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학 연기로 ‘집콕’ 아이들 달래주는 어린이 도서 코로나19로 아이들의 개학이 늦춰졌다. 이 시기를 신앙 서적을 함께 읽는 시간으로 보내면 어떨까. “긴 방학에 좋은 엄마 없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돈다. 봄은 왔지만 코로나19로 아이들이 사상 처음으로 ‘3월 개학’을 맞지 못했다. 24시간 집에서 뒹구는 아이들에게 책을 통해 신앙 유산을 물려주면 어떨까. 몸은 힘들지만, 아이들을 품 안에 안을 수 있는 시절은 한철이다. 동화책을 함께 읽어주며 사랑하는 인내를 기를 수 있다. 100년을 살아본 김형석 철학과 교수도 말했다.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인내 하나 배우러 오는 것 같다”고. 영유아와 초등학생들이 읽을만한 어린이 도서를 소개한다. 어린이 축복 성경 / 임지윤 글ㆍ그림 / 바오로딸 어린이를 위한 그림 성경 이야기책. 하느님이 세상을 만든 이야기부터, 바벨탑을 쌓은 이야기,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은 이야기, 노아의 방주를 비롯해 신약ㆍ구약에서 40가지 이야기를 추려 뽑았다. 이 책의 장점은 그림만 봐도 내용을 알 수 있게 그린 것이다. 여기에 풍부한 상상력을 이끌어 내 생동감을 더한다.우리 친구 예수님이 부활하셨어요! / 로이스 록 글ㆍ케이 위더슨 그림 / 김경은 옮김 / 가톨릭출판사아이들에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되살아난 부활 이야기를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까? 어린이 눈높이에 맞게 쉬운 표현과 구성, 귀여운 그림을 통해 주님 부활 이야기를 쓰고 그렸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부터 수난, 부활의 과정을 친밀한 인물 표정으로 재미있게 묘사했다. 저자는 유명한 가톨릭 그림책 작가로, 3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된 책으로 전 세계 아이들과 소통하고 있다.공지영의 성경이야기 / 공지영 글ㆍ김이슬 그림 / 분도출판사 세 자녀의 엄마인 공지영(마리아) 작가가 엄마의 마음으로 써 내려간 성경 이야기. 생동감 넘치는 입말체로, 성경 속 인물과 주요 사건을 풀어냈다. 공 작가는 엄마가 되어 성경을 다시 읽기 시작했고, 다양한 인물을 통해 소설 같은 흥미진진함을 느꼈다. 소설가 엄마가 읽어주는 성경 이야기에 아이들은 더 이야기해달라고 매달렸고, 그렇게 책은 출간됐다. 사랑과 미움, 용기와 두려움, 희망과 좌절, 믿음과 배신,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가 담겼다. 2009년에 출간한 ‘공지영이 들려주는 성서 속 인물 이야기’ 시리즈의 10권을 한 권으로 묶어 재출간한 개정판이다. 가톨릭 어린이 추천도서(13권) / 생활성서부모와 친구들이 함께 읽는 ‘가톨릭 어린이 추천 도서 시리즈’는 친절한 설명과 아기자기한 그림, 다양한 활동 거리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어린이들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이끈다. 「마더 데레사를 만나요!」, 「자비를 실천해요!」, 「묵주기도를 바쳐요!」 등 13권으로 출간됐다. 우리 동네 하느님 / 실비아 베키니 글ㆍ주시 카피치 그림 / 김혜경 옮김 / 분도출판사“우리 동네에 하느님이 오신다면 그분은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말씀을 해 주실까?” 아이들이 하느님에 대해 스스로 물음을 던지고 깨닫는 책. 구약과 신약에서 10가지 이야기를 가려 뽑아,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재구성했다. ‘약속을 지키는 하느님’, ‘자유를 사랑하는 하느님’, ‘죽음보다 강한 하느님’ 등 하느님의 10가지 모습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성경 이야기뿐 아니라 책 속 주인공 아이들을 통해 ‘환대하기’, ‘기쁘게 살기’, ‘이웃에 봉사하기’ 등 아이들이 일상에서 하느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법을 귀띔한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cpbc2020.04.16
![[생활속 복음] 부활 제3주일 - 마음을 열어야 보이는 부활의 신비](//cpbc.co.kr/CMS/newspaper/2021/04/rc/800215_1.0_titleImage_1.jpg)
[생활속 복음] 부활 제3주일 - 마음을 열어야 보이는 부활의 신비 제 강론에 대해 항상 좋은 피드백을 해주는 본당 청년들이 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나아갈 길을 알려주어서 감사하다고 하기도 합니다. 멋모르던 새신부 때였다면 칭찬에 어깨가 으쓱해져 제가 잘난 줄 알았겠지만, 다행히 지금은 그러지 않습니다. 제 능력으로 감동과 깨달음을 준 게 아님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마음을 열고 받아들였기에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복음적 삶의 방향을 충실히 따랐기에 그 삶이 결실을 본 것입니다.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지만, 그들은 그분이 누구신지, 더 정확히 표현하면 그분이 어떤 존재인지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합니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자기들 눈앞에 떡하니 서 있으니 ‘유령’으로 생각되어 무서울 법도 합니다. 더구나 그 대상에게 잘못한 바가 있어 마음 한구석이 찔리는 상황이라면, 자기들에게 ‘복수’라도 하려고 오셨나 보다 생각되어 그 두려움은 더 커지겠지요.제자들이 그런 오해에 빠진 것은 마음이 굳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어떤 대상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굳어져 있으면 그 생각의 범위를 넘어서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법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음을, 무덤에 묻혀 계시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한 번 죽으면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상식’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지식’과 ‘상식’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게 가로막았습니다. 마음은 열지 못한 채 머리로만 예수님을 바라보니 아는 게 병이 된 것입니다.그러면 그 제자들이 어떻게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드러나는 사건의 순서로만 보면 예수님께서 당신 몸에 난 상처들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시는 행동이나, 제자들 앞에서 음식을 드시는 행동으로 인해 제자들이 오해를 바로잡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외적인 표징들은 예수님께서 유령이 아니며, 온전한 육체를 지닌 상태로 부활하셨음을 머리로 이해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데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제자들이 마음을 연 것은 내적인 요인 때문이었습니다. 자기들은 죽는 게 두려워서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지만, 제 안위를 챙기고자 고통과 모욕을 겪으시는 그분을 외면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비난하거나 단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두려움에 빠진 제자들을 진심으로 걱정하며 평화를 빌어주셨습니다. 그런 그분의 따뜻하고 자상한 마음이 제자들의 마음을 연 것입니다.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어도, 마음을 열지 않으면 부활의 신비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주님께 마음을 연다는 것은 그분의 뜻을 받아들이고 순명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영적인 눈이 틔어서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과 삶을 바라보게 됩니다. 힘들고 절망적인 상황에도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바라보며 희망을 지닐 수 있게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은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 말씀 안에 나타나는 하느님의 섭리를 알아볼 영적 시야를 일깨우시기 위함인 것입니다.주님께서 조건없는 사랑과 한없는 자비로 우리 마음을 여시어 구원의 진리를 깨닫게 해 주셨으니, 힘들고 괴로운 이 세상에서도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으로 기쁘게 살 수 있는 법을 알려주셨으니, 우리는 즉시 죄를 뉘우치고 삶의 방향을 하느님께로 되돌려야 합니다. 또한 모든 민족들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아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사랑과 자비의 실천으로 그들을 하느님께 이끌어야 합니다. 그것이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증거자’로서의 소명입니다. 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평화신문2021.04.14

수도권 성당 좌석의 10% 대면 미사 허용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비수도권은 20%까지 허용… 마스크 착용 등 방역수칙은 유지 정부가 18일부터 수도권은 성당 좌석의 10%, 비수도권은 20%까지 대면미사를 허용하는 방역 지침을 일부 완화했다. 사진은 띄엄띄엄 앉아서 기도하는 신자들 모습. 가톨릭평화신문 DB 정부가 18일 0시부터 수도권은 성당 좌석의 10%, 비수도권은 20%까지 대면 미사를 허용하는 등 종교기관에 적용하는 지침을 일부 완화했다. 이번 지침 적용기간은 1월 18일부터 31일까지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17일 각 중앙 부처, 17개 광역자치단체와 함께 사회적 거리두기 조정방안 등을 논의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 수도권은 2.5단계, 비수도권은 2단계를 유지하되 기존 지침을 일부 조정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종교 시설의 경우 정규 미사와 예배, 법회 등 위험도가 낮은 종교 활동은 마스크 착용, 거리두기 등 방역 수칙 준수 하에 좌석 기준으로 수도권 10%, 비수도권 20%까지 대면 진행을 허용했다. 이와 관련, 종교시설 관리운영자는 반드시 좌석이나 바닥면에 거리두기 지점을 표시해 이용자에게 안내해야 하고 같은 시간대에 출입 가능한 인원수를 게시해야 한다. 2m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을 전제로 성가도 부를 수 있다. 성가대 운영은 여전히 금지되지만 성가대 운영은 하지 않고 특송만 할 경우 마스크를 착용하고 하는 독창은 가능하다. 또 노래는 하지 않고 미사 진행에 필요한 음악만 연주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 종교시설의 회계, 시설관리 등 운영을 위해 불가피하게 모임 개최가 필요한 경우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 환기·소독, 음식섭취 금지, 출입자 증상 확인 및 명단 관리 등을 한 뒤 모일 수 있게 됐다. 다만 모임 기준은 2.5단계가 유지된 수도권은 49명까지, 2단계인 비수도권은 99명까지만 가능하다. 성당에서 결혼식과 장례식을 진행하는 것도 허용됐다. 다만 결혼식과 장례식장, 공연장 등 고유목적시설 기준에 따른 방역수칙을 지켜야 하고 결혼식 후 별도 공간에서 식사하는 것은 ‘식당 방역수칙’을 따라야 한다.미사 주례자도 마스크 착용 의무 대상으로 미사 참여자들과 마찬가지로 마스크를 써야 한다. 특히 성당 자체 유튜브 방송을 송출할 경우 방송법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주례자는 마스크를 써야 한다. 하지만 지상파나 케이블ㆍIPTV로 송출되는 미사 중계는 방송법에 따라 마스크를 벗을 수 있다. 성경공부 모임, 구역 모임 등 모든 소규모 모임과 식사, 숙식하며 참여하는 종교행사는 여전히 금지된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각종 인원 제한, 숙식 및 소모임 금지, 큰 소리로 함께 기도하기 금지 등 각 종교 시설들이 정부가 내린 방역 수칙을 준수하는 지 지속적으로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cpbc2021.01.20

벽 전체 장식한 ‘최후의 심판’...사실주의적 인물 묘사 돋보여[슬기로운 성당이야기] (12)토르첼로의 산타 마리아 아순타 대성전(하) 스크로베니 경당에 있는 지오토의 최후의 심판. 로마에서 지내다 보면 많은 순례자를 만나게 되고, 개인적으로 아는 지인을 위해서 가이드 역할을 한다. 멀리서 찾아온 순례자를 위한 일정을 준비하다 보면 로마에서 꼭 보여드려야 할 리스트들을 정리하게 된다. 그중에서 빼놓지 않는 곳이 시스티나 성당이다. 시스티나 성당을 찾아간 사람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은 아무래도 미켈란젤로의 ‘천지 창조’와 ‘최후의 심판’이다. 미켈란젤로의 이 예술 작품을 통해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대한 경외와 찬미, 그리고 감사를 드리면서 또한, 세상의 마지막 날에 주님 앞에 선 자신을 떠올리며 겸손을 배우는 시간이 된다. 이러한 찬미와 겸손의 시간을 하늘을 향해 높이 솟은 탑이 유명한 토르첼로에서 또다시 갖게 된다. 감탄을 자아내는 최후의 심판 모자이크이코노스타시스를 통해 제단에 들어가서 단순한 제대와 앱스에 있는 성모상, 그리고 가대석으로 반원형으로 둘러싸인 주례석을 바라보며 그 단순함을 생각하다가 돌아서면 동공이 커진다. 성당의 출입구가 있는 서쪽 벽을 장식한 최후의 심판 모자이크는 성당을 나가려는 순례자의 발길을 자연스럽게 멈추게 하는 감동을 준다. 이 모자이크는 11세기 후반부터 12세기까지 제작되었다. 벽 전체를 장식하고 있는 규모만으로도 압도하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바로 최후의 심판 도상이다. 맨 위쪽부터 시작해서 정확하게 6단계 15장면으로 구성된 최후의 심판은 각 장면을 자세히 살펴보게 하는 매력이 있다.6단계 15장면으로 구성된 최후의 심판이 6단계 구성의 시작은 맨 윗부분에 있는데,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는 골고타 언덕 장면으로 성모님과 요한 사도가 십자가 양쪽에 서 있다. 두 번째 단계는 아나스타시스(Anastasis) 도상으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저승으로 내려와 쇠사슬을 풀고 그곳에서 기다리는 영혼들을 해방시켜주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여기에는 아담과 하와, 다윗과 솔로몬이 해방된 영혼들과 함께 있다. 이 모든 이를 양쪽 끝에서 대천사 미카엘과 가브리엘이 지키고 있다. 세 번째 단계는 심판자 예수님을 중심으로 양쪽에는 성모님과 요한 세례자, 그리고 12사도가 자리하고 있다. 네 번째 단계는 ‘준비’를 뜻하는 에티마시아(Etimasia) 단계로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는 빈 옥좌에 대한 경배로 이어진다. 이 단계는 주님의 재림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빈 옥좌 위에 성경이나 비둘기, 십자가 등이 있다. 이미 사심판받은 자들이 양쪽에 배치되어 있는데, 왼쪽에는 선택된 이들이 있고, 오른쪽에는 저주받은 자들의 잘린 시체들이 놓여 있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단계는 다섯 장면으로 천국과 지옥의 모습이 장식되어 있다. 왼쪽 두 장면은 천국을 묘사했는데 꽃밭 위에 성모님이 천국의 문 앞에 있고 하단에는 구원받은 영혼들과 함께 아브라함이 묘사되어 있다. 반면 오른쪽에는 저주받은 영혼들로 둘러싸인 사탄이 유다를 잡고 있다. 라벤나의 모자이크와는 완전히 다른 사실주의적 인물 묘사가 특징이러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최후의 심판은 오랜 역사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여기에 독특한 도상과 표현이 단연 돋보인다. 등장인물들을 살펴보면 비잔틴 모자이크의 대표주자인 라벤나의 성당들(5~7세기)에 나타난 인물들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천천히 살펴보면 모든 묘사에서 비잔틴 교회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사실주의적 묘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이러한 단계별 구성과 사실주의적 표현은 그 후 지오토가 그린 최후의 심판(파도바 스크로베니 소성당, 1305년)에 영향을 미쳤고, 이 영향은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1536년)으로 이어진다. 공포심과 두려움이 아닌 부활의 희망을 주는 최후의 심판최후의 심판이 성당에 그려지는 이유는 단순히 성당을 나가기 전 신자들에게 공포심을 상기시키는 도덕적인 경고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전례의 마지막 페이지를 나타내며 신자들에게 자신들이 가고 싶은 세계를 알고 교회를 떠나라는 의미이다. 곧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마태 25,46)라는 예수님의 최후 심판에 관한 말씀을 기억하게 한다. 복원작업으로 인하여 발견된 옛 프레스코화이 성당을 유명하게 만든 사건은 2020년에 일어난다. 2019년 시작된 성당 복원은 약 1년간 88만 유로(한화 12억 원)를 쓰며 떠들썩하게 시작되었는데 2020년 그 결실을 보게 되었다. 성당 내부의 모자이크 장식 이전 프레스코화들의 조각들이 발견된 것이다. 9세기 프레스코화들로 주제는 대부분 성모님에 관한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프레스코화들인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데, 이 습기 많은 늪지 위에서 1000년 이상 보존되었다는 것 자체가 기적같은 일이었다. 현재의 성당 이름인 성모 승천 대성당은 11세기에 명명되었는데, 그 이전 성당의 이름은 기록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이러한 프레스코화들의 발견으로 이 성당은 처음부터 성모님께 봉헌된 성당이라고 추측할 수 있게 되었다. 필자 또한 아직 이 프레스코화들을 대면한 적이 없다. 2020년 귀국해 아직 이탈리아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이탈리아로 가게 되면 바로 토르첼로 섬을 찾을 것이다. 원본들을 대면할 생각에 벌써 가슴이 두근거린다.1년 동안 중세 시대에 건립된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일곱 성당을 선정하여 이야기를 이어왔다. 이 성당들의 선정 기준은 우선, 이탈리아에 있는 중세 시대 건축된 것이어야 한다. 다음으로는 모두가 알고 있는 대성당이 아니면서도 성화나 전례 공간의 가치가 충분한 성당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두 필자가 적어도 한 번 이상은 가봤던 성당이라는 사실이다. 이탈리아에서 미술을 전공한 현지 가이드와 전례학을 가르치는 신학자가 함께 작업했다는 사실이 조금은 새롭다고 하겠다. 처음 ‘슬기로운 성당 이야기’를 기획하며 의도한 목적은 역사·문화·종교적 가치가 있는 성당의 성화들과 전례 공간을 될 수 있으면 자세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문 단어들을 사용해야 했고, 그 성당에 가봐야 이해가 되는 조건들이 있다는 한계로 인해서 독자들이 때때로 이야기를 이해하기 힘들었으리라 생각한다. 코로나가 잠잠해져서 해외 여행이 자유로워진다면 함께 지금까지 이야기한 성당들을 순례하고 싶다. 그동안 ‘슬기로운 성당 이야기’를 열심히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린다. 윤종식 신부(가톨릭대학교 전례학 교수) 박원희(사라, 이탈리아 공인 가이드)※그동안 ‘슬기로운 성당 이야기’를 연재해 주신 윤종식 신부님, 박원희 가이드와 애독해 주신 독자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cpbc2021.08.04

베드로 대성전 건립 자금 뒷거래가 촉발한 종교 개혁의 바람[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38) 파울 투만의 ‘레오 10세 교황의 파문 교서를 불태우는 마르틴 루터’ 파울 투만, ‘레오 10세 교황의 파문 교서를 불태우는 마르틴 루터’, 1872년, 바르트부르크성 박물관, 독일 튀링겐. 율리오 2세 교황의 뒤를 이은 사람은 레오 10세(재위 1513~1521)였다. 메디치 가문 로렌조 마니피코의 셋째 아들 조반니가 제217대 교황이 된 것이다. 마니피코의 똑똑한 아들로 정평이 나 있던 조반니는 13살에 인노첸시오 8세 교황으로부터 부제급 추기경으로 선임되었으나, 부친이 사망한 이후 가문의 쇠퇴와 함께 로마를 떠나 유럽을 돌아다녔다. 힘든 시절을 견문을 넓히는 기회로 삼은 것이다. 1500년 5월 조반니는 로마로 돌아왔고, 알렉산데르 6세 교황은 그를 환대했다. 그러나 1503년 율리오 2세가 새 교황으로 즉위하면서 메디치가의 추기경들을 호의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1508년부터 재개한 ‘캉브레 동맹 전쟁’ 중 1511년 8월 교황은 돌연 병에 걸렸고, 그때 자신의 사후 콘클라베(교황 선거)가 어떻게 진행될지를 예측하게 되었다. 건강은 회복한 율리오 2세는 1511년 10월 북부 이탈리아 로마냐 지방 특사로 조반니 추기경을 임명했다. 조반니는 교황군을 이끌어 로마냐 지방을 평정하고, 피렌체에서 권력을 회복했다. 메디치가는 다시 피렌체에 입성했고, 조반니는 율리오 2세의 뒤를 이어 레오 10세 교황이 되었다.성 베드로 대성전 건축 사업과 비용 마련 고심 레오 10세는 율리오 2세가 시작한 많은 일을 그대로 떠안아야 했다. 캉브레 동맹을 종결하고, 제5차 라테란 공의회(1513~1517)를 열어 피사 공의회파 이단을 종식하며, 이제 막 시작한 성 베드로 대성전 공사를 진행해야 했다. 율리오 2세가 궁정에서 만났던 르네상스 예술가 세 명의 운명도 갈렸다. 라파엘로는 여전히 라파엘로의 방들을 그리고 있었고,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소성당의 천장화 ‘천지 창조’를 완성하고 델라 로베레 가문과 율리오 2세 교황의 영묘 건설 두 번째, 세 번째 계획서를 제출하고 있었다. 브라만테는 성 베드로 대성전 건축이라는 엄청난 일을 시작하고, 율리오 2세에 이어 이듬해(1514년)에 그도 사망했다. ‘대성전을 훼손한 사람들에게 내린 하늘의 징벌’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레오 10세는 성 베드로 대성전 건축을 이어갈 적임자를 찾고, 비용도 마련해야 했다. 사촌 율리오 추기경과 함께 추진하던 피렌체 성 로렌조 메디치가(家) 대성당의 정면 공사는 비용 문제로 일단 포기했다. 그리고 성 베드로 대성전 건축을 라파엘로에게 맡겼다. 미켈란젤로는 델라 로베레 가문과 합의를 못 보고 1516년 피렌체로 돌아갔다.레오 10세가 교황으로 있는 동안 로마는 여러 면에서 인문주의적 가치를 발휘했다. 학자, 예술가, 음악가와 시인들을 환영하고 그들에게 숙박을 제공해줌으로써 로마를 그리스도교의 중심지뿐 아니라, 유럽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미국인 철학자며 사학자인 윌 듀란트(Will Durant, 1885~1981)는 저서 「르네상스」에서 레오 10세 교황 재임 시 로마를 두고 “단지 문화의 양만 보더라도, 역사상 결코 이와 같은 시절은 없었다. 페리클레스 재위 시절 아테네도,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절의 로마도 결코 이렇지는 못했다”고 할 정도였다. 메디치가의 교황은 사회로부터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을 고루 살피며 혜택을 주었다. 노인과 환자들을 먼저 돌보고, 퇴역 군인과 순례자들을 대접하며, 사회 부적응자와 망명자들을 위한 시설을 만들었다. 빈민들과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무상 교육도 시행했다.대사 판매에 반발한 루터, 파문에도 굽히지 않아 하지만 그의 이런 모든 업적을 덮는 엄청난 사건이 그의 재임 기간에 일어났는데, 그것이 바로 ‘종교 개혁’이었다. 레오 10세는 캉브레 전쟁 종결을 위한 프랑스와의 전쟁과 로마에서 진행 중인 성 베드로 대성전 건설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독일 작센안할트주의 마그데부르크-할버쉬타트의 알브레히트 대주교와 계약을 맺었다. 마인츠대교구장직을 승계하도록 허락하는 조건으로, 1만 두카토(135억 원 상당)를 받기로 한 것이다. 알브레히트는 푸거 은행에서 돈을 대출받기로 했고, 교황은 그가 대출을 잘 받을 수 있도록 보편 교회가 주는 ‘대사(Indulgentia)’를 6년간 그의 관할 교구에 한해 대주교가 줄 수 있다는 교서를 내려줬다. 알브레히트는 돈을 대출받아 절반은 로마에 보내고, 절반은 앞서 대출받은 대금을 상환했다. 알브레히트는 도미니코회 요한 테첼(Johann Tetzel) 수사에게 자기 교구 내에서 대사에 관한 설교를 부탁했다. 아우구스티누스회 마르틴 루터(Martin Lutero) 신부는 테첼의 설교에 거세게 반발했다. ‘대사 판매’는 성경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루터는 ‘대사 판매’와 함께 그간 로마 교회에 품었던 의구심을 95개 항목으로 정리하여 독일어로 번역한 뒤, 유럽 전역에 돌렸다. 그의 주장은 2주 만에 독일 전역으로, 두 달 후에는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레오 10세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전통적으로 수도사들이 뭔가를 주장하면, 소속 수도회 측에서 소환 혹은 제명되기도 하고, 주장과 반론으로 서로 성장하기도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도미니코회와 아우구스티누스회 간, 수사들 간의 다툼으로 과소평가했다. 그 사이에 일부 신학생과 그간 교회에 불만을 품고 있던 사람들이 루터의 주장에 동조했고, 1517년 12월 루터는 자신이 강의하던 비텐베르크 대학교 ‘모든 성인 성당’ 정문에 논박문을 붙였다. 1518년 2월 교황은 아우구스티누스회 총대리에게 수사들의 입단속을 지시했고, 루터는 그해 5월 30일, 자신의 95개 반박문에 대한 설명을 레오 10세에게 제출했다. 1518년 10월 교황은 특사 가예타노(Thomas Cajetan) 추기경을 아우크스부르크로 보내는 등 여러 차례 루터에게 주장을 굽힐 것을 요구했고, 루터는 끝내 철회하지 않았다. 1520년 6월 15일 레오 10세는 교서 「주여 일어나소서(Exsurge Domine)」를 통해 루터의 주장에서 41가지 오류를 열거하며, 60일간 말미를 줄 테니 주장들을 철회하고, 급진적인 주장을 담은 그의 서적들을 모두 불태우라고 명했다. 그렇지 않으면 파문시키겠다고 했다. 루터가 파문 위협이 담긴 교서를 받아든 것은 그해 10월 10일이었다. 그로부터 유예 기간이 끝나는 12월 10일 루터는 비텐베르크성의 ‘엘스터 문’ 앞에서 교황 교서뿐 아니라, 스콜라 신학 서적과 교회법전을 모두 불 속에 던졌다. 독일 출신 삽화가이자 화가 소개하는 작품은 독일 출신의 삽화가며 화가, 파울 투만(Paul Thumann, 1834~1908)이 그린 ‘레오 10세 교황의 파문 교서를 불태우는 마르틴 루터’(1872)이다. 그림은 중세 튀링겐 지방 문화의 중심지며, 파문당한 루터가 작센의 선제후 프리드리히(Friedrich)의 보호 아래 숨어지내던 아이제나흐 바르트부르크(Wartburg)성에 있는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투만이 그린 ‘마르틴 루터의 생애’ 연작 5개 중 하나다. 투만은 마을 학교 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일찌감치 능력을 알아본 아버지 덕분에 1854~1856년, 베를린의 프로이센 예술 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이후 몇 년간 드레스덴에서 일하다가 라이프치히에서 2년을 보낸 후, 바이마르의 그랜드 듀칼 색슨 미술학교(Saxon-Grand Ducal Art School)에서 공부했다. 1872년 드레스덴에서 교사, 1875년 베를린 아트 아카데미에서 교수로 활동했다. 헝가리, 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 영국 등지를 여행했고, 1887~1891년에는 이탈리아에서 살기도 했다. 1892년부터 괴테, 테니슨, 샤미소, 하이네 등의 유명 저서들에 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삽화는 우아한 디자인과 분별력 있는 진지함, 인물의 품격을 잘 표현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1908년 베를린에서 사망했다.그림 속으로 1520년 12월 10일 오전 9시 루터는 동조하는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레오 10세 교황 교서와 로마 교회 관련 책들의 화형식을 거행하고 있다. 가톨릭교회와 결별을 선언하는 장면이다. 나뒹구는 책과 둘러선 사람들 표정과 제스처가 모두 극적이다. 타오르는 장작의 연기에 가려진 희미한 배경이 이 사건을 시작으로 불어닥칠 유럽의 암울한 미래를 예견하는 것 같다. 이 사건이 있은 지 한 달이 채 안 된 이듬해, 1521년 1월 3일 레오 10세는 교서 「로마 교황의 선언(Decet Romanum Pontificem)」을 통해 루터를 공식 파문했다.2017년 종교 개혁 500주년에 아우구스티누스수도회와 프란치스코 교황은 “종교 개혁은 기념이 아니라 현실”이라며, 루터가 던진 과제는 “개혁은 교회(와 그리스도인 각자)를 송두리째 쇄신하는 것이며, 그 근거는 언제나 성경”임을 강조했다. 파울 투만, ‘레오 10세 교황의 파문 교서를 불태우는 마르틴 루터’, 1872년, 독일 바르트부르크성 박물관 소장.김혜경 (세레나,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이탈리아 피렌체 거주) cpbc2021.03.31

‘아가’(雅歌)를 모르고 어찌 청춘을 말할 수 있으랴[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 (32)사랑학 교과서 ‘아가’ 구약 성경 ‘아가’와 안소근 수녀의 아가 해설서 「아름다운 노래, 아가」. 아가는 원죄 이전의 인간적 사랑을 보여주는 ‘사랑학 개론’이다. ‘아가(雅歌)’를 아시나요? 주님 하느님 예수님 등 거룩한 말이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 ‘이상한’ 성경, 가슴 뜨거운 청춘 남녀가 달콤한 밀어를 속삭이는 ‘사랑학 개론’ 말입니다. 아가를 펴들면 첫 장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아, 제발 그이가 내게 입 맞춰 주었으면! 당신의 사랑은 포도주보다 달콤합니다.”(1,2) 아담과 하와는 원죄를 짓기 전 에덴동산에서 어떤 사랑을 나누었을까요? 궁금하지 않나요? 아가가 그 궁금증을 풀어줍니다. 저는 독특한 독서 버릇을 갖고 있습니다. 책을 손에 들면 책의 가장 뒷부분에 있는 저자 후기를 먼저 읽고 난 다음 본문을 읽습니다. 안소근 수녀님의 「아름다운 노래, 아가」(성서와 함께)를 볼 때에도 후기를 먼저 읽었습니다. 수녀님이 신학교에서 강의할 때 이런 재미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2011년 어느 봄날 1교시 히브리어 수업시간이었습니다. 학교 마당을 쓸고 온 서울 신학교 2학년 학생들이 정말 한 명도 빠짐없이 졸고 있었습니다. 연계형, 절대형, 단수, 복수, 아무리 문법을 설명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설명을 중단하고 물었습니다. ‘예레미야서를 읽어 줄까요, 아가를 읽어 줄까요?’ 학생들이 갑자기 이구동성으로 ‘아가요!’하고 대답했습니다. 뜻밖이었습니다.”인간적인 사랑을 노래그러면 그렇지! 신학생들도 청춘은 청춘이구나. 아가를 모르고 어찌 청춘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아가가 젊은 신학생들의 춘곤증을 몰아내 준 각성제였다니, 아가를 읽는 제가 갑자기 젊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가는 수녀님의 인생도 바꾸어 놓은 모양입니다. 수녀님의 고백입니다. “아가는 저를 뒤집어 놓았던 책입니다.”대체 아가의 내용이 어떻길래, 젊은 여성 수도자를 뒤집어 놓았을까. 아가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또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청춘 남녀의 사랑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수녀님의 해석은 다릅니다. “아가는 남녀의 사랑, 감각적이고 인간적인 사랑을 노래합니다. 이것이 아가의 주제입니다.” 청소년 교육과 관련한 의문점입니다. 사람들은 왜 에로스(인간적 사랑)를 가르치지 않을까.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성당에서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반면 아가페(도덕적 사랑)에 대한 교육이나 훈계는 차고 넘칩니다. 청소년들에게 성 문제야말로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중요한 관심사인데 말입니다. 성욕을 이야기하면 수준 낮은 사람으로 오해받기 쉽습니다. 그래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위선이지요. 성욕은 식욕과 함께 인간 존재와 관련된 가장 원초적인 생물학적 본능입니다. 식욕이 없다면 현재가 없고, 성욕이 없다면 미래가 없습니다. 식욕이 있어야 현재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고, 성욕이 있어야 미래의 후손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식욕과 성욕은 하느님이 주신 소중한 선물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품위 있게 발산하느냐입니다. 제대로 가르쳐 주는 곳이 없으니 딱하지요. 식사예절에 대한 교육은 많습니다만, 성 예절에 대한 교육은 거의 없잖습니까. 아가 속의 사랑은 무척 관능적입니다. 목 허벅지 배꼽 젖가슴 등 상대의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7장)는 제가 봐도 낯간지러울 정도입니다. 그러나 품위 있습니다. 원죄 이전의 사랑이 이런 것이었구나, 사랑이란 상대방에게서 하느님의 모상을 확인하는 과정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수녀님의 의견입니다. “아가는 죄로 물들기 전 낙원에서 살던 인간의 모습을 통하여 다시 완성될 낙원의 모습을 그려 보입니다.” 주인공은 여성 관심을 끄는 대목은 남녀의 위상입니다. 여자가 시종일관 남자를 리드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남녀가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 사랑하지만, 주인공은 분명히 여자입니다. 아가의 또 다른 맛입니다. 구약 신약 통틀어서 여성이 주인공인 성경은 아가가 유일하지 않습니까. 고대 근동은 남성 위주의 가부장제가 극에 달했었지요.아가는 최고의 사랑학 교과서입니다. 세상 어디서 이렇게 격조 높고 우아한 사랑의 기교를 배울 수 있겠습니까. 어느 종교의 경전에 이런 내용이 있을까요. 아마도 성경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수녀님은 결혼을 앞둔 여성들이 아가를 읽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십니다. 저는 생각이 약간 다릅니다. 사춘기 청소년들, 그리고 이들에게 성교육을 시켜야 할 부모님들과 선생님들(학교와 성당)에게 아가를 강추합니다.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 평화신문2020.07.21

사순절에 광야를 생각한다[사유하는 커피] (44) 겨울 있어 커피나무도 꽃을 피운다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장 3월이면 광야를 생각하게 된다. ‘재의 수요일’에서 시작해 40일간 이어지는 사순절이 예수께서 겪은 ‘광야의 유혹(Temptation of Christ)’을 떠오르게 하는 까닭이다. 사실 역사적 시기를 따진다면, 광야에서 40일간의 단식이 바로 부활절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사이에는 예수께서 가정생활(私生活)에서 떠나 공적으로 복음을 전한 3년간의 공생활(公生活)이 있다. 그럼에도 부활의 신비를 이야기할 때, ‘십자가 수난’만큼이나 ‘광야의 유혹’에 무게가 실리는 것은 그 속에 담긴 깊은 의미 때문이겠다. 광야는 라틴어로 데세르툼(deser tum)에서 유래했으며, 영어로는 사막을 뜻하는 ‘데저트(desert)’로 표기한다. 사전적으로 데세르툼은 ‘버려진 곳’ 또는 ‘지나갈 수 없는 곳’으로 풀이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광야의 개념과는 뉘앙스가 다르다. 바싹 마르고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사막에 비해, 광야는 감성적으로 보다 희망적인 곳으로 다가온다.모세가 이끈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는 이집트 추적대를 따돌릴 은신처가 됐고, 엘리야에게 광야는 위기에서 목숨을 구하는 반전의 장소가 돼 주었다. 요한 세례자와 예수, 사도 바오로의 진정한 삶 역시 광야에서 시작됐다. 그러므로 광야는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 거듭나는 공간이다. 한국인의 정서에도 광야는 훗날 초인이 백마를 타고 올, 그리움 같은 희망이다.구약성경에 히브리어로 적혀 있는 광야는 ‘미드바르’이다. ‘~로부터’라는 전치사 ‘미’와 ‘말하다’는 뜻을 지닌 ‘다바르’가 합쳐졌다. 히브리 사람들에게 광야는 단지 장소가 아니다. 말씀으로 자신들을 이끌어주는 거룩한 존재 자체, 곧 하느님을 의미한다. 광야의 이런 추상성은 현실에도 활용되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아이비리그로 손꼽히는 다트머스대학교의 라틴어 모토이다. 이 학교의 심벌에는 “복스 크라만티스 인 데세르토(VOX CLAMANTIS IN DESERTO)”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목소리”라는 뜻이다.‘광야’는 정서적으로 ‘황야’와는 다르다. 황야는 ‘버려두어 거친 들판’이라거나 ‘인적없이 삭막한 벌판’이라는 식으로 부정적이다. ‘황야의 무법자’라는 1964년 작 영화 제목만 봐도 그렇다. 미국 작가 잭 런던의 소설 ‘황야의 부르짖음’에서, 황야는 배신과 복수가 난무하는 세상을 은유한다. 황야나 사막이 광야가 되기 위해선 생텍쥐페리가 사유한 것처럼 어딘 가에 샘(희망)이 숨겨져 있어야 한다.우리에게 광야가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나약함을 드러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홀로 이겨낼 수 있는 수준의 고난과 역경만이 감도는 곳이라면 광야가 아니다. 스스로 골방으로 걸어 들어가지 않는 자로 하여금 홀연히 무릎 꿇고 기도를 드리게 만드는 공간이어야 한다. 광야는 초인의 영역이요, 인간에게는 신에게 의탁하는 회개의 시공간이다. 모든 생명이 사라진 듯 보였던 잿빛 동토에도 3월이면 어김없이 파릇파릇 생명이 움튼다. 우리의 의지로 겨울을 물리고 봄을 부를 수 없지만, 누구도 불안에 떨지 않는다. 신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계절처럼 광야의 고난 뒤에 부활의 영광이 따른다. 예수께 광야와 부활은 동치(同値)이다. 광야가 없으면 부활이 없고, 부활이 없으면 광야도 없다.광야는 모든 생명에게 같은 의미일 성싶다. 커피나무에게 겨울 같은 기온 하강이나 사막 같은 건조기가 없으며 꽃을 피우지 못한다. 냉혹한 환경이 커피나무로 하여금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도록 자극을 주어야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커피나무에게 이러한 고난이 극복 여부와 상관없이 완성을 이루기 위한 축복인 셈이다. 우리에게도 광야는 축복이 아닐 수 없다.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커피인문학」 저자) 평화신문2021.03.24

미국 바이든 당선인, 케네디 이어 두 번째 신자 대통령… “나는 실천하는 신앙인”제46대 대통령 당선자 바이든, 부통령 때부터 사회교리 통한 성장 강조... 인종주의 철폐·인도주의적 이민자 공약 표명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국을 방문한 뒤 로마로 돌아가는 마지막 날 조 바이든 당시 부통령이 환송하고 있다. 【CNS 자료 사진】 7일 미국 제46대 대통령에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가 당선된 뒤 미국 가톨릭교회는 “지도자들이 국민 통합의 정신으로 함께 연대해야 한다”고 축하와 함께 당부의 뜻을 전했다.미국 주교회의 의장 호세 고메즈(로스앤젤레스대교구) 대주교는 이날 오후 발표한 성명을 통해 “자유의 축복을 내려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미국 교회를 대표해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에게 축하를 전한다”며 “정치 지도자들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 대화와 타협에 전념해야 한다”고 밝혔다.조 바이든은 1960년 제35대 대통령이 된 존 F. 케네디에 이어 60년 만에 탄생한 두 번째 가톨릭 신자 대통령이 됐다. 카멀라 해리스는 사상 첫 흑인, 아시아계 여성 부통령이 됐다. 바이든은 2009~2017년 부통령 시절부터 “나는 실천하는 가톨릭 신자이며, 신앙은 내게 선물”이라며 “우리 모두의 첫 번째 의무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두 번째 의무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존엄할 권리를 지니며, 이는 우리 집안의 원칙으로 자리한다”고 밝힌 바 있다.바이든은 부통령 시절 대선 운동에 나설 당시에도 연설 때마다 성경 구절을 인용하기도 하고, 사회와 환경, 이민자 문제 등을 이야기할 때엔 자신이 “가톨릭 사회교리를 통해 성장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가 태어난 펜실베니아주와 오하이오주의 가톨릭 신자들과도 가까운 바이든은 2016년 힐러리 클린턴 대선 운동 당시 신자들을 결집하는 데에도 힘썼다. 바이든의 주변인들은 “그는 교리보다 신앙 자체에 초점을 둔다” “교리를 전하기보다 유권자들과 함께 기도한다”고 전한다. 바이든은 부통령 시절이던 2015년 미국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국 워싱턴 연방의회에서 합동연설을 한 자리에서 교황을 맞이했고, 이듬해인 2016년 바티칸을 찾아 교황을 알현하기도 했다.바이든 당선인은 이번 대선 공약으로 미국 사회 중추를 이루는 중산층 재건과 함께 이민자, 노동자들을 아우르는 사회보장제도 수립을 피력해왔다. 미국 시민들에게 공공의료보험의 선택권을 넓히고, 저소득 가정에 보험 혜택을 확대하는 등 오바마케어를 재구축하는 데 힘쓸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은 흑인과 이민자들을 위한 인도주의적인 정책에 관해서는 미국 가톨릭교회와 뜻을 같이하고 있지만, 여성 낙태에는 찬성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미국 가톨릭교회와 견해차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실제 미국 내 일부 주교들과 가톨릭 신심 단체들은 낙태 합법화를 지지하는 바이든 후보를 향해 낙선운동을 펼치는 등 반대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바이든 당선 이후 몇몇 교구의 주교들과 가톨릭 단체에 속한 수도자와 신자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회 분열적 정책들을 더 큰 우려로 보고, 소외된 이들과 공감할 지도자를 뽑았다”며 지지의 뜻을 보였다. 특히 미국 내 사제와 신자들은 바이든이 표명한 인종주의 철폐와 이민자들을 향한 인도주의적 공약을 잘 이행해 달라고 당부했다.바이든 당선인은 7일 연설을 통해 “성경은 우리에게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고 말한다. 이젠 무언가 일구고 수확해야 할 때이며, 씨를 뿌려야 할 때가 다가왔다”며 “지금은 미국을 치유할 때”라고 밝혔다.바이든 당선인은 “지금 우리는 함께 독수리 날개 위에 있다. 우리는 주님의 역사가 우리에게 행하도록 명한 일을 시작하자”며 성가를 인용하기도 했다. 아울러 그는 “우리는 인종, 민족, 종교, 정체성,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국가의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대화와 협력으로 하나 된 사회를 구축해 나가자고 역설했다.고메즈 대주교는 성명에서 “지금 이 순간 미국 역사 안에서 가톨릭 신자들은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친교와 상호 신뢰를 증진하며, 진정한 애국심과 새로운 정신을 일구는 특별한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메즈 대주교는 또 “법률과 공공정책에 관한 논쟁에서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존중하고, 서로 예의를 갖춰 대화해 나아갈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cpbc2020.11.11

신천지 탈퇴 신자 인터뷰2014~2015년 신천지 다니다 탈퇴한 A씨, 내부 교육 자료 공개... 성경 공부 바로잡기 위해 CPBC 시청, 위장 단체 활동 주의 경고 A씨가 신천지센터 교육 때 필기했던 노트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신천지 내부 상황을 낱낱이 전하면서도 아직도 잘못된 믿음에 갇힌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신천지는 우리 사회에 ‘독가스’와 같은 존재입니다. 정신적인 공산주의 체제 아래에서 수많은 영혼을 잘못된 믿음으로 이끄는 마귀 집단입니다.”본지에 신천지 내부 교육 자료를 제공한 A(59)씨는 2014~2015년 동안 1년여 신천지에 다니다 겨우 탈퇴했다. 모태 개신교 신앙인이었던 그는 평소 밑반찬이며 몸에 좋은 음식을 때마다 가져다주던 인심 좋은 옆집 이웃의 “성경공부 한 번 해보지 않을래?”하는 권유에 약해졌던 믿음을 되찾고자 따라간 것이 화근이었다고 했다. 지금도 동네 곳곳에 신천지 신도들이 출몰하는 탓에 A씨와의 인터뷰도 마스크를 착용한 채 차 안에서 이뤄졌다.A씨는 추수꾼이었던 그 이웃에게 “사이비 종교이면 절대 다니지 않겠다”고 경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마음씨를 보고서 ‘일단 어떤 곳인지 알아보자’는 심정으로 복음방을 거쳐 신천지센터에 들어가게 됐다. A씨는 “신천지의 집단성과 폐쇄성은 무서울 정도”라며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그는 “처음 센터에 들어가 초등 과정에 입문했을 때에도 제 옆자리에서 저를 감시하던 바람잡이가 제 행동을 기록해 상부에 보고했다”며 “자신도 교육생인 것처럼 속인 바람잡이는 늘 내게 ‘오늘 강의 어때?’ ‘공부가 잘 맞아?’ 하고 떠보고는 대화 내용을 기록했다”고 전했다. 센터 내 신입 교육생(열매)과 바람잡이(잎사귀)의 역할이 센터에서 계속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그는 과정이 끝나면 이만희 교주가 백마를 탄 모습 등이 담긴 영상을 수시로 보여준다고도 했다.A씨는 “신천지는 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연락한다”며 “제가 일주일 내내 교육과 예배에 매달려 몸이 힘들어져 일주일 세 번만 출석하겠다고 했더니, 이후엔 쉬는 날까지 신도들이 찾아와 위장된 친절을 베풀며 끈을 놓지 않았다”고 전했다.그는 최근 언론을 통해서도 잘 알려진 독특한 바닥 예배 방식에 대해서도 자세히 전했다. “바닥에 노란 박스 테이프를 앞뒤 1m 정도 간격으로 붙여놓습니다. 신도들은 거기에 3명씩 흐트러짐 없이 앉아야 해요. 한 번은 흰 셔츠가 좀 누런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퇴장 조치를 당하거나 새 옷으로 갈아입은 뒤에 다시 입장할 수 있었죠. ‘아멘’ 소리가 작으면 혼나기도 했습니다.”A씨가 다닌 센터는 상가 건물 4~5개 층을 쓰면서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철저히 ‘위장’을 유지했다. 교육생이 아래층에 도착하면 담당자가 내려가 엘리베이터에 동승하는 식이었다. A씨는 “교육생이 몰리는 시간이면 엘리베이터 앞에 길게 줄을 서기도 했다”며 “지문과 ID카드로 입장하는 신천지 예배당 시스템도 언론에 알려진 그대로”라고 했다.A씨는 탈퇴 후 당한 괴롭힘도 폭로했다. 그는 “신천지가 탈퇴하는 신도들은 절대 찾아가지 않는다고 거짓말하는데, 신천지 교인 3~4명이 봉고차를 타고 지겹도록 찾아와 성전에 가서 이야기하자며 1년 동안 설득하는 등 위협을 가했다”며 “제가 ‘왜 예수님을 안 믿고, 늙은 교주를 믿느냐’고 하면 도리어 비웃으며 ‘벌 받는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고 전했다.A씨는 잘못된 성경 공부 내용을 바로잡기 위해 가톨릭평화방송TV 성경 강좌를 틈날 때마다 시청하고, 라디오도 청취하고 있다고 했다. 신천지 내부 자료를 본지에 전달한 것도 “천주교 신자들이 신천지 위험에 노출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며 “신천지 사람들이 집안 곳곳에 숨겨둔 자료를 압수해 가려는 것을 사수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A씨는 “코로나19 사태로 탈퇴 신도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지만, 골수 신도들의 결속은 이어질 것”이라며 “지금도 카페, 학원, 연구소 등 위장 단체의 활동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최근 폭로되고 있는 신천지 실체는 모두 사실이라고 보면 됩니다. 신천지는 수개월 성경 공부 끝에 결국 예수님이 아닌, 이만희를 찬양하는 모순된 구조를 갖고 있어요. 저는 탈퇴해서 올바른 믿음을 지키며 불쌍한 그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특별취재팀 cpbc2020.03.18

서상범 주교, 4월 9일 군종교구장 착좌사목표어 ‘주님은 나의 힘, 나의 방패’와 주교 문장 확정 서상범 주교 임명자 제4대 군종교구장에 임명된 서상범 주교의 사목표어와 문장이 확정됐다. 사목표어는 시편 28장 7절에 나오는 “주님은 나의 힘, 나의 방패‘로 정했다. 서상범 주교 임명자는 “군대는 군사적인 기능이 있지만 우리는 결국 하느님을 힘 삼고 방패 삼아서 살 때 세속의 오류나 악의 세력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며 “이것이야말로 참다운 방어가 되고 힘이 될 수 있기에 사목표어로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문장은 신앙과 교회의 수호를 뜻하는 방패를 하늘, 땅, 바다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눴다. 상단 하늘은 공군, 중앙은 육군, 하단은 해군과 해병대를 상징한다. 방패 상단의 하늘은 청색으로 온 세계, 우주를 의미한다. 청색은 천상의 색이며 영원한 구원을 뜻한다. 그 안에 있는 12개의 별은 예수님과 함께한 12사도, 혹은 성경의 12지파를 말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며 복음을 선포한 12제자는 교회의 빛과 같은 존재다. 이들을 본받는 봉사와 선교의 사명을 강조했다. 방패 중앙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이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을 통해 구원의 삶과 새로운 희망을 갈구한다는 의미다. 평화를 상징하는 노란색, 예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는 흰색으로 구성된 십자가의 고결한 정신은 성체성사를 의미한다. 중앙 십자가 뒤의 반원은 군인의 철모를 형상화한 것이다. 철모의 배경색인 녹색은 ‘믿음’을 상징한다. 믿음을 통해 우리는 구원을 얻고 평화를 지킬 수 있다. 우리나라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애쓰는 군인의 삶은 때로는 힘들고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믿음이 있다면 큰 힘이 되고 정신적인 의자가 될 것이다. 방패 하단 하늘색 배경의 반원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두 부분으로 나뉜다. 왼쪽의 M은 동정녀 마리아의 믿음을 상징한다. 성모 마리아는 한국의 수호성인이자 예수님의 보호자다.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고생하는 군인들을 보호하고 신앙으로 굳건히 지키고 싶어 하는 메시지를 담았다. 오른쪽에 위치한 세 개의 물결은 세례성사를 의미한다. 세례성사는 원죄에서 벗어나 새로 태어나 예수님과 한몸이 될 수 있게 하는 가톨릭교회의 입교성사다. 20대 세례 성사를 받은 남성 중 90% 정도가 군 복무 중에 받았다. 군종교구의 특성상 세례성사를 통한 선교와 복음 전파를 강조한 것이다. 서상범 주교는 문장에 대해 “맨 위 하늘은 공군, 중앙 철모는 육군, 하단 바다는 해군과 해병대를 상징한다”며 “군의 화합과 함께 늘 주님 안에서 지켜달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서 주교는 4일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과 전임 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을 예방하고, 9일에는 주한 교황청대사관을 방문해 교황과 사도좌에 대한 충성 서약을 했다.서상범 주교의 서품식과 교구장 착좌식은 4월 9일 오후 2시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열릴 예정이다.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cpbc2021.02.17

성 요셉, 순명과 믿음의 삶 실천한 ‘성가정의 보호자’성 요셉의 해에 만난 요셉 성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보편 교회의 수호자 성 요셉’ 선포 150주년을 기념해 2020년 12월 8일부터 2021년 12월 8일까지 ‘성 요셉의 해’로 선포했다. 그림은 보편 교회의 수호자 요셉 성인화. 프란치스코 교황은 ‘보편 교회의 수호자 성 요셉’ 선포 150주년을 기념해 교황 교서 「아버지의 마음으로」를 반포했다. 아울러 교황은 교서를 반포하면서 2020년 12월 8일부터 2021년 12월 8일까지 1년을 요셉 성인을 기리는 ‘성 요셉의 해’로 선포했다. 교황청 내사원은 성 요셉의 해 동안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3월 19일)과 ‘노동자 성 요셉 기념일’(5월 1일) 등 요셉 성인을 기억하는 날에 성인의 전구를 청하며 기도하는 모든 이에게 전대사의 은총을 수여한다고 공포했다. ‘성 요셉의 해’에 맞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이신 성 요셉 대축일을 기념해 요셉 성인에 대해 알아본다. 복음서가 말하는 요셉 성인요셉 성인의 행적은 마태오와 루카 복음서 1─2장에만 나온다. 요셉 성인은 성령으로 인해 처녀의 몸으로 아들을 잉태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임으로써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에 동참해 구세주의 보호자가 된다. 복음서는 요셉 성인을 ‘의로운 사람’(마태 1,19),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는 경건한 사람’(마태 1,20─2,15 참조), 또 ‘신심 깊은 사람’(루카 2,22-24 참조)이라고 증언한다. 요셉 성인은 의로운 사람이다. 그는 마리아의 임신 소식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남몰래 파혼하기로 작정할 만큼 신중하고 과묵한 사람이다. 그는 또 겸손한 하느님의 종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마태 1,20) 하는 천사의 말을 들은 후 의심을 풀고 마리아와 혼인하고 예수님의 아버지가 된다.요셉 성인은 정결한 남편이다. 요셉은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는 천사의 말을 듣고 “아내가 아들을 낳을 때까지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다.”(마태 1,23-25) 이로써 요셉은 마리아와 함께 구세주의 강생 신비에 동참한 최초의 인물이 된다.요셉 성인은 성실한 아버지이다. 그는 법적인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예수’라는 이름을 지어주고(마태 1,21-25), 할례를 시키고(루카 2,21), 성전에 봉헌(루카 2,22)했다. 그리고 아내와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집트 피난(마태 2,13-15)을 마다치 않았고, 나자렛으로 돌아와 성가정을 보살피며 가장으로서의 사명을 수행한다.(루카 2,51-52)요셉 성인은 다윗 가문(마태 1,1; 루카 1,27) 사람으로 목수(마태 13,55) 일을 하였다. 고향은 베들레헴(루카 2,4 참조)이었으나 나자렛에서 생활(마태 2,13-15)했다. 신약 외경이 말하는 요셉 성인가톨릭교회는 성경에 포함되지 않은 문학 작품을 헬라어로 ‘아포크리파’(αποκρυφα), 우리말로 ‘외경’(外經)이라고 한다. ‘감추어진 것’ ‘숨겨진 것’이란 뜻의 아포크리파는 성경 경전과 비슷한 면을 지니면서도 영지주의 등 교회와는 다른 가르침을 전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신약 외경 가운데 요셉 성인에 관해 서술하고 있는 작품은 2세기 초대 교회 안에 널리 퍼져있던 「야고보 원복음」과 「토마 유년기 복음」이다. 이 외경들이 서술하고 있는 요셉 성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사제 즈카르야가 동정녀 마리아의 배필로 요셉을 정해 주었다. 자식 딸린 늙은 홀아비인 요셉이 동정녀 마리아의 약혼자가 된 것은 선발 과정 중 그의 지팡이에서 비둘기가 튀어나와 그의 머리에 앉는 이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동정녀 마리아는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했다. 요셉은 마리아가 임신 6개월이 지났을 때 다른 지방에서 건축일을 하다 돌아와 이 사실을 알게 된다. 의로운 요셉은 탄식하면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했다. 그날 밤 요셉의 꿈에 천사가 나타나 처녀인 마리아의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을 알려준다. 이후 요셉은 하느님을 찬미하고, 주님의 천사가 명한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 동정녀를 보호했다.요셉은 하느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양육했다. 요셉은 예수님을 교육하는 데 헌신했고, 예수님도 부모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성미술이 표현한 요셉 성인교회의 성미술 작가들은 요셉 성인을 묘사할 때 검은 옷 또는 주홍색 옷을 입은 모습을 전통적으로 그려왔다. 검은색은 모든 색을 품고 있다. 한평생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의 신비를 품고 살았던 요셉 성인에게 딱 어울리는 색이다.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검은 옷을 입고 있듯 의로운 사람인 요셉 성인은 검은 옷을 입고 세상의 것을 모두 버리고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협력한 것이다. 주홍색은 ‘순교’를 상징한다. 성모 마리아의 푸른색 망토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올 새로운 ‘희망’을 예고해 준다면, 요셉 성인의 주홍색 겉옷은 성가정의 보호자인 요셉의 충실한 순명을 드러낸다.요셉 성인에 대한 신심성모 마리아는 초대 교회 신자들로부터 특별한 공경을 받았다. 반면, 요셉 성인은 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님의 양부, 곧 법적 아버지라는 이유로 4세기에 가서야 동방 교회 신자들의 공경 대상이 된다. 서방 교회에서는 이보다 훨씬 더 늦은 15세기에 가서야 성 요셉 축일을 전례력에 도입해 요셉 성인을 공경하기 시작했다.요셉 성인은 1870년에 복자 비오 9세 교황에 의해 ‘보편 교회 수호자’로, 이후 레오 13세와 비오 12세 등 역대 교황들에 의해 ‘아기 예수의 수호자’ ‘마리아의 수호자’ ‘성가정, 성직자, 수도자, 가난한 이, 노동자, 임종자, 동정녀, 환자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됐다.성 요한 23세 교황은 요셉 성인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보호자로 선언했고,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89년 사도적 권고 「구세주의 보호자」를 통해 “요셉 성인은 마리아와 동일한 사랑의 보호자였으며 인간의 노동을 속량의 신비에 더욱 근접시켰다”고 천명했다.요셉 성인과 프란치스코 교황요셉 성인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랑과 공경은 곳곳에 드러난다. 우선 교황 문장이 그 증거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문장 방패 중앙에는 예수회를 상징하는 ‘IHS’라는 라틴말이 크게 새겨져 있다. IHS는 ‘인류의 구원자 예수’(Iesus Hominum Salvator)를 뜻하는 라틴어의 머리글자다. 이 문장을 중심으로 왼편의 별은 ‘성모 마리아’를, 오른편 포도 모양의 ‘나르드 꽃’은 요셉 성인을 나타낸다. 교황은 침대 머리맡에 ‘잠자는 요셉 상’을 놓아두고, 걱정거리가 생기면 그것을 쪽지에 적어 요셉 상 밑에 밀어 넣고 꿀잠을 잔다고 2016년 필리핀 사목 방문 중 털어놓은 바 있다.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3월 19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에 제266대 교황으로 즉위했다. 교황은 즉위 미사 강론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이신 주님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뿐 아니라 모든 인류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소명, 곧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을 보호하는 ‘수호자’로서의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모든 수호자로서의 소명을 성모 마리아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가정을 침묵과 순명으로 보호한 요셉 성인의 삶에서 찾아 수행할 것임을 웅변했다.요셉 성인을 공경해야 하는 이유아빌라의 대 데레사 성녀는 “성부 성자 성령께서 삼위일체를 이루듯 성자와 성모 마리아, 성 요셉께서는 나자렛 성가정 안에서 이타적인 삼위일체의 삶을 살았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삼위일체적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요셉 성인을 공경하고 나자렛 성가정을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요셉 성인의 삶은 ‘하느님께서 더하신다’ ‘하느님을 돕다’는 그의 이름의 뜻대로 돕는 이의 삶이었다.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 지켜주고, 예수에게 충실한 아버지가 되어준 것은 자기 희생과 봉헌이 없이는 불가능한 삶이었다.이처럼 요셉 성인은 하느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모든 일에 자신을 온전히 열어 놓은 사람이다. 그의 순명으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이 시대에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1.03.10
수원교구 꾸르실료 50주년 기념 울뜨레야수원교구 꾸르실료 50주년 기념 43차 울뜨레야 미사가 교구장 이용훈 주교 주례로 봉헌되고 있다.수원교구 꾸르실료(영성지도 전삼용 신부, 주간 김태영) 50주년 기념 울뜨레야가 10일 ‘내가 세상을 이겼다’를 주제로 죽산성지 내 교구 영성관에서 열렸다. 이날 울뜨레야는 개회사, 축사, 50주년 실천사업 경과보고, 전상영 신부의 롤료, 미사 순으로 진행됐다. 김태영(스테파노) 꾸르실료 주간은 경과보고에서 “50주년 실천사업으로 50년사 발간, 고리기도, 성경 필사, 성지 순례와 희생ㆍ나눔 봉사로 1억 7000여만 원을 모금해 장마와 태풍으로 피해를 본 광주대교구, 청주교구, 미리내ㆍ어농성지 수해복구 기금 등으로 기부했다”며 “모든 꾸르실리스따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전삼용 신부는 롤료(신앙을 고백하거나 체험을 발표하는 행사)에서 “꾸르실리스따가 됐다면 그 행복감을 다른 사람에게도 주고 싶은 욕구가 생겨야 한다”며 “꾸르실리스따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참행복의 삶을 실천하자”고 당부했다.미사를 주례한 교구장 이용훈 주교는 강론을 통해 “꾸르실료가 교구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며 “앞으로도 모든 꾸르실리스따들이 교구 발전과 선교 사업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당부했다. 1970년 시작돼 올해 50주년을 맞은 수원교구 꾸르실료는 현재까지 2만여 명의 꾸르실리스따를 배출했다.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이상도2020.10.16

성 요사팟 전기가 석가모니 생애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까닭은[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73. 요사팟이란 세례명 롱고바르디의 「성요사팟 시말술략」의 표지와 첫 면 사진. 싯다르타를 모델로 한 허구의 성인전주문모 신부는 1799년 6월 김건순에게 세례를 주었다. 그런데 김건순은 두 사람이 처음 회동한 1797년 당시 신부가 자신에게 요사팟(Josaphat, 若撒法)이라는 사호(邪號)를 주었다고 진술했다. 세례 이전에 세례명부터 먼저 받았다는 얘긴데, 이는 애초부터 주문모 신부가 김건순에게 요사팟 성인의 삶을 겹쳐보고 있었다는 의미로 읽힌다.「사학징의」 중 조혜의(趙惠義)의 공초를 보면, “이른바 별호란 것은 일찍이 사학을 하다가 죽은 사람은 모두 이름이 있는데, 사학을 하는 자가 그 일이 자기에게 비슷하게 되기를 사모하여 그 이름을 취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세례명은 본인 또는 이름을 지어주는 사람이 그에게 바라는 바를 투사하여 지어준다는 뜻이다. 초기 신자 그룹 중에 요사팟이란 세례명은 김건순만 받았다. 요사팟 성인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고, 신부는 김건순에게 어떤 역할을 기대해서 요사팟이란 세례명을 지어주었을까? 「성년광익」 11월 27일은 요사팟 성인의 날로 지정되어있다. 그의 이름 아래 ‘국왕고수(國王苦修)’라고 써놓았다. 요사팟 성인의 신분이 고귀한 국왕이었고, 그럼에도 고통스러운 수행을 통해 성인품에 올랐다는 뜻이다. 요컨대 요사팟이란 세례명은 고귀한 신분으로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고통을 견뎌 어렵게 신앙을 쟁취한다는 의미를 띤다. 그런데 막상 성 요사팟의 전기를 읽어보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우선 그는 유럽의 성인이 아니다. 그는 소서양(小西洋)으로 불리는 인디아(應帝亞)에서 작은 나라의 왕자로 태어났다. 당시 인도에서는 천주교 신앙이 일어나, 집을 버리고 들판에서 수행하며 득도한 사람이 많았다. 불교를 독실히 믿어 천주교도를 박해하던 국왕 아우니르(Auennir, 亞物尼耳)는 귀한 아들이 태어나자 그의 운명을 점쳤다. 태자가 천주교를 믿어 봉행할 것이라는 점괘 풀이가 나오자, 왕은 왕자가 외부와 접촉하거나 늙음과 질병과 죽음 같은 추한 것을 볼 수 없도록 차단된 공간에 격리한 채로 길렀다. 하지만 왕자는 우연한 계기에 나환자와 맹인, 노인과 시체 등 인생의 생로병사의 비참함을 목격하게 되고, 천주의 섭리로 은수자 발람(巴爾郞)을 만나 그의 인도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이후 그는 왕의 지위를 버리고 수행자의 삶을 통해 천주교의 고귀한 성인으로 추앙받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그런데 그 사연을 읽어가다 보면 매 에피소드마다 자꾸 어떤 기시감(旣視感)을 느끼게 된다. 성 요사팟의 전기가 고타마 싯다르타, 즉 석가모니의 생애와 거의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성 요사팟은 실제로 존재한 천주교의 성인이 아니다. 불경에 나오는 석가모니의 일생 고사에 천주교 성인 서사의 외피를 입힌 허구적 성인전이다. 가톨릭의 성인이 허구적 인물, 그것도 석가모니라는 것은 의아하다 못해 황당한 느낌마저 든다.「성 요사팟 시말」 속 불경 이야기 대체 어떻게 해서 이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된 걸까. 선교사 롱고바르디(Nicolas Longobardi, 龍華民, 1565~1655)가 「성 요사팟 시말(聖若撒法始末)」이란 제목의 번역본을 한문으로 간행한 것은 1602년의 일이다. 이 책의 원본은 「발람과 요사팟(Barlaam and Josaphat)」이란 제목으로 7세기에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에 의해 그리스어로 기록된 책자다. 중국과 페르시아의 고대 문헌에는 2~3세기경에 벌써 요사팟의 일대기가 소개되고 있는데, 이는 불교가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퍼져나갈 때 천주교 문헌과 습합되면서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정설이다. 이후 이 책은 라틴어와 프랑스어, 스페인어, 영어 등으로 번역되면서 살이 붙고 삽화까지 들어가 요사팟은 천주교의 은수자 성인으로 굳건한 위상을 지니게 되었다.이 책의 역자 롱고바르디는 마태오 리치의 뒤를 이은 인물로, 중국에서의 포교 당시 불교도들이 천주교가 몇 권의 교리문답서에 의존하여 포교하는 데 대해, 거칠고 비루한 낮은 수준의 종교라고 비하하는 것을 보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이 책을 번역했다. 「성 요사팟 시말」은 동양에 최초로 소개된 천주교 성인 전기였고, 이에 앞서 1591년에 일본어로도 번역되어 일본 천주교의 전파에도 큰 영향을 끼친 책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이 실제로는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의 일생 행적을 천주교 성인 전기로 바꾼 이야기인 것이 밝혀진 것은 서구 학계에서도 19세기 이후의 일이다. 번역자인 롱고바르디 또한 이 사실을 몰랐던 셈이다. 이에 관해서는 오순방 교수가 쓴 ‘명말 천주교와 불교의 종교 분쟁과 최초의 서교(西敎) 소설 중역본 「성 요세파전기」’란 논문에 자세한 내용이 있다.초기 예수회 선교사들은 교리교육에서 유학이 아닌 불교를 주 교화 대상으로 삼았다. 1581년 이탈리아 선교사 루제리(Michele Ruggieri, 羅明堅, 1543~1607)가 최초로 펴낸 교리서 「신편천주실록(新編天主實錄)」에서 서사(西士)가 자신을 ‘승(僧)’으로 지칭하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복장도 초기에는 승복을 입었다. 그러다가 마태오 리치 이후 보유론적 시각으로 바꾸면서 복장도 유복(儒服)으로 바꾸고, 용어도 유학의 그것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롱고바르디가 활동한 광동 지역은 불교의 위세가 강했으므로, 불교의 논법으로 불교를 설복한다는 선교 전략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성 요사팟 시말」 속에는 은수자 발람이 요사팟을 일깨우려고 전한 여섯 가지 비유가 나온다. 그중 하나만 소개한다. 세상 사람들은 육신의 쾌락을 추구한다. 이것들은 모두 헛된 것인데도 사람들은 온통 미혹에 사로잡혀 깨닫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며 달려들자 이를 피하려고 구덩이 속으로 뛰어내렸다. 떨어지던 도중 작은 나무에 걸려 간신히 추락을 면하고 매달렸다. 그러자 쥐 두 마리가 나타나 매달린 나무의 뿌리를 갉아 먹어 곧 끊어질 지경이었다. 아래로 동굴의 바닥을 보니 독사 네 마리가 입에 불을 뿜으며 사람을 잡아먹으려고 입을 딱 벌리고 있었다. 실로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그런데 고개를 들어 나뭇가지를 보니 꿀이 똑똑 떨어지는지라, 마침내 위에서 호랑이가 으르렁거리고, 아래에는 뱀이 아가리를 딱 벌리고 있으며, 매달린 나무뿌리는 금세 끊어질 지경인 것도 까맣게 잊고, 그 단 꿀을 받아먹더라는 이야기다. 호랑이는 죽음, 사람이 뛰어든 굴은 세상을 상징한다. 쥐가 갉아 먹는 나무는 인간의 수명을 뜻하니 시각에 따라 줄어들어 마침내는 끊어지고 만다. 네 마리의 독사는 사행(四行)이고, 꿀은 세상의 헛된 쾌락이다. 그리고 나뭇가지에 매달린 사람은 미혹에 빠진 인간을 나타낸다.이것은 불경 「백유경(百喩經)」에 실린 잘 알려진 유명한 비유이다. 발람과 요사팟은 이 비유를 두고 긴 대화를 이어가다가, 신망애(信望愛) 삼덕으로 벗을 삼아 세상을 성실히 살아야만 죽을 때 천주의 대전에서 자신의 죄악을 용서받을 수 있음을 말하는 가르침으로 마무리 지었다. 불경의 비유로 천주교의 가르침을 제시하는 방식을 써서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방식을 썼던 셈이다.「성년광익」 속 요사팟 전기「성년광익」의 11월 27일 자에 수록된 「성 요사팟 전기」는 롱고바르디의 「성 요사팟 시말」의 긴 서사를 간략하게 압축한 내용이다. 원전에 장황하게 소개된 불경의 비유는 대부분 생략되고, 생애 사실을 중심으로 간추렸다. 서두에는 「경언(警言)」이라 하여 전편의 주제문에 해당하는 성경 한 구절을 수록했다. 「루카 복음」 16장 9절에서,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불의한 마몬으로 친구들을 만들어, 그것이 없어질 때 그들이 여러분을 영원한 초막에 맞아들이도록 하시오”라는 구절을 제시했다.뒤편의 「의행지덕(宜行之德)」은 요사팟 성인의 삶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을 ‘경세(輕世)’, 즉 세속을 가벼이 보라는 가르침으로 꼽았고, 마땅히 힘써야 할 「당무지구(當務之求)」에는 세상에 미혹된 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내세웠다. 이 모든 내용이 귀한 신분의 후예로 기득권을 모두 내려놓고 세속적 가치를 멀리하여 천주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신앙의 삶이란 주제와 연결되어 있다.앞서 보았듯 김건순은 노론 최고의 명문인 김상헌 집안의 제사를 받드는 봉사손(奉祀孫)으로, 부와 명예가 드높았고, 학문과 문장으로도 안연(淵)의 환생이란 말을 들을 만큼 대단한 위치에 있었다. 18세 때 양부(養父)의 상을 당했을 때, 상주였던 그는 우리나라의 상복 제도가 송나라 때 제도를 본떠 옛법을 잃었다며 이를 고쳐 바로 잡아 상을 치렀다. 그가 입은 낯선 상복의 모양새를 본 사람들이 김건순을 힐난하며 소동을 일으키자, 김건순은 조목조목 논거를 들어 그들의 주장에 반박하는 글을 지었는데, 근거가 명확하고 문장이 유려했다. 당대의 천재로 일컬어졌던 이가환이 18세 소년이 쓴 글을 읽어보고는 내가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겠다고 감탄했다는 일화가 「백서」에 실려있다. 그의 총명이 어떠했는지 실감 나게 보여주는 예화다. 세속적 출세가 보장되어 있던 그는 어느 순간 둔갑술과 육임의 술법을 익히며, 강이천 등과 결탁하여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위험한 모험을 꿈꾸었다. 동료였던 강이천은 그의 반짝반짝 빛나는 예지를 기려 그에게 가귤(嘉橘)이란 별호를 지어주기까지 했다. 그런 그가 주문모 신부를 만나 두 차례 토론하고 나서는 전향을 선언하고 천주교로 개종하는 결단을 내렸다. 김건순은 남대문 인근에 머물고 있던 남곽도인 주문모를 서방성인(西方聖人) 또는 서방미인(西方美人)이라 부르며 그의 말에 따랐다. 주문모 신부는 김건순과 황사영 두 사람을 천주교 차세대 지도자로 낙점했던 것 같다. 두 사람이 1801년 사형을 당할 당시, 김건순이 26세, 황사영은 27세였다. 두 사람 모두 명문가의 봉사손이었고, 학식이 높고 문장 또한 대단했다. 신부는 김건순에게 그 학문과 문장으로 정약종을 도와 모든 천주교 교리 지식을 종합해 한 질의 총서로 묶는 「성교전서」 편찬의 소임을 맡겼다. 신부가 그의 두 어깨에 어떤 기대를 걸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cpbc2021.10.27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 모두 신에게서 왔다[사유하는 커피](45)인간의 본성과 커피의 본성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장 부활한 예수님께서 본성(nature)의 의미를 가슴에 새기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신다. 1000년이 지나도록 인간의 정신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이라면 마땅히 본성과 관련이 있다. 본성은 사물이 처음부터 갖는 보편적이면서도 고유한 특성이다. 인간에게 본성은 그것을 빼면 인간이라 할 수 없는 ‘무엇’이다. 후천적으로 획득하는 게 아니라 타고나는 것으로 곧 천성(天性)이다. 플라톤은 인간의 본성은 영혼(soul)에 반영된다고 했다. 영혼 안에는 욕구와 격정, 이성이라는 속성(attribute)이 들어 있는데, 그는 이성이 격정과 욕구를 다스리기 어려움을 우려했다. 진실은 감각에 가릴 수 있기 때문에 사유를 통해서만 이데아(본질)를 만날 수 있다고 봤다. 인간은 본래 이데아에서 왔으므로 본성을 기억해낼 수 있다는 게 플라톤의 강변이다. 이처럼 인간의 본성을 선한 이데아에 비유한 포인트는 맹자의 성선설(性善說)과 통하는 측면이 있다.아리스토텔레스가 봤을 때, 모든 인간은 선천적으로 지식을 갈망한다. 그는 ‘추론적 사고능력과 지성’이 인간을 동물과 다르게 만드는 본성이라고 설파했다. 과연 학문을 닦아 지성을 키우면 진실을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본성에 관한 물음에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을 합리적 존재로 보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관점은 예수의 시대를 거치면서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받았다. 이성과 지성만으로는 인간의 원죄에 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의문에 빠지면서, 신앙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4세기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죄가 있는 존재로서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 구원받아야만 본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일갈했다. 그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대속(代贖)을 통해 인간성을 회복시켜 준 역사적 사실이고, 부활과 승천은 ‘신의 본성’을 드러낸 섭리의 실현이다. 로마제국 몰락 시기인 5~6세기에는 플라톤을 계승한 그리스계 철학자들이 신앙을 이성과 동등한 수준에서 상호 보완하는 관계로 보고 신플라톤학파를 형성했다. 이에 따라 인간의 본성을 성경에서 찾고자 하는 지식인이 늘어났다. 13세기 토마스 아퀴나스 시대에서 신앙은 이성을 한 단계 고양시켜 주는 속성으로서 앞서 갔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증을 차용해 신의 존재를 증명하면서, 마침내 “만물은 본성적으로 하느님을 추구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신의 속성’이 스며들어 있다는 깨우침이었다. “신으로서의 예수, 인간으로서의 예수’라는 담론은 이 연장선에 있다. 중세를 마감할 때쯤 교회보다 국가의 권력이 강화되자 본성을 탐구하는 도구로서 이성이 신앙을 누르고 부각됐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16세기 ‘본유관념(idea innate)’을 들고 나와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신의 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넣어준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고백했다. 그의 이러한 직관은 과학혁명과 인지혁명 시대를 거쳐 21세기까지도 진리의 길을 밝혀주고 있다. 이 정신을 잇는 촘스키는 ‘언어능력(linguistic competence)’을 통해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주어지는 ‘무엇’이 있음을 수학적으로 풀어냈다. 만들어지지 않고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은 모두 신에게서 왔다. 아이들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언어를 깨우치고 무한하게 문장을 생성할 줄 아는 것은 신의 본성을 이루는 한 속성이 부여된 덕분일 수 있다. 커피의 본성은 무엇일까? 망치의 본성이 못을 박는 데 있는 것처럼 커피도 쓰임에서 찾을 수 있겠다. 커피는 우리를 사유로 이끌면서 묵상을 선물한다. 어쩌면 커피는 본디 인류를 절대자에게 안내하기 위해 내려진 것인지도 모른다.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커피인문학」 저자) 평화신문2021.03.31

이슬람 수피교 수행과 의식에 커피는 필수[사유하는 커피](23)신을 만나러 가는 길 위의 커피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장 신을 만날 수 있을까? 있다면 적어도 두 가지가 있을 성싶다. 하나는 아폴론적이고, 다른 하나는 디오니소스적인 길이겠다. 두 길은 각각 성경을 이성적으로 탐구하며 진리를 더듬어간 교부들의 길과 직관이나 황홀경을 통해 접신을 시도했던 신비주의자들의 순례길이기도 했다.커피가 13세기에 거대한 그룹을 형성한 수피교의 신자들에게 신과 합일로 나아가는 길에 요긴한 음료가 돼 준 것은 운명적인 사건이었다. 이슬람 수피교도들은 불교로 치면 참선으로 해탈을 이루려는 선승이고, 힌두교에서는 고행을 통해 시바신을 만나길 소망하는 요가파 성직자를 닮았다. 영지주의 영향을 받은 측면도 있다. 또 금욕주의를 실천했다는 점에서는 700여 년을 앞서 산 성 베네딕도회 수도사들의 모습이 비치기도 한다. 수피라고 불린 이유에 대해서는 ‘지혜’라는 뜻의 그리스어 소피아(Sophia)에서 비롯됐다는 설, ‘순수’를 의미하는 아랍아 ‘사파(Safa)’에서 유래했다는 설, 마호메트가 세운 메디나의 성원(Mosque)에서 맨 앞줄을 뜻하는 ‘수파(Suffa)’에서 왔다는 등 여러 견해가 있다. 수피들은 주로 하얀색 양털 옷인 ‘수프(Suf)’를 입는데,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될 때 입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커피는 이들의 수행을 도왔다. 식욕을 떨어뜨리는 쓴맛과 텁텁함이 금욕주의 실천을 위해 음식을 멀리하려는 수피들에게는 제격이었다. 그들이 조상으로 여기는 아브라함이 ‘신의 친구’라는 반열에 오를 수 있던 것이 잠을 자지 않고 기도했기 때문이라고 믿었던 점도 커피 전파에 기여했다. 밤새 기도하려는 수피들에게 각성효과로 졸음을 쫓아주는 커피는 실로 ‘신이 내린 음료’였다. 여기에 커피를 마시면 지옥 불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소문도 고단한 순례의 길에 커피를 곁에 둘 중요한 이유가 됐다. 결국, 수피들의 의식에 커피가 포함됐다. 이들은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수피댄스를 추며 황홀경에 빠지고 이를 통해 신을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수피들은 춤을 추기 전에 빙 둘러앉아 빨간색 잔에 커피를 따라 돌려 마신다. 빨간색 커피잔은 ‘신과의 합일에 다다르는 관문’을 의미한다. 수피교도들이 신을 만나기 위해 디오니소스적 행동을 보인 것은 사실 불의에 대한 몸부림이었다. 무함마드 사후 물질을 추구하는 한편 구약성경과 꾸란에 대해 극단적 이론화로 치닫는 이슬람에 대한 정화운동의 일환이었다. 이들은 신에 대한 사랑을 통해 신의 뜻을 직접 구하고자 하는 체험 신행을 선택했다. 여기에는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초자연적 존재인 신을 만나긴 힘들다는 인식이 깔렸다. 신이란, 인간이 찾아 나선다고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다. 인간은 사랑을 실천하면 신의 선택 또는 초대를 받아야 한다. 수피교는 이슬람을 전 세계에 전파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커피로 전염병을 고치며 수많은 사람을 구한 예멘의 오마르, 커피 씨앗을 몸속에 숨겨 인도로 건너간 바바부단, 아덴의 정신적 지주 게마레딘 등 이슬람을 오지의 마을까지 전하는데 기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수피교 수행자들이었다. 인간이 죽어야만 영혼이 일어나 신을 만나러 떠날 수 있는 것일까? 이를 인정하기 싫었던 수피교도들은 뇌 속까지 들어가 정신에 작용하는 카페인에 기대를 걸었던 것 같다. 뱅뱅 돌기까지 하면서 뇌를 혼돈에 빠뜨려 몽환적 상태가 돼야 그들은 신을 만났다. 이를 위해 마약까지 먹는 그룹도 있다. 그런 상태에서 신을 만났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실제 신을 만났느냐고 물어보는 것은 더 어리석다. 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만남을 시도하는 것이 무리한 의식과 소음을 만든다.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평화신문2020.10.20

“손해 좀 보지 뭐, 아이들을 위한 거니까”[미카엘의 순례일기] (20)학생들을 위한 특별한 순례(상) 주일학교 학생들이 신발을 벗어 한곳에 모아 두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광야를 걷고 있다. 몇 년 전, 모 신부님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주일학교 학생들의 순례를 준비하고 있으니 와서 상담해달라는 특별한 내용이었습니다. 아이들의 성지 순례라니, 대체 얼마나 부자 동네에 있는 본당인지 민망한 궁금증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성지 순례는 어른들도 선뜻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며칠 뒤 찾아간 그곳은 저의 궁금증이 무색하게도 지방 도시의 변두리 공업 단지 한복판에 자리한 작고 가난한 본당이었습니다. 성당 주위에서는 낡고 시끄러운 기계 소음이 멈추지 않았고, 공장 굴뚝에서 피어나오는 연기가 하늘에 가득했습니다. 외벽에 바른 흰색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진 성당 건물은 마찬가지로 몹시 낡은 다른 건물들 사이에 비좁게 끼어있었습니다.사제관에 들어선 저는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으레 사제관이라 하면 두꺼운 신학 서적들과 장서들로 잘 꾸며진 따뜻한 공간이어야 할 텐데, 고작 책 몇 권과 십자가 한 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데다 난방이 되지 않아 매우 춥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의 얼굴을 하신 신부님께서는 성당만큼이나 낡은 소파의 한쪽 자리를 권하셨습니다.신부님께서는 믹스 커피를 타 주시면서 도시의 가난한 지역 본당에 부임한 뒤 이러한 순례를 준비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해주셨습니다. 다른 많은 성당처럼 무너져 가는 주일학교를 위해 여러 생각을 하신 끝에, 1년 전에 순례 계획을 발표하시고 신자들의 자발적인 모금을 요청하셨답니다. 이 지원금은 사정이 넉넉한 신자들이 큰돈을 내주시기보다는 아이들의 신앙을 위한 마음을 담아 조금씩 모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덧붙이셨지요. 신자들은 한마음으로 지원금을 모으기 시작했고, 노인대학 어르신들께서도 공장 주변의 폐지와 공병을 모아 판 돈을 매달 보태셨습니다. 물론 신부님께서도 사제생활비를 줄이셨으며 겨우내 사제관의 난방(낡고 오래되어 기름값이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을 끄고 의자 위에 놓인 작은 전기담요로 추위를 견디셨습니다. 마침 사제관 식복사께서 사정이 생겨 일을 그만두셨는데 자매님들이 돌아가면서 신부님의 식사 준비를 해주시며 그 급여도 지원금에 보태겠다고 하셨다 합니다.또, 신부님께서는 중고등부 주일 학교 학생을 한데 모아 수업 대신 신약성경 강의를 시작하셨고, 1년간 개근한 학생들에게만 순례 기회를 주겠다고 공표하셨습니다. 그러나 개근에 성공했다고 해서 ‘무료’로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학생들 집안의 형편을 세세히 알고 계셨던 신부님께서는 아이들을 한 명씩 따로따로 상담하고 각자 다른 순례 비용을 책정하셨습니다. 단돈 만 원이라도 직접 보태어 떠나야 한다는 의미셨습니다. 물론 누가 얼마큼 냈는지 비밀로 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저와 저희 회사에 요구하신 사항도 많았습니다. 첫째, 숙소는 가능한 한 성지에서 가까워야 하고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도록 넓은 마당이 있어야 하며 매일 숙소를 바꿔서는 안 된다. 둘째, 성지 내부나 성당 안에 머물기보다는 직접 발로 걸으며 그곳을 둘러보면 좋겠다. 셋째, 가이드가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넷째, 일정은 아이들 컨디션에 따라 언제든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더군다나 마지막 조건은 다소 황당할 지경이었습니다. 이번 순례에서 단 한 푼의 이익도 남기지 말아야 하며, 수고비는 순례가 계획대로 잘 진행된 후에 신부님께서 알아서(?) 책정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반적인 순례와 다르리라고 예상하고 오긴 했지만, 이익을 전혀 남기지 않는다는 건 손해를 본다는 말과도 같아서 마지막 조항을 듣고는 순례가 성사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회사로 돌아왔습니다.그런데 신부님의 조건을 들은 사장님의 반응은 의외였습니다. “그래, 손해 좀 보지 뭐!”사장님은 두말없이 단박에 승낙하셨습니다. 아이들에게 행복한 순례이자 여행이 되도록 신경 쓰라고도 지시하셨습니다. 저는 곧장 이스라엘 현지 여행사에도 사정을 설명하였습니다. 사실 일정을 언제든 변경할 수 있고 가이드를 맘대로 바꿀 수 있는 데다가 단 한 푼의 수익도 낼 수 없다는 말도 안 되는 조건을 선뜻 받아들일 여행사가 그리 많겠습니까마는, 그곳의 사장님은 어린 시절 수도 사제를 꿈꾸며 성소를 키웠던 분이셨습니다.“아이들을 위한 거잖아? 우리 아이가 그런 기회를 가진다고 생각하면 참 좋을 것 같아. 한번 해 보자고.”명색이 성지 순례를 업으로 삼는 사람으로서 미리 넘겨 짚어 판단한 제 자신이 부끄러워질 만큼 사장님 두 분께서는 흔쾌히 마음을 모으셨습니다. 이렇게 조금은 특별한, 하느님께서 직접 인도하신 것만 같은 순례 준비가 시작되었습니다. <계속> 김원창(미카엘, 가톨릭성지순례 전문) cpbc2021.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