세 교황이 젊은이들에게 요구하는 온 인류에 대한 개방정신과 연대의식은 본질적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래서 세 교황은 이러한 삶을 제대로 살도록 젊은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라고 끊임없이 권유했다. 그리스도만이 인간을 인간답고 거룩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머무르시도록 하십시오. (⋯) 돈과 물질 재화와 출세와 성공을 우상화하는 위험을 깨달으십시오. 또한 그러한 거짓 환상에 이끌리지 마십시오. (⋯) 이웃 사랑을 키우고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의 인간적 재능과 전문 능력을 공동선과 진리를 위하여 쓰도록 하십시오.”(베네딕토 16세 교황, 2009년 제24차 청소년 주일 담화 중) 21세기 착한 목자이며 위대한 교황으로 교회와 온 세상에서 존경받는 세 교황은 그들이 남긴 문헌을 통해 지금도 젊은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으뜸 자리에 두라”고 권고한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5.05.21

십자가와 성경 든 복사단과 사제 뒤엔 성당 묘원으로 향하는 행상[ 사진에 담긴 고요한 아침의 나라] 5. 전통 상장례 <하> <사진 1> 노르베르트 베버, ‘상여’, 유리건판, 1911년 황해도 청계리,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상주의 지위에 따라 상여 모양 달라져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는 한국 전통 상장례에 지관(地官)의 역할이 큰 것에 놀라워한다. 지관은 음양오행설의 풍수에 기반해 집터와 묘터를 정하거나 길흉을 평하는 사람이다. 우리나라에선 고려 시대부터 활동했고, 조선 왕조에서는 지관을 과거로 선발해 전문적으로 양성하기도 했다. 조선 시대에는 모든 계층에 풍수가 성행했으며 과거를 통해 선발 양성된 이를 지관이라 했고, 민간에서 생업을 겸하며 풍수를 보는 이를 지사(地師)라 구분했으나 일반적으로 지관이라 통칭했다. 풍수가·풍수·풍수장이는 지관을 낮춰 부르는 말이다. “장례일을 잡는 데는 두 가지 조건을 고려한다. 첫째는 친족 초대 의무다. 그들이 올 수 있는 날로 장례일을 잡아야 한다. 둘째는 지관이다. 지관이 먼저 묏자리를 정해야 날을 잡을 수 있다. (⋯) 유족이 부른 지관의 임무는 막중하다. 그는 패철 등을 활용해 묏자리를 찾아야 한다. 한국인들은 대부분 선산을 소유하고 있다. 부유한 문중의 선산은 꽤 멀다. 보통 망인을 선산에 묻는 것이 관례지만 이때도 지관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동의하든 다른 묏자리를 찾든 결정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린다. 이는 어려운 일이라 오래 걸릴수록 지관의 몸값이 치솟는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324~325쪽) 지관이 정해준 장례일이 되면 여섯, 여덟, 열여섯 혹은 스물네 명의 상여꾼이 집 앞에서 붉고 푸른 색색의 종이로 상여(喪轝)를 장식하며 출상 채비를 한다. 고인을 장지까지 운구하는 도구인 상여는 크게 거(車)와 여(轝)로 나뉜다. 거는 바퀴를 달아서 이끄는 방식이고, 여는 어깨에 메는 방식이다. 거에는 말이 끄는 윤거(輪車)와 소가 끄는 상거(喪車)가 있다. 왕의 종친이나 사대부가 죽으면 주로 윤거를 사용했고, 장지가 멀어 상여꾼을 구할 수 없을 때 상거를 사용했다. 민가에서는 소여(小轝)만 상여로 사용했다.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르고 인지하는 상여다. 상여는 상주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모양이 달랐다. 지위가 있는 이들은 상여를 다층화하고 그림과 각종 장식물을 빈자리가 없을 만큼 빼곡하게 붙이고 달아 꽃상여를 만들었다. 상여가 크고 화려할수록 유교적 효심을 드러내는 것으로 여겼다. 그리스도인들은 상여에 십자가와 성경 구절을 새겼고, 불자들은 만(卍)자를 넣어 외부인들이 자신의 종교를 알 수 있도록 표현하기도 했다. <사진 2> 노르베르트 베버, ‘행상’, 유리건판, 1911년 황해도 청계리,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1911년 황해도 청계리 출상 직전 상여 촬영 노르베르트 베버 총아빠스는 1911년 황해도 청계리에서 출상 직전 상여를 촬영했다. 건장한 10명의 상여꾼이 상여를 멨다. 상여 뒤에는 기품있는 상주와 상주 가족들, 일가친지들이 슬픔에 가득 찬 얼굴로 상여를 뒤따를 채비를 하고 있다. 상여는 소박하다.<사진 1> “장례 행렬이 출발한다. 청홍색 종이 초롱이 선두에 서고, 향도 격인 상복 차림의 주례자가 지휘봉을 들고 우뚝 솟은 상여 앞에서 걸어간다. 상여는 휘장으로 둘렀다. 관은 그 아래 있다. 상여꾼들은 관대 아래 횡목에 매단 끈을 어깨에 걸고 느릿느릿 걸어간다. 상엿소리의 리듬을 타면서 춤추듯 걷는 걸음이다. 때로는 숫제 춤판이 벌어지기도 한다. 갈 길이 멀다. 요령잡이와 상여꾼들은 최대한 에둘러 먼 길을 잡는다. 장례 소요 시간으로 견적을 내기 때문이다. 장지가 너무 가까워 큰 벌이가 안 되겠다 싶으면 별짓을 다 해 시간을 끈다. 개울을 건널 때마다 상제들에게 돈을 요구한다. 힘들면 멈추고 돈을 주면 다시 간다. 장지까지 당일에 못 갈 때도 많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328쪽) 베버 총아빠스는 장례 행렬을 1911년 황해도 청계리<사진 2>와 1925년 함경남도 내평<사진 3>에서 촬영했다. 둘다 가톨릭 교우의 장례 행렬을 촬영했지만 1911년 청계리 사진은 우리 전통 풍속을 잘 보여주고, 1925년도 내평 사진은 당시 교회풍의 장례 행렬을 보여준다. ‘사진 2’는 상여가 양편 초가를 빠져나와 마을 어귀에 당도한 장면이다. 주민들이 마을 어귀까지 나와 떠나가는 상여를 지켜보며 고인을 위해 기도하고, 상주들과 문상객들을 위로한다. 상여 맨 앞에 올라탄 요령잡이가 종을 치며 구슬피 노래하며 앞길을 인도한다. “노상에서 부르는 상엿소리는 실로 통절하다. ‘저승길이 힘들구나.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이 산 헐면 다시 오나?’ 요령잡이 둘이 요령을 흔들며 관 앞을 춤추듯 돌다가 이렇게 앞소리를 메기면, 다른 사람들이 뒷소리로 응답한다. ‘두 번 다시 아니 오네’. 다시 앞소리가 ‘바닷물 마르면 다시 오나?’라고 물으면 뒷소리는 같은 대답을 반복한다. ‘두 번 다시 아니 오네.’ 이런 창의적 소리 메김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328쪽) <사진 3> 노르베르트 베버, ‘행상’, 유리건판, 1925년 함경남도 내평,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1925년 내평 사진, 교회풍 장례 행렬 보여줘 ‘사진 3’은 ‘사진 2’의 풍경과 사뭇 다르다. 상여 맨 앞에는 십자가를 든 복사단 행렬이 자리한다. 성경을 든 복사가 뒤따르고 그 뒤에는 중백의에 영대를 두른 카누토 다베르나스 주임 신부가 걸어가고 있다. 주임 신부 뒤에 자리한 상여는 고인이 그리스도인임을 알리는 십자가 문양으로 장식돼 있다. 상여가 내평본당 공동 묘원으로 들어섰음을 많은 나무 십자가 묘비가 알려준다. 상주들을 비롯한 행렬 참가자들이 무거운 침묵 속에 상여를 뒤따른다. 그리스도인이 죽음 앞에 오열하지 않는 것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완전히 한몸이 되는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주님,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 세상에서 깃들이던 이 집이 허물어지면 하늘에 영원한 거처가 마련되나이다”(위령 감사송 1)라고 기도한다. 하관(下棺)은 집안에 따라 관 채로 안치하는 경우도 있고, 탈관해 안치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고인의 머리를 북향, 발을 남향으로 반듯하게 안치한 후 흙으로 메우는 것은 어디든 같다. 지방에 따라 하관 역시 지관의 지시에 따라 진행된다. 지관은 하관 시간을 정하고 하관 장면을 보지 말아야 할 띠를 미리 알려준다. 이 띠에 해당하는 사람이 만약 하관 장면을 보게 되면 살을 맞아 병을 얻거나 심한 경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해서 하관을 마칠 때까지 뒤돌아 서 있게 한다. <사진 4> 노르베르트 베버, ‘하관’, 유리건판, 1925년 함경남도 내평,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베버 총아빠스는 ‘사진 3’의 하관 예식을 필름에 담았다.<사진 4> 상여에서 막 내려진 관에는 십자가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상여꾼들이 하관을 위해 광목 천을 감싸고 있다. “벽을 친 묘혈에 하관이 진행되는 동안 인부들은 천천히 주위를 돌면서 땅을 밟아 다진다. 이때 지관이 다시 등장한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멋지게 마무리하는 방법을 꿰고 있다. 관은 정확하게 수평을 유지해야 한다. 지관은 끊임없이 납추로 정확한 위치를 가늠하면서 그 방향으로 관을 움직인다.…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측정하여 수평을 잡는다. 마침내 지관이 작업을 끝낸다. 종이를 바른 나무판에는 망인의 이름이 쓰여 있다. 그것을 관 위에 놓는다. 관을 묘혈 석벽 사이에 정중히 모시고 그 위를 각목으로 덮은 다음 흙을 붓는다. 묘혈이 완전히 메워지면 인부와 상여꾼들이 땅을 밟아 단단히 다진다. (⋯) 원무를 추면서 흙다지기를 오래 거듭하는 동안 어느덧 높고 견고한 봉분이 쌓인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330~331쪽)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선임2024.11.06
![[독자기고] 엄마와 함께하는 성지순례](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5/08/bXQ1778204993439.jpg)
[독자기고] 엄마와 함께하는 성지순례 4월 9일 엄마의 요양원에 방문하는 날! 아침부터 분주하다. 기차 안에서 요기하며 대전에 계시는 엄마를 보러 간다. 적막이 감돈다. 절로 나오는 한숨, 머리에는 가시관이 얹혀있다. 변해가는 엄마 모습을 떠올리니 가시 하나가 박힌다. 자식의 도리에 못 미치니 괴로움의 가시가 또 하나. 두 시간 넘게 달려가 만난 엄마를 보고 또 하나. 이렇게 엄마와 나는 수 년을 함께했다. 엄마의 목소리와 눈빛은 여전히 젊다. 당당하시다. 그럴 땐 나도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간다. 땅 한 평도 놀리지 않는 엄마 세대, 집 마당에 마늘을 심지 못해 늘 안타까워하는 엄마를 요양원에 모셔드리고 집으로 오는 차 안의 공기는 항상 무겁다. 가시로 콕콕 찔린 상처에 눈을 감는다. 3일 후 엄마가 또다시 나를 부르신다. 4월 16일 요양원으로 달려가 보니 엄마 얼굴이 심상치 않다. 온몸에 얼굴까지 요독으로 괴로워하신다. 서둘러 병원으로 모시고 심전도·신장·엑스레이·소변 검사. 대학병원 병원 의자에 지쳐 누우신 엄마, 신장내과 교수님은 말없이 컴퓨터만 바라보신다. 순간 각오를 하고 들을 자세를 취한다. 신부전 말기. 투석을 하지 않으면 2주 안에 돌아가실 거라는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투석을 해도 올해를 넘기지 못한다는 말씀?. 가족들과 투석으로 연명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뜻을 모은다. 통증을 줄이며 평화롭게 가시는 길을 선택한다. 하지만 엄마의 통증은 나도 누른다. 어쩔 수 없이 투석 요양병원으로 모신다. 일주일에 3번, 한 번 할 때마다 4시간. 투석을 시작한 후 엄마는 안정의 길로 돌아온다. 나도 기쁘다. 오늘은 사랑의 기쁜 관이 앉혀 있다. 엄마의 밝아진 목소리에 더해 가족들의 지원으로 지난여름부터 준비해온 보스니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10일간의 순례행을 결정한다.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엄마에게 성지순례 갔다 오겠다고 인사하니, 돌아가신 아버지가 밥을 제대로 드시고 있는지 묻는다. 다시 또 하나의 가시가 박히지만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4월 21일 순례길에 오른다. 이틀 뒤 프란치스코 성인이 계시던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발칸의 넓은 광야를 버스로 이동하던 중 핸드폰에 친구와 가족으로부터 연속된 부재 전화가 뜬다. 순간 묵주 한 알에 엄마의 길을 봉헌한다. 3시간 후 호텔에 돌아와 가족에게 건 전화. 엄마의 죽음이 전해진다.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요한 20,11) 마리아의 울음은 빈 무덤의 통곡의 울음, 나의 통곡이 시작. 영혼이 나간 눈빛, 손으로 무언가를 하려는 듯 물건을 들었다 놨다, 발을 동동거리며 방 곳곳을 돌아다닌다. 타 본당 성지순례에 끼어 온 터라 조용히 홀로 한국행을 결정했다. 가이드님께 비행기 표를 알아봐 달라 하고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러나 가이드님은 크로아티아에서 직항은 없고, 두 번의 환승 끝에 돌아간다고 해도 발인 날짜를 넘길 것이라 한다. 내게 얹혀있는 가시관에서 피가 흐른다. 룸메이트에게 미안함도 잊은 채 꼬박 주님을 향해 분노한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가시관 가시로 저를 찌르시는지. 다음 날 신부님과 가이드님께 남은 일정을 따를 수밖에 없음을 말해야 했다. “너는 나를 따라라.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두어라.”(마태 8,22) 성경 말씀이 살아서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동시에 정종순 마리아를 위한 순례 미사가 시작되었다.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내가 몸담아 온 본당 식구와 재속 가르멜회에는 엄마의 부고를 알릴 수 없었다. 하지만 성인들의 행적이 깃든 순례 성당에서 엄마를 위한 미사가 매일 봉헌되었다. 발인 전날, 크로아티아에서 영정을 컴퓨터 전면에 띄운 채 장례미사를 올렸다. 주님! 이거였군요. 엠마오 제자들이 당신을 알아보지 못한 그 순간처럼 나의 가시관에서 깊숙이 못 박힌 가시가 아지랑이로 변하여 엄마와 나의 순례를 이끌고 있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이번 순례 여정은 당신께서 준비하신 것. 보이지 않는 당신을 깊은 내면으로 받아들입니다.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고인이 된 정종순 마리아를 위하여 주모경을 바쳐주시는 감사로 고인의 부고를 알려드립니다. 십자가 성 요한의 딸. 황규순 헬레나 cpbc2026.05.08
![[조승현 신부의 사제의 눈] 한 손에 성경을, 한 손에 유튜브를](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9/06/3m61693961823236.jpg)
[조승현 신부의 사제의 눈] 한 손에 성경을, 한 손에 유튜브를조승현 신부(CPBC 보도주간) 대한민국은 유튜브 공화국이다. 지난 8월 한 달간 한국인의 유튜브 사용 시간은 19억 5666만 시간이라고 한다. 인구수로 나누면 1인당 하루 73분 유튜브를 시청했다. 국민 메신저로 불리는 카카오톡이나 네이버보다 월등히 많이 사용한다. 이제 사람들은 뉴스를 유튜브로 본다. K팝이나 K드라마의 전 세계적 열풍은 유튜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음악도 라디오도 유튜브로 듣는다. 특히 유튜브는 젊은 세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스마트폰이 학용품인 시대에 유튜브는 아이들의 놀이터다. 아이들은 30초 내외의 짧은 ‘숏폼’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나 SNS에 올려 친구들끼리 공유한다. 유튜버 같은 ‘크리에이터’는 초등학생이 꿈꾸는 직업이다. 신앙생활도 유튜브다. 이제 사람들은 신부님들의 미사 강론도 유튜브를 통해 듣는다. 바티칸에서 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강론을 안방에서 보고 듣는다. 여러 생활성가 가수의 찬양을 들으며 눈물을 흘린다. 궁금한 교리나 성경 지식은 유튜브를 검색해 공부한다. 황창연 신부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가 45만, 법륜 스님 구독자가 147만 명이다. 성지순례도 유튜브로 한다. 이스라엘의 예수님 성지가 내 손안에 있다. 유튜브를 통해 24시간 라이브로 프랑스 루르드 성모성지를 볼 수 있다. 성지순례 떠나기 전 유튜브로 내가 갈 성지를 미리 공부할 수 있다. 해외 유명 성지를 찾아간 영상이 유튜브에 차고 넘친다. 그럼 가톨릭 신자들은 유튜브를 어떻게 이용하고 있을까. 천주교나 불교의 조사는 없지만, 개신교 조사를 통해 추정해 보면 이렇다. 개신교의 조사(한국 교회 트렌드 2025 조사)에 따르면, 개신교인 60.7%가 하루 1시간 이상 유튜브를 이용한다고 답했다. 그리고 유튜브를 이용하는 개신교인 64.8%가 종교 콘텐츠를 이용한다고 답했다. 불교는 39.7%, 가톨릭은 31.4%가 종교 콘텐츠를 이용한다고 답했다. 특히 유튜브에서 종교 콘텐츠 주 시청자층이 60대 이상의 고령층으로 조사된 것이 흥미롭다. 종교의 고령화 현상이 유튜브 시청 연령층에서도 확인된다. 조사를 진행한 목회데이터연구소는 유튜브로 복음을 접하는 현상을 ‘유반젤리즘(You-vangelism)’이라고 이름 붙였다. 20세기 중반 미국에서 텔레비전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활동을 가리켜 텔레비전(television)과 복음을 뜻하는 에반젤리즘(evangelism)을 결합한 파생어 ‘텔레반젤리즘’(Tel-evangelism)이란 용어가 있었는데, 유튜브 천하인 지금은 ‘유반젤리즘’이라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과거 종교 방송국의 창립으로 TV를 통한 전교 활동은 새로운 혁신처럼 생각되기도 했지만, ‘유반젤리즘’ 시대에 TV는 60대 이상 고령층의 전유물이지 더 이상 복음화의 혁신이 되지 못하며, 선교 혁신은 스마트폰의 유튜브에 있다는 것이다. 다음 주 교회는 전교 주일을 맞이한다. 빛의 속도로 변하는 미디어 생태계 속에서 전교 주일을 앞둔 cpbc의 고민도 깊어진다. “한 손에 성경을, 한 손에 신문을”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한 손에 성경을, 한 손에 유튜브를”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제 교회와 세상의 연결은 신문 같은 전통 미디어가 아니라 유튜브 같은 뉴미디어로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유튜브 세상이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변하지 않는다. 세상에 복음을 전한다는 cpbc의 목표는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히려 유튜브 같은 뉴미디어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새로운 장이 열렸다. 그 새로운 시대 선두에 cpbc가 있을 것이다. 기도한다.조승현2024.10.08
![[신앙단상] 성당 봉사로 얻는 기쁨과 행복 그리고 감사](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11/04/sDP1762217527594.jpg)
[신앙단상] 성당 봉사로 얻는 기쁨과 행복 그리고 감사 김기형 지난주 얘기한 히스토리를 통해 15년 전 우리 가족 4명은 같은 날 동시에 세례를 받게 되었고(11월 2일자 ‘신앙단상’ 참고), 세례를 받자마자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나는 독서, 아내는 제대회, 그리고 아이들이 초등학생이었기에 아내는 자모회 봉사도 함께했다. 그런 아내를 돕고자 나 역시 대놓고 비공식적인(?) 자모회 일꾼 봉사를 시작했다. 독서나 자모회 활동이 매일 있는 봉사는 아니었지만, 일주일에 두어 번은 봉사 기회가 주어졌다. 독서를 하기 위해 「매일 미사」 또는 성경을 읽어야 했고, 아내는 제대를 준비하기 위해 제대의 중요성과 전례 용품에 관한 공부를 하게 되었다. 성당에서 많은 봉사활동이 이뤄지지만, 아내와 나는 전례와 관련된 봉사를 하고 있었기에 우리 대화도 각자 봉사와 관련된 이야기부터 신앙 관련, 초등부 주일학교를 다니는 우리 아이들 이야기 등 가족의 신앙생활 관련 내용이 자연스럽게 공통 주제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다 조금씩 다른 주제로 이어지면서 나와 아내의 대화 폭은 넓어져 갔다. 성당에서의 봉사활동은 신앙생활, 개인 성찰, 일상적 삶의 모습 등 내 생활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키고 있었지만, 가장 큰 변화는 아내와의 대화, 아이들과의 대화였다. 신앙생활을 하며 봉사하기 전의 생활을 돌이켜보면 아내와의 대화는 주로 부족한 생활비, 다른 집과의 비교 등 답이 없거나 말다툼으로 번지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나마도 나의 대답은 “당신이 알아서 해” 또는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해”가 전부였다. 아이들과의 대화는 “공부해라, 그만 좀 놀아라, 엄마 말 좀 잘 들어라” 등 야단치는 내용이 전부였다. 그러나 신앙생활과 함께 봉사활동을 하면서부터 대화 주제는 성경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를 이끄시고자 하는 것들, 제대회·자모회·독서 등 봉사활동과 관련된 이야기들, 나아가 아이들 부모로서의 자세와 마음가짐 같은 것들로 바뀌었고,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닌 이들도 잘 알듯이 천주교는 사랑과 감사를 강조한다. 나와 아내는 부모로서 자식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모회 봉사를 열심히 했고, 나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세례를 받은 아내는 내가 회개를 결심한 데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제대회 봉사를 열심히 했다. 아이들은 깔깔깔 웃으면서 행복한 마음으로 초등부 주일학교 선생님과 있었던 이야기들을 했고, 나는 아내와 아이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기쁨과 행복을 느끼며 미사 독서에 임했다. 그렇게 봉사활동에 참여한 시간이 쌓이고 흘러 15년이 지났고, 이사를 하면서 본당을 두 번 옮기게 되었지만, 아내와 나의 봉사활동은 변함없이 진행 중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제대회 봉사를 했던 아내는 지금 첫영성체 부모 교리교사로 봉사 중이고, 독서 봉사를 했던 나는 해설 봉사를 하고 있다. 그리고 주일학교에 다니던 딸과 아들은 중고등부 교리교사로 봉사하고 있다. 15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오는 성당에서의 봉사는 신앙적 깊이를 더 깊게 해주었고, 이는 자녀들이 어긋나지 않고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는 기본이 되었다. 무엇보다 냉랭했던 아내와의 관계, 아이들과의 관계를 사랑으로 더욱 단단하게 해주었다. 이보다 더 기쁘고 행복하며 감사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주 하느님, 제가 누구이기에, 또 제 집안이 무엇이기에, 당신께서 저를 여기까지 데려오셨습니까?”(2사무 7,18) “이제 당신 종의 집안에 기꺼이 복을 내리시어, 당신 앞에서 영원히 있게 해 주십시오. 주 하느님, 당신께서 말씀하셨으니, 당신 종의 집안은 영원히 당신의 복을 받을것입니다.”(2사무 7,29) 김기형cpbc2025.11.04

성스러운 캔버스에서 다이아몬드 두개골까지화제의 전시에서 만나는 종교 파올로 베로네제 작 '그리스도와 백인대장', 1575~1580년. © 2026 Toledo Museum of Art. All rights reserved. 데이미언 허스트 작 삼면화 ‘신의 무한한 권능과 영광을 묵상하며’(2008년)와 앞쪽 두개골 ‘신의 사랑을 위하여’(2007년). 국내 주요 미술관에서 세계적인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전시회가 잇달아 개막했다. 신앙이 사회의 중심이었던 16세기부터 과학과 물질에 그 자리를 내어준 듯한 21세기에 이르기까지 다른 시대와 당대의 작가가 담아낸 종교가 이색적이다.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 : 톨레도 미술관 명작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 : 톨레도 미술관 명작' 전이 여의도 더현대 서울 ALT.1에서 열리고 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미국 톨레도 미술관이 소장한 렘브란트·고야·다비드·터너 등 유럽 회화사의 변곡점으로 거론되는 거장들의 작품 50여 점을 소개한다. 전시는 크게 5개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16세기 중반~19세기 중반, 즉 르네상스 이후 바로크·로코코·신고전주의·낭만주의에 이르는 예술사조와 함께 시대와 철학, 사회적 맥락에 따라 작품의 주제와 표현 방식이 달라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엘 그레코 작 ‘겟세마니의 기도’ 1590~1595년 경. ⓒ 2026 Toledo Museum of Art. All rights reserved. 사순을 거쳐 부활 시기에 접어든 만큼 이 가운데 스페인 종교미술의 토대를 마련한 엘 그레코의 ‘겟세마니의 기도’가 눈에 띈다. 네 복음서를 통합해 예수님이 체포되기 직전 겟세마니 동산에서 드린 기도를 시각적으로 해석했다. 그림 오른편에는 유다와 성전 경비병이 예수님을 향해 다가오는가 하면, 왼편의 깊이 잠든 베드로·야고보·요한은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낸다. 무릎을 꿇은 채 길게 늘어난 예수님의 신체는 내면의 갈등과 영적 고양을 표현하고, 왼쪽 상단의 천사는 십자가 수난을 상징하는 금잔을 건네며 하느님의 뜻을 전한다. 요동치는 하늘, 전체적으로 황금·은·붉은색이 뒤섞인 강렬한 색채 대비는 인간의 고통과 신성의 초월을 내포하고 있다. 프란체스코 살비아티 작 '성가정과 세례자 요한', 1540년경. © 2026 Toledo Museum of Art. All rights reserved. 성경 속 그리스도와 로마군 백인대장의 이야기를 르네상스 특유의 방식인 연극의 한 장면처럼 연출한 파올로 베로네제의 ‘그리스도와 백인대장’, 후기 르네상스 양식의 우아함을 보여주는 프란체스코 살비아티의 ‘성가정과 세례자 요한’, 우르바노 8세 교황의 조카로 수많은 예술가를 후원한 프란체스코 바르베리니 추기경이 피에트로 다 코르토나에게 의뢰한 ‘성모 마리아에게 까말돌리 수도회 회칙을 봉헌하는 성 베드로 다미아노’도 감상할 수 있다. 전시는 7월 4일까지 이어진다. 데이미언 허스트 작 '성 바르톨로메오, 극심한 고통', 2007년. 데이미언 허스트: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는 영국 출신 데이미언 허스트의 개인전이 시작됐다.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허스트의 대규모 개인전으로, 35년에 걸친 그의 작품 세계를 폭넓게 조망한다.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현대미술계에서 다채로운 해석과 평가를 받아온 허스트는 아름다움과 종교·과학·삶과 죽음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꾸준히 탐구해 왔다. 의외로 상당수 작품의 오브제가 그리스도인에게 친숙한 이유는 가톨릭 가정에서 성장한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과거 종교의 자리를 현대 의학과 자본이 대체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전체 4부 가운데 3부 ‘침묵의 사치’에서 과학과 종교, 예술의 복잡한 관계를 다룬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인간의 영혼과 부활을 상징하는 수천 마리의 나비를 사용해 중세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재현한 삼면화, 두개골을 백금으로 주조하고 8600여 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신의 사랑을 위하여’, 산 채로 살갗이 벗겨진 사도의 모습을 담은 ‘성 바르톨로메오, 극심한 고통’ 등이다. 6월 28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데이미언 허스트 작 '신의 사랑을 위하여', 2007년.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6.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