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의 고통 속에서도 부활은 온다대전교구 천안불당동본당, 성 김대건 신부 희년 영성 실천하며 가난한 이웃과 사랑의 기쁨 나눠 천안불당동본당 주임 맹상학 신부가 수도자들과 함께 다리를 다친 홀몸 어르신 김정순(오른쪽) 할머니를 찾아 청소기와 영양제 등을 전달한 뒤 환담을 나누며 즐거워하고 있다. ‘코로나 블루’의 시대다. 그래도 어김없이 봄날이 오듯, 부활도 온다. 대전교구 천안불당동본당(주임 맹상학 신부) 공동체 또한 코로나19의 고통 속에서도 기쁨을 찾는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 희년의 영성을 찾고 배우고 실천하면서다. 지난 사순 시기 3월에도 1주일에 한 번씩은 평일 미사에 참여하면서 ‘가톨릭온’과 연계한 희년맞이 온라인 성경 공부를 통해 주님과 함께하는 기쁨을 맛봤고, 지역 내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기쁨도 나눴다.홀몸 어르신들과 희망 나누기3월 19일 사순 4주간 금요일, 천안 서북구 쌍용11길 57 한 아파트 단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국민기초생활 수급자들이 몰려 사는 영구 임대 아파트에 맹상학 신부와 천안시노인종합복지관 노인복지센터장 최금옥(요안나, 말씀의 성모 영보 수녀회) 수녀, 사목회 곽순옥(아녜스) 기획분과장 등이 들어섰다. 사순 금요일마다 이뤄지는 홀몸 어르신들과의 ‘사순절 희망 나누기’에 함께하기 위해서였다. 부인이 타계한 뒤 홀로 사는 예비신자 손석진(86)씨, 다리를 다쳐 폐지를 줍기도, 걷기도 힘겨워하는 김정순(82)씨, 얼마 전 사고로 오른발 네 발가락이 으스러져 걷지도 못하는 장동희(율리안나, 85)씨, 쪽방촌에 살다가 최근 천안 동남구 임대아파트로 이사 온 김철홍(72)씨 등을 찾아 청소기와 영양제, 생필품 등을 건네고 따뜻한 위로를 전했다. 천안불당동본당 공동체가 이렇게 활기찬 공동체였던 건 아니다. 3년 전 맹 신부가 부임하면서 2%도 안 되던 본당 사회복지 예산이 2018년 12.5%, 2019년 16%, 2020년 29%로 늘어났다. 올해는 교구 사목지침에서 ‘희년살이’의 실마리를 풀고, 김대건 신부의 영성과 생태ㆍ환경 영성, 사회복지 영성, 말씀 영성을 배우며 실천에 나섰다. 성 김대건 신부 영성 프로그램특히 김대건 신부의 영성을 열두 달로 나눠 매달의 영성 프로그램을 마련했고, 실천사항도 그때그때 점검한다. 1월에는 김대건 신부의 영성을 알기 위해 성인의 서간 21통 읽기와 필사를 시도해 본당 신자 중 40명이 전 서간을 필사했고, 40명이 교구 희년맞이 안내서에 수록된 3통을 필사했다. 2월에는 매일 묵주기도를 바쳐 총 2만 7955단을 봉헌했고, 봉헌된 묵주 알로 1단 묵주 80개를 만들어 냉담 교우들에게 선물했다. 3월엔 1주일에 한 번씩 평일 미사 참여하기와 희년맞이 온라인 성경공부를 실천했고, 실천사항으로 ‘사순절 희망 나누기-어려운 이웃 돌보기’를 새기면서 1차 후원금 1500만 원을 인근 복지관과 연계, 홀몸 어르신 40명을 지원했다. 노숙자들에게는 200인분의 도시락을, 택배 기사ㆍ집배원ㆍ환경미화인에게는 음료수와 빵, 사탕 등을 전했고, 추가로 지원이 필요한 가정과 소상공인에게는 계속해서 본당 차원의 후원금을 전하기로 했다. 이어 4월에는 냉담자와 새 영세자 돌보기, 5월에는 김대건 신부와 함께하는 가족기도, 6월에는 생명운동에 관심 갖기, 7월에는 사회복지 후원회 가입하기, 8월에는 새 이웃에게 복음 전하기, 9월에는 김대건 신부 영성 특강 듣기, 10월에는 김대건 신부 순례길 걷기, 11월에는 어려운 이웃 살피기, 12월에는 희년 주제에 응답하기를 실천한다. 가난한 나라 백신 나눔 운동 동참본당 공동체는 또 교구 사목지침에 따른 생태환경 영성 프로그램도 마련, 열두 달 동안 매달의 실천에 참여하며 전 세계 가난한 나라 형제들을 돕기 위한 백신 나눔 운동에도 함께한다. 나아가 김대건 신부의 이웃 사랑 실천 영성을 본받는 본당 사회복지 영성 프로그램도 공부하고 실천한다. 맹상학 신부는 “김대건 신부님이 살아계셨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고민하며 성인 서한에 담긴 영성을 바탕으로 생태ㆍ환경 영성과 사회복지 영성, 말씀 영성을 본당 식구들과 함께 실천하고 있다”며 “이같은 영성 실천이 코로나19 이후 한국 교회의 내부 쇄신과 가난한 이들을 돌봐야 한다는 가르침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평화신문2021.03.31

“어흥” 호랑이 만나 기도로 위기 모면… 신앙 지키려 호환 당한 척호랑이와 한국 교회사 이야기 <상> 작자 미상, ‘맹호도’, 조선시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2022년 새해는 임인년(壬寅年) 호랑이해다. 우리 민족에게 친숙한 동물인 호랑이는 역사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자주 등장했다. 민가는 물론 궁궐에까지 들어와 사람과 가축을 물어가는 포악한 맹수이기도 했고, 사악한 잡귀를 쫓는 영물이자 산의 왕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한국 천주교회사 속 호랑이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각 기록에 나온 호랑이 이야기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서양 선교사들, 호랑이에 대한 기록을 남기다 호랑이에 관한 교회사 기록은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조선에 처음 들어온 1830년대에 등장한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성 모방 신부가 조선 입국 후 파리외방전교회에 처음으로 보낸 1836년 4월 4일 자 편지다. 모방 신부는 편지에서 “중국인 유방제(여항덕 파치피코) 신부에게 들었다”며 아이를 잡아먹으려다 관둔 호랑이의 일화를 전했다. “호랑이는 아이에게 덤벼들어서 겁을 주다가 잡아먹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세례를 아직 받지 않았어도) 천주교를 이미 알고 신봉하던 아이가 힘을 다해서 “예수 마리아,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 마리아, 저를 도와주소서” 하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호랑이는 움직일 때마다 아이와 놀려고 하기만 하였고 아이에게 어떤 상처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후 어른들에게 구조된 아이는 세례를 받았고, 나흘 뒤에 사망했다. 모방 신부는 이를 두고 “천주께서는 그 아이에게 천주교 신자의 인호를 받을 기회를 주셨다”고 말했다. 「한국천주교회사」 표지 조선인과 호랑이들의 살벌한 생존경쟁 한편, 제2대 조선대목구장 성 앵베르 주교가 전하는 호랑이 이야기는 사뭇 결이 다르다. 앵베르 주교는 파리외방전교회에 보낸 1838년 11월 24일 자 편지에서 이렇게 보고했다. “불운한 이 지역(조선)의 산에는 맹수들, 특히 호랑이가 넘쳐납니다. 해마다 적어도 1000명의 희생자가 그 이빨에 물려 죽습니다. 인구도 적고 좋은 무기도 가지지 못한 조선인들은 따뜻한 계절에는 끔찍한 동물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힘듭니다.” 19세기 당시는 산을 개간해 농경지를 넓히려는 인간과 줄어드는 서식지를 지키려는 호랑이의 충돌이 끝나지 않은 때였다. 호환이 빈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앵베르 주교는 “겨울에는 인간과 호랑이의 입장이 뒤바뀐다”며 다른 기록에선 볼 수 없는 아주 독특한 호랑이 사냥법도 소개했다. “눈이 절반쯤 얼었을 때 (발바닥이 넓은) 사람은 눈을 밟고 다닐 수 있으나, (발바닥이 넓지 않은) 호랑이는 눈 속에 배까지 깊이 파묻혀 헤어나지 못합니다. 조선 청년들은 (꼼짝 못 하는) 호랑이에게 덤벼들어 창이나 단도로 찌르는 것을 오락으로 즐깁니다.” 이 사냥법에 관한 설명은 「한국천주교회사」에도 수록됐다. 달레 신부가 1874년 쓴 ‘최초의 한국 천주교회 통사’로 불리는 책이다. 교회사와 더불어 조선의 지리ㆍ역사 등을 다뤘는데, 지붕을 뚫고 사람을 물어가는 호랑이에 대한 기록도 있다. “호랑이가 집집이 문단속이 잘 되어 있는 동네에 들어오면, 며칠 밤이고 계속하여 어떤 오막살이를 빙빙 돌다가 너무 허기가 지면, 마침내 초가지붕에 뛰어올라 거기에 구멍을 뚫고 안으로 들어간다.” 호랑이로부터 아내를 구해낸 김대권 「한국천주교회사」에는 호랑이뿐 아니라 호환을 ‘당할 뻔’한 순교자 이야기도 나온다. 앵베르 주교ㆍ모방 신부와 함께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복자 김대권(베드로)이다. 충남 공주에서 옹기점을 하던 김대권은 아내와 평소 싸움이 그칠 새가 없을 정도로 사이가 나빴다. 크게 다툰 어느 날, 김대권은 안방에서, 아내는 부엌에서 잠을 청했다. 김대권이 잠이 막 들었을 때,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벌떡 일어났다. 호랑이가 아내를 물고 달아나던 참이었다. 김대권은 소리를 지르며 호랑이를 쫓아가 아내를 구해냈다. 이튿날 그는 하느님께 감사를 올리고 아내에게 당부했다. “이번 일은 우리 불화 때문에 생긴 것이니 우리 잘못을 고쳐 착한 일을 하며 죽을 때까지 화목하게 살아가야겠소.” 이후 열심한 신자가 된 김대권은 또 한 번 호랑이와 얽히게 된다. 그는 주님 성탄 대축일마다 근처 산에 올라가 성경을 읽고 기도를 드리며 밤을 새웠는데, 하루는 사나운 호랑이 한 마리를 맞닥뜨렸다. 김대권이 겁내지 않고 계속 기도를 드리자 호랑이는 공격하지 않았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척한 이영희 또 다른 기해박해 순교자인 성 이영희(막달레나)는 일부러 호환을 ‘당한 척’ 했다. 「한국천주교회사」에 적힌 내용은 이렇다. 이영희는 천주교를 미워하는 외교인 아버지의 눈을 피해 어머니(허계임 막달레나)ㆍ언니(이정희 바르바라)와 함께 몰래 신앙생활을 해왔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그를 외교인과 결혼시키려 들었고, 동정을 지키기를 원했던 이영희는 서울에 있는 고모(이매임 데레사)의 집으로 도망가기로 했다. 그래서 마을을 떠날 때 자기 옷에 피를 묻히고 갈기갈기 찢어 나무 덤불 속에 흩트려 놓았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서다. 딸이 죽은 줄로만 알고 있던 아버지는 3개월 뒤에 진실을 알게 됐다. 곧장 서울로 달려간 그는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살아 있는 걸 보니 다른 원이 없다. 이제부터는 네가 하겠다는 걸 막을 수가 없다.” 그 덕에 이영희는 신앙을 지키고 어머니ㆍ언니ㆍ고모와 함께 성인품에 오를 수 있었다. 김대건 신부와 호랑이 이야기 병오박해 때 순교한 한국인 첫 사제 성 김대건 신부도 호랑이에 관한 기록을 남겼다. 제3대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주교의 지시로 김대건 신학생은 1844년 2월 5일부터 두 달간 중국에서 두만강을 통해 조선에 입국하는 경로를 탐색했다. 그리고 보고서 ‘훈춘 기행문’을 적어 페레올 주교에게 보냈는데, 호랑이에 관한 언급도 나온다. “좌우로 큰 나무들로 덮인 높은 산들이 우뚝 솟아 있었고, 또 거기에 호랑이ㆍ표범ㆍ곰ㆍ늑대, 그 밖의 맹수들이 살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습격하려고 모여듭니다. 이 무서운 산간벽지 가운데로 경솔하게 감히 혼자서 지나가려고 하는 사람은 정말 불행합니다! 이번 겨울에도 근 80명의 사람과 100마리 이상의 소와 말들이 이 육식동물들에게 잡아먹혔다고 합니다.” 김대건 신부는 맹수가 습격할 수 없게끔 다른 여행자들과 무장한 채 무리를 지어 움직였다. 맹수 몇 마리가 이따금 굴에서 나왔지만, 그 위세를 보고 감히 덤벼들지 못했다. 살아서 호랑이를 잘 피한 김대건 신부였지만, 정작 세상을 떠난 뒤에 호랑이를 맞닥뜨리고 말았다. 1846년 새남터에서 순교한 김 신부의 시신이 이민식(빈첸시오)에 의해 미리내로 옮겨질 때 일이다. 「용인천주교회사」에 따르면, 이민식은 새남터에서 미리내로 가는 두 번째 고개인 망덕(해실이) 고개에서 큰 호랑이를 만났다고 한다. 순간 이민식은 등골이 오싹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호랑이를 노려보며 호령했다. “네 이놈, 아무리 짐승이기로서니 우리의 위대한 김 신부님의 시신을 모시고 가는 앞길을 막다니 썩 물러나지 못할까?” 그러자 호랑이는 슬그머니 산 중턱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이민식은 감사 기도를 올린 뒤, 발걸음을 재촉했다. 과연 호랑이가 진정 영물이라 성인을 알아보기라도 한 걸까. 상상에 맡길 일이다. 이학주2022.01.05

국제구호활동가 한비야 “하느님이 저를 업고 다니느라 힘드실거예요”[허영엽 신부가 만난 사람들] (9) 한비야 (비아) 한비야씨는 긴급구호 현장에서 자신이 위험할 때마다 하느님께서 지켜주신다는 믿음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한다. 평생의 반려자 역시 하느님께서 보내주셨다고 확신한다. 사진은 한씨가 2021년 남편 안톤과 여행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얼마 전 문자 한 통이 왔다. “허 신부님, 안녕하세요? 저는 내일 남수단으로 현장 근무 떠나요. 잘 다녀오겠습니다. 아직도 내전 중인 곳이라 기도 부탁드려요.” ‘바람의 딸’ 한비야(비아) 자매에게 온 연락이었다. 안부 답장을 하자 다시 문자가 왔다. “신부님, 여기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해요. 내전 중인 데다 대형 홍수로 도로가 거의 유실됐어요. 나일 강을 따라 모터 배로 이동해야 하는데, 악어, 하마, 체체파리가 무서운 건 물론, 수중식물인 워터 히아신스가 배의 모터를 감아서 배가 전복되기도 해요. 게다가 반군의 위협까지 ㅠㅠ. 기도를 쎄게(?) 부탁드려요.” 왜 그녀는 위험을 무릅쓰고 항상 그런 곳으로 떠나는 걸까? 문득 과거에 그녀가 한 말이 생각났다. “긴급구호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애절한 눈이 저를 다시 불러요. 그리고 그곳에 가면 정말 하느님이 계셔요. 저의 소명이라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오래 못했겠죠.” 언젠가 강의를 마친 한비야 자매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저는 강의를 정말 수백 번 아니 수천 번은 했을 거예요. 어느 때는 답답해요. 저의 체험의 원천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죠. 구호 현장에서 신비한 체험도 하고 기적도 경험하는데 수강생들은 신자가 아닌 경우가 많아서 오해할 수 있어 조심스럽죠. 그런데 성당에서 강의하면 제 신앙에 대해서 마음껏 이야기해서 아주 속이 시원해요.” ▶앞으로의 계획이나 꿈은 무엇인지요?작년 말 10년간 일했던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교장 퇴임식을 했어요. 이화여대 초빙교수직은 2024년에 마무리할 예정이에요. 나는 늘 시간에 쫓기며 살았어요. 그래서 2024년, 만 65세 이후에는 전문분야 활동을 대폭 줄여서 이제는 조금 안 바쁜 한비야로 살기로 결심했어요. 보고 들리는 것들을 충분히 즐기고 누리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잘 될지는 모르지만요.(웃음)▶어린 시절은 어땠나요? 자식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는 부모님의 소원이 있었대요. 그때는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세계 지도를 집안 곳곳에 붙여놓으셨어요. 어렸을 때부터 언젠가 세계 일주를 해야겠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했어요. 신기한 건 세계가 크다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그래서 잘나가던 회사 그만두고 세계 일주를 떠나셨네요?33살에 홍보회사를 그만두고, 있는 돈 다 털어서 세계 일주를 떠나게 된 거죠. 처음에는 그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는데, 돈이 안 떨어지네요. 막상 산에 가면 돈 쓸 일이 없잖아요.(웃음) 3년 정도 생각한 세계 일주가 6년이나 걸렸어요. 처음부터 여행 원칙은 “가능한 오지로만, 그리고 육로로만 다닌다”였어요. ▶걸어서, 더구나 혼자서, 상상이 안 가는데요? 사실은 같이 갈 사람이 없었어요.(웃음) 혼자 가는 게 무서워서 같이 갈 사람을 찾았다면 여태껏 못 갔을 거예요. 눈 딱 감고 나가보니 생각보다 혼자 나온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요즘도 주변에 이야기해요. 기다리지 말고 일단 눈 딱 감고 한 발만 내딛으라고 해요. 남을 도와줄까 말까 할 땐 도와야 하고요, 도전해야 할까 말까 할 땐 무조건 도전해야지요. 놀까 말까도요. 무조건 놀아야죠.(웃음)▶한비야 자매가 쓴 여행기가 유명한데, 여행 중에 어떻게 글을 쓰나요?살면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일기를 쓴 거예요. 지금까지 매일매일 일기를 써요. 저의 책을 보고 눈 밝은 분들은 “일기장 읽는 것 같다”라고 하는데요, 실제로 일기장 맞아요.▶여행하면서 긴급구호에 대해서 알게 되신 거죠? 여행하지 않았으면 긴급구호에 관해 몰랐을 거예요. 여행하면서 신기한 일과 위험한 일, 그리고 가슴 아픈 일을 많이 겪었어요. 특히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의 가난한 지역을 다닐 때 아이들이 죽는 걸 많이 봤어요. 아이들이 눈앞에서 순식간에 쓰러져 죽는 거예요. 그런데 아이들이 죽는 이유가 복잡한 희귀병 때문이 아니라 설사, 말라리아, 기관지염으로 인한 폐렴이에요. 1000원짜리 알약 하나면 다 고칠 수 있는데 너무 안타까운 거죠. ▶긴급구호 현장의 비참함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긴급구호 현장에 가면 어떤 이들은 완전히 믿음을 잃어버려요. ‘하느님이 계신다면 왜 이렇게 악을 방치하고 계시나?’ 하는 생각에 믿음이 흔들려요. 라이베리아나 시에라리온 같은 곳엔 팔다리 잘린 아이들이 많아요. 아이들이 크면 적군이 된다고 생각하고 팔다리를 잘라버려요. 저도 흔들렸을 때도 많았어요.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어 극복했어요. ‘이 순간 가장 슬퍼하실 분은 하느님이다. 하느님이 이 순간을 보고 정말 같이 울어주고, 같이 옆에 있어 주라고 우리를 보냈구나.’▶주제를 조금 바꿀까요. 늦은 나이에 결혼하셨어요. 나이 60에 결혼을 했어요. 네덜란드 사람, 이름은 안톤이에요. 저도 나름대로 열심히 배우자를 만나게 해달라는 기도를 엄청 많이 했어요.(웃음) 하느님께 조르다가 지쳐서 ‘하느님 알아서 하세요’라고 했지요. 그러다가 2002년에 남편을 아프가니스탄에서 처음 만났어요. 그 당시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신참이었고, 남편은 제가 속한 긴급구호팀의 팀장이었어요. 우리는 당시에 서로 바빴고 인연이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제가 UN 자문위원이었을 때 제네바에 자주 출장을 갔는데 그때 안톤이 제네바에서 근무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자주 만나게 되면서 연인이 되고, 약혼하고 드디어 결혼했어요.(웃음) ▶남편 안톤은 어떤 사람인가요?안톤은 아주 열심한 천주교 신자예요. 거의 수도사 같아요.(웃음) 매일 규칙적인 기도를 하고 매주 금요일 금식하는 유럽의 구교 전통을 지키는 사람이에요. 하느님께서 제 신앙을 성숙하게 해주시느라고 이런 사람을 붙여주셨구나 생각했어요. ▶두 분은 어디서 생활하고 계시나요? 우리는 좀 특별한 형태의 결혼생활을 하고 있어요. 아직은 각자 일도 많고 해서 안톤이 한국으로 와서 3개월 같이 살고, 제가 네덜란드에 가서 3개월 살고. 그리고 6개월은 각각 떨어져서 일하면서 시간을 내서 중간에 만나서 여행해요. ▶특별한 부부생활을 하시네요.(웃음)상의해 보니 이것이 최선의 방법인 거 같아요. 왜냐하면 제가 여기서 하는 일을 다 그만두고 네덜란드로 갈 수는 없고, 남편도 이 분야에서는 전설 같은 사람인데 한국에 나밖에 아는 사람이 없잖아요. 아직도 할 일 많은데 여기서 살라는 건 너무 가혹하잖아요.▶어떤 기도를 많이 하세요?정말 긴급구호 현장에서 기도밖에 매달릴 게 없어요.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까요. 어떤 때는 대전차 지뢰를 밟은 적이 있어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요? 하느님이 제가 위험할 때마다 저를 업고 다니신 거라 믿어요. 사실 두렵고 무서울 때도 많아서 구마 기도를 많이 해요. ▶구마 기도요?네, 성경에서 악의 세력을 예수님께서 쫓아내시는 걸 흉내 내서 기도해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두려움의 세력아 물러가라!” 그렇게 크게 여러 번 외치면 정말 마음이 순식간에 평안해져요. 사실 죽음도 삶도 다 주님 안에 있는 거잖아요, 그녀와의 인터뷰를 지면 사정으로 10%도 못 담았다. 나중에 전문을 나의 페이스북에 올리려 한다. 인터뷰 끝에 그녀가 한 말이 무척 인상적이다. “외국에서 직업이 뭐냐고 물으면 한 가지로 이야기해요. “I’m a humanitarian, assistant, practitioner. humanitarian, 인류애를 가지고 지금 당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그 일을 지금 하는 사람. 저는 그 말을 할 때마다 그냥 가슴이 터져서 죽을 것 같아요. 멋지지 않아요?”(웃음)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cpbc2022.01.18

타락한 바리스타 3급 자격증에 소금과 빛을[사유하는 커피] (41)소금과 빛의 메시지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장 서른 살 청년 예수는 인간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기원후 27년경 갈릴래아 호숫가 언덕에서 남긴 ‘소금과 빛의 비유’에서 그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산상설교’로 전해지는 이 날의 말씀은 생각할수록 인간의 본성을 사유하게 한다. 십자가 죽음과 부활, 성령으로 표현되는 그리스도적 본질보다는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더 무게가 실려 있기 때문이다.마태오 복음서(5,13-16)가 마르코와 루카보다 기록이 상세한데, 문맥상 먼저 받게 되는 인상은 ‘도덕성(morality)’에 관한 무엇이다. 소금은 짜야 하고, 빛은 방안을 비춰야 하듯, 인간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해야 할 일을 바르게 수행해야 한다. 소금은 물처럼 밍밍해선 안 되고 빛은 숨어 있어선 안 된다. 앉을 수 없으면 의자가 아니고, 담을 수 없으면 그릇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소금다움, 빛다움, 인간다움, 곧 인간의 도리(道理)에 대한 말씀이다. 마태오가 전하는 대목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하는 말씀이다. 예수님를 따르고, 장차 복음을 전파해야 할 그들에게 주어진 도리란 무엇일까? 마태오 복음 5장 16절에 적힌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가 그에 대한 답이라 생각했다. 여기서 ‘착한 행실’이란, 소금이 자신은 녹아 사라지면서 세상을 부패하지 않도록 만드는 ‘희생’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선행’에 그치는 게 아니다. “빛을 비추어 가면서까지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착한 행실”이란, 순교(Martyrdom)일 수도 있다. 제자들이 치러야 하는 고통과 역경을 암시하는 것이다.성경의 이 대목은 제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성경 특유의 비유법 덕분에 ‘소금과 빛’은 인류가 사유해야 할 보편적인 메시지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는 은유적 표현은, 예컨대 “너희는 세상의 소금처럼 썩지 않는다”는 직유법보다 본질을 더욱 인상적으로 드러낸다. 아울러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는 은유는, 어떻게 살아야 함을 새기게 하는 ‘실천적 도리’보다 훨씬 깊숙한 곳에 닿는다.소금과 빛의 메시지는 마땅히 생활 속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 커피라면 “카페인은 커피를 커피답게 하는 소금이요, 과일산은 고독한 쓴맛을 경쾌하게 승화시켜주는 빛이다”쯤이 되겠다. 하지만 이러한 언어의 유희보다는 커피 전문가들이 현장에서 지켜야 하는 가치에 비춰보는 게 의미가 있다.커피에 관한 지식과 기술, 태도를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익힌 전문가들에게 기쁨인 동시에 사명은 많은 사람을 커피 애호가의 길로 이끌어주는 것이다. 개별적인 교육으로도 충분하지만, 바리스타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학원들이 우후죽순 늘어났다. 시쳇말로 돈벌이가 되니 고약한 상술이 판친다. 한 과정으로 취득할 수 있는 바리스타 교육을 일부러 3급 과정으로 나눠 사람들을 골탕먹이고 있다. 바리스타 3급 자격증은 시험도 안 보고 발급하고, 이것을 취득하면 2급 자격증 필기시험을 면제해준다. 이어서 바리스타 1급 자격증은 2급 자격증을 취득해야만 응시할 수 있다. 바리스타 교육이 이렇게 타락해선 안 된다. 구직난이 심해지자 더 높은 등급을 갖고자 하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악용한 파렴치한 상술이다. 카페 현장에서는 바리스타 1급과 2급을 따지지 않는다. 바리스타가 국가자격증이 아니어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일부 기관들의 장난으로 악취가 풍기기 시작한 바리스타 교육시장에 소금과 빛이 간절하다.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평화신문2021.03.03
![[신앙단상] 스마트폰 쉼과 선용으로 바꾼 일상(손병선, 아우구스티노, 한국평협 회장)](//cpbc.co.kr/CMS/newspaper/2020/11/rc/791292_1.1_titleImage_1.jpg)
[신앙단상] 스마트폰 쉼과 선용으로 바꾼 일상(손병선, 아우구스티노, 한국평협 회장) 오늘은 저에게 뜻깊은 날입니다. 그래서 저를 쓰담쓰담, 토닥토닥 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왜냐하면 오늘이 ‘가톨릭굿뉴스’ 앱에서 진행하는 ‘모바일 복음 쓰기’를 시작한 지 딱 1년 되는날이기 때문입니다. 바쁜 일상에서도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복음 말씀과 늘 함께한 한 해였기에 더욱 뿌듯합니다. 배우자와 함께 복음을 쓰면서 앱에서 매일 주어지는 룰렛 점수에 따라 “앗~싸, 에~이” 하며 웃고 찌푸리는 재미있는 일들도 많았지요.그동안 성경 통독의 경험은 몇 번 있었습니다. 본당 형제자매님들과 함께 3년에 걸쳐 성경 통독을 한 적도 있고, 구역 교우들과 함께 매주 토요일 새벽 미사 후 통독을 하고 각자 챙겨 온 음식을 나누며 신앙 대화로 꽃을 피웠던 시절도 생각납니다. 본당의 전례분과 봉사자들과 함께 복음서를 철야 통독하고 새벽 미사를 봉헌했던 경험이나, 대자들과 함께 집에서 통독했던 경험도 새롭게 다가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처럼 통독 경험은 다양하지만, 성경 필사는 번번이 실패한 경험이 있어 왠지 아쉬웠고, 넓고도 깊은 복음 안에 담긴 심오한 뜻을이해하는 데는 늘 부족함을 느꼈습니다.올해 사순 시기에는 제가 봉사하고 있는 평협에서 ‘스마트 쉼’ 운동을 펼치며 사순 묵상 수첩을 제작해 전국에 배포했습니다. 저도 글씨 연습도 할 겸 캘리그라피 세필로 복음을 쓰고 묵상했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레 일상 안에서 우선순위가 하느님 위주로 바뀌는 변화도 생겼습니다. 또한, 지난 6월 예수 성심 성월을 기해 한국평협에서 굿뉴스와 함께 진행한 코로나 극복 이벤트에도 참여하면서 묵상 글에 한 번 당첨되어 소확행의 작은 기쁨도 누렸습니다. 함께 참여하신 전국의 많은 교우들도 ‘코로나 19’ 팬데믹이 시작되어 미사도 없는 힘든 시기에복음을 쓰고 묵상하며 나름대로 의미 있는 사순 시기와 남은 한 해를 보내셨으리라 여겨져 개인적으로도 수고의 보람과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었습니다.사실 요즘은 핸드폰 과의존과 중독화 현상이 심해서 사순 시기만이라도 스마트폰 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했었지만, 뜻하지 않은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오히려 스마트폰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결과적으로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 역시도 종종 불필요하게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있을 때가 있지만, 올해는 스마트폰 쉼과 선용을 병행하는 한 해가 되었고, 일상 안에서 말씀 쓰기를 우선순위로 두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이 모든 것이 저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이끄심이었음을 고백하며 감사드리고, 그동안 복음의 맛과 기쁨을 누릴 수 있게 애써주신 굿뉴스 측에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cpbc2020.11.18
![[수도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11)은수자와 렉시오 디비나](//cpbc.co.kr/CMS/newspaper/2019/10/rc/765016_1.1_titleImage_1.jpg)
[수도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11)은수자와 렉시오 디비나마음으로 성경을 끊임없이 읽고 암송 허성준 신부 초기 수도승들은 세상으로부터 물러나 사막의 철저한 고독 속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성경 외의 다른 독서들은 내면생활에 무가치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해로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Apophthegmata)」에서는 성경 독서 외의 다른 독서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되고 있지 않다. 은수자들의 스승인 성 안토니우스는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자신의 성소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성당에 들어갔다가 그날 선포된 말씀 중에 한 말씀이 그에게 강하게 다가왔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 그는 즉시 이 말씀을 따르고 싶었지만 그에게는 자신이 책임져야 할 여동생이 있었기에 고민해야 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또다시 성당에 들어갔다가 그날 선포된 말씀 중에 한 말씀이 그에게 크게 다가왔다.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 6,34) 그는 이 말씀에 따라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느님을 향한 영적 여정을 시작하였다.그는 먼저 마을 변두리로 물러나 수행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배워 나갔다. 그리고 어느 정도 영적인 싸움을 할 단계에 이르자 다시 무덤가로 나아갔다. 무덤에서 사탄과의 격렬한 싸움 후에 마침내 주님의 현시를 체험하게 되었다. 그때 안토니우스는 주님께 “당신은 제가 그렇게 고통 중에 있을 때 어디 계셨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주님께서 “나는 그때 너와 함께 있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러한 깊은 체험 후에, 그는 더 깊은 사막으로 물러나 20년간 깊은 고독과 침묵 속에서 은수생활을 하였다. 그 후에 사람들에게 드러나게 되었고, 후에는 더 깊은 내적 사막의 동굴로 물러나 죽을 때까지 44년 동안 철저히 하느님의 사람으로 머물다가 주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때 그의 나이는 105세였다. 특별히 은수자들의 스승이었던 성 안토니우스는 수행생활 초기에 마을 근처에 머물면서 금욕적인 삶을 살았는데, 그때 성경 말씀을 얼마나 열심히 읽고 묵상했는지 그의 기억력이 성경 전체를 대신할 정도였다고 한다.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에 보면, 많은 수도 교부가 제자들로부터 한 말씀을 요청받을 때, 성경의 한 말씀을 처방약으로 주기도 하였다. 팔레스타인에서 은수생활을 시작한 힐라리온 압바(Abba Hilarion, 291~371)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고 배워야 함을 강조하였다. 비록 초기 은수자들이 성경 본문 전체를 소유하지는 못했을지라도, 그들은 마음 깊은 곳에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간직하였다. 그래서 어떤 교부는 한 말씀을 청하는 제자에게, “만약 당신이 성경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것을 계속하여 반복하라”고 권고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계속 말씀을 반복하다 보면 후에 그 말씀의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은수자들은 독방에서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성경을 끊임없이 읽고 암송하였다. 그들에게 있어 성경 독서는 그들의 삶을 인도하는 구체적인 수행이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고대 수도승들이 전해준 렉시오 디비나에 관한 3가지 중요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는 말씀을 기억 속에 간직함이다. 둘째는 성경을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다가감이다. 셋째는 말씀을 끊임없이 반복함이다.허성준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평화신문2019.10.22

영혼을 돌보는 ‘어머니 교회’의 근본으로 돌아가다[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42) 파스콸레 카티의 ‘트렌토 공의회’ 파스콸레 카티, ‘트렌토 공의회’(1588/1589), 트라스테베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로마. 종교개혁과 로마 약탈이라는 충격과 함께 시작된 1500년대의 교회는 1534년 파르네세 가문의 알렉산드로가 바오로 3세 교황으로 선출되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기에 이르렀다. 앞서 언급했지만(바치초의 ‘성 프란체스코의 죽음’ 편), 바오로 3세는 많은 남녀 수도회 설립을 인가해주고, 영성가들을 교회에서 보호해줌으로써 성인들의 시대를 열기도 했지만, 보편 교회 차원에서 어떤 식으로든 종교개혁가들에게 답변도 해 주어야 했다. 그것이 1545년 12월 13일부터 1563년 12월 4일까지 이탈리아 북부 도시 트렌토 주교좌성당에서 개최한 공의회였다. ‘트렌토 공의회’는 3차례 회기를 가졌다. 바오로 3세가 소집하고, 율리오 3세 교황을 거쳐 비오 4세 교황이 18년간의 회의 일정을 폐막했다. 25명의 주교와 5명의 수도회 장상이 시작한 공의회는 255명이 참석한 가운데 막을 내렸다. 안건 내용은 주로 프로테스탄티즘, 가톨릭교회의 쇄신, 성사, 성경, 심판 등이었고, 최종 16개 교령이 선포되었다. 트렌토 공의회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년)까지 약 300년간 가톨릭교회의 노선이 되었다. 어렵게 열린 공의회교회 쇄신에 대한 목소리는 13~14세기, 보니파시오 8세 교황과 프랑스 필립 왕이 대립할 때부터, 교황청의 아비뇽 이전과 로마 귀환, 서구 교회의 분열 등이 터지던 때부터 나왔던 것이었다. 이에 1512~1517년, 율리오 2세 교황이 소집하고, 레오 10세 교황이 마무리한 제5차 라테란 공의회가 있었으나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이유는 당시 율리오 2세의 자세가 오로지 프랑스 왕 루이 12세를 견제하는 데만 힘을 쏟았을 뿐, 실제 교회 안팎의 문제에는 관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에 문제는 더욱 커졌고, 결국 종교개혁과 로마 약탈이라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문제는 빨리 해결해야 한다. 시기를 놓치면 더 커져서 그만큼 더 큰 희생을 치르고서야 해결된다. 1523년 뉘른베르크 제국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가 모두 동의하는 공의회를 개최해야 한다며 “독일에서 자유롭게 그리스도교 회의를 여는 것이 합당하다”고 했고, 샤를 5세도 동의했다. 요컨대, 공의회 개최는 기정사실이고, ① ‘자유롭게’, 교황이 아니라 황제의 지휘하에서 ② ‘그리스도인’, 곧 평신도들도 참여한 가운데 ③ 이탈리아보다 안전한 ‘독일 땅’에서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클레멘스 7세 교황은 이런 조항들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교회 일보다는 외교적인 일에 더 관심이 많았다. 뉘른베르크의 제안이 점차 흐려지는 가운데, 합스부르크와 프랑스의 전쟁(1521~1559년)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그로 인해 1520년대 소집하기로 한 공의회는 무산되고 말았다. 클레멘스 7세의 뒤를 이은 바오로 3세도 1536년, 1538년에 공의회 개최를 시도했으나 연기되는 사이에 장소만 트렌토로 결정되었다. 독일의 제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이탈리아에서도 가기 쉬운 곳으로 합의를 본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전쟁은 공의회 개최를 지연시켰고, 드디어 1545년 3월 15일에서 또 한차례 미루어 12월 13일에 개최되었다. 제1차 회기(1545~1547년)에서 주로 다룬 것은 성경과 전통, 구약과 신약의 법규, 불가타 성경의 확실성, 원죄와 심판, 성사 일반 및 세례성사와 견진성사 등에 관한 교의적인 문제들과 설교, 주교들의 거주 의무 등이었다.제2차 회기(1551~1552년)는 바오로 3세가 사망하고, 후임인 율리오 3세가 이끌었다. 성체ㆍ참회ㆍ병자성사에 관해 교령이 선포되고, 주교의 감독권, 성직자의 의무 등이 결정되었다. 이 기간에 독일 프로테스탄트 일부 제후들은 연맹을 결성했다. 지금까지 승인된 법령의 폐지, 교황에 대한 충성 서약 철회, 교황에 관한 공의회 우위성 확인을 요구했고 뜻대로 되지 않자 1552년 독일 남부로 군대를 집결하여 트렌토를 위협했다. 공의회 교부들은 즉시 회의를 중단하고 모두 돌아갔고, 샤를 5세도 인스브루크를 버리고 떠났다. 제3차 회기(1562~1563년)는 율리오 3세(1555년†), 마르첼로 2세(1555년†), 바오로 4세(1559년†) 교황의 뒤를 이어 밀라노 출신인 가를로 보로메오 추기경의 조카 비오 4세가 교황이 되어 이끌었다. 성체ㆍ신품ㆍ혼인성사, 연옥, 성인 공경, 전대사와 수도회에 관한 내용이 승인됐다. 전례에서 라틴어 사용과 속어 강론이 의무화되며, 주교들의 거주 의무, 사제 양성을 위한 신학교 설립 등도 선포되었다. 루터와 선 긋고 교회 쇄신의 동력 얻어 공의회의 업적은 교의적인 차원과 교도적인 차원으로 구분해서 들여다볼 수 있다. 교의적인 문제에서 공의회는 소집 자체가 루터의 논문에 응답하기 위한 것이어서 독일의 개혁자들이 논쟁으로 삼지 않은 것은 공의회에서 다루지 않았다. 삼위일체, 그리스도 강생과 부활의 신비 등에 대해 다루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종교개혁에서 들고 나왔던 교회의 성사에 관해서는 개별 성사들을 신학적으로 명확하고 이해하기 쉽게 결론 내렸다. 또 프로테스탄트의 개인주의를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동시에 법적 제도기도 한 교회의 중재 필요성을 재확인했고, 교회는 계시된 말씀의 수호자며 해석자로서, 교도 임무와 성사들을 통해 그것을 유지하고 누가 위임하든지 간에 객관적 가치와 본질적인 효능은 존재한다고 재천명했다. 교도 임무에 관해서, 공의회는 루터의 주장과 달리 하느님의 은총에 더해 믿음과 행동이 동반된 인간 협력의 필요성을 가르쳤다. 이로써 트렌토의 선언은 루터의 주장과 동떨어진 것으로 결론을 내리게 되었고, 그와의 결별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었다. 한편, 교회 내부적으로 트렌토 공의회는 신앙생활을 쇄신하는 참된 동력으로 작용했다. 제3차 회기의 개혁 교령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 “영혼들을 돌봄(cura animarum)”이었다. 이것은 교회의 근본적인 사명으로 간주 되었고, 주교와 성직자들은 본성과 행위에서 이를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들의 존재 이유는 복음을 가르치고, 성사를 통해 “영혼을 돌보는 데 있다”라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 주교들의 첫 번째 임무로 성직자 양성을 위임했다. 이에 주교들은 신학교 건설에 앞장섰고, 사제 교육이 활발해졌으며, 사제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선교 활동이 이루어졌다. 독창적이고 개성 있는 색감 사용 소개하는 작품은 ‘영혼을 돌보는’ 교회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파스콸레 카티(Pasquale Cati, 1550~1620)가 그린 ‘트렌토 공의회의 비유’(1588-1589)다. 로마 트라스테베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내 알템프 소성당(Cappella Altemps)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다. 카티는 다르피노(Cavalier d‘ Arpino)로 알려진 체사리(Giuseppe Cesari)의 제자로 마르케 지방 출신이다. 미켈란젤로 스타일의 매너리즘 작가로도 알려졌다. 로마에서 주로 활동하며 독창적이고 개성 있는 색감으로 로마의 후기 매너리스트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이 작품이 있는 로마 트라스테베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과 로마 포르모사의 성 로렌조 성당에 굵직한 작품들을 남기고 1620년 로마에서 생을 마감했다. 트렌토 공의회에 대한 평가는 이후 역사의 과정에서 여러 가지로 대두되었다. 하지만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어머니이신 교회’가 가르치고, 기억하고, 묵상하고, 열매 맺도록 한다는 근본 방향을 설정한 것은, 공의회의 최고 성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림 속으로그림은 중간에 벽이 있어 앞, 뒤로 구분해서 볼 수 있다. 뒷부분, 회의에 임하는 고위 성직자들의 자세는 자유로우면서도 매우 진지하다. 왼편 연단에 앉은 추기경들 맨 앞에 흰옷을 입은 비오 4세 데 메디치 교황이 있고, 반대편에는 주교들과 수도회 장상들이 뭔가 열심히 대화에 임하고 있다. 이 양쪽을 가르는 사이로 왼쪽 위에서 엄숙한 공의회장 안으로 성령의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앞부분이다. 교회를 상징하는 듯, 교황의 삼중관을 쓴 여성이 한 손에는 목장(牧杖)을, 한 손으로는 누군가를 저지하는 자세로 종교개혁자를 밟고 있다. 나약하지만 엄격하다. 가슴에 십자가 형태로 두른 영대와 입고 있는 흰옷으로 교회와 교황을 대변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녀를 둘러싼 주변의 모든 여성은 지역 교회와 학문을 상징한다. 그녀의 그늘에서 로물루스와 레무스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여성은 ‘로마’이고, 그 뒤로 손을 모으고 있는 여성, 성합이나 십자가를 든 여성은 ‘지역 교회’를, 그 옆에 바닥에 펼쳐진 책과 지구본은 인문과학을 포함한 각종 ‘학문’을 상징한다. 파스콸레 카티, ‘트렌토 공의회의 비유’(1588/1589), 트라스테베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로마.김혜경 (세레나,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이탈리아 피렌체 거주) cpbc2021.05.18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14주일 - 내가 약할 때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cpbc.co.kr/CMS/newspaper/2021/06/rc/804942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14주일 - 내가 약할 때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 정순택 주교 예수님이 이천 년 전에 태어나신 분이시기에, 거리감이 느껴지시나요? 혹 그분이 이곳 우리가 사는 한국 땅이 아니라 저 먼 중동의 팔레스티나에 사셨던 분이라 멀게 느껴지시나요? 혹시라도 그분이 지금 이 땅에 우리와 함께 살고 계신다면, 우리가 그분을 더 잘 알아볼 수 있을까요? 꼭 그렇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동향 나자렛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요.예수님은 공생활, 아마도 초기 즈음에 카파르나움에서 중풍 병자도 고쳐 주시고, 갈릴래아 호수 건너편 게라사 지방에서 마귀들도 쫓아내시고, 야이로의 딸도 살리시는 등 많은 기적을 행하신 후 잠시 고향 나자렛에 돌아가셔서 어느 안식일에 회당으로 가십니다. 회당은 사제들이 제사를 드리는 성전과는 달리, 마을 사람들이 모여 성경 말씀을 듣고, 함께 기도도 하고 거룩한 가르침도 듣는 일종의 ‘(마을)회관’ 같은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두루마리를 읽으시고(루카 4,17) 권위를 갖고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동향 나자렛 사람들은 그분의 깊은 가르침을 듣기보다는,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하며 놀라는 데 그칩니다. 왜냐하면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며 선입관으로 그분을 규정하고 보기 때문입니다.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 어머니도 동네 사람이고, ‘예수님의 형제들도 다 알고 있지 않은가?’라고 생각한 겁니다.(물론 근동의 ‘형제’라는 단어는 한 어머니에서 난 한배 형제들만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넓게는 일가친척과 친족까지 다 ‘형제’로 지칭합니다.) 우리 자신의 아집에 갇혀 있으면, 우리가 아는 피상적인 앎이 참된 믿음에로 넘어가는 것을 막는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를 오늘 1독서에서는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완고한 저 자손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피상적으로 아는 것을 넘어, 깊은 믿음에로 넘어가기 위해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요? 오늘 둘째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힌트를 줍니다. 주님께서는 바오로 사도에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그렇기에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자신의 힘(그것이 외형적 힘이나 사회적 파워 혹은 물질적 풍요의 힘이건 간에)만 믿고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완고하게’ 하느님께 맞서지 않고, 하느님 자비에 깊이 의탁하기 위해선 먼저 우리의 약함과 한계를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삶에서 한 번씩 찾아오는 시련과 힘든 십자가들은 ‘뻔뻔해지기 쉽고 완고해지기 쉬운’ 우리를 하느님 앞에 무너뜨리며, 우리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을 찾게 만드는 하느님의 초대요, 개입입니다. “우리가 약할 때,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정순택 주교(서울대교구 보좌주교) 평화신문2021.06.30
![[수도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21)성경 독서의 전개](//cpbc.co.kr/CMS/newspaper/2020/01/rc/770107_1.1_titleImage_1.jpg)
[수도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21)성경 독서의 전개말씀의 신비 일깨우는 성령 허성준 신부 수도승들의 성경 독서는 단순히 읽는 것 자체가 아니라 언제나 묵상과 기도 그리고 관상을 지향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함축하고 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엠마오로 걸어가던 두 제자에게 다가가시어, 그들에게 성경의 말씀을 직접 풀이해 주심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뜨겁게 해 주셨다.(루카 24,32) 마찬가지로 우리가 온전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을 때, 그분은 우리에게 다가오시어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시고 당신 말씀의 신비를 깨닫게 해 주실 것이다. 즉 주님은 당신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의 이해력을 열어 주시고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듯이(루카 24,45), 마찬가지로 그분은 우리에게 나타나시어 우리의 이해력을 열어 주시고, 당신 말씀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해 주신다.우리는 파코미오의 제자였던 테오도로의 예를 통해서 성경 독서가 어떻게 신비 체험을 가능케 하는가를 볼 수 있다. 어느 날 테오도로는 수도원 경내에 앉아서 구약의 미카 예언서를 소리 내 읽고 있었다. 그때 주님의 천사가 갑자기 나타나서 “벼랑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과 같다”(미카 1,4)라는 말씀의 참된 영적 의미를 알려주었다. 즉 천사는 그 물이 천국으로부터 떨어짐을 그에게 알려 주었고 그리고는 즉시 그에게서 사라져 버렸다. 이와같이 우리가 성경 독서를 충실히 하다 보면, 테오도로의 경우처럼 언젠가 천사나 성령의 도움으로 그 말씀의 깊은 영적 의미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것이다.주님은 언제나 우리를 당신과의 깊은 일치에로 초대하고 계시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묵시 3,20) 주님은 오늘 당신 말씀을 통해 우리 존재의 문 앞에 서서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고 계시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하느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읽고 암송하면서 그분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그리고 기도 안에서 그분께 응답한다면, 주님은 분명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만찬을 나누실 것이다. 즉 관상 안에서 우리는 그분과 더 이상 문이라는 벽 앞에서 분리되지 않고 하나 되게 된다. 이렇게 성경 독서는 하느님과의 일치인 관상에로 자연스럽게 우리를 인도한다. 성경 독서와 성령렉시오 디비나에 있어서 한 가지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마음과 정신이 성령에 의해 조명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성경은 모두 성령의 영감에 의해 고무되어진 책으로(2티모 3,16), 진리의 영이신 그분이 오셔야만 온전히 말씀의 신비를 깨닫게 된다.(요한 16,13) 그러므로 성경을 대할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성령께 온전히 개방해야만 참다운 진리의 바다에로 인도될 수 있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성경 독서에서 열매를 주시는 분은 바로 성령이시며,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그분은 참된 내적 일치의 원천이시기 때문이다. 바로 그분이 거룩한 말씀의 신비를 우리에게 계시해 주고 동시에 우리 안에 머무르면서 우리의 영성 생활을 촉구하고 계시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언제나 성령께서 심오한 말씀의 신비를 직접 열어 보여주시고 깨닫게 해주시기를 청하면서 겸허하고 개방된 마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지적이고 추리적인 읽기와 사색을 포기하고 순수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으면서 전적으로 성령께 자신을 내어 맡김이 중요하다.허성준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평화신문2020.01.01
[사설] 사랑의 기쁨인 가정의 해 개막을 맞으며 지난 19일 ‘사랑의 기쁨인 가정의 해’가 개막됐다. 내년 제10차 세계가정대회 폐막일인 6월 26일까지 1년 3개월여에 걸쳐 진행될 기념의 해로, 2014년 10월과 2015년 10월에 개최된 가정에 관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후속 교황 권고인 「사랑의 기쁨」(Amoris Laetitia) 반포 5주년을 맞아 선포됐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월 선포한 사랑의 기쁨인 가정의 해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의 관심은 상대적으로 크게 부족한 것으로 보여진다. 광주대교구만이 19일 임동 주교좌성당에서 개막 미사를 봉헌했을 뿐 타 교구에선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광주대교구에선 매달 19일을 ‘19day’로 정해 모든 본당에서 달마다 부모와 자녀, 부부, 가정, 어르신(노인) 등 공동 지향을 바꿔가며 미사를 봉헌키로 했다. 아울러 ‘19day 실천표’를 배부, 가정마다 전례 기도와 사랑 실천을 하도록 했고, 릴레이 가정기도 챌린지, 혼인갱신식과 성가정 축복장 발송 등을 추진한다. 가정이 지니는 중요성은 성경에서 거듭 강조되고 있다. 또한, 주님의 사랑과 충실성, 이에 응답할 필요성을 배우는 곳도 가정이다. 그런데도 가정이 지니는 중요성을 간과한다면, 우리 사회는 희망이 없다. 예수님께서는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나고 가정의 모든 특성을 받아들이셨으며, 혼인제도에 최상의 품위를 부여하며 새 계약의 성사로 만드셨고, 그럼으로써 성가정은 가정생활의 모범이 됐다.(마태 19,3-9 참조) 한국 교회도 모든 가정이 나자렛 성가정을 본받아 사랑의 기쁨이 충만한 가정을 일구고, 가정마다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적절히 수행하도록 하는 데 함께하는 한 해가 되기를 간곡히 기원한다. 평화신문2021.03.24

늦깎이 시인 김해선씨 “시 쓰고 다듬으며 성장합니다”[허영엽 신부가 만난 사람들] (8) 시인 김해선(비비안나) 김해선 시인은 작가를 꿈꿨지만, 결혼 후 출산과 육아로 꿈을 이룰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을 쪼개 읽고 쓰기를 반복하고 학업을 이어가며 작가의 꿈을 이뤘다.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제공 어린 시절 꿈 많고 매사에 자신감 넘쳤던 여성이 직장 생활을 거쳐 결혼하고 육아와 내조에 힘쓰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이름은 없어지고 아무개 엄마, 누구의 아내로 불린다. 요즘 들어 많은 어머니들이 단절된 경력을 딛고 과거에 못 이룬 꿈을 이루려 한다. 여유가 있다면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자유로운 여행도 원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생각뿐 실제로 실천하기는 어려운데 실제 시도를 하는 통쾌한 주부시인이 있다. 뒤늦게 시인으로 등단하고 몇 달씩 외국에서 혼자의 삶을 통해 자아를 찾으려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이 아름답다. 김해선(비비안나, 59) 시인. 지난 2021년 1월에 첫 시집 「중동 건설」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가톨릭에 입교하게 된 동기는?수녀님들이 운영하는 가톨릭 중ㆍ고등학교에 다녀 자연스럽게 종교적 분위기에 접하게 되었죠. 그런데 우리 집은 유교 문화가 강해 일요일에 성당에 가는 것이 몹시 어려웠죠. 친구들이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는 것이 무척 부러웠어요. 드디어 고등학교 2학년 때 부활절 미사에서 영세했어요. 밤 미사가 끝나고 눈이 푸른 외국 신부님께서 직접 운전하셔서 친구들과 함께 집에 데려다 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 어릴 적 꿈은 무엇이셨나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는데 시골이라 읽을 만한 책이 많지 않았어요. 초등학교 2학년 때 둘째 고모가 「소공녀」 책을 빌려다 주었는데 그 책이 닳도록 읽고 또 읽었어요. 그리고 학교에서 수업 후 매일 도서관에 들러 책을 읽고 어둑해서 집으로 돌아갈 때 마음이 뿌듯했던 기억이 나요. ▶ 대학교 때 생활은 어떠셨나요? 대학 때 재수까지 했는데 원하는 학과에 진학하지 못했어요. 그때가 제 인생에서 아주 위축되고 어둡고 우울한 시기였죠. 신춘문예에도 계속 도전했는데 번번이 떨어졌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마음에 좋은 글을 쓰는 것보다 신춘문예에 화려하게 등단하려는 욕망이 컸던 것 같아요.▶ 결혼 후 늦게 대학원 공부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남편과 데이트할 때 문학 얘기도 많이 했고 비교적 빨리 결혼했어요. 결혼해도 저의 꿈을 밀어준다는 약속을 곧이곧대로 믿었지요. 물론 남편이 배신한 건 아니지만(웃음) 현실은 생각과 전혀 달랐어요. 아이 셋을 낳고 육아하면서 공부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했어요. 큰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고 막내가 유치원에 다니면서 비로소 오전 세 시간을 쓸 수 있었어요. 막내가 유치원에 가면 나는 매일 도서관으로 뛰어가 글쓰기를 했어요. 그런데 혼자서 읽고 쓰고 몇 년을 하다 보니 한계를 느끼며 대학원에 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 등단을 늦게 하신 편인데? 늦깎이 대학원생이 되면서 열심히 하면 적어도 석사과정이 끝나면 등단도 할 것으로 생각했어요. 신춘문예의 문을 계속 두드렸지만, 박사과정 졸업 때까지도 등단을 못 했어요. 17번 도전을 했는데 계속 떨어졌어요. 참담했죠, 우선 나 자신에게 실망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2015년 초여름 어느 날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가 등단 소식을 들었어요. 저도 모르게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며 무릎을 꿇고 기도했어요. 저에게 문학은 지난한 시간과의 투쟁이었어요. 지금도 등단하지 못했다면 2022년 신춘문예에 또 도전했을 것 같아요.(웃음) ▶ 오랜 시간 외국 여행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주부로서 쉽지 않은 결정 아닌가요? 등단이 늦어지면서 우울감과 절망감에 빠졌지요. 그러다 문득 지금 여기를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해 혼자 하는 여행을 선택했어요. 우선 연습 삼아 혼자 일본 나오시마를 여행했어요. 사실 처음이 어렵지 다음은 쉽잖아요. 그 후에 체코의 체스키크룸로프에서 40일, 프라하에서 15일을 보냈어요. 물론 가족이 도와주어 가능했지요. 늘 가족에게 감사해요. 2019년 12월 초에 혼자서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덴마크로 건너가 여행을 마치고 2020년 2월 말에 귀국했어요. ▶ 외국에서 홀로 한 여정을 자세하게 설명해주세요.어느 것이든 아주 자세하게 계획적으로 생활했어요. 체코 체스키크룸로프에서는 시집 한 권을 정리할 생각을 가졌어요. 아침 6시에 일어나 기도하고 7시부터 12시까지 글쓰기에 집중했어요. 12시 이후엔 체스키크룸로프 마을을 마실 다니듯 꼼꼼히 살피고 다녔어요. 그러면서 에곤 실레 아트센터에 자주 들르게 되었는데 그러다 에곤 실레 생애와 작품에 빠져들었어요. 「에곤 실레를 사랑한다면, 한 번쯤 체스키크룸로프」라는 첫 산문집을 냈어요. 시인이 시집보다 산문집을 먼저 냈어요.(웃음) 그리고 매일 1000년 가까이 된 오래된 성당에서 성체조배를 했는데 성당은 몹시 추웠지만 파이프 오르간의 연주를 듣는 순간은 추위를 잊을 정도로 행복했던 기억이 나요.▶ 본당에서 봉사도 하시나요? 본당에서 빈첸시오회 활동을 했는데 한부모 가정과 홀몸노인 방문, 그리고 남부 교도소에 보호자가 없는 재소자분들에게 간식비 지급을 전달하는 아주 가벼운 심부름을 했어요. 그리고 가톨릭 영시니어 아카데미에서 ‘문학의 향기’, ‘삶과 문학’을 9년 이상 강의했어요. ▶ 시는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던 저에게 ‘시’는 저를 대신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자꾸 실패하는 시를 위해서 혼자서 장거리 여행을 하며 실패한 시를 다독이며 다시 쓰고 수정을 거듭했어요, 지금도 원고 청탁이 와도 쓰고, 오지 않아도 매일 잘 안 되는 시를 쓰고 수정하고 쓰고 있어요. 시는 저의 일상이라 할 수 있죠. ▶ 요즘 젊은 청년들, 인생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조언할 형편은 아닌 것 같은데(웃음) 저는 진부할 수 있지만 책 읽기를 권하고 싶어요. AI, 유튜브, 메타버스, 게임 등 재미있는 것들이 날로 발전하는 시대이지만 책에서도 재미와 중요함을 발견할 수 있지요. 나 개인의 독창성을 살리는 발전과 성장, 특히 창의성을 바란다면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어요. AI, 메타버스, 제페토 등 모두 창의성에서 개발되었고 발전되고 있잖아요. ▶ 가장 어려웠던 인생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저의 고통과 어려움엔 기도가 약이 되었지요. 등단 도전이 계속 실패하고 첫 시집 출간이 무산되었을 때 오랫동안 슬프고 우울했죠. 그때 집 근처 안양천 둑방길을 서너 시간 물병 하나를 들고 묵주기도를 하며 무작정 걸어요. 그러다 보면 성모님이 위로해주시는 것을 느끼게 되고 마음이 안정돼요. ▶ 이루고 싶은 미래의 꿈은 무엇인가요?제가 이루고 싶은 꿈은 저의 미약한 시의 성장이에요. 어떻게 하면 나만의 시를 쓸 수 있을까, 나만의 새로운 시를 쓰는 것이 지금 저의 꿈이며 미래의 꿈이에요. ▶ 가장 즐겨하는 기도는 무엇인가요? 아침기도와 저녁기도, 묵주기도와 십자가의 길 기도예요. 저녁기도에서는 성가(「야훼이레」 773번, ‘하느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를 천천히 읽거나 작게 소리로 노래합니다. 그리고 항상 성경(1코린 13,1~13, 갈라 3,3~10)을 통독합니다. 그 기도가 오늘날 저를 지탱해준 가장 큰 위로와 힘이에요. 우리는 누구나 꿈을 꾼다. 그러나 모두가 그 꿈을 실제로 실현하지는 못한다. 사실 우리는 별다른 생각 없이 다른 이에게 “그거 너무 늦은 것 아니야?” 하며 힘을 빼지는 않았나? 세상에 너무 늦은 것은 없다. 우리가 그것을 잘 깨닫지 못할 뿐이다. 늦었다는 시간은 결코 존재하지 않음을 김해선 시인을 통해서 배우게 되는 삶의 지혜이다. 김해선 시인은 오늘도 자신이 좋아하는 글을 쓰고 또 쓴다. 그래서 그녀는 그저 감사하고 행복하다.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cpbc2022.01.11

새 복음화 위해 신앙 기초 다지고, 생명수호 활동 펼쳐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걸어온 길 제13대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30일 오전 10시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이임 감사 미사를 봉헌하고, 교구장 자리에서 물러난다. 김수환(1922∼2009)ㆍ정진석(1931∼2021) 추기경에 이은 한국 교회 세 번째 추기경으로, 9년 5개월간 서울대교구장으로 헌신해왔다. 1970년 사제품을 받은 후 반세기 넘게 교회를 위해 자신을 바쳐온 염 추기경의 발자취를 살펴봤다. 추기경의 사목표어는 ‘아멘. 오십시오, 주 예수님!’이다.신앙 튼튼히 하고, 서소문역사공원 조성2012년 6월 25일 제13대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에 착좌한 염 추기경은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선교의 장’을 열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끊임없는 내적 쇄신을 통해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교회가 되어야 한다”며 “선교 노력은 우리나라를 넘어서 아시아를 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염 추기경은 2013년 신앙의 해를 시작하며, 한국 천주교회의 당면 위기를 ‘허약한 신앙’이라고 진단했다. 2014년부터 5년간 허약한 신앙을 극복하기 위한 세부적인 사목지침(말씀으로 시작되는 신앙ㆍ기도로 자라나는 신앙ㆍ교회의 가르침으로 다져지는 신앙ㆍ미사로 하나되는 신앙ㆍ사랑으로 열매 맺는 신앙)을 제시했다. 그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를 기치로 내걸고, 성경 말씀과 기도를 통해 신앙의 기초를 튼튼히 할 것을 당부했다.2014년 2월 22일, 한국 교회의 세 번째 추기경으로 서임된 염 추기경은 그해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이라는 역사적 현장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례로 거행된 124위 시복식은 한국 교회가 자력으로 추진해 교황청 시성성에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 청원서’를 공식 접수한 후 5년 만에 이룬 결실이었다. 순교자 정신을 함양하는 데 큰 역할을 해온 염 추기경은 2019년 6월 서소문역사공원과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을 조성한 것을 가장 보람된 일로 꼽는다. 쓰레기 재활용 처리장과 청소차 주차장으로 사용돼 도심 속 고립된 섬 같았던 공간은 죽음의 형장이 아닌 순교자들을 기억하고 위로받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서울대교구가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 서울 중구청에 ‘서소문 밖 역사유적지 관광 자원화 사업’을 제안해 8년 만에 이룬 성과였다. 서소문 밖 네거리는 조선 정부의 공식 처형지로, 단일 순교지 중 가장 많은 성인(44위)과 복자(27위)를 배출한 곳이다. 염 추기경은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계획하셨고 순교자들이 그것을 마련해 주셨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이곳을 찾는 세계의 시민들이 영적인 기쁨과 위로를 느낄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2020년 11월 14일,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앞두고 가톨릭사랑평화의 집을 찾은 쪽방촌 주민에게 따뜻한 도시락을 건네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미혼모에게 용기 주고, 노숙인에게는 밥상을염 추기경이 재임 시절, 가장 역점을 둔 사목은 생명이었다. 2005년 전임 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이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를 설립한 때부터 초대 위원장을 맡아 다양한 생명수호 활동을 펼쳤다. 교구장에 착좌하면서도 생명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내려놓지 않았을 만큼, 생명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했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자, 염 추기경은 “인간 생명은 다수결로 결정될 수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사목교서를 발표하고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은 태아의 생명권을 개인의 자기결정권과 동등한 수준으로 바라보고, 결국 태아의 생명권을 박탈한 것”이라고 개탄했다. 염 추기경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슬프게도 우리 사회는 지금 가장 연약한 인간 생명인 태아를 그 어머니에 의해 죽여도 좋다는 법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면서 “교회가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것은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 생명의 존엄함을 지키기 위한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여성들이 낙태를 고민하지 않도록 출산 친화적인 환경을 만들기 위해 생명윤리학자 이동익 신부의 제안으로, 2020년 생명위원회에 미혼부모기금위원회를 설립했다. 1년에 두 번씩 비공식적으로 미혼부모를 만나 후원금을 전달해왔다. 아울러 그는 올해 1월, 명동 옛 계성여고 운동장에 노숙인 무료급식소 ‘명동밥집’을 마련했다. 또 서울대교구 주교들과 틈틈이 용산구 가톨릭사랑평화의 집에 방문해 쪽방촌 주민들에게 사랑의 도시락도 배달했다.한편, 그가 교구장으로 재임하던 시절의 한국 사회는 2014년 세월호 사건을 겪었고, 2017년에는 대통령의 국정 농단에 따른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겪었다. 2019년 4월에는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려 생명경시 풍조는 더 깊어졌다. 2020년 2월 말, 한국 교회는 코로나 시대를 맞아 사상 초유의 ‘미사 중단’이라는 조치를 내려 국가적 재난 상황에 동참해야 했다. 코로나19는 교회의 많은 활동을 비대면으로 전환했으며, 만남과 친교를 바탕으로 한 신자들의 신앙과 성사 생활은 제약을 받았다. 염 추기경이 교구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 「찬미받으소서」,「사랑의 기쁨」 등의 문헌을 발표했다. 염 추기경이 교구장으로서 마지막으로 발표한 서한은, 생태적 회개의 삶과 창조질서보전을 촉구하는 서한(‘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에 관하여’)이다. 옹기를 구워 팔았던 집안의 후손염수정 추기경은 1943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염한진(갈리스도, 1908~1983)과 어머니 백금월(수산나, 1908~1995) 사이에서 5남 3녀 중 셋째 아들이다. 염 추기경 집안이 천주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한국 교회 초기, 신앙을 받아들인 파주(坡州) 염씨 15세손 의암공 염덕순(요셉, 1768~1827)공 때부터였다. 그의 집안은 4대조인 염석태(베드로, 1794 ~1850)공이 충북 진천에서 옹기를 구워 팔면서 박해 시절을 견뎌냈다. 염 추기경의 어머니는 임신한 순간부터 ‘아들이면 사제, 딸이면 수녀가 되도록 성모님께 바치겠다’고 기도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염 추기경은 염씨 일가에서 첫 번째로 사제가 됐으며, 두 동생(염수완ㆍ염수의)도 사제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cpbc2021.11.17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2021년 부활 메시지“??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되살아나신 것처럼,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 6,4)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주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주님 부활의 은총과 평화가 온 세상 곳곳에, 특히 북한 형제자매들에게도 가득히 내리기를 기도합니다. 성경은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크게 변화하였다고 전합니다. 제자들은 이 만남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두려움과 나약함 때문에 스승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던 베드로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그분을 구세주로 선포했습니다(사도 4,13 참조). 예수님의 죽음으로 큰 슬픔에 잠겨있던 마리아 막달레나는 주님을 뵙고 기쁨에 가득 차서 제자들에게 달려가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마르 16,10 참조). 주님 부활에 의심이 많았던 토마스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비로소 믿음을 회복하였습니다(요한 20,28 참조). 이렇게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제자들은 두려움과 슬픔, 의심을 극복하고 활기차고 용감한 믿음의 사람들로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제자들의 새로운 삶, ‘부활’로 이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도 제자들처럼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라고 하신 대로 우리 곁에 계십니다. 예수님은 성체성사와 다른 성사들 안에, 성경 말씀 안에, 기도하고 찬양하는 신자들 안에 현존하십니다(전례헌장 7항). 또한 주님께서는 “가장 작은 이들”안에도 함께 계십니다. 굶주린 이들, 목마른 이들, 집 없는 이들, 헐벗은 이들, 감옥에 갇힌 이들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마태 25,31-46 참조).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교회 공동체가 부활을 증거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신자들은 교회 밖으로 나아가서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계신 주님을 섬기며 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로 심각한 인명 피해와 정신적 고통,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욱 심해져 더 많은 사람들이 가난으로 고통받을 것이라 예상됩니다. 더욱이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병들게 만드는 불의와 불공정, 부정과 이기심은 국민들 사이에 불신과 분열을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 특히 다수의 젊은이들은 미래의 희망을 잃어버리고 깊은 절망과 좌절의 늪에 빠져버렸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와 사회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책임을 절감하면서 과오와 부족함을 인정하는 겸손함을 지녀야 합니다. 이들이 주님 부활의 은총으로 국민만을 섬기는 봉사자로서 새롭게 거듭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국민들은 지도자들이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까지도 포용해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기를 간절하게 바랍니다. 아울러 지도자들이 개인의 욕심을 넘어서 공동선에 헌신하기를, 그중에도 가난과 절망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며 그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해주기를 기대합니다. 성 바오로 6세 교황님은 “가난한 사람들은 거룩한 교회의 재산”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 사실을 잊으면 결코 주님의 부활을 증거할 수 없으며, 세상에 아무런 희망도 주지 못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개인뿐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더 크게 자라고 성숙되는 것입니다. 지난 춘계 한국 주교회의에서 가난한 국가들의 코로나19 백신 보급을 지원하기 위해 모든 한국 교회가 ‘백신 나눔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여러 차례 “가난한 국가들이 코로나 19 백신 접종의 혜택에서 배제되어선 안 된다”고 우려하신 바 있습니다. 우리 교구도 이번 부활절에 가난한 국가를 지원하기 위한 백신 나눔 운동에 신자는 물론 모든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모두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시복 청원 중에 있는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모범을 따라 오직 주님께만 희망을 두고 부지런히 사랑을 실천합시다. 무엇보다 가장 도움이 필요한 형제자매들,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이, 병든 이, 불의와 불공정으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며, 온 교회가 그들의 아픔을 나누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국가와 사회,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역할과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기도와 사랑의 실천을 한다면 바로 주님 부활의 증거가 될 것이며 우리 사회에 참다운 희망을 줄 것입니다. 주님 부활의 은총과 평화가 온 세상에,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형제자매들에게도 널리 퍼져나가도록 우리 신앙인들의 어머니,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께 전구를 청합니다. 교구장·평양교구장 서리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cpbc2021.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