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대림 제3주일, 자선 주일 -주님의 오심을 기쁘게 기다리는 방법 사제들과 레위인들은 요한이 사제인 즈카르야의 아들임을 알고 있었는데 하느님의 놀라운 은총으로 태어난 그야말로 메시아라고 여겼던 듯합니다. 요한이 ‘메시아’로서 백성들을 ‘정화’하기 위해 세례를 베풀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을 꿰뚫고 있었던 요한은 서슴지 않고 분명한 어조로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고백합니다.그러자 그들은 ‘엘리야’냐고 묻습니다.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말라 3,23)라는 예언대로, 요한이 세상 종말이 일어나기 전에 사람들을 회개시켜 파멸에 이르지 않도록 이끄는 그 ‘엘리야’인지를 물은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아니라고 합니다.그러자 그들은 마지막으로 요한이 ‘그 예언자’인지를 묻습니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 동족들 가운데에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신명 18,15)라고 모세가 예언한 그 ‘대 예언자’인지를 물은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이번에도 아니라고 합니다.그 대신 이사야서를 인용하여 자신이 실천할 ‘소명’이 무엇인지를 설명합니다. 자신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맞이하여 구원받을 수 있도록 육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준비시키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밝힌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에게 질문하던 이들은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는 그 일을 해도 되는 ‘자격’을 먼저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하느님의 뜻을 열심히 따르는 행동 안에서 자신이 하느님께 받은 자격, 즉 ‘소명’이 드러난다고 여기는 요한의 사고방식을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성경에 기록되어’ 합당한 자격을 갖춘 예언자도 아니면서 왜 제멋대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느냐고 따지나, 요한은 자신이 세례를 베푸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요한 1,26)우리 곁에 ‘메시아’가 이미 오셔서 ‘우리가 모르는 모습으로’ 계시는데 우리 눈이 어두워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기에, 우리가 죄의 ‘어둠’에서 벗어나 ‘빛’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알아보도록 이끌어주려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비춰주시는 ‘진리의 빛’을 받아들이고,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라는 희망을 간직한 채 살아가면, 어려움과 고통이 닥치더라도 ‘언제나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는’ 자세로 살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살기를 바라시기에 당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신 것이지요.호주의 젊은 시인 에린 핸슨이 쓴 ‘아닌 것’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당신의 나이는 당신이 아니다 당신이 입는 옷의 크기도 / 몸무게나 / 머리 색깔도 당신이 아니다 당신의 이름도 / 두 뺨의 보조개도 당신이 아니다 당신은 당신이 읽은 모든 책이고 / 당신이 하는 모든 말이다… 당신은 당신이 믿는 것들이고 /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며 당신 방에 걸린 사진들이고 / 당신이 꿈꾸는 미래이다 당신은 많은 아름다운 것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 당신이 잊은 것 같다 당신 아닌 그 모든 것들로 / 자신을 정의하기로 결정하는 순간에는”‘하느님의 자녀’이며 ‘그리스도인’임을 결정하는 요소는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가 아닙니다. 하느님을 닮은 그분의 ‘모상’으로 창조된 우리가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들로 자신을 정의하려고 하면, 하느님께서 내 안에 심어주신 고유한 아름다움을, 내가 추구해야 할 고귀한 삶을 잃고 맙니다. 요한 세례자처럼, 하느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고유한 소명을 깨닫고 실천함으로써 내가 하느님께 사랑받는 자녀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충실히 실천하는 그분의 제자임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쁘게 기다리는 방법입니다.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평화신문2020.12.08

한국의 첫 영세자 이승훈, 천당지옥설·위천주론 내세워 배교 선언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55. 이승훈의 「벽이문(闢異文)」과 「유혹문((?惑文)」 정약종의 「주교요지」 하권 첫면에 실린 천지창조 관련 항목에 나오는 ‘누지불이’ 대목. 「벽이문」과 천당지옥설이승훈은 교회사에서 늘 뜨거운 감자였다. 그는 평생 배교 행동을 반복했고, 이를 확인하는 「벽이문(闢異文)」과 「벽이시(闢異詩)」, 그리고 「유혹문((?惑文)」을 남겼다. 이 글의 진의를 두고도 당시부터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이글에서는 이승훈의 「벽이문」과 「유혹문」에 대해 살펴보겠다.이승훈은 1785년 3월, 을사추조 적발 직후 배교를 선언하면서 전향서인 「벽이문」과 「벽이시」를 지었다고 1791년 11월 8일 의금부 공초에서 밝힌 바 있다. 이승훈의 공초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해당 일자 기사에 나온다. 공초에는 당시 진산 사건 직후 홍낙안이 북경에서 서학책을 사온 일과 교리서를 간행한 일, 그리고 반회 모임 등 세 가지 죄목을 걸어 이승훈을 저격하자, 이승훈이 조목별로 해명한 내용을 담고 있다. 세 가지 죄목에 대해 하나하나 해명한 뒤, 이승훈은 자신의 배교가 확정적임을 강조하기 위해, 을사추조 적발 당시 형조판서 김화진에게 올렸다는 「벽이문(闢異文)」의 일부 내용을 인용하여 소개했다. 이승훈은 「벽이문」의 전문을 평택 임소에 두고 와서 전체 글을 기억하지 못한다면서 글 속의 세 문장만을 발췌했다. 해당 구절은 다음과 같다. “천하의 학술은 삿되고 바름을 떠나 이로움과 해로움이 있은 뒤라야 사람들이 반드시 마음을 기울인다. 앞서 서학에서 천당과 지옥의 주장을 없게 했더라면 사람들이 이것 보기를 어찌 패관잡설보다 아래로 보지 않았겠는가?” “서양에서 온 학문은 반드시 천당과 지옥을 위주로 삼아 천하의 억만 생령(生靈)을 속인다.” “서학에는 가짜 천주[僞天主]가 횡행한다는 주장이 있다. 요망하고 허탄하며 망녕되기가 이와 같은 것이 없다. 이미 하늘이라고 말해놓고 가짜가 있다 함은 어찌된 것인가? 내가 반드시 그 주장을 가지고 그 주장을 깨뜨려 보겠다.”그 내용은 천주교의 천당지옥설과 가짜 천주가 횡행한다는 위천주론의 주장에 관한 비판으로 요약된다. 처음 두 문장에서는 사학(邪學)에 사람들의 마음이 쏠린 이유를 천당과 지옥에 대한 주장으로 그들을 현혹시켰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승훈은 글에서 천주교가 천당지옥설로 혹세무민한다며 그 주장의 허망함을 설파하려 했던 듯하다. 천주교의 이단성이 바로 천당지옥설에 있고,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천당지옥의 주장과 다를 바 없다는 식의 논리를 펼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서학의 천당지옥설은 전래 이래 중국에서 천주교를 불교의 아류로 보아 배척하게 만든 중요한 근거였다. 「칠극」의 제7장에서 천당지옥설에 대한 논의를 자세히 변증하여 불교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킨 것도 사실은 이 때문이다. 위천주의 실체세 번째 문장에 나오는 위천주(僞天主), 즉 가짜 천주가 횡행한다는 주장도 논란거리다. 위천주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나? 이승훈의 위 언술만 보면 진짜 천주와 가짜 천주가 있고, 세상에 가짜가 횡행하니 현혹되면 안 된다는 서학의 교리 주장이 이치상 모순된다는 비판을 담고 있다. 「벽이문」에서 이승훈은 이 가짜 천주에 대한 서학의 허황된 주장을 서학의 논리로 격파한 내용을 담았다고 말했다. 위천주란 용어는 안정복의 「천학문답」 30번째 문답에 그대로 나온다. 근래에 어떤 상사생(上舍生)이 공자에게 올리는 석전(釋奠)에 참석하려 하자, 천주학을 하는 그의 벗이 이를 말리면서, 형상을 꾸며놓고 제사를 올리면 마귀가 와서 먹지 공자의 귀신이 와서 흠향하지 않는다며,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한 말을 인용했다. 안정복의 글 속에 나오는 천주학을 하는 벗은 홍낙안이 다른 글에서 쓴 것처럼 이승훈을 특정한 것이 분명하다. 안정복은 서학에서 천주상을 걸어놓고 예배 드리는 것은 형상을 본뜬 것으로 일종의 마귀라 하면서, “마귀의 변환을 헤아릴 수 없는 것이 또한 선을 꾸며 세상을 미혹시켜 낮은 백성을 어리석게 만듦이 있다. 서사(西士)가 여기에 미혹되어 높이 떠받드니 어찌 가소롭지 않겠는가? 그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거짓 천주가 있다고 한다. 이 또한 마귀의 장난이다. 가짜로 거짓 천주라 일컫는다면, 가짜 형상에 기대어 부칠 수 없는 것이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위천주에 대한 언급이 워낙 짧아 위천주의 실체는 여전히 모호하다. 위천주는 적(敵) 그리스도(Antichrist)인가? 아니면 성경에 나오는 타락한 천사장 루시퍼나 악마의 우두머리 베엘제불인가? 이승훈이 1785년 당시의 수준에서 위천주에 대한 논의를 펼쳤다면 그것은 당시 기본 서학서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마태오 리치의 「천주실의」 중 [4.7]에 나오는 다음 단락이 주목된다. “예전 천주께서 천지를 만드실 때에 여러 신의 무리를 만드셨는데, 그 가운데 하나의 큰 신이 있어 이름을 노제불아(輅齊拂兒), 즉 루시퍼(Lucifer)라 하였다. 자기가 이처럼 영명한 것을 보고는 문득 오만해져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천주와 더불어 동등하다고 말할 만하다.’ 천주께서 노하시어 그를 따르는 수만의 신과 나란히 변화시켜 마귀가 되게 하고, 내려보내 지옥에 두었다. 이로부터 천지의 사이에 처음으로 마귀와 지옥이 있게 되었다.”이 루시퍼의 이야기가 정약종의 「주교요지」 하편 1장에는 ‘누지불이’로, 명도회장을 지낸 김기호 요한이 1879년에 쓴 「구령요의(救靈要義)」에는 ‘누지뿌리’란 이름으로 똑같이 나온다. 루시퍼는 9품 천신 중 상품 천신이었다가 스스로 천주와 동등하다고 여기는 교만으로 인해 지옥에 떨어져 마귀 집단의 리더가 되어, 독살 많은 배암의 형상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이승훈이 위천주의 개념을 천당지옥설과 묶어서 말했으니, 위천주란 바로 이 루시퍼처럼 천주의 권능을 참칭한 마귀를 가리킨 것으로 본다. 또 마태오복음 24장 5절과 루카복음 21장 8절 등에 말세의 징조로 “장차 많은 사람이 내 이름을 내세우며 나타나서 ‘내가 그리스도다!’ 하고 떠들어대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속일 것이다”라고 한 대목이 있는데, 이 거짓 그리스도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자 중에서 스스로 그리스도의 자리에 올라있는 자를 가리킨다.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 2장 4절에도 “하느님의 성전에 자리 잡고 앉아서 자기 자신을 하느님이라고 주장”하는 가짜 악의 세력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또한 위천주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에 대한 깊은 논의는 신학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여서 필자가 다룰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 한편 척사파의 선두에 섰던 홍낙안은 「노암집(魯巖集)」 제4책에 실린, 1791년 11월 11일에 쓴 「이승훈의 무고로 인해 변명하여 진술한 상소(因李承薰誣供陳卞疏)」에서 이승훈의 「벽이문」이 당시 아비와 아우가 부르는 대로 받아적은 글이라 진정성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더 나아가 “글 가운데서 천당과 지옥을 배척한 것은 과연 불교의 천당과 지옥이 아니었던가? 이른바 위천주란 것은 혹 저들의 학문 중에서 배척하는 마귀가 아니었던가? 이것을 고집하여 주장한다면 그가 말하는 진짜 천주와 진짜 천당지옥은 진실로 그대로 있는 셈이다. 어찌 더욱 흉악하고 교활하지 않은가?”라고까지 말했다. 어쨌거나 홍낙안 또한 위천주를 마귀로 본 것은 같다. 또 하나의 배교 선언 「유혹문」1785년에 썼다고 한 「벽이문」 이후, 1795년에도 이승훈은 서학이 이단임을 밝히는 또 한편의 배교문인 「유혹문((?惑文)」을 지었다. 유혹이란 미혹됨을 깨우친다는 뜻이다. 「유혹문」에 관한 내용은 신유박해 당시 「추안급국안」 1801년 2월 10일 자 기록에 한번 나온다. “을묘년(1795)에 예산에서 귀양살이할 때 사학 중 지극히 요사스럽고 참혹한 말을 세 단락으로 나눠서 쪼개고 격파하여 「유혹문」을 지었습니다. 그 글 가운데 하늘이 사람이 되어 내려왔다는 말은 지극히 요망하고 너무도 허탄하니, 어찌 빠져 미혹될 이치이겠습니까? 조금 문자를 아는 자는 역상(曆象)의 방법이 교묘함을 가지고 미혹되었고, 어리석은 부류는 천당지옥설로 미혹되었으므로, 이를 쪼개어 부수려는 뜻으로 수천백 언의 글을 지었던 것입니다.”이 진술에 따르면 「유혹문」은 천주교 교리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 허구성을 밝힌 글이었다. 그중 하나가 예수 강생(降生)의 신비에 관한 부분이었다. 이는 대단히 요망한 논리인데도 식자층은 그네들의 역상(曆象) 즉 역법과 천문학에 대한 지식 때문에 빠져들었고, 일반 백성들은 천당지옥설에 이끌려 현혹되었으므로, 자신이 수천 마디의 글로 이를 논파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승훈의 「유혹문」이 앞선 「벽이문」의 골격을 바탕으로 더 자세히 부연하여 서학을 배격한 장문의 논설이었음을 보여준다. 이승훈은 최초의 영세자였지만, 1785년 을사추조 적발 직후 배교를 선언하며 「벽이문」과 「벽이시」를 지었고, 두 해 뒤인 1787년의 정미반회 사건과 1791년 평택 현감 당시 공자 사당에 배례를 거부한 일로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러다 1795년 주문모 실포 사건 직후 예산에 귀양 가서는 또다시 전향서인 「유혹문」을 써서 배교의 최전선에 섰다. 그가 쓴 「벽이시」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 따로 쓰겠다.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cpbc2021.06.09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32주일, 평신도 주일 - 평신도, 파견되는 사도들](//cpbc.co.kr/CMS/newspaper/2020/11/rc/790327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32주일, 평신도 주일 - 평신도, 파견되는 사도들 임상만 신부 오늘은 평신도 주일이다. 그리스어로 ‘하기오스’, ‘크리스티아노스’라는 말에 어원을 두고 있는 평신도라는 말은 ‘거룩한 백성’, ‘하느님께 경건하게 예배드리는 자들’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신약 성경에서는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을 받은 신자’(로마 1,7), ‘아버지 하느님께 복받을 사람들’(마태 25,34), ‘예수님께 속한 사람들’(로마 1,6) 등 신앙 안에서 이미 복을 받은 사람들을 지칭하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평신도에 대한 정의 가운데 진정한 의미 하나를 선택한다면, “언제나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는”(1테살 5,6-8) 모습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평신도들은 대체로 주일에 성당에 모여 미사를 봉헌하고 흩어져 한 주간을 세상 속에서 사회인으로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올바른 평신도의 삶은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미사가 끝나고 서로 흩어진 후에 각자의 생활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주어진 사명의 열매를 맺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초대 교회의 모습은 평신도들이 각자 신앙의 공동체에서 흩어진 후에 자신의 생활터전에서 수행하는 사명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편 흩어진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 필리포스는 사마리아의 고을로 내려가 그곳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였다. 군중은 필리포스의 말을 듣고 또 그가 일으키는 표징들을 보고, 모두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사도 8,4-6)하느님께서 주일마다 평신도들을 당신 교회로 모으시는 것은 그들이 함께 모여 미사와 전례만을 행하기 위함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평신도들의 사명을 재확인하고 다시 세상으로 흩어지는, 아니 ‘파견’되는 주님의 사도가 되도록 이끌어 주시는 섭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의 평신도들은 주님의 신비체인 교회에서 지체로서 공적 예배와 신앙 고백을 통해 신앙의 성장과 더불어 그것을 발판으로 하여 세상에 나아가 많은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해야 할 책임을 주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자들인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였다(에페 1,23). 이 말은 모든 신자가 그리스도 신비체인 교회의 지체로서 다 중요하며 각자가 고유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씀은 ‘평신도’이기에 교회의 모든 일을 성직자들에게 맡기고 자신들은 어떠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비조직적 구성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신학자 칼 라너 신부는 교회론을 통하여 평신도라는 말이 교회에서 사라져야 교회가 정상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평신도라는 말이 하느님 말씀을 실천하고 전파해야 하는 모든 책임을 사목자에게 전가시키고 자신들은 이 책임을 회피하는 용어로 오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하여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방법을 비유로 알려주셨다. 등과 기름을 “준비하고 있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다”(마태 25,10ㄴ)는 말씀이다. 등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안심한 어리석은 처녀들은 결국 잔치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우리도 평신도 사도로서의 복음적 삶과 선포를 통하여 등에 기름을 채우고 잔치에 들어가도록 해야 하겠다.“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마태 7,21)임상만 신부(서울대교구 상도동본당 주임) 평화신문2020.11.03

기도로 하느님과 만나 일치 이루는 영성 공간 원주교구, 배론성지 ‘은총의 성모 마리아 기도학교’ 봉헌… 기도 관련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운영 원주교구장 조규만 주교가 15일 은총의 성모마리아 기도학교 봉헌식에서 기도학교 머릿돌을 제막하고 있다. 이정훈 기자 원주교구는 성모 승천 대축일인 15일 충북 제천 배론성지에서 교구장 조규만 주교 주례로 ‘은총의 성모 마리아 기도학교’ 봉헌식을 거행했다.은총의 성모 마리아 기도학교는 ‘누구든지 언제든지 와서 교회가 가르치는 모든 기도를 배우고 실천하자’란 이념 아래 가톨릭 기도의 모든 것을 배우고 실천하며 하느님과 만나 일치를 이루고자 만들어진 영성 공간이다.연면적 약 6800㎡, 건축면적 약 3700㎡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건립됐으며, 성당과 강당, 성체조배실, 기도 정원을 비롯해 한 번에 2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2인 및 4인용 숙소 100여 실과 식당을 갖추고 있다. 설계는 (주)종합건축사사무소 디자인캠프 문박 디엠피가, 시공은 두산건설이 맡았다. 원주교구 사제단과 교구민, 서울대교구 등 타 교구 사제와 신자 등 후원자 3만여 명이 기도학교 건립에 힘을 보탰다.하늘에서 보면 ‘우물 정(井)’ 모양을 띤 기도학교는 가운데 중정(中庭)에 자리한 묵상의 정원을 비롯해 야외 로사리오 정원, 노아의 정원 등 곳곳이 홀로 또 같이 기도와 묵상을 할 수 있도록 조성됐다. 대형 강의실부터 새하얀 성당, 고요한 성체 조배실에 이르기까지, 곳곳이 기도와 묵상에 들 수 있는 공간으로 지어졌다.이날 기도학교 봉헌식에는 춘천교구장 김운회 주교와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를 비롯한 주교단과 사제단, 교구민이 참석했다.조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누구나 이곳에서 편안하게 우리의 바람을 기도하고, 하느님을 만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학교를 건립했다”며 “우리는 이곳에서 성모님처럼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 기도할 것이며, 나아가 모세처럼 우리나라, 우리 민족, 우리 사회,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곳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권혁주 주교도 인사말을 통해 “원주교구가 한국 교회 전체를 대신해 아름다운 기도학교를 하느님께 봉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한국 교회가 함께 이 기도학교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도학교로 함께 가꿔 나가자”고 전했다.개인 단체 누구나 원하는 주제와 형식으로 피정을 할 수 있고, 기도와 관련해 교육 프로그램을 의뢰해 참여할 수도 있다. 현재 사제와 수도자가 성경 및 기도 주제로 진행하는 신청형 피정도 접수하고 있다. 피정 접수 및 문의 : 043-651-4563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cpbc2020.08.19
대전교구 세종 신교구청사 상량식 거행 유흥식 주교가 신교구청사 마룻대를 축복하고 있다. 대전교구 홍보국 제공 대전교구는 8일 세종시 4-1생활권 반곡동 767 교구청사 신축 현장에서 교구장 유흥식 주교 주례로 교구청사 용마루에 마룻대를 올리는 상량(上樑) 예식을 거행했다. 마룻대에는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는 성경 말씀과 함께 유 주교와 교구 총대리 김종수 주교의 친필 서명, 상량식 날짜 등이 쓰여 있다. 이날 상량 예식에는 유 주교와 김 주교를 비롯해 교구 사제단과 수도자, 평신도, 공사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대전교구 신청사는 대지 1만 6000㎡에 교구청사동과 사제관동, 주교관동, 성당동 등 모두 4동이 들어서며, 현재 공사 진척도는 55%다. 교구청사동은 지하 1층, 지상 4층에 전체 건축면적 9528㎡, 성당동은 지하 1층, 지상 5층에 전체 건축면적 330.58㎡, 사제관동은 지하 1층, 지상 5층에 전체 건축면적 4851㎡, 주교관동은 지상 3층에 전체 건축면적 385㎡ 규모다. 사제관동과 주교관동은 오는 8월께, 교구청사동과 성당동은 오는 11월께 완공될 예정이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평화신문2020.05.13

사제 수품 후 1년에 한 권씩 집필한 ‘주님의 작가’독서광이자, 매년 책을 펴냈던 정진석 추기경은 만나러 온 손님마다 자신이 사인한 책 선물을 아끼지 않았다.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해마다 한 권씩이라니. 정진석 추기경은 1961년 사제품을 받은 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책을 펴냈다. 그는 ‘신앙의 교사’이자 ‘주님의 작가’였다. 정 추기경은 보통학교 시절, 일본 어린이들만 드나들던 ‘어린이 도서관’에 숨어 들어가 위인전에 빠진 ‘꼬마 독서광’이었다. 그의 ‘책 사랑’은 사제의 길에 접어든 뒤에도 변치 않았고, 동기였던 고(故) 박도식 신부와 부제 시절 이런 약속을 한다. “우리, 신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을 1년에 한 권씩 내자!” 훗날 스스로도 “철이 없었으니까 그런 무모한 약속을 했지” 하고 웃으며 회고했던 정 추기경의 왕성한 집필 활동으로 나온 저서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교구장 시절을 넘어, 지난해 주교 수품 50주년을 맞아 펴낸 「교회법 해설」(개정판)까지 역서를 포함해 총 65권에 달한다. 정 추기경의 저서와 역서 가운데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 것은 「교회법전」이었다. 일본어 대역판은 있고, 한국어판 「교회법전」은 없었던 1960년대, 정 추기경은 당시 교황청립 우르바노대학교에서 교회법 석사 학위를 받을 때에도 일본어 법전으로 공부해야 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한국어 대역판 교회법전을 번역해야지!’ 정 추기경은 이후 청주교구장 시절이던 1983년 보편교회의 새 「교회법전」이 반포된 뒤 홀로 번역 작업에 돌입했다. 이후 주교회의 교회법번역위원회가 공식 출범한 이후 사제들과 공동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6년 만인 1989년 번역 작업을 완수한 뒤 교황청 인준을 받고, 라틴어-한국어 대역판 「교회법전」을 출판했다. 추기경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사제와 신학생, 신자 모두가 교회법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교회법 해설서 편찬 작업에 홀로 돌입했다. 정 추기경은 2002년에야 15권에 달하는 「교회법 해설서」를 완간했다. 번역부터 해설서 집필까지 자그마치 20년이 넘는 대장정이었다. 자국어로 된 교회법 해설서는 라틴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 5개뿐이다. 이를 토대로 교회는 교회법을 보다 쉽고 심층적으로 연구하는 밑거름을 마련했고, 2008년 한영만(서울대교구) 신부가 정 추기경의 해설서를 요약해 「교회법전주해」를 펴냈으며, 2019년 가톨릭대 교회법대학원은 동북아시아 최초 교황청 승인을 받게 되는 등 정 추기경의 노력이 큰 바탕이 됐다. 이 같은 노력이 그를 ‘교회법 대가’로 불리게 만든 이유다. 정 추기경은 매년 ‘니콜라오’ 축일(12월 6일)을 앞두고 신간을 펴냈다. 마치 산타클로스(성 니콜라오)처럼 하느님의 지혜가 담긴 ‘책 선물’을 한아름 들고 신자들과 소통해온 것이다. 서울ㆍ청주교구 교구장직을 수행하던 시절, 앞이 꽉 막히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 헤맬 때마다 한 줄기 빛이 됐던 묵상들을 모은 「나를 이끄시는 빛」, 사회적 존재로서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가치를 담은 수필집 「햇빛 쏟아지는 언덕에서」, 신앙인이 지녀야 할 경제관념에 관해 쓴 「안전한 금고가 있을까」에 이르기까지. 정 추기경은 특유의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운 문체로 교회 교리와 성경 가르침, 사회 현안을 두루 넘나들었다. 정 추기경이 번역해 기초를 놓은 김대건 신부의 편지 모음집 「이 빈들에 당신의 영광이」와 최양업 신부 편지 모음집 「너는 주추 놓고 나는 세우고」는 마침 올해 성 김대건 신부와 가경자 최양업 신부 탄생 200주년을 맞아 각 교구가 다시금 필독서로 선정해 권장하는 도서다. 높이 쌓아올려도 어른 키는 훌쩍 넘을 만큼 수많은 책을 펴냈지만, 그가 전한 핵심 메시지는 ‘주님 사랑’과 ‘진정한 행복’이었다. “사랑하면 할수록 한없이 주고 싶은 심정이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재물도 주고, 관심도 주고, 정성도 주고, …간추려 말하면 사랑하는 사람의 원의를 이루어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질그릇의 노래」 중) “청명한 하늘에 햇빛이 비치는 날보다, 먹구름이 짙게 낀 하늘에 천둥 번개가 요란했던 날이 더 많았던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차분히 회상해보면 실상은 비 온 날보다 맑게 개인 날이 훨씬 더 많았고, 깔깔대고 웃었던 순간이 눈물을 흘렸던 순간보다 훨씬 더 많았습니다. … 생명과 행복을 넘치게 베풀어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온 마음으로 찬미하면서 세상을 떠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정진석 추기경의 행복수업」 중)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민족 화해를 위한 노력정진석 추기경은 1998년 4월 3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으로부터 대주교로 임명받고, 그해 6월 29일 제12대 서울대교구장과 평양교구장 서리로 착좌했다. 정 추기경은 교구장 착좌식에 초대 평양교구장을 지내고 한국전쟁 때 공산군에 의해 북으로 압송돼 순교한 패트릭 번(한국명 방일은, 메리놀외방선교회) 주교의 목장을 들고 입장해 “분단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밝혔다. 정 추기경은 선임 서울대교구장이며 평양교구장 서리였던 김수환 추기경의 뜻을 받들어 2003년 서울대교구 시노드 후속 교구장 교서 「희망을 안고 하느님께」를 통해 민족화해센터 건립을 촉구했다. 이에 따라 서울대교구는 2006년 4월 8일 파주 통일 동산에 마련한 부지에서 정 추기경 주례로 속죄와 참회의 성당 및 민족화해센터 착공 미사를 봉헌하고 기공식을 했다. 정 추기경은 이날 미사 강론을 통해 “성전은 한국 전쟁 당시 형제끼리 서로 죽이고 60여 년을 증오와 갈등으로 살아온 겨레가 하느님께 잘못을 고백하고 참회와 용서, 회개를 통해 화해하는 상징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착공 미사 중에 서울대교구와 의정부교구는 참회와 속죄의 성당 및 민족화해센터 공동 사목 합의서를 교환, 분단이라는 시대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민족 화해를 위한 두 교구 간의 아낌없는 협력을 약속했다. 2013년 봉헌한 참회와 속죄의 성당과 민족화해센터는 남북으로 갈라져 살아온 우리 민족이 서로에게 안겨준 아픔과 상처를 극복하고 화해와 협력을 통해 신앙 안에서 사랑으로 하나 되어 평화와 통일의 길을 모색하기 위한 정 추기경과 서울대교구, 한국 교회 신자들의 의지로 일군 결실이다. 정 추기경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는 우리 민족의 권리요, 의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같은 민족을 하나로 합치는 것은 마땅히 교회에도 우선적인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해 왔다. 정 추기경은 이를 위한 실천 방안으로 기도와 교육, 나눔을 제안하고 실천했다. 정 추기경은 북녘 결핵 환자 돕기 운동 참여를 호소했고, 2007년 북한이 홍수 피해를 크게 입자 교구장 명의 특별 사목 교서를 발표하고, 수재의연금과 긴급구호물자를 모아 북한으로 보냈다. 정 추기경은 또 황인국 몬시뇰을 평양교구장 서리 대리로, 최승룡 신부를 황해도 감목대리구 교구장 대리로 임명해 단 한 명의 사제도 없는 북녘 교회와의 교계적 끈을 유지했다. 정 추기경은 교구장 재임 시절 가톨릭평화신문과의 대담에서 “북한 주민과 북한 정권을 구분해야 한다. 북의 국민은 참으로 우리가 보살펴 주어야 할 동포들이지만 북한 정권 지원에 대해서는 말하기가 참 쉽지 않다”고 말해 일부 교회 인사들에게 저항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정 추기경은 언제나 “북의 우리 동포를 위해서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우리가 사랑의 손으로 보살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히면서 민족의 화해를 위해 기도를 당부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1.04.28
[장현규 수녀의 사랑의 발걸음] 26. 가르멜회 수녀님프랑스 성요한 사도 수녀회 장현규(마리스텔라) 수녀 우리 수녀들은 이곳 베르사유의 수도원과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양로원에서 사도직 활동을 해오고 있다. 프랑스 교구에 속해 있는 양로원에는 가르멜회 소속 어르신 수녀님 세 분이 살고 계셨다.그런데 이 중 한 분께서 며칠 전 하늘나라 주님 곁으로 가셨다. 도미니크 마리 수녀님이시다. 슬픈 마음을 추스르고 우리 수녀님들과 나는 가르멜수도원과 가까운 성당에서 봉헌된 수녀님의 장례 미사에 참여했다. 넓은 성당 안에는 가르멜회 수녀님들과 관계자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제대 옆 하얀 벽을 올려다보니, 그곳엔 환한 천사의 미소를 닮은 마리 수녀님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평소 뵙던 모습처럼 수녀님의 얼굴은 아름다웠다.사진 옆에 한 줄 글이 눈에 들어왔다. ‘도미니크 마리 수녀님은 영원한 생명과 기쁨이 있는, 사랑의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셨다.’ 이 단순하면서도 희망찬 한 말씀이 내 마음에 깊게 와 닿았다. 이 문구대로 수녀님은 하느님 사랑 속에 사셨다.수녀님은 75세 때 우리 양로원에 오셔서 83세에 천국으로 떠나셨으니 8년 동안 우리 수녀님들과 행복하게 사셨다. 가끔 내가 수녀님을 방문하면 마음을 다해 환대해 주신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서로 소박하게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수녀님의 작은 방은 함박웃음으로 가득 찼다. 소박한 수녀들의 만남에 하느님께서도 늘 함께하셨으리라.어느 날 마리 수녀님은 자신의 성소 이야기를 해주셨다. 가르멜회에 처음 입회했을 때의 나이는 50세! 수녀님께서 늦은 나이에 입회하신 것은 아버지가 어머니와 다섯 남매를 두고 집을 나가신 게 큰 이유였다. 수녀님은 맏딸이었으며, 홀로 자식들을 키우게 된 어머니를 돕기 위해 50세까지 30년 동안 직장에 다니면서 일을 했다고 한다.마리 수녀님은 웬만한 운동선수들은 저리 가라 할 만큼 키도 크고, 몸집도 우람하시다. 수녀님 마음도 체격 못지않게 넓다. 그 바다 같은 몸과 마음에서 나오는 지극한 효성으로 어머니를 챙기신 것이다. 수녀님은 형제자매들이 다 자라 독립할 때까지 수도자가 되는 자신의 뜻을 미루고서 일하셨다. 그렇게 맏딸로서 제 할 일을 다 마치시고 수녀님은 그 엄격한 가르멜 수도회 수도자가 되셨다. 그리고 평생 하느님께 충실하게 사셨다.이날 장례 미사를 주례하신 신부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요한 19,25)는 성경 말씀을 인용해 강론하셨다. 실제로 도미니크 마리 수녀님은 가르멜회 수도자로서 십자가 옆에 꿋꿋하게 서 계신 삶을 살았고, 그런 모습이 내 머리에 그려졌다.수녀님은 가르멜회의 그 두툼한 문을 두드리기 전, 홀로 된 어머니의 따뜻한 위로자였다. 어머니를 지키며 버팀목이 되어준 훌륭한 따님이었으며, 네 형제자매의 착하고도 든든한 누님이셨고, 언니로서 사셨다. 수도자가 되기 전에도 하느님 뜻에 따라 어머니를 위했고, 가정에서 그 소임을 다한 뒤엔 수도자로서 온전히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신 삶을 산 것이다. 그 용기와 힘의 원천은 바로 수녀님께서 십자가 옆에 꿋꿋하게 서 계셨기 때문이다.“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긴 그 승리는 바로 우리 믿음의 승리입니다.”(1요한 5,4)프랑스 성요한 사도 수녀회 장현규(마리스텔라) 수녀 cpbc2020.11.11

솔뫼 출생 김대건은 모방 신부에게 세례 받고 신학생 후보로 발탁[신 김대건·최양업 전] (1) 김대건 신부의 출생과 어린 시절 김대건 신부는 1821년 8월 21일 충청도 솔뫼에서 아버지 김제준과 어머니 고우르술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사진은 솔뫼 성지내 김대건 신부 생가 복원터. 연재를 시작하며 김대건ㆍ최양업 신부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한국 가톨릭교회는 올 한해 희년을 지내고 있다. 이 희년을 보다 뜻깊게 보내기 위해선 이들이 어떤 분인지를 우선으로 아는 게 중요하다. 성경을 읽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없듯이, 2000년 역사를 조망하지 않고 그리스도교를 이해할 수 없듯이 김대건ㆍ최양업 신부의 행적을 알아야 이 분들의 진면모를 깨닫고 현양할 수 있다. 다행히 교회와 역사학자들의 학문 성과로 김대건ㆍ최양업 신부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됐다. 교회와 관변 사료뿐 아니라 전공ㆍ학위ㆍ학술 논문, 단행본들이 김대건ㆍ최양업 신부에 관해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정보에는 꼭 필요한 것과 유익한 것뿐 아니라 쓸데없는 것들도 있다. 따라서 정보에 대한 식별과 방향 설정이 필요하다. 가톨릭평화신문은 두 사제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신 김대건ㆍ최양업 신부 전’을 연재한다. 이 연재의 목적은 두 사제를 현양하고, 최양업 신부의 시복시성을 기원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호교론적 관점이나 낙관적인 입장에서 서술하지 않을 것이다. 가능한 정신사적ㆍ세계사적 교류에 대한 보편사적 관점에서 두 사제의 삶을 고찰하려 한다. 또한, 과거지향적 고찰이 아니라 비판적 관점에서 현재 한국 교회와 관련지어 학자들의 의견을 소개하려 한다. 필자는 역사 전공자가 아니다. 일개 신문 기자일 뿐이다. 하지만 김대건ㆍ최양업 신부의 삶의 흔적을 찾아 중국ㆍ홍콩ㆍ마카오ㆍ파리ㆍ로마를 헤매던 경험과 여러 관련 논문과 단행본들을 탐독해 쌓은 얕은 지식을 총동원해 수많은 정보 가운데 한국 교회의 모범이신 두 사제의 삶의 정수를 소개하고자 한다. 연재 내용 중 한때 교회 안에서 학자 간에 쟁점이 되었거나 좀더 연구해 볼 가치가 있는 주제들도 소개하려 한다. 이는 결코 교회 안에 불화를 조장하려는 게 아님을 밝힌다. 두 분에 관한 학술 성과를 소개하여 김대건ㆍ최양업 신부의 삶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함이다. 이 연재의 핵심이자 확고한 중심은 김대건ㆍ최양업 신부의 삶과 영성임을 밝힌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김대건ㆍ최양업 신부가 한국가톨릭교회사에 처음으로 공식 등장한 때는 1836년 모방 신부로부터 신학생 후보로 선발되면서이다. 모방 신부는 1836년 12월 3일 자로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장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제가 데리고 있었던 세 소년은 첫째로 지난 2월 6일부터 최(양업)토마스요, 둘째는 최(방제)프란치스코가 3월 14일부터, 셋째는 7월 11일부터 데리고 있던 김(대건)안드레아 입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어린 시절김대건 신부의 어린 시절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반면, 최양업 신부는 자신과 가족들의 진술 기록이 남아 있어 어린 시절을 그나마 정리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 보면, 김대건 신부는 1821년 8월 21일 충청도 솔뫼에서 아버지 김제준(이냐시오)과 어머니 고우르술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7살 때인 1827년 정해박해를 피해 할아버지 김택현과 부모를 따라 고향 솔뫼를 떠나 서울 청파로 피신했고, 다시 용인 한덕동으로 이주했다. 김대건 신부 가족은 1830년 할아버지가 선종한 후 골배마실에 정착했다. 그리고 1836년 4월 골배마실 아랫마을인 은이에서 모방 신부에게 세례를 받은 뒤 신학생 후보로 선발됐다는 게 통설이다. 한때, 김대건 신부와 아버지 김제준의 문초 기록을 토대로 김대건 신부의 출생지와 세례받은 곳이 용인 ‘굴암’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일성록」의 김대건 신부 공초에 ‘조선 용인 태생’, 「헌종실록」에 ‘용인 사람’이라고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은 하성래(아우구스티노, 전 수원교회사연구소 고문) 선생이 2002년 처음으로 제기했다. 그는 “가문을 소중히 여기는 당시 풍습으로 보면 김대건 신부가 아무리 용인 땅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용인은 객지이며 원 고향은 솔뫼”라며 ‘출신’과 ‘태생’이 지니는 의미 차이를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모방 신부가 1836년 12월 3일자 편지 내용 중 신학생 후보 서약서에 김대건이 ‘충청도 면천 솔뫼’ 출신이라고 명기했고, 가장 친한 동료 최양업 신부 역시 「순교자들의 행적」에서 김대건 신부를 ‘충청도’ 출신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 「기해ㆍ병오 순교자 목격 증언록」에도 김대건 신부의 출신지가 솔뫼라고 직시하고 있다. 한국 교회는 이러한 교회 사료를 근거로 김대건 신부가 솔뫼에서 태어났다고 분명히 하고 있다. “김대건(안드레아, 1821~1846)은 1821년 충청도 솔뫼(지금의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에서 김제준(이냐시오, 1796~1839)과 고우르술라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본관은 김해이고, 아명은 재복, 보명은 지식이었다.”(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천주교회사」 3권 105쪽)세례 장소 김대건 신부의 세례 장소에 대해서도 학자 간의 이견이 있다. 「일성록」 1839년 8월 7일 김제준 공초와 「추안급국안」 ‘사학모반죄인 양한ㆍ진길등안’ 1839년 8월 13일 김제준 공초 기록에 따르면 김대건 신부가 은이에서 세례를 받지 않았다는 통설과 달리, 용인 굴암의 자기 집에서 모방 신부에게 세례를 받은 것으로 나온다. 김제준은 서울 청파에 살다가 용인 땅으로 이주했고, 선교사가 없을 때에는 1년에 몇 차례 서울의 정하상 집을 왕래하면서 신앙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정하상이 서양 신부가 나와 머물러 있다고 했을 때 모방 신부를 찾아가 세례를 받았다. 이후 모방 신부가 지방 순회에 나서서 남쪽으로 내려올 때 자신의 집을 방문해 아들 김대건을 신학생 후보로 뽑았다고 진술했다. 모방 신부는 1836년 4월 5일 주님 부활 대축일 이후 본격적인 지방 사목 방문에 나섰다. 그는 1836년 12월까지 서울과 경기, 충청 지역 16~17개 교우촌을 방문하면서 어른 213명과 아이 150명에게 세례를 주고, 어른 110명과 아이 22명에게 보례를 베풀었다. 그리고 630명 이상의 신자들에게 고해성사를 주었고, 85건의 혼인성사를 집전했다. 그리고 8~9명에게 병자성사를 주었다. 「기해ㆍ병오 순교자 시복 재판록」 99회차 최 베드로 증언에 따르면 이 사목 방문 여정 중에 모방 신부가 굴암에 방문해 김제준을 회장으로 임명했고, 김제준은 자기 집을 공소로 만들고 주일이나 축일에 신자들을 모아 공소 예절을 하고 교리를 가르쳤다고 한다. 이러한 진술 기록을 근거로 일각에서는 김대건 신부가 굴암의 자기 집에서 세례를 받았거나, 아니면 굴암에서 은이까지 가서 세례를 받고 돌아온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원교구 50년사 -Ⅰ.교구사」 91쪽 ‘1836~ 1846년 선교 사제가 사목 방문한 용인 산골지역 공소’ 표에는 모방 신부가 1836년 4~7월 은이를 방문해 김대건을 신학생 후보로 선발했고, 같은 시기 모방 신부가 굴암 김제준의 집을 방문해 그를 공소 회장으로 임명했다고 나온다. 이 자료가 밝히고 있듯이 중요한 것은 소년 김대건이 1836년 4월~7월 사이 모방 신부로부터 세례성사를 받고 신학생 후보로 선발됐다는 것이다. cpbc2021.04.07

성바오로딸수도회, 복합 문화공간으로 대학로시대 열어 명동서원 접고 새로 ‘바오로딸 혜화나무’ 개관
콘서트·전시회 공간과 제작 스튜디오도 마련
새로운 문화 환경 맞춰 복음 선포 역할 기대 서울 명동서원에서 50년 가까이 문화 사도직을 수행해온 성바오로딸수도회(관구장 이금희 수녀)가 ‘문화와 예술의 거리’ 대학로에서 새로운 사도직 시대를 연다. 성바오로딸수도회는 복합 문화공간 ‘바오로딸 혜화나무’를 열고, 17일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주례로 축복식을 거행했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12길 38에 들어선 바오로딸 혜화나무는 쉼과 교류를 통해 비대면 시대 현대인들의 영적 갈증을 채워주는 문화공간으로 마련했다. 지하 1층ㆍ지상 6층 규모로 서원과 카페, 스튜디오, 모임방, 소극장, 갤러리, 기도실과 경당 등을 갖췄다. 4층부터 6층까지는 수녀원으로 봉쇄구역이다. 염수정 추기경은 축복식에서 “이탈리아어로 ‘큰 나무’라는 뜻을 지닌 창립자 알베리오네 신부의 정신과 이름을 다양성이 공존하는 대학로에 심게 되었다”면서 “도심 한가운데에 자리한 바오로딸 혜화나무가 복음화를 위한 예비 선교의 장으로서 빛의 터전 역할을 다하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관구장 이금희 수녀는 인사말에서 “47년간 작지만 많은 이에게 빛의 터전이 된 명동서원을 닫고 대학로에 새 터전을 마련했다”며 “세계적인 유행병을 겪으며 비대면 현실에서 어떻게 사람들과 소통하며 복음을 전할 것인지 깊이 성찰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수녀는 “무엇보다 우리가 기쁘게 살아간다면 이 자리가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영적 갈망을 채워주는 위로와 사랑의 샘터가 되리라 믿는다”고 덧붙였다.바오로딸 혜화나무는 콘서트와 연극, 전시회를 비롯해 영적 풍요로움을 꽃피우기 위한 다양한 문화 활동을 열 계획이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쉴 수 있고, 영상과 오디오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스튜디오도 마련했다. 특별히 코로나 시대에 더 건강하고 굳건한 신앙생활을 위한 기도훈련 프로그램(12주)과 영성 훈련을 통해 주님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기초 영성 훈련 프로그램(1년)을 준비했다. 공동의 집 지구를 위한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 받으소서」를 바탕으로 한 프로그램도 기획했다. 이와 함께 성경, 신학, 철학,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강사들과 함께 공부하는 아카데미도 열린다.성바오로딸수도회는 충무로서원을 거쳐 1968년부터 서울 중구 명동에서 서원을 통해 문화 복음화 역할을 해왔다. 당시 명동서원은 국내에서 유일한 가톨릭 전문서원으로 자리 잡으며, 한국 가톨릭 신자들에게 외국의 새로운 사조와 문화를 접할 수 있는 통로였다. 그러나 새로운 문화 환경의 변화에 따라 더 보편적인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사도직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명동서원은 2018년 12월 문을 닫았다. 바오로딸 출판사 대표 허명순(마리비타) 수녀는 “2월부터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만남과 모임 중심이었던 사도직 형태를 많이 고민하고, 언택트 시대에 사람들과 동반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했다”고 털어놨다. 허 수녀는 “이 거리에서 수도자로, 교회의 사람으로, 하느님의 사람으로 기쁘게 살아가는 것이 이 시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혜화나무 매니저 김계선(에반젤리나) 수녀는 “혜화나무가 사람들에게 영적인 피톤치드를 주고, 하느님과 사람을 잇는 장소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바오로딸 혜화나무의 다양한 프로그램은 인스타그램(hyehwanamu0908)과 네이버 블로그(https://blog.naver.com/miracarina0110)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평화신문2020.10.20
![[생활속의 복음] 그리스도왕 대축일 - 예수 그리스도를 참된 왕으로 모시자](//cpbc.co.kr/CMS/newspaper/2020/11/rc/791238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그리스도왕 대축일 - 예수 그리스도를 참된 왕으로 모시자 임상만 신부 한해의 마지막 주일인 ‘그리스도왕 대축일’이다. 아직은 코로나 19로 인한 힘든 상황이 종결될 기미가 보이진 않지만, 그럼에도 이 주일을 기점으로 우리는 주님의 섭리 안에서 새로운 희망과 기다림의 시간인 ‘대림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그리스도왕 대축일’은 1925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제정됐다. 세상에 만연하는 무신론과 세속주의 속에서 예수님을 참된 왕으로 모시고 그리스도의 통치가 개인과 가정 그리고 온 우주에까지 두루 미치고 있음을 드러내는 희망과 기쁨의 축일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한 번 하느님의 손길이 더 이상 미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작금의 현실 속에서도 이 세상에 곧 펼쳐질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시작될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야 하겠다. 사실 세상이 원하는왕은백성들의실제적인필요적 요소들에 대한 해결능력을가진 권력자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유다 백성들도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게 해주신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고 했을 것이다.(요한 6,15) 이런 까닭에 이세상의왕들은 하나같이 백성들이 원하는 먹고 마시는 기본적 욕구들을 해결해주겠다고약속한다.그러나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4,4) 그리고“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요한18,36)라고 천명하시며, 세상의 왕권이 내미는 달콤한 세속주의와 물신주의에 빠지지 말고 곧 다가올 하느님 나라를 깨어 준비하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 중에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세상의 구원자로서 믿기보다는 단지 당장 먹을 빵을 많게 하신 오병이어의 기적만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치 더 가지고 더 누리게 되는 것이 신앙의 열매이고 믿음생활의 근본적인 조건이라고 생각으로 예수님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이 먹고도 죽어갈 빵의문제나 경제문제 등의 해결사가 아니라 인간을 본질적으로 죄에서 해방시켜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이끄시는 왕 중의 왕, ‘그리스도 왕’이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최후 심판’이라는 오늘 복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더 이상 세상 것에 대한 욕심이 아니라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따라 새롭게 변할 것을 요구하신다. 가진 자들과 권력자들이 가난한 자들과 미천한 자들에 대해 온갖 갑질을 해대는 세상에서 이제는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앞장서 인간 차별을 없애고 연민과 보살핌으로 그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순간에도 심판의 오른편과 왼편 사이에 끼어있는 경계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또한, 예수님을 믿으며 살면서도 매 순간 더 많이 얻어 누릴 것만 생각하며 살고 있는 나약한 존재들임을 고백하게 된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나눔과 내어줌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더 많이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 마지막 심판 날에 ‘그리스도 왕’께서 우리도 당신 오른편에 설 수 있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예수님께서 우리의 왕이 되어주심에 감사드리며,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이 되신 예수님께서 세상에 다시 오실 때 우리 모두 이 축복의 말씀을 듣도록 변화된 삶을 살아야겠다.“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마태 25,34)임상만 신부(서울대교구 상도동본당 주임)※지난 1년 동안 ‘생활 속의 복음’을 연재해주신 임상만 신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교회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대림 제1주일부터 함승수(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신부님께서 집필해 주십니다. 평화신문2020.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