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규 수녀의 사랑의 발걸음] 3. 수녀님 볼에 입맞춤해도 되나요? 세상의 거의 모든 민족이 모여 살아가는 도시. 바로 프랑스 생드니 지역의 ‘오베흐빌리에’다. 각국에서 온 이민자와 난민들이 모이는 이곳 라호즈레 병원에서 프랑스인 환자를 마주하는 일은 흔치 않다.그런데 오늘은 첫인상이 매우 밝아 보이는 환자와 마주하게 됐다. 그는 자신이 프랑스인이라고 했다. 나도 “저는 한국인 수녀예요” 하며 다가갔다. “이렇게 당신을 보러오는 것이 혹시 방해되지는 않을까요?” 하고 물으니, “전혀 그렇지 않다”고 흔쾌히 대답하기에 내 마음도 이내 편해졌다. 심장병을 앓고 있는 이 프랑스인과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제 아버지는 프랑스인이고, 어머니는 이탈리아인이세요.”많은 이탈리아, 프랑스 사람들이 그렇듯 이 환자도 유아 세례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신앙생활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우리말로 하면 ‘냉담 상태’인 것이다. 그의 표현 안에 신앙생활을 하지 못함으로 인해 생기는 어떠한 어려움이나 힘든 감정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같은 주님의 자녀이지 않은가. 나는 다른 신자들에게 하는 것처럼 대했다. “성모님 상본 하나 드릴까요?” 하고 용기를 내어 말을 건넸다. 다행히도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수락한다.나는 가르멜수도원의 한 수녀님께서 푸른색과 붉은색 선을 이용해 그린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모님 상본을 꺼내 작은 글귀를 적었다. ‘하느님께 당신의 병이 빨리 낫게 되기를 기도하며, 한국의 남과 북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나는 이렇게 환자들에게도 남북으로 갈라진 한반도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곤 한다. 우리 한국인들에겐 얼마나 기도가 필요한 일인가! 환자를 위해 기도하면서도 오랫동안 크나큰 아픔을 지닌 한반도를 위해서도 기도를 청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이렇게 글귀를 작성한 뒤 상본을 건네니, 그는 성화뿐만 아니라 나의 한 마디 기도까지 유심히 바라보는 모습이다. 덩달아 흐뭇했다. 상본을 내려놓지 않고 계속 바라보는 그의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다.그는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아름다운 성모님 그림과 기도 글을 잘 간직하겠다”고 답해줬다. 얼굴엔 기쁨이 가득해 보였다. 그런데 바로 저를 향해 “수녀님 볼에 입맞춤해도 되느냐”고 천진난만하게 묻는 것이 아닌가. 당시엔 갑작스러웠지만, 지금은 이 글을 쓰면서도 그의 기쁨이 계속 떠올라 미소가 지어진다.프랑스 사람들은 기쁨과 행복감을 느낄 때 이렇게 ‘볼키스’를 한다. 이처럼 기쁨을 표현하는 자연스러운 이들의 행위에 익숙해져 이 분의 진정한 마음의 움직임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물론 이 환자를 만난 것은 코로나19 사태 훨씬 전이다. 더 젊은 시절이었다면, 이런 상황에서 나는 어쩌면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조금은 뛰었을지 모를 것이다. 그런데 고통을 받고 있는 이 환자가 내 양쪽 볼에 두 번씩 네 번이나 키스를 해주다니. 더군다나 양쪽 볼에 한 번씩은 자주 있어도, 네 번은 극히 드물다! 이 단순한 그림이 신앙생활과는 멀고도 먼 이 환자에게 큰 기쁨과 행복감을 안겨 주었다니. 다시금 이런 생각이 든다. ‘이처럼 놀라운 변화는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에 사랑의 불길을 지피신 것이다.’ 진정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정말 놀랍다. 나의 바람은 이 사랑의 불길이 가족과 이웃들에게 뜨겁게 타오르기를 바란다. 그를 만나고 난 뒤 떠오른 성경 말씀이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루카 12,49)장현규 수녀(프랑스 성요한사도수녀회) cpbc2020.05.13

흠집난 지구환경 돌아보고 치유하는 한해 보내자교황청 인간발전부서, 내년 5월 24일까지 ‘찬미받으소서 특별 기념의 해’ 선포… 다양한 캠페인 계획 보편 교회가 내년 5월 24일까지 ‘찬미받으소서 특별 기념의 해’로 보내기로 하고, 공동의 집인 지구의 생태환경 문제를 돌아보고, 실천에 나서기로 했다. 사진은 미국의 한 습지의 아름다운 모습. 【CNS 자료 사진】 공동의 집 살리기 위한 특별 주년으로 지정보편 교회가 내년 5월 24일까지 1년 동안 ‘찬미받으소서 특별 기념의 해’를 지낸다.교황청 온전한 인간발전 촉진을 위한 부서(이하 인간발전부서)는 지난 5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태회칙 「찬미받으소서」 반포 5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찬미받으소서 주간’ 첫날에 이같이 선포하고, 모든 지역 교회의 관심과 참여를 촉구했다. 공동의 집인 지구의 위태로운 상황을 함께 고민해 타개하고, 전 지구적 상호 노력을 촉구하고자 1년 동안 ‘지구 환경을 위한 해’로 보내기로 한 것이다.이에 따라, 인간발전부서는 ‘지구 환경’과 ‘생태적 회심’, ‘지속 가능성’ 등 다양한 주제로 행사와 세미나를 개최하고, 보편 교회 구성원 모두가 공동의 성찰과 실천을 이어가도록 할 계획이다.보편 교회는 지난 5월 16~24일 ‘찬미받으소서 주간’을 보내며 기후위기, 아마존 파괴, 남북극 파괴 등 흠집난 지구의 현주소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5월 24일에는 지구촌 신자 모두가 ‘지구와 인류를 위한 공동 기도’를 바치며, 하느님이 창조한 피조물과 더욱 조화롭게 살기로 다짐했다.인간발전부서는 특별 기념의 해 동안 다양한 사목적 활동과 캠페인을 펼친다. 인간발전부서는 6월 중 「찬미받으소서」에 담긴 내용을 세부 시행 지침으로 옮겨 담은 교황청 부서 간 상호협력 문서를 발표한다. 아울러 18일에는 인간발전부서 주관으로 ‘「찬미받으소서」의 평가와 나아갈 길’을 주제로 웹 세미나도 개최한다.9월 1일부터 10월 4일은 ‘창조의 계절’로 명명했다. 피조물을 위하는 특별 기간이다. 인간발전부서는 이와 관련한 웹 세미나를 시리즈로 연다. 내년 1월 26~29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하는 ‘세계경제포럼’(WEF) 기간 중 바티칸에서 제3차 원탁회의가 개최될 예정이다. 비슷한 시기에 생태 환경과 관련한 주제로 각 종교 지도자들의 모임도 예정돼 있다. 국경과 종교를 넘어 교황청이 주도적으로 생태계를 되살리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펼친다는 계획이다.특별 기획들도 있다. 인간발전부서와 협력 부서들은 「찬미받으소서」와 관련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 보급하고, ‘플라스틱 오염과의 투쟁’을 주제로 한 영상 공연도 제작한다. 「찬미받으소서」 연구 네트워크와 피조물 보호를 위한 국제 플랫폼을 구축한다. 「찬미받으소서」 내용에 초점을 맞춰 소셜미디어로 펼치는 제1회 세계 성경 경연대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젊은이들과 함께하는 전 세계 나무 100만 그루 심기 사업도 이미 시작했다.지속 가능한 세계 공동체 위한 7년 계획 추진1년으로 끝이 아니다. 교황청은 특별 기념의 해 다음해인 2022년부터 △가정 △교구 및 본당 △초중고등학교 △대학교 △병원 및 보건소 △기업 및 농업 △수도회 순으로 각기 7년 여정에 주체적으로 동참하는 계획을 추진한다. 「찬미받으소서」의 통합 생태론 정신에 따라, 지속 가능한 세계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7개년 계획이다. 아울러 「찬미받으소서」 우수 지도자상, 「찬미받으소서」 우수 교육기관상, 「찬미받으소서」 우수 신앙 공동체상 등 7가지 「찬미받으소서」상을 제정해 2021년부터 해마다 시상할 예정이다.교황청이 밝힌 계획대로라면, 2028년까지 보편 교회가 이행할 사목 주제의 큰 바탕은 ‘공동의 집인 지구 생태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구의 눈물과 이로 인해 고통받는 가난한 이들의 처지를 돌아보고, 전 지구적 차원의 생태 교육과 영성을 바탕으로 삶의 양식과 인식의 변화가 목표다.인간발전부서 산하 피조물과 생태사목국 조정관 조쉬트롬 쿠리타담 신부는 “코로나19 사태로 인류가 얼마나 상호연결된 존재이며,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선 연대가 필요하다는 점을 현대 세계가 깨닫게 됐다”고 강조했다. 쿠리타담 신부는 “앞으로 10년 동안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과 인류를 위한 희년의 때가 돼야 한다”며 “새로운 시작으로 공동의 집을 새로 건설하고, 생태계를 회복시키며, 우리의 연대를 구축하기 위해 함께 행동에 나서자”고 당부했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평화신문2020.06.09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60)유다인들의 고발과 바오로의 변론(24,1-27)](//cpbc.co.kr/CMS/newspaper/2020/04/rc/777344_1.1_titleImage_1.jpg)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60)유다인들의 고발과 바오로의 변론(24,1-27)유다인의 환심을 얻기 위해 바오로를 가둔 총독 카이사리아 펠릭스 총독 앞에서 변론하고 난 바오로는 그곳 감옥에서 2년을 보낸다. 사진은 카이사리아 해변의 헤로데 궁전터. 뒤편 바다와 연결된 부분이 유다 총독이 관저로 사용했던 헤로데 대왕 궁전 유적이다. 유다인들이 바오로를 고발하고 바오로는 총독 앞에서 변론합니다. 그런 다음에 바오로는 감옥에 갇혀 지냅니다. 유다인들의 고발(24,1-9)바오로가 카이사리아에 도착한 지 닷새가 지나서 하나니아스 대사제가 예루살렘에서 카이사리아로 내려옵니다. 원로 몇 사람과 테르틸로스라는 법률가를 데리고 온 그는 펠릭스 총독에게 바오로에 대한 소송을 제기합니다.(24,1) 바오로가 불려 나오자 테르틸로스가 고발을 시작합니다. 테르틸로스는 먼저 펠릭스 총독에 대한 인사와 칭송을 늘어놓습니다. “우리는 각하 덕분에 큰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하의 선견지명으로 이 민족을 위한 개혁이 이루어졌습니다. 존귀하신 펠릭스님,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언제 어디서나 인정하며 매우 고맙게 여기고 있습니다.”(24,2-3) 그런데 펠릭스 총독에 대한 이런 칭송은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고 성경학자들은 지적합니다. 노예 출신으로 자유민이 돼 유다 지방을 다스리는 로마 총독의 지위에까지 오른 펠릭스는 “난폭하고 졸렬한 총독”(「주석 성경」)으로서 유다인들의 개혁과 평화에 기여했다기보다는 오히려 불안과 공포를 조성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유다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그가 총독으로 다스리던 기간에 폭동이 자주 일어났고,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그는 많은 이를 십자가형에 처했다고 합니다. 테르틸로스는 이어 본격적으로 바오로를 고발합니다. 그의 고발 내용은 바오로가 ①“흑사병 같은 자로서 온 세상에 있는 모든 유다인들 사이에 소요를 부추기는 자며 나자렛 분파의 괴수”이고 ②“성전까지 더럽히려고 시도해 우리가 붙잡았다”는 것입니다.(24,5-6) 나자렛 분파가 나자렛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 신자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보면, 그리스도 신자들의 우두머리로서 나자렛 예수를 믿으라고 하면서 유다인들 사이에 분란을 일으키고 성전을 더럽히려 했다는 것이 바오로를 고발한 핵심 죄목입니다. 테르틸로스는 그런 다음에 이렇게 덧붙입니다. “각하께서 친히 이자를 신문해 보시면 우리가 이자를 고발하는 내용을 모두 아시게 될 것입니다.”(24,8) 그러자 다른 유다인들도 테르틸로스 말에 동조하고 나섭니다.(24,9)일부 사본에는 ‘바오로를 붙잡았다’(24,6)와 ‘각하께서 신문해 보시면’(24,8) 사이에 “그리고 우리의 율법에 따라 재판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리시아스 천인대장이 와서 이자를 우리 손에서 아주 난폭하게 빼앗아 데리고 가서는 이자를 고발하는 사람들에게 각하 앞으로 가라고 명령하였습니다”라는 구절이 들어 있습니다. 이 사본의 내용까지 종합하면 바오로가 어떻게 해서 예루살렘에서 카이사리아의 펠릭스 총독에게까지 와서 재판을 받게 됐는지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곧 나자렛 분파의 괴수인 바오로가 유다인들 사이에 소요를 부추겼을 뿐 아니라 성전까지 더럽히려고 해 유다인들이 붙잡아 율법에 따라 재판하려 했으나 천인대장이 나서서 바오로를 데려가는 바람에 총독이 있는 이곳 카이사리아까지 오게 됐다는 것입니다. 바오로의 변론(24,10-21) 테르틸로스의 고발이 끝나자 바오로가 변론에 나섭니다. 먼저 총독에 대한 간단한 인사치레를 한 후에 본격적인 변론을 펼칩니다. 바오로가 펼친 변론은 이러했습니다. ①내가 예루살렘에 올라간 지 열이틀도 되지 않았고 성전에서든 회당에서든 도시 어디에서든 누구와 논쟁하거나 군중의 소요를 일으키는 것을 본 사람이 없으니 저들은 소요를 부추겼다는 고발을 증명하지 못한다. ②나는 저들이 분파라고 말하는 ‘새로운 길’을 따르지만, 그 길에 따라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을 섬기고 율법과 예언서에 기록된 모든 것을 믿을 뿐 아니라 저들이 품고 있는 것과 똑같은 희망 곧 의로운 이들이나 불의한 자들이나 모두 부활하리라는 희망을 하느님께 두고 있다. ③나는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서 언제나 거리낌없는 양심을 간직하려고 애쓴다. ④나는 동족에게 자선기금을 전달하고 하느님께 제물을 바치려고 여러 해 만에 돌아왔다. ⑤내가 성전 안에 있었지만 정결 예식을 마치고 제물을 바칠 때였는데 그때 곁에는 군중도 없었고 소동도 없었다. ⑥아시아에서 온 유다인 몇 사람이 있었는데 내게 시비를 걸 일이 있으면 그들이 총독에게 와서 고발했어야 마땅하다. ⑦내가 최고 의회에 출두했을 때도 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없다. 다만 죽은 이들의 부활 때문에 여러분 앞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고 한마디 외쳤을 따름이다.(24,11-21)바오로가 펼친 변론에서 몇 가지를 주목할 수 있습니다. 첫째, 재판 원칙에 관한 것으로 유죄는 증명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오로의 변론은 고발자들이 바오로가 유죄임을 증명하지 못한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둘째, 유다교와 ‘새로운 길’인 그리스도교와의 연속성입니다. 바오로는 새로운 길이 유다교와 무관한 또는 유다교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연속선 상에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바오로의 변론은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는 예수님 말씀을 반영합니다. 셋째, 부활에 대한 바오로의 언급입니다. 학자들은 유다교의 부활 신앙이 두 가지 형태로 발전해 왔다고 봅니다. 하나는 의인들의 부활을 믿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인이나 악인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의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바오로는 모든 사람의 부활을 믿고 있음을 표방합니다. 바오로는 또 자신이 죽은 이들의 부활 때문에 재판을 받고 있다고 함으로써 자신을 둘러싼 소송이 순전히 유다교 내의 문제임을 부각시키고 있다고 학자들은 풀이합니다. 총독의 조처(24,22-27)펠릭스 총독은 바오로의 변론이 끝나자 천인대장 리시아스가 내려오면 사건을 판결하겠다면서 공판을 연기합니다. 그러면서 바오로를 편하게 해 주고 친지들이 그를 돌보는 것을 막지 말라고 백인대장에게 지시합니다.(24,22-23)총독은 며칠 후 유다인 아내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오로를 불러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 관해 이야기를 듣다가 바오로가 “의로움과 절제와 다가오는 심판”에 관해 설명하자 두려움에 사로잡혀 이야기를 그만두게 합니다.(24,24-25) 펠릭스 총독의 세 번째 아내인 드루실라는 야고보 사도를 처형한 헤로데 아그리파 1세 임금(12,1-2)의 막내딸이었습니다. 드루실라는 에메사라는 왕국의 임금에게 시집갔는데 펠렉스 총독이 계략을 꾸며 자기 아내로 만들었고 합니다. 이로 미루어 보아도 총독은 의로움이나 절제와는 관계가 먼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바오로의 말을 듣고 두려움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하지만 총독은 이후에도 바오로를 자주 불러내어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러나 새로운 길에 대한 관심 때문이라기보다는 돈을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였습니다.(24,26) 바오로가 변론 과정에서 자선기금을 전하려고 예루살렘에 왔다고 말한 것을 듣고는 바오로에게 돈이 많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이렇게 두 해가 흘렀고, 펠릭스 총독의 후임으로 포르키우스 페스투스가 부임합니다. 그때까지 바오로는 감옥에 갇혀 지냅니다. 펠릭스 총독이 유다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바오로를 가둔 채 내버려 둔 것입니다.(24,27) 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alfonso84@hanmail.net cpbc2020.04.16

다윗의 애끓는 부정, 아들 때문에 두 번 통곡하다[엉클죠의 바티칸 산책] (27) 다윗 왕의 부끄러운 과거 고대 이스라엘의 황금기를 이룬 지도자 다윗 왕. 그러나 한편으로는 부하의 부인을 탐하고, 아들의 배반에 통곡한 나약한 인간이기도 하다. 다윗은 어릴 때부터 비파를 잘 타 예술가들은 ‘비파를 연주하는 다윗 왕’을 즐겨 묘사한다. 사진은 예루살렘 시온산에 있는 다윗 왕 청동상. 가톨릭평화신문 DB 다른 종교의 경전도 이럴까요? 신자들이 우러러 받드는 중요 인물의 ‘부끄러운 과거’를 낱낱이 기록해 놓은 것 말입니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성경은 그런 면에서 독보적입니다. 위대한 성인일수록 민망한 수준의 부끄러운 과거가 많습니다. 아들 압살롬의 쿠데타이스라엘의 다윗 왕이 그런 위인 가운데 한 명입니다. “다윗은 올리브 고개를 오르며 울었다. 그는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걸었다.”(2사무 15,30) 명색이 왕인데, 몰골이 말이 아닙니다. 믿었던 아들 압살롬이 쿠데타를 일으켜 예루살렘을 장악한 뒤 아버지 다윗 왕을 쫓고 있었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자칫 반란군에게 잡히면 죽을 위기에 몰렸습니다.아들에게 쫓기는 아버지의 신세, 얼마나 처량하고 비참합니까. 세상 사람들이 볼까 두려워 얼굴을 가리고, 모자를 뒤집어쓴 채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넘었습니다. 얼마나 급했는지 신발도 신지 못하고 맨발로. 벼랑에 몰린 다윗이 주님에게 ‘SOS’를 쳤습니다. 시편 3장의 기도가 바로 그의 애원입니다. “주님, 저를 구하소서. 저의 하느님, 정녕 당신께서는 제 모든 원수들의 턱을 치시고 악인들의 이를 부숩니다. 주님께만 구원이 있습니다.”(시편 3,8-9)다윗이 누구입니까. 이스라엘 민족을 구한 영웅, 국가다운 국가를 세우고 33년을 통치한 최고의 지도자,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성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정치 지도자를 평가할 때 그 기준을 항상 다윗으로 삼았습니다. 다윗을 100점 만점으로 설정해 놓고 다른 지도자들을 평가하는 방식이었지요. 중국의 요순(堯舜)시대 임금과 같은 위상이었습니다. 신약시대에도 다윗의 위상은 절대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래아에서 치유의 기적을 일으키자 사람들이 질겁을 하며 말합니다. “저분이 혹시 다윗의 자손이 아니신가?”(마태 12,23) 갈릴래아 백성들은 다윗을 메시아를 배출할 가문의 원조로 믿고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아뿔싸! 다윗이 큰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인간으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정치 지도자로서도 절대로 짓지 말았어야 할 대죄를 지은 것입니다. 측근 참모(우리야)의 부인(밧세바)을 겁간하는 권력형 성범죄에 이어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게 하는 살인죄를 범했습니다. 주님이 진노하십니다. 다윗은 죗값을 톡톡히 치러야 했습니다. 예언자 나탄이 주님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이제 네 집안에서는 칼부림이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이다.”(2사무 12,10) 다윗은 주님께 용서를 빌었습니다. 시편 51장이 그의 절절한 기도입니다. “우슬초로 제 죄를 없애 주소서. 제가 깨끗해지리이다. 저를 씻어 주소서. 눈보다 더 희어지리이다.”(시편 51,9) 한번 엎질러진 물을 어떻게 주워담을 수 있겠습니까! 압살롬의 쿠데타는 그 칼부림의 시작이었던 셈입니다. 다윗은 우여곡절 끝에 반란군 진압을 목전에 두고 있었습니다. 전세가 역전된 것입니다. 반란군의 수괴 압살롬은 극형에 처할 운명이었지요. 다윗의 눈에 아들이 밟혔습니다. 진압군 총사령관(요압)을 불러 압살롬을 죽이지 말고 생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원칙주의자 요압은 압살롬을 현장에서 처단해버렸습니다. 다윗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비록 반역했지만, 많이 사랑했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통곡했습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2사무 19,1) 아비를 죽이려 한 패륜아, 그런 아들의 죽음을 비통해 하는 다윗, 천하의 다윗이 아들 때문에 두 번 통곡했습니다. 아들의 공격을 피해 도망갈 때에는 저주의 눈물을, 아들이 죽었을 때에는 연민의 눈물을 흘린 것이지요. 그야말로 애끓는 부정(父情)입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거나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을 되뇌게 합니다. 조선 시대 영조 왕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요. 정치적 갈등 관계에 있던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넣어 굶겨 죽인 잔인한 아버지 영조 말입니다. 다윗은 불효자를 용서할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있었지만, 영조는 그런 용기가 없었던 같습니다. 철저한 회개 중요한 것은 다윗의 믿음입니다. 다윗은 잘못을 철저히 회개한 후 모든 것을 주님의 처분에 맡겼습니다. 이것은 온갖 흠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삶을 일궈낼 수 있었던 다윗의 비결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 평화신문2020.06.17

일상에서의 평화, 평화 문화 연구로 시선 확대하고파 서울 민족화해위원회 부설 평화나눔연구소 홍용표 신임 소장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부설 평화나눔연구소 제3대 소장에 위촉된 홍용호(오른쪽) 한양대 교수가 염수정 추기경에게 위촉장을 받은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평화 문제를 인간 존엄의 문제와 연결해 연구해보고 싶습니다.” 2월 20일 자로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부설 평화나눔연구소 제3대 소장으로 위촉된 홍용표(프란치스코, 56)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그간의 평화가 남북 관계라는 틀 안에서 바라본 아주 협소한 평화였다면, 이제는 평화를 넓게 내다보고 일상에서의 평화로 관심을 넓혀야 하겠다”고 말문을 뗐다. 이어 “남북 관계에서 핵이 폐기된다고 해서 평화가 정착되는 게 아니듯, 일상 속에서의 평화와 평화 문화에 대한 연구도 관심을 가져보고 싶다”고 관심 분야를 전했다. 홍 교수는 이어 “그간 평화나눔연구소 연구위원으로 두 차례 DMZ국제청년평화순례에 함께하며 ‘평화’를 주제로 강의와 나눔을 했는데, 청년들과 평화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평화를 인간 존엄성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다”면서 “남북관계나 분단 극복뿐 아니라 북한 인권 문제나 식탁의 평화, 입시와 평화 문제 등 일상에서의 평화를 논의하고 연구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평소 의중을 드러냈다. 홍 교수는 또 “평화학에서 사실 평화교육이 반 이상을 차지하는데, 실은 이게 잘 이뤄지고 있지 못하다”며 “아직 우리 연구소 연구위원들과 깊이 있는 논의는 해보지 못했지만, 기존 평화ㆍ외교ㆍ인권 아카데미에서 이뤄지는 일반적인 평화 교육이 아니라 이를 좀더 특화해서 성경 속의 평화, 교회와 평화 같은 주제의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진행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평화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평화에 대해 좀더 깊이 성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평화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평신도 중심의 평화나눔교육’을 해나가고 싶다”면서 “교회 안에 있는 연구소로서의 정체성과 특징을 살리고 교회에 평화 문화를 확산시켜 나가는 데 공헌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나가겠다”고 희망했다. 홍 교수는 끝으로 “평화학은 기본적으로 학제적 연구”라면서 “따라서 가능하다면 평화 문화나 인류학, 문화학, 종교학, 사회학, 신학, 과학 등 분야별로 다양한 전문가와 학자들을 영입하고 싶다”는 꿈도 비쳤다. 한편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는 같은 날 서울대교구청에서 신임 평화나눔연구소 연구위원 임명식을 열고, 연구위원 겸 부소장에 남궁곤(아타나시오) 동아일보21세기평화연구소 연구위원, 연구위원에 김병태(미카엘) SK네트웍스 전무 겸 한국군사학회 사무총장, 이민영(아기 예수의 데레사) 고려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부교수 등을 임명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평화신문2020.02.26
![[성당에 처음입니다만] (28) 성당과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왜 “아멘” “아멘” 하나요](//cpbc.co.kr/CMS/newspaper/2019/09/rc/763012_1.0_titleImage_1.jpg)
[성당에 처음입니다만] (28) 성당과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왜 “아멘” “아멘” 하나요주님 뜻 이뤄지길 비는 신앙고백 “아멘” “아멘”은 그리스도교와 유다교에서 기도 끝에 하는 말로, 하느님께 정성껏 바친 기도의 내용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곡한 뜻이 담겨 있다. 나처음 : 성당이나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왜 기도할 때마다 “아멘”, “아멘”이라고 말하나요.조언해 : 언젠가부터 미사 강론 때에도 신부님 말씀이 끝날 때마다 큰소리로 “아멘” 하고 답하는 이들이 있어 분심이 들 때가 많아요. 짜증도 나고요. 마치 광신도처럼 보이기도 해요.라파엘 신부 : 회중이 다 함께 조용히 기도하거나 신부님 강론에 집중하고 있는데 그 침묵의 시간을 깨는 방해 요소가 있다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아름답지 못한 행동이겠지. 오늘은 성당이나 개신교회에 다니는 그리스도인들이 왜 “아멘” 하는지 설명해야겠구나. 일단 ‘아멘’은 그리스도교와 유다교에서 기도 끝에 하는 말로, 하느님께 정성껏 바친 기도의 내용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곡한 뜻이 담겨 있단다. 먼저, ‘아멘’이 성경에선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알려주마.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이끄심에 대한 확신이 섰을 때 “아멘”으로 응답했단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지키지 않을 경우 12가지의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선포했을 때 온 백성이 “아멘” 하고 응답한 것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지.(신명 27,14-26 참조)또,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미의 기도를 노래한 후 그 끝을 ‘아멘’으로 마무리하였단다. 이러한 예는 시편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데 흔히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 받으소서. 영원에서 영원까지! 아멘. 아멘!”(시편 41,14)하고 끝맺음을 해요. 아울러 하느님 말씀이 진실하며 영원할 것임을 강조하는 의미로도 사용했단다. 신약성경에서는 ‘아멘’이 크게 3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단다. 먼저, 신앙고백이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아멘” 하고 외쳤지.(1코린 14,16 참조) 또 구약의 시편처럼 기도와 찬미를 ‘아멘’으로 마무리했단다. “창조주께서는 영원히 찬미받으실 분이십니다. 아멘”(로마 1,25)이라고 한 바오로 사도의 기도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지.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아멘’이야.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진실성을 확인시켜 주시기 위해 먼저 “아멘”이라고 하신 다음 말씀하시는 경우가 아주 많았단다. 이렇게 하신 말씀이 마태오 복음서에는 30번, 마르코 복음서에는 13번, 루카 복음서에는 6번, 요한 복음서에는 25번이나 나와. 우리말 성경에는 “아멘”을 “진실로”(마르 3,28)라고 옮겨 놓았단다. 그러면 미사와 전례에서 ‘아멘’의 의미에 대해서도 설명할게. 미사에서도 ‘아멘’이 3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어요. 먼저, 본기도와 예물 기도, 영성체 후 기도 때 사제의 기도에 대해 회중이 “아멘”으로 화답해. 이는 사제의 기도가 그대로 이루어지길 바란다는 뜻이야. 두 번째로, 장엄하게 바치는 감사 기도 끝에 사제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 되어 전능하신 천주 성부 모든 영예와 영광을 영원히 받으소서” 하면 모든 회중이 “아멘”으로 환호하지. 이때 하는 ‘아멘’은 감사 기도 전체 내용에 동의하고, 사제와 일치하여 감사 기도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는 표시로 보통 노래로 응답한단다. 세 번째는 영성체할 때 사제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면 “아멘”이라고 대답해요. 이때의 ‘아멘’은 성체가 진정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심을 믿는다는 신앙고백의 표현이야. 또 인류 구원을 위한 주님의 희생에 동참하겠다는 다짐도 포함되어 있단다. 그래서 영성체를 하는 신자들은 똑똑히, 확신에 찬 목소리로 “아멘”이라고 해야 해. 이처럼은 ‘아멘’은 나를 드러내는 표현이나 의미 없는 추임새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비는 간구이며 그리스도께 대한 진실된 신앙고백이란다. 너희도 앞으로 ‘아멘’을 말할 때 이러한 깊은 뜻을 새겨 정성껏 표현하기를 바란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19.09.24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46) 바오로 사도의 두 번째 선교 여행 Ⅲ (16,35―17,15)](//cpbc.co.kr/CMS/newspaper/2020/01/rc/770178_1.2_titleImage_1.jpg)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46) 바오로 사도의 두 번째 선교 여행 Ⅲ (16,35―17,15)박해에도 유다인 회당 먼저 찾아가 선교하다필리피에서 테살로니카로 온 바오로는 유다인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다가 유다인들의 시기를 받아 다시 베로이아로 가서 선교 활동을 계속한다. 사진은 테살로니카의 중심부에 있는 정교회 성당 전경.필리피 감옥에서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한밤중에 지진이 일어나 감옥 문이 다 열렸고 간수는 자결을 시도하려다 바오로의 만류로 목숨을 건집니다. 바오로는 간수와 그 집안 식구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세례를 베풉니다. 지난호에서 살펴본 내용입니다.(16,25-34) 사도행전 본문에는 언급이 없습니다만, 바오로와 실라스는 간수와 함께 감옥으로 돌아갑니다. 풀려난 바오로와 실라스(16,35-40) 날이 밝았습니다. 바오로와 실라스를 감옥에 가두게 했던 행정관들은 시종들을 보내 그들을 풀어주라고 명령합니다. 그러자 바오로가 ‘로마 시민인 우리를 재판도 하지 않고 공공연하게 매질하고 감옥에 가뒀다가 슬그머니 풀어준다는 것은 말이 안 되니 행정관들이 직접 와서 데리고 나가야 한다’고 항변합니다.(16,5-37) 당시 로마 시민에게는 매질을 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돼 있어서 바오로는 이같이 항변한 것입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행정관들은 겁이 나서 두 사람에게 와서 사과하면서 도시를 떠나 달라고 청합니다. 바오로와 실라스는 감옥을 나와 리디아의 집으로 가 형제들을 격려한 후 필리피를 떠나지요.(16,38-40) 테살로니카 선교(17,1-8) 바오로 일행은 필리피를 떠나 암피폴리스와 아폴로니아를 거쳐 테살로니카에 이릅니다.(17,1) 이들이 테살로니카까지 온 길은 서쪽으로 계속 가면 아드리아 해에 이르고 바다를 건너면 이탈리아 남쪽 도시 브린디시와 연결됩니다. 반대로, 왔던 길을 되돌아 동쪽으로 계속 가면 아시아 땅으로 이어집니다. 로마인들이 놓은 이 길을 ‘에그나티아 길’(Via Egnatia)이라고 부릅니다. 반면에 이탈리아 남쪽 도시 브린디시에서 로마까지 이어지는 길은 ‘아피아 길’(Via Apia)이라고 불렀습니다. 오늘날 그리스 제2의 도시로 테살로니키라고 부르는 테살로니카는 당시 마케도니아를 관통하는 ‘비아 에그나티아’의 중심에 있는 큰 도시였습니다. 그런 만큼 유다인들의 회당도 있었지요. 안식일이 되자 바오로는 회당으로 유다인들을 찾아가 토론을 벌입니다. 이는 바오로가 늘 하던 방식이었습니다. 바오로는 자신이 선포하고 있는 예수님이 성경에서 고난받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그 메시아시라고 열변을 토합니다. 세 안식일에 걸쳐 바오로가 복음을 선포하고 또 유다인들과 토론을 벌이자 감복한 사람들이 생겨나 바오로와 실라스를 따릅니다. 유다교로 개종해 하느님을 섬기던 많은 그리스인들과 적지 않은 귀부인들도 바오로 일행을 따릅니다.(17,2-4) 그런데 유다인들 가운데는 시기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불량배들을 데려다가 군중을 선동해서 도시를 혼란에 빠뜨리게 하지요. 그러면서 바오로 일행을 찾아 끌어내려고 야손의 집으로 몰려갑니다.(17,5) 사도행전 저자는 야손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만, 그는 테살로니카에 살던 유다인으로서 바오로의 설교에 감화를 받아 바오를 따르게 된 형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야손의 집에서 바오로 일행을 찾아내지 못하자 야손을 비롯한 형제들, 곧 그리스도인이 된 이들 몇 사람을 시 당국자에게 끌고 가 고발합니다. 고발 내용은 “온 세상에 소란을 일으키던 자들”이 테살로니카에 왔는데 야손이 그들을 자기 집에 맞아들였다는 것과 그자들이 “예수라는 또 다른 임금이 있다고 말하면서 황제의 법령을 어기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시 당국자들은 보석금을 받고서 야손과 나머지 사람들을 풀어줍니다.(17,6-9) 이 고발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온 세상에 소란을 일으키던 자들”이라는 표현에는 유다인들이 이미 바오로 일행에 대한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저자는 유다인들이 “시기하여”(17,5) 불량배를 동원해 도시를 혼란에 빠뜨렸다고 하지만, 고발 내용으로 미루어 보면 테살로니카의 유다인들로서는 바오로가 골칫거리라는 것을 이미 알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예수라는 다른 임금이 있다면서 황제의 법령을 어기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테살로니카 시 당국자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고발을 심각하고 중대하게 여겼다면 보석금을 받고 풀어줄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베로이아 선교(17,10-15) 야손을 비롯해 붙잡혔던 형제들이 풀려나기는 했지만, 테살로니카의 그리스도인들은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파악하고 그날 밤으로 바오로와 실라스를 베로이아로 보냅니다. 베로이아는 테살로니카에서 서쪽으로 70㎞쯤 떨어진 고대 도시입니다. 당시에는 여러 민족과 종교가 뒤섞여 있던 국제적인 도시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유다인 회당도 있었을 것입니다. 형제들이 바오로 일행을 베로이아로 보낸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고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바오로는 베로이아에 도착해서 유다인 회당으로 갑니다.(17,10) 사도행전 저자는 베로이아의 유다인들이 테살로니카 유다인들보다 점잖아서 바오로가 전한 말씀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날마다 성경을 연구했다고 하지요. 그래서 그들 가운데 많은 유다인이 또 지체 높은 그리스 사람들 가운데서도 적지 않은 이가 믿게 됐다고 기록합니다.(17,11-12) 하지만 테살로니카의 유다인들이 이 사실을 알고는 베로이아까지 가서 군중을 선동합니다. 위험을 느낀 형제들은 바오로를 바닷가로 보내고는 아테네까지 인도합니다. 바오로와 함께 지내던 실라스와 티모테오는 테살로니카에 그냥 남았습니다. 바오로는 자신을 아테네로 인도해준 형제들을 통해 실라스와 티모테오에게 되도록 빨리 오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17,13-15)생각해봅시다바오로는 1차 선교 여행 때 가는 도시마다 유다인들에게 시달림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서도 그랬고, 이코니온에서도 그랬습니다. 리스트라에서는 돌질에 죽을 고비를 넘기기까지 했습니다. 이는 2차 선교 여행 중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필리피에서는 사정이 조금 달랐지만, 테살로니카와 베로이아에서 바오로는 역시 유다인들에게 시달림을 받았습니다. 왜 바오로는 이렇게 박해를 받으면서도 가는 곳마다 먼저 유다인 회당을 찾아 말씀을 전했을까요? 그 이유를 알려주는 단초를 바오로 사도가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동족 사랑’입니다. “사실 육으로는 내 혈족인 동포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로마 9,3) 바오로에게는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박해를 당하면서도 유다인들에게 먼저 말씀을 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유다인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이 복음을 전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점도 고려했을 것입니다. 유다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이라는 같은 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데도 고려해야 할 점들이 아닐지요?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alfonso84@hanmail.net cpbc2020.01.02

바보의나눔에 30억 기부한 부부, 하늘에 보화를 쌓다서울 수유동본당 전종복·김순분씨 부부, 부동산 정리해 전액 쾌척… 평소 레지오 마리애 등 활동 열심히 (재)바보의나눔 이사장 손희송 주교가 전종복ㆍ김순분씨 부부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다. “주님께 받은 건 다시 주님께 돌려 드려야죠.”(재)바보의나눔에 30억 원을 기부한 전종복(욥, 83, 서울 수유동본당)ㆍ김순분(논나, 75)씨 부부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할 수 있어서 기쁘고 뿌듯하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부부는 올해 초 부동산을 정리하기로 하고, 부동산을 판 금액 전액을 기부하기로 결심했다. 평생 아끼고 아껴 모은 재산이었지만, 30억 원을 기부하는 데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매매계약서를 체결하고 곧바로 바보의나눔에 연락해 기부 의사를 밝혔다.남편 전종복씨는 “연도 봉사를 하러 장례식장에 가면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고 쓰여 있는 걸 자주 봤다”면서 “그때마다 빈손으로 왔으면 빈손으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나도 그렇게 살리라 다짐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만큼 먹고 살고 자식들 다 키운 건 모두 주님께서 도와주신 덕분”이라며 “기부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거듭 강조했다.부부는 평소에도 여윳돈이 생기면 교회와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눠왔다. 어느 본당이나 성지가 성전 신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황새바위성지, 줄무덤성지, 문막성당…. 또 어디더라.” 부부 입에선 성지와 성당 이름이 줄줄 흘러나왔다. 교회 시설과 기관 여러 곳도 후원하고 있다고 했다. “주위에선 우리가 이렇게 기부하는 줄 모를 거예요. 남편이 워낙 검소하거든요. 1967년 결혼했는데, 그때 남편 월급이 2만 원이었어요. 1만 8000원 저축하고 2000원 갖다 주더라고요. 2000원으로 한 달을 살았어요.”아내 김순분씨는 “남편이 큰 사업을 한 것도 아니고 병원 총무과장 일을 하면서 한 푼 두 푼 모은 걸 기부하는 것”이라며 “누구든지 나누고 기부할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고 했다. 월급쟁이로 살면서 30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갖게 된 건 오래전 우연한 기회에 투자한 토지가 국가에 수용되면서 보상비를 잘 받았기 때문이다. 그 돈이 지금의 부동산 기초 자금이 됐고 현 시세가 30억 원이 됐다.남편 전씨는 “주님께서 벌어주신 돈이지 우리가 번 돈은 아니다”라고 했다. “딸 셋이 있는데 우리 부부가 물려주지 않아도 될 만큼 잘 살기에 자식에게 줄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아내 김씨는 “남편이 딸들에게 한 푼도 안 준다고 했을 땐 솔직히 엄마로서 섭섭하고 서운하기도 했다”며 “그래도 남편 뜻이 확고하고, 저 역시도 주님께서 주신 건 주님께 돌려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해 남편 뜻을 따랐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옆에 앉은 남편을 보며 “애들한테 조금이라도 주자니까”라며 말끝을 흐렸다. 아내 김씨는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다. 형제와 친척 중엔 사제와 수녀도 있다. 그런 아내와 결혼하기 위해 비신자였던 남편은 세례를 받았다. 혼인을 위한 세례였기에 남편은 곧바로 냉담자가 됐다. 그러다 2007년 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선 30년 냉담을 풀고 누구보다 열심한 신자가 됐다. 아내는 성가대 단장, 구역반장 등을 맡아 수십 년 봉사했고, 남편은 레지오 마리애에서 활동했다. 매일 성당에 가서 미사하고 기도하는 건 부부의 일상이었다. 미사는 물론 아침ㆍ저녁 기도를 빠트리지 않는다는 부부는 “저녁 기도는 항상 같이 바친다”고 했다. 딸들이 가족과 함께 놀러 와도 저녁기도 시간이 되면 온 가족이 모두 둘러앉아 기도한다. “모든 것이 감사하죠. 언제까지 살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지금 사는 집도 모두 기부하고 떠날 생각입니다. 성경에도 있지 않습니까.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쉽다고요. 가지고 있으면 뭐합니까. 어차피 갖고 떠날 것도 아닌데요.”부부는 21일 서울 명동 서울대교구청 손희송(바보의나눔 이사장, 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 집무실에서 손 주교에게 기부 증서와 감사패를 받았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평화신문2020.05.26

꾸준한 집필로 사랑 나누는 원로 사제… “글 쓰는 데 끄떡 없어”말씀의 365일, 삶의 뜨락에서 / 임덕일 신부 지음 / 가톨릭출판사 / 1만 5000원 사제관 한편에 있는 책상에 스탠드 불이 ‘탁’하고 켜졌다. 탈고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긴 손으로 눌러쓴 원고들 위로 빛이 드리워졌다. 수북이 쌓인 책들 사이로 자리를 고쳐앉은 사제가 말을 이었다. “제게는 ‘하면 된다’, ‘베풀자’라는 신념이 늘 자리하고 있어요. 책 읽고 쓰는 일을 하면 된다고 여겼고, 그간 많은 신자들에게 받아온 관심과 사랑에 대해 이것으로 나눔을 하는 거죠.” 그에게 집필 활동은 사랑이자, 나눔이다.2015년 은퇴 후 ‘집필 사목’으로 사제와 신자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전해오고 있는 임덕일(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 신부가 신간 「말씀의 365일, 삶의 뜨락에서」를 펴냈다. 은퇴 후 벌써 두 번째 책이다.임 신부는 고전 속 선현들의 금언(金言)을 신앙의 진리와 적재적소에 연결지어 풀이한 책을 선보여 왔다. 앞서 동양의 잠언으로 불리는 ‘채근담’(菜根譚)과 「명심보감」을 성경 말씀과 짝지어 펴낸 두 권의 책들은 독자들을 동서양 지혜를 한눈에 체득하도록 이끌어줬다.이번 신간은 임 신부가 그간 읽고 쓴 고전과 여러 자리에서 강론했던 원고들을 한데 추려 엮은 묵상집이다. 용서, 고정관념, 덕, 행복 등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일상 주제들을 임 신부가 다시금 성찰하고 요약한 단상과 성경 구절을 함께 담았다. 365가지 묵상글과 성경을 매일 읽고 되새길 수 있고, 관련 구절이 적힌 성경을 함께 펼쳐놓고 읽어도 좋다. 물질만 좇는 세태, 베풀고 이해하기보다는 운전하다가도 끼어드는 누군가에게 화부터 내는 현대인의 심성을 차분히 돌아보게 하는 다양한 글이 재미있게 엮였다. 모든 주제는 곧 ‘사랑’으로 귀결된다.임 신부는 “나름대로 요약하는 재주가 있어서 삶과 신앙의 깊이를 더해주는 내용들로 엮었다”면서 “날짜별로 정리된 매일 묵상을 읽고 새기기 쉽게 구성했다”고 전했다.책으로 더 많은 신자와 소통하게 된 임 신부에게 신자들을 향해 해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답은 “진짜 기도를 하자”로 돌아왔다.“우린 어느새 기복적인 신앙에 참 많이 젖었어요. 원하는 것, 돈, 물질, 그리고 내 삶을 더 풍요롭게 해주십사 하는 바람이 기도의 대부분이 돼버렸죠. 돈, 맛좋은 음식, 보약 속 하느님만 좇지 않습니까? 하느님 방식의 뜻을 인간의 방식으로 끌어내리고 있죠. 이것이야말로 ‘현대판 샤머니즘’이죠. 하느님께서 가진 것은 오직 ‘사랑’뿐인데, 얼토당토않게 다른 것만 달라고 보채는 격이죠. 하느님, 이웃과 사랑의 관계가 먼저죠. 사랑을 청하는 기도를 바치도록 노력합시다.”임 신부가 주머니에서 김수환 추기경 사진이 새겨진 작은 기도문 하나를 꺼냈다. 그는 “김수환 추기경님이야말로 책에서 언급하는 용서와 사랑의 가까운 표본이시다”면서 “지난 10년간 추기경님 삶과 영성을 알리기 위해 기도문을 만들어 전달해오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올해 추기경님 선종 10주년을 맞아 우리 교회가 추기경님 영성을 세계에 더 전하고자 전폭 힘쓰고, 나아가 그분이 가경자로 선포되도록 대대적으로 노력하면 좋겠다”고도 했다.파킨슨병 투병 중에도 매일 기도와 묵상으로 나온 이번 신간은 이미 교구 사제 800여 명에게 선물로 전달됐다. 벌써 내년에 펴낼 원고도 집필을 시작했다. 내년 사제 수품 50주년 금경축을 맞아 그는 자신의 저작권을 교회에 봉헌하겠다고 했다.“손이 점점 더 떨리지만 글 쓰는 데엔 끄떡없습니다. 힘닿는 데까지 후배 사제와 신자들에게 베풀고 싶습니다. 작지만 곰탕 한 그릇, 커피 한 잔 먼저 베푸는 게 제 작은 건강 비결이에요. 그러면 배로 갚아주시더라고요. 그게 사랑이고 나눔 아니겠습니까?”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cpbc2019.08.06

영성 가득한 프로그램으로 떠나는 여름 휴가가톨릭평화방송 TV와 함께 여름철 특별한 휴가를 보내는 건 어떨까? 가톨릭평화방송 TV가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7월 cpbc TV 프로그램 안내명쾌한 성경 강좌 ‘최종훈 신부의 사도행전’ 장안의 화제, 명쾌하고 상쾌한 성경강좌.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 성서신학을 전공한 신약성경 전문가, 광주대교구 최종훈(토마스) 신부가 깊고도 재미있는 사도행전의 세계로 안내한다. 성경의 사건과 이야기들이 지금 여기 우리의 이야기로, 우리 가슴 안에, 삶 안에 살아 숨 쉬어야 함을 강조하며 시작된 강좌는 7월 16일 방송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이 갖는 의미와 사도행전의 세 가지 중심 기둥에 대해 살펴본다. 사도들의 행적을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최고의 사도행전 강의를 만나볼 수 있다. 방송 시간 : (화) 13:00 (수) 08:00 (목) 21:00 (토) 07:00 (일) 04:00 (월) 01:00 방청 안내 : 매주 (목) 19:30 서울대교구 이문동성당 사랑 가득한 현장 ‘원목일기’ 치유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질병으로 고통받는 모든 이들과 함께하는 한국 가톨릭의 대표 의료기관인 서울성모병원. 그 삶과 죽음이 교차하고 위로와 사랑이 꽃피는 현장에서 환자와 가족들, 그들을 돌보는 의료진과 교직원까지 모두가 하느님 안에서 치유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영성부 원목자들의 활동을 따라가 보자. 방송 시간 : (목) 09:00 (일) 13:00 (월) 17:00 (화) 03:00, 20:00 아름다운 신앙의 발자취, 미니시리즈 ‘순례’ TV를 통해 전 세계 가톨릭 명소를 순례하는 특별한 시간. 우리 믿음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해외 성지순례를 통해 하느님을 만나고, 그 안에서 우리의 신앙을 돌아본다. 가톨릭의 중심 바티칸, 유럽의 성모 발현지, 프랑스 솔렘수도원, 그리스의 초기 교회 유적지, 멕시코 과달루페 성모성지 등을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만날 수 있다. 7월 19일 첫 방송 된다. 방송 시간 : (금) 16:30 (일) 23:00 (화) 02:00 (수) 22:30 (목) 10:30 김수환 추기경 선종 10주년 영성 강좌 ‘바보에게 길을 묻다’ 김수환 추기경 선종 10주기를 맞아 김수환 추기경의 삶과 뜻을 되새겨 보는 영성 강좌 ‘바보에게 길을 묻다’. 이 시간에는 ‘바보’라는 말 속에 함축돼 있는 김수환 추기경의 삶과 영성을 되새기며 신앙인으로서 오늘을 사는 법을 모색해 본다. 김수환 추기경 연구소장 박승찬 교수가 ‘삶과 신앙’, ‘정의와 평화’, ‘사랑과 나눔’을 주제로 강의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를 주제로 가톨릭대 신학대 교수 박준양 신부의 강의가 이어진다 방송 시간 : (화) 07:00 (목) 14:00 (금) 01:00 (토) 09:00 (일) 03:00 교회음악 작곡가의 명작을 만나는 시간 ‘교회음악 Note’ 7월 17일 저녁 7시 30분 서울 중림동 가톨릭대학교 교회음악대학원 최양업홀에서 모차르트를 만나보자. 모차르트의 곡 소개와 해설을 통한 교회음악의 진수가 펼쳐진다. 방송 시간 : (화) 09:00 (수) 03:00 (목) 17:00 (일) 01:00, 22:00 (월) 23:00 생활성가의 향연 ‘찬양으로 기도하는 사람들’ 가톨릭평화방송 본사 1층에 새로 문을 연 바오로홀에서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30분 진행되는 생활성가 공연을 방송으로 만난다. (공연 관람 무료) 방송 시간 : (목) 23:00 (금) 09:00 (토) 10:00 (월) 03:00 (화) 17:00 도재진 기자 djj1213@pbc.co.krTV 편성표 cpbc2019.07.10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55) 야고보를 비롯한 원로들의 조언 (사도 21,17-26)](//cpbc.co.kr/CMS/newspaper/2020/03/rc/774879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55) 야고보를 비롯한 원로들의 조언 (사도 21,17-26)“유다인을 얻기 위해 유다인처럼”… 정결 예식을 치르다 바오로의 선교 여행 지도. 출처=「주석성경」 마침내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오로는 야고보를 비롯해 예루살렘 교회의 원로들을 만나 그간의 활동을 보고하고 조언을 듣습니다. 바오로 일행이 예루살렘에 다다르자 예루살렘 신자들이 반갑게 맞이합니다.(21,17) 이로써 바오로는 3차 선교 여행을 마칩니다. 여기서 바오로의 선교 여행 전체를 잠깐 정리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3차 선교 여행을 마치다바오로는 1차 선교 여행을 안티오키아 교회의 파견을 받아 떠납니다.(13,1-3) 바오로(당시는 사울)는 안티오키아의 외항 역할을 하는 셀레우키아를 출발해 키프로스 섬으로 건너갔다가 소아시아 남쪽 페르게를 거쳐 내륙 지방인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이코니온, 리스트라와 데르베까지 갔다가 왔던 길을 되돌아 안티오키아로 돌아옵니다.(13,4─14,26) 「주석 성경」의 연표를 따르면, 바오로의 1차 선교 여행은 기원후 45~49년에 이루어집니다. 바오로는 1차 선교 여행에서 많은 사람을 제자가 되게 하는 성과를 거두지만 또한 반대하는 유다인들에게 적지 않은 박해도 받습니다. 1차 선교 여행의 경험은 예루살렘 사도 회의에서 다른 민족 사람들이 모세 율법을 지키는 문제와 관련한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칩니다.(15,12) 바오로의 2차 선교 여행은 1차 선교 여행지들인 소아시아 내륙 데르베와 리스트라 같은 도시뿐 아니라 갈라티아와 프리기아 지방을 다닌 후 에게해와 맞닿은 트로아스까지 갑니다. 그곳에서 환시를 보고는 사모트라케섬을 거쳐 유럽 대륙인 마케도니아의 네아폴리스로 갔다가 바로 필리피로 가서 선교합니다. 그리고 암피폴리스와 아폴로니아를 거쳐 테살로니카와 베로이아에서도 말씀을 전하지요. 거기에서 아테네로 내려왔다가 코린토로 가서 1년 6개월 이상 머물며 선교한 후 에페소를 거쳐 카이사리아로 건너와 예루살렘 교회에 인사하고 안티오키아 교회로 돌아갑니다.(15,36─18,22) 49~52년에 이뤄진 이 2차 선교 여행의 주목할 특징은 유럽 본토에 본격적으로 복음을 전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필리피, 테살로니카, 코린토가 그 대표 도시들이었고, 바오로가 이곳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들에는 그 신자들에 대한 바오로의 애정과 염려가 잘 드러납니다. 바오로는 3차 선교 여행에서 내륙을 통해 갈라티아와 프리기아 지방을 두루 거치면서 1차, 2차 선교 여행 때 찾았던 곳들을 들러 제자들을 격려한 후 에페소에서 3년 가까이 지내지요. 거기에서 다시 트로아스를 거쳐 2차 선교 여행지들인 마케도니아의 여러 도시를 거쳐 코린토에서 3개월을 머뭅니다. 거기서 거꾸로 마케도니아를 거쳐 트로아스로 건너오고 밀레토스를 통해 소아시아 남쪽 항구 도시 파타라에서 배를 타고 시리아 땅인 티로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프롤레마이스와 카이사리아를 거쳐 마침내 예루살렘에 다다름으로써 긴 여정을 마무리합니다.(18,23─21,17) 3차 선교 여행의 기간은 53~58년으로 가장 길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원로들의 인정과 염려예루살렘에 도착한 이튿날 바오로와 일행은 야고보를 비롯한 예루살렘 교회 원로들을 만나 인사합니다.(21,19ㄱ) 이 야고보는 예루살렘 사도 회의 때에 베드로의 의견을 뒷받침하며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지도자입니다. 바오로는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야고보를 “주님의 형제”, “교회의 기둥”이라고 불렀지요.(갈라 1,19; 2,9) 바오로는 원로들에게 자기의 선교 활동을 통해 “하느님께서 다른 민족들에게 하신 일들을 낱낱이 이야기했고” 이야기를 들은 원로들은 “하느님을 찬양”합니다.(21,19ㄴ-20) 원로들이 하느님을 찬양했다는 것은 바오로의 이방인 선교가 하느님의 개입으로 이루어졌음을 인정한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원로들은 바오로에 대한 염려도 함께 표명합니다. “당신이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사는 모든 유다인에게 모세를 배신하라고 가르치면서 자식들에게 할례를 베풀지도 말고 우리 관습을 따르지 말라고 한다는 이야기”를 수만 명이나 되는 유다인 신자들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을 열성적으로 지키고 있는 이 유다인 신자들에게는 바오로의 이같은 가르침이 몹시 거슬렸을 터인데 문제는 그들이 바오로가 예루살렘에 와 있는 것을 알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것입니다.(21,21-22) 바오로에게 생길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 원로들은 대안을 제시합니다. “서원을 한 사람” 넷이 있는데 그들을 데리고 가서 함께 정결 예식을 하고 그들이 머리를 깎을 수 있도록 그 비용을 대면 바오로가 “율법을 정확히 지키며 사는 사람”이라는 것이 알려지게 되어 일이 잘 무마될 수 있으리라는 것입니다.(21,23-25) 여기서 서원을 한 사람이란 ‘나지르인 서원’을 한 사람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지르인 서원을 한 사람들은 서원 기간이 차면 머리를 깎고 그에 따른 예물을 바치는 예식을 해야 했습니다. 바오로 역시 이방인 세계를 다니며 수많은 이방인과 접촉했기에 율법의 관점에서 보면 정결 예식을 치러야 하는 부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바오로도 정결 예식을 치르고 그 비용을 댐으로써 바오로가 율법을 열성적으로 지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라는 것이 예루살렘 교회 원로들의 주문이었습니다. 원로들은 이 말에 이어 이방인 신자들과 관련해서는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 피와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 그리고 불륜을 삼가라는 예루살렘 사도 회의의 결정을 덧붙입니다.(21,25) 바오로는 원로들의 조언을 따라 그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그들과 함께 정결 예식을 치른 다음 성전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정결 예식 기한이 차는 날, 곧 예물을 바칠 날을 신고합니다.(21,26) 생각해봅시다예루살렘의 원로들이 말하는 것처럼 바오로가 정말로 ‘다른 민족들 가운데 사는 모든 유다인에게 모세를 배신하라고 가르치고 자식들에게 할례를 베풀지도 말고 유다인 관습을 따르지 말라’고 했을까요? 바오로가 모든 유다인에게 그렇게 가르쳤다고 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하겠습니다.물론 바오로의 일차적 관심은 율법의 준수가 아니라 “하느님 은총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20,24)이었습니다. 실제로 바오로에게는 율법의 준수가 아니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은총이 훨씬 중요했습니다. 이 점은 특히 바오로가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지만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에서 바오로는 “나는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라면서 “유다인을 얻기 위해 유다인처럼…율법 밖에 있는 이들을 얻으려고 율법 밖에 있는 이들처럼 되었습니다” 하고 밝힙니다. 원로들의 조언을 받아 정결 예식을 치른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오로의 이런 태도가 열성적인 유다인들에게는 배신자로 비쳤을 것입니다. 원로들의 말 속에는 바오로에게 품고 있는 유다인들의 이런 감정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감정이 어떻게 표출되는지 다음 호에서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alfonso84@hanmail.net cpbc2020.03.11

19세기 초반 천주교 신자들은 ‘야소(耶蘇)’를 ‘녀슈’로 읽었다[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25. 여사울은 예수골이었다 19세기 초반까지의 기록에서 천주교 신자들은 예수의 한자 표기인 야소(耶蘇)를 ‘녀슈’ 또는 ‘여슈’로 발음했다. 사진은 천진암메아리 사이트에 수록된 김학렬 신부의 논문 중 「성경직해」에 보이는 ‘여수’ 표기. ‘야소(耶蘇)’라 쓰고 ‘녀슈’ ‘여슈’로 읽다여사울의 이름에 대해 한 차례 더 써야겠다. 지난 10회 연재 글에서 한자 지명 호동리(狐洞里)에서 보듯 여사울은 여우골이란 의미이며, 당시에는 ‘여수골’ 또는 ‘여수울’로 불렸을 것이란 설명을 했었다. 여기에 한 가지 설명이 더 남았다. 「송담유록」의 발견으로 여사울이 여우골이라는 의미를 넘어 ‘예수골’로 불렸음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예수골은 예수쟁이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홍유한의 편지 등에는 여사울의 한자 표기가 ‘여호(餘湖)’와 ‘여사동(餘事洞)’, ‘여촌(餘村)’ 등으로 나온다. 하지만 「송담유록」은 ‘여소동(余蘇洞)’과 ‘야소동(邪蘇洞)’으로 표기했다. ‘야소(邪蘇)’ 또는 ‘야소(耶蘇)’는 예수의 한자식 표기이다. 당시의 발음으로는 ‘녀슈’ 또는 ‘여슈’로 읽었다. 「송담유록」은 앞에서는 여소동(余蘇洞)이라 적고 나서 뒤에는 두 차례나 야소동(邪蘇洞)으로 표기했다. 둘 다 음은 똑같이 ‘여슈동’이다. 19세기 초반까지의 기록에서 천주교 신자들은 한자 야소(耶蘇)를 ‘야소’로 읽지 않고, ‘여슈’로 발음했다. 그들은 ‘예수’님을 ‘여슈’님으로 불렀다. ‘여슈’가 ‘예수’로 정착한 것은 19세기 중반의 일이다. 그 가장 명확한 증거는 「사학징의」 뒤쪽에 부록으로 실린 「요화사서소화기(妖畵邪書燒火記)」에서 찾을 수 있다. 1801년 신유박해 당시, 5월 22일에 9명의 천주교인을 처형했다. 이때 관련자의 집에서 압수한 각종 천주교 서적과 성화 및 성물을 처형장 바로 곁에서 소각 처리했다. 「요화사서소화기」는 소각하기 전 압수품의 목록을 사람별로 정리해 목록화한 것이다. 한문 서적의 경우는 한자로 적었고, 한글로 언해한 책은 한글로 표기했다. 이 책 중 제목에 예수의 이름이 들어간 책자가 여럿 있었다. 그 표기는 다음과 같다. 「녀슈셩란쳠례(耶蘇聖誕瞻禮)」, 「녀슈셩호(耶蘇聖號)」, 「녀슈슌안도문(耶蘇受難禱文)」, 「공경여수셩심(恭敬耶蘇聖心)」, 「녀슈도문(耶蘇禱文)」, 「녀슈수란도문(耶蘇受難禱文)」. 괄호 안의 한자는 한글 표기를 한자로 유추해 적었다. 모든 책에 예외 없이 예수의 한자 표기 ‘야소(耶蘇)’를 ‘녀슈’로 읽었고 한 차례 ‘여수’로 읽은 예가 보인다. 이 밖에도 초기 교회 필사본에서 예수를 ‘녀슈’ 또는 ‘여슈’로 표기한 문헌은 남은 실물이 적지 않다.(김학렬, 「우리나라에서, 예수님의 이름은 여수님이었다」, 천진암 메아리에 수록된 논문 참조) 이렇게 볼 때, 강세정이 「송담유록」에서 여사울을 야소동으로 표기한 것은 당시 이 지역이 ‘여수동’이었고, 그 속뜻이 예수골임을 밝히려는데 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는 강세정의 악의적 왜곡이 아닌, 당시 은연 중 통용된 표기였을 것으로 본다.여사울의 예수 공동체앞에서 이존창이 1787년 여사울에서 상민과 남녀노소에게 천주학을 전하여 익히게 하다가 예산 현감 신사원에게 검거되어 천안 감옥에 갇힌 일을 말했었다. 「송담유록」의 제8단락은 다시 이렇게 적고 있다. “홍낙민은 또 이기양과 혼인으로 맺어서 몰래 서로 얽혀 호우(湖右) 지역에서 서교(西敎)를 행하였다. 천안 야소동(邪蘇洞)의 이존창은 성품이 자못 교활하고 영리한 데다 문자를 제법 알아 사학에 조예가 깊었다. 이 때문에 이기양과 홍낙민의 무리가 복심(腹心)으로 삼아 그 가르침을 널리 폈다. 또 오석충(吳錫忠)으로 하여금 사서(邪書)를 번역해서 언문 책으로 만들게 해 이존창에게 많이 보내주어, 그로 하여금 어리석은 천인들을 가르쳐 꾀게 하였다.”이기양과 홍낙민이 호우(湖右) 지역, 즉 충청남도 지역 교회의 실질적인 우두머리였고, 이존창이 그의 심복으로 실제적인 가르침을 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문제의 인물이 새로 등장한다. 이기양과 홍낙민이 오석충에게 천주교 서적을 한글로 번역시켜 책자로 만들게 해서 이존창에게 보내주게 했다는 것이다. 당시 이기양은 문의현감으로 현직에 있었고, 홍낙민은 충주로 이주한 상태였다. 오석충은 정약용이 「오석충묘지명」을 따로 남겼고, 그의 첫째 딸이 순교 복자 이경도 가롤로와 결혼하고, 둘째 딸은 권철신의 아들 권상문과 혼인했다. 1801년 천주교 신자로 윤장, 권상문과 함께 임자도로 유배 가서 그곳에서 죽었다. 정약용은 묘지명에서 멀쩡하게 둘인 그의 딸을 외동딸로 만들면서까지 그가 천주교 신자가 아니었다고 극구 변명해 주었으나, 여러 기록이 가리키는 지점에서 오석충은 틀림없는 천주교 신자였다. 그간 교회 서적의 한글 번역에 최창현 등의 이름이 나온 적은 있어도, 오석충이 번역자로 나온 기록은 「송담유록」이 처음이다. 이어지는 다음 단락은 여사울 공동체의 신앙 상황을 보여준다. “야소동은 온 동네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빠져들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 밖에 인근의 6, 7개 고을에서 야소동의 백성과 혼인을 맺은 상민들이 돌아가며 서로 전하여 익히니 몇백 명이 사학을 외워 본받는지 알 수조차 없었다. 그들의 무리는 모두 이문의(李文義:이기양이 앞서 문의 현감을 지냈다)와 홍정언(洪正言:홍낙민을 말한다)을 알았다. 대개 두 사람이 그 교리를 행하는 것을 주장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존창이 상민이었기 때문에 비록 무식하고 어리석은 백성에게 가르침을 행하였지만, 충청도의 사족(士族) 중에는 한 사람도 물든 자가 없었다는 점이다.”충청도 교회가 서울이나 양근, 충주 등지와 달리 양반 신자 없이 일반 백성 중심의 교회로 자리 잡은 이유를 지도자가 속량 노비 출신의 이존창이었던 데서 찾은 것이 흥미롭다. 여사울 공동체에 대한 다른 증언박종악(朴宗岳, 1735~1795)은 1791년 당시 충청도 관찰사로 있었다. 이 시점에 그의 관할 지역에서 진산사건이 터졌다. 「수기(隨記)」는 이 시기를 전후해서 박종악이 정조에게 올린 비공식적 보고 기록이다. 이 기록 속에 여사울과 이존창에 관한 이야기가 무더기로 나온다. 먼저 1792년 1월 3일자 보고다.“이존창은 본래 신창(新昌) 사는 성덕산(成德山) 집안의 사천(私賤)입니다. 어려서부터 홍낙민 형제와 더불어 공부하여, 자못 과거 공부를 익혔고, 가장 먼저 사술(邪術)에 물이 들었습니다. 마음을 쏟아 학습하고, 힘을 다해 꼬드겨서 미혹시켜, 친한 사람이면 요사스럽고 허탄한 주장으로 꾀어, 따라 배울 것을 권하였습니다. 따라 배우는 무리가 쉽게 풀이한 글을 가져다가 진서와 언문으로 베껴 전해, 점점 더 전파되니 따르는 자가 날마다 이르렀습니다. 대개 이존창은 홍씨 집안 제자 중에 문자를 알아 정통한 자로, 호서 사학에서 방서(方書)를 얻어 널리 퍼뜨린 자입니다.”성덕산은 덕산 현감을 지낸 성덕형(成德馨, 1682~?)을 가리키는 듯하다. 이존창이 애초에 성덕형 집안의 종이었다면 앞서 강세정이 홍낙민이 속량시켜준 종의 아들이라고 한 말과는 상치된다. 무언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정이 있을 것이다. 이들의 공동체에 대해서는 또 이렇게 썼다. “종으로 사학을 본받아 배우는 자는 그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대가 없이 양민으로 놓아주었고, 이웃으로 사학을 따르는 자는 그 곤궁함을 불쌍히 여겨 옷과 양식을 마련해주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가까운 데서부터 먼 데까지 이 말을 들은 자들이 문득 기뻐하였습니다.” 신분에서 자유롭고, 차별을 떠난 초기 교회 신앙 공동체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노비가 믿겠다고만 하면 노비 문서를 불태워 양민이 되게 하고, 그 모습을 본 이웃들은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의식주를 도와주며 공동체의 일원으로 기쁘게 받아들였다. 한 번도 본 적 없고, 이전에 상상해본 적도 없는 실험이 이들 내부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같은 일은 입소문을 타고 순식간에 원근으로 퍼져 나갔다. 이어지는 기록은 또 이렇다. “대저 사술을 하는 자들은 서로를 교중(交中)이라 부르면서 종과 주인이 존비의 구분이 없고, 멀고 가까움에 친하고 소원한 구별이 없습니다. 남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반가(班家)의 아낙들도 언문으로 풀이하여 이를 읽고, 상천(常賤)의 어리석은 아낙들은 입으로 가르침을 받아 이를 외워, 노소도 없고 장유(長幼)도 없이, 한번 이 사술에 빠지기만 하면 미혹되지 않음이 없습니다. 시험 삼아 반가의 아녀자로 말한다면, 가령 길가는 사람이 사학을 한다고 제 입으로 말할 경우 성명이나 거주도 묻지 않고, 양반인지 상놈인지도 따지지 않고, 모두 들어와 내실에서 만나보기를 허락하고 큰 손님처럼 공경하며, 가까운 친족같이 아낍니다. 거처와 음식도 달고 쓴 것을 똑같이 합니다. 떠날 때는 또 노자까지 줍니다.” 사학하는 이들에게 투전이나 윷놀이를 하자고 시험해보고, 농담이나 욕설로 도발해도, 아예 하려 들지 않을 뿐 아니라 대꾸조차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보인다. 이들은 도덕적으로도 대단히 엄격한 규율 속에 행동하고 있었다.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 cpbc2020.11.04

중국 가톨릭 자선단체, 보편 교회에 의약품 지원 호소유일한 가톨릭 구호기구 ‘진데 채리티’
의약품 수요 감당 못하는 실정 전해
정부는 비상사태 속 종교 활동 제재
필리핀 마닐라의 한 성당에 모인 신자들이 마스크를 쓰고 미사에 참여하고 있다. 전 세계로 퍼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중국을 비롯한 중화권 교회가 확산 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CNS】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중국 교회 내 상당수 교구가 미사 등 종교 활동을 일시 중단한 가운데, 중국에서 유일한 가톨릭 자선단체인 ‘진데 채리티’(Jinde Charity)가 세계 보편 교회에 마스크 등 의약품 지원을 호소하고 나섰다.진데 채리티는 2일 ‘중국으로부터의 긴급 호소’라는 제목의 메시지를 내고 “중국 내 약품이 심각할 정도로 부족하다. 위험할 정도로 의료 물자도 부족한 상황”이라며 다급한 현지 사정을 전했다. 카리타스(Caritas) 중국지부가 없는 상황에서 중국에서는 2006년부터 진데 채리티가 유일한 가톨릭 국제 구호기구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중국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연일 사망자와 확진자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진데 채리티가 ‘마스크와 의약품 부족’을 겪는 위급한 상황을 보편교회에 알리고 나선 것이다.진데 채리티는 메시지에서 “보편 교회를 통해 중국 내 최전방에서 종사하는 의료진들을 위한 보호복과 마스크, 의약품을 조달받고 싶다”고 전했다. 그는 “중국 정부가 보호장비 생산 등으로 바이러스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급증하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의료진과 의약품 부족으로 이를 돕고자 하는 교회 신자들마저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한편, 중국 정부가 중국 내 가톨릭 교회들에 장례 미사 거행을 금지하라고 지시했다. 중국 정부는 사제들을 향해 특히 종교 시설 외에서 장례 미사를 금지토록 규정했다. 그러면서 유가족 외에 10명이 넘는 인원이 장례 미사에 참석해 성경을 낭독하거나 성가를 부르는 행위를 못하도록 했다. 이 같은 조치는 중국 정부가 2월부터 정식으로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종교 단체들의 활동을 제재키로 한 데 따른 것으로, 중국 교회 신자들은 이번 제재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틈타 중국 정부가 ‘물타기 제재’를 가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이에 중국 허난성과 산둥 지방의 사제들은 “당국의 조치를 지키지 않으면 처벌과 함께 교회를 폐쇄하고 사제 자격증을 반납시키는 조치를 할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가 집에서 성사를 지키고, 장례 미사도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한편, 교황청은 3일 중국에 60만~70만 개에 이르는 보호 마스크를 중국에 기증했다고 밝혔다. 마스크 지원은 교황청과 중국 교회가 함께 기금을 출현해 추진됐으며, 중국 남방항공 등 항공사들은 무료로 물자를 배송했다. 이정훈 기자 평화신문2020.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