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년 전 주문모 신부 시복 기원하며 입국~순교 과정 10막으로 구성[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86. 100년 전의 연극대본 「고려치명 주아각백전략」 ▲주문모 신부의 일대기를 담은 연극 대본 「고려치명주아각백전략」의 제8막 첫 부분. 8막 제목은 ‘주 신부가 관아에 스스로 자수하고 심판관이 참수형을 언도하다’라고 쓰여 있다. 1920년대 초 중국 강소성 천주교회의 연극대본「한어기독교진희문헌총간(漢語基督敎珍稀文獻叢刊)」(중국 광서사범대학출판사, 2017) 제1집 제10책은 조선 천주교의 역사를 기록한 책만 따로 묶었다. 1879년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프랑스인 은정형(殷正衡, 1840~1914) 신부가 중경(重慶)에서 펴낸 「고려주증(高麗主證)」 5권 2책과 1900년에 중국인 신부 심칙관(沈則寬, 1838~1913)이 상해에서 간행한 「고려치명사략(高麗致命史略)」 1책이 그것이다. 이 책 끝에 「고려치명 주아각백전략(高麗致命 周雅各伯傳略)」이란 낯선 이름의 책이 실려 있다. 놀랍게도 이 책은 조선에서 순교한 주아각백(周雅各伯) 즉 주문모 야고보 신부의 일생을 정리한 연극 대본이다. 앞의 두 책과 달리 필사본인데다, 작가나 창작 시기에 대한 정보가 나오지 않는다. 그 내용을 살펴보니 「고려치명사략」 속에 실린 주문모 신부 관련 내용에 기초하여, 이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쓴 창작 연극 대본이었다. 원본에 ‘상해 서가회(徐家匯) 천주당 장서루인(藏書樓印)’이란 장서인이 찍혀 있다. 이 연극 대본은 언제, 누가, 왜 지었을까? 제10막 에필로그 부분에 단서가 들어 있다. “현재 로마에서 예비심사를 진행 중인, 조선에서 순교한 몇 분의 주교와 신부의 안건이 예비로 진복품(眞福品)과 성품(聖品) 등등에 포함되어 있다. 다시 여러분께 청하니, 이분 주 신부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는 중국 신부이고, 우리 본성(本省)의 소주부(蘇州府) 사람이다. 하루아침에 진복품에 오르게 된다면 우리 강소(江蘇) 사람에게 영광이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땅히 천주께서 주 신부께 상을 내려주시어 일찍 진복품에 오르게 해주시기를 청해야 할 것이다. 아멘.”로마 교황청에 기해박해와 병오박해 때 순교한 79위의 시복 요청이 받아들여져서 진복품, 즉 복자품에 오르게 된 것은 1925년 7월 5일의 일이다. 윗글에서 이들의 시복 시성을 위한 예비심사가 진행 중이라고 했으니, 이 대본은 1925년 이전 시복시성 재판에 앞서 예비심사가 이루어진 1923년 3월 이후 24년 사이에 창작된 것이다. ‘본성(本省)’이라 말한 것에서 창작 주체가 강소성(江蘇省) 천주교회였음을 알겠고, 목적은 강소성 소주부(蘇州府) 출신인 주문모 신부가 하루속히 복자품에 올라 강소성 천주교회에 큰 영광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으자는 취지였다. 당시 로마에서 진행 중이던 청원에는 주문모 신부 등 신유박해 때의 순교자는 포함되지 않았었다. 재판 신청이 파리외방전교회에 의해 주도되었고, 조선에서 순교한 외방전교회 출신 프랑스 신부의 시복시성에 초점이 놓였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는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심사 진행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하루라도 빨리 중국인 복자와 성인을 내야겠다는 열망도 얼마간 작용했다. 당시는 주문모 신부가 순교한 지 120여 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중국 강소성 신자들은 애초에 주문모 신부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다가, 「고려치명사략」을 보고 주문모 신부가 강소성 소주부 출신이란 사실을 처음 알았고, 그의 순교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때 마침 조선 교회의 순교자 시복 재판 소식이 중국 교회에 알려졌던 모양이다. 이 명단에 주문모 신부가 빠진 것을 보고 그의 시복을 위한 기도를 요청하게 되었던 것이다. 10막으로 구성된 스케일 큰 무대 주문모 신부의 일대기는 장장 10막으로 펼쳐지는 규모가 큰 무대였다. 매 막마다 서두에 8자 또는 7자 2구로 내용을 간추렸고, 뒤이어 각색(脚色)이라 하여 등장인물을 소개했다. 이후 지문과 대사, 그리고 방백으로 줄거리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제1막부터 10막까지 제목은 이러하다. ①조선 사람이 북경에서 주교를 찾아뵙고, 서신을 읽은 주교가 손님을 머물게 하다(高麗人北京見主敎, 念書信主敎留客人) ②윤유일 바오로가 답장을 지니고 조선으로 돌아오고, 권일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주교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다(尹祿帶信回高麗, 權方濟樣樣聽主敎) ③제상(祭箱)을 보내오자 교우들이 크게 기뻐하며, 빨리 신부를 보내 줄 것을 천주께 기도하다(送祭箱敎友大歡喜, 求天主快賜神父來) ④주 신부가 처음으로 조선에 들어오자, 여러 교우가 새 신부를 환영하다(周司鐸初次進高麗, 衆敎友歡迎新神父) ⑤주 신부가 서울에 머물며 조선말을 배우고, 여러 교우가 나아가 주 신부를 뵙다(周司鐸住京學方言, 衆敎友晉謁周司鐸) ⑥최인길 마티아가 주 신부로 가장하고, 주 신부는 잠시 강완숙의 집으로 피하다(趙瑪弟假裝周司鐸, 周司鐸暫避姜姓家) ⑦주 신부가 위험을 피할 뜻이 있었으나, 천주의 뜻으로 다시 조선에 돌아오다(周司鐸有意避危險, 天主意仍舊回高麗) ⑧주 신부가 자수하여 아문에 이르니, 심판관이 참수형으로 판정하다(周司鐸自投到衙門, 審判官判定斬首刑) ⑨사형집행장에서 주 신부가 순교하자, 큰 우레와 비가 쏟아지는 변고가 일어나 사람들이 놀라 깨닫다(押法場周司鐸致命, 大雷雨天變驚醒人) ⑩주 신부가 순교한 영광을 조선 사람들은 지금껏 잊지 않고 있다(周司鐸致命光榮, 高麗人至今不忘)연극은 이렇듯 1790년 1월 윤유일이 북경성당으로 구베아 주교를 찾아가는 장면에서 시작하여, 귀국 후 조선 교우들의 환호와 주문모 신부의 입국, 이어 실포 사건과 피신, 자수, 순교에 이르는 도정을 장면별로 간추려 표현했다. 대본은 조선 천주교 순교사를 정리한 「고려치명사략」의 내용을 바탕으로 했다. 전체 23장 중 특별히 제4장 ‘중국 신부가 처음으로 조선에 들어가다(中華司鐸首進高麗)’와 제5장 ‘주 신부가 주님을 위해 순교하다(周司鐸爲主致命)’에 나온 이야기가 주축을 이루었다. 제상(祭箱) 속에 담긴 성물현재 남아 있는 연극 대본은 원본이 흐리고, 중간중간 글자가 많이 탈락되어 판독이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다. 여기에 더해 지역 사투리가 강하게 반영된 백화문의 본문은 ‘로()’나 ‘로사()’, ‘탁()’ 등 지금은 쓰지 않는 생경한 옛 말투와 표현이 그대로 남아 있어 접근이 더 어렵다. 그럼에도 내용 중에 눈길을 끄는 대목이 적지 않다. 이승훈의 배교 사실을 강조해서 기록하고, 그의 배교 이후 신자들의 공의로 권일신을 새 주교로 세웠다는 이야기, 그리고 권일신이 자신의 이름으로 북경 주교에게 편지를 보낸 이야기 등이 나온다. 특별히 이류사(李類思)란 인물이 여러 차례 비중 있게 등장하는데 그는 바로 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이다. 또 제3막에 보이는 윤유일이 주교에게서 받아온 제상(祭箱)에 담겼다는 내용물 대목도 흥미롭다. “다만 제상(祭箱) 뿐이지만 미사 때 신부가 입는 장백의(長白衣)와 성삭(聖索:허리띠)과 영대(領帶: 목띠), 성석(聖石), 성경, 경문 카드(經頁子), 미사주(彌撒酒), 성체(阿斯底亞: 아스티아, 성체의 라틴어 Eucharistia의 음역)를 만드는 집게[鉗: 제병기], 복사가 입는 단백의(短白衣), 미사 때 쓰는 성작(聖爵)과 성반(聖盤), 성체(聖體)를 줄 때 쓰는 성합[聖爵], 성체(聖體)가 빛을 내며 색색을 두루 갖추고 이지러진 데 없는 성광(聖光)이 들어 있었다.”사실 윤유일이 제상과 미사 물품을 받아온 것은 1차 북경 방문 때가 아닌, 1790년 9월 2차 방문 때였다. 대본에서는 이를 굳이 구분하지 않았다. 달레는 이때 윤유일이 성작 1개, 미사경본 1권, 성석 1개와 미사성제 거행에 필요한 모든 것을 받아왔다고만 썼다. 이 물건들은 이때 북경성당에서 새로 세례를 받게 된 성이 ‘오씨’ 또는 ‘우씨’였을 수행 관리가 왕명으로 사가지고 가는 물품이 담긴 상자 속에 같이 담겨 국경을 통과했을 것이다. 제8막 끝에 1801년 4월 19일에 사형 언도를 받은 뒤, 신부의 최후 진술은 이렇다. “대노야께서 저에게 참수의 큰 은혜를 내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귀국에 와서 전교하며 신자들에게 권면한 종지(宗旨)는 하루라도 편안히 죽고 잘 마침을 얻기를 기도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이제 선종할 날짜를 판정해 주시니, 제가 얼마나 기쁘고 감사하온지요. 천주께서 저처럼 비천한 죄인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마침내 순교의 영광이란 큰 은전을 상으로 내려주시니,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교중(敎衆)에게 청하노니 주님을 찬미하고 주님의 이름을 찬미합시다.” 이렇게 주문모 신부는 순교의 영예로운 화관을 썼다. 이어지는 제9막 끝, 참수 장면의 묘사를 보자. “망나니가 귀에다 화살을 꽂더니, 주 신부를 끌고 세 차례 돌게 하고는 돌아 세워 한가운데로 오게 한다. 주 신부는 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드리워 형 집행을 기다린다. 망나니가 칼을 뽑아 막 목을 베려 하자 우르릉 꽝하는 소리가 난다. [막이 내린다] 갑자기 비바람과 우렛소리가 들리며 번갯불이 번쩍번쩍한다.”참수 죄인의 귀에 화살을 아래위로 꽂는 것은 목을 자른 뒤 화살 끝에 끈을 묶어 도르래로 머리를 달아 올려 장대 끝에 매달기 위함이었다. 목이 잘리는 장면은 보여주지 않은 채 막을 내리는 것으로 대신하고, 음향과 조명 효과로 대미를 장식했다. 전체 10막으로 구성된 이 연극 대본은 주문모 신부의 입국에서 순교까지의 과정을 장엄하게 담아냈다. 이제껏 이 자료는 상해 서가회(徐家匯) 장서루 속에 보관되어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가, 2017년에야 처음 공개되었다. 주문모 신부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 중국 강소성 신자들이 신부의 시복 청원을 위해 연극 대본을 만든 지 정확하게 90년 뒤의 일이다. 현재 주문모 신부의 시성 재판이 진행 중이고, 2022년은 한중 수교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주문모 신부를 포함한 동료 순교자들의 시성 축원을 위해 이 연극 대본이 양국에서 무대에 올려지는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된다면 실로 멋진 일이 될 것이다.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 cpbc2022.02.09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16주일 -주님을 찾는 간절함](//cpbc.co.kr/CMS/newspaper/2021/07/rc/805858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16주일 -주님을 찾는 간절함 함승수 신부 선배 신부님 중에 언제나 열정적인 모습으로 최선을 다해 사목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청년들에게 더 좋은 것들을 많이 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밖에 없지요. 한정된 예산으로 목표를 달성하자니 무슨 일이든 자기 손으로 직접 해결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여러 분야에 능숙해졌습니다. 철판 볶음밥 만들기의 달인, 더치 커피 만들기의 달인, 원두 로스팅의 달인 등 별명도 여러 가지입니다. 정성과 진심으로 신자들을 대하니 많은 분이 그 매력에 흠뻑 빠져들고, 신부님이 떠나실 때가 되면 많은 분이 아쉬워하십니다. 그 중에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다고 합니다. 정든 본당에서 마지막 미사를 마친 후 차를 타고 새로운 임지로 출발하는데, 주일학교 아이들 몇 명이 “신부님 가지 마세요” 하고 울면서 한참을 그 차를 쫓아 뛰어오더랍니다. 아이들의 눈물 어린 진심이 신부님으로 하여금 새로운 임지에서도 열정을 가지고 사목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겠지요.오늘 복음은 ‘하느님 나라’ 선포의 사명을 받고 파견되었던 사도들이 예수님께 돌아와 결과 보고를 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많은 사람에 치여 제대로 밥조차 먹지 못하는 모습에 안타까워하시며, 휴식을 위해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이동하시지요. 그러자 많은 사람이 예수님 일행이 떠나는 것을 보고 육로로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목적지에 도착해 기다립니다. 갈릴래아 호수는 둘레가 53㎞, 동서의 너비가 11㎞에 달할 정도로 큰 곳입니다. 그 호수의 둘레를 달려 배를 타고 건너가는 예수님 일행보다 먼저 반대편에 도착하려면, 25㎞에 달하는 거리를, 배보다 2.5배 이상 빠른 속도로 달려야 합니다. 예수님이 다른 고을에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들을 떠나셔야 한다는 사실이 슬프고 아쉬워 조금이라도 더 그분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에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달린 것입니다. 신부님이 탄 차를 울면서 쫓아 달렸던 아이들과 같은 마음이겠지요.예수님은 그들을 가엾이 여기십니다. 외딴곳에서 쉬려던 당신의 계획을 뒤로 미루고 그들에게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십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라는 성모님의 순수한 믿음이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여 ‘첫 기적’의 순간을 앞당긴 것처럼, 예수님과 함께 있고 싶은 간절하고 순수한 마음이 그분의 마음을 움직여 당신 계획을 바꾸게 한 것입니다. 그에 비하면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께 보여드리는 믿음의 자세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때엔 힘들게 예수님을 쫓아다녀야만 먼발치에서라도 그분을 뵐 수 있었지만, 지금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미사 중에는 성체로, 성경에서는 말씀으로, 기도 중에는 마음의 소리로 만날 수 있지요. 그런데 우리가 주님을 찾는 ‘간절함’이 우리가 누리는 ‘간편함’만큼 크다고 할 수 있을까요? 신앙생활이무미건조하게느껴진다면,내마음에간절함이없기때문입니다.“사랑하면알게되고알게되면보이나니그때보이는것은전과같지않으리라”고했습니다.주님을간절히찾는 만큼 그분을 더 사랑하게 되고, 주님을 사랑하는 만큼 마음의 눈이 열려 ‘사랑의 신비’를 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상대방을 향한 그리움이 클수록 사랑이 더 깊어지고, 사랑이 깊어질수록 서로에 대한 신뢰가 더 단단해집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며 그분과 더 깊은 일치를 이루려면 주님의 뜻을 간절히 찾고 구하며 뒤를 따라 달려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사랑의 섭리를, 구원의 신비를 깨닫게 될 것이고 그 깨달음이 깊어지는 만큼 삶의 기쁨과 행복들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평화신문2021.07.13
![[제8회 신앙체험수기] 대상/ 하느님 아버지,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cpbc.co.kr/CMS/newspaper/2021/02/rc/796911_1.0_titleImage_1.jpg)
[제8회 신앙체험수기] 대상/ 하느님 아버지,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이이구(바오로, 전주교구 대야본당) 회회일러스트=문채현 거울 속에 비쳐진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과거의 쓰디쓴 술잔과 현재의 달콤한 술잔에 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지나간 시간들을 생각하면, 어떻게 지금의 내가 이 시간 안에 살고 있는지 멍한 가슴입니다. 저는 약사로서 서울에 있는 제약회사에 근무하였습니다. 그 시절은 아주 순탄한 생활이었습니다. 새로운 신약을 연구하는 개발 부서에서 일하였으며, 그 업무에 재미를 느끼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여 어느덧 개발부장이라는 자리에까지 올라가 있었습니다. 직장의 꽃이라는 이사를 바라보는 자리였습니다. 정말 삶의 보람을 느끼며 자신감 넘치는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자란 만큼 부모님은 연로하시어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을 자식 중에 누군가는 모셔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저희 형제가 칠남매인데 모두 서울에 살고 있었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삶의 터가 고정되어 있어 움직일 수 없지만, 나는 약국이라는 자유업이 있어 내려와 지금 항상 감사하며 사랑하는 헬레나와 결혼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남들이 일하고 결혼하였다고 할 정도로 공부하고 일하는 것이 즐거웠으며 세월 가는 줄을 몰랐으므로 그 당시로는 늦은 나이인 36살에 결혼하였습니다. 현재 저의 나이는 64세 닭띠입니다.그렇게 고향에 내려와 부모님을 모시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여, 부모님이 사시는 고향 집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약국을 개설하고 자주 부모님을 찾아뵙고 살았습니다. 그러한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사랑스러운 딸과 아들도 주시어 부모님께서 안아주시도록 하여 주시었습니다. 손자 손녀를 안고 부모님께서는 행복해하셨습니다. 그러나 행복한 삶의 시간은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객지 생활을 하다가 만난 어릴 적 친구들이 반가워 많은 친구를 만났고 허심탄회 하는 마음으로 같이 어울려 살았습니다. 그런데 모든 마음을 털어놓고 어울렸던 친구 중의 한 사람에게 보증을 서준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믿었기 때문에 보증을 서준 것인데, 무려 15억이라는 채무를 나에게 안겨주고 사라졌습니다. 그때부터 나의 삶은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으며, 모든 재산을 잃고 그로 인하여 부모님도 한 해 걸러 돌아가시어 부모님을 모시러 왔다가 부모님의 인생을 무너뜨려 버렸습니다. 살아갈 수 있는 자리가 없어 부모님이 사시던 시골의 고향 집으로 가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그 위기를 모면하기 위하여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하였지만, 대부분 친구가 외면하여 서서히 멀어지고 한 친구만 도움을 주었습니다. 흩어져 있는 개인의 작은 빚이라도 청산하고 시간을 가지고 해결할 방법을 찾아보라고 자신도 어려운 가운데 상당의 돈을 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였지만, 그 모든 노력은 세상의 틀 밖으로 벗어나 버렸습니다.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그 친구의 부채 값으로 모자란 것이지만 나머지 집과 땅을 이전하여 주고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떠나면 우리 모든 가족이 거리의 노숙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사정하여 살고 있는 집에서 월세로 살게 하여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그렇게 어둠 속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요즈음 세상에 쌀독에 쌀이 없으며 한겨울에 난방할 여유가 없다면 믿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삶이 무엇인가? 가정을 이끌어갈 경제적인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 상황에서 무엇을 다시 하여야 하는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살면서 하여 온 것들이 약학 공부밖에 없는 나에게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르고 이제 정말 하루 생활할 양식마저 동이 나고 말았습니다.그래서 지난날 약국 할 때에 자주 만났던 다른 친구를 찾아가기 위하여 전화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여러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하여 전화했지만 아무도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살면서 내 나름대로 베풀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시간이 없다거나 바쁘다는 핑계뿐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인력사무소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고 할 줄 아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며칠 공을 치다가 모텔에서 낡은 침대를 교체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온종일 무거운 침대를 끌고 땀을 흘렸는데 손에 들어온 돈은 5만 원이 고작이었습니다. 지난날 50만 원도 하찮게 쓰던 때를 생각하니 허무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며칠은 지낼 수 있는 돈이었으므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자꾸 헛웃음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도 오래 하지 못했습니다. 체구도 작고(키 165cm, 몸무게 56kg) 힘이 별로 세지 않은 몸으로 육체 노동을 하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는지도 모릅니다. 결국, 지탱하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습니다.그러던 중 이러한 소식을 전해 들은 몇몇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그들도 생활의 어려움으로 경제적인 도움은 줄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에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라는 위로의 말을 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고 갔습니다. 이러한 것이 절망이라는 것인가? 너무나 큰 빚이 커다란 산이 되어 짓눌러 오는 상황에 헤쳐날 수 있는 희망은 바늘구멍만 한 빛마저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님께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가질 수 있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할 믿음의 빛마저 점점 사그라지고 있었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면 파란 하늘이 까맣게 보였습니다. 너무나 허무하여 집안에서 가장 고운 줄을 골라 소주병을 들고 산에 올라갔습니다. 따스한 봄날, 줄을 나무에 걸고 마지막을 준비할 때 발아래 고사리가 있었습니다. 살포시 오그린 아기 손이 눈길을 끌어당겼습니다. 조용히 내려와 하나를 꺾는데 그 옆에도, 또 그 옆에도 골을 이루어 피어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손안에 담고 보니 새로운 세상이 보였습니다. 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이 있는데 왜 그것을 버리려고 하는지 하는 물음이었습니다.그리고 눈물 속에 잠겨있던 마음속에 큰 울림으로 한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바오로야, 이 세상에는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너도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딸, 그리고 성당에 너를 보고 싶어 하는 형제자매님들이 많단다.” 많은 얼굴이 눈물방울 위로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고사리 한 웅쿰을 들고 산을 내려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아내에게 주고, 예수님 십자가고상 앞에 엎드렸습니다. 돌아보니 미사를 드리지 못한 것이 몇 달을 넘어 오래되었었습니다. 엎드려 있는 가운데 다시 말씀이 들렸습니다. “너를 본 지가 오래되었다. 너는 문을 두드리지도 청하지도 않았다. 그러한데 어떻게 너의 사정을 알고 구원의 손길을 내밀 수 있겠느냐?”다음날, 미사가 없는 시간에 다니던 대야성당에 나가 성체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조배를 드렸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느낄 수 없었습니다. 은은하게 비쳐오는 성체의 불빛만이 나의 모든 것을 감싸주었습니다. 숨결이 부드러워지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가운데 말씀이 들렸습니다. “믿음이 약한 자야, 믿어라. 그리하면 구원을 받을 것이다.” 오랜만에 평온한 얼굴을 한 나의 얼굴을 본 아내는 무슨 일이 잘못되어 내가 이상해진 것은 아닌가하고 불안해하였습니다.그러던 며칠 뒤에 의약품 도매상을 하는 친구가 전화가 왔습니다. 신용불량자일지라도 약사의 사정으로 약국을 하지 못할 때 대신해서 단기간 근무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파산되고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러한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한 가닥 희망이 비쳐왔습니다. 그리하여 친구의 소개로 한 달에 며칠 하는 단기 약사를 이곳저곳에서 할 수 있게 되어 아내에게 최소한의 생활비를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한동안 드리지 못하였던 미사를 참여하게 되었고 다시 전에 하던 레지오와 성가대, 작은형제회와 사랑 나눔 봉사에 참여하며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성당에서 신앙 공동체 생활을 하면 세상 모든 걱정거리가 사라지고 편안해졌습니다.그러한 생활이 2년여 지난 후 사목회 임원으로 부름을 받아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떠돌이 약사 생활이지만 수중에 돈이 떨어질 때쯤이면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듯 어디선가 일자리가 생겨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일이 이어질 때마다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도 이 세상에 만나가 내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분의 소개로 약국에 정식 직원으로 근무약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새로운 불행의 불씨를 낳는 길이었습니다. 한곳에 오래 머물러 있었으므로, 세상에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채권자들은 나를 쫓아다녔습니다. 결국, 다시 떠돌이 약사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매일 집에 찾아오고, 떠돌이로 이 약국 저 약국 근무하는 데까지 어떻게 알았는지 찾아왔습니다. 그래도 인력사무소 소개로 막노동하는 것보다는 좋은 환경이므로 어떻게 하든지 생활을 이어가려고 노력하였습니다.아침에 일어나면 주님께 오늘 하루만이라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말고 조용한 하루가 되어 주기를 기도드렸습니다. 미사에도 가능한 한 빠지지 않고 사목회를 비롯하여 단체 활동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모든 살림살이에 대한 압류 통지서가 날라 왔습니다. 그러나 그 일에 대응할 아무런 능력도 없는 저에게는 처분만 바라는 속수무책이며 막막한 시간일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결국 모든 집안 살림살이를 압류당하였습니다. 텅 빈 집안의 공간을 바라보는 순간 모든 것을 끝내버려야 하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나를 버리고 달아났던 친구가 가져갔던 오천만 원 상당의 가계수표가 부도가 나 고발당하여 형사처벌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검사가 저의 사정을 헤아려 약식 기소로 벌금형으로 하자고 하였지만, 그것마저 감당할 수 없는 형편이었으므로 재판에 회부되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습니다.그 해 한 해가 서서히 저물가는 10월, 딸이 수능시험을 보아야 하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딸의 삶의 진로도 생각하여주지 못하는 처지…. 아무 말을 못 하였습니다. 목구멍에 커다란 돌덩이가 꽉 막혀 숨구멍마저 막아버렸습니다. 딸의 방에서 문틈으로 흘러나오는 딸의 흐느낌이 눈가를 흘러 가슴에 고드름처럼 맺히는 차가운 얼음뿐이었습니다.그렇게 다시 산에 올랐습니다. 마지막 순간,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 없어 하느님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리고 울부짖었습니다. “저의 죄가 많은 줄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그 죄를 깨닫고 속죄하며, 주님께 의지하고 살아가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슨 일입니까? 아직도 씻어지지 않은 죄가 많기 때문입니까? 제가 그렇게 죄 속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다고 생각하시면, 세상의 먼지처럼 흩날려 버리시어 흔적조차 지워버리십시오. 그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워 이렇게 저 스스로 모든 것을 마치려 합니다.” 그렇게 밧줄을 손에 잡고 얼굴 앞에 들고 있는 순간, 살아왔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가 터질 것 같은 가슴 속으로 다가오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그러나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온 생각을 덮어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고통에 싸여 있으면서도 아버지 뜻대로 하시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어떻게 그리하실 수가 있을까? 그러면 나의 고통은 무엇일까?요즘 세상에 비추어보면 예수님께서는 얼마든지 호의호식하실 수도 있었는데, 왜 예수님께서는 그 좋은 것을 모두 버리시고 십자가의 고통을 짊어지고 죽음의 길로 가셨을까? 레지오 회합 때, 하느님께서는 이 죄 많은 세상을 노아의 방주처럼 멸망시켜버릴 수도 있으시지만, 이 세상을 너무 사랑하신 나머지 마지막 아드님까지 보내시어, 그 많은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속죄 제물로 바치게 하셨다는 수녀님의 훈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삶 중에 일어나는 고통과 시련은 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더 굳고 단단한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단련시키는 과정이라고 하신 말씀도 함께 떠올랐습니다.그렇다면 지금의 이 시련과 고통은 무엇인가?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교만과 자만의 삶이었습니다. 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하여 재물의 허세와 위선으로 허황된 포장을 하고 살았던 인생이었습니다. 그저 죄로 흙탕물이 된 얕은 물 한 모퉁이에서 제 잘난 멋에 팔딱거리는 작은 물고기에 불과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슴 한편에서 달그락거리며 돌덩이들이 굴러 내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시원한 비가 내려 뜨거워졌던 마음의 불을 꺼버렸습니다. 어느덧 나는 묵주기도를 하며 천천히 산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산에서 내려왔고, 예수님을 찾아,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성경 필사를 함께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농사도 시작하였습니다. 고향을 떠나기 전에 틈틈이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와드렸던 기억을 되살리고, 동네 이장님의 도움을 받아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하면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일을 하였습니다.그리고 다시 약국 일도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남보다 일찍 일어나 기도와 성경 필사를 하며 평일에는 약국으로 출근하고, 토요일과 주일날 미사 후 남는 시간에 농사일을 하였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아내 헬레나는 화를 내거나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나를 도와주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나와 같은 상황이면, 대부분 여자는 화를 내고 짜증을 내며 어디론가 떠나버렸을 텐데, 시간이 나면 조용히 성당에 나갔다가 돌아와 나를 도와주었습니다. 아마도 성체조배를 하며 기도드리고 왔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생각 중에 나의 아내 헬레나의 삶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가족의 모든 식사를 할 수 있게 하면서도, 초등부 교리교사를 하면서 어린아이들에게 항상 밝은 모습으로 웃고 있었습니다. 화를 내지 않고 나를 바라보는 모습이 한순간 따가운 가시처럼 다가왔지만, 바라보면 볼수록 죄책감에 사로잡힌 나의 가슴을 찌르고 있던 모든 것을 녹여 사랑으로 이끌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잠든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손이라도 잡아주려고 다가갔는데 손과 발에 딱딱한 각질이 뒤덮고 있었습니다. 조용히 손을 내려놓고 달밤에 담배 한 대를 길게 피웠습니다. 완전히 망가진 나를 버리지 않고 흩어진 나의 마음을 추슬러 주며, 성당 안에서 어린아이와 어울려 밝게 살고 있다는 것을 나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인내하며, “주님의 말씀 안에서 고통 중이라도, 사랑하면 이렇게 살 수 있어요.” 하고 하느님 나라의 예시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찾지 못하였던 따스한 사랑이었습니다.그 사랑을 등에 업고 다시 약국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함에도 생활은 더 악화되었습니다. 또다시 세상에 내가 드러날수록 채권자들은 더욱더 기승을 부렸습니다. 이 약국 저 약국으로 방랑자와 같은 떠돌이 약사 신세를 다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옥 같은 세상에 떨어졌지만, 주님께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면 무엇인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희망하며 살아왔는데, 세상의 무거운 짐은 나의 어깨를 더욱더 무겁게 짓눌러 왔습니다. 온몸의 힘이 빠지고 삶의 의욕이 점점 시들어갔습니다. 결국, 다시 방 안에 갇혀 세상을 한탄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그렇게 절망 속에 술독에 빠져 헝클어진 머리와 더부룩한 수염으로 몰골이 흉악한 저에게, 어느 날 수녀님께서 찾아오시어 손을 잡아주시며 기도해주시고, 욥기의 이야기를 하시며 하느님께서는 절대 나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니 용기를 가지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떤 형제님은 하루가 멀다고 아침 새벽에 찾아오시어 “바오로야 죽었냐? 살아 있느냐?”하고 찾아와 문을 두드리시고, 어떤 형제님은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전화하면, 자다가도 일어나 찾아와 위로의 술잔을 기울여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감사함으로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그리하여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으며, 멈추었던 성경 필사도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시간이 되는대로 성체조배를 하였으며, 천호성지와 나바위성지, 해미성지, 미리내성지, 숲정이성지를 비롯한 많은 성지를 찾아 순례하였습니다. 추운 겨울날 눈 덮인 미리내 성지를 돌아보고 있는데, 수녀님께서 나의 이야기를 듣고 한 곳을 찾아보라며 안내하여 주셨습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십자가에서 내린 예수님을 안고 계신 피에타상이 모셔져 있는 기도 자리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그 자리에서 어떤 고통도 슬픔도 나에게는 한낱 먼지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순교자가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칠 때의 고통을 생각하니 가슴이 떨렸습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계신 예수님을 생각하니 나의 손바닥과 발등에 통증이 왔습니다. 이러한 날들이 하루하루 쌓여가자 나를 망가뜨린 원수를 찾아 죽이고 싶었었는데 그 사람을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그 사건이 일어난 것은 2004년입니다. 성경 통독을 하고 필사하며 묵상하면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용서하였지만, 현실의 빚은 끊임없이 나를 쫓아왔습니다. 모든 재산을 정리하여 내놓았었지만, 미처 갚지 못한 빚이 이자가 불어 7억이나 되었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이것을 정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최후의 수단으로 파산신청을 하였는데 내가 약사라는 전문직이기 때문에 그때까지 면책받은 판례가 없다고 하며 난색을 하였습니다. 모든 것은 주님께 매달려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부터 새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하여 충실하게 미사를 드려야 하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나를 위로하여 주셨던 수녀님과 형제자매님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미사 전에 밝게 웃으며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꾸준하지 못하여 오랫동안 끌어오던 성경 필사를 마침내 5년 만에 마쳤습니다.그러던 어느 주일날 미사 중에 신부님께서 성체 축성기도를 하실 때 눈을 감고 기도를 듣고 있었는데 따뜻한 기운이 나를 감싸주었습니다. 의아한 마음에 눈을 들어 주위를 돌아보니 모든 형제자매님의 모습이 천사들의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앞에도 뒤에도 옆에도 천사들이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두렵고 떨리어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그렇게 미사가 진행되고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 형제자매님의 미소가 너무도 아름다웠습니다. 나도 밝게 웃으며 인사하였습니다. 그날 미사를 드리고 성당을 나설 때 구름을 타고 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성탄절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기적같이 모든 빛을 탕감해주는 면책 판결이 내렸습니다.면책이 판결된 해가 2012년입니다. 면책 판결이 난 후에는 채권 추심을 당하지 않고 자유롭게 장기간 근무약사로 일할 수 있었으므로 안정된 삶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아침기도와 삼종기도를 드릴 때 감사의 눈물이 오랫동안 이어졌습니다. 모든 일에 힘과 용기가 생기고 더욱더 열심히 하게 되었고 그와 더불어 통장에도 조금씩 돈이 쌓여갔습니다. 그렇게 5년이 지난 어느 날, 집과 땅을 넘겨주었던 친구가 집문서와 땅문서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자신도 한때 어려워 넘겨준 재산을 처분하려고 하였지만, 그렇게 하면 내가 오갈 데가 없을 것 같아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처음 빚진 금액만 지불하면 모든 재산을 넘겨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나 자신이 간절히 바라던 것이었는데 시세에 따른 자금이 부족하여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그 친구가 해결하여 준 것입니다. 친구의 손을 잡고 한동안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그리고 2019년에 면책자 신용불량이 해제되었습니다. 2020년 올해는 나에게는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지나간 청춘을 돌아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은총을 받았습니다. 젊은 시절 교만과 자만으로 죄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방탕한 생활을 한 나를 새롭게 하여 주시기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사랑의 채찍을 드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 중에 많은 형제자매님과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게 하여 주시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하여 주셨습니다. 이 고난의 시간이 있기 전에 자주 다투고 싸웠던 아내 헬레나…. 비록 가진 재산은 별로 없지만, 오랜 시간 동안 고통 속에서도 나를 버리지 않고 같이 견디며 살아준, 저희 아내 헬레나와의 사랑이 부서지지 않고 이제는 더욱 단단해졌습니다. 성경 통독을 하게 하여 주신 주님의 은총이 원수를 용서할 수 있는 마음과 용기를 주시어 저와 가정을 평화롭게 하여주셨습니다. 주님의 기도에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기왕에 주실 것이면, 일 년 치, 십 년 치를 한꺼번에 주시지 왜 하루분만 주십니까?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뜻은 말씀 안에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면, 세월이 지난 후에 바라던 것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몸과 마음이 이겨낼 수 없는 어려운 일이 닥치면 헤매지 말고 성경 말씀을 가까이하며 기도하면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행복과 고난, 그리고 평화도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입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 황혼기에 접어들었지만, 성모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찾으셨을 때, 엘리사벳 태중의 아기가 성모 마리아의 목소리를 듣고 기뻐 뛰듯이 나의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하느님의 사랑이며 영원한 구원자이신 목소리께서 나의 마음이 기쁨으로 충만하여 뛰어놀게 하십니다.지난날, 나에게 주어진 시련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며 그 고통의 굴레에서 풀어주신 것 또한 하느님의 뜻입니다. 기도드립니다. “하느님 아버지, 저의 안과 밖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을 뜻대로 하소서,” 아멘. 전주교구 대야성당 이이구 바오로 cpbc2021.02.17

풍토병에 걸린 맏형 최방제, 사제의 꿈 이루지 못한 채 하늘나라로[신 김대건·최양업 전] (13)동료를 잃는 아픔 최방제가 1837년 11월 27일 마카오 극동대표부 조선신학교에서 선종했다. 조선 신학생의 맏형인 최방제의 사망 원인과 그의 무덤을 찾는 것은 한국 교회 사제 양성 역사를 정리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사진은 마카오 가톨릭 신자 무덤인 성 미카엘 공동묘지로 현지 순례 안내인들이 이곳에 최방제가 묻혀 있다고 추정해 설명하지만 아무런 근거가 없다. 1837년 11월 27일 최방제(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학생이 마카오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에서 선종했다. 김대건과 최양업, 그리고 조선신학교 교장이며 스승인 칼르리 신부가 그의 임종을 지켜봤다. 최방제의 죽음은 김대건과 최양업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다. 둘은 맏형이면서 동기인 최방제를 늘 의지하며 생활했다. 기둥처럼 든든하던 형이 갑자기 죽었으니 김대건과 최양업의 슬픔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최방제는 아버지 최한지(야고보)와 어머니 황 안나 사이에서 4남매 중 막내로 충청도 홍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경주 최씨 가문의 양반으로 최양업과 친척으로 알려졌다. 누나는 동정녀로 살았고, 큰형과 둘째 형 최형(최치장이라고도 불림)은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했다. 그는 1836년 모방 신부로부터 신학생 후보로 선발됐다. 신학생 서약서에 그의 이름이 가장 먼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최양업, 김대건과 동년배로 생일이 가장 빠르거나 최소한 한 해 먼저 태어났을 것으로 짐작된다.(가톨릭평화신문 제1614호 2021년 5월 23일 자 ‘신 김대건 최양업전’ 6회 참조)최방제는 세 명의 조선인 신학생 가운데 가장 신심이 깊고, 모범적이었고, 똑똑했다. 칼르리 신부가 기록한 최방제에 관한 평과 그의 임종 모습을 간략히 정리했다. 교장 칼르리 신부가 기록한 신학생 최방제와 그의 임종 “세 명 중에서 믿음이 더 강했고, 신심이 더 깊었고, 앞으로 이 어린 교회의 가장 아름다운 존재로 촉망되던 학생이 꽃다운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하느님의 헤아릴 수 없는 심판 앞에서 깜짝 놀라고 아연실색해졌습니다.…그는 자기 본분에 충실했을 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에도 주위 사람들을 감탄시켜 마지않았을 정도로 열심히 했습니다. 나의 수업을 받는 동안 그는 늘 완전한 순종을 나타냈습니다. 그의 효심은 모든 불편과 속박을 초월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가 라틴어 공부에서 보인 진전은 만족스러웠습니다. 식사 동안 그는 성경을 알아듣게 낭독했습니다. 이렇게 벌써 우리가 그에게 가장 큰 기대를 걸게 되었을 때, 지난 달(1837년 10월)경에 위열병에 걸렸습니다. 그 발작이 처음에는 약하고 눈에 띄지 않았으나 갑자기 그 증상이 악화됐습니다. 갑작스러운 기력의 쇠약과 극도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용기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병을 두려움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오히려 그는 흔히 있는 것처럼 임종에 대한 잘못된 판단에서 마지막 성사를 받지 못하지나 않을까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처음으로 위험이 다가오자 교회의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리고 성사를 아주 열심히 받았습니다. 예절이 끝난 후 나는 눈물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하비에르는 나의 손을 잡고 ‘Gratias Patri’(감사합니다. 신부님)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는 십자고상에 입을 갖다 대고 ‘착한 예수! 착한 천주!’를 열심히 되풀이했습니다. 병세의 악화로 불안해진 우리는 그를 살려 주시도록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조선 땅의 이 첫 결실은 하늘나라를 위해 성숙되어 있었습니다. 11월 26일에서 27일 밤중에 그의 병상 곁에서 바친 밤기도와 아침기도가 끝나자 나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숨결이 점점 곤란해지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즉시 다른 두 학생과 함께 임종 기도를 바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마지막 사죄경을 하고 전대사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이어 우리의 성스러운 젊은이는 그의 하느님 곁으로 가기 위해 조용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비탄에 잠긴 조선 선교지가 그의 첫 주교의 입국을 고대하고 있을 때 조선 국경에서 선종했습니다. 성직에 예정되었던 이 첫 조선인은 8개월간의 계속된 위험을 극복하고 오래지 않아 그의 조국의 사도가 되기 위해 그의 생애를 빠르게 진행시키고 있을 때 돌연 사망했습니다. 하느님의 이 전능하신 뜻의 안배를 찬미합시다. 우리 인간의 생각대로 조선 선교지를 번영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모든 것을 우리에게서 빼앗았고, 당신의 전적인 개입을 위해 성경 말씀대로 ‘하느님 홀로 이 모든 일을 하셨다’고 되풀이하지 않을 수 없게 하셨습니다. 그분의 영광이 더욱 드러나기를 기대합니다.”(칼르리 신부가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 교장 뒤브아 신부에게 보낸 서한 중에서, 한국교회사연구소 「성 김대건 신부의 활동과 업적」 81~83쪽, 청주교구 「최양업 신부의 전기 자료집 2집 스승과 동료 성직자들의 서한」 61~67쪽 참조)최방제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이제 최방제의 죽음에 관해 하나씩 풀어보자. 먼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은 무엇일까? 이다. 칼르리 신부는 앞의 글에서 최방제가 ‘fievre gastrique’로 숨졌다고 했다. 이를 한국교회사연구소가 펴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서한」에는 ‘열병’으로, 「성 김대건 신부 순교 150주년 기념 전기 자료집 제2집」에는 ‘위열병’으로, 또 서울대교구 주보 2021년 2월 21일 자 「김대건 신부 특집-유학생활 적응하기」에는 ‘말라리아 풍토병’로 표현했다. 사전적 의미로 ‘열병’과 ‘위열병’, ‘풍토병’은 전혀 다르다. ‘위열병’은 한의학 용어이다. 한의학에선 위열병의 주요 원인이 ‘스트레스’와 ‘기름지고 매운 음식’이라고 한다. 김대건이 마카오에서 복통과 두통, 요통 등 각종 질병에 시달렸듯이 최방제 역시 과도한 스트레스로 고통받았다. 스트레스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결정적 요인인지는 좀더 세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충분히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신심과 용기, 또 의지할 동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열병 또는 풍토병이 그의 죽음과 개연성이 높다. 한국교회사연구소장 조한건 신부는 “‘풍토병’이 최방제를 죽음에 이르게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증명하듯 마카오에 거주하던 많은 서양인이 풍토병에 시달리고 사망했다. 마카오에 유행하던 풍토병은 ‘말라리아’이다. 최방제는 10월 중순 말라리아에 걸려 한 달여 고생하다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가족은 그의 죽음을 알고 있었을까 두 번째, 최방제의 가족과 조선 선교사들이 그의 죽음을 알았느냐이다. 파리외방전교회 마카오 극동대표부장 르그레즈와 신부는 앵베르 주교에게 “조선 학생들과 또 그중 한 명이 죽은 이야기를 알렸다”고 했다.(「전교회지」vol. 322 참조) 그러나 제2대 조선대목구장 앵베르 주교와 모방ㆍ샤스탕 신부의 편지에는 최방제의 죽음에 관해 애통해 하는 내용이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앵베르 주교는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1838년 12월 3일에서 “세 명의 학생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마카오에 데리고 계십니까 아니면 그들을 페낭 신학교로 보내셨습니까?”라고 묻고 있다. 최방제가 죽은 지 1년이 지났는데도 앵베르 주교가 이렇게 질문하는 것으로 보아 조선 선교사들과 최방제의 가족은 그의 죽음을 그때까지 알지 못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최방제의 죽음을 처음으로 확인한 조선 교회 신자는 1839년 1월 밀사로 북경에 도착한 유진길(아우구스티노)과 조신철(가롤로)이다. 이들은 조선에 귀국한 후 선교사들과 최방제 가족에게 그의 죽음을 알렸다. 앵베르 주교는 1839년 3월 30일 자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오는 12월에 2~3명의 신학생을 신부님께 새로 보내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미 어느 정도로 세련되었으리라고 생각되는 선배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 선배(김대건, 최양업- 필자 주)를 이미 (다른 곳으로) 보내셨다는 소식을 받게 되면, 올해에 다른 학생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며 최방제의 죽음을 알고 있음을 암시하는 글을 적었다. 하지만 그는 최방제의 죽음을 애통해 하거나 그를 위해 기도하겠다는 등 목자로서의 표현을 단 한 줄도 쓰지 않았다. 묘지는 어디 있을까 세 번째, 최방제는 어디에 묻혔느냐이다. 최방제 무덤에 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지금까지 연구된 극동대표부 보고서나 조선 선교사, 김대건ㆍ최양업 신부의 글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 마카오에 가면 성지 순례 안내자들이 성 미카엘 공동묘지 무명인 묘를 가리켜 최방제가 묻힌 곳이라고 추정하며 순례자들에게 참배하게 하고 있다. 역사를 왜곡하는 허황한 일이다. 성 미카엘 공동묘지는 최방제가 죽은 지 17년 뒤인 1854년에 조성된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묘원이다. 또 파리외방전교회 인근 개신교도들을 위한 묘지가 있지만 최방제가 그곳에 묻혔을 가능성은 당시 시대상으로는 거의 없다. 최양업에 이어 두 번째로 신학생 후보로 선발됐지만, 맏형으로 조선 신학생을 대표했던 최방제가 어떻게 사망했고, 또 어디에 묻혔는지를 밝히는 것은 한국 교회 사제 양성의 역사를 정리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언젠가, 또 누군가 이 작업을 시작해 주길 기대한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1.07.13

예수님이 비추는 찬란한 황금빛이 모두에게[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47) 바치챠의 ‘예수 이름의 승리’ 바치챠, ‘예수 이름의 승리’(1685년), 예수 성당 내 중앙 본당 천장, 이탈리아 로마. 트렌토 공의회는 여러 면에서 교회 생활의 변화를 가져다줬다. 공의회 이후에 선출된 교황들의 개혁 의지도 교회가 쇄신하고 변화된 생활을 하는 데 동력이 됐다. 우선 성 비오 5세(재위 1566~1572)는 1569년 잘츠부르크 지역 시노드 소집을 독려했고, 「로마 교리서」를 출판했으며 「성무일도서」를 통합하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때까지 사용한 「미사 경본」을 개정했다. 그레고리오 13세(재위 1572-~1585)는 로마를 비롯한 교구 신학교 설립을 장려했고, 교황 대사에게 더욱 교회다운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개혁의 수단이 되게 했다. 특히 설립한 지 얼마 안 된 예수회를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예수회 인재들의 지원을 받아 교회 개혁의 동력으로 삼았다. 식스토 5세(재위 1585~1590)는 1908년까지 유효했던 보편 교회와 교황청의 중앙 행정을 개혁하고, 주교들에게 앗리미나(ad limina, 사도좌 방문)를 의무화했다. 그레고리오 13세 교황과 예수회 오늘 주제와 연관해 그레고리오 13세 교황과 예수회 관계에 주목해 보기로 하겠다. 그레고리오 13세는 1576년 루뱅대학교 교수로 있던 예수회 로베르토 벨라르미노(Roberto Bellarmino, 1542~1621)를 로마로 불러 콜레지움 로마눔 부설 교황청 학원재단 변증학회 회장직을 맡겼고, 2년 후(1578년)에는 예수회 수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를 초대해 달력 개혁을 준비했다. 독일인 수학자며 콜레지움 로마눔 교수로 있던 예수회 크리스토퍼 클라비우스(Christopher Clavius, 1538~1612)와 시칠리아 출신의 의사며 수학자, 천문학자였던 주세페 스칼라(Giuseppe Scala, 1556~1585)의 연구를 토대로, 1582년 가톨릭 국가들의 제후와 대학교수들의 동의를 얻어 달력 개혁을 단행하는 교서 「중대한 일 가운데(Inter Gravissimas)」를 발표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태양력인 ‘그레고리오 달력’이다. 그 시기에 그레고리오 13세의 정책도 예수회도 크게 진일보했다. 교황은 콜레지움 로마눔에 보조금을 지원해 예수회 교육기관을 증축, 교육 정책을 체계적으로 펴나가도록 했고, 예수회는 인근에 별도의 땅을 확보해 대학교를 완성했다. 1584년 10월 28일에 축복식을 가진 이 학교를 ‘그레고리아노 최고 학부이자 그레고리아노 대학교(Archiginnasio Gregoriano e Universit Gregoriana)’라고 했다. 그레고리오 교황에게 헌정한 오늘날의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이다. 이런 소식은 즉시 선교지로 전해졌고, 열악한 환경에서 힘겹게 선교 활동에 임하는 선교사들을 고무하는 원동력이 됐다. 동시에 선교지에서도 수도원과 함께 교육 사도직을 위한 학교가 지어졌다. 이는 로마 교회가 지역 교회에 심어지는 것을 의미했다. 예수회에 관해, 앞서 바치챠의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죽음’ 편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1540년 종교 개혁의 불길이 한창 타오르던 시기에 설립됐다. 종교 개혁은 가톨릭교회의 성인 공경과 각종 이미지를 통한 신심 활동에 제동을 걸었고, 예수회는 설립과 동시에 예술과 영성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과 함께 말씀과 이미지 간의 대화와 통합의 길을 모색해야 했다. 바오로 3세 교황도 예수회 설립을 승인하는 교서에서 “영적으로 무장되고, 교육 사도직과 문화 방면에 이르는 깊은 인식을 두루 갖춘” 교회 내 단체가 필요하다고 천명했다. ‘문화 방면에 이르는 깊은 인식’을 위해 예수회는 예술에 관한 원칙과 토대를 마련하고, 트렌토 공의회를 통해 단행한 전례 개혁과도 보조를 맞췄다. 공의회 개혁에 담긴 규범에 따라, 성당 건축과 장식에 기술적이고 예술적인 이정표를 제시했다. 예술과 학문, 교육 발달 이끌어 예수회는 교육기관만 세운 것이 아니라, 교육 프로그램에 관한 기준도 마련했다. 오늘날 거의 전 세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의무 교육 과정에 있는 교육 프로그램은 16~17세기 예수회 교육지침서(Ratio Sudiorum)에서 마련한 것이다. 중세기 인문학 중심의 커리큘럼에 인문과학을 추가한 것은 예수회 크리스토퍼 클라비우스의 업적이다. 예컨대, 예수회 교육 과정에서 수학 지식은 신학 과정에 진입하기 전에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필수 과목이었다. 하느님께서 창조한 자연 질서는 수학적인 법칙에 따라 기획되고 만들어졌기에, 우주를 지배하는 자연법칙을 탐구하는 것은 하느님의 창조 업적의 위대함을 탐구하는 종교적인 행위로 보았다. 수학은 철학, 음악과도 연결돼 있어, 다른 순수 학문이나 응용 학문에 기초가 됐다. 이것을 입증하는 것이 ‘예술’이었다. 따라서 예수회 전통에서 인문학을 토대로 수학, 물리학, 천문학 등의 인문과학을 습득한 탄력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과 건축, 음악, 미술 등 예술 분야에 자질 있는 회원을 양성하고, 그들을 선교 현장에 투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로마의 예수회 총원 콜레지움 로마눔 옥상에는 천체 관측소가 있었고, 퀴리날레에 있던 성 안드레아 수련소에는 예술 분야의 선교사들을 양성하기 위한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별도로 있었다. 당시 예수회 화가들의 작품도 많았다. 그 흔적은 오늘날 바티칸 박물관 피나코테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전시실 한 공간이 거의 모두 예수회 화가들의 작품으로 채워져 있다. 1773년 예수회가 해산될 때, 바티칸은 예수회 총원을 압수했고, 그때 가지고 온 예술 작품들이다. 예수회 3대 보르자 총장은 설교할 때, 이미지를 폭넓게 활용한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그것을 음식에 맛을 더하기 위해 사용하는 ‘향신료’에 비유했다. 피렌체 출신으로 바르톨로메오 암만나티의 제자 조반니 바티스타 피암메리(Giovanni Battista Fiammeri, 1530~1606)와 아브루쪼 지방 아퀼라 출신의 주세페 발레리아노(Giuseppe Valeriano, 1526~1596)는 예수회에 들어와 로마의 예수 성당 장식에 투입됐고, 베르나르도 비티(Bernardo Bitti, 1548~1610)는 선교사로 선발돼 페루로 파견됐다. 말씀 텍스트에 삽화를 넣은 시리즈물도 나왔다. 예로니모 나달(Jernimo Nadal, 1507~1580)의 「복음 이야기 도해집」이 대표적인데, 이것은 중세기 문자를 모르는 백성에게 이미지로 성경 내용을 가르치던, ‘가난한 이들의 성경(Biblia pauperum)’의 새로운 버전이었다. 예수회 벨라르미노 추기경은 「그리스도교 신앙 논쟁에 관한 토론」(15811)과 「거룩하고 속된 이미지에 관해서」(1594년)에서 프로테스탄트인들이 가톨릭 신자들을 겨냥해 우상 숭배라고 비난한 것에 맞서 이미지를 통한 신심을 더욱 강하게 옹호했다. 그 시기에 추기경은 ‘천사학’ 연구에 큰 업적을 남겼고, 그의 가르침이 널리 보급된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유럽의 바로크 양식의 성당들에서 천사들이 넘쳐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예수회 설교자 올리바(Gian Paolo Oliva)는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와 절친했다. 그는 제노바에 있던 바치챠(Giovan Battista Gaulli, Baciccia로 알려짐, 1639~1709)와 예수회원 포쪼(Andrea Pozzo)와 스페인 출신의 화가 보르고뇨네(Borgobnone)를 로마로 불러 예수회 성당들을 바로크 양식으로 바꾸고, 장식을 의뢰했다. 이 시기에 포쪼가 로마의 성 이냐시오 성당에서 ‘예수회 선교 활동의 은유’를 그렸고, 오늘 소개하는 바치챠가 예수 성당 천장에 ‘예수 이름의 승리’를 그렸다. 푸생, 틴토레토, 다 바싸노, 베로네세, 솔리메나, 루카 조르다노, 카를로 마라타, 구이도 레니, 피에트로 다 코르토나, 무릴로 등 바로크 시대를 주름잡던 당시 예술가들은 예수회와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베르니니의 지지 얻어 예수 성당 장식 환상적인 이 작품이 교회사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종교 개혁의 칼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교회가 문화 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지지와 후원을 아끼지 않은 흔적은 이 작품 하나로도 충분히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이 프레스코화를 그린 화가 바치챠에 대해서는 지난번 ‘성 프란체스코 하비에르의 죽음’<1612호 5월 9일 자 참조>에서 간단히 이야기했기 때문에, 여기선 작품에 관련한 것만 언급하기로 하겠다. 제노바 출신의 화가 바치챠가 로마에 온 것은 1657년이다. 그는 로마에 오자마자 베르니니의 눈에 띄어 그의 다른 동료들과 함께 베르니니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거장의 가장 충실한 협력자 중 한 사람이 됐다. 이 작품은 베르니니가 성 베드로 대성전 중앙 제단 뒤쪽 앱스에 만든 ‘성 베드로 좌’에서 영감을 얻어 기획했다. 그는 예수 성당에서 돔과 중앙 천장을 장식하면서, 베르니니가 설계한 성 베드로 좌에 버금가는 회화와 조각의 정수를 남기고 싶었다. 베르니니도 적극적으로 권했고, 나중에 힘을 보태주기도 했다. 그 결과 그가 바란 대로 이 작품은 그에게 불후의 명작이 됐다. 그림 속으로작품의 주제는 ‘예수 이름의 승리’다. 바로크 양식을 완전히 통합한 17세기 원근법적 환상주의 기법으로 배경을 장식했다. 바로크의 최고 정수를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다. 화가는 가장 높은 데서 황금색의 빛이 발산되는 눈부신 자리에 그리스도의 모노그램, IHS(Iesus Hominum Salvator, 인류의 구세주 예수)를 배치했다. 예수회의 문장이다. 거기에서 발산되는 빛은 점차 그 아래 있는 모든 인물에게로 퍼진다. 가운데 교회, 성인과 동방 박사들이 있고, 아래에 죄와 이단과 허영의 우화들까지 밝히고 있다. 주변에는 그림 밖으로 튀어나오려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숨이 막힌다. 바치챠, ‘예수 이름의 승리’(1685년), 예수 성당 내 중앙 본당 천장, 이탈리아 로마. 김혜경 (세레나,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이탈리아 피렌체 거주) cpbc2021.07.13

우리 곁에 하느님 계심을 기억하며 성호 긋기[미카엘의 순례일기] (30)십자성호 동방 가톨릭교회 신자들이 갈릴래아 호숫가에 자리한 베드로 수위권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작은 공동체로 시작되었지만, 로마 제국의 발전과 더불어 점차 거대한 종교로 커 나갔습니다. 그에 따라 다양한 배경을 가진 많은 이들이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환경과 언어적 차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과 신원에 관한 문제를 점점 다르게 해석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하나였던 그리스도인들을 가톨릭, 정교회, 개신교, 성공회 등으로 갈라지게 하였습니다.성지를 순례하다 보면 다양한 그리스도인을 만나게 됩니다. 이스라엘 순례에서 가장 많이 만나게 되는 순례단은 바로 정교회 신자들로 이루어진 그룹입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나지르인(민수기 6장 1-21절과 같이 자발적 서원을 한 사람을 일컫는 말. 히브리어 나지르에서 나온 말로 ‘거룩하게 되는’, ‘분리된’이라는 의미)처럼 머리카락과 수염을 자르지 않고 검은 모자에 낯선 형태의 수단을 걸친 사제와 그를 둘러싼 머리에 베일을 두른 자매들의 무리 때문에 정교회 순례단은 쉽게 눈에 띕니다. 우리와 반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긋는 성호와 이콘에 입 맞추는 친구는 생경하게만 느껴집니다. 사실 가톨릭과 정교회는 원래 하나였으니, 당연하게 성호를 긋는 방향도 같았습니다. 그랬던 전례 동작이 언제부터 달라졌고, 왜 달라졌으며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성호(聖號, ‘거룩한 표지’라는 뜻으로 十字聖號의 준말이며, 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십자가 표지 signum Crucis’라 부름)는 특히 초 세기 그리스도인들의 십자가 신앙에서 비롯된 아주 오래된 우리의 신앙 행위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서간에서 십자가 사건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강조하는 구절을 보면 십자가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갈라 6,14 참조) “여행을 할 때, 집 안에 들어오거나 나갈 때, 신발을 신을 때, 목욕할 때, 음식을 먹을 때, 촛불을 켤 때, 잠들 때, 앉아 있을 때, 그때마다 그리스도인은 이마에 십자성호를 그었다”는 테르툴리아누스 교부(2세기 중엽 카르타고에서 활동)의 증언을 통해서도 성호가 얼마나 일상화된 신앙생활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성호가 중요한 부분이 되면서 전례 안에서도 그 동작이 정착되었고, 오늘날 우리가 성호를 긋는 형태도 고정되었습니다. 1198년에서 1216년 사이에 교황이셨던 인노첸시오 3세의 가르침은 성호 동작의 형태와 의미를 자세히 전합니다.“성호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드러내는 표징이기 때문에 세 손가락을 사용합니다. 세 손가락을 이용해서 먼저 위에서 아래로, 그리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긋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서 지상으로 강림하셨고, 유다인(오른쪽)으로부터 이방 민족(왼쪽)에게까지 복음을 전하셨기 때문입니다. 한편 어떤 이들은 성호를 위에서 아래로, 그리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긋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왼쪽)에서 생명(오른쪽)으로 건너오셨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 역시 비참한 존재(왼쪽)에서 영광스러운 존재(오른쪽)로 탈바꿈한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12세기 전까지는 지금의 정교회 신자들이 성호를 긋는 방향이 전통적인 방법이었습니다. 방향을 반대로 긋는 동작은 베네딕도 수도회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점차 가톨릭에서는 성호의 방향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고정하고, 또한 세 손가락만을 이용한 동작에서 손 전체를 사용하는 쪽으로 바뀌어갔습니다.마태오 복음 25장 31-46절에 나타난 이야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교회의 전통 안에서 오른쪽은 언제나 영광스러운 방향이며 천국을 뜻합니다. 왼쪽은 그 반대의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성호를 위에서 아래로 긋는 것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모님의 태중을 통해 육화하셨음을 고백”하는 것이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긋는 것은 “최후의 심판 때에 저희를 영광스러운 자리에 두시고, 어둡고 버림받은 곳에 두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지금 가톨릭에서 긋는 방향대로라면 어떤 의미일까요? 역시 같은 의미입니다. 즉, “주님께서 저승에 가시어 부활하셨듯이, 우리를 어둡고 버림받는 곳에 두지 마시고, 영광스러운 천국에 들게 해주시기를” 청하는 것이죠. 정교회와 가톨릭에서 행하는 성호가 사실은 같은 의미입니다.가톨릭 신자임을 알아볼 수 있는 가장 큰 표징은 성호일 것입니다. 작고 사소하지만 또한 크고 중요한 전례 동작인 성호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길로 나가는 순례자인 우리 자신을 기억하며 성호를 긋는 순간마다 우리 곁에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새롭게 기억할 것을 다짐해봅니다.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평화신문2021.08.03

대전교구 새 보좌주교 임명… “원칙과 부드러움 보여주는 목자되길”한정현 대전교구 보좌주교 임명 이모저모2014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과 악수하는 한정현 주교임명자.유흥식 주교가 직접 씌워준 주케토 11월 28일 저녁 대전교구 탄방동 성가정성당.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 교구 개막 미사가 교구장 유흥식 주교 주례로 봉헌되던 참이었다. 오후 8시가 막 지날 즈음 유 주교는 상기된 표정으로 제대에 서서 한정현 신부의 주교 임명 소식을 알렸다. 그러자 성전에선 신자들의 우레 같은 환호와 박수가 길게 이어졌다. 유 주교는 한 주교임명자에게 프란치스코 교황 목걸이로 유명한 ‘착한 목자 십자가’ 목걸이를 걸어주고 머리에 직접 주케토를 씌워주며 그를 교구 주교단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게 된 데 대한 기쁨을 드러냈다. 유 주교는 이어 곧바로 ‘새 보좌주교 임명과 관련 대전교구민에게 보내는 교구장 서한’을 발표, “한정현 주교님은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역사적인 우리 교구 방문을 헌신적 노력으로 준비했고 교황님 말씀을 한국어로 통역하는 역할도 훌륭하게 수행했을 뿐 아니라 특별히 우리 교구의 역사적인 교구 시노드 모든 과정의 실무를 총괄했다”면서 “시노드적 교구를 이루는 데 한 주교님께서 크게 이바지하실 것”이라고 말하며 큰 기대를 보였다. 미사를 공동집전한 교구 총대리 김종수 주교도 “동료 주교님을 맞게 돼 개인적으로 든든하고 기쁘지만, 교구장님을 도와서 교구 일을 잘하실 수 있는 일꾼이 생겼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다”며 “우리 교구에 큰 선물을 주신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드리고, 교구 공동체 여러분께도 축하를 드린다”고 인사를 건넸다. 이에 한 주교임명자는 “무엇보다도 교구장 주교님께 먼저 감사드리고, 총대리 주교님과 교구청 신부님들, 수녀님들, 본당 공동체 식구들, 평신도 대표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면서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은 많은 분의 기도와 도움 덕분이었다”고 주교 임명 뒤 첫 소감을 전했다. 미사 직후 탄방동본당 공동체는 성당 정문 앞 현관에서 유 주교와 김 주교, 교구 사제들, 수도자들, 평신도들이 함께한 가운데 소박한 축하 다과회를 열었고, 다과회를 마친 뒤에는 본당 식구들끼리만 1층에서 짧은 만남을 한 뒤 기념 촬영을 했다. 사제수품 동기 대표인 박제준(세종요한본당 주임) 신부는 “힘든 직무를 맡게 되셨고, 특별한 삶을 살게 되실 테니까 축하보다는 안쓰러움이 앞선다”면서도 “그렇지만 어머니 같은 교회의 착한 목자가 되셨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김기준(스테파노) 탄방동본당 사목회장도 “온유하고 겸손하신 성품대로 어렵고 힘드신 분들 편에 서서 애써주시고 대전교구의 영적 성장과 성숙을 이끌어주시는 목자 되시길 바란다”고 기대를 내비쳤다. 성서학·성경 언어의 수재 1971년생인 한정현 주교임명자는 유서 깊은 내포교회 공동체인 서산동문동본당 출신이다. 구교우 집안은 아니지만, 한 주교임명자가 학창시절을 보낼 때 부모 한 베네딕토(81)ㆍ김 아녜스(73)씨와 장남인 한 주교임명자를 포함, 두 남동생 등 온 가족이 입교했다. 고 이인하(베네딕토) 신부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대전 대덕고에서 2년간 예비신학생모임을 하면서 성소의 싹을 틔웠다. “어렸을 때 집을 떠나 학창시절을 보내다 보니 학업에 정진하면서도 공허함, 특히 신앙에 대한 갈증 같은 게 있었어요. 그때 본당 신부님께 말씀드렸더니, 비슷한 생각을 하는 동년배들 모임이 있으니 가보면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셔서 가보니 예비신학생 모임이었지요. 그래서 그 모임에 나가 친구들과 주기적으로 만나다 보니 사제로 살고 싶다는 꿈을 꿨고, 자연스럽게 사제가 됐어요.” 그렇게 가톨릭대 신학과를 거쳐 대전가톨릭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2000년 대희년 2월 21일 사제품을 받았다. 첫 임지는 탄방동본당이었고, 이어 당진본당에서 1년씩 보좌신부로 살고 곧바로 로마유학을 떠났다. 성서학을 공부해달라는 전 대전교구장 경갑룡 주교의 권유를 받고 나서였다. 원래 학부, 대학원 과정에서 전 대전가톨릭대 총장 김종수 주교의 지도를 받으며 구약성서를 전공했기에 자연스럽게 성서학을 전공하게 됐고,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로마 유학을 하게 되면서 말씀의 의미에 대해 집중하다가 성경이 쓰인 원래의 언어에 매력을 느껴 ‘성경 언어’를 전공했고 석사학위 논문도 ‘성경 히브리어 동사 활용’을 주제로 썼다. 다만 교황청 인류복음화성의 요청에 따라 전 세계 교리교사들이 모여 교리교육학을 전공하는 로마 성 요셉 신학원 영성지도를 맡게 된 데다 지도교수를 바꿔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면서 결국은 박사학위 논문을 쓰지 못하고 수료로 마무리해야 했다. 귀국 뒤 버드내본당 주임을 역임하면서도 한 주교임명자는 교구에서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다. 사제평생 교육위원, 출판검열위원, 시노드 사무국장, 사제평의회 위원 등이었다. 시노드 사무국장을 마친 뒤에는 수품 뒤 첫 발령을 받았던 탄방동본당으로 돌아가 사목했다. 이에 대해 한 주교임명자는 “제 사제수품 성구가 ‘떠나라’(창세 12,1)인데, ‘떠나라’는 말은 ‘간다’는 의미의 동사적 표현으로 ‘완벽하고 이 정도면 됐다’고 스스로 안주하지 않고 늘 하느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말씀, 새로운 열정으로 성령의 기운에 저를 맡기며 따라가야 한다는 측면에서 ‘떠나라’는 말씀을 묵상하며 정했다”면서 “그래서인지 실제로도 인사발령을 통해 여러 직무를 맡도록 하느님께서 이끌어주신 것 같다”고 말하며 미소를 보였다. 한 주교임명자에 대한 평은 한결같다. ‘원리원칙주의자이면서도 따뜻하고 온유한’ 성품이라는 것이다. 또한, 운동신경이 뛰어나 고교 때는 길거리 농구를, 대학 때는 축구를 즐겼고, 스트라이커로서 신학교의 전설로 남았다. 공부도 잘해서 동기 신부 중 영성신학을 전공한 김유정(대전가톨릭대 총장) 신부, 철학을 전공한 권세진(괴정동본당 주임) 신부와 함께 수재로 꼽혔다. 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장을 지낸 김광현(안토니오, 탄방동본당) 교구 순교자현양회장은 “교구민들에게도 원칙과 부드러움을 보여주시는 목자가 되시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사진=대전교구 홍보국 제공cpbc2020.12.02
![[수원교구 사목교서]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cpbc.co.kr/CMS/newspaper/2020/11/rc/791768_1.2_titleImage_1.jpg)
[수원교구 사목교서]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 수원교구는 2021년~2023년 사목 실천 목표를 ▲일상 중심의 신앙 실천 ▲자기주도적 신앙 실천 ▲통합 소통환경 구축으로 정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공동체의 아픈 곳을 느끼고, 어루만지며, 위로하여, 치유하는 살아 있는 교회, 사랑하는 교회,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일치를 이루는 교회로 나아가기를 희망합니다. 그동안 교회의 운영방식은 대면 중심이었지만 코로나19 감염병 예방을 위해 수개월에 걸친 미사 중단과 이에 따른 대안으로 제시된 TV, 인터넷 방송 미사 시청은 신자들의 미사 참례 의무에 대한 인식에 변화를 초래했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불확실하게 전개되는 사회현실과 비대면으로 전개되는 소통문화를 바라보면서 지금 이 시대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최선의 대책은 무엇인지 고민하며 그 적절한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입니다.코로나19 이후로 집회 중심의 활동이 현저하게 제한되어 왔습니다. 교회 활동은 크게 위축되었고 상황이 호전되어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간다고 하여도 비대면을 선호하는 문화적 경향은 지속될 것입니다. 이 기회에 교구와 대리구는 신자들이 자신의 일상에서 꾸준히 신앙을 실천해 나가는 습관을 기르도록 교육하고 지원해야 하는 당면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말씀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습관화하도록 이끌고,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며 자신을 성찰하고 타인을 돌보는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가정 성경 필사, 가정 성지 순례, 가정 기도 등 가족 구성원이 함께하는 신앙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안내하고 독려하는 노력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신자들 역시 자신이 신앙의 생애주기에 어디쯤 있는지 스스로 진단하고 성찰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이를 안내하지 않고,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길을 잃고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는 신자들이 자신의 신앙 여정을 스스로 진단하고 안내받음으로써 자기 주도적으로 신앙의 온전한 성숙을 향해 나아가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아울러 교구는 홍보국을 중심으로 사제와 신자, 신자와 신자, 교구와 본당, 본당과 본당, 단체와 단체, 신자와 단체 등 교구 내 모든 지체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통합 소통환경을 구축해 나갈 것입니다. 여기에서 신자들은 대면과 비대면 모두를 망라한 종합 신앙 정보를 얻고 소통하면서 복음의 기쁨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일치를 이루는 신비체입니다.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일치를 이룬다는 것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소통한다는 것이며, 소통한다는 것은 서로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나누며 치유하는 것입니다. 교구민 모두에게 우리 교구의 복음화를 위하여 자비로우신 주님께 한마음으로 기도해 주실 것을 제안합니다. cpbc2020.11.25
![[성당에 처음입니다만] (33) 가톨릭과 개신교 성경 권수가 왜 다르죠](//cpbc.co.kr/CMS/newspaper/2019/10/rc/765583_1.0_titleImage_1.jpg)
[성당에 처음입니다만] (33) 가톨릭과 개신교 성경 권수가 왜 다르죠헬라어 성경 인정에 따라 구약 권수 달라 가톨릭과 정교회, 개신교는 같은 그리스도교이지만 경전으로 인정하는 성경 수는 다르다. 가톨릭교회는 구약 46권, 신약 27권 등 총 73권을 성경으로 인정한다. 나처음: 신부님, 어제 언해가 제게 성당에 나오라며 「성경」을 선물했어요. 그런데 살펴보니 개신교 성경과 다르더라고요. 어떻게 성경이 다를 수 있죠. 조언해: 어머! 정말 가톨릭과 개신교 성경이 다른가요? 어떻게 똑같은 그리스도 신앙을 고백하고 성경을 경전(經典-표준 성경)으로 삼고 있는데 권수가 다른지 이해할 수 없네요. 라파엘 신부: 하하! 가톨릭과 개신교의 성경 권수가 다르다고 해서 많이 놀란 모양이구나. 가톨릭과 정교회, 개신교는 같은 그리스도교이지만 경전으로 인정하는 성경 수는 다르단다. 가톨릭은 구약 46권, 신약 27권 등 모두 73권을, 정교회는 구약 43권, 신약 27권 등 총 70권, 개신교는 구약 39권, 신약 27권 등 66권만을 경전으로 인정하고 있지. 교회마다 이렇게 경전으로 인정하는 성경 수가 다른 이유는 구약성경의 어떤 책들을 경전으로 받아들였냐에 따라 차이를 보여요. 오늘은 성경에 관해 이야기해 주마. 성경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당신의 구원 계획을 유다교와 그리스도교 역사 안에서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 드러내시고 알려주신 ‘계시’의 원천이란다. 아울러 인간이 교회를 통해 하느님의 계시를 제대로 전하고 이해하며 그것을 믿고 따르는 신앙의 원천이기도 해. 그래서 성경을 ‘하느님의 말씀’이며 ‘교회의 책’이라고 해요. 성경이 말하는 내용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마태 16,16)이야. 예수 그리스도는 한 처음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생명과 은총, 진리 등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해 생겨났고,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으며,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단다.(요한 1장 참조)성경(Bible)은 ‘책들’이란 뜻의 헬라어 ‘타 비블리아’(τα Βιβλια)라는 단어에서 나온 말이야.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새로운 계약(신약)과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옛 계약(구약)의 내용으로 구분되지.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신앙의 밑거름인 구약을 완성하셨고, 교회는 유다교의 거룩한 구약의 책들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데 필요한 출발점을 찾았기에 ‘하느님의 구원’이라는 하나의 큰 틀 안에서 신·구약 성경을 읽어야 한단다. 가톨릭교회는 바오로 3세 교황이 1546년 트렌토 공의회에서 경전으로 반포한 「불가타」 성경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단다. 이 「불가타」는 4세기 때부터 대중 성경으로 사용되고 있지. 신약성경은 마태오·마르코·루카·요한 네 복음서와 사도행전, 14개 바오로 서간, 7개 가톨릭 서간, 요한 묵시록 등 총 27권으로 구성돼 있어요. 그러나 가톨릭교회가 구약성경을 39권의 히브리어 성경과 토빗기, 유딧기, 마카베오기 상ㆍ하권,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등 헬라어로 쓰인 7권을 더해 총 46권을 경전으로 사용하고 있는 반면, 정교회는 히브리어 성경에 토빗기, 유딧기, 지혜서, 집회서만 더해 43권을, 개신교와 유다교는 히브리어 성경 39권만 구약성경으로 인정하고 있단다. 이렇게 구약성경의 경전이 서로 다른 이유는 초대 그리스도교가 헬라어 구약성경인 「칠십인역」을 표준 성경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는 이 「칠십인역」을 구약성경 경전으로 그대로 받아들였지만, 개신교와 유다교는 헬라어 7권의 성경을 경전에 포함하지 않은 거야. 가톨릭교회는 히브리어 성경 39권을 ‘구약 제1경전’, 헬라어 7권을 ‘구약 제2경전’으로 구분해 부르고 있지만, 권위와 위상은 모두 똑같단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19.10.30

삼손을 유혹한 들릴라의 거짓 사랑 노래[장일범의 유쾌한 클래식] (8)생상스의 오페라 ‘삼손과 들릴라’ 중에서 아리아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지난 6월 26일 롯데콘서트홀에서는 최근 세계의 명문 음반회사 도이치 그라모폰과 글로벌 계약을 한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의 바이올린 리사이틀 ‘Violin on stage’ 공연이 펼쳐졌다. 워낙 탄탄한 테크닉을 기반으로 해가 갈수록 성장, 월드 클래스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 의미가 있는 앨범을 냈기에 공연에도 많은 청중이 찾아왔다. 레퍼토리는 봄소리 자신과 인연이 깊은 폴란드 작곡가와 프랑스 작곡가 생상스의 곡들로 짜여졌다. 특히 모든 프로그램 곡들을 마친 후 청중의 뜨거운 박수에 다시 등장한 봄소리(영어 이름은 이번 앨범을 통해 기억하기 쉽게 Bomsori로 바꾸었다)는 첫 번째 앙코르곡으로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콥스키와 함께 ‘상송과 달릴라’(Samson et Dalilah, 삼손과 들릴라)의 달릴라의 아리아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Mon coeur s‘ouvre a ta voix)를 연주, 아름다운 선율로 청중들을 깊이 감동시켰다. ‘상송과 달릴라’(프랑스어)는 카미유 생상스의 가장 유명한 오페라로 성경 판관기에 등장하는 ‘삼손과 들릴라’ 두 사람의 이야기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르자 주님은 그들을 40년간 필리스티아인들의 손에 넘겨 노예가 되게 하셨다. 이스라엘인들은 기도를 드리나 주님께서는 대답이 없다. “당신은 우리를 이집트에서 구원해주신 그 주님이 아니십니까?” 하고 좌절하고 있을 때 용맹스런 삼손이 나타나 “그쳐라, 형제들이여. 우리 사슬을 끊고 다시 일어나자”며 광장에서 자신을 치려고 하는 가자의 영주 아비멜렉을 오히려 죽인다. 삼손을 대장으로 하는 이스라엘인들은 광장에서 봉기를 하고 승리를 축하하는 노래를 부른다. 이때 바로 문제의 여인 들릴라가 나타난다. 다곤 신전의 문이 열리면서 들릴라가 꽃을 든 아름다운 필리스티아 여인들과 나타나 삼손에게 다가서서 말을 건다. “저는 영광보다는 사랑을 원해요. 제 집이 있는 소렉 계곡으로 오세요”라고 유혹하자 삼손은 들릴라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겨 버리고 만다. 오페라에는 안 나오지만 판관기에서 볼 수 있듯 삼손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에게 주님의 천사가 찾아와 포도나무에서 나는 그 어떤 것도, 술도 마시지 못하게 하여 모태에서부터 죽는 날까지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었다. 하지만 정결하게 자라야 하는 삼손은 방탕하게 살며 필리스티아 여인과 결혼했다가 다른 남자에게 빼앗기게 되자 엄청난 폭력적인 행동으로 복수하게 되고 여기에 반발하여 삼손을 잡아간 펠리스티아인 1000명을 당나귀 턱뼈로 죽여버린다. 삼손의 괴력을 두려워한 필리스티아인의 대제사장이 들릴라에게 “삼손의 마음을 사로잡아 힘의 비밀을 알아내면 원하는 건 뭐든지 주겠다”고 부탁한다. 하지만 삼손은 들릴라가 보고 싶어왔으면서도 “나는 하느님의 종, 나 그분의 의지에 복종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들릴라의 계속된 유혹에 넘어가 버리는 삼손. 들릴라는 그를 껴안고 명 메조소프라노의 아리아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를 부른다. 하강 음계는 바로 들릴라에게 빠져드는 삼손의 모습을 상징한다. “새벽 키스에 꽃송이가 열리듯, 당신 목소리에 내 마음이 열리는군요. 미풍에 일렁이는 이삭들의 살랑거림처럼 당신 음성에 내 마음이 일렁입니다. 사랑하는 이여, 내 눈물을 그치게 하려거든 한 번 더 말해보세요. 이제 영원히 들릴라에게 돌아왔다고….” 그러자 삼손은 곡 중에 “들릴라, 사랑하오!”를 열창한다. 그녀의 이 달콤한 말은 거짓된 말일 뿐이었다. 세상에 생상스는 이렇게 거짓된 말을 한없이 아름답고 달콤한 노래로 만들다니 인생에 대해서 뭘 좀 아는 사람인 것 같다. 교언영색(巧言令色)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는 걸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되새김질하게 된다. ※QR코드를 스캔하시면 생상스의 오페라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https://www.youtube.com/watch?v=u-O0OKsxCDA장일범 (발렌티노, 음악평론가, 서울사이버대 성악과 겸임교수, ‘장일범의 유쾌한 클래식’ 진행자) cpbc2021.06.30

지속적인 그리스도 평화 건설 위한 세 가지 길, 함께 나아가자프란치스코 교황의 제55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해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55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를 통해 항구한 평화 건설을 위한 도구로 세대 간 대화, 교육, 노동을 제시했다. CNS 자료사진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2년 1월 1일 제55차 세계 평화의 날을 맞아 세상 모든 이에게 항구한 평화 건설을 위해 함께 걸어가자고 촉구했다. 교황은 이어 항구한 평화 건설을 위한 도구로 △세대 간 대화 △교육 △노동을 제시했다. ‘세대 간 대화, 교육, 노동 : 항구한 평화 건설을 위한 도구’라는 제목의 제55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주요 내용을 살펴본다.평화란 무엇인가프란치스코 교황의 제55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는 그의 회칙 「모든 형제들」과 「찬미받으소서」, 교황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를 토대로 작성됐다. 또 담화에는 성 바오로 6세 교황의 회칙 「민족들의 발전」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회칙 「노동하는 인간」의 내용이 인용됐다. 아울러 교황 자신이 파리 평화 포럼과 기후 정상 회담 참가자에게 보낸 메시지 내용을 첨부하기도 했다.교황의 2022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 내용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가톨릭교회가 말하는 ‘평화’의 개념부터 살펴보자. 평화는 전쟁이나 폭력, 갈등이 없는 평온한 상태를 말한다. 하지만 가톨릭교회는 평화를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한다. 아울러 평화는 인간의 노력으로 맺는 성령의 열매(갈라 5, 22-23 참조)라고 가르친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평화는 단순히 ‘힘의 불안한 균형으로 전쟁만 피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질서, 더욱 완전한 정의를 인간 사이에 꽃피게 하는 질서를 따라 하루하루 노력함으로써만 얻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한다.(「복음의 기쁨」 219항)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자비의 선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따라서 교회가 제시하는 평화는 바로 ‘그리스도의 평화’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적개심을 없애셨고, 인간을 하느님과 화해시키셨으며(콜로 1,20-22 참조), 당신 교회를 인간과 인간이 하나 되고 또한 하느님과 인류가 하나 되는 일치의 성사로 세우셨다. 이에 교회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에페 2,14)라고 고백하고, “지상의 평화는 ‘그리스도의 평화’를 나타내는 것이며 그 열매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305항 참조)라고 선언한다. 교황이 해마다 새해 첫날에 발표하는 세계 평화의 날 담화는 이러한 맥락에서 읽고 이해해야 한다. 해마다 평화를 실현하려는 주제와 방향은 달라도 그 핵심은 평화를 희망하는 선의의 모든 이와 연대해 그리스도의 평화를 이 땅에 실현하는 것임을 상기해야 한다. 그럼, 프란치스코 교황의 2022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교황 즉위 후 처음으로 발표한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전 세계가 평화를 향해 나아가는 진정한 길로 네 가지 원칙을 제시한 바 있다. 그 원칙은 바로 △시간은 공간보다 위대하다 △일치가 갈등을 이긴다 △실재가 관념보다 더 중요하다 △전체는 부분보다 더 크다. 이 네 가지 원칙은 모든 이를 통합하고, 모든 것을 육화시키는 복음의 전체성과 완전성을 드러내 준다. 교황은 세계 평화를 향한 네 원칙을 기반으로 2022년 담화에서 항구한 평화 건설을 위한 세 가지 길을 제안한다. 첫 번째 길은 ‘세대 간 대화’로 평화 건설을 위한 공동 계획을 실현하는 기초이다. 두 번째 길은 ‘교육’으로 평화 건설을 위한 추진력을 제공한다. 세 번째 길은 ‘노동’으로 평화를 건설하고 보장하는 토대이다. 세대 간 대화 - 신뢰와 사랑 쌓아 미래 지향 교황은 기후변화와 코로나19 등 현재의 위기가 세대 간 협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인식했다. 젊은이들은 노인들의 지혜와 경험이 필요하고, 나이가 더 많은 이들은 젊은이들의 지원, 사랑, 창의력, 활력이 필요하다고 담화에서 강조한다. 교황은 그러면서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만약 우리가 이러한 세대 간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우리는 현재에 굳건히 뿌리내릴 수 있으며 거기에서 과거를 돌이켜 보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고 전망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미 2018년 3월 19일 성 요셉 대축일에 발표한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에서 세대 간 대화를 강조한 바 있다. 교황은 이 권고에서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각자의 사리사욕을 버리고 공동선을 위해 일하면서 거룩한 사람이 될 것을 당부한다.(14항 참조)교황이 세대 간 대화를 강조하는 까닭은 서로 신뢰를 쌓아가는 대화가 우리 한가운데에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구성원을 통해 당신의 자비를 드러내신다고 증언한다. 이 자비는 하느님과의 화해와 인간끼리의 화해를 이끌어낸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마태 5,24)라고 요구하신다. 이처럼 저마다 거룩한 사람이 되어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낼 때 갈등과 무관심이라는 딱딱하고 굳어 척박해진 땅을 갈아엎고 평화의 씨앗을 뿌릴 수 있다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설명한다.교황은 또 세대 간 대화에 있어 무엇보다 “인간 생활의 온전함에 대해 당당히 이야기하고, 모든 위대한 가치들을 촉진하고 결합해야 할 필요성을 당당하게 말해야 한다”(「찬미받으소서」 224항 참조)고 강조한다. 교황은 덧붙여 절제되고 겸손하게 대화할 것과 하느님을 배제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교육 - 사랑과 돌봄의 문화 확산 프란치스코 교황은 담화에서 평화의 길을 함께 만들어 가는 시기에 ‘교육’을 무시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교육은 세대 간 대화를 위한 방식을 알려주고 공동선을 위해 전문성과 경험, 기술을 공유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교황은 이어 “교육과 훈련은 통합적 인간 발전을 촉진하는 데에 으뜸 수단이고, 개개인이 더 큰 자유와 책임을 갖도록 하며, 평화를 지키고 증진하는 데에 필수적인 것”이라고 설명한다. 교황은 무엇보다 ‘돌봄의 문화’를 촉진하는 교육에 국제 사회가 투자할 것을 권고한다. 군비를 축소해 그 자금을 젊은 세대의 교육과 훈련에 투자할 것을 촉구했다. ‘돌봄의 문화’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회칙 「찬미받으소서」(231항)에서 사용한 용어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돌봄의 문화’라는 용어를 ‘통합적인 인간 발전’과 ‘통합 생태론’, 그리고 ‘사랑의 문명’과 병행해 사용한다. 교회는 “더욱 인간답고 더욱 인간에게 걸맞은 사회를 만들려면 사회생활-정치, 경제, 문화-에서 사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야 하며, 사랑이 지속적으로 모든 활동의 최고 규범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582항)사랑의 문명, 돌봄의 문화에는 보편 질서 안에서 자신의 고유성을 간직하는 원칙을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일상의 작은 몸짓들도, 생태계의 작은 존재도 중요하며 더불어 사랑받고 보호돼야 한다. 아울러 일상에서 윤리, 선, 신앙, 정직, 환경 보호 등 착하고 성실한 것이 가치 있음을 교육하고, 서로를 필요로 하고, 타인과 세상에 대한 책임을 있음을 깨닫도록 가르쳐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평화의 전갈은 협상으로 이루어진 평화를 알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일치가 모든 다양성을 조화시켜 준다는 확신을 선포하는 것이다. 평화는 미래를 약속하는 새로운 통합을 창출해 온갖 갈등을 극복한다”(「복음의 기쁨」 230항)면서 돌봄의 문화 확산을 촉구한다. 노동 - 공정한 노동으로 정의 세우고 연대 프란치스코 교황은 담화에서 “노동은 평화를 건설하고 지키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라고 한다. 교황은 노동의 필요성에 관해 담화에서 “노동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의미에 속하며, 성장과 인간 발전과 개인적 성취의 길”이라고 한다. 교황은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일은 세계 전역에서 공동선과 피조물 보호를 지향하는, 온당하고 품위 있는 노동 조건을 증진하는 것”이라고 소리 높였다. 가톨릭교회는 사회 경제적 문제들은 모든 형태의 연대성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연대성,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연대성, 기업에서 노동자들 사이의 연대성과 고용주와 고용인 사이의 연대성, 국가와 민족들 사이의 연대성 등이 그러하다. 국제적 연대성은 도덕적 차원의 요구이다. 세계 평화는 부분적으로는 여기에 달려 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1941항 참조) 프란치스코 교황은 담화에서 “노동은 모든 공동체에서 정의와 연대를 이룩하는 토대”라고 한다. 연대성은 ‘생태계 보호’와 ‘공동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연대성이란 말 자체가 조화로운 생활 양식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조화로운 생활 양식은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바라보게 한다. 마치 식사를 하기 전 노동을 통해 이 음식을 우리에게 마련해 준 이들을 떠올리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 안에서 가장 궁핍한 이들과 연대하듯이 하느님 현존 안에서 조화로운 생활 양식은 평화를 내면화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2022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는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조화로운 생활 양식을 통해 평화를 내면화하자’라고 풀이할 수 있겠다. 이를 위해 대화를 통해 세대 간의 신뢰와 화해를 쌓고, 사랑의 문명과 돌봄의 문화를 촉진하는 교육을 시행하며, 공정한 노동을 통해 정의를 바로 세우고 서로 연대하는 길을 열어가자고 교황은 제안한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1.12.28
평신도 가족의 신앙 질문에 대답한 사제의 편지교리와 신학적 주제, 인용과 비유 통해 설명 신앙 편지 50통 게르하르트 로핑크 지음ㆍ황미하 옮김 바오로딸세례받지 않은 아버지, 냉담 중인 어머니가 거침없는 질문을 쏟아낸다. ‘고통은 어디서 오는가?’, ‘죽음 후에는 무엇이 오나?’, ‘한 인간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가?’…. 독일 림부르크교구의 사제이자 저명한 성서학자인 게르하르트 로핑크 신부가 이 가족의 질문에 대답한 편지 형식의 글이다. 50통의 편지는 교리와 그리스도론, 성령론, 성사론 등 다양한 신학적 주제를 다뤘다. 특히 고통ㆍ죽음ㆍ신앙에 대한 성실하고도 다정한 문체가 신앙 상담을 받는 느낌으로 이끈다. 현대인이 신앙에 대해 제기하는 이성적이고 실제적인 질문을 설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과 긴밀히 연결해주는 게 특징이다.로핑크 신부는 대참사와 자연재해, 전염병 등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어떻게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사랑은 자유를 전제하고, 자유는 역사를 전제하며, 역사는 진화를 전제합니다. 죽는 것은 필연적으로 진화에 속합니다. 죽는 것은 부정적인 것이 아닙니다.”(82쪽)로핑크 신부는 이기주의, 테러, 범죄, 하느님을 거부하는 태도에 의해 형성된 죄의 역사를 언급하면서 “우리는 죽음도 하느님께로 가는 길이 아니라 우리 삶을 단절시키는 경악스럽고 비참한 것으로 본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다양한 인용과 비유를 통해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람직한 삶을 살고 싶게 하는 영적 자극을 준다.저자 게르하르트 로핑크 신부는 튀빙겐대학교에서 신약성경 주석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오늘날의 무신론은 무엇을 주장하는가?」,「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등 대표 저서들이 국내에 소개됐다.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평화신문2021.02.04

“예수님 마음 찾는 성경읽기, 새롭게 접근해요”한국통합사목센터가 발간한 「말씀여행」 소공동체 교재로 활용
예수님 중심으로 복음 읽는 시선 키워 신자들 반응 좋아 「말씀여행」을 교재로 소공동체 모임을 하는 서울대교구 광장동본당 신자들. 본당 신자들과 정월기 주임 신부가 「말씀여행」 교재를 들고 있다. “지금까지는 성경을 ‘~하면 된다, 안 된다’라고 이분법 혹은 율법적으로 읽었는데 예수님의 마음을 알게 되니까 성경을 읽으며 자유로워졌습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정금채 세라피나)“성경을 읽을 때 예수님의 행동에 내 죄를 개입하다 보니, 죄를 더 많이 성찰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예수님의 행동과 마음, 말씀을 찾는 작업을 먼저 하다 보니 ‘나는 이렇다’는 것을 접고, 성경을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됐어요.”(김미향 율리아)신자들끼리 모여 말씀 나눔을 하다 보면, 성경 내용에 집중하기도 전에 자신의 생활만 성찰하면서 끝날 때가 있다. 시시콜콜한 일상을 나누다 타인에게 받은 상처를 공유하고, 결국 뒷담화만 쓸쓸히 남을 때도 있다.한국 교회 소공동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려 변화를 모색하던 중 만들어진 ‘말씀여행’ 모임이 여러 본당으로 확산되면서 신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한국통합사목센터(이사장 강우일 주교)가 올해 4월에 발간한 「말씀여행」이 제주교구를 중심으로 서울ㆍ대구대교구 본당의 구역ㆍ반별 소공동체 모임에서 교재로 활용되고 있다. 기쁜소식은 초판 5000부를 모두 판매했으며, 현재 1만 부를 추가로 제작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정월기(광장동본당 주임)ㆍ전원(도봉산본당 주임) 신부가 머리를 맞대 펴낸 「말씀여행」은 현재 구역 반 소공동체에서 진행하는 ‘복음 나누기 7단계’와는 형식과 방법이 조금 다르다. ‘말씀여행’은 성경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께서 누구와 관계를 맺고, 무슨 말씀을 하시고,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집중하게 한다. 성경을 대할 때 자신의 어둠과 죄를 자책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중심으로 복음을 보는 새로운 시선을 열어주는 것이다. 성경을 읽을 때 지성적이고 사변적인 지식을 얻기보다는, 말씀 안에서 주님을 만나 그분의 지혜를 깨닫는 게 목적이다. 「말씀여행」이 발간되기까지는 여러 본당과 사목자의 공이 보태졌다. 2008년 전원 신부가 당시 사목하던 서울 제기동성당에서 ‘말씀터’라는 이름으로 복음 나눔 자료를 만든 것이 씨앗이 됐다. 박기주 신부가 2009년 대방동성당에서 ‘말씀터’ 모임을 시작하며 활력이 붙었고, 이때 교재 이름을 ‘말씀터’에서 ‘말씀여행’으로 변경했다. 제기동ㆍ대방동ㆍ광장동본당을 비롯한 여러 본당에서 사용하면서 사목 현장의 신자들 반응을 관찰해 정월기ㆍ전원 신부의 손을 거쳐 최종적으로 새롭게 수정ㆍ보완해 탄생했다. 지난 10월 7일, 서울 일원동성당에서는 말씀여행 잔치가 열렸다. 7일 대구에서 열린 소공동체 전국 모임에서 ‘말씀여행’이 소개된 후 첫 모임이었다. 전국 교구에서 240여 명이 모였다. 정월기 신부는 “내가 중심이 되는 성경 읽기는 예수가 없는 복음 묵상이 되기 쉽다”면서 “예수님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자신의 잘잘못으로 채워져 복음 묵상이 곧 자기반성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강우일 주교는 추천사에서 “본당의 소공동체 모임에 더 큰 활력을 주고 신자들이 말씀으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을 주리라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평화신문2019.11.13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25) 여행지 : 묵주기도](//cpbc.co.kr/CMS/newspaper/2021/09/rc/810358_1.6_titleImage_1.jpg)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25) 여행지 : 묵주기도마리 파울리타 수녀(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기쁠 때나 슬플 때나 우리 곁에 계시는 성모 마리아여 묵주의 기도드릴 때에 나를 위로하시며 빛을 밝혀주시니 모든 걱정 사라지고 희망 솟아오르네. 항상 도와주옵소서. 인자하신 어머니” 우리가 애송하는 가톨릭 성가 271번 ‘로사리오 기도드릴 때’입니다. 묵주 기도는 우리 가톨릭 신자들이 사랑하는 기도로, 언제 어디서나 무슨 일을 하면서도 쉽게 바칠 수 있습니다. 간단한 기도이지만, 구원 신비 전체를 담고 있어서 우리를 깊은 묵상과 관상에까지 이르게 하는 훌륭한 기도입니다. 그럼 ‘묵주 기도’ 퀴즈 여행을 떠나볼까요? 퀴즈여행 묵주 기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1. 묵주 기도를 로사리오 기도라고 하는데, 로사리오의 뜻은 무엇인가? 2.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은 언제인가? 3. 성경의 어떤 책을 낭송하던 것이 묵주 기도의 기원이 되었는가? 4. 우리 자신과 연옥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묵주 기도 각 단 끝에 바치는 기도는? 5. 묵주 기도를 바치는 방법 중 가장 옳은 것은? ①지향을 생각하며 바친다(예를 들어 지향을 둔 앓고 있는 사람). ②소리 기도(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 내용을 생각하며 바친다. ③신비의 내용을 묵상하며 바친다. ④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소리로만 바친다. 6. 4가지 신비 중 최근에 추가된 신비는? ①환희의 신비 ②빛의 신비 ③고통의 신비 ④영광의 신비 7. 주일에 묵주 기도를 바칠 때, 어떤 신비를 바치면 좋은가? 답란 1. □미 꽃다발 2. □월 □일 3. □편 4. □원을 비는 기도 5. □번 6. □번 7. □□신비 (정답은 ‘가이드 설명’에서 확인하십시오) 가이드 설명 1. 묵주 기도(로사리오 기도) 묵주 기도는 실에 꿴 묵주 알을 굴리거나 매듭의 골을 만지면서,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구원의 신비를 성모 마리아와 함께 묵상하며 바치는 기도를 말합니다. 로사리오(Rosario) 기도라고도 하는데, 로사리오는 ‘장미 화원’을 뜻하는 라틴어 로사리움(Rosarium)에서 나온 말로, ‘장미 꽃다발’이라는 뜻이지요. 우리가 묵주 기도를 바칠 때마다 장미 꽃다발을 바친다는 의미가 되기에 정성껏 봉헌하여야겠습니다. 2.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1571년 비오 5세 교황은 오스만 튀르크 족의 침입에 대한 그리스도교 연합 함대의 승리를 위해 모든 신자가 성모 마리아의 전구를 청하며 묵주 기도를 바치기를 권고하였습니다. 이에 레판토 해전의 기적적인 승리 기념일인 10월 7일을 묵주 기도의 기념일로 정하였고, 이후 1883년 레오 13세 교황이 10월을 묵주 기도 성월로 정하여, 우리 자신과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묵주 기도를 많이 바치기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3. 묵주 기도의 기원 묵주 기도의 기원에는 크게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첫 번째 설은 도미니코 성인(1170~1221년)이 선교를 위해 성모님께 기도하던 중, 성모님이 나타나셔서 묵주를 주시고 묵주의 기도를 널리 전하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설은 12세기 문맹인 수도자들이 전례에서 시편 150편을 낭송할 수 없어, 주님의 기도 150회를 3부분으로 나누어 암송하였는데, 이때 횟수를 세기 위하여 열매나 구슬 150개를 노끈이나 가는 줄에 꿰어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주님의 기도 대신 성모송으로 대체되었고, 영광송이 삽입되었다고 하지요. 4. 구원을 비는 기도(구원송) 1917년 성모님이 파티마에서 발현하여, 우리 자신과 연옥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부탁하면서 다음과 같은 ‘구원을 비는 기도’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예수님, 저희 죄를 용서하시며, 저희를 지옥 불에서 구하시고, 연옥영혼을 돌보시며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돌보소서.” 그래서 묵주 기도 각 단의 영광송 뒤에 이 기도를 덧붙일 수 있습니다. 2011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추계 정기 총회에서 통일된 번역문을 사용하기로 결정하여 가톨릭 기도서(개정판 21쪽)에 기도문을 수록하였지요. 5. 묵주 기도 드리는 방법 묵주 기도는 성모님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고 따름이 그 목적입니다. 묵주 기도는 소리 기도(염경기도)와 마음 기도(묵상기도)가 가장 아름답게 조화된 기도로, 소리 기도의 기도문(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을 외우면서 주님의 구원 신비를 묵상하는 데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즉, 각 단의 신비의 내용을 묵상하며 바쳐야 합니다. 기도의 지향은 기도 시작 전이나 끝에 말씀드리고, 기도문의 내용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소리 기도는 다만 잡념을 없애고 기도에 집중하기 위하여 바칠 뿐이지요. 6. 네 가지 신비 묵주 기도 신비는 하느님 구원 신비 전체를 묵상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환희의 신비’는 예수님의 잉태와 탄생 등의 기쁨에 대한 내용이며, ‘고통의 신비’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등의 고통에 대한 내용이지요. ‘영광의 신비’는 예수님의 부활과 이후의 예수님과 성모님의 영광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2002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 세 가지 신비(환희, 고통, 영광)에서 빠져있는 예수님 공생활 부분을 묵상할 수 있도록 ‘빛의 신비’를 추가하였습니다. 7. 요일별 묵주 기도 묵주 기도를 신비 내용에 따라 요일별로 다르게 바칠 수 있습니다. 목요일은 성체성사가 제정된 날이므로 ‘빛의 신비’, 금요일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날이므로 ‘고통의 신비’, 주일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므로 ‘영광의 신비’를 바치면 좋겠지요. 그리하여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신비를 요일별로 돌아가면서 바치기를 권장합니다. 여행 옵션 : 남양성모성지 (경기도 화성)남양성모성지는 병인박해(1866년) 때 목숨을 잃은 무명 순교자들을 현양하는 순교성지로, 한국 천주교회가 최초의 성모성지로 공식 선포한 곳이다. 1984년 성지를 개발하여 1991년 10월 7일 성모께 봉헌되었다. 2009년 로마 성모 마리아 대성전과 특별한 영적 유대로 결합된 순례지로, 2014년에는 ‘성모의 열두 별, 평화를 위한 기도 센터’로 지정되어 남북한의 평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있다. 성지에는 아기 예수님을 당신 치맛자락에 모시고 있는 한국형 성모상을 비롯하여 여러 동상이 많은데, 특히 약 1㎞의 화강암 대형 묵주 알로 조성된 20단 묵주 기도의 길이 유명하다. 최근에 통일 기원 대성당이 건립되어 세계적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여행 기념품 묵주 기도는 소리 기도(염경기도)와 마음 기도(묵상기도)가 가장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성모님과 함께 구원의 신비를 묵상하는 기도입니다. 나는 묵주 기도를 어떻게 바치고 있습니까? 그리고 각 단의 신비 내용을 묵상하면서, 그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마리 파울리타 수녀(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cpbc2021.09.29

가톨릭 교리의 정수, 떠나간 형제도 돌아오게 해제임스 기본스 추기경 명저 개정판 ‘가톨릭 고전’의 반열에 오른 제임스 기본스 추기경의 「교부들의 신앙」 개정 2판이 출간됐다. 이 책은 원서 「우리 조상들의 신앙」의 번역본으로, 1964년 처음 한국 교회에 소개됐다. 그리스도교 프로테스탄트파의 끊임없는 분파 현상이 있던 19세기 말 미국에서 출간된 당시, 가톨릭 교회의 정통성과 권위를 설명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믿는 많은 사람을 가톨릭에 돌아오게 한 명저로 꼽힌다. 미국 종교계의 큰 별이었던 볼티모어교구장 제임스 기본스(1834~1921) 추기경은 조상들의 신앙에서 이탈된 프로테스탄트 교파가 조상들의 신앙으로 복귀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 기본스 추기경은 다른 종교인들이 갖고 있는 가톨릭에 대한 선입견과 오해를 정확하게 짚었다. 교부들의 저서를 인용하며, 가톨릭 교리의 정통성과 정당성은 사도로부터 내려오는 교회에 있음을 강조했다. 가톨릭교회는 어떤 곳이며, 성모 마리아와 관련된 오해, 성화와 성상, 칠성사 등 가톨릭의 기초 교리들의 정수가 담겼다. 개정 2판에서는 성경 구절을 2005년 새 번역 성경으로 바꿨고, 현대에 어울리는 문장으로 다듬었다. 그러나 운석 장면(요한 1899~1966) 박사의 번역 원문은 최대한 준수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1964년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을 발표했다. 원래 그리스도가 세우셨던 하나의 교회로 다시 모여야 한다는 목표를 내걸었지만, 그 과정에서는 이미 갈라진 교회의 신자들을 같은 형제로 사랑하는 자세가 전제되어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가톨릭출판사 사장 김대영 신부는 서문에서 “교회 일치 운동을 중요한 사안으로 채택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이 책의 의의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분들도 계실 것”이라며 “그러나 이 책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간에 있는 해묵은 오해를 줄이고, 일치를 위한 첫걸음이 될 방향을 제시해 주는 데에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지혜 기자 교부들의 신앙 제임스 C. 기본스 지음·장면 편역 / 가톨릭출판사 평화신문2020.10.07

예수님 탄생일은 잘 알고 있지만… 예수님 생애는?성탄 시기에 읽을만한 책 인류의 역사는 예수 탄생을 기점으로 나뉜다. 기원전(BC, Before Christ)과 기원후(AD, Anno Domini)로 구분 짓는 연도의 기준도 ‘예수의 탄생’이다. 주님 성탄 대축일을 맞았지만 예수에 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다양한 장르의 성탄 관련 책을 통해 의미 있는 주님 성탄 대축일을 맞이하자. 25가지 성탄 이야기, 그리고 또 하나의 이야기 브루노 페레로 글ㆍ프란카 비탈리 그림 김정훈 옮김 / 가톨릭출판사 니콜라오 성인은 어떻게 산타 할아버지가 됐을까. 가브리엘 대천사는 왜 마리아에게 예수를 잉태할 것이라고 알렸을까. 크리스마스 트리들도 서로 이야기를 나눴을까. 포인세티아는 왜 크리스마스의 꽃이 되었을까. 성탄과 관련된 25가지 이야기와 함께 지금 이 시대에 예수가 태어났다면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해서 쓴 ‘현대판 성탄 이야기’ 동화책이다. 어린이들은 재미와 감동이 어우러진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배울 수 있다. 예수- 탄생과 어린 시절 송봉모 신부 지음 / 바오로딸 쉽고 깊이 있는 해설로 예수의 생애를 담아낸 책이다. 성경을 바탕으로 예수의 족보와 탄생, 공생활 이전의 삶을 소개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배경을 통해 예수의 어린 시절을 풍요롭게 다뤘다. 성경 속 이야기뿐 아니라 성화와 사진, 다양한 문학작품을 소개해 예수가 말하고 보여주려 했던 의미를 정확하게 짚고 있다. 송봉모(예수회) 신부는 예수의 생애를 설명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생애를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묵상하게 이끌고 있다. 송 신부는 “예수님이 성장 과정에서 겪었을 내적 고뇌와 슬픔의 깊이를 헤아려볼 때, 우리는 인간 예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친밀감을 느끼게 되며 그분에 대한 사랑이 저절로 솟아오를 것”이라고 말한다. 이어 “주위 사람들의 몰이해로 상처와 고통을 겪으며 성장하셨을 예수님이기에 우리의 상처와 고통을 결코 모른 체할 분이 아니시라는 것을 믿게 된다”면서 “비록 삶이 힘들지라도 용기를 내어 살아가자”고 토닥인다. 사람아, 그대의 품위를 깨달으라 발터 카스퍼 추기경 지음 / 김혁태 옮김 / 생활성서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함께 최고의 가톨릭 신학자로 꼽히는 발터 카스퍼 추기경의 대림ㆍ성탄 강론 모음집이다. 카스퍼 추기경은 레오 대교황의 강론을 인용해, “사람들이여, 그대의 품위를 깨달으라. 여러분이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명심하라”고 강조한다. 카스퍼 추기경은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가치를 바탕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자비의 하느님을 보여 준다. 이 시대에 일어나는 실질적인 사건 안에서 예수님이 어떻게 다가오시고, 우리는 그 예수님을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대림과 성탄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도와주고, 이 시기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 준다. 안셀름 신부의 성탄 선물 안셀름 그륀 지음 / 서명옥 옮김 / 성바오로출판사 세계적 영성가로 활동하는 독일의 안셀름 그륀 신부에게 성탄 카드를 받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안셀름 그륀 신부가 2008년부터 6년 동안 성탄 시기의 복음 말씀을 바탕으로 성탄 메시지를 묵상하며 쓴 성탄 편지들을 10가지 소망으로 나눠 엮었다. 성탄의 의미를 되새기며 △하느님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기 △하느님의 한없는 사랑을 체험하며 온전히 기쁘고 자유롭게 되기 △하느님을 믿고 우리 자신이 축복이 되기 등을 10가지 소망으로 정리해 엮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문채현2020.12.23

원로사목자, 성경 공부하러 유학길에 오르다 원주교구 정인준 신부,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공부 … 성서센터 만드는 것이 꿈 올해 8월 원로사목자가 된 정인준(원주교구) 신부는 8일 이탈리아 로마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사목 일선에서 물러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만도 한데, 다시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30여 년 전 다녔던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경 공부를 새롭게 시작하기로 했다. 출국 전 원주 사제관에서 만난 정 신부는 “늙은 총각의 못 말리는 열정으로 봐 달라”며 환하게 웃었다. “주변에서 다 늙어서 무슨 공부냐고 그러는데 저는 지금 무척 설렙니다. 성서를 전공하고 오랫동안 가르치기도 했지만 늘 더 공부하고 싶었던 주제들이 몇 가지 있었거든요. 이제는 시간이 많으니 공부에 전념할 수 있겠지요.” 정 신부는 성서대학에서 가까운 사제들을 위한 기숙사(Domus Paulus VI)에서 지낼 예정이다. 학교와 도서관을 오가고, 자유롭게 기도와 묵상을 하며 남는 시간에는 로마 시내 성당과 성지 곳곳을 다닐 생각에 이미 마음은 로마에 가 있다. 로마에 머물면서 10년간 써온 주일 강론을 틈틈이 정리해 강론집을 낼 계획이다. 또 예비신자들 눈높이에 맞춰 쉽고 재미있는 가톨릭 교리서도 쓸 예정이다. 신학교에 입학하면서 접어뒀던 그림도 다시 그려보려 한다. 고등학생 때 미대 진학을 고려했을 정도의 실력이었지만, 사제의 길을 걸으면서 붓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정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양 냄새 나는 목자가 되라고 하셨는데, 그동안 배우고, 공부하고, 받은 것을 나누며 신자들에게 따뜻하게 다가가는 양 냄새 나는 목자가 되려 한다”고 했다. “가톨릭교회의 첫째 사명은 선교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라면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건 선택 사항이 아니고 반드시 해야 할 일이지요. 제가 이렇게 로마로 떠나는 것도 선교를 위해서입니다. 공부가 끝나면 다시 돌아와 신자들 곁에서 항상 함께하고 싶습니다.” 정 신부가 그린 은퇴 이후의 삶은 로마 유학에서 끝나지 않았다. 정 신부는 오랜 꿈이라며 ‘성서센터’ 이야기를 꺼냈다. “작은 공간이라도 좋으니 성서센터를 만들고 싶어요. 그곳에 상주하며 신자들에게 성경을 알려주고, 고해성사도 주고 싶습니다. 경당과 성체조배실도 마련해 언제든 신자들이 머물 수 있도록 해주고 싶습니다. 또 여건이 된다면 성서센터 안에 ‘25시 행복한 가톨릭 카페’를 열어 언제든, 누구에게나, 커피 한 잔 내주면서 사는 이야기를 들어주려 합니다. 삶에 지친 교우들에게 힘이 돼주고 싶어요.”정 신부는 “신자들에게 맛있는 커피를 내려주려 바리스타 공부도 하고, 위로를 주는 노래 한 곡 불러 주려고 뒤늦게 기타도 배우고 있다”면서 “주책이라 해도 할 수 없겠지만, 은퇴를 하고 나니 오히려 열정이 되살아난다”고 말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평화신문2019.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