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47) 여행지 : 그리스도교 영성](//cpbc.co.kr/CMS/newspaper/2022/03/rc/819827_1.1_titleImage_1.jpg)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47) 여행지 : 그리스도교 영성 ‘영성’(靈性)이란 자신의 갈망이나 삶의 에너지가 어디로 향하는가를 알고 이것을 실행하는 능력입니다. ‘그리스도교 영성’이란 바로 우리의 갈망이 그리스도를 지향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는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 하느님께 이르는 여정이지요.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고귀한 신분으로 축성되었을 뿐 아니라, 하느님(예수님)을 닮도록, 즉 성인(聖人)이 되도록 초대를 받았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인은 우리와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매일의 덕을 실천하는 옆집 이웃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라」 6~7항) 그럼 ‘그리스도교 영성’으로 퀴즈 여행을 떠나볼까요?퀴즈 여행1. 영성에 대해 설명한 것 중 올바르지 않은 것은?①영성은 그리스도교에만 있다. ②영성과 신심(信心)은 같은 의미이다.③‘수덕 신비’라는 말로 사용되어 왔다. ④영성은 너무나 다양하다. 2.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우리에게 올바른 자선과 기도와 또 무엇을 권고하셨는가? 3. 신심(信心)이란 믿고 섬기는 마음인데, 모든 신심의 궁극적인 대상은 누구인가?4. 성체 신심을 기르는 ‘성시간’, ‘성체 강복’은 본당에서 매월 언제 행하여지는가? 5. 예수 성심 신심을 전파하는 데 크게 이바지한 성인은 성 요한 에우데스와 누구인가? 6. 마리아 파우스티나 성녀가 전파한, 2000년에 새로이 나타난 신심은? 7. 다음 수도회에 대한 설명이 올바르지 않은 것은? ①베네딕도회는 수도 생활의 기초를 놓았다. ②프란치스코회는 청빈 정신을 이상(理想)으로 한다. ③도미니코회는 학문 연구, 설교에 주력한다. ④가르멜회는 개혁을 통해 활동 수도회가 되었다. 정답 1 □번 2 □식3 □□님4 첫 □요일 5 성녀 □□□□타 마리아 알라코크 6 하느님의 □비 신심 7 □번(정답은 ‘가이드 설명’에서 확인하십시오) 가이드 설명1. 그리스도교 영성 요즘 현대인이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가 ‘영성’이라는 말입니다. ‘영성’이란 우리를 행동하게 하는 어떤 태도나 정신, 또는 가치관을 말하는 것으로, 특정 종교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교에 ‘그리스도교 영성’이 있듯이, 불교에는 ‘불교 영성’ 이슬람교에는 ‘이슬람교 영성’이 있지요. 이렇게 영성은 너무나 다양하고, 각기 고유한 영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성’을 예전에는 ‘신심’(信心), ‘수덕 신비’(修德神), ‘완덕’(完德) 등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2. 예수님의 권고 모든 신자는 거룩하고 완전한 자가 되는 영성 생활로 초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 설교에서 우리에게 올바른 자선, 기도, 단식에 대해 가르치시며(마태 6,1-18), 구체적으로 그 길을 제시하십니다. 이에 따라 우리는 다음과 같이 ‘영성 생활의 세 가지 축’을 세울 수 있지요. ①기도와 신심(기도, 성경 읽기 및 전례 참여) ②사랑의 실천(본당 및 봉사 활동) ③사회 정의(JPIC 운동에 참여)참조) 1. JPIC는 정의(Justice), 평화(Peace), 창조질서의 보전(Integrity of Creation)의 약자이다. 2. ‘영성 생활의 세 가지 축’과 연결하는 ‘가톨릭 신자 생활 다섯 기둥’은 다음 회(48회) ‘여행 옵션’에 나온다. 3. 신심 신심(信心)이란 믿고 섬기는 마음으로, 기도와 신심은 연결됩니다. 기도를 통해 신심이 길러지며, 신심이 있어야 더 깊게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모든 신심의 궁극적인 대상은 하느님이십니다. 기도와 신심은 우리 각자가 하느님과 맺는 인격적 관계를 깊게 하지요. 이 인격적 관계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며, 행동으로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면서 우리의 영성을 이루게 됩니다. 4. 성체 신심 성체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총체적 사랑을 상징하기에, 성체를 사랑하고 흠숭하며 ‘성체 신심’을 키워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성체 신심은 사제와 함께 봉헌한 미사를 개인적으로 연장하는 것이며, 다음 미사의 영성체를 준비하는 것이지요. 보통 본당에서 매달 첫 목요일 저녁에 행하는 ‘성시간과 ‘성체 강복’에 참여하고, 성체 앞에서 자주 ‘성체 조배’ 하기를 권장합니다. 5. 예수 성심 신심 예수 성심(聖心)은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지극한 사랑의 마음을 말합니다. 예수 성심 신심은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묵상하며, 우리도 예수님께 사랑의 마음을 드리는 것이지요. 예수 성심 공경은 특히 17세기, 성 요한 에우데스(John Eudes)와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Margarita Maria Alacoque)에 의해 전파되어, 성시간과 예수 성심 축일이 공적으로 생겨났으며, 오늘날 6월을 예수 성심 성월로 지내고 있지요. 6. 새로운 신심 하느님의 자비 신심은 2000년에 새로이 나타난 신심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자비’야말로 현시대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는 판단에서 2000년, 하느님 자비의 사도로 잘 알려진 마리아 파우스티나 수녀를 시성하면서, 2001년부터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지내도록 선포했습니다. 또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6년을 특별 희년(禧年)으로, ‘자비의 해’로 선포했지요. 7. 다양한 영성 역사적으로 영성은 주로 수도회를 중심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수도회의 창립자는 하느님으로부터 카리스마(특별한 영적 재능)를 부여받아 수도 공동체를 통해 영성의 꽃을 피웠지요. 창립자의 카리스마는 개인이 받았지만, 그 시대에 요구되는 은사이기도 합니다. 크게 다섯 가지 수도회(영성 학파)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①베네딕도회: 수도 생활(공동생활)의 기초를 놓음 ②프란치스코회: 청빈 정신을 이상으로 함 ③성 도미니코회: 학문 연구, 설교에 주력함 ④가르멜회: 개혁을 통해 철저한 봉쇄 생활을 함(남자 가르멜회는 관상과 활동의 균형) ⑤예수회: ‘영신수련’과 복음 선교에 앞장섬. 여행 옵션 : 하느님 자비의 5단 기도예수님께서 파우스티나 수녀에게 나타나 하느님 자비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는데(1935년), 묵주기도처럼 묵주를 이용하여 다음과 같이 바친다.1) 주님의 기도, 성모송, 사도신경을 1번씩 바친다.2) 각 단이 시작되기 전 큰 묵주 알에서: “영원하신 아버지, 저희가 지은 죄와 온 세상의 죄를 보속하는 마음으로 지극히 사랑하시는 당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 영혼과 신성을 바치나이다.”3) 각 단의 10개의 묵주 알에서: “예수님의 수난을 보시고 저희와 온 세상에 자비를 베푸소서.”2)와 3)의 과정을 5단에 걸쳐 반복함. 마지막) “거룩하신 하느님,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분이시여, 저희와 온 세상에 자비를 베푸소서.”(3번 반복)예수님께서는 “아무리 악한 죄인이라도 이 기도를 한 번이라도 바친다면 나의 무한한 자비를 얻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사진>은 성녀 파우스티나가 본 환시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인데, 부활하신 예수님의 심장에서 두 줄기 빛(물을 상징하는 흰색, 피를 상징하는 붉은색)이 발하고 있다. 여행 기념품우리는 세례를 통해 하느님을 닮아가는 영적 여정의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성 베네딕도가 되라고, 성 프란치스코가 되라고, 성녀 데레사가 되라고 하지 않습니다. 각자가 하느님에게 받은 고유한 씨를 아름답게 피워 진정한 나의 꽃이 완성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나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나의 고유한 영성을 어떻게 살아내고 싶습니까? 마리 파울리타 수녀(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 문채현2022.03.08

북에서 세례 받고 남에서 견진성사대전교구 대화동본당 이순전 할머니, 1949년 황해도 송화성당 영세 72년 만에 감격의 견진 김종수 주교가 황해도 송화성당에서 세례 받은 지 72년 만에 견진을 받는 이순전 할머니 이마에 도유하며 성령 특은의 날인을 새기고 있다. 72년 만의 견진성사로 눈물이 옷깃을 적셨다. 1935년생, 올해 우리 나이로 87세인 이순전(아가타) 할머니가 그 주인공이다. 성령 강림 대축일인 23일 대전교구 대화동성당에서 봉헌된 교중 미사 중 33명에 대한 견진예식에서 교구 총대리 김종수 주교가 축성 성유를 도유하고 안수하자 할머니는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1949년 당시 서울대목구 관할이던 황해도 송화성당에서 1944년 9월부터 1950년 9월까지 3대 주임으로 재임한 서기창(프란치스코) 신부에게 세례를 받은 지 꼭 72년 만이었다. 2009년 1월 대전교구에 양업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작성한 그의 교적에는 ‘재령성당’으로 기록돼 있지만, 할머니는 자신이 고향 송화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회고했다. “서 신부님한테 세례를 받았는데, 신부님이 성당에서 정치보위부원들이 던진 폭탄에 맞아 돌아가시는 걸 제가 목격했어요. 그러고 나서 곧장 단신 월남했고, 한동안 군산에서 피란살이를 하다가 대전으로 와서 정착했어요. 한동안 잡화점 점원으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다가 혼인했는데, 4남 2녀를 뒀어요. 혼자서 교적도 없이 월남했기에 영성체도 못 하고 겨우 신앙생활만 하다가 10여 년 전에야 교적도 만들고 2012년에야 판공을 한 뒤 성체도 받아 모시게 됐어요. 이제 견진성사까지 받았으니 너무도 기쁘고,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이 할머니가 견진을 받게 된 건 최근 본당에서 구역장을 통해 견진자를 모집한 게 계기가 됐다. 평소 친분을 나누던 교우 윤순분(체칠리아, 75)씨에게 “실은 내가 이북에서 세례받고 견진을 못 받았는데, 이번에 견진을 받을 테니 대모를 서달라”고 부탁한 게 계기였다. 이에 구역장을 통해 견진교리를 받게 됐는데, 대화동본당 주임인 김재덕 신부는 이 할머니가 일단 거동이 불편해 걷기 힘들고 고령인 데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심각하다는 이유로 신약성경에서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과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을 읽는 것으로 견진 교리를 대신하도록 했다. 성령의 열매와 은사에 대한 바오로 사도의 말씀으로 견진 교육이 충분하다는 게 김 신부의 사목적 판단이었다. 윤순분씨는 “같은 아파트에서 알고 지낸 지가 30∼40년이 넘었는데, 평소 신앙생활이나 기도생활을 무척 열심히 하시며 사셔서 아가타 할머니가 견진을 받지 못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며 “그래서 기꺼운 마음으로 대모가 되겠다고 했고, 앞으로도 할머니가 신앙생활을 하시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돕고 동반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재덕 신부도 “하느님께 마음을 열어 견진성사를 받으시려는 것만으로도 하느님께서 축복해주시고 초대하시는 거니까,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과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을 읽도록 했는데, 견진에 앞서 숙제를 하셨냐고 물었더니 ‘성경이 찢어질 정도로 읽었다’고 답변해 주셔서 정말 기뻤다”고 밝혔다. 이어 “북에서 세례를 받으시며 시작된 신앙이 72년 만에 성령의 도우심으로 남에서 견진을 받는 것으로 열매를 맺는 걸 보니 하느님께서 이렇게 오묘한 방법으로 우리 민족의 화해와 일치, 한반도 평화를 위한 메시지를 주시고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평화신문2021.05.26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30) 여행지 : 알아야 할 일곱 성인](//cpbc.co.kr/CMS/newspaper/2021/11/rc/812514_1.2_titleImage_1.jpg)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30) 여행지 : 알아야 할 일곱 성인마리 파울리타 수녀(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여러분은 자신의 수호성인 외에 어떤 성인을 사랑하고 공경하고 있습니까? 가장 좋아하는 성인은 누구이며, 다른 성인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전쟁에서 부상을 당한 성 이냐시오는 병석에서 읽은 성인전으로 말미암아 마음의 변화를 일으켜, 그동안의 자신의 삶을 회개하여 위대한 삶으로 나아갔습니다. 이렇게 훌륭하게 살았던 성인의 삶은 편안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에 하느님 사랑의 불을 지르며 안일한 우리 삶의 전환을 요구합니다. 여기 소개하는 일곱 성인들은 성경에 나오지 않은 후대의 분으로, 교회 역사상 널리 알려진 유명한 성인들이기에 신자인 우리가 꼭 알아 그 모범을 따라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 ‘알아야 할 일곱 성인’ 퀴즈 여행을 떠나볼까요?퀴즈여행①성 프란치스코 ②성녀 아기 예수의(소화) 데레사 ③성 이냐시오 ④성녀 가타리나 ⑤성 아우구스티노 ⑥성녀 마더 데레사 ⑦성 토마스 아퀴나스 * 다음 내용에 해당하는 성인은 누구인지 위에서 찾아 그 번호를 적으세요. 1. 이교도에 빠지고 방탕한 생활을 하였으나, 어머니의 기도로 회개하여 위대한 교회 학자가 됨2. 가난을 사랑하는 수도회를 창설하고, 그리스도의 오상을 받아 제2의 그리스도라고 불리어짐3. 지적 능력을 통해 하느님을 탐구하고 섬긴 그리스도교 최대의 신학자로 평가받음4. 신비적인 체험을 적어 책을 간행한 그리스도교 신비가의 대가이며 교회 학자임 5. 자신의 영적 체험으로 유명한 저서를 남기고, 같은 뜻을 가진 동료와 예수회를 세움 6. 수도원 안에서의 평범한 삶을 ‘작은 길’이라는 영성을 통해 하느님과 일치하며 살아감 7. ‘부르심 속의 부르심’의 소명에 따라 가장 가난한 이들 속에 살며 그들에게 봉사함 답란1. □번 2. □번 3. □번 4. □번 5. □번 6. □번 7. □번 (정답은 ‘가이드 설명’에서 확인하십시오) 가이드 설명 1. 성 아우구스티노(354~430년, 북아프리카, 8월 28일 축일) 이교도인 부친과 그리스도인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젊어서 이교도에 빠지고 방탕한 생활을 하였으나, 어머니 성녀 모니카(8월 27일)의 눈물과 기도로 회개하여 초대 교회의 가장 위대한 주교, 교부, 교회 학자, 영성가가 되었지요. 회심의 계기가 된 것은 밀라노에서 성 암브로시우스(12월 7일) 주교의 설교에 큰 영향을 받으면서, 그리고 어떤 소리를 듣고 펼쳐 읽어 본 성경 말씀(로마 13,13)이지요.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여 사제품을 받고 후에 주교가 되었으며, 이단들에 대항하여 가톨릭 교리를 정립하였고, 자서전인 「고백록」을 비롯하여 많은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2. 성 프란치스코(1181~1226년, 이탈리아의 아시시, 10월 4일 축일)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젊은 날을 낭비하며 지내다가 어느 날 주님의 소리를 들었고, 한 한센병 환자를 만나 입맞춤을 한 후 삶의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성 다미아노 성당에서 기도하던 중 “가서 허물어져 가는 나의 집을 고쳐 세워라”라는 소리에 입고 있던 옷까지 벗어 아버지에게 넘겨주고 집을 나오지요. 이후 가난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들어 ‘작은 형제회’라는 수도원을 세웁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주님의 오상(五傷, 다섯 상처)을 받아 ‘제2의 그리스도’라고도 불리지요. ‘태양의 찬가’를 짓고 자연을 사랑하여 생태계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습니다. 3. 성 토마스 아퀴나스(1224/1225~1274년, 이탈리아의 아퀴노, 1월 28일 축일)신심 깊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최고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수도자가 되고자 가족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도미니코회에 입회하였지요. 당시 그의 스승 성 대 알베르토(11월 15일)는 그에 대해 “이 말 없는 황소는 그의 울부짖음으로 전 세계를 가득 채울 것이다”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과연 그 예언대로 그는 많은 강의를 하고 책을 저술하였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저서가 「신학대전」(Summa Theologiae)입니다. 겸손한 그는 지적 능력을 통해 하느님을 더 깊이 탐구하고 철저히 섬긴 그리스도교 최대의 신학자로 평가받으며, 교회 학자, 학교와 학생의 수호성인으로 선언되었지요. 4. 성녀 가타리나(1347~1380년, 이탈리아의 시에나, 4월 29일 축일)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불과 6살의 나이에 자신의 생애를 미리 보는 신비한 체험을 하였습니다. 결혼을 거부하고 오로지 기도와 단식에만 전념하다가 도미니코 제삼 회원이 되었는데, 잦아진 환시로 인해 곤혹을 많이 겪었지요. 병자들을 간호하고 죄수들을 방문했으며, 평화를 전하는 사람으로서 많은 분쟁을 해결했는데, 그중 하나는 아비뇽의 교황을 로마로 돌아오게 하는 일이었지요. 자신의 신비적인 체험들을 적어 「대화」라는 제목으로 간행하였는데, 이 책 외에도 많은 서한을 남긴 그리스도교 신비가의 대가이며 교회 학자입니다. 5. 성 이냐시오(1491~1556년, 스페인 로욜라, 7월 31일 축일)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방탕하고 무절제한 생활을 하다가 명예를 얻으려고 군에 들어갔습니다. 부상 중에 병실에서 우연히 읽은 성인전을 통해, 또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모님의 환시를 체험한 후 회심하여 기도와 극기와 묵상의 길로 들어서지요. 만레사 동굴에서 영적 수행을 하다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글을 적는데, 이것이 유명한 「영신수련」(Exercitia Spiritualis)의 뼈대가 됩니다. 이후 같은 뜻을 가진 동료들을 만나 그들과 함께 ‘예수회’(예수의 동반자라는 뜻)라는 수도회를 세웠습니다. 그는 피정과 영신수련의 수호성인으로 선언되었습니다.6. 성녀 아기 예수의(소화) 데레사 (1873~1897년, 프랑스 리지외, 10월 1일 축일)자녀를 훌륭히 키워 성인(聖人)이 된 부모와 자녀 5명이 모두 수도자가 된 성가정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 어머니를 잃고 언니들이 수도원에 들어가 상실의 어려움을 겪었으나, 성모님의 발현과 성탄절의 특별한 체험을 통해 자신의 소명인 사랑의 삶을 살아가기로 다짐하지요. 교황의 특별 허락을 받아 14세의 어린 나이에 가르멜 수도원에 입회하여, 수도원 안에서의 평범한 삶을 ‘작은 길’이라는 자신의 고유한 영성으로 하느님과 일치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결핵으로 24세 선종하게 되는데, 이후 출판된 그녀의 자서전으로 그녀에 대한 신심이 급속도로 퍼져나갔지요. 선교의 수호자이며, 일상 안에서 주님과 일치하는 영성을 가르쳐 주어 교회 학자로 선포되었습니다. 7. 성녀 마더 데레사(1910~1997년, 인도 콜카타에서 활동, 9월 5일 축일)어려서부터 유복하고 신심 깊은 어머니에게 신앙을 배워 성인과 선교사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18세에 로레토 성모수도회에 입회하여 학교에서 가르치며 후에 교장이 되었지요. 어느 날 피정을 위해 기차 여행을 하던 중 ‘부르심 속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현재 수도회를 떠나 가난한 사람들 속에 살며 그들에게 봉사해야 한다는 소명을 들은 것이지요. 결국, 가난한 이들을 위해 그들 안에서 살고자 ‘사랑의 선교회’를 창립하여 한평생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살았지요. 1979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생전에 ‘살아있는 성녀’라고 불리었던 것처럼 선종한 지 20년도 안 되어 시성 되었습니다.여행옵션 : 남녀의 우정을 나눈 성인들성 프란치스코(10/4) - 성녀 클라라(8/11)같은 아시시의 명문가 출신인 클라라는 프란치스코의 설교에 감명을 받아 그의 지도로 ‘가난한 자매들의 수도회’(현 클라라 수도회)를 설립하였고, 계속적으로 그와 영적인 관계를 이어갔다. 성녀 대 데레사(10/15) - 십자가의 성 요한(12/14) 개혁 가르멜 수도회를 세우던 대 데레사 수녀는 기존의 수도회를 옮기고 싶다는 요한을 만났을 때, 그를 설득하여 최초의 맨발의 가르멜 남자 수도회를 세우도록 권유하였고, 이것의 설립을 도와주었으며, 서로 영적인 교류를 이어나갔다. 프란치스코 드 살(1/24) - 요안나 드 샹탈(8/12) 네 명의 어린 자녀들을 둔 젊은 남작 미망인인 요안나는 프란치스코 주교의 강론을 듣고 그에게 영적 지도를 부탁하여, 그들의 영적인 우정이 자라났다. 이후 요안나는 그의 도움을 받아 성 마리아 방문 수도회를 설립하였다.여행 기념품위에서 소개된 성인들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느님께 나아간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재능(지적 능력, 기도와 묵상, 자연 사랑, 화해 능력, 영적 예지, 연민의 마음 등)을 오로지 하느님 사랑을 위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발휘하였습니다. 일곱 성인 중 가장 마음에 와 닿은 분은 누구입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성인을 닮아가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마리 파울리타 수녀(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 cpbc2021.11.03
[사설] 사랑 실천하는 사순 시기 설 연휴 내내 핫 이슈는 ‘폭력’이었다. 아동 폭력과 학교 폭력, 공권력 폭력, 생태계 폭력이 국내외 뉴스를 도배했다. 문제는 그 피해자가 항상 힘없는 이들이고, 그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라는 점이다. 폭력의 심각성은 성경에도 잘 드러난다. 오죽하면 십계명 중 하느님과 관련한 앞의 세 계명을 제외한 나머지 일곱 계명은 폭력과 관련돼 있다. 성경은 살인이 도둑질보다 죄가 더 무겁고, 부모와 자녀에 대한 폭력이 다른 사람에게 행한 폭력보다 더 무겁다는 것을 알려준다. 또 그 폭력이 고의가 아닌 무지에서 비롯됐다 해도 그에 대한 책임을 줄이거나 없앨 수 없다고 가르친다. 예수님께서도 우리 폭력의 희생양이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수난을 통해 죄의 폭력성과 다양성을 가장 뚜렷하게 드러내셨다. 불신, 살인적인 증오, 지도자들과 백성들의 거부와 조소, 빌라도의 비열함, 병사들의 잔인함, 유다의 배반, 베드로의 부인, 제자들의 도망이 그대로 폭로됐다. 하지만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 어둠의 폭력은 우리 죄에 대한 용서가 끊임없이 베풀어지는 원천이 되었다. 이처럼 우리가 자주 간과하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다. 하느님의 은총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는 사순 시기에 더욱 강렬하게 드러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올해 사순 담화를 통해 “사순 시기는 희망의 때”라며 “하느님의 사랑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자”고 촉구했다. 사랑은 하느님의 본성이다.사순 시기를 맞아 절제와 극기를 결심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죄와 폭력의 증식을 끊어보길 권한다. 죄는 개인 행위이지만 그 죄에 여러 사람이 협력하고 관여하면 사회악이 된다. 참회와 보속으로 우리가 저지른 모든 폭력을 종식하고, 하느님 은총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사순 시기가 되었으면 한다. 평화신문2021.02.17

현지인 사제와 찾아가는 사목으로 ‘더 넓은 우리’ 개척한다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 대전교구 이주사목부 ‘천안모이세’ 지난 2월 당진성당에서 필리핀공동체 지역 리더들이 선서하고 있다. 26일로 제107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을 맞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 이주민과 난민의 날 주제를 ‘더욱더 넓은 우리를 향하여’로 정하고, 이 세상에서 선주민과 이주민이 함께하는 여정을 위해 이주사목의 지평을 분명히 보여줬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이주민과 난민에 대한 사목적 배려와 함께 형제적 사랑 실천을 통해 이주민, 난민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꿈꾼다. 이에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도 묵묵히 이 꿈을 이루고자 이주민 사도직의 길을 걷는 대전교구 이주사목부 천안모이세를 찾았다. 지역 외국인 공동체와 호흡하는 천안모이세주일이면, 필리핀 출신 천안 모이세 활동가 에밀리아노 파하르도(47)씨는 홍성과 서산, 당진, 신합덕, 천안으로 향한다. 매달 한 차례 지역별 필리핀 공동체를 방문해 이주민들과 함께 미사에 참여한다. 또 공동체별 친교와 신심 행사에도 함께한다. 그리고 노동, 의료, 출입국 상담 창구를 열어 필리핀 이주민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말씀의 선교 수도회 빅토르 플로리다 신부 등 3명의 전담ㆍ협력 사제, 2명의 협력 수녀와 함께하는 지역공동체 사도직을 통해 결혼 이주민과 이주노동자들, 유학 중인 학생들, 연예인이나 예술인들을 돕는다. 지역 공동체가 적게는 50∼60명, 많게는 120명을 훌쩍 넘겨 힘에 부친다. 코로나19로 지역별 공동체 미사나 행사 참석이 많이 줄었는데도 이 정도다. 매주 지역 공동체를 방문하지는 못하기에, 한 달에 두 번씩은 저녁에 온라인 화상 시스템을 통해 ‘말씀 나눔’도 한다. “어떻게 하면 이주민들이 한국에서 잘 살게 해줄지를 상담하는 데 집중합니다. 말씀 나눔은 성경공부에 갈증을 느끼는 결혼 이주 여성들이 인근 개신교회에 성경공부를 하러 다니는 걸 보고 시작했고요. 결혼 이주 여성들에 대한 상담도 많습니다. 임금체불이나 산재, 노동 착취,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 등을 나누다 보면 진이 다 빠지죠. 때로는 이들이 모국으로 돌아가 어떤 비지니스를 할지 사업 모델이나 대출 문제 등을 나누기도 하지요. 눈물도 있고, 또 그만큼 보람도 큽니다.” 베트남 출신인 느 아숨타(미리내 성모성심 수녀회) 수녀는 지역별 베트남공동체를 돌본다. 특히 천안 베트남공동체의 토요일 저녁 미사와 주일 오후 1시 미사를 돕는데, 참여자가 200명이나 된다. 해서 최근엔 코로나19 감염이 걱정돼 미사를 두 대로 늘렸다. 말씀의 선교수도회 바 따 탁 신부와 함께하는데, 요즘 들어 공동체가 활성화하는 게 눈에 띈다. “처음엔 힘들었지요. 200명을 관리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어요. 매일 만나는 것도 아니고 주말에만 만나는 데다 코로나19로 미사만 보고 나면 빨리 가라고 해야 하니까요. 그래도 1년쯤 되고 나니 이제는 조금 경험이 붙었어요. 천안이나 보령, 서천 등 3개 지역 베트남공동체 대표들을 자주 만나 진료나 한국인과의 소통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이야기를 나눠요. 필요하면 한글 교육도 할 생각입니다. 비대면 교리수업은 꾸준히 하고 있고요. 베트남 이주노동자들끼리 혼인하는 경우도 꽤 돼 혼인교리도 생각보다 많아요. 앞으로 장항이나 태안, 대전에도 베트남공동체를 설립할 계획입니다.” 현지인 성직자·수도자가 사도직 공동체 이뤄2004년에 문을 열어 올해로 개소 17주년을 맞는 천안모이세는 이처럼 ‘찾아가는’ 이주사목을 통해 ‘더욱더 넓은 우리’를 개척한다. 민족별로 현지인 성직자와 수도자를 파견받아 이주민 사도직 공동체를 이루고 이들이 이주민을 사목하는 형태다. 2018년 6월 말 현재, 국내 이주민은 119만 8000여 명, 충남에만 이주노동자와 이주민이 6만 5500여 명(5.5%)에 이르러 갈수록 지역 사회가 다문화돼 가자 이에 대한 교회 응답으로 이주사목의 틀을 확 바꿨다. 그 나라 사제가, 그 나라 언어로, 그 나라 이주민이 사는 지역에 직접 가서 이주민을 돌보는 ‘찾아가는’ 사목이다. 이를 위해 새로운 비전 속에서 현지인 사제를 충원하고자 수도단체와 계약을 맺었다. 수도사제나 수녀들을 파견받아 천안모이세를 중심으로 성직자나 수도자들이 공동체를 이뤄 한데 모여 살고 공동생활을 하면서 매일같이 협의했다. 이를 통해 사도직 활동을 진행하고 지역별 민족공동체를 돌보는 방식으로 사도직 방향과 내용도 바꿨다. 이에 따라 현지인 사제나 수도자들이 함께하는 미사 전례나 상담으로 민족 공동체가 부쩍 활성화됐다. 이주민이나 이주노동자들과의 좀더 깊은 ‘소통’이 가능해졌고, 많은 민족끼리 모이는 ‘자조 공동체’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있다. 지금은 민족 공동체가 베트남과 필리핀, 동티모르 공동체 등 3개에 그치지만, 앞으로 미얀마 등 새로운 민족 공동체도 생겨날 것으로 보인다.베트남 출신인 응웬 티 옌 니(미리내 성모성심 수녀회) 수녀도 “지난 2월에 와서 이제 이주민 사도직을 한 지 7개월째인데, 어려운 친구를 도울 때마다 하느님께서 저를 통해서 쓰신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특히 임금체불이 생기면 다른 센터와 연계해 해결하는데 짜증 나고 힘든 경우도 많지만, 기도를 통해 해결한다”고 말했다.미얀마 출신으로 필리핀공동체 사도직을 지원하는 너무 테레사(미리내 성모성심 수녀회) 수녀는 “이주사목은 사실 처음이라서 힘들고 정신이 없지만, 하나하나 배워가고 있다”면서도 “한국에 들어와 있는 미얀마 이주노동자나 이주민들은 불교 신자가 대부분이지만, 미얀마 친구들을 위한 민족 공동체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찾아가는 이주민 사목천안모이세는 사업을 교회사업과 사회사업, 운영지원사업 등 세 분야로 나눠 조직을 운영해 나간다. 교회 사업은 전례나 민족공동체 활동, 신심행사로 나눠 9개 지역에 800여 명을 돌본다. 사회사업은 신자든 비신자든 일반 사업과 지역사회 다문화 사업으로 나눠 다문화가정과 아동 지원활동, 노동상담, 의료서비스 제공, 이주민 교육ㆍ긴급 지원, 국내와 지역 연대활동, 공공부문 통ㆍ번역활동, 찾아가는 다문화교육, 다문화 인식개선활동, 체험활동 등을 펼친다. 운영지원사업은 사업 운영과 지원, 특히 홍보와 후원, 교육을 위주로 진행한다. 천안모이세 대표 박찬인 신부는 “통계를 보면 이주민이 국내에 119만 명 정도지만, 실은 미등록자를 포함하면 30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면서 “기존 이주민 사도직이 도시 중심의 영어 미사 봉헌에 그쳤다면, 이제는 찾아가는 이주민 사목 비전을 통해 현지인 사제나 수도자들이 자국의 이주민들을 돌보는 형태로 사목 패러다임을 바꿨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러한 비전이 조직 개편을 통해 어느 정도 새로운 틀이 정착되면, 이주민이나 이주노동자들의 출신국가에 재난이 생겼을 때 이들과 함께하는 국제협력사업이나 고령화돼 가는 이주민들을 위한 요양원 사업과 노인복지활동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사진=천안모이세 제공 cpbc2021.09.15

조선인 첫 사제 김대건, 칼을 맞고 거룩한 죽음을 맞다[신 김대건·최양업 전] (47)김대건 신부의 순교 한국인 첫 사제 김대건 신부는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그림은 탁희성 화백의 김대건 신부 순교화. 이름: 김대건(우대건) 나이: 25세 출신: 중국 광동성 오문현(현 마카오) 종교: 천주교 압수 물품: 언문 소책자 1권, 붉은 비단 주머니 1개(성모자상과 예수성심상이 새겨진 무명 조각 2개가 들어있음). 특이 사항: 머리카락을 반쯤 잘라 기르지 않은 흔적이 있음. 진술 내용: 본래 중국 광동성 오문현 사람으로 성은 우(于)이고, 이름은 대건인데 그 고을에서 자랐다고 함. 부친은 죽었고, 모친은 살아 있으며 장가는 들지 않음. 15~16세 천주교를 배웠으며, 23세 때 상강(중국 호남성에 있는 강)에서 상선을 타고 요동에 도착한 후 갑진년(1844년) 11월 책문 변경에서 조선 지방을 보고자 언 압록강을 몰래 스스로 건너옴. 1845년 8월 한양에 도착해 황해도 산천을 유람하고자 마포로 나가 뱃삯을 치르고 임성룡의 배를 빌려 연평도에 들러 등산진에 이르러 이곳 진영에서 배를 압류하는 일로 소란을 일으키다 체포됨. 김대건은 스스로 국경을 넘어와 천주교를 봉행했고, 외국 선박과 서로 통함에 이르렀으니 이러한 죄에 하나만 해당해도 죽임을 용서할 수 없을 터인데, 여러 형구를 늘어놓고 반복해 힐문했으나 “천주를 위해 한 번 죽겠다”고 하면서 끝까지 자백하지 않고 있음. 외국 사람과 관련되었기에 갑자기 처단하기가 어려움. 칼과 수갑을 찬 채 한양으로 압송김대건 신부를 문초한 황해 감사 김정집의 장계 주요 내용이다. 헌종 임금은 이 장계를 읽고 “기해년(1839년)에 사교를 다스린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 또 이렇듯 외국인이 몰래 넘어왔다고 하니 어찌 분통함을 이기겠는가. 틀림없이 데려와 머물러 있게 한 무리가 있을 것이니 사건 전모를 조사할 방도를 비변사로 하여금 속히 아뢰고 처리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임금의 명령이 있자 좌포도청 군관 홍창린, 김진연, 홍창열, 우포도청 군관 김인철, 조민식, 이시영 그리고 군사 4명이 김대건 신부 일행을 한양으로 압송하기 위해 황해 감영으로 급파됐다. 이들은 김대건 신부와 함께 체포된 임성룡과 엄수, 그리고 뒤늦게 잡아들인 임성룡의 아버지 임군집, 김성서의 아버지 김중수를 포도청으로 압송했다. 김대건 신부 일행은 붉은 줄로 묶인 채 칼과 수갑을 차고 머리에는 거무스름한 천 자루를 뒤집어쓰고 한양으로 끌려 왔다. 문초 끝에 정체가 드러나다1846년 6월 21일 포도청으로 이송된 김대건 신부는 다음날부터 40여 차례 문초를 받았다. 김대건 신부는 포도청 심문에서도 황해 감사에게 한 진술처럼 중국인이라고 우겼다. 하지만 김 신부는 이틀도 못 가 신분을 자백할 수밖에 없었다. 김 신부가 중국 어선 2척에 맡긴 조선 지도와 편지, 그리고 페레올 주교의 보고서가 압수됐기 때문이다. 황해 감사 김정집은 김대건 신부를 중국인으로 의심해 손을 못됐지만, 임성룡과 엄수를 혹독하게 고문했다. 이 과정에서 임성룡은 김대건 신부가 중국 어선 2척에 고향으로 보내는 편지를 전했다고 자백했다. 이에 김정집은 도내 각 지방관에게 비밀리에 관문을 보내 중국 배가 출몰하는 곳을 염탐해 김대건이 보낸 편지를 되찾아오게 명령했다. 이 명령을 받은 황해 수사 이명학은 부장 유상은과 역학 김용남, 장교 황길승 등을 보내 먼바다를 정찰하게 했다. 이들은 중국 배로 위장해 고죽포 먼바다로 나가 중국 배 5척에 다가가 밀무역 상인이라며 개가죽과 환약을 주고 포구로 와서 거래를 하자고 유인했다. 중국인 뱃사람 중 10명이 이익을 탐해 육지로 오르자 포교들은 이들을 체포해 3명을 풀어주며 김대건이 전한 편지를 찾아오면 나머지 7명을 석방하겠다고 윽박질렀다. 이들은 5월 25일 오후 1~3시경 다시 와 등주에서 온 배 한 척에서 김대건의 편지를 찾았다며 포교들에게 지도 1장과 페레올 주교가 쓴 라틴어 보고서 6장을 전했다. 포교들은 이번에는 다시 김대건이 장연 목동에서 중국 어선에 전한 편지를 찾아오면 모두를 풀어줄 뿐 아니라 후한 상을 주겠다고 타일러 보냈다. 그러자 중국인 어부 2명은 다시 가서 지도 1장과 김대건 신부가 쓴 편지를 찾아왔다. 이 편지와 보고서, 지도 2장은 곧바로 헌종 임금에게 전달됐다.라틴어 보고서는 임금과 대신은 물론 역관조차 읽지 못했다. 그래서 김대건 신부에게 편지 내용을 밝히라고 문초했고, 김 신부는 교회에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그 내용을 얼버무려 알려줬다. 지도와 주교의 보고서, 자신의 편지까지 모두 압수된 것을 안 김대건 신부는 6월 23일 6번째 공초에서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저는 본래 외국인이 아니고 조선의 용인 땅 태생으로, 성은 김이고, 이름은 재복입니다.…”(「일성록」 병오 5월 30일 참조)조정은 발칵 뒤집어지고 프랑스 군함까지 조정은 김대건이 서양말을 배우고 신부가 되기 위해 마카오로 보내졌던 조선인 소년 3명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알고 발칵 뒤집어졌다. 임금은 김대건 신부와 연루된 신자들을 잡아들이라고 명했다. 이에 현석문(가롤로), 남경문(베드로), 한이형(라우렌시오), 김임이(데레사), 이간난(아가타), 정철염(가타리나)가 체포됐다.설상가상으로 1846년 8월 6일 세실 함장이 이끄는 프랑스 군함 3척이 충청도 홍주 앞 외연도에 나타났다. 페레올 주교가 극동대표부장 리브와 신부에게 “세실 함장이나 혹은 다른 함장이 우리 동료들을 살해한 데 대한 해명을 요구하러 조선에 올 결심을 하게 만들 수 있다면, 인류와 천주교에 크게 이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페레올 주교가 한양에서 쓴 1845년 12월 27일자 편지 참조)라고 요청한 것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세실 함장은 조선 정승(영의정) 앞으로 보내는 한문 서한을 8월 9일 조선 측에 전달하고, 10일 조선을 떠났다. 세실 함장의 편지에는 1839년 프랑스 선교사 살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고 다음 해에 회신을 받으러 오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새남터에서 처형, 순교김대건 신부는 프랑스 군함이 조선 연안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이 곧 석방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 신부는 함께 갇혀 있는 신자들에게 “이제 우리는 사형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신자들은 “그럴 말한 일이 생겼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김 신부는 “여러 척이 프랑스 군함이 조선에 와 있는데, 주교님과 안 신부(다블뤼)는 틀림없이 우리의 처지를 알려 줄 것이다. 나는 세실 함장을 알고 있으니, 그분은 틀림없이 우리를 석방시켜 줄 것”이라고 답했다. 김대건 신부의 추측대로 페레올 주교는 프랑스 군함이 조선 연안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함장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 그러나 주교가 군함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이미 그들이 떠나고 없었다. 프랑스 군함의 출몰은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 영의정 권돈인, 우의정 박회수, 예조판서 조병현, 병조판서 김좌근, 좌참찬 김흥근, 수원 유수 이약우, 지돈녕부사 이헌구 등이 1846년 9월 15일 창덕궁 희정당에 나아가 임금에게 “프랑스 오랑캐와 소통한 사악한 김대건 무리의 죄를 물어 빨리 처분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헌종 임금은 “천주교 죄인 김대건을 효수경중(머리를 베어 백성들을 경계토록 함)하라”고 명했다. 김대건 신부의 사형 집행은 다음 날인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있었다. 김 신부는 보라색 겹저고리와 중국 무명천으로 지은 홑바지를 입고 손발이 결박된 채 들것에 실려 형장으로 이송됐다. 이송 경로는 포도청에서 서소문을 거쳐 당고개에서 잠시 쉬었다가 새남터로 갔다. 형장에 도착하자 병사 한 명이 김 신부의 풀어진 상투를 다시 매어 주었다. 그런 다음 웃옷을 벗기고 양쪽 귀에 화살을 꿰었다. 이어 김 신부의 얼굴에 물을 뿌린 후 횟가루 한 줌을 뿌렸다. 김대건 신부의 순교 장면은 증언자마다 다르다. 서소문부터 따라가 김 신부의 순교를 눈으로 본 박순집(베드로)은 “단 두 번의 칼을 받고 참수됐다”고 증언했다. 목격자의 증언을 들은 최양업 신부의 동생 최(선정) 베드로는 “신부의 머리가 도끼에 잘려 떨어졌다”고 했다. 신자들로부터 김 신부의 순교 장면을 듣고 아주 자세히 편지에 묘사한 페레올 주교는 “8번 칼을 맞고 머리가 떨어졌다”고 기록했다. ‘8’은 성경에서 ‘새 출발’과 ‘부활’을 의미하는 수이다. 박순집의 아버지 박 바오로와 한경선, 나창문, 신치관, 이 요한 사도 등이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찾으러 그해 음력 10월 칠흑 같은 밤에 새남터 형장으로 갔다. 이들은 모래를 파고, 한쪽 손에 개에 물린 뚜렷한 자국으로 김 신부의 시신을 확인하고 홑이불로 감싼 후 약 1㎞ 떨어진 와서(瓦署)에 임시매장을 했다. 다음날 밤 몇 명의 교우들이 다시 김 신부의 시신을 파내어 왜고개로 옮겨 매장하고 장례를 지냈다. 이후 박해가 진정되자 신치관과 이민식 등이 왜고개 김 신부의 시신을 찾아 그해 10월 26일 미리내로 옮겨 안장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2.05.10

태아를 위한 기도가 언젠가는 당신에게 닿기를사순에 만난 사람 (2) 가장 약한 생명을 위해 기도하는 ‘생명을 위한 40일 기도’ 참가자들 “낙심하지 말고 계속 좋은 일을 합시다. 포기하지 않으면 제때에 수확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있는 동안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합시다.”(갈라 6,9-10)프란치스코 교황이 발표한 사순 시기 담화 주제다. 교황은 사순 담화를 통해 “가난하고 의지할 데 없는 이들, 버려지고 거부당한 이들, 차별받고 소외당하는 이들을 사랑하기 위한 시간을 보내자”고 촉구했다. 사순 시기를 맞아, “낙심하지 않고 계속 좋은 일을 해 나가는 이들을” 만나봤다.2021년 가을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3번 출구 주변에서 이뤄졌던 ‘생명을 위한 40일 기도’가 올해 봄 3월 2일 재의 수요일부터 같은 장소에서 두 번째 40일을 시작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8차선 왕복 도로를 앞에 둔 인도 한편에서 조용히 기도를 바치던 이들이 해를 넘겨 다시 모였다. 봄기운이 스며드는 3월 10일과 13일 두 차례 생명을 위한 40일 기도 현장을 찾았다. 지난해엔 코로나19 방역지침이 엄격해 기도를 하려면 정해진 시간에 딱 1명씩만 가능했다. 하지만 올해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면 여러 명이 참여해도 무방했다. 지난해는 또 천주교회와 개신교회가 요일을 정해 자리를 지켰지만, 올해는 요일을 나누지 않고 누구라도 자유롭게 기도할 수 있도록 했다. 오가는 이들은 여전히 무심했지만, 기도하는 이들은 낙심하는 기색 없이 오롯이 기도에 집중했다. 10일 오후 기도 참가자가 적은 것 같아 하던 일도 접고 왔다는 장숙의(마리아, 69, 서울대교구 교구생명분과 중서울대표)씨는 “우리가 하는 기도는 겨자씨 같다”고 말했다. “성경을 보면 겨자씨는 세상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땅에 뿌려져 자라나면 어떤 풀보다 커지고 큰 가지를 뻗는다고 하잖아요. 우리 기도도 응답이 없는 듯하고 아무도 듣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분명히 큰 울림이 있으리라 믿어요.” 홀로 현장을 찾은 황순희(63, 온누리교회)씨는 “젊은 사람들이 생명 문제에 눈을 떴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이를 지우는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듯해서 안타까워요. 이 기도는 40일간 같은 장소에서 기도하는 거잖아요. 출퇴근하거나 등교하는 사람들은 매일 우리를 볼 텐데, 분명히 어떤 메시지가 전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온이 올라가면서 날씨가 풀렸다고 생각했는데, 한자리에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으니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두꺼운 겨울 패딩을 챙겨 입은 서윤화(생명을 위한 40일 기도 운동 한국본부 공동대표) 목사는 “지난주엔 핫팩도 소용없을 정도여서 기도하는 분들이 모두 고생했다”고 했다. 하지만 태아들이 당하는 죽음의 고통과 비교할 건 아니었다. 날이 추워도, 비가 내려도 기도는 멈출 수 없는 일이었다. 주일 오후 1시부터 9시까지는 한국 콜롬버스기사단 회원들이 주로 기도를 맡고 있다. 콜럼버스기사단 부천지역 대표 임영범(요셉, 63)씨와 부대표 김배림(바오로, 61)씨는 “누가 알아주길 바라면서 하는 일이 아니다”고 했다. 임씨는 “다들 그냥 지나쳐가지만, 빗방울이 바위를 뚫듯이 기도 효과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성정은(42, 온누리교회)씨는 두 자녀와 함께 기도를 바치러 왔다. 중학교 3학년 아들과 초등학교 5학년 딸은 엄마 성씨와 함께 한 시간 동안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성씨 가족은 지난해에도 기도 운동에 참여했다. 아들 고휘찬군은 “많은 아이들이 죽어가는 걸 다 막을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기도가 생명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단 한 명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기도에 함께하는 이들은 모두 한결같은 마음이었다. 결코 낙심하지 않고 기도를 이어가는 이들은 입을 맞춘 듯 희망을 노래했다. “생명 수호, 기사단의 핵심 정신”한국 콜롬버스기사단 국가평의회 문찬웅 부의장·홍성태 생명위원장“한국에서 생명을 위한 40일 기도가 시작한다고 했을 때 콜럼버스기사단이 당연히 함께 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생명을 지키는 일은 우리 기사단의 핵심 정신이거든요.” 문찬웅(바오로, 사진 왼쪽) 부의장과 홍성태(마태오) 생명위원장은 “미국이나 유럽 콜롬버스기사단은 이미 오래전부터 생명을 위한 40일 기도 운동에 참가해 왔다”고 말했다. 문 부의장은 “생명을 위한 40일 기도와 생명대행진 등에 참여하면서 비로소 낙태가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우리 기사단 형제들도 생명운동을 통해 변화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고 했다. “한 70대 형제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젊었을 때 셋째가 생겨서 그 아기를 지웠는데 평생 한으로 남았다고요. 그 시절엔 나라에서 낙태를 권하던 때여서 그랬지만, 그래도 그래선 안 됐다는 걸 알게 되신 거죠. 콜롬버스기사단 내에서도 생명의 중요성과 낙태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지면서 지난해보다 기도 운동에 참가하는 인원이 부쩍 늘었습니다.”(문 부의장) 홍 생명위원장은 “무심하게 지나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겐 우리의 기도가 가 닿아 한 생명을 살릴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개신교 신자들과도 함께해서 더 좋더라고요. 교회 일치 차원에서 모범이 된다고 생각하고요. 특히 지금은 사순 시기라 보속하는 마음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문 부의장과 홍 생명위원장은 “교황 사순 담화 주제가 꼭 우리 상황과 맞는 듯 싶었다”면서 “열매를 맺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생명 운동에 함께하겠다”고 다짐했다.“하느님 믿는 사람이 나서야죠”아름다운 피켓 대표 서윤화 목사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니까요.” 서윤화 목사<사진>는 확신에 찬 눈빛이었다. 거리에서 팻말을 들고 낙태 실상을 알리며 태아 살리기에 나선지 11년째다. 이번 사순 시기에 생명을 위한 40일 기도운동이 열릴 수 있었던 것도 서 목사 역할이 컸다. “1년에 한 번 가을에만 기도 운동을 하자는 얘기가 나왔어요. 그런데 이 운동은 세계적으로 봄과 가을 두 번 열리거든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기도 중에 하느님께서 ‘내가 원하는 일’이라는 답을 주셨어요.” 사람도 운영비도 홍보도 모두 부족한 상황이었다. 서 목사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니 도와주실 거란 믿음이 생겼다”고 했다. 게다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죽어가고 있는 태아를 생각하니 더는 고민할 일이 아니었다. 마음을 먹고 일을 진행하니 꼭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만큼 도움의 손길이 답지했다. “온누리교회, 신촌감리교회, 오륜교회 등 대형 교회에서 참여하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전에 참여했던 분들도 또 함께하겠다고 하시고요. 특히 주일엔 가톨릭 콜롬버스기사단 분들이 맡아 주셔서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서 목사는 “생명운동, 특히 낙태엔 사람들이 너무나 무관심하다는 걸 느낀다”면서 “그래서 더욱더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칠 때도 많이 있죠. 목사님들 중에선 낙태를 찬성하시는 분도 계시고요. 그래도 단 한 명의 태아를 살릴 수 있다면 우리 신앙인들이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cpbc2022.03.23

코로나 시대, 가톨릭평화방송 없었으면 신앙생활 어쩔뻔 했나[창간 33주년] 가톨릭평화방송(CPBC) 역할과 소명 일러스트=문채현 전 세계적 코로나19 팬데믹에 가톨릭 사회매체의 의미와 가치, 활용 범위는 더 커지고 더 넓어졌고, 더 확장됐다. 일상화된 비대면과 감염증 확산이 1년 6개월이 넘도록 계속되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 사회매체의 역할에 대한 고민 또한 계속된다. 하지만 고민이 클수록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야 한다. 가톨릭교회 사회 매체의 첫 마음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의 열매 중 하나로 평가받는 사회 매체에 관한 교령 「놀라운 기술」(Inter Mirifica)이다.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이에 1967년 홍보 주일을 제정, 사회 매체에 관한 교회의 사도직을 활성화했다. 지난 한 해 초유의 미사 중단 사태까지 겪으며 가톨릭평화방송(CPBC)은 한국 천주교회의 사회 매체 활용을 통한 사도직과 비대면 프로그램 제작에 기꺼이 함께하며 동반해왔다. 이에 제55차 홍보 주일을 맞으며 가톨릭평화방송의 참다운 역할과 소명, 응답을 조명한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비대면의 일상화, 방송 미사 강화로 응답지난 한 해 미사 중단 사태를 겪으며 가톨릭평화방송은 기존 방송 미사의 역할을 새롭게 격상했다. 종전 방송 미사가 병상 중 환우나 고령자, 교도소 재소자 등 미사에 참여하기 어려운 상황에 부닥친 이들을 위한 방송 ‘서비스’에 그쳤다면, 이제는 성체를 받아모시지 못해도 기도를 통해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와 일치한다는 의미의 ‘신령성체’(神靈聖體, spiritual communion)라는 전례적 의미를 살리는 데 중점을 뒀다. 코로나19로 인해 유례없이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주님께 의탁해 어려움을 이겨내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CPBC는 지난해와 올해 특히 전례 프로그램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TV 방송 미사는 평일 4회(06:05, 09:00, 12:05, 18:05), 주일 5회(평일 미사 시간대에 21:00 방송 추가)로 대응했고, CPBC FM 라디오는 평일과 주일을 막론하고 1회(05:00) 방송한다. 방송 횟수도 늘렸지만, 기존에는 새 사제들 하던 데서 벗어나 중견 사제들과 교구장 주교들까지 섭외했다. 시청률도 코로나19 사태 이전과 비교하면, 3~4배가량 늘었다. 미사예물 신청 건수나 후원 ARS도 늘었고, CPBC에 관심도 상당히 높아졌다. 전례 프로그램 강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성체조배’ 프로그램 신설이다. 지난해 성주간 때 특별 편성됐던 성목요일 성시간에 대한 신자들의 반응이 높게 나타나자 이를 정규 편성하게 된 것. 스승 예수의 제자수녀회 서울 본원 성당에서 녹화, 매일 새벽 4시 30분이면, 어김없이 25분간 CPBC TV를 통해 방송한다. 이뿐 아니라 ‘성체조배’를 시작으로 ‘새벽을 여는 기도’ ‘영상 기도’ ‘묵주기도’ ‘삼종기도’ ‘방송 미사’를 잇따라 새벽 시간대에 방송하고, 낮 기도와 전례, 저녁 기도와 전례도 함께 배치함으로써 전례 방송으로서 위상을 높였다. 비대면 프로그램으로 코로나19 극복 전례 프로그램만이 아니다. 코로나19로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신자들을 위해 ‘가톨릭 청춘 어게인’ ‘성경원정대’ 등도 신설했다. 특히 지난해 12월 대림 시기에 새로 편성한 ‘가톨릭 청춘 어게인’은 본당 노인대학에 가지 못하는 어르신을 위한 TV노인대학으로 신설, 체조나 노래교실, 색칠하기, 만들기 등 홈 트레이닝은 물론 노년의 공감대를 나누는 공감 마당, 전례 강좌나 건강 상식을 익히는 배움터, 생활성가를 따라 부르는 노래 기도, 최주봉(요셉) 서울가톨릭연극협회장과 함께하는 성지 순례 등 알찬 내용으로 꾸미고 있다. 또한, 지난해 12월 대림 시기부터 주일학교에 가지 못하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을 위한 ‘성경 원정대’도 새로 편성, 성경을 게임으로 풀어나가도록 했다. 대면 프로그램을 녹화, 비대면으로 내보내는 시도도 하고 있다. 춘천교구 영동가톨릭사목센터 배광하 신부를 초대, ‘배광하 신부와 함께하는 신앙 산책’ 코너를 신설한다. 오는 6월 절두산 꾸르실료회관에서 코로나19 방역지침을 준수하며 참석 인원을 조정, 대면 녹화로 진행하고 7월부터 방송에 들어간다. 또 신약과 구약 비대면 강좌를 새로 마련하고, 향심기도 프로그램과 신앙 인터뷰 다큐 프로그램 ‘나의 하느님’ 시즌2, ‘교회건축과 전례’도 새로 시작한다. CPBC FM도 지난해 홍보 주일과 성령 강림 대축일을 맞아 ‘성령칠은 뽑기’ 이벤트를 선보여 호평을 받았고, 이에 올해는 CPBC 제작기술국 주관으로 ‘성령칠은 뽑기’와 ‘매일 말씀사탕’ 웹서비스를 제공한다. 감사데이 ‘성령칠은 뽑기’ 이벤트는 17일부터 30일까지 2주 동안, ‘매일 말씀사탕’은 오는 6월 29일 이후 상시 프로그램으로 진행한다. 지역 교회, 교회 단체와 연대하다방송뿐 아니라 대면 행사를 열지 못하는 지역 교회, 단체들과의 연대도 활발하다. 특히 교구 사제서품식 중계는 예년보다 훨씬 늘었다. 수원ㆍ대전ㆍ인천ㆍ전주교구 사제서품식을 생중계했고, 유튜브 생중계도 동시 진행했다. 한국 평협과 연대, 12일부터 방송에 들어간 CPBC TV ‘사랑의 기쁨인 가정의 해 특별기획 4인 4색 엄마의 뜰’은 교회 단체와의 연계 프로그램으로 대표적이다. 각기 다른 세대의 네 엄마와 서울대교구 압구정동본당 부주임 김광두 신부가 출연, 우리 시대를 사는 엄마들의 역할과 고민을 들어본다. 이 밖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을 맞아 오는 6월 초 역사물 토크쇼 ‘청년 김대건의 시간들’(1편)을 방송하고, 오는 7월에는 30분 분량의 김대건 순례길 다큐 7편을 제작해 내보낸다. 김대건 성인의 생애를 다룬 다큐 2부작을 제작 중이고, 오는 8월 14일부터 21일까지 성 김대건 탄생 주간에는 솔뫼성지에서 진행될 기념행사를 모두 생중계한다. 끝으로 오는 12월 대림 시기에는 김대건 희년을 결산하는 뜻으로 기록 다큐 ‘희년의 기록들’을 선보인다. 류호찬 PD(가톨릭평화방송 TV국장)는 “코로나19 사태를 맞으며 저희 CPBC가 신자들에게 꼭 필요한 선교 매체로서의 소명의식을 갖게 된 건 소중한 체험이었다”면서 “코로나19 감염증 확산으로 느슨해진 신앙생활을 어떻게 다잡고 이끌어갈지, CPBC의 역할을 고민 중이고, 그러한 고민을 녹여낸 프로그램을 만들어 선보이겠다”고 약속했다. cpbc2021.05.12

새 계약으로 죄의 노예살이에서 벗어나다[무너져가는 집을 복구하여라!] 9.하느님의 구원경륜⑥- 죄로 인한 상처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의 죄악이 창궐하여 창조질서를 무너뜨리자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리셨다. 하지만 피조물에 대한 한없는 사랑으로 땅 위의 피조물들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고 보호하겠다는 계약을 세우신다. 그림은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담은 이콘. 출처=가톨릭굿뉴스 인간의 범죄가 초래한 가장 큰 폐해는 하느님과의 관계 파괴이다. 지난 연재에서 언급하였듯이 원조들이 범한 죄의 여파로 인간은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 안에서 무상으로 선사 받던 존재감(자존감과 자기효능감)과 낙원을 상실하고 무의미와 허무 속에 갇힘으로써 희망이 사라진 암흑을 체험한다. 이로써 인간은 하느님의 집(모상)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피조물을 섬기는 우상숭배자로 추락한다. 더 나아가 통제되지 않는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은 타인이나 외부세계에 폭력을 가하고 허무를 탐닉하거나 자기 자신을 자학하는 등 삶의 방향성을 잃어버린다. 정체성 잃어버리고 우상숭배자로 추락하느님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혼돈에 빠진 인간을 보시고 그에 대한 연민의 끈을 놓지 못하신다. 따라서 낙원에서 쫓겨나는 원조들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 주신다.”(창세 3,21)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사람들의 죄악이 점점 더 창궐하여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무너뜨리는 상황에 처하자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만든 것을 후회하시고 마음 아파하시면서”(창세 6,6)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리셨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피조물에 대한 한없는 사랑을 지니신 분이시기에 모든 것들을 파멸시키지는 않으시고, 노아를 통해 “다시는 물이 홍수가 되어 모든 살덩어리들을 파멸시키지 못하게 하겠다”(창세 9,15)는 약속을 하신다. 요컨대 땅 위의 피조물들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고 보호하시겠다는 계약을 세우신다. 이것은 천지창조 이전에 영원으로부터 하느님의 의지 속에 감추어져 있던 하느님의 구원의 계획(에페 3,9; 1코린 2,7), 즉 ‘하느님의 구원경륜’이 펼쳐지게 됨을 뜻한다. 하느님의 구원경륜(Economy of the Salvation)이란 그 말의 어원적인 의미에서처럼 죄로 말미암아 무너진 집(하느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을 복구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인간의 역사 안에 개입하시어 펼치신 하느님의 구원 활동이다. 이것은 어떠한 인간의 저항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인간 역사 속에서 이미 하느님께서 정하신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다. 성경은 바로 ‘하느님의 구원 경륜’이 펼쳐진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구약의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 경륜의 손길은 우리가 잘 알듯이,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사건을 통해 결정적으로 드러났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은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해방을 체험하였고, 하느님의 구원 손길이 그들에게 깊이 각인되었다. 이러한 체험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은 죄로 무디어진 마음에서 되돌아서서 하느님께 다가갈 수 있었다. 우선 하느님께서는 당시 가장 보잘것없고 핍박받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먼저 다가가신다. 그들이 겪고 있는 고난을 똑똑히 보고, 그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셨다.(탈출 3,7) 그리고 하느님은 “당신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도록”(탈출 3,10) 모세를 중재자로 삼아 그를 파라오에게 파견하여 그의 완고함을 꺾어 놓았다. 마침내 파라오는 모세를 통한 하느님의 활동에 굴복하였고,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하느님과의 계약을 통해 정체성 되찾아이스라엘 백성의 현실적인 구원은 이집트의 해방을 통해 성취되었지만, 보다 근원적인 구원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 백성’으로 삼은 계약을 통해 이루어진다. 요컨대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이 되고”(탈출 6,7) 이스라엘은 그분의 백성이 되는 계약이 시나이 산에서 선포된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하느님과의 계약을 통해 하느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십계명’ 준수를 약속한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죄로 말미암아 멀어진 하느님과의 관계는 하느님과의 계약을 통해 다시금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되찾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하느님과의 계약을 잘 준수할 수 있도록 계약의 핵심 내용을 신조로 삼아 늘 마음에 새겼다. 우리 신앙인들이 주님의 기도를 마음에 새기듯이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에 새겼던 신조는 다음과 같다.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 너희 주 하느님은 한 분뿐이시다.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너희 주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그리고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신명 6,4-9) 하느님과의 관계를 마음에 새기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죄로 완고해져 하느님과의 계약에 점점 불충실해져만 갔다. 이때 하느님은 당신의 예언자들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파견하여 당신과의 계약에 충실하도록 촉구하지만 그들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마음과 정성을 다하지 않는 계명은 형식적인 율법 준수로 전락하고 의미 없는 계약으로 변해만 갔다. 이렇게 하느님과의 계약이 위기에 처했을 때, 하느님께서는 새 계약을 준비하셨다. 요컨대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정화시켜 그들의 가슴에 하느님의 법을 넣어주고, 그들의 마음에 하느님의 법을 새겨 참다운 하느님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는 새로운 계약이다.(에제 11,19-20) 새 계약의 목표는 돌 판에 새겨진 십계명과 달리 하느님의 법을 마음에 새기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새 계약은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벗어나는 외적인 해방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내적인 구속 상태인 죄의 노예살이에서 벗어나게 하는 계약이다. 이러한 새 계약은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파견되심으로 성취되었다. 김평만 신부(가톨릭중앙의료원 영성구현실장 겸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과 교수)cpbc2022.01.19
정의구현사제단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즈음한 천주교 평신도 수도자 사제 1만 5천인의 호소'[전문]“이성과 신앙, 민주주의와 평화” -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즈음한 천주교 평신도 수도자 사제 1만 5천인의 호소 - 공익과 공동선언을 위해 여러 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헌신하는 모든 분들에게 고마운 인사를 드립니다. 1. 제20대 대통령을 뽑는 이번 선거가 대한민국을 한층 새롭고 정의롭게, 행복하고 이롭게 만드는 기회가 되기를 빕니다. “정치는 공동선을 추구하는 한 사랑의 탁월한 형태 가운데 하나(프란치스코 교황, 「복음의 기쁨」 205항)”임을 생각하며 정치적 소명을 받은 모든 이들을 기꺼운 마음으로 축복합니다. 2. 모든 선거가 그렇지만 대통령 선거는 국가의 운명을 가르는 중대한 정치행위입니다. 누가 과연 공동체의 선익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줄 적임자인지 그 식별의 책임은 권력의 발원지이며 주권자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이지 않는 손들의 너무나 노골적인 훼방으로 시민들의 이성적 판단과 공정한 숙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3. 먼저 그 책임을 언론과 검찰, 법원에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민들은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 뉴스를 접하고, 검찰의 기소와 법원의 판결에 의지하여 시시비비를 가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유권자들의 선택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어 있는 언론과 검찰, 법원은 우리 사회의 어떤 집단보다 중립과 공평, 법과 원칙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기관들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구성원 가운데 기자들의 ‘기사’, 검찰의 ‘기소’의 공정성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두 집단의 편향성은 대선 정국에서 더욱 심해졌습니다. 후보와 가족에 대한 검증이 한창입니다만 언론 종사자들이 불편부당한 자세로 양심껏 보도하고 있는지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검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에 따라 누구는 피의자 조사도 없이 기소하고 누구는 기소는 커녕 심지어 조사에 불응하더라도 그냥 봐줍니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정의의 최종 수호자여야 할 법원의 판결도 귀를 의심할 정도입니다. 건강보험료 수십억 원을 떼먹어도 무죄를 선고하면서 입시에 반영되지도 못하는 표창장 의혹만으로 징역 4년을 판결합니다. 없는 죄는 만들고 있는 죄는 덮습니다. 시중에는 검찰청이 북 치고 법원이 장구 친다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우리는 지난 2020년 12월 7일 ‘검찰 개혁을 촉구하는 천주교 사제 수도자 선언’에서 촉구했던 일들을 실천에 옮길 후보가 누구인지 따져보고 있습니다. 재난 지원금도 못잖게 재난 상황에 걸맞은 상식과 이성의 회복이 더 시급해진 이때에 언론, 검찰, 법원의 회개를 위해 기도합니다. 4. 한편 아무 갈피도 잡지 못한 채 소문만 무성한 무속 논란에 대해서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째서 “무속이 노골적인 대선”이 되고 말았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유력 후보 가운데 스스로 생각해서 책임지고 결단할 일을 점쟁이에게 묻는 이가 있다고 합니다. 압수수색을 발동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사안을 두고 누군가에게 물어서 하지 않았다는 게 사실이라면, 나아가 그랬던 이유마저 자기를 이롭게 하기 위함이었다면 참으로 끔찍한 일입니다. 한사코 이성과 신앙의 조화와 종합을 위해 분투했던 가톨릭교회의 정신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문명사 전체를 압축하면 주술의 시대에서 합리적 이성의 시대로의 이행이라 하겠습니다. 어언 금번 대선은 이성적 평화 세력에게 미래를 맡길 것인가, 아니면 주술 권력에게 칼을 쥐어 줄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성이 쓰러진 자리에 주술이 들어서고 광기가 돋아납니다. 우리는 나름대로 오랜 세월 가난한 사람들의 병과 한을 어루만져 주던 무속의 역사를 부인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인생사를 독립적으로 판단 내리지 못하고 보편성, 타당성, 신뢰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바깥의 힘’에 의지하여 살아온 사람이 아이들의 안전과 생명을 위해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각축하는 국제사회 속에서 ‘통일 코리아’를 위한 지도력을 발휘하기나 할지 걱정하는 것입니다. 주술은 국가의 의사결정을 왜곡하며 공포를 유포하고 불안을 일으킬 것입니다. 한 종교의 가르침이 생명의 ‘말씀’이 되는 까닭은 정의와 평화, 인권이라는 만고불변의 가치에 바탕을 두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웃 종교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주술을 미워하는 이유도 ‘이성’이라는 하느님의 선물을 부정하고 사리사욕을 부추기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현실을 떠나서 따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주술의 지배를 거부하는 것은 신앙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고백적 행동입니다. 5.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노력이 다음 정부에서도 변함없기를 바랍니다.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그래서 얻어지는 결과라야 진짜 평화라는 주장을 들을 때마다 심란합니다. ‘판문점 선언’과 ‘평양선언’을 통해서 거둔 성과를 두고 “정치적 쇼”, “평화는 말이 아니라 힘이 보장한다”, “북한을 주적으로 명시하겠다”면서 “선제타격”과 “킬체인”을 운운하는 등 호전적 의지를 과시할 때마다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최근에는 “사드 추가배치”를 공약하였습니다. 혹시 정전체제를 종전체제로, 나아가 평화체제로 발전시키려던 노력을 일거에 무너뜨리려는 것인지 불안합니다. 모든 후보에게 호소합니다. 오랜 세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바쳐온 한국천주교회의 기도를 무시하지 말아주십시오 6. 오늘 우리가 대통령 선거에 즈음하여 말씀드리게 된 것은 이성과 공익의 상실, 그로 인해서 민주주의와 공동체가 심각한 위기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거짓을 미워하고 참을 사랑하는 슬기로운 시민들이 희망입니다. 성경과 복음이 사람에게 재촉하는 바는 애오라지 서럽고 배고픈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입니다. 부디 자기를 위하되 모두를 이롭게 하는 정의로운 선거가 되기를 바랍니다. 7. 이 시간 슬픔과 고통 속에 빠져 계신 분들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나도 일하고 너도 일하고 나도 잘 살고 너도 잘 살되 모두가 올바로 잘 사는 ‘고루살이’의 하느님 나라를 위해 기도합니다. 2022. 2. 7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cpbc2022.02.08

생애 가장 긴 미사[미카엘의 순례일기] (45) 영원의 언덕, 베즐레(하) 구정모 신부가 베즐레 경당에서 말씀 전례를 거행하고 있다. 조금 소란스러워졌던 경당 내부는 신부님의 말씀이 끝나자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영대도, 제구도 준비되지 않은 곳에서 미사를 드리자는 신부님의 의도를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신부님께서는 제단 위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날은 8월 중순이라 날씨가 무척 더웠는데, 소박하게 짐을 꾸리신 탓에 입을 만한 옷이 많지 않으셨던 신부님은 그날따라 커다란 미키 마우스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습니다. 단색의 영대 대신 귀여운 캐릭터 티셔츠를 입은 채 제단 위에 서신 신부님의 모습은, 예상치 못한 문제에 당황하던 순례단 사이에 작은 웃음의 물결을 일으켰습니다.“제가 학교에서 전례를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시죠?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미사는 시작 예식, 말씀 전례, 성찬 전례 그리고 파견 예식으로 이루어진 기도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성찬 전례를 행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씀 전례까지는 행할 수 있지 않겠어요? 제가 영대를 걸칠 수 없으니 평소에 드리는 미사의 형식을 간소화하는 대신 의미를 크게 하여 봉헌하고, 성찬 전례와 파견 예식은 오늘 순례의 마지막 시간에 따로 봉헌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 사이에 긴 공백의 시간이 있겠죠? 그 시간을 공백이 아니라, 미사가 계속되는 것이라고 생각합시다. 여기서 듣는 말씀대로 남은 하루를 살아가고, 저녁에 기쁜 마음으로 성체를 영하는 것입니다. 미사 시간이 1시간이 아니라 온종일인 셈이지요. 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 김에 하나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성찬 전례 전에 화해해야 한다는 복음의 이야기입니다. 마태오 복음의 산상수훈에는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라는 구절(마태 5,23~24)이 있습니다. 모든 신자가 잘 알고 실천하고 있으리라 믿습니다만, 특히 오늘은 영성체 전에 마음속에 남은 작은 원한까지 다 없애면 좋겠어요. 물론 서로 원한을 지닐만한 사람이 이 중에 있으리라 생각되지는 않으나 순례의 중반이 되면서 힘도 들고 짜증이 쌓였을지 모르지요. 서로 마음이 불편한 일이 있었다면 꼭 화해하고 서로 용서하면 좋겠습니다. 또한,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사람과도 화해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하시면 좋겠습니다. 어때요? 다들 찬성하시나요?”그렇게 생애 가장 긴 미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애초에 미사를 위해 한 시간을 사용하는 것으로 예약했기 때문에, 말씀의 전례도 아주 여유 있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미사에 대한 신앙적 유익에 대해 모두가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쉬운 말로 풀어 설명해 주셨고 작은 전례 동작과 기도문 하나하나에 대해서 그 의미를 알려주셨지요.말씀 전례가 끝나고 일정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순례단 모두는 여전히 거룩한 미사를 드리는 마음이었습니다. 순례단을 뒤따르는 제 눈에는 한 분 한 분의 걸음걸이가 제대를 향해 나아가는 그것과 다름없이 조심스러워 보였고, 신부님께서 특별히 부탁하신 ‘형제간의 화해’의 분위기가 몸으로 느껴졌습니다. 두 분씩 소곤소곤 대화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보였으며 이후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청하는 분도 많았습니다. 언뜻 평범해 보였던 그 날 하루가 얼마나 특별한 시간이었는지는 그 순례에 참여했던 신자들만이 진정으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길었던 그 날의 미사는 끝내 성당에서 마무리되지 못했습니다. 저희가 그날 머물 호텔 근처의 성당에 여러 차례 전화를 드렸지만, 통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근처 제과점에서 부스러기가 적은 빵을 구하고, 호텔에 급히 주문한 와인을 마련하여 로비 구석에서 성찬 전례가 행해졌습니다. 비록 교회에서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는 제병과 미사주의 조건에는 부족했지만, 그 거룩함은 어느 미사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로비 구석에 모여 성찬례를 행하는 순례단을 의식한 듯 시끌벅적했던 호텔 로비는 점점 조용해졌고, 파견에 앞서 내리시는 신부님의 강복에는 로비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고개를 숙여 성호를 그으며 그 축복의 시간에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그렇게 베즐레에서 봉헌된, 제 평생에 가장 길었던 그 미사는 긴 시간만큼이나 큰 감동으로 남았습니다. 사실 그것은 하느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일상을 살아야 하는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일상을 거룩하게”라는 성경 말씀처럼, 하루의 모든 순간에 주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며 산다면 우리는 미사 시간 못지 않게 충만한 삶을 매일 영위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계속>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cpbc2021.11.30

교회 보화 번역하며 함께 걷는 성소의 길성소 주일에 만난 사람 / 안소근 수녀·윤주현 신부 대전가톨릭대학교에서 성서학과 교의신학을 가르치고 있는 안소근 수녀와 윤주현 신부. ‘수도자 교수’인 이들은 지금까지 각각 역서와 저서 43권을 펴냈다. #1. “서울 양재동성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뭔가를 전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먼저 하느님으로 채워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나한테 하느님이 너무 필요한 거예요.”서울대 졸업식을 앞둔 2주 전, 그는 수도회에 입회했다. 애당초 졸업식에 갈 생각이 없었지만, 인문대 수석 졸업이라고 참석해 달라는 학교의 권유를 거절할 수 없었다. #2. “사춘기를 지내면서 인생의 물음들을 가졌죠. ‘나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 사회에서는 다양한 가치를 이야기하는데 목숨을 걸만한 가치는 아닌 거예요. 내 모든 것을 걸만한 진리가 있다면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겠다 싶었어요. 사람이 사랑을 하면 모든 걸 내주잖아요. 가정과 재산이 있는 목사는 아니었어요.”그는 개신교회를 다니다 사제가 되려고 고3 때 개종했다. 장남이었던 그는 부모 몰래 교리와 세례를 받고, 매일 새벽 미사를 다녔다. 그는 수도회에 입회해 사제품을 받기 전까지 아버지와 원수로 지냈다.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가톨릭대 신학대 앞에 있는 가톨릭교리신학원의 안 수녀 연구실에서 두 사람을 같이 만났다. 대전가톨릭대학교에서 성서학을 가르치는 안소근(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수녀와 교의신학을 가르치는 윤주현(가르멜수도회) 신부다. ‘수도자 교수’인 이들은 교집합이 넓다. 지금까지 가톨릭 역서와 저서를 포함해 각각 43권씩의 책을 출간했다. 책의 날(23일)과 성소 주일(25일)을 앞두고, 인터뷰는 ‘책과 성소’라는 두 축을 오가며 진행됐다. 성경과 영성 분야 번역 선수들이들은 수도자로서 학문적 공감대도 넓다. 비슷한 시기에 대전가톨릭대에서 강의를 시작했고, 신학생을 양성하는 수도자로서 번역하면서 다양한 도움을 주고받았다.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박사 학위를 받은 안 수녀는 주로 방대한 성경을 쉽게 해석하고 풀어내는 저서들을 펴냈다. 「시편」, 「이사야서」, 「아름다운 노래, 아가」, 「굽어 돌아가는 하느님의 길」 등을 썼다. 무엇보다 성경에 대해 공부하는 책보다 성경 말씀 자체의 살아있는 힘을 느끼게 해 주는 책을 선호한다.윤 신부는 로마 테레시아눔 대학원에서 신학적 인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성녀 데레사가 초대하는 기도 여정」, 「성 토마스의 신학대전에서 본 여정자 인간」 등의 저서를 비롯해 영성신학 및 가르멜 영성 분야의 역서를 펴냈다.이들의 전공 분야는 성경과 영성으로 갈리지만, 공역자로 이름을 나란히 올린 책들이 적지 않다. 한국성토마스연구소장 이재룡 신부와 2031년 완역을 목표로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을 번역하는 대장정에 동행하고 있으며, 최근에 완역한 이탈리아 석학 바티스타 몬딘 신부의 「신학사」 전집 번역도 함께 참여했다. 역서들은 대부분 권마다 700~800쪽을 넘나드는 방대한 대작들이다.기획과 마무리도 척하면 착, 환상의 콤비윤 신부가 ‘총감독’이라면, 안 수녀는 ‘구원 투수’다. 윤 신부가 총서나 시리즈물을 기획하고 일을 벌이면, 안 수녀는 끌려 들어가(?) 번역을 마무리한다.윤 신부가 2015년 「종말론」을 번역할 당시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당시 마감이 다가오는데 윤 신부가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려고 급하게 서울로 가는 길이었다. 윤 신부는 휴가 중인 안 수녀에게 도움을 청했고, 서울역에서 만나 번역이 안 된 부분의 책을 가위로 잘라 나눴다. 처음 계획과 달리 공역자 이름에 안 수녀 이름이 올라갔다. 안 수녀는 다른 이들이 벌인 기획된 일에 합류해 일을 마무리한다. “저는 다른 사람이 일을 시작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해요. 학생 때도 논문 고치고 교정 보는 게 전문 분야였어요. 책을 쓰는 것보다 번역하는 게 쉬워요. 그렇지만 번역이라는 게 적당히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원문은 저만 보잖아요. 독자들은 번역문을 보기 때문에 그만큼 번역가에게 큰 책임이 있는 거예요. 원문을 안 보는 사람들한테 그대로 전해줘야 하는 거니까요.”(안소근 수녀)안 수녀의 아버지는 안정효 소설가다.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번역을 시작으로 130여 권의 작품을 옮긴 번역 문학의 대가다. 안 수녀가 수도회에 입회해 수도회 초창기 자료를 번역하는 일을 시작했을 때 그의 아버지는 “세상에 믿을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 교정은 네가 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학자들이 남긴 교회 유산을 후대에 남기고 싶은 책임감윤 신부의 아버지는 아들이 1998년 사제품을 받을 때 마음을 풀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봉헌한 게 여전히 마음이 아프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다’면서 ‘이왕 가는 길 큰 사람이 되라’고 덕담을 하시며 악수를 청하셨어요. 큰 사람이 되지 않으면 무덤에 묻혀서도 눈을 못 감을 거라고 하셨는데, 아버지의 말씀과 기도가 수도자로 살아오면서 고비를 넘기는 데 큰 힘이 됐습니다.”윤 신부는 “부모님께 드려야 할 효도를 내려놓고 수도생활에 투신하는데, 나태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책을 낼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우리 세대뿐 아니라 앞으로 올 후대에 도움이 되는 하느님의 빛과 교회 정신을 심어줄 수 있는 책을 한국 교회에 남겨두고 가고 싶다”고 했다. 그는 “중세 초부터 학문과 영성을 담당해온 것은 수도자의 몫이었다”며 “지금도 가톨릭교회의 영성과 학문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펴낸 저서와 역서들은 가볍고 읽기 쉬운 책도 있지만, 출판사 측에서는 손해를 감수하고 출간해야 하는 책들이 더 많았다. 한국 교회의 신학계에 초석을 다지는 교부와 대학자들이 남긴 영적 자산과 교회 유산을 외면할 수 없다는 막중한 책임감 때문이다. “번역에 좀더 무게를 두는 이유는 역사의 뒤안길에 엄청난 신학자와 성인들이 일생을 통해 작업한 중요한 학문적 영적 보화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제가 일생을 걸쳐 그런 작품을 쓸 수 없죠. 대가들의 책을 번역해 전해주는 것이 한국 교회에 더 큰 이익이 됩니다.”(윤주현 신부)불타는 사명감으로, 숨 쉬듯 자연스러운 그들의 성소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지만 각자 지닌 성소의 빛깔은 다르다. 윤 신부에게 ‘불타는 사명감’이 있다면, 안 수녀에게는 없다. 안 수녀에게 번역은 숨 쉬는 것처럼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저는 불타는 사명감이 없기 때문에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해요. 어쩌면 이게 하느님이 주신 몫이에요. 바오로 서간에서 ‘몸 안의 서로 다른 지체들’이라고 하죠. 왜 나를 끌어들이느냐고 하지만, 이게 내가 할 몫이라고 느끼는 거죠.”(안소근 수녀)안 수녀는 “어떤 시기에는 정말 아무것도 할 마음이 없던 시기가 있었다”면서 “논문 지도 신부님이 ‘하느님이 어떤 사람에게 능력을 주실 때는 개인 소유로 주신 게 아니라 교회의 선익을 위해 주신 것’이라고 거의 세뇌를 시키셨다”며 미소 지었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가진 시간, 능력, 모든 것을 하나도 내게 남겨놓지 않고 다 쓰이는 것이 수도 서원의 의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 수녀는 “코로나 때문에 사도직 활동이 어려운 상황이 됐지만 코로나와 성소는 상관이 없다”며 “사도직 활동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더 순수하게 수도생활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다”고 했다. “코로나로 인해 제약이 있는 상태가 다른 걸 다 버리고 하느님을 선택할 수 있느냐의 문제, 성소의 의미를 순수하게 생각할 기회”라고 덧붙였다. 두 사람의 대화는 끝날 줄 몰랐다. 어떻게 우리 둘을 엮을 생각을 했느냐고도 했다. 이들이 한국 교회에서 가장 많은 책을 출간한 ‘선수’로서 하고 싶은 말은 교회 역사 안에 묻혀 있는 대가들의 세기적 작품들, 영적 보화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에스프레소 두 잔이 바닥을 보인 지 2시간이 넘어서 인터뷰는 끝났다. 녹음기를 끄자, 안 수녀는 이 연구실은 김진태(전 가톨릭교리신학원장) 신부가 “학자에게는 연구실이 있어야 한다”면서 마련해줬다고 했다. 두 수도자는 “신학교의 인사권은 교구에 있어 수도자들에게 강의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글=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사진=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cpbc2021.04.21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3) 여행지 : 부활의 증언](//cpbc.co.kr/CMS/newspaper/2021/04/rc/800284_1.2_titleImage_1.jpg)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3) 여행지 : 부활의 증언 예수님의 부활이 실제인지 아닌지는 그것을 체험한 제자들의 변화를 보고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부활 사건 이전과 이후 제자들의 행동과 삶은 확연히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보고 도망치며 두려워하였던 제자들이 부활한 예수님을 체험하고는 목숨을 아끼지 않고 용감히 예수님에 대한 자신들의 신앙을 증거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지상에서 부활을 체험한 자만이 부활을 선포할 수 있고, 또 부활의 희망을 가지고 잠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세에서 하느님 나라를 체험한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듯이, 지상에서 부활을 체험한 사람이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럼 예수님 부활의 증인으로 퀴즈 여행을 떠나볼까요?퀴즈 여행부활의 증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1.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은? 2.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어디에서 보자고 하셨나? 3. 토마스 사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고 나서 고백한 말은?4. 제자 두 사람이 어디로 가는 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는가? 5. 두 사람이 처음에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예수님이 무엇을 풀이해 주자 뜨거운 감동을 느꼈고, 또 예수님이 무엇을 나누실 때,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았는가? 6. 오늘날 우리도 성경 안에서, 또 무엇 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가?답란 1. □□□나2. □릴□□3. “저의 □□, 저의 하느님!”4. □마□5. □□, □6. 영□□가이드 설명1. 마리아 막달레나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일 먼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으며,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알린 부활의 첫 증인입니다.(요한 20,11-18) 막달레나가 사도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고 해서 “사도 중의 사도”라고 부르지요. 성경에는 예수님으로부터 구마 치유를 받고 예수님을 따라다니다가 예수님 십자가 곁을 지켰다고 나옵니다.(루카 8,2; 요한 19,25) 현대에 와서 여성 사도로서의 그녀의 위치와 역할이 조명되면서, 2016년에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의 ‘의무 기념일’을 ‘축일’로 승격하였지요. 2. 갈릴래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천사들을 통해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니, 제자들을 거기서 보자고 전하십니다.(마태 28,1-8; 마르 16,1-8) 예수님께서 수난 받으시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곳은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남부 지역)이지만, 예수님 생전의 활동 지역은 갈릴래아로, 이스라엘 북부 지역에 있지요. 사도들의 대부분은 이곳 출신이며, 이곳이야말로 예수님의 전도 무대였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제자들이 다시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우리의 일상 안에서 체험할 수 있다는 의미이지요. 3. 토마스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토마스(쌍둥이라고도 불림)는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 제자들 가운데 없었기에, 제자들이 주님을 뵈었다는 말을 믿지 않았지요. 예수님을 직접 보고 상처를 확인해야만 믿겠다고 말하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야 자신의 신앙을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이에 예수님은 당신을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시지요.(요한 20,24-29 참조) 부활이란 보는 사람들의 몫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의 몫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활을 직접 목격한 제자들보다 현재 부활을 보지 않고도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더 행복할 수 있지요. 4.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주간 첫날(안식일 다음 날, 주일) 오후에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만납니다.(루카 24,13) 엠마오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약 11km, 2~3시간 거리) 떨어져 있는 마을인데, 정확한 위치는 아직 논란이 되고 있지요. 엠마오 단어의 뜻인 ‘따뜻한 우물’처럼, 절망에 빠져 있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만나 영적인 온기를 회복합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인 클레오파스(루카 2,18)는 성인(聖人)이 되었는데,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서 있었던 다른 마리아의 남편인 클로파스(요한 19,25)와 동일인물로 보고 있지요.5. 예수님을 알아봄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은 처음에는 눈이 가리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메시아로 기대한 사람이 처참한 죽임을 당한 것과 그분의 시신이 사라진 것에 대해 당황하였는데, 예수님이 그리스도(메시아)는 영광에 들어가기 위해 고난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성경을 통하여 설명해 주자, 그들의 마음이 성령으로 타오름을 느낍니다. 그들이 목적지에 가까이 이르러 예수님과 함께 집으로 들어가 예수님께서 나누어 주시는 빵을 받자, 그들의 눈이 열려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루카 24,14-32) 예수님이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나누시는 평소의 모습으로 알아본 것이지요. 6. 부활하신 예수님 체험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윤리적 선택이나 고결한 생각의 결과가 아니라, 삶에 새로운 시야와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한 사건, 한 사람을 만나는 것”(베네딕토 16세 교황)이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내 삶 안에서 깨닫는 것이 본질적으로 중요합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말씀 안에서, 또 빵을 나눌 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처럼 오늘날 우리도 성경 말씀(말씀 전례) 안에서, 또 영성체(성찬 전례) 안에서 예수님을 체험할 수 있지요. 이 외에도 작은 이들에게 사랑을 베풂으로써 그들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마태 25,31-46 참조), 회심의 순간이나 용서 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여행 옵션 : 성 베드로 수위권 성당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이스라엘 타브가에 있는 갈릴래아 호숫가 북서쪽에 ‘성 베드로 수위권 성당’이 있고, 성당 바깥에 ‘예수님과 베드로’성상이 서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에게 아침을 대접하신 후에,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물어보신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사랑을 확인하신 뒤, 당신의 어린 양들을 돌보는 수위권(首位權)을 주시는 것을 기념하는 성당이다.(요한 21,1-18 참조) 베드로가 그전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지만, 다시 세 번 예수님께 사랑을 고백하게 함으로써 베드로의 지위를 복권시켜 주셨다. 예수님은 부족한 나의 권위(지위)를 당신 사랑으로 채워주심을 묵상할 수 있다.여행 기념품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한 사람과 부활을 확신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주위에 빛을 발합니다. 내 주위에 이런 분이 있습니까? 아니면 나 자신입니까? 무엇으로 그것을 알 수 있지요? 현재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마리 파울리타 수녀(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 문채현2021.04.14

우리 영혼의 선성(善性)과 일그러진 모습 동시에 관상[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인격 그리고 프란치스칸 영성] 54. 성녀 클라라의 거울 영성 클라라 성녀가 강조하는 ‘거울’ 이미지는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과 우리 인간의 현실을 자기 인식과 자아를 통해 본래의 모습대로 다시 아름답고 온전하게 존재하게 해 주시는 하느님 사랑의 힘으로 조금씩 고쳐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콘은 안드레이 루블료프가 그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다. 12. 성녀 클라라의 거울 영성- 하느님 현존 의식과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의 관점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나를 동시에 바라본다는 것은 하느님의 본성에서 나온 나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다.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과 그 사랑으로 인한 인류(우리 한 사람 한 사람) 구원을 상징함과 동시에 우리의 일그러진 영혼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상징해준다. 클라라는 「아녜스에게 보낸 네 번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거울의 맨 끝을 보시고 말할 수 없는 사랑을 관상하십시오. 그분은 이 사랑 때문에 십자나무 위에서 고통당하시고 거기서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바로 이 거울 친히 십자 나무에 달리셔서 행인들에게 여기에 생각해 볼 것이 있다고 권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 길을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여, 살펴보고 또 보십시오. 내가 겪는 이 내 아픔 같은 것이 또 있는지.’(애가 1,12) 그러므로 ‘이것을 내 마음에 깊이 새기고, 내 영혼은 내 안에서 갈기갈기 찢어지리이다’(애가 3,20) 하시며 외치시고 울고 계신 그분께 한목소리, 한마음으로 응답합시다.”(23-26) 클라라는 우리 죄로 인해 갈기갈기 찢긴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하느님에 의해 각인된 우리 영혼의 선성(善性)과 우리 영혼의 일그러진 모습을 동시에 관상하도록 초대하는 것이다. 이는 어찌 보면 프란치스코가 어느 나환우와의 만남에서 연약함과 죄로 인해 일그러진 인간의 모습을 취한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했던 것과 흡사하다.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삼위일체 이콘에 그려져 있는 식탁 앞쪽에 네모난 상자 모양의 구멍이 있다. 이에 대해 예술의 역사를 연구하는 이들은 이곳에 거울이 붙어 있었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한다고 한다. 거기에 정말 거울이 붙어 있었을지도 모르고, 또 붙어 있었다면 이것을 본래 작가 본인이 붙인 것인지 후에 어느 누가 붙인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거기에 거울이 붙어 있었다면 그 거울이 지닌 의미는 너무도 놀라울 뿐 아니라 엄청난 은총의 초대가 된다. 왜냐하면, 그 거울을 통해 그 식탁에 네 번째 사람(그림을 보는 이)이 이 삼위일체의 위대하고도 아름다운 영원의 신비에 초대되기 때문이다.우리가 파노라마식으로 전개되는 성경의 계시를 큰 그림 안에서 보게 되면 하느님은 인간 의식 주변을 영원히 도시며 우리 인간이 당신과의 일치를 위해 준비되기를 바라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을 묘사하기 위해 히브리 예언자들과 가톨릭 신비주의자들, 그리고 수피 신비주의자들은 결혼이나 신방, 혹은 신랑과 신부와 같은 이미지를 사용하였다. 이는 이사야 예언서(61,10; 62,5)와 시편, 바오로 사도의 서간(에페 5,25-32) 그리고 요한 묵시록(19,7-8; 21,2) 등에서 나타난다. 이런 곳에서 한결같이 얘기하는 바는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신부에 관한 것이다. 물론 이는 인간의 성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간과 일치하고자 하시는 의지를 표현해주고자 하는 것이다. 예수님도 복음서 여러 곳에서 하느님 나라를 혼인 잔치에 비유하고 계시고, 마르코 복음에서는 당신 자신을 신랑으로까지 묘사하고 계신다. 이것을 동방교회 쪽에서는 과감하게 신화(神化-divinization 혹은 theosis)라는 차원으로 발전시켰다. 이런 결합 혹은 일치는 우리 안에 살아계시는 성령께서 가능케 해 주신다고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서간 여러 곳에서 강조한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우리의 이런 일치 혹은 결합이 본래 주어져 있는 것이라는 진리를 믿고 받아들일 용기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 이 결합은 나중에 (그것도 우리가 선하게 산 이후에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예수님은 우리에게 확신시켜 주고자 하신다. 이 결합은 우리가 출발했던 기원이고, 또 우리가 지금부터 살아야 할 현실이다. 결국, ‘그리스도의 두 번째 오심’은 인류가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곱게 단장한 신부”(묵시 21,2)가 되는 하느님의 때인 것이다. 이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혼인 잔치를 위한 제단에서 우리 모두를 기다리시는 영원한 신적 신랑이 되신다.(마태 9,15; 요한 3,29 참조) 성경 계시의 분명한 목표이자 방향은 충만하고 완전하게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의 인격 안에 거하시는 것이다. 육화의 영원한 신비는 결국 여기서 그 중요성이 드러나고 “어린양의 혼인 잔치는 시작될 것이다.”(묵시 19,7-9) 이렇게 될 때 역사는 더 이상 의미 없는 공허함이 아닌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방향을 잡게 된다. 이 관점은 건강하고 행복하며 희망 가득하고 생명력 있는 사람들을 만들어 줄 것이다. 지금의 이 시대는 참으로 이런 사람들이 필요한 때다. 우리가 확신해야 할 것은 선의 원천이신 하느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태초의 당신과의 일치로 되돌리시면서 참으로 아름답고 선한 세상을 창출해 내시기 위해 일하신다는 것이다.이 ‘거울’의 이미지는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과 우리 인간의 현실, 즉 본래 하느님과 인간이 일치된 모습을 제대로 보고 하느님과 우리의 일그러져 있는 모습을 고쳐가는 것을 말한다. 하느님과 분리되어 하느님의 이미지는 물론이고 인간 자신의 이미지도 망가트려 버린 우리 인간이 자기 인식과 자아의식을 통해 본래의 모습대로 다시 아름답고 온전하게 존재케 해 주시고자 하시는 하느님 사랑의 힘으로 조금씩 고쳐나가게 하는 의미를 지닌다. 호명환 신부(작은형제회) cpbc2021.08.18

존경하는 교황의 제의 입고 미사 하는 기쁨이란[미카엘의 순례일기] (24)성 바오로 6세 교황의 제의 한 사제가 카스텔 간돌프 빌라노바의 성 토마스 성당 제대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고 있다. 오직 두 다리와 지팡이에만 의지해 여행해야 했던 중세의 순례자들에게 예루살렘과 로마는 너무나도 멀고 위험한 길이었습니다.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어찌나 많았는지 기혼자의 예루살렘 순례를 금한다는 기록이 남아있기까지 합니다. 수년간 제대로 된 지도 한 장 없이 죽음의 위험을 마주하며 걷고 또 걸어야 하는 순례의 길은, 말 그대로 고난과 사투의 여정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성지에서 순례의 증거를 가지고 고향에 돌아가길 원했던 것도 당연했겠지요. 예수님께서 입으셨던 수의, 십자가 조각, 못이나 가시관과 같은 물품들은 너무 귀해서 일반인들은 감히 꿈조차 꾸지 못했고, 성인들의 유해나 유물들 또한 인기가 매우 높았던 탓에 몰래 무덤을 파내는 장사꾼들을 피해 성인의 무덤 위치를 숨기는 일도 많았습니다. 성지 주위에 늘어선 갖가지 기념품 가게들은 예나 지금이나 큰 호황이었지요.로마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가량 떨어진 ‘카스텔 간돌포’는 알바노 호숫가에 있는 작고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여름에도 매우 시원한 지역이어서, 수 세기 동안 교황님의 여름 휴양지로 사용되었습니다. 교황님들이 사용하던 별장은 몇 년 전부터 박물관으로 조성되어 일반인들에게 개방되기도 했습니다.한 번은 카스텔 간돌포의 내부를 둘러본 후에 잠시 자유시간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교황님의 별장 앞 소광장에 자리한 ‘빌라노바의 성 토마스 성당’에 예약된 미사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였습니다. 순례자들은 작고 예쁜 카페와 꽃집이 자리한 광장 주위를 둘러보거나 한가로이 호수 주위를 산책했습니다. 지도 신부님께서는 성당에서 기도를 마치신 후 제의방으로 향하셨고, 이탈리아인 신부님께서도 한국 순례단은 처음이라며 아주 기쁘게 맞아주셨습니다.신부님께서는 이 성당에서 여러 교황님께서 자주 미사를 집전하셨다고 설명하며 제의 여러 벌이 걸려있는 옷장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러더니 어떤 제의를 입겠느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이쪽의 제의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입으시던 것, 그 옆에 걸린 제의는 성 바오로 6세 교황님, 그리고 그 옆은…. 지도 신부님께서는 예상치 못한 배려에 깜짝 놀라시면서, “저는 항상 성 바오로 6세 교황님을 특별히 존경해 왔습니다. 괜찮다면 그분께서 사용하시던 제의를 입고 싶습니다”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답하셨습니다. 때는 초여름이었으나 제의는 겨울에나 입을 법한 두꺼운 것이어서 신부님께서는 미사 내내 땀을 연신 흘리셨습니다. 하지만 미사를 봉헌하는 동안 신부님의 얼굴에는 기쁨의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미사를 봉헌하고 마지막 축복을 주시기 전, 신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그동안 여러분들께서 성지를 순례한 뒤 기념품 가게에 들러 물건을 구입하는 모습을 조금은 부정적으로 생각해왔습니다. 사진만으로도 기억을 남길 수 있는 시대에 굳이 돈을 주고 성물을 사야만 하는지 의문스러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오늘, 존경하고 사랑하던 성인 교황님의 제의를 입고 그분께서 미사를 집전하신 이 자리에서 미사를 봉헌하게 된 저는 인간이란 때로는 오감을 통해서도 큰 감동을 받을 수 있음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제의가 너무 두꺼워서 속옷은 땀에 젖었지만 말입니다.”순례단 모두는 함박웃음을 지었습니다.“그러나 물론 성인의 유해에 친구(親口)하거나 성인의 제의를 입고 미사를 봉헌했다고 해서 우리가 더 거룩해지는 건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구입한 기념품이 그저 성지를 다녀왔다는 추억에 머물지 않고, 여기서 느낀 기쁨과 감동을 되살리며 하느님께 나아가는 도구이자 채찍이 되기를 원합니다. 저 역시 미사를 마치고 이 앞 기념품 가게에서 바오로 6세 교황님이 그려진 작은 책갈피를 사려고 합니다. 성경에 그 책갈피를 꽂아놓고, 언제 어디서든 미사를 봉헌할 때마다 오늘 이곳에서 느꼈던 기쁨을 기억하며 기도할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이렇게 먼 길을 떠나 주님의 발자취를 좇아온 이유이자 목표일 테니까요.”크게 보면, 성지 순례 그 자체가 이와 같을지 모릅니다. 우리가 주님과 성인들이 살았던 바로 그곳을 찾는다고 해서 그분들의 완덕이 우리에게 갑자기 스며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삶의 흔적들을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는 일은 우리에게 또 다른 신앙의 전환점을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그분들의 삶이 단지 성경 속의 실체 없는 신화나 전설이 아니라 우리가 밟고 있는 바로 이곳에서 시작되고 끝이 났다는 것, 그러므로 우리도 또한 그분들이 계신 하느님 나라에 언젠가 이를 수 있으리라는 것 말입니다.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평화신문2021.06.15

우리 모두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이니까요[미카엘의 순례 일기] (27)하느님, 형제, 자매 미사 중에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순례단.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기도를 딱 하나만 말하라고 한다면, 물론 주저 없이 ‘주님의 기도’를 맨 처음에 꼽게 될 것입니다. 루카 복음 11장에서는 주님의 기도에서 하느님을 단순히 ‘아버지’라고 표현합니다. 같은 기도문을 전하는 마태오 복음(6,9-13)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유다인의 어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에 비춰보면, 루카 복음사가는 누구에게나 친근한 호칭을 사용하여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신약성경 중 무려 170여 곳에서 등장하는 이 ‘아버지’라는 단어를, 동시대인들은 아마도 불경스럽고 충격적이며 하느님을 모독하는 일이라고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 ‘아버지’라는 단어는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기쁜 소식입니다. 그럼으로써 모두가 평등한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형제자매가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정말 우리는 서로의 직업이나 위치를 고려하지 않고 마음으로 서로를 형제, 자매로 대하고 있는 걸까요?의사, 간호사, 의료기사, 행정 업무 종사자들이 섞여 있는 한 가톨릭 병원 사목회의 순례를 함께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직업의 자부심과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겸손함을 동시에 가진 분들에게서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 서로 가까이 지내는 사이인데도 어쩐지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런 미묘한 느낌을 말씀드릴 기회가 생겨 조심스럽게 여쭈었습니다. 형제님 한 분께서 의사 선생님, 특히 교수님들과 식사하는 것은 처음이고 의사들과 다른 직원들의 식당은 아주 분리되어 있다고 답해주셨습니다. 곁에 계신 의사 한 분도 조금 계면쩍어하시면서 성경에서 말하는 형제, 자매의 관계를 맺는 것은 병원의 구조상 어려운 일인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병원에서 부원장을 맡고 계신 신부님께서도 “직원들이 나를 대할 때, 사제로서가 아니라 병원 운영자로서 보는 것을 느낀다”고 말씀하셨고요.다음 날은 오전 내내 버스를 타고 다른 도시로 이동해야 하는 일정이었고, 마침 그날의 복음이 ‘주님의 기도’였습니다. 저는 ‘아버지’라는 단어의 의미와 교회 전통 안의 형제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한 가지 제안을 드렸습니다.“순례 때만이라도 서로 형제, 자매로 부르는 건 어떨까요? 우리는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며 순례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다른 이들에 비해 뛰어나거나 큰 능력을 지녔기 때문에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니듯, 자신이 가진 직위와 사회적 위상을 내려놓고 형제애를 되새길 수 있는 작은 방법을 제안하는 것입니다.”그러자 신부님께서 마이크를 건네받으시고는, 지난 세월 사제로 살아오면서 당신의 개인적인 능력보다 훨씬 큰 사랑을 받았으며 그것은 오로지 당신이 맡은 직분 때문이었다고 운을 떼셨습니다.“하지만 저도 하느님 앞에서는 여러분과 똑같은 형제입니다. 이번에는 저 또한 똑같이 형제님으로 불러주세요. 미사를 집전할 수 있을 뿐, 저 역시 하느님의 자녀이며 여러분의 형제입니다.”그러자 모두 저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기쁜 마음으로 화답해주셨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몹시 어색했습니다. 아무리 ‘프란치스코 형제님’하고 불러도 신부님은 알아듣지 못하셨고, 어린 원무과 직원 자매님께서는 의사 선생님께 ‘교수님… 아니 가브리엘 형제님…’ 하며 어쩔 줄 몰라 하셨습니다. 한참이나 어린 인사과 직원에게 헬레나 자매님이 맞느냐고 이름을 몰라 미안해하시는 병원장님의 모습을 볼 수도 있었습니다.제가 먼저 제안한 일이었지만, 병원이 지닌 견고한 체계 속에서 이런 호칭을 주고받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는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순례가 끝난 후 두어 달쯤 지난 뒤 신부님의 초대로 함께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을 때 저는 그때의 일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드렸습니다. 순례 후 병원장에서 은퇴하신 형제님께서는 “한국에 돌아온 뒤에 적어도 사목회에서만큼은 서로 형제자매로 부르려고 했지만 쉽지 않더라”고 아쉬워하셨습니다. 그래도 그 일을 계기로 나이와 직위를 떠나 모두 같은 하느님의 자녀임을 늘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성당 안에서 우리는 모두 서로를 형제자매로 부릅니다. 그러나 성당 바깥을 나서는 순간, 또다시 세속의 옷을 입고 세상이 정해준 이름표를 다시 꺼내 왼쪽 가슴께에 달아버립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형제로, 또 자매로 부르지 못한다면,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에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요?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사도10, 34ㄴ-35)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평화신문2021.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