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뉴스 모바일 매일 복음쓰기’ 성황리에 종료홍보위, 작년 11월부터 100일간 진행, 서울 도봉동본당 민송이씨 1등 당첨... CPBC 역사전시실 개관 축복식 거행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가 100일간 진행한 ‘굿뉴스 모바일 매일 복음쓰기’가 많은 신자들의 호응 속에 종료됐다. 종료 이벤트에서 경품을 추첨한 후 손희송 주교와 수상자들, 홍보위원회 소속 사제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백영민 기자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위원장 손희송 주교)가 지난해 11월 22일부터 2월 29일까지 100일간 진행한 ‘굿뉴스 모바일 매일 복음쓰기’가 많은 신자의 참여로 성황리에 종료됐다. 전국 1438개 본당에서 1만 4185명의 신자가 참여해 자주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서울 홍보위는 10일 중구 삼일대로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 CPBC 역사전시실에서 ‘굿뉴스 모바일 매일 복음쓰기’ 종료 이벤트를 열고, 빠다니엘 신의석 PD 진행으로 경품 추첨 행사를 개최했다. 1등은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민송이(서울 도봉동본당, emma0316)씨가 당첨돼, 경품으로 이스라엘 성지순례권을 받았다. 이어 손희송 주교를 비롯한 홍보위 사제들이 2등부터 6등까지 총 40명을 추첨했다. 매일 복음쓰기 점수와 출석 룰렛 점수를 합산한 점수를 등급으로 나눠 그룹별로 추첨했다. 경품은 아이패드 7세대, 에어팟 프로, 금 묵주반지 등 풍성했다.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추첨 과정을 유튜브에 생중계했다. 경품 추첨에 이어 가장 많은 신자가 참여한 본당에 대한 시상이 진행됐다. 본당 신자 중 364명이 완주한 서울대교구 중앙동본당(주임 김명섭 신부)이 최우수상을, 인천교구 백령도본당(주임 오상민 신부)과 서울대교구 이문동본당(주임 박동호 신부)이 우수상을 받았다. 수상 본당에는 각각 200만 원, 100만 원의 지원금을 전달했다. ‘당신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시편 119, 105)를 주제로 한 매일 복음쓰기 이벤트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가톨릭을 내려받아, 100일 동안 복음과 복음 묵상을 작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전체 참여인원 1만 4185명 중에서 40~50세 참가자가 3996명(28.17%)으로 가장 많았으며, 50~60세가 3561명(25.1%)으로 그 뒤를 이었다. 20세 미만 신자는 443명(3.12%)으로 참여비율이 가장 낮았다. 7500여 명의 참가자가 매일 복음쓰기를 완주했다. 가톨릭인터넷 굿뉴스 담당 김명중 신부는 “‘굿뉴스 모바일 매일 복음쓰기’ 이벤트는 종료됐지만, 지속해서 성경을 쓸 수 있도록 ‘제1회 함께 복음쓰기’ 서비스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사장 조정래 신부)은 본사 지하 1층에 CPBC 역사전시실을 개관하고, 손희송(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 이사장) 주교 주례로 축복식을 가졌다. CPBC 역사전시실은 1988년 5월 평화신문 창간을 시작으로, 가톨릭 이념을 바탕으로 30여 년간 방송과 신문이 걸어온 역사의 발자취를 소개하는 전시물로 꾸며놓았다. 그동안 제작해온 도서와 다큐·드라마 등을 비롯해 다양한 가톨릭 콘텐츠를 담은 제작물들을 전시해 놓았다. 또 방송 및 오디오 기기 등 방송 촬영 장비, 평화신문 제호 변천사를 볼 수 있다. 손희송 주교는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을 설립한 첫 마음을 잊지 않고 이어가려면 역사를 잘 알아야 한다”며 “서울대교구와 한국 교회를 위해 결실을 맺는 터전이 되길 바란다”고 격려했다.이날 행사에는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허영엽 신부,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 사장 조정래 신부, 문화홍보국장 유환민 신부 등 이벤트 수상자들과 가톨릭평화방송 임직원들이 참여했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cpbc2020.03.11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24주일 - 계속 용서하는 것이 이득이다](//cpbc.co.kr/CMS/newspaper/2020/09/rc/786955_1.1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24주일 - 계속 용서하는 것이 이득이다임상만 신부(서울대교구 상도동본당 주임) 임상만 신부 베드로가 예수님께 물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마태 18,21) 성경의 위경 중 ‘벤 시라’의 지혜서를 보면, 이웃이 범죄 했을 때는 두 번의 기회만 주라는 대목이 있고, 랍비들은 이웃의 범죄는 세 번까지만 용서하라고 가르친 것에 비하면 베드로는 아주 넉넉하게 일곱 번이라는 숫자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상 밖의 답변을 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22절)사실 베드로는 유다인들의 율법적 용서 개념을 훨씬 넘어서는 자신의 관대함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일곱 번까지 용서하면 충분하지 않으냐고 물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관대함을 훨씬 뛰어넘어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끝없는 용서’, ‘제한이 없는 사랑’을 가르치시며 이에 대해 구체적인 예화를 말씀하셨다. “임금이 셈을 시작하자 만 달란트를 빚진 사람이 끌려왔다”(24절)라는 말씀으로 하느님의 심판을 드러내신다. 한 달란트가 금 34kg 정도이기에 만 달란트는 340톤이나 되므로 이것은 결국 평생을 노예로 살아도 그 빚을 갚을 수 없는 엄청난 양의 돈이다. 그런데 이 종이 그 빚을 절대로 값을 수 없다는 것을 안 주인은 그를 가엾게 여겨 빚을 모두 탕감해 주었다. 그리고 그 탕감 문서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여러분은 잘못을 저지르고 육의 할례를 받지 않아 죽었지만,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분과 함께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은 우리의 빚 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가운데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골로 2,13-14).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자비하심과 무한한 사랑으로 서명된 빚과 죄의 탕감 문서인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용서는 우리가 상대방에게 무엇이라도 받으려고 하면 절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그냥 또 하나의 은혜를 베푸는 것이다. 그러기에 용서는 그를 불쌍히 여기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과 그에 대한 자비의 사랑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것이다.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회개하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더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며 성서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인간적이고 율법적인 의미에서의 용서가 아니라 더 차원이 높은 자비와 사랑을 통한 무조건적인 용서를 우리에게 요청하신다. 그러므로 바오로 사도는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에페 4,32)라는 말로 우리가 용서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미 용서받은 것처럼 남을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당부하고 있다. 우리는 남의 죄를 용서해야 한다. 비록 자비나 사랑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우리도 용서받았으니 용서해야 한다는 말이고, 남의 죄를 용서할 수 없다면 나도 용서받을 수 없으니 용서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코, 갚을 길 없는 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우리가 일상의 작은 것, 달랑 백 데나리온의 잘못도 용서하지 못해서 우리 빚의 탕감이 무효가 되는 어리석음은 피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선 자기 자신의 더 큰 죄, 더 큰 빚을 탕감받기 위해서 계속 용서하라는 것이다. 남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불쌍히 여겨야 우리 자신이 사랑받고 용서받고 하느님의 자비하심 안에 영원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누군가에게 반감을 품고 있거든 용서하여라.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신다.”(마르 11,25)임상만 신부(서울대교구 상도동본당 주임) cpbc2020.09.08

머리에 재 얹으며 희생과 보속의 삶 다짐… 사순 시기 시작[전례] 재의 수요일 의미와 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 가톨릭교회는 재를 머리에 얹거나 이마에 바르는 예식으로 사순 시기를 시작한다. 재를 얹는 예식은 회개를 통한 새로운 삶으로 주님의 부활에 동참하고 하느님 나라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갖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오는 2월 26일은 재의 수요일이다. 재의 수요일은 사순 시기 첫날로 사순 제1주일 전(前) 수요일을 말한다. 사순 시기는 본래 40일을 의미하는 라틴말 ‘콰드라제시마’(Quadragesima)에서 나온 말로 성경에서 40은 ‘고행의 시기’ ‘시련의 시기’를 뜻한다. 교회도 이 성경의 전통을 받아들여 40일간 사순 시기를 정해 희생과 보속으로 주님 부활을 준비하고 있다. 사순 시기를 시작하면서 재의 수요일의 의미를 살펴보자.▨ 재의 수요일‘재의 수요일’은 이날 미사 전례 중에 참회의 상징으로 재를 축복해 이마에 바르거나 머리에 얹는 예식을 행하는 데서 이름이 생겨났다. 재의 수요일을 사순 시기 첫날로 제정해 교회의 전례에 공식 예식으로 도입한 이는 그레고리오 1세(재위 590~604) 대교황이다. 성경에서 재와 먼지는 속죄와 참회의 표지이다. 또 죽음과 재앙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회와 슬픔을 드러낼 때 머리에 재를 얹었다. 아칸이 죄를 지어 하느님께서 진노하시자 여호수아는 자기 옷을 찢고, 주님의 궤 앞에서 자기 머리 위에 재를 끼얹고 얼굴을 땅에 대고 저녁때까지 엎드려 속죄하였다.(여호 7,6) 또 욥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시련을 받으면서 잿더미에 앉아 자신의 죄를 보속하였다.(욥 2,8) 예수님께서도 회개하지 않는 코라진과 벳사이다, 카파르나움 사람들을 보고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마태 11,21)이라고 꾸짖으신다. 성경 시대 유다인들은 하느님께 죄를 지었을 때 머리에 재를 뒤집어쓰고 자루 옷을 찢으며 행한 이 참회 예식(2사무 13,19; 에스 4,1)을 교회가 받아들인 것이다. 초기 교회 공동체는 성 목요일에 공적 참회자들의 머리에 재를 얹어 주었고, 그들의 옷에 재를 뿌렸다.그레고리오 1세 대교황은 「그레고리우스 성사집」에서 이날을 ‘재의 날’이라 불렀다. 재의 수요일에 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을 공적인 회개의 상징으로 공식 전례 안에 도입된 것은 1091년 복자 우르바노 2세(재위 1088~1099) 교황이 이탈리아 베네벤토 공의회에서 이 예식을 권고하면서부터이다. 베네벤토 공의회는 “재의 수요일에 모든 성직자와 평신도, 남자와 여자는 재를 받아야 한다”고 선포했다. 이 예식은 12세기 「로마 주교 예식서」 에 수록됐다. ▨ 재의 의미재의 수요일에 사용하는 재는 일반적으로 지난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나눠 받았던 성지(聖枝)를 거두어 태워 남은 재이다. 재가 지니는 상징적 의미는 다양하다. 재는 불로 태워진 것, 즉 불로 시련과 단련을 받은 것으로 우리가 하느님께 대한 열망과 열정으로 자신을 온전히 태워버리고 살아야 함을 뜻한다. 또한, 재란 남김없이 타버린 존재를 의미한다. 더는 태울 것이 없는 순수한 인간 존재 본래의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일깨워준다. 아울러 재는 생명과 새로운 성장을 위한 거름이다. 재를 받음으로써 사순 시기 동안 새로운 각오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축제를 준비하며 부활의 새 생명을 향해 나아갈 것을 촉구한다. ▨ 재를 얹거나 바르는 예식사제는 이 재를 축복한 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명심하십시오”(창세 3,19) 또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십시오”(마르 1,15)라고 말하고 회중의 머리에 재를 얹거나 이마에 재를 바른다. 재를 얹거나 바르는 예식은 인간은 결코 죽을 수밖에 없는 허무한 존재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현세의 삶에서 죄의 나락으로 떨어질 때도 있지만, 인간의 삶은 궁극적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 영원한 행복을 누릴 준비를 하는 것임을 일깨워주는 게 재의 예식의 본뜻이다. 따라서 재의 예식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회개하고 하느님께 향한 삶을 충실히 살아가라고 권고하고 있다. 더불어 전례적으로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하는 사순 시기를 어떻게 지내느냐에 따라 주님 부활의 영광에 어떤 모습으로 참여할 수 있는가 달려 있음을 드러낸다. 재의 수요일 ‘재를 얹거나 바르는 예식’은 준성사이다. 따라서 가톨릭 신자든 아니든 상관없이 재의 예식을 받을 수 있다. 교회법은 “축복들은 우선적으로 가톨릭 신자들에게 주는 것이지만, 예비신자들에게도, 또한 교회의 금지가 방해하지 아니하는 한, 비가톨릭 신자들에게도 줄 수 있다”(교회법 제1170조)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이 예식은 미사 없이도 독립적으로 거행할 수 있다.▨ 금식과 금육 금식과 금육재는 단순히 먹고 마실 것을 절제하라는 고행의 의미에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는 동시에 다른 이들의 곤경에 관심을 갖도록 촉구한다. 따라서 금식과 금육은 세속의 유혹에 휘둘리지 않고 그리스도께 나아감과 함께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기꺼운 나눔을 실천해야 한다는 의미이다.교회사를 보면, 주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에 40일 동안 단식하신 것을 모범으로 삼아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님의 부활에 동참하기 위해 초대 교회 때부터 금식재를 지켜왔다. 2세기부터 신자들은 주님 부활을 준비하기 위해 성 금요일과 성 토요일에 금식재를 지켰고,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교회에서는 며칠 동안 부활 전 단식 규정을 지켰다. 육식을 금하는 금육재 관습 역시 이미 초세기부터 지켜져 왔다. 금육은 영적인 완화를 위한 고신극기의 의미도 있었는데, ‘은수자들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집트의 성 안토니오와 제자들은 육식을 절제하고 빵과 물, 소금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성 바오로 6세(재위 1963∼1978) 교황은 교령 「회개하여라」(Paenitemini, 패니테미니, 1966. 2. 17)을 통해 현대인의 생활에 맞게끔 금육재와 금식재의 규정을 수정했다. 현 교회법은 주님께서 수난하시고 돌아가신 성 금요일에도 금육재와 금식재를 지키도록 정해 놓았다. 금육재는 만 14세부터 모든 신자가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하며, 성인이 된 모든 신자는 60세까지 한 끼를 단식하는 금식재를 지켜야 한다.(교회법 제1252조) 한국 교회에는 만 18세부터 만 60세 전까지 금식재를, 만 14세부터 금육재를 지키도록 규정하고 있다.(「사목지침서」 136조) 이외에도 사목자와 부모는 금식재와 금육재를 지킬 의무가 없는 미성년자들도 참회 고행의 의미를 깨닫도록 보살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평화신문2020.02.19

가톨릭 사제가 풀어낸 동양철학의 정수도덕경 편지 / 편저 신대원 신부 / 동명노자와 신대원 신부.동양 고전 속에서 복음을 즐기고, 복음 속에서 동양 고전을 즐기는 신부가 있다. 10년 전 유교 경전의 핵심인 사서오경 중 사서에 속하는 「중용」을 가톨릭 시각으로 풀어낸 「중용 속에서 놀다」를 출간하더니 이번에는 동양철학의 정수로 꼽히는 노자의 도덕경에 눈을 돌렸다. “천지지간에 인간은 그저 보잘것없는 한 줌 모래 알갱이에 지나지 않은가? 하지만 그 삶이 마냥 초라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나는 안다. 더는 초라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걷는 길을 앞서 걸어갔고, 저만치 걸어서 손짓하는 노자라는 양반을 우리는 기어코 만나야 할 당위성을 가지고 있다. 세상이 점점 애매한 쪽으로 흘러가는, 가면 갈수록 ‘나는 꼭 그를 한번은 만나야 할 것이다’라고 힘주어 말하고 싶었다.” 안동교구 신대원(안동교회사연구소장) 신부가 2011년부터 2018년까지 경북 상주에 있는 맨발의 가르멜 여자 수도회 수녀들에게 쓴 편지를 모아 엮었다. 상ㆍ하 두 권으로 펴낸 「도덕경 편지」(동명)는 편지 형식의 강의에 가깝다. 몇 해 전, 맨발의 가르멜 여자 수도원 소임을 맡았던 신 신부는 수녀들에게 노자의 도덕경 내용을 풀이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신 신부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새 소임지로 이동했다. 신 신부는 내친김에 노자가 걸어간 길을 더듬거리며 찾아 나섰고, 82장으로 구성된 도덕경 해설을 편지로 적어 보내기 시작했다. 신 신부는 도덕경을 인류를 향한 ‘비가(悲歌)’, ‘애가(哀歌)’, ‘연가(戀歌)’에 비유한다. 세상을 향한 노자의 맺힌 한풀이 혹은 세상을 위한 그의 마지막 참된 삶에 관한 메시지라고 강조한다. 편지글에는 성경 말씀과 도덕경 해설이 함께 녹아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자연 그대로의 상태인 도(道)를 본받아, 자연에 순응하고 인위적이지 않은 무위(無爲)의 삶을 살 것을 주장한다. 노자는 겸손과 무욕의 실천적 태도를 강조했다. “수녀님, 확실히 노자의 ‘도’의 모습은 ‘하느님의 말씀’과 비교했을 때 무척 많이 닮아 있지요. 노자는 도의 행위를 ‘무위’라고 합니다. ‘무위’는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저절로 그러함(자연)에 따라서 아무런 자취를 남기지 않는, 곧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눈에는 마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의미하지요.”(‘도는 언제나 무위하면서 못 하는 일이 없지’ 중에서) 신 신부가 동양고전에 매혹된 건 서강대학교 인문대학원에서 동양철학을 수학하면서다. 「도덕경 편지」는 유유자적한 마음으로 쓴 편지글이어서 계절의 아름다움과 안부 인사가 독자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이끈다. 김병수(한국외방선교회) 신부는 서문 ‘다시 노자를 읽어야만 하는 시대’에서 “도덕경을 풀이한 책은 많다. 그러나 정말 뼛속까지 노자인 사람, 노자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쓴 해설은 다르다”면서 “이 책은 수도자의 길, 여성에 대한 이해, 생태의 원리에 그 현대적 가치를 매길 수 있다”고 썼다. 올해는 저자가 사제서품을 받은 지 30년 된 해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cpbc2020.07.21

죽어가던 남편 살리고, 투병 중인 나를 일으키는 ‘사랑의 힘’세계 병자의 날에 만난 사람 류정호 테레로사 만성신부전증을 앓는 남편에게 신장을 이식해준 류정호씨. 이식한 지 6개월 후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은 그가 생명에 대한 찬가를 담은 「신은 우리에게 두 개의 콩팥을 주었다」를 펴냈다. “세상의 어느 부부가 아파 죽을 지경인 배우자를 그냥 둘 수 있겠어요? 죽어가는 배우자를 살릴 수만 있다면 다 해봐야지요. 결혼생활에 어찌 좋은 날만 있었을까마는, 35년간 함께해온 세월이 부부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일러주었습니다.”남자의 갈빗대 하나로 여자가 지어진 ‘창세기’가 성경에 있다면, 여자의 콩팥 하나로 남자의 생명을 살려낸 ‘신(新) 창세기’를 몸으로 쓴 여성이 있다. 꽃과 문학을 주제로 인문학 강의를 해온 류정호(테레로사, 66)씨.지난해 4월 22일, 그의 몸에 있던 콩팥 두 개 중 하나가 남편에게 건너갔다. 만성신부전증을 앓는 남편의 신장 이식 공여자가 됐다. 부부로 살아온 35년 세월 중 가장 큰 이벤트였다. 남들이 바라보는 것처럼 숭고한 사명감, 두려움도 없었다. 이식 수술을 위한 교차반응 검사와 혈액형 일치 검사에서 ‘적합’ 판정을 받고, 신께 납작 엎드렸다. 이것만큼은 인간이 하고자 하는 마음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콩팥이 두 개인 것에 감사하며, ‘내가 가진 것 하나로 남편이 건강해진다면’ 그 생각 하나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뇨병, 대장암으로 오랜 시간 처진 남편의 어깨를 다시 세우는 일이라면 뭐든 하고 싶었다.콩팥 하나로 남편이 건강해진다면 다도(茶道) 전문가로 차향을 만끽하며 강의와 저술활동을 해온 그는 바쁜 일상에 일시 정지 버튼을 눌렀다. 남편과 한 몸인 부부로서, 배우자의 고통을 방관할 수 없었다. 남편의 곁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병상 한쪽 구석에서 조각 글을 썼다. 차향 대신 병실의 약품 냄새와 투석기 돌아가는 소리, 아픈 이들의 신음을 마주해야 했다. 어떻게든 살아보라는 신의 명령을 따르는 이들의 쓸쓸하고 찬란한 풍경이었다. 그가 써온 조각 글들은 부부의 애틋한 사랑을 넘어 고통을 받아들이는 이타적인 헌신, 생명에 대한 참뜻이 담겨 큰 울림을 줬다. 그의 글을 본 출판사에서 바로 출간 제의가 들어왔고 지난해 10월 중순 출판사에 에필로그만 빼고 원고를 모두 넘겼다. 남편에게 신장을 이식해준 지 6개월 후였다. 잘 먹고 잘 쉬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남편에게 신장을 줄 때 의기양양했어요. 저는 주는 사람이었으니까요. 남편에게 신장을 주면서 남들에게 칭송받고…. 하늘에 계신 분이 엄청난 핵폭탄을 던지셔서 저를 깨우치게 해 주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남편을 위해 헌신한다고 잔망스럽게 투덜거리던 날들에 대한 반성의 기회를 주셨어요. 겸손이 모자란 것에 성숙하게 살라고 고난을 주셨어요. 몸살 정도로 지나갔으면 저는 계속 자만했을 텐데…. 면역력을 제대로 떨어뜨리셔서 남편 입장이 되어 보라고 하시는 거 같아요.”하느님이 그에게 던진 핵폭탄은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었다. “몸에 암세포가 돌아다니고 있다는 거예요. 내가 암이라니…. 백혈병이라는 무시무시한 병에 걸리다니….”백혈병 진단을 받은 날, 류씨는 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통곡했다. 남편은 아내의 손을 잡아주려고 손을 내밀었는데, 통곡하는 아내의 등을 쓸어주면서 “내가 죄인”이라고 말했다. 류씨는 죽음을 생각했다. 눈앞에 장례 미사도 어른거렸다. 두 아들에게 유언을 전하고, 며느리에게 영정사진도 건넸다. 남편은 아내의 간병인이 되어 주었다. 의사는 신장 이식과 백혈병은 아무 연관이 없다고 했다. 올해 1월 발간된 「신은 우리에게 두 개의 콩팥을 주었다」(파람북)는 여느 동화책의 아름다운 결말처럼 ‘고생 끝 행복 시작’일 줄 알았지만, 백혈병 투병이라는 또 다른 서막을 알렸다. 에필로그는 눈물 없이 쓸 수 없었다. 환자와 보호자가 맞바뀐 자리에는 사랑과 헌신도 방향을 틀었다. 그의 투병소식이 전해지면서 기도와 응원이 빗발치고 있다. 적혈구와 혈소판을 수혈받아야 하는 그에게 지정헌혈이 쏟아지다 못해 남아서 부족한 옆 병실 환우와도 나눴다. 하루가 멀다하고 현관 앞에 미역국이며 나물 반찬을 놓아두고 가는 이들이 끊이지 않고, 매일 밤 9시마다 류씨를 위한 9일 기도를 해주는 이들도 있다. 류씨의 치유를 기원하며 달리기를 시작한 후배도 있다.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것은 사랑의 힘이라는 걸 절절하게 느낍니다. 하느님이 이번에는 무얼 겪게 하시려고…. 저를 도와주는 이들을 보면서 하느님은 인간을 통해 여러 방법으로 드러나시는구나 생각했죠.”사랑의 힘, 이타적 헌신을 믿는 당신들에게 류씨는 가톨릭대 생명대학원 졸업생이다.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생명사목연구회와 가톨릭대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생명대학원에서 공부하며 자나 깨나 생명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왔어요. 대학원에서는 이론을 공부하기에 쉽지는 않았지만 마른 땅에 단비가 내리듯 생명 의식이라는 것이 천천히 배어들었어요. 생명이라는 것이 갑자기 ‘생명은 ○○이다’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가는 게 아니에요. 어떤 순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판단을 잘 내리게 되는 거죠.”처음 류씨의 글을 보고 책으로 출간하게끔 마중물이 되어 준 남편의 주치의 보라매병원 이정표 교수는 신장병을 앓는 환우와 가족들이 읽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이 책은 세상을 살아가는 부부들을 위해 썼다. 그의 책을 읽은 후배 한 명이 결혼식 주례를 서달라는 말에 류씨는 “(항암치료로 빠진) 머리카락이 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농담을 건넸다. 책 에필로그에는 그가 잠결에 들었던 음성을 남겼다. “사랑이란 게 뭔가. 상대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알아보고 그가 싫어하는 것은 멀리하는 게 사랑의 시작 아니겠나. 자네들이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을 즐겨 쓰더군.(중략) 내가 그 말을 끄집어내는 것은, 아파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의 젖은 눈시울을, 아픈 사람의 턱밑까지 차오르는 숨 가쁜 호흡을, 아픈 사람의 상처와 흉터를 살피고 이해하는 마음의 눈을 갖는다는 거야. 훗날, 산들바람 불고 지저귀는 새소리와 향기로운 들꽃에 감싸인 이 동산에 오를 때, 아픈 사람을 볼 줄 아는 눈과 아픈 사람을 품는 따뜻한 가슴이면 좋겠어. 누구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 삶의 모든 길은 이어져 있다는 것을 부디 잊지 마시게…. 맞잡고 걸어온 자네 부부에게 축복을 보내네. 고맙네.”(에필로그 중에서)책 첫 장에는 ‘사랑의 힘과 생명의 숭고함, 이타적 헌신의 미덕을 믿는 당신의 손 위에’라고 적혀있다. 그러나 사랑의 힘과 생명의 숭고함, 이타적 헌신의 미덕을 믿지 못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흐드러지게 핀 꽃내음이 문장 속에 피어난다. 사랑과 헌신의 삶으로 피워낸 부부 사랑의 결정체를 만날 수 있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추천사에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은 이해와 무한한 신뢰, 고통을 받아들이고 신을 마주하는 겸허한 자세가 감동의 빛을 발한다”고 썼다. 정호승(프란치스코) 시인도 추천했다. “저자의 웅숭깊고 정갈한 성품과 글의 진정성으로 인하여 읽는 내내 따뜻하고 행복했다”고.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cpbc2021.02.03

신천지 세뇌 교육의 실체 파헤친다본지, 탈퇴 신도 통해 교리교재 등 내부 자료 40여 개 입수 본지가 입수한 신천지 내부 교육 자료들. 카세트테이프를 비롯해 시험지와 답안지, 프린트물 교재 등 40여 개에 이른다. “우리는 요한 계시록의 참된 말씀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날 14만 4000명의 성도와 흰 무리가 이 땅에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게 해야죠.” “아멘!” (신천지 강의 중)가톨릭평화신문이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의 교리교재와 강의 녹취 테이프, 시험지 등 내부 자료를 단독 입수했다. 본지가 입수한 자료를 보면, 신천지는 신입 교육생에게 ‘요한 계시록 성취 때 천국 백성이 되기 위한 6가지 조건’을 달달 외우도록 주입하고 있었다. 또 “요한 계시록 비유 속엔 ‘약속의 목자’가 재림하시는 사실이 감춰져 있다”며 터무니없이 신천지 교리를 세뇌시키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말씀을 빙자한 ‘가짜 교리’로 자신들의 교주를 우상화하는 신천지 교육의 과정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신천지는 교리 내용이 담긴 내부 자료와 출판물의 외부 반출을 철저히 금지할 정도로 ‘단속’해오고 있는데, 최근 본지가 신천지 탈퇴 신도로부터 자료를 입수했다. 가톨릭 언론이 신천지 내부 자료를 입수해 보도하는 것은 처음이다. 도서출판 신천지가 발간한 「예수 그리스도의 행전 - 사복음서 강해」와 사명자 교육용 「성경에 대한 계시와 주석」 등 책자와 신천지센터에서 사용하는 고등교육 과정 인쇄물 교재, 초ㆍ중ㆍ고등 과정 종강 시험지와 답안지 등이다. 또 신천지가 강조하는 요한 계시록 강의 내용이 녹음된 교육용 카세트테이프 30여 개와 개인 필기 노트까지 총 40여 개 자료다.이 자료와 서적들은 신천지가 어떤 내용과 과정을 통해 신입 교육생들을 신천지 교인으로 만드는지 핵심 내용을 낱낱이 담고 있다. 신천지는 추수꾼을 통해 포섭된 사람들을 3개월가량의 복음방 과정을 거쳐 센터로 보낸다. 신학원으로 불리는 센터에서는 6개월간 초ㆍ중ㆍ고등 과정의 교육을 진행하는데, 이번에 입수한 자료 속에는 센터에서 가르치는 신천지 핵심 교리들이 상세히 들어 있다.특히 과정마다 진행되는 시험지는 기성교회를 비판하고, 신천지만이 승리한 교회라는 식의 내용을 달달 외워 적도록 강요하고 있다. 그러면서 결국 그들이 말하는 천국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신천지에 추수되어 약속의 나라 12지파에 속해야 하고, 직통 계시자인 자신들의 교주만이 오늘날 새 완성시대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입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자신들의 교인을 어떤 식으로 양성해내는지 ‘신천지 세뇌 교육의 실체’가 담긴 자료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아울러 입수된 카세트테이프 수십 장에는 「요한 계시록」 강좌가 총 22과의 다양한 주제로 나뉘어 담겨 있다. 본지 취재팀이 청취한 결과, 강의 내용은 결국 ‘약속의 목자’로 불리는 이만희 교주 우상화 교리인 것으로 확인됐다.신천지 내부 자료를 제공한 A씨는 “신천지에 관한 잘못된 교리와 그들의 실체를 가톨릭 신자들도 제대로 알고 대처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며 “그들은 지금도 내부 성경 전문가라고 칭하는 목사, 전도사 출신 신도들이 교육 과정과 자료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전했다.한국 천주교 유사종교대책위원회 위원장 이금재 신부는 “신천지 내부 자료는 유출이 어렵지만, 우리가 사이비, 이단을 대처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며 “현재 코로나19 사태와 함께 신천지에서도 탈퇴자들이 속출함에 따라, 내부에서도 신도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단속에 급급한 상황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본지는 입수된 자료를 분석하는 과정을 거쳐 추가 보도를 이어갈 계획이다.특별취재팀 cpbc2020.03.18

신앙으로 세상 비추는 여류 문인들안영·이명환 작가 수필집 출간여성 문인들의 신앙을 담은 수필집이 잇따라 출간됐다. 지난해 팔순을 맞은 안영(실비아) 소설가가 문학과 신앙으로 지탱해온 삶을 녹여낸 「나의 문학, 나의 신앙」을 펴냈다. 다른 한 권은 고 성찬경(요한 사도) 시인의 아내 이명환(요한나) 수필가가 출간한 「겨울 나그네」다. 「나의 문학, 나의 신앙」은 안영 소설가의 여섯 번째 수필집. 반세기 넘게 삶의 버팀목이 되어준 문학과 신앙에 기대어 문학인ㆍ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정리했다. ‘문학과 함께’, ‘신앙과 함께’, ‘고향, 그리고 가족’, ‘독일 여행기’ 등 4장으로 구성했다. 문학이 베풀어준 행복, 사랑하는 손자 첫영성체 날, 선교의 즐거움 등 삶의 소소한 행복이 넘친다. 팔십 년 가까이 쌓아온 삶의 궤적과 추억이 차분하고 깨끗한 문장에 담겼다. 1965년 등단하면서 전남여고를 시작으로 네 군데의 여고 국어교사로 살았던 그는 교정에서 여고생들과 문학을 이야기하는 낙으로 살았다. 틈틈이 성경공부를 하며 글 봉사도 했다. 그는 스스로 “문단이라는 거대한 정원 가장자리에 피어난 한 송이 풀꽃”이라고 칭하며, “그저 누군가의 영혼에 작은 기쁨과 위로를 줄 수 있는 맑은 샘물이기를, 향긋한 풀꽃이기를 소망하며 문학에 임했다”고 고백한다. 「겨울 나그네」는 이명환 수필가의 전작인 「지상의 나그네」(2005),「나그네의 축제」(2013)에 이은 나그네 삼부작의 완결판이다. 나이 팔순에 선보이는 세 번째 수필집이다. 수필은 춘(春)ㆍ하(夏)ㆍ추(秋)ㆍ동(冬)으로 구성했다. 성찬경 시인과의 인연, 신혼집이었던 서울 응암동 수재민 주택단지 풍경 등 이 수필가의 삶을 차지해온 풍경과 사람을 그렸다. 남편이 남기고 간 물건과 작품을 정리하면서 ‘그동안 남편을 너무 의지하고 살아왔구나, 성가셨겠어’ 하면서도, 과분한 사랑에 감사한 마음이 들다가도 먼저 떠난 남편이 매정하게 느껴진다. 저자는 지난날의 정거장 구실을 해온 남편의 시를 들여다보며, 내 이야기를 찾아 끄적거리며 지냈다고 털어놓는다. 먼저 남편을 떠나 보내고, 남겨진 이의 감정을 거르지 않고 묵직하게 담아냈다. 음악가인 차남 성기선씨는 이번 수필집을 “아버지 시 주제에 의한 어머니의 문학적인 변주곡”이라고 설명한다. 정연희 소설가는 추천사에서 “부군인 고 송운(松韻) 성찬경 시인의 시에는 영혼의 미세한 실핏줄이 시인의 그리움을 타고, 알아볼 사람에게만 드러나는 애절함이 있고 그 애절함을, 명환은 송운을 떠나보내고 산문을 곁들여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 올린다”고 썼다. 이어 “자신에게 정직하고 진솔한 영혼의 고백이면서 때로는 사막의 교부에서나 만날 수 있는 묵상의 속삭임으로 남겨진 이야기들”이라고 덧붙였다. 이화여대 문리대를 졸업한 저자는 2000년 「한국수필」에 겨울 이야기로 등단했다. 고 성찬경 시인 사이에 4남 1녀를 두었다. 그 중 넷째 아들이 성기헌 신부다.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문채현2020.07.01
![[아버지의 집, 아름다운 성당을 찾아서] 인천교구 부평4동성당](//cpbc.co.kr/CMS/newspaper/2020/07/rc/782935_1.1_titleImage_1.jpg)
[아버지의 집, 아름다운 성당을 찾아서] 인천교구 부평4동성당아름다운 성미술품으로 성전의 품위를 높이다 인천교구 부평4동본당이 6월 14일 새 성전을 봉헌했다. 앞서 성당 내 제대와 제구, 유리화 등 11점이 인천교구 성미술품 1호로 지정됐다. 신앙의 후손에게 문화유산으로 기억될 성미술품을 만나보기 위해 부평4동 성당을 찾았다.도심 속 오아시스 같은 성당인천 부평4동성당 앞은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성당 인근에 부평 깡시장과 지하철 부평시장역과 부흥 오거리가 있어 사람과 차량의 이동이 끊이지 않아 답답한 도심의 풍경이 이어진다. 그 중심에 작은 공원처럼 꾸며진 부평4동성당은 도심 속 오아시스 같다. 정병덕 주임 신부는 “새 성당은 교우들은 물론 생업에 지친 시민들의 몸과 마음에 휴식과 생명을 제공하는 도심의 오아시스와 같은 영적 공간”이라며 “성당을 찾는 이들의 쉼터가 되길 바라는 공동체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정 신부는 “성당은 개방성과 전통성을 살려 설계됐다”고 설명했다. 담이 없는 성당 입구에는 옛성당 회랑의 디자인을 빌려와 길게 늘어선 기둥을 설치했고, 옛성전에 있던 어린양 모자이크 타일을 성당 마당으로 옮겨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는 의미를 더했다. 성당 외형은 고딕 형식을 현대적으로 표현했고, 화강암의 일종인 베이지색 사비석을 마감재로 사용해 새 건물 특유의 낯섦이 느껴지지 않는다. 성당 마당 장의자에 앉아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무를 보니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진다.가톨릭의 숨결이 느껴지는 성당성당 안으로 들어가자 입구 왼쪽에 예수 성심 유리화가 눈에 들어온다. 아트 글라스(Art glass)와 수묵 드로잉 기법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색유리를 납선으로 연결해 작품을 표현하는 전통적 유리화와 달리 표현이 자유롭고 이음새가 없다. 유리판 속 예수 그리스도의 시선이 보는 이의 시선과 마주친다. 유리화 하단 오른쪽에는 검은 가시관이 그려져 있다. 예수님의 표정이 보는 이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 같다. 옅은 미소를 띤 것 같기도 하고 평온해 보이기도 하고, 위로를 건네는 것 같기도 하다. 보는 이에 따라 표정이 다르게 느껴지는 듯하다.예수 성심 유리화를 비롯해 성당 내에 교구 성미술품으로 지정된 작품은 모두 조광호(가톨릭조형예술연구소 대표) 신부가 제작했다. 사제이자 화가인 조 신부는 국내외 30여 회 개인전과 그룹전을 가졌다. 1990년 이후 부산 남천주교좌성당·숙명여대박물관·대구대교구 주교좌 범어대성당ㆍ구 서울역사 유리화, 서소문성지 기념탑 및 서울 지하철 2호선 당산철교 구간 대형 벽화 등을 제작한 한국 교회 성미술의 거장이다.2층 대성전 문 역시 특별함이 묻어난다. 거룩한 공간과 세속을 구분하는 경계가 바로 성전 ‘문’이기에 섬세한 디자인과 아름다운 작품이 하나가 된 대작이다. 성전으로 들어가는 세 개의 문에는 290개의 신ㆍ구약 성경을 주제로 한 이콘이 배열돼 있다. 고래 뱃속의 요나와 올리브 가지를 입에 문 비둘기, 오병이어 등 성경 속 상징들이다.문을 열고 성전에 들어서면 제대 뒤 대형 유리화와 독서대 좌측의 대형 십자가가 인상적이다. 가로 4m 세로 12m의 유리화 왼쪽 아래에는 구약의 어린양이 그려져 있고 그곳에서 시작하는 꼬불꼬불한 길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이어진다. 특히 성전 입구에서 바라봤을 때 제대 독서대 좌측에 설치된 대형 십자가는 다른 성당에서 볼 수 없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제단에 세워진 이 십자가는 100년 넘은 고택에 쓰이던 박달나무를 이용해 제작했고, 손이 투박한 예수상은 노동자의 모습을 표현했다는 게 정 신부의 설명이다. 정 신부는 “인간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하는 십자가 아래에서 말씀을 선포하자는 의미를 살렸다”고 했다. 신자들이 십자가와 말씀을 같이 보고 들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전통성을 살린 성미술품도 있다. 제대 상판은 본당의 첫 번째 성당의 돌제대에서, 감실은 두 번째 성당에서 사용한 돌을 이용해 조광호 신부가 새롭게 디자인해 역사를 이어갔다. 성전 좌우 벽면의 14처 역시 사람 눈높이에 맞춰 달았고 각 처의 숫자를 넣지 않아 간결함을 살렸다. 성전을 비롯한 성당에도 몇 가지 색을 사용하지 않았다. 성전 벽은 흰색, 바닥은 검정 대리석, 회중석은 회색이다. 검정과 회색, 흰색으로 점차 하느님과 일치하는 정화의 단계를 암묵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회중석 맨 오른편에 장애인석을 마련해 모두가 함께하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마음이 전해진다.성전을 둘러보고 나가는 길, 성전 입구의 세례대가 이색적이다. 세례대는 유아 세례 때 실제 사용한다. 신자들에게는 세례 때의 뜨거운 신앙을 돌아보게 하는 상징이, 새 생명에게는 신앙의 시작점인 셈이다. 성미술품 하나하나가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 숨 쉬며 성전의 거룩함을 더하는 것 같다.쉼과 문화가 흐르는 성당성전을 나오면 편백으로 마감한 성체조배실이 있다. 편백나무 향기를 맡으며 성체조배를 하고 있으니 깊은 숲 속에 자리한 피정의 집에 온 기분이다. 성체조배실이 주님 안에 ‘쉼’을 준다면 지하 1층에 있는 소성당은 청소년 주일학교 등 작은 단위의 미사와 기도회, 음악회, 전시회를 열 수 있는 다목적 공간으로 꾸며졌다. 소성당 제단 유리화는 주님 탄생부터 마지막 만찬, 주님 부활을 표현했고, 십자가의 길 14처는 간결하고 굵은 선으로 표현한 드로잉 기법의 유리화를 인공조명으로 밝혔다. 성전과 소성당의 성미술품들은 같은 복음을 서로 다른 복음서 저자가 기록해 전하는 것처럼 말씀의 일치 속에 다양성을 전해 준다. “아름다운 성당과 그 안에 설치된 유명한 작가의 성미술품은 성전의 거룩함을 더하고 지역과 교회의 품위를 높이며 신자들에게는 큰 자긍심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역사성이 더해져서 훗날 후손들에게도 큰 자부심이 되는 교구의 문화유산이 될 것이다.”(‘인천교구 성미술품 지정 지침’ 중)인천교구는 공문에서 교구 60년 역사에 비해 미약한 성미술 보유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제 그 아쉬움을 뒤로한 채 부평4동본당 공동체는 성미술품을 통해 후손들에게 대물림할 신앙의 첫 장을 새롭게 써가기 시작했다. 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cpbc2020.07.08
![[시사진단] 바이러스와 사악한 종말론(박현도, 스테파노,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인문한국 연구교수)](//cpbc.co.kr/CMS/newspaper/2020/03/rc/774406_1.3_titleImage_1.jpg)
[시사진단] 바이러스와 사악한 종말론(박현도, 스테파노,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인문한국 연구교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갑작스럽게 전국, 아니 세계를 강타하면서 우리의 삶이 위축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체계적인 방역 시스템으로 감염 환자를 재빠르게 찾아내서 확산 가능성을 크게 걱정하지 않고 있던 참에 31번 신천지(新天地) 신도 확진 환자부터 시작된 감염 폭풍이 전국을 혼란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신천지 신도들 사이에서 급격히 퍼진 바이러스가 일반 국민들까지 공격하여 확진자 수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서 급기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우리 국민의 입국을 막거나 격리 조처를 하기에 이르렀다.감염자가 솔직하게 보건 당국에 신고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신천지 신도 감염자들은 그러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신천지 지도부도 재빠르게 솔직하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취하지 않았다. 그나마 헌신적인 보건 당국의 신속한 조치가 있었기에 더 큰 화는 막고 있으니 불행 중 다행이다.사실 신천지 지도부가 종교인이나 조직에 사회가 기대하는 정직함을 보여주지 못한 점은 굳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들이 그동안 자신들의 종말론을 선전하며 조직원을 끌어들인 방법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신천지 조직원 그 누구도 스스로를 신천지인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소수 종교라 박해가 무서워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선교 방법이 정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천지는 선교 대상으로 삼은 사람을 먼저 다양한 사교 방식을 통해 꼬드긴 후 상당히 긴밀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데 성공하면 그제야 성경 공부 또는 인문학 공부, 또는 심리 공부를 해보자며 유인하여 궁극적으로 자신들의 조직원으로 끌어들인다. 당한 사람들은 몇 달이 지나서야 자신들이 배우는 것이 신천지 교리라는 것을 알지만, 인간관계나 여러 문제 때문에 쉽게 박차고 나오지 못한 채 거짓말쟁이들의 노예가 되어 사랑하는 부모, 부부, 자녀와 연을 끊는다. 한국 천주교 유사종교대책위원장 이금재 신부에 따르면 개인적 경험상 우리 신자 중 20~30%가 신천지에 빠진다. 연인원 4000~6000명이니 본당 하나가 훌쩍 사라지는 셈이다.로마 박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요한 묵시록을 역사적 맥락은 무시한 채 자기 멋대로 해석하여 만든 종말론으로 신천지가 사람들을 현혹한다. 이 세상을 즐겁고 정직하게 살아야 세상의 종말도 기쁘고 즐겁게 맞을 수 있다. 그런데 남의 교회 신도를 거짓말로 꼬드겨 빼 오는 그런 조직이 말하는 종말이 참되겠는가? 참으로 답답하다. “저는 신천지인입니다”라는 말도 솔직하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전하는 종말이 참이겠는가? 참으로 황망하다. 하느님도, 예수님도 다 무시하고 교주 이만희를 만왕의 왕으로 삼는 그런 조직이 가르치는 종말론이 참이겠는가? 참으로 사악하다. 일부 언론에서는 신천지를 그리스도교 일파라고 하는데 말도 안 된다. 그리스도교라면 적어도 예수님과 관계된 종교여야 하는데 이만희가 왕인 신천지를 어찌 그리스도교의 한 교파라고 할 수 있겠는가!5세기 교부 테오도레토스는 아라비아를 가리켜 그리스도교 이단의 본거지(Haeresium ferax)라고 하였는데, 오늘날 이단의 본거지는 우리나라인 것 같다. 아니 이금재 신부 표현처럼 ‘사이비’, 즉 짝퉁의 본거지다. 허접한 거짓말에 속지 말자. 성경과 함께 오랜 사도 전통을 이어받은 우리가 그리 허술하다면 너무 슬프지 아니한가! 십자가를 보며 주변을 다시 돌아보는 방역의 계절이길 기원한다. cpbc2020.03.04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39)마리아가 되고 싶은 마르타 (중) 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 15,11-32) 말씀으로 돌아가 보자. 작은아들이 돌아와 아버지는 즐거운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때 큰아들은 들에 나가 있었으며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25절). 큰아들은 분노와 배신감으로 얼룩진 가슴을 부여잡고 자신의 집에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미 큰아들은 자신의 집을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신의 아버지를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 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29-30절) 이 대목에서 “저 아들”이란 단어는 큰아들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중요한 표현이다. ‘내 동생’이란 용어를 쓰지 않고 ‘당신의 아들’이란 표현을 쓴 것이다. 이제 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가 아니라 동생의 아버지라는 의미인 것이다. 이 복음의 핵심 메시지는 구약의 장자권, 즉 맏아들의 권리는 하느님의 계획이라는 야곱과 에사오의 이야기(창세 25―27장)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사악은 레베카를 아내로 맞아 쌍둥이를 낳게 된다. 고기를 좋아하는 이사악은 사냥 솜씨가 좋은 형 에사우를 사랑하였고, 어머니 레베카는 성품이 온순한 동생 야곱을 사랑하였다. 성경에서도 부모의 편애를 찾아볼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다. 눈이 어두워 볼 수 없게 된 이사악은 죽을 때가 가까워지자 에사우에게 축복을 내리려고 마음먹는다. 하지만 야곱을 더 사랑한 레베카는 이사악의 축복을 야곱이 받도록 계략을 꾸민다. 에사우가 사냥을 나간 틈을 타 야곱을 에사우로 속여 이사악의 축복을 대신 가로채도록 한 것이다. 사냥에서 돌아온 에사우는 자신에게 약속된 축복을 동생 야곱이 가로챈 사실을 알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사악도 자신의 축복이 실수로 야곱에게 내려간 사실을 곧 알아차렸다. 아버지로서 이사악은 자신의 실수를 되돌리려는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에사우는 “아버지, 아버지께는 축복이 하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까? 아버지, 저에게, 저에게도 축복해 주십시오.”라고 목놓아 울부짖는다. 이사악은 에사우에게 그 어떤 축복도 해줄 수 없다며 그 간청을 매몰차게 뿌리쳤다. 마침내 동생에게 배신당하고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에사우는 야곱을 죽이려는 앙심을 품게 된다. 창세기의 야곱과 에사우 이야기를 통해 이스라엘의 장자권, 즉 구약의 야훼 하느님의 축복은 권한을 가진 장자 그리고 그 축복을 받은 한 사람에게만 전달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느님은 마치 경제학의 ‘제로섬 게임(Zero sum game)’처럼 한 형제에게 사랑과 축복을 내려주면 다른 형제에게는 그 어떤 것도 주지 않으시는 분이었다. 말라키 예언서를 보면 이렇게 편애를 기반으로 한 야훼 하느님의 사랑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에사우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나는 야곱을 사랑하고 에사우를 미워하였다. 나는 그의 산들을 폐허로, 그의 상속지를 승냥이들이나 사는 광야로 만들었다.”(말라 1,2-3) 하느님은 야곱의 자손이 세운 이스라엘을 축복하시지만, 에사우의 자손이 세운 에돔은 헐어버릴 것이며 죄악의 땅으로 불릴 것이라고 저주하신다. 하지만 신약의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는 더 이상 사랑하는 야곱, 미워하는 에사우라는 개념이 없다. 분노하는 큰아들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일러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루카 15,31) 여기서 ‘얘야’라고 번역되었지만 원래 용어는 ‘내 아들아’이다. 이제 예수님은 편애하지 않는 진정한 아버지로서의 하느님을 알려주신다. 아버지의 마음에 들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우리 모두가 하느님 앞에 사랑받는 아들이며 딸인 것이다. <계속>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평화신문2020.09.01
![[독자마당] 전염병과 전쟁, 누가 더 무서울까?](//cpbc.co.kr/CMS/newspaper/2020/06/rc/781090_1.0_titleImage_1.jpg)
[독자마당] 전염병과 전쟁, 누가 더 무서울까?조용만(요한 세례자, 상지대 안보학과 초빙교수)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시작된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신음하고 있다. 5월말 기준으로 확진자가 600만 명에 이르고 사망자는 4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특히 세계 패권국 미국은 전 세계 확진자 수의 약 30%, 사망자의 약 28%를 차지하는 세계 최다 감염국이 되었다. 그 다음은 브라질, 러시아, 영국 등 힘깨나 쓰는 국가들이 뒤를 잇고 있다. 이를 보면 강국과 전염병의 확산 속도는 확실히 상관관계가 있는 것 같다. 미국, 러시아, 영국 등 강국일수록 메트로폴리탄이 많아 인구밀도가 높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잘 지켜지기 어려운 구조적 특성과 거주자들의 빈부 격차도 한몫할 것이라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구약성경을 보면 당시 강한 부족국은 이집트였다. 주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집트에 물이 피가 되는 재앙, 개구리 소동, 가축병, 종기, 어둠 등 10가지 재앙으로 공격해 이스라엘 백성을 탈출시켰지만, 전쟁이나 힘을 사용하지 않았다. 인간이 만든 못된 강국은 해충, 전염병, 종기 등을 이용해 폐허로 만들고, 착한 백성은 구하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로마 제국은 ‘세계의 머리’, ‘영원한 도시’라고 부를 정도로 서양 문명을 대표하는 강국이었다. 역사는 서로마가 반달족의 약탈 행위로 인해 국력이 약해졌고, 훈족에게 밀려 서진하던 게르만의 침입으로 멸망했다고 기록한다. 그러나 서기 165~180년 사이에 아시아와의 무역, 흉노족에 의한 전파로 추정되는 갈렌의 역병(안토니우스 역병)으로 인해 15년 동안 500만 명이 죽었다. 또 251~266년에 창궐한 성 키프리아누스 역병은 로마에서만 하루에 5000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키기도 했다. 541년부터 750년 사이에 발생한 역병은 하루에 1만 명의 사망자를 내기도 하여 유럽 인구의 반이 죽었다고 하니 어찌 전쟁으로 로마가 멸망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또 중국과 아시아 내륙에서 유래한 페스트는 1347년 급격히 유럽인들에게 전파되었는데 이로 인해 7500만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1453년 동로마 제국이 멸망한 직접 원인이 아닐까?‘뉴욕 타임스’는 현재 코로나로 인한 미국인 사망자 수 10만 명은 이라크전 사망자의 22배, 9·11 테러 희생자의 33배, 아프가니스탄 전쟁 전사자의 41배라고 전했다. 전염병을 일으키는 세균이 총탄보다 무섭다. 그런데 코로나와 같은 바이러스는 세균 크기의 1/100 또는 1/1000 크기로 세포를 숙주로 하여 번식하기에 전염성이 더 강하다. 과학이 발달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 한발 앞서 가고 있다. 교만한 인간과 교만한 국가일수록 무릎 꿇고 기도하며 겸손해야 할 이유인 것 같다. 평화신문2020.06.10

예수님은 부활하신 아침, 숯불에 물고기를 구우셨다[엉클죠의 바티칸산책] (18)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최초의 조찬’ 갈릴래아 호숫가에 있는 성 베드로 수위권 성당 제대 앞에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을 불러 빵과 물고기로 아침 식사를 했다고 전해지는 바위가 있다. 라틴어 멘사 크리스티(Mensa Christi)는 ‘그리스도의 식탁’이란 뜻이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와서 아침을 먹어라.”(요한 21,12) 요한 복음의 이 대목을 묵상할 때면 온몸을 전율케 하는 기쁨이 솟아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제자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시는 모습, 저는 이 장면이 성경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가장 평화로우며 가장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갈릴래아 ‘관상 순례’는 항상 이곳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만찬에서 조찬까지 예수님과 제자들만의 식사 장면은 성경에 두 번 소개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수난당하기 직전 열두 제자와 함께 파스카 음식을 드신 ‘최후의 만찬’이고, 다른 하나는 부활하신 직후 일곱 제자와 아침을 드신 ‘최초의 조찬’입니다. 만찬에서 조찬까지 짧은 기간에 어마어마한 사건들이 벌어졌지요. 유다는 스승을 팔아먹고, 베드로는 스승의 존재를 부정하였으며, 제자들은 죄다 도망갔습니다. 열두 제자들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은 홀로 수난당하고 홀로 돌아가셨습니다. 스승과 제자의 끈끈했던 관계는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최후의 만찬, 제자들의 배신, 스승의 죽음과 부활, 최초의 조찬! 일련의 사건들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추구했던 모든 가치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두 식사의 성격이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예수님은 만찬과 조찬으로 시대를 구분하셨습니다. 만찬이 부활 사건 전의 낡은 시대를 청산하는 행사라면, 조찬은 부활 사건 후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행사였습니다. 만찬은 예루살렘 도성 이층 다락방에서, 조찬은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있었습니다. 다락방은 사람이 만든 닫힌 공간이고, 호숫가는 하느님이 창조한 열린 공간입니다.부활하신 예수님은 일곱 제자를 위해 손수 아침 식사를 준비하셨습니다. 숯불에 구운 물고기와 빵! 군침이 돕니다. 새벽 고기잡이를 마치고 뭍에 올라온 제자들은 무척 시장했겠지요. 고기 굽는 냄새는 그들의 식욕을 한껏 돋웠습니다. 예수님은 요리도 잘하셨던 것 같습니다. 해본 사람은 잘 압니다. 숯불에 물고기 굽는 게 무척 어렵다는 사실을! 예수님은 이날 아침 무려 팔인 분(예수님 포함)의 물고기를 굽습니다. 요즘처럼 취사시설이 좋은 시대에도 어지간히 숙달된 요리사가 아니면 어려운 일입니다. 무쇠도 녹일 나이의 장정 일곱 명이었으니 음식도 많이 필요했겠지요. 미리 준비한 고기가 부족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당신이 기적을 일으켜 잡아 온 싱싱한 물고기를 먹이고 싶었던 것일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요한 21,10) 얼마나 정겨운 모습입니까. 그러나 제자들은 무척 민망하고 창피했을 것입니다. 불과 며칠 전 자기들이 헌신짝처럼 버렸던 스승이신데 직접 찾아와 아침밥을 이렇게 차려주시니 말입니다. 회개와 용서의 자리사실 예루살렘 만찬 분위기는 동상이몽이었지요. 예수님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수난과 부활을 이야기하셨지만, 제자들을 딴전을 피웠습니다. 스승을 팔아먹을 궁리를 하는가 하면, 스승이 권력이라도 차지할 줄 알고 미리 자리다툼을 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영적으로 불일치 상태에 있었지요. 갈릴래아의 조찬 분위기는 이심전심의 회개와 용서의 자리였습니다. 배신자 패륜아 불효자, 이런 비난을 받았어야 할 처지였는데 예수님께서 손수 고기를 맛있게 구워주셨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했겠습니까. 제자들은 깊이 반성했고, 예수님은 모든 허물을 받아줬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영적으로 일치를 이룬 회개와 용서의 식사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졌다”는 말씀을 남기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무엇을 이루셨다는 말씀인가? ‘최초의 조찬’이야말로 예수님이 다 이루셨다고 말씀하신 실체의 한 자락, 천국의 한 모습이 아닐까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화가들은 저마다 신학적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최후의 만찬’을 캔버스에 담았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불후 명작 ‘최후의 만찬’은 그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과문한 탓이긴 하지만 ‘최초의 조찬’을 그린 화가는 많지 않습니다. 그 많은 화가가 왜 그랬을까, 궁금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왜 이 장면을 놓쳤을까. 긴장감이 감도는 ‘최후의 만찬’을 그렸으면,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최초의 조찬’도 그렸어야지!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 평화신문2020.04.16

2000년 전 로마로 압송되던 바오로 사도를 묵상하며[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 (1)‘바오로 주막’은 흔적없이 사라졌지만… 로마의 신앙 형제들은 주막(선술집) 세 개가 있는 트레스 타베르내까지 내려와 압송 중이던 사도 바오로를 만났다. 벌판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돌 담벼락만이 2000년 전 그 눈물겨운 상봉의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와 교황청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는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가 ‘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을 연재합니다. 언론인 출신인 이 대사는 바티칸 안팎의 소식과 풍경을 생동감 있게 전하고, 대사직을 수행하면서 길어 올린 신앙 단상(斷想)을 독자들과 나눌 예정입니다. ‘엉클 죠’는 이 대사가 캄보디아에서 봉사활동을 할 때 얻은 별명입니다.<편집자>“바로 이곳이다!” 포승줄에 꽁꽁 묶여 압송되던 바오로 사도가 로마 신자들을 처음 만났던 장소, 아피우스(Appius) 광장, 그리고 트레스 타베르내(Three Taverns)! 타베르내는 지금으로 치면 펜션, 옛날 개념으로는 주막입니다. 3개의 주막이 이곳에 있었답니다. 성경은 “형제들이 로마에서 우리 소문을 듣고 아피우스 광장과 트레스 타베르내까지 우리를 맞으러 왔다”(사도 28,15)고 전합니다. 바오로 주막 담벼락 조각만 덩그러니 로마에서 아피아 가도를 따라 50여㎞ 남쪽으로 내려가면 아피우스 광장이 있고, 광장에서 작은 하천을 건너 100m쯤 걸어가면 오른쪽 들판에 큰 돌덩어리가 외롭게 앉아 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돌덩어리가 아니라 벽돌이 닥지닥지 붙어 있는 콘크리트 덩어리입니다. 트레스 타베르내, ‘바오로 주막’은 모두 흔적 없이 사라지고 없고, 이렇게 담벼락 조각 하나만 남아 순례자를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명색이 2000년 된 유물인데, 그 흔한 안내판도 없고, 설명서 한 줄 없습니다. 그냥 버려져 있더군요. 몹시 안타까웠습니다.참 평화로운 농촌 풍경입니다. 예수님이 활동하셨던 갈릴래아도 이랬을까요? 아마 2000년 전에는 이랬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타베르내 바로 앞에 아스팔트 도로가 뚫려 있고, 뒤편에는 대형 비닐하우스가 듬성듬성 설치되어 있는 넓은 들판이지만 말입니다. 예수님이 활동하셨던 카파르나움을 떠올리게 하는 촌락도 있습니다.다시 생각에 잠깁니다. 바오로 사도와 로마 형제들은 이곳에서 처음 만났을 때 하룻밤을 어떻게 지냈을까. 죄인 아닌 죄인끼리의 뜨거운 포옹, 동병상련이었겠지요. 반가워서, 서러워서, 아마도 많이 울었을 것 같습니다. 울면서 기도하고, 기도하면서 울고!저는 한동안 ‘사도행전’에 꽂혀 살았습니다. 여러 성경 중에 왜 하필 사도행전이냐구요? 남다른 사연이 있습니다. 바로 이 성구 덕분입니다.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사도 16,31) 아마 초등학교 3, 4학년 때로 기억됩니다. 바닷가 시골 마을에 교회가 있었는데, 12월이 되면 서울에서 선교사 선생님들이 내려와 노래와 율동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빵 과자 학용품 등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빵 얻어먹는 재미로 교회에 갔습니다. “염불보다는 잿밥”이라는 속담, 바로 그런 행태였지요.그런데 그때 배운 노래의 한 소절이 제 머릿속에 평생 각인되어 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 후 교회와 담쌓고 살았는데도 어쩌다 성당이나 교회를 지나칠 때면 이 노래 가사가 떠올랐습니다. 군대 시절 훈련받기 싫어 교회에 갔을 때에도, 결혼을 앞두고 성당에서 관면 혼배를 드릴 때에도, 아들과 딸이 저보다 먼저 세례(유아세례)를 받을 때에도, 어김없이 이 노래 한 대목이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왔습니다. 경쾌한 음률과 함께. 노래 가사는 정확히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로다”입니다. 저는 이 노래 가사가 성경 말씀인 줄 전혀 몰랐습니다. 흔한 교회 노래의 한 소절인 줄 알았지요. 40세가 넘어 뒤늦게 세례를 받고 성경 공부를 하면서 우연히 알았습니다. 이 노래가 사도행전의 한 구절이라는 사실을. 주님은 왜 이런 선물을 저에게 주셨을까,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해 봤습니다. 아마도 주님께서 저에게 사도행전을 신앙의 중심으로 삼으라는 메시지를 주신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이 성구의 주제어(예수 믿음 구원)를 깊이 묵상해 보곤 합니다. ‘예수’는 나에게 과연 누구인가? ‘믿음’은 나에게 무엇인가? ‘구원’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구원을 받으려면성구의 출처는 바오로 사도입니다. 바오로가 필리피에서 감옥 생활을 할 때, 간수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대답으로 이 성구를 말씀하신 것이지요. 바오로는 아피우스 광장에서 로마 신자들과 만났을 때에도 이 말씀을 하셨을 것입니다. 저는 ‘바오로 주막’을 찾았을 때 오랜만에 이 노래를 소리 내어 불러봤습니다. 바오로를 생각하면서! 바오로가 감옥에서 피를 토하듯 하신 말씀을 저는 빵 얻어먹으러 교회에 갔다가 선물로 받았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경이롭기만 합니다. 죽는 순간 이 거룩한 말씀이 내 기억의 최후가 되길 기도하며 삽니다. 주교황청 한국대사 이백만(요셉) 평화신문2019.12.11

“마음의 눈으로 오직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 집중하라”[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인격 그리고 프란치스칸 영성] 17. 거룩한 기도와 신심의 영 프란치스코 성인은 형제들에게 ‘거룩한 기도와 신심(혹은 헌신)의 영’을 강조해 가르쳤다. 이는 마음의 눈으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집중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 가르침은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예수님과 구약 성경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그림은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의 예언적 꿈 장면으로 프란치스코 성인이 무너져가는 교회를 지탱하고 있다. 조토 작,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아시시. 프란치스코는 우리 수도회 내에서 신학을 가르치게 된 안토니오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가르침이나 회가 아니라 ‘거룩한 기도와 신심(혹은 헌신)의 영’임을 강조한다. 이 편지에서 프란치스코가 안토니오에게 말한 이 거룩한 기도의 영과 거룩한 신심의 영은 온전히 하느님께 우리의 온 힘과 마음, 정신,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우리의 이성과 논리를 동원하여 갖가지 생각으로 하느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눈으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집중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늘 우리가 집착하며 살아가는 우리 주변 사람들의 죄나 어둠이나 미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첫째가는 계명, 즉 신명기의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1; 10,12; 11,13; 13,4; 26,16; 30,2; 30,6 ; 30,10)는 계명이다.우리 육신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선하고 긍정적인 것들이 많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우리 내면을 이 ‘거룩한 기도와 신심의 영’으로 가득 채워줄 수 있는 대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시다. 여기에는 오직 선과 용서, 치유와 화해, 구원과 완성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클라라 성녀는 프라하의 아녜스 성녀에게 다음과 같은 권고를 한다.“오, 여왕이시여, 예수 그리스도의 정배시여, 이 거울을 매일 들여다보고 계속해서 그 안에서 당신 얼굴을 살펴보십시오. 그리하여 갖가지 장식으로 휘감고 차려입어(시편 44,10 참조) 안팎으로 속속들이 단장하고, 지극히 높으신 임금님의 딸이요 사랑스러운 정배에게 어울리는 온갖 덕행의 꽃과 옷으로도 치장하십시오. 사실,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대가 거울 전체에서 관상할 수 있는 것처럼, 이 거울 안에는 복된 가난과 거룩한 겸손과 형언할 수 없는 사랑이 찬란히 빛납니다. 나는 말합니다. 이 거울의 첫 부분을 보면서,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계신(루카 2,12 참조) 그분의 가난을 주의 깊게 바라보십시오. 오, 감탄하올 겸손이여, 오, 놀라운 가난이여! 천사들의 임금이시고 하늘과 땅의 주님께서(마태 11,25 참조) 구유에 누여져 있습니다. 그다음, 거울의 가운데를 보시고 겸손과 적어도 복된 가난을, 인류를 속량하기 위하여 그분이 겪으신 무수한 수고와 고생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이 거울의 맨 끝을 보시고 말할 수 없는 사랑을 관상하십시오. 그분은 이 사랑 때문에 십자 나무 위에서 고통당하시고 거기서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바로 이 거울 친히 십자 나무에 달리셔서 행인들에게 여기에 생각해 볼 것이 있다고 권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 길을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여, 살펴보고 또 보십시오. 내가 겪는 이 내 아픔 같은 것이 또 있는지’(애가 1,12). 그러므로 ‘이것을 내 마음에 깊이 새기고, 내 영혼은 내 안에서 갈기갈기 찢어지리이다’(애가 3,20) 하시며 외치시고 울고 계신 그분께 한목소리, 한마음으로 응답합시다. 그리하여, 오, 천상 임금의 왕후시여, 그대 안에 이 사랑의 불이 날로 더 활활 타오르면 합니다! (「아녜스에게 보낸 넷째 편지」 15-27).여기서 1998년도 성탄을 앞두고 필자의 고해 사제셨던 저베이스 화이트 신부님(Fr. Gervase White, OFM)께서 보내 주신 성탄 메시지를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이 신부님은 필자의 유학 생활 중에 머물던 뉴욕주의 성 보나벤투라 수도원에 사시면서 성 보나벤투라 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셨다. 이 신부님은 2002년도에 우리의 본향인 하늘나라로 돌아가셨지만, 필자에게는 프란치스칸 삶의 진수를 행복하게 전해준 아름다운 형제 중 한 분이셨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우리 주변의 세상을 바라보게 될 때, 나는 우리가 대단히 유복한 시기에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단 몇 사람만이 참으로 행복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팩스와 휴대폰에 의해 연결되어 있고, 전자 메일로 접속되어 있어 잠겨 있는 문 뒤의 도시들에서는 안전이 보장되어있는 듯하지만, 우리 중 어떤 사람들은 이 이상은 없다 싶을 정도의 공포와 외로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증오와 공포가 텔레비전 쇼와 영화, 뉴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계속해서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그러나 만일 우리가 이토록 나쁜 것들로 인해 우리의 감각이 마비되어 버린다면, 우리는 우리 삶 속에 있는 좋은 것들을 보는 데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기술이 더 빠르고 더 먼 곳에까지 다다를 수 있게 해줄수록, 느긋해져야 할 우리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이런 세상에서의 우리 사명은 앞을 내다보는 통찰력과 유비무환식의 계획성을 가지고 어떤 상황에든 여유롭게 대처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면 우리에게 기대치 않은 일들이 발생할지라도 우리는 곧바로 애초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능한 해결책을 찾게 될 것입니다.” 호명환 신부(작은형제회)cpbc2020.11.11

마르틴 루터의 오해, 베드로 무덤이 가짜라고요?[엉클죠의 바티칸산책] (40)베드로 사도 무덤 발굴 작업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월 일반알현 때 혜윰터 이세연 대표로부터 「어부의 무덤」 한국어 번역본을 받아들고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다. 미국의 유력 매체 뉴욕 타임스는 1949년 8월 22일 ‘희대의 특종’을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습니다. 카밀레 잔파리 기자가 쓴 바티칸발(發) 기사였습니다. 성 베드로 유골 발견! 언론인들은 이런 기사를 희대의 특종이라고 부릅니다. 바티칸이라는 기관의 성격을 고려할 때 이런 특종을 한다는 것은 수십 년 만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기 때문입니다. 1년 뒤 비오 12세 교황은 라디오 연설을 통해 “베드로 사도의 무덤이 발견되었다”고 뉴욕 타임스의 특종 보도를 확인해 주었습니다. 바티칸발 희대의 특종이 2013년에도 있었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그해 2월 특별 담화문을 전격 발표했습니다. 라틴어로 작성한 담화였습니다. 바티칸 출입기자들이 대변인실의 번역을 기다리는 동안, 라틴어에 능통했던 이탈리아 안사(ANSA)통신의 지오바나 치리 기자가 ‘베네딕토 16세 교황 사임’이라고 1보를 타전했습니다. 100명이 넘는 출입기자들이 꼼짝없이 물먹고 말았지요.베드로 사도 묘지의 진위 여부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에는 베드로 사도의 무덤이 있습니다. 이곳은 가톨릭 최고의 성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베드로 사도 묘지의 진위를 놓고 말들이 많았답니다. 불을 지른 사람은 종교개혁을 주창했던 마르틴 루터였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로마에 왔다는 어떤 물증이 없다. 베드로 대성전 지하에는 베드로 무덤이 없다. 가톨릭은 이교도의 무덤 위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다.” 종교개혁 이전에도 이런 소문이 있기는 했지만, 루터의 발언은 가톨릭의 자존심에 칼을 꽂았습니다. 사실 베드로 사도가 로마에 왔다는 기록이 성경에 없거든요. 베드로 사도가 로마에 와서 박해를 받았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처형당했으며, 시신이 바티칸 공동묘지에 묻혔다는 이야기는 전승일 뿐입니다. 교황청이 사실 확인에 나섰습니다. 베드로 사도 무덤을 발굴하여 물증을 공개하는 전략을 세운 것입니다. 두 번(1513년과 1683년)에 걸쳐 발굴을 시도했으나 중단되었습니다. 기술적인 문제와 비용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비오 12세 교황(재위 1939년~1958년)이 결단을 내렸습니다. 전임자인 비오 11세 교황의 무덤을 대성전 지하에 만드는 과정에서 유력한 단서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비오 12세 교황은 ‘베드로 무덤 발굴팀’을 극비 구성하여 1940년 발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비밀 유지를 위해 발굴팀은 바티칸 내부 인사로 차출되었고, 삽과 곡괭이 등 재래식 장비로만 작업하도록 했습니다. 전동장비를 사용할 경우 소음으로 인해 외부인들이 눈치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순례자들은 평소처럼 베드로 대성전을 드나들었고 지하에서는 발굴팀이 두더지처럼 흙더미를 파고 있었던 것입니다. 작업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불가피한 조치였습니다. 비용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미국의 석유재벌 조지 스트레이크가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세상은 2차 세계대전으로 시끄러웠지만, 베드로 사도 무덤 발굴 작업은 감쪽같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뉴욕 타임스의 특종 보도가 터진 것입니다.베드로 사도 무덤 발굴 사업은 몇 번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천재 고고학자이자 금석학자인 마르가리다 과르두치의 헌신에 힘입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과르두치는 지하 무덤에서 “베드로가 여기 있다”, “베드로여,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쓰인 명문(銘文)과 1~2세기 로마에서 통용되었던 동전 봉헌물 등을 다수 찾아냈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무덤임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결정적인 물증들입니다. 루터의 주장이 낭설임이 자연스럽게 밝혀진 것이지요.74년 걸린 무덤 발굴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13년 3월 취임 직후 베드로 사도 무덤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해 11월 베드로 광장에서 특별 미사를 집전하면서 베드로 성인의 유해를 공개했습니다. 교황님은 이 자리에서 “이 뼈들이 진실로 베드로 성인의 유해다”라고 광장에 모인 순례자들과 전 세계에 선언한 것입니다. 준비과정에서부터 장장 74년이 걸린 베드로 사도의 무덤 발굴 프로젝트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미국의 작가 존 오닐은 2018년 교황청의 협조를 받아 「어부의 무덤」을 출판했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베드로 무덤 발굴 프로젝트를 흥미진진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한국의 혜윰터 출판(대표 이세연)에서 우리말 번역본을 내놓았습니다. 이세연 대표는 올해 2월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알현하는 자리에서 한국어 번역본을 증정했습니다.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 cpbc2020.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