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년간 봉사자 양성, 말씀 사목의 탄탄한 기둥수원 성경교육봉사자회 25돌
봉사자 사명 새롭게 되새겨 수원교구 성경봉사자회 설립 25주년 기념미사에서 이용훈 주교가 “자! 일어나~” 하고 외치자 봉사자들이 손을 들어 “가자!”하고 답하고 있다. 수원교구 성경교육봉사자회는 올해 설립 25주년을 맞아 13일 수원교구청에서 교구장 이용훈 주교 주례로 기념 미사를 봉헌하고, 그간 말씀의 여정 안에 살도록 이끌어 주신 주님께 감사했다.이날 봉사자회는 성경 교육 봉사자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미사에 앞서 문희종(수원교구 교구장대리) 주교의 강의를 들으며 봉사자 사명을 되새기고, 총회를 열어 내년 활동 계획을 수립했다. 미사 중에는 25년 발자취를 돌아보는 축하 영상을 감상한 뒤 25년 전 당시 사목국장으로서 봉사자회 설립을 함께 기획한 최덕기(전 수원교구장) 주교와 오랫동안 봉사해 온 이들에게 각각 감사패와 공로패를 증정했다.수원교구 성경교육봉사자회는 1992년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로마 10,15)를 중심 사명으로 내걸고 교구민 성경 교육을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교구민을 말씀 안에 살도록 이끌고자 교구 사목국 성서부 산하에 설립된 봉사자회는 교구 차원에서 처음으로 평신도를 위한 성경 교육을 시작했다.교구는 봉사자들이 영성과 말씀으로 새롭게 거듭나도록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수녀들이 교육을 지도하도록 했으며, 수녀들은 지금까지 성경 교육 봉사자들에게 ‘사명감’, ‘겸손’, ‘인내’의 소양을 꾸준히 교육해 오고 있다. 3년 과정의 교육을 통해 양성된 봉사자는 현재 200여 명. 이들은 교구 내 210여 개 본당에서 230개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성경 교육 봉사자들은 교구가 말씀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가 되는 데 가장 큰 일꾼이 돼 왔다. 봉사자들은 연중 각 대리구별 본당에서 일반 과정 「여정」과 어르신을 위한 「은빛 여정」을 교육하고 있으며, 학기마다 피정과 연수를 진행한다. 1993년 제1차 성서경시대회부터 시작해 교구민 수천 명이 한자리에 모여 경시, 암송 대회, 필사 전시 등을 펼치는 성경잔치가 올해 23회째를 맞을 수 있었던 것도 성경 교육 봉사자들의 헌신적 활동 덕분이다. 특히 교구와 봉사자들의 노력으로 2013년 개설한 사이버성경학교는 전국 신자들이 온라인을 통해 어디서나 성경 강좌를 수강하도록 도왔다.이용훈 주교는 이날 미사에서 “여러분은 교구가 하는 말씀 사목의 큰 기둥이자 굳건한 힘이 되는 훌륭한 자산이고 보물”이라며 “하느님 진리인 성경 말씀을 전하는 참 생명의 마중물이 돼 달라”고 당부했다. 글·사진=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평화신문2017.12.19
부득이하게 주일 미사 참여 못 했다면…](//cpbc.co.kr/CMS/newspaper/2018/10/rc/736824_1.0_titleImage_1.jpg)
[성사풀이](18)부득이하게 주일 미사 참여 못 했다면… 주일에 미사나 공소 예식에도 참여할 수 없는 부득이한 경우에는 묵주 기도, 성경 봉독, 선행 등으로 그 의무를 대신할 수 있다. 성경 봉독은 그 주일 미사의 독서와 복음 봉독을 의미한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주일 미사에 참여하지 못할 때, 그 대신 다른 기도문으로 바치면 고해성사를 받지 않아도 되나요주일에 미사나 공소 예식에도 참여할 수 없는 부득이한 경우에는 묵주 기도, 성경 봉독, 선행 등으로 그 의무를 대신할 수 있으므로(「사목 지침서」 74조 4항) 고해성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여기서 ‘부득이한 경우’란 직업상 또는 신체적 환경적 이유로 주일 미사에 일시적이건 지속적이건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예를 들면, 아파서 도저히 미사에 참여할 수 없는 경우, 병원에 입원해 미사에 참여할 수 없는 경우, 여행지와 가까운 곳에 성당이 없는 경우, 위독한 환자를 돌보느라 미사에 참여할 수 없는 경우, 직업상 주일에도 일해야 하는 경우로 아주 예외적인 상황입니다.주일 미사 참여 의무를 대신하는 ‘묵주기도’는 다섯 단을 바칩니다. ‘성경 봉독’은 그 주일 미사의 독서와 복음 봉독을 의미합니다. ‘선행’은 희생과 봉사 활동 등을 말합니다. 이 같은 방법으로 주일 미사 참여 의무를 대신할 경우 고해성사를 받지 않아도 됩니다.(「주일 미사와 고해성사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 공동 사목 방안」 참조) 흔히 주일 미사 대신 주님의 기도를 33번 바치기도 하는데, 이것은 과거의 규정입니다.부활 또는 성탄 시기 때 판공성사를 못 보았습니다. 다른 때에 고해성사를 받아야 하나요부활 또는 성탄 시기 때 판공성사를 받지 못한 신자가 1년 중 어느 때라도 고해성사를 받았다면 판공성사를 받은 것으로 인정한다.(「주일 미사와 고해성사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 공동 사목 방안」 참조)과거 한국 교회의 사제들은 신앙 성장에 도움을 주고자 신자들 간에 사순과 대림 시기의 고해성사 전에 일종의 시험을 치르게 했습니다. 주로 교리에 관한 질문인데, 이를 찰고(察考)라고 합니다. 찰고를 통과한 신자들은 성사표를 받아 고해성사를 볼 수 있었지만, 통과하지 못한 신자들은 다음 찰고 때 통과해야만 고해성사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주님 부활 대축일과 주님 성탄 대축일을 앞두고 일년에 두 번 고해성사를 받는 관습이 생겼습니다. 이때 받는 성사를, 신앙 성장을 위해 얼마나 공로를 쌓았는지 판단한 다음에 받는 성사라고 하여 ‘판공성사’(判功聖事)라고 불렀습니다. 판공성사는 한국 교회에만 있는 특별한 제도로서, 교회는 이렇게 판공성사 제도를 통해 신자 개개인의 성사생활을 파악하고 독려하고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 공동사목 방안에 따르면, 부활시기에 판공성사를 받지 못한 신자가 성탄 판공이나 1년 중 어느 때라도 고해성사를 하면 판공성사를 받은 것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고해성사는 얼마나 자주 보아야 하나요교회는 고해성사의 빈도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지만, 신자들이 정기적으로 고해성사를 통해 사소한 죄도 고백하고 용서받아 그리스도와 더욱 일치되기를 장려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458항)대죄를 지은 경우에는 영성체하기 전에 반드시 고해성사를 보아야 하며, 대죄를 짓지 않았더라도 가톨릭 신자라면 적어도 1년에 한 번, 특히 주님 부활 대축일을 앞두고 고해성사를 하도록 교회는 권고합니다.(「사목지침서」 90조)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경고합니다. “부당하게 주님의 빵을 먹거나 그분의 잔을 마시는 자는 주님의 몸과 피에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니 각 사람은 자신을 돌이켜보고 나서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셔야 합니다. 주님의 몸을 분별없이 먹고 마시는 자는 자신에 대한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1코린 11,27-29) 대죄를 짓고도 고해성사를 받지 않고 성체를 모시는 것은 성체를 모독하는 ‘모령성체’에 해당합니다. 죄에 대한 고백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자유롭게 합니다. 그러기에 대죄뿐만 아니라 소죄까지 고백함으로써 우리는 올바른 양심을 기르고, 나쁜 성향과 싸우며, 그리스도를 통해 치유받고, 성령의 도움 안에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정기적 고해성사로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의 은총을 자주 받게 되면,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를 더욱 닮아 가게 될 것입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455, 1458항 참조) 정리=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평화신문2018.10.23

성모님 하늘로 불려 올라가셨네, 우리의 천상 행복도 알려주시네성모 승천 대축일(8월 15일) 기원과 의미 살펴보기 심순화 화가의 작품 ‘성모 승천’. 성모님께서 한복을 입고 승천하는 모습을 그렸다. 가톨릭평화신문 DB 8월 15일은 우리 민족이 해방을 맞이한 ‘광복절’이자 성모 마리아께서 하늘로 불려 올라가심을 기념하는 ‘성모 승천 대축일’이다. 교회는 성모 승천 대축일을 의무 축일로 규정해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는 여러 축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날로 보내고 있다. 이는 성모 마리아의 승천이 신앙인들에게 부활에 대한 신앙을 더욱 확고하게 심어주는 표지이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8월 15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성모 승천 대축일 삼종기도에서 “성모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것은 우리 삶의 종착지가 하느님 집임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만큼 성모 승천 대축일이 신앙인들에게 주는 의미는 크다. 성모 승천 대축일을 맞아 이 축일의 기원과 의미를 정리했다. 성모 승천 대축일의 기원가톨릭교회는 성모 마리아의 신원을 △원죄 없이 잉태되신 분 △성령으로 인하여 구세주를 낳고 기른 ‘하느님의 어머니’ △평생 동정녀이신 분 △생을 마친 다음 영혼 육신이 하느님의 불림을 받아 승천하신 분 △예수 그리스도의 중재에 참여하고 하느님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인류의 중재자’로 고백한다. 성모 승천 대축일의 기원은 정확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4세기 무렵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성모 마리아의 승천을 기념하는 축일이 시작됐다는 이야기만 전해진다. 현재와 같이 8월 15일이 대축일 날짜로 정해진 것은 5세기 초 무렵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 예루살렘에서는 8월 15일을 ‘하느님의 어머니의 날’로 제정해 기념했다. 이날에 맞춰 성모 승천 대축일 날짜가 정해졌다는 설이 유력하다.성모 마리아가 죽지 않고 ‘승천’했다는 믿음은 사도 시대 때부터 교회 안에서 전승됐다. 물론 성경 어디에도 성모 승천에 대한 내용을 찾을 수 없다. 초세기 사도들의 전승을 모아 전하고 있는 2세기쯤의 외경에서는 ‘동정녀의 승천’ 또는 ‘마리아의 잠드심’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를 맡겼던(요한 19,26-27) 가장 사랑하던 제자인 요한 사도에게 직접 들은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마리아는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계시를 통해 아셨는데, 모든 사도가 기적적으로 그녀의 주위로 모여왔고, 예수님도 그녀의 임종을 돕기 위해 발현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의 육신을 묻으라고 제자들에게 명령하고 영혼을 거두어 가셨다. 제자들이 성모님을 매장하려고 할 때 예수님은 다시 발현하셨고, 사도들이 그녀를 부활시켜 달라고 청하였다. 그러자 한 천사가 무덤을 열었고, 마리아는 무덤에서 나와 하늘로 승천하였다.”(「성모님의 영면」 중에서)이처럼 초대 교회 시대부터 신자들에게 성모 마리아가 죽지 않고 승천했다는 믿음이 생기게 된 배경에는 성모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특권이 있으며 거룩함과 충만한 은총을 지니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성모 승천 의미성모 승천에 대한 믿음은 20세기에 들어서야 교회의 믿을 교리로 선포됐다. 비오 12세 교황은 1950년 회칙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을 통해 “원죄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이셨던 하느님의 모친 마리아는 현세 생활을 마치신 후 육신과 영혼이 함께 하늘로 올라가 영광을 입었다”고 성모 승천 교리를 선포했다.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원죄의 온갖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시어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는 지상 생활의 여정을 마치시고 육신과 영혼이 하늘의 영광으로 올림을 받으시고, 주님께 천지의 모후로 들어 높여지시어, 군주들의 주님이시며(묵시 19,16 참조)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자이신 당신 아드님과 더욱 완전히 동화되셨다”(「교회헌장」 59항)고 밝히고 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과 성모 마리아의 승천은 엄밀하게 구분해야 한다. 우리말로는 둘 다 ‘승천’으로 표현하지만, 라틴어로 살펴보면 그 차이가 분명히 드러난다. 라틴어에서 그리스도의 승천을 표현할 때 ‘상승, 오름, 올라감’을 뜻하는 ‘Ascensio’를 사용한다. 반면 성모 마리아의 승천은 ‘올림을 받음’이란 뜻을 지닌 ‘Assumptio’을 사용한다. 즉 그리스도의 승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후 육신과 영혼을 지닌 채 스스로 하늘로 오르셨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성모 승천은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늘로 들어 올려졌다는 의미를 지닌다.교리상으로 ‘성모 승천’은 ‘우리도 성모님처럼 살면 하느님 나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중요한 표지이다. 또한 ‘성모 승천’을 통해 신앙인들은 천상에서 하느님과 일치하며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할 수 있다. 장현민 기자 memo@cpbc.co.kr cpbc2019.08.07
![[성당에 처음입니다만] (19) 포도주에 물을 왜 섞나요](//cpbc.co.kr/CMS/newspaper/2019/07/rc/757418_1.0_titleImage_1.jpg)
[성당에 처음입니다만] (19) 포도주에 물을 왜 섞나요포도주와 물처럼 일치되는 신성과 인성 포도주에 물을 섞는 것은 성작 안의 포도주와 물은 분리될 수 없듯이 인간도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갈 수 없다는 뜻을 지닌다. 나처음 : 신자들이 미사 중에 제물을 바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요. 대다수 종교에서는 성직자나 제사장이 모든 예식을 주례하는데 가톨릭은 일반 신자들도 그 예식에 능동적으로 동참하고 있어 그 모습이 참 좋은 것 같아요. 그런데 신자들이 신부님께 바치는 황금색 그릇과 병에 담긴 제물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조언해 : 신부님, 저도 미사 때마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봉헌 예물로 받은 포도주와 물을 왜 섞는지 그 뜻을 모르겠어요. 알려주세요.라파엘 신부 : 먼저, 처음이가 궁금해하는 것부터 알려줄게. 황금색 그릇과 병에 담긴 제물은 ‘빵과 포도주’란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 음식으로 빵과 포도주를 드셨기 때문에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빵과 포도주를 사용한단다. 미사 중 빵과 포도주를 바치는 예식을 ‘봉헌’이라고 해.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 때 “많은 사람을 위하여” 그리고 “계약의 피”로서 당신의 생명을 바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기에 봉헌이라고 표현한단다.그리고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1코린 11,26)라는 바오로 사도 말씀처럼 신자들은 미사 중 영성체를 통해 주님의 봉헌에 동참하는 것이란다. 이처럼 ‘빵과 포도주’는 예수님을 표상하는 것이지. 그래서 미사의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시지. 신자 대표가 단순히 빵과 포도주를 제물로 바치는 게 아니라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제물로 바치는 거란다. 이 얼마나 거룩한 봉헌이니. 가톨릭교회에서는 성찬례 제물로 쓰는 빵으로 누룩이나 다른 물질이 들어 있지 않은 순수하게 밀로 만든 신선한 빵을 사용해.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 때에 누룩이 없는 순수 밀로 만든 빵을 사용하셨기 때문이야. 포도주 역시 다른 물질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포도로 만든 천연 포도주를 사용해야 해. 백포도주이든 적포도주든 상관없고 순수 ‘포도로 빚은 것’(루카 22,18)이면 문제없어. 성찬례 제물로 쓰일 빵과 포도주는 항상 온전한 상태로 보존되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해. 포도주가 시어지지 않도록 하고, 빵은 상하거나 쪼개기 어려울 정도로 굳어지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써야 해. 이제 언해가 궁금해 한 걸 풀이해 줄 차례구나. 사제는 성작에 포도주를 따른 다음 물 몇 방울을 섞는단다. 이렇게 하는 것은 유다인의 관습에서 비롯된 거야. 유다인들은 술에 취하지 않기 위해 물을 섞어 포도주의 농도를 희석해 즐겨 마셨단다. 따라서 유다인이신 예수님께서도 마지막 만찬 때 그렇게 마셨겠지. 이러한 유다인 풍습이 교회 전례 안에 그대로 들어온 것이지. 하지만 중세에 들어오면서 포도주에 물을 섞는 것에 여러 의미를 덧붙여 설명하기 시작했지. 먼저,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요한 19,34)는 성경 말씀을 인용해 포도주와 물을 섞는 것은 ‘교회와 성사’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단다. 또, 포도주와 물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것을 섞는 것은 ‘하느님의 본성’(2베드 1,4)에 인간이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지. 마지막으로 성작 안의 포도주와 물이 분리될 수 없듯이 인간도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갈 수 없다는 뜻도 있단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포도주에 물을 섞는 것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일치, 그리고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단다. 이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누는 영성체의 의미와 똑같단다. 하나의 성체 안에 모두 하나가 되는 일치를 드러내고 하나의 성체를 나누어 먹는 형제들의 사랑이 표현되는 것이지.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19.07.09
![[성당에 처음입니다만] (21) 왜 십자가는 여러 형태인가요](//cpbc.co.kr/CMS/newspaper/2019/07/rc/758531_1.0_titleImage_1.jpg)
[성당에 처음입니다만] (21) 왜 십자가는 여러 형태인가요그리스도 사랑과 구원의 표징, 십자가 비잔틴 십자가. 라틴 십자가 위에 예수님의 죄명패가 부착돼 있다. 나처음 : 유럽의 여러 성당을 둘러보면서 특이한 걸 발견했어요. 성당마다 장식된 십자가의 형태가 다른 거예요. 예수님께서는 단 한 번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는데 왜 십자가는 여러 형태인가요. 조언해 : 그건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등 시기마다 표현하는 화풍이 달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신부님?라파엘 신부 : 처음이가 유럽 여행을 하면서 성당을 아주 꼼꼼하게 살펴보고 왔구나. 성당의 중심이 어딘지 궁금해하고 또 십자가 모양이 다른 걸 찾아내는 걸 보니 교회를 바라보는 눈과 생각하는 마음이 점차 넓어지고 깊어졌구나. 먼저, 십자가의 의미를 풀이하는 게 이해하기 쉬울 것 같구나. 십자가는 그리스도로 인해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단다. 십자가는 원래 잔혹한 사형 도구였단다. 기원전 6세기부터 서기 4세기까지 페르시아와 카르타고, 로마 제국에서 정치범과 사형수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했지. 예수님도 티베리오 황제가 로마 제국을 통치할 때 예루살렘 총독 본시오 빌라도에 의해 ‘유다인의 왕’이라는 죄목으로 십자가형으로 처형되셨단다. 복음서와 로마 역사가 타치투스 「연대기」 등을 기초로 예수님께서 서기 30년 4월 7일에 처형되셨다고 해.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로 ‘치욕’의 십자가는 ‘구원’의 상징이 되었단다. 성경은 그래서 십자가가 예수님을 통해 거룩하신 하느님과 죄에 빠져 허덕이는 인류 사이를 화해시키는 도구(에페 2,16; 콜로 1,20)라고 증언해. 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간은 구원되어 새 창조물, 새로운 사람이 되어 하늘나라에서 그리스도의 한 형제로 하느님의 유산을 차지하게 됐다(갈라 6,15-16)고 설명하지. 아울러 십자가를 지는 것은 주님의 참 제자가 되며(루카 14,27),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마르 8,34)이 된다고 가르치고 있단다. 이처럼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표징, 그리스도교의 표지가 되었단다.이제 왜 여러 형태의 십자가가 교회 안에 존재하는지 설명할게. 먼저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에 대해 알아보자꾸나. 당시 로마인들은 십자가를 두 가지 형태로 사용했단다. 사형장에 항상 세워져 있는 세로나무 위에 가로나무를 얹으면 ‘T’자 모양의 십자가가 되고, 세로나무 꼭대기 아랫부분에 가로나무를 붙들거나 못 박아 매달면 ‘†’형 십자가가 되는 것이지. 예수님께서 어떤 형태의 십자가에 못 박혔는지는 알 수 없단다. ‘T’자형 십자가는 헬라어 알파벳 ‘타우’(대문자 Τ, 소문자 τ)를 닮아 ‘타우 십자가’라고 불러.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이 십자가를 특별히 사랑해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이나 제3회 회원들이 타우 십자가를 많이 착용하고 다닌단다. ‘†’형 십자가는 서방 교회에서 많이 사용해 ‘라틴 십자가’라고 하고, 가로세로 길이가 같은 ‘+’ 형은 ‘그리스 십자가’ ‘비잔틴 십자가’ ‘정교회 십자가’라고 해. 라틴 십자가에 작은 가로나무가 윗부분에 붙여져 있는 것은 ‘유다인의 왕 나자렛 예수’라는 예수님의 죄명패가 붙어 있는 십자가이고, 이 십자가 아랫부분에 비스듬히 작은 발판을 덧붙여놓은 것은 ‘러시아 정교회 십자가’ 란다.초대 교회 신자들은 십자가 문양을 내놓고 사용하지 못했단다. 이 시기 사람들은 “어떻게 십자가형을 받고 처형된 자를 신으로 섬길 수 있느냐”라며 그리스도인들을 모욕하는 일이 흔했단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주님의 수난과 부활을 표현할 때 물고기나 어린양, 착한 목자 그림으로 대신했지. 십자가가 그리스도교의 상징으로 세상에 처음 공개된 것은 서기 312년 로마 테베레 강 밀비오 다리 전투 때였어. 콘스탄티누스 군대가 군기와 방패에 헬라어 ‘Χριστοs’(크리스토스)의 앞 두 글자를 붙인 형태의 십자가를 그리고 전쟁에 나가 막센티우스 군대를 물리치고 승리했지. 이후 이 십자가는 로마군의 표식이 되었단다. 이것이 그 유명한 ‘키로 십자가’란다. 참 ‘X’형 십자가도 있어. 안드레아 사도가 X자 모양의 십자가에서 순교하셨기에 ‘안드레아 십자가’라고 불러. 이처럼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어떤 형태로 십자가에서 수난하셨는지를 자세히 표현하거나 사도들과 교회 단체의 표식을 알리는 방법에 따라 그 형태가 다르게 발전해 왔단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19.07.23
![[신앙단상] 배우자를 위한 기도(오수진, 아가타, KBS 기상캐스터)](//cpbc.co.kr/CMS/newspaper/2019/04/rc/750913_1.0_titleImage_1.jpg)
[신앙단상] 배우자를 위한 기도(오수진, 아가타, KBS 기상캐스터) “하느님, 그리하여 두 사람 모두 노력하며 하느님께서 주신 삶에 충실히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배우자를 위한 기도문 일부입니다. 제가 한동안 하루를 마치며 묵주기도와 함께 올렸던 기도이기도 합니다.맞는 인연을 만나기가 참 어렵다고 느꼈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방송인 오수진에 대한 관심이 부담스러워 사람을 만남에 있어서 스스로 벽을 만들게 되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맞는 짝을 찾는 과정이 억지스럽다고 느껴졌을 때, 배우자의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이 아름다운 기도문은 어느 곳엔가 있을, 하느님께서 정해주신 그 사람을 지켜달라는 기도이며 나 역시도 그 상대에게 걸맞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내 삶에 충실하고 또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기도였습니다.어떤 특정한 조건의 사람, 짝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도해주실 그 상대방을 위해 내가 먼저 노력하고 준비한다는 이 기도문이 제게는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안달하지 않고 하느님이 인도해주실 것이라 기도하며 지내던 어느 날, 지금 제 배우자가 된 베드로를 만났습니다.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덕에 순탄히 시간이 지나고 결혼을 약속했는데, 혼인성사를 2주 앞두고 제가 아파서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다투게 되었습니다. 한 달 가까이 의식 없이 입원해 있는 동안 결혼 날짜도 지나가 버렸습니다.“자네, 떠나도 되네.” 당시 제 아버지께서 남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저라도 의식이 있었다면 그렇게 말했을지 모릅니다. 그런 아버지에게 베드로는 “제가 구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했습니다. 나중에야 전해 들었던 이 대화는 아직도 마음이 아프고, 한편으로 감동적입니다. 제 배우자 베드로는 하느님이 구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확고했다고 합니다. 또한, 그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대로, 간절하게 바라고 기도하면 들어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했습니다.(마르 11,24 참조) 하느님이 어디까지 역사하셨는지, 저는 그 큰 뜻을 결코 알 수 없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의 믿음이 우리의 관계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점입니다. 고난과 어려움을 신앙의 관점에서 한 번 더 생각하고, 함께 하느님 안에서 극복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인생의 힘든 시간 동안, 신앙이 삶을 이해하는 공통의 바탕이 되며, 갈등을 풀어낼 수 있는 서로의 바탕이 되어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여러분의 성가정에도 평화를 빕니다! cpbc2019.04.17
![[이창훈 위원의 사도행전 이야기] (7) 첫 신자 공동체의 생활(2,42-47)](//cpbc.co.kr/CMS/newspaper/2019/02/rc/747112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위원의 사도행전 이야기] (7) 첫 신자 공동체의 생활(2,42-47)첫 신자 공동체, 사귐과 나눔으로 하느님 섬기다 사도행전에서 전하는 첫 신자 공동체의 생활은 오늘날 소공동체 운동에서 추구하는 소공동체의 모델이다. 사진은 지난 2015년 대전교구 정하상교육회관에서 열린 본당 소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사목 연수의 한 모습. 가톨릭평화신문 DB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에 감화되어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3000명가량 되는 신자들은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120명가량 되는 첫 제자들과 함께 첫 신자 공동체를 이룹니다. 루카는 이제 이 공동체의 생활을 요약해서 전합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2,42) 루카는 여기에서 첫 신자 공동체의 생활이 네 가지 일로 이루어짐을 이야기합니다. 첫째,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는 일입니다. 사도들은 신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쳤을까요? 베드로가 첫 오순절 설교에서 설파한 것을 좀더 자세히 설명하는 내용일 것입니다. 곧 그들이 증인으로서 보고 듣고 깨달아 배운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을 전하고 성경 곧 구약성경을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에 비춰서 새롭게 풀어 설명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에 관한 내용이 구약성경에서 예언한 대로 실현됐음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 가르침을 그리스어로 ‘디다케’(διδαχη)라고 하는데, 교리교육 혹은 신앙교육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둘째, 친교를 이루는 일입니다. 그리스어로 ‘코이노니아’(κοινωνια)라고 하는 친교는 원래 그리스-로마 문화권에서 우정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코이노니아는 단순히 우정의 친교는 아닌 것 같습니다. 사도들에게서 가르침을 받는 신자들 사이의 친교이고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가운데 이뤄지는 친교라고 보는 것이 더욱 적절한 듯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형제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신앙과 사랑의 친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친교는 빵을 떼어 나누는 데서 구체적으로 표현됩니다. 셋째, 빵을 떼어 나누는 일입니다. ‘빵을 떼어 나눈다’는 표현은 복음서에서는 딱 세 군데에 나옵니다.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마태 14,19; 마르 6,41; 루카 9,16; 요한 6,11. 요한복음에는 ‘떼다’라는 표현은 나오지 않습니다), 최후 만찬(마태 26,26; 마르 14,22; 루카 22,19), 그리고 루카복음에만 나오는 엠마오 이야기(루카 24,28)입니다. 이 구절들은 모두 성찬례와 직간접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행전의 이 대목에서 ‘빵을 떼어 나눈다’는 표현은 성찬례를 가리킨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학자가 이를 성찬례와 결부시킵니다. 다른 한편으로 빵을 떼어 나누는 일은 친교의 구체적인 표현이기도 하지요. 넷째, 기도하는 일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도인지는 이 구절 자체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신자들의 공동체 생활을 부연 설명하는 그다음 구절(2,47ㄱ)을 통해 이때의 기도가 찬미의 기도임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루카는 계속해서 이 네 가지를 조금 반복하면서 좀더 구체적으로 소개합니다. 먼저 “사도들을 통하여 많은 이적과 표징이 일어나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두려움에 사로잡혔다”(2,43)라고 기록합니다. 루카는 베드로 사도의 오순절 설교에서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여러 기적과 ‘이적과 표징’으로 여러분에게 확인해 주신 분”(2,22)이라고 표현했는데, 그 이적들과 표징들이 사도들을 통해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히지요. 여기서 두려움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사도들을 통해 하시는 놀라운 일들에 대한 경외심입니다. 이어 친교를 이루고 빵을 떼어 나누며 기도하는 생활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리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주곤 하였다.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2,44-47ㄱ) 신자들은 말하자면 공동생활과 공동 소유를 통해 친교를 이룬 것입니다. 하지만 이 공동생활과 공동 소유는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이었으며, 집단적이라기보다는 느슨한 형태의 공동생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신자들이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나누었다는 사실에서, 그리고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하나니아스와 사피라 이야기(5,1-11)에서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자들이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였다’는 표현은 첫 신자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이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왜 성전에 모였을까요? 기도하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3,1; 5,21 참조) 그러나 신자들은 성전에만 모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집 저 집에서 모였습니다. 집 모임에서 신자들은 △빵을 떼어 나누고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했습니다. 빵을 떼어 나눈다는 것은 성찬례를 거행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성찬례가 친교의 잔치를 겸했음을 알게 해줍니다. 주목할 것은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 때에 거행하라고 분부하신 성찬례가 첫 신자 공동체에서는 성전에서가 아니라 집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예루살렘의 첫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성전에서도 모였지만, 가정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확산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전이 기도하는 곳이자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는 자리라고 한다면, 집은 성찬례와 친교의 음식 나눔이 이루어지고 찬미의 기도가 울려 퍼지는 자리였습니다. 루카는 첫 신자 공동체의 이런 생활이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2,47)고 전합니다.생각해봅시다“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는 마지막 문장은 첫 신자 공동체의 성장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성장하도록 해주시는 주체는 ‘주님’이십니다. 이 말은 교회의 성장은 우리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뜻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주님께만 맡기고 손을 놓고 있어야 하는지요? 아닙니다. 이 문장 바로 앞에 “온 백성에게 호감을 얻었다”는 표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이 온 백성에게 호감을 주었을까요? 첫 신자들의 생활입니다. 가르침을 받고 가진 것을 팔아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고 빵을 떼어 나누고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는 삶이, 한마디로 나눔과 사귐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삶이 백성에게 호감을 주었고 그것을 본 사람들이 신자들의 무리에 합세한 것입니다. 사도들 또한 자기들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선포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겠지요.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참으로 성장하려면 인간의 말재주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선포해야 하며, 나눔과 사귐과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일은 멀리에서가 아니라 가까이에서, 가정에서, 이웃에서, 직장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려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평화신문2019.02.27

교회 원천과 지향 담긴 ‘마태오 복음서’ 해설이기우 신부, 복음서 해설서 펴내, 마르코 복음서 이어 두 번째 출간 교회는 누구인가 상ㆍ하 이기우 신부 글 / 함께 가는 길 / 각 1만 3000원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엮은 ‘4복음서’를 읽다 보면 ‘어! 같은 내용이 반복되네’ 하고 가볍게 지나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그러나 4복음서는 절대 같지 않다. 복음서가 쓰인 시기와 저자가 다를 뿐 아니라, 각 복음사가가 겨냥한 집필 의도와 목적 또한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가 예수님 이야기를 네 권이나 되는 복음서로 채택한 데에도 분명한 신학적 이유가 있다. 「교회는 누구인가 상ㆍ하」를 펴낸 이기우 신부는 “진정 ‘교회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떤 교회인가?’라는 물음이 마태오 복음서에 잘 나와 있다”며 “복음서와 함께 책을 통해 더 풍요로운 신앙생활을 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기우(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지도) 신부가 최근 펴낸 「교회는 누구인가 상ㆍ하」는 마태오 복음서를 알기 쉽고 재미있게 주해한 해설서 겸 묵상집이다. 2016년 마르코 복음서를 다룬 「예수는 누구인가」에 이은 두 번째 복음서 길잡이다. 예수님 시대의 역사적 상황과 복음서가 쓰인 시대적 배경을 교부들의 주해와 복음서 간 차이점을 곁들여 망라한 책이다. 무턱대고 성경 읽기에만 급급해 미처 몰랐던 신학적 의미들이 장마다 자세하게 정리돼 있다. 집필 때마다 2년이 걸릴 정도로 이 신부가 복음서 해설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신자들을 위해서다.이 신부는 14일 서울 성북구 정릉의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 총원 사제관에서 만난 자리에서 “신자들을 위한 ‘지적 봉사자’가 되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간 본당, 빈민 사목을 하면서도 각종 성경 해설서와 주석서를 빠짐없이 찾아 읽으면서 성경 강의를 해온 이 신부가 이젠 책을 통해 ‘복음서 강의’를 하게 된 것이다.이 신부는 “신자들이 성경 내용을 잘 이해하기엔 성경의 무대가 지금과 시대적ㆍ문화적 편차가 크다”며 “교부들의 명쾌한 가르침과 함께 오늘날 우리 상황에 맞는 묵상을 담은 ‘사목자가 쓴 신학책’을 펴낸 것”이라고 했다.마르코 복음서가 ‘예수님은 누구인가’ 하는 ‘신원적 그리스도론’을 밝힌 성경이라면, 마태오 복음서는 하느님께로부터 오신 예수님이 교회 안에 함께하심을 깨닫도록 하는 ‘교회적 그리스도론’을 강조한 책이다. 책 제목도 마태오의 집필 의도에 따라 「교회는 누구인가」라고 했다.“마르코가 ‘행동하는 메시아’를 전하고자 했다면, 마태오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다섯 설교로 묶어 편집함으로써 ‘가르치는 메시아’를 전하고자 했습니다. 산상설교ㆍ파견 설교ㆍ비유 설교ㆍ공동체 설교ㆍ종말 설교가 그것이죠. 이 설교들이 마태오 복음서의 백미입니다. 마태오는 이 설교들을 기록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안에서 어떻게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지 그 길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마태오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로 시작한다. 그런데 ‘다윗’이 ‘아브라함’보다 앞서 언급되고, 족보 끝에는 세대 수를 십사 대로 나눠 재언급한다. 이는 마태오가 예수님께서 다윗의 자손으로서 혈통으로 제왕적 메시아의 지위를 갖고 태어나심을 드러낸 것이다. 십사 대는 각기 판관ㆍ임금ㆍ대사제의 지배를 받은 시점별로 정리한 것이다. 이는 후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제시한 예언직ㆍ왕직ㆍ사제직의 근거가 된다. 족보에 이방인 여인들이 언급된 점, 이방인인 동방박사가 유다인들보다 먼저 예수님을 경배한 것은 모두 ‘구원의 보편성’을 알리려는 의도다.예수님이 공생활에 앞서 광야의 유혹을 받으신 이유, 마태오가 예수님 기적보다는 설교의 가르침에 더 집중한 이유 등 자세한 신학적 해설이 이어진다.“교회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역사적으로 믿는 이들에게 남겨주신 유산이자, 그분이 세상 끝날까지 현존해 계시는 구원의 장입니다. 교회가 누구인지 아직 설명하기 어려우신가요? 마태오 복음서에 가톨릭교회의 원천과 지향이 다 나와 있습니다.” 이 신부는 루카ㆍ요한복음서 해설집도 이어 펴낼 계획이다.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백영민2018.08.22

“미혼모 진정으로 돕는 길, 생명교육에 있어요” 가톨릭대 생명대학원 송은경씨, 미혼모 주제로 석사학위 논문 발표 가톨릭대 생명대학원에서 미혼모를 주제로 다룬 첫 논문이 나왔다. 올해 2월 생명대학원을 졸업한 송은경(아가타, 40, 서울대교구 공덕동본당)씨의 생명윤리학 석사학위 논문이다. 그의 논문 주제는 ‘한국의 미혼모자 기본생활시설 내 가톨릭 생명윤리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고찰’이다. 십대 미혼모를 중심으로 자료를 찾고 공부했다.석사학위가 기삿감일까 싶지만, 딸을 둔 엄마로서 미혼모와 미혼모 자녀들을 돕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그의 열정은 ‘박사급’이다. 2016년 육아휴직 중이었던 그는 성경ㆍ기도 모임을 통해 미혼모를 돕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미혼모를 잘 알고 돕기 위해 공부하고 싶었고 생명대학원에 입학했다. 몸이 아픈 양가 부모에게 아이를 번갈아 맡겨 공부에 매진했고, 복직 후에는 딸을 데리고 다니며 수업을 들었다. “10대 미혼모에게는 경제적 지원도 중요하지요. 하지만 예전 생활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가톨릭 생명윤리 교육이 꼭 필요합니다.”미혼모자 기본생활지원 시설에 머무는 십대 미혼모들은 대부분 2~3개월 머물기에, 내면의 상처에 대한 심리적 위안과 해결을 위한 충분한 시간을 갖기 어렵다. 학교를 벗어난 상태여서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을 기회조차 없어 재임신의 위험에도 노출돼 있다. 실제로 미혼모의 임신 경험 횟수로 보면 재임신의 경우가 30%로 적지 않다. 송씨는 십대 미혼모에 대한 특성과 현황을 짚고, 미혼모자 시설의 교육 프로그램을 분석했다. 그는 논문 연구를 통해 사회 전반에 퍼진 잘못된 성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고, 미혼모 문제에 대한 근원적인 해결책으로 가톨릭 생명윤리 교육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미혼모들이 생명윤리 교육을 받는다면 자존감 회복의 기회를 갖고, 재임신 방지를 위한 바른 성교육도 받을 수 있다. 국내 미혼모를 다룬 논문은 있었지만 대부분 미혼모에 대한 심리 혹은 사회복지정책을 다룬 논문이 많아 자료를 찾는 데에 어려움이 많았다. 7년 동안 건강검진센터에서 간호사로 근무한 송씨는 올해 초 직장을 그만뒀다. 생명대학원에 입학하면서 ‘당신의 도구로 써달라’고 기도했던 그는 미혼모와 청소년들을 위한 생명윤리 교육에 헌신하고 싶었다. 신앙인으로서 인생의 후반부를 잘 살고 싶어 직장을 관뒀다. 지난해부터 초등부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며 5, 6학년 아이들에게 몸과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쳐주고 있다. “요즘 애들이 변했다고 하는데 아이들은 순수합니다. 어른들이 잘못 만들어 놓은 성문화, 어른들이 바로 잡아야지요.” 송씨가 주변 사람들과 학부모들에게 생명윤리 교육의 중요성을 설명하면 사람들은 생명교육이 학업과 진로 결정에 도움이 되느냐고 되묻는다.“아이들에게 생명과 몸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가치 교육은 중요합니다. 생명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교육이 의미 없이 흩어지진 않을 겁니다. 먼 훗날, 스쳐 지나가기만 하더라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그는 6월부터 미혼모자 시설에서 봉사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미혼모자 시설에서 생명윤리 교육을 하는 게 그의 목표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cpbc2019.05.21
 교회오빠 (A Job Who Is near Us, 2019)](//cpbc.co.kr/CMS/newspaper/2019/05/rc/752061_1.0_titleImage_1.jpg)
[영화의 향기 with CaFF](18) 교회오빠 (A Job Who Is near Us, 2019)시한부 부부의 아름다운 삶, 깊은 영성 교회 오빠! 성격 좋고, 인물 좋고, 신앙심마저 좋은 청년. IT 연구가인 이관희는 역시 성격 좋고, 예쁜 피아노 전공 음악교사 오은주와 결혼을 한다. 모두의 선망 속에….이 이야기는 ‘아빠, 엄마, 딸 세 식구 행복하게 살았대요’로 이어져야 하는데, 젊은 아빠가 병원을 찾은 후에는 이미 대장암 4기. 엄마 역시 혈액암 4기라고 진단받는다. 관희가 “말기가 아닌 4기에 발견해서 다행”이라고 말하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설상가상으로 이들을 돌보던 어머니는 우울감과 고통으로 무너진다.막막한 상황이지만 이 영화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이유는 부부의 모습이 아주 아름다워서다. 병이 아니라면 이들의 대화나 행동은 티격태격 잘 지내는 연인 한 쌍이다. 부인은 “무섭다”고, “살려달라”고 눈물을 뚝뚝 떨구는데 관희는 “이 상황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다. 신앙으로 답을 찾는 남편에게 부인은 “정말 그러느냐” 묻고 또 물으며, “나는 아직 아니다”라고 하면서도 관희씨 말을 수긍한다. 부부는 어려운 상황에서 신앙만이 답이라 그걸 찾는 것이기도 하지만, 신앙이 결국 답이니 그걸 함께 찾는다. 영화 ‘교회오빠’ 포스터. 이 부부의 모습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네 삶이, 길든 짧든 시한부 인생이고, 길 떠난 나그네, 순례자임을 자각하게 한다. 소중하다고 꼭 쥘 수도 없고, 힘들다고 내려놓아서도 안 되는 삶이라는 지평 위를 걷고 있음을.아빠의 첫 번째 미션은 소연이의 돌잔치에 함께하는 것. 다행히 이 미션은 성공했다. 두 번째 미션은 소연이의 초등학교 입학식 때 엄마, 아빠가 함께하는 것.엄마, 아빠가 아기 소연이와 함께 노는 모습은 사랑스럽다. 평범한 한 가정의 소소한 일상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은 젊은 엄마의 말처럼 언제 멈출지 모르는 삶이기 때문이리라. 누군가에게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꼭 갖고, 지키고 싶은 하루라는 말처럼 오늘 하루, 바로 이 시간이 새삼스레 귀하다.이 영화는 욥의 생애로 첫 구절을 시작한다. 관희는 욥을 롤모델로 삼고 자신의 삶을 해석하고 희망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관희의 모습은 점점 소진돼가지만, 그의 영성은 점점 깊어지고 숭고해진다. 모르핀을 맞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몸의 상태이지만, 이도 거부한다. 약을 먹으면 정신이 몽롱해져서 성경 말씀이 잘 들어오지 않는단다. 맑은 정신으로 말씀을 읽고 싶고, 듣고 싶고 설교 말씀을 듣고 싶단다. 결코, 병이 인간을 침몰할 수 없음을, 죽음이 인간의 끝일 수 없음을 보게 한다. 그의 미션은 이 영화로 다시 시작된다.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26) 머리에서 맑은 종이 울린다. cpbc2019.05.02

순명과 믿음의 삶 실천한 성가정의 모범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은 누구인가 이스라엘 나자렛 성모영보성당 내 성 요셉 동상. 가족의 중요성이 더해가고 있는 오늘날, 성가정의 모범을 보인 성 요셉의 생애는 현대의 신앙인들에게 하느님께 대한 순명과 믿음살이의 전형을 돌아보게 한다. 3월 성 요셉 성월과 3월 19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을 맞아 요셉 성인에 관해 알아본다.▧ 요셉 성인은 누구인가요셉(Joseph)은 ‘하느님을 돕다’는 뜻이다. 요셉 성인의 인생은 성실하게 돕는 이의 삶이었다. 그는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임무에 충실하며 성가정을 돌봤고, 인류 구원을 위한 메시아의 계획에 참여했다. 요셉 성인이 등장하는 성경 구절은 예수의 어린 시절을 다룬 마태오복음 1─2장과 루카복음 1─2장뿐이다. 하지만 외경인 「야고보 원복음서」에선 그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요셉은 다윗 왕가의 후손으로 나자렛에서 목수 일을 하며 의인으로 존경받았다. 약혼자 마리아가 임신하자 파혼(마태 1,19)하려 했지만, 성령에 의한 잉태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마리아를 아내로 받아들였다.(마태 1,18-20) 그리고 요셉은 마리아가 평생 동정을 지킬 수 있도록 보호했고(마태 1,24-25), 이집트로의 피신 등 온갖 어려움 속에서 마리아와 어린 아들 예수를 보살피는 사명을 묵묵히 수행했다. 요셉은 또 예수의 법적 아버지로서 아들의 이름을 지어주고(마태 1,21.25) 할례를 시키고(루카 2,21) 정결례를 치른다. (루카 2,22) 예수님은 요셉의 부성애와 보살핌 속에 있었다. 그로 인해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루카 2,51-52) 이처럼 요셉은 겸손한 하느님의 종이자 정결한 남편이었으며 성실한 아버지였다. 교회가 성모 마리아의 배필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기르신 아버지인 요셉 성인을 특별히 공경하고 그분 삶을 묵상하는 이유다. ▧ 요셉 성인에 대한 신심3월 19일이 요셉 성인의 축일로 자리 잡은 것은 12세기 무렵이다. 요셉 성인에 대한 공경이 비교적 늦게 시작된 것은 그의 역할이 성모 마리아만큼 명확하지 않아 전례력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12세기 예루살렘 성지를 무슬림으로부터 회복한 십자군은 나자렛에 성당을 지어 요셉 성인에게 봉헌했다. 이후 요셉 성인에 대한 공경과 축제는 이스라엘 성지를 관리하던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를 통해 유지되고 전파됐다. 작은형제회 출신 식스토 4세 교황은 15세기 말 요셉 성인의 축일을 모든 교회로 확산시켰다.비오 9세 교황은 1870년 요셉 성인을 ‘교회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고 3월을 ‘성 요셉 성월’로 정해 성인의 덕과 신심을 본받도록 했다. 레오 13세 교황은 1889년 요셉 성인을 ‘가장의 모범’으로 선포하면서 성인들 가운데 성모 마리아 다음의 위치로 올렸다. 레오 13세 교황은 “성 요셉은 가족들에 대한 보호와 배려의 산 표본”이라면서 “아내들에게는 사랑, 마음의 일치, 충실함의 모범이고, 미혼자ㆍ독신자ㆍ수도자ㆍ성직자에게는 정결의 이상이며 수호자”라고 밝혔다. 이어 “성 요셉은 마리아의 남편이요 예수의 아버지이므로 가톨릭교회의 가장권을 가지고 계신다”고 했다. ▧ 노동자들의 수호자 비오 11세 교황은 성 요셉을 ‘공산주의와 싸우는 영적 투쟁의 보호자’이며 ‘사회 정의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다. 1955년 비오 12세 교황은 공산주의의 5월 축제에 맞서고자 5월 1일을 ‘노동자들의 수호자 성 요셉 축일’로 정했다. 성 요한 23세 교황은 성 요셉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보호자’로 선포했다. 또한, 성 요셉에 대한 자신의 신심을 자주 증언하면서 이렇게 고백했다. “성 요셉, 나는 이 성인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제일 먼저 성 요셉의 이름을 부르고 성 요셉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는 나의 하루의 일을 시작할 수도 끝낼 수도 없을 정도로 성 요셉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요셉 성인은 교회 전체의 수호성인뿐 아니라 지도자들, 아버지들, 성직자와 수도자, 여행자, 노동자, 가정, 동정녀, 환자, 임종자, 가난한 이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 성 요셉 신심의 현재적 의미“진정 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다”(1사무 15,22)는 성경 말씀처럼 요셉의 순명 정신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온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이 시대에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는 그의 자서전에서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성 요셉에게 언제나 순종하셨으므로 지금도 천국에서 성 요셉의 소원은 모두 기쁘게 들어주십니다.… 묵상기도에 전념하는 사람들은 특히 특별한 신심을 가지고 성 요셉을 공경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증언한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부름 받은 신앙인들에게 요셉 성인은 순명과 믿음, 회개와 투신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윤재선 기자 leoyun@cpbc.co.kr 평화신문2019.03.13

여행 좋아하고 책 쓰고 싶은 이들 위한 ‘특급 도우미’ 최근 함께 이스라엘을 다녀온 뒤 「이스라엘 기행」을 펴낸 ‘인디라이프’ 출판사 대표 홍은표ㆍ안정옥씨 부부. 부부는 ‘50~60대 은퇴 세대의 행복여정을 위한 여행과 책 출간을 돕는 나눔 사업으로 ‘제2의 부부 삶’을 꾸려가고 싶다’고 했다. 이스라엘 기행 홍은표 글ㆍ사진 / 인디라이프 / 1만 5000원아내가 곁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든 남편은 “허허허~” 하고 웃어줬다. 아내는 남편이 말하는 내내 따뜻한 미소로 바라봤다. 아내는 “남편은 제가 무엇을 하든 제 발걸음에 맞춰주는 사람”이라고 했고, 남편은 “우린 사소한 일까지 모든 것을 공유한다”고 했다. 부부는 키 차이는 제법 나지만, 서로에 대한 배려심과 존중감에는 전혀 차이가 없었다. 홍은표(시몬, 61, 서울 아현동본당)ㆍ안정옥(수산나, 61)씨 부부 얘기다.올해 결혼 40년 차 동갑내기 홍씨 부부는 ‘여행 마니아’다. 남들이 보면 배 아플 정도로 대화, 취미, 여행 스타일 모두 잘 맞는다. 지금껏 이 금실 좋은 부부가 함께 발 도장 찍은 곳만 40여 개국, 200여 도시. 부부는 여행 노하우를 담아 최근 책을 펴냈다. ‘성지 중의 성지’ 이스라엘을 다녀온 뒤 쓴 「이스라엘 기행」이다.부부는 배낭여행을 즐기는 젊은이 못지않은 담력(?)으로 단둘이 2주 동안 이스라엘을 여행했다. 직접 빌린 차에 몸을 싣고, 남부 구약의 땅 광야 지역부터 갈릴래아 지역과 나자렛을 넘어 신약의 정점 예루살렘까지 ‘성경의 땅’을 구석구석 다녔다. 잘못된 길로 가는 일이 발생해도 “우연함 속의 보물”이라며 즐겼다. 남편은 “아브라함 후손들의 땅에 선연히 남은 신앙, 오랜 문명이 켜켜이 쌓은 수천 년 역사를 탐방했다”고 했다. 아내도 “광야의 경이로움 속 이스라엘 선조들의 숨결과 예수님의 기도가 인상 깊었다”고 했다.여행 후 남편은 펜을 들었다. 책은 순례기보다 종교ㆍ역사 서적에 더 가깝다. 남편 홍씨는 전문 신학자나 작가는 아니지만, 책에 이스라엘 역사와 성경 이야기, 현지 문화를 전문가 뺨치는 실력으로 글과 사진에 풍부히 담았다. 이스라엘의 모든 것을 알고 싶은 이들에게 제격. 평신도가 쓴 성경 순례 이야기라 더 반갑다.“이스라엘 가기 전에 관련 서적을 20권은 본 것 같아요. 내가 믿는 하느님과 예수님 땅이 궁금했고, 제겐 ‘회색 지대’처럼 남아있던 교회 가르침과 이스라엘 역사를 보고 싶었죠.”(남편)부부는 책 출간을 위해 아예 출판사까지 차렸다. 올해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 사무실을 마련한 ‘인디라이프’다. 「이스라엘 기행」을 제작하는 석 달 동안 부부가 교정ㆍ교열을 보고, 표지 품평회도 같이 했다. ‘인디라이프’는 책 출간뿐만 아니라, 단체 관광에 주로 끌려다니는 50~60대 중장년들을 위한 자유여행 상담을 해주는 나눔 사업도 한다. 책을 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출판도 도와준다. 조만간 사회적 기업으로 발돋움할 계획이다. 부부 명함엔 ‘출판사 대표’와 ‘여행 디자이너’가 나란히 적혀있다.이 ‘출판사 겸 여행 상담소’는 그냥 탄생한 게 아니다. 40대 때 대기업 건설회사를 나와 IT 중소기업을 20년간 운영해온 남편은 은퇴를 앞두고 아내와 마주앉아 “60세가 넘어서 우리가 뭘 하며 사는 게 좋을까”하고 ‘제2의 삶’을 오랫동안 토론했다. 결론은 △여행 △출판 △행복 나눔이었다. 아내는 “우리가 잘하는 여행을 통해 사람들에게 ‘선한 동기’를 전해주고 싶었고, 그것을 책과 여행 지식 나눔으로 펼치게 됐다”고 했다. 부부는 서울시가 50세 전후 은퇴 세대를 위해 설립한 ‘50플러스재단’에서 ‘여행과 행복’을 주제로 강연도 하고, 관련 자격증도 따고 있다.“부부가 함께 새 일을 시작하고, 책까지 함께 만들어 나누니 참 뿌듯합니다. 저희 부부처럼 여행을 좋아하고, 책을 펴내고자 하는 모든 이를 환영합니다.”(아내)“아내가 이젠 ‘비즈니스 파트너’가 됐네요. 같은 세대의 행복을 위해 저희가 가진 지식을 나누며 살고 싶습니다.”(남편) 문의 : 02-704-6251, 인디라이프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평화신문2018.11.14
![[이창훈 위원의 사도행전 이야기] (18) 스테파노의 설교 (7,1-53)(1)](//cpbc.co.kr/CMS/newspaper/2019/05/rc/753564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위원의 사도행전 이야기] (18) 스테파노의 설교 (7,1-53)(1)“보이는 것에만 집착해 예수님 거부하지 않았는가” 스테파노는 최고의회 사람들에게 아브라함에게서 모세, 다윗과 솔로몬에 이르기까지 조상들의 역사를 설명하면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그들의 완고함을 질타한다. 사진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해서 거쳐 갔던 시나이 광야. 가톨릭평화신문 DB 지난 호에서 봤듯이 스테파노와 논쟁에서 진 사람들이 거짓 증인을 내세워 최고의회에서 스테파노를 고발하게 합니다. 최고의회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스테파노에게 쏠리고 스테파노 얼굴은 천사 얼굴처럼 보였습니다.(6,8-15) 대사제가 “그게 사실이오?” 하고 묻고 스테파노는 긴 설교로 답변합니다.(7,1-53) 이 설교를 두 번으로 나눠 살펴봅니다. 스테파노의 설교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설교 중 가장 깁니다. 스테파노는 이 설교에서 아브라함에서 시작하여 모세 그리고 다윗과 솔로몬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역사를 압축해서 전하면서 자신이 선포하는 예수님을 거부하는 이들을 비판합니다. 스테파노는 “부형 여러분, 들어보십시오”(7,2ㄱ)라는 말로 설교를 시작합니다. “부형(父兄)”이라는 표현은 그 자리에 여자가 없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여자는 산헤드린, 곧 최고의회의 구성원이 될 수 없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지요. 스테파노는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에서 살 때에 “네 고향과 친족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하란에 자리를 잡았다고 말합니다.(7,2-3) 그런데 이것은 창세기에서 전하는 내용과 차이가 있습니다. 창세기에서는 아브라함이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하신 하느님 말씀을 들은 곳이 하란으로 나오기 때문이지요.(창세 11,31─12,5 참조) 「주석 성경」에서는 이 차이에 대해 스테파노가 창세기 말씀보다는 고대 이집트 알렉산드레아의 대표적인 유다인 철학자 필론(B.C. 15?~A.D.45?)과 역사가 요세푸스(37/38?~100?)가 전하는, 성경 이외의 전통을 따랐다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은 바로 지금 예루살렘 성전이 있고 그 후손들이 살고 있는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땅을 아브라함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또 아브라함과 할례의 계약을 맺어 주십니다. 아브라함 자신은 한 치의 땅도 상속 재산으로 받지 못했지만,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말씀을 따랐으며 또 자식에게 계약의 할례를 베풀었습니다.(7,4-8) 아브라함은 당장 손에 넣은 것이 없었지만, 자신에게 또 후손들을 위해 하신 하느님 말씀에 충실했다는 것입니다. 스테파노의 설교라는 긴 이야기의 첫째 마당이 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둘째 마당은 요셉 이야기입니다.(7,9-16) 요셉은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 곧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의 열두 선조 가운데 하나입니다. 스테파노는 창세기를 인용하면서 “하느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셨다”고 말합니다.(7,9) 하느님께서 함께 계셨기에 요셉은 형제들의 시기로 이집트에 팔려가면서도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은총과 지혜로 이집트와 자기 온 집안을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요셉 이야기는 요셉이 이집트로 팔려가서 재상이 되고 형제들과 친족을 모두 이집트로 불러와 그곳에서 살다가 죽고 묻히는 데까지 이어집니다.이야기의 셋째 마당은 모세에 관한 것입니다.(7,17-44) 스테파노는 셋째 마당을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다짐하신 약속이 실현될 때가 다가오자”(7,17)라는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사백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7,6 참조)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실현하신다는 것을 드러내는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느님께서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실현하시기 위해 택하신 도구라는 점이 부각됩니다. 스테파노는 모세가 죽지 않고 극적으로 살아남아 이집트 왕실에서 자라나게 된 과정, 마흔 살이 되어 이집트 사람을 죽이고 동족을 구하려다가 오히려 동족의 배반으로 미디안 땅으로 가서 살게 된 일, 다시 40년이 찼을 때 떨기나무 불길 속에서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소명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낸 일,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의 천사와 조상들 사이의 중개자가 되어 “살아 있는 말씀” 곧 율법을 전해 준 일, 그러나 조상들이 순종하지 않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에게 희생제물을 바치던 일 등을 열거합니다. 그런데 학자들은 스테파노의 이 설교에서 모세가 예수님의 예형으로 제시된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모세를 두고 “말과 행동에 힘이 있었다”고 하는 묘사(7,22)는 엠마오의 제자들이 예수님에 대해 한 묘사(루카 24,19)와 같습니다. 모세가 동족을 도우려 했으나 오히려 “누가 당신을 우리의 지도자와 판관으로 세우기라도 했소?”라며 반대를 받은 것(7,27), 이적과 표징을 일으키며 백성을 이끌어낸 것(7,36), 모세를 지도자와 해방자(7,35), 예언자로(7,37), 또 살아 있는 말씀 곧 생명의 말씀을 전해주는 중개자로 여기는 것(7,38) 등도 모두 모세를 예수님의 예형으로 제시하는 표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스테파노가 긴 설교로 이야기하는 핵심은 아브라함과 요셉과 모세로 이어지는 조상들의 위업을 전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제부터 보게 되겠지만 때가 차서 하느님께서 해방자요 구원자로 보내주신 모세의 말을 듣지 않은 조상들의 불충을 지적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적은 또 다른 목적을 띱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생각해봅시다“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창세 12,1-2) 이 말씀에 아브라함은 길을 떠납니다. 아브라함은 약속된 땅 가나안에 왔지만, 정작 자신은 그 땅을 한치도 상속 재산으로 받지 못했습니다. 그 땅은 아브라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 후손들의 몫이었습니다. 그 후손들 또한 400년이라는 긴 세월을 남의 나라에서 종살이를 하고 또 40년을 광야에서 헤맨 끝에 비로소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아브라함은 자기 눈앞에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면서 하느님 말씀을 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그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로마 4,18) 라고 썼습니다. 모세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구해낸 위대한 영도자요 해방자였지만 정작 그 자신은 약속의 땅을 밟아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는 백성을 이끌고 죽을 고생을 해 가며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역할로 그쳤습니다. 자신은 먹지도 못하는 맛있는 죽을 실컷 쑤어서 남에게 준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만 본다면 어리석기조차 한 아브라함과 모세는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고 혈안이 돼 있는 오늘의 세태에 거꾸로 경종을 울리는 모범입니다. 그 경종의 극치가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이십니다. 스테파노는 지금 그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신자인 우리는 어떤 분을 어떤 말과 행동으로 선포하는지요? cpbc2019.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