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진단] 당신의 인권은 안녕하십니까(황필규 가브리엘,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cpbc.co.kr/CMS/newspaper/2021/12/rc/814838_1.1_titleImage_1.jpg)
[시사진단] 당신의 인권은 안녕하십니까(황필규 가브리엘,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매년 12월 첫째 주 인권 주일에 전국 곳곳에서 인권에 대해 미사 강론 봉사를 했었다. 아직도 일정은 비워둔다. 최근 몇 년간은 불러주는 성당이 없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강론을 하면 인권에 대한 경험과 생각을 나눌 수 있고, 강론을 한 성당의 특별헌금이 천주교인권위원회라는 인권 단체에 기부될 수 있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현대사회의 시대적 요청과 관심에 천주교회가 함께할 것을 선언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이어받아 소외된 이들, 인권이 침해되는 이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성직자, 수도자와 평신도들이 함께 인권현장을 누비며 활동하는 공동체다.온갖 좋은 말의 홍수 속에 과연 우리는 어떤 사랑을 몸과 마음으로 이야기하고 있는지 항상 자문해야 한다. 초등학교 때 한 신부님께서 강론 시간에 들려주셨던 시구가 잊히지 않는다. “당신은 들판의 꽃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 꽃을 꺾습니다. 당신은 날아가는 새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 새를 새장에 가둡니다. 당신은 연못 속의 물고기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 물고기를 잡아먹습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나는 두렵습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우리도 다른 곳에서는 이방인이기에 이방인을 억압해서는 안 되고 우리 중 일부로 여겨야 하고 우리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성경의 말씀은 현실이 아니다. 원래 닫힌 사회란 없다. 마냥 바쁘고 쫓기는 삶 속에 닫힌 마음만이 있을 뿐이다. 막연한 불안감, 편견, 이기적인 발상으로 내치고 외면하는 우리의 나약한 모습,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만 일상에 매몰되어 버리는 비겁함이 있을 뿐이다.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는 항상 슬퍼하고 분노할 줄 알며 그것을 몸과 마음으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는 미사 중에 신자들이 바치는 기도의 단골손님이다. 우리에게 과연 ‘세계’는 어디고 ‘평화’는 무엇이며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기도’했는지, 생각하고 실천했는지를 묻게 된다. 반민주적 폭정, 소수민족 등에 대한 학살, 고문, 강제이주, 강제노동 등의 범죄가 거리낌 없이 자행되고 있고 이들과 결탁한 일부 기업은 이윤만을 추구한다. 모든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빵과 물고기’를 가지고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우고, 많은 사람이 굶어 죽는 ‘기적’을 행하는 우리, 그 삶과 세계에 평화가 있을 리 없다. 겸허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를 바쳐야 한다. 어느 미국 목사의 강연 테이프의 내용이 생각난다. “한 원유 정제공장이 있다. 엄청난 양의 원유를 수많은 트럭이 싣고 그 공장으로 들어가지만 나오는 트럭은 모두 빈 트럭이다. 정제된 원유가 모두 그 공장을 가동하는 데 쓰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습이다.” 우리 자신, 우리 가족, 우리 사회, 그리고 우리 교회가 스스로를 추스르기도 벅차서 혹은 벅차다는 핑계로 꿈과 나눔, 소중한 많은 것들을 잊으며 지내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사랑을 주지 않아도 될 만큼 가난한 사람도 없고, 사랑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 부유한 사람도 없다.” 올해가 가기 전 작은 인권 실천 하나는 어떨는지. 천주교인권위원회와 같은 의미 있는 인권단체에 뜻깊은 기부도 좋고, 차가운 인권의 현장에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것도 좋다. 안녕하지 못한 인권, 우리에게는 늘 할 일이 있다. cpbc2021.12.08

복자 정복혜 간지대, 같은 세례명 중국의 서 칸디다와 닮은꼴[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49. 간지대 정복혜와 성녀 칸디다마태오 리치, 탕약망, 서광계 등과 나란히 그려진 서 칸디다의 초상화와 그녀의 은제 십자가 문구.간지대, 간거다, 칸디다 세례명을 살피다 보니 유독 「성년광익」에 없는 간지대(干之臺)란 이름이 궁금해진다. 간지대는 복자 정복혜(鄭福惠)의 세례명이다. 그녀는 1801년 2월에 붙들려와서 4월 2일에 처형되었다. 간지대는 대체 어디서 온 이름일까? 「성년광익」에도 없는 성녀 이름을 정복혜는 어떻게 자신의 세례명으로 쓸 수 있었을까? 「사학징의」에 따르면 그녀에게 세례를 준 사람은 이합규(李?逵)였다. 그녀는 1791년경 입교한 것으로 나온다. 또 「사학징의」 말미에 부록으로 실린 「요화사서소화기(妖畵邪書燒火記)」에 한신애의 집 땅속에서 파낸 서책 중에 「셩여 간거다」 1책이 들어있다. 한신애의 집에서 파낸 수많은 책들은 모두 정복혜 간지대가 가져와 맡겨둔 물건이었다. 간거다와 간지대는 동일 인명의 이(異)표기로 보인다. 간지대 또는 간거다란 이름의 성녀는 「성년광익」 365일에 날짜별로 정해둔 성인 성녀의 명단에 없다. 별도로 전하는 그녀의 전기가 따로 있었다는 얘기다. 정복혜는 「셩여 간거다」를 읽고 자신의 세례명으로 삼았을 것이다. 간지대는 성녀 칸디다(Candida)로, 중국어로는 감제대(甘第大), 또는 감제대(甘弟大)라 쓰고 읽기는 ‘칸디다’로 읽는다. 1811년 신미년 백서에도 ‘감제대(甘弟大) 복혜(福惠)’라고 적혀 있다. 간지대는 긴 장대를 가리키는 우리말이기도 해서, 음운조합이 다소 어색한 칸디다를 친숙한 우리말 어감으로 바꾼 표기다. 책 이름 속의 ‘간거다’ 또한 ‘디’에 해당하는 글자가 마땅치 않아 발음하기 좋게 교체되어 나타난 다른 표기로 볼 수 있다. 기록상 서양 성녀 칸디다는 적어도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서기 78년경 베드로 사도에 의해 치유의 은사를 받은 뒤 그의 제자가 되어 후에 로마 성문 밖에서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순교한 동정 성녀다. 또 한 사람은 성 에메리우스(Emerius)의 어머니인 성녀 칸디다로 에스파냐 북동부 성 스테파누스(Stephanus) 수도원 근처에서 은수자로 살다가 선종한 여인이다. 중국 여인 서(徐) 칸디다실제 정복혜가 어떤 칸디다를 지향으로 삼았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또 한 사람의 칸디다가 더 있다. 중국에 천주교가 들어올 당시 마태오 리치와 교유하며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던 서광계(徐光啓)의 손녀 서 칸디다(徐甘第大, 1607∼1680)로, 서양 선교사인 백응리(柏應理, Philippe Couplet, 1623∼1693)가 라틴어로 그녀의 전기를 남기면서, “고금에 짝할 이가 드물고, 중국 성교(聖敎)에서 유일무이한 여사(女士)”라고 칭송했던 여인이다. 그녀는 허씨 집안에 시집갔으므로 서양식 관습에 따라 남편의 성을 따서 허부인(許夫人)으로 알려졌다.그녀는 로마 가톨릭교회로부터 성녀의 공식 칭호를 얻지는 못했지만, 이미 당시 교회에서도 “경건한 정성으로 주님을 공경하며, 성덕(聖德)을 부지런히 닦았다(虔誠敬主, 勤修聖德)”는 평가를 얻어, 중국 천주교회와 유럽 교회에서 성인 이상의 기림을 받았던 인물이었다. 그녀의 전기는 라틴어로 먼저 쓰여졌고, 이후 불어로 번역 출간되었으며, 정작 중국어로 번역된 것은 19세기 후반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놀라운 신앙과 서양 선교사들에 대한 헌신적인 공헌 및 기여는 이미 중국 천주교회 내부에 널리 알려진 것이어서, 정 간지대가 지녔던 「셩녀 간거다」는 당시 중국 교회에서 불어 번역판을 보고 그녀의 사적을 간략하게 간추린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달레의 「조선천주교회사」 불어판을 바탕으로 중국에서 「고려주증(高麗主證)」이 간행된 것과 같은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서 칸디다는 중국에서 천주교가 정착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서광계의 외아들 서기(徐驥)의 5남 4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그녀는 어머니 고씨(顧氏)를 통해 천주교 신앙을 익힌 뒤, 16세에 송강부(宋江府) 허씨 집안에 시집가서도 신앙생활을 계속했다. 그녀는 당시 교난(敎難)을 만나 고통 속에 있던 서양 선교사들을 헌신적으로 돌보고, 어려운 살림에도 금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수많은 성당의 건립에도 기여해, 송강과 소주(蘇州) 인근 지역에 135개의 작은 성당이 세워지는 데 헌신했고, 근 400권에 달하는 천주교 교리 서적의 간행에도 경제적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강도를 만나 칼에 찔려 죽기 직전 상태에 놓인 신부들을 구출해 정성껏 치료해주고 빼앗긴 여행 경비까지 마련해준 일도 있었다. 당시 최악의 상황 속에 있던 서양 선교사들에게 그녀는 구원의 천사 같은 존재였다. 이후 중국 천주교회사에서 그녀의 역할은 서양 신부들의 입과 기록을 통해 성인 이상의 존재로 각인되어, 각종 전기가 잇달아 출간되었다. 그녀는 중국에서보다 유럽 교회에 먼저 알려진 특이한 경우였다. 간지대가 소장했던 「셩녀 간거다」란 책 또한 그같은 전문(傳聞)을 수록한 소책자 중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해 본다. 그녀가 교회 서적의 보급에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것도 서 칸디다를 연상시킨다. 사학 매파 간지대「사학징의」에서 정복혜를 ‘위항천파(委巷賤婆)’로 지칭한 것을 보면, 그녀의 신분이 낮았고, 나이가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녀는 당시 교회 조직에서 서민 출신으로 가장 영향력이 막강했던 이합규를 통해 입교하였고, 그녀에게 간지대란 세례명을 내려준 것도 이합규였다. 그녀는 강완숙의 집과 예산군수를 지낸 조시종(趙時種)의 집을 수시로 들락거렸다. 당시 서울 지역 천주교 조직의 중심부를 구성하던 이합규, 정광수, 김이우, 황사영 등과도 빈번하게 접촉했던 이른바 사학 매파였다. 특별히 조시종의 처 한신애 모녀와 가까웠고, 한신애의 요청으로 이합규와 정광수, 홍문갑 등을 그 집으로 데려가 그 집 비복들에게 전교하는 중간 역할을 맡기도 했다. 정광수의 처 윤운혜도 자신이 간지대와 몹시 가까웠다고 진술한 바 있다. 간지대는 온 집안이 천주교 신자였다. 오라비 정명복(鄭命福) 내외와 아들 윤석춘(尹碩春) 내외도 신자였다. 정명복 내외는 전농동에 살다가 1798년에 서소문으로 이사 왔고, 이들 또한 이합규를 통해 신앙을 받아들였다. 정명복의 사위 김덕중(金德重)도 강완숙의 집을 들락거리며 강학에 열심이었다. 정명복은 배교하고 목숨을 구해 1801년 12월에 장성으로 귀양 갔다. 윤석춘의 처는 이기양의 아들이자 이총억의 동생인 이방억의 유모였다. 이 인연으로 간지대가 천주교 신자였던 그 집안을 자주 왕래할 수 있었다. 이총억과도 가까웠다. 간지대는 덕산(德山)의 교주인 송가(宋哥)와 친해, 그가 만든 천주교 서적을 들고 다니며 교인들에게 판매한 일도 있다. 그녀가 이 시기 교회에서 담당했던 주요한 일 중 하나는 천주교 교리서의 공급과 보급책의 역할이었다. 한신애의 집에서는 땅에 파묻어둔 26종의 교리서가 쏟아져 나왔다. 이 책은 모두 간지대가 검거의 위협을 느껴 한밤중에 가져가 땅에 묻어둔 것이었다. 간지대의 것으로 압수된 책의 목록을 보면 실제로 첨례에 필요한 기도서 종류가 압도적으로 많다. 「수진일과(袖珍日課)」, 「미사(彌撒)」, 「성경일과(聖經日課)」 , 「셩경직ㅎㆎㆎ(聖經直解)」, 「성경광익(聖經廣益)」, 「셩경광익직 ㅎㆎ(聖經廣益直解)」, 「쥬년첨예쥬일(周年瞻禮主日)」 등이 쏟아져 나왔고, 「예미사규졍(與彌撒規程)」과 「오샹경규졍(五傷經規程)」 등의 책자도 모두 주일 미사 첨례에 필요한 각종 기도문과 독서 성경 및 의례와 관련된 내용들이었다. 이밖에 교리서로는 「교요셔론(敎要序論)」, 「주교은지(主敎恩旨)」, 「묵상(?想)」, 「묵상지장(?想指掌)」, 「고ㅎㆎ요리(告解要理)」 , 「셩교쳔셜(聖敎淺說)」, 「척죄정규(滌罪正規)」, 「삼문답 부십계(三問答 附十誡)」, 「요리문답(要理問答)」 등이 더 있다. 「묵상지장」의 경우 한문본과 한글본이 따로 있었다. 여기에 성 라우렌시오의 순교 일기로 보이는 「노능좌명일기老楞佐命日記」와 「셩녀 간거다」 같은 책은 성인전 계통의 책자이다. 또 여성 교육을 위한 「규잠(閨箴)」, 「규람(閨覽)」 등이 더 있다. 이들 중에는 미처 표지를 씌우지 못한 책자도 여럿 보인다. 그녀의 집은 정광수 윤운혜 부부가 이끌던 성물 공방과 연계된 거점이었던 듯하다. 특별히 그녀의 압수 물품 품목에 도상판(圖像板)과 도상 족자 3개가 눈길을 끈다. 도상판은 성화를 찍어내기 위해 원화를 새겨둔 목판을 말한다. 이를 통해 당시 성화의 제작이 목판에 새겨 찍어낸 뒤 채색을 입히는 방식으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게 된 점도 소중하다. 함께 발견된 작은 주머니 6개에는 순교 성인의 모발과 나무 조각 및 성해(聖骸)와 관련된 가루 등이 들어 있어서, 당시 신자들에게 이 같은 물품의 수요가 지속적으로 있었음을 보여준다. 정작 집주인인 한신애의 거처에서 압수된 것이 「성호경」 책과 사학 경전을 언문으로 베낀 책 1권뿐이었음을 본다면, 당시 간지대가 한신애의 집 마당에 묻어둔 자료의 범위가 얼마나 위력적인 것이었는지 알게 되고, 이를 통해 당시 교계 내 그녀의 위상에 대해 한 번 더 돌아보게 된다. 다만 「사학징의」에 실린 그녀의 공초는 뜻밖에 짧아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그녀가 특별한 진술과 배교를 거부하고 단호한 태도로 군더더기 없는 죽음을 택했기 때문이었다.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 cpbc2021.04.29

음식 먹듯 성경을 천천히 씹고 음미해야 [수도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31)수도 전통 안에서의 되새김① 허성준 신부 수도자들은 성경을 끊임없이 읽고, 듣고, 기억하며, 그것을 반복적으로 되풀이하고, 되씹음으로써 말씀으로부터 영적 자양분을 얻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가장 잘 묘사한 단어가 바로 “ruminatio”(루미나시오, 되새김, 반추)이다. 이것은 마치 소나 낙타가 음식을 저장하였다가 그것을 살과 뼈에 스며들 때까지 천천히 되새김하는 것과 같다. 즉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 본문을 되씹음으로써 그것을 맛보고 또한 그 본문의 깊고 충만한 의미를 깨닫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특히 이러한 되새김은 수도 전통 안에서 상당히 중요한 수행 중 하나였다. 사막의 교부였던 마카리우스 압바는 우리 모두가 되새김하는 양과 같이 음식을 계속 되씹음으로써, 그 음식의 달콤한 맛을 보게 되고 마침내 마음 가장 깊은 곳으로 그 음식을 집어넣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파코미우스 성인은 각자의 소임지에서나 혹은 혼자 있을 때나 언제나 성경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 안에서 계속 반복되기를 바랐다. 파코미우스와 그의 형제들은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모두 거룩한 성경 말씀을 되뇌는 수행을 멈추지 않았다. 파코미우스 성인의 제자였던 호르시에시오스의 규정집에 보면, 수도원 어디에서든지 성경 말씀을 암송하는 수행이 멈추어서는 안 됨을 강조하고 있다. 라틴어 성경인 「불가타」를 우리에게 전해준 히에로니무스 성인 역시 끊임없는 독서와 반복적인 묵상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서고(書庫)로 만들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요한 가시아누스는 끊임없는 묵상이 우리의 마음을 채우고 우리를 형성할 때까지 스스로 열심히, 보다 더 끊임없이 렉시오 디비나 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또한, 수도자는 일하면서 동시에 성경 본문을 끊임없이 묵상해야 함을 강하게 권고하였다. 여기에서 언급되고 있는 묵상은 말할 것도 없이 되새김 수행을 의미한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독서를 하루 동안 연장되는 되새김과 관련하여 언급하였다. 그는 마태오 복음 4장 4절을 주석하면서, 사람이 매일 빵을 먹듯이 낮 동안뿐만 아니라 밤에도 우리는 복음을 먹어야 함을 강조했다. 말씀을 듣거나 읽는 것은 음식을 먹는 것과 같고, 말씀을 곰곰이 생각하는 것은 되새김과 같기 때문이다. 그는 수도자들이 일하는 중에도 시편을 낭송하고 되새김을 계속 해야 한다고 권고하면서, 현명한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계속 되씹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 후 체사리우스는 「수녀들을 위한 규칙서」에서 식당이나 일터에서 공동 독서가 끝나더라도 수도자의 마음에서는 되새김이 멈추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베네딕도 성인 역시 이러한 되새김의 중요성을 인식했지만, 그는 노동 중에 행하는 되새김에 대해서는 규칙서에서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것은 일하면서 계속 성구를 되뇌던 「베네딕도 규칙서」 이전의 모습과는 큰 차이점 중의 하나이다. 드 보궤 신부는 베네딕도회 수도생활의 핵심적 표현인 “Ora et Labora”(기도하고 일하라)라는 표현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더 분명하게 ‘Ora et Labora et Lege et Meditare’(기도하고 일하고, 성경을 읽고 묵상하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필자는 이러한 그의 주장에 크게 공감하고 있다. 수도생활이나 영성생활에서 성경은 핵심 중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기도하고 일하고 그리고 성경을 열심히 읽고 묵상하는 것’은 우리의 수도생활이든 영성생활을 안전하게 떠받치는 4개의 중요한 기둥과도 같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허성준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cpbc2020.03.18

‘살 이유 없다’는 환자들에게 생명력 심어주는 일, 기도하며 헌신[허영엽 신부가 만난 사람] (19) 전문의 윤제연(크리스티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윤제연씨는 바쁜 일정에도 신앙생활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간다. 윤제연(크리스티나)씨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다. 그녀는 일주일 내내 서울대병원에서 바쁘게 지낸다. 주일날 오전 늦게까지라도 잠을 푹 자며 쉬고 싶은 유혹이 많을 텐데 매 주일 아침 일찍 일어나 기도하고 명동대성당으로 향한다. 명동대성당의 9시 영어 미사에서 봉사자로 활동하기 때문이다. 봉사를 시작한 이래 아주 중요하고 다급한 일이 아니면 빠진 적이 없다. 그녀는 서울대병원 외래에서 스트레스 관련 장애 등 성인 정신질환 진료를 맡고 있고, 병원 내 공공진료센터 일마음 건강클리닉에서는 직원 상담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연건학생지원센터에서 연건캠퍼스 의과대학, 치의학 대학원. 간호대학 재학생 및 대학원생들의 정신건강증진 및 생활 만족도 향상을 위해서도 일한다. 늘 시간에 쫓기는 바쁜 일정이라 업무가 끝나도 개인 연구나 낮에 하던 일들을 마무리하다 보면 식사는커녕 잠시 쉬는 시간도 내기 힘들다고 한다.▶어릴 때부터 의사를 꿈꾸었나요? 정신건강의학과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어릴 때부터 왜 그런지 사람들과 이 세상에 실제로 어떤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특별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닌데요. 특히 의사 선생님들은 사람의 건강을 돌보고 생명을 지키는 일을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정신건강의학을 선택하게 된 것도 자신과 다른 사람과 세상을 인식하고 경험하는 정신 과정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이 부분을 더 구체적으로 탐구하기 위해서 뇌과학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정신건강의학과를 전공으로 택했어요. ▶의사로서 보람찬 일들이 많죠? 환자분들의 증상이 호전됨으로써 삶의 주관적 고통을 감소시켜 주는 것이겠죠. 그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삶을 살도록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동력과 원의를 되살려주고 싶은 마음이 절실한데, 말처럼 쉽지만은 않아요. 진료 과정에서 환자분들의 건강이 호전되면 마음이 무척 기뻐요. 환자분들이 ‘나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왜 내가 계속 살아야 하지?’에 대한 고민이 조금씩 옅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오늘 현재 자기 삶의 시간에 더 충실히 집중’하면서 생활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어떤 구체적인 작업을 환자분과 함께 진행하면서 결과가 좋을 때는 정말 큰 보람을 느끼게 돼요. ▶훌륭한 의사선생님인데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 일하면서 스트레스도 많을 텐데요? 사실 스트레스가 생기는 경우도 많지요. 어떨 땐 위협을 느낄 때도 있고요. 모든 상황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려고 하고, 대처할 수 있는 부분을 꼼꼼히 확인해 갖가지 준비도 하지만 사실 예측하거나 미리 준비할 수 없는 부분도 많아요.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회피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회피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노력해도 해소할 수 없는 스트레스도 있어요. 그럴 땐 일부러라도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특히 몸과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운동과 좋아하는 취미활동을 지속하는 것은 특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진로를 고민하는 요즘 젊은 청년들, 인생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사회가 점점 빨리 변화되고 그 변화의 방향도 예측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세상일도 내 계획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면서도 미래의 진로 개척은 살아가는 동안 내내 지속되는 우리 모두에게 진행형의 과제라고 생각해요. 지금 내가 무엇보다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해요. 계속 그렇게 경험을 쌓고 공부하면서 자신의 역량을 키워나가는 것도 삶의 과정에서 중요하고요. 한 걸음씩 이러한 단계에 힘쓰다 보면 새로운 길과 정보들을 바탕으로 근거리의 경로를 계획하고 실행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인생은 이 과정의 반복이 아닐까요? 물론 성공보다는 실패와 좌절도 당연히 더 많이 하지요. 그래서 당연히 ‘안정감’과는 거리가 멀어 불안하기도 하고 코앞에 닥친 문제들을 헤쳐나가면서도 또 새로운 문제들과 계속 마주쳐야 하는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 경우도 많아요. 본질적으로 쉽게 극복할 순 없겠지만 저는 이러한 모든 시간이 모두 헛되지 않고 어떠한 배움(training)의 과정이 될 수 있기에 나름대로 의미가 있어요.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떠밀려 가지 않고 나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하고 싶은 일이나 미래의 꿈은 무엇인가요? 큰 꿈보다는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을 좀 더 지속적이고 성공적으로 잘 수행하고 싶어요. 임상의사로서 사람들의 정신건강 증진을 위해 진료 현장에서 일하면서 사람들의 다양한 정신기능과 정신병리의 기전을 규명하고 더 효과적인 치료방안 개발의 실마리를 제공하며 임상에 적용하는 작업을 지속할 수 있기를 바라요. 그러기 위해선 끊임없이 저를 단련시키며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지요. 그리고 어떤 봉사든 또한 부족한 제가 쓰임이 있다면 성실히 참여하려고 생각해요.▶가장 즐기는 기도는 무엇인가요? 외래 진료를 시작하면서 환자분을 만나기 전 성호경을 긋고 잠깐 기도해요. 식사 기도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하고요.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묵주기도를 하는 것이 좋아요. 제 인생에 많은 하느님 체험을 안겨준 성서모임 공부와 봉사자분들과 지도신부님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현재도 성경 말씀을 일상에서 가까이하는 습관을 지켜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에 가장 챙겨야 할 건강은 무엇인가요?신체 건강뿐 아니라 정신건강도 잘 관리해서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들도록’ 챙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저 질환의 관리와 치료를 지속하고, 적절한 신체활동을 통해 체력을 관리하고, 규칙적인 수면과 식사를 유지하는 것이죠, 너무 간단하지만 사실 가장 어렵고 중요합니다.▶정신건강을 지키는 데 기도나 봉사활동이 도움되나요?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걱정 대신, 자신에게 익숙한 짧은 기도문으로 기도하면 마음의 평정심 유지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체력이 가능하다면 일상의 다른 활동들과 균형을 이루며 봉사활동을 하는 것은 자기효능감의 향상, 다른 사람들과의 연대감 유지에 도움이 되기에 당연히 정신건강에 좋아요.윤제연(크리스티나)씨는 몸이 몇 개라도 모자란 일정 속에서도 봉사를 부탁하면 거절하지 않고 열심히 정성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자신의 전공에 대한 강의 봉사도 하지만 갑자기 봉사자가 필요해 때로는 출석 체크나 수강생 안내 등의 봉사를 부탁해도 한걸음에 달려온다. 때로는 봉사를 마치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봉사에는 종류나 내용에 상관없이 자신이 맡은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늘 보기 좋다. 환자를 만나기 전 성호를 긋고 잠시 기도를 하는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니 기분이 좋아진다.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cpbc2022.04.26
![[시그니스 세계총회] 디지털 미디어 시대, 이웃과 환경 위한 ‘공동체성’ 중요](//cpbc.co.kr/CMS/newspaper/2022/08/rc/830241_1.5_titleImage_1.jpg)
[시그니스 세계총회] 디지털 미디어 시대, 이웃과 환경 위한 ‘공동체성’ 중요사흘간 이어진 주제토론과 포럼의 주요 내용 16일 서강대학교 정하상관 국제회의장에서 2022 서울 시그니스 세계총회가 열리고 있다. 제1주제토론 발표자와 참가자들이 나탸사 고베카(교황청 홍보부) 박사의 발표를 듣고 있다. 2022 서울 시그니스 세계총회에 참가한 각 분야의 전문가와 언론인, 활동가들은 16~18일 서강대학교에서 미디어의 빛과 그림자, 가짜 뉴스의 위험성, 환경 문제를 두고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전하며 앞으로의 전망과 대안을 제시했다. 국제 언론인 포럼과 국제 청년 포럼은 디지털 세상의 평화에 관한 논의를 확장해 나간 시간이었다. 참가자들은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와 치열한 고민이 담긴 이야기를 들으며 현상을 정확히 이해하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설계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사흘간 이어진 주제토론과 포럼의 주요 내용을 정리, 소개한다. 주제토론과 포럼은 cpbc 유튜브 채널(cpbcTV가톨릭콘텐츠의모든것)을 통해서도 다시 볼 수 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초연결 시대에 고립된 개인네트워크로 연결된 현시대에선 시공간을 초월해 전 세계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다. 혁신적인 기술의 발달로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실 공간만이 아니라 가상 공간에서도 또 다른 삶이 이뤄지고 있다. 가히 초연결(Hyper Connected)시대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단절과 외로움을 호소하는 이들 또한 늘어나고 있다. 발표자와 토론자들은 16일 제1주제토론에서 “가장 인간적인 것이 가장 현대적인 것”이라는 데 공감하며 공동체를 유지하게 하는 타인을 향한 관심, 돌봄, 배려, 상호이해 등의 가치를 재확인했다. 기조강연을 맡은 교황청 홍보부 파올로 루피니 장관은 “온 세상이 이토록 연결돼 있지만, 우리는 철저히 혼자였다”면서 “기술만으로 우리의 삶이 충분하지 않다는 걸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으며, 사람들은 진실된 관계를 갈망한다”고 말했다. 루피니 장관은 “초연결 시대의 모순을 풀어나가기 위해선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는 데서부터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면서 한계 저 너머(beyond)에 계시는 하느님께로 우리의 눈과 귀를 열기를 당부했다. 교황청 홍보부 사무국장 나타샤 고베카 박사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으로서 영적 모습을 회복하는 게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며 “가톨릭교회와 언론인들은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약속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전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술 발전을 통한 새로운 발견은 우리의 목표가 아니”라며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 새로운 것을 이루시도록 하는 것이 목표임을 일깨웠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더욱 심해졌고, 이에 따른 정보 격차, 디지털 불평등 문제도 악화됐다. 안토니 러 덕(태국, 말씀의 선교 수도회) 신부는 “IT 기술 발달이 오히려 경제적 단절을 불러일으켰다”며 불평등이 심화된 현실을 지적했다. 더불어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피상적 관계를 경고하며 가톨릭교회가 기술을 활용하되 본질에 집중하는 디지털 리더십 발휘를 당부했다.파올로 그라나타(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는 “미디어는 이제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 삶의 일부이자 전체이고, 우리가 사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미디어 환경은 우리가 새롭게 만들어 나가야 하고 만들 수 있어야 한다”면서 콘텐츠를 제공하고 전달하는 이들의 책임과 역할을 돌아보게 했다. 가짜 뉴스와 신뢰의 위기언론인들이 모인 만큼 가짜 뉴스를 주제로 한 논의의 열기는 다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16일 마련된 국제 언론인 포럼에 이어 17일 열린 주제토론에서도 참석자들은 가짜 뉴스의 폐해와 선동의 도구로 이용되는 미디어의 문제를 토로하며 저마다의 해법을 제시했다. 드미트리 무라토프(러시아 독립언론 노바야 가제타 편집장) 기자가 기조연설자로 나서 러시아에서 국가주도로 벌어지는 언론의 선전활동을 비판했다.특별히 제2주제토론에선 군사정권에 맞서며 평화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수많은 이들이 피를 흘리고 있는 미얀마 현실에 대한 증언이 나왔다. 미얀마에서 온 한 수녀는 “군부가 정권을 잡으면서 언론을 통제하고 허위 정보를 배포해 혐오와 갈등, 폭력을 조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느 날 성당에서 운영하는 진료소에 군인들이 쳐들어와 문을 닫게 만들었습니다. 그날 미얀마 공영방송 뉴스에선 성당 진료소에서 봉사하는 간호사와 의사들이 테러리스트가 돼 있더군요. 가짜 뉴스는 신뢰를 무너지게 하고, 인도적 지원과 활동마저도 중단되게 만듭니다.” 그는 “가짜 뉴스에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일상 활동과 신변 안전에 위협을 느낄 정도”라면서 “결국 가짜 뉴스의 가장 피해자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프란치스코 교황은 언론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고 하셨다”면서 “소외된 이들에게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진실되고 의미 있는 정보를 전달해 주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김민수(서울대교구) 신부는 “불신이 만연한 사회에서 공동선 실현을 위해 노력하며 사회적 신뢰를 주는 교회야말로 ‘사회적 신뢰의 저장소’”라면서 신뢰 회복의 대안으로서 교회 역할을 강조했다. 이 밖에도 토론 참가자들은 정보의 진위를 식별하고 무엇이 진실인지를 이해하도록 돕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중요성을 거듭 확인했다. 제이미 캐릴(칠레) 교수는 “가짜뉴스 플랫폼은 사람을 무시하고 배타적인 언어를 사용해 대중의 신뢰를 갉아먹는다”면서 “허위 정보에 대응하며 비판적인 독해에 대한 교육을 위해 미디어 기관과 교육 기관, 기업이 협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시민들이 양질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와 다양성 존중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시민단체와 종교단체의 협력이 필요한데 시그니스가 평화를 구축하는 글로벌 미디어의 핵심 역할을 하기를 기대했다. 우리 삶의 터전, 지구 지키기기후 위기와 환경 문제는 이제 어느 자리에서든 빠질 수 없는 주제다. 참석자들은 총회 마지막 날인 18일 지구를 지키기 위한 미디어 활용과 디지털 기술의 역할을 살펴봤다. 신시아 모에로베다(미국 태평양 루터 신학대) 교수는 ‘공평한 생태사회 구축, 기후 위기 속 희망과 이웃 사랑’을 기조강연의 핵심 주제로 이야기하며 “공동의 지혜와 영적인 힘을 모으는 노력이 행동으로 이어지면 최악의 기후 위기를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모에로베다 교수는 “기후 위기를 인식하고 행동하기 위해선 개인과 가정의 노력, 정부의 사회적 책임, 전 인류의 의식전환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면서 “이를 이뤄내기 위해선 언론가와 전문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언론인들이 새로운 지식과 역량을 활용해 사람들이 생활 방식을 바꾸고 극적인 에너지 전환을 이루도록 끊임없이 일깨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발표자들은 환경 문제 해결의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며 활동 경험을 나눴다. UN 사무총장 기후변화 수석자문관을 지낸 정래권 박사는 “공기와 물과 같은 자연환경을 더는 대가 없이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면서 “우리가 소비하는 것에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다. 솔란지 디디에고(아르헨티나) 기자는 시그니스 주관으로 각 대륙 젊은 언론인 9명이 참여한 디지털 환경 프로젝트 ‘언폴드 네스트’(Unfold Nest)를 소개했다. 디디에고 기자는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에는 문제를 해결할 수많은 영감이 들어있다”면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서로 연결된 시각을 가지고 다양한 삶의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준경 PD는 SNS를 타고 급속도로 번진 플로깅 활동을 예로 들며 “일상생활에서 환경을 보호하는 것이 디지털이 나아갈 방향이다. 디지털 기술이 환경을 보호하는 다양한 사례를 찾아 확산해야 한다”고 했다.국제 언론인 포럼- 누구나 1인 미디어 여는 세상이지만 전문 언론인의 ‘사실 확인’ 대체 불가“오늘날 누구나 1인 미디어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간과하면 안 되는 점이 있습니다. 보도란 책임질 수 있고 법적 책임도 질 수 있는 언론인이 해야 합니다. 전문 언론인은 모든 정보의 사실을 확인하면서, 확인한 정보에 관해 모든 책임을 집니다. 이러한 면에서 시민 기자는 전문 언론인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디지털 시대라고 해도 언론의 명성과 기준은 변치 않은 요소입니다.”2021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드미트리 무라토프(러시아) 기자는 비대면으로 마련된 특별대담에서 디지털 세상의 평화를 위한 언론인의 역할을 강조했다. 총회 개막날인 16일 오후 일정으로 진행된 국제 언론인 포럼에선 무라토프 기자와의 대담에 많은 이의 관심이 집중됐다. 드미트리 기자는 러시아에서 독립 언론 ‘노바야 가제타’를 창간하고 탄압과 부패에 맞서 언론의 자유를 지켜 온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는 “언론은 피트니스 센터나 요가 치료소가 아닌 독재 정권을 향한 쓴 약”이라며 “인류는 진실을 아는 것을 멈춰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여러 국가가 선전 선동의 도구로 언론을 이용하고 있다”며 “언론은 이런 상황에서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대신 마치 벌이 날아다니면서 꿀을 모으듯이 ‘좋아요’를 받기 위해 애쓰는 상황이 종종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성을 마비시키는 선전은 ‘사실 확인’이라는 언론인의 전문성으로만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발표자로 나선 이들은 기술 발전이 언론의 신뢰를 저하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도 기술 발전의 긍정적 요소에 초점을 맞췄다. 미디어 기술이 정보를 더욱 철저히 검증하고 진실을 알리는 데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종군기자로 활동한 잭 바튼 기자는 “현대사회에서 정보는 익사할 정도로 많지만, 사람들은 지식에 굶주리고 있다”면서 “방대한 정보가 AI 등과 같은 기술을 통해 편향적으로 제공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소셜 미디어는 이런 상황을 더욱 심화시키지만, 반대로 미디어가 확인과 검증의 과정을 거치면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분쟁지역 탐사보도 전문가인 김영미 PD는 분쟁지역 취재 경험을 공유했다. 최근 우크라이나 난민을 취재하며 전쟁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린 그는 “전쟁이 계속되는 이유는 언론과 세계의 무관심 때문이다. 침묵하면 전쟁은 계속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PD는 “어느 때보다 인간은 디지털 미디어라는 훌륭한 도구를 가지고 있고, 미얀마와 시리아 등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누구라도 이야기할 수 있다”면서 “미디어를 평화의 도구로 사용해 전쟁지역에서 벌어지는 희생과 아픔에 공감한다면 저널리즘이 세계 평화에 많은 영향을 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국경 없는 기자회 세드릭 알비아니 동아시아 지부장은 ‘사실(fact)’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하며 “사실이 없으면 저널리즘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또 “사실 확인은 어느 누구에게도 영향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정쟁에 휘말리지 않는 언론의 독립 보장을 촉구했다. 국제 청년 포럼- 뉴미디어 신앙생활 통해 복음 커뮤니케이터로 성장디지털 시대 평화를 이끌어 갈 청년들은 ‘디지털 시대 뉴미디어와 신앙생활’이라는 주제로 17일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뉴미디어를 활용해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청년의 시각에서 제시했다. 정성은(성균관대 커뮤니케이션학) 교수<사진>는 기조 강연에서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세상과 소통할 것인지를 강연하며 “20년간 소통과 설득에 관해 공부하면서 성경이 전하는 소통의 지혜가 현대 커뮤니케이션학과 설득학이 제시하는 지식의 근본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청년들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공감과 사랑을 실천해 예수님을 삶으로 전하는 커뮤니케이터가 되기를 기대했다. 라이카 라킨다눔(필리핀, 아시아 커뮤니케이션 재단 디지털 미디어 프로덕션)씨는 “청년이 미디어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고, 마리아 빅토리아 라 테르자(이탈리아)씨는 라디오 프로그램 운영 경험을 나누며 “마음의 귀를 사용해 적극적으로 경청하는 것이야말로 공감과 연민, 평화를 키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서강대학교 팀은 학부생, 대학원생, 교수진이 1년 넘게 ‘한류, 소셜 미디어, 그리고 교회’를 주제로 공동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더불어 장지혜ㆍ김상수씨는 한국 가톨릭 미디어의 활용 사례를 소개하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다양한 방식으로 전파하면 모두가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걸 느꼈다”고 전했다. cpbc2022.08.24

수형자 심리치료하며 겪는 어려움, 기도와 감사일기로 다독여요[허영엽 신부가 만난 사람들] (16) 교정직 공무원 정여경 헬레나 정여경씨는 수형자가 올바른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관리 감독과 교화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업무 특성상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하느님께 의지하며 난관을 극복하고 있다. 그는 좋은 치료자가 되는게 꿈이라고 밝혔다. 정씨가 오르간을 치고 있다.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제공 교도관(矯導官)은 한자 뜻대로 범죄자들을 바로잡아 바른길로 인도하는 공직자이다. 요즘 드라마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교도관은 교도소 같은 교정시설에서 수형자를 관리, 감독할뿐 아니라 교화 교육도 담당한다. 정여경(헬레나)씨는 수형자가 올바른 마음과 생활 자세를 갖는 것을 돕기 위해 상담과 정서 순화 교육을 14년째 담당하고 있다. 그녀가 인터뷰 때 지도교수님을 교수나 선생님이라 하지 않고 스승님이라 호칭하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지금 하시는 일을 설명해 주세요. 저는 교정직 공무원으로 교정시설 내 심리치료센터에서 치료자로서 일하고 있어요.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처음에는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고자 대기업 취업 준비를 했어요. 그러다 문득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공도 살리고 나와 타인에게도 도움이 되는 직업을 찾다 보니 공직 중에서 교정직을 택했던 것 같아요. ▶교정직으로 일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을 한 가지만 소개해주세요.한국 아이돌이 좋아서 무작정 국내에 들어온 예쁜 동유럽 아가씨가 범죄 사건에 연루되어서 교도소에 수감된 적이 있었어요. 말도 안 통하고 통통 튀는 젊은 소녀라 소란도 많이 피우고 직원들이나 다른 수형자들과 싸움도 많이 해서 직원들이 무척 골치 아파했어요. 제가 어느 날 용기를 내서 그녀에게 영어로 말을 건넸어요.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와 한국에서 겪은 불행한 일들, 특히 교도소 안에서 힘든 마음을 나누며 차츰 친해졌어요.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는 행동도 잠잠해지고 잘 지내다가 얼마 후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편지를 보냈어요. 편지는 저희 어머니께 전하는 말도 있었어요. “저를 낳아줘서 고맙다. 제가 태어난 덕분에 자기가 너무 행복하다”(웃음)라는 내용이었죠. 어머니가 그 편지를 보고 무척 기뻐하셨어요. ▶일하면서 스트레스도 많을 텐데요.솔직히 많이 받아요. 고충과 억울함도 많고 실제로 신변의 위협을 받을 때도 있어요. 상담이나 심리치료는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매일 아침 감사한 마음을 쓰고 성경 읽기를 하는데 스트레스를 많이 해소해줘요.▶진로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인생 선배로서 해 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전 워낙 욕심이 많고 성취 지향적인 사람이라서 늘 앞만 보고 전력으로 질주했어요. 그만큼 이룬 것도 많았지만 제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주변의 좋은 사람들 덕분이었던 것 같아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을 늘 기억하며 살면 좋겠어요. 어려움이 닥치면 저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 좋은 사람들, 특히 하느님과 연결된 느낌을 받았고 저와 함께 버티어주신단 생각에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가장 즐겨 하는 기도는 무엇인가요? 버릇처럼 나오는 기도가 성모송이에요. 성모송을 기도할 때 성모님이 저를 안아주신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인 것 같아요. 업무상 스트레스로 너무 힘들어서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야 할 때도 있었는데, 매일 묵주를 꼭 쥐고 잠들었는데, 성모님이 저를 안아주신다고 생각하며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어요.▶청년성서모임에도 열심히 참여했다고 들었어요제가 대학생 때 ‘왜 사는지’에 대한 질문이 풀리지 않아 늘 우울하고 공허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성서모임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성서연수가 예수님을 직접 느낄 수 있었던 기회가 됐던 것 같아요. 그때 신부님을 처음 뵈었는데, 다정하고 소소한 삶의 이야기들이 너무 따뜻했어요. 많은 연수생을 기억해주신 것도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이렇게 인터뷰도 할 수 있게 되었네요.(웃음)▶재소자들은 정말 새롭게 바뀔 수 있나요?저는 상담 치료 때 인지행동치료기법을 사용하는데 비합리적인 생각들, 불쾌한 감정들, 부적절한 행동들을 수정하는 데 좋은 결과가 있을 때도 많아요. 제 스승님이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좋은 치료기법뿐 아니라 내면이 먼저 건강해져야 하는 것 같아요. 내면이 건강해지려면 무엇보다 잘못하고 실수를 하면서 넘어지고 쓰러져도, 내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귀한 존재인지를 알게 되면 일어나고 버틸 수 있는 것 같아요. 수형자 중에는 쓰러지면 일어날 줄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그들도 일어나는 법을 배우고 자신을 정말 사랑하게 되면 심리적으로 건강한 생각을 하게 되고 또 쓰러져도 또 일어날 줄 알게 된다고 믿어요.▶어릴 적 꿈은? 미래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어릴 적 꿈은 많았어요. 처음에는 의사였고, 그다음엔 만화가였고, 나중에는 동화작가로 바뀌었어요.(웃음) 제가 무척 좋아하는 동화작가 중에 ‘타샤 튜더’라는 할머니가 있는데, 그분처럼 예쁜 삽화에 다정한 이야기를 쓰는 동화작가가 되고 싶었어요.지금은 좋은 치료자가 되는 것이 꿈이기도 하고, 가능하다면 저희 스승님처럼 치료자를 꿈꾸는 후학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치료자로서 겪는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버텨주는 그런 일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저도 언젠가는 타샤 튜더처럼 작가가 되어 제가 살면서 잘 버텨낼 수 있었던 팁들을 아기자기한 글들로 전달하고 싶어요. 그녀는 오랫동안 험한(?) 교도소에서 일했다고 믿지 못할 정도로 순수하고 맑은 모습이었다. 많은 사람이 포기했지만 여전히 그녀는 지금도 한 사람의 영혼에라도 도움을 주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젊은 나이에 뇌출혈을 앓을 정도도 그녀가 받는 스트레스는 사실 짐작조차 안 되지만, 이야기 중에서 유난히 많이 사용한 “버텨낸다”라는 말에 마음이 울컥해졌다. 하느님께서 그녀와 함께 버티어주시라고 기도한다. 헬레나와 같이 착한 마음을 지닌 가톨릭 청년들이 많아지면 사회도 그만큼 밝아지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cpbc2022.04.05

그날 싸운 일 그날 풀며 ... 다름을 존중하고 신앙으로 극복‘사랑과 기쁨인 가정의 해’ 30대와 70대 부부가 사는 법 표명렬·권태경씨 부부 ‘사랑과 기쁨인 가정의 해’ 폐막을 앞두고, 가정의 기둥을 든든히 지키고 있는 두 부부를 만났다. 결혼한 지 10년이 되지 않은 젊은 부부에게는 육아의 고단함과 치열함 속에서도 풋풋한 사랑이, 반세기를 동고동락한 80대 부부에게는 삶의 진한 연륜과 서로에 대한 존경이 묻어난다. 김리나(벨리나, 32, 의정부교구 도래울본당)ㆍ권영범(다미아노, 34)씨 부부결혼한 지 5년, 3살 4살 아이 둘을 키우고 있습니다. 저희는 아시아 청년대회에서 봉사자로 처음 만났고, 아내가 포콜라레 청년 모임에 초대해 인연이 이뤄졌어요. 각자 동정 성소의 길을 탐색하던 시기도 있었는데, 돌고 돌아 다시 만나 가정을 꾸렸습니다. 연애할 때는 거의 안 싸우고, 좋은 모습만 보여줄 수 있었어요. 그런데 결혼 후에는 양가 가족 관계도 얽혀있고, 매일 함께해야 하는 상황에서 생각지 못한 아주 작은 일로도 싸우게 되더라고요. 저희가 다짐한 것은 그날 싸운 일은 그날 풀기였습니다. 어느 한쪽도 굽히기 어려울 만큼 싸운 날이면 자연스럽게 화해하는 일이 쉽지 않더라고요. 그럴 때는 그냥 자존심을 팍 숙이고 한번 안아달라고 하기도 했어요. 머리로는 둘 다 잘못했고, 사과를 하고 넘어가면 되는 걸 알지만 마음으로는 잘되지 않아서, 그럴 때는 서로를 안아주는 게 도움이 되더라고요.신앙 안에서 만나 하느님에게 더 가까워지리라는 기대와 다짐이 있었습니다. 육아와 회사생활 등으로 하느님이 쉽게 뒷전으로 밀리더라고요. ‘같이 묵주 기도를 바치자, 성경을 읽자, 묵상으로 하루를 시작하자’와 같은 자잘한 약속들을 시도하면서도 매번 흐지부지되기도 하지만, 다시 시작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어요.저희는 특별히 신혼여행으로 순례길을 다녀왔습니다. 영국 켄터베리에서 로마 바티칸으로 향하는 비아 프란치제나를 걸었습니다. 혼인 성소의 단단한 기초를 만들어줄 도전을 하고 싶었거든요. 우리의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 나가고, 스스로 하느님과의 관계를 다시 다져가는 데 있어서 순례길은 좋은 선택이었어요. 순례길은 지금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 지금도 두 아이를 각자 배낭에 메고, 한국에 있는 둘레길을 종종 다니곤 한답니다. 아이들이 걷는 게 서툴러 속도는 느려졌지만 아이들도 좋아하고, 가족이 함께할 수 있어 기쁘답니다.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육아는 관계에 스트레스를 많이 주더라고요. 이 스트레스를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잘 녹여내지 않으니 독이 되더라고요. 서로가 사랑하고 일치하는 마음을 잃지 않아야 서로가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저희는 부모이기 전에 ‘부부’임을 기억하려고 노력합니다. 아이가 워낙 소중한 존재이다 보니, 서로를 배려하는 일이 순위에서 밀리더라고요. 서로의 기분을 늘 살피고, 좀 지나간 일이더라도 “그땐 미안했어”, “고마워”라는 말을 하려고 노력해요. 또 서운하거나 섭섭한 감정은 털어놓고요. 감정을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잘 봐서 조심스럽게 나누면 서로 이해받았다고 느끼고, 큰 싸움으로 안 번지더라고요. 부부가 되고 매일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있다는 게 제일 좋습니다. 서로 장점과 단점을 잘 알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행복해요. 부부가 되면서 삶의 고민들이 더 깊어졌습니다. 부모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는 아이들을 생각해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때로는 너무 희생적인 어머니나 아내 역할을 하려고 할 때는 힘든 거 같아요. 마지막으로 서로를 진심으로 잘 알고, 약한 모습도 서로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족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 함께 있는 시간이 즐거웠으면 좋겠고요. 무엇보다 아이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많이 체험하며 자랐으면 좋겠습니다.권태경(아기 예수의 데레사, 82, 서울 창5동본당)ㆍ표명렬(스테파노, 85)저희는 항상 손을 꼭 잡고 붙어 다닙니다. 동네 반찬가게에도 함께 가고요. 밖에 외출할 때에는 제가 아내의 핸드백을 꼭 들어줍니다. 대모님께서 계단에서는 위험하다고 손잡고 다니지 말라고 할 정도예요. 둘이 항상 함께 다니면, 낯선 젊은이들이 다가와서 ‘두 분처럼 나이 들고 싶다, 너무 아름답다’고 해요. 저녁에는 제가 꼭 안마를 해줘요. 30분씩 안마를 해주면 저도 팔 운동이 되고 참 좋아요. 1969년 2월 22일 오후 2시에 신문회관에서 결혼했어요. 50년을 넘게 같이 살았죠. 장군 출신인 저는 육사 동기생의 친척을 소개받았고, 당시 아내는 고려대학원에서 경영학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중매로 만나 1년 연애했어요. 그때 제가 31살이었고, 시집오겠다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만나보니 차분하고, 포근한 느낌이 좋았어요. 제가 찾던 사람이었죠. 저는 전라도 출신이고, 아내는 경상도 출신이다 보니 서로 문화와 기질이 너무 달랐습니다. 저는 생선을 좋아하는데, 아내는 나물을 좋아하고요.저희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다 인사해요. 어린아이부터 어르신들까지요. 아주 사소한 일이었지만 인사를 잘하는 습관이 CF 촬영하는 일까지 연결이 됐어요. 20년 전이죠. 동네 아주머니의 아들이 모델을 뽑는 에이전시에서 일하는데, 사람이 참 친절하고, 인상이 좋은 분이 있다고 소개를 했고, 그 아들이 한번 만나자고 하는 거죠. 그때 아내가 58살, 제가 61살이었는데요. 삼성 실버타운 소개 홍보영상을 저희가 찍게 된 거예요. 그 후로 1년에 1, 2건씩 광고 섭외가 계속 들어왔습니다. 복권 공익광고를 비롯해 페브리즈 광고, 최근에는 삼성 갤럭시 휴대폰 광고에서 자상하고 인자한 할머니로 출연했어요. 데레사는 귤과 오렌지를 좋아합니다. 이분은 제가 오렌지를 싫어하는 줄 알아요. 그만큼 저는 아내를 어려워하고,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아내에게 물 한번 가져오라고 한 적 없어요. 장을 보러 갈 때에도 ‘데레사가 이걸 사는 걸 원할까? 데레사가 좋아할까?’ 생각합니다. 배우자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의식하는 것, 그게 사랑이지요. 25년 동안 교직생활을 한 아내는 ‘경청’이 몸에 밴 인격자에요. 제가 외출할 때 아내는 늘 ‘말보다 경청, 늘 많이 듣고 오세요’라고 말해줍니다. 부부가 살다 보면 별일이 다 생깁니다. 사랑은 참고 기다리는 거예요. 부부는 자라온 과정과 환경도 다르죠. 하는 일도 다르죠. 서로 다름을 인정해줘야 합니다. 먹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다 다르지 않습니까? 배우자가 자기 자신과 같을 수는 없으니까, 다름을 존중해줘야 합니다. 참으면 될 것을, 서로 안 도와주고, 자기만 안다면서 못살고 헤어지는 분들도 많은데, 그럴 때를 잘 넘기는 게 중요합니다. 화가 나려 할 때 신앙이 참 중요한 거 같아요. 제일 극한 상황에서 성모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것까지 인내하셨는데, 이런 걸 가지고 화가 난다고 생각하면 불만이 없어져요. 시간만 나면 기도를 합니다.(아내)밥을 하고 설거지하는 일은 아내가 하고, 청소하고 바닥 닦는 일은 제가 합니다. 빨래는 같이 개고요. 안마를 해주다 보면, 눈물을 흘릴 때도 있어요. 누구든 혼자 남겨질 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지만 그래서 지금을 더 잘 살 수 있는 거죠. 둘이서 오래오래 살다 비슷하게 하느님 곁에 가고 싶죠. 아들딸들이 잘 커 줬고, 큰 풍파 없이 건강하게 산 것에 감사하고, 매일 매일 잘 살았다고 생각해요.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cpbc2022.05.11

얘들아, 현실에 지쳤을 때 이 광야를 기억하렴![미카엘의 순례일기] (21)학생들을 위한 특별한 순례(하) 순례자들이 예루살렘 주님 무덤 성당 폐문 시간에 성당 내부를 핸드폰으로 찍고 있다. 순례 날짜는 중고등부 학생들을 위해 2월 초순으로 정해졌습니다. 신부님은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계획을 자세히 짜놓으셨지만 현지 사정을 많이 이해해주셨고, 사장님 두 분께서도 신부님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노력하시며 순례 계획도 매끄럽게 조율했습니다.출발 전에 갖는 설명회도 좀 더 꼼꼼하게 신경을 썼습니다. 해외여행이 처음인 아이들이 많고 직접 준비물을 챙겨야 하는 학생들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도 내내 열심히 메모를 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께서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하시겠다며 마이크를 넘겨받았습니다.“1년간 준비하느라 고생했어. 미카엘씨가 말했던 준비물들은 신부님과 선생님들이 책임질게. 너희는 마음가짐을 준비하고, 배낭 딱 하나만 메고 와. 예수님처럼 여벌 옷 없이 오면 더 좋고. 특히 사진기는 넣지 말 것. 눈으로 보고, 기억으로 남기자. 신약성경은 꼭 가져와라. 이상!”그만 머쓱해진 저는 “옷은 없어도 되는데, 여권은 꼭 챙기세요. 일단 한국 땅은 떠나야 하니까” 하고 덧붙였고, 깔깔 웃는 아이들과 인사했습니다. 신부님과 선생님들의 설명회는 아이들이 떠난 이후에도 몇 시간이나 계속되었음은 물론입니다.신부님의 말씀대로 정말 짐가방도 없이 배낭 하나만을 둘러메고 온 아이들의 순례는 제게도 선물과 같았습니다. 1년간 성경 공부를 해온 아이들의 질문은 저를 놀라게 할 정도였고, 저녁 식사 이후의 성경 나눔 시간은 피정만큼이나 유익했지요. 이전에 가지 않은 특별한 장소를 방문했던 것은 전혀 아닙니다. 그런데도 아이들에게 이스라엘은 제가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른 체험을 주는 듯했습니다. 가끔은 엉뚱하고, 가끔은 수도자처럼 현명한 아이들의 말을 듣다 보면 저의 긴장도 즐거움이 되어 사라지곤 했습니다.어느 날은 다 함께 광야를 걷게 되었습니다. 광야는 생각보다 미끄러운 데다 햇볕에 갈라진 돌들 때문에 자칫 다칠 수 있습니다. 제가 주의 사항을 전달하려는 찰나, 갑자기 신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다들, 신발 벗어보자. 예수님도 아마 맨발이셨을 거야. 조심해서 다니되, 예수님을 닮아가려는 마음으로 걷자!”결국 우리는 모두 신발과 양말을 벗어둔 채 광야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끝까지 누구 하나 발에 생채기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 걸음걸음을 천사들이 손으로 받쳐주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이스라엘 순례의 마무리는 신부님이 특별히 요청하신 예루살렘 자유 순례였습니다. 이틀간 예루살렘의 구(舊)시가지를 돌아본 아이들은 다시 가보고 싶은 장소를 직접 골랐습니다. 선생님 한 명에 6~7명의 아이들이 한 조가 되었고, 각자 지도 한 장과 10달러씩을 받아들고서 아침 9시에 흩어졌습니다. 저녁 5시에 무덤 성당에 예약된 미사 시간에 모이기 전까지는 완전한 자유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신부님과 뒤에 남아 순례와 신앙생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지요.하루 종일 낯선 땅에서 길잡이도 없이 걷는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터입니다. 선생님들 또한 고작 대학생일 뿐인데 아이들 여럿을 챙기며 다니기가 여간했을까요. 하지만 약속 시각에 누구도 늦지 않았고, 모두 기쁘고 즐거운 얼굴로 돌아왔습니다. 미사 후에는 종일 걸었던 예루살렘에 대해 한참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그날 저녁, 마지막 모임에서 신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너희는 이제 곧 세상에 나가게 돼. 분명 수많은 어려움이 있겠지. 현실의 벽은 너희 생각보다 훨씬 높고 튼튼할 거야. 예수님을 찾을 시간이 없을 수도 있어. 어쩌면 신앙을 잃을지도 몰라. 그런 순간에, 지금 우리의 순례가 생각나면 좋겠다. 예수님이 걸었던 갈릴래아 언덕과 광야, 예루살렘의 골목들이. 언젠가 꼭 예루살렘으로 다시 와서 오늘 걸었던 길을 찾아 걸어봐. 그러면 왜 내가 어린 너희를 이곳에 데려왔는지 알게 될 거야. 약속하자! 세상을 살다가 너무나도 지치면, 이곳에 와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거야. 이번 순례는 너희들에게 그런 용기를 주기 위한 시간이었어. 처음은 어렵지만, 이미 해본 일을 다시 하는 건 쉬울 테니까.”그제서야 저는 첫 만남부터 유달리 특이했던 신부님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아이들의 상상보다 훨씬 더 길고 지난한 여정이지요. 구불구불한 어른의 길목마다 어린 시절 몸으로 체험했던 예수님의 길을 떠올릴 수 있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될까요? 그 아이들은 훗날, 신부님과의 약속을 꼭 지키게 될 것입니다. 어릴 적 밟았던 땅 위에서, 한때 자신을 이끌었던 바로 그 지도 한 장을 또다시 손에 쥔 채 말입니다.“인간이 마음으로 앞길을 계획하여도 그의 발걸음을 이끄시는 분은 주님이시다.”(잠언 16,9)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cpbc2021.05.26

바위산을 옮긴 믿음, 천년을 지켜내다[미카엘의 순례일기] (18)이집트 콥트 교회를 아십니까 카이로 모카탐 언덕에 자리한 성 시몬 수도원 전경. 교황청 재단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에서 발간한 ‘세계 종교 자유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세계 196개국 가운데 62개국(31.6%)에서 ‘종교의 자유’가 인정받지 못했고 26개국이 ‘박해’ 상태로 분류되었으며 이 중 95%는 상황이 점차 악화하고 있습니다. 2018년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한 사람은 4000명이 넘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사례와 다른 종교의 통계까지 포함한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이 고통과 시련을 겪으며 폭력을 당해 생명까지 잃고 있습니다. 오로지 종교가 다르기 때문에 말이지요.이집트는 성경의 주요 무대 중 하나이며 지리적으로도 이스라엘과 가까워 이미 사도 시대부터 마르코 복음사가에 의해 전교가 시작되었습니다. 덕분에 초기 교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한 교리적 충돌로 로마와 결별한 뒤 동방 교회에 속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콥트 교회입니다. 이후 7세기경 이슬람 세력에 의해 정복된 이래 이집트에서 그리스도교는 철저히 박해당했습니다. 이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사회 구조에서 공공연히 차별받는 것은 물론,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 목표가 되어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콥트 신자들은 1300년이 넘는 모진 박해와 차별을 견디고 전통과 신앙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습니다.콥트 교회 신자들은 태어난 아이들의 손목에 십자가를 새깁니다. 이 문신은 신앙의 증거인 동시에 영원한 낙인입니다. 이들은 학교에 제대로 다닐 수도 없고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도 없어서 사회에서 천대받는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특히 쓰레기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모카탐’이라는 지역은 대표적인 콥트 신자촌인데, 이곳의 주민들은 도시 전역에서 모인 쓰레기를 수거해서 분리하며 생계를 유지합니다. 마을에 들어서기도 전부터 풍겨오는 악취 탓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고 거리에도 집 안에도 쓰레기가 넘쳐납니다. 그러나 부모를 따라 쓰레기를 모으러 다니던 어린아이들은 낯선 순례단에게 손목 안쪽의 십자가를 자랑스레 보여주며 눈을 반짝입니다.모카탐의 쓰레기 마을을 지나 언덕 중앙에 이르면 콥트 교회 최대의 성지가 나타납니다. 바위를 깎아 만든 ‘모카탐의 성 시몬 수도원(St. Simon “the tanner” Monastery in the Mokkatam)’이 바로 그곳인데, 1만 5000명까지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바위 동굴 성당입니다. 이곳은 또한 콥트 교회의 가장 큰 기적을 증거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서기 979년, 당시 칼리프(정치와 종교의 권력을 아울러 갖는 이슬람 교단의 지배자를 이르는 말)였던 ‘알 무즈’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마태 17,20)라고 하는 성경의 근거를 들어 바위산을 기도로 옮기지 못하면 그리스도인 모두를 죽이겠다고 협박합니다. 총대주교 아브라함은 사흘의 유예를 받은 뒤 밤낮으로 기도합니다. 사흘째 되던 날 아침, 성모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발현하시어 밖으로 나가 물동이를 진 외눈박이 사람을 찾으라 이르십니다. 주교는 시몬이라는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네 오른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마태 5,29)는 성경 말씀에 따라 음욕을 품은 것을 속죄하기 위해 직접 눈을 뽑아 외눈박이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시몬은 주교에게 “하느님, 자비를 베푸소서!” 하고 세 번 외친 후 산을 향해 성호를 그으라 합니다. 아브라함이 그 말대로 따르자, 바위산은 그 자리에서 절반이 잘려 공중으로 떠올랐습니다. 이 기적을 마주한 많은 무슬림은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했고 칼리프는 그들의 신앙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잘린 산은 다시 내려앉으면서 커다란 동굴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1000년이 지난 후 중동 최대의 성당이 된 성 시몬 수도원입니다.비록 오랜 세월 박해받아왔지만, 순례단에게 시몬의 이야기를 전하는 성당 관리인들의 자부심 넘치는 표정에서는 2000년의 전통을 지켜온 강인한 신앙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그들에게 있어 손목에 새겨진 십자가는 믿음이자 저항입니다. 그곳에 갈 때마다 저는 겸허한 마음으로 제 마음속의 십자가를 더듬어 보게 되고는 했습니다. 세례성사를 통해 받은 저의 인호(印號)가 단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주 흐려졌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며 산에서 내려오는 길, 믿음으로 옮겨졌던 산의 그림자가 유달리 길고 짙어 보였습니다.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cpbc2021.05.06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31) 여행지 : 위령 성월](//cpbc.co.kr/CMS/newspaper/2021/11/rc/813037_1.4_titleImage_1.jpg)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31) 여행지 : 위령 성월마리 파울리타 수녀(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낙엽의 계절, 늦가을이 오면 우리는 처음에 왔던 길로 돌아가는 우리의 죽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죽음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두려운 현실이지만, 우리 신자들에게는 새로운 삶으로 옮겨가는 신앙적 의미가 있습니다. 죽음이 인생의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기에, 우리는 나의 부활과 죽은 이들의 부활을 희망하며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연재해와 기후위기, 코로나19로 늘 죽음의 위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위령 성월을 맞아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죽음을 멀리하지 않고 늘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합시다.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Hodie mihi, cras tibi) 그럼 ‘위령 성월’로 퀴즈 여행을 떠나볼까요?퀴즈 여행위령 성월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1. 죽음은 첫 사람의 범죄로 인한 것인데, 이들이 죄를 범한 근본 원인은? 2. 죽은 영혼을 위해 기도해 주는 연옥 교리에 대한 내용이 어떤 성경에 나오는가?3.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위령의 날은 언제인가? 4. 위령의 날에 사제는 미사를 몇 대까지 봉헌할 수 있는가? 5. 11월 1일부터 8일까지 묘지를 방문하여 연옥 영혼에게 양도할 수 있는 은총은?6. 「연옥 실화」를 통해 볼 때, 연옥 영혼들에게 베풀 수 있는 최고의 기도는? 7. 누구를 위해 위령 기도를 바칠 수 있는가? ①세상을 떠난 가족이나 친지, 신자들을 위해서만 바친다.②신자가 아니라도 세상을 떠난 모든 이를 위해 바친다. ③세상을 떠난 개신교 신자나 부활을 믿지 않는 타 종교인을 위해서는 바치지 않는다.④자살한 영혼을 위해서는 바치지 않는다. 답란 1. 교□ 2. 마□□오서 3. □월 □일 4. □대 5. 전□□ 6. □□ 봉헌 7. □번(정답은 '가이드 설명'에서 확인하십시오)가이드 설명 1. 죽음은 첫 사람의 범죄 결과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시고 에덴동산에 생명나무를 자라게 하시어 그들을 영원히 살도록 하셨습니다. 다만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따 먹지 못하게 하시며, 그것을 어기면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시지요. 그런데 간교한 뱀이 열매를 따 먹으면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되리라고 유혹하여, 첫 사람(아담과 하와)이 결국 죄를 짓고 맙니다.(창세 2―3) 이 죄에 대한 결과로 인간에게 죽음이 찾아왔지요. 죄의 근본 원인은 이들이 피조물인 자신의 처지를 잊고, 창조주 하느님처럼 되고 싶은 교만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2. 연옥 교리 연옥(煉獄)은 세상에서 죄를 풀지 못하고 죽은 사람이 천국으로 들어가기 전에 죄를 정화(淨化)하는 상태, 즉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연옥에 대한 내용은 교회 전승(성전)에 많이 나타나며, 성경에도 나오지요. 마카베오서에는 유다인들이 죽은 전사자들의 부활을 기대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였다는 내용이 나옵니다.(2마카 12,38-45) 개신교에서는 마카베오서를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기에, 연옥에 대해 부정하며 천국과 지옥만 있다고 하지요. 연옥 교리는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년)에서 재차 교령으로 확정되었습니다.3. 위령의 날모든 성인의 날 다음날인 11월 2일은 세상을 떠난 모든 이의 영혼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주일과 겹치는 경우는 11월 3일에 지냅니다. 998년 일 년에 한 번씩 위령의 날을 지키도록 명령한 클뤼니 수도원의 오딜로의 영향으로 이날이 보편화되었지요. 이것이 전파되어 이후 11월 한 달을 위령 성월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연옥 영혼은 이제 자신의 힘으로는 스스로 공로를 세울 수 없기에, 우리의 기도와 공로가 필요합니다. 이들이 우리의 도움으로 천국으로 들어가면 이제 지상의 우리를 위해 기도하지요. 4. 위령의 날 미사 위령의 날(11월 2일)에 사제는 자색 제의를 입으며, 3대의 위령 미사를 집전할 수 있는 특전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특권은 위령의 날과 주님 성탄 대축일에만 부여되지요. 세 번의 미사 중 첫째 미사 하나만 특정인을 위하여 미사 예물을 받을 수 있으며, 둘째 미사는 모든 영혼을 위하여, 셋째 미사는 교황의 지향에 따라 봉헌합니다. 이날 교구에서는 대개 교구장이 교구의 신자 묘지를 방문하여 미사를 봉헌하고, 신자들과 함께 연도를 바치며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지요.5. 전대사의 은총11월 1일(모든 성인 대축일)부터 8일까지 묘지를 방문하여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하면, 날마다 한 번씩 연옥 영혼에게 양도할 수 있는 전대사(全大赦)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전대사’란 죄의 유한한 벌인 잠벌(暫罰)을 모두 사면하는 일이지요. 우리가 고해성사를 받아도 잠벌은 남아있기에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잠벌을 없애야 합니다. 여기서 ‘대사’(大赦)란 사면(赦免)의 뜻으로, 예수님과 성인들의 공로로 고해성사를 받은 신자들의 잠벌을 전부(전대사) 또는 부분적으로(한대사) 면제해 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전대사를 받으려면 고해성사, 영성체, 교황의 지향에 따라 바치는 기도(주님의 기도, 성모송)의 3가지 조건을 갖추면 됩니다. 참조) 위령의 날(11월 2일)에 성당이나 경당을 방문하여 연옥 영혼들을 위해 주님의 기도와 신경을 바치면 연옥 영혼을 위한 전대사를 얻을 수 있다. 6. 연옥 실화 우리가 연옥 영혼을 위해 위령 기도(연도), 장례 예식, 식사 후 기도, 희생과 보속 등을 바칠 수 있지만 가장 효과적인 기도는 미사 봉헌으로, 이는 천국으로 들어가게 하는 황금 열쇠입니다. 막심 퓌상(1874~1932년)이 만든 「연옥 실화」에는 미사 봉헌을 통해 천국으로 들어간 연옥 영혼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죽은 그의 누이가 나타나 몇 대의 미사를 청했는데, 그 미사가 봉헌되자 바로 천국에 들어갔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말하지요. 7. 위령 기도 가톨릭교회는 초대 교회부터 죽은 이들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믿고, 죽음을 ‘천상 탄일’이라 부르며 죽은 이들을 위해 ‘위령 기도’를 바쳐왔습니다. 고인이 된 가족이나 친지들의 영혼은 물론 세상을 떠난 모든 이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미신자(未信者)나 부활을 믿지 않는 타 종교인이라고 해도 기도해 줄 수 있고, 연옥의 존재를 믿지 않는 개신교 신자나 자살한 영혼을 위해서도 하느님의 선하심을 믿으며 위령 기도를 바칠 수 있지요. 여행 옵션 : 대구대교구 성직자 묘지대구 남산동 대구대교구청 내에는 성모당과 성 유스티노 신학교와 함께 성직자 묘지가 있다. 묘지 입구에는 ‘HODIE MIHI’ ‘CRAS TIBI’(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라는 라틴어가 새겨져 있다. 지금 이곳에 잠든 성직자들에게 찾아온 죽음이 내일은 바로 우리에게 찾아올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 성직자 묘지는 1915년에 조성되어, 초대 교구장 드망즈(한국명 안세화) 주교를 비롯하여 대구대교구가 설립된 1911년 이래 사목한 국내외 성직자들이 안식을 누리고 있다. 묘지 안쪽 중앙 십자가 아래에는 하늘에서 오시는 사람의 아들 표징에 깨어있으라고 당부하는 “TUNC PAREBIT SIGNUM FILII HOMINIS IN COELO”(마태 24,30)라는 라틴어가 새겨져 있다. 여행 기념품한 해가 저무는 11월 위령 성월은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고향이 하느님의 품임을 묵상하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HODIE MIHI, CRAS TIBI’ 라는 말은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세상을 떠난 가족이나 친지, 친구, 내가 사랑하였던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연옥 영혼을 위하여 앞으로 어떻게 기도를 바치고 싶습니까? 마리 파울리타 수녀(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 cpbc2021.11.10

시 쓰는 고통, 주님 사랑 있어 외롭지 않다[허영엽 신부가 만난 사람들] (15) 시인 정호승(프란치스코) 정호승 시인, 조준우 기자 제공 “바보가 성자가 되는 곳 / 성자가 바보가 되는 곳 / 돌멩이도 촛불이 되는 곳촛불이 다시 빵이 되는 곳 (중략) 어머니를 잃은 어머니가 찾아오는 곳 / 아버지를 잃은 아버지가 무릎 꿇는 곳 / 종을 잃은 종소리가 영원히 / 울려 퍼지는 곳”정호승(프란치스코) 시인의 시(詩) ‘명동성당’이다. 이처럼 명동성당을 감동적으로 표현한 글이 있을까 싶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정호승 시인. “사람이니까 외롭다”라는 그의 시구에서 국어를 맛깔나게 노래하는 시인의 정서와 표현이 놀랍고 부럽다. 정 시인은 명강의로 유명해 나는 여러 번 강의에 초대했고 그때마다 자신의 겸손한 삶에서 우러나오는 진한 삶의 애환과 희망에 대해 수강자들과 진심으로 나누려는 마음이 느껴져 감동하곤 했다.▶선생님은 따로 소개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요즘 근황은 어떠신지요?저는 시인이기 때문에 시를 좀 열심히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한동안 시도 쓰지 않고 게으르게 지냈습니다.(웃음) 제가 올해로 한국 문단에 등단한 지 50년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기념하는 마음으로 신작 시집과 산문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시를 쓰며 살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고 이끌어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큽니다.▶시를 쓰실 때 언제, 어떻게 집필하시나요?시를 쓴다는 것은 육체적 노동이 아니고 정신적인, 그것도 노동이라면 정신적 작업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마음과 머리가 맑을 때가 좋아요. 저는 오전 시간이 좋고 가능한 한 배가 부르지 않은 물만 먹으면 배고픔이 없어지는 상태에서 시를 쓰기를 좋아합니다.(웃음) 그리고 저는 수없이 고쳐 씁니다. 시를 쓰는 일도 노력하는 일이기 때문에 제가 단번에, 또 한순간에 시를 완성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웃음) 그런데 수없이 고쳐 쓰고 고쳐 쓰고 또 고쳐 쓰고 그런 ‘고침의 과정’을 거칩니다.▶창작이라는 게 실은 굉장히 힘들고 고독하고 혼자 해야 하는 작업이지만 기쁘실 때도 있죠?시를 쓰는 일은 사실은 기쁨보다는 고통이 더 많죠. 시는 항상 새로워야 하므로 새로움을 찾고 새로움을 표현한다는 것.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죠. 왜냐하면 새로움을 발견하기는 어렵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서 새로움을 제가 얻지 못할 때는 참으로 고통스럽죠. 시가 지니는 어떤 비밀이 있는 것 같아요. 시가 이루어지는 결정적인 순간이 있는 것 같아요. 그 결정적인 어떤 그런 신비의 순간을 제가 획득하지 못할 때 그럴 때 참으로 고통스럽죠. 그래도 시를 읽고 많은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큰 기쁨과 큰 위안과 이러한 것을 얻었다”라고 직접 얘기해 주실 때 시를 쓰는 어떤 기쁨보다 크죠.▶시를 쓰시게 된 어떤 동기가 있으셨나요.예, 중학교 2학년 때 국어 선생님께서 김영랑의 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를 가르치시면서 숙제를 내셔서 처음 시를 써 갔는데, 선생님께서 읽어보라 하시곤 “너는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시인이 될 수 있겠다”고 하신 그 말씀이 저한테 큰 어떤 계기가 되었어요. 선생님께서는 열심히 노력하라는 그런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어머니가 부뚜막에서 가계부 등에 연필로 김소월 시 등을 많이 써놓은 것을 보고 어머니가 지니고 계신 서정적 마음과 시의 마음을 발견하고 이해하던 과정이 제가 시를 쓰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시인이에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시가 들어있다고 생각해요. 그 시를 발견하고 쓰면 되는 것인데 사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안 쓰는 거죠. 그래서 저는 가끔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시를 대신 꺼내어서 내가 대신 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떻게 세례를 받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청년 때 샤를르 달레 신부님이 쓴 「조선 천주교회사」를 읽고 큰 감동을 하였어요. 천주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온갖 생명을 버리는 박해의 시기를 전 모르고 있었는데, 그 책을 통해서 감동을 지니고 있었어요. 어떻게 세례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던 저에게 동화작가인 친형님 같은 故 정채봉씨가 저를 인도해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오셨던 1984년 성탄절에 세례를 받았습니다.▶신앙과 시는 어떤 관계가 있나요?신앙은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라 할 수 있는데 시는 인간과 사물, 그 사물의 현상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쓸 수 없다고 생각해요. 사랑의 본질인 하느님의 절대적 사랑에 대한 이해 없이는 시를 쓰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시는 인간에게서 하느님의 절대적 사랑을 찾고 구현하는 문학적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신자는 못됩니다.(웃음)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있으신지요?“화가 나더라도 죄는 짓지 마십시오.” “해가 질 때까지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에페 4,26)”, “너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묵시 2,4)”에서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 가지로 부족하고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고 헤매고 다니는 저 자신을 볼 때 얼마나 귀한 말씀인가 생각됩니다.▶인생 후배들에게 권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두 가지로 말씀드린다면 첫째는 방향이 속도보다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인내라고 생각해요. 참고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결국 참고 견디는 겁니다. 견딤의 힘이 없으면 우리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는?윤동주의 ‘서시’입니다. 이 시에는 왜 시인이 시를 써야 하는지 분명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제 시 중에는 1982년에 쓴 ‘서울의 예수’입니다. 청년 예수가 이 시대에 서울에 왔다면 어떠한 삶을 살며 무슨 말씀을 하실 것인가 하는 생각하며 쓴 시입니다. 앞으로의 꿈을 묻는 말에 정 시인은 “계속 시를 써야 시인이고 그리고 그 시가 다른 사람의 삶에 큰 위로와 위안이 된다면 그것보다 더 큰 봉사가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으로 노력하는 것이 세상을 위한 봉사고 헌신하는 사람이 많은 세상은 분명히 희망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와 헤어져 명동성당 계단을 뚜벅뚜벅 걷고 있는 시인의 뒷모습을 보며 저렇게 50년간을 인고의 세월을 말없이 걸었을 것으로 생각하니 참 아름다웠다.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cpbc2022.03.29

계명마다 구체적 행동 규범 제시하고, 하나하나 실생활에 적용해 설명[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82. 교리 교육과 십계 공부 일본 동경대학 오구라문고 소장 「천주십계」 1877년 필사본 표지와 첫 면. 십계는 교리 교육의 출발점초기 교회의 교리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글을 모르는 일반 백성이나 여성에게 처음으로 행하는 입문 교리는 ‘십계’였다. 지적 수준이 높은 양반들이 「칠극」과 「천주실의」로 서학 공부를 시작한 것과는 다르다. 벽동의 김치 가게 주인 최조이가 정광수의 처 윤운혜를 처음 만났을 때 일이다. 최조이가 선물에 감사하며 무심코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하자, 윤운혜가 질색을 하며 그걸 외우면 지옥에 간다고 하면서 십계를 가르쳐 주었다. 그녀가 말했다. “이것을 외우면 죽은 뒤에 천국에 올라갑니다.” 「사학징의」에 나온다. 십계 공부를 신앙의 출발점으로 삼는 장면은 「사학징의」 속 방성필, 박점쇠, 김유산, 김종교, 한덕운, 변득중, 이부춘, 김경노, 곽진우, 이우집, 임대인, 황차돌, 박사민, 한은, 강성필, 김한봉, 김세봉, 비녀 소명 등의 공초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외교인에게 신앙을 권할 때 처음에는 거의 예외 없이 십계 공부로 시작했다.불교에서 나무아미타불을 열심히 외우면 극락왕생한다고 가르친 것처럼, 천주교에서는 십계를 외워 실천하면 천국에 간다고 가르쳤다. 간명해서 알기 쉽고, 일상생활의 예시를 통해 설명하므로 받아들이기가 어렵지 않았다. 삼위일체나 천주 강생에 대한 깊은 이론 지식 없이도 묵주기도와 십계의 암기만으로 내가 구원받고 내 집안이 복될 것이었다. 그 생각만 하면 마음이 늘 벅찼다.정하상 바오로는 「상재상서(上宰相書)」에서 “천주를 받들어 섬기는 방법이란 높고 아득하여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요, 은미한 것을 찾아 괴이한 일을 행하는 종류도 아닙니다. 허물을 고쳐서 스스로 새로워져서 하느님의 계명을 따르는 것일 뿐입니다”라고 하고, 이어 십계명을 나열한 뒤, 다시 “위 십계명은 모두 두 가지로 귀결됩니다. 천주를 만유의 위에서 사랑하고, 남을 자기처럼 아끼는 것이 그것입니다. 앞쪽의 세 계명은 주님을 섬기는 절목이고, 뒤쪽의 일곱 계명은 몸을 닦고 살피는 공부입니다”라고 간명하게 설명했다.이를 다시 단순하게 나누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1, 3, 4계명은 해야 할 것이고, 나머지는 모두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해서 안 될 일은 헛맹세, 살인, 사음, 도둑질, 거짓 증언, 남의 아내 탐냄, 남의 재물 탈취 등이다. 윤지충도 관장에게 글로 써서 제출한 공술기인 「윤지충 일기」에서 십계의 항목을 나열한 뒤에 “이 십계는 요컨대 두 가지로 요약되니, 천주를 만유 위에 사랑하라는 것과 모든 사람을 자기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라고 「상재상서」와 똑같은 설명을 했다. 근거로 삼은 교리서가 같았다는 뜻이다. 조목별로 가르친 십계 교육「십계」 교육은 십계명 10조목만을 외우는 데 그치지 않았다. 각 조목별로 세부 내용을 갖추어 하나하나 따로 교육하는 프로그램이 갖추어져 있었다. 따라서 십계의 조목을 모두 배우려면 상당한 시일이 필요했다. 십계를 외우지 않고는 정식으로 입교할 수가 없었다. 양성 사람 박점쇠는 김성옥이 십계를 써주면서 익히게 했는데, 늙고 병들어 외우지 못했고, 이후 황심이 십계 공부를 또 권하므로 힘껏 배웠으나 4, 5조목을 익혔을 때 붙잡히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방성필도 공초에서 “제가 무식한 소치로 간신히 2, 3조목만을 배웠다”고 진술했다. 십계 교육이 매 조목별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시일을 두고 가르치는 방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십계 교육은 글을 통해서가 아니라 주로 구두 전달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곽진우는 “십계는 제가 입으로 외워 지황 처의 어미 손조이(孫召史)에게 가르쳐 주었다”고 진술하였고, 박사민은 “금년 정월에 최봉선과 땔감을 지고 작반하여 가던 길에 최봉선이 사학에 대해 잔뜩 말하면서, 먼저 십계를 가르쳐 주므로, 제가 과연 그 말을 듣고서 몰래 외운 것은 분명합니다”라고 했다. 한은도 “작년 2월에 상경하여 창동 정가(丁哥) 양반의 행랑채에 붙여 살 때, 이른바 김한빈과 한 채에 같이 살게 되어 절로 친숙해졌습니다. 그가 입으로 전해준 십계를 과연 외워 익혔습니다”라고 진술했다. 십계 공부의 세부 내용십계 공부의 구체적 내용은 최해두가 평해 감옥 중에서 쓴 「자책」과 다블뤼 주교가 펴낸 「성찰기략」에 아주 상세하다. 한 예로 제5계 ‘살인하지 말라’는 조목에 대해 최해두는 먼저 살인에도 손으로 살인한 것과 입으로 살인한 것 있다면서, 여럿이 모인 중에 남을 욕해 그로 하여금 죽고 싶은 마음을 먹게 하거나, 남의 잘못을 몰래 퍼뜨려 그의 신세를 망치게 하는 것은 입으로 살인한 죄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남이 나를 해롭게 한다 하여 그를 속으로 미워해 죽거나 망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은 마음으로 살인한 죄가 된다. 또 남에게 죄짓게 하거나, 남의 범죄를 보면서도 구하지 않는 일, 내가 나쁜 짓을 해서 남이 이를 본받게 하여 남의 선을 꺾는 것은 그 사람의 영혼을 죽이는 죄에 해당한다. 또 입으로 죽고 싶다고 말하는 것, 육신을 해쳐 병을 내거나 영혼을 돌보지 않아 죄에 빠지는 것은 자기가 자기를 죽이는 죄에 해당한다. 심지어 남을 부추겨 시비를 붙이는 일, 화해할 수 있는데 화해하지 않는 것도 살인죄에 해당한다고 규정했다. 살인의 적용 범주가 매우 폭넓고 갈래가 세분화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다블뤼 주교는 「성찰기략」에서 십계의 하위 항목을 조목별로 나눠서 더 구체적으로 기술했다. 제5계를 사람의 영혼과 마음과 몸을 해치는 죄라 하고, 이하 무려 41조항의 죄목을 나열하였다. 이 가운데 열 가지만 꼽으면 이렇다. 남을 해칠 뜻이나 죽일 뜻을 두기, 남이 재앙을 받거나 일찍 죽기를 원하기, 독한 말로 남을 꾸짖거나 혹 죽으라고 말하기, 남에게 심술을 부리거나 일부러 듣기 싫은 소리를 하기, 남을 부추겨 싸우게 하거나 원수 되게 하기, 분노하여 먹지 아니하거나 혹 몸을 부딪쳐 상하게 하기, 약을 먹거나 혹 방법을 써서 낙태하기, 누워 잘 때 조심하지 않아 어린아이를 다치게 하거나 눌러 죽이기, 남을 시켜 죄 되는 일을 행하게 하기, 언짢은 표양을 드러내어 남을 범죄케 하기 등이 그것이다. 제5계 ‘살인하지 말라’에서 죽인다는 의미는 단지 남의 목숨을 빼앗는 것만이 아니라 남이나 나의 육신과 영혼에 해가 되는 행동까지를 포함하는 포괄적 윤리로 확장되고 있다. 이를 다시 입과 행동과 영혼의 범죄로 구분하여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지침으로 제시하여 확대했다. 십계는 짧은 10개의 문장에 그치지 않고, 각 계명별로 인간으로 갖추고 지켜야 할 윤리의 기준으로 범주화함으로써 천주교의 윤리관과 선악 인식을 명확하게 드러내었다.제4계 ‘부모에게 효도하라’도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만이 아니라, 상하관계에서 상호 지녀야 할 바른 몸가짐과 본분에 대한 78항목의 가르침을 담았다. 그 결과 자식에게 ‘나가 죽어라’ 하기, 딸을 낳았다고 산모나 아이를 돌보지 않기, 부부가 미워하여 불목하기, 심지어 마땅히 바쳐야 할 세금 안내기까지도 이 조목의 세부 항목 속에 들어있다. 이 같은 항목들은 모두 하나하나 점검하여 고해성사 때 사함을 받아야 했다.이렇듯 십계 교육은 계명마다 지켜야 할 수십 가지의 행동 규범을 제시하여, 하나하나 실생활에 적용해 설명하는 방식이어서, 단순히 10계명을 외우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하나하나 이치를 들어 설명하고 문답을 통해 확인하고 점검했다. 십계의 교리를 다 깨우치려면 이것만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 밖의 기본 교리서들이 같은 내용들은 주로 십계를 풀이한 교리서인 「척죄정규(滌罪正規)」, 「십계진전(十誡眞詮)」, 「천주십계(天主十誡)」 등에 바탕을 두었고, 그밖에 「교요서론(敎要序論)」, 「성교절요(聖敎切要)」, 「성교요리(聖敎要理)」 등의 교리서에도 십계는 주요 교리 부분으로 취급되었다. 특별히 「척죄정규」는 이탈리아 출신 예수회 선교사인 알레니(Julius Aleni, 1582∼1649) 신부의 저술로, 양정균(楊廷筠, 1557~1627)이 서문을 썼다. 이중 권1의 「천주십계」에 보면 십계의 계명을 범하는 것에 해당하는 여러 죄를 나열하여 스스로 반성하기에 편하게 한다면서, 앞서 살핀 각 계명별로 해당하는 죄과들을 주욱 나열하였다. 그러니까 최해두나 다블뤼의 작업은 이 같은 앞선 저작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진 것이다.한편 「사학징의」 끝에 실린 「요화사서소화기」에 십계와 관련된 책자로 「삼문답 부십계(三問答 附十誡)」와 「텬쥬십계(天主十誡)」란 서명이 보인다. 특별히 「텬쥬십계」는 한글본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는데, 일본 동경대학 오구라 문고에 1877년에 옮겨 적은 한글 필사본이 남아있다. 이 책 속의 세부 항목은 「척죄정규」나 「성찰기략」과는 사뭇 다르다. 십계의 첫 항목이 “조상의 목패(木牌)에 절하기”를 꼽은 것과, 복잡한 설명을 배제하고 조선에 토착화된 내용이 많이 든 것으로 보아, 초기 교인들이 공부하던 「요화사서소화기」 속의 한글본 「텬쥬십계」를 베낀 책이었을 것으로 판단한다.서소문 신앙 공동체의 리더였던 이합규는 「삼본문답(三本問答)」 1권과 「진도자증(眞道自證)」 2권, 「성교일과(聖敎日課)」 2권을 바탕으로 교리 교육을 진행했다. 이우집은 1795년 유관검에게서 십계를 배운 뒤에 「조만과(早晩課)」 1책을 받아와 공부했고, 임대인은 정약종에게서 십계와 「칠극」을 배웠노라고 했다. 「삼본문답」은 영세문답, 고해문답, 성체문답 등 영세 예비자를 위해 세 가지 기본 개념에 대해 설명한 책자이다. 이중 고해문답에는 십계의 내용을 포함하여 고해성사의 개념과 방법을 설명했다. 여기에 더해 신자들은 미사 때 쓰는 「성경광익」이나 「성년광익」 속 성경 말씀과 성인 전기를 마음에 새겼다. 다시 「준주성범」의 각종 기도문에 묵주 기도를 더하면 말씀의 은혜가 안에서 차고도 넘쳤다.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cpbc2022.01.05

루르드가 안겨준 기적과 은총[미카엘의 순례일기] (31)루르드 성모 성지 자신이 받는 고통을 통해 하느님의 은총을 깨달을 수 있는 것 역시 기적이 아닐까. 포르투갈에서 온 장애인 가족이 루르드를 순례하고 있다. 간혹, 순례 일정에 포함된 수많은 성지 중 단 한 곳만을 보고 떠나시는 순례자들이 있습니다. 치유의 성지로서 성모님의 기적의 상징과도 같은 곳인 루르드는 즐겨 그러한 순례의 목적지가 되는 장소입니다. 60대 초반의 나이에 온화한 미소를 가지셨던 자매님 한 분 또한 루르드를 가고 싶으시다며 순례에 참여하셨습니다.낡고 헐렁한 원피스에 오래된 캐리어를 끌고 다니셨던 그분은 알고 보니 작지 않은 중소기업의 대표셨고, 심지어 같은 방을 쓰는 젊은 자매님의 정체는 개인 비서였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은 탓에 옆에서 비서가 챙겨주지 않으면 일정을 따라올 수 없으셨던 것입니다. 버스 맨 뒤편에 앉아 종일 묵주기도를 바치거나 주무시기만 했던 것이 그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순례단 모두는 그런 자매님을 배려하며 속도를 맞춰 걷기 시작했지요.그러나 루르드에 도착하기 전날이 되자 자매님은 얼굴색부터 달라지셨습니다. 누구보다 앞서서 걸었고, 열정적으로 곳곳을 누볐습니다. 순례단이 루르드에 머무는 사흘 남짓의 시간 동안 자매님은 마치 날개를 단 듯 루르드를 활보하셨습니다.프랑스 루르드에서 스페인으로 이동하는 시간은 4시간에 달합니다. 마침 일정의 절반을 지나고 있었던지라, 순례단은 버스 안에서 각자 순례에 대한 느낌을 나누기로 했습니다. 이윽고 자매님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맨 뒤에 앉아계시던 자매님은 한동안 망설이시다가 조심스럽게 버스 앞쪽으로 오셔서 마이크를 잡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하느님, 올해 여름까지 또 한 해를 더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이어지는 자매님의 고백은 놀라웠습니다.10여 년 전까지 잘 나가는 중소기업의 50대 초반 여성 CEO였던 자매님은 갑작스럽게 급성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고, 이미 온 장기와 뼈까지 암이 번진 상태라서 손쓸 수 없음을 알게 되셨습니다. 결혼도 마다하고 어려운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수십 년간 쉬지 않고 일한 대가치고는 너무 잔인했습니다. 겨우 두세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의사의 말에 눈물과 회한으로 며칠을 보내다, 자매님은 거실에 놓인 루르드 성모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도 안방 한쪽에 늘 놓여있던 성모상이었습니다. 그 앞에서 묵주기도를 드리면서 하루하루를 감사하라고 가르치셨던 어머님이 생각났습니다. 그곳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천국에서 만날 부모님께 루르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또 혹시 나에게도 기적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절박한 기대도 있었습니다.병을 숨기고 성지순례를 신청했습니다. 마침내 꿈에 그리던 루르드에 도착해, 자매님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성모님의 말씀대로 샘물을 먹고 씻었습니다. 그리고 기적을 체험하셨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병이 씻은 듯 나았다는 믿기 힘든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매님은 그 순간 가장 최초의 기억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삶이 떠오르며, 갑자기 모든 순간이 귀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졌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에 감사하라’는 성경 말씀이 더는 성경의 한 구절이 아니라 삶 그 자체로 다가왔습니다. 귀국 후 자매님은 가진 것들을 정리하여 많은 곳에 기부하셨고 죽음을 차분히 준비하셨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더는 암은 진전되지 않았고, 1년이 지났습니다. 자매님은 또 한 번 루르드를 찾았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날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이후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았습니다. 여전히 암은 그대로였고, 암으로 인한 고통도 자매님을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병은 더는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계속 흘렀습니다. 무려 10년이라는 시간이 말입니다. “기적이네요!”마이크를 놓으신 자매님께서 자리로 돌아가시려던 순간, 어떤 분이 그 자매님을 향해 큰소리로 외치셨습니다. 잠시 머뭇거리시던 자매님은 다시 마이크를 잡았습니다.“기적이 맞습니다. 그러나 제 몸에 있는 암세포가 더는 자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지난 삶 동안 무엇에도 감사할 줄 모르고 살았던 저는, 이제 오늘 하루 제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설령 내일 제가 죽더라도, 저는 여전히 감사하며 그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년에 또다시 루르드에 오리라는 기대도 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순례라 생각했던 이곳에 이미 열 번이나 돌아왔으니 그 또한 한없이 감사할 뿐이니까요. 이렇게 감사할 수 있게 된 저 자신이, 저에게는 진짜 기적이며 은총입니다.”“언제나 기뻐하십시오.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 16~18)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평화신문2021.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