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세기 넘게 펴낸 책… “하느님이 대신 써주셨죠”정진석 추기경 58번째 책 「위대한 사명」복음 전파에 전념한 사도들의 일생 정리관련 성화와 교부들의 글도 함께 소개 「위대한 사명」을 펴낸 정진석 추기경은 “주님 곁에서 복음 전파에 전념한 선배 사도들의 일생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었다”고 말했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이 선택한 사람이에요. 바로 하느님이 ‘너 있어라’ 했기에 있게 된 거예요. 하느님이 사람을 만들 때 ‘너는 나쁜 놈, 폐물(廢物)’이라며 그렇게 창조하신 일은 없다고요. 사도들이 예수님을 따라 산 것처럼, 우리도 세례성사를 받고 예수님의 제자로 사도처럼 살도록 부르신 거예요.”전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이 58년째 약속을 지키고 있다. 부제 시절, 함께 문예부 활동을 했던 동기 고 박도식 신부와 1년에 책 한 권을 내자는 약속이다. 동기는 하느님 곁으로 떠났지만, 정 추기경은 자신의 니콜라오 축일(12월 6일)에 맞춰 해마다 책을 내고 있다. 백발이 성성한 구순을 앞두고 20대 때 약속을 지켜나가는 게 무모한 도전 같지만, 신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은 늙지 않았다. 정 추기경은 58번째 출간한 「위대한 사명」(가톨릭출판사, 1만 8000원)은 교회에 기둥이 된 구세주의 협조자들을 조명했다. 요한 세례자를 비롯해 열두 사도들과 바오로 사도의 삶과 행적을 소개했다. 사도들의 인간적 결함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복음 선포의 사명에 목숨을 바친 사도들의 삶을 묵상했다. 장마다 사도들의 일생을 펼쳤다. 사도들과 관련된 성화도 실었다. 분도출판사가 펴낸 「교부들의 성경주해」를 인용해 아우구스티노, 요한 크리소스토모 등 교부들의 글도 소개했다. 책에서 눈길이 머무는 곳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도들의 인간적 결함이다. 닭이 울기 전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던 베드로, 다른 사도들을 제쳐 두고 “주님의 왼편과 오른편에 자신들을 앉혀달라”고 뻔뻔하게 청원한 야고보와 요한 사도 등 의심 많고 뻔뻔하며, 경솔하고 성급한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이들의 공통분모라면, 인간적 염려와 잣대에 앞서 주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특별한 작품입니다. 그걸 기본 바탕으로 생각하면, 우리는 명 작가의 작품인데 누구도 허술하거나 미흡할 수가 없지요.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은 작품 만들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삶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도 사도처럼 살도록 하느님이 부르셨어요.”정 추기경은 “주님 곁에서 복음 전파에 전념한 선배 사도들의 일생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었다”면서 “사도들의 모습을 찾고, 묵상하는 시간은 은총의 시간이었다”고 털어놨다. “하느님이 도와주셨다는 말도 부족합니다. 하느님이 대신 써 주셨어요. 내가 아무리 글 쓰는 재주가 있더라도 건강과 시간을 주시지 않았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에요.” 그는 책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이 책은 하느님의 작품이지, 사람의 작품이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정 추기경은 60년 가까이 교회에 몸담으면서 직책에 따른 임무 수행에 지장이 없도록 새벽에 글을 썼다.내년이면 주교 수품 50주년을 맞는 정 추기경은 “하느님께서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순간부터 감사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각자는 하느님의 특별한 지향을 가진 피조물로 하느님은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고 했다. 정 추기경은 서울대교구장 재임(1998~2012) 시절 2020년까지 복음화율을 20%로 끌어올리자는 선교 운동을 펼쳤다. 정 추기경에게 2020년이 한 달 남짓 남았다고 하자, “내가 사제품을 받을 때 신자들이 1%가 안 됐다”면서 “제가 죽기 전에 신자율 10%를 보게 해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했는데 2020년까지 살 수 있는 은총을 주셨다”며 웃었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cpbc2019.11.27

‘이미’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토머스 머튼의 영성 배우기] 24. 토마스 머튼이 말하는 기도 토마스 머튼은 “기도는 우리 삶 안에 다른 차원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기도에 대해 무엇인가 도달해야 할 목표가 있고 이를 위해 기도의 기술을 습득하여 점진적 성장이나 수평적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배워왔다. 그러나 머튼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기도의 삶 안에서 다른 차원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모호한 목표에 도달하고자 너무 많은 가르침을 받아왔습니다. 기술적으로 여러분은 자신이 반드시 한 지점에서 출발하여 다른 지점으로 또 다른 지점으로 나아가는 기도에 대한 수평적인 과정이 있다고 여겨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기도의 삶이 이루어야 할 길이 아닙니다.”지금 나의 삶의 자리에서 기도 시작해야그렇다면 머튼이 말하는 기도를 통한 삶의 다른 차원을 깨닫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머튼이 강조하는 것은 기도는 무엇을 획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이미 우리 안에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머튼의 말을 들어 보자. “기도 안에서 우리는 이미 무엇인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존재 그리고 여러분이 이미 가지고 있는 자신의 깊은 곳에서, 그리고 여러분이 이미 그곳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에서 기도의 삶을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있고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은 우리가 이미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체험하는 것입니다.”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모든 것을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 삶 안에 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내면에서부터 지금 나의 삶의 자리에서 기도를 시작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수도승만이 아니라 모든 이가 관상의 삶으로 초대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으로 창조된 모든 이들 안에는 이미 ‘관상의 씨앗’이 심어져 있다. 다만 어떤 이는 그 씨앗이 자라고 성장해 열매를 맺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아직도 땅속에 묻혀 있다. 기도는 이미 우리 안에 주어진 예수님과 일치할 수 있는 사랑의 씨앗을 자라고 성장하도록 돕는다. 이러한 성장에 있어 유익한 기도는 관상기도만이 아니다. 모든 기도의 방법들이 예수님과의 만남을 돕는 도구들이다. 관상기도를 하는 이들은 염경기도를 바치는 이들을 아직도 초보적인 수준에서 기도하는 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모든 삶 속에서 주님과 영적 친교 가능필자 역시 성체조배 시간에 묵주기도를 바치는 동료 수도승에게 “이제 수도승이 되었으니 좀 더 차원이 높은 묵상기도나 관상기도를 바치라”고 권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도 생활에 깊이 들어갈수록 모든 기도 방법뿐만 아니라 모든 삶 속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만날 수 있고 그분과의 깊은 영적 친교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는 머튼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관상적인 기도만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1965년 이후 홀로 은둔처에 살면서 자신의 일과를 수도원장에게 보냈는데, 여기에 머튼이 하루 중에 어떤 기도를 바쳤는지 잘 나타나 있다.새벽2:14 기상, 아침기도5:00 아침식사5:30 기도, 렉시오 디비나7:30 제1시경과 묵주기도8:00 수작업 및 허드렛일9:30~ 1:00 제3시경, 제6시경, 제9시경. 개인 미사 위해 수도원으로 이동. 감사와 시편 찬양. 점심 식사. 은둔처로 귀가. 휴식시간 혹은 가벼운 독서.오후 1:00 저녁기도2:14 글쓰기, 일 혹은 산책4:15 독서기도5:00 저녁식사 및 끝기도6:00 신약성경 읽기, 묵상, 성찰7:00 취침위에서 보듯이 머튼은 성무일도와 미사를 비롯하여 염경기도, 묵상기도, 관상기도를 모두 바쳤으며, 독서와 휴식, 노동을 적절히 배치하여 하루를 보냈다. 이것만이 유일하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그 속에 갇히게 된다. 불고 싶은 곳으로 부는 성령께서 언제 우리를 찾아오실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기도할 줄 모르는 우리를 위해 함께 기도하시는 분도 바로 성령이시다. 평화신문2019.12.11
 어떻게 해야 신앙을 가질 수 있나요](//cpbc.co.kr/CMS/newspaper/2019/12/rc/768681_1.2_titleImage_1.jpg)
[성당에 처음입니다만](39·끝) 어떻게 해야 신앙을 가질 수 있나요하느님 부르심에 응답하면 주어지는 선물 믿음은 하느님 부르심에 대해 응답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자유롭게 순종하는 것이 바로 ‘믿음’, ‘신앙’이다. 나처음: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요. 그런데 어떻게 해야 믿음이 생기는지 모르겠어요. 하느님을 믿는다는 게 생각보다 싶지 않네요.조언해: 저도 신앙생활을 할수록 믿음이 깊어지기는커녕 부족함만 느껴요. 심적 부담이 너무 커요. 어떻게 하면 기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나요? 라파엘 신부: 처음이가 세례를 받기로 마음을 굳힌 모양이구나. 우선 축하해. 신앙은 그 자체로 ‘선물’이야. 믿음은 하느님께 대한 한 인간의 통찰 결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란다. 베드로 사도가 주님의 제자 중에서 처음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때 예수님께서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마태 16,17)이라고 하신 말씀에서 우리는 믿음이 하느님의 선물임을 알 수 있어요.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누구에게나 이 선물을 주시지는 않아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끼리 수군거리지 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요한 6,44)라고 하셨지. 그러면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실 사람은 누굴까? 그 사람은 하느님께 마음을 열고, 하느님의 은총에 저항하지 않는 사람들이야. 성경은 “믿음이 없이는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다”(히브 11,6)고 가르치고 있단다. 이처럼 믿음은 ‘하느님 부르심에 대해 응답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이지. 하느님의 부르심에 자유롭게 순종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 ‘신앙’이란다.언해는 하느님을 뵌 적이 있니?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지. 그런데 어떻게 하느님께서 존재하신다고 믿을 수 있을까? 사실, 하느님께서는 여러 방법으로 당신을 인간에게 계시하셨단다. 예언자를 통해, 문화와 시대의 변천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당신을 알아보고 믿음을 갖도록 하셨단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결정적으로 참하느님이시며 참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당신을 완전히 드러내 보여주셨지.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으로써 하느님의 신비를 선포하셨고, 구원행위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생활한 신앙을 가질 수 있게 하셨단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을 알 수 있고 뵐 수 있어요. 아울러 우리는 교회 안에서 하느님께 대한 올바른 신앙을 키워갈 수 있어요. 예수님께서 교회를 통해 당신을 드러내시며, 교회는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때문이지. 이처럼 하느님께 대한 올바른 신앙을 가지려면 우선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이신지를 잘 알아야 해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궁극적으로 계시하신 게 바로 ‘예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를 알려 주시는 분은 바로 ‘성령’이시란다.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을 주님이시다’고 할 수 없기”(1코린 12,3) 때문이야. 따라서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곧 하느님 아버지를 아는 것이며 또 하느님의 성령 안에서 생활하는 것이야.예수님은 당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고 하셨지.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서 걸어가셨고 제시해주신 길을 걷는 사람들이지. 이 말은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시해 주신 길을 통해서 생명과 진리로 나아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해. 하느님께 대한 신앙은 왜 필요할까? 바로 구원받기 위해서야. 예수님께서는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마르 16,16)이라고 말씀하셨지. 이처럼 신앙은 구원을 위한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야. 이제 막 시작한 신앙을 항구히 키워가기 위해선 기도가 필요해. 아울러 “사랑으로 행동하고, 희망으로 지탱하며, 교회의 신앙에 뿌리를 내려야 하는”(「가톨릭교회 교리서」 162) 행동도 요구된단다. 가톨릭교회의 신앙은 “오직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하느님만을 믿는다”는 한 문장의 고백으로 요약할 수 있단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평화신문2019.12.11

잠정적 미사 중단, 우리 사회와 신자 모두를 위한 최선의 선택[긴급 좌담] 코로나19 확산, 지금 교회는? 박정우 신부, 윤재선 기자, 주원준 박사, 최대환 신부(왼쪽부터)가 CPBC 본사 스튜디오에서 코로나19 확산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한국 천주교회는 처음으로 모든 교구가 ‘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를 잠정 중단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에 신자는 물론 사제와 수도자들 역시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게다가 감염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확산되면서 교회는 물론 한국 사회 전체가 마비될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신천지 신자의 확진 판정을 기점으로 잠잠해지던 코로나19 상황이 급반전하면서, 신천지뿐만 아니라 종교 자체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도 곱지 않다. 이러한 때에 하느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이고, 가톨릭교회는 이 사태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할 것인가.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은 9일 서울 중구 본사에서 ‘코로나19 확산, 지금 교회는?’을 주제로 긴급 좌담을 열었다. 윤재선(레오) 기자의 사회로 진행된 좌담에는 박정우(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ㆍ최대환(서울대교구 대신학교 지성교육 담당) 신부, 주원준(토마스 아퀴나스,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박사가 패널로 참여했다. 세 패널은 한목소리로 “위기 상황이지만 차분하게 대응하며 이를 계기로 우리의 삶과 신앙, 환경 문제를 깊게 성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긴급 좌담 내용을 정리했다. 정리=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도재진 기자 djj1223@cpbc.co.kr▲윤재선 기자(이하 윤 기자)=코로나19 확산 사태 어떻게 지켜보고 있나. 박정우 신부(이하 박 신부)=사스와 메르스 등 감염병은 여러 차례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모든 국민 일상에 영향을 끼친 적은 없었다. 가톨릭교회에선 신자들과 함께 드리는 미사도 중단됐다. 사제로서 마음이 무겁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가 여러 어려움을 잘 극복해낸 경험이 있기에 이번 사태도 잘 극복해 낼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 최대한 신부(이하 최 신부)=안타까운 일이다. 특히 많은 환자와 소중한 생명을 잃은 분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방역과 치료를 위해 애쓰시는 모든 분께 감사하다. 미사가 중단되면서 신앙의 본질, 교회가 세상에서 존재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힘겹고 어려운 시기지만, 교회가 줄 수 있는 희망이 무엇인지 깨닫는 기회로 삼으면 좋겠다. ▲윤 기자=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가 잠정적으로 중단됐다. 한국 교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주원준 박사(이하 주 박사)=전국 교구장님들께선 미사 중단에 대해 일치된 견해를 보여주셨다. 가톨릭교회가 공적인 미사를 중단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결정인 걸 알기에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한편으론 평신도로서 이런 시국에 일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됐다.최 신부=대구대교구를 시작으로 각 교구에서 내린 미사 중단은 고뇌에 찬 결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속히 이뤄졌다. 언론과 여론은 이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신자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 신자와 함께하는 미사만 중단된 것이다. 사제들은 매일 미사를 하고 있다. 그러나 매우 이례적인 상황임엔 틀림없다. 박 신부=미사 중단은 신자들에겐 충격적 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박해시대 때에도 신자들은 순교하는 마음으로 숨어 지내며 미사를 봉헌했다. 하지만 모여서 병을 퍼트리고 공동체에 해가 된다면 힘들더라도 미사를 중단해야 한다. 이것이 공동선을 위해 배려하는 신앙인의 자세다. ▲윤 기자=주일 미사 참여 대신 신자들은 대송(묵주기도 5단 바치기, 해당 주일의 복음과 독서 말씀 읽고 묵상하기, 작은 희생과 봉사활동 하기)을 해야 한다. 가톨릭평화방송에선 TV, 라디오, 유튜브로 매일 미사를 방송하고 있다. 미사 시청이 대송을 대신할 수 있나.최 신부=미사를 TV로 볼 땐 자세가 중요하다고 본다. 평소 주일 미사 하듯이 경건한 마음으로 집중해서 방송 미사를 시청하면 좋겠다. 말씀 봉독과 강론을 잘 듣고 새긴다면 충분히 대송의 요건을 갖춘다고 생각한다. 방송 미사로 주일을 경건하게 보내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다.박 신부=방송 미사에 말씀의 전례 부분이 있으니 대송이 충분히 될 수 있다. 다만, 영성체를 직접 할 순 없지만 신령성체라는 것이 있다.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만난다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기도하면 영성체 은총을 얻을 수 있다. 주 박사=지난 주일 아이들과 함께 대송을 했다. 유튜브로 중계되는 미사도 시청했다. 미사만 집에서 할 뿐 혼자 미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같은 시간에 하느님 백성과 우리 교회가 같이 미사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윤 기자=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의 병폐도 짚어봐야겠다. 특정 지역과 집단에 대한 혐오와 차별, 불신과 배척의 바이러스가 퍼진다는 우려가 크다. 주 박사=전염병 자체보다 전염병과 관련된 공포의 확산이 더 무섭다. 더 큰 피해를 낳을 수 있다. 인종과 국적으로 차별해선 안 된다. 이름 짓기의 중요성을 살펴볼 수 있다. 우한 바이러스, 우한 폐렴, TK(대구, 경북) 폐렴이라는 말을 써선 안 된다. 교회나 언론은 책임감 있게 이번 바이러스 이름을 코로나19로 써야 한다.박 신부=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라 종교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존중한다. 타 종교를 비난하지 않고 대화하며 이해하는 가운데 타 종교와 인류와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협력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그러나 신천지를 우리가 존중해야 할 타 종교로 바라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번 사태를 겪으며 신천지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종교의 자유를 떠나 신천지는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 비윤리적 단체로 보고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윤 기자= 신천지 사태를 보며 가톨릭교회가 반성하고 성찰할 점은 없는가. 최 신부=종교가 지닌 여러 역할 중 하나가 진리와 선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는 것이다. 또 종교가 메시지를 선포할 때 힘을 가지려면 투명성, 사회 공동선을 위한 헌신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 신천지는 이런 책임에서 벗어나 있다. 가톨릭교회도 이런 요소들이 있지 않나 돌아봐야 한다. 박 신부=교회는 복음의 가치관에 따라 모든 사람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며 구원으로 이끄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 자기 교회만을 생각하면 안 되지만 유혹은 늘 있다. 신천지는 그런 유혹에 빠져 지금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신자들끼리 교회 안에서만 친교를 나누고, 자기의 복만 구하는 기복적 신앙이 돼서는 안 된다. 세상에 빛과 소금으로 봉사하고, 공동체에 어떻게 이바지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더 큰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교회가 되도록 끊임없이 성찰해야 한다.주 박사=종교 집회는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아주 좋은 조건이다. 그렇기에 정부도 종교계가 집회나 미사, 법회를 자제했으면 좋겠다고 권고했고 사회적 압력도 높았다. 그럼에도 신천지와 일부 교회는 집회를 계속하고 있다. 이런 일들로 교회는 이성이 좀 모자란 사람이 가는 곳이라는 인식도 퍼지고 있다. 현대 사회는 점점 종교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한다. 교회가 공동선과 사회 공동체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또 신천지로 빠지는 청년들이 많은데, 우리 교회가 청년들에게 신앙과 교회를 위해 불타오를 기회를 주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윤 기자=가짜 뉴스 확산도 문제가 되고 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최 신부=이 문제야말로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이 시대에 기여할 부분이다. 가짜 뉴스는 특히 사람들 사이에 혐오를 부추기고, 신뢰를 깨는 이야기들이 많다. 이런 뉴스가 나돌 때 신자들은 서로를 연대하게 해주고 희망을 갖게 하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신앙인들이 신앙을 증거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박 신부=정보의 신뢰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나 사람이 믿을만한지를 판단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려면 그 매체와 사람이 걸어온 길, 보도해온 역사를 보는 게 중요하다. 요즘은 누구나 정보를 전달할 수 있고 가짜 뉴스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대형 언론도 가짜 뉴스를 전파하는 경우도 많다. 매체와 정보의 신빙성을 확인하기 위해 노력하며 식별력을 키워야 한다. ▲윤 기자=4월 총선을 앞두고 코로나 사태를 정치적으로 해석해 민심을 호도하는 정치인들이 있다. 현 시국에서 위정자들이 가져야 할 자세가 있다면. 주 박사=질병은 종교와 인종을 가리지 않는다. 이번 사태를 공동체 전체의 위기로 받아들여야 한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의료인과 방역 당국이 제일 앞에 서 있다. 그다음에 국민과 모든 종교인이 합심하고 있다. 이 기회를 틈타 상대를 흔들려 하고, 자기 정치적 이해를 극대화하는 일은 양심에도 맞지 않고, 교회 가르침에도 어긋난다. 우리는 일상을 유지하고 차분하게 대응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 누가 진짜로 노력하는지 살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나중에 정치적 결과로 나타나, 민주주의가 잘 작동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윤 기자=신자들은 사순 시기를 보내고 있다. 어떤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할까. 최 신부=사랑은 두려움을 이긴다. 공포라는 도전 앞에 하느님 백성인 신자들은 기도하는 마음을 모아 희망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추상적인 희망이 아니라 어려운 시기를 함께 극복하면서 얻게 되는 희망의 열매를 체험하면 좋겠다. 어수선하게 시작한 사순 시기지만, 그 어느 해보다 값진 신앙 은총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주 박사=가톨릭교회는 피정을 통해 쉬어가는 시간을 제공한다. 일상의 바쁨 속에서 한 번 숨을 멈추고 전체를 돌아보게 한다. 이번 사태로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참다운 사순의 의미를 생각하면 좋겠다. 박 신부=하느님께서 우리를 돌봐주실 거란 믿음이 있어야 한다. 성경에 보면 하느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제사는 동물을 잡아 바치는 제사가 아니었다. 자비이고 정의이고, 공정이었다. 사회적 약자인 고아와 과부의 권리를 지켜주고 돌보는 일이었다. 미사에 참여하지 못해 허전하고 허탈한 마음이 드는 신자가 많을 것이다. 일상 안에서 약자를 돌보고 정의와 공정을 실천하는 일은 미사를 드리지 못하는 이 시기에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합당한 봉헌이 될 것이다. ▲윤 기자=이번 사태가 주는 교훈, 시사점은 무엇일까. 최 신부=미사를 봉헌하지 못하니 역설적으로 미사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다. 또 가톨릭교회가 SNS를 활용해 영적 서비스를 하는 데 적극 나서는 점도 긍정적이다. 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를 중단하는 결정을 통해 교회가 지닌 공공성이 주목받게 됐다. 제도 교회의 역할은 사회적 공공성, 합리성을 교회 신앙의 신비 안에서 소화하고 시대에 적응하며 접점을 찾는 데 있다. 이번에 굉장히 좋은 모범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교회 안에서 투명성, 합리성을 고양해 가면서 교회 본질이 가진 신앙의 신비를 잘 살려야 한다. 박 신부=코로나19는 생태계 파괴가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하는 이들이 있다. 코로나19의 기원이 박쥐에 있다는데, 박쥐에 있는 바이러스가 어떻게 사람까지 오게 됐을까. 결국, 지구 온난화로 기후가 변하고, 자연이 파괴되다 보니 인간과 박쥐 바이러스가 만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된 것이다. 바이러스 전파 원인이 인간의 욕심, 무분별한 환경 파괴에 있다는 걸 인식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윤 기자=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주 박사=성경엔 역병, 나병 등 질병이 굉장히 많이 나온다. 예수님과 사도들은 질병에 걸린 이들을 많이 고쳐줬다. 역병이 이긴 적은 없었다. 결국, 하느님이 이기시고 역병은 물러갈 뿐이다. 역병을 물리치고 사람을 살리는 편엔 늘 교회가 있고 하느님이 계셨다. 이걸 제일 잘 보여주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결국, 우리 종교는 희망의 종교다. 이런 때일수록 희망을 가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를 통해 하느님을 새롭게 깨닫는 계기가 돼야 한다. 열왕기 하권 5장에 아람 사람 나아만의 얘기가 나온다. 이방인에다 나병에 걸렸지만, 이스라엘에서 치유됐다. 그러면서 믿음을 새롭게 고백했다. 우리가 이 시기를 하느님을 새롭게 깨닫는 계기라고 생각한다면, 현재의 공포에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최 신부=미사 중단을 사회적 의무에 밀려서 결정하고 신자를 위한 방어적 행위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는 일종의 애덕의 문제다. 교회 본질을 실행한 것으로 봐야 한다. 사회의 요청에 교회가 응답한 것이다. 우리 신앙인들은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더 마음을 열고 투신해야 한다. 그리고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사랑을 실천하는 이는 두려움에 져서는 안 된다. 시대마다 교회가 해야 할 역할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사회에 기여할 요소를 찾아야 한다. 박 신부=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시련을 허락하시고, 그 시련을 통해 성장하고 단련하도록 이끄신다. 어려운 시기지만 여러 좋은 면도 보인다. 고생하는 의료진을 위한 각계각층의 응원과 격려가 쏟아지고 있다. 곳곳에서 편견과 차별을 조심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공동체성, 연대와 사랑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우리 사회가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느님께서는 항상 선으로 이끄신다. 각자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면서 마음을 모아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다.cpbc2020.03.04

인간이기에 느끼는 공허함, 기도하며 사랑으로 채워야신작 ‘간절함’ 출간한 신달자 시인 3년 동안 쓴 70편의 시를 묶은 시집을 펴낸 신달자 시인. “제가 쓴 시는 거대한 게 아닙니다. 사소하고 작아요. 일상생활의 아득함과 짜릿함, 심란함, 적막함, 불안함 같은 것들을 썼어요. 시 공부할 때 사랑과 외로움, 그리움 같은 단어는 ‘낡은 단어’라고 가르치는데, 나이 들어 생각해보니 흔할수록 소중한 것들이에요. 흔히 쓰는 낱말들을 버려서는 안 되겠구나 느꼈죠.”올해 나이 76세. 신달자(엘리사벳) 시인이 3년 동안 쓴 70편의 시를 한데 묶어 「간절함」(민음사)이라는 시집을 펴냈다. 그의 시에는 사람과 자연, 시와 신, 너와 나를 향한 간절한 시선이 배어 있다. 시인은 잎새에 매달려 들어가지도 못하고 뛰어내리지도 못한 채 떨고 있는 물방울을 외로움이라 쓴다. 자연 한 잎을 뜯어 짓이겨 상처에 바르는 날, 우주 한 잎으로 통증을 싸매는 밤, 후려치는 빗줄기도 싸하게 입안을 맴도는 동치미 한 사발을 무심함으로 그렸다. 그의 선명한 시어는 인간의 감정을 향유하지만,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소리 내 울지 않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감정이 젊은 시절에는 필요했지만, 자꾸 껴입는 옷 같아요. 어리석은 소모죠. 이제는 진심이 좋아요. 감정은 거품입니다. 진심으로 바라보고, 사랑할 시기죠.”시인은 최근 몇 달 전 교통사고로 입원했고, 병상에 누워 시집 제목을 정했다. 감사함이 절실해졌다. “나는 손가락이 왜 이렇게 생겼어? 나는 왜 이렇게 게을러? 나 자신에게 불평이 많았어요. 그런데 아프면서 ‘못생기면 어때? 건강하면 되지’로 바뀌었어요. 새로운 자아에 눈을 뜬 거죠.” 올해 세례받은 지 40년 된 시인은 상실과 질병, 정서적 허기에서 나온 새로운 감정을 견디기 위해서는 영적인 힘에의 의존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시를 쓰며 묵주기도 하는 것을 좋아한다”면서 “기도하며 인간적인 공허함을 영성으로 채운다”고 털어놨다. 이번 시집에는 좌판 나물 파는 할머니에게 악수를 청하면서도 자신의 무너진 뼈 소리에는 무심했던 추기경님을 그린 ‘김수환 추기경’과 2000년 전 ‘네’ 라는 짧은 대답 하나로 거친 광야를 다 안아들인 ‘성모 마리아’ 등 영성을 길어올린 신앙시도 담겼다. 시인은 “힘들었던 젊은 시절을 돌이켜보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면서 “세례를 안 받았더라면 괴롭다고 떠들고 다녔을 것”이라고 했다.그는 “시인으로 가장 행복했던 때는 서점에 책을 사러 갔는데 계산대 제일 앞에 있는 사람이 내 시집을 샀을 때”라며 “내가 어려운 일이 있어도 잘 견뎌야겠다, 내가 우울하니까 하느님이 보여주신 장면이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내가 위로를 받으면 위로의 힘을 주고 싶다”면서 “결국 우리의 등을 떠밀어 주는 건 독자”라고 덧붙였다. 그는 팔순이 되는 2022년에 마지막 에세이 묵상집을 내는 게 꿈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순간순간이 적히겠죠. 누가 봐도 위로가 되는, 고개를 끄덕이는, 내 글 같은 묵상집을 내고 싶어요.”신 시인은 시집 마지막에 실은 산문 ‘나를 바라보는 힘’에서 이같이 고백했다. “슬픔도 늙는다. 때론 젊은 날처럼 옷이 젖도록 울고 싶은 때도 있지만 그렇게 울지 않는다. 마음이 흐느끼고 어깨가 출렁이는데 눈은 마를 때가 많다. 그래서 강물을 바라본다. 그래서 하늘을 바라본다.(중략) 바라봄이 울음을 가능케 함을 알기 때문이다.”시인에게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을 물었다. 지갑에서 작은 종이를 꺼내 보여줬다. “추위와 냉기여, 주님을 찬미하여라.”(다니 3,69)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평화신문2019.11.08

교과서가 피임법 안내 … 올바른 생명윤리 교육 시급하다 주교회의 생명윤리위 ‘한국 초·중·고 교과서의… ’ 학술 세미나, 교회 가르침 풀어내는 작업 필요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가 개최한 2019 정기 학술세미나에서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초·중·고 교과서에 나온 성교육 문제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선생님, 우리 나이에 무슨 피임을 배워요?”(학생)“부모가 될 준비가 안 된 상태인 청소년들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될까 봐 예방하려고 배우는 거랍니다.”(교사)“그럼 피임을 하면 우리도 성관계해도 되겠네요?” “피임은 실패할 확률이 있고, 생명의 탄생이라는 책임이 따르는 중대한 일이므로 쉽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랍니다.”중학교 한 보건 교과서에 나오는 학생과 교사의 대화 내용이다. 중학생의 성관계를 일반화하며 피임 방법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초ㆍ중ㆍ고 교과서를 분석해보니 잘못된 성적 가치관과 성 윤리를 가르치는 내용이 태반이다. 여성의 특징이 열등한 것처럼 설명하거나, 성적 자기결정권을 강조하며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율적으로 성적 행위를 결정할 수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성 상품화를 다루면서 찬성하는 입장을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위원장 이용훈 주교)는 16일 경기도 용인 성복동성당에서 학교에서 이뤄지는 성교육 실태를 점검하고, 올바른 생명 교육을 위해 가톨릭교회가 해야 할 역할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한국 초ㆍ중ㆍ고 교과서의 성과 생명에 관한 교육 실태와 교육의 대응’을 주제로 열린 학술 세미나에 참석한 생명윤리학자와 윤리신학자들은 “성이 가지는 인간적 가치를 회복시켜야 한다”면서 “인류 보편의 가치를 존중하고 강조하는 가톨릭교회가 이러한 생명 교육에 더욱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혜숙(안나,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한국 사회는 무분별한 성의 도구화, 대상화, 상품화, 우상화가 만연하기에 시의적절하고 올바르며 체계적인 성 교육과 생명 교육이 요청된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회칙 「생명의 복음」과 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을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교회 가르침을 구체화하고 현대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그는 성과 생명에 관한 교회 가르침이 꼭 필요하고 올바른 내용을 담고 있지만, 특정 종교의 가르침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하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며 “성경 말씀이나 교회 가르침을 사람들 모두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내용과 언어로 풀어내는 작업이 필수적이다”고 강조했다.중ㆍ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성의 구분(sex, gender, sexuality)과 그 함의를 분석한 최진일(안나, 가톨릭대) 교수는 “성을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 성, 성의 욕망으로 구분하는 것 자체에 문제가 없는지를 생각해보는 논의가 없다”고 꼬집었다. 사회적 성인 젠더(gender)는 정치적 관점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일깨우며 성을 평등과 인권 차원에서만 강조하다 보니 인간의 존재론적 차원에 대한 논의가 배제됐음을 지적했다. 최 교수는 “인간의 성에 대한 전인격적 이해는 인격적 성장과 자아 실현과 직결돼 있다”며 특별히 부모의 역할을 강조했다. “부모의 책임과 역할이 결코 가볍지 않다”면서 “부모들 또한 올바른 성인식(性認識)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가톨릭교회가 청소년뿐 아니라 부모 재교육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제언했다.학술 세미나에는 구영모(토마스아퀴나스, 울산대)ㆍ김혜진(아녜스, 울산대) 교수와 최성욱(대구가대 교수)ㆍ박은호(가톨릭대 교수) 신부가 토론자로 참석해 학교 성교육의 문제점에 공감하며 올바른 생명윤리 교육이 시급하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주교회의 생명위원회 위원장 이용훈(수원교구장) 주교는 “성은 쾌락과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과 생명과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성이 지닌 책임성과 인격적 가치를 외면해서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평화신문2019.11.20

“이단의 늪에 빠져 살았던 시간 너무 허탈” 신천지 빠져나온 청년들 생생한 증언… 대부분 대학 새내기 때 포섭돼 청춘 허비 최근 수능을 마친 고3 수험생들을 노리는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 추수꾼들의 조직적 포교활동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실제로 대학 초년생 시절 신천지에 포섭됐다 빠져나온 청년들의 생생한 증언이 쏟아져 나와 주목된다.신천지 피해 청년들이 이단의 늪에 빠진 때는 하나같이 갓 대학에 입학한 20대 초반. 친한 친구, 길거리 설문조사, 이벤트 등 각기 다른 ‘가면’을 쓰고 접근한 추수꾼들에게 자기도 모르게 마음의 문을 열고 포섭됐던 것이다. 고민 많은 나이에, 제대로 된 성경공부를 해본 적 없어 신앙의 기초체력이 약한 젊은이들이 거리에서 무방비로 이단에 노출된 사례들이다. 이들이 그릇된 신앙에 바친 청춘은 최소 10개월에서 길게는 4년에 이른다.“잘 지내? 요새 걱정은 없어?” 2016년 대학에 갓 입학한 김 세레나(22)씨는 어느 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학창시절 친구였다. 오랜만에 연락 온 친구와 반가움에 이야기를 나누던 중 친구가 “‘힐링 콘서트’ 티켓이 하나 있는데 가보자”는 말을 꺼냈다. 친한 친구였기에 경계심 없이 따라간 게 화근이었을까. 친구가 데려간 ‘힐링 콘서트’는 다름 아닌 ‘신천지 전도의 장’ 행사로, 신천지가 하는 전형적인 ‘위장 세미나’ 자리였다. 눈길 가는 공연과 강연, 개인 상담 부스까지 마련된 행사였다.김씨처럼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온 또래가 50명쯤 됐다. ‘상담사’로 위장한 ‘신천지 언니’는 그날 김씨와 친해진 뒤 어느 날 ‘성경공부 모임’을 소개해줬다. 신상 파악, 친분 쌓기에 이어 행해지는 ‘복음방 유도’다. 김씨는 그 일이 기나긴 신천지 생활의 시작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언니는 ‘너를 만든 하느님을 통해 삶을 새롭게 볼 수 있다’며 성경공부를 유도했어요. 잘 갖춰진 논리로 ‘생활 맞춤형 성경공부’를 해주기에 뿌리치기도 쉽지 않았죠. 신천지란 걸 밝힌 것도 수개월 뒤였어요.”박 다니엘(24)씨와 송 미카엘라(23)씨는 거리의 신천지 추수꾼들에게 당했다. 이들은 특정 대학교 이름까지 언급하며 심리 설문조사로 접근했고, 연락을 주고받다 복음방을 거쳐 센터까지 가게 됐다. 그렇게 박씨와 송씨가 대학생활을 신천지에서 허비한 시간은 4년여에 이른다.송씨는 “‘입막음 교리’라고 해서 절대 밖에 알려선 안 된다는 가르침으로 교리를 배운다”며 “자신들의 말씀 외엔 모두 ‘비진리’이고, 온라인에 떠도는 신천지 비방글은 ‘선악과다’, ‘영이 죽게 된다’고 하면서 찾아보지 못하게 한다”고 전했다.박씨는 “아무리 사람들이 신천지가 사이비라고 해도 그들은 2000년 전 초대 교회 때처럼 자신들이 핍박받을 수밖에 없고, 악의 세력들이 공격하는 것이라며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도록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고 말했다.이 스텔라(24)씨는 모태 신앙인이었다. 그러나 이씨는 “가족들과 성당에 잘 다녔지만, 성경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은 없다”며 “저는 어찌 보면 제대로 된 성경공부를 신천지에서 한 셈”이라고 했다. “고민 많은 청년에게 생활과 밀접히 연관 지어 성경을 비유해 가르치니 많은 젊은이가 순간 매력을 느끼고 따르게 된다”고도 했다.피해 청년들은 주변인의 신고와 부모의 발견으로 격리 상담을 받고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들은 “신천지에 빠져 살았던 시간이 너무 허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낯선 이에게 연락처 주는 것을 꼭 조심하고, 교회 안에서만 성경공부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교회와 가정이 좀 더 적극적으로 젊은이들의 신앙 관리를 해야 하는 이유다.신천지 피해자 상담가인 이 카타리나씨는 “신천지인들은 ‘정신적 공산주의 체제’ 안에 생활하는 이들”이라며 “외부와 철저히 차단돼 지내기 때문에 한 번 들어가면 탈퇴하기가 무척 어려운 구조”라고 했다. 이어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방과 후속 관리”라며 “언제든 ‘제2의 신천지’가 등장할 수 있기에 교회는 초교구적 네트워크 형성, 피해 가족 상담과 회심자 후속 교육, 피해자 모임과 전문가 양성 등 이단 종교에 대한 대처를 적극 펼쳐야 한다”고 전했다.특별취재팀 cpbc2018.12.05

과학자·신학자·철학자 한자리에 모여 빅뱅 이론과 ‘창조 교리’ 접점 모색신학과사상학회·한국가톨릭철학회, ‘무로부터의 창조’ 국제 심포지엄 ‘무로부터의 창조’를 주제로 열린 국제 학술 심포지엄에서 철학부문 발제를 맡은 학자들이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과학자, 신학자, 철학자들이 벌이는 창조론에 관한 논의가 서울 혜화동 신학대 대강당을 뜨겁게 달궜다. 신학과사상학회(학회장 백운철 신부)와 한국가톨릭철학회(학회장 박승찬)가 9월 27~28일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를 주제로 개최한 국제 심포지엄에서 세계 각국 학자들은 하느님께서 무(無)에서 세상을 만드셨다는 그리스도교의 창조 교리를 물리학적, 신학적, 철학적 관점에서 살피며 종교와 과학의 대화를 이어갔다. 신학대 대강당은 이틀간 청중들로 가득 찼다. 전문가들에게도 어려운 주제였지만, 창조론에 관한 일반 대중의 높은 관심을 증명했다. 발표에 나선 학자들은 각 주제와 관련된 토론 시간마다 예정된 시간을 넘겨 가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물리학자들은 ‘빅뱅’(Big Bang) 우주이론을 비롯해 우주와 시간의 시작에 관한 다양한 연구 결과를 살피며 현대 과학 이론이 하느님의 창조를 말하는 그리스도교 교리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해 발표했다. 그러면서 우주 대폭발이자 시간의 출발점으로 불리는 빅뱅 사건이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를 통해 현대적으로 해석되고 이해될 수 있다는 데에 공감했다. 신학자들은 과학이 강조하는 우주의 기원 개념을 받아들이면서도 세상을 창조한 하느님과 하느님께서 창조한 피조물과의 관계에 집중했다. 또 성경의 중심이자 신앙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와 무로부터의 창조 관련성도 분석하며 예수 그리스도가 창조의 중개자로 해석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철학자들은 그동안 신학과 철학에서 무로부터의 창조와 시간의 시작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설명했다. 과학과 신학이 대화하기 위해서는 시간, 창조, 무(無), 영원 등과 같은 단어들의 명확한 개념 정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지적했다. 과학자와 신학자가 똑같은 ‘시간’을 말하더라도 기본 개념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인도의 전통 종교와 중국 철학의 도교적 관점에서 바라본 무로부터의 창조 개념도 발표됐다. 신학과사상학회장 백운철 신부는 “모든 문제는 존재로부터 시작하기에 존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있어야 우리의 실존과 윤리적 삶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면서 “종교와 과학의 대화에 함께한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심포지엄에는 우리나라는 물론 독일, 프랑스, 인도, 미국, 이탈리아에서 온 학자 17명이 발제자로 나섰다. 교황청 천문대 소속 천문학자 가브리엘리 지온티 신부, 개신교 신학자이자 물리학자인 로버트 러셀(미국 버클리연합신학대) 교수, 가톨릭 신학자 헬무트 호핑(독일 프라이부르크대) 교수, 철학자 폴 클라비에르(프랑스 로랭대) 교수 등 세계적 석학들이 함께했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축사에서 “신학이 전통적으로 철학과 늘 대화를 해왔듯이 오늘날의 신학은 과학과 대화를 해야 한다”면서 “이번 심포지엄을 계기로 종교와 과학의 대화가 한국 교회 안에서 지속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평화신문2019.10.02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58)최고 의회에서(23,1-11)](//cpbc.co.kr/CMS/newspaper/2020/03/rc/776239_1.1_titleImage_1.jpg)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58)최고 의회에서(23,1-11) 부활 이야기로 최고 의회에 분란을 일으키다 최고 의회에 출두해 부활을 이야기해 분란을 일으킨 바오로에게 그날 밤 주님께서 나타나시어 용기를 내라고 격려하시며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사진은 로마 성 밖의 성 바오로 대성전 전경. 천인대장이 소집한 최고 의회에 출두한 바오로는 최고 의원들에게 이야기합니다. 바오로의 말에 최고 의회 의원들 사이에 분란이 생기고 천인대장은 바오로를 다시 진지로 데려갑니다. 이 단락을 세 부분으로 나눠 살펴봅니다. 최고 의원들 앞에서 한 발언첫째 부분(23,1-5)은 최고 의회 의원들 앞에서 바오로가 한 첫마디와 관련됩니다. 바오로는 이렇게 말을 꺼냅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이날까지 하느님 앞에서 온전히 바른 양심으로 살아왔습니다.”(23,1) 최고 의회는 대사제와 수석 사제들 그리고 원로들로 이뤄진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최고 기구입니다. 백성의 신망과 존경을 받는 지도자들이 최고 의회를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들 앞에 서서 “하느님 앞에서 온전히 바른 양심으로 살아왔다”는 바오로의 첫마디가 최고 의회 의원들에게는 대단히 못마땅했을 것입니다.아니나 다를까 대사제 하나니아스가 그 곁에 서 있던 이들에게 바오로의 입을 치라고 명령합니다.(23,2) 하나니아스는 기원후 47년쯤부터 59년쯤까지 대사제를 지낸 인물입니다. 그는 탐욕스럽고 포학한 성격으로 많은 재산을 모아 사치스럽게 살다가 66~73년의 제1차 유다 독립 전쟁 때에 열혈당원들에게 친로마파로 몰려 살해됐다고 합니다. 하나니아스가 이런 인물이라면 바오로의 말에 뺨을 치라고 명령한 것도 이해할 만합니다. 뺨을 치라는 하나니아스의 명령에 바오로가 “회칠한 벽 같은 자”라고 발끈하면서 “하느님께서 당신을 치실 것이오!”라고 저주를 퍼붓습니다. 그러고는 “율법에 따라 나를 심판하려고 앉아 있으면서 도리어 율법을 거슬러 나를 치라고 명령했다”고 이유를 밝힙니다.(23,3) 하느님 앞에서 양심에 하등의 거리낄 것이 없이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바오로로서는 뺨을 치라는 대사제의 명령이 “너희는 재판할 때 불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 너희 동족을 정의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레위 19,15)라는 모세오경의 규정을 위배하고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자 그 곁에 있던 자들이 “하느님의 대사제를 욕하는 것이오?” 하고 바오로를 힐난합니다. 이 말에 바오로는 대사제인 줄 몰랐다면서 ‘네 백성의 수장을 저주해서는 안 된다’(탈출 22,27)라는 성경 말씀을 인용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합니다.(23,5) 이 첫째 부분에서는 바오로의 성격이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이 대목은 바오로가 과감하고 직설적이며 물불을 가리지 않은 성격임을 알게 해줍니다. 그렇지만 그는 또한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곧바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성격이기도 함을 알 수 있습니다.바리사이와 사두가이의 부활 논쟁둘째 부분(23,6-10)에서는 바오로의 말이 바리사이와 사두가이의 논쟁으로 비화됩니다. 대사제에게 욕을 한 것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고 난 바오로는 최고 의회 의원 가운데 바리사이들도 있고 사두가이들도 있음을 간파합니다. 율법을 엄격히 지키던 바리사이였던 바오로이기에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를 쉽사리 구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바리사이이며 바리사이의 아들입니다. 나는 죽은 이들이 부활하리라는 희망 때문에 재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23,6) 당시 유다 사회의 양대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사두가이와 바리사이는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었습니다. 사제 계급에는 사두가이들이 많았고, 율법 학자(교사)들은 바리사이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사두가이들은 세속 삶에서 지도자 자리에 있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반면에 바리사이들은 종교적인 면에서 스승(랍비)들이었습니다. 또 교리와 관련,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들은 부활과 천사, 영에 대한 생각이 달랐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죽은 이들의 부활과 천사 그리고 영이 있다고 믿었고 사두가이들은 부활도 천사도 영도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죽은 이들이 부활하리라는 희망 때문에 재판을 받고 있다”는 바오로의 말에 최고 의회에 있던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면서 회중이 둘로 갈라지고 큰 소란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바리사이파에서 율법학자 몇 사람이 일어나 “우리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잘못도 찾을 수 없다”면서 “영이나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면 어떻게 할 셈입니까?” 하고 강력하게 항의합니다.(23,7-9)논쟁이 격렬해지자 바오로가 그들에게 찢겨 죽지 않을까 염려한 천인대장은 바오로를 빼내어 진지 안으로 데려가라고 명령합니다.(23,10) 천인대장으로서는 바오로가 로마 시민인 것을 알고는 바오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아보려고 최고 의회를 소집했습니다만, 자신의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사태가 번져가자 놀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황급히 바오로를 빼내어 안전한 진지로 데려가라고 지시한 것입니다.로마 군대 진지에서 본 환시이 단락의 마지막 세 번째 부분(23,11)은 진지에서 바오로가 본 환시입니다. 그날 밤에 주님께서 바오로 앞에 서시어 이르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너는 예루살렘에서 나를 위하여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바오로는 3차 선교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밀레토스에서 에페소 교회 원로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면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이제 나는 성령께 사로잡혀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나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나는 모릅니다. 다만 투옥과 환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성령께서 내가 가는 고을에서마다 일러 주셨습니다.”(20,22-23) 바오로는 자신의 삶이 순탄치 않은 시련과 환난의 연속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는데, 예루살렘에서 이를 다시 한 번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 옆 로마 군대 진지에서 바오로는 “용기를 내어라…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는 주님 말씀을 듣습니다. 주님께서는 바오로가 예루살렘을 넘어서 로마에까지 주님을 증언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시면서 용기를 북돋아 주고 계신다고 하겠습니다. 생각해봅시다최고 의회 앞에서 바오로가 한 처신은 위험 앞에서도 움츠러들지 않은 바오로의 성품을 잘 보여줍니다. 그는 최고의회 위원들 앞에서도 움츠러들지 않고 떳떳하게 이야기합니다. 바오로는 인간적인 위협이나 위험 앞에서 굴복하지 않는 용기를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그는 또한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는 즉시 인정할 줄 아는 솔직함을 지녔습니다. 그랬기에 ‘하느님의 대사제를 욕하는 것이오?’ 하는 지적에 바로 잘못을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그러나 바오로는 용기와 솔직함 못지 않게 지혜로움도 갖췄습니다. 최고 의원들이 부활을 믿는 바리사이와 믿지 않는 사두가이로 갈라져 있는 것을 간파하고 부활 이야기를 꺼내 회중을 분란시킨 것은 바오로의 지혜로움을 보여주는 일화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도행전을 통해서 계속 살펴보고 있듯이 바오로를 움직이는 힘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성령이십니다. 회심한 이후 바오로는 늘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서 움직였습니다. 성령께 마음을 열지 않고서는 성령의 이끄심을 따를 수 없습니다. 바오로의 삶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께 마음을 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우고 있습니다. 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alfonso84@hanmail.net cpbc2020.03.31
![[생활속의복음] 전교 주일- 기쁜 소식 전하는 이들의 아름다운 발걸음](//cpbc.co.kr/CMS/newspaper/2019/10/rc/764513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복음] 전교 주일- 기쁜 소식 전하는 이들의 아름다운 발걸음 한민택 신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20)선교는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사명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이 때로는 무거운 짐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가족 중 대부분이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본인조차 왜 신앙생활을 하는지 회의가 드는 상태에서, 남에게 전도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 되어버린 듯합니다. 다른 한편 세속화된 다종교 사회에서 전교는 다른 이들의 종교나 세속적 삶을 무시하는 불순한 의도를 갖고 접근하는 행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선교의 어려움은 선교에 관한 우리의 피상적 생각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복음을 보다 깊은 차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말재주로 하라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1코린 1,17)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교 사명은 세상 모든 사람을, 그들의 종교와 문화가 무엇이든, 무작정 세례를 주고 천주교 신자로 만들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 복음 곧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에 있다면, 선교는 교세를 넓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 접하게 된 기쁜 소식, 곧 하느님 나라가 지금 여기 내 삶 안에서 시작되었음을 나의 온 삶을 통해 알리는 것입니다.“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로마 10,15)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예수님을 만나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접한 이는 발걸음부터 표정까지 온통 기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는 굳이 선교를 위해 수고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기쁜 얼굴과 아름다운 발걸음이 하느님 나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선교 행위이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선교란 예수님을 전하며 그분이 실현시키신 하느님 나라, 하느님과의 삶으로 이 시대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과학기술의 혁명적 발전으로 편리한 삶을 영위하지만, 종종 삶의 기준이나 방향을 잃고 살아갑니다. 그들은 마치 ‘목자 없이 시달리는 양 떼’처럼 지쳐 있고 영혼이 생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들 영혼의 목마름을, 가장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자유를 향한 ‘울부짖음’을 들을 수 있다면 예수님의 명령이 지금 나를 향한 말씀임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이 시대의 선교란 대로변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외치는 것도, 불특정 다수의 사람에게 성경을 나누어주는 것도 아닌, 고통과 소외 중에 사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길을 걸으며, 참 행복과 자유의 길을 함께 찾아가는 것일 것입니다. 어느 순간 성령께서 그들 마음을 열어주실 것이며, 그들의 삶에 분노와 원한, 시기와 질투, 두려움과 공포, 좌절과 절망이 아닌 사랑과 기쁨, 자유와 평화, 희망과 환희, 곧 하느님의 사랑이 지배하는 하느님 나라가 도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전교 주일은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게 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기쁨으로 나의 발걸음이 아름다운가?한민택 신부(수원가톨릭대 교수, 이성과신앙연구소 소장) 평화신문2019.10.15
[말과 침묵] 이제와 저희 죽을 때김소일 세바스티아노(보도위원) 그날은 주일이었다. 마을에서 읍내까지는 버스가 다닌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노인이 버스에 올랐다. 낯익은 듯 운전기사와 인사를 나눴다. 맨 뒷자리에 앉더니 눈을 감았다. 늘 하던 대로 나직하게 웅얼거렸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읍내 정류장에 버스가 멈췄다. 노인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운전기사가 큰소리로 외쳤다. “어르신, 다 왔습니다.” 미동도 없었다. 누군가 살며시 어깨를 흔들었다. “어르신, 내리세요. 교회 앞이에요.” 노인의 상체가 비스듬히 쓰러졌다. 가슴에 품었던 성경과 찬송가 책이 스르르 풀렸다.친구 아버님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친구는 목사다. 신도가 100명도 안 되는 작은 시골교회에서 목회한다. 아버지는 주일마다 아들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그날도 그렇게 교회로 가는 길에 부르심을 받았다. 고요한 소천이었다. 예배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렸다고 했다.누구나 선생복종을 원한다. 모두가 편안하고 복된 죽음을 소망한다. 안타깝게도 그런 죽음은 흔치 않다. 많은 이들이 질병의 고통을 겪는다. 정신의 혼미 속에서 헤매기도 한다. 병원이나 요양원이 우리의 말년을 기다린다. 애처롭고 두려운 일이다.삶과 죽음은 반대어가 아니다. 삶의 완결이 죽음이며, 죽음의 과정이 삶이다. 살면서 죽음을 준비하고 죽음에 이르러 삶을 반추한다. 먼저 선한 삶이 있고서야 복된 죽음도 바랄 수 있다.어느덧 위령 성월이다. 이맘때가 1년 중 가장 쓸쓸하다. 10월은 단풍으로 황홀했다. 12월은 대림의 기쁨으로 맞는다. 그 사이 11월은 퇴색한 낙엽의 계절이다. 곱게 물든 단풍은 곧 칙칙한 갈색으로 바뀌어 거리에 나뒹굴 것이다. 스산한 바람이 휑하니 가슴을 쓸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하나둘 떠나는 계절이다.11월은 죽음을 묵상하기에 좋은 달이다. 산행 중에 묘지를 만나면 그 누런 잔디 위에 잠시 누워본다. 묘비조차 없는 무덤 곁에서 바람이 전해주는 탄식을 듣는다. “나 오늘 여기에 누워 있노니, 젊은 벗이여, 누구에게나 죽음은 찾아온다네.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기억하게나. 죽음은 언제나 그대 곁에 있고 그대는 그때를 모른다네.” “인생의 아쉬움이 뭐냐고 물었나. 살아있을 때 충분히 사랑하지 못한 것이라네. 부디 헛된 탐욕에 매달리지 말고, 나누고 섬기고 사랑하게나.”11월은 기도가 깊어지는 달이다. 천국에서 지상으로, 지상에서 연옥으로 기도가 이어진다. 천국 영혼이 바치는 기도가 한 줄기 바람으로 우리를 휘감는다. 연옥 영혼을 향한 우리의 기도가 늦은 밤 촛불로 피어오른다. 그곳은 죄 많은 우리가 어쩔 수 없이 거쳐 가야 할 곳이다. 그러니, 영혼이여. 지금 바치는 이 기도를 기억해 주소서. 머지않아 이 죄인도 애덕과 탄원의 기도를 간절히 그리워하리니, 부디 그때 잊지 말아 주소서. 세상의 어진 벗들이여, 언젠가 이 가련한 영혼을 위해 작은 화살기도라도 바쳐 줄 수 있겠나.우리는 통공의 신비를 믿는다. 그리하여 위령 성월에 바치는 연도 가락에는 유난히 간절함이 스민다. “깊은 구렁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사오니, 주님 제 소리를 들어주소서. 제가 비는 소리를 귀여겨들으소서. 주님께서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오직 은총만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의지와 노력만으론 선생(善生)도 복종(福終)도 어려우리니, 겸허히 기도할 뿐이다. “이제와 저희 죽을 때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평화신문2019.10.30

한국 천주교 가정 제례 예식 배우기 5일은 우리나라 최대 명절 가운데 하나인 설날이다. 설날이면 각 가정은 차례를 지내며 조상의 은덕을 기린다. 이에 주교회의는 2012년 봄 정기 총회에서 ‘한국 천주교 가정 제례 예식’과 ‘설ㆍ한가위 명절 미사 전이나 후에 거행하는 조상에 대한 효성과 추모의 공동의식’에 관한 지침을 발표했다. 설날을 맞아 가정 제례 예식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가톨릭교회가 조상을 위한 제사와 차례를 허용하는 이유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교회가 허용하는 제사와 차례는 효성과 추모의 전통문화를 계승하며 교회 가르침과 정신을 토대로 한 예식이다.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를 보면 이 같은 의미가 잘 드러난다. 사목 지침서는 제사가 효를 실천하며 뿌리 의식을 기억하는 예식임을 교회가 이해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오랜 시간 제례를 지내온 신자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이기도 하다.‘한국 천주교 가정 제례 예식’을 보면 제례 예식은 시작 예식과 말씀 예절, 추모 예절과 마침 예식으로 구성된다. 이때 추모 예절은 분향과 절,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바치는 한국 교회의 전통적 기도인 위령기도가 중심이다. 예식을 하기 전에는 마음과 몸의 준비가 필요하다. 고해성사를 통해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다. 복장 역시 단정하게 갖춰 입어야 한다.차례상은 평소에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차린다. 음식을 차리지 않아도 괜찮다. 상 위에는 십자가와 함께 조상의 사진이나 이름을 모신다. 이 때 신위(神位)라는 표현을 쓰지 말아야 한다. 이후 촛불을 켜고 향을 피운다. 이어 「성경」이나 「가톨릭 성가」,「상장예식」 또는 「위령기도」 등을 준비하면 예식 준비가 마무리된다.예식 중에 성가는 시작과 마침 때 각각 한 번씩 부른다. 성가는 「가톨릭 성가」 50번과 54번(주님은 나의 목자), 227번(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 436번(주 날개 밑), 462번(이 세상 지나가고)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예식 때 봉독할 성경은 마태 5,3-12(참 행복), 요한 14,1-14(아버지께 가는 길), 로마 12,1-21(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생활과 생활 규범), 1코린 13,1-13(사랑), 에페 5,6-20(빛의 자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다. 다만 상황에 따라 다른 내용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이어 요한 15,1-12(나는 참포도나무다)을 봉독한다. 성경 봉독을 마치면 가장은 가족들에게 조상에 대한 회고 등 적절한 이야기나 덕담을 가족에게 건넨다. 그런 다음에 향을 피우고 큰 절을 두 번 하고 위령기도를 바친다. 위령기도를 바친 후에는 마침 성가를 부르고 예식을 마친다. 예식을 마친 후에는 가족들이 모여 상에 차린 음식을 나눈다. 이때 온 가족이 모여 사랑과 친교를 나누는 시간이 되도록 한다. 장현민 기자 memo@cpbc.co.kr 평화신문2019.01.30
![[하느님과 트윗을] (95) 내 신체가 만족스럽지 않아도 받아들여야 하나요](//cpbc.co.kr/CMS/newspaper/2019/04/rc/751457_1.0_titleImage_1.jpg)
[하느님과 트윗을] (95) 내 신체가 만족스럽지 않아도 받아들여야 하나요우리 몸은 주님이 주신 성령의 성전 CNS 자료사진. 문 : 성경에서는 우리의 신체를 어떻게 말하나요답 : 성경은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 그 성령을 여러분이 하느님에게서 받았고, 또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님을 모릅니까? … 그러니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1코린 6,19-20)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은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친히 거처하고 싶으신 장소로 창조하셨습니다. 사랑이 넘치시는 하느님은 우리가 하느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 자신에게 만족하고 행복하길 원하십니다.문 : 자해는 왜 나쁜가요답 : 우리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위해 작은 신체적 불편함을 기꺼이 견딜 수 있습니다. 이는 단식을 비롯한 다른 속죄 행위의 기초이며, 가능한 한 예수님과 가까이 있고자 하는 우리 갈망의 숭고한 표현입니다. 건강을 위해 통증이 동반되는 행위들, 예를 들면 당뇨 치료를 위해 식이요법을 하거나 썩은 이를 뽑는 것도 용납됩니다.하지만 의도적으로 신체에 고통을 주거나 자기 몸을 잘라내는 행위는 하느님의 뜻에 어긋납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신체를 주셨고, 이를 잘 보살피며 혹사하지 말라고 분부하십니다. 다만 건강을 위해 필요한 외과적 수술이라면 허용됩니다.문 : 불임 수술은 허용되나요답 : 불임 수술은 한 사람의 건강한 생식 기관에 의도적으로 상해를 가하는 수술입니다. 불임 수술은 신체를 상해하는 것일 뿐 아니라 아기를 가질 수 없도록 합니다. 이는 그리스도교의 혼인관에 어긋납니다. 반대로 암이 있는 난소를 제거하는 것은, 비록 불임이라는 결과를 초래한다더라도 한 여성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것이기에 허용됩니다.문 : 성형 수술은 하면 안 되나요답 : 성형 수술은 손상된 신체를 복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심한 화상을 입은 피부의 이식, 절단된 수족의 접합 등은 신체의 완전성을 회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갈라진 입천장이나 그 밖의 신체적 기형을 고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주름살 제거, 유방 확대, 지방흡입술 같은 수술은 문제가 됩니다. 이런 수술을 하는 목적이 건강 때문인가요, 아니면 허영 때문인가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외모에 자격지심을 느낍니다. 일부 사람들은 객관적으로는 그렇지 않은데도 자기가 못났다고 생각하며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심리적 또는 영적 문제이므로 수술로는 해결하지 못합니다.문 : 우리의 신체를 어떻게 여겨야 하나요답 : 우리의 가치는 겉으로 드러나는 외모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이 가치를 지니는 것은 하느님이 당신 모습대로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주로 우리의 영혼에서 발견되고, 거기에 참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몸을 주셨기에, 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몸을 거부하고 다른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한다면 이는 하느님이 주신 선물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체를 마치 한낱 도구인 것처럼 여겨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이 주신 우리의 몸을 무분별하게 다루지 않아야 합니다. 정리=전은지 기자 eunz@cpbc.co.kr cpbc2019.04.24
![[평신도영성 나는 평신도다] (16)한국 교회 평신도 사도직의 현주소 4 : 현대 사회 속에서의 평신도](//cpbc.co.kr/CMS/newspaper/2019/03/rc/749230_1.0_titleImage_1.jpg)
[평신도영성 나는 평신도다] (16)한국 교회 평신도 사도직의 현주소 4 : 현대 사회 속에서의 평신도돈·명예 아닌 기도·봉사·복음에 관심을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돈과 권력, 명예만을 추구하고 명품과 최신형 스마트폰 등 물적인 것에서 행복을 찾는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일, 이웃을 위한 일, 즉 기도, 성경, 봉사, 공동체 생활, 복음 선포 등에 관심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외로움, 쓸쓸함, 고독…. 이 말들은 현대인들에게 더는 낯선 용어가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 주위에는 외로움과 고독을 느끼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 외로움의 극한적 폐해가 바로 우울증과 정신분열증입니다.이러한 외로움은 하느님과의 단절에서 옵니다. 하느님과의 통교가 끊길 때 외로움이 옵니다. 하느님과 단절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영이 아닌 육신과 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많은 이들이 지금도 돈과 권력, 명예만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명품과 최신형 스마트폰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기도생활이나 독서, 묵상, 성경 말씀에 대해 성찰하는 것이 불가능해집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나의 일, 하느님의 일 우리는 일반적으로 너무 바쁩니다. 바쁠 필요 없습니다. 그렇게 바빠서 우리가 과연 얻는 것이 무엇인가요. 돈? 지금 가지고 있는 지갑을 꺼내 보십시오. 거기에 돈이 조금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돈이 내 돈인가요? 아니면 하느님의 돈인가요? 지갑에 있는 카드가 내 카드인가요, 아니면 하느님의 카드인가요? 지갑 자체는 내 지갑인가요, 하느님의 지갑인가요? 생각을 더 확장해 보겠습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은 내 일인가요, 하느님의 일인가요?모든 평신도는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모든 일이 하느님의 일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나에게 일을 하도록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손의 혈관이 잘 돌아가게 만들어 주시고, 늘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서 내가 오늘 일할 수 있게 해 주신 하느님께 얼마나 감사합니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하느님의 일, 이웃을 위한 일, 상황 변화를 위한 일, 또 다른 건너편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주신 일입니다. 그러니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는 모든 일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내가 하느님이라면 이 사람에게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까, 하느님이 이 일을 하신다면 어떻게 하실까 하고 생각해야 합니다.지금도 많은 평신도는 즐거운 것에 너무 집착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육신 차원에서는 엔조이(enjoy, 즐기다), 정신 차원에서 새티스파이(satisfy, 만족시키다)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정작 영적 차원에서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중심을 잡고 매일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 노력하는 이들을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오직 자기만 기쁘고 행복하고 즐거우면 된다는 식으로만 생각합니다. 종교적 이기주의입니다. 평신도라면 다른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기도, 성경, 봉사, 공동체 생활, 복음 선포 등이 그것입니다. 평신도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야 할 기본적인 의무나 실천 사항 등에 더 관심을 갖고 그것을 삶을 통해서 드러내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모든 삶 즉, 일상생활과 인간관계 그리고 직업적인 일들 안에서도 하느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생활해야 합니다.예수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사람들세상 사람들은 교회 건물을 보고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들, 평신도들의 삶을 보고 하느님의 존재를 인식하고 하느님을 믿겠다고 인식합니다. 그러므로 평신도는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을 알고 그분의 뜻을 알아들었듯이 세상의 사람들도 세상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우리 평신도들을 보면서 하느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접하고 그분의 존재를 확인하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평신도들이야말로 이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절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예수 그리스도의 사상은 이타주의입니다. 평신도가 이타주의를 실천하고 살아간다면 그러한 평신도들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즉, 하느님께서 세상에 드러나시게 될 것입니다.정치우(안드레아, 새천년복음화학교 교장) 평화신문2019.03.26

발명가 꿈꾸던 공대생, 예수님 닮은 아흔의 사제가 되다신달자 시인, 주교 수품 50주년 맞은 정진석 추기경과의 대화 신달자 시인이 정진석 추기경과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눴다. 정 추기경과 삶과 신앙에 대해 나눈 신 시인은 “추기경님은 영혼의 밭을 갈며 말씀의 씨앗을 뿌리고 키우고 거두는 농부와 같다”고 말했다. 서울대교구 제공 정진석 추기경이 올해 주교 수품 50주년을 맞았다. 1970년 6월 25일 청주교구장에 임명되면서 주교가 됐고, 같은 해 10월 3일 청주교구장에 착좌했다. 신달자(엘리사벳) 시인이 7월 16일 주교 수품 금경축을 기념해 정 추기경을 찾았다. 모든 것이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이 시대에 무게 중심을 잡아 주는 어른을 뵙고 싶어서였다. 정 추기경을 만난 신달자 시인이 그날의 이야기를 보내왔다. 장대비 내린 뒤 몇 가닥 구름 사이로 보이는 파아란 하늘색을 닮은 추기경을 혜화동 주교관에서 만났다. 1931년생 아흔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절반은 유년시절의 맑은 순수성을 그대로 지닌 건강한 얼굴, 예수님 닮아가는 얼굴이라고 하면 맞겠다. 안심이었다.누구나 요즘 모든 일이 불안하고 두려운 상태를 살고 있어 이럴 때 인생 지침의 어른을 뵙고 싶었는데 뜻이 이루어졌다. 허영엽(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신부의 전화를 받고 달려가듯 설레며 갔던 것이다. 추기경을 뵙는 순간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다. 우리가 밥상이나 책상이 흔들거리면 종이를 접어 다리 밑에 깔고 수평을 잡지 않는가. 추기경은 그 흔들거리는 세상을 스스로 구겨진 종이가 되어 세상의 수평을 잡고 계신 분이었다. 그러나 모습은 맑은 하늘로 보이는 일이야말로 하느님의 뜻이 있으신 것이리라.“50년 전 생각이 나요. 제가 늦게 로마에 가서 석사 학위를 막 받고, 박사 학위 준비 겸 방학 동안에 서울교구 신부님들 미사 예물을 얻으러 미국에 갔어요. 교구 사정이 어려울 때였거든요. 그때 미국에 있는 교황청 대사관이 편지를 보내왔어요. 교황청의 편지였지요. ‘네가 서울교구장의 허락을 받고 미국에 왔느냐? 만약 허락을 받고 왔다면 그것이 네가 주교가 된다는 것에 승낙하는 것을 겸하겠다.’ 1970년 6월 25일, 바오로 6세 교황님께서 저를 제2대 청주교구장으로 임명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된 거죠.”오래전 이야기를 어제 이야기처럼 차분히 하시는 것을 나는 마치 예수님의 지난날을 듣는 듯 귀를 세웠다. 그때가 김수환 추기경이 교구장이었던 시절이었으며 39세에 주교가 되신 것이다. 서울대학교 공대생이었던 정 추기경의 원래 꿈은 발명가였다. 그러나 인간이 발명한 것은 악용될 수 있다는 것, 인간이 만든 발명품은 마침내는 무기로 사용될 수 있어 악용되지 않는 도구가 되어야겠다 생각하셨다는 것이다. 그뿐인가. 한국전쟁 때다. 살벌한 인천 상륙 끝에 서울을 탈환하는 전날 밤 골방에서 육촌 동생 미카엘과 숨었는데 지붕이 폭탄에 맞아 미카엘이 추기경 앞에서 죽은 것이다. 만약 위치가 바뀌었다면 추기경이 그렇게 됐을 거라 생각하신 것이다. “왜 하느님이 나를 살리셨을까?” 이 물음은 추기경이 신학교로 가신 큰 동기가 되었다. 추기경님은 눈을 지그시 감으시면서 “사명을 주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사명? 누구나 크고 작은 사명을 받고 태어나지만 많은 사람은 그 사명을 되돌리는 경우가 많다. 더 큰 계기가 있었다. 1ㆍ4 후퇴 때 국민방위군으로 소집돼서 마산까지 걸어갈 때였다. 덕소 근처에서 얼어있는 한강을 건너는데, 추기경이 지나간 다음에 얼음이 깨져서 뒤에 오던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추기경이 막 건너간 다음이다. 또 의성쯤 갔을 때는 추기경 바로 앞에 간 사람들이 지뢰를 밟아 죽었다. 낙동강 전투 때 뿌려놨던 지뢰였다.여러 번 살아난 것이다. 추기경은 그러므로 그때마다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고 하셨다. 그 뼈저린 죽음을 너무 많이 경험하면서 하느님이 주신 사명은 추기경의 굳건한 영혼의 뼈로 굳어진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 때 그것이 곧 생명 안에 사는 것을 알게 하신 뜻일 것이다. 마산에 도착해서는 육군 국민방위군 소위가 되었지만 한 달 만에 국민방위군 부정사건이 터져서 방위군 사령관이 처형당하고 국민방위군은 해체됐다. 그리고 대구에 있던 미8군 부대에서 통역관이 됐다. 미군 무기수송부대였는데 똑같은 부품이 트럭에도 있고, 탱크에도 있었다. 그래서 또 한 번 느낀 게 있었다. 평화의 무기가 곧장 살생 무기가 되는구나 하고. “그 무렵 영적 아버지인 김영식 신부님을 만나게 됐어요. 전쟁 중에 고아 100명을 기르고 계셨지요. 부산으로 피란 왔던 고아원이 부평 미군 보급부대 옆으로 이사했는데 통역관이 필요하셨던 거예요. 신부님을 따라다니면서 고아원 운영에 필요한 물품을 얻어오곤 했지요.” 그때까지는 신부도, 신학도도 아니었다. 미군 신부 방에서 「성녀 마리아 고레티」 「종군 신부 카폰」 「억만인의 신앙」 책을 빌려보게 된다. 그렇게 「성녀 마리아 고레티」 책을 번역하게 되는데, 마리아 고레티 성녀는 1950년 6월 시성됐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때에 성인이 되었으니 “이분은 한국의 성인”이라고 하면서 번역을 하셨다. 가슴으로 걸어오시는 성녀가 계셨던 것이다. 책은 추기경이 신학교 1학년 때 출판이 되었다.추기경에게 지금의 생은 한 네 번, 다섯 번째인 것 같다. 살려 주시는 분이 계셨고 해야 할 과제를 손에 쥐여주시는 분 또한 계셨다. “「억만인의 신앙」을 번역할 때는 우리나라 신자 수가 1%도 안 됐어요. 그래서 그게 가슴에 맺혀있었죠, 어떻게 하면 전교를 잘 할 수 있을까 하고요. 「억만인의 신앙」은 선교에 관한 책이에요. 신앙을 튼튼하게 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지요.” 번역 60년, 최근에 다시 「참 신앙의 진리」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탄생되었다. 하느님이 마련하신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참 진리의 선교에서 오늘에 이르신 것이다. 30대 청년 주교라니, 호기심이 생겼다. “39세면, 추기경님이 교구장으로 막 부임하셨을 때 굉장히 미남이셨을 거 같아요.”“미남인 건 모르겠고요.(웃음) 그때 청주교구에 미국 메리놀회 신부님이 19명, 한국 신부님이 6명이었어요. 한국 신부님들은 미국 신부님들보다 연배도 어리니까 작고 가난한 본당으로 갈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니까 생활비가 없었어요. 젊은 신부님들이 생활비 때문에 고민하고, 실망하고 그런 상황들이 벌어졌지요.”그때는 다 가난하고 충북에 포장도로도 거의 없을 때였다. 주교 서품식은 1970년 10월 3일 청주에서 있었다. 그 당시 청주 사람들은 주교 서품식을 처음 보았다. 교구 설정 12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인 주교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착좌 후 일주일 동안 교구 내 22군데 성당을 다 방문했다. 간혹 신자들을 만나 본명을 물으면 “밀가루 이름요?” 하고 되물었다. 교리에는 관심 없이 외국 교회의 구호품을 받으려고 세례받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성심의 바닥에 하나씩 돌을 쌓기 시작하신 것이다. 나는 추기경의 탁월한 기억력에 감탄했다. 나는 문학도로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에 매번 머뭇거린다. 약하고 잘 비틀거리는 내가 물었다. “추기경님은요?” “사람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것 중에 마지막 작품이에요. 그렇다면 뭔가 다른 피조물에게는 없는 것을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주셨지요. 그게 지성이에요. 하느님이 만들어 주신 작품 중에서 사람만이 나를 존재케 해주시는 하느님을 의식할 수 있어요. 그것이 자유예요.” 자유! 뜻밖의 말씀이었다. “그 자유를 인간이 남용해서 불행을 자초하는 거예요. 하느님은 사람을 창조하시면서 ‘너는 행복하게 살아라’ 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 태어날 때 영혼을 넣어주셨어요. 각 사람의 영혼을 단독으로 창조하셔서 아기가 태어날 때마다 새로운 창조를 해주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신 선생이나 나나 모두 특별한 존재예요.” 무엇인가 남용했다는 말씀에선 심장이 툭 떨어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남용! 인간은 그 남용과 남발로 지금 무지한 고통에 시달리는 것, 추기경은 가차 없이 지적해 주셨다. 부와 건강, 자녀 이런 것들을 다 가진 내 지인들은 어쩌다가 단둘이 얘기를 하다 보면 다들 불행하다고 한다.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안으로는 불행하다, 아프다, 외롭다고 말한다. 인간은 왜 그럴까? 행복은 어떤 것이기에 인간이 가지기 어려운지 모를 일이다. “요새 전염병 때문에 다 어려워하고 있잖아요. 전염병의 근거가, 인간이 지구의 자원을 남용했기 때문이라는 학설도 있잖아요, ‘이것으로 알아들어라’ 하는. 외로움 상처 고통 모두 같은 문제에요. 재앙의 원인은 끝없는 욕망에 있어요. 우주 질서를 순종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해요. 많이 가진다고 행복하지 않아요. 감사와 자유가 필요합니다. 특히 하느님에 대한 신뢰 부족이 원인이기도 해요. 말씀을 철저히 따르면 부족함이 없을 텐데, 조금씩 에누리를 해서 자기 멋대로 악용을 하잖아요.” 추기경이 내 안을 들여다보시는 것 같아 조금 자세를 고쳐앉았다. 어휴! 오래 앉아 있으면 안 되겠다고 스스로 서두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나는 다그쳤다. 왜 인간은 외로운가. 예수님이 계시는데도 말이다. 왜 부족하고 왜 상처를 받는가. 추기경도 사람인데 혹시 이런 순간은 없을까. “있죠. 그때마다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인간의 감정을 누를 수 있는 더 강한 말씀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진정한 가르침을 진정하게 듣는가. 멋대로 악용하고 나름으로 해석하는 건 아닐까. 결국, 고통만 남는 것이리라. 그렇다. 예수님을 생각하시기에 일 년에 한 권씩 책을 쓸 수 있는 무한 힘을 받으시고 실행하셨는지 모른다. 그리스도 안에 완성을 이루는 삶을 사신 것이다. 추기경은 역경에 처했을 때보다 더 높은 뜻을 생각하고 그 생각을 기르는 분이시다. 추기경이 스스로를 ‘작은 별’이라고 지칭하실 때 추기경 앞에 꿇어앉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김수환 추기경은 여러 혼란 속에 고통을 헤쳐나가셨는데 후임자인 자신은 그런 용기가 없다고 생각하셨단다. 그러나 ‘작은 별’이라고 스스로 칭하셨지만 작은 별에도 분명 빛이 있다고. 그 믿음으로 오늘까지 예수님의 뜻을 받들고 오신 것이니 큰 별이 틀림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통째로 주님의 은혜라는 것을 추기경을 통해 깊게 느꼈다. 추기경과의 만남에서 나의 첫 질문은 ‘요즘 세상에 희망이 있을까?’였다. 추기경은 힘주어 말씀하셨다. “희망이 있죠. 하느님께 늘 희망을 청하면서 지냅니다.” 추기경은 그 희망을 구겨진 종이로 우리 사회를 받쳐 오신 것이다. 나는 동시대인으로 함께 추기경과 살아온 행운에 감사했다. 마지막 질문으로 트로트를 불러 보신 적이 있는지 물었다. 추기경은 고개를 흔드셨다. 옆에 앉은 허영엽 신부가 대신 대답해주셨다. “가요를 부르신 적이 있어요. 2004년 명동대성당 특강 때 최희준의 ‘하숙생’을 부르셨는데 음정 박자가 하나도 틀리지 않아서 많은 박수를 받으셨죠.” 우리는 함께 웃었다. ‘인생은 나그넷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허 신부님이 그 노래의 첫 구절을 불러 나도 따라 불렀다. 주교 수품 50주년 인터뷰가 트로트로 끝이 났지만, 추기경은 90년 동안 영혼의 농부였다고 생각한다. 영혼을 밭갈이하며 말씀의 씨앗을 뿌리고 키우고 거두는 농부, 그 험난한 신앙의 박토를 일구신 농부. 아무리 험하고 가파르고 아픈 길이어도 오르고 또 오르는 순교이며 예수님의 말씀을 땅으로 삼으신 추기경의 주교 수품 50주년은 아름답고 향기가 너무 진했다. “인생이라는 먼 길을 가는 우리에게 그 최종 목적지와 주의사항을 알려주는 길잡이가 곧 성경”이라고 추기경은 말씀하셨지만, 추기경이 바로 우리에겐 그 길잡이라는 생각이 썰렁한 내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추기경은 우리 모든 사람에게 등대지기셔요. 누가 쳐다보지 않아도 늘 불을 켜고, 바닷가에 외롭고 당당하게 서 있는 등대. 추기경이 계시니 주교 수품 50주년을 맞아 이 어지럽고 갈팡질팡한 대한민국에 등대지기로 저희가 바라보고 있습니다.’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계속 책도 보여주시고, 얼굴도 보여주시고, 하숙생도 부르시고, 그렇게 등대지기가 길잡이가 계속되어 주시기를 바라며 혜화동을 밝게 걸어 나왔다. 며칠 굶어도 되겠다. 든든했다. cpbc2020.08.05
![[시사진단] 독서공동체의 회복(표정훈, 요한 사도, 출판평론가)](//cpbc.co.kr/CMS/newspaper/2019/04/rc/750273_1.0_titleImage_1.jpg)
[시사진단] 독서공동체의 회복(표정훈, 요한 사도, 출판평론가) “책 읽을 때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혀도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는 종종 이런 식으로 침묵 속에서 독서에 빠진 그를 발견하곤 했다. 그는 절대로 큰 소리를 내어 글을 읽지 않았다.” 밀라노의 주교 성 암브로시오(340~397)가 책 읽는 모습을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묘사했다. 왜 묘사했을까? 대략 10세기까지 서양에서 소리 내어 읽지 않는 묵독은 드문 일이었다. 독서는 기본적으로 소리 내어 읽는 낭독이었다. 성 암브로시오의 묵독이 꽤 특이해 보였던 것.서양뿐 아니라 동아시아도 마찬가지였다. 정인지(1396~1478)의 글 읽는 소리에 반한 옆집 처녀가 담을 넘어 방으로 뛰어들자, 정인지는 절차를 밟아 혼인하겠노라 달래어 처녀를 돌려보냈다. 이튿날 정인지는 이사 가버렸고 처녀는 상사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조광조, 심수경, 김안국, 상진 등도 젊은 선비의 글 읽는 소리에 반한 처녀가 담 넘은 전설의 주인공들이다.경전을 낭독하는 것은 세계의 주요 종교들의 공통점이다. 교회에서는 말씀 전례에서 성경을 읽어 전례 참여자들에게 하느님 말씀을 깨닫도록 하는 이를 독서자라고 한다. 고대 인도의 성전(聖典) 리그베다, 사마베다, 야주르베다 등은 낭송하는 음까지 자세하게 정해져 있었다. 이슬람의 ‘코란’은 혼례나 장례, 국경일, 각종 공식 모임 등에서 낭송되며 독경사(讀經士)를 초빙할 때도 있다.유다인들도 다양한 악센트와 리듬으로 각 지역 특유의 정서까지 반영시켜 성경을 낭독했으며, 역시 독경사들이 활동했다. 전통 사회에서 성립된 텍스트 대다수는 낭독을 전제로 한다. 18세기 유럽에서는 귀족의 개인 살롱에서 책을 낭독하고 감상하는 모임이 자주 열리곤 하였다. 조선에서는 전문적인 소설 낭독가인 전기수(傳奇)들이 활동했다. 독서의 역사에서 이렇게 낭독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눈과 머리로 읽는 묵독에 비해 낭독은 온몸으로 읽는다. 묵독은 사밀(私密)한 개인적 행위지만, 낭독은 공동체성을 바탕으로 한다. 독서란 본래 함께 읽는 행위였다. 책이란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물건이었다. 예전처럼 책을 낭독하지는 않더라도 책을 함께 읽고 의견을 나누는 독서공동체가 최근 늘고 있다 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고 전국 도서관들이 진행하는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사업이 대표적이다.독서공동체는 그 이상적인 의미에서 ‘책과 독서를 매개로 소통으로서의 교양과 시민적 상식을 함양하며 책임 있는 친교를 나누는 자율적 시민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독서공동체의 범위는 소규모 모임에만 그치지 않는다. 예컨대 교회 전체를 하느님의 말씀을 함께 읽는 하나의 독서공동체로 볼 수도 있다. 독서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일은 책이 공론(公論)을 형성하는 매체가 되고, 독서가 공론 형성의 바탕이 되는 가능성의 회복이다. cpbc2019.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