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cpbc.co.kr/CMS/newspaper/2011/09/rc/388998_1.1_titleImage_1.jpg)
[재미있는 가톨릭 교리](14)성령교회와 인간을 하느님께로 인도▶성령 성령은 성부와 성자의 영(靈)으로서 성부와 성자와 한 몸을 이루고 삼위일체 하느님의 한 위격(位格)을 이루신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영광과 흠숭을 받으시며' 교회와 인간을 하느님께로 인도하고 성화하신다. 성령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며 성화하시는 영이다. 성경은 하느님 영을 루아흐(ruah), 곧 입김ㆍ숨ㆍ얼 등으로 표현하고, 물ㆍ불ㆍ바람ㆍ비둘기 등 상징으로도 표현한다. 성경에서 하느님 영은 하느님 현존과 역사(役事)를 나타낸다. 하느님 영은 한처음부터, 곧 세상과 인간이 생길 때부터 존재했다. 세상과 인간이 창조되기 전, 한처음에 하느님 영이 감돌고 있었고(창세 1,2), 하느님께서 흙 먼지로 최초의 사람을 빚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자, 사람이 생명체가 됐다(창세 2,7). ▶예수님과 성령 예수님께서는 전 생애 동안 성령과 함께하셨다. 예수님은 성령의 힘으로 마리아께 잉태되셨다.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느님 영이 비둘기처럼 내려와 그분 위에 머무셨으며, 하늘에서 하느님 아들이라고 선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예수님은 성령의 인도로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 나가 악마 유혹을 이기셨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고 악마 유혹을 이기신 다음 악마 지배를 몰아내고 하느님 다스림을 현재화하는 활동적 영의 현존을 체험하셨다. 예수님은 나자렛 회당에서 이사야서 말씀을 통해 성령을 받아 기쁜 소식을 전하고 구원 행적을 베푼다는 사실을 선언하셨다. 이러한 성령의 힘으로 예수님은 공생활 내내 복음을 선포하셨고 많은 기적을 베푸셨으며 마귀를 쫓아내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최후 만찬을 하실 때 성령을 보호자, 진리의 영이라 부르면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겠다고 약속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다음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성령을 받아라"(요한 20,22)하고 말씀하셨고, 승천하고 현양된 다음에는 약속한 대로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셨다. ▶성령의 은사 성령께서는 개인이나 공동체에 각자가 필요로 하는 은사를 그에 맞갖은 형태로 다양하게 내려주신다. 성령의 은사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일곱 가지 은혜와 아홉 가지 열매를 들 수 있다. 흔히 '성령칠은'이라고 일컫는 성령의 일곱 가지 은사는 슬기(지혜), 깨달음(통찰), 일깨움(의견), 앎(지식), 굳셈(용기), 받듦(공경), 두려워함(경외)이고,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이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1서 12장에서 은사는 여러 가지이지만 은사를 베푸는 분은 같은 성령이시고, 은사는 모두 공동선을 위한 것이며, 성령께서는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사를 주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는 한국교회에서도 성령과 그분 은사를 잘못 이해하고 남용하는 사례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이에 대한 지침을 제시, 성령과 그분 은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모하고자 한다. 신앙교리위원회는 성경과 교회 가르침, 영적 식별 경험에 근거해 은사 식별 기준을 일곱 가지로 제시한다. 성령의 은사는 첫째, 공동선을 위해 주어진다. 둘째, 자신의 이익이나 명예가 아니라 사랑을 위해 사용된다. 셋째, 성령을 따르는 삶을 살도록 인도한다. 넷째, 다툼과 분열이 아니라 일치와 화합을 도모한다. 다섯째, 교회 교도권과 그 권위에 순종하도록 이끈다. 여섯째, 자기 자랑이나 교만이 아니라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자신보다 낫게 여기게 한다. 일곱째, 인간 이성을 무시하거나 배척하지 않고 이성의 도움을 받아 신앙의 진리를 이해하도록 한다. ▶성령 강림 대축일 성령 강림 대축일은 오순절에 기원을 둔다. 오순절은 본래 봄에 보리와 밀을 수확하고 나서 감사를 드리는 추수 감사제로, 가나안의 농경 축제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에는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고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받은 날로 기념했다. '파스카 축제' 첫 날부터 오십 일째 되는 날에 지냈기에 오순절이라고 불렀다. 예수 그리스도 제자들은 이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다음 복음을 만방에 선포하기 시작했다. 이에 교회는 성령 강림 대축일을 성령 강림 사건을 기념하고, 그 의미를 '지금 여기'에서 새롭게 재현하며 성령의 보호와 은총을 청하는 대축일로 기념한다. 제공=서울대교구 사목국조은일2011.09.06

아버지의 온유함[월간 꿈 CUM] 테마로 읽는 성경 (4) 성경은 주로 하느님을 아버지, 남성으로 표현하고 어머니, 여성으로 드러내는 부분은 적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성차별 때문이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하느님의 여성성은 성경에서 아예 제거되었을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께는 우리 인간과 같은 성이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인간의 모습이 아니시다. 그분께서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시다. 하느님께서는 성을 구별할 여지가 없는 순수한 영이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370항) 그런데도 굳이 아버지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 부모로서 동등합니다. 하지만 몸소 태중에 자녀를 품은 어머니와 자녀의 관계가 친밀성을 강조하기에 적합하다면, 몸 밖에서 자녀를 낳은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는 구분을 잘 드러낼 수 있습니다. 인간이 하느님과 구분되는 독립적인 존재라는 점, 여기에 인간의 자유가 들어갈 자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부모의 집착이 심한 경우, 즉 자신과 자녀를 일체화할 때 자녀가 독립적인 인격체로서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부모의 의지를 실현하는 도구가 되어 불행해지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아버지로 표현하는 것은 범신론과의 차별화 때문에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힌두교에서는 창조주와 피조물이 구분되지 않고 융합되어 있습니다. 즉, 내가 신이고 신이 곧 나인 것입니다. 이러한 신관에서는 하느님의 초월성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구원관도 하느님의 은총에 의한 구원이 아니라 스스로 도를 닦아 해탈에 이르는 구원을 말합니다. 물론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른다고 해서 그분이 인간 아버지와 같다는 말은 아닙니다. 누구도 하느님과 같은 아버지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하느님 아버지’라는 표현을 들으며 하느님께 대한 거부감을 느낍니다. 자기 아버지의 부정적인 면이 생각나서 그런 것이죠. 성경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와 다른 분이시라고 합니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를 버릴지라도 주님께서는 나를 받아 주시리라.(시편 27,10) 하느님의 온유함은 인간 아버지의 온유함을 아득히 넘어서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 아버지의 이미지를 하느님께 적용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 어떤 아버지이신지 알기 위해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 (요한 1,18)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빠’라고 부르셨습니다.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마르 14,36) ‘아빠’는 어린이의 언어입니다. 아버지를 세상에서 가장 강하며 자신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슈퍼맨으로 신뢰하는 어린이가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그리고 루카 15장에서 예수님은 ‘자비로운 아버지’의 비유를 통해 하느님 아버지의 온유함을 가장 훌륭히 보여주십니다. 자신이 살아있음에도 마치 죽은 것처럼 유산을 요구하여 받아 떠나서 탕진하고 돌아온 아들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우리가 어떠한 죄를 얼마나 크게 자주 짓는다 하더라도 우리를 용서하시고 다시 받아들이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봅니다. 하느님의 온유함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이 비유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20절입니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루카 15,20) 어떻게 아버지가 돌아오는 아들을 가장 먼저 발견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 아버지는 아들이 떠난 날부터 매일 동구 밖을 쳐다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제발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라면서 말입니다. 이 아버지의 마음을 가득 채운 것은 원망이 아니라 염려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들이 돌아와서 용서를 청하기 훨씬 전에 아버지는 이미 그를 용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용서는 우리의 회개를 앞섭니다. 우리는 그 용서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회개, 즉 돌아감은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여 용서를 끌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주어지고 있는 용서를 받아들이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부활 후 제자들을 만나는 예수. 의정부교구 마재 성가정 성지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다시 만난 제자들을 이렇게 부르십니다.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요한 21,5) 여기 사용된 ‘얘들아’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파이데이아’는 7세 미만의 어린이들을 가리킵니다. 가장 어둡고 고통스러운 순간에 당신을 배신하고 버린 괘씸한 제자들이지만, 하느님 아버지의 온유함을 그대로 품은 예수님의 눈에는 마냥 그들이 무섭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서 도망쳐 버리고만 가련한 어린아이들로만 보이는 모양입니다. 하느님은 이렇게 온유한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글 _ 함원식 신부(이사야, 안동교구 갈전마티아본당 주임, 성서신학 박사) 1999년 사제서품 후 성경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를 위해 프랑스로 유학, 파리 가톨릭대학교(Catholique de Paris)에서 2007년 ‘요나서 해석에서의 시와 설화의 상호의존성’을 주제로 석사학위를, 2017년 ‘욥기 내 다양한 문학 장르들 사이의 대화적 관계’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cpbc2025.07.25
![[출판]책꽂이- 그래도 기도합니다 등](//cpbc.co.kr/CMS/newspaper/2013/04/rc/448396_1.2_titleImage_1.jpg)
[출판]책꽂이- 그래도 기도합니다 등 그래도 기도합니다 김영수/생활성서/7000원 평화를 얻지 못하고 있을 때, 십자가로 괴로울 때, 용서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 때…. 어지러운 마음으로 괴로워하는 그 순간에도 저자(김영수 아브라함, 시인)는 '그래도 기도합니다'라며 하느님 앞에 참회의 기도를 바친다. "주님, 주님께서는 저의 온갖 죄를 조금도 헤아리지 않으십니다.… 진정으로 용서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저에게 내려주소서"(용서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 때 중에서). 괴로운 마음을 하느님 앞에 털어놓으며, 사랑과 은총을 청하는 기도가 마음을 위로해준다. 창조론 알렉산드레 가노치 지음/신정훈 옮김/가톨릭대학교출판부/2만 원 사람은 하느님께서 흙으로 빚어 탄생한 것일까, 아니면 원숭이에서 진화한 것일까. 이 책은 그리스도교 창조신앙과 진화론을 대표로 하는 자연과학의 연구 현황 사이에서 대화를 시도한다. 구약과 신약에 나타난 창조신학을 살펴보고, 교부시대부터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이르기까지 교회사 흐름 안에서 논의돼 온 창조론을 분석했다. 이어 진화론을 함께 다루며 그리스도교 창조론 해석 원칙을 제시한다.마리아, 복되신 어머니 데이비드 나이트 신부 지음/조민현 신부 옮김/히스웨이/1만 원 성모 마리아에 관한 가톨릭교회 가르침을 해설한 책. 성모 마리아는 원죄 없이 태어났고, 동정녀의 몸으로 예수를 잉태했으며 하늘에 불려 올라가셨다. 또한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이자 하느님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책은 이처럼 신비로 가득한 마리아론을 쉽게 풀어 설명하는 동시에 머리로 이해한 마리아를 가슴으로 받아들이도록 각 장 끝에 성경 구절과 성모님께 드리는 기도, 묵상주제 등을 실었다.하느님의 등불 성녀 필리핀 뒤셴 루이즈 캘런 지음/안은경 옮김/나이테미디어/5만 원 아메리카 선교의 선구자로 꼽히는 성녀 필리핀 뒤셴(성심수녀회, 1769~1852) 수녀의 삶과 영성을 다룬 전기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성녀는 성심수녀회를 설립한 성녀 마들렌 소피 바라를 따라 성심수녀회 수녀가 됐고, 미국으로 건너가 아메리카 대륙 선교에 헌신했다. 성녀는 아메리카 지역에서 여성 교육에 선구적 업적을 이뤄냈고, 수녀회를 성장시키며 예수성심을 널리 알리는 데 공헌했다. 성녀는 1940년 복자로 선포됐고, 1988년 교황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영성생활 길잡이- 인간 마음의 형성 정영식 지음/쉐마북스/1만 5000원 영성이 없는 믿음은 모래 위에 세워진 집과 같다. 종교가 없어도 착하게만 살면 된다는 이들의 삶은 위기가 닥칠 때 쉽게 무너진다. 왜 착하게, 겸손하게 살아야 하는지 원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저자 정영식(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 신부는 신자들에게 영성생활을 강조한다. 일상의 모든 것이 영성과 연결돼 있다는 정 신부는 이 책에서 성경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영성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며, 일상생활에서 영성을 구현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조은일2013.04.16
![[전국 교구장 새해 사목교서]청주교구-'이웃으로' 향하는 신앙 공동체](//cpbc.co.kr/CMS/newspaper/2013/01/rc/438169_1.1_titleImage_1.jpg)
[전국 교구장 새해 사목교서]청주교구-'이웃으로' 향하는 신앙 공동체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 올해 교구는 '이웃으로, 세계로' 2차 4개년 여정을 시작합니다. 말씀과 성체중심 삶을 통해 신앙을 굳건히 하고,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에 힘쓰면서 지역사회 복음화에 투신해야겠습니다. # 신앙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는 2012년 10월 11일부터 2013년 11월 24일까지를 '신앙의 해'로 선포하셨습니다(「믿음의 문」 4항 참조). 신앙의 해에 우리 모두는 주님이시며 신앙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가까이 만나야겠습니다. 신앙 유산이 담긴 「가톨릭교회교리서」를 자주 읽고 배우고 익혀서 사도로부터 이어오고 순교자들이 목숨 바쳐 지켜온 신앙을 키워나가는 데에 열과 성을 다해야겠습니다. # 이웃에게 다가가는 선교 공동체 우리가 물려받은 신앙 선물은 결코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웃에게 전달돼야 할 것입니다(1코린 9,16 참조). 신앙 선물을 이웃과 나눈다는 것은 이웃이 예수님을 만나도록 돕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세상에 증언하고, 신앙을 찾는 사람들을 '믿음의 문'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믿음의 문」 7항 참조). 또한 어려운 이웃에게 다가가 함께 함으로써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야고 2,14-18). 이를 위해 지구 차원의 유대와 협력이 절실합니다. 올해부터 2016년까지 지구 중심 사목을 좀 더 구체화 해야겠습니다. 각 지구 공동체는 시노드 정신과 지구 상황을 함께 살펴보고 판단ㆍ실행하는 단계를 통해 11운동과 3000운동, 특히 사회복지 네트워크와 빈첸시오 활동 활성화 등으로 더욱 지역복음화에 힘써야겠습니다. # 신앙을 바로 세우는 청소년 사목 청소년은 교회 미래입니다(교구시노드 후속 교구장 사목교서, 청소년, 1항). 각 지구는 신자 청소년들을 넘어서서 교회에서 멀어진 청소년, 교회 울타리 밖 청소년들에게 다가갈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이들이 교회 신앙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중요한 신앙 증인들을 만날 수 있도록 도보성지순례, 합동 성시간, 청년성경공부, 청소년 생명교육, 「가톨릭청년교리서」 교육기회 등을 마련해야겠습니다. 목적은 청소년들의 변화입니다. 청소년 여러분은 하느님과 이웃을 위한 원대한 꿈을 갖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읽고 주일을 지키고 기도와 학업에 힘쓰면서 신앙을 바로 세우십시오. 같은 또래 청소년들에게 좋은 친구가 돼 주고 신앙의 인도자가 돼 주길 바랍니다. # 신앙을 전수하는 가정 가정은 신앙 전수의 첫 장소요, 참다운 가정 교회입니다. 신앙 전수는 단순히 말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첫 자리에 모시고 사는 부모의 모범을 통해 이뤄지는 것입니다. 꾸준히 가족이 함께 기도하고 대화함으로써 가정을 화목하게 하고, 작은 것부터 나누고 봉사함으로써 이웃 가정을 복음화해야 합니다. 본당과 지구는 가정방문을 통해 가정이 처한 어려움을 파악하고, 가정사도직 수행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지원할 수 있는지 고심해야 합니다. 교구는 생명과 환경에 대한 가정 인식을 높이기 위해 교육과 자료 제공을 해야겠습니다.조은일2013.01.15
![[전국 교구장 새해 사목교서] 부산교구- 본당 재탄생을 향한 새 복음화, 신심운동 복음화의 해](//cpbc.co.kr/CMS/newspaper/2013/01/rc/437354_1.2_titleImage_1.jpg)
[전국 교구장 새해 사목교서] 부산교구- 본당 재탄생을 향한 새 복음화, 신심운동 복음화의 해부산교구장 황철수 주교 교구설정 50주년(2007년)을 기점으로 우리는 새로운 미래를 지향하면서 복음화의 새 출발을 다짐했습니다. 지난 4년 동안 '좋은 본당 가꾸기' 운동으로 복음화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이는 새로운 방식과 각성으로 계속돼야 할 하느님 백성의 길이기도 합니다. 올해부터는 지난 여정의 바탕 위에서 본당 공동체가 쇄신되고 거듭나는 '본당 재탄생을 향한 새 복음화'라는 5년간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복음화(Evangelizatio)는 성경말씀을 전하고 교리를 가르치는 단순한 선교(Missio) 개념을 넘어 하느님 말씀과 구원계획에 반대되는 인간의 가치관, 생활방식까지 복음의 힘으로 정화하고 바로잡는 것까지 포함됩니다. 따라서 복음화는 문화를 겉치장하듯 장식하는 외적 형식이 아니라 문화의 깊은 근원까지 파급되는 생명력을 말합니다. 현대세계에서 새롭게 등장한 '새 복음화', '새로운 복음화'(Nova evan gelizatio)는 세속주의, 문화적 상대주의, 과학적 근본주의, 극단적 자본주의, 종교 무관심주의 등 대두에 따른 삶과 신앙의 위기를 반영한 재복음화를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새 복음화는 기존 신자와 교회공동체 자신의 복음화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본당 재탄생이라는 교구 중기 비전과 맥을 같이 합니다. 교회가 참신한 활력과 역동성을 유지하려면 교회 자신이 복음화돼 있어야 합니다. 이에 본당 재탄생을 향한 새 복음화의 5년 여정을 시작하려는 것입니다. 본당 재탄생을 향한 여정의 근원적 동력은 신심운동(2013년 신심운동 복음화의 해)과 가정공동체(2014년 가정 복음화의 해)에서 얻습니다. 본당 구성원들은 다양한 참여와 역할의 활성화로 영성적 친교공동체를 경험함으로써,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재확립하고 공동체 결속력을 확산시킵니다. 이후 확보된 두 동력을 근간으로 대외적으로는 문화 사목(2015년 문화 복음화의 해)과 대내적으로는 기초공동체 사목(2016년 기초공동체 복음화의 해)을 중심축으로 삼아 본당공동체 재탄생의 골격을 세웁니다. 마지막으로 지난 4년간의 다채로운 사목활동을 통합합니다. 본당 구성원 전체의 재복음화를 정점으로 '본당 재탄생(2017년 본당 복음화의 해)'의 여정을 완성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우리의 욕망을 채워주는 많은 것을 선전하며 그쪽으로 경주하게 합니다. 욕망의 경쟁사회는 우리 삶을 참되게 채워주지 못하고 공허하게 만듭니다. 인간은 비록 지상에서 살아가지만, 그 깊은 내면에서는 언제나 거룩한 하늘을 지향하는 영혼의 존재입니다. 사람들은 우리 공동체를 통해 이러한 영혼의 목마름을 채우고자 합니다. 교회를 찾아오는 이들과 우리 자신의 영적 갈구를 채워주는 본당공동체로 거듭나야 하는 이유입니다. 실천 지침으로 교육 및 신심운동 참여, 매월 체험교육 시행, 성경통독 및 필사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조은일2013.01.08
[ 함께해요! 평화방송] 교황 베네딕토 16세 특집 다큐멘터리 등 TV▨교황 베네딕토 16세 특집 다큐멘터리 교황 베네딕토 16세<사진>가 건강 악화로 교황직을 전격 사임했다. 28일 공식 퇴임을 맞아 베네딕토 16세의 일대기와 활동을 담은 2편의 다큐멘터리를 특집 방송한다. 신앙의 수호자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 편(1편)에서는 '탱크 추기경'이란 별명을 들을 정도로 교회 정통교리를 수호하는 데 헌신해온 그의 일대기를 소개하고, 사랑과 진리의 증거자 편(2편)에서는 교황 재임 이후 교회 수장으로서 전 세계 가톨릭교회를 어떻게 이끌어왔는지를 살펴본다. ▶방송일시: 1부 24일 오후 5시, 25일 오후 11시, 26일 오후 4시 / 2부 3월 3일 오후 5시, 3월 4일 오후 11시, 3월 5일 오후 4시 ▨2013 사순절 특강 신앙의 해를 기념해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본당이 마련한 사순절 특강을 5주에 걸쳐 방송한다. 이번 특강은 말씀(성경), 교회의 가르침, 기도, 미사, 사랑을 주제로 진행된다. 안병철 신부와 조규만<사진> 주교, 양승국 신부, 손희송 신부, 민들레국수집 서영남씨가 차례로 강연을 맡는다. ▶방송일시: (23일부터 5주간) 토요일 오후 11시, 주일 오후 4시, 월요일 오후 5시조은일2013.02.19

남성적이면서 여성적인 온유함[월간 꿈 CUM] 테마로 읽는 성경 (3)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의 ‘돌아온 탕자’(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262×205, 캔버스에 유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슈미술관. 아들의 어깨를 짚은 아버지의 손을 보면 한쪽은 남자의 손, 다른 쪽은 여자의 손이다. 예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단 하나의 기도로서 그리스도교의 가장 핵심적인 기도인 주님의 기도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예수님은 우리도 당신처럼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가르쳐 주셨습니다. 고대 근동의 많은 신들은 남신과 여신으로 나뉘어 결혼도 하고 출산도 하는 것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심지어 신들 사이에서 불륜도 일어나죠. 인간의 세상을 신의 세계에 투영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비록 우리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하더라도, 유일한 하느님의 성을 그처럼 남성이나 여성으로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굳이 그러한 신관을 따른다면, 홀로 예수님을 낳은 하느님은 자웅동체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남성도 여성도 아니지만, 그분께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함께 있습니다. 하느님에게서 여성성을 제거하게 되면, 우리는 하느님의 분노하시고 심판하시는 모습만 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하느님께서 여성적인 온유함을 갖고 계심을 잘 보여줍니다. 신약성경에서 하느님의 여성적 온유함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 대표적 그리스 단어 하나를 봅시다. 오이크티르모스(οἰκτιρμός). 이 단어는 연민을 뜻하는데, 모태(母胎)와 관계있습니다. 즉, 어머니가 자기 몸 안에 품었던 아이의 삶이 어떠하든지 항상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듯이, 하느님도 비록 우리가 죄인이어도 그렇게 바라보신다는 말입니다. 호세아서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에프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내버리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저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처럼 내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츠보임처럼 만들겠느냐?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호세 11,8) 마지막 문장은 직역하면, ‘내 모태가 요동친다’입니다. 하느님은 자녀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당신 백성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다른 말씀도 들어봅시다. “내가 에프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고 내 팔로 안아 주었지만 그들은 내가 자기들의 병을 고쳐 준 줄을 알지 못하였다. 나는 인정의 끈으로, 사랑의 줄로 그들을 끌어당겼으며 젖먹이처럼 들어 올려 볼을 비비고 몸을 굽혀 먹여 주었다.”(호세 11,3-4) “보라, 내가 예루살렘에 평화를 강물처럼 끌어들이리라. 민족들의 영화를 넘쳐 흐르는 시내처럼 끌어들이리라. 너희는 젖을 빨고 팔에 안겨 다니며 무릎 위에서 귀염을 받으리라. 어머니가 제 자식을 위로하듯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라.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라.”(이사 66,12-13) 성경에는 하느님의 여성성을 드러내는 말씀이 놀랄 정도로 많습니다. 하느님은 심지어 인간에게서 여성성 혹은 모성이 사라진다 해도 당신의 여성성은 영원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이사 49,15) 신약성경에는 예수께서 가엾이 여기셨다는 표현이 종종 나옵니다. 이 표현도 본디 모태가 요동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예루살렘을 두고 이렇게 한탄하십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마태 23,37) 루카 복음 15장에 수록된 자비로운 아버지의 비유를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하느님의 남성성뿐 아니라 여성성이 보입니다. 복음은 아버지가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거지꼴로 돌아온 둘째 아들을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루카 15,29 참조) 이 표현은 직역하면 ‘모태로부터 연민을 느꼈다’입니다. 그래서 바로크 시대의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는 이 장면을 그린 성화에서 하느님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들의 어깨를 짚은 아버지의 두 손을 자세히 보시면, 한쪽은 굵고 투박한 남자의 손이고 다른 쪽은 가늘고 섬세한 여자의 손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온유함이 여성들만의 전유물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남성적인 온유함도 있습니다. 하느님은 남성적인 온유함을 특히 아가서에서 신랑의 비유를 통해 드러내십니다. “나의 애인이여, 그대의 모든 것이 아름다울 뿐 그대에게 흠이라고는 하나도 없구려.”(아가 4,7) 당신의 신부인 우리 인간을 바라보는 하느님의 시선이 얼마나 부드럽고 따스한지요. 글 _ 함원식 신부(이사야, 안동교구 갈전마티아본당 주임, 성서신학 박사) 1999년 사제서품 후 성경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를 위해 프랑스로 유학, 파리 가톨릭대학교(Catholique de Paris)에서 2007년 ‘요나서 해석에서의 시와 설화의 상호의존성’을 주제로 석사학위를, 2017년 ‘욥기 내 다양한 문학 장르들 사이의 대화적 관계’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cpbc2025.07.15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8>칼 라너(중)](//cpbc.co.kr/CMS/newspaper/2013/07/rc/461344_1.1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칼 라너(중)시대, 사회적 문제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응답하고자 노력 #사목과 교육, 연구활동 병행 라너는 1936년 12월 19일 「그리스도의 늑방으로부터」라는 논문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듬해 잘츠부르크에서 '종교철학의 기초'를 주제로 강의했는데, 강의록은 1942년 「말씀의 청자」라는 책으로 출간됐다. 라너는 1937년 가을 인스브루크대에서 정식으로 강의를 시작했는데 첫 강의는 '은총론'이었다. 그러나 인스브루크 신학대는 1938년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합병하고 새로운 교육법을 제정하면서 해체됐다. 신학 교수들은 무기한 정직을 당했고 예수회 회원들은 추방됐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신학과는 스위스로 이전했다. 형 후고 라너는 스위스로 갔지만 동생 칼 라너는 비엔나로 가서 사목을 하며 영신수련을 지도했다. 그는 사제양성과 사제 평생교육에 힘을 쏟았다. 그는 이 기간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사목신학적인 차원에서 그리스도교 신자가 세상에서 어떠한 과제를 가졌는지 숙고했다. 그는 다양한 장소에서 강연했고, 교회 일치를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러나 개방적인 자세로 교회 고위 성직자에게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갈등은 그가 비오 19세 교황의 지지를 이끌어내 무마됐다. 전쟁이 끝나자 라너는 다시 인스브루크대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학술활동을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부지런한 성격 탓에 새벽 5시에 미사를 봉헌한 뒤 연구교육 활동을 했다고 한다. 강의 분야는 창조론, 원죄론, 고해성사론, 성품성사론, 병자성사론이었고, 라틴어로 강의했다. 학술 활동 외에도 주일미사, 고해성사, 영신수련 동반, 본당공동체 지도 등 사목활동을 병행했다. 칼 라너의 탁월한 학문 업적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그는 마지막까지 왕성한 저술활동으로 열정을 불태웠다. #탁월한 학문적 업적 그의 탁월한 학문 업적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그는 다양한 학회를 통해 자연과학과 신학의 대화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와 신학의 관계를 연구하고 발표했다. 라너는 20세기 최고의 신학자 중 한 사람으로 알려진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살(1905~1988)과 함께 새로운 가톨릭 교의신학을 기획하기도 했다. 또 다양한 신학종합사전과 여러 총서 그리고 신학저널이 탄생하도록 힘썼다. 그가 동료들과 함께 작업한 중요한 기초자료로는 「신학과 교회를 위한 사전」, 「세상의 성사」, 「신학 소사전」, 「논의제기」, 「사목신학편람」, 「구원의 신비」, 「공의회」, 「공의회 소문헌」 등이 있다. 개인논문 모음집으로는 16권에 이르는 「신학논총」이 있다. 라너는 시대 문제에 즉각 응답하기 위해 소논문을 주로 작성했다. 저술은 4000여 편에 이른다고 알려졌다. 그중에는 체계적으로 작성된 방대한 분량의 저술도 찾아볼 수 있다. 철학박사 청구 논문인 「세계 내 정신」은 라너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데, 서양의 중세 사상과 근대주의를 현대적 차원에서 접목하려는 시도였다. 그의 두 번째 대표작인 「말씀의 청자」는 철학 및 기초신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인간에 대한 숙고다. 여기서 라너는 인간을 하느님 계시를 순종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실존적 존재라고 표현했다. 라너는 영성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가 쓴 영성서적으로는 「침묵 속의 만남」, 「성시간과 수난묵상」, 「기도의 필요성과 축복」 등이 있다. 그의 학문적 열의는 평생 그칠 줄 몰랐다. 1972년에는 「교회의 구조변경」을, 1976년에는 「그리스도교 신앙 입문」을, 그리고 그가 사망하던 해인 1984년에는 「교회 일치-실질적인 가능성」을 출판했다. 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신학자문으로 참여해 큰 공헌을 했고, 공의회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개최된 독일 주교회의(1971~1975)에도 참가해 영향을 미쳤다. #마리아에 관한 새로운 이해로 교황청과 충돌 신학자로서 삶이 성공과 명성으로만 치장되진 않았다. 그는 1950년대 교회와 마리아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의혹의 시선을 받았다. 라너는 기존 이해방식에서 탈피해 새로운 시대정신을 수용하고자 했다. 라너의 눈에 교회는 분명히 거룩한 것이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구원행업을 바탕으로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교회는 인간의 죄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교회는 죄 있는 인간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는 전쟁 이후 파괴된 유럽 사회에서 새로운 교회상을 세우려 했다. 1947년 '죄인의 교회', 1954년 '현대세계에서의 그리스도교인의 위치에 대한 신학적 의미'와 '성령을 끄지 마시오!'라는 글을 발표했는데, 당시 주교들은 라너의 새로운 교회관에 거세게 반대했다. 라너의 시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마리아론과 관계된 것이었다. 1950년 '마리아 몽소승천'(성모승천) 교리가 반포되자 라너는 여기에 반대 의견을 썼다. 마리아 교리를 반대한다기보다 '교리 반포' 행위에 대한 다른 견해를 표명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라너에 따르면 교리 반포는 교의 발전에 대한 정당성과 원칙을 따라야 한다. 그중에서도 성경적 근거가 매우 중요한데 성경에는 성모승천과 관련된 내용이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 성경에서 근거를 찾기 어려운데 교리를 반포하는 것은 가톨릭 지성인뿐만 아니라 타 교파도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성모승천을 인간학적ㆍ종말론적 관점으로 이해 라너가 보기에 성모승천은 교리로 선포되지 않고도 단순히 교회의 믿을 내용으로도 충분히 유지될 수 있었다. 이는 라너가 마리아론을 현대인에게 설득력 있게 설명하기 위해 인간학적ㆍ종말론적 관점을 가졌기 때문이다. 라너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 주목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자 십자가 위로 어둠이 덮치고 지진이 일어났다고 증언하는데 이것은 바로 죄와 죽음의 옛 세상이 몰락했음을 뜻한다고 라너는 말한다. 그와 동시에 무덤이 열리면서 잠들었던 많은 성인들이 다시 살아났다는 성경의 증언은 새로운 세상이 들어섰음을 말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옛 세상의 종말이자, 인간 영육의 완성이 이뤄지는 세상의 새로운 창조다. 성모 마리아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성모승천을 인간학적ㆍ그리스도론적ㆍ종말론적 관점에서 볼 때 다른 인간들의 종말론적 구원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 라너의 견해였다. 그는 성모승천에 관한 믿음을 교리로 선포할 정도로 중요하진 않다고 생각했다. 라너는 이에 대해 393쪽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논문 「오늘날 마리아론의 문제들」을 작성했다. 그러나 로마의 시각에선 라너의 마리아론은 마리아의 독특한 구원적 위치를 없애버리는 것이었다. 죽는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와 연대를 통해 인간 부활이 이뤄진다는 라너의 인간학적ㆍ종말론적 숙고는 마리아뿐 아니라 모든 인간의 완성을 뜻하기 때문이다. 교황청은 라너의 새로운 마리아론이 마리아만의 독특한 위치를 흔드는 것으로 이해했다. 라너의 저술은 출판 검열로 출판되지 못했다. 라너는 마리아의 동정성에 대해서도 숙고했다. 그는 교회가 믿고 있는 마리아의 동정성을 원죄론적 관점보다는 오히려 구원론적 관점에서 이해하려 시도했다. 그에 따르면 마리아의 동정 출산은 구원을 약속하신 하느님을 전적으로 수용하는 행위다. 마리아는 자신의 몸에 하느님을 받아들여 구원받지 못한 세상에 하느님 구원 은총이 구체적으로 시작되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마리아의 동정 출산은 생물학적ㆍ육체적 차원이 아니라 인간학적ㆍ구원론적 관점, 즉 하느님의 구원행위에 대한 인간의 전적인 긍정이라는 시각에서 고찰돼야 한다고 라너는 말한다. 라너의 이러한 주장에 교황청은 다시 한 번 의혹의 눈길을 보냈고, 율리우스 되프너(1913~1976) 추기경의 중재로 정직을 면했다. #미사 공동 집전 보편화에 기여 라너는 '미사 공동 집전'에도 새로운 이해를 시도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사제의 미사 공동 집전은 생소했다. 라너는 교부들의 저술을 역사적으로 탐구해 「다수의 미사와 하나의 희생」이라는 논문을 1951년 완성했다. 여기서 라너는 미사 공동 집전은 교회 전통이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공동 집전이 드물었던 이유는 다수의 사제가 한 미사 안에서 오직 한 성체성사를 거행하기에 하느님 은총이 적게 베풀어진다는 두려움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시 비오 12세 교황은 이러한 문제를 더는 언급하지 말라고 라너에게 경고했지만 결국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라너의 주장을 받아들여 미사 공동 집전을 허용했다. 이규성 신부(예수회, 서강대 교수)조은일2013.07.02
![[출판] 예수 그리스도, 그는 우리에게 누구인가?](//cpbc.co.kr/CMS/newspaper/2013/01/rc/438850_1.2_titleImage_1.jpg)
[출판] 예수 그리스도, 그는 우리에게 누구인가?세계적 신학자들이 예수에 관해 연구한 대작들 잇달아 발간 세계적 신학자들이 예수에 관해 연구한 저서가 국내에 잇달아 소개됐다. 신약학의 대가 클라우스 베르거 교수의 「예수1」과 교황청 시성성 장관 안젤로 아마토 추기경이 사제 시절 쓴 「예수 그리스도」다. 베르거 교수의 책은 600쪽에 가까운 분량이고, 아마토 추기경의 책 역시 1000쪽이 훌쩍 넘는다. 새해 시작부터 예수에 관한 대작들이 발간된 것은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저서 「나자렛 예수」 시리즈로 촉발된 예수 열풍과 더불어 신앙의 근본을 돌아보게 한 교황의 '신앙의 해' 선포와 무관치 않다. ▨예수1 클라우스 베르거 지음/전헌호 옮김/성바오로/3만 원 -------------------------------------------------- 클라우스 베르거(73, 독일) 전 하이델베르크대 교수가 2007년 자신의 학문적 역량을 모두 쏟아부으며 펴낸 역작이다. 베르거 교수는 그동안 「예수는 참으로 누구였을까?」, 「기적을 믿어도 될까?」, 「신약성경의 보도는 진실일까?」 등과 같은 책을 펴내며 예수의 참모습을 밝히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예수」는 이 같은 노력의 총체적 결실을 담고 있다. 베르거 교수는 이 책이 일반 독자들과 거리가 먼 '학술서'로서 머물지 않기를 바랐다. 베르거 교수는 책 서문에서 "나는 예수로부터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 궁금해하는 현대인들에게 정말 말해주고 싶기 때문에 이 책을 쓴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학자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신학을 풀어내기보다 모든 이들이 궁금해하는 문제들, 예를 들면 예수는 정말 진리인지, 예수를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곁들이며 학자로서, 신앙인으로서 걸어온 삶의 여정에서 예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생각했는지, 그 과정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말하고 있다. 그는 예수의 존재를 과소평가하고, 왜곡된 인물로 그려낸 일부 신학계 흐름을 비판하며 "어떤 중요한 의미도 없이 최소한의 존재로 쪼그라든 예수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게 된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고 했다. 그는 역사학, 해석학을 넘나들며 융ㆍ복합적으로 신학을 연구해 온 역량을 「예수」에 적용했다. 예수가 직접 하신 말씀, 4복음서와 성경, 유다교인들이 남긴 예수에 관한 보도와 해석, 교회 전통적으로 내려온 예수에 관한 생각 등을 입체적으로 분석했다. 1권에서는 △예수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온전한 인간? 반신반인? 또는 다른 어떤 존재? △예수는 하느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예수와 여인들 △예수와 인간적 고통 △마귀에 대한 예수의 태도 △예수의 정치적 구상 등을 다뤘다. 앞으로 발간될 2권에서는 △행동하는 예수 △예수와 돈 △예수와 함께 죽을 수 있을까? △예수는 오늘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예수와 교회 등을 풀어냈다. 베르거 교수는 "예수의 모습을 이성적으로 살펴, 있는 그대로의 예수를 인정하는 것으로 이 책의 마지막 부분으로 삼으려 한다"면서 "예수는 머리만으로 정확히 이해할 수 없으며, 예수에 대해 알려면 절반은 마음으로, 신비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 안젤로 아마토 지음/김관희 옮김/수원가톨릭대학교 출판부/2만 5000원 --------------------------------------------------------------- 교황청 신앙교리성 차관과 교황청 살레시오대 교의신학 교수를 지낸 아마토 추기경이 쓴 책이다. 그리스도론에 관한 많은 학설과 이론을 종합해 간결하면서도 명쾌하게 풀어냈다는 찬사를 받으며 '그리스도론의 교과서'로 불린다. 아마토 추기경은 서문에서 "예수는 시공을 초월해 언제나 생명의 복음이고 찬란한 광채"라면서 베르나르도 성인의 말을 빌려 "예수는 불림을 받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는 생명의 책"이라고 했다. 모두 5부로 구성된 책은 '현대 사상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제1부 제1장)를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역사의 중심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분석하며 다른 종교에서 본 예수 그리스도, 예수에 관한 해석을 둘러싼 논쟁들을 다뤘다. 이와 함께 '현대 그리스도론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테이야르 드 샤르댕, 칼 라너, 발터 카스퍼 등 신학자들이 연구한 그리스도론과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북미와 유럽의 그리스도론 등을 폭넓게 소개하며 그리스도 모습을 객관적 시각으로 분석했다. 제2부 '성서에서 본 그리스도 신비'를 통해 구약과 신약에서 확인할 수 있는 그리스도 신비를 소개한 뒤 제3부에서는 '교회 역사에서 본 그리스도 신비'를 이어가며 성경의 그리스도론이 교의적 그리스도론으로 발전되는 과정을 보여줬다. 교부들의 그리스도론부터 제1차 니케아공의회, 에페소공의회 등 초기 보편공의회에서 다뤄진 그리스도론까지 상세히 분석했다. 제4부 육화의 신비에서는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의 육화를 삼위일체론, 그리스도론, 구원론적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살폈다. 마지막 제5부에서는 그리스도 신비의 구원론적 보편성을 다루며 그리스도인으로 세상을 산다는 것은 희망과 생명의 삶임을 제시했다. 아마토 추기경은 "이 책을 통해 모든 사람이 인류 역사의 의미와 절대적 가치 기준을 예수 안에서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조은일2013.01.22
![[김일두 신부의 생활속의 복음] loving, living (러빙, 리빙)](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1/09/wrZ1767950143798.jpg)
[김일두 신부의 생활속의 복음] loving, living (러빙, 리빙)연중 제30주일 마태 22,34-40 마르크 샤갈 작 ‘인간의 창조’, 1956~1958년 산을 알아도 하산해야 산 형세를, 지구를 알아도 대기권을 이탈해야 지구 형체를 완전히 파악하듯, 자녀는 낳고 기르신 부모의 사랑을 모르지 않으나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에 이를 절실히 자각한다. 언어·논리로 정의·증명하지 못하다가 나중에 저절로 밝혀지는 ‘대강 아는 어떤 무엇’ 중 하나가 입으로 고백하고 표지로 전달하며 몸으로 체감하는 ‘사랑’이다. 직접 개입도 간접 후원도, 가득 채움도 전부 비움도, 적극적 조력도 소극적 관망도 사랑의 발현 양식이다. 각양각색의 사랑은 세 가지 특성을 도출한다. 첫째, 사랑의 반의어는 없다. 증오·분노나 무관심조차 사랑의 양태일 수 있다. 둘째, 사랑의 유의어는 없다. 유의미한 가치들의 상위 범주인 사랑은 연애·우정·자선·용서의 공통분모다. 셋째, 사랑은 단편적 매료나 한시적 열정과 다르게 과거·현재·미래를 잇는 역사성을 내포한 서사를 구현한다. 사랑 서사는 세 단계로 구성된다. 1단계는 다른 누구·무엇과 비교·대체 불가한 ‘존재에 대한 긍정’(있음)이다. 존재에 대한 외면·배척은 사랑이 아니다. 2단계는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가운데 작용하는 ‘존재에 대한 의미 부여’(살아 있음)다. 의미 약탈, 곧 상대를 종속시켜 지배하는 자기만족은 사랑이 아니다. 3단계는 ‘존재의 궁극적 선을 향한 희망’(영원히 살아 있음)이다. 현시점에 온전히 인지될 수 없는 ‘나와 너’의 공동선에 대한 책임 결여는 사랑이 아니다. 성경은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 서사’를 세 국면(창조-구원-완성)으로 전개한다. ‘세상 만물을 창조’(있음)하신 하느님은 피조물 중 인간에게 ‘생의 의미를 부여’(살아 있음)한다. “하느님의 영광은 살아 있는 인간이다.”(gloria Dei vivens homo: 리옹의 이레네우스)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신’(1테살 1,10 참조) “생명의 빵”(요한 6,48), 성자 예수님은 인간을 ‘살리는’(구원하는) 사랑 서사의 정점이다. “영원하신 하느님”(로마 16,26)이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은 믿는 이에게 ‘궁극적 선’(완성: 영원히 살아 있음)을 기약한다. 이 서사는 이렇게 응축된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16)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을 간추린 “두 계명”(마태 22,40)의 원리는 “하느님의 사랑”(로마 8,39)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첫째 계명은 ‘하느님에 대한 긍정’(신앙)에 기반한 ‘의미 부여’(고백·찬양)이며, ‘하느님의 궁극적 선을 향한 희망’(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이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둘째 계명은 성경의 약자를 대표하는 ‘이방인, 과부·고아, 가난한 이 등’(탈출 22,20-26 참조)을 포괄하는 ‘이웃에 대한 긍정’을 전제로 진척한 ‘역동적인 살맛의 공유’(의미 부여)이며, ‘자신과 이웃의 궁극적 선을 향한 희망’(영원한 삶을 믿나이다)이다. “당신의 모습으로”(창세 1,27) 창조된 ‘사람’은 하느님의 ‘사랑’ 파트너이며, 사람의 ‘삶’(life)은 하느님의 ‘사랑’(love) 서사의 무대다. ‘사랑하는’ 하느님이 “살아 계신 참하느님”(1테살 1,9)이며, ‘사랑하는’(loving) 사람이 ‘살아 있는’(living) 참사람이다. cpbc2026.10.21

“왜 프란치스칸은 화폐 사용을 거부했는가”국내외 연구자들, 다양한 관점으로 6월 29일~7월 1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제27차 프란치스칸 영성 학술발표회 셋째 날 작은형제회 신우창 신부가 발제하고 있다.작은형제회 제공 제27차 프란치스칸 영성 학술발표회가 6월 29일~7월 1일 사흘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렸다. 발표회는 ‘복음적 삶’을 주제로 국내외 프란치스칸 연구자들이 프란치스칸 영성의 핵심인 복음적 권고와 카리스마를 신학적·성경적·역사적 관점에서 재조명한 자리였다. 첫째 날 미국 성보나벤투라 대학교의 마이클 F. 쿠사토(Michael F. Cusato, 작은형제회) 신부는 ‘서원인가, 카리스마인가? 프란치스칸 삶 이해의 출발점’ 주제 발표를 통해 “프란치스칸 소명의 중심은 모든 수도자에게 공통으로 부여된 청빈·정결·순명의 서원이 아니라 프란치스코와 그 동료들이 함께 나눴던 고유한 카리스마에 있다”면서 “프란치스칸 영성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며, 그 삶 안에서 청빈·정결·순명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쿠사토 신부는 「인준받지 않은 수도규칙」을 분석하며 ‘작음(minoritas)’이야말로 프란치스칸 카리스마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그는 “성 프란치스코와 초기 형제들이 스스로를 단순히 ‘가난한 형제들’이 아니라 ‘작은형제들(Friars Minor)’이라 부른 것은 사회의 가장 낮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살아가겠다는 복음적 선택을 의미한다”고 했다. 이어 “이때 가난은 목적이 아니라 작은 이들과 함께하는 삶의 결과”라며 “사회적 약자와 함께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프란치스칸 정신의 본질”이라고 거듭 설명했다. 아울러 “초기 프란치스칸 공동체가 화폐 사용을 거부하고 노동과 탁발을 선택한 것은 금욕주의가 아니라, 화폐 가치를 조작해 서민을 착취하던 당시 경제 질서에 동참하지 않으려는 사회적 연대의 실천이었다”고 설명했다. 권웅용(작은형제회) 신부는 이어진 논평에서 ‘카리스마’와 ‘서원’이 단순한 선후 관계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결된 두 차원이라는 점을 짚었다. 권 신부는 “쿠사토 신부의 논지를 더욱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는 카리스마와 서원, 작음과 가난의 관계를 보다 상호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며 “카리스마 없는 서원은 형식주의에 머물 수 있고, 서원 없는 카리스마는 개인적 영감에 머물 위험이 있다”고 했다. 둘째 날 발표에서는 복음삼덕의 성경적 토대와 현대적 의미를 조명했다. 이용호(작은형제회) 신부는 아시시 성프란치스코 대성당의 프란치스코 알레고리를 통해 청빈·정결·순명의 상징성을 해석했고, 김미정(사도 성 안드레아 수녀회) 수녀는 “시노달리타스 시대에 평신도 역시 복음적 권고를 자신의 삶 안에서 실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영선(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수녀는 복음삼덕의 성경적 기초를 중심으로 프란치스칸 영성이 성경 안에서 어떻게 형성됐는지 설명했다. 청빈과 정결, 순명의 세 서원을 각기 다른 시각에서 되짚은 셋째 날에는 신우창(작은형제회) 신부가 성녀 클라라의 가난을 통해 복음적 청빈의 의미를 재조명했고, 박성호(작은형제회) 신부는 보나벤투라와 올리비의 사상을 비교하며 프란치스칸 정체성과 가난의 의미를 분석했다. 최성욱(부산가톨릭대 신학대학 운영본부장) 신부는 현대 성 윤리의 관점에서 정결의 의미를 해석했고, 오수록(작은형제회) 수사는 성 프란치스코의 순명과 다산 정약용의 효 사상을 비교해 동서양의 윤리 전통을 연결했다. 이번 학술발표회는 프란치스칸 영성을 단순히 수도자의 서원으로 이해하는 데 머물지 않고, 복음을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과 연결했다. 참가자들은 프란치스칸 카리스마의 본질이 ‘작은 이들과 함께하는 복음적 삶’임을 재확인하며, 오늘날 교회와 사회 안에서 복음의 가치가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 성찰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박민규2026.07.08

신천지의 치밀한 포섭에 무너졌던 이들의 고백한국천주교유사종교대책위 세미나,. 신천지 탈퇴 청년들 증언 주목받아 6월 22~24일 전주 치명자산성지 평화의전당에서 ‘2026 유사종교 전국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22~24일 전주 치명자산성지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2026 유사종교 전국 세미나’ 참석자가 유사종교 자료집을 훑어보고 있다. “신도 한 명을 만들기 위해 많게는 50명까지 협력합니다. 강요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모두 자발적인 의지입니다.”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에서 나와 가톨릭 신앙으로 돌아온 청년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이들은 “문제가 있어서 이단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하느님을 알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 오히려 표적이 된다”며 신천지의 치밀한 포섭 방식과 그 안에서 겪었던 경험을 생생히 털어놨다. 한국천주교유사종교대책위원회(위원장 이용권 신부)는 6월 22~24일 전주 치명자산성지 평화의전당에서 ‘2026 유사종교 전국 세미나’를 열고 신천지, 기독교복음선교회(JMS), 나주 율리아 현상 등 이단들의 실태를 공유했다. 특히 신천지 탈퇴 청년들의 증언이 관심을 모았다.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신천지 전도는 철저한 조직력과 치밀한 관계 형성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이들은 “서울의 한 대형 신천지 교회의 경우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청년만 5000명 이상”이라며 “그들이 모두 전도에 나선다고 생각해 보라. 하나같이 행복한 표정으로 성가를 부르고 설교를 들으며 자신의 사명을 위해 움직인다”고 전했다. 포섭은 상대방을 철저히 분석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구역장을 중심으로 신도들은 밤늦게까지 남아 대상자의 직업·성격·취미·고민을 공유하며 접근 방식을 연구한다. 가장 절실한 필요를 채워주며 관계를 쌓은 뒤 자연스럽게 성경 공부를 권한다. 한 피해자는 “그들이 반지하에 살던 사람 집에 새벽 2시에 찾아가 밤새 곰팡이를 제거해준 사례도 있었다”며 “매주 사비로 선물을 준비하고 1년 가까이 빠짐없이 편지를 써서 전달하는 경우도 흔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그 정도로 신뢰를 쌓은 뒤 성경 공부를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신천지 교리에 동화돼 갔다”고 했다. 이처럼 헌신적인 활동이 가능한 이유에 대해 피해자들은 “신앙이 너무도 구체적이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신천지에서는 하느님 나라가 어떻게 오고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 모든 것이 손에 잡힐 듯 설명됩니다. 그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니 시간과 인생을 바치는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6월 22~24일 전주 치명자산성지 평화의전당에서 열린 ‘2026 유사종교 전국 세미나’에 마련된 유사종교 자료집. 대규모 카드섹션을 준비하기 위해 6개월 동안 매주 연습하고, 행사 당일엔 화장실도 가지 않으려 기저귀를 착용한 일에 대해서도 “그 안에서는 그것이 학대가 아니라 구원을 위한 과정이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함승수(서울대교구 사목국 행정지원팀) 신부는 “무지하거나 문제가 있어 이단에 빠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하느님을 더 알고 싶다는 순수한 열망 때문에 몸과 마음, 정신에 큰 상처를 입은 피해자들이며, 이들이 오랜 회복 과정을 거쳐 교회로 돌아온 만큼 따뜻하게 품고 함께 신앙생활을 이어가도록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피해자 증언 전에는 이단의 교리적 특징과 문제점도 공유했다. 신천지는 총회장 이만희를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존재로 믿으며, 마지막 때의 계시를 받아 성경의 비유와 비밀을 풀어내는 유일한 자라고 말한다. 모든 성경 말씀을 비유적으로, 자의적으로 해석한다. 전체 맥락이 아닌, 말씀 한 구절을 교묘하게 엮어 이만희로 연결하는 식이다. 전주교구 상담사목센터장 이금재 신부는 “이단은 기성 종교를 비판하면서 사람들의 불안과 갈망을 파고들고,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종말 의식을 자극하며 세력을 확장한다”면서 “인간 소외와 절망, 미래 불안이 커지는 상황에서 교회가 그 갈증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할 때 이단이 그 빈틈을 파고든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들은 이단에서 벗어난 뒤에도 다시 돌아가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도 공유했다. 교리가 잘못됐다는 사실은 알게 됐지만, 가정불화나 공동체의 냉담한 시선으로 인해 자신을 따뜻하게 받아줬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위원장 이용권 신부는 “교회로 돌아오게 하고 머물러 있게 하는 힘은 결국 사랑”이라며 “복음적 사랑 실천을 통해 상처 입은 이들이 가정과 공동체 안에서 다시 신앙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박민규2026.07.01

물을 포도주로, 포도주를 성혈로[‘성서와함께’ 가꾸는 기도의 정원] 9. 포도 성서와함께 제공 날씨는 무덥지만 한편으로 다양한 제철과일을 즐길 수 있는 계절이다. 수박·복숭아 등 종류가 많지만 포도야말로 대표적인 늦여름 과일. 포도는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두드러진 상징성을 갖는 식물로, 가톨릭교회는 초기부터 포도와 포도나무의 종교적 상징성, 포도주가 예수님의 성혈로 변하는 것의 의미를 교리로 가르쳐왔다. 성경에는 구약의 창세기부터 신약의 복음서까지 포도를 소재로 한 이야기가 많다. 특히 생포도는 물론 과실을 가공해 만든 건포도, 포도즙과 포도주, 포도 식초, 포도나무, 포도원 주인과 일꾼에 대한 비유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되어 등장한다. 실제로 포도는 과거 중동 지역의 7대 주요 작물 가운데 하나로, 기원전 수천 년 전부터 재배되었을 정도로 긴 역사를 자랑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살게 될 좋은 땅이 “밀과 보리와 포도주와 무화과와 석류가 나는 땅”(신명 8,8)으로, 이스라엘이 “가지가 무성한 포도나무 열매를 잘 맺는”(호세 10,1) 곳으로 표현된 것만 봐도 이 지역에서 포도가 얼마나 중요한 식물이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신약 성경에 언급되는 예수님의 공생활을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면 포도에서 시작해 포도로 끝난다. 예수님께서 카나에서 보여주신 첫 번째 기적은 바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일이다. 이후 예수님은 사람들 앞에서 하느님을 포도밭 주인으로 비유하시고, 당신 자신을 “참포도나무”(요한 15,1)라 말씀하시며 제자들에게 포도나무의 가지가 될 것을,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것을 당부하신다. 수난을 앞두고는 제자들과 포도주를 나누며 이를 “내 계약의 피”(마르 14,24)라 이르셨다.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기 직전 접했던 음료도 신 포도주다. 화가들은 이 같은 성경 내용을 바탕으로 각종 성화에서 포도나무 잎과 덩굴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무 기둥에 달린 포도송이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표현했다. 또 빵과 함께 포도나 포도주 잔을 그려 성체성사, 예수님의 수난을 나타냈다. 포도주가 가톨릭교회의 전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면서 유럽에서는 포도주 제조가 꾸준히 발달했고, 포도주와 포도주 제조업자들의 수호성인도 생겨났다. 4세기 스페인의 순교자인 사라고사의 성 빈첸시오가 수호성인이 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의 이름이 프랑스어로 뱅 상(vin sang), 즉 ‘포도주의 피’를 뜻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그의 축일인 1월 22일 무렵이 포도나무가 휴면기를 끝내고 새순을 내는 시기이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신지현cpbc2026.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