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위일체 하느님의 역동적 사랑은 영원히 계속된다”[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인격 그리고 프란치스칸 영성] 36. 삼위일체와 관계성의 영성 프란치스코 성인은 “덕은 하느님의 속성이므로 완덕의 삶을 살아갈 것”을 형제들에게 권고했다. 사진은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이 촛불을 밝히고 기도하고 있다. 【CNS 자료 사진】 9. 삼위일체와 관계성의 영성- ⑤‘기도와 헌신(신심)의 영’과 삼위일체적 삶프란치스칸 신비주의자 알칸타라의 성 베드로는 ‘헌신의 영’이 악 혹은 죄의 보편적 원인을 이겨내는 데 필요한 것이라 하면서 바오로 사도의 로마서 말씀을 인용한다. “나의 내적 인간은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내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 그 다른 법이 나를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에 사로잡히게 합니다.”(로마 7,22-23)알칸타라의 성 베드로도 이 ‘헌신(신심)의 영’을 덕을 행하고 살아가는 데 있어서의 핵심으로 간주했다. 덕을 살아간다는 것은 하느님 안에서 그분 사랑의 힘을 깨어 인식하며 그 힘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덕’은 그 자체로 다 하느님 당신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에게서도 이런 이해가 있었음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 두 편의 그의 글에 나타난다. 하나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이고, 다른 하나는 ‘덕들에 바치는 인사’이다. 프란치스코가 하느님을 찬미하며 드리는 영예(덕)들이 거의 고스란히 덕들에 바치는 인사에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결국 ‘기도와 헌신(신심)의 영’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프란치스코가 형제들에게 다른 무엇보다도 간곡히 부탁하고 있는 ‘주님의 영과 그 영의 거룩한 활동을 간직하며 사는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아울러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사랑의 힘으로 모든 존재와 연결된 우리 존재의 엄연한 현실을 항상 마음에 새기는 가운데 이를 우리 삶에 구체적으로 실현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삶의 자리에서 우리는 통교하시는 삼위일체 하느님과의 만남, 혹은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에 들어서는 것이고, 이러한 삶의 자리로의 초대가 매일 매 순간 우리 각자에게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살아가려는 우리의 의지를 꺾는 장애물이 늘 우리 주변에 산재해 있다. 나는 물론이고 가까이 있는 이들의 약점과 결점, 이로 인한 서로 간 상처를 주고받음, 우리 정신 안에 뿌리 깊게 고정된 인과응보적 사고방식과 상거래식 계산적 사고방식 등으로 인한 개인들과 집단들, 국가들의 갈등과 전쟁 등등의 어둠이 늘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것도 우리의 엄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삼위일체 하느님의 창조하고 구원하며 역사를 완성해가는 ‘역동적 사랑의 흐름’은 오늘도, 어제도, 내일도, 영원히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을 성호를 그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시작하고 마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내 존재성’이 아니라 ‘하느님 존재성’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우리 자신에게 시시각각 의식적으로 상기시키는 것이다. 우리의 존재적 약함과 현실의 어려움을 넘어서는 데 있어 꼭 필요한 것은 이런 하느님 섭리에 ‘내어 맡김’과 ‘확신’을 마음 한가운데 품고 살아가는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인준 받지 않은 「수도 규칙」 21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전능하신 주 하느님께 집과 거처를 항상 마련해 드립시다. 그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악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그리고 우리는 우리 영혼의 목자이시며 보호자이신 그분께’ 달려갑시다. 그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 나는 내 양들을 먹인다. 나는 내 양들을 위하여 내 목숨을 내놓는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그들 가운데 나도 함께 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역설이겠지만, 어찌 보면, 우리의 약함과 한계적 상황이 오히려 우리에게는 하느님과 일치하여 덕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자극제요 촉매제가 될 수 있고, 또 그것이 분명하다는 것이 성경 전통의 증거다.사제가 미사 집전 전에 드리는 기도 중에는 “하느님의 사제여, 지금 드리는 이 미사를 당신의 첫 번째 미사처럼, 당신의 마지막 미사처럼, 당신의 유일한 미사처럼 드리십시오!”라는 기도가 있다. 이 기도에 드러나는 염원에는 하느님 사랑과 그 섭리에 대한 확신과 내어 맡김의 영이 깃들어 있다. 사실 지금 드리는 미사는 어떤 미사이건 사제 자신이 드리는 미사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친히 드리시는 미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신자와 사제는 미사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시작하고 마치는 것이다. 호명환 신부(작은형제회)cpbc2021.03.31
![[대구대교구 사목교서] 복음의 기쁨을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하느님 말씀을 따라-](//cpbc.co.kr/CMS/newspaper/2020/12/rc/792282_1.2_titleImage_1.jpg)
[대구대교구 사목교서] 복음의 기쁨을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하느님 말씀을 따라-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 친애하는 교구민 여러분에게 하느님께서 풍성히 강복하시길 빕니다.지난 3년간은 성모당 봉헌 100주년을 맞으며 ‘새로운 서약, 새로운 희망’이라는 모토를 내걸고 초대 교구장이셨던 안세화 드망즈 주교님께서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도움을 청했던 원의와 정신으로 다시 새롭게 살아가고자 하였습니다. 공교롭게도 성모당 봉헌 100주년을 기념하는 마지막 해인 ‘치유의 해’에 우리는 전대미문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로 고통을 받았으며 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를 경험하면서 신앙생활의 위기를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 때문에 고통과 죽음의 위협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결국 하느님께서 우리를 치유해 주시고 구원해 주신다는 은혜를 느낀 한 해였다고 생각합니다.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세상과 함께 오늘날 교회도 큰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교회 현실과 미래에 대한 걱정은 사실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개인주의적인 가치관과 문화, 물질의 소유와 성공에 대한 욕망이 지배하는 오늘날 이 시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교회가 초대교회 때부터 복음적 가치관으로 이겨내야만 했던 도전들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현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그래서 교회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더욱 매진해야 할 것입니다. “복음은 끊임없이 우리를 기쁨으로 초대”(「복음의 기쁨」 5항)할 것이라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다시 새롭게 살고자 노력한다면 그 “신앙의 기쁨이 더디지만 분명하게”(「복음의 기쁨」 6항) 지역사회를 복음화하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교구 설정 120주년을 바라보면서 2030년까지 ‘복음의 기쁨을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어가기 위해 말씀, 친교, 전례, 이웃사랑, 선교라는 다섯 가지 핵심가치를 매 2년씩 중점적으로 실천하며 살기를 제안합니다. 앞으로 10년 동안보다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계획 아래, 서로가 신뢰하고 소통하면서 살아갑시다. 그 첫 번째 2년 동안(2021~2022년)은 ‘하느님 말씀을 따라’라는 주제로 살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구세주 그리스도로 믿어 고백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이 주신 모든 생명의 가치를 어떻게 보존하고 풍성하게 할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지 늘 고심해야 합니다. 이 모든 질문의 답은 바로 복음 말씀 안에 있습니다. 말씀으로 힘과 희망을 얻어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신앙과 영성으로 나아가기 위해 그 기본인 성경을 가까이하고, 알아듣는 교육과 양성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2년 동안 교구, 대리구, 본당 차원에서 무엇을 실천할지 고민하고, 교우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cpbc2020.12.02
외경 포함한 구약성경 입문서 나왔다구약성경 입문/ Th. 뢰머 외 공저 / 김건태 옮김/ 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 3만 5000원 마카베오기 3─4권, 에즈라기 3─4권, 희년서, 에녹서, 열두 성조의 유훈.가톨릭교회에서는 구약성경 외경으로 여기지만, 정교회라고도 하는 동방교회에서는 경전으로 인정하는 구약성경이다. 이 일곱 권의 동방교회 성경을 포함시켜 구약성경을 소개하는 입문서가 나왔다. 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가 최근 펴낸 「구약성경 입문」이 그것이다. 동방교회에서만 경전으로 인정하는 외경 구약성경까지 포함하는 구약성경 입문서가 국내에 소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책은 가장 최근의 구약성경 연구 결과들을 모은 것으로, 불어권 전문가들로 구성된 22명의 현대 가톨릭 성서학자들이 공동 집필한 것을,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위원 및 총무로 있는 김건태 신부가 1년여 간의 작업 끝에 우리말로 옮겼다. △오경 △예언서 △성문서△제2경전 △동방 교회의 구약성경 등 전체 5부로 이뤄진 이 책은 오경과 예언서 부분만 8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책을 번역한 김건태 신부는 “그동안 외경으로 여겨왔던 동방교회의 구약성경들을 과감하게 받아들여 연구, 소개하는 것은 교회 일치 차원에서도 매우 뜻깊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동방교회는 39권의 히브리어 성경 외에 가톨릭의 제2경전(토빗기, 유딧기, 마카베오 상ㆍ하권, 지혜서, 집혜서, 바룩서)과 가톨릭에서 외경으로 여기는 마카베오기 3―4권, 에즈라기 3―4권, 희년서, 에녹서와 열두 성조의 유훈 등의 작품들도 7개 교파에 따라 정경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예컨대 그리스 정교회의 경우 히브리어 성경 39권 외에 토빗기, 유딧기, 지혜서, 집회서까지 포함시켜 43권을 구약성경 경전으로 인정하고 있다. 김 신부는 「구약성경 입문」이 “신학을 연구하는 이들은 물론 신학생과 성경 공부에 관심있는 평신도들에게도 유용한 책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윤재선 기자 평화신문2019.05.02

하느님이 부여한 인간의 근원적 가치와 역할을 고찰하다 교황청 성서위 문헌 「성서 인간학…」 공동 저자 겸 번역자 박영식 신부, 주님이 주신 인간의 책무 강조 “어느 때보다 인간 존재에 관한 근원적 성찰이 절실합니다. 이기심과 탐욕, 방종한 삶의 결과가 결국 자연 파괴와 전쟁, 바이러스 창궐로 이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주님께서 창조하고 맡기신 이 세상에 대한 책임을 새롭게 성찰해야 합니다.”교황청 성서위원회가 최근 문헌 「성서 인간학 - 사람이 무엇이기에?」(한국천주교주교회의)를 발간했다. 위원회 소속 성서학자 20여 명이 5년간 집필해 공동으로 펴냈다. 창세기 2~3장의 내용을 중심으로 성경 전체와 방대한 교회 문헌을 총동원해 인간 존재성을 깊이 고찰해내 눈길을 끈다. 태초에 창조주가 부여한 인간의 근원적 가치와 역할, 책임을 다룬 ‘하느님의 인문학’과 같은 문헌이다.지난해까지 10년 동안 교황청 성서위원회 위원을 역임하며, 이번 문헌의 공동 저자이자 우리말 역자로 참여한 박영식(서울 반포4동본당 주임) 신부는 “현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들에 대한 답은 결국 ‘사람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초점이 모아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5년 전 위원들에게 이 같은 주제를 다뤄줄 것을 권유하셨고, 그 결과 성경을 통해 인간학을 다룬 문헌이 탄생하게 됐다”고 밝혔다.하느님은 인류에게 만물이 공존하는 동산을 맡기셨다. 하느님이 특별한 숨을 불어넣어 창조된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의 희망을 얻은 위대한 존재다. 그렇기에 인간은 노동과 기도로, 불의보다는 선의로 모든 피조물과 조화를 이루는 주님 창조사업에 동참하는 특별한 책무를 지닌다.제1~4장까지 총 346항으로 구성된 문헌은 인간 창조부터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 인류 구원의 역사를 세밀히 언급한다. 사람에 관한 하느님 계시의 아름다움과 복잡성을 숙고하도록 이끄는데, 특히 최근 코로나19 대유행을 겪는 지구촌 인류에 인류 존재 이유를 근원적으로 돌아보도록 이끈다.박 신부는 “인간의 역사는 하느님과의 계약의 역사이며, 사람은 하느님의 일을 수용하면서 자신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존재”라며 “이번 문헌은 인간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에 국한하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관계, 인간의 운명 등 성경이 말하는 전체적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사실 우리는 인간이 어떻게 창조됐고, 어디로 가는지 등 인간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합니다. 하느님께서 큰 사랑으로 우리를 만드셨는데, 정작 자기 자신은 물론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무관심과 업신여김으로 서로 짓누르는 현실이 가슴 아픕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대로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 창조 목적에 따라 우리 사명을 다시 받아들이고 그 뜻에 따라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 시급합니다.”박 신부는 “인간은 흙과 같은 미약한 존재이지만, 하느님 숨으로 창조된 매우 복되고 위대한 존재임을 깊이 인식할수록 그에 대한 책임을 더욱 자각하고, 주님 영광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신부는 “인간과 자연을 둘러싼 이 문헌의 주제는 교황님의 관심사이자, 교회의 화두”라며 인류가 귀 기울이고 참여해야 할 과제이기에 이웃 종교인과 비신자들도 읽어 보길 권했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평화신문2020.05.13
![[신앙단상] 믿음의 자녀로 살아가기로 약속했던 첫 마음으로…(손병선 아우구스티노, 한국평협 회장)](//cpbc.co.kr/CMS/newspaper/2020/11/rc/791715_1.1_titleImage_1.jpg)
[신앙단상] 믿음의 자녀로 살아가기로 약속했던 첫 마음으로…(손병선 아우구스티노, 한국평협 회장) 11월은 세상을 먼저 떠나신 분들을 기억하며 위로하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곳곳에 뒹구는 낙엽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반추의 계절인 듯합니다. 올해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일상이 통째로 바뀌고 아쉬움 속 잘못 살아온 날들에 대한 자책과 회심의 마음이 더 깊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교회 전례력으로 한 해의 끝이자 새로운 시작의 때이며, 특히 유네스코 세계 기념 인물로 선정된 성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며 한국 교회에 주어진 은총의 희년이 시작되는 뜻깊은 날입니다. 제가 봉사하고 있는 한국평협에서도 희년을 맞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기본에 충실한 희년의 삶을 살자는 취지의 ‘제자리 찾기 운동(하느님 백성답게, 모두 제자리로)’을 펼치기로 하였습니다. 저에게도 선물로 주어진 은총의 희년에 주님으로부터 새로 받은 새하얀 백지 위에 한 해를 무엇으로 채울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어느덧 저도 인생 지하철 6호선에서 7호선으로 갈아타는 시기를 맞게 되어 예년과 다른 느낌이 듭니다. 희년으로 맞이할 새해는 저희 부부가 결혼한 지 4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는 여러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자기 삶의 실체를 시험할 수 있는 기간이며, 노아의 방주가 정화되는 데 필요한 기간이었습니다. 신앙적, 도덕적으로 아쉬웠던 지난 세월을 깨끗하게 씻어내고 제거하는 회복과 희망이 담겨 있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제가 다니는 성당에서도 본당 설립 40주년을 준비하며 기도 운동과 함께 성전 대보수를 통해 낡은 시설을 교체하고 새로운 단장을 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40의 의미를 어떻게 담아낼까 생각해 보면, 저희 부부가 결혼하자마자 함께 손잡고 성당을 찾았던 신혼 때의 초심, 함께 세례를 받고 견진성사를 통해 믿음의 자녀로 살아가기로 약속했던 그 첫 마음으로 돌아가 변화된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는 가수 노사연의 ‘바램’ 노랫말처럼 보다 성숙한 신앙인, 남에게 보여주는 신앙인의 모습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신앙인으로 거듭나기로 다짐하며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되지 않도록 저의 약한 믿음을 주님께 청하며 의탁합니다. 예로부터 사람이 칠십을 살기는 드물다는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란 말이 있습니다. 요즘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이렇게 건강히 봉사할 수 있음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 여겨져 주어진 봉사의 소임을 무사히 마치고 나면 좀 더 자유로운 순례의 시간들로 채우고 싶은 소박한 희망도 가져 봅니다. 긴 시간 저를 보살펴 주고 알뜰살뜰 채워 준 저의 반쪽 배우자와 함께 사랑의 주님을 사이에 두고 오순도순, 알콩달콩…. cpbc2020.11.25

한 뿌리에서 갈라진 ‘정교회’, 가톨릭과 닮은 듯 달라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18~25일) - 정교회에 대해 알아보자 프란치스코 교황과 동방 정교회 바르톨로메오스 총대주교가 지난해 바티칸 교황궁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CNS 자료 사진】 예수님께서는 하나의 교회를 세우시고 당신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이 모두 하나가 되도록 해 달라고 기도하셨다.(요한 17,21 참조)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리스도교는 크게 가톨릭과 정교회, 개신교로 갈라져 있다. 1054년 파문을 계기로 동(정교회)ㆍ서(가톨릭)방 교회로 나뉘었고, 1517년 프로테스탄트 운동으로 가톨릭과 개신교로 분열되었다. 이중 가장 닮은 교회가 바로 가톨릭과 정교회이다. 2020년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1월 18~25일)을 맞아 정교회에 관해 알아본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정교회는 어떤 교회인가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체험한 사도들은 오순절 때 성령 강림으로 교회를 설립하고 예루살렘과 유다, 사마리아와 땅끝에 이르기까지 ‘예수께서 구세주이심’을 증언하기 시작했다.(사도 1,8 참조)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은 사도들의 헌신적 선교 활동으로 교회는 땅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할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이다. 교회는 하나의 신앙과 하나의 거룩한 전통을 1000년 이상 이어왔다. 하지만 1054년 교회가 동서로 분열되면서 동방 교회는 스스로 동방 전통의 계승자임을 선언하고, 스스로를 ‘정교회(正敎會, Ορθοδοξη Εκκλησα-오르토독세 에클레시아)라고 불렀다. 우리말로 ‘바른 종교’라는 뜻의 정교는 헬라어로 ‘Ορθοδοξια’(오르토독시아)라고 하는데 성경과 성전에 나타나 있는 참된 신앙과 참된 전통을 이단과 구별해 영적으로 계승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동ㆍ서방 교회의 차이점1. 성경가톨릭은 구약 46권, 신약 27권 등 모두 73권을, 정교회는 구약 43권, 신약 27권 등 총 70권, 개신교는 구약 39권, 신약 27권 등 66권만을 경전으로 인정하고 있다. 교회마다 이렇게 경전으로 인정하는 성경 수가 다른 이유는 구약성경의 어떤 책들을 경전으로 받아들였느냐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가톨릭교회는 39권의 히브리어 성경과 토빗기, 유딧기, 마카베오기 상ㆍ하권,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등 헬라어로 쓰인 7권을 더해 총 46권을 구약성경 경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반해 정교회는 히브리어 성경에 토빗기, 유딧기, 지혜서, 집회서만 더해 43권 구약성경을 경전으로 쓰고 있다. 개신교와 유다교는 히브리어 성경 39권만 구약성경으로 인정한다구약성경의 경전이 서로 다른 이유는 초대 그리스도교가 헬라어 구약성경인 칠십인역을 표준 성경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는 이 칠십인역을 구약성경 경전으로 받아들였지만, 개신교와 유다교는 헬라어 7권의 성경을 경전에 포함하지 않은 것이다.2. 삼위일체론 가톨릭교회는 성령께서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신다”고 고백하는 반면 정교회는 “성부로부터 발하시며, 그리스도는 성령을 보내신다”고 믿는다. 그리고 정교회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 외 가톨릭교회가 사용하는 ‘사도 신경’과 ‘아타나시오 신경’을 보편 공의회에서 선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는다.3. 원죄론정교회는 원죄가 인간에게서 하느님의 은총을 완전히 앗아갔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원죄로 인간은 죽을 운명을 자동으로 물려받았으나 아담의 죄를 물려받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정교회는 가톨릭교회와 같이 인간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원죄를 결코 깨뜨릴 수 없다고 동의한다. 인간 스스로 원죄를 극복할 수 없기에 구세주께서 인간으로 오신 것이다.4.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권정교회는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정교회는 오로지 교회의 무류성을 강조한다. 정교회는 공번된 교회는 잘못할 수 없으며 전혀 타락할 수 없다고 가르친다.5. 성모 마리아 교의정교회는 성모 마리아에 대해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동정녀’이심을 고백한다. 하지만 성모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와 ‘승천’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원죄 없으신 잉태가 이단이라고까지는 말하지 않는다. 정교회는 ‘성모 승천’을 말하지 않고 ‘성모 안식’으로만 표현하고 있다.6. 세례ㆍ견진성사정교회는 가톨릭교회와 마찬가지로 일곱 성사를 인정한다. 그리고 세례와 견진, 성체성사를 입문 성사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이한 것은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나라가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태 19,14)라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유아 세례 때 견진과 성체성사를 함께 집전한다. 따라서 가톨릭교회처럼 일정 나이가 돼야 첫 영성체를 하는 예식은 없다. 또 세례 예식은 온몸이 물에 잠기는 ‘침수’를 고수한다. 정교회는 세례성사 집전자는 반드시 세례받은 자라야 한다고 명시한다. 또 사제가 견진성사를 집전한다.7. 성체성사정교회는 가톨릭과 달리 누룩이 든 빵으로 성체를 축성한다. 또 양형 영성체를 하고, 엄격한 공복제를 시행해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난 후 성체를 모시기까지 먹거나 마셔서는 안 된다. 정교회는 성체 강복이나 성체 현시 예식은 없다.8. 고해성사 정교회는 보통 6~7살부터 고해성사를 하도록 인도한다. 별도의 고해소는 없다. 개방된 장소에서 십자가와 이콘, 성경이 놓여있는 책상을 마주하고 사제와 고해자가 서서 고해 성사를 한다. 9. 성품성사정교회의 주요 성직은 주교, 사제, 부제직이다. 사제는 ‘백색’(기혼)과 ‘흑색’(수도) 사제로 구분된다. 서품 전에 이를 결정한다. 수품 후에는 결혼이나 재혼을 할 수 없다. 주교는 독신 성직자 중에서 선발한다. 10. 혼인성사정교회는 한번 혼인하면 일생 그 서약을 풀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이혼은 죄와 악으로 선고한다. 하지만 정교회는 죄에 대한 구제와 자애의 행위로 재혼을 허락한다. 그러나 두 번째 혼인은 첫 번째와 결코 같을 수 없어 재혼 예식은 참회의 예절로 거행한다. 정교회 교회법은 세 번째 결혼까지는 허용하지만 네 번째는 완전히 금하고 있다. 또 정교회는 산아제한과 피임약 사용 등을 금하고 있다.11. 병자성사 정교회에서는 가톨릭의 병자성사를 ‘성유성사’라고 한다. 죽을 위험에 있든 없든 아픈 이 누구에게 성유성사를 베풀고 있다. 평화신문2020.01.15

“첫 성경 필사 마친 아이들 눈빛엔 성취감이 가득했어요”[선교지에서 온 편지] 캄보디아(중) 도전의 기쁨 -윤대호 신부 썰롱톰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있는 필자. 남자아이는 태권도 학원, 여자아이는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시절에 저는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제 기억에 남아 있는 인생의 첫 번째 도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물론 처음 말을 하는 것도, 첫걸음을 걷는 것도, 또 배변 훈련을 하는 것도 모두 도전이었겠지만, 필수가 아닌 선택에 의한 도전이었다는 점에서는 분명 첫 도전임이 분명합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도 매 순간이 도전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도전하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우리가 선택하여, 또는 부모나 주위로부터 선택되어 다양한 도전을 해왔고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는 경험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저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교우들과 어린이들은 그러한 경험이 거의 없습니다. 참고로 저희 교우들은 모두 베트남인이며, 연로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과거에는 사이공(남베트남) 지역에서 살다가 베트남전 당시에 메콩강을 거슬러 탈출해왔다고 합니다. 절박하고 고단한 삶 북베트남이 승리하여 베트남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캄보디아에서는 크메르루주의 대학살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게 되었고 곧이어 베트남-캄보디아 전쟁까지 발발하여 위기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종전 이후로도 캄보디아인들의 베트남인에 대한 적개심으로 말미암아 10여 년 가까이 힘들게 살다가 2000년대에 들어서야 비교적 안정적인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즉 지금 저희 본당에 있는 제 또래의 교우들은 전쟁 중에 태어나 전쟁 중에 유년기를 보냈으며 그들이 체험한 도전이란 모두 생존과 직결된 것이었습니다. 또한, 여전히 하루하루를 살기 위해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자신들의 경험 안에서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자녀들의 미래를 어떻게 준비시켜야 할지 또 꿈과 목표를 어떻게 심어줘야 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 때문인지 자녀들 또한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삶의 필수적인 도전들 외의 경험이 매우 부족합니다.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 대부분이고, 열심히 노력해서 무언가를 성취해본 경험을 가진 아이들도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그것을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그것이 반복되면서 지금까지는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의지도 거의 생기지 않았던 듯합니다.제가 맡은 세 개의 본당 중 하나인 썸롱톰(Somrong Thom) 본당에는 교적상 어린이가 100여 명 정도 있고, 그중 40명가량이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베트남인이라고는 하지만 캄보디아에서 태어나 캄보디아에서 자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캄보디아어를 능숙하게 하는 아이가 거의 없습니다. 캄보디아어를 잘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고 그 외의 학업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심지어 자신들이 늘 사용하는 베트남어도 책을 읽을 때는 상당히 더듬거립니다. 한동안 아이들에게 자극이 될까 싶어 일주일에 두 번씩 아이들 앞에서 베트남어를 읽는 연습을 했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베트남어를 할 줄 모릅니다. 그러나 두 달 정도가 지났을 때 절반 이상의 아이들보다 더 수월하게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이들에게 노력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너희가 훨씬 잘할 수 있다고 격려하려 했지만, 아이들은 그저 웃으면서 “많이 느셨네요!”라고 할 뿐, 어떠한 자극도 받지 않았습니다.성경 필사 대회를 한 이유는 무언가에 도전해서 성취해본 적 없는 아이들에게 도전에 대한 의지를 불러일으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무언가를 해냈을 때의 기쁨, 그리고 실력이 늘어가는 기쁨을 어떻게 느끼게 할 수 있을까.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떤 보상을 걸고 아이들이 노력하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성경 필사 대회’였습니다. 3개월 동안 마르코 복음서(캄보디아어)를 필사하는 것이 목표였고, 가장 빨리 쓰는 순서대로 1~3등 상을 주며, 그 외에는 순위와 상관없이 상품을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상품이 무엇인지 밝히지는 않았지만 28명의 어린이가 기꺼이 도전했습니다. 3개월 뒤, 필사를 마친 아이들은 5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상품을 공개한 순간 필사를 마치지 못한 아이들의 눈빛은 아쉬움으로 가득했습니다. 1등에게는 상자에 들어 있는 정품 운동화, 2등과 3등에게는 백화점에서 구입한 남방셔츠를 선물로 주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필사를 마친 나머지 아이들에게도 고급 학용품 20종 세트를 나눠주었습니다.뿌듯해 하는 아이들을 보는 기쁨대회를 치르며 제가 가장 기뻤던 점은 상품에 앞서 필사를 다 한 아이들의 표정에 이미 뿌듯함이 가득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분명 성취감과 함께 자신감도 얻었을 것입니다. 또한, 무리해서라도 좋은 선물을 준비한 것도 효과가 있었습니다. 필사를 마치지 못한 아이들이 다음에는 또 언제 대회를 시작하느냐고 묻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요즘 저희 아이들이 캄보디아어를 잘 읽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성경 필사 대회는 앞으로도 정기적으로 치를 예정이지만 무언가를 걸지 않고도 아이들이 기쁘게 도전할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들을 계속해서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렇게 계속 도전하면서 아이들이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사제로서, 사목자로서, 그리고 아버지로서 이곳에서 제가 해야 하는 역할이라고 믿습니다. 윤대호 신부(한국외방선교회 캄보디아 프놈펜대목구 메콩강지구) cpbc2019.08.07
![[생활 속 생태 영성, 하느님의 눈짓] 2. 물과 은총](//cpbc.co.kr/CMS/newspaper/2021/01/rc/794437_1.2_titleImage_1.jpg)
[생활 속 생태 영성, 하느님의 눈짓] 2. 물과 은총하늘땅물벗 홍태희(스테파노) 반석벗(회장) 제가 속한 사도직 단체인 ‘하늘땅물벗’도 서로 마주 앉아 모이지 못한 것이 제법 오래되어갑니다. 무작정 교류를 줄이고 각자 홀로만 머물 수는 없다는 마음에 온라인을 활용한 ‘랜선 기도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서로 살갑게 인사 나누기에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기술을 활용해서 아쉬우나마 하느님을 찬미하며 마음을 나눌 기회였기에 많은 분이 참석하였습니다.하느님 창조물과 함께하는 기도 모임이라는 목적에 맞게 첫 번째 기도 모임의 주제는 ‘물’이었습니다. 인터넷을 통한 모임이었지만 자신이 경험한 물에 대하여 각자 묵상하고 그 느낌을 함께 나누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몇 분은 물에 떠내려갔거나 빠져서 허우적대던 어렸을 적의 기억 등 물에 대한 공포를 나누어 주셨고, 목마름의 기억, 어린 시절 물놀이의 추억 등 많은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저에게 있어서 물에 대한 첫 번째 느낌은 공기와 마찬가지로 특별할 것 없는 가장 흔하고 일상적인 것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동네의 우물이나 계곡의 맑은 물은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에서 그렇게 무상으로 있는 것이었죠. 대동강 물을 팔았다는 봉이 김선달 이야기는 공동의 것을 자기 것인 양 사취한 사기사건의 교훈이었는데, 지금은 물을 사 먹는 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알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마을을 관통하던 작은 개울은 도시화와 함께 하수구가 되어 덮개가 씌워졌고, 산업용수로 많은 지하수가 사용되면서 맑았던 내는 마른 하천이 된 것을 목격합니다. 이제는 물을 대하면서 편안함보다는 긴장감, 보편적이라기보다 차별적인 것, 자연스러운 것이라기보다 가공적이라는 생각이 따라옵니다.물을 수소와 산소의 화학적 결합으로 이루어진 물질로만 보는 패러다임을 벗어나면 정말 다양한 물의 의미와 가치를 보게 됩니다. 특히 성경에서 발견하는 다양한 물 이야기는 우리에게 구원을 향한 하느님의 의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합니다. 예수님은 유다인들이 상종하지 않던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청하십니다. 그리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생명의 물로서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구원의 의미를 알려주십니다.(요한 4,7-14) 실로암의 물은 눈먼 사람에게 현실적 구원을 주는 도구가 되었고(요한 9,7), 물 위를 걷고(마태 14,23-33) 폭풍을 잔잔하게 하는(마태 8,23-27) 모습은 두려움을 이기는 주님의 모습을 전합니다. 또한, 수난 전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요한 13,5-14) 물은 사랑과 나눔 그리고 진정한 섬김을 보여 줍니다. 성체성사의 성혈을 이루는 포도주와 물은 하느님 안으로 일치되는 모든 피조물의 희망을 드러내고, 세례성사의 물과 성령을 통해 인간은 다시 태어납니다.(요한 3,5) 하느님의 창조물 중에서 주님의 은총을 드러내는 역할을 물만큼 풍부하게 하는 것이 없을 듯합니다.오늘 아침도 한 잔의 차와 함께 시작하였습니다. 단지 H₂O(물)를 마신 것이 아니라 위로와 생명을 마셨음을 묵상해 봅니다. 저개발국 선교지에서 원주민과 함께 사는 선교사들은 지금도 마을에 우물을 준비해 주는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펌프가 놓이고 그곳에서 맑은 물이 솟구치면, 그것은 단순한 물질을 넘어 생명을 북돋우시는 하느님 은총이 쏟아지는 것임을 전하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흐르는 물이 아까워서 세숫대야에 세수하고 물을 받아 설거지하신다는 어느 분의 말씀은 단순한 절약을 넘어 하느님의 은총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라 생각됩니다. 이제는 꼭지를 틀어놓고 흐르는 물에 샤워하던 습관도 조금씩 바꿔가야 하겠습니다.하늘땅물벗 홍태희(스테파노) 반석벗(회장) cpbc2021.01.06

평범한 일상 속 강인함이 필요한 때[사유하는 커피] (34)성 요셉과 로부스타 커피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장 “아버지의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를 신축년 벽두에 새롭게 새긴다. 새해를 ‘성 요셉의 해’로 선포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하신 말씀이 울림이 되어 가슴에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되어 가는 것이다.”(Fathers are not born, but made)이 말씀은 보편 교회의 수호자로서 성 요셉의 면모를 잘 드러내 준다. 성 요셉의 모범은 성령으로 잉태된 마리아를 배필로 받아들인 순종과 믿음에만 그친 게 아니다. 예수의 양부로서 임무를 다했고 마리아를 평생 보호하고 지켜주었다. 성경에는 성모 마리아와 예수에 비해 나자렛 요셉의 존재감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문맥을 거듭 헤아려보면 목숨을 건 성 요셉의 노고가 우러난다. 나자렛에서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헤로데의 학살을 피해 이집트로, 천사의 전갈을 받고 다시 나자렛으로 이어진 성가정의 험난한 여정은 성 요셉이 있어 가능했다. 그에게 히브리어로 “하느님이 돕는다”는 의미를 지닌 요셉(Joseph)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은 계시가 아닐 수 없다. 이후 성 요셉의 활약은 묘사되지 않다가 12살 예수가 갑자기 사라지자 성모 마리아와 함께 애타게 찾는 장면을 묘사한 루카 복음에 등장한다. 성 요셉이 아버지가 되어 가는 과정이 상세히 묘사되지 않지만, 어린 예수를 보호했다는 면에서 그의 가치를 가늠할 수 있다. 1870년 복자 비오 9세 교황이 성 요셉을 보편 교회의 수호자로 선언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성 요셉은 이어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서는 무신론적 공산주의와 투쟁하는 자들을 보호하는 인물, 비오 12세 교황에 의해서는 노동해방을 위해 힘을 쏟는 사람들의 수호자라는 칭호를 받았다. 1962년에는 성 요한 23세 교황에 의해 성 요셉의 이름이 로마 가톨릭 미사 전문에 실리게 됐다. “전능하신 하느님, 복된 성 요셉에게 구세주를 충실히 돌보게 하셨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어, 교회가 인류 구원 사업에 충실히 봉사하게 하소서”라는 대목이다.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성 요셉을 기억하는 기도문이 가슴을 파고든다. 팬데믹으로 불안과 공포 앞에서 ‘평범한 생활 속에서 강인함’이 필요할 때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처럼 나자렛 요셉이야말로 주목을 받지 않으면서도 신중하게 매일을 살아간 사람이자 구원 역사에서 필수불가결한 역할을 수행한 분이다. 커피에서 수호자로서 성 요셉의 모습을 찾는다면, 로부스타 커피이다. 이 커피는 향미가 고급스러운 아라비카 커피와 비교해 홀대를 받아왔다. 고무 냄새와 여러 번 우려낸 보리차의 느낌을 주기 때문에 인스턴트 커피 제조에 주로 사용된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로 인해 커피 재배지의 부족과 수확량 급감 등의 위기 속에서 로부스타는 커피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커피나무는 기온이 낮은 상태에서 서서히 자라야 향미를 씨앗에 온전히 담아낼 수 있다. 그래서 해발고도 2000m 위에서 자라는 아라비카 품종들이 대우를 받는다. 반면 콩고의 열대우림에서 탄생한 로부스타는 해발고도 1000m 아래에서 병충해와 싸워가며 강인함을 길렀다. 향미는 떨어지지만 카페인과 트리고넬린 등 험한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요소들을 갖춰 뜨거워지는 지구에서 커피 품종의 수호자가 되고 있다.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된 아라비카 품종이 로부스타의 강인함에 기대 탄생한 F1 교배종이 산지를 대체해 나가고 있다. 일상 속에서 성 요셉을 찾아내는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학과 교수) 평화신문2021.01.05

입시와 신앙생활, 뭣이 중헌디?[미카엘의 순례일기] (7)하느님보다 중요한 일 예수님께서 40일간 유혹받으실 때, 기도하셨다고 전해지는 동굴. 예리코 ‘유혹의 산’(Mt. Temptation) 정교회 수도원 안에 자리하고 있다. 어느새 2021년도 1월을 지나 2월이 되었습니다. 매해 1, 2월이 되면 이스라엘을 찾는 한국 순례단이 눈에 띄게 늘어납니다. 학부모들이 자녀의 겨울 방학을 이용해 시간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스라엘을 찾는 순례단의 70% 이상은 개신교인입니다. 전 세계의 다양한 성지를 방문하는 가톨릭 신자들과 달리 ‘오직 말씀만으로’ 신앙을 영위하는 개신교 신자들에게는 성경에 따른 이스라엘과 터키, 그리스만이 진정한 성지이기 때문입니다.순례 중 가톨릭 신자들과 개신교 순례단은 확연히 구분됩니다. 단순히 성당과 경당을 지날 때마다 표하는 경의의 태도가 아니더라도, 둘을 한눈에 구분할 수 있는 지표가 있습니다. 바로 연령대입니다. 젊은이들이 많이 보이면 틀림없이 개신교 순례단입니다. 가톨릭 순례단의 경우 40대 후반은 이미 젊은 축에 속하며, 대부분은 60대 이상의 자매들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안타까운 마음도 듭니다.몇 년 전 이맘때쯤이었습니다. 수능을 치른 후 어머니와 함께 순례를 떠난 학생이 있었습니다. 아직 결과를 몰라 몹시 초조하고 불안할 텐데도, 그 학생은 공항에서부터 아주 밝은 모습이었습니다. 손뼉을 치며 해맑게 웃기도 하고 낯선 공항 수속에 애먹는 주위 어른들에게 달려가 먼저 도움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순례 초반에 그 학생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놀랍게도 학생의 아버님께서는 고3 수험 생활 중에도 매주일 미사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답니다. 미사에 참여하는 그 짧은 시간 때문에 성적이 떨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을뿐더러, 고작 그 정도로 정말 성적이 떨어진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요. 대신 수능이 끝나면 이스라엘 순례를 보내주겠다고 하셨고 약속을 지키신 것이었습니다.그 짧은 이야기가 저에게 생각거리를 던졌습니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저는 주일학교에 가는 것이 정말 좋았습니다. 오로지 주일만 바라보며 나머지 엿새를 공부할 정도였습니다. 저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그랬었지요. 또래는 물론 선후배들과 형제처럼 지내며 함께 놀고 또 학교 공부를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정반대입니다. 성당에 학생이 없습니다. 고등학생이 미사에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이미 중학교 3학년이 되면 성당에 나오지 않는다는 신부님들의 하소연을 자주 듣습니다. 주일학교는 와해되었고, 주일학교를 이끌던 대학생들이 사라진 자리를 중장년 자매들이 다시 채워야 하는 경우도 너무나 많습니다.대한민국 학생들에게 입시만큼 다급한 일이 또 있을 리 없습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공부 아닌 신앙 활동에 시간을 쓰는 것을 드러내놓고 싫어합니다. 수능 전까지는 공부만 열심히 하고, 대학에 들어간 다음에 성당을 다니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 말대로 열심히 공부만 하며 학창시절을 보낸 아이들이 나중에 신앙 활동을 열심히 하게 될까요? 그럴 리가 없지요. 그 모습을 보고 부모들은 그제야 왜 성당에 나가지 않느냐며 다시 질책합니다. 세상에 하느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자녀들의 귀에는 다시는 와 닿지 않는 공허한 외침일 뿐이지요.제일 중요한 것은 언제나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분명 신앙의 중요함을 모른다는 신자는 없는데, 세상의 급한 일들에 신앙생활이 늘 밀려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살다 보면 급한 일은 매일 같이 생깁니다. 반면 중요한 일은 갑자기 생기지 않고 그냥 거기에 조용히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하루 이틀, 몇 달, 몇 년까지도 급한 일을 우선한 다음 ‘시간이 나면’ 다시 찾겠다는 교만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겠지요.저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을 틈타 이러한 생각과 반성을 순례단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날 밤 예리코에서 하룻밤 묵어가기 위해 호텔에 도착한 직후 어머님께서 저를 잠시 부르셨습니다. 무언가 결심하신 듯 편안한 표정이셨습니다.“원래는 순례 중에 결과를 보지 않으려고 했어요. 혹시나 떨어지면 마음이 상할 수도 있고 순례를 괜히 망치게 될까 봐요. 그런데 딸과 얘기하다가 마음을 바꾸었어요.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네요. 부족했다면 다시 더 열심히 기도하고 공부해보라는 계기로 삼겠다고요. 결과를 확인하려면 컴퓨터가 필요한데, 혹시 노트북 좀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다음 날 저녁 예루살렘에 도착한 우리 순례단은 기쁜 마음으로 학생을 축하하며 포도주를 마실 수 있었습니다. 학생이 열심히 모아둔 용돈으로 구입한 포도주를 말입니다.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cpbc2021.02.17

전국 방방곡곡 위로와 감동 전하는 CPBC 라디오뜻하지 않은 순간에 마주한 기분 좋은 음악. 친근한 목소리가 전해주는 따뜻한 위로. 때로는 유쾌한 목소리로 전해주는 즐거움까지. 모두 라디오라서 가능한 일이 아닐까.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내는 광주와 대구, 부산가톨릭평화방송의 대표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나본다. 광주가톨릭평화방송 ‘향기로운 오후, 주님과 함께(제작 조미영·편수민 PD, 진행 박소현 아나운서)’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가 하늘에서 굽어보리라.”(시편 85,12) ‘향기로운 오후, 주님과 함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 정의를 구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져야 할 성경과 교리지식을 전한다. 매주 월요일 박대남(광주대교구 비서실장) 신부와 정규현(사목국 부국장) 신부, 이창훈(신안석문본당 주임) 신부가 교회와 사회문화 현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신앙생활에 대한 청취자들의 고민도 속 시원하게 풀어준다. 수요일은 성서사도직 최종훈(사목국 부국장) 신부가 사회의 여러 현상과 이슈를 복음과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며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또한, 한국천주교 유사종교대책위원회 위원장인 전주교구 이금재 신부와 신천지 대처법에 대해 알아보는 ‘신천지! 팩트 체크’ 시간도 마련된다. 금요일은 김계홍(두암동본당 주임) 신부가 가톨릭 교리와 전례, 교회 상식 등을 예비신자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풀어주고, 라디오를 통해 국내 성지와 해외 성지로 성지순례를 떠나는 시간도 마련된다. 방송시간 : 월~금 14:00 대구가톨릭평화방송 ‘주님 안에서 기뻐하여라(제작·진행 윤 제오르지아 수녀)’ 모든 것은 신자들이 바쁜 일상 속에서도 삶의 중심을 잃지 않고 행복한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주님 안에서 기뻐하여라’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이라는 코너로 일상생활 중 고요한 잠심을 통해 하느님께 머무는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월요일 ‘성경 속, 여성을 만나다’를 시작으로 청취자의 사연을 나누는 ‘주님안기 하늘 우체통’, ‘가스통 신부의 보듣깨살’, ‘내 인생곡’, 교회음악 순례와 음악 힐링을 주제로 한 ‘음악으로 주님안기’ 등 가톨릭 기본 교리에 충실한 구성으로 진행된다. 특히 대구가톨릭평화방송 사장 이상재 신부가 맡고 있는 ‘가스통 신부의 보듣깨살(보고, 듣고, 깨닫고, 살고)’은 많은 청취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방송시간 : 월~금 16:05 부산가톨릭평화방송 ‘신부들의 수다(제작 조윤진 PD)’ “밥은 묵꼬 댕깁니까?” 매주 토요일 오후 1시면 미소남 3명이 마이크를 잡는다. ‘미사 드리며 소통하는 남자’ 홍영택(부산교구 선교사목국 부국장) 신부와 김병희(토현본당 부주임) 신부, 이추성(거제동본당 부주임) 신부다. 대신 안부를 물어봐 주는 ‘여보세요 프로젝트’부터 신앙적인 궁금증과 아주 사적인 이야기까지 나누는 ‘가톨릭 수다’ 등 1시간 동안 미소남 3인방의 쉴 틈 없는 수다가 이어진다. 단순히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민까지 해결해주는 ‘깨운한데?’ 코너를 통해 해결사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녹음 현장 속 뒷이야기부터 비밀까지 탈탈 터는(?) 조윤진 PD의 ‘조~PD수첩’도 인기 급상승 중이다. 그레고리오 성가 선율로 협찬사를 소개하는 ‘협찬송’은 또 다른 들을 거리다. 방송시간 : 토 13:00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문채현2020.07.08

베드로의 제자 마르코,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을 알리다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에 살펴보는 첫 복음서 저자 마르코 마르코 복음사가는 교회 안에 ‘복음’이란 말을 맨 처음 사용한 이로 신약성경에 10번이나 등장한다. 초대 교회는 마르코 복음사가를 베드로 사도의 애제자이며 진정한 대변자이자 통역관으로 여겼다. 그림은 팔라 펠리알레가 1345년에 그린 마르코 복음사가 작품으로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마르코대성당에 소장돼 있다. 4월 25일은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이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그의 복음서 첫 문장을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고 기술하면서 교회 안에서 ‘복음’이란 말을 맨 처음으로 사용했다. 마르코 축일을 맞아 마르코 복음사가와 복음서에 관해 정리했다.복음이란 무엇인가복음이란 무엇인가? 한 문장으로 정의하면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이시다’고 선포하는 신앙 고백”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즉 역사의 인물인 나자렛 사람 예수가 믿음의 그리스도 바로 ‘구세주’라는 고백이다. 복음서의 모든 내용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돼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1코린 15,5-6) 또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 세상에 등장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십니다.”(히브 13,8) 이 고백이 바로 ‘복음’이며 구원의 기쁜 소식이다. 복음서 저술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20,31)복음은 헬라어(희랍어) ‘에우안겔리온’에서 나온 말이다. 에우안겔리온(ευανγγελιον)은 기쁜 소식을 전해 준 대가로 주던 선물을 뜻한다. 오늘날처럼 교통, 통신 수단이 발달하지 못했던 고대에는 모든 소식을 인편으로 직접 전달했다. 이들 중 특히 기쁜 소식을 전하러 온 사람에게는 선물을 줬다. 성경에서 ‘에우안겔리온’은 과거의 기쁜 소식이 아니라 앞으로 이뤄질 기쁜 소식에 관해 사용됐다.(이사 61,1) 이 에우안겔리온은 장차 메시아가 오시어 우리를 죄악에서 해방시켜주실 것이라는 기쁜 소식이었다. 하지만 복음서는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생하시어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셨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이 기쁜 소식이라 한다. 그래서 첫 복음서의 저자인 마르코 복음사가는 복음서 서두를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마르 1,1)이란 말로 주님에 관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복음서는 그리스도인 공동체 즉 교회 구성원들을 위해 저술됐다. 처음에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언행이 제자들과 목격자들로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이것을 ‘구전 복음’이라 한다. 이 구전 복음이 제자들의 필요로 서기 50년부터 90년 사이에 글로 남겨지기 시작했다. 첫 기록 전승은 서기 50~60년께 예수님의 말씀만을 모아 놓은 ‘예수 어록(Q)’이 있었다. 그러다 예수님 말씀뿐 아니라 행적과 기적, 비유 등을 모아 서기 70년 전후로 첫 복음서인 ‘마르코 복음서’가 저술됐다. 마르코ㆍ마태오ㆍ루카 복음서는 같은 관점에서 쓰였는데 이를 ‘공관 복음’(synoptica)이라 한다. 라틴말 ‘시놉티카’는 ‘함께 바라보다’는 뜻이다. 공관 복음 세 복음서는 내용과 언어, 사건 순서들이 매우 비슷하다. 하지만 마태오와 루카 복음사가는 기본적으로 마르코 복음서의 구성을 따르면서도 둘의 공통 문헌이나 각자 고유한 자료를 첨가해 자신의 복음서를 저술했다. 서기 90년께 저술한 요한 복음서는 공관 복음과 구성뿐 아니라 관점도 다르다. 복음서는 모두 헬라어로 기록됐다. 당시 지중해는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시대였으나 언어와 문화는 헬레니즘화 돼 헬라어가 공식 교양 언어였다. 네 복음서와 신약성경은 382년 로마 교회회의와 397년 카르타고 교회회의에서 정경(canon)으로 확정됐다. 마르코 복음사가마르코 복음사가는 신약성경에 무려 10번 가까이 등장한다. 그는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사도 12,12. 25)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된다. 요한은 유다식 이름이고, 마르코는 헬라식 이름이다. 그는 마리아라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예루살렘에서 살았으며, 그의 집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서 집회를 했던 곳이다. 그는 바르나바와 사촌(콜로 4,10)이며 키프로스 태생의 레위 사람이다.마르코는 바오로 사도와 바르나바를 수행하며 안티오키아로 갔고(사도 12,25), 바오로의 제1차 선교여행에도 함께했다.(사도 13,5) 그러나 팜필리아에서 바오로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사도 13,13) 바오로와의 의견 대립으로 그의 제2차 선교여행에는 함께하지 않았지만(사도 15,36-40), 로마에서 바오로가 투옥됐을 때는 그와 함께 갇혀 있었다.(콜로 4,10)베드로 사도가 마르코를 “나의 아들 마르코”(1베드 5,13)라고 할 만큼 그는 베드로의 애제자였다. 초대 교회 때부터 내려오는 전승에 따르면 마르코는 베드로 사도에게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사도행전은 베드로 사도가 천사의 도움으로 갇힌 감옥에서 기적같이 풀려나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다”(사도 12,12)고 기록하고 있다. 사도행전은 베드로가 마르코의 어머니 집을 찾았을 때 많은 그리스도인이 모여 기도하고 있었고, 로데라는 하녀도 있었던 것으로 보아, 마르코 복음사가는 집회를 열 만큼 저택을 소유한 부유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베드로 사도와 관계가 깊었던 마르코에 대해 초대 교회는 마르코 복음사가를 베드로 사도의 진정한 대변인이며 통역관으로 여겼다. 마르코 복음서의 친저성에 관해 처음으로 증거를 제시한 인물은 프리기아 지방(현 터키) 히에라폴리스의 파피아스(60~130) 주교였다. 그는 마르코 복음사가에 관해 이렇게 증언했다. “베드로의 통역관이 된 장로 요한 마르코는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거나 행하신 것 가운데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모든 것을 순서대로는 아니라도 정확하게 기록했다. 그는 주님의 말씀을 직접 듣거나 그분을 따라다니지는 않았지만, 내가 말했듯이 훗날 베드로와 동행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과 관련해 해석하려 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가르침을 베풀곤 했다. 그러나 마르코는 몇 가지 내용을 자신이 기억하는 대로 기록하면서 어떤 오류도 범하지 않았다. 그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 자신이 들은 것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며 거짓 진술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파피아스의 단편, 카이사리아의 에우세비우스 「교회사」 3,39,14-15. 「교부들의 성경주해-마르코 복음서」 번역 인용)파피아스의 증언 외에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150~215)와 리옹의 이레네우스(135~202)도 마르코를 베드로의 제자이자 통역관으로 소개하며 그가 베드로 사도 순교 후 복음서를 썼다고 가르쳤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또한 마르코 복음사가가 이집트에 복음을 처음으로 전한 사람이라고 한다. “마르코는 최초로 이집트로 파견돼 그곳에서 자신이 기록한 복음을 선포했으며 알렉산드리아에 처음으로 교회를 세웠다.”(에우세비우스 「교회사」 2,16,1-2)교회 전승에 따르면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주교가 된 마르코는 신자들과 부활절 미사를 드리던 중 이교도의 습격을 받고 붙잡혔다. 이교도들은 마르코의 목에 밧줄을 묶어 이틀 동안 거리로 끌고 다녔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피가 낭자했던 마르코는 그렇게 순교했다고 한다. 이교도들이 마르코의 시신을 불태우려 하자 천둥과 번개가 쳤다. 이에 놀란 이교도들이 마르코의 시신을 버려둔 채 도망치기 급급했다. 그 틈을 타 알렉산드리아 신자들이 마르코의 시신을 수습해 모셨다고 한다. 이후 마르코 복음사가의 성해는 829년 베네치아 상인들에 의해 베네치아로 옮겨졌다. 베네치아는 마르코 복음사가를 도시의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대성당을 지어 그곳에 그의 성해를 안장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0.04.21

죽음, 하느님께 돌아가는 새로운 삶의 시작교회는 죽음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나 살아 있는 이들보다 죽은 이들이 더 많은 곳이 어딜까? 죽은 이들이 잠든 묘원이다. 가족 혹은 친지나 친구를 기리기 위해 그곳에 서면 “사람은 죽은 이후에 어디로 가나”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교회는 죽음 이후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가 펴낸 「죽음ㆍ심판ㆍ지옥ㆍ천국-가톨릭 교회의 사말교리」를 토대로 풀어본다. 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죽음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인간 지상 순례의 끝이며 지상 생활을 하느님 뜻에 따라 실현하라고 하느님께서 주신 시간의 끝이다. 영화나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환생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죽음은 인간의 원죄에서 비롯됐다. 인간이 태초에 죄를 짓지 않았다면 육체의 죽음도 없었을 것이다. 죽음은 인간에게 영원한 소멸의 공포를 안겨준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써 죽음을 변화시켰다.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죽음은 더는 공포의 대상이 아닌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과정이다. 현세의 삶을 사는 우리는 기도를 통해 죽은 이들의 정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심판죽음 이후에는 심판이 온다. 심판은 죽음 직후 이뤄지는 개별 심판(사심판)과 세상 종말에 있을 최후 심판(공심판)으로 구분된다. 개별 심판은 살아 있던 동안 행실과 믿음에 대한 셈을 치르는 것이다. 그 결과 연옥, 천국, 지옥에 든다. 최후 심판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있게 될 총체적 심판으로, 심판의 가장 큰 기준은 사랑과 자비의 실천이다. 심판을 통해 하느님 정의와 자비가 함께 이뤄진다. 세상 종말에 이뤄지는 육신의 부활은 육체의 생물학적 회복을 의미하지 않는다. 새로운 차원에서의 불사불명성이 우리의 전인적 인격에 주어진다는 것을 뜻한다.연옥연옥은 죽은 후의 정화를 뜻한다. 가톨릭교회 교리에만 존재하고 개신교에는 없다. 교회는 성경과 교회 전통이 증언하는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의 관습에 의거해 죽은 후의 정화 과정, 즉 연옥의 존재를 인정한다. 연옥은 불완전한 사랑을 하는 인간이 완전한 사랑이신 하느님을 만나 그분과 완전한 일치를 위해 겪는 과정이다. 현세의 삶을 사는 우리는 기도를 통해 죽은 이들의 정화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이는 서로에 대한 사랑이 죽음의 경계 너머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확신한다.지옥지옥은 하느님과의 완전한 단절이며 하느님의 사랑을 최종적으로 거부한 이들의 운명이다.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하느님과 복된 이들과 친교를 결정적으로 ‘스스로 거부한 상태’를 일컫는다. 지상에서 천국을 살 수 있듯 지옥 역시 이 세상에서 이미 체험할 수 있다.하느님은 사랑이신데 왜 지옥이 존재할까? 지옥은 하느님의 사랑과 모순되지 않는다. 지옥에 대해 말씀이 의도하는 바는 회개로의 초대다. 지옥 교리는 하느님 뜻을 완고하게 거부하는 이들에 대한 영원한 단죄의 가능성을 분명하게 경고하는 것이다. 천국천국은 하느님과의 궁극적 만남이고, 우리는 그곳에서 완전한 행복을 누린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통해서 모든 이들을 천국으로 초대하신다. 천국은 이미 예수님과 함께 시작됐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성경과 성사,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친교를 이룰 때 천국의 행복을 지상에서 미리 맛볼 수 있다.이웃 종교와 민간 신앙에서의 죽음그리스도교에 하느님 나라가 있다면 불교에는 극락이 있다. 극락은 불교 신자들이 죽은 다음 가는 세계 가운데 하나로 해탈 전의 단계다. 부처의 나라 중 서쪽에 있는 극락은 깨달음을 얻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깨달음을 얻어 해탈에 이르는 것, 즉 스스로 부처가 되는 것이기에 극락이 최종 단계는 아니다. 조건에 따라 극락에 갔다고 해도 윤회를 거쳐 다시 인간 세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유교에서 죽은 뒤에 사람이 어떤 세계에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다는 설명이 담긴 문헌을 찾기는 어렵다. 유교의 여러 경전을 살피면 조상들은 죽은 다음 승천하여 상제를 모시고 자손들을 굽어보며 보살펴 준다는 구절이 있다. 이러한 영혼 불멸 신앙은 조상 제사를 중시하는 유교 사상의 바탕이 된다고 한다.민간 신앙과 무속에 따르면 인간이 죽으면 그 넋은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간다. 하지만 이승에서 억울한 죽임을 당한 이들이나 원한을 가지고 죽은 이들의 넋은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이승에 남아 사람들이 자신의 한을 풀어주기를 바라며 떠돌아다닌다고 한다. 이른바 귀신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귀신을 믿지 않는다. 죽은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 앞에 서고 그분과 함께 부활하리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평소 죽음에 대해 묵상해야죽음에 대한 교회의 교리를 안다고 해도 죽음을 받아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독실하게 신앙생활을 한 이들도 마찬가지다.지난해 부친을 떠나보낸 라파엘(45)씨는 “아버지가 암에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았지만, 끝까지 삶에 대한 애착을 놓지 않으셨다”며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했지만, 오히려 자신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 가족들에게 섭섭해 하셨다”고 말했다. 라파엘씨 가족들은 아버지에게 “사랑하고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눈물을 흘렸지만, 숨이 마지막에 달한 부친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고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호스피스 활동을 하며 수많은 이들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온 한 수도자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다”며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 가족들이 무언가를 강요하기보다는 본인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아쉬움이 덜 남는 것 같다”고 조언했다.이어 “평소 죽음과 심판, 지옥과 천국에 대해 깊이 묵상한다면 지상에서 하느님과 멀어지는 일도, 하느님께로 향하는 죽음이라는 과정 앞에서 두려움에 떠는 일도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cpbc2020.11.04

침대와 소파에서 펼쳐지는 이탈리아 성당 순례길수도회 사제와 기자가 함께 저술
피렌체 등 5개 도시 중심 성당 80곳 소개
성인의 삶·죽음, 유럽사 관계 등 다뤄 1969년 동갑내기 두 남자가 5년 동안 겨울과 여름, 자투리 시간이 날 때마다 이탈리아를 찾았다. 배낭에는 성경과 아우구스트 프란츤의 「세계교회사」와 폴 존슨의 「기독교의 역사」 등을 챙겨 넣었다. 한 명은 로마에서 유학한 수도회 사제, 다른 한 명은 가톨릭 언론사에 몸담아온 기자다.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 동아시아 준관구장 최의영 신부와 월간지 ‘가톨릭 비타꼰’ 우광호(라파엘) 주간이다.두 사람이 선보인 「성당 평전」(시공사)은 피렌체, 나폴리, 베네치아, 바리, 밀라노 등 5개 도시를 중심으로 그 지역의 크고 작은 성당 80곳을 소개한다. 인근의 도시까지 아울러 크고 작은 성당과 세례당, 종탑 등을 비롯한 종교 건축물도 찾아갔다.두 사람의 발품 덕에 독자들은 집에서 앉은 채로, 때론 누운 채로 이탈리아 성당 곳곳을 누빌 수 있다. 코로나19 시대의 비대면 순례가 되겠지만 두 사람의 발과 눈을 따라가다 보면, 이들의 깊이 있는 안목과 해설에 이끌린다. 인물 평전을 써내려가듯 덤덤하게 성당의 이름과 역사 품은 사연, 성당과 깊이 관계 맺고 있는 가톨릭 성인의 삶과 죽음, 그들의 유해를 둘러싼 공방과 유럽사의 관계 등을 폭넓게 다뤘다. 각 성당의 예술작품은 물론 성당이 지어진 당시의 정치적 배경과 경제 흐름을 통해 생생한 감동을 전한다. 유럽사에서 종교와 신앙이 어떤 의미를 차지하는 지도 이해할 수 있다. 전설적인 큐폴라로 유명한 피렌체 대성당, 나폴리의 가장 높은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카르투시오회 산 마리티노 수도원 성당, 베네치아의 물에서 솟아난 듯한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135개의 첨탑과 3000여 조각상으로 유명한 밀라노 대성당 등 이탈리아 골목 골목에 보석처럼 숨어 빛나는 성당들을 알뜰히 소개했다. 400여 컷이 넘는 사진 속 장관들을 따라가다 보면 순례자가 된 착각이 든다. 바리 인근에 있는 마테라, 알베로벨로, 레체를 비롯해 덜 알려진 밀라노 인근의 베르가모, 파비아의 성당 등도 만날 수 있다. 10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유럽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순례지가 된 바리에서 저자는 산 니콜라 대성당에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로 둔갑한 성 니콜라오의 생애를 묵상한다. 천장에는 난파 직전의 위기에 처한 선원들을 구하고, 어린이와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성 니콜라오의 일생을 그린 대형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다. 이 성당의 지하 경당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성 니콜라오)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것은 아이들의 동심을 깨지 않기 위해 비밀에 부쳤다. 이들은 피렌체의 해안마을 친퀘테레의 몬테로소 기차역 인근에 있는 마을에서 연도 성당도 찾는다. 몬테로소에서 연령회 단체가 장례 미사 전용성당을 건축해 독자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연도 성당 맞은 편에는 아기가 태어난 직후에 세례성사를 받는 산 조반니 성당이 마주하고 있다. 죽음을 기억하는 성당과 탄생을 축하하는 성당이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탈리아 성당들을 여행하면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인간은 수백 년 역사를 가진 위대한 건축물 앞에 서면 티끌이 된다. ‘생각하는 먼지’가 된다. 생각할 줄 안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티끌은 위대하게 존재한다. 성당이 고결한 것은 건축물 그 자체 때문이라기보다, 위대한 티끌들이 수백 년 공들여 빚어낸 삶의 역사이기 때문이다”(‘들어가는 말’에서)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성당 평전 최의영 신부ㆍ우광호 지음 / 시공사 평화신문2020.12.16

커피가 카페인을 품게 된 이유는[사유하는 커피] (4) 카페인과 떨기나무의 가시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장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로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작은 열매도 맺을 수 없듯이,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그러하리라~”어릴 때부터 영성체 행렬에서 항상 따라 부른 덕분에 동요보다 또렷하게 몸에 새겨진 성가이다. 시인을 꿈꾸며 멋스럽게 시집을 들고 다니길 좋아했던 중학생 시절, 문득 ‘가사가 너무 쉬운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어 작사에 덤비기도 했다. 노랫말이 될 만하게 없을까 성경을 뒤지다 모세가 가시덤불에서 하느님을 뵙는 장면에서 제법 오랫동안 열병을 앓은 기억이 있다. 구절구절 의미를 따져가며 성경을 읽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 앞에 나타나셨으면 훗날 예수님이 고생하지 않았을 텐데, 왜 목소리만 들려주셨을까, 나무를 태우지 않는 불이란 전기의 발명을 예고하신 것일까…. 성경에 의심을 품으면 의혹을 낳고, 의혹은 정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반면 비유의 말씀이 현실에서 부딪치는 난제를 풀 열쇠가 될 것이라고 믿으면 가끔 눈이 뜨이는 환희를 맛보기도 한다. 하느님께서 수많은 나무 중 가시덤불에 나타난 이유를 따져 나간 경험이 그랬다. 하느님은 왜 가시가 있는 떨기나무(관목)로 오신 것일까? 답을 찾으려는 생각은 하면 할수록 꼬여만 갔다. 중학교 이후 거의 40년간 이에 대한 궁금증이 도질 때면,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그냥 믿자’ 하며 넘겼다. 그러다가 커피를 만나면서 접근법을 바꿨다. 이유를 따지기보다 가시덤불이 주는 의미를 찾아 스스로 납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창세기보다 대략 2000년 앞선 글로 남겨진 길가메시 서사시에 “늙은이가 젊은이가 되다”라는 긴 이름이 붙게 된 ‘영생을 주는 나무’에도 가시가 있다. 그 나무를 잡아 손에 챙기기 위해 길가메시는 가시에 찔리는 고통을 참아내야 했다. 가시는 진실을 만나기 위해 인간이 넘어서야 할 관문이자 치러야 할 대가이겠다. 가장 크고 날카로운 가시로 쇄도해 목을 찔린 후에야 비로소 아름다운 소리를 토해내는 가시나무새도 같은 은유다. 나무에게 가시는 생명을 보존하고 번식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진화론에 따르면, 가시가 없는 나무들은 잎과 줄기를 동물에게 쉽게 먹히는 바람에 소멸됐다. 가시가 없는 나무들은 꽃가루를 통한 보다 왕성한 번식력으로 소멸의 위험을 극복해왔다. 모세에게 하느님이 불로서 깃든 가시 떨기나무는 근접조차 힘들지만, 반드시 가시(고난과 유혹)를 극복하고 그 속에 들어 있는 진실(하느님)을 만나야 한다는 삶의 이치를 깨우쳐주는 상징이다.커피나무도 진실에 이르게 하는 나무이길 소망하며 바라봤다. 길가메시의 시절, 커피나무는 지금의 카메룬 지역에서 치자나무의 형태로 자라고 있었다. 지질활동으로 동아프리카 단층지구대가 형성되면서 치자나무는 고향을 떠나 에티오피아로 긴 고난의 여정을 시작했다. 치자나무는 동물과 곤충의 공격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단으로 가시를 장착하는 대신 카페인을 품는 전략을 채택했다. 어머니 유게니오이데스(Eugenioides) 시대를 거쳐 지금의 아라비카종으로 모습을 갖추기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나무로서는 드물게도 뿌리에서부터 잎, 심지어 꽃술까지 식물체 전체에 카페인이 흐르고 있는 덕분이다.가시가 고난을 만드는 것인지. 고난이 가시를 만드는 것인지 혹은 위험이 카페인을 만든 것인지 카페인이 위험을 만든 것인지. 그 이유보다는 세상 돌아가는 이치, 하느님의 섭리를 이해하는 게 유익하다는 생각을 한다. 커피나무의 카페인은 떨기나무의 가시를 닮았다.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cpbc2020.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