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황만을 위한 공간, 바티칸 정원[엉클죠의 바티칸 산책] (35)거룩하고 소박한 정원 바티칸 정원에 멕시코 과달루페 성모님의 발현 장면이 조각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즐겨 찾아 산책하면서 묵상하고 기도하는 장소이다. 바티칸에는 ‘두 명의 교황’이 계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베네딕토 16세 은퇴 교황님!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바티칸 사제들의 공동숙소(기숙사)인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바티칸 정원 안에 있는 수도원에서 생활하고 계십니다. 두 교황님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두 교황’(메이렐레스 감독)이 한국에서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을 때 지인으로부터 질문을 받았습니다. “영화 배경으로 나오는 바티칸 정원이 정말 아름답던데, 실제 그곳에서 영화를 찍었나요?” 영화를 본 많은 사람이 그렇게 믿고 있다지만, 그곳을 자주 가본 저로서는 선뜻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니라고 확정적으로 대답하기도 어려워 애매한 처지였지요. 교황청 경호실장 가우찌 박사와 저녁 식사를 할 기회가 있어서 직접 물어봤습니다. 정원 관리는 경호실 소관이거든요. “영화 속 바티칸 정원은 100% 세트입니다. 바티칸 정원이 상업적 목적에 사용된 사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없습니다.”바티칸 정원은 교황의 전용 공간입니다. 조선 시대 왕들이 망중한을 즐겼던 창덕궁 후원(비원)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구글 지도에서 바티칸 시국을 검색하면, 절반가량이 푸른색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바티칸 정원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이 기도하고 묵상하고 산책하는 곳이지요. 시민들에게 제한적 개방 중요한 용도가 또 하나 있습니다. 건강관리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규칙적으로 운동하여 몸을 풀어주어야 건강이 유지됩니다. 두 교황님은 어떻게 건강관리를 하실까요? 정원 산책입니다. 교황님에게는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건강관리입니다. 바티칸 정원은 베네딕토 16세 교황 때부터 시민들에게 제한적으로 개방되었습니다. 주일과 수요일을 제외한 날 오전에만! 오후는 오로지 교황님의 시간입니다. 일반인들의 경우 인터넷으로 신청하여 버스 투어를 할 수 있지만, 인원이 제한되어 있고 버스에서 내릴 수 없습니다. 대사관에서 신청할 경우 5명 이내에서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줍니다만, 이 경우 외교관이 반드시 동행해야 합니다. 저는 한국 순례자들이 요청할 경우 여건이 허락하는 한 신자, 비신자 가리지 않고 바티칸 당국의 허락을 받아 안내해 드립니다. 순례에 앞서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합니다. “돌 하나와 나무 한 그루에도 신앙적 의미가 있고, 역사가 있는 곳입니다. 바티칸 정원 산책은 소풍이 아니라 순례입니다. 교황님과 함께 순례하고 있다고 생각하셔야 의미가 있습니다.” 순례객들은 세 번 놀랍니다. 그리고 물어봅니다. 첫째, 교황님의 전용 정원치고는 너무 소박한 거 아닙니까? 둘째, 사막(중동)에서 자라는 나무를 겨울이 있는 로마에서 어떻게 기르지요? 셋째, 분수가 왜 이렇게 많나요?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이나 중국 북경 이화장의 정원에 비하면 바티칸 정원은 소박하기 이를 데 없지요. 화려하다는 느낌이 전혀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실망하시는 분들도 종종 있더라고요. 자연의 생태환경을 그대로 살린 정원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나무들을 대형 화분에 심어 놓은 곳이 있습니다. 파피루스, 돌무화과, 알로에, 가시나무, 올리브 등 20여 그루나 됩니다. 사막 선인장도 많습니다. 모두 이스라엘에서 가져온 것들입니다. 바티칸 정원사들의 명성도 이런 나무들을 잘 키우는 데서 나왔겠지요. 바티칸 정원에는 무려 99개의 분수가 있습니다. 모두 자연 낙하 분수입니다. 잔잔한 물소리만큼 묵상에 좋은 것은 없다고 합니다.성모성월 행사 자주 열려바티칸 정원은 성모님을 모시는 곳이기도 합니다. 루르드 성모 동굴(모형)이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고, 과달루페 성모님의 발현 모습을 형상화한 조각상도 있습니다. 5월 성모 성월에는 정원에서 묵주기도를 올리는 행사가 자주 열립니다. “그들은 모두, 여러 여자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분의 형제들과 함께 한 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다.”(사도 1,14)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사도들이 성모님과 함께 기도했던, 성경의 그 모습을 재현하는 행사입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인 헬레나 성녀가 이스라엘 골고타 언덕에서 흙을 가져와 이곳에 뿌려놓았다는 전승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와 로마에서 순교한 그리스도인들의 피를 상징적으로 결속시키기 위해! 이런 사연을 알고 산책하면 더욱더 거룩해지는 공간입니다.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 평화신문2020.08.18

성서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성서시대의 일상생활/자크 브리앙ㆍ미셸 케넬 지음/안영주 옮김 / 성서와함께성서시대의 사람들의 일상은 어떠했을까? 청혼은 어떻게 했으며, 자녀들은 어떻게 키웠을까? 어떤 언어를 사용하고, 무엇을 먹었을까? 이스라엘 농부와 대장장이는 왜 가깝게 지냈을까? 재산 상속은 어떻게 이뤄졌을까? 성서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폭넓게 다룬 책이 나왔다. 프랑스 출신의 자크 브리앙 성서학자와 신약 전문가이자 주석가인 미셸 케넬 신부가 프랑스의 저명한 계간지 「성경의 세계」에 실었던 글을 보완한 모음집이다. 집, 가구, 결혼, 음악, 화폐를 비롯한 의식주, 종교, 사회, 경제를 5장에 나눠 소개했다. 각 주제에 따라, 신약과 구약 시대를 나눠 설명했다.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 시대에 혼인은 가족 간에 이뤄지는 세속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예언자들은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남녀의 결합’에 즐겨 비유했다. 혼인의 첫 단계는 남자가 혼인하고 싶은 처녀의 부모 집으로 찾아가 청혼하는 것이다. 같은 마을에서는 부모가 대신 청혼하는 관습이 자연스러웠다. 부모가 자녀의 혼인에 개입하는 것은 이방인과 혼인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사울 임금은 딸 메랍과 미칼의 혼인을 결정(1사무 18,17-27)했으며, 늙은 토빗은 아들에게 “조상의 후손들 중에서 아내를 맞아들이고, 네 아버지 부족 밖의 낯선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일이 없게 하라”(토빗 4,12 참조)고 당부했다. 신구약 시대의 자녀교육은 일관되게 엄혹했다. “자식을 징계하여라.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고 네 영혼에 기쁨을 가져다주리라”(잠언 29,17) 하는가 하면, 기원전 200년경에 집필된 집회서 30장에는 “자녀의 응석을 받아주기만 하면 그가 너를 섬뜩하게 하고, 그와 놀아주기만 하면 그가 너를 슬프게 하리라.”라고 했다. 자녀가 커서 고집불통이 되어 순종하지 않는 것을 경계하며, 어릴 때부터 매와 벌로 다스릴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러한 자녀교육에 실패가 있음을 여러 예로 보여준다. 엘리 사제의 아들들은 그들이 아버지처럼 사제임에도 불구하고 불량한 자들이었으며(1사무 2,12-17), 사무엘의 아들들은 판관이었지만 아버지의 명예는 안중에도 없었다.(1사무 8,1-3) 성서시대의 직업은 농민, 장인, 율법학자를 구분하지 않고 대대손손 아버지에서 아들로 전수됐다. 이스라엘 사회는 대부분 소작인이었는데,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수공업자들이 점점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옹기장이와 대장장이, 목수와 석수, 직조공과 염색업자들이 등장한다. 대장장이는 이스라엘 농부에게 꼭 필요한 장인이었다. 농부들은 대장장이 집에서 곡괭이와 도끼의 날을 가는 등 농기구를 고칠 수 있었다. 대장장이는 검이나 창도 만들었는데, 정권이 무장봉기를 억제하려면 대장장이들을 장악해야 했다. 이 이유로 필리스티아인들은 히브리인들이 무기 만드는 것을 금지(1사무 13,19)했다. 이후 기원전 597년, 바빌론인들이 예루살렘의 훌륭한 사람들과 대장장이들을 끌고 간 것(2열왕 24,14)도 무기를 만들 수 없도록 원천봉쇄하기 위함이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재산을 상속하는 것은 유다인의 삶에서 당연한 일이었다. 아들들이 아버지의 유산을 나눠 받았는데 장남이 두 배의 몫을 차지했다.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아들은 자기 몫의 재산을 요구할 수 있었는데, 이는 가족의 전통을 계승해야 하는 장남을 제외한 다른 아들에게만 가능했다. 그러나 자기 몫의 재산을 받은 아들은 아버지가 죽었을 때 나머지 재산상속을 포기해야 하며, 보통은 아버지가 살아있는 동안 종신연금으로 갚아야 했다. 집회서의 현자들은 가장들이 생전에 재산을 넘겨주는 것을 경계하라고 했다. “네가 아직 살아 숨 쉬는 한 아무와도 네 자리를 바꾸지 마라. 네 아들들의 손을 바라보느니 자녀가 네게 청하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집회 33,21-22) 두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책의 관심은 그 자체로는 성경 본문에 묘사되어 있지 않아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일상의 삶을 그려내는 데 있다”고 밝혔다. 성경을 접할 때 오늘날 생활양식의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을 좁혀주는 책이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문채현2020.06.10

‘모든 이에게 모든 것’ 내어 주고 1평 묘소에 잠들다 정진석 추기경 장례 미사 이모저모 / ‘양들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준 착한 목자’ 추모 한평생 60년 동안 착한 목자로 살았던 고 정진석 추기경의 운구 차량이 명동대성당을 빠져 나가고 있다. 이정훈 기자 한국 교회의 큰 목자였던 정진석 추기경이 떠나는 마지막 길에 교구 사제단과 수도자, 신자들은 한마음으로 추기경의 영원한 천상 안식을 기원했다. 코로나19 방역 지침으로 성당에 들어가지 못한 신자 1000여 명도 1일 오전 장례 미사가 봉헌된 명동대성당 일대에서 기도를 바치며 마지막 배웅을 했다. 가톨릭평화방송(CPBC) TV는 추기경의 마지막 가는 길을 TV와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했다. “추기경님, 안녕히 가세요! 감사합니다”1일 오전,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일대에는 장례 미사를 준비하기 위해 봉사자들이 일찌감치 도착해 질서 정연하게 움직였다. 코로나19의 엄중한 상황에 장례 미사가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손 소독제와 체온계를 마련하고, 미사 참여자 명단에 있는 이들만 입장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라 미사 참여자 수는 성당 전체 좌석의 20%인 250명으로 제한했다.오전 7시부터 차량 안내 봉사에 나선 서울대교구 운전기사사도회 이종태(마르티노, 방화3동본당)씨는 “30여 년 운전기사사도회에서 봉사하면서 정 추기경님께 견진성사를 받았는데 떠나 보내드리려니 마음이 서운하다”면서 “고 김수환 추기경님과 정진석 추기경님 두 분의 장례 때 차량 안내 봉사를 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여덟 살 손자와 함께 대구에서 온 송필근(엘리사벳, 대구 송현본당)씨는 “정 추기경님이 가시는 마지막 길을 배웅하려니 가슴이 뭉클하다”면서 “위대한 목자의 길을 걸으신 추기경님 뜻에 따라 진실하게 신앙 안에서 공동체 생활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밝혔다. 염 추기경, 장례 미사 강론 중 울컥“교회의 큰 사제이자 우리 사회의 큰 어른을 떠나보낸다는 것이 참 슬프고 어려운 일입니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이제 의지하고 기댈 분이 없어 참 허전하다’고 하시던 정 추기경님의 말씀을 저도 더 깊이 실감하게 됩니다. 저도 마음으로 정 추기경님을 많이 의지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찾아뵙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했습니다.”염 추기경은 담담한 표정으로 장례 미사 강론을 시작했지만, 정 추기경을 의지했다는 대목에서 감정이 북받쳤고 울먹거리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성당에는 정적이 맴돌았고, 침묵 안에서 신자들도 눈물을 훔쳤다. 정 추기경의 삼나무 관 위에는 고인의 사목표어였던 ‘모든 이에게 모든 것’(1코린 9, 22)이 적힌 성경이 펼쳐져 있었다.고별식이 끝난 후, 교구 총대리 손희송 주교는 서울성모병원 의료진과 비서 수녀, 신부를 비롯해 조문 기간에 빈소를 찾아준 사회 각계각층의 인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손 주교는 “정 추기경님을 통해 양들을 아끼고 사랑하여 그들을 위해 꾸준히 기도하고 저술 활동을 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착한 목자를 보았다”면서 “비록 추기경님처럼 큰 별이 되기는 어렵겠지만 하느님을 오롯이 공경하고 기쁘게 이웃 사랑을 실천하면서 작은 별이라도 되고자 노력하겠다”고 인사했다. 손 주교는 “가톨릭평화방송과 평화신문 등 교계 및 일반 매스컴이 추기경님의 미처 드러나지 못했던 진면목과 참모습을 새롭게 조명해줬다”며 감사의 뜻도 전했다.올해 사제품을 받은 사제 9명은 영정 사진을 들고, 고인을 운구했다. 관을 운구한 최진묵(목5동본당 보좌) 신부는 “추기경님께서 하늘나라에서도 신학생과 사제들을 위해 기도해주시리라 생각한다”면서 “추기경님이 보여주신 참된 신앙인의 모습, 착한 목자의 모습을 따라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충남 서산 해미순교성지에서 온 임순자(마르가리타, 83)씨는 “명동성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며 추기경님을 많이 만났다”면서 “추기경님은 마음이 깊고 따뜻한 친오빠 같았다”고 회고했다.명동대성당 조종 울리고 운구 차량 떠나명동대성당에 입장하지 못한 신자들은 성당 마당에 모여 정 추기경을 추모했다. 신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휴대전화로 가톨릭평화방송 TV로 생중계되는 정 추기경의 장례 미사를 시청하기도 하고, 마당의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성가와 기도를 들으며 함께했다.이른 아침 비가 내리고, 제법 쌀쌀한 날씨에도 끝까지 자리를 지킨 신자들은 미사 후 추기경의 관이 성전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탄식하며 슬퍼했다. 추기경과의 지상 이별을 슬퍼하며 흐느껴 우는 신자들, 영정을 향해 손을 흔드는 이들도 보였다. 힘에 부쳐 바닥에 주저앉아버린 이의 모습까지, 평생 교회를 위해 헌신한 고인을 향해 많은 이가 눈물을 쏟아냈다. “추기경님, 안녕히 가세요! 감사합니다.”낮 12시 16분. 운구 차량이 출발하자, 명동대성당도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듯 조종(弔鐘)을 연신 울렸다. 신자들은 운구 차량이 지나간 길을 바라보며 오래도록 눈을 떼지 못했다.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묘현면 서울대교구 성직자 묘역. 1시 10분, 운구차가 도착하고, 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주례로 하관 예절이 거행됐다. 정 추기경의 묘소는 2010년 선종한 김옥균 주교의 묘소 옆자리 1평 공간에 마련됐으며, 성모 성월에 접어든 이날 안장됐다. 추기경의 묘비에는 그의 사목표어였던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새겨질 예정이다.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로 전한 하관 예절에는 1500여 명이 동시 접속해 추기경의 마지막 모습을 함께 지켜봤다.3일 명동대성당과 묘역에서 추모 미사한편, 3일 명동대성당과 서울대교구 용인공원묘원 성직자 묘역에서는 각각 염수정 추기경, 총대리 손희송 주교 주례로 추모 미사가 봉헌됐다. 명동대성당에서 열린 고 정진석 추기경 추모 미사에서는 정 추기경의 육성이 흘러나왔다. 고인은 “여러분 행복하게 사세요”라면서 가톨릭 성가 ‘순례자의 노래’를 불렀다. 생전의 정 추기경 육성을 들은 신자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염 추기경은 강론을 통해 “정 추기경을 추모하는 이유는 추기경의 사랑의 가르침을 마음에 잘 새겨 실천하여 우리의 삶에서 본받고자 함”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 추기경이 남기신 중요한 선물은 인간의 삶에서 물질이나 명예, 권력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사랑과 나눔임을 알게 해 주신 것”이라며 “교회도 앞장서서 정 추기경님을 통해 배운 영원한 가치를 지향하는 모습을 세상에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리길재·이지혜·이정훈 기자 cpbc2021.05.04

기근과 페스트에 쓰러진 이들을 살펴보는 목자의 눈길[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46) 스카라무챠의 ‘1630년 페스트에 라자레토를 방문하는 페데리코 보로메오’ 루이지 스카라무챠, ‘1630년 페스트에 라자레토를 방문하는 페데리코 보로메오’(1670년), 유화, 이탈리아 밀라노 암브로시아나도서관 소장. 1563년, 트렌토 공의회 폐막과 함께 공의회 결정 사항을 실천하기 시작한 것 중 교회 쇄신의 가장 큰 동력이 된 것은 교회 지체들의 인문주의적인 삶 곧 ‘휴머니즘의 실천’이었다. 지난 150년간 교회 안에서도 르네상스 인문주의를 실천하는 문제를 놓고 여러 가지 혼선이 있었다. 1400년대, 르네상스 인문주의가 한창 꽃을 피울 때, ‘로마 학술원’을 폐쇄하고 인문주의적인 사고방식을 싫어하던 바오로 2세와 같은 교황이 있었는가 하면, 비오 2세, 니콜라오 5세, 식스토 4세에 이어 율리오 2세와 레오 10세, 클레멘스 7세 등 문화와 예술을 장려하여 시대의 흐름에 응답했던 교황들도 있었다. 그러나 트렌토 공의회는 르네상스 인문주의가 문화 예술 분야에서만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 그것을 실천하는 정신이라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전환점이 됐다. 신자들에게 피부로 와 닿았던 두 가지는, 우선 전례 분야에서 중세 성당들에서 보던 신자석과 성직자-수도자석을 구분하던 트라메쪼(tramezzo)라는 벽을 모두 허물었다. 오늘날 미술사학자들이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당시에 글을 모르던 신자들을 위해 저명한 작가들의 그림과 조각으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고위 성직자에서부터 무명의 신자에 이르기까지,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고단한 그들의 삶 속으로 뛰어든 성인 성녀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는 것이다. 르네상스 휴머니즘은 이렇게 교회 안에서 조용히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종교개혁가들이 외쳤던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라는 걸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었고, 그것이 1600년대를 규정하는 교회의 모습이었다. 박학다식하고 겸손했던 보로메오 추기경오늘 소개하는 인물도 그중 한 사람이다. 앞서 언급한바 있던 밀라노의 대주교로 여러 면에서 모범이 되어 주었던 카를로 보로메오의 사촌 동생 페데리코 보로메오(Federico Borromeo, 1564~1631) 추기경이다. 그는 3살 때 아버지가 사망하는 바람에 친척 성직자들을 아버지의 모델로 보고 자랐다. 가장 가까이 있었던 사촌 형 카를로 보로메오(1538~1584)는 그의 영적 지도자로, 사제가 되도록 길을 제시했다. 외사촌 구이도 루카 페라로와 먼 친척인 식스토 5세 교황, 알렉산드로 파르네세 추기경, 폰 호에넴스 추기경도 있었다. 카를로 보로메오가 밀라노의 대주교로 있을 때, 페데리코는 밀라노대학교에 입학해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후에 볼로냐대학에서 인문학을 공부한 다음, 다시 파비아대학으로 옮겨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로마에서는 필립보 네리와 그가 세운 오라토리오회 회원으로 있던 체사레 바로니오를 만나기도 했다. 로마에 있는 동안 고대 로마에 대한 관심이 커져 고전연구를 시작했고, 샤콘, 바로니오와 오르시니 등 석학들과 교류하기도 했다. 페데리코 보로메오는 박학다식함과 겸손한 인품을 인정받았다. 식스토 5세 교황은 겨우 23살밖에 되지 않은 그를 도메니카의 산타 마리아 성당(Santa Maria in Domenica)의 부제급 추기경으로 임명했다. 1590년 교황청은 불가타 성경 ‘로마판’ 개정에 들어가면서 재심위원회를 만들었는데 페데리코 추기경도 포함되었다. 사비 들여 성당·대학 짓고, 밀라노 시민들 돌봐 1595년 밀라노의 대주교로 있던 비스콘티(Gaspare Visconti)가 사망하자, 필립보 네리의 권유와 클레멘스 8세 교황의 제안에 따라 밀라노의 대주교가 되었다. 그의 나이 31살이었다. 그는 사촌 형 카를로 보로메오의 모범을 따라, 또 트렌토 공의회의 규범에 따라 성직자 교육을 철저히 하고 사비를 들여 성당과 대학을 지었다. 그가 밀라노 대주교로 임명장을 받고 들어가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유럽 전역으로 사절을 보내 수기본과 인쇄본으로 된 저작물들을 수집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1607년 2월부터 1609년 가을까지 그의 명령으로 수집한 저작물들을 보관하기 위해 1609년 12월 8일 암브로시아나도서관이 설립됐다. 그리고 로마에서 수집하여 갖고 있던 고대 조각상들과 회화 컬렉션들은 1618년에 ‘과드레리라 암브로시아나’를 지어 소장했는데, 이것이 후에 ‘암브로시아나 피나코테크’가 됐다. 그는 여러 개의 아카데미아를 더 설립해 평신도 교육에 힘썼다. 그러나 최근에 그가 새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저서 「1630년 밀라노 페스트(De Pestilentia)」를 쓴 작가로 알려지면서다. 「1630년 밀라노 페스트」는 페데리코 보로메오 추기경과 이탈리아 소설가 알렉산드로 만조니가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작품이 모두 그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페데리코 추기경은 저서에서 페스트로 죽어가는 도시와 ‘한 인간 영혼’에 대한 초상을 잘 그렸다. 그해(1630년) 밀라노의 거리에는 시체를 실은 마차와 그것을 처리하는 사람들과 병을 전염시켰다고 의심받는 사람들로 넘쳐났다고 보도하고 있다. 여기에서 ‘한 인간 영혼’은 대주교인 페데리코 보로메오 자신으로 보인다. 르네상스의 원칙에 있어서 단호하고 예측을 불허했던 그가 자신의 책에서 묘사한 죽음으로 점철된 끔찍한 광경은 그와 밀라노 간의 마지막 작별 인사가 됐다. 1628년의 기근과 1630년의 페스트에서 밀라노 시민들을 물심양면 돌보며 큰 사랑을 보여줬던 그는 이듬해인 1631년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의 유해는 밀라노 두오모 내(內), ‘나무의 성모(Madonna dell‘Albero)’ 경당 제단 아래 묻혔다. 탁월한 전기작가이며 미술사가소개하는 작품은 페루지아 출신으로, 스카라무챠로 알려진 루이지 펠레그리니(Luigi Pellegrini, 1616~1680)의 ‘1630년 페스트에 라자레토를 방문하는 페데리코 보로메오’(1670년)라는 유화 그림이다. 스카라무챠는 일찍 고향을 떠나 로마, 볼로냐, 밀라노 등 장화 반도 전역에 많은 작품을 남겼다. 특히 바로크 시대의 탁월한 전기작가이자 미술사가로 더 유명하다. 말하자면 ‘1600년대의 조르조 바사리’라고 하겠다. 그가 남긴 최고의 작품은 「이탈리아 붓들의 섬세함(Le Finezze De Pennelli Italiani)」으로 1674년 파비아에서 초판된 바로크 미술가들의 첫 번째 전기작 중 하나다. 화가로서, 그는 체리니와 함께 구이도 레니의 제자였다. 그가 이탈리아 전역에 작품을 남긴 것도 그의 재능을 알아본 여러 도시의 군주가 요청했기 때문이다. 1670년에 밀라노로 거처를 옮긴 후, 죽을 때까지 밀라노에서 활동했다. 암브로시아나도서관에 소장할 ‘1630년 페스트 시기 병자들을 방문하는 페데리코 보로메오’도 그 시기에 그렸다. 암브로시아나 아카데미아의 설립자에게 헌정하는 일련의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그에 관한 이런 작품은 여러 면에서 밀라노 시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전임 카를로 보로메오 대주교를 연상시킨다. 오늘날 브레라 아카데미아 아트 갤러리에는 스카라무챠의 초상화가 있는데, 그의 친구 프란체스코 카이로가 그려준 것이다. 그림 속으로만조니는 소설 「약혼자들(I promessi sposi)」에서 추기경을 여러 차례, 비교적 길게 언급하고 있다. 성직자를 대개 악역으로 등장시킨 것과 달리, 페데리코 추기경에 대해서만큼은 관대하게 말하는 것으로 봐서 추기경의 인품이 원래 좋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모든 시기에 걸쳐 참으로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놀라운 독창성, 모든 풍족한 수단, 특권적인 조건에서 오는 모든 이점을 활용하여 지속적인 의지로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 실행에 옮긴 인물이다.” 1630년 밀라노 페스트는 기근과 전쟁에 이어 덮친 최악의 광풍이었고, 몇몇 사람이 기름을 발라 페스트를 퍼트린다는 소문으로 사회적인 분위기까지 냉혹한 처참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대주교는 자신의 모든 역량을 발휘하여 백성을 돌보았고, 절제심 강한 순수한 복음주의자였다. 인간의 모든 아픔과 조건에 대한 뛰어난 공감 능력을 갖춘 특별한 인물이었다며, ‘약혼자들’에게 삶에 대한 복음적인 개념을 계속해서 실천하도록 인도하는 인물로 등장시켰다. 그가 보여준 자선과 교리 활동을 만조니는 가톨릭교회가 해야 할 ‘사회적’ 사명이자 메시지로 소개했다. 교회가 자신의 사명을 증거하고 약자들을 보호하는 데 주저하지 않음으로써 신앙을 설교해야 한다는 것은 트렌토 공의회가 남긴 큰 메시지였다. 그리스도교의 힘은 오로지 이웃을 향한 봉사에서 나오는 것임을 설파했다. 작품 속에서 추기경은 기근과 페스트로 죽어가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 악취가 진동하는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배경 속 밀라노시는 참담한 분위기를 말하려는 듯 혼란에 휩싸여 있다. 루이지 스카라무챠, ‘1630년 페스트에 라자레토를 방문하는 페데리코 보로메오’(1670년), 유화, 이탈리아 밀라노 암브로시아나도서관 소장. 김혜경 (세레나,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이탈리아 피렌체 거주) cpbc2021.07.06

재활용 옷가게 ‘소금창고’,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 듣는 귀가 되다 ‘소금창고 1004’ 운영하는 김경순·이주희씨 “어려움 없는 삶만을 복으로 여긴다면 우리는 믿음의 난민이겠지요. 조각처럼 깨진 시련의 아픔이 하느님을 몰랐을 때에는 상처, 우울, 좌절로 다가왔지만 하느님 안에서 다시 본 깨진 조각은 각기 다른 광채를 발하는 보물이었습니다.” 서울 성동구 마장동의 한 주택가. 8평 남짓한 공간에 ‘소금창고 1004’ 간판이 걸렸다. 간판 귀퉁이에는 작은 글씨로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드리겠습니다’라고 적혔다. 2009년부터 서울 금호동에서 12년간 소금창고를 운영해온 이주희(후안 디에고, 70)ㆍ김경순(마리아 막달레나, 70)씨가 최근 마장동으로 보금자리를 옮겨 제2의 소금창고 시대를 열었다. 첫 소금창고는 재활용 옷가게로 세상의 밑바닥에 있는 이들에게 따뜻한 옷을 입혀준 사랑의 보금자리였다면, 새로 문 연 소금창고는 외로운 이들의 이야기를 한없이 들어주는 ‘스토리텔링하우스’로 운영하기로 했다.사선에서 만난 하느님1996년 사업에 실패해 빈털터리가 된 이주희씨는 한때 오갈 곳이 없어 방황했다. 사업 실패와 이혼으로 삶에 큰 시련을 얻었고, 삶의 바닥을 짚었다고 느꼈다. 사방이 막혔다고 생각했던 그때 하늘을 보게 됐고, 스스로 성당에 찾아가 교리를 배워 세례를 받았다. 그는 온전히 하느님만을 위해 살고 싶어 충북에 있는 한 무료 요양원에서 4년 동안 살면서 봉사에 투신했다. 무의탁 어르신과 장애인들의 손과 발이 되어 주고, 이들의 마지막 길에 동행했다.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타인의 죽음을 목격했고, 죽음과 가까운 삶을 살았다. 그곳은 그가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영혼의 사관학교’였다. 김경순씨는 유아 세례를 받았지만 오랜 기간 냉담했다. 무서운 신앙관을 가르쳤던 아버지가 중학교 1학년 때 돌아가시면서 성당에 등을 돌렸다. ‘이 세상에 나는 왜 존재하는지’ ‘하느님이 정말 계실까’ 고민하면서 깊은 우울증으로 자살까지도 생각했다. “나라는 존재가 그냥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하느님이 있다면 나를 왜 이렇게 두실까 생각했죠. 어느 날부터 ‘하느님이 있으면 나와봐’ 하고 반항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주교와의 면담으로 그는 삶에 활기와 기쁨을 찾았다. 성경 공부와 성령 기도회는 그의 삶을 기쁨의 변주곡으로 돌아서게 했다. 하느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게 된 새로운 시간들이었다. 이주희씨와 김경순씨가 기증 들어온 새 의류를 정리하고 있다. 두 동창의 아름다운 만남두 사람은 초등학교 동창이다. 각자 삶의 길을 가다 2002년 우연히 강남시립병원에서 함께 호스피스 봉사를 하면서 봉사의 삶에 발을 들여놨다. 노숙인과 행려인, 말기 암환자, 알코올 중독자들을 돌봤는데 이들 대부분 입을 옷이 마땅치 않았다. 자연스럽게 이들에게 필요한 의류와 잡화를 모으게 됐고, 내친김에 아예 작은 옷가게를 내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기 시작했다. 소금창고가 생겨난 출발이었다. “저는 원래 길거리표 작품이었어요. 하느님을 삶의 이정표로 삼고 세상의 때를 훌훌 벗고 살다 보니 어느 날 하느님 안에 명품이 되어 있었어요.”(이주희씨) 두 사람은 헌 옷을 기증받아 장애인 시설과 병원에 보냈다. 헌 옷을 판매한 돈은 생계 지원비가 필요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전해줬고, 몽골과 필리핀, 캄보디아에도 옷을 보냈다. 무연고 지적장애인들과 가족 결연을 맺어 정신적 지지자가 되어 주기도 했다. 생필품, 위로격려금 지원, 물품 기증을 비롯해 고시원과 여관을 전전하는 이들의 이웃이 돼줬다. 두 아들을 잃은 부모에게는 3년 동안 매달 찾아가 위로의 손길을 건넸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루고 싶은 말기 암환자의 바다가 보고 싶다는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함께 동해안에 가주기도 했다. 가톨릭 상장례 지도사 자격증도 따 가족과 이별하는 이들의 곁도 지켜줬다. 이들의 봉사는 필요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다 주는 그야말로 종횡무진이었다. 호스피스 봉사만 20여 년 해왔다. 이씨는 예수님밖에 없는 ‘부자’라고 하지만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정부 지원금을 받아 생활한다. 지난해 열악한 소금창고의 실정을 아는 이들이 정부의 사업 보조금을 받게 해주려고 성동구청에 사업 제안서를 제출해 사업 보조금으로 486만 원을 지원받았다. 그러나 이들은 한 푼도 쓰지 않은 채 반환했다. 예산 편성, 집행 기준 방침에 따라 한도에 맞게 지출을 하고 그 결과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씨는 공모사업 중단 사유서에 이렇게 썼다. “저희는 어느 특정 분야의 사회 활동이 아니기에 사전 예산 편성도 어렵고, 규범에 따른 지출을 이행하기가 힘듭니다.(중략) 새들도, 반려동물도 모이를 주는 사람에 의해 길들여집니다. 저희가 보조금을 사용하다 보면 자칫 획일적 사회복지 운영시스템으로 전락해 버릴 요소가 있다고 사료되어 지금처럼 법규와 회칙에 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사회복지 활동을 지속하고자 합니다.”소금이 녹아 없어지는 날까지올해 3월 소금창고에 시한부 사형선고가 떨어졌다. 건물주가 갑자기 한 달 내에 비워달라고 한 것. 1/4로 작아진 공간으로 옮기게 된 이들은 창고에 쌓여있는 상품과 의류를 필리핀과 미얀마 등 동남아의 어려운 지역에 보냈다. 헌 의류는 재활용센터에 기부하고, 기부로 들어왔던 전자제품 등은 동네 주민들에게 모두 나눠줬다. “갑작스러운 건물주의 통보로 억울했죠. 어차피 시한부 인생이고, 떠나는 마당에 하늘의 섭리에 따라 마무리도 아름답게 하고 싶었어요. 건물주에게 인사했어요.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덕분에 이곳에서 저희가 많은 나눔을 통해 큰 경험을 쌓고 좋은 흔적을 남기고 갑니다.’”소금창고의 정기 후원자는 현재 40여 명이다. 이들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월세를 내며, 나눔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다.“소금창고는 하느님의 기업이고, 우리는 돈 버는 기술이 없어요. 사실 굉장히 걱정할 일인데 지금까지 걱정을 안 하고 살아왔어요. 여태껏 이끌어주셨으니까요.”(김경순씨) 이들은 이제 가족과 결별하거나 시련을 당한 이들의 어려움과 하소연, 억울한 마음을 들어주는 일을 하기로 했다. 간판에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드립니다’라고 쓴 이유다. 이주희씨는 “한여름, 시원한 콩국에 소금을 뿌렸을 때 맛이 살아나듯 세상 어딘가에 맛이 필요한 곳에 우리를 기꺼이 내어 줄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며 “나 자신이 형체 없이 스며들어야 하느님의 존재가 드러난다”고 했다. 이들에게 사랑의 진리는 간단하다. 배고픈 이에게는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이에게는 옷이 되어 주는 것, 이야기할 곳이 필요한 이에게는 귀를 열어주는 것. 이들은 이것을 ‘소금의 영성’이라 부른다. 소금창고(서울 성동구 마조로 64-16, 010-2224-1004)는 모든 이에게 열려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cpbc2021.05.18

“기후위기, 복음화 사명과 활동의 가장 중요한 주제”주교회의 가을 정기총회 결과 해설 신임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와 부의장 조규만 주교, 서기 유흥식 주교가 16일 정기총회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주교회의 제공 낙태 반대 재천명한국 주교단은 최근 정부가 여성에게 임신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고, 임신 15~24주에는 사유에 따라 낙태할 수 있도록 하는 형법ㆍ모자보건법 개정안 입법을 예고한 데 대해 교회의 변함없는 낙태 반대 입장을 재확인했다. 한국 주교단은 8월 28일 낙태죄 완전 폐지 입법 추진 반대 성명을 발표한 바 있으며, 관계 정부 부처와 국회의원들에게 교회의 뜻을 지속적으로 전달해오고 있다.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는 기자회견에서 “의사나 간호사, 병원 또한 낙태 시술을 요청받았을 때 거부할 수 있는 낙태 진료 거부권이 주어져야 한다”며 “보건복지부 등 정부 부처에 관련 의견을 최근 제출했다”고 밝혔다.주교회의 부의장 조규만 주교도 “모든 국회의원에게 낙태법 폐지의 부당성을 알리고 있으며, 현재 모든 교구에서 낙태법 폐지 반대를 위한 미사와 기도회를 열고 있다”며 “태아는 몇 주에 상관없이 생명이며, 어떤 누구도 생명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은 없다”고 거듭 전했다. 현재 주수에 따라 낙태를 가능토록 하는 법안에 대해서도 조 주교는 “성경 또한 태아는 분명히 생명이라 밝히듯 우리가 언제부터 태아가 생명인지 알지 못해도 태아는 분명히 생명”이라고 답했다.7년간 생태적 희년 동참한국 주교단이 이번 정기총회 후 ‘울부짖는 우리 어머니 지구 앞에서’란 주제의 특별 사목 교서를 발표한 것은 올해 반포 5주년을 맞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태 회칙 「찬미받으소서」가 제시한 ‘공동의 집 지구를 돌보자’, ‘생태적 회심으로 어머니인 지구의 모든 피조물을 지키고 보호하자’는 뜻을 계속 이어가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주교단은 사목 교서를 통해 “기후 위기로 고통받고 있는 이웃과 피조물들의 고통에 충분히 응답하지 못했다”면서 “기후 위기와 어머니 지구의 울부짖음은 교회가 수행해야 할 복음화 사명과 활동의 가장 중요한 주제이기에 앞으로 각 교구는 지속적으로 생태적 회개에 대한 미래 방향을 제시하고, 각 본당과 위원회는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해 실천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이를 위해 교황청이 2022년부터 7년 동안 추진하는 ‘지속 가능한 세계 공동체를 위한 7년 계획’에 한국 교회도 적극 동참키로 했다. 교황청은 2022년부터 △가정 △교구 및 본당 △초중고등학교 △대학교 △병원 및 보건소 △기업 및 농업 △수도회 순으로 각기 7년 여정에 주체적으로 동참하는 계획을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최소 7년 동안 교회가 ‘공동의 집인 지구 생태계’를 위해 어느 때보다 합심해 앞장서는 것이다. 주교회의는 이에 따른 후속 장기 사목 계획을 위한 지침을 주교회의 누리방(www.cbck.or.kr)에 게재했다.당신이 천주교인이오?한국 교회는 대림 제1주일인 오는 11월 29일부터 내년 11월 27일까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의 해’ 동안 연중 성인을 삶의 모범으로 되새기고 실천하게 된다.희년 주제인 ‘당신이 천주교인이오?’는 1846년 김대건 신부가 페레올 주교에게 쓴 스무 번째 옥중 서한에 담긴 문구다. 당시 김대건 신부가 관아에 체포돼 심문을 받던 중 관장이 “당신이 천주교인이오?”라고 묻자, 이에 김대건 신부는 결의에 찬 눈빛으로 “그렇소. 나는 천주교인이오” 하고 답했다. 성인 탄생 200주년을 맞아 이 물음이 170여 년 만에 소환됐다. 한국 주교단이 성인의 옥중서한에 담긴 질문을 희년의 주제로 삼아 성인이 지녔던 확고한 믿음을 오늘날 우리의 정체성으로 되새기자는 뜻이다.한국 교회는 내년 사제의 성화의 날(6월 11일)에는 교구별로 희년 사제대회를 열어 모든 사목자가 성인의 모범을 되새기는 날로 보내고, 8월 21일에는 성인 탄생지인 대전교구 솔뫼성지에서 성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 기념미사를 성대히 봉헌한다. 교황청 내사원이 보내온 전대사 수여 교령의 전대사 조건도 희년 개막에 맞춰 발표된다. 성인의 생애, 희년 기도문, 희년 전대사를 위한 성지와 순례지 안내, 기념행사 등을 소개하는 「희년살이 안내」 책자도 배포할 예정이다.주교회의 서기 유흥식 주교는 16일 기자회견에서 “2021년 유네스코 세계기념 인물로 선정된 김대건 신부님은 당시 조선의 양반, 상민, 백정 모두를 형제자매로 여기는 평등사상과 함께 조선 백성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던 천연두가 창궐한 때에는 퇴치 약을 구하는 데 힘쓰시는 등 200여 년 전 그분의 삶은 오늘날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며 “교황님께서 새 회칙 「모든 형제들」을 통해 형제애를 강조하셨듯이 성인께서 보이신 사회적 우애가 우리 사회에 누룩과 빛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아울러 가경자 최양업 신부의 시복 기원 미사와 현양대회에 이어 내년 11월 20~21일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에서 근대 서양 문화의 선구자 최양업 신부님 탄생 200주년 기념 오페라 ‘길 위의 천국’을 두 차례 공연할 예정이다.한편,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와 가톨릭평화방송이 공동 제작한 ‘가톨릭 영상 교리’(총 47편)은 앞으로 본당 예비신자 교리교육과 신자 재교육을 위해 활용하게 된다. ‘가톨릭 영상 교리’는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 △성경 △한국 천주교회 △삼위일체 등 총 47개 주제 교리를 5분 분량으로 제작한 영상 교재다. 영어판이 완성되면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에도 제공해 해외 2~3세대 교포 신자들도 활용토록 할 계획이다.또 한국 주교단이 승인한 「청소년 사목 지침서」는 청소년사목위원회가 2015년 승인을 받아 오랜 기간 연구 작업을 실시해 ‘질적ㆍ양적 연구 종합 보고서’ 형태로 제작한 것으로, 청소년 사목의 현주소와 미래 방향을 오늘의 현실에 맞게 방대한 분량으로 담아낸 청소년 사목을 위한 사목 안내서다. 승인된 지침서는 조만간 배포될 예정이며, 청소년 사목을 하는 사제와 종사자들에게 구체적인 방법론과 방향성을 제시해줄 것으로 기대된다.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cpbc2020.10.21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5) 여행지 : 예수님의 공생활](//cpbc.co.kr/CMS/newspaper/2021/04/rc/801102_1.4_titleImage_1.jpg)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5) 여행지 : 예수님의 공생활예수님의 사생활(私生活)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 예수님은 고향 나자렛에서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를 많이 받았고, 부모에게 순종하면서 지냈다고 합니다(루카 2,40.51). 예수님께서는 서른 살쯤에 사적인 가정생활을 떠나 출가하셔서 공적으로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기 시작하셨는데, 이때의 생활을 공생활(公生活)이라고 합니다. 그분은 평범한 시골 사람이었지만 그의 생각과 행동은 분명 일반인과는 달랐습니다. 세상 안에 살면서도 세상의 가치와 다르게 사셨습니다. 성부 하느님과 매 순간 일치하며 성령 안에서 하느님 뜻을 행하며 살아가셨기에, 다른 사람에게서 느끼지 못하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그럼 예수님의 공생활로 퀴즈 여행을 떠나볼까요?퀴즈여행 예수님의 공생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1. 예수님의 공생활은 예수님의 어떤 사건으로 시작하는가?2. 예수님이 활동하신 지역과 활동 중심지(지명)는?3. 외형적이고 형식적인 종교생활로 예수님께 꾸짖음을 받았던 종교적 그룹은? ①사두가이파 ②바리사이파 ③에세네파 ④제롯당4. 예수님께서는 특별한 경우 3명의 제자만 따로 데리고 다니셨다. 베드로, 야고보 또 한 명은? 5.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을 고쳐주셨는데, 병자의 무엇을 보고 기적을 행하셨나? 6.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하는데 그 뜻은? 정답1 □□2 □□□아, 카□□□□3 □번4 □□5 □음6 □□□음을 받은 사람 가이드 옵션1. 예수님의 세례 예수님의 공생활은 예수님 세례로 시작을 합니다. 요한 세례자가 세례를 베풀 때가 티베리우스 황제의 치세 15년(서기 27~28년)이었는데, 예수님께서는 요르단 강으로 그를 찾아가 세례를 받으셨고 그때의 나이는 서른 살쯤이라고 합니다.(루카 3,1-23) 이때 하늘이 열리고 성부의 거룩한 기운인 성령이 비둘기처럼 예수님 위에 내리면서, 성부의 사랑받는 아들,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는 소리가 들려왔지요.(마태 3,13-17; 루카 3,21-22) 우리도 세례로써 하느님의 자녀로 인정을 받으며, 공적인 신앙생활을 시작합니다. 2. 예수님의 활동지 예수님은 고향 나자렛을 떠나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후, 이스라엘 북부 갈릴래아 지방 갈릴래아 호수 주변에서 주로 활동하셨습니다. 호수 북쪽 지역인 카파르나움이 활동 중심지였습니다. 이곳에 예수님의 집이 있었고(마르 2,1), 이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활동하셨기에 이곳을 예수님의 고을(마태 9,1)이라고 하였지요. 그런데 이곳과 코라진, 벳사이다에서 예수님이 기적을 가장 많이 행하셨지만,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아 예수님께 질책을 받았습니다.(마태 11,20-24)3. 종교적 그룹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가 지배하고 있었고, 종교적으로 크게 다음의 4파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사두가이파: 사제 계급의 보수적 현실주의적인 상류 계급임. 성전(聖殿)과 모세 오경만을 중시하고 죽은 자의 부활, 영혼과 천사들의 존재 등은 부정함.바리사이파: 율법을 중시하며 가장 활발하게 활동함. 예수님은 이들과 논쟁을 벌였고(마태 22,41-46; 마르 8,11), 이들의 외형적이고 형식적인 종교 생활을 꾸짖으심.(마태 23,1-36)에세네파: 엄격한 계율과 금욕 생활로 종말에 구원을 받고자 함. 속세를 떠나 따로 공동체를 만들어 독신을 지키며 살아감.제롯당: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하여 로마에 무력으로 대항하는 열혈당.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시몬이 여기에 속함.4. 예수님의 제자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열둘을 뽑아서 사도라 부르시고 그들과 함께 생활하셨습니다. 또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를 쫓아내는 권한을 주셨지요. 이들은 베드로(시몬), 제베대오의 이들 야고보(大)와 요한, 안드레아,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小), 타대오, 시몬, 유다 이스카리옷(배반자)입니다.(마르 3,13-19 참조) 예수님은 어떤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이들 중 베드로, 야고보(大)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영광스럽게 변모하실 때(마르 9,2-10), 겟세마니 동산에서 고통 중에 기도하실 때이지요.(마르 14,32-42)참조) 베드로는 사도들의 으뜸이 되었고(마태 16,18), 야고보는 첫 번째로 순교한 사도이며(12,2),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요한 사도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집에다 모시고 돌보아 드렸다.(요한19,27) 5. 예수님의 기적예수님은 질병(고열, 나병, 중풍, 마비, 하혈, 청각 장애, 언어 장애, 시각 장애, 간질, 척추병, 수종)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리스 치유 기적 사화와 복음서에 나오는 치유 기적 사화가 양식은 닮았지만, 서로 다른 점은 예수님은 병자의 믿음을 보고 치유하신다는 것이지요. 병자가 나으려면 하느님의 능력으로 치유하는 당신께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고 하십니다(마르 2,5; 5,34; 10,52). 그런 이유로 예수님은 고향 나자렛에서는 그들의 선입견으로 기적을 행하실 수 없었지요.(마르 6,1-6) 6. 그리스도의 뜻 그리스도(그리스어)와 메시아(히브리어)는 같은 말로, 그 의미는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입니다. 구약에서는 왕이나 예언자를 기름을 부어 축성하였지요. 메시아는 기름 부음을 받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인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오랫동안 희망해 온 분(사도 28,20)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 사람들이 기대해 왔던 메시아상은 현실적이고 정치적이었기에, 현세와 정치를 초월하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하였지요.여행옵션 : 카파르나움 (예수님의 고을, 이스라엘) 예수님의 고을이라 불리는 카파르나움에는 베드로 사도의 집터로 추정되는 곳에 팔각형 성당이 세워져 있다(1990년,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건축). 팔각형 성당 중앙 바닥은 유리로 되어 있어, 그 아래의 베드로 사도의 집터와 본래에 지어졌던 팔각형 성당 터를 내려다볼 수 있다. 베드로의 집터에서 약 10m 떨어진 곳에서 흰색 석회암으로 지어진 회당이 발견되었는데, 이 회당은 현무암으로 지어진 더 이른 시기의 다른 회당의 기초 위에 세워져 있다. 이 현무암 회당이 바로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기적을 행하셨던 곳으로 추정된다.여행 기념품카파르나움은 예수님께서 기적을 많이 행하신 곳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지만, 그곳에서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는 사람이 적었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기적과 사랑을 많이 체험하고 있습니까? 나는 받은 사람답게 그 사랑을 이웃과 나누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마리 파울리타 수녀(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 cpbc2021.04.28

커피 문화의 원조는 이슬람이 아니랍니다[사유하는 커피] (11)용맹한 사냥꾼 니므롯과 커피에 대한 상상 박영순 커피가 에너지를 솟게 한다는 증거를 성경에서 찾을 수 있을까? 커피에 들어 있는 클로로제닉산, 카페인, 트리고넬린, 멜라노이딘 등 항산화 물질과 알칼로이드 성분들이 암과 심장병, 고혈압, 치매 치료에 좋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이 때문에 출처가 명확하고 품질이 좋은 원두로 추출한 한 잔의 커피는 보약으로 대접받기도 한다. 17세기 과학 혁명이 일어나기 수천 년 전부터 커피를 마셔온 인간이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했을지언정 그 효능은 분명 누렸을 것으로 보인다. 커피가 태어난 에티오피아가 인류 최초의 천하장사를 배출했다는 사실은 커피의 효능과 연결돼 시선을 끈다. 노아의 4대손에서 에티오피아인의 시조가 나타났다. 에티오피아(Ethiopia)는 ‘검다’는 뜻이다. 에티오피아의 아들 ‘니므롯’은 홍해를 건너 중동 땅 중심에서 이름을 떨치는데, ‘세상의 첫 장사’로 기록된다. 창세기는 “니므롯은 주님 앞에도 알려진 용맹한 사냥꾼이었다. 그래서 ‘니므롯처럼 주님 앞에도 알려진 용맹한 사냥꾼’이라는 말이 생겼다”(10,9)고 적었다. 하지만 니므롯은 바빌로니아에 바벨탑 건축을 주도하다가 하느님의 심판을 받았으며, 그 후손들은 언어까지 달라져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다. 세월이 흘러 기원전 10세기경 솔로몬의 시대에 이르러 에티오피아와 예멘 지역을 아우르는 시바의 왕국이 형성됐다. 이후 기원후 7세기 이슬람교가 형성될 때까지 에티오피아 악숨을 중심으로 한 시바 왕국은 종교적으로 격동의 시기를 겪게 된다. 구약의 시대를 에티오피아 입장에서 바라보면 한마디로 변화무쌍하다. 모세의 아내도, 예레미야 예언자를 살려낸 ‘의리의 사람’도 에티오피아 사람이었다. 에티오피아는 구약 성경을 따르거나 토대로 한 소위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 예컨대 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드루즈교, 바하이교, 그노시스파 등이 혼재돼 있다. 커피가 에티오피아를 벗어나 아라비아 반도를 거쳐 오스만 제국에 의해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로 퍼져 나가는 과정은 종교 간 갈등으로 점철돼 있다. 커피 전파의 역사는 종교의 확장과 변신을 추적하는데 흥미진진함을 불러일으키는 좋은 교재라고 부를 만하다. “교류 속에 다툼이 있고 다툼 속에 교류가 있다”는 말은 커피 전파사를 묘사하기에 적절하다. 기원전 2세기 시바 왕국이 몰락하고 힘야르 왕국이 출현해 기원후 522년까지 이어진다. 유다교를 믿던 사람들이 개종해 그리스도인들이 불어나자 힘야르의 마지막 왕인 두 누와스가 만행을 저질렀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유다교로 개종할 것을 강요하고, 말을 듣지 않자 불에 태워 죽이기까지 한 것이다. 이즈음 에티오피아 지역은 나자쉬 황제가 통치하고 있었는데, 그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상태였다. 나자쉬는 그리스도교의 수호자인 유스티누스 로마 황제에게 선박 지원을 요청했고, 7만여 에티오피아 병력이 530년 원정을 감행했다. 혼비백산한 두 누와스 왕이 바다에 뛰어들어 자결함으로써 예멘은 에티오피아의 식민지가 됐다. 이때 에티오피아의 전사들이 힘을 얻기 위해 소지했던 커피가 예멘으로 전해졌다는 시각이 있다. 이후 페르시아로 도망간 힘야르의 왕자의 요청에 따라 기원후 600년경 페르시아 군대가 예멘에서 에티오피아인을 쫓아냈다. 72년간 지속된 에티오피아의 예멘 통치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이후 마호메트의 이슬람교 창시(610년)를 거쳐 631년 이슬람이 예멘을 지배했다. 시바의 여왕 시절, 솔로몬의 정기를 받아 유일신 신앙을 받아들인 에티오피아와 예멘은 이렇게 각각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국가로 갈라서게 됐다. 이런 사연은 커피 문화의 원조가 이슬람이 아님을 보여준다. 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평화신문2020.07.14

“군 장병들과 함께한 11년, 축복이자 행복한 시간”군종교구장에서 퇴임하는 유수일 주교 유수일 주교가 퇴임 직전인 3월 31일 집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제3대 군종교구장 유수일 주교가 10년 6개월여간 군사목을 뒤로 하고 9일 서상범 주교에게 교구장 자리를 넘겨줬다. 2010년 9월 15일 착좌한 유수일 주교는 재임 동안 성경 말씀을 중심에 둔 신앙,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삼위일체 신앙을 강조했고, 북한과 가장 가까운 JSA성당을 건설해 하느님께 봉헌했다. 퇴임을 앞둔 3월 31일 집무실에서 그동안의 소회와 후임 교구장에 거는 기대, 퇴임 후 계획 등을 들었다.10년 6개월의 군종교구장을 떠나는 소감을 묻자 유 주교는 축복의 시간이자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돌이켜보면 10년 반이 참 빨리 지나간 것 같아요. 제가 혹시나 교구민들에게 불편함이나 어려움을 드렸을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그런 것이 있다면 참 죄송스럽고 용서를 청합니다. 그런데 제 개인으로는 축복의 시간이고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군종교구에 와서 살면서 사병부터 간부, 장교, 지휘관들 그리고 군종신부님, 군종교구민을 대하며 저는 좋은 것을 많이 발견했어요. 저는 군종교구장 생활이 짧게 느껴졌고 정말 행복하고 축복된 기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JSA성당에 대한 애착 유 주교는 집무실 벽에 큰 사진을 걸어 놓을 정도로 JSA성당에 대해 애착이 크다. JSA성당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있는 성당으로 2019년 8월 21일 봉헌됐다. 원래 그 자리에는 1950년대부터 미군이 쓰던 막사를 개조한 성당이 있었다. 건물이 워낙 오래된 데다 낡아서 전기와 음향 시설이 시원치 않았다. 공교롭게도 수년 전 주교회의 정기총회를 마친 주교단이 DMZ(군사분계선) 방문차 성당을 찾았다. 그때 마이크가 꺼졌다. 유수일 주교는 전국의 주교들에게 편지를 써서 도움을 호소했고, 한국 주교단이 보내 준 성금과 한국가톨릭군종후원회 후원금, 군종교구 자체 예산을 모아 새 성전을 건립했다. 유 주교는 JSA성당은 통일을 기원하는 기도의 장소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모든 성당 중에서 북한 DMZ를 기점으로 할 때 제일 북쪽에 있는 게 JSA 성당이에요. 저는 우리가 평화롭게 자유민주주의 하에 통일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JSA성당은 통일을 기원하는 기도의 장소로서 중요합니다. 또 부대 신자들을 위한 영적인 전례 장소, DMZ와 판문점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기도와 휴식의 장소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6ㆍ25전쟁 때 얼마나 위기였습니까? 그때 우리나라를 도와준 22개 나라에 대한 감사함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코로나19 팬데믹이 유행했던 작년 한 해는 유수일 주교에게 가장 마음이 아픈 해였다. 군은 부대 전체가 단체생활을 하는 특성상 사회보다 훨씬 엄격한 방역지침을 적용할 수밖에 없다. 2월 팬데믹이 시작된 후 제대로 미사를 봉헌한 것은 8월 한 달뿐이었다. 그 결과 군종교구 영세자 수가 급감했다. “작년은 참 마음이 아픈 한 해였어요. 2010년부터 2017년까지 평균 2만 3000명에 달했던 영세자가 지난해에는 3400명 정도였어요. 누구를 탓할 수도 없어요. 저도 사목 방문을 지난해 2월 중순부터 못하게 됐고요. 우리 신부님들이 가장 어려웠던 게 병사들을 만날 수 없었어요. 팬데믹 상황 때문에 신부님들이 노력하려고 해도 못 하는 안타까움이 컸습니다. 그때 가톨릭평화방송 TV에서 미사를 매일 했잖아요, 매일 미사, 그게 큰 도움을 줬어요.”군종교구는 전국 모든 육ㆍ해ㆍ공군과 해병대 군 장병과 그 가족을 사목 대상으로 한다. 그래서 민간 교구와의 협력과 연대, 그리고 신자들의 관심과 격려가 무엇보다 필요한 곳이다. 유수일 주교는 팬데믹 상황에서 전국 교구에서 보여준 따뜻한 지원과 격려에 거듭 감사를 전했다. “군인 주일 헌금이 군종교구 예산의 반 이상이에요. 작년 군인 주일은 코로나 때문에 신자들이 거의 못 나오는 데다 추석까지 겹쳤어요. 군인 주일을 한 달 앞두고 어려움을 호소하는 편지를 썼어요. 2019년에 비해서 5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생각했는데 12%만 줄었어요. 놀라운 일이죠. 주교님과 전국 본당신부님들, 신자들께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 후임 교구장은 적임자 후임 군종교구장으로 군내 사정에 정통하고 군 사목에 대해 잘 아는 서상범 주교가 착좌한 것에 대해서 기쁨을 표했다. 서상범 주교는 1991년 육군 군종장교로 임관돼 22년 만인 2013년 2월 전역했고 곧바로 군종교구 총대리로 2017년 8월까지 사목했다. 유수일 주교와는 수년간 현장에서 호흡을 맞췄다. “후임인 제4대 군종교구장은 군종 사제 가운데 나오길 바랐어요. 서 주교님은 군 현역 때도 가까이 있었고 총대리로 매일 같이 동고동락했죠. 서 주교님께서는 군종 생활 때 타 종교 군종장교나 가톨릭 신자가 아닌 고위 지휘관과도 관계가 좋았어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서 주교님을 제 후임자로 임명해줘서 감사드립니다. 너무 기뻤습니다.”이스라엘 가서 기도·노동하고 싶어유 주교는 퇴임 후 본래 소속인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로 돌아간다. 코로나 상황이 진정되면 올 하반기 이스라엘로 떠날 예정이다. “오래전부터 이스라엘 성지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수백 년 전 작은형제회는 교황청으로부터 이스라엘 성지 수호 임무를 부여받았고, 그래서 이스라엘에는 작은형제회 성지보호구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가서 오래 살고 싶고 가능한 한 거기서 여생을 마쳤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 있어요. 좀 더 기도하고 좀 더 노동하고 좀 더 단순하게 살고. 또 혹시 순례 오시는 분이 제가 사는 수도원에 찾아오면 반갑게 맞이하고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유수일 주교는 주교회의 보건사목담당 주교로 일하면서 만났던 수많은 의사와 치과의사, 간호사, 약사, 사목자들에게도 감사인사를 전했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묻자 군종교구민에 대한 감사였다. “군대 경험도 없고 군의 조직도 모르는 저를 교구장으로 받아주시고 함께 기쁘게 함께 해주신 것에 대해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잘못한 게 있으면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를 청합니다.”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cpbc2021.04.06

성탄의 의미가 축하 파티에 있지 않듯이…[사유하는 커피](31)본질을 잃은 크리스마스와 커피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장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실종됐다. 휑한 거리에 울리는 캐럴은 차라리 쓸쓸하다. 작은 조명들은 텅 빈 공간에서 창백하게 깜박인다. 크리스마스가 왜 이렇게 됐을까? 한숨만 짓다가 문득 답을 찾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치밀었다.크리스마스는 ‘메시아(Messiah)에게 생명까지 바칠 수 있는 심성을 표현하는 의식, 곧 제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메시아는 히브리어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뜻하는데, 이 의식을 통해 하느님의 직책을 받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메시아가 희랍어와 라틴어를 거쳐 그리스도(Christ)로 바뀌었고, 우리말로는 구세주라고 적는다. 신약성경은 구세주를 예수라고 증언한다. 영어 표현인 마스(Mass)는 ‘파견하다’라는 라틴어 미사(Missa)에서 왔다. 고대 로마 시대에 의식이 끝난 뒤 그 모임의 의미를 널리 알린 데서 비롯됐다. 가톨릭교회에서는 하느님 말씀을 듣고 찬미하는 ‘말씀 전례’와 구세주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기리며 성체를 모시는 ‘성찬 전례’를 차례로 거행하는 의식을 라틴어 발음 그대로 ‘미사’라고 부른다.크리스마스의 본질은 축하 파티와는 거리가 멀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애를 따르고 실천하기를 다짐하는 거룩한 의식이다. 코로나19로 의미심장함 마저 자아내는 작금의 풍경은 어쩌면 크리스마스 초창기의 정신과 모습을 더 닮았을지도 모른다. 크리스마스가 산타클로스와 연결되는 접점 역시 타인을 위해 살아가는 그리스도적 사랑에 있다. 산타클로스의 선물은 당초 가족이나 연인을 향한 게 아니었다. 산타클로스는 지금의 터키 땅에서 가난한 이들을 돕고 죄인들을 회개시키는 데 삶을 바친 성 니콜라오(270~343)에게서 따온 것이다. 빚에 찌들어 딸을 매춘부로 넘겨야 할 곤경에 처한 부부를 니콜라오 성인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아무도 모르게 돈을 전해줄 방법을 찾던 그는 굴뚝으로 돈다발을 넣었는데 그것이 물기를 말리려고 걸어 둔 양말 속으로 들어갔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양말 모양에 담는 관습은 여기서 생겨났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서프라이즈’가 아니라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구하는 따뜻한 손길이어야 한다. 19세기에 루돌프 사슴과 산타클로스 요정 등 동화적 요소가 덧붙여졌고, 20세기에 들어서 산타클로스는 아예 코카콜라 등 대기업의 홍보수단으로 전락했다. 더 이상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의 삶을 따른 성 니콜라오도 아니다. 파티를 열고 선물을 주고받아야 행복하다는 환상을 심어 소비를 부추기는 정체불명의 산타클로스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에 대해 본질을 헤아려보는 좋은 기회다. 커피 분야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커피의 가치는 인류의 정신을 또렷하게 하고 힘을 북돋아 주는 데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커피의 본질은 마땅히 건강이다. 인류는 몸에 유익한 것을 맛이 좋다고 느끼도록 진화했으므로, 커피의 맛은 중요한 지표이다. 그런데 커피의 맛을 둘러싸고 잡음이 많다. 커피 자체의 품질을 따지지 않고 심지어 어디서 온 커피인지 정체도 따지지 않고 추출에 사용하는 물이 맛을 좌우하는 요인인양 떠들고 소비자들에게 불안감을 준다. 수돗물을 끓여 사용해도 커피 추출에 모자람이 없다. 주전자를 멋지게 돌려 물줄기를 차분히 해야, 특별한 그라인더로 커피를 분쇄해야 커피 맛이 좋아지는 것처럼 떠드는 것은 잘 보면 상술과 연결돼 있다.본질을 잃은 것은 아름답지도 않을뿐더러 행복하지도 못하다. 크리스마스가, 커피가 그렇게 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평화신문2020.12.15

중국 수녀 8명, 정부 감시·박해로 수녀원 떠나애국회 가입 거부한 수녀원에 십자가 철거·감시 카메라 설치... 요원까지 배치해 활동 감시 중국 정부가 최근 수녀 8명에게 애국회 가입을 종용하며 박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기도하는 수녀의 모습. 【CNS 자료 사진】 중국에서 수도생활을 해오던 수녀 8명이 중국 정부의 박해를 견디지 못하고 수녀원을 떠나는 일이 발생했다.이탈리아 종교ㆍ인권 잡지인 「비터 윈터」는 4일 “8명의 가톨릭 수녀들이 정부 당국의 거듭된 괴롭힘과 협박을 당하다 산시성 북부에 있는 수녀원을 떠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비터 윈터에 따르면, 수녀들은 “정부 관료들이 우리를 ‘위험인물’로 간주하고 줄기차게 괴롭혔다”며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해 보고하도록 강요당했으며, 심지어 몇 달 동안 한 모든 일을 공개하라거나, 여행 중에 이용했던 차량 번호까지 요구하는 등 박해를 가했다”고 전했다.수녀들은 중국 공산당 소속 천주교 관변 단체인 애국회 가입을 거부해 공산당의 지속적인 감시를 받아왔다. 수녀들이 이를 거부하자, 중국 정부는 수녀원에 4대의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고, 경찰관과 현지 공무원 등 감시요원 3명을 배치해 수녀들의 활동과 방문자들을 감시했다.수녀들은 “감시자들은 종종 수녀원 안으로 들어와 우리 활동에 대해 묻고, 밤에도 찾아왔다”며 “정부는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폭력배를 고용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결국, 중국 정부는 수녀원 성당에 설치된 십자가를 철거하도록 압박했고, 지난 8월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수녀들은 “구원의 상징인 십자가를 제거하는 일은 우리의 살을 베어내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중국 내 종교 박해는 끊이지 않고 보고되고 있다. 산시성 당국자들은 주민들의 집을 찾아 집안의 성물들을 시진핑 주석 사진으로 바꾸라고 협박하기도 하고, 개신교 신자들에겐 종교를 가진 가정은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없으며, 공산당에 복종해야 한다는 강요를 당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비터 윈터는 중국 공산당은 전국 각지의 성당과 교회를 찾아 십계명이 적힌 게시물을 철거하고, 공산당 지침을 게재토록 종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공산당이 승인한 성경만 사용하도록 압박하기도 했다. 중국 허베이성 스자좡 등 각지의 본당들은 수시로 지방 정부의 애국회 가입 압박을 받다가 성당이 폐쇄되는 사례가 여전히 빈번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심지어 중국에서 100여 년 전 활동하다 순교한 외국인 선교사 묘비도 철거당하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비터 윈터는 “중국 정부가 코로나19로 재정적 타격을 겪으면서 종교 단체에 대한 단속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한편, 바티칸은 지난 10월 22일 중국과 주교 임명권에 관해 합의한 2018년 합의문 시효를 2년 더 연장키로 했다. 양국의 관계 개선을 위해 바티칸도 주교 서임권 문제에 대해 중국의 요구를 수용한 것인데, 이 같은 결정에 반대해온 전 홍콩교구장 존 조셉 첸 추기경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는 교회를 죽이는 일과 같다”며 “이러다간 중국 내 지하 교회는 사라질 수도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cpbc2020.11.10

가톨릭은 마리아교? 하느님의 어머니 성모님에 대한 공경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18~25일) - 가톨릭에 대한 10가지 오해 풀기 지난해 1월 서울 구세군영등포교회에서 열린 일치 기도회에서 한국 그리스도교 교단 대표들이 갈라진 형제들의 일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가톨릭교회를 비롯한 그리스도 형제 교회들은 18일부터 25일까지를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으로 보낸다.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과 성 바오로 사도 회심 축일 사이다.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인 「일치의 재건」(Unitatis Redintegratio)은 가톨릭교회 내에서의 일치 운동을 크게 촉진했다. 가톨릭평화신문은 올해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을 맞아 가톨릭교회에 대한 개신교의 다양한 오해를 풀어주는 특집을 마련했다. 이를 위해 개신교 신자들이 갖는 오해를 10가지로 나눠 풀어봤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가톨릭교회가 전통을 지키는 것은 비성경적이며 예수님의 가르침과 상반된다 개신교 모토인 ‘오직 성경’이라는 말은 성경에 없다. 이는 성경과 교회의 전통(성전)이라는 가톨릭 가르침에 맞서 마르틴 루터 등 종교 개혁가들이 만들어낸 신학적 가정일 뿐이다.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원천인 성경과 믿음의 전통을 교회를 통해 성령의 이끄심대로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 때까지 모든 세대에 선포하고 있다. 그래서 가톨릭교회는 「계시헌장」 10항을 통해 “성전(聖傳)과 성경은 교회에 맡겨진 하느님 말씀의 유일한 성스러운 유산을 형성한다”고 고백한다. ▨가톨릭은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다개신교에선 ‘오직 하느님 은총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으며 가톨릭은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는 인간 구원을 향한 하느님 은총의 절대성과 인간의 신앙 실천, 곧 행업 협력에 대한 거부에서 비롯된 오해다. 가톨릭교회는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의화되며, 인간은 자유로이 은총에 협력하도록 불림을 받았다”고 가르친다. ▨가톨릭은 성모 마리아를 숭배하는 우상 교회다성모님에 대한 교회의 공경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431년에 열린 에페소 공의회는 성모께서 ‘하느님의 어머니’임을 선언했다. 451년 칼케돈 공의회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에 대한 신심’을 전 교회의 신심으로 확인했다. 마리아의 동정성과 원죄 없이 잉태된 자, 승천 교리는 믿을 교리로 선포된 것이다. ▨가톨릭교회는 외경도 성경으로 사용한다 가톨릭교회 성경은 73권이지만, 개신교 성경은 66권이다. 1546년 트리엔트 공의회는 구약 39권에 외경 7권을 포함했는데, 그 이유는 죽은 이를 위한 기도와 천사들의 전구, 연옥설, 공덕 축적설 등 교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였다고 개신교는 주장한다. 그러나 가톨릭교회에서 정경을 결정한 것은 382년 로마 교회 회의와 397년 카르타고 교회 회의 때였다. 당시 로마에서 쓰던 성경은 라틴어로 번역한 것이었는데, 서로 내용이 다르고 부정확한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다마소 1세 교황의 지시로 히에로니무스(예로니모) 성인이 대중 라틴어로 번역해 405년께 완성했다. 이를 「불가타」(Vulgata)라고 한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종교 개혁자들이 유다교 전통에 따라 7권의 제2경전을 성경 목록에서 빼버렸기에 4세기 교회의 결정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가톨릭교회는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성을 인정하고 교황을 비롯한 주교와 사제들에 의해 통치되는 계급 종교다가톨릭 교계제도에 대한 개신교의 비판이다. 교도권은 복음을 선포하는 임무를 유권적으로 이행하는 권한으로, 결코 하느님 말씀 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교황의 수위권 역시 교회의 신앙 일치의 상징으로 이해해야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로마 주교(교황)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전 교회의 목자로서 교회에 대하여 직책상으로 완전한 최상 전권을 가지며, 언제나 자유로이 이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교회헌장」 22항)고 선언한다. ▨가톨릭은 배타적 구원관을 갖고 있고, 교회법으로 운영되는 율법적 교회다가톨릭은 교회 밖의 구원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웃 종교와의 대화와 교회 일치를 위해 협력하고 있다. 교회법은 또한 제도 교회의 유지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신앙인의 삶의 기준과 척도를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지역 교회의 자치 구조와 독립성은 교회가 율법적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빵과 포도주가 사제 축성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고 믿는데, 그건 상징 아닌가개신교는 세례와 견진, 혹은 세례와 성체를 제외하고, 가톨릭의 ‘성사’를 인정하지 않는다. 가톨릭교회는 성체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성혈을 ‘그리스도의 피’로 믿는다. 이를 가톨릭에서는 ‘실체 변화’라고 하는데, 개신교에서는 이를 ‘화체설’이라고 하며 상징으로만 본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성사를 “거룩한 것의 표징이며, 보이지 않은 은총의 보이는 형태”라고 정의하면서, “일곱 성사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정했다”고 천명한다. ▨죄의 용서는 하느님께만 유보된 권한이지 가톨릭 사제가 신자들의 죄를 용서해줄 권한은 없다사제가 죄를 용서하는 권한, 곧 사죄권에 대한 비판이다. 고해성사는 죄의 용서보다는 화해와 치유라는 의미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화해의 성사는 제2의 세례성사로서 죄의 상태에서 해방시켜 주고, 다시 생명에로 인도해 주기에 세례 성사의 연장으로 이해됐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에게 화해 직무를 맡기셨고(요한 20,23), 그들의 후계자인 주교들과 주교들의 협력자인 사제들이 이 직무를 계속 수행하고 있다. ▨교회법을 통해 이혼을 금지하거나 이혼을 합법화하기 위해 혼인무효라는 제도를 뒀다 개신교는 ‘혼인은 사회적 의미를 갖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리스도께서 제정한 성사는 아니다’라고 한다. 하지만 가톨릭은 혼인은 자녀 출산과 부부애를 통한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친밀한 일치를 표현해 내는 성사적 의미로 혼인을 이해한다. ▨교회 분열은 가톨릭교회가 중세에 면죄부를 통해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왜곡했기 때문이다교회 분열의 직접적 원인은 교리 해석 논쟁과 차이가 아니다. 또한, 가톨릭교회에서 죄를 면제해주는 제도는 없다. 면죄부는 의도적인 오역일뿐 교회 용어로는 ‘대사’(Indulgentia)다. 가톨릭교회는 죄를 면제해주는 조건으로 면죄부를 발행한 것이 아니라 죄의 용서에 따른 보속 행위의 일부로 ‘대사부’를 발행했다. cpbc2020.01.15

가톨릭청년성서모임, 영문판 그룹 공부용 교재 발간세계 한인·교포 청년 신자들 요청으로
4년여 번역 끝에 창세기·탈출기 출간
마르코·요한 교재 영문판도 펴낼 예정 서울대교구 가톨릭청년성서모임(담당 최광희 신부)이 영문판 그룹 공부용 교재를 출간했다. 세계 각지에 사는 한인과 교포 청년들을 위한 첫 영문판 성경 공부용 교재로, 보편 교회 젊은이 성경 사도직 활성화를 위한 촉매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첫 영문판으로 출간된 교재는 창세기용 「Yahweh-Yireh」(야훼이레)와 탈출기용 「I will be with you」(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이다. 서울 가톨릭청년성서모임 연구부가 번역을 맡아 4년여 작업 끝에 내놨다. 교재는 「뉴 아메리칸 성경」(NAB)을 적용해 제작했으며, 성경 저작권 사용은 미국 주교회의의 승인을 받았다. 교재는 한국어판 교재 형식에 따라 △시작 기도 △말씀 읽기 △말씀 새기기 △말씀 살기 △마침 기도로 구성됐으며, 적절한 삽화와 묵상, 나눔 기재란을 수록했다.1972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국내외 수많은 청년에게 성경을 가르쳐온 서울 가톨릭청년성서모임이 영문 교재를 낸 것은 처음이다. 미국, 유럽, 오세아니아주, 동아시아 등 세계 각지에서 성서 모임에 참여한 한인과 교포 청년 신자들의 요청이 영문판을 낸 가장 큰 계기다. 홍콩, 캐나다 교회 등 여러 지역 교회가 서울 가톨릭청년성서모임 프로그램의 도입을 위해 여러 차례 영문판을 요구해온 것도 이유다.현재 해외에서 가톨릭청년성서모임 교재를 이용한 그룹 공부와 연수를 받는 한인과 교포 청년 수는 연간 400~500명에 이르며, 참여자가 계속 늘고 있다. 성서 모임을 중심으로 해외 한인 청년들 간 네트워크도 형성돼 있다. 그간 청년들은 한국어 교재를 번역해 공부하는 등 말씀에 목마른 젊은이들이 곳곳에서 ‘성서 모임 가족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최광희 신부는 “교회 내 청년 수가 줄고 있는 현실에서 말씀에 대한 갈망으로 성서 모임에 동참하는 청년은 국내외에서 늘고 있다”며 “한국 교회 고유의 청년 성서 모임 프로그램이 해외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영문판 교재가 큰 도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서울 가톨릭청년성서모임은 해외 한인본당을 중심으로 교재를 판매할 계획이며, 마르코와 요한용 교재 영문판도 하반기쯤 출간한다는 구상이다. 권당 8달러. 구입 문의 : 02-764-6452, 서울대교구 가톨릭청년성서모임 이정훈 기자 평화신문2020.01.08
[장현규 수녀의 사랑의 발걸음] 5. 오묘하신 하느님의 섭리장현규 수녀(프랑스 성요한사도수녀회) 프랑스에서는 지난겨울 동안 대규모 교통 파업이 있었다. 그 탓에 기차와 전철이 정상적으로 운행되지 않아 파리 북쪽 생드니에 있는 병원의 환자들을 보러 갈 수가 없었다. 지난해 말부터 일어났던 교통 파업은 퇴직 연금과 관련된 것이라고 한다. 세상살이 많은 어려움이 이처럼 대부분 돈과 관련해 비롯되는 것 같다.다행히도 새해 1월부터 파업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는 26년 전에 이번과 같은 정도의 교통 파업이 있었다고 한다. 수녀님들도 이후 내가 다시 환자들을 보러 가게 된 것을 함께 기뻐해 주시며, 용기를 갖도록 격려해주셨다.며칠 뒤 가벼운 발걸음으로 역에 도착. 기차도 제시간에 탈 수 있어 신바람이 났다. 고통 중에 있을 병원 환자들을 만나는 기쁨이란! 그런데 오랜만에 풀린 대중교통 운행 탓인지, 파리역에는 웬 사람들이 그리도 많은지. 묶인 발목들이 풀어지듯 그렇게나 큰 역은 쏟아져나오는 파리 시민들로 넘실거리는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평소 같지 않았던 인파를 뚫고 병원에 도착한 나는 우선 무슬림 여성 환자와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창백해 보이는 마른 얼굴의 알제리인으로, 40대 중반 정도로 보인다. 오빠가 독신인 자신을 친절하게 잘 도와준다고 한다. 입원한 지 열흘이 됐는데, 의사가 오늘 퇴원해도 된다고 했단다. 그런데 등의 통증 때문에 며칠 더 있게 되었는데, 뜻밖에도 나를 만나게 됐다는 것이다. 나와의 만남이 무척 기쁘다고 말하는 모습이 어린아이처럼 순진무구하다. 그녀는 나와 많은 이야기를 하길 원했다. 침대 옆으로 바싹 다가앉았다.그녀는 환자여서 무슬림 여성들이 머리에 써야 하는 ‘히잡’은 쓰지 않았다. 그러면서 퇴원하면 다시 써야 한다며 나에게 히잡을 착용하고서도 성당에 들어가 볼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이 아닌가. 뜻밖의 질문이었지만 나는 답해줬다. “그럼요! 들어갈 수 있고 말고요!” 그리스도를 향해 열린 마음을 지닌 이라면 누구든 환영이다.우리는 종파와 인종을 넘어 모두 하느님의 자녀들이다. 20여 년 동안 이 병원에서 무슬림들을 많이 봐왔는데, 히잡을 쓰고서라도 성당에 들어가 보고 싶어하는 이는 처음 만났다. 또 다른 무슬림 남성은 내게 성경을 선물로 달라고 했었다. 참으로 별난(?)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내 마음은 무척 기뻤다. 그들의 이런 바람을 들어주지 않은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그녀가 성당에도 들어가 보고 싶다는데, 나는 ‘얼씨구 좋다’ 하며 속으로 손뼉을 치다가 내친김에 혹시 작은 성경도 갖고 싶은지 물었다. 즉시 “좋다”는 답이 돌아온다. 그다음 나만의 비장의 무기(?)인 그림 카드와 상본 중 화려한 꽃이 그려진 카드를 꺼냈다. 카드에 ‘하느님의 축복을 빕니다’라고 써주니 꽃 옆에 자신의 얼굴을 대고 “참 따뜻한 느낌”이라고 한다. 고통의 여인에게 잠시나마 기쁨과 웃음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나의 큰 행복이다. 나의 일은 이렇게 미소와 희망을 선물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나누었는지. 그녀와 나는 1시간 이상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좀 피곤해도 계속 대화를 원하는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가족 사항, 자신의 건강 상태 등 처음 마주하는 나에게 어찌나 그렇게 자세히 이야기를 털어놓는지. 그러다 문득 “제 이웃도 가톨릭 신자인데, 정말 친절하고 좋다”는 말을 꺼낸다. 우린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이웃을 향해 친절함과 환대로 따뜻함을 만드는 사람들 아닌가! 대화를 통해 그녀가 가톨릭교회에 큰 관심과 호감을 갖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성당에 들어가 보고 싶다고 한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나와의 만남이 작은 연결고리가 되길 기도한다.이곳 프랑스 수녀원에서 지내면서 오래전부터 가톨릭평화신문을 구독해왔다. 한국 교회 소식은 물론, 세계 교회 소식도 접할 수 있어 내가 다른 수녀님들을 위한 ‘교회 소식통’이 돼주기도 한다. 와 닿는 글, 좋은 기사들을 스크랩하는 일도 습관이 됐다. 그중에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에 발행된 2020년 1월 19일자 신문에 사설로 실렸던 환대에 관한 아름다운 글을 여기 옮겨 적어본다.“환대는 다른 언어와 문화, 신앙을 가진 이들을 향할 때 더 빛이 난다. 환대는 성경에서만 회자하는 기억이 아니다. 무관심하고 냉랭한 힘과 결탁할지, 각별한 인정과 친절을 베풀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다만 그리스도인의 환대와 친절은 하느님의 사랑을 증언하는 통로임을 기억해야 한다.”나는 매일 하느님의 사랑을 증언하는 통로가 될 것이다. 아멘. cpbc2020.05.27
![[성서 주간]성경, 언제든 곁에 두고 볼 수 있는 ‘하느님의 말씀’](//cpbc.co.kr/CMS/newspaper/2018/11/rc/739374_1.0_titleImage_1.jpg)
[성서 주간]성경, 언제든 곁에 두고 볼 수 있는 ‘하느님의 말씀’ 성경 알아보기 한국 교회는 1985년부터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간을 성서 주간으로 정해 신자들이 성경을 자주 읽고 묵상하기를 권장하고 있다. 올해는 25일부터 12월 1일까지다. 교회가 별도의 성서 주간을 만들면서까지 성경을 가까이하기를 권하는 것은 성경이 신앙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영혼의 양식과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성경이기 때문이다. 가톨릭평화신문은 독자들에게 보다 성경에 친숙하고 올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성서 주간 특집 면을 마련했다. 이 특집 면에서는 성경이 어떻게 구성돼 있고, 가톨릭교회의 성경 경전이 다른 그리스도교와 어떻게 다른지, 또 성경 공부를 가장한 유사종교의 위험성과 교회가 운영하고 있는 성경 공부 모임을 소개한다. 아울러 성경 내용을 주제로 한 영화를 모았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성경이란성경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당신의 구원 계획을 유다교와 그리스도교 역사 안에서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 드러내시고 알려주신 계시의 원천이다. 아울러 인간이 교회를 통해 하느님의 계시를 제대로 전하고 이해하며 그것을 믿고 따르는 신앙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래서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이며 ‘교회의 책’이라고 한다. 성경이 말하는 주제어는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마태 16,16)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한 처음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생명과 은총, 진리 등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해 생겨났고,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으며,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요한 1장 참조)성경(Bible)은 ‘책들’이란 뜻의 헬라어 ‘타 비블리아’(τα Βιβλια)라는 단어에서 유래됐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새로운 계약(신약)과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옛 계약(구약)의 내용으로 구분된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신앙의 밑거름인 구약을 친히 완성하셨고, 그리스도 교회는 유다교의 거룩한 구약의 책들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데 필요한 출발점을 찾았기에 ‘하느님의 구원’이라는 하나의 큰 틀 안에서 신ㆍ구약 성경을 읽어야 한다. 구약성경은 유다인들이 ‘타낙’이라 부르는 율법과 예언서, 역사와 시편, 지혜문학이 수록된 문서집이다. 구약성경 대부분은 히브리어로 쓰였으나 에즈라기와 예레미야서, 다니엘서는 아람어로, 지혜서와 집회서 등 7권은 헬라어로 쓰였다. 구약성경은 기원전 3세기부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헬라어로 옮겨졌다. 이스라엘 12지파에서 각각 6명씩 뽑힌 72명의 율법학자가 72일 동안 모세 오경 번역을 마쳤다. 그리고 나머지 책들도 모두 번역을 마쳐 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본 전체를 일반적으로 ‘칠십인 역본이라 부른다.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완성된 구원의 신비를 드러내는 책이다. 신약성경은 27권으로 되어 있다. 모두 헬라어로 쓰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도들의 행전, 바오로를 비롯한 사도들과 제자들의 전승, 묵시록 등을 수록하고 있다. 성경 경전은 왜 교회마다 다를까그리스도교는 크게 로마 가톨릭인 서방 교회와 정교회인 동방 교회, 그리고 개신교로 나눌 수 있다. 서방 교회에서는 바오로 3세 교황이 1546년 트렌토 공의회에서 4세기 때부터 대중 성경으로 사용해온 「불가타」를 성경 경전(經典-표준 성경)으로 반포했다. 보편 교회에서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는 신약 27권, 구약 46권 총 73권이다. 신약성경은 마태오ㆍ마르코ㆍ루카ㆍ요한 네 복음서와 사도행전, 14개 바오로 서간, 7개 가톨릭 서간, 요한 묵시록으로 구성돼 있다. 서방 교회는 4세기에 이미 현재의 27권과 동일한 신약성경을 확정했고, 바오로 3세 교황이 1546년 트렌토 공의회에서 성경 정경을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교령으로 반포했다. 오늘날 보편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성경이다. 구약성경은 경전의 수가 교단에 따라 다르다. 가톨릭교회는 39권의 히브리어 성경과 토빗기, 유딧기, 마카베오기 상ㆍ하권,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등 헬라어로 쓰인 7권을 더해 총 46권을 구약성경 경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반해 개신교와 유다교는 히브리어 성경 39권만 구약성경으로 인정한다. 그리고 그리스 정교회는 히브리어 성경에 토빗기, 유딧기, 지혜서, 집회서만 더해 43권 구약성경을 경전으로 쓰고 있다.<표 참조>구약성경의 경전이 서로 다른 이유는 초대 그리스도교가 헬라어 구약성경인 칠십인역을 표준 성경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는 이 칠십인역을 구약성경 경전으로 받아들였지만, 개신교와 유다교는 헬라어 7권의 성경을 경전에 포함하지 않은 것이다. 가톨릭교회는 히브리어 성경 39권을 ‘구약 제1경전’, 헬라어 7권을 ‘구약 제2경전’으로 구분해 부르고 있지만 모두 똑같은 권위와 위상을 누린다. 외경과 위경가톨릭교회는 성경 경전에 포함되지 않은 문학 작품을 헬라어로 ‘아포크리파’(αποκρυφα), 우리말로 ‘외경’(外經)이라고 부른다. ‘감추어진 것’ ‘숨겨진 것’이란 뜻의 아포크리파는 성경 경전과 비슷한 면을 지니면서도 영지주의 등 교회와는 다른 가르침을 전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톨릭교회는 정통 신앙과 다른 오류를 전할 수 있기에 외경을 전례에서 공적으로 낭독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전례가 거행되는 동안 이 책들은 ‘숨겨져 있어야’ 했기 때문에 아포크리파라 불렀다.위경(僞經, pseudepigrapha)은 개신교 용어로 허위 성경이란 뜻으로 가톨릭에서 말하는 외경들을 지칭한다. 아울러 개신교에서는 가톨릭 성경의 구약 제2경전 7권을 ‘외경’이라고 한다. cpbc2018.11.21

교황, 사상 첫 이라크 방문… 위로·희망·형제애 전하며 ‘평화의 씨앗’ 나눠시아파 최고 지도자 만나 회동... 그리스도교 포용과 공존 호소, 모든 폭력과 극단주의 종식 촉구5~8일 이라크를 사목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칼데아 교회 성당을 가는 동안 환영 인파를 향해 인사를 전하고 있다.프란치스코 교황이 5~8일 지구 상 가장 극심한 박해와 내전, 가난, 종교 간 갈등으로 고통을 겪는 이라크를 사목 방문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다. 이라크 국민들은 코로나19 대유행과 테러 등 여러 위협을 무릅쓰고 방문한 교황을 열렬히 맞았고, 교황이 전한 위로, 화합, 희망, 그리고 사랑을 만끽했다. 가톨릭교회 역사상 처음 이라크를 방문한 교황은 이라크 국민들을 향해선 위로를, 오랜 박해로 여전히 죽음의 위협에 노출된 그리스도교 공동체엔 교황 친교와 재건의 희망을, 무슬림들에겐 형제애를 표하며 이라크 전역에 평화의 씨앗을 나눴다. 교황 방문으로 그리스도교 공동체 재건과 중동 지역 평화 분위기 조성, 종교 간 대화와 화합에 앞으로도 적잖은 영향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교황의 이번 사목 방문 주제는 ‘너희는 모두 형제다’였다. 테러 공격으로 박해를 받아온 그리스도교 공동체뿐만 아니라, 이슬람교 등 타 종교와 대화, 전쟁 종식 등 모든 형제자매를 향한 위로가 교황이 이라크를 사목 방문한 이유였다. 첫날인 5일 바그다드에 도착한 교황은 대통령궁에서 바르함 살리흐 이라크 대통령의 영접을 받고, 면담한 뒤 첫 연설에서 “무력 충돌을 잠재우고, 폭력과 극단주의 등 모든 편협한 행위가 종식될 수 있길 바란다”며 “모든 시민이 화해에 전념하고, 공동의 이익을 위해 준비하면서 이라크 모든 국민이 대화와 화합의 모델이 되길 기도한다”고 촉구했다. 교황은 이날 저녁 바그다드 시리아 가톨릭교회 구원의 성모 성당을 찾은 자리에서도 “우리가 십자가의 힘과 용서, 화해, 신뢰를 새롭게 하는 영감을 제시해야 한다”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사랑을 증언하며, 이는 이곳에서 선포되고 구현돼야 하는 복음”이라고 선언했다. 2010년 이슬람 무장단체(IS)의 테러로 사제 2명과 수십 명이 순교한 이 성당에서 교황은 이라크 교회 주교단과 사제, 종교인, 여성들을 처음 만나 친교를 나눴고, 교황의 연설 뒤 모두 아랍어로 ‘주님의 기도’를 낭송했다. 이튿날인 6일 교황은 나자프에서 이라크 시아파 이슬람 최고 지도자인 알 시스타니 대 아야톨라를 만나 45분 동안 회동했다. 교황이 시아파 최고 성직자를 만난 것도 가톨릭교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공개석상에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아야톨라와의 만남에서 교황은 “종교 간 협력과 우호를 통해 상호 존중과 대화를 나누는 노력은 이라크와 모든 인류에 기여할 수 있다”고 전했다. 아야톨라도 “세계 종교 지도자들이 이성과 지혜를 우선시하고, 전쟁의 언어를 거부하며, 그리스도교인들 또한 평화와 안전 속에 완전한 합법적 권리를 누리며 살아야 한다”면서 “가장 약하고, 박해받는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준 데 대해 감사하다”고 밝혔다. 이어 곧장 아브라함의 고향인 우르를 방문한 교황은 이슬람교, 유다교 등 종교 지도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가장 큰 신성 모독은 형제자매를 미워하고, 그분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이라며 “적대적인 마음과 극단주의, 폭력은 신앙인의 마음에서 비롯될 수 없으며, 그것은 주님을 배신하는 행위”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교황은 이어 “하느님의 빛이 증오의 구름에 가려지지 않게 하자”며 종교 간 화합을 향한 바람을 재차 표명하며 극단주의자들의 테러를 비난했다. 이날 저녁 교황은 바그다드 시내 칼데아 가톨릭교회 성당에서 미사를 주례하며 신자들과도 만났다. 이튿날인 7일 교황은 이라크와 IS와의 격전지였던 북부 최대 도시 모술을 방문해 전쟁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전쟁으로 폐허가 된 마을에서 희망을 역설했다. 그리스도인들이 밀집해 살던 ‘성경의 땅’ 모술은 2000년 교회 역사 내내 성당 종소리가 멎지 않았지만,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박해로 많은 그리스도인이 목숨을 잃거나 마을을 떠났다. 교황은 성전들이 파괴된 현장인 모술 광장에서 연설을 통해 ‘평화적 공존’을 재차 역설했다. 교황은 IS 테러 희생자 추모 기념비를 제막하고,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날렸다. 교황은 곧장 카라코쉬의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성당에서 신자들을 만나 그들이 겪은 아픔을 직접 듣고,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2014년 IS는 5만 5000여 명에 이르던 카라코쉬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테러를 저질렀고, 대부분 신자가 쿠르드 자치구로 이주했었다. 현재 2만 5000여 명이 공동체를 이루는 이곳에서 교황은 “테러와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승리를 볼 수 있었다”며 “이제 성전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와 가족, 젊은이와 노인을 하나로 묶는 공동체의 유대를 회복할 때”라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어 아르빌 시내 대형 스타디움에서 수천 명의 신자가 운집한 가운데 봉헌된 교황 주례 미사는 사목 방문의 절정을 이뤘다. 이 자리에는 이라크와 쿠르드 자치정부의 정치 및 종교 지도자 등 고위 인사들도 참석했다. 교황은 미사에서 “이라크 교회는 살아있고, 주님께서 이 거룩한 백성 가운데 계시다는 것은 분명하다”며 “이것이 제가 여러분을 만나 감사를 드려야 하는 이유였다”고 전했다. 교황은 “이라크는 항상 내 마음속에 있을 것”이라며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평화와 번영의 미래를 위해 여러분 모두 노력해주길 바라며, 하느님만이 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교황은 이번 사목 방문 동안 총 4차례의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연설과 2차례의 미사로 그들 한가운데에서 평화를 향한 분명한 지지를 보냈다. 교황은 8일 오전 성대한 송별 행사를 끝으로 중동의 형제들과 다시 만날 날을 기약했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cpbc2021.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