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 확산에도 신앙생활 식지 않았다신자 참여하는 미사는 중단됐지만 TV 매일 미사 등 대송과 성경 필사·십자가의 길 기도 이어가 신자들이 2일 공동체 미사가 중단된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서로 거리를 두고 앉아 기도하고 있다. 신자들은 묵주 기도와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며 미사에 참여할 수 없는 아쉬움을 달래고 코로나19 종식을 기원했다. 백영민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전국 성당에서 회중이 참여하는 미사가 잠정 중지된 지 2주가 넘었다. 미사 참여에 대한 목마름이 여느 때보다 간절한 사순 시기, 신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가며 코로나19가 더는 확산하지 않게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다.가톨릭평화방송에는 TV와 라디오, 유튜브 등을 통해 방송되는 매일 미사 시간과 미사 녹화에 참여 가능 여부를 묻는 전화가 이어지고 있다. 심재숙(아녜스, 70, 서울대교구 망우동본당)씨는 “세례받고 40여 년 매일 미사에 참여했는데 지난 2주일이 마치 1년처럼 느껴진다”며 “가톨릭평화방송 매일 미사를 시청하고 40일 기도, 가톨릭 굿뉴스 매일 성경 필사 등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그는 “조용히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는 시간도 나쁘지 않지만, 다시 교우들과 성당에서 만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중3과 대학에 입학하는 자녀를 둔 민진희(로사, 47, 수원교구 당수동본당)씨는 “가족과 주일 미사에 갈 수 없지만, 함께 모여 대송을 바치고 독서와 복음을 읽으며 자녀들의 신앙을 돌보고 있다”고 했다.SNS상에서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한 기도문을 공유하거나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기도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최태한(요한 사도, 62, 대구대교구 칠곡본당)씨는 “교우들과 SNS를 통해 소통하며 수호성인께 기도도 드린다”며 “TV 미사를 시청하지만 그림의 떡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운 마음”이라고 했다. 임만택(제노, 71)씨는 “미사 중지로 대자들이 신앙을 소홀히 할까 봐 신앙생활을 독려하는 전화를 걸었다”며 “모두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주님을 향한 마음은 위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예비부부들이 혼인을 미루거나 예비신자 교리반 교육 중지로 성사혼에 차질을 빚는 경우도 있다. 결혼을 한 달 미룬 김모(36)씨는 “하객 없이 혼인 미사를 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많은 신자의 축복 속에 성가정을 꾸리고 싶어 혼인을 미뤘다”며 “위약금 없이 혼배를 미룰 수 있도록 배려해 준 본당 측에 감사 드린다”고 말했다. 9월 결혼을 앞둔 예비신자 임모(31)씨는 “예비신자 교육이 미뤄지며 혼인 전에 세례를 받을 수 없어 속만 태웠다”며 “세례를 먼저 받고 못다 한 교육을 마칠 수 있다는 신부님의 말씀에 한시름 덜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평화신문2020.03.04

좋은 커피에 걸맞는 이름을 붙여주었으면[사유하는 커피] (29)세례명과 커피명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장 이름이란, 얼굴을 기억하기 위한 도구라는 생각을 해왔다. 그도 그럴 것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곧 잊혔고, 내 삶에서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휑한 바람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주일학교에 들어가 세례명으로 불릴 때에서야 어머니의 태중에서 받은 또 하나의 이름이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점차 세례명의 의미를 곱씹으면서, 인간에게 이름이란 물건에 붙는 꼬리표 이상의 무엇이라는 생각이 깊어졌다.세례명은 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났다는 징표이다. 처음부터 있었던 게 아니고 14세기 비엔 공의회(1311~1312) 이후 도입된 일종의 문화이다. 세례명이 신앙심이 깊고 죄짓지 않는 선한 사람임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언제든지 죄를 지을 수 있는 나약한 인간임을 잊지 말고 선행을 실천하라는 가톨릭의 당부이자 당사자의 다짐이다.세례명이 삶의 지향점이 되기도 하는 것은 아브라함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기원전 19~20세기 우르에서 그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가 붙여준 이름은 아브람(Abram)이었다. ‘위대한 아버지’라는 뜻이다. 아브람은 99세가 돼서야 하느님에게서 ‘수많은 군중’을 뜻하는 하몬(hamon)이 합쳐진 이름 ‘아브라함(Abraham)’을 받았다. 그 후 아브라함은 아들 이사악을 얻고 이스라엘, 이슬람 등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됐다. ‘예수’는 히브리어로 ‘하느님이 구원하신다’는 뜻으로 부활에 대한 약속이 이름에 담겨 있다. 아브라함과 예수의 사례를 통해 이름은 그 사람의 운명을 이끌어주고 응원하는 축복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름이 품고 있는 알 수 없는 힘에 대한 인간의 인식은 본능적이다, 그 사례는 18~19세기 아프리카 노예들에게서도 엿볼 수 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와 노예생활에서 구한 인물이나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한 인물을 성경에서 찾아 이름을 붙였다. 당시 노예 이름의 24%가 모세, 새드락, 솔로몬 등 성경 속의 인물들이다. 새드락은 이스라엘 백성의 바빌로니아 포로 시절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에 던져졌으나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고 살아남은 인물이다. 케빈 코스트너가 열연한 영화 ‘늑대와 춤을’에서 여주인공은 ‘주먹 쥐고 일어서(Stands With a Fist)’라는 인디언식 이름을 받으면서 비로소 그들의 세계로 동화된다. 사회학자 밀러는 “이름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붙여주고 인정해주는 사회적 개성(social personality)”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신앙인에게 이름은 그 이상의 신비함을 담고 있다.이름으로 커피를 생각한다. 커피에서 신을 보았다는 둥, 장미향이 풍긴다는 둥 온갖 찬사를 보내며 귀한 커피라고 자랑하는 커피들을 보면 이름이 실망스럽다. 게이샤, 모카, 루메 수단, SL23, H16, 마르셀레사 등 커피 이름들이 외래어이기에 신비감을 주지만 유래를 알면 화가 치민다. 이런 이름은 깨끗한 커피들이 지닌 고귀함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게이샤는 커피나무가 자란 아프리카 마을명인데, 그마저 게샤를 틀리게 부르고 있다. 모카는 커피를 실어 나르는 항구의 이름이고, 루메 수단은 커피가 자란 나라에서 따왔다. 무엇이 특별한지 이름을 봐선 잠재력은커녕 정체성조차 알 수 없다. H16은 교배시험장에서 샘플에 붙었던 표기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고, 마르셀레사는 프랑스의 지명 마르세유이다. 스페셜티 커피의 유행과 함께 혈통까지 따지며 고급문화를 만들겠다고 부산을 떨면서 이름은 이렇게 붙이고 있다. 한 잔의 커피가 우리의 관능을 어루만지며 깊은 사유와 묵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이렇게 무심해서는 안 된다. 세례명을 부여하는 심정으로 커피 품종의 혈통과 잠재력에 알맞은 이름을 선사하는 지점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평화신문2020.12.01

사람을 구하기 위해 바친 ‘귀한 선물’ [사유하는 커피] (6)다윗의 볶은 곡물이 커피인 이유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장 커피가 ‘진심 어린 선물’이란 의미를 갖게 된 사연 역시 성경에 담겨있다. 에덴동산의 선악과에서 야곱의 불콩죽으로 이어지는 창세기는 커피의 각성 효과와 에너지 증진 효과를 비유로 들려주는 대목이 있다. 구약 성경 연대표에 비춰볼 때, 기원전 21세기에서 기원전 17세기에 걸친 세 족장(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의 시대를 지나 여호수아를 시작으로 한 역사의 시대가 펼쳐진다. 마태오 복음을 따라 예수의 족보를 따져 보면, 27대조(루카 복음은 42대조) 할아버지가 다윗이다. 다윗의 삶을 전하는 사무엘기 상권 25장 18절에 커피가 ‘볶은 곡물’로 등장한다. 볶은 곡물을 커피로 풀이한 인물은 독일 킬대학교 윤리철학 교수이자 언어학자인 조지 파스치우스(George Paschius, 1661~1707)였다. 그는 1700년 라이프치히에서 출간한 라틴어 논문 「고대 이후의 새로운 발견」에서 “다윗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아비가일이 선물한 볶은 곡물 다섯 스아는 커피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라틴어 표준 성경인 「불가타」(Vulgata) 와 히브리어 원본의 표현을 분석해 볶은 곡물은 불에 의해 볶거나 말린 곡물을 뜻하는 것임을 밝혀냈다. 미국 언론인이자 「올 어바웃 커피(All about coffee)」의 저자인 윌리엄 우커스는 다윗보다 1000년가량 앞선 시대에 묘사된 ‘야곱의 불콩죽’이 커피일 수 있다는 에티엔 뒤몽(Etienne Dumont, 1759~1829)의 견해와 볶은 곡물이 커피라는 관점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아비가일의 ‘볶은 곡물’(한국 주교회의 발행 「성경」은 ‘볶은 밀’로 옮김)은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간절함이 밴 선물이었다는 점에서 일반 곡물과는 가치가 다르게 비쳐진다. 당시 상황은 급박했다. 다윗이 사울의 시기를 받아 쫓기는 신세가 돼 나발에게 식량을 요청하지만 거절당한다. 화가 치민 다윗은 400~600명의 무리를 이끌고 나발을 칠 기세였다. 나발의 아내인 아비가일이 발 빠르게 나서 ‘빵 이백 덩이, 술 두 부대, 요리한 양 다섯 마리, 볶은 곡물 다섯 스아, 건포도 백 뭉치, 말린 무화과 과자 이백 개를 여러 나귀에 싣고 다윗을 찾아가 바쳤다.(1사무 25,18 참조) 스아는 요즘으로 치면 쌀 4되 분량이다. 1되가 1.6kg 정도이니 다섯 스아는 32kg에 달한다. 이를 단순히 ‘밀’로 보기에는 다윗이 거느린 무리의 규모와 비교할 때 그 양이 부족하다. 아비가일이 인색하게 식량을 바칠 상황이 아니었다. 32kg을 커피로 본다면 넉넉하고도 더욱 귀한 선물이 된다. 볶은 곡물이 느닷없이 커피로 해석된 것도 아니다. 다윗의 증조할머니 룻이 다윗의 증조부 보아즈를 만난 과정을 소개한 구약 성경 룻기(2,14)에도 커피가 볶은 곡물로 묘사된다고 에티엔 뒤몽은 주장했다. 이 구절에서 보아즈는 굶주린 룻에게 빵을 주어 식초에 찍어 배불리 먹게 한 뒤 ‘볶은 곡물’을 내어준다. 굶주린 자에서 배를 채울 빵, 그리고 에너지까지 북돋울 수 있는 커피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선물이다. 다윗은 사울에 이어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에 올랐지만, 훗날 예수님께로 이어지는 왕가를 연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이야기 속에 커피가 거론되는 것은 정색하고 진위를 따질 일이 아니다. 300여 년 전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조지 파스치우스가 대학 캠퍼스에서 급속히 퍼지며 인기를 끌던 커피를 ‘볶은 곡물’로 언급함으로써 많은 젊은이로 하여금 성경을 펴보게 했는지를 상상하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진실이란 종종 그 자체보다는 쓰임새가 중요하다.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평화신문2020.06.10

“환대할 수 없는 것을 환대하는 것이 진짜 환대죠”전북대 왕은철 교수 신작 「환대예찬」, 동화 「어린왕자」·구약 창세기 등 다양한 문학·성경 속 환대 의미 분석 전북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인 왕은철 교수가 문학적 서사를 통해 환대의 가치를 짚어낸 「환대예찬」을 펴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환대(歡待). ‘기쁠 환’에 ‘기다릴 대’를 쓴다. 반갑게 맞아 정성껏 대접한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환대를 생각하면 환대를 받을 만한 사람을 떠올린다. 차갑고 소홀히 대한다는 뜻의 냉대와 홀대는 환대의 반의어다. 환대와 마찬가지로, 냉대를 생각하면 냉대를 받을 만한 사람이 떠오른다. 이런 논리라면, 환대와 냉대는 그것을 받을 만한 사람의 것이다. 적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냉대하고, 환대할 만한 사람을 환대한다면 ‘환대의 정신’은 도대체 왜 필요할까? 사랑받을 만한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할 만한 사람을 용서하기는 쉽다. 전북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인 왕은철(미카엘) 교수는 환대 예찬가다. 460쪽의 적지 않은 분량에 처음부터 끝까지 환대를 예찬한 신작 에세이 「환대예찬」(현대문학)을 펴냈다. 인간이 빚어낸 환대의 방식과 윤리를 다루고, 시대가 주목한 문학적 서사를 통해 환대의 정신을 재해석했다. 환대의 대상과 의미, 가능성을 다면적으로 성찰했다. 2017년 10월부터 2년간 월간 「현대문학」에 연재한 에세이를 모았다.왕 교수는 말한다. 인간이 가진 놀라운 능력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자기 것처럼 느낄 줄 아는 능력이라고. 이웃에 대한 사랑과 타자에 대한 환대도 여기에서 나온다. 문학 역시 이러한 인간의 공감 능력이 전제되지 않으면, 자기 이야기만 반복하는 자기중심적인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 문학이 타자에 관한 것이듯 환대와 사랑 역시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작가는 「어린 왕자」와 「몽실 언니」부터 시대의 고전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비롯해 구약성경의 창세기와 판관기 등 고전과 문학 작품을 넘나들며 환대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건져 올렸다. 작가 한강의 에세이이자 소설인 「흰」과 「소년이 온다」가 주목하는 애도 역시 환대의 형식임을 다뤘다.남아프리카공화국 작가 존 맥스웰 쿳시의 「야만인을 기다리며」를 통해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환대하는 과정에 인간의 내적 결핍, 윤리적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음을, 그것이 환대의 진정한 정신임을 강조하고 있다. 환대의 수혜자는 곧 자기 자신이 된다는 역설이다. “환대는 마음이면서 물질이다. 따뜻한 말로 어루만질 때는 마음이고, 필요한 음식을 가져다줄 때는 물질이다. 이처럼 환대는 빈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든 물질이든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행위다.”(395쪽)환대는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말한 것처럼 타자의 이름, 언어, 성별, 인종이 무엇이든 행해져야 한다. 자크 데리다는 무조건적인 환대의 개념을 언급하며,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이 진짜 용서고, 환대할 수 없는 것을 환대하는 것이 진짜 환대”라고 강조했다. 작가는 20년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자크 데리다의 용서에 관한 강연을 듣고, 세상의 고통에 관심을 두게 됐다. 그 이후 애도와 상처, 환대 등 치유라는 일관된 주제에 천착해 목소리를 내왔다. 2018년에는 문학 작품에서 나타난 죽음, 애도, 트라우마를 연구해온 공로로 ‘생명의 신비상’ 인문사회과학 분야 본상을 받았다.혐오를 통해 환대를 가르치는 사회다. 최근 출판 시장에는 혐오의 대상, 현상, 윤리를 분석하는 책들을 줄줄이 나왔다. 혐오와 인권, 혐오 표현을 거절하는 법 등을 가르침으로써 오히려 혐오를 둘러싼 부정적 서사를 확대 재생산한다. “혐오를 혐오하라”는 말보다 “환대하라”는 말의 힘은 더 세다. 혐오는 환대를 품지 못하나, 환대는 혐오를 품는다. 왕 교수는 머리말에서 “환대가 부재한 사회를 환대가 넘실대는 사회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도 문화”라면서 “타인을 향한 환대는 결국 자기 자신을 향한 환대로, 이것이야말로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킨다”고 강조했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cpbc2020.03.11

‘작별 키스’에 담긴 숨은 뜻은 19세기 이탈리아 통일 의지[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55) 프란체스코 하예즈의 ‘입맞춤’ 프란체스코 하예즈, ‘키스’(1859년), 브레라 피나코테크 소장, 이탈리아 밀라노. 이탈리아 민족의식 태동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체제는 장화 반도를 근본부터 흔들어 놓았다. 프랑스 혁명의 불길은 이탈리아에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를 전했고, 여러 군소국가로 분열되어 있던 장화 반도는 민족의식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나폴레옹 체제가 붕괴한 뒤 1814년 빈 회담을 계기로, 이탈리아의 통일을 향한 행보는 본격화됐다. 그러나 갈 길은 녹록지 않았다. 지난 호에 잠시 언급했지만, 이탈리아가 통일하려면 당시 북부 이탈리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를 몰아내야 하고, 교황청의 반대를 극복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 오늘날 보다시피 죽어도 이탈리아에 합류하지 않겠다고 버틴 ‘산 마리오 공화국’ 같은 나라도 있었다.프랑스 대혁명 시절부터 19세기 후반, 이탈리아가 통일하고 수도를 로마로 정한 뒤 교황을 ‘바티칸의 수인(囚人)’으로 만들 때까지, 그 시기의 교황과 교황령은 한 시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교회 입장에서 19세기는 시작부터 숨쉬기조차 힘든 시절이었다고 할 수 있다. 복자 비오 9세 교황은 이탈리아 통일의 급물살 속에서도 로마와 교황령 안에서 지도자로서 나름의 정치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부흥’을 의미하는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는 곧, ‘통일운동’을 의미했고, 오스트리아로부터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탈리아의 독립전쟁은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그것을 오늘 소개하는 하예즈의 작품으로 설명해 보기로 하겠다. 이 작품은 남녀가 격정적인 사랑의 키스를 하는 걸로 보이지만, 역사적, 정치적 은유로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다. 하예즈는 이 작품을 모두 4점 그렸다. 3점은 유화고, 하나는 수채화다. 모두 이탈리아 통일의 상징으로 밀라노 브레라와 암브로시아나 피나코테크에 있다. 독립전쟁과 세 가지 버전의 그림 1848년 이탈리아는 제1차 독립전쟁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실패로 끝났고, 이탈리아 혼자 힘만으로는 오스트리아군을 몰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1858년 주세페 가리발디, 주세페 마치니와 함께 이탈리아 통일의 3걸이 된 카보우르 백작 카밀로 벤소(Camillo Benso Conte di Cavour)의 제안으로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와 비밀리에 ‘플롱비에르 협약(Plombires Agreement)’을 체결하고 이듬해, 제2차 독립전쟁에 승리함으로써 본격적인 통일에 접어들었다. 1859년 프랑스군의 원조를 얻어 오스트리아군을 무찌르고 이탈리아 중부와 북부를 점령한 것이다. 하예즈의 첫 번째 ‘키스’는 바로 그해, 밀라노의 명문 출신 알폰소 마리아 비스콘티 디 살리체토(Alfonso Maria Visconti di Saliceto) 백작이 프란체스코 하예즈(Francesco Hayez)에게 개인적으로 의뢰했다. 비스콘티는 프랑스와 사르데냐 왕국 간의 동맹이 가져올 ‘희망’을 그림에 담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림 속으로14세기 복장을 한 청춘남녀는 중세기 한 저택의 현관에 있다. 낭만주의의 상징이 된 이 그림 속 남녀의 키스는 마지막 작별 인사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맞서 전투에 나가는 이탈리아의 젊은 병사가 연인에게 굿바이 키스를 한다. 여성은 보내고 싶지 않다는 듯 연인의 어깨를 거세게 붙잡고 있다. 남성의 왼발이 맨 아래 계단에 올린 사이, 옆구리에 찬 칼이 그의 신분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동료로 보이는 한 남성의 그림자가 왼쪽 문 저편에 있는 것 같다. 키스하는 두 주인공이 입고 있는 옷의 색깔, 곧 남성의 빨간 바지, 여성의 흰 속옷과 청색의 드레스는 프랑스의 국기 색이다. 자유, 평등, 형제애를 의미한다. 여기서 두 사람의 입맞춤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두 국가의 동맹관계를 상징한다. 그렇게 그려진 이 그림은 25년 이상 비스콘티의 호화로운 저택을 장식했다가 1886년 알폰소가 죽기 1년 전에 브레라 피나코테크에 기증했다. 흔히 ‘수채화 버전’으로 알려진 뒤이은 작품은 같은 해(1859년)에 작가가 연인 카롤리나 주키의 언니에게 선물용으로 그린, 달걀 형태의 작은 그림이다. 첫 번째 버전과 같은 색으로 현재 밀라노의 암브로시아나 피나코테크에 있다.두 번째 유화 버전은 1861년 이탈리아 왕국이 선포되던 해에 그렸다. 그해 통일의 3걸은 빅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를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왕으로 추대했다. 그림 속에서 여성은 흰 드레스를 입고 있는데, 이것으로 하예즈는 작품을 이탈리아 통일에 헌정했다. 세 번째 유화 버전은 1867년 이탈리아 통일이 완성되고, 남자의 망토 왼쪽에 초록색 외투가 추가되고 계단에 흰색 천이 앞서 남자의 빨강 바지와 함께 이탈리아 국기를 상징한다. 흰색 천과 남자의 외투 밝은 녹색이 앞의 버전에 추가됐다. ‘키스’라는 주제를 통해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동맹이 이탈리아 통일로 이어졌고, 이것은 콘스탄티누스의 기증에서 시작되어 단테가 한탄하기도 했던, 교황의 세속권력이 종식되는 것을 의미했다. 프랑스인 아버지와 이탈리아인 어머니작가인 프란체스코 하예즈(Francesco Hayez, 1791∼1882)는 베네치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프랑스인이었고, 어머니는 이탈리아인이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이미 많은 것을 함의한다고 할 수 있다. 베네치아 학파들의 파스텔톤 그림으로 학습을 시작했다. 1809년 로마 아카데미아 주최 ‘로마 견습’ 기회를 주는 대회에서 만점을 차지하며, 로마시에서 주는 장학금과 보조금을 받으며 3년간 공부했다. 이전부터 볼로냐, 피렌체, 시에나를 거쳐 로마에 안주하는 과정에서 라파엘로를 깊이 연구했고, 로마에서 여러 중요한 직책을 수행하고 있던 안토니오 카노바를 만났다. 로마의 치코냐라 공작은 그를 두고 “위대한 이탈리아 회화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 줄 인물”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카노바의 도움으로 카피톨리니 박물관과 키아라몬티 박물관에 수집된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 작품들을 공부할 기회를 얻었고, 바티칸 궁전에서 라파엘로의 작품들을 만났다. 이런 경험은 성경과 역사, 인물을 주제로 바로크와 로코코의 웅장하고 화려한 기법이 아니라, 단순하고 명료한 신고전주의에 안착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예츠는 1820년을 전후로 밀라노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새로운 낭만주의 분위기를 접했고, 유명 정치인들과 접촉하며 당대 명사들의 초상화로 이름을 얻었다. 극도로 세밀한 묘사와 인물의 미세한 감정변화까지 포착해내는 낭만주의적 정교함으로 큰 찬사를 받았고, 1850년 브레라 아카데미아에서 회화 분야 학과장이 됐다. 이후 그는 고전주의 분위기에 개인적인 감성과 인간과 자연의 자연스러운 동화를 통해 낭만주의적인 색채를 드러냄으로써 신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의 이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882년 91세를 일기로 밀라노에서 생을 마감했다. 낭만주의의 가장 위대한 해석자이탈리아 통일의 영감을 불어넣었던 주세페 마치니(Giuseppe Mazzini)는 밀라노에서 활동하며 애국심이 투철한 하예즈를 두고 “19세기 이탈리아의 위대한 이상주의 화가”, “이탈리아에서 국가주의 사상이 요구하는 역사회화의 수장”이라고 극찬하며, 낭만주의의 가장 위대한 해석자로 꼽았다. 스탕달도 그를 두고 낭만주의적 이상을 가장 장엄하게 해석한 몇 안 되는 이탈리아 예술가 중 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하예즈가 ‘키스’에서 강조하고자 한 것은, 사적인 감정과 애국심이 동일한 맥락에 있다는 것이다. 개인의 감정과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는 조국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것을 위해서는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잠시(혹은 영원히) 헤어지는 희생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리소르지멘토의 낭만적, 민족주의적, 애국적인 이상을 상징하며, 19세기 이탈리아의 정치적 변화를 색으로 함축한 탁월한 작품이다. 미(美)와 사랑, 거기에 애국심까지 담긴 이 작별의 ‘키스’는 이탈리아 국가 탄생의 상징이 되었다. 이것은 비오 9세 교황의 정치력과 외교력이 아무리 훌륭해도 이탈리아가 통일로 가는 운명의 물꼬를 되돌리지는 못했다는 것을 의미했다.프란체스코 하예즈, ‘키스’(1859년), 브레라 피나코테크 소장, 밀라노김혜경 (세레나, 부산 가톨릭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cpbc2021.10.05
![[전교 주일] 세상 향한 교회의 창… 세상 복음화 이끌 선교사가 되어주세요](//cpbc.co.kr/CMS/newspaper/2021/10/rc/811619_1.3_titleImage_1.jpg)
[전교 주일] 세상 향한 교회의 창… 세상 복음화 이끌 선교사가 되어주세요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 100만 선교사 양성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은 TV, 라디오, 신문, 유튜브, SNS 등 다양한 매체와 각종 문화 사업을 통해 이땅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 이바지 하고 있다. 그리고 CPBC의 복음 선포 사명은 후원자들의 관심과 지원이 없다면 지속할 수 없다. 사진은 가운데 CPBC 사옥을 중심으로 오른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평화나눔음악회에서 공연하는 CPBC소년소녀합창단, 윤전기를 통해 인쇄되는 가톨릭평화신문, 본사 청년 직원들, CPBC TV ‘우리 시대의 일곱 교황’, CPBC TV 주조종실.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은 교회 언론을 통해 함께 복음을 선포할 100만 선교사를 모집합니다.100만 선교사는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모든 이에게 “참 하느님이시며 참 인간이신 예수님께서 구세주이시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고, 이 땅에 그리스도의 평화를 실현하는 데 영적 기도와 물적 지원으로 협력하는 이들입니다. 100만 선교사들은 마치 마리아 막달레나가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복음을 사도들에게 전한 사도인 것처럼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모든 대중 매체 수단을 통해 복음을 선포하는 데 가장 먼저 앞장서 줄 언론 사도직의 핵심 첨병입니다.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100만 선교사를 구하는 것은 한국 교회 600만 신자의 모든 가정이 교회 언론 사도직에 협력해주리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을 통해 교회 언론 사도직의 선교사가 되길 원하시는 분은 CPBC 앱을 설치하고 ‘선교후원회’로 들어가 가입하시면 됩니다. 가입 문의 : 1588-2597전교 주일을 맞아 교회 언론과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의 100만 선교사가 왜 필요하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소개합니다.교회의 선교 사명교회의 사명은 복음 선포이고, 이를 위해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성사 생활과 기도 생활로 응답합니다. 복음 선포 곧 ‘선교’는 그리스도인의 가장 위대하고 거룩한 임무입니다.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실 때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라고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임무를 부여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에 교회는 “나도 전해 받은 것을 여러분에게 전합니다”(1코린 15,3)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세상 모든 곳의 모든 이에게 언제나 하느님 말씀의 선포자와 봉사자들을 파견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선교는 어느 세대, 세계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교회 생활의 본질적인 요소”라며 선교에 힘써 달라고 당부한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말씀처럼 교회는 복음을 선포하는 데 있어 시대마다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도구를 사용해 왔습니다. 초대 교회 때에는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이 직접 말로 복음을 선포하고, 예수님의 행적을 글로써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박해 시대 때에는 장엄한 순교와 성덕이 빛나는 모범적인 삶의 실천으로 그리스도를 선포하였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얻은 고대 교회는 파트리치오, 골룸바노, 아우구스티노, 보니파시오 등 위대한 선교사들이 이방인들을 선교하였습니다. 중세 때에는 성화상을 이용해 글을 모르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근대 교회에서는 여러 언어로 성경과 가톨릭교회 교리서, 신앙 서적을 번역해 선교하였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현대 사회의 홍보와 소통 수단인 신문, 방송, 소셜미디어를 선교의 도구로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여기에는 그리스인도 유다인도, 할례받은 이도 할례받지 않은 이도, 야만인도, 스키티아인도, 종도, 자유인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콜로 3,11)라는 바오로 사도의 고백처럼 모든 때에 세상 모든 이를 복음으로 초대하고 있다. 한국 교회, 특히 서울대교구는 교회의 가장 위대한 선교 사명을 인식해 1988년 5월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을 설립해 신문ㆍ라디오ㆍTVㆍ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국 방방곡곡에 온종일 그리스도의 말씀이 전해지지 않는 곳 없이 복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선교사의 세 가지 형태선교는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 세례받게 하는 것과 세례를 받았으나 교회를 등진 이들을 새 복음화해 주님께로 다시 돌아가게 하는 이중 의미를 지닙니다. 그래서 선교의 대상은 세상 모든 이입니다. 선교사는 세 형태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교회로부터 공적으로 파견된 선교사입니다. 이들은 파견된 선교지에서 복음을 전하고, 세례 성사를 베풀며 교회를 세워 성사 생활을 지속하게 합니다. 둘째, 삶의 자리에서 성덕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퍼뜨려 이웃을 교회로 이끄는 선교사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콜로 3,12)라고 그리스도인들에게 권고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들을 ‘옆집의 성인들’이라고 표현합니다. “무한한 사랑으로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 가정을 부양하고자 열심히 일하는 수많은 남녀, 병자들, 한시도 미소를 잃지 않는 노 수도자가 있습니다. 날마다 한결같이 앞으로 나아가는 그들에게서, 저는 투쟁 교회의 성덕을 봅니다. 이는 우리 옆집 이웃 안에서 발견되는 성덕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우리 한가운데에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현존을 반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성덕의 중산층’이라고도 부를 수 있습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7항) 교회는 전통적으로 사람들을 회개시키고 구원하는 일에 있어 ‘앎’보다는 ‘덕’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권고합니다. 그러면서도 먼저 어느 정도의 교리적 지식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생활하는 데에 크게 부족한 부분을 느낄 수 있다며 신앙에 관한 지식을 쌓을 것을 권장합니다. 교회 언론의 큰 사명 중 하나도 바로 신자들에게 신앙의 지식을 쌓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셋째, 기도와 물적 수단으로 교회에 협력하는 선교사들입니다. 교회가 선교 사명을 수행하는 데 있어 기도뿐 아니라 물질적인 수단들도 적지 않게 요구됩니다. 그래서 역대 교황들과 사도들의 후계자들은 하나같이 선교를 위해 모든 그리스도인이 힘닿는 데까지 물질적 도움을 베풀어 달라고 간곡히 요청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선교는 여전히 절박한 과제”라면서 “선교를 위해 우리의 시간과 노력, 재화를 쏟아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교황은 그러면서 “선교를 위한 개인적 기부는 먼저 주님을 향하고, 그다음으로 다른 이들을 향한 자기 봉헌의 표시입니다. 이렇게 물질적 봉헌은 사랑을 바탕으로 한 인류의 복음화를 위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당부하셨습니다.(전교 주일 담화 참조)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과 100만 선교사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은 서울대교구가 운영하는 한국 교회의 선교 도구입니다. ‘선교’와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위해 설립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 일반 언론과의 근본적인 차이입니다. 그래서 설립자이신 고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을 ‘무형의 성전’이라고 정의하셨습니다.오늘날 미디어 환경은 일상처럼 우리 삶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은 기존의 신문 라디오 TV뿐 아니라 현시대의 자원은 ‘온라인’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은 교회와 세상을 잇는 ‘고리’로서 세상을 향한 교회의 ‘창’(窓)이 되고자 거듭 쇄신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세상의 도전에 맞서는 교회의 소리로서의 사명을 다 하고 있습니다.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세상에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명을 다 하기 위해선 물질적 지원이 절실합니다. 전문 언론인을 양성하고,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방송 장비와 시스템을 갖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 100만 선교사들은 오늘날 우리 시대에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삶의 변화를 체험한 사람들의 강렬한 증언을 전하는 ‘새로운 복음서’의 저자들입니다. 때로는 복음서 속의 착한 사마라이 사람처럼, 또 주님을 위해 값비싼 향유를 쏟아붓는 여인처럼, 십자가 아래에서 주님의 수난을 지켜보고, 부활하신 주님의 증인이 된 여인들처럼 새롭게 엮는 복음서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마르 1,1)으로 시작하는 기쁜 소식만이 올바른 렌즈가 될 수 있습니다”라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처럼 한국 교회 모든 그리스도인이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 100만 선교사로 활동해 주시길 기대합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1.10.20

‘보편적 인권’이라는 새로운 길로 교회를 이끌다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59) 프리드리히 스팀멜의 ‘하느님의 교회를 인도하는 레오 13세’ 프리드리히 스팀멜, ‘하느님의 교회를 인도하는 레오 13세’(1903년), 케벨라 순례성지, 독일 1800년대 유럽 사회는 ‘혁명’과 ‘발전’이라는 키워드가 지배하던 시대였다. 그 여파로 인한 자유와 독립의 움직임도 거세게 일어난 동시에 거기에 편승하지 못한 계층의 비참함도 극명하게 드러난 시대였다. 교회는 영적ㆍ물리적인 박해를 거쳐 새로운 면모를 갖추었고, 교종(敎宗)은 영적 차원의 리더십을 보편적으로 확보하는 가운데 세계를 대상으로 모든 백성의 삶에 관심을 기울였다.혁명과 발전의 시대, 레오 13세 교황 1878년 2월 로마 인근 카르피네토 로마노 교구 출신의 조아키노 빈첸초 라파엘레 루이지 페치 추기경이 ‘레오 13세’라는 이름으로 교종이 됐다. 로마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고, 인문학을 기반으로 외교와 법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뒤, 사제품을 받았다.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의 특사로 베네벤토, 스폴레토, 페루지아 등 저물어 가는 교황 영지에서 지방 행정관을 지내기도 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부정부패와 끈질기게 싸웠고, 마피아와 내통하며 백성의 피를 빨며 지역 경제를 쇠퇴시키고 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던 세력들을 몰아내는 데 최선을 다했다. 또 여러 방식으로 빈민 구제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집 없는 청소년들을 위해 주택을 공급하고,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낮은 이율의 대출을 지원하며,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는 등 사제로서 행정관으로서 할 일을 소신껏 해 나갔다. 그것은 주교가 되고 추기경이 된 뒤에도 계속됐다. 그가 교종으로 선출되었을 때 이탈리아 통일은 이미 완성됐고 교황령은 모두 사라졌다. 로마가 이탈리아의 수도로 선포됐고, 교종은 바티칸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통일 이탈리아는 이제 수 세기 동안의 지역 중심주의를 극복하고 민족주의, 국가주의를 어떻게 고취해 나가느냐는 과제에 직면해 있었고, 그것을 위해 교회가 필요한 만큼 여러 구실을 만들어 교종을 압박했다. 레오 13세는 이탈리아 혁명 세력의 입맛에 맞추기보다는 세계와 인류 앞에서 교회의 길을 내는 데 집중했다. 노동 계층을 향한 관심, 회칙 「새로운 사태」 레오 13세는 임기 초부터 안으로는 훼손된 교회를 복원하고, 밖으로는 이탈리아를 초월해 교회와 현대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 노력했다. 계몽주의 물결 속에서 일었던 과학과 종교의 대척 관계에 대해 그는 두 세계의 공존을 설파했고, 성경 연구와 토미즘에 관한 연구를 촉진하는 한편 연구자에게만 바티칸 비밀문서고를 개방했다. 그는 가톨릭 신자들에게 묵주기도를 통한 마리아 신심을 확산시키고, 성 요셉과 미카엘 대천사, 예수 성심을 공경할 것을 독려했다. 그는 신학에서나 정치에서나 온건주의자였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유럽인들의 삶의 중심에 두게 하려고 노력했다. 자신이 가진 지성과 외교적인 자질을 최대한 발휘해 러시아,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여러 국가와 관계를 개선하고, 가톨릭 신앙과 교구장 임명에 있어 교회의 권리를 되찾아왔다. 국제 사회에서 교황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었으며, 당시 유럽을 휩쓸던 각종 사조에 어떤 식으로든 응답함으로써 교회의 태도를 분명히 밝혔다. 그의 이런 여러 가지 업적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노동자 계층을 향한 관심과 처음으로 인간의 보편적 ‘인권’을 언급한 교종이었다는 사실이다. 1891년에 발표한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는 당대 유럽 사회의 다양한 문제, 특히 노동자 계급을 비롯한 약자들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았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과 자본주의의 문제점도 날카롭게 지적했다. 자본주의는 탄생과 함께 부(富)의 분배 문제를 가져왔고, 그 결과 양극화는 필연적이었다. 이에 교회는 인간의 존엄성을 근본 원칙으로 기본권과 사회정의, 공동선을 외쳤다. 당시 사회 상황은 인류가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던 ‘새로운 사태들’이었고, 교종은 이 모든 일에서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그가 개척한 길은 오늘날 가톨릭 ‘사회교리’에서 이야기하는 사회정의 문제, 세계적으로 만연한 각종 빈곤의 양상과 그것의 격차 문제, 인권과 다양한 차별 문제, 폭력과 전쟁 등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모든 문제에서 교회가 가야 할 길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성화 전문 예술가 소개하는 작품은 독일 화가 프리드리히 프란즈 마리아 스팀멜(Friedrich Franz Maria Stummel, 1850~1919)이 독일의 케벨라(Kevelaer) 순례 성지에 그린 ‘하느님의 교회를 인도하는 레오 13세’(1903년)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1903년 9월, 예수회에서 출판하는 프라이부르크 인 브리스고비아(Friburgo in Brisgovia)의 월간 「가톨릭 선교(Die katholischen Missionen)」의 도메인으로 소개됐다. 당시 잡지의 편집장은 스위스 출신의 가톨릭 신학자며 작가 안톤 후온더(Anton Huonder, 1858~1926)였다. 스팀멜은 뮌스터에서 태어나 대성당 부설 학교에 다니며, 인문학을 공부하던 중, 그림에 뛰어난 재능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뒤셀도르프 미술 아카데미에 조기 진학했다. 나자렛 운동을 활발히 했고, 그 바람에 성화 전문 예술가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의 재능은 성화 외에도 유리화, 조각, 금과 청동 세공 및 직조와 자수 등 장인들이 하던 다양한 분야까지 광범위했다. 이후 12년간 에른스트 디거(Ernst Deger)와 에두아르드 폰 게브하르트(Eduard von Gebhardt) 밑에서 미술 공부에 전념했다. 1879년에는 이탈리아를 여행했고, 많은 성당에 작품을 남겼다. 1881년 케벨라를 시작으로 안홀트, 퀼른, 룩셈부르크, 펠플린, 1906년 베를린까지 수많은 성당에 작품을 남겼다. 32살이 되던 1882년에 스팀멜은 순례 도시인 케벨라로 이사해 가장으로 부모 형제들을 돌보다가 거기서 1890년 헬레네 폰 윙클러(Helene von Winkler, 1867~1937)와 결혼해 4명의 자녀를 낳았다. 1919년 스팀멜은 뇌졸중으로 쓰러져 1년간 고생하다가 사망했다. 레오 13세와 단테, 베르길리우스 잘 알려진 사실 중 하나로, 레오 13세가 가장 좋아한 시인이 베르길리우스와 단테였다는 것이다. 단테의 「신곡」과 베르길리우스의 「아에네아스」를 모두 읽었으리라는 건 당연하다. 베르길리우스는 단테도 사랑한 시인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저서 「신곡」에서 ‘지옥’과 ‘연옥’의 안내자로 당대에 활동하던 시인이 아니라 베르길리우스를 삼았다. 그가 천국의 안내자가 될 수 없는 것은 그리스도가 오기 전, 로마 시대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옥’까지만 안내하고 림보로 돌아가야 했다. 천국의 안내자로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한 그가 연모한 여인 베아트리체였다. 단테는 신곡에서 지옥의 모델을 현실에서 찾았다. 실제로 현실을 천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머리에 꽃 꽂고 다니는 사람’밖에 없을 것이다. 어느 시대나 대부분 사람은 현실을 지옥이라고 생각한다. 단테 역시 그랬다. 그가 바라본 현실은 부정·부패가 만연했고, 의인을 찾아보기 드문 삭막하고 피폐한 공간이었다. 적나라한 그런 현실을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속어로 폭로했고, 그것을 프랑스 화가 들라크루아(Eugne Delacroix)는 그림으로(1822년), 구스타브 도레(Paul Gustave Dor)는 판화(1861년)로 1800년대 사회상으로 빗대어 남겼다. 그림 속으로스팀멜은 단테와 관련한 이런 작품들과 레오 13세의 연관성을 이 작품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하느님의 교회’는 미술사에서 언제나 ‘배’ 혹은 ‘방주’로 표현됐다. 성당의 제단을 표현한 듯 양쪽에 우뚝 세운 기둥 안에는 네 개의 에피소드가 담겨있다. 왼쪽부터 첫 번째 칸에는 ‘성 요셉의 작은 배’라고 적힌 갑판 위에 천사가 지키고 있다. 그 앞에 앉은 성녀로 보이는 두 여성은 배 위로 기어 올라오려는 반인반수의 존재들을 보면서 손을 꼭 잡고 있다. ‘교회의 수호성인, 성 베드로’라고 적힌 두 번째 칸에는 교회의 지킴이들이 있다. 작대기 모양의 노를 젓는 사람들은 가톨릭교회의 영성가들로, 배 위로 기어 올라오려는 반인반수의 존재들을 밀어내고 있다. 세 번째 ‘유혹자들을 막는 영적 군대’는 십자가로 무장하고 있다. 유혹자들은 바다로 표현된 세상에서만 오지 않는다. 위에서도 검은 새가 이들을 위협한다. 네 번째 “인류를 지키는 사람”으로 한 손은 배의 키를 잡고, 다른 한 손은 배에 탄 사람들을 안심시키려는 듯 손을 들고 있는 레오 13세 교종이 있다. 그는 왕직, 예언직, 사제직을 표현하는 삼중관을 쓰고 험한 세상을 건너는 교회(방주)를 인도하고 있다. 그의 머리 위에는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함께 하고, 바다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이한 동물들이 우글대고 있다. 당시 사회와 교회의 모습을 스팀멜은 특유의 화법으로 표현했다고 하겠다. 프리드리히 스팀멜, ‘하느님의 교회를 인도하는 레오 13세’(1903년), 케벨라 순례성지, 독일김혜경 (세레나, 부산 가톨릭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동아시아복음화 연구원 상임연구원) cpbc2021.11.02

주입식 주일학교, 체험·주도형 프로그램으로 바꿔나가야서울대교구 청소년 담당 교구장 대리 정순택 주교에게 묻다, 주일학교와 청소년 복음화의 사목 대안은? 서울대교구 청소년 담당 교구장 대리 정순택 주교 오는 2학기부터 학교 수업이 정상화될 예정이다. 방역 당국이 전국 신규 확진자가 1000명 미만일 때 전면 등교가 가능해지도록 기준을 변경했기 때문이다. 학교가 정상화되면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수업이 확대되면서 낮아진 학업 성취도도 향상될 전망이다. 아울러 최근 정부가 종교 시설에 대한 방역 지침을 완화해 주일학교 운영 정상화도 기대되고 있다. 이에 서울대교구 청소년 담당 교구장 대리 정순택 주교<사진>를 만나 청소년 복음화를 위한 사목 대안을 알아봤다. 도재진ㆍ이학주 기자▲코로나19로 공교육이 정상화되지 못해 청소년들의 학습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특히 학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학생들의 기초 학습 능력이 결정된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사회적 신분상승을 위한 기회들이 줄어들고 있다. 교회도 이제 이런 현실의 벽 앞에 좌절하는 젊은이와 청소년과 동반하여 격려해줘야 한다. 힘들어하고 아파하고 넘어진 젊은이와 함께하는 동반자의 사목이 중요하다. 교회의 큰 틀에서 우리나라 교육 정책에 관한 담론을 다뤄야 할 때이다. 서울대교구 청소년국은 세 차례에 걸친 청소년 사목 심포지엄을 통해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 대한 대안을 모색한 바 있다. 그 해결책 가운데 하나로 학력차와 학벌 차에 대한 임금 격차를 줄이자는 것이었다. 학력과 학벌에 상관없이 각자가 성실하게 살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정도의 임금이 보장돼야 한다. 이 부분은 고용과 임금, 세금 정책 등 국가 차원의 고민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정책적인 변화가 교육과 연관해 움직여야 한다.” ▲입시 위주의 교육 환경에서 청소년 복음화를 위해 한국 교회는 어떠한 역할과 노력을 해 나가야 하나. “새로운 접근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서울대교구 청소년국은 중고등학생을 위한 주일학교를 대체하는 시스템, 새로운 사목 접근법을 작년부터 마련하고 있다. 청소년 사목의 새 방법론 ‘나다(I AM)’이다. 청소년들이 주체적으로 서로 나눔을 한다. 교리교사가 주입식으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성경을 가지고 함께 나누고, 체험 프로그램으로 성지순례를 하고, 청소년들이 주도적으로 하는 나눔 위주의 프로그램이다. 「한국 천주교 청소년 사목 지침서」 핵심 키워드는 ‘동반자 사목’이다. 사목자들은 주입식 교리 전달이 전부가 아니라, 청소년들이 스스로 체험하며 깨닫고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동반해야 한다. 사목자만이 아니라 교회와 가정이 어떻게든 참여해 청소년들이 자기 주체적인 체험ㆍ나눔ㆍ성장을 해나갈 수 있도록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아울러 교회는 주일 미사에 청소년을 더 많이 초대해야 한다. 교회가 청소년들을 초대하는 것은 ‘신자니까 의무적으로’ 같은 차원을 넘는 것이다. 청소년에게 신앙생활은 정말 중요하고 필요하다. 성당 가는 것이 공부할 두세 시간을 뺏는 게 아니라 거기서 건강한 에너지와 휴식, 균형을 얻게 된다. 그 시간에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그 이상의 에너지를 받을 수 있다. 우리 교회 역할이 사실 더 크다. 젊은이와 청소년들이 공부할 시간이 없다고 느낄수록 신앙생활을 더 한다면 공부에 있어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최근 발표한 「한국 천주교 청소년 사목 지침서」에서 주목한 ‘가난한 청소년’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한국 천주교 청소년 사목 지침서」가 말하는 가난은 단지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다. 인적 네트워크에서의 가난, 친구와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의 가난 등 여러 의미의 가난이다. 그런 점에서 많은 청소년이 ‘가난한 청소년’이라고 할 수 있다. 가난한 청소년이 많기에 다양한 사목을 시도해야 한다. 청소년국은 학교 밖 청소년을 찾아가는 ‘아웃리치(Outreach, 찾아가는 구호 활동)’ 사목도 한다. 일례로 가톨릭 청소년 이동 쉼터 서울A지T를 들 수 있다. 개조한 버스로 일주일에 몇 번씩 청소년들을 만난다. 정규 학교에 어려움이 있거나 다른 뜻있는 청소년을 위해 대안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음악(노비따스음악중ㆍ고등학교)과 미술(화요일아침예술학교) 대안학교도 있고, 청소년 문화공간 JU역촌동도 있다. 가난한 청소년들을 찾아가는 사목적 시도라고 할 수 있다.학교 폭력 문제에 대해 교회 차원에서 사목적 동반과 피해자의 치유를 위한 돌봄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교육 풍토의 혁신이 중요하다. 학폭이 없도록 교육 풍토를 바꿔 나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사목자 개개인이 하기 어렵다. 교회의 큰 틀에서 교육 풍토를 혁신할 수 있는 대사회적 목소리와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교회 안에서도 현 교육 제도의 문제점과 대안에 관한 연구가 필요하다. 사목자와 수도자 한 분 한 분이 구체적으로 아픔을 겪은 피해ㆍ가해 학생들을 치유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동반하는 것은 계속 확산해 나가는 동시에 교회 차원에서 사회의 교육 풍토를 바꾸는 연대가 필요하다.”정 주교는 최근 국가교육위원회 설립과 운영에 관한 법령 제정에 있어 정파 갈등을 빚고 있는 것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정 주교는 “정말 백년대계를 위한 것이라면 정권이나 정파ㆍ정당ㆍ정치 이념을 떠나서 모든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교육 목표와 철학의 방향성을 정립하는 범국민적 논의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cpbc2021.06.22

“하느님은 우리 인간에게 완전한 자유를 허락하셨다”[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인격 그리고 프란치스칸 영성] 25. 하느님의 선과 인간의 자유 프란치스코 성인은 원죄에 물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참하느님께서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나 참인간이 되신 강생의 신비를 묵상하며 하느님의 선을 찬미하였다. 조토, ‘동방 박사의 경배’, 프레스코화,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아시시. 사랑과 선을 창조하는 동업자로 삼으시다그런데 인간 이해와 관련하여 이렇게 말을 이어가는 것이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인간 존재를 이렇게 이해하게 될 때는 인간이 하느님께 온전히 의존적으로만 존재해야 하는 자유롭지 못한 존재로 이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하느님은 우리에게 온전히 자유를 허락하신 분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낙원에 두시고, 그다음에 그들이 그곳에서 선악과를 따먹는 이야기는 하느님과 우리 인간의 끊임없는 다람쥐 쳇바퀴 식의 관계성을 말해주는 비유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하느님은 온전한 자유를 허락하시고 인간은 한 가지 제한이 또 다른 자유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자유로운 선을 지배하는 ‘권력’으로 오해하여 계속해서 거기에 반기를 들며, 급기야는 하느님과 똑같으신 외아드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우를 범하는 것이 성경이 말해주는 인간 역사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사실 역사의 주인은 오직 하느님이시기에 그 역사를 주도해가시는 분 역시 하느님이시지 우리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우리 인간에게 완전한 자유를 허락하시며 당신과 더불어 사랑과 선의 창조를 계속해 가는 동업자로 우리를 삼으셨다.코로나19, 관계성 되볼아보는 계기우리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위기 시대를 겪으면서 계속해서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을 듣게 된다. 전염병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분명하고도 불가피한 대처이다. 그런데 이 말의 논리를 거꾸로 들여다보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 인간 존재의 핵심부에는 관계성, 즉 함께 있고자 하는 본질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우리가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지내왔다는 것이고, 또 그 가까움의 갈망이 우리 내면 깊숙하게 심겨 있기에 ‘사회적 거리 두기’의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함께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즘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전염병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 서로의 관계성과 관련하여 내면 깊이 성찰해보아야 할 것이 있다. 사실 우리는 하느님에게만이 아니라 우리 서로에게 그런 함께 함과 관계 맺음의 본성을 강력하게 지니고 있으면서도 함께 할 때 우리가 겪게 되는 불편과 어려움으로 인해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가 제한된다는 잘못된 판단 속에서 계속해서 하느님과 서로에게 반기를 드는 삶을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원죄’라고 하는 말속에 들어있는 반복적인 인간의 자기 기만을 표현해주는 이야기일지 모른다. 죄는 인간의 어림석음이고 수치사실 ‘원죄’라고 하는 말도 어찌 보면 ‘죄’라고 하는 단어로 인해 뭔가 잘못된 개념을 우리에게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죄’라는 것은 성경 전통이 분명하게 단언해주는 것이지만, 그 ‘죄’의 본질을 잘 들여다본다면 그것은 오히려 인간의 ‘어리석음’이고 ‘수치’라고 말하는 것이 더 타당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창세기의 ‘원죄’ 이야기에서도 아담과 하와의 ‘수치’를 가려주시기 위해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주시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의 이 수치스러운 어리석음은 하느님의 자비를 가져다준 ‘근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노르위치의 성녀 율리안나는 “처음에 인간의 넘어짐이 있었고, 그다음에 그 넘어짐에서 일어남이 있었다. 이 두 개가 다 하느님의 자비다”라고 말한다.바오로 사도도 이와 맥을 같이 하는 말을 한다. “어떤 선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혹시 누가 죽기를 무릅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에게 대한 당신의 사랑을 실증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으로 있던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우리가 그분의 피로 의롭게 되어 있는 지금에는 더욱 확실히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로부터 구원받을 것입니다.”(로마 5,7-9)이것이 바로 성 프란치스코가 하느님의 선을 그렇게도 찬미 찬양했던 이유다. 프란치스코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저희는 저희의 탓으로 추락했나이다. 또한, 당신 아드님을 통하여 저희를 창조하신 것같이, 저희를 ‘사랑하신’ 참되고 거룩한 당신 ‘사랑’ 때문에 참하느님이시며 참사람이신 그분을 영화로우시고 평생 동정이신 지극히 복되시고 거룩하신 마리아에게서 태어나게 하셨으며, 또한 포로가 된 저희를 그분의 십자가와 피와 죽음을 통하여 구속하기를 원하셨으니, 당신께 감사드리나이다.”(「인준 받지 않은 수도 규칙」 23,2-3) 호명환 신부(작은형제회) cpbc2021.01.06
[사도직현장에서] 천국과 지옥김재덕 신부(대전교구 대화동본당 주임) 김재덕 신부 본당 초등부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칠 때였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을 하다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주일학교 친구들! 천국이 어떤 곳일까요?” 그러자 아이들이 대답하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곳이요!” “행복한 곳이요!” “하느님이 계신 곳이요!” “무엇이 좋은 곳일까? 또 왜 행복한 곳일까요?” 아이들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자~ 신부님이 천국이 어떤 곳인지 알려 줄게요. 영원히 묵주기도 하는 곳입니다. 영원히 미사 드리는 곳, 영원히 성체조배 하는 곳, 영원히 십자가의 길 하는 곳, 영원히 성경 말씀 듣는 곳, 영원히 하느님 말씀을 실천하는 곳이에요. 자, 나는 천국에서 살고 싶다. 손들어 보세요!” 아이들은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자, 그러면 지옥은 어떤 곳일까요? 영원히 묵주기도 안 해도 되는 곳, 영원히 미사 안 드려도 되는 곳, 영원히 성체조배 안 해도 되는 곳, 영원히 십자가의 길 안 해도 되는 곳, 영원히 성경 말씀 듣지 않아도 되는 곳, 영원히 하느님 말씀을 친구들에게 실천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에요. 나는 지옥에서 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손들어 보세요!” 제 교리를 들은 아이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손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갈망합니다. 그리고 기도, 미사, 말씀과 성체는 하느님과 영원히 함께하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체험하는 순간입니다. 만약 우리의 신앙도 아이들의 고백처럼 머리로는 하느님 나라를 갈망하면서도, 삶 안에서는 그분과 함께하는 시간 안에서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면, 정말 하느님 나라가 우리에게 ‘행복한 나라’ ‘기쁨이 가득한 나라’가 될 수 있을까요? 하느님과 함께하는 기쁨을 배우는 것, 이것이 우리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김재덕 신부(대전교구 대화동본당 주임) 평화신문2020.08.04

그리스도께 대한 환호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미사의 모든 것] (11) 자비송 니콜라 푸생, ‘예리코에서 눈먼 이를 고치시는 예수님’, 1650년, 캔버스에 유채, 119x176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프랑스. 나처음: 참회 예절 때 세 번이나 “제 탓이오”를 반복하며 손으로 가슴을 치는 이유는 무언가요?조언해: 성부, 성자, 성령 이렇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각각 통회하기 위해 세 번 기도하는 거죠. 라파엘 신부: 모든 전례와 그리스도인 신앙생활에서 ‘3’을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연관 지어 묵상하고 행하려 하는 것은 칭찬할만한 습관이라 생각해. 그 의미가 반드시 맞지 않아도 모든 걸 하느님과 연관 지어 그분 뜻을 헤아리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바람직한 자세라고 할 수 있지. 그래서 언해를 칭찬해 주고 싶어. 신앙인으로 참 잘살고 있는 것 같아.나처음: 그럼 3이라는 숫자에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상징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있다는 건가요.라파엘 신부: 전례에서 숫자 ‘3’이 갖는 의미를 이해하려면 먼저 성경에 드러난 숫자의 속뜻을 알아야 한단다. 성경에서 ‘3’은 사물과 시간의 시작과 중간, 그리고 마침을 가리켜. 가장 대표적인 예가 너희 둘이 말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지. 그래서 성경에서 ‘3’은 ‘하느님의 세계’를 가리킨단다. 하느님께서 가장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만군의 주 하느님”(이사 6,3)이라며 천사들이 찬미하지. 예수님께서도 세 차례 유혹을 받으시고, 무덤에 사흘 동안 묻혀 계시다가 부활하시지.이렇게 하느님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수가 전례에 들어오게 된 것이야. 전례에서 숫자 ‘3’은 하느님의 거룩함을 환호하고 간청할 때 사용되고 있단다. 먼저 미사 시작과 함께 참회 예식 때 “제 탓이오”를 세 번 반복하며 오른손으로 자기 가슴을 친단다. 이는 자기 잘못에 대한 아픔과 뉘우침을 표시하는 거란다.조언해: 신부님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도 세 번 외쳐요. 라파엘 신부: 그렇구나. ‘자비송’은 짧지만, 하느님께 죄를 고백하고 자비를 간청하는 아주 훌륭한 기도란다. 이 기도의 대상은 주님이신 그리스도이시지. 첫 번째 “진심으로 뉘우치는 사람을 용서하러 오신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는 루카 복음 4장 18-19절의 말씀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들에게 해방을, 소경들에게 눈뜰 것을 선포하며 억눌린 이를 풀어주시는 주님께 자비를 청한단다. 두 번째 “죄인을 부르러 오신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는 마태오 복음 9장 13절의 말씀을 그대로 옮긴 것이지. 마지막 세 번째 기도 “성부 오른편에 중개자로 계신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는 요한 복음 16장 26-28절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약속을 상기시켜주는 기도야. 이처럼 자비송은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주님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환호’라고 설명할 수 있지.조언해: 미사 때마다 기도했지만, 이 기도가 모두 복음서에 나오는 말씀인지는 몰랐네요.라파엘 신부: 자비송의 기도 대상이 주님이신 그리스도라고 했지. 신약 성경이나 초세기 교부들의 문헌 대부분은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있단다. 예를 들어 초대 교회의 유명한 그리스도 찬미가인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2장 11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라고 노래하고 있지. 천사가 목동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알릴 때에도 “오늘 다윗 고을에 여러분을 위해 구원자가 나셨으니 그분은 그리스도 주님이십니다”(루카 2,11. 「200주년 신약성서」 인용) 하고 말하지. 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수에서 고기를 잡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예수님의 사랑을 받던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요한 21,7)라고 알리지. 이처럼 교회는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여 아버지 하느님 오른편에 계시면서 만물을 통치하시는 주님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미사에 참여한 모든 회중은 주님을 부르면서 주님이신 그리스도께 영광을 드린단다. 그리고 예리코의 눈먼 이가 주님의 자비와 능력을 믿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마르 10,47-48)하고 외친 것처럼 우리도 미사 중에 주님의 자비를 간청하는 것이란다. 조언해: 그레고리오 성가로 ‘키리에 엘레이손’(Kyrie eleison,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하며 노래하는 게 너무 좋아요. 라파엘 신부: 자비송이 언제부터 미사 예식 부분에 들어왔는지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어요. 전례학자들은 5세기경 동방 교회에서 사용하기 시작했으리라 추정하고 있지. 4세기 말에 쓴 「에테리아 여행기」에 “예루살렘에서 바치던 저녁 기도 중에 부제가 기도 지향을 말하면 소년들이 매번 ‘키리에 엘레이손’ 하고 환호했다”고 적혀 있어요. 또 비슷한 시기에 안티오키아를 비롯한 동방 교회에서도 미사나 시간 전례 중에 간청 기도와 키리에로 구성된 호칭기도를 바쳤다고 해. 서방 교회에서는 5세기 말엽이나 6세기 초에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고 온 순례자들을 통해 자비송이 받아들여져 미사와 시간 전례 때 부르기 시작했단다. 8세기 이전에는 ‘키리에 엘레이손’ 3번, ‘크리스테 엘레이손’(Christe eleison,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3번, 다시 키리에 3번 등 9번을 노래했단다. 3번은 성사의 거룩함을, 9번은 구품천사를 상징하는 것이라고도 해. 그런데 중세기의 저명한 전례학자였던 메츠의 아말라가 첫 번째 키리에는 성부께, 두 번째 크리스떼는 성자께, 마지막 키리에는 성령께 올리는 환호라고 그릇된 해석을 해서 오랫동안 그렇게 인식하기도 했단다. 좀 전에 언해가 했던 말처럼 말이야. 오늘날 미사에서는 자비송을 2번씩 부르고 있지. 그러나 교황청의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은 “다양한 언어와 음악적 특성 또는 상황에 따라 여러 번 되풀이할 수도 있다”(52항)고 허용하고 있단다. 그러면서 자비송은 신자들이 주님께 환호하며 그분의 자비를 간청하는 노래이므로, 관습에 따라 모든 이가 바치며, 교우들과 성가대 또는 교우들과 선창자가 한 부분씩 맡아 교대로 바치라고 권고하고 있지. 지금 우리가 미사 때 하는 것처럼 말이야. 참! 그러고 보니 미사의 양식도 3가지네. 다음엔 미사의 세 가지 양식에 대해 알아보자꾸나.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0.09.23
![[독자마당]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행복합니다](//cpbc.co.kr/CMS/newspaper/2020/08/rc/786117_1.0_titleImage_1.jpg)
[독자마당]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행복합니다이석현(요한, 광주대교구 용봉동본당) 코로나19 때문에 미사는 물론 교육, 회합 등 활동이 잠정 중단돼 가톨릭평화방송이나 유튜브를 통한 방송 미사 참여나 묵주 기도, 성경 봉독(말씀 전례), 선행 등으로도 주일 미사 참례 의무를 대신하고 있습니다.하느님께서는 믿음을 지키려는 우리를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성령을 통해 도움을 주십니다.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로마 5,3-4) 부활이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이 환난의 코로나도 반드시 극복할 수 있습니다. 성인과 신앙의 선조들은 환난들을 신앙으로 극복하였고, 마지막 날에는 하느님의 품 안으로 행복하게 돌아가셨습니다.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1984년 5월 교황님 처음으로 한국 교회를 사목 방문해 103위 한국 순교 복자를 바티칸이 아닌 이 땅에서 성인품에 올렸습니다. 한국인 첫 사제인 김대건 신부는 1846년 7월 한강 새남터에서 사형 선고를 낭독하자 군중을 향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천주님을 위해 죽습니다. 여기서 영원한 생명이 시작됩니다. 여러분도 죽은 후에 행복 찾으려면 천주를 믿으시오.”가톨릭평화방송은 코로나19에 매일 미사, 주일 미사는 물론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하느님 말씀을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부임하자마자 코로나19 확산으로 미사가 중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본당 주임 김민호 베드로 신부님은 주일 미사와 축일 강론과 본당 중요 일정을 알리면서 신앙심을 잃지 않도록 교우들과 인격적 친교와 만남을 잘 활용해 믿음과 실천으로 이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격려하고 계십니다.오늘도 성경 말씀을 묵상하면서 힘을 얻고, 만약 내가 마지막 날에도 자신 있게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할 수 있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25-26),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든든하고 희망을 주신 말씀입니까. 모든 신자도 코로나19 극복에 힘내시고 오늘도 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 평화신문2020.08.26

조용한 곳 찾아 기도·묵상에 빠지니 믿음도 삶도 새롭다여름 휴가, 피정 프로그램에 참가해 볼까 피정에 참가한 신자들이 촛불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기도를 바치고 있다. 대부분 피정 프로그램은 침묵과 묵상 가운데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기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각 교구와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단체 피정 프로그램은 코로나19로 대부분 취소됐다. 하지만 개인 피정이나 10명 안팎의 소규모 피정은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키며 조심스럽게 재개하고 있다. 1인 1실, 식당 내 칸막이 설치 등은 기본으로 제공된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일정이 유동적이니 피정 센터에 미리 일정을 확인하는 것은 필수다.렉시오 디비나 ‘거룩한 독서’를 뜻하는 말로 성경 읽기와 묵상을 통해 하느님과 일치하며 살도록 이끌어 준다.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는 8월 22~23일 경남 고성 수도원에서 ‘유덕현 아빠스와 함께하는 자연 속에서 하느님 만나기’로 렉시오 디비나 피정을 마련한다. 문의 : 010-2816-1986성경 통독성경을 읽으면서 나와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하느님 시선으로 다시 보게 해주는 시간이다.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는 강원도 횡성 도미니코 피정의 집에서 8박 9일 일정으로 신ㆍ구약 완독 피정을 마련했다. 7월 17~25일과 8월 4~12일, 8월 21~29일로 예정돼 있다. 문의 : 010-3340-0201침묵 피정몸과 마음을 푹 쉬게 하면서 침묵 속에서 하느님 소리를 듣는 시간이다. 서울 마포 예수회센터는 7월 13~22일, 8월 11~20일 영신수련 8일 피정(9박 10일)을 마련한다. 7월 24~28일은 4박 5일 일정으로 진행되는 피정이다. 예수회 사제들이 피정을 지도한다. 문의 : 02-3276-7733예수마음 기도 예수마음 기도는 단순기도(화살기도)를 통해 하느님을 만나게 하는 기도다. 경기도 문산 예수마음 피정의 집은 예수마음 기도 영성수련 피정을 개최하고 있다. 7월 27~30일 예정된 피정을 신청받고 있다. 3박 4일간 기도, 치유, 강의, 미사, 면담, 고해성사 등이 이뤄진다. 문의 : 031-953-6932단식 피정단식으로 몸을 비우고 기도로 마음을 채우는 시간이다. 수도자들이 직접 만든 효소만 먹고 3박 4일간 침묵과 기도 안에서 삶을 재충전하도록 돕는다. 강원도 횡성 도미니코 피정의 집에서 7월 30일~8월 2일 열린다. 문의 : 010-3340-0201 개인 피정홀로 조용히 머물며 멈춤의 시간이 필요한 이들에게 추천한다. 경남 창녕에 있는 나자렛 예수 수녀회는 개인이나 20명 이내 소규모 단체를 위해 피정 센터를 열어두고 있다. 일일 피정, 숙박 피정 모두 가능하며 말씀 묵상과 전례 등 피정 주제와 내용은 상황에 맞게 수도자들이 지도해 준다. 문의 : 010-2116-4903예수 그리스도 수녀회는 경기도 이천 장호원읍 예수 그리스도 피정의 집에서 개인 피정자만 받고 있다. 특별한 피정 프로그램이 없어 온전히 쉬고 싶은 이들에게 제격이다. 원한다면 수도자와의 상담(면담)은 언제든 가능하다. 미사는 근처 장호원성당과 감곡 매괴 성모순례지성당에서 봉헌하면 된다. 문의 : 010-4474-7227청년 피정마산교구 청소년국 청년사목부는 7월 18~19일 마산가톨릭교육관에서 ‘청년 로고스 성경 통독 피정’을 마련한다. 성경 통독 범위는 바오로 서간(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둘째 서간, 티토에게 보낸 서간,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과 야고보 서간, 베드로의 첫째, 둘째 서간이다. 선착순 20명 마감. 문의 : 055-249-7065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전교 수녀회는 7월 17~19일 미혼 여성을 대상으로 강원도 평창 라베르나 기도의 집에서 쉼 피정을 개최한다. 8월 7~9일에는 경기도 화성 아씨시 피정의 집에서 40세 미만 남녀를 대상으로 젊은이 몸 신학 피정을 준비하고 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몸의 신학’을 통해 성(性)과 사랑, 생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피정 강의는 이윤이 수녀가 맡는다. 문의 : 010-5313-0241 성 베네딕도 왜관 수도원은 7월 31일~8월 2일 제47차 수도 생활 체험 학교를 계획하고 있다. 2002년부터 시작한 전통 있는 프로그램으로 수도자의 삶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다. 고등학생 이상 40세 이하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한다. 문의 : 010-8353-2323제주도제주의 자연을 만끽하며 피정할 수 있다. 성 이시돌 피정의 집은 2월 이후 취소했던 피정을 최근 재개했다. 올레길 걷기, 미사, 기도, 강의로 이뤄진 제주 성 이시돌 자연순례 피정은 7월 31일~8월 2일, 8월 13~16일ㆍ25~27일 예정돼 있다. 문의 : 064-796-9181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가 운영하는 제주 면형의 집 피정 센터는 7월 19~21일ㆍ25~28일 자연 순례 피정을 계획하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을 지켜보면서 운영할 예정이다. 수도회 수사들과 함께 제주 성지를 순례하고 올레길과 오름을 탐방한다. 문의 : 064-756-6009 cpbc2020.07.07

스콜라 철학 신학자의 토론식 수업, 인문주의를 키운 토양이 되다[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23) ‘교단에서 가르치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 작가 미상, ‘교단에서 가르치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 프레스코화, 산타 마리아노벨라성당, 피렌체, 이탈리아 유럽 밖에서 십자군 전쟁이 한창이던 때, 교회 권력은 서임권 문제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지난한 힘겨루기를 하고, 수도회 중심의 학교에서는 새로운 철학 사상이 대두되고 있었다. 이 사상은 사실 9세기 ‘카롤링거 르네상스’ 시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샤를마뉴가 유럽 각지에 성당과 수도원을 세웠고, 도시의 교육과 문화가 그곳을 중심으로 형성되면서 시작되었다. 진리의 보관소로서 성경을 가르침에 있어 고대 그리스 철학을 활용하여 길게는 16세기까지 이어진 사상으로, 그리스도교 신학에 중심을 둔 철학적 인식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성당 혹은 수도원의 부속 학문기관인 스콜라(Schla)에서 가르쳤기 때문에 ‘스콜라주의’ 혹은 ‘스콜라 철학’이라고 했다. 철학, 신앙을 해석하는 도구 스콜라 철학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뿌리에는 그리스 철학자 플로티노스와 플라톤의 영향을 크게 받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있고, 11세기에 안셀무스가 등장한다. 안셀무스는 이탈리아 북부 아오스타에서 태어났지만, 후에 캔터베리의 대주교가 되었기 때문에 흔히 ‘캔터베리의 안셀무스’로 알려졌다. 그는 “하느님이 왜 인간이 되어야만 했는가?”라는 물음에서부터 진리, 자유의지, 악(죄), 삼위일체, 하느님의 속성 등에 대한 글을 남겼다. 그가 남긴 하느님의 실존에 관한 본체론적(本體論的) 증명-이것을 ‘안셀무스의 신존재 증명’이라고 함-은 이후 많은 철학자에 영향을 미쳤다. 스콜라 철학의 핵심은 신앙을 해석하는 도구로서 철학을 활용한 데 있었다. 11세기 도시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또 안셀무스의 활동에 힘입어 12~13세기에는 볼로냐, 옥스퍼드, 파리와 같은 수도원이 아닌 교사와 학생의 길드와 같은 형태의 대학이 새로운 교육체계로 자리를 잡아갔다. 대학들에서는 강의와 토론식 교수 방법이 채택되고, 교수 자격도 규정되었다. 13세기 탁발수도회로 탄생한 프란치스코회와 도미니코회는 이런 대학 조직을 운영하는 중심 역할을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유럽 밖에서는 십자군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고, 이슬람의 자극을 받아 방대한 그리스 사상가들의 작품이 라틴어로 번역되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중세 신학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소개되었고, 신학자들은 크게 동요했다. 이전까지의 플라톤주의에서 벗어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으로 신앙 체계를 확립하고자 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 정점에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토마스 아퀴나스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모두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교와 맞는 것만 인정하고 받아들였을 뿐, 그렇지 않은 것은 과감하게 무시했다. 이상주의에 집착하지 않고, 현실을 인정하는 데 크게 무게를 둔 것이다.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토마스 아퀴나스는 성경에서부터 시작하여 아리스토텔레스, 보에티우스와 같은 그리스와 로마 철학자들의 저작들을 주해하고, 아우구스티누스에서 안셀무스까지 모든 연구를 검토한 후,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의 신학, 철학의 주제들을 논쟁 형식의 방대한 논문으로 집필했다. 「신학대전」은 그렇게 탄생했다. 같은 시기에 또 다른 탁발수도회인 프란치스코회도 학문적으로 교회 안팎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아라비아 및 유다 철학의 이론을 받아들이면서도 중요한 신학 이론에 있어서는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을 고수함으로써 보수적인 경향을 보였다. 이 시기에 프란치스코회의 성 보나벤투라는 경험적 자연인식을 바탕으로 신적 조명설을 통해 신과의 직접적 일치를 말하는 신비주의를 주장했고, 옥스퍼드의 로저 베이컨(Roger Bacon) 등은 아리스토텔레스보다는 아라비아 자연과학자들의 광학사상(光學思想)을 받아들이는 급진적 경향을 보였다. 그런 점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전반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 전통을 지킨 중도파였다고 할 수 있다. 도미니코회 출신으로 스콜라 철학을 완성한 알베르토 마뉴(Albertus Magnus, 1193~1280)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스승이다. 그는 독일의 신학자, 철학자, 자연과학자로, 파리와 쾰른에서 가르쳤고, 레겐스부르크의 주교로 있으면서 아리스토텔레스, 아라비아와 유다, 신플라톤주의, 교부들의 저술로부터 많은 자료를 수집하여 당시의 철학 전반은 물론, 사변적인 신학과 성경해석 및 자연과학 등 방대한 저술 활동을 했다. 그를 두고 마뉴, ‘대(大) 알베르토’라고 부른 것은 그의 학문이 그만큼 폭넓고 보편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런 형태의 스콜라 학문이 유럽의 특정 지역에서만 발달한 것은 아니었다. 지역마다 다른 스콜라에서 발전했기 때문에 처한 현실이 달랐고, 필요성과 목적, 생각과 방법이 다른 특징들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가장 활발한 스콜라일수록 가장 보수적인 지식인과 가장 혁신적인 예술 분야 장인들과 과학자들 사이에서 갈등이 빚어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는데, 그것은 그만큼 학문이 역동적이었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하겠다. 시성 후 그린 제단화 소개하는 그림은 작가 미상의 ‘교단에서 가르치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성인으로 시성된 후 6개월 남짓 되었을 무렵에 그린 제단화로 추정된다.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대성당의 중앙 복도 좌측 세 번째 경당의 제단화다. 이 대성당은 도미니코 수도회가 설립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볼로냐에서 진출한 이래 지금까지 도미니코회가 자리를 잡고 있어 수도회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2020년 9월 7일은 도미니코회가 이 대성당에 자리를 잡고 재건하여 축성한 지 600년이 되는 해다. 그러다 보니 평소 공개되지 않던 많은 오래된 벽화(대부분 훼손됨)와 유물들이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이 벽화도 그중의 하나로 2018년에 발견되었다. 그림 속으로 작품 속에서 아퀴나스는 파리대학의 한 교단을 연상시키듯 있고, 학생들이 그 아래 있다. 이 그림과 마주하는 순간, 나는 오래전에 바티칸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때가 생각났다. 바티칸 도서관의 열람실에 앉으면 중앙 연단에 성 토마스 아퀴나스 동상이 있다. 나는 물론, 많은 저명한 학자들까지 그분과 마주한 학생으로 책을 대하게 된다. 바로 이 그림과 같이. 그림은 매우 단순하지만 시성된 직후에 그린 최초의 토마스 아퀴나스 초상화이고, 천사들이 들고 있는 다양한 상징들을 통해 성인의 방대한 신학적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 신학적 권위를 의미하듯 오른손은 들고, 왼손은 성경에 올려놓고 있는 점도 특징적이다. 학생들의 태도는 작가 미상의 이 작품이 대략 어느 화풍이고 작가가 어떤 성향인지를 짐작케 해준다. 학생들이 일관된 자세로 조용히 듣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역동적인 토론식 수업의 한 장면이라는 것과 여러 면에서 인문주의의 영향을 받은 작가의 작품임을 추정할 수 있다. 스콜라 철학스콜라 철학은 흔히 그리스도교의 교의 연구에만 초점이 맞추어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끊임없는 질문과 토론식 학문 활동으로 인해 이후 과학 발전에도 큰 자극을 주었다. 특히 사상적으로 두 개 학파가 거리를 두고 각자의 위치에서 나름의 과학적인 방법으로 학문의 길을 닦았는데, 하나는 알베르토 마뉴와 토마스 아퀴나스를 중심으로 한 파리학파로 이후 다양한 인문과학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고, 다른 하나는 로저 베이컨을 중심으로 한 옥스퍼드학파로 아리스토텔레스에 충실하면서도 현상을 통해 자연철학에 천착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진리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을 현실에 대한 인식과 결부시켜 재구성했고, 그의 형이상학적 기초 위에 천지만물, 곧 만유(萬有)를 포괄하는 체계를 갖추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제1동자(第一動者)’, 즉 ‘부동(不動)의 원동자(原動者)’를 만유의 창조 원인인 ‘신’으로 파악하였다. 그는 자연과 은총(Gratia)을 구별하면서도 아우구스티누스처럼 대립시키지 않고, “은총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완성한다”(gratia non tollit naturam, sed perficit)고 생각했다. 요컨대,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이 함께 깊이 접합되어 있으며, 이후 학문이 발전할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남겨두었다고 하겠다. 인문주의의 발전은 이런 토양 위에서 시대의 흐름을 타면서 발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혜경 (세레나,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이탈리아 피렌체 거주) cpbc2020.10.27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71·끝)에필로그<6>- 사도행전에 비춰본 바오로의 생애와 서간⑤](//cpbc.co.kr/CMS/newspaper/2020/07/rc/782431_1.1_titleImage_1.jpg)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71·끝)에필로그- 사도행전에 비춰본 바오로의 생애와 서간⑤열정적으로 복음 전한 ‘이방인의 사도’, 로마에서 순교하다 바오로 사도의 참수터에 세워진 로마 성문 밖 세 분수 성당의 전경. 사도행전은 바오로가 로마에서 2년 동안 셋집을 얻어 지내면서 복음을 전했다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 이후 바오로의 삶은 어떠했을까요? 또 바오로가 썼다는 나머지 서간들은 언제 쓴 것일까요? 이 부분을 간단히 살펴보는 것으로 사도행전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사도행전뿐 아니라 신약성경 어디에서도 바오로의 이후 삶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부분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만 1세기 말부터 전해오는 전승에 따르면 바오로는 로마에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가 언제 순교했는지에 대해서도 가설이 엇갈립니다. 2년의 가택 연금 기간(사도 28,30 참조)이 끝난 후 순교했다는 설이 있고, 2년 후 풀려났다가 멀리 스페인까지 선교하고 나서 로마에서 순교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바오로는 코린토에서 쓴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로마에 들렀다가 스페인에 가겠다고 두 번이나 언급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로마 15,24.28), 스페인 여행 주장을 무조건 배격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제4대 교황으로 초세기 교부인 로마의 클레멘스 성인이 코린토 신자들에게 쓴 편지에는 바오로가 로마 제국의 서쪽인 스페인에 가서 선교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런 전승을 토대로 스페인 동북부 항구도시인 타라고나에는 1963년 바오로 사도의 스페인 선교 1900주년을 기념하는 바오로 상이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만일 바오로 사도가 스페인에서 돌아와 로마에서 순교했다면 그 시기는 언제이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물음에 대해서도 확실한 답은 없습니다. 네로 황제가 64년에 로마에 불을 지른 후 화재의 책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뒤집어씌워 4년 동안 모진 박해를 자행했는데 그 박해 시기에 순교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가설을 종합하면 바오로 사도는 60년대에 곧 63~67년 사이에 로마에서 순교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성 베드로 대성전이 들어서 있는 바티칸 언덕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 베드로와 달리, 바오로는 로마 성 밖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바오로가 순교할 때 목이 떨어지면서 세 번 튀었는데 그 자리에 샘이 솟아났다고 합니다. 그곳에 바오로 사도의 순교를 기념하는 성당이 세워졌는데 로마 성 밖 ‘트레 폰타네’(세 분수) 성당입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의 유해는 로마 성 밖 성 바오로 대성전 중앙 제대 아래에 모셔져 있습니다. 한편 바오로는 로마에서 2년 동안 가택 연금 상태에서 지낼 때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과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을 집필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 두 서간이 바오로가 직접 쓴 친서라면 그럴 가능성이 커 보이지만, 학자들 사이에서는 두 서간 모두 바오로의 친서가 아니라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바오로가 에페소에서 쓴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을 두고서도 에페소가 아니라 로마에서 수감 생활을 할 때 쓴 것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필레몬 서간의 집필 연대는 61~63년 또는 바오로의 순교 직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연재를 마치며2019년 1월 초에 연재를 시작한 ‘사도행전 이야기’는 이번 71회로 마칩니다. 1년 6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사도행전 이야기’를 읽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독자 여러분께 드린 말씀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맡긴 복음 선포 사명을 사도들이 어떤 방식으로, 어떤 태도로 선포했으며, 그렇게 해서 형성된 교회의 삶이 어떠했는지, 또 그것이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보겠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연재를 계속하면서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것 같아 송구스러운 마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도중에 ‘정년퇴직’이라는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성령께서 이끌어 주신 덕분으로, 연재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오늘에 이르기까지 저의 삶 전체가, 특히 가톨릭평화신문 기자로서 지낸 30년 삶이 성령께서 이끌어 주신 덕분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0여 년 전, 제 앞날에 ‘기자’라는 단어는 존재조차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가톨릭 언론 매체의 기자가 되고 난 후 차츰차츰 기자의 길이 성령께서 이끌어 주신 길임을 깨달았습니다. 그 기자 생활의 마지막을 ‘성령의 역사하심’을 전하는 사도행전 이야기로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은 특별한 은총입니다. ‘사도행전 이야기’는 어떤 면에서 그 이전 2017년 2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91회에 걸쳐 연재한 ‘예수님 이야기’의 속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이야기’를 통해서 예수님은 누구이시고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음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자 했고, ‘사도행전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맡기신 ‘복음 선포’의 사명을 제자들이 어떻게 땅끝까지 전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취지가 독자 여러분에게 전달됐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일입니다. 복음이 선포되는 이야기(예수님 이야기)와 선포된 복음이 전해지는 이야기(사도행전 이야기)에 이어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 교리들이 형성되는 이야기(교리 이야기)까지 살펴보자는 것이 연재 과정에서 구상한 전체적인 기획입니다만, 이 마지막 이야기는 여러 사정상 다른 기회로 미룹니다. 연재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들이나 부족한 점들은 어떤 식으로든 바로잡고 보완해서 참고하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참고 자료 · 「주석 성경」,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신약성서 사도행전」, 분도출판사· 조셉 퀼징거 저, 박영훈 역, 「신약성서 영적 독서를 위한 사도행전」, 성요셉출판사· 정양모 지음, 「사도행전 이야기」, 성서와 함께· 정양모 지음, 「바울로 친서 이야기」, 성서와 함께· 「교부들의 성경주해 신약성경 VII 사도행전」, 분도출판사 · 이보 스토르니올로 지음, 김수복 옮김, 「사도행전 읽기」, 성바오로· 「신약성경 주해집 5 사도행전」, 도서출판 크리스찬· 엔리코 갈비아티·필리포 세라피니 지음, 이성근 옮김 「성경 역사 지도」, 분도출판사 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alfonso84@hanmail.net cpbc2020.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