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관심에서 벗어나 착한 사마리아인의 모범 따라야[무너져가는 집을 복구하여라!] 21. 사회 공동체의 위기 ④ 잔인하고 위험한 무관심 서로에 대한 무관심으로 형제들에 대한 정의가 사라질 때, 이 세상은 폭력으로 가득 차 모든 생명이 위험해진다. 그림은 ‘부자와 라자로’ 에히터나흐 필사본. 출처=위키피디아 2013년 10월 1일, 필자는 한 인터넷 신문기사의 사연을 접하고 씁쓸하고 우울했던 마음을 한동안 떨칠 수 없었다. 그 기사는 부산 시내 한 주택가에서 돌아가신 지 5년가량 지난 한 할머니의 시신이 백골 상태로 발견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집주인은 몇 년간 할머니가 보이지 않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할머니 시신을 발견했는데, 그 당시 할머니 모습은 두꺼운 옷을 아홉 겹 껴입고 손에는 목장갑을 낀 채, 백골 상태로 반드시 누워있었다고 한다. 할머니가 살던 건물은 단층 짜리 다세대 주택으로 모두 세 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이웃들은 할머니가 사정이 생겨 집을 비웠다고 생각했을 뿐, 돌아가신 사실은 까맣게 몰랐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평생 독신으로 살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가운데 홀몸노인으로 외롭게 죽음을 맞이했다. 한 인간의 외로운 죽음도 안타까운 일인데, 더군다나 5년이 지나 백골 상태로 발견되었다고 생각하니, 그 죽음 앞에서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오늘날 이웃에 대한 무관심한 세태가 몹시 원망스러웠다. 우리 사회가 어쩌다가 이 지경에 까지 이르렀는가? 더불어 필자 역시 무관심한 세태에 편승하여 어려운 이웃들에게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살아온 모습이 ‘잔인한 무관심의 공범자’라고 여겨져 부끄러움이 밀려왔다.무관심은 아주 위험하고 잔인한 태도2020년 10월 3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 회칙을 반포하셨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교황은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에 따라 존엄성을 지니도록 창조되었을 뿐 아니라, 형제자매로 살아가도록 불림 받았음을 강조한다. 우리 시대는 과학기술과 인터넷의 발달로 예전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전 세계가 하나의 세계로 연결돼 서로 이웃하여 살아가고 있음을 언급한다. 하지만 우리들이 서로에게 소속감을 주는 형제적인 사랑을 실천하고 있지 못하며 개인적인 이익만 북돋을 뿐, 삶의 공동체 차원은 약화시켜, 점점 고독해지고 고립되어 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12항) 교황은 특히 잔인한 무관심(72항), 위험한 무관심(73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우리가 사는 사회공동체가 서로에 대한 무관심으로 말미암아 위태로운 상태임을 상기시켰다. 요컨대 ‘무관심’은 자신의 감정에 거리를 두는 중립적인 태도가 아니라 아주 위험하고 잔인한 태도임을 강조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권력, 축재, 분열의 삿된 이익에 동원되는 폭력”(72항)에 동조하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로 말미암아 “세계의 많은 곳을 황폐한 거리로 만들 뿐 아니라 기회의 박탈로 소외된 많은 이들을 이 황폐한 거리에 내모는 것”(71항)이기 때문이다. 또한 교황은 불편한 상황이 우리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눈길을 돌리고 옆을 스쳐 지나가는 상황들을 무시하는데 우리가 익숙해져 있을 뿐 아니라(64항), 우리 사회 역시 자기 자신에만 사로잡혀 고통받는 사람들을 불편하고 번거롭게 여기는 잔인한 사회, 타인의 고통에 등을 돌리면서 번영을 추구하려는 병든 사회라고 말한다.(65항) 사회적 책임 촉구한 프란치스코 교황우리가 공동체적인 차원에서 서로에게 소속감을 주지 못하고 이웃에게 무관심하고 냉담할 뿐 아니라 폭력까지 휘두르는 것은 ‘죄의 상처’로 인해 ‘카인의 죄’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는 연쇄적인 죄의 상처가 치유되는 순방향이 아닌, 오히려 악화되는 역방향, 즉 형제에 대한 무관심과 냉담함, 폭력으로 가속화되고 있다. 서로에 대한 무관심으로 형제들에 대한 정의가 사라질 때, 이 세상은 폭력으로 가득 차 모든 생명이 위험해진다고 성경은 말한다. “나는 모든 살덩어리들을 멸망시키기로 결정하였다. 그들로 말미암아 세상이 폭력으로 가득 찼다.”(창세 6,13) 오늘날 인류가 형제적인 책임이라는 요청을 수준 높게 이루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능하게 계속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창세기 하느님의 경고가 더 큰 재앙의 형태로 우리에게 현실화될 것이다. 돈과 잘못된 가치에 대한 우상숭배, 하느님이 창조하신 생명 질서에 대한 도전, 형제애에 대한 상실과 서로에 대한 무관심은 우리의 삶을 뒤틀리게 할 뿐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곧 이 세상을 얼마나 위태롭게 하고 있는지 그 위험을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프란치스코 교황은 「모든 형제들」 회칙에서 루카복음 10장에 등장하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우리의 무관심에 빛을 비추고 있다. 강도 만난 쓰러져 위험 중에 있는 사람을 보살피지 않고 냉혹하게 지나치는 ‘사제’와 ‘레위인’의 모습에서(루카 10,31-32) 오늘날 ‘무관심’의 역병에 걸린 우리들의 모습을 성찰하게 한다. 무관심은 위험에 처한 약자들의 ‘존엄성’을 보호하지 않고 방기하는 잔인한 태도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비유는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이 세상을 새롭게 건설하기 위해서는 어떤 근본적인 선택을 내려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바로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되는 것이다.(67항) 우리가 무관심과 냉담한 자세를 넘어서서 쓰러진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들을 일으키고 회복시켜 가는 ‘공동선’을 추구할 때, 무너져가는 공동체는 재건의 길로 접어들 수 있을 것이다. 이 회칙에서 ‘사회적 책임’을 촉구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 마디가 가슴 깊이 와 닿는다. “고통 앞에서 무관심한 삶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닙니다.”(68항) 김평만 신부(가톨릭중앙의료원 영성구현실장 겸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과 교수)cpbc2022.04.20

20년차 이정민 아나운서의 새 꿈, 어려운 아이들 지원 시스템 만들고파 [허영엽 신부가 만난 사람들] (3) 아나운서 이정민 (체칠리아)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늘 주님께 털어 놓는다는 이정민 아나운서. 좀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그는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와 기부자를 연결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얼마 전 내년에 서울에서 개최될 시그니스(SIGNIS) 세계총회를 준비하는 조직위원회의 출범 미사가 있었다. 시그니스는 TV, 라디오 등 미디어에서 활동하는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모임으로 100여 개국에서 참여하고 있다. 이날 미사는 코로나19 방역지침에 따라 소수 인원이 참여해 넓은 주교좌 명동대성당 코스트홀이 휑하고 을씨년스러웠다. 그런데 미사 후 발대식에서 MBC를 대표하는 이정민(체칠리아)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잡자 분위기가 한순간에 바뀌었다. 큰 키에 저음인 그녀의 목소리는 귀에 쏙쏙 들어오며 세련된 진행 능력과 순발력은 임명장 수여식 때 더욱 빛났다. 짧은 시간에 많은 이들을 호명할 때 긴 프로필을 몇 단어로 압축하면서 이름을 불러 분위기를 북돋웠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여전히 건강하고 반듯하며 우아하다. ▶어린 시절 집안 분위기는 어떠했나요?저희 집안은 조부모님 세대부터 천주교 신자셨고 어머니는 결혼 후 천주교인이 되셨어요. 저와 오빠는 유아세례를 받았고 초등학교 때 첫 영성체, 고등학교 때 견진성사를 받았어요. 모태 신앙인 거죠. 주일학교 참석은 학교에 가는 것처럼 당연했어요. 식사 전 기도와 잠자기 전 기도, 주일미사, 성경 읽기, 묵주기도, 화살기도 등이 일상이었어요. ▶일상이 거의 수도원 수준인데요?(웃음) 학창 시절엔 어떠셨나요?해운대여자고등학교 시절 때는 한 가지 더 특별한 루틴을 가졌어요. 매일 아침 학교에 가기 전 성당에 들러 짧게는 10분, 길게는 30분씩 기도를 드렸어요. 그래서 학교에 지각하지 않으려면 새벽 6시엔 집을 나서야 성당에 들를 수 있었어요. 3년 동안 학교 가는 날은 하루도 빠지지 않았어요. ▶그런 고등학생이 있다는 것이 대견하고 기특하고 놀라운데요. 사실 고등학교 학창 시절에 쉬운 일이 아닌데요?지금 생각하면 한겨울에는 너무 춥고 길이 무서워 종종걸음으로 땅만 보며 성당까지 걸어갔던 장면이 떠올라요. (웃음) 무슨 간절함이 나를 움직였을까 생각하면 고요한 아침, 성전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감실에서 나오는 불빛 옆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예수님의 온화함이 따뜻한 음성이 되어 들려오던 기억이 뚜렷해요. 거기서 받은 위로로 팍팍했던 학창 시절 하루하루를 버텼던 것 같아요. 어쨌든 제 인생에서 큰 힘이 되는 시간이었어요.▶어려서부터 아나운서가 꿈이셨나요?철부지 어린 마음에 좀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들려고 정신과 의사나 기자가 꿈이었어요. 정작 대학을 졸업하고 방송 기자가 됐어요. 기자로 2년을 근무하고 어머니의 권유로 아나운서를 지원하게 됐고, 높은 경쟁률을 뚫고 여성 1명을 뽑는 MBC 아나운서에 합격했어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셈이죠. 이제 아나운서 20년 차인데 되돌아보면 자랑스럽고 대견했던 기억보다는 부족하고 아쉬운 부분만 떠오르는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인가요?때마침 아이들에게 피자와 치킨을 사주었을 때 물어봤어요. 고맙게도 두 아들이 엄마는 사랑이 넘치고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라고 하네요. 저는 아이들과의 ‘관계’를 가장 우선시하고 중요하게 생각해요. 물론 훈육도 게을리하진 않아요. 아이들이 언제라도 달려와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요. 너무 큰 욕심인가요?(웃음) 그렇게 충분히 사랑받고 나면 홀로서기도 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요.▶일상 속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나요?철저히 홀로된 순간을 보내면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 같아요. 동굴에 들어가 겨울잠을 자는 동물처럼 혼자 산에 오르거나 혼자 차를 몰고 가까운 공원을 찾아요. 아니면 1~2시간만 나만의 시간을 달라고 가족에게 이야기하고 방 안에 들어가 나오지 않아요. 철저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회복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진로를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누구에게 조언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해요. 다만 20대인 후배들에게 젊음이 그 자체로 얼마나 찬란한지 알려주고 싶어요. 그 팔딱거리는 에너지를 외면하지 말고 온전히 자기편이 되어주길 바라요. 나이가 들어가면 뜨거운 가슴은 식어갈지 몰라도 은근하고 묵직한 에너지들이 삶을 비춰줄 테니 나이 들어가는 것도 걱정하지 말라고 알려주고도 싶어요. 결국, 그렇게 보면 매 순간 지금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앞날은 또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도 되는 게 인생이지 않을까요?▶이정민 체칠리아의 꿈은 무엇인가요?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힘든 처지에 놓인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하는 게 꿈이에요. 아직도 많은 사람이 적절한 기부처를 찾지 못하는 게 현실이에요. 돕고자 하는 마음들을 10세 이하 어린이들과 연결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요. 교육이든 보육이든 그밖에 그 무엇이든 말이죠. 앞으로 제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알아보는 중이에요. ▶가장 즐겨 하는 기도는 무엇인가요? 학창 시절 매일같이 성당을 가며 하느님과 저는 독특한 친분(?)이 쌓였다는 믿음이 있어요. 친해진 것 같아요. 저만의 생각인가요?(웃음) 그래서 혼자서 중얼중얼 주님과 대화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어요. 만약 옆에서 누가 내가 웅얼거리는 것을 보면 이상하게 볼 것 같아요. 그럴 때 주님이 그냥 옆에 계신 것 같거든요. 그래서 저는 매 순간의 희로애락을 다 주님께 중얼거리죠. 때론 막 화도 내고 원망(?)도 해요, 내가 지금 너무 아프다고 힘든데 어디 계시느냐고, 왜 이렇게 혼자 내버려 두시느냐고 따질 때도 많아요. 그런데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면서 결국 항상 깨달음을 주세요. 지나고 보면 한순간도 주님은 절 혼자 내버려 두신 적이 없단 걸 말이죠. 그래서 잘 알기에 이젠 조금씩 기다리는 법도 배워 가요.(웃음)▶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있나요?“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6) 주님께서 주신 나의 소명이 무엇일까? 늘 고민하게 되는 구절입니다.인터뷰 내내 그녀를 지탱하고 있는 크고 깊은 뿌리는 어릴 때부터 몸과 마음에 배어 있는 기도와 신심이란 생각이 들었다. 앳된 여고생 이정민 체칠리아가 추운 아침 새벽에 일어나 두꺼운 옷을 입고 집을 나서 부산의 매서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기도하기 위해 성당으로 총총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은 오래 생각날 것 같다.허영엽(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신부 cpbc2021.12.07
[조경자 수녀의 하느님의 자취 안에서] 30. 희망이 있는 이들의 삶의 밝기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우리나라의 밤은 정말 밝다. 숲을 이룬 거대 빌딩과 네온사인이 가득한 거리는 저 위의 밤하늘과 대조적으로 빛난다. 쉴 새 없이, 잠잘 새 없이 밝은 빛이 보기에 좋지만은 않게 여겨진다. 몇 년 전 수녀회의 일로 로마에 갈 일이 있었다. 비행기 푯값이 조금이라도 저렴한 것을 선택하니, 밤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비행기가 이륙했을 때, 정말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돌아올 때에도 밤 비행기를 타고 왔다. 비행기가 이륙했을 때, 이탈리아 상공의 밤을 보니 놀랍게도 드문드문 켜져 있는 불빛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열두 시간 만에 우리나라에 가까이 온 것을 한눈에 차릴 수 있었는데 바로 불빛 때문이었다. 나는 상공에서 본 우리나라를 보며 깜짝 놀랐었다. 어떻게 이렇게 빈틈없이 밝을 수 있을까?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우리나라인지 굳이 경계를 만들지 않더라도 아주 선명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가까워질수록 마치 화산 폭발로 용암이 흘러넘치는 것으로 보였다. 나의 옆자리들에서는 사람들이 출국할 때의 나처럼 “너무 아름답다!”라고 탄성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 장면과 쓰나미가 몰려오는 현장이나 허리케인 현장에서 웃는 얼굴로 인증사진을 찍고 있는 장면과 다르지 않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나는 금요일 저녁마다 남대문과 서울역 광장에서 노숙하고 계신 분들에게 국밥을 나눠드리는 수녀님을 찾아가 봉사를 하고 있다. 한 번은 버스 정류장을 착각해서 남대문에 이르기 전역에 위치한 한 백화점 앞에 내리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 많은 사람이 휴대폰을 들고 어딘가를 향해 있었다. 사람들이 향한 곳을 보니, 백화점 건물 외벽이 온통 불빛을 내며, 네온사인 쇼를 구성해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안 보고 지나칠 수 없도록 한껏 치장한 그 건물 앞에서 카메라를 들고 수많은 사람이 서 있는데, 만감이 교차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표현하는 우리 시대의 기후위기나 코로나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지 묻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일까? 우리는 이 시급한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다. 다만 극복하기 위한 선택을 하기보다 현세의 달콤함을 선택하기를 더 좋아하는 듯해 보인다. 우리가 품고 있는 희망이 당장 화려함과 달콤함에 있는 것이다. 나는 베드로 1서 3장 15절을 아주 자주 되뇌곤 한다.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 이 성경 구절에서 베드로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구성원들 모두가 무엇을 희망해야 할지를 알고 준비하도록 한다. ‘나는 무엇을 희망하고 있는가?’ 답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희망인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기꺼이 한다. ‘예수님이라면’ 무엇을 선택하셨을까를 깊이 헤아리며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편리하고 화려하고 번쩍이지만 죽음에 이르는 길을 걷게 될지, 불편하고 소박하고 좀 어둡지만, 생명에 이르는 길을 걷게 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제 신앙을 가진 우리에게 희망을 물을 때, 말로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들의 삶을 본다. 우리의 행동을 보고 희망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희망이 오로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에 있었기에 우리는 그분을 보면서 아버지의 사랑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지니신 희망이 무엇인지를 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개인과 가정, 교회와 기업, 정부와 국가들끼리도 지금 당장 안락함을 희망하기보다 저 높은 데서 멀리 바라보는 ‘희망’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하게 된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눈앞에서 겪게 되는 이 위기 속에서 희망을 품은 그리스도인들이 많다면 서울의 밤이 이렇게 밝아서는 안 될 것 같다.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cpbc2022.02.16
![[대전교구 사목교서] 2022년 교구 신부님들의 사목계획 수립을 위한 제언](//cpbc.co.kr/CMS/newspaper/2021/11/rc/813947_1.2_titleImage_1.JPG)
[대전교구 사목교서] 2022년 교구 신부님들의 사목계획 수립을 위한 제언대전교구장 서리 김종수 주교 교구장 서리로서 저는 2022년 사목교서를 발표할 입장이 아니기에, 신부님들께서 내년도 사목계획을 세우시는 데 중요하게 참고하셨으면 하는 몇 가지 내용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사제직무의 시작은 성사의 은총입니다. 하느님께서 펼치신 인간 구원 역사의 절정이 곧 예수님의 십자가 상의 죽으심과 부활이고, 교회는 주님의 명에 따라 이 구원의 은총을 성사를 통해 세상에 전한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성사 은총 가운데 매일 반복되는 가장 일상적인 성사는 고해성사와 성체성사입니다. 앞으로 본당 혹은 지구에서 상설 고해소 운영도 깊이 고려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성사 안에서 말씀을 선포하는 사제들이 먼저 성경 봉독과 필사 등을 생활화하면서 신자들이 그 길에 맛들이도록 사목적인 배려를 함께해 나갑시다. 2. 최근 교회에서 가장 중심적인 주제로 떠오른 것이 시노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노드는 어느 특정한 과정이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교회가 살아가는 방식, 교회 공동체의 운영방식이 돼야 한다는 인식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다행히 우리 교구는 3년 반 정도의 시노드 기간을 가지면서 그 안에서 사제와 신자들이 한 자리에서 교회 혹은 본당의 문제를 논의하고, 본당에서 신부님들이 ‘본당 한마당’이라는 이름으로 신자들의 솔직한 목소리를 듣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다양한 그룹의 설문조사를 통해 교회 발전을 위한 많은 의견을 종합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교구청 각 부서에서는 시노드의 최종 건의안을 검토하고 중장기적 계획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주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제 신자들이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선교사가 돼야 하는 시대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신부님들께서 고민해 주시고 지구 차원에서, 교구 차원에서 함께 논의하고 이뤄나가기를 바랍니다. 3. 사제 성소는 가톨릭교회 존립의 가장 기본적 요소입니다. 신부님들께서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고 있다고 믿습니다만, 조금 더 절박한 마음으로 어린이와 젊은이들에게 다가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신자들, 특히 사목협력자들과 함께 이 문제를 정기적으로 함께 고민하는 시간도 가져주시기를 바랍니다. 4. 온실가스 배출 제한을 중심으로 하는 생태계 회복 문제는 오래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중대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실생활에서 여러 가지 실천운동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현재 이뤄지는 실천 정도로는 생태계 위기가 회복되기 어렵고, 개인적 차원은 물론 사회적, 국제적으로 강도 높은 규제와 실천이 따라야 한다는 것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사목계획에 이런 문제에 관한 구체적 내용이 포함돼 신자들의 실천에 더 큰 힘을 불어넣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전 교구 차원에서 함께 논의하고 실천할 부분, 나아가 사회운동 차원으로 펼쳐나갈 필요성 등도 준비하겠습니다.cpbc2021.11.24
[독자마당] 공소를 순례하며김영기(엘리사벳, 원주교구 흥업본당) 원주교구에서는 2021년 올해,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로 원주교구 공소 순례와 천주교 요리문답 쓰기 및 암송 행사를 하고 있다. 병상의 노모를 모시고 있는 나는 코로나19로 인해 미사 참여가 망설여질 때가 많았다. 그런데 2019년, 2020년 원주교구 53개 본당 순례에 이어 공소 순례 행사를 마련해주셔서 순례와 함께 성체가 모셔져 있는 공소에서는 성체조배의 기쁨을 맛보고 있다.본당 순례를 완주하고 나니 원주교구 신자를 만나면 왠지 우리 본당 신자같이 반갑게 느껴진다. 공소 순례를 마치면 또 어떤 기쁨이 생길지 기대된다. 박해가 끝날 무렵 원주교구에는 100여 개가 넘는 공소가 있었지만, 농촌과 탄광촌의 인구감소와 교통수단의 변화로 37개의 공소만 남아있다. 순례하며 늘 감탄하는 것은 이런 골짜기에 마을이! 더구나 우리 형제자매가 이렇게 많이 모여 주 천주를 믿으며 살았다니!! 공소 건물은 왜 그렇게 정겹고 아름다운지!!! 공소 신자들이 부러울 지경이었고 내 믿음이 더욱 작게 느껴지곤 하였다.운영하는 카페가 쉬는 월요일, 요양보호사님께 어머니를 부탁하고 순례 다니는 시간은 순례의 기쁨도 크지만, 나에게 사색, 기도, 음악감상, 그리고 여행의 즐거움도 함께 준 행복하고 충만한 시간이었다.세례받은 지 30년이 넘었고 가톨릭평화신문, 신앙잡지, 영성가들의 책과 성경도 틈틈이 보고 있지만 천주교 요리문답을 쓰며 천주교에 대해 기본적인 것도 모르고 있는 것이 많아 부끄러웠다. 사실, 평신자인 우리는 믿음이 교리보다 앞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요리문답을 쓰면서 아는 만큼 보이고 믿음이 더 굳건해질 수가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코로나 시절에 우리 신앙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공소 순례와 요리문답을 쓰며 오히려 사도로부터, 선조로부터, 순교자로부터 이어져 온 내 신앙 천주교에 근본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 큰 은총을 받은 것 같아 감사함 뿐이다.더구나 2019년에 큰 수술을 하시고 8번이나 입·퇴원을 되풀이하셨던 노모께서 코로나가 시작된 작년 2월부터 지금까지 검사를 겸해 단 5일만 입원하셨으니 기적같이 느껴져 감사할 뿐이다. 어머니가 편찮으시기 전에 함께 전국 60~70곳 성지를 순례했었다. 아쉽지만 이제 남은 성지순례는 나 혼자 마쳐야 한다. 나의 애마 SOUL! 12년이 지나도 여전히 잘 달려주어 고맙다! 최양업 신부님께도 너 같은 애마가 있었더라면 아니 예수님 예루살렘 입성 시 타셨던 나귀 한 마리라도 있었더라면 천주교의 역사가 달라졌을까? 쓸데없는 생각도 많이 해봤다. 높고 깊은 주님의 뜻을 그 누가 알리요! 어쩌면 신자 100명도 안 되는 공소의 모임과 미사가 오래된 미래 교회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공소 순례를 마친다.※독자마당 원고를 기다립니다. 원고지 5매 분량입니다. pbc21@cpbc.co.kr로 보내 주시면 됩니다. 평화신문2021.11.24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가톨릭 서울’ 나왔다 ‘가톨릭 서울’ 앱 개발의 주역인 사목국장 조성풍 신부(왼쪽)와 김세진 신부가 인터뷰 후 밝게 웃고 있다. 오른쪽은 ‘가톨릭 서울’ 앱의 신앙 생활 달력 화면. 서울대교구 사목국(국장 조성풍 신부)은 본당 커뮤니티 활성과 개인의 신앙생활을 돕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앱) ‘가톨릭 서울’을 개발했다. ‘가톨릭 서울’을 통해 발급받은 바코드로 미사 참여 시 본인 인증이 가능하고 교구와 본당 소식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하루 10분 기도를 비롯한 다양한 기도 영상과 교구 추천 유튜브 영상을 제공하며, 사용자가 직접 기도 지향을 남기고 함께 기도 할 수 있다. 개발은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인 ‘민트팟’이 맡았고 기획ㆍ개발부터 출시까지는 약 1년 5개월이 소요됐다. 개인은 기도ㆍ전례ㆍ배움ㆍ기부 등의 항목을 통해 자신의 신앙생활을 점검할 수 있다. 본당 신부는 본당 공동체 개개인이 얼마나 신앙생활을 하는지 각종 데이터를 볼 수 있고, 교구 사목국은 개개인의 데이터는 볼 수 없지만 본당 전체의 흐름은 파악이 가능하다. 각 본당에서는 ‘가톨릭 서울’ 앱의 원활할 운영을 위해 관리자를 지정해야 한다. 앱을 이용하려면 구글 플레이나 애플 스토어에서 ‘가톨릭 서울’을 검색해 휴대폰에 내려받으면 된다. 회원 가입은 본당 단위로 가능하며 서울대교구에 교적을 둔 사람만 정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타 교구 신자들은 게스트(guest) 모드 이용이 가능하지만, 본당 활동 참여는 할 수 없다. 행정지원팀 김세진 신부는 “ ‘가톨릭 서울’ 앱은 본당 커뮤니티 활성화와 각 개인이 자기 주도로 신앙생활을 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개발됐다”며 “신자들이 ‘함께 기도해요’라는 기능을 통해 기도를 주고받고, 본당 사제들은 푸시 메시지를 통해 신자들에게 말씀, 기도 등 각종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개인 신앙 가이드를 통해 배움, 기도, 애덕 활동 등 정해놓은 일정에 따라 알림을 받고 실천하는 기능이 탑재돼 있다”며 “개인별 신앙 데이터가 쌓이면 스스로의 신앙생활을 확인하거나 자기 스스로를 격려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신부는 “앱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일부 어르신은 봉사자들이 초기에 잘 도와주면 사용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사목국장 조성풍 신부는 “교구는 앱을 통해 본당이 어떤 모습으로 돌아가는지 파악할 수 있고, 본당 신부는 신자들의 미사 참여와 성경 읽기 등 신앙생활 전반을 확인할 수 있어 사목 계획을 세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목자들이 얼마나 열정을 갖고 사목을 하느냐에 따라 현장의 분위기는 달라진다”며 “주임신부를 비롯해 본당에서 지도자 역할을 하는 평신도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재 교회는 시노드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사제, 수도자, 평신도 등 교회 구성원들이 충분히 의견을 개진하고 수렴하는 데 ‘가톨릭 서울’ 앱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cpbc2021.12.08

성경 속 비유,?우리네 삶의 이야기로 바꿔보면 쉬워요겨자씨에게 하늘 나라를 묻다 / 전원 신부 지음 / 생활성서안식년을 맞아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른 전원 신부와 겨자씨 삽화.“우리가 겪는 모든 일상의 이야기가 곧 ‘하느님의 이야기’에요. 내가 오늘 만나는 사람과 사건, 작은 일에도 하느님의 이야기가 담겨있어요.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이니까요. 그러니 매 순간이 소중해지죠.” 올해 환갑을 맞은 전원 신부가 책을 냈다. 책을 냈다기보다, 생활성서사가 월간 ‘생활성서’에 연재해온 전 신부의 글을 한데 묶어 책으로 엮어줬다. 사제생활 25주년 기념 책 선물을 받은 셈이다. 전 신부의 글을 좋아하는 팬이 많다. 2011년 「매일미사」 묵상 글을 1년간 연재했는데, 두 상자가 되는 양의 감사편지를 국내외에서 받았다. 단순하면서도 쉽고, 삶의 본질을 꿰뚫는 깊은 통찰을 품은 그의 문장들은 이번 책에서도 빛을 발한다. 「겨자씨에게 하늘 나라를 묻다」는 복음 속 비유를 삶으로 풀어낸 에세이집이다. 신자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하고 잘 알려진 ‘씨 뿌리는 사람’, ‘밀밭의 가라지’, ‘겨자씨’,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 등을 우리 시대의 이야기로 새롭게 풀어냈다. “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 생활의 모든 이야기를 비유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들판에 씨를 뿌리는 농부들, 고기를 잡고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와 강도를 만난 사람까지 모든 것이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한 비유의 소재였습니다.” 전 신부는 “예수님의 비유가 삶의 이야기로 이뤄진 것은 예수님께서 삶의 매 순간이 하늘 나라의 신비로 가득하다는 것을 전달해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시대에 독서 모임 혹은 단체에서 함께 읽거나 홀로 천천히 음미하며 읽으면 일상에서의 기쁨을 발견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전 신부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자폐아를 키우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풀어냈다. 자폐증을 앓는 아들을 둔 마리아 자매에게 이메일을 받았는데, 한 편의 동화가 적혀 있었다. 옛날 어떤 임금이 씨앗을 나눠 주면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워 오는 이에게 큰 상을 내리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임금이 준 씨앗은 꽃이 피지 않는 씨앗이었는데, 사람들은 꽃이 피는 씨앗으로 바꿔 임금 앞에 나타난다. 한 아이는 정직하게 빈 화분을 들고 가 임금에게 말한다. “바람과 햇빛이 잘 드는 곳에 심고 물과 거름도 주며 정성을 다했으나 아무런 꽃도 피지 않았습니다”. 자폐아를 키우는 어머니는 전 신부에게 이 동화는 내 이야기 같다며 슬퍼했다. “하느님께 꽃이 피지 않는 씨앗을 받은 것처럼 자폐 아들을 안고 수많은 날을 눈물을 쏟으며 정성을 다했는데 아무런 꽃도 피울 수 없었다”고. 전 신부는 그 어머니에게 이렇게 답했다. “마리아씨는 주님의 씨앗이 백 배로 열매를 맺은 좋은 땅입니다.” 책에는 복음 속 비유 풀이와 함께 저자의 신앙고백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25년 차 사제의 연륜과 지혜가 묻어난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해 간다는 것은 밀밭의 가라지를 뽑아내듯 그야말로 흠도 티도 없는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그림자를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화해하며 하느님 안에서 한 인간으로서의 전인성을 회복해 가는 것을 말합니다.”(45쪽, ‘밀밭의 가라지 비유’ 중에서)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레지스 칼리지에서 영성을 공부한 전 신부는 통합사목연구소 대표, 제기동본당 주임, 주교회의 사목연구소 부소장을 지내며 사목 연구와 다수의 영성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그는 “잘난 척하고 바쁘게 살아온 것 같다”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것 같지만 정서적 유대를 맺고 사는 사람들은 승합차 한 대에 탈 수 있는 인원에 불과하다”고 털어놨다. 전 신부는 “내 안에도 부족함과 한계, 못난 가라지가 있는데 하느님이 나를 도와주시고 기다려주신다”면서, “그런 나의 모습을 자책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하느님의 사랑을 보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라지가 있는 내 모습을 받아들여야 남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전 신부의 글에는 사람들의 삶과 시의 한 구절, 영화의 한 장면이 녹아있다. 그만큼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까닭이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문채현2020.06.24

바나나 껍질 잘라 만든 꽃 성모님께 봉헌[미카엘의 순례일기] (55)어린 소녀의 봉헌물 한 소녀가 바나나 껍질로 꽃을 만들어 성모상 앞에 봉헌하고 있다. 아주 오래전에 존경했던 신부님께서 아프리카로 떠나셨습니다. 휴대전화가 드물던 시절이라 그 이후로는 연락이 끊겼지요. 한참 후 가톨릭평화신문을 통해 신부님의 선종 소식을 접하게 되었을 때에도, 그저 오래전 한국에서 만났던 기억만으로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친구 신부님께서도 아프리카로 교포 사목을 위해 떠나셨습니다. 5년이 기한이었지만 그곳에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교포 사목의 소임이 끝난 후에는 아프리카 원주민 본당으로 옮기셨지요. 다행히도 옛날과 달리, 이제는 인터넷과 SNS 덕분에 신부님께서 신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함께 보고 들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곳은 전기도 없는 오지였기 때문에 도시에 일을 보러 나오실 때에나 가끔 소식을 올려주셨지만요. 드문드문 올라오는 사진 속 신부님의 얼굴은 검게 그을려 거칠기 그지없었지만, 한국에 계실 때보다 훨씬 행복한 얼굴이셨습니다. 한번은 순례 도중, 오랜만에 신부님이 올린 새 소식을 보게 되었습니다. 성모상에 무언가를 봉헌하는 아이의 사진이었는데 손에 든 것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신부님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알고 보니 그건 바나나 껍질을 가늘고 얇게 잘라 꽃다발처럼 만든 것이었습니다. 세례를 받은 어린 소녀는 성모님께 꽃을 봉헌하고 싶었지만, 꽃은 너무 귀하고 비쌌으므로 그 대신 바나나 껍질을 예쁘게 모아 성모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마치 자신이 가진 전부인 동전 한 닢을 봉헌했던 성경 속 과부의 이야기 같았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많은 이들이 자신을 걱정해주고 있지만 사실 이곳에서 정말로 행복하다고 진심 어린 어조로 말씀하셨습니다.이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어린아이들이 맨발로 걸어 다니다가 바닥에 널린 깨진 유리병과 깡통에 늘 발을 다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본래 그런 뾰족한 물건들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서구의 문명이 들어서며 전에 없던 종류의 쓰레기가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신발을 새로 살 돈이 있는 것은 아니라며 안타까워하시는 신부님의 목소리에 저도 덩달아 가슴이 아팠습니다.순례가 막바지에 이르러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을 때였습니다. 마침 순례자들에게 성전 뒤쪽에서 고개 숙여 기도하던 과부의 비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요. 저는 소녀가 봉헌한 바나나 껍질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맨발로 걷다가 발을 다치는 어린아이들에 관해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저녁 식사 시간에 순례단이 그 사진을 보고 싶다고 하시기에 신부님의 SNS 주소를 알려드렸습니다. 식사 시간 내내 온통 신부님과 그 소녀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습니다.다음 날 아침, 지도 신부님과 순례자 몇 분께서 아이들의 신발을 사주고 싶다며 성의를 모아 오셨습니다. 친구 신부님과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하셨지요. 그리고 어떤 부부는 단지 일회성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그곳에 정성을 봉헌하고 싶다고 물으셨습니다. 한 번 정도는 제가 신자들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겠지만, 지속적인 도움이라면 당연히 직접 연락을 주고받으셔야 하기에 저는 벅찬 마음으로 곧장 신부님의 연락처를 드렸습니다.나중에 알고 보니 형제님께서는 병에 걸려 점차 시력을 잃어가고 계셨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시력이 다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내와 함께 떠난 순례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떠난 순례에서 그 신부님과 소녀를 알게 된 것까지도 하느님의 뜻인 듯하다며 부부께서는 기뻐하셨습니다.하느님께서는 결코 우리에게 한계 이상의 무엇을 요구하지 않으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 그것이야말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이 아닌가요? 부자의 어마어마한 봉헌금보다 과부의 동전 한 닢을 기꺼워하셨듯이 그 소녀가 바친 바나나 껍질 꽃다발은 그 어떤 화려한 화환보다도 당신 마음에 쏙 드셨겠지요. 그 형제자매님의 진실된 기도와 마음 또한 마찬가지로 축복하셨을 것입니다. 준 것을 돌려받으려는 마음 없이 주는 것이야말로 주님의 길을 따르는 우리가 닮아야 할 모습일 테니까요. 신부님이, 작은 소녀가, 순례단의 부부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간단하지만 참으로 어려운 그 사실을 자꾸만 잊고 사는 저를 반성하며, 오늘은 그 모든 이들의 행복을 온 마음으로 기도하고 싶습니다.“주고 가져가지 않는 것, 그것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도로시 데이, 1897~1980)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평화신문2022.02.15

허약했던 차동엽 신학생, 유학 중 만나 건강 이야기 하며 친하게 [허영엽 신부가 만난 사람들] (26) 고 차동엽 신부 (상) 유학생 시절 차동엽 신부. 당시 차 신부는 건강이 좋지 않아 유학 시절에도 기숙사 방 한쪽에 전기밥솥을 두고 현미밥을 챙겨 먹어야 했다. 차동엽 신부를 유명 포털사이트에서 보통 이렇게 소개한다. “차동엽(車東燁, 1958년 5월 31일~2019년 11월 12일)은 대한민국의 가톨릭 사제이며, 세례명은 노르베르토. 그는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 77학번으로, 1981년에 학사 졸업하였고 해군 학사장교 72기 출신이며,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으로 봉직하였다. 2019년 11월 12일 새벽에 간암으로 선종했다. 향년 61세.”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에서 사목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그가 집필한 「무지개 원리」는 베스트셀러로 수백만 권이 팔렸다. 대표적인 가톨릭 스타강사였던 차동엽 신부는 교계 방송은 물론 공중파 TV에도 나가서 재미있는 강의를 시청자들에게 선사했다. 지금은 강의가 TV서도 많이 나오지만, 당시에는 흔한 일은 아니었다. 그는 로만 칼라를 하고 대중들에게 대놓고 교리나 성경을 강의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이용했고 강의 속에는 항상 신앙과 희망, 사랑이 녹아있었다. 본 편은 그리운 친구 차동엽 신부와 실제 했던 대화로 구성해보았다.허영엽 신부(이하 허 신부) : 우리가 만난 것이 빈에서였지요? 차동엽 신부(이하 차 신부) : 네. 1988년 오스트리아 빈 신학교에서였지요. 그땐 20대 후반의 꽃다운 나이였죠. (웃음) 나는 서울대 대학원을 다니다 늦은 나이에 신학교에 들어와 유럽으로 갓 유학 온 신학생이었고 허 신부님은 이미 4년 차 신부였죠. 허 신부 : 신부와 신학생이었지만 첫 만남서부터 촉(?)이 왔어요.(웃음) 그래서 친구처럼 지내게 되었죠. 그러면서도 우리는 서로에게 존댓말을 했어요. 서로 진짜 존중한다는 의미로 존댓말을 했던 것 같아요. 그때 사실 나는 다른 동창을 만나러 갔다가 그 친구가 없어 신부님을 만나게 됐어요. 그것도 참 우연은 아닌 것 같아요. 차 신부 : 신부님이 좋아하는 노래, ‘만남’에 그런 가사 나오잖아요? 둘 다 술도 잘 못 마시고 수다 떨기(?)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우리가 특별히 공동 주제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건강 때문이었죠. 전 아주 어릴 적부터 비탈길에서 연탄 같은 등짐을 많이 졌었고, 먹는 것도 부실해 몸이 많이 안 좋았던 것 같아요. 허 신부 : 전 모든 형제자매가 이상하리만치(?) 튼튼한데 저만 어릴 때부터 병치레를 많이 했어요. 사실 신학교에 들어와서도 중간에 건강 때문에 그만둘 뻔한 적도 있었고요. 고등학교 때 앓았던 폐결핵이 재발해 대신학교 2학년 때 신학교에서 나오게 되었어요. 전염병에 걸리면 공동생활을 하는 기숙사에서 당연히 나오는 거죠. 그때 전 성소를 접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 생각했지요. 그런데 내가 나가는 날 전날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어 계엄령이 발동되어서 모든 학생이 다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신기해요.차 신부 : 맞아요. 저도 우여곡절 끝에 인천교구 신학생으로 입학을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서울대교구 신학생이 되었으면 많이 달라졌을 거로 생각해요. 허 신부 : 그런데 신부님은 해군 사관 후보생 훈련 기간 중 작은 체구임에도 어떤 훈련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수한 훈련성적으로 졸업했다고 들었어요. 훈련 동료들이 ‘차돌이’라고 불렀다면서요?(웃음)차 신부 : 그땐 한창 젊은 나이니까 깡으로 버텼어요. 작다고 누구한테 지고 싶지 않더라고요. 허 신부 : 차 신부님을 생각하면 빈에 있는 북한 식당에 간 것이 늘 기억나요. 오스트리아는 중립국이라 북한과 수교가 있었고 북한 식당도 시내에 있었지요. 사실 당시에는 외국에 나가려면 꼭 장충단 공원 위쪽에 있는 반공센터에서 관련 교육을 이수했잖아요? 그 강의 때 북한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은 절대 가지 말라는 분위기로 이야기하죠. 자칫해서 안기부(지금 국정원)에서 알게 되면 처벌받는다고 엄포도 줬고요.차 신부 : 그런데 제가 아마 다른 한국 학생들에게도 북한 식당에 한번 가보자고 했더니 허 신부님도 구미가 당기는 듯 “한번 가보죠, 뭐” 하셨어요.허 신부 : 우리가 북한 식당에 들어갔을 때 다른 사람들은 거의 없었죠. 상당히 깨끗하고 큰 식당인데 선입견 때문인지 으스스했지요.(웃음) 젊은 남자 종업원이 와서 독일어로 “뭐 주문하십니까?” 했을 때 차 신부님이 호기롭게 “같은 한국 사람인데 한국말로 하시지요?” 했어요. 차 신부 : 전 그건 기억나지 않고 그 종업원이 아주 유창하게 독일어를 했던 것이 기억나요. 허 신부 : 그럼 그때 사실 독일어를 잘 못 알아들어서 그랬던 건가요? 우리가 음식을 시키고 그 종업원이 커튼 친 주방 쪽으로 가서는 모습을 한참 안 보였어요. 우리는 유난히 조용한 주위를 돌아보면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지요. 그러자 한 신학생이 그랬던 것 같아요. “우리 이러다 납치되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차 신부님의 말에 모두 웃음이 터졌지요. 차 신부 : “이 사람들이 바봅니까? 우릴 데려다 어디다 써요. 정보도 없고 차비랑 밥값만 들어가지요!”(웃음)허 신부 : 그날 처음 북한 식당에 가서 식사했을 때 아주 맛있었고 나중에는 그 종업원도 우리에게 경계를 풀고 잘해주셨던 것 같아요. 차 신부 : 저는 사실 빈에 있으면서 그다음에도 그곳에 여러 번 갔었어요.(웃음)허 신부 : 내가 차 신부님 신학교 숙소에 갔을 때 눈에 먼저 보인 것이 구석에 두었던 밥솥이었어요. “이 밥솥에 직접 식사도 지으세요?” 하니까 현미밥을 하루에 한 번은 지어먹는다고 하셨지요. 그리고 책꽂이에도 보니까 조금 과장해서 독일어 서적보다 한국에서 가져온 건강에 관한 서적이 많았어요. 그래서 제가 이것저것 물어보면 전문가 이상으로 설명을 잘해주시고, 건강을 유지하는 법을 열강(?)하곤 했어요.차 신부 : 건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면 다른 사람들 반응은 시큰둥하죠.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사람들은 다 건강하고 아픈 적이 드물었으니까요. 아파본 사람이 다른 사람의 아픔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겠죠.허 신부 : 사실 그때 신부님 방 구석에 작은 밥솥을 보고 눈물이 나오는 것을 많이 참고 일부러 웃기는 이야기를 많이 했죠.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고 하잖아요. 신부님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다 알고 느낄 수 있었어요. 차 신부 : 신부님에게 특히 고마운 건 빈에 오면 우리를 한국 식당에 데려가 밥을 사준 거예요. 제가 나중에도 사람들에게 그랬죠. 살면서 제일 고마운 건 배고플 때 밥을 사주는 사람이라고요. 저희가 굶지는 않았지만 사실 비싼 한국 식당에 가서 한식을 마음대로 먹을 순 없었을 때니까요. 그리고 신부님이 빈을 떠날 때마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빈 역에 배웅했는데 항상 흰 봉투를 내 주머니에 찔러주었어요. 처음에는 ‘같은 유학생끼리 힘들 텐데’ 싶어서 안 받으려 했는데 “나중에 다른 후배에게 갚아요”하는 신부님의 이야기를 듣고 그다음부터는 당당하게(?) 받았어요.(웃음)허 신부 : 어릴 때부터 간이 안 좋았다는 신부님의 외국 유학 생활은 다른 분들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을 거로 생각했어요, 신부님 말대로 매일 기도하지 않으면 못 버틴다고 하셨죠. 늘 한결같이 옆집 아저씨 같은 느릿느릿한 말투나 몸짓과 함께 특별한 유머 감각이 있어서 어려움을 잘 견디셨을 거예요. 신부님 말대로 한국에서 매일 밤새워 기도해주는 어머니의 기도 원조가 가장 큰 힘이라 하셨죠. <계속>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cpbc2022.06.14
![[생활속의 복음]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 ‘하느님의 어머님’ 성모님께 대한 공경](//cpbc.co.kr/CMS/newspaper/2021/12/rc/816068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 ‘하느님의 어머님’ 성모님께 대한 공경 함승수 신부 천주교 교리 중에 가장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게 바로 오늘 기념하는 ‘천주의 성모 마리아’ 호칭에 관한 것입니다. 인간일 뿐인 마리아를 두고 감히 전능하신 ‘하느님의 어머니’라니…. 이런 ‘신성모독’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지요. ‘천주교는 마리아를 숭배한다’는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늘을 보지 못하고 하늘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기에 생기는 오해입니다. ‘천주의 성모’라는 호칭은 마리아가 아니라 그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은 육으로는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신 참사람이시면서 동시에 영으로는 하느님의 섭리와 능력으로 태어나신 참하느님이시니, 마리아의 품위는 단지 ‘인간 예수’의 어머니로 그치지 않고 ‘하느님의 어머니’로까지 들어 높여지는 것이지요. 이는 성경에도 기록된 진리입니다. 친척 마리아의 방문을 받은 엘리사벳이 성령으로 가득 차 이렇게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루카 1,43) 우리는 손가락이 가리키는 하늘을 바라봐야 합니다. 교회가 마리아의 어떤 모습 때문에 그분을 ‘하느님의 어머니’로 부르며 공경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리아를 ‘성모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분이 거룩하신 주님을 육으로 낳으셨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예수님도 분명히 언급하셨지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 3,35) 이 말씀은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관계를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어머니’라고 부르며 공경하신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며 그것을 삶 속에서 충실히 실천하신 마리아의 신앙과 삶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마리아께서는 육으로, 믿음으로, 행동으로 온전히 주님의 어머니가 되셨음을 인정하신 것이지요.복음에서는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실 수 있었던 근본 이유를 마음가짐에서 찾습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성모님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에 좋고 싫음을 따지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의 종’으로써, 그분의 구원역사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겪든 오직 주님만 바라보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자기 삶에 일으키시는 일들을 마음에 간직하고 그것이 당신 삶에 어떤 의미가 될지를 곰곰이 되새기셨습니다. 모진 비바람에도 흔들리거나 절망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끝까지 따를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의 삶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셨지요. 이렇듯 성모님은 ‘하느님의 말씀’을 당신 자궁으로, 마음으로, 삶으로 온전히 잉태하여 낳으셨기에,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성모님을 본받으면 좋겠습니다.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하느님만 바라보고, 행동으로 그분의 사랑과 자비를 온전히 실천하며, 삶으로 하느님을 이 세상에 현존케 하는 살아있는 ‘성전’이 되면 좋겠습니다. 생활 성가 ‘주만 바라볼지라’의 가사를 묵상하며 그 다짐을 마음에 새깁시다.하느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 하느님의 평안을 바라보는 자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하느님께 찬양과 경배하는 자 / 하느님의 선하심을 닮아가는 자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 너를 자녀 삼으셨네하느님 사랑의 눈으로 /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하느님 인자한 귀로써 /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 주만 바라볼지라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평화신문2021.12.28
성당이 낯선 아이 위한 책 예수님과 친해지는 놀이책 3종 가톨릭출판사가톨릭출판사가 영유아 아이들의 눈높이에 초점을 맞춘 놀이책 3종 「미사는 즐거워요」,「성경은 재밌어요」,「부활은 기뻐요」를 출간했다.「미사는 즐거워요」(자드 말로센느 지음ㆍ마리 파뤼 그림)는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어려서부터 예수님과 성당, 미사를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꾸몄다. 성당 가는 길 미로찾기, 스티커로 성당 완성하기 등 다양한 놀이로 구성했다. 「성경은 재밌어요」(자드 말로센느 지음ㆍ샤를롯 뢰드러 그림)는 예수님, 아담과 하와, 노아, 모세, 다윗, 아브라함 등 성경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색칠공부와 스티커 붙이기 놀이를 할 수 있게 꾸몄다. 「부활은 기뻐요」(MAME출판사 편집부 지음ㆍ레아 파브르 그림)는 미로찾기, 다른 그림 찾기, 점 연결하기 등을 통해 부활 이야기를 담았다. 코로나19로 부모와 함께 성당에 나가지 못하는 영유아 아이들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이지혜 기자 문채현2021.01.20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4주일, 해외 원조 주일- ‘뼈 때리는’ 경고](//cpbc.co.kr/CMS/newspaper/2022/01/rc/817736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4주일, 해외 원조 주일- ‘뼈 때리는’ 경고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은 맡길 예(預) 자에 말씀 언(言) 자를 써서 ‘하느님께서 맡기신 말씀을 대신 전함’이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또한 ‘예언’이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를 위하여’라는 뜻의 전치사에 ‘말하다’라는 뜻의 동사가 더해진 합성어인데,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누구를 위하여 말하다’라는 뜻이 됩니다. 즉 그 말을 듣는 사람을 진정으로 위하는 마음으로, 때로는 듣기 불편한 말일지라도 전해야만 하는 겁니다. 그렇기에 이스라엘에서 ‘예언자’로 사는 것은 참으로 힘든 소명이었습니다. 특히 모두가 슬프고 어려운 일을 겪느라 힘든 시기에 잘못을 바로잡지 않으면 더 힘들고 괴로운 일이 닥칠 거라는 메시지를 전해야 할 때엔 동족들로부터 미움과 박해를 받거나 때로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 오늘의 제1독서에 나오는 예레미야 예언자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그는 암울한 시기에 하느님의 뜻을 전하다 이방인들에게는 조롱을, 동족들에게는 박해를 받습니다. 생의 마지막에는 이집트로 끌려가던 길에 동료들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전해집니다. 슬프고 가혹한 소명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는 과정에서 겪으셔야 했던 어려움과 고통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과 뜻을 분명하게 전하셨지만, 예수님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고향 마을 사람들은 그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목수 요셉의 아들’이라는 그분의 출신과 가정환경을 토대로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 결론짓고는,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무시하고 거부한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이 하는 말, 배움의 끈이 짧은 이가 하는 말, 허물을 가진 이가 하는 말에는 귀를 막아버립니다. 자기가 그 사람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아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왜곡과 편견일 뿐입니다.주님께 대한 믿음이 진실하지 못할 때, 주님에 대해 아는 극히 일부분의 사실로 그분에 대해 성급하게 판단할 때, 우리는 믿음의 내용과 목표보다는 당장 눈에 보이는 ‘잿밥’에 더 관심을 갖게 됩니다. 나자렛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께 눈에 보이는 놀라운 기적을 요구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런 요구를 직접 발설하진 않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이미 훤히 꿰뚫어보고 계셨습니다. ‘네가 카파르나움이라는 고을에서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고 마귀를 쫓아내는 놀라운 기적들을 많이 일으켰다던데, 우리에게도 그런 기적이나 한번 보여줘 보아라. 그러면 네가 별 볼 일 없는 목수의 아들이 아니라 진짜 예언자라는 것을 믿어줄 테니….’ 정해진 요구사항을 충족시켜주면 믿어주겠다는 마음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그들은 ‘믿음’이라는 허울 좋은 핑계로 자신들의 욕심과 호기심을 채우려 할 뿐입니다. 예수님이 아무리 놀라운 기적들을 보여주신다 해도 그들은 믿을 수 없는 이유를 먼저 찾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잘 아셨기에 그들 앞에서 아무 기적도 일으키지 않으십니다. 그 대신 구약의 아픈 역사를 인용하여 그들의 ‘뼈를 때리는’ 말씀을 하십니다.예수님이 인용하신 두 가지 이야기의 공통점은 이스라엘 민족들이 고통을 겪고 있던 그 시기에 하느님께서 ‘이방인’을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말씀을 하신 것은 그들에게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하시려는 게 아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선포하신 구원의 메시지가 이방인들을 통해 실현된 것은 그들이 그 말씀을 제대로 듣고 따랐기 때문임을 알려주시기 위함이었지요. 자신들은 하느님께 선택받은 특별한 민족이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그분의 뜻을 알고도 그 뜻에 맞게 자기 삶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구원은 언제나 ‘남의 일’이 될 뿐이라고 유다인들에게, 오늘 복음을 듣는 우리에게 엄중히 경고하시는 것입니다.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함승수 신부의 카카오스토리(https://story.kakao.com/_0TX0X5)에 가시면 매일 ‘생활 속 복음’을 볼 수 있습니다. cpbc2022.01.25
![[서울대교구 사목교서]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마르 16,15)](//cpbc.co.kr/CMS/newspaper/2021/11/rc/813929_1.4_titleImage_1.JPG)
[서울대교구 사목교서]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마르 16,15)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그리스도인은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여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2티모 4,2 참조) 지금은 코로나19 상황이 길어지면서 신앙생활이 느슨해진 이들을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해야 할 때입니다. 이웃에게 힘차게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먼저 복음화되어야 합니다. 올 한 해 동안 다시 한 번 신앙의 기초를 튼튼히 다지도록 노력합시다. (1) ‘복음화되어, 복음화하는 공동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는 말씀을 남기고 승천하셨습니다. 복음은 하느님 나라에 대한 ‘기쁜 소식’이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체험해야 합니다. 이 기쁨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성경과 기도, 교회의 가르침과 미사, 사랑 실천을 통해 주님을 자주 만나야 합니다. 교회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가능한 한 자주 미사에 참례하며, 사랑을 실천하려고 노력합시다. 이렇게 신앙의 기초를 다지는 노력을 통해 복음의 기쁨과 풍요로움을 체험하게 되면, 복음화된 그리스도인으로서 확신 있게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2) ‘공동의 집인 지구를 소중히 여기는 공동체’ 교회는 세상을 넘어선 하느님의 나라를 바라보면서 살아가지만, 다른 한편 세상 안에서 세상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교회는 ‘공동의 집인 지구를 소중히 여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교황님의 뜻에 일치하여 “공동의 집”인 지구에 평화를 이루는 공동체, 평화를 나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을 통해 생태적 회개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주기를 부탁드립니다. 생태적 회개는 오늘날 교회가 수행해야 하는 복음화 사명과 사목 활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3) ‘함께 걸어가는 공동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가운데 서로 형제자매가 되는 공동체를 원하셨습니다(마르 3,35 참조). 교회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면서 완성된 하느님의 나라를 향해 ‘함께 걸어가는 공동체’입니다. 교회의 행동과 삶의 기준인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식별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함께 마음을 열고 논의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교황님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하여: 친교, 참여, 사명’을 주제로 이루어지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여정에 온 교회가 동참해달라고 당부하십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지난 한 해 동안 200년 전 이 땅에 탄생하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두 사제의 하느님과 교회에 대한 사랑, 복음화를 위한 사목적 열정을 본받고자 노력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새롭게 일어서기 위해서 올 한 해 다시금 신앙의 기초를 다집시다. 복음화되어, 자신과 교회 그리고 이웃과 세상을 복음화하는 여정을 살아갑시다. 이러한 ‘복음화되어, 복음화하는 교회 공동체’로서의 노력은 2031년에 맞이하게 될 ‘교구 설정 200주년’의 마중물이 될 것입니다. cpbc2021.11.24
![[가톨릭영상교리] (4) 십자 성호](//cpbc.co.kr/CMS/newspaper/2022/05/rc/823358_1.0_titleImage_1.jpg)
[가톨릭영상교리] (4) 십자 성호하느님의 자녀임을 드러내는 거룩한 표지 ※QR코드를 찍으면 ‘가톨릭 영상 교리’를 볼 수 있습니다. 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ㆍ가톨릭평화방송 제작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성호경은 가장 짧지만 가장 중요한 기도입니다. 우리는 모든 크고 작은 일상사에서 기도의 시작과 끝에 성호경을 바칩니다. 눈 떠서 잘 때까지 성호경과 함께하는 것이지요. 성호경은 ‘십자 성호’를 긋는 기도로 ‘성호’는 ‘거룩한 표지’라는 뜻입니다. 성호경은 먼저 왼손을 가슴에 댄 채 오른 손가락을 편 상태로 내 몸에 십자 모양의 성호를 그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하며 바치는 기도입니다. 이마에서 ‘성부와’, 가슴에서 ‘성자와’, 왼편 어깨에서 “성”, 오른편 어깨에서 “령의” 하며 십자를 긋습니다. 그리고 두 손을 모으며 ‘이름으로. 아멘’ 이라고 합니다.십자 성호의 구분십자 성호는 큰 십자 성호와 작은 십자 성호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요, 방금 설명해 드린 십자 성호는 큰 십자 성호입니다. 작은 십자 성호는 이마와 입술과 가슴에 작은 십자 표시를 하는 것입니다. 미사에서는 이 두 종류의 십자 성호를 다 사용하는데요, 미사의 시작과 끝에, 그리고 기도할 때는 ‘큰 십자 성호’를 긋고, 미사 중 복음을 듣기 전에는 ‘작은 십자 성호’를 긋습니다. 주님의 말씀인 복음을 머리와 입과 가슴에 새겨 잘 따르고 실행하겠다는 다짐으로 작은 십자 성호를 세 번 긋는 것입니다.성호경의 세 가지 뜻성호경은 크게 세 가지의 뜻을 지닙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십자가를 표시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류 구원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는 삼위일체 신앙에 대한 고백입니다. 한 본체로서 세 위격이신 하느님을 그대로 믿겠다는 고백이며 모든 일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호경은 악마로부터 구해지는 것이면서 구원이자 하느님 자비의 표지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성호경은 하느님께서 내려주시는 복을 기원하는 의미입니다. 성호경은 짧지만 특별한 은혜를 받게 해주는 준성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호를 긋는 것은 나 스스로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호경은 그리스도의 구원과 축복, 삼위일체 신앙의 고백이며, 우리가 가톨릭 신자임을 드러내는 신앙인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성호경은 가장 짧지만 가장 중요한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성호경의 유래그런데 성호는 언제부터 긋기 시작했을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후 제자들은 십자가의 형상을 죽음의 형틀이 아닌 구원의 상징으로 새롭게 받아들였습니다. 이 십자가가 그리스도인의 표지로 예식에 들어온 것은 2세기경입니다. 세례 때 예비신자 이마에 주례자가 십자 표시를 했다고 전해집니다. 로마제국 박해시기 때는 남모르게 이마나 가슴에 간단한 십자 표시를 하는 습관이 신자들 사이에서 퍼져 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그리스도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십자가는 그리스도교의 대표적인 상징이 됐고, 전례에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4~5세기부터는 사제가 오른손으로 사람이나 사물에 십자를 그어 축복하는 관습이 생겼고, 두 어깨를 연결해 크게 긋는 큰 십자 성호는 11세기부터, 이마와 입술과 가슴에 하는 작은 십자 성호는 12세기부터 전례에 사용되었습니다.우리의 신앙 선조들도 박해 시기에 십자 성호를 암호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거지 행색으로 위장해 다니는 가운데 오직 성호를 긋는 표시로 흩어진 신자들을 찾아 모았고, 깊은 산골에서 옹기장이로 살아가던 신자들은 옹기 바닥이나 뚜껑에 십자 문양을 새겨 건네주며 서로를 알아보고 신앙생활을 이어갔습니다. 또 박해 시기에 배를 타고 조선에 들어왔던 제4대 조선대목구장 베르뇌 시메온(1814~1866, 장경일) 주교는 십자 성호와 관련해 이런 기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작은 배 한 척에 타고 있던 선원들이 손을 하늘로 올리고 십자 성호를 계속 그으며 우리가 보내는 신호에 응답했습니다. 과연 그들은 신자였습니다.” 옛 신앙 선조들은 십자 성호 하나만 제대로 그어도 천국에 간다며 정성을 다해 성호경을 바치셨습니다.날마다 성호를 긋는 것은 내 몸 위에 십자가를 새기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희생을, 예수님의 사랑을 날마다 기억하는 것입니다. 또한, 성호를 그으며 나는 언제나 하느님의 은총 속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매일, 매 순간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내 가슴으로 예수님을 안는 것입니다.마티아는 그리스말 ‘마티티아’의 약칭으로 우리말로 ‘하느님의 선물’이란 뜻입니다. [금주의 성인] 성 마티아 (5월 14일)신약성경에서 마티아는 사도행전에서 딱 두 번 나옵니다. 마티아를 사도로 선출하는 대목에서입니다.(사도 1,13.26)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열한 사도는 다른 제자들과 성모님과 다른 여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마티아가 사도로 뽑힌 것은 이때쯤이었습니다. 사도행전이 전하는 당시 모습(사도 1,15-26)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하루는 백스무 명가량 되는 형제들이 모여 있을 때 베드로가 일어나 유다 이스카리옷의 직책을 대신할 사도를 뽑는 문제와 관련해서 발언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동안 줄곧 우리와 동행한 이들 가운데에서, 곧 요한이 세례를 주던 때부터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우리를 떠나 승천하신 날까지 그렇게 한 이들 가운데에서”(사도 1, 21-22) 사도를 뽑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제안에 따라 바르사빠스라고도 하고 유스투스라는 별명도 지닌 요셉과 마티아 두 사람을 가려서 앞에 세우고 나서 기도한 후 제비를 뽑아 마티아를 사도로 선출하게 됩니다.전승에 따르면 마티아는 사도단에 합류한 후 처음에는 유다 지방에서, 나중에는 콜키스(오늘날 흑해 동부 그루지아 일대)에서 복음을 전하다 순교했다고 합니다.마티아 사도는 세바스토폴리스(오늘날 흑해 동부 연안 도시 수후미)에서 죽어 그곳에 묻혔다가 로마 제국에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성녀 헬레나(248?~330)에 의해 로마로 옮겨졌습니다. 그후 다시 독일 남서부 국경 도시 트리어로 이장됐습니다.그러나 다른 설도 있습니다. 마티아 사도는 유다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예루살렘에서 유다인들에 의해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유다인들은 마티아 사도를 돌로 쳐 죽인 후에 다시 도끼로 목을 쳤다고 합니다. 유해는 나중에 로마로 옮겨졌다가 다시 트리어로 옮겨졌다고 하지요.트리어로 옮겨진 마티아 사도의 유해는 베네딕토 수도원 성 마티아 성당에 안치됐다고 합니다. 트리어는 마티아 사도를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있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는 목수와 재단사의 수호성인이기도 합니다. 평화신문2022.05.03
![[신앙단상] 쌓이는 기도(장명숙, 안젤라메리치, 유튜브 크리에이터 밀라논나)](//cpbc.co.kr/CMS/newspaper/2021/11/rc/812508_1.0_titleImage_1.jpg)
[신앙단상] 쌓이는 기도(장명숙, 안젤라메리치, 유튜브 크리에이터 밀라논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누군가를 부러워한다는 것이 부질없음을 깨닫지만, 여전히 부러운 느낌이 드는 대상이 있으니 “모태 신앙이에요”라고 말씀하시는 신자분들입니다. 대한민국 보편적인 집안의 장녀로 태어난 저는 어려선 할머니를 따라 절에도 가봤고 할머니 돌아가신 후론 어머님 따라 점집에도 가본 경험이 있는 평범한 젊은 애였습니다. 그런 제게 가톨릭은 어쩌다 명동대성당 앞을 지날 때 새어 나오던 가슴 가득 스며드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 라디오의 좋아하는 클래식 프로에서 즐겨 듣던 아베 마리아, 헨델의 메시아 등 모두 긍정적인 느낌이었습니다. 결혼 후 2년 만에 가톨릭으로 세례를 받자는 남편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었음도 모두 이 긍정의 힘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결에 세례는 받았어도 기도도 미사 참여도 어느 것 하나 열심인 게 없는, 한마디로 무지몽매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살아오는 여정에서 많은 시련과 고비를 겪으며 필사적으로 기도에, 신앙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시련들이 닥쳐왔습니다. 특히 큰아들의 생사를 넘나드는 수술 날, 수술 도중 수술실에서 나와 들려주시던 의사 선생님의 청천벽력 같은 “곧 떠날 것 같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겠습니다”라는 문장보다 무섭고, 무거운 문장을 제 일생에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때 울부짖었던 “처음처럼 제게 도로 주시면… 주님의 뜻을 따라 살겠습니다”라는 기도는 하늘에 닿아 처음처럼 도로 주셨습니다. 말짱하게….그 이후 묵주 기도, 매일 미사, 성경 읽기 등 주님의 뜻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야말로 저 급할 때만 하느님께 매달리고 귀찮게 구는 엉터리 신자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밀라노에서의 객지 생활이 외로워 신앙의 벗이 될 친구를 만나게 해주십사 화살기도를 올렸습니다. 이탈리아가 가톨릭 국가이니 사회 전반의 모든 문화가 가톨릭에 기반을 두기는 하지만, 최후의 만찬 그림이 있는 성당에서 주님의 배려로 만난 친구 집안은 유독 신앙심이 깊은, 생활 속에 신앙을 실천하는 집안이었습니다. 떠돌이 난민들을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신앙인의 품격, 어려운 처지에 처한 이들을 위한 따듯한 배려 등 …. 어머님이 쓰시던 묵주로 같이 묵주 기도를 올리며 친구가 제게 들려주었던 얘기가 있습니다. “어머니가 이 묵주알을 굴리며 우리를 위해 기도하셨을 걸 생각하면 어머니가 너무 그립고, 어머니의 기도가 쌓여서 지금의 내가 이만큼이라도 온 것 같아.”아! 그때 느꼈던 부러운 느낌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어머님의 쌓여진 기도. 비록 제겐 윗대의 쌓여진 기도가 없지만, 지금부터라도 기도가 필요한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제 자식들을 위해 부러워하는 에너지를 오롯이 모아서 기도를 쌓으리라 다짐합니다. 평화신문2021.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