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술 가득한 커피계, ‘가난한 마음’ 새겨야[사유하는 커피](37)커피 부자와 가난한 마음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장 가난이 미덕일까, 부유함이 미덕일까? 구약 성경에서 부자는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만하다고 칭송한다. 풍요롭게 먹고 사는 것을 선하게 살고 있음을 드러내 주는 징표로 보는 것이다. 창세기 13장은 아브람이 가축과 은과 금이 많은 부자였다고 전한다. 욥은 동방인들 가운데 가장 큰 부자였으며, 요셉과 다윗 등 구약시대에 하느님의 자녀로 일컬어진 사람들은 하나같이 부유했다. 그러나 신약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상황이 바뀌어 가난함이 칭송을 받는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는 것보다 어렵다”고 비유할 정도다. 부자에 대한 인식이 왜 이렇게 나빠진 것일까? 약한 사람들을 착취해 재산을 불리는 일이 횡행하면서 부자는 하느님의 심판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 전락했다. 반면 이들의 폭정으로 인해 압제를 받고 물질적 결핍을 겪는 가난한 사람들은 ‘의롭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대명사가 됐다. 특히 기원전 6세기 유다인들이 바빌론 포로생활로 인해 고통받은 후에는 억압받는 사람 또는 가난한 사람이 주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의인들로 은유됐다. 예수의 시대로 접어들어 가난의 의미는 심오해진다. 가난은 ‘결과’가 아니라 ‘지향점’이라는 메시지가 드러난다. 루카 복음 6장 20절엔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라고 제자들에게 하신 예수의 말씀이 적혀 있다. 불의와 부정이 판치는 세상에 가난한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고행 같은 일이다. 그러나 ‘가난하게 살아라’는 성경의 말씀은 개인 수준에서 금욕주의 실천을 요구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다. 방점은 모든 사람이 잘살 수 있도록 가진 자들이 자선을 베풀 것을 촉구하는 데 찍혀 있다. 가난을 향한 길에 자선과 청빈의 꽃이 핀다. 가난한 자를 돕는 것에 축복이 내려지고 억누르는 것에 불의 심판이 가해지는 것은 결국 ‘공동선’을 이루려는 하늘의 디자인이라 하겠다. 부자와 가난을 키워드로 인간사를 풀 때 시간이 흐를수록 인류가 진화한다는 명제는 거짓이다. 인류의 품격은 퇴보하고 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갈수록 쉽지 않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작금의 커피계를 들여다봐도 그렇다. 행복을 전해야 할 커피가 일부의 탐욕으로 인해 되레 우리의 마음을 가난하게 만들고 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듯이, 커피의 본질적 가치는 위아래가 없다. 출처가 명확하고 올바르게 관리된 커피는 인격처럼 각각 소중하게 대접해야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향미 잠재력이나 가공 정도에 따라 커피에는 등급이 매겨진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평가라는 것이 가격으로 치면, 생두 1kg에 1만 원에서 4만 원가량 차이가 나는 정도이다. 비싸더라도 10만 원을 넘기는 것은 파는 사람도 민망해 했다. 그때는 비싼 값을 받은 재배자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성실함의 대가인 만큼 비싸게 팔아서 부자가 되라는 덕담도 뒤따랐다. 하지만 여기에 탐욕에 찬 상술이 판치면서 사정이 바뀌고 있다. 얼마 전 생두 450g에 1300달러(약 143만 원)에 팔린 커피가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수년 전부터 비슷한 시기가 되면 터져 나오는 뉴스인데, 해마다 가격이 치솟는다. 450g을 볶으면 원두의 무게는 380g 정도로 줄어든다. 한 잔의 드립 커피를 제공하는데 원두 20g가량을 사용한다고 할 때, 이 커피 한 잔의 원가는 7만 5200원이다. 원두 60알이 7g~8g이므로 커피 한 알의 가격이 500원에 육박하는 것이다. 이렇게 엄청난 값에 팔리는 커피의 이면에는 농간을 부리는 부자들의 네트워크가 있거나 여기에 기대어 한몫 챙기려는 상술이 숨어있기 마련이다. 하늘나라는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조장하는 커피 부자들의 것이 아니다. 더 늦기 전에 ‘가난한 마음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평화신문2021.01.27
의정부교구, 팬데믹 극복 위한 생활 지침서 발간지난해 이은 두 번째 지침서, 신앙습관 회복 위한 방안 담겨 의정부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회장 김용무)가 13일 코로나19 팬데믹 극복을 위한 두 번째 신자생활 지침서<사진>를 발간했다.2020년 8월 발간한 첫 번째 신앙생활 지침서에 이은 두 번째 지침서다. 이번 지침서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교회 활동이 크게 위축되면서 무너진 신앙습관을 다시 세우고 미래를 준비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지침서 제목을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나에게 오너라”(이사 55,3)라고 한 것도 마음을 새로이 하고 주님과 함께 이 위기를 극복해보자는 뜻에서다.지침서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이 교회와 우리 신앙생활에 미친 영향을 신앙의 눈으로 성찰한 글,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바칠 수 있는 기도문, 무너진 습관과 흐트러진 신앙생활을 회복하기 위해 새로운 습관을 들이는 방법을 다룬 영상 등이 소개되어 있다. 또한, 성경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과 집에서도 해외 유명 순례지를 온라인으로 관람할 수 있는 3D 영상, 프란치스코 교황이 회칙 「모든 형제들」에서 강조한 신앙 실천 방법을 소개한 영상도 담았다. 개인적 자선을 넘어 많은 이를 이롭게 할 수 있는 사회적 자선의 방법들, 특히 가정에서 실천할 수 있는 내용을 소개한다. 이 밖에 이 시기에 읽으면 좋을 신앙 도서들, 스마트폰으로 언제든 시청할 수 있는 유튜브 신앙 콘텐츠도 담았다. 의정부평협은 코로나19로 힘겨운 시기 지침서를 통해 스스로를 위로하고 새로운 희망을 찾아가는 기회로 삼길 바란다고 소망했다.지침서는 의정부교구 홈페이지, QR코드를 통해 휴대전화로도 확인할 수 있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cpbc2021.01.26

토닥토닥… 이땅의 청년들 위로하는 신부의 따뜻한 메시지이석균 신부와 청년들의 채팅방 대화 엮어주제별로 신앙·이웃·성인·사회 등 다뤄세상 문제를 복음의 빛으로 풀이 낮에도 별은 빛나고 있음을이석균 지음 / 생활성서사세상을 바라보는 ‘신앙의 눈’을 뜨게 해주는 책이다. 살아가며 마주치는 신앙적 고민과 사회적 문제에 대해 사목자의 조언과 따뜻한 격려가 담겨 있다. 책의 제목 「낮에도 별은 빛나고 있음을」에서 보듯 분명히 존재하지만,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을 신앙의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읽는 이들을 초대한다.책은 이석균(서울 제기동본당 주임) 신부와 몇몇 청년의 단체 채팅방에서 오간 대화를 기반으로 쓰였다. 이 신부가 청년들이 세상을 올곧게 바라보고 행동하기를 바라며 조직한 가톨릭 청년 시민학교 ‘단톡방’에서 오랜 기간 쌓인 메시지 가운데 더 많은 이들과 함께 고민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추렸다. 청년에게 띄우는 메시지이지만, 복음의 눈으로 사회 전반의 현상과 가치를 판단하는 내용이기에 신앙인 모두를 대상으로 한다.좁게는 내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서부터 넓게는 부의 불평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무관심 등 세상 문제에 대해 신앙인으로서 어떤 관점을 갖고 행동해야 할지 복음의 빛으로 풀이한다. 그렇다고 현학적 신학이나 교리를 중심으로 길을 제시하지 않는다. 영화나 책, 예술 작품, 저자가 겪은 일화, 옛 성인의 이야기 등을 통해 독자 스스로 고민에 대한 답을 생각해보도록 이끈다. 청년 눈높이에 맞게 쓰인 세상살이 신앙 지침서요 안내서다. 장황하지 않고 시처럼 간결한 문체로 담아내 쉽게 읽힌다.4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책은 장마다 공통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 1장은 사랑과 신앙의 가치를, 2장은 ‘우리가 주님 앞에서 어떤 신앙인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이웃이 될 것인가’에 관한 글이 주를 이룬다. 밥을 안 사는 짠돌이 친구, 부르심에 응답한 안드레아와 사무엘 등 우리 주변과 성경 속 인물이 등장하며, 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내면을 돌아보게 이끈다. 3장은 안토니오와 아타나시오,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등 6명의 성인의 삶을 소개하고, 4장은 우리 사회와 교회의 모습을 살펴본다. 서울대교구 동서울 지역 교구장 대리 유경촌 주교는 추천의 말에서 “이 시대에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옳게 알아듣기 위해서는 일꾼 스스로 경청의 안테나를 높이 세워야 하며 그런 점에서 사제는 구도자”라며 “신부님의 글에는 구도자의 고민과 시대의 사색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말했다. 이어 “책 안에 신부님이 정성껏 구워낸 ‘말씀의 빵’들을 보다 많은 청년이 맛있게 드시고 위로와 힘을 얻으시기를 축원한다”고 전했다.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cpbc2021.03.24
[갤러리 1898 ] 김효정, 김하현 작가 전시회 외김효정,?김하현 작가 전시회, 18일까지 김효정, 김하현 작가가 12일부터 18일까지 서울 명동 갤러리 1898 제1전시실에서 ‘HUG YOUR BLUE(너의 우울을 사랑해)’를 주제로 전시회를 연다. 작품을 통해 관객들의 울적한 마음을 달래고자 두 작가가 마련한 전시회다. 또한, 작품을 통한 우울증 인식 개선과 한국자살예방협회 후원에 힘을 보태기 위한 마음도 담았다. 두 작가는 작가의 관점으로 스스로 마주했던 우울한 감정을 어떻게 대면하고 작품으로 승화했는지 보여주려 한다. 회화 작품 40여 점이 전시된다. 전시회를 통해 발생하는 수익금 일부는 한국자살예방협회에 후원할 예정이다. 이다혜 작가 ‘모호한 기억의 경계’ 전시 제2전시실에서는 12일부터 24일까지 이다혜(아델라이데) 작가가 ‘모호한 기억의 경계’를 주제로 전시회를 마련한다. 이 작가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살아내고’, ‘살아가는’ 인생의 여정 속에서 하루하루, 그리고 우리가 경험하는 삶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는 혼자서는 완성할 수 없는, 하느님께서 주신 ‘삶’이라는 선물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을 다양한 소재와 방법으로 작업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작품마다 고유한 색감과 질감으로 다양한 기억의 이야기를 전한다. 회화 작품 20여 점이 전시된다. 그리스도 회화 작가 단체전 같은 기간 제3전시실에서는 그리스도 회화 작가들이 단체전을 연다. 전시회의 주제는 ‘Bible Stories and Motives.’ 성경 속 주제들을 예술의 언어로 캔버스에 표현했다. 작품 하나하나에는 빛과 희망, 예수님, 하느님의 따뜻함이 넘쳐난다. 작가들은 성경으로부터, 그러나 그에 국한되지 않는 근원적 메시지를 사회-문화적인 좌표로 옮기며 관객들이 이번 전시회에서 성경 속 이미지들을 해석하며 개인적 문제들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회화 작품 23점이 전시된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cpbc2020.08.05
귀와 마음을 열고 이웃의 말에 귀 기울이자 성 김대건 희년 CPBC 캠페인 1월 주제 / 저는 이웃과 함께합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 CPBC 캠페인 “예, 저는 천주교인입니다” 1월 실천 주제는 ‘저는 이웃과 함께합니다’이다. 성인은 마지막 옥중 서한에서 신자들에게 서로 돌볼 것을, 이웃과 함께할 것을 당부했다. “비록 너희 몸은 여럿이나 마음으로는 한 사람이 되어 사랑을 잊지 말고 서로 참아 돌보고 불쌍히 여기며 주의 긍련하실 때를 기다리라.”(스물한 번째 편지, 마지막 회유문, 1846년 8월 말 옥중에서, 주교회의 희년 안내서 p40)하지만 성인의 말씀을 우리의 삶에서 녹여내기가 여간 쉽지 않다. 먼저 “남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마태 7,12)라는 성경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몸을 풀자. 그리고 입을 잠시 쉬고 귀를 열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경청의 자세로 진솔한 대화를 하고, 선을 지향하며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에서도 “대화할 때는 상대방의 말이나 생각을 결코 함부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혼인에 대한 가르침이지만, 비단 부부 사이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상대방의 관심을 대화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가족을 넘어 이웃과 함께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CPBC 캠페인 1월 세부 실천 사항은 △경청하기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기다. 2021년 신축년을 맞아 우직한 소처럼 실천해보자. 귀와 마음을 열고 이웃의 말에 귀를 기울이자. CPBC 캠페인은 가톨릭평화신문과 CPBC TV, 라디오, 유튜브 등을 통해 동시에 진행된다.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평화신문2021.01.06

거룩한 전례에 참여하는 일치의 표지 ‘기도 동작’[미사의 모든 것] (17)기도 동작 미사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취하는 통일된 자세는 거룩한 전례에 참여한다는 일치의 표지다. 일어 서서 하느님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것은 초대 교회 때부터 이어진 가톨릭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이며 가장 일반화된 기도 자세다. 【CNS 자료 사진】 나처음: 미사에 참여할 때마다 차별을 느껴 마음이 편치 않아요. 미사에 참여한 신자들이 일반인이 성경을 읽을 때는 앉아 있다가 신부님이 읽을 때는 모두 일어서는 거예요. 미사에도 성직자와 일반 신자의 차별이 있다는 게 너무 한 거 아닌가요. 예비신자인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요?조언해: 평신도가 낭독하는 미사 독서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아니기에 앉아서 들을 수 있으나 신부님이 선포하는 복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이기 때문에 감히 앉아서 들을 수 없으므로 일어서는 게 아닐까? 맞죠! 신부님.라파엘 신부: 말씀 전례 복음 말씀이 다른 미사 독서의 하느님 말씀보다 더 권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야. 미사 전례의 성경 독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일관성 있게 보여주고 있단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셔서 구약 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예언자들을 통해 여러 번 여러 방식으로 당신 구원 계획을 말씀하시다가 마지막 때에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임무를 완수하게 하셨지. 인간의 죄를 대신하시어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심으로 인간이 죄와 죽음에서 구원되어 하느님과 함께 영원한 삶을 누리도록 해 주셨단다. 말씀 전례의 성경 독서는 이 구원의 역사를 하느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일관되게 전달해 주고 있는 거야. 그래서 말씀 전례 성경 독서는 모두 봉독자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고 끝맺음을 하지. 복음 봉독이 말씀 전례의 정점이나 독서와 복음 말씀의 우열을 가리거나 구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해. 늘 똑같은 권위로 하느님 말씀을 공경하고 합당한 예를 표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바람직한 자세란다. 나처음: 그런데 왜 자꾸 앉았다가 일어섰다 하나요? 조용한 분위기에서 미사에 집중하고 싶은데 그럴 때마다 일어섰다 앉았다 해서 분주함마저 들어요. 조언해: 미사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취하는 통일된 자세는 거룩한 전례에 참여한다는 일치의 표지야! 내 취향대로 내 마음대로 미사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전통 관습 안에서 함께 거룩한 전례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지. 라파엘 신부: 미사 중에 신자들이 취하는 동작은 다 뜻이 있단다.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해 보마. 먼저, 기능적인 동작이야. 어떤 일을 행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행동을 말해. 예를 들어 성합과 성작을 닦는 것, 사제가 손을 씻는 것, 제대를 향해 행렬을 지어 입당하는 것 등이 기능적인 동작이라고 할 수 있지. 두 번째로 말과 행동을 함께함으로써 그 행위가 무엇을 뜻하는가를 드러내는 동작이야. 입당 예식 참회 기도 때 “제 탓이오” 하면서 가슴을 치는 행위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지. 마지막으로 상징적인 동작이 있어요. 사제가 영성체하기 전에 성체 조각을 성혈과 섞는 행위라든가, 세례식 때 영세자에게 흰옷과 초를 주는 행위 등이 그 예이지. 말씀 전례 성경 독서 때 일어서고 앉는 것 또한 상징적인 동작에 속한다고 여기면 돼.일어서는 자세는 ‘존경과 공경’의 표시야. 모임 때 윗사람이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일어서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미사를 주례하는 사제가 성당에 들어오거나 나갈 때 모두 일어서서 존경을 표하는 것이지. 또 사제(또는 부제)가 복음을 읽을 때도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을 선포하시는 것으로 여겨 모두 일어서서 듣는 거야. 마치 내가 응원하는 운동팀이 골을 넣거나 홈런을 칠 때 벌떡 일어나 환호하듯 주님의 말씀을 듣기 전에 “알렐루야”를 힘차게 노래하면서 일어서는 것이지. 일어선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태도를 가다듬음을 뜻하지. 앉아 있을 때의 편안한 자세 대신 자제하는 자세, 단정한 자세를 취하게 되는 것이지. 이것은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야. 서 있는 자세는 그 무언가를 긴장하고 깨어 있으며 즉각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음을 표하는 것이지. 그래서 복음 선포의 사명을 서슴지 않고 이행할 수 있는 자세가 바로 서 있는 것이지. 사실 서서 하느님 말씀을 듣는 것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의 오랜 관습이기도 해.(탈출 20,21; 33,10; 느헤 8,5; 에제 2,1; 다니 10,11)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서서 하느님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것은 더욱 깊은 의미가 있단다. 바로 ‘일어섬’은 죽음에서 일어나신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기 때문이지. 그래서 특히 부활 시기 삼종기도를 바칠 때는 일어서서 부활의 기쁨을 드러내는 게 교회의 관습이지. 아울러 서서 하느님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것은 초대 교회 때부터 이어진 가톨릭교회의 아름다운 전통(마르 11,25; 루카 18,13)이며 가장 일반화된 기도 자세야. 제1차 니케아 공의회(325년)는 부활의 기쁨을 드러내는 주일과 부활 시기에 무릎을 꿇지 말고 서서 미사를 하도록 의무화하기도 했지.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통해 죄의 종살이에서 벗어난 자유인,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하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단다. 그래서 희망과 믿음으로 종말을 기다리는 사람의 표지로 서서 기도하는 자세를 갖춘단다. 또 서서 기도하는 것은 사제직을 수행하는 이의 자세야. 여기서 말하는 사제직은 성품성사를 받은 사제들의 직분만을 뜻하지 않고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물려받은 모든 신자를 말하는 것이야. 그래서 사제는 항상 서서 미사를 주례하고, 신자들도 기도하는 부분에는 모두 일어서서 주님의 사제직에 동참하는 것이지. 앉음은 하느님 말씀을 귀담아듣는 자세야. 예수님께서도 어릴 때 예루살렘 성전에서 학자들이 말하는 것을 앉아서 들으셨지.(루카 2,46) 또 라자로의 동생인 마리아도 예수님의 말씀을 그분 곁에 앉아서 들었으며(루카 10,39),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도 당신 주위에 모여 앉아 말씀을 경청하도록 하셨지.(마르 3,31; 마태 5,1 이하)이렇게 앉음은 스승의 위엄과 권위를 드러내는 자세일 뿐 아니라 가르침을 받는 제자들이 스승의 말씀을 경청하는 겸손의 자세이기도 해. 미사 말씀 전례 때, 독서와 강론을 들을 때 신자들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의미라고 할 수 있지. 기도 동작 중 ‘무릎 꿇음’의 자세도 있단다. 사람은 간절할 때 무릎을 꿇지. 아울러 무릎 꿇음은 상대를 공경하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표시이기도 하지. 예수님께서도 수난 전에 겟세마니 동산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단다.(마태 26,39) 또 사도행전에는 베드로(9,40)와 바오로(20,36) 사도도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고 나오지.그래서 미사와 기도할 때, 하느님을 경배하고 주님께 간절히 청할 때 무릎을 꿇지. 성체와 성혈을 축성할 때나 장엄 기도 때, 그리고 성당에 들어설 때는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성체와 제대, 십자가 등에 무릎을 꿇고 예를 표하지. 하지만 요즘은 무릎을 꿇지 않고 허리를 굽히는 큰 절로 바꾸어 하기도 해. 무릎을 꿇는 것은 아울러 ‘뉘우침을 드러내는 표시’이기도 해요. 이런 면에서 부활의 기쁨을 드러내는 서는 자세와 정반대의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겠지. 그래서 고해실에는 무릎을 꿇고 고해성사를 하도록 무릎틀을 마련해 놓았단다.로마노 과르디니 신부님의 묵상 글로 오늘 이야기를 마무리하마. “우리네 인간이 하느님 앞에 섰을 때보다도 자신을 더 작게 느낄 때가 어디 있겠는가…절로 작아진다. 어느새 키를 반으로 줄이게 된다. 인간은 무릎을 꿇게 된다.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으면 허리까지 굽히게 된다. 이렇게 낮아진 모습이 아뢰는 것은 ‘당신은 지대한 하느님이시요 나는 아무것도 아닌 자’라는 뜻이다.”(「거룩한 표징」 중에서)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0.11.11

기도하듯 쌓아올린 작은 붓질… “교회 미술의 출발점은 성경”[한국 가톨릭 미술 여성 작가들] 권녕숙 리디아 화백 권녕숙 화백의 템페라 작품은 그 안의 인물들이 살아있듯 단단하게 자리한 모습에서 단순한 대상이 아닌 영혼의 존재를 느끼게 한다. ‘성모자’, 템페라. ※이번 글 역시 2017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주관한 한국 가톨릭 미술가 동영상 기록 작업을 진행하며 인터뷰했던 내용을 중심으로 작성하였다.권녕숙(리디아) 화백은 처음부터 순조롭게 미술학도의 길을 걷지는 못했다. 1938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미술대학 진학을 꿈꿨으나 부모의 반대로 1957년 서울대 문리대 생물학과에 입학했다. 산부인과 의사였던 어머니의 영향이 컸던 진로 선택이었다. 서울대 문리대에서 미대 서양화과로 편입권 화백은 그러나 미술학도의 꿈을 접을 수 없었고 입학한 지 1년 만인 이듬해 1958년 당시 서울대 미대 학장인 장발 선생을 찾아가 편입 시험을 치르고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물론 부모 몰래 벌인 일이었다. 권 화백은 본디 식물에 관심이 많기도 했고 처음 진학했던 생물학과에서 식물학을 전공하며 식물 삽화를 그렸던 경험이 이후 작품에도 영향을 미쳐 자신의 판화 작업에 식물 모티프들이 많이 등장하게 된 것 같다고 회고했다.이후 권 화백은 1961년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63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 1965~1969년 에꼴데보자르에서 판화를 전공했다. 대학 졸업 무렵에 가톨릭에 입교한 그는 파리 유학시절 모든 역사와 문화 예술이 종교에서 나오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고, 가톨릭 신자들이 모여있는 아틀리에서 공동으로 작업을 시작하면서 템페라 기법을 배우게 되었다. 조형 예술과 종교화 사이에서의 깊은 고민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아틀리에에서 우리는 마치 수도생활 하듯이 공동의 일과 개인 작업을 병행하며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함께 작업하던 두 명 중 한 명은 정교회와 비잔틴 미술에 대한 이해가 깊었는데, 보다 현대화된 그림을 그리고자 프랑스로 유학 온 그리스인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비잔틴박물관 관장이었죠. 그는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 조형미 예술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어떻게 종교로 표현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큰 그림도 가는 붓으로 머리카락처럼 한 올 한 올 기도를 바치듯 그렸습니다. 저는 그의 그러한 작업 방식에 자극을 받아 템페라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교회 미술은 나 자신을 내세우기보다는 중세 무명의 장인들이 그랬듯이 신앙을 바탕으로 정성과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종교화는 손끝에서 나오는 것만이 아닌 어떤 큰 힘에 의한 이끌림에 따른, 영적인 신앙심에서 나오는 것임을 깨달은 것이죠.”종교화는 손끝이 아니라 영적 신앙심에서유럽에서 13년간 작업을 하다 1974년 귀국한 권 화백은 1977년 서울가톨릭미술가협회 활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을 펼치고 있고 제6회 가톨릭 미술상 본상을 받았다. 그는 1984년 한국 가톨릭 200주년을 맞아 대대적으로 개최되었던 ‘영원의 모습’전 준비를 위한 실무를 맡아 진행하기도 했는데 당시 앙리 마티스, 마크 샤갈, 장 바젠 등 유럽 대가들의 성미술을 직접 접할 수 있는 것은 매우 귀한 경험이었다고 회고했다. 권 화백 역시 초기에는 추상화를 많이 그렸으나 교회 미술 작업에 있어서는 신자들과의 소통,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경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종교 미술을 한다는 것은 선교사의 역할과 같다고 하면서 성당이 미술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권 화백의 작품에는 한국인의 모습을 한 성모님과 아기 예수가 등장하곤 한다. 둥그스름한 얼굴에 크게 도드라지지 않는 이목구비를 한 작품 속 인물들은 그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정감 있는 모습으로 따뜻하게 다가온다. 권 화백은 종교화에서도 시대 흐름에 맞춰 인물을 그리는 것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를 위해 권 화백 자신도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끊임없이 인체 크로키를 반복한다. 그는 크로키는 사물을 파악하는 방법이라고 하면서 사진을 찍어 오버랩시켜놓는 것이 아닌 작가의 눈으로 파악한 대상을 그려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권녕숙 화백은 판화, 템페라, 유화 등 평면 작업 외에도 국내 성당 여러 곳에 스테인드글라스 작업도 선을 보였다. 천주섭리회 수녀원과 강원도 인제의 다물 피정의 집 성당 스테인드글라스가 대표작이다. 그는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에 있어서는 부분적으로 구상적 표현을 쓰면서도 빛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크게는 추상적으로 접근한다. 그는 성화 작업에 있어서는 신자들과 쉽게 소통할 수 있는 구상적인 표현을 선호하지만, 스테인드글라스는 빛 자체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색유리의 투명성을 살리고자 했다. 그래서 글라스 페인팅도 최대한 절제해서 작품을 완성해간다. 권 화백은 대상을 면밀히 관찰하고 본질을 파악해 그에 맞는 표현을 작품에 적절히 적용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준다. 자신의 고유한 색은 성경에서 시작돼야구상이든 추상이든, 평면 작업이든 스테인드글라스든 권 화백에게 있어 교회 미술의 출발점은 늘 성경 말씀이다. 아울러 그는 이전 세대의 미술가들이 남긴 교회 미술 작품에 대한 연구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교회 미술을 하려면 과거의 교회 미술을 공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왜 이렇게 그렸을지 알기 위해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 미술을 하는 이들은 늘 곁에 성경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어질 때 렘브란트나 뒤러와 같은 대가들의 작품을 많이 보면서 나는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게 됩니다.”권 화백은 이렇게 성경과 교회 미술사에 대한 연구, 대상을 파악하는 통찰력과 그 시선으로 파악한 것들을 다시 손으로 구현해내는 일련의 과정들을 마치 수도자와도 같이 계속해서 반복해 나간다. 그에게 예술이란 작품을 보는 이에게 어떤 감흥을 줄 수 있어야 하기에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조형 언어를 구사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는 성경 말씀을 체화하고 자신의 내면을 통찰할 수 있도록 늘 스스로를 담금질하고 있다.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진정한 교회 미술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고유한 색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성경’ 말씀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기도하듯이 쌓아올린 작은 붓질들로 완성된 권녕숙 화백의 작은 템페라 작품을 마주하면 그 안의 인물들이 살아있듯 단단하게 자리한 모습에서 단순한 대상이 아닌 영혼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작품 속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는 성경 말씀의 울림과 과거 거장들의 흔적을 생각하며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 장미창에 표현된 ‘거인 어깨 위의 난쟁이’를 떠올리게 된다. 그의 작품에서는 미래로 향하는 과거가 담겨있다. 평화신문2019.12.18

성 김대건 신부 희년 9일 축제 솔뫼성지서 개막대전교구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 기념행사’ 이모저모 14일 레지오 마리애 설립 100주년 기념식에서 연무본당의 이용훈 아우구스티노씨가 쉬는 교우 회두 공로로 모범상을 받고 있다.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 기념행사가 14일 솔뫼성지에서 막을 올려 9일간의 축제에 들어갔다. 특히 성인의 탄생지 솔뫼성지를 관할하는 대전교구는 이날 솔뫼성지 천주교 복합예술공간 ‘기억과 희망’ 성당에서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 개막 미사를 레지오 마리애 설립 100주년 기념 미사와 겸해 봉헌했다. 참가자들은 미사 중에 성인이 걸어간 믿음의 삶과 신앙 여정, 영성을 성모 신심과 함께 기억하고, 기도하고, 공부하고, 새롭게 살기를 다짐했다. 다음은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행사 이모저모다. ○…대전교구는 이날 기억과 희망 성당에서 교구장 서리 김종수 주교 주례로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과 레지오 마리애 설립 100주년 기념 미사를 봉헌하고, 탄생과 설립, 겹경사의 기쁨을 함께 나눴다. 미사에 앞서 시작기도와 함께 묵주 기도, 까떼나를 바쳤다. 대전가톨릭대 교수 김정환 신부는 ‘김대건 신부와 성모신심’에 관한 훈화를 통해 “김대건 신부님의 성모신심의 두 가지 원천은 우리 전통인 효 사상과 결합된 어머니라는 신심과 선교사들로부터 전해진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 기적의 메달이라는 신심이었다”면서 “조선 신앙인들의 신앙을 보면, 숨을 쉬고 밥을 먹는 것처럼 ‘반복하는 신앙’이 신앙생활의 축이었다”고 강조했다. ○…미사 직후 교구 평화의 모후 레지아는 레지오마리애 설립 100주년 기념식을 열고, 희년을 맞아 성경을 필사한 1135명 중 대표로 이재문(클레멘스, 도안동본당)씨, 선교 사도직을 모범적으로 수행한 이경애(사비나, 탄방동본당)ㆍ이용훈(아우구스티노, 연무본당)ㆍ기승학(요셉, 강경본당)ㆍ최정화(바울라, 연무본당)씨, 40년 장기근속 단원 송영빈(바티아, 원신흥동본당)씨 등을 시상하고 격려했다. 대전 평화의 모후 레지아 담당 김민희 신부는 대회사를 통해 “언제나 예수님의 말씀에 순명하셨던 성모님처럼, 우리 레지오 마리애도 ‘사람들을 자리 잡게 하라’는 예수님 말씀에 기꺼이 순명하는 사도직이 돼야 하겠다”고 당부했다. 주교회의 평신도사도직위원회 위원장 손희송(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도 축사를 통해 “레지오 마리애가 앞으로의 100년을 향해 나아가면서 성모님을 많이 닮은 레지오 단원들이 더욱 많아져 우리 교회에 영적인 생명을 불어넣고 세상에 새로운 기운을 북돋아 주기를 기원하고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기념식은 레지오 설립 100주년 기념 영상을 시청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레지오 마리애 100주년을 기념한 뒤에는 김대건 신부 토크 콘서트 ‘길이 된 인생을 이야기하다’를 통해 다양한 예술로 성인을 조명했다. 토크 콘서트는 1부 순서로 김대건 신부 관련 저술을 쓴 강종민(아우구스티노)ㆍ전현정ㆍ김영(요비타엘리사벳) 작가를 초대, 성인의 방계 4대손인 대전교구 사회복음화국장 김용태 신부와 배우 손여은(가타리나)씨의 사회로 김대건 신부의 삶과 믿음의 여정에 대해 듣는 자리였다. 2부는 대건고 출신의 그래피티(graffitti) 작가 최성욱(활동명 레오다브)씨가 김대건 신부를 그리는 라이브 공연으로 시작됐다. ‘새롭게 김대건 신부를 표현하다’ 토크쇼에는 다채로운 색상의 블록으로 작품을 만드는 브릭(Brick) 작가 이제형씨와 빛과 모래의 만남을 통해 작업하는 샌드 아티스트 이지은씨, 사각의 점 픽셀(Pixel)로 세상을 표현하는 픽셀 작가 임윤범씨, 그래피티 작가 최성욱씨 등과의 흥미로운 대화가 이어졌고, 성인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솔뫼 앙상블과 마임의 개막음악회가 야간공연으로 솔뫼의 밤하늘을 장식했다. 강종민 작가는 “김대건 신부님의 삶은 하느님과 성모님에 대한 온전한 의탁, 장상에 대한 순명, 불굴의 도전 정신, 신자들에 대한 지독한 사랑 등 네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며 “진리를 박해를 받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신부님께서는 순교로 증명하셨다”고 강조했다. ○…‘봉사자의 날’로 기획된 둘째 날 기념행사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당시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AYD)와 제3회 한국청년대회(KYD) 봉사자들을 초청,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를 봉사자의 날 기념 미사로 봉헌하며 시작됐다. 교구 보좌 한정현 주교는 강론에서 “AYD와 KYD에서의 봉사는 참가자들에게 충분히 아름다운 순교 정신으로 이어졌다고 회상한다”며 “‘아시아의 젊은이여 일어나라! 순교자의 영광이 너희를 비추고 있다’는 대주제 아래 함께 몸과 마음, 기도와 봉사로 그날을 함께하신 여러분들이 진정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2014년 청년대회에 봉사자로 참여했다가 만나 혼인한 이영윤(베드로)ㆍ최유라(율리아)씨 부부는 “주교님 말씀과 일화를 들으며 ‘아, 그때는 그랬지’ 하는 생각이 자꾸 났다”면서 김대건 신부를 닮아가는 청년 복음화와 선교의 의지를 가슴속에 아로새겼다. 주최 측은 또 이날 오후에는 봉사자의 날 기념행사로 교구 가톨릭 음악선교단인 ‘이사야53’과 생활성가 가수 ‘열일곱이다’를 초대, 토크 콘서트와 찬양의 시간을 보냈고, 야간에는 가수 이영지ㆍ전호성ㆍ지세희씨의 공연이 이어졌다. ○…‘남북 평화의 날’로 기획된 셋째 날 기념행사는 16일 기억과 희망 성당에서 교구 한끼100원나눔운동본부장 권지훈 신부 주례로 ‘남북 평화의 날 미사’를 봉헌하는 것으로 막을 올렸다. 이어 같은 장소에서 식전 공연 샌드 아트 공연을 시작으로 김홍장 당진시장과 대전교구장 서리 김종수 주교 등이 함께한 가운데 남북평화의 날 기념행사가 펼쳐졌다. 또 기념강연으로 김종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에게 ‘조선전도와 김대건 신부’에 관해 듣는 시간이 마련됐고, 북한이탈주민의 통기타 공연, 충남 당진시 송악읍 기지시리의 풍년 기원 행사인 중요무형문화재 제75호인 ‘기지시 줄다리기’ 시연이 이뤄졌다. 야간에는 마술 서커스와 LED 퍼포먼스 등이 진행됐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cpbc2021.08.18

하느님 앞에서 침묵하기[미카엘의 순례일기] (26)침묵의 제스처 트레 폰타네의 베네딕토 성상. 검지를 입에 대고 ‘침묵’과 ‘경청’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로마에는 ‘트레 폰타네(Tre Fontane)’라고 하는 성지가 있습니다. 바로 사도 바오로의 참수 터입니다. 성인께서 참수되면서 그분의 머리가 세 번 바닥에 튀었고, 그 장소마다 물이 흘러나왔다고 전해지는 곳입니다. ‘구원의 물 거리(Viale delle Acque Salvie)’라는 이름을 가진 길에 자리한 트레 폰타네는 시끄러운 로마 시내를 벗어나 조용하고 아늑한 가로숫길을 걷다 보면 만날 수 있습니다. 트레 폰타나의 입구에는 베네딕토 성인의 석상이 세워져 있는데, 특이하게도 오른손 검지를 입에 대고 있는 모습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것을 ‘침묵’하라는 의미로 해석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침묵의 제스처’라고 불리는 이 상징은 물론 외적으로 말을 삼가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지만, 성경 안에서부터 드러나는 교회의 중요한 상징이기도 합니다.“네가 이해했거든 이웃에게 대답하여라. 그러지 못했거든 손을 입에 얹어라.”(집회 5,12), “미련한 자도 잠잠하면 지혜로워 보이고 입술을 닫고 있으면 슬기로워 보인다.”(잠언 17,28), “내가 침묵하면 그들은 기다리고, 말을 하면 주의를 기울이며, 내가 길게 이야기하면 감탄하여 손을 입에 갖다 댈 것이다.”(지혜 8.12)이러한 구절에서 보이듯, 손을 입에 대거나 침묵하는 모습은 하느님의 놀라운 업적과 의지에 감탄하고 주님을 신뢰하는 인간의 지혜로움을 표현하는 상징입니다. 우리 교회는 필요한 것 이외에 나머지는 침묵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해왔고, 그 때문에 베네딕토 성인, 프란치스코 성인, 도미니코 성인과 같은 교회의 발전에 특별히 기여한 수도원의 창시자들에게만 이 상징을 적용해 왔습니다.제가 아주 사랑하고 존경하는 신부님과 순례를 떠난 적이 있습니다. 프랑스 남부에서 시작해서 독일까지 이어지는 알프스 자락의 경치 좋은 장소들이 포함된 일정이었습니다. 그 일정의 마지막 부분에는 벨기에의 반뇌(Banneux Notre-Dame)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성모님의 발현으로 유명해졌지만 본래는 아주 작은 마을입니다.순례단이 반뇌에서 머무는 동안 신부님께서는 특별한 요청을 하셨습니다. 한밤중에 순례단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느님 앞에서 침묵하는 것이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자신을 표현하는 것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시대에 침묵은 점차 낯선 상태가 되어가고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침묵이란 외적으로 그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말하지 않음으로써 타인의 말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도 끊임없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기만 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보자고도 하셨습니다.저녁을 일찍 먹고 조용한 성당에 모인 순례단은 어둠을 밝히는 작은 촛불 앞에 각자 자리를 잡았습니다. 미리 계획한 시간이었고 마음의 준비를 해왔지만, 처음 얼마 동안은 낯설고 어색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의 침묵보다는 동료들의 침묵에 더 신경이 쓰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순례단은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크게만 들리던 주위의 소리가 침묵에 녹아드는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외적인 소음이 내적인 침묵을 방해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깨달음이었습니다. 따로 시간을 정하지 않았는데도, 많은 순례자는 그곳에서 아주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습니다. 몸이 조금 불편하셨던 순례자 한 분은 성당을 빠져나가 조용한 숲 속을 거닐다 다시 돌아오셨고, 이튿날 아침 식사 때에 “그 산책의 시간도 침묵을 멈추는 일이 아니라 침묵의 연속으로 느껴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후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만난 순례자들은 하나같이 일정 중에 그 침묵의 시간이 가장 기쁜 일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침묵을 통해 자신을 다시 돌아볼 수 있었고, 하느님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압도당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고백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자연스럽게 경외를 표현하고 자신의 교만을 모두 내려놓아 겸손해지는 방법은 오직 ‘침묵’뿐이라는 것을 경험하신 듯했습니다. 때로는 순례를 통해 내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느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본디 신앙의 지향점이란 하느님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순례를 떠나지 못하는 이 시기에 그보다 중요한 지향점을 찾아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침묵’의 시간을 마련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평화신문2021.06.30

회개하고 자선 베풀며 주님 부활 준비하는 은총의 시간사순 시기 의미와 전례 사순 시기는 하느님의 구원 신비를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주님의 파스카를 준비하는 때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재의 수요일’부터 ‘성주간 성토요일’까지를 사순 시기로 지내고 있다. 가톨릭 신자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는 의미에서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마음으로 단식과 금육, 기도와 희생을 실천한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사순 시기이다. 지난해 세계 교회는 코로나19로 사순 시기 동안 ‘성찬례 단식’을 해야만 했다. 코로나19 상황이 그나마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 올해는 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를 중단해야 하는 극한 상황까지 가지는 않겠으나 여전히 간소화된 예식으로 전례가 거행될 전망이다. 지난해 교회 스스로 보속의 행위로 결정한 성찬례 단식은 신자들에게는 성사 생활의 중요성과 치유자이신 하느님께로 향한 인류의 회심이 얼마나 절박한가를 깨닫게 해 주었다. 올해 사순 시기는 세상의 ‘모든 형제들’과 연대해 이 깨달음을 실현하는 때가 되길 희망한다. 사순 시기를 맞아 사순 시기 의미와 전례를 정리했다. 사순 시기사순 시기는 주님의 수난과 희생을 기념하는 시기이다. 또 파스카 신비(주님 부활)를 준비하는 때이다. 주님의 수난은 단순히 주님께서 당하신 고통 자체로서가 아니라 영광스러운 부활과 직접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사순(四旬)은 ‘40일’을 뜻하는 라틴말 ‘Quadragesima’(콰드라제시마)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성경에서 ‘40’은 하느님을 만나기 전 거치는 정화와 준비의 기간이다. 교회도 이 성경의 전통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40일간 기도와 절제, 희생을 통해 주님의 부활을 준비하는 것이다.교회는 전통적으로 ‘재의 수요일’부터 ‘성주간 성토요일’까지를 사순 시기로 지내고 있다. 이 기간에서 6번의 주일을 지내는데 주일을 뺀 날 수가 정확히 40일이다. 주일을 사순 시기에 포함하지 않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쁜 날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전례주년의 정점으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시는 ‘파스카 성삼일’이 사순 시기와 구분된다는 점이다. 파스카 성삼일은 주님 만찬 성목요일부터 주님 수난 성금요일, 성토요일, 파스카 성야와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말한다. 비오 12세 교황은 1955년 전례 개혁을 통해 파스카 성삼일의 본뜻을 되살려 사순 시기를 ‘재의 수요일’부터 ‘주님 만찬 성목요일 전까지’로 정했다. 이에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개혁과 1969년 전례력 개정을 통해 사순 시기와 파스카 성삼일을 구분하고 있다.하지만 사순 시기가 파스카 성삼일과 완전히 분리된 것은 아니다. 사순 시기는 성주간과 파스카 성삼일을 위한 준비 기간이자 연결점이며, 파스카 성삼일은 사순 시기의 마지막 절정과 주님 부활 대축일이 연결된 지점이기 때문이다. 사순 시기 주요 전례 사순 시기는 하느님의 구원 신비를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주님의 파스카를 준비하는 때다. 그래서 교회는 사순 시기 동안 대축일을 제외한 모든 미사 중에 부활의 기쁨을 노래하는 대표적인 환호인 ‘대영광송’과 ‘알렐루야’를 하지 않는다. 제의 색도 통회와 보속을 상징하는 ‘자색’(보라)으로 바뀐다. 제단 꽃장식도 하지 않는다. △재의 수요일‘재의 수요일’은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날로 이날 미사 중에 참회의 상징으로 재를 축복해 이마에 바르거나 머리에 얹는 예식을 행하는 데서 이름이 생겨났다. 성경에서 ‘재와 먼지’는 속죄와 참회의 표지이다. 또 죽음과 재앙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회와 슬픔을 드러낼 때 머리에 재를 뒤집어쓰고 자루 옷을 찢었다. 이 참회 예식(2사무 13,19; 에스 4,1)을 교회가 받아들인 것이다.재의 수요일에 사용하는 재는 일반적으로 지난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나눠 받았던 성지(聖枝)를 거두어 태워 남은 재이다. 사제는 이 재를 축복한 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명심하십시오”(창세 3,19) 또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십시오”(마르 1,15)라고 말하고 회중의 머리에 재를 얹거나 이마에 재를 바른다.재를 얹거나 바르는 예식은 인간은 결코 죽을 수밖에 없는 허무한 존재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현세의 삶에서 죄의 나락으로 떨어질 때도 있지만, 인간의 삶은 궁극적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 영원한 행복을 누릴 준비를 하는 것임을 일깨워주는 게 재의 예식의 본뜻이다. 따라서 재의 예식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회개하고 하느님께 향한 삶을 충실히 살아가라고 권고하고 있다. 올해 재의 수요일에 거행되는 ‘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은 코로나19 감염증 대유행 탓에 간소화된다. 교황청 경신성사성은 감염병 예방 차원에서 당일 주례 사제가 신자들의 머리나 이마에 재를 얹을 때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또는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라고 하는 권고를 회중을 대상으로 한 번만 하고, 접촉을 최소화하는 차원에서 머리에 재를 얹을 것을 권장했다.△사순 시기 주일 전례 사순 시기 주일은 축일과 대축일에 우선 한다. 사순 주일과 겹치는 대축일은 토요일에 미리 거행된다. 특히 주님 수난 성지 주일부터 파스카 성야 미사까지의 성주간은 전례주년의 1순위라 할 만큼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사순 시기 주일 전례는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볼 수 있다. 하느님 자녀로 태어난 ‘세례에 대한 회상과 준비’ 그리고 ‘참회와 보속’이다. 사순 제1·2·6주일 미사 독서 주제는 해마다 모두 같다. 사순 시기 각 해의 고유한 주제를 보려면 사순 제3·4·5주일의 독서들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된다. 사순 시기 제1·2주일에는 주님의 유혹에 관한 이야기와 주님의 거룩한 변모에 대한 복음이 봉독된다. 사순 제3·4·5주일은 가해의 복음으로 사마리아 여인,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 라자로의 부활 사건을, 나해에는 요한복음에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장차 영광스럽게 되시리라는 말씀을, 다해에는 회개를 촉구하는 루카 복음을 봉독한다. 사순 시기 생활교회는 전통적으로 주님 부활 대축일을 잘 준비하기 위해 사순 시기 동안 회개와 보속, 기도의 삶을 살도록 권고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는 의미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자주 바치고,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마음으로 단식과 금육, 기도와 희생을 실천한다.하지만 교회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가르친다. 진정한 회개와 보속의 삶은 개인적이고 내적인 절제와 희생뿐 아니라 외적인 실천이 동반되어야 한다. 절제와 절약을 통해 모은 결실을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자선이 뒤따라야 한다.프란치스코 교황도 사순 시기 동안 “서로 용서하고 기도하며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 쉴 곳을 찾아 주는 등 자비를 실천하자”고 강조하면서 “회개하기 매우 좋은 이 사순 시기를 헛되이 보내지 말자”고 당부한 바 있다.사순 시기에는 판공 성사를 통해 마음을 깨끗이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 단식과 기도, 자선단식, 곧 금식과 금육재는 단순히 먹고 마실 것을 절제하라는 고행의 의미에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는 동시에 다른 이들의 곤경에 관심을 두도록 촉구한다. 따라서 금식과 금육은 세속의 유혹에 휘둘리지 않고 그리스도께 나아감과 함께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기꺼운 나눔을 실천해야 한다는 의미이다.가톨릭 신자는 의무적으로 재의 수요일과 주님께서 수난 하시고 돌아가신 성 금요일에 금육재와 금식재를 지켜야 한다. 금육재는 만 14세부터 모든 신자가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하며, 성인이 된 모든 신자는 60세까지 한 끼를 단식하는 금식재를 지켜야 한다.(교회법 제1252조) 한국 교회에는 만 18세부터 만 60세 전까지 금식재를, 만 14세부터 금육재를 지키도록 규정하고 있다.(「사목지침서」 136조) 이외에도 사목자와 부모는 금식재와 금육재를 지킬 의무가 없는 미성년자들도 참회 고행의 의미를 깨닫도록 보살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아울러 교회는 전통적으로 그리스도인 삶의 첫 자리에 ‘기도와 자선’을 두었다. 따라서 기도와 자선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단식이 영성 생활을 위해 악습을 없애는 약이라면 기도는 회개의 표시이고, 자선은 하느님 은총의 증거이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1.02.17

서로에게 귀 기울여 주님 뜻과 시대의 표징 식별하라제16차 세계 주교 시노드의 배경과 목적 보편 교회가 2023년까지 2년 동안 공동합의적 교회를 위해 모든 교회 구성원이 참여하는 시노드를 개최한다. 사진은 독일 교회가 지난해 교회 현안을 나누기 위해 펼친 시노드에서 사제와 평신도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CNS】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을 불러모았다. 제16차 세계 주교 대의원회(시노드)에 초대한 것이다. 가톨릭교회 안에서 세례받은 모든 이들은 17일부터 2년 동안 교회와 복음화를 위한 ‘함께 걸어가는 여정’에 동참해야 한다. 교황이 9~10일 바티칸에서 공식 개막을 알린 이번 시노드는 17일 각 지역 교회에서도 개막해 ‘교구 단계 시노드’에 돌입한다. 평신도부터 주교에 이르는 모든 가톨릭교회 구성원은 ‘공동합의적 교회를 위하여 : 친교, 참여, 사명’을 주제로 교회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다양한 주제를 경청하고, 나누는 시기로 보내게 된다. 모두가 참여하는 시노드의 의미와 중요성을 알아본다.왜 공동합의적 교회인가“하느님께서 제3천년기의 교회에 바라시는 것은 바로 공동합의성의 여정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10월 주교 대의원회의 제정 50주년을 기념한 자리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제시한 쇄신의 길을 따르는 공동의 여정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보편 교회는 올해 참여와 경청, 식별, 사명 실천으로 이어지는 공동합의의 원리를 구성원 전체가 체험하고 구현하게 될 시노드에 돌입했다.공동합의성(synodality) 혹은 공동합의적(synodal)이란 말은 시노드(라틴어 synodus, 영어 synod)에서 파생된 말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3년 즉위 후 줄곧 강조해온 최신의 신학 개념이다. 그리스어 ‘함께’(syn)와 ‘길’(hodos)의 합성어로, ‘하느님 백성이 함께 걸어가는 여정’으로 풀이된다. 교회는 오랜 전승 안에서 초대 교회 때부터 하느님 말씀에 비춰 성령의 힘을 통해 여러 현안을 식별하고자 회의와 집회를 소집했고, 지역 교회 대표들이 참여하는 회의를 시노드라 불러왔다. 이러한 탓에 지금까지 시노드를 추기경과 주교 등 고위 성직자들의 회의라는 좁은 의미로만 이해해왔다.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노드 어원에 따른 진정한 시노드 정신이 세례받은 주님의 백성이 능동적인 참여와 대화, 경청으로 친교를 맺고, 성령의 뜻에 귀 기울여 주님께 더욱 나아가는 본래 교회의 생활방식임을 강조한다.가톨릭교회를 이끄는 원리하느님 백성이 함께 걸어가는 여정에서 발현되는 공동합의성은 가톨릭교회가 지닌 유일하고도 신비한 질서이자, 영적인 원리이다.흔히 공동합의성을 다수결주의와 표결로 대변되는 민주주의 방식과 비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오랜 역사를 지닌 교회는 성령의 이끄심 아래 회중의 참여와 친교, 사명 실천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동합의적 원리에 따라 발전해왔다.교회는 하느님 백성의 모임이다. 말씀과 성사로 뭉친 가톨릭 신자들은 하느님과의 친교, 형제자매와의 친교를 통해 하느님 사랑을 재확인하고, 주님이 바라시는 바가 무엇인지 식별해야 하는 은사를 받았다. 공동합의성은 이처럼 사도직, 예언직, 왕직의 직무를 물려받아 복음을 증거하는 주체인 신자 개개인이 한데 모여 교회와 사회에 협력하고자 경청하고 대화하며 신앙감각을 발휘하는 교회 일치의 원리인 것이다. 토론으로 합의를 이끌어내고, 결과를 도출하거나 대표를 선출하는 다수결 민주주의의 방식과는 목적과 과정이 전혀 다르다.하느님 백성이 주님과 함께하는 시노드적 모습은 성경에도 잘 드러나 있다. 하느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을 불러모으셨고, 그 후손들은 이집트 탈출의 여정과 계약으로 하느님과의 여정에 함께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당신을 믿는 모든 이를 세례와 성찬을 통해 하나로 불러모아 생명에 동참하도록 이끌었다. 하느님과 인류가 일치하도록 이끈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 또한 시노드의 모습이며, 나아가 오늘날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공동합의적 정신인 셈이다. 예수님의 뒤를 이어 교회를 이끌게 된 사도들은 성령의 인도 아래 원로들과 봉사자들을 뽑고, 교회 질서와 규칙을 결정한다.이처럼 교회가 지닌 시노드 정신은 초대 교부들의 탁월한 지성을 통해 교회를 결합시키는 영험한 질서로 자리매김하게 됐고, 교회 공동체의 건설과 발전을 이루는 원리인 공동합의적 의식으로 발전한다.그런 의미에서 이번 시노드는 보편 공의회와 세계 주교 대의원회의, 교구 시노드 등 기존 제도를 넘어 진정한 ‘공동합의성’을 실현하고, 체험하는 첫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공동합의적 교회가 되기 위하여프란치스코 교황은 “공동합의적 교회는 경청하는 교회이고, 경청이 ‘단순히 듣는 것 이상’이라는 것을 깨닫는 교회”라고 했다. 나아가 “신앙을 가진 백성, 주교단, 로마 주교, 그 각자는 다른 이들을 경청하고, 모든 이는 성령, 곧 진리의 영을 경청하여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알게 된다”고 설명했다.공동합의적 교회는 경청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공동합의적 과정은 참여와 식별, 공동 책임의 생생한 체험을 증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과정은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뜻에 더 부합하는 사목적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준다.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가 발간한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공동합의성」은 “공동합의성의 지평은 일치를 향하여 걸어가면서 서로를 풍요롭게 해 줄 수 있는 ‘선물들의 교환’이 얼마나 희망찬 것임을 보여줄 수 있다”며 “오늘날 교회는 교회를 특징짓는 보편성과 교회 자신의 표현인 공동합의성, 이 두 가지야말로 다양성 안에서 일치 그리고 자유 안에서 친교를 촉진하는 누룩임을 드러내도록 부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시노드의 새로운 출발이번 제16차 세계 주교 대의원회의가 지역 교회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평신도와 사제 수도자, 주교가 모두 공동합의성의 원리를 생생히 체험하고, 구체화하길 바라는 교황의 뜻이기도 하다. 공동합의 과정을 통한 궁극적 목적은 교회가 가장 교회다운 모습으로 하느님 뜻에 가장 부합하는 복음화와 선교 사명을 수행하기 위함이다.지역 교회 시노드를 위한 연락 담당자인 신우식(주교회의 사무국장) 신부는 “점점 개인화되어 가는 세상에서 교황님은 어렵고 힘든 이들, 파괴되어 가는 지구 환경을 위해 우리가 성령의 인도에 따라 손을 내밀고 함께하는 공동체로 나아가고자 초대하신 것”이라며 “각 교구와 본당, 개인이 하느님 백성의 한 사람으로서 더욱 주님께서 원하시는 교회가 되고자 참여하고, 경청하는 가운데 이번 시노드가 진정으로 모두가 함께하는 여정이 되면 좋겠다”고 전했다.교황청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가 발간한 예비 문서와 편람은 “시노드는 꿈을 꾸고 미래에 시간을 투자하는 시기”라며 “특별히 공동합의적 과정의 첫 단계인 교구 단계는 모든 시노드 단계의 기반이 되며, 교구 단계는 가능한 많은 이가 성령의 인도에 따라 서로에게 귀 기울이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참된 공동합의적 체험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한국 주교회의는 교구 단계 시노드를 위한 특별 누리집(cbck.or.kr/Synod/2021-2023)을 개설했으며, 교구 시노드 담당자를 비롯한 모든 이들은 게재된 예비 문서와 편람을 통해 이번 시노드의 취지를 이해할 수 있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cpbc2021.10.13
![[수도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7) 몇 가지 원칙 ①](//cpbc.co.kr/CMS/newspaper/2019/09/rc/762999_1.0_titleImage_1.jpg)
[수도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7) 몇 가지 원칙 ①매일 정해진 시간에 성경 독서·묵상을 허성준 신부 렉시오 디비나 수행을 잘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원칙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1)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 말씀이 지니는 중요성을 직시해야 한다. 즉 하느님 말씀이 우리 신앙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그 말씀을 매일 가까이 접하도록 해야 한다. 2) 그리스도인들이 집이나 성당에서 직접 성경을 매일 찾아보는 습관을 지닌다. 요즈음 신자들은 주일 미사에 갈 때 간단히 「매일미사」 책만 가지고 감으로 인해서, 자기 성경을 직접 볼 기회를 실제로 놓치고 있다는 사실이 개인적으로 매우 안타깝다. 3) 고정된 성독 시간을 가진다.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에 더 깊이 나아가기 위해서는 렉시오 디비나를 위한 고정되고 여유로운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바쁘다는 핑계로 기도 시간조차 내지 못하는 신자들에게, 그 옛날 암브로시우스 성인(St. Ambrosius)은 다음과 같은 충고를 하였다. “왜 당신은 성경을 읽기 위해 자유로운 시간을 그분께 봉헌하지 않습니까? 당신은 그분과 대화하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어찌하여 당신은 그분을 찾지도 않습니까?” 그분을 찾고, 그분과 직접 대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분을 위해 자유로운 시간을 기꺼이 내어드려야 한다. 수도승 전통에서는 언제나 렉시오 디비나를 위해 고정되고 여유로운 시간이 강조되어 왔다. 그러므로 렉시오 디비나 수행을 위해서는 아무 시간이나 혹은 자투리 시간을 마련하기보다는 오히려 매일 일정한 시간을 정해 성경 독서와 성경 묵상을 꾸준히 해 나가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된다. 4) 고요한 기도의 장소를 꾸민다. 성경을 어디에서 읽고 묵상해야 하는가? 이것 또한 중요하다. 하느님의 말씀을 대함에 있어 시끄럽고 번잡한 장소는 렉시오 디비나에 적합한 곳이 아니다. 이러한 장소에서 말씀을 집중하여 깊이 독서하고 묵상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렉시오 디비나를 위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방해받지 않는 조용하고 평온한 장소가 필요하다. 그러한 장소는 크고 작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독을 위해 비록 작은 공간이라도 고요함과 평온함이 유지되는 장소이면 말씀 수행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장소는 그냥 일차적인 차원의 장소가 아니라 그보다는 더 영적인 차원의 의미를 갖고 있다. 즉 말씀을 대하는 그러한 장소는 영적 투쟁의 장소이며, 호세아서가 말했던 ‘빈들’과도 같다. 주님께서는 그러한 장소로 우리를 손수 불러내어 당신의 넘치는 사랑을 속삭여 주시고자 하신다. 5) 전 존재로 읽고 들어라. 성경 독서는 단순히 눈으로만이 읽는 것이 아니다. 고대나 중세 수도승들은 입으로 본문을 읽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성경을 배웠다. 비록 오늘날 이러한 모습이 많이 사라져 버리기는 했지만, 이렇게 인간 전 존재로 집중해서 성경 독서를 한다면, 하느님 말씀의 심오한 신비를 더욱 깊이 깨닫게 될 것이다. 6) 하느님의 말씀에 접근할 때 지적이고 추론적인 접근 방법보다는 오히려 단순한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에로 다가감이 중요하다. 즉 온 마음으로 말씀을 읽고 그중에 마음에 닿는 한 말씀을 선택하고, 그 말씀을 종일 되뇌는 단순한 영적인 수행을 통해서 말씀에 다가가야 한다.허성준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평화신문2019.09.24

‘구약성경 최초의 우리말 번역가’ 고 선종완 신부… 41권 책에 원고 집대성말씀의 성모 영보 수녀회 60주년 기념설립자 선 신부 성경 번역본·육필원고10년간 수녀회가 이미지 작업·재정리 말씀의 성모 영보 수녀회가 최근 펴낸 선종완 신부의 성경 번역본과 육필원고 영인본 41권. 평생 말씀과 하나 된 삶을 살았던 사제. 한국 가톨릭교회 최초의 구약성경 우리말 번역가. 방대한 성경을 번역하고 교육한 성서학자이자, 마지막까지 구약성경 공동번역가로서 자신의 삶을 주님께 봉헌했던 선종완(1915~1976, 라우렌시오) 신부의 단독 및 공동번역 원고 영인본이 41권으로 한데 묶여 출간됐다.말씀의 성모 영보 수녀회는 올해 수녀회 설립 60주년을 맞아 설립자 선종완 신부의 피와 땀이 서린 방대한 양의 신ㆍ구약 성경 번역본과 육필 원고를 펴냈다. 단독번역 원고 및 구약 24권, 공동번역 원고 및 구약 12권, 미출간 신약 원고 5권 등 총 41권이다. 성경 말씀을 새기고 전하는 데 평생을 헌신한 선 신부의 노력과 결실이 집대성된 것으로, 오늘날 성서학자들에겐 보물이요, 길잡이와 같은 자료이기도 하다.1950년대부터 홀로 히브리어 구약 성경을 번역하며 손으로 꾹꾹 눌러쓴 육필 번역 원고들은 당시 선 신부의 열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처음 창세기를 번역할 때 9차례나 교정을 본 흔적도 남아 있다. 모두 성경 번역으로 한국 교회에 공헌한 선 신부의 업적이다. 책은 46배판(188x257㎜) 크기이며, 가장 두꺼운 것은 1000쪽에 이른다. 제작 및 인쇄는 기쁜소식이 맡았다.선종완 신부는 ‘말씀으로 산 사제’였다. 3대 독자였던 그는 1942년 사제품을 받고 일본 유학 후 1945년 경성천주공교신학교(가톨릭대 전신) 교수로 임명을 받았다. 그 후 1948년부터 4년간 교황청립 우르바노대학교와 안젤리쿰대학, 성서대학, 예루살렘 성서연구소에서 수학하고 귀국했다. 1955년 서울 대신학교 교수로 활동하면서 처음 구약 번역을 시작했고, 3년 만인 1958년 한국 교회 첫 구약성서 창세기 제1편을 출판했다. 이후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이사야서 등 구약을 줄줄이 번역하며 우리말 성경에 목말라 있던 한국 교회 신자들을 위해 온 힘을 쏟았다. 히브리어, 라틴어, 아람어 등 고대어와 현대 언어에 두루 능통했던 선 신부는 신학생 시절부터 성경 고전어를 독학했고, 모든 성경을 이미 원서로 읽었던 터였다. 이후 유럽의 성서학자들은 그를 ‘동방의 석학’이라 불렀다.선 신부는 1960년 ‘말씀의 성모 영보 수녀회’를 설립했다. 성경 번역과 후학 양성에서 나아가 말씀으로 하나 된 수도 공동체를 세운 것이다. 이후에도 그는 늘 낡은 가방 하나를 오토바이에 싣고 서울 대신학교와 과천 수녀원을 오갔다. 성경 관련 삽화조차 없던 그때, 선 신부는 탈출기 경로와 이스라엘 지도, 예루살렘 성전을 전지에 정확히 그려 수업에 활용하는 등 늘 자신의 재능을 아끼지 않았다.성경 번역 작업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선 신부는 1968년 세계 교회 일치 운동의 일환으로 국내 성서공동번역위원회 가톨릭 측 대표로 위촉된다. 이후 1976년 선종 직전까지 만 9년 동안 성서 공동번역에 힘썼다. “드디어 하느님께서 우리말을 제대로 하시게 되었습니다”란 표현은 선 신부가 공동번역 작업을 하면서 남긴 유명한 말이다.말씀의 성모 영보 수녀회는 선 신부의 번역 원고 영인본 41권 출간을 위해 10년 넘는 작업 기간을 거쳤다. 육필 및 교정본 원고 2만 8000여 장을 보존용 마이크로필름화하고, 원고를 탈산 처리했다. 교정본들도 순차적으로 재정리했다. 공동번역 작업에 임하느라 출간하지 못했던 신약성경 번역 원고도 함께 출간돼 의미를 더했다.수녀회는 매일 선 신부가 번역한 성경을 통독하며 ‘성서대로 생각하고 성서대로 살아가십시오’라고 했던 설립자 정신을 이어오고 있다. 수녀회 설립 60주년 기념일인 3월 25일 경기 과천시 문원청계길 56 수녀원 본원에서 기념 미사와 함께 선 신부의 번역 원고 영인본 41권이 봉헌된다.편집을 맡았던 수녀회 역사실 담당 정복례(실비아) 수녀는 “몇 번이고 원고지에 고쳐 쓴 흔적들 속에는 모두 신부님 땀과 피가 역력히 배어있다”며 “이제야말로 설립자 신부님의 헌신이 더욱 빛을 보게 됐다”고 했다.총원장 박미숙(레지나) 수녀는 “신부님의 번역 원고 전문을 출판하면서 다시금 신부님께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며 “많은 분이 성경 번역의 어려움과 결실의 신비를 함께 느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의 : 02-502-3166, 말씀의 성모 영보 수녀회 총원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cpbc2020.01.08
[박현민 신부의 별별이야기] (54)이 사람과 결혼해야 할까요? 남자친구와 결혼해도 좋은지를 묻는 자매가 있었다. 30대 중반의 엘리사벳은 이모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큰 충격을 받아 장례 후에도 안정을 찾지 못했다. 엘리사벳은 자신의 감정을 남자친구와 나누고 그의 위로를 받고 싶었다.하지만 남자친구는 엘리사벳의 슬프고 우울한 마음에 공감하지 않았다. 오히려 천국에서 안식을 누릴 이모를 생각하면 기뻐해야지 왜 슬퍼하느냐며 핀잔을 주고, 확신이 없는 미숙한 신앙을 질책했다. 처음에 엘리사벳은 남자친구가 신앙은 깊지만, 타인을 위로한 경험이 부족해서 그렇게 말하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남자친구가 정서적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현실에서 자신의 감정을 회피하고 부정하기 위해 신앙 속으로 숨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엘리사벳은 결혼 여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세속적인 삶’과 ‘신앙적인 삶’은 엄격히 구별되는가? 인간적 감정은 세속적 삶의 부산물이기에 종교적 믿음과 신념으로 승화시켜야 하는가? 신앙인에게 질문을 던져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아마 “그렇다”는 응답과 “그렇지 않다”는 응답이 골고루 나올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성경에서 예수님의 인간적 감정을 드러내는 내용은 말씀의 전례에서 제외될 만큼 부정적으로 인식되었다. 성경에서 나타나는 예수님의 감정은 인간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예수님의 거룩한 신성을 손상할 우려가 있는 대목으로 생각했다. 예수님은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에게 “너희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지옥형 판결을 어떻게 피하려느냐?”(마태 23,33) 하시면서 독설을 퍼부으셨다. 게다가 성전에서는 장사하는 사람들을 쫓아내시고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다.(마르 11,15) 반면 사랑하는 라자로의 죽음 소식을 들으셨을 때는 크게 눈물을 흘리시다 못해 하느님께 청하여 그를 죽음에서 다시 살려내셨다.(요한 11,38-44) 예수님의 신성을 경외하고 싶은 사람들은 인간적 감정을 드러내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예수님은 인간적인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자연적인 죽음도 수용하지 못하며, 개인적인 감정으로 죽은 이를 살리시는 분처럼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사람들은 역사적 예수가 아닌 신앙의 그리스도를 믿고 싶어한다. 하느님의 신성이 인간의 감정으로 더럽혀져서는 안 되기에 예수님의 인간적 감정을 최대한 숨기고 싶어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도록 우리를 초대하셨다. 인간이 하느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다는 의미와 동시에 하느님의 신성이 인간의 인성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정한 인간이시며 진정한 하느님이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예수님은 당신의 신성과 인성으로 우리의 인간성을 신성한 것으로 만드셨고, 반대로 하느님의 신성을 우리의 인간성 안에서 체험하도록 하셨다. 진정한 신앙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는 사람일 것이다. 이모의 죽음 앞에서 진심으로 슬퍼하는 엘리사벳의 인간적 감정이, 이모는 천국에 들어갔으니 기쁨에 충만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박하는 남자친구의 신앙보다 훨씬 더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일 것 같다. 엘리사벳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가 신앙을 가지는 궁극적인 이유를 묻고 싶다. 구원을 받고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라는 대답보다는, 사랑의 하느님을 만나 사랑의 삶을 살기 위해서라는 말을 더 듣고 싶은 요즘이다.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마을 부관장> 평화신문2020.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