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위기, 복음화 사명과 활동의 가장 중요한 주제”주교회의 가을 정기총회 결과 해설 신임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와 부의장 조규만 주교, 서기 유흥식 주교가 16일 정기총회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주교회의 제공 낙태 반대 재천명한국 주교단은 최근 정부가 여성에게 임신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고, 임신 15~24주에는 사유에 따라 낙태할 수 있도록 하는 형법ㆍ모자보건법 개정안 입법을 예고한 데 대해 교회의 변함없는 낙태 반대 입장을 재확인했다. 한국 주교단은 8월 28일 낙태죄 완전 폐지 입법 추진 반대 성명을 발표한 바 있으며, 관계 정부 부처와 국회의원들에게 교회의 뜻을 지속적으로 전달해오고 있다.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는 기자회견에서 “의사나 간호사, 병원 또한 낙태 시술을 요청받았을 때 거부할 수 있는 낙태 진료 거부권이 주어져야 한다”며 “보건복지부 등 정부 부처에 관련 의견을 최근 제출했다”고 밝혔다.주교회의 부의장 조규만 주교도 “모든 국회의원에게 낙태법 폐지의 부당성을 알리고 있으며, 현재 모든 교구에서 낙태법 폐지 반대를 위한 미사와 기도회를 열고 있다”며 “태아는 몇 주에 상관없이 생명이며, 어떤 누구도 생명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은 없다”고 거듭 전했다. 현재 주수에 따라 낙태를 가능토록 하는 법안에 대해서도 조 주교는 “성경 또한 태아는 분명히 생명이라 밝히듯 우리가 언제부터 태아가 생명인지 알지 못해도 태아는 분명히 생명”이라고 답했다.7년간 생태적 희년 동참한국 주교단이 이번 정기총회 후 ‘울부짖는 우리 어머니 지구 앞에서’란 주제의 특별 사목 교서를 발표한 것은 올해 반포 5주년을 맞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태 회칙 「찬미받으소서」가 제시한 ‘공동의 집 지구를 돌보자’, ‘생태적 회심으로 어머니인 지구의 모든 피조물을 지키고 보호하자’는 뜻을 계속 이어가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주교단은 사목 교서를 통해 “기후 위기로 고통받고 있는 이웃과 피조물들의 고통에 충분히 응답하지 못했다”면서 “기후 위기와 어머니 지구의 울부짖음은 교회가 수행해야 할 복음화 사명과 활동의 가장 중요한 주제이기에 앞으로 각 교구는 지속적으로 생태적 회개에 대한 미래 방향을 제시하고, 각 본당과 위원회는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해 실천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이를 위해 교황청이 2022년부터 7년 동안 추진하는 ‘지속 가능한 세계 공동체를 위한 7년 계획’에 한국 교회도 적극 동참키로 했다. 교황청은 2022년부터 △가정 △교구 및 본당 △초중고등학교 △대학교 △병원 및 보건소 △기업 및 농업 △수도회 순으로 각기 7년 여정에 주체적으로 동참하는 계획을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최소 7년 동안 교회가 ‘공동의 집인 지구 생태계’를 위해 어느 때보다 합심해 앞장서는 것이다. 주교회의는 이에 따른 후속 장기 사목 계획을 위한 지침을 주교회의 누리방(www.cbck.or.kr)에 게재했다.당신이 천주교인이오?한국 교회는 대림 제1주일인 오는 11월 29일부터 내년 11월 27일까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의 해’ 동안 연중 성인을 삶의 모범으로 되새기고 실천하게 된다.희년 주제인 ‘당신이 천주교인이오?’는 1846년 김대건 신부가 페레올 주교에게 쓴 스무 번째 옥중 서한에 담긴 문구다. 당시 김대건 신부가 관아에 체포돼 심문을 받던 중 관장이 “당신이 천주교인이오?”라고 묻자, 이에 김대건 신부는 결의에 찬 눈빛으로 “그렇소. 나는 천주교인이오” 하고 답했다. 성인 탄생 200주년을 맞아 이 물음이 170여 년 만에 소환됐다. 한국 주교단이 성인의 옥중서한에 담긴 질문을 희년의 주제로 삼아 성인이 지녔던 확고한 믿음을 오늘날 우리의 정체성으로 되새기자는 뜻이다.한국 교회는 내년 사제의 성화의 날(6월 11일)에는 교구별로 희년 사제대회를 열어 모든 사목자가 성인의 모범을 되새기는 날로 보내고, 8월 21일에는 성인 탄생지인 대전교구 솔뫼성지에서 성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 기념미사를 성대히 봉헌한다. 교황청 내사원이 보내온 전대사 수여 교령의 전대사 조건도 희년 개막에 맞춰 발표된다. 성인의 생애, 희년 기도문, 희년 전대사를 위한 성지와 순례지 안내, 기념행사 등을 소개하는 「희년살이 안내」 책자도 배포할 예정이다.주교회의 서기 유흥식 주교는 16일 기자회견에서 “2021년 유네스코 세계기념 인물로 선정된 김대건 신부님은 당시 조선의 양반, 상민, 백정 모두를 형제자매로 여기는 평등사상과 함께 조선 백성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던 천연두가 창궐한 때에는 퇴치 약을 구하는 데 힘쓰시는 등 200여 년 전 그분의 삶은 오늘날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며 “교황님께서 새 회칙 「모든 형제들」을 통해 형제애를 강조하셨듯이 성인께서 보이신 사회적 우애가 우리 사회에 누룩과 빛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아울러 가경자 최양업 신부의 시복 기원 미사와 현양대회에 이어 내년 11월 20~21일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에서 근대 서양 문화의 선구자 최양업 신부님 탄생 200주년 기념 오페라 ‘길 위의 천국’을 두 차례 공연할 예정이다.한편,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와 가톨릭평화방송이 공동 제작한 ‘가톨릭 영상 교리’(총 47편)은 앞으로 본당 예비신자 교리교육과 신자 재교육을 위해 활용하게 된다. ‘가톨릭 영상 교리’는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 △성경 △한국 천주교회 △삼위일체 등 총 47개 주제 교리를 5분 분량으로 제작한 영상 교재다. 영어판이 완성되면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에도 제공해 해외 2~3세대 교포 신자들도 활용토록 할 계획이다.또 한국 주교단이 승인한 「청소년 사목 지침서」는 청소년사목위원회가 2015년 승인을 받아 오랜 기간 연구 작업을 실시해 ‘질적ㆍ양적 연구 종합 보고서’ 형태로 제작한 것으로, 청소년 사목의 현주소와 미래 방향을 오늘의 현실에 맞게 방대한 분량으로 담아낸 청소년 사목을 위한 사목 안내서다. 승인된 지침서는 조만간 배포될 예정이며, 청소년 사목을 하는 사제와 종사자들에게 구체적인 방법론과 방향성을 제시해줄 것으로 기대된다.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cpbc2020.10.21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5) 여행지 : 예수님의 공생활](//cpbc.co.kr/CMS/newspaper/2021/04/rc/801102_1.4_titleImage_1.jpg)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5) 여행지 : 예수님의 공생활예수님의 사생활(私生活)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 예수님은 고향 나자렛에서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를 많이 받았고, 부모에게 순종하면서 지냈다고 합니다(루카 2,40.51). 예수님께서는 서른 살쯤에 사적인 가정생활을 떠나 출가하셔서 공적으로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기 시작하셨는데, 이때의 생활을 공생활(公生活)이라고 합니다. 그분은 평범한 시골 사람이었지만 그의 생각과 행동은 분명 일반인과는 달랐습니다. 세상 안에 살면서도 세상의 가치와 다르게 사셨습니다. 성부 하느님과 매 순간 일치하며 성령 안에서 하느님 뜻을 행하며 살아가셨기에, 다른 사람에게서 느끼지 못하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그럼 예수님의 공생활로 퀴즈 여행을 떠나볼까요?퀴즈여행 예수님의 공생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1. 예수님의 공생활은 예수님의 어떤 사건으로 시작하는가?2. 예수님이 활동하신 지역과 활동 중심지(지명)는?3. 외형적이고 형식적인 종교생활로 예수님께 꾸짖음을 받았던 종교적 그룹은? ①사두가이파 ②바리사이파 ③에세네파 ④제롯당4. 예수님께서는 특별한 경우 3명의 제자만 따로 데리고 다니셨다. 베드로, 야고보 또 한 명은? 5.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을 고쳐주셨는데, 병자의 무엇을 보고 기적을 행하셨나? 6.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하는데 그 뜻은? 정답1 □□2 □□□아, 카□□□□3 □번4 □□5 □음6 □□□음을 받은 사람 가이드 옵션1. 예수님의 세례 예수님의 공생활은 예수님 세례로 시작을 합니다. 요한 세례자가 세례를 베풀 때가 티베리우스 황제의 치세 15년(서기 27~28년)이었는데, 예수님께서는 요르단 강으로 그를 찾아가 세례를 받으셨고 그때의 나이는 서른 살쯤이라고 합니다.(루카 3,1-23) 이때 하늘이 열리고 성부의 거룩한 기운인 성령이 비둘기처럼 예수님 위에 내리면서, 성부의 사랑받는 아들,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는 소리가 들려왔지요.(마태 3,13-17; 루카 3,21-22) 우리도 세례로써 하느님의 자녀로 인정을 받으며, 공적인 신앙생활을 시작합니다. 2. 예수님의 활동지 예수님은 고향 나자렛을 떠나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후, 이스라엘 북부 갈릴래아 지방 갈릴래아 호수 주변에서 주로 활동하셨습니다. 호수 북쪽 지역인 카파르나움이 활동 중심지였습니다. 이곳에 예수님의 집이 있었고(마르 2,1), 이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활동하셨기에 이곳을 예수님의 고을(마태 9,1)이라고 하였지요. 그런데 이곳과 코라진, 벳사이다에서 예수님이 기적을 가장 많이 행하셨지만,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아 예수님께 질책을 받았습니다.(마태 11,20-24)3. 종교적 그룹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가 지배하고 있었고, 종교적으로 크게 다음의 4파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사두가이파: 사제 계급의 보수적 현실주의적인 상류 계급임. 성전(聖殿)과 모세 오경만을 중시하고 죽은 자의 부활, 영혼과 천사들의 존재 등은 부정함.바리사이파: 율법을 중시하며 가장 활발하게 활동함. 예수님은 이들과 논쟁을 벌였고(마태 22,41-46; 마르 8,11), 이들의 외형적이고 형식적인 종교 생활을 꾸짖으심.(마태 23,1-36)에세네파: 엄격한 계율과 금욕 생활로 종말에 구원을 받고자 함. 속세를 떠나 따로 공동체를 만들어 독신을 지키며 살아감.제롯당: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하여 로마에 무력으로 대항하는 열혈당.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시몬이 여기에 속함.4. 예수님의 제자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열둘을 뽑아서 사도라 부르시고 그들과 함께 생활하셨습니다. 또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를 쫓아내는 권한을 주셨지요. 이들은 베드로(시몬), 제베대오의 이들 야고보(大)와 요한, 안드레아,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小), 타대오, 시몬, 유다 이스카리옷(배반자)입니다.(마르 3,13-19 참조) 예수님은 어떤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이들 중 베드로, 야고보(大)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영광스럽게 변모하실 때(마르 9,2-10), 겟세마니 동산에서 고통 중에 기도하실 때이지요.(마르 14,32-42)참조) 베드로는 사도들의 으뜸이 되었고(마태 16,18), 야고보는 첫 번째로 순교한 사도이며(12,2),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요한 사도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집에다 모시고 돌보아 드렸다.(요한19,27) 5. 예수님의 기적예수님은 질병(고열, 나병, 중풍, 마비, 하혈, 청각 장애, 언어 장애, 시각 장애, 간질, 척추병, 수종)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리스 치유 기적 사화와 복음서에 나오는 치유 기적 사화가 양식은 닮았지만, 서로 다른 점은 예수님은 병자의 믿음을 보고 치유하신다는 것이지요. 병자가 나으려면 하느님의 능력으로 치유하는 당신께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고 하십니다(마르 2,5; 5,34; 10,52). 그런 이유로 예수님은 고향 나자렛에서는 그들의 선입견으로 기적을 행하실 수 없었지요.(마르 6,1-6) 6. 그리스도의 뜻 그리스도(그리스어)와 메시아(히브리어)는 같은 말로, 그 의미는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입니다. 구약에서는 왕이나 예언자를 기름을 부어 축성하였지요. 메시아는 기름 부음을 받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인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오랫동안 희망해 온 분(사도 28,20)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 사람들이 기대해 왔던 메시아상은 현실적이고 정치적이었기에, 현세와 정치를 초월하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하였지요.여행옵션 : 카파르나움 (예수님의 고을, 이스라엘) 예수님의 고을이라 불리는 카파르나움에는 베드로 사도의 집터로 추정되는 곳에 팔각형 성당이 세워져 있다(1990년,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건축). 팔각형 성당 중앙 바닥은 유리로 되어 있어, 그 아래의 베드로 사도의 집터와 본래에 지어졌던 팔각형 성당 터를 내려다볼 수 있다. 베드로의 집터에서 약 10m 떨어진 곳에서 흰색 석회암으로 지어진 회당이 발견되었는데, 이 회당은 현무암으로 지어진 더 이른 시기의 다른 회당의 기초 위에 세워져 있다. 이 현무암 회당이 바로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기적을 행하셨던 곳으로 추정된다.여행 기념품카파르나움은 예수님께서 기적을 많이 행하신 곳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지만, 그곳에서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는 사람이 적었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기적과 사랑을 많이 체험하고 있습니까? 나는 받은 사람답게 그 사랑을 이웃과 나누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마리 파울리타 수녀(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 cpbc2021.04.28

커피 문화의 원조는 이슬람이 아니랍니다[사유하는 커피] (11)용맹한 사냥꾼 니므롯과 커피에 대한 상상 박영순 커피가 에너지를 솟게 한다는 증거를 성경에서 찾을 수 있을까? 커피에 들어 있는 클로로제닉산, 카페인, 트리고넬린, 멜라노이딘 등 항산화 물질과 알칼로이드 성분들이 암과 심장병, 고혈압, 치매 치료에 좋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이 때문에 출처가 명확하고 품질이 좋은 원두로 추출한 한 잔의 커피는 보약으로 대접받기도 한다. 17세기 과학 혁명이 일어나기 수천 년 전부터 커피를 마셔온 인간이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했을지언정 그 효능은 분명 누렸을 것으로 보인다. 커피가 태어난 에티오피아가 인류 최초의 천하장사를 배출했다는 사실은 커피의 효능과 연결돼 시선을 끈다. 노아의 4대손에서 에티오피아인의 시조가 나타났다. 에티오피아(Ethiopia)는 ‘검다’는 뜻이다. 에티오피아의 아들 ‘니므롯’은 홍해를 건너 중동 땅 중심에서 이름을 떨치는데, ‘세상의 첫 장사’로 기록된다. 창세기는 “니므롯은 주님 앞에도 알려진 용맹한 사냥꾼이었다. 그래서 ‘니므롯처럼 주님 앞에도 알려진 용맹한 사냥꾼’이라는 말이 생겼다”(10,9)고 적었다. 하지만 니므롯은 바빌로니아에 바벨탑 건축을 주도하다가 하느님의 심판을 받았으며, 그 후손들은 언어까지 달라져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다. 세월이 흘러 기원전 10세기경 솔로몬의 시대에 이르러 에티오피아와 예멘 지역을 아우르는 시바의 왕국이 형성됐다. 이후 기원후 7세기 이슬람교가 형성될 때까지 에티오피아 악숨을 중심으로 한 시바 왕국은 종교적으로 격동의 시기를 겪게 된다. 구약의 시대를 에티오피아 입장에서 바라보면 한마디로 변화무쌍하다. 모세의 아내도, 예레미야 예언자를 살려낸 ‘의리의 사람’도 에티오피아 사람이었다. 에티오피아는 구약 성경을 따르거나 토대로 한 소위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 예컨대 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드루즈교, 바하이교, 그노시스파 등이 혼재돼 있다. 커피가 에티오피아를 벗어나 아라비아 반도를 거쳐 오스만 제국에 의해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로 퍼져 나가는 과정은 종교 간 갈등으로 점철돼 있다. 커피 전파의 역사는 종교의 확장과 변신을 추적하는데 흥미진진함을 불러일으키는 좋은 교재라고 부를 만하다. “교류 속에 다툼이 있고 다툼 속에 교류가 있다”는 말은 커피 전파사를 묘사하기에 적절하다. 기원전 2세기 시바 왕국이 몰락하고 힘야르 왕국이 출현해 기원후 522년까지 이어진다. 유다교를 믿던 사람들이 개종해 그리스도인들이 불어나자 힘야르의 마지막 왕인 두 누와스가 만행을 저질렀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유다교로 개종할 것을 강요하고, 말을 듣지 않자 불에 태워 죽이기까지 한 것이다. 이즈음 에티오피아 지역은 나자쉬 황제가 통치하고 있었는데, 그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상태였다. 나자쉬는 그리스도교의 수호자인 유스티누스 로마 황제에게 선박 지원을 요청했고, 7만여 에티오피아 병력이 530년 원정을 감행했다. 혼비백산한 두 누와스 왕이 바다에 뛰어들어 자결함으로써 예멘은 에티오피아의 식민지가 됐다. 이때 에티오피아의 전사들이 힘을 얻기 위해 소지했던 커피가 예멘으로 전해졌다는 시각이 있다. 이후 페르시아로 도망간 힘야르의 왕자의 요청에 따라 기원후 600년경 페르시아 군대가 예멘에서 에티오피아인을 쫓아냈다. 72년간 지속된 에티오피아의 예멘 통치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이후 마호메트의 이슬람교 창시(610년)를 거쳐 631년 이슬람이 예멘을 지배했다. 시바의 여왕 시절, 솔로몬의 정기를 받아 유일신 신앙을 받아들인 에티오피아와 예멘은 이렇게 각각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국가로 갈라서게 됐다. 이런 사연은 커피 문화의 원조가 이슬람이 아님을 보여준다. 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평화신문2020.07.14

“군 장병들과 함께한 11년, 축복이자 행복한 시간”군종교구장에서 퇴임하는 유수일 주교 유수일 주교가 퇴임 직전인 3월 31일 집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제3대 군종교구장 유수일 주교가 10년 6개월여간 군사목을 뒤로 하고 9일 서상범 주교에게 교구장 자리를 넘겨줬다. 2010년 9월 15일 착좌한 유수일 주교는 재임 동안 성경 말씀을 중심에 둔 신앙,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삼위일체 신앙을 강조했고, 북한과 가장 가까운 JSA성당을 건설해 하느님께 봉헌했다. 퇴임을 앞둔 3월 31일 집무실에서 그동안의 소회와 후임 교구장에 거는 기대, 퇴임 후 계획 등을 들었다.10년 6개월의 군종교구장을 떠나는 소감을 묻자 유 주교는 축복의 시간이자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돌이켜보면 10년 반이 참 빨리 지나간 것 같아요. 제가 혹시나 교구민들에게 불편함이나 어려움을 드렸을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그런 것이 있다면 참 죄송스럽고 용서를 청합니다. 그런데 제 개인으로는 축복의 시간이고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군종교구에 와서 살면서 사병부터 간부, 장교, 지휘관들 그리고 군종신부님, 군종교구민을 대하며 저는 좋은 것을 많이 발견했어요. 저는 군종교구장 생활이 짧게 느껴졌고 정말 행복하고 축복된 기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JSA성당에 대한 애착 유 주교는 집무실 벽에 큰 사진을 걸어 놓을 정도로 JSA성당에 대해 애착이 크다. JSA성당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있는 성당으로 2019년 8월 21일 봉헌됐다. 원래 그 자리에는 1950년대부터 미군이 쓰던 막사를 개조한 성당이 있었다. 건물이 워낙 오래된 데다 낡아서 전기와 음향 시설이 시원치 않았다. 공교롭게도 수년 전 주교회의 정기총회를 마친 주교단이 DMZ(군사분계선) 방문차 성당을 찾았다. 그때 마이크가 꺼졌다. 유수일 주교는 전국의 주교들에게 편지를 써서 도움을 호소했고, 한국 주교단이 보내 준 성금과 한국가톨릭군종후원회 후원금, 군종교구 자체 예산을 모아 새 성전을 건립했다. 유 주교는 JSA성당은 통일을 기원하는 기도의 장소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모든 성당 중에서 북한 DMZ를 기점으로 할 때 제일 북쪽에 있는 게 JSA 성당이에요. 저는 우리가 평화롭게 자유민주주의 하에 통일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JSA성당은 통일을 기원하는 기도의 장소로서 중요합니다. 또 부대 신자들을 위한 영적인 전례 장소, DMZ와 판문점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기도와 휴식의 장소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6ㆍ25전쟁 때 얼마나 위기였습니까? 그때 우리나라를 도와준 22개 나라에 대한 감사함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코로나19 팬데믹이 유행했던 작년 한 해는 유수일 주교에게 가장 마음이 아픈 해였다. 군은 부대 전체가 단체생활을 하는 특성상 사회보다 훨씬 엄격한 방역지침을 적용할 수밖에 없다. 2월 팬데믹이 시작된 후 제대로 미사를 봉헌한 것은 8월 한 달뿐이었다. 그 결과 군종교구 영세자 수가 급감했다. “작년은 참 마음이 아픈 한 해였어요. 2010년부터 2017년까지 평균 2만 3000명에 달했던 영세자가 지난해에는 3400명 정도였어요. 누구를 탓할 수도 없어요. 저도 사목 방문을 지난해 2월 중순부터 못하게 됐고요. 우리 신부님들이 가장 어려웠던 게 병사들을 만날 수 없었어요. 팬데믹 상황 때문에 신부님들이 노력하려고 해도 못 하는 안타까움이 컸습니다. 그때 가톨릭평화방송 TV에서 미사를 매일 했잖아요, 매일 미사, 그게 큰 도움을 줬어요.”군종교구는 전국 모든 육ㆍ해ㆍ공군과 해병대 군 장병과 그 가족을 사목 대상으로 한다. 그래서 민간 교구와의 협력과 연대, 그리고 신자들의 관심과 격려가 무엇보다 필요한 곳이다. 유수일 주교는 팬데믹 상황에서 전국 교구에서 보여준 따뜻한 지원과 격려에 거듭 감사를 전했다. “군인 주일 헌금이 군종교구 예산의 반 이상이에요. 작년 군인 주일은 코로나 때문에 신자들이 거의 못 나오는 데다 추석까지 겹쳤어요. 군인 주일을 한 달 앞두고 어려움을 호소하는 편지를 썼어요. 2019년에 비해서 5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생각했는데 12%만 줄었어요. 놀라운 일이죠. 주교님과 전국 본당신부님들, 신자들께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 후임 교구장은 적임자 후임 군종교구장으로 군내 사정에 정통하고 군 사목에 대해 잘 아는 서상범 주교가 착좌한 것에 대해서 기쁨을 표했다. 서상범 주교는 1991년 육군 군종장교로 임관돼 22년 만인 2013년 2월 전역했고 곧바로 군종교구 총대리로 2017년 8월까지 사목했다. 유수일 주교와는 수년간 현장에서 호흡을 맞췄다. “후임인 제4대 군종교구장은 군종 사제 가운데 나오길 바랐어요. 서 주교님은 군 현역 때도 가까이 있었고 총대리로 매일 같이 동고동락했죠. 서 주교님께서는 군종 생활 때 타 종교 군종장교나 가톨릭 신자가 아닌 고위 지휘관과도 관계가 좋았어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서 주교님을 제 후임자로 임명해줘서 감사드립니다. 너무 기뻤습니다.”이스라엘 가서 기도·노동하고 싶어유 주교는 퇴임 후 본래 소속인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로 돌아간다. 코로나 상황이 진정되면 올 하반기 이스라엘로 떠날 예정이다. “오래전부터 이스라엘 성지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수백 년 전 작은형제회는 교황청으로부터 이스라엘 성지 수호 임무를 부여받았고, 그래서 이스라엘에는 작은형제회 성지보호구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가서 오래 살고 싶고 가능한 한 거기서 여생을 마쳤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 있어요. 좀 더 기도하고 좀 더 노동하고 좀 더 단순하게 살고. 또 혹시 순례 오시는 분이 제가 사는 수도원에 찾아오면 반갑게 맞이하고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유수일 주교는 주교회의 보건사목담당 주교로 일하면서 만났던 수많은 의사와 치과의사, 간호사, 약사, 사목자들에게도 감사인사를 전했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묻자 군종교구민에 대한 감사였다. “군대 경험도 없고 군의 조직도 모르는 저를 교구장으로 받아주시고 함께 기쁘게 함께 해주신 것에 대해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잘못한 게 있으면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를 청합니다.”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cpbc2021.04.06

성탄의 의미가 축하 파티에 있지 않듯이…[사유하는 커피](31)본질을 잃은 크리스마스와 커피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장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실종됐다. 휑한 거리에 울리는 캐럴은 차라리 쓸쓸하다. 작은 조명들은 텅 빈 공간에서 창백하게 깜박인다. 크리스마스가 왜 이렇게 됐을까? 한숨만 짓다가 문득 답을 찾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치밀었다.크리스마스는 ‘메시아(Messiah)에게 생명까지 바칠 수 있는 심성을 표현하는 의식, 곧 제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메시아는 히브리어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뜻하는데, 이 의식을 통해 하느님의 직책을 받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메시아가 희랍어와 라틴어를 거쳐 그리스도(Christ)로 바뀌었고, 우리말로는 구세주라고 적는다. 신약성경은 구세주를 예수라고 증언한다. 영어 표현인 마스(Mass)는 ‘파견하다’라는 라틴어 미사(Missa)에서 왔다. 고대 로마 시대에 의식이 끝난 뒤 그 모임의 의미를 널리 알린 데서 비롯됐다. 가톨릭교회에서는 하느님 말씀을 듣고 찬미하는 ‘말씀 전례’와 구세주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기리며 성체를 모시는 ‘성찬 전례’를 차례로 거행하는 의식을 라틴어 발음 그대로 ‘미사’라고 부른다.크리스마스의 본질은 축하 파티와는 거리가 멀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애를 따르고 실천하기를 다짐하는 거룩한 의식이다. 코로나19로 의미심장함 마저 자아내는 작금의 풍경은 어쩌면 크리스마스 초창기의 정신과 모습을 더 닮았을지도 모른다. 크리스마스가 산타클로스와 연결되는 접점 역시 타인을 위해 살아가는 그리스도적 사랑에 있다. 산타클로스의 선물은 당초 가족이나 연인을 향한 게 아니었다. 산타클로스는 지금의 터키 땅에서 가난한 이들을 돕고 죄인들을 회개시키는 데 삶을 바친 성 니콜라오(270~343)에게서 따온 것이다. 빚에 찌들어 딸을 매춘부로 넘겨야 할 곤경에 처한 부부를 니콜라오 성인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아무도 모르게 돈을 전해줄 방법을 찾던 그는 굴뚝으로 돈다발을 넣었는데 그것이 물기를 말리려고 걸어 둔 양말 속으로 들어갔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양말 모양에 담는 관습은 여기서 생겨났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서프라이즈’가 아니라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구하는 따뜻한 손길이어야 한다. 19세기에 루돌프 사슴과 산타클로스 요정 등 동화적 요소가 덧붙여졌고, 20세기에 들어서 산타클로스는 아예 코카콜라 등 대기업의 홍보수단으로 전락했다. 더 이상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의 삶을 따른 성 니콜라오도 아니다. 파티를 열고 선물을 주고받아야 행복하다는 환상을 심어 소비를 부추기는 정체불명의 산타클로스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에 대해 본질을 헤아려보는 좋은 기회다. 커피 분야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커피의 가치는 인류의 정신을 또렷하게 하고 힘을 북돋아 주는 데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커피의 본질은 마땅히 건강이다. 인류는 몸에 유익한 것을 맛이 좋다고 느끼도록 진화했으므로, 커피의 맛은 중요한 지표이다. 그런데 커피의 맛을 둘러싸고 잡음이 많다. 커피 자체의 품질을 따지지 않고 심지어 어디서 온 커피인지 정체도 따지지 않고 추출에 사용하는 물이 맛을 좌우하는 요인인양 떠들고 소비자들에게 불안감을 준다. 수돗물을 끓여 사용해도 커피 추출에 모자람이 없다. 주전자를 멋지게 돌려 물줄기를 차분히 해야, 특별한 그라인더로 커피를 분쇄해야 커피 맛이 좋아지는 것처럼 떠드는 것은 잘 보면 상술과 연결돼 있다.본질을 잃은 것은 아름답지도 않을뿐더러 행복하지도 못하다. 크리스마스가, 커피가 그렇게 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평화신문2020.12.15

가톨릭은 마리아교? 하느님의 어머니 성모님에 대한 공경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18~25일) - 가톨릭에 대한 10가지 오해 풀기 지난해 1월 서울 구세군영등포교회에서 열린 일치 기도회에서 한국 그리스도교 교단 대표들이 갈라진 형제들의 일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가톨릭교회를 비롯한 그리스도 형제 교회들은 18일부터 25일까지를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으로 보낸다.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과 성 바오로 사도 회심 축일 사이다.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인 「일치의 재건」(Unitatis Redintegratio)은 가톨릭교회 내에서의 일치 운동을 크게 촉진했다. 가톨릭평화신문은 올해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을 맞아 가톨릭교회에 대한 개신교의 다양한 오해를 풀어주는 특집을 마련했다. 이를 위해 개신교 신자들이 갖는 오해를 10가지로 나눠 풀어봤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가톨릭교회가 전통을 지키는 것은 비성경적이며 예수님의 가르침과 상반된다 개신교 모토인 ‘오직 성경’이라는 말은 성경에 없다. 이는 성경과 교회의 전통(성전)이라는 가톨릭 가르침에 맞서 마르틴 루터 등 종교 개혁가들이 만들어낸 신학적 가정일 뿐이다.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원천인 성경과 믿음의 전통을 교회를 통해 성령의 이끄심대로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 때까지 모든 세대에 선포하고 있다. 그래서 가톨릭교회는 「계시헌장」 10항을 통해 “성전(聖傳)과 성경은 교회에 맡겨진 하느님 말씀의 유일한 성스러운 유산을 형성한다”고 고백한다. ▨가톨릭은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다개신교에선 ‘오직 하느님 은총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으며 가톨릭은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는 인간 구원을 향한 하느님 은총의 절대성과 인간의 신앙 실천, 곧 행업 협력에 대한 거부에서 비롯된 오해다. 가톨릭교회는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의화되며, 인간은 자유로이 은총에 협력하도록 불림을 받았다”고 가르친다. ▨가톨릭은 성모 마리아를 숭배하는 우상 교회다성모님에 대한 교회의 공경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431년에 열린 에페소 공의회는 성모께서 ‘하느님의 어머니’임을 선언했다. 451년 칼케돈 공의회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에 대한 신심’을 전 교회의 신심으로 확인했다. 마리아의 동정성과 원죄 없이 잉태된 자, 승천 교리는 믿을 교리로 선포된 것이다. ▨가톨릭교회는 외경도 성경으로 사용한다 가톨릭교회 성경은 73권이지만, 개신교 성경은 66권이다. 1546년 트리엔트 공의회는 구약 39권에 외경 7권을 포함했는데, 그 이유는 죽은 이를 위한 기도와 천사들의 전구, 연옥설, 공덕 축적설 등 교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였다고 개신교는 주장한다. 그러나 가톨릭교회에서 정경을 결정한 것은 382년 로마 교회 회의와 397년 카르타고 교회 회의 때였다. 당시 로마에서 쓰던 성경은 라틴어로 번역한 것이었는데, 서로 내용이 다르고 부정확한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다마소 1세 교황의 지시로 히에로니무스(예로니모) 성인이 대중 라틴어로 번역해 405년께 완성했다. 이를 「불가타」(Vulgata)라고 한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종교 개혁자들이 유다교 전통에 따라 7권의 제2경전을 성경 목록에서 빼버렸기에 4세기 교회의 결정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가톨릭교회는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성을 인정하고 교황을 비롯한 주교와 사제들에 의해 통치되는 계급 종교다가톨릭 교계제도에 대한 개신교의 비판이다. 교도권은 복음을 선포하는 임무를 유권적으로 이행하는 권한으로, 결코 하느님 말씀 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교황의 수위권 역시 교회의 신앙 일치의 상징으로 이해해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로마 주교(교황)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전 교회의 목자로서 교회에 대하여 직책상으로 완전한 최상 전권을 가지며, 언제나 자유로이 이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교회헌장」 22항)고 선언한다. ▨가톨릭은 배타적 구원관을 갖고 있고, 교회법으로 운영되는 율법적 교회다가톨릭은 교회 밖의 구원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웃 종교와의 대화와 교회 일치를 위해 협력하고 있다. 교회법은 또한 제도 교회의 유지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신앙인의 삶의 기준과 척도를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지역 교회의 자치 구조와 독립성은 교회가 율법적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빵과 포도주가 사제 축성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고 믿는데, 그건 상징 아닌가개신교는 세례와 견진, 혹은 세례와 성체를 제외하고, 가톨릭의 ‘성사’를 인정하지 않는다. 가톨릭교회는 성체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성혈을 ‘그리스도의 피’로 믿는다. 이를 가톨릭에서는 ‘실체 변화’라고 하는데, 개신교에서는 이를 ‘화체설’이라고 하며 상징으로만 본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성사를 “거룩한 것의 표징이며, 보이지 않은 은총의 보이는 형태”라고 정의하면서, “일곱 성사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정했다”고 천명한다. ▨죄의 용서는 하느님께만 유보된 권한이지 가톨릭 사제가 신자들의 죄를 용서해줄 권한은 없다사제가 죄를 용서하는 권한, 곧 사죄권에 대한 비판이다. 고해성사는 죄의 용서보다는 화해와 치유라는 의미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화해의 성사는 제2의 세례성사로서 죄의 상태에서 해방시켜 주고, 다시 생명에로 인도해 주기에 세례 성사의 연장으로 이해됐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에게 화해 직무를 맡기셨고(요한 20,23), 그들의 후계자인 주교들과 주교들의 협력자인 사제들이 이 직무를 계속 수행하고 있다. ▨교회법을 통해 이혼을 금지하거나 이혼을 합법화하기 위해 혼인무효라는 제도를 뒀다 개신교는 ‘혼인은 사회적 의미를 갖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리스도께서 제정한 성사는 아니다’라고 한다. 하지만 가톨릭은 혼인은 자녀 출산과 부부애를 통한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친밀한 일치를 표현해 내는 성사적 의미로 혼인을 이해한다. ▨교회 분열은 가톨릭교회가 중세에 면죄부를 통해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왜곡했기 때문이다교회 분열의 직접적 원인은 교리 해석 논쟁과 차이가 아니다. 또한, 가톨릭교회에서 죄를 면제해주는 제도는 없다. 면죄부는 의도적인 오역일뿐 교회 용어로는 ‘대사’(Indulgentia)다. 가톨릭교회는 죄를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면죄부를 발행한 것이 아니라 죄의 용서에 따른 보속 행위의 일부로 ‘대사부’를 발행했다. cpbc2020.01.15

중국 수녀 8명, 정부 감시·박해로 수녀원 떠나애국회 가입 거부한 수녀원에 십자가 철거·감시 카메라 설치... 요원까지 배치해 활동 감시 중국 정부가 최근 수녀 8명에게 애국회 가입을 종용하며 박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기도하는 수녀의 모습. 【CNS 자료 사진】 중국에서 수도생활을 해오던 수녀 8명이 중국 정부의 박해를 견디지 못하고 수녀원을 떠나는 일이 발생했다.이탈리아 종교ㆍ인권 잡지인 「비터 윈터」는 4일 “8명의 가톨릭 수녀들이 정부 당국의 거듭된 괴롭힘과 협박을 당하다 산시성 북부에 있는 수녀원을 떠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비터 윈터에 따르면, 수녀들은 “정부 관료들이 우리를 ‘위험인물’로 간주하고 줄기차게 괴롭혔다”며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해 보고하도록 강요당했으며, 심지어 몇 달 동안 한 모든 일을 공개하라거나, 여행 중에 이용했던 차량 번호까지 요구하는 등 박해를 가했다”고 전했다.수녀들은 중국 공산당 소속 천주교 관변 단체인 애국회 가입을 거부해 공산당의 지속적인 감시를 받아왔다. 수녀들이 이를 거부하자, 중국 정부는 수녀원에 4대의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고, 경찰관과 현지 공무원 등 감시요원 3명을 배치해 수녀들의 활동과 방문자들을 감시했다.수녀들은 “감시자들은 종종 수녀원 안으로 들어와 우리 활동에 대해 묻고, 밤에도 찾아왔다”며 “정부는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폭력배를 고용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결국, 중국 정부는 수녀원 성당에 설치된 십자가를 철거하도록 압박했고, 지난 8월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수녀들은 “구원의 상징인 십자가를 제거하는 일은 우리의 살을 베어내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중국 내 종교 박해는 끊이지 않고 보고되고 있다. 산시성 당국자들은 주민들의 집을 찾아 집안의 성물들을 시진핑 주석 사진으로 바꾸라고 협박하기도 하고, 개신교 신자들에겐 종교를 가진 가정은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없으며, 공산당에 복종해야 한다는 강요를 당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비터 윈터는 중국 공산당은 전국 각지의 성당과 교회를 찾아 십계명이 적힌 게시물을 철거하고, 공산당 지침을 게재토록 종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공산당이 승인한 성경만 사용하도록 압박하기도 했다. 중국 허베이성 스자좡 등 각지의 본당들은 수시로 지방 정부의 애국회 가입 압박을 받다가 성당이 폐쇄되는 사례가 여전히 빈번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심지어 중국에서 100여 년 전 활동하다 순교한 외국인 선교사 묘비도 철거당하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비터 윈터는 “중국 정부가 코로나19로 재정적 타격을 겪으면서 종교 단체에 대한 단속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한편, 바티칸은 지난 10월 22일 중국과 주교 임명권에 관해 합의한 2018년 합의문 시효를 2년 더 연장키로 했다. 양국의 관계 개선을 위해 바티칸도 주교 서임권 문제에 대해 중국의 요구를 수용한 것인데, 이 같은 결정에 반대해온 전 홍콩교구장 존 조셉 첸 추기경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는 교회를 죽이는 일과 같다”며 “이러다간 중국 내 지하 교회는 사라질 수도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cpbc2020.11.10

가톨릭청년성서모임, 영문판 그룹 공부용 교재 발간세계 한인·교포 청년 신자들 요청으로
4년여 번역 끝에 창세기·탈출기 출간
마르코·요한 교재 영문판도 펴낼 예정 서울대교구 가톨릭청년성서모임(담당 최광희 신부)이 영문판 그룹 공부용 교재를 출간했다. 세계 각지에 사는 한인과 교포 청년들을 위한 첫 영문판 성경 공부용 교재로, 보편 교회 젊은이 성경 사도직 활성화를 위한 촉매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첫 영문판으로 출간된 교재는 창세기용 「Yahweh-Yireh」(야훼이레)와 탈출기용 「I will be with you」(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이다. 서울 가톨릭청년성서모임 연구부가 번역을 맡아 4년여 작업 끝에 내놨다. 교재는 「뉴 아메리칸 성경」(NAB)을 적용해 제작했으며, 성경 저작권 사용은 미국 주교회의의 승인을 받았다. 교재는 한국어판 교재 형식에 따라 △시작 기도 △말씀 읽기 △말씀 새기기 △말씀 살기 △마침 기도로 구성됐으며, 적절한 삽화와 묵상, 나눔 기재란을 수록했다.1972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국내외 수많은 청년에게 성경을 가르쳐온 서울 가톨릭청년성서모임이 영문 교재를 낸 것은 처음이다. 미국, 유럽, 오세아니아주, 동아시아 등 세계 각지에서 성서 모임에 참여한 한인과 교포 청년 신자들의 요청이 영문판을 낸 가장 큰 계기다. 홍콩, 캐나다 교회 등 여러 지역 교회가 서울 가톨릭청년성서모임 프로그램의 도입을 위해 여러 차례 영문판을 요구해온 것도 이유다.현재 해외에서 가톨릭청년성서모임 교재를 이용한 그룹 공부와 연수를 받는 한인과 교포 청년 수는 연간 400~500명에 이르며, 참여자가 계속 늘고 있다. 성서 모임을 중심으로 해외 한인 청년들 간 네트워크도 형성돼 있다. 그간 청년들은 한국어 교재를 번역해 공부하는 등 말씀에 목마른 젊은이들이 곳곳에서 ‘성서 모임 가족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최광희 신부는 “교회 내 청년 수가 줄고 있는 현실에서 말씀에 대한 갈망으로 성서 모임에 동참하는 청년은 국내외에서 늘고 있다”며 “한국 교회 고유의 청년 성서 모임 프로그램이 해외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영문판 교재가 큰 도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서울 가톨릭청년성서모임은 해외 한인본당을 중심으로 교재를 판매할 계획이며, 마르코와 요한용 교재 영문판도 하반기쯤 출간한다는 구상이다. 권당 8달러. 구입 문의 : 02-764-6452, 서울대교구 가톨릭청년성서모임 이정훈 기자 평화신문2020.01.08
[장현규 수녀의 사랑의 발걸음] 5. 오묘하신 하느님의 섭리장현규 수녀(프랑스 성요한사도수녀회) 프랑스에서는 지난겨울 동안 대규모 교통 파업이 있었다. 그 탓에 기차와 전철이 정상적으로 운행되지 않아 파리 북쪽 생드니에 있는 병원의 환자들을 보러 갈 수가 없었다. 지난해 말부터 일어났던 교통 파업은 퇴직 연금과 관련된 것이라고 한다. 세상살이 많은 어려움이 이처럼 대부분 돈과 관련해 비롯되는 것 같다.다행히도 새해 1월부터 파업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는 26년 전에 이번과 같은 정도의 교통 파업이 있었다고 한다. 수녀님들도 이후 내가 다시 환자들을 보러 가게 된 것을 함께 기뻐해 주시며, 용기를 갖도록 격려해주셨다.며칠 뒤 가벼운 발걸음으로 역에 도착. 기차도 제시간에 탈 수 있어 신바람이 났다. 고통 중에 있을 병원 환자들을 만나는 기쁨이란! 그런데 오랜만에 풀린 대중교통 운행 탓인지, 파리역에는 웬 사람들이 그리도 많은지. 묶인 발목들이 풀어지듯 그렇게나 큰 역은 쏟아져나오는 파리 시민들로 넘실거리는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평소 같지 않았던 인파를 뚫고 병원에 도착한 나는 우선 무슬림 여성 환자와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창백해 보이는 마른 얼굴의 알제리인으로, 40대 중반 정도로 보인다. 오빠가 독신인 자신을 친절하게 잘 도와준다고 한다. 입원한 지 열흘이 됐는데, 의사가 오늘 퇴원해도 된다고 했단다. 그런데 등의 통증 때문에 며칠 더 있게 되었는데, 뜻밖에도 나를 만나게 됐다는 것이다. 나와의 만남이 무척 기쁘다고 말하는 모습이 어린아이처럼 순진무구하다. 그녀는 나와 많은 이야기를 하길 원했다. 침대 옆으로 바싹 다가앉았다.그녀는 환자여서 무슬림 여성들이 머리에 써야 하는 ‘히잡’은 쓰지 않았다. 그러면서 퇴원하면 다시 써야 한다며 나에게 히잡을 착용하고서도 성당에 들어가 볼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이 아닌가. 뜻밖의 질문이었지만 나는 답해줬다. “그럼요! 들어갈 수 있고 말고요!” 그리스도를 향해 열린 마음을 지닌 이라면 누구든 환영이다.우리는 종파와 인종을 넘어 모두 하느님의 자녀들이다. 20여 년 동안 이 병원에서 무슬림들을 많이 봐왔는데, 히잡을 쓰고서라도 성당에 들어가 보고 싶어하는 이는 처음 만났다. 또 다른 무슬림 남성은 내게 성경을 선물로 달라고 했었다. 참으로 별난(?)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내 마음은 무척 기뻤다. 그들의 이런 바람을 들어주지 않은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그녀가 성당에도 들어가 보고 싶다는데, 나는 ‘얼씨구 좋다’ 하며 속으로 손뼉을 치다가 내친김에 혹시 작은 성경도 갖고 싶은지 물었다. 즉시 “좋다”는 답이 돌아온다. 그다음 나만의 비장의 무기(?)인 그림 카드와 상본 중 화려한 꽃이 그려진 카드를 꺼냈다. 카드에 ‘하느님의 축복을 빕니다’라고 써주니 꽃 옆에 자신의 얼굴을 대고 “참 따뜻한 느낌”이라고 한다. 고통의 여인에게 잠시나마 기쁨과 웃음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나의 큰 행복이다. 나의 일은 이렇게 미소와 희망을 선물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나누었는지. 그녀와 나는 1시간 이상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좀 피곤해도 계속 대화를 원하는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가족 사항, 자신의 건강 상태 등 처음 마주하는 나에게 어찌나 그렇게 자세히 이야기를 털어놓는지. 그러다 문득 “제 이웃도 가톨릭 신자인데, 정말 친절하고 좋다”는 말을 꺼낸다. 우린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이웃을 향해 친절함과 환대로 따뜻함을 만드는 사람들 아닌가! 대화를 통해 그녀가 가톨릭교회에 큰 관심과 호감을 갖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성당에 들어가 보고 싶다고 한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나와의 만남이 작은 연결고리가 되길 기도한다.이곳 프랑스 수녀원에서 지내면서 오래전부터 가톨릭평화신문을 구독해왔다. 한국 교회 소식은 물론, 세계 교회 소식도 접할 수 있어 내가 다른 수녀님들을 위한 ‘교회 소식통’이 돼주기도 한다. 와 닿는 글, 좋은 기사들을 스크랩하는 일도 습관이 됐다. 그중에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에 발행된 2020년 1월 19일자 신문에 사설로 실렸던 환대에 관한 아름다운 글을 여기 옮겨 적어본다.“환대는 다른 언어와 문화, 신앙을 가진 이들을 향할 때 더 빛이 난다. 환대는 성경에서만 회자하는 기억이 아니다. 무관심하고 냉랭한 힘과 결탁할지, 각별한 인정과 친절을 베풀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다만 그리스도인의 환대와 친절은 하느님의 사랑을 증언하는 통로임을 기억해야 한다.”나는 매일 하느님의 사랑을 증언하는 통로가 될 것이다. 아멘. cpbc2020.05.27
![[성서 주간]성경, 언제든 곁에 두고 볼 수 있는 ‘하느님의 말씀’](//cpbc.co.kr/CMS/newspaper/2018/11/rc/739374_1.0_titleImage_1.jpg)
[성서 주간]성경, 언제든 곁에 두고 볼 수 있는 ‘하느님의 말씀’ 성경 알아보기 한국 교회는 1985년부터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간을 성서 주간으로 정해 신자들이 성경을 자주 읽고 묵상하기를 권장하고 있다. 올해는 25일부터 12월 1일까지다. 교회가 별도의 성서 주간을 만들면서까지 성경을 가까이하기를 권하는 것은 성경이 신앙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영혼의 양식과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성경이기 때문이다. 가톨릭평화신문은 독자들에게 보다 성경에 친숙하고 올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성서 주간 특집 면을 마련했다. 이 특집 면에서는 성경이 어떻게 구성돼 있고, 가톨릭교회의 성경 경전이 다른 그리스도교와 어떻게 다른지, 또 성경 공부를 가장한 유사종교의 위험성과 교회가 운영하고 있는 성경 공부 모임을 소개한다. 아울러 성경 내용을 주제로 한 영화를 모았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성경이란성경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당신의 구원 계획을 유다교와 그리스도교 역사 안에서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 드러내시고 알려주신 계시의 원천이다. 아울러 인간이 교회를 통해 하느님의 계시를 제대로 전하고 이해하며 그것을 믿고 따르는 신앙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래서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이며 ‘교회의 책’이라고 한다. 성경이 말하는 주제어는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마태 16,16)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한 처음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생명과 은총, 진리 등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해 생겨났고,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으며,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요한 1장 참조)성경(Bible)은 ‘책들’이란 뜻의 헬라어 ‘타 비블리아’(τα Βιβλια)라는 단어에서 유래됐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새로운 계약(신약)과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옛 계약(구약)의 내용으로 구분된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신앙의 밑거름인 구약을 친히 완성하셨고, 그리스도 교회는 유다교의 거룩한 구약의 책들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데 필요한 출발점을 찾았기에 ‘하느님의 구원’이라는 하나의 큰 틀 안에서 신ㆍ구약 성경을 읽어야 한다. 구약성경은 유다인들이 ‘타낙’이라 부르는 율법과 예언서, 역사와 시편, 지혜문학이 수록된 문서집이다. 구약성경 대부분은 히브리어로 쓰였으나 에즈라기와 예레미야서, 다니엘서는 아람어로, 지혜서와 집회서 등 7권은 헬라어로 쓰였다. 구약성경은 기원전 3세기부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헬라어로 옮겨졌다. 이스라엘 12지파에서 각각 6명씩 뽑힌 72명의 율법학자가 72일 동안 모세 오경 번역을 마쳤다. 그리고 나머지 책들도 모두 번역을 마쳐 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본 전체를 일반적으로 ‘칠십인 역본이라 부른다.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완성된 구원의 신비를 드러내는 책이다. 신약성경은 27권으로 되어 있다. 모두 헬라어로 쓰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도들의 행전, 바오로를 비롯한 사도들과 제자들의 전승, 묵시록 등을 수록하고 있다. 성경 경전은 왜 교회마다 다를까그리스도교는 크게 로마 가톨릭인 서방 교회와 정교회인 동방 교회, 그리고 개신교로 나눌 수 있다. 서방 교회에서는 바오로 3세 교황이 1546년 트렌토 공의회에서 4세기 때부터 대중 성경으로 사용해온 「불가타」를 성경 경전(經典-표준 성경)으로 반포했다. 보편 교회에서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는 신약 27권, 구약 46권 총 73권이다. 신약성경은 마태오ㆍ마르코ㆍ루카ㆍ요한 네 복음서와 사도행전, 14개 바오로 서간, 7개 가톨릭 서간, 요한 묵시록으로 구성돼 있다. 서방 교회는 4세기에 이미 현재의 27권과 동일한 신약성경을 확정했고, 바오로 3세 교황이 1546년 트렌토 공의회에서 성경 정경을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교령으로 반포했다. 오늘날 보편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성경이다. 구약성경은 경전의 수가 교단에 따라 다르다. 가톨릭교회는 39권의 히브리어 성경과 토빗기, 유딧기, 마카베오기 상ㆍ하권,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등 헬라어로 쓰인 7권을 더해 총 46권을 구약성경 경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반해 개신교와 유다교는 히브리어 성경 39권만 구약성경으로 인정한다. 그리고 그리스 정교회는 히브리어 성경에 토빗기, 유딧기, 지혜서, 집회서만 더해 43권 구약성경을 경전으로 쓰고 있다.<표 참조>구약성경의 경전이 서로 다른 이유는 초대 그리스도교가 헬라어 구약성경인 칠십인역을 표준 성경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는 이 칠십인역을 구약성경 경전으로 받아들였지만, 개신교와 유다교는 헬라어 7권의 성경을 경전에 포함하지 않은 것이다. 가톨릭교회는 히브리어 성경 39권을 ‘구약 제1경전’, 헬라어 7권을 ‘구약 제2경전’으로 구분해 부르고 있지만 모두 똑같은 권위와 위상을 누린다. 외경과 위경가톨릭교회는 성경 경전에 포함되지 않은 문학 작품을 헬라어로 ‘아포크리파’(αποκρυφα), 우리말로 ‘외경’(外經)이라고 부른다. ‘감추어진 것’ ‘숨겨진 것’이란 뜻의 아포크리파는 성경 경전과 비슷한 면을 지니면서도 영지주의 등 교회와는 다른 가르침을 전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톨릭교회는 정통 신앙과 다른 오류를 전할 수 있기에 외경을 전례에서 공적으로 낭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전례가 거행되는 동안 이 책들은 ‘숨겨져 있어야’ 했기 때문에 아포크리파라 불렀다.위경(僞經, pseudepigrapha)은 개신교 용어로 허위 성경이란 뜻으로 가톨릭에서 말하는 외경들을 지칭한다. 아울러 개신교에서는 가톨릭 성경의 구약 제2경전 7권을 ‘외경’이라고 한다. cpbc2018.11.21

교황, 사상 첫 이라크 방문… 위로·희망·형제애 전하며 ‘평화의 씨앗’ 나눠시아파 최고 지도자 만나 회동... 그리스도교 포용과 공존 호소, 모든 폭력과 극단주의 종식 촉구5~8일 이라크를 사목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칼데아 교회 성당을 가는 동안 환영 인파를 향해 인사를 전하고 있다.프란치스코 교황이 5~8일 지구 상 가장 극심한 박해와 내전, 가난, 종교 간 갈등으로 고통을 겪는 이라크를 사목 방문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다. 이라크 국민들은 코로나19 대유행과 테러 등 여러 위협을 무릅쓰고 방문한 교황을 열렬히 맞았고, 교황이 전한 위로, 화합, 희망, 그리고 사랑을 만끽했다. 가톨릭교회 역사상 처음 이라크를 방문한 교황은 이라크 국민들을 향해선 위로를, 오랜 박해로 여전히 죽음의 위협에 노출된 그리스도교 공동체엔 교황 친교와 재건의 희망을, 무슬림들에겐 형제애를 표하며 이라크 전역에 평화의 씨앗을 나눴다. 교황 방문으로 그리스도교 공동체 재건과 중동 지역 평화 분위기 조성, 종교 간 대화와 화합에 앞으로도 적잖은 영향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교황의 이번 사목 방문 주제는 ‘너희는 모두 형제다’였다. 테러 공격으로 박해를 받아온 그리스도교 공동체뿐만 아니라, 이슬람교 등 타 종교와 대화, 전쟁 종식 등 모든 형제자매를 향한 위로가 교황이 이라크를 사목 방문한 이유였다. 첫날인 5일 바그다드에 도착한 교황은 대통령궁에서 바르함 살리흐 이라크 대통령의 영접을 받고, 면담한 뒤 첫 연설에서 “무력 충돌을 잠재우고, 폭력과 극단주의 등 모든 편협한 행위가 종식될 수 있길 바란다”며 “모든 시민이 화해에 전념하고, 공동의 이익을 위해 준비하면서 이라크 모든 국민이 대화와 화합의 모델이 되길 기도한다”고 촉구했다. 교황은 이날 저녁 바그다드 시리아 가톨릭교회 구원의 성모 성당을 찾은 자리에서도 “우리가 십자가의 힘과 용서, 화해, 신뢰를 새롭게 하는 영감을 제시해야 한다”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사랑을 증언하며, 이는 이곳에서 선포되고 구현돼야 하는 복음”이라고 선언했다. 2010년 이슬람 무장단체(IS)의 테러로 사제 2명과 수십 명이 순교한 이 성당에서 교황은 이라크 교회 주교단과 사제, 종교인, 여성들을 처음 만나 친교를 나눴고, 교황의 연설 뒤 모두 아랍어로 ‘주님의 기도’를 낭송했다. 이튿날인 6일 교황은 나자프에서 이라크 시아파 이슬람 최고 지도자인 알 시스타니 대 아야톨라를 만나 45분 동안 회동했다. 교황이 시아파 최고 성직자를 만난 것도 가톨릭교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공개석상에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아야톨라와의 만남에서 교황은 “종교 간 협력과 우호를 통해 상호 존중과 대화를 나누는 노력은 이라크와 모든 인류에 기여할 수 있다”고 전했다. 아야톨라도 “세계 종교 지도자들이 이성과 지혜를 우선시하고, 전쟁의 언어를 거부하며, 그리스도교인들 또한 평화와 안전 속에 완전한 합법적 권리를 누리며 살아야 한다”면서 “가장 약하고, 박해받는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준 데 대해 감사하다”고 밝혔다. 이어 곧장 아브라함의 고향인 우르를 방문한 교황은 이슬람교, 유다교 등 종교 지도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가장 큰 신성 모독은 형제자매를 미워하고, 그분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이라며 “적대적인 마음과 극단주의, 폭력은 신앙인의 마음에서 비롯될 수 없으며, 그것은 주님을 배신하는 행위”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교황은 이어 “하느님의 빛이 증오의 구름에 가려지지 않게 하자”며 종교 간 화합을 향한 바람을 재차 표명하며 극단주의자들의 테러를 비난했다. 이날 저녁 교황은 바그다드 시내 칼데아 가톨릭교회 성당에서 미사를 주례하며 신자들과도 만났다. 이튿날인 7일 교황은 이라크와 IS와의 격전지였던 북부 최대 도시 모술을 방문해 전쟁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마을에서 희망을 역설했다. 그리스도인들이 밀집해 살던 ‘성경의 땅’ 모술은 2000년 교회 역사 내내 성당 종소리가 멎지 않았지만,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박해로 많은 그리스도인이 목숨을 잃거나 마을을 떠났다. 교황은 성전들이 파괴된 현장인 모술 광장에서 연설을 통해 ‘평화적 공존’을 재차 역설했다. 교황은 IS 테러 희생자 추모 기념비를 제막하고,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날렸다. 교황은 곧장 카라코쉬의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성당에서 신자들을 만나 그들이 겪은 아픔을 직접 듣고,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2014년 IS는 5만 5000여 명에 이르던 카라코쉬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테러를 저질렀고, 대부분 신자가 쿠르드 자치구로 이주했었다. 현재 2만 5000여 명이 공동체를 이루는 이곳에서 교황은 “테러와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승리를 볼 수 있었다”며 “이제 성전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가족, 젊은이와 노인을 하나로 묶는 공동체의 유대를 회복할 때”라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어 아르빌 시내 대형 스타디움에서 수천 명의 신자가 운집한 가운데 봉헌된 교황 주례 미사는 사목 방문의 절정을 이뤘다. 이 자리에는 이라크와 쿠르드 자치정부의 정치 및 종교 지도자 등 고위 인사들도 참석했다. 교황은 미사에서 “이라크 교회는 살아있고, 주님께서 이 거룩한 백성 가운데 계시다는 것은 분명하다”며 “이것이 제가 여러분을 만나 감사를 드려야 하는 이유였다”고 전했다. 교황은 “이라크는 항상 내 마음속에 있을 것”이라며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평화와 번영의 미래를 위해 여러분 모두 노력해주길 바라며, 하느님만이 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교황은 이번 사목 방문 동안 총 4차례의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연설과 2차례의 미사로 그들 한가운데에서 평화를 향한 분명한 지지를 보냈다. 교황은 8일 오전 성대한 송별 행사를 끝으로 중동의 형제들과 다시 만날 날을 기약했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cpbc2021.03.10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69) 에필로그<4>- 사도행전에 비춰본 바오로의 생애와 서간③](//cpbc.co.kr/CMS/newspaper/2020/06/rc/781470_1.1_titleImage_1.jpg)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69) 에필로그- 사도행전에 비춰본 바오로의 생애와 서간③교회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 제시한 ‘바오로의 편지’ 바오로의 2차 선교 여행 경로. 출처=「성경 역사 지도」(분도출판사) 예루살렘 사도 회의의 결정을 가지고 안티오키아로 돌아와 지내던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두 번째 선교 여행을 떠나기로 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첫 번째 선교 여행 때와 달리 서로 갈라져서 여행을 떠납니다. 바오로가 신약성경 바오로 서간으로 전해지는 편지들을 쓰기 시작한 것도 이 두 번째 선교 여행 때부터입니다. 바오로의 2차 선교 여행「주석 성경」 ‘연대표’에 따르면, 바오로의 2차 선교 여행은 50~52년까지 약 3년 동안에 이뤄집니다. 바르나바가 마르코를 데리고 키프로스로 떠나자 바오로는 실라스를 데리고 “시리아와 킬리키아를 두루 다니며 그곳 교회들을 굳건하게” 만듭니다.(15,40-41) 이 지역들은 바오로가 회심 후 처음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복음을 선포하다가 유다인들의 박해를 피해 고향 타르수스로 돌아갈 때 거쳐 가면서 선교 활동을 했던 지역이기도 합니다.(갈라 1,21 참조) 이렇게 내륙을 거쳐 올라간 바오로는 데르베를 거쳐 리스트라에 당도합니다. 이 고을들은 바오로가 1차 선교 여행 때에 선교한 곳들이었습니다. 리스트라에서 티모테오를 제자로 삼은 바오로는 계속해서 1차 선교 여행 때 방문했던 도시들인 이코니온과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를 거쳐 서쪽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서쪽으로 계속 간다면 에페소가 주도(州都)인 아시아에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아시아에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아 바오로 일행은 북쪽으로 올라가 갈라티아 북부 지방(오늘날 터키 수도 앙카라 부근)까지 갔다가 다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프리기아를 관통해 계속 나아갑니다. 아시아 속주의 북쪽에 있는 미시아 지방에 이르러서는 북쪽 비티니아로 가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예수님의 영께서 허락하지 않아 미시아를 가로질러 에게 해 연안 도시인 트로아스로 내려옵니다.(16,1-8)트로아스에서 지내던 어느 날 밤 바오로는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달라는 환시를 보고는 트로아스를 떠나 사모트라케 섬을 거쳐 유럽 본토인 마케도니아의 네아폴리스에 도착해 그곳에서 10여㎞ 떨어진 필리피로 갑니다. 바오로는 이곳에서 티아티라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인 리디아에게 세례를 주는 등 선교 활동을 펼치다가 감옥살이를 하고 감옥을 지키던 간수와 그 가족을 개종시킨 후 필리피 행정관들의 요청으로 필리피를 떠납니다.(16,11-40) 필리피는 바오로가 유럽 대륙에서 처음으로 교회를 세운 곳입니다. 또 필리피 교회는 이후 바오로의 선교 활동을 물심양면으로 적극 후원합니다.필리피를 떠난 바오로는 암피폴리스와 아폴로니아를 거쳐 마케도니아 최대의 항구도시이며 마케도니아 주도(州都)인 테살로니카에 머무르면서 선교 활동을 계속합니다. 하지만 테살로니카의 유다인들에게 거센 반발을 사고 위험에 처하자 그곳을 떠나 베로이아로 갑니다. 테살로니카의 유다인들이 베로이아까지 쫓아와 군중을 선동해 자극하는 바람에 바오로는 그동안 함께했던 실라스와 티모테오를 남겨 두고 먼저 아테네로 옵니다.(17,1-15)아테네에서 실라스와 티모테오를 기다리면서 바오로는 유다인 회당에서, 또 광장에서 토론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나중에는 아레오파고스에서 아테네 시민들을 대상을 열띤 선교를 합니다. 하지만 바오로는 아테네에서 선교 활동의 별다른 결실을 보지 못합니다. 실라스와 티모테오와 내려온 후 바오로는 티모테오를 테살로니카 교회로 보내고(1테살 3,1-5 참조) 자신은 실라스와 코린토로 건너갑니다. 테살로니카 교회에 보낸 애정과 권고코린토에서 바오로는 폰투스 출신으로 천막 만드는 일을 생업으로 하는 유다계 그리스도 신자들인 아퀼라와 프리스킬라 부부를 만납니다. 생업이 같아서 바오로는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안식일이면 회당에서 토론하며 유다인들과 그리스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던 차에 마케도니아에 갔던 티모테오가 코린토로 내려와 바오로에게 테살로니카 교회에 관한 소식을 전합니다. 테살로니카 신자들이 바오로를 그리워하며 바오로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바오로는 테살로니카 교회에 편지를 써 보내는데 이 편지가 바로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입니다. 신약성경 27권 가운데서 바오로의 이름으로 전해지는 서간 가운데 바오로의 친서가 몇 권이 되는지에 대해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립니다만, 적어도 7권은 바오로가 직접 쓴 편지라는 데는 견해가 일치합니다.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은 그 가운데서 첫 번째 편지로 50~51년쯤에 쓴 것으로 추정합니다. 서간에는 자신이 직접 세웠지만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박해를 피해 떠나야 했던 테살로니카 교회 신자들에 대한 바오로의 염려와 애정, 신자로서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한 권고와 당부 등이 생생히 담겨 있습니다. 티모테오가 마케도니아에서 코린토로 내려온 이후 바오로는 더욱 복음 선포 활동에 매진합니다. 바오로는 1년 6개월 동안 코린토에서 지내면서 교회를 세운 후에 코린토를 떠나 아시아의 주도(州都) 에페소로 갑니다. 그러나 그곳에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코린토를 함께 떠난 프리스킬라와 아퀼라 부부를 에페소에 남겨 둔 채 바오로는 카이사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에 올라가 그곳 교회에 인사한 후 안티오키아로 내려옵니다.(18,5-22) 이로써 바오로는 2차 선교 여행을 마칩니다. 분열하는 코린토 교회에 당부안티오키아에서 얼마를 지낸 바오로는 다시 길을 떠납니다. 세 차례의 선교 여행 중 가장 긴 3차 선교 여행을 시작한 것입니다. 바오로의 3차 선교 여행은 53~58년 사이에 이루어집니다. 바오로는 내륙을 거쳐 북쪽으로 올라가 소아시아의 갈라티아와 프리기아를 차례로 거쳐 가면서 자신이 앞선 두 차례의 선교 여행 때에 세운 교회들을 찾아 신자들을 격려하고는 소아시아의 서쪽 끝에 있는 에페소에 도착해 그곳에서 27개월을 지내며 선교 활동을 펼칩니다. 바오로가 에페소에 있을 때 바다 건너 코린토에서 걱정스러운 소문이 들려옵니다. 코린토 교회 신자들이 ‘바오로 편’이니 ‘아폴로 편’이니 ‘케파 편’이니 심지어 ‘그리스도 편’이니 하면서 분열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불륜, 근친상간, 신자들 간의 법정 고발, 성찬례 모임에서의 불미스러운 일, 죽은 이들의 부활에 대한 그릇된 이해 등 신자 생활과 교리에 관한 좋지 못한 이야기들도 함께 전해 듣습니다. 자신이 18개월이라는 꽤 오랜 기간을 보내며 힘들여 세운 코린토 교회의 이런 사정을 접한 바오로는 자신의 동료이자 협력자인 티모테오를 코린토로 파견하면서 그편에 코린토 상황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신자들에게 당부하는 내용의 편지를 써 보냅니다. 이것이 바오로 서간 중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입니다. 이 편지는 54년 봄쯤에 쓴 것으로 추정합니다. 바오로는 이 서간에 앞서 편지 한 통을 코린토 교회에 써 보냈는데, 안타깝게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코린토 교회의 사정이 심상치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장사하는”(2코린 2,17) 가짜 선교사들이 코린토에 와서 바오로의 사도직을 부정하며 신자들을 부추기고 있었습니다. 소식을 들은 바오로는 직접 코린토로 건너갑니다. 그의 두 번째 코린토 방문이었습니다.(2코린 13,2 참조) 하지만 바오로는 오히려 모욕만 당하고 에페소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는 “괴롭고 답답한 마음으로 많은 눈물을 흘리며”(2코린 2,4) 코린토 교회에 편지를 씁니다. 이 편지가 ‘코린토 교회에 보낸 세 번째 편지’입니다. ‘눈물 편지’라고도 하는 이 세 번째 편지는 바오로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 10─13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alfonso84@hanmail.net cpbc2020.06.17

청소년에 의한 청소년을 위한 축제인천교구 청소년사목국 청소년부, 제26회 바다의 별 축제 ‘제26회 바다의 별 축제’에 참가한 청소년들이 경품 룰렛을 돌리고 있다. 인천교구 청소년사목국 청소년부(담당 유동식 신부)는 1월 18일~19일 인천교구청에서 제26회 바다의 별 축제를 개최했다. 청소년과 그 가족까지 초대한 이번 축제에는 모두 400여 명이 참가했다.올해 축제는 두 번째 ‘성서의 해’를 맞아 ‘성경 골든벨’과 ‘성경경시대회’, ‘성경 암송대회’ 등 짜임새 있는 성경 관련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또 올해는 처음으로 바다의 별 축제와 8월에 열리던 ‘청소년 전례음악 축제’를 하나로 합쳐 진행됐다. 교구 내 상동ㆍ가좌동ㆍ주안8동ㆍ중2동 등 4개 본당과 교구에서 활동하는 청소년 밴드들은 ‘제16회 청소년 전례음악 축제’에서 멋진 무대를 선보였다.교구청 마당에는 다채로운 판매 부스와 체험 부스가 마련됐다. 참가자들은 룰렛을 돌려 경품을 받고, 묵주 팔찌와 간식을 사는 등 즐거운 추억을 쌓았다. 또 인천가톨릭대 신학생과 부제를 만나 성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틀간의 축제는 19일 교구장 정신철 주교가 주례한 공동체 미사로 막을 내렸다. 바다의 별 축제에 처음 참가한 권주연(헬레나, 15, 상동본당)양은 “생각 이상으로 재미있다”며 큰 만족감을 표했다. 권대용(요한 세례자, 16, 주안8동본당)군도 “다양한 부스를 체험하며 색다른 재미를 느꼈다”고 밝혔다.축제를 직접 기획하고 준비한 청소년 봉사자들은 잇따른 호평에 뿌듯해 했다. 홍보영상을 찍은 김두열(안드레아, 19, 인천가톨릭대학교 한국순교성인본당)군은 “교구 축제에 이바지해 보람을 느낀다”며 “이번 계기로 신앙심이 더 깊어졌다”고 했다. 이어 “중고등부 복사를 오래 해왔는데, 이제 새해에는 교리교사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수도자를 꿈꾸는 손혜원(아가페, 19, 구월1동본당)양도 “축제를 준비하며 수도 성소를 키웠다”며 “내년에 꼭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 입회하겠다”고 다짐했다.교구 청소년부 담당 유동식 신부는 “청소년들이 온전히 스스로 힘으로 축제를 준비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며, 이를 통해 ‘또래 사도’를 양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청소년의 축제 마당인 ‘바다의 별 축제’는 1994년에 시작해 26년째 이어오고 있다. 축제 수익금은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과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에 전달돼 외국의 아픈 어린이를 치료하는 데 쓰인다.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평화신문2020.01.29

당신은 주님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 나의 어머니입니다가톨릭교회와 성모 공경 교회가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는 이유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그분이 주님의 어머니이시기에 공경하는 것은 아니다. 성모님은 누구보다도 하느님께 순종했으며 당신의 외아드님이신 주님을 목숨을 다해 사랑하신 분이셨기에 공경한다. 성모 마리아를 ‘살아있는 복음’이라고 한다.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전 생애가 성모님과 결합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성모님을 각별히 공경해 왔다. 성모 마리아 공경은 교회 전례력에서도 잘 드러난다. 가톨릭교회는 전례주년 한 해 동안 두 달(5월 성모 성월, 10월 묵주 기도 성월)을 성모님께 봉헌하고, 3번의 대축일과 2번의 축일, 12번의 성모 기념일을 지낸다.5월 성모 성월과 13일 파티마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을 맞아 가톨릭교회가 왜 성모님을 공경하는지 살펴본다.성모 공경 이유가톨릭교회가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그분이 주님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에 공경하는 것은 아니다. 마리아께서 누구보다도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셨고(루카 1,38 참조), 당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성경은 성모 마리아를 ‘은총이 가득한 이’(루카 1,28)로 증언하고 있다. 구약성경은 하와의 후손이며 다윗의 자손으로 하느님께 성실한 소박하고 순진한 동정녀가 ‘임마누엘’이라 불리게 될 메시아를 낳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시온의 딸로 메시아의 어머니로 초대된 분이 바로 성모 마리아이시다. 신약성경은 성모 마리아를 믿음으로 복되신 분이며, 주님과 함께 계시는 주님의 어머니시며, 세세 대대로 찬양받으실 분으로 증언하고 있다. 성모님은 동정녀의 몸으로 성령으로 인해 아들을 잉태할 것이라는 하느님의 불림을 받고서 순종으로 응답했으며, 평생 하느님의 뜻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신앙인으로서 인류와 교회의 표상이 됐다. 또 성모님은 곤란한 처지에 놓인 이웃을 위해 아들에게 도움을 청해 주님의 첫 신원을 드러내는 기적을 행하게 하신 분이시다. 아울러 성모님은 사람들을 당신 외아들에게로 인도하며 십자가에 못 박힌 아들의 죽음을 지키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당신을 중심으로 주님의 제자들을 모아 함께 기도하시면서 성령을 받고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하느님의 인류 구원 역사를 선포하신 분이시다. 그래서 성경은 엘리사벳의 입을 빌려 성모님께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십니다”(루카 1,42)라고 고백하고 있다. 교회의 고백 가톨릭교회는 성모 마리아를 신앙인의 모범이며, 그리스도를 통해 이룩된 하느님 가족인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대표적으로 구현한 인물로 공경한다. 그래서 교회는 성모님을 ‘교회의 어머니’라고 고백한다. 교회는 “원죄 없으신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는 지상 생애의 여정이 끝난 다음 그 영혼과 육신이 천상의 영광 안에 받아들여졌다”고 믿을 교리로 선포한다.교회는 또 성모님이 ‘인류를 위한 중개자’라고 밝힌다.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당신의 전구로 구세주 예수님의 첫 기적을 이끌어 내신 성모님은 교회의 시작을 도와주기 위해서 성령의 은혜를 당신의 기도로 간청하셨고, 천상에서도 계속하시어 당신의 수많은 전구로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의 은혜를 얻어주신다.”(「교회 헌장」 58~62항 참조, 「주님의 어머니, 신앙인의 어머니」 254쪽) 성모님의 중개는 ‘성인들의 통공’이라는 맥락 안에서 이루어진다. 신자들이 성인과 복자, 신심 깊은 이들에게 기도의 도움을 청하듯이 성모님께 전구를 청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 신학자들은 ‘중개자’라는 말 대신 ‘영적 모성’이란 말을 쓴다. 유일한 구원의 중개자이신 주님과 구분하기 위함이다. 성모 성월교회가 성모 성월을 제정한 것은 인간 구원을 위해 끊임없이 전구하시는 성모님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서다. 중세 스페인 중부 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10세(1221~ 1284) 임금은 5월의 아름다움과 성모님께서 베푸시는 영적 풍요로움을 처음 결부시켜 5월 한 달간 성모님을 위해 기도하자고 권고했다. 이때부터 5월을 성모의 달로 기념하는 관습이 생겨나 유럽 교회 안에 퍼지기 시작했다.성모 성월이 정착된 시기는 17세기 말이다. 1677년 이탈리아 피렌체를 중심으로 5월을 성모님께 봉헌하는 축제가 열렸다. 신자들은 ‘성모호칭기도’를 바치고, 성모님께 장미화관을 봉헌하는 등 다채로운 행사를 열었다. 1854년 비오 9세 교황이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리를 선포한 이후 성모님을 위한 갖가지 행사가 유럽 교회 전역으로 퍼져 나갔으며 성모 성월 행사는 공적으로 거행되기 시작했다.한국 교회도 성모 성월 행사를 화려하고 장엄하게 거행하고 있다. 본당마다 성모 성월을 뜻있게 보내고자 성모상을 더욱 아름답게 꾸미고, ‘성모의 밤’ 행사 등을 마련한다.파티마의 성모와 성모 발현의 의미 성모 마리아는 1917년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 거리에 있는 작은 도시 파티마에서 5개월간 여섯 차례에 걸쳐 발현했다. 성모님은 루치아와 그녀의 사촌 히야친타, 프란치스코 등 세 명의 어린 목동에게 발현해 죄인들의 회개와 세계 평화를 위해 묵주 기도를 매일 바치라고 당부했다. 성모님은 그 대가로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을 통해 많은 영혼이 구원받고, 세계 전쟁을 예방하며, 러시아의 회개와 세계 평화를 약속하셨다. 1930년 포르투갈 주교들은 파티마의 성모 발현을 공식 인정했고, 1942년 비오 12세 교황은 성모님의 요청대로 러시아를 특별히 언급하면서 세상을 성모의 티없는 성심께 봉헌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원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성모 발현은 신비 체험의 하나이다. 따라서 성모 발현은 그리스도를 통해 전해진 공적 계시와 구별해야 한다. 성모 발현을 통한 사적 계시의 옳고 그름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적 계시에 있다. 이미 성경에서도 거짓 예언을 주의하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사적 계시는 개인적이지만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것이다. 새로운 발현이나 사적 계시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드러난 공적 계시와 모순되는 것일 수 없고, 공적 계시를 보완해주는 것일 수도 없다. 이미 드러난 공적 계시를 특정 시대, 특정 상황에 새롭게 강조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교회는 성모 발현을 인정하는 데 매우 신중하다. 성모님은 그리스도와 우리를 중개하시는 분이시다. 성모님이 주님보다 우위일 수는 없다. 성모 마리아의 메시지는 그리스도 신앙을 위한 것이다. 성모 발현 목격자가 성모님보다 두드러져서는 안 된다. 발현 메시지가 교회 가르침에 어긋난다면 올바른 발현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발현 장소의 공적 공경과 메시지 선포는 교회가 인정한 후에만 가능하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0.05.06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33)생각과 마음으로 짓는 죄 (중) 엠마 자매는 성인들이나 순교자들처럼 극단적인 상황에서 하느님이나 이웃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구원과 생명을 먼저 생각했다는 점에서 수치심과 죄의식을 느꼈다. 보통의 사람들은 신경증적인 과도한 죄의식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엠마 자매에게는 심각한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엠마 자매에게 있어서는 숨은 것도 다 보시는 하느님 앞에서 생각으로 짓는 죄는 그 어떤 행동적인 죄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마음으로 짓는 죄는 드러나지 않기에 오히려 더 무섭고 중대한 죄의 원천이며 뿌리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엠마 자매는 드디어 본당 신부님을 찾아 고해성사했다. 신부님께서는 자신의 상상은 죄가 아니라는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성사를 받고 집에 돌아오는 마음은 한결 편하고 가벼웠다. 하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불안과 죄의식이 밀려왔다. 머리에 떠오르는 상상은 점점 이전보다 더 끔찍한 딜레마 상황들로 펼쳐졌으며, 자신은 죄인이라는 단죄의 목소리가 들려와 한순간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이런 생각이 죄가 아니라는 신부님의 말씀을 믿고 안심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성경이나 교리에서는 생각으로 죄를 짓지 말라고 했는데, 신부님은 생각이 죄가 아니라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더 이상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엠마 자매는 해외에서 영성이나 윤리 혹은 성경을 전공하셨다는 박사 신부님들이나 성령이 충만하여 치유나 분별의 은사를 받으셨다는 피정지도 신부님들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이 신부님들도 모두 자신의 마음 안에 떠오르는 생각들은 죄가 아니라고 하셨다. 그 이유를 물어보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답변뿐이었다. 자기 생각은 죄가 아니라 망상이라는 말은 더더구나 이해가 안 되었다.엠마 자매는 교회에서 권위를 가진 신부님들의 말씀을 무시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이해되지도 않는 말을 무조건 믿고 따를 수도 없었다. 자기 생각이 망상이라면 사람들이 생각으로 짓는 죄도 모두 망상이란 말인가? 생각으로 짓는 죄와 망상의 차이는 무엇인가?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엠마 자매는 결국 자신이 망상증 환자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기 위해 정신과 병원을 찾았다. 정신과 의사는 신부님들과는 달리 자신이 망상이 아닌 강박적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엠마 자매에게는 그 말이 그 말이었다. 망상이든 강박이든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부정적인 생각이 왜 죄가 아닌지를 설명해 주지 않는 해석들은 모두 공허했다. 게다가 생각으로 짓는 죄를 범하지 않는 방법에 대해서는 누구도 도움을 주지 못했다. 의사가 약을 먹으면 해결된다고 하였지만, 그 역시 말이 안 되었다. 왜냐하면, 약을 먹어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건 손과 발을 잘라 행동으로 죄를 짓지 않게 하는 것과 별반 다름이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약을 먹어 생각하고는 있지만,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면(즉 생각으로 죄를 짓고는 있지만, 그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다면-메타인지), 실제적인 죄를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니 그 역시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고 보였다. 엠마 자매는 결론적으로 자기 생각이 죄가 아니라는 명확한 믿음이 생기지 않는 상황에서 차라리 생각으로 죄를 짓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이 자신이 치유될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하면 생각으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지를 물으러 엠마 자매는 상담실을 찾았다. <계속><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평화신문2020.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