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옻칠과 조각에 담긴 ‘영원의 숨결’이승원·안병철 초대전… 절두산·서소문 성지 박물관서 각각 개최 이승원 작 ‘인도하심’ 오랜 세월 수행하듯 작업해 온 두 작가의 신앙과 예술 세계가 서울대교구 내 성지 박물관에 나란히 펼쳐졌다. 이승원 작가 ‘영원을 향한 시간’ 이승원(마르타, 80) 작가 초대전 ‘영원을 향한 시간’은 절두산순교성지 내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관장 원종현 신부)에서 열리고 있다. 독일에서 정통 금속공예를 배운 작가는 1979년 귀국해 국내 금속공예 1세대 작가들과 함께 활동했다. 유학 시절부터 금속공예와 함께 모시·삼베·창호지·옻칠 등 우리나라 전통 소재에 관심을 두고 서구적인 조형미에 한국적인 정서를 이질감 없이 조화한 작업으로 주목받았다. 뉘른베르크 미술대학 아카데미상을 연속 수상했고, 1992년 국제 은공예 트리엔날레에서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성미술품 및 생활과 밀접한 작품들을 창작해 왔고, 공예에서 저변을 확장해 옻칠화 작업을 해왔다. 이승원 작가 초대전 '영원을 향한 시간' 전경. 이번 전시에서는 금속공예에서 출발해 옻칠을 매개로 영역을 확장해 온 작가의 작업 세계를 조명한다. 특히 신앙에 대한 성찰과 성경 묵상을 바탕으로 ‘영원’을 향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시간이 담겨 있는 작품들로, 옻칠화·설치·성물·금속공예 작품 총 60여 점이 소개된다. 옻칠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서양의 유화가 색을 칠하고 마르면 그 위에 또 다른 색을 덮어 전체적인 색채의 균형을 맞춘다면 옻칠은 바탕 효과를 예상하면서 칠을 반복한다. 유화는 색칠의 효과를 비교적 빠르게 확인할 수 있지만, 옻칠은 원하는 색을 내기 위해 칠을 하고 적절한 온도와 습도에서 며칠간 말리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이후 마지막 부분에서 표면을 사포로 갈아내야만 은은한 광택과 깊이감을 얻을 수 있다. 작가는 “수 개월 동안 수십 차례 칠하고 말리는 과정을 거쳐야 완성되는 옻칠 작업은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묵상을 반복하는 구도의 삶과 닮아있다”며 “겹겹이 쌓을수록 고운 색채에 옻 특유의 무게감이 드러나는 옻칠 작품처럼 우리의 기도가 켜켜이 쌓여 영원을 향한 깊이 있는 신앙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승원 작 ‘은총의 나무’ 관장 원종현 신부도 “시간과 재료의 축적이라는 옻칠 작업으로 창작된 작품을 통해 작품의 표면을 넘어 그 안에 축적된 시간과 신앙적 사유의 층위를 함께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덕성여대 생활미술과를 졸업한 작가는 독일 뉘른베르크 미술대학에서 금속공예를 수학했다. 원광대와 청주대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서울·의정부 가르멜 여자 수도원, 제주 성클라라 수도회 성당,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청량리성당,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등에 그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이승원 작 '마리아' 한편 작가는 이번 전시가 끝난 뒤 출품 작품과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작업한 성물과 금속공예품 등의 기증을 박물관 측과 협의하고 있다. 작가의 대표작이 포함돼 있어 교회 미술로서의 예술 가치와 전례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시는 6월 28일까지 이어진다. 휴관일인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9시 30분~오후 5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문의 : 02-3142-4504 안병철 작 ‘생명-영(影) XIX 4’ 조각가 안병철 ‘물성에서 생명으로’ 조각가 안병철(베드로, 69) 개인전은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서 개막했다. 전시 제목은 ‘안병철: 물성에서 생명으로’. 초창기 조각·입체 작품부터 최근의 한지 작업까지 40년에 걸친 작업 변천사를 전체적으로 조망한다. 1980~1990년대 한국 조각의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작가의 미공개 초기작을 시작으로 대립하는 두 세계 사이의 경계를 은유한 ‘문’ 연작, 자연·인간·순환의 질서를 탐구한 ‘생명’ 연작까지 폭넓게 아우른다. 부친인 1세대 근대 조각가 안찬주 선생의 작품도 최초로 공개한다. 안병철 작 ‘Flow of Life IV’ 작가는 철·스테인리스·브론즈·한지 등 전통적인 조각 재료의 물성을 지속적으로 탐구하며 미니멀하고 기하학적인 조형 언어를 구축해 왔다. 특히 형태를 단순화해 본질을 드러내는 그의 작업은 ‘생명의 기원’ 연작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생명-영(影)’ 작품은 모든 세부 묘사를 덜어내고 매끈하게 연마되어 잘 닦인 거울 표면으로 빛과 공간, 관람자를 끌어들이며 작품 안에 비친 관람자 스스로를 마주 보게 한다. 이를 통해 눈에 보이는 외형을 넘어 움트는 생명과 보이지 않는 에너지, 시간의 흐름이 빚어낸 순환의 흔적은 작품의 표면에 머무르지 않고 관람자의 감각과 내면에 스며든다. 작품을 통해 수행하는 수도자에 본인을 비유하기도 한 작가는 “작가와 작품은 서로를 비추며 결국 닮아가는 존재”라며 “자연의 이치와 섭리를 느끼고 배우며 깊은 성찰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향한 여정을 그려낸다”고 말했다. 안병철 작 '생명-기원 VIII' 서울대 미술대학과 동대학원에서 조소를 공부한 작가는 서울시립대 조각학과 교수 및 한국가톨릭미술가협회장을 지냈다. 1988년 경기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서울시립미술관, 포항시립미술관, 수원 올림픽기념조각공원 등에 그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이번 전시는 휴관일인 월요일을 제외하고 30일까지 매일 오전 9시 30분~오후 5시 30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문의 : 02-3147-2403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6.04.28

‘하느님의 말씀 주일’ 떠오르는 세 명의 성인예로니모, 대중 성경 보급 초석 안토니오, 사막에서 복음의 삶 프란치스코, 철저히 말씀 실천 ‘하느님의 말씀 주일’은 신앙생활에서 성경이 지니는 중요성과 가치를 일깨우는 날이다. 세상이 아무리 발전하고 삶의 형태가 변해도 복음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성경에 대한 교부들의 가르침과 성인들의 모범은 오늘날 신앙생활에도 기준점이 된다. ‘하느님의 말씀 주일’을 맞아 성경에 충실했던 성인들의 발자취를 되짚어본다. 마리누스 반 레이메르스바엘 작 성 예로니모. 출처=가톨릭굿뉴스 성경이 일반 사람들에게도 널리 보급된 데에는 성 예로니모(345~420)를 빼놓을 수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9년 9월 30일 자의교서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를 통해 연중 제3주일을 ‘하느님의 말씀 주일’로 선포했다. 교서가 반포된 9월 30일은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이다. 예로니모 성인은 성경의 본문 비판과 함께 라틴어 번역본을 만들어 오늘날 대중적인 성경이 보급되는 데 초석을 다진 위대한 학자다. 당시 대다수 서민들은 라틴어를 사용했지만, 성경은 일부 라틴어 부분 번역을 제외하고 모두 그리스어로만 쓰여있었다. 성인은 번역 작업을 완수하고자 탄탄한 라틴어 소양과 그리스어·히브리어 지식을 활용했다. 그의 번역은 히브리어 문체에 충실하면서도 라틴어의 우아함을 잃지 않았다. 그 결과 일반 신자들에게도 성경은 공동의 유산이 됐고, 동시에 신학 용어의 원형을 이루면서 서양 문화사를 특징짓는 기념비가 됐다. 그가 라틴어로 번역한 성경은 ‘대중적’이라는 의미의 「불가타」(Vulgata)라고 불리게 됐다. 성 안토니오 아빠스. “성경을 자주 읽으십시오. 그대의 손에서 거룩한 책을 절대 내려놓지 마십시오.” 신앙생활에서 무엇보다 성경의 중요성을 강조한 예로니모 성인의 권고는 1600여 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오늘날에도 울려 퍼지고 있다. 수도생활 역사의 시조라 불리는 성 안토니오 아빠스(251~356)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오로지 하느님께 희망을 둔 채 치열하게 복음을 살았다. 금욕생활과 철저한 고독 속에서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신앙으로 무장했던 성인은 수도생활을 방해하는 온갖 유혹과 싸우며 평생 주님만 따랐다. 성인의 일생은 ‘말씀’에 기초한다. 자기 보화가 하늘에 있음을 확신해 주님을 따랐고, 늘 성경을 신뢰하며 거기서 영감을 받아 힘을 얻었다. 성경에서 삶의 양식을 배웠으며, 영들의 식별 기술을 깨우쳤다. 제자들에게도 성경의 계명들을 마음으로 배우라고 권고했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 유혹을 극복했다. 기도는 하느님 말씀에 젖어드는 것이었고, 마귀의 유혹을 이겨내는 수단이었다. 이처럼 그의 참된 금욕 수행은 지속적인 기도, 성경에 대한 경청이었다. 아타나시우스는 “안토니오의 기억이 성경을 대신할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 프란치스코(1182~1226)는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하느님을 체험하고 성경 말씀을 접하면서 모든 재산을 버렸다.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마태 10,7-10) 그런 자신을 주교에게 고발한 아버지와도 작별을 고하면서 철저히 말씀을 실천에 옮겼다. 성인은 모든 소유를 포기하고 한센인을 비롯한 가난한 이들을 돌보며 형제들과 어디에서든 평화를 전했다. 옷은 낡고 거친 수도복 한 벌만 가지고, 음식도 주어진 대로 만족했다. 인준 받은 ‘수도규칙’ 제1장의 시작은 이렇다. “작은 형제들의 수도규칙과 생활은 이러합니다. 즉 순종 안에, 소유 없이, 정결 안에 살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복음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그대로 실천하며 미치광이 취급을 받았던 성인은 오상까지 얻으며 ‘제2의 그리스도’라 불리게 됐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박민규2025.01.22
![[생활속의 복음] 본래의 약함 그리고 성령](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1/14/USo1768355820582.jpg)
[생활속의 복음] 본래의 약함 그리고 성령연중 제2주일 요한 1,29-34 니콜라 푸생 작 ‘그리스도의 세례’, 1641~1642년. 자연계의 생존 법칙인 ‘약육강식’과 대비하여 ‘강자 앞에서 약하게, 약자 앞에서 강하게’ 처신하는 자세를 비꼬는 ‘강약약강’이란 신조어가 등장했다. 우리 사회는 재산·권한·능력·건강 등의 한시적 척도로 강자와 약자를 분류한다. 대부분 사람은 강자로의 진입을 인생의 최종 목표, 행복의 필수 요건으로 간주한다. 강자는 자신이 선점한 지위를 고수하려고, 약자는 강자 대열에 합류하려고 치열하게 노력한다. 강자와 약자의 구분이 부동의 이분법 구도로 고착되어 약자에서 강자로 변환할 수 없다는 체념은 다수의 약자에게 적지 않은 피해의식을 남긴다. 이 지점에서 인간은 본래 약자라는 사실을 부각할 필요가 있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보호 없이 생존할 수 없는 인간은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고통으로 번민하며 살아가다가 죽음의 문턱에서 약자로 생을 마감한다. 강자는 ‘본래의 약함’을 해소한 초인(超人)이 아니라, 본래의 약함을 그대로 간직한 채 시대와 문화가 설정해 놓은 상대적 척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사람이다. 무신론자는 본래의 약함을 단호히 부정하거나 한시적 지표의 우세가 본래의 약함을 보완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유신론자의 첫째 관문은 본래의 약함에 대한 긍정과 원초적인 보호의 필요성에 대한 수용이다. 자신을 방어할 힘이 없는 ‘약함’을 대표하는 어린양은 구약성경에서 속죄 예식의 번제물(탈출 29,39; 민수 28,9 참조)과 파스카 축제의 잔치 음식(탈출 12,5 참조)으로 사용되었다. 이 약한 어린양을 하느님께서 ‘목자가 팔로 모아 품에 안듯이’(이사 40,11 참조) 극진히 보살핀다. 곧 어린양은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을 드러내는 표지다. 어린양 개념을 도입하는 요한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발언을 통하여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한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 “흠 없고 티 없는 어린양 같으신 그리스도”(1베드 1,19)가 세상을 구원하였다. 세상의 죄를 없애는 ‘권능’(강함)과 ‘어린양’(약함)의 연결은 모순처럼 다가온다. 그런데 이성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역설(逆說)은 하느님의 자기 현현 양식이다. ‘전능한’(강한) 하느님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와 똑같은’(약한) 인간으로 태어나고 죽으심으로써 세상을 구원하셨다. 어둠 속에 빛으로 오신 성자 그리스도와 같이, 하느님의 전능성은 절대 강자의 권력 행사 방식이 아니라 ‘상호 대립’(강함-약함; 첫째-꼴찌; 높음-낮음)이 ‘상호 일치’(약함 안에 강함; 꼴찌 안에 첫째; 낮음 안에 높음)를 이루는 방식으로 발휘된다. 요한 복음은 ‘요한의 세례’와 ‘주님의 세례’를 ‘물의 세례’(본래의 약함에 대한 긍정)와 ‘성령의 세례’(보호·강화하는 하느님에 대한 확증)로 구분한다. 물의 세례는 성령의 세례를 준비하고, 성령의 세례는 물의 세례를 완성한다. 성령 하느님은 우리 모두가 지닌 본래의 약함 안에서 우리를 지탱하는 버팀목이며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은 성령의 보호하고 강화하는 은사를 ‘생명’과 연결한다.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나이다.” 성령의 세례는 본래의 약함을 긍정하는 이에게 생명(강함)을 선사한다. 2026.01.14

교회 공동체 안에선 모든 이가 동등한 형제[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88)필레몬에게 보낸 서간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은 바오로 사도가 도망친 종 오네시모스를 형제로 받아줄 것을 주인 필레몬에게 권고하고 있다. 성 필레몬과 아피아, 아르키포스 이콘. 바오로 사도 서간 가운데 가장 짧은 글이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이하 필레몬서)입니다. 이 서간은 이름 그대로 필레몬 개인에게 보낸 서간이지만, 콜로새에 있는 그의 집에서 신앙생활을 했던 가정 교회 신자들에게 보내는 서간이기도 합니다.(2절 참조) 아울러 이 서간은 바오로 사도가 직접 쓴 글로 인정받고 있는 일곱 서간 가운데 가장 뒤에 배치된 경전입니다. 그리고 필레몬서는 바오로 사도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썼기에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과 함께 ‘옥중 서간’으로 불립니다. 하지만 필레몬서가 정확히 언제 어디에서 쓰였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성경학자들은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 감옥에 있을 때 썼다면 55년께, 카이사리아에 갇혀 있었을 때면 58~60년께, 로마에서 옥중 생활을 했을 때라면 61~63년께 쓰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헬라어 신약성경은 ‘Προs Φιλημονα’(프로스 필레모나), 라틴어 대중성경 「불가타」는 ‘Ad Philemonem’,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으로 표기합니다. 헬라어 필레몬(Φιλημων)은 사랑하다란 의미의 동사 ‘필레오’(φιλεω)에서 나온 말로 우리말로 ‘사랑하는 이’라고 옮길 수 있습니다. 당시 프리기아(오늘날 튀르키예)에서 흔히 불린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는 아내 ‘아피아’와 아들로 짐작되는 ‘아르키포스’ 함께 살았습니다. 아르키포스는 콜로새 교회에서 특정 직무를 수행했습니다.(콜로 4,17 참조) 필레몬은 바오로 사도의 복음 설교를 듣고 회심해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됐습니다. 성경학자들은 바오로 사도가 콜로새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에페소에서 활발히 복음을 선포할 때 필레몬이 세례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후 그는 바오로 사도의 ‘사랑하는 협력자’(1절)이자 ‘동지’(17절)가 됩니다. 필레몬은 콜로새 교회의 주요 인사였습니다. 그는 바오로 사도가 자신을 위해 손님방을 하나 마련해달라(22절)고 부탁하고, ‘오네시모스’라는 종을 거느릴 만큼(16절) 부유했고 사회적으로도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오네시모스는 우리말로 ‘유익한’ ‘이로운’ ‘쓸모있는’이란 뜻입니다. 그는 필레몬의 집에서 물질적인 손실을 입힐 만큼 부정한 행위를 저지른 후 바오로 사도가 갇혀 있는 곳으로 도망쳤습니다.(18절) 하지만 필레몬은 바오로 사도의 권유로 그리스도인이 된 오네시모스를 복음을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줍니다.(21절 참조) 필레몬은 자기 집을 교회로 사용할 수 있도록 내어줘(2절) 신생 콜로새 교회의 성장을 적극 도와 신자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5-7절)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형제여, 나는 그대의 사랑으로 큰 기쁨과 격려를 받았습니다. 그대 덕분에 성도들이 마음에 생기를 얻었기 때문입니다”라고 칭찬했습니다.(7절) 16세기에 저술된 「로마 순교록」에 따르면 필레몬은 아내 아피아와 함께 네로 황제 시대(54~68년) 때 콜로새에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필레몬 축일은 11월 22일입니다. 필레몬서는 총 23절로 구성돼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필레몬서를 쓴 배경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서간 내용 정황상 필레몬의 종 오네시모스와 관련한 일 처리 때문에 쓴 것으로 추정됩니다. 필레몬 집에서 도망친 오네시모스는 바오로 사도를 만나 세례를 받고 협력자가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충실하고 사랑받는 형제”(콜로 4,9)라 인정할 만큼 오네시모스를 곁에 둡니다. 하지만 오네시모스는 자유인이 아니라 도망친 종의 신분이었기에 체포돼 감옥에 갇힐까 봐 늘 불안에 떨었습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당시 로마법에 따라 도망자를 은닉해 개인 재산권을 침해한 중범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오네시모스를 주인인 필레몬에게 돌려보내기로 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러나 오네시모스를 그냥 보내지 않고 그의 손에 필레몬에게 보내는 서간을 쥐여줍니다. 바오로 사도는 오네시모스를 자신을 맞아들이듯이 형제로 맞아 달라고 부탁합니다.(16-17절) 그러면서 “내가 말하는 것 이상으로 그대가 해주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라며 오네시모스를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줄 것을 은근히 요청합니다.(21절) 필레몬서는 초대 교회의 노예 제도에 관한 ‘복음의 관점’, 곧 그리스도교 가르침의 일면을 볼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여러 서간에서 주인과 종에 관한 관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1코린 7,20-24; 에페 6,5-9; 콜로 3,22─4,1) 바오로 사도는 근본적으로 노예제도를 반대하지 않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분리의 벽이 허물어져 더 이상 “종도 자유인도 없다”고 단언합니다.(갈라 3,28) 또 “형제애로 서로 깊이 아끼고, 서로 존경하는 일에 먼저 나서십시오”라고 권고합니다.(로마 12,10) 이렇게 바오로 사도는 노예제도를 직접적으로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교회 공동체 안에서 특히 전례 모임에서는 모든 이가 동등하며 서로 형제임을 확언합니다. “당시 노예제도는 누구도 문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복음은 그렇게 모든 사람이 당연시하는 비인간적 제도의 희생자인 노예들을 다른 눈으로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그러면서 강요하지는 않는다.(8-9절, 14절) 다만 믿음과 사랑으로(5절) 내 자신부터 변화하고, 또 그러한 변화가 불의한 사회 제도와 그 희생자와 관련하여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결론을 이끌어 내도록 인도한다.”(「주석 성경」 839쪽)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 선임2024.09.03

체장수 책 두 권이 바꾼 운명… 춘천 산골에 신앙공동체 일구다[빛과 소금, 이땅의 평신도] 춘천의 엄주언 말딩, 1920년 기적을 만들다 - (2) 체장수의 책, 엄말딩의 결심 춘천시 신북읍에 자리한 천전리 샘밭성당 전경. 이 지역은 박해를 피해 교우들이 교우촌을 이룬 곳이었고, 엄주언은 이곳을 왕래하던 체장수를 통해 신앙 서적을 접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천주실의」 「주교요지」 읽고 깊은 감명 어려서 영특했고 한학 익히며 성장 천진암 머물며 교리 배우고 세례 받아 돌아온 고향에서 냉대가 존경으로 화전 일구고 밤엔 교리·성경 가르쳐 ‘장차 큰일 할 사람’ 칭송이 자자 춘천, 자생적 신앙의 터전 앞선 연재에서 신유박해(1801) 이후 많은 천주교인이 춘천으로 숨어들거나 정착해 살았을 가능성과 그 증거로 정약용의 두 번의 춘천 여행을 살펴보았다. 그 정황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사례로 ‘황심 추국 사건’을 들 수 있다. 황심은 1797년부터 세 차례나 조선 교회의 서신을 북경 주교에게 전달했고, 1801년에는 배론에서 황사영을 만난 뒤 백서 사건에 연루되어 춘천에서 처형당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신유박해 때 황심이 가족과 함께 춘천 북산면 쪽으로 옮겨 살다가 화를 입었다는 점이다. 북산면은 이벽 후손들이 살던 천전리와 북쪽으로 맞닿은 지역이고, 마적산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산자락의 동네들이다. 즉 “춘천에도 교우들이 있었다”는 말이 전설처럼 떠도는 게 아니라, 박해의 서늘한 그늘이 실제로 이 산골까지 내려왔다는 뜻이 된다. 그들이 끝까지 신앙을 지켰는지는 알 수 없지만, 춘천이 자생적으로 신앙의 씨앗을 품어 온 터전이었음만은 분명해 보인다. 더구나 1880년대 춘천의 교우촌이나 공소를 언급한 기록에서 천전리 ‘샘밭’과 인근 지명이 반복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믿음은 꺼지지 않고, 오롯이 남아 있었던 셈이다. 운명적 만남: 체장수와 두 권의 책 이제 여기서 평신도 엄주언의 삶이 어떻게 시작될 수 있었는지가 비로소 설명된다. 곰실본당(1920)을 ‘춘천 천주교의 출발점’으로만 부르는 말이 얼마나 성급한지, 그 말의 뒤에 숨은 시간의 층이 얼마나 두꺼운지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 두꺼움 위에 우뚝 선 사람이 엄주언(嚴柱彦, 마르티노, 1872~1955)이었다. 엄주언의 출생은 기록과 기억이 서로 어긋난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는 1873년 1월 8일(음력 1872년 12월 10일) 태어났고, 출생지도 한동안 동면 장학리 노루목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후손들의 증언을 통해 서면 월송리 출생으로 알려지면서 ‘어디서 태어났는가’의 좌표가 흔들렸다. 나는 이 흔들림이 오히려 진짜 같다고 느낀다. 박해의 끝물, 가난한 농촌, 평신도의 신앙의 길은 늘 공식 문서보다 구전과 가족 기억에 더 많이 기대어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한 가지는 비교적 고르게 전해진다. 그는 어려서 영특했고 한학을 배우며 글에 기대어 자랐다는 점이다. 그의 내면을 바꾼 결정적 계기는 열아홉 무렵에 찾아온다. ‘체장수’의 권유로 「천주실의」와 「주교요지」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쯤 멈칫하게 된다. 어떻게 일개 체장수가 그런 책을 품고 다녔을까. 그리고 그 위험한 책을, 하룻밤 묵어가는 주인집 젊은이에게 선뜻 권할 수 있었을까. 이 의문은 앞에서 살핀 ‘춘천의 오래된 교우촌’이라는 배경을 놓고 보면 조금씩 풀린다. 천전리 샘밭과 인근에 교우촌·공소의 흔적이 이어져 왔다면, 천주교인이었던 체장수는 그 지역과 왕래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월송리는 천전리와 멀지 않고, 북한강이 사이에 있었지만 충적지와 옥산포에서 배를 통해 쉽게 오가던 지척이었다. 장터와 마을을 잇는 길 위에서, 책 한 권은 때때로 사람보다 더 멀리 이동한다. 체장수는 그 길을 가장 자주 걷는 타인이었다. 툇마루에 앉아 체를 손보며 세상 소식을 엮는 사람, 어느 날은 체 대신 얇은 책 두 권을 봇짐에서 꺼내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 엄주언이 느꼈을 충격은 전승 속 탄식 한 줄로 남아있다. “세상 부모도 공경 못 하면 불효의 죄를 짓는 것인데,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 인간을 지으신 천주님을 모르고 미신을 섬기며 살아왔으니 이를 어쩌면 좋은가!” 이 문장은 묘하게 낯익다. 남인 선비들이 서학을 ‘지식’으로 접하다가 어느 순간 ‘신앙’으로 넘어가며 삶이 통째로 흔들리던 그 전환과 닮았기 때문이다. 특히 정약종의 「주교요지」는 한글을 읽을 줄 아는 이들에게 빠르게 길을 열어준다. 책은 머리를 설득하는 게 아니라 마음을 붙잡아 끌고 가기 때문이다. 「천주실의」. 엄주언 등과 같은 초기 신앙인들은 「천주실의」,「주교요지」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은 뒤 신앙 공동체 형성에 기여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마음 속 성지 천진암에 가다 그 뒤로 엄주언은 아마 체장수를 기다렸을 것이다. 봇짐에 체만 담은 사람이 아니라 질문과 답을 담아 다니는 사람, 어쩌면 스승이자 인도자였을 것이다. 이야기들이 쌓일수록 젊은 마음은 ‘보고 싶다’는 쪽으로 기울었을 것이다. 신앙이 자라나면, 신앙은 발 딛고 설 자리를 찾는다. 신과 관련된 장소(천진암), 사람(이벽과 정약용 형제들), 그리고 흔적들 말이다. 그래서 그는 결국 천진암으로 향한다. 1891년 무렵, 엄주언은 직접 천진암을 방문했다. 한때 천주교의 요람으로 기억되었으나 박해가 거세지던 당시 스님들까지 처형당하고 폐찰된 채 방치되었던 곳이다. 그 ‘마음속 성지’가 현실의 길로 다시 열리기 시작한 건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 이후, 신앙의 자유가 일정 부분 허용되면서부터다. 엄주언이 천진암을 찾을 수 있었던 것도 그 역사적 ‘틈’ 덕분이었다. 이후 그는 천진암으로 이주하자고 가족에게까지 제안했으나 두 형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하지만 몇 해 뒤 반대하던 두 형이 세상을 떠나자, 1893년 그는 맏형과 함께 천진암까지 두 발로 걸어가 한 달을 머물며 교리를 배운다. 그해 늦가을에는 막 가정을 꾸린 아내 윤희자(아가타)를 포함한 가족 7인을 이끌고 아예 천진암으로 터전을 옮긴다. 가족들은 움막 같은 거처에서 어렵게 신앙생활을 이어갔다고 전한다. 여기서 하나의 논쟁점이 남는다. 엄주언의 영세(세례) 시기와 집전 사제 문제다. 전승에는 1894년 엄주언이 형과 함께 프랑스 사제 ‘목’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다만 1894년 당시 성이 ‘목’인 프랑스 선교사를 특정하기는 어렵다. 이를 리굴로(A. P. Rigoulot, 목) 신부와 연결하는 추정도 있으나, 그는 1897년 9월 26일 사제품을 받고 1898년 1월 5일 입국했기에 1894년의 집전과 맞지 않는다. 따라서 영세 시기가 1894년이 맞는다면 집전자는 리굴로가 아닌 다른 선교사였을 수 있다. 그동안 두세(C. E. Doucet, 정가미) 신부일 가능성도 거론되었으나, 개인적으로는 산간 전교 활동과 1890년대 전후의 행적을 고려할 때 조제프 알릭스(Josheph Alix, 한약슬) 신부가 세례를 줬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불분명함이 그의 삶을 흐리게 하진 않는다. 누가 세례를 줬는가보다 더 중요한 건 ‘그가 왜 그 길을 택했는가’이기 때문이다. 냉대 이겨내고 고향 춘천에 정착 엄말딩은 천진암에서 3년을 보낸 뒤 고향 춘천으로 돌아오지만 기다린 것은 환대가 아니라 ‘천주학쟁이’라는 냉대였다. 거처를 장학리 노루목으로 옮겨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처가 친척의 도움으로 대룡산 자락 고은리 윗너부랭이의 폐가를 사서 이주한다. 쌀 한 가마, 콩 두 가마를 빌려 연명하고, 떡갈나무 잎을 따 죽을 쑤어 먹으며 화전을 일구었고, 이웃의 놀림과 수모도 견뎌야 했다. 그런데도 그는 무너지지 않는다. 금주하며 근검하게 살았고, 밤이면 글을 아는 이들을 모아 교리와 성경을 가르쳤다. 한학을 배운 사람의 힘은 지식이 아니라 ‘매일의 습관’으로 드러난다. 생활이 곧 설교가 되고, 절제가 곧 신앙의 언어가 된다. 시간이 쌓이자 사람들은 그를 대할수록 존경을 품기 시작했다. ‘장차 큰일 할 사람’이라는 칭송이 늘어났다는 전언이 괜히 나온 건 아니었던 것이다. 곰실의 첫 씨앗은 거대한 성당이 아니라 이런 습관과 생활에서 시작되었다. 엄주언은 단지 ‘신자가 된 사람’이 아니라, 신앙을 공동체의 형식으로 끌어올린 사람이었다. 책으로, 이야기로, 발걸음으로 옮겨 다니던 믿음이 마침내 춘천의 한 산골에서 ‘삶의 방식’으로 싹튼 것이다. 그리고 그 싹은 굵은 줄기가 되어 공소라는 이름과 강당이라는 공간을 얻고, 마침내 문서 속 역사로 자리를 잡게 된다. <계속> 이현준(프란치스코, 한림대 강사)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가톨릭평화신문 공동기획cpbc2026.03.03
![[특별기고] “기술혁신의 주인은 인류”… 교황은 ‘사랑의 문명’을 건설하자 했다](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6/02/tiW1780360450650.jpg)
[특별기고] “기술혁신의 주인은 인류”… 교황은 ‘사랑의 문명’을 건설하자 했다레오 14세 교황 첫 회칙 「고귀한 인류」 톺아보기 (김태오 신부) 레오 14세 교황이 5월 25일 바티칸에서 회칙 「고귀한 인류」를 직접 발표하고 있다. OSV AI 시대, ‘사랑의 문명’을 재건하는 인간의 소명 레오 14세 교황의 첫 회칙 「고귀한 인류」(Magnifica Humanitas)가 5월 25일 교황과 주요 참석자들이 함께하는 가운데 바티칸 새 시노드 홀에서 반포되었다. 「고귀한 인류」는 레오 13세 교황의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135주년을 맞이한 지난 5월 15일에 서명되었고, 25일 공개 발표회와 함께 반포됐다. 공개발표회는 교황청 신앙교리부 장관 마누엘 페르난데스 추기경, 안나 로울랜즈(영국 더럼 대학교 신학자) 교수, 크리스토퍼 올라(미국 AI 기업 앤트로픽의 공동 창업자), 레오카디 루숌보(캘리포니아 산타 클라라 대학교 예수회 신학대학원 정치신학 및 가톨릭 사회학) 교수, 교황청 온전한인간발전촉진부 장관 마이클 체르니 추기경 순으로 발표가 진행되었다. 이번 회칙은 AI와 인간 존엄 관련 그리고 세계 평화문제에 대한 교회의 대응을 다룬 첫 사회 회칙이다. 그 배경에는 오늘날 인공지능(AI)과 디지털 혁명이 인간 삶 전체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는 “새로운 것들(res novae)”에 직면한 인류에 대한 깊은 위기의식이 놓여있다. 이번 회칙의 주요 내용은 소주제에 명시된 것처럼 “인공지능 시대 인간존재 보호함(On Safeguarding the Human Person in the Time of Artificial Intelligence)”이다. 교황은 첫 회칙 공개발표회 마무리 발언에서 AI가 현대 사회에 미치는 위험요소에 대한 자신의 무거운 책임감을 표명하면서 다음 두 가지를 강조하였다. 하나는 ‘AI를 무장해제(disarm)하는 것’이다.(회칙 110항 참조) 무장해제라는 강력한 언어를 교황이 선택한 이유는 AI 시대에 인류를 보호해야 하는 필요성이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이다. 교황은 AI 시대에 기술을 가진 권력자가 자동으로 통치권을 갖는 것을 거부한다는 의미에서 무장해제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리고 AI는 누구든 환영할 수 있고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AI의 무장해제라는 말을 사용한다. 따라서 교황의 AI 무장해제는 기술을 독점적 통제에서 해방하고, 토론 가능하고 접근 가능한 인간 친화적으로 만들자는 의미다. 예로, 평화와 인류를 위한 핵 군축과 공동이익을 위한 핵에너지의 공동사용이다. 교황이 강조한 다른 하나는 AI가 ‘인류의 건설현장(constructive site)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AI는 공동선을 건설하고 사랑의 문명(civilization of love)을 재건하는 ‘역사의 건설현장(constructive site)이 되어야 하는 것’이 교황의 목소리다.(회칙 90항 참조) 교황은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느헤미야 이야기처럼, 모든 이가 함께 벽돌 하나하나를 쌓는 역할을 수행하는 정의로운 공존을 이루자고 했다. 마지막으로 교황은 AI 시대에 소수의 특권층만이 아닌 인류 공동의 집을 위한 미래를 함께 건설하고,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마니피캇의 성모님을 찬양하면서 발언을 마쳤다. 레오 14세 교황이 5월 25일 발표한 회칙 「고귀한 인류」. OSV 회칙의 구성 및 내용 회칙의 구성은 전체적 맥락을 요약한 서론과 결론, 그리고 본문 5장을 합해 총 5장 245개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장의 전개가 매우 진솔하고 세부적이며 논리적이다. 먼저 제1장은 교회의 사회 교리가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개괄적으로 제시하고(17~24항), 레오 13세 교황부터 현재에 이르는 사회 교리 전통을 재조명하면서(28~45항), AI 시대 또한 교회가 외면할 수 없는 새로운 현실임을 밝힌다. 사회 교리는 고정되고 정체된 매뉴얼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발전하는 “복음에 충실한 역동적 성격(dynamic character)”이다.(45항) 제2장은 먼저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인 인간 존엄성을 바탕으로 살아있는 실체와 같은 사회 교리의 기초와 원리를 설명하며(46~58항), AI 시대의 “새로운 것들(new things)”을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회 교리의 핵심 원리들을 다시 정리한다(59~81항). △공동선(common good) △재화의 보편 목적(universal destination of goods) △보조성(subsidiarity) △연대성(solidarity) △사회정의(social justice)다. 회칙의 주요 내용은 제3장과 제4장에 있다. 제3장에서 교황은 기술 관료적 패러다임(technocratic paradigm)의 지배가 점점 커지는 위험을 분석하며(92~96항), 기술혁신을 이끌어야 하는 인간의 주체성(지성, 양심, 자유 등)을 강조한다. 현재의 AI 시스템은 ‘만들어진(built)’ 것이라기보다 ‘배양된(cultivated)’ 것에 더 가까워(98항)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다. 한마디로 AI는 “가치 있는 도구이지만 경계심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AI 사용에 대한 책임성, 투명성, AI 거버넌스는 명확한 기준과 실질적 감독 아래 이루어져야 하며(108항), 앞서 언급한 AI ‘무장해제’의 필요성을 주장한다.(110항) 마지막 부분은 우리 마음에서 투쟁하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두 도시와 두 사랑(Two cities and two loves)”을 언급한다. “두 사랑이 두 도시를 세웠다. 곧 하느님을 멸시하기에 이르는 자기 사랑이 지상의 도시를 세웠고, 자기 자신을 멸시하기에 이르는 하느님 사랑이 하늘의 도시를 세웠다.” 레오 14세 교황이 5월 15일 회칙 「고귀한 인류」에 최종 서명하고 있다. OSV 제4장은 공동선으로서 진리·노동·자유의 보존을 강조하며, 전환의 시대에 사회 주요 분야에서 추진해야 할 인간 중심적 AI 활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AI 시대에 교육·노동·어린이·노동시장·금융·경제·가족과 청년 등 각 분야에서 야기될 수 있는 중요한 위험 요소들을 분석하고 나아가 해법을 제안한다.(139~169항) 또 의존성과 상업화로부터 인간의 자유가 보호되어야 함을 강조하면서 교황은 과거의 노예제에 대한 용서를 청한다.(176항) 마지막 부분은 디지털 경제에 의한 새로운 형태의 노예제에 대한 규탄이며, 우리 모두의 공동 책임(제도·기업·중간조직·시민)이 강조된다. 제5장은 평화와 사랑의 문명에 관한 전망으로 나아간다. 교황은 AI 군비경쟁과 자율살상무기 개발을 강하게 경고하면서 ‘힘의 문화’가 아니라 ‘사랑의 문명’을 재건해야 한다고 촉구한다.(182~211항) 교황은 회칙 서론에서 언급했던 성경적 이미지의 두 가지 상반된 길을 비교하면서, 권력과 교만에 의지하여 바벨탑을 쌓으려는 유혹에서 벗어나 느헤미야 시대처럼 인내하고 함께하면서 인간성과 공동선을 지키자고 요청한다. 결국 이번 회칙은 우리 모두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무엇을 만들 것인가? 또 어떤 인간으로 남을 것인가? 레오 14세 교황이 언급한 바벨탑인가 아니면 느헤미야의 성벽 쌓기인가? 또한 힘의 문화를 만들어 나갈 것인가, 아니면 사랑의 문명을 건설할 것인가? 김태오 신부(마리아수도회, 목포가톨릭대 교수)cpbc2026.06.01

책꽂이 _ 사람 관계에 도움 될 만한 책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했다. 자고로 가정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지는 법. 가정의 달을 맞아 스스로는 물론이고 가족·이웃들과의 관계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을 골라봤다. 일상을 새롭게 바꾸려면 / 안셀름 그륀 신부 / 황미하 옮김 / 성서와함께 2025년도 3분의 1이 지났다. 오래전에 작심삼일로 잊힌 새해 다짐은 차치하고 일상에서 반복되는 문제들에 사로잡혀 무기력함을 느낄 때가 많을 것이다. 영성가 안셀름 그륀 신부는 되풀이되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온화한 해결책을 제안한다. 몸과 마음이 지쳤을 경우 회복이 필요한 지점부터 살펴보라고 권한다. 휴식이 필요한 이에게는 잠을 자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일의 가치를 알려 주고, 집중해서 일하고 싶은 이에게는 질서를 세우거나 행동력을 높이는 구체적인 방법을 소개한다. 일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커다란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택하라고 조언한다. 이를 위해 장마다 끝 부분에 저자의 제안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어렵지 않은 방법들을 함께 실었다. “일을 마치면 그 문을 닫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래야 집 안의 문들도 열리고 새로운 공간으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바깥일의 ‘문’을 닫지 않는 사람은 늘 일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는 영혼에 해롭습니다.”(159쪽) 산티아고 순례길 / 김아라·김창현 / 눈빛 산티아고 순례길은 ‘한 번도 못 간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 본 사람은 없다’고 하던가. 이번 책은 부녀가 함께 엮었다. 2022년 봄과 2023년 가을, 홀로 산티아고의 모습을 담은 아버지의 사진에 딸이 글을 쓴 형식이다. 서로 이해하기 힘든 이른바 ‘꼰대 세대’인 아버지와 ‘MZ 세대’인 딸이 작업하는 동안 이해의 폭을 넓히고, 가족의 죽음과 상실로 겪은 방황과 갈등을 서서히 극복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사진을 찍은 아버지 김창현(아가피오)씨는 역사가 및 사진가이고, 글을 쓴 딸 김아라씨는 ‘마음과사람 상담소’ 소장이다. 만화 신약 성경 1·2 / 황중선 / 바오로딸 어린이들을 위한 「만화 신약 성경」이 출간됐다. 마태오·마르코·루카·요한 네 복음서의 이야기를 골고루 실었고, 읽기 쉽고 재미있게 편집했다. 성경을 담았지만 글자보다 그림이 많고, 등장인물의 표정과 장면의 색감이 다채롭다. 총 2권으로, 1권에서는 예수님의 탄생 예고부터 유년시절·공생활·가르침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2권에서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수난과 죽음·부활이 전개된다. 사도행전 내용도 함께 수록돼 예수님 승천 후 사도들의 활약상과 사도 시대의 교회에 대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만화애니메이션 예술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재미있는 성경만화」(전 8권) 「굴뚝으로 들어간 니콜라오」 등의 책을 펴냈다. 바람타고 머물러요 / 임현아 / 레벤북스 「바람타고 머물러요」는 알 수 없는 힘이 인도하는 인생의 여행길에서 만남의 소중함을 담은 책이다. 꽃과 별, 부엉이와 거북이, 곰과 사슴 등이 등장하는 동화책 같지만 내용이 단순하지는 않다. 책 속의 ‘바람’은 진정 원하는 ‘바람(꿈)’을 상징하고 ‘별’은 소중한 ‘인연’들이다. 저자가 어릴 적 경험한 사랑과 이별을 서정적인 언어와 시적인 그림으로 표현했다.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책의 내용을 영문으로 함께 수록했다. 윤하정 기자윤하정2025.05.07

예루살렘 피자발라 추기경, “전쟁에 하느님 이름 쓰는 중죄 범하지 말라” 경고미 국방부, 전쟁 정당성 부여에 시편 구절 인용 성지 이스라엘의 대표 교회 지도자인 예루살렘 라틴총대교구 피에르바티스타 피자발라 추기경이 전쟁 정당화에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OSV 예루살렘 라틴 총대교구 피에르바티스타 피자발라 추기경이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중대한 죄에 해당한다”며 “하느님은 분쟁 속에 고통받고 죽어가는 이들과 함께 계시지, 종교를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는 이들과 함께 계시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미국 가톨릭 매체 OSV News에 따르면, 피자발라 추기경은 15일 국제 오아시스 재단이 주최한 웨비나 연설에서 이같이 밝히고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느님 말씀을 이용하는 거짓 언어를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란 전쟁 발발 이후 피자발라 추기경이 전쟁과 관련한 발언을 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피자발라 추기경이 이처럼 강력 경고하고 나선 것은 하느님의 이름을 빌려 성경 메시지로 미국이 전쟁의 정당성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미 국방장관 피트 헤그세스는 10일 국방부 브리핑에서 전쟁 상황을 전하면서 시편 144편 1절 “나의 반석이신 주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내 손에 전투를, 내 손가락에 전쟁을 가르치시는 분”을 인용해 발언했다. 피자발라 추기경은 “만약 이 전쟁 안에 하느님이 계신다면, 그분은 중동 전역에서 죽어가고 고통받고 아파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억압받는 이들 가운데 계시다”면서 “이 분쟁에는 종교적 색채가 있지만, 그것은 조작된 것이며, 종교를 끌어들이려는 이들은 하느님의 이름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거듭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동에서 수십 년간 이어진 폭력이 “오늘 우리가 처한 인간적 파괴 상태”를 낳았다고 말했다. “폭력 위에 세워진 것은 결국 사라집니다. 그것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동시에 그것은 주변에 공허를 만들어냅니다. 두려움, 원한, 증오. 이는 그리스도교 언어로 말하면 죽음의 세계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넘어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피터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이 최근 브리핑에서 시편 구절을 인용해 전쟁 발발의 정당성을 부여했다. OSV 피자발라 추기경은 또 오늘날 전쟁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는 데 언론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정보 또한 “분쟁의 일부”라고 표현했다. 그는 “기자의 역할은 단순히 뉴스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독자가 상황을 이해하도록 도와야 한다”면서 “가능한 한 정확한 해석을 제공하거나 최소한 비판적 시각을 형성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레오 14세 교황도 피자발라 추기경의 발언 이튿날 언론을 향해 “특히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전쟁과 같은 비극적인 상황에서는, 언론이 선전 도구가 되는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며 전쟁 ‘선전’을 반복하거나 권력자의 ‘대변자’가 되지 않도록 뉴스를 검증할 것을 촉구했다. 계속되는 폭격으로 무너진 아파트 앞에서 한 이란 여성이 망연자실한 채로 잔해 더미 위에 앉아있다. OSV 피자발라 추기경은 또 가자지구 상황도 낱낱이 전했다. 가자지구를 둘러싼 정보 차단 현실과 함께 인도주의적 상황이 여전히 심각하다고 말했다. 약 200만 명이 피란 상태에 있으며, 영토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기본적인 항생제를 포함한 의료 물자가 부족하다고 호소했다. “가자는 잊혀졌지만 상황은 여전히 절박합니다. 서안지구에서는 거의 매일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 주민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200만 명의 피란민이 모든 것을 잃은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자지구의 80%는 파괴된 상태이며 재건은 시작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36개의 병원이 부분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약품이 부족하고, 항생제조차 없습니다.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하수구 같은 환경에서 살고 있으며, 사진으로는 그 냄새를 전달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이후 현재 200만 명이 넘는 이재민이 피난민으로 전락한 가운데, 한 팔레스타인 어린이가 피난 텐트가 밀집한 집에서 슬픔에 젖어있다. OSV “이 비극적인 상황이 언제 어떻게 해결될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는 일종의 악순환입니다. 하마스가 무기를 내려놓지 않으면 이스라엘은 철수하지 않을 것이고, 이스라엘이 철수하지 않으면 하마스는 무기를 내려놓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교착 상태에 있습니다.” 한편 예루살렘 포스트는 16일 미사일과 요격체 파편이 예루살렘 구시가지 일대, 유다인 구역, 통곡의 벽 인근에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이정훈2026.03.19
![[시사진단] 자기 돌봄이 필요한 시대](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05/06/vlE1746515454670.jpg)
[시사진단] 자기 돌봄이 필요한 시대한정란 (베로니카, 한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2024년 2월 헌법재판소는 태아 성별 고지를 금지한 의료법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며 부모가 태아의 성별을 알 권리를 보장했다. 그동안 성별 고지를 막아온 배경에는 오랜 남아선호 문화가 있었다. 상속이나 제사와 같은 중요한 집안일을 아들, 특히 장남에게 의존하는 전통은 자연스럽게 아들을 선호하는 문화로 이어졌다. 딸은 결혼과 동시에 다른 집안의 사람이 되는 ‘출가외인’으로 여겨진 반면, 아들은 재산을 상속받고 부모의 노후를 책임지는 역할을 맡았다. 성경에서도 ‘장자권’은 두 몫의 상속권과 영적 통치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제는 아들을 얻을 때까지 아이를 낳는 부모도, 노후를 자식에게만 의지하는 부모도 찾아보기 어렵다.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자녀와 동거를 희망하는 비율은 1/4에 불과했으며, 그마저도 ‘장남’(19.0%)보다는 ‘형편이 되는 자녀’(42.3%)나 ‘마음이 맞는 자녀’(24.9%)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노인들 스스로 장남이나 아들에게 의지하는 노후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았음을 보여준다. 실제 노인 절반 이상이 부부만 함께 살고, 1/3은 홀로 살고 있다. 그리고 합계출산율이 0.7~0.8명대에 불과한 추세가 지속되면 미래 노인세대의 현실은 더욱 가혹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최근 ‘자기 돌봄(self-care)’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노년의 시간이 길어지고, 자녀나 가족이 아닌 스스로 노후를 돌봐야 하는 시대에 자기 돌봄은 필수적이다. 자기 돌봄은 단순히 자신을 챙기는 수준을 넘어 삶의 전 영역에서 건강과 안녕을 추구하며, 질병 발생 시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생활 태도를 의미한다.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노년으로 살아가야 하는 오늘날, 자기 돌봄은 자녀나 국가가 대신해 줄 수 없는 개인의 역량이다. 자기 돌봄은 크게 네 가지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신체적 돌봄’으로, 적절한 영양 섭취와 규칙적인 운동, 충분한 수면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다. 둘째는 ‘심리 정서적 돌봄’으로, 충분한 휴식과 적극적인 여가활동을 통해 내면의 긴장을 해소하고 정서적 안정을 회복하는 것이다. 셋째는 ‘관계적 돌봄’으로, 가족을 넘어 이웃과 공동체 안에서 지지적인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고립되지 않고 사회적 유대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마지막은 ‘영적 자기 돌봄’으로, 기도와 명상, 자기 성찰,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내적 평안을 찾고, 자신의 가치와 신념에 맞는 삶을 실천하는 것이다. 나아가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삶의 목적을 재발견하고 그 신념에 따라 살아가는 실천적 태도를 포함한다. 영적 자기 돌봄은 신앙인뿐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돌봄의 영역이다. 독거노인 200만 명을 넘어선 100세 시대, 우리는 더 이상 자녀나 타인에게 기대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보고 책임지는 삶을 준비해야 한다. 자기 돌봄의 여정은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절대자 하느님의 자비에 기대는 데서 시작된다. 신앙 안에서 나를 정성껏 돌보는 일은 내 안에 머무시는 주님을 소중히 모시는 일과 같다. 나의 신앙적 가치와 삶의 태도를 점검하며,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진정한 자기 돌봄,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맞이할 노년을 복된 시간으로 바꾸는 가장 확실한 열쇠다. 한정란 베로니카(한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cpbc2026.01.20
![산 자를 위한 위로의 레퀴엠 [류재준 그레고리오의 음악여행] (83)](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05/07/fdT1715067341708.jpg)
산 자를 위한 위로의 레퀴엠 [류재준 그레고리오의 음악여행] (83) 연중 제3주일은 ‘하느님의 말씀 주일’이면서 ‘해외 원조 주일’이다. 한국 가톨릭교회는 1992년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를 통해 힘들고 고통받는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촉구하고자 오늘의 2차 헌금을 해외 원조 기금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국경과 민족, 문화와 종교를 넘어 모든 인류가 하느님 안에서 한 형제자매임을 고백하며, 특히 개발도상국과 분쟁·재난 지역에 있는 이웃들을 위한 기도와 실질적인 도움을 요청한다. 핵심은 단순한 동정이나 일회성 시혜가 아니다. 문제를 연대(solidarity)와 공동 책임의 차원에서 바라보도록 초대하는 데 있다. 이는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복음을 삶으로 실천하는 길이며, 부유한 교회와 가난한 교회가 서로 돕고 연결되어 있음을 체험함으로써 ‘보편 교회의 일치’를 살아내는 방식이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신자로서 보다 정의로운 세상을 향한 책임을 자각하게 하는 것 또한 해외 원조 주일의 중요한 목적이다. 세속적으로 부유한 이들이 가난한 이들을 일방적으로 돕는 날도 아니다. 주님을 같이 믿는 형제자매들에게 주님의 뜻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 그들이 하느님께 간절히 바쳐온 기도가 현실이 된다. 그리고 그들의 깊어진 신앙과 감사의 기도는 주님 안에서 우리 역시 함께 받는 숨겨진 선물이 된다. 종교와 문화, 인종이 다른 이들에게 건네는 작은 정성이 그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작은 기쁨이라도 채워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보답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가 흔히 듣는 ‘레퀴엠(Requiem)’은 죽은 이를 위한 음악이다. 레퀴엠은 가톨릭 장례미사에서 불리는 통상문과 고유문을 바탕으로 한 음악 형식을 말한다.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모차르트의 ‘레퀴엠’이다. 비밀스러운 작곡 위촉과 작곡가의 비극적인 죽음이라는 드라마틱한 배경 속에서 탄생한 이 작품은 미완으로 남은 부분을 제자 쥐쓰마이어가 완성했음에도 역사상 최고의 레퀴엠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모차르트의 레퀴엠과 쌍벽을 이루는 작품이 바로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이다. 라틴어 대신 독일어 성경의 가사를 사용한 이 작품은 다른 레퀴엠과 달리 죽은 이를 위한 음악이라기보다 고통받는 살아있는 이들을 위한 공감과 위로를 담고 있다. 브람스는 인간의 상실과 슬픔 앞에서 심판·저주·공포의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음악의 시작과 끝을 모두 살아있는 이들을 향한 위로로 채웠다. 브람스의 음악은 흔히 절대음악, 낭만적인 선율, 풍부한 화성, 그리고 클라라 슈만과의 길고 열렬한 사랑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언제나 힘든 이웃에 대한 깊은 관심과 배려가 자리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죽음에서 비롯된 개인적 상실을 출발점으로 삼았지만, 그는 자선을 ‘시혜’나 ‘공덕’이 아니라 고통받는 이 곁에 함께 머무는 공감과 연대로 재정의했다. 브람스 자신이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냈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카라얀이 지휘하는 ‘독일 레퀴엠’ //youtu.be/jeCtv_2Zgu0?si=ne5RIvVvjttEXK84 해외 원조 주일은 “우리가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를 묻는 날이 아니라 “우리는 얼마나 나누고 있는가”를 묻는 날임을 상기하자. 작곡가 류재준cpbc2026.01.20

현세에서 선행에 힘쓰며 교회 가르침에 맞게 살아야 [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87)티토에게 보낸 서간 티토에게 보낸 서간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의 재림을 생각해 현세에서 함부로 살지 말고 선행에 힘쓰며 교회의 건전한 가르침에 충실한 삶을 살아갈 것을 권고하고 있다. 티토 성인. 성경학자들은 경전 내용과 교리 가르침이 비슷한 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둘째 서간과 티토에게 보낸 서간(이하 티토서)을 ‘사목 서간’으로 분류합니다. 이들 세 서간은 티모테오와 티토에게 보낸 개인 서간일 뿐 아니라 원로 사목자가 젊은 교회 지도자들에게 그들의 직분과 실천해야 할 삶의 지침을 제시한 ‘공적 서간’입니다. 아울러 사목 서간들을 바오로 사도의 친필 서간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지만, 오늘날 대다수 성경학자는 이들 세 서간을 바오로 사도의 제자나 협력자가 쓴 ‘제2 바오로 서간’으로 규정합니다. 티토에 관해 알려진 것은 별로 없습니다. 티토는 바오로 사도가 쓴 서간에 몇 차례 나오지만, 루카가 쓴 사도행전에는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습니다. 티토는 헬라스 곧 그리스 사람으로 바오로 사도에게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됐습니다. 49년께 바오로 사도와 바르나바는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예루살렘 사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떠날 때 티토를 유다인이 아닌 이방계 그리스도인의 본보기로서 데려갑니다.(사도 15장 참조)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티토가 안티오키아 출신일 것이라 짐작합니다. 아버지가 그리스 사람이고 어머니가 유다인이었던 티모테오와 달리 티토는 온전히 이방인이어서 바오로 사도에게서 할례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사도 회의에서도 할례를 강요받지 않았습니다. 티토는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바오로 사도의 주장을 보여주는 사례로 소개됩니다.(갈라 2,1-3) 티토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그리스 철학과 시학을 배웠다고 전해집니다. 세례를 받은 후 바오로의 통역자이자 비서·협력자로 활동하게 되지요. 에페소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던 바오로 사도를 대신해 코린토로 가서 코린토 신자들이 겪는 갈등과 교리적 의문을 해소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뿐 아니라 할례와 정결례 등을 지킬 것을 강요하는 자들과 자신들의 광신적 생각과 이론을 전파하던 영지주의자들을 힐난하고 바오로 사도의 권위를 드러냈습니다. 또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모금 활동을 코린토에서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이 일로 티토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큰 호감을 얻습니다.(2코린 7,7 참조) 그래서 마케도니아에서 티토를 만난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에서 다음과 같이 티토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가 여러분의 그리움과 여러분의 한탄, 그리고 나에 대한 여러분의 열정을 우리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더욱 기뻐하였습니다. ⋯우리가 받은 이 위로 말고도, 우리는 티토의 기쁨으로 말미암아 더욱더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영이 여러분 모두 덕분에 안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티토는 여러분이 모두 자기를 두려워하고 떨면서 맞아들여 순종한 것을 회상하며, 여러분에게 더 큰 애정을 지니게 되었습니다.”(2코린 7,7.13.15) 그러면서 바오로 사도는 티토를 “내 동지이며 여러분을 위한 나의 협력자”라고 치켜세웠습니다.(2코린 8,23) 아울러 바오로 사도는 티토를 “나의 착실한 아들”이라며 그를 사랑했지요.(티토 1,4)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 대한 티토의 믿음과 복음 선포에 관한 그의 열정과 능력을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인정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뒤를 이어 크레타 섬에 있는 여러 공동체의 조직을 마무리 짓도록 책임을 맡깁니다.(티토 1,5) 티토는 바오로 사도의 지시에 따라 크레타 섬에서 남은 일을 정리하고, 고을마다 원로들을 임명했습니다.(티토 1,5) 또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인 된 새 신자들에게 옛 생활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믿음직하고 착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가르쳤습니다. 이후 티토는 바오로 사도가 파견한 아르테마스와 티키코스에게 임무를 넘겨주고 니코폴리스에 있는 바오로 사도를 찾아갑니다.(티토 3,12) 그리고 바오로 사도의 당부로 오늘날 크로아티아 지역인 아드리아해 동쪽 달마티아로 가서 복음을 선포했습니다.(2티모 4,10) 교회 전승에 따르면 티토는 달마티아에서 크레타 섬으로 돌아와 초대 주교로 사목하다 93세 나이로 선종했다고 합니다. 그는 고니티나에 안장됐고, 823년 사라센인들이 이곳을 침공할 때 그의 유해(머리)를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 마르코 대성당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가톨릭교회는 티모테오와 함께 1월 16일을 그의 축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성경학자들 대부분은 티토서가 1세기 말에서 2세기 초 바오로 사도의 제자나 협력자에 의해 쓰였다고 봅니다. 헬라어 신약 성경은 ‘Προs Τιτον’(프로스 티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Ad Titum’,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티토에게 보낸 서간’으로 표기합니다. 티토서는 총 3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티토서는 크레타 섬을 배경으로 교회 제도와 지도자와 신자들의 올바른 태도에 관해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티토서는 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의 내용과 유사하게 유다인들의 잘못된 가르침, 어리석은 논쟁, 율법 논란으로 말미암은 해악을 피하라고 권고합니다. 주님 재림의 날을 생각하며 현세에서 함부로 살지 말고 건전한 가르침에 충실한 삶을 살아갈 것을 당부합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선행’에 힘쓸 것을 강조합니다.(2,11-15)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선임2024.08.27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다[저는 믿나이다] (49) 하느님의 어머니 가톨릭교회는 세 번째 보편 교회 공의회인 에페소 공의회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성모 마리아의 칭호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참하느님이시며 참인간이심을 믿을 교리로 선포했다. ‘하느님의 어머니’, 모자이크, 튀르키예 이스탄불 성 소피아 성당. 가톨릭교회의 정통 교리가 선포되어 모든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온전한 신앙 고백을 하기에 이르는 데에는 고대 교회의 두 신학파가 크게 공헌했습니다. 바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와 시리아 안티오키아 학파입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플라톤 철학의 영향을 받아 관념과 사변적 성향이 강해 성경과 교리 내용을 은유와 비유(우의-寓意)로 설명했습니다. 반면 안티오키아 학파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영향을 받아 성경과 교리 내용을 글자 그대로의 의미(자의-字意)로 해석했습니다. 이 두 학파를 중심으로 한 치열한 신학 논쟁 끝에 4세기 교회는 두 차례의 보편 교회 공의회를 통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 고백문인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을 선포했습니다. 5세기 들어 교회는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하느님이시며 참인간일 수 있는가?’라는 교의 문제에 집중합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신성과 인성이 온전히 일치해 ‘하나의 본성’을 이루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안티오키아 학파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구분되고, 의지적 결합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두 학파 간 대립은 마리아께 대한 ‘하느님의 어머니’(Θεοτοκοs, 테오토코스) 칭호를 둘러싼 논쟁으로 표출됐습니다. 안티오키아 출신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가 된 네스토리우스(381~451)는 성전이 하느님의 거처이듯 마리아는 하느님이 거하는 인간 예수를 낳았을 뿐이므로 ‘그리스도의 어머니’(Χριστοτοκος)라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380~444)는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는 요한 복음 1장 1절과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을 바탕으로 인간 예수가 바로 성자 그리스도이시기에 성모 마리아를 당연히 ‘하느님의 어머니’로 불러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3세기 이후 200여 년 동안 별 문제 없이 성모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 불러온 그리스도인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신자들은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를 비롯한 안티오키아 학파 신학자들을 비난하고 반발했지요. 성 치릴로는 교황에게 네스토리우스가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한다며 이단으로 고발합니다. 이에 성 첼레스티노 1세 교황은 430년 8월 네스토리우스를 이단으로 단죄하고 교회에서 추방합니다. 하지만 네스토리우스는 불복해 비잔티움(동로마 제국)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에게 공의회 소집을 요청합니다.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는 431년 6월 22일 에페소 성모 마리아 성당에서 공의회를 개최했습니다. 3명의 교황 사절을 비롯한 주교 198명이 참석했습니다. 공의회 교부들은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시고, 말씀이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는 온전한 하느님이자 영혼과 육신을 갖춘 온전한 인간이라는 치릴로의 주장이 니케아 신경에 부합한다고 인정하며 네스토리우스를 이단으로 단죄했습니다. 432년 성 첼레스티노 1세 교황 선종 후 즉위한 성 식스토 3세 교황은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티오키아 학파 간의 대립을 종식하고 교회 일치를 도모하기 위해 화해를 주선합니다.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 교회 주교들은 교황 뜻에 따라 일치를 이루며 안티오키아의 요한이 433년 봄에 작성한 일치 정식 서한을 교황에게 보냅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외아들이시며, 완전한 하느님이시고 이성적 영혼과 육체를 지닌 완전한 인간이시며, (모든) 시대 이전에 신성에 따라 아버지에게서 나셨으며, 마지막 날에 우리 때문에, 우리 구원을 위해 인성에 따라 동정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고, 바로 이분께서 신성에 따라서는 성부와 본질이 같으시며, 인성에 따라서는 우리와 본질이 같으심을 고백합니다. 두 본성이 일치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분이신 그리스도, 한 분이신 아들, 한 분이신 주님을 고백합니다.”(덴칭거, 「신경, 신앙과 도덕에 관한 규정·선언 편람」 100쪽,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요약하면, ‘마리아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낳으셨기에 그분의 어머니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하느님이시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다’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에페소 공의회는 성모 마리아께 대한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참하느님이시며 참인간이시다는 정통 교리를 확립하였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에페소 공의회를 다음과 같이 공적으로 평가합니다. “네스토리우스 이단은 그리스도 안에 하나의 인간적 위격이 하느님의 아들의 신적 위격과 결합되어 있는 것으로 보았다. 여기에 맞서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와 431년 에페소 제3차 세계 공의회는 ‘말씀’은 영혼으로 생명력을 지니게 된 육신을 위격에 따라 자기 자신에게 일치시키심으로써 인간이 되셨다고 고백했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하느님 아들의 신적 위격 외에 다른 주체를 가지지 않는다. 이 제2 위격은 잉태 때부터 인성을 취하시어 당신의 것으로 삼으셨다. 그러므로 에페소 공의회는 431년 마리아가 하느님의 아들을 태중에 인간으로 잉태함으로써 참으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었음을 선포했다. ‘말씀’이 마리아에게서 당신의 신성을 이끌어 내셨기 때문이 아니라, 이성적 영혼을 부여받은 거룩한 육체를 마리아에게서 얻으셨기 때문에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며, 하느님의 말씀이 그 위격에서 육체와 결합하였기에 사람의 몸으로 나셨다고 일컬어진다.”(「가톨릭교회 교리서」 466)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5.10.28

초기 교회에서 이방인 포용에 앞장선 야고보 [저는 믿나이다] (29)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사도 교회 전승은 작은 야고보로 불리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와 같은 인물로 예루살렘 사도 회의를 열어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를 받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는 길을 열어주었다고 한다. 페드로 오렌테 작 ‘작은 야고보 사도의 순교’, 유화, 1639년, 스페인 발렌시아 벨 예술 박물관. 신약 성경에는 ‘야고보’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세 명 등장합니다. 이들 중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요한의 형인 야고보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예수님께서 뽑으신 사도들입니다. 이 둘을 구분하기 위해 제베대오의 아들을 ‘큰(大) 야고보’라 하고, 알패오의 아들을 ‘작은(小) 야고보’라 부릅니다.(마태 10,3; 마르 3,18 ; 루카 6,15 ; 사도 1,13) 나머지 한 명은 예수님과 형제(마르 6,3; 마태 13,55-56)이며 ‘베드로와 요한 사도와 함께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갈라 2,9)으로 존경받는 ‘주님의 형제 야고보’(갈라 1,19)입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주님의 형제 야고보를 같은 인물로 봅니다. 유다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가 이 둘을 동일 인물로 소개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약 성경 경전 중 하나인 ‘야고보 서간’을 알패오의 아들로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 사도가 쓴 것으로 여겨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성경학자들 사이에선 알패오의 아들과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가 같은 인물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 이유로 “사실 예수님의 형제들은 그분을 믿지 않았다”(요한 7,5)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마르 3,21)라는 복음서의 증언처럼 예수님의 형제 곧 친척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 합니다. 또 예수님께서 고향 나자렛 사람들에게서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라는 말을 들으며 배척당하셨을 때에는 이미 열두 사도들과 함께 활동하고 계셨다고 설명합니다.(마르 6장 참조) 그리고 무엇보다 신약 성경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들, 그리고 주님의 형제들을 언제나 구별하고 있다고 강조합니다.(사도 1,13-14; 1코린 9,5; 15,5-8) 또 야고보 서간의 저자는 ‘알패오의 아들’ ‘주님의 형제’라고 하지 않고 “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어 같은 인물로 볼 수 없다고 합니다. 이처럼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와 같은 인물이 아니라고 한다면 사실상 신약 성경에서 그가 작은 야고보라 불렸다는 것 외에는 어떠한 행적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아! 다른 하나가 있네요. 그의 어머니가 성모 마리아와 함께 예수님 죽음을 지켜봤고,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빈 무덤을 목격한 성모님 친척인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라는 사실입니다. “거기에는 많은 여자들이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은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르며 시중들던 이들이다. 그들 가운데에는 마리아 막달레나,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제베대오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었다”(마태 27,55-56) “여자들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마리아 막달레나,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가 있었다”(마르 15,40)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요한 19,25) “무덤에서 돌아와 열한 제자와 그 밖의 모든 이에게 이 일을 다 알렸다. 그들은 마리아 막달레나, 요안나, 그리고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였다”(루카 24,9-10) 등이 소개됩니다. 이제 학자들의 주장이 아니라 교회 전통에 따라 작은 야고보 사도를 소개합니다. 이미 밝힌 대로 교회 전통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로 활동했던 주님의 형제 야고보를 같은 인물로 봅니다. 그는 큰 야고보라 불리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가 44년 4월께 예루살렘에서 헤로데 아그리파 1세에 의해 참수돼 순교한 후 예루살렘 교회를 맡아 사도직을 수행했습니다.(사도 12장 참조) 그는 예루살렘 사도 회의를 열어 이방인들을 할례 없이 교회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선포했습니다. 당시 교회 구성원의 한 축인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한 축인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유다교 율법을 따를 것과 할례를 받을 것을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당연히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은 이를 거부했지요. 그래서 사도들은 이 난제들을 신속하게 해결해야 했습니다. 이때 작은 야고보 사도는 모든 사도가 동의한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이 할례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모세의 정결례 법’만은 준수해야 한다고 선포합니다. 곧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를 먹는 우상숭배 행위와 불륜, 그리고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피를 멀리하라는 것이었습니다.(사도 15장 참조) 이처럼 작은 야고보 사도는 베드로와 요한 사도와 함께 초기 교회의 중추적 역할을 했습니다. 아울러 그는 야고보 서간을 통해 그리스도인에게 신앙을 실천할 것을 권고합니다. 야고보 서간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삶에서, 무엇보다 이웃 사랑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헌신에서 완성되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깨끗하고 흠 없는 신심은, 어려움을 겪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아 주고,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야고 1,27)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이듯 실천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입니다.”(야고 2,26) 1세기 말 저서 「유다 고대사」에서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작은 야고보 사도가 62년 예루살렘 최고 의회 대사제 아나니아(사도 23장 참조)의 명으로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합니다. 반면 에우세비오 「교회사」는 야고보 사도가 성전 꼭대기에서 내던져졌음에도 죽지 않아 몽둥이질을 당해 순교했다고 합니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5.05.27

이단 물리치고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 이끌어[저는 믿나이다] (40) 사도 교부들의 업적 사도 교부들은 영지주의와 가현설 등 많은 이단에 맞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수호하고 정통 교의를 규정해 나갔다. 사도 교부들, 프레스코화, 1076년, 스바토슬라브. 이제 초세기 말부터 2세기 중엽까지 활동했던 ‘사도 교부 시대’를 마감하고, ‘호교 교부들’을 살펴보려 합니다. 호교 교부들을 만나기에 앞서 사도 교부들의 업적과 유산을 간략하게 정리하겠습니다. 사도 교부들은 사도들의 직제자였거나 직·간접으로 가르침을 받고, 지역 교회 주교로 사목하면서 신앙 수호를 위해 저술 활동을 펼친 분들입니다. 성 클레멘스 1세 교황,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스미르나의 성 폴리카르포 주교, 히에라폴리스의 성 파피아스 주교 등이 사도 교부를 대표하는 인물이죠. 이들이 활동하던 시기, 교회는 이미 지중해 연안을 통해 로마 제국의 많은 지역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당시 교회는 구성원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면서 성찬례를 중심으로 친교를 이루며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사도 2,42; 4,32 참조) 그러나 아직 그리스도교 신앙의 원천이시고, 그리스도인 삶의 모범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의 규범 곧 ‘교의’(敎義)가 확정되지 않았기에 교회의 일치를 흔드는 다양한 주장들이 등장했습니다. 이에 사도 교부들은 성경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에 생기를 불어넣고, 새로운 상황과 문제들을 신앙의 빛으로 밝히고자 성령의 이끄심대로 충실하고 체계적으로 정통 신앙을 제시했습니다. 곧 성경과 사도 전승, 교도권의 증언으로 교회의 신앙과 가톨릭 교리를 선포하였습니다. 사도 교부들의 업적과 유산으로는 첫째,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그릇된 교의를 ‘이단’(αίρεσιξ, 헤레시스)으로 단죄하였습니다. ‘이단’은 베드로의 둘째 서간에 처음 등장합니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에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났던 것처럼, 여러분 가운데에도 거짓 교사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들은 파멸을 가져오는 이단을 끌어들이고, 심지어 자기들을 속량해 주신 주님을 부인하면서 파멸을 재촉하는 자들입니다.”(2베드 2,1) 당시 성행하던 대표적인 이단은 바로 ‘영지주의’였습니다. 지혜를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자들이었죠. 영지주의자들은 참하느님과 창조주를 구분하고, 인간의 죄를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참인간이 아니라 지상 생활 동안 사람의 모습을 잠시 빌렸을 뿐이고 인간이 구원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희생 때문이 아니라 ‘깨달음’ 덕분이라고 주장합니다. 또 하나 강력한 이단은 ‘유다이즘’이었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이기 전에 유다교 율법 전체를 먼저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이들은 세례를 받은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를 강요하고, 유다교 율법이 금한 음식 규정을 지킬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리스도 가현설’을 주장한 이단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정하였지요. 이에 신약 성경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속이는 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왔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는 속이는 자며 그리스도의 적입니다.…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지 않고 그것을 벗어나는 자는 아무도 하느님을 모시고 있지 않습니다. 이 가르침 안에 머물러 있는 이라야 아버지도 아드님도 모십니다. 누가 여러분을 찾아가 이 가르침을 내놓지 않으면 그를 집에 받아들이지 말고 인사하지도 마십시오. 그에게 인사하는 사람은 그의 나쁜 행실에 동참하게 됩니다.”(2요한 1,7.9-11) 에페소와 페르가몬 교회에서 활동했던 ‘니콜라오스파’도 빼놓을 수 없는 이단입니다. 이들은 하느님의 은총을 방탕하고 부도덕한 생활의 방편으로 악용하였지요.(유다 1,4 참조) 둘째, 사도 교부들은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사도 교부들은 교회 내 남아 있는 유다이즘을 몰아내기 위해 하느님 중심보다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신앙을 이끌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육화’ 곧 참인간이신 하느님을 강조했고, 아버지 하느님을 드러내는 ‘주님’이라는 칭호를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하였습니다. 또 하느님과 그리스도, 곧 아버지와 아들의 단일성을 강조하였고, ‘로고스’ 라는 이름을 부여하여 ‘육이 되신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중개자 역할을 드러냈습니다. 셋째, 사도 교부들은 성찬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일치시켰습니다. 당시 영지주의자들을 비롯한 이단 추종자들은 성찬례를 통해 오는 주님의 은총을 거부했습니다. 사도 교부들은 이들 이단에 맞서 성체가 우리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살임을 고백했습니다. 넷째, 사도 교부들은 기도를 멀리하는 이단들에 맞서 수덕 생활을 권고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을 본받아 성덕을 완성하기 위해 수덕 생활을 실천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도덕적인 완성 없이는 그리스도의 성덕을 본받을 수 없다고 가르쳤고, 부를 자랑하기보다 의로움을 드러내라고 권했습니다. 또한, 모든 죄를 멀리하기 위해 사랑을 실천하라고 당부했습니다. 다섯째, 사도 교부들은 교도권을 수호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과 그들의 후계자인 주교들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파견된 복음 선포자들임을 선언하고, 교황의 수위권과 주교직, 교계제도와 평신도 지위를 규정하였습니다. 여섯째, 사도 교부들은 교회를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로 규정하였습니다. 이 신앙의 규범은 지금까지 믿을 교리로, 교회 일치의 바탕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5.08.19
![[2026 부산교구 사목교서] 하느님 안에서 복음화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젊은이들](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10/20/Mbu1697788601058.jpg)
[2026 부산교구 사목교서] 하느님 안에서 복음화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젊은이들 청소년·청년의 해(3) 선포와 나눔의 해 우리는 “희망의 메시지인 젊은이들”이 복음화의 주인공으로 하느님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난 2년을 ‘환대와 경청, 배움과 체험의 해’로 보냈습니다. 이제 ‘청소년·청년의 해’ 3년 여정 중 마지막 해를 맞이하여, 기쁜 마음으로 올해를 ‘선포와 나눔의 해’로 정하고, 구체적인 방향도 함께 제시합니다. 1. 복음의 기쁨은 먼저 교회 ‘안’에서 선포되고 나눠야 합니다. 복음 선포는 온전한 사랑 고백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기쁨을 체험한 사람들은 필히 복음을 선포합니다. 그들의 마음 안에는 교회 공동체와 즉시 나누지 않고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벅참’이 있기 때문입니다. 2. 기쁨과 희망을 안고 교회 ‘밖’, 세상으로 나아갑시다. 말씀을 배우고, 성체를 나누며, 공동체를 이루었던 초대 교회 신자들은 모든 이에게 “호감”을 얻었습니다. 우리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향한 벅찬 사랑 안에서 자기만의 말과 삶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공동의 집’인 지구와 새로운 이웃인 이주민에게도 우리의 복음적 기쁨과 희망이 닿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3.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을 더욱 깊이 배우고 나눕시다. 우리 주변에는 참된 기쁨과 희망에 목말라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넘쳐나는 참된 기쁨과 희망을 가지고, 그들에게 “온유하고 공손하게” 대답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해야 합니다. 한편 가정에서 신앙의 유산을 전달하는 조부모와 부모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자녀에게 ‘하느님의 귀한 선물’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특별히 노력해 주시길 바랍니다. 4. 순교자 정신을 이어갑시다. 저는 “순교가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한 ‘확신의 결과’이며, 모든 일의 시작과 끝을 주님께 의지하고 맡겼던 순교자의 믿음을 본받는 것이 신앙의 후손으로서 우리가 가야 할 방향”임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하느님을 떠나고 싶은 유혹’에 빠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순교자처럼 ‘예수 그리스도 현존의 체험’을 통해 이것 또한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한편 ‘오륜대 순교자 성지’ 조성을 위해 아낌없는 기도와 후원을 해 주신 교구민들에게 감사 인사와 함께 부탁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다시 한번 교구민 여러분들의 기도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5. 부산교구 젊은이의 날(BYD)과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위해 기도합시다. 우리가 특별히 2년간 젊은이들을 위해 마음을 모은 것은 ‘보여주기 위한 행사’가 아니라, 교회의 젊은이가 ‘교회의 주체이며 희망’임을 공유하고, 그들의 젊음이 교회에 활력을 되찾게 할 귀한 원동력임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복음화의 주인공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젊은이’ 우리는 이 목표를 향해 함께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이 여정은 끝이 아닙니다. ‘지금의 젊은이’에 이어 ‘내일의 젊은이’가 끊임없이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를 향한 우리의 관심이 끝이 없는 이유입니다. 부산교구장 손삼석 주교cpbc2025.12.10

손빈(孫臏)의 병법으로 요셉처럼 말하다![월간 꿈 CUM] 철학의 길 _ 동양 고전의 지혜와 성경 (4) 사마천의 「사기」 「손자오기열전」은 병법의 대가 손무(손자), 손빈, 오자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 손빈(孫臏)은 손무(손자)의 5대손인데 ‘臏(빈)’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정강이 뼈를 도려내는 형벌을 받아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처럼 손빈은 오나라에서 죄인의 누명을 쓰고 다리를 잃은 불구였습니다. 그런 처지에도 불구하고 수레를 타고 군사를 지휘했던 병법의 대가, 손빈에 대한 사마천의 기록으로 삶의 지혜를 더듬어 봅니다. 어느 날 오나라에서 죄인의 누명을 쓰고 두 다리를 잃은 손빈에게 제나라 사신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의 재능을 알아본 사신은 손빈을 몰래 빼내어 제나라로 데리고 갑니다. 제나라에서 전기라는 장군의 빈객으로 있을 때였습니다. 수레를 몰고 활을 쏘는 내기를 할 때마다 전기는 번번이 지고 있었습니다. 이때 상황을 판단한 손빈이 한 말이 아래 구절입니다. 말의 속도에는 큰 차이가 없으나 상중하 등급의 무리가 있다. 馬足不甚相遠 馬有上中下輩 경기는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 3대가 한 조가 되어 상대 수레와 순서대로 경기를 치르는 것이었는데 전기의 문제는 상·중·하급의 수레를 늘 순서대로 맞붙게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상대의 말이 등급마다 조금씩 빨랐으니 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죠. 병법의 대가 손빈이 전기에게 많은 돈을 걸게 한 후 상황을 판단하여 다시 계책을 마련해 줍니다. “제일 느린 하급 수레를 상대의 상급과 붙게 하고, 상급 수레는 상대의 중급, 그리고 중급 수레는 상대의 하급 수레와 붙게 하십시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연 1패 뒤 2승으로 내기에서 이기게 되는 것이죠. 같은 말과 수레이지만 순서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결과가 바뀌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조건 한 쪽 방향만을 고집하면 어리석은 이가 됩니다. 그것에 허점이 있다면 같은 조건이라도 방식을 달리하면 길이 있습니다. 우리가 ‘창의적’이라고 할 때도 완전 무에서 새로운 것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일정한 ‘패턴’을 파악한 후 ‘분해’하여 ‘재결합’한 결과를 말하는 것입니다. 같은 재료라도 분해하여 재결합하면 새로운 창조적 예술이 무한히 탄생하듯, 우리가 사는 삶도 환경과 조건만을 탓할 것이 아니라 순서를 바꾸어 재결합해 보는 것은 중요합니다. 살다 보면 나보다 강한 타자가 있고, 살다 보면 나보다 부자인 타자가 있으며, 살다 보면 나보다 앞서 있는 타자가 있습니다. 내 의자와 무관하게 찾아오는 대상들입니다. 인간은 현실 사회의 경쟁 속에 던져지게 됩니다. 이 또한 내 의지와 관계없이 벌어지는 운명입니다. 그런 조건과 환경에 탓만 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과 같이 하던 방법으로만 삶을 살면 늘 패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저를 이곳으로 팔아넘겼다고 해서 괴로워하지도, 자신에게 화를 내지도 마십시오. 우리 목숨을 살리시려고 하느님께서는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창세 45,5) 이 구절은 요셉이 이집트에서 형제들에게 한 말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이집트의 노예가 되었고, 누명으로 감옥까지 떨어졌었습니다. 그러나 재상이 되어 형제들과 모든 가족 무리들이 이집트에서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연약한 요셉을 앞서 보내신 이유였습니다. 하느님은 병법의 대가처럼 약한 요셉을 앞서 이집트에 보내어 다른 어떤 민족보다 큰 민족이 되도록 계책을 세우신 것이었습니다. 1패 뒤에 얻은 2승, 3승의 승리였습니다. 우리도 요셉처럼 이렇게 외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 늘 패배자 같고 실패자로 살아가시나요? 환경과 처지를 탓해도 변화는 오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우리의 병법가로 모시고 오늘 하루 삶의 가치와 배열을 바꿔보면 어떨까요? 버렸던 가치를 앞서 보내고, 순서를 바꾸면 비록 지금 내 삶이 1패 할지라도 일생, 영생은 2승, 3승 하여 승리할 것입니다. 삶의 배열과 조합을 바꾸는 것, 그 안에 창조적 인간이 되는 길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손빈처럼 빈(臏)의 처지로 무릎 꿇고 있지만, 손빈의 병법으로 요셉처럼 말할 수 있습니다. “목숨을 살리시려고 하느님께서 나를 그리고 세상에 버려진 가치를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 글 _ 손은석 신부 (마르코, 대전교구 산성동본당 주임) 2006년 사제수품. 대전교구 이주사목부 전담사제를 지냈으며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동양철학전공)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소소하게 살다 소리 없이 죽고 싶은 사람 중 하나. 그러나 소리 없는 성령은 꼭 알아주시길 바라는 욕심쟁이다. cpbc2024.07.08

“행복은 하느님의 선물이자 서로에게 건네야 할 선물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4년 11월 16일 바티칸에서 이탈리아 국립 청년 위원회 위원을 만나 환하게 웃으며 악수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복론」은 생전 교황이 강론·담화·문헌·묵상 등에서 전한 행복에 관한 내용을 엮은 책으로 행복이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며, 타인과 나눌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강조한다. OSV 강론·담화·문헌 등으로 전한 프란치스코 교황 행복의 정수 고유한 아름다움 드러낼 것 등 행복 향한 15가지 방법 제시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복론 / 프란치스코 교황 / 김의태 신부 옮김 / 가톨릭출판사 “사랑이 필요합니까? 무절제한 쾌락이나 타인을 이용하고 소유하며 지배하는 태도 안에서는 사랑을 찾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성령 안에서 자신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 줄 사랑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진한 감동을 원하십니까? 물건을 사 모으거나, 돈을 허비하거나, 세상의 것들을 필사적으로 좇는다고 해서 그러한 강렬함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의 이끄심에 자신을 내어 맡길 때, 훨씬 더 아름답고 충만한 방식으로 그 강렬함을 느낄 것입니다.”(230쪽) 사람들이 가장 바라면서 잡기 힘든 감정이 ‘행복’이 아닐까 한다. 행복의 사전적 의미는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다. 그러나 ‘충분한 만족과 기쁨’은 매우 주관적이기에 ‘행복감’은 모호할 수밖에 없다. 같은 상황에서 누군가는 행복하고 누군가는 행복하지 않을 수 있으며, 동일 인물이라도 어제는 행복하고 오늘은 아닐 수 있다. 기술의 발달과 커져가는 빈부 격차 속에서 SNS 등으로 너무나 쉽게 서로의 삶을 들여다보고 자연스레 비교하는 현대사회에서는 행복감을 느끼기가 더욱 어렵다. 오죽하면 작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이라는 단어까지 나왔을까.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복론」은 생전 교황이 강론·담화·문헌·묵상 등에서 전한 행복에 관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행복의 유산’인 셈이다. 교황은 행복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이면서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야 할 선물이라고 강조한다. 책은 먼저 행복을 향한 15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평온하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각자 단 하나뿐인 존재로서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드러낼 것을 제안한다. 위대한 꿈을 꾸고, 바라는 지점에 도착하도록 건강한 조바심을 지니라고 조언한다. 또 용서하는 법과 슬픔을 읽는 법을 배우고, 다른 사람과 함께 걸으며 나누라고 말한다. 본문에서는 크게 8장으로 나눠 행복에 관한 메시지를 전한다. 성경의 내용을 토대로 신앙의 울타리를 넘어 비신자들도 공감할 수 있도록 「단테의 신곡」·「닥터 지바고」·「카라마조프의 형제들」·「반지의 제왕」등 문학 작품, 영화 ‘프란치스코, 신의 어릿광대’ ‘바베트의 만찬’ 등에서 행복과 관련된 내용을 인용했다. “잊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길은 언제나 우리를 행복으로 인도합니다. 그 사이에 언제나 십자가와 시련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를 행복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속이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행복을 약속하셨고, 우리가 그분의 길을 따른다면 그 행복을 주실 것입니다.”(39쪽) 수원교구 김의태(수원가톨릭대 교수, 1심 법원 부사법대리·재판관) 신부가 우리글로 옮겼다. 김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언어는 바티칸의 도서관이나 신학자의 책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라며 “가장 깊은 진리를 가장 쉬운 그릇에 담아 건네시는 교황님의 배려, 쉬움의 미학을 부족하지만 고스란히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6.01.27

임피제 임승필 신부 기억하는 기념관 제주에 건립교구의 신앙 역사와 교회에 헌신한 이들 새롭게 조명하고자 추진 제주교구가 8일 한림성당에서 임피제 신부와 임승필 신부를 기억하는 기념관 건립 기공식을 열었다. 제주 한림본당 제주교구 한림본당(주임 최현철 신부)이 제주 지역 농촌 산업 부흥 운동을 이끈 임피제(맥글린치, 성골롬반외방선교회, 1928~2018) 신부와 성경 번역에 평생을 바친 임승필(1950~2003) 신부를 기억하는 기념관을 건립한다. 교구는 8일 한림읍 대림리 1814번지(한림성당)에서 교구장 문창우 주교가 참석한 가운데 ‘사제 임피제·임승필 기념관’ 건립 기공식을 열었다. 임피제 신부. 제주교구 한림성당 축성식 후 임피제 신부(앞줄에 앉은 사제단 왼쪽에서 네 번째)와 사제단, 신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한림본당 첫 주임이었던 임피제 신부는 성이시돌목장 설립자로, 195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제주시 한림 지역의 농촌 산업을 부흥시켰다. 교구가 발행한 「제주 복음화의 사도들」에 따르면, 임피제 신부는 곗돈이 깨져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신자, 돈을 벌기 위해 육지에 갔다가 실수로 물탱크에 빠져 죽은 신자를 보고 신심을 길러주는 일도 시급하지만 그들을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임 신부는 64년간 제주를 제2의 고향 삼아 한림 수직·신협·성이시돌 병원, 성이시돌 양로원·요양원·유치원·어린이집·젊음의 집을 건립하는 등 큰 발자취를 남겼다. 임승필 신부. 한림본당 출신인 임승필 신부는 신·구약 성경에 대한 새 번역 작업에 매진하다 2003년 하느님 품으로 돌아갔다. 그의 노고는 한국 교회가 독자적으로 번역한 신구약 합본 「성경」으로 신자들 곁에 남아있다. 임피제 신부와 성경 번역에 평생을 바친 임승필 신부를 기억하는 기념관. 파란선 안에 기념관이 건립 부지다. 본당은 교구의 신앙 역사를 비롯해 교회에 헌신한 이들의 사랑의 발자취를 새롭게 조명하고 후대에 전하기 위해 지난해 7월부터 기념관 건립을 추진했다. 이후 12월 기념관 건축 허가를 받고, 올해 3월 건립에 들어갔다. 기념관은 한림성당 내 2개 동으로, 327㎡ 규모이며, 12월 말쯤 완공될 예정이다. 기념관 건립 봉헌금 약정계좌 : 신협 131-021-688057, 예금주 : 제주교구 한림성당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박예슬2025.03.19
![[지구밥상] 영양은 듬뿍·탄소는 뚝… 정성으로 쪄낸 ‘환경친화’ 오곡밥](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2/24/v2d1771920971734.jpg)
[지구밥상] 영양은 듬뿍·탄소는 뚝… 정성으로 쪄낸 ‘환경친화’ 오곡밥<9>오곡밥 정월 대보름이 오면 꼭 해먹었던 밥이다. 나는 이 오곡밥을 참 좋아한다. 쫀득한 식감에 팥이 들어가 붉은 빛을 띠고 소금간이 적당한 밥은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그런데 우리 집 식구 중 반은 찰밥을 좋아하고 나머지 반은 싫어한다. 그래서 해법을 찾았다. 현미 쌀과 백미 찹쌀을 섞어 전통 방식으로 찜기에 쪄서 오곡밥을 짓는다. 밥솥에 모두 넣는 방식으로 지은 밥과는 식감이 다르다. 곡물이 하나하나 살아있고 팥과 콩은 딱 알맞게 익어 고소함과 향긋함을 더한다. 최근에는 저속노화 요리법이 유행하면서 잡곡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 하지만 주로 수입된 콩과 쌀을 소개해서 나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 몸을 건강하게 하기 위한 밥상의 행동이 결국은 지구를 건강하게 하는 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곡밥은 이름대로 다섯 가지 잡곡을 섞어 밥을 짓는다. 붉은 팥과 찹쌀, 조, 수수, 콩을 섞어 단백질과 칼슘, 철분, 식이섬유가 풍부한 밥이 된다. 영양도 풍부한데 우리 땅에서 난 작물이니 이동 거리로 인한 탄소배출도 적다. 외국산과 비교하면 탄소배출량이 무려 37배나 적다. ‘그린포스트코리아’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수입 농산물의 경우 해상과 육상을 통한 장거리 이동으로 인한 탄소배출량이 국내산보다 월등히 많게 나온다. 영양이 풍부하고 탄소배출도 적은 오곡밥의 재료들은 농사에서도 환경친화적이다. 특히 콩류는 유엔이 매년 2월 10일을 ‘세계 콩의 날’로 정해 기념할 정도로 무척 중요한 인류의 식량이다. 콩은 영양분이 풍부한데다 기후위기 대응과 지속 가능한 농업의 토대다. 공기 중 70% 이상은 질소다. 질소는 식물을 키우는 양분이다. 콩은 땅에서 양분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광합성을 통해 탄소를 고정한다. 여기서 만든 에너지를 뿌리에 있는 뿌리혹박테리아에게 전달한다. 뿌리혹박테리아는 공기 중의 질소를 모아 콩에 양분을 제공한다. 이런 이유로 콩은 농약이나 비료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잘 자라는 데다 땅도 건강하게 만드는 좋은 작물이다. 지속 가능한 농업의 토대를 콩이 만드는 이유다. 농약이나 비료를 사용하지 않으면 땅이 회복되는 것뿐만 아니라 물의 오염도 막을 수 도 있다. 전통적으로 행해지던 농사 방식을 보면 콩은 다른 작물들과 함께 심어 병충해를 막고 농장의 생물 다양성을 높인다. 오곡밥을 지으며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라”는 성경 말씀이 떠올랐다. 사순 시기는 단식과 금육의 시기다. 수난과 고난을 겪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면역력을 챙기고 사순 시기를 든든하게 잘 나기 위해 오곡밥을 지어 이웃들과 나누는 밥상을 차려보자. 레시피 재료 현미 쌀 2컵, 찹쌀 2컵, 팥 1/2컵, 콩 1/2컵, 수수 1/2컵, 소금, 물 800㎖.(팥 삶은 물 포함) 사전준비 1. 팥 삶기 찬물에 팥을 넣고 삶는다. 한 번 우르르 끓어오르면 물은 버리고 새 물을 받아 다시 끓인다. 다시 부드럽게 익도록 물이 끓어 오르면 소금 1작은술과 다시마 한 조각을 넣고 40분간 삶아준다. 팥 삶은 물은 버리지 말고 따로 둔다. 2. 현미, 찹쌀, 콩, 수수 준비 하루 전날 깨끗이 씻어 각각 물에 담가 불린다. 조리순서 1. 찹쌀, 현미, 수수는 고루 섞는다. 찜솥에 담고 고르게 익히기 위해 가운데를 열어둔다. 2. 찜기에 물을 올리고 끓인다. 물이 끓어 오르면 찜솥을 올리고 30분간 강불에서 끓인다. 30분 동안 강에서 끓여야 하므로 물은 넉넉히 붓는다. 3. 팥 삶은 물과 밥물을 800㎖ 준비한다. 여기에 소금 1큰술을 넣어 섞어 둔다. 4. 30분 후 뚜껑을 열고 팥과 콩을 올리고 소금물을 부은 후 고르게 섞어준다. 5. 다시 20분간 강불에서 끓인다. 20분 후 다시 소금물을 붓고 20분 더 끓인다. 6. 20분 후 불을 끄고 10분간 뜸들인다. 7. 잘 섞은 후 밥그릇에 담는다. cpbc2026.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