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특집] 회개와 보속 실천하며 주님 부활의 영광 준비](//cpbc.co.kr/CMS/newspaper/2019/02/rc/747219_1.3_titleImage_1.jpg)
[사순 특집] 회개와 보속 실천하며 주님 부활의 영광 준비재의 수요일 ‘재를 얹는 예식’에서 신자 이마에 재를 바르고 는 모습. 가톨릭평화신문 DB재의 수요일인 6일부터는 교회 전례력으로 사순시기가 시작된다. 주님 부활 대축일을 앞두고 회개와 보속을 통해 주님 부활의 영광을 준비하는 때이다. 신자들이 사순시기를 더욱 잘 이해하고 합당한 생활로 뜻깊게 지내도록 사순시기의 유래와 의미, 전례, 생활 자세 등에 대해 알아본다.사순시기 의미 사순시기는 주님 부활의 영광을 기쁜 마음으로 준비하도록 마련됐다. 교회가 사순시기를 지내는 것은 예수님의 생애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시기 전 성부 하느님 뜻을 따르기 위해 수난과 죽음을 겪으셨지만, 이 때문에 부활하셨으며,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는 영광을 받으셨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도 삶 안에서 주님 수난에 동참하기 위해 사순시기를 지내는 것이다. 사순시기는 또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헌장」(제109항)이 규정하고 있듯이 “파스카 신비의 경축을 준비”하는 시기다. 주님의 고통과 죽음을 마냥 슬퍼하는 시기가 아니라, 주님 부활을 준비하기 위해 예수님의 고통과 죽음의 신비를 묵상하는 시기이다. 사순시기 전례 사순시기에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적극 동참한다는 뜻에서 전례 중 기쁨을 상징하는 요소인 대영광송과 알렐루야를 하지 않는다. 사제의 제의도 회개와 속죄를 상징하는 보라색(자색)으로 바뀐다. 그러나 사순 제4주일에는 부활의 기쁨을 미리 맛본다는 의미에서 장미색 제의를 입기도 한다. 미사 전례 독서와 복음은 회개와 세례성사를 두축으로 예수 부활을 준비하는 시기로서의 주제를 드러낸다. 교회는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수난의 신비를 깊이 깨달을 수 있도록 ‘십자가의 길’ 기도를 자주 바칠 것을 권고하며, 주님 수난 성지 주일로 시작하는 성주간에는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묵상하는 가장 거룩하고 뜻깊은 기간으로 보내도록 초대하고 있다. 또한, 사순절은 고해성사를 위한 가장 알맞은 시기다. 사순과 대림시기에 의무로 받는 고해성사는 신자로서 쌓은 공로를 헤아려 판별한다는 뜻으로 ‘판공(判功)’ 성사라고도 한다. 사순시기 유래 「가톨릭 대사전」에 따르면, 사순이 언제 어떻게 생긴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초대 교회 때부터 그리스도인들은 주님 부활 대축일을 앞두고 참회의 시기를 지켰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 기록에 사순시기 기간이 40일이라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니케아 공의회 또는 그 이전에 사순시기 기간이 정해졌을 것으로 짐작한다. 4세기 말 로마 교회가 부활 전 40일을 부활 준비기간으로 정했는데, 여기서 ‘40일’ 동안의 기간을 의미하는 ‘사순절’이라는 말이 나온 것으로 본다. 사순시기는 40일? 사순시기는 보통 주님 부활 대축일(올해는 4월 21일)을 맞이하기 위한 회개와 보속을 행하는 40일의 기간으로 알고 있다. 예전에는 재의 수요일부터 성토요일까지를 사순시기로 지냈다. 이 기간에서 주일을 제외하면 정확히 40일이 된다. 주일은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기에 사순시기에서 제외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성주간 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부터 부활 대축일까지를 파스카 성삼일이라고 해서 사순시기와 분리해서 지내므로 재의 수요일부터 성주간 목요일까지의 기간에 주일을 빼면 40일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사순시기의 40일은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영성적인 의미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40’이라는 숫자는 하느님을 만나기 전에 또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태어나기 위해 거치는 정화의 준비 기간을 상징한다.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과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참회와 속죄로써 자신을 정화할 때 ‘40’이라는 숫자가 종종 등장한다. 노아 홍수로 새 세상을 준비할 때 40일간 비가 내렸고,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40년간 광야를 헤맸으며, 모세는 십계명을 받기 전 40일간 단식했다. 예수께서 공생활 전에 40일간 광야에서 단식하신 것도 대표적인 예다. 재의 수요일 사순시기 전례는 재의 수요일, 이마에 재를 받는 예식으로 시작된다. 재의 수요일이 되면 각 본당에서는 성지(聖枝)를 태워 만든 재를 축복하고 이를 신자들 머리 위에 얹거나 이마에 십자 모양으로 바른다. 이때 사제는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창세 3,19 참조) 혹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라고 말하는데, 이처럼 재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기억하게 하고 참회와 슬픔을 느끼도록 한다. 구약성경에서도 재는 허무와 애통, 속죄를 상징한다. 단식과 금육 교회는 사순시기에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자주 묵상하고, 탐욕과 이기심에서 벗어나 회개와 보속, 봉사를 권고하면서 재의 수요일과 예수님께서 수난받으시고 돌아가신 성금요일에 단식(금식)과 금육을 하도록 가르친다.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는 ‘모든 신자는 인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고, 자신들과 이웃들의 각종 죄악을 보속하는 정신으로 금식재와 금육재를 지켜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제136조) 또한 ‘재의 수요일과 성금요일에는 금식재와 금육재를 함께 지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단식은 만 18세부터 60세 전날까지, 금육은 만 14세부터 죽을 때까지 모든 신자가 지켜야 한다. 단식과 금육은 절제와 극기로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한다는 뜻도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단식과 금육으로 절약한 것을 가난한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사랑의 실천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인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로마 8,17)라는 성경 구절은 사순시기가 단순히 고통을 감내하는 기간이 아니라 신앙을 쇄신하고 실천함으로써 주님 부활 대축일을 뜻깊게 맞이할 준비를 하는 기간임을 보여준다. 사순시기 생활 자세 사순시기의 보속과 희생은 개인적인 차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고 “외적이고 사회적”(「전례헌장」제110항)이어야 한다. 진정한 회개와 보속의 삶은 개인적인 절제와 희생뿐 아니라 이를 통해 모아진 결실을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누는 외적 실천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사랑과 봉사와 선행을 실천하는 사순시기가 되어야 한다. 윤재선 기자 leoyun@cpbc.co.kr 문채현2019.02.27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3주일 - 우리 삶에 펼쳐지는 ‘희년’](//cpbc.co.kr/CMS/newspaper/2019/01/rc/744684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3주일 - 우리 삶에 펼쳐지는 ‘희년’ 한민택 신부 예수님의 나자렛 방문과 회당에서의 ‘희년 선포’는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시며(신원) 무엇을 위해 파견 받으셨는지를(사명)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읽으신 성경 구절은 이사야서 61장 1-2절의 말씀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구약에서 오시기로 약속된 그리스도로 드러내십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 부음 받은 이’라는 뜻으로 구약의 메시아를 지칭합니다. 구약의 약속처럼(이사 61,2) 그분의 사명은 온갖 종류의 속박에 매여 있는 이들에게 다가가 해방의 기쁜 소식을 전하며 그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었습니다.“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22) 예수님의 세례 때 확인된,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와 맺는 사랑의 친교는 그분의 공생활을 통해 생생히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신 후 예수님께서 찾아가신 곳은 이방인들의 갈릴래아, 거기서도 가장 비참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삶의 자리, 구원을 간절히 바라는 이들의 울부짖음이 울려 퍼지는 곳이었습니다.“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이집트 종살이에 허덕이며 하느님께 울부짖었던 이스라엘 백성의 간청을 듣고 모세를 보내시어 그들을 종살이에서 구해주신 하느님께서는, 죄와 악의 종살이에서 허덕이는 이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시어 ‘새로운 모세’인 당신 외아드님을 친히 파견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새로운 탈출기’를 실현시키기 위해서입니다.“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 복음 말씀에 나오는 ‘오늘’은 2000년 전 예수님의 시간인 동시에, 그분의 인격과 업적을 기억하고 기념하며 그분을 따라 하느님 나라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의 ‘오늘’이며 우리 각자의 ‘오늘’이기도 합니다.그 옛날 가난하고 소외되며 온갖 병고에 시달리고 죄와 악의 속박 속에 갇혀 살던 이들에게 다가가 당신 사랑의 힘으로 그들을 속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신 것처럼, 주님께서는 오늘도 초라하고 나약한 우리에게 다가오시어 우리가 새로운 삶을 살도록 이끌어주십니다. 죄와 악, 죽음과 두려움이 아닌 사랑과 용서, 자비와 평화가 우리의 삶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몸이 되었습니다.”(1코린 12,13)우리는 모두 세례를 통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였으며, 그분 사랑으로 새로운 삶을 선물로 부여받았음을 기억합시다. 주님 자녀로서의 고귀한 품위가 회복되었음을 기억합시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끊임없이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며, 자유와 평화의 땅으로 이끌어주고자 하십니다.한민택 신부(수원가톨릭대 교수, 이성과신앙연구소 소장) cpbc2019.01.23
![[교부들의 사회교리] (2) 공동소유](//cpbc.co.kr/CMS/newspaper/2018/12/rc/741252_1.0_titleImage_1.jpg)
[교부들의 사회교리] (2) 공동소유내 것 내세우지 말고 모든 것 공유하라 “얻기 위해 손을 벌리지 말고, 주기 위해 오므려라. 네 손으로 벌이한 것이 있으면, 네 죄들을 속량키 위해서 주라. 주기를 망설이지 말며, 주면서 불평하지 말라. 보수를 후하게 쳐주시는 분이 누구신지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궁핍한 자에게서 돌아서지 말며, 모든 것들을 네 형제와 함께 공유하고 네 것들이라고 말하지 말라. 너희가 불사하는 것을 공유하고 있으니 하물며 사멸하는 것들을 공유하는 것쯤이랴.”(「디다케」4,5-8) 성경처럼 읽히던 책「디다케」는 가장 오래된 교회 규범집이다. 그리스어 디다케는 ‘가르침’이라는 뜻인데, 이 작품의 긴 제목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디다케)」을 줄여서 그리 부른다. 100년경 시리아에서 저술되었으리라 어림잡지만, 지은이는 알 길이 없다. 초기 교회에서는 성경 같은 권위를 누렸고, 미사 전례에서 사도들의 서간들과 함께 봉독되기까지 했다. 사도 시대와 맞닿아 있는 이 책은 로마의 네 번째 주교 클레멘스가 쓴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96년경)과 더불어 가장 오래된 교부 문헌으로 손꼽히며, 사도 시대와 맞닿아 있다 하여 사도 교부 문헌이라 일컬어진다.「디다케」의 사회적 가르침은 매우 짧고 단순하다. 가난한 사람을 외면하지 말고, 모든 것을 형제들과 공유하며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하지 말라는 것이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든 것을 공유물로 여기고 아무것도 제 것이라 내세우지 말라는 이 공유의 원리는 전혀 낯설지 않다. 조금 일찍 저술된 사도행전에서 루카가 이렇게 증언하기 때문이다.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사도 2,44)고, “아무도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사도 432)공유의 삶은 이상에 지나지 않는가?사도행전의 소유 공동체적 교회상은 역사적 사실을 기술한 것이라기보다 루카가 이상적 교회상을 묘사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현대판 사도행전 주해서들이 많다. 그러나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기꺼이 함께 나눔으로써 비참한 궁핍을 겪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는 사도 시대의 이 소중한 증언을 성경 저술가의 한바탕 꿈이나 희망 사항이었다고 단정 짓기에는 사도행전에 이어지는 교부들의 증언이 너무도 생생하고 강렬하다. 165년 로마에서 제자들과 함께 순교한 성 유스티누스 교부는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안토니우스 피우스 황제에게 긴 글을 써 보냈다. 그리스도교의 진리와 그리스도인의 삶을 애틋하게 설명하는 이 작품에는 공유 생활에 관한 보석 같은 정보가 들어 있다. “한때 우리는 부와 재산만을 탐했으나 이제는 가진 것을 공동의 몫으로 내놓고 궁핍한 이들과 함께 나눕니다.”(「첫째 호교론」 14,2)그로부터 280년 가까이 흐른 뒤에도 이러한 삶의 방식은 수도승 생활을 통해 지속되고 있었으니, 일흔을 훌쩍 넘긴 아우구스티누스 주교는 자신이 추구해 온 공유 공동체의 삶에 관하여 이런 강론을 남겼다. “저는 선의를 지닌 형제들을 모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제가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것처럼 저를 본받아 아무것도 자기 소유로 지니지 않은 가난한 동지들이었습니다. 제가 지니고 있던 얼마 되지 않는 재산들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듯이 저와 함께 살고자 했던 그들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가진 것을 공동으로 내어 놓고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공동으로 모시듯이 크고 기름진 농지도 우리 모두의 공동 소유였습니다.”(「설교」 355,2)재화의 보편적 목적, 곧 세상의 유일한 주인이신 하느님을 모신 우리에게 세상 재화는 공동의 것이라는 확신이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공유되고 있었을 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실현되고 있었다고 교부들은 증언한다. 최원오 교수(빈첸시오, 대구가톨릭대 유스티노자유대학원장) cpbc2018.12.12
주님 사랑과 자비 전하는 행복한 수도 공동체 소망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고성수도원 유덕현 초대 아빠스 “아빠스의 영적 부성을 기억하며 모든 형제를 자비롭게 대하라는 사명에로의 초대로 받아들입니다.” 유덕현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고성수도원 초대 아빠스는 “아빠스로 새로운 소임을 받으면서 형제들이 정말 행복을 느끼고 수도원에서 만나는 이들이 하느님 사랑과 자비를 느끼도록 함으로써 하느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1988년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가 한국에 진출하던 해에 입회, 이제는 대수도원장으로서 고성수도원을 이끌게 된 유 아빠스는 우선 “형제들이 정말 행복함을 느끼는 수도승 공동체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유 아빠스는 특히 “연간 1만 명이 넘는 분들이 우리 수도원을 찾고 있는데, 이는 그만큼 영적 갈증을 느끼는 현대인들이 많다는 방증”이라며 “그래서 이들 평신도와 봉헌자들에 대한 영적 강의와 면담, 고해성사는 우리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도직 활동”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성경 말씀으로 기도하는 데에 맛 들이면 세상의 어떤 책이나 오락보다도 더 큰 감동을 하게 되고 하느님을 만나게 될 것”이라면서 렉시오 디비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유 아빠스는 또 현대의 수도 공동체에도 개인주의적, 세속적 성향이 스며드는 데 대해 “올리베따노 식구끼리라도 먼저 더 사랑하고, 더 돕고, 더 협조하고, 더 나누고, 더 친교를 증진한다면, 공동체 생활을 통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소 계발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하느님을 찾아라. 그러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이라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유 아빠스는 “이를 위해 기도와 일, 고행과 거룩한 독서를 하는 것”이라며 “이것이 바로 하느님을 만나는 도구”라고 언급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평화신문2019.03.05
![[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 (39)평신도를 통한 한국 교회의 쇄신, 그 대안은 복음화 9 - 평신도의 다른 이름, ‘하느님의 외교관’](//cpbc.co.kr/CMS/newspaper/2019/09/rc/762551_1.0_titleImage_1.jpg)
[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 (39)평신도를 통한 한국 교회의 쇄신, 그 대안은 복음화 9 - 평신도의 다른 이름, ‘하느님의 외교관’평신도는 예수님의 구원사업 대신하는 사람들 이웃들이 힘들어하고 외로워할 때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우리도 먼저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그림은 렘브란트의 ‘착한 사마리아인’ 일부, 1630년. 가톨릭평화신문 DB “예수님께서는 교만과 아집으로 가득 찬 율법 교사가 당신을 시험하기 위해 던진 질문에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로 답하셨다.”(루카 10,25-28 참조)이 비유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측은지심이 바로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마음이고, 우리가 이웃을 사랑할 때 가져야 할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환자를 고쳐주실 때마다 측은하고 가엾은 생각을 가지셨습니다. 또 눈여겨볼 장면은 강도당한 사람이 행여나 가는 동안 상처가 더하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응급조치해 주는 부분입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은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염려스러워 함께 밤을 지새웠습니다.우리는 흔히 평신도로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모범이란 나 자신만 정직하고 정의롭게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간절하고 절박한 사람들에게 진정한 이웃으로 거듭나는 것이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셨던 평신도 신앙인의 모범입니다. 날로 각박해져 가는 현대사회에서 정신적, 육체적 깊은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웃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해 주는 이웃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러하셨듯 사랑 실천세상 사람들은 사랑에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자신 이외에는 관심을 가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웃이 힘들어하고 외로워할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그러하셨듯이, 그리스도인이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도 힘들고 고통받고 외롭고 아파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위로받고 치유받고 용기를 얻고 새로운 희망을 갖고 살게 되지 않았습니까?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쓴 편지에서 “여러분은 분명히 우리의 봉사직으로 마련된 그리스도의 추천서입니다. 그것은 먹물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느님의 영으로 새겨지고, 돌판이 아니라 살로 된 마음이라는 판에 새겨졌습니다”(2코린 3,3)라고 말씀하셨습니다.평신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그분의 소개장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마음에 새겨진 소개장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께로부터 복음 전파의 사명을 받고 이 땅에 파견되셨듯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평신도들은 각 지역과 여러 분야에 파견된 그리스도의 외교관입니다.예수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복음을 선포하셨고 자비와 사랑을 베풀고 치유를 하셨듯이 우리 평신도들도 세상에 나가 하느님 나라를 증거하고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진 것을 나누고 기도하며 사람들의 아픔을 치유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화라고 하는 하느님의 구원사업입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파견하실 때 그 사명과 능력을 주셨듯이 하느님께서는 세상에 파견되는 우리 평신도 모두를 무장시켜 주실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무기와 성령의 능력을 주셔서 당신의 외교관으로서 부족함이 없도록 보호해 주시고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성령께서는 마음의 평화와 기쁨으로, 깊은 회개로, 용기와 확신으로 그리고 새로운 삶을 살도록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에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약속받았고 그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평신도들이 먼저 세상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무관심 속에 버려진 사람들, 힘들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영적으로 빈곤한 상태에 놓인 사람들에게 달려가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해야 할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안다면 머뭇거릴 시간이 없습니다.성령이 이끄시는 방법으로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복음화를 이끄시는 주역은 성령이시라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이끄시는 방법이 아닌 개인 생각과 판단으로는 복음화를 이룰 수는 없습니다. 파견된 모든 평신도는 성령과 친교를 통해 성령의 이끄심에 충직하게 따르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화는 복음 선포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복음 선포는 명백한 선포와 더불어 생활의 증거가 필요합니다. 명백한 선포를 하기 위해서는 성경과 교리 지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래서 평신도들도 공부해야 합니다. 생활의 증거는 평소의 삶을 보여주는 것으로 얼마나 그리스도적인 사상으로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은 삶을 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평신도의 또 다른 이름 ‘하느님의 외교관’은 예수님을 대신해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정치우(안드레아, 새천년복음화학교 교장) cpbc2019.09.17

주님의 빛 속에서 100년 향해 새 출발춘천교구, 설정 80주년 기념 미사 봉헌… 하느님 은총에 감사 춘천교구는 교구 설정 기념일인 4월 25일 춘천 죽림동주교좌성당에서 교구장 김운회 주교 주례로 80주년 기념 미사를 봉헌하고, 오랜 세월 한결같이 받은 하느님 은총에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다.과거 일제의 종교 핍박과 남북 분단의 아픔, 공산 치하의 혹독한 수난을 온몸으로 겪으면서도 신앙의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해온 춘천교구는 이날 80주년 기념 미사를 통해 주님의 빛 속에 하나 된 마음으로 100년을 향한 사랑의 공동체로 거듭날 것을 새롭게 다짐했다. 김운회 주교는 미사 강론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로 이뤄진 80년이라는 시간은 감사의 시간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현재를 다시금 돌아보고, 또 미래의 우리를 준비해나가는 시간”이라며 “주님의 빛 안에 신앙의 기쁨을 나누는 모습을 통해 내가 살아가는 공간과 시간을 ‘작은 하느님 나라’로 만들어가자”고 당부했다.춘천교구는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이사 2,5)란 주제 아래 올 한해를 교구 설정 80주년 기념의 해로 보내기로 하고, 지난해 12월 1일 개막 미사 봉헌 후 다양한 방식으로 기쁨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교구는 개막 미사 이튿날부터 1년간 행해지는 ‘예수 성심상 본당 순례’를 통해 교구 주보이신 예수 성심의 사랑에 교구민 전체가 감사와 기도의 뜻을 모으고 있다. 아울러 △나부터 변하자 △사랑으로 하나 되자 △감사한 마음으로 우리가 하느님 말씀을 전하자 등 세 가지 신앙덕목 아래 교구민 전체가 사랑으로 더욱 변화되고자 힘쓰고 있다. 또 평일 미사 참여와 매주 금요일 단식 실천으로 나눔의 뜻을 돋우고, 80주년 기도 봉헌과 성경 통독 및 쓰기, 성시간, 성체조배 등을 활발히 펼치면서 신앙 성숙과 내실을 더해가고 있다. 춘천교구는 이미 지난해 전 교구민 대상 신앙 설문조사를 실시해 결과를 토대로 후속 프로그램 마련을 진행 중이며, 젊은 세대를 위한 사목 프로그램 개발에도 힘쓰는 등 변화와 쇄신, 공동체 일치로 100년을 향해 새롭게 성장하는 교구로 나아가는 데 주력하고 있다. 80주년 기념 사진전과 음악회, 미술전 등 다양한 행사도 펼쳐지고 있다.1939년 경성대목구에서 분리돼 춘천지목구로 출발한 춘천교구는 1962년 한국 가톨릭 교계제도 설정에 따라 정식 교구가 됐다. 춘천교구는 서울ㆍ대구ㆍ광주ㆍ전주에 이어 5번째로 역사가 오래됐으며, 관할 지역은 경기 가평ㆍ포천에서 강원 영서ㆍ영동ㆍ영북지역에 이르기까지 전국 교구 중 제일 넓다. 교구 내 본당은 63곳(준본당 포함), 공소 39개소, 사제 115명, 신자는 9만여 명이다.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평화신문2019.05.02
![[교부들의 사회교리] (6)연대와 환대](//cpbc.co.kr/CMS/newspaper/2019/01/rc/743447_1.0_titleImage_1.jpg)
[교부들의 사회교리] (6)연대와 환대 다른 얼굴, 삶 지닌 이들과 '더불어' 최원오 교수 “예전에 우리는 향락을 즐겼지만, 이제는 오직 절제만을 사랑합니다. 전에는 요상한 속임수를 썼지만, 이제는 선하시며 창조되지 않으신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봉헌합니다. 한때 우리는 부와 재산만을 탐했으나 이제는 가진 것을 공동의 몫으로 내놓고 궁핍한 이들과 함께 나눕니다. 전에는 서로 미워하며 죽이기도 했고, 우리 혈통이 아닌 사람들이나 다른 풍습을 지닌 사람들을 환대하지 않았지만, 그리스도께서 오신 다음부터는 공동체를 이루어 삽니다. 그리고 원수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부당하게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려 애씁니다. 그들도 그리스도의 선한 계명대로 살아감으로써 마침내 우리와 더불어 만유의 주님이신 하느님께 똑같은 상급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유스티누스, 「첫째 호교론」 14,2-3) 그리스도교야말로 참된 철학 성 유스티누스는 한평생 참된 철학을 추구한 위대한 평신도 교부이다. 젊은 시절에는 철학책에서 지혜를 찾아 헤맸으나, 마침내 성경을 통해 참된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우연히 만난 한 노인이 진정한 지혜는 철학책이 아니라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고 일러준 덕분이었다. 그리스도교야말로 확실하고 유익한 단 하나의 철학이라 확신한 유스티누스는 끝까지 철학자로 살다가 165년 로마에서 제자들과 함께 순교했다. 가장 빼어난 호교 교부인 유스티누스가 남긴 대표작은 「첫째 호교론」(150년경)이다. 이 작품에는 초기 그리스도인의 교회 생활과 사회 활동에 관한 중요한 정보가 그득하다. 서로 다른 혈통과 풍습을 지닌 사람들 유스티누스 교부는 이 짧은 인용문에서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과 후의 근본 변화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난민이나 이주민들처럼 “우리 혈통이 아닌 사람들이나 다른 풍습을 지닌 사람들”을 그리스도인들은 환대하게 되었다고 밝힌다. 전에는 깔보고 무시하던 다른 민족 사람들과 가난한 외국인들을 지금은 공동체에 따뜻이 맞아들여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낯선 이들을 배척하고 외면하던 혐오의 장벽을 허물고 연대와 환대의 공동체적 삶으로 건너왔다는 것이다. “우리 혈통이 아닌 사람들이나 다른 풍습을 지닌 사람들”을 환대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를 때의 관습이며, 그리스도를 외면하는 삶이다. 나그네의 모습으로, 떠돌이의 모습으로, 난민과 이주민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마태 25,31-46)을 환대하기는커녕 거부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의 세계관에 머물러 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오심을 반대하는 것이 분명하다. 난민에 대한 환대는 교부들의 가르침에 바탕을 둔 그리스도교의 거룩한 전통이며, 그 성전(聖傳)은 오늘날까지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전 세계 가톨릭 교회 안에서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다. “난민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저마다 얼굴과 이름, 삶의 이야기를 지닌 난민들을 인격적으로 맞아야 합니다.”(프란치스코 교황 2016년 4월 16일 인터뷰) 최원오(빈첸시오, 대구가톨릭대유스티노자유대학원장) cpbc2019.01.09
![[생활속의 복음] 성령 강림 대축일 - 성령 안에 새로운 삶](//cpbc.co.kr/CMS/newspaper/2019/06/rc/754606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성령 강림 대축일 - 성령 안에 새로운 삶 한민택 신부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윤리적 선택이나 고결한 생각의 결과가 아니라, 삶에 새로운 시야와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한 사건, 한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1항)베네딕토 교황님의 이 말씀은 그리스도 신앙의 출발점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에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성경이나 교리 지식을 믿는 종교가 아닙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인격,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분 안에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 하느님 아버지를 믿습니다.예수님을 만방에 선포하도록 제자들을 움직였던 것은, 바로 스승과의 만남이며 그분과 함께한 삶에서 비롯된 신앙 체험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인격에 깊이 감화되었고, 그분으로부터 받은 사랑으로 구원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들이 경험한 예수님의 인격과 사랑, 그리고 그들의 삶 안에 실현된 놀라운 구원의 신비를 전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사도행전은 제자들에게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온 사건을 성령 강림 사건으로 전해줍니다. 성령 강림 체험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비로운 현상을 보거나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체험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시며, 성령 체험은 내면 깊은 곳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의 사랑으로 정화되고 변화되는 체험입니다. 좌절과 절망, 두려움과 죽음으로 점철된 삶이 주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희망과 활력, 기쁨과 환희로 채워지는 체험입니다. 성령의 활동을 통해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은 다락방을 박차고 세상 한가운데로 나아가 예수님에 대해 담대하게 증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또한, 성령 강림 체험은 예수님께서 누리시던 아버지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의 체험이기도 합니다. 아버지를 ‘아빠’ 하고 친밀하게 부르며 그분께 온전히 신뢰하고 의탁하는 체험입니다. “진정 여러분이 자녀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 영께서 ‘아빠! 아버지!’하고 외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그리고 자녀라면 하느님께서 세워 주신 상속자이기도 합니다.”(갈라 4,6-7)그러나 유아기적 망상에 사로잡혀서는 안 됩니다. 그 체험은 마술과 같이 즉각적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각자 삶의 영역에서 각자가 살아가는 방식 안에서, 특별히 시련과 환난을 겪으면서 서서히 우리 안에 실현되는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로마 5,3-5)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에 부어진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를 변화시켜 당신 아들의 형상으로 닮아가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에 성령께서 우리 삶을 새롭게 하시어, 그분께서 주시는 열매가 풍성히 열리기를 청해봅니다.“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갑시다.”(갈라 5,22-23. 25)한민택 신부(수원가톨릭대 교수, 이성과신앙연구소 소장) 평화신문2019.06.04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39)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선교(13,13-52) <하>](//cpbc.co.kr/CMS/newspaper/2019/11/rc/766636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39)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선교(13,13-52) 유다인들의 박해에도 성령의 기쁨 가득 찬 주님의 일꾼들바오로와 바르나바는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서 유다인들에게 쫓겨나면서도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 이코니온으로 간다. 사진은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유적.바오로가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회당에서 설교한 후 회중의 반응과 그 후속 상황에 대해 사도행전 저자가 전하는 내용을 살펴봅니다.(13,42-52) “그들(바오로 일행)이 회당에서 나올 때, 사람들은 다음 안식일에도 이러한 말씀을 해 달라고 청하였다.”(13,42) 이로 미루어 회중은 바오로의 설교에 상당히 호감을 갖고 있었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회중이 흩어진 후에 많은 유다인과 유다교로 개종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이들이 바오로 일행을 따라왔고,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그들에게 “하느님의 은총에 계속 충실하라”고 권하지요. 그다음 안식일에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도시 사람들이 거의 다 모여듭니다. 그 군중을 보고 유다인들은 시기심으로 가득 차 “모독하는 말을 하며 바오로의 말을 반박”하지요.(13,44-45) 이 구절을 볼 때 유다인들 가운데 두 부류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오로의 설교에 호감을 갖고 주님 말씀을 들으려는 이들과 바오로 일행에게 반감을 갖고 있는 이들입니다. 반대자들은 왜 반감을 갖게 됐을까요? 우선 이들은 도시와 회당에서 기득권 세력이었는데 많은 사람이 자기들 대신 바오로에게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자 시기심으로 가득 차 반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이들은 자기들이 율법을 철저히 지킴으로써 구원을 받는다고 여겼고 그렇게 사람들을 가르쳤는데, 바오로는 부활하신 예수님, 곧 주님께 대한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고 함으로써 자기들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거슬렀습니다. 결국, 한편으로는 시기심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엄격한 율법주의를 고수하는 자기들의 신념을 거스른 데 대한 분노에서 유다인들은 반감을 갖고 반박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담대히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여러분에게 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것을 배척하고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스스로 합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니, 이제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섭니다.”(13,46) 하느님의 말씀을 유다인들에게 먼저 전해야만 했다는 말은 열두 사도를 파견하시면서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마태 10,6)고 하신, 그리고 마귀 들린 자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달라는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에게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마르 7,27)고 하신 예수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또 이 ‘사도행전 이야기’를 통해 지금까지 살펴본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사도들은 먼저 유다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지요. 그러다가 점차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주실” 뿐 아니라 말씀을 받아들이는 이방인들에게도 똑같이 “성령의 선물이 쏟아져 내린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일화가 베드로 사도가 본 환시(사도 10,9-16)와 코르넬리우스 집안사람들에게 성령이 내린 일(10,44-45)입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선교 활동은 이 과정을 그대로 따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바오로 사도가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복음은 먼저 유다인에게 그리고 그리스인에게까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 힘”(로마 1,16)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어서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사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땅끝까지 구원을 가져다주도록 내가 너를 다른 민족들의 빛으로 세웠다.’”(13,57) 이사야 예언서 49장 6절을 인용한 이 성경 말씀은 원래는 예수님께 적용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이를 주님께서 파견하신 이들, 곧 자신들에게까지 적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두 사람은 유다인을 넘어서서 이방인을 향한 선교를 다시 확인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더군다나 두 사람은 안티오키아 교회로부터 공적으로 파견을 받은 이들입니다. 두 사람이 하는 이런 말에 다른 민족 사람들은 기뻐하며 주님 말씀을 찬양합니다. 또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정해진” 사람들은 모두 믿게 되었고, 주님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집니다.(13,48-49)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정해졌다는 표현을 두고 이른바 ‘예정설(豫定說)’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할 수 있지만, 학자들은 유다교에서 흔히 사용하는 일종의 문학적 표현일 따름이라고 풀이합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귀부인들과 그 도시의 유지들을 선동하여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박해하게 하고 그 지방에서 그들을 쫓아냅니다. 바오로 일행은 발의 먼지를 털어 버리고 나서 이코니온으로 갑니다.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사도행전 저자는 기록합니다.(13,50-51) 생각해봅시다1.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 사는 유다인들이 시기심으로 가득 차 바오로 일행을 쫓아낸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경고가 됩니다. 시기심은 눈을 가려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런 시기심은 또한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집착에서 비롯합니다. 시기심과 집착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자기를 비우고 진실에 귀를 기울이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나약함을 지닌 우리 인간의 힘만으로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성령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자신에게 갇혀 있지 말고 더 나은 선에 마음을 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성령께 도움을 청합시다. 2.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서 유다인들에게 쫓겨나면서도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대목 또한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계획했던 또는 추진했던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거나 풀릴 때 사람들은 만족스러워하고 기뻐합니다. 반면에 뜻대로 되지 않을 때나 반대에 부딪혀 일을 그르치게 될 때는 기뻐하기보다는 오히려 분노하거나 좌절합니다. ‘하느님의 일’을 한다고 노력했는데 엇나가게 될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일꾼’들이라면 그럴 때도 기뻐할 수 있음을 바오로와 바르나바 두 사도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마태 5,11-12) “인간이 마음으로 앞길을 계획하여도 그의 발걸음을 이끄시는 분은 주님이시다”(잠언 16,9)라는 말씀을 따라, 해야 할 일을 다 하면서도 주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맡겨드린다는 자세를 지닌다면, 우리는 역경에서도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찰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순교 선조들은 이미 그렇게 사신 분들입니다. 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alfonso84@hanmail.necpbc2019.11.13

다시 시작하는 캄보디아 교회의 ‘작은 주춧돌’ 되어[선교지에서 온 편지] 캄보디아(하) 새로운 시작에 동참하며 - 윤대호 신부 성가 교육 받는 신자들과 함께한 필자. 1555년 캄보디아에 처음으로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긴 시간 동안 뿌리를 내리지 못했고, 프랑스 식민통치 기간(1863~1953)을 거치면서 12만 명 정도의 교세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킬링필드로 잘 알려진 크메르루주가 집권했던 민주 캄푸치아 시기(1975~1979)에 캄보디아 교회는 많은 것을 잃게 되었습니다. 최초이자 지금까지 마지막 캄보디아인 주교님이신 츠마 살라(Joseph Chhmar Salas) 주교님을 비롯한 수많은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순교하였습니다. 또 여러 선교사가 추방당하거나 교우들과 함께 베트남으로 탈출하였습니다. 교회 건축물은 대부분 파괴되거나 정부에 빼앗겼습니다. 11년 간의 내전 끝나고서야 미사 봉헌 가능 크메르루주가 축출되면서 이어진 만 11년 간의 내전 기간 동안 이 땅에서는 미사가 봉헌되지 못하였습니다. 내전이 끝나갈 무렵인 1990년 캄보디아 교회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첫 미사가 봉헌되었습니다. 파리협정으로 1991년 내전이 공식적으로 종결되고, 정세 안정을 위한 유엔 잠정통치기구 (UNTAC)의 과도정부 시기(1992~1993)에 기존에 활동해오던 선교사들과 새로운 선교사들이 캄보디아로 입국하기 시작하면서 교회 재건이 시작되었습니다.다시 시작한 지 30여 년이 흘렸지만, 캄보디아 교회는 여전히 시작 단계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신자 수는 2만 명 정도로 전 국민의 0.14% 수준이며, 70여 명의 사제와 120여 명의 수도자 중 대부분은 선교사들입니다. 당장 필요한 것들인 「성경」이나 「미사 경본」 등은 이미 번역을 마쳤지만 여전히 검토해야 할 것이 많으며, 성사집과 준성사집은 계속해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선교사들은 대부분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지만 열심히 몸으로 뛰고 공부하면서 활동해 나가고 있습니다. 일례로 저와 친한 파리외방전교회의 한 프랑스인 신부는 제빵사 겸 바리스타였습니다. 지금은 캄보디아어 성사집 번역의 총책임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가 만들어낸 결과물들은 매우 훌륭합니다. 그는 자신이 맡은 두 개의 본당과 자신이 책임자로 있는 가톨릭대 학생기숙사를 잘 돌보고 있으며, 늦은 밤까지 공부와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그는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캄보디아 교회의 기반을 닦고 있습니다.캄보디아의 다른 지목구들이나 선교지들도 비슷하겠지만, 제가 알고 있는 한 프놈펜대목구에서 활동하는 선교 사제들의 삶은 끊임없는 노력의 연속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목적인 업무는 당연히 해내야 하고, 아직 교회가 갖추지 못한 것들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찾고, 공부하면서 만들어내는 것이 선교 사제의 삶입니다. 더욱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계속해서 주위를 둘러보며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 필요할 것이 무엇인지 찾고 준비해나가는 것, 선교사는 그런 분야의 전문가가 아닐까 싶습니다.새로운 성가 작곡하고 교회 음악도 가르쳐 저도 다시 시작하는 캄보디아 교회를 위해 저의 작은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새 번역에 따른 캄보디아어 미사곡을 작곡하여 보급하였고, 교황청 전교기구 한국지부와 여러 은인의 도움으로 교회음악 전용 녹음실을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새로운 성가를 작곡하고, 한국어 성가와 영어 성가를 캄보디아어로 번역해서 편곡하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신학교에서 강사 자격으로 교회음악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본당의 일과를 마치고 난 뒤의 개인 시간을 이런 일들로 보내다 보니 피곤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제게 주신 탤런트를 교회를 위해 쓸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일하고 있습니다.올해 하반기부터는 2년 가까이 준비한 유튜브 채널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캄보디아의 비신자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악기 정보 제공 및 교육 방송으로 신앙과 직접 관련된 내용은 다루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제가 입는 사제복과 영상의 배경, 중간중간에 언급하는 단어들을 통해 가톨릭교회를 계속해서 노출해서, 아직 인지도가 낮은 가톨릭교회라는 이름이 젊은이들의 기억 속에 남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한국에 계신 교우 여러분께서 함께 기도해주신다면 다시 새롭게 시작하고 있는 캄보디아 교회의 장래가 더욱더 밝아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더 많은 이웃이 주님을 함께 찬양하고, 주님의 사랑 안에 함께 머무를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고, 여러 나라에서 모인 캄보디아의 선교사들도 함께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윤대호 신부 한국 외방 선교회 캄보디아지부 프놈펜대목구 메콩강지구 cpbc2019.08.13

바이러스 확산… 사회적 거리 유지하되 극복 의지는 모아야[코로나19 특별대담] - 사회적 거리 두기 마음 거리 좁히기 사회적 거리두기 마음거리 좁히기를 주제로 한 특집 대담에서 패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김정환 신부, 박혜진 아나운서, 시사평론가 최영일 대표, 홍성남 신부.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과 미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하면서 코로나19에 따른 공포와 불안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코로나19를 ‘세계적 대유행’(pandemic)으로 선언하며 각 나라가 코로나19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을 요청했다. 우리 정부는 모임과 외출을 자제하는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을 벌이며 바이러스 감염을 막고 확산 속도를 늦추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가톨릭평화방송은 17일 ‘사회적 거리 두기, 마음 거리 좁히기’를 주제로 특집 대담을 마련하고 코로나19가 가져온 일상의 변화와 대응에 관해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박혜진(안젤라) 아나운서의 사회로 서울대교구 홍성남(가톨릭심리상담연구소장)ㆍ김정환(한마음한몸운동본부장) 신부, 공공소통전략연구소 대표 최영일(빈첸시오) 시사평론가가 패널로 참여했다. 특집 대담 내용을 요약 정리해 소개한다. 정리=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사진=백영민 기자 heelne@cpbc.co.k박혜진 아나운서(이하 사회) : 정부가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을 시작한 지 3주 정도 됐다. 코로나19가 가져온 현재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최영일 시사평론가(이하 최 대표) : 바이러스는 사람을 타고 흘러간다. 이를 차단하려면 사람과 사람의 접촉을 일시적으로 끊는 수밖에 없다. 접촉의 밀도, 빈도, 강도에 따라서 바이러스 감염 가능성이 달라진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통해 만남을 최대한 자제하는 게 핵심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은 몸은 떨어져 있지만, 전화, 인터넷, SNS로 소통하며 마음은 가까이 두기를 당부하고 있다. 많은 국민이 잘 따라주고 있고, 확진자 수도 감소하고 있어 캠페인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평가다.김정환 신부(이하 김 신부) : 가톨릭교회는 사회적 거리 두기 이전에 미사를 중단하며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각 교구는 신앙생활 중단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도 바치기, 가톨릭평화방송 미사 시청하기 등으로 명확한 지침을 줬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바티칸에서 인터넷 생중계로 신자들과 만나고 있다. 이번 성주간 전례와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도 모두 신자 없이 지내기로 결정하셨다. 사회 : 코로나19가 가져온 많은 문제 중 하나가 혐오 문제였다. 혐오를 부추기는 일이 굉장히 잦아졌다. 홍성남 신부(이하 홍 신부) : 코로나19는 처음 중국 우한에서 발생했다.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서울 명동 거리에 중국 사람들이 다니는데 나도 모르게 피하게 됐다. 중국말을 들으니 불쾌한 느낌까지 들었다. 내가 그럴 줄은 몰랐다. 병이 혐오를 만든다는 생각이다. 이런 일이 인종에 대한 혐오로 번지면 사회적 문제가 될 것이다.김 신부 : 특정 지역, 특정 국가에 대한 혐오는 편견에서 비롯한다. 우리 안에 내재해 있던 편견과 혐오가 이번 사태로 표출되는 듯하다. 나 역시도 반성하고 있다. 우리가 외국 사람들을 혐오한다면, 역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에 갔을 때 똑같이 당할 수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 서로를 보듬고 함께 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최 대표 : 혐오를 지켜보면서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다. 불안감 때문에 그런 거다. 하지만 혐오는 불안을 더욱 조장할 뿐이다. 처음에 중국 우한에서 교민들이 국내로 온다고 했을 때 격리 시설로 선정된 지역 주민들 반대가 컸다. 그럼에도 교민들을 환영한다는 이들의 움직임이 결국 반대를 눌렀다. 사회 : 코로나19 환자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최 대표 : 확진자들은 사회적 낙인이 찍히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낙인을 방지하는 일이 필요하다. 아픈 게 죄가 아니다. 죄처럼 여겨야 하는 사회적 편견이 작용하고 있다. 홍 신부 : 병에 걸리고 싶어서 걸리는 게 아니다. 확진자들은 죄책감을 가질 이유가 없다. 누구라도 병에 걸릴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확진자를 배척하고 혐오하면 안 된다. 사회 : 우리나라에선 코로나19 사태가 신천지 종교와 연관이 되면서 변곡점을 맞았다. 최 대표 : 신천지 신도들이 거짓말을 한 상황이 밝혀져 온 국민이 분노했다. 대구 서구 보건소 검역팀장은 확진되고 나서야 뒤늦게 신천지 신자임을 고백했다. 그 때문에 같이 있던 의료진 50명이 일선에서 배제됐다. 의료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 타격이 컸다. 그 와중에 의료진도 일부 확진 판정을 받았다. 신천지에선 정보를 제대로 안 줬는데 속 터지는 일이다.홍 신부 : 신천지는 종교가 아니다. 교주의 사적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체다. 교리 자체도 너무 허무맹랑하다. 종교라면 사회 건강을 위해 역할을 해야 한다. 신천지는 범죄 조직 같다는 생각이다.사회 : 그런데도 신천지 신자가 3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특히 청년들이 빠져들고 있다는데 왜 그런 것인가.홍 신부 : 신천지 신자들은 처음에는 자신이 신천지라는 것을 밝히지 않는다고 한다. 청년 한 명을 포섭하기 위해 열 명이 붙어 청년이 원하는 것을 다 해준다. 그런 다음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청년, 감사해 하는 청년들만 추려 본격적으로 교리교육을 한다. 교육을 통해 이만희 교주를 신처럼 보이게 만든다. 코로나19는 약이 개발되면 끝나지만, 이런 정신적 바이러스는 치료약도 없다. 이 사태로 백해무익한 사이비 종교가 드러나 다행이다.김 신부 : 공교육에서 종교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종교를 올바로 바라보고 학습할 수 있는 교육이 공교육 체계 안에 있어야 한다. 이런 것이 없으니 종교가 아닌 집단도 종교처럼 대하게 돼 문제가 된다. 홍 신부 : 종교의 외피를 썼다고 해서 모두 종교라 할 수 없다. 사회에 무익하고 해가 되면 범죄 조직으로 봐야 한다. 종교의 자유를 내세우며 보호하는 것은 사람들을 범죄 조직에 넘기는 또 다른 범죄 행위다. 사회 :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한 나눔과 배려가 늘어나고 있다. 김 신부 :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 내에는 사회적으로 어렵고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을 위해 사목하는 여러 위원회가 있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를 비롯해 여러 위원회에서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돕고 있다. 무료 급식소가 문을 닫아 굶주리는 이웃들에게 도시락 배달을 하고, 대구ㆍ경북지역에 긴급 지원도 했다. 홍 신부 : 이런 활동이 외부로 많이 알려지면 좋겠다. 김 신부 : 가톨릭평화방송과 가톨릭평화신문은 물론 SNS와 유튜브를 통해서도 홍보하고 있다. 성금을 모금했는데 목표 모금액 5000만 원보다 훨씬 많은 성금이 모였다. 미담 사례가 너무 많다. 온라인 성경 이어쓰기로 상금을 받은 서울 중앙동본당 신자들은 상금 200만 원을 그대로 기부해주셨다. 장사가 안돼 어려운 소상공인들도 나눔에 동참하셨다. 홍 신부 : 어느 사회심리학자가 한 나라가 건강한 사회가 되려면 선한 사람들이 늘어나 악한 사람들이 발붙일 자리가 없게 될 때 가능하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 이렇게 선한 사람들이 많으면 정말 건강한 사회가 될 것이다.사회 : 서로 돕는 와중에 가짜 뉴스가 혼란을 주고 있다. 최 대표 : 코로나19는 세계적 대유행, 즉 팬데믹(pandemic)이다. 더 무서운 것은 인포데믹(Info-demic)이다. 정보 바이러스가 실제 생물학적 바이러스 못지 않게 돌아다닌다. 대표적인 사례가 은혜의 강 교회다. 분무기에 소금물을 넣어 예배 온 신자들 입에 뿌렸다. 소금물에 바이러스가 죽는다는 잘못된 정보를 들어서다. 가짜 뉴스는 희한하게 우리가 듣고 싶은 소식만 전한다. 홍 신부 : 가짜 뉴스를 퍼트리는 사람은 사이코에 가깝다. 행복과 쾌감을 건강하지 못한 방법으로 얻는 사람들이다. 또 가짜 뉴스를 믿는 사람은 자아가 약한 사람이다. 자아가 약하면 작은 이야기에도 잘 흔들린다. 자아가 약한 이들은 자기 마음의 힘을 키우는 데 집중하는 게 좋다. 사회 : 코로나19로 미사가 중단됐다. 가정 내에서 신앙생활을 더 깊이 이어갈 방법이 있다면.홍 신부 : 코로나19 사태가 사순 시기랑 맞물렸다. 사순 시기엔 평소보다 절제하며 성찰하는 가운데 기도한다. 코로나19로 미사를 못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오히려 사순 시기다운 사순 시기가 됐다. 여러 신부가 유튜브와 SNS로 미사하는 모습과 강론을 올리며 신자들과 만나고 있다. 김 신부 : 미사가 중단돼 성체를 영하지는 못하지만, 성체성사 정신 자체가 사랑과 나눔 아닌가. 가족들이 이번 기회에 신앙을 돌아보며 작은 나눔을 실천하면 좋겠다. 또 부족한 부분을 보듬고 용서하고 인내하며 생활하면, 그게 결국 성체성사의 정신을 사는 것이다. 이렇게 부활을 간절하게 기다린 사순 시기가 있을까 싶다. 최 대표 : 저는 지난해 11월 세례를 받은 따끈따끈한 신자다. 그동안 한 주도 주일 미사에 빠지지 않았는데 아쉽다. 미사를 중단한 가톨릭교회의 용단을 높이 평가하지만, 신자로서 미사에 못 가는 허전함을 채울 길이 없다. 사회 : 코로나19가 잠잠해질 때까지 사회적 거리 두기는 더 시행될 것이다. 몸은 멀어졌지만, 마음의 거리는 좁히는 노력이 필요하겠다.김 신부 :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삶을 통해 모범을 보여주셨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를 치유해 주셨고 사랑으로 보듬어 주셨다. 분열과 미움, 이기심을 퍼트리는 행위는 가감 없이 질책하셨다. 그분의 삶과 말씀 안에 답이 다 있다. 어려운 시기지만 다시 그분을 바라보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 나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과 나눔을 좀더 실천하는 시간을 보낸다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홍 신부 : 병을 앓고 나면 항체가 생긴다. 역경을 겪고 나면 심리적 항체도 생긴다.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오면 더 잘 견딜 수 있게 된다. 평소 우리는 일본을 부러워하는 면이 있었다. 재난이 닥치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번엔 우리가 그랬다. 일본보다 투명하고 정확하게 일을 해결해 가는 모습에 뿌듯했다.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면 한국에 대한 세계 사람들의 평가가 높이 올라갈 것이다. 최 대표 : 미국과 유럽에선 한국을 본받자는 분위기다. 코로나19에 대처하는 모습이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월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도 시민들의 참여로 잘 유지되고 있다. 요즘 SNS를 보면 ‘역경아 와 봐라, 우리가 이겨줄게’라는 호연지기의 자세가 많이 보인다. 그런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우리 스스로 내적으로 강해지는 듯하다.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김호중 교수 전화 연결 인터뷰 이번 대담 중엔 생활치료센터인 충남 천안 우정공무원 교육원에서 대구지역 경증 확진자를 치료하고 있는 김호중(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를 전화 연결해 이야기를 들었다. 17일 기준으로 이곳에는 환자 200여 명이 격리돼 치료받는 중이었다. 김 교수는 “환자들 대부분 무증상 확진자라 보통 감기에 걸린 이들보다 상태가 좋다”면서 “살던 지역에서 벗어나 지낼 수 있는 점이 생활치료센터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확진자에게 ‘주홍글씨’처럼 낙인을 찍는 상황에 안타까움을 표했다.“요즘 사회 분위기가 확진자를 매장하는 듯해서 마음이 아픕니다. 환자분들은 이곳에 지내면서도 의료진에게 미안해합니다. 코로나19에 걸린 게 잘못은 아닌데 말이죠. 센터로 올 때도 새벽에 구급차를 타고 집에서 몰래 도망치듯 나왔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의료진들은 더 열심히 이분들을 돌보고 있습니다.”김 교수는 “코로나19 특징이 무증상 감염이 가능하기에 경증 확진자를 격리해 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진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생활치료센터는 준의료기관으로 지정돼 있다. 그렇기에 두통, 기침, 두드러기 등과 같은 간단한 증상에 대해선 약 처방과 치료가 가능하다. 김 교수는 “이곳에 와서 헌신하는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 서로를 배려하는 환자분들 모습을 보며 느끼는 것도, 배우는 것도 많다”면서 “힘들지만 뿌듯하게 지내는 중이다”고 말했다. 정리=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사진=백영민 기자 heelne@cpbc.co.kr cpbc2020.03.25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38)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선교 (13,13-52)<상>](//cpbc.co.kr/CMS/newspaper/2019/11/rc/766092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38)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선교 (13,13-52)바오로, 이방인들에게 구원자 예수를 알리다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유적.사도행전 저자는 이제부터 ‘사울’의 선교 활동을 ‘바오로’라는 이름으로 전합니다. 파포스에서 총독을 믿음으로 인도한 바오로는 소아시아 지역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로 들어가 그곳 회당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이 이야기를 두 번으로 나눠 살펴봅니다. 바오로의 설교(13,13-41) 바오로 일행 곧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파포스에서 배를 타고 팜필리아의 페르게로 갑니다. 그들이 조수로 데려갔던 요한은 그곳에서 일행과 헤어져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바오로 일행은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습니다.(13,13-14) 페르게는 터키의 남서쪽 지중해변 항구도시입니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아르테미스 여신을 숭배하는 도시로 유명했다고 하지요. 바오로 일행은 이곳에서 요한 마르코와 헤어져 곧장 북쪽으로 올라가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 이릅니다. 페르게에서 150㎞ 이상 떨어진 이 내륙 도시에는 셀레우코스 왕조(기원전 305~기원전 63) 때부터 많은 유다인이 살면서 큰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유다인 회당도 있었겠지요.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를 목적지로 삼은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다인 회당에서 먼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지요. 회당에서 안식일 전례가 시작됐습니다. 율법과 예언서 봉독이 끝나자 회당장들이 바오로 일행에게 격려할 말씀이 있으면 해 달라고 청하고 바오로가 일어나 조용히 하라고 손짓한 다음에 “이스라엘인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하고 말하기 시작합니다.(13,15-16) ‘회당장’이 아니라 ‘회당장들’이라고 복수로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 이 회당이 상당히 컸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 회당장들이 바오로 일행을 지목해 격려 말씀을 청한 것은 바오로 일행이 외지에서 온 낯선 사람들이지만 믿음 깊은 이들임을 알아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회당에는 유다인들과 유다교로 개종한 이방인 뿐 아니라 개종하지는 않았지만 카이사리아의 백인대장 코르넬리우스처럼(10,2 참조) 유다교를 존중하고 유다교의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도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기서 1세기에 유다인 회당에서 이뤄지던 안식일 전례를 잠시 살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먼저 “셔마 이스라엘” 곧 “이스라엘아, 들어라!”로 시작하는 성경 구절(신명 6,4-9; 신명 11,13-21; 민수 15,37-41)을 봉독한 다음 기도를 바칩니다. 그러고는 율법 곧 모세 오경의 한 단락과 예언서의 한 단락을 봉독합니다. 이어 회당장은 합당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에게 말씀, 곧 설교를 부탁합니다. 그런 다음에 축복(민수 6,24-26)으로 마무리한다지요. 이제 바오로의 설교 내용을 살펴봅시다. 설교는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부분에서는 이스라엘 역사를 설명하면서 다윗의 후손인 예수님이 하느님께서 약속한 구세주로서 세상에 오셨다고 설파합니다.(13,17-26) 둘째 부분에서 바오로는 예루살렘 주민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단죄하고 죽였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다시 살리심으로써 다윗과 그 후손에게 약속하신 예언을 실현하셨다고 선포합니다.(13,27-37) 셋째 부분은 회당에 모인 청중을 향한 호소 또는 경고입니다.(13,38-41) 이 셋째 부분은 다시 셋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죄의 용서가 선포된다는 것, 모세의 율법으로는 죄에서 벗어나 의롭게 될 수 없지만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 안에서 모든 죄를 벗어나 의롭게 된다는 것, 그리고 하바쿡 예언서를 인용한(하바 1,5) 경고입니다. 바오로의 설교는 첫 순교자 스테파노가 예루살렘 최고의회에서 설교한 내용(7,1-53)과 비슷하지만,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를 설명하는 부분은 스테파노의 설교에 비해 훨씬 짧습니다. 대신 예수님이 누구이시고 그분이 어떻게 해서 죽임을 당하고 다시 살아나시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는지에 대한 부분은 훨씬 깁니다. 두 사람의 설교가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요? 스테파노가 설교를 하는 대상인 예루살렘 최고의회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은 예수님의 죽음에 직접 연루된 당사자들입니다. 그래서 스테파노는 그들이 저지른 죗값을 묻기 위해 이스라엘 역사를 길게 설명하면서 오시리라고 예고된 그분, 의로우신 예수님을 배신하고 죽였다고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반면에 바오로는 조상들의 역사보다는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리는 데에 더욱 큰 관심이 있었습니다.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 사는 유다인들은 나자렛 예수님에 관한 소문은 들었을지 모르지만,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를 고려해서 바오로는 유다인들이 잘 아는 구약의 긴 역사는 대폭 줄이고 상당 부분을 예수님에 관해 할애했다고 하겠습니다. 또 한 가지 큰 차이는 율법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지만 믿음으로는 의롭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이는 바오로 사도가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볼 수 있듯이(로마 3,21-31; 10,4.10-11 등) 바오로 특유의 신학적 사상이 담긴 표현이라고 학자들은 봅니다. 바오로는 “예언서들에서 말하는 것이 여러분에 미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라고 경고하는 “보아라, 너희 비웃는 자들아! 놀라다 망해 버려라. 내가 너희 시대에 한 가지 일을 하리라.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어도 너희가 도무지 믿지 못할 그런 일이다”라는 하바쿡 예언서의 말씀(하바 1,5)을 인용하는 것으로 설교를 마칩니다.(13,40-41) 바오로의 설교에 청중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다음 호에서 계속 살펴봅니다. 생각해봅시다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회당에서 바오로가 한 설교에는 눈여겨볼 대목이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으로는 여러분이 죄를 벗어나 의롭게 될 수 없었지만, 믿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 안에서 모든 죄를 벗어나 의롭게 됩니다”(13,38ㄷ-39)라는 부분입니다. 유다인들은 율법을 충실히 지키면 구원을 받는다고 여겼지만, 바오로 사도는 이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나선 것입니다. 여기에는 바오로 사도 자신의 체험이 깊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는 누구보다 충실히 율법을 지켰던 열렬한 바리사이파 젊은이였습니다. 하지만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과 깊은 회심을 한 후 그는 바뀌었습니다. 율법을 지킴으로써가 아니라 주님을 믿음으로써 의롭게 된다는 것을, 곧 구원받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뿐이었을까요?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는 유다인이 많이 살았지만, 이방인 도시였습니다. 바오로의 설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회당에는 하느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유다인들처럼 엄격하게 율법을 지키지는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유다인들이 고백하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선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철저한 율법 준수를 통한 구원보다는 하느님께서 죽음에서 다시 일으키신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회당에서 바오로가 한 설교는 이방인을 향한 복음 선포의 새로운 방법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alfonso84@hanmail.net cpbc2019.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