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에 대한 하느님 사랑 담긴 ‘삼위일체의 신비’[미사의 모든 것] (6)삼위일체이신 하느님 러시아 이콘 화가 안드레이 루블료프(1360~1430)가 1410년경에 그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이 성화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세 사람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장면(창세 18,1-15)을 묘사한 것으로 왼쪽부터 성부, 성자, 성령을 나타낸다. 나처음: 십자성호의 의미는 알겠는데 그래도 삼위일체 하느님의 존재를 선뜻 이해할 수 없어요. 어떻게 한 분이 성부, 성자, 성령으로 활동하실 수 있죠?조언해: 처음아, 하느님을 무조건 맹목적으로 믿으라는 게 아니야. 성경을 보면 성부, 성자, 성령이 우리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한 분의 하느님이시라고 증언하고 있어. 나처음: 그러면 자꾸 성경에 있다고 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설명해줄래.조언해: 성부, 즉 아버지 하느님은 넘치는 사랑으로 인간과 만물을 창조하시고 돌보시는 분이셔. ‘창조주 하느님’이라고 하지.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넘치는 자비와 사랑을 베푸시지만,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거듭 거역과 배신으로 응답하고 있지. 첫 번째 인간인 아담과 하와부터 시작해 하느님께 선택된 백성인 이스라엘조차 하느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며 타락의 길을 걸었어. 너도 나랑 같이 영화 ‘엑소더스’를 봤으니 잘 알 거야. 그러나 아버지 하느님은 인간을 완전히 내치지 않으시고 거듭 용서와 자비를 베풀어 주시지. 나처음: 그래! 홍해를 갈라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고 이집트 군대를 몰살시킨 거 잘 알지.조언해: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마침내 때가 되자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당신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셔. 그분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이시지. 성자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4-15)라고 선포하셨지. 하지만 인간은 예수님과 그분이 전하신 복음을 거절해. 그래서 성자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죽음으로 당신 자신을 성부께 바치셨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어린양이 되신 것이지. 하지만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십자가에서 자신을 온전히 바치신 성자를 다시 살리셨지. 예수님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거야.나처음: 잘 알아. 신자가 아니라도 아마 세상 모든 사람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는 알걸?조언해: 그래. 바로 그분이 우리가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성자 하느님이셔. 부활을 통해 구원사업을 완수하신 성자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께 돌아가시지만, 아버지 하느님은 우리를 홀로 내버려 두지 않고 성령을 보내 주셨지. 성령은 교회와 하느님의 백성들이 성자 예수님을 굳건히 믿고, 그분 안에서 활기차게 살아가면서 주님을 세상에 용감하게 선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단다. 그래서 성령을 ‘보호자’ ‘협력자’이신 하느님이라고 하지. 이렇게 성경은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를 돌보고 구원으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지. 나처음: 언해의 설명을 들으니 삼위일체 하느님에 관해 약간은 이해가 되네. 성경을 꼭 한 번 읽어봐야겠구나.라파엘 신부: 언해가 참 설명을 잘해주었구나. 언해의 말처럼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구원의 역사를 통해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사랑으로 인간을 돌보고 늘 인도해 주신단다. 그리스도인들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그분의 무한한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야.나처음: 그리스도교가 사랑의 종교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군요.라파엘 신부: 그렇지. 사랑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요소야.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시는 사랑은 무조건이고 헌신적인 사랑이야. 상황과 기분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하지 않는 항구한 사랑이 바로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이야.조언해: 교리 시간에 그리스도교 신앙은 완전한 사랑에 대한 신앙이며, 그 사랑의 결정적인 힘, 곧 세상을 변모시키며 시간을 비추어 주는 사랑의 능력에 대한 신앙이라고 신부님께서 가르치신 것이 기억나요.라파엘 신부: 그래서 성경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1요한 4,16)라고 고백하고 있지. 나처음: 삼위일체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굳게 믿는 신앙인들은 절망에 빠지지 않겠네요. 라파엘 신부: 그리스도인들은 십자성호를 그으면서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생활하지. 설사 죄에 떨어지고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하느님은 당신 사랑을 거두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삼위일체 하느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살아간단다.조언해: 신앙은 그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보시듯이 그분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배웠어요. 라파엘 신부: 맞아.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님께서 세상을 바라보시는 방식에 참여하는 것이란다. 삶의 여러 분야에서 우리는 우리보다 더 잘 아는 다른 이들은 신뢰하지. 우리의 집을 짓는 건축가, 치료 약을 주는 약사, 법정에서 우리를 대변해 줄 변호사를 우리는 신뢰하는 것처럼 하느님과 관련된 일에서도 믿을 만하고 식견 있는 누군가가 필요해.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느님을 알려 주신 분이셔(요한 1,18 참조)조언해: 우리가 하느님을 알고 맞아들이고 따를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신 것이죠.라파엘 신부: 그렇지.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하느님이 참인간이 되셨다는 것과 그 참하느님이시며 참인간이신 구세주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며, 우리 인간의 역사 안으로 들어오실 만큼 우리와 가까우신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지. 그래서 가톨릭 신앙의 중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셔.나처음: 그리스도의 강생과 부활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인간의 삶 전체를 끌어안으셨고, 지금은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 안에 머무신다. 이게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신앙이다. 이 말씀이죠?라파엘 신부: 바로 그거야. 처음이가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해 확실히 이해했구나.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이 있는데 신앙은 필연적으로 교회의 모습을 띠게 되고, 믿는 이들 사이의 실제적인 친교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고백 되어야 한다는 것이야.조언해: 예수님께서 모든 믿는 이를 당신께 모아들이시어 당신의 몸을 이루게 하셨기 때문이죠. 라파엘 신부: 맞아. 교회를 떠나서는 신앙은 그 기준을 잃고, 더 이상 균형을 잡지 못하지. 신앙이 지탱되는 데 필요한 공간을 찾지 못하면 신앙은 사적인 것이 되고 개인주의적인 개념이나 주관적인 견해로 추락하게 돼. 그래서 우리의 신앙은 항상 교회를 통해 올바르게 진리로서 선포되는 것이야. 그 핵심적인 공간과 예식이 바로 ‘미사’란다. 나처음: 그래서 지난번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미사를 시작할 때 십자성호를 그으며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군요.라파엘 신부: 그렇지.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육친의 부모는 각기 다르지만, 신앙상으로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한가족이야. 하느님을 가정으로 모시는 신앙의 형제자매는 마땅히 서로 협력하고 사랑하며 지내야 하지. 조금 전에 말한 것처럼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살이를 해야 해. 그러려면 예수님을 닮아야 하지. 미사는 우리가 예수님을 닮는 마음을 넓히게 해줘. 무엇보다 영성체 즉 성체성사를 통해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랑의 삶을 사는 구체적인 방법을 일깨워주지. 이제 지난번에 이어 십자성호를 통해 삼위일체 하느님의 존재를 이해했으니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미사에 관해 설명하마. 처음이가 아직 교회에 관해 모르니 지금처럼 미사의 의무를 가톨릭 교리와 연관 지어 알려주마.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0.08.18

거룩하신 성부와 성자께 모든 신자가 바치는 환호송[미사의 모든 것] (28)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는 거룩하신 하느님과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주님께 하늘의 천사들과 성인들과 함께 모든 신자가 바치는 환호송이다. 사진은 파라과이 교회 신자들이 성지 주일에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재현하고 있다. 【CNS】 나처음: 거룩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조언해: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 말처럼 실천하기가 어렵지만. 라파엘 신부: 너희는 예수님께서 누구라고, 어떤 분이시라고 생각하니? 이 물음은 예수님께서 강생하신 이래 지금까지 그치지 않고 있지. 예수님 자신도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물으셨고, 예수님께 사형을 선고한 빌라도조차도 당신은 누구냐고 질문했지. 오늘날 우리 역시 주님께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여쭙지. 우리가 주님을 닮은 삶을 살려면 정말 그분이 누구신지 잘 알아야 하지 않겠니! 나처음: 정말 어려운 물음이네요. 예수님을 알지 못하면 거룩해질 수 없는 거군요.라파엘 신부: 다행스럽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거룩해지는 방법을 알려주셨지. 그것을 교회는 ‘참행복 선언’(마태 5,3-12; 루카 6,20-23)이라고 하지.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참행복 선언을 “그리스도인에게 신분증과 같다”고 말씀하셨단다. 교황님은 “누군가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명확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상 설교에서 하신 말씀을 우리는 각자 저마다의 방식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63항)라고 일깨워 주셨지. 예수님께서는 영적으로 가난하고 온유하고 겸손하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슬퍼할 줄 알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의로움을 실천하는 것이 참행복에 이르는 삶이라고 하셨지. 그리고 참행복을 실천하는 사람을 바로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라고 하셨지. 행복과 복됨, 거룩함은 같은 뜻을 지닌 말이란다. 무엇보다 이러한 마음으로 이웃과 함께 연대하여 평화를 일구는 사람이 거룩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거야. 하느님의 자녀 중에 거룩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니.조언해: 하느님께서 거룩하신 분이시니 그분의 모상인 인간도 거룩한 존재가 아닌가요?라파엘 신부: 그럼. 인간은 거룩하고 의롭게 창조되었지. 이 거룩함과 의로움은 아담을 위한 은총의 선물이었지. 그러나 인간이 스스로 하느님 의로움의 거룩함 안에 머무르길 원치 않고 타락의 길로 떨어졌지. 그래서 하느님 스스로 인간이 되시어 당신을 희생 제물로 봉헌함으로써 인간을 다시 거룩함에 머물도록 구원해 주셨지. 그 희생 제물이 바로 참하느님이시며 참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지. 그래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완덕의 천상 스승이시며 모범이시고, 거룩한 생활의 창시자요 완성자”라며 “어떠한 신분이나 계층이든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교 생활의 완성과 사랑의 완덕으로 부름받고 있다”고 선언했단다.(「교의 헌장」 40항) 이처럼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닮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은 소명이라 할 수 있어. 나처음: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게 단순히 세례성사를 받는 것이 아니라 삶의 태도를 송두리째 하느님께로 바꾸는 것이군요.라파엘 신부: 그래.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게 그렇게 호락호락한 게 아녜요. 그래서 가톨릭교회는 하느님께서 미리 구원받을 사람과 받지 못할 사람을 예정해 두었다는 개신교의 주장을 배척하고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애덕을 실천할 때 완덕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친단다.조언해: 미사 중에 우리가 하늘의 천사들과 성인들과 함께 ‘거룩하시도다’를 환호하는 것도 하느님의 거룩함 안에 머물길 희망하는 간절함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라파엘 신부: 그렇지. 라틴말로 ‘상투스’(sanctus)라고 하는 ‘거룩하시도다’는 미사를 봉헌하는 공동체 모두가 감사의 마음으로 하느님께 영광과 찬미를 드리는 환호송이니 언해의 말처럼 하느님의 거룩함에 머물길 간구하는 기도라고 표현해도 괜찮을듯해. ‘거룩하시도다’는 지난번에 설명한 것처럼 감사송과 제대에 바친 예물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도록 성령께 청원하는 기도를 연결하는 환호송이야. 너희들 알고 있니? ‘거룩하시도다’가 아버지 하느님과 주님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 드리는 환호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는 걸. 조언해: 헉! 크게 생각하지 않고 불렀는데 정말 환호의 대상이 나뉘네요.라파엘 신부: ‘거룩하시도다’를 세 번 외치는 것은 전례적으로 큰 의미가 있어요. 성경에서 ‘3’은 시작과 가운데, 마침을 가리키는 수이지. 또 ‘하느님의 나라’를 가리키는 숫자란다. 아울러 최상급을 나타내지. 그래서 이 거룩한 숫자 3이 전례에도 도입되었는데 미사 중에 자비송(자비를 베푸소서)과 ‘거룩하시도다’, 그리고 평화 예식의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을 3번 반복해요.전반부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온 누리의 주 하느님! 하늘과 땅에 가득 찬 그 영광! 높은 데서 호산나!”는 이사야의 소명 환시에 나오는 사랍 천사들의 환호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분의 영광이 가득하다”(이사 6,3)를 도입한 거야. 아람어 ‘호산나’는 우리말로 ‘저를 구하소서’ ‘저를 도와주소서’라는 뜻이지. 성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렐루야’처럼 기쁠 때 호산나를 외치며 하느님을 찬미했다고 해.조언해: 후반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높은 데서 호산나!”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외친 환호이죠. 주님 성지 주일 때 우리가 성지를 들고 성당에 입당할 때 노래하잖아요.라파엘 신부: 그래. 후반부의 이 내용은 시편 118장 26절(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는 복되어라)과 루카 복음 19장 38절(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임금님은 복되시어라. 하늘에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 영광)을 합친 말로 군중들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께 드린 환호이지. 거룩하시도다는 1969년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을 통해 미사에 참여한 모든 신자와 사제가 함께 부르는 1급 성가로 지정됐지. 1급 성가란 대단히 중요한 공동체 성가를 뜻해. 우리가 미사 중에 함께 하는 자비송과 대영광송도 1급 성가이지. 간혹 대미사 때 성가대만 1급 성가를 장엄하게 부르는 데 그건 전례의 본래 의미를 해치는 것이야. ‘거룩하시도다’는 거룩하신 하느님과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주님께 하늘의 천사들과 성인들과 함께 모든 신자가 바치는 환호인 만큼 본래 의미를 항상 되새겨 미사 참여자 모두가 함께 노래하는 것이 바람직해요.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1.01.26
종교 개혁의 불씨 남긴 두 인물 [명작으로 보는 세계사 한 장면] (36)줄리오 바르젤리니의 ‘알렉산데르 6세 교황의 신망을 거부하는 사보나롤라’ 1492년은 인류 역사는 물론 교회사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던 해였다. 우선, 스페인의 상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카스티야 연합 왕국이 무슬림의 마지막 보루던 그라나다를 정복함으로써 781년간 스페인 내(內) 무슬림 지배를 종식시키고 통일을 이루었다.(1월 2일) 이사벨라와 페르난도 부부는 르네상스 시대의 신흥 군주로 지위를 확립했고, 같은 해에 로드리고 보르자가 알렉산데르 6세 교황(재임 1492~1503)이 되었다.(8월 11일) 정치·지리·종교적인 통일을 이룩하고, 새로 국가의 비상을 꾀하던 이사벨라-페르난도 정부는 콜럼버스(Cristoforo Colombo, 1450~1506)를 후원하여 신대륙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10월 12일) 반면, 이탈리아의 상황은 르네상스를 크게 후원하고 견인했던 피렌체의 로렌조 데 메디치(마니피코)가 사망했고(4월 8일), 인노첸시오 8세 교황이 사망했다.(7월 25일) 이후 피렌체는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 1452∼1498)가, 로마 교회에는 알렉산데르 6세 교황이 등장하면서 종교 개혁의 불씨를 남겼다. 이번에는 이 두 인물, 사보나롤라와 알렉산데르 6세에 주목하기로 한다. 메디치 가의 몰락과 사보나롤라의 부상 페라라 출신의 사보나롤라는 1475년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하기 전에 인문주의, 철학, 의학을 공부했고, 볼로냐에서 7년간 신학을 공부했다. 높은 학식과 금욕적인 생활로 수도자로서 모범을 보였고, 성경을 강의했다. 그의 강의는 쉬운 언어로 간결하면서도 깊이가 있어 많은 사람이 감동했고, 설교를 듣기 위해 대중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1480년 피렌체의 지도자로 있던 로렌조 마니피코는 도미니코 수도회 측에 요청하여 사보나롤라를 피렌체로 불러 성경 강의를 부탁했다. 그의 설교를 듣고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감동했고, 이에 그의 추종자들을 일컬어 ‘울보들(Piagnoni)’이라고 불렀다. 명성은 날로 높아졌고, 이런 대중적인 인기에 힘입어 공화주의 정치사상을 설파하며, 당대 거의 모든 정치 지도자를 공격했다. 자신을 피렌체로 부른 로렌조 마니피코는 물론, 알렉산데르 6세 교황, 밀라노의 루도비코 일 모로 공작, 프랑스 샤를 8세 국왕 등 가리지 않고 비판했고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중 가장 심한 공격의 대상은 가장 가까이에 있던 로렌조 마니피코와 알렉산데르 6세 교황이었다. 로렌조 마니피코에게 돈으로 예술을 부추겨 사치와 허영을 시민들에게 주입해 타락하게 했다고 비난했다. 마니피코는 죽음이 임박하여 사보나롤라의 말대로 하느님의 심판이 두려워 어떻게든 용서를 청하고자 했으나, 사보나롤라는 이를 끝까지 외면하고 말았다. 이것은 메디치 가문이 거의 한 세기 동안 도미니코 수도회와 맺은 관계에 대한 배신이기도 했다. 이에 메디치가를 추종하던 팔레스키(Palleschi, 메디치의 상징이 빨간 공 5개가 박힌 거라고 하여 ‘공’을 의미하는 palla에서 나온 말로 ‘메디치 추종자들’이라는 뜻이다)의 분노를 샀다. 훗날 사보나롤라가 몰락할 때 가장 앞장섰던 사람들이 팔레스키들이었다. 마니피코가 죽고 그의 아들 피에로가 피렌체의 통치자가 되었다. 1494년 샤를 8세는 밀라노를 점령하고 나폴리로 향하면서 피렌체로 진격해왔다. 피에로는 전쟁을 피하고자 샤를 8세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고 피렌체 성문을 열어주었다. 피렌체 시민들은 굴욕적인 항복에 분노했고, 메디치 가문을 추방했다. 메디치 가문이 몰락한 후, 피렌체의 정치는 깊은 혼란에 빠졌고, 시민들은 그간 새로운 정치를 주장한 사보나롤라에게 정권을 맡겼다. 이후 피렌체에서 화려한 색깔의 옷은 금지되고, 가발, 향수, 미술품, 고대의 필사본 등을 사고파는 것도 전면 금지되었다. 사보나롤라의 정치적인 영향력은 정점으로 치달았고, 1497년 2월, 사순절을 앞두고 시뇨리아 광장의 장작더미에서는 ‘허영의 화형식(fal delle vanit)’이 진행되었다. 엄청난 양의 고서(古書)와 미술품이 많은 귀금속과 함께 불에 타 사라졌다. 알렉산데르 6세 교황과 사보나롤라의 날선 공방 당시 교회를 이끌었던 알렉산데르 6세 교황도 사보나롤라의 비난을 피해갈 수 없었다. 르네상스 교황들 가운데 가장 많은 드라마와 영화의 소재가 될 만큼, 한 마디로 끝내주는 교황이었다. 외교와 정치, 행정에는 탁월한 능력을 갖추었지만, 종교 지도자로서 호색과 족벌주의, 개인적인 야망이 너무 커서 늘 입방아에 올랐다. 여러 여성과의 사이에서 많은 자녀를 두었고 그들에게 온갖 특혜로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자녀들은 당대 최고의 권력가들과 교류하며 높은 직책을 얻거나 혼인하여 부와 명예를 누렸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체사레 보르자, 루크레치아 보르자 등은 모두 그의 자녀들이다. 라파엘로가 그린 ‘유니콘을 든 여인’에 등장하는 줄리아 파르네세도 알렉산데르 6세의 정부(情婦) 중 한 사람이다. 이런 교황에 대해 사보나롤라는 가만있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교황은 부도덕했고, 로마 교회는 타락했다. 그런 교회는 곧 하느님의 징벌을 면치 못할 것이고, 징벌이 지나가야 새로워질 것이며, 이런 일은 빨리 이루어질 거라고 예언했다. 샤를 8세가 이탈리아로 쳐들어오자 많은 사람은 사보나롤라의 예언이 적중했다며 그를 더욱 영웅시했다. 1495년 알렉산데르 6세 교황은 사보나롤라에게 설교 금지 명령을 내렸고 사보나롤라는 거부했다. 재차 직접 로마에 와서 주장하라고 명했으나 사보나롤라는 건강을 핑계로, 또 로마로 가는 도중에 불상사가 생길까 봐 그것마저 거절했다. 이에 교황은 사보나롤라에게 불복종의 죄를 물어 파문했다. 이런 교황을 사보나롤라는 더욱 거세게 비난했고 교황은 피렌체시에 사보나롤라를 로마로 보내거나 설교를 못 하게 하라고 명령했다. 이를 어길 시 피렌체시가 통째로 전례 금지를 당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사보나롤라는 시의 명령에도 불복했고, 결국 시 법정은 그에게 유죄 선고를 내렸다. 1498년 5월 23일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에서 사보나롤라는 화형에 처해졌고 추종자들에게 혁명의 불씨를 조금도 남기지 않기 위해 유해는 갈아서 아르노 강에 뿌렸다. 전통 예술에 현대 예술 접목 소개하는 그림은 줄리오 바르젤리니(Giulio Bargellini, 1875~1936)가 그린 ‘알렉산데르 6세 교황의 신망을 거부하는 사보나롤라’(1897년)이다. 나보나 광장 근처 브라스키 궁전의 로마 박물관에 있다. 피렌체 출신 화가인 바르젤리니는 피렌체 국립미술원에서 고전 미술을 공부하고, 로마로 이주하여 모렐리(D. Morelli), 미케티(F. P. Michetti), 피아첸티니(M. Piacentini) 등의 영향을 받으며, 사실주의와 라파엘로 이전의 상징주의에 눈을 떴다. 이때부터 이탈리아의 전통 예술에 구스타브 클림트(Gustav Klimt)에서 보는 현대 예술을 접목하는 시도를 했다. 그 시기에 ‘부활’, ‘사보나롤라’와 같은 역사적이고 종교적 주제의 작품을 남겼다. 1913년 로마 베네치아 광장에 있는 ‘빅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의 반원형 천장 장식을 위한 공모전에서 우승하여 명성을 얻었다. 여기에서 바르젤리니는 리찌(A. Rizzi)와 함께 법, 가치, 평화, 일치를 표현한 대형의 4개 모자이크를 완성했다. 기념관의 장엄함에 어울리는 표현 양식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로마에서 여러 궁전과 공공건물에 프레스코화들을 많이 남기고 사망했다. 그림 속으로 그림에서 우측 그룹의 사람들 앞에 흰 수도복에 검은 망토를 입은 통통한 사람이 알렉산데르 6세 교황이다. 그 옆에 선 어린 부제의 손에는 추기경의 옷이 들려져 있다. 교황은 사보나롤라에게 추기경직을 주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보나롤라는 이를 거부하고 방을 나가고 있다. 눈치를 보는 교황과 도도하게 바라보는 사보나롤라의 시선이 대조적이다. 무엇이건 너무 강하면 부러지는 법이다. 메디치가와 교회를 너무 오랫동안 적으로 돌렸고, 굽힐 줄 모르는 사보나롤라의 태도와 막상 그가 지휘봉을 잡은 정치는 실망스러웠다. 모든 것이 금지된 경제는 위축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의 설교에 눈물 흘리던 시민들은 냉정했다. 사보나롤라를 통해 공화주의에서 ‘신정정치’까지 여정을 보며 더 세속적이고 보수적인 정치 모델이 만들어졌고, 존 위클리프, 얀 후스에 이어 루터의 종교 개혁에 영향을 끼친 인물이 되었다. 김혜경 (세레나,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이탈리아 피렌체 거주) 김혜경 연구원 cpbc2021.02.23

한국의 산티아고, 한Ti 가는 길 가을이 깊어갑니다. 소박한 모습으로 삶의 향기가 있는 여행을 했으면 합니다.나를 찾는 고독한 시간 속에 마음을 적셔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되도록 인적이 드문 오솔길을 걸으며 작은 성당에서 기도하다 가는 그런 여유를 갖고 싶습니다.그 길이 순례길이었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혼자 걷는 고독한 길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추억을 쌓는 여행이기 때문입니다. 때마침 19일부터 내년 1월 23일까지 수도자와 함께 주님을 찾아 떠나는 일곱 차례 순례길이 마련돼 있어 그 길을 소개합니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과 칠곡군이 지난해부터 마련한 ‘한Ti 가는 길’입니다. 하느님과 마주 걷는 길초대 교회 때부터 그리스도인을 “새로운 길을 따르는 이들”(사도 9,2)이라 불렀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은 영으로 살뿐 아니라 영 안에서 걸어야 하기 때문입니다.(갈라 5,25 참조)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태생적으로 ‘순례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길 위의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믿음의 길을 사랑의 발걸음으로 걷는 사람들입니다.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것 자체가 주님의 은혜이고 기적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길을 걸으면서 자신이 ‘구도자’임을 체험합니다. 궁극적으로 주님께서 닦아놓은 새로운 길은 일방통행로가 아닙니다. 그 새로운 길을 걷다 보면 우리를 향해 오시는 하느님을 만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길은 우리도 걷고 하느님께서도 걷는 마주 오는 길입니다. ‘한Ti 가는 길’이 바로 그러한 순례길입니다. 본래 이 길은 낙동강변에 자리한 칠곡군 신나무골 신자들이 1866년 병인박해 때 팔공산 중턱 깊은 산골의 한티 교우촌으로 피신했던 피난길이었습니다. 또 신앙의 자유를 얻은 후 영남 지방에선 처음으로 1885년 신나무골에 성당에 세워지자 한티 교우촌 신자들이 미사와 성사에 참여하기 위해 걸었던 신앙의 길이었습니다. 이 길에 왜관수도원과 가실성당을 포함해 ‘한Ti 가는 길’로 새로이 조성했다고 합니다.‘한Ti 가는 길’ 순례 구간은 가실성당에서 한티순교성지까지 45.6㎞입니다. 짧은 구간처럼 보이지만 산을 3개 넘고, 저수지 하나를 끼고 제방을 걸어가야 하는 녹록지 않은 길입니다. 스페인 레온주 아스토르가 라바날 델 카미노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에서 한국인으로 최초로 5년간 산티아고 순례자들을 사목해온 인영균 신부는 “한Ti 가는 길이 산티아고 순례길과 닮았다”고 강조했습니다. “중요한 곳마다 성당이 있어 쉬고, 기도하며, 성인의 유해를 참배하며 걷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거룩한 곳에 머물면서 영적 힘을 얻고 걷는 것이 산티아고 순례길과 아주 비슷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길을 걸은 순례자들은 한Ti 가는 길을 “한티아고 순례길”이라고도 부른답니다. 제대로 걷기제대로 걸을 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저명한 신학자이자 종교철학자인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는 “서두르는 것도 뛰는 것도 아닌 차분한 움직임이 걸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올바른 걸음은 고귀하고 경건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올바르게 제대로 걷는 이는 곧게 서서 가지 굽히고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순례길은 고귀하고 경건한 걸음으로 제대로 올바르게 걷는 길입니다. 우리를 향해 오시는 하느님과 마주 걷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혼자 걷던 여럿이 함께하던 이 길은 보속의 행렬이고 참다운 기도입니다. ‘순례길의 치유자’인 인영균 신부는 “나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내맡기는 게 순례길이기 때문에 그 길은 걷는 이는 순례자일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한Ti 가는 길’은 순례자들이 순례길을 제대로 걸을 수 있도록 △돌아보는 길 △비우는 길 △뉘우치는 길 △용서의 길 △사랑의 길로 나뉘어 놓았습니다. ‘돌아보는 길’은 가실성당에서 신나무골성지까지 10.5㎞ 구간의 숲길로 순례를 시작하며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길입니다. ‘비우는 길’은 신나무골성지에서 창평저수지까지 9.5㎞의 고갯길로 과거의 나를 내려놓고 새로운 나를 채우는 준비의 길입니다. ‘뉘우치는 길’은 창평지에서 동명성당까지 9㎞의 비탈길로 지난 삶의 잘못을 반성하는 길입니다. ‘용서의 길’은 동명성당에서 가산산성까지 8.5㎞의 농로로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길입니다. ‘사랑의 길’은 가산산성에서 한티순교성지까지 8.1㎞ 구간 십자가의 길로 주님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이를 사랑하는 길입니다수도자가 동행하는 순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은 순례자들이 이 길을 제대로 걸을 수 있도록 수도자가 동행하고, 저녁이면 수도원 피정의 집에서 인영균 신부가 순례길을 주제로 강의도 합니다. 또 새날 새 아침 순례길을 나서는 순례자들에게 수도원 전례 안에서 그들을 축복합니다. 이처럼 제대로 걷는 걸음은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며, 그분의 길을 따라 걷고 그분을 경외해야 한다”(신명 8,6)는 성경 말씀을 실행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올해 ‘한Ti 가는 길’ 순례 일정은 코로나19로 인해 매회 20명 선착순으로 순례자들을 모집해 함께 걷는다고 합니다. 참가 문의는 왜관수도원 피정의 집(054-971-0722, 010-6791-0071)로 하면 됩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0.11.25

격동의 한국 역사와 함께한 여성 수도자들의 헌신의 기록하느님 나라를 일구는 여인들
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사도직 변천사 집필팀 지음 / 분도출판사 여자장상연, 수도생활 연구 자료수집먼저 출간된 자료집 기초로 결실한국 여성 수도자 활동 체계적 조명13개 사도직 중심, 130여년 변천사 한국의 여자 수도자들은 격동의 근현대사 흐름 속에서 본당, 사회복지, 의료, 교육 등 다방면에 걸쳐 빛과 소금 역할을 해왔다. 각자 다른 수도회에 몸담은 13명의 수녀가 한국 여자 수도자들의 사도직 활동을 체계적으로 조명한 책을 발간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여성 수도자들의 130여 년 봉헌의 기록이자, 사도직 변천사다. 약자들에게 환대와 우정의 손을 내밀어 온 헌신의 역사다.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수도생활연구팀은 2015년 축성생활의 해를 맞아 수도생활 연구를 시작했고, 2019년 9월 각 활동 수도회의 자료를 통합해 자료집 「한국 천주교 여자 수도회 사도직 변천사」를 집필했다. 이 책은 먼저 출간된 자료집을 기초로 삼은 결실이다.전국에서 모인 집필자들은 지난 1년 반 동안 10여 차례 회의와 워크숍을 통해 머리를 맞댔다. 사도직 활동은 본당ㆍ사회복지ㆍ의료ㆍ교육 분야를 비롯해 성지(순교자 현양)ㆍ성서ㆍ영성ㆍ청소년ㆍ미디어ㆍ여성ㆍ농촌(군ㆍ경찰ㆍ교정) 사도직, 정의ㆍ평화ㆍ창조질서보전과 해외 선교 및 그리스도교 일치와 종교 간 대화까지 13개 분야로 구성했다. 본당 사도직의 역사는 1888년 제7대 조선교구장 블랑 주교의 초청으로 한국에 들어온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로부터 시작됐다. 이들은 사도직 활동으로 명동보육원에서 고아들을 돌보는 일로 시작했지만, 1899년 인천 답동성당에 파견돼 본당 사목에 협조하면서 첫 본당 사도직 활동을 벌였다. 당시의 본당 사도직은 지금의 본당 사도직과 달리 학교, 의료, 복지를 포괄했다.다양한 사도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 활동 수도자에 대한 제한이 줄고 영적 쇄신과 토착화 운동이 일어났다. 1965년부터 미사와 성무일도가 한국어로 가능해지면서 신심 운동 단체들이 활기를 띠었고 본당의 전교 수녀들이 중요한 몫을 맡게 됐다. 교회는 성지개발과 성경공부, 영성 사도직에 힘쓰면서 각 수도회들은 본당 사도직을 수행하는 전교수녀를 본격적으로 파견하기 시작했다. 의료 사도직은 해방 이후 분단과 6·25를 치르며 자선 의료에서 구호 의료로 탈바꿈했다. 1960년대 도시 빈민들과 취약 계층에 대한 의료 활동이 활발해졌다. 1970년대 말까지 한국에는 38개 수녀회가 생겼는데 이 중 24개 수녀회에서 의료 활동에 동참할 만큼 의료 사도직은 활기를 띠었으나, 1977년 전 국민 건강보험제도가 도입되면서 수녀회의 자선 의료 활동은 급격히 축소되기에 이른다.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대회와 103위 순교자 시성식, 1989년 세계성체대회로 한국 교회는 민주화운동과 함께 교세 확장에 불을 지피게 된다. 수녀들은 예비신자 교리와 상담 등을 도맡으며 한국 교회 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 또한 수도자들은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힘겨워하는 위기의 청소년들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 공동생활가정, 지역아동센터 등을 통해 위기 청소년과 탈북 청소년들을 도운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공헌이다. 여성 수도자들은 인간 삶의 현실과 신앙의 영역을 연결된 차원으로 이해하고 노동, 인권, 환경ㆍ생태, 평화 문제에도 연대하고 있다. 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회장 조성옥(에노스) 수녀는 축사에서 “여자 수도자들의 다양한 사도직의 역사는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 안에서 시대의 징표에 깨어 있으면서 세상과 교회의 필요와 부르심에 응답한 축성생활자들의 봉헌의 기록”이면서 “수도회의 은사(카리스마)를 재해석하며 ‘창조적 충실성’으로 사명을 이어 온 도전과 적응의 여정”이라고 평가했다. 집필팀은 발간사에서 “한국의 여자 수도자들은 사회와 교회 안에서 그들의 직무와 활동과 현존을 통해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구현하고자 온 생애에 걸쳐 헌신했다”면서 “이 책은 여자 수도자들의 활동이 하나의 흐름 안에서 매끄럽게 읽히기보다는 햇빛에 반사된 모자이크처럼 여러 가지 빛깔의 색들이 흩어지는 듯 모이는 듯 다양하게 비춰질 것 같다”고 밝혔다.집필진으로는 강석임(예수의 꽃동네 자매회)ㆍ김경희(성 바오로딸 수도회)ㆍ김성민(살레시오 수녀회)ㆍ김인진(성가소비녀회) 등 13명의 수녀들과 오세일(예수회) 신부와 윤택림(한국구술사연구소) 소장이 자문위원으로 함께했다.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평화신문2021.04.14
![[생활속의 복음] 사순 제5주일- 영원을 사는 바보가 되자](//cpbc.co.kr/CMS/newspaper/2021/03/rc/798516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사순 제5주일- 영원을 사는 바보가 되자 밀알을 땅에 심으면 그 속에서 껍질이 썩으면서 씨앗 속에 들어있던 ‘생명’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웁니다. 그 싹은 땅속의 물과 햇빛을 머금고 자라서 추수 때가 되면 밀알 하나당 대략 마흔 개 정도의 낱알이 맺히는데, 그렇게 쌓인 밀알을 계속해서 땅에 심고 또 썩어 열매 맺는 과정을 몇 해 반복하면 금세 1억 개 이상의 밀알이 생겨납니다. 예수님은 이런 맥락에서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을 겁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유한한 존재들은 ‘세월의 무게’를 오래 견뎌내지 못합니다. 시간이 흐르며 늙어가다가 결국 사라지고 말지요. 그러나 ‘한계’라는 껍질을 벗어던지고 더 높은 차원으로 ‘고양’되면 ‘영원’의 시간을 살게 됩니다. 밀알에게는 ‘죽는’ 과정, 즉 이 세상에서 얻은 것들을 온전히 내려놓고 자연의 ‘섭리’에 자신을 내어 맡기는 과정이 ‘고양’에 해당합니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혼자’뿐인 유한한 삶에서, ‘함께’하는 영원의 삶으로 옮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의 유한한 삶에서 ‘천국’이라는 영원의 삶으로 ‘고양’되려면 ‘죽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육체적 죽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보다 하느님을, 내 욕심보다 그분의 뜻을 ‘우선적’으로 추구함을 뜻합니다. 그러다 보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에서는 멀어질 수 있고, ‘제 밥그릇’ 하나 제대로 못 챙기는 ‘바보’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긍정적인 흔적을, 선한 영향력을 남기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바보’들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영원’을 사는 존재, 사람들의 마음에 오래 살아 숨 쉬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성경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영광의 길’은 실패하거나 상처받더라도 자신이 선택하고 사랑하기로 결정한 것에 성실히 임하는 것입니다. 그 ‘가시밭길’이 고통스럽더라도 끝까지 묵묵히 감내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하나 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고양’의 길을 걸을 때, 인간은 실패와 절망 속에서도 의연함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예수님께서 두려움과 걱정으로 마음이 산란하신 와중에도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는” 길을 택하실 수 있었던 것도 마음속에 의연함을 간직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에게 진정한 용기는 두려움을 모르는 상태가 아니라, 두렵고 힘든 상황에도 무엇을 믿고 무엇을 감내해야 하는지를 잘 구분해 행동에 옮길 수 있는 결단력을 의미합니다. 편안함과 안락을 추구하는 인간에게 고통은 두려움과 혼란을 초래하기도 하지만, 의연하게 대처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면 내면 깊숙한 곳에 계시는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도 고통과 번민의 시간 안에서 깊은 ‘하느님 체험’을 하셨기에 그분의 뜻을 따르겠다는 힘든 결정을 내리실 수 있었지요.그리스도인들은 무슨 일을 하든 “하느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하여” 하는 존재들입니다. 나의 말과 행동을 통해 하느님의 본성인 사랑, 정의, 평화가 세상에 구체적으로 드러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은 당연히 고통스럽습니다. 내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가 너무 버거워서 내려놓고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짊어지는 십자가는 우리를 더 높은 차원의 삶으로 들어 높이는 ‘고양’의 과정입니다. 주님의 뜻에 따라 기꺼이 십자가를 짊어진 내가 불평불만이 아니라 찬미와 감사를 드릴 수 있을 때, 힘들고 괴로워도 하느님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그분과 더 깊은 일치를 이루는 길을 택할 수 있을 때, 그 십자가는 나를 지켜보는 이들을 하느님께 대한 관심과 믿음으로 이끌어들이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고, 하느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당신과 함께 영원히 누릴, 참된 행복의 삶으로 초대하실 것입니다.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평화신문2021.03.17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12) 여행지 : 가톨릭 교회](//cpbc.co.kr/CMS/newspaper/2021/06/rc/804435_1.1_titleImage_1.jpg)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12) 여행지 : 가톨릭 교회우리는 많은 선택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유아 세례를 받은 사람은 부모님의 신앙에 의해서겠지만, 첫영성체를 하였다면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으로 가톨릭이라는 신앙을 선택한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가 가진 많은 장점 중의 하나는 가톨릭이 전 세계적으로 하나라는 것입니다. 세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우리는 민족과 언어와 종족이 다르더라도 예수님 안에 한 형제자매이지요. 우리가 세계 어느 곳에서나 미사에 참여할 때, 그 나라의 언어는 알아듣지 못해도 한국에서와같이 미사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고, 예수님의 몸을 그곳에서도 받아 모심으로써 우리는 미사 안에 하나로 일치합니다. 그럼 가톨릭 교회로 퀴즈 여행을 떠나볼까요? 퀴즈여행1. 가톨릭(Catholic)이라는 말의 뜻은? 2. 가톨릭 교회의 4대 교리는 ①천주존재 ②삼위일체 ③ ____ ④하느님의 심판과 영생이다. 3. 가톨릭 교회의 4가지 특징은 ①하나이며 ②거룩하고 ③보편되며 ④ __로부터 이어오는 것이다. 4. 교회의 정의는 ‘하느님 백성의 __’이다. 5. ‘공의회’란 교회 최고의 권위를 가진 주교단 회의, 즉 __을 중심으로 한 주교들의 회의이다. 6.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교회의 __과 적응을 위해 소집되었다. 7. ‘교회 일치 운동’이란 가톨릭, 동방 정교회, ___의 그리스도교 3분파 간의 일치를 목표로 한다. 답란 1.보□□ 또는 공□□ 2.□생□□ 3.□□ 4.□□ 5.□□ 6.□□ 7.□□교 가이드 설명 1. 가톨릭의 말뜻 가톨릭(catholic)이라는 말은 ‘보편적’, ‘공번된’이라는 뜻의 그리스어(καθολικ?)에서 나왔습니다. ‘보편적’이라는 말은 모든 것에 두루 다 미치거나 통하는 성질을 띤다는 말이지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하신 분부에 따라(마태 28,19), 모든 시대, 모든 장소의 모든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공번된’이라는 말은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이 공평하다는 뜻이지요. 2. 가톨릭 교회의 4대 교리 가톨릭 교회의 주요 4대 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는 신자로서 꼭 알아야 할 내용이기에, 임종 세례를 받고자 하는 이에게도 알려주어, 가톨릭 신앙을 고백하도록 해야 합니다. 1) 천주존재(天主存在): 창조주 하느님이 계시다. 2)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느님께서는 한 분이시나,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三位)로 계시다. 3) 강생구속(降生救贖): 성자께서 인간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구원을 얻게 되었다. 4) 하느님의 심판과 영생: 하느님께서는 마지막 날 우리를 심판하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 참조) ‘하느님의 심판과 영생’을 그전에는 ‘상선벌악’(賞善罰惡)이라 하였다. 3. 가톨릭 교회의 4가지 특징 가톨릭 교회는 다음의 4가지 특징을 가집니다. 1) 하나이다: 하나의 세례로 하나의 믿음을 고백하며, 하나의 몸(교회)을 이룬다. 2) 거룩하다: 거룩한 성령께서 이끌며, 일곱 성사를 통해 거룩하며, 죄인을 품지만 죄 없는 교회이다. 3) 보편되다: 모든 시대, 모든 장소, 모든 사람에게 복음이 선포된다. 4) 사도로부터 이어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를 으뜸으로 한 12사도 위에 교회를 설립하였고, 이들의 후계자인 교황과 주교들을 통하여 교회가 다스려진다. 참조) 사도(使徒)는 그리스어로 ‘파견된 사람’, ‘소식의 전달자(apostolos)’라는 뜻이다. 4. 교회의 말뜻 흔히 교회를 개신교 신자들이 다니는 예배당으로 생각하여, 개신교 신자는 ‘교회에 다닌다’, 가톨릭 신자는 ‘성당에 다닌다’라고 하지만, 교회(敎會)라는 말은 단순히 건물만을 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나오는 교회의 어원은 그리스어 에클레시아(Ekklesia, ?κκλησ?α)로, ‘만남’이나 ‘모임’을 뜻하는 말이지요. 그러므로 교회란 ‘하느님 백성의 모임’을 뜻합니다. 또는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모인 공동체를 가리키지요. 5. 공의회: 주교단 회의 공의회는 교회를 사목할 책임을 부여받은 주교단 회의입니다. 교황을 단장으로 하고 주교들을 단원으로 하여 그리스도께서 교회 사목의 주체로 구성하신 단일한 단체이지요.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 문제나 사목 문제를 협의하고 결정하는 공식회의로 최고의 결정권을 갖습니다. 공의회의 기원이 된 것은 예루살렘에서 개최된 사도들의 회의(사도 15,1-29)이며, 최초로 열린 보편 공의회는 325년 니케아에서 열린 공의회이지요. 6.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가장 최근에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는 현대 과학적 진보에 교회가 대응하기 위해, 성 요한 23세 교황이 소집하였습니다. 표어로 아조르나멘토(aggiornamento, 개혁 또는 쇄신)를 내걸고 교회의 쇄신과 적응을 모색한 결과, 가톨릭뿐 아니라 이웃 종교와 인류 문명 전반에 혁명적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 결과로 평신도의 역할 및 교회 참여가 활성화되고, 전례의 토착화가 이루어졌으며, 교회 일치와 이웃 종교와의 대화, 공동선을 위한 사회 현실 참여가 이루어졌지요. 문헌으로 4개의 헌장(전례, 교회, 계시, 사목), 9개의 교령과 3개의 선언이 나왔습니다. 7. 교회 일치 운동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후로 교회 일치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계 모든 그리스도 교회의 상호 친교와 영적 화합을 위한 운동으로 에큐메니즘(ecumenism, 교회 일치)이라고도 하지요. 1054년에 분리되었던 동방 정교회, 1517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시작된 개신교(프로테스탄트)의 갈라진 형제들과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노력하며 ‘그리스도 일치 기도 주간’(1월 18일~1월 25일)을 정해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참조) 기독교(그리스도교)라고 하면 ‘개신교’로 생각하는데, ‘기독교’(基督敎)는 그리스도교의 한자어로, 나자렛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위의 3교회(가톨릭, 정교회, 개신교) 모두를 말한다. 여행 옵션 : 성 베드로 대성전(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은 그리스도의 대리이며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인 교황이 교도권을 행사하는 사도좌가 있는 성전이다. 성 베드로가 순교한 자리에 4세기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세웠는데, 오늘날 모습은 15세기 율리우스 2세 교황이 당대의 최고 예술가들과 함께 재건축한 것이다. 성당 안에는 천연 대리석 바닥과 모자이크 천정화가 내부의 웅장함과 화려함의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과 성 베드로 청동상 등 여러 조형물이 배치되어 있다. 지하에는 성 베드로 및 역대 교황들의 무덤이 있다. 여행 기념품 나는 세례를 받아 교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내가 가톨릭 신앙을 가지게 된 것은 누군가의 도움이나 영향에 의해서입니다. 가톨릭 교회로 나를 인도해 준 사람은 누구입니까?(잠시 그분께 감사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현재 가톨릭 신자이기에 내가 누리는 기쁨이나 은총은 무엇인가요? 마리 파울리타 수녀(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문채현2021.06.22

“순교자의 피 생각하며… 한반도 평화와 한국 교회 성장 도울 것”추규호 신임 주교황청 한국대사를 만나다 “하느님의 뜻인 것 같습니다.”추규호(루카, 68) 신임 주교황청 한국대사는 10일 문재인(티모테오) 대통령에게서 신임장을 받은 뒤 소감을 묻는 자리마다 “주님의 뜻인 것 같다”고 말했다. 2012년 주영국 대사직을 끝으로 40여 년 외교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모교인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후학을 가르치다 8년 만에 ‘주님의 부르심’에 응하게 된 것이다. 한국 정부와 바티칸, 그리고 한국 교회를 위해 다시 외교관이자 신자로서 봉직하게 된 추 대사를 출국 나흘 전인 16일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 본사에서 만났다.추 대사는 1975년 외무고시에 합격, 외교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1994년 주이탈리아 공사관 참사관을 지낸 뒤 주일본 공사관 참사관, 외교통상부 아시아태평양국 국장, 미국 주시카고총영사관 총영사, 주일본 대사관 공사, 외교통상부 대변인, 법무부 출입국 외국인정책본부장, 주영국 한국대사 등 요직을 두루 거친 외교통이다. 해외 공관에 있을 때는 한인들과 교류하며 한인성당 사목회장도 역임했다. 그에게 매일 성경 읽기와 기도 시간은 주님이 주시는 힘이었다.- 8년여 만의 공직 복귀이십니다.“저희끼리 ‘재취업’이란 용어를 쓰곤 하는데, 제가 그런 셈이네요. 그러나 무엇보다 하느님의 뜻이 작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 여깁니다. 임명 소식을 들었을 때 한국 정부를 대표해서, 또 교회를 위해 ‘하느님 일’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에 개인적으로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주교황청 대사는 정부와 교회를 위한 상징적인 자리 아닙니까.“보통 대사의 역할은 한국 정부와 국민을 대표해 국가의 번영과 평화를 위해 주재국과 협력해 나아가는 것이죠. 주교황청 대사는 신앙적 측면에서도 한국 교회와 신자들을 돕고, 교황청과 관계를 강화해 나아가야 하는 자리입니다. 특별히 한국 교회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각별한 ‘순교의 역사’를 갖고 있기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장인과 장모님이 지병으로 힘겨워하시다 선종하셔서 저와 아내(송정원 크리스티나)가 힘든 시기를 보냈는데, 아내의 동의가 없었다면 대사직을 수락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탈리아에서 참사관을 지낸 적이 있기에 바티칸과도 인연이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1994년에 이탈리아에서 근무했고, 그때 이탈리아어를 배웠습니다. 1997년에 부활절을 맞아 로마의 신자들과 함께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다녀온 기억도 있습니다. 제가 외국어로 고해성사에 잘 임하진 않는데, 그때엔 로마에서 고해성사를 보기도 했습니다. 그때 뭔가 죄가 많았나 봅니다.”- 한국ㆍ바티칸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고, 보편 교회와 한국 교회 사이에서 소통을 촉진하는 주교황청 대사 직무에 부담을 느끼시는지요.“책임감이 막중합니다.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도 있지만, 한국 교회는 아시아에서 가장 강한 가톨릭 공동체입니다. 교황청에서도 이 점을 무게감 있게 느끼기 때문에 교황님들도 3번이나 한국을 방문하시지 않았습니까. 특히 한국은 분단국가로서 교황청의 상당한 관심을 받고 있는 게 사실이죠. 이를 배경 삼아 국가 간 외교는 물론, 한국 교회 발전을 위해 더욱 긴밀히 소통을 이어가겠습니다.”바티칸 시국은 국제 사회에서도 특별한 국가다. 교황청은 외교와 신앙적으로 전 세계 180여 개 국가와 관계를 맺고 있으며, 12억에 달하는 보편 교회 신자들과도 영적으로 연결된 나라다. 바티칸 시국 상주 인구는 1000여 명. 주교황청 대사는 로마에서 신학 공부 중인 200여 명에 이르는 한국인 사제와 수도자, 이탈리아 전역에서 활동하는 사제, 수도자, 평신도 100여 명을 챙기고 교류하는 역할도 한다. 추규호 신임 주교황청 한국대사가 10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수여하는 신임장을 받고 있다. 청와대 제공 - 지난 10일 신임장을 수여할 때 문재인 대통령이 특별히 건넨 당부가 있나요.“신임장 수여 이후 특별히 대통령께서 마이크를 잡자마자 맨 처음으로 저를 지목하시면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 간 협력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하시고, 당신의 메시지를 저와 우리 국민에게 보내주셨다’고 하시면서 ‘교황님 알현 때 감사의 말씀을 특별히 전해달라’고 하셔서 뭉클했습니다. 대통령께서 교황님과의 정신적 유대가 상당히 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같은 날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을 예방했을 때엔 어떤 당부를 들으셨는지요.“임명 소식을 듣고 대전교구 해미성지에 방문했습니다. 성지에서 기도하면서 한국 교회에는 무명 순교자가 많음을, 한국 교회에 뿌려진 ‘순교자의 피’를 한 번 더 생각하게 됐습니다. 추기경께서도 가경자 최양업 신부님에 대한 교황청 시성성의 시복시성 절차와 관련한 과정과 교회 노력에 대해 재차 말씀해주셨고, 각별히 신경 써달라고 하셨습니다.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 여깁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한반도 상황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교황님께서는 한반도 평화와 남북 관계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교황청은 우리 국민이 느끼는 것 이상으로 복음 전파와 선교에 큰 사명과 의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중국도 그렇지만, 공식적으로 종교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침묵의 교회 북한과의 관계 개선 등에 외교관으로서 적극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은 언제부터 하셨는지요.“1955년 6ㆍ25 전쟁 직후 3살 무렵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에 십자가를 향해 돌아서서 미사를 주례하는 신부님을 도와 복사를 선 기억도 있는데요. 이번에 대사에 임명되고 나서 그때 들었던 라틴어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신자로서 특별한 신앙 체험이 있으셨나요.“제 신앙은 아무래도 현재 98세이신 어머니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습니다. 어머니께서 제게 ‘기도를 하면 반드시 다 이뤄진단다’라고 하시길래 ‘노력도 안 하고 기도만 하면 됩니까?’라고 한 적이 있어요. 은행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제가 외무고시 합격 소식을 전해드렸더니 어머니께서 저 몰래 저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해주셨더라고요. 혼인 때부터 지금까지 노력을 동반한 기도의 힘으로 사는 것 같습니다.”- 매일 아침 영어 성경 통독과 이동 중 묵주기도 CD 청취를 즐기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치매 예방을 겸해 매일 아침 영어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 중 마르코 복음 11장 24절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란 구절을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기도할 때 내가 이미 주님께 받은 것으로 믿고 임하라는 말씀에 늘 강렬한 인상을 받습니다.”- 이탈리아의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한데요.“모연(暮煙)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본래 대사에 임명되면 전임 대사가 떠나고 한두 달 뒤에 후임 대사가 관저로 들어가는데, 저는 이백만 전 대사 출국 3일 만에 가는 상황입니다. 주님 성탄 대축일 전에 교황님을 알현하고, 신임장을 제정해주십사 하는 차원도 있습니다.”- 임기 중에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한국 정부가 교황청과 함께 한반도 평화를 위해 새로운 걸음을 떼는 데에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신자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한국 교회가 보편교회와 함께 질적으로도 더욱 성장하는 데에 미약하나마 보탬이 되고자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한국 교회 순교사에 대해 더 공부하려고 합니다.”추 대사는 인터뷰 후 “성당에 들러야겠다”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그가 말한 ‘하느님의 뜻’을 재차 되새기려는 듯했다. 그는 20일 이탈리아로 출국해 곧장 대사직 임기를 시작했다. 정리=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cpbc2020.11.18
![[생활속의 복음] 부활 제3주일- 엠마오 가는 길](//cpbc.co.kr/CMS/newspaper/2020/04/rc/777744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부활 제3주일- 엠마오 가는 길 임상만 신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제자들은 말할 수 없는 충격에 빠졌다. 그들은 스승을 잃어버린 죄책감과 상실감 그리고 두려움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오늘 복음은 실망과 좌절을 가슴에 안고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의 여정에 동행하신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음에도 동행하신 그분이 누구인지 전혀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루카 24,25)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이 약함을 매우 탄식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성경의 말씀을 풀이해 주셨다. 그것은 당신에 대하여 일어난 모든 일이 모세와 예언자의 글과 모든 성경에 이미 기록된 예언의 내용임을 확신시켜 주신 것이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길을 걸어가며 들은 성경 말씀에 큰 감명을 받게 되지만 그럼에도 고정관념과 선입견 때문에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늘 함께 살던 사람도 면전에서 알아볼 수 없는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보이는 경우가 있다. 엠마오 길을 가던 두 제자도 예수님께서 동행하실 때에 그냥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인 줄 알았다. 부활이라는 말 자체를 생각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의 성경 말씀을 듣고, 예수님과 저녁 식사를 하는 중에 비로소 그들의 눈이 열리게 되어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로 알아보게 되었다.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루카 24,30-31) 여기서 ‘그들의 눈이 열리게 된’ 것은 그들의 깨달음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 즉 ‘성령’께서 이뤄주신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서서히 열리면서 어느 순간에 모든 것을 알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루카 24,32) 이렇게 그들의 마음이 뜨겁게 감동되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들려주었던 성경 말씀과 그 안에 역사하신 성령으로 인한 것이었다. 성령께서는 말씀 속에서, 말씀과 함께, 말씀을 풀어 주심을 통해 우리 안에 역사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그 성령을 온전히 자신의 삶 속에 모시지 못한다면 그냥 한순간의 타오름으로 끝날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엠마오의 조촐한 식탁에서 일어난 일을 생각해야 한다. 두 제자가 엠마오에 도착했을 때 길을 더 가려는 예수님을 청해 저녁을 먹지 않았다면 절대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에게 함께 머물러 주시기를 재차 청하였다. 그리고 함께 기도하고 예수님께서 빵을 떼어 나눠 주실 때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다. 물론 그 순간 예수님은 사라졌지만, 그들은 마음이 뛸 듯이 기뻤다. 오는 길에서 그들의 마음이 뜨겁게 타오르고 감동적이었던 이유를 그때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다.이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식탁에 우리를 초대하신다. 당신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마련하신 영원한 생명의 식탁으로 오라고 부르신다. 이 식탁에서 나누어지는 예수님의 성체를 통하지 않고서는 말씀의 뜨거움과 동행의 기쁨으로도 온전히 알지 못하며, 오직 당신이신 성체만이 당신 부활의 가장 큰 증거이며 우리가 갖는 유일한 확신이 되기 때문이다.“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마르 14,22)임상만 신부(서울대교구 상도동본당 주임) 평화신문2020.04.21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15) 여행지 : 기도 생활](//cpbc.co.kr/CMS/newspaper/2021/07/rc/805449_1.2_titleImage_1.jpg)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15) 여행지 : 기도 생활 생각이 행동을 낳고, 행동은 습관을 낳으며, 습관은 운명을 만든다고 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생각이 기도하게 만들고, 기도하는 것이 습관이 된다면 우리는 하느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루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습관이 사는 것이라 하기에, 일상의 기도가 몸에 밴 거룩한 습관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3분 이상을 주님에게서 눈을 뗀 적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도 성녀를 본받아 무엇을 하든지 하느님과 대화하고 행하며, 모든 일을 그분과 함께 결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매일 규칙적으로 기도하고, 바쁠수록 기도하고, 힘들수록 기도하여 우리의 일상사가 온전한 기도이기를 희망합니다. 그럼 기도 생활로 퀴즈 여행을 떠나볼까요?퀴즈 여행기도 생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1. ‘아침 기도’에서 ‘주님의 기도’ 다음에 어떤 기도를 바치는가?2 ‘식사 후 기도’ 마지막에 누구를 위해 기도를 하는가? 3 삼종 기도는 예수님 강생의 신비를 되새기며 어떤 소리 기도를 바치는가?4. 저녁 기도 시 반성과 통회의 기도 다음에 어떤 기도를 바치는가? 5. 우리의 기도는 누구에게 바치는 것이며, 누구를 통하여 봉헌되는가? 6. 일상을 벗어나 고요한 곳에서 기도의 시간을 갖는 것을 무엇이라고 하는가?7. 렉시오 디비나, 예수님의 기도, 향심 기도 등으로 기도할 때, 마지막에 도달하는 기도 단계는? 답란1. □□ 기도 2. □□ 영혼 3. □□송 4. □□송5. 성□, 성□ 6. □□7. □□가이드 옵션1. 아침 기도하느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비신자들과 구별되는 것은 우리가 기도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아침 기도를 통하여 새로운 하루를 주님께 봉헌하며, 주님과 함께 하루를 시작합니다. 아침 기도의 내용은 먼저 ①‘주님의 기도’로,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하느님 나라가 임하시기를, 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청하지요. 다음은 ②‘봉헌 기도’로,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오늘 하루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도울 것을 다짐합니다. 이어 ③하느님께 찬미, 감사, 흠숭의 기도를 드리고 ④오늘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주님의 평화로 이끌어 달라는 청원의 기도로 끝이 납니다.2. 식사 후 기도 우리 신자들이 ‘식사 전 기도’는 잘 바치는데, ‘식사 후 기도’는 잊어버리고 바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식사 후 기도는 ①감사(전능하신 하느님, 저희에게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하나이다.) ②찬미(주님의 이름은 찬미를 받으소서. 이제와 영원히 받으소서.) ③연옥 영혼을 기억하기(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로 이루어져 있지요. 연옥 영혼은 기도의 통공으로 천국에 올라가기에, 우리 식사가 끝날 때를 기다린다고 합니다. 이들을 위해 식사 후 기도를 꼭 바치는 습관을 지녀야겠지요? 3. 삼종 기도삼종 기도는 하루에 세 번(아침 6시, 정오, 저녁 6시) 치는 종소리를 듣고 바치는 기도라 해서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전반부는 ①성경에 바탕을 두면서(루카 1,26-38; 요한 1,14),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알려준 예수님의 잉태와 강생의 신비를 되새기는 내용인데, 세 번의 성모송을 바치면서 각각 그 장면에 대한 묵상을 하게 됩니다. ②후반부는 마리아를 어머니로 부르며, 마리아의 중재로 하느님의 구원 은혜를 얻을 수 있기를 청하며, ③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에 동참함으로써, 우리도 부활의 영광을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4. 저녁 기도 저녁에 하루를 돌아보고 하느님께 감사하며 내일을 준비하는 기도로 저녁 기도를 바칩니다. 먼저 ①반성(오늘 하루의 잘못과 죄, 불성실한 점에 대해 돌아봄), ②‘통회의 기도’(자신의 죄에 대해 뉘우치며,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기로 결심하며 자비를 청함), ③‘삼덕송’(신덕송-망덕송-애덕송), ④감사(하느님 아버지께 오늘 하루 베풀어주신 사랑에 감사), 마지막으로 ⑤강복(삼위일체 하느님의 강복을 빌며, 밤 동안 지켜 주시기를 청함)인데, 가정에서 함께 기도할 때는 이 부분을 가장이 바치도록 합니다. 5. 기도의 공식 우리의 모든 기도는 모든 것의 근원이며 마침이신 성부 하느님께 향하는 것이며, 성자 예수님을 통하여 봉헌됩니다. 또 성령께서 이 기도를 이루어주시지요. 그런 이유로 우리가 기도할 때, 마지막 부분에, “이 모든 기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라고 덧붙이지요. 이것이 기도의 공식이자, 삼위일체 하느님께 나아가는 방법입니다.6. 고요한 기도의 시간: 피정 우리는 일상 안에서 매일 기도할 수 있지만, 특별한 시간에 일상을 벗어난 고요한 곳에서 기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것을 피정(避靜)이라고 합니다. 조용한 장소나 피정센터 등에 가서 자유로이 또는 프로그램에 맞추어 기도하셔도 되고, 수도원 방문이나 성지순례를 통해서도 피정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지요. 특별한 피정으로 ‘예수 마음 기도’나 ‘영신수련’이 있습니다. 7. 기도 심화하기 신앙의 초기 단계에서는 소리 기도를 통하여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신앙이 성장함에 따라 기도를 심화시켜나가야 하기에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①렉시오 디비나(거룩한 독서, 聖讀): 성경을 읽으면서 깊이 묵상함 ②예수님의 기도: “주 예수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짧은 화살기도를 호흡과 일치하여 천천히 반복해서 바침 ③향심기도: 거룩한 단어를 떠올리며, 하느님 현존 안에 침묵으로 머뭄. 어떤 방법이든 마지막 단계는 지성과 감정을 초월하여 하느님 안에 일치하는 관상이지요. 기도의 꽃인 관상기도에 도달하기 위하여 자신에게 맞는 기도 방법을 개발해나가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여행 옵션 : 만레사 동굴(스페인) 예수회를 설립한 성 이냐시오(1491~1556년, 7월 31일 축일)는 만레사 동굴에서 기도, 극기, 명상을 하면서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영신수련」(영신 수련을 수행하는 지침서)을 저술하게 되었다. 이 동굴 위에 예수회 성당과 영성센터가 세워져 있어 많은 이들이 성지 순례를 위해 또 영신수련을 배우고자 방문하고 있다. 성인은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세속적인 명예를 좇다가 전쟁에서 부상당한 뒤, 우연히 성인전을 읽으면서 또 몬세라트 수도원에서 성모 마리아의 환시를 체험하면서 회심을 하였다. 회심 후 몬세라트 에서 15km 떨어진 만레사 마을 근처 동굴에서 1년간 기도하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고, 그것을 전함으로써, 피정과 영신수련의 수호성인이 되었다.여행 기념품 우리가 매일 하루 세 번의 식사를 하고 밤이 되면 잠을 청하듯이, 우리의 기도도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가톨릭 기도서에 나오는 아침 기도, 식사 전ㆍ후 기도, 저녁 기도, 삼종 기도를 어떻게 바치고 있나요? 이 외에 하느님과의 관계를 성숙시키기 위해 바치는 기도가 있습니까? 일상을 벗어나 고요한 장소로 기도를 하러 간 적이 있습니까? 앞으로 어떻게 기도를 발전시켜 나가고 싶은가요? 마리 파울리타 수녀(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 cpbc2021.07.07
![[수도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33) 반추 기도의 개념과 기억](//cpbc.co.kr/CMS/newspaper/2020/04/rc/776316_1.1_titleImage_1.jpg)
[수도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33) 반추 기도의 개념과 기억말씀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것 허성준 신부 우리는 앞에서 수도승 전통 안에서 되새김 수행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살펴보았다. 이것은 단순히 성경의 어떤 구절을 반복한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반추동물이 삼킨 음식물을 토출하고, 재저작하고, 재연하하여 완전히 자신의 살과 피가 되게 하는 일련의 과정과 같이 반추 기도는 말씀을 온전히 나의 것이 되게 하는 독특한 수행이다. 원래 반추란 음식물을 위로부터 다시 게워내는 토출, 음식물을 다시 씹어 분해하는 재저작, 침이나 효소나 타액과 재혼합 그리고 다 분쇄된 음식물을 삼키는 재연하하는 네 과정을 말한다. 반추 기도에서 토출이란 성경 독서를 통해 기억이나 쪽지에 기억된 하느님의 말씀을 떠올리는 것이다. 재저작은 말씀을 다시 되새김하는 것을 말하며, 재혼합은 신ㆍ망ㆍ애 안에서 말씀을 되뇌는 것이며 그리고 재연하는 말씀을 우리 마음속에 깊이깊이 간직하여 하나 되는 과정을 말한다. 수도자들은 독서 시간에 성경 말씀을 소리 내 읽고 들으며 말씀을 기억에 간직해 두었다. 그리고 일터에서 혹은 혼자 산책하거나 기도할 때 그 말씀을 토출해 내어 그것을 다시 천천히 되씹고 그 말씀을 마음에 재연화시킴으로써 온전히 그 말씀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단순하지만 독특한 묵상을 실천하였다. 반추동물이 음식물을 섭취할 때 일단 그것을 삼켜서 제1위에 저장하였다가 그것을 다시 토출하여 되새김하듯이, 우리 역시 하루 중 아침의 적당한 시간에 성경 독서를 하면서 마음에 특별히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있으면 그것을 나의 기억이나 쪽지에 일단 간직해 둘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의 기억이나 쪽지는 반추동물의 제1위와 같은 기능을 가진다. 현대의 바쁜 일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말씀을 기억 속에 간직하고 그것을 정확하게 기억해 내기란 참으로 어려울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응답해야 할 많은 일과 바쁜 일정 속에 늘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때는 성경 독서를 하고 말씀을 분명히 기억 속에 간직하였지만, 일상 속에서 떠올리려고 하면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런 면에서 우리의 기억이란 100% 신뢰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말씀 쪽지 수행을 하도록 특별히 권고하고 싶다. 매일 성경 독서를 하고 끝마칠 때는 그 말씀들 가운데 하루의 영적 양식으로 삼을 한 말씀을 쪽지에 적고 일상 속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언제든지 시간이 날 때, 일터나 휴식시간에 혹은 홀로 산책할 때 쪽지로부터 그 말씀을 떠올리고 천천히 되새김할 수 있다. 아니면 저녁의 적당한 묵상 시간에 그 구절을 천천히 호흡에 맞추어 집중적으로 반추해 볼 수도 있다. 대개 전통적으로 수도승들은 묵상 시간에 이러한 수행을 항구히 하였다.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을 기억이나 쪽지로부터 떠올리고 일상 안에서 끊임없이 되뇌는 수행을 하다 보면, 어느 날 말씀이 우리 안에 깊이 스며들고, 그 말씀이 죽어있는 문자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새로운 메시지임을 깊이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일상 안에서 하느님 말씀을 되뇌는 반추 기도의 수행을 한순간도 멈추어서는 안 된다.허성준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cpbc2020.03.31

걸작 성 베드로 대성전을 만든 ‘르네상스 주역들’ 한 자리에[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37) 오라스 베르네의 ‘브라만테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에게 성 베드로 대성전 설계를 명하는 율리오 2세 교황’ 오라스 베르네, ‘브라만테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에게 성 베드로 대성전의 설계를 명하는 율리오 2세 교황’, 1827년, 루브르, 프랑스 파리. 권력가 율리오 2세 교황과 어지러운 정세말 많고 탈 많은 알렉산데르 6세 교황(보르자)의 뒤를 이은 사람은 줄리아노 델라 로베로 곧 율리오 2세 교황(Giulio II, 재임 1503~1513)이었다. 율리오 2세는 선임 알렉산데르 6세를 몹시 싫어했다. 공공연하게 “나는 보르자처럼 살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율리오 2세도 만만치 않기로는 오십보백보였다. 알렉산데르 6세가 호색가였다면, 율리오 2세는 권력가였기 때문이다.율리오 2세의 가문 ‘델라 로베레’는 대대로 전사 가문이다. 알렉산데르 6세 시절, 원래 교황령이었던 땅을 자신의 영지로 만들고 아들 체사레 보르자를 공작으로 앉힌 적이 있었다. 그곳은 이탈리아 북부 로마냐 지역인데, 율리오 2세는 교황이 되자마자 체사레 보르자를 내쫓고 영지를 도로 빼앗아 왔다. 그러나 일부 도시들이 그 틈을 타 자치권을 들고 나오며 베네치아에 도움을 요청했다. 베네치아는 나름의 속셈이 있어 이를 수용했고, 리미니, 파엔차 등 몇 개 도시들이 베네치아로 넘어갔다. 율리오 2세는 원래 교황령이었음을 내세워 반환을 요구했으나 베네치아가 이를 거절하자 탈환하기 위해 프랑스의 루이 12세,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세로 구성된 반(反)베네치아 동맹 곧 ‘캉브레 동맹(Ligue de Cambrai)’을 조직했다. 이 동맹은 1508~1516년, 유럽의 국제 정세를 들여다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고, 오로지 전쟁을 위한 동맹이었기 때문에 ‘캉브레 동맹 전쟁(Guerre de la Ligue de Cambrai)’으로 알려졌다. 동맹 초기에는 원래 의도대로 베네치아에 넘어간 영지들을 찾아오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후 율리오 2세와 루이 12세간 관계가 틀어지면서 1510년, 사실상 동맹은 해체되었다. 그런데 율리오 2세 교황이 이번에는 프랑스에 맞서, 베네치아와 동맹을 맺었다. 베네치아와 율리오 2세간 동맹은 ‘신성 동맹(1511~1513)’이라는 이름으로 스페인, 잉글랜드, 구 스위스 연방까지 가세하여 확장되었다. 그 결과 1512년,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를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전리품을 분배하는 문제로 베네치아와 교황이 합의를 보지 못하자, 이번에는 베네치아가 동맹을 깨고 프랑스와 친선을 맺었다. 이렇게 어제의 아군이 내일의 적군이 되고, 친선과 배신이 요동치는 속에서 ‘신성 동맹’에 한번 가입하여 교황 편에 섰다가 끝까지 교황 편으로 남은 국가가 있었는데, 그것이 구 스위스 연방(Ancienne Confdration suisse)이었다. 오늘날 스위스의 전신이 되는 국가다. 율리오 2세의 삼촌이었던, 식스토 4세 교황(재임 1471~1484)은 헬베티아 연방(Confederazione Elvetica, 구 스위스 연방의 전신)과 동맹을 맺어 교황 호위를 맡겼었다. 알렉산데르 6세 시절 요란한 교황 때문에 스위스 용병들은 프랑스에 맞서, 교황 영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반발에 맞서, 심지어 신성 로마 제국 때문에 장화 반도에서 일어나는 여러 세력에 맞서 항상 최전선에서 싸워야 했다. 그런 역사를 잘 아는 율리오 2세는 교황 즉위 직후, 신변 보호를 구실로 ‘교황청 근위대’를 정식 창설했다. 스위스 연방과 체결하여 첫 용병대를 요청한 것이다. 1506년 1월 22일 폰 시레넨(Kaspar von Silenen, 1506~1517)을 지휘관으로 한 150명의 스위스 용병이 포폴로 성문(Porta del Popolo)을 통해 처음으로 로마에 공식 입성했다. 율리오 2세는 이들에게 ‘교회의 수호자’라는 칭호를 내렸다. 이런 인연으로 스위스 연방은 교황과의 신뢰를 중시했다. 예술과 문학을 후원한 교황한편, 로렌조 마니피코의 사망과 무능한 그의 아들 피에로가 샤를 8세에게 굴욕적인 항복을 하고 피렌체 성문을 열어주었다고 하여 피렌체에서 쫓겨난 이래, 메디치 가문은 18년간 떠돌이 생활을 했다. 그런데 1511년 베네치아와 교황 간 ‘신성 동맹’으로 이탈리아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프랑스의 루이 12세가 공의회를 소집하여 교황의 권력을 제한시키려고 했다. 거기에 손을 들어준 것이 피렌체였고, 피사에서 반(反)교황적인 공의회가 소집되었다. 뒤끝 작렬인 율리오 2세가 이를 가만히 둘리가 없었다. 피렌체를 응징하기로 하고 그의 중요한 영지 프라토(Prato)를 쳤다. 피렌체에서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메디치 가문의 지지자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 덕분에 교황군을 지휘하던 조반니 데 메디치 추기경(훗날 레오 10세 교황)은 피렌체에 무혈 입성하여 피렌체의 통치권을 회복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율리오 2세가 이렇게 항상 싸움만 한 것은 결코 아니다. 역대 어떤 교황보다도 예술과 문학을 즐기고 후원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피렌체 르네상스를 로마로 옮긴 장본인이고, 그의 재임기에 브라만테(1444~1514), 미켈란젤로, 라파엘로가 모두 바티칸에 와서 불후의 명작들을 남겼다. 브라만테는 성 베드로 대성전을 설계했고,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소성당의 천장화 ‘천지 창조’를 그렸고, 라파엘로는 바티칸 박물관 내 ‘라파엘로의 방들’을 그렸다. 율리오 2세는 화끈하고 솔직한 교황이었다. 그의 화끈한 면 때문에 조용할 날이 없었지만, 솔직한 면 때문에 역사가 제대로 기록되기도 했다. 볼로냐를 탈환(1506년)하고, 1년 전에 자신의 영묘 건설 문제로 틀어졌던 미켈란젤로를 볼로냐에서 재회하여 자신의 동상 제작을 의뢰했다. 그때 미켈란젤로는 손에 성경을 들고 있는 모습을 제안했으나, 율리오 2세는 성경 대신 칼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해 달라고 요구했다. 자신은 학자가 아니라 전사 집안 출신이고, 실제로 전사 교황이라는 것이다. 화가 가문, 19세기 당대 최고의 화가소개하는 그림은 루브르에 있는 작품으로 오라스 베르네 (Horace Vernet, 1789~1863)가 그린 ‘브라만테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에게 성 베드로 대성전의 설계를 명하는 율리오 2세 교황’(1827)이다. 오라스 베르네는 프랑스인 화가며 최초의 사진 예술가였다. 그의 부친 샤를 베르네(Carle Vernet)도 석판화를 많이 그린 화가였고, 조부 클로드 조제프 베르네(Claude Joseph Vernet)도 회화와 판화로 이름을 떨친 화가였다. 그러니까 오라스는 가업을 이은 화가였다. 오라스는 일찌감치 로마에서 아카데미 프랑세즈 원장을 지냈고, 1855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방 전체를 자신의 그림으로 채워 금메달을 받기도 했다. 그 결과 당대 최고의 화가로 이름을 올렸다. 19세기 프랑스의 비평가 생트뵈브(Charles Augustin Sainte-Beuve)는 그를 두고 “재치 있고, 사랑스럽고, 본성이 바르고 정직하며 충직하다. 활기가 있으면서도 균형이 잡혀 있다”라고 평했다. 그는 프랑스에서 가장 명예로운 ‘레지옹 도뇌르(Lgion d’honneur)’ 훈장을 받고 1863년 74살에 사망했다. 파리, 몽마르트르 공동묘지에 묻혔다.율리오 2세의 교황궁에는 같은 시기에 브라만테, 미켈란젤로, 라파엘로가 있었다. 1508년 64살의 브라만테는 율리오 2세에게 두 사람을 천거했다.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였다. 그는 라파엘로는 동향인이라는 이유로 편애했지만, 미켈란젤로는 싫어했다. 그런데도 천거한 이유는 프레스코화를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미켈란젤로를 엿 먹이기 위해서였다. 그때 라파엘로는 25살이었고, 미켈란젤로는 32살이었다. 브라만테는 밀라노에서 활동할 때 스포르차 가문의 신망을 얻어 다빈치를 천거하여 명작을 남길 기회를 주기도 했다. 그러니까 르네상스 삼총사들은 어떤 식으로든 브라만테와 인연이 있는 셈이다. 그림 속으로작품에서 수염을 기른 율리오 2세가 의자에 앉아 있고, 그 앞에서 브라만테가 성 베드로 대성전 설계도를 들고 설명하고 있다. 브라만테 오른쪽에는 젊은 미켈란젤로가 있고, 왼쪽 설계도 앞에는 잘생긴 젊은 라파엘로가 자기가 그리던 ‘엘리오도로의 방’에 있는 ‘레오 대교황과 아틸라의 만남’ 스케치에 오른손을 얹고 있다. 그 밑에 의자와 왼쪽 끝에 등을 보이고 앉은 사람의 의자에 새겨진 교황 문장을 통해 지금 이 공간이 교황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입을 꾹 다물고 설계도를 유심히 들여다보며 브라만테의 설명을 경청하는 교황과 그런 교황의 태도에 주목하는 미켈란젤로의 표정이 눈길을 끈다. 율리오 2세의 성 베드로 대성전 신축은 결국 이 세 사람의 업적으로 이루어졌다. 김혜경 (세레나,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이탈리아 피렌체 거주) cpbc2021.03.03

계시와 섭리, 너가 왜 거기서 나와[사유하는 커피](40)코로나19를 섭리와 연결짓지 마라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장 코로나19 사태에 혐오, 차별과 같은 부정적 언어의 사용이 늘고 있다. 빅데이터를 활용해 감성어를 분석한 결과인데, 팬데믹 확산을 저지하기 위한 노력 속에서 사람들 간 반목현상이 깊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언어는 말하는 사람의 인식을 반영한다. 그렇기에 더 깊이 우려되는 것은 ‘계시’와 ‘섭리’를 코로나19와 연결지어 쓰는 표현들이다. 코로나19 사태를 ‘냉혹한 섭리’라거나 ‘종말 계시’라는 둥 신의 의지와 억지로 연결시키려는 시도들은 생각할수록 근심을 만든다. 계시(Revelation)는 “감춰져 있는 것이 자신을 드러내다”는 의미를 지닌 라틴어 ‘레벨라시오’(Revelatio)에서 유래했다. 종교학에서는 이 감추어진 것을 ‘거룩한 존재’라고 규정한다. 거룩한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느냐를 두고 종종 논쟁이 벌어지는데, 대표적인 게 에밀 브루너와 칼 바르트의 ‘계시 논쟁’이다. 브루너 진영은 “인간이 하느님을 인식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바르트 학파는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야만 하느님을 알 수 있다”고 맞선다. 이 논쟁에서 분명한 것은, 어쨌든 인간은 거룩한 존재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은 아브라함과 모세 등 특정 인물을 통하거나 불기둥, 바람 소리 등의 형태 안에서 스스로 계시하셨다.코로나19를 모종의 계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팬데믹을 인류 심판의 전조라고 몰아가며 불안과 두려움을 증폭시킨다. 물질만능주의를 좇으면서 자연을 마구 훼손하고 있는 인류를 심판하는 것으로써, ‘노아의 방주’와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공포를 조장한다. 이들 세력의 노림수는 코로나19에 ‘천형’(Divine punishment)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다. 코로나를 이겨내려면 자신들에게 의지해야 한다고 수작을 부린다.섭리(Providence)를 들먹이는 것도 위험하다. ‘예견’ 또는 ‘배려’를 뜻하는 라틴어 ‘프로비덴시아’(Providentia)에서 온 섭리는 철학에선 “인간의 운명이 신의 뜻대로 진행된다고 믿는 것”으로 쓰인다. 예를 들어, 헤겔은 “신이 인류의 구원을 향해 세계를 정연하게 다스리는 것”을 섭리라고 했다. 하지만 일상에서는 섭리와 자연법칙이 같은 뜻으로 혼재돼 사용되기도 한다. 섭리에 대한 국립국어원의 풀이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자연계를 지배하고 있는 원리와 법칙’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과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하느님의 뜻’이다.코로나19를 섭리에 견주는 것은 곧 코로나 피해자들을 죄인으로 낙인 찍는 행위이다. 코로나에 걸린 환자를 인과응보로 인해 형벌을 받는 것으로 봐선 안 된다. 코로나에 걸릴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다는 식의 결정론을 펴는 것은 사이비이다. 굳이 코로나를 악에 비유한다면, 치유법은 이런 접근과는 정반대에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악은 선의 결핍에 따라 생겨난다. 코로나를 극복하려면 특정 사람들을 악인 취급하지 말고 재발하지 않도록 우리 사회의 결핍된 부분을 찾아 고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커피도 마찬가지이다. 커피에 벌레 먹거나 썩은 결점두가 일정 비율 이상 섞여 있게 마련이다. 이 비율을 줄일수록 품질이 좋아지고 마시는 사람의 건강에도 유익하다. 하지만 지구온난화에 따라 병충해가 극성을 부리면서 결점두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결점두가 많은 커피를 안 사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외면한 사이 나무들이 계속 전염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커피 열매가 벌레 먹지 않도록 기술적이나 재정적으로 결핍된 부분을 채워줘야 한다. 산지를 돕는 공정무역 커피는 이런 심성에서 시작돼 확산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것이야말로 신의 섭리이다.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평화신문2021.02.24
![[신앙단상] 평범한 풍요로움(윤태영, 토마스, 복음화 활동가)](//cpbc.co.kr/CMS/newspaper/2020/06/rc/781092_1.1_titleImage_1.jpg)
[신앙단상] 평범한 풍요로움(윤태영, 토마스, 복음화 활동가) 한참 열정으로 불타던 20대 시절,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순교라도 하겠다는 각오로 해외 선교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준비한 해외 선교의 첫걸음은 종교의 자유가 없던 한 나라였습니다. 당시 그 나라의 가톨릭교회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숨어서 신앙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처음 방문했던 곳은 한국인들의 공동체였습니다. 성경을 소유할 수 없는 그 나라에서, 한국어가 더 익숙한 그곳의 어르신 신자분들은 몇 년이 지난 한국의 「매일미사」 책을 성경 대신 사용하고 계셨습니다. 게다가 한국인 사제가 없으니 모국어로 고해성사를 할 수가 없었기에, 저희가 방문하면 한국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할 수 있다는 기쁨에, 먼 곳에서부터 며칠을 걸려 오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오래된 「매일미사」 책, 그마저도 너무나 많이 읽어서 낡아 버린 그 「매일미사」 책을 붙잡고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매주 주보를 보면서 각종 피정과 교육 프로그램 중에 어디가 좋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고작 1000원짜리 「매일미사」 책 몇 권을 가지고 하느님의 말씀을 닳도록 읽고 계신 그분들의 모습을 보니, 그동안 제가 얼마나 부유하고 귀족 같은 신앙생활을 누려왔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 지도 신부님께서 해주셨던 말씀이 여전히 기억납니다. “우리는 뷔페 신앙이야. 맘대로 맛있는 거 골라 먹을 수 있잖아.”골라서 먹어야 할 정도로 많은 선물이 눈앞에 있는데도, 더 좋은 게 없는지 아쉬워했습니다. 낡은 「매일미사」 책과 낡은 묵주 하나로도 하느님과 깊이 결속될 수 있는데, 예쁜 묵주가 집에 몇 개인지도 모를 정도로 많고 성경도 여러 번역본으로 다양하게 가지고 있지만, 하느님과의 결속은 뭔가 부족하고 느슨하게 느껴집니다. 선교를 떠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 나눌 수 있는 모든 것을 나누고 오겠다는 큰마음을 품고 갔는데, 오히려 제가 너무나 많은 것을 받고, 배우고 돌아왔던 눈물과 은총의 여정이었습니다. 이번 코로나로 인해서 그동안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생각했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었다고 주변 사람들과 서로 공감하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일상적으로 누리던 사회생활, 경제생활도 더 이상 당연하지 않았고, 문화생활은커녕 간단한 외출조차도 쉽지 않음은 물론 미사도 함께 모여 드리지 못하는 상황을 겪게 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일로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부유하고 풍요로웠는지를 깨닫고, 동시에 우리가 체험한 굶주림과 목마름을 기억한다면, 이 평범한 풍요로움에 감사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우리가 겪었던 일상의 굶주림과 영적 빈곤의 체험이, 이제 더 나아가 가난한 이들, 영혼의 결핍을 가진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cpbc2020.06.10

성경 속 인물들 살아 숨쉬는 조형 전시장동호 작가 유작 60여 점 공개
김세중미술관, 6월 9일까지 성가정상 중 앞면 일부, 브론즈, 2004. 고 장동호(프란치스코, 1961~2007) 작가의 미공개 유작들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전시가 6월 9일까지 서울 용산구 효창원로 70길에 있는 김세중미술관에서 열린다.개신교 신자였던 장 작가는 성미술에 매료돼 프란치스코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는 주님 수난과 부활 등 다양한 주제를 깊은 묵상과 성찰로 재해석한 독자적 조형세계를 남겼다. 그의 성미술 작품의 특징은 성경 속 인물을 소년의 형상으로 섬세하게 표현한 점이다. ‘봄빛과 십자가’를 주제로 열리고 있는 이번 전시에서는 청동, 쇠붙이 등으로 표현한 작품 6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작가의 작업실에 배치된 작품들을 그대로 전시실에 옮겨 작가의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하다. 장 작가는 작가 노트(2002)에서 “우리에게 희망을 주기에 봄빛과 십자가가 참으로 둘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저의 일이, 제 작품의 흔적이 사람들에게 새롭게 다가선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염원한다”고 밝혔다.특히, ‘성가정상(부제 : 이 땅의 모든 애비들을 위해)’에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요셉의 사랑과 헌신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작품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어린 예수를 꼭 끌어안은 성모의 모습과 크고 투박한 손만 보이지만, 작품을 뒤에서 보면 아내 마리아와 아들 예수를 낮은 자리에서 감싼 요셉의 모습이 보인다. 장 작가는 성가정상 제작 중 이런 글을 남겼다. “작업장 창 넘어 아이 보살피는 아내. 딱히 누릴 것 없이 이 땅 모든 애비들은 버거운 일에 커진 손으로 제마다 섬기는 식구를 즐겨 살피기 마련입니다. 나섬 없이 요셉이 그러했듯이 아내 등 뒤에서….”김세중미술관 김녕 관장은 “장 작가는 구도자의 자세와 뛰어난 재능, 예술혼으로 하느님의 마음을 흠모하고 치열하게 작업하다 짧은 생을 마쳤다”며 “그가 혼신을 다해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하느님께 대한 그의 사랑이자 그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라며 작품을 통해 희망과 위로를 얻길 바란다고 말했다.장 작가는 서울대 조소과와 독일 슈투트가르트 쿤스트 아카데미를 졸업했으며, 서울 도봉ㆍ방학ㆍ한남동ㆍ잠실7동ㆍ수원 금정 성당 등에 성미술 작품을 남겼다. 생전에 명동대성당 야외 조각전, 이탈리아 까라라성당 등지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2008년에는 가톨릭 미술상을 받았다. 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평화신문2019.05.22

천천히, 깊이, 다시 ‘성경’ 읽도록 이끌어주는 도서들교회 출판사들이 불황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관한 책들을 잇달아 출간하고 있다. 수익을 계산하기보다 모든 시대와 모든 장소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예언자의 사명에 충실하기 위함일 것이다. 교회 출판사들의 헌신과 도전에 격려의 마음을 담아 최근 출간된 책들을 모아봤다.신약 종주-예수님과 함께 걷는 여정 / 안소근 지음 / 성서와함께 / 1만 7000원성서학 박사 안소근(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수녀가 「구약 종주」에 이어 쓴 책이다. 「구약 종주」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지도 삼아 하느님의 얼굴을 찾는 여정이라면, 「신약 종주」는 그 하느님의 얼굴인 예수님과 함께 걷는 여정이다.저자는 길을 나서기 전 신약성경의 형성 과정을 들여다보고, 신약 시대의 역사 배경을 살펴보는 일로 여행을 준비한다. 그런 다음 성경의 차례를 지도로 펼쳐 놓고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으며 종주한다. 안소근 수녀의 친절한 해설과 함께 복음서 저자와 사도들, 첫 교회 공동체들의 증언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우리와 함께 걷고 계신 예수님의 구원 여정을 깨닫게 될 것이다.에제키엘서 / 김명숙 지음 / 바오로딸 / 2만 3000원한님성서연구소와 공동 기획으로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총서 출간된 「에제키엘서」는 에제키엘 예언서 본문 전체를 제시하며 각 장과 절마다 각주를 붙여 놓았다. 에제키엘서는 구조적으로 심판에서 구원으로 넘어가는 경계가 명확해 예언서들 가운데 가장 체계적인 책으로 꼽힌다. 총 48장으로 이루어진 에제키엘서는 4대 예언서 가운데 예레미야서와 이사야서에 이어 세 번째로 분량이 많고, 다니엘서가 그 뒤를 잇는다. 에제키엘은 기원전 6세기에 활동한 예언자로 유다 임금 여호야킨과 귀족들과 함께 바빌론으로 유배된 인물이다. 사도행전·히브리서·가톨릭 서간 / 박병규·윤성희 지음 / 바오로딸 / 1만 8000원성바오로딸수도회 시청각통신성서교육원 신약 중급 교재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 히브리서와 야고보서, 베드로1ㆍ2서, 유다서를 처음 읽거나 아주 드물게 읽어 본 이들에게 좋은 안내자 역할을 한다. 책은 사도행전, 히브리서, 가톨릭 서간이 가지는 특징적인 주제의 흐름을 서술하고, 각 서간의 가치와 사상, 특성을 소개하고 있다. 코린토 2서 강해 / 이영헌 지음 / 바오로딸 / 2만 원「코린토 2서 강해」는 20여 년을 광주가톨릭대학에서 성서학을 가르쳐온 이영헌 신부가 바오로의 4대 서간 가운데 「갈라티아서의 모든 것」, 「로마서 강해」, 「코린토 1서 강해」에 이어 바오로딸 성서연학총서로 출간한 책이다.코린토 2서는 어떤 서간보다 역사적 환경과 실제 상황에 밀착된, 생동감이 넘치는 서간이다. 또한, 바오로 자신의 애정 어린 심경과 신상 발언을 두루 드러내 보여주는 가장 인간적인 서간이다. 바오로 사도의 인간적인 면모뿐만 아니라 그가 수행한 그리스도의 사도직의 의미와 가치를 신학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서간으로서, 사도직 수행을 전망하는 데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역사적 보고다.저자는 서간의 단일성과 통일성을 말하는 전통적인 주장이나 견해에 따라 본문을 읽고 해석한다. 특히 가능한 많은 각주를 달아 참고 문헌과 함께 자세한 보충 설명도 곁들여 주해서의 가치를 더했다. 로마서 / 브렌던 번 지음 / 조장윤 옮김 대전가톨릭대학교 출판부 / 3만 원대전가톨릭대학교 출판부가 성경 연구 시리즈 제6권으로 브렌던 번이 지은 「로마서」를 우리말로 옮겨 출간했다.로마서는 신약성경 서간들 중에서 가장 길뿐 아니라 가장 많은 주석을 끌어들이는 서간이다. 로마서는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단일 문서로 널리 인식됐지만 또한 가장 논란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다인과 이방인의 구원 문제를 다루고 있는 로마서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학적 접근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가톨릭 전통 안에서 포괄적 구원 문제가 어떻게 형성돼 왔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19.06.25
![[영화의 향기 with CaFF] (100) 파힘](//cpbc.co.kr/CMS/newspaper/2021/01/rc/795407_1.2_titleImage_1.jpg)
[영화의 향기 with CaFF] (100) 파힘 난민 출신 천재소년의 감동 실화 영화 ‘파힘’은 체스 천재 방글라데시 소년 파힘이 프랑스로 망명해 프랑스 체스 챔피언이 되고 프랑스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는,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이다. 방글라데시의 위험한 정치적 상황을 피해 아버지 누라와 프랑스로 망명한 파힘은 프랑스 적십자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임시거처를 마련한다. 하지만 처음에 프랑스 정부는 이들의 망명을 거부한다. 아버지는 추방당하고, 파힘은 위탁 가정으로 가야 할 위기에 처한다. 파힘은 세계 체스 챔피언이 되면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말에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열리는 프랑스 챔피언십에 도전하게 된다.이 영화의 메인 플롯(main plot)은 방글라데시 난민 소년 파힘이 프랑스 체스 대회에서 챔피언이 되고, 프랑스에 정착하게 되는 것이지만, 서브플롯(subplot)은 요즘 심심치 않게 거론되고 있는 이슈 중 하나인 난민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전 세계 난민은 2590만 명에 이른다. 이 중에 즉시 재정착이 필요한 난민은 140만 명이나 된다.이 영화에서 감동을 주었던 부분은 파힘과 누라를 대하는 프랑스인들의 태도였다. 그들을 대하는 프랑스인들의 태도가 인간적이면서도 따뜻하고, 우호적으로 느껴졌다. 처음에 그들을 발견해 보호소로 데려간 적십자 사람들도 그랬고, 임시로 머물게 되었던 난민보호소에서도 그랬다. 적십자 사람들이나 난민보호소 사람들은 직업이니까 그럴 수 있다 치자. 하지만 체스 클럽의 선생님들과 아이들도 그들을 인간적으로 대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파힘과 누라가 제3세계에서 온 위험한 이들이나, 불법체류자가 아니라 그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난민, 파힘과 누라에게 그들은 기꺼이 함께할 자리를 내어준다. 파힘 아버지의 망명이 거부돼 추방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는, 파힘을 돌아가며 재워주는가 하면, 그들이 프랑스에 머물 수 있게 자기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한다. 무엇보다 그들은 후진국에서 온 파힘의 재능을 인정하고, 체스 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어떤 이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진정으로 도와줄 때, 우리는 감동하게 된다. 거기에는 도움을 주는 이와 받는 이를 넘어서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교감이 흐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따뜻했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 제주도에 난민들이 왔을 때가 생각이 났다. 우리는 그들에게 과연 얼마나 따뜻했을까? 그들이 우리의 것을 모두 빼앗아 가는 양, 우리는 갈 곳 없는 그들을 몰아세우고 배타적으로 굴지는 않았을까?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게 된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건 어떤 모습일까? 그분은 우리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도와주는 것을 원하지 않으실까? 문득 이 성경 구절이 떠오른다.“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21일 개봉서빈 미카엘라 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 극작가, 연출가 문채현2021.01.19

인류는 본래 하나였기에[사유하는 커피] (10)그리스도인의 음료인가, 무슬림의 음료인가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장 솔로몬 혈통을 잇는 에티오피아 그리스도인들의 커피가 어떻게 예멘 무슬림의 음료가 됐을까? 커피가 이질적인 두 종교 사이를 넘나든 사연은 역설적으로 양측의 동질감을 되새기게 한다.홍해를 사이에 두고 종교뿐 아니라 지리적으로 갈라져 있는 에티오피아와 예멘은 솔로몬 시대인 기원전 955년부터 840여 년간 ‘시바(Sheba)’로 불리는 한 왕국이었다. 시바의 전성기는 잡신을 숭배하던 여왕 마케다가 솔로몬을 찾아가 유다교를 받아들임으로써 꽃피었다고 전해진다. 이 시기는 칼 야스퍼스가 제창한 ‘축의 시대(Axial age)’이기도 했다. 세계의 주요 종교와 사상이 일제히 등장한 이때 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에 걸쳐 왕국을 형성한 시바에도 마침내 유일신을 따르는 움직임이 일었다. 유다 지역에서는 이사야 예언자가 동정녀에게서 메시아의 탄생과 하느님의 구원 약속을 설파했다. 그즈음 아랍인도 등장한다. 당시 아라비아반도의 끝 부분에 거대한 무리가 살고 있었음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이룩한 수메르인들이 기록으로 남겼다.예멘에 둥지를 튼 아랍인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들은 유다인들과 다른 사람들이 아니었다. 아랍인은 셈어족(Semitic languages)을 사용했다. 함, 야펫과 함께 창세기에 등장하는 노아의 세 아들 중 한 명인 셈의 후손들이라는 이야기이다. 아라비아반도에 살던 셈족의 일부가 기원전 3500년경 북상해 나일 강 인근에 살던 함족(아프리카인의 조상)과 어우러지면서 이집트인이 되었다. 기원전 3000년경 아라비아 사막을 횡단해 메소포타미아로 진출한 셈족의 한 분파가 바빌로니아인의 조상이 되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또 기원전 2500년경 팔레스타인에서 북부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이란 고원에 이르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정착한 셈족은 아무르인이 됐으며, 레바논과 시리아 등 지중해 동부 연안으로 이동한 무리는 페니키아인으로 정착했다. 셈족의 이동은 계속되었다. 기원전 1400년경에는 시리아 남부 지역에 거처를 정한 무리가 아람인(Aram)을 형성했고, 시리아 남부와 팔레스타인 지역에 정착한 분파는 유다인의 조상이 되었다.민족들이 보이지만 뿌리를 찾아 올라가 종교로 묶으면 손가락으로 꼽힐 정도로 단순하게 정렬된다. 종교는 민족을 분열시키는 게 아니라 통합시키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가톨릭, 개신교, 유다교, 콥트교, 이슬람교는 셈으로 모이고, 그의 아버지 노아를 통해 9대를 올라가 아담에 닿는다. 천지 창조의 순간이다. 인류는 하나였다.이런 배경을 알고도 커피가 그리스도인들의 문화인지, 무슬림의 문화인지를 따지는 소리는 잡음처럼 들린다. 에덴의 동산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메소포타미아와 레반트, 동아프리카 일대는 인류 문명의 근원지이자 유일신 사상과 그리스도교가 탄생해 왕성하게 퍼진 곳이다. 근원을 찾아가며 인류가 갈등을 치유하고 동질감을 회복하는데 성경보다 좋은 게 없겠지만, 커피 인문학에도 기대를 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선악과, 다윗, 솔로몬을 거쳐 마호메트, 십자군 전쟁, 오스만 투르크, 클레멘스 8세 교황, 베니스 상인, 청교도 혁명, 프랑스 혁명, 예수회의 라틴 지역 선교 활동, 미국의 건국으로 이어지는 커피 역사의 파노라마는 성경의 장면, 그리고 선교의 역사와 오버랩 되는 비율이 꽤 높다. 매일 성경은 읽지 않아도 커피는 하루도 거르지 않는 세태에서, ‘말씀’을 커피가 걸어온 길에서 더듬어내는 것은 진실에 이르는 또 다른 길이 되지 않을까. 커피가 특정 종교와 민족의 전유물이 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인류가 다양한 방식으로 분열되기 전부터 우리 곁을 지켰기 때문이다. 인류가 본래 하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깜빡깜빡 잊고 살아간다.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평화신문2020.07.07

무신론 논란에 신의 존재감 더 커져[사유하는 커피] (39)무신론 감상법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장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또 무신론을 들고 나왔다. 2006년 「만들어진 신」에서 창조론을 반박하며 신은 없다고 주장했던 그가 「신, 만들어진 위험」이라는 책을 내고 “신과 결별하라”고 외치고 있다. “신은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이며, 그로 인해 인간은 위험에 빠졌다”는 메시지다. 「만들어진 신」과 「신, 만들어진 위험」의 원제는 각각 「더 갓 디루션(The God delusion)」과 「아웃그로잉 갓(Outgrowing God)」이다. 디루션은 ‘망상’을 의미한다. 망상은 피해망상, 과대망상, 망상장애처럼 정신과적 질환에 붙어서 잘못된 믿음을 갖게 되는 증상을 묘사한다. 도킨스는 이 단어에 신을 붙였다. 우리말로 옮기면 ‘신에 대한 망상’쯤이 되겠다. 사실 이 제목은 시쳇말로 ‘잔머리’를 쓴 것이다. 스스로 신이나 종교의 창시자로 생각하는 과대망상 환자에게나 붙이는 의학적 진단명인 ‘종교 망상(religious delusion)’에서 살짝 한 단어를 바꿔치기했다. 그러나 의미는 엄청나게 달라진다. 유일신을 믿는 사람들을 정신병자로 몰아세웠다. 종교(Religion)와 망상을 합한 ‘리루션(Relusion)’은 “과학적 증거가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종교에 맹종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도킨스는 이 용어에 신을 넣어 무신론에 정당성을 부여하려 애쓴다. 요지는 “신이 존재한다는 과학적인 증거가 없음에도 신을 믿는 것은 망상”이라는 주장이다. 노아의 방주가 사실이라면, 방주가 발견된 곳으로 거론되는 터키 아라라트 산에서부터 모든 동물이 세계로 퍼져 나간 패턴을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동물도 창조가 아니라 진화의 결과가 아니냐는 인식이다. 「아웃그로잉 갓」은 ‘무신론 근본주의’라는 비난을 자초하는 모양새이다. Outgrowing은 ‘옷에 비해 몸집이 불어나 맞지 않게 됨’의 뜻으로 활용된다. 따라서 「Outgrowing God」은 “인간이 지혜로워져, 또는 과학이 발달해 신을 버려야 하는 수준이 됐다”는 도킨스의 신념을 은유하는 표현이다. 도킨스는 과학적 결과물을 성경 구절에 견주면서 신은 없다고 외친다.그의 주장과 자극적인 제목은 책을 파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내용이 과학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못하다는 눈총을 받고 있다. 영국의 과학철학자인 루퍼트 셀드레이크는 ‘망상’을 신이 아닌 과학에 붙인 「더 사이언스 디루션(The science delution)」을 출간하고, 도킨스의 무신론이 균형을 잃었음을 지적했다. 셀드레이크는 과학을 신봉하며 유물론과 무신론을 설파하는 지식인들에게 “모든 것이 진화하는 것이라면 자연의 법칙만은 왜 진화하지 않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진화론 만능주의자에게 던진 촌철살인이 아닐 수 없다. 도킨스의 무신론은 차라리 버트런드 러셀의 찻주전자 유추보다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도킨스를 향해 “과학을 동원하며 논증한 것이 신이 없다는 소수의 정황증거뿐이냐”는 비난도 나온다. 그의 주장을 보면 무신론자라기보다는 불가지론자에 가깝다는 힐난도 있다. 무신론 논란이 커질수록 신의 존재감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굳이 논리를 따져 답변한다면, 무신론이라는 것이 이미 그 자체에 신이 존재함을 전제하기 때문이겠다.커피의 역사와 관련해 교황청으로 보냈던 이메일에 회신이 왔다. “클레멘스 8세 교황께서 커피에 세례를 준 것이 사실이냐”는 우문(愚問)에 “근거 자료가 제시되지 않는 상황에서 특별한 필요성이 있지 않는 한 교황청은 진위를 확인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도킨스의 무신론에 교황청이 굳이 반응하지 않는 이유를 알 듯하다.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평화신문2021.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