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벽 전체 장식한 ‘최후의 심판’...사실주의적 인물 묘사 돋보여[슬기로운 성당이야기] (12)토르첼로의 산타 마리아 아순타 대성전(하) 스크로베니 경당에 있는 지오토의 최후의 심판. 로마에서 지내다 보면 많은 순례자를 만나게 되고, 개인적으로 아는 지인을 위해서 가이드 역할을 한다. 멀리서 찾아온 순례자를 위한 일정을 준비하다 보면 로마에서 꼭 보여드려야 할 리스트들을 정리하게 된다. 그중에서 빼놓지 않는 곳이 시스티나 성당이다. 시스티나 성당을 찾아간 사람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은 아무래도 미켈란젤로의 ‘천지 창조’와 ‘최후의 심판’이다. 미켈란젤로의 이 예술 작품을 통해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대한 경외와 찬미, 그리고 감사를 드리면서 또한, 세상의 마지막 날에 주님 앞에 선 자신을 떠올리며 겸손을 배우는 시간이 된다. 이러한 찬미와 겸손의 시간을 하늘을 향해 높이 솟은 탑이 유명한 토르첼로에서 또다시 갖게 된다. 감탄을 자아내는 최후의 심판 모자이크이코노스타시스를 통해 제단에 들어가서 단순한 제대와 앱스에 있는 성모상, 그리고 가대석으로 반원형으로 둘러싸인 주례석을 바라보며 그 단순함을 생각하다가 돌아서면 동공이 커진다. 성당의 출입구가 있는 서쪽 벽을 장식한 최후의 심판 모자이크는 성당을 나가려는 순례자의 발길을 자연스럽게 멈추게 하는 감동을 준다. 이 모자이크는 11세기 후반부터 12세기까지 제작되었다. 벽 전체를 장식하고 있는 규모만으로도 압도하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바로 최후의 심판 도상이다. 맨 위쪽부터 시작해서 정확하게 6단계 15장면으로 구성된 최후의 심판은 각 장면을 자세히 살펴보게 하는 매력이 있다.6단계 15장면으로 구성된 최후의 심판이 6단계 구성의 시작은 맨 윗부분에 있는데,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는 골고타 언덕 장면으로 성모님과 요한 사도가 십자가 양쪽에 서 있다. 두 번째 단계는 아나스타시스(Anastasis) 도상으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저승으로 내려와 쇠사슬을 풀고 그곳에서 기다리는 영혼들을 해방시켜주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여기에는 아담과 하와, 다윗과 솔로몬이 해방된 영혼들과 함께 있다. 이 모든 이를 양쪽 끝에서 대천사 미카엘과 가브리엘이 지키고 있다. 세 번째 단계는 심판자 예수님을 중심으로 양쪽에는 성모님과 요한 세례자, 그리고 12사도가 자리하고 있다. 네 번째 단계는 ‘준비’를 뜻하는 에티마시아(Etimasia) 단계로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는 빈 옥좌에 대한 경배로 이어진다. 이 단계는 주님의 재림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빈 옥좌 위에 성경이나 비둘기, 십자가 등이 있다. 이미 사심판받은 자들이 양쪽에 배치되어 있는데, 왼쪽에는 선택된 이들이 있고, 오른쪽에는 저주받은 자들의 잘린 시체들이 놓여 있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단계는 다섯 장면으로 천국과 지옥의 모습이 장식되어 있다. 왼쪽 두 장면은 천국을 묘사했는데 꽃밭 위에 성모님이 천국의 문 앞에 있고 하단에는 구원받은 영혼들과 함께 아브라함이 묘사되어 있다. 반면 오른쪽에는 저주받은 영혼들로 둘러싸인 사탄이 유다를 잡고 있다. 라벤나의 모자이크와는 완전히 다른 사실주의적 인물 묘사가 특징이러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최후의 심판은 오랜 역사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여기에 독특한 도상과 표현이 단연 돋보인다. 등장인물들을 살펴보면 비잔틴 모자이크의 대표주자인 라벤나의 성당들(5~7세기)에 나타난 인물들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천천히 살펴보면 모든 묘사에서 비잔틴 교회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사실주의적 묘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이러한 단계별 구성과 사실주의적 표현은 그 후 지오토가 그린 최후의 심판(파도바 스크로베니 소성당, 1305년)에 영향을 미쳤고, 이 영향은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1536년)으로 이어진다. 공포심과 두려움이 아닌 부활의 희망을 주는 최후의 심판최후의 심판이 성당에 그려지는 이유는 단순히 성당을 나가기 전 신자들에게 공포심을 상기시키는 도덕적인 경고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전례의 마지막 페이지를 나타내며 신자들에게 자신들이 가고 싶은 세계를 알고 교회를 떠나라는 의미이다. 곧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마태 25,46)라는 예수님의 최후 심판에 관한 말씀을 기억하게 한다. 복원작업으로 인하여 발견된 옛 프레스코화이 성당을 유명하게 만든 사건은 2020년에 일어난다. 2019년 시작된 성당 복원은 약 1년간 88만 유로(한화 12억 원)를 쓰며 떠들썩하게 시작되었는데 2020년 그 결실을 보게 되었다. 성당 내부의 모자이크 장식 이전 프레스코화들의 조각들이 발견된 것이다. 9세기 프레스코화들로 주제는 대부분 성모님에 관한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프레스코화들인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데, 이 습기 많은 늪지 위에서 1000년 이상 보존되었다는 것 자체가 기적같은 일이었다. 현재의 성당 이름인 성모 승천 대성당은 11세기에 명명되었는데, 그 이전 성당의 이름은 기록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이러한 프레스코화들의 발견으로 이 성당은 처음부터 성모님께 봉헌된 성당이라고 추측할 수 있게 되었다. 필자 또한 아직 이 프레스코화들을 대면한 적이 없다. 2020년 귀국해 아직 이탈리아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이탈리아로 가게 되면 바로 토르첼로 섬을 찾을 것이다. 원본들을 대면할 생각에 벌써 가슴이 두근거린다.1년 동안 중세 시대에 건립된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일곱 성당을 선정하여 이야기를 이어왔다. 이 성당들의 선정 기준은 우선, 이탈리아에 있는 중세 시대 건축된 것이어야 한다. 다음으로는 모두가 알고 있는 대성당이 아니면서도 성화나 전례 공간의 가치가 충분한 성당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두 필자가 적어도 한 번 이상은 가봤던 성당이라는 사실이다. 이탈리아에서 미술을 전공한 현지 가이드와 전례학을 가르치는 신학자가 함께 작업했다는 사실이 조금은 새롭다고 하겠다. 처음 ‘슬기로운 성당 이야기’를 기획하며 의도한 목적은 역사·문화·종교적 가치가 있는 성당의 성화들과 전례 공간을 될 수 있으면 자세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문 단어들을 사용해야 했고, 그 성당에 가봐야 이해가 되는 조건들이 있다는 한계로 인해서 독자들이 때때로 이야기를 이해하기 힘들었으리라 생각한다. 코로나가 잠잠해져서 해외 여행이 자유로워진다면 함께 지금까지 이야기한 성당들을 순례하고 싶다. 그동안 ‘슬기로운 성당 이야기’를 열심히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린다. 윤종식 신부(가톨릭대학교 전례학 교수) 박원희(사라, 이탈리아 공인 가이드)※그동안 ‘슬기로운 성당 이야기’를 연재해 주신 윤종식 신부님, 박원희 가이드와 애독해 주신 독자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cpbc2021.08.04

‘아가’(雅歌)를 모르고 어찌 청춘을 말할 수 있으랴[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 (32)사랑학 교과서 ‘아가’ 구약 성경 ‘아가’와 안소근 수녀의 아가 해설서 「아름다운 노래, 아가」. 아가는 원죄 이전의 인간적 사랑을 보여주는 ‘사랑학 개론’이다. ‘아가(雅歌)’를 아시나요? 주님 하느님 예수님 등 거룩한 말이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 ‘이상한’ 성경, 가슴 뜨거운 청춘 남녀가 달콤한 밀어를 속삭이는 ‘사랑학 개론’ 말입니다. 아가를 펴들면 첫 장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아, 제발 그이가 내게 입 맞춰 주었으면! 당신의 사랑은 포도주보다 달콤합니다.”(1,2) 아담과 하와는 원죄를 짓기 전 에덴동산에서 어떤 사랑을 나누었을까요? 궁금하지 않나요? 아가가 그 궁금증을 풀어줍니다. 저는 독특한 독서 버릇을 갖고 있습니다. 책을 손에 들면 책의 가장 뒷부분에 있는 저자 후기를 먼저 읽고 난 다음 본문을 읽습니다. 안소근 수녀님의 「아름다운 노래, 아가」(성서와 함께)를 볼 때에도 후기를 먼저 읽었습니다. 수녀님이 신학교에서 강의할 때 이런 재미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2011년 어느 봄날 1교시 히브리어 수업시간이었습니다. 학교 마당을 쓸고 온 서울 신학교 2학년 학생들이 정말 한 명도 빠짐없이 졸고 있었습니다. 연계형, 절대형, 단수, 복수, 아무리 문법을 설명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설명을 중단하고 물었습니다. ‘예레미야서를 읽어 줄까요, 아가를 읽어 줄까요?’ 학생들이 갑자기 이구동성으로 ‘아가요!’하고 대답했습니다. 뜻밖이었습니다.”인간적인 사랑을 노래그러면 그렇지! 신학생들도 청춘은 청춘이구나. 아가를 모르고 어찌 청춘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아가가 젊은 신학생들의 춘곤증을 몰아내 준 각성제였다니, 아가를 읽는 제가 갑자기 젊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가는 수녀님의 인생도 바꾸어 놓은 모양입니다. 수녀님의 고백입니다. “아가는 저를 뒤집어 놓았던 책입니다.”대체 아가의 내용이 어떻길래, 젊은 여성 수도자를 뒤집어 놓았을까. 아가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또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청춘 남녀의 사랑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수녀님의 해석은 다릅니다. “아가는 남녀의 사랑, 감각적이고 인간적인 사랑을 노래합니다. 이것이 아가의 주제입니다.” 청소년 교육과 관련한 의문점입니다. 사람들은 왜 에로스(인간적 사랑)를 가르치지 않을까.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성당에서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반면 아가페(도덕적 사랑)에 대한 교육이나 훈계는 차고 넘칩니다. 청소년들에게 성 문제야말로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중요한 관심사인데 말입니다. 성욕을 이야기하면 수준 낮은 사람으로 오해받기 쉽습니다. 그래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위선이지요. 성욕은 식욕과 함께 인간 존재와 관련된 가장 원초적인 생물학적 본능입니다. 식욕이 없다면 현재가 없고, 성욕이 없다면 미래가 없습니다. 식욕이 있어야 현재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고, 성욕이 있어야 미래의 후손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식욕과 성욕은 하느님이 주신 소중한 선물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품위 있게 발산하느냐입니다. 제대로 가르쳐 주는 곳이 없으니 딱하지요. 식사예절에 대한 교육은 많습니다만, 성 예절에 대한 교육은 거의 없잖습니까. 아가 속의 사랑은 무척 관능적입니다. 목 허벅지 배꼽 젖가슴 등 상대의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7장)는 제가 봐도 낯간지러울 정도입니다. 그러나 품위 있습니다. 원죄 이전의 사랑이 이런 것이었구나, 사랑이란 상대방에게서 하느님의 모상을 확인하는 과정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수녀님의 의견입니다. “아가는 죄로 물들기 전 낙원에서 살던 인간의 모습을 통하여 다시 완성될 낙원의 모습을 그려 보입니다.” 주인공은 여성 관심을 끄는 대목은 남녀의 위상입니다. 여자가 시종일관 남자를 리드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남녀가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 사랑하지만, 주인공은 분명히 여자입니다. 아가의 또 다른 맛입니다. 구약 신약 통틀어서 여성이 주인공인 성경은 아가가 유일하지 않습니까. 고대 근동은 남성 위주의 가부장제가 극에 달했었지요.아가는 최고의 사랑학 교과서입니다. 세상 어디서 이렇게 격조 높고 우아한 사랑의 기교를 배울 수 있겠습니까. 어느 종교의 경전에 이런 내용이 있을까요. 아마도 성경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수녀님은 결혼을 앞둔 여성들이 아가를 읽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십니다. 저는 생각이 약간 다릅니다. 사춘기 청소년들, 그리고 이들에게 성교육을 시켜야 할 부모님들과 선생님들(학교와 성당)에게 아가를 강추합니다.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 평화신문2020.07.21

베드로 대성전 건립 자금 뒷거래가 촉발한 종교 개혁의 바람[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38) 파울 투만의 ‘레오 10세 교황의 파문 교서를 불태우는 마르틴 루터’ 파울 투만, ‘레오 10세 교황의 파문 교서를 불태우는 마르틴 루터’, 1872년, 바르트부르크성 박물관, 독일 튀링겐. 율리오 2세 교황의 뒤를 이은 사람은 레오 10세(재위 1513~1521)였다. 메디치 가문 로렌조 마니피코의 셋째 아들 조반니가 제217대 교황이 된 것이다. 마니피코의 똑똑한 아들로 정평이 나 있던 조반니는 13살에 인노첸시오 8세 교황으로부터 부제급 추기경으로 선임되었으나, 부친이 사망한 이후 가문의 쇠퇴와 함께 로마를 떠나 유럽을 돌아다녔다. 힘든 시절을 견문을 넓히는 기회로 삼은 것이다. 1500년 5월 조반니는 로마로 돌아왔고, 알렉산데르 6세 교황은 그를 환대했다. 그러나 1503년 율리오 2세가 새 교황으로 즉위하면서 메디치가의 추기경들을 호의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1508년부터 재개한 ‘캉브레 동맹 전쟁’ 중 1511년 8월 교황은 돌연 병에 걸렸고, 그때 자신의 사후 콘클라베(교황 선거)가 어떻게 진행될지를 예측하게 되었다. 건강은 회복한 율리오 2세는 1511년 10월 북부 이탈리아 로마냐 지방 특사로 조반니 추기경을 임명했다. 조반니는 교황군을 이끌어 로마냐 지방을 평정하고, 피렌체에서 권력을 회복했다. 메디치가는 다시 피렌체에 입성했고, 조반니는 율리오 2세의 뒤를 이어 레오 10세 교황이 되었다.성 베드로 대성전 건축 사업과 비용 마련 고심 레오 10세는 율리오 2세가 시작한 많은 일을 그대로 떠안아야 했다. 캉브레 동맹을 종결하고, 제5차 라테란 공의회(1513~1517)를 열어 피사 공의회파 이단을 종식하며, 이제 막 시작한 성 베드로 대성전 공사를 진행해야 했다. 율리오 2세가 궁정에서 만났던 르네상스 예술가 세 명의 운명도 갈렸다. 라파엘로는 여전히 라파엘로의 방들을 그리고 있었고,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소성당의 천장화 ‘천지 창조’를 완성하고 델라 로베레 가문과 율리오 2세 교황의 영묘 건설 두 번째, 세 번째 계획서를 제출하고 있었다. 브라만테는 성 베드로 대성전 건축이라는 엄청난 일을 시작하고, 율리오 2세에 이어 이듬해(1514년)에 그도 사망했다. ‘대성전을 훼손한 사람들에게 내린 하늘의 징벌’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레오 10세는 성 베드로 대성전 건축을 이어갈 적임자를 찾고, 비용도 마련해야 했다. 사촌 율리오 추기경과 함께 추진하던 피렌체 성 로렌조 메디치가(家) 대성당의 정면 공사는 비용 문제로 일단 포기했다. 그리고 성 베드로 대성전 건축을 라파엘로에게 맡겼다. 미켈란젤로는 델라 로베레 가문과 합의를 못 보고 1516년 피렌체로 돌아갔다.레오 10세가 교황으로 있는 동안 로마는 여러 면에서 인문주의적 가치를 발휘했다. 학자, 예술가, 음악가와 시인들을 환영하고 그들에게 숙박을 제공해줌으로써 로마를 그리스도교의 중심지뿐 아니라, 유럽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미국인 철학자며 사학자인 윌 듀란트(Will Durant, 1885~1981)는 저서 「르네상스」에서 레오 10세 교황 재임 시 로마를 두고 “단지 문화의 양만 보더라도, 역사상 결코 이와 같은 시절은 없었다. 페리클레스 재위 시절 아테네도,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절의 로마도 결코 이렇지는 못했다”고 할 정도였다. 메디치가의 교황은 사회로부터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을 고루 살피며 혜택을 주었다. 노인과 환자들을 먼저 돌보고, 퇴역 군인과 순례자들을 대접하며, 사회 부적응자와 망명자들을 위한 시설을 만들었다. 빈민들과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무상 교육도 시행했다.대사 판매에 반발한 루터, 파문에도 굽히지 않아 하지만 그의 이런 모든 업적을 덮는 엄청난 사건이 그의 재임 기간에 일어났는데, 그것이 바로 ‘종교 개혁’이었다. 레오 10세는 캉브레 전쟁 종결을 위한 프랑스와의 전쟁과 로마에서 진행 중인 성 베드로 대성전 건설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독일 작센안할트주의 마그데부르크-할버쉬타트의 알브레히트 대주교와 계약을 맺었다. 마인츠대교구장직을 승계하도록 허락하는 조건으로, 1만 두카토(135억 원 상당)를 받기로 한 것이다. 알브레히트는 푸거 은행에서 돈을 대출받기로 했고, 교황은 그가 대출을 잘 받을 수 있도록 보편 교회가 주는 ‘대사(Indulgentia)’를 6년간 그의 관할 교구에 한해 대주교가 줄 수 있다는 교서를 내려줬다. 알브레히트는 돈을 대출받아 절반은 로마에 보내고, 절반은 앞서 대출받은 대금을 상환했다. 알브레히트는 도미니코회 요한 테첼(Johann Tetzel) 수사에게 자기 교구 내에서 대사에 관한 설교를 부탁했다. 아우구스티누스회 마르틴 루터(Martin Lutero) 신부는 테첼의 설교에 거세게 반발했다. ‘대사 판매’는 성경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루터는 ‘대사 판매’와 함께 그간 로마 교회에 품었던 의구심을 95개 항목으로 정리하여 독일어로 번역한 뒤, 유럽 전역에 돌렸다. 그의 주장은 2주 만에 독일 전역으로, 두 달 후에는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레오 10세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전통적으로 수도사들이 뭔가를 주장하면, 소속 수도회 측에서 소환 혹은 제명되기도 하고, 주장과 반론으로 서로 성장하기도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도미니코회와 아우구스티누스회 간, 수사들 간의 다툼으로 과소평가했다. 그 사이에 일부 신학생과 그간 교회에 불만을 품고 있던 사람들이 루터의 주장에 동조했고, 1517년 12월 루터는 자신이 강의하던 비텐베르크 대학교 ‘모든 성인 성당’ 정문에 논박문을 붙였다. 1518년 2월 교황은 아우구스티누스회 총대리에게 수사들의 입단속을 지시했고, 루터는 그해 5월 30일, 자신의 95개 반박문에 대한 설명을 레오 10세에게 제출했다. 1518년 10월 교황은 특사 가예타노(Thomas Cajetan) 추기경을 아우크스부르크로 보내는 등 여러 차례 루터에게 주장을 굽힐 것을 요구했고, 루터는 끝내 철회하지 않았다. 1520년 6월 15일 레오 10세는 교서 「주여 일어나소서(Exsurge Domine)」를 통해 루터의 주장에서 41가지 오류를 열거하며, 60일간 말미를 줄 테니 주장들을 철회하고, 급진적인 주장을 담은 그의 서적들을 모두 불태우라고 명했다. 그렇지 않으면 파문시키겠다고 했다. 루터가 파문 위협이 담긴 교서를 받아든 것은 그해 10월 10일이었다. 그로부터 유예 기간이 끝나는 12월 10일 루터는 비텐베르크성의 ‘엘스터 문’ 앞에서 교황 교서뿐 아니라, 스콜라 신학 서적과 교회법전을 모두 불 속에 던졌다. 독일 출신 삽화가이자 화가 소개하는 작품은 독일 출신의 삽화가며 화가, 파울 투만(Paul Thumann, 1834~1908)이 그린 ‘레오 10세 교황의 파문 교서를 불태우는 마르틴 루터’(1872)이다. 그림은 중세 튀링겐 지방 문화의 중심지며, 파문당한 루터가 작센의 선제후 프리드리히(Friedrich)의 보호 아래 숨어지내던 아이제나흐 바르트부르크(Wartburg)성에 있는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투만이 그린 ‘마르틴 루터의 생애’ 연작 5개 중 하나다. 투만은 마을 학교 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일찌감치 능력을 알아본 아버지 덕분에 1854~1856년, 베를린의 프로이센 예술 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이후 몇 년간 드레스덴에서 일하다가 라이프치히에서 2년을 보낸 후, 바이마르의 그랜드 듀칼 색슨 미술학교(Saxon-Grand Ducal Art School)에서 공부했다. 1872년 드레스덴에서 교사, 1875년 베를린 아트 아카데미에서 교수로 활동했다. 헝가리, 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 영국 등지를 여행했고, 1887~1891년에는 이탈리아에서 살기도 했다. 1892년부터 괴테, 테니슨, 샤미소, 하이네 등의 유명 저서들에 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삽화는 우아한 디자인과 분별력 있는 진지함, 인물의 품격을 잘 표현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1908년 베를린에서 사망했다.그림 속으로 1520년 12월 10일 오전 9시 루터는 동조하는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레오 10세 교황 교서와 로마 교회 관련 책들의 화형식을 거행하고 있다. 가톨릭교회와 결별을 선언하는 장면이다. 나뒹구는 책과 둘러선 사람들 표정과 제스처가 모두 극적이다. 타오르는 장작의 연기에 가려진 희미한 배경이 이 사건을 시작으로 불어닥칠 유럽의 암울한 미래를 예견하는 것 같다. 이 사건이 있은 지 한 달이 채 안 된 이듬해, 1521년 1월 3일 레오 10세는 교서 「로마 교황의 선언(Decet Romanum Pontificem)」을 통해 루터를 공식 파문했다.2017년 종교 개혁 500주년에 아우구스티누스수도회와 프란치스코 교황은 “종교 개혁은 기념이 아니라 현실”이라며, 루터가 던진 과제는 “개혁은 교회(와 그리스도인 각자)를 송두리째 쇄신하는 것이며, 그 근거는 언제나 성경”임을 강조했다. 파울 투만, ‘레오 10세 교황의 파문 교서를 불태우는 마르틴 루터’, 1872년, 독일 바르트부르크성 박물관 소장.김혜경 (세레나,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이탈리아 피렌체 거주) cpbc2021.03.31

사순절에 광야를 생각한다[사유하는 커피] (44) 겨울 있어 커피나무도 꽃을 피운다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장 3월이면 광야를 생각하게 된다. ‘재의 수요일’에서 시작해 40일간 이어지는 사순절이 예수께서 겪은 ‘광야의 유혹(Temptation of Christ)’을 떠오르게 하는 까닭이다. 사실 역사적 시기를 따진다면, 광야에서 40일간의 단식이 바로 부활절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사이에는 예수께서 가정생활(私生活)에서 떠나 공적으로 복음을 전한 3년간의 공생활(公生活)이 있다. 그럼에도 부활의 신비를 이야기할 때, ‘십자가 수난’만큼이나 ‘광야의 유혹’에 무게가 실리는 것은 그 속에 담긴 깊은 의미 때문이겠다. 광야는 라틴어로 데세르툼(deser tum)에서 유래했으며, 영어로는 사막을 뜻하는 ‘데저트(desert)’로 표기한다. 사전적으로 데세르툼은 ‘버려진 곳’ 또는 ‘지나갈 수 없는 곳’으로 풀이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광야의 개념과는 뉘앙스가 다르다. 바싹 마르고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사막에 비해, 광야는 감성적으로 보다 희망적인 곳으로 다가온다.모세가 이끈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는 이집트 추적대를 따돌릴 은신처가 됐고, 엘리야에게 광야는 위기에서 목숨을 구하는 반전의 장소가 돼 주었다. 요한 세례자와 예수, 사도 바오로의 진정한 삶 역시 광야에서 시작됐다. 그러므로 광야는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 거듭나는 공간이다. 한국인의 정서에도 광야는 훗날 초인이 백마를 타고 올, 그리움 같은 희망이다.구약성경에 히브리어로 적혀 있는 광야는 ‘미드바르’이다. ‘~로부터’라는 전치사 ‘미’와 ‘말하다’는 뜻을 지닌 ‘다바르’가 합쳐졌다. 히브리 사람들에게 광야는 단지 장소가 아니다. 말씀으로 자신들을 이끌어주는 거룩한 존재 자체, 곧 하느님을 의미한다. 광야의 이런 추상성은 현실에도 활용되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아이비리그로 손꼽히는 다트머스대학교의 라틴어 모토이다. 이 학교의 심벌에는 “복스 크라만티스 인 데세르토(VOX CLAMANTIS IN DESERTO)”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목소리”라는 뜻이다.‘광야’는 정서적으로 ‘황야’와는 다르다. 황야는 ‘버려두어 거친 들판’이라거나 ‘인적없이 삭막한 벌판’이라는 식으로 부정적이다. ‘황야의 무법자’라는 1964년 작 영화 제목만 봐도 그렇다. 미국 작가 잭 런던의 소설 ‘황야의 부르짖음’에서, 황야는 배신과 복수가 난무하는 세상을 은유한다. 황야나 사막이 광야가 되기 위해선 생텍쥐페리가 사유한 것처럼 어딘 가에 샘(희망)이 숨겨져 있어야 한다.우리에게 광야가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나약함을 드러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홀로 이겨낼 수 있는 수준의 고난과 역경만이 감도는 곳이라면 광야가 아니다. 스스로 골방으로 걸어 들어가지 않는 자로 하여금 홀연히 무릎 꿇고 기도를 드리게 만드는 공간이어야 한다. 광야는 초인의 영역이요, 인간에게는 신에게 의탁하는 회개의 시공간이다. 모든 생명이 사라진 듯 보였던 잿빛 동토에도 3월이면 어김없이 파릇파릇 생명이 움튼다. 우리의 의지로 겨울을 물리고 봄을 부를 수 없지만, 누구도 불안에 떨지 않는다. 신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계절처럼 광야의 고난 뒤에 부활의 영광이 따른다. 예수께 광야와 부활은 동치(同値)이다. 광야가 없으면 부활이 없고, 부활이 없으면 광야도 없다.광야는 모든 생명에게 같은 의미일 성싶다. 커피나무에게 겨울 같은 기온 하강이나 사막 같은 건조기가 없으며 꽃을 피우지 못한다. 냉혹한 환경이 커피나무로 하여금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도록 자극을 주어야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커피나무에게 이러한 고난이 극복 여부와 상관없이 완성을 이루기 위한 축복인 셈이다. 우리에게도 광야는 축복이 아닐 수 없다.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커피인문학」 저자) 평화신문2021.03.24

신천지 탈퇴 신자 인터뷰2014~2015년 신천지 다니다 탈퇴한 A씨, 내부 교육 자료 공개... 성경 공부 바로잡기 위해 CPBC 시청, 위장 단체 활동 주의 경고 A씨가 신천지센터 교육 때 필기했던 노트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신천지 내부 상황을 낱낱이 전하면서도 아직도 잘못된 믿음에 갇힌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신천지는 우리 사회에 ‘독가스’와 같은 존재입니다. 정신적인 공산주의 체제 아래에서 수많은 영혼을 잘못된 믿음으로 이끄는 마귀 집단입니다.”본지에 신천지 내부 교육 자료를 제공한 A(59)씨는 2014~2015년 동안 1년여 신천지에 다니다 겨우 탈퇴했다. 모태 개신교 신앙인이었던 그는 평소 밑반찬이며 몸에 좋은 음식을 때마다 가져다주던 인심 좋은 옆집 이웃의 “성경공부 한 번 해보지 않을래?”하는 권유에 약해졌던 믿음을 되찾고자 따라간 것이 화근이었다고 했다. 지금도 동네 곳곳에 신천지 신도들이 출몰하는 탓에 A씨와의 인터뷰도 마스크를 착용한 채 차 안에서 이뤄졌다.A씨는 추수꾼이었던 그 이웃에게 “사이비 종교이면 절대 다니지 않겠다”고 경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마음씨를 보고서 ‘일단 어떤 곳인지 알아보자’는 심정으로 복음방을 거쳐 신천지센터에 들어가게 됐다. A씨는 “신천지의 집단성과 폐쇄성은 무서울 정도”라며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그는 “처음 센터에 들어가 초등 과정에 입문했을 때에도 제 옆자리에서 저를 감시하던 바람잡이가 제 행동을 기록해 상부에 보고했다”며 “자신도 교육생인 것처럼 속인 바람잡이는 늘 내게 ‘오늘 강의 어때?’ ‘공부가 잘 맞아?’ 하고 떠보고는 대화 내용을 기록했다”고 전했다. 센터 내 신입 교육생(열매)과 바람잡이(잎사귀)의 역할이 센터에서 계속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그는 과정이 끝나면 이만희 교주가 백마를 탄 모습 등이 담긴 영상을 수시로 보여준다고도 했다.A씨는 “신천지는 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연락한다”며 “제가 일주일 내내 교육과 예배에 매달려 몸이 힘들어져 일주일 세 번만 출석하겠다고 했더니, 이후엔 쉬는 날까지 신도들이 찾아와 위장된 친절을 베풀며 끈을 놓지 않았다”고 전했다.그는 최근 언론을 통해서도 잘 알려진 독특한 바닥 예배 방식에 대해서도 자세히 전했다. “바닥에 노란 박스 테이프를 앞뒤 1m 정도 간격으로 붙여놓습니다. 신도들은 거기에 3명씩 흐트러짐 없이 앉아야 해요. 한 번은 흰 셔츠가 좀 누런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퇴장 조치를 당하거나 새 옷으로 갈아입은 뒤에 다시 입장할 수 있었죠. ‘아멘’ 소리가 작으면 혼나기도 했습니다.”A씨가 다닌 센터는 상가 건물 4~5개 층을 쓰면서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철저히 ‘위장’을 유지했다. 교육생이 아래층에 도착하면 담당자가 내려가 엘리베이터에 동승하는 식이었다. A씨는 “교육생이 몰리는 시간이면 엘리베이터 앞에 길게 줄을 서기도 했다”며 “지문과 ID카드로 입장하는 신천지 예배당 시스템도 언론에 알려진 그대로”라고 했다.A씨는 탈퇴 후 당한 괴롭힘도 폭로했다. 그는 “신천지가 탈퇴하는 신도들은 절대 찾아가지 않는다고 거짓말하는데, 신천지 교인 3~4명이 봉고차를 타고 지겹도록 찾아와 성전에 가서 이야기하자며 1년 동안 설득하는 등 위협을 가했다”며 “제가 ‘왜 예수님을 안 믿고, 늙은 교주를 믿느냐’고 하면 도리어 비웃으며 ‘벌 받는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고 전했다.A씨는 잘못된 성경 공부 내용을 바로잡기 위해 가톨릭평화방송TV 성경 강좌를 틈날 때마다 시청하고, 라디오도 청취하고 있다고 했다. 신천지 내부 자료를 본지에 전달한 것도 “천주교 신자들이 신천지 위험에 노출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며 “신천지 사람들이 집안 곳곳에 숨겨둔 자료를 압수해 가려는 것을 사수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A씨는 “코로나19 사태로 탈퇴 신도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지만, 골수 신도들의 결속은 이어질 것”이라며 “지금도 카페, 학원, 연구소 등 위장 단체의 활동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최근 폭로되고 있는 신천지 실체는 모두 사실이라고 보면 됩니다. 신천지는 수개월 성경 공부 끝에 결국 예수님이 아닌, 이만희를 찬양하는 모순된 구조를 갖고 있어요. 저는 탈퇴해서 올바른 믿음을 지키며 불쌍한 그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특별취재팀 cpbc2020.03.18

미국 바이든 당선인, 케네디 이어 두 번째 신자 대통령… “나는 실천하는 신앙인”제46대 대통령 당선자 바이든, 부통령 때부터 사회교리 통한 성장 강조... 인종주의 철폐·인도주의적 이민자 공약 표명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국을 방문한 뒤 로마로 돌아가는 마지막 날 조 바이든 당시 부통령이 환송하고 있다. 【CNS 자료 사진】 7일 미국 제46대 대통령에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가 당선된 뒤 미국 가톨릭교회는 “지도자들이 국민 통합의 정신으로 함께 연대해야 한다”고 축하와 함께 당부의 뜻을 전했다.미국 주교회의 의장 호세 고메즈(로스앤젤레스대교구) 대주교는 이날 오후 발표한 성명을 통해 “자유의 축복을 내려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미국 교회를 대표해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에게 축하를 전한다”며 “정치 지도자들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 대화와 타협에 전념해야 한다”고 밝혔다.조 바이든은 1960년 제35대 대통령이 된 존 F. 케네디에 이어 60년 만에 탄생한 두 번째 가톨릭 신자 대통령이 됐다. 카멀라 해리스는 사상 첫 흑인, 아시아계 여성 부통령이 됐다. 바이든은 2009~2017년 부통령 시절부터 “나는 실천하는 가톨릭 신자이며, 신앙은 내게 선물”이라며 “우리 모두의 첫 번째 의무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두 번째 의무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존엄할 권리를 지니며, 이는 우리 집안의 원칙으로 자리한다”고 밝힌 바 있다.바이든은 부통령 시절 대선 운동에 나설 당시에도 연설 때마다 성경 구절을 인용하기도 하고, 사회와 환경, 이민자 문제 등을 이야기할 때엔 자신이 “가톨릭 사회교리를 통해 성장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가 태어난 펜실베니아주와 오하이오주의 가톨릭 신자들과도 가까운 바이든은 2016년 힐러리 클린턴 대선 운동 당시 신자들을 결집하는 데에도 힘썼다. 바이든의 주변인들은 “그는 교리보다 신앙 자체에 초점을 둔다” “교리를 전하기보다 유권자들과 함께 기도한다”고 전한다. 바이든은 부통령 시절이던 2015년 미국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국 워싱턴 연방의회에서 합동연설을 한 자리에서 교황을 맞이했고, 이듬해인 2016년 바티칸을 찾아 교황을 알현하기도 했다.바이든 당선인은 이번 대선 공약으로 미국 사회 중추를 이루는 중산층 재건과 함께 이민자, 노동자들을 아우르는 사회보장제도 수립을 피력해왔다. 미국 시민들에게 공공의료보험의 선택권을 넓히고, 저소득 가정에 보험 혜택을 확대하는 등 오바마케어를 재구축하는 데 힘쓸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은 흑인과 이민자들을 위한 인도주의적인 정책에 관해서는 미국 가톨릭교회와 뜻을 같이하고 있지만, 여성 낙태에는 찬성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미국 가톨릭교회와 견해차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실제 미국 내 일부 주교들과 가톨릭 신심 단체들은 낙태 합법화를 지지하는 바이든 후보를 향해 낙선운동을 펼치는 등 반대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바이든 당선 이후 몇몇 교구의 주교들과 가톨릭 단체에 속한 수도자와 신자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회 분열적 정책들을 더 큰 우려로 보고, 소외된 이들과 공감할 지도자를 뽑았다”며 지지의 뜻을 보였다. 특히 미국 내 사제와 신자들은 바이든이 표명한 인종주의 철폐와 이민자들을 향한 인도주의적 공약을 잘 이행해 달라고 당부했다.바이든 당선인은 7일 연설을 통해 “성경은 우리에게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고 말한다. 이젠 무언가 일구고 수확해야 할 때이며, 씨를 뿌려야 할 때가 다가왔다”며 “지금은 미국을 치유할 때”라고 밝혔다.바이든 당선인은 “지금 우리는 함께 독수리 날개 위에 있다. 우리는 주님의 역사가 우리에게 행하도록 명한 일을 시작하자”며 성가를 인용하기도 했다. 아울러 그는 “우리는 인종, 민족, 종교, 정체성,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국가의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대화와 협력으로 하나 된 사회를 구축해 나가자고 역설했다.고메즈 대주교는 성명에서 “지금 이 순간 미국 역사 안에서 가톨릭 신자들은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친교와 상호 신뢰를 증진하며, 진정한 애국심과 새로운 정신을 일구는 특별한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메즈 대주교는 또 “법률과 공공정책에 관한 논쟁에서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존중하고, 서로 예의를 갖춰 대화해 나아갈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cpbc2020.11.11

서상범 주교, 4월 9일 군종교구장 착좌사목표어 ‘주님은 나의 힘, 나의 방패’와 주교 문장 확정 서상범 주교 임명자 제4대 군종교구장에 임명된 서상범 주교의 사목표어와 문장이 확정됐다. 사목표어는 시편 28장 7절에 나오는 “주님은 나의 힘, 나의 방패‘로 정했다. 서상범 주교 임명자는 “군대는 군사적인 기능이 있지만 우리는 결국 하느님을 힘 삼고 방패 삼아서 살 때 세속의 오류나 악의 세력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며 “이것이야말로 참다운 방어가 되고 힘이 될 수 있기에 사목표어로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문장은 신앙과 교회의 수호를 뜻하는 방패를 하늘, 땅, 바다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눴다. 상단 하늘은 공군, 중앙은 육군, 하단은 해군과 해병대를 상징한다. 방패 상단의 하늘은 청색으로 온 세계, 우주를 의미한다. 청색은 천상의 색이며 영원한 구원을 뜻한다. 그 안에 있는 12개의 별은 예수님과 함께한 12사도, 혹은 성경의 12지파를 말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며 복음을 선포한 12제자는 교회의 빛과 같은 존재다. 이들을 본받는 봉사와 선교의 사명을 강조했다. 방패 중앙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이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을 통해 구원의 삶과 새로운 희망을 갈구한다는 의미다. 평화를 상징하는 노란색, 예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는 흰색으로 구성된 십자가의 고결한 정신은 성체성사를 의미한다. 중앙 십자가 뒤의 반원은 군인의 철모를 형상화한 것이다. 철모의 배경색인 녹색은 ‘믿음’을 상징한다. 믿음을 통해 우리는 구원을 얻고 평화를 지킬 수 있다. 우리나라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애쓰는 군인의 삶은 때로는 힘들고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믿음이 있다면 큰 힘이 되고 정신적인 의자가 될 것이다. 방패 하단 하늘색 배경의 반원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두 부분으로 나뉜다. 왼쪽의 M은 동정녀 마리아의 믿음을 상징한다. 성모 마리아는 한국의 수호성인이자 예수님의 보호자다.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고생하는 군인들을 보호하고 신앙으로 굳건히 지키고 싶어 하는 메시지를 담았다. 오른쪽에 위치한 세 개의 물결은 세례성사를 의미한다. 세례성사는 원죄에서 벗어나 새로 태어나 예수님과 한몸이 될 수 있게 하는 가톨릭교회의 입교성사다. 20대 세례 성사를 받은 남성 중 90% 정도가 군 복무 중에 받았다. 군종교구의 특성상 세례성사를 통한 선교와 복음 전파를 강조한 것이다. 서상범 주교는 문장에 대해 “맨 위 하늘은 공군, 중앙 철모는 육군, 하단 바다는 해군과 해병대를 상징한다”며 “군의 화합과 함께 늘 주님 안에서 지켜달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서 주교는 4일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과 전임 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을 예방하고, 9일에는 주한 교황청대사관을 방문해 교황과 사도좌에 대한 충성 서약을 했다.서상범 주교의 서품식과 교구장 착좌식은 4월 9일 오후 2시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열릴 예정이다.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cpbc2021.02.17

성 요셉, 순명과 믿음의 삶 실천한 ‘성가정의 보호자’성 요셉의 해에 만난 요셉 성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보편 교회의 수호자 성 요셉’ 선포 150주년을 기념해 2020년 12월 8일부터 2021년 12월 8일까지 ‘성 요셉의 해’로 선포했다. 그림은 보편 교회의 수호자 요셉 성인화. 프란치스코 교황은 ‘보편 교회의 수호자 성 요셉’ 선포 150주년을 기념해 교황 교서 「아버지의 마음으로」를 반포했다. 아울러 교황은 교서를 반포하면서 2020년 12월 8일부터 2021년 12월 8일까지 1년을 요셉 성인을 기리는 ‘성 요셉의 해’로 선포했다. 교황청 내사원은 성 요셉의 해 동안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3월 19일)과 ‘노동자 성 요셉 기념일’(5월 1일) 등 요셉 성인을 기억하는 날에 성인의 전구를 청하며 기도하는 모든 이에게 전대사의 은총을 수여한다고 공포했다. ‘성 요셉의 해’에 맞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이신 성 요셉 대축일을 기념해 요셉 성인에 대해 알아본다. 복음서가 말하는 요셉 성인요셉 성인의 행적은 마태오와 루카 복음서 1─2장에만 나온다. 요셉 성인은 성령으로 인해 처녀의 몸으로 아들을 잉태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임으로써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에 동참해 구세주의 보호자가 된다. 복음서는 요셉 성인을 ‘의로운 사람’(마태 1,19),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는 경건한 사람’(마태 1,20─2,15 참조), 또 ‘신심 깊은 사람’(루카 2,22-24 참조)이라고 증언한다. 요셉 성인은 의로운 사람이다. 그는 마리아의 임신 소식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남몰래 파혼하기로 작정할 만큼 신중하고 과묵한 사람이다. 그는 또 겸손한 하느님의 종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마태 1,20) 하는 천사의 말을 들은 후 의심을 풀고 마리아와 혼인하고 예수님의 아버지가 된다.요셉 성인은 정결한 남편이다. 요셉은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는 천사의 말을 듣고 “아내가 아들을 낳을 때까지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다.”(마태 1,23-25) 이로써 요셉은 마리아와 함께 구세주의 강생 신비에 동참한 최초의 인물이 된다.요셉 성인은 성실한 아버지이다. 그는 법적인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예수’라는 이름을 지어주고(마태 1,21-25), 할례를 시키고(루카 2,21), 성전에 봉헌(루카 2,22)했다. 그리고 아내와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집트 피난(마태 2,13-15)을 마다치 않았고, 나자렛으로 돌아와 성가정을 보살피며 가장으로서의 사명을 수행한다.(루카 2,51-52)요셉 성인은 다윗 가문(마태 1,1; 루카 1,27) 사람으로 목수(마태 13,55) 일을 하였다. 고향은 베들레헴(루카 2,4 참조)이었으나 나자렛에서 생활(마태 2,13-15)했다. 신약 외경이 말하는 요셉 성인가톨릭교회는 성경에 포함되지 않은 문학 작품을 헬라어로 ‘아포크리파’(αποκρυφα), 우리말로 ‘외경’(外經)이라고 한다. ‘감추어진 것’ ‘숨겨진 것’이란 뜻의 아포크리파는 성경 경전과 비슷한 면을 지니면서도 영지주의 등 교회와는 다른 가르침을 전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신약 외경 가운데 요셉 성인에 관해 서술하고 있는 작품은 2세기 초대 교회 안에 널리 퍼져있던 「야고보 원복음」과 「토마 유년기 복음」이다. 이 외경들이 서술하고 있는 요셉 성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사제 즈카르야가 동정녀 마리아의 배필로 요셉을 정해 주었다. 자식 딸린 늙은 홀아비인 요셉이 동정녀 마리아의 약혼자가 된 것은 선발 과정 중 그의 지팡이에서 비둘기가 튀어나와 그의 머리에 앉는 이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동정녀 마리아는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했다. 요셉은 마리아가 임신 6개월이 지났을 때 다른 지방에서 건축일을 하다 돌아와 이 사실을 알게 된다. 의로운 요셉은 탄식하면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했다. 그날 밤 요셉의 꿈에 천사가 나타나 처녀인 마리아의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을 알려준다. 이후 요셉은 하느님을 찬미하고, 주님의 천사가 명한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 동정녀를 보호했다.요셉은 하느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양육했다. 요셉은 예수님을 교육하는 데 헌신했고, 예수님도 부모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성미술이 표현한 요셉 성인교회의 성미술 작가들은 요셉 성인을 묘사할 때 검은 옷 또는 주홍색 옷을 입은 모습을 전통적으로 그려왔다. 검은색은 모든 색을 품고 있다. 한평생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의 신비를 품고 살았던 요셉 성인에게 딱 어울리는 색이다.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검은 옷을 입고 있듯 의로운 사람인 요셉 성인은 검은 옷을 입고 세상의 것을 모두 버리고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협력한 것이다. 주홍색은 ‘순교’를 상징한다. 성모 마리아의 푸른색 망토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올 새로운 ‘희망’을 예고해 준다면, 요셉 성인의 주홍색 겉옷은 성가정의 보호자인 요셉의 충실한 순명을 드러낸다.요셉 성인에 대한 신심성모 마리아는 초대 교회 신자들로부터 특별한 공경을 받았다. 반면, 요셉 성인은 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님의 양부, 곧 법적 아버지라는 이유로 4세기에 가서야 동방 교회 신자들의 공경 대상이 된다. 서방 교회에서는 이보다 훨씬 더 늦은 15세기에 가서야 성 요셉 축일을 전례력에 도입해 요셉 성인을 공경하기 시작했다.요셉 성인은 1870년에 복자 비오 9세 교황에 의해 ‘보편 교회 수호자’로, 이후 레오 13세와 비오 12세 등 역대 교황들에 의해 ‘아기 예수의 수호자’ ‘마리아의 수호자’ ‘성가정, 성직자, 수도자, 가난한 이, 노동자, 임종자, 동정녀, 환자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됐다.성 요한 23세 교황은 요셉 성인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보호자로 선언했고,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89년 사도적 권고 「구세주의 보호자」를 통해 “요셉 성인은 마리아와 동일한 사랑의 보호자였으며 인간의 노동을 속량의 신비에 더욱 근접시켰다”고 천명했다.요셉 성인과 프란치스코 교황요셉 성인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랑과 공경은 곳곳에 드러난다. 우선 교황 문장이 그 증거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문장 방패 중앙에는 예수회를 상징하는 ‘IHS’라는 라틴말이 크게 새겨져 있다. IHS는 ‘인류의 구원자 예수’(Iesus Hominum Salvator)를 뜻하는 라틴어의 머리글자다. 이 문장을 중심으로 왼편의 별은 ‘성모 마리아’를, 오른편 포도 모양의 ‘나르드 꽃’은 요셉 성인을 나타낸다. 교황은 침대 머리맡에 ‘잠자는 요셉 상’을 놓아두고, 걱정거리가 생기면 그것을 쪽지에 적어 요셉 상 밑에 밀어 넣고 꿀잠을 잔다고 2016년 필리핀 사목 방문 중 털어놓은 바 있다.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3월 19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에 제266대 교황으로 즉위했다. 교황은 즉위 미사 강론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이신 주님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뿐 아니라 모든 인류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소명, 곧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을 보호하는 ‘수호자’로서의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모든 수호자로서의 소명을 성모 마리아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가정을 침묵과 순명으로 보호한 요셉 성인의 삶에서 찾아 수행할 것임을 웅변했다.요셉 성인을 공경해야 하는 이유아빌라의 대 데레사 성녀는 “성부 성자 성령께서 삼위일체를 이루듯 성자와 성모 마리아, 성 요셉께서는 나자렛 성가정 안에서 이타적인 삼위일체의 삶을 살았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삼위일체적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요셉 성인을 공경하고 나자렛 성가정을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요셉 성인의 삶은 ‘하느님께서 더하신다’ ‘하느님을 돕다’는 그의 이름의 뜻대로 돕는 이의 삶이었다.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 지켜주고, 예수에게 충실한 아버지가 되어준 것은 자기 희생과 봉헌이 없이는 불가능한 삶이었다.이처럼 요셉 성인은 하느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모든 일에 자신을 온전히 열어 놓은 사람이다. 그의 순명으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이 시대에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1.03.10
수원교구 꾸르실료 50주년 기념 울뜨레야수원교구 꾸르실료 50주년 기념 43차 울뜨레야 미사가 교구장 이용훈 주교 주례로 봉헌되고 있다.수원교구 꾸르실료(영성지도 전삼용 신부, 주간 김태영) 50주년 기념 울뜨레야가 10일 ‘내가 세상을 이겼다’를 주제로 죽산성지 내 교구 영성관에서 열렸다. 이날 울뜨레야는 개회사, 축사, 50주년 실천사업 경과보고, 전상영 신부의 롤료, 미사 순으로 진행됐다. 김태영(스테파노) 꾸르실료 주간은 경과보고에서 “50주년 실천사업으로 50년사 발간, 고리기도, 성경 필사, 성지 순례와 희생ㆍ나눔 봉사로 1억 7000여만 원을 모금해 장마와 태풍으로 피해를 본 광주대교구, 청주교구, 미리내ㆍ어농성지 수해복구 기금 등으로 기부했다”며 “모든 꾸르실리스따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전삼용 신부는 롤료(신앙을 고백하거나 체험을 발표하는 행사)에서 “꾸르실리스따가 됐다면 그 행복감을 다른 사람에게도 주고 싶은 욕구가 생겨야 한다”며 “꾸르실리스따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참행복의 삶을 실천하자”고 당부했다.미사를 주례한 교구장 이용훈 주교는 강론을 통해 “꾸르실료가 교구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며 “앞으로도 모든 꾸르실리스따들이 교구 발전과 선교 사업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당부했다. 1970년 시작돼 올해 50주년을 맞은 수원교구 꾸르실료는 현재까지 2만여 명의 꾸르실리스따를 배출했다.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이상도2020.10.16

성 요사팟 전기가 석가모니 생애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까닭은[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73. 요사팟이란 세례명 롱고바르디의 「성요사팟 시말술략」의 표지와 첫 면 사진. 싯다르타를 모델로 한 허구의 성인전주문모 신부는 1799년 6월 김건순에게 세례를 주었다. 그런데 김건순은 두 사람이 처음 회동한 1797년 당시 신부가 자신에게 요사팟(Josaphat, 若撒法)이라는 사호(邪號)를 주었다고 진술했다. 세례 이전에 세례명부터 먼저 받았다는 얘긴데, 이는 애초부터 주문모 신부가 김건순에게 요사팟 성인의 삶을 겹쳐보고 있었다는 의미로 읽힌다.「사학징의」 중 조혜의(趙惠義)의 공초를 보면, “이른바 별호란 것은 일찍이 사학을 하다가 죽은 사람은 모두 이름이 있는데, 사학을 하는 자가 그 일이 자기에게 비슷하게 되기를 사모하여 그 이름을 취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세례명은 본인 또는 이름을 지어주는 사람이 그에게 바라는 바를 투사하여 지어준다는 뜻이다. 초기 신자 그룹 중에 요사팟이란 세례명은 김건순만 받았다. 요사팟 성인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고, 신부는 김건순에게 어떤 역할을 기대해서 요사팟이란 세례명을 지어주었을까? 「성년광익」 11월 27일은 요사팟 성인의 날로 지정되어있다. 그의 이름 아래 ‘국왕고수(國王苦修)’라고 써놓았다. 요사팟 성인의 신분이 고귀한 국왕이었고, 그럼에도 고통스러운 수행을 통해 성인품에 올랐다는 뜻이다. 요컨대 요사팟이란 세례명은 고귀한 신분으로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고통을 견뎌 어렵게 신앙을 쟁취한다는 의미를 띤다. 그런데 막상 성 요사팟의 전기를 읽어보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우선 그는 유럽의 성인이 아니다. 그는 소서양(小西洋)으로 불리는 인디아(應帝亞)에서 작은 나라의 왕자로 태어났다. 당시 인도에서는 천주교 신앙이 일어나, 집을 버리고 들판에서 수행하며 득도한 사람이 많았다. 불교를 독실히 믿어 천주교도를 박해하던 국왕 아우니르(Auennir, 亞物尼耳)는 귀한 아들이 태어나자 그의 운명을 점쳤다. 태자가 천주교를 믿어 봉행할 것이라는 점괘 풀이가 나오자, 왕은 왕자가 외부와 접촉하거나 늙음과 질병과 죽음 같은 추한 것을 볼 수 없도록 차단된 공간에 격리한 채로 길렀다. 하지만 왕자는 우연한 계기에 나환자와 맹인, 노인과 시체 등 인생의 생로병사의 비참함을 목격하게 되고, 천주의 섭리로 은수자 발람(巴爾郞)을 만나 그의 인도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이후 그는 왕의 지위를 버리고 수행자의 삶을 통해 천주교의 고귀한 성인으로 추앙받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그런데 그 사연을 읽어가다 보면 매 에피소드마다 자꾸 어떤 기시감(旣視感)을 느끼게 된다. 성 요사팟의 전기가 고타마 싯다르타, 즉 석가모니의 생애와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성 요사팟은 실제로 존재한 천주교의 성인이 아니다. 불경에 나오는 석가모니의 일생 고사에 천주교 성인 서사의 외피를 입힌 허구적 성인전이다. 가톨릭의 성인이 허구적 인물, 그것도 석가모니라는 것은 의아하다 못해 황당한 느낌마저 든다.「성 요사팟 시말」 속 불경 이야기 대체 어떻게 해서 이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된 걸까. 선교사 롱고바르디(Nicolas Longobardi, 龍華民, 1565~1655)가 「성 요사팟 시말(聖若撒法始末)」이란 제목의 번역본을 한문으로 간행한 것은 1602년의 일이다. 이 책의 원본은 「발람과 요사팟(Barlaam and Josaphat)」이란 제목으로 7세기에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에 의해 그리스어로 기록된 책자다. 중국과 페르시아의 고대 문헌에는 2~3세기경에 벌써 요사팟의 일대기가 소개되고 있는데, 이는 불교가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퍼져나갈 때 천주교 문헌과 습합되면서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정설이다. 이후 이 책은 라틴어와 프랑스어, 스페인어, 영어 등으로 번역되면서 살이 붙고 삽화까지 들어가 요사팟은 천주교의 은수자 성인으로 굳건한 위상을 지니게 되었다.이 책의 역자 롱고바르디는 마태오 리치의 뒤를 이은 인물로, 중국에서의 포교 당시 불교도들이 천주교가 몇 권의 교리문답서에 의존하여 포교하는 데 대해, 거칠고 비루한 낮은 수준의 종교라고 비하하는 것을 보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이 책을 번역했다. 「성 요사팟 시말」은 동양에 최초로 소개된 천주교 성인 전기였고, 이에 앞서 1591년에 일본어로도 번역되어 일본 천주교의 전파에도 큰 영향을 끼친 책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이 실제로는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의 일생 행적을 천주교 성인 전기로 바꾼 이야기인 것이 밝혀진 것은 서구 학계에서도 19세기 이후의 일이다. 번역자인 롱고바르디 또한 이 사실을 몰랐던 셈이다. 이에 관해서는 오순방 교수가 쓴 ‘명말 천주교와 불교의 종교 분쟁과 최초의 서교(西敎) 소설 중역본 「성 요세파전기」’란 논문에 자세한 내용이 있다.초기 예수회 선교사들은 교리교육에서 유학이 아닌 불교를 주 교화 대상으로 삼았다. 1581년 이탈리아 선교사 루제리(Michele Ruggieri, 羅明堅, 1543~1607)가 최초로 펴낸 교리서 「신편천주실록(新編天主實錄)」에서 서사(西士)가 자신을 ‘승(僧)’으로 지칭하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복장도 초기에는 승복을 입었다. 그러다가 마태오 리치 이후 보유론적 시각으로 바꾸면서 복장도 유복(儒服)으로 바꾸고, 용어도 유학의 그것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롱고바르디가 활동한 광동 지역은 불교의 위세가 강했으므로, 불교의 논법으로 불교를 설복한다는 선교 전략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성 요사팟 시말」 속에는 은수자 발람이 요사팟을 일깨우려고 전한 여섯 가지 비유가 나온다. 그중 하나만 소개한다. 세상 사람들은 육신의 쾌락을 추구한다. 이것들은 모두 헛된 것인데도 사람들은 온통 미혹에 사로잡혀 깨닫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며 달려들자 이를 피하려고 구덩이 속으로 뛰어내렸다. 떨어지던 도중 작은 나무에 걸려 간신히 추락을 면하고 매달렸다. 그러자 쥐 두 마리가 나타나 매달린 나무의 뿌리를 갉아 먹어 곧 끊어질 지경이었다. 아래로 동굴의 바닥을 보니 독사 네 마리가 입에 불을 뿜으며 사람을 잡아먹으려고 입을 딱 벌리고 있었다. 실로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그런데 고개를 들어 나뭇가지를 보니 꿀이 똑똑 떨어지는지라, 마침내 위에서 호랑이가 으르렁거리고, 아래에는 뱀이 아가리를 딱 벌리고 있으며, 매달린 나무뿌리는 금세 끊어질 지경인 것도 까맣게 잊고, 그 단 꿀을 받아먹더라는 이야기다. 호랑이는 죽음, 사람이 뛰어든 굴은 세상을 상징한다. 쥐가 갉아 먹는 나무는 인간의 수명을 뜻하니 시각에 따라 줄어들어 마침내는 끊어지고 만다. 네 마리의 독사는 사행(四行)이고, 꿀은 세상의 헛된 쾌락이다. 그리고 나뭇가지에 매달린 사람은 미혹에 빠진 인간을 나타낸다.이것은 불경 「백유경(百喩經)」에 실린 잘 알려진 유명한 비유이다. 발람과 요사팟은 이 비유를 두고 긴 대화를 이어가다가, 신망애(信望愛) 삼덕으로 벗을 삼아 세상을 성실히 살아야만 죽을 때 천주의 대전에서 자신의 죄악을 용서받을 수 있음을 말하는 가르침으로 마무리 지었다. 불경의 비유로 천주교의 가르침을 제시하는 방식을 써서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방식을 썼던 셈이다.「성년광익」 속 요사팟 전기「성년광익」의 11월 27일 자에 수록된 「성 요사팟 전기」는 롱고바르디의 「성 요사팟 시말」의 긴 서사를 간략하게 압축한 내용이다. 원전에 장황하게 소개된 불경의 비유는 대부분 생략되고, 생애 사실을 중심으로 간추렸다. 서두에는 「경언(警言)」이라 하여 전편의 주제문에 해당하는 성경 한 구절을 수록했다. 「루카 복음」 16장 9절에서,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불의한 마몬으로 친구들을 만들어, 그것이 없어질 때 그들이 여러분을 영원한 초막에 맞아들이도록 하시오”라는 구절을 제시했다.뒤편의 「의행지덕(宜行之德)」은 요사팟 성인의 삶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을 ‘경세(輕世)’, 즉 세속을 가벼이 보라는 가르침으로 꼽았고, 마땅히 힘써야 할 「당무지구(當務之求)」에는 세상에 미혹된 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내세웠다. 이 모든 내용이 귀한 신분의 후예로 기득권을 모두 내려놓고 세속적 가치를 멀리하여 천주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신앙의 삶이란 주제와 연결되어 있다.앞서 보았듯 김건순은 노론 최고의 명문인 김상헌 집안의 제사를 받드는 봉사손(奉祀孫)으로, 부와 명예가 드높았고, 학문과 문장으로도 안연(淵)의 환생이란 말을 들을 만큼 대단한 위치에 있었다. 18세 때 양부(養父)의 상을 당했을 때, 상주였던 그는 우리나라의 상복 제도가 송나라 때 제도를 본떠 옛법을 잃었다며 이를 고쳐 바로 잡아 상을 치렀다. 그가 입은 낯선 상복의 모양새를 본 사람들이 김건순을 힐난하며 소동을 일으키자, 김건순은 조목조목 논거를 들어 그들의 주장에 반박하는 글을 지었는데, 근거가 명확하고 문장이 유려했다. 당대의 천재로 일컬어졌던 이가환이 18세 소년이 쓴 글을 읽어보고는 내가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겠다고 감탄했다는 일화가 「백서」에 실려있다. 그의 총명이 어떠했는지 실감 나게 보여주는 예화다. 세속적 출세가 보장되어 있던 그는 어느 순간 둔갑술과 육임의 술법을 익히며, 강이천 등과 결탁하여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위험한 모험을 꿈꾸었다. 동료였던 강이천은 그의 반짝반짝 빛나는 예지를 기려 그에게 가귤(嘉橘)이란 별호를 지어주기까지 했다. 그런 그가 주문모 신부를 만나 두 차례 토론하고 나서는 전향을 선언하고 천주교로 개종하는 결단을 내렸다. 김건순은 남대문 인근에 머물고 있던 남곽도인 주문모를 서방성인(西方聖人) 또는 서방미인(西方美人)이라 부르며 그의 말에 따랐다. 주문모 신부는 김건순과 황사영 두 사람을 천주교 차세대 지도자로 낙점했던 것 같다. 두 사람이 1801년 사형을 당할 당시, 김건순이 26세, 황사영은 27세였다. 두 사람 모두 명문가의 봉사손이었고, 학식이 높고 문장 또한 대단했다. 신부는 김건순에게 그 학문과 문장으로 정약종을 도와 모든 천주교 교리 지식을 종합해 한 질의 총서로 묶는 「성교전서」 편찬의 소임을 맡겼다. 신부가 그의 두 어깨에 어떤 기대를 걸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cpbc2021.10.27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 모두 신에게서 왔다[사유하는 커피](45)인간의 본성과 커피의 본성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장 부활한 예수님께서 본성(nature)의 의미를 가슴에 새기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신다. 1000년이 지나도록 인간의 정신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이라면 마땅히 본성과 관련이 있다. 본성은 사물이 처음부터 갖는 보편적이면서도 고유한 특성이다. 인간에게 본성은 그것을 빼면 인간이라 할 수 없는 ‘무엇’이다. 후천적으로 획득하는 게 아니라 타고나는 것으로 곧 천성(天性)이다. 플라톤은 인간의 본성은 영혼(soul)에 반영된다고 했다. 영혼 안에는 욕구와 격정, 이성이라는 속성(attribute)이 들어 있는데, 그는 이성이 격정과 욕구를 다스리기 어려움을 우려했다. 진실은 감각에 가릴 수 있기 때문에 사유를 통해서만 이데아(본질)를 만날 수 있다고 봤다. 인간은 본래 이데아에서 왔으므로 본성을 기억해낼 수 있다는 게 플라톤의 강변이다. 이처럼 인간의 본성을 선한 이데아에 비유한 포인트는 맹자의 성선설(性善說)과 통하는 측면이 있다.아리스토텔레스가 봤을 때, 모든 인간은 선천적으로 지식을 갈망한다. 그는 ‘추론적 사고능력과 지성’이 인간을 동물과 다르게 만드는 본성이라고 설파했다. 과연 학문을 닦아 지성을 키우면 진실을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본성에 관한 물음에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을 합리적 존재로 보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관점은 예수의 시대를 거치면서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받았다. 이성과 지성만으로는 인간의 원죄에 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의문에 빠지면서, 신앙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4세기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죄가 있는 존재로서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 구원받아야만 본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일갈했다. 그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대속(代贖)을 통해 인간성을 회복시켜 준 역사적 사실이고, 부활과 승천은 ‘신의 본성’을 드러낸 섭리의 실현이다. 로마제국 몰락 시기인 5~6세기에는 플라톤을 계승한 그리스계 철학자들이 신앙을 이성과 동등한 수준에서 상호 보완하는 관계로 보고 신플라톤학파를 형성했다. 이에 따라 인간의 본성을 성경에서 찾고자 하는 지식인이 늘어났다. 13세기 토마스 아퀴나스 시대에서 신앙은 이성을 한 단계 고양시켜 주는 속성으로서 앞서 갔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증을 차용해 신의 존재를 증명하면서, 마침내 “만물은 본성적으로 하느님을 추구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신의 속성’이 스며들어 있다는 깨우침이었다. “신으로서의 예수, 인간으로서의 예수’라는 담론은 이 연장선에 있다. 중세를 마감할 때쯤 교회보다 국가의 권력이 강화되자 본성을 탐구하는 도구로서 이성이 신앙을 누르고 부각됐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16세기 ‘본유관념(idea innate)’을 들고 나와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신의 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넣어준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고백했다. 그의 이러한 직관은 과학혁명과 인지혁명 시대를 거쳐 21세기까지도 진리의 길을 밝혀주고 있다. 이 정신을 잇는 촘스키는 ‘언어능력(linguistic competence)’을 통해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주어지는 ‘무엇’이 있음을 수학적으로 풀어냈다. 만들어지지 않고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은 모두 신에게서 왔다. 아이들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언어를 깨우치고 무한하게 문장을 생성할 줄 아는 것은 신의 본성을 이루는 한 속성이 부여된 덕분일 수 있다. 커피의 본성은 무엇일까? 망치의 본성이 못을 박는 데 있는 것처럼 커피도 쓰임에서 찾을 수 있겠다. 커피는 우리를 사유로 이끌면서 묵상을 선물한다. 어쩌면 커피는 본디 인류를 절대자에게 안내하기 위해 내려진 것인지도 모른다.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커피인문학」 저자) 평화신문2021.03.31

이슬람 수피교 수행과 의식에 커피는 필수[사유하는 커피](23)신을 만나러 가는 길 위의 커피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장 신을 만날 수 있을까? 있다면 적어도 두 가지가 있을 성싶다. 하나는 아폴론적이고, 다른 하나는 디오니소스적인 길이겠다. 두 길은 각각 성경을 이성적으로 탐구하며 진리를 더듬어간 교부들의 길과 직관이나 황홀경을 통해 접신을 시도했던 신비주의자들의 순례길이기도 했다.커피가 13세기에 거대한 그룹을 형성한 수피교의 신자들에게 신과 합일로 나아가는 길에 요긴한 음료가 돼 준 것은 운명적인 사건이었다. 이슬람 수피교도들은 불교로 치면 참선으로 해탈을 이루려는 선승이고, 힌두교에서는 고행을 통해 시바신을 만나길 소망하는 요가파 성직자를 닮았다. 영지주의 영향을 받은 측면도 있다. 또 금욕주의를 실천했다는 점에서는 700여 년을 앞서 산 성 베네딕도회 수도사들의 모습이 비치기도 한다. 수피라고 불린 이유에 대해서는 ‘지혜’라는 뜻의 그리스어 소피아(Sophia)에서 비롯됐다는 설, ‘순수’를 의미하는 아랍아 ‘사파(Safa)’에서 유래했다는 설, 마호메트가 세운 메디나의 성원(Mosque)에서 맨 앞줄을 뜻하는 ‘수파(Suffa)’에서 왔다는 등 여러 견해가 있다. 수피들은 주로 하얀색 양털 옷인 ‘수프(Suf)’를 입는데,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될 때 입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커피는 이들의 수행을 도왔다. 식욕을 떨어뜨리는 쓴맛과 텁텁함이 금욕주의 실천을 위해 음식을 멀리하려는 수피들에게는 제격이었다. 그들이 조상으로 여기는 아브라함이 ‘신의 친구’라는 반열에 오를 수 있던 것이 잠을 자지 않고 기도했기 때문이라고 믿었던 점도 커피 전파에 기여했다. 밤새 기도하려는 수피들에게 각성효과로 졸음을 쫓아주는 커피는 실로 ‘신이 내린 음료’였다. 여기에 커피를 마시면 지옥 불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소문도 고단한 순례의 길에 커피를 곁에 둘 중요한 이유가 됐다. 결국, 수피들의 의식에 커피가 포함됐다. 이들은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수피댄스를 추며 황홀경에 빠지고 이를 통해 신을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수피들은 춤을 추기 전에 빙 둘러앉아 빨간색 잔에 커피를 따라 돌려 마신다. 빨간색 커피잔은 ‘신과의 합일에 다다르는 관문’을 의미한다. 수피교도들이 신을 만나기 위해 디오니소스적 행동을 보인 것은 사실 불의에 대한 몸부림이었다. 무함마드 사후 물질을 추구하는 한편 구약성경과 꾸란에 대해 극단적 이론화로 치닫는 이슬람에 대한 정화운동의 일환이었다. 이들은 신에 대한 사랑을 통해 신의 뜻을 직접 구하고자 하는 체험 신행을 선택했다. 여기에는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초자연적 존재인 신을 만나긴 힘들다는 인식이 깔렸다. 신이란, 인간이 찾아 나선다고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다. 인간은 사랑을 실천하면 신의 선택 또는 초대를 받아야 한다. 수피교는 이슬람을 전 세계에 전파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커피로 전염병을 고치며 수많은 사람을 구한 예멘의 오마르, 커피 씨앗을 몸속에 숨겨 인도로 건너간 바바부단, 아덴의 정신적 지주 게마레딘 등 이슬람을 오지의 마을까지 전하는데 기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수피교 수행자들이었다. 인간이 죽어야만 영혼이 일어나 신을 만나러 떠날 수 있는 것일까? 이를 인정하기 싫었던 수피교도들은 뇌 속까지 들어가 정신에 작용하는 카페인에 기대를 걸었던 것 같다. 뱅뱅 돌기까지 하면서 뇌를 혼돈에 빠뜨려 몽환적 상태가 돼야 그들은 신을 만났다. 이를 위해 마약까지 먹는 그룹도 있다. 그런 상태에서 신을 만났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실제 신을 만났느냐고 물어보는 것은 더 어리석다. 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만남을 시도하는 것이 무리한 의식과 소음을 만든다.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평화신문2020.10.20

“손해 좀 보지 뭐, 아이들을 위한 거니까”[미카엘의 순례일기] (20)학생들을 위한 특별한 순례(상) 주일학교 학생들이 신발을 벗어 한곳에 모아 두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광야를 걷고 있다. 몇 년 전, 모 신부님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주일학교 학생들의 순례를 준비하고 있으니 와서 상담해달라는 특별한 내용이었습니다. 아이들의 성지 순례라니, 대체 얼마나 부자 동네에 있는 본당인지 민망한 궁금증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성지 순례는 어른들도 선뜻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며칠 뒤 찾아간 그곳은 저의 궁금증이 무색하게도 지방 도시의 변두리 공업 단지 한복판에 자리한 작고 가난한 본당이었습니다. 성당 주위에서는 낡고 시끄러운 기계 소음이 멈추지 않았고, 공장 굴뚝에서 피어나오는 연기가 하늘에 가득했습니다. 외벽에 바른 흰색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진 성당 건물은 마찬가지로 몹시 낡은 다른 건물들 사이에 비좁게 끼어있었습니다.사제관에 들어선 저는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으레 사제관이라 하면 두꺼운 신학 서적들과 장서들로 잘 꾸며진 따뜻한 공간이어야 할 텐데, 고작 책 몇 권과 십자가 한 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데다 난방이 되지 않아 매우 춥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의 얼굴을 하신 신부님께서는 성당만큼이나 낡은 소파의 한쪽 자리를 권하셨습니다.신부님께서는 믹스 커피를 타 주시면서 도시의 가난한 지역 본당에 부임한 뒤 이러한 순례를 준비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해주셨습니다. 다른 많은 성당처럼 무너져 가는 주일학교를 위해 여러 생각을 하신 끝에, 1년 전에 순례 계획을 발표하시고 신자들의 자발적인 모금을 요청하셨답니다. 이 지원금은 사정이 넉넉한 신자들이 큰돈을 내주시기보다는 아이들의 신앙을 위한 마음을 담아 조금씩 모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덧붙이셨지요. 신자들은 한마음으로 지원금을 모으기 시작했고, 노인대학 어르신들께서도 공장 주변의 폐지와 공병을 모아 판 돈을 매달 보태셨습니다. 물론 신부님께서도 사제생활비를 줄이셨으며 겨우내 사제관의 난방(낡고 오래되어 기름값이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을 끄고 의자 위에 놓인 작은 전기담요로 추위를 견디셨습니다. 마침 사제관 식복사께서 사정이 생겨 일을 그만두셨는데 자매님들이 돌아가면서 신부님의 식사 준비를 해주시며 그 급여도 지원금에 보태겠다고 하셨다 합니다.또, 신부님께서는 중고등부 주일 학교 학생을 한데 모아 수업 대신 신약성경 강의를 시작하셨고, 1년간 개근한 학생들에게만 순례 기회를 주겠다고 공표하셨습니다. 그러나 개근에 성공했다고 해서 ‘무료’로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학생들 집안의 형편을 세세히 알고 계셨던 신부님께서는 아이들을 한 명씩 따로따로 상담하고 각자 다른 순례 비용을 책정하셨습니다. 단돈 만 원이라도 직접 보태어 떠나야 한다는 의미셨습니다. 물론 누가 얼마큼 냈는지 비밀로 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저와 저희 회사에 요구하신 사항도 많았습니다. 첫째, 숙소는 가능한 한 성지에서 가까워야 하고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도록 넓은 마당이 있어야 하며 매일 숙소를 바꿔서는 안 된다. 둘째, 성지 내부나 성당 안에 머물기보다는 직접 발로 걸으며 그곳을 둘러보면 좋겠다. 셋째, 가이드가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넷째, 일정은 아이들 컨디션에 따라 언제든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더군다나 마지막 조건은 다소 황당할 지경이었습니다. 이번 순례에서 단 한 푼의 이익도 남기지 말아야 하며, 수고비는 순례가 계획대로 잘 진행된 후에 신부님께서 알아서(?) 책정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반적인 순례와 다르리라고 예상하고 오긴 했지만, 이익을 전혀 남기지 않는다는 건 손해를 본다는 말과도 같아서 마지막 조항을 듣고는 순례가 성사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회사로 돌아왔습니다.그런데 신부님의 조건을 들은 사장님의 반응은 의외였습니다. “그래, 손해 좀 보지 뭐!”사장님은 두말없이 단박에 승낙하셨습니다. 아이들에게 행복한 순례이자 여행이 되도록 신경 쓰라고도 지시하셨습니다. 저는 곧장 이스라엘 현지 여행사에도 사정을 설명하였습니다. 사실 일정을 언제든 변경할 수 있고 가이드를 맘대로 바꿀 수 있는 데다가 단 한 푼의 수익도 낼 수 없다는 말도 안 되는 조건을 선뜻 받아들일 여행사가 그리 많겠습니까마는, 그곳의 사장님은 어린 시절 수도 사제를 꿈꾸며 성소를 키웠던 분이셨습니다.“아이들을 위한 거잖아? 우리 아이가 그런 기회를 가진다고 생각하면 참 좋을 것 같아. 한번 해 보자고.”명색이 성지 순례를 업으로 삼는 사람으로서 미리 넘겨 짚어 판단한 제 자신이 부끄러워질 만큼 사장님 두 분께서는 흔쾌히 마음을 모으셨습니다. 이렇게 조금은 특별한, 하느님께서 직접 인도하신 것만 같은 순례 준비가 시작되었습니다. <계속> 김원창(미카엘, 가톨릭성지순례 전문) cpbc2021.05.18

7년간 손주들과 매일 전화 주모경… “신앙 물려주니 노후도 풍요로워”신앙 수기 사랑상 (할머니 부문) 수상한 고명화 엘리사벳 어르신 고명화 할머니의 쌍둥이 손주 조예성군과 조혜원양. 손주들은 “신앙을 물려주신 할머니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얘들아, 일주일에 한 번 예수님께 너희가 좋아하는 짜장면 사드리면 어떨까?”“그건 너무 비싸요!” “그러면 떡볶이 사드리고, 나중에 너희가 돈 벌면 그때는 돈가스랑 갈비탕이랑 삼계탕 사드려라.”“좋아요, 할머니!” 손자ㆍ손녀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 7년 동안 매일 밤마다 전화로 주모경을 바쳐온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는 기도한 날을 달력에 표시해뒀다가 하루에 500원씩 용돈을 준다. 손자녀들은 매달 할머니한테 받은 용돈에서 십 분의 일을 떼어내 성당에 감사헌금으로 봉헌해왔다. 아이들이 크면서 친구도 만나고, 학원도 다녀야 해 바빠졌지만, 할머니와 주모경 바치는 기도 시간은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고명화(엘리사벳, 74, 서울 녹번동본당) 할머니는 손주들을 신앙으로 키운 비법을 글로 녹여냈고,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을 기념해 서울대교구 사목국 노인사목팀이 마련한 신앙수기 공모에서 할머니 부문 사랑상(교구장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러니까 16년 전 우리 집에 하느님께서 천사 같은 생명인 쌍둥이 남매를 보내 주셨습니다”로 시작하는 글에는 손주를 향한 할머니의 깊은 사랑이 배어있다. 첫 손주로 쌍둥이를 맞은 고 할머니는 태어나자마자 잠시 손주들을 직접 키웠다. 아들 부부의 맞벌이로 한 아이는 친가에, 다른 아이는 외가로 보내졌다. 손주를 자랑하고 싶었던 고 할머니는 유모차에 손주를 태워 매일같이 성당에 드나들었다. 미사를 봉헌하는 건 물론 성당 마당을 산책하면서 자연스럽게 신부, 수녀의 사랑을 한껏 받게 했다. 태어난 지 한 달 후 유아세례를 받게 했고, 6살부터 아이들은 유치부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주님 안에서 잘 자라 주기를 늘 기도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신앙생활을 잘하게 할까?’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한글을 알기 시작할 때 주모경을 외우게 했습니다.”고 할머니는 아이들이 한글에 눈 뜰 무렵, ‘기도의 맛’도 보게 했다.“매일 상금으로 500원을 주었더니 남매가 경쟁하듯 기도를 잘 바쳤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한동네에 가까이 살다 김포로 이사를 갔는데, 손주들을 자주 못 보게 되어 서운하더라고요. 매일 전화로 함께 기도를 바치고, 안부도 주고받으니 좋았습니다.”기도 용돈(?) 500원은 7년째 오르지 않고 그대로이지만, 7살 터울의 막내가 태어나 할머니의 지갑은 기분 좋게 얇아졌다. 매달 초에 만나, 기도 용돈을 정산할 때면 웃음바다가 된다. 받은 용돈에서 예수님께 좀 떼어드리자는 할머니와 세 손주의 협상과 실랑이가 오간다. 아이들이 중학교에 입학하자, 고 할머니는 성경 읽기 노트를 만들어줬다. 아이들은 4복음서와 사도행전까지 읽었다. 코로나가 덮치기 전까지는 함께 성지순례도 많이 다녔다. 고 할머니는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 주제가 풍성하다. 스스로 독서 노트를 만들어 쓰고 있다. 아이들에게 책 선물도 많이 했다. 아이들과 만나는 날이면 서로 한 달 동안 읽은 책 이야기를 해주고, 환경문제, 기후문제, 청소년 문제에 관해 토론한다. 최근에는 “요즘 청소년들이 스마트폰을 너무 많이 사용한다는데 너희들 생각은 어떠냐”고 물었고, 아이들은 “좋지 않다는 것은 아는데 절제하기가 어렵다”고 의젓하게 대답했다. “다양한 주제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거예요. 대화를 나누며 신앙의 씨앗을 뿌리는 농부가 되는 거죠. 열매가 성소로 이어질 수 있도록요.” 고 할머니는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아들, 며느리, 손주들과 깊이 있고 다양한 대화를 나누고 싶어 틈틈이 공부한다. “젊은이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려면 노인네들은 공부를 해야 합니다. 너무 모르면 대화 주제 없이 겉돌게 되거든요.”고 할머니는 새해가 되면 며느리(박은애 아녜스)와 기도 계획표를 짠다. 대축일과 가족의 영명 축일에 맞춰서 54일 기도를 몇 년째 하고 있다. 그는 며느리를 처음 맞았을 때, “하느님이 수많은 사람 중에 우리를 고부간으로 묶어 주셨으니 감사하게 생각하자”며 “서운한 일이 있더라도 서로 이해하면서 잘 살자”고 말해주었다. 고 할머니의 두 아들은 캐나다와 이라크에서 생활한다. “두 아들이 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신앙이 삶에 많은 힘이 된다고 고맙다고 합니다. 탈무드에 ‘고기를 물려 주기보다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듯이, 물질을 남겨 주기보다 신앙을 물려 주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조예성(토마스 모어, 중3, 인천교구 풍무동본당)군은 “처음에는 할머니와 매일 같이 기도하는 게 귀찮기도 하고, 바쁘다고 핑계를 대고 빠진 적도 있었다”면서 “어릴 때부터 기도문을 외울 수 있고, 기도하고 나서 뿌듯함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털어놨다. 조혜원(그라시아, 중3)양은 “신앙이 힘들 때 위로와 힘이 되기도 하지만 제게 신앙은 즐거움에 더 가깝다”면서 “즐거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신 할머니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라크에서 잠시 휴가를 맞아 귀국한 아들, 쌍둥이 남매의 아버지 조형민(야고보, 47)씨는 “평생 저도 어머니의 기도 덕택에 살아왔는데, 손주들에게 신앙 유산을 선물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고 할머니는 “가정에서 조부모의 역할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세상에 다른 것은 몰라도 신앙에서만큼은 큰 소리를 냈으면 좋겠다”면서 “그 첫걸음은 소통과 대화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요즘 어린 손주들을 돌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은데 아이들 데리고 동네 한 바퀴를 돌 때, 성당에도 하루에 한 번은 꼭 들리고 성당 마당에서 뛰어놀게 하면 자연스럽게 신앙에 물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오늘도 전화기 저 너머 들려오는 기도 소리는 제 삶의 기쁨이며 행복입니다. 아마도 예수님도, 성모님도, 요셉 성인께서도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 정말로 아이들이 잘 따라주고, 특히 며늘아기가 잘 협조해 주어서 더욱 고맙지요. 처음 시작할 때는 아이들에게 신앙심을 심어주기 위함이었는데 지금에 와서 보면 저의 행복하고 풍요로운 노후생활을 준비한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이끄심이며 은총임을 믿고 감사드립니다.”(고명화 할머니 수기 중에서)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cpbc2021.07.20

상술이 쌓아올린 커피 시장의 바벨탑[사유하는 커피] (21)바벨탑과 스페셜티커피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장 “야훼께서 온 세상의 말을 거기에서 뒤섞어 놓아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셨다고 해서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불렀다.”(창세 11,9, 공동번역본)바벨탑의 이야기는 문학, 영화, 미술, 음악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은유되면서 우리의 본성을 스스로 되돌아보게 한다. 인간은 욕심대로 살 수 없으며, 과욕이 만든 그릇된 사회를 바로잡는 장치를 신께서 이미 내부에 계획해 두셨음을 일깨워 준다. 또 인간은 소통하지 않으면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는 점과 인간을 하나로 뭉치도록 하는 가치가 불온할 때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게 됨을 경고한다. “사람들이 한 종족이라 말이 같아서 안 되겠구나.… 당장 땅에 내려가서 사람들이 쓰는 말을 뒤섞어 놓아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해야겠다.”(창세 11,6-7)청소년기에 이 말씀을 받아들이는 데 마음이 불편했다. 시쳇말로 “하느님께서 인간이 잘되는 꼴을 못 보겠다고 하시는 것인가?” 하는 오해 때문이었다. 지천명을 넘어서야 이 구절이 인간 탐욕에 대한 은유적인 가르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 시장에는 ‘스페셜티 커피(Specialty coffee)라는 바벨탑’이 우뚝 서 있다. 마치 하늘에 닿은 데 이어 이름을 날려 사방으로 흩어지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양 기고만장하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작당하고 품질이 좋지 않은 커피를 스페셜티 커피처럼 꾸미는 일이 잦아졌다. 그 무리가 커피 전문가의 탈을 쓰고 실제로는 장사를 하는 세력이기에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이들은 일단 “스페셜티 커피란, SCA(스페셜티커피협회)라는 세계적인 단체가 품질을 평가해 1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을 부여한 좋은 커피”라고 정의해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얻는 수법을 쓴다. SCA를 앞세워 놓고는 정작 그들이 사용하는 커피가 바로 그 커피인지는 얼버무리고 넘어간다. 이런 짓을 그러려니 하고 혀만 차던 사이, 그들의 바벨탑은 하늘로 우뚝 솟았다.커피 광고를 보면 스페셜티 커피가 아닌 게 없는 듯하다. 커피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는 적잖은 전문가들이 자신이 다루면 무엇이든 스페셜티 커피가 되는 양 떠든다. 좋지 않은 커피라도 자신이 로스팅하거나 추출하면 스페셜티 커피가 된다고 수작을 부린다. 이들을 추종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나 자신들만의 바벨을 구축한다. 그러나 그들의 도시는 바벨이 뜻하는 ‘혼돈’ 그 자체일 뿐 성경 말씀대로 흩어져 사라질 운명을 피할 수 없다.그릇된 신념은 잘못된 가치를 증폭해 빠르게 오염시킨다. 그들의 바벨에서는 스페셜티 커피라고 떠드는 온갖 잡음들이 난무해 혼돈에 빠지게 된다. 지금 우리의 커피 시장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주변에 온통 스페셜티 커피이다. 출처를 물어보면, 믿고 마시라는 식이다. 성경 속 바벨에는 결국 거대한 탑만 남고 사람들은 모두 사라졌다. 거대한 탑은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자리에 홀로 남아 모래바람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스페셜티 커피의 개념은 1978년 국제커피회의에서 에르나 크누젠이 “산지의 지정학적인 미세한 기후 조건이 커피에 특별한 향미를 부여한다”고 일갈할 때 태동됐다. 순간 전 세계 커피 애호가들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와인처럼 산지를 명확하게 표기하고 품질을 관리해 품격 있는 커피 문화를 만들어가자는 다짐이었고, 그런 커피는 분명 사람들을 행복으로 이끈다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스페셜티 커피는 상술만 요란할 뿐 그 딱지가 붙으면 되레 신뢰를 잃는 지경이 됐다. “사람들이 딴마음을 먹으면 못 할 일이 없겠구나” 하신 하느님의 말씀이 무엇을 염려한 것인지 커피를 통해서도 헤아릴 수 있다.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평화신문2020.10.06
[박현민 신부의 별별이야기](43) 신비체험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 인간은 누구나 신비스럽고 초자연적이며 영적인 체험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근원적으로 영혼을 가진 영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과학자이며 신학자였던 떼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는 “우리는 영성적 경험을 하는 인간 존재가 아니라, 인간적 경험을 하는 영적 존재”라고 했다. 이때 인간의 영성적 경험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종교적 형상을 통해 표현되지만(예, 하느님 체험, 성령 체험), 종교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성스러운 체험 혹은 신비 체험 등으로 표현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이 경험하고 있는 모든 영성적 혹은 초월적 체험들은 우리가 믿고 있는 하느님의 계시나 현시로만 해석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메일을 보낸 카타리나 자매의 궁금증, 즉 본당 사제가 왜 자신의 체험을 타인에게 누설하지 말라는 함구령을 내리셨는지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있다. 신비 체험은 자기 자신에게 의미를 주는 체험으로 그쳐야 한다. 만일 이 체험을 공유하고 싶다면 그 내용을 순수히 자신의 개인적 체험으로만 한정하고 그 사실을 객관화하거나 일반화하여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려고 시도해서는 안 된다. 가톨릭의 가르침에 의하면, 하느님의 모든 계시 내용은 이미 공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다. 따라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하느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과 그분의 성경 말씀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 사적인 영적 체험은 자신 안에서 성경 말씀이 인격적으로 다가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미만을 지닌다. 개인의 신비 체험 의미가 자신에게만 한정되어야지 타인에게로 확장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이 말이 개인을 통해 신적인 메시지가 공적으로 전해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에서는 신앙인들의 영적인 유익을 위해 때로는 사적 계시를 믿을 수 있는 메시지로 특별히 인정해 주기도 한다. 파티마나 루르드의 성모님 메시지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메시지를 공적인 메시지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즉, 이 메시지를 믿지 않는다고 해서 교회는 그 사람을 교회의 가르침을 벗어난 사람으로 이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회가 공인한 사적 계시는 “믿어도 좋고, 믿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지 “반드시 믿어야 하는 가르침(믿을 교리)”은 아니다. 따라서 교회의 엄격한 인준 과정을 거치지 않은 주변의 수많은 사적 계시들은 그 내용의 진위와 상관없이 순수히 개인적 의미로만 한정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통찰을 얻게 된다. 첫째, 바오로 형제가 경험한 신비 체험들은 신을 믿는 사람은 물론이요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초월적 체험이며 순전히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의미가 있다. 따라서 믿어야 할지 혹은 믿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신앙적 질문은 의미가 없다. 둘째, 안나 자매와 같이 개인적인 신비체험이 개인적 의미를 넘어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는 용납될 수 없으며, 대부분 정신적 문제(환상이나 망상, 혹은 변상증-pareidolia)의 결과이거나 혹은 심리적 문제(타인을 조정하거나 통제하거나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에 의한 경우를 의심해야 한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신비체험에 대한 분별의 은사를 얻고 싶다면, 성령의 도우심을 청하면서 그 체험이 개인과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력, 즉 그 열매를 보고 판단을 할 수 있다. 즉, 개인의 현실생활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공동체의 분열과 갈등을 일으키는 신비체험은 하느님 혹은 성령체험으로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부관장> 평화신문2020.10.06

십자가 예수님의 환한 미소[미카엘의 순례일기] (16)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 제가 어렸을 적에는 상본이 아주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이나 성모님, 성인의 얼굴이 그려진 상본은 성경 속 글귀나 성당 벽의 그림들과는 또 다른 감동을 주었고, 신앙생활의 새로운 힘이 되기도 했습니다. 상본 뒤에는 주로 기도문이 적혀 있었는데, 외국에서 직접 들여온 것들은 물론 그 나라의 언어로 쓰여 있었기 때문에 어린 마음에 작은 허영심을 갖게 하기도 했지요. 부모님께서는 상본이 헤지지 않도록 비닐로 잘 감싸서 책갈피 대신 쓰도록 하셨고, 한글로 적힌 기도문을 하루에 한 번씩 암송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어느 날, 친구가 가지고 있는 상본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나무로 조각된 십자가를 사진으로 찍은 상본이었고, 뒤편에는 스페인어 기도문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이 환하게 웃고 계셨던 것입니다. 고통받는 예수님의 형상에 익숙해져 있던 저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잊지 못해 그 상본을 직접 찾으러 명동대성당에 나간 적도 있었지만 결국 구할 수 없었지요. 이후 시간이 흐르고 흘러, 웃는 예수님은 저의 기억 속에서 멀어졌습니다.바스크 지방은 피레네 산맥을 중심으로 스페인 북부와 프랑스 남부에 걸쳐 자리하고 있으며, 이베리아 반도(유럽 서남쪽 반도를 이르는 말로 지금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있다)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이지만 외세의 오랜 지배를 받아왔습니다. 지금도 약 300만 명의 바스크인들은 그들만의 언어를 사용하며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외치고 있습니다. 이들은 누구보다도 민족적 자부심이 강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일례로 빌바오(바스크 지방의 중심도시) FC는 바스크인이거나 바스크 지방의 유소년 클럽을 거치지 않은 선수는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레알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와 더불어 스페인 축구 리그가 시작된 이래 단 한 번도 2부 리그로 강등된 적 없는 강팀이라는 사실이 놀랍습니다.바스크 지방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두 사람을 꼽는다면 아마도 이냐시오 로욜라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일 것입니다. 예수회 창설의 주역이신 두 분은 동시대에 바스크의 귀족으로 태어나셨는데, 하비에르 성인은 인도와 일본 등 아시아에서 선교 활동을 하신 영향으로 우리에게는 조금 더 친숙한 이름입니다. 바스크의 ‘예사’라는 마을에서 태어난 하비에르 성인은 당대 최고의 대학인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수학하시고 사제품을 받으신 후 이탈리아에서 활동하시다가, 교황님께서 예수회에 내리신 선교의 사명을 받으시고 아시아로 떠나 인도와 일본에서 수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하비에르 가문의 성(城)은 박물관으로 조성되어 당대의 역사적 사료들과 성인의 일생에 관한 자료들로 가득합니다. 집 안의 중심에는 당시의 여느 귀족 집처럼 가족들을 위한 소성당이 마련되어 있는데, 들어갈 수는 없고 입구에서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만 가능합니다.소성당이라는 공간에 특히 관심이 많은 저는 예사를 처음 순례하던 때에도 가장 먼저 창살로 가로막힌 소성당 입구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충격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끼며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 상본, 십자가에 매달리신 채 웃고 계신 ‘웃는 예수님’을 입구 맞은 편 제대 위에서 수십 년 만에 다시 보게 된 것입니다. 이번에는 상본이 아니라 제 눈으로 직접 말이지요.하비에르 성인께서는 인도와 일본에서 선교 활동을 하신 후 아시아 전체의 복음 전파를 위해 중국 입국을 계획하셨으나, 바다를 건너지 못하고 열병으로 선종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20)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신 전교의 수호성인 하비에르 성인은 이미 생전에도 ‘성인’으로 불리셨다고 합니다.하비에르 신부님이 일평생 가지셨던 신앙과 사랑은 어쩌면 이 웃고 계신 예수님의 사랑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그분께서도 ‘웃는 예수님’처럼 웃으며 떠나셨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분의 여정은 비록 길지 못했지만, 그분이 바다 건너 멀고 먼 땅에 뿌린 신앙의 씨앗은 결코 죽지 않고 자라나 수많은 이들에게 닿았으니까요. 성인께서 나고 자라며 매일 같이 보았을 예수님의 얼굴, 죽음의 고통조차 달게 받으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웃음을 떠올리며 저는 그날 저녁 숙소에서 제 손으로 직접 찍은 십자가 사진을 오래오래 들여다보았습니다.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 평화신문2021.04.21

코로나 시대, 미사·신앙 중요성 절감했지만 신앙생활은 ‘글쎄’서울대교구 ‘코로나19와 신앙생활’에 관한 긴급 설문 조사 결과 서울대교구 사목국 사목기획팀이 7월 17~26일 열흘간 신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 설문조사 ‘코로나19와 신앙생활’에 대한 결과 보고서가 나왔다. 2만 1439명이 참여한 설문 조사에서 신자들은 코로나19로 미사가 중단돼 성체를 모시지 못하는 상황을 신앙생활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가톨릭평화방송을 통한 온라인 미사가 도움이 됐지만, 온라인이 인격적 만남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체험했다고 답했다. 본당 활동이 단체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집에서 혼자 성경을 읽거나 묵상하는 시간을 갖는 개인 신앙생활의 경험이 부족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미사 중단 시기에 본당 성직자, 수도자에게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고 사제의 무관심에 실망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사목기획팀은 “이번 설문을 통해 교구가 신자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면서 “그 어느 때보다 새로운 방식과 새로운 표현으로 새로운 복음화를 실현해야 할 때가 됐다”고 평가했다. 설문조사 결과 보고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이상도 기자 rally1@cpbc.co.kr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코로나19, 미사와 소모임 중단 코로나19로 일시적으로 미사가 중단되고 소모임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신앙생활에 어떤 어려움을 겪었냐는 질문(복수 응답 가능)에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미사를 봉헌하지 못하고 성체성사를 배령하지 못함에서 오는 신앙 갈증을 느꼈다(55.4%)고 답했다. 이어 △신앙생활이 위축될 것만 같은 어려움을 느꼈다(45.1%) △사람을 만나고 접촉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41.1%) △신심단체 및 소공동체 모임을 하지 못하는 데서 고립감을 느꼈다(31.9%) 순이었다. 10명 중 1명은 △개인이 혼자 기도하고 묵상하는 방법을 알지 못해 답답함을 느꼈다(14.7%) △신앙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고 신앙이 불필요한 것만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10.7%)고 답해 미사 중단으로 신앙에 갈증을 느끼면서도 정작 움츠러드는 신앙의 모습을 보여줬다. 서울대교구 사목국은 “신자들이 활동 위주의 신앙생활에 집중하다 보니 집에서 혼자 성경을 읽거나 묵상을 잘 해보지 않아 코로나19 시기에 신앙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신앙생활에 생겨난 변화 코로나19로 신앙생활에 생겨난 변화와 관련한 질문(1~5점 사이에서 점수 표기)에는 △신앙과 교회 공동체의 소중함을 더 깊이 생각하게 됐다고 긍정적(4, 5점)으로 답한 이들은 70.4%로 나타났다. 10명 중 8명은 △미사 참례와 성체성사의 소중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81.2%)고 답했다. △본당에서 함께하는 공동체 미사가 신앙생활에 더욱 중요하다고 느껴졌다고 답한 이들은 78.1%였다. 신자들 대다수가 코로나19로 미사와 신앙 공동체의 중요성, 소중함을 확인하게 된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기도, 묵상, 성경 및 교리공부 등 신앙생활과 교육에 대한 욕구가 커졌다(50.5%)고 긍정적으로 답한 비율은 신앙생활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70.4%)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았다. 또 △가족이 함께 모여서 가족 기도나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늘었다(25.7%) △자연스럽게 성경을 읽거나 기도하는 시간이 늘었다(42.5%)고 답한 이들은 절반 이하였다. 코로나19로 미사 봉헌과 성체 성사, 공동체의 소중함을 느끼는 마음은 커졌으나 이것이 개인 신앙생활이나 가족과 함께하는 신앙생활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이 확인됐다. 신자들이 평소 단체 활동과 미사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신앙생활을 충실히 한다고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자녀와 가정 안에서 신앙의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주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콘텐츠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온라인 미사 참여 미사 중단시기 본당과 교구로부터 받은 도움으로는 △온라인으로 생방송 미사 봉헌(65.9%)이 가장 많았다. 신자들은 가톨릭평화방송이나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온라인 미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고 답했다. 이어 △구역 반장이나 단체장, 사목위원 등에게 안부 전화와 문자 수신(43.7%) △본당 소식과 사제 강론을 SNS로 전달 받음(38.7%) △대송이나 신령성체 방법 안내 받음(31.4%) △개인과 가정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신앙생활 방법 안내 받음(24.5%) 순이었다. △특별한 안내나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응답한 이들은 15.7%였다. 코로나19처럼 앞으로 발생할 팬데믹 상황을 대비해 본당과 교구에서 신앙생활과 관련해 어떤 도움을 받고 싶은가라는 질문(복수응답 가능)에는 △온라인 미사(59.4%)를 가장 많이 원했다. △개인 및 가정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내(46.0%) △온라인을 활용한 기도 및 묵상 자료 콘텐츠(41.6%) △온라인을 활용한 성경공부 콘텐츠(34.5%) 등을 제공받기를 원했다. △온라인을 활용한 본당 공동체 모임(26.8%)도 희망했다. 교구 차원의 온라인 신앙학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는 84.4%가 필요하다고 했고 70.9%가 수강하겠다고 답했다. 팬데믹 시대에 온라인을 활용한 사목은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락·안부 없으면서 교무금 안내만” 사목기획팀은 이번 설문조사에서 신자들의 생각과 상황을 구체적으로 듣고자 주관식 답변 문항을 마련했다. 주관식 답변 문항은 통계 수치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바탕으로 사목 대안 마련에 참고할 유의미한 답변이 많았다는 분석이다. 특히 변화된 상황에 적응하지 못한 채 예전의 방식에 머물러 신자들과 단절된 모습의 사목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의견이 상당수 제기됐다.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봉사자들의 무관심과 그에 따른 불신 △정부의 지침과 권고에도 소모임과 회식 자리 조성 △본당 사제의 돌봄을 받지 못함에서 방치돼 있다는 느낌을 받음 △안부와 연락은 없으면서 교무금 등에 대한 안내만 받음 등의 지적이 나왔다. 온라인으로 사목 활동이 전환될수록 사제와 신자의 인격적 소통과 친교가 더욱 친밀하게 이뤄져야 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신자들은 △불특정 다수를 향한 온라인 미사보다는 본당 사제와 함께하는 온라인 미사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본당 사제와 1:1로 만나서 영성생활에 대해 나눌 수 있는 신앙 상담 기회 마련 △본당 신자들이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활동 필요(주 1회 본당 사제의 안부 문자, 지역별 담당 주교들의 안부 문자) △일방적 전달이 아니라 소통할 수 있는 창구 마련 등의 답에서 긴밀한 소통의 바람을 읽을 수 있다. 사목기획팀은 “무엇보다 쇄신돼야 할 점은 사제들의 사목 방식 또는 사목적 자세라고 생각된다”면서 “신자들은 통제하는 사목자가 아닌 위로하는 모습의 사목자의 모습을 원하고 있고 본당 사제와 수도자의 적극적인 사목 활동을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린이와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 이 밖에도 신자들은 사목 사각지대에 놓인 어린이, 청소년, 어르신 신자와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한 이웃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요청했다. △어린이 청소년만을 위한 본당별 온라인 미사 △65세 고령자 나이 제한을 70세로 상향 △고령자에 대한 주 1회 봉성체 실시 △단체에 속해 있지 않은 신자에게도 본당 알림과 사제 강론 등을 빠지지 않고 전달 △노숙자, 홀몸노인 등 사회 취약계층을 향한 교회의 경제적 지원 및 돌봄 등을 제안했다. cpbc2020.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