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느님 말씀인 성경 봉독하고 깊이 이해하는 시간[미사의 모든 것] (16)독서 미사의 독서는 복음 말씀이 중심이다. 교회는 하느님 말씀의 주요 부분들이 회중 앞에서 적절한 기간 동안 봉독될 수 있도록 「미사 독서 목록」을 만들어 두었다. 【CNS】 나처음: 어떻게 해야 하느님 말씀을 잘 듣고 잘 읽고 잘 응답할 수 있나요.라파엘 신부: 예비 신자인 처음이는 ‘하느님 말씀’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겠지. 하느님 말씀은 「성경」을 뜻해. 신ㆍ구약 성경의 모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말하고 있단다. 바로 참 하느님이시며 참인간이신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구세주)라는 고백이야. 성경의 참 저자는 바로 하느님이셔. 인간의 저자들이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것을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한 책이 바로 성경이란다. 가톨릭교회는 구약 성경 46권과 신약 성경 27권을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 저술된 성경이라고 받아들이고 받들고 있지. 아울러 교회는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언제나 주님의 몸처럼 공경하고 있어.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를 양육하고 하느님께로 인도하고 있기에 시편 저자는 “주님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시편 119,105)라고 찬미한단다. 조언해: 말씀 전례 중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잘 읽고, 잘 응답하기 위해선 우리 자신을 비우고 하느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으려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라파엘 신부: 미사 중에 선포되는 하느님 말씀은 성령의 능력을 통해 언제나 살아 있고 힘 있는 말씀이 되며,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요. 그래서 미사에 깊이 참여할수록 더욱더 하느님 말씀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지. 미사 중에 선포되는 하느님 말씀을 더 깊이 알아들을수록 우리는 더욱 활기차게 미사에 참여하고, 미사에서 거행한 성체성사의 신비를 삶과 행동으로 실현하고, 하느님 말씀을 충실히 지키려고 노력하게 된단다.조언해: 말씀 전례 때 봉독되는 하느님 말씀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경청해야 한다고 배웠어요.라파엘 신부: 하느님 말씀에 대한 존경심이야말로 신자들의 영성 생활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준단다. 하느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말씀으로 모이고 자라고 양식을 얻는데 이 표현은 미사 거행에서 말씀 전례에 딱 들어맞는 말이란다. 하느님 말씀이 신자들 마음에 잘 받아들여지고 그들 삶에 스며들려면 살아있는 믿음이 요구되는데 이 믿음은 미사를 통해 끊임없이 선포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튼튼해진단다. 하느님 말씀을 사랑함은 하느님 백성 전체가 새로워지는 힘이야.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끊임없이 하느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자세를 갖추어야 해요. 하느님 말씀을 충실하게 듣고 받아들이면 그 말씀은 공동체로든 개인으로든 회개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믿음으로 빛나는 삶을 살도록 재촉해. 그래서 미사에 참여하기 전에 그날 미사 말씀 전례에 봉독될 성경을 읽고 깊이 이해해 하느님 말씀을 들을 준비를 하라고 교회는 권고하고 있지.나처음: 말씀 전례 때 봉독하는 하느님 말씀은 어떻게 선택하나요?라파엘 신부: 좋은 질문이구나. 교회는 하느님 말씀의 주요 부분들이 회중 앞에서 적절한 기간 동안 봉독 될 수 있도록 「미사 독서 목록」을 만들어 두었단다. 주일과 축일의 독서 목록은 3년 주기로, 평일 독서 목록은 2년 주기로 구성돼 있어. 또 성인 고유와 공통, 예식 미사, 신심 미사, 여러 상황이나 필요에 따라 드리는 기원 미사, 죽은 이를 위한 미사의 독서 체계는 고유한 방식으로 배정돼 있단다. 주일과 축일의 미사에는 세 가지 독서가 봉독돼. 첫째 독서는 구약을, 둘째 독서는 서간과 요한 묵시록을, 셋째 독서는 복음을 봉독하지. 이러한 배치로 하느님의 구원 역사의 단일성을 밝히고, 그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있음을 드러낸단다. 주일과 축일의 독서는 각 독서의 본문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같은 주제로 엮어 놓았어. 평일 미사 독서는 늘 2개로 구성돼 있어. 첫째 독서는 구약이나 사도서를 봉독해. 그러나 부활 시기에는 사도행전을 봉독해. 또 대림 시기에는 구세주 탄생을 예고하는 이사야 예언서가, 성탄 시기에는 요한의 첫째 서간이 봉독돼. 둘째 독서는 복음이야. 또 사순 시기에는 세례와 회개를 표현하는 하느님 말씀을 선포해. 성인 축일 미사에는 순교자, 목자, 동정녀 등 해당 성인의 범주에 따라 어울리는 독서를 봉독하지.나처음: 전례력에 따라 주제별로 독서 내용이 달라진다는 게 무척 흥미롭네요. 신부님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라파엘 신부: 미사의 독서는 복음 말씀이 중심이야. 그래서 복음은 주일마다 고유한 특징이 있단다. 먼저 전례력으로 한 해를 시작하는 대림 시기부터 설명할게. 대림 제1주일 복음은 때가 차 주님께서 오심을, 제2주일과 제3주일은 요한 세례자를 말하고, 제4주일은 가까이 다가온 주님의 탄생을 준비하는 복음 말씀이 봉독 되어요. 이에 따라 대림 시기 구약 독서는 메시아와 메시아 시대에 대한 예언이 나오는 이사야서가 선포돼. 그리고 사도서 독서는 이 시기의 특성과 조화되는 선포와 권고를 담고 있단다. 대림 시기 평일 독서는 전반부(대림 제1주간 월요일부터 12월 16일까지)와 후반부(12월 17일부터 24일까지)로 구분할 수 있어. 전반부에는 이사야서를 차례대로 읽으며 주일에 배정된 중요한 부분은 중복되더라도 빼놓지 않고 봉독해. 대림 제2주간 목요일부터는 요한 세례자에 관한 복음을 읽어요. 성탄 전 마지막 주간에는 마태오 복음(1장)과 루카 복음(1장)을 봉독해.성탄 시기 주님 성탄 대축일 전야 미사와 대축일 미사는 주님 탄생에 관한 복음이 봉독돼. 성탄 팔일 축제 동안에 오는 주일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이므로 복음은 예수님의 유년기에 관한 것이며, 다른 독서는 가정생활의 여러 덕행에 관한 하느님 말씀을 봉독해. 성탄 팔일 축제 제8일, 곧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의 독서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동정녀에 관한 것과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에 관한 말씀이 선포된단다. 그리고 주님 공현 대축일에는 강생의 신비에 관한 독서가 봉독 되어요. 이날 사도서 독서는 이민족들을 구원으로 부르는 내용이 선포되지.사순 시기 첫째와 둘째 주일에는 주님의 유혹에 관한 이야기와 주님의 거룩한 변모에 대한 복음이 봉독돼. 사순 제3, 4, 5 주일은 가해의 복음으로 사마리아 여인,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 라자로의 부활 사건에 관한 복음 말씀이 선포돼. 그리고 나해에는 요한 복음에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장차 영광스럽게 되시리라는 말씀이, 다해에는 회개를 촉구하는 루카 복음을 봉독해. 그리고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는 주님께서 성대하게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신 사건을 이야기하는 복음 말씀이, 성주간에는 주님 수난의 신비에 관한 하느님 말씀이 선포돼.파스카 성삼일 중 주님 만찬 성목요일 저녁 미사에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그리스도의 모습과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성금요일에는 요한 복음의 수난기가 봉독돼요. 또 파스카 성야에는 구약 독서 일곱, 신약 독서 둘 곧 아홉 개의 독서가 선포돼. 구약 독서는 구원 역사에서 하느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들을 기억하고, 신약 독서는 주님의 부활을 선포하며, 그리스도 부활의 성사인 세례를 알려준단다.주님 부활 대축일 전야와 대축일 미사는 빈 무덤에 관한 이야기와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의 이야기가 선포되어요. 부활 시기 평일 독서는 좀 전에 말한 것처럼 사도행전을 봉독하고, 부활 제3주일까지 복음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발현에 관해 들려준단다. 그리고 부활 제4주일에는 착한 목자에 관한 복음이, 부활 제5, 6, 7주일은 최후 만찬 다음에 주님께서 하신 말씀과 기도가 봉독된단다. 주님 승천 대축일에는 제자들에게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그리스도의 사명이, 성령 강림 대축일에는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전에 말씀하신 성령의 약속을 기억해요.연중 시기 복음은 전례력에 따라 주님의 가르침과 기적 내용을 선포해요.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cpbc2020.11.04

고개 들어 모자이크 보니 성경의 장면 장면 펼쳐져[슬기로운 성당 이야기] (3)이탈리아 산비탈레성당 ②‘봄’을 통한 성경과 전례 메시지의 보고 산비탈레성당 주제대 위 돔에는 일곱 개의 봉인이 찍힌 두루마리를 손에 쥐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천사가 보인다. 성화의 ‘보여주기’ 성화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성경’으로 이해되었으며, 또한 성화가 그려진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신학 메시지를 ‘들음’이 아니라 ‘봄’을 통해 전달한다. 칼 라너는 그리스도교 메시지를 수용하는 데 있어 들음과 봄이 가지는 상대적 가치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종교적 그림들이 감각에 의해 포착될 수 있는 구원사의 사건들을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아무런 문제도 제기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그림들은 가시적인 역사 사건들의 경험을 제공한다.…우리는 어떤 사람을 단지 들음을 통해서가 아니라 봄을 통해서도 친밀하게 알게 된다.”6세기 비잔티움 문화의 걸작인 라벤나의 산 비탈레 성당은 전례 거행 이전에 벌써 ‘봄’을 통하여 이곳에서 행해지는 전례와 연관된 성경의 인물과 사건을 미리 알려주고 있다. 특히 앱스(apse, 반원형 내부 공간)에서 그 특징이 잘 드러난다. 제대 위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초상을 새긴 메달리온이 있으며, 천장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인 어린 양을 네 명의 천사가 떠받드는 모습이 그려졌다. 양쪽 벽에는 복음서의 저자들(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과 예언자들(모세, 예레미야, 이사야)의 모습과 함께, 아브라함의 이야기와 ‘아벨과 멜키세덱의 봉헌’이 있다. 앱스에는 둥근 원에 앉아있는 ‘판크라토르’(만물의 주관자 그리스도)인 예수님이 있고, 천사들과 성 비탈레, 그리고 라벤나의 주교인 에클레시우스가 좌우에서 보좌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와 황후 앱스 벽면에는 황제와 황비의 초상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482~565년)와 부인 테오도라(500?~548년) 황후를 그린 것이다. 향과 성경을 든 부제들, 십자가를 든 막시미아누스 주교(재임 546~554년)를 따라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가 미사에 사용할 제병이 담긴 커다란 성합을 들고 입장하는 모습이다. 모든 인물의 키는 늘씬하며 엄숙한 얼굴에 눈은 크게 묘사되어 있다. 경직된 자세는 비인간적이며, 비인간적인 것을 강조하듯 모든 인물의 발들도 죄다 작게 표현되어 있다. 또한, 그들의 복식에서는 비잔틴 건축에서도 느낄 수 있는 수직감이 돋보인다. 열두 명의 수행원들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상징하고 황제 머리 위의 후광은 그가 교회의 성인이라는 것을, 또한 그의 어깨 위의 큰 훈장은 그의 세속적 권위를 나타낸다. 즉 그에게 교회의 정신적인 힘과 세속적인 힘이 함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또한, 그의 권력의 상징은 그의 부하의 발을 밟고 있는 모습에서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전체적인 구도는 제국을 이끌어가는 세 그룹으로 여섯 명의 군인은 군대를, 세 명의 신하는 국가를, 세 명의 성직자는 교회를 상징하며 그 중간에 서 있는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는 이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황제의 반대편에는 포도주를 담은 성작을 들고 시녀들과 함께 입장하는 테오도라 황후가 장식하고 있는데, 황제의 그림보다 좀 더 구체적으로 공간이 묘사되어 있다. 이곳은 산비탈레 성당의 정문과 본당 사이의 공간이다. 이 공간은 참회자나 예비신자 등 아직 본당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았던 사람들의 공간으로 이 모자이크에서 테오도라 황후의 높은 신분을 확인할 수 있지만, 또한 당시 교회에서 열등했던 여성들의 지위도 동시에 묘사하고 있다. 황후의 세부 묘사를 살펴보면, 황제와 같이 머리 위의 후광이 있고 보석으로 장식된 관을 쓰고 화려한 의상을 입은 황후는 지상의 절대 권위를 표현하고 있다. 화려한 의상을 입은 시녀들 또한 자신들의 품위를 과시하고 있는데, 딱딱하지만 당당한 자세와 근엄하고 차가운 표정들로 시종일관 지상의 권력을 표현하는데 여념이 없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와 테오도라 황후의 그림들은 장엄한 종교적인 성격과 지상의 권력을 결합시키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황제와 황후가 바치는 빵과 포도주가 주인공이다. 또한, 이 두 장면은 제대 양쪽에 장식되어 있고 행렬들은 모두 제대로 향하고 있다. 즉 그들이 바치는 빵과 포도주는 성찬 예식을 통해 인간 속죄와 구원으로 이어진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러한 도상은 황제의 세속권과 교황의 교권이 분리된 서구 라틴 세계와 달리,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황권과 교권이 황제에게 집중되어 있음을 잘 드러낸다. 이것은 황제가 곧 교회의 수장이라는 것으로 로마의 교황을 인정하지 않게 되며, 그 후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의 결별에 하나의 계기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 판크라토르 자세로마지막으로 살펴볼 부분은 주제대과 앱스 부분이다. 제대 부분에는 전체적으로 신비로운 희생 제사인 성체성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브라함과 이사악의 희생, 아벨과 멜키세덱 등 구약의 제사와 신약의 제사 그리고 위에서 설명한 미사에 참여하는 황제 부부의 행렬 등 세 부분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성당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앱스의 돔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일곱 개의 봉인이 찍혀 있는 두루마리를 손에 쥐고(묵시 5,1) 판크라토르 자세로 좌우에 천사들을 대동하고 왼쪽 성 비탈레에게는 관을 건네주고, 오른쪽 에클레시오 주교에게는 그가 세운 산 비탈레 성당을 건네주고 있는 모습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발아래로 흐르는 네 줄기 작은 강들은 천국을 묘사한다.(창세 2,10-14 참조) 그 뒤로 표현된 도시들은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으로, 예루살렘은 유다인을, 베들레헴은 그리스도인을 각각 상징하며 전체적으로 전 인류를 상징한다. 라벤나와 산비탈레성당을 개인적으로도 몇 번, 그리고 순례자들과는 여러 번 동행했지만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전 세계 여행객들과 순례자들은 제대 앞에만 모여 있다. 물론 너무도 유명한 모자이크 작품들 때문이겠지만 그때마다 조금은 아쉬웠다. 한 번쯤은 멀찍이 물러나 전체적인 공간을 살펴보길 바란다. 공간의 나뉨과 유입, 그러면서 전체적인 것을 전혀 깨뜨리지 않고 이 모든 공간이 제대를 향해 있는 모습을 살필 수 있다면 모자이크의 화려함과 더불어 각각의 공간들이 허투루 쓰이지 않았다는 것이 보일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보일 때, 마침내 성경을 ‘보게’ 하고 성체성사를 통해 거룩한 공간으로 변화하는 산 비탈레 성당의 진가를 알게 될 것이다. 윤종식 신부(가톨릭대학교 전례학 교수) 박원희(사라, 이탈리아 공인 가이드) cpbc2020.11.03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가톨릭교회의 거룩한 표징들] (13)I.N.R.I 주님의 십자가 죄명패는 예수님께서 하느님께 들어 올려진 왕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며, 주님의 죽음으로 모든 인간의 구원을 가져다준 거룩한 표징이다. 요한 복음서 말씀처럼 주님의 죄명패에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라는 글이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로 새겨져 있는 스페인 엘에스쿠리알 수도원 십자가. 가톨릭교회는 성경과 교리 내용을 오류 없이 그리스도인들과 세상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초기부터 성화상(聖畵像)을 이용했다. 신앙 지킴이와 교리교사 역할을 톡톡히 해오고 있는 성화상은 문자와 기호, 색과 형상 등 다양한 시각 코드를 통해 그리스도교에 관한 풍성한 정보와 영성을 제공해 주고 있다. 이번 호부터는 몇 차례에 걸쳐 성화상의 숨은 코드를 소개하려 한다. 그 첫걸음으로 ‘I.N.R.I’에 관해 알아보자.‘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는 중세 이전 성화상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가 아니었다. 특히 ‘십자고상’(十字苦像)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 시기 십자가 성화는 주님의 수난을 드러내기보다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영광의 상징으로 그리스도를 표현했다. 그래서 이 시기 십자가 성화는 예수님께서 눈을 부릅뜬 채 고통 없이 당당하게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모습을 주로 그렸다. 처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드러내 성화상 곧 십자가에서 눈을 감은 채 돌아가신 모습으로 표현한 십자고상은 10세기에 제작한 ‘게로 십자가’(Gero Kreuz, 970~976년)이다. 독일 쾰른대성당에 설치돼 있는 이 십자가는 게로 대주교가 신성로마제국 오토 대제의 명을 받고 황태자인 오토 2세와 비잔틴 황녀 테오파노를 정략 결혼시키기 위해 동로마 제국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갔다가 그곳에서 평소 묵상해왔던 인간 예수의 십자가 수난을 표현한 십자고상을 조각해 왔다. 이 십자고상에 주님의 죄명패인 ‘I.N.R.I’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I.N.R.I는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IESVS NAZARENVS REX IVDAEORVM)라는 라틴말 첫 글자들의 약자이다.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는 본시오 빌라도가 예수님께 십자가형 선고를 내려며 붙인 죄명패이다. 고대 로마 제국의 관례에 따르면 죄명패는 사형수의 목에 걸거나 몸에 붙여놓았다. 그런데 빌라도는 “명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달게 하였다.”(요한 19,19) 그리고 빌라도는 예수님의 죄명을 당시 유다인들의 대중 언어인 히브리 말과, 로마 제국의 공무와 행정 언어인 라틴 말(IESVS NAZARENVS REX IVDAEORVM), 상거래 언어인 그리스 말(ιησου ο ναζωραιο ο βασιλευ των ιουδαιων)로 나란히 쓰게 하였다.(요한 19,20 참조) 이는 유다인뿐 아니라 예루살렘 도성에 있는 로마 시민과 많은 외국인에게 로마 제국의 통치에 맞서면 그가 임금이라 해도 단호하게 그를 처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빌라도의 명백한 경고였다. 하지만 빌라도의 의도와는 달리 이 세 언어로 쓰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죄명패는 ‘그리스도의 왕권’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 두루 선포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곧 십자가 죄명패는 주님의 죽음으로 모든 사람이 구원받게 되었다는 ‘구원의 보편성’을 드러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이심을 알게 해 주었다. 예수님께 관한 빌라도의 최고 관심사는 바로 ‘주님의 왕권’이었다. 빌라도는 ‘하느님의 나라’와 ‘주님의 왕권’에 대해 예수님께 집요하게 신문했다. 그리고 그는 주님을 ‘유다인들의 임금’ 곧 ‘메시아’로 선포했다. 이 일로 빌라도는 주님의 왕권에 대한 증인이 되었고, 십자가 죄명패는 또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한 존칭이 되었다. 이처럼 죄인들과 함께 십자가형에 처해 죽으신 예수님을 유다인들은 능멸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안에서 ‘들어 올려진 왕’ ‘십자가에서 통치하는 왕’ 곧 ‘그리스도’라고 고백한다. 이런 이유로 주님의 죄명패는 하느님 사랑의 계시요 신앙의 승리를 드러내는 거룩한 표징이다.(1코린 1,18-31 참조) I.N.R.I는 요한 복음서 19장 19절에 나온 주님의 죄명패를 축약한 문자이다. 주님의 죄명패를 마태오 복음서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 예수다”(HIC EST IESVS REX IVDAEORVM, 마태 27,37), 마르코 복음서는 “유다인들의 임금”(REX IVDAEORVM, 마르 15,26), 루카 복음서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HIC EST REX IVDAEORVM, 루카 23,38)라고 소개하고 있다. 동방 정교회에서도 요한 복음서의 십자가 죄명패를 그대로 따라 표기하고 있는데 라틴어가 아닌 헬라어 표기에 근거해 ‘I.N.B.I’(Ιησουs ο Ναξωραιοs ο Βασιλευs των Ιουδαιων)로 적고 있다. 한편, 「200주년 신약 성서 주해」는 ‘나자렛 사람’(Ναξωραιοs, 나조라이오스 또는 나조래오스)의 의미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말은 우선 ‘나자렛 사람’을 뜻한다. 그러나 부수적으로 ‘나지르’를 뜻할 수도 있다. 나지르란 적어도 30일 이상 삭발하지 않고 술을 마시지 않으며 시체를 가까이하지 않기로 서원한 사람이다. 구약의 가장 대표적인 나지르는 삼손(판관 13,2-7)이다. 마지막으로 나조라이오스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뿌리에서 돋아난 ‘새싹’(네세르), 곧 메시아를 가리킬 수도 있다.”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2.08.09
![[사랑이피어나는곳에] 필리핀 이주민 여성, 강제이혼·정신장애에 귀향 차비도 없어](//cpbc.co.kr/CMS/newspaper/2021/12/rc/816058_1.1_titleImage_1.jpg)
[사랑이피어나는곳에] 필리핀 이주민 여성, 강제이혼·정신장애에 귀향 차비도 없어 한국 남성과 혼인했으나 이혼 당해 극심한 스트레스로 정신 장애 진단...귀향해야 하지만 치료비 등 없어 필리핀 이주여성 레이첼씨가 정신과 병원 침상에 앉아 성경을 읽고 있다. “귀신이 자꾸 저보고 죽으래요. 제발 도와주세요, 주님!”지난 추석, 경북 칠곡에 사는 필리핀 이주민끼리 모인 자리에서 레이첼(32)씨가 별안간 묵주를 붙잡고 울부짖었다. 화들짝 놀란 다른 필리핀인들이 몰려와 그를 붙잡고 “정신 차리라”며 흔들었다. 그러나 레이첼씨는 “주님, 살려주세요!”라고 계속 절규했다. 한바탕 소동이 있고 난 다음 날 그는 정신과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단기 정신병적 장애’를 진단받았다. 망상과 환각 등 조현병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질환이다. 의사는 발병 이유에 대해 “급격한 환경 변화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소견을 밝혔다. 레이첼씨는 2017년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한국인 남성과 결혼, 성주에서 살았다. 혹독한 시집살이에 시달리며 집안일과 참외농사 아르바이트까지 했지만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4남 5녀 중 장녀로 태어나 알코올중독자 아버지 대신 가장 역할을 하면서도 독학으로 대학까지 나온 그였다. 가정을 꾸리고, 돈을 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기쁘고 힘이 났다. 하지만 곧 남편이 무리한 요구를 해오기 시작했다. 레이첼씨가 번 돈으로 필리핀 가족을 돕지 말고, 남편 자신의 카드빚부터 갚으라고 했다. 본인은 일을 전혀 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레이첼씨가 거절하자 남편은 “당장 이혼하겠다”며 날뛰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레이첼씨에게 이혼은 ‘죄’였다. 날마다 남편을 붙잡고 눈물로 호소했지만, 한번 굳어진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결국, 남편은 2019년 없는 증거까지 만들어 이혼소송을 진행했다. 한국말이 서툴렀던 레이첼씨는 변호인조차 선임하지 못한 채 패소하고 말았다. 게다가 전남편이 비자 연장을 해주지 않아 비자가 만료되는 바람에 레이첼씨는 미등록자 신세가 됐다. 하지만 필리핀으로 돌아갈 순 없었다. 한국에서의 삶을 동경하는 동생들과 자신에게 많은 기대를 건 부모를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빈털터리인 채로 집에서 쫓겨난 그는 일자리를 찾아 공단이 많은 칠곡으로 왔다. 그리고 허름한 집에 살며 휴대폰 조립 일을 하다 결국 정신장애가 발병했다.현재 레이첼씨는 정신과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으며 매일 성경을 필사하고, 묵주 기도를 하고 있다. 한 달 남짓의 치료가 끝나면 미등록자로 자진 신고한 뒤, 본국으로 돌아갈 계획이다. 그동안의 병원 입원비와 치료비, 자진신고 벌금, 필리핀 항공료와 자가격리 비용을 모두 더하면 2000만 원이 넘는다. 하지만 그가 가진 전 재산은 수십만 원이 전부다. 레이첼씨는 “귀여운 아기를 낳고 싶었는데, 그러지도 못한 채 일방적으로 이혼당한 게 너무 아쉽고 속상하다”며 “이런 모습으로 고향에 돌아가 부모님 뵐 생각을 하니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후견인/ 칠곡군가족센터장 송정준(알베르토)가톨릭평화신문 독자 여러분, 낮은 자로 나타나시고 낮은 자를 축복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다시 한 번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레이첼씨가 치료를 잘 받고 건강하게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청합니다.성금계좌(예금주 : 가톨릭평화방송)국민 004-25-0021-108 농협 001-01-306122 우리 454-000383-13-102※레이첼씨에게 도움 주실 독자는 1월 2일부터 8일까지 송금해 주셔야 합니다. 이전에 소개된 이웃에게 도움 주실 분은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담당자(02-2270-2421)에게 문의 바랍니다. cpbc2021.12.28

세 명이 한마음으로 기도하니 기적같은 일이[미카엘의 순례일기] (56)타인을 위해 기도하기 많은 이들은 기적이 성경 속에나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하지만, 하느님을 향한 그리스도인 삶의 여정 자체가 은총이며 기적이 아닐까. 한 순례자가 아시리아 제국의 대도시였으며 요한 묵시록에 등장하는 소아시아 7개 교회 중 하나인 라오디케이아 유적터를 걷고 있다. 어느 본당의 순례 때 일입니다. 신부님의 전임지 본당에서 오신 세 분의 젊은 자매님께서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순례단 모두의 양해를 얻어 함께 떠나게 됐습니다. 다른 본당의 신자들이 함께 오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지만, 순례단은 내내 한 식구처럼 지내며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순례의 마지막 날 아침이었습니다. 모두가 공항으로 갈 짐을 정리하고 아침을 먹으러 가는데, 갑자기 총구역장님의 남편분께서 방문을 박차고 나와 크게 외치셨습니다.“기적이다, 기적이 일어났어요!”신자들이 깜짝 놀라 모여들었습니다. 방에 들어가 보니, 총구역장님께서는 침대에 앉아 거울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눈물을 흘리고 계셨습니다.“제가 머리를 흔들지 않고도 말을 할 수 있어요.”모두 손뼉을 치며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고 외쳤습니다. 사실 총구역장님에게는 틱 증상이 있었습니다. 말을 할 때마다 조금씩 고개를 흔들었지요. 처음 뵈었을 때, “제가 어릴 때부터 이랬어요. 좀 이상하더라도 이해해주세요”라며 웃으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평생을 함께해온 그 틱 증상이 하룻밤 새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이었습니다.순례의 마지막 날이었지만, 순례자들은 바깥 풍경 대신 총구역장님의 얼굴을 쳐다보느라 온종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순례를 모두 마치고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 총구역장님께서 마이크를 잡고는 함박웃음을 지으셨습니다.“다들 한 가족처럼 잘 지내주셔서 감사드려요. 특히 우리 자매님들께서는 어쩜 그리 싹싹하신지, 우리 본당 식구인 줄로만 알았어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저는 특별한 하느님의 선물을 받았어요. 또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버리면 어쩌나 하는 마음도 들지만, 남편이 ‘내일 다시 그 병이 도진다 해도 괜찮아. 단 하루라도 이런 당신을 볼 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해’라고 말해주었죠. 이런 저와 결혼해준 남편에게 항상 미안했는데 남편은 살면서 단 한 번도 제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지요. 신부님을 비롯해 모든 순례자, 그리고 특히 남편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꼭 드리고 싶어요. 감사합니다.”모두 힘껏 손뼉을 쳤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자매님들께 소감을 청하셨습니다. 한 분이 앞으로 나와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며, 허물없이 동생처럼 대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과 함께 고개 숙여 인사 하셨습니다. 다시 큰 박수가 이어졌습니다.그런데 자매님께서는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잠시 쭈뼛대시더니 다시 마이크를 잡으셨습니다.“이 말을 해야 하는 건지 아닌지 고민했어요. 괜한 자랑이나 교만으로 생각될까 봐요. 하지만 하느님을 믿고 말씀드릴게요. 신부님께서는 처음에 저희의 부탁을 거절하셨지만, 이런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아 ‘궂은일을 다 할 테니 신자들께 허락을 받아달라’고 매달렸고, 여러분들께서 받아주셨지요. 저희는 정말로 모든 일을 다 맡아 하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총구역장님께서 순례에만 집중하라며 당신께서 발 벗고 나서신 덕에, 첫날부터 할 일이 하나도 없었답니다.첫날 저녁에 셋이 모여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꼭 찾아보자고 의논을 했어요. 그러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마태 6.3)는 구절이 떠올라, 누구도 모르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 순례단을 위한 기도를 하기로 했습니다. 가장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도하고 싶었지만, 모두 처음 뵙는 분이라 그건 불가능했지요. 그래서 총구역장님을 위해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자매님께서 머리를 흔들지 않고 환하게 웃으며 성당에서 봉사하는 모습을 그렸지요. 12일 동안 하루 두 번 묵주기도를 한 것뿐이었지만, 세 명 모두 한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했어요.아침에 총구역장님을 뵙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방에서 서로 손을 잡고 난리가 났었답니다. 물론 저희의 기도가 그 기적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자매님께 기적을 주려고 계획하셨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타인을 위한 진심 어린 기도는 하느님께서 꼭 들어주신다는 것을, 이제는 정말 알겠습니다. 하느님, 신부님, 총구역장님! 그리고 여러분! 저희를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그 어느 때보다 크고 우렁찬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교회 역사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기적과 은총이 있지만, 사실 그것이 우리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이 기적은 성경 속에서나 있는 일이라고 여기실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 하느님을 알아가는 것, 서로를 만나 사랑하고 기도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엄청난 기적이 아닐까요? 그런 기적들이 모이다 보면 어느 날 그 순례단에 일어났던 것과 같은 커다란 선물이 되는 것이 아닐까요?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cpbc2022.02.22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3주일, 하느님의 말씀 주일 - 말씀을 마음과 행동으로 들어야](//cpbc.co.kr/CMS/newspaper/2022/01/rc/817343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3주일, 하느님의 말씀 주일 - 말씀을 마음과 행동으로 들어야 함승수 신부 우리는 ‘말을 잘 듣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합니다. ‘부모님 말씀을 잘 듣다’, ‘친구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듣다’, ‘음악을 잘 듣다’. 똑같이 ‘듣다’이지만, 각각의 ‘듣다’마다 다양한 뜻이 있습니다. 어떤 소리가 귀에 들어오는 일도 ‘듣다’이고, ‘남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집중하는 태도도 ‘듣다’이며, 남이 하는 말을 실행에 옮기는 일도 ‘듣다’입니다. 약 따위가 특정한 효험을 나타내는 모양도 ‘듣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것들 중 어떤 모습으로 ‘들어야’ 할까요? 어떻게 들어야 내가 듣는 그 말이 나의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게 만들 수 있을까요? 오늘의 독서와 복음이 우리에게 그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제1독서인 느헤미야기에서는 율법에 담긴 하느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는 백성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 말씀을 어떤 심정으로 듣는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무렵’이라는 말로 축약된 부분이 어떤 상황을 가리키는지 구체적으로 살펴야 합니다. “그때에 온 백성이 일제히 ‘물 문’ 앞 광장에 모여 율법 학자 에즈라에게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서를 가져오도록 청하였다”(느헤 8,1) 백성들 스스로 주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했다는 사실이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한 상황은 참으로 열악했습니다. 먹고살기 위해 삶의 근본 터전인 밭과 포도밭, 집까지 저당 잡혀야 했고, 아들딸들이 종살이를 하며 고생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오랜 유배생활을 마치고 겨우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맨손으로 삶의 모진 풍랑에 맞서야만 하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힘든 상황에도 누구의 권유가 아니라 스스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자 간청하는 고운 마음을 보시고, 하느님은 에즈라 사제와 레위인들의 입을 통해 그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십니다.에즈라 사제가 율법서를 읽어주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말씀을 들으면서 ‘울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들이 흘린 건 참회의 눈물이었습니다. 욕망에 눈멀어 하느님을 멀리했던 과거의 잘못들을 깊이 뉘우쳤고, 자신들의 죄가 초래한 슬픈 결과에 괴로워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절망에 빠져있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에즈라와 레위인들의 입을 통해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위로해주십니다. 당신께서는 그들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기준으로 그들을 단죄하여 기를 꺾기를 바라지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큰 절망을 경험한 그들이 힘과 용기를 얻어 당신 뜻 안에서 참된 기쁨을 누리는 새로운 삶을 살면 좋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신 말씀이 희망을 주는 ‘기쁜 소식’이 되기를 바라신 것이지요.복음에서 당신의 고향 마을 나자렛의 회당을 방문하신 예수님이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 중 ‘기쁨의 해’를 선포하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읽어주신 것도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마지막 말씀이 의미심장합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이는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만 해도, 그분의 뜻이 당신의 놀라운 능력으로 알아서 실현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구절을 그리스어 원문 그대로 직역하면 이런 뜻이 됩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그것을 듣는 너희 안에서 가득 채워져 완성되었다.” 여기서 ‘듣다’라는 말은 “남이 하는 말을 받아들여 그것을 실행에 옮기다”는 뜻입니다. 내가 들은 주님의 말씀이 한쪽 귀로 들어와 다른 쪽 귀로 허무하게 흘러나가지 않게 하려면, 그것이 내 안에 남아 나의 마음과 영혼을 참된 기쁨으로 가득 채워 완성에 이르게 하려면, 반드시 그 말씀이 뜻하는 바를 실행에 옮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말씀을 귀로만 듣지 말고 마음과 행동으로 듣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함승수 신부의 카카오스토리(https://story.kakao.com/_0TX0X5)에 가시면 매일 ‘생활 속 복음’을 볼 수 있습니다. 평화신문2022.01.18

성탄 전야 ‘기름지지 않은 음식’ 생선 요리 즐기며 주님 탄생 준비[고영심의 부온 프란조!] 27. 로마(Roma), 사랑(Amor), 그리고 시뇨라 데레사(Signora Teresa) ② 로마에서 보낸 18번의 12월에 관한 추억“제가 보냈던 로마에서의 18번의 12월이 어떠했는 줄 아시나요? 시뇨라 데레사? 맞아요, 너무도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대학 기숙사에 있었을 때의 12월과 로마인 이웃들과의 12월은 확연히 달랐어요. 정말입니다. 우선 학생 시절의 12월은, 너무 오래된 추억이지만, 다시 떠올리니 웃음이 나옵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대학생들이다 보니, 이미 크리스천 문화가 그들 삶 속에 녹아 있는 친구들의 성탄 문화는 솔직히 멋져 보였어요. 성탄 방학이 시작되면, 친구들은 한껏 멋을 내고 삼삼오오 시내로 나가더라고요. 값비싼 선물은 아니더라도 친구들에게 줄 선물, 카드를 사느라 온종일 거기에 정신이 팔려 저녁 식사 시간에 헐레벌떡 뛰어 돌아온 친구들이 생각납니다.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성탄의 종교적 의미와 이탈리아의 전통문화에 이르기까지 피부로 직접 느껴보니 풍요로운 마음이 저절로 생겼습니다. 그리하여 저도 친구들처럼 시내에 나가 이것저것 성탄 선물과 카드를 사들여 정성스럽게 포장하고 아름다운 언어를 총동원하여 카드를 썼어요. 제 축하와 정성을 받고 기뻐할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요. 캄캄한 어둠 속의 산타클로스처럼 친구들의 사물함에 살짝 넣고 왔지요. 아, 잽싼 다른 산타의 선물은 이미 친구들의 사물함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로마 우르바노대학 재학시절에 친구 안토넬라(왼쪽)와 성탄나무와 구유 아래에서 함께한 필자. 가나에서 온 피터의 성탄 무기 ‘빨간 양말’시뇨라 데레사, 며칠 전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리나라와 가나전이 있었어요. 가나에 승리를 열망하는 국민의 함성도 함성이었는데, 글쎄 저는 그 순간 잊고 있던 한 친구가 떠오르는 거예요. 같은 학년의 ‘피터’라는, 가나에서 장학생으로 온 친구였답니다. 저는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어요. 개강하자마자 저를 쳐다보더니 저에게 푹 빠진 것이란 걸요. 당시 동양인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고, 심지어 쌍꺼풀 없는 제 눈을 보고 누구나 ‘판타스틱(Fantastico)!’하다고 제 미모에 감탄을 연발했으니까요. 제가 한 미모했었거든요. 하하하. 농담 아녜요. 시뇨라 데레사! 강의 중에도 하도 저를 쳐다보니 얼마나 불편하던지, 피터에게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너희 주교님께 편지를 쓸 거라고 엄포를 놨는데도 요지부동이었어요. 아예 교수님들도 친구들도 피터의 이러한 일방적인 2m 애정 공세(항상 멀찍이서 바라봄)를 즐기는 듯하였습니다. 결정적으로 제가 웃음을 빵 터뜨렸던 그해 성탄, 피터는 바짝 붙은 머리에 가르마까지 하곤 까만 양복에 빨간 셔츠를 차려입고 나타난 것이었어요. 얼마나 향수를 뿌렸는지, 학생 식당 전체가 그의 향수 냄새로 진동하였어요. 성찬이 차려진 식당에 둘러앉은 학생들과 교수들 사이에서 피터는 역시 저를 주시하며 뭔가를 보여주고 싶은 여유만만한 미소(피터는 미소만 띠었다. 그의 앞니 하나가 빠진 핸디캡을 결코 드러내지 않았다.)를 띠더군요. 저에게만 보여주고 싶었던 그의 비장의 성탄 무기가 이미 다른 친구들에게 들켜 버린 것이었어요. 모든 친구가 박장대소한 이유는 그의 양말이었답니다. 피터는 분명 저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었어요. 순간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결코, 남들에게 주지 않는 환한 웃음과 저 빨간 양말의 의미를요. 시뇨라 데레사, 그날은 피터에게 화를 내지 않았어요. 친구들과 돌아가며 성탄 인사(이탈리아식으로 왼쪽 오른쪽으로 얼굴을 가져다 대는 인사)를 하다 피터 차례가 되자 ‘모니카 영심 코! 나 어때 근사해? 오늘 이 양말 신경 썼는데 괜찮아?’라며 앞니 없는 함박웃음으로 ‘성탄 축하해, 부온 나탈레!(Buon Natale) 모니카 영심 코!(Monica Young Shim Ko, 피터는 항상 나를 이렇게 불렀다)’ 그냥 미소만 띠는 게 훨씬 나아 보였지만, ‘응~ 멋있어. 부온 나탈레, 피터!’라며 성탄 인사를 건넸죠. 시뇨라 데레사, 그때 피터에게 물어보지 못한 말이 있었어요. 지금도 궁금하답니다. 그 양말이 글쎄 추기경의 양말색깔과 똑같다고 쑤군거리는 친구들도 있었거든요. 학업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간 피터는 고향의 가나 규수와 혼인하여 교회를 위해 열심히 일하며 산다는 이야기를 그의 후배인 마르타를 통해서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역만리에서 같은 날, 피터도 한국-가나전을 보며 ‘모니카 영심 코’를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생전 처음으로 만나 같이 공부했던 아프리카의 피터, 모잠비크의 안젤라, 콩고의 아순타 등 친구들이 생각나는 12월입니다. ‘피터, 그때 그 양말 어디서 구한 거야?’ 라고 물어볼 날이 올까요?왜 육류는 제외하고 생선으로만 준비할까시뇨라 데레사, 이탈리아인들은 성탄 당일보다 12월 24일 성탄 전야의 음식을 준비하는 데 온 신경을 쓴다는 것을 시뇨라 데레사의 옆집으로 이사하고 알았습니다. 그 하루의 저녁 식사를 위해 소비하는 비용이 천문학적 금액이라고 좀 과장하여 말하는 이들도 있더군요. 왜냐하면, 평소에 비싸서 사지 못했던 생선이나 해물을, 그것도 생물로 사려고 지갑을 기꺼이 여니까요. ‘왜 성탄 전야 저녁 식사를 육류를 일체 제외하고 생선으로만 준비하느냐?’는 저의 질문에, 시뇨라 데레사를 비롯하여 동네 사람들은 ‘응, 우린 옛날부터 그렇게 해왔어. 우리 전통이지’라고 답해 주셨잖아요. 제 의문을 풀어 준 분은 알렉스 본당 신부님이셨어요. 기억하세요? 그냥 ‘조상들이 그렇게 해왔으니 그런 거야’라는 상투적인 생각에 답답하셨는지, 대림 시기인 어느 주일 미사에 설명을 해주셨던 거요. 예수님 기다리며 함께하는 성탄 전야 만찬금요일, 성령 강림, 모든 성인, 성탄의 전야는 금식 또는 가난한 음식으로 경건하게 맞는 가톨릭교회가 지켜오던 신심이었고, 특히 성탄 전야의 ‘기름지지 않은 음식을 먹는 날(Giorni di magro)로서 구세주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을 더 깨끗이 표현하고자 시작했다고 그러시더군요. 성경적 의미도 설명해주셨는데 생각이 나지 않는군요. 어쩌면 이 의미는 예수님을 기다리며 함께하는 식탁에 육류(피)보다는 좀더 영적으로 깨끗한 생선이나 해물을 식탁에 올리는 게 낫지 않겠냐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네요. 그렇게 생선이 가난한 식탁의 주인공이 되면서 오늘날에는 외려 빈부격차까지 느끼게 되었으니, 안타깝습니다. 돈 없는 사람들은 그 생선을 비싼 생물로 살 수 없으니 냉동 생선으로 만족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고 그게 현실이고 보니, 성 바오로 6세 교황께서는 종교적 계율로 금식과 단식의 실천을 완화하고 제한한 것이 감사하게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미 이탈리아의 국민적 전통으로 자리 잡은 성탄 전야 식탁은 시뇨라 데레사만 봐도 압니다. 성탄 2주 전에 이미 사다 놓으신 ‘바칼라(Bacal, 소금에 절인 대구)’를 물에 담가 소금기를 없애기 위해 밤낮으로 물을 갈던 것도 기억납니다. 하얀 속살로 변하는 바칼라는 몇 가지 맛있는 요리로 변신하니, 저는 군침을 흘리며 성탄 전야 성찬만 기다렸지요. 시뇨라 데레사, 제 위층에 사는 세 아이의 엄마인 당신 막내딸 마우라의 성탄 전야 만찬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녁 8시에 시작한 만찬이 새벽 3시에 끝났던 그 날의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죠. 아, 제가 다음 이야기에 돌아가신 시뇨르 피르미노(Signor Firmino)를 언급해도 되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두 분이 늘 제 앞에서 티격태격 싸우신 스토리는 되도록 언급 안 할게요. 시뇨라 데레사, 춥지 않은 것 같은데, 으슬으슬 추운 로마 날씨조차 그립습니다. 건강 유의하시고 안녕히 계세요. ‘뜻깊은 대림(Buon Avvento)!’” 레시피 / 성탄절 생선 주파(Zuppa di pesce di Natale) ▲준비물 : 씨를 뺀 생토마토 2개, 홍합 적당량, 봉골레(Vongole, 바지락), 문어, 오징어, 새우, 가재, 마늘 2쪽, 셀러리(Celery), 양파, 당근, 페페론치노(Peperoncino, 매운 고추 일반), 이탈리안 파슬리 프레체몰로(Prezzemolo), 화이트 와인(드라이, Secco), 올리브유(엑스트라 버진), 소금, 후추. →채수 : 깊은 냄비에 물 3ℓ, 화이트 와인 300㎖, 당근 1개, 셀러리 1줄기, 양파 1개, 파슬리 줄기 1개, 페페론치노 1개, 소금을 넣고 끓인다. →모든 해물은 흐르는 물에 잘 씻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 놓는다. 문어를 데친 물은 버리지 않는다. →홍합과 바지락은 삶아서 살은 발라내고, 홍합과 바지락을 삶은 국물은 체에 밭친 다음 따로 둔다. →냄비에 마늘과 당근, 양파, 셀러리를 잘게 다진 후 올리브유를 두르고 나무 주걱으로 볶는다. →씨를 뺀 토마토를 잘게 썰어 같이 볶은 뒤, 가재와 화이트 와인을 넣고 바짝 볶는다. →홍합과 바지락, 새우만 제외하고 준비된 해물(오징어, 문어)을 넣고 만들어 놓은 채수와 해물 국물을 넉넉히 부은 뒤 40분간 중불에서 끓인 뒤 마지막으로 홍합, 바지락, 새우를 넣고 10분간 끓인다. 소금과 후추로 간을 맞춘 뒤 올리브유를 살짝 올린 뒤 접시에 오븐에 구운 통곡물빵과 곁들여 낸다. ▲모니카의 팁 : 오징어와 문어를 충분히 끓여야 주파(Zuppa)의 맛이 좋다. 가재가 없으면, 꽃게를 이용해도 좋다. 바지락과 홍합의 육수가 짜니 마지막에 간을 맞출 때, 소금은 적당량만 넣으면 된다. 매콤한 맛을 즐기려면, 주파 위에 페페론치노를 1개 정도 부수어 넣으면 된다. 바삭한 빵과 함께 즐기는 주파의 맛은 우리 입맛에 맞는 최고의 겨울 음식이다. 고영심(모니카) 디 모니카 대표 cpbc2022.12.07

“부온 프란조!”… 역대 교황들이 선호했던 요리를 만나다창간 34주년 기획 “부온 프란조(Buon pranzo)!” - 1. 연재를 시작하며 프란치스코 교황은 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 광장에 모인 신자들에게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부온 프란조!”라고 인사한다. 지난 4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일반알현 당시 어린이들에게 둘러싸인 프란치스코 교황. 【바티칸시티=CNS】 의식주(衣食住)라지만, 식(食)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 조건이다. 또한, 식사(食事)는 성사(聖事)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 파스카 성삼일을 시작하는 주님 만찬 성목요일에 성체성사와 성품성사가 제정된 것만 봐도 식사가 얼마나 깊은 의미를 지니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성경에서도, 본당이나 수도 공동체, 교회의 삶에서도 식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을 맺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창간 34주년 기획으로 디 모니카 대표 고영심(모니카)씨가 집필하는 ‘부온 프란조(Buon pranzo)!’를 연재한다. “맛있는 점심 되세요”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다. 교회와 숱한 성인들, 교회에 걸작을 남겼던 화가들, 교황님들, 성경에 나오는 음식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기획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부온 프란조(Buon pranzo)!” 나의 제2의 고향, 로마! 인생의 3분의 1을 로마에서 살았으니, 로마가 나의 제2의 고향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러다 보니 로마에 관한 이야기나 기삿거리는 항상 나의 귀를 쫑긋거리게 하며 지대한 관심을 두게 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Omnes viae Romam ducunt)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고대로부터 수천 년간 로마의 길들은 아직 고고하게 존재하며, 지금까지 사람들로 하여금 그 길로의 여정을 걷도록 끊임없이 초대한다. 일찍이 그 초대에 응했던 나로서는 ‘로마는 영원하다’(Urbs aeterna)라든지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Non fuit in solo Roma peracta die)는 짧지만, 강한 로마에 대한 역사적 표현에 매료된 나머지 로마를 사랑하였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 르네상스 문화가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 로마, 그 안에서 굳건하게 지켜 온 신앙과 철학의 장인 그곳에서 나의 청춘은 꽃을 피웠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이 놀라운 경험은, 나로 하여금 햇살처럼 번지는 밝고 힘찬 자신감으로 아직도 내 삶을 빛나게 한다. 바라건대, 나는 잘 익어가는 레몬처럼 더욱더 성숙해지고 싶다. 아울러 거의 20여 년 로마에서 살면서 알게 된 ‘쿠치나 로마나’(Cucina romana), 즉 로마식 요리를 통해 매일매일의 나의 삶이 풍요로워지고 있으니, 나는 “내 인생의 르네상스(Rinascimento)다”라고 친구들에게 유쾌하게 떠벌린다. 로마에서 살면서 이웃들에게 배운 것이며, 가족들끼리 운영하는 단골 정통 로마식 레스토랑이나 피자를 전문으로 하는 요리점 피체리아(Pizzeria)에서 먹어 본 맛의 기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나의 스튜디오에 작은 테이블을 놓고 나의 음식과 문화를 경험해 보고 싶은 사람들과 근 8년을 만나는 중이다. 내게 항상 큰 기쁨을 주는 전통 이탈리아 요리는 식재료에 대한 진실성과 단순성이 바탕이 된다. 그리하여 나의 레인지 위의 냄비에서 만들어지는 음식은 패스트푸드(Fast food)가 아닌, 시간을 존중하는 슬로푸드(Slow food)다. 시간에 대한 존중 안에서 요리하는 동안 ‘사랑’과 ‘인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깨우쳐 주기 때문이다. 식재료에 대한 존경심과 시간에 대한 존중 없이는 진정한 ‘음식’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나만의 진리가 생긴 것이다. 나의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건네는 말은 대부분 “너무 행복했어요”라는 말이다. 음식을 통해 행복이라는 기쁨을 준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가 깊다. “삶에서 가장 강렬한 기쁨은 우리가 다른 이에게 기쁨을 줄 수 있을 때에 생겨납니다”(「사랑의 기쁨」 제129항)라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을 통해 언급하고, 더 나아가 교황은 1996년에 개봉됐던 덴마크 영화 ‘바베트의 만찬’(Babette’s Feast)을 언급한다. 영화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식탁의 힘’이다. 음식을 통해 기쁨을 보여준 요리사에게 “아! 당신은 천사들을 기뻐 뛰놀게 할 거예요!”라는 말과 함께 포옹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교황, ‘함께하는’ 생명의 식탁으로 초대“부온 프란조(Buon pranzo)!” 프란치스코 교황은 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 광장에 모인 신자들에게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부온 프란조(Buon pranzo)!” 곧 “행복한 점심 되세요!”라고 당부하는 최초의 교황이다. 교황은 “오늘날 지나친 개인주의로 우리가 자신을 타인에게 아낌없이 주는 것이 어렵게 됐다”(「사랑의 기쁨」 제33항)고 지적한다. 가정의 식탁에서도 마찬가지다. 온 가족이 함께 모여 먹는 식탁이 드물게 됐고, 나 혼자 먹는 것에 익숙해졌으며, 타인과의 식사는 어색하게 되었다. 물론 코로나19가 가져다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혼자’에 익숙해져 버린 이 현실에서 파생되는 환경 오염, 우리 몸에 가해지는 보이지 않는 건강에 대한 위협, 돈이면 무엇이든 사들여 먹는 이들의 특권이 만연하면서 많은 사람이 그 특권 때문에 희생돼야 하는 불공정이 보편화하였다. 교황의 ‘부온 프란조(Buon pranzo)!’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개인을 넘어선 ‘공동의 사람들’(comuni)에게 ‘함께하는’ 생명의 식탁에 참여하라고 매주 신자들에게 던지는 당부가 아닐까? ‘함께하는’ 식탁에서는 음식의 성스러움이 회복되는 것이다. 즉 음식은 ‘친교’(comunione)다. 음식과 함께할 때 타인의 기쁨과 고통, 고단함과 희망이 보이고, 또 그것을 나눌 수 있다.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사랑을 나눈다는 것과 같다. 같이 먹는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타인과 높게 쌓인 불신과 적대의 벽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음식 관련 에피소드와 레시피 소개나는 지면을 통해 두 명의 이탈리아 예술 거장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와의 만남을 시도해 보고 싶다. 그들이 500여 년 전 로마에서 살았을 때의 삶과 나의 로마에서의 삶을 로마라는 같은 공간 선상에 놓고 그들과 추억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시간이야 500년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로마를 거닐다 보면 그들과 어깨를 마주치는 게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한다면 의아해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겐 그렇게 느껴지고, 그들의 옷자락이 바람에 흩날리는 소리도 환청과도 같이 들린다. 또한, 바티칸 교황청에 거주하였던 현대의 몇몇 교황들, 비오 10세나 성 요한 23세, 성 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토 16세,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호했던 음식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고 여기저기 책자를 뒤져 보았다. 아울러 로마의 이웃이었던 나의 영원한 스승 시뇨라 데레사(Signora Teresa)의 로마식 요리와 로마에서의 삶에 대한 재밌는 추억과 경험을 적어보고 싶다. 두 천재 예술가와의 만남이 다소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을 수 있겠지만, 요리를 즐겼고 공방 친구이기도 했던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와 피렌체에서 식당을 운영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요리와 시간의 차이가 느껴지긴 하지만, 그 당시의 레오나르도가 주장했던 식탁의 매너를 적어보고 싶다. 또 ‘미켈란젤로 없는 로마는 상상할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그의 작품이 교황청과 로마 곳곳에 전시되어 있고, 그의 발자취가 아직 살아있으니 그가 로마에서 즐겨 먹었던 음식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상상도 포기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상의 나래는 20여 년간 로마에서 살며 터득한 유쾌하고 행복해진 나의 삶의 방식이 아닐까? 에피소드 하나에 로마식 요리 한 가지의 레시피(요리법)를 선물해 주고 싶다. 나의 이 에피소드를 읽는 독자들이 레시피를 보며 로마 요리를 하나하나 만들어 보기를 권하면서 영화 ‘바베트의 만찬’에서 보여지고 느껴지는 만남과 치유, 그리고 화해로 무너진 우리의 식탁에 새로운 향기가 흐르기를, 가족에게 기쁨을 주고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고영심(모니카) 디 모니카(di monica) 대표필자 약력=▲교황청립 우르바노대학 선교학 석사, 박사과정 수료 ▲교황청립 라떼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혼인과가정신학대학원 석사, 박사과정 수료 ▲현재 수원가톨릭대 강사 ▲통번역가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부설 평화나눔연구소 연구위원 ▲쿠치나 메디테라네아(지중해식) ‘디 모니카’ 대표 cpbc2022.05.25

책꽂이 아무것도 요구하지 말고 아무것도 거절하지 말라 / 르네 라가야 신부 지음 / 돈보스코미디어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1567∼1622) 서거 400주년 기념 도서. 필리핀 살레시오회 르네 라가야 신부가 살레시오 성인의 거룩한 발자취를 기록한 요약본 전기를 출간했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가 귀족의 삶을 버리고, 어떻게 가톨릭교회의 사제가 되었는지 종교개혁 시기에 제네바교구의 주교로서 걸었던 가시밭길 같았던 여정에 주목했다.시를 읽는다 / 박완서 글ㆍ이성표 그림 / 작가정신시대를 뛰어넘는 문학의 거장, 고 박완서(정혜 엘리사벳, 1931∼2011) 작가의 시 읽는 즐거움, 좋은 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담긴 문장이 시그림책으로 탄생했다. 박 작가의 문학을 향유하는 방식에 대한 담담한 소회와 삶과 죽음,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 편의 시처럼 녹아있다. 40년 동안 그림책 작업을 해온 이성표 작가는 박 작가의 문장을 따뜻하고 군더더기 없는 맑은 그림으로 구현했다.실로암 호숫가 / 김춘호 시집 / 문지사김춘호(프란치스코) 시인의 두 번째 시집. 2012년에 출간한 시집 「고죄」에 이은 두 번째 작품집으로 실명으로 인해 칠흑같이 어두운 삶을 살았던 시인의 빛을 향한 소망이 담겼다. 그는 녹내장과 황반변성으로 70대에는 실명 상태에까지 이르렀지만, 기적같이 찾아온 각막 이식으로 새 삶을 찾았다. 실로암은 성경에 등장하는 신비로운 호수로, 그 호숫물에 눈을 씻으면 잃었던 시력을 다시 찾을 수 있다는 말씀이 숨어 있는 곳. 그에게 천국이 되어준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동병상련의 사랑을 나눈 이들과의 애틋한 사랑도 시어에 스며들었다.한국천주교 순교 성지를 찾아서 / 문갑순 지음 / 프리뷰식품영양학 문갑순(유스티나) 박사가 주교회의가 추천하는 국내 성지 167곳을 순례하고 펴낸 책. 한국 천주교회 신앙 선조들의 불꽃 같았던 삶과 죽음의 현장을 남편과 함께 두 발로 찾아다니며, 역사적 설명과 함께 현장을 소개했다. 성지 소개 위주의 기록이 아닌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전파된 역사적 배경을 중심으로 주요 성지를 소개했다. 문 박사는 현재 인제대 식품생명과학부 명예교수이며, 김치와 쌀, 콩 등 한국 전통 음식을 연구해왔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cpbc2022.02.16

일 년 주기로 하느님 구원 경륜 기념[가톨릭 영상 교리] (15) 전례 주년 대림 시기, 성탄, 사순 시기, 성주간, 부활 시기, 연중 시기…. 신앙생활을 하면서 다들 여러 번씩 들어보셨을 말인데요. 이런 것을 통틀어 무엇이라고 할까요? 네! 맞습니다, 전례 주년. 일 년이라는 시간 안에 펼쳐놓은 거룩한 전례의 주기, 혹은 시간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하느님의 거룩한 구원사업을 1년이라는 인간의 시간 안에서 만나고, 기념하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1년이라는 인간의 시간으로 하느님의 구원 사업을 기념하는 전례주년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을까요?대림 시기를 시작으로 일 년 주기로 이뤄져전례주년은 언제나 주님 성탄 대축일과 주님 부활 대축일을 큰 축으로 하여 이뤄집니다. 그리고 주님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 시기로 한 해를 시작합니다.대림 시기는 인류 구원을 위한 구세주 탄생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4주간의 대림 시기를 지내고 나면 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을 맞는데요. 이날은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날입니다. 이어 주님 공현 대축일과 주님 세례 축일을 지내고 나면 교회는 연중 시기로 들어갑니다. 이 기간에는 그리스도 신비의 특별한 부분을 경축하지 않고, 주일을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공생활 신비 전체를 기념하고 묵상합니다. 주님 성탄 대축일은 12월 25일로 정해져 있지만 주님 부활 대축일은 날짜가 정해져 있지 않고 매년 달라지는데요, 거기에는 정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곧 춘분이 지나고 첫 보름달이 뜬 다음 주일을 주님 부활 대축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부활 대축일 날짜가 정해지면 그 이전의 40일을 인류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희생과 수난을 묵상하며 회개하고 속죄하는 기간인 사순 시기로 지냅니다.사순 시기는 재의 수요일로 시작해서 성주간으로 마치는데요. 주님의 수난과 돌아가심과 묻히심과 부활을 기념하는 성주간에 파스카 성삼일을 맞이합니다. 주님 만찬 성목요일에는 성체성사의 제정을 기념하고,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성토요일에는 주님의 무덤 옆에 머무르며 주님의 부활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마침내 주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는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이합니다. 우리 주님이 되살아나신 최고의 날입니다.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뒤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는데요.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내려오신 날을 성령 강림 대축일로 지내면서 그 사이 기간을 특별히 부활의 기쁨을 노래하는 부활 시기로 지냅니다. 성령 강림과 함께 교회 공동체가 생겨났고 그래서 교회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순례 여정을 가면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합니다.이처럼 전례주년은 대림 시기를 시작으로 성탄과 사순과 부활을 거쳐 연중 시기에 이르기까지 일 년을 주기로 하느님의 구원 경륜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렇게 일 년을 주기로 전례주년을 지내는 것은 단지 하느님께서 인류 역사에서 이룩하신 놀라운 구원을 경축하고 기념하는 데만 있지는 않습니다. 전례력, 곧 교회 달력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구원 경륜을 되새겨주며 하느님 자녀로서 보다 충실히 살아갈 것을 일깨워주는 신앙의 나침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례주년에 맞춰 성당의 장식과 사제의 제의 색깔이 바뀌고, 전례의 경문도 변하며, 성경 독서도 가해, 나해, 다해로 돌아가면서 달라집니다. 대축일, 축일, 기념일 그리고 성월또한 전례주년, 달리 말해 전례력, 곧 교회 달력은 오래전부터 작은 부활 축일로 여겨온 주일은 물론이고 날마다 그리스도의 신비를 기념하는데요. 그 중요도에 따라 대축일, 축일, 기념일로 구분하고 미사와 시간 전례로써 거룩하게 지냅니다.축일 중에는 특별히 모든 신자가 미사에 참여해야 하는 의무 축일이 있는데요. 지역 교회 사정에 따라 그 수를 조정할 순 있지만, 한국 교회는 현재 모든 주일과 함께 주님 성탄 대축일(12월 25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1월 1일), 성모 승천 대축일(8월 15일)을 의무 축일로 정하고 있습니다. 한편, 전례주년에 따라서는 신자들이 특별히 지키고 실천해야 할 것들도 있는데요. 예컨대 사순 시기의 재의 수요일과 성금요일에는 금식을 해야 하고, 일 년에 적어도 한 번 부활 시기에는 고해성사를 받고 영성체를 해야 합니다.그밖에 일 년 중 특정 달을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 또는 성인께 봉헌하고 특별한 전구와 은혜를 청하며 기도하고 신심 행사를 갖는 ‘성월’도 있는데요. 한국 교회가 정한 성월로는 3월 성 요셉 성월, 5월 성모 성월, 6월 예수 성심 성월, 9월 순교자 성월, 10월 묵주기도 성월, 11월 위령 성월이 있습니다.이렇듯 우리는 교회가 정한 전례주년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사업, 즉 하느님의 일을 기억하고 또 참여하게 되는데요. 그 각각의 의미를 충분히 살펴보고 묵상하면서 보낸다면 우리 신앙생활의 맛과 감동은 더욱 커지지 않을까 합니다. 평화신문2022.07.19
![[생활속의 복음] 주님 승천 대축일 - 슬픈 이별과 충만한 기쁨](//cpbc.co.kr/CMS/newspaper/2022/05/rc/824651_1.1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주님 승천 대축일 - 슬픈 이별과 충만한 기쁨 아기들은 성장하면서 ‘분리불안’을 경험합니다. 어떤 아기들은 엄마가 제 눈앞에 없으면 자기를 떠나버렸다고 생각해 엄청난 상실감과 불안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잠시 안 보였던 엄마가 다시 나타나 안정적으로 그 사랑 안에 머무르는 일이 반복되면, 아이는 엄마가 반드시 돌아와 자기를 사랑해주리라는 깊은 신뢰를 갖게 됩니다. ‘분리불안’을 잘 극복해야 아기는 엄마가 없는 일상에서도 불안해하지 않고 씩씩하게 자기가 할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당신이 곁에 없는 상황에서 ‘분리불안’에 빠지지 않고, 흔들림 없이 담대하게 맡겨진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몇 번이나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설명하십니다. 당신이 적대자들에 의해 고난을 겪고 돌아가시겠지만, 힘이 없어 무력하게 죽임을 당하시는 게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하느님 말씀이,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아버지의 계획이 이루어지게 하도록 스스로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시는 것임을 밝히십니다. 아버지께서는 당신께 순명한 아들을 죽음에서 일으키시어 부활시키실 것이고, 그런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세상의 죄’를 없애시려는 하느님의 계획이 실현될 테니, 사람들이 그 소중한 구원의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회개하여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여 준비시키라는 중대한 사명을 맡기십니다. 하지만 제자들에게는 맡겨진 사명보다, 당장 예수님과 이별해야 하는 슬픔이 더 커 보입니다. 그들은 하늘 위로 서서히 사라져가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큰 슬픔과 아쉬움, 막막함과 두려움 속에서 주님의 모습을 쫓아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던 겁니다. 언제까지나 그러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곁을 영영 떠나버리신 게 아닙니다. 그분의 존재가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종말의 때가 되면 돌아오시어 우리를 사랑으로 감싸주실 것입니다. 어머니가 자녀들과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여러 방법으로 그들을 사랑하시고 보살피시듯, 주님께서도 보호자 성령을 보내시어 언제나 우리와 함께 머무르시며 우리를 사랑하시고 보살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멍하니 하늘만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그저 언젠가 구원받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에 사로잡혀 두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다시 오실 주님과 함께 하늘나라의 삶을 기쁘게 누리고 싶다면, 지금 여기에서 하늘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승천을 목격한 제자들은 그분과의 슬픈 이별에도 충만한 기쁨 속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냈습니다. 구원에 대한 희망이 그들 마음속에 기쁨이라는 불길을 일으켰기에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하늘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내 마음속에도 그런 희망과 기쁨이 있는지요?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줄곧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바라보고 사시다가 결국 하늘에 올라 그분과 하나가 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주님을 바라보고 살면 언젠가 하느님 품에서 영원한 복을 누리게 될 것을 희망하고 있는지요? 하늘과 맞닿은 이 세상 어디서나 섬김을 실천하는 사람들 안에 예수님은 살아계십니다. 자기를 과시하지 않고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하는 이들 안에 예수님은 살아계십니다. 실패의 아픔에도 절망하지 않고 하느님 사랑의 섭리에 기대어 다시금 새롭게 출발하는 이들 안에 예수님은 살아계십니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예수님이 내 안에 살아계시게 하는 것이 부활입니다. 서로의 모습 속에 새겨진 주님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면, 우리는 이미 승천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cpbc2022.05.24

가톨릭은 성모 마리아를 믿는 종교일까 [가톨릭 영상 교리] (9) 성모 마리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느 성당을 가더라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성모상입니다. 또한, 대부분의 신자 가정에도 예외 없이 성모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부 이웃 종교 신자들은 가톨릭교회를 마리아를 믿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성모님을 믿는 종교일까요?성모님 흠숭이 아닌 공경가톨릭교회는 성모님을 공경하는 것과 하느님을 흠숭하는 것을 엄격히 구별합니다. 가톨릭교회가 성모님을 공경하는 이유는 성모님이 예수님을 낳으시고 기르신 분으로서 하느님 뜻에 온전히 순명하시며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따르는 길, 곧 신앙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또, 성모님은 하느님의 인류 구원 사업의 협조자이시기 때문입니다.성모님께서는 당신이 구세주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순종하셨습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을 잉태하신 순간부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예수님과 함께하시며 예수님의 고통을 함께 겪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로는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는 공동체 안에 머무셨고, 성령 강림의 순간에도 사도들과 함께하시며 교회의 시작을 도와주셨습니다. 성모님은 오늘날에도 예수님 곁에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빌어주시는 우리의 어머니이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께 청하시고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얻어주시는 분입니다. 그렇기에 가톨릭교회는 성모님을 특별히 공경하고, 하느님의 어머니를 기념하는 축일들을 지내고 묵주기도와 같은 기도를 통해 공경하고 전구를 비는 것입니다.성모님에 대한 네 가지 교리성모님에 대해 가톨릭교회는 네 가지 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첫째,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성모님께서는 참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는 데 특별히 협조하신 하느님의 어머니이십니다.교회가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라 부르는 것은 신성을 지니신 예수님을 낳으셨다는 사실에서 비롯하며, 아드님이신 예수님이 하느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둘째, 성모님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분’입니다. 천사는 성모님께 예수님의 잉태를 예고하면서 “은총이 가득한 이여”라고 말합니다. 이는 성모님 역시 잉태되신 순간부터 죄에 조금도 물들지 않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성모님은 세상의 구원자로 오실 하느님의 아들을 낳고 그분과 일치하며 하느님의 구원 활동에 협력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성모님은 죄에서 해방된 사람이어야 합니다.셋째, 성모님은 ‘평생 동정’이셨습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을 낳는 그 순간에도, 또 그 후에도 동정이신 분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예수님의 형제들”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하여 성모님의 평생 동정을 반박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형제라는 말은 당시 풍습에 따라 예수님의 가까운 친척을 일컫는 것입니다. 성모님의 동정은 예수님께서 오로지 성령의 힘으로 잉태되셨음을 나타내고, 이는 예수님이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징표입니다.넷째, 성모님은 ‘승천’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지상 생활을 마치고 하늘에 계신 아드님께로 돌아가셨습니다. 몸과 영혼 그대로 지니고 하늘로 올림을 받으셨습니다. 성모님은 죄에 물든 일이 없으셨기에 무덤에 계시면서 죄가 세상에 가져온 죽음의 지배를 받으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또한,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도 성모님처럼 그리스도의 완전한 영광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는 희망의 표지입니다. 모든 성인들 중의 으뜸이신 성모님은 하느님을 향한 신앙 여정을 모범적으로 살아가신 분으로서 지금 우리 곁에 계시면서 우리도 그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계십니다.“저희를 하느님 아버지께 이끄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주님의 어머니 동정 마리아를 저희 어머니가 되게 하시고 저희의 전구자로 세우셨나이다. 비오니, 성모 마리아의 전구를 들으시어 저희가 주님께 간구하는 모든 은혜를 받아 누리게 하소서. 아멘.” (‘성모 성월 기도’ 중) ▶가톨릭 영상 교리 바로 가기cpbc2022.06.07

장봉훈 주교 "평화의 기도회 등 잘못된 신심단체와 기도모임 불허"청주교구장 공문, 「진리의 책」「십자군 기도」 등 비인가 서적 폐기 당부장봉훈 주교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는 최근 교구에서 그릇된 신심단체나 기도모임에 참여하거나 활동하는 것을 금지하고 교회가 금하는 서적이나 성물에 대해서도 일체 읽거나 사용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장 주교는 지난 4일 자로 발표한 「잘못된 신심단체와 기도모임, 서적에 관한 청주교구의 사목적 대응」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통해 “일부 신자들이 잘못된 심심행위를 조장하는 단체와 기도회에 참여하거나 참 신앙에 혼란을 주는 서적과 성물을 접하면서 자신은 물론 교회 공동체에 해악과 역표양을 주고 있다”고 지적하고, 신자들의 현명한 분별과 사목자들의 각별한 관심을 촉구했다. 장 주교가 잘못된 신심단체로 명시하고 활동과 모임 일체를 허락하지 않으며 신자들의 가입과 참여를 금지한 단체는 ‘평화의 기도회’라는 이름의 단체로, “이 모임은 교회가 공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메주고리예 성모 발현과 메시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면서 “이 모임은 또 한국 천주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준하지 않은 단체여서 불허한다”고 밝혔다. 장 주교는 이어 “「진리의 책」이나 「십자군 기도」 등은 교회 내에서 인가되지 않은 서적으로, 그 내용이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벗어나 신자들에게 잘못된 신심을 전할 위험이 있다”며 “따라서 이런 책자를 전달하거나 그것을 통해 기도하며 그와 관련된 어떤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당부하며, 이미 소지한 책자는 폐기하기 바란다”고 요청했다. 아울러 “기타 성경공부 모임으로 속여 말하는 이단, 예를 들어 신천지 같은 모임과 잘못된 신심서적, 불경스런 성물 사용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 주시기를 바라고, 조금이라도 이상한 것을 느끼거나 궁금한 것이 있으면 본당 주임신부나 교구에 문의해 주시기 바란다”고 거듭 요청했다. 또 “본당과 기관 내 신자들이 그릇된 신심행위나 모임에 참여하지 않도록 교육해 주시고, 한국 천주교회와 교구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한 모임이나 단체가 아닌 경우에는 어떤 이유에서든 교구에서 활동하지 않도록 협조해주시고 지도하지 말아달라”고 교구 사제단에 당부했다.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cpbc2022.02.11

우리 주 살아계시네, 아멘[장일범의 유쾌한 클래식] (46)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3부 주님 부활 대축일을 지내며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 부활을 기뻐하고 축하했다. 영미권에서는 ‘Happy Easter’, 이탈리아에서는 ‘Buona Pasqua’, 스페인어권에서는 ‘Feliz Pasqua’, 독일어권에서는 ‘Frohe Ostern’로 인사한다. 이렇게 전 세계인이 함께 축하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음악이 바로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다. 메시아 1부는 예언과 아기 예수의 탄생을 다뤄 ‘주님 성탄 대축일’과 잘 어울린다. 2부는 메시아의 수난과 속죄, 부활, 승천,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이야기이며 제3부는 ‘부활과 영생’으로 사순 시기에서 주님 부활 대축일까지의 시기와 잘 어울린다. 3부는 ‘내 주는 살아계시네’로 시작한다. 구약성경 욥기의 구절에 기초해서 메시아를 향한 신앙고백을 담은 소프라노의 아리아로 시작한다. 이 아리아는 ‘그리스도가 부활함으로써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다’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15장에서 가져온 내용이다. 부활의 신앙을 ‘차분하게’ 노래하는 이 곡은 메시아 전체를 통틀어서도 매우 유명한 아리아 중 하나다. 바이올린 오블리가토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해서 마치 다시 살아오실 줄 알았다는 듯 담담하고 차분하게 받아들인다. 당연히 돌아오실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자신의 단단한 신앙을 선보이는 곡이다. 51번 곡은 ‘하느님께 감사드리자’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덕분에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자’는 짧은 합창곡이 환희에 가득 차 울려 퍼지게 된다. 52번 곡은 ‘하느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로 소프라노의 진지한 아리아다. 다시 살아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니 그는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시며 우리를 위해 간구(중재)하신다. 메시아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53번 곡은 세 부분으로 구성된 대합창 ‘죽임당하신 어린 양’이다.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이 당당하게 나오고 이어 라르게토의 느린 빠르기로 ‘찬송과 존귀, 영광, 지혜, 권능, 주께 돌리세’를 테너와 베이스가 부른 후 후반부에서는 전체 합창이 이어진다. 마지막 세 번째는 유명한 아멘 코러스다. 가사는 ‘아멘’만으로 이뤄져 있다. 아멘이 되풀이되면서 웅장한 푸가로 대곡이 마무리되며 커다란 감동을 안겨준다. 헨델은 자선활동을 열심히 했다. 아일랜드에서 초연한 후 자신이 직접 32회나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면서 지휘했는데 이 공연들이 모두 자선음악회였다. 그는 수익금을 남김없이 고아들을 비롯한 자선 사업에 기부했다. 헨델의 자선 정신으로 메시아는 ‘굶주린 자를 먹여주고 벌거벗은 자에게 옷을 주는 음악’의 대표곡이 되었다. 이 곡의 초연 날짜는 1742년 4월 13일이다. 헨델 생전에는 사순 시기에 연주됐다. 헨델이 죽은 뒤에는 대림 시기에서 성탄까지 자주 연주됐고, 주님 부활 대축일 무렵에도 연주되는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다. 원래 대단히 체력이 좋았던 헨델은 1759년 4월 6일 런던 코벤트 가든에서 거의 안 보이는 시력과 쇠약해진 육체를 정신력으로 지탱하며 메시아를 연주했다. 3부 마지막 아멘 코러스가 끝나자마자 쓰러져 일주일 후인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런던 웨스트민스터 성당에 있는 헨델의 조각상을 보면 헨델이 바로 이 메시아 악보를 들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QR코드를 스캔하시면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3부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http://naver.me/FCLP3luB장일범(발렌티노) 음악평론가 cpbc2022.04.19
![[전교 주일]미디어 선교에 함께하는 독자들의 아름다운 사연들](//cpbc.co.kr/CMS/newspaper/2022/10/rc/833638_1.5_titleImage_1.jpg)
[전교 주일]미디어 선교에 함께하는 독자들의 아름다운 사연들독자들의 감사 편지 내 하루의 처음과 마지막 기도한 해의 처음과 마지막 기도그리고 내 한 생애의 처음과 마지막 기도는‘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되도록감사를 하나의 숨결 같은 노래로부르고 싶습니다감사하면 아름다우리라감사하면 행복하리라감사하면 따뜻하리라감사하면 웃게 되리라 (이해인 수녀의 시 ‘감사의 행복’ 중)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은 23일 전교 주일부터 29일까지 한 주간을 ‘CPBC 감사주간’으로 보낸다. 미디어를 통한 선교에 함께해주시는 시청취자와 독자ㆍ후원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다. 이번엔 특히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벤트를 9월 21일~10월 7일 진행해 CPBC를 사랑해주신 분들의 사연과 추억을 모았다. 72건 가운데 깊은 울림을 주는 글을 골라 소개한다. (이벤트 당첨자는 이와 별개로 선정돼 24일 오후 2시 CPBC 홈페이지와 CPBC TV 유튜브 채널에 공지된다) - 김우리, 전주교구 여의동본당 2012년 냉담을 푼 뒤로 매일 CPBC TV를 시청하는 애청자입니다. 회사에 다니며 같은 방을 쓰는 분이 계시는데, 저의 CPBC 사랑을 잘 알고 계실 정도예요. CPBC TV 유튜브 구독자가 1000명씩 증가할 때마다 캡처하기도 한답니다. 저는 메모를 많이 하는데, CPBC 방송에서 인상 깊은 내용이 나올 때마다 기록해 둬요. ‘가톨릭 둘레 특강’과 ‘심리로 본 성경과 사람’, ‘전삼용 신부의 창세기 강해’ 등을 즐겨 보며 열심히 필기했죠. 요즘은 ‘윤원진 신부의 다윗 이야기’가 특히 재미있어요! - 최민식1년 전부터 CPBC를 애청하고 있는 비신자입니다. 그전에는 시끄럽고 어지러운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TVㆍ라디오를 멀리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CPBC를 알게 됐고, 좋은 음악과 글귀ㆍ삶의 태도와 자세를 배워 나가며 살아갈 수 있는 계기를 얻었습니다. 특히 신앙과 재미 그리고 삶의 의미를 찾게 해준 ‘중세 라이브’와 기존의 자극적이고 불편한 뉴스와는 다른 새로운 시선을 보여준 ‘CPBC 뉴스’가 좋았습니다. 저처럼 비신자이지만 CPBC의 진정성에 공감해 듣고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깊이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 김용환 요한 세례자교육공무원 생활 40년을 마감하고, 오로지 신앙생활과 유일한 취미인 영적 독서에 탐닉하고 있습니다. 매주 금요일이면 10여 년 전부터 애독해온 가톨릭평화신문을 보는 즐거움이 큰 낙이며, 반가운 기다림입니다. 그중에서도 꼭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와 애타게 기다리는 도움의 손길들을 먼저 찾아봅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오로지 하느님을 사랑하고 구원받기 위함임을 명심하며,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기도와 희생과 자선을 베풀며 살다 가기를.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간절히 간절히 갈망합니다. - 박건영 대건 안드레아2007년 군대 전역하고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제주교구에서 열린 한국가톨릭청년대회에 참가했습니다. 그때 마니또였던 자매님이 CPBC를 알려주시고 제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한 통에 100원 드는 라디오 방송 문자로 제 사연을 보내면 항상 읽어주신 장환진 요한 사도 형제님에게 감사드립니다. ‘혼자가 아니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우울하고 삶이 무료했던 제게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게 해준 원동력이 됐습니다. CPBC는 저처럼 신앙에 목말라하는 이들에게 오아시스가 되어주는 방송입니다. - 김정인1990년 4월 16일 CPBC 라디오 개국 때부터 현재까지 쭉 청취하고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참 좋은 프로그램이 많습니다.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폭넓게 모두가 편안하게 청취했던 프로그램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신신우신) 방송은 결코 그리고 평생 잊을 수 없는 최애 프로그램입니다. 제 인생에서 방황하던 시기에 ‘신신우신’을 통해서 많은 격려와 위로를 받고 성장하고, 또 꿈을 꾸게 됐습니다. 물론 청취율도 중요하겠지만, ‘신신우신’처럼 CPBC만이 할 수 있는 독보적인 프로그램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석훈 아기 예수의 데레사한복 바느질을 하는 작은방에서 혼자 일을 합니다. 종일 대화 상대도 없이 혼자 재봉틀을 돌리며 때로는 우울하고 답답함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아들이 CPBC 라디오를 들어보라고 하더군요. “그래, 라디오라도 들으면 덜 외롭겠지!”라며 들은 게 어느덧 30여 년이 됐습니다. 선물도 많이 받았답니다. 그중 제일 좋았던 건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님 서임 묵주였어요. 그 묵주는 언제나 제 주머니에 있습니다. 오늘도 집을 나서면서 묵주를 꺼냅니다. 고맙습니다. - 이현서신부님ㆍ수녀님이 진행하는 방송은 여타 방송인이 하는 것보다 더 큰 울림을 줍니다. 절망적일 때 수녀님께서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라는 시집을 추천해주셨어요. 아무것도 없는 담벼락 위에서 힘겹게 버텨나가는 담쟁이를 생각하며 어쩌면 내 처지와 같다는 생각에 한참 울었습니다. 늘 생각은 있었지만, 용기가 없어 주저하고만 있던 결정! 전 그렇게 가까운 성당에 노크하고 예비 신자가 되었습니다. 세례를 받은 뒤 과거의 저처럼 신자가 되기 전 수많은 기로에 서 있는 이들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아멘! - 채보병 사무엘사실 저는 개신교의 이단, 이교라는 올바르지 못한 길을 걷었습니다. 택시운전을 시작하고 라디오를 듣다가 CPBC를 만나게 됐고, ‘기도의 오솔길’이라는 프로그램을 들으며 그리스도교 뿌리를 찾고 싶다는 마음의 울림이 커졌습니다. 문자를 보내니 연락이 왔고, 정말로 두렵고 떨렸지만 제 발로 성당을 찾아가 예비신자 교리 등록을 했습니다. 라디오 속에서 많은 응원을 받으며 저는 하느님이 제약만 주시는 게 아니라 사랑이신 분임을 다시 느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8월 15일 세례성사와 함께 새로 태어나게 됐답니다.교정시설 수감자들의 편지신문 덕분에 하느님·세상과 소통, 기쁜 소식 전한 후원자들께 감사CPBC의 후원자들의 손길은 발 없는 선교사가 되어 교정시설, 공소, 병원, 사회복지시설 등에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한다. 그중에서도 5000부가 넘는 신문이 교정시설 등으로 보내져 속죄의 나날을 보내는 재소자들에게 전해진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신앙생활의 제약을 받아온 재소자들이 받아보는 가톨릭평화신문의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본사에는 가톨릭평화신문을 후원해 달라고 요청하는 재소자들의 손글씨 편지가 들어온다. 형기가 8년이 남았다는 베드로씨는 “성체도 못 모시고, 밖의 소식을 오랫동안 들을 수 없었다.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가톨릭평화신문을 무료로 구독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최근 수감시설을 옮겼다고 전한 대건 안드레아씨는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곳에서 잘 지낼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며 “바뀐 터전에서도 가톨릭평화신문을 받아보고 싶다”고 요청했다. 또한, 적지 않은 이들이 “훗날에라도 반드시 신문 대금을 내도록 하겠다”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재소자들이 받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편지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고통을 겪은 이웃을 돕고 싶다’는 뜻을 전해온 재소자도 있었다. 아우구스티노씨는 “비록 가족이 보내준 영치금으로 생활하는 수형자 신분이지만, 사순 시기를 맞아 천주교인으로서 이웃의 어려움을 덜어주고 싶다”고 했다.재소자들과 가톨릭평화신문과의 인연은 출소 후에도 이어지기도 한다. 토마스씨는 “곧 출소해 이제 사회에 나가서 신문을 보겠다”며 후원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정리=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cpbc2022.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