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경심을 갖고 다른 이를 바라보는 덕을 수양하라”[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인격 그리고 프란치스칸 영성] 47. 그리스도와 인격적 만남과 존재적 앎 프란치스코 성인은 먼저 존경심을 갖고 다른 이를 바라보는 덕을 수양하라고 수도 형제들에게 가르쳤다. 사진은 이스라엘 웨스트뱅크 지역에서 한 작은형제회 수도자가 라마단 기간 동안 금식을 하는 무슬림 팔레스타인들에게 음식 섭취가 허용된 밤 시간에 빵과 물을 나눠주고 있다. 【CNS】 프란치스코는 ‘주님’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는 종이쪽지 같은 것을 보게 되면 그것을 소중한 곳에 모셨다고 한다. 그 안에 주님의 현존이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프란치스코의 첫 번째 전기작가인 토마스 첼라노는 프란치스코의 그런 자세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하느님의 말씀이나 인간의 말이 쓰인 글을 발견하면 길에서나 집에서나 땅바닥에서나 대단히 공손한 태도로 그것을 집어서, 거룩한 장소나 합당한 곳에 가져다 놓곤 하였다. 주님의 이름이나 성경 말씀과 관련된 글들이 그러한 곳에 적혀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어느 날, 한 형제가 그에게 질문하기를, 주님의 이름이 비치지도 않은 글이나 이단자들의 글까지도 그렇게 지성으로 줍느냐고 하였다. 그가 대답하였다. ‘아들이여, 주 하느님의 지극히 영광스러우신 이름을 쓰는 데 사용되는 글자들이 그중에 같이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선(善)이 들어 있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이방인들의 것도 아니고 어떤 사람의 것도 아니며, 오로지 모든 선이 깃들어 있는 오로지 하느님의 것입니다.’”프란치스코의 이런 존경심의 자세는 본래 하느님에 관해 이야기해주도록 창조된 존재 모두에게 향해 있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협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최우선으로 필요한 것은 물리적인 함께함보다 먼저 ‘존경심을 갖고 다른 이(다른 모든 피조물)를 바라보는 덕’을 수양해 가는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그러므로 ‘나’는 ‘지금 여기’, 곧 현재의 내 자리에서 주님과의 관계성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고, 또 다른 모든 존재와의 관계성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의식해 보아야 한다. 나는 내가 함께 살아가는 이들과 만나는 이들을, 그들이 누구이건 간에 주님께서 그들에 대해 지니신 사랑과 존경심을 가지고 각 사람을 존경하고 있는가? 내가 존경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누구인가? 인간 인격에 대한 존중은 어떤 차별도 없는 것이다. 누가 인격들인가? 내가 함께 일하기를 원하는데 누구도 함께 일하기를 원하지 않는 그런 인격들이 있는가? 우리는 이 사람들을 주님께로 데려가서 그분의 사랑과 인내, 겸손, 존경심 등으로 치유하기 위해 우리 각자의 느낌에 어떻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가? 주님께서는 우리 서로를 통해서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데, 그 문의 문고리는 문 안쪽에 달려 있다. 나는 근본적으로 내 마음의 문을 조금 열어 놓는 그런 개방성을 지니고 있는가? 이렇게 하는 것은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어서 들어오십시오!”라고 하며 기쁘게 맞아들이는 행위이다. 우리 마음의 문을 조금 열어 놓는다는 것은 무언가 신성한 것, 곧 하느님의 속성이며, 또한 다른 이들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는 마음의 자세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다른 사람들의 거룩함과 그들 안에 있는 하느님의 모상을 존중하는 일이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그 사람들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선물-에 의해 변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말하자면 우리는 상호 교환성을 지니고 있다. 즉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서로에게 선생님도 되고 학생도 되는 것이다.다시 반복하여 말하자면 이렇듯이 덕을 지닌다는 것은 그 덕의 원천이시며 그 덕을 당신의 모상과 유사함으로 창조해 주신 우리 인간에게 부여해주시는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이렇게 실질적으로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행위, 혹은 수양 안에서만 우리는 하느님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존재적인 앎, 혹은 온몸으로 아는 지식인 것이다.사람들 대부분은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며 자기 삶의 방식이 바뀌기를 바란다. 하지만 생각이나 사고만으로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착각일 수 있다. 오히려 실질적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며 긍정의 덕을 행할 때 우리의 사고방식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고, 또한 이것이 바로 우리 존재를 변화시켜 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참여적 앎과 존재적 앎이 의미하는 바이다.그러므로 마음에 깊은 존경심을 지니고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수양은 덕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행위이고, 결국은 이런 수양은 ‘주님의 영과 그 영의 거룩한 활동’을 간직하는 일이며, 결국 우리 삶과 존재가 성령의 일치하시는 힘으로 인해 하느님과 같은 존재로 변모하게 하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 전통 전체의 핵심이며,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계속해서 해주시는 초대가 아닐까 한다.언젠가 어떤 신부님이 필자에게 이런 기도를 바칠 것을 권한 적이 있다. “하느님, 하느님께서 저를 바라보아주시는 그 눈으로 저도 저를 바라보게 해주시고 온 세상을 바라보게 해주소서!” 이 기도의 주된 목적은 ‘의식’에 있다. 바라본다는 것은 사고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무언가를 바라보거나 생각할 때 의식함 없이 바라본다면 그것은 그저 ‘생각하는 것’이 될 수 있지만, 어떤 마음 자세로 바라보아야 할지를 분명하게 의식하며 바라본다면 그것은 정확히 ‘행하는 것’, ‘수양하는 것’이 된다. 호명환 신부(작은형제회)cpbc2021.06.23

프란치스코 교황의 ‘통합생태론’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무너져가는 집을 복구하여라!] 3.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법(2-2) 하느님은 인간에게 창조질서에 따라 하느님의 경륜을 실천하는 사명을 받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사명을 외면함으로써 집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루카스 그라나흐 작 ‘에덴 동산’. 출처=위키디피아 지난 연재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오늘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기본적인 방향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창한 ‘통합생태론’을 깊이 이해하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하느님의 창조사업은 의미론적으로 ‘세 가지 차원의 집’에 대한 창조로 파악할 수 있으며, 또한 이 집들이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 생태’, 인간 공동체의 ‘사회생태’ 그리고 모든 생명체를 포괄하는 ‘환경생태’, 이 세 가지 차원의 집을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임시로 분양받아 살아가고 있다.임시 분양받아 살아가는 세가지 차원의 집이를 전제로, 인간은 오늘날의 인간과 공동체, 생태계 위기를 바라보아야 하며 이에 관한 문제 해결을 위해 하느님에게 부여받은 사명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각기 자신의 목적과 가치에 부합하도록 그리고 잘 유지되고 고양되도록 세 가지 차원의 집들을 잘 돌보라는 사명을 내리셨다. 이와 관련해 창세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데려다 에덴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창세 2,15) 여기서 ‘에덴을 잘 돌보라’는 뜻은 하느님의 집으로써 ‘인간 생태’, 공동체 상생의 집으로써 ‘사회생태’는 물론, 이를 떠받치는 토대로써 모든 생명체의 공동의 집인 ‘환경생태’까지도 인간이 총괄적으로 책임지고 관리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즉, 하느님께서 내리신 돌봄의 사명은 각각의 집의 목적에 맞게 그리고 그것을 통합적으로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창조 목적에 맞게 유지, 보호되도록 힘쓰라고 주문하신 것이다. 또한 집을 잘 돌보라는 사명은 ‘Economy(경제)’라는 용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원래 Economy(경제)라는 말의 어원은 희랍어 Oikos (Eco) + Nomos(nomy)의 합성어로 ‘원리’나 ‘질서’에 따라 ‘집을 돌본다’는 뜻이다. 즉 서양어 경제(Economy)란 용어에는 생태론(Ecology)이란 용어가 그렇듯이, 이미 ‘집’이라는 개념 자체가 포함돼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Economy)와 생태론(Ecology)이란 용어가 서로 밀접한 관련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돌봄의 사명은 어원적으로 집을 돌보는 것, 곧 ‘경제’(Economy)라고 할 수 있다. 단, 집을 돌보라는 사명이 인간의 자의적 판단이나 탐욕에 의해 돌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창조하신 집들의 질서’인 통합생태론(Integral Ecology)에 따라 돌보라는 것이다. 하느님이 부여하신 돌봄의 사명은 하느님의 창조질서에 따라 돌본다는 의미에서 ‘하느님의 경제(경륜)’(경제(Economy)라는 용어를 교회에서는 주로 ‘경륜’으로 번역한다)를 실천하는 것이다.하느님이 인간에게 부여하신 돌봄의 사명그러나 불행히도 인간은 부여받은 사명, 즉 하느님의 창조질서에 따라 ‘하느님의 경륜(경제)’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았다. 창세기 3-4장에서 인간은 자기 범죄로 말미암아 하느님이 부여하신 돌봄의 사명을 외면함으로써 집들이 무너지게 되었음을 암시한다. 하느님께서 아담을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창세 3,9)라고 물으실 때 아담은 두려워서 숨었다. 또한, 카인에게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창세 4,9)라고 물었을 때, 카인은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하느님께 반발한다. 이때부터 이미 인간은 하느님의 창조질서 구상(Ecology: 생태론)에 따른 하느님 집의 돌봄이라는 ‘청지기’의 사명을 어기고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생태계의 관계’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자신의 사명을 충실히 이행하지 못했음에도 인간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새로운 계약을 통해(창세 9,9) 훼손된 관계와 붕괴한 집들을 복구(구원)하기 위해 먼저 손을 내미셨다. 이러한 하느님의 업적을 ‘하느님의 구원 경륜(경제, Economy of Salvation)’이라 일컫는다.성경의 신약과 구약은 ‘하느님의 구원경륜’의 역사, 즉 하느님께서 무너진 집을 바로 일으켜 세우시려는 복구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손을 내밀어 무너진 집을 복구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십계명’을 주시고 예언자들을 파견하시고 마침내 당신의 외아들마저 이 세상에 내어 놓으셨다.(요한 3,16) 하지만 인간은 하느님의 구원경륜을 온전히 이해하지도, 신뢰하지도 않은 나머지 “하느님의 집을 잘 돌보아야 한다”는 본래의 사명을 또다시 망각하고 있다. 그 결과, 오늘날 후기 산업시대를 맞아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의 위기, 사회 공동체의 위기, 지구환경의 위기의 가속화에 봉착하였다. 시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통합생태론’에 기초를 두고, 창세기에서 하느님이 인간에게 부여하신 돌봄의 사명, 즉 ‘하느님의 경제(경륜)’을 깨닫고 행동으로 옮기는 방법 외에는 없을 것이다. 인간 스스로 신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오만한 생각으로, 같은 인간에게 하느님 창조질서에 어긋난 행위를 자행하거나, 물질문명에 함몰된 나머지 과학 기술을 이용하여 무한 경쟁체제만을 추구하거나, 생태계를 무분별하게 개발하려는 시도 등은 모두 하느님의 경륜(경제)에 어긋난다고 하겠다. 또한 ‘하느님의 구원 경륜(경제)’에 힘입어 온갖 죄로 물든 우리 ‘인간성’이 먼저 치유되고 복구되어야 한다. 김평만 신부(가톨릭중앙의료원 영성구현실장 겸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과 교수)cpbc2021.12.08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7) 여행지 : 승천&천사](//cpbc.co.kr/CMS/newspaper/2021/05/rc/801980_1.3_titleImage_1.jpg)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7) 여행지 : 승천&천사마리 파울리타 수녀(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여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하느님 나라에 대해 거듭 말씀하시고, 그들 앞에서 승천하셨습니다. ‘승천(昇天)’이라는 말은 지상에서 하늘로 오름을 말하지요. 예수님은 지상 과업을 마치시고 하느님의 아들로서 성부 하느님의 영광 안에 들어가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기쁨에 차 있었던 제자들은 다시 예수님과 헤어지는 슬픔을 경험하지만, 이 이별은 다른 차원의 새로운 만남의 시작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기에, 이제 우리는 이 만남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늘 하늘로 향하도록 하고, 천상병(시몬) 시인이 노래한 ‘귀천(歸天)’을 읊어야겠지요?“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퀴즈여행 예수님의 승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1.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고 며칠 후에 승천하셨나?2. 예수님께서는 어느 산에서 승천하셨나? 3.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의 무엇에 대해 예고하셨나? 4. 예수님은 승천하시어 성부 하느님의 어느 편에 앉으셨나? 5. 주님 승천 대축일은 날짜로 목요일인데, 우리나라는 부활 제 몇 주일에 지내는가? 6. 천상의 존재로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인간을 보호하고 도와주는 자는? 7. 성경에 나오는 대천사는 미카엘, 라파엘, 그리고 누구인가? 정답 1 □일 2 □□□ 산 3 □림 4 □□편 5 부활 제□주일 6 □□7 □□□엘가이드 설명1. 부활 후 40일 후의 승천예수님께서는 부활을 통해 이미 영광에 도달하셨지만, 지상에 남아있는 제자들과 믿는 이들에게 전과 같이 변함없이 체험할 수 있는 분으로 40일 동안 지상에 머무셨습니다.(사도 1,3) 성경에 나오는 40일이라는 숫자는 수리상의 의미보다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노아의 홍수 때 40주야 비를 내리셨고(창세 7,12),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십계명을 받기 위해 40일간 재를 지냈지요(탈출 24,18). 40일은 이런 정화와 준비의 기간을 말하고, 40(4×10)은 충만하고 완전한 수를 뜻하기에,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 지상에서 제자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셨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2. 올리브 산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올리브 산에서 승천하셨습니다.(사도 1,12) 올리브 산은 예루살렘보다 90m 정도 높아서 예루살렘에서 보면 큰 언덕이나 동산처럼 보입니다. 올리브 산 키드론 골짜기 건너편에 있는 동산이 예수님께서 수난 전 밤새 기도하셨던 겟세마니 동산이라고 합니다.(마태 26,36; 마르14,32; 루카 22,39) 겟세마니(히브리어)의 뜻은 ‘기름을 짜는 기구’이기에, 이곳에 올리브기름을 짜는 기구가 설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요. 3. 예수님 재림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동안 사도들이 유심히 하늘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천사가 나타나,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사도 1,6-11) 이 말씀은 세상 마지막 날의 예수님 재림을 의미합니다. 승천은 재림의 시작이며, 육신으로 승천하셨던 예수님이 육신으로 다시 오심을 예고합니다. 우리는 언제 오실지 모르는 예수님을 깨어 기다리며, ‘마라나타’(오십시오, 주 예수님, 묵시 22,20)라고 늘 기도할 수 있어야 하지요. 4. 성부의 영광에 들어가심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은 그리스도의 인성이 하느님의 천상 영역으로 결정적으로 들어감을 나타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십니다.(마르 16,19; 사도 2,33) 성부 오른편이라는 말은 천주성의 영광과 영예를 말하며, 성자로서 본래 누리던 삼위일체의 영광을 다시 입음을 말합니다.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심은 메시아 나라의 시작, 곧 다니엘 예언서가 말하는 세상 마지막 날의 하느님의 영원한 통치의 예언이 성취됨을 의미합니다.(다니 7,14) 참조) 예수님의 승천은 예수님 부활이 지금 중간 상태, 곧 새로운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며, 부활하신 분의 현양(성령 강림)을 위한 하나의 준비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승천 교리: 가톨릭 「교회 교리서 659-667」 참조) 5. 주님 승천 대축일주님 승천 대축일은 주님 부활 대축일 후 40일째 되는 부활 제6주간 목요일에 지내지만, 이날이 미사 참여 의무일이 아닌 우리나라에서는 부활 제7주일로 옮겨 지냅니다. 우리는 이 축일을 지내면서 주님의 승천만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승천도 기념하지요.(에페 2,6) “저희 머리요 으뜸으로 앞서가심은 비천한 인간의 신분을 떠나시려 함이 아니라, 당신 지체인 저희도 희망을 안고 뒤따르게 하심이옵니다.”(승천 감사송) 6. 천상의 존재 많은 사람이 천사를 허구적이며 동화적인 비실존적 존재로 여기나, 천사는 하느님께서 실제로 창조한 영적인 존재입니다. 천사(天使)는 그 말 뜻 ‘하느님의 심부름꾼’처럼, 천상에 살면서 하느님의 뜻을 전하며(토빗 12,12) 하늘과 땅을 연결해 줍니다. 천사는 때로는 하느님 대신 발현하며(창세 16,10; 탈출 3,2; 마르 16,5), 사람을 인도하고 지키거나(창세 24,7; 시편 91,11) 사람을 징벌하지요(2사무 24,16; 시편 78,49).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날 때부터 ‘수호천사’(守護天使)를 주셨기에, 교회는 수호천사 기념일(10월 2일)을 제정하여 천사 공경을 장려하고 있습니다.7. 3대 천사성경에 나오는 3대 대천사(大天使)는 미카엘, 라파엘, 가브리엘입니다. ‘미카엘’(의미: 누가 하느님과 같으냐?) 대천사는 신구약에 모두 등장하는데(다니 10,13; 묵시 12,7), 천상군대의 우두머리로 병사들의 수호자로 공경하지요. ‘라파엘’(의미: 하느님이 낫게 하셨다) 대천사는 토빗기 전반에 나오는데, 여행자의 수호성인으로 공경합니다. ‘가브리엘’(의미: 하느님의 영웅) 대천사는 즈카르야와 성모 마리아께 탄생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기에(루카 1,19.26), 우편부의 수호성인으로 존경받고 있답니다. 3대 대천사의 축일은 9월 29일이지요.여행옵션: 예수님 승천 기념 성당(이스라엘)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올리브 산 정상에는 예수님이 승천하셨다고 추정한 자리에, 예수님 승천 기념 경당(이슬람교 소유)이 세워져 있다. 380년경 이곳에 소성당이 봉헌되었으나 614년 페르시아에 의해 파괴된 후, 십자군 전쟁 당시 이곳에 지붕이 없는 팔각형의 성당을 다시 세웠다. 그런데 무슬림인 사레센인들이 이곳을 점령하면서 이 성당의 천장에 둥근 지붕을 씌워 모스크로 개조하였다고 한다. 참조) 예루살렘은 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3대 종교의 성지이다. 유다교에게는 솔로몬이 세운 성전이 있고, 그리스도교에게는 예수님이 수난에서 부활, 승천하신 곳이고, 이슬람교에게는 창시자 모하메드가 승천한 곳이기 때문이다.여행 기념품예수님의 승천은 우리는 지상의 순례자이며 우리의 고향은 하늘나라이고, 우리의 삶은 하늘나라를 향하여 살아가야 함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나는 얼마나 하늘나라를 그리워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하여 살아가고 있습니까? 마리 파울리타 수녀(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 cpbc2021.05.12
![[수도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10)교부들과 렉시오 디비나](//cpbc.co.kr/CMS/newspaper/2019/10/rc/764532_1.0_titleImage_1.jpg)
[수도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10)교부들과 렉시오 디비나초기 교부들, 한결같이 성경 강조 허성준 신부 교회의 많은 교부가 기도와 하느님 체험을 위한 탁월한 길로서 성경 독서의 방법을 실천하였는데, 이것은 그리스도교 백성 가운데 급속히 확산되었다. 특별히 2~3세기에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성경에 대한 독특한 우의적인 해석을 시도하였다. 이것은 성경 본문이 제시하는 것 이외의 다른 더 깊은 영적인 의미를 찾는 것으로, 후대의 성경 연구에 크나큰 영향을 주었다. 이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항구하고 겸손하게 읽고 맛들이는 전통을 발전시켰는데,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오리게네스(Origenes, 185~254)이다. 오리게네스는 ‘로고스(Logos)’가 성경을 통해 언제나 역사 안에 현존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성경은 우리의 영성생활을 돕는 어떤 부수적인 도구가 아니라 근본적인 것임을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성경에 대한 독서나 묵상은 모든 지혜의 기초이며, 이것은 단순히 신심 행위 차원을 넘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그는 보았다. 성경에 대한 특별한 사랑을 강조하였던 오리게네스는 성경 독서의 수행을 설명하면서 ‘프로세케인(proschein)’이라는 동사를 사용하였다. 이 동사는 ‘자기 마음을 돌리다’, ‘주의를 집중하다’, ‘헌신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성경 독서가 다른 진지한 금욕 생활의 기초라고 보았으며 특별히 여기에는 주의 집중, 항구함, 기도가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성경에 대한 독서와 묵상을 통해서 우리는 조금씩 세상사의 걱정거리로부터 멀어지게 된다고 그는 보았다. 콘스탄티노풀의 주교였던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St. Joannes Chrysostomus, 347~407)는 성경을 하느님이 쓰신 편지라고 보았다. 성경은 구원을 위한 조건이기에 성경으로부터 유익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구원받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그는 말하였다. 한편, 서방 라틴 교회에서도 성경 독서는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주교였던 성 치프리아누스(St. Cyprianus, 200~258)는 성경 독서를 ‘주님의 독서’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또한, 성경학자였던 성 히에로니무스(St. Hieronymus, 347~420)는 “성경을 모르면 그리스도를 결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성경은 천상적인 음식이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 독서 중에도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게 된다고 보았다. 그는 성경에 대한 사랑이 수도자들의 유일한 열정이 되어야 함을 늘 강조하면서, 렉시오 디비나를 자기 정화의 수단으로 제시하였다. 성 암브로시우스(St. Ambrosius, 339~397) 주교 역시, 성경은 그리스도의 소리로서 모든 사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고 또한 우리에게 교훈적인 가르침을 주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성경을 먹고 마셔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렇게 초기 그리스도인들과 교부들은 한결같이 성경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어찌 보면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의 분위기 안에서 호흡하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특히 교부들에게 있어 성경은 ‘생명의 책’이었으며, 그들을 하느님과의 친교에로 이끄는 가장 확실한 길이었다. 특별히 교부들은 성경 독서를 할 때, 개인적인 관점이 아니라 더 넓은 구원 역사의 관점에서 성경을 읽고 음미하며 직관하였다. 그러나 성경에 이렇게 접근했던 교부들의 시대 이후에, 불행하게도 성경에 대한 독서는 그리스도인들의 관심으로부터 차츰 멀어지게 되었다. 반면에 수도승 전통 안에서는 그것을 받아들여 더욱더 훌륭히 꽃피우게 되었다.허성준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평화신문2019.10.15

탄소 배출만 줄이면 생태계 문제 해결할 수 있을까[무너져가는 집을 복구하여라!] 2.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법(1) 프란치스코 교황은 과학중심주의 해결책은 지구 환경 오염을 해결하기 위한 근원적인 방법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탐욕을 버리거나, 사회적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으면 무분별한 개발과 이에 따른 환경오염이 지속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진은 한 소년이 파키스탄의 쓰레기장을 걷는 모습. 근자에 교황직에 오른 세 교황(성 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토 16세, 프란치스코)은 여러 회칙들을 반포해 후기 산업사회가 직면한 문명의 위기들을 진단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해법을 제시해 왔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은 잇따라 발표한 「복음의 기쁨」, 「찬미받으소서」, 「모든 형제들」 회칙을 통해 필자가 전술했던 세 가지 위기, 즉 인간 정체성의 위기, 사회 공동체의 위기, 그리고 지구 생태계의 위기를 집중적으로 강조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제시한 ‘삼 생태론’이 시대의 위기에 해법을 제시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독특한 관점은 ‘집’이라는 차원에서, 지구환경과 인간 정체성과 사회 공동체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집’이란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는 휴식을 제공하는 거처이다. 그토록 소중한 ‘집’이 처하게 된 위기란 나, 우리, 그리고 모든 생명체의 생존과 관련이 있어 관심을 두고 가까이 들여다보게 된다. 이런 면에서 교황은 우리에게 닥친 위기들을 바라보는 관점을 전환시켜 주었다. 교황이 언급한 ‘집’의 개념은 구약성경에서 그 신학적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 창세기에서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인간인 아담을 만드시고, 아담의 배필로서 하와를 창조하셨다. 이를 신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라는 ‘세 가지 차원’에서의 집을 창조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세 가지 차원의 창조를 ‘삼 생태론(Ecology)’ 즉,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하신 ‘인간 생태’, 인간 공동체의 ‘사회생태’ 그리고 모든 생명체들을 포괄하는 ‘환경생태’란 개념으로 말한다.‘생태론’이란 영어로 Ecology인데, 이것은 희랍어 Oikos(Eco) + Logos(logy)의 합성어로, 어원적으로 ‘집에 대한 질서’, ‘집에 대한 원리’로 이해할 수 있다. Oikos(오이코스)는 ‘집’이란 뜻이며 Logos(로고스)는 의미, 질서 원리 등을 나타낸다. 따라서 서양어의 생태론(Ecology)이란 용어에는 이미 ‘집’이라는 개념 자체가 포함돼 있다. 즉 생태론의 어원적인 의미는 집에 대한 질서인데, 이것을 창세기에 적용하면 하느님의 창조 질서는 의미론적으로 이 ‘세 가지 차원의 집에 대한 질서’, 즉 ‘삼 생태론’으로 이해될 수 있다.이를 좀 더 자세히 분석해 보면, 첫째 인간 생태에서 영과 육으로 이뤄진 단일한 존재, 육화된 영인 인간은 하느님이 거처하시는 ‘성스러운 집’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창세 1,27)함은 인간이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 ‘하느님의 모상’, 곧 ‘하느님의 집’임을 드러낸다. 이에 대해 「간추린 교리」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인간은 하느님께서 당신과 관계를 맺도록 창조한 인격체이므로 인간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만 생명을 얻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109항) 이런 관계 안에서 인간은 ‘하느님이 특별한 방식으로 현존하는 집’이며, 하느님을 드러내는 모상이다. 둘째, 사회 생태에서 인간 공동체는 ‘상생의 집’이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주겠다”(창세 2,18)는 말씀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홀로 두시지 않고 서로 관계를 이루도록 배려하셨다는 의미로 여겨진다. 그것은 단순히 개체나 무리의 집합소가 아니라 인격을 주고받으며 그 목적을 완수할 수 있도록 서로 보호하고 상생하는 공동체 구성원의 삶의 터전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공동체를 이루는 목적은 서로가 서로에게 ‘상생의 집이 되어주기 위해서’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환경 생태’는 인간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생명체가 어울려 서로 조화롭게 상생할 수 있는 ‘공동의 집’을 의미한다. 창세기 첫 구절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창세 1,1)함은 하느님께서 모든 생명체에게 ‘터전으로서의 집’을 마련해 주셨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창세기에서 말하는 창조의 핵심은 생명체들이 살아갈 수 있는 토대와 터전 그리고 관계로 이루어진 집의 창조라고 말할 수 있다. 세 가지 차원의 집에 대한 질서이러한 삼 생태론을 기반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 가지 차원의 집에 대한 질서’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통합생태론’을 주창했다. 교황의 통합생태론적인 관점은 오늘날 전개되는 과학기술만능주의적인 사고에 근거해 지구 환경의 위기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단견적이고 제한적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그러한 사고에 의하면 지구 환경의 문제는 단지 탄소 배출만 줄이고, 환경오염적 요소만 제거한다면 곧바로 생태계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한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위해서는 세 가지 차원의 집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인간의 탐욕과 사회적 빈부격차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무분별한 개발이 중지될 수 없고, 결국 환경오염이란 악순환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우리 시대의 위기 극복의 방향은 ‘세 가지 차원의 집에 대한 질서’와 이 ‘집’들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깊이 되새기는 데서 시작돼야 할 것이다. 김평만 신부(가톨릭중앙의료원 영성구현실장 겸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과 교수)cpbc2021.12.01

조선 지식인 사랑 한몸에 받은 「칠극」,현대인에게도 깊은 울림 전하길칠극 / 정민 옮김 / 김영사 18세기 후반, 조선에 천주학이 들어오기까지 꾸준히 읽히며 당대 지식인들의 사랑을 받아온 책이 있다. 예수회 소속의 스페인 선교사 판토하(1571∼1618, 중국명 방적아) 신부가 쓴 「칠극」이다. 1614년 첫 출간 후 350년 후 마지막 판본이 나오기까지 꾸준한 독자층을 보유한 책으로 인간을 둘러싼 7가지 병든 마음과 이를 치유하는 7가지 처방이 담겼다. 판토하 신부가 중국에 체류한 기간은 19년이었지만 중국어 구사력이 탁월했다. 그는 「칠극」을 저술하고 중국 사대부들의 극찬을 받으며 한학가 반열에 오른다. 서양의 천주교와 동양의 유학이 만나 탄생한 ‘인생 수양서’로 꼽히는 「칠극(七克)」(김영사)을 우리 시대 대표 고전학자 정민(베르나르도,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번역, 우리말로 출간했다. 「논어」의 7배로 한자로는 총 8만 2590자의 방대한 대작이다. 우리말 번역서는 700쪽 분량이다. “「칠극」이 조선 후기 지식인들에게 준 영향과 파급력은 상당했습니다. 「칠극」은 사실 「천주실의」보다 천주교 사상을 전달하는 데 더 결정적인 텍스트였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한양대 연구실에서 만난 정민 교수는 “코로나가 강타한 동안 외부와 접촉을 끊고 책을 번역하며 정서적 위안을 얻었다”면서 “칠극은 일반적인 수양서, 교양서로도 훌륭하지만 신앙 서적으로도 훌륭한 책”이라고 말했다.정 교수는 지난해 5월부터 본지에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를 연재하며 다산 정약용의 천주교 관련 문헌을 들여다보게 됐고, 칠극의 원문에 담긴 잠언풍 가르침에 매료되면서 번역하게 됐다. 다산에게도 「칠극」은 생애 전반을 함께한 책이었고, 천주교와 무관한 연암 박지원 등 조선 후기 문장가들의 글에서 「칠극」의 비유와 표현이 속속 등장한 것도 정 교수의 흥미를 끌었다. 그러나 기존에 나온 「칠극」의 번역서들도 있지만 원문과 멀어진 오역은 아쉬웠다. 이 책이 원문과 대역한 최초의 번역서는 아니지만 고전학자의 번역서인 만큼 그 학술 가치로는 첫 자리에 놓을 만한 결과물이다. 정 교수는 1년 동안 칠극의 각종 판본을 찾고, 기존에 나온 2종 번역을 참고하며, 잘못되거나 찾지 못한 것을 바로잡았다.“중국에도 칠극의 번역본은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습니다. 원문만 나와 있죠. 판토하 신부가 한문으로 쓴 책이기 때문에 라틴어 원전도 없어요. 제 번역을 영어로 번역하면 서양어권에 최초의 칠극이 전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칠극」은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이 천주학과 접속한 유력한 통로였다. 판토하 신부는 인간이 저지르기 쉬운 7가지 마음의 병과 이에 따른 7가지 해법을 제시한다. ‘교만에 맞서는 겸손’, ‘질투를 이기는 사랑’, ‘탐욕을 없애는 관용’, ‘분노를 가라앉히는 인내’, ‘식탐을 누르는 절제’, ‘음란의 불길을 식히는 정결’, ‘나태를 깨우는 근면’이 각 증세에 따른 처방이다. “성호 이익이 칠극을 읽고 ‘유가의 극기복례와 다를 바 없다’고 했습니다. 유교의 기본 윤리는 ‘극기복례(克己復禮)’이지요. 극기라는 것은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 세계를 극복해 복례, 즉 ‘예’인 상태로 회복하는 겁니다. 성호는 칠극을 ‘서양의 극기복례 버전’이라고 본 것입니다.”칠극은 어록체 산문으로 구성돼 있다. 논어를 읽는 느낌이다. 동양 사회에 서학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었던 비결이 이 서술 방식에 있다. 정 교수는 “기존의 「논어」와 「맹자」는 주제에 상관없이 공자와 제자가 주고받은 이야기를 순서 없이 적었지만, 칠극은 서양식의 연역적 사유로 일곱 가지 죄종을 극복하는 단계를 체계적으로 집중 배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판토하 신부는 아우구스티노, 그레고리오, 베르나르도 등 서양 중세 성인과 그리스 철학자들의 잠언과 일화, 이솝 우화와 중국 고전도 인용해 동양의 유교적 지식인들에게 친밀도를 높였다. 교리를 직접 전달하기 위한 교리서라기보다 서양인의 수양론 같은 느낌을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겉으로 종교적 색채는 드러나지 않지만 154회에 달하는 성경 구절 인용은 성경의 의미를 내재화하기에 충분하다. 정 교수는 “일반 독자들이 이전 번역을 통해서는 칠극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번역도 그 시대에 따라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렸을 때에는 성가 ‘하느님의 어린양’을 ‘천주의 고양∼’ 이라고 불렀어요. 초등학생 때였는데 할머니에게 ‘고양이 뭐에요?’ 했더니 할머니도 모르니까 ‘천주께서 고양이를 좋아하신다’는 말씀이라고 했어요.(웃음) 천주의 고향의 오자라고 생각했죠. 고양은 ‘어린 양’을 뜻하는데 ‘염소 고’에 ‘양 양’ 자를 쓴 거예요. 중국 한자를 번역해서 쓴 거죠. 염소 고는 지금 쓰는 말이 아닙니다.” 「칠극」 서문에는 명나라 정치가, 문인, 학자들의 찬사로 가득하다. 학자 양정균은 “훌륭한 이치와 오묘한 뜻이 마음을 깨어나게 하고 눈을 열어준다”고 썼고, 문인 진량채는 “뼈를 찌르고 마음을 뚫는다”고 표현했다. 정 교수는 “바깥세상은 위험이 상존하고, 불안한 내면은 늘 요동친다”며 “바른 삶의 자리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선물한다”고 서문에 썼다.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cpbc2021.05.25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39. 여행지 : 세례성사](//cpbc.co.kr/CMS/newspaper/2022/01/rc/816631_1.2_titleImage_1.jpg)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39. 여행지 : 세례성사마리 파울리타 수녀(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해 새로운 차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유아세례를 받은 사람은 자신이 깨닫지 못했어도, 세례성사의 은총을 받아 이미 하느님의 자녀로서 영적으로 다른 차원에 들어선 것입니다. 세례 때 받은 ‘성화의 은총’으로 우리는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모습’으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난 이 은총은 어떤 것입니까? 만약 내가 대통령의 자녀로 태어난다면, 나는 얼마나 영광을 누리며 살아가겠습니까? 내가 대통령(인간)이 아닌 하느님(신)의 자녀가 된다면, 내가 누리는 그 은총과 영광은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분은 어느 인간도 자기 자녀에게 선물하지 못하는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주실 수 있으니까요. 그럼 ‘세례성사’로 퀴즈 여행을 떠나볼까요?퀴즈 여행※세례성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1. 세례성사의 예표에 해당하지 않는 것은? ①노아의 방주 ②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감 ③이스라엘 백성이 요르단 강을 건넘 ④이스라엘 백성이 만나를 먹음2. 물이 상징하는 것은 정화와 □□을 부여함이다. 3. 예수님께서는 어디에서 누구에게 세례를 받으셨는가? 4. 세례성사의 은총으로 모든 죄를 용서받는데, 어떤 죄와 어떤 죄인가? 5. 세례성사의 대상자는? ①대죄가 없는 사람 ②부모의 동의를 받은 사람 ③종교가 없는 사람 ④세례를 받지 아니한 모든 사람 6. 생명이 아주 위급할 때는 누가 세례를 줄 수 있는가? ①열심한 신자 ②견진을 받은 신자 ③세례를 받은 신자 ④신자가 아닌 누구라도 7. 세례성사에서 가장 중요한 예식은? ①세례식 ②기름 바름 ③흰옷 받음 ④촛불 받음 답란1. □번 2. 생□3. □르□강, 요□ 세례자 4. □죄, □죄 5. □번 6. □번 7. □번(정답은 ‘가이드 설명’에서 확인하십시오) 가이드 설명1. 세례성사의 예표 노아의 홍수에서 물은 죄를 없애고 새로운 삶을 탄생시키기에, 노아의 방주는 세례를 통한 구원의 예표로 볼 수 있습니다.(창세 7―9장; 1베드 3,20-21)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홍해를 건너감은 세례로 이루어지는 해방, 죄로부터의 해방과 하느님의 백성이 되는 것을 예고합니다.(탈출 14장)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이 요르단 강을 건넘으로써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약속한 땅을 선물로 받기에, 이는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는 세례를 예표한다고 볼 수 있지요. 2. 물의 상징 세례성사 때 물을 사용하는 것은 물이 상징하는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물은 노아의 홍수에서 보듯이, 모든 것을 씻어버리지요. 또한 우리의 몸을 깨끗이 해주며 더러운 것을 씻어내는 정화(淨化)의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물은 생명을 부여합니다. 물은 갈증을 해소해주고, 생명을 유지시켜 주지요. 물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이며, 모든 생물체는 물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3. 예수님의 세례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베푸는 요한 세례자를 찾아가 자청하여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기에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셨지만, 그렇게 하신 것은 당신의 비우심을 나타내며(필리 2,7), 요한의 세례를 인정하신 것이고, 우리 모두에게 세례의 모범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지요.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라고 세례의 중요성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4. 세례성사의 은총 세례성사로 모든 죄, 곧 원죄(첫 사람이 지은 죄)와 본죄(자기 본의로 지은 죄), 그리고 모든 벌까지도 용서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탄생합니다. 이로써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갖추게 되지요. 그리고 세례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한몸이 되어 정식 교회의 일원이 됩니다. 또한 인호(印號, 지워지지 않는 영적인 표지)를 받아 영원히 그리스도께 속하게 되지요. 5. 영세 대상자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따라 세상 모든 사람이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교회법에서는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모든 사람만이 세례를 받을 수 있다”(제864조)고 하지요. 세례는 일생에 한 번만 받을 수 있고, 동물에게는 세례를 줄 수 없습니다. 6. 임종 세례(비상 세례, 대세) 세례의 일반적인 집전자는 주교, 사제, 부제입니다. 그러나 아주 위급한 상황일 때는, 정규 집전자를 대신하여 예식을 생략하고 세례를 베풀 수 있습니다. 이를 임종 세례(비상 세례, 대세)라고 하지요. 이때 신자가 아닌 누구라도 세례를 줄 수 있습니다. 단 세례를 받는 자는 가톨릭 신앙의 중요한 4대 교리를 받아들이고, 어떤 형태든지 세례를 받을 의향을 표시하고, 그리스도 계명을 지킬 것을 약속할 수 있어야 하지요. 세례를 준 후에는 영세자의 소속 본당에 즉시 알려야 합니다. 참조) 가톨릭 4대 교리: ①천주존재 ②삼위일체 ③강생구속 ④하느님의 심판과 영생7. 세례 예식 세례성사 예식은 짧게 또는 길게 할 수 있지만, 다음의 내용이 꼭 들어가야 합니다. △첫 질문(믿음을 확인함) △말씀 전례 △구마기도, 예비 신자 성유 도유 및 안수 △세례수 축복 △끊는 예식과 신앙 고백 △세례식 △기름 바름 △흰옷과 촛불 받음이 중 가장 중요한 예식은 죄에 대해 죽고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하는 것을 상징하는 세례식입니다. 흰옷은 영세자가 그리스도를 옷 입음(갈라 3,27)과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였음을 상징하고, 부활초에서 불을 붙인 촛불은 영세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의 빛’이 됨을 나타내지요. 여행 옵션 / 요르단 강과 예수님 세례터 (이스라엘)요르단 강은 팔레스티나에서 가장 길고 크며, 세계에서 수면이 가장 낮은 강이다. 갈릴래아 호수를 지나 사해로 흘러들어 가는 요르단 강이 현재 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의 국가 경계선이 되고 있다.예수님께서는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셨는데, 성경에는 베타니아(요한 1,28)와 살림에서 가까운 애논(요한 3,23) 지역으로 나온다. 이곳에 대한 고고학 발굴이 이루어져, 요르단 강 동편 페래아 지역에서 4~7세기 비잔틴 제국 시대에 만들어진 세례터를 갖춘 수도원 흔적을 찾아내었고, 이 일대에서 예수님 시대의 마을 유적을 발굴했다. 이 사진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은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2000년 대희년을 맞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교황으로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예수님 세례터를 방문, 이곳을 성지로 선포했다.여행 기념품내가 세례성사를 받은 것은 나의 선택이라기보다는 하느님께서 나를 선택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하느님께서는 이미 나를 선택하시어, 내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무것도 아닌 나를 사랑하셔서 뽑아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리고 있습니까? 선택된 하느님 자녀로서의 자존감, 품위와 존엄과 영예를 지니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앞으로 어떻게 세례성사의 은총을 살아가고 싶습니까?마리 파울리타 수녀 (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 cpbc2022.01.05

하느님 말씀과 공동체의 기도로 구성된 전례[미사의 모든 것] (15)말씀 전례 말씀 전례의 중심 부분은 성경에서 뽑은 독서들과 그사이에 오는 노래로 이뤄져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나처음: 미사를 주례하는 사제가 입당하는 것에서부터 인사하고, 참회한 후 자비송과 대영광송, 본기도를 바치는 것까지가 미사의 시작 예식이라고 했는데, 그럼 그다음부터가 미사의 본 예식인가요. 조언해: 맞아. 시작 예식이 책의 서론이라면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가 본문이고, 마침 예식이 맺는 글이지. 신부님, 제가 교리 시간에 배우기에는 지금 우리가 하는 미사의 말씀 전례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라 명칭과 구조, 집전 장소, 내용 등 대부분이 바뀌었다고 하던데 맞죠? 라파엘 신부: 그래. 말씀 전례는 하느님의 말씀과 공동체의 말로 구성된 전례를 의미해요. 말씀 전례의 중심 부분은 성경에서 뽑은 독서들과 그사이에 오는 노래로 이루어져 있단다. 이어지는 강론과 신앙 고백, 보편 지향 기도로 말씀 전례는 끝맺지. 말씀 전례를 이해하거나 참여할 때 정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말씀’이 단지 독서, 복음, 강론 등 하느님의 말씀만 일컫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야. 화답송, 복음 환호송, 신앙 고백, 보편 지향 기도 등 공동체의 노래와 기도도 중요한 말씀이란다. 그래서 말씀 전례는 하느님의 말씀과 공동체의 말과 기도로 구성된 전례임을 잊지 말아야 해.나처음: 하느님의 말씀과 공동체의 말이 말씀의 전례 안에 담겨 있다면 성경 대신 신자들에게 유익한 글이나 감동적인 시를 읽어도 되나요?조언해: 처음이 넌, 가끔 ‘캠린이’(캠핑과 어린이 합성어, 캠핑 초보를 뜻함) 같은 소리를 하더라. 나랑 함께 그렇게 성당에 다녔어도. 말씀 전례의 핵심은 하느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야. 잘 듣고 묵상해서 그 말씀에 대해 감사와 찬미를 기도로 드러내는 시간이 바로 말씀 전례야. 그래서 말씀 전례 때 하느님의 말씀을 그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거야. 라파엘 신부: 미사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기념하는 가톨릭교회의 공식 제사란다. 미사를 봉헌하는 가운데 신자들은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구원 사업을 찬미하고 나아가 우리 또한 죽음에 이르기까지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따른 그리스도를 본받을 것임을 다짐하지. 따라서 우리의 청을 드리는 것보다, 우리의 인간적인 감동을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면 미사 중에 하느님 말씀인 성경 대신 다른 글을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있을 거야. 만일 신자들끼리 인간적인 나눔을 원한다면 미사에서가 아니라 다른 기회를 찾아야 할 거야. 미사는 결코 인간끼리의 친교에만 초점을 맞춘 잔치가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해. 조언해: 교회 안에서 성경이 봉독될 때에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말씀하시며, 말씀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선포하신다고 배웠어요.라파엘 신부: 그래 아주 잘 알고 있구나. 말씀 전례 중 봉독 되는 하느님의 말씀은 하느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시는 것이기에 무엇보다 우리는 그 말씀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한단다. 그래서 독서자와 부제와 사제가 하느님 말씀을 봉독할 때 귀 기울여 듣지 않고 성경 내용을 따라 읽거나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조언해: 그래서 교회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선포하는 공동체’라고 하잖아요. 라파엘 신부: 그래! 오늘 언해가 교리교사의 참모습을 보여주는구나. 교회는 자신의 힘만으로 살아가지 않고 복음으로 살아가며, 복음으로부터 언제나 새로이 자신의 여정을 위한 방향을 찾아내지. 그래서 교회를 ‘말씀의 집’이라고 표현해. 무엇보다 거룩한 전례 중에 가장 주의 깊게 하느님 말씀을 들어야 해. 좀 전에도 말했듯이 전례는 하느님께서 현재 우리 삶 안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듣고 응답하는 당신 백성에게 오늘 말씀하시는 장소이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미사 독서 목록 지침」은 “전례 거행은 바로 하느님 말씀의 지속적이고 충만하고 효과적인 선포가 됩니다. 그러므로 전례에서 끊임없이 제시되는 하느님 말씀은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살아 있고 힘 있는 말씀이 되며,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냅니다”(4항)라고 가르친단다.나처음: 말씀 전례는 성찬례처럼 처음부터 미사 때 도입되었나요?라파엘 신부: 좋은 질문이야. 주님의 제자들인 사도들이 이끈 초세기 교회 때나 사도들의 제자들인 교부 시대 미사 때에 성찬 전례 앞에 말씀 전례가 있었는지는 아직 정확히 규명되고 있진 않단다. 신약성경에 그 흔적은 보이지만 직접적인 자료는 없어요. 루카 복음 24장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의 이야기’(13-35)가 그 가능성에 대해 증언하고 있지. 내용을 보면, 먼저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모세와 예언자들의 기록에서부터 시작해 성경 전체에서 당신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설명해 주시지. 이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시지. 우리는 여기서 이 이야기 구조가 미사의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의 형식을 띠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지. 나처음: 흥미롭네요. 다른 예는 없나요.라파엘 신부: 바오로 사도께서 트로아스에서 주간 첫날에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던 장면(사도 20,7-12)에서 확인할 수 있단다. 바오로 사도께서 자정까지 밤이 깊도록 신자들과 대화를 나눈 후 빵을 나누고 다시금 날이 밝기까지 이야기를 계속했다는 증언인데 여기서 대화 부분은 말씀 전례에, 빵 나눔은 성찬 전례에 해당한다고 전례 학자들은 보고 있지. 그러나 이 두 가지 예형 모두 어디까지나 말씀 전례의 가능성만 제시할 뿐 직접적인 증거는 되지 못해요.조언해: 그러면 말씀 전례가 미사 중에 도입된 직접적인 기록은 언제부터 나타나죠. 라파엘 신부: 말씀 전례에 관해 처음으로 언급한 문헌은 155년께 쓰인 유스티노 순교자의 「호교론」이란다. 유스티노는 이 책에서 “해의 날(주일)에 도시와 시골에 사는 모든 사람이 한자리에 모인다. 그러면 그 자리에서 시간이 허락할 때까지 사도들의 회상록이나 예언자들의 저서가 낭독된다. 독서자가 독서를 마치면 주례가 이 훌륭한 가르침을 본받도록 훈계하고 격려한다. 그다음에 우리는 모두 일어나서 기도를 올린다”고 밝히고 있지. 성찬 전례 앞에 거행된 이 예식은 오늘날 말씀 전례와 거의 비슷하게 독서, 강론, 보편 지향 기도로 구성되어 있어. 아마도 사도들의 회상록은 현재의 신약성경을, 예언자들의 저서는 구약성경을 일컫는다고 봐야겠지. 조언해: 아! 신부님, 이제 생각났어요. 옛날에 예비 신자들은 말씀 전례까지만 참여하고 성찬 전례를 참례할 수 없어서 영성체를 인육을 먹는 것으로 오해를 받아 박해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라파엘 신부: 우리나라 신앙 선조들도 그런 오해로 박해를 받았지. 그래서 과거에는 말씀 전례를 ‘예비 미사’ 또는 ‘예비 신자 미사’라고 부르기도 했지. 이 말은 미사의 본 부분인 성찬 전례를 준비하는 부분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어. 그래서 옛 신자들은 성찬 전례를 ‘본 미사’ ‘신자 미사’라고 불렀단다. 말씀 전례라는 말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미사 경본이나 다른 전례서에 거의 나타나지 않았단다. 그만큼 하느님 말씀에 대한 인식이 오늘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약했다고 할 수 있지. 이러한 현상을 극복한 것이 바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관해선 나중에 한 번 꼭 이야기해 주마.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cpbc2020.10.28

성경의 세계로 안내하는 길잡이 책들 성서주간을 맞아, 두 신부가 성경으로 초대하는 책을 펴냈다. 의정부교구 이용권(선교사목국 성서사도직 담당) 신부는 구약성경을 50명의 인물 이야기로 풀어낸 책을, 인천교구 신교선(용현5동본당 주임) 신부는 신약성경 입문서를 발간했다. 이밖에 성서주간에 읽으면 좋은 책도 함께 소개한다.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님 / 신교선 신부 지음 / 기쁜소식성경 해설서와 신앙 서적을 꾸준히 저술해온 신교선 신부가 신약 성경의 맥을 짚어낸 책이다. 구약 성경 해설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를 펴낸 지 2년 만에 신약 성경 해설서를 발간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생애를 기록한 복음서를 시작으로, 루카의 두 번째 작품 사도행전, 신약 서간과 바오로 서간, 히브리 서간, 가톨릭 서간, 요한 묵시록까지 다뤘다. 신약 성경의 집필 연대와 장소를 비롯해 각 복음서가 지니는 특징 등을 쉽게 소개했다. 인천교구장 정신철 주교는 “많은 분이 성경을 읽기는 하지만, 어떻게 읽어야 할지 고민한다”며 “성경 입문서는 초보 신앙을 걷는 모든 분에게 등대 역할을 해준다”고 책을 추천했다.하느님과 함께 걷는 사람들 / 이용권 신부 지음 / 생활성서구약의 장구한 세월 속에서 하느님을 체험한 인물 이야기 50편을 담았다. 소설이나 허구가 아니다. 위인전도 아니다. 성경 연구 방법론에 토대를 두고, 사회적 배경과 인물의 삶, 심리 상태 등을 다양한 관점에서 복합적으로 정리했다. 1년간 의정부교구 주보에 실었던 글을 모았다. 성경을 펼치면 제일 먼저 만나는 첫 인물, 아담을 시작으로 하느님에게서 도망치는 요나까지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순서에 따라 이야기를 실었다. ‘하느님의 약속과 축복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오경) ‘약함 속에 더 크게 드러나는 주님의 힘’(역사서Ⅰ) ‘말씀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역사서Ⅱ) ‘사랑은 반대받아도 물러서지 않는다’(지혜서, 예언서) 등 4장으로 구성했다.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책은 학문적인 연구 서적이 아니라, 성경 독서에 대한 기록이므로 이 책에 머물지 말라고 당부한다. 이 책이 주는 인스턴트 같은 순간의 달콤함에 빠져들지 말고, 참된 생명의 샘터인 성경에 뛰어들었으면 좋겠다고 권고한다.구약 성경 입문 2 / TH.뢰머 외 공저 / 김건태 신부 옮김 / 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동방교회에서만 경전으로 인정하는 외경 구약 성경까지 포함한 구약성경 입문서의 두 번째 권. 교파를 초월한 22명의 불어권 성서학자들이 2004년에 펴낸 권위 있는 구약 성경 입문서를 수원교구 김건태(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 신부가 번역했다. 1권에 소개된 △오경 △예언서에 이어 2권에는 △성문서 △제2경전 △동방교회의 구약성경 등 5부로 구성됐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2 / 송봉모 신부 지음 / 바오로딸예수회 송봉모 신부의 영적ㆍ신학적 해설이 담긴 요한복음서 강해. 세족례와 첫 번째 고별사를 다룬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1」(요한 13-14장)에 이은 요한복음 산책 시리즈 다섯 번째 책이다. 요한복음 15-17장의 두 번째와 세 번째 고별사, 고별기도에 대한 해설과 묵상을 다뤘다. 저자 송 신부는 서강대 신학대학원에서 신약 강의를 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성서와 인간 시리즈, 성서 인물 시리즈 등을 펴냈다. 이지혜 기자 평화신문2019.11.20

모든 피조물은 주님의 선물… 겸손히 함께 조화 이루며 보호해야가톨릭교회는 생명을 이렇게 바라본다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으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모든 피조물을 돌보게 하셨다. 그림은 루카스 크라나흐의 ‘에덴 동산’.“사람은 존경하고 보호할 우선 가치로 더 이상 여겨지지 않습니다. 특히 가난한 이들, 장애인, 태아처럼 ‘아직 쓸모없는’ 존재, 노인처럼 ‘더 이상 쓸모없는’ 존재라면 더욱 그러합니다.…이는 가장 지탄받아 마땅한 일들 가운데 하나입니다.”(「모든 형제들」 18항) 사람이 버림받고 있다. 태아ㆍ장애인ㆍ노인이라는 이유로 존엄을 부정당하고, 피부색ㆍ종교ㆍ성 정체성이 다르다고 차별당하고 짓밟힌다. 또 가난하고 병들었다고 멸시당한다. 또한, 인류 공동의 집인 지구가 죽어가고 있다. 전례 없는 생태계 파괴로 수많은 생명이 멸종하고 있다. ‘코로나19’라는 죽음의 바이러스 속에 갇힌 지금, 무엇보다 존중받고 보호돼야 할 것이 ‘생명’이다. 생명 주일을 맞아 가톨릭교회는 생명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 살펴본다. 성경에 드러난 인간 생명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시편 8,5) 성경은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창세 1,27)고 한다. 그리고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라며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는 과정을 묘사한다. 집회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어떤 존재로 창조하셨는지를 좀 더 깊이 설명해 준다. “주님께서는 사람을 흙에서 창조하시고 그를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게 하셨다. 그분께서는 정해진 날수와 시간을 그들에게 주시고 땅 위에 있는 것들을 다스릴 권한을 그들에게 주셨다.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처럼 그들에게 힘을 입히시고 당신 모습으로 그들을 만드셨다. 그분께서는 모든 생물 안에 그들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 놓으시고 그들을 들짐승과 날짐승의 주인이 되게 하셨다. 그들은 주님의 다섯 가지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덧붙여 그분께서는 여섯 번째로 그들에게 지성을 나누어 주시고 일곱 번째로 그분의 능력들을 해석할 수 있는 이성을 주셨다. 그분께서는 지식과 이해력으로 그들을 충만하게 하시고 그들에게 선과 악을 보여 주셨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마음에 당신에 대한 경외심을 심어 주시어 당신의 위대한 업적을 보게 하시고 그들이 당신의 놀라운 일들을 영원히 찬양하게 하셨다.”(17,1-8) 하느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실까? 답은 창세기가 밝히고 있듯이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인간의 겉모습이 하느님을 닮았다는 게 아니다. 하느님의 본성을 닮았다는 뜻이다. 하느님은 ‘거룩하신 분’이시다.(루카 1,35; 요한 6,69) 거룩한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은 거룩하다. 이 거룩함은 인간이 하느님과의 친교를 통해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은총 상태에 있음을 드러낸다. 따라서 인간은 세상 그 어떤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거룩하신 하느님을 통해서만이 구원될 수 있고 그분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다. 하느님은 존엄하신 분이시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기에 존엄하다. 모든 인간이 존엄하고 평등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톨릭교회는 “오직 인간만이 하느님을 알고 사랑함으로써,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인간은 바로 이 목적 때문에 창조되었으며, 이것이 인간 존엄성의 근본적인 이유이다”고 가르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356항) 그리고 교회는 참하느님이시며 참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 특히 그리스도인은 모두 그리스도와 같은 모상이 되고(로마 8,29), 참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요한 1,12; 로마 8,14-17)고 선포한다. 하느님의 선물인 피조물 창세기 1장은 하느님께서 손수 만드신 당신의 모든 창조물을 보시고 ‘좋아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한다.(창세 1,31 참조)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당신의 모든 피조물을 잘 돌보라고 선물하셨다.(창세 1,26-28)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당신이 창조하신 피조물을 무책임하게 남용하거나 약탈할 권리를 부여하지 않으셨다. 인간은 하느님의 피조물을 절대로 파괴해서는 안 된다. 성경에서 ‘땅을 돌보는 것’은 ‘생명을 돌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농부로서의 소명은 자기에게 맡겨진 생명체들을 돌보는 목자의 소명으로 완성된다.”(교황청 성서위원회, 「성서 인간학」 140항) 따라서 인간은 피조물을 보호해야 한다. 가톨릭교회는 자연과 하느님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의무가 신앙의 본질적인 부분(「찬미받으소서」 64항 참조)이라고 강조하면서 모든 피조물의 의미와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하느님께서는 피조물들이 서로 의존하기를 바라신다. 해와 달, 전나무와 작은 꽃 한 송이, 독수리와 참새, 이들의 무수한 다양성과 차별성의 장관은 어떠한 피조물도 스스로는 불충분함을 의미한다. 이들은 다른 피조물에 의존하여 서로 보완하며, 서로에게 봉사하면서 살아간다.…모두 동일한 창조주에게서 창조되었다는 점과 모두 다 창조주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다는 점에서 모든 피조물은 서로 필요로 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340ㆍ344항 참조)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는 한 하느님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이 서로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어, 함께 보편 가정, 곧 숭고한 공동체를 이루어 거룩하고 사랑이 넘치며 겸손한 존중으로 나아가야 된다”고 권고한다.(「찬미받으소서」 89항) 모든 생명과 조화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피조물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며 사신 분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경탄하시며 하느님께서 모든 피조물과 아버지로서 맺으신 관계를 깨달으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 “눈을 들어 저 밭들을 보아라. 곡식이 다 익어 수확할 때가 되었다.”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렸다.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 나무가 된다.”(마태 13,31-32)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이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마태 6,26) 예수님께서는 또한 부활하시고 영광스럽게 되시어 모든 피조물 안에 현존하신다. “과연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콜로 1,19-20) 이에 가톨릭교회는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더 이상 자연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고 하느님의 주권을 드러내는 신비로운 존재가 되었다고 가르친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시며 감탄하셨던 들판의 바로 그 꽃들과 새들은 이제 그분의 빛나는 현존으로 충만하게 됩니다.”(「찬미받으소서」 100항)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cpbc2021.04.29

부활의 기쁨, CPBC와 함께 나눠요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아 가톨릭평화방송 TV와 라디오가 부활의 기쁨을 나누는 다양한 특집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 특별 생중계(TV·유튜브 생중계)파스카 성야 미사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주례하는 명동대성당 부활 성야 미사를 생중계한다.3일 오후 8시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주례하는 명동대성당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를 생중계한다.4일 낮 12시 / 재방송 오후 8시 30분바티칸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주례하는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를 생중계한다.4일 오후 5시 45분 / 재방송 밤 11시부활 특집강우일 주교님과 함께 읽는 모든 형제들(1부)교황 프란치스코의 회칙 「모든 형제들」을 강우일 베드로 주교와 함께 읽으며 깊이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본다.4일 오전 7시, 오전 10시김대우 신부의 부활 편지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신자들에게 보내는 모세 신부의 부활 인사! 부활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묵상하고 우리 삶 안에서 부활을 살기 위해 필요한 노력들을 생각해 본다.4일 오전 8시, 오전 11시, 오후 8시 / 5일 오후 4시 / 6일 오전 8시허규 신부와 듣고 보는 신약성경역사상 가장 훌륭한 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드라마!’ 그중 신약성경 속의 부활 이야기를 허규 신부가 친근한 화법으로 시청자들을 만난다.4일 오전 8시 30분, 오전 11시 30분, 밤 10시 / 5일 오후 4시 30분 / 6일 오전 8시 30분CPBC 특별대담 ‘나의 삶, 나의 신앙 : 박용만 실바노 회장’신입사원과 SNS로 활발하게 소통하고 봉사현장에도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두산 박용만(실바노) 회장. 박용만 회장을 초대해 삶과 신앙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어본다.1일 낮 12시 / 3일 오전 9시 / 6일 밤 11시 / 7일 오후 4시 주세페 베르디의 레퀴엠2020년 9월 4일 이탈리아 밀라노 두오모 성당에서 열린 코로나19 희생자 추모공연 실황으로 주세페 베르디의 레퀴엠이 세계 정상의 독창자들과 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펼쳐진다.1일 밤 11시 / 2일 오전 7시부활특선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왕관’사제로서 신자들의 영적 성장을 돕다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사형수를 대신해 순교하기까지 두 개의 왕관을 다 가진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의 헌신적인 삶을 다룬다.2일 밤 11시 / 3일 오후 3시 / 6일 오전 0시 특선영화 ‘구세주’아기 예수의 탄생부터 공생활, 수난, 죽음, 그리고 부활에 이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그렸다. 3일 오후 6시 특선영화 ‘부활’한 수도자가 살인범을 용서하고 이끌어주기까지, 고통 속에서 대들고 분노하는 이들도 결코 저버리지 않는 하느님을 깊이 느낄 수 있다.3일 밤 10시 / 4일 오후 2시 특선드라마 ‘예수, 모든 이의 희망’온 생애를 통해 모든 이에게 희망이 되고 있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날 수 있다.4일 오후 4시 40분RADIO 부활 특집 프로그램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 특별 생중계(라디오 생중계)파스카 성야 미사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주례하는 명동대성당 부활 성야 미사를 생중계한다.3일 오후 8시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주례하는 명동대성당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를 생중계한다.4일 낮 12시특집 드라마 ‘부활의 아침’“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각각의 고유한 삶 안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늘 주님의 곁에서 말씀을 들었지만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했던 이야기. 드라마 ‘부활의 아침’을 통해 들어본다.5일~10일, 12일~17일 오전 7시 30분그대에게 평화를 장환진입니다 2부 신설CPBC 라디오 생활 성가 프로그램 ‘그대에게 평화를 장환진입니다’가 5일부터 2부를 신설해 청취자들을 찾아간다. 오후 2시부터 2시간 동안 생활 성가 속으로 빠져보자.월~토 오후 2시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문채현2021.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