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실천이 공동체 위기 극복의 길[무너져가는 집을 복구하여라!] 22. 사회 공동체의 재건을 위하여①- 이웃 사랑의 실천 ‘이웃 사랑’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누가 나의 이웃인지를 따지는 것이 아닌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주는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1890),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지난 연재에서 오늘날 사회 공동체의 위기의 원인으로 ‘재물이나 잘못된 가치에 대한 우상숭배’, ‘죽음의 문화의 창궐’, 그리고 ‘잔인하고 위험한 무관심한 태도’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면 이러한 위기의 상황들을 어떻게 대처하고 무너져가는 사회 공동체를 재건해 나갈 것인가? 이번 연재부터 예수님과 교회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그 해결방안들을 되짚어보고자 한다.이웃 사랑 실천의 모델 ‘착한 사마리아인’우선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해결방안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루카복음 10장에서 어느 한 율법학자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까?”(루카 10,25)라고 질문한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는냐?”라고 되질문 하신다. 그가 신명기 6장을 인용하여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루카 10,27)고 응답할 때, 예수님께서 그에게 “옳게 대답하였다”(루카 10,28)고 맞대응하시며 그를 칭찬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이중 계명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우리 존재의 목적이며,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임을 드러내신 것이다. 사랑은 우리 존재의 핵심 원리이다. 이 점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금언과 같은 말씀으로 사랑이 우리 존재의 핵심임을 밝히신다. “강물은 제 물을 마시지 않습니다. 태양은 제게로 빛을 비추지 않고, 꽃은 자신을 향기를 흩뿌리지 않아요. 타인을 위해 사는 것, 이것이 우주의 법칙입니다. 우리는 서로 도우며 살도록 태어났어요. 그렇게 하는 게 비록 어렵다 해도 말이지요.” 교황은 우리가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지 않으면 충만함에 이를 수 없도록 존재적으로 이미 그렇게 태어났음을 자연 세계의 질서에 담긴 사랑의 원리를 통해 강조하신 것이다.우리는 존재적으로 서로 사랑하도록 창조되었지만 원조들의 죄를 반복함으로써 그 길을 잃고 말았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이웃 사랑의 실천 모델을 제시하신다. 바로 루카복음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모든 형제들」 회칙 56항에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대한 성경 구절 전체를(루카 10,25-37 참조) 그대로 인용하여 그 비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교황 회칙에서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그 의미는 아마도 인용된 성경 한 구절 한 구절을 자세히 읽고 묵상하라는 초대이며, 더 나아가 우리 내면의 모습을 성찰하도록 촉구하기 위함이리라. 이 비유는 어느 율법학자는 예수님께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루카 10,29)라고 ‘형제애의 실천 범위’를 묻는 데서 시작한다. 이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직접적인 방식으로 응답하지 않고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그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주었느냐?”(루카 10,36)라는 질문으로 답변하신다. 이웃 사랑의 실천 범위에 대한 예수님의 응답은 같은 민족 구성원이나 적대감이 없는 사람에게만 이웃 사랑을 국한시키지 말고,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임을 피력하신 것이다. 요컨대 예수님께서는 ‘이웃 사랑’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누가 나의 이웃인지를 따지는 것이 아닌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주는 것임을 제시하신 것이다.상대방의 필요에 응답하는 이웃 사랑상대방의 필요에 응답하는 이웃 사랑을 할 때, 예기치 않은 기적이 일어난다. 사랑이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 이웃을 향하고 그들의 필요에 응답할 때, 서로를 고립시키고 분열시켰던 사슬이 끊어지고 서로의 마음속 깊은 곳에 유대감을 만들고 존재의 폭을 넓혀주기 때문이다(「모든 형제들」 87항).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사람들과 하느님 사이에 관계를 회복시키고 그들에게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소속감과 유대감을 더해주고 견고하게 해주시기 위함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을 위해 다음과 같이 기도하셨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11) 제자들이 하느님께 소속되고 제자들 간의 유대의 끈이 형성되도록 기도하신 것이다. 우리 역시 사랑의 이중 계명 실천을 통해 서로 하나가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이 부르심에 충실히 응답할 때 사람들 사이에 놓인 장벽이 허물어지고 서로가 유대감으로 결속되며, 이로써 위기에 처한 우리 사회를 재건해 갈 수 있다. 또한, 이것은 영원한 생명으로 향하는 구원의 길이기도 하다. 단 이웃사랑이 서로를 연결시키는 유대감의 다리가 되고 구원의 길이 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한 거래적인 사랑이 되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한 고독과 우울증의 문제는 상대방의 필요에 둔감한 우리 사회의 무관심한 태도에서 기인하는 면이 크다. 초대교회 공동체에서 소외된 이웃이나 가난한 사람이 없이 모두 형제애의 유대 안에서 구원과 평화를 체험한 것은 각자의 재산을 다른 사람들에게 내어놓는 자선과 선행 때문만은 아니다. 상대방의 필요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이웃이 되어주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웃 사랑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상생의 집이 되어주어야 한다. 서로에게 소속감을 주고 유대감 안에 머물 수 있도록 서로의 연약함을 보듬어 주고, 서로 눈물을 닦아주는 이웃 사랑의 실천이 필요한 때이다. 김평만 신부(가톨릭중앙의료원 영성구현실장 겸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과 교수)cpbc2022.04.27

추기경과 어린이, 세계 평화 위해 함께 기도 ACN 한국지부, 서울 개포동본당에서 ‘100만 어린이 묵주기도 캠페인’ 염수정 추기경이 16일 서울 개포동본당 주일학교 어린이들과 묵주기도를 바친 후 기도의 의미를 다시금 이야기해주고 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추기경과 어린이들이 함께 바치는 묵주기도 소리가 성당을 메웠다. 16일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과 서울 개포동본당 주일학교 어린이 80여 명이 ‘세계 평화와 일치’를 지향으로 묵주기도를 바쳤다.이날 묵주기도는 교황청 재단 고통받는 교회돕기(ACN) 한국지부 주관으로 마련된 ‘100만 어린이의 묵주기도 캠페인’ 자리였다. ‘100만 어린이의 묵주기도 캠페인’은 각지의 100만 어린이들이 한날한시에 같은 지향을 갖고 묵주기도에 동참하도록 매년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에 맞춰 ACN이 해마다 펼쳐오는 기도 행사다. ACN 한국지부 이사장인 염수정 추기경은 지난해 서울 계성초등학교를 방문해 학생들과 묵주기도를 함께 바친 바 있다. 지난해 한국 어린이 700여 명을 포함해 136개국 50만 명이 넘는 어린이가 기도에 참여했다.지난해에 이어 한국지부가 두 번째로 마련한 ‘100만 어린이의 묵주기도 캠페인’에 개포동본당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참여한 것이다. 아이들은 염 추기경과 함께 기도하면서 묵주기도의 의미를 되새겼고, 학부모들도 기도에 동참했다. 어린이들은 일주일 동안 매일 줌 화상 프로그램에서 만나 주일학교 담당 이현섭 보좌신부와 묵주기도를 바치고, 캠페인 취지를 익히며 준비했다. 어린이들은 이날 ACN 한국지부가 진행하는 짐바브웨 어린이 성경 지원, 레바논 수녀회 운영 학교 긴급 지원을 위한 기부에도 동참해 의미를 더했다.염수정 추기경은 “하느님 은총을 가득 받으신 성모님께 장미 꽃다발을 드리듯 성모송을 바치는 것을 묵주기도라 한다”며 “세상 평화와 일치를 위해 온 세상 어린이가 동시에 기도를 바친다면, 그 기도의 힘은 매우 클 것”이라고 말했다.전희건(미카엘, 6학년) 군은 “추기경님과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니, 더욱 의미를 갖고 깊이 기도할 수 있었다”면서 “하느님께서 세계 가난하고 어려운 어린이들을 위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지향으로 기도했다”고 말했다.백지현(안나) 주일학교 자모회 회장은 “우리 아이들이 고사리손으로 세계의 소외된 어린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이 매우 뜻깊었다”면서 “아이들의 간곡한 기도와 마음이 평화로 이어지길 함께 희망했다”고 전했다.이현섭 보좌신부는 “고통받는 어린이들을 위해 우리 아이들이 기도한 시간은 신앙적으로도 매우 유익한 자리가 됐다”며 “3월부터 ACN이 제작한 어린이 성경 「하느님이 당신 자녀에게 말씀하신다」로 성경 통독을 하며 말씀을 읽고 나눠오고 있는데 묵주기도도 함께 바치게 돼 기뻤다”고 말했다.ACN 한국지부장 박기석 신부는 “어린이들이 함께 바치는 기도의 힘은 하느님의 마음을 향해 곧바로 날아가는 화살과 같아서 그 누구의 기도 보다도 맑고 순수하여 들어주실 것”이라며 “전 세계 100만 명의 어린이가 함께 기도하는 가운데, 새로운 기도의 세계 기록을 달성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cpbc2021.10.20

열렬한 신앙을 노래한 정지용, 시대의 격랑 속으로 사그라지다 [백형찬의 가톨릭 예술가 이야기] (2) 정지용 프란치스코 (하) 1937년 성 프란치스코 재속회 착복식. 밑에서 세번째 줄 왼쪽 네번째가 정지용(점선) 시인이다. 맨 뒷줄 왼쪽에서 첫 번째가 장면 박사, 오른쪽에서 첫 번째가 장발 화백이다. 가톨릭 신자 정지용 정지용은 도시샤대학에 다닐 때, 교회 입교지원서를 작성하여 제출했다. 도시샤대학은 개신교 대학이었다. 지원서에 입교 동기를 “구원을 받고 싶은 마음의 요구 때문에”라고 적었다. 정지용은 대학 안에 있는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개신교 신자가 되었다. 그런데 정지용은 개신교 세례를 받은 지 채 1년도 안 되어 가톨릭으로 귀의했다.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당에서 프랑스 신부에게 ‘프란치스코’(方濟角)로 세례를 받고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정지용이 왜 가톨릭으로 귀의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당시 교토제국대학의 한 한국인 교수의 권유로 귀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교토제국대학에 다녔던 한 한국인 학생이 쓴 글에 따르면 정지용은 가톨릭에 귀의한 후에는 거의 다른 사람이 되어 신앙생활을 해나갔다고 했다. 어떤 국내 신문사가 정지용에게 책 추천을 의뢰했다. 이에 대해 정지용은 최근에 읽은 책 제목을 써주었다. 성경을 비롯해 「준주성범」, 「진화론과 가톨릭 정신」, 「가톨릭 사상사」, 「가톨릭교리서」. 모두 가톨릭 관련 책이었다. 이렇게 정지용은 가톨릭에 깊이 심취해 있었다. 이때 쓴 시가 ‘승리자 김안드레아’이다. “새남터 우거진 뽕잎 아래 서서 옛 어른이 실로 보고 일러주신 한 거룩한 이야기 앞에 돌아 나간 푸른 물굽이가 이 땅과 함께 영원하다면 이는 우리 겨레와 함께 끝까지 빛날 기억이로다. … 오오 좌깃대의 목을 높이 달리우고 다시 열두 칼날의 수고를 덜기 위하여 몸을 틀어 대인 오오 지상의 천신 안드레아 김 신부! …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때까지도 오히려 성교를 가르친 선목자 안드레아! … 오오 승리자 안드레아는 이렇듯이 이기었도다.” 정지용은 대학을 졸업한 후에 재일본조선가톨릭신우회 교토지부 서기로 봉사했다. 귀국해서는 서울 명동성당 청년회 간부직을 맡아 활동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회 재속 회원이 되어 신앙생활을 더욱 굳건히 해나갔다. 또한, 조선 천주교에서 창간한 월간지 ‘가톨릭청년’의 편집을 맡으며 시와 산문을 발표했다. 화가 장발 루도비코도 함께 편집일을 도왔다. 장발은 ‘가톨릭청년’과 ‘가톨릭소년’의 표지 그림을 그렸다. 정지용은 우리나라 최초로 한국식 성화를 그린 장발의 아틀리에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수도자처럼 경건하게 그림 그리는 화가의 모습을 보고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2021년 2월에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라는 전시회가 열렸다. 한 코너에 정지용과 장발의 ‘이인행각(二人行脚)’이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한 자료가 나란히 전시되었다. 한편 ‘가톨릭청년’의 문예면은 1930년대 문단의 주요한 발표 무대였다. 이 잡지에 글을 쓴 사람은 당시 최고의 시인과 소설가였던 이상, 신석정, 김안서, 유치환, 이병기, 이태준, 박태원, 김동리 등이었다. ‘가톨릭청년’은 신자가 아닌 작가들에게도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줌으로써 가톨릭과 사회의 충실한 가교 역할을 했다. 정지용은 천주교에서 발행하는 ‘경향잡지’ 편집일을 맡았다. 경향잡지는 우리나라 최초로 발간된 잡지로 신자들에게 필요한 교리와 교양을 알려주었다. 또한, 한글을 사용함으로써 한글 보급에 커다란 역할을 했다. 또한, 정지용은 천주교 재단에서 창간한 경향신문 초대 주필이 되기도 했다. 당시 경향신문 주간은 노기남 주교가 맡고 있었다. 노 주교는 정지용을 주필로 기용한 이유를 “열렬한 가톨릭 신자로서 내가 종현성당(현 명동대성당) 보좌신부로 있을 때부터 종현성당에 자주 드나들어 잘 아는 사이였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또한, 일제가 공습을 이유로 서울 소개령을 내렸을 때, 정지용은 소사(현 부천)로 이사 갔다. 그곳 소사공소에서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정지용의 이웃에 살았던 사람은 “소사로 이사 온 정지용은 평일엔 기차로 서울에 있는 휘문학교까지 출퇴근하며 2세들을 위해 열심히 강단에 섰고, 일요일이 되면 집 바로 옆에 자리한 소사공소에서 공소 예절로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이렇듯 정지용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복음화를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였다. 친일도 배일도 못한 시인 그런데 안타깝게도 정지용은 친일파 문인들이 만든 ‘국민문학’에 일제 찬양 시를 썼다. “탄환 찔리고 화약 싸아한 충성과 피로 곯아진 흙에 싸흠은 이겨야만 법이요 씨를 뿌림은 오랜 믿음이라.”(‘이토(異土)’에서) 정지용은 ‘문장’지에 일제 찬양 시를 쓴 것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친일도 배일도 못한 나는 산수(山水)에 숨지 못하고 들에서 호미도 잡지 못하였다. 그래도 버릴 수 없어 시를 이어 온 것인데 이 이상은 소위 국민문학에 협력하든지 그렇지 않고서는 조선시를 쓴다는 것만으로도 신변의 협위를 당하게 된 것이었다.”(‘조선시의 반성’에서) 약할 수밖에 없었던 가냘픈 지식인의 심경을 읽을 수 있다. 한편, 정지용은 해방되던 해 11월에 명동성당에서 상해에서 귀국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을 환영하는 자리에 나아가 축시 ‘그대들 돌아오시니’를 낭송했다. “백성과 나라가 이적(夷狄)에 팔리우고 국사(國祠)에 사신(邪神)이 오연(傲然)히 앉은지 죽음보다 어두운 오호 삼십육년! 그대들 돌아오시니 피 흘리신 보람 찬란히 돌아오시니! …” 정지용은 광복과 함께 이화여자전문학교(현재 이화여대) 교수로 옮겨갔다. 「이화 100년 야사」란 책에 정지용에 대한 일화가 적혀있다. “1930년대의 한국 문단에 모더니즘 시인으로 이름을 드날리던 정 선생은 1945년 10월 개강과 함께 부임해서 3년간 국어와 영어, 라틴어를 담당했다. 애주가, 호주가인 데다 이름까지 비슷해서 학생들은 그에게 ‘정종’이라는 별명을 붙였지만 그의 기질과 휴머니즘을 좋아하고 따랐다. 눈 오는 겨울밤에 제자들과 마차를 타고 동대문까지 가서 넉넉잖은 월급을 털어 형제주점의 추어탕을 사주기도 하고 가난한 학생에게는 아낌없이 도움을 주기도 했다.” 가난한 시인이 가난한 학생을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광복 이후 좌익과 우익은 물불을 안 가리고 싸웠다. 이런 모습에 정지용은 크게 실망했다. 윤동주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서문에 자신과 시대를 한탄하는 글을 실었다. “재주도 탕진하고 용기도 상실하고 8·15 이후에 나는 부당하게도 늙어간다. … 청년 윤동주는 의지가 약하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서정시에 우수한 것이겠고, 그러나 뼈가 강하였던 것이리라. 그렇기에 일적(日敵)에게 살을 내던지고 뼈를 차지한 것이 아니었던가?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고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 일제 시대에 날뛰던 부일문사(附日文士) 놈들의 글이 다시 보아 침을 배앝을 것뿐이나, 무명 윤동주가 부끄럽지 않고 슬프고 아름답기 한이 없는 시를 남기지 않았나? …일제 헌병은 동(冬) 섣달에도 꽃과 같은 어름 아래 다시 한 마리 이어(鯉魚)와 같은 조선 청년 시인을 죽이고 제 나라를 망치었다.” 정지용은 경향신문 주필과 이화여대 교수를 사임하고 녹번동 자택에서 은둔했다. 그러다가 6ㆍ25전쟁이 일어나자 좌익계 인사들에 의해 연행되었다. 그 후 정지용에 대한 소식은 여러 갈래로 들려왔다. 인민군에 의해 북으로 끌려가다 경기도 포천 근처에서 포격으로 사망했다는 설도 있고, 평양으로 끌려가 감옥에 투옥되던 중 폭격으로 사망했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정지용은 월북작가가 되었기에 반공을 국시(國是)로 삼은 남한에서 그의 작품은 일체 논의되거나 간행되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러다가 월북 문인 해금 조치에 따라 그의 작품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시인 신경림은 ‘동족상잔의 진흙밭에서 뒹굴기엔 역시 지용은 너무 고고하고 도도한 시인’이라 했다. 수필가 이양하는 “우리는 이제 여기 처음 다만 우리 문단 유사 이래의 한 자랑거리가 될 뿐 아니라, 온 세계 문단을 향하여 ‘우리도 마침내 시인을 가졌노라’ 하고 부르짖을 수 있을 만한 시인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참고자료=▲피천득. 금아문선. 일조각. 1980. ▲권영민 편. 정지용 전집(산문). 민음사. 2016. ▲권영민 편. 정지용 전집(시). 민음사. 2016. ▲정지용. 초판본 정지용 시집. 미르북. 2021. ▲월간조선. 문인의 유산, 가족 이야기(정지용의 손자 정운영). 2015.3월호.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잃어버린 시인 정지용 신앙시 다시 읽기’. 2012.10.25. ▲신경림.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우리교육. 1998 백형찬(라이문도) 전 서울예대 교수 cpbc2023.01.03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하느님 뜻 전하는 소명과 봉사도 충실히[허영엽 신부가 만난 사람들] (44)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류지현(안나) 류지현씨는 쉼 없는 도전의 고비마다 하느님께서 지켜주신다는 믿음으로 매 순간 기도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류씨가 지난 8월 서울에서 열린 국제 언론인 포럼을 진행하고 있다. 내가 류지현(안나)씨를 처음 만난 것은 아주 오래전이다. 그는 내가 사제가 되어 첫 보좌신부로 부임한 서울 수유동본당의 주일학교 학생이었다. 그의 언니들은 주일학교 교사 등 봉사활동을 적극적으로 했는데, 안나씨 세 자매는 본당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해서 요즘으로 말하면 인싸(?)였다. 모두 예쁘고 예의 바르고 공부도 잘하고, 가족 내 어른 중 훌륭한 신부님과 수도자가 많았다. 류지현 자매가 올해 서울에서 있었던 세계 시그니스 총회에서 대변인을 맡으면서 나와 몇십 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학생 시절의 웃는 모습이 그대로였다. 유쾌하고 명랑한 여학생에서 어느새 의젓하게 자기 일에 성공하여 열심히 봉사하는 그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안나씨는 대학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하며 영어를 부전공으로 하는 등 외국어에 소질이 많았다. 그는 두 분야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미국에서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학위를 받고 어려운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많은 자격증을 취득한 재원이다. 그는 SBS 공채 1기 아나운서를 비롯해서 미국과 한국의 여러 방송사 기자와 앵커로 활동했다. 뉴욕 특파원으로 CNBC와 함께 당시에는 생소한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한국 미디어 처음으로 방송을 시작했고 세계의 경제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및 장애인올림픽대회 외신 대변인 등 다수의 국제행사에서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맹활약했다. 현재는 위비앙 YOU CC 대표로, 스피치와 커뮤니케이션 컨설팅을 하고, 국방홍보원의 정책홍보자문위원 등 여러 기관에 미디어와 홍보,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자문과 NGO 나마스떼 코리아의 이사장을 맡고 있고, 강의와 방송, 집필 등을 하면서 ‘안나의 힐링 독서’ 유튜브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Q. 어떻게 가톨릭 신자가 되었는지요? A. 저는 유아세례를 받아서 ‘선택이 아니라 어찌 보면 운명’과 같은 일이었어요.(웃음) 할머니와 부모님 모두 독실한 천주교 신자셨고, 큰아버지와 당숙, 고모 등 집안에 훌륭한 성직자와 수도자분들이 많이 계셔서 저도 평신도지만 나름대로 소명을 실천하는 삶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것 같아요.Q. 학창 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었나요? A. 학창 시절엔 별명이 ‘팔방미인’이었어요. 엄청 활동적이었고, 학업, 취미 활동과 틈틈이 삶을 즐기는 것까지 열심하고 진취적인 학생이었어요. 삶에 대한 의욕이 넘쳐 봉사도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어려운 사람들이나 친구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어요. 학급 대표도 자주 맡았고 수업 후 심리적 방황을 겪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상담도 하고 학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보충 수업을 해 주기도 했어요. 고등학교 시절, YMCA에서 처음 개최한 ‘영어 웅변대회’에 나가 우승도 했어요. 학교 조회나 음악 경연대회마다 늘 지휘를 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많이 했어요. 그래도 가장 재밌는 기억은 중학교 시절 방과 후 매일 한두 시간씩 친구들과 자전거를 탔던 거예요. 대학 때는 ‘크고 넓게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다양한 탐구심이 더 많이 발동되었지요. 시간 부담이 큰 학교 방송과 더불어 학회 활동, 교외에서는 클래식 기타 연주단, 프랑스 문화원의 샹송과 시네마 클럽, 독서 토론 서클 등을 열심히 했어요. 학생들을 가르치며 부지런히 아르바이트도 하고, 성당에서는 꾸준히 피아노 반주 봉사를 했고요. 특히 대학 3학년 때는 MBC 라디오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의 DJ 경연대회에 나가 수상도 하면서 청춘을 불태우며 신나게 열정적으로 살았던 것 같아요.(웃음)Q. 24시간도 모자를 만큼 열심히 사셨네요. 어떤 탈렌트를 주님이 주셨다고 생각하나요?A. 생각해보면 저는 주님께서 ‘말씀’에 대한 특별한 소명을 주셨다고 생각해요. 살면서 다양하게 해 온 일들을 생각해보니 큰 틀에서는 모두가 커뮤니케이션과 관계가 있거든요. 다른 사람들 앞에 설 기회도 많았고 여러 분야의 대변인이나 아나운서로 일하면서 행복한 마음이 들거든요. ‘말은 곧 소통, 커뮤니케이션’을 의미하는데, 그냥 말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움직일 수 있는 ‘설득’의 힘도 중요하잖아요. 설득력은 말을 잘하는 것보다 상대를 존중하고 성심성의껏 대하고 공감을 주어야 가능한데 무엇보다 진심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을 만날 때 최대한 그러한 마음으로 대하려고 노력해요.Q. 이번에 서울 시그니스 세계총회의 대변인을 맡아서 큰 활약을 했는데요. A. 많이 부족한데 너무 고마운 일이에요. 제가 전에 했던 아나운서, 기자, 특파원, 커뮤니케이션, 국제 업무 등의 여러 경험 덕분에 미디어, 언론을 잘 이해할 수 있었고, 브리핑과 기자회견, 국내외 외신 등 언론 관계나 글로벌 홍보와 협력 등의 경력으로 세계 가톨릭의 큰 대회의 대변인 업무를 수행하게 되어 영광이었죠. 세계 시그니스 대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데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어 너무 감사해요. Q. 삶에서 시련의 시간을 겪었을 때는 언제였고 어떻게 극복하셨나요?A. 미국 유학을 떠났을 때, 원래는 SBS에서 휴직 후 2년 뒤 돌아올 예정이었어요. 그런데 세상의 일은 사람의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미지의 도전을 선택한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어요. 늦깎이 유학생의 길이 호락호락하지 않았어요. 현지 방송에서 매일 뉴스 앵커를 맡아 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두 아이의 육아까지 하느라 거의 잠을 못 잤어요. 뉴욕에서 생각지 못한 실패와 좌절을 경험했어요. 그러다 9년 만에 귀국해서 경제 기자 겸 앵커로 다시 시작할 때나, 또다시 미국 특파원으로 뉴욕증권거래소가 있는 월가를 매일 치열하게 오가던 시간도 무척 힘들었어요. 매번 거친 벌판을 헤치고 걸어가는 느낌이었어요. 그래도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던 ABBA의 ‘I have a dream’ 노래처럼 희망과 믿음을 갖고 쉼 없는 도전의 고비마다 하느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무사하지 못했을 거예요. 지금도 무슨 일을 하든 열심히 기도할 수밖에 없어요. 믿을 분은 그분밖에 없으시니까요.(웃음) 류지현씨는 미디어와 국제기구를 통해서 한국을 알리고, 자신의 한계를 넘는 도전을 하면서도 그의 시선은 늘 어려운 사람, 소외된 곳을 향하고 있다. 여러 해 네팔과 히말라야 산간 지역을 돕는 일을 작은 NGO와 함께하고 있고, 몇 년 전에는 히말라야산맥의 안나푸르나 산 아래 산간마을을 도우러 다녔다. 수도자는 아니지만 ‘뼛속까지 독실한 부모님’의 영향으로 항상 몸에 밴 봉사를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한다. 요즘은 ‘목소리와 전달력, 거기에 신앙심으로 무장된 무기(?)’로 봉사할 수 있는 ‘매일 성경 읽어 주는 안나’로 유튜브 방송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가 한 일들은 모두 “맨 처음”이란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도전적이지만 늘 성공을 이룬 것은 ‘부르심’과 ‘소명 의식’으로 주님께서 도와주셨다고 굳게 믿는다. 앞으로 류지현씨가 어떤 도전에 임할지 더 궁금해진다. 그의 도전과 꿈이 이 세상을 더욱 밝게 하고, 많은 후배에게 선한 영향력과 지혜로운 길을 선사하기를 기도한다.허영엽 신부 (서울대교구 사목국 영성심리상담교육원 원장) cpbc2022.11.15
![[수원교구 사목교서]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cpbc.co.kr/CMS/newspaper/2021/11/rc/813955_1.2_titleImage_1.jpg)
[수원교구 사목교서]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 수원교구는 2021년~2023년 사목 실천 목표를 ▲일상 중심의 신앙 실천 ▲자기주도적 신앙 실천 ▲통합 소통환경 구축으로 정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공동체의 아픈 곳을 느끼고, 어루만지며, 위로하여, 치유하는 살아 있는 교회, 사랑하는 교회,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일치를 이루는 교회로 나아가기를 희망합니다. 그동안 교회의 운영방식은 대면 중심이었지만 코로나19 감염병 예방을 위해 수개월에 걸친 미사 중단과 이에 따른 대안으로 제시된 TV, 인터넷 방송 미사 시청은 신자들의 미사 참례 의무에 대한 인식에 변화를 초래했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불확실하게 전개되는 사회현실과 비대면으로 전개되는 소통문화를 바라보면서 지금 이 시대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최선의 대책은 무엇인지 고민하며 그 적절한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코로나19 이후로 집회 중심의 활동이 현저하게 제한되어 왔습니다. 교회 활동은 크게 위축되었고 상황이 호전되어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간다고 하여도 비대면을 선호하는 문화적 경향은 지속될 것입니다. 이 기회에 교구와 대리구는 신자들이 자신의 일상에서 꾸준히 신앙을 실천해 나가는 습관을 기르도록 교육하고 지원해야 하는 당면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말씀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습관화하도록 이끌고,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며 자신을 성찰하고 타인을 돌보는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가정 성경 필사, 가정 성지 순례, 가정 기도 등 가족 구성원이 함께하는 신앙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안내하고 독려하는 노력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신자들 역시 자신이 신앙의 생애주기에 어디쯤 있는지 스스로 진단하고 성찰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이를 안내하지 않고,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길을 잃고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는 신자들이 자신의 신앙 여정을 스스로 진단하고 안내받음으로써 자기 주도적으로 신앙의 온전한 성숙을 향해 나아가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아울러 교구는 홍보국을 중심으로 사제와 신자, 신자와 신자, 교구와 본당, 본당과 본당, 단체와 단체, 신자와 단체 등 교구 내 모든 지체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통합 소통환경을 구축해 나갈 것입니다. 여기에서 신자들은 대면과 비대면 모두를 망라한 종합 신앙 정보를 얻고 소통하면서 복음의 기쁨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일치를 이룬다는 것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소통한다는 것이며, 소통한다는 것은 서로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나누며 치유하는 것입니다. 교구민 모두에게 우리 교구의 복음화를 위하여 자비로우신 주님께 한마음으로 기도해 주실 것을 제안합니다.cpbc2021.11.24

성령 강림과 보편된 교회 상징하는 이콘[가톨릭교회의 거룩한 표징들] (15)펜테코스테 펜테코스테 이콘은 성령 강림과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를 드러내는 거룩한 표징이다. 성령 강림을 묘사한 이콘에는 ‘Η ΠΕΝΤΗΚΟΣΤΗ’(펜테코스테)라는 헬라어가 표기돼 있다. 펜테코스테는 ‘50번째’라는 뜻으로 우리말 교회 용어로는 ‘오순절’이라 한다. 라틴말로는 ‘PENTECOSTES’이다. 이콘에서 성령 강림을 ‘오순절’로 표현하는 이유는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50일째 되는 날에 성령께서 성모 마리아와 사도들에게 강림하셨기 때문이다. 오순절은 원래 이스라엘의 3대 순례 축제 중 하나이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밀 수확을 마친 후 감사 축제로 오순절을 지내어 ‘추수절’(탈출 23,16)이라고도 불렀다. 또 ‘주간절’(탈출 34,22)이라고도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월절 첫날인 니산 달(3~4월) 15일부터 시작해 칠 주간을 보내고 시반 달(5~6월) 6일에 오순절 축제를 지냈다.(신명 16,9-10) 유다인들은 오순절에 율법에 따라 새 밀로 구운 빵 2개와 1년 된 흠 없는 어린 숫양 7마리와 황소 1마리, 숫양 2마리를 하느님께 제물로 봉헌했다.(레위 23,15-21) 추수한 것을 하느님께 감사드리던 농업 축제였던 오순절은 점차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맺어진 계약과 연결돼 하느님께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종교 축제로 바뀐다. 주님의 강생으로 구약과 신약이 구분되듯이 예수님의 부활로 구약 이스라엘의 ‘과월절’은 ‘주님 부활 대축일’로, ‘오순절’은 ‘성령 강림 대축일’로 바뀌었다. 그리스도교가 이스라엘 축제인 오순절을 전례력 안에 받아들인 이유는 이날 성령께서 강림하시어 교회를 탄생시키셨기 때문이다. 교회는 주님 부활 제7주간이 끝나는 날에 오순절을 지낸다. 교회는 이날을 ‘성령 강림 대축일’이라고 한다. 아버지 하느님과 성자 그리스도께서 이날 성령을 교회에 보내심으로써 주님의 부활을 완성하셨다. “이날 지극히 거룩한 삼위일체가 완전하게 계시되었다. 이때부터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가 그분을 믿는 사람들에게 열렸다. 그들은 비천한 육신을 지녔지만, 신앙 안에서 이미 삼위일체의 친교에 참여하게 된다. 성령께서는 끊임없는 당신의 오심을 통하여 세상을 ‘마지막 때’로, 교회의 때로, 이미 물려받았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라로 진입하게 하신다.”(「가톨릭교회 교리서」 732항)예수님께서는 성령을 “παρακλητοs”(파라클레토스)라고 불렀다.(요한 14,16 참조) 우리말로 ‘보호자’ ‘위로자’ ‘중재자’ ‘변호인’라는 뜻이다. 하지만 요한의 첫째 서간은 “누가 죄를 짓더라도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2,1)라며 주님을 가리키는 말로 ‘파라클레토스’를 쓴다. 신약 성경은 이처럼 주님과 성령께서 교회의 보호자이심을 증언하고 있다. 성령 강림 이콘 곧 펜테코스테는 일반적으로 사도들이 묵고 있던 예루살렘의 이층 방(사도 1,13)을 배경으로 한다. 특이한 것은 성령 강림 때 사도단에 속하지 않았던 바오로와 사도가 아닌 루카와 마르코가 펜테코스테 이콘에 등장하고 있다. 이콘 속 인물은 베드로와 바오로를 중심으로 양편으로 6명씩 나뉘어 앉아 있다. 베드로 왼편으로 마태오와 루카 복음서 저자가, 바오로 오른편에는 요한과 마르코 복음서 저자가 앉아 있다. 나머지 자리에는 성령 강림 사건에 참여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앉아 있다. 성령께서 임하신 주님의 제자들은 모두 복음서나 두루마리를 들고 있는데 이는 땅끝까지 복음을 선포하려는 사도들의 공동 사명을 나타낸다. 펜테코스테 이콘에 사도행전 성령 강림 내용(1─2장)과 달리 바오로와 복음서 저자들이 등장하는 것은 ‘교회의 보편성’을 드러낸다. 펜테코스테는 주님의 제자들에게 불혀 모양으로 강림하시고 계신 성령과 어둠 속에 있는 노인의 모습으로 나뉘어 있다. 성령께서 강림한 주님의 제자들이 앉은 아치형 의자는 ‘교회의 경계는 무한하고 끝이 없음’을 보여준다. 교회의 시작은 시작이 없으신 하느님이시고, 교회의 끝은 끝이 없는 하느님 나라이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요한 17,16)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교회는 이 세상에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주님의 제자들 발아래에는 한 노인이 어둠 속에서 두루마리가 놓인 천을 펼쳐 들고 서 있다. 이 노인은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루카 1,79) ‘세상’을 상징하고, 노인이 쓰고 있는 왕관은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의 죄’(로마 5,21 참조)를 드러낸다. 성령 강림의 첫 선물은 바로 ‘죄의 용서’이다. 이콘 윗부분 영원하신 삼위일체 하느님을 상징하는 반원형 아치에서 성령께서 모든 제자에게 각각 강림하신다. 성령께서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생명을 우리에게 나눠주신 것이다.이처럼 펜테코스테 이콘은 성령 강림을 묘사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보호자가 되시어 성령께서 탄생시킨 교회가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임을 드러내는 거룩한 표징이다.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2.08.23

신천지, 이제 드러내놓고 포섭에 나선다 “나 신천지야!”… 이만희 지시로 지난해부터 ‘오픈전도’ 전환, 고3 수험생 등 청년 포섭에 집중 신천지가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자신들의 정체가 낱낱이 공개된 이후 지난해부터 전도 과정에서 빠르게 신분을 밝히는 ‘오픈전도 전략’으로 더 많은 이를 포섭하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사진은 신천지 수료식 모습. 가톨릭평화신문 DB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이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고 사람들을 포섭하는 이른바 ‘오픈전도’로 전략을 전환해 더 많은 이를 미혹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신천지가 ‘커밍아웃’ 방식을 본격화해 자신들의 활동을 정당화하고, 사람들을 끌어들인다는 주의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신천지는 지금껏 자신들의 정체를 철저히 숨기고 포섭하는 ‘모략전도’ 방식을 취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초부터 온ㆍ오프라인에서 정체를 드러내 거부감을 줄이고, 자신들의 교리를 아무렇지 않게 전하는 ‘오픈전도’ 방식으로 전환했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 초기 직격탄을 맞고, 교주 이만희가 수감됐다 풀려나는 등 위기가 도래한 뒤 선택한 전도 전략이다. 마치 ‘그래, 나 신천지야! 그런데 여기 좋은 곳이야’ 하며 ‘신밍아웃’(신천지 커밍아웃의 신조어)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이단 전문가들은 “만천하에 자신들의 실체가 드러난 신천지가 갈 데까지 가고 있다”고 보고 있다.신천지가 오픈전도로 전환한 것은 지난해 초부터다. 이만희가 2020년 말 석방된 이후 시점과도 맞아떨어진다. 이만희는 풀려난 뒤 지난해 초 특별 지시사항과 설교를 통해 신도들 모두가 전도활동에 사명을 다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은혜받은 자로서 못할 것이 없다”며 “특히 청년회가 앞서서 포섭할 대상자들의 연락처와 이메일을 어떤 방식으로든 구해와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신천지에 진리가 있음을 알려야 한다”고 강압했다.이후 신천지의 포교활동은 오픈전도로 급격히 변화했다. 오픈전도는 자신들이 온라인과 SNS에서 신천지를 아예 드러내거나, 전도 과정에서 일찌감치 정체를 드러내는 행위다. 초기 복음방 단계를 거친 뒤 센터에 들어갈 즈음 정체를 밝히던 기존 방식에서 이제는 아예 초기 친분 쌓기 단계에서 정체를 드러내는 식이다.이는 재판에서도 쟁점이 되는 ‘모략전도’를 최대한 피하려는 셈법이기도 하다. 문제가 되는 신분 위장은 피하면서도 빠른 시일에 부지불식간에 정체를 오픈한다. 최대한 빠르고 가볍게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낼수록 포섭된 이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을 노린 것이다.수법도 다양하다. 친분을 쌓은 대상자와 일부러 신천지 교회 주변에서 만남을 가진 뒤 “어? 여기 내가 다니는 교회인데, 내가 신천지 다닌다고 말 안 했었나?”라며 어물쩍 밝히는 식이다. 성경공부에 재미를 느낀 이에겐 말씀의 필요성을 계속 주입하면서 때를 보고 신천지 정체를 오픈한다. 또 자신들이 펼치는 신천지 문화 활동에 도움이 필요하다며 대놓고 참여를 권유하기도 한다. 이로인해 중도 이탈이 많을 것을 고려해 100명 포섭할 것을 200명을 포섭하는 ‘대량 오픈전도’도 벌인다. 굳이 감출 필요가 없어지자, 가족들에게도 먼저 드러내는 경우가 늘었다. 가족에게 성경공부를 권유해 가족의 만류를 미리 막는 계책을 쓰는 것이다.이단 상담 전문가는 “신천지가 자신들의 교세가 꼭짓점에 다다랐음을 느끼고, 다양한 방식의 커밍아웃을 통해 다시금 교세 확장을 꾀하고 있는 것”이라며 “그들의 구원 조건은 철저히 전도와 예배 출석에 두고 있으며, 그래서 전도에 목숨을 걸고 전략을 계발한다”고 했다. 이어 “신천지는 매년 고3 수험생들의 수능시험이 끝난 날부터 다시 전도에 열을 올린다”며 “이러한 시기, 무차별 오픈전도에 빠지지 않도록 의심되는 관계는 끊고, 전문가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다.특별취재팀 cpbc2022.01.11
![[박예진의 토닥토닥] (26)하느님이 벌 주실까 너무 무서워요 (하)](//cpbc.co.kr/CMS/newspaper/2022/06/rc/826810_1.0_titleImage_1.jpg)
[박예진의 토닥토닥] (26)하느님이 벌 주실까 너무 무서워요 (하) 박예진 회장 지난주에 이어 하느님께 투정을 부리면 벌을 받을 것 같아 두려운 은이씨의 이야기입니다.“아빠 사업이 망한 뒤 집안이 좀 더 나아지도록 기도했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은 늘 싸우다가 결국 이혼하셨고, 그 때문에 저는 고생을 많이 하며 자랐습니다. 고등학교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다녔고, 졸업 후에는 열심히 일하며 저축했습니다. 다행히 좋은 남편을 만나 감사한데,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하나뿐인 딸을 학원에 보내주지 못했습니다. 딸은 대학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배우고 싶다는 것을 지원해주지 못하고 있어요. 이렇게나 열심히 살고 기도하며 주일 미사도 빠지지 않는데, 왜 우리 생활은 전혀 나아지지 않을까요?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느님께 묻고 싶은데, 투정부리면 벌 받을 것 같아 무섭습니다.” 지난번 긍정과 희망으로 하느님의 표상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하느님의 표상이란 “하느님 실재에 대한 느낌, 개인이 상호작용하는 하느님에 대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김난예, 2002) 하느님께서는 한 분이시지만 개개인이 체험하는 그분은 서로 다릅니다. 각자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다른 역동과 표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결핍된 욕구를 절대자로부터 보상받고자 하면서 각기 다른 신을 만나 체험합니다. ‘~하기 위해서’라는 조건이 붙는 경우, 신앙은 개인의 성장을 촉진하기보다는 하느님에 대한 부정적 표상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해도 들어주시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나를 버리셨다”는 왜곡된 신념으로 하느님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낳게 되지요. 그러다 보면 신에 대한 불신, 신앙 공동체에 대한 거부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올바른 방향은 성경 말씀을 토대로 한 ‘하느님의 표상’을 따르는 것입니다. 은이씨의 경우 가족에 대한 헌신,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려고 하는 의지와 행동이 그분의 사랑을 체험하는 일이며 가족에게는 사랑의 실천이 됩니다. 정신분석학자들에 따르면, 부모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신에 대한 표상에도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은이씨의 경우 남편의 사업이 망하고 생활이 어려워져도 부모님처럼 이혼하지 않고, 더 노력하면서 가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형편 때문에 학원에 보낼 수 없던 자녀지만 대학 입학을 위한 기도를 하느님께 수없이 바쳤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는 영적인 확신이 은이씨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살아계신 분’이라는 믿음의 뿌리가 자란 것이죠. 은이씨는 가족의 행복을 바라는 것을 통해 자기 삶의 의미와 목적, 그리고 부인과 엄마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노력하면서 위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일상에서 지치고 힘든 몸과 마음을 하느님으로부터 위로받고 힘을 얻어 더욱 열심히 일하는 것, 이것을 ‘사랑’이라고 안 하면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필요한 욕구는 해결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욕망은 다릅니다. 욕망은 더 가지지 못해서 늘 부족함을 느끼게 합니다. 나는 하느님에 대해 어떤 표상을 가지고 있나요? 나의 욕망을 위해 내게 필요한 하느님을 만들진 않았나요? 현실적으로 늘 부족한 나를 하느님께서 채워주시길 바라지는 않았나요? 하느님께서는 그 자체로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은이씨가 가족을 위해 그 자리에서 노력하는 것 같이요. 나의 부족함을 아시고 앞, 옆, 뒤에서 언제나 사랑으로 함께해주시는 분임을 믿고 따른다면 어떨까요? ※자신, 관계, 자녀 양육, 영성 등으로 심리·정서적 어려움이 있으신 분은 메일(pa_julia@naver.com)로 사례를 보내주세요. ‘박예진의 토닥토닥’을 통해 조언해드리겠습니다.박예진(율리아) 한국아들러협회장 평화신문2022.06.28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27) 여행지 : 성 요셉](//cpbc.co.kr/CMS/newspaper/2021/10/rc/811128_1.4_titleImage_1.jpg)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27) 여행지 : 성 요셉마리 파울리타 수녀(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 여러분은 예수님의 양부인 성 요셉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성모님은 예수님의 어머니로 많이 알려지고 공경받고 있지만, 성 요셉은 예수님과 성모님의 배경이 되어 성경에서 빨리 사라져서 그분에 대해 알려진 바가 많지 않습니다. 성 요셉은 예수님과 성모님의 성가정 가장으로 가족을 위해 헌신하였고, 하느님 구원 계획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였으며, 성모님과 예수님의 뒤편에서 보호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였습니다. 성 요셉은 요셉(‘돕는 사람’의 뜻)이라는 말의 의미대로 주연이 아닌 조연의 삶을 살면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었기에, 오늘날 모두가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우리에게 좋은 모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 성 요셉에게로 퀴즈 여행을 떠나볼까요?퀴즈여행1. 다윗의 후손인 요셉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 어느 지파에 속하는가? ①르우벤 ②레위 ③유다 ④베냐민2.성경에서 요셉을 어떤 사람이라고 묘사하고 있는가?①의로운 사람 ②겸손한 사람 ③순명하는 사람 ④믿음의 사람3. 요셉은 무엇을 통해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가? 4. 요셉의 직업은? 5. 성 요셉 희년은 ‘보편 교회의 수호자 성 요셉’ 선포 몇 주년을 기념한 것인가? ①100주년 ②150주년 ③200주년 ④300주년 6. 성 요셉의 수호성인 호칭으로 알맞지 않은 것은? ①보편교회 ②가정 ③노동자 ④의사 ⑤임종자 ⑥동정자 7. 신약 성경에 예수님의 시신을 무덤에 모신 또 다른 요셉이 나온다. 그의 고장은 어디인가? 답란 1. □번 2. □번 3. □ 4. □수 5. □번 6. □번 7. 아□□□아 (정답은 ‘가이드 설명’에서 확인하십시오) 가이드 설명 1. 요셉의 가문야곱(이스라엘)에게는 열두 아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장차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시조가 됩니다. 야곱은 죽기 전에 아들들에게 축복을 빌어주었는데, 넷째 아들 유다에게 해 준 축복은 유다 지파가 다른 지파보다 우위를 차지할 것임을 암시하지요.(창세 49장 참조) 이것은 앞으로 태동할 다윗 왕조를, 궁극적으로는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를 예언한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결국 예수님은 다윗 후손인 요셉에게서 태어나지요.(마태 1,1-16)2. 요셉의 덕행 성경에는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마태 1,18) 성경에서의 의로움(정의)은 법을 충실히 지킨다는 의미보다 관계에 충실함을 뜻합니다. 즉 요셉은 마리아와의 인간관계에 충실함으로써 마리아를 파멸에서 살리지요. 요셉의 의로움은 또한 모든 인간관계의 근본인 하느님과의 관계에 충실함을 의미합니다. 성경 안에서 드러난 요셉의 덕행을 보면 의로움만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겸손과 순명, 믿음의 덕을 갖추었음을 알 수 있지요. 3. 요셉과 꿈요셉이 마리아와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면 마리아가 처형당할 위기에 있음을 알고,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작정하였지요. 이때 주님의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 마리아는 성령으로 아이를 잉태한 것이니,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라는 말씀을 듣지요. 이후에도 요셉은 꿈을 통해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 이집트로 피신을 가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고, 나자렛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마태 1―2장 참조) 4. 요셉의 직업요셉의 직업은 목수라고 합니다.(마태 13,55) 당시에는 직업이 세습되어, 예수님은 양부에게서 목수 일을 배워 목수가 되었지요.(마르 6,3) 목수 직업이란 그 당시 귀한 나무를 다루던 목수만이 아니라 주변에 흔한 돌을 다루는 석수도 지칭하였기에, 나무와 돌을 다 같이 다루는 건축 기능공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베네딕토 15세 교황은 성 요셉을 ‘노동자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고, 1955년 비오 12세 교황은 5월 1일 노동절을 ‘노동자 성 요셉 기념일’로 정했지요. 5. 성 요셉 희년 성 요셉에 대한 공경은 14세기에 접어들면서 뒤늦게 시작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의 역할이 성모 마리아만큼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고, 후에 교의적으로 확인되어 전례력에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식스토 4세 교황이 1479년에 3월 19일을 성 요셉 대축일로 공식 선언하였고, 이후 3월을 성 요셉 성월로 지정하였지요. 비오 9세 교황은 1870년 성 요셉을 ‘보편 교회의 수호자’로 선포하였고, 이 선포 150주년을 기념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0년 12월 8일부터 2021년 12월 8일까지 1년을 ‘성 요셉의 해’로 선포했습니다. 코로나19 시기에 평범한 사람들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는데, 성 요셉이 바로 이런 역할을 한 성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요. 6. 수호성인으로의 성 요셉 성 요셉은 많은 호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위에서 말한 대로 ‘보편 교회의 수호자’, ‘노동자의 수호 성인’이십니다. 1889년 레오 13세 교황은 아버지의 모범, 충실한 가장의 역할을 다한 성 요셉을 ‘가정의 수호자’로 지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성 요셉은 예수님의 공생활 전에 예수님과 마리아가 지켜보는 가운데 가장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였다고 해서 ‘임종자의 수호 성인’이 되었지요. 또 마리아의 동정을 끝까지 지켜주었기에 ‘동정자의 수호 성인’입니다. 7. 또 다른 요셉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자, 명망 있는 의회 의원으로서 하느님의 나라를 기다리고 있던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빌라도에게 당당히 들어가, 예수님의 시신을 내달라고 청하였습니다.(마르 16,43) 그전에 그는 유다 당국을 두려워하여 비밀리에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제자였지요. 그는 예수님의 시신을 아마포로 싸서 바위를 깎아 만든 자기의 새 무덤에 모셨습니다.(마태 27,60) 이렇게 양부인 성 요셉은 아기 예수님을 직접 안아서 기른 영광을 누렸고,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은 돌아가신 예수님의 몸을 직접 안아서 모시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지요. 여행 옵션 : 잠자는 성 요셉구약과 신약에 각각 나오는 요셉은 꿈과 관련이 많다. 구약에 나오는 요셉은 야곱이 사랑했던 부인 라헬에게서 얻은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이다. 그는 자신의 꿈을 자랑하다가 형들의 질투로 이집트로 팔려가게 되고, 꿈을 잘 해몽하여 이집트 재상의 자리에 오르게 되어, 결국 가족들을 기아에서 구출하게 된다.(창세 37장 이하)신약의 마리아의 배필 요셉은 꿈을 통하여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게 되고 꿈을 통하여 어려움을 피하고 하느님의 계시를 받는다. 잠을 자면서 요셉이 위기를 극복하였기에, 우리도 잠을 통하여 우리의 고민과 걱정을 해결하고자 ‘잠자는 성 요셉상’ 믿음이 생겨났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의 꿀잠 비결을 “걱정거리나 어려움을 쪽지에 적어서 잠자는 성 요셉상 밑에 넣는다”고 밝혔다. 여행 기념품 성 요셉은 성모님과 예수님의 뒤편에서 보이지 않는 역할을 하셨습니다. 가장으로서 감당해야 했던 성 요셉의 책임과 역할에 대해 숙고해 봅시다. 나는 평소에 성 요셉을 어떻게 공경해 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공경하고 싶습니까? 또 우리 가정에서 성 요셉의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생각해보고, 그분의 공로에 대해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표현해 봅시다. 마리 파울리타 수녀(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 cpbc2021.10.12

베드로의 피로 물든 바티칸 언덕 위에 교회가 세워지다[부온 프란조!] 25. 성 베드로 사도 (제1대 교황, 기원전 1세기~64 또는 67. 6.29) “내가 너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그러니까 29살 무렵이었습니다. 갈릴래아 강가에서 스승 예수를 만났습니다. 그분은 ‘나를 따라오너라’(마르 1,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깊은 눈을 가진 사람은 처음 보았습니다. 그분은 이미 카파르나움에서 아픈 사람들을 낫게 해주는 기적을 행하고 계셨지요. 익히 저도 그 소문을 듣고 있었는데, 강가에서 저를 보시고는 ‘내가 너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마르 1,17)고 하시는 겁니다. 동생 안드레아와 함께 가난한 어부로 살아가던 저는 대뜸 ‘그것은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강가의 수평선에 시선을 고정하시며 조용히, 그러나 근엄한 목소리로 ‘그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리 명민한 사람이 아닌지라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뜻이 ‘하느님의 사랑을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전하라’라는 뜻임을 알아듣지 못했을뿐더러 이해도 못 했습니다. 그러시고 나서는 그분은 저를 ‘케파(Kefas, ‘반석’ ‘바위’라는 뜻의 아람어, 베드로)’라고 부르시는 것이었습니다.(요한 1,42) 분명 제 이름이 시몬(Simone)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분의 확고한 계획이셨는지 모르지만,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가야 한다니요! 어쩌면 전과 다르게 제 삶이 총체적으로 바뀐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그렇게 제 삶이 바뀌고 다른 제자들과 요르단 강가 근처에 그분과 함께 둘러앉아 있을 때, ‘당신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결정적인 저의 믿음의 고백(마태 16,16)을 들으시고는, ‘너는 피에트로(Pietro), 반석이다. 이 반석 위에 나의 교회를 세우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어찌나 명확하게 말씀하시는지, 제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교회가 제자들과의 일치로 든든한 반석의 교회로 건설되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아울러 그분은 제게 하느님 나라의 ‘열쇠’(Chiave)를 주셨습니다. 당신 교회의 주춧돌, 반석의 역할을 제게 맡기신 것입니다. 세 번이나 주님 배신했지만 반석의 임무 맡겨네, 저는 예수님의 12사도 중에 한 사람, 베드로입니다. 갈릴래아 지방 벳사이다 출신으로 좀 성격이 급하고 막힌 듯 보이지만, 스승 예수의 사랑하는 제자 중에 한 사람으로, 부지런히 그분 옆에서 다른 제자들과 함께 하느님 나라가 도래했음을 외쳤습니다. 아,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그분의 수난(Passione) 시기를 떠올리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습니다. 저의 인간적 나약함, 배신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쳤던 그때만 생각하면 말입니다. 세 번씩이나 그분을 모른다고 손사래쳤던 그때, 어찌나 부끄럽고 죄스러운지 벽에 머리를 박고 가슴을 치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주님, 저를 용서해 주세요, 용서해 주세요’라고 말입니다. 저는 회한의 눈물 뒤에 느꼈습니다. 그분께서 진정으로 용서해주셨음을요. 진정으로 저를 사랑하고 계심을요. 그분께서는 부활 후,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제게 세 번이나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요한 21,15); ‘내 양들을 돌보아라’(요한 21,16); ‘내 양들을 돌보아라’(요한 21,17)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예언적 말씀을 저는 가슴에 깊이 새겼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성령을 받은 저는 두려움도 사라졌고, 이전처럼 나약한 베드로가 아니었습니다. 그분이 제게 주신 교회 리더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갔습니다. 예루살렘을 거쳐 저는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여기저기 전하는 선교 활동을 하다가 로마(Roma)까지 왔던 것입니다. 45년에도 왔었고, 다시 54년에 로마로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네로 황제의 살벌한 박해(64∼67년)가 시작되었습니다. 박해 속에서도 저는 그분과의 약속을 지키며 어린 양들을 돌보는 데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저는 네로 황제의 경기장에서 가까운 바티칸의 언덕(colle Vaticano) 위에서, 저의 스승처럼 십자가형에 처해집니다. 그분에게 저의 온전한 믿음의 피를 바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저는 자청하여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64년(또는 67년) 6월 29일에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같은 날 바오로 사도도 로마 밖 오스티엔세(Ostiense)에서 참수를 당합니다. 우린, 같은 날 로마에서 순교하였기에 교회는 늘 함께 우리를 마치 쌍둥이처럼 기억합니다. 네로(Nerone) 황제는 로마시의 화재 원인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돌리니 저와 함께 수많은 저의 양들도 참혹한 순교를 당하였던 것입니다. 미켈란젤로 작 ‘성 베드로의 십자가 형’(Crocifissione di san Pietro), 파올리나 경당 벽화(프레스코화), 1546∼50년. 십자가에 못 박히는 베드로의 시선은 파올리나 경당의 문을 향해 있다. 자청해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음 맞아저의 피로 물든, 바티칸의 언덕 위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저의 무덤 위에 대성당 바실리카(Basilica)가 베드로(Pietro)란 이름으로 세워진 것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신 대로 저는 교회의 반석이 되었고, 저의 선교 소명을 고스란히 교회에 유산으로 남겼습니다. 그렇게 저는 ‘로마의 주교’(Vescovo di Roma)로 불렸고, 즉시 ‘베드로 좌’(Cattedra di Pietro)의 1대 교황으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200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저의 후계자 교황이 266대라니 놀랍고 감사할 뿐입니다. 나의 교회가 영욕의 세월, 환난의 세월, 그리고 기쁨의 세월을 거쳐 걸어온 이 길은, 살아계신 나의 주님, 우리의 주님께서 성령과 함께해주셨음을 확신합니다. 미켈란젤로(Michelan Buonarroti, 1474∼1564)가 그의 생애에 마지막으로 시스티나 성당 옆, 파올리나 경당(Cappella Paolina) 양옆에 그린 프레스코화가 있습니다. 왼쪽 벽에는 바오로를, 오른쪽 벽에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린 저를 고통에 몸부림치는 한 인간의 모습이 아닌, 누군가를 단호하게 바라보는 모습의 얼굴로 저를 그렸더군요. 자, 이렇게 생각합시다. 누군가를 꾸짖는 듯한 저의 시선은, 교황들은 물론 나의 모든 양에게 건네는 이 말로, 저의 마지막 인사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나의 양들아, 깨어 있으라. 하느님의 나라가 바로 너희 앞에 왔다!’라고요.” 제1대 교황인 베드로 성인을 마지막으로 열 분의 교황님을 만나 보았다. 그분들을 만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고, 신앙을 다시 되돌아보는 시간도 갖게 되었다. 멀게만 느껴졌던 그분들의 인간적 면모와 함께 놀라웠던 사실은 교황님들의 한결같은 마음은, 늘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과 가까이하였다는 사실이다. 2023년 대림 시기에 가난과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을 우리도 교황님들처럼 실천해 보는 것은 어떨까? 올해 마지막 12월은, 로마 이웃들과의 재미있고 행복했던 일상을 성탄 요리와 함께 쓸 예정이다. 고영심(모니카) 디 모니카 대표 레시피 / 보리 빵(Pane d’orzo, 빠네 도르조)▲준비물 : 보리 밀가루 200g, 올리브유(엑스트라 버진) 50㎖, 물, 소금. →보릿가루에 올리브유와 따뜻한 물 2분의 1컵 정도를 넣고 반죽한다. →만약 반죽이 힘겨우면, 올리브 오일을 조금씩 넣어가며 반죽한다. 반죽이 기름지면, 더 맛이 있다. →가루를 묻혀 밀대로 동그랗게 대략 20cm로 만든 다음, 오일 바른 팬에 펼쳐 놓는다. →오븐 200도에서 양 가장자리가 타지 않는 상태로 굽는다. ▲모니카의 팁 : 빠네 도르조는 예수님 시대의 빵이다. 발효제를 넣지 않고, 단순하게 반죽해서 구워 먹던 빵이다. 열두 제자와 함께 나누어 먹던 2000년 전의 이 빵은 신약성경에서의 예수님을 ‘참된 빵’(요한 6,32), ‘생명의 빵’(요한 6,35;6,48), ‘하늘에서 내려온 빵’(요한 6,32;6,49-50)으로 표현했다. 예수님은 베들레헴(Bethlehem)에서 태어났다. 히브리어로 ‘Beth lehem’은 ‘빵의 집(casa del pane)’이라는 뜻이다. 열두 사도와 나누어 먹던 소박한 이 빵을 2000년이 지난 지금 만들어 먹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보릿가루가 없으면, 강력분으로 대신해 볼 수 있다. 고영심(모니카) 디 모니카 대표 cpbc2022.11.23

책꽂이 혼자서 뜰을 거니시는 하느님 어른을 위한 성경 동화. 동화 작가이자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는 방영미(데레사)씨가 구약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서른 편의 동화를 엮었다. 탐욕과 무지, 교만이 범람하는 세계, 멸망과 재건을 반복하고 어리석음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평범한 우리처럼 미숙하고 불완전한 사람들이 우왕좌왕 살아가는 이야기가 부드러운 필체에 담겼다. △에녹을 좋아하신 하느님 △쓰디쓴 진실과 달콤함 거짓 △이번 생이 처음이라 총 3부로 구성했으며, 모세의 대변인 아론, 초대 왕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탄, 예언자 예레미야와 하난야, 하느님의 첫 사람 아담 등이 등장한다. 방영미 글ㆍ그림 /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기획 / 바오죽음을 넘어서는 희망 의정부교구 상장례학교장으로 봉사하다 2012년 마흔 살의 나이에 선종한 양종인 신부의 천주교 생사학 강의록 유고집이다. 김훈 작가의 단편소설 「저만치 혼자서」의 모티브가 된 강의록으로, 병마에 시달리며 마지막 순간까지 평범한 일상을 살고자 했던 한 사제의 삶과 죽음에 관한 성찰이 담겼다. 성경의 관점에서 왜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는지, 죽음을 존엄하게 맞이해야 하는 당위성 등을 담담하게 기록했다. 또한 자살과 안락사, 뇌사, 낙태 등 논쟁적 죽음도 다뤘다.김훈(아우구스티노) 작가는 서문 ‘누구에게나 삶은 가볍지 않다’에서 “죽을 운명인 인간이 죽음을 넘어설 수 있는 힘은 예수 부활의 은총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부활을 말하면서 불멸하는 영혼의 부활과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부활을 연결시키는 문장들은 양종인 치릴로 신부의 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페이지”라고 썼다. 양종인 신부 지음 / 독서일가점검 우리 시대 대표 고전학자 정민(베르나르도,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삶과 세상을 점검하고, 오늘의 좌표를 확인하기 위해 옛글을 살핀다. ‘오늘’을 알기 위해 ‘옛글’을 읽는 이유는 옛글이 지적해온 인간의 문제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민 교수가 소란한 세상을 깨우는 고전 속 네 글자를 풀이하며 인간의 뿌리 깊은 속성, 인간사의 성쇠를 살폈다. 수록된 네 글자 400편은 일반적으로 친숙하게 알려진 성어가 아니고, 대부분 옛 문장에서 발췌한 것이다. 제목이 된 ‘점검(點檢)’은 하나하나 따져서 살핀다는 뜻이다. 정 교수는 서언에서 “마음자리를 살피고 몸가짐을 돌아보며, 생각을 들여다보고 세상 이치를 짚어보는 모든 일이 다 ‘점검’”이라며 허둥지둥 엄벙덤벙 살아가는 우리에게 차분히 내려놓고 내성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민 교수 지음 / 김영사성 요한 바오로 2세의 하느님 계획 안에 있는 인간사랑 - ‘몸 신학’ 교리서 해설서 3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몸 신학 교리서를 해설한 세 번째 책. 몸 신학 교리서의 제3부 육의 부활(64-72과)과 제4부 하늘나라를 위한 독신과 동정(73-86과)을 한 주제로 엮었다. 김혜숙(막시마) 선교사는 “죽음과 부활은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며 “단 한 번뿐인 자신의 생애를 진지하고 귀하게 그리고 자신의 몸에 쓰여진 신비를 살라는 초대”라고 설명했다. 김 선교사는 “몸은 생물학적인 사건으로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통과하면서 영원으로의 초대, 곧 하느님과 얼굴을 맞대는 초대에 놓이게 됨을 말한다”면서 “죽음과 부활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선물한 신적 생명의 친교 안에서 내적 힘의 체계로 소통하는 하느님 사랑의 부름이요 인간 사랑의 응답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김혜숙 지음 / 사람과사랑 이지혜 기자 cpbc2022.01.05

“교회는 자비의 관리자이자 분배자… 말과 행동, 기도로 하느님 자비 실천”왜 하느님의 자비 주일인가 하느님 자비의 성화. 24일로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을 맞는다. 주님 부활 대축일을 기점으로 한 부활 시기의 첫 8일, 곧 부활 팔일 축제의 마지막 날이 바로 부활 제2주일이고, 교회는 2001년부터 이날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지내고 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새 천년기를 여는 2000년 대희년 4월 30일 부활 제2주일을 맞아 ‘하느님 자비의 사도’로 알려진 폴란드 출신 파우스티나(1905∼1938) 수녀를 시성하면서 하느님의 자비를 특별히 기릴 것을 당부했다. 이어 교황청 경신성사성은 그해 5월 5일 자 교령을 통해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지내도록 했다. ▲“말과 행동, 기도를 통해 하느님 자비를 실천하라”‘하느님의 자비’는 새삼스럽지 않다. 신ㆍ구약 성경은 계속해서 ‘우리 하느님의 지극한 자비’를 일깨운다. 구약은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탈출 34,6) 등 곳곳에서 하느님 백성들의 하느님 자비에 대한 각별한 체험을 전해준다. 또한, 신약에선 ‘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 15,11-32) 등을 통해 ‘한없이 자비롭고 사랑이 넘치는 아버지’의 모습을 전한다. 그런데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왜 굳이 ‘하느님의 자비 주일’을 지내도록 했을까? 그것은 바로 이 시대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자비’를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그래서 즉위 2년 만인 1980년 11월 자신의 두 번째 회칙 「자비로우신 하느님」(Dives in misericordia)을 발표하고, 교회는 하느님 자비의 진리를 고백하고 선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한, 요한 바오로 2세는 “전쟁과 폭력, 살인, 기아, 낙태 등 전 세계에 만연한 죽음의 문화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자비뿐”이라며 이 땅의 평화를 위해 한결같은 사랑으로 인간을 보살피는 하느님의 자비를 청할 것을 권고했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하느님 자비와 사랑’을 드러내 보인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할까? 그 질문에 우리는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라는 복음 말씀에서 답변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특히 「자비로우신 하느님」 4항에서 교회는 “자비의 관리자이자 분배자가 돼야 한다”고 당부한다. 왜냐하면, 세상은 “물리적, 윤리적 악이 팽배하고, 그로 말미암아 대립과 긴장으로 얽혀 있으며, 인간 자유와 양심과 증오에 대한 위협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우리가 하느님 자비의 선포자와 실현자가 되기 위해서는 “말로만이 아니라 생활의 증거를 보여줘야 한다”(「자비로우신 하느님」 13항)고 거듭 당부한다. 수도생활 중 하느님 자비에 대한 특별한 카리스마(은사)를 체험했던 파우스티나 수녀도 영적 체험 중에 받은 메시지를 담은 「나의 영혼 안에서 하느님의 자비」라는 제목의 책에서 “말과 행동, 기도를 통해 하느님 자비를 실천할 것”을 호소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cpbc2022.04.20
![[시사진단] 2021년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최영일, 빈센치오, 공공소통전략연구소 대표)](//cpbc.co.kr/CMS/newspaper/2021/12/rc/815691_1.0_titleImage_1.jpg)
[시사진단] 2021년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최영일, 빈센치오, 공공소통전략연구소 대표) 이 연말 중국 매체들에는 한 할머니의 사망기사가 실렸다. 세계적으로도 화제가 되었는데 가장 오래 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정확한 출생연도가 확인되지 않아 비공인 기록으로 남았는데 중국에서의 추정은 1886년생으로 무려 135세라는 것이다. 몇 살 틀렸다고 해도 대단한 장수라는 점은 틀리지 않는다. 19세기 말에 태어나 20세기 100년을 다 보고, 21세기도 1/5쯤 산 것이다. 이 할머니 기사를 보고 궁금한 것이 많았다. 이미 세상을 떠난 다른 나라의 할머니지만 묻고 싶은 질문이 많았다고 할까. “할머니, 어느 시절이 살기에 가장 좋다고 느끼셨어요? 할머니, 어느 때가 가장 살기 힘들고 흉흉했나요?”그걸 당신 할머니에게 물어보지그래? 하실 분도 계실 것이다. 그렇다. 필자의 할머니도 100세를 넘기진 못하셨지만 1902년에 태어나 1998년에 돌아가셨으니 4년 모자란 한 세기를 사셨다. 노후에는 맏손자가 이야기 들어주는 걸 가장 좋아하셨으니 구한말, 일제강점기, 6.25 피난 경험, 박정희ㆍ전두환ㆍ노태우 정권을 겪고, YSㆍDJ 정부까지 경험하신 것이다. 친할머니가 맏손자에게 기쁨과 고통의 경험을 왜 이야기해주지 않으셨으랴? 가장 힘들었던 때는 일제강점기로 좋은 학교에 다니던 사촌오빠들이 독립군과 내통한다고, 불온한 사상을 공부한다고 순사들에게 잡혀가 매질을 당하고 집에 왔을 때였다고 기억한다. 가장 기뻤던 순간은 떠나온 고향 이북, 한 우물이라는 동네에서 잔치할 때, 그리고 평양에서 모진 시집살이를 잠시 떠나 외국 선교사가 개설한 성경학교에서 몇 주간 한글도 배우고, 성경도 배우고, 무엇보다 또래 여학생들과 함께 생활한 시간이라며 평생 잊지 못하셨다.중국 장수 할머니든 우리 할머니든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은 경험과 기억이다. 한 인간에게도 그것이 삶의 모든 것이지만 사회공동체 차원에서도 집단의 경험과 기억이 곧 역사이며 역사는 후대에 정보와 지식, 교훈과 지혜를 전달하고, 계승되기에 중요한 것이다. 초점을 손자녀들에게 옛날이야기에 섞어서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던 할머니로부터 우리 자신에게 옮겨보자. 지금까지 살아온 당신의 삶, 그 속에 담긴 경험을 추리고 정리해야 한다. 우리가 의도했거나 아니거나,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여 살아남기 위한 취했던 행동의 성공과 실패, 그 궤적들을 복기해보며 그 안에서 의미들을 찾아내는 것이 핵심이고, 성찰이라고 부르는 것이다.우리는 올해 2021년 한 해가 참으로 빠르게 흘렀다고 느낀다. 사실 연말에 돌이켜보면 화살처럼 흐르지 않은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늘 어떤 시기의 초반에는 시간은 더디고, 시기의 끝에는 후딱 흐른 느낌에 젖게 마련이니. 지난해 초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은 올해 내내 이어졌고,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선진국들의 백신 접종률에도 불구하고 꺼지기는커녕 ‘위드 코로나’와 함께 다시 폭증하고, 오미크론 변이의 감염력 강화에 걱정은 다 커지는 연말이다. 하지만 이 고난 속에서 당신은 어떤 기억을 올해의 경험으로 남길 것인가. 할머니가 옛이야기를 들여주시고 끝자락에 부르시던 노랫가락이 머릿속을 맴돈다.“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평화신문2021.12.22

21세기에도 신앙의 자유 누리지 못하는 이들[미카엘의 순례일기] (46) 중국 가톨릭 신자들 중국인 사제와 수도자들이 한국 교회의 성지를 순례하고 있다. 몇 년 전 중국의 사제와 수녀님께서 한국 성지 순례를 문의하셨습니다. 회사 사정상 제가 그분들을 안내하도록 배정되었는데, 여러 차례 연변과 북경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 순례를 떠나 중국 교포 신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그곳에 남아있는 초기 한국 교회에 대한 흔적과 현 상황에 대해서도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교포가 아니라 중국인 신부님, 수녀님과 함께 한국 성지를 다니며 인솔하고 가이드까지 해야 하는 것은 큰 부담이었습니다. 그 일을 맡고 나니, 중국 순례단과 관련된 특별한 기억이 하나 떠올랐습니다.중국 정부의 개방적인 정책으로 인해 이스라엘이나 이탈리아에서 중국 성지 순례단을 만나는 경우는 종종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한 호텔에서 각국의 순례단이 분주하게 버스를 기다리던 아침이었습니다. 저는 일찍 내려와 일정을 다시 체크하기 위해 호텔 계단 구석의 한적한 곳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미 여러 명의 중국인이 계단에 앉아 무엇인가를 읽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순례 일정표라고 생각했습니다. 중국 순례단은 워낙 대규모인 데다, 특유의 성조 탓인지 서로 대화를 나눌 때면 크게 소리를 높이는 경우가 많아, 가능하다면 일정이 겹치지 않도록 조절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저는 슬쩍 일정표를 들여다보려는 마음으로 조용히 다가갔습니다. 하지만 제 섣부른 생각이 부끄럽게도, 그분들이 읽고 계신 것은 다름 아닌 성경이었습니다. 한자가 세로로 빽빽하게 쓰인 낡디낡은 성경에는 이미 여러 색깔의 밑줄이 가득했는데도 그분들은 노란색 형광펜으로 그 위에 다시 한 번 줄을 긋고 계셨습니다. 아마도 그날 순례하게 될 장소에 관한 구절이었겠지요.저는 모방 신부님께서 활동하시던 서만자 성당을 방문했을 때를 떠올렸습니다. 매일 오후 4시가 되면 성당에서부터 마을로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의 논과 밭에서 일하던 분들이 삼삼오오 성당으로 모여들어, 100여 명의 신자 모두가 무릎틀에 무릎을 꿇고 묵주기도를 시작하는 그 잊지 못할 모습을 말입니다. 공산당의 독재와 문화혁명을 겪으면서도 수백 년 동안 이어진 신앙을 지켜온 그분들과, 예루살렘의 이렇게 소란스러운 호텔 한 켠에서 성경을 읽고 또 읽는 그분들의 마음이 과연 어떠셨을지 저는 차마 짐작할 수 없을 것입니다.순례길에는 한국으로 유학을 온 중국 신학생 한 분과 한국 수녀원에 파견되어 일하고 계신 중국 수녀님 한 분이 통역을 위해 동행하였습니다. 4일의 짧은 일정이라 수도권 주변에만 머물렀습니다. 첫날은 주로 조선 교회 초기에 중국 교회가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사목하신 첫 번째 사제가 바로 소주 출신의 북경 신학교 1회 졸업생이신 주문모 야고보 신부님이시며, 그분의 활동과 순교가 얼마나 중요한 계기였는지 말씀드리고 감사를 표했습니다. 신부님을 처형했던 포졸은 죽은 이가 정말로 부활하여 자신을 해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신을 조각내서 한강에 던져버렸으므로 유해를 찾을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지요. 그분들은 제 이야기에 매우 놀라셨습니다. 문화혁명을 거치며 중국 교회에 관한 모든 문헌이 불태워진 탓에 초기 교회의 역사에 대한 자료는 하나도 남지 않아, 그런 비슷한 이야기조차 들으신 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우리나라의 성직자나 수도자와는 다른 모습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특히 수녀님께서는 버스에 타기만 하면 쓰고 계셨던 베일(머릿수건)을 벗어버리셨습니다. 제가 놀라서 여쭈어보니, 지금은 한국 순례 중이고 성당을 방문하니 계속 베일을 쓰고 있지만 중국에서 활동하실 때에는 거의 쓰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본당에서 활동하시는 수녀님을 제외하면, 바깥에서 베일이나 수도복을 입고 활동하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라고요. 중국은 대외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그곳에서 신앙을 갖고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저는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들께서는 한국에서 신자들이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얼마나 부러워하셨는지 모릅니다.이렇듯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도, 자신의 신앙을 자유롭게 드러낼 수 있는 자유를 갈구하는 이들이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우리의 북녘 동포 중에도 분명 존재할 테지요. 그러나 그분들 역시 하느님께 불림 받은 사람이며 그 부르심에 응답한 이들이므로,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는 달리 결연하고 깊은 신앙의 모습을 간직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러 세상에 오실 그분을 기다리는 대림 시기입니다. 자유를 빼앗겨 차갑고 시리기만 한 땅에서도 신앙을 굳건히 지켜가는 분들을 기억하며, 다가오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세상 모든 이들이 마음껏 축하할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바라봅니다.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평화신문2021.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