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숨쉬는 모든 것, 주님을 찬양하라[장일범의 유쾌한 클래식] (35)멘델스존의 교향곡 2번 ‘찬양의 노래’ 멘델스존의 4개의 교향곡 중 유명한 작품은 4번 이탈리아와 3번 스코틀랜드다. 그런데 이 작품들처럼 자주 연주되지는 않지만 위대한 작품이 또 있으니 바로 2번 ‘찬양의 노래’라는 매우 독특한 작품이다. 교향곡이라는 장르와 칸타타라는 장르를 하나로 합쳐놓은 이 작품에 대해 멘델스존은 ‘성경 말씀에 의한, 독창과 합창, 오케스트라를 위한 교향적 칸타타’라는 부제를 붙였다. 이 곡은 3부로 나누어진 1악장, 9개의 독창 및 합창으로 이루어진 2, 3악장으로 구성돼 있다. 70분이 소요되는 대규모 음악으로 멘델스존은 구텐베르크 인쇄술 발명 400주년 기념 행사를 위해 이 곡을 작곡했다. 찬양의 노래는 1840년 6월 25일 멘델스존이 존경하는 작곡가 바흐가 칸토르(음악감독)로 봉직했던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에서 초연되었다.멘델스존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활동한 적이 있다. 재직 기간이 짧았음에도 넘치는 에너지와 빼어난 음악 실력으로 음악감독으로서의 권위를 인정받았고, 라이프치히시로부터 구텐베르크 인쇄술 발명 400주년 기념행사 음악을 의뢰받았다. 이때 ‘구텐베르크 칸타타’로도 불리는 ‘축전가’를 작곡했다. 하지만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고 원래 작업하고 있던 교향곡 2번을 확대해서 ‘찬양의 노래’를 완성하게 된다. 찬양의 노래 초연에 참석한 로베르트 슈만은 500명이 참가한 합창 음악에 감동해서 “멘델스존의 가장 신선하고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평했다. 이 곡은 초연 때 운집한 수많은 음악 애호가를 만족시켰다.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 왕은 멘델스존에게 직접 부탁해서 초연한 해인 1840년에 두 차례 더 멘델스존이 이 곡을 지휘, 연주하도록 했다. 멘델스존은 프리드리히 2세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작품을 헌정했다. 1악장은 ‘신포니아’로 오케스트라만 연주하는 곡이다. 1부는 금관악기 트롬본이 장중한 주제 선율을 연주하면서 서주가 시작되는데 이 선율이 바로 전체 곡의 중심 주제다. 활기찬 바이올린 연주 이후 경건하고 소박한 비올라 연주가 이어진다. 2부는 멘델스존의 피아노곡 ‘뱃노래’를 떠올리게 하는 리듬과 서정성을 갖고 있다. 3부는 ‘천천히 신앙적으로’에서 등장하는 종교적인 주제 선율이 2악장부터 등장하는 칸타타 부분에서 주요 동기로 등장한다. 2악장엔 합창이 나온다. 소프라노와 여성 합창으로 ‘호흡이 있는 자들은 주님을 찬양하라, 숨 쉬는 모든 것 주님을 찬양하여라, 할렐루야!’(시편 150,6)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께서 해 주신 일 하나도 잊지 말아라’(시편 103,2)를 비롯해 시편에 수록된 여러 주님 찬미가 이어진다. 3악장은 ‘너희는 주님에 의해 구원되었음을 외치라. 주님 우리 눈물 씻어주시고 무겁고 슬픈 마음 말씀으로 위로하신다’이다. 4악장은 합창 ‘주님께서 모든 환란에서 구원하시니’, 5악장은 슈만이 대단히 감동한 소프라노와 경건한 합창 ‘나는 주님을 애타게 기다린다’이다. 6악장 합창은 ‘죽음의 굴레는 우리를 둘러싸고’이며 8악장 합창은 ‘이제 우리 모두 하느님께 감사드리자’, 9악장은 소프라노, 테너, 합창으로 ‘그러므로 내 노래로 신실한 하느님을 찬미하리라’이다. 마지막 10악장은 ‘만백성아, 주님께 영광과 권능을 드려라’인데 이 장대한 곡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웅장한 합창이다. 첫 번째 합창의 선율인 ‘호흡이 있는 자들은 주님을 찬양하라, 할렐루야”가 울려 퍼지며 강렬하게 끝을 맺는다. ※QR코드를 스캔하시면 멘델스존의 ‘찬양의 노래’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iehzMc9ogE장일범(발렌티노) 음악평론가 cpbc2022.01.25

불공정의 시대, 최소한의 사랑인 ‘정의 실천’할 때[무너져가는 집을 복구하여라!] 24. 사회 공동체 재건을 위하여 - ③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불평등과 차별이 구조화된 시대에 인간의 존엄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사랑으로 응답하려는 책임이 필요하다. ‘최후의 만찬과 오병이어’, 라베나 성 아폴리네르 누오보 성당 내부 모자이크, 이탈리아. 위기에 처한 사회 공동체를 재건하려면 이웃사랑의 실천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소속감을 주고 유대감을 형성해야 한다. 더불어 인간관계에서의 ‘올바름’과 ‘공정함’을 지향하는 ‘정의 실천’이 필요하다. ‘정의 실천’의 덕목은 비단 오늘날의 핵심 이슈만은 아니다. 이것은 인류가 공동체를 이루기 시작한 때부터 바람직한 사회공동체 유지를 위해 요청되는 필수 요소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고대 ‘함무라비 법전’에 나오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알려진 ‘동태 복수법’은 과잉보복을 금지하여, 공동체의 질서 유지를 위한 것이다. 즉 사람이 함께 모여 살아갈 때, ‘법적인 정의’가 필수적이다. 또한 물건을 사고팔 때, 등가의 원리로 거래되는 ‘교환 정의’는 경제활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회의 권력이나 명예, 재화의 배분에서 각자에게 주어지는 공정한 몫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에 관한 ‘분배 정의’는 불공정으로 인해 생겨나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불평과 불만, 억울함을 해소하고 공동체의 평화를 이루는 초석이다. 국가적 세계적 차원에서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한 구조적인 불평등과 불의에 대한 해결책의 모색은 ‘사회 정의’와 관련되어 있다.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권 인정하고 보장법적 정의, 교환 정의, 분배 정의, 사회 정의, 이 네 가지 형태의 ‘정의 실천’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 전제되어야 할 기본적인 토대가 있다. 그것은 상대방의 기본권에 대한 존중과 보장이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회칙 「진리안의 사랑」에서 ‘정의’에 대한 핵심 원리를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정의는 남에게 ‘그의 것’, 곧 그의 존재와 행위를 근거로 그가 받아 마땅한 것을 그에게 주는 것입니다. 정의에 따라, 남에게 속한 것을 먼저 그에게 주지 않는다면, ‘나의 것’을 남에게 줄 수 없습니다.”(6항) ‘그에게 속한 것’을 그에게 주는 것은 마땅히 누려야 할 상대방의 기본권을 인정하고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교황은 정의의 핵심 원리가 ‘인권’임을 드러내셨다. 예를 들어서 가난한 사람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주어져야 하고, 학생들은 배울 권리가 존중되어야 하고, 병들거나 자신의 삶을 혼자서 유지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의료서비스를 받고 보호받을 기본적인 권리가 있다. 또 농부들에게는 자기 땅에서 농사지을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이러한 인간의 기본권은 능력에 따라 주어지거나 혹은 노력이나 공로,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인간이기에 그 존엄성과 품위를 지킬 수 있도록 누구에게나 무상으로 주어지는 권리이다. 하지만 각자 보장받아야 할 이 권리를 누군가가 보호해주거나 존중해주지 않는다면 이 천부적인 기본권은 의미 없는 공염불이 된다. 따라서 정의는 인간적인 상호 협약을 뛰어넘어 서로 보장하고 존중해야 할 사랑에 근거한 ‘책임’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성 바오로 6세 교황의 말씀대로 정의는 사랑의 ‘최소한의 척도’이며 사랑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예수님께서도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마태 14,13-21)을 일으키실 때, 당신 제자들에게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사랑인 ‘정의 실천’을 촉구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날이 저물어 저녁때가 되었으니 “군중들이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게 하자”(마태 14,15)고 제안한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제안을 거절하시며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마태 14,16)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수수방관하는 제자들의 태도에 일침을 가하면서 제자들이 지녀야 할 최소한의 사랑에 근거한 책임, 즉 ‘정의 실천’을 촉구하신 것이다. 이때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부랴부랴 해결책을 찾아 나서고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빵 다섯 개를 가진 한 아이를 예수님 앞에 데려온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라는 사랑의 ‘최소한의 척도’에 응답하여 빵을 많게 하는 기적을 일으키신다. 전 세계가 전쟁 광기와 사회 갈등으로 몸살오늘날 우리 사회는 불평등과 차별이 구조화된 불공정의 시대를 살고 있다. 성경에서 언급하는 호화롭게 사는 부자와 그 집 문간에서 구걸하는 라자로의 관계(루카 16,19-31)가 더 구조적으로 그리고 세계적인 차원으로 반복되고 확대 재생산되어 가는 모습이다. 이 때문에 정의의 열매로 얻게 되는 평화가 멀어져가고 전 세계가 전쟁의 광기와 사회적인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인간 존엄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최소한의 사랑으로 응답하려는 책임이 필요하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헌장」에서는 바실리우스 교부의 말씀을 인용하여 정의 실천을 위한 우리의 책임을 촉구하고 있다. “그대가 숨겨 둔 그 빵은 굶주린 이들이 먹어야 할 빵이며, 그대의 옷장에 처박아 놓은 옷은 헐벗은 사람들이 입어야 할 옷입니다.(중략) 그리고 그대의 금고에 숨겨 둔 돈은 가난한 사람들이 먹고 살아야 할 돈입니다. 따라서 그렇게 많이 도와줄 수 있는데도 도와주지 않는 것은 그대가 그만큼 그 사람들에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69항) 다른 사람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천부적인 권리를 보호해주고 존중하려는 최소한의 사랑인 정의를 실천할 때, 주님의 평화가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서도 충만해질 것이다. 김평만 신부(가톨릭중앙의료원 영성구현실장 겸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과 교수) cpbc2022.05.11

24명의 교수들이 펼치는 신학 명강연6개 분야 걸쳐 25개 글 실어 가톨릭 신학을 소개합니다 / 박병규 교수 외 23인 / 성서와함께가톨릭 신자들에게도 신학은 거창하고 다가가기 쉽지 않은 학문으로 여겨진다. 신학의 사전적 의미는 ‘신이 인간과 세계에 대하여 맺고 있는 관계와 신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곧 ‘하느님의 본질에 관한 탐구’이자,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고 이 세상이 나아가야 하는 바를 제시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가톨릭 신학을 소개합니다」는 다양한 분야의 신학을 공부한 대구ㆍ부산가톨릭대 등 24명의 교수가 각 분야의 신학 기초가 되는 글들을 모았다. ‘기초신학’, ‘성경신학’, ‘역사신학’, ‘조직신학’, ‘실천신학’, ‘철학’ 등 6개 분야에 걸쳐 25개의 글을 실었다. 신학의 각 분야에서 교회가 지속적으로 다듬고 정리해온 기본 내용을 바탕으로 전통적인 신학부터 생태신학까지 망라한다.신학을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신학을 ‘그리스도교 진리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학문’이라고 이해하는 입장과 ‘신앙인들의 실천을 비판적으로 생각해보는 것’으로 이해하는 입장이다. 신학의 비판적 기능을 강조하는 이들은 경제적 착취나 정치적 압제, 사회적 차별 등으로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이 어떻게 응답할 수 있는지 물으면서 신학을 재구성한다. 또한 신학은 맥락적ㆍ다원적 특성도 지닌다. 신학하는 자리가 바뀌면 신학도 바뀌며, 신학의 질문과 과제에는 신학하는 사람의 구체적 상황이 반영된다. 신학이 다원적인 이유는 다양한 맥락에서 다양한 신학이 나오기 때문이다. 하나의 신학이 아니라 여러 신학이 존재하며, 이 다원성 때문에 모든 신학은 한계를 지닌다. 그러므로 다원성과 한계성으로 신학자들은 서로 대화해야 한다.대구가톨릭대학교 가톨릭신학원장 박병규 교수는 ‘들어가는 말’에서 단순히 캐묻는 작업을 통한 신학 지식의 습득을 넘어 ‘신학하기’를 실천하자고 제안한다. 신학은 정체된 사변적 논리로 체제를 구축하는 일이 아니라 실천적이고 역동적인 삶의 고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신앙인에게는 고정된 ‘명사’로서의 신학이 아니라 직접 움직여나가는 ‘동사’로서의 신학하기가 더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때 각자 다른 처지에서 신앙을 실천하는 신자들의 믿음이 교회의 가르침 안에 깊이 뿌리내리며 성장할 수 있다.가톨릭 문화와 신학연구소 정희완 소장과 대구가톨릭대 허찬욱ㆍ전형천 교수는 ‘신학하기’에서 “신학이 하느님에 대해 말하지 않고 다른 주제들에 더 관심을 가진다면, 그것은 신학의 본령을 잃어버리는 셈”이라며 “신학은 마땅히 사람들의 구체적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구체적 삶에 대한 관심만으로는 신학이 되지 않는다. 신학이 신학이 되도록 만드는 요소는 하느님을 향한 궁극적 관심이다. 신학에서 어떠한 관심도 하느님을 향한 이 근원적 관심보다 앞설 수 없다.”(26쪽)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cpbc2021.12.22

성경 구절로 안내할 ‘신의 음료’ 커피[사유하는 커피] (1)골방에서 커피를 다시 생각한다 커피가 우리를 사유(思惟)로 이끌기를 소망한다. 커피의 향미가 머릿속에 띄워주는 영상들을 쫓다 보면 언제나 그 끝에는 내가 있다. 지금 덩그러니 빈 잔만 남긴 콜롬비아 라모렐리아 커피는 리븐델의 깊은 숲에서 시리도록 맑은 옹달샘을 내려다보는 나를 비춰준다. 따스한 꽃향기가 지그시 눈을 감게 만드는 것을 보니 엘프들이 나무 위에서 꽃가루를 뿌리고 있나 보다. 커피를 마시면 어떨 때는 시인이 되고 싶다. 한 줄은커녕 한 마디조차 터져 나오지 못한다 해도, 아름다운 무엇인가를 허공에 띄워야 한다는 간절함과 그 순간의 전율을 사랑한다. 초를 밝혀 두 손을 모을 때도 있다. 발아래부터 나를 가득 채워 주며 올라오는 행복감이 이대로 사라지지 말고, 누군가에게 축복이 되기를 기도한다. 커피의 무엇이 거친 세월에 길들어진 나의 심성을 이토록 보듬어 줄까?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의 기록을 담은 것이 「커피인문학」이다.아주 먼 옛날, 커피는 에티오피아에서 태어나 홍해를 건너 아라비아반도로 갔다. 기원후 7세기, 커피는 동굴 수행으로 죽음의 고비에 처한 마호메트를 살려내 무슬림들에게 ‘신의 음료’로 추앙받았다. 게다가 식욕을 떨어뜨리는 효력 덕분에 금욕주의 수피교도들의 친구가 되어 순례길을 따라 아랍 전역 깊숙이 스며들었다. 커피는 200여 년간 이어진 십자군 전쟁의 소용돌이에서도 유출을 삼가며 아라비아반도를 잠행했지만, 16세기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예멘에서 꼬리를 밟혔다. 냉혈한으로 소문난 술탄 셀림 1세에 의해 이스탄불 심장부로 옮겨진 커피는 종교색을 벗고 대중의 음료로 변신했다. 사람들에게 이야기꽃을 피우게 하는 커피의 마력은 서민들에게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대화를 통해 정보가 흘렀고 지식은 개인을 각성시켰으며, 운명적으로 시대적 계몽으로 이어졌다. 위정자들은 커피의 힘을 빌려 부조리를 포효하는 사람들을 붙잡아 가죽 부대에 담아 보스포로스 해협에 던졌다. 무슬림이 받들던 ‘신의 음료’가 자신들을 박해하는 빌미로 추락한 것이다. 커피는 인생처럼 기구(崎嶇)하다.성 베드로 대성전이 건립된 1615년은 커피가 처음 유럽 땅을 밟은 해이다. 검은 빛깔 때문에 그리스도인 사이에서는 ‘악마의 음료’로 눈총받던 커피가 벌건 대낮에 교황청에 들어섰다. 앞서 클레멘스 8세 교황(재위 1592~1605)이 세례를 통해 거듭날 수 있도록 한 덕분이다. 교황께서 “이렇게 맛있는 음료가 사탄의 것일 리 없다. 설령 그렇다고 하면 사탄을 쫓아내고 그리스도인들도 마음껏 마실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커피의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이 장면을 기록으로는 아직 찾을 수 없다. 커피는 이후 영국의 청교도 혁명 한복판에 떨어지고, 프랑스에서는 대혁명의 기운을 모았으며, 미국에서는 독립 혁명의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커피가 펼쳐내는 지식의 향연은 끝이 없다. 그러나 커피는 “엉뚱한 길로 가고 있다”고 내게 속삭인다. 커피가 왜 인류 역사의 고비마다 등장했으며, 숱한 사연을 만들어 낸 것은 무슨 의미인지를 알고 있느냐는 꾸짖음이 이제와 크게 울려 나온다. 나는 그동안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 것은 아닌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골방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에덴동산의 선악과가 커피나무였다는 주장을 커피의 위대한 스토리텔링으로 볼 게 아니라 왜 그런 주장이 나와 수많은 커피 애호가들을 성경의 구절로 안내하는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를 따라가겠다. 골방에서 나를 비추던 패러다임을 바꿔 볼 참이다.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장 세계일보 수습 5기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02년 국내 첫 무료신문인 ‘메트로’ 창간 멤버로 참여한 뒤에는 문화생활 분야의 전문기자를 지냈다. 2013년 ‘포커스’ 편집국장을 끝으로 21년간 언론인 생활을 마감한 뒤 커피 향미와 인문학을 접목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커피인문학’ 강의를 시작했다. 세계적인 커피 석학인 숀 스테이먼 박사와 커피 향미를 올바로 평가하고 묘사하는 커피 테이스터 교육 과정을 공동 창안했다. 커피인문학, 커피 테이스터, 플레이버(FLAVOUR) 마스터 분야를 개척한 공로로 2017년 세계 3대 인명사전 중 하나인 ‘마르퀴즈 후즈 후(MARQUIS WHO’S WHO)’에 등재되었다. 현재, 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커피학과 외래교수이자, 커피비평가협회(CCA) 회장이다. cpbc2020.05.06
![[대구대교구 사목교서] 복음의 기쁨을 살아가는 공동체 - 하느님 말씀을 따라](//cpbc.co.kr/CMS/newspaper/2021/12/rc/814367_1.2_titleImage_1.jpg)
[대구대교구 사목교서] 복음의 기쁨을 살아가는 공동체 - 하느님 말씀을 따라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 친애하는 교구민 여러분에게 하느님께서 풍성히 강복하시길 빕니다.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세상과 함께 오늘날 교회도 큰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새 영세자가 감소할 뿐 아니라 주일미사 참례자, 주일학교 학생과 청년들, 그리고 성소 지원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반면 냉담 신자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 교회의 어려움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 때문에 더욱 악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편 급격한 가치관의 변화, 부와 정보의 편중, 개인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 계층·세대·지역 간의 갈등과 관계 해체, 환경파괴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등으로 위협받고 있는 이 시대에 교회의 역할은 더욱 크게 요청받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교회가 초대교회 때부터 복음적 가치관으로 이겨내야만 했던 도전들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현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더욱 매진해야 할 것입니다. “복음은 끊임없이 우리를 기쁨으로 초대”(「복음의 기쁨」 5항) 할 것이라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다시 새롭게 살고자 노력한다면 그 “신앙의 기쁨이 더디지만 분명하게”(「복음의 기쁨」 6항) 지역사회를 복음화하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교구 설정 120주년까지 실천할 다섯 가지 가치 : 말씀, 친교, 전례, 이웃사랑, 선교 그래서 교구 설정 120주년을 바라보면서 2030년까지 ‘복음의 기쁨을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어가기 위해 말씀, 친교, 전례, 이웃사랑, 선교라는 다섯 가지 핵심 가치를 매 2년씩 중점적으로 실천하며 살기를 제안합니다. 앞으로 10년 동안 보다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계획 아래, 서로가 신뢰하고 소통하면서 살아갑시다. 각 대리구와 본당들도 교구의 장기 사목 방향에 발맞추어 자신들만의 실천방안과 후속 조치를 찾아 모두 함께 이 길에 동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2021~2022년: ‘하느님 말씀 따라’ 살 것 그 첫 번째 2년 동안(2021~2022년)은 ‘하느님 말씀을 따라’라는 주제로 살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구세주 그리스도로 믿어 고백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이 주신 모든 생명의 가치를 어떻게 보존하고 풍성하게 할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지 늘 고심해야 합니다. 이 모든 질문의 답은 바로 복음 말씀 안에 있습니다. 말씀으로 힘과 희망을 얻어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신앙과 영성으로 나아가기 위해 그 기본인 성경을 가까이하고, 알아듣는 교육과 양성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2년 동안 교구, 대리구, 본당 차원에서 무엇을 실천할지 고민하고, 교우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cpbc2021.12.01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35) 여행지 : 구세사 1](//cpbc.co.kr/CMS/newspaper/2021/12/rc/814917_1.5_titleImage_1.jpg)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35) 여행지 : 구세사 1마리 파울리타 수녀(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 ‘구세사’란 하느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행위에 대한 역사를 말합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고대 이스라엘 백성이 유일신 하느님께 대해 체험한 이야기가 전개되어 나오는데, 바로 이들의 역사가 구세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하느님께서는 맨 먼저 아브라함을 선택하시어 당신 백성으로 부르시고,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응답하며, 자신의 외아들까지 아낌없이 바칩니다. 우리는 이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느님과 어떻게 관계를 가져야 하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약 또는 이스라엘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구약의 하느님 백성’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신약의 하느님 백성’ 이스라엘(갈라 6,16 참조)인 우리의 역사가 담겨 있기에,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과 이웃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그럼 ‘첫 번째 구세사’ 퀴즈 여행을 떠나볼까요?퀴즈 여행1. 구세사는 특히 어느 나라 역사를 말하는가?2. 하느님께서는 누구를 선택하시어 ‘많은 민족의 아버지’로 삼으셨는가?3. 동생이 형의 축복을 가로채도록 도운 어머니, 즉 이사악의 아내는? 4. 야곱이 밤에 하느님과 씨름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는데, 어떤 강가에서 일어났는가?5. 야곱이 다른 아들보다 더 사랑하여 형들의 질투로 이집트로 팔려 간 사람은?6.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키는 사명을 받은 사람은?7. 이집트에 내린 재앙 중 몇 번째 재앙에서 파라오가 무릎을 꿇었는가? 답란1. □□□엘2. □□람 또는 □□□함3. □베□4. □□ 강 5. □셉6. □세7. □ 번째 (정답은 ‘가이드 설명’에서 확인하십시오) 가이드 설명1. 구세사: 이스라엘의 역사 ‘구세사’(救世史)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느님의 구원 행위에 관한 역사로, 특히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말합니다. 이는 이스라엘 역사 안에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계획이 잘 계시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출애굽’(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하여 해방되어 나온 사건)이며, 출애굽 후 가나안에서 이스라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창세 12―23장) 하느님께서는 바벨탑 사건으로 흩어진 인류를 하나로 모으시고자 아브람(나중에 아브라함)을 선택하십니다. 아브람은 부르심을 받아 고향을 떠나 미지의 땅으로 길을 떠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와 계약을 맺으시며, 그의 이름을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되라고 ‘아브라함’으로 바꾸어주시지요.(창세 17,1-5) 아브라함은 자신의 외아들을 희생 제물로 바치라는 하느님의 시험에 믿음으로 응답하였기에(창세 22,1-9), “믿는 모든 사람의 조상”(로마 4,11)이 되었습니다. 참조) 아브라함은 3대 종교(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신앙 선조이다. 3. 이사악과 레베카(창세 24―27장) 아브라함의 계약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사악에게 계승되었습니다. 이사악은 레베카와 혼인하여 쌍둥이를 낳았는데, 이사악은 형인 에사우를, 레베카는 동생 야곱을 사랑하였지요.(창세 25,19-28) 이사악이 늙어서 에사우에게 장자권의 축복을 주려고 했을 때, 레베카는 야곱이 형의 축복을 가로채도록 계략을 꾸미며 도와주었습니다. 결국 축복은 야곱에게 넘어가고, 야곱은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형 에사우를 피해 외숙부가 사는 하란으로 피신을 하게 되지요.4. 야곱: 이스라엘(창세 28―33장) 하란으로 도망간 야곱은 그곳에서 라반의 딸들과 혼인해 열한 아들을 낳았습니다(후에 벤야민이 태어남). 야곱은 세월이 지나 금의환향하면서 형 에사우와의 대면을 두려워하여, 낯선 곳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에 야곱은 두 아내와 두 여종, 그리고 아들들이 먼저 야뽁 강을 건너게 하고는, 혼자 남아서 어떤 사람과 밤새 씨름을 하였지요. 새벽까지 야곱이 그 사람을 놓아주지 않자, 그 사람이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하느님, 사람들과 겨루어 이김)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그 뒤 이 이름은 야곱과 그의 후손(유다인)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지요. 5. 야곱이 사랑한 아들: 요셉(창세 37장 이하) 야곱의 열두 아들 이름은 ‘르우벤’, ‘시메온’, ‘레위’, ‘유다’, ‘즈불룬’, ‘이사카르’, ‘단’, ‘가드’ ‘아세르’, ‘납달리’, ‘요셉’, ‘벤야민’입니다. 이들이 후에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이 됩니다. 야곱은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늘그막에 낳아 준 요셉을 다른 아들보다 더 사랑하였지요. 이에 요셉이 다른 형제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아 이집트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후에 요셉은 이집트 재상의 높은 위치에 오르게 되었고, 야곱 가문은 가뭄을 피해 또 요셉의 초청으로 이집트로 이주하게 되었지요.6. 모세와 출애굽(탈출 1―6장) 야곱 가문은 이집트 땅 고센지방에 자리 잡으면서 후손이 크게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400년이 흘러 요셉의 역사를 모르는 이집트 왕 파라오는 히브리 자손이 불어나는 것이 두려워 태어나는 사내아이를 모두 죽이라고 하였지만, 모세는 하느님의 섭리로 죽음을 모면하고 이집트 왕궁에서 자라나지요. 이후 억압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하느님께서는 불타는 떨기 속에서 모세 앞에 나타나시어, 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키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7. 열 번째 재앙(탈출 7―15장)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내기를 거부하는 파라오에게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십니다. 이 중 열 번째 재앙은 이집트의 모든 맏이와 맏배를 치신 것이지요. 하지만 죽음의 천사가 양(짐승)의 피를 문설주와 상인방에 바른 이스라엘 집은 건너가지요. 여기서 ‘거르고 지나가다’라는 파스카(pascha)라는 말이 유래합니다. 파라오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는데, 여기서 또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을 체험하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세 대대로 ‘파스카 축제’를 지냅니다.여행옵션: 아브라함 가계도여행 기념품우리는 구약의 성조들(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요셉 등)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어떤 사람이며, 하느님께서 그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으시고 축복하시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자신의 아들 이사악을 봉헌할 수 있는 믿음이 있었기에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형의 축복을 가로채었지만 보속의 시간을 채우면서 하느님의 축복을 체험하였습니다. 요셉은 고통 중에서도 하느님께서 함께하심을 체험하였기에, 자신을 팔아넘긴 형들을 진정으로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 중 가장 마음에 와 닿은 인물은 누구입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마리 파울리타 수녀(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 cpbc2021.12.08

주님 부활, 책으로 더욱 뜻깊게 되새기자부활 시기에 신자들 읽을 만한 도서묵상집·논문·연구집 등 다양한 분야 “하늘은 이 세계 위에 공중에 있는 상층(上層)이 아니다. 하늘은 하느님께서 계시는 곳이고, 하느님은 곳곳에 다 계신다. 하늘은 하느님의 소리가 들려오는 곳이다. 또한 하늘은 인간의 소리가 올라가는 곳이기도 하다. 하늘나라는 예수처럼 지금 죽어 새로 태어난 자만이 갈 수 있다. 즉 지상의 삶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 남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 사람만이 갈 수 있는 나라다.”(이제민 신부의 「예수는 정말 부활했을까」 중에서)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주님 부활 대축일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부활의 신앙과 기쁨을 잘 알고, 더 깊이 깨닫고, 실천하기 위해 신자들이 부활 시기에 읽을만한 책을 소개한다. 예수는 정말 부활했을까이제민 신부 / 바오로딸예수의 부활, 우리 자신의 부활에 대한 묵상 거리를 던진다. 저자 이제민(마산교구) 신부는 부활의 삶을 깨닫고, 부활의 삶을 위한 구체적인 길을 제시했다. 2001년에 출간한 이 신부의 교리서 「우리가 예수를 찾는 이유는?」에서 부활 신앙을 보완해 펴낸 책이다. 이 신부는 부활의 삶을 살기 위해 업적과 인기, 성공 위주의 삶을 죽이고, 죽음으로 이끄는 삶을 살라고 조언한다. 그는 부활이 ‘시체의 소생’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예수처럼 남을 위해 기꺼이 죽는 삶을 살 때 부활의 삶을 살 수 있다고 강조한다. 부활 교리가 공상과 환상을 뛰어넘는 신화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신부는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교에서 기초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2018년까지 밀양 명례성지에서 사목하다가 원로 사목자로 지내고 있다.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오데트 맨빌 외 14명 지음ㆍ안영주 옮김 / 성서와함께 가톨릭, 개신교 두 출판사가 유럽과 캐나다의 프랑스어권 학자 15명의 글을 모아 부활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책이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저명한 성경학자들이 예수 부활에 대한 증언을 다뤄 쉽게 읽히지 않지만, 초세기 그리스도인들이 낯선 부활 체험을 증언하기 위해 쓴 본문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엿볼 수 있다.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헌에 나타난 죽음 너머의 삶에 대한 기대와 그리스-로마 세계의 인간학’을 비롯해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언어에서 살펴본 부활’ 등에 대해 다뤘다. 집필진으로 오데트 맨빌(몬트리올대학교 신학대학)ㆍ미셸 구르그(도미니코회 신학과 철학대학)ㆍ장 줌스타인(취리히대학교 신학대학) 학자 등이 참여했다. 부활하인리히 쉴리어 지음ㆍ김지영 옮김 가톨릭출판사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추천한 도서로, 성경 주석학자인 하인리히 쉴리어가 1968년에 발간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논문이다. 성경의 증언을 바탕으로 예수 부활의 사건을 간결하고 정확하게 전개하고 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이 책이 부활의 현상과 독창성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부활이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임을 확고히 한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성경 문장 구조를 통한 언어학적 측면에서 분석했으며, 빈 무덤의 역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ㆍ부활ㆍ발현의 의미를 고찰했다. 저자 하인리히 쉴리어는 독일 루터교 가정에서 태어나 1927년부터 튀링겐 루터교회 목사로 살았지만 2차 세계 대전 후 신약성경과 고대 교회사를 강의하다 개신교에 회의를 느껴 1953년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1952년부터 본대학 철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부활의 기쁨 100배 맛보기안셀름 그륀 신부 지음ㆍ정하돈 수녀 옮김 분도출판사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성령강림 대축일까지 50일 동안 부활의 참뜻을 되새길 수 있도록 돕는 묵상집. 세계적 영성가 독일의 안셀름 그륀 (독일 성 베네딕도회) 신부가 부활의 뜻을 새겨주는 성경 구절을 가려 뽑았다. 안셀름 그륀 신부는 “부활의 힘을 믿고, 그리스도께서 당신 안에서 이루고 싶어하는 부활을 그저 신뢰하기만 하면 된다”고 응원한다.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cpbc2021.03.31

목마른 이에게 마실 것을, 헐벗은 이에게 입을 것을… 사랑을 행하여라[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43) 피터르 브뤼헬의 ‘일곱 가지 자비의 행위’ 피터르 브뤼헬, ‘일곱 가지 자비의 행위’(1616), 개인 소장, 벨기에. 325년 콘스탄티누스가 소집한 니케아 공의회 이후 트렌토 공의회까지 모두 19번의 공의회가 있었다. 그리고 이후 500년간 두 번, 제1ㆍ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렸다. 트렌토 공의회는 이것만 봐도 얼마나 교회 생활에 중요한 전환점이었는지 알 수가 있다. 여기서 잠시 당시 공의회의 성격을 알기 위해 첫 번째(가장 먼저 사도들이 소집한 예루살렘 공의회는 일단 빼기로 하자) 공의회인 ‘니케아 공의회’로 돌아가 보기로 한다. 콘스탄티누스는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제국 내에서 모든 종교를 허용하는 ‘종교 관용령’을 선포했다. 아직 사분 통치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동로마의 리키니우스와 공동명의로 선포했다. 그러나 우리는 콘스탄티누스의 업적으로만 알고 있다. 이것은 이후 리키니우스보다 콘스탄티누스가 훨씬 칙령의 내용을 잘 실천했기 때문이다. 과거 동로마의 디오클레티우스와 콘스탄티우스(콘스탄티누스의 아버지), 서로마의 막시미아누스와 막센티우스, 이후 갈레리우스와 리키니우스 등과도 전혀 다른, 친(親)그리스도교 정책을 폈는데, 그것은 개인적인 신앙심 때문이라기보다는 제국 내에서 이미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을 모두 죽이는 게 대수가 아니라는, 나름의 정치적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오히려 제국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중요한 동력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공인된 지 얼마 안 된 그리스도교 내에서 이단이 발생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사제 아리우스가 그리스도의 신성에 반대했고 그에 동조하는 사제들이 늘어나면서 문제가 커지기 시작했다. 황제는 긴장했다. 그리스도교로 제국을 하나로 통합하려고 했는데, 제국을 분열시킬 위험 요소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황제는 공의회를 소집해 아리우스를 파문하고 ‘니케아 신경’에 아리우스가 반대한 내용을 모두 담아 신앙고백 기도로 발표하고 회의를 종료했다. 이것이 중요한 것은 이후, 가톨릭교회에서 진행한 18번의 공의회에 어떤 식으로든 황제들의 개입이 있었고, 공의회 결정 사항이 그만큼 국가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트렌토 공의회, 사목 전 분야에 걸쳐 개혁 단행 다시 트렌토로 돌아와서, 종교 개혁에 대한 응답으로 시작한 공의회지만 개혁자들의 공격을 모두 받고, 시대가 무르익은 다음에야 공의회는 소집되었다. 그것도 샤를 5세와 프랑수아 1세가 대립하는 가운데서, 역사상 어떤 공의회보다 광범위한 차원에서 작업을 진행했다. 그때까지 각종 의혹으로, 혹은 ‘신비’로 밀쳐두었던 불분명한 교리들까지 명확하고 분명하게 했고, 사목의 전 분야에 걸쳐 개혁을 단행했다. 그중 오늘 우리 주제와 관련한 한 가지만 들면, “라틴어 성경(불가타)과 사도들과 교부들의 신앙과 행실에 관한 전승을 모두 수용”했다. 당시 유럽은 루터 이전 한 세기 전부터 일부 개혁가들에 의해 불가타의 자국어 번역이 있었다. 루터도 개혁과 동시에 불가타의 독일어 번역과 자의적인 해석으로 논란을 자초했다. 이에 트렌토 공의회는 불가타를 가톨릭교회의 정경으로 선포하고, 미사용 전례 텍스트에 불가타 성경 구절을 체계적으로 배치해 논란을 정리했다. 신앙과 행실에 관한 가르침도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하셨고, 성령에 의해 사도들과 교부들이 실천했으며, 가톨릭교회 안에서 항시 보존되어 온 것으로서 이를 존경하고 애정으로 받아들인다고 천명했다. 우리의 주제 ‘자비의 행위들’은 정확하게 여기에 속한다. 이것만 보더라도 트렌토 공의회의 결정 사항이 얼마나 루터의 ‘오직 성경, 오직 은총, 오직 믿음’이라는 주장에서 멀어졌는지를 알 수 있다. 공의회는 루터를 의식해서 일부러 반대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교회가 걸어야 할 방향을 결정한 것이다. 일각에서 말하는 ‘트렌토 공의회의 결정 사항이 결국 반(反) 프로테스탄티즘’이라는 표현은 마치 공의회가 ‘반(反) 루터’나 ‘반(反) 종교 개혁’의 차원에서 결론을 끌어낸 것처럼 보여,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본다. 가톨릭교회는 루터가 ‘오직 성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성경 ‘만’이라는 문자주의가 아니라, 성경에서 가르치는 바를 ‘행동’하라고 가르친다. 여기에 대해 루터는 “행위가 아닌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교회는 ‘믿음’에 행위가 따르지 않으면 그것은 죽은 믿음이라며, 믿음이 생명력을 얻으려면 ‘선한 행실’, ‘사랑의 행위’가 동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사례는 루터의 나머지 ‘오직 시리즈’와 개혁가들이 없앤 성사들과 관련하여 얼마든지, 한도 끝도 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가톨릭교회의 이런 가르침이 공의회에서 ‘결정’한 것이라기보다는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가르친 핵심 내용이었고, 교회 전통으로 사도 시대부터 내려오던 것이었다는 점이다. 중세기 교회가 권력층에 있을 때, 그것을 잘못 사용하거나 남용하여 개혁이 요구된 바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폐기해야 했던 것은 아니었다. 공의회는 그것을 확인하고 재천명한 것이다. 14가지 자비의 행위트렌토 공의회를 기점으로, ‘영성가’들이 대거 출현하면서 이런 가르침이 전면으로 부상하기 시작했고, 소위 ‘공의회 예술가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에 의해 그것이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예컨대, 그리스도인이 실천해야 하는 자비의 행위로, 14가지를 언급했다. ‘7가지 육체적인 자비의 행위’와 ‘7가지 영적인 자비의 행위’가 그것이다. 글을 모르는 신자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매우 쉽고 간략하게 가르쳤다. 일곱 가지 육체적 자비의 행위는 ①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 ②목마른 사람에게 마실 것을 주는 것 ③헐벗은 사람에게 입을 것을 주는 것 ④감옥에 갇힌 사람을 방문하는 것 ⑤순례자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것 ⑥병자를 돌보는 것 ⑦죽은 사람을 묻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일곱 가지 영적인 자비의 행위는 ①(신앙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에게 조언하는 것 ②무지한 사람을 가르치는 것 ③죄인을 질책하는 것 ④슬퍼하는 사람을 위로하는 것 ⑤상처 입은 사람을 용서하는 것 ⑥괴롭히는 사람을 인내로 견디는 것 ⑦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불과 지옥의 화가 소개하는 작품은 브뤼헬(Pieter Brueghel il Giovane, 1564~1638)이 그린 ‘일곱 가지 자비의 행위’(1616)다. 여기선 ‘육체적인 자비’의 행위들을 표현했다. 벨기에의 한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 피터르 브뤼헬은 아버지 피터르(1525?~1569)와 동생 얀(1568~1625)도 화가인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5살에 부친이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그의 이름과 재능만 물려받고, 직접 그림을 배우지는 못했다. 하지만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받아 21살 때부터 눈에 띄는 예술가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버지와 같은 화풍의 그림을 그리며 아버지의 그림들을 베껴 충실한 모방가 중 한 사람이었다. 그때부터 안트베르펜의 성 루카 길드의 마에스트로가 되었다. 화가들의 조합이나 단체의 이름 또는 주보로 성 루카를 많이 드는데, 이는 루카가 의사라서 인물 묘사를 세심하게, 마치 그림을 보듯이 했기 때문이라는 설과 루카가 화가였다는 설 때문이다. 브뤼헬은 점차 아버지의 화풍에서 진일보하여 특징적인 작품들을 선보였는데, 그것이 ‘불과 지옥의 화가’라는 별명이 되기도 한 ‘불과 지옥’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다. 1638년 안트베르펜에서 사망했다.그림 속으로작품은 중세기 ‘가난한 이들의 성경(Biblia pauperum)’을 연상시킬 만큼 간결하고, 쉽다. 왼쪽 위에서부터, 2층의 건물 위는 감옥이다. 계단에도 간수가 있고, 기둥 뒤에도 간수가 앉아 있다. 왼쪽 끝에 두 사람이 ‘감옥에 갇힌 다른 두 사람을 방문’한다. 건물 아래는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고’ 있다. 드럼통에서 물을 받아 가고 있는 사람도 있다. 앞에는 ‘배고픈 사람들에게 빵을 나누어 주고’ 있다. 그 옆, 오른쪽 앞에는 ‘헐벗은 사람들에게 옷을 나누어 주고’ 있다. 오른쪽 첫 번째 집에는 ‘병자를 방문하는 사람’이 있고, 방문객의 손에는 성합이 들려 있다. 그 뒷집에는 주인이 나와서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전체 그림의 배경 저 멀리에는 두 사람이 ‘죽은 사람을 묻고’ 있다. 같은 주제의 작품으로, 1606/1607년 카라바조가 그린 제단화에서부터 안토니오 카노바의 조각 부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흥미로운 작품들이 많이 있다. 독자들이 찾아서 보기를 권한다. 김혜경(세레나,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이탈리아 피렌체 거주) cpbc2021.06.02

교황 “음식 낭비는 배고픈 사람들의 양식 훔치는 도둑질”[부온 프란조(Buon pranzo)!] 9. 프란치스코 교황과 요리 ④ 2017년 10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로마본부를 찾아 기념 촬영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교황은 이날 연설을 통해 “음식 낭비는 배고픈 사람들의 먹을 음식을 훔치는 것과 같다”고 역설했다. 【CNS 자료 사진】 2019년 3월 27일 수요 일반알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직도 얼마나 많은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아이들을 위한 빵이 없다는 사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지요!”라고 말하였다. 또한, “굶주림으로 죽어간다는 것은 인간 존엄을 박탈하는 최악의 한계가 아닐 수 없다”고 하였다. ‘교황은 모든 사람을 위한 음식이 있지만, 모든 사람이 먹을 수는 없다는 이 불평등한 현실에 그 스스로가 단 하루도 대충 넘어가며 살고 싶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은 나만 하는 걸까? 왜 그의 식탁이 소박하고 단순한지 알겠다. 왜 그가, 바티칸의 사도궁을 뒤로하고 산타 마르타의 집에 기거하는지, 인제야 명확해졌다. “누구든 물과 음식이 부족한 이는 없어야”교황은 지구 상의 모든 이들이 “우리는 한가족”이라고 강조한다. “그 어느 누구든 물과 음식이 부족한 이는 없어야 한다”고 애끓는 마음으로 늘 호소하고, “음식에 장난치지 마십시오”라고 항상 반복해 말한다. 2017년 10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로마본부를 찾은 교황은 “음식 낭비는 배고픈 사람들의 먹을 음식을 훔치는 것과 같다”고 말하였다. 이어 “전 세계 많은 지역에서 전쟁을 위한 무기들은 대담하고 그들의 절대적 자유 안에서 비인간적으로 행사되고 있으며, 사람들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 영양을 공급한다. 어떤 경우에는 기아 자체가 전쟁의 무기로 사용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여전히 8억 명이 굶주리고 있으며, 이러한 결과는 자연적인 것도 아니고, 우리가 할 수 없는 그 어떤 운명도 아닌, 인간의 이기심과 잘못된 자원의 분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쓰레기로 가는 음식은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도둑질과 같다”라고 전한 교황은 어린 시절에 식탁에서 빵이 떨어지면 즉시 빵을 주워 입을 맞추라고 가르침을 받았던 것을 상기하곤 했다. 어린 시절 교황은 “그때 절대 빵을 버리지 않았다”며 “빵은 우리에게 먹으라고 주는 하느님의 사랑의 상징임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가난한 이들과 빵을 나누는 삶 실천코로나19 이후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기도와 영적 지지뿐 아니라 바티칸 수입이 제로가 될지언정 전 세계 최빈곤층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의료기구와 생활 지원금, 음식을 지원하라”고 당부하고 몸소 실천했다. 또 교황은 로마 근교 위태롭고 유해한 환경에서 사는 다수 어린이들을 포함해 아프리카 난민들 1000여 명에게 파스타와 쌀, 토마토, 우유 등의 식품과 비누, 소독제, 마스크, 체온계 등을 지원해 주었다. 이 같은 그의 자선은 교황이 되고 나서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재미있는 에피소드 중 하나는 람보르기니 슈퍼카 기증 건이다. 2017년 11월에는 폭스바겐의 슈퍼카ㆍ스포츠카 브랜드인 람보르기니사에서 바티칸시국 국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흰색에 노란 띠를 두른 신형 ‘우라칸 후륜구동’(Huracan RWD) 모델을 맞춤형 개인 한정판(Ad Personam)으로 특별 제작해 기증하자 교황은 그들의 기증에 감사를 전하며 경매에 내놓았다. 2018년 5월 12일 세계 최대의 미술품 경매회사인 ‘소더비(Sotheby)’ 경매에서 교황의 서명이 담긴 람보르기니 우라칸은 71만 5000유로(약 9억3000만 원)에 팔렸다. 시가의 세 배를 훌쩍 넘는 경매가였다. 추측건대, 람보르기니사의 기증은 교황을 통해 이 차를 판매한 수익금이 가난한 이들에게 더 많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기대가 담겨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즉시 교황은 이 차의 경매 수익금을 곤경에 처한 네 곳의 자선 단체에 기부하였는데, 그 단체는 주로 어린이들과 여성들에게 헌신하는 단체들이었다. 그러고 나서 자신은 여전히 소형차인 피아트의 친퀘첸토(500)를 즐겨 타고 다녔다. 교황은 늘 “우리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해 하며 절약과 절제의 연대를 추구하는 생활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또한, “섬세한 감수성으로 가정 안에서 선(善)을 존중하는 새로운 생활 방식을 가꾸어 나가는 가족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권고한다. “가정에서부터 어떤 것이든 남용하지 않는 작은 실천으로 환경 보호와 어려움에 처한 가난한 이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시선을 두어야 한다는 것은 복음의 교회의 초석이 되는 길이고, 가난한 이들과 배고픈 이들에게 빵을 나누는 행동의 바탕이 되는 가장 강력한 행동”이라고 당부한다. “치커리아 삶은 물은 버리지 마세요”산타 마르타의 식당 요리사에게 “치커리아를 삶은 물은 얼마든지 마실 수 있으니 버리지 말라”고 주문하는 게 교황이다. 벌써 올해로 제정 6주년을 맞는 ‘세계 가난한 이들의 날’이 시작된 저 심연의 작은 빛은 이러한 교황의 작은 실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2022년 11월 13일 주일에도 그는 예년처럼 가난한 이들을 자신의 식탁에 초대할 것이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습니다”(2코린 8,9)라는 성경 말씀을 올해 주제로 정하였다. 그러고 나서 교황은 우리에게 소매를 걷어붙이고 이러한 실천에 직접 참여하라고 주문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에 관한 마지막 글을 쓰면서 내 삶 안의 주변을 둘러보았다. 즉각적이고 시급한 것 중의 하나인 일회용품과의 단절은 나의 손녀와 어린 세대들의 미래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미소 짓고 주변에 평화의 기운을 퍼뜨리는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만남은 참으로 행복했다. “나는 교구를 바꿨을 뿐이에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로마로요. 하하하!” 로마에서도 그가 좋아하는 쌀 요리는 피에몬테식 리소토(Risotto alla piemontese)이다. 오늘의 레시피다. 이 리소토는 정성스레 쌀을 저어가며 만드는 기다림의 음식이다. 어렸을 적에 어린 교황을 위해 로사 할머니가 만들어 주던 그 가슴 뛰던 기다림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콘클라베 직후, 재단사는 교황에게 하얀 수단을 주며 “교황님, 양말도 흰색으로 신으셔야 합니다”란 말에 화들짝 놀란 교황은 “아닙니다. 전 아이스크림 장수가 아니거든요. 하하하!” 하고 웃었다. 아이스크림 장수의 흰 가운보다 더 하얀, 접시에 담긴 하얀 리소토를 보니 프란치스코 교황의 환한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부온 프란조(Buon pranzo)!” 레시피 / 피에몬테식 리소토(Risotto alla piemontese) ▲준비물: 채수(양파, 샐러리, 당근을 우린) 1ℓ, 버터 20g, 양파 2분의 1개, 쌀(이탈리아 리소토용 쌀 Carnaroli) 100g, 2분의 1컵의 화이트 와인(드라이), 그라나 파다노(Grana Padano) 치즈 가루 2큰술, 소금. →양파, 샐러리, 당근을 넣고 채수(적당량의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춘다)를 끓인다. →양파는 잘게 다져 팬에 10g 버터를 넣고 볶는다. 양파가 투명하게 볶아지면 쌀을 넣고 2분간 볶는다. 화이트 와인을 붓고 완전하게 알코올이 날아가면 그때부터 끓고 있는 채수를 조금씩 넣어가며 쌀(리소 Riso)을 저어가며 익힌다. 익힘의 정도는 알덴테(Al dente, ‘치아로 씹었을 때 단단함이 느껴질 정도로 설익었다’는 뜻)가 적당하지만, 개인 취향에 따라 익히면 된다. →대략 15분 정도 볶다가 불을 끄고, 남은 버터와 그라나 파다노를 넣고 잘 섞은 다음, 접시 한가운데에 담은 다음 리소토가 펼쳐지게 접시 밑을 탁탁 친다. ▲모니카의 팁 : 카르나롤리(Carnaroli, 이탈리아 리소토용 쌀) 대신, 씻어 말린(쌀이 젖어 있으면 죽이 되기 쉽다) 우리 쌀을 쓴다. 1인분의 리소토의 양을 내 경우에는 어른 밥숟가락으로 네다섯 숟가락 정도로 양을 맞춘다. 채수는 같은 양의 양파, 샐러리, 당근을 넣고 끓이는데, 이 베이스는 그 어떤 요리에 넣어도 좋은 나의 최고의 팁이다. 피에몬테가 이탈리아 북부이다보니 버터를 많이 쓴다. 내 경우는 버터 대신 올리브유를 쓴다. 화이트 와인은 반드시 드라이(쎄코 Secco)여야 한다. 고영심(모니카) 디 모니카 대표cpbc2022.07.20

‘힘들면 그냥 관둬’ 듣곤 해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교리교사로 행복”[나는 가톨릭 청년이다] (3) 교리교사 이예지 (제노베파, 서울대교구 쌍문동본당)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앞에서 만난 교리교사 이예지씨가 미소를 짓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면서 본당 주일학교도 2년 만에 다시 문을 열었다. 그리웠던 선생님과 친구를 만난 게 엊그제 같은데, 학생들은 벌써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다. 교리교사들도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는 중이다. 저출산과 코로나 여파로 주일학교에 적잖은 변화가 있는 만큼 이들은 요즘 고민이 많다. 특히 학업이나 취업ㆍ결혼 등 한창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은 청년은 더욱 그렇다. ‘나는 가톨릭 청년이다’ 세 번째 주인공은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20대 교리교사다. 서울대교구 쌍문동본당에서 6년째 초등부 교사를 하는 이예지(제노베파, 24)씨를 만났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저출산·코로나19로 달라진 주일학교 풍경 “2년 전에는 글자를 몰라서 자기 이름을 ‘그려달라고’ 했던 아이들이 이젠 알아서 이름을 잘 쓰더라고요. 참 대견했죠.” 코로나19 이전에 유치부 수업을 맡았던 이예지씨가 ‘어느새 학생들이 많이 커버렸다’며 웃었다. 쌍문동본당 주일학교는 지난 4월 17일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대면교육을 재개했다. 그전에는 비대면 화상회의 방식으로 교리교육을 했다. 초등부는 유치부부터 6학년까지 한꺼번에 모아 진행했다. 다 합쳐야 20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쌍문동본당 초등부 학생 수는 4년 전만 해도 세 곱절인 60명에 달했다. 이제 학년마다 반을 꾸리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씨가 맡은 유치부도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저학년을 아우르고 있다. 주일학교 학생이 줄어든 데는 신앙보다 학업을 중시하는 학부모 영향도 크다. 많은 이들이 자녀에게 성당 갈 시간에 학원에 가라고 하는 것이 현실이다. 교사나 신부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다. 과연 그런 학부모들 가운데 주일 미사에 꾸준히 참여하며 신앙의 모범을 보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씨의 경우는 달랐다. ‘학교나 학원 수업은 빠져도, 미사는 절대 빠지면 안 된다’는 게 어머니의 신조였다. 그 덕에 자연스레 신앙생활을 습관화했다. 성인이 되자마자 교리교사를 한 이유도 어릴 적부터 보고 자란 ‘주일학교 선생님들’ 모습이 멋져서였다. “학생들로 북적북적한 게 주일학교다운 모습인데, 지금 상황을 보면 마음이 아파요. 그래도 저희 본당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긴 해요. 같은 지구 어느 본당에선 주일학교가 아예 없어졌다는 소식이 들려오더라고요.” 교리교사 그만두고 냉담에 빠지는 이유 주일학교가 없어지는 본당은 학생보다도 교사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 이유에 대해 이씨는 “청년들이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교리교사는 일주일에 하루만 봉사하는 것 같지만, 실은 평일에도 교육이나 행사 등 준비할 게 많다”며 “그만한 시간을 투자하는 게 청년들에게 벅찰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평일 내내 바쁘게 살아온 청년에게 주말을 온전히 쉬고 싶다는 욕구도 강렬할 것”이라며 “이런 이유로 주일학교를 그만두는 교사도 많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그럴 때마다 아이들에겐 선생님이 꼭 필요하다고 말리지만, 마냥 붙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토로했다. “자기 삶이 바쁘다는데, 어떻게 계속 말리겠어요. 그래서 다들 아쉬운 마음은 크지만, 언행을 조심할 수밖에 없어요.” 장기근속 교리교사 중에는 ‘고인 물’이 되고 싶지 않아 관두는 이들도 많다. 스스로 언행에 부담을 느끼는 경우다. ‘꼰대처럼 보이진 않을까’ 걱정도 하게 된다. 이씨도 최근 비슷한 심정이다. “이제 갓 스무 살인 신임 교사와 나이와 연차 차이가 꽤 나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무슨 말을 하면 그들에게는 꼭 따라야 하는 ‘법’처럼 되는 거예요. 제가 말한 게 결코 정답은 아닌데…. 그래서 어린 교사들 눈치도 보이고, ‘손뼉 칠 때 떠나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럼에도 이씨는 아직은 그만둘 마음은 없다. 사랑하는 학생들이 커가는 모습에서 큰 행복감을 느끼는 까닭이다. 조건 없이 예수님과 하느님과 교회를 사랑하는 아이들 모습에서 신앙이 무엇인지도 깨달았다. 그는 힘이 닿는 한 교리교사를 계속할 생각이다. 이씨의 언니도 중고등부 교리교사를 하다가 고인 물이 되기 싫다는 이유로 그만뒀다. 5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온 그는 “잠깐 쉬고 싶다”고 가족에게 통보했다. 언니는 벌써 3년째 냉담 중이다. 이씨는 “동료 교사 언니들도 하나같이 냉담해서 당분간 교회로 돌아가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만둔 교리교사들이 냉담에 빠지는 일은 흔하다”고 밝혔다. 지친 까닭도 있지만, 혼자 하는 신앙생활에 익숙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학생과 동료 교사들과 함께 미사에 참여했는데 이젠 혼자 해야 하니까 어색한 거예요. 또 미사 끝나고 회의하고, 놀기도 했는데 곧장 집에 가야 하니까 그 괴리감이 큰 거죠. 물론 신앙 그 자체만을 바라보고 성당에 가는 게 맞는데, 그러기가 어려운 모양이에요.” 종교 활동에 흥미 못 느끼는 청년들 청년 신자가 꾸준히 늘어나 교리교사를 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하지만 이씨는 “신자를 새로 유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또래 20대 청년이 대부분 종교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친한 친구 중에 종교, 특히 가톨릭을 믿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며 “그 친구들은 저를 보고 진심으로 의아해 한다”고 덧붙였다. “돈처럼 실질적으로 얻는 게 없는데, 도대체 주말마다 왜 성당에 가서 시간을 쓰느냐고 묻더라고요. 제겐 그런 물질적 이익보다 아이들의 행복과 신앙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공감을 못 하는 것 같아요. 가끔 제가 성당 일 때문에 스트레스받는다고 말하면 ‘그럼 그냥 관둬’라고 쉽게 말하기도 하고요. 더는 성당 이야기를 안 하게 됐어요.” 이씨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종교에 대한 청년들의 반감이 한층 커졌다고 했다. “종교활동을 열심히 하면 말 그대로 ‘괴짜’나 ‘좀 이상한 애’ 취급받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종교시설에서 집단 감염이 많이 일어난 탓에 부정적인 인식이 커졌다고 그는 추측하고 있다. 이씨에게도 종종 ‘예수쟁이’와 같은 직설적인 공격이 날아오곤 했다. “‘이렇게 한다고 진짜 천국 갈 것 같으냐’ ‘진짜 그 정도로 하느님을 믿느냐’는 질문도 들었어요. 저야 당연히 신앙에 확신이 있어서 전혀 신경 쓰지 않지만, 또래 집단을 많이 의식하는 청년은 눈치 보다 냉담의 길로 빠지기 쉬울 것 같아요. 그런 친구들에게 잘못한 거 없으니 당당한 신앙인이 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청년 신자 늘리기보단 유지에 집중해야 “청년 신자 수를 늘리기보다 유지하는 방법부터 찾는 게 급선무”라고 이씨는 강조했다. 교회에 개선책을 제안해 달라고 하자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애초에 교회에서 정확히 뭘 하는지 몰라 문제점을 말해주기 어렵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씨는 “일단 홍보가 필요할 것 같다”며 “주보를 보면 귀퉁이에 자그맣게 쓰여 있는데 눈에 잘 안 들어온다”고 말했다. “청년을 위한 프로그램은 성경공부 이런 게 제일 많이 보이더라고요. 솔직히 재미없어 보여요. 교회가 제시하는 청년 활동은 대부분 신앙심을 높이는 것뿐이라 단조롭게 느껴져요. 청년들이 무얼 하고 싶어 하는지 먼저 고민해보면 좋겠어요.” 이씨는 “성지순례나 꽃꽂이처럼 청년끼리 함께 무언가를 하며 친밀감과 유대감을 다질 수 있는 프로그램이 더 낫다”고 말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본당에서 엠티 같은 걸 많이 갔는데, 정말 재밌었어요. 사실 재미란 걸 무시할 순 없잖아요. 그렇게 청년들끼리 유대감과 친밀감을 쌓으면 서로 신앙생활에 버팀목이 돼줄 수 있을 거예요.” 이학주2022.07.19

수많은 계단을 오르며 온몸으로 느끼는 신앙[미카엘의 순례일기] (59)하느님의 집으로 올라가는 마음 자유도, 희망도, 평등도 없던 시대의 민중들은 아름다운 성당을 보며 천국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사진은 포르투갈 봉 제수스 두 몬테 성당. 유럽의 대성당을 순례하다 보면, 그 규모와 웅장함, 화려함을 보고 경탄을 금치 못하게 됩니다. 동시에 의문이 들게 됩니다. ‘그 당시에는 인구도 많지 않았을 텐데 이토록 큰 성당이 필요했을까?’, ‘가난했던 민중의 삶에 비해 너무나 화려한 성당이 오히려 하느님과 신앙인의 사이를 멀어지게 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중세 시대의 문맹률은 무려 95%에 이르렀습니다. 귀족이나 학자가 아닌 대다수 사람들은 글을 읽기는커녕 책을 구경하기도 어려웠습니다. 15세기에 구텐베르크가 금속 활판 인쇄술을 발명하기 전까지 모든 출판은 필사로 이루어졌던 데다, 책은 고사하고 종이 자체가 귀한 시대였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글이나 책을 대신해서 종교의 교리와 신앙의 원리를 이해해주는 다양한 방법이 필요했습니다.그 시대의 신앙인들은 평생 가난하고 비참한 현실 속에서 살아갔습니다. 자유도, 평등도, 희망도 없는 시대였습니다. 그들이 가진 유일한 희망은 천국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천국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바로 성당이었습니다. 아름답고 화려한 성당을 보며 하느님 나라의 풍성함에 위로를 받았던 것이죠.물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풍성함이 결코 이런 물질적인 화려함으로 표현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중세의 신앙인보다 성숙한 신앙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잣대로 그 시대의 것을 평가하지는 말아야겠습니다. 글조차 읽을 수 없는 이들을 위해서 성당 벽면에 이토록 정교한 성경의 구절을 조각해놓았고, 대를 초월한 모든 성인의 통공을 설명하기 위해 수많은 성인상을 만들었으며, 높고 위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저토록 아름다운 장미창을 설계했지요. 순례 중 마주치는 풍경을 그 시대를 살아갔던 신앙인의 눈으로 보려 한다면, 더욱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한국의 신자들이라면 포르투갈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파티마를 떠올릴지 모릅니다. 하지만 파티마를 제외하고도 포르투갈에는 순례할 곳이 아주 많습니다. 포르투갈 속담에 “코임브라에서 공부하고 포르투에서 일하라. 리스본에서 돈을 벌고 인생의 마지막은 브라가에서 기도하며 보내라”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포르투갈은 도시의 특색이 분명한 나라인데, 개중 브라가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이 매우 종교적인 분위기를 가졌습니다. 그곳에서 가장 유명한 성당은 봉 제수스 두 몬테(Bom Jesus do Monte)입니다. ‘산 위에 있는 선한 예수 성당’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이 성당은 계단이 많기로도 유명해서, 노약자를 위해 계단 옆에 푸니쿨라를 설치하였습니다. 간혹 순례자 중에도 이 궤도열차를 이용해 성당을 순례하려는 분들이 계십니다만, 저는 꼭 걸어 올라가도록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 성당을 향해 걸으며 그 시절의 신자가 어떤 마음으로 성당을 향해 걸어갔을지 묵상하자고 권합니다.성당 입구까지는 여러 차례 구부러진 오솔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길이 구부러진 곳마다 작은 경당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 경당은 모두 주님의 수난과 관련된 곳입니다. 닫힌 문 앞에 무릎을 꿇고 안을 들여다보면, 나를 위해 수난을 당하시는 모습이 조각된 예수상을 바라보며 묵상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걸어 올라가면 일렬로 늘어선 백여 개의 계단을 만나게 됩니다. 그 계단은 다섯 번에 걸쳐 좌우로 교차하여 오르내리도록 만들어져 있고, 다섯 번의 교차점에는 분수가 하나씩 마련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오감을 상징하는 그곳에서 성당을 오르는 우리는 눈, 코, 귀, 입 그리고 나의 몸을 씻습니다. 보고 냄새 맡고 듣고 맛보고 느끼는 나의 오감을 하나씩 씻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집을 향해 나아갈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억해야 하며, 하느님께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나의 오감(五感)을 하나씩 정화해야만 한다는 뜻입니다.글을 읽지 못했던 그 시대의 신앙인에게 이 길은 하느님의 집으로 나아갈 때 어떤 마음이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교리 책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비록 교리서를 읽을 수 없더라도 신앙의 의미를 온몸으로 느끼려 했던 예전의 신앙인들처럼, 봉 제수스 성당의 그 길을 침묵으로 걸으며 기도하는 시간이 어서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봅니다.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cpbc2022.03.15
![[궁금해요!] 신자들은 신년운세를 보거나 점(占)집에 가면 안되나요?](//cpbc.co.kr/CMS/newspaper/2022/01/rc/817177_1.0_titleImage_1.jpg)
[궁금해요!] 신자들은 신년운세를 보거나 점(占)집에 가면 안되나요?점술 믿는 행위는 신앙을 훼손교회는 점술을 믿는 행위에 대해 올바른 신앙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피해야 할 죄라고 가르친다. 가톨릭평화신문 DB Q. 연초면 사주팔자, 신년운수를 보기도 하고, 꿈을 꾸면 재미삼아 해몽을 보기도 합니다. 천주교 신자는 운세나 해몽 같은 걸 보면 안 되는 건가요? A. 한 해가 시작됐지요. 신년이라 점집을 찾아 운세를 보기도 하고 또는 인터넷 사주팔자를 보기도 합니다. 재미삼아 ‘오늘의 운세’를 찾아보기도 하지요. 또 간밤에 꿈을 꾸고 나면 '무슨 뜻이 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에 인터넷 등에서 해몽을 찾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임신부 혹은 그 가족은 '어젯밤 꿈이 태몽이 아닐까'하는 마음에 꿈해몽 누리방을 뒤지는 경우가 흔합니다. 또 돼지꿈을 꿨다고 복권을 사러 달려간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겠지요. 어떤 이들은 사주를 보고 난 후 부모님과 가족들의 결혼 반대에 부딪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또 신년 운세를 보았더니 사업이 안 풀릴거라며 이름을 바꾸거나 부적을 써야 한다는 역술인의 말에 고심을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가톨릭교회에서는 점술을 믿는 행위는 올바른 신앙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피해야 할 죄라고 가르칩니다. 점이나 운세를 보는 행위는 미래의 불행과 고통을 피하고, 행복을 찾고 싶어하는 기복신앙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재미삼아 점이나 운세를 보는 게 자꾸 반복되면 결국 점술에 의지하는 꼴이 되겠지요. 꿈 풀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꿈풀이의 경우, 신앙적으로 무조건 기복신앙으로 몰아붙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구약에서는 꿈을 하느님 계시를 전하는 하나의 매개체로 간주합니다,(민수 12,6 ;욥기 33,15) 하지만 개인의 독자적 운명과 관계되기보다 백성 전체의 역사, 곧 구원사와 밀접하게 관계돼 있습니다. 또 신약에서는 꿈에 관한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계시가 예수님을 통해 완전히 드러났기 때문이지요. 하느님과 인간을 직접 이어줄 분이 오셨기에 꿈 같은 다른 계시 수단은 필요하지 않았던 겁니다.혹시 불길한 꿈을 꾸었거나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답답하시다면 주님 은총을 청하는 기도를 올리고 마음을 정리하는 것은 어떨까요! 걱정이 앞서 신년 운수를 보고 역술가의 말에 의지하기보다는 하느님이 주신 ‘은총의 시련’에 대해 묵상하거나 성사 생활을 통해 하느님과의 관계에 좀 더 집중하는 것이 더 신자다운 방법일 것입니다. 재미삼아 해몽이나 오늘의 운세를 보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반복되고 운세나 해몽에 의지하게 된다면 결국 기복신앙과 다를 바 없을 겁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116항] 모든 형태의 점(占)을 물리쳐야 한다. 사탄이나 마귀들에게 의뢰하는 것, 죽은 자를 불러내는 것, 미래를 ‘꿰뚫어 본다’고 하는 그릇된 추측 등이 그러한 예이다. 탄생 별자리를 믿는 것, 점성술, 손금, 전조(前兆)와 운명에 대한 해석, 환시 현상, 점쟁이(무당)에게 물어보는 일 등에는 시간과 역사, 나아가서는 인간까지 지배하는 능력을 갖고자 하는 욕망이 감추어져 있으며, 신비로운 능력들을 장악하고자 하는 욕망 또한 숨겨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들은 우리가 당연히 하느님 한 분께만 드려야 하는, 사랑의 경외심이 포함된 영예와 존경을 거스르는 것이다. cpbc2022.01.14

피아노 한 음 한 음에 하느님 사랑의 마음 담아 연주합니다[허영엽 신부가 만난 사람들] (25) 클래식 피아니스트 에드윈 킴(김성필) 바실리오 클래식 피아니스트 에드윈 킴이 지난해 3월 열린 앨범 쇼케이스 현장에서 미소 짓고 있다. 문덕관 제공 클래식 피아니스트 에드윈 킴(김성필 바실리오)은 다채로운 음색에 더불어 이성과 감성의 정제된 조화가 돋보이는 연주자라고 평가받는다. 그는 예원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에 다니다 미국으로 유학, 줄리아드 예비학교를 거쳐 존스홉킨스대학 피바디 음악원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수상이나 연주회 경험과 같은 이력은 종이 몇 장으로 소개하기 모자랄 정도다. 그는 클래식의 보편화를 위해 노력한다. “클래식은 일부 특별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대중 모두가 함께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실내악 연주뿐 아니라 공연기획, 작곡과 편곡, 보컬 코치, 보컬리스트까지 겸업하는 이유다. 장소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관객과 자유롭게 소통하기 위해 길거리공연도 마다치 않는다. 그는 올해 6월 초 캐나다로 떠나 8월 말까지 강의, 마스터클래스 및 독주회 등을 한다. 나는 에드윈 킴에게 그가 한국에 귀국하는 9월, 명동 파밀리아 채플에서 연주해달라고 부탁했다. ▶언제 천주교 신자가 되었나요?초등학교에 입학할 쯤에는 개신교 교회에 나갔어요. 제가 흥미를 못 느끼고 가고 싶어 하지 않자 가톨릭 모태신앙이셨던 어머니가 “성당 한번 가 볼래?” 하고 권유하셨죠. 성당 문을 열자마자 따뜻한 바람이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감싸고 쓰다듬어주는데, 저도 모르게 “엄마, 여기에 하느님이 계셔!”라고 말했어요. (웃음) 그렇게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성당에 다니게 되었어요. ▶어떻게 음악가의 길을 걷게 되었어요? 5살 때였어요. 친척 집에 갔다가 먼지가 뿌옇게 앉은 업라이트피아노를 열고 이것저것 눌러본 게 시작이었어요. 건반이 내려가던 그 감각과 피아노에서 나던 맑고 청아한 소리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절대 그런 소리가 날 수 없는 악기였는데, 아마도 운명적으로 그렇게 느꼈던 것 같아요. 그때 TV에서 흘러나오던 노래의 선율을 혼자서 찾아냈는데, 그 희열에 완전히 넋이 나갔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빛을 찾은 느낌이랄까요? 지금까지도 그런 느낌으로 건반 앞에 앉아있어요. ▶하느님이 주신 재능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왜 그런 재능을 주셨다고 생각하세요? ‘피아노를 작게 만들 수 있다면 끌어안고 자고 싶다’는 마음이에요. 항상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충분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서 좌절할 때마다 욕심에 눈이 멀어 가는 자신을 경계하고 꿈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했어요. 하느님께서 저를 꿈을 절박하게 지켜내는 사람과 지켜내지 못한 사람의 마음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이로 성장시켜주신 것이 은총이라 생각해요. 현실의 벽을 두고 하는 수많은 선택에 대한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 공감할 수 있게 되었죠. 음악을 통해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고, 어두운 길을 걸어가는 이에게 벗이 되고자 하는 제게 꼭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해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있다면 무엇인가요?‘존중’입니다. 존중을 바탕으로 상황과 상대를 마주한다면 누구나 예수님의 마음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루에도 수백 번씩 존중보다 판단을 먼저 해 버리면서도 ‘누구나 있는 그대로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부단히 애를 쓰고 있어요. 서로가 한 호흡만 쉬어가며 편견과 판단 없이 상대를 바라봐줄 수 있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평화로운 개개인의 삶이 되고 나아가 상처를 주고받을 일이 줄어드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시련을 겪을 때 어떤 생각을 하는지요?어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가끔씩 꼭 안아주면서 하는 말씀이 있어요. “내 보석, 내 다이아몬드, 내 루비, 내 사파이어….”(웃음) 그렇게 사랑받고 있는 아들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되뇌곤 했어요. 그리고 그 사랑이 저를 통해 다른 아픈 누군가에게 기댈 곳이 되어 주던 순간을 떠올렸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상기하는 거죠. 그렇게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한 단계 더 성숙한 사람, 발전한 전문가가 되어있을 거라고 스스로에게 계속 말해요.▶삶의 길잡이가 되어 준 성경 말씀이 있다면?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태 22, 37) 내가 내는 한 음 한 음이 하느님이고, 지금 나와 함께하는 이가 하느님이고, 무대를 함께 만드는 이들이 하느님이며, 객석을 채운 관객이 하느님이라 생각하며 ‘나는 과연 하느님을 내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하여 사랑하고 있는가’를 점검해요. 많이 부족하지만 늘 이렇게 고민하기 때문에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일상에서 희망을 잃지 않는 방법이나 비결이 있다면?매일 아침 오늘 꼭 해낼 수 있는 쉽고 작은 목표를 세워요. ‘오늘 만나는 사람에게 칭찬 3가지씩 해주기’, ‘연습 끝나고 나 자신에게 수고했다 말해주기’, ‘기분 나쁜 일이 생겼을 때 호탕하게 웃기’, ‘책을 10페이지 읽기’, ‘오늘은 어제보다 1㎞ 더 뛰기’ 등이에요. 작은 성취를 매일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살면서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기적이다’라고 느꼈던 체험이 있다면?2012년 사순 시기 어느 금요일이었어요. 피곤한 하루를 끝내고 집에서 쉬고 싶었는데 “사순 시기인데 십자가의 길을 한 번은 해야지”하는 부모님 말씀에 성당으로 따라나섰죠. 십자가의 길 내내 멍하니 있었다가 딴생각에 빠졌어요. 그런데 갑자기 십자가를 향해 경배하는 신자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제가 골고타 언덕에 서 있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시는 십자가 바로 밑에 제가 있었죠.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현실과 중첩돼서 보였어요. 환시를 본 거예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핸드폰에 글을 적었어요. 그 글은 수정 없이 2013년에 발매한 성가 앨범 ‘고백’에 실린 ‘구원’이라는 노래의 가사가 되었어요. 다시없는 특별한 체험이었죠.▶앞으로의 에드윈 킴의 꿈이 있다면?저와 같이 자신의 분야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헌신하는 전문가를 모아 커뮤니티를 만드는 거예요. 기술이 인간의 완벽을 대신하는 시대에서 그들과 함께 새로운 콘텐츠로 세상을 ‘사람 냄새’로 흔들기를 바라요. ‘주님의 숨결’이 담긴 콘텐츠가 조금 덜 싸우고 함께 지켜가는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해요.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cpbc2022.06.07

코로나19로 사이버성경·온라인 교육 인기수원 성경학교에 신청자 몰려… 서울, 구역반장학교 영상 교육 서울대교구 사목국 노인사목팀 양경모 신부가 교육용 유튜브 영상을 촬영하고 있다. 2일 개설한 수원교구 사이버성경학교에 하루 평균 80명에서 100명에 달하는 수강 신청자가 몰리고 있다. 수원교구 사이버성경학교는 성경공부를 시작하는 신자들을 위한 첫걸음 과정,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성경 공부를 위한 일반 과정과 단과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과정마다 성경에 관한 지식과 성경에 담긴 가르침을 쉽게 익힐 수 있는 다양한 온라인 강좌가 개설되어 있다. 첫걸음 과정은 모세오경, 역사서, 예언서 등 6개 강좌, 일반 과정에는 요한복음서, 가톨릭 서간, 요한묵시록, 역사서 등 8개 강좌, 단과과정에는 ‘거룩한 독서 쉽게 따라 하기’, ‘성서 이해를 돕기 위한 배경 지식’, ‘4복음서 비교를 통한 그리스도론’ 등 3개 강좌가 열리고 있다. 첫걸음과 일반과정은 4개월, 단과 과정은 3개월이다. 강사진에는 이용화ㆍ김효준ㆍ김승부 신부, 김혜윤ㆍ김영선ㆍ이혜정 수녀 등 성서신학자와 황창연 신부가 참여하고 있다.수원교구 제2대리구 성경사목 담당 박솔라 수녀는 “교구가 주관하는 성경 공부 개강이 4월 초로 연기된 데다 많은 행사와 교육이 취소나 연기가 된 상태라 온라인 말씀 공부에 관심을 갖는 신자들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대교구 사목국(국장 조성풍 신부)은 2월과 3월 실시할 예정이던 구역반장 월례연수가 코로나 19로 취소됨에 따라 이를 영상으로 대체하여 제작해 유튜브로 송출할 예정이다. 기획연구팀에 마련된 스튜디오를 활용하여 3월 초에 구역반장 월례연수 영상을 촬영했다.사목국 기획연구팀은 “서울대교구가 실시하려던 교육이 코로나19로 인해 중단되면서 유튜브 영상을 찍고 편집 중”이라며 “구역반장 월례연수 영상 외에도 사목국에서 만든 문제집을 하나하나씩 풀어가는 해설 영상 클립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이상도2020.03.18

이 시대 최고의 성서학자가 풀어내는 죽음과 사후 세계현대 신앙인을 위한 종말론 강의
죽음은 ‘장소’가 아닌 하느님과의 만남
죽음을 하느님 심판으로 다루는 해석 경계 죽음 부활 영원한 생명 바로 알기게르하르트 로핑크 지음김혁태 옮김생활성서인간이 죽으면 죽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일까. 아니면 죽음 이후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일까. 게르하르트 로핑크(독일 림부르크교구) 신부는 죽음의 문제가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식의 양자택일 질문으로는 답을 구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죽음과 관련한 수많은 질문을 펼쳐 보이며 죽음, 부활, 연옥, 지옥, 천국, 영원한 생명 등에 관한 답을 찾아 나간다. 1934년생으로 구순(九旬)을 앞둔 세계적 성서학자가 풀어내는 ‘현대인을 위한 종말론 강의’이기도 하다. 구약과 신약 성경에서 드러나는 죽음의 모습을 설명하면서 그리스도교는 물론 다양한 종교와 문화, 역사 안에서 다뤄지는 죽음에 관한 사유도 놓치지 않았다. 저자는 죽음을 하느님과의 ‘만남’으로 풀어나간다. “죽음의 핵심은 살아 계신 하느님과의 만남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고 단언한다. 물론 우리는 살아 있을 때도 자주 하느님을 만난다. 기도 중에도, 어려운 이들을 도와 봉사하는 가운데서도 만난다. 저자는 죽음으로 만나는 하느님은 “결정적이고 영원하다”며 차이를 둔다. 죽음 이전에 만나는 하느님은 알 수 없는 분으로 머무르시지만, 죽음에서 하느님은 당신 얼굴을 드러내신다. 로핑크 신부는 잘잘못을 따지고 심판하는 하느님으로 만나는 죽음의 해석을 경계한다. 죽음에서 심판은 하느님이 내리시는 판결이 아니라 모든 것이 전부 드러나는 사건이다. 그는 “나 때문에 희생된 이들을 심판에서 만나게 되면, 내가 그들에게 가했던 모든 고통을 나 역시 그때 비로소 겪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더불어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하느님의 진리 앞에서 그렇게 다 밝혀지는 것은 분명 참으로 온전히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했다. 로핑크 신부는 천국, 지옥, 연옥을 시공간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데서도 벗어났다. 그는 “죽음을 통해 당도하는 곳은 더이상 어떤 ‘장소’가 아니다”며 “당도하는 유일한 곳은 하느님 자체이고 더 정확히 말하면 하느님과의 만남”이라며 다시금 만남을 강조했다. 그렇기에 연옥은 하느님 은총으로 죽음에서 죄가 정화되는 사건이며, 지옥은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의미를 두며 자기 자신만 생각하고 만족하는 상태다. 로핑크 신부가 말하는 하느님과의 만남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진다. “예수님은 우리 역사 안에 새겨진 하느님의 자기 증여의 결정적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가 영원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것은 인간이 되신 분 안에서 만나는 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고 했다. 하느님 안에서 삶과 죽음은 하나로 연결된다. 하느님과의 만남인 죽음은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삶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살 때 삶의 그 무엇도 헛되지 않다. …죽음은 바로 최종적으로 생명에 이르는 것, 자신의 온 삶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이 의미대로 그렇게 그리스도교적으로 죽을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렇게 살고 죽은 한 그리스도인을 그의 임종에서 동반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356쪽)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오늘날 세상을 오도하는 그릇된 종교에는 그릇된 종말론이 자리하고 있다”면서 “올바른 종말론 연구가 더욱 절실해진 이 시대에 이 책의 출판이 더욱 반갑고, 자신이 믿는 바를 올바로 이해하고 싶은 오늘의 신앙인에게 일독을 권한다”며 책을 추천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평화신문2022.01.26

기꺼이 불행한 이의 친구가 되어준 예수님 생애예수의 삶 인간적으로 그려낸 소설 예수의 생애엔도 슈사쿠 지음ㆍ이평춘 옮김가톨릭출판사종교와 삶, 죽음, 구원, 죄와 악 등의 주제를 깊이 있는 시선으로 그려내는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 엔도 슈사쿠. 「예수의 생애」는 모성적 하느님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소설로, 예수를 우리 앞에 살아있는 숨 쉬는 한 인간으로 생생히 재현했다. 엔도 슈사쿠가 1970년대에 쓴 작품으로, 한국에는 2003년에 처음 선보인 후 첫 개정판이다. 엔도 슈사쿠 특유의 필치를 더 살렸으며, 새 번역 성경으로 바꾸는 개정 작업을 거쳤다. 작가가 그려낸 예수상은 진정한 하느님을 찾고자 갈망했던 한 인간의 초상으로 집약된다. 소설은 예수가 고향 나자렛을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예수가 쿰란 공동체에 머무르며 40일간 단식과 기도로 자신을 소명을 찾는다는 소설적 상상력이 더해진다. 예수는 이 시기를 보내고, 제자들과 함께 ‘사랑의 하느님’을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기적을 통해 고통의 현실에서 구제받기만을 바랄 뿐, 제자들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예수는 고독하다. 그러나 비난과 오해에도 예수는 묵묵히 병자와 가난한 이, 소외받은 이들 곁에 머문다. 소설은 가난하고 불행한 이들의 친구가 되고자 했던 동반자로서의 모습에서 인간의 슬픔과 고통을 껴안는 모성적인 모습의 그리스도를 체험하게 한다.엔도 슈사쿠는 후기에서 “소설 「침묵」을 쓴 후 수년 동안 나는 일본인이 이해할 수 있는 예수상을 구체적으로 쓰기 시작했다”면서 “예수의 인간적인 생애의 한 단면에 접근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다만 내가 언급한 예수상이 그리스도교와 무관했던 독자들에게도 조금이나마 실감과 이해를 얻을 수 있었다면 이 작업은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1923년생인 엔도 슈사쿠는 게이오대학에서 불문학을 공부했다. 현대 가톨릭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지만 결핵으로 2년 반 만에 귀국한 후 본격적으로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대표작으로 「그리스도의 탄생」,「내가 버린 여자」 등이 있으며 「바다와 독약」으로 신쵸사 문학상과 마이니치 출판 문화상을 받았다. 1996년에 타계했으며, 동양적 정서에서 그리스도교 토착화 문제와 인간의 죄와 악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작가로 평가받는다. 이지혜 기자 평화신문2021.10.27
독일 쾰른 한인본당 설립 50주년 미사 봉헌신자들 성경 필사 노트·통독 카드 봉헌… 유튜브로 미사 생중계 독일 쾰른 한인본당(주임 조병환 신부)은 6월 28일 독일 랑엔펠트 현지 성당에서 본당 설립 50주년 기념 미사를 봉헌하고,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는 공동체로 거듭나기를 다짐했다. 미사를 주례한 조병환(청주교구) 주임 신부는 “쾰른 한인천주교회에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면서 “초창기 공동체 설립에 애쓴 평신도 지도자와 사제들의 첫 마음을 기억하고 100년을 향한 영적 쇄신과 사랑 실천을 위해 노력하자”고 말했다. 모처럼 한복과 정장을 차려입은 신자들은 이날 미사에서 성경 필사 노트와 성경 통독 카드를 봉헌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받은 본당 설립 50주년 축복장도 봉헌해 의미를 더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성당에는 60여 명만이 입장했고, 나머지 신자들은 마당과 회관에서 미사에 참여했다.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 초청 계획도 코로나19로 취소됐다. 미사는 쾰른 한인천주교회 유튜브로도 생중계됐다. 미사 후 축하식에서는 본당 설립 50주년을 위해 노력한 신자 5명이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 명의의 감사패를 받았다. 신ㆍ구약 성경을 완필한 신자 14명과 성경 통독을 완독한 신자 30명에게는 장 주교 명의의 축복장이 전달됐다. 쾰른 한인천주교회는 본당 설립 50주년을 뜻깊게 보내기 위해 2018년 50주년 기념위원회를 꾸리고 3년간 준비해 왔다. 50주년 기념 영성을 ‘감사, 소통, 정화, 참여, 사랑’으로 정하고, 신자들의 내적 성장을 다지는 데 집중했다. 50주년 기도문 제정, 묵주기도 50만 단 바치기, 도보 순례, 성경 필사, 성경 통독 등의 행사를 펼쳤다.쾰른 한인본당 역사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간호사와 광부로 독일에 파견된 한인들이 정착하면서 한인 가톨릭 공동체가 생겨났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유학하며 방학마다 독일 신자들을 찾아와 미사와 성사를 집전해 준 원필호 신부가 쾰른 한인본당의 씨앗을 뿌렸다. 이후 신자들은 쾰른대교구와 한국 주교회의에 한인 전담 사제를 공식 요청했고, 1970년 6월 초대 주임이 공식 파견됐다. 1990년대에는 신자 1000명이 넘는 공동체로 성장했으며, 2008년에는 신경수(쾰른대교구) 종신부제를 배출했다. 현재 쾰른 한인본당 신자는 395명이며 쾰른ㆍ본ㆍ아헨ㆍ뒤셀도르프 4개 구역 22개 반이 활동하고 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평화신문2020.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