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에 처음입니다만] (27) 왜 꼭 일요일에 성당에서 미사해야 하나요](//cpbc.co.kr/CMS/newspaper/2019/09/rc/762480_1.0_titleImage_1.jpg)
[성당에 처음입니다만] (27) 왜 꼭 일요일에 성당에서 미사해야 하나요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기념하는 ‘주일’ 주일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주간 첫날’이다. 가톨릭교회 신자들은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인 주일을 거룩히 지내며 미사 안에서 모든 이와 함께 자비와 사랑을 나눠야 바람직하다. 나처음 : 추석 연휴 때 언해랑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일요일에 언해가 성당에 가서 미사를 해야 한다고 해서 낯선 여행지에서 성당을 찾는다고 고생했습니다. 미사 때문에 둘 만의 시간을 빼앗긴 듯해 기분도 상했어요. 가톨릭은 왜 일요일에 신자들을 성당에 꼭 나오게 하나요.조언해 : 글쎄, 지금처럼 종일 여행 와서 성당 미사에 참여한다고 투덜거리는 거 있죠. 까닥하면 싸울뻔했어요. 라파엘 신부 : 모처럼 떠난 여행인데 종교적 문제로 자칫 다툼이 있었을 뻔했구나. 그래서 처음이가 아직도 삐쳐 있구나. 오늘은 가톨릭 신자는 왜 주일에 미사 참여를 해야 하는지 설명할게. 먼저, 주일이 어떤 날인지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겠지. 가톨릭 신자는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해요. 말 그대로 ‘주님의 날’이지. 라틴말로는 ‘디에스 도미니쿠스’(dies Dominicus)라고 해. 주일은 교회가 아무렇게나 택한 날이 아니란다. 또 구약성경에 나오는 유다인의 안식일을 교회가 가져와 단순히 다음날로 이동시킨 것은 더욱더 아니란다. 주일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이야. 하느님께서 6일간의 창조 사업을 마무리하시고 7일째 되는 날 쉬신 ‘안식일’이 아니고 주님께서 부활하신 ‘주간 첫날’(마르 16,2)이 바로 주일이야. 가톨릭교회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이날을 모든 날 중의 첫째 날로 기념한단다. 또 이날을 예수님께서 부활을 통해 새로운 창조를 이루신 ‘첫날’, 부활을 통해 세상의 빛이요 인류의 빛이 되신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빛의 날’, 정의의 태양이 되신 ‘태양의 날’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그래서 주일에는 모든 가톨릭 신자가 의무적으로 성당에서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미사를 봉헌해야 해. 주일에 왜 미사를 봉헌해야 하고 신자들은 참여해야 하는지 그 이유도 궁금하겠구나. 한마디로 정리하면 교회 탄생이 주님의 부활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생일이나 기일을 기념하는 것처럼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을 기념해 그 날을 거룩하게 지내며 미사를 봉헌하는 게 당연하겠지. 그래서 교회는 “주일은 신자들의 신심을 일깨워 주는 최초의 근원적인 축일”(「전례헌장」 106항)이라고 한단다.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에 함께 모여 미사를 봉헌한 것은 교회가 시작한 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중단없이 지속되고 있단다. 교회는 주일 미사를 거행하기 위해 한데 모이기를 결코 게을리한 적이 없어요. 신약성경은 초대 교회 때부터 주일에 신자들이 모여 ‘성경 전체에서 그분에 관한 기록을’(루카 24,27) 읽고, ‘그분 죽음의 승리와 개선을 재현하는’ 성찬례를 거행하고, 동시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말로 다할 수 없는 선물을 주시는 하느님께’(2코린 9,15) 감사를 드리고, 성령의 힘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있다’(에페 1,12)고 증언하고 있지. 또 바오로 사도와 트로아스의 신자들이 주간 첫날에 빵을 떼어 나누려고 모였고(사도 20,7), 또 성도들을 위한 모금을 매주 첫날에 저마다 형편이 닿는 대로 얼마씩을 자기 집에 따로 모아 두었다(1코린 16,1-2)고 전하고 있단다. 주일 미사 참여 의무가 교회법적으로 처음 언급된 것은 300년부터 303년까지 열린 엘비라 교회회의에서야. 엘비라 교회회의에서는 주일에 농사일을 제외하고 모든 일을 금하고 미사에 참여하도록 규정했지. 이를 ‘파공법’(罷工法)이라고 해. 6세기부터 13세기까지 교회는 더욱 엄격하게 파공법을 규정해 주일 미사에 신자들이 참여할 것을 명하고, 파공법을 어길 경우 중죄로 규정하기까지 했단다. 오늘날 교회법은 주일 미사에 참여할 것과 주일에 육체노동을 하지 말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부득이한 경우 이 의무에서 면제해 주고 있단다. 가톨릭 신자는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인 주일을 거룩히 지내며 미사 안에서 모든 이와 함께 자비와 사랑을 나누는 연대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바람직하단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cpbc2019.09.17

그리스도인의 삶 보여주는 거룩한 표징 ‘미사’[미사의 모든 것] (9)미사는 성사이다 미사가 처음 재개됐던 4월 23일, 마스크를 쓴 신자들이 1~2m 간격을 두고 명동대성당 회중석에 자리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조언해: 요즘 가까운 사람들을 만날 수 없어 너무 불행해요. 친구는 물론, 주일학교 교사인데도 올해 아이들을 한 번도 만날 수가 없었어요. 전염병 예방도 중요하지만 만남과 소통이 있어야 사람 사는 사회가 될 것 같아요. 나처음: 코로나 방역이 이젠 일상이 되었어요. 마스크를 하지 않은 사람을 보면 눈살을 찌푸리게 되고, 사람 많은 곳은 아예 가려 하지 않으려 하니까요.라파엘 신부: 20세기 저명한 신학자인 예수회 칼 라너 신부님은 “일상을 일상으로 두라”고 말씀하셨지. 가장 사소한 일에도 하느님의 숨은 은혜와 인간다운 삶의 참다운 본질이 내포돼 있다는 말씀이지. 참으로 인간다운 삶이란 더없이 진지한 자유 안에서 하느님을 향한 믿음과 희망, 사랑으로 드러나는 영원한 하느님의 무게를 지닌 삶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게 중요해. 조언해: 주일 미사 참여가 예전처럼 일상이 되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어요.라파엘 신부: 나도 그러길 바란단다. 일상사가 짜증을 내게 하는 것은 우리가 짜증스럽게 받아들이기 때문이야. 일상이 우리를 무디게 만드는 것 또한 단지 우리가 일상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야. 우리가 주일 미사에 참여하는 것도 우리 힘이 아닌 하느님의 은혜로 우리를 준비시켜 준 것임을 깨달을 때 우리의 일상이 훨씬 소중해지는 것이지. 나처음: 결국, 항상 하느님을 인지하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라파엘 신부: 우리가 주님의 가르침대로 살지 못하고, 현실이 그러하지 못하더라도 하느님의 은총으로 우리의 일상이 거룩해질 수 있다는 것이지. 그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일상적 형태인 인내의 태도, 성실과 공평, 책임감의 태도, 사랑이 깃드는 몰아의 태도야.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전염병이 창궐할 때 사회의 방역 지침을 철저히 지킬 뿐 아니라 근원적으로 하느님이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깊이 고민하고, 교회 안에서 교회를 통해 시대의 징표를 읽고 공동선을 위한 삶을 살아가야 해요. 미사가 바로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삶과 일상을 보여주는 가장 ‘거룩한 표징’이지.나처음: 미사가 그리스도인 일상의 표징이라는 건 억지 아닌가요?라파엘 신부: 사람은 몸을 보고 영혼을 알고, 지상에서 행해지는 것을 보고 영적이고 숨겨진 것을 깨닫지. 하느님을 믿고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안 보이는 것을 은혜로 보고’, ‘거룩한 표징’을 깨치고 받아들여 체현하는 생활을 우선으로 익혀야 해. 이를 교회는 ‘성사’라고 표현한단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사와 같다. 교회는 곧 하느님과 이루는 깊은 결합과 온 인류가 이루는 일치의 표징이며 도구이다. 인간과 하느님의 깊은 일치를 이루는 성사가 되는 것, 이것이 교회의 첫 번째 목적”(775항)이라고 설명하고 있지.조언해: 교회 안에선 ‘신비’라는 말도 쓰는데 성사와 신비는 다른 뜻인가요.라파엘 신부: 초기 교회 신학자들이 사용했던 헬라어 ‘μυστηριον’(미스테리온)은 ‘신비’(mysterium)와 ‘성사’(sacramentum)라는 두 가지 말로 번역된단다. 신학자들은 ‘성사’는 ‘신비’가 가리키는 구원의 감추어진 실재에 대한 표징을 더 눈에 보이도록 표현한다고 설명하지.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신비’를 눈으로 볼 수 있는 표징으로 드러내는 것이 바로 ‘성사’라고 할 수 있지. 그래서 성체, 세례, 견진, 고해, 성품, 혼인, 병자 등 교회의 일곱 가지 성사는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 그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은총을 펼치시는 표지이며 도구라고 교회는 고백하고 있단다. 나처음: 어머니가 자녀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세세히 가르쳐주는 것처럼 교회도 성사를 통해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 그 신비를 가르쳐 준다는 것이군요.라파엘 신부: 바로 그거야. 우리의 인생에는 위대한 신비가 담겨 있단다. 그것이 가장 평범하고 가장 일상적인 행위라 해도 깊은 뜻을 품고 있다고 했지. 우리가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셨다는 현실을 더는 파악할 줄 모르면 어떻게 될까? 아무런 뜻도 없는 말을 하고, 그 뜻을 깨치지 못하는 몸짓만 하게 된다면 우리 인생은 어떻게 될까? 하느님, 은총, 그리스도, 교회, 신앙 이런 말을 하면서 우리가 그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니. 그래서 어머니가 자녀에게 삶의 지혜를 일깨워 주듯이, 거룩한 표징인 성사를 통해서 하느님과 일치하는 길을 제시해 주는 거란다. 나처음: 그러면 미사는 하느님의 어떤 거룩한 표징을 드러내는 성사인가요?라파엘 신부: 주님의 수난과 부활을 기념하는 ‘성체성사’이지. 주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수난 전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하신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성체성사를 세우셨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이 성체성사를 거행할 것을 사도들에게 명하셨지.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세우실 때 하신 말씀은 성경에 잘 기록돼 있단다. 마태오ㆍ마르코ㆍ루카 세 권의 공관 복음서와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에서 우리에게 성체성사의 제정에 관한 주님의 말씀을 전해주고 있지. 그중 루카 복음의 내용을 들려주마. “예수님께서는 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사도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루카 22,19-20) 주님께서 행하신 이 예식은 오늘도 우리가 미사를 거행할 때 이루어지고 있단다.조언해: 신부님, 좀 전에 미사에 참여하는 것도 우리 힘이 아닌 하느님의 은혜로 우리를 준비시켜 준 것이라고 하신 것처럼 성사에 참여하려면 우리 스스로도 그에 합당한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요.라파엘 신부: 아주 중요한 말을 해 주었구나. 성사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려면 몸과 마음의 준비를 잘 갖추어야 한단다. 너희도 입학, 졸업식 때나 데이트를 할 때 가장 예쁘게 꾸미지 않니! 그런데 하느님을 만나러 주님의 집에 가는데 아무렇게나 하고 가면 예의가 아니겠지. 또 우리가 공연이나 전시장을 갈 때도 프로그램을 꼼꼼히 살피는 것처럼, 미사도 마찬가지야. 그 날의 독서와 복음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어떤 지향으로 미사에 참여할 것인지 미리 준비해 가는 것이 중요하단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사에 참여하기 전에 우리 각자의 허물을 살펴 뉘우치고 하느님께 고백하고 이웃과 화해하는 회심의 마음을 갖추어야 한단다. 우리의 마음을 하느님과 이웃을 향해 활짝 여는 겸손의 자세를 갖추어야 해. 우리 몸은 그 전체가 영혼의 도구이며 표현이야. 영혼은 제집에 들어앉아 있는 사람처럼 그저 몸 안에 머물고만 있는 게 아니라 지체 하나하나에서 속속들이 작용해. 영혼은 몸의 모든 선과 자태와 움직임에서 드러나. 그러므로 우리가, 즉 우리의 몸과 영혼이 하느님 앞에서 환희와 감사로 기뻐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선 우리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이 중요해요.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0.09.09
![[사도직현장에서] 주님 사랑,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시기에](//cpbc.co.kr/CMS/newspaper/2020/01/rc/771052_1.1_titleImage_1.jpg)
[사도직현장에서] 주님 사랑,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시기에정월기 신부(서울대교구 광장동본당 주임) 정월기 신부 신자들이 성경을 묵상하고 나누는 것을 볼 때에 발견한 것이다. 말씀으로 오신 주님은 하늘나라의 잔치를 베풀고 초대하지만, 어떤 신자들은 문밖에서 그 잔치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고 들어가지 않는다. 주님은 착한 목자로서 잃어버린 양을 찾아 헤매시고,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과 나병 환자들에게까지도 다가가셔서 하느님 나라의 풍요로움에로 초대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 앞에만 서면 주님의 풍요로운 은총으로 충만해지려는 생각보다는 내가 잘살았는지를 따지고, 죄가 있는지 없는지에 초점을 맞추며, 자신들의 약점과 죄를 살피다가 정작 하느님 사랑에 머물지 못하고 하느님의 풍요로운 사랑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다.명절이 되어 자녀들이 부모님을 방문했다. 한 집은 부모님이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은혜를 뒤돌아 보며 아름다운 이야기꽃을 피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나, 다른 한 집은 자신들이 부모님께 드린 선물이 사랑의 전부인 양 자랑하였고, 반면에 가난한 형제는 내세울 것이 없어 기가 죽어 있었다.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드리는 것은 무엇인가? 부모님께 물적인 선물을 드리는 것보다 부모를 더 기쁘게 하는 것은 부모님의 은혜를 헤아리는 마음이다.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에게 무언가를 해드리는 것보다는 당신이 우리에게 한없이 베푸신 사랑에 머물기를 바라신다.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호세 6,6)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1요한 4,10)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때 비로소 사랑을 알게 된다.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1요한 4,12) 재산을 탕진한 아들이 돌아왔다고 잔치를 베푸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큰아들이 되지 말아야 한다.(루카15,11-32)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양 백마리 중에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게 되면 기뻐하시는 주님의 기쁨에 참여하도록 하자.(루카 15,4-6 참조)정월기 신부(서울대교구 광장동본당 주임) 평화신문2020.01.15

구마 사제가 명쾌하게 알려주는 ‘악마와의 싸움’구마 사제 / 체사레 트루퀴·키아라 산토미에로 지음 / 가톨릭출판사 / 1만 3000원 가톨릭교회는 악마가 존재한다고 단언한다. “우리의 첫 조상들이 불순명을 선택하게 된 배후에는, 하느님을 거스르는 유혹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 목소리는 질투심 때문에 그들을 죽음에 빠지게 하였다.”(창세 3,1-5 참조) 성경과 교회의 성전은 그 목소리에서 사탄 또는 악마라 불리는 타락한 천사를 본다. 교회는 그가 본래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선한 천사였다고 가르친다. “악마와 모든 마귀는 하느님께서 본래 선하게 창조하셨지만, 그들 스스로 악하게 되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391항)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에 “악마의 존재는 성경의 맨 첫 페이지에 나와 있고, 성경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하느님이 악마에게 승리하셨음을 선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악마는 존재하고 우리는 악마와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마 의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악마를 내쫓는 의식이다. 이 예식을 담당하는 구마 사제는 주교가 특별히 임명한다. 교황청에서는 2014년 국제구마사제협회를 공식 기구로 인정했고, 현재 30개국 250명의 사제가 이 단체에 소속돼 활동하고 있다.가톨릭출판사가 펴낸 「구마 사제-악령과 싸우는 자」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구마 사제인 체사레 트루퀴 신부의 구마 경험과 교황청 기관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키아라 산토미에로 기자의 취재 경험을 담은 책이다. 저자들은 책 머리에서 ‘악마는 허구가 아니다’라고 밝힌다. 그러면서 이 책을 쓴 이유는 아무리 악마의 힘이 강해도 하느님의 힘 앞에서는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라고 소개한다. 트루퀴 신부는 자기 이름을 “사탄”이라고 밝힌 악마와 또 ‘‘세상의 우두머리인 렉스”라고 한 마귀 등 다양한 악마에 빙의된 수많은 사람을 구한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사람들이 왜 악마에 사로잡히는지, 악마에 대항하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려준다. 아울러 구마 사제는 어떤 사람들인지, 구마 예식은 어떠한 것인지를 설명하면서 악마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 오해를 불식시켜 준다. 또 구마 효력과 본질은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르 9,23)는 주님의 말씀에 잘 녹아 있다고 알려주고 있다. 리길재 기자 cpbc2019.07.03
![[태아의 생명을 지켜주세요] 생명 지킴이 릴레이 인터뷰 (2)성경자 수녀 (서울시 꿈나무마을 연두꿈터 시설장)](//cpbc.co.kr/CMS/newspaper/2019/03/rc/748279_1.0_titleImage_1.jpg)
[태아의 생명을 지켜주세요] 생명 지킴이 릴레이 인터뷰 (2)성경자 수녀 (서울시 꿈나무마을 연두꿈터 시설장) 아이 미래를 섣불리 판단해 생명 해치는 것이 옳은가25년 동안 엄마로 살아왔다. 누구의 아내도, 누구의 진짜 엄마도 아니면서. 수도복을 입고 밤낮으로 아기들 기저귀를 갈아주고 씻기고 먹였다. 갓 탯줄을 끊고 세상에 나온 따뜻한 아이, 기어 다니는 아이, 걸음마를 하는 아이…. 누구 하나 빠질 것 없이 남녀의 사랑으로 세상의 빛을 본 생명이지만 사랑을 나눈 부모들은 일찌감치 떠났다. 이유는 이랬다. 키울 용기가 없어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학교에 다녀야 해서, 남의 시선이 두려워서…. 그 부모가 떠난 뒤안길에서 성경자(데레사, 마리아수녀회) 수녀는 아기들을 들꽃처럼 정성껏 키워냈다. 아기들의 옹알이를 받아주고, 엉덩이를 토닥이며 수도복으로 파고드는 아이들을 안아줬다. 엄마 수녀, 아이들 크는 모습 보며 생명의 고귀함 느껴 성 수녀는 1983년 입회해 마리아수녀회가 운영해온 부산 마리아영아원에서 영유아를 돌보다가 2014년 서울에 왔다. 서울 관악구에 있는 베이비박스에 한 해 200명이 넘는 아기들이 들어오자, 서울시는 마리아수녀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마리아수녀회는 2014년 12월, 베이비박스로 들어오는 아기들을 돌보기 위해 영유아전담보호생활관을 개원했다. 2016년 1월 연두꿈터로 간판을 바꿔 달았고, 현재 7세 미만의 미취학 아동 48명이 생활하고 있다. 이들은 연두꿈터를 시작으로, 초록꿈터ㆍ파란꿈터로 옮겨 생활하다 만 18세가 되면 자립한다. “아이들은 구김살 없이 잘 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장하면서 부모에게 버려졌다는 사실로 아이들은 심리적 고통을 겪습니다. 하지만 심리적 고통을 피하자고, 태어날 기회를 앗아가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성 수녀는 논란이 되고 있는 낙태죄를 언급하며,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제가 엄마 수녀로 아이들을 많이 키워봐서 엄마 마음을 압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보람과 기쁨은 희생과 극기에서 오는 어려움을 뛰어넘습니다. 누워 있던 아이가 몇 달 사이에 기어 다니고, 또 일어나 걷는 모습을 보면 생명에 대한 고귀함을 느낍니다.” 부산 마리아영아원에서 소임을 맡던 시절 IMF 사태가 터지면서 아이들이 물밀듯 들어왔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아이를 양육할 수 없어 부모들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이었다. 성 수녀는 “직원들을 모두 퇴근시키고 나면 잠들기 전까지 아이들이 내 치맛자락에 다 붙어 있었다”면서 “저녁기도도 못하고 녹초가 돼서 아이들이 잠든 후에야 숨을 돌린 적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성 수녀는 부모에게 버림받고도 꿈나무마을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행복하게 사는 졸업생이 많다고 했다. 여행사를 차린 한 졸업생은 자신을 키워준 엄마 수녀들에게 해외 성지순례를 보내주며 ‘효도’하고 있다. 김병지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도 마리아수녀회 수녀들이 키웠다. 성 수녀는 “임신이 된 상황이 행복하지 않다고 해서 태어날 아이의 행복까지 보장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며 “가끔 온전히 사랑받기 어려운 가정으로 귀가하는 아이들을 보면 이곳에서 키우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고 털어놨다. “여기 오는 애들은 복 받았다고 해요. 불행한 가정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사는 것보다 나으니까요.” 생명존중 의식 약화는 교육 문제와 연결돼 있어 성 수녀를 비롯한 마리아수녀회 수녀들은 수녀회 설립자인 소 알로이시오 몬시뇰(Aloysius Schwartz, 1930~1992)의 육성 강론을 테이프로 듣고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특별했던 몬시뇰의 마음을 수혈한다. 몬시뇰은 수녀들에게 “특별한 사랑은 제일 부족한 아이에게 주라”는 당부를 많이 했다. 사랑이 제일 부족한 아이가 ‘1등 예수님’이라고 강조했다. 성 수녀는 “요즘 세대, 요즘 사람들 마음에 생명 존중 의식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면서 “이건 교육의 문제와 연결된다”고 지적했다. “1960년대 정부가 산아제한정책을 주도한 것도 사실 생명의식을 약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지요.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식의 구호를 써가면서 국민들을 세뇌했지요. 그 여파가 아직도 있다고 봅니다.” 성 수녀는 “돌아보니 힘들어도 내 손으로 아이를 키운 시간이 행복했다”며 “많은 젊은이가 출산과 양육에 대해 부정적인 뉴스를 접하고, 미리 겁먹고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미혼모 요한이 엄마의 편지제가 아이를 살린게 아니라, 아이가 저를 살게 해요처음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제일 먼저 신비로움과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사귀었던 연인과 이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임신은 기쁨의 신비에서 ‘현실의 논쟁’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임신한 지 10주차에 산부인과에 가서 아이의 심장박동 소리를 처음 들은 순간 알 수 없는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너무 벅차고 사랑스러운 그 박동 소리를 들으며 내 배 속에 또 다른 한 생명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저와 하나인 듯하지만, 완전히 다른 신비로운 한 존재였습니다. 처음부터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암암리에 낙태에 대해 허용적이었으며, 그것이 오히려 그 아이를 위하여 더욱 좋은 길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제가 마음만 먹는다면 나를 버린 남자에게 시련 당한 시간도 잊게 될 테고, 더 멋진 인연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속삭였습니다. 그래서 유명 산부인과에 전화해서 예약을 잡았다 취소했던 날들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열 달 동안 아이를 품으면서 많은 갈등과 위험한 생각 속에서 헤매면서 제가 하느님께 드렸던 간절한 기도는 ‘이 아이를 사랑하게만 해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아이를 키우기에 앞서 사랑할 자신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던 출산의 불안함, 출산 이후의 벌어질 일들에 대한 두려움은 아이를 낳고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깨끗이 사라졌습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저는 자연분만을 하게 되었고, 7시간 동안의 진통 끝에 출산해 아기를 가슴 안에 받아 안았습니다. 그 순간 제 아들 요한이는 제 삶 깊은 곳,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와 선물이 되어주었습니다. 의사가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 한마디 하라고 하더군요. 저는 “미안해”라는 말이 가장 먼저 나왔습니다. 엄마 배 속에서 마음 편치 않게 고생시켜서 미안한 마음, 잠깐 고민해서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엄마의 부족함을 보속하는 마음으로 아이의 한평생을 지지해주고 사랑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태어나자마자 계획에도 없던 모유 수유를 했습니다. 출산 후 자연스럽게 젖이 나와 모유 수유를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젖을 물리는 방법도 서툴고, 어색해서 거부감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그 반짝이는 눈을 저와 맞추며, 한입이라도 먹으려고 얼굴과 온몸의 작은 근육들을 사용하여 젖을 먹는 모습을 보며 저는 모유 수유를 지속하게 되었습니다. 모유 수유를 하면서 ‘모유’는 하느님께서 엄마와 아이를 끈끈하게 해주는 사랑의 선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지금 아이를 양육하며 느끼는 바는 제가 아이를 살린 것이 아니라, 아이가 저를 살게 한다는 것입니다. 삶이 때론 고단하지만, 의미 있는 것은 진실한 사랑을 나눌 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갑니다. 단독 양육모라는 가정의 형태도 생명을 돌보는 보금자리입니다. 오히려 주변에서 지나치게 염려하며 바라보는 시선들이 단독 양육모들의 삶을 지치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편안하게 받아들여져야 하기까지는 우리의 시간과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귀한 ‘모성’이라는 아름다운 선물을 삶으로 받아들이고 산다면, 하느님께서는 그 진실에 보답해주심을 믿습니다. 아멘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문채현2019.03.13
![[교부들의 사회교리] (44)배부른 교회에게](//cpbc.co.kr/CMS/newspaper/2019/11/rc/766088_1.0_titleImage_1.jpg)
[교부들의 사회교리] (44)배부른 교회에게양적 성장에 매달리지 말고 쇄신하라 최원오 교수 신앙인이 늘어날수록 신앙은 줄어듭니다. 자식이 커갈수록 그 어머니는 약해집니다. 교회여, 그대는 번식력이 커질수록 허약해졌습니다. 그대는 나아가면서 뒷걸음질칩니다. 그대 교회는 힘 때문에 약해진다는 말입니다. 그대는 종교의 이름은 달고 있지만, 종교의 힘은 지니지 못한 구성원들을 온 세상에 퍼뜨렸습니다. 신자는 풍성해졌지만, 신앙으로는 가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신자 수가 많아질수록 신심은 더욱 빈곤해집니다. 몸집이 커질수록 영혼은 더 쪼그라듭니다. 더 커졌으나 실상 더 작아졌다는 말입니다. 금시초문의 발전과 퇴보를 거듭하며 그대 교회는 증가하는 동시에 감소합니다. 그대의 훌륭한 모습과 온몸의 아름다움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사도 4,32)는, 그대의 살아 있는 덕행에 관한 가장 거룩한 그 증언은 어디 있습니까? 아, 괴롭고도 안타까워라, 지금 그대 교회는 누구의 것인지! 그대는 성경을 읽기만 할 뿐 덕행은 간직하지 않습니다. 그대는 성경 지식에만 관심이 있을 뿐 양심은 없습니다. 실제로, 지금 그대의 자녀 가운데 많은 이는 죽음을 부르는 일의 장사치들입니다. 장사꾼과 여관 주인처럼 지옥의 것이라 할 세속 일에 매달리고, 허망하고 파멸적인 것에 열을 올립니다. 그들은 번 돈으로 인생의 손실을 구매합니다.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얻기 위해 자기 것은 탕진합니다. 상속자들에게는 잠깐의 기쁨을 줄 뿐 재산을 모은 이에게는 오랜 슬픔을 줄 불행한 보화를 땅에 맡깁니다. 자신은 물론 다른 이들도 현세 재화를 이용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지옥의 부를 지하창고에 몰래 숨기면서, 자기 돈과 함께 자신의 희망도 묻어버립니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 6,21)고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신 대로입니다.(마르세유의 살비아누스, 「 교회에게」 1,4-5)복음화에 관한 비판적 성찰수사 신부였던 마르세유의 살비아누스 교부(400~480년경)가 쓴 「교회에게」의 한 대목이다. 사회적 불의와 온갖 착취에 시달리던 가난한 민중의 삶을 외면한 채 양적 성장에만 매달리던 배부른 교회를 향해 던진 충심의 ‘돌직구’다. 교회의 외적 성장과 통계 수치를 복음화로 착각하지 말라는 교부 시대의 소중한 증언이다. 살비아누스는 복음적 열망에 사로잡힌 나머지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준 다음 한평생 수도승 생활에 투신했다. 이론을 중시하던 신학 풍토에서 오랜 세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그의 사회적 가르침이 지난 50여 년 동안 새롭게 조명되면서 살비아누스는 카파도키아 삼총사(대 바실리우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암브로시우스와 더불어 사회정의를 위한 교회의 책무를 일깨워준 대표적 교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가난한 교회를 향한 꿈가진 것을 가난한 이들과 함께 나누고 공유하는 연대와 환대의 공동체에 관한 사도행전 4장의 증언은 살비아누스의 교회적 이상이었다. 당시 민족대이동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워지고 양극화되자 살비아누스는 부자들의 탐욕을 모질게 꾸짖으며 교회 쇄신을 외쳤다. 성직자·수도자는 물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고자 하는 모든 부자는 재산을 기꺼이 포기하라고 권고했다. 가진 것을 자발적으로 나누는 가난한 교회를 향한 오랜 꿈이 생생하게 보존된 교부 문헌이다.최원오(빈첸시오, 대구가톨릭대 유스티노자유대학원장) 평화신문2019.11.06

봄, 명동서 ‘지식의 향연’ 펼쳐진다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 4월 2일 문화학교 개강 올해 봄,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일대에서 인문학과 영성, 미술사, 신학, 예술 등을 품은 ‘지식의 향연’이 펼쳐진다.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국장 유환민 신부)은 4월 2일 저녁 7시 30분 명동대성당 문화관 꼬스트홀에서 ‘현대 미술의 풍경’을 주제로 한 김찬용(비오) 도슨트의 개강 특강을 시작으로, 서울대교구 문화학교를 연다. 김찬용 전시 해설가는 1세대 전업 도슨트로, 풍부한 미술 지식과 전달력으로 미술계에서 아이돌급 인기몰이 중이다. ▨ 신앙, 인문학을 만나다 ‘다신교와 일신교의 차이’, ‘죽은 뒤의 삶’이 궁금하다면 4월 2일~6월 18일까지 저녁 7시 30분 서울대교구청 501호를 두드리자. 송혜경(비아) 고대 근동학 박사와 전호엽(서울대교구 사제평생교육원 부원장) 신부에게 신앙과 인문학에 관한 다양한 강의를 들을 수 있다. 한국가톨릭철학회장 박승찬(엘리야) 교수는 아우구스티누스 주제로 강의한다. ▨ 영적 성숙을 꿈꾼다면 다양한 주제로 기도하고, 삶의 여정에서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발견하는 시간이다. 매월 첫째 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 명동대성당 문화관 소성당에서 다양한 주제로 기도하면서 기도를 배우는 월피정(‘청년 Hello 기도’)을 경험할 수 있다. 청년을 대상으로 ‘성경 통독(역사서, 신약)’과 ‘삶의 역사 쓰기 강좌’가 마련돼 있으며, 영화를 통해 자아 성장과 신앙 성숙을 꿈꾸는 ‘행복한 영화 읽기’ 강좌도 개최한다. ▨ 가톨릭 미술 이야기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장 장긍선 신부와 ‘한국 건축학의 대부’ 김광현(안드레아) 교수, 인천가톨릭대 스테인드글라스연구소장 정수경(가타리나) 교수 등 가톨릭 미술계에서 내로라하는 명사 10명의 미술사 강의다. 4월 6일~6월 8일 매주 월요일 저녁 7시부터 교구청 501호에서 열린다. 미술사를 움직인 예술가들의 이야기 강좌도 개최한다. ▨ 예술가는 되고 싶은데 몸이 뻐근하다면…먼저, 4월 22일부터 6월 17일까지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12시 10분~12시 40분)에 열리는 ‘오피스 요가’를 해보자. 수강료 3만 원에 총 8회에 걸쳐 몸을 풀 수 있는 시간이 제공된다. 문화학교 308호. 스테인드글라스의 유리모자이크(4월반ㆍ5월반 매주 화)와 동테이프기법(5월 26일~6월 16일 매주 화)을 배울 수 있는 강의는 어떨까. 도자기로 성물을 만드는 반도 개설했다. 캘리그리피와 공필화를 비롯해 아이패드 소지자라면 가톨릭 일러스트도 도전해볼 수 있다. 수강료는 5~6만 원이다. 이밖에 가톨릭출판사가 마련한 신학강좌(4월 8일~6월 17일, 매주 수)를 비롯해 손희송(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의 독서힐링 콘서트(5월 30일 오후 2시, 명동대성당 문화관 꼬스트홀)도 열린다. 정호승(프란치스코) 시인의 ‘시인 예수를 찾아서’ 무료 특강(4월 4일, 오후 2시)도 마련돼 있다. 모든 강좌 신청은 24일부터 문화학교 홈페이지(culture.catholic.or.kr)에서 하면 된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평화신문2020.02.19
[사설] 복음의 기쁨 선포하는 2020년 새해 교회 전례력으로 2020년 새해를 맞았다. 예수 성탄 대축일 전 네 번째 주일에 시작되는 대림 시기는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때다. 그리스도인들은 대림 시기를 통해 참회와 회개의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탄생을 기다린다.한국 교회 각 교구장 주교들이 대림 제1주일을 맞아 발표한 2020년 사목교서를 관통하는 주제는 ‘선교와 복음화’다. 성경 읽기와 기도의 생활화, 교리교육, 사회 약자 돌봄, 생태영성 실천 등 한국 교회가 지속해서 다뤄온 사목 이슈를 포함해 특별히 본당 공동체성을 강조했다. 친교와 소통을 바탕으로 복음의 기쁨을 선포하며 사회를 복음화하자고 호소했다. 본당의 공동체성은 복음 선포와 전례, 친교, 봉사를 통해 실현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을 통해 “본당은 공동체들의 공동체이고, 길을 가다가 목마른 이들이 물을 마시러 오는 지성소이며, 지속적인 선교 활동의 중심지”라고 강조했다. 본당은 지역 사회에 살아있는 교회의 현존이며, 하느님 말씀을 듣고 생활하는 그리스도인이 성장하는 장소인 셈이다.새로운 복음화는 교회 자신의 복음화를 전제로 하고(「현대의 복음선교」 15항), 교회의 복음화는 결국 신자 개개인의 복음화에 달렸다. 신자 개개인의 복음화를 위해서는 신앙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 복음 선포, 즉 선교가 그리스도인의 삶과 멀어지지 않으려면 신앙은 기쁨이 되어야 한다. 현대 사회의 무관심한 개인주의적 성향이 본당 공동체에 침투하지 않도록 그리스도인들은 더 깨어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며 복음의 기쁨을 내면화하고, 인내와 온유, 환대를 통해 사랑을 실천하는 대림 시기를 보내자. 평화신문2019.11.27
성경과 함께 익히는 가톨릭교회 교리 교리 전문가 정승현 신부 해설, 자세한 설명에 성경 구절 덧붙여 말씀으로 익히는 가톨릭 교회 교리 문답 말씀으로 익히는 가톨릭 교회 교리 문답 정승현 신부 해설 / 한님성서연구소 / 2만 원“교회는 신앙의 전체성과 온전성을 선포하고, 구원의 충만한 방법들을 받아 관리하며, 그리스도에 의해 전 인류에게 파견되었다.” 가톨릭교회가 ‘보편되다’고 하는 교회 교리다.교회 보편성의 근거는 성경에도 있다. 이사야서는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리라”(이사 2,2)고 밝히고, 에페소서는 “만물 위에 계신 그분을 교회에 머리로 주셨다”(에페 1,22)고 선포한다.그렇다면 개별 교회는 보편적인가? 민수기 11장에는 주님께서 구름 속에서 내려오시어 당신 영을 일흔 명의 원로들에게 내려주신 사건을 통해 교회 안에 사도적 계승이 개별 교회에도 전승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가톨릭교회 교리를 성경과 함께 익힐 수 있는 교리서가 나왔다. 저자는 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 총무와 광주가톨릭대 총장 등 다양한 사목을 두루 거친 ‘교회 교리 전문가’ 정승현(전주교구 원로사목자) 신부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라틴어 최종판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이어 「간추린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집필하기도 했던 정 신부가 이번엔 해설, 용어 설명과 함께 성경 구절까지 덧붙여 짜임새 있는 교리서를 완성했다.△하느님 계시 △성령 △부활 △일곱 성사 △십계명 △기도 △그리스도인의 삶 등 ‘가톨릭교회의 모든 것’이 일목요연하게 담겼다. 6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에 압도될 수 있지만, 평소 궁금했던 교리 지식을 색인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요약된 설명과 관련 성경 말씀을 함께 볼 수 있어 강론을 준비하는 사제는 물론, 교리교육을 하는 신자들에게도 더 없이 유용하다.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백영민2018.06.12

본당 중심 신앙생활 넘어 ‘삶의 미사화’ 위한 상상력 발휘하자코로나 사태에 대한 진단과 이후의 사목 방향 모색 심포지엄 (중)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cpbc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가톨릭신문사 공동 주최 코로나19 확산으로 공동체 미사가 중단됐던 시기에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을 찾은 몇몇 신자들이 드문드문 앉아 기도를 바치고 있다. 텅 빈 성당은 이제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교회가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할지, 변화를 받아들여 새롭게 시작할지는 구성원들에게 달렸다. 가톨릭평화신문 DB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원장 김동원 신부)은 5일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연구원에서 ‘코로나 사태에 대한 진단과 이후의 사목 방향 모색’을 주제로 제11회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 가톨릭신문사와 공동 주최한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개인 영성생활 △신앙공동체 △가정과 청소년 △교회와 사회 △국제 관계 △우주적 생태 관점의 맥락과 흐름 등 6개 분야를 선정, 각 분야 전문가에게 현실 진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살펴봤다. 세 차례에 걸쳐 발표 내용을 요약 정리한다. 제3발표-코로나 사태와 교회 : 인간 구원의 성사인 공동체김정용 신부(광주대교구 사목국장)김정용 신부는 “코로나19가 미치는 영향을 종교 집회와 활동을 위축시키는 차원에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다”면서 “종교 존재의 이유, 종교적 실천 전반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촉구하는 메시지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종교가 코로나19 사태를 스스로 새롭게 성찰하고 새로운 변화를 추구할 기회로 여겨야 한다고 본 것이다.김 신부는 초기 그리스도교가 질병 시대에 직면했던 시절을 상기했다. “그 시대에 그리스도교가 신뢰할만한 종교로 육화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인이 복음 정신을 그 시대 상황 속에서 구체적으로 살고, 당대의 사람들이 겪는 고통과 함께함으로써 가능했다는 관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코로나19 상황에서 교회가 직면한 공동체성에 초점을 둔 김 신부는 “코로나 사태 앞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 신앙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리가 선포하는 희망의 메시지는 과연 무엇인가”를 되물으며 “이런 물음 앞에서 우리가 모든 해법을 명쾌하게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말했다. 그러면서 “희망의 탐색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단언했다. 그는 또 미사 중심, 전례 중심, 성직자 중심, 성당 중심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며 “본당이 세상 사람을 위한 구원의 성사, 구원의 공동체로서 현존하기를 지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는 성직자 중심에서 하느님 백성 중심으로, 성당 중심에서 일상(세상) 중심으로, 교회 중심에서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중심이 이동돼야 한다고 했다. 김 신부는 “신자들과 함께하지 않는 미사의 경험은 사제들에게 많은 생각 거리를 남겼으리라 본다”며 비대면 시대에는 성직자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설명했다. 비대면 시대에 사제의 영적 권위는 직무적 권위 자체가 아니라 신뢰와 소통, 인격성과 봉사에 의해서만 비로소 존중받을 수 있다. 더불어 본당이 성직자 중심주의에 좌우되지 않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소통 구조의 확립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신자 중심이 될 수 있도록 본당을 체계화하고 구조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미사 전례의 의미를 본당 영역에만 한정시키는 사고를 경계했다. 그는 “본당은 신앙생활의 시작점이고 신앙은 세상 속에서 완수된다”며 “성체성사는 타인과 이웃을 위한 헌신으로 완성된다”고 했다. 미사에 참여하고 성체를 모시는 것에 그치지 말고, 그리스도의 희생을 이웃과 나눌 때 미사 참여의 의미는 비로소 완전해진다.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 시선, 삶의 방식, 성령의 이끄심을 더욱 체질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김 신부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속해 있는 가정과 직장, 지역과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다움을 삶으로 증언함으로써 하느님 나라와 그 가치를 추구하는 새로운 공동체를 확산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김 신부는 교회가 세상 속에서 타인을 위한 존재로 부름 받았음을 일깨우며 “교회는 세상 한가운데서 ‘나’와 ‘너’의 자유롭고 인격적 만남을 통해 이뤄지는 ‘우리’가 되도록 부르심을 받은 존재”라고 강조했다.제4발표-코로나 시대의 신앙 : 종교사회학적, 교회론적 전망에서정희완 신부(안동교구, 가톨릭문화와신학연구소장)정희완 신부는 일본에서 선교 사제로 사목하는 빌 그림(메리놀회) 신부의 인터뷰 기사를 언급하며 “메리놀 선교 신부의 지적처럼 교회가 다시 시작(restart)할 것인지, 새롭게 시작(renew)할 것인지는 우리 신앙인에게 달려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의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면서 예전 모습대로 교회가 ‘다시 시작’하기만을 기대하고 있는지, 아니면 코로나19의 경험에서 교회의 전반적 모습을 새롭게 성찰하고 ‘새롭게 시작’할 것인지를 말이다. 그는 전례와 성사에 대한 확장된 이해와 상상이 필요할 때임을 강조하며 온라인 미사를 둘러싼 신학적 논쟁을 소개했다. 정 신부는 공동체 미사가 중단된 뒤 대안으로 제시된 온라인 미사에 대해 “텔레비전 미사와 온라인 미사는 보는 것이지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성적 참여, 가상적 참여의 의미를 새롭게 고려해볼 수 있다”고 덧붙이며 “온라인 미사의 유효성과 정당성이 아직 인정되는 것 아니지만, 온라인 전례에서 기술의 사용에 대해 좀 더 열린 태도가 필요한 시대”라고 말했다. 그는 전례를 거행하는 일이 성직자만 가능한 점을 지적하며 “코로나19로 공동체 미사가 중단되면서 결국 전례와 성사에서 배제되는 경험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교회 생활의 핵심인 전례에 신자들이 참여할 수 없는 상황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 신부는 “과연 전례는 누구를 위한, 누가 거행하는 것인가에 대한 뼈아픈 질문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며 “전례는 복합적인 신학적 논의를 포함하고 있어 쉽지는 않겠지만, 코로나 시대에 교회는 이 문제를 전향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례 문제에서 명심해야 할 점은 전례 형식이 아니라 전례가 지향하는, 전례 안에 내포된 궁극적 의미임은 당연하다. 그러나 실제 전례 안에서 그 깊은 의미와 전례의 효과, 힘을 알고 느끼는 신자는 과연 얼마나 되는 것일까. 정 신부는 “코로나 사태가 전례에 던지는 도전은 기존의 전례가 신자들에게 과연 어떤 모습과 의미로 받아들여졌는지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요청한다”고 분석했다.정 신부는 신앙생활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상상을 제안하며 이동과 대규모 모임이 제한됐을 때 “가까운 이웃이 모여 함께 성경 말씀을 듣고 식사의 친교를 나누는 것이 넓은 의미에서 미사의 정신을 영성적으로 수행하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일상의 예식화와 삶의 미사화에 대한 폭넓은 상상이 필요한 때라며 “공소 예절과 말씀의 전례를 다시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는 본당이라는 공간과 장소를 중심으로 수행해 왔던 신앙생활의 한계를 분명히 보여줬다. 코로나19로 기존 본당 생활을 통해 신자들은 자율적이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신앙을 성숙시키고 영성을 성장시키는 교육과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현실이 드러났다. 정 신부는 “신앙생활의 무게가 전례와 성사 중심의 교회 생활에서 영성적 차원이 강조되는 방향으로 옮겨지고 있음을 발견한다”며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신앙 성숙과 영적 성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신자들이 깨달아 가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정리=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cpbc2020.09.16

“선교사는 교회의 새로운 역사 쓰는 주인공”제26차 해외 선교사 교육 파견 미사, 사제 3명·수도자 15명 수료 제26차 해외 선교사 교육 파견 미사 입당 예식에서 한 교육 수료자가 필리핀 교회 신앙의 상징이자 유산인 나자렛 성상을 봉헌하고 있다. 한국가톨릭해외선교사교육협의회(회장 남승원 신부)는 7일 서울 성 골롬반 선교센터에서 주교회의 해외선교ㆍ교포사목위원회 위원장 문희종 주교 주례로 제26차 해외 선교사 교육 파견 미사를 봉헌하고, 1월 13일부터 4주간에 걸쳐 해외 선교사 교육을 수료한 사제 3명과 수도자 15명 등 총 18명에게 수료증을 수여했다. 이로써 1999년에 시작해 해마다 진행된 해외 선교사 교육을 거쳐 파견된 선교 사제는 111명, 수도자는 565명, 평신도는 89명 등 모두 765명이 됐다. 올해 교육 수료자들은 아시아에 7명, 아프리카에 1명, 북미에 3명, 남미에 5명이 파견된다. 나머지 2명은 선교지가 확정되는 대로 떠날 예정이다. 해외 선교사 교육을 마친 선교 사제와 수도자 5명은 이날 미사에서 아프리카 전통악기 젬베와 중국어 성경, 일본 전통 인형과 기도서, 볼리비아 십자가, 필리핀 신앙의 상징인 나자렛 성상을 봉헌하고, 주님 말씀을 선포하겠다는 열망을 마음속 깊이 새겼다. 제주교구에서 처음으로 해외 선교사 교육을 받은 부재환 신부는 “교육을 받으며 강좌 하나하나가 어쩌면 이렇게 금싸라기 같은 내용을 모아 준비했을까, 또 주님께서 교육을 통해 이렇게 여장을 꾸려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며 “근심이나 걱정 같은 보이지 않는 짐을 다 내려놓고 준비해야 할 것들은 주님께서 교육을 통해 챙겨주신 만큼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교육 소감을 밝혔다. 볼리비아 선교지로 다시 돌아가게 된 정은희(호영 베드로, 성가소비녀회) 수녀는 “4년간 볼리비아에서 살다가 귀국했는데, 어떻게 다시 돌아가야 하나 하는 힘든 시점에 받게 된 교육을 통해 마음이 무척 편안해졌다”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이젠 잘할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바뀌었다”고 밝혔다. 교육은 해외 선교사로서 살아가기 위한 실질적 준비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해외 선교사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중점을 두고 선교 목적과 선교 이해 및 자세, 선교 실천, 선교 영성을 내용으로 분야별 전문가들의 강의와 나눔, 토론, 현장 방문으로 짜였다. 문희종 주교는 미사 강론을 통해 “선교지에서의 삶은 힘들겠지만,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은총의 기간이 될 것”이라며 “여러분들은 선교지에서 선교 역사를 쓰는 주인공이라는 것, 선배 선교사들이 오늘 교회의 모습을 만들었다는 것, 교회의 또 다른 미래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 한국 교회와 여러분이 소속된 공동체들이 여러분을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겸손한 자세로 멋진 선교사의 길을 걸어가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평화신문2020.02.12
![[아버지의 집, 아름다운 성당을 찾아서] 수원교구 하우현성당](//cpbc.co.kr/CMS/newspaper/2020/07/rc/783871_1.2_titleImage_1.jpg)
[아버지의 집, 아름다운 성당을 찾아서] 수원교구 하우현성당 바닥에 앉아 기도하는...자연 속 조용한 안식처 조선 교회 신자들은 거듭된 박해의 칼바람을 피해 깊은 산 속으로 숨어들었다. 경기도 의왕시 청계동에 자리한 하우현도 박해 시기 형성된 교우촌 중 하나다. 신자들은 화전을 일구고 옹기를 구우며 보리와 열매로 연명했다. 이후 신앙의 자유가 허락되자 신자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일부는 하우현에 정착했다. 서로에게 의지하며 신앙을 지켜가던 하우현 교우촌은 1900년 본당 설립의 기쁨을 누렸다. 수원교구 하우현본당을 소개한다. 박해를 피해 형성된 교우촌차들이 굉음을 내며 달리는 안양판교로 청계 지역을 지나다 보면 ‘하우현성당’ 안내판이 보인다. 안내판을 따라 좁은 길로 들어서면 성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성당 주변은 사방이 산이다. 청계산과 광교산 등 높은 산들과 계곡, 울창한 수목이 박해를 피해 살길을 찾던 천주교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피난처였으리라. 교우들이 박해를 피해 땅을 파 토굴에서 살기도 하여 하우현을 ‘토굴리’라고도 부른다. 성당 마당에 들어서자 본당 수호성인인 루도비코 볼리외 신부의 성상이 반겨준다. 볼리외 신부는 1840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사제품을 받은 후 1865년 5월 충남 내포에 도착해 약 3주에 걸친 여정 끝에 ‘묘루니’, 지금의 판교 운중동에 도착했다. 조정의 눈을 피해 묘루니 산골 교우 집에서 조선말을 익히며 교우들에게 성사를 주고 교리도 가르쳤다. 하지만 전교지 파견을 기다리던 중 1866년 병인박해가 터졌다. 행여 교우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걱정한 볼리외 신부는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며 인근의 자연 굴에서 홀로 생활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한 교우의 밀고로 체포돼 그해 3월에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로서 조선에 들어온 지 9개월, 그의 나이 26세였다.성인상 뒤로는 석조 벽면에 골기와 지붕의 사제관이 보인다. 1906년에 지은 건축물로 20세기 초반 한ㆍ프랑스 절충 건축 양식을 볼 수 있다. 궁실의 법전이나 절의 금당 등 중요 건물에서 볼 수 있는 팔작지붕(까치박공이 달린 삼각형의 벽이 있는 지붕)이 인상적이다. 초대 주한 프랑스 공사가 기증한 종이 사제관 처마에 아직도 달려 있다. 사제관은 2005년 보수 작업을 거쳐 경기도 지정기념물 제176호로 지정됐다. 지금은 본당 신자들의 면담실로 사용 중이다.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초대 수석 아빠스를 지낸 노르베르토 베버 총아빠스가 1911년 3월 하우현을 방문해 남긴 기록에서 2대 주임 샤를르 조셉 르각 신부와 신자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르각 신부는 황폐한 주거 환경과 가난의 고통을 신앙 안에서 신자들과 함께 나누고 있었다.… 신자들이 천진난만하고 친근한 태도로 그들의 영적 목자를 의지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사제관은 신자들에게 개방되어 있었다. 그는 신자들의 아버지였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중에서)친정엄마 같은 성당사제관 왼쪽에는 1965년 지은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사제관과 달리 외관이 평범하다. 가운데 종탑을 기준으로 좌우 대칭 벽돌 구조의 성당은 하얀 벽면에 코발트색 양철 지붕으로 마감돼 마치 그리스 산토리니의 정교회 성당을 보는 듯 단순하고 깔끔한 인상을 준다. 성전 입구에 들어서면 여느 성당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회중석은 장의자 대신 1인용 좌식 등받이 의자와 좌탁이 짝을 이뤄 놓여 있다. 그 수가 40여 개. 평일 오후지만 띄엄띄엄 앉아 성경을 읽거나 묵상하는 이들, 묵주를 든 손을 위로 올려 양팔 묵주기도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성전 내부는 소박하고 깔끔해 군더더기가 없다. 성전 벽은 하얀색, 천장은 짙은 갈색의 목재로 마감돼 조화를 이룬다. 제대와 독서대, 제대 뒤 십자가 모두 나무로 제작해 따뜻함을 준다. 성화로 장식한 십자가의 길 14처는 성전 건립 당시의 것으로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가파른 나무 계단으로 2층에 올라가면 성가대석이 나온다. 10여 명이 앉으면 꽉 찰 정도로 작은 공간이다. 성전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돼 누구라도 찾아와 성체 조배와 묵상을 할 수 있다.특이한 것은 성당을 찾는 본당 신자가 거의 없다. 신자 총수가 186명에 불과하니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대신 서울이나 경기도 일원에서 찾아오는 이들이 제법 많다. 성당 앞을 우연히 지나다 들어오는 이들, 하우현성당이 아름답다는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이들도 있다. 자연 속 성당이 좋아 자주 온다는 이들이 많았다. 이혜자(아녜스, 서울 동작동본당)씨는 “자연 속에서 묵상과 기도를 할 수 있어 자주 이곳을 찾는다”며 “하우현성당은 신앙의 선물 같은 소중한 곳”이라고 말했다. 한 신자는 “마음이 답답하고 울적할 때 매달려 하소연할 수 있는 친정엄마 같은 성당”이라며 이곳을 찾아 마음의 위로를 얻는다고 했다. 하얀 벽면에 코발트색 양철 지붕으로 마감된 하우현성당. 모든 신자에게 열린 성당성당 곳곳은 기도와 묵상을 하며 하우현본당의 역사를 알 수 있게 꾸며져 있다. 성당 마당 성모상 앞에는 무릎틀이 놓여 있고, 성당 왼편에는 야외 십자가의 길이 설치돼 있다. 본당 사무실에는 역대 주임 사제의 사진과 초가로 된 옛성당의 사진도 볼 수 있다. 옛성당은 1894년 5월 하우현의 모본당인 왕림본당 사제와 하우현 교우들이 모금한 1500냥으로 건축한 10칸짜리 초가 목조 강당 겸 성당이다.그중에서도 성당 옆 소나무밭에 자리한 야외 십자가의 길이 인상적이다. 조각상들로 꾸며진 십자가 길에서 기도하다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속으로 들어간 듯하다. 성당을 나서는 길, 신자들이 삼삼오오 성당으로 들어오고 성당에서 기도와 묵상을 마친 신자들이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하우현성당은 누구나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마음의 안식처 같은 성당, 언제나 찾는 이들을 반겨주는 친정엄마 같은 성당이 아닐까 싶다. 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cpbc2020.07.22

매일 바치는 ‘주님의 기도’ 하루치 양식이 뭐길래[엉클죠의 바티칸 산책] (22)“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마다 청하는 ‘일용할 양식’은 어느 정도면 충분할까? 한 노파가 따뜻한 수프와 갓 구운 빵으로 차린 저녁 식탁에서 일용할 양식을 주신 주님께 감사 기도를 바치고 있다. 니콜라스 마스의 ‘기도하는 노파’(1656년경, 캔버스에 유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레익스박물관) “우리, 날마다 하느님께 거짓말하고 있는 거 아닌가? 기도할 때마다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비는데, 그게 말이 되나. 요새 밥 굶는 사람이 어디 있어? 하루 먹을 양식이 아니라 몇 년 치 양식을 쌓아놓고 있으면서도 하루에도 몇 번씩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니….”그리스도인들은 매일 ‘주님의 기도’를 바칩니다. 항상 이 대목이 걸립니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를 암송할 때 ‘일용할 양식’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물음입니다. 일용할 양식(daily bread), 쉽게 말해 하루 치 양식입니다. 나는 진심으로 하루 치 양식을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는가, 아니면 늙어 죽을 때까지 먹을 평생 양식이나 자자손손이 먹을 양식을 달라고 하는가? 후자라면 매일 기도할 때마다 위선을 떨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하느님께 이렇게 해도 되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저는 이때 나 자신을 약삭빠르게 합리화하기 시작합니다. 하루 치 양식의 현대적 의미가 예수님 시대와 다르겠지 하는 얕은 생각입니다. 저만 이럴까요? ‘주님의 기도’를 드릴 때마다 2000년 전 갈릴래아로 되돌아가 봐야 합니다. 그때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아마도 탈출기 속의 주님을 생각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나 당시 갈릴래아 백성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으니까요. “주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루 치 양식을 주시며 살게 했던 것처럼 저희에게도 하루 치 양식을 주시옵소서!” 아마 이런 뜻이 아니었을까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양식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를 탈출하여 시나이 광야에서 40년을 살았습니다. 풀이 듬성듬성, 모래바람은 쌩쌩, 황량한 벌판입니다. 40년 광야 살이! 지금 생각해 봐도 끔찍한 일입니다. 백성들은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식솔은 오죽 많았겠습니까. 좀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성경에는 장정만 60만이었다고 합니다. 전체 인원은 줄잡아 200만 명 이상이었겠지요. 숫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200명이면 어떻고, 2000명이면 어떻습니까. 그들이 어떻게 살았고, 그들이 어떻게 주님의 사랑을 받았는지가 중요하지요.시나이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은 꼼짝없이 주님에게 매달려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갓 태어난 아이가 엄마에게 매달리는 것처럼! 주님은 날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준 다음 저마다 먹을 만큼만 가져가라고 했습니다.(탈출 16,16 참조) 매일 하루 치 양식만 준 것입니다. 언제 어디에나 욕심꾸러기가 있고, 청개구리가 있습니다. 하루 치 이상의 양식을 가져가는 사람이 그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었지요. 다음날 새벽이 되면 남은 음식에 구더기가 생겨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누구에게나 하루 치 양식! 얼마나 공평한 조치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의 40년 광야 살이는 노예 습성을 털어버리려는 몸부림이었고, 하느님 백성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고난의 행군이었습니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수백 년간 노예로 살았습니다. 영혼이 없는 동물적인 삶이었지요. 주님을 섬길 생각도 없었고, 동족 간의 형제애도 없었고, 독립심이나 자유의지도 없었습니다. 40년 동안의 하루 치 양식은 신묘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한솥밥 효과입니다. 주님이 주는 밥을 40년 동안이나 받아먹었으니 어떤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거룩한 일치입니다. 첫째는 하느님과의 일치이고, 둘째는 백성들 간의 일치입니다. 그리고 강한 공동체 정신과 끈끈한 형제애가 싹텄습니다. 일용할 양식이 주는 메시지 주님은 하루 치 양식을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주었지, 특정 소수의 사람에게만 주지 않았습니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에서 ‘저희’의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요? 우리 가족? 우리 본당 신자들? 우리 동네 사람들? 우리나라 국민들? 아니면 인류 전체? 일용할 양식이 주는 메시지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세상을 정지시켜 버렸습니다. 바티칸도 예외가 아닙니다. 바티칸 광장의 노숙자들은 뭘 먹고 사나? 그들에게 일용할 양식은 있나? 바티칸에서 목요일 저녁마다 음식 봉사를 하는 한국의 꽃동네 수녀님이 걱정되어 전화했습니다. “우리마저 떠나면 이들은 뭘 먹고 살겠어요? 밥 한 끼 드리는 건데…. 자원봉사자들은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하루 치 양식의 의미를 멀리서 찾을 일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 cpbc2020.05.13

“천주교는 아주 공평해서 아무 발에나 다 맞는 버선과 같다네”[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26. 양말론과 빈병론 나열의 <서학>시. 나열의 문집인 「해양유고(海陽遺稿」(일본 동양문고 소장본) 권 1에 실려있다. 우리는 한 형제다양반과 상놈의 구분이 없고 남녀를 차별하지 않는,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던 공동체에 대한 소문은 소곤소곤 금세 원근으로 퍼져 나갔다. 믿기만 하면 노비 문서도 불태운다더라, 가난한 이에게는 옷과 양식도 아낌없이 나눠준다더라고들 했다. 하나라도 더 못 가져 안달하던 사람들이, 제 것을 나눠주면서 행복하다 못해 아련한 표정까지 짓는 것이 좀체 이해되지 않았다. 그 못되고 심술궂던 시어머니가 어느 날 문득 며느리를 친딸 위하듯 하고, 술만 마시면 세간을 부수고 아내를 때리던 술꾼이 그날로 영판 딴사람이 되었다. 이웃들은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충청도 면천 사람 유군명 시메온은 양반 신분이었고, 효자로 이름난 사람이었다. 그는 양친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정성껏 제사를 모셨다. 59세 때 그는 덕산 황모실로 이사해 천주교에 입교했다. 이존창에게 세례를 받고는 다른 사람으로 거듭났다. 유군명은 노비를 모아 놓고 노비 문서를 불태웠다. 우리는 이제 천주 대전에 아무 차별 없는 한 형제라고 선언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재물을 흩어 가난하고 불행한 이들에게 나눠주었다. 이후 그는 속량 노비 출신의 이존창을 도와 천주교를 가르치고 포교하는 일에 오로지 헌신했다. 신유박해가 있던 1801년 5월에 체포된 그는 갖은 고문에도 다른 교우를 한 명도 고발하지 않고, 끝까지 배교도 하지 않았다. 먼 지방으로 귀양 가서도 흔들림 없이 신자의 본분을 지켰다. 다만 성경을 지녀가지 못한 것만 원통스레 여겼다. 그는 82세의 나이로 유배지에서 죽었다. 그가 보인 신앙의 모범이 그 지역 주민들까지 감화시켰다. 그는 그들의 찬양과 감탄을 받으며 꿇어앉아 기도를 드리던 모습으로 세상을 떴다. 달레의 「조선천주교회사」에 나온다.「눌암기략」의 한 단락은 또 이렇다. “사학하는 무리의 법문(法門)은 재물을 함께 나누고 여색을 함께 하는 까닭에 과부와 홀아비 및 가난하여 스스로 먹고살 수 없는 자들이 모두 기꺼이 내달아 가곤 하였다. 비록 천한 종놈이라도 한번 그들의 무리에 들어가면 마치 형제처럼 보아 등급이 있는 줄을 몰랐으니, 이것이 그들이 어리석은 백성을 속여 미혹시키는 꾀였다.” 이 글은 삐딱한 시선으로 천주교를 바라본 언급이고, 내부자들에게 이같은 나눔의 공동체가 어떠한 기쁨과 일체감을 주었을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실제 지역 교회의 하부 조직에는 이존창 외에도 신분이 미천한 지도자들의 존재가 포착된다. 박종악의 「수기」에는 여사울의 천한 부류의 지도자로 최뚝쇠(崔斗古金)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그는 서학을 오래 익혀 교리에 깊이 통달한 사람이었다. 인근의 서학을 믿는 백성들이 대부분 그를 높여 존장(尊長), 즉 어르신으로 불렀다고 했다. 이들에게 신분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교리에 대한 이해도가 훨씬 더 중요했다. 이 버선을 신어보게!1794년 주문모 신부가 조선에 밀입국했을 때, 당시 천주교 신자들의 소원은 오로지 신부를 직접 만나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부의 일거수일투족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져, 결코 아무나 만날 수가 없었다. 1839년에 순교한 신태보 바오로가 감옥에서 쓴 편지는 창립 초기 자료를 수집하던 샤스탕(Chastan) 신부의 명에 따라 작성한 글이었다. 신태보는 친척 이여진 요한과 함께 신부를 한 번이라도 만나보려는 소원을 이루려 애를 썼지만, 끝내 이루지 못했다. 140리 떨어진 서울까지 무려 18번이나 올라왔어도 소용이 없었다. 이를 딱하게 여긴 한 교우가 장에서 버선 한 켤레를 꺼내더니 신어보라고 했다. 어린아이의 발도 들어가지 않을 작은 버선이었다. “어른더러 어떻게 아이 버선을 신으라는 겐가?” “아무 말 말고 한번 신어나 보게.” 그러자 놀랍게도 그 작은 버선이 신태보의 발에 쏙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양말(洋襪), 즉 서양 버선을 처음 접한 조선 사람의 이야기다. 당황한 신태보에게 그 교우가 말했다. “천주교는 아주 공평한 것이라네. 어른도 아이도, 양반도 상놈도 없지. 부드럽고 탄력이 있어서 아무 발에나 다 맞는 이 버선과 같다네. 자네도 열심히 하기만 하면 신부를 만나볼 수 있을 걸세. 조금만 애를 쓰면 누구나 이 버선을 신을 수 있듯이 말이야.” 평면 재단이어서 버선본 없이는 발에 꼭 맞는 버선을 지을 수 없던 당시에, 양털로 만든 신축성 있는 서양 버선은 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문화 충격이었다. 신태보와 함께 갔던 이여진의 경우는 신부를 만나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서울로 이사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신부가 사형당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까지 단 한 번도 신부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천주교인들의 이 같은 공동체는 외부자의 시선에서는 해괴한 변고에 지나지 않았다. 「눌암기략」의 다음 기술을 읽어 보자. “이른바 사학이란 학문은 그 주장이 불교의 남은 투식에서 나왔다. 또 경전의 말을 가지고 서로 꾸며서 이것으로 천하를 바꾸려 드니,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우리 유학이 어찌 일찍이 하늘을 공경하고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도 저들이 하늘을 섬긴다는 것은 도리어 상제를 빌려다가 속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들의 무리는 이것으로 복을 구하려다가 도리어 재앙을 부르고 말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저들이 높은 하늘을 큰 부모로 여기고, 다시 낳고 길러주신 은혜는 알지 못한 채, 벌거벗은 몸으로 한 방에서 섞여 지내며 남녀의 구별조차 없으니, 이는 거의 짐승만도 못한 것이다.” 유학의 입장에서 보면 남녀가 구분 없이 한 방에 앉아 요사스런 서양인의 형상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밤을 새우는 것은 변괴에 가까웠다. 박종악은 「수기」에서 “부자지간이라도 아들이 사학을 하는데 아비가 하지 않으면 아비를 아비로 여기지 않고 다른 무리라고 지목합니다. 아비가 비록 남에게 구타와 모욕을 당하더라도 가만히 보기만 하고 구하지 않습니다. 사학이 사람을 깊이 빠뜨리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라고 적기까지 했다. 관리들의 눈에 그들은 윤리를 무너뜨리는 멸륜패상(滅倫敗常)의 무리였을 뿐이었다. 부모가 빈 병인가?나열(羅烈, 1731~1803)이 1790년에 지은 <서학(西學)>이란 장시가 있다. 그의 문집 「해양유고(海陽遺稿)」에 나온다. 시의 제목을 아예 서학으로 내건 시는 처음 본다. 그런 만큼 내용이 대단히 흥미롭다. 몇 단락만 간추려 읽어보자. “서학은 천주를 위주로 하여, 부모를 빈 병처럼 여기는구나. 자신을 병 속 물건처럼 보거니, 따른 뒤엔 병에 무슨 정이 있겠나.(西學主天帝, 父母視空甁. 自同甁中物, 脫來甁何情.)” 부모는 병이고, 나는 그 병에 담겼던 술과 같다. 술을 잔에 따르고 나면 술이 병에 대해 무슨 애틋한 정이 있겠는가? 이것이 이른바 ‘빈병론’이다. 천주교를 부모와 자식 간의 인륜을 끊는 패륜 집단으로 내몰고, 남녀의 분별을 허무는 난륜(亂倫)의 무리라고 비난하는 것은 당시 박해자들이 입만 열면 하던 얘기였다. 시가 다시 이렇게 이어진다. “학술이야 1천 가지 갈래 있어도, 살기를 좋아함은 한 가지라네. 어이해 목숨을 매개로 삼아, 베여 죽음 즐겨함에 이른단 말가. 줄줄이 감옥에 묶여 들어와, 매질 채질 온갖 형벌 두루 받누나. 처음 한 말 바꾸려 들지 않고는, 그저 빨리 죽기만을 원한다 하네. 묻노라 죽는 것 왜 소원하나? 혼백이 천당에 오른다 하네. 천당은 화려하고 깨끗도 하여, 그 즐거움 몹시도 대단하다고.(學術雖千, 好生則同貫. 云何媒性命, 至乃樂斬斷. 累累繫刑獄, 榜備楚毒. 不肯易初辭, 但願速就戮. 借問戮何願, 魂魄升天堂. 天堂麗且淨, 其樂孔揚揚.)” 박해의 현장에서 지켜본 천주교 신자들의 태도를 묘사한 대목이다. 잔혹한 형벌에도 그들은 배교하지 않고, 그저 ‘예수 마리아’를 외치며 속히 죽여달라고만 했다. 어서 빨리 천당에 올라가 그 끝없는 즐거움을 누리겠다는 소망이었다. 나열의 이 시는 진산사건 이전에 지은 것이어서, 그가 직접 목격한 현장이 어디였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시 이어지는 한 대목이다. “상제가 어이 중치 않으랴마는, 베푸는 바 멀고도 가까움 있네. 가장 먼저 부모 배반 가르치는 건, 천주의 교리에도 어긋난다네. 차례 건너 아첨하여 섬기는 것은, 밝은 신(神)도 틀림없이 옳다 않으리. 오늘날 베어져 죽임당하니, 죄 얻음이 진실로 그럴 수밖에. 스스로 그 구함을 얻는다면서, 슬픔 감춰 하늘을 속이는구나.(上帝豈不重, 所施有遠近. 首敎畔其親, 已非帝所訓. 越序而諂事, 明神必不. 見今受誅鋤, 獲戾固其然. 自言得其求, 匿哀誣上玄.)” 그들은 믿지 않으면 부모조차 원수로 여긴다. 부모를 저버리고 천주를 섬기겠다니, 이는 십계명에도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세상을 떠난 제 부모의 제사는 거부하면서, 노비 문서를 불태우며 만유 위에 모든 이가 평등하다 외친다. 인륜을 저버린 채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가능한가? 남녀의 분별을 잃고 한 방에 떼로 모여 앉아 밤을 새우니, 이런 꼴을 어찌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이러니 베어 죽임을 당해 마땅하다고 했다. 당시 서학에 대한 평균적 시선이 이러했다.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 cpbc2020.11.11

성직자·수도자들이 꼽은 ‘성소의 뿌리가 된 도서들’하느님의 부르심은 책 속 활자에도 숨어 있다. 3일 성소 주일을 맞아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자신의 ‘성소 꿈나무’에 물과 햇빛을 부어준 책들을 소개한다. 레벤북스 편집장 김동주(성바오로수도회) 수사 -헨리나웬 「제네시 일기」(바오로딸) -장 바니에 「공동체와 성장」(성바오로) 헨리나웬의 「제네시 일기」는 제가 수도원에 오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책에 나오는 수도자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살아보고 싶다’고 여겨질 만큼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침묵과 봉헌, 사도직을 통해 하느님을 갈망하는 시간을 저도 가져보고 싶었습니다. 28살, 수도원에 들어올 때 목마른 사슴처럼 무언가를 찾았는데 이 책에 답이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토마스야, 수도생활을 해보겠니?”라고 초대해준 책이었습니다. 장 바니에의 「공동체와 성장」도 수도원에 대한 갈망을 일으킨 책입니다. 공동체를 통해 사람은 성장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줍니다. 가톨릭출판사 사장 김대영 신부- 테오 코부쉬 「그리스도교 철학 : 주체성의 발견」(가톨릭출판사)여러 철학적 관념과 그리스도교 신학의 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독일어권의 대표적인 철학자인 저자는 ‘주체성’이라는 철학적 관념의 원천이 다름 아닌 교부들의 발견, 즉 그리스도교에 있음을 밝히며 이처럼 신학에는 철학적인 의미와 개념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철학과 신학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오늘날 두 학문이 분리되어 독립적인 영역을 만들어가는 현 상황과 철학의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품는 많은 이들을 향해, 저자는 지금이야말로 오히려 철학과 신학에 대한 통합적인 통찰이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 준비하는 신학생들에게 그리스도교 신학을 공부하면서 신앙적 유산을 통찰하는 계기이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신학생 정석원(다니엘, 서울대교구)-성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경세원) 저에게 고백록은 성경을 제외하고 모든 역사를 통틀어 인간이 펜을 쥐고 쓴 책 중에 가장 잘 쓴 책이라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대부분의 성직자와 달리 30대에 자신의 성소를 발견했습니다. 삶의 여정에서 하느님을 더 깊이 만나고 싶은 억누를 수 없는 욕구를 발견한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담은 고백록은 늦게 성소의 길을 발견하고 걷고자 했던 저에게 큰 내적 공명을 일으켰습니다. 신학자가 되고자 하는 꿈을 심어주었고,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는 사제가 되고자 하는 열망도 곁들여 생겼습니다.성바오로딸수도회 김경희 수녀(기획지원팀, 팟캐스트 전 ‘수도원 책방’ 지기) -M.아가다 「빵나무」(바오로딸) 아주 어릴 때 수도자가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보자기 같은 것을 뒤집어쓰고는 곧잘 수녀 흉내를 내곤 했는데요.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한 삶을 하느님과 함께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책은 10살 무렵에 읽은 책 「빵나무」입니다. 주일학교에서 받은 책이었는데요. 집에 가지고 와 단숨에 읽고 마음이 뭉클해져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따뜻한 책이죠. 빵나무에 나오는 가족이 우리 같았고, 어머니 같았어요. 도움을 청하는 이웃에게 항상 베푸셨던 어머니를 보고 자란 까닭일 겁니다. 나그네를 대접한 그 가난한 집에 나그네가 떠나면서 준 세 개의 씨앗으로 빵나무가 열려, 이 가난한 가족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생각하면서 가슴이 뜨거웠던 그때를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책을 수녀원에 입회해 알았네요. 바오로딸이 만들었다는 걸요. 참,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지금은 개정되어 예쁜 색깔로 더 곱게 단장한 이 책, 「빵나무」를 우리 아이들과 부모님들께 추천합니다. 코로나19로 힘든 때에 더 소중한 이야기에요. 이 밖에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이태식 부제의 유고집 「태시기가」(가톨릭시보사)를 읽고 사제 성소의 꿈을 키웠다고 밝힌 바 있다. 성바오로수도회 한국관구장 황인수 신부는 한 수녀의 성소 이야기를 1인칭으로 풀어쓴 소설 「떠날 수 있다면 떠나시지요」(가톨릭출판사)를 추천했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cpbc2020.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