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가톨릭 교리]<17> 믿음의 여인, 성모 마리아](//cpbc.co.kr/CMS/newspaper/2011/10/rc/391473_1.1_titleImage_1.jpg)
[재미있는 가톨릭 교리] 믿음의 여인, 성모 마리아하느님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 하느님의 구원 역사 안에서 성모 마리아의 삶이 가지는 의미와 중요성을 성경 말씀과 교회 전승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성경 가르침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고자 당신 외아들을 인간으로 출생시키는 계획을 세우고 한 여인을 선택하셨다. 마리아는 하느님께 대한 신앙과 그분 말씀에 대한 순명으로 하느님의 인류 구원사업에 협력키로 결정하셨다. 예수님 출생 이야기에서 우리는 인간 구원을 향한 하느님의 주도적 행위와 마리아의 도구적 역할을 살펴볼 수 있다. 마리아는 하느님 뜻을 받아들이고 이에 응답함으로써 온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 메시아, 예수님 어머니가 되셨다.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지자 마리아는 예수님께 알렸다. 예수님께서는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요한 2,4)하고 대답하셨지만, 마리아는 사람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하고 일러주면서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을 준비하셨다. 마리아가 일꾼들에게 당부한 말씀은 예수님 뜻을 무시하거나 자신의 뜻을 강요하기 위함이 아니라 예수님 뜻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면서 예수님 영광을 준비하고, 제자들 믿음을 더욱 일깨워줄 계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마리아와 형제들은 예수님이 군중과 말씀하고 계실 때 밖에 서서 사람을 시켜 예수님을 불렀다. 예수님께서는 어머니 마리아와 형제들과 누이들이 찾고 있다는 말을 듣고 군중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마태 12,48하고 반문하셨다. 그리고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 12,50)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반문과 대답은 혈연 관계보다 영적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예수님의 참 가족은 혈연 관계가 아니라 하느님 뜻을 따르고 실행하는 삶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그분 곁에 서 계시면서 예수님 수난과 고통, 죽음의 여정에 함께하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마리아를 사랑하는 제자의 어머니로, 사랑하는 제자를 어머니의 아들로 세우셨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다음부터 사랑하는 제자 집에 머무셨다. 예수님께서 특히 애제자에게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시도록 당부하신 내용은 제자들을 통해 신앙을 갖게 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하시는 요청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교회는 마리아를 예수님의 어머니로서 공경할 뿐 아니라 제자들 공동체인 교회의 어머니로서 공경한다. ▶교회 가르침 교회는 마리아께서 하느님의 특별하신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잉태되신 첫 순간부터 원죄에 물들지 않았고, 죽기까지 죄를 범하지 않는 강복을 누리셨다고 고백한다. 이는 마리아가 처녀로 예수님을 잉태했다는 것을 말하지 않고 마리아가 영원한 하느님 계획에 따라 원죄 없이 태어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는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을 고백한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기 전에도, 낳을 때에도, 낳은 후에도 항상 동정을 지키신 평생 동정녀라는 것이다.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에 대한 교의는 마리아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녀 몸으로 예수님을 출산했다는 교의에 기초한 것이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 7,14)하는 성경 말씀처럼 마리아는 성령께서 내려 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을 받아 동정녀 몸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셨다. 교회는 마리아가 지상 생활을 마치고 하늘에 오르셨다고 고백한다. 이를 몽소승천(夢召昇天)이라고도 한다. 몽소승천이란 마리아가 하느님 부르심으로 하늘에 들어 올림을 받은 것, 곧 영원한 생명의 영광에 가장 먼저 참여하게 된 것을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과 마리아의 승천에는 구별돼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 하늘에 오르셨지만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서 비롯된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승천하셨다는 사실이다. 마리아의 승천으로 우리 모두는 승천의 영광을 희망하게 됐다. 교회는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천주의 모친'으로 고백하고 공경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한 인성과 신성을 갖춘 참 인간이며 참 하느님으로 고백하기에, 참 인간이며 참 하느님인 예수 그리스도를 낳은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 하느님의 모친, 천주의 모친으로 고백하고 공경하는 것이다. 제공=서울대교구 사목국조은일2011.10.04
성령](//cpbc.co.kr/CMS/newspaper/2011/09/rc/388998_1.1_titleImage_1.jpg)
[재미있는 가톨릭 교리](14)성령교회와 인간을 하느님께로 인도▶성령 성령은 성부와 성자의 영(靈)으로서 성부와 성자와 한 몸을 이루고 삼위일체 하느님의 한 위격(位格)을 이루신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영광과 흠숭을 받으시며' 교회와 인간을 하느님께로 인도하고 성화하신다. 성령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며 성화하시는 영이다. 성경은 하느님 영을 루아흐(ruah), 곧 입김ㆍ숨ㆍ얼 등으로 표현하고, 물ㆍ불ㆍ바람ㆍ비둘기 등 상징으로도 표현한다. 성경에서 하느님 영은 하느님 현존과 역사(役事)를 나타낸다. 하느님 영은 한처음부터, 곧 세상과 인간이 생길 때부터 존재했다. 세상과 인간이 창조되기 전, 한처음에 하느님 영이 감돌고 있었고(창세 1,2), 하느님께서 흙 먼지로 최초의 사람을 빚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자, 사람이 생명체가 됐다(창세 2,7). ▶예수님과 성령 예수님께서는 전 생애 동안 성령과 함께하셨다. 예수님은 성령의 힘으로 마리아께 잉태되셨다.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느님 영이 비둘기처럼 내려와 그분 위에 머무셨으며, 하늘에서 하느님 아들이라고 선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예수님은 성령의 인도로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 나가 악마 유혹을 이기셨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고 악마 유혹을 이기신 다음 악마 지배를 몰아내고 하느님 다스림을 현재화하는 활동적 영의 현존을 체험하셨다. 예수님은 나자렛 회당에서 이사야서 말씀을 통해 성령을 받아 기쁜 소식을 전하고 구원 행적을 베푼다는 사실을 선언하셨다. 이러한 성령의 힘으로 예수님은 공생활 내내 복음을 선포하셨고 많은 기적을 베푸셨으며 마귀를 쫓아내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최후 만찬을 하실 때 성령을 보호자, 진리의 영이라 부르면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겠다고 약속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다음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성령을 받아라"(요한 20,22)하고 말씀하셨고, 승천하고 현양된 다음에는 약속한 대로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셨다. ▶성령의 은사 성령께서는 개인이나 공동체에 각자가 필요로 하는 은사를 그에 맞갖은 형태로 다양하게 내려주신다. 성령의 은사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일곱 가지 은혜와 아홉 가지 열매를 들 수 있다. 흔히 '성령칠은'이라고 일컫는 성령의 일곱 가지 은사는 슬기(지혜), 깨달음(통찰), 일깨움(의견), 앎(지식), 굳셈(용기), 받듦(공경), 두려워함(경외)이고,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이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1서 12장에서 은사는 여러 가지이지만 은사를 베푸는 분은 같은 성령이시고, 은사는 모두 공동선을 위한 것이며, 성령께서는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사를 주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는 한국교회에서도 성령과 그분 은사를 잘못 이해하고 남용하는 사례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이에 대한 지침을 제시, 성령과 그분 은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모하고자 한다. 신앙교리위원회는 성경과 교회 가르침, 영적 식별 경험에 근거해 은사 식별 기준을 일곱 가지로 제시한다. 성령의 은사는 첫째, 공동선을 위해 주어진다. 둘째, 자신의 이익이나 명예가 아니라 사랑을 위해 사용된다. 셋째, 성령을 따르는 삶을 살도록 인도한다. 넷째, 다툼과 분열이 아니라 일치와 화합을 도모한다. 다섯째, 교회 교도권과 그 권위에 순종하도록 이끈다. 여섯째, 자기 자랑이나 교만이 아니라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자신보다 낫게 여기게 한다. 일곱째, 인간 이성을 무시하거나 배척하지 않고 이성의 도움을 받아 신앙의 진리를 이해하도록 한다. ▶성령 강림 대축일 성령 강림 대축일은 오순절에 기원을 둔다. 오순절은 본래 봄에 보리와 밀을 수확하고 나서 감사를 드리는 추수 감사제로, 가나안의 농경 축제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에는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고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받은 날로 기념했다. '파스카 축제' 첫 날부터 오십 일째 되는 날에 지냈기에 오순절이라고 불렀다. 예수 그리스도 제자들은 이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다음 복음을 만방에 선포하기 시작했다. 이에 교회는 성령 강림 대축일을 성령 강림 사건을 기념하고, 그 의미를 '지금 여기'에서 새롭게 재현하며 성령의 보호와 은총을 청하는 대축일로 기념한다. 제공=서울대교구 사목국조은일2011.09.06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75)요셉 피츠마이어 (하)](//cpbc.co.kr/CMS/newspaper/2015/01/rc/551087_1.0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75)요셉 피츠마이어 (하)>75< 피츠마이어 신부가 살고 있는 미국 조지타운대 예수회 공동체. 지난 호에서도 언급했듯 신약성경의 아람어적 배경에 대한 피츠마이어 신부의 연구는 고대 유다교를 공부하는 학자들에게는 보고(寶庫)와 같다. 특히 「‘사람의 아들’이라는 신약성경의 호칭에 대한 문헌학적 고찰」(The New Testament Title ‘Son of Man’ Philologically Considered)이라는 논문은 초기 그리스도교의 중요한 개념과 용어들이 생겨난 배경이 되는 유다교를 이해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욥기 타르굼에 대한 피츠마이어 신부의 연구와 아람어 서간학에 대한 연구는 제2 성전기와 초기 랍비 시대 유다인의 사고와 역사를 이해하는 데 열쇠 역할을 했다. 그래서 유다인 학자 로렌스 쉬프만은 피츠마이어 신부를 두고, 사도행전 5장 34절에 나오는 “온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율법 교사”라고 평했다. 사제로서 사목적 관심과 배려 피츠마이어 신부의 학문적 업적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의 연구 활동은 대학에 국한되지 않았다. 가톨릭 사제로서 그는 신자들을 향한 사목적인 관심과 배려 또한 잊지 않았다. 성경에 관한 지식을 일반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들에게도 나눠주기 위해 노력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폐막하기 이전인 1964년 조지타운대학교에서 여름방학을 이용해 성경 강좌를 개최하는 ‘여름 성경연구소’를 만들었고, 그 후 25년간 이 연구소를 이끌었다. 2013년 이 연구소는 설립 50주년을 기념해 그 이름을 ‘조지타운대학교 요셉 피츠마이어 성경 연구소’로 바꿨다. 가톨릭 교회 내 일반 신자들에게 성경 지식을 나누고자 하는 피츠마이어 신부의 관심은 일반 신자들이 쉽게 참조할 수 있는 주석서를 편찬할 의향을 품게 했다. 그의 바람은 같은 뜻을 지녔던 다른 두 가톨릭 성경학자들과 협력을 통해 결실을 맺게 됐다. 미국 가톨릭 성서학계의 세 거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같은 목적을 위해 뜻을 함께한 것이다. 예수회의 피츠마이어 신부, 슐피츠회의 레이몬드 브라운 신부, 가르멜회의 롤랜드 머피 신부는 「예로니모 성경 주석서」(The Jerome Biblical Commentary, 1968)와「신 예로니모 성경 주석서」(The New Jerome Biblical Commentary, 1990)를 편찬했다. 이외에도 피츠마이어 신부는 여러 본당 단체들의 부탁이 있을 때마다 강의했는데, 팔순을 넘어서도 계속했다고 한다. 종교간 대화 활동 그는 또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라 교파를 초월해 신학적 대화를 하도록 이끌어내는 데 훌륭한 역할을 했다. 그는 1979년부터 1988년까지 교황청 일치평의회 자문위원으로서 다양한 개신교 교파들과 대화에 참여했다. 이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업적을 꼽는다면 1999년 10월 31일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가톨릭 교회와 루터 교회 대표자들이 ‘의화론에 관한 공동 선언’에 서명을 하게 된 기념비적 사건이다. 의화론(義化論)은 가톨릭 교회와 루터교 간의 오랜 쟁점이었다. 루터교는 믿음(신앙)으로만 구원받는다고 주장했고, 가톨릭 교회는 믿음과 함께 선행을 실천해야 구원받는다고 가르쳤다. 두 교회는 공동 선언을 통해 “구원은 하느님의 자유로운 선물이며, 이는 선행을 통해서가 아니라 은총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온다. 그러나 성령께서 주시는 은총은 인간에게 선행할 힘을 주고 또 그렇게 하도록 부르신다”고 합의했다. 공동 선언이 발표된 날은 1517년 마르틴 루터가 독일의 비텐베르그 성당 문에 95개의 주제문을 붙였던 날과 같은 날이다. 공동 선언이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두 교회가 35년간 신학 대화를 주고받은 결과였다. 피츠마이어 신부는 신약 성경 학계의 주도적인 가톨릭 학자로서 거의 30여 년에 걸쳐 가톨릭 교회와 루터 교회 간 대화에 참여했다. 평가와 인간적 면모 지금까지 살펴본 요셉 피츠마이어 신부의 생애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부터 현재까지 약 60년에 이르는 가톨릭 성서학계의 역사를 요약하는 것과 같다. 그는 공의회 이전까지 이뤄진 가톨릭 성경학자들의 연구에 바탕을 두는 동시에 19세기 이후 개신교 성경학자들이 성경 연구에 적용한 방법들을 성경 연구에 도입했다. 이제는 그의 뒤를 이어 훨씬 더 많은 가톨릭 성경학자들이 학문적인 성경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피츠마이어 신부처럼 학문적인 성경 연구가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준 학자들 덕분에 성경 연구에 바탕을 둔 초교파적 신학 대화의 문이 그전보다는 훨씬 더 넓게 열리게 됐다. 그리고 피츠마이어 신부와 같은 학자들의 노력과 더불어 가톨릭 교회 안에서 성경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고, 성경에 대한 지식에 목마른 수천 명의 남녀 수도자들과 평신도들이 피츠마이어 신부가 세운 여름 성경 연구소로 밀려들었다. 피츠마이어 신부를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거의 수도자처럼 생활한다. 매일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미사를 드리고, 저녁 8시 30분이면 잠자리에 들었다. 학문하는 자세에 있어서 피츠마이어 신부는 아주 정확하고 꼼꼼했다. 논문을 쓸 때 사용하는 일차 자료와 이차 자료를 모두 두 번씩 반복 확인했다고 한다. 이렇게 정확성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학문적 논쟁에 참여하게 된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국제적인 모임을 통해 세계의 여러 나라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의 여러 곳을 방문하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이와 함께 그는 성경 연구만큼이나 요리를 즐겼다. 이제 만 94세가 된 피츠마이어 신부는 워싱턴 D.C.에 있는 예수회 대학 조지타운대 예수회 공동체에서 살고 있다. 평생을 교육자로서 가르치고, 미래의 학자들을 길러내는 일에 열정을 쏟았던 그의 모든 노력은 이제 그의 가르침을 받았던 많은 후학을 통해, 하느님 말씀을 어떻게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여름 성경연구소를 통하여 배웠던 수많은 평신도와 성직자, 수도자의 삶의 통해 이어질 것이다. 피츠마이어 신부가 뿌린 씨앗은 온 세상 곳곳에서 오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고 있을 것이다. 요셉 피츠마이어 신부의 저서 중 한국에 번역된 책은 다음과 같다. 「바울의 신학」(솔로몬, 1996). 「바울로의 신학」(분도출판사, 2001), 「로마서를 통한 영신수련」(바오로딸, 2000), ‘예수의 동정 잉태와 신약 성서’(「신학전망」제 36호, 92~116쪽) 김영선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평화신문2026.02.12
![[출판]책꽂이- 그래도 기도합니다 등](//cpbc.co.kr/CMS/newspaper/2013/04/rc/448396_1.2_titleImage_1.jpg)
[출판]책꽂이- 그래도 기도합니다 등 그래도 기도합니다 김영수/생활성서/7000원 평화를 얻지 못하고 있을 때, 십자가로 괴로울 때, 용서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 때…. 어지러운 마음으로 괴로워하는 그 순간에도 저자(김영수 아브라함, 시인)는 '그래도 기도합니다'라며 하느님 앞에 참회의 기도를 바친다. "주님, 주님께서는 저의 온갖 죄를 조금도 헤아리지 않으십니다.… 진정으로 용서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저에게 내려주소서"(용서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 때 중에서). 괴로운 마음을 하느님 앞에 털어놓으며, 사랑과 은총을 청하는 기도가 마음을 위로해준다. 창조론 알렉산드레 가노치 지음/신정훈 옮김/가톨릭대학교출판부/2만 원 사람은 하느님께서 흙으로 빚어 탄생한 것일까, 아니면 원숭이에서 진화한 것일까. 이 책은 그리스도교 창조신앙과 진화론을 대표로 하는 자연과학의 연구 현황 사이에서 대화를 시도한다. 구약과 신약에 나타난 창조신학을 살펴보고, 교부시대부터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이르기까지 교회사 흐름 안에서 논의돼 온 창조론을 분석했다. 이어 진화론을 함께 다루며 그리스도교 창조론 해석 원칙을 제시한다.마리아, 복되신 어머니 데이비드 나이트 신부 지음/조민현 신부 옮김/히스웨이/1만 원 성모 마리아에 관한 가톨릭교회 가르침을 해설한 책. 성모 마리아는 원죄 없이 태어났고, 동정녀의 몸으로 예수를 잉태했으며 하늘에 불려 올라가셨다. 또한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이자 하느님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책은 이처럼 신비로 가득한 마리아론을 쉽게 풀어 설명하는 동시에 머리로 이해한 마리아를 가슴으로 받아들이도록 각 장 끝에 성경 구절과 성모님께 드리는 기도, 묵상주제 등을 실었다.하느님의 등불 성녀 필리핀 뒤셴 루이즈 캘런 지음/안은경 옮김/나이테미디어/5만 원 아메리카 선교의 선구자로 꼽히는 성녀 필리핀 뒤셴(성심수녀회, 1769~1852) 수녀의 삶과 영성을 다룬 전기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성녀는 성심수녀회를 설립한 성녀 마들렌 소피 바라를 따라 성심수녀회 수녀가 됐고, 미국으로 건너가 아메리카 대륙 선교에 헌신했다. 성녀는 아메리카 지역에서 여성 교육에 선구적 업적을 이뤄냈고, 수녀회를 성장시키며 예수성심을 널리 알리는 데 공헌했다. 성녀는 1940년 복자로 선포됐고, 1988년 교황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영성생활 길잡이- 인간 마음의 형성 정영식 지음/쉐마북스/1만 5000원 영성이 없는 믿음은 모래 위에 세워진 집과 같다. 종교가 없어도 착하게만 살면 된다는 이들의 삶은 위기가 닥칠 때 쉽게 무너진다. 왜 착하게, 겸손하게 살아야 하는지 원리를 모르기 때문이다. 저자 정영식(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 신부는 신자들에게 영성생활을 강조한다. 일상의 모든 것이 영성과 연결돼 있다는 정 신부는 이 책에서 성경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영성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며, 일상생활에서 영성을 구현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조은일2013.04.16
![[전국 교구장 새해 사목교서]청주교구-'이웃으로' 향하는 신앙 공동체](//cpbc.co.kr/CMS/newspaper/2013/01/rc/438169_1.1_titleImage_1.jpg)
[전국 교구장 새해 사목교서]청주교구-'이웃으로' 향하는 신앙 공동체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 올해 교구는 '이웃으로, 세계로' 2차 4개년 여정을 시작합니다. 말씀과 성체중심 삶을 통해 신앙을 굳건히 하고,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에 힘쓰면서 지역사회 복음화에 투신해야겠습니다. # 신앙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는 2012년 10월 11일부터 2013년 11월 24일까지를 '신앙의 해'로 선포하셨습니다(「믿음의 문」 4항 참조). 신앙의 해에 우리 모두는 주님이시며 신앙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가까이 만나야겠습니다. 신앙 유산이 담긴 「가톨릭교회교리서」를 자주 읽고 배우고 익혀서 사도로부터 이어오고 순교자들이 목숨 바쳐 지켜온 신앙을 키워나가는 데에 열과 성을 다해야겠습니다. # 이웃에게 다가가는 선교 공동체 우리가 물려받은 신앙 선물은 결코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웃에게 전달돼야 할 것입니다(1코린 9,16 참조). 신앙 선물을 이웃과 나눈다는 것은 이웃이 예수님을 만나도록 돕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세상에 증언하고, 신앙을 찾는 사람들을 '믿음의 문'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믿음의 문」 7항 참조). 또한 어려운 이웃에게 다가가 함께 함으로써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야고 2,14-18). 이를 위해 지구 차원의 유대와 협력이 절실합니다. 올해부터 2016년까지 지구 중심 사목을 좀 더 구체화 해야겠습니다. 각 지구 공동체는 시노드 정신과 지구 상황을 함께 살펴보고 판단ㆍ실행하는 단계를 통해 11운동과 3000운동, 특히 사회복지 네트워크와 빈첸시오 활동 활성화 등으로 더욱 지역복음화에 힘써야겠습니다. # 신앙을 바로 세우는 청소년 사목 청소년은 교회 미래입니다(교구시노드 후속 교구장 사목교서, 청소년, 1항). 각 지구는 신자 청소년들을 넘어서서 교회에서 멀어진 청소년, 교회 울타리 밖 청소년들에게 다가갈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이들이 교회 신앙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중요한 신앙 증인들을 만날 수 있도록 도보성지순례, 합동 성시간, 청년성경공부, 청소년 생명교육, 「가톨릭청년교리서」 교육기회 등을 마련해야겠습니다. 목적은 청소년들의 변화입니다. 청소년 여러분은 하느님과 이웃을 위한 원대한 꿈을 갖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읽고 주일을 지키고 기도와 학업에 힘쓰면서 신앙을 바로 세우십시오. 같은 또래 청소년들에게 좋은 친구가 돼 주고 신앙의 인도자가 돼 주길 바랍니다. # 신앙을 전수하는 가정 가정은 신앙 전수의 첫 장소요, 참다운 가정 교회입니다. 신앙 전수는 단순히 말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첫 자리에 모시고 사는 부모의 모범을 통해 이뤄지는 것입니다. 꾸준히 가족이 함께 기도하고 대화함으로써 가정을 화목하게 하고, 작은 것부터 나누고 봉사함으로써 이웃 가정을 복음화해야 합니다. 본당과 지구는 가정방문을 통해 가정이 처한 어려움을 파악하고, 가정사도직 수행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지원할 수 있는지 고심해야 합니다. 교구는 생명과 환경에 대한 가정 인식을 높이기 위해 교육과 자료 제공을 해야겠습니다.조은일2013.01.15
![[전국 교구장 새해 사목교서] 부산교구- 본당 재탄생을 향한 새 복음화, 신심운동 복음화의 해](//cpbc.co.kr/CMS/newspaper/2013/01/rc/437354_1.2_titleImage_1.jpg)
[전국 교구장 새해 사목교서] 부산교구- 본당 재탄생을 향한 새 복음화, 신심운동 복음화의 해부산교구장 황철수 주교 교구설정 50주년(2007년)을 기점으로 우리는 새로운 미래를 지향하면서 복음화의 새 출발을 다짐했습니다. 지난 4년 동안 '좋은 본당 가꾸기' 운동으로 복음화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이는 새로운 방식과 각성으로 계속돼야 할 하느님 백성의 길이기도 합니다. 올해부터는 지난 여정의 바탕 위에서 본당 공동체가 쇄신되고 거듭나는 '본당 재탄생을 향한 새 복음화'라는 5년간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복음화(Evangelizatio)는 성경말씀을 전하고 교리를 가르치는 단순한 선교(Missio) 개념을 넘어 하느님 말씀과 구원계획에 반대되는 인간의 가치관, 생활방식까지 복음의 힘으로 정화하고 바로잡는 것까지 포함됩니다. 따라서 복음화는 문화를 겉치장하듯 장식하는 외적 형식이 아니라 문화의 깊은 근원까지 파급되는 생명력을 말합니다. 현대세계에서 새롭게 등장한 '새 복음화', '새로운 복음화'(Nova evan gelizatio)는 세속주의, 문화적 상대주의, 과학적 근본주의, 극단적 자본주의, 종교 무관심주의 등 대두에 따른 삶과 신앙의 위기를 반영한 재복음화를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새 복음화는 기존 신자와 교회공동체 자신의 복음화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본당 재탄생이라는 교구 중기 비전과 맥을 같이 합니다. 교회가 참신한 활력과 역동성을 유지하려면 교회 자신이 복음화돼 있어야 합니다. 이에 본당 재탄생을 향한 새 복음화의 5년 여정을 시작하려는 것입니다. 본당 재탄생을 향한 여정의 근원적 동력은 신심운동(2013년 신심운동 복음화의 해)과 가정공동체(2014년 가정 복음화의 해)에서 얻습니다. 본당 구성원들은 다양한 참여와 역할의 활성화로 영성적 친교공동체를 경험함으로써,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재확립하고 공동체 결속력을 확산시킵니다. 이후 확보된 두 동력을 근간으로 대외적으로는 문화 사목(2015년 문화 복음화의 해)과 대내적으로는 기초공동체 사목(2016년 기초공동체 복음화의 해)을 중심축으로 삼아 본당공동체 재탄생의 골격을 세웁니다. 마지막으로 지난 4년간의 다채로운 사목활동을 통합합니다. 본당 구성원 전체의 재복음화를 정점으로 '본당 재탄생(2017년 본당 복음화의 해)'의 여정을 완성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우리의 욕망을 채워주는 많은 것을 선전하며 그쪽으로 경주하게 합니다. 욕망의 경쟁사회는 우리 삶을 참되게 채워주지 못하고 공허하게 만듭니다. 인간은 비록 지상에서 살아가지만, 그 깊은 내면에서는 언제나 거룩한 하늘을 지향하는 영혼의 존재입니다. 사람들은 우리 공동체를 통해 이러한 영혼의 목마름을 채우고자 합니다. 교회를 찾아오는 이들과 우리 자신의 영적 갈구를 채워주는 본당공동체로 거듭나야 하는 이유입니다. 실천 지침으로 교육 및 신심운동 참여, 매월 체험교육 시행, 성경통독 및 필사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조은일2013.01.08

바오로의 죽음 : 로마 성 바오로 대성당과 세 분수의 바오로 성당[월간 꿈CUM] 바오로 사도의 발자취를 따라서 _ 튀르키예, 그리스 성지 순례기 바오로가 순교한 장소, 세 분수의 바오로 성당(San Paolo alle Tre Fontane)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며 돌아다닌 로마 국적의 50대 유대인 바오로가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것은 서기 57년 경이다. 왜 체포되었을까. 기록상으로는 정확한 죄명이 남아있지 않지만, 성경에 따르면 아마도 내란을 모의하고 유대교 회당을 더럽힌 혐의를 받고 있었던 듯하다.(사도 24,5-6 참조) 특히 유대교 회당을 더럽힌 죄목이 가장 컸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이방인 에페소 사람 ‘트로피모스’ (τροφιμος)라는 인물과 관련 있다. 트로피모스는 바오로가 3차 전교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동행한 인물이다.(사도 20,4 참조) 그는 바오로와 함께 예루살렘에 와서 예루살렘 성안에 머물렀다. 이를 본 유다인들은 바오로가 이방인인 트로피모스를 성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성전을 더럽했다고 여겨 그를 고발했다.(사도 21,27-31 참조) 성전 모욕죄는 만만하게 볼 죄가 아니다. 예수도 같은 죄목으로 십자가 사형선고를 받았다. 만약 기소 내용이 소명되지 않는다면, 바오로도 판례에 따라 예수와 같은 십자가 형을 받을 상황이었다. 그러나 바오로는 예수와 다른 점이 있었다. 그는 로마 시민이었다. 십자형은 노예 혹은 야만족들에게만 내려지던 형벌이었다. 로마 시민권자가 사형선고를 받으면 십자형이 아닌, 참수형에 처해졌다. 바오로는 이 점을 파고들었다. “나는 황제에게 상소합니다.”(사도 25,11) 상소할 수 있는 권리가 받아들여졌다. 로마에 한 번도 가본 일이 없는 로마 시민! 바오로는 그렇게 로마로 압송된다. 이 과정에서 바오로는 이미 순교를 각오한 듯 보인다. 바오로는 자신을 경기장에서 죽음에 처해진 사람과 비교하면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하느님께서는 우리 사도들을 사형선고를 받은 자처럼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과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된 것입니다.”(1코린 4,9) 어쨌든, 그는 배를 타고 팔레스타인 해안을 떠났고 오늘날의 레바논, 키프로스, 그리스, 몰타를 거쳐 로마로 가는 파란만장한 여정에 올랐다.(사도 27,1-28,15 참조) 우여곡절 끝에 로마에 도착한 바오로는 재판을 기다리는 2년 동안에도 복음을 전파했다. “바오로는 자기의 셋집에서 만 이 년 동안 지내며, 자기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맞아들였다. 그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히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가르쳤다.”(사도 28,30-31) 사도 바오로에 대한 신약성경의 기록은 여기서 끝난다. 바오로 사도는 이후 로마 네로 황제 치세 기간에 순교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정확한 시기에 63년, 65년 등 여러 학설이 있다. 참고로 히에로니무스 성인은 바오로 사도가 67년에 순교했다고 보고 있으며, 에우세비우스는 그의 책 연대기에서 68년에 순교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바오로 사도의 길은 고난의 길이었다. 45~49년까지 키프로스,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라오디케이아를 전교했고, 이후 49~52년까지 앞서 방문한 곳에 세운 교회들을 다시 방문한 뒤, 최초로 아시아를 넘어 유럽 대륙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이때 바오로가 방문한 곳이 필리피, 테살로니카 등이다. 바오로는 당시 유럽 문명의 중심이었던 아테네에도 교회를 세우고 싶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는 신약성경에 ‘아테네서’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바오로의 복음 선포 활동에는 늘 고난이 함께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교회를 탄압하는 사람들에게 박해와 냉대, 학대를 받았다. 감옥에 갇히는 것은 기본. 유대인들에게 매를 맞기도 했으며, 로마인들에게도 태형을 세 번이나 당했다. 바다를 항해할 때, 배가 난파해 일주일 동안 표류하며 죽음의 공포와 맞닥뜨려야 했던 때도 있었다.(2코린 11,23-27 참조) 이런 고난 속에서 바오로는 3회에 걸쳐 전교 여행을 수행해 냈고, 이를 통해 거대한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기틀을 놓았다. 그 소임을 끝낸 후…. 그는 로마에서 참수당한다. cpbc2026.07.27
[ 함께해요! 평화방송] 교황 베네딕토 16세 특집 다큐멘터리 등 TV▨교황 베네딕토 16세 특집 다큐멘터리 교황 베네딕토 16세<사진>가 건강 악화로 교황직을 전격 사임했다. 28일 공식 퇴임을 맞아 베네딕토 16세의 일대기와 활동을 담은 2편의 다큐멘터리를 특집 방송한다. 신앙의 수호자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 편(1편)에서는 '탱크 추기경'이란 별명을 들을 정도로 교회 정통교리를 수호하는 데 헌신해온 그의 일대기를 소개하고, 사랑과 진리의 증거자 편(2편)에서는 교황 재임 이후 교회 수장으로서 전 세계 가톨릭교회를 어떻게 이끌어왔는지를 살펴본다. ▶방송일시: 1부 24일 오후 5시, 25일 오후 11시, 26일 오후 4시 / 2부 3월 3일 오후 5시, 3월 4일 오후 11시, 3월 5일 오후 4시 ▨2013 사순절 특강 신앙의 해를 기념해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본당이 마련한 사순절 특강을 5주에 걸쳐 방송한다. 이번 특강은 말씀(성경), 교회의 가르침, 기도, 미사, 사랑을 주제로 진행된다. 안병철 신부와 조규만<사진> 주교, 양승국 신부, 손희송 신부, 민들레국수집 서영남씨가 차례로 강연을 맡는다. ▶방송일시: (23일부터 5주간) 토요일 오후 11시, 주일 오후 4시, 월요일 오후 5시조은일2013.02.19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8>칼 라너(중)](//cpbc.co.kr/CMS/newspaper/2013/07/rc/461344_1.1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칼 라너(중)시대, 사회적 문제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응답하고자 노력 #사목과 교육, 연구활동 병행 라너는 1936년 12월 19일 「그리스도의 늑방으로부터」라는 논문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듬해 잘츠부르크에서 '종교철학의 기초'를 주제로 강의했는데, 강의록은 1942년 「말씀의 청자」라는 책으로 출간됐다. 라너는 1937년 가을 인스브루크대에서 정식으로 강의를 시작했는데 첫 강의는 '은총론'이었다. 그러나 인스브루크 신학대는 1938년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합병하고 새로운 교육법을 제정하면서 해체됐다. 신학 교수들은 무기한 정직을 당했고 예수회 회원들은 추방됐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신학과는 스위스로 이전했다. 형 후고 라너는 스위스로 갔지만 동생 칼 라너는 비엔나로 가서 사목을 하며 영신수련을 지도했다. 그는 사제양성과 사제 평생교육에 힘을 쏟았다. 그는 이 기간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사목신학적인 차원에서 그리스도교 신자가 세상에서 어떠한 과제를 가졌는지 숙고했다. 그는 다양한 장소에서 강연했고, 교회 일치를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러나 개방적인 자세로 교회 고위 성직자에게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갈등은 그가 비오 19세 교황의 지지를 이끌어내 무마됐다. 전쟁이 끝나자 라너는 다시 인스브루크대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학술활동을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부지런한 성격 탓에 새벽 5시에 미사를 봉헌한 뒤 연구교육 활동을 했다고 한다. 강의 분야는 창조론, 원죄론, 고해성사론, 성품성사론, 병자성사론이었고, 라틴어로 강의했다. 학술 활동 외에도 주일미사, 고해성사, 영신수련 동반, 본당공동체 지도 등 사목활동을 병행했다. 칼 라너의 탁월한 학문 업적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그는 마지막까지 왕성한 저술활동으로 열정을 불태웠다. #탁월한 학문적 업적 그의 탁월한 학문 업적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그는 다양한 학회를 통해 자연과학과 신학의 대화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와 신학의 관계를 연구하고 발표했다. 라너는 20세기 최고의 신학자 중 한 사람으로 알려진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살(1905~1988)과 함께 새로운 가톨릭 교의신학을 기획하기도 했다. 또 다양한 신학종합사전과 여러 총서 그리고 신학저널이 탄생하도록 힘썼다. 그가 동료들과 함께 작업한 중요한 기초자료로는 「신학과 교회를 위한 사전」, 「세상의 성사」, 「신학 소사전」, 「논의제기」, 「사목신학편람」, 「구원의 신비」, 「공의회」, 「공의회 소문헌」 등이 있다. 개인논문 모음집으로는 16권에 이르는 「신학논총」이 있다. 라너는 시대 문제에 즉각 응답하기 위해 소논문을 주로 작성했다. 저술은 4000여 편에 이른다고 알려졌다. 그중에는 체계적으로 작성된 방대한 분량의 저술도 찾아볼 수 있다. 철학박사 청구 논문인 「세계 내 정신」은 라너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데, 서양의 중세 사상과 근대주의를 현대적 차원에서 접목하려는 시도였다. 그의 두 번째 대표작인 「말씀의 청자」는 철학 및 기초신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인간에 대한 숙고다. 여기서 라너는 인간을 하느님 계시를 순종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실존적 존재라고 표현했다. 라너는 영성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가 쓴 영성서적으로는 「침묵 속의 만남」, 「성시간과 수난묵상」, 「기도의 필요성과 축복」 등이 있다. 그의 학문적 열의는 평생 그칠 줄 몰랐다. 1972년에는 「교회의 구조변경」을, 1976년에는 「그리스도교 신앙 입문」을, 그리고 그가 사망하던 해인 1984년에는 「교회 일치-실질적인 가능성」을 출판했다. 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신학자문으로 참여해 큰 공헌을 했고, 공의회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개최된 독일 주교회의(1971~1975)에도 참가해 영향을 미쳤다. #마리아에 관한 새로운 이해로 교황청과 충돌 신학자로서 삶이 성공과 명성으로만 치장되진 않았다. 그는 1950년대 교회와 마리아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의혹의 시선을 받았다. 라너는 기존 이해방식에서 탈피해 새로운 시대정신을 수용하고자 했다. 라너의 눈에 교회는 분명히 거룩한 것이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구원행업을 바탕으로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교회는 인간의 죄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교회는 죄 있는 인간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는 전쟁 이후 파괴된 유럽 사회에서 새로운 교회상을 세우려 했다. 1947년 '죄인의 교회', 1954년 '현대세계에서의 그리스도교인의 위치에 대한 신학적 의미'와 '성령을 끄지 마시오!'라는 글을 발표했는데, 당시 주교들은 라너의 새로운 교회관에 거세게 반대했다. 라너의 시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마리아론과 관계된 것이었다. 1950년 '마리아 몽소승천'(성모승천) 교리가 반포되자 라너는 여기에 반대 의견을 썼다. 마리아 교리를 반대한다기보다 '교리 반포' 행위에 대한 다른 견해를 표명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라너에 따르면 교리 반포는 교의 발전에 대한 정당성과 원칙을 따라야 한다. 그중에서도 성경적 근거가 매우 중요한데 성경에는 성모승천과 관련된 내용이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 성경에서 근거를 찾기 어려운데 교리를 반포하는 것은 가톨릭 지성인뿐만 아니라 타 교파도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성모승천을 인간학적ㆍ종말론적 관점으로 이해 라너가 보기에 성모승천은 교리로 선포되지 않고도 단순히 교회의 믿을 내용으로도 충분히 유지될 수 있었다. 이는 라너가 마리아론을 현대인에게 설득력 있게 설명하기 위해 인간학적ㆍ종말론적 관점을 가졌기 때문이다. 라너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 주목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자 십자가 위로 어둠이 덮치고 지진이 일어났다고 증언하는데 이것은 바로 죄와 죽음의 옛 세상이 몰락했음을 뜻한다고 라너는 말한다. 그와 동시에 무덤이 열리면서 잠들었던 많은 성인들이 다시 살아났다는 성경의 증언은 새로운 세상이 들어섰음을 말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옛 세상의 종말이자, 인간 영육의 완성이 이뤄지는 세상의 새로운 창조다. 성모 마리아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성모승천을 인간학적ㆍ그리스도론적ㆍ종말론적 관점에서 볼 때 다른 인간들의 종말론적 구원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 라너의 견해였다. 그는 성모승천에 관한 믿음을 교리로 선포할 정도로 중요하진 않다고 생각했다. 라너는 이에 대해 393쪽에 이르는 방대한 양의 논문 「오늘날 마리아론의 문제들」을 작성했다. 그러나 로마의 시각에선 라너의 마리아론은 마리아의 독특한 구원적 위치를 없애버리는 것이었다. 죽는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와 연대를 통해 인간 부활이 이뤄진다는 라너의 인간학적ㆍ종말론적 숙고는 마리아뿐 아니라 모든 인간의 완성을 뜻하기 때문이다. 교황청은 라너의 새로운 마리아론이 마리아만의 독특한 위치를 흔드는 것으로 이해했다. 라너의 저술은 출판 검열로 출판되지 못했다. 라너는 마리아의 동정성에 대해서도 숙고했다. 그는 교회가 믿고 있는 마리아의 동정성을 원죄론적 관점보다는 오히려 구원론적 관점에서 이해하려 시도했다. 그에 따르면 마리아의 동정 출산은 구원을 약속하신 하느님을 전적으로 수용하는 행위다. 마리아는 자신의 몸에 하느님을 받아들여 구원받지 못한 세상에 하느님 구원 은총이 구체적으로 시작되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마리아의 동정 출산은 생물학적ㆍ육체적 차원이 아니라 인간학적ㆍ구원론적 관점, 즉 하느님의 구원행위에 대한 인간의 전적인 긍정이라는 시각에서 고찰돼야 한다고 라너는 말한다. 라너의 이러한 주장에 교황청은 다시 한 번 의혹의 눈길을 보냈고, 율리우스 되프너(1913~1976) 추기경의 중재로 정직을 면했다. #미사 공동 집전 보편화에 기여 라너는 '미사 공동 집전'에도 새로운 이해를 시도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사제의 미사 공동 집전은 생소했다. 라너는 교부들의 저술을 역사적으로 탐구해 「다수의 미사와 하나의 희생」이라는 논문을 1951년 완성했다. 여기서 라너는 미사 공동 집전은 교회 전통이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공동 집전이 드물었던 이유는 다수의 사제가 한 미사 안에서 오직 한 성체성사를 거행하기에 하느님 은총이 적게 베풀어진다는 두려움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시 비오 12세 교황은 이러한 문제를 더는 언급하지 말라고 라너에게 경고했지만 결국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라너의 주장을 받아들여 미사 공동 집전을 허용했다. 이규성 신부(예수회, 서강대 교수)조은일2013.07.02
![[출판] 예수 그리스도, 그는 우리에게 누구인가?](//cpbc.co.kr/CMS/newspaper/2013/01/rc/438850_1.2_titleImage_1.jpg)
[출판] 예수 그리스도, 그는 우리에게 누구인가?세계적 신학자들이 예수에 관해 연구한 대작들 잇달아 발간 세계적 신학자들이 예수에 관해 연구한 저서가 국내에 잇달아 소개됐다. 신약학의 대가 클라우스 베르거 교수의 「예수1」과 교황청 시성성 장관 안젤로 아마토 추기경이 사제 시절 쓴 「예수 그리스도」다. 베르거 교수의 책은 600쪽에 가까운 분량이고, 아마토 추기경의 책 역시 1000쪽이 훌쩍 넘는다. 새해 시작부터 예수에 관한 대작들이 발간된 것은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저서 「나자렛 예수」 시리즈로 촉발된 예수 열풍과 더불어 신앙의 근본을 돌아보게 한 교황의 '신앙의 해' 선포와 무관치 않다. ▨예수1 클라우스 베르거 지음/전헌호 옮김/성바오로/3만 원 -------------------------------------------------- 클라우스 베르거(73, 독일) 전 하이델베르크대 교수가 2007년 자신의 학문적 역량을 모두 쏟아부으며 펴낸 역작이다. 베르거 교수는 그동안 「예수는 참으로 누구였을까?」, 「기적을 믿어도 될까?」, 「신약성경의 보도는 진실일까?」 등과 같은 책을 펴내며 예수의 참모습을 밝히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예수」는 이 같은 노력의 총체적 결실을 담고 있다. 베르거 교수는 이 책이 일반 독자들과 거리가 먼 '학술서'로서 머물지 않기를 바랐다. 베르거 교수는 책 서문에서 "나는 예수로부터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 궁금해하는 현대인들에게 정말 말해주고 싶기 때문에 이 책을 쓴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학자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신학을 풀어내기보다 모든 이들이 궁금해하는 문제들, 예를 들면 예수는 정말 진리인지, 예수를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곁들이며 학자로서, 신앙인으로서 걸어온 삶의 여정에서 예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생각했는지, 그 과정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말하고 있다. 그는 예수의 존재를 과소평가하고, 왜곡된 인물로 그려낸 일부 신학계 흐름을 비판하며 "어떤 중요한 의미도 없이 최소한의 존재로 쪼그라든 예수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게 된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고 했다. 그는 역사학, 해석학을 넘나들며 융ㆍ복합적으로 신학을 연구해 온 역량을 「예수」에 적용했다. 예수가 직접 하신 말씀, 4복음서와 성경, 유다교인들이 남긴 예수에 관한 보도와 해석, 교회 전통적으로 내려온 예수에 관한 생각 등을 입체적으로 분석했다. 1권에서는 △예수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온전한 인간? 반신반인? 또는 다른 어떤 존재? △예수는 하느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예수와 여인들 △예수와 인간적 고통 △마귀에 대한 예수의 태도 △예수의 정치적 구상 등을 다뤘다. 앞으로 발간될 2권에서는 △행동하는 예수 △예수와 돈 △예수와 함께 죽을 수 있을까? △예수는 오늘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예수와 교회 등을 풀어냈다. 베르거 교수는 "예수의 모습을 이성적으로 살펴, 있는 그대로의 예수를 인정하는 것으로 이 책의 마지막 부분으로 삼으려 한다"면서 "예수는 머리만으로 정확히 이해할 수 없으며, 예수에 대해 알려면 절반은 마음으로, 신비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 안젤로 아마토 지음/김관희 옮김/수원가톨릭대학교 출판부/2만 5000원 --------------------------------------------------------------- 교황청 신앙교리성 차관과 교황청 살레시오대 교의신학 교수를 지낸 아마토 추기경이 쓴 책이다. 그리스도론에 관한 많은 학설과 이론을 종합해 간결하면서도 명쾌하게 풀어냈다는 찬사를 받으며 '그리스도론의 교과서'로 불린다. 아마토 추기경은 서문에서 "예수는 시공을 초월해 언제나 생명의 복음이고 찬란한 광채"라면서 베르나르도 성인의 말을 빌려 "예수는 불림을 받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는 생명의 책"이라고 했다. 모두 5부로 구성된 책은 '현대 사상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제1부 제1장)를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역사의 중심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분석하며 다른 종교에서 본 예수 그리스도, 예수에 관한 해석을 둘러싼 논쟁들을 다뤘다. 이와 함께 '현대 그리스도론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테이야르 드 샤르댕, 칼 라너, 발터 카스퍼 등 신학자들이 연구한 그리스도론과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북미와 유럽의 그리스도론 등을 폭넓게 소개하며 그리스도 모습을 객관적 시각으로 분석했다. 제2부 '성서에서 본 그리스도 신비'를 통해 구약과 신약에서 확인할 수 있는 그리스도 신비를 소개한 뒤 제3부에서는 '교회 역사에서 본 그리스도 신비'를 이어가며 성경의 그리스도론이 교의적 그리스도론으로 발전되는 과정을 보여줬다. 교부들의 그리스도론부터 제1차 니케아공의회, 에페소공의회 등 초기 보편공의회에서 다뤄진 그리스도론까지 상세히 분석했다. 제4부 육화의 신비에서는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의 육화를 삼위일체론, 그리스도론, 구원론적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살폈다. 마지막 제5부에서는 그리스도 신비의 구원론적 보편성을 다루며 그리스도인으로 세상을 산다는 것은 희망과 생명의 삶임을 제시했다. 아마토 추기경은 "이 책을 통해 모든 사람이 인류 역사의 의미와 절대적 가치 기준을 예수 안에서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조은일2013.01.22

질투, 이 몹시도 역겨운 악에서 달아납시다[월간 꿈 CUM] 1700년 전의 설교 _ 대 바실리우스 (02) 아벨을 죽이는 카인.(밀라노 대성당 외벽 부조) 카인은 하느님께서 아벨에게 영예를 주시자 질투심에 불탔다. 그 영예를 주신 분에게 타격을 입히고자 그것을 받은 이를 죽였다. 하느님과 싸울 수 없으니 차선책으로 친동생을 죽인 것이다.(창세 4,11-16 참조) 질투, 이 몹시도 역겨운 악에서 달아납시다. 그것은 뱀이 가르쳐 준 것이고, 마귀가 꾸며 낸 것, 불화의 씨앗, 형벌의 보증, 거룩함으로 가지 못하게 하는 장벽, 지옥으로 가는 길, 천국을 잃어버리는 원인입니다. 독수리가 초원과 쾌적하고 향기로운 장소를 모두 내버려 두고 악취가 풍기는 곳에 이끌리듯이, 파리가 신성한 고기를 두고 상처가 썩는 곳에 모여들듯이, 질투하는 사람들은 삶의 밝음과 선행의 고귀함에서 눈을 돌려 썩은 것들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뭔가 잘못하면 사람들 사이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실수이건만, 그들은 그 실수를 사방에 떠들고 그 실수가 그것을 저지른 사람에게 낙인처럼 찍히기를 바랍니다. 질투하는 사람들은 칭찬받을 만한 것을 경멸할 만한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전문가이며, 덕을 그것과 비교되는 악덕으로 중상하는데 능숙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 병에 걸리는 것을 피할 수 있을까요. 또 이 병에 걸렸다면,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요. 인간의 번영과 명성, 육체적 건강 등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위대한 것도 탐낼 만한 것도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질투는 죽음이 우리에게로 흘러들어와 축복을 잃게 하고 하느님한테서 멀어지게 하며 율법을 위반하게 하고 동시에 세속적 번영을 망치니, 우리는 바오로 사도의 말을 따릅시다. ‘헛된 영광을 바라지 말며, 서로 싸우지 말고, 서로 질투하지 말고’(갈라 5,26 참조) 오히려 ‘하느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친절하고 자비롭고 서로 용서합시다.’(에페 4,32 참조) 성부와 성령과 함께 주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이 영원무궁토록 있나이다. 아멘. * 대 바실리우스 : 330년경 카이사리아의 부유하고 신심 깊은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단에 맞서 정통 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으며, 수도 공동체 생활에 관한 지침들을 마련했다. 뛰어난 신학자이자 동방교회 수도생활의 창시자로 불린다. 번역 _ 노성기 신부 (루포, 광주대교구 나주 본당 주임, 교부학 박사) 광주가톨릭대학교와 대학원을 거쳐, 로마 아우구스티누스 대학에서 교부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영국 안셀름 대학에서 영성상담 지도자과정을 수료했다. 광주대교구 풍암동 성당 주임신부를 거쳐 2001년부터 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 2010년부터 2018년까지 같은 대학교 총장으로 봉직했다. 이어 2020년 2월까지 목포가톨릭대학교 총장을 역임했으며, 노대동 본당 주임을 거쳐, 현재 나주 본당 주임 신부로 사목하고 있다. 공저 「내가 사랑한 교부들」 「왁자지껄 교회 이야기」 「교부 문헌 용례집」, 옮긴 책 「교부들의 성경 주해 : 마태오 복음서 1-13장」 「교부들의 성경 주해 : 여호수아기」, 공역 「세계 교회사 여행 Ⅰ, Ⅱ」 등이 있다.cpbc2026.09.20
[함께해요! 평화방송] 복음 TALK 톡톡 등 TV▨복음Talk 톡톡 노래와 복음, 나눔이 함께하는 소통의 장이 펼쳐진다. 이번 주는 연중 제5주일(다해) 복음(루카 5,1-11)을 '고기잡이 기적-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시다'라는 주제로 함께 나눈다. '복톡수훈' 코너에서는 성경학자가 복음 이야기를 들려주면 패널과 방청객들이 함께 질문을 던지고 삶의 다양한 모습을 이야기한다. 초대 손님으로 그룹 Bard의 김정환(토마스 아퀴나스)씨와 현대 가야금 연주자 정민아(베로니카)씨가 출연한다. 공개녹화 방청은 페이스북(facebook.com/PBCTVTalk), 전자우편(pbctalk@pbc.co.kr), 전화(02-2270-2633)로 신청. ▶방송일시: 5일 오후 3시, 6일 오후 9시, 8일 오전 9시 ▶진행: 박병규(대구대교구)ㆍ고진석(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신부 ▶제작: 최은진 PD라디오 ▨언제나 좋은 하루 노련미 넘치는 진행자 김현주 아나운서<사진>와 각 분야 전문가가 다양한 주제로 실시간 상담을 하고 생활 정보를 나누는 시간. 서울 비폭력대화센터 캐서린 한 대표의 '가정 방정식, 사랑 공식',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이상건 상무의 '경제 톡톡(Talk Talk) 행복한 부자되기', 가톨릭대 의대 교수의 '건강상담', 서울사이버대 심리상담학부 교수의 상담 'Bravo your Life' 등 다채로운 코너가 알차고 유익한 하루를 선물한다. ▶방송일시: 월~토 오전 11시 5분~12시 ▶제작: 박용환 PD조은일2013.01.29
[유학따라 떠나는 신앙여행]21- 예수 마음, 겸손하신 분1겸손 통해 삶 완성하고 주님을 겨외최기섭 신부(가톨릭대 신학대 학장, 동양철학)예수성심 성월이다. 자신의 옆구리를 열어 피와 물을 쏟을 만큼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내주었던 예수의 사랑을 기리며, 그분의 마음과 하나가 되기 위해 기도하는 달이다. 그분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예수는 언젠가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을 초대하면서, 자신의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하니 모두 와서 자신의 멍에를 함께 메고 자신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배우게 되면, 편히 쉬게 되리라고 약속했다(마태 11, 28-30). 그분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터득하고 그분과 함께 머물게 되면 어떤 어려움 중에서도 힘을 얻게 된다는 말씀이다. 이 '온유와 겸손'은 성경에서 늘 짝처럼 붙어 다닌다. 그래서 집회서에서는 이렇게 권고하고 있다. "얘야, 네 일을 온유하게 처리하여라. 그러면 선물하는 사람보다 네가 더 사랑을 받으리라. 네가 높아질수록 자신을 더욱 낮추어라. 그러면 주님 앞에서 총애를 받으리라"(집회 3,17-18). 오늘은 먼저 겸손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자. 겸손은 사실 모든 종교에서 중요한 덕목 중 하나로 간주된다. 공자도 군자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군자는 의(義)로써 바탕을 삼고, 예(禮)로써 그것을 행하며, 겸손한 태도로 그것을 표현하며, 믿음으로써 그것을 이룩하니, 참으로 군자(君子)로다"(君子義以爲質 禮以行之 孫以出之 信以成之 君子哉. 「論語」 衛靈公). 義와 禮 그리고 겸손과 믿음이 군자를 이루는 중요한 덕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유학을 공부하면서 겸손에 대해 깊이 묵상(?)할 수 있었던 것은 주역의 겸괘(謙卦)를 읽을 때였다. 많은 내용이 있지만, 여기서는 단지 겸괘의 괘사(卦辭)를 정이천 선생의 설명으로 들어보자. 겸괘의 괘사는 이렇다. "겸(謙)은 형(亨)하니 군자(君子) 유종(有終)이니라." 이 괘사에 대한 정이천의 해석은 이러하다. " 겸(謙)은 형통하는 도가 있다. 덕이 있으면서도 거처하지 않는 것을 겸손이라고 하니, 사람이 겸손함으로 스스로 처신하면 어디 가선들 형통하지 않겠는가?(謙 有亨之道也. 有其德而不居 謂之謙 人以謙巽自處 何往而不亨乎). 정이천은 계속해서 설명한다. " '군자가 마침이 있다(君子有終)'함은, 군자가 뜻을 겸손한 데 두어서, 이치에 통달했기 때문에 천명을 즐기면서 다투지 않고, 안이 충실하기 때문에 물러나고 양보하면서 자랑하지 않는다. 겸손함을 편안하게 이행해서 종신토록 바꾸지 않으니, 스스로 낮추어도 사람들이 더욱 높이고, 스스로 감추어도 덕이 더욱 찬란히 나타나므로, 이를 두고 '군자가 마침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소인은 욕심이 있으면 반드시 다투고 덕이 있으면 반드시 자랑해서, 비록 억지로 겸손하려 해도, 또한 편안하게 행하지 못해서 굳게 지키지 못하니 마침이 있을 수가 없다(원문 생략. 정이천, 周易 「傳」,'謙卦'). '군자가 마침이 있다'는 것은 군자가 겸손을 통해 마침내 자신의 삶을 완성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러한 겸손은 구약성경에 따르면 하느님께 대한 경외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겸손한 이의 기도는 구름을 꿰뚫으며"(집회 35,21), "겸손과 주님을 경외함에 따른 보상은 부와 명예와 생명"(잠언 22,4)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모든 덕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겸손은 예수 삶에서 보듯, 하느님께 대한 깊은 신뢰와 그분의 뜻에 대한 철저한 순명에서 비롯된다. 어떻게 하면 예수의 겸손한 마음을 배울 수 있을까?조은일2008.06.11
 제4화 한국 교회 건축의 오늘-성미술과 성당건축](//cpbc.co.kr/CMS/newspaper/2012/09/rc/427122_1.1_titleImage_1.jpg)
[교회건축을 말한다](19) 제4화 한국 교회 건축의 오늘-성미술과 성당건축하느님께서 만드신 아름다움, 군더더기 덧칠해선 안 돼 오래 전 한국가톨릭미술가회 모임에서 고 김수환 추기경께서 우리 미술가회 수호자인 이탈리아 화가 프라 안젤리코를 말씀하시면서 그가 산마르코수도원 벽에 그린 '수태고지'(受胎告知) 그림의 성모님 얼굴을 보면 화가가 자신을 한껏 낮춰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렸기에 그 성모님이 더 없이 아름답다고 하셨다. 이 프레스코 연작은 수사들이 묵상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제작됐는데 오랜 세월 많은 화가들이 정성을 쏟아 그린 성모상이 많지만 그 가운데서 그의 그림이 그렇게 감동적인 것은 그가 화가로서의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때 추기경님이 회원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신 것은 매우 적절하고도 단순명료한 설명이었다.앙리 마티스가 도미니코수도회 성당에 그린 14처(그림1). 교회미술, 소위 성미술품을 다루는 화가와 조각가와 공예가, 그리고 건축가들에게 프라 안젤리코의 성모님 이야기는 하나의 귀중한 가르침이다. 기도하는 것은 자신을 낮춰야 성립되는 일이다. 프라 안젤리코는 화가이기 이전에 수도자였다. 저명한 미술평론가 윌리엄 마이클 로세티는 "안젤리코는 열정적으로 기도한 다음에야 그림을 그렸다. 기도 없이는 절대로 붓을 들지 않았다"고 말한다. 프라 안젤리코는 기도 행위로 그림을 그렸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그릴 때는 눈물을 흘렸고, 자주 무릎을 꿇고 그림을 그렸다. 앙리 마티스는 말년에 그가 은퇴해 살고 있던 프랑스 남부 방스(Vence)에서 도미니코수도회 수녀님들 부탁으로 개보수하는 수도회 성당에 성모자상과 14처를 그리게 됐다. 이미 세계적 명성을 얻었고 부유한 노년을 보내고 있던 그는, 그때 갑자기 자신이 그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종교화를 그려온 노(老)대가가 갑자기 십자가에 이르는 고난의 길에서 보인 예수 모습을 자기 마음대로 상상해 그린다는 것에 자신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극심한 고통에 신음하는 예수의 마지막 가는 길을 마치 자기가 본 듯이 그린다는 일은 나름의 과장된 생각을 남들에게도 강요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거나, 아무리 좋게 말해도 마티스 자신의 생각(상상력)에 불과한 것이다. 결국 그는 14점의 예수님 그림을 단순한 몇 개의 선으로 추상화할 수밖에 없었다.(그림 1) 그는 성모자상에서도 성모님과 아기 예수님 얼굴을 윤곽선만으로 그렸다. 그는 십자가상 예수님과 그 아래 성모님 얼굴을 그리지 않았다.(그림 2) 그는 자신의 예술을 종교에 양보했다. 누구든지 그 추상화된 선화(線畵)들에서 스스로, 마음대로, 각자의 예수님과 성모님을 마음속으로 그려볼 수 있게 됐고, 오늘날 방스의 도미니코수도회 성당의 성모자상과 14처 그림은 마티스의 어떤 걸작보다도 더 유명한, 불후의 명작으로 남았다. 위대한 화가 지오토는 '오직 자연의 제자일 뿐'이라고 불릴 만큼 철저히 사실적인 화가였다. 그는 파도바(Padova)의 스크로베니 소성당 벽면과 천장을 가득 채운 36개의 성경 장면들을 그리면서 모든 인물을 그린 다음 대부분의 프레스코 화면 배경을 파란 하늘과 푸른 색깔로 그려 자신의 하느님을 표현했다. 성경의 이야기들 중에서도 예수의 신적(神的) 면모를 보여주는 기적 장면들을 대폭 축소하고 성모 마리아의 일생, 예수의 어린 시절과 수난을 강조해 초자연적 현상보다는 인간적 기록에 관심을 뒀다. 성경 장면을 마치 우리가 보는 듯이 사실적으로 그렸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을 그림으로 그릴 수가 없었다.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가. 그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그림으로 형상화하지 않고 푸른 하늘색으로 추상화했다. 그 하늘색은 파도바 지방에서 늘상 보게 되는 가장 평범한 푸른색이었다. 건축은 본질적 구조 요소들로 이뤄진다. 4개의 기둥 위에 지붕을 얹은 건축의 기본형은 어떤 대규모 성전에서도 같다. 그 뼈대 위에 외벽을 바르고 내벽을 씌우고 그것을 디테일로 마감하는 것은 사실상 건축의 구성과 구조에서 본질이 아니다. 따라서 그 벽 위에 프레스코(벽화를 그릴 때 쓰는 화법)로 성화를 그려 성당 내부를 장식하는 일은 건축을 구성하는 본래적 요소가 아니다. 건축은 벽화 없이도 서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너무 오랫동안 그런 여분의 장식으로 벽화를 그려왔기에 그것에 식상해지기도 했다. 그 다음으로는 벽화 대신에 그림을 그린 액자를 벽에 걸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벽화보다 간편하게 그림을 바꾸거나 치울 수 있어서 좋았다. 단순하고 명쾌한 순수성을 강조하는 현대 성당건축에서 그런 장식 그림들은 조금씩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특히 '현대적'이라고 이야기되는 미니멀 시대 건축에서는 오히려 아무 장식 없는 흰 벽만이 순수한 느낌을 준다는 의미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는 흰 벽은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스스로,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는 여백으로 남는다. 그래서 어쩌면 아시시에 있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작은 기도방은 아무런 장식이 없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가장 기도하기 좋은 방은 아무 장식도 없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가장 깨끗하고 가장 조용한 채로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완전히 자유로운 느낌 속에서 기도하는 분위기가 보장되려면 성당 벽을 장식하는 성미술품들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것이다. 예술은 인간이 만든 최고의 아름다움이다. 종교는 하느님이 만드신 최고의 아름다움이다. 모든 예술가들은 인간이 만든 것이 하느님의 아름다움에 군더더기 덧칠이 되지는 않을지 생각해야 한다.김원(안드레아, <주>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조은일2012.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