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 한복판에서 길어 올리는 영성 샘물송봉모 신부의 ‘성서와 인간’ 시리즈 리커버 개정판 성서와 인간 시리즈 송봉모 신부 지음 / 바오로딸 1998년 ‘성서와 인간’ 시리즈 첫 번째 권으로 출간해 지금까지 58쇄를 돌파한 「상처와 용서」, 고통을 받아들이고 이겨나갈 힘과 용기를 주는 「고통, 그 인간적인 것」, 그리스도교의 본질과 신자 됨의 본질을 일러주는 「본질을 사는 인간」, 다양한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하느님 뜻 안에서 지혜롭게 극복하는 길을 알려주는 「관계 속의 인간」, 걱정에 사로잡혀 쫓기듯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님의 현존을 느끼게 해주는 「세상 한복판에서 그분과 함께」 등…. 1998년부터 2009년까지 12년 동안 출간된 송봉모(예수회, 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 신부의 성서와 인간 시리즈 12권은 이 땅의 수많은 그리스도인에게 깊고 따뜻한 영적 위로를 건네온 베스트셀러다. 개인과 단체들의 주문 폭주, 독서모임의 단골 추천도서로 오르내리면서 일시 품절을 반복했다. 신자 재교육 교재로는 물론 첫 영성체 부모들의 교재 등으로 널리 활용되고, 사랑받은 시리즈다. 각 권마다 30쇄 이상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송 신부 특유의 따뜻한 문체는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어루만지면서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선택과 결단도 촉구한다. 그는 줄곧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장점과 단점, 부족한 점과 한계, 성향과 어두운 과거까지 다 알고 우리를 부르시는 것이며,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은 내 뜻을 내려놓고 나의 안위와 미래, 생사까지 그분께 맡기고 따르라고 직언한다. 그의 책은 입소문을 타면서 사랑과 자비, 고통, 상처와 용서로 스러지기를 반복하며 삶의 의미와 방향을 잃는 신앙인들에게 살아갈 힘을 안겼다. 바오로딸 출판사가 60주년을 기념해 성서와 인간 시리즈의 리커버 개정판을 출간했다. 팬데믹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이들이 영적인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본문을 새롭게 다듬고 표지를 새롭게 꾸몄다. 12권의 소책자에 담긴 주제에 맞게 표지를 패턴화했다. 표지 그림은 임지윤(아녜스) 동화작가가 그렸다. 송 신부는 「일상도를 살아가는 인간」(성서와 인간 10)에서 정신 건강과 영혼 건강에 가장 해로운 것은 내일 일을 오늘 걱정하는 것이라며, 앞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바로 현재를 충실히 사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도 조언한다. 급한 일에 노예가 되어 정작 중요한 일들을 미루며 살다 보면 남는 것은 황폐화된 내면과 악화된 관계뿐이라고 지적한다. “‘오늘의 걱정만큼은 누구나 견딜 수 있다.’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인간은 오늘을 살 뿐이고, 오늘도 한 번에 한순간씩만 살 뿐이란 말이다. 월요일에는 월요일만을 살 수 있고, 화요일에는 화요일만을 살 수 있다는 것이요, 1시에 할 일은 1시에 하고, 3시에 할 일은 3시에 하면 된다. 우리가 한 번에 한순간씩만 살아가는 한 삶은 그리 힘들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은 삶은 버거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일상도를 살아가는 인간」, 48쪽) 성경을 바탕으로 끌어올린 그의 단순하면서도 깊은 영성은 실타래처럼 엉키고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도록 초대한다. 송 신부는 2009년 마지막 권 「내 이름을 부르시는 그분」의 서문에서 “책을 쓰게 된 것은 삶이란 참으로 의미 있고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임을 들려주며, 그분 제자로 부름 받은 우리 삶이 얼마나 귀한 은총인지를 알려주기 위함”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바오로딸 출판사 홍보담당 권기옥(마리아) 수녀는 “가볍고 얇은 책이지만 시간이 흘렀음에도 결코 내용이 가볍지 않고 권마다 진한 영양분을 남긴다”면서 “그것은 신자들이 가려워하는 부분, 아파하는 마음, 기대고 싶은 마음을 잘 어루만져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권 수녀는 “이론서도 아니고 자기계발서도 아닌 이 책은 신앙과 잘 버무려 소화하기 쉽게 쓰여 있다”며 “한 권 한 권 읽을 때마다 신앙인으로서 한발씩 더 나아가게 한다”고 덧붙였다.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평화신문2021.10.27

갤러리 1898 박정석 원장의 작품. 루크글라스 설립 50주년 전시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1코린 13,13)루크글라스(이남규루가유리화공방, 원장 박정석)가 설립 50주년을 맞아 전시를 연다.서울 명동 갤러리 1898 전관에서 14일부터 19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 주제는 ‘믿음, 희망 그리고 빛(Faith, Hope, Light)’이다.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 번째 서간 13장 13절의 말씀 중 ‘사랑’을 빛으로 해석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비롯한 생활 속 미술 작품 88점이 전시된다.이번 전시에는 루크153스테인드글라스 연구회(회장 박정석, 지도 정순오 신부) 회원들도 참여한다. 2010년 창립된 가톨릭 단체인 루크153스테인드글라스 연구회는 해마다 지도신부의 강론을 듣고 성경의 구절을 이미지화해 스테인드글라스를 전공으로 하는 정회원과 다른 예술분야 전공자인 준회원이 협력해 전시하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 스테인드글라스 작가인 이남규(루카, 1931~1993) 선생은 한국에 최초로 스테인드글라스 공방을 운영했다. 그는 명동대성당, 중림동약현성당, 혜화동성당, 시흥성당, 예수수도회, 갈멜수도원, 공주제일교회, 서울 정동교회, 경동교회 등 대표적인 성당과 교회 60여 곳에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제작했다. 이남규루가유리화공방의 역사를 이어가는 루크글라스는 1968년 11월 18일 설립됐다. 루크글라스는 교회 작품의 제작, 복원, 보수 작업을 주요사업으로 하고 있다. 또한, 2004년부터는 가톨릭미술아카데미와 함께 ‘생활 속의 성미술’을 모토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스테인드글라스 교육을 시작했다. 2012년 아카데미가 휴교한 후에는 독자적으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전문적인 커리큘럼을 만들어 3년의 기초 및 페인팅 정규과정을 운영하고 있고 수강생이 아니어도 참여할 수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미술 기행을 비정기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2019년부터는 실버스테인, 퓨징 등 세부적인 전문연구과정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으며, 2022년부터는 블로잉 과정을 신설해 유리조형 전반을 아우르는 글라스 전문 아카데미로 나아가려 하고 있다.박정석(미카엘) 원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행복한 마음으로 빛을 이해하고, 고민하고,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는 루크글라스의 진심이 모두에게 전해지길 바란다”며 “50년 동안 스테인드글라스의 기본을 지키려 노력했던 믿음, 앞으로도 이어졌으면 하는 희망, 이것을 모아 사랑의 공동체로 실천하는 빛을 계속 지켜나가고 싶다”고 소망했다. 도재진 기자 cpbc2021.07.14

“젊은이를 위한 젊은이의 날 행사 돼야” 교황청 평신도와 가정과 생명에 관한 부서, ‘개별 교회의 세계 젊은이의 날 거행을 위한 사목 지침서’ 발표 2019 파나마 세계청년대회에 참가한 청년들이 각자 국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세계 젊은이의 날은 매년 각 교구에서 지내고 3년마다 한 번씩은 세계청년대회로 기념한다. 교황청 평신도와 가정과 생명에 관한 부서(장관 케빈 패럴 추기경)는 ‘개별 교회의 세계 젊은이의 날 거행을 위한 사목 지침서’를 발표하고 각 교구에서 마련하는 세계 젊은이의 날 사목의 방향과 계획을 제시했다. 첫째, 신앙 축제로서의 젊은이의 날이다. 청년들이 생생하고 즐겁게 신앙과 친교를 체험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준다. 그리스도와 만나고 인격적 대화를 나누도록 초대한다. 특별히 성체 조배와 참회 예절에 신경을 쓴다. 둘째, 교회 체험으로서의 젊은이의 날이다. 젊은이들에게 교회의 친교를 경험하게 한다.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반드시 듣는다. 또 행사에 주교가 참여하는 것은 교회가 젊은이들과 함께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징이다. 셋째, 선교사 체험으로서의 젊은이의 날이다. 젊은이들의 존재와 이들이 보여주는 기쁨에 가득 찬 신앙은 다른 젊은이를 끌어들이는 기쁜 소식의 살아 있는 선포다. 젊은이들의 기도와 증언, 노래를 공유하며 자원봉사 활동도 장려돼야 한다. 넷째, 성소 식별 기회이자 거룩함으로 부르심으로서의 젊은이의 날이다. 젊은이들은 사제든 수도자든, 혼인이든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신학생, 수도자, 부부와 가정을 행사에 참여시킨다. 성인ㆍ성녀와 신앙 성조의 유산을 최대한 활용한다. 다섯째, 순례 체험으로서의 젊은이의 날이다. 젊은이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따르라고 부르시는 하느님과 만남을 향해 함께 걷는 순례자가 되도록 이끈다. 이날을 지역 성지와 대중 신심과 관련된 중요한 장소를 방문하는 기회로 삼는다. 여섯째, 보편적 형제애 체험으로의 젊은이의 날이다. 가톨릭 청년 신자만이 아니라 모든 젊은이를 위한 만남의 장이 돼야 한다. 열린 교회임을 보여주며 교구에 사는 모든 젊은이가 신앙, 삶의 비전, 신념에 상관없이 모여 서로 이야기하도록 자리를 마련해 준다. 사목 지침서는 특별히 세계청년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는 젊은이들의 증언과 경험이 교구 행사를 준비할 때 강조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래 젊은이의 언어와 문제를 잘 아는 사람이 누구겠느냐”면서 “우리에겐 젊은이들을 참여시키고 적극적으로 역할을 맡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이와 함께 교황 담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각 교구가 준비하는 세계 젊은이의 날 행사와 준비 모임은 교황이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말씀과 성경 구절에서 영감을 받아 준비하기를 권했다. 또 다양한 예술적 표현이나 사회 활동을 통해서도 담화를 활용하기를 제안했다.지침서는 “젊은이들에게 투자하는 것은 교회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라며 “이는 성소를 독려하고 사실상 미래의 가정을 위한 긴 준비의 시작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어 “젊은이를 위한 사목과 행사는 모든 지역 교회의 필수 과제”임을 일깨웠다.세계 젊은이의 날? 세계청년대회? WYD?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86년 전 세계 젊은이들을 교회로 초청하며 세계 젊은이의 날(World Youth Day)을 제정했다. 젊은이들이 그리스도 구원의 신비를 체험하고 이를 세상에 전달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을 세계 젊은이의 날로 정했다. 교황은 매년 세계 젊은이의 날에 맞춰 담화를 발표하고 전 세계 청년들을 향해 주님의 사랑과 진리를 전해왔다. 국내에선 세계 젊은이의 날보다는 세계청년대회가 더 친숙하다. 한국 교회는 WYD를 세계 젊은이의 날과 세계청년대회로 혼용해 쓰고 있다. 세계 젊은이의 날은 매년 각 교구에서 자체 행사로 지내고, 3년에 한 번씩은 세계 각국 청년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대규모 신앙 축제(세계청년대회)로 기념하고 있다. 세계 젊은이의 날은 올해부터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지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1년부터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개별 교회가 세계 젊은이의 날을 새롭게 거행하기를 요청했다. 교황은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가 잘 드러나는 이날에 “젊은이들이 그리스도를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임금님으로 환대할 수 있도록 선포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스도가 없으면 참된 평화도, 내적 화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날이 젊은이를 사목적 관심의 중심에 두고 젊은이를 위해 기도하며 젊은이를 주역으로 참여시키고 젊은이와 소통 캠페인을 증진하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cpbc2021.11.17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30주일, 전교 주 주일- 전교에 대한 오해와 착각](//cpbc.co.kr/CMS/newspaper/2021/10/rc/811575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30주일, 전교 주 주일- 전교에 대한 오해와 착각 함승수 신부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전교’라고 하면 거리에서 어깨에 띠를 두른 채로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 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무섭게 외치는 모습을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하느님과 신앙에 대해 부정적인 느낌과 반감을 지니게 만들지요. 강압적인 전교를 하는 사람들 자신도 잘 알고 있음에도 그 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전교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는 자신이 구원받지 못할 불쌍한 미신자들에게 구원받도록 은혜를 베푸는 게 전교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신자들까지 잘못된 생각에 물들어 있다는 점입니다. 하느님에 대해 더 많이 알지도 못하고, 신심이 더 깊지도 않은 자신이 다른 이들에게 신앙을 전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해 포기해버립니다.신자들을 전교에 소극적이게 만드는 두 번째 오해는 전교를 남을 위해 하는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전교해야 하는 가장 근본 이유는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부활하신 주님을 이미 여러 차례 만난 제자들 사이에 아직도 그분의 말씀과 뜻을 의심하는 자들이 있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주님께서 일으키신 기적을 눈으로 보고, 말씀을 귀로 듣는 것으로 그쳤기에, 실천을 통해 구체화되고 삶을 통해 굳건하게 다져지지 못했기에 의심하는 마음이 남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전교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의무감으로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게 전교가 아니라, 신앙의 진짜 기쁨을 누리고 참된 의미를 찾음으로써 하느님과 더 깊고 단단한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 그리하여 그분 나라에서 참된 행복을 누리는 데 필요한 심화 과정이 바로 전교인 것입니다.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단지 착하게 사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신앙은 ‘삶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분을 만남으로써 삶의 의미를 깨닫고, 참된 부활에 대한 믿음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며, 주님의 사랑으로 삶에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 예수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십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복음’이란 무엇일까요?복음은 ‘하느님이 계시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사실이 복음입니다. 하느님이 나를 심판하셔서 지옥으로 보내시는 무서운 분이라면 그분이 나에게 무슨 기쁨이 되겠습니까? 하느님이 사랑이시고 그 사랑으로 나를 용서하시고 구원해주신다는 사실이 복음이며 그분의 사랑을 널리 전하는 것이 전교입니다. 성경에 담긴 내용을 앵무새처럼 떠들거나, 자신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신학적 내용을 그대로 전하는 것에 그친다면 복음이 아닌 종교를 전하는 일일 뿐입니다.예수님은 당신께서 명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십니다. 전교는 말로 전하는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같이 살며 배우는 ‘도제식’ 교육으로 진행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는 가르침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굶주린 이와 음식을 나누고, 병든 이를 위로하며, 슬퍼하는 이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힘들어하는 이의 손을 잡아줌으로써 우리는 복음 선포의 사명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도대체 어디 계시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우리 자신이 증거가 되어주면 좋겠습니다. “저 사람을 보니 정말 하느님이 계시는 것 같아”라는 말을 들을 정도가 된다면 하느님 나라가 지금 여기에서 시작됩니다.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함승수 신부의 카카오스토리(https://story.kakao.com/_0TX0X5)에 가시면 매일 ‘생활 속 복음’을 볼 수 있습니다. 평화신문2021.10.19
![[신앙 수기] 믿음과 사랑을 알려주신 할머니](//cpbc.co.kr/CMS/newspaper/2021/07/rc/806274_1.2_titleImage_1.jpg)
[신앙 수기] 믿음과 사랑을 알려주신 할머니2021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신앙 수기 사랑상 대학(원)생 부문 수상작 믿음을 심어주신 할머니 초등학생 때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어머니는 지방에서 홀로 경제적 부담을 지셨기 때문에 저와 형은 외조부모님이 키워주셨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 불안정하게 자랄 수 있었지만, 두 분의 사랑 안에서 몸과 마음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할머니는 저희 형제에게 신앙을 물려주셨습니다.할머니를 따라 성당에 다녔습니다. 교중미사에 따라다니며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기도와 성가를 따라 하곤 했습니다. 미사 때 듣는 가톨릭 성가가 얼마나 좋았던지, 일요일 저녁 8시면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에서 들리는 미사에 형과 함께 귀 기울이기도 했습니다. 평소에도 성가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다니곤 했습니다.성당에서 열리는 바자, 운동회, 성지순례 등의 행사에도 따라다녔습니다. 할머니께서 레지오할 때 따라갔던 어느 날은 혼자 성당을 돌아다니며 놀다가 칠판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는데, 대단치도 않은 그림에 어른들로부터 칭찬을 받고는 우쭐해 했던 기억도 납니다. 성당은 재밌고도 신기한 놀이터였습니다.3학년이 되던 해에는 할머니의 권유로 첫영성체를 받았고, 이후 토요일마다 초등부 주일학교에 다녔습니다. 토요일은 학교 친구들의 생일파티가 자주 있었지만 그보다는 성당에 가기를 택하곤 했습니다. 성당에 가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성당에 다녀오면 언제나 기분이 좋았습니다. 가톨릭교회에 속해있다는 것, 세례를 받고 성체를 모실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꽤나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그러던 중 예기치 못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옆 본당으로 교적을 옮겨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집이 옆 본당 구역으로 편입되었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그 본당으로 다녀야 했습니다. 새로 다니게 될 본당은 너무 낯설었고, 특히 주일학교에 찾아갈 용기가 안 났습니다. 당시 중고등부 미사는 주일 9시에 있었는데, 학생들은 지하에서 보좌 신부님과 미사를 했고, 어른들은 2층 성전에서 주임 신부님과 미사를 했습니다. 같은 시간에 두 곳에서 미사가 있었던 것이었는데, 저와 형은 중학생으로서 주일학교 미사에 가는 게 마땅했지만 도저히 지하에 내려갈 수가 없었습니다. 또래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지하에서 들려왔지만, 내성적인 저는 먼저 다가가기가 겁나고 두려웠습니다. 원래 여기 있던 친구들의 무리에 끼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차마 지하에 가지 못하고 2층 성전에서 어른들과 미사를 하곤 했는데, 어느 날 미사 도중 주임 신부님께서는 학생이 왜 여기 있냐며 저희를 혼내셨습니다. 이에 상처받은 저와 형은 아예 미사를 안 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가 인생에 있어서 처음이자 마지막 냉담 시기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당에 다녀오신 할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주일학교 여름 캠프에 저희 형제를 신청하셨다고 말입니다. 우리와 이야기도 안 나누시고 덜컥 신청해버리시다니! 갑작스러운 소식에 놀라고 화도 났지만 차마 할머니께 뭐라 떼쓰지는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하며 끙끙거리던 제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런데 캠프 오리엔테이션에 다녀오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곳에서 선생님, 형, 누나, 또래 친구들을 처음 만났는데 모두 저를 환영해줬기 때문입니다. 8월 4일부터 7일까지 있었던 3박 4일의 도보 성지순례 캠프였는데, 그때 그 캠프는 지금까지 날짜도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제 인생을 완전히 바꿔버린 큰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캠프를 가지 않았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캠프 기간 함께 걷고, 기도하고, 노래하고, 먹고, 자고, 웃고, 이야기 나누던 시간이 참 재밌었습니다. 캠프를 통해 많은 사람과 친해진 덕분에, 바로 그다음 주일에는 지하로 내려가 중고등부 미사에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학년별 교리에도 참여했고, 중고등부 풍물부에도 가입했습니다. 그로부터 매주 주일학교를 열심히 다니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2학년까지 매년 개근상을 받았으며 학생회장으로도 활동했습니다. 제 삶의 반은 성당이었습니다. 학교를 마치면 성당에 갔고, 주일에는 성당에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이 모든 게 다 중학교 1학년 때 할머니께서 중고등부 여름 캠프에 저희를 덜컥 신청해버렸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계획이 다 있으셨던 것입니다.열매를 맺은 믿음주일학교를 열심히 다니던 저희 형제는 다 커서 성인이 되었습니다. 형은 신학교에 들어갔고 저는 일반 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보청기 하려고 마련하셨던 돈을 제 등록금으로 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본당에서 중고등부 주일학교 교사를 시작했습니다. 주일학교 교사를 하게 된 것은 그저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한 가지 동기가 있다면, 10대 때 주일학교에서 받은 사랑이 많아서 그것을 갚고 싶었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이곳에서 많은 사랑을 체험할 수 있도록, 자연스레 신앙을 얻을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특히 처음 성당에 오면 친한 친구들의 무리에 섞이는 게 얼마나 어색하고 어려운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그런 학생들의 모습이 더 눈에 잘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늘 처음 온 학생들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습니다. 관심과 사랑으로 맞이하면, 그들은 마치 제가 그랬던 것처럼 점차 밝은 모습으로 변화했습니다. 돈보스코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아이들을 그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려고 했습니다.매주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 그만큼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르치면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공부하고 기도하며 묵상할수록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시고 보여주셨던 사랑에 대해 매료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에 대해 가르치는 일이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어릴 적에 할머니께서는 성경을 꽉 짜면 사랑밖에 안 남는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과 교리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세상도 사랑으로 바라보면 모든 것이 다 신비였습니다. 평생 이 사랑을 이야기하며 살다 죽고 싶었습니다.사랑을 실천하며 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가진 채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고민하며 방황하다 보니 어느새 20대가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세 번째 대학교에서 새로운 꿈을 꾸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간호대학으로 편입하였고, 지금은 미래의 간호사가 되기 위하여 공부하고 있습니다. 형이 영의 건강을 돌본다면, 저는 육의 건강을 돌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늦게 시작한 공부이지만 열정을 갖고 재밌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에 대해 공부할수록 그 오묘한 신비로움에 놀라지 않을 수 없고, 하느님을 경외하며 찬미할 수밖에 없습니다. 할머니께서 지어주신 라파엘이란 세례명처럼, 누군가를 치유해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사랑을 알려주신 할머니어느 날 할머니 댁에 갔을 때 할머니의 일기장을 우연히 보았습니다. 자세한 내용이 적혀있진 않았고, 그날그날 있었던 일이 짤막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다 제가 이전에 방문했던 날의 일기를 보게 되었는데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6월 3일 일요일. 나파엘이 어제 와서 오늘 감. 항상 보아도 예뿌다.”눈물이 났습니다. “어제 와서 오늘 갔다”라는 내용은 펜으로 쓰였고, 그 밑에 “항상 보아도 예뿌다”라는 말은 연필로 쓰여 있었습니다. 한 줄 쓰고 나서 나중에 다시 또 한 줄 더 채워 쓰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제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나서 얼마 뒤에 문득 손주가 그리워져서 다시 한 줄 덧붙이셨나 봅니다. 다 큰 손주 녀석을 두고 ‘항상 보아도 예쁘다’라는 것은, 어떤 크기의 사랑인지 저로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조금 비뚤게 쓰인 글씨, 예뿌다라며 틀린 철자는 더 가슴을 저리게 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나눠주시고, 보여주시고, 알려주셨고, 그 사랑으로 저희를 키워내셨습니다.저희 안나 할머니는 이처럼 믿음과 사랑을 알려주신 분입니다. 늦게 배운 컴퓨터로 성경을 4번이나 필사하신 할머니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시고, 기도로 하루를 마치십니다. 할머니께서는 당신의 삶으로 신앙이 무엇인지 보여주셨습니다.또 할머니께서 저희 형제를 얼마나 예뻐하셨는지 압니다. 늘 좋은 것만 주려 하셨던 것을 압니다. 신앙을 선물해주신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입니다. 좋은 것을 전해주고 싶은 그 사랑 말입니다. 할머니에게서 배운 믿음과 사랑을 저희 형제는 이제 세상과 이웃에게 나누려 합니다.유준모 라파엘 cpbc2021.07.20

혼란과 이단의 그림자를 걷어내는 교회[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30)바크라프 브로지이크의 ‘콘스탄츠 공의회의 얀 후스’ 바크라프 브로지이크, ‘콘스탄츠 공의회의 얀 후스’(1883년), 프라하 구시가지 시청 내 브로지이크 홀 소장. 교회 분열의 후유증 교황청의 아비뇽 체류 후유증은 교회 안팎에서 여러 가지로 나타났다. 그레고리오 11세 교황의 로마 귀환 이후, 교황이 3명씩 나오는 초유의 사태를 겪는 동안 유럽의 지성계가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지 않았을 거라는 것쯤은 충분히 예상하고도 남는다. 자신의 자리에서 올바른 일을 묵묵히 찾아서 하는 사람들도 있고, 교회를 강하게 비판하며 크게 목소리를 높인 사람들도 있었다. 100년 후에 일어날 종교 개혁의 선구적인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는 개혁파들이 등장한 것이다. 물론 어떤 식으로든 개혁이 필요한 시대였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도 ‘이단’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극단적이고 반교회적인 요소들이 많았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존 위클리프와 얀 후스다. 이번에는 이들에 대해서 알아보겠다.영국의 존 위클리프와 반교회 운동 영국의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1384)는 신학자며 종교 개혁가로 불리지만, 원래는 가톨릭교회 사제였다. 옥스퍼드대학교 퀸즈 칼리지를 졸업한 후, 발리올 칼리지에서 교수로, 켄터베리 칼리지에서 원장을 지냈다. 그는 가톨릭교회 교리의 핵심인 ‘실체 변화(transubstantiation)’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이것은 이후 그가 제기하는 모든 반교회 운동의 근원이 되었다. 그는 1374년 세금 문제로 교황청과 잉글랜드 간 협상이 있을 때,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를 동행하여 사절단으로 아비뇽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가 보기에 교황도 영국 왕실도 문제가 많았고, 영국의 고위 성직자들은 부유했다. 성직자의 절반 이상이 사목에는 관심이 없고, 신학에는 무지했다. 그렇다고 마땅한 해결책도 없었다. 성직자의 수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인구 65명당 성직자가 1명씩 있는 꼴이었다. 또 영국 교회가 유럽의 다른 나라 교회들보다 부유한 것도 문제였다. 영토의 3분 1일이 교회 소유였다. 위클리프가 보기에 수도회들도 위기였다. 수도자들은 돈이 많았고, 권위와 영향력을 앞세워 본래의 정신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그런 탁발 수도승들을 ‘새로운 이단자’로 규정했다. 백성들은 순례, 성인 유해 공경, 전대사 등으로 신앙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겉으로만 그렇다고 보았다. 위클리프는 세 가지 측면에서 개혁을 강하게 주장했다. 교회와 국가는 분리되어야 하고, 후원 시스템을 전면 수정해야 하며, 교회는 사목에만 비중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막 아비뇽 시대를 청산하고 로마로 귀환한 교황청이 부패했다며 개혁을 주장했다. 가톨릭교회의 수도원 제도를 비난하고, 교황의 권위에 반기를 들었다. 과도한 비판으로 그레고리오 11세 교황은 이단 행위를 멈출 것을 권고했으나, 그는 계속해서 교황의 권위와 교회의 교리에 공격을 가했다. 1382년, 그는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함께 백성에게 복음의 진리를 직접 전하기 위해 처음으로 성경을 영어로 번역했다. 훗날 「위클리프 성경」으로 알려지게 될 바로 그 성경이다. 그때까지 성경은 예로니모 성인이 70인역에서 번역한 라틴어 성경이 전부였다. 따라서 라틴어를 아는 소수의 성직자만 성경에 접근할 수가 있었다. 이에 위클리프는 성경이 “백성의, 백성에 의한, 백성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문장은 훗날 링컨이 민주주의를 주장할 때 인용하기도 했다. 위클리프의 영어 번역은 히브리어와 희랍어 원문보다는 예로니모 성인의 라틴어 번역본 「불가타」를 기초로 했다. 성경의 영어 번역은 영국 내에서부터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바로 그해에 캔터베리의 대주교가 ‘교회 회의’를 소집했다. 이 회의는 지진 때문에 조기에 종료되는 바람에 일명 ‘지진 회의’로 불리기도 한다. 대주교는 회의에서 위클리프가 주장한 10개 사안을 이단으로 단죄하고, 14개 오류를 지적했다. 위클리프는 자신의 본당 루터워스에서 쫓겨났고, 2년 후에 사망했다. 체코의 얀 후스, 설교 금지 당해 그의 영향은 체코의 신학자 얀 후스(Jan Hus, 1372~1415)에게로 이어졌다. 후스는 프라하의 카렐대학교에서 공부했고, 1400년부터 교양학부와 신학부의 교수로 재직했으며, 가톨릭교회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1402년, 카렐대학교 총장이 되자 체코인들에게 독일에 맞설 것을 독려했고, 체코어의 철자법을 개혁하여 저술 활동에 활용했다. 설교와 저술로 교회의 타락을 고발했고, 대사 규정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본래의 그리스도교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기도 했지만, 고위 성직자와 독일인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그는 위클리프와 달리 대중 설교를 통해 개혁을 주장한 첫 번째 인물이기도 했다. 1409년 피사 공의회에서 선출된 알렉산드로 5세 교황은 교서를 통해 위클리프의 저술들을 단죄했고, 프라하 대주교에게 후스의 설교를 금하도록 했다. 그러나 후스는 교황의 명령에 반기를 들었고, 훗날 프로테스탄트들이 들고 나올 문장들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운명 예정설, 오직 성경·오직 은총, 베드로의 수위권 거부, 교황 권위의 무효 등을 주장했다. 교회는 거룩하지도 않고, 교회에 대한 순명은 성직자들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했다. 교황청은 로마로 직접 와서 입장을 밝히라고 했고, 후스는 거부했다. 1414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지기스문트가 ‘콘스탄츠 공의회’를 소집하며, 안전을 보장해 주겠다는 조건으로 공의회 참여를 독려했다. 후스는 교황과 고위 성직자들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이해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콘스탄츠 공의회는 그에게 30건의 고발 목록을 비준했고, 그의 저작 중 세 개를 이단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이틀간 해명할 기회를 주었다. 체코 대표 화가 소개하는 작품은 바크라프 브로지이크(Vclav Brok, 1851~1901)가 그린,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자신의 주장을 해명하는 얀 후스’이다. 체코를 대표하는 화가 브로지이크는 젤레즈니함므로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다행히 이른 나이에 프라하 외곽으로 이사를 오는 바람에 크면서 회화에 관심을 가질 기회가 생겼다. 함께 성당에 다니던 친구의 아버지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주선해 준 덕분에 17살에 프라하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었다. 1871년에는 드레스덴 아카데미아, 1873년에는 뮌헨 미술원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뮌헨 미술원에 있는 동안 독일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 칼 폰 필로티(1826~1886)을 만났고,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876년부터 파리에서 살며, 살롱 드 파리에서 금상을 받으며 파리 문화계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는 파리의 부유한 미술품 거래상 찰스 세델메예라의 딸과 결혼하며 엘리트 예술가로 이름을 올렸다. 1893년부터 프라하 아카데미의 교수로 활동하며, 프라하와 파리를 오갔다. 1896년 프랑스 미술 아카데미가 선정한 불멸의 화가 40인에 선정되었고, 죽을 때까지 파리 미술 아카데미 회원으로 이름을 올린 첫 번째 체코인이 되었다. 말년에는 풍경화, 농민 중심의 인물화, 역사화에 집중했다. 갓 쉰을 넘긴 나이에 지병인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무덤은 파리의 몽마르트 공동묘지에 있다. 그림 속으로 작품은 원래 브로지이크의 장인이 소장하고 있던 개인 소장품이었다. 작품 속에서 얀 후스는 옥좌에 앉아 있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지기스문트 앞에서 왼쪽의 교황과 공의회 교부들에 둘러싸여 자신을 변호하고 있다. 교회는 그에게 이단으로 간주될 수 있는 사항들을 철회하라고 명했고, 후스는 거부했다. 그림 속 장면은 암울한 역사적인 순간을 말하는 듯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도, 후스의 강한 의지를 반영한 듯, 고딕 양식의 기둥 배경이 압도적이다. 결국, 후스는 이 자리에서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1415년 7월 화형에 처해졌다. 후스의 제자 프라하의 지롤라모는 콘스탄츠로 달려와 지기스문트에게 약속과 다르지 않으냐고 따졌고, 그 역시 화형에 처해졌다. 그러나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얀 후스가 30년 전에 사망한 위클리프의 추종자였고, 후스의 이단 논문은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이 밝혀져 위클리프의 시신도 다시 파내 불에 태워졌다. 이로써 1414~1418년, 온 유럽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콘스탄츠 공의회는 이단 논란을 종식하는 동시에 지난 40여 년간 세 명의 교황까지 나와 유럽 교회를 흔들었던 서구 대이교 논란을 종식시킨 장(場)이 되었다. 바크라프 브로지이크(Vclav Brok), ‘콘스탄츠 공의회의 얀 후스’(1883년), 프라하 구시가지 시청 내(Praha, Staromstsk radnice), 브로지이크 홀 소장(Brokv sl).김혜경 (세레나,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이탈리아 피렌체 거주) cpbc2020.12.28

“믿음은 이성·마음·손을 움직인다”한스 큉, 현대 최고의 종교계 지성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자문단으로 참가
삶의 근본적 질문을 다양한 주제 나는 무엇을 믿는가 한스 큉 지음ㆍ이종한 옮김 분도출판사올해 4월 독일 튀빙겐의 자택에서 선종한 세계적인 가톨릭 신학자 한스 큉. 베네딕토 16세 교황, 칼 라너 신부와 함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신학 분야 자문단 일원으로 교회가 개혁적 방향을 취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 신학자였다. 그의 신학적 세계관을 형성한 개인적 신앙고백의 빛깔은 어떠했을까? ‘나는 무엇을 믿을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신뢰할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 ‘내 삶이 어떤 모습이길 희망하는가?’ 등 삶의 토대를 이루는 근본적 질문을 통해 자신이 지닌 신앙의 핵심을 종합했다. 근본적 질문에 대한 답은 삶에 대한 신뢰를 시작으로 삶의 기쁨ㆍ의미ㆍ힘ㆍ고통ㆍ기술ㆍ비전 등을 주제로 망라했다. 한스 큉은 ‘나는 무엇을 믿는가?’라는 핵심 물음에서 생각의 가지를 뻗어 나간다. 교황청 그레고리오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1954년 사제품을 받은 신학박사 한스 큉은 1959년까지 스위스 루체른에서 사목하다가 1960년 튀빙겐대학교 기초신학 교수로 초빙된다. 수십 년 동안의 성경과 전통, 철학과 신학 공부는 그의 신앙관을 명료하고 넓어지게 했다. 세계적 신학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삶의 철학과 신앙을 녹여낸 책이지만, ‘믿는’ 것을 넘어 ‘알고’ 싶어 하며, 더 나아가 실천적 결과를 낳는 신앙관을 고대하는 이들의 영적 갈망을 채워준다. 이 책은 2009년 튀빙겐대학교에서 그가 ‘나는 무엇을 믿는가’의 강의 내용을 엮은 것이다.한스 큉은 평생 종교의 평화로운 공존과 상호 존중을 위해 헌신해 온 인물로, 교황의 무류성ㆍ동성애ㆍ여성ㆍ피임 등 현대 사회의 이슈에 대해 진보적 태도를 보여 교도권과 갈등도 빚었다. 그는 “삶의 여정은 갖가지 체험과 갈등을 통해 거듭 도전을 받는 정신의 원대한 모험이었다”고 털어놓는다. “믿음은 교회가 믿으라고 강요하는 것을 군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며 “적극적으로 나의 믿음 나의 신앙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믿음은 인간의 이성ㆍ마음ㆍ손을 움직이게 하는 어떤 것, 즉 인간의 사유ㆍ의향ㆍ감정 행위를 포괄하는 것이다. 한스 큉이 생각하는 삶의 기쁨은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그는 “실제 체험에 집착하는 우리 사회의 슬로건 ‘중요한 건, 내가 행복한 거야’는 아무튼 나의 삶이 원칙이 아니”라고 못 박는다. 오로지 욕구 충족과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향락주의는 지속적인 삶의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참된 삶의 기쁨을 망쳐버리는 삶의 태도로는 ‘허무주의, 냉소주의, 악의주의’를 꼽는다. 그는 건강한 사람보다 더 행복해 보이는 휠체어에 앉아 있는 사람들, 자녀가 매우 심한 장애가 있는데도 삶의 용기와 기쁨을 발산하는 부모들에게 찬탄한다고 밝혔다.그는 끊임없이 ‘중요한 것은 내가 행복한 것’이며, ‘재미있는 것은 허용되어야 해!’라고 외치는 시대에 온갖 종류의 정보와 지식은 쉽게 얻을 수 있지만 방향 설정에 대한 지식은 결여되어 있음도 지적한다. 환락과 덕 사이의 선택만이 아닌, 의미와 무의미 사이의 선택에서도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두고서 그는 다시 묻는다.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라고. ‘모든 것이 더 마음에 들고 더 멋지고 또 더 재미있게 되어야 한다’는 세태를 그는 꼬집는다. 교회와 사회 속에서 스스로 ‘외톨이 전사’였다고 고백하는 그는 윤리의 세계화도 강조했다. “인류의 여정은 지난 수십 년간, 의학과 약학부터 우주 비행과 인터넷에 이르기까지의 그 모든 엄청난 진보에도 불구하고, 더 편안해지지 않았다. 모든 윤리를 공산주의는 당의 이익에, 자본주의는 경제의 이익에 희생 제물로 바쳤다. 이제 바야흐로 모든 세계종교에서 많은 사람이 묻고 있다, 어떤 근본 조건들 아래에서야 우리가 인간으로서 이 지구 상에서 생존할 수 있고, 우리의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삶을 더 인간답게 형성할 수 있는가?”(90쪽) 한스 큉은 지치지 않고 일하는 사람으로 통했다. 스스로 일이 취미라고 말할 수 있는 운 좋은 사람 중 하나였다. 그에게 일은 중요한 과제들에 헌신하는 것이었다. 그는 읽고 공부하고 쓰는 일에 만족했으며, 고향의 아름다운 풍경과 맑은 공기 속에서, 수영도 하고 고전음악도 들으면서 일을 할 때는 더 만족한 신학자였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평화신문2021.11.10
![[수도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28)성경 독서의 장소](//cpbc.co.kr/CMS/newspaper/2020/02/rc/773932_1.1_titleImage_1.jpg)
[수도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28)성경 독서의 장소집중할 수 있는 고요한 곳을 찾아 허성준 신부 성경은 어디에서 읽어야 하는가? 이에 대해 우리는 어느 한 장소만을 주장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처한 상황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필자는 다음과 같은 장소에서의 성경 독서는 우리가 집중해서 성경을 읽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한다. 예를 들면, 분주히 움직이는 일터나 혹은 여러 사람이 수시로 드나드는 개방된 공간은 성경 독서를 위해 그리 좋은 장소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조선 시대 선비였던 이만부(1664-1732)는 한가로운 생활에서의 독서의 즐거움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양치질한다. 집안을 물 뿌리고 비질하고, 아침 해가 비쳐들면 향로를 비로소 피운다. 책상을 정돈하고 책을 펼쳐 되풀이해서 읽고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 옛사람의 마음을 쏟은 곳을 엿보기라도 하면 이 가운데 즐거움이 있다. 말로 형언하기는 어렵고 가만히 혼자 알 뿐이다.” 이렇듯 선비들은 고요한 장소에서 옛 성현의 글을 접하면서 온 마음으로 읽고 또 읽었으면서 남모르는 기쁨을 만끽하였다. 대개 수도승들은 수도원의 고요한 분위기 안에서 자기 개인의 독방, 공동방, 도서실, 혹은 정원 등에서 성경을 읽었다. 그들은 성독 시간에 누구로부터 방해받음이 없이, 각자 고요한 곳에서 그러한 수행에 전념할 수 있었다. 「베네딕도 규칙서」에서는 혹시라도 수도자들이 성독 시간을 불충실하게 보낼 수도 있기에 한 두어 사람의 장로들로 하여금 수도원을 돌아다니게 하라고 권고하였다.(RB 48,17-18) 그 당시 베네딕도회 수도승들은 수도원의 여러 곳의 고요한 분위기 안에서 각자 성경 독서의 수행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그러므로 성경 독서를 위해 고요한 분위기가 유지될 수 있는 그러한 공간이 있다면 매우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한 장소는 우리를 쉽게 성경의 말씀에 집중하게 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게 만든다. 그러한 곳은 바로 영적 투쟁의 장소이며 하느님을 만나는 거룩한 장소이다. 이에 대해 엔조 비안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느님은 이 장소에서 당신 마음의 건조한 공백을 풍부한 계곡과 희망의 문턱에로 옮겨 주신다. 그분은 당신의 마음에 직접 말씀하시기 위해 그리고 당신에게 신적인 선물들을 채워 주시기 위하여 당신을 더 가까이 부르신다.” 그곳은 바로 야곱이 꿈에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본 후에 잠에서 깨어나 “진정 주님께서 여기 계시는데도 내가 모르고 있었구나. 여기가 바로 하느님의 집, 하늘 문이로구나”라고 고백했던 베델이라는 곳이다. 즉 우리가 말씀을 대면하고 말씀을 통해 주님을 만나는 그곳은 영적인 의미에서 또 다른 ‘베델’이 된다. 고요한 분위기가 유지되는 장소는 단순히 공간의 크고 작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주님은 기도하기를 원하는 이에게 말씀하신다: “당신이 기도할 때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시는 당신 아버지께 기도하시오.”(마태 6,6) 여기서의 ‘골방’은 장소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분주하고 시끄럽지 않은 그러한 고요한 공간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 독서를 잘하기 위해서 그러한 장소를 확보하는 것이 매우 도움되리라고 본다. 우리가 선택하려는 장소는 다락방이든 혹은 지하실 방이든 어디든지 좋다. 다만 그러한 장소에 십자가와 촛불 그리고 성경을 앞에 놓고 다소곳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이면 충분하다. 이러한 공간과 고요한 장소는 우리로 하여금 쉽게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게 만든다.허성준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평화신문2020.02.26
![[2021 결산] 김대건·최양업 신부 영성 기리고, 팬데믹에 지친 마음 치유](//cpbc.co.kr/CMS/newspaper/2021/12/rc/815713_1.2_titleImage_1.jpg)
[2021 결산] 김대건·최양업 신부 영성 기리고, 팬데믹에 지친 마음 치유 아! 미얀마 展’ 개막식에 참가한 염수정 추기경과 관계자들이 미얀마 시민 불복종 운동의 상징인 ‘세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미얀마의 민주주의 회복을 촉구하고 있다. 문화예술계는 2021년 한 해 동안 사람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며 몸과 마음이 지친 이들을 다독였다. 코로나19로 하느님께 잠시 멀어져 있는 이들에게 사랑과 기다림을 전했다. 성 김대건 신부ㆍ가경자 최양업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한국 교회는 올해 김대건 신부·최양업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을 맞아 다양한 전시와 공연 등을 통해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를 기렸다. 서울 절두산순교성지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은 특별전 ‘오랜 기다림, 영원한 동행’을 열었다. 김대건 신부의 서한을 통해 한국의 첫 사제로서 일생, 나라와 교회의 미래를 내다본 근대 지식인이자 조선 최초의 유학생으로서 걸어온 길을 살폈다.서울대교구는 10월 인형극 ‘가회동성당 이야기’, 연극 ‘마흔 번째 밤’, 콘서트 ‘스물두 번째 편지’, 창작 뮤지컬 ‘우리 벗아’를 선보였다서울 명동 갤러리 1898에서는 9월 특별전 ‘영혼의 벗, 김대건 최양업을 만나다’를 열었다. 두 사제의 삶과 영성을 묵상할 수 있는 시간으로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 등 교회 공동체 모든 구성원이 작가로 참여했다.가톨릭평화방송은 김대건 신부 발자취를 따라가는 ‘순례, 김대건을 만나다’와 성 김대건 신부의 서한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 ‘안드레아의 편지’, 대전가톨릭평화방송은 라디오 드라마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제작해 방송했다. 11월에는 최양업 신부를 기리는 오페라 ‘길 위의 천국’이 무대에 올랐다. 최양업 신부가 보냈던 19개 서한을 바탕으로 그의 삶과 영성을 되새겼다.청주 배티성지 최양업 신부 박물관은 ‘최양업 신부의 시복 시성을 기원하는 만남과 동행’을 주제로 신자들이 최양업 신부를 보고 느끼고 기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제20회 CPBC 창작생활성가제제20회 CPBC 창작생활성가제가 10월 열렸다. 코로나19로 2020년 성가제가 열리지 못한 만큼, 올해 성가제에 참가한 팀들의 경쟁은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참가팀들은 한마음으로 주님을 찬양하며 기쁨을 함께 나눴다. 대상은 ‘풀꽃의 노래’를 부른 예수성심시녀회 ‘잔꽃송이’가 받았다.광주가톨릭평화방송 ‘1996년 그 후, 다시 유죄’광주가톨릭평화방송이 개국 25주년을 맞아 5월 다큐멘터리 ‘1996년 그 후, 다시 유죄’를 제작해 방송했다. 5·18 민주항쟁 관계자들의 생생한 경험을 담아내며, 진정한 화해와 용서의 의미를 되짚었다. 광주가톨릭평화방송은 ‘1996년 그 후, 다시 유죄’로 제31회 가톨릭매스컴대상 라디오·인터넷 부문상을 수상했다.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서울 명동 갤러리1898에서는 6월 ‘아! 미얀마’ 특별전이 열렸다. 국내 미술 작가들이 작품 기증을 통해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힘을 모았다. 염수정 추기경도 미얀마 사태 해결을 위한 관심과 기도를 호소했다. 또한, 미얀마 국민이 자유와 평화를 누리길 기원했다. 올해 가톨릭 출판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김대건ㆍ최양업 신부’, ‘영성ㆍ치유’였다. ‘김대건ㆍ최양업 신부 탄생 200주년’을 맞아 교계를 비롯한 일반 출판사는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의 영성과 삶을 소개한 책들을 발간했다. 생활성서에서 펴낸 「성 김대건 바로 알기」, 「성 김대건 바로 살기」는 신자들에게 많이 읽힌 책 중 하나였다. 성 김대건 신부 희년을 맞아 고 정진석 추기경이 옮긴 김대건 신부의 편지 모음집 「이 빈 들에 당신의 영광이」와 최양업 신부의 편지를 모은 「너는 주추 놓고 나는 세우고」 개정판이 발간돼 눈길을 끌었다. 기쁜소식은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의 신앙과 우정을 그린 소설 「길 내는 목자 수선탁덕 성인 김대건」과 「길 가는 목자 땀의 성자 최양업 신부」를 선보였으며, 특히, 김대건 신부의 소년기를 다룬 동화책 「우리나라 첫 번째 신부 김대건」(주니어 김영사), 「김대건」(비룡소), 「소년 김대건」(마루비) 등이 줄줄이 출간됐다.장기화되는 팬데믹으로 신자들이 영적인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마음을 돌보고, 영성을 길어 올리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정수를 담은 ‘가톨릭 클래식’ 시리즈(가톨릭출판사)와 이영제 신부의 신앙 에세이 「함께 기도하는 밤」(가톨릭출판사) 등도 인기를 얻었다.영성과 함께 ‘치유’는 가톨릭계 출판의 화두였다. 가톨릭출판사가 선보인 「혼자서 마음을 치유하는 법」과 바오로딸의 「치유의 순간」이 많이 읽히고 회자됐다. 생활성서가 펴낸 안셀름 그륀 신부의 고통 받는 이들의 절망 해독서 「마음 돌보는 동반」도 독자들에게 위로를 안겼다. 올 한해도 안셀름 그륀 신부의 영성 에세이들도 꾸준히 번역, 출간돼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생활성서 송향숙(그레고리아) 편집장은 “올 한해 신자들이 김영선 수녀의 ‘성경 인물과 함께하는 치유 여정’ 시리즈도 생각보다 많이 찾았다”면서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여서 신자들이 이런 책들을 필요로 했던 거 같아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고 말했다. 올해 60주년을 맞은 바오로딸은 1998년부터 출간돼, 신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예수회 송봉모 신부의 「성서와 인간 시리즈」 12권의 리커버 개정판을 선보였다. 바오로딸의 「기도, 이렇게 하니 좋네요」와 「45일의 기적」, 「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도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한편, ‘시대의 징표를 함께 읽어가는 분도출판사’라는 모토로 설립된 분도출판사는 내년 60주년을 맞는다. 올해는 국제 토마스 머튼 학회가 선정한 최우수 도서 「토마스 머튼의 수행과 만남」, 「세계의 성모 발현 성지를 찾아서」 등이 인기를 끌었다. 이밖에 일반 출판사들이 펴낸 밥 퍼주는 외국인 김하종 신부와 이문수 신부의 삶을 담은 「사랑이 밥 먹여준다」(마음산책)와 「누구도 벼랑 끝에 서지 않도록」(웨일북)이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cpbc2021.12.22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19) 여행지 : 마리아](//cpbc.co.kr/CMS/newspaper/2021/08/rc/807446_1.2_titleImage_1.jpg)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19) 여행지 : 마리아마리 파울리타 수녀(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 인류 역사상 가장 칭송받고 가장 많이 이름이 불리는 여인은 누구일까요? 그 이름은 ‘마리아’일 것입니다. 나자렛 시골 처녀 마리아는 천사를 통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하느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믿음으로 응답하여,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오시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마리아의 믿음과 순명은 예수님을 낳아 기르면서, 예수님의 공생활과 수난 죽음을 지켜보면서 한결같았습니다. 마리아는 당신 외아들 예수로 말미암아 어느 어머니보다 고통을 많이 겪으셨지만, 구세주의 어머니로 하느님께 선택됨으로써 그 어느 누구도 가질 수 없는 특전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럼 마리아에게로 퀴즈 여행을 떠나볼까요?퀴즈여행 성모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1. 마리아는 구세주의 어머니로 구약에 예언되었는데, 가장 먼저 구약 어느 편에 나오는가? 2.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예수님 잉태를 알렸을 때, 마리아는 자신을 주님의 무엇이라고 응답하는가? 3.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임을 기념하는 미사 참여 의무 대축일은 언제인가? 4. 예수님은 돌아가시면서, 당신 어머니 마리아를 누구에게 어머니로 모시라고 하셨는가? 5. 1854년 비오 9세 교황은 성모 마리아가 무엇에 물들지 않았다고 선포하셨는가? 6. 마리아의 예수님 잉태는 무엇으로 말미암은 것인가?7. 비오 12세 교황은 성모 승천을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는데, 이는 교황의 어떤 특전인가? (정답은 ‘가이드 설명’에서 확인하십시오)답란 1. □□기2. 주님의 □3. □월 □일 4. □한 5. □죄6. 성□7. □□성가이드 설명1. 구약에서 예언된 마리아구약의 인물 ‘사라’, ‘미리암’, ‘유딧’ 안에서 마리아의 지혜나 신앙을 엿볼 수 있기에 이들을 마리아의 예표(예형)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3장에 마리아의 존재가 처음으로 예고됩니다. 첫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께 벌을 받을 때, 하느님이 뱀에게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창세 3,15) 하십니다. 메시아가 악(뱀)을 쳐부수는 것이 예언되는데, 여자의 후손은 메시아이신 예수님, 여자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예고하지요. 2. 주님 탄생 예고 하느님께서 천사 가브리엘을 통하여 마리아에게 주님 탄생을 예고했을 때, 마리아는 처녀인 자신이 아이를 가지는 것에 대해 처음에는 의아해 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계획으로 받아들이면서,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순명으로 응답하십니다. 이로써 마리아는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낳으신 어머니가 되셨고, 하느님의 구원 계획의 협조자, 구원의 중개자가 되셨습니다. 3.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공식적 명칭이 부여된 것은 에페소 공의회(431년)를 통해서였습니다. 성자(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성부와 동일한 신성(神性)을 가지신 분이라고 선포되었고, 이를 부인한 네스토리우스를 이단으로 파문하였지요. 이렇게 성자의 신성이 확립되면서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테오토코스, Theotokos)라고 공적으로 선포되었지요. 이를 기념하는 날이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인데, 미사 참여 의무가 있습니다. 4. 교회의 어머니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실 때, 당신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옆에 있는 사랑하시는 제자인 요한을 아들로 주셨고, 또 요한에게는 마리아를 어머니로 주셨습니다.(요한 19,26-27) 이때 요한은 예수님의 모든 제자(하느님 백성)를 대표하는 이였기에,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만이 아닌 교회의 어머니가 되신 것이지요. 마리아는 예수님의 승천 후에도 당신의 기도로 교회의 시작을 도와주셨고(「교회 헌장」 69항), 오늘날에도 ‘교회의 어머니’로서 교회를 돌보아 주고 계십니다.5.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교회는 전통적으로 예수님을 낳으신 마리아가 하느님 아들의 육화를 위한 합당한 자격으로 죄에 물듦이 없음을, 즉 원죄 없이 태어나셨음을 믿음으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교회에 전승되어 오던 이 믿음을 1854년 비오 9세 교황이 “성모 마리아는 원죄에 물들지 않고 순수하게 보존되었다”라고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지요. 4년 후 1858년 성모님은 루르드에서 발현하시어, 당신 이름을 “나는 원죄 없이 잉태된 자이다”라고 밝히심으로써 당신이 원죄 없이 잉태되심을 확인해 주셨습니다.6.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 동정이신 마리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잉태하였습니다.(마태 1,20; 루카 1,35) 성경에는 마리아의 예수님 탄생 이전의 동정성(童貞性)만을 언급하고 있으나(마태 1,35; 루카 1,34), 교회는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은 후에도 ‘평생 동정’이라는 믿음을 간직하고 있었기에, 공의회(6~7세기)를 통해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을 선언하였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의 형제가 나오나, 여기의 ‘형제’라는 단어는 친형제만이 아니라 친지 형제를 포괄하는 용어이기에, 반드시 마리아의 자녀라고 해석할 수 없지요. 7. 성모 승천 마리아가 어떤 죽음을 맞이하였는지 알 수 없으나, 마리아는 원죄가 없기에 죽음에서 벗어나 육신은 소멸하지 않았으리라는 믿음이 오랫동안 전승되어 왔습니다. 마침내, 1950년 비오 12세 교황이 ‘성모님의 승천’을 교황의 무류성에 의한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습니다. 교황의 무류성이란 교황이 신앙과 도덕에 관해 공적으로 가르칠 때, 그르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마태 16,18) 마리아의 승천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에 참여한다는 의미로,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조) 지금까지 교황의 무류성에 의해 선포된 교리는 2가지뿐이다.(원죄 없이 잉태되심, 성모 승천) 여행 옵션 : 노트르담 대성당 (프랑스 파리)프랑스 파리 시테 섬에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다. ‘노트르담(Notre Dame)’은 프랑스어로 ‘우리들의 부인’이라는 말로, ‘성모 마리아’를 의미한다. 1163년 건축이 시작되어 100여 년 걸쳐 완공되었다. 대성당은 고딕 양식의 아름다운 건축물로 되어있고, 성전 안에 수많은 예술 보물을 간직하고 있으며, 나폴레옹 대관식(1804년)과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로 알려져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그 당시의 성모 공경의 문화를 나타내 주고 있다. 현관 위의 왕좌에 앉은 장엄한 모습과 성전 제단 앞에 예수님을 안은 모습은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의 위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안타깝게도 2019년 대화재로 성당 첨탑과 지붕이 피해를 보았다.여행 기념품 마리아는 하느님께 선택되어 어느 누구도 누리지 못한 4가지 특전을 받았습니다. ①하느님의 어머니 ②원죄 없이 잉태되심 ③평생 동정이심 ④승천. 이 사실들은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고, 우리 신앙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중에서 내가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은 무엇입니까?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요? 마리 파울리타 수녀(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 cpbc2021.08.11
![[수도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12)회 수도자와 렉시오 디비나](//cpbc.co.kr/CMS/newspaper/2019/10/rc/765485_1.2_titleImage_1.jpg)
[수도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12)회 수도자와 렉시오 디비나성경 독서는 이미 기도 행위 허성준 신부 회(會)수도생활의 창시자인 파코미우스(St. Pachomius, 292~346) 성인은 수도생활 안에서 언제나 ‘성경’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특별히 수도원에 입회하려는 지원자들에게 하느님 말씀에 대한 암기력을 시험하였다. 즉 시편 20개와 서간 2~3개를 주어 암기하도록 했다. 그리고 만약 누가 성경을 읽고 배우려 하지 않는다면 그는 수도원 안에 결코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권고하였다. 파코미우스 성인의 수도 공동체인 코이노니아(Koinonia)에서 성경은 수도자들의 실천적인 규율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영성생활에 있어 근본적인 영감을 주었던 일차적인 원천이었다. 성경은 수도자들의 삶을 지탱해 주었으며 그들을 안전하게 하느님께로 인도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파코미우스 공동체 안에서 그토록 강조되었던 성경에 대한 중요성이 그 이후에 나타난 동방과 서방의 여러 수도 규칙서들 안에서는 그만큼 강조되고 있지 않다.카파도키아의 3대 교부 중의 한 분인 바실리우스(St. Basilius, 329~379) 성인은 우리의 생활에 있어 성경이 여러 가지 조언들과 축복받는 삶의 길(에페 2,4 참조)을 제시하기 때문에 성경 독서를 하느님을 발견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보았다. 그는 누구든지 성경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고 도움을 받으려면, 그 안에 철저히 머물며 하느님의 말씀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동방의 풍부한 수도 전통을 서방에 알려준 요한 카시아누스(Joannes Cassianus, 365~433)에게도 성경은 매우 중요하였다. 저서 「담화집(The Conferences)」 제14권에서 카시아누스는 영적 지혜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데, 그러한 지혜는 말할 것도 없이 모두 하느님 말씀으로부터 흘러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의 영성생활 한가운데에 무엇보다도 성경이 놓여져야 함을 강조하였다.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us, 354~430) 성인은 암브로시우스 성인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아 마니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후, 고향인 북아프리카의 타가스테에로 가서 그의 친구 알리피우스와 함께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후에 히포의 주교로 피선되었다. 그는 성경 독서가 기도를 준비시켜 주며, 또한 그것은 이미 기도 행위 자체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성경 독서 중에 하느님은 이미 우리 각자에게 말씀하시며 동시에 우리는 기도 안에서 그분께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성경 독서를 위해 따로 떼어진 여유로운 시간(seposita tempora)의 필요성을 언급하였다. 이와 같이 수도자들에게 중요시되었던 성경 독서는 이제 아우구스티누스나 펠라기우스(Pelagius, 350~425)에 의해서 구체적인 시간과 함께 수도원 일과표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특히 펠라기우스는 데메트리아스(Demetrias)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는 밤낮으로 주님의 법을 되새겨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을, 다시 말해 하루의 제3시(오전 9시 정도)가 될 때까지 영혼은 매일 수행해야 할 영적 싸움으로 자신을 단련시켜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러한 영향으로 그 후에 여러 수도원에서는 적어도 그 날의 중간이나 끝에 최소한 2~3시간을 성경 독서를 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하여 기도와 일과 성경 독서를 큰 축으로 하는 수도자들의 일과표가 형성되게 되었다.허성준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평화신문2019.10.29

무너진 ‘하느님의 집’ 복구는 인간 정체성 회복에서 시작[무너져가는 집을 복구하여라!] 4. 하느님의 구원경륜① - 인간의 정체성 회복 인간이 하느님의 집을 복구하가 위해서는 하느님의 모상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미켈란젤로, ‘아담의 창조’(시스티나 성당의 천장 벽화 ‘천지창조’ 중),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소장. 지난 연재에서 전술한 바와 같이 무너진 집에 대한 복구는 우선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집으로서 영과 육을 잘 돌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인간의 정체성이 회복돼야 하느님의 집이 복구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사회 공동체가 상생의 집이 될 수 있도록 돌보는 사명과 지구환경이 훼손되지 않고 모든 생명체가 그 안에서 건강하게 번성할 수 있는 집(생태계)이 되도록 돌보는 사명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정체성은 한 인격체로 살아가게 하는 핵심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 가지 차원의 집에서 가장 중요하고 토대가 되는 것은 ‘하느님의 집’으로서 인간생태이다. 따라서 무너진 집에 대한 복구는 인간생태의 복구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생태를 어떻게 복구해 나갈 것인가? 이에 대한 해법은 인간의 정체성 회복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나는 누구인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를 깊이 성찰하지 않고 살아지는 대로 살아간다. 요컨대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인해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 인간의 참된 정체성이 형성되지 않거나 정체성 혼란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인간은 한 인격체로서 바로 설 수 없다. 우리에게 참된 정체성이 형성되는 것은 생명체의 최소단위인 세포에서의 핵이 기능하는 바와 같이 인간을 한 인격체로 살아가게 하는 핵심이다. 참다운 정체성 형성의 중요성을 생각해보게 하는 짧은 이야기가 있다. 어느 아기 호랑이가 엄마 호랑이에게 물었다. “엄마, 나 호랑이 맞아?” 아기 호랑이의 물음에 엄마 호랑이가 “너는 호랑이가 맞다”라고 대답하지만 아기 호랑이는 확신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자기 정체성을 깨닫기 위해 길을 나섰다. 길을 떠나 코끼리 아저씨, 염소 할아버지, 곰 아주머니 등을 만나며, 자기가 호랑이가 맞느냐고 묻는다. 모두 그렇다고 대답하자, 비로소 자기 정체성에 대한 확신에 이르렀고, 기뻐서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가까이 도착했을 때, 저 멀리서 엄마 호랑이가 보였다. 아기 호랑이는 엄마 호랑이에게 달려가면서 “엄마, 드디어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어요!” 하고 소리치며 엄마 호랑이 품에 달려와 안겼다. 그때 엄마 호랑이가 아기 호랑이를 반기며 “장하다, 내 강아지!” 하고 아기 호랑이 엉덩이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 말에 아기 호랑이는 그만 다시 자기 정체성 혼란에 빠졌다. ‘아이고, 내가 호랑이가 아니라 강아지란 말인가!’라고 되뇌며 절망에 빠져 가출했다는 우습고도 슬픈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나의 정체성이란 타인이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이 스스로 깨닫는 것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우리 자신도 아직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거나, 혹은 상황에 따라 정체성의 혼란을 느낄 때, 부초처럼 떠다니는 인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내가 누구인지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좌표를 확실히 파악하는 것이 내 삶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며, 앞으로 살아갈 삶의 방향성을 결정짓고 무의미한 삶에서 벗어나게 하는 출발점이 된다. 요즘 온 세계 인류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라는 감염체를 통해 인간의 정체성 자각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 안에 ‘세포의 핵’과 같이 우리 존재의 근원과 구심점에 대한 확고한 자각 없이는, 우리는 핵 없는 바이러스처럼 생명체가 못되고 이리저리 숙주를 찾아 떠돌면서 한 인격체로서 살아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기생하며 해를 끼치며 살아가게 된다.하느님과 관계 안에서 참된 정체성 드러나평소 생명살이를 하는 모든 존재의 이름이 그 존재와 어울리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김춘수 시인은 ‘꽃’이라는 시를 통해서 우리가 꽃을 “꽃”이라고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꽃은 “꽃”이라는 존재의 정체성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이 시가 암시하는 바를 하느님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다음과 같이 묘사할 수 있겠다. “하느님이 나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나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하느님이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는 하느님께로 와서 꽃이 되었다.”하느님과 나와의 관계 안에서,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심으로써 비로소 우주 만물에서 참으로 색다른 생명체인 인간 존재로서의 나의 참다운 정체성이 드러난다. 이때 우리는 무한한 자존감으로 충만해진다. 여기에서 자존감은 무엇을 소유하거나 어떤 지위가 있기 때문에 즉 자기 욕구가 채워져서 얻어지는 자존감이 아니라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놀라움에서 비롯된 자존감이요, 무상으로 사랑받고 있다는 자존감이다. 이러한 내적 자존감으로 충만해져야 외적인 것에서 자신을 증명하려는 욕구나 타인의 인정에 매달리는 애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삶 속에서 진실한 모습으로 어떤 상황 속에서도 견뎌내며 살아가야 할 삶의 의미를 발견하여, 본인에게 부여된 사명과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 나갈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참된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토대이며 성경에서 말하듯이 바위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소년 예수님께서도 열두 살 때, 성전에서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참된 정체성을 깨달았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49) 김평만 신부(가톨릭중앙의료원 영성구현실장 겸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과 교수)cpbc2021.12.15

다른 사람 돌보느라 자신을 잃어버린 이들을 위한 책상호의존 관계 회복하는 법 제시
서로 협력 관계로 나아가는 데 도움 나는 내 인생을 살거다,너도 네 인생을 살아라문종원 신부 지음 / 기쁜소식인간은 부모와 자식, 배우자, 친구, 연인, 동료 등 수많은 관계 안에서 얽히고설킨 채 상호의존적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인간은 상호의존 관계에서 벗어나야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 수십 년간 관계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만나온 문종원(서울대교구 사목상담 담당) 신부가 이러한 상호의존 관계에서 회복하는 법을 다룬 책을 펴냈다. 상호의존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돌보느라 자신을 잃어버리는 역기능 관계다. 상호의존 관계에 빠져들면 자신의 필요와 느낌을 무시하고, 상대방 문제에 끼어들어 걱정하며 해결해주려고 한다. 즉, 상호의존 관계에 있는 사람은 상대방이 원하는 존재가 되기 위해 자신의 삶을 투자한다. 문 신부는 특히 상호의존과 중독에 집중한다. 흔히 중독자를 도와주는 사람이 중독을 더 깊게 한다. 중독자와의 관계에 중독되어 가는 것이다. 가령, 배우자가 사는 게 힘들어서 음주를 하는 것이라며 배우자의 음주를 정당화하거나 약물 의존이 심한 연인을 대신해 병원에서 처방해주는 약을 대신 받아오는 것이다. 모든 관계는 서로 주고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처럼 상호의존적인 돌봄은 균형을 깨지게 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너무 많은 것을 주게 되면, 주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잃고 만다. 그렇다고 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리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다. 상호의존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경계선을 설정하고, 자기 자신을 돌보라고 조언한다. 서로 건강한 독립을 이루기 위해 적절한 시간 동안 분리되어 건강한 거리를 지키는 것이다. 문 신부는 상호의존으로부터 진정한 회복은 어떻게 가능한지, 성경에서 본 상호의존, 상호의존을 극복하고 협력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과 방법, 뿌리 치료에 대한 전략 등을 다뤘다. 저자는 들어가는 말에서 “우리가 인격과 영적인 삶을 통합시킬 때,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더 열정적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된다”면서 “삶을 힘들어하는 독자들이 상호의존 관계에서 벗어나 건강한 관계를 맺으며 행복한 삶을 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기대했다. 이해인 수녀 시인은 추천사에서 “행복한 삶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올바른 자기인식과 끝없는 성찰과 쇄신이 필요함을 다시 알아들음으로써, 성장에 방해가 되는 여러 종류의 중독들을 치유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된다”고 썼다.문 신부는 미국 로욜라대학에서 사목학, 사목상담, 영적 지도를 공부했으며, 현재 교구 사목상담 담당 사제로 우울증ㆍ수치심ㆍ죄책감ㆍ분노ㆍ좌절 등 부정적인 감정을 다스리기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지혜 기자 평화신문2021.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