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주일] 세상 향한 교회의 창… 세상 복음화 이끌 선교사가 되어주세요](//cpbc.co.kr/CMS/newspaper/2021/10/rc/811619_1.3_titleImage_1.jpg)
[전교 주일] 세상 향한 교회의 창… 세상 복음화 이끌 선교사가 되어주세요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 100만 선교사 양성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은 TV, 라디오, 신문, 유튜브, SNS 등 다양한 매체와 각종 문화 사업을 통해 이땅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 이바지 하고 있다. 그리고 CPBC의 복음 선포 사명은 후원자들의 관심과 지원이 없다면 지속할 수 없다. 사진은 가운데 CPBC 사옥을 중심으로 오른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평화나눔음악회에서 공연하는 CPBC소년소녀합창단, 윤전기를 통해 인쇄되는 가톨릭평화신문, 본사 청년 직원들, CPBC TV ‘우리 시대의 일곱 교황’, CPBC TV 주조종실.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은 교회 언론을 통해 함께 복음을 선포할 100만 선교사를 모집합니다.100만 선교사는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모든 이에게 “참 하느님이시며 참 인간이신 예수님께서 구세주이시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고, 이 땅에 그리스도의 평화를 실현하는 데 영적 기도와 물적 지원으로 협력하는 이들입니다. 100만 선교사들은 마치 마리아 막달레나가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복음을 사도들에게 전한 사도인 것처럼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모든 대중 매체 수단을 통해 복음을 선포하는 데 가장 먼저 앞장서 줄 언론 사도직의 핵심 첨병입니다.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100만 선교사를 구하는 것은 한국 교회 600만 신자의 모든 가정이 교회 언론 사도직에 협력해주리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을 통해 교회 언론 사도직의 선교사가 되길 원하시는 분은 CPBC 앱을 설치하고 ‘선교후원회’로 들어가 가입하시면 됩니다. 가입 문의 : 1588-2597전교 주일을 맞아 교회 언론과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의 100만 선교사가 왜 필요하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소개합니다.교회의 선교 사명교회의 사명은 복음 선포이고, 이를 위해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성사 생활과 기도 생활로 응답합니다. 복음 선포 곧 ‘선교’는 그리스도인의 가장 위대하고 거룩한 임무입니다.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실 때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라고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임무를 부여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에 교회는 “나도 전해 받은 것을 여러분에게 전합니다”(1코린 15,3)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세상 모든 곳의 모든 이에게 언제나 하느님 말씀의 선포자와 봉사자들을 파견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선교는 어느 세대, 세계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교회 생활의 본질적인 요소”라며 선교에 힘써 달라고 당부한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씀처럼 교회는 복음을 선포하는 데 있어 시대마다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도구를 사용해 왔습니다. 초대 교회 때에는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이 직접 말로 복음을 선포하고, 예수님의 행적을 글로써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박해 시대 때에는 장엄한 순교와 성덕이 빛나는 모범적인 삶의 실천으로 그리스도를 선포하였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얻은 고대 교회는 파트리치오, 골룸바노, 아우구스티노, 보니파시오 등 위대한 선교사들이 이방인들을 선교하였습니다. 중세 때에는 성화상을 이용해 글을 모르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근대 교회에서는 여러 언어로 성경과 가톨릭교회 교리서, 신앙 서적을 번역해 선교하였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현대 사회의 홍보와 소통 수단인 신문, 방송, 소셜미디어를 선교의 도구로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여기에는 그리스인도 유다인도, 할례받은 이도 할례받지 않은 이도, 야만인도, 스키티아인도, 종도, 자유인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콜로 3,11)라는 바오로 사도의 고백처럼 모든 때에 세상 모든 이를 복음으로 초대하고 있다. 한국 교회, 특히 서울대교구는 교회의 가장 위대한 선교 사명을 인식해 1988년 5월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을 설립해 신문ㆍ라디오ㆍTVㆍ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국 방방곡곡에 온종일 그리스도의 말씀이 전해지지 않는 곳 없이 복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선교사의 세 가지 형태선교는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 세례받게 하는 것과 세례를 받았으나 교회를 등진 이들을 새 복음화해 주님께로 다시 돌아가게 하는 이중 의미를 지닙니다. 그래서 선교의 대상은 세상 모든 이입니다. 선교사는 세 형태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교회로부터 공적으로 파견된 선교사입니다. 이들은 파견된 선교지에서 복음을 전하고, 세례 성사를 베풀며 교회를 세워 성사 생활을 지속하게 합니다. 둘째, 삶의 자리에서 성덕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퍼뜨려 이웃을 교회로 이끄는 선교사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콜로 3,12)라고 그리스도인들에게 권고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들을 ‘옆집의 성인들’이라고 표현합니다. “무한한 사랑으로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 가정을 부양하고자 열심히 일하는 수많은 남녀, 병자들, 한시도 미소를 잃지 않는 노 수도자가 있습니다. 날마다 한결같이 앞으로 나아가는 그들에게서, 저는 투쟁 교회의 성덕을 봅니다. 이는 우리 옆집 이웃 안에서 발견되는 성덕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우리 한가운데에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현존을 반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성덕의 중산층’이라고도 부를 수 있습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7항) 교회는 전통적으로 사람들을 회개시키고 구원하는 일에 있어 ‘앎’보다는 ‘덕’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권고합니다. 그러면서도 먼저 어느 정도의 교리적 지식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생활하는 데에 크게 부족한 부분을 느낄 수 있다며 신앙에 관한 지식을 쌓을 것을 권장합니다. 교회 언론의 큰 사명 중 하나도 바로 신자들에게 신앙의 지식을 쌓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셋째, 기도와 물적 수단으로 교회에 협력하는 선교사들입니다. 교회가 선교 사명을 수행하는 데 있어 기도뿐 아니라 물질적인 수단들도 적지 않게 요구됩니다. 그래서 역대 교황들과 사도들의 후계자들은 하나같이 선교를 위해 모든 그리스도인이 힘닿는 데까지 물질적 도움을 베풀어 달라고 간곡히 요청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선교는 여전히 절박한 과제”라면서 “선교를 위해 우리의 시간과 노력, 재화를 쏟아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교황은 그러면서 “선교를 위한 개인적 기부는 먼저 주님을 향하고, 그다음으로 다른 이들을 향한 자기 봉헌의 표시입니다. 이렇게 물질적 봉헌은 사랑을 바탕으로 한 인류의 복음화를 위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당부하셨습니다.(전교 주일 담화 참조)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과 100만 선교사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은 서울대교구가 운영하는 한국 교회의 선교 도구입니다. ‘선교’와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위해 설립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 일반 언론과의 근본적인 차이입니다. 그래서 설립자이신 고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을 ‘무형의 성전’이라고 정의하셨습니다.오늘날 미디어 환경은 일상처럼 우리 삶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은 기존의 신문 라디오 TV뿐 아니라 현시대의 자원은 ‘온라인’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은 교회와 세상을 잇는 ‘고리’로서 세상을 향한 교회의 ‘창’(窓)이 되고자 거듭 쇄신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세상의 도전에 맞서는 교회의 소리로서의 사명을 다 하고 있습니다.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세상에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명을 다 하기 위해선 물질적 지원이 절실합니다. 전문 언론인을 양성하고,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방송 장비와 시스템을 갖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 100만 선교사들은 오늘날 우리 시대에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삶의 변화를 체험한 사람들의 강렬한 증언을 전하는 ‘새로운 복음서’의 저자들입니다. 때로는 복음서 속의 착한 사마라이 사람처럼, 또 주님을 위해 값비싼 향유를 쏟아붓는 여인처럼, 십자가 아래에서 주님의 수난을 지켜보고, 부활하신 주님의 증인이 된 여인들처럼 새롭게 엮는 복음서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마르 1,1)으로 시작하는 기쁜 소식만이 올바른 렌즈가 될 수 있습니다”라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처럼 한국 교회 모든 그리스도인이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 100만 선교사로 활동해 주시길 기대합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1.10.20

‘보편적 인권’이라는 새로운 길로 교회를 이끌다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59) 프리드리히 스팀멜의 ‘하느님의 교회를 인도하는 레오 13세’ 프리드리히 스팀멜, ‘하느님의 교회를 인도하는 레오 13세’(1903년), 케벨라 순례성지, 독일 1800년대 유럽 사회는 ‘혁명’과 ‘발전’이라는 키워드가 지배하던 시대였다. 그 여파로 인한 자유와 독립의 움직임도 거세게 일어난 동시에 거기에 편승하지 못한 계층의 비참함도 극명하게 드러난 시대였다. 교회는 영적ㆍ물리적인 박해를 거쳐 새로운 면모를 갖추었고, 교종(敎宗)은 영적 차원의 리더십을 보편적으로 확보하는 가운데 세계를 대상으로 모든 백성의 삶에 관심을 기울였다.혁명과 발전의 시대, 레오 13세 교황 1878년 2월 로마 인근 카르피네토 로마노 교구 출신의 조아키노 빈첸초 라파엘레 루이지 페치 추기경이 ‘레오 13세’라는 이름으로 교종이 됐다. 로마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고, 인문학을 기반으로 외교와 법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뒤, 사제품을 받았다.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의 특사로 베네벤토, 스폴레토, 페루지아 등 저물어 가는 교황 영지에서 지방 행정관을 지내기도 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부정부패와 끈질기게 싸웠고, 마피아와 내통하며 백성의 피를 빨며 지역 경제를 쇠퇴시키고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던 세력들을 몰아내는 데 최선을 다했다. 또 여러 방식으로 빈민 구제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집 없는 청소년들을 위해 주택을 공급하고,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낮은 이율의 대출을 지원하며,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는 등 사제로서 행정관으로서 할 일을 소신껏 해 나갔다. 그것은 주교가 되고 추기경이 된 뒤에도 계속됐다. 그가 교종으로 선출되었을 때 이탈리아 통일은 이미 완성됐고 교황령은 모두 사라졌다. 로마가 이탈리아의 수도로 선포됐고, 교종은 바티칸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통일 이탈리아는 이제 수 세기 동안의 지역 중심주의를 극복하고 민족주의, 국가주의를 어떻게 고취해 나가느냐는 과제에 직면해 있었고, 그것을 위해 교회가 필요한 만큼 여러 구실을 만들어 교종을 압박했다. 레오 13세는 이탈리아 혁명 세력의 입맛에 맞추기보다는 세계와 인류 앞에서 교회의 길을 내는 데 집중했다. 노동 계층을 향한 관심, 회칙 「새로운 사태」 레오 13세는 임기 초부터 안으로는 훼손된 교회를 복원하고, 밖으로는 이탈리아를 초월해 교회와 현대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 노력했다. 계몽주의 물결 속에서 일었던 과학과 종교의 대척 관계에 대해 그는 두 세계의 공존을 설파했고, 성경 연구와 토미즘에 관한 연구를 촉진하는 한편 연구자에게만 바티칸 비밀문서고를 개방했다. 그는 가톨릭 신자들에게 묵주기도를 통한 마리아 신심을 확산시키고, 성 요셉과 미카엘 대천사, 예수 성심을 공경할 것을 독려했다. 그는 신학에서나 정치에서나 온건주의자였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유럽인들의 삶의 중심에 두게 하려고 노력했다. 자신이 가진 지성과 외교적인 자질을 최대한 발휘해 러시아,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여러 국가와 관계를 개선하고, 가톨릭 신앙과 교구장 임명에 있어 교회의 권리를 되찾아왔다. 국제 사회에서 교황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었으며, 당시 유럽을 휩쓸던 각종 사조에 어떤 식으로든 응답함으로써 교회의 태도를 분명히 밝혔다. 그의 이런 여러 가지 업적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노동자 계층을 향한 관심과 처음으로 인간의 보편적 ‘인권’을 언급한 교종이었다는 사실이다. 1891년에 발표한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는 당대 유럽 사회의 다양한 문제, 특히 노동자 계급을 비롯한 약자들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았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과 자본주의의 문제점도 날카롭게 지적했다. 자본주의는 탄생과 함께 부(富)의 분배 문제를 가져왔고, 그 결과 양극화는 필연적이었다. 이에 교회는 인간의 존엄성을 근본 원칙으로 기본권과 사회정의, 공동선을 외쳤다. 당시 사회 상황은 인류가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던 ‘새로운 사태들’이었고, 교종은 이 모든 일에서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그가 개척한 길은 오늘날 가톨릭 ‘사회교리’에서 이야기하는 사회정의 문제, 세계적으로 만연한 각종 빈곤의 양상과 그것의 격차 문제, 인권과 다양한 차별 문제, 폭력과 전쟁 등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모든 문제에서 교회가 가야 할 길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성화 전문 예술가 소개하는 작품은 독일 화가 프리드리히 프란즈 마리아 스팀멜(Friedrich Franz Maria Stummel, 1850~1919)이 독일의 케벨라(Kevelaer) 순례 성지에 그린 ‘하느님의 교회를 인도하는 레오 13세’(1903년)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1903년 9월, 예수회에서 출판하는 프라이부르크 인 브리스고비아(Friburgo in Brisgovia)의 월간 「가톨릭 선교(Die katholischen Missionen)」의 도메인으로 소개됐다. 당시 잡지의 편집장은 스위스 출신의 가톨릭 신학자며 작가 안톤 후온더(Anton Huonder, 1858~1926)였다. 스팀멜은 뮌스터에서 태어나 대성당 부설 학교에 다니며, 인문학을 공부하던 중, 그림에 뛰어난 재능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뒤셀도르프 미술 아카데미에 조기 진학했다. 나자렛 운동을 활발히 했고, 그 바람에 성화 전문 예술가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의 재능은 성화 외에도 유리화, 조각, 금과 청동 세공 및 직조와 자수 등 장인들이 하던 다양한 분야까지 광범위했다. 이후 12년간 에른스트 디거(Ernst Deger)와 에두아르드 폰 게브하르트(Eduard von Gebhardt) 밑에서 미술 공부에 전념했다. 1879년에는 이탈리아를 여행했고, 많은 성당에 작품을 남겼다. 1881년 케벨라를 시작으로 안홀트, 퀼른, 룩셈부르크, 펠플린, 1906년 베를린까지 수많은 성당에 작품을 남겼다. 32살이 되던 1882년에 스팀멜은 순례 도시인 케벨라로 이사해 가장으로 부모 형제들을 돌보다가 거기서 1890년 헬레네 폰 윙클러(Helene von Winkler, 1867~1937)와 결혼해 4명의 자녀를 낳았다. 1919년 스팀멜은 뇌졸중으로 쓰러져 1년간 고생하다가 사망했다. 레오 13세와 단테, 베르길리우스 잘 알려진 사실 중 하나로, 레오 13세가 가장 좋아한 시인이 베르길리우스와 단테였다는 것이다. 단테의 「신곡」과 베르길리우스의 「아에네아스」를 모두 읽었으리라는 건 당연하다. 베르길리우스는 단테도 사랑한 시인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저서 「신곡」에서 ‘지옥’과 ‘연옥’의 안내자로 당대에 활동하던 시인이 아니라 베르길리우스를 삼았다. 그가 천국의 안내자가 될 수 없는 것은 그리스도가 오기 전, 로마 시대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옥’까지만 안내하고 림보로 돌아가야 했다. 천국의 안내자로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한 그가 연모한 여인 베아트리체였다. 단테는 신곡에서 지옥의 모델을 현실에서 찾았다. 실제로 현실을 천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머리에 꽃 꽂고 다니는 사람’밖에 없을 것이다. 어느 시대나 대부분 사람은 현실을 지옥이라고 생각한다. 단테 역시 그랬다. 그가 바라본 현실은 부정·부패가 만연했고, 의인을 찾아보기 드문 삭막하고 피폐한 공간이었다. 적나라한 그런 현실을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속어로 폭로했고, 그것을 프랑스 화가 들라크루아(Eugne Delacroix)는 그림으로(1822년), 구스타브 도레(Paul Gustave Dor)는 판화(1861년)로 1800년대 사회상으로 빗대어 남겼다. 그림 속으로스팀멜은 단테와 관련한 이런 작품들과 레오 13세의 연관성을 이 작품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하느님의 교회’는 미술사에서 언제나 ‘배’ 혹은 ‘방주’로 표현됐다. 성당의 제단을 표현한 듯 양쪽에 우뚝 세운 기둥 안에는 네 개의 에피소드가 담겨있다. 왼쪽부터 첫 번째 칸에는 ‘성 요셉의 작은 배’라고 적힌 갑판 위에 천사가 지키고 있다. 그 앞에 앉은 성녀로 보이는 두 여성은 배 위로 기어 올라오려는 반인반수의 존재들을 보면서 손을 꼭 잡고 있다. ‘교회의 수호성인, 성 베드로’라고 적힌 두 번째 칸에는 교회의 지킴이들이 있다. 작대기 모양의 노를 젓는 사람들은 가톨릭교회의 영성가들로, 배 위로 기어 올라오려는 반인반수의 존재들을 밀어내고 있다. 세 번째 ‘유혹자들을 막는 영적 군대’는 십자가로 무장하고 있다. 유혹자들은 바다로 표현된 세상에서만 오지 않는다. 위에서도 검은 새가 이들을 위협한다. 네 번째 “인류를 지키는 사람”으로 한 손은 배의 키를 잡고, 다른 한 손은 배에 탄 사람들을 안심시키려는 듯 손을 들고 있는 레오 13세 교종이 있다. 그는 왕직, 예언직, 사제직을 표현하는 삼중관을 쓰고 험한 세상을 건너는 교회(방주)를 인도하고 있다. 그의 머리 위에는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함께 하고, 바다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이한 동물들이 우글대고 있다. 당시 사회와 교회의 모습을 스팀멜은 특유의 화법으로 표현했다고 하겠다. 프리드리히 스팀멜, ‘하느님의 교회를 인도하는 레오 13세’(1903년), 케벨라 순례성지, 독일김혜경 (세레나, 부산 가톨릭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동아시아복음화 연구원 상임연구원) cpbc2021.11.02

주입식 주일학교, 체험·주도형 프로그램으로 바꿔나가야서울대교구 청소년 담당 교구장 대리 정순택 주교에게 묻다, 주일학교와 청소년 복음화의 사목 대안은? 서울대교구 청소년 담당 교구장 대리 정순택 주교 오는 2학기부터 학교 수업이 정상화될 예정이다. 방역 당국이 전국 신규 확진자가 1000명 미만일 때 전면 등교가 가능해지도록 기준을 변경했기 때문이다. 학교가 정상화되면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수업이 확대되면서 낮아진 학업 성취도도 향상될 전망이다. 아울러 최근 정부가 종교 시설에 대한 방역 지침을 완화해 주일학교 운영 정상화도 기대되고 있다. 이에 서울대교구 청소년 담당 교구장 대리 정순택 주교<사진>를 만나 청소년 복음화를 위한 사목 대안을 알아봤다. 도재진ㆍ이학주 기자▲코로나19로 공교육이 정상화되지 못해 청소년들의 학습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특히 학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학생들의 기초 학습 능력이 결정된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사회적 신분상승을 위한 기회들이 줄어들고 있다. 교회도 이제 이런 현실의 벽 앞에 좌절하는 젊은이와 청소년과 동반하여 격려해줘야 한다. 힘들어하고 아파하고 넘어진 젊은이와 함께하는 동반자의 사목이 중요하다. 교회의 큰 틀에서 우리나라 교육 정책에 관한 담론을 다뤄야 할 때이다. 서울대교구 청소년국은 세 차례에 걸친 청소년 사목 심포지엄을 통해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 대한 대안을 모색한 바 있다. 그 해결책 가운데 하나로 학력차와 학벌 차에 대한 임금 격차를 줄이자는 것이었다. 학력과 학벌에 상관없이 각자가 성실하게 살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정도의 임금이 보장돼야 한다. 이 부분은 고용과 임금, 세금 정책 등 국가 차원의 고민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정책적인 변화가 교육과 연관해 움직여야 한다.” ▲입시 위주의 교육 환경에서 청소년 복음화를 위해 한국 교회는 어떠한 역할과 노력을 해 나가야 하나. “새로운 접근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서울대교구 청소년국은 중고등학생을 위한 주일학교를 대체하는 시스템, 새로운 사목 접근법을 작년부터 마련하고 있다. 청소년 사목의 새 방법론 ‘나다(I AM)’이다. 청소년들이 주체적으로 서로 나눔을 한다. 교리교사가 주입식으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성경을 가지고 함께 나누고, 체험 프로그램으로 성지순례를 하고, 청소년들이 주도적으로 하는 나눔 위주의 프로그램이다. 「한국 천주교 청소년 사목 지침서」 핵심 키워드는 ‘동반자 사목’이다. 사목자들은 주입식 교리 전달이 전부가 아니라, 청소년들이 스스로 체험하며 깨닫고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동반해야 한다. 사목자만이 아니라 교회와 가정이 어떻게든 참여해 청소년들이 자기 주체적인 체험ㆍ나눔ㆍ성장을 해나갈 수 있도록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아울러 교회는 주일 미사에 청소년을 더 많이 초대해야 한다. 교회가 청소년들을 초대하는 것은 ‘신자니까 의무적으로’ 같은 차원을 넘는 것이다. 청소년에게 신앙생활은 정말 중요하고 필요하다. 성당 가는 것이 공부할 두세 시간을 뺏는 게 아니라 거기서 건강한 에너지와 휴식, 균형을 얻게 된다. 그 시간에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그 이상의 에너지를 받을 수 있다. 우리 교회 역할이 사실 더 크다. 젊은이와 청소년들이 공부할 시간이 없다고 느낄수록 신앙생활을 더 한다면 공부에 있어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최근 발표한 「한국 천주교 청소년 사목 지침서」에서 주목한 ‘가난한 청소년’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한국 천주교 청소년 사목 지침서」가 말하는 가난은 단지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다. 인적 네트워크에서의 가난, 친구와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의 가난 등 여러 의미의 가난이다. 그런 점에서 많은 청소년이 ‘가난한 청소년’이라고 할 수 있다. 가난한 청소년이 많기에 다양한 사목을 시도해야 한다. 청소년국은 학교 밖 청소년을 찾아가는 ‘아웃리치(Outreach, 찾아가는 구호 활동)’ 사목도 한다. 일례로 가톨릭 청소년 이동 쉼터 서울A지T를 들 수 있다. 개조한 버스로 일주일에 몇 번씩 청소년들을 만난다. 정규 학교에 어려움이 있거나 다른 뜻있는 청소년을 위해 대안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음악(노비따스음악중ㆍ고등학교)과 미술(화요일아침예술학교) 대안학교도 있고, 청소년 문화공간 JU역촌동도 있다. 가난한 청소년들을 찾아가는 사목적 시도라고 할 수 있다.학교 폭력 문제에 대해 교회 차원에서 사목적 동반과 피해자의 치유를 위한 돌봄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교육 풍토의 혁신이 중요하다. 학폭이 없도록 교육 풍토를 바꿔 나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사목자 개개인이 하기 어렵다. 교회의 큰 틀에서 교육 풍토를 혁신할 수 있는 대사회적 목소리와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교회 안에서도 현 교육 제도의 문제점과 대안에 관한 연구가 필요하다. 사목자와 수도자 한 분 한 분이 구체적으로 아픔을 겪은 피해ㆍ가해 학생들을 치유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동반하는 것은 계속 확산해 나가는 동시에 교회 차원에서 사회의 교육 풍토를 바꾸는 연대가 필요하다.”정 주교는 최근 국가교육위원회 설립과 운영에 관한 법령 제정에 있어 정파 갈등을 빚고 있는 것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정 주교는 “정말 백년대계를 위한 것이라면 정권이나 정파ㆍ정당ㆍ정치 이념을 떠나서 모든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교육 목표와 철학의 방향성을 정립하는 범국민적 논의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cpbc2021.06.22

“하느님은 우리 인간에게 완전한 자유를 허락하셨다”[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인격 그리고 프란치스칸 영성] 25. 하느님의 선과 인간의 자유 프란치스코 성인은 원죄에 물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참하느님께서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나 참인간이 되신 강생의 신비를 묵상하며 하느님의 선을 찬미하였다. 조토, ‘동방 박사의 경배’, 프레스코화,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아시시. 사랑과 선을 창조하는 동업자로 삼으시다그런데 인간 이해와 관련하여 이렇게 말을 이어가는 것이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인간 존재를 이렇게 이해하게 될 때는 인간이 하느님께 온전히 의존적으로만 존재해야 하는 자유롭지 못한 존재로 이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하느님은 우리에게 온전히 자유를 허락하신 분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낙원에 두시고, 그다음에 그들이 그곳에서 선악과를 따먹는 이야기는 하느님과 우리 인간의 끊임없는 다람쥐 쳇바퀴 식의 관계성을 말해주는 비유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하느님은 온전한 자유를 허락하시고 인간은 한 가지 제한이 또 다른 자유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자유로운 선을 지배하는 ‘권력’으로 오해하여 계속해서 거기에 반기를 들며, 급기야는 하느님과 똑같으신 외아드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우를 범하는 것이 성경이 말해주는 인간 역사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사실 역사의 주인은 오직 하느님이시기에 그 역사를 주도해가시는 분 역시 하느님이시지 우리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우리 인간에게 완전한 자유를 허락하시며 당신과 더불어 사랑과 선의 창조를 계속해 가는 동업자로 우리를 삼으셨다.코로나19, 관계성 되볼아보는 계기우리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위기 시대를 겪으면서 계속해서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을 듣게 된다. 전염병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분명하고도 불가피한 대처이다. 그런데 이 말의 논리를 거꾸로 들여다보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 인간 존재의 핵심부에는 관계성, 즉 함께 있고자 하는 본질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우리가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지내왔다는 것이고, 또 그 가까움의 갈망이 우리 내면 깊숙하게 심겨 있기에 ‘사회적 거리 두기’의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함께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즘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전염병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 서로의 관계성과 관련하여 내면 깊이 성찰해보아야 할 것이 있다. 사실 우리는 하느님에게만이 아니라 우리 서로에게 그런 함께 함과 관계 맺음의 본성을 강력하게 지니고 있으면서도 함께 할 때 우리가 겪게 되는 불편과 어려움으로 인해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가 제한된다는 잘못된 판단 속에서 계속해서 하느님과 서로에게 반기를 드는 삶을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원죄’라고 하는 말속에 들어있는 반복적인 인간의 자기 기만을 표현해주는 이야기일지 모른다. 죄는 인간의 어림석음이고 수치사실 ‘원죄’라고 하는 말도 어찌 보면 ‘죄’라고 하는 단어로 인해 뭔가 잘못된 개념을 우리에게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죄’라는 것은 성경 전통이 분명하게 단언해주는 것이지만, 그 ‘죄’의 본질을 잘 들여다본다면 그것은 오히려 인간의 ‘어리석음’이고 ‘수치’라고 말하는 것이 더 타당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창세기의 ‘원죄’ 이야기에서도 아담과 하와의 ‘수치’를 가려주시기 위해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주시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의 이 수치스러운 어리석음은 하느님의 자비를 가져다준 ‘근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노르위치의 성녀 율리안나는 “처음에 인간의 넘어짐이 있었고, 그다음에 그 넘어짐에서 일어남이 있었다. 이 두 개가 다 하느님의 자비다”라고 말한다.바오로 사도도 이와 맥을 같이 하는 말을 한다. “어떤 선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혹시 누가 죽기를 무릅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에게 대한 당신의 사랑을 실증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으로 있던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우리가 그분의 피로 의롭게 되어 있는 지금에는 더욱 확실히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로부터 구원받을 것입니다.”(로마 5,7-9)이것이 바로 성 프란치스코가 하느님의 선을 그렇게도 찬미 찬양했던 이유다.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저희는 저희의 탓으로 추락했나이다. 또한, 당신 아드님을 통하여 저희를 창조하신 것같이, 저희를 ‘사랑하신’ 참되고 거룩한 당신 ‘사랑’ 때문에 참하느님이시며 참사람이신 그분을 영화로우시고 평생 동정이신 지극히 복되시고 거룩하신 마리아에게서 태어나게 하셨으며, 또한 포로가 된 저희를 그분의 십자가와 피와 죽음을 통하여 구속하기를 원하셨으니, 당신께 감사드리나이다.”(「인준 받지 않은 수도 규칙」 23,2-3) 호명환 신부(작은형제회) cpbc2021.01.06
[사도직현장에서] 천국과 지옥김재덕 신부(대전교구 대화동본당 주임) 김재덕 신부 본당 초등부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칠 때였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을 하다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주일학교 친구들! 천국이 어떤 곳일까요?” 그러자 아이들이 대답하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곳이요!” “행복한 곳이요!” “하느님이 계신 곳이요!” “무엇이 좋은 곳일까? 또 왜 행복한 곳일까요?” 아이들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자~ 신부님이 천국이 어떤 곳인지 알려 줄게요. 영원히 묵주기도 하는 곳입니다. 영원히 미사 드리는 곳, 영원히 성체조배 하는 곳, 영원히 십자가의 길 하는 곳, 영원히 성경 말씀 듣는 곳, 영원히 하느님 말씀을 실천하는 곳이에요. 자, 나는 천국에서 살고 싶다. 손들어 보세요!” 아이들은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자, 그러면 지옥은 어떤 곳일까요? 영원히 묵주기도 안 해도 되는 곳, 영원히 미사 안 드려도 되는 곳, 영원히 성체조배 안 해도 되는 곳, 영원히 십자가의 길 안 해도 되는 곳, 영원히 성경 말씀 듣지 않아도 되는 곳, 영원히 하느님 말씀을 친구들에게 실천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에요. 나는 지옥에서 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손들어 보세요!” 제 교리를 들은 아이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손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갈망합니다. 그리고 기도, 미사, 말씀과 성체는 하느님과 영원히 함께하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체험하는 순간입니다. 만약 우리의 신앙도 아이들의 고백처럼 머리로는 하느님 나라를 갈망하면서도, 삶 안에서는 그분과 함께하는 시간 안에서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면, 정말 하느님 나라가 우리에게 ‘행복한 나라’ ‘기쁨이 가득한 나라’가 될 수 있을까요? 하느님과 함께하는 기쁨을 배우는 것, 이것이 우리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김재덕 신부(대전교구 대화동본당 주임) 평화신문2020.08.04
![[독자마당]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행복합니다](//cpbc.co.kr/CMS/newspaper/2020/08/rc/786117_1.0_titleImage_1.jpg)
[독자마당]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행복합니다이석현(요한, 광주대교구 용봉동본당) 코로나19 때문에 미사는 물론 교육, 회합 등 활동이 잠정 중단돼 가톨릭평화방송이나 유튜브를 통한 방송 미사 참여나 묵주 기도, 성경 봉독(말씀 전례), 선행 등으로도 주일 미사 참례 의무를 대신하고 있습니다.하느님께서는 믿음을 지키려는 우리를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성령을 통해 도움을 주십니다.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로마 5,3-4) 부활이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이 환난의 코로나도 반드시 극복할 수 있습니다. 성인과 신앙의 선조들은 환난들을 신앙으로 극복하였고, 마지막 날에는 하느님의 품 안으로 행복하게 돌아가셨습니다.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1984년 5월 교황님 처음으로 한국 교회를 사목 방문해 103위 한국 순교 복자를 바티칸이 아닌 이 땅에서 성인품에 올렸습니다. 한국인 첫 사제인 김대건 신부는 1846년 7월 한강 새남터에서 사형 선고를 낭독하자 군중을 향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천주님을 위해 죽습니다. 여기서 영원한 생명이 시작됩니다. 여러분도 죽은 후에 행복 찾으려면 천주를 믿으시오.”가톨릭평화방송은 코로나19에 매일 미사, 주일 미사는 물론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하느님 말씀을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부임하자마자 코로나19 확산으로 미사가 중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본당 주임 김민호 베드로 신부님은 주일 미사와 축일 강론과 본당 중요 일정을 알리면서 신앙심을 잃지 않도록 교우들과 인격적 친교와 만남을 잘 활용해 믿음과 실천으로 이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격려하고 계십니다.오늘도 성경 말씀을 묵상하면서 힘을 얻고, 만약 내가 마지막 날에도 자신 있게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할 수 있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25-26),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든든하고 희망을 주신 말씀입니까. 모든 신자도 코로나19 극복에 힘내시고 오늘도 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 평화신문2020.08.26

그리스도께 대한 환호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미사의 모든 것] (11) 자비송 니콜라 푸생, ‘예리코에서 눈먼 이를 고치시는 예수님’, 1650년, 캔버스에 유채, 119x176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프랑스. 나처음: 참회 예절 때 세 번이나 “제 탓이오”를 반복하며 손으로 가슴을 치는 이유는 무언가요?조언해: 성부, 성자, 성령 이렇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각각 통회하기 위해 세 번 기도하는 거죠. 라파엘 신부: 모든 전례와 그리스도인 신앙생활에서 ‘3’을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연관 지어 묵상하고 행하려 하는 것은 칭찬할만한 습관이라 생각해. 그 의미가 반드시 맞지 않아도 모든 걸 하느님과 연관 지어 그분 뜻을 헤아리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바람직한 자세라고 할 수 있지. 그래서 언해를 칭찬해 주고 싶어. 신앙인으로 참 잘살고 있는 것 같아.나처음: 그럼 3이라는 숫자에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상징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있다는 건가요.라파엘 신부: 전례에서 숫자 ‘3’이 갖는 의미를 이해하려면 먼저 성경에 드러난 숫자의 속뜻을 알아야 한단다. 성경에서 ‘3’은 사물과 시간의 시작과 중간, 그리고 마침을 가리켜. 가장 대표적인 예가 너희 둘이 말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지. 그래서 성경에서 ‘3’은 ‘하느님의 세계’를 가리킨단다. 하느님께서 가장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만군의 주 하느님”(이사 6,3)이라며 천사들이 찬미하지. 예수님께서도 세 차례 유혹을 받으시고, 무덤에 사흘 동안 묻혀 계시다가 부활하시지.이렇게 하느님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수가 전례에 들어오게 된 것이야. 전례에서 숫자 ‘3’은 하느님의 거룩함을 환호하고 간청할 때 사용되고 있단다. 먼저 미사 시작과 함께 참회 예식 때 “제 탓이오”를 세 번 반복하며 오른손으로 자기 가슴을 친단다. 이는 자기 잘못에 대한 아픔과 뉘우침을 표시하는 거란다.조언해: 신부님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도 세 번 외쳐요. 라파엘 신부: 그렇구나. ‘자비송’은 짧지만, 하느님께 죄를 고백하고 자비를 간청하는 아주 훌륭한 기도란다. 이 기도의 대상은 주님이신 그리스도이시지. 첫 번째 “진심으로 뉘우치는 사람을 용서하러 오신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는 루카 복음 4장 18-19절의 말씀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들에게 해방을, 소경들에게 눈뜰 것을 선포하며 억눌린 이를 풀어주시는 주님께 자비를 청한단다. 두 번째 “죄인을 부르러 오신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는 마태오 복음 9장 13절의 말씀을 그대로 옮긴 것이지. 마지막 세 번째 기도 “성부 오른편에 중개자로 계신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는 요한 복음 16장 26-28절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약속을 상기시켜주는 기도야. 이처럼 자비송은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주님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환호’라고 설명할 수 있지.조언해: 미사 때마다 기도했지만, 이 기도가 모두 복음서에 나오는 말씀인지는 몰랐네요.라파엘 신부: 자비송의 기도 대상이 주님이신 그리스도라고 했지. 신약 성경이나 초세기 교부들의 문헌 대부분은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있단다. 예를 들어 초대 교회의 유명한 그리스도 찬미가인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2장 11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라고 노래하고 있지. 천사가 목동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알릴 때에도 “오늘 다윗 고을에 여러분을 위해 구원자가 나셨으니 그분은 그리스도 주님이십니다”(루카 2,11. 「200주년 신약성서」 인용) 하고 말하지. 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수에서 고기를 잡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예수님의 사랑을 받던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요한 21,7)라고 알리지. 이처럼 교회는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여 아버지 하느님 오른편에 계시면서 만물을 통치하시는 주님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미사에 참여한 모든 회중은 주님을 부르면서 주님이신 그리스도께 영광을 드린단다. 그리고 예리코의 눈먼 이가 주님의 자비와 능력을 믿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마르 10,47-48)하고 외친 것처럼 우리도 미사 중에 주님의 자비를 간청하는 것이란다. 조언해: 그레고리오 성가로 ‘키리에 엘레이손’(Kyrie eleison,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하며 노래하는 게 너무 좋아요. 라파엘 신부: 자비송이 언제부터 미사 예식 부분에 들어왔는지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어요. 전례학자들은 5세기경 동방 교회에서 사용하기 시작했으리라 추정하고 있지. 4세기 말에 쓴 「에테리아 여행기」에 “예루살렘에서 바치던 저녁 기도 중에 부제가 기도 지향을 말하면 소년들이 매번 ‘키리에 엘레이손’ 하고 환호했다”고 적혀 있어요. 또 비슷한 시기에 안티오키아를 비롯한 동방 교회에서도 미사나 시간 전례 중에 간청 기도와 키리에로 구성된 호칭기도를 바쳤다고 해. 서방 교회에서는 5세기 말엽이나 6세기 초에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고 온 순례자들을 통해 자비송이 받아들여져 미사와 시간 전례 때 부르기 시작했단다. 8세기 이전에는 ‘키리에 엘레이손’ 3번, ‘크리스테 엘레이손’(Christe eleison,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3번, 다시 키리에 3번 등 9번을 노래했단다. 3번은 성사의 거룩함을, 9번은 구품천사를 상징하는 것이라고도 해. 그런데 중세기의 저명한 전례학자였던 메츠의 아말라가 첫 번째 키리에는 성부께, 두 번째 크리스떼는 성자께, 마지막 키리에는 성령께 올리는 환호라고 그릇된 해석을 해서 오랫동안 그렇게 인식하기도 했단다. 좀 전에 언해가 했던 말처럼 말이야. 오늘날 미사에서는 자비송을 2번씩 부르고 있지. 그러나 교황청의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은 “다양한 언어와 음악적 특성 또는 상황에 따라 여러 번 되풀이할 수도 있다”(52항)고 허용하고 있단다. 그러면서 자비송은 신자들이 주님께 환호하며 그분의 자비를 간청하는 노래이므로, 관습에 따라 모든 이가 바치며, 교우들과 성가대 또는 교우들과 선창자가 한 부분씩 맡아 교대로 바치라고 권고하고 있지. 지금 우리가 미사 때 하는 것처럼 말이야. 참! 그러고 보니 미사의 양식도 3가지네. 다음엔 미사의 세 가지 양식에 대해 알아보자꾸나.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0.09.23

조용한 곳 찾아 기도·묵상에 빠지니 믿음도 삶도 새롭다여름 휴가, 피정 프로그램에 참가해 볼까 피정에 참가한 신자들이 촛불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기도를 바치고 있다. 대부분 피정 프로그램은 침묵과 묵상 가운데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기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각 교구와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단체 피정 프로그램은 코로나19로 대부분 취소됐다. 하지만 개인 피정이나 10명 안팎의 소규모 피정은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키며 조심스럽게 재개하고 있다. 1인 1실, 식당 내 칸막이 설치 등은 기본으로 제공된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일정이 유동적이니 피정 센터에 미리 일정을 확인하는 것은 필수다.렉시오 디비나 ‘거룩한 독서’를 뜻하는 말로 성경 읽기와 묵상을 통해 하느님과 일치하며 살도록 이끌어 준다.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는 8월 22~23일 경남 고성 수도원에서 ‘유덕현 아빠스와 함께하는 자연 속에서 하느님 만나기’로 렉시오 디비나 피정을 마련한다. 문의 : 010-2816-1986성경 통독성경을 읽으면서 나와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하느님 시선으로 다시 보게 해주는 시간이다.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는 강원도 횡성 도미니코 피정의 집에서 8박 9일 일정으로 신ㆍ구약 완독 피정을 마련했다. 7월 17~25일과 8월 4~12일, 8월 21~29일로 예정돼 있다. 문의 : 010-3340-0201침묵 피정몸과 마음을 푹 쉬게 하면서 침묵 속에서 하느님 소리를 듣는 시간이다. 서울 마포 예수회센터는 7월 13~22일, 8월 11~20일 영신수련 8일 피정(9박 10일)을 마련한다. 7월 24~28일은 4박 5일 일정으로 진행되는 피정이다. 예수회 사제들이 피정을 지도한다. 문의 : 02-3276-7733예수마음 기도 예수마음 기도는 단순기도(화살기도)를 통해 하느님을 만나게 하는 기도다. 경기도 문산 예수마음 피정의 집은 예수마음 기도 영성수련 피정을 개최하고 있다. 7월 27~30일 예정된 피정을 신청받고 있다. 3박 4일간 기도, 치유, 강의, 미사, 면담, 고해성사 등이 이뤄진다. 문의 : 031-953-6932단식 피정단식으로 몸을 비우고 기도로 마음을 채우는 시간이다. 수도자들이 직접 만든 효소만 먹고 3박 4일간 침묵과 기도 안에서 삶을 재충전하도록 돕는다. 강원도 횡성 도미니코 피정의 집에서 7월 30일~8월 2일 열린다. 문의 : 010-3340-0201 개인 피정홀로 조용히 머물며 멈춤의 시간이 필요한 이들에게 추천한다. 경남 창녕에 있는 나자렛 예수 수녀회는 개인이나 20명 이내 소규모 단체를 위해 피정 센터를 열어두고 있다. 일일 피정, 숙박 피정 모두 가능하며 말씀 묵상과 전례 등 피정 주제와 내용은 상황에 맞게 수도자들이 지도해 준다. 문의 : 010-2116-4903예수 그리스도 수녀회는 경기도 이천 장호원읍 예수 그리스도 피정의 집에서 개인 피정자만 받고 있다. 특별한 피정 프로그램이 없어 온전히 쉬고 싶은 이들에게 제격이다. 원한다면 수도자와의 상담(면담)은 언제든 가능하다. 미사는 근처 장호원성당과 감곡 매괴 성모순례지성당에서 봉헌하면 된다. 문의 : 010-4474-7227청년 피정마산교구 청소년국 청년사목부는 7월 18~19일 마산가톨릭교육관에서 ‘청년 로고스 성경 통독 피정’을 마련한다. 성경 통독 범위는 바오로 서간(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둘째 서간, 티토에게 보낸 서간,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과 야고보 서간, 베드로의 첫째, 둘째 서간이다. 선착순 20명 마감. 문의 : 055-249-7065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전교 수녀회는 7월 17~19일 미혼 여성을 대상으로 강원도 평창 라베르나 기도의 집에서 쉼 피정을 개최한다. 8월 7~9일에는 경기도 화성 아씨시 피정의 집에서 40세 미만 남녀를 대상으로 젊은이 몸 신학 피정을 준비하고 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몸의 신학’을 통해 성(性)과 사랑, 생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피정 강의는 이윤이 수녀가 맡는다. 문의 : 010-5313-0241 성 베네딕도 왜관 수도원은 7월 31일~8월 2일 제47차 수도 생활 체험 학교를 계획하고 있다. 2002년부터 시작한 전통 있는 프로그램으로 수도자의 삶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다. 고등학생 이상 40세 이하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한다. 문의 : 010-8353-2323제주도제주의 자연을 만끽하며 피정할 수 있다. 성 이시돌 피정의 집은 2월 이후 취소했던 피정을 최근 재개했다. 올레길 걷기, 미사, 기도, 강의로 이뤄진 제주 성 이시돌 자연순례 피정은 7월 31일~8월 2일, 8월 13~16일ㆍ25~27일 예정돼 있다. 문의 : 064-796-9181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가 운영하는 제주 면형의 집 피정 센터는 7월 19~21일ㆍ25~28일 자연 순례 피정을 계획하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을 지켜보면서 운영할 예정이다. 수도회 수사들과 함께 제주 성지를 순례하고 올레길과 오름을 탐방한다. 문의 : 064-756-6009 cpbc2020.07.07

스콜라 철학 신학자의 토론식 수업, 인문주의를 키운 토양이 되다[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23) ‘교단에서 가르치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 작가 미상, ‘교단에서 가르치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 프레스코화, 산타 마리아노벨라성당, 피렌체, 이탈리아 유럽 밖에서 십자군 전쟁이 한창이던 때, 교회 권력은 서임권 문제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지난한 힘겨루기를 하고, 수도회 중심의 학교에서는 새로운 철학 사상이 대두되고 있었다. 이 사상은 사실 9세기 ‘카롤링거 르네상스’ 시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샤를마뉴가 유럽 각지에 성당과 수도원을 세웠고, 도시의 교육과 문화가 그곳을 중심으로 형성되면서 시작되었다. 진리의 보관소로서 성경을 가르침에 있어 고대 그리스 철학을 활용하여 길게는 16세기까지 이어진 사상으로, 그리스도교 신학에 중심을 둔 철학적 인식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성당 혹은 수도원의 부속 학문기관인 스콜라(Schla)에서 가르쳤기 때문에 ‘스콜라주의’ 혹은 ‘스콜라 철학’이라고 했다. 철학, 신앙을 해석하는 도구 스콜라 철학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뿌리에는 그리스 철학자 플로티노스와 플라톤의 영향을 크게 받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있고, 11세기에 안셀무스가 등장한다. 안셀무스는 이탈리아 북부 아오스타에서 태어났지만, 후에 캔터베리의 대주교가 되었기 때문에 흔히 ‘캔터베리의 안셀무스’로 알려졌다. 그는 “하느님이 왜 인간이 되어야만 했는가?”라는 물음에서부터 진리, 자유의지, 악(죄), 삼위일체, 하느님의 속성 등에 대한 글을 남겼다. 그가 남긴 하느님의 실존에 관한 본체론적(本體論的) 증명-이것을 ‘안셀무스의 신존재 증명’이라고 함-은 이후 많은 철학자에 영향을 미쳤다. 스콜라 철학의 핵심은 신앙을 해석하는 도구로서 철학을 활용한 데 있었다. 11세기 도시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또 안셀무스의 활동에 힘입어 12~13세기에는 볼로냐, 옥스퍼드, 파리와 같은 수도원이 아닌 교사와 학생의 길드와 같은 형태의 대학이 새로운 교육체계로 자리를 잡아갔다. 대학들에서는 강의와 토론식 교수 방법이 채택되고, 교수 자격도 규정되었다. 13세기 탁발수도회로 탄생한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는 이런 대학 조직을 운영하는 중심 역할을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유럽 밖에서는 십자군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고, 이슬람의 자극을 받아 방대한 그리스 사상가들의 작품이 라틴어로 번역되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중세 신학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소개되었고, 신학자들은 크게 동요했다. 이전까지의 플라톤주의에서 벗어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으로 신앙 체계를 확립하고자 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 정점에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토마스 아퀴나스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모두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교와 맞는 것만 인정하고 받아들였을 뿐, 그렇지 않은 것은 과감하게 무시했다. 이상주의에 집착하지 않고, 현실을 인정하는 데 크게 무게를 둔 것이다.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토마스 아퀴나스는 성경에서부터 시작하여 아리스토텔레스, 보에티우스와 같은 그리스와 로마 철학자들의 저작들을 주해하고, 아우구스티누스에서 안셀무스까지 모든 연구를 검토한 후,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의 신학, 철학의 주제들을 논쟁 형식의 방대한 논문으로 집필했다. 「신학대전」은 그렇게 탄생했다. 같은 시기에 또 다른 탁발수도회인 프란치스코회도 학문적으로 교회 안팎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아라비아 및 유다 철학의 이론을 받아들이면서도 중요한 신학 이론에 있어서는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을 고수함으로써 보수적인 경향을 보였다. 이 시기에 프란치스코회의 성 보나벤투라는 경험적 자연인식을 바탕으로 신적 조명설을 통해 신과의 직접적 일치를 말하는 신비주의를 주장했고, 옥스퍼드의 로저 베이컨(Roger Bacon) 등은 아리스토텔레스보다는 아라비아 자연과학자들의 광학사상(光學思想)을 받아들이는 급진적 경향을 보였다. 그런 점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전반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 전통을 지킨 중도파였다고 할 수 있다. 도미니코회 출신으로 스콜라 철학을 완성한 알베르토 마뉴(Albertus Magnus, 1193~1280)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스승이다. 그는 독일의 신학자, 철학자, 자연과학자로, 파리와 쾰른에서 가르쳤고, 레겐스부르크의 주교로 있으면서 아리스토텔레스, 아라비아와 유다, 신플라톤주의, 교부들의 저술로부터 많은 자료를 수집하여 당시의 철학 전반은 물론, 사변적인 신학과 성경해석 및 자연과학 등 방대한 저술 활동을 했다. 그를 두고 마뉴, ‘대(大) 알베르토’라고 부른 것은 그의 학문이 그만큼 폭넓고 보편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런 형태의 스콜라 학문이 유럽의 특정 지역에서만 발달한 것은 아니었다. 지역마다 다른 스콜라에서 발전했기 때문에 처한 현실이 달랐고, 필요성과 목적, 생각과 방법이 다른 특징들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가장 활발한 스콜라일수록 가장 보수적인 지식인과 가장 혁신적인 예술 분야 장인들과 과학자들 사이에서 갈등이 빚어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는데, 그것은 그만큼 학문이 역동적이었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하겠다. 시성 후 그린 제단화 소개하는 그림은 작가 미상의 ‘교단에서 가르치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성인으로 시성된 후 6개월 남짓 되었을 무렵에 그린 제단화로 추정된다.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대성당의 중앙 복도 좌측 세 번째 경당의 제단화다. 이 대성당은 도미니코 수도회가 설립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볼로냐에서 진출한 이래 지금까지 도미니코회가 자리를 잡고 있어 수도회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2020년 9월 7일은 도미니코회가 이 대성당에 자리를 잡고 재건하여 축성한 지 600년이 되는 해다. 그러다 보니 평소 공개되지 않던 많은 오래된 벽화(대부분 훼손됨)와 유물들이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이 벽화도 그중의 하나로 2018년에 발견되었다. 그림 속으로 작품 속에서 아퀴나스는 파리대학의 한 교단을 연상시키듯 있고, 학생들이 그 아래 있다. 이 그림과 마주하는 순간, 나는 오래전에 바티칸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때가 생각났다. 바티칸 도서관의 열람실에 앉으면 중앙 연단에 성 토마스 아퀴나스 동상이 있다. 나는 물론, 많은 저명한 학자들까지 그분과 마주한 학생으로 책을 대하게 된다. 바로 이 그림과 같이. 그림은 매우 단순하지만 시성된 직후에 그린 최초의 토마스 아퀴나스 초상화이고, 천사들이 들고 있는 다양한 상징들을 통해 성인의 방대한 신학적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 신학적 권위를 의미하듯 오른손은 들고, 왼손은 성경에 올려놓고 있는 점도 특징적이다. 학생들의 태도는 작가 미상의 이 작품이 대략 어느 화풍이고 작가가 어떤 성향인지를 짐작케 해준다. 학생들이 일관된 자세로 조용히 듣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역동적인 토론식 수업의 한 장면이라는 것과 여러 면에서 인문주의의 영향을 받은 작가의 작품임을 추정할 수 있다. 스콜라 철학스콜라 철학은 흔히 그리스도교의 교의 연구에만 초점이 맞추어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끊임없는 질문과 토론식 학문 활동으로 인해 이후 과학 발전에도 큰 자극을 주었다. 특히 사상적으로 두 개 학파가 거리를 두고 각자의 위치에서 나름의 과학적인 방법으로 학문의 길을 닦았는데, 하나는 알베르토 마뉴와 토마스 아퀴나스를 중심으로 한 파리학파로 이후 다양한 인문과학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고, 다른 하나는 로저 베이컨을 중심으로 한 옥스퍼드학파로 아리스토텔레스에 충실하면서도 현상을 통해 자연철학에 천착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진리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을 현실에 대한 인식과 결부시켜 재구성했고, 그의 형이상학적 기초 위에 천지만물, 곧 만유(萬有)를 포괄하는 체계를 갖추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제1동자(第一動者)’, 즉 ‘부동(不動)의 원동자(原動者)’를 만유의 창조 원인인 ‘신’으로 파악하였다. 그는 자연과 은총(Gratia)을 구별하면서도 아우구스티누스처럼 대립시키지 않고, “은총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완성한다”(gratia non tollit naturam, sed perficit)고 생각했다. 요컨대,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이 함께 깊이 접합되어 있으며, 이후 학문이 발전할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남겨두었다고 하겠다. 인문주의의 발전은 이런 토양 위에서 시대의 흐름을 타면서 발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혜경 (세레나,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이탈리아 피렌체 거주) cpbc2020.10.27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71·끝)에필로그<6>- 사도행전에 비춰본 바오로의 생애와 서간⑤](//cpbc.co.kr/CMS/newspaper/2020/07/rc/782431_1.1_titleImage_1.jpg)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71·끝)에필로그- 사도행전에 비춰본 바오로의 생애와 서간⑤열정적으로 복음 전한 ‘이방인의 사도’, 로마에서 순교하다 바오로 사도의 참수터에 세워진 로마 성문 밖 세 분수 성당의 전경. 사도행전은 바오로가 로마에서 2년 동안 셋집을 얻어 지내면서 복음을 전했다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 이후 바오로의 삶은 어떠했을까요? 또 바오로가 썼다는 나머지 서간들은 언제 쓴 것일까요? 이 부분을 간단히 살펴보는 것으로 사도행전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사도행전뿐 아니라 신약성경 어디에서도 바오로의 이후 삶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부분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만 1세기 말부터 전해오는 전승에 따르면 바오로는 로마에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가 언제 순교했는지에 대해서도 가설이 엇갈립니다. 2년의 가택 연금 기간(사도 28,30 참조)이 끝난 후 순교했다는 설이 있고, 2년 후 풀려났다가 멀리 스페인까지 선교하고 나서 로마에서 순교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바오로는 코린토에서 쓴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로마에 들렀다가 스페인에 가겠다고 두 번이나 언급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로마 15,24.28), 스페인 여행 주장을 무조건 배격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제4대 교황으로 초세기 교부인 로마의 클레멘스 성인이 코린토 신자들에게 쓴 편지에는 바오로가 로마 제국의 서쪽인 스페인에 가서 선교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런 전승을 토대로 스페인 동북부 항구도시인 타라고나에는 1963년 바오로 사도의 스페인 선교 1900주년을 기념하는 바오로 상이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만일 바오로 사도가 스페인에서 돌아와 로마에서 순교했다면 그 시기는 언제이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물음에 대해서도 확실한 답은 없습니다. 네로 황제가 64년에 로마에 불을 지른 후 화재의 책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뒤집어씌워 4년 동안 모진 박해를 자행했는데 그 박해 시기에 순교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가설을 종합하면 바오로 사도는 60년대에 곧 63~67년 사이에 로마에서 순교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성 베드로 대성전이 들어서 있는 바티칸 언덕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 베드로와 달리, 바오로는 로마 성 밖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바오로가 순교할 때 목이 떨어지면서 세 번 튀었는데 그 자리에 샘이 솟아났다고 합니다. 그곳에 바오로 사도의 순교를 기념하는 성당이 세워졌는데 로마 성 밖 ‘트레 폰타네’(세 분수) 성당입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의 유해는 로마 성 밖 성 바오로 대성전 중앙 제대 아래에 모셔져 있습니다. 한편 바오로는 로마에서 2년 동안 가택 연금 상태에서 지낼 때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과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을 집필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 두 서간이 바오로가 직접 쓴 친서라면 그럴 가능성이 커 보이지만, 학자들 사이에서는 두 서간 모두 바오로의 친서가 아니라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바오로가 에페소에서 쓴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을 두고서도 에페소가 아니라 로마에서 수감 생활을 할 때 쓴 것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필레몬 서간의 집필 연대는 61~63년 또는 바오로의 순교 직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연재를 마치며2019년 1월 초에 연재를 시작한 ‘사도행전 이야기’는 이번 71회로 마칩니다. 1년 6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사도행전 이야기’를 읽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독자 여러분께 드린 말씀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맡긴 복음 선포 사명을 사도들이 어떤 방식으로, 어떤 태도로 선포했으며, 그렇게 해서 형성된 교회의 삶이 어떠했는지, 또 그것이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보겠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연재를 계속하면서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것 같아 송구스러운 마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도중에 ‘정년퇴직’이라는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성령께서 이끌어 주신 덕분으로, 연재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오늘에 이르기까지 저의 삶 전체가, 특히 가톨릭평화신문 기자로서 지낸 30년 삶이 성령께서 이끌어 주신 덕분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0여 년 전, 제 앞날에 ‘기자’라는 단어는 존재조차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가톨릭 언론 매체의 기자가 되고 난 후 차츰차츰 기자의 길이 성령께서 이끌어 주신 길임을 깨달았습니다. 그 기자 생활의 마지막을 ‘성령의 역사하심’을 전하는 사도행전 이야기로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은 특별한 은총입니다. ‘사도행전 이야기’는 어떤 면에서 그 이전 2017년 2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91회에 걸쳐 연재한 ‘예수님 이야기’의 속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이야기’를 통해서 예수님은 누구이시고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음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자 했고, ‘사도행전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맡기신 ‘복음 선포’의 사명을 제자들이 어떻게 땅끝까지 전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취지가 독자 여러분에게 전달됐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일입니다. 복음이 선포되는 이야기(예수님 이야기)와 선포된 복음이 전해지는 이야기(사도행전 이야기)에 이어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 교리들이 형성되는 이야기(교리 이야기)까지 살펴보자는 것이 연재 과정에서 구상한 전체적인 기획입니다만, 이 마지막 이야기는 여러 사정상 다른 기회로 미룹니다. 연재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들이나 부족한 점들은 어떤 식으로든 바로잡고 보완해서 참고하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참고 자료 · 「주석 성경」,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신약성서 사도행전」, 분도출판사· 조셉 퀼징거 저, 박영훈 역, 「신약성서 영적 독서를 위한 사도행전」, 성요셉출판사· 정양모 지음, 「사도행전 이야기」, 성서와 함께· 정양모 지음, 「바울로 친서 이야기」, 성서와 함께· 「교부들의 성경주해 신약성경 VII 사도행전」, 분도출판사 · 이보 스토르니올로 지음, 김수복 옮김, 「사도행전 읽기」, 성바오로· 「신약성경 주해집 5 사도행전」, 도서출판 크리스찬· 엔리코 갈비아티·필리포 세라피니 지음, 이성근 옮김 「성경 역사 지도」, 분도출판사 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alfonso84@hanmail.net cpbc2020.07.01

개학 연기로 ‘집콕’ 아이들 달래주는 어린이 도서 코로나19로 아이들의 개학이 늦춰졌다. 이 시기를 신앙 서적을 함께 읽는 시간으로 보내면 어떨까. “긴 방학에 좋은 엄마 없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돈다. 봄은 왔지만 코로나19로 아이들이 사상 처음으로 ‘3월 개학’을 맞지 못했다. 24시간 집에서 뒹구는 아이들에게 책을 통해 신앙 유산을 물려주면 어떨까. 몸은 힘들지만, 아이들을 품 안에 안을 수 있는 시절은 한철이다. 동화책을 함께 읽어주며 사랑하는 인내를 기를 수 있다. 100년을 살아본 김형석 철학과 교수도 말했다.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인내 하나 배우러 오는 것 같다”고. 영유아와 초등학생들이 읽을만한 어린이 도서를 소개한다. 어린이 축복 성경 / 임지윤 글ㆍ그림 / 바오로딸 어린이를 위한 그림 성경 이야기책. 하느님이 세상을 만든 이야기부터, 바벨탑을 쌓은 이야기,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은 이야기, 노아의 방주를 비롯해 신약ㆍ구약에서 40가지 이야기를 추려 뽑았다. 이 책의 장점은 그림만 봐도 내용을 알 수 있게 그린 것이다. 여기에 풍부한 상상력을 이끌어 내 생동감을 더한다.우리 친구 예수님이 부활하셨어요! / 로이스 록 글ㆍ케이 위더슨 그림 / 김경은 옮김 / 가톨릭출판사아이들에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되살아난 부활 이야기를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까? 어린이 눈높이에 맞게 쉬운 표현과 구성, 귀여운 그림을 통해 주님 부활 이야기를 쓰고 그렸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부터 수난, 부활의 과정을 친밀한 인물 표정으로 재미있게 묘사했다. 저자는 유명한 가톨릭 그림책 작가로, 3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된 책으로 전 세계 아이들과 소통하고 있다.공지영의 성경이야기 / 공지영 글ㆍ김이슬 그림 / 분도출판사 세 자녀의 엄마인 공지영(마리아) 작가가 엄마의 마음으로 써 내려간 성경 이야기. 생동감 넘치는 입말체로, 성경 속 인물과 주요 사건을 풀어냈다. 공 작가는 엄마가 되어 성경을 다시 읽기 시작했고, 다양한 인물을 통해 소설 같은 흥미진진함을 느꼈다. 소설가 엄마가 읽어주는 성경 이야기에 아이들은 더 이야기해달라고 매달렸고, 그렇게 책은 출간됐다. 사랑과 미움, 용기와 두려움, 희망과 좌절, 믿음과 배신,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가 담겼다. 2009년에 출간한 ‘공지영이 들려주는 성서 속 인물 이야기’ 시리즈의 10권을 한 권으로 묶어 재출간한 개정판이다. 가톨릭 어린이 추천도서(13권) / 생활성서부모와 친구들이 함께 읽는 ‘가톨릭 어린이 추천 도서 시리즈’는 친절한 설명과 아기자기한 그림, 다양한 활동 거리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어린이들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이끈다. 「마더 데레사를 만나요!」, 「자비를 실천해요!」, 「묵주기도를 바쳐요!」 등 13권으로 출간됐다. 우리 동네 하느님 / 실비아 베키니 글ㆍ주시 카피치 그림 / 김혜경 옮김 / 분도출판사“우리 동네에 하느님이 오신다면 그분은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말씀을 해 주실까?” 아이들이 하느님에 대해 스스로 물음을 던지고 깨닫는 책. 구약과 신약에서 10가지 이야기를 가려 뽑아,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재구성했다. ‘약속을 지키는 하느님’, ‘자유를 사랑하는 하느님’, ‘죽음보다 강한 하느님’ 등 하느님의 10가지 모습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성경 이야기뿐 아니라 책 속 주인공 아이들을 통해 ‘환대하기’, ‘기쁘게 살기’, ‘이웃에 봉사하기’ 등 아이들이 일상에서 하느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법을 귀띔한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cpbc2020.04.16
![[생활속 복음] 부활 제3주일 - 마음을 열어야 보이는 부활의 신비](//cpbc.co.kr/CMS/newspaper/2021/04/rc/800215_1.0_titleImage_1.jpg)
[생활속 복음] 부활 제3주일 - 마음을 열어야 보이는 부활의 신비 제 강론에 대해 항상 좋은 피드백을 해주는 본당 청년들이 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나아갈 길을 알려주어서 감사하다고 하기도 합니다. 멋모르던 새신부 때였다면 칭찬에 어깨가 으쓱해져 제가 잘난 줄 알았겠지만, 다행히 지금은 그러지 않습니다. 제 능력으로 감동과 깨달음을 준 게 아님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마음을 열고 받아들였기에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복음적 삶의 방향을 충실히 따랐기에 그 삶이 결실을 본 것입니다.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지만, 그들은 그분이 누구신지, 더 정확히 표현하면 그분이 어떤 존재인지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합니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자기들 눈앞에 떡하니 서 있으니 ‘유령’으로 생각되어 무서울 법도 합니다. 더구나 그 대상에게 잘못한 바가 있어 마음 한구석이 찔리는 상황이라면, 자기들에게 ‘복수’라도 하려고 오셨나 보다 생각되어 그 두려움은 더 커지겠지요.제자들이 그런 오해에 빠진 것은 마음이 굳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어떤 대상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굳어져 있으면 그 생각의 범위를 넘어서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법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음을, 무덤에 묻혀 계시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한 번 죽으면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상식’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지식’과 ‘상식’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게 가로막았습니다. 마음은 열지 못한 채 머리로만 예수님을 바라보니 아는 게 병이 된 것입니다.그러면 그 제자들이 어떻게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드러나는 사건의 순서로만 보면 예수님께서 당신 몸에 난 상처들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시는 행동이나, 제자들 앞에서 음식을 드시는 행동으로 인해 제자들이 오해를 바로잡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외적인 표징들은 예수님께서 유령이 아니며, 온전한 육체를 지닌 상태로 부활하셨음을 머리로 이해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데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제자들이 마음을 연 것은 내적인 요인 때문이었습니다. 자기들은 죽는 게 두려워서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지만, 제 안위를 챙기고자 고통과 모욕을 겪으시는 그분을 외면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비난하거나 단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두려움에 빠진 제자들을 진심으로 걱정하며 평화를 빌어주셨습니다. 그런 그분의 따뜻하고 자상한 마음이 제자들의 마음을 연 것입니다.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어도, 마음을 열지 않으면 부활의 신비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주님께 마음을 연다는 것은 그분의 뜻을 받아들이고 순명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영적인 눈이 틔어서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과 삶을 바라보게 됩니다. 힘들고 절망적인 상황에도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바라보며 희망을 지닐 수 있게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은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 말씀 안에 나타나는 하느님의 섭리를 알아볼 영적 시야를 일깨우시기 위함인 것입니다.주님께서 조건없는 사랑과 한없는 자비로 우리 마음을 여시어 구원의 진리를 깨닫게 해 주셨으니, 힘들고 괴로운 이 세상에서도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으로 기쁘게 살 수 있는 법을 알려주셨으니, 우리는 즉시 죄를 뉘우치고 삶의 방향을 하느님께로 되돌려야 합니다. 또한 모든 민족들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아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사랑과 자비의 실천으로 그들을 하느님께 이끌어야 합니다. 그것이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증거자’로서의 소명입니다. 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평화신문2021.04.14

수도권 성당 좌석의 10% 대면 미사 허용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비수도권은 20%까지 허용… 마스크 착용 등 방역수칙은 유지 정부가 18일부터 수도권은 성당 좌석의 10%, 비수도권은 20%까지 대면미사를 허용하는 방역 지침을 일부 완화했다. 사진은 띄엄띄엄 앉아서 기도하는 신자들 모습. 가톨릭평화신문 DB 정부가 18일 0시부터 수도권은 성당 좌석의 10%, 비수도권은 20%까지 대면 미사를 허용하는 등 종교기관에 적용하는 지침을 일부 완화했다. 이번 지침 적용기간은 1월 18일부터 31일까지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17일 각 중앙 부처, 17개 광역자치단체와 함께 사회적 거리두기 조정방안 등을 논의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 수도권은 2.5단계, 비수도권은 2단계를 유지하되 기존 지침을 일부 조정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종교 시설의 경우 정규 미사와 예배, 법회 등 위험도가 낮은 종교 활동은 마스크 착용, 거리두기 등 방역 수칙 준수 하에 좌석 기준으로 수도권 10%, 비수도권 20%까지 대면 진행을 허용했다. 이와 관련, 종교시설 관리운영자는 반드시 좌석이나 바닥면에 거리두기 지점을 표시해 이용자에게 안내해야 하고 같은 시간대에 출입 가능한 인원수를 게시해야 한다. 2m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을 전제로 성가도 부를 수 있다. 성가대 운영은 여전히 금지되지만 성가대 운영은 하지 않고 특송만 할 경우 마스크를 착용하고 하는 독창은 가능하다. 또 노래는 하지 않고 미사 진행에 필요한 음악만 연주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 종교시설의 회계, 시설관리 등 운영을 위해 불가피하게 모임 개최가 필요한 경우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 환기·소독, 음식섭취 금지, 출입자 증상 확인 및 명단 관리 등을 한 뒤 모일 수 있게 됐다. 다만 모임 기준은 2.5단계가 유지된 수도권은 49명까지, 2단계인 비수도권은 99명까지만 가능하다. 성당에서 결혼식과 장례식을 진행하는 것도 허용됐다. 다만 결혼식과 장례식장, 공연장 등 고유목적시설 기준에 따른 방역수칙을 지켜야 하고 결혼식 후 별도 공간에서 식사하는 것은 ‘식당 방역수칙’을 따라야 한다.미사 주례자도 마스크 착용 의무 대상으로 미사 참여자들과 마찬가지로 마스크를 써야 한다. 특히 성당 자체 유튜브 방송을 송출할 경우 방송법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주례자는 마스크를 써야 한다. 하지만 지상파나 케이블ㆍIPTV로 송출되는 미사 중계는 방송법에 따라 마스크를 벗을 수 있다. 성경공부 모임, 구역 모임 등 모든 소규모 모임과 식사, 숙식하며 참여하는 종교행사는 여전히 금지된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각종 인원 제한, 숙식 및 소모임 금지, 큰 소리로 함께 기도하기 금지 등 각 종교 시설들이 정부가 내린 방역 수칙을 준수하는 지 지속적으로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cpbc2021.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