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정 지키려 과부로 행세하며 함께 모여 신앙 공동체 형성[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52. 동정녀 신드롬 정순매 바르바라가 동정을 지키고자 신분을 위장해 거짓으로 머리를 올리고 있다. 그림=탁희성 화백 나도 아가타 성녀처럼「사학징의」 속에는 동녀(童女)가 여럿 나온다. 동녀란 동정녀, 즉 신앙을 이유로 순결을 지켜 혼인하지 않는 여성을 말한다. 말하자면 수녀의 다른 표현인 셈이다. 그녀들은 어째서 동녀의 삶을 선택했을까? 동녀의 신앙적 근거는 어디에서 나왔나? 「사학징의」에 나오는 동녀는 윤운혜의 언니 윤점혜(尹占惠) 아가타, 정광수의 누이동생 정순매(鄭順每) 바르바라, 심낙훈의 누이동생 심아기(沈阿只) 바르바라, 이합규의 누이 이득임(李得任), 정분이의 친척 박성염(朴成艶), 조섭의 누이 조도애(趙桃愛) 아나스타시아, 강완숙 집에 살던 김달님(金月任), 강완숙의 딸 홍순희(洪順喜) 루치아, 이어린아기의 딸 김경애(金景愛) 등 얼핏 꼽아도 9명이나 된다.홍순희의 공초를 보면, “제 어미가 평소에 제게, ‘작은 방에 사학을 잘하는 과부 여성을 불러두었는데, 그 사람들은 정결하기 짝이 없어 어린아이를 꺼리니 일체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라고 한 대목이 나온다. 강완숙이 안방 안쪽에 있는 협방(挾房)에 주문모 신부를 모셔놓고, 어린 딸이 엿보지 못하게 겁을 주어 다짐을 두는 내용이다. 실제로는 남자를 들여놓고, 딸에게는 사학을 잘하는 과부 여성으로 너무도 정결하니 범접지 말라고 했다는 얘기다. 간접적이나마 동정녀에 대한 강완숙의 평소 생각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위 9명의 동녀 중 윤점혜와 김달님, 홍순희 세 사람이 강완숙의 집에 함께 살고 있었다. 달레의 「조선천주교회사」에는 강완숙이 처녀들을 많이 모아 단단히 교육을 시켰고, 그 일은 집에 와서 살고 있던 동정녀 윤점혜 아가타의 도움을 받았다고 썼다. 윤점혜는 1795년 신앙을 지키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상경했다. 그녀는 윤유일의 사촌 동생이었다. 이후 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아예 강완숙의 집으로 들어갔다. 강완숙은 그녀에게 자기 집에 모아놓고 가르치는 처녀들의 신앙 교육을 책임지는 직분을 맡겼다. 윤점혜는 동정 성모의 발현을 보기도 했고, 자신의 수호 성인인 동정 성녀 아가타를 특별히 공경하여, “나도 아가타 성녀처럼 순교를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했던 신앙인이었다.특별히 강완숙이 처녀들의 공동체를 실천에 옮기려고 윤점혜에게 역할을 부여한 것은 어찌 보면 조선 최초의 수녀원을 구상했던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이들에게 교리교육의 책임뿐 아니라 정결한 몸을 지켜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추수의 일꾼으로 양성하려 한 의도가 엿보인다. 그 배경에는 주문모 신부의 지도가 있었다. 동정녀 열풍의 진원조선 교회에서 동정녀 열풍이 일어난 데는 무엇보다 「성년광익」에 실린 성인전의 영향이 가장 컸고, 여기에 더해 「칠극」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칠극」 권 6 「방음(坊淫)」을 보면, 동정을 지키는 일에 대한 예찬이 이어진다. [6.36]에서 성 암브로스는 “혼인한 사람은 세상에 가득하고, 동정의 몸은 천당에 가득하다(婚姻滿世界, 童身滿天堂)”고 설명했다. 솔로몬은 “천주께서 세상에 강생하셔서 동정의 몸을 지니신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자신도 또 동정의 몸을 지켰고, 또 정결한 덕의 아름다움을 드러내 보이시자, 정결의 덕이 비로소 세상에 일어났다”고 했다. 동정을 지키는 일은 이렇게 예수의 모범을 따르는 일과 같게 되었다. “천주의 거룩한 가르침을 높여 따르는 곳에는 동정의 몸을 지키는 남녀가 마침내 많이 있게 되었다. 그들은 정결의 덕을 목숨보다도 중하게 보았다”고도 했다. [6.38]에는 “정결한 사람은 반드시 본성을 이기고, 세속을 범하며, 삿된 마귀와 대적해야만 정결의 덕이 이루어진다”고 했고, [6.40]에는 “정결의 덕은 신체의 수명을 늘려주고 육신의 강함을 지켜줄 뿐 아니라, 죽은 몸이 향기로워 썩지 않게 해준다”고 적었다. [6.43]에는 동정 부부의 얘기가 나온다. 성녀 체칠리아가 동정을 지키기로 맹세했는데, 부모의 강제적 명령에 따라 시집을 가게 되었을 때, 첫날밤에 그녀의 발원에 의해 남편에게 천사가 나타나 정결한 사람을 보호할 것을 명하였다. 이에 남편이 놀라 정결을 지키기로 약속하였다. 천사가 기묘한 꽃으로 관을 만들어 씌워주니, 1년 내내 향기가 사라지지 않았고 색도 마르지 않았다. 다만 두 사람만이 그 향기를 맡고 꽃을 볼 수가 있었다. [6.8]에 실린 요한의 일화도 인상적이다. 그는 마귀를 복종시키는 능력이 있었으나, 어떤 사람에게 씌인 마귀는 너무도 강력해서 요한의 명령이 소용없었다. 얼마 뒤 한 소년이 왔는데, 마귀가 그를 보더니 그만 소리를 지르며 떠나갔다. 요한이 이상하게 여겨 물어보니, 소년은 천주를 섬기기 위해 정욕을 끊고 동정의 몸을 간직했고, 혼인 첫날밤에 신부와 함께 뜻을 같이하기로 맹세하여 10여 년간 함께 살며 서로를 형제같이 보아 더러운 행실을 짓지 않았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이 두 이야기가 이순이 루갈다와 유중철 요한 동정 부부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음에 틀림없다. 또 이 동정 부부의 결합에 주문모 신부가 깊이 관여한 점은 달레의 「조선천주교회사」에 나온다. 여기에 최필제 베드로 부부와, 후대이지만 조숙 베드로와 권천례 데레사 부부도 있다. 조선 교회에 불어닥친 동정 열풍은 주문모 신부가 조선에 온 이후의 일로 보인다. 그것은 남자가 아닌 여성 신자들에게서 더 크게 일어났다. 처녀들의 과부 행세 「사학징의」 속 윤점혜의 형추문목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남에게 시집가지 않고 과부라 일컬은 것은 사학하는 여자들이 으레 이같은 버릇이 많다. 큰길을 떠돌다가 남의 집에 붙어사니, 처녀가 아니고 과부가 아니라면 어떤 꼴이 되었겠느냐? 부부가 한집에 사는 것은 사람의 큰 윤리이거늘, 일개 젊은 여자로 이러한 풍속을 해치고 어그러뜨리는 행동을 하는 것은 틀림없이 시집가지 않아도 시집가는 것과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어찌 천지의 사이에 용납되겠는가?”묘한 얘기다. 시집가지 않아도 시집가는 것과 같은 것은 무엇을 두고 한 말이었을까? 앞서 나온 9명의 동정녀 중에는 윤점혜 외에도 과부 행세를 한 처녀가 여럿 있었다. 여주의 정순매 바르바라는 허가의 처로 과부 행세를 했지만, 형조의 공초에서는 “나이가 올해 25세로 여태 출가한 일이 없다”고 했고, “동정을 지키기 위해 나이가 찼는데 시집가지 않았고, 거짓으로 허가의 처라고 일컬었습니다”라고 밝혔다. 이합규의 누이동생 이득임과 조섭의 누이 조도애 아나스타시아, 김경애 또한 거짓으로 과부라고 일컬었던 경우에 해당한다. 공교롭게 김경애도 정순매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허가의 처라고 했는데, 형조의 문목 중에 “허서방의 처라고 한 것은 그런 사람이 없다는 말”이라는 내용이 보인다. 허(許)는 허(虛)의 뜻으로 끌어다 쓴 성씨가 아니냐는 추궁이다. 아무튼 이러한 과부 행세는 과년한 처녀들이 자신의 동정을 지켜나가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칠극」[6.32]에는 정결의 세 단계에 대한 설명이 보인다. 하등은 한 지아비와 한 지어미가 절도를 넘지 않고 욕망을 끊는 정결이다. 중등은 홀아비와 과부가 배우자가 세상을 뜬 뒤 다시 결혼하지 않고 욕망을 끊는 것이다. 상등은 동정의 몸을 지키는 정결이다. 신앙을 받아들이기 전에 결혼했다가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되었을 때, 주변의 눈길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 신앙을 지켜가기 위해 과부들은 과부들끼리 모여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를 만들기도 했다. 「사학징의」 속 비녀 복점의 공초에는 “남대문 내창(內倉) 앞 손만호의 집 또한 여러 곳의 과부 7, 8명이 간간이 함께 모여 사서의 이야기를 강습”하였다고 했다. 7, 8명의 과부가 모여 규칙적으로 교리 공부 모임을 가졌다는 내용이다. 김희인(金喜仁)의 공초에도 청상과부 여러 명이 한방에 모여 지내며 사학에 깊이 빠졌고, 사서와 요화 또한 많은 양이 압수된 사연이 나온다. 김희인은 자신이 150냥을 마련하고, 김경애가 50냥을 보태서 군기시(軍器寺) 앞의 집 한 채를 사서, 시숙모 이흥임과 김흥년, 그리고 김경애와 그녀의 모친 이어린아기와 함께 지냈다고 자백했다. 「사서요화사서기」에 실린 김희인의 집에서 압수된 서목은 「묵샹디쟝셔(默想指掌書)」 3책, 「셩모ㅁㆎ괴경(聖母??經)」 1책, 「녀슈셩탄(耶蘇聖誕)」 1책, 「녀슈수란도문(耶蘇受難禱文)」 1책, 「셩경광익(聖經廣益)」 1책, 「공경일과(恭敬日課)」 1책, 「이에왕호심(?)」 1책, 「요리문답(要理問答)」 1책, 「셩녀 아ㅺㅏ다(聖女 아가다)」 1책, 「셩여수셩호(聖耶蘇聖號)」 1책, 「셩부마리아(聖婦 마리아)」 1책, 「셩톄문답(聖體問答)」 1책, 「텬쥬셩교도문(天主聖敎禱文)」 1책, 「언교(諺敎)」 1책, 「셩교일과(聖敎日課)」 1책, 「유시마리가(?)」 1책 등 16종 18책에 달했고, 낱장에 베껴 쓴 것만 456장에다 한글로 베껴 쓴 문건이 134건에 달했다. 이밖에 요화 족자 3개가 있었고, 그중 하나는 여상(女像)이라 한 것으로 보아 성모 마리아를 그린 족자 하나가 포함되어 있었다. 주석으로 만든 납요상(?妖像)과 나무 십자가, 자주색 휘장까지 나왔는데, 이 물건들은 그녀들의 그 공간에서 미사 첨례를 드렸다는 뜻이기도 하다.이같은 동정녀 모임과 과부 공동체의 형성은 당시 천주교의 교세가 가파르게 치솟으면서,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의 신앙 형태가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한 모색과 활력으로 가득 차 있었음을 보여준다.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 cpbc2021.05.19

통합·포용 강조한 바이든… 가톨릭 리더십 보일까조 바이든 당선인 향한미국 가톨릭 교회의 시선 미국 역대 두 번째 가톨릭 신자 대통령에 당선된 조 바이든 당선인이 연설을 하고 있다. 통합과 치유를 주창하는 그의 행보에 미국 교회와 시민사회가 주목하고 있다. 【CNS】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두 번째로 가톨릭 신자 대통령이 된 조 바이든 당선인을 향해 미국 가톨릭교회와 시민사회가 주목하고 있다.미국 가톨릭교회와 종교계에선 “가톨릭 신자든 비신자든 시민들이 분열보다는 통합을 추구하는 바이든을 지지한 결과”로 이번 대선을 평가하고 있다. ‘분열을 치유하겠다’는 바이든의 메시지가 주효했다는 뜻이다.내년 1월 취임을 앞두고 당선인 신분으로 대통령직 인수 작업에 한창인 바이든 인수위원회 측은 벌써 우방국과의 대화에 시동을 걸었다. 바이든 당선인은 한국을 비롯해 영국, 프랑스, 독일, 나아가 프란치스코 교황과도 전화 통화를 나누며 공동 협력의 뜻을 피력하고 있다.지구촌 평화 위한 협력 의지 적극적으로 피력바이든 당선인은 12일 문재인(티모테오) 대통령과 통화한 데 이어, 이날 프란치스코 교황과도 전화 통화를 하고, 지구촌 평화 정착을 위해 협력할 뜻을 내비쳤다. 인수위는 “지구촌 평화와 화해, 인류 유대 증진을 위한 교황의 리더십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며 “당선인은 교황에게 소외 계층과 빈곤층을 돌보고, 기후변화 위기 해결을 모색하며, 이민자와 난민을 환영하는 등 사회 통합을 향해 공동의 믿음을 바탕으로 함께 일하고 싶다고 표명했다”고 밝혔다.문 대통령과도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공감하며 한반도 비핵화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대화하고, 이른 시일 내에 이 문제를 논의할 것을 약속했다.분열보다 통합, 신앙 정체성 담긴 정치 성향제46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바이든은 제35대 존 F. 케네디 대통령에 이은 두 번째 가톨릭 신자 대통령이 된다. 바이든은 과거 부통령 시절부터 때마다 성경 말씀을 인용해 연설하고, 자신을 ‘실천하는 신앙인’이라며 신앙과 정치를 접목시켜 정체성을 드러내 왔다. 당선 축하 연설에서도 성가 가사를 인용해 주목받기도 했다.이번 대선 운동 기간 바이든은 ‘분열보다 통합’을 구호로 내걸었다. 그의 의지대로 바이든은 중산층 재건과 함께 이민자,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보장제도 수립, 동맹국과의 우호 관계 진전, 인종차별주의 철폐 등을 향해 진일보한 행보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자임에도 “모든 사람에게 낙태를 강요해선 안 된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어, 미국 가톨릭교회 입장에선 생명 수호 운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펼쳐나가야 할 전망이다.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미국 내에서 그래도 가톨릭 신자들이 바이든을 찍은 것은 이민자와 흑인 배척, 국제사회에서 우월주의로 고립 정책을 펼쳐온 트럼프 대통령에 국민들이 반감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뉴욕타임스 종교ㆍ정치 분야 담당 엘리자베스 디아스 기자는 10일 미국 조지타운대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이번 선거는 나라의 영혼에 대한 국민투표였다. 우리가 한 국가로서 되고자 하는 이상은 무엇이고, 국민은 누가 되고 싶은지를 본 결과였다”고 해석했다. AP통신의 엘라나 쇼르 기자는 “이번 선거에서 바이든은 자신의 가톨릭 신앙을 강조했고, 다양한 종교계 유권자들에게도 손을 내밀었다”며 “트럼프를 지지했던 보수 종교인들 사이에서도 그의 대응에 반성하고 돌아선 이들이 많았을 것”이라고 평했다.바이든이 다른 정치가들과도 달리, 자신의 정치 성향 안에 신앙 정체성을 잘 드러내 왔다. 그는 대선 기간 중에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발표한 회칙 「모든 형제들」을 직접 인용하면서 “부의 정당한 분배가 이뤄지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교황의 말씀도 자주 연설에 사용했다. 민주당 내에는 바이든 외에도 줄리안 카스트로, 테드 리우 등 가톨릭 신자 정치인들이 다수 있다.‘낙태’ 문제는 교회와 반대 입장그러나 바이든은 낙태 문제에 있어 교회와 철저히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미국 내 주교들 사이에서도 그를 향한 의견이 분분한 상황. 낙태 찬성론자란 이유로 과거 한 성당 사제에게서 영성체를 거부당하기도 한 바이든은 앞으로 신자들에게 폭넓은 지지를 유지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데이비드 깁슨 포드햄대 종교문화센터 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오늘날 미국의 가톨릭교회는 정치권만큼이나 분열돼 있고, 정치 관련 이슈로 양분되기도 한다”며 “낙태 지지로 인해 교회 가르침과 여전히 갈등을 빚고 있는 바이든이 자칫 신자들 사이에서 소외되는 역효과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그러면서도 깁슨 소장은 “그의 신앙이 국가를 치유하는 노력에 없어선 안 될 요소라면 그것 자체로 가톨릭교회로서는 좋은 모습이 될 것”이라며 “성직자들이 보여주지 못했던 가톨릭 리더십을 선보일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cpbc2020.11.17

금경축 원로사목자, 영적 양식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파 서울대교구 임덕일 신부, 5권 저작권·판매 수익 교구에 위임 올해 사제수품 50주년을 맞은 서울대교구 임덕일 신부가 저서 5권의 저작권과 판매 수익을 교구에 위임했다. 최근 펴낸 신간 「성사 안에 숨어 있는 사랑」을 염 추기경에게 건네고 있는 임덕일 신부(오른쪽). 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 임덕일 신부가 저서 5권의 저작권과 판매 수익을 교구에 위임했다. 교구는 3일 서울 명동 교구청 교구장 집무실에서 ‘임덕일 신부 저작권 봉헌식’을 열었다. 올해 사제수품 50주년 금경축을 맞은 임 신부는 봉헌식에서 “신자들의 영적 양식을 위해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내어 놓는다”며 “신자들의 마음을 영성적으로 잘 이끌어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왕 지금까지 애써서 쓴 책이니 교구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어 저작권을 위임합니다. 작은 제 뜻을 받아주셔서 봉헌하기로 했습니다.” 임 신부는 육순에 펴낸 「사랑의 산책길」을 비롯한 저서를 한 권 한 권 소개했다. 염 추기경은 “사제생활을 하면서 체험하고 묵상한 것을 책으로 만들어 봉헌도 하시고 보람찬 일을 하셨다”면서 “많은 분에게 영적 양식이 될 것”이라고 감사인사를 전했다. 저작권 봉헌식에는 이도행(홍보위원회 사무국장)ㆍ최장민(전산정보실 부실장) 신부, 홍보위원회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꾸준한 집필 작업으로 신자들에게 영적 선물을 해온 임덕일 신부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 떨리는 손으로도 꼿꼿하게 앉아 집필 활동을 해왔다. 이동할 때는 지팡이를 짚는다. 임 신부가 저작권을 위임한 저서는 2003년에 발간한 「사랑의 산책길」을 비롯해 「성경에 비추어 본 채근담에 담긴 삶의 지혜」(2010),「명심보감, 그리고 하느님이 이르기를」(2017),「말씀의 365일, 삶의 뜨락에서」(2019), 최근 발간한 「성사 안에 숨어 있는 사랑」까지 모두 5권이다. 임 신부는 사랑을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집필한다. 지난해 펴낸 「말씀의 365일, 삶의 뜨락에서」를 교구의 모든 사제에게 선물한 데 이어, 최근 펴낸 「성사 안에 숨어 있는 사랑」을 800여 명의 서울대교구 사제들에게 보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라는 성경 말씀과 ‘하느님의 은총을 다른 이들에게 주기 위해서 받습니다’라고 하신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우리도 하느님의 사랑을 거저 나누고 증거하는 기쁨의 신앙인이 되기를 빕니다.”올해 사제생활 50주년을 맞은 그는 “풍성한 부가 넘치는 이 세상에 여전히 존재하는 나약하고 빈곤한 사람들, 아픔과 괴로움을 통해 성숙한 사람들, 그리고 서로를 용서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들과 함께해 왔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번에 펴낸 책이 신자들의 영혼에 평화와 기쁨을 주고, 신앙의 빛으로 이끌어 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성사 안에 숨어 있는 사랑」(가톨릭출판사)은 은총의 표지인 성사 안에 숨어 있는 하느님의 사랑을 담았다. 성품성사를 통해 체험한 경험과 일곱 성사에 관한 교리를 다뤘다. 임 신부의 첫 보좌로 인연을 맺은 임상만(서울 상도동본당 주임) 신부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도 함께 실었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평화신문2020.04.08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68)에필로그<3>- 사도행전에 비춰본 바오로의 생애와 서간②](//cpbc.co.kr/CMS/newspaper/2020/06/rc/781142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68)에필로그<3>- 사도행전에 비춰본 바오로의 생애와 서간②박해의 시련에도 이어나간 믿음의 여정 바오로 사도의 1차 선교 여행 때 거쳐 간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유적. 이 도시는 로마 속주 갈라티아의 남쪽에 있는 주요 도시다. 다마스쿠스 사건, 곧 회심 이후 사도행전은 바오로가 다마스쿠스에서 복음을 선포하다가 탈출해 예루살렘에 갔다고 전하지만(9,20-26), 갈라티아서에서는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마스쿠스로 돌아갔고 3년 후에 예루살렘에 갔다고 전합니다.(갈라 1,16-18) 지난 호 끝 부분에서 제기한 몇 가지 물음에 대해 살펴보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아라비아에서 삶을 숙고하다바오로는 왜 아라비아로 갔을까요? 이방인의 사도로서 선교 활동을 하러 갔다는 설명과 자신의 회심 사건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정리하기 위해서 갔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후자의 설명에 더 끌립니다. 바오로가 말하는 아라비아는 나바테아 왕국을 가리킨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당시 나바테아 왕국은 요르단 강 동쪽과 남쪽으로는 시나이 반도까지 차지하고 있었고, 수도는 세계 문화유산으로 잘 알려진 페트라였습니다. 나바테아 사람들은 유다인들을 싫어했다고 합니다. 바오로는 ‘이방인의 사도’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그의 1~3차 선교 여행에서 볼 수 있듯이, 다른 민족들에게 복음을 선포할 때도 일차적으로는 유다인 회당을 찾았습니다. 따라서 회심 이후에 선교하러 나바테아 왕국에 갔다는 것은 설득력이 좀 약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추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9장에 나오는 것처럼 회심 사건 후 바오로는 다마스쿠스에서 예수님을 믿으라고 선포 활동을 시작했고, 사람들은 바오로를 이상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특히 유다인들은 바오로의 선포 활동에 당혹함을 금치 못했을 것이고 시비를 걸고 박해를 가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오로는 위험도 피하고 자신의 삶을 정리하기 위해 아라비아로 건너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요. 바오로가 아라비아의 어디에서, 얼마나 머물렀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라비아 생활을 마친 그는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밝혔듯이 다마스쿠스로 돌아와 선교 활동을 하다가 박해를 피해 다마스쿠스를 탈출해서 예루살렘에 갑니다.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에 가다바오로가 회심 이후 예루살렘에 처음 올라간 것은 언제였을까요? 그는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그러고 나서 삼 년 후”(갈라 1,18)에 예루살렘에 갔다고 전합니다. 이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아라비아에서 다마스쿠스로 돌아간 지 3년 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라는 표현을 ‘회심하고 나서’라고 보는 학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 설명을 따르면 바오로는 회심하고 3년 후 처음 예루살렘에 갔다고 하겠습니다. 바오로는 갈라티아서에서 “그러고 나서 십사 년 뒤에 나는 바르나바와 함께 티토도 데리고 예루살렘에 다시 올라갔습니다”라고 씁니다.(갈라 2,1) 그리고 이 예루살렘 방문 때 예루살렘 사도 회의가 열렸다는 데에 성경학자들은 의견이 일치합니다. 그런데 “십사 년 뒤”라는 표현을 두고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첫 번째로 예루살렘에 간 지 14년 뒤일 수도 있고, 첫 예루살렘 방문에 이어 시리아와 킬리키아 지방을 거쳐 간 후(갈라 1,21) 14년 뒤일 수도 있습니다. 또 회심 사건 14년 뒤일 수도 있습니다.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고, 연대를 정확히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일차적 목적도 아닙니다만, 여기서는 ‘회심 후 3년’, ‘회심 후 14년’의 가설을 받아들여 회심 이후 바오로의 행적 또는 활동을 간단히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바오로는 ‘3년’ ‘14년’이라고 표현했지만, 이 기간 역시 정확히 만 14년이라기보다는 대략적인 햇수를 가리킨다는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마스쿠스 사건 후 바오로는 다마스쿠스에서 한동안 지내다가 아라비아 곧 나바테아 왕국으로 건너갑니다. 그곳에서 삶의 방향을 정리하고 다마스쿠스로 돌아와 선교 활동을 하다가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가 계속되자 탈출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와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를 만나고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선포합니다. 예루살렘에 있던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바오로를 죽이려고 하자, 바오로는 형제들의 도움으로 카이사리아를 거쳐 고향 타르수스로 갑니다. 그런데 갈라티아서에 따르면, 바오로는 카이사리아에서 바로 타르수스로 간 것이 아니라 시리아와 킬리키아 지방으로 갑니다.(갈라 1.21) 시리아는 다마스쿠스와 안티오키아 같은 큰 도시들이 있는 지방입니다. 그리고 시리아 북쪽과 일부를 경계하고 있는 지방이 바로 오늘날 터키의 남부 지방인 킬리키아입니다. 타르수스는 이 킬리키아 지방의 수도였지요. 바오로는 시리아와 킬리키아 지방을 거치면서 선교 활동을 계속했을 것입니다. 안티오키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그러는 사이에 안티오키아에 복음이 전해지고 안티오키아의 신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안티오키아 교회에 관한 소문을 들은 예루살렘 교회는 바르나바를 안티오키아에 내려보내고, 안티오키아에 내려온 바르나바는 바오로가 필요하다고 보고 타르수스로 가서 바오로를 데려옵니다. 그리고 바오로는 만 1년 동안 안티오키아 교회 신자들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합니다.(사도 11,19-26) 그즈음에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유다 지방에 큰 기근이 들고 안티오키아 교회는 구호 헌금을 모아 바르나바와 바오로 편에 예루살렘 원로들에게 보냅니다.(사도 11,27-30) 바오로에게는 이 방문이 회심 후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은 이 두 번째 방문에서 바오로가 첫 번째 방문과 달리 베드로나 주님의 형제 야고보를 만났다는 언급은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2장이 전하는 것처럼 야고보가 헤로데 임금(헤로데 아그리파스 1세)에 의해 순교하고 베드로도 감옥에 갇혔다가 빠져나와 어디론가 피신한 후여서 만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야고보를 죽인 헤로데 아그리파스가 44년 9월에 죽었다는 기록을 감안한다면, 바오로의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은 대략 44년을 전후한 시기라고 추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1차 선교 여행을 마치다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예루살렘 방문을 마치고 요한 마르코를 데리고 안티오키아로 내려갔다가 얼마 후 함께 첫 번째 선교 여행을 떠납니다. 이 1차 선교 여행은 키프로스 섬의 살라미스와 파포스를 거쳐 소아시아(오늘날의 터키) 남부인 팜필리아의 페르게-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이코니온-리스트라-데르베까지 갔다가 되돌아서 안티오키아로 돌아오는 여정이었습니다.(사도 13,3─14,27) 「주석 성경」의 ‘연대표’에 따르면 바오로의 1차 선교 여행은 45~49년 사이에 이루어집니다. 사도행전은 바오로가 1차 선교 여행을 마치고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오래 머물렀다고 하는데(사도 14,28),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는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간에 안티오키아 교회에는 새로운 문제가 불거져 나옵니다. 유다인이 아닌 다른 민족 출신들, 곧 그리스계의 신자들이 할례를 받지 않은 것에 대해 유다에서 내려온 신자들이 문제로 삼은 것입니다. 분쟁과 논란이 일어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티오키아 교회는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비롯한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파견합니다. 이렇게 해서 예루살렘에서는 사도 회의가 소집되고 사도 회의는 다른 민족 출신들에게는 율법 준수에 대한 과도한 부담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합니다.(사도 15,1-35) 「주석 성경」 ‘연대표’는 예루살렘 사도 회의가 48~49년에 열렸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예루살렘 사도 회의의 결정은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복음 선포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바오로는 더욱 담대하게 다른 민족들 곧 이방인들에게 복음 선포하는 힘을 얻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로 인해 바오로는 모세의 전통에 충실한 열성적인 유다인들에게 더욱 심한 미움과 박해의 대상이 됩니다. 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alfonso84@hanmail.net 평화신문2020.06.10
![[독자마당] 그 사랑 깨닫게 하소서](//cpbc.co.kr/CMS/newspaper/2020/07/rc/782933_1.0_titleImage_1.jpg)
[독자마당] 그 사랑 깨닫게 하소서김종우(베드로, 인천교구 답동주교좌본당)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며,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사상 초유의 미사 중단 상황이 발생했고, 신자들 또한 신앙의 길에서 갈 곳을 잃었다. 이러한 혼돈 속에 우리는 무엇을 믿고, 무엇에 의지하여 살아가야 할까? 외부의 상황이 힘들수록 더욱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근본을 되새겨야 할 것 같다.‘하느님의 사랑’이란 어디에서 비롯되며, 그 사랑이란 확실한 의미는 어디에, 어느 단어에 붙여야 합당한 것일까? 성경에는 하느님께서 최초에 우리를 지으실 때,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코에 불어넣으시어 사랑으로 완성시키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느님께서는 최초에 인간을 만드실 때부터 우리에게 사랑을 주시고, 그로 인해 ‘인간’의 존재가 시작된 것이다. ‘인간’의 존재 자체가 ‘하느님의 사랑’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 사랑의 말씀을 얼마나 깨닫고 그 사랑을 본받아 실천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코로나19의 혼란스러운 상황에 우리의 신앙은 어디에 와있으며, 우리가 하느님 사랑의 실천을 위해 행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태어났고, 그 사랑으로 살아가며, 사랑의 마음으로 현재를 살아가야 함을 확실히 깨달아야 한다. 현재 우리가 처한 위기 상황은 이러한 깨달음의 부족으로 모든 불행과 오류가 발생하고 있다. 힘든 상황일수록 서로를 돌아보고 보듬어 주기보다는 회개하지 못하고 자기들의 주장과 잘난 멋에 살아가고 있으니 더욱 그 불안감이 증가하고 있다. 아무리 현세의 세월이 잠시 쉬었다 가는 나그네 살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는 하느님 사랑의 마음을 되새기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야 한다. 지금 이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더 극심한 상황으로 치달아 종말을 예고하시는 것인지는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주님께서는 아실 것이다. 하느님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통회와 성찰을 지속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보자. 우리의 살기 좋았던 예전의 일상을 그리워하며, 현재를 불평하며 미래를 비관하는 것은, 우리의 모자란 생각이며 마음을 병들게 하는 해악일 뿐이다.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현재를 묵묵히 살아가는 것만이 우리를 편안하게 할 것이다. 주님! 저희에게 참 평화와 안정을 주시어 공포와 두려움과 불안을 저희에게서 깨끗이 씻어버리소서. 저희는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회개와 통회의 마음으로 그 사랑 안에서 생활하겠나이다. 아멘. 평화신문2020.07.08

‘반대의 일치’ 실현하시는 그리스도께 희망 두어야[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인격 그리고 프란치스칸 영성] 21. 약한 이들(병자들)의 형제공동체 인간의 한계와 하느님의 무한하심, 세상의 무질서와 하느님의 거룩함, 가로와 세로가 합쳐지고 조화를 이루는 곳이 바로 십자가의 가로와 세로가 만나는 곳,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 위치하는 곳이다. 프란치스코회의 제2 창립자로 불리는 보나벤투라 성인은 반대의 일치를 이루는 그리스도께 희망을 둘 것을 강조했다. 그림은 보나벤투라 성인 초상화. 보나벤투라는 「he Triple Way(삼중도)」라는 책에서 중세의 전통적인 기도의 3단계-정화기, 조명기, 완성기(혹은 일치기)-를 이용해 기도를 통한 하느님과의 일치에 대해서 말하는데 특별히 정화기에서 우리 죄의 성찰을 언급하면서 죄의 종류들을 나열한다. 그중에서 뜻밖의 죄 목록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아름다운 것만 보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삶에서 무질서와 죄를 체험하게 된다. 이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 이 무질서 속에서 거룩함을 향해 나아가려는 인내심 깊은 믿음이 필요한 것이고, 이런 과정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은총으로 죄 많은 우리를 당신과 일치시켜 주신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아마 우리가 급히도 변화되어 가고 ‘빨리빨리’를 선호하는 삶을 살아가며 아쉽게도 너무도 힘들고 더욱더 신경증적인 모습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갖추어지고 조건 지어져야 한다는 강박증 때문인지 모른다. 우리가 삶을 더 살면 살수록 엄연한 현실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 세상과 이 사회의 모습, 내 공동체의 모습은 내가 원하는 대로 상황 설정이 맞추어지지도 않고, 내가 원하는 모습대로만 형성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받아들일 때야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과의 관계성 안으로 들어설 수 있다. 모든 것이 질서 지어져 있어서 그 모든 것이 어떤 규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과학 이론이 주를 이루었던 현대주의 세계관과는 달리 현대주의 이후(post-modern)의 과학에서는 무질서와 불규칙을 계속해서 더 발견해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특별히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상이요 우주인 것이다. 보나벤투라는 이런 우주를 십자가에 비유하며 ‘반대의 일치(coincidence of opposites)’에 대해서 말한다. 그런데 이 반대의 일치를 실현하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인간의 한계와 하느님의 무한하심, 세상의 무질서와 하느님의 거룩함, 가로와 세로가 합쳐지고 조화를 이루는 곳이 바로 십자가의 가로와 세로가 만나는 곳,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 위치하는 곳이다.20세기 초 스페인의 철학자 미구엘 데 우나무노는 그래서 우리 인간의 이런 삶의 모습을 두고 ‘삶의 비극적 의미’라는 말로 표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분명히도 인생은 그렇게 내 마음대로 움직여가지도 않고 내가 바라는 대로 아름다운 것만 내 삶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것을 성경의 세계관과 고대 신화들과 고대 그리스의 비극들이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인간이 주도하지 않고 신화적인 것을 받아들이던 때의 인간들은 이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 속에 살았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이것, 즉 삶에 주어진 자연스러운 불편함을 받아들이기를 너무도 싫어하는 정신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심지어 우리는 더러운 것마저도 끌어안아야 할 때가 있다. 온 세상은 깨끗하게만, 혹은 질서정연하게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질서가 있으면 무질서가 있고, 깨끗함이 있으면 더러움도 있는 것이며, 행복이 있으면 불행도 있는 것이고, 웃음이 있으면 울음도 있는 것이다. 이것을 「코헬렛」의 저자는 잘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이것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세상의 다른 모든 피조물처럼 자연스럽고 행복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주장한 파시즘(fascism)은 이런 종류의 어리석은 우리 인간의 정신세계를 잘 드러내 준다. 본래 이 말은 ‘다발’ 혹은 ‘묶음’을 의미하는 파쇼(fascio)에서 유래하는 말로서, 모든 것이 획일화한(모든 것이 같은 정신 아래 흐트러지지 않는 질서를 이루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 현대 세계에서 파시스트라고 일컬어지는 무리는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어떻게 보면 우리 정신세계는 그런 질서정연함만을 좋아하고 추구하는 파시스트의 모습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우리의 이런 상황을 그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상책일까? 그렇지 않다. 이런 상황을 아무런 대책 없이, 절망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선으로 모으는 절대적인 ‘그 무엇’, 혹은 ‘그 누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정신 자세가 꼭 필요하다. 이는 위대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찾고자 했던 ‘통일된 영역(unified-field, 통일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무질서가 절대적으로 극복되는 영역 혹은 어떤 인격체(Persona)가 존재하기에 우리는 이런 무질서 안에서도 확신 있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진정한 ‘희망’의 의미다. 그리스도교의 희망은 ‘내일 혹은 앞으로 잘 될 거야’ 식으로 막연한 기대를 거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벌써 그 희망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계속> 호명환 신부(작은형제회)cpbc2020.12.09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지 사흗날에 부활하시다네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 <하> 예수님의 부활은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 신앙의 핵심이다. 주님 부활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신약 성경이 증언하는 역사적 사건인 동시에 하느님께서 개입하신 초월적인 사건이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 부활의 근거이다. 그림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무덤에서 일으켜 세우고 있다. 대사제의 기도예수님께서는 최후 만찬을 마치신 다음 제자들에게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요한 16,16)라고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셨다. 그런 다음 예수님께서는 ‘대사제의 기도’(요한 17장)를 바치셨다.예수님의 ‘대사제의 기도’를 이해하려면 먼저 이스라엘의 ‘속죄일 의식’(레위 16; 23,26-32 참조)에 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속죄일에 대사제는 자신과 자기 집안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숫염소 두 마리를 속죄 제물로, 숫양 한 마리와 황소 한 마리를 번제물로 바친다. 속죄 예식을 주례하는 대사제는 한 해에 단 한 번 하느님 앞에 나아가 “야훼” 하느님의 거룩한 이름을 부른다.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은 한 해 동안 지은 죄를 속죄받고 ‘거룩한 백성’의 자격을 회복한다. 이처럼 인간 구원을 위한 속죄 제물로 곧 바쳐질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과 제자들, 그리고 믿는 이들을 위해 ‘대사제의 기도’를 하신다.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위해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아버지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라고 기도하신다.(요한 17,3) 그리고 제자들을 위해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19)라고 청하신다. 끝으로 예수님께서는 믿는 이들을 위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라고 기도하신다.겟세마니에서 잡히시다대사제의 기도를 마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키드론 골짜기 건너편 겟세마니로 가셨다. 때는 보름, 니산달 14일 밤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입성 후 밤에는 베타니아로 가서 묵으셨지만, 파스카 만찬을 하신 이 날은 성 안에 머무셨다. 그리고 묵묵히 제자들의 배반과 수난을 마주하셨다. 겟세마니는 올리브 산에 있다. 예수님께서는 그곳 정원으로 들어가시어 제자들을 두고 돌을 던지면 닿을 만한 곳에 혼가 가시어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다. 예수님께서는 고뇌에 싸여 피땀을 흘리시면서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42)라며 기도하셨다.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은 이 장면을 더욱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다.”(히브 5,7)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니에서 홀로 마지막 외로움, 인간으로서의 모든 고난을 체험하셨다. 여기서 죄와 모든 악의 나락이 그분 영원의 가장 내밀한 곳으로 밀려들었다. 여기서 그분은 임박한 죽음에 대한 예감으로 전율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자신 안에서 하느님을 거스르는 인간 본성의 모든 저항을 스스로 이겨내시고서야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곧 하느님께 당신 자신을 내어 맡기신다. 네 복음서는 예수님의 겟세마니 밤기도가 모두 잠들어 있던 제자들에게 조명받지 못했고, 예수님께서 배반자 유다 이스카리옷이 몰고 온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 군대와 성전 경비병들에게 체포됐다고 한다. 최고의회와 빌라도 앞에 서시다예수님을 체포한 이들은 주님을 먼저 한나스에게 끌고 간 다음 대사제 카야파에게 보냈다. 한나스는 대사제 카야파의 장인으로 서기 6년부터 15년까지 대사제직을 수행한 인물이다. 예수님께서는 한나스와 카야파 대사제의 집에서 밤새 매질과 조롱, 모욕을 당하셨다. 날이 밝자 원로단, 곧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이스라엘 최고의회인 ‘산헤드린’으로 끌고 가 심문한 다음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보냈다. 최고의회 의원들과 빌라도는 예수님께 “당신은 메시아요?” “하느님의 아들이오?” “유다인의 임금이오?”라고 심문하면서 또 한 번 모진 매질과 조롱을 했다.이에 예수님께서는 명료하게 “그렇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이 전능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마르 14,62)라고 말씀하신 후 입을 다무신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은 대사제 카야파는 자기 옷을 찢었고, 최고의회 원로들은 모두 “사형받아 마땅하다”고 예수님을 단죄했다. 빌라도 역시 예수님께서 반역 운동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예수님께 사형을 선고했다.십자가형으로 죽으시다네 복음서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증언한다. 이미 성전 경비병들과 로마 군인들에게 조롱당하며 매질로 기진맥진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처형장까지 가시면서 세 부류의 조롱을 다시 받으셨다. 먼저, 지나가는 자들이 예수님께 “저런! 성전을 허물고 사흘 안에 다시 짓겠다더니 십자가에서 내려와 너 자신이나 구해 보아라”(마르 15,29-30)라고 조롱했다. 둘째 부류는 최고의회 구성원들인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 원로들이었다. 이들은 “다른 이들은 구원하였으면서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는군.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시면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 그러면 우리가 믿을 터인데. 하느님을 신뢰한다고 하니, 하느님께서 저자가 마음에 드시면 지금 구해내 보시라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였으니 말이야”(마태 27,42-43)라며 예수님을 향해 빈정거렸다.셋째 부류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자였다. 그는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루카 23,39)라고 주님을 모독했다. 예수님을 조롱한 세 부류는 예수님 수난의 장본인들이다. 곧 죄인인 모든 인간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다. 마르코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아침 9시에 못 박히셨다고 한다.(마르 15,25) 그리고 오후 3시에 돌아가셨다고 한다.(마르 15,33) 예수님께서 6시간 동안 십자가에 못 박히신 채 고통을 겪으시다가 돌아가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라고 큰소리로 외치신 후 숨을 거두셨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어린양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인류를 속량하시고 구원하셨다. 이제 주님은 십자가로부터 인류를 새로운 교회 공동체로 모으신다. 묻히시다네 복음서는 의회의원인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 빌라도에게 청해 자기 소유의 새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을 안치했다고 한다. 요셉은 아마포를, 니코데모는 몰약과 침향이 섞인 향유 백 리타라를 구입해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과 함께 온(루카 23,55) 여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유다인 장례 관습에 따라 예수님의 장례를 치렀다. 부활하시다예수님의 장례를 지켜본 여인들은 안식일 다음 날인 주간 첫날 아침에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를 바르고 최종적으로 장례를 마무리하기 위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다. 그리고 여인들은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목격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지 사흗날에 부활하신 것이다. 사실 빈 무덤 자체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없다. 무덤을 찾은 마리아 막달레나 조차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신을 옮긴 것으로 여겼다. 부활의 결정적 증거는 예수님 자신이시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오시어 그들과 함께 40일을 지내시며 먹고 가르치셨다. 예수님의 부활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도 부활할 수 있기 때문이다.“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1코린 15,13-22)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1.03.31

미사·봉사 참여보다 중요한 ‘생각하는’ 신앙 생활내 삶에 열린 하늘 /한민택 지음 / 생활성서사 우리는 왜 미사에 참여하는가. 성경은 왜 읽고, 성탄 때 기뻐하는 마음은 또 어디서 일어나는 것일까.신앙인의 삶은 일면 ‘의미 찾기’다. 하느님을 찾고, 예수님이 비천한 인간에게 왜 오셨는지 알아가는 것,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주님과 자유롭게 대화하는 생활이 그리스도인의 궁극적 삶이다. 한민택(수원가톨릭대 교수) 신부가 신앙의 의미를 되짚고, 재발견하도록 돕고자 엮은 신간 「내 삶에 열린 하늘」을 펴냈다.저자는 끊임없이 하느님과 믿음에 관해 생각하고, 궁리하는 ‘생각하는 신앙’을 권한다. 하느님 나라가 인간 세상의 회복이라면, 회개는 개인의 회복이다. 저자는 회개란 믿음의 또 다른 측면이라고 설명한다. 하느님 사랑의 권능을 믿기에 마음을 여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흔히 세상을 바꾸는 힘은 권력과 무력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저자는 배려와 용서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진짜 원동력임을 재차 인식시켜준다.나는 미사에 잘 참여하고 단체와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지만, 때로 자신의 소원을 놓고 하느님과 ‘주고받기식 기도’를 바치고 있진 않은지. 몸은 성당에 있어도, 마음과 태도는 신앙적이지 않은 ‘잠재적 냉담자’는 아닌지 점검해볼 필요도 있다.이처럼 생각하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한 우리는 진정한 믿음의 여정의 길을 걸을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문이다. 아울러 믿음, 용기, 행복, 사랑과 같은 일상 진리도 다양한 측면에서 고민하고 공부하며 체득할 것을 권유한다. 또 이웃이 겪는 어려움에 관심 갖고, 성경을 벗 삼아 앞으로 나아간다면, 더욱 놀라운 자유와 기쁨의 길이 펼쳐질 것이라고도 조언한다.“평안하냐?”(마태 28,9) 부활하신 예수님이 가장 처음 건넨 질문은 제자들을 향한 위로였다. 절망과 가난, 폭력, 우울함에 빠진 누구에게나 하느님은 다가가신다. 용기만 낸다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그때가 내 삶에 하느님 나라가 열리는 순간이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평화신문2020.02.05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67) 에필로그<2>- 사도행전에 비춰본 바오로의 생애와 서간①](//cpbc.co.kr/CMS/newspaper/2020/06/rc/780599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67) 에필로그<2>- 사도행전에 비춰본 바오로의 생애와 서간①박해자 사울, 회심 후 이방인의 사도로 거듭나다 바오로 사도의 생애는 다마스쿠스 근처에서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그 전과 후가 완전히 달라진다. 사진은 예루살렘 옛 도시 북쪽의 다마스쿠스 문. 이 문을 통해 다마스쿠스로 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CNS 자료 사진】 사도행전을 중심으로 바오로 사도의 생애와 활동을 정리하면서 그가 쓴 서간들을 살펴보는 것이 이 에필로그의 목적입니다. 하지만 그 서간들 자체의 내용을 깊이 들여다보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바오로 사도가 언제 어떤 상태에서 서간들을 썼는지 그의 활동과 서간들과의 관계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교회 박해에 나서던 유다인 사울사도행전에 바오로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스테파노의 순교 때였습니다. 최고 의회에서 스테파노의 설교를 들으면서 화가 치밀어오른 사람들은 그를 성 밖으로 몰아냅니다. 그러고는 그에게 돌을 던지면서 겉옷을 벗어 한 젊은이의 발에 두었는데 그가 바로 바오로였습니다. 그때 그의 이름은 사울이었지요.(7,58)이야기를 계속하기 전에 먼저 이름에 대해 살펴보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사도행전에는 바오로의 첫 번째 선교 여행 때인 13장 4절까지는 그의 이름이 ‘사울’로 나옵니다. 그렇지만 그다음 13장 9절에는 “그때에 바오로라고도 하는 사울이…”라고 ‘바오로’라는 이름이 처음 언급되고, 그 이후에는 계속 ‘바오로’로 나옵니다. 왜 이름이 바뀌었을까요? 이름이 사울에서 바오로로 바뀐 것은 구약성경 창세기에서 ‘야곱’이 하느님과 씨름한 후 그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뀐 것과는 다릅니다. 단지 ‘사울’은 히브리어-아람어 표기이고 바오로는 그리스식 표기일 따름이라고 학자들은 지적합니다. 그러면 왜 13장에 오면 이름이 바뀌게 될까요?바오로가 바르나바와 함께 1차 선교 여행을 떠나 처음 도착한 곳이 지중해의 키프로스 섬이었는데, 그 섬의 총독 이름이 세르기우스 바오로였습니다.(13,7) 키프로스는 히브리어-아람어를 사용하는 팔레스티나와 달리 그리스-로마 문화권이었고 그래서 이때부터 사도행전 저자는 사울이라는 이름 대신에 바오로라는 그리스식 표기를 하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사울 또는 바오로라는 이 젊은이는 스테파노를 죽이는 일에 찬동했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박해에 앞장섰습니다. “사울은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집마다 들어가 남자든 여자든 끌어다가 감옥에 넘겼다.”(8,3) 그는 어떤 사람이었기에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을 박해하는 데 앞장섰을까요? 사도행전에 따르면 바오로는 로마 제국 속주의 하나로 오늘날 터키 남부 지방인 킬리키아의 수도 타르수스 출신의 유다인입니다(21,39). 혈육은 유다인이지만, 태어날 때부터 로마 시민이었습니다.(22.28) 이 말은 바오로 집안은 부모 또는 그 이전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오로는 타르수스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예루살렘에서 자랐고, 당시 예루살렘의 뛰어난 랍비로 “온 백성에게 존경받는”(5,34)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조상 전래의 엄격한 율법에 따라” 교육을 받았습니다.(22,3) 바오로가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 따르면 그는 태어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고 히브리 사람에게서 태어난 히브리 사람이며 벤야민 지파 출신이고 바리사이였습니다.(필리 3,5) 요컨대 그는 율법을 엄격히 준수하는, 종교적으로 충실한 골수 바리사이 유다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그리스도인들에 관해서는 부정적이었음이 분명했을 것입니다. 예수가 메시아라는 주장, 더욱이 사흘 만에 부활했다는 주장이 바오로에게는 얼토당토않게 들렸을 것입니다. 바리사이들 역시 죽은 이들의 부활을 믿었지만, 그들에게 부활은 종말에 가서야 있을 먼 미래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대역죄인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가 살아났다면서 예루살렘 최고 의회에서 회개를 촉구하는 스테파노의 말은 바오로에게 반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젊음의 혈기가 왕성했던 그는 스테파노의 죽음을 당연하다고 여겼고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교회 박해에 나섰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 바오로의 나이는 어느 정도나 됐을까요? 「주석 성경」에 실린 ‘성경 연대표’에 따르면 스테파노가 순교하고 교회 박해가 시작된 해는 기원후 36년 겨울에서 37년(?) 사이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바오로는 기원후 5~10년 사이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가톨릭교회는 지난 2008년에 바오로 사도 탄생 2000주년을 기념하는 바오로 희년을 지냈었지요. 이를 고려한다면, 바오로가 교회 박해에 나섰을 때는 그의 나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쯤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마스쿠스에서 겪은 회심 사건사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신자들을 잡아들이는 것으로 성이 차지 않았는지 대사제에게 가서 다마스쿠스에 있는 회당들에 보내는 서한을 청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새로운 길’을 따르는 이들을 찾아서 모조리 예루살렘으로 끌고 올 작정이었습니다.(9,1-2) 오늘날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쿠스는 당시에도 그리스-로마 문화가 융성한 대도시였습니다. 유다인들도 많이 살고 있었고, 당연히 회당도 여러 개가 있었겠지요. 그래서 바오로는 다마스쿠스에 있는 회당들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을 색출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신자들은 아직 거의 전부가 유다인이었기에 회당을 통하면 ‘새로운 길’을 따르는 유다인들을 쉽사리 찾으리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마스쿠스 근처에 이르렀을 때 바오로는 놀라운 일을 경험합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고 바오로는 땅에 엎어지고 맙니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는 음성을 듣습니다. 그 음성은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라고 하면서 바오로가 할 일을 일러줍니다. 바오로는 땅에서 일어났으나 아무것도 볼 수가 없어서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 다마스쿠스로 들어갑니다.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한 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지내다가 하나니아스를 만나 눈을 뜨게 되고 세례를 받은 후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립니다. 바오로의 이 회심 사건을 사도행전은 세 번에 걸쳐 소개합니다.(9,1-19; 22,4-21; 26,9-19)바오로는 다마스쿠스에 있는 신자들과 며칠을 함께 지내다가 곧바로 다마스쿠스의 여러 회당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선포하며 활동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수님의 이름을 받드는 이들을 박해하고 그들을 잡아가려고 다마스쿠스까지 왔다고 알려진 사람이 이제는 반대로 예수님은 메시아시라고 증언하는 것을 본 사람들은 당혹스럽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9,20-22)그렇게 “꽤 긴 기간이 지나자” 유다인들은 바오로를 없애려고 공모했고 바오로는 제자들의 도움으로 다마스쿠스를 탈출해 예루살렘에 갔다고 사도행전은 기록합니다.(9,23-26) 사도행전의 이 설명대로라면 바오로는 계속 다마스쿠스에서 지내다가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가 심해지면서 탈출해서 예루살렘으로 갔다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바오로가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는 이와 다른 내용이 나옵니다. “그때에 나는 어떠한 사람과도 바로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이들을 찾아 예루살렘에 올라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마스쿠스로 돌아갔습니다.”(갈라 1,16-17). 이 서간에 따르면 바오로가 예루살렘에 간 것은 “삼 년 뒤”(갈라 1,18)였습니다. 바오로는 왜 아라비아로 갔을까요? 그곳에서는 무엇을 하며 얼마나 지냈을까요? “삼 년 뒤”란 구체적으로 언제부터를 가리킬까요? 다음 호에 계속 살펴봅니다. 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alfonso84@hanmail.net 평화신문2020.06.03

교세 확장 위해 나 몰라라… 이단의 이기심이 초래한 집단 감염[복음의 빛으로 세상보기] 이단의 배타성과 코로나19 확산 신천지는 현재 비대면 온라인 교육 '줌'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들의 교리를 전하고 있다. 그래프는 질병관리청 방역대책본부가 1월 20일 밝힌 코로나19 1년 통계. 질병관리청 제공 ‘대한민국의 교회들이 코로나 전쟁터가 되고 있다.’지난해 11월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이 같은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국에서 여러 종교 집단이 유해병 논란의 중심에 있다”며 종교발 n차 감염의 지속으로 정부와 이단 및 일부 종교단체가 갈등을 빚는 양상을 상세히 다뤘다. 지난 1월 BBC뉴스 코리아도 ‘일부 교회가 대면 예배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란 제목의 기획 기사를 통해 코로나19 대유행 1년 동안 방역 수칙을 두고 정부와 대치를 이루는 일부 교회들의 모습을 소개했다. 이 기사에서 일부 개신교 성직자들은 종교의 자유를 들며 “비대면 예배는 한계가 있고, 정부가 이를 강제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최초 신천지발 집단감염 이후 지난해 10월 대형 교회에서 1000명이 넘는 확진자 발생 등 신규 확진자 그래프가 치솟을 때마다 일부 신앙인 단체들이 근원지가 돼왔다.종교의 자유와 공동선다종교 사회에서 여러 신앙 집단들의 활동은 자유다. 그러나 신흥 종교와 일부 이단 및 유사종교 단체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교세 확장’이 지역사회와 이웃의 가치를 앞서고 있어, 보건 위기를 부추기는 측면이 강하다고 전문가들은 전했다. 이른바 ‘이웃 없는 배타성’과 ‘나 몰라라식 근본주의’를 지닌 이단의 특성 탓이다.정성환(서울 신천동본당 주임) 신부는 “최근 문제가 되는 이단들은 코로나 상황보다 자신들의 생존 문제가 걸린 교세 확장에 모든 활동이 치중돼있다”며 “종교 이념보다 경제논리로 집단을 운영하는 탓에 종교와 상관없이 학원을 차려 운영하는 등 이웃은 없는 활동을 펼치는 것이 집단 발병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정 신부는 또 “이 같은 위기 상황을 계기로 어떤 종교가 사회 순기능 역할을 하는 ‘참된 종교’인지, 사랑 없이 분열과 혼란을 초래하는 거짓 종교인지 드러난 셈”이라고 전했다.김민수(서울 청담동본당 주임) 신부도 “이단들에게 종교의 사회성과 시민사회 공공성이 결여된 점은 기성 종교와 가장 큰 차이”라며 “세상과 함께하고, 이웃과 더불어 살며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이끌기는커녕 태생부터 개인 집단의 이익에 초점을 맞춰 시작했기 때문에 그들에겐 영성도, 희생도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지난해 2월 최초로 집단감염 사태를 일으킨 신천지는 현재 임대받아 운영하던 센터와 복음방을 상당수 철수하고, 온라인 강좌와 SNS 교리로 체제를 변환했다. 과거 친분쌓기→복음방→센터 교육 방식에서 지인 전도로 꼬드겨 바로 온라인 성경공부로 인도하는 ‘오픈된 모략전도’를 취하고 있다. 아울러 신천지는 이만희 총회장과 간부들이 지난해 방역 당국에 협조하지 않고, 증거 인멸 및 교사 혐의에 대해 일부 유죄 판결이 났음에도 공무집행방해 혐의에 대한 ‘무죄’ 판정만 내세우며 도리어 사회에서 핍박을 받았다고 신도들을 세뇌하고 있는 상황이다. IM선교회와 BTJ열방센터를 운영하는 인터콥 또한 설교를 통해 가짜뉴스를 유포하고, 방역 지침을 어겨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구리이단상담소장 신현욱(구리초대교회) 목사는 “코로나19 상황으로 지난해 신천지 탈퇴자는 예년에 비해 2~3배는 많아진 것은 사실이며, 30만 명까지 내다봤던 전체 신도 수는 현재 20~23만 명 정도로 급감했다”며 “그럼에도 온라인 교육을 수료한 이들이 1만여 명이 현재 수료식을 앞두고 있다”고 전했다.신 목사는 “그러나 여전히 많은 신천지 젊은이들이 가족을 속이는 ‘깜깜이 신자’로 신분을 유지하고 있고, 탈퇴했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회심의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상처를 안고 지낸다는 점이 문제”라며 “신천지 생활을 했던 이들은 반드시 상담소를 통해 복음 앞에 진정한 회복을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생명 존중과 이웃 사랑의 대전제“교회의 사명은 본질적으로 복음을 통하여 인간의 양심을 일깨워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더 인간다워지는’ 기회를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데에 있습니다.”(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보편 교회는 2000년 동안 지녀온 유구한 역사 속에 교회 사명과 선교의 개념을 매우 깊이 고찰해왔다. 가톨릭교회는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 밖 사회와 이웃, 타 종교를 위한 교회 역할과 선교 사명의 외연을 폭넓게 확장했다.이를 통해 공의회 교부들은 “인간의 숭고한 소명을 천명하고 인간 안에 심어진 신적인 어떤 씨앗을 긍정하며, 이 소명에 응답하는 모든 이의 형제애를 증진하고자 교회의 성실한 협력을 인류에게 제공한다(「사목헌장」 3항)”는 가치를 정립하고, 하느님의 사랑이 주님을 믿지 않는 비그리스도인과 모든 이웃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교리를 확고히 했다.교황청도 사회를 위한 교회, 이웃 사랑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교회 사명의 연장선 상에서 코로나19 기간 동안 보편 교회에 때마다 긴급 공지를 발표하며, 전 세계 대유행 중 보편적 형제애를 발휘할 것을 끊임없이 주문하고 있다.희생은 곧 사랑의 실천세계보건기구(WHO)는 전 대륙으로 코로나19가 번지던 지난해 4월 ‘코로나19 상황 속 종교와 종교 지도자들의 역할’이란 제목으로 일종의 지침을 발표했다. 각기 지닌 신앙 전통과 사회 서비스망을 기반으로 지역사회를 보호하고, 건강 정보를 공유하면서 교회들이 봉사와 연대의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 골자다. 가톨릭 교회는 보편성과 공동선을 지향하며 최소한의 비대면 신앙생활이 가능한 도구를 갖춰가고 있다. 이단과 일부 교회들이 “정부가 종교를 탄압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인위적인 종교 박해가 아닌, 국가 안전과 생명 보호가 그 이유임에도 현 상황을 대립구도로 보는 것은 지나치게 그릇된 생각”이라고 일축했다.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10월 회칙 「모든 형제들」을 발표하고 “건강한 사랑과는 거리가 먼 일종의 지역적 나르시즘과 폐쇄적인 정신”을 비판하며, 현 위기 상황에서 더욱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에 기초한 연대의 정신을 발휘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김민수 신부는 “우리가 미사에 참여하고, 성체를 모시는 이유도 각자가 성화되고, 이웃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데에 있는 것이지, 이러한 마음과 기도가 빠진 미사는 형식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며 “코로나 시기 모두 고통을 받고 있지만, 우리 신앙인들은 이 고통을 이미 사회와 나누고 있으며, 어찌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 미사’가 이미 세계에서 거행되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한국천주교 유사종교대책위원회 위원장 이금재 신부는 “근본주의를 지향하는 이단들은 자신들만의 절대적 선교와 예배를 고집하지만, 세상과 사람, 지역 사회에 열려 있는 것이 진정한 신앙”이라며 “원래 신앙생활이 직접 만날 수 없는 하느님을 갈망하는 비대면의 측면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비록 비대면 신앙생활을 병행하지만, 이 같은 희생이 동반된 이웃 사랑 실천으로 열린 신앙심과 믿음을 충분히 발휘해나가면 된다”고 조언했다. 특별취재팀 cpbc2021.02.24

삶의 고통마저도… 하느님 은총? 은총 / 최현순 지음 / 바오로딸“신자들은 은총을 좋은 것이라고 오해합니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안락하고 나한테 좋은 것이라고 여기죠. 보호해주시고 위로해주시고, 그래서 사업이 잘되고 건강해지는 거요. 은총을 ‘복덩어리’라고 생각하면 고통 중에는 은총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평신도 신학자 최현순(데레사, 서강대 전인교육원) 교수가 첫 책 「은총」(바오로딸)을 냈다. 하느님이 주신 은총과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과 행동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 고찰했다. “은총을 하느님이 주시는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왜 하느님은 어떤 사람에게는 은총을 ‘가득히’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인색하게’, 아니 때로는 ‘전혀’ 주시지 않을까요?” 최 교수는 신자들에게 은총이란 무엇이며, 삶의 여정 안에서 고통을 겪고 있더라도 여전히 하느님의 은총 안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책을 냈다. 그는 이탈리아 로마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교의신학으로 석사를, 제1, 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로마에서 은총론 수업을 듣고 시험공부를 하는데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옥상으로 올라가 뛰어다녔어요. 은총을 잘못 알았기 때문에 그걸로 내가 옥죄고 있었구나 했죠. 은총에 대해 잘못 알았던 것이 풀리면서 해방감을 체험했어요.” 그는 최근 몇 년간 예수회센터를 비롯한 여러 수도원에서 은총론 강의를 했다. 강의할 때마다 “은총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다, 삶을 기쁘게 살게 됐다”는 피드백을 신자와 수도자들에게 받았다. 최 교수는 은총을 이해하는 신앙 여정에서 ‘나는 은총을 받을 자격이 있다’, ‘내가 열심히 기도했더니 하느님이 이런 은총을 주셨다’는 식의 사고를 버리라고 조언한다.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서 은총을 벌어들인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상에서 정당한 보상을 받는 것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부모 자녀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하느님의 은총을 이해하기가 쉽다. “엄마가 청소를 하는데, 아이가 자기도 하겠다고 나선다. 아이가 한다고 하는 것이 지극히 보잘것없지만 그래도 엄마는 빗자루를 들고 다니는 아이를 보면서 아이를 더욱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그렇지만 아이가 청소를 했기 때문에 엄마가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물론 아이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45쪽) 최 교수는 성경에 나타난 은총을 살폈다. 역사적으로 은총의 이해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구약에 나오는 ‘헨’과 ‘헤세드’, 신약에 나오는 ‘카리스’의 의미를 소개했다.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자유의지가 이루는 아름다운 여정이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여정이라고 끝을 맺었다. “은총론을 공부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내 삶의 체험과 사건들을 하느님 안에서 보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제쳐놓고 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상황에서 하느님이 무엇을 알려주려고 하시는지 보면 우리는 여전히 은총 안에 있게 됩니다.” 이지혜 기자문채현2020.08.05

하느님 존재에 의문이 든다면그런 하느님은 원래 없다 / 한광석 신부 지음 / 가톨릭출판사「그런 하느님은 원래 없다」. 단행본의 표제가 아주 의미심장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세계를 바라보며 하느님은 계신지, 종교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지, 구원은 있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던져진 도전적(?) 명제여서인지도 모르겠다. 11년을 교구청 사제로 살다가 올해 시골 신부로 돌아간 한광석(대전교구 광천본당 주임) 신부가 그 질문을 곱씹으며 나름대로 내놓은 답이 이 단행본이다. 그렇다고 딱딱한 신학서적을 의도한 건 아니다. 신학적 배경 속에서 탄생했지만, 굳이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주제는 다양하다. 하느님은 계신지, 또 무신론 시대의 하느님은 어떤 모습인지, 하느님이 계신다면 왜 악이 있는 것인지, 하느님은 기도를 들어주시는지, 돈이 최고인 시대에 하느님의 자리는 있는지, 가톨릭은 성 문제에 지나치게 보수적인 건 아닌지, 인공지능(AI) 시대에 신앙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차근차근 짚어나간다. 그러면서 신앙이 부정되고 비웃음까지 당하는 시대에 때론 흔들리지만, 그분 안에서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이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주고 싶은 해답, 아니 조언이기도 하다. “신학생 시절, 저를 무척 따랐던 초등부 주일학교 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그 아이가 부모님과 함께 이민 가더니 무신론자가 됐다는 게 아닙니까? 일시 귀국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만났는데, 반가움도 잠시, 무신론자가 된 딸, 그리고 그 딸과 갈등하는 부모님을 보며 한동안 할 말을 잃었지요. 시간이 흐르면서 신앙의 갈등을 겪으며 성당에 다니지 않는 조카들이 보였고, 세례는 받았지만, 더는 신앙생활은 하지 않는다는 분들을 보면서 이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은 그래서 많은 이들이 하느님과 신앙에 대해 갖는 오해를 풀어주려 한다. 돈과 성, 과학과 신앙의 문제를 객관적 시각에서 설명해주며, 신앙생활 전반에 대한 따뜻한 권고도 담았다.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등 신앙생활에 튼튼한 기반이 돼 줄 부분까지 세세히 알려준다. 한 신부는 “신자들도 각자의 생각대로 자기만의 신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면서 “과연 우리가 제대로 하느님을 믿는 것인지 생각해 보고, 또 진정한 하느님의 모습은 무엇인지 의문을 던져봐야 한다”고 주문한다. 또 “하느님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인간의 눈에 다르게 보이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는 진정한 하느님을 찾고 그분과의 관계를 좀 더 올바르게 정립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문채현2020.07.15
코로나19로 교회 공동체 소중함 절감… 위기에 변화하지 못하는 모습에 실망서울대교구, ‘코로나19와 신앙생활’ 긴급 설문조사 결과 가톨릭 신자들은 코로나19로 공동체 미사가 중단된 동안 미사에 참여하지 못하고 성체를 모시지 못한 것을 신앙생활에 가장 큰 어려움으로 생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대부분 가톨릭평화방송 채널과 유튜브 등을 이용해 방송 미사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고, 팬데믹 상황이 다시 발생할 경우에도 온라인을 통해 미사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대교구 사목국(국장 조성풍 신부)은 11일 이 같은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서울대교구 사목 대안 마련을 위한 신자 대상 코로나19와 신앙생활에 대한 긴급 설문조사 결과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7월 17일부터 26일까지 온라인 설문으로 이뤄졌고, 신자 2만 1439명이 참여했다. 질문은 △코로나19로 인한 신앙생활의 어려움 △ 신앙생활과 관련하여 도움을 받고 싶은 것 등 모두 7개 문항이었다.조사 결과 코로나19로 인한 신앙생활의 어려움을 묻는 말에는 ‘미사를 봉헌하지 못하고 성체를 모시지 못하는 게 어렵다’는 대답이 55.4%로 가장 많았다. 이어 ‘신앙생활 전체가 위축될 것 같아 걱정이다’, ‘신심 단체 및 소공동체 모임에 참석하지 못해 생기는 고립감을 느꼈다’ 등의 순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신앙생활의 변화에 대해서는 나이가 많을수록, 그리고 남성보다는 여성이 신앙과 교회 공동체의 소중함을 더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교회 가르침이나 성경을 공부하고 싶다는 욕구는 그다지 높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이후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함께 기도하거나 신앙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늘지 않았다는 답변이 많았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 코로나19 이후 방송 미사 시청이 늘었고, 향후 팬데믹 상황이 올 경우 온라인 송출 플랫폼이 유력한 대안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응답자의 65.9%는 “코로나로 미사가 중단됐을 때 CPBC 또는 인터넷이나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온라인 생미사 또는 녹화 미사를 봉헌했다”고 답했다. 향후 팬데믹 상황에서 본당 및 교구로부터 신앙생활과 관련하여 어떤 도움을 받고 싶은지에 대해서도 59.4%의 신자들은 온라인 미사를 봉헌해주길 바랐다.주관식 답변에서는 팬데믹 위기에 변화하지 못하는 교회와 사목자의 모습에 실망과 우려를 토로한 이들이 많았다. 또 온라인 설문임에도 30대 이하 응답자 비율이 12.8%에 그쳐 교회 일에 관심을 두지 않는 젊은 층의 현실이 드러났다. 서울대교구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앱 개발과 온라인 신앙교육 확대 등 다양한 사목 대안을 검토하고 있다. 사목국 기획연구팀 이영제 신부는 “본당의 사제, 수도자, 단체장, 그리고 본당의 신자들끼리 소통하고 교우들과 친교를 나눌 수 있는 앱을 개발할 계획”이라며 “미사, 강론 등 신앙 콘텐츠뿐 아니라 신자들이 서로 의견을 나누고 소통하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구는 설문조사 결과를 반영해 내년 상반기에 앱을 출시할 계획이다.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cpbc2020.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