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신앙체험수기] 우수상/ 겨자씨 한 알이 큰 나무로 자라나](//cpbc.co.kr/CMS/newspaper/2020/03/rc/774442_1.2_titleImage_1.jpg)
[제7회 신앙체험수기] 우수상/ 겨자씨 한 알이 큰 나무로 자라나원진숙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삽화=장희원 내가 원목으로 일하는 프랑스의 한 병원에 입원한 조엘을 처음 만난 것은, 그가 가슴이 무너지는 의사의 통고를 받고 망연자실해 있던 순간이었다. 그의 방문을 노크했을 때 그 와중에도 조엘은 들어오라고 대답을 했다. 그러나 마음이 산란함을 감추지 않은 채 “다 끝장났다는 통고를 받은 지 10분밖에 안 됐어요”라고 말했다. 내가 말없이 그를 바라보자, 그는 말을 계속했다. “이미 내 주치의가 내가 한 달밖에 더 못 살 거라는 말을 한데다가, 방금 내 혈액 검사 결과 항암 치료마저 받을 수 없다는 소식을 받았어요. 그럼 이제 끝난 거죠, 뭐.”조엘의 나이 50. 아직 젊은데 유방암에서 시작된 암이 이미 다른 데로 많이 퍼진 상태였다. 간호사인 그는 자신의 병과 그 진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의 딱한 사정에 마음이 아파지면서, 그에게 생명이 한 달 남았다고 통고한 의사에 대해 화가 났다. 자기가 하느님도 아니고, 어떻게 그렇게 죽음을 예측할 수 있으며, 예측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렇게 대놓고 말을 하다니! 할 말을 잃고 가만히 있는 나에게, 조엘은 하느님 원망을 하기 시작했다. “2년 전에 아버지가, 작년에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48살밖에 안 된 내 친구도 죽고, 얼마 전에는 그 비슷한 나이의 내 직장 동료도 죽었어요. 이 세상에 부조리한 일들이 너무 많아요. 제대로 살아 보지도 못하고 죽는 사람들, 전쟁으로, 사고로… 죄 없는 어린이들까지…. 그리고, 나도 아직 죽기에는 이른 나이 아니에요?”나는 한동안 그의 계속되는 푸념을 듣다가 “지금 정말 어려운 시기이네요. 그 누구에게도 인생이 쉬운 건 아니지만, 조엘은 지금 특별히 어려운 시기에 있네요. 조엘을 위해 기도할게요” 하며 일어섰다.“그러세요, 하느님이 그 기도를 들어 주실는지 모르지만….” 반쯤 냉소적으로 대답하는 조엘을 뒤로 하고 병실을 나섰다.환자들을 만나면서 나의 무능력을 절감한 적이 수없이 많지만, 이번에도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나의 가난을 절실히 느끼면서, 하느님께 조엘을 맡겨 드리며 그를 위해 기도했다.그다음에 만났을 때도 조엘은 저번과 비슷한 말을 계속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하느님이 내게 해 주신 게 별로 없어요. 난 형제도 없이 쓸쓸하게 자랐고, 지금도 친구가 얼마 없어요.” “그렇다면 조엘은 하느님께 뭘 해드렸나요?”라는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올 뻔했다. 그가 “하느님이 주신 생명으로 지금까지 살아왔고, 살아오는 동안 무수한 은혜를 받았을 거”라는 말도 입술까지 올라왔지만 꿀꺽 삼켰다. 원목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환자의 말을 경청하는 것, 환자의 말을 격려하는 것이라고 배우지 않았던가? 그의 말을 더 들어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하느님이 어떻게 해 주셨으면 좋겠는데요?”“날 좀 더 살게 해 주시든지, 아니 죽어야 하면 죽겠지만 고통이 두려워요. 아, 하느님이 왜 그냥 가만히 계시냐구요?”“그럼 조엘은 하느님이 계시다는 사실은 믿고 있나 보죠?” “아뇨.”“계시지도 않은 분에게 원망을 하는 거예요?”“계실지도 모르지만… 믿은 적도 있었지만… 아무튼 하느님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시지는 않았어요.”“하느님에 대해 화가 나 있군요. 화를 내도 괜찮아요. 하느님께 외쳐도 돼요. 이왕이면 아주 큰 소리로 외치세요. 하늘까지 들리게…. 하느님께 하고 싶은 말을 다하세요. 그것도 기도예요.”“사람들이 내가 미친 줄 알게요?” 하며 조엘이 웃었다. 웃고 나니 마음이 좀 풀리는지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조엘은 어렸을 때 세례를 받았지만, 기억에도 없는 일을 엄마가 말해 주어서 알게 된 것뿐이고, 부모님이 거의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실제로 성당에 다닌 적은 별로 없으며, 20대 초반에 어찌어찌하다가 여호와의 증인으로 7년을 지냈는데, 그 생활이 불행하게 느껴져서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그렇지만 그나마 그때는 성경도 읽고, 영적인 것을 생각하며 살았기에 그게 그런대로 힘이 되었어요.”그렇다면 영적인 목마름이 있는 사람이구나 싶어서, 그다음에 갈 때는 그에게 잡지 몇 권을 들고 갔다. 처음부터 종교적인 것을 들이대면 거부감을 일으킬까 봐서, 가톨릭 잡지이면서도 다른 화제들도 다양하게 다루고 있는 것을 갖다 주었다. 그러면서 그 내용을 주제 삼아 대화를 더 늘려나가는 동안, 조엘은 처음에 비해 한결 부드러워지고 친절해졌다. 그리고 혈액 검사를 다시 한 후 마침내 항암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자 그의 태도는 더욱 누그러졌다. 그에게 성경을 권하고 싶던 참에 마침 조엘이 물었다.“성경이 하느님의 말씀인 거 맞아요?”“그건 조엘이 직접 읽으면서 느껴 보세요. 나는 하느님을 부정하는 사람들도 왜, 무엇을 부정하는지 알기 위해 일단 성경을 읽어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자 조엘이 성경을 빌려 달라고 했다. 성경을 주면서 내가 말했다.“일단 한번 쭉 읽어 보세요. 이해가 안 가거나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은 그냥 지나가세요. 그러다가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이 있으면 잘 새기시고요. 그러다 보면 그 말씀의 빛으로 앞에서 그냥 지나간 부분도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그 후, 나는 조엘에게 “신부님을 한 번 만나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성경에 대해서, 그리고 자기 삶에 대해서 신부님과 대화를 나눠 보면 어떻겠냐고, 나하고만 대화를 하는 것보다 그것이 더 폭넓은 대화가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조엘이 이를 받아들이자, 나의 영적 지도 신부님께 조엘을 만나 주십사 부탁을 하여 만남이 이루어지고, 또 지속되었다. 신부님이 그에게 책 몇 권을 빌려 주시자, 조엘은 그 책들도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어느 날, 조엘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아, 이 책에서 놀라운 것을 발견했어요. 하느님도 고통을 받으셨다는 것을…. 예수님이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껴안으셨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하느님 아버지께서도 함께 고통을 받으셨다는 것을요. 난 여태껏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하느님이 우리의 고통을 아신다는 거군요!”조엘은 이로써 모든 것이 새로워졌다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다음에 만났을 때도 그 말을 또 했다. “하느님이 우리를 알고 계시고 우리의 고통도 아신다는 거지요! 이 사실을 알게 된 게 너무나 기뻐요!”나는 조엘이 이 기회에 하느님께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기를 소망하며, 주일 미사에 한 번 오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미사에 정식으로 참여할 마음이 없으면, 그냥 구경삼아 한 번 와 보세요. 우리 수녀원이 병원 바로 옆이니 생각 좀 해 보고, 내일이 주일이니 이번에는 너무 빠를 것 같고, 다음 주일에….”그런데 조엘은 바로 다음날 미사에 나타났다. 어린 시절에 미사에 참석했던 기억이 난다면서, 그다음 주일에도 미사에 왔다.나는, 내가 좀 너무 성급하게 밀고 나가는 건 아닌가 조심스러우면서도, 그가 살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으니 마냥 기다릴 수도 없었기에, 용기를 내어 그에게 말했다. “조엘, 잔치에 가서 밥을 안 먹는 것은 좀 서운한 일이잖아요. 그러니, 난 조엘이 영성체를 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영성체를 하기 전에 고해성사를 보면 좋은데 고해성사를 본 경험이 있어요?”그는 첫 영성체 전과 그 후에 딱 한 번 고해성사를 본 적이 있을 뿐, 40년 동안 한 번도 고해성사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죄에 대해서만 말하면 조엘을 죄인 취급하는 느낌을 줄까 봐서 말을 골라가면서 했다. “조엘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한 번 되돌아보면서, 은혜로웠던 일에 대해서는 감사를 드리고, 맘에 걸리는 일, 가슴에 얹혀 있는 일, 용서해야 할 것, 용서받아야 할 것 등을 신부님께 말씀드리세요. 그리고 필요한 은혜를 하느님께 청하시고요.”조엘은 순순히 신부님을 만났다. 그리고 고해성사를 본 후, 몹시 기뻐하며 말했다. “이제 내 인생, 새로 시작이에요. 생명이 얼마 안 남은 이제서야 새로 시작하는 게 아쉽지만, 그래도 정말 기뻐요. 아! 이제 새로 시작하는 거예요!”그리고 그다음 주일 미사 때 조엘은 성체를 영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기쁨이란!!그가 매주 항암 치료를 받는 동안, 신부님과 내가 번갈아가며 조엘을 만났다. 조엘은 신부님이 빌려주시는 책들을 열심히 읽고 그에 대해 신부님과 나에게 질문도 하고 토론도 했다. 한 달밖에 못 산다던 조엘은 두 달도 넘게 입원해 있으면서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하루는 조엘이 큰 비밀이라도 털어놓듯이, 자기가 하느님과 성당을 멀리하고 살아오는 동안에도 항상 소망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예루살렘 성지 순례를 가는 것이라고 했다. 건강이 좋아지면 꼭 한 번 성지에 가 보고 싶지만, 지금으로서는 미지수라고….그래서 나는 곧 다가오는 ‘암-희망’ 루르드 순례에 가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이 순례는 암 환자들과 환자의 가족들, 그리고 암에서 치유된 사람들을 위한 순례인데, 자원 봉사자들이 환자들을 동반해 주고 보살펴 주기 때문에 웬만하면 조엘도 이 순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조엘은 관심을 보이며 즉시 신청을 했다. 그런데 이 순례 조직은 매년 한 번 루르드 순례를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순례 참석자들이 지역별로 매달 모임도 하고 있었으므로, 조엘은 신청을 하고 나서 바로 그 모임에 초대를 받았다. 건강도 차츰 나아지고, 그 모임을 통해 좋은 친구들, 더구나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동병상련의 친구들을 얻게 된 조엘은 무척이나 행복해했다. 병 ‘덕분에’ 자신의 삶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고 진심으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었다.조엘은 퇴원한 후에도 주일마다 우리 수녀원으로 미사를 왔고, 미사 후에는 나와 함께 정원을 걸으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신앙생활, 그리고 자기가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신부님과도 가끔 면담을 계속했다.프랑스 루르드 순례를 하고 돌아왔을 때 조엘의 얼굴은 환희로 빛나고 있었다. 잊지 못할 좋은 시간이었다고, 깊은 은혜의 시간이었다고 했다. 그러고 얼마 지나서, 어느 날 오후에 조엘이 갑자기 찾아왔다. 자신이 직접 만든 케이크를 들고 얼굴에는 기쁨의 홍조를 띠고 거의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병원에 검사받으러 갔더니, 의사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암 자국이 다 없어져 안 보인다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너무 기뻐서, 이 기쁨을 나누고 싶어, 얼른 케이크를 만들어서 달려왔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다고,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요!!!!!” 조엘은 외치듯이 이 말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그리고 조엘은 한 달 동안 새 친구들, 새로운 식욕, 새로운 계획들에 가득 차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가 좋아하는 예쁜 연보라색 옷도 사고, 행여 좋은 남자를 만나게 되면 비록 늦은 나이이지만 결혼도 생각해 보고 싶다는 말까지 했다. 그의 소망이 실현되기를 나도 같이 소망했다.그러나 어느 날 조엘은 다시 입원했다. 암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항암 치료를 받기 힘들 만큼 혈액 상태가 다시 나빠졌다고 하면서, 기운이 빠져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그렇지만, 예수님이 절대로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은 확실히 믿어요”라고 힘주어 말하며 “죽기 전에 주님께서 내게 신앙을 주시고, 한 달 동안의 행복도 선물로 주셨어요. 사실 죽는 건 그다지 두렵지 않아요. 저 세상에 가서 부모님과 먼저 간 친구들을 만날 생각을 하면 기쁘기까지 해요. 그런데 아쉬운 건, 내 인생에 내가 별로 보람 있는 일을 한 게 없다는 거예요. 하느님이 내게 시간을 좀 더 주신다면 적어도 2년 정도는 무의촌에 가서 의료 봉사를 하고 싶어요. 그런 생각을 안 해 보았던 건 아닌데, 실천에는 옮기지 못하고 살아왔군요” 하며 말끝을 흐린다. 삶의 끝자락에 와서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며 아쉬움이나 회한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되랴. 오늘을 마지막 날인 듯이 살라는 말이 생각나면서, 나도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좀 기운을 회복했다가 다시 상태가 나빠졌다가를 반복하고 있던 조엘은, 어느 날 아주 가라앉은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항암 치료를 마냥 계속할 수는 없어요. 이달 말까지 하면 끝이에요. 내 몸이 이 치료를 더 이상 받아내지를 못하거든요. 한동안 쉬었다 다시 하게 될는지, 이것으로 끝일지 알 수가 없어요. 어쩌면 이달이 내 삶의 마지막 달일지도….” 그러면서 말할 기력도 없다면서 힘없이 대화를 끊었다.그런데 그 무렵, 조엘과 비슷한 나이, 비슷한 상태의 여환자 둘이 입원해 있었는데, 둘이 같이 병자성사를 청했다. 그래서 조엘에게도 그들과 함께 병자성사를 받겠느냐고 물었더니, 거의 반갑다는 듯이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둘과 만나 인사하고 친구가 되어, 셋이 함께 성경 구절과 성가를 선택하는 등 준비를 한 후 기쁘게 병자성사를 받았다. 거의 축제 분위기였다. 그 후에도 조엘은 그들을 자주 만나며, 자신의 고통은 뒷전으로 하고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었다. 병자성사의 은총인 듯, 모처럼 이렇게 기운을 찾은 조엘은 이제 평화의 사도가 되어 있었다. 내가 조엘을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과 얼마나 달라졌는지! 복음 말씀처럼 겨자씨가 큰 나무로 훌쩍 자란 것을 보는 것 같은 감격과 감사가 솟아올랐다.하루는 병실로 들어서는 나를 조엘이 만면에 미소를 띠며 반겼다. 오랫동안 볼 수 없었던 그의 미소!“하느님께 말씀드렸어요. 수채화 20장 그릴 시간을 달라고요. 20장이 안 되면 적어도 12장만이라도…. 제 그림을 주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고. 그다음에는 저를 데리고 가셔도 좋다고요. 지금으로서는 매일 그림 그리는 데만 마음을 쓰고 싶어요.” 모두 꽃 그림만을 그릴 거라면서, 나에게도 한 장 그려 줄 텐데, 무슨 꽃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내가 미모사 꽃을 좋아한다고 하자 “아, 그건 장미나 백합보다 그리기 어려운데 그래도 그려볼게요” 하며 방긋 웃는다. 그의 마음속에 이미 20송이 꽃이 피어난 것만 같았다. 조엘의 현재 상태로서는 불가능한 무의촌 진료의 꿈이 이처럼 실현 가능한 꿈으로 바뀌고, 그리고 이를 실현하는 기쁨으로 생기를 찾은 조엘을 보며 나도 마음이 가벼워졌다.그런데 얼마 안 있어, 조엘과 함께 병자성사를 받은 분 중 한 분이 세상을 떠났다. 이 죽음이 조엘에게 남의 일 같지 않을 게 틀림없었고, 자기 죽음을 보는 것 같았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조마조마했지만, 그래도 나는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조엘은 하늘나라에 친구를 두게 되었으니, 그에게 기도하세요. 그가 도와줄 거예요” 그러자 조엘도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미 하늘나라에 친구가 많아요. 아무튼, 내가 꼭 믿는 것은, 하느님이 우리를 절대로 혼자 버려두시지 않는다는 거예요.”이 깊은 신뢰에까지 조엘을 키워 주신 주님! 주님께서 우리 삶의 골목 골목을 함께 걸으시며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는 것이 깊이 느껴진다. “주님, 앞으로도 조엘, 그리고 우리 모두와 늘 함께 계셔 주소서.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그리고 이 세상과 작별하고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그 시간에, 그 후의 영원한 삶 속에…. ” 원진숙 마르가리타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cpbc2020.03.04

가난한 이웃 우선으로 돌본 한국교회 첫 번째 사회교리 실천가[성 요셉의 해, 우리 시대 요셉을 찾아서] (1)최경환 성인 수리산 성지 최경환 성인 묘소. 최양업 신부는 수리산을 들를 때마다 아버지 묘소를 찾아 정성껏 기도하고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10년 교육보다 10달 태교가 더 중요하고 이보다 수태 전 부모의 마음과 몸가짐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성경에서도 “자식들이 아버지의 훈계를 듣고 그대로 실천하면 구원을 받을 것”(집회 3,1 참조)이며 “자녀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고, 아버지는 자녀들을 성나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라”(에페 6,1-4 참조)고 가르친다. 아울러 예수님께서도 부모에게 순종하며 지내어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를 받았다(루카 2,51-52 참조)고 복음서는 증언하고 있다. 보편 교회의 수호자이신 성 요셉의 해를 맞아 자녀들과 교회, 그리고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아버지들의 삶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 첫 회로 하느님의 종 최양업 신부의 아버지 최경환(프란치스코, 1804~1839) 성인을 소개한다.“(최경환) 프란치스코는 참으로 성교(聖敎)하는 사람이라. 너희도 성교를 하려거든 (최경환) 프란치스코같이 하라.”기해박해 당시 신자들과 함께 옥살이하던 한 도적이 교우들에게 한 말이다. 최양업 신부의 아버지 최경환 성인의 성품이 어떠했길래 도적마저 이런 말을 했을까? 최양업 신부를 알기 위해선 그의 아버지 최경환을 살펴야 하듯이 최경환 성인을 알려면 그의 집안 특히 그의 아버지 최인주의 인물됨을 먼저 보아야 한다. 최경환 성인의 아버지, 즉 최양업 신부의 할아버지 최인주는 고결한 사람이었다. 가정도 부유했다. 그는 1791년 신해박해 때 많은 고초를 겪은 후 석방됐다. 그는 순박하고 신심이 뛰어났다. 가난한 친척들과 이웃에게 미리 알아서 도움을 줬다. 또 자기 종들에게 자신을 “영감님”이라 부르지 말고 “아버지”라 부르라고 했다. 최인주는 세 아들에게 세 가지 유언을 남기고 선종했다. △서로 무엇을 줄 때 거저 주어라 △보증을 서거나 혼인 중매를 절대로 서지 마라 △이웃과 항상 화목하게 지내라.(최양업 신부, 1851년 10월 15일자 서한 참조)최양업 신부의 할아버지는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인 후 주님의 가르침대로 신분 차별을 거부하고 하인을 친자녀처럼 사랑으로 보듬고 가난한 이웃과 친지들에게 자선을 아끼지 않았다. 아버지의 신심을 아들 최경환이 그대로 흡수했다.철저한 신앙인최양업 신부는 “(아버지) 프란치스코는 천성적으로 진정한 신앙의 실천자였고, 정직과 순박을 애호하면서도 강력한 성품을 타고나셨다”고 회고했다. 최경환은 어릴 적부터 세상의 오락을 경멸하고 교리를 듣거나 읽는 것만을 즐겼다. 가장이 된 그는 가족이 신앙생활에 냉담하자 고향과 재물을 버리고 신앙생활을 하기 편한 곳으로 이사했다. 최양업 신부는 “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모범을 더욱 철저하게 따르는 것을 유일한 희망으로 삼고 만족해하며 살았던 분”이라고 했다. 최경환은 교회의 가르침과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남들이 감탄할 만큼 형제들과 화목하게 살았다. 어머니께 효도를 다 했고, 아랫사람들을 자상하게 보살폈다. 매일 규칙을 정해 아무리 바쁜 날이라도 영적 독서를 중단하지 않았고, 가족 모두가 함께하는 아침ㆍ저녁 기도를 빠트리지 않았다. 최경환은 배운 것은 많지 않으나 평소 자주 묵상하고 밤낮으로 열심히 신심서적을 읽으며 회장으로서 교우들을 가르치기에 힘썼다. 교리가 해박한 사람으로 소문이 퍼져 박식한 신자와 유식한 사람들까지 그의 강론을 들으러 왔고, 까다롭게 꼬치꼬치 따지는 비신자들까지도 그의 지식에 설복돼 돌아가곤 했다. 최경환은 밭에서 일할 때나 집에서 가족을 돌볼 때나, 길에서 누구와 담화를 할 때도 항상 교리와 신앙에 대한 이야기만 했다. 육신을 가꾸는 일이나, 세속적인 평판이나 관심, 현세의 사정에 대해선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그를 잡으러 온 포졸들에게 밥을 지어 음식을 대접하고, 남루한 차림의 포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옷을 내어주며 입으라고 하자 포졸들이 “이 사람과 이 가족이야말로 진짜 천주학쟁이”라고 감탄했다. 빼어난 자선가최경환 성인은 ‘한국 교회 첫 번째 사회교리 실천가’라는 평을 들을 만큼 가난한 이웃을 우선으로 돌봤다. 자신도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최경환은 항상 주변의 가난한 이들을 백방으로 도왔다. 그는 살림이 어려운 가운데도 절약하고 아껴서 그 돈이나 물건으로 사회적 약자를 돌보았다. 과일을 추수하면 가장 좋은 것을 골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고, 물건을 살 때면 항상 제일 나쁜 것이나 흠 있는 것을 골랐다. 사람들이 왜 그러냐고 나무라자 그는 “제일 나쁜 물건을 사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하지 않겠소? 그런 사람이 없으면 이 불쌍한 장사꾼들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단 말이오”라고 답했다. 한 번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홍주에 있던 땅을 얼마간 팔아 돈을 마련해 돌아오는 길에 빚을 갚지 못한 사람이 돈을 꿔준 사람에게 봉변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본 최경환은 땅 판 돈으로 빚을 갚아주었다. 또 어느 날 최경환이 시장에 갔다가 진흙 개천에 떡판을 엎지르고 앉아 “이 떡을 팔아 어린 자식과 생명을 보존할 텐데 이 지경이 됐다”며 울고 있는 떡장수 할머니를 보고 그 떡값을 다 물어주기도 했다. 최경환은 또 수리산 교우촌 신자들을 설득해 성금을 거두어, 그들과 함께 50리를 걸어 서울로 올라가서 많은 순교자의 시신을 찾아 매장했고, 순교자 가족들을 돕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닮은 아들들최경환 성인의 신심과 덕행은 자식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됐다. 그의 맏아들 최양업 신부는 부친의 헌신적인 삶을 이어받아 자신을 돌보지 않고 1년 중에 한두 달을 제외한 대부분 시간을 전국에 흩어져 있는 교우촌을 돌면서 신자들에게 성사를 베풀었다. 최양업 신부는 1849년 12월 입국한 직후부터 1861년 6월 15일 과로로 선종하기까지 무려 11년 6개월간 이러한 삶을 지속했다. 최경환 성인의 넷째 아들이자 최양업 신부의 셋째 동생인 최우정(바실리오, 1832~1886)은 병인박해 10년 후 조선에 입국한 블랑 주교의 지시에 순명해 여비도 없이 충청, 전라, 경상도 지방을 구걸하며 도보로 흩어져 숨어 사는 교우들을 찾아가 “선교사들이 입국했으니 교회로 모여와 성사를 받고 신앙생활을 재개하라”는 소식을 전했다. 최우정은 “끼니를 너무 많이 걸러 겨울철에 몇 번이고 굶어 죽을 뻔했고, 곳곳에서 겪는 모욕과 구박을 견디어 내며 끝까지 전교 여행을 수행했다”고 밝혔다.최경환 성인의 신심과 덕행은 지금도 후손들에게 이어지고 있다. 최경환 성인의 현손(玄孫)인 최기식(베네딕토, 원주교구 원로사목자, 한국희망재단 이사장) 신부는 ‘썩은 밀알이 되게 하소서’라는 사목 모토를 정하고 사제로서 한평생 사회 약자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또 성인의 후손으로 10명이 넘는 사제와 10명이 넘는 수도자들이 본당과 사회복지, 해외 선교 사목 등을 통해 복음을 선포하고 최경환 성인의 ‘애주애민’(愛主愛民)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1.01.05
코로나19, 교회 쇄신의 기회 돼야안동교구 정희완 신부, 수원가대 학술발표회서 주장 코로나19로 성사 참여가 물리적으로 차단된 신자들의 입장과 고통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교회는 또 한 번 성직주의의 어리석음을 반복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안동교구 가톨릭문화와신학연구소장 정희완 신부는 6일 수원가대 이성과신앙연구소(소장 한민택 신부) 주관으로 열린 학술발표회에서 이같이 주장하며 “코로나19로 인한 격리의 시기에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와 새로운 상상력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식별’을 주제로 열린 이날 학술발표회에서 정 신부는 “전례와 본당 중심의 신앙생활은 지나치게 성직자 의존적이 될 위험성이 있지만, 격리의 시기에 그저 온라인 미사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최선의 사목적인 태도라고 볼 수 없다”고 우려했다. 정 신부는 “격리 시기에 텅 빈 교회 건물의 모습은 숨겨져 있었던 교회의 잠재적인 쇠락과 교회의 암울한 미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교회가 철저하게 자신을 새롭게 쇄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신부는 “신앙을 산다는 것은 어떤 종교적 관습과 관행, 규범을 기계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하느님의 뜻을 찾고 하느님의 시선으로 세상과 삶을 바라보고 하느님을 닮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라면서 “신앙생활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전례 성사로서의 미사와 삶의 성사로서의 미사는 늘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수원가대 이성과신앙연구소(소장 한민택 신부) 주관으로 열린 이번 학술발표회에는 정 신부를 비롯해 수원가대 교수들인 한민택 신부가 ‘기초신학의 중심 주제로서의 식별’을, 나호준 신부가 ‘식별에 대한 성경신학적 제안: 다윗이 한 짓이 주님의 눈에 거슬렸다’을, 김의태 신부가 ‘세계주교시노드 규정에서 드러난 교회의 식별 자세, 교황령 「주교들의 친교」를 중심으로’를 주제 발표했다. 또 윤주현(가르멜수도회, 수원가대 교수) 신부와 정제천(예수회) 신부가 ‘영성신학에서 본 영적 식별: 식별 기준과 수단 그리고 영의 표지’, ‘성 이냐시오의 영적 식별과 공동 식별: 교회의 ‘공동합의성’을 위한 영성적 기초’를 각각 다뤘다. 이날 학술발표회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학교 자체 행사로 진행됐으며 내용은 유튜브로 중계됐다.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평화신문2020.05.13

악마도 성경 인용할 줄 안다악마 이야기 - 교회를 분열시키려는 악한 영 유럽 교회는 악마를 경계하라는 의미로 성당 지붕 귀퉁이나 빗물받이 출구에 ‘가고일(Gargoyle)’이라 불리는 기괴한 모습의 악마 조각상을 설치했다. 구강 청결액을 머금다가 뱉어내는 가글이란 용어는 이 괴수가 빗물을 토해내는 모습에서 유래한다. 하지만 악마는 이처럼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기괴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출처= pixabay 악마는 교묘하다. 뿔과 꼬리가 달려 누구나 알아챌 수 있는 악마는 동화책에나 나온다. 악마가 그런 기괴한 몰골로 나타나 유혹하면 거기에 넘어갈 바보는 없다. 악마는 우리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창세 4,7) 기회를 엿보다 틈이 보이면 비집고 들어온다. 때로는 ‘빛의 천사’(2코린 11,14)로 위장하고 다가온다. 성경학자 뺨치는 실력으로 하느님 말씀을 들먹이면서 부와 권력, 명예를 약속한다.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악덕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자신이 쌓은 부는 신의 축복이라며 야곱이 부자가 된 이야기(창세 30)를 늘어놓는다. 그러자 안토니오는 “악마도 제 목적을 위해서 성경을 인용할 줄 안다”고 반박한다. 악마는 광야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유혹할 때도 성경을 인용했다. 악마는 예수를 거룩한 도성 꼭대기에 데리고 가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라고 말했다. 그때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시편 91,11-12)라는 성구로 예수를 안심시키려고 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악마의 유혹은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유혹은 본질적으로 도덕적인 외양을 띠고 있다. 유혹은 우리를 노골적으로 악으로 초대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너무 서툰 짓일 것이다.”(「나자렛 예수」)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도 재미있는 전승으로 악마의 은밀한 공격성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300명의 수도승이 구도하던 어느 수도원에서 수도승들은 악마의 침입을 막아 보려고 아침에는 흰 말, 낯에는 붉은 말, 저녁에는 검은 말을 타고 번(番)을 돌았더니, 그 악마는 대수도원장의 모습으로 들어오더라.”(「영혼의 자서전」) 구약 전통에서 악마는 하느님과 대적하는 악한 영, ‘사탄’으로 불린다. 사탄은 ‘방해하다’, ‘반대하다’라는 히브리어다. 악마의 속셈은 분명하다. 인간을 하느님에게서 떼어놓고, 자신이 그분의 권세와 영광을 차지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얼굴과 수법은 다양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특히 공동체 분열을 조장하는 세력을 악한 영이라고 본다. “뒷담화만 안 해도 성인이 된다”는 유행어는 이러한 인식의 가벼운 표현이다. “분열은 악마가 교회를 내부에서 파괴하려고 손에 쥐고 있는 무기이다. 악마는 두 종류의 무기를 갖고 있다. 분열과 돈이다. 악마는 주머니로 들어와서 혀를 통해, 분열하는 험담을 통해 교회를 파괴한다.”(2016년 신임 주교 세미나 연설)교황은 10월 묵주기도성월에 “교회 공동체를 분열시키려는 악마의 공격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해 달라는” 지향으로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긴급히 요청했다. 이 요청은 최근 교회를 곤혹스럽게 하는 성직자 성추문 사태와 관련이 있다. 교황은 이 사태에 대해 누구보다 무겁게 공동체적 책임을 통감해야 할 고위 성직자 몇 명이 교회 분열을 조장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다니는 데 대해 통탄하고 있다. 교황은 이들을 “추문을 만들려고 트집을 잡는 듯이 보이는 거대한 고발자”라고 비판했다. 또 “우리가 비난하고, 저주하고, 다른 이들에게 해를 입히려고 하면 파괴자가 되고, 자비를 결코 살아본 적이 없는 거대한 고발자(사탄)의 논리에 빠지게 된다”며 이에 대항하는 두 가지 힘을 거론했다. 하나는 기도다. 다른 하나는 세상의 정신과 다른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따르는 것이다. 교황은 “묵주기도는 제 인생을 동반했던 기도이며, 단순한 사람들과 성인들의 기도입니다… 성모님은 우리의 길을 알려주시는 어머니이십니다”라고 트위터를 통해 고백한 바 있다.교황의 이 요청을 듣고 나온 국제 기도 네트워크 사도직 대표 프레데릭 포르노스 신부는 바티칸 뉴스 인터뷰에서 “악은 유혹자이다. 처음에는 좋은 의도와 생각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지만, 천천히 분열과 거짓 등 악한 의지로 사람을 이끈다”고 말했다. 이어 이 힘든 시기에 성모의 도우심을 청하자는 것이 교황의 뜻이라고 전했다. 교황은 묵주기도 끝에 마리아와 미카엘 대천사에게 드리는 전통적 기도(1면 기도문 참조)를 바쳐 달라고 당부했다고 포르노스 신부는 덧붙였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평화신문2018.10.10
말씀의 현재화](//cpbc.co.kr/CMS/newspaper/2019/09/rc/761549_1.1_titleImage_1.jpg)
[수도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5)말씀의 현재화살아계신 하느님을 지금 만나는 길, 성독 허성준 신부 프란치스코 교황은 올해 파스카 성야 미사에서 신자들에게 박물관에 전시된 신앙을 갖지 말라고 강하게 권고했다. 왜냐하면, 주님은 과거의 인물이 아니며 또한 역사책에서 알게 되는 분이 아니라, 삶에서 직접 만나는 구체적인 분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면서 정작 도움이 필요할 때만 주님께 나아간다. 어찌 보면 우리가 찾는 것은 살아 계신 주님이 아니라 우리의 필요들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죽은 이들 가운데서 살아 계신 분을 찾는 것과 같다. 우리는 결코 부활하신 분에게 우리 삶의 중심 자리를 내어드리는 일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이런 측면에서 살아 계신 주님과의 만남을 위해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그 말씀을 우리의 삶에 인격화, 내면화시켜야 한다. 이러한 것을 도와주는 구체적인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수도 전통에서 알려준 렉시오 디비나 수행, 즉 ‘성독(聖讀)’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더 이상 죽은 문자 속에 가두어 두어서는 안 된다. 하느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과 일상의 삶 안으로 가져오고,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 이때 하느님의 말씀은 더 이상 과거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그것을 넘어 현재의 우리의 구체적인 삶으로 다가오게 된다. 바로 이것이 말씀의 현재화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을 현재화하셨는지 살펴볼 수 있다. 다음의 예는 많은 것을 우리에게 깨닫게 한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는 나자렛 회당에 들어가시어 성경을 읽기 위해서 시중드는 이에게 두루마리를 받아들고 이사야서를 찾아 봉독하셨다. 그리고 다시 두루마리를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고 당신 자리에 와서 앉으시자, 모든 사람의 눈이 그분에게로 쏠리게 되었다. 바로 그때 그분께서는 그들을 둘러보시며 다음과 같은 결정적인 한 말씀을 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예수님은 그 옛날 이사야 예언자가 예언했던 말씀을 당신이 머무시는 그 시간과 그곳으로 가져오셨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그 옛날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그리고 지금 이 시간으로(Hic et Nunc) 끊임없이 가져와야 한다. 그래야 말씀은 더 이상 과거라는 무덤에 갇히지 않고 우리에게 다가와 지금 여기에 살아 있게 된다. 이것을 도와주는 구체적인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성독 수행이다.기도를 동반한 성경 독서를 통해서 한 말씀을 선택하고, 그 한 말씀을 온종일 되뇌다 보면, 그 말씀의 깊은 영적 의미가 불현듯 떠오르기도 한다. 때로는 그 말씀이 우리 내면 깊이 다가와 그 옛날 사막 교부들이 체험했듯이, 우리 마음 안에 뜨거움과 통회의 눈물을 가져오기도 한다. 이로써 그 말씀은 2000년 전의 죽은 말씀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새롭게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선포하시는 살아 계신 말씀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렉시오 디비나(성독) 수행을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덧 말씀과의 인격적인 만남도 가능하게 된다. 그때 우리는 더 이상 삶과 영성이 분리되지 않고, 일상 안에서 말씀과 함께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일이 가능하게 된다. 그러므로 렉시오 디비나를 통해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우리는 끊임없이 이와 같은 방법으로 말씀을 우리가 현재 머물고 있는 지금 그리고 이곳으로 가져와야 한다.허성준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평화신문2019.09.03

‘먹보요 술꾼’인 예수님과 막걸리 한 잔![엉클 죠의 바티칸산책] (15)갈릴래아로 관상 순례를 떠나다 예수님은 갈릴래아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사진 속 언덕 어딘가에서 병든 이들을 고쳐주시고, 배고픈 이들을 위해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다. 얼굴에 와 닿는 호숫가 산들바람이 예수님 손길처럼 포근하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아, 갈릴래아! 예수님이 꿈을 키운 땅!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새로운 삶을 시작한 땅!성경 공부에 빠져들면서 저의 버킷리스트 1호가 바뀌었습니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초원에서 이스라엘의 갈릴래아로.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묵상하는 사순 시기, 저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갈릴래아로 갑니다. 관상 기도하는 요령으로 ‘관상(觀想) 순례’를 떠납니다. 2000년 전 그분이 사셨던 갈릴래아를 맘껏 체험해 봅니다. 왜 갈릴래아냐구요? 바로 이 말씀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수난당하기 전 제자들에게 이렇게 예고합니다. “나는 되살아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갈 것이다.”(마태 26,32) 부활하신 다음에도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시어 이렇게 당부하십니다.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8,10) 갈릴래아, 인간 예수 삶의 전부 ‘인간 예수’에게 갈릴래아는 삶의 전부입니다. 부활 이전의 삶도, 부활 이후의 삶도 갈릴래아입니다. 예루살렘은 일시적인 과정일 뿐입니다. 예수님에게 갈릴래아는 무엇이었을까. 사순 시기가 되면 이 화두가 제 머릿속을 지배합니다.갈릴래아는 특별한 공간입니다. 하느님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가 겹쳐 있는 유일한 땅입니다. 예수님은 탄생(베들레헴)과 죽음(예루살렘) 등을 제외한 삶 전체를 여기에서 보냈습니다. 저의 관상 순례는 항상 카파르나움에서 시작합니다. 예수님 공생활의 거점입니다. 기적 대부분이 이 지역에서 일어났습니다. 드넓은 대지에 웅장한 파노라마가 펼쳐집니다. 그분이 보았을 밤하늘 별은 지금도 총총히 빛나고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던 푸른 풀밭에 앉아 봅니다. 많은 사람이 그분에게 몰려들고…. 나도 그 순간 사람들 틈에 끼어 그분이 주시는 빵과 물고기를 얻어먹습니다. 갈릴래아에 가면 ‘인간 예수’를 만날 수 있어 좋습니다. 성경에 잠깐잠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만, 갈릴래아의 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은 인성을 취하셨다는 사실이 큰 위안을 줍니다. 관상 순례가 즐거운 것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믿음이 겨자씨만도 못하다고 야단맞기도 하고, “너 어떻게 그따위로 사느냐”고 호된 질책도 받지만,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습니다. ‘먹보요 술꾼’(마태 11,19)인 예수님을 만나 막걸리 한잔 하며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장면이 펼쳐집니다. 저의 관상 순례에는 고리타분한 엄숙주의가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 ‘시범 지역’ 5년 전 광교산 기슭 ‘말씀의 집’에서 30일간의 영신수련을 마치던 날, 지도신부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갈릴래아로 갑시다.” 갈릴래아로 가자고? 왜 하필 갈릴래아? 신부님에게 물어봤습니다. “신부님께서 가라고 하신 갈릴래아가 대체 어디입니까?” “형제님이 지금 사는 바로 그곳이 갈릴래아 아닐까요? 예수님이 언제 형제님에게 찾아올지 모릅니다. 그분의 가르침을 묵묵히 실천하면서 기다리십시오.” 어이쿠! 내가 또다시 엮이고 말았구나. 이런 질문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 아닌 후회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갈릴래아에서 이루기 위해 이곳에 오셨습니다. 당시 갈릴래아는 하느님 나라 ‘시범 지역’이었습니다. 갈릴래아에 하느님 나라를 우선 건설한 다음, 이곳을 모델 삼아 땅끝까지 하느님 나라를 건설한다는 전략이 있었던 것 아닐까요. 무지한 인간들이 그분의 뜻을 알 턱이 없었지요. 예수님은 그 모진 수난을 당하셨으면서도, 이 땅에 다시 오신다셨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곳은 어디일까요? 다시 갈릴래아? 한반도는 아닐까요? 갖가지 상상을 해봅니다. 예수님께서 세우려 하신 하느님 나라는 어떤 모습일까.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림을 그려 주셨습니다.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뜨겁게 타오르던 땅은 늪이 되고 바싹 마른 땅은 샘터가 되며 승냥이들이 살던 곳에는 풀 대신 갈대와 왕골이 자라리라.… 주님께서 해방시키신 이들만 그리로 돌아오리라. 그들은 환호하며 시온에 들어서리니 끝없는 즐거움이 그들 머리 위에 넘치고 기쁨과 즐거움이 그들과 함께하여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라.”(이사 35,5-7.10)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 cpbc2020.03.25
[장현규 수녀의 사랑의 발걸음] 12. 크고 작은 것이 그리 중요한가?프랑스 성요한 사도 수녀회 장현규(마리스텔라) 수녀 2019년 초의 일이다. 당시 독감으로 한 주 동안 환자들을 방문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다음 주 수요일 환자를 방문하는 날이 되어서는 아침부터 눈이 쉼 없이 내려 한 치 앞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의 날씨였다.베르사유의 수녀원 앞에는 넓은 언덕 위로 수많은 나무가 숲을 이룬 큰 공원이 있다. 나뭇가지마다 은빛 눈이 떨어질 듯 말듯 가느다랗게 쌓여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숲이 온통 눈으로 뒤덮여 마치 이곳이 ‘백설의 나라’로 바뀌어버린 듯 착각마저 들었다. 베르사유 시민들과 우리 수녀들에게 안겨주는 찬란한 아름다움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그러나 찻길과 인도는 걸어 다니기가 위험스러울 정도였다. 베르사유에서 오베흐빌리에까지 먼 거리를 그래도 가야 하는 건가. 환자들을 위해선 가야 하는데…. 망설이던 끝에 자매 수녀들에게 물으니, 즉시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답한다.지난주에도 못 갔고, 이번 주에 또 못 가게 된다는 것이 몹시 안타깝기만 했고, 병상에서 힘들어하는 환자들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20년 가까운 세월을 환자들을 만나온, 나의 수도생활의 큰 부분이 된 환자들과의 만남이 2주 넘게 단절돼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그러다 이틀 후인 금요일이 됐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눈도 더는 오지 않고, 조금 흐리긴 했지만, 밖을 나가기 충분했다. 길을 나서기로 마음먹었다.1시간이 넘는 ‘전철 여행’ 끝에 병원에 도착하니 피로가 좀 몰려오는 듯했다. 그런데 환자 한 명 한 명을 만나고 나면 신기하게도 피로가 확 사라짐을 매번 느낀다. 주님이 주시는 기분 좋은 오묘함이다. 특히 병실로 들어가는 나를 환한 미소로 반기며 기뻐하는 그들의 선한 모습이 나의 피로를 바람처럼 날아가게 해준다. 만남을 통해 좋은 느낌을 받는다는 것은 환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게 결코 아닌 것이다. 주님 안에 서로의 만남이 마냥 좋고, 반가운 일이다.그래서였나. 나는 이날 30여 명의 환자를 만났다. 보통 때보다 훨씬 많은 숫자다. 가톨릭 신자와 개신교인이 각각 1명이었고, 그 외에는 모두 무슬림들이었다. 그중 여든이 넘어 보이는 한 할머니는 불어를 잘 못하는 알제리인이었다. 할머니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계속 하신다. 그러나 기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얼굴이 순수하기만 하다. 실제 말뜻을 알아듣기 어려운데도 할머니와 나는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할머니가 침대 옆 탁자 위에 놓인 귤들을 가리킨다. 내게 주고 싶어 하는 눈치다. 나는 오후 늦은 시간에는 귤을 먹지 않지만, 할머니의 정성스러운 마음을 받아들여 하나를 집어서 보이니 할머니의 표정이 이내 흡족해졌다.무슬림이든, 그리스도인이든, 또는 종교가 없는 이들이라 해도 대화는 우리의 관계를 막지 못한다. 아니, 더욱 풍요롭게 한다. 작은 사과 하나라도 건네고 싶어하는 그 마음 안에 전에는 전혀 몰랐던 사이에서 정이 생긴다. 그 정으로 나도 귤 하나, 동전 한 닢을 기꺼이 받곤 한다. 그것이 그들의 마음이고, 그 안에 담긴 사랑이며, 그 사랑은 곧 내 마음 안에 흡수된다.크고 작은 것이 그리 중요한가. 무엇이든 줄 수 있는 게 없다 해도 따뜻한 웃음 하나라도 건넨다면, 그것이 환자와 나 사이의 큰 나눔이 아닌가. 성경 말씀은 오늘도 내게 꼭 맞는 가르침을 준다.“여러분은 진리에 순종함으로써 영혼이 깨끗해져 진실한 형제애를 실천하게 되었으니, 깨끗한 마음으로 서로 한결같이 사랑하십시오.”(1베드 1,22) cpbc2020.07.22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49) 안티오키아 귀환과 아폴로의 선교 (18,18-28)](//cpbc.co.kr/CMS/newspaper/2020/01/rc/771863_1.3_titleImage_1.jpg)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49) 안티오키아 귀환과 아폴로의 선교 (18,18-28)다시 선교여행 떠나는 바오로, 새로운 복음 선포자 아폴로 바오로는 코린토에서 1년 6개월 이상 지내면서 하느님 말씀을 전한 후 에페소를 거쳐 예루살렘 교회에 가서 인사한 후 안티오키아로 내려감으로써 두 번째 선교 여행을 마무리한다. 사진은 바오로가 코린토를 떠나기 전에 머리를 깎은 켕크레애 항구 유적. 바오로는 예루살렘을 거쳐 안티오키아 교회로 돌아갔다가 세 번째 선교 여행을 시작하고, 에페소에서는 아폴로가 활발하게 선교 활동을 펼칩니다. 안티오키아 귀환과 재출발(18,18-23)바오로는 코린토에서 한동안 더 머물다가 시리아로 갑니다. 시리아는 선교 여행을 출발한 안티오키아 교회가 있는 지역이지요. 바오로는 켕크레애에서 머리를 깎고 프리스킬라와 아퀼라 부부를 데리고 배를 타고 시리아로 향합니다.(18,18) 켕크레애는 코린토에 있던 두 항구 중 하나로 에게해 쪽에 있는 항구입니다. 오늘날에는 많은 부분이 바닷물에 잠긴 유적만 일부 볼 수 있지만, 당시에는 로마제국에서 가장 번잡한 항구에 속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오로는 떠나기 전에 머리를 깎습니다. “서원한 일이 있었으므로… 머리를 깎았다”고 하는데, 학자들은 이 서원을 구약성경 민수기에 나오는 ‘나지르인 서원’으로 보기도 합니다. 민수기 6장 1-21절에 따르면, 자신을 주님께 바치기로 하고 평생 또는 한시적으로 서원하는 것을 나지르인 서원이라고 부릅니다. 이 나지르인 서원을 할 경우, 서원 기간 내내 머리털이 자라도록 내버려 둬야 합니다. 그렇다면 전에 서원한 일이 있었다는 표현은 이제 그 서원 기간이 끝나서 머리를 깎았다는 것이 됩니다. 바오로는 율법에 충실한 바리사이 출신이었기에 회심한 후에도 새로운 길, 곧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율법을 지키는 관습을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리스킬라와 아퀼라 부부와 함께 켕크레애 항구를 떠난 바오로는 에페소에 도착하자 두 사람을 그곳에 따로 남겨두고 혼자 회당으로 가서 유다인들과 토론합니다.(18,19) 당시 에페소는 오늘날의 터키 땅 서쪽 에게해와 맞닿아 있는 지역인 아시아의 수도였습니다. 주민이 20만 명 이상 거주하는 큰 도시로서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였지요. 에페소는 큰 상업도시여서 천막 짜는 일을 생업으로 하는 이 부부에게는 생업을 유지하기에 좋은 곳이었을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바오로는 이 독실한 부부에게 에페소에서 선교 거점을 마련하도록 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 많은 유다인이 살고 있었기에 바오로는 여느 도시에서 선교할 때와 마찬가지로 에페소에 도착하자 회당을 찾아 유다인들과 토론을 벌입니다. 그러나 바오로는 곧 에페소를 떠납니다. 유다인들은 바오로에게 좀 더 오래 머물러주기를 청했지만 “하느님께서 원하시면 여러분에게 다시 오겠습니다” 하고 작별인사를 한 후 배를 타고 에페소를 떠나 카이사리아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교회에 인사한 다음 안티오키아로 내려갑니다.(18,20-22) 예루살렘에 올라간 것은 어머니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자신의 선교 여행에 관해 보고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예루살렘에서 바오로가 구체적으로 누구를 만났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안티오키아로 다시 돌아옴으로써 바오로의 2차 선교 여행은 끝이 납니다. 학자들은 이 두 번째 선교 여행이 기원후 49년 가을부터 52년 가을까지 약 3년에 걸쳐 이뤄졌다고 추정합니다. 바오로는 안티오키아에서 얼마 동안 지낸 뒤에 다시 길을 떠나, 갈라티아 지방과 프리기아를 차례로 거쳐 가면서 모든 제자의 힘을 북돋아 줍니다.(18,23) 바오로가 세 번째 선교 여행을 시작한 것입니다. 바오로가 거쳐 간 갈라티아와 프리기아는 오늘날 터키 땅 내륙 지방입니다. 1ㆍ2차 선교 여행 때에 갔던 곳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3차 선교 여행을 떠나 그곳 신자들에게 힘을 북돋아 준 것입니다. 바오로의 3차 선교 여행은 53년쯤에 시작됐다고 학자들은 추정합니다. 아폴로의 에페소 선교(18,24-28)한편,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인 아폴로라는 유다인이 에페소에 와서 선교 활동을 펼칩니다. 박학하고 성경에 정통한 그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주님의 길’ 혹은 ‘새로운 길’을 배워서 알고 있었기에 열정을 가지고 예수님에 관해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는 요한의 세례만을 알고 있었습니다. 즉 주님께서 사도들을 통해 분부하신 세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 채 예수님에 관해 가르친 것입니다. 아폴로가 회당에서 설교하는 것을 들은 프리스킬라와 아퀼라는 그를 데리고 가서 하느님의 길, 즉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새로운 길에 대해 더 정확하게 설명해 줍니다.(18,24-26) 그 후 아폴로가 그리스 땅인 아카이아로 건너가고 싶어 하자 에페소의 신자들이 그를 격려하면서 아카이아의 제자들에게 아폴로를 영접해 달라는 편지를 써 보냅니다. 아카이아는 코린토가 수도인 그리스 땅 서남쪽 지역입니다. 코린토로 건너간 아폴로는 성경을 바탕으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논증하면서 유다인들을 반박해 이미 신자가 된 코린토의 형제들에게 큰 도움을 줍니다.(18,27-28) 코린토는 바오로가 1년 6개월 이상 머무르면서 선교 활동을 펼쳤던 곳으로 이미 적지 않은 신자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또한 새로운 길을 반대하는 유다인들도 많았기 때문에 특히 바오로가 코린토를 떠난 후에 코린토 신자들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폴로가 와서 예수님이 바로 메시아시라며 확실하고 대담하게 유다인들을 논박하니 코린토 신자들에게는 큰 힘이 됐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폴로의 아카이아 선교 활동은 코린토 신자들에게는 분열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바오로는 에페소에서 코린토 신자들에게 써 보낸 첫째 편지에서 “아폴로 편이다, 바오로 편이다, 베드로 편이다” 하고 갈라져 있는 코린토 교회의 분열을 질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1코린 1,10-17 참조)생각해봅시다1. 아폴로는 성경에 정통한 유다인이었지만 사도들로부터 직접 배운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간접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듣고 새로운 길을 배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부족한 점이 있었지만, 열정을 가지고 새로운 길을 정확하게 가르칩니다. 아폴로의 이런 활동을 보면 자발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여 목숨을 바쳐가며 증언한 우리의 첫 신앙 선조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조금 부족함이 있어도 진리에 대한 깊은 확신과 사랑이 있으면 부족함을 채울 것입니다.2. 프리스킬라와 아퀼라는 아폴로의 부족함을 보았습니다. 이 부부는 자기들보다 새로운 길에 대해 잘 모르는 유다인이 새로운 길을 전파하고 나서는 것을 보았지만 제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들이 아는 바를 더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 아폴로가 코린토 선교를 희망하자 에페소 형제들은 격려하며 편지를 써 주기까지 합니다. 프리스킬라와 아퀼라 부부도 그 형제들 가운데 있었을 것입니다. 프리스킬라와 아퀼라 부부가 보여준 행위는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요한은 낯선 사람이 스승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고 막으려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 요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반대하지 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루카 9,50) 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alfonso84@hanmail.net cpbc2020.01.29

조선의 선비들, 봄비에 속옷 젖듯이 서학에 젖어들다[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1. 칠극(七克) 이야기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로 만나게 되었다. 다산 정약용과 천주교 신앙 문제를 파고들어 지난해에 「파란」이란 책을 펴냈다. 당시, 공부를 위해 초기 교회사 자료를 살피는데, 눈길이 가는 대목이 많았다. 뭔가 분명 앞뒤로 맥락이 있는데, 쉬 알기가 어려웠다. 모든 일에는 행간이 있다. 행간을 뺀 정보는 죽은 정보다. 행간이 정보에 그림자를 드리워야, 그 정보가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중국 천주교회는 조선 교회의 놀라운 성장과 잔혹한 박해에도 꺾이지 않는 정신에 놀라, 「고려주증(高麗主證)」, 「고려치명사략(高麗致命史略)」, 「상재상서(上宰相書)」 같은 한문 책자를 잇달아 펴내며 경이의 눈길을 보냈다. 신앙 선조들이 한문으로 쓴 각종 자료는 아직도 살펴야 할 구석이 많다. 이번 연재가 초기 교회사의 박제된 풍경 위에 몇 개의 그림자를 앉히는 여정이 되었으면 한다.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나오는 북경 풍경해마다 조선의 사절이 북경을 찾았다. 선무문(宣武門) 밖 쇼핑가인 유리창(琉璃廠) 거리로 나서면 없는 물건이 없었다. 서점만 수십 개에다 서점마다 몇만 권의 책들이 천장까지 쌓여있었다. 태엽만 감으면 희한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오르골뿐 아니라 자명종(自鳴鐘)이나 철현금(鐵絃琴) 같은 서양 물건들이 즐비했다. 거리를 빠져나와 조금만 더 가면 고딕식으로 높이 솟은 성당이 나왔다. 처음 들어본 파이프 오르간에서는 천상의 소리가 났다.서양화도 여기서 처음 봤다. 멀리서 보면 그림 속 인물에 정령이 담겨 내 혼을 빨아들일 듯 쏘아보았다. 무서워서 저만치 반대편으로 몰래 가서 흘깃 보면 그림 속 눈동자가 어느새 나를 따라왔다. 가까이 가서 보면 거칠게 물감을 덧칠한 것뿐인데 몇 발짝만 물러서면 요놈하고 그림이 살아났다. 천장 벽화를 올려다보던 사람들은 오색 구름 사이로 살이 포동포동한 아기 천사들이 나는 모습을 보다가, 금세 바닥으로 떨어질 것만 같아 당황해서 손을 뻗어 받으려 들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나오는 풍경이다. 성당 인근 관상감(觀象監) 옥상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천문 의기(儀器)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 신통한 서양의 역법이 다 저기서 나왔을 것이었다. 진작에 조선에서 이미 「기하원본」 같은 서양 책을 읽었던 터라 그 작동의 원리에 호기심이 더 쏠렸다. 금단의 구역인 이곳에 한 번이라도 들어가 보려고 문지기에게 조선에서 가져간 청심환을 찔러주기도 했다. 성당은 조선 사행의 필수 관광 코스였다. 성당에서는 코가 높고 눈이 깊은 서양 신부들이 멀리 조선에서 찾아온 손님을 맞아주었다. 신부는 조선 사행에게 선물로 그림도 주고 책도 주었다. 그렇게 받아온 서양 책을 읽어 보았다. 한문이라 낯설지 않고 재미있었다. 북경을 다녀온 젊은이들은 부쩍 말수가 줄거나, 아니면 말이 많아졌다. 처음엔 서양의 놀라운 문물에 압도되다가 차츰 그 너머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무엇이 저들을 저토록 놀랍게 만들었을까? 그 같은 과학적 진보를 가능케 한 배경 사유가 부쩍 궁금해졌다. 마태오 리치의 「교우론」에 정신 번쩍마태오 리치가 쓴 「교우론(交友論)」은 서양 선비들의 우정에 대해 쓴 책이었다. 첫 장을 열자 “벗이란 남이 아닌 나의 절반이니, 바로 제2의 나다. 그러므로 벗 보기를 자기처럼 대해야 한다.(吾友非他, 卽我之半, 乃第二我也. 故當視友如己言)”는 말이 나왔다. 벗이 제2의 나란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늘 운이 좋아 나쁜 일이 없다면, 어찌 벗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알겠는가?(如我恒幸無禍, 豈識友之眞否哉)” 이런 식의 화법은 낯설어 유난히 귀에 쏙 들어왔다. 안 그래도 마음 붙일 데 없어 몰려다니던 벗 사이에도 지켜야 할 도리가 있음을 처음 알았다. 알렉산더 대왕이 정벌을 가서 전리품을 노획하면 신하들에게 모두 나눠주고 자신은 하나도 갖지 않았다. 적국의 왕 다리우스가 비웃으며 물었다. “그대의 창고는 어디에 있소?” “내 친구의 마음속에 있소.” 책 속의 이런 예화에 그들은 열광했다. 여기에 꽂힌 연암 박지원과 이덕무, 박제가 등의 글에 갑자기 벗과의 우정을 예찬한 글이 넘쳐났다. 박지원은 벗을 ‘비기지제(匪氣之弟)’ 즉 피를 나누지 않은 형제, ‘불실지처(不室之妻)’ 곧 한집에 살지 않는 아내에 견주면서 우정의 논의를 한껏 확장시켰다.서양 과학이 궁금해서 수학이나 기하학, 역법서를 구해 읽으면, 앞쪽 서문에 늘 우주를 주재하는 천주의 이야기가 나왔다. 천주교의 교리를 문답체로 설명한 「천주실의(天主實義)」도 흥미로웠지만, 「칠극(七克)」 같은 책은 어록체 산문으로 구성되어 「논어」를 읽는 느낌에 더 가까웠다. 유가의 수양서로 읽더라도 조금의 손색이 없었다. 책 속에 수없이 등장하는 서양 현자들의 독특한 비유와 생기 넘치는 화법은 조목조목 가슴에 와 닿아 새로운 사유의 문을 열었다. 책 속에 소개한 수많은 일화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권 3 「해탐」 편에는 앞서 「교우론」에서 보았던 알렉산더의 비슷하지만 다른 예화도 나온다. 그는 스스로 “나는 왕이 된 것이 즐겁다. 남에게 베풀 수 있어 기쁘다”고 말하며 아낌없이 나눠주곤 했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얻은 것을 다 남에게 주시면 왕께는 무엇이 남습니까?” 알렉산더의 대답은 이랬다. “남에게 주는 즐거움이 남는다네.” 이 일화를 소개한 뒤 판토하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나라 사람들이 모두 왕을 아끼며 따랐다.”「칠극」은 예수회 판토하(Didace De Pantoja, 1571~1618) 신부가 1614년 북경에서 출판한 책이다. 서문에서 “대저 마음의 병이 일곱 가지요, 마음을 치료하는 약이 일곱 가지다. 핵심은 모두 묵은 것을 없애고 새것을 쌓는 것(消舊積新)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오만(傲)은 겸손으로 이기고, 질투(妬)는 어짊과 사랑으로 극복하며, 탐욕(貪)은 베풂으로 풀고, 분노(忿)는 인내로 가라앉힌다. 욕심()은 절제로 막으며, 음란함(淫)은 정결로 차단하고, 게으름(怠)은 부지런함으로 넘어서야 한다며, 모두 7장으로 구분하여 그 단계와 방법을 적절한 예시와 함께 대증 처방을 내리듯 친절하게 설명했다. 그 내용은 지금 읽어도 깊이 와 닿아 진한 감동을 준다. 이익, “극기복례의 공부에 크게 도움”성호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칠극」이란 것은 서양의 판토하가 지은 것인데 바로 우리 유가의 극기(克己)의 주장이다. 절목이 많고 조목이 차례가 있다. 비유가 절실해서 간혹 우리 유가에서 밝히지 못한 것도 있으므로 극기복례의 공부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했을 정도였다. 대학자 이익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책을 읽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고, 오히려 꼭 읽어야 할 책으로까지 여겨졌다. 「칠극」은 한문본으로 300쪽이 훌쩍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그 속에는 사람을 부끄럽게 하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잠언들이 7개의 죄종(罪宗)으로 갈래를 나눠 빼곡하게 들어있다. “재를 부는 사람은 스스로 제 얼굴을 더럽히고 눈을 어지럽게 만든다. 남을 헐뜯는 사람은 스스로 그 마음을 더럽히고, 그 정신을 어둡게 만든다.(吹灰者, 自汚其面, 迷其目. 毁人者, 自汚其心, 闇其靈神)” “색욕은 젊어서는 즐겨도 늙으면 식는다. 분노는 참으면 없어지고 고요하면 물러난다. 하지만 교만은 한번 마음에 들어오면 언제 어디서고 붙어 다닌다. 몸이 늙어도 교만은 시들지 않는다.(如色慾少則, 老則息. 如忿怒, 忍則去, 靜則却. 惟傲一納於心, 時處附着焉. 身能老而傲不衰)” “비방을 지어내는 사람은 돼지와 같다. 발을 두어야 할 곳에 입을 두기 때문이다.(造者如豕. 置足焉卽置口矣)” “세상의 재물은 거짓된 벗과 같아, 편안할 때는 나를 따르다가, 위태로워지면 나를 버린다.(世財如僞友. 安則從我, 危則遺我矣)” “지혜로운 사람이 귀를 기울여 칭찬하는 말을 들으면 어리석게 되고, 듣고 나서 혼자 기뻐하면 미치광이가 된다.(智者傾耳以聽譽則愚, 聽而自喜則狂也)” 이 같은 지혜의 말씀들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알렉산더 대왕에서 세네카와 그레고리오 성인 등 서양 현자와 성인들의 마음에 콕콕 박히는 잠언과 함께 유가 경전도 인용해서 거부감을 줄였다. 그러다가 끝에는 성경 말씀 한 단락을 끼워 넣는다. “술은 음탕을 부추기는 장작이다. 술을 마구 마시면서 제멋대로 음란하지 않은 경우란 드물다. 그래서 성경에 ‘삼가서 술에 취하지 말라. 음란함이 그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酒淫薪也. 恣酒不恣淫, 鮮矣. 經云: ‘愼勿酒醉, 淫在其中故也)” 성경은 에페소서 5장 18절의 “술 취하지 마십시오. 방탕한 생활이 거기에서 옵니다”라고 한 대목을 인용했다. 이런 잠언들과 예화들을 수신서(修身書)로 알고 거부감 없이 읽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천주교의 교리가 내면화되어 있었다. 서양의 과학이 궁금해서 「기하원본(幾何原本)」이나 「기기도설(奇器圖說)」 같은 책을 찾아 읽고, 그들의 정신세계가 알고 싶어 「칠극」을 읽다가, 조선의 선비들은 봄비에 속옷 젖듯이 서학에 조금씩 젖어들었다.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 cpbc2020.05.06

집콕 학생들, 온라인 주일학교에 로그인하세요사제와 교사들, 청소년 위해 유튜브 적극 활용 코로나19로 미사가 중단되고 주일학교 개학이 늦춰지면서 본당에서 청소년ㆍ청년을 담당하는 사제와 주일학교 교사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미사도 없고 교리도 없는 느슨해진 신앙생활에 학생들이 익숙해지는 상황을 우려해서다. 몇몇 본당에선 신앙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SNS와 유튜브 등을 활용한 온라인 사목에 발 벗고 나섰다. 부산 이기대본당 청소년분과 홍보팀은 유튜브에 온라인 주일학교를 열었다. 10일에는 ‘2020 첫 만남’을 주제로 초등부와 중고등부 주일학교 교사단을 소개하는 영상을 올렸다. 14일에는 평소 본당 주일학교 교리 시간이 있는 시간에 맞춰 오후 2시 30분엔 초등부 교리 영상을, 오후 5시 30분엔 중고등부 교리 영상을 게재했다. 대본을 만들고, 자료를 준비하고, 교리 내용이 틀린 게 없나 검토한 뒤, 촬영, 편집을 거치는 작업은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본당 사제와 교사들은 주일학교 개학이 연기되는 것을 마냥 손 놓고 볼 수는 없었다. 한상엽 보좌 신부는 “학교와 학원, 대학 등에서 온라인 강의를 하는데 우리도 준비해보자고 교사들과 마음을 모았다”고 했다. “덕분에 교사들도 느슨해진 마음을 다잡을 수 있게 됐다”면서 “위기를 기회로 삼으며 학생들과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시흥5동본당 보좌 김여욱 신부는 4일부터 매일 자신의 유튜브(Yw F Kim)에 ‘신부님과 함께하는 오늘의 미션’ 영상을 올리고 있다. 효도하기, 식사 전ㆍ후 기도하기, 이웃 사랑하기, 화살 기도하기 등과 같은 작은 실천을 미션으로 내준다. 미사와 교리 없이 사순 시기를 지내는 청소년들을 위해 제작했다. 주일학교 교사들은 매일 학생들과 메신저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미션 수행을 확인한다. 김 신부는 “주일학교 교사들과 함께 고민한 결과”라면서 “학생들이 성당에 안 나오지만, 스마트폰은 매일 사용하니 이를 활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울 압구정동본당 부주임 김광두 신부는 8일 유튜브 라이브 방송으로 청년들과 만났다. 평소에도 다양한 장비를 활용해 영상 교리 등을 유튜브에 공개해 온 김 신부는 실시간으로 청년들과 대화하고 주일 복음 말씀도 함께 읽었다. 김 신부는 인터넷 전화 스카이프를 통해 화상 통화로 본당 청년성서모임 요한 그룹모임을 진행하기도 했다. 김광두 신부는 “장비 사용에 익숙하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렇게라도 만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중고등부는 SNS를 통해 ‘포 유스 ON 챌린지’(for youth ON challenge)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코로나19로 함께하는 미사와 모임은 잠시 멈춘 상태지만, 신앙은 계속(ON)된다는 의미다. 포 유스 온 챌린지는 SNS에 각자의 신앙생활 모습을 올리고 공유하면 된다. 캠페인 참여자들은 코로나19 극복을 청하는 기도를 손글씨로 찍어 올리거나, 묵상한 성경 구절을 올리며 참여하고 있다. 또 온라인상에서 친구를 맺고 있는 청소년과 교사를 지목해 캠페인을 이어가도록 독려하며 신앙의 끈을 이어가고 있다. 유튜브 채널 ‘인천교구 청년ㆍ청장년부 1945’를 운영하는 한덕훈ㆍ정희채 신부는 사순 제1주일부터 오후 7시 청년 미사를 유튜브로 진행하고 있다. 또 사순 시기 매주 수요일에는 ‘함께하는 거룩한 독서’를 방송하기로 했다. 이 밖에도 미사 중단 기간이 길어지면서 미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동안 온라인으로 성경 쓰기, 밤 9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주모경을 바친 뒤 코로나19 극복을 청하는 기도 바치기, 하루 묵주기도 5단 바치기 등을 SNS로 공유하며 청소년ㆍ청년들이 신앙생활을 이어가도록 돕는 본당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선 이와 같은 대응은 임시방편일 뿐 장기적으로 비상사태에 대비해 교구나 한국 교회 전체 차원에서 사목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청소년ㆍ청년을 담당하는 보좌나 부주임 사제가 없는 본당은 청소년ㆍ청년들이 방치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3월은 첫영성체 교리반 대상자를 모집하고 학생과 학부모 교육을 시작할 시기지만 대부분 본당이 교육 일정을 잡지 못하는 상황이다. 주일학교의 가장 큰 행사인 ‘여름 신앙 캠프’는 개최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의정부교구 화정동본당 부주임 이종원 신부는 “청소년ㆍ청년들이 신앙생활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하는데, 코로나19를 이유로 미사에 빠지는 데 대해 죄책감조차 사라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여욱 신부는 “모두가 처음 겪는 상황이라 당혹스럽지만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하고, 고민에서 끝나지 말고 무엇이든 시도를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cpbc2020.03.18

예수의 열두 제자 중 첫 순교자이자 스페인의 수호성인성 야고보 사도 축일
대 야고보 사도는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요한 사도의 형이다. 성격이 불같아서 주님으로부터 ‘천둥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으로 활동하며 이스라엘뿐 아니라 스페인 북부 지역까지 복음을 선포하다 42년께(또는 44년께) 순교했다. 그림은 루벤스가 1613년에 그린 ‘성 야고보 사도’ 작품이다. 7월 25일은 성 야고보 사도 축일이다. 그리고 내년은 7년마다 돌아오는 야고보 사도 성년이다. 축일을 맞아 성경과 전승이 전하는 야고보 사도를 알아본다.먼저,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제자들 가운데 열둘을 뽑아 사도로 세우신 이야기(마태 10,1-4; 마르 3,13-19; 루카 6,12-15)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는 산으로 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시다 날이 밝자 제자들을 모으신 다음 그들 가운데 열둘을 뽑으십니다. 그런 뒤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지내시며 가르치시고 병을 고치고 마귀를 쫓아내는 등 여러 능력을 주시면서(마태 10,5-15; 마르 6,7-13; 루카 9,1-6)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루카 복음서 저자는 열두 사도의 이름을 모두 알려줍니다.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6,14-16)루카 복음서 저자가 알려준 대로 열두 사도 가운데 ‘야고보’라는 이름을 가진 사도가 둘 있습니다.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요한의 형 야고보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입니다. 둘을 구별하기 위해 요한의 형을 ‘큰(大) 야고보’, 다른 야고보를 ‘작은(小) 야고보’라 부릅니다.(마르 3,17-18 참조) 7월 25일 축일을 맞는 사도는 큰 야고보입니다.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순례길의 주인공이죠. 성경 속 야고보 앞서 밝힌 대로 복음서는 큰 야고보 가족에 관해 자세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복음서에 따르면 큰 야고보의 아버지는 제베대오이고 어머니는 살로메입니다. 그의 동생은 주님께서 가장 사랑하셨던 제자인 요한입니다.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뜻을 지닌 제베대오 이름처럼 이 집안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가문이라 할 수 있죠. 야고보와 요한은 시몬 베드로의 동업자(루카 5,10)로 어부였습니다. 주님께서 이들을 부르실 때 야고보는 아버지 제베대오와 동생 요한, 삯꾼들과 함께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지요.(마태 4,18-22; 마르 1,16-20) 아버지 제베대오는 삯꾼을 부릴 정도이고, 또 두 아들을 떠나보내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을 만큼 어느 정도 재력이 있었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머니 살로메가 주님께서 제자들과 갈릴래아에서 복음을 선포하실 때부터 함께 따라다니며 뒷바라지를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마태 27,55-56) 살로메는 어느 정도 세상의 앞날을 내다볼 줄 아는 식견이 있는 여인일 뿐 아니라 믿음도 강한 여인이었습니다. 주님의 권위를 깨달은 그녀가 예수님께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마태 20,21) 하고 청을 드리는 모습에서, 또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그 자리를 지키며 성모 마리아를 위로하는 모습(마르 15,40)에서 그녀의 성품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도들입니다. 요즘 말로 주님의 ‘최측근’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열두 사도를 뽑으실 때에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신 것처럼, 야고보와 요한에게는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별명을 붙여주셨습니다.(마르 3,17)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별명은 야고보와 요한의 성격이 다혈질이었음을 짐작케 합니다. 실제로 형제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자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루카 9,54) 하고 말할 정도로 불같은 성격을 드러냅니다. 야고보 사도가 사도들 가운데 제일 먼저 순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가 시몬 베드로와 동생 요한과 함께 열두 제자 가운데서도 주님의 최측근이었다는 사실을 또 다른 장면에서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타보르 산에서 당신의 신성을 드러내시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실 때 야고보와 베드로, 요한만을 데리고 가셨습니다.(마르 9,2) 또 주님께서 수난하시기 전날 밤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실 때에도 이 세 사도만 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마르 14,33) 야고보 형제는 예수님의 각별한 사랑에 어머니 살로메처럼 같은 청을 드립니다.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마르 10,38)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야고보와 요한을 불쾌하게 여기기 시작했다고 마르코 복음은 전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청을 하는 그들에게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마태 20,23)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열두 사도에게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마르 10,43-44)야고보 사도는 예루살렘 교회가 스테파노의 순교와 함께 박해를 받기 시작할 때에도 야고보는 다른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다 야고보 사도는 체포되어 투옥되었습니다.(사도 5,17-41). 그러다가 서기 42년 또는 44년께 파스카 축제 때 헤로데 아그리파 1세 임금에 의해 순교합니다.(사도 12,2) 이로써 야고보는 열두 사도 중 첫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전승에서의 야고보전승에 따르면, 야고보는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러 사방으로 흩어졌을 때에 유다와 사마리아에서 활동하다가 스페인으로 건너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한 채 다시 유다 지방으로 돌아왔다가 순교했다고 합니다.3세기 교부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야고보 사도의 순교 장면을 전합니다. 그에 따르면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야고보 사도에게 그를 고발한 자가 쫓아오면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야고보는 그 고발자를 끌어안고 “평화가 너와 함께”라며 축복해 주고 용서한 다음 순교의 칼을 담대하게 받았다고 합니다. 야고보 사도의 시신은 예루살렘 성전 옆에 방치되었다고 합니다. ‘순교자의 피는 그리스도인의 씨앗’이라는 말처럼 야고보 사도의 순교는 복음 선포의 신호탄이었습니다. 다른 사도들은 약 12년간 팔레스티나에서 사방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서기 49년 제1차 사도 회의 이전에 순교하였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야고보 사도가 스페인에서 돌아온 다음 서기 42년(또는 44년) 예루살렘에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 옆에 방치돼 있던 그의 시신은 제자들에 의해 수습된 후 야포를 거쳐 스페인 북부 지방 ‘이리아’에 매장되었답니다. 이후 많은 순례자가 야고보 사도의 무덤을 찾았는데 이슬람교도들의 침입 후 사도의 유해 행방이 묘연해졌다가 9세기께 우연히 별빛이 쏟아지는 들판의 한 동굴에서 그 유해를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곳에 성당을 세우고 이름을 ‘야고보 사도의 별의 들판’ 곧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산티아고는 성 야고보의 스페인식 이름입니다.갈리스도 2세(재위 1119~1124) 교황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대교구로 승격하고 7월 25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이 주일에 오면 그해를 야고보 성년(희년)으로 지내도록 제정하였습니다. 또 알렉산데르 3세(재위 1159~1181) 교황은 야고보 사도 성년 때마다 전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칙서를 통해 허락했습니다. 야고보 사도 성년 전대사를 받기 위해서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주교좌 대성당 야고보 사도 무덤을 참배하고, 교황의 지향에 따라 몇 가지 기도문(적어도 주님의 기도, 신경)을 바치고, 고해성사를 하고, 미사에 참여해 성체를 영해야 합니다. 문헌상 확인한 야고보 사도의 첫 성년은 1434년입니다.중세 때 야고보 사도에 관한 또 다른 전승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가 이슬람교도들이 스페인 중북부 지역을 침공했을 때 백마를 탄 투사가 돼 이들을 앞장서서 무찔렀다는 것입니다. 스페인에서는 야고보 사도를 말을 탄 기사의 모습으로 묘사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런 이유로 스페인의 수호성인이기도 합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평화신문2020.07.22

소박하게 음식 준비해 천주교 가정 제례에 따라 차례 지내설 차례 어떻게 지내야 할까 25일은 민족 최대 명절인 설이다. 설 아침 온 가족이 모여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는 것은 오랜 세시풍속이다. 대대로 차례를 지내온 신자 가정도 많다. 가톨릭교회는 이같은 풍속을 존중해 제례를 허용하고 있다. 지역 교회법인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는 사목 배려 차원에서 조상의 기일이나 명절에 제례를 지낼 수 있도록 허용한다고 밝힌다. 물론 조상 숭배가 아닌 조상에 대한 효성과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차원에서다. 따라서 제례를 지낼 때는 유교식 조상 제사를 답습하는 대신 가톨릭교회가 재해석한 예식을 따라야 한다. 이를 위해 주교회의는 2012년 ‘한국 천주교 가정 제례 예식’을 승인했다. 설을 맞아 ‘한국 천주교 가정 제례 예식’에 나온 가정 제례를 간략히 소개한다.제례 준비우선 마음과 몸의 준비를 해야 한다. 고해성사를 통해 마음을 깨끗이 하고 단정한 복장을 갖춘다. 제례상에는 십자고상과 조상(고인)의 사진이나 이름을 모시며 촛불을 켜고 향을 피운다. 그리고 「성경」 「가톨릭 성가」 「상장 예식」(또는 「위령 기도」)을 준비한다. 상차림은 형식을 갖추기보다 평소에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소박하게 차린다. 음식을 차리지 않아도 된다.제례 내용가정 제례 내용은 시작 예식, 말씀 예절, 추모 예절, 마침 예식으로 구성한다. 추모 예절에서는 분향과 절,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바치는 한국 교회의 전통적 기도인 위령 기도(연도)가 주요 예식이다.시작 예식제례 준비가 끝나면 가장은 “지금부터 명절을 맞이하여 설 차례를 거행하겠습니다”라고 시작을 알린다. 시작 성가는 「가톨릭 성가」 50번(주님은 나의 목자), 54번(주님은 나의 목자), 227번(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 436번(주 날개 밑), 462번(이 세상 지나가고) 중 선택할 수 있다. 가장은 이날 거행하는 제례의 취지를 설명하고 가족의 마음을 모아 시작 기도를 바친다.말씀 예절마태 5,3-12(참 행복), 요한 14,1-14(아버지께 가는 길), 로마 12,1-21(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생활과 생활 규범), 1코린 13,1-13(사랑), 에페 5,6-20(빛의 자녀) 중 하나를 골라 봉독한다. 위에 나온 성경 말씀 외에 다른 본문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이어 가장은 조상(고인)을 회고하며 가족에게 가훈과 가풍 등을 설명한다. 아울러 성경 말씀을 바탕으로 신앙 안에서 살아가도록 권고한다.추모 예절가장이 대표로 향을 피우고 참석자는 모두 함께 큰절을 두 번 한다. 이어 위령 기도를 바친다. 기도는 「가톨릭 기도서」 중 위령 기도, 세상을 떠난 부모를 위한 기도, 세상을 떠난 형제, 친척, 친구, 은인을 위한 기도 중에서 선택해 하면 된다. 마침 예식위령 기도를 바친 뒤 마침 성가를 부르며 예식을 마친다. 선택할 수 있는 성가는 시작 성가와 같다. 마지막으로 온 가족이 한데 모여 상에 차린 음식을 나누며 사랑과 친교의 대화를 즐긴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설 차례 지낼 때 유의사항가톨릭교회는 설날을 비롯한 명절에 신자 가정이 차례를 지낼 수 있도록 허용한다. 각 민족의 고유문화를 존중하고 그것을 신앙의 빛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교회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비오 12세 교황이 승인한 「중국 예식에 관한 훈령」(1939년)은 “시신이나 돌아가신 분의 상(像) 또는 단순히 이름이 기록된 위패 앞에 머리를 숙임과 기타 민간적 예모(禮貌)를 표시하는 것은 가능하고 타당한 일”이라고 밝힌다. 이 훈령에 따라 한국 주교단이 마련한 「상장례와 제례에 대한 상세한 지침」(1958년)은 가톨릭 신자가 유교적 의례를 거행하는 것을 허용한다. 명절의 주된 의미는 돌아가신 조상을 기억하며 살아 있는 가족과 친지가 만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차례도 특정 종교의 예식이라기보다는 전통 미풍양속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떠난 이를 기억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과도 상통하는 면이 있다. 기일이나 위령의 날에 봉헌하는 위령 미사가 그 예다. 따라서 가톨릭 신자들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설날을 가족ㆍ친지들과 함께 뜻깊게 지내야 한다. 한국 교회가 제례를 허용했다고 해서 유교적 관습을 모두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조상 숭배를 연상할 수 있는 행위는 금지했다. 따라서 제례를 지낼 때는 특히 유의해야 한다. 먼저 조상 신령에 고하는 축문(祝文)과 혼령이 제물을 흠향(欽響)하도록 문을 닫고 참석자들이 잠시 물러나는 합문(闔門) 등의 풍습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에 어긋나는 까닭이다. 또 신위(神位), 신주(神主), 위패(位牌), 지방(紙榜) 등 죽은 이의 신원을 표시하는 용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조상에 대한 기억을 넘어 조상 숭배를 연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조상의 이름’이나 ‘조상의 사진’으로 대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위령 미사 봉헌이다.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는 “신자 가정에서는 기일 등 선조를 특별히 기억해야 하는 날에는 가정의 제례보다 우선하여 위령 미사를 봉헌한다”고 밝힌다. 고인을 기억하며 그를 위해 위령 미사를 봉헌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돌아가신 조상과 가족의 종교를 막론하고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이학주 기자 cpbc2020.01.15

가톨릭교회 신앙 내용이 요약된 ‘신앙 고백문’[미사의 모든 것] (21)신경 신경은 가톨릭교회의 신앙 내용을 간추려 놓은 글이다. 사도 시대 초대 교회에서 세례 때 행해진 신앙 고백에서 시작되었다. 조언해: 주일과 대축일 미사 때 강론이 끝나면 모두 일어서서 신앙 고백을 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라파엘 신부: 미사 독서와 강론을 통해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인 신자들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 그리고 하느님을 향한 신뢰와 흠숭으로 닫힌 마음을 열고 신앙 고백을 한단다. 아울러 신자들은 성찬 전례를 시작하기에 앞서 우리의 믿음을 상기하기 위해 신앙 고백을 하지. 하느님의 말씀을 신앙 깊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믿는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예식이라고 할 수 있지.나처음: 신앙 고백은 예비신자 교리 시간에 배운 신경을 말하는 거죠.라파엘 신부: 맞아. 신앙의 유산을 지키고 계승하는 것은 주님께서 당신 교회에 맡기신 사명이란다. 교회는 이 사명을 항구히 수행해 오고 있지. 교회가 미사 중에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지. 그리스도인은 자기 신앙을 사람들 앞에서 고백하고 선포할 의무가 있단다. 우리가 고백하고 선포할 신앙 내용이 모두 신경에 담겨있지. 신경은 전능하신 창조주 성부에 대한 신앙과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세주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 그리고 거룩한 교회 안에 계신 성령에 대한 신앙의 내용을 요약해 놓았단다. 나처음: 신경도 여러 개가 있나요?라파엘 신부: 신앙 고백은 “저는 믿나이다”라는 라틴어 첫 글자를 따서 ‘크레도(Credo)’라고 해. “저는 믿나이다”라는 말로 시작하기에 ‘신경(Symbola fidei)’이라고도 부르기도 하지. 헬라어 ‘σμβολον(심볼론)’은 깨트린 물건의 반쪽을 의미하는 말로 신원을 확인하는 증표를 뜻해.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헤어질 때 훗날 다시 만날 때 신원을 확인하는 징표로 물건을 나누는 것을 심볼론이라고 하지. 이런 의미로 신앙 고백은 가톨릭교회 신앙의 징표이기 때문에 심볼론 또는 라틴말로 ‘심볼라 피데이’, 우리말로 ‘신경’이라고 해. 따라서 신경은 가톨릭교회 신앙의 근본 기준이라 할 수 있지. 초대 교회 때부터 이어진 전통에 따르면 신앙 전체를 사도들의 수로 상징하고자 신경을 열두 절로 구분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해. 사도 신경이 그 대표적이지. 열두 사도들의 신앙을 충실히 요약한 사도 신경은 열두 가지 신앙 고백을 요약해 놓았지. 시대가 흐르면서 지역과 전례에 따라 신경은 여러 양식으로 발전했단다. 그중 가장 오래된 것은 2세기에 나온 ‘예루살렘의 세례 신경’이야. 그러나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은 3세기 초엽 히폴리토 교부가 저술한 「사도 전승」에 수록된 세례 고백문이지. 현존하는 신경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사도 신경’,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아타나시오 신경’, ‘트리엔트 신경’ 등이 있단다. 조언해: 저는 유아 세례를 받아 기억할 수 없지만 대녀의 세례식 때 신앙 고백을 하면서 펑펑 울었어요. 세례 때 첫 신앙 고백을 하잖아요. 라파엘 신부: 맞아. 신경은 무엇보다도 세례 신앙의 고백이란다. 세례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마태 28,19) 베풀어지므로, 세례 때 고백하는 신앙의 진리들은 삼위일체의 세 위격을 중심으로 연결돼 있지. 그래서 신경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단다. 먼저 ‘성부와 그분의 놀라운 창조 업적’, 다음에는 ‘성자와 인간 구원의 신비’, 끝으로 ‘우리 성화의 근본이며 원천이신 성령’에 대한 부분이야. 나처음: 사도 신경은 열두 사도가 만든 건가요.라파엘 신부: 사도 신경은 교회에서 가장 오래된 신앙 고백문이야. 사도 신경은 사도들의 권위를 부여받아 2세기 무렵부터 오늘날과 같은 형식으로 완성돼 사용된 교회에서 가장 오래된 신앙 고백문이지. 따라서 사도 신경 자체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상징이자 표상이라고 할 수 있어. 열두 사도가 사도 신경을 만들었다는 주장은 4세기 말께 나타나. 트란니우스 루피노가 사도 신경에 대한 주석에서 신경의 사도적 기원을 처음으로 주장했지. 성령을 충만히 받은 열두 사도가 복음 전파를 위해 각지로 떠나기 전에 그리스도교 교리의 핵심을 확인하고자 각자 신앙에 대한 관심을 짧은 형식으로 표현해 사도 신경을 만들었다는 것이야. 이 전승에 대해 교회는 별 이의 없이 받아들이고 있단다. 현대 신학자들도 사도 신경의 내용 모두를 성경과 사도적 기원이 있다고 인정하고 있지. 사도 신경이 열두 사도가 직접 만든 것이라고 단언할 수 없으나 사도들의 신앙을 충실히 요약했다는 점에서 이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지극히 마땅해.나처음: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 관해서도 알려주세요.조언해: 교리교사인 내가 설명해줄게. 교회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으로 로마 제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얻은 후 지상 교회가 생기면서부터 신앙에 대한 수많은 이단과 이교의 공격을 받아. 특히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 성령의 신성까지 부정하는 이단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지. 교회는 이에 맞서 325년 니케아 공의회와 381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를 개최해. 교회는 두 공의회에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령의 신성에 대한 교리들을 결정하고, 두 공의회에서 결정된 신앙 조문들을 정리해 하나의 신경을 만들었는데 바로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이야. 라파엘 신부: 언해가 잘 설명해 주었구나.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은 현존하는 모든 신경 중 동ㆍ서방 교회 모두가 받아들이고 있는 유일한 신경이란다. 동방 교회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 외 가톨릭교회가 사용하는 사도 신경과 아타나시오 신경 등을 보편 공의회에서 선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는단다.가톨릭교회는 성령께서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신다”고 고백하는 반면 동방교회 즉 정교회는 “성부로부터 발하시며, 그리스도는 성령을 보내신다”고 믿고 있단다. 가톨릭교회는 성부를 성자와 성령의 근원으로 본 것이라 아니라 본질적인 하나의 신성이라고 고백하지만, 정교회는 성부를 다른 두 위격의 근원으로 보아 성자와 성령은 성부로부터 나온 것으로 성자는 성부에게서 태어났고, 성령은 유출된 것이라고 믿고 있지. 그래서 가톨릭교회는 589년 제3차 톨레도 교회 회의를 통해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 ‘성자로부터(filioque)’라는 표현을 삽입해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신다”고 분명히 했지.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 이 표현이 삽입됨으로써 동ㆍ서방 교회가 갈라지게 되는 한 원인이 되었단다. 조언해: 신경이 미사에 도입된 것은 언제부터죠.라파엘 신부: 미사에 신앙 고백문을 도입한 시기는 5세기 후반이야. 동방의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가장 먼저 도입했지. 이후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를 비롯해 비잔틴 전례를 거행하는 대부분의 동방 교회 지역에 미쳤단다. 서방 교회에서는 6세기 말 스페인 톨레도 교회 회의를 통해 도입돼 점차 확산되었단다. 신앙 고백문이 로마 전례에 도입된 것은 11세기 초엽이야. 비교적 늦었지. 신성로마제국 하인리히 2세 황제가 대관식을 거행하기 위해 로마에 방문해 주님 성탄 대축일 미사에 참여하였다가 신앙 고백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교황에게 건의해 도입되었다고 해.그러나 초기에는 지금처럼 주일과 대축일 미사마다 신앙 고백을 하지 않고 주님 성탄부터 성령 강림 사이 주일과 마리아 축일, 사도 축일에 신앙 고백을 했다고 해. 미사에 사용하는 신앙 고백문은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과 사도 신경이야. 가톨릭교회는 미사의 공식 신앙 고백문에 대해서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으로 정하고 있으나, 1967년 주교 시노드의 결정에 따라 지역 교회가 판단해 사도 신경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어. 그러나 교회는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이 단지 길다는 이유로 사도 신경을 선택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가르치고 있단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0.12.08
![[생활속의복음] 연중 제7주일 - 원수를 축복하고 사랑하라](//cpbc.co.kr/CMS/newspaper/2020/02/rc/773405_1.1_titleImage_1.jpg)
[생활속의복음] 연중 제7주일 - 원수를 축복하고 사랑하라 임상만 신부 주일에 피치 못할 일로 미사 참례를 못 한 아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오늘 신부님의 강론 말씀이 무엇이었나요?” 남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다만 아내를 힘껏 껴안아 주었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감격한 아내는 다음날 새벽 미사가 끝난 후 본당 신부에게 물었다. “신부님! 어제 강론 말씀이 너무 좋았나봐요. 저희 남편이 달라졌어요. 무슨 내용이었나요?” 그러자 신부가 대답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 원수에 대한 복수를 미덕으로 삼는 문화 속에서 성장했다. 그래서인지 ‘원수 같은 남편’, ‘원수 놈의 자식’이라는 표현을 자주 들을 수 있다. 가까운 이웃이나 가족에게 얼마나 많은 아픔을 당했을까 싶어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그런데 이 원수라는 대상이 가장 가까운 곳에 함께 살아가는 경우가 아주 많다. 성경을 살펴보면 아담에게는 아내인 하와가 그랬고, 아벨에게는 형 카인이 원수였다. 야곱의 원수는 그의 형 에사오였고, 요셉을 팔아넘긴 형들과 예수를 팔아넘긴 제자 이스가리웃 유다스를 들 수 있다. 사랑해야 할 원수라는 대상이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아니라 가족과 이웃이기에 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원수를 대하는 모습에는 5가지 단계가 있다. 첫째, 원수에 대해 칼을 품고 복수할 날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는 대부분 원수가 망하기 전에 자기가 먼저 망한다. 둘째, 직접 복수하지 않더라도 원수의 멸망을 손꼽아 기다리는 단계다. 하지만 자기 마음만 불편한 상태에서 일도 잘 안 되고 오히려 원수는 더 잘 될 때가 많아 더 속상하다. 셋째, 편한 마음으로 원수의 종말을 지켜보는 단계다. 노자는 말했다. “스스로 원수에게 복수하려고 하지 말고 그의 시체가 강물 위로 떠오를 때까지 기다려라.” 이것은 원수가 정말 나쁜 일을 했다면 반드시 망할 테니 사필귀정을 믿고 편하게 지켜보라는 것이다. 넷째, 원수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잊어버리라는 단계다. 자기 할 일만을 생각하고 원수가 어떻게 될지 지켜보지 말라는 것이다. 사실 원수에게 복수하는 가장 좋은 길은 원수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다섯째,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원수를 축복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가장 어렵다. 그러나 원수가 가까이 있다면 한번 해봄 직하다. 원수를 미워함으로 스스로를 힘들게 해 자신의 영혼까지 파탄 나게 할 것이 아니라, 원수를 위해 기도해줌으로써 자신의 평화를 얻으라는 것이다. 다만, 원수에게 받은 손해와 상처는 어디서 보상을 받느냐의 문제가 남는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나는 늘 손해만 보고, 부당한 일을 당해야만 하는지의 문제이다. 바오로 사도는 “스스로 복수할 생각을 하지 말고 하느님의 진노에 맡기십시오. 성경에서도 ‘복수는 내가 할 일, 내가 보복하리라’ 하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로마 12,19)”라고 말했다. 복수는 하느님께 맡기고 우리는 더 큰 사랑을 위하여 원수에게 잘해주고 축복해주면 복수의 쾌감이 아닌 영혼의 행복으로 우리를 채워주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하느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우리가 하느님께 맡기면 모든 일을 가장 선하고 적절하게 처리해주신다는 믿음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원수에게 ‘잘 대해주고, 축복하고, 기도해주는 것’뿐이다. 하느님께서는 선한 사람뿐 아니라 악한 사람에게도 자비를 베푸신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도 마땅히 원수를 사랑하고 잘 대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예수를 통해 보여주신 하느님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마태 5,46)임상만 신부(서울대교구 상도동본당 주임) 평화신문2020.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