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내 신앙의 전환점(임두빈, 안드레아, 생활성가 가수)](//cpbc.co.kr/CMS/newspaper/2019/06/rc/754656_1.0_titleImage_1.jpg)
[신앙단상] 내 신앙의 전환점(임두빈, 안드레아, 생활성가 가수) 어머니께서는 쌍둥이 미숙아를 목숨 걸고 낳으셨고, 전 병원 인큐베이터에서 홀로 살아남았습니다. 저는 삼남매 중 막내입니다.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서 보약을 입에 달고 살았고, 막내다 보니 어머니 껌딱지가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어릴 적부터 엄격하게 신앙 교육을 하셨는데 매일 새벽 미사에 참여해야 했고, 저녁에는 묵주기도 5단과 「가톨릭 기도서」 전체를 그리고 성경 말씀 1장을 읽어야 했습니다. 행여 반항이라도 하는 날에는 회초리는 기본이요, 밥도 용돈도 주지 않으셨습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어머니의 뜻을 따르는 것이 가정의 평화요, 세계의 평화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인이 된 후 어머니께서는 각자의 기도 생활에 어느 정도 자유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대학에 들어가니 모든 것이 자유로웠고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일상 중에 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왔습니다. 1994년 여름은 기록적인 된더위가 있었고, 많은 사람이 다소 충격적인 김일성의 사망 뉴스를 접하고 있을 때 저는 깊은 한숨과 절망감을 안고 병실에 누워 2차 수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밤낮으로 찾아오는 통증과 앞으로 닥쳐올 수술의 공포감보다 더 힘든 것은 오른쪽 다리를 절단할 수도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진단이었습니다. 1년 동안 지옥 같았던 8차례의 수술이 계속되었고, 평소 운동으로 다져졌던 건장한 몸은 병간호하시느라 피골이 상접하신 어머니가 업고 옮길 정도로 앙상하고 초라한 몸이 되었습니다. 더는 추락할 수 없는 저의 처지에 극단적인 생각도 해보았지만, 철없는 막내아들 때문에 이 고생을 하시는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힘을 내야겠다고 다짐을 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나니, 지루한 병원 생활도 그리 나쁘진 않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해왔던 신앙 교육 덕분인지 자연스레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며 위안도 받았습니다. 저의 신앙을 돌아보며 반성도 하게 되니 죽어있던 마음에 희망의 씨앗이 자라서 소박한 꿈도 꾸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퇴원할 때 의사 선생님께서는 저에게 평생 목발을 짚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희망을 잃지 않고, 꾸준한 재활 운동으로 목발 없이도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걸을 때마다 참기 힘든 고통과 흉터는 남았지만, 하느님의 은총으로 다시 걸을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돌아보니 제 고통의 흔적 속에 하느님께서 늘 함께 계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평상시 소소하고 평범한 지금의 순간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힘들었던 고통의 시간이었지만, 시련을 통해 저의 신앙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6-18) cpbc2019.06.05

5월의 아픔은 그대로… “다시 그 상황 와도 기꺼이 맞설거에요”[5·18 광주 민주화 운동 40주년] 진실 알리려고 거리 방송 나섰던 차명숙씨 “광주 시민 여러분, 지금 시내로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계엄군의 총칼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를 기억해주세요.” 차명숙(가타리나, 60, 안동교구 송현동본당)씨가 40년 전 광주 시내를 누비면서 거리 방송을 통해 외쳤던 말이다. 5·18 당시 광주 시민들은 신군부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맞서 싸웠다. 하지만 많은 시민이 계엄군의 총칼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갔고, 지금도 많은 이가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광주 민주화 운동 40주년을 맞아 날씨가 유난히 화창했던 7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차명숙씨를 만났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지우고 싶은 5월 기억연두색 스카프에 꽃무늬 브로치를 한 차명숙씨가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5·18의 아픈 기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1980년 5월 광주에 대한 기억을 꺼내기 시작하자 금세 표정이 굳어졌다. 차씨는 “당시 5월의 광주는 기억하고 싶지 않다”며 “기억하는 순간 죽은 사람부터 그 모든 시간이 필름처럼 지나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트라우마에 갇혀 산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도 광주에 가면 옛 전남도청 자리나 금남로에는 머무르기가 힘들다”며 “최근 인터뷰를 위해 광주에서 촬영한 적이 있었는데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할 정도로 감정 조절이 안 됐다”고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5ㆍ18의 아픈 기억은 지독하리만큼 차씨를 떠날 줄 모른다. 사진만 보고도 당시의 상황이 어제 일처럼 떠오를 정도다. 가지 않은 길, 가야만 했던 길1980년 5월 19일 오후 차씨는 사람들과 함께 마이크를 잡았다. 계엄군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계엄이 선포되고 군인이 시민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총칼을 겨눴다. 직접 실상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군인과 경찰이 언론을 장악하고 있어서 언론은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사람들과 스피커와 확성기를 구해 21일까지 거리방송을 했다. 그렇게 거리방송을 하고 23일 기독병원에서 주검을 수습하고 부상자를 돌보다 기관원들에게 붙잡혔다. 당시 신군부는 ‘광주에 북한 간첩이 들어와 시민들을 선동해 폭동이 일어났다’는 언론 보도를 내보냈다. 차씨는 보안사령부 505보안대로 끌려갔다. 보안대에서 끔찍한 고문을 받았다. 25일 상무대, 6월 4일 광산경찰서, 15년형을 구형받고 9월 16일 광주교도소에 가서도 고문은 계속됐다. 광주교도소에서는 불온한 발언을 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우려 하기도 했다. 차씨는 “형이 확정되고 나서 수인번호 113이 적인 죄수복을 입고 호송차를 타는데 굉장히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났다”며 “잘못한 일도 없는데 죄수복을 입어야 한다는 사실이 분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게 차씨는 10월 29일 10년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나이 20살이었다.포기할 수 없는 신앙신앙은 힘든 교도소 생활에 한 줄기 빛이었다. 예비신자였던 차씨는 성경을 읽으며 교도소 생활을 견뎌냈다. 그러던 중 1981년 12월 형집행 정지가 되면서 성탄절 특사로 풀려났다. 차씨는 풀려난 후 서울로 올라왔다. 광주에서는 살 수가 없었다. 광주에서 그는 이미 간첩이었다. 어딜 가나 경찰이 따라 붙었다. 서울에서의 생활도 만만치 않았다. 그때 알고 지내던 한 신자의 소개로 함세웅 신부를 만났다. 하지만 경찰들은 서울에서도 차씨를 따라다녔다. 함 신부와 차씨를 떼어놓기 위해 이간질도 서슴지 않았다. 그럼에도 함 신부는 물심양면으로 차씨를 도왔다. 함 신부는 “1980년 5월 우리는 다른 지역에 있었지만 우리는 가톨릭 신자이고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가 가는 길은 같다”고 차씨를 위로했다.수도자들과 신자들도 차씨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한 신자의 도움으로 1982년 12월 주님 성탄 대축일에 서울 종로성당에서 세례성사를 받았다. 그리고 1985년 서울 신림동성당에서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1986년 안동 태화동성당에서 혼인성사를 한 뒤 안동에 정착했다. 차씨는 “광주에서 살았으면 정상적으로 살지 못했을 것”이라며 “하느님이 저를 다른 방법으로 쓰시려고 안동에 살게 하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주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차씨는 2001년 5ㆍ18 유공자가 됐다. 그때부터 진실을 알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당시 정부가 당사자가 살아있는데 확인도 하지 않고 기록을 하고 다른 사람을 통해서 들은 내용으로도 기록해 왜곡된 게 많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마침내 재심청구를 통해 2013년 모든 자신의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수도자들과 신자들이 힘을 줬지만, 무엇보다 힘이 됐던 건 남편과 두 아들이었다.몇 번이고 다시 걸어갈 길차씨에게 ‘거리방송 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지, 다시 그 상황이 돼도 마이크를 잡을 건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분명했다. 그는 “후회는 없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서 거리방송을 해야 할 상황이 오면 기꺼이 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다시 질문을 던졌다. “언제쯤 5ㆍ18의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돌아온 차씨의 대답에 기자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차씨가 말한 그때는 자신이 ‘예쁜 치매’에 걸리는 때였다. 그는 “제가 예쁜 치매에 걸려 좋은 기억만 하게 되면 5ㆍ18의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바람은 저뿐만 아니라 5ㆍ18을 겪은 많은 사람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5ㆍ18의 아픈 기억만 떠올리게 될 수도 있을까 봐 두렵다”는 말도 했다.차씨는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진실을 알리기 위해 앞장서려 한다. 그는 “사람들이 제대로 말하고 보고 들을 수 있는 입과 눈, 귀를 가지는 일에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다”며 “나아가 우리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5·18을 왜곡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는 “시간을 갖고 계속해서 진실을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차명숙씨는 현재 대구·경북 5·18동지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그리고 5·18 강연회와 간담회 등을 통해 광주 민주화 운동을 알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2019년 6월에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인권유린을 고발하기 위해 노력한 점을 높게 평가받아 제3회 길원옥 여성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해마다 5월이 되면 5·18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올해는 17일에 안동에서 코로나19 희생자와 5·18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제를 계획하고 있다. 또한,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 나눔 안동지부장을 맡아 연탄 나눔을 하는 등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cpbc2020.05.13
[한국 천주교와 이웃 종교] (21) 그리스도인은 무슬림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요종교적 식습관이나 고유의 예배 행위 존중하는 태도 지녀야 무슬림은 아내를 여러 명 두나요쿠란에는 모든 아내를 공평하게 대하고 똑같이 부양할 수 있다는 조건 아래 네 명의 아내까지 허용된다는 구절이 있지만, 동시에 아내를 모두 공평하고 정당하게 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구절도 있다. 따라서 이슬람교에서도 일부일처제가 가장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고, 오늘날 대부분의 이슬람교 국가는 일부일처제를 시행한다.무슬림 여성은 모두 머리를 가리는 히잡 등을 써야 하나요히잡이란 머리를 가리는 스카프, 또는 몸 전체를 가리는 긴옷을 가리킨다. 히잡의 착용이 법률로 의무화된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 같은 국가도 있지만, 무슬림 여성이 모두 히잡 등을 써야 하는 것은 아니며, 개인의 선택에 따른 경우도 많다.쿠란에는 남성, 여성 모두가 단정한 옷차림을 해야 한다고 나오지만, 옷차림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없다.무슬림이 지키는 할랄은 무엇인가요할랄(halal)은 ‘허용된 것’이라는 뜻으로 종교적으로 허용되는 먹거리나 행위를 의미한다. 무슬림에게 허용되지 않는 대표적인 먹거리는 이슬람법에 따른 도축 이외의 방법으로 죽은 동물의 고기와 돼지고기, 동물의 피, 술 등이다. 또 무슬림이 해서는 안 될 행위로는 우상 숭배, 도박, 점술, 고리대금업 등이 있다.무슬림은 왜 돼지고기를 안 먹나요이슬람교에서는 돼지를 부정한 동물이라고 생각해 먹지 않으며, 쿠란에 돼지고기를 금지하는 구절(5,3)이 명시돼 있다. 유다인들도 비슷한 이유에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레위 11,7)유일신 종교인 이슬람교는 하느님 외의 다른 신에게 공물로 바쳐진 음식을 먹는 것 역시 금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무슬림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요무슬림은 그리스도인과 같이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으며 하느님의 계시를 기록한 성경을 가진 유다교와 그리스도교를 매우 친근한 종교로 생각한다.우리나라에서는 무슬림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지만, 최근 이주 노동자, 유학생, 기업인 중에서 무슬림이 늘어나고 있다. 무슬림이 폭력적인 근본주의자라는 선입관도 있지만, 그런 사람은 극히 일부이다. 무슬림의 종교적 식습관이나 날마다 드리는 예배 행위를 존중하는 것이 종교 간 대화의 올바른 자세이다.종교 간 대화는 왜 필요하나요오늘날 운송 수단과 정보 통신의 발달과 교육과 생계를 위한 이주 때문에 전 세계 사람들이 마치 한 마을을 이루듯 함께 살아가는 지구촌 시대가 됐다. 이로써 여러 민족과 종교가 서로 만나고 교류하는 다문화 다종교 시대가 열렸다. 종교 간 대화는 이러한 피할 수 없는 만남에 대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대답이다. 가톨릭교회는 여러 종교가 서로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편견과 오해가 있으며, 그로부터 분쟁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이러한 점을 개선하고자 가톨릭교회는 신자들에게 이웃 종교인과의 만남과 대화를 권고하고 있다. ※이 난은 주교회의 교회 일치와 종교 간 대화위원회가 펴낸 「한국 천주교와 이웃 종교」를 정리한 것입니다. 저작권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 있습니다. 정리= 리길재 기자 평화신문2019.11.13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33주일 - 종말론적 신앙과 삶으로의 초대](//cpbc.co.kr/CMS/newspaper/2019/11/rc/766587_1.1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33주일 - 종말론적 신앙과 삶으로의 초대 한민택 신부 전례력상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시점에, 오늘의 미사 전례는 종말에 대해 그리고 그리스도 신앙이 지닌 종말론적 성격에 대해 묵상하도록 초대합니다.‘종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두려움이 아닐까 합니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 속에서 사람들은 대체로 종말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릇된 종말론을 등에 업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과 두려움을 조장하며 사람들에게 다가와 현혹하는 유사종교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유사종교의 그릇된 종말 신앙에 빠지는 이유는 종말에 관한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종말이나 심판을 막연히 두렵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종말이란 어떤 것일까요? 과연 종말은 존재하는 것일까요? 신앙인은 종말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요?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오늘 복음 말씀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이 허물어질 때가 곧 올 것을 예고하시며, 이에 앞서 당신 이름으로 가장한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어서 전쟁과 반란이 일어날 것이고, 지진과 기근, 전염병이 생기며 하늘에서 무서운 일들과 표징이 일어날 것이고 박해가 일어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말씀 뒤에 덧붙이십니다.“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복음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말씀하시지만, 이는 최종 심판에 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마태 24,3-14; 마르 13,3-13 참조) 잘 살펴보면 예수님은 종말과 심판에 관한 무서운 일을 말씀하신다기보다, 그러한 일을 겪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당신을 따르는 신앙의 길을 굳건히 걸어갈 것을 당부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믿는 이들에게 종말과 심판은 두려움이 아닌 희망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복음은 신앙으로 끝까지 견디어 내면 생명을 얻으리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습니다.한편 복음이 전하는 환난과 시련은 심판 때에 일어날 일만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일들이기도 합니다. 우리 삶에는 전쟁과 반란, 지진과 기근, 전염병, 박해 등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때로 우리의 용기와 자신감을 앗아가고 좌절과 절망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종말을 희망으로 기다리는 신앙은 갖가지 환난에서 주님이 오실 날이 머지않았음을 깨닫도록 합니다. 그분께서 곧 오시어 지금 우리가 겪는 시련과 환난을 없애 주고 영원한 행복과 안식을 주시리라는 희망을 선사하며, 지금 여기서 시련에 맞서 의연하게 살아갈 용기와 힘을 줍니다.그분께서 곧 오십니다. 아니, 그분께서 이미 문 앞에 당도해 계십니다. 문 앞에서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우리와 함께 잔칫상에 자리하고자 하십니다. 우리 삶을 기쁨의 잔치로 초대하고자 하십니다. 이제 그분의 초대에 응해야 할 때입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잔칫집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이제 마음을 다잡고 그분의 초대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어드립시다. 우리 삶이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 찬 하느님의 나라로 변모하도록 말입니다.한민택 신부(수원가톨릭대 교수, 이성과신앙연구소 소장) 평화신문2019.11.13

노년의 지혜와 깨달음, 청년들의 비전 된다세월의 지혜 / 교황 프란치스코와 친구들 공저 / 정제천 신부 옮김 / 이냐시오영성연구소 예수회 한국관구장 정제천 신부가 대학 시험에 떨어져 고향 광주로 돌아가던 때 일이다. 밤 열차에서 우연히 만난 한 노인은 실의에 젖어 있던 그에게 봄에 난초가 피고, 가을에 국화가 핀다는 뜻의 ‘춘란추국’(春蘭秋菊)이라는 고사성어를 하나 남겼다. “다 때가 있는 법이네. 그러니 너무 실망하지 말고 다시 시도해보게. 잘 될 걸세.” 그 이름 모를 어르신의 한 마디로 정 신부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정 신부는 당시 조언을 떠올리며 프란치스코 교황과 친구들이 집필한 「세월의 지혜(Sharing the Wisdom of Time)」를 우리말로 옮겼다. 잠이 안 오면 새벽 두세 시에도 일어나 3개월을 꼬박 번역에 매달렸다. “이 책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기도에서 시작됐어요. 어느 날 기도 시간에 교황님은 성령의 영감을 받아 노인들의 역할이 현시대에 얼마나 필수적인지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품으셨지요. 교황님은 특히 노인들이 세월 속에서 쌓아온 지혜에 주목했는데, 요즘 경쟁에 내몰리는 젊은 세대가 자신들이 겪는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찾고, 인간적인 세상과 하느님 나라를 만드는 데 노인들의 지혜가 큰 도움이 되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노인들의 지혜에 대한 교황의 믿음과 비전은 미국 예수회 출판사인 로욜라 프레스가 「세월의 지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추진하도록 했다. 로욜라 프레스는 세계 곳곳에 있는 지혜로운 노인 250여 명을 찾아가 인터뷰했고, 그중 84명의 이야기를 선택해 노동과 투쟁, 사랑, 죽음, 희망이라는 다섯 장으로 분류해 책으로 묶었다. 교황은 다섯 장에 각각 머리말을 써서 독자들이 그 주제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도록 안내했고, 특별히 31편의 이야기에 대해선 ‘동료 노인’으로서 자신의 고유한 체험과 지혜를 독자들에게 나눠줬다. 교황의 머리말과 응답은 예수회 안토니오 스파다로 신부의 역할이 컸고, 다섯 장의 마지막 부분에는 노인들의 지혜를 체험한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내가 배운 노년의 지혜’라는 꼭지로 수록됐다. 정 신부는 “교황님께서는 ‘노인들은 꿈을 꾸며 젊은이들은 환시를 보리라’(요엘 3,1)는 성경 말씀을 인용하며 지금이 바로 젊은이들이 비전을 갖도록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꿈을 꿔야 할 때라고 말씀하신다”면서 “이 책을 번역하면서 많이 울었는데, 그만큼 노인들의 이야기는 감동적인 대목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cpbc2019.09.17

텅 빈 광장에서 바친 교황의 기도, 13억 그리스도인과 인류를 하나로[코로나19 특별대담] 인류를 위로하는 교황님의 기도 3월 27일 오후 6시(현지 시각). 비 내리는 성 베드로 광장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홀로 모습을 드러냈다.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제단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딘 교황은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특별기도와 축복(우르비 엣 오르비) 전례를 주례했다. 교황은 “우리는 혼자서 나아갈 수 없다는 것, 오로지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면서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한마음으로 기도하자고 요청했다. 교황은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방송으로 생중계된 교황의 모습을 지켜본 전 세계 모든 이들이 교황과 함께했다. 교황은 이날 주님께서 제자들과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는 도중 풍랑을 가라앉히신 내용을 담은 마르코 복음 4장 35-41절 말씀에 관해 강론했다. 교황은 강론에서 풍랑을 만난 제자들의 모습과 코로나19로 혼돈에 빠진 현재의 상황을 연결시키며 현재 위기를 타개할 통찰을 안겨줬다. 더불어 아픔을 겪고 있는 모든 이와 함께한다는 절절한 기도를 통해 깊은 감동을 전해줬다. 가톨릭평화방송은 1일 교황의 인류를 위한 특별기도와 축복에 담긴 의미를 되새겨 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 사장 조정래 신부 사회로 수원가톨릭대 총장 곽진상 신부, 가톨릭대 교수 최준규 신부,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총원장 김혜윤 수녀가 패널로 참여해 이야기를 나눴다. 정리=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조정래 신부(이하 사회) : 프란치스코 교황이 비 내리는 텅 빈 광장을 올라가는 모습부터 인상 깊었다. 인류를 위한 특별기도와 축복 전례를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김혜윤 수녀(이하 김 수녀) : 광장이 비어 있기에 교황이 혼자라는 사실이 더 두드러졌다. 교황은 혼자였지만 13억 명의 가톨릭 신자가 모두 참여했기에 그 어느 때보다 가득 찬 광장이었고, 거룩한 시간이었다는 외신 기사를 봤다. 같은 생각이다. 정말 감동적이었다. 곽진상 신부(이하 곽 신부) : 혼자 뚜벅뚜벅 걸어가는 모습이 이 세상 아픔과 고통을 홀로 짊어지고 가는 것처럼 보였다. 인류 전체의 고통과 함께하는 아버지와도 같았다. 그 모습에서 외로움도 느껴졌다.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외로움을 교황이 진실로 느끼며 걸어가는 듯 보였다. 최준규 신부(이하 최 신부) : 비가 내려 상황이 더욱 애잔했다. 비는 주님의 은총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 어려운 시기에도 주님의 은총이 내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황의 불편한 발걸음을 보면서 진정한 사목자가 걸어야 하는 길은 외롭고 어려운 길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사회 : 인류를 위한 특별기도와 축복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먼저 제안한 자리다.최 신부 : 복음을 보면 주님께선 어려운 일에 맞닥뜨리거나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늘 기도하셨다. 특별히 오랫동안 기도하시고 밤새워 기도하셨다. 그런 모습이 우리가 닮아야 하는 신앙인의 모습이다. 교황은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지자 전 세계 신자를 향해 함께 기도하자고 청했다. 진정한 신앙인의 모범을 보여줬다는 생각이다. 위기와 절망에서 신앙인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기도다. 교황은 혼자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함께 기도하는 모범을 보여줬다.곽 신부 : 교황은 보편 교회 수장이면서 전 인류의 정신적 지도자다. 전 인류가 아파하는 고통을 하느님 아버지께 솔직히 말씀드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진솔하게 묻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를 통해 위로를 전해주고 희망을 주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사회 : 강론을 통해 위로와 위안을 주는 게 쉽지 않지만, 프란치스코 교황 강론은 특히 좋다. 김 수녀 : 교황 강론은 워낙 뛰어나다. 특히 성경의 언어를 현장의 구체적 언어와 접목시켜 전달하는 데 발군이다.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성경 말씀을 발췌해서 잘 말씀해 준다. 이번에 선택한 복음도 놀라웠다. 최 신부 : 복음 구절 선정도 탁월했다. 교황의 통찰에 놀랐다. 강론 첫 구절이 ‘저녁이 되었다’(마르 4,35)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요즘 저녁이 돼버린 것 같다고 말씀하는데 그걸 들으면서 예수님의 빈 무덤이 생각났다. 이른 새벽 여인들이 찾아갔던 동굴 안 예수님의 빈 무덤 말이다. 아주 어둡지 않은 이른 새벽은 저녁과 비슷하다. 구원과 희망의 빛이 필요한 때다. 강론의 첫 시작이 예수님 부활 시기를 준비하는 시기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마르코 복음 4장 35-41절 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 둔 채, 배에 타고 계신 예수님을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그분을 뒤따랐다.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사회 : 돌풍과 풍랑을 겪은 제자들과 예수님의 상황이 지금과도 꼭 맞는다. 곽 신부 : 마르코 복음 그 구절은 풍랑을 가라앉히신 예수님의 기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제자들은 겁에 질렸는데 예수님은 고물에서 주무시고 계셨다. 예상치 못한 모습이다. 바로 거기에 메시지가 있다. 교황도 그 부분을 짚어 냈다. 고물은 배 뒤편이다. 풍랑이 일 때 물이 가장 먼저 들어오는 부분이다. 예수님이 고물에 누워 계셨으니 풍랑이 일 때 가장 먼저 알아채셨고 가장 먼저 물에 맞으셨을 것이다. 그런데도 하느님 아버지께 모든 것을 맡기고 편안하게 계셨다. 예수님은 우리가 고통받기 전에 먼저 고통받으셨다. 고통과 두려움을 나 몰라라 하고 계신 것이 아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왜 겁을 먹고 있느냐, 왜 믿음이 없느냐”라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상황과 너무 잘 맞는 훌륭한 대목이다. 교황의 강론을 몇 번이나 읽으면서 교황이 예수님과 정말 가깝게 만나고 있음을 느꼈다.사회 : 교황은 강론 후 로마 시민들의 안위이신 성모 이콘과 성 마르첼로 성당의 십자가 앞에서 기도했다. 최 신부 : 천주교 신앙에서 볼 때 신자들에게 큰 위로를 주는 분은 성모님이다. 성모님은 우리가 필요로 할 때 모든 돌봄을 제공하는 자비로운 어머니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위기 때마다 어머니를 부르고 어머니께 전구를 청해왔다.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 성모님께 전구를 청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김 수녀 : 방송을 통해서 전례에 참여했는데 카메라가 계속해서 십자가를 보여줬다. 전례를 주례한 건 교황이었지만 전례의 실질적 주인공은 역시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모 이콘도 십자가 옆에 비켜서 있는 모습이었다. 온전한 주인공이고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중심의 자리를 내어주는 연출이 아닌가 싶었다. 사회 : 성체 현시와 성체 조배도 이어졌다. 우리는 영적인 힘을 얻을 때 성체 앞에 모인다. 최 신부 : 성체 조배는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나를 성찰하며 내가 얼마나 미소한 지를 깨닫는 시간이다.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과 고통을 주님께 말씀드리고, 지혜와 은총을 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성체 조배를 하면 성체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평화와 안정감을 체험하게 된다. 사회 :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의문이 생긴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데 왜 이렇게 수십만 명이 죽는 일이 생기는 것인가. 김 수녀 : 하느님께서 왜 고통을 허락하는가라는 질문을 다르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하느님께서 허락하는 고통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초래한 고통이다. 하느님께서는 고통을 원하지 않으신다. 하느님으로부터 인간이 단절된 데서 이 사태가 발생했다. 생명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인간이 스스로 배제한 것이다. 생명이 단절된 상태이니 당연히 죽음과 고통, 억압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 하느님께 책임을 두는 게 아니라 인간에게 무엇이 문제가 있는지를 반성해야 한다. 결국엔 하느님과 어긋난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곽 신부 : 교황 강론에 분명히 나온다. 제자들이 죽을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예수님은 가만히 주무시는 것처럼 보였지만 가만히 계신 것이 아니었다. 우리보다 먼저 고통을 받으시고 고통에 함께하셨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선 고통을 함께하시는 분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최 신부 : 예수님께서 고통을 허락하는가. 오래된 질문이다. 고통을 겪을 때마다 반복하는 질문이다. 주님의 섭리 아래 우리가 고통을 겪고 있다면 그 섭리가 무엇일까. 먼저 우리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고통을 반성과 회심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또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선 많은 이들이 함께해야 한다. 고통은 형제적 협력을 촉구한다. 마지막으로 다시는 이러한 고통이 반복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 더 좋은 제도와 체계를 만들어 내야 한다. 고통은 이러한 깨달음을 이끌어 내는데 이런 게 모두 주님의 섭리다. 사회 : 신학 안에서도 고통에 대한 질문들을 다루고 있지 않나. 곽 신부 : 고통과 관련된 물음은 비판적이고 이성적이면서도 굉장히 실존적이다. 예수님은 이에 대한 답을 분명하게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어디서 어떻게 고통을 당했는지 묻지 않으셨다. 그저 고통에 함께하며 같이 아파하셨다. 측은지심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고통당하는 이가 자신의 아집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구원해주는 분이다. 철학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예수님은 당신 삶으로 대답해 주셨다. 사회 : 그동안 우리는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고 살았던 것 아닌가 싶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최 신부 : 교황이 강론 중에 평범한 분들을 열거했다. 의사, 간호사, 미화원, 슈퍼마켓 직원…. 한 분 한 분 부르시는데 굉장히 가슴에 와 닿았다.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사고, 차를 마시고,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는 평범한 일이 갑자기 평범하지 않게 됐다. 평범한 것들을 새롭게 보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사소하고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겨야겠다. 김 수녀 : 공동체 수녀들과 나눔을 했는데 한 수녀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특정 나라, 특정 동물, 특정 종교 탓으로 돌렸는데 교황 말씀을 들으면서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됐다고 한다.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집중하지 못한 자기 자신을 반성하게 된 시간이었다는 성찰에 공감했다.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가 아닐 때 나오는 부조리와 악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곽 신부 : 지금의 어려움이 우리 자신을 성찰하게 해주고 있다. 무엇이 정말로 어려운 일인지를 식별하게 해주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듯하다. 이 시대 사목자와 신앙인은 무엇이 내 삶을 이루게 하는 요소인지를 다시 한 번 돌아보고 가족과 이웃의 중요성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삶은 혼자 꾸려나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회 : 그리스도인에게는 희망이 있다. 고통과 어려움에서 놓지 말아야 할 단어가 아닐까 싶다. 최 신부 : 교황 말씀을 들으면서도 내내 희망을 생각했다. 희망의 근거는 아주 사소하고 평범한 데서 찾을 수 있다. 격리된 도시에 사는 주민들이 각자의 집에서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며 서로 격려하는 모습을 봤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자기가 가진 것을 내어 놓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그런 데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 김 수녀 : 희망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이들 가운데 하나로 교황은 슈퍼마켓 직원과 같은 이들을 예로 들었다. 이들이 보여주는 품격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마음이 가난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이들일수록 하느님과 밀접할 수밖에 없다. 하느님께선 가난 속에서 일하신다는 증거다. 가난한 이들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희망, 경외가 있을 때 우리는 분명 호수 저편으로 건너갈 수 있다고 희망한다. 곽 신부 : 희망의 근거야말로 바로 예수님 모습이다. 예수님께선 절망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잊지 말자.정리=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사진=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cpbc2020.04.08

관상, 우리 내면에 이미 와 계신 하느님 깨닫기[토마스 머튼의 영성 배우기] 33. 관상에서의 하느님 찾기 필자가 성소 담당자로 8년간 소임을 할 때, 참 많은 젊은이를 만났다. 그 과정에서 초기에는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을 가진 이는 관상 수도회에 어울리고, 외향적인 이는 활동 수도회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성격과 수도생활은 큰 관련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부르심’인 것이다. 성령에 의해 하느님 신비 안으로이러한 관점에서 관상 역시 마찬가지다. 관상은 수동적이고 조용한 성품을 가진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앉아서 생각에 빠지는 것도 초점을 잃고 멍하니 앉아 있는 것도 아니다. 관상은 기도를 잘하는 것도 아니요, 전례를 통해 평화와 만족을 얻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것들은 관상을 체험하기 위하여 준비하는 과정으로서 필수적이나 이것이 저절로 관상에 이르게 해 주지는 않는다. 때때로 별다른 노력 없이 갑자기 관상을 체험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를 일깨우려 선택한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고 ‘하느님’이시다.머튼이 말하는 관상은 지적인 성취가 아니다. 책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는 것도 아니다. 하느님에 관한 신학적 통찰력 이상의 것이며, 어떤 황홀이나 무아지경, 감정적 흥분이나 감미로움이 아니다. 관상이 가져오는 깨달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관상은 성령에 의해 하느님의 영역 안으로, 하느님의 자유 안으로, 하느님의 신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때때로 관상을 통해 ‘하느님이 무엇인지를 더 이상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고통이 수반된다. “하느님은 내가 알 수 있는 ‘무엇’이 아니며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순수한 ‘누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나는 있다’입니다.” (「새 명상의 씨」, 28)머튼이 깨달은 관상은 기도의 실천 이상의 것이며, 다음의 세 가지 체험과 연관되어 있다. 하느님을 찾는 체험, 자신의 참된 자아를 깨닫는 체험, 그리고 세상과 자신의 관계를 배우는 체험. 그리고 이 세 가지는 서로 긴밀히 상호 연결되어 있다.먼저, 머튼에게 있어 관상은 하느님을 찾는 체험과 관련되어 있다. 하느님을 찾는 것은 잃었던 무엇을 찾는 것과는 다르다. 하느님은 모든 곳에 계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찾는 것은 내가 아는 모든 곳에 계신 하느님을 찾는 것과 다르다. 그리고 한 번 찾은 하느님이 하느님의 전부도 아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머튼은 관상을 통해 그리스도의 인성 안에서 하느님에 대한 앎과 사랑을 체험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앎은 성경이나 이성 등의 밖으로부터의 앎이 아니라, 내면으로부터의 깨달음이다. 관상은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서 하느님과 우리가 이미 하나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머튼은 관상에 있어 깨달음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앎이 아니라 내면으로부터의 깨달음“관상은 영적 놀라움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생명과 존재가 보이지 않는 초월적이며 무한히 풍요로운 ‘원천’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깨닫는 것입니다… 관상은 우리가 아는 것이나 알지 못하는 것을 모두 초월하여 압니다. 관상은 그 원천의 실재에 대한 깨어남입니다. 관상은 깨어남의 갑작스러운 선물이며, 그것이 실재(real)라는 모든 것 안에서 궁극적인 실재(the Real)를 깨닫는 것입니다.”(「새 명상의 씨」, 15-17)그래서 하느님께서 자신 안에 계시다는 깨어남의 선물을 받기 위해서 관상은 외적이거나 표면적인 것으로부터 내적이고 영적인 것으로의 의식의 전환을 요청한다. 우리 내면의 세상 안에서 궁극적인 실재인 하느님을 발견하기 위해 우리 존재의 표면적 수준 아래를 파고 들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실재의 다른 측면이나 더 깊은 단계에서 하느님과 자아와 창조물을 새롭게 바라보는 것이다. 인간의 한계 절감할 때 하느님 만나그런데 사실 오늘날 우리의 문화는 속도, 생산성, 이익, 외적인 것들을 강조하고 있어 깊은 내면의 영역이나 영적인 체험의 영역에 도달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내면의 세상으로 들어가 자신의 자아를 바라보며 그 안에서 하느님을 찾는 것을 한가한 이들의 사치(?)이거나 비생산적이고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적이고 표면적인 허상을 좇으며 살아가던 어느 날 자신의 내면에 찾아온 공허감과 감당하기 힘든 외적 내적 고통, 혹은 거부할 수 없는 죽음 앞에 우리는 결국 인간의 한계를 절감하게 된다. 이렇게 하느님의 때가 되었을 때 우리는 이미 우리를 찾고 계신 하느님, 이미 우리와 함께하고 계신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쌓아 놓은 그 모든 것이 무너지는 날 우리는 자신을 더 큰 사랑으로 받아 주시는 어진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나 자신이 하느님을 찾았고 그래서 그분을 만난 것이 아니라, 이미 그분은 늘 자신과 함께하고 계셨음을! 다만 자신이 눈이 어두워 그분을 알아뵙지 못했음을! 평화신문2020.02.19
![[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 (38)평신도를 통한 한국 교회의 쇄신, 그 대안은 복음화 8 - 평신도는 무엇을 전해야 하는가](//cpbc.co.kr/CMS/newspaper/2019/09/rc/761551_1.1_titleImage_1.jpg)
[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 (38)평신도를 통한 한국 교회의 쇄신, 그 대안은 복음화 8 - 평신도는 무엇을 전해야 하는가주님 부활과 구세주에 대한 믿음 갖고 복음 선포 그리스도인은 예수 부활과 구원에 대해 확실히 무장돼 있어야 한다. 사진은 예수님 무덤 위에 지어진 주님부활 성당 내부. 가톨릭평화신문 DB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렸다. 그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요한 21,11)그런데 왜 하필이면 153마리였을까요? 요한 복음사가는 왜 정확히 153이라는 숫자를 기록했을까요? 이에 대해 어떤 분들은 이렇게 해석하기도 합니다. 1에서 2를 더하고, 그 2에서 3을 더하고, 다시 4를 더하고…, 이렇게 17까지 더하면 153이 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17은 십계명 등 성경에서 중요한 10이라는 숫자와 일곱성사 등 7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말이죠. 좀 더 신빙성 있는 해설은 성경 전체를 라틴어로 번역(vulgata)한 예로니모(Hieronymus, 348~420) 성인의 주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아마도 예수님 시대에 갈릴래아 호수의 어종이 153종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고기를 다 잡았다는 것이죠. 이 해석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모나미 153 볼펜’입니다. 모든 종류의 문방을 다 갖추겠다는 마음으로 이름을 그렇게 붙인 것이죠.또 153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서울대교구에서 의정부교구가 분가되어 나갈 때, 당시 서울대교구장이셨던 정진석 추기경은 의정부교구로 가길 희망하는 사제들의 신청을 받았습니다. 그때 정확히 153명이 지원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 나는 ‘모든 다양한 성향의 신부님들이 의정부교구로 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하느님의 아들 예수어쨌든, 물고기가 많이 잡히자 순간 베드로는 그제야 눈이 떠지고, 주님을 알아봅니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카를로 마리아 마르띠니 추기경님이 해설하신 요한복음 21장에 따르면 “하느님은 우리가 용서를 청하기도 전에 용서해 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한 것에 대해 용서를 청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먼저 베드로를 찾아가 아침 식사를 준비해 주십니다.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용서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정확히 알아본 시점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생전에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그리고 타볼산에서 거룩한 변모를 통해 제자들에게 당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기적도 수없이 베푸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정확히 안 것은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입니다. 그때야 “아~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이 뜻이었구나” 하고 확신하게 됩니다.결국,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부활’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우리도 부활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이 부활 신앙에 대한 믿음과 전파가 바로 교회의 처음과 끝입니다.200년이 넘은 한국 교회는 아직도 복음화의 시작 단계에 머물고 있습니다. 1980년대 이후 한때 큰 행사들을 치르며 보여줬던 선교 열성이 이제 지나간 역사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2000년대를 지나오면서 복음 선포의 열성이 식어가고 복음화율이 인구증가율에 비해 감소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이 땅의 평신도에게 과연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에 대한 확신과 올바른 구원관이 서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평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가 참으로 죄와 죽음과 악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방시켜 주신 구원자임을 확신하고 있는지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분을 통해 구원에 확신을 갖는 평신도라면, 그리고 구원의 삶을 체험하고 사는 평신도들이라면, 예수님이 구세주임을 증거하고 선포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확실한 구원관 정립돼 있어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분에게로 사람들을 안내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은 평신도가 개인 구원에 대한 불확신과 구원관이 정립돼 있지 않아서입니다. 새천년복음화학교에 오는 많은 신자 중에 나름으로 신앙생활을 충실히 해왔다고 자부하던 분들도 구원에 대한 확신과 구원관이 정립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잘못되거나 편향되고 일방적인 지식만 갖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신앙을 만드는 분들까지 있었습니다.복음화를 위해 먼저 평신도들부터 복음화가 돼야 합니다.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지, 우리가 믿고 신앙하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이 누구신지, 그리고 그분을 믿고 따른다면 우리에게 어떤 결과가 오는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평신도 자신이 먼저 재복음화돼야 복음 전파의 필요성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정치우(안드레아, 새천년복음화학교 교장) 평화신문2019.09.03

귀국 해외선교사 재정착 도와드려요서울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선교센터, 14~18일 진행제6차 해외선교사 귀국 프로그램을 마치며 봉헌된 파견미사 중 오선희 수녀 등이 화분과 성경을 봉헌하고 있다. 25년간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에서 전문대 과정 시각장애인 재활 교육에 투신했던 홍영희(베로니카, 64)씨. 2017년에 귀국했지만, 너무도 변한 한국에 적응하느라 어려움이 컸다. 선교에 투신하느라 남아 있던 집 한 채도 다 팔았기에 재정적 어려움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해외선교사 귀국 프로그램이 있다는 소식에 그는 14∼18일 서울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선교센터에서 한국가톨릭해외선교사교육협의회(KCFMEA) 주최로 열린 제6차 교육에 참석해 기쁘고도 벅찬 4박 5일을 보냈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 오선희(헬레나) 수녀는 2014년부터 올해 4월까지 6년간 캄보디아 프놈펜, 타케오 선교지에서 간호와 가정방문을 하며 살다가 한국에 돌아와 귀국 프로그램을 소화했다. “선교지에서 돌아와 적응하느라 답답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던 참에 교육에 참가해 보니 적응과정에서 당연히 거쳐야 하는 전이 과정이더라고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것, 같은 선교 여정을 걸어온 분들과 공감하는 과정을 거치는 시간은 행복했습니다.”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수녀원 이점선(마욜라) 수녀는 2007년 아프리카 서남부 해안 국가 나미비아로 떠나 병원에서 사도직을 하다가 13년 만에 귀국했다. 이 수녀는 “한국에 돌아오니 편리하고 안전하고 좋으면서도 한국 생활은 굉장한 도전이 된다”며 “사실 한국에서 살았던 시간이 훨씬 길었는데도, 귀국 이후의 삶은 굉장히 서툴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지나온 선교 여정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것이 또 앞으로 선교 여정을 걸어가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내다봤다. 제6차 해외선교사 귀국 프로그램 강사는 호주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말린 힉슨 수녀가 맡아 선교지에서 돌아와 재정착하는 선교사들과의 재적응과 심리상담에 주력했다. 다른 문화 속에서 만난 하느님에 대한 나눔, 선교지의 ‘사막 체험’과 고국에서의 익숙한 문화를 통합하는 과정에서의 문화 충격과 무기력, 혼란에 대한 이해와 수용에 교육이 집중됐다. 이번 교육에는 귀국 선교사 6명, 이들 선교사와 협력 동반했던 동반자 6명 등 12명이 함께했다. 교육을 주관한 오기백(골롬반회 한국지부 신학원장) 신부는 파견 미사 강론을 통해 “바오로 사도가 선교 여정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과 지치지 않고 함께하신 것처럼 우리 또한 선교지에서 만나는 이들과 믿음으로 함께했던 것을 기억하자”면서 “이 자리에서 나가면서 이제는 새로운 출발, 새로운 시작을 위해 우리 자신을 봉헌예절과 기도, 나눔을 통해 하느님께 봉헌하자”고 당부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cpbc2019.10.23
![[생활속의복음] 대림제3주일- 우리가 기다리는 그분입니까](//cpbc.co.kr/CMS/newspaper/2019/12/rc/768699_1.1_titleImage_1.jpg)
[생활속의복음] 대림제3주일- 우리가 기다리는 그분입니까 임상만 신부 얼마 전 여행 중에 부산 자갈치시장을 들른 적이 있다. 번잡하지만 꽤 깨끗한 시장 좌판에 일행이 자리하자 인심 좋게 음식을 건네주는 주인아주머니 손가락에 묵주반지가 끼워져 있다. 반가운 마음으로 “아주머니 어느 성당 다니세요?” 하고 물으니 “무신, 지금은 성당 안 다녀요. 시누이 따라서 한동안 열심히 다녀봤는데 예수님과 나는 잘 안 맞나 봅디다. 예수 믿고부터 장사도 더 안되고, 몸까지 아프고….” 예상치 못한 대답에 매우 당황스러워 “그러면 그 묵주반지는 왜 아직도 끼고 있으세요?” 물으니 “이게 금반지라서 그러지요. 그리고 이걸 버리면 더 재수가 없을 것 같아서…”라며 말을 흐렸지만, 그 눈빛에는 한동안 예수님께 가졌던 기대와 실망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었다.오늘 복음에 옥에 갇힌 요한 세례자가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내어 메시아인지 아닌지, 아니라면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하는지 묻는 대목이 나온다.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마태 11,3) 요한 세례자는 예수께서 공생활을 시작한 지도 꽤 되었기에 이제는 신음하는 백성을 구해내기 위해 모종의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제자들을 통해 전해진 소식은 가관이었다. “우리는 메시아가 다스리는 나라를 준비하기 위해 매일 금식하면서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매일 먹고, 마시면서 정치적인 움직임은커녕 쓸모없는 가난한 자, 병든 자들만 상대하고 더욱이 세리와 창녀들과도 노닥거리며 사는데 그가 정말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가 맞는지 모르겠습니다.”구약 성경에 약속된 메시아의 활동은 이방 민족을 심판하시고 영광스러운 다윗 왕조를 온 세계 위에 세우심으로써 그 나라의 모든 병자가 치유되고 희년이 선포되며 낙원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로마의 속국이며 이를 전하는 자신은 오히려 감옥에 갇혀 있으니 마땅히 하느님의 나라, 그리스도의 왕권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고 의심한 것이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행하는 모든 일에서 이미 그 나라가 왔으니 의심하여 넘어지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그리고 당신이 행하신 일을 보고 하느님 나라가 이미 와 있음을 믿고 흔들리지 않는 자가 진정한 복된 자라고 격려하신다.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기대와 교회에 대한 기대가 있다. 그러나 자신들의 방식으로 그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곧 실망과 비난으로 바뀐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믿고 교회에 올인하고 있는데 나의 문제를 전혀 해결해주시지 못하는 예수를 계속 믿어야 하나?’ 하고 불만을 토로하며 교회를 떠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진정 하느님 나라를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통해야만 하고, 예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수용의 문제는 결국 자기가 넘어서야 할 과제라는 것이다.우리는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이 시기에 예수님께 대한 실망감으로 혹은 체념으로 넘어져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한다. 물론 우리의 예수님께 대한 기대와 바람은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님보다 더 소중할 수 없다. 예수님을 소유하지 못하면 우리의 구원도, 하느님의 나라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기대와 기도에 모조리 응답하시는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께서 선포하신 복음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하고, 자신이 지금 예수님과 멀리 있다고 여겨지면 요한 세례자처럼 예수님께 직접 질문해 보는 게 어떨까 한다.“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임상만 신부 (서울대교구 상도동본당 주임) 평화신문2019.12.11

주님 부활 대축일 맞아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새단장가톨릭평화방송 TV 편성표(2019.04.21~2019.04.27)가톨릭평화방송 TV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신비가 완성되는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아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그리스도 부활의 참된 의미를 되새길 수 있고 가톨릭교회의 여러 이야기가 담긴 프로그램을 소개한다.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 특별 생중계 가톨릭평화방송 TV는 서울 주교좌 명동대성당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거행되는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를 특별 생중계 한다. 부활의 기쁨을 가톨릭평화방송 TV와 함께 느껴보자. 21일 낮 12시,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 21일 오후 4시 55분, 밤 11시 주님 부활 대축일 특선 영화 ‘부활’ 테러로 가족을 잃고 시골에서 홀로 살던 한 노인. 숲 속에서 숨어 있던 젊은이를 발견하고, 그를 집에 데려와 손님처럼 환대하며 지낸다. 어느 날 경찰들이 방문해 젊은이가 살인자로 쫓기고 있음을 알게 되는데….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 그 사람을 다시 희망으로 이끌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벨기에 영화다. 21일 오후 13시 30분, 밤 9시 다큐멘터리 ‘PURA VIDA’ ‘PURA VIDA’는 스페인어로 아름다운 인생(Beautiful Life)이라는 의미의 인사말이다. 2019 파나마 세계청년대회(WYD) 현장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귀한 시간에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코스타리카와 파나마로 순례 여정을 떠난 청년들의 이야기다. 21일 밤 8시, 22일 저녁 7시, 24일 오후 4시, 25일 밤 9시 가톨릭 명사 특강 가톨릭교회 안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명사들이 들려주는 성경과 신앙, 삶의 이야기 ‘가톨릭 명사 특강’. 홍보위원회 사무국장 이도행 신부의 ‘수난과 부활을 중심으로 한 사진 성지순례’로 문을 연 특강. 문화홍보국 황중호 신부와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허영엽 신부가 ‘광야에서 만난 하느님’, ‘거꾸로 읽는 창세기’ 등 유익한 성경ㆍ신앙 강좌를 선보인다. 또 방송인 이인혜(데레사)씨와 시인 신달자(엘리사벳)씨가 ‘바라지 않던 기적’과 ‘진짜 나로 살아가는 힘’을 주제로 진솔하게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본방 매주 금요일 오후 1시 / 재방 매주 토요일 오후 3시, 일요일 오전 6시 5분, 밤 12시, 월요일 저녁 8시 cpbc2019.04.18

성당 입구에서 성수 뿌리는 예식과 장례 미사 분리해 거행장례 예식서와 상장례에서 주의할 점 주교회의는 최근 2년간 상장례와 관련된 예식서(「상장 예식」,「장례 예식」,「장례 미사」)를 잇달아 새롭게 출간했다. 위령 성월을 맞아 예식서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보고, 상장례 예식에서 주의할 점을 알아본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가톨릭교회는 16세기 중국에서 선교를 시작하면서 장례와 제사 문화를 접했다. 제사를 조상에 대한 감사와 공경을 드러내는 미풍양속으로 인정할지, 미신으로 여길지 100년간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1742년 베네딕토 14세 교황은 제사를 ‘미신 행위’로 규정하고 이를 엄격하게 금지했다.유교 문화가 지배적이던 당시 조선 사회는 제사를 금지하는 교회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신앙 선조들은 박해 속에서도 제사 대신 천주교식 장례를 치렀다. 이때 사용했던 상장례 예식서와 기도서가 바로 「천주성교예규」다. 「천주성교예규」는 로마 예식서와 중국 「성교예규」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우리 장례 문화에 맞게 예식을 재해석한 한국 교회만의 고유 장례 예식서다. 신자들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상장 예식」의 모본(母本)이기도 하다. 흔히 ‘연도책’이라고 불리는 「상장 예식」은 1989년 ‘상장례 토착화 연구 특별위원회’가 구성된 이후 십수 년에 걸쳐 각 분야 전문가의 연구와 검토 끝에 2003년 발간됐다. 연도를 비롯해 우제(초우, 재우, 삼우), 화장, 제사 등 우리나라 장례 문화 특유의 요소들을 가톨릭교회 장례 예식에 맞게 적용시켰다. 이후 새 성경이 나오고 미사경본이 바뀌면서 그에 맞게 수정된 책이 2018년 발간됐다. 수정본은 신자들이 보기 쉽게 책 크기를 키웠고, ‘한국 천주교 가정 제례 예식’을 뒷부분에 첨부했다. 제사를 금지하던 교황청 지침은 1939년 제사를 허용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제사를 미신이나 우상숭배가 아니라 ‘문화 풍속’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제사를 ‘허용’하지만 권장하지 않는다. 제사보다는 성당에서 위령 미사를 봉헌하기를 권고하고 있다. ‘한국 천주교 가정 제례 지침’에 따르면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허락한 제례는 유교식 조상 제사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조상에 대한 효성과 추모의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차원에서 그리스도교적으로 재해석한 예식이다. 따라서 한국 천주교 제례의 의미가 조상 숭배의 개념으로 오해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어본 장례 예식서는 교황청이 발간한 「장례예식 표준판」을 번역하여 1976년 출판됐다. 하지만 라틴어를 그대로 번역한 것이어서 한국의 상장례 문화가 전혀 고려되지 않은 한계를 지녔다. 이후 「상장 예식」이 완성되고 「상장 예식」 안에서 전례 예식 부분만을 따로 뽑아 만든 것이 「장례 예식」이다. 2004년 「장례 예식」(시안)이 만들어지고 나서 2018년이 돼서야 새 성경과 미사경본에 맞게 새롭게 번역, 출간됐다. 새 「장례 예식」은 그동안 관행처럼 행해지던 몇 가지 전례 사항을 수정했다. 우선, 장례 미사 전 성당 입구에서 사제가 시신에 성수를 뿌리고 기도하던 예식과 미사를 분리했다. 이전에는 성당 입구에서 하던 예식을 미사의 시작으로 보고, 사제와 유가족이 모두 성당에 들어오면 미사 시작 예식을 생략하고 본기도로 들어갔다. 새 「장례 예식」에 따르면 장례 미사 전 성당 입구에서의 예식은 ‘죽은 이의 집에서 하는 예식’으로 장례 미사와는 별개다. 성당 입구에서 예식을 했더라도 입당 후 미사 주례자는 제대에 인사하고 십자성호를 긋는 시작 예식부터 빠짐없이 미사를 거행해야 한다. 또 장례 미사 집전이 금지된 날(의무 대축일, 성주간 목요일, 파스카 성삼일, 대림ㆍ사순ㆍ부활 시기 주일)에도 위령 미사 기도문이 아닌 그 날의 전례 기도문을 사용하면 장례 예식을 거행할 수 있다. 장례 미사 때 고별식은 강복과 파견 예식을 대체하므로, 고별식을 했다면 강복과 파견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 「장례 미사」는 2019년 1월 사제들의 장례 미사 집전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간행됐다. 기존 「장례 예식」에서 미사 통상문과 독서 등을 수록했다. 또 장례 미사와 구분되는 ‘사망소식을 들은 뒤에 드리는 미사’ 기도문과 ‘성당 밖에서 거행하는 기일 미사’ 기도문도 포함했다. 가톨릭대 신학대 전례학 교수 윤종식 신부(의정부교구) 설이나 한가위와 같은 명절 때면 각 본당에선 조상을 기억하며 위령 미사를 봉헌한다. 이때 몇몇 본당에선 제대 앞에 제사상을 차린다. 가톨릭대 신학대 전례학 교수 윤종식(의정부교구) 신부는 “하느님께 드리는 흠숭의 공간과 조상께 드리는 공경의 공간은 명확하게 분리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자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가 오히려 신자들에게 미사와 제사가 같은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어서다. 윤 신부는 “미사가 완전히 끝난 뒤 상차림을 하고 연도를 바치거나 다른 장소에서 예식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윤 신부는 또 불교에서 유래한 49재를 지키는 풍습이 가톨릭교회 교리와 맞지 않는다고 했다. 49재는 죽은 뒤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윤회설에서 비롯한다. 죽은 뒤 하늘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한 삶을 누린다고 가르치는 가톨릭교회는 윤회를 인정하지 않는다. “49일에 맞춰 미사를 봉헌하기보다 신자라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성령이 강림한 50일을 기준으로 기일 미사를 봉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전례의 토착화와 사목적 배려를 강조하다가 자칫 교회 정신과 가르침에 어긋날 수 있는 위험이 있음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윤 신부는 이어 보다 토착화된 「장례 예식」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재 우리나라 화장률은 84.6%(보건복지부, 2017)에 이른다. 윤 신부는 “「상장 예식」에는 화장하기 전에 하는 기도가 포함돼 있지만 정작 전례에서 사용하는 「장례 예식」에는 수록돼 있지 않아 이 부분이 좀더 보완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목자에겐 장례 미사 집전뿐만 아니라 화장터, 장지까지도 동반하는 노력이 요청된다”고 말했다. 윤 신부는 상장례 예식에서 죽음이 슬픔이 아니라 하늘나라에서 새롭게 태어난다는 기쁨의 의미가 좀더 드러나기를 바랐다. 초기 가톨릭교회는 죽음을 슬퍼하기보다 파스카 신비를 묵상하며 감사의 노래를 불렀다. 윤 신부는 “연도에서 파스카의 의미가 담긴 시편 24편, 113편, 117편이 앞으로 추가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 시편은 초기 교회에선 불렸지만, 중세를 거치면서 생략됐다. 이와 함께 “죽음의 상징이 된 검은색 상복이 부활을 나타내는 흰색으로 복원돼야 한다”고 했다. “한민족의 상복은 흰색이었고, 삼베옷을 입었죠. 그리스도교 부활의 상징도 흰색입니다. 초기 교회 신자들은 장례식 때 흰옷을 입었고요. 지금 상황에선 현실적으로 흰색 양복을 입기는 어렵겠지만, 흰색을 복원할 방법을 고려해야 합니다.” 박수정 기자 평화신문2019.10.30
![[성당에 처음입니다만] (12)‘거룩하시도다’를 왜 세 번씩 하나요](//cpbc.co.kr/CMS/newspaper/2019/05/rc/753051_1.0_titleImage_1.jpg)
[성당에 처음입니다만] (12)‘거룩하시도다’를 왜 세 번씩 하나요하느님 거룩함 상징하는 숫자, 전례에 쓰이다 미사 시작과 함께 참회 예식 때 “제 탓이오”를 세 번 반복하며 오른손으로 자기 가슴을 친다. 이는 자기 잘못에 대한 아픔과 뉘우침을 표시하는 것이다. 가톨릭평화신문 DB 나처음: 몇 차례 미사에 참여하다 보니 조금씩 말이 귀에 들리기 시작하네요. 그런데 이상하게 몇몇 기도 말은 꼭 세 번씩 반복하더라고요. 아주 중요한 대목인가 봐요. 지금도 기억에 나는데 “거룩하시도다”와 “제 탓이오”를 세 번씩 반복하고, “제 탓이오”라고 할 때는 손으로 가슴을 치더라고요. 왜 그러는 건가요?조언해: 몰랐니? 영성체 모시기 전 소화가 잘되라고 그러는 거~는 뻥이야! 정말 나도 왜 그럴까 궁금해지네. 그동안 아무런 생각 없이 읊기만 했나 봐. 신부님, 저도 궁금해요. 성부, 성자, 성령 이렇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각각 죄를 통회하고 찬미를 하기 위해 세 번 기도하는 게 아닌가요?라파엘 신부: 모든 전례와 그리스도인 신앙생활에서 ‘3’을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연관 지어 묵상하고 행하려 하는 것은 칭찬할만한 모범이 된 습관이라 생각해. 그 의미가 꼭 맞지 않아도 모든 걸 하느님과 연관 지어 그분 뜻을 헤아리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바람직한 자세라고 할 수 있지. 그래서 언해를 칭찬해 주고 싶어. 신앙인으로 참 잘살고 있는 것 같아. 전례에서 숫자 ‘3’이 갖는 의미를 이해하려면 먼저 성경에 드러난 숫자의 속뜻을 알아야 한단다. 성경에서 ‘3’은 사물과 시간의 시작과 중간, 그리고 마침을 가리켜. 가장 대표적인 예가 언해가 말했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지. 그래서 성경에서 ‘3’은 ‘하느님의 세계’를 가리킨단다. 하느님께서 가장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만군의 주 하느님”(이사 6,3)이라며 천사들이 찬미하지. 예수님께서도 세 차례 유혹을 받으시고, 무덤에 사흘 동안 묻혀 계시다가 부활하시지. 이렇게 하느님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수가 전례에 들어오게 된 것이란다. 전례에서 숫자 ‘3’은 하느님의 거룩함을 환호하고 간청할 때 사용되고 있단다. 먼저 미사 시작과 함께 참회 예식 때 “제 탓이오”를 세 번 반복하며 오른손으로 자기 가슴을 친단다. 이는 자기 잘못에 대한 아픔과 뉘우침을 표시하는 거란다.또 ‘자비송’이라고 하는 “자비를 베푸소서”를 세 번 외친단다. 짧지만 하느님께 죄를 고백하고 자비를 간청하는 아주 훌륭한 기도란다. 이 기도의 대상은 주님이신 그리스도이시지. 첫 번째 “진심으로 뉘우치는 사람을 용서하러 오신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는 루카 복음 4장 18-19절의 말씀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들에게 해방을, 소경들에게 눈뜰 것을 선포하며 억눌린 이를 풀어주시는 주님께 자비를 청한단다. 두 번째 “죄인을 부르러 오신 그리스도님,…”은 마태오 복음 9장 13절의 말씀을 그대로 옮긴 것이란다. 또 마지막 세 번째 기도 “성부 오른편에 중개자로 계신 주님, …”은 요한 복음 16장 26-28절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약속을 상기시켜주는 기도란다. 이처럼 자비송은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주님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환호라고 설명할 수 있지. 파스카성야에 복음 환호송 ‘알렐루야’도 세 번 외치지. 알렐루야는 히브리 말 ‘할흘루야’를 그대로 음역한 전례 환호란다. “너희는 주님을 찬양하라”는 뜻이란다. 알렐루야는 사순시기를 제외하고는 항상 노래해. 성찬 예식 감사 기도 끝 부분에 바치는 “거룩하시도다”도 세 번 반복하는데, 감사송인 이 부분은 미사에 참여하는 모든 회중이 하늘의 천사와 성인들과 결합해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찬양하는 환호란다. 마지막으로, 영성체 예식 때 “하느님의 어린양”을 노래하는 평화의 찬가도 세 번 반복한단다.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 바치는 이 환호는 우리가 모실 성체와 성혈이 단순한 빵과 포도주가 아니라 파스카의 희생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고 주님의 자비를 간청하는 기도야.이처럼 미사 중에 참회 예식과 말씀 전례, 성찬 예식과 영성체 예식도 하느님의 자비와 거룩함을 찬미하기 위해 세 번씩 환호를 외친단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19.05.15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63)로마로 가다가 폭풍을 만나다(27,1-20)](//cpbc.co.kr/CMS/newspaper/2020/05/rc/778579_1.3_titleImage_1.jpg)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63)로마로 가다가 폭풍을 만나다(27,1-20)거센 풍랑으로 절망에 빠진 바오로 일행 바오로는 카이사리아를 출발해 배편으로 로마를 향하지만, 그가 탄 배는 크레타 섬 남쪽에서 폭풍을 만나 며칠 동안 표류하다가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다. 그림은 바오로의 로마 여행 경로의 일부. 출처=「주석성경」 바오로가 카이사리아를 떠나 배를 타고 로마로 갑니다. 하지만 도중에 폭풍을 만나 배에 탄 사람들 모두 엄청난 어려움을 겪습니다. 살아날 희망이 사라져 버린 것 같습니다. 로마로 출발하다(27,1-12)마침내 로마로 가기로 결정돼 바오로는 다른 수인들과 함께 ‘황제 부대’의 율리우스라는 백인대장에게 넘겨집니다.(27,1) 사도행전 본문에는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바오로를 로마로 보내기로 결정한 것은 관할권자인 페스투스 총독이었을 것입니다. 바오로가 황제에게 상소한 데 따른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저자는 여기서 “우리가 로마로 가기로 결정되자”라고 복수 1인칭을 사용합니다. 이 복수 1인칭은 바오로가 로마에 들어간 것을 전하는 28장 16절까지 계속됩니다. 사도행전에는 여기만이 아니라 다른 대목(16,10-17; 20,5-15; 21,1-18)에서도 “우리”라는 복수 1인칭이 사용되고 있지요. 이 대목들은 모두 여행 기록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우리’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은 사도행전 저자가 일종의 ‘여행일지’를 자료로 받아서 정리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현장감을 더하기 위한 문학적 기교의 하나라는 주장도 있습니다.사도행전 저자가 ‘우리’라고 표현한 바오로의 일행 중에는 테살로니카 출신인 아리스타르코스도 함께 있었습니다. 아리스타르코스는 바오로가 3차 선교 여행 중 에페소에서 지낼 때 동행한 인물입니다.(19,29; 20,4) 바오로 일행은 아시아 속주 곧 오늘날 터키 서쪽 지방의 여러 항구로 가는 아드라미티움 배를 타고 출발합니다. 아드라미티움은 아시아 속주의 위쪽 지방인 미시아에 있는 항구 도시입니다.배는 다음 날 카이사리아 북쪽 지중해 항구인 시돈에 닿았고 백인대장은 바오로에게 인정을 베풀어 “바오로가 친구들을 방문하여 그들에게 보살핌을 받도록 허락합니다.”(27,2-3) 바오로의 친구들이란 시돈의 그리스도 신자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배는 시돈을 출발하지만, 역풍을 피하고자 키프로스 섬 동쪽 해안을 타고 소아시아 곧 오늘날 터키의 남쪽 지방들인 킬리키아와 팜필리아 앞바다를 가로질러 리키아 지방의 미라에 이릅니다.(27,4-5) 당시 지중해 동쪽 팔레스티나 연안에서 소아시아 서쪽의 에게해 연안 도시들로 가려면 키프로스 섬 남쪽 바다를 거쳐서 가는 것이 거리상으로는 가깝습니다.하지만 늦여름부터 가을까지는 이 해역에 강한 서풍이 불어서 이 뱃길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역풍이 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바오로 일행은 역풍을 피해 키프로스 섬 동쪽 해안을 타고 터키 남부와 키프로스 섬 사이를 항해해 미라까지 간 것입니다. 미라는 로마 제국의 곡창지대 역할을 하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항구에서 곡물을 싣고 이탈리아로 가는 배들이 중간에 들르는 항구 도시였습니다. 백인대장은 이곳에서 이탈리아로 가는 알렉산드리아 배에 바오로 일행을 태웁니다. 배는 이탈리아 쪽으로 항해를 계속하지만, 맞바람인 서풍이 불어서 여러 날 동안 더디게 항해하다가 간신히 소아시아 속주 서남쪽 끝의 크니도스 항구에 도착합니다. 하지만 맞바람 때문에 서쪽으로는 더 이상 가지 못한 채 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크레타 섬 북동쪽에 있는 살모네를 거쳐 섬 남쪽의 ‘좋은 항구들’이라는 곳에 닿습니다.(27,6-8) 그 사이에 많은 시일이 흐릅니다. 단식일도 지나고 항해하기가 위험해지자 바오로가 나서서 “이대로 항해하면 짐과 배뿐만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위험하고 큰 손실을 입을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경고합니다.(27,9-10) 단식일은 유다인들이 9월 말에서 10월 초 사이에 지키는 ‘속죄일’을 가리킵니다. 이 속죄일 이후에는 바람이 거세고 파고가 심해 배편으로 여행하는 것이 위험해져서 이듬해 2~3월까지 뱃사람들은 사실상 항해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바오로는 이 점을 경고한 것입니다. 배의 실제 지휘권자인 백인대장은 바오로의 말보다 선주와 항해사의 말을 더 신뢰했지만(27,11) ‘좋은 항구들’이란 곳이 이름과는 달리 겨울을 나기에 좋지 않은 항구여서 섬 서쪽 끝 항구인 페닉스까지 가서 겨울을 나기로 의견을 모읍니다. 페닉스는 남서쪽과 북서쪽 바다를 다 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27,11-12) 계속된 폭풍으로 희망을 잃다마침 남풍이 부드럽게 불었습니다. 배는 닻을 올리고 크레타 해안에 바짝 붙어서 서쪽으로 항해합니다.(27,14) 해안에서 떨어지면 북풍에 그만큼 배가 더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에우라킬론’이라는 폭풍이 크레타 섬에서부터 몰아칩니다.(27,15) 이 폭풍은 크레타 섬의 이다 산맥에서 부는 거센 바람을 가리키는데, 작은 배들이 이 바람에 휩쓸리면 전복되거나 멀리 아프리카 해안까지 떠밀려 간다고 합니다. 바오로가 탄 배 역시 이 바람에 휩쓸립니다. 배 뒤에 달고 다니던 보조선을 배 위로 끌어올리지도 못한 채 이리저리 휩쓸리다가 ‘카우다’라는 작은 섬을 지나면서 바람이 가려진 틈을 타 간신히 보조선을 끌어올립니다. 그러나 폭풍에 배가 멀리 밀려가지 않도록 닻을 내린 채 떠밀려 다닙니다.(27,16-17) 북아프리카 리비아 앞바다에는 사르티스라는 곳이 있는데, 위험한 모래톱이 있어 배가 좌초되는 일이 잦았다고 합니다. 선원들은 이를 두려워해 닻을 내린 채 폭풍에 배를 내맡긴 것입니다. 그러나 폭풍이 계속되자 선원들은 이튿날 짐을 일부 바다에 던져 버립니다.(27,18) 배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이탈리아까지 가는 큰 배여서 배 안에는 이집트에서 실은 곡물들을 비롯해 이탈리아로 보내는 여러 짐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짐을 다 버릴 만큼 폭풍이 거세게 계속됐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안 되자 사흘째 되는 날 선원들은 배에 딸린 도구들마저 자기들 손으로 직접 바다에 내던져 버립니다.(27,19) 상황이 그만큼 절박했던 것입니다. 여러 날 동안 폭풍에 시달렸는데도 해는 별로 보이지 않고 바람만 거세게 불어댑니다. 사도행전 저자는 “마침내 우리가 살아날 희망이 아주 사라져 버렸다”고 표현합니다.(27,20)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이고 처절한지를 드러내 주는 표현입니다. 생각해봅시다바오로는 이미 세 차례의 선교 여행을 하면서 바다 여행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래서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내는 둘째 편지에서는 이렇게 쓰기도 했습니다. “나는…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입니다. 밤낮 하루를 꼬박 깊은 바다에서 떠다니기도 했습니다.”(2코린 11,25) 그렇다면 바오로는 바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항해를 계속하는 것의 위험성을 직감했고, 그래서 수인의 몸인데도 불구하고 나서서 경고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은 묵살당했고 그로 인해 배에 탄 사람들은 모두 절망적인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대수롭지 않은 듯이 보이는 사람의 말도 경청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가 더 잘 안다고,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이 때로는 더욱 큰 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르 4,9) 하신 예수님 말씀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alfonso84@hanmail.net cpbc2020.05.06
교회, 코로나 확산 막기 위해 적극적 조치 나서 광주·대구대교구 등 사목 지침 발표해 감염증 증상자 주일 미사 면제, 각종 행사도 잇따라 취소 광주대교구와 대구대교구는 5일과 6일 각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 관련 사목 지침을 발표하고, 감염증 주요 증상이 있는 신자들은 확진 판정 여부와 관계없이 주일 미사 의무를 면제한다고 밝혔다.주일 미사에 빠지는 신자들은 묵주기도 5단, 주일 미사의 독서와 복음 봉독, 선행 등으로 주일 미사 의무를 대신하면 된다.(「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74조 4항) 두 교구는 △미사 중 마스크 착용 허용 △양형 영성체 금지 △미사 중 악수, 포옹 등 직접적 신체 접촉 중단 △성수대 폐쇄 △본당과 시설, 기관에 손 소독제, 마스크 비치 △개인 성경과 성가집 사용 등을 권고했다. 대구대교구는 성체분배 때 하는 “그리스도의 몸”과 “아멘” 기도를 생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광주대교구는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 어려움이 하루빨리 진정되고 질병으로 고통받는 분들과 의료진들을 위해서도 함께 기도해 주기 바란다”며 “이번 지침은 정부에서 안정이 됐다고 공식 발표하기 전까지 유효하다”고 설명했다.이와 함께 확진자 발생 지역을 관할하는 서울대교구 몇몇 본당은 어린이 미사와 중ㆍ고등부 미사를 중단했다. 전국 각 교구에서도 예정된 주요 행사와 미사들이 잇달아 취소되거나 미뤄지고 있다. 서울 가락동본당(주임 이찬홍 신부)은 본당 관할 구역인 헬리오시티 아파트 주민 중 확진자가 발생함에 따라 토요일 어린이 미사와 주일 중ㆍ고등부 미사를 당분간 봉헌하지 않기로 했다. 교중 미사와 청년 미사 등 나머지 주일 미사와 평일 미사는 그대로 봉헌된다. 이찬홍 주임 신부는 “본당 통신문을 통해 ‘본당 신부의 관면이 있으니 미사에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고 전했다”며 “어린이 미사와 중ㆍ고등부 학생 미사는 관면을 줬고 성인은 각자 알아서 선택하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조치는 사목적 배려 차원에서 이뤄진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1월 약 1만 가구가 입주한 대단지인 헬리오시티 지역 인근 학교와 학원은 확진자가 발생한 후 휴교와 휴원한 상태다. 확진자가 발생한 서울대교구 제4 종로-성북지구 내 돈암동(주임 주경수 신부)ㆍ정릉4동본당(주임 강사집 신부) 등도 2월까지 어린이 미사를 중단하기로 했다. 성북동본당(주임 장혁준 신부)은 중고등부 겨울 피정을 취소했다. 서울시 교육청은 5일 감염 확산이 우려되는 성북구, 중랑구 내 학교와 유치원에 13일까지 긴급 휴업명령을 내렸다. 수원교구 성소국은 2월 열릴 예정이던 지원반 예비신학생 모임 등 4개 행사를 취소하고 교구 간부 신학생 및 예신 담당 신학생 연수만 정상적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사회복음화국도 상반기 본당 사회복지분과 교육을 4월로 연기하는 등 4개 행사를 연기하고 생명나눔 헌혈·장기기증캠페인 사전교육 등 3개 행사는 취소했다. 대건청소년회도 동아리 연합 봉사캠프 등 2개 행사를 취소했고 지도자 자격연수는 3월로 연기했다. 원주교구는 3월 25일 충북 제천 배론성지 내에 새로 설립된 ‘은총의 성모 마리아 기도학교’ 봉헌식을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일정을 연기하기로 했다. 교구는 7일 긴급회의를 열어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인해 기도학교 일정을 연기, 5월 25일 봉헌식을 거행하기로 했다. 인천교구는 13일 예정된 ‘지구를 위한 미사’를 취소ㆍ연기했다. 복음화사목국이 마련한 ‘새 반장 학교 교육’도 무기한 연기하기로 했다. 청소년사목국이 준비한 신입 교리교사 연수, 유ㆍ청소년부 전례연수와 청소년 전례음악 연수도 취소됐다. 안동교구는 14일~16일 계획한 청소년 견진 캠프를 취소하고 내년으로 연기했다. 2월에 열리는 공소 1일 교육과 구역장 반장 연수 등 교육 행사도 모두 미뤘다. 군종교구도 14일로 예정된 후원회 모임을 6월로 연기했다.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박수정·이지혜·이정훈·이학주 기자 전국 교구에 있는 주요 성지들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영향을 받고 있다. 순례자들이 대폭 감소하고 단체 성지순례 예약이 속속 취소되고 있다. 성지에서도 단체 순례자에게 방문 자제를 요청하는 상황이다. 일부 성지는 성지 안내를 중단하거나 기념관을 폐쇄했다. 또 성지마다 성수대에 성수를 비우고 손 소독제를 비치하며, 마스크를 제공하는 등 감염증 확산 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울 새남터순교성지는 미사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미사 전후 바치던 묵주기도와 성인호칭기도를 생략했다. 전례 때 안수 의식도 생략하고 성가는 기도문으로 대체했다. 또 3일부터 성지 안내를 중단하고 기념관을 폐쇄했다. 서울 절두산순교성지와 서소문 성지역사박물관, 서울대교구 역사관은 단체 순례자에게 성지 방문 예약을 취소하거나 미루기를 요청하고 있다. 세 곳 역시 성지 해설을 중단했다. 대구대교구 관덕정순교기념관은 순례자들에게 마스크를 나눠주고, 손 소독제 사용 후 입장을 요청하고 있다. 또 한 달에 두 차례 국내 성지를 방문하는 ‘관덕정 국내 성지순례’ 프로그램의 3월 일정을 취소했다. 원주교구 배론성지와 청주교구 배티성지는 순례객이 평소보다 절반 이상 줄었다. 손 소독제를 비치하고 직원들은 마스크를 착용한 채 순례객을 맞고 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평화신문2020.02.12
![[사랑이피어나는곳에] “빨리 털고 일어나 주님 말씀 전하고 싶어요”](//cpbc.co.kr/CMS/newspaper/2019/11/rc/767057_1.1_titleImage_1.jpg)
[사랑이피어나는곳에] “빨리 털고 일어나 주님 말씀 전하고 싶어요”2년 전 혈액암 판정받고 투병,,
30년째 우울증도 앓고 있어,,
성탄에 세례 받으려 준비 중 김정임(가운데)씨가 자신을 찾아와 준 자양동본당 임용선(왼쪽), 김해주 분과장과 함께 주님의 기도를 바치고 있다. 김정임(예비신자, 서울 자양동본당)씨가 윗입술을 들어 보이자 이가 없는 휑한 잇몸이 드러났다. 윗니는 모두 빠졌고 썩어가는 송곳니가 위태로워 보였다. 어금니 쪽 잇몸도 무너져내려 한눈에 봐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뭘 제대로 먹을 수가 없어요. 교수님께서 암환자는 몸무게가 빠지지 않도록 잘 먹어야 한다는데…. 한 달 사이에 2kg이 빠져서 너무 무섭습니다. 도와주세요.”김씨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건 저를 주님께 인도해 준 성당 분들이 계셔서”라며 임용선(노엘) 사회사목분과장과 김해주(엘리사벳) 생명분과장 손을 붙잡으며 고맙다, 감사하다며 연신 머리를 숙였다. 2년 전 혈액암 판정을 받은 김씨는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가까스로 마쳤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임대주택 단칸방에서 혼자 사는 그는 혈액암 수술과 항암 치료를 홀로 견뎌내며 날마다 눈물로 지새웠다. 두 달에 한 번씩 병원에 정기 검진을 갈 때면 혹시 암이 재발한 건 아닌지, 다른 곳으로 전이된 건 아닌지라는 생각에 늘 불안했다. 그러다 지난해부터 이가 아프고 흔들리면서 빠지기 시작하더니 더는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치과에선 항암 부작용이라고 했다. 30년째 앓고 있는 우울증은 더 심해져 임대주택 단칸방에서 단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김해주 생명분과장은 “처음 가정 방문을 왔을 땐 자매님 상태가 보기 힘들 정도였다”면서 “이야기도 횡설수설했고, 표정도 너무 어두웠다”고 말했다. 김정임씨는 1980년대 3년간 일본에서 밤무대 가수로 활동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때 번 돈을 정말 한 푼도 안 쓰고 친언니에게 보냈는데, 한국에 돌아와 보니 빈털터리가 돼 있었다”고 흐느꼈다. 그는 일본에서 강도를 당해 칼에 찔렸다가 간신히 살아났다. 강도 트라우마로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됐기에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때부터 정신과 약을 먹으며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나마 뜸하게 연락하던 언니는 그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는 연락을 끊어버렸다.김씨는 “생명분과장님과 사회사목분과장님 덕분에 다시 밖에도 나갈 수 있게 됐다”면서 “주일마다 미사에 참여하고 교리를 배우는 시간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마리아’라는 세례명으로 다가오는 성탄에 세례를 받는다.“최근에 루카복음을 다 썼어요. 성경 필사할 때면 두려움도 불안도 사라지고 오로지 주님 말씀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고통을 잊을 수 있었어요. 빨리 이도 치료하고 몸을 회복해 저도 주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요.”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후견인-임용선(노엘, 서울 자양동본당 사회사목분과장)“아픈 가운데서도 예비자 교리를 열심히 받으며 하느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 김정임씨에게 가톨릭평화신문 독자들께서 꼭 힘이 되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성금계좌(예금주 : 가톨릭평화방송)국민 004-25-0021-108 농협 001-01-306122 우리 454-000383-13-102※김정임씨에게 도움 주실 독자는 24일부터 30일까지 송금해 주셔야 합니다. 이전에 소개된 이웃에게 도움 주실 분은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담당자(02-2270-2421)에게 문의 바랍니다. 평화신문2019.11.20

풀뿌리와 맹물로 연명했지만 나눔의 기쁨 가득한 신앙 공동체[순교자 성월 특집] 박해 시대 신앙을 지킨 힘, 교우촌 공동체 옹기를 구워 팔며 생계를 유지하던 교우촌 한 가정집. 가톨릭평화신문 DB 천주교 신앙을 믿는 이들이 한데 모여 살며 마을을 이룬 교우촌(敎友村)은 조선 시대 박해 시기 생겨난 신앙 공동체다. 박해를 피해 삶의 터전을 버리고 온 이들은 서로에게 부모, 형제, 자매가 돼주며 서슬 퍼런 칼날 아래에서도 굳건하게 신앙을 지켰다. 순교자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었던 데는 교우촌을 통해 하늘나라의 삶을 지상에서 살았던 체험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선교 사제들은 교우촌 신자들의 삶에서 가진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며 신앙생활을 한 초대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봤다고 고백했다. 순교자 성월을 맞아 혹독한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이어온 교우촌 공동체의 삶을 기억하며, 지금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생활 환경박해를 피해 신자들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길도 나지 않은 산골짜기에서 터전을 일구는 일은 험난했다. 땅이 척박해 아무도 살려고 하지 않는 곳을 찾아다녔다. 밤이면 불빛 하나 없는 암흑이었고 곳곳에 맹수들이 우글거렸다. 호랑이에게 물려 죽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런 곳에서 신자들은 화전(火田)을 일궈 잡곡을 심었다. 산나물과 과일, 약초로 연명했다. 여름 장마철에는 급류에 휩쓸려 가고, 겨울에는 폭설에 파묻히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사람들에게 거처를 들켰다 싶으면 빨리 다른 곳으로 도망가야 했다. 거처를 너무 자주 옮겨 다니다 보니 걸인보다 더 심한 굶주림을 겪었다. 모방 신부는 편지에서 “영하 10~12℃가 되는 한겨울에 거의 벌거벗은 어린애들이 추위로 새파랗게 얼어가는 것을 보았다. 어떤 시기에는 산에서 뜯어 온 풀뿌리와 맹물이 교우들의 유일한 양식”이라고 전했다.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비참한 생활이 이어졌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는 천주교 신앙이 더욱 굳건해지고 전국적으로 퍼지는 계기가 됐다. 여진천(원주교구, 수원가톨릭대 교수) 신부는 2018년 11월 ‘교우촌 믿음살이와 그 지도자들’을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 “박해를 피해 늘 떠나야 하는 특성 때문에 물질 중심주의 삶보다는 하느님의 섭리에 온전히 맡기는 삶이 됐다”고 분석했다. 신앙 생활교우촌 신자들은 함께 모여 기도하고 성경을 읽었다. 또 교리를 서로 가르쳐 주며 신앙을 이어갔다. 주일이면 기도문을 외고, 교우촌 회장의 복음 해설을 들으며 하느님 말씀을 배웠다. 사제가 교우촌에 오는 날이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새 옷으로 갈아입고 설레는 마음으로 사제를 기다렸다. 움막은 성당이 되고 나무판자는 제대가 됐다. 흙벽에 박아 놓은 십자가가 유일한 장식이었다. 사제가 성사를 마치고 돌아가면 아쉬움에 모두가 눈물을 흘리고 통곡했다. 극기와 단식은 일상이었고 사순 시기에는 더욱 엄격한 생활을 이어갔다. 글을 알고 학식이 있던 이들은 이웃들에게 기도문을 알려주고 교리를 가르치는 것을 본분으로 알았다. 이들은 밤낮으로 교회 서적을 필사해서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천주교를 알렸다. 교우촌 신자들은 교리서와 기도서를 소중하게 여겼다. 박해가 극렬했던 때에는 혹시라도 사람들에게 들킬까 봐 성경과 교리서, 성상을 숨겨놓고 지냈다. 교우촌이 발각되고 신자들이 줄줄이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이들은 감옥 안에서 함께 모여 기도를 바치며 신앙생활을 이어갔다.신앙 실천샤를 달레(1829~1878) 신부는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이렇게 전하고 있다. “모든 이가 그 가난한 가운데서도 아무것도 없는 형제들에게 도움을 베풀 줄을 알았고, 과부와 고아들을 거두어 주니 이 불행한 시절보다 우애가 더 깊었던 일은 일찍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일을 목격한 노인들은 그때에는 모든 재산이 정말 공동으로 쓰였다고 말한다.” 교우촌 신자들은 새 신자 가족이 교우촌에 오면 누구라 할 것 없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내줬다. 누구도 받아주지 않는 과부와 고아도 교우촌에선 굶주리지 않고 살 수 있었다. 외교인들은 과부들이 동냥하러 다니면 ‘천주학쟁이들’한테 가보라고 할 정도였다. 하느님 말씀에 따라 궁핍한 가운데서도 애덕을 실천하며 쌀 한 줌, 물 한 모금이라도 나누는 삶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재산이 있는 이들은 자신의 집을 공소로 쓰도록 내놓았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을 도왔다.순교자들의 증언“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면서 함께 천국으로 올라가자 하시는데, 어떻게 배교할 수 있겠습니까. 이 잠시 지나가는 목숨을 보전하려고 참된 생명과 영원한 행복을 잃을 수 있겠습니까.”(이시임 안나)“사람의 가장 큰일은 천주를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고 천국을 얻는 것입니다. 이 큰 본분을 채우지 않고 세월을 허송한다면, 살아서 무엇하겠습니까.”(김종한 안드레아)“제가 아들을 보지 못할지언정 저는 저의 하느님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최 비르지타)“문초를 당하면 모든 것을 나에게 뒤집어씌우시오. 천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최봉한 프란치스코)“예수 그리스도를 위하는 것이라면 비록 사형을 받을지라도 달게 여기겠습니다.”(홍필주 필립보) cpbc2019.09.17

종교에 자유가 필요한 것처럼 인간의 자유 위해 종교 필요알베르 카뮈와 유발 하라리 종교 비판, 21세기 종교의 블루오션으로 변모될까 「호모데우스」 저자 유발 하라리(왼쪽)와 소설 「페스트」 저자 알베르 카뮈. 전염병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19가 낳은 현상’으로 평가받는 알베르 카뮈(1913~1960)의 소설 「페스트」는 세계 최대 인터넷 서점 아마존의 베스트셀러 목록(6일 기준) 프랑스 문학 1위, 유럽 문학 2위, 그리고 세계 문학 8위를 탈환했다. 카뮈 자신이 “가장 반-그리스도교적인 책”이라 칭한 창조된 세계에 대한 반항의 의미를 다룬 「페스트」. 사람들은 이제 성경보다 이 책을 펼쳐보기 바쁘다. ‘유발 하라리 현상’도 이에 못지않다. 세계 언론은 서로 앞다투어 인류가 직면한 최대의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종교지도자가 아닌 역사학자에게 자문한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제기된다. 코로나19 현상이 낳은 카뮈의 현재성과 하라리의 천재성을 통해 드러난 종교의 과제와 의미는 무엇인가? 대유행 사태 이후 종교가 자신의 추상성에서 내려와 현실의 구체성에 기반을 둔 진리의 보편성을 증명할 수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두 지성의 메시지를 살펴본다. ▨ 연대의식의 문제, 코로나19 속 카뮈의 현재성왜 사람들은 다시 「페스트」(1947)를 읽고 있을까.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최대 걸작’이란 평을 받은 이 소설은 알제리의 항구도시 오랑을 무대로 한다. 「페스트」는 전염병이 휩쓴 잔혹한 현실과 죽음 앞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야말로 이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진정한 반항임을 이야기한다. 이 소설의 번역가 김화영(책세상)은 “「페스트」 착상의 기폭제가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며, 작품의 첫 착상에서부터 페스트는 ‘전쟁’의 내면화 과정을 상징하기 위하여 사용된 것”이라 평가했다. 카뮈는 폐쇄된 도시를 설정함으로써 인간이 이미 갇힌 존재임을 일깨워주며, 이런 현실 속에서 각 개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해 묻는다. 또 다른 번역가 유호식(문학동네)은 “「페스트」는 한 개인이든 아니면 오랑 시민처럼 집단 전체든 위기의 순간에 인간이 향해 가야 할 연대의식의 지평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이어 “카뮈에게 순전히 개인적인 상황은 없다. 한 상황은 우리 모두의 상황이 되고 공동의 해결책을 요구한다”면서 이 작품이 “개인의 일이 집단의 관심사가 되고 집단에 닥친 사건 때문에 개인들이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강조한다. 연대에 대한 중요성은 「사피엔스」와 「호모데우스」의 저자 역시 견해를 같이한다. 지난 4월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와의 인터뷰에서 하라리는 “인류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닌 인간 내면의 악마인 증오와 탐욕, 무지”라고 지적했다. 그는 “연민과 국제적 연대를 통해 현 위기를 타파해나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 하라리, 코로나19 이후 죽음에 대한 인간의 태도 달라질 것하라리는 코로나 이후 죽음에 대한 전통적 인식에 대한 변화를 예측했다. 4월 20일 영국의 일간지 ‘더 가디언’ 기고에서 그는 “모든 기술적 문제에는 기술적 해법이 있다.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예수의 재림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실험실의 과학자 몇 명이면 된다. 과거에 죽음이 성직자와 신학자들의 전문분야였던 반면, 이제는 실험실의 공학자들이 그 권한을 인수받았다”고 지적했다. 이는 2015년 출간된 「호모데우스」를 통해 분석한 내용과 같으며 자신의 견해가 코로나 사태에도 변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같은 책에서 하라리는 “현대의 과학과 문화는 삶과 죽음에 대해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한다. 이 둘은 죽음을 형이상학적 신비로 간주하지 않으며, 당연히 죽음에서 인생의 의미가 나온다고 보지도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더 가디언’에서 그는 “인류 최고의 지성들은 이제 더는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파악하려 애쓰지 않는다. 대신에 그들은 삶을 연장하기에 바쁘다”며 과학기술 발달로 인해 인간이 죽음에 대한 종교적ㆍ형이상학적 의미를 찾기보다 연장에 그 의의를 둘 것임을 예고했다.▨ 미래에도 인간 실존의 문제는 미해결로 남을 것동시에 카뮈와 하라리는 과학이 가져다줄 장밋빛 미래에 열변을 토하기보다, 여전히 남아있게 될 인간사의 문제와 불평등을 인지한다. 사후에 출간된 「작가수첩Ⅱ」에서 카뮈는 “과학은 기능을 설명할 뿐 존재를 설명하지 않는다”며 과학의 범위와 역할에 관한 한계점을 그은 바 있다. ‘더 가디언’에서 하라리는 “의사들은 인간 존재의 수수께끼를 해결하지는 못하며, 단지 연장된 삶을 제공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만일 수세기 안에 인간의 생명이 무한정으로 연장되더라도, 그것은 소수의 억만장자의 자녀들에게나 가능한 것이지 대부분은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며 생명 연장이 실제로는 일부의 특혜로 남을 가능성이 높음을 지적했다. ▨ 카뮈 × 하라리, “정치적 전체주의에 저항하라”두 지성이 전염병 위기 속 의견 수렴이 이루어진 부분은 ‘전체주의’에 대한 경고이다. 평론가들은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카뮈가 전쟁과 전체주의, 나치즘을 마치 페스트와 같은 대재앙으로 여겼음을 지적한다. 지난 3월 ‘파이낸셜 타임스’에 게재된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의 세계’에서 하라리는 시민들은 개인의 사생활과 건강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할 필요가 없으며 이 둘 모두를 누릴 권리가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일부 국가들을 예로 들어 코로나 위기 속 시민의 건강을 위한 명목으로 ‘전체주의적 감시 체제’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는 현상을 경고하며, ‘시민역량 강화’를 통한 상호 간의 불균형을 맞추지 않으면 개인의 사생활과 자유의 침해, 이에 따른 사후적인 피해 또는 습성이 국가에 남아있을 수 있음을 지적했다. ▨ 인간의 의식과 자유에 관한 상호 간의 사상적 일치는 존재종교의 가치와 의미에 타격을 가한 하라리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의식과 자유에 관한 상호 간의 사상적 일치는 존재한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세상의 빛」(2010)에서 “인간이 발전하면서 능력이 커지기는 했지만, 도덕적이고 인간적인 성숙과 잠재력까지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다시 내적 균형을 되찾아야만 하며 정신적인 성장도 필요하다는 것을 시대의 커다란 역경들을 통해 점점 더 절감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는 하라리가 「호모데우스」에서 “의식과 지능은 다른 것이다. 인류가 컴퓨터의 지능을 개발하고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의식은 무엇이며, 인간의 의식을 더 개발하고 성장시키기 위해서 연구하고 투자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와 일맥상통한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또 「미래의 도전들」(2005)에서 “과학 발전이 ‘새로운 억압들’과 ‘새로운 지배계층’을 양산하는 것을 우려하고 경고”한 바 있다. 하라리는 전체주의적 감시가 팽배해져 현실의 완벽한 통제가 곧 개인에 대한 완벽한 감시와 통제로 이어질 수 있음을 지적했는데, 이는 인간 자유의 박탈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교황은 “종교에 자유가 필요한 것처럼 자유를 위해 종교가 필요함”을 강조하며 “과학이 인간을 존중하는 데 기여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고유한 척도로서 과학의 성공 자체만을 지향할 때 과학의 진정한 본질은 사라지고 만다”고 주장한다. 과학이 종교를 이미 대체했으며 실리콘밸리가 결국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하라리의 견해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한 과학의 찬양에 대한 건전한 비판세력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여전히 종교의 역할로 남게 된다. 카뮈와 하라리의 견해들을 다각적으로 수용하고 검토한 새로운 사고의 영역 위에 그리스도교를 포함한 종교 분야의 블루오션이 21세기에 탄생할 수 있을까? 그것의 여부는 오늘날 보여지는 종교의 행보에 따라 결정될 소설 「코로나19」에 등장할 사제의 캐릭터가 말해줄 것이다. 「페스트」의 파늘루 신부가 그러했듯이 말이다.정석원 인턴기자 cpbc2020.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