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은 부활하신 아침, 숯불에 물고기를 구우셨다[엉클죠의 바티칸산책] (18)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최초의 조찬’ 갈릴래아 호숫가에 있는 성 베드로 수위권 성당 제대 앞에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을 불러 빵과 물고기로 아침 식사를 했다고 전해지는 바위가 있다. 라틴어 멘사 크리스티(Mensa Christi)는 ‘그리스도의 식탁’이란 뜻이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와서 아침을 먹어라.”(요한 21,12) 요한 복음의 이 대목을 묵상할 때면 온몸을 전율케 하는 기쁨이 솟아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제자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시는 모습, 저는 이 장면이 성경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가장 평화로우며 가장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갈릴래아 ‘관상 순례’는 항상 이곳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만찬에서 조찬까지 예수님과 제자들만의 식사 장면은 성경에 두 번 소개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수난당하기 직전 열두 제자와 함께 파스카 음식을 드신 ‘최후의 만찬’이고, 다른 하나는 부활하신 직후 일곱 제자와 아침을 드신 ‘최초의 조찬’입니다. 만찬에서 조찬까지 짧은 기간에 어마어마한 사건들이 벌어졌지요. 유다는 스승을 팔아먹고, 베드로는 스승의 존재를 부정하였으며, 제자들은 죄다 도망갔습니다. 열두 제자들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은 홀로 수난당하고 홀로 돌아가셨습니다. 스승과 제자의 끈끈했던 관계는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최후의 만찬, 제자들의 배신, 스승의 죽음과 부활, 최초의 조찬! 일련의 사건들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추구했던 모든 가치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두 식사의 성격이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예수님은 만찬과 조찬으로 시대를 구분하셨습니다. 만찬이 부활 사건 전의 낡은 시대를 청산하는 행사라면, 조찬은 부활 사건 후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행사였습니다. 만찬은 예루살렘 도성 이층 다락방에서, 조찬은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있었습니다. 다락방은 사람이 만든 닫힌 공간이고, 호숫가는 하느님이 창조한 열린 공간입니다.부활하신 예수님은 일곱 제자를 위해 손수 아침 식사를 준비하셨습니다. 숯불에 구운 물고기와 빵! 군침이 돕니다. 새벽 고기잡이를 마치고 뭍에 올라온 제자들은 무척 시장했겠지요. 고기 굽는 냄새는 그들의 식욕을 한껏 돋웠습니다. 예수님은 요리도 잘하셨던 것 같습니다. 해본 사람은 잘 압니다. 숯불에 물고기 굽는 게 무척 어렵다는 사실을! 예수님은 이날 아침 무려 팔인 분(예수님 포함)의 물고기를 굽습니다. 요즘처럼 취사시설이 좋은 시대에도 어지간히 숙달된 요리사가 아니면 어려운 일입니다. 무쇠도 녹일 나이의 장정 일곱 명이었으니 음식도 많이 필요했겠지요. 미리 준비한 고기가 부족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당신이 기적을 일으켜 잡아 온 싱싱한 물고기를 먹이고 싶었던 것일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요한 21,10) 얼마나 정겨운 모습입니까. 그러나 제자들은 무척 민망하고 창피했을 것입니다. 불과 며칠 전 자기들이 헌신짝처럼 버렸던 스승이신데 직접 찾아와 아침밥을 이렇게 차려주시니 말입니다. 회개와 용서의 자리사실 예루살렘 만찬 분위기는 동상이몽이었지요. 예수님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수난과 부활을 이야기하셨지만, 제자들을 딴전을 피웠습니다. 스승을 팔아먹을 궁리를 하는가 하면, 스승이 권력이라도 차지할 줄 알고 미리 자리다툼을 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영적으로 불일치 상태에 있었지요. 갈릴래아의 조찬 분위기는 이심전심의 회개와 용서의 자리였습니다. 배신자 패륜아 불효자, 이런 비난을 받았어야 할 처지였는데 예수님께서 손수 고기를 맛있게 구워주셨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했겠습니까. 제자들은 깊이 반성했고, 예수님은 모든 허물을 받아줬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영적으로 일치를 이룬 회개와 용서의 식사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졌다”는 말씀을 남기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무엇을 이루셨다는 말씀인가? ‘최초의 조찬’이야말로 예수님이 다 이루셨다고 말씀하신 실체의 한 자락, 천국의 한 모습이 아닐까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화가들은 저마다 신학적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최후의 만찬’을 캔버스에 담았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불후 명작 ‘최후의 만찬’은 그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과문한 탓이긴 하지만 ‘최초의 조찬’을 그린 화가는 많지 않습니다. 그 많은 화가가 왜 그랬을까, 궁금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왜 이 장면을 놓쳤을까. 긴장감이 감도는 ‘최후의 만찬’을 그렸으면,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최초의 조찬’도 그렸어야지!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 평화신문2020.04.16

“마음의 눈으로 오직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 집중하라”[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인격 그리고 프란치스칸 영성] 17. 거룩한 기도와 신심의 영 프란치스코 성인은 형제들에게 ‘거룩한 기도와 신심(혹은 헌신)의 영’을 강조해 가르쳤다. 이는 마음의 눈으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집중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 가르침은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예수님과 구약 성경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그림은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의 예언적 꿈 장면으로 프란치스코 성인이 무너져가는 교회를 지탱하고 있다. 조토 작,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아시시. 프란치스코는 우리 수도회 내에서 신학을 가르치게 된 안토니오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가르침이나 회가 아니라 ‘거룩한 기도와 신심(혹은 헌신)의 영’임을 강조한다. 이 편지에서 프란치스코가 안토니오에게 말한 이 거룩한 기도의 영과 거룩한 신심의 영은 온전히 하느님께 우리의 온 힘과 마음, 정신,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우리의 이성과 논리를 동원하여 갖가지 생각으로 하느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눈으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집중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늘 우리가 집착하며 살아가는 우리 주변 사람들의 죄나 어둠이나 미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첫째가는 계명, 즉 신명기의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1; 10,12; 11,13; 13,4; 26,16; 30,2; 30,6 ; 30,10)는 계명이다.우리 육신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선하고 긍정적인 것들이 많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우리 내면을 이 ‘거룩한 기도와 신심의 영’으로 가득 채워줄 수 있는 대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시다. 여기에는 오직 선과 용서, 치유와 화해, 구원과 완성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클라라 성녀는 프라하의 아녜스 성녀에게 다음과 같은 권고를 한다.“오, 여왕이시여, 예수 그리스도의 정배시여, 이 거울을 매일 들여다보고 계속해서 그 안에서 당신 얼굴을 살펴보십시오. 그리하여 갖가지 장식으로 휘감고 차려입어(시편 44,10 참조) 안팎으로 속속들이 단장하고, 지극히 높으신 임금님의 딸이요 사랑스러운 정배에게 어울리는 온갖 덕행의 꽃과 옷으로도 치장하십시오. 사실,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대가 거울 전체에서 관상할 수 있는 것처럼, 이 거울 안에는 복된 가난과 거룩한 겸손과 형언할 수 없는 사랑이 찬란히 빛납니다. 나는 말합니다. 이 거울의 첫 부분을 보면서,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계신(루카 2,12 참조) 그분의 가난을 주의 깊게 바라보십시오. 오, 감탄하올 겸손이여, 오, 놀라운 가난이여! 천사들의 임금이시고 하늘과 땅의 주님께서(마태 11,25 참조) 구유에 누여져 있습니다. 그다음, 거울의 가운데를 보시고 겸손과 적어도 복된 가난을, 인류를 속량하기 위하여 그분이 겪으신 무수한 수고와 고생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이 거울의 맨 끝을 보시고 말할 수 없는 사랑을 관상하십시오. 그분은 이 사랑 때문에 십자 나무 위에서 고통당하시고 거기서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바로 이 거울 친히 십자 나무에 달리셔서 행인들에게 여기에 생각해 볼 것이 있다고 권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 길을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여, 살펴보고 또 보십시오. 내가 겪는 이 내 아픔 같은 것이 또 있는지’(애가 1,12). 그러므로 ‘이것을 내 마음에 깊이 새기고, 내 영혼은 내 안에서 갈기갈기 찢어지리이다’(애가 3,20) 하시며 외치시고 울고 계신 그분께 한목소리, 한마음으로 응답합시다. 그리하여, 오, 천상 임금의 왕후시여, 그대 안에 이 사랑의 불이 날로 더 활활 타오르면 합니다! (「아녜스에게 보낸 넷째 편지」 15-27).여기서 1998년도 성탄을 앞두고 필자의 고해 사제셨던 저베이스 화이트 신부님(Fr. Gervase White, OFM)께서 보내 주신 성탄 메시지를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이 신부님은 필자의 유학 생활 중에 머물던 뉴욕주의 성 보나벤투라 수도원에 사시면서 성 보나벤투라 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셨다. 이 신부님은 2002년도에 우리의 본향인 하늘나라로 돌아가셨지만, 필자에게는 프란치스칸 삶의 진수를 행복하게 전해준 아름다운 형제 중 한 분이셨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우리 주변의 세상을 바라보게 될 때, 나는 우리가 대단히 유복한 시기에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단 몇 사람만이 참으로 행복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팩스와 휴대폰에 의해 연결되어 있고, 전자 메일로 접속되어 있어 잠겨 있는 문 뒤의 도시들에서는 안전이 보장되어있는 듯하지만, 우리 중 어떤 사람들은 이 이상은 없다 싶을 정도의 공포와 외로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증오와 공포가 텔레비전 쇼와 영화, 뉴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계속해서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그러나 만일 우리가 이토록 나쁜 것들로 인해 우리의 감각이 마비되어 버린다면, 우리는 우리 삶 속에 있는 좋은 것들을 보는 데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기술이 더 빠르고 더 먼 곳에까지 다다를 수 있게 해줄수록, 느긋해져야 할 우리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이런 세상에서의 우리 사명은 앞을 내다보는 통찰력과 유비무환식의 계획성을 가지고 어떤 상황에든 여유롭게 대처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면 우리에게 기대치 않은 일들이 발생할지라도 우리는 곧바로 애초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능한 해결책을 찾게 될 것입니다.” 호명환 신부(작은형제회)cpbc2020.11.11

2000년 전 로마로 압송되던 바오로 사도를 묵상하며[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 (1)‘바오로 주막’은 흔적없이 사라졌지만… 로마의 신앙 형제들은 주막(선술집) 세 개가 있는 트레스 타베르내까지 내려와 압송 중이던 사도 바오로를 만났다. 벌판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돌 담벼락만이 2000년 전 그 눈물겨운 상봉의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와 교황청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는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가 ‘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을 연재합니다. 언론인 출신인 이 대사는 바티칸 안팎의 소식과 풍경을 생동감 있게 전하고, 대사직을 수행하면서 길어 올린 신앙 단상(斷想)을 독자들과 나눌 예정입니다. ‘엉클 죠’는 이 대사가 캄보디아에서 봉사활동을 할 때 얻은 별명입니다.<편집자>“바로 이곳이다!” 포승줄에 꽁꽁 묶여 압송되던 바오로 사도가 로마 신자들을 처음 만났던 장소, 아피우스(Appius) 광장, 그리고 트레스 타베르내(Three Taverns)! 타베르내는 지금으로 치면 펜션, 옛날 개념으로는 주막입니다. 3개의 주막이 이곳에 있었답니다. 성경은 “형제들이 로마에서 우리 소문을 듣고 아피우스 광장과 트레스 타베르내까지 우리를 맞으러 왔다”(사도 28,15)고 전합니다. 바오로 주막 담벼락 조각만 덩그러니 로마에서 아피아 가도를 따라 50여㎞ 남쪽으로 내려가면 아피우스 광장이 있고, 광장에서 작은 하천을 건너 100m쯤 걸어가면 오른쪽 들판에 큰 돌덩어리가 외롭게 앉아 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돌덩어리가 아니라 벽돌이 닥지닥지 붙어 있는 콘크리트 덩어리입니다. 트레스 타베르내, ‘바오로 주막’은 모두 흔적 없이 사라지고 없고, 이렇게 담벼락 조각 하나만 남아 순례자를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명색이 2000년 된 유물인데, 그 흔한 안내판도 없고, 설명서 한 줄 없습니다. 그냥 버려져 있더군요. 몹시 안타까웠습니다.참 평화로운 농촌 풍경입니다. 예수님이 활동하셨던 갈릴래아도 이랬을까요? 아마 2000년 전에는 이랬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타베르내 바로 앞에 아스팔트 도로가 뚫려 있고, 뒤편에는 대형 비닐하우스가 듬성듬성 설치되어 있는 넓은 들판이지만 말입니다. 예수님이 활동하셨던 카파르나움을 떠올리게 하는 촌락도 있습니다.다시 생각에 잠깁니다. 바오로 사도와 로마 형제들은 이곳에서 처음 만났을 때 하룻밤을 어떻게 지냈을까. 죄인 아닌 죄인끼리의 뜨거운 포옹, 동병상련이었겠지요. 반가워서, 서러워서, 아마도 많이 울었을 것 같습니다. 울면서 기도하고, 기도하면서 울고!저는 한동안 ‘사도행전’에 꽂혀 살았습니다. 여러 성경 중에 왜 하필 사도행전이냐구요? 남다른 사연이 있습니다. 바로 이 성구 덕분입니다.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사도 16,31) 아마 초등학교 3, 4학년 때로 기억됩니다. 바닷가 시골 마을에 교회가 있었는데, 12월이 되면 서울에서 선교사 선생님들이 내려와 노래와 율동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빵 과자 학용품 등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빵 얻어먹는 재미로 교회에 갔습니다. “염불보다는 잿밥”이라는 속담, 바로 그런 행태였지요.그런데 그때 배운 노래의 한 소절이 제 머릿속에 평생 각인되어 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 후 교회와 담쌓고 살았는데도 어쩌다 성당이나 교회를 지나칠 때면 이 노래 가사가 떠올랐습니다. 군대 시절 훈련받기 싫어 교회에 갔을 때에도, 결혼을 앞두고 성당에서 관면 혼배를 드릴 때에도, 아들과 딸이 저보다 먼저 세례(유아세례)를 받을 때에도, 어김없이 이 노래 한 대목이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왔습니다. 경쾌한 음률과 함께. 노래 가사는 정확히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로다”입니다. 저는 이 노래 가사가 성경 말씀인 줄 전혀 몰랐습니다. 흔한 교회 노래의 한 소절인 줄 알았지요. 40세가 넘어 뒤늦게 세례를 받고 성경 공부를 하면서 우연히 알았습니다. 이 노래가 사도행전의 한 구절이라는 사실을. 주님은 왜 이런 선물을 저에게 주셨을까,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해 봤습니다. 아마도 주님께서 저에게 사도행전을 신앙의 중심으로 삼으라는 메시지를 주신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이 성구의 주제어(예수 믿음 구원)를 깊이 묵상해 보곤 합니다. ‘예수’는 나에게 과연 누구인가? ‘믿음’은 나에게 무엇인가? ‘구원’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구원을 받으려면성구의 출처는 바오로 사도입니다. 바오로가 필리피에서 감옥 생활을 할 때, 간수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대답으로 이 성구를 말씀하신 것이지요. 바오로는 아피우스 광장에서 로마 신자들과 만났을 때에도 이 말씀을 하셨을 것입니다. 저는 ‘바오로 주막’을 찾았을 때 오랜만에 이 노래를 소리 내어 불러봤습니다. 바오로를 생각하면서! 바오로가 감옥에서 피를 토하듯 하신 말씀을 저는 빵 얻어먹으러 교회에 갔다가 선물로 받았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경이롭기만 합니다. 죽는 순간 이 거룩한 말씀이 내 기억의 최후가 되길 기도하며 삽니다. 주교황청 한국대사 이백만(요셉) 평화신문2019.12.11

마르틴 루터의 오해, 베드로 무덤이 가짜라고요?[엉클죠의 바티칸산책] (40)베드로 사도 무덤 발굴 작업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월 일반알현 때 혜윰터 이세연 대표로부터 「어부의 무덤」 한국어 번역본을 받아들고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다. 미국의 유력 매체 뉴욕 타임스는 1949년 8월 22일 ‘희대의 특종’을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습니다. 카밀레 잔파리 기자가 쓴 바티칸발(發) 기사였습니다. 성 베드로 유골 발견! 언론인들은 이런 기사를 희대의 특종이라고 부릅니다. 바티칸이라는 기관의 성격을 고려할 때 이런 특종을 한다는 것은 수십 년 만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기 때문입니다. 1년 뒤 비오 12세 교황은 라디오 연설을 통해 “베드로 사도의 무덤이 발견되었다”고 뉴욕 타임스의 특종 보도를 확인해 주었습니다. 바티칸발 희대의 특종이 2013년에도 있었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그해 2월 특별 담화문을 전격 발표했습니다. 라틴어로 작성한 담화였습니다. 바티칸 출입기자들이 대변인실의 번역을 기다리는 동안, 라틴어에 능통했던 이탈리아 안사(ANSA)통신의 지오바나 치리 기자가 ‘베네딕토 16세 교황 사임’이라고 1보를 타전했습니다. 100명이 넘는 출입기자들이 꼼짝없이 물먹고 말았지요.베드로 사도 묘지의 진위 여부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에는 베드로 사도의 무덤이 있습니다. 이곳은 가톨릭 최고의 성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베드로 사도 묘지의 진위를 놓고 말들이 많았답니다. 불을 지른 사람은 종교개혁을 주창했던 마르틴 루터였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로마에 왔다는 어떤 물증이 없다. 베드로 대성전 지하에는 베드로 무덤이 없다. 가톨릭은 이교도의 무덤 위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다.” 종교개혁 이전에도 이런 소문이 있기는 했지만, 루터의 발언은 가톨릭의 자존심에 칼을 꽂았습니다. 사실 베드로 사도가 로마에 왔다는 기록이 성경에 없거든요. 베드로 사도가 로마에 와서 박해를 받았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처형당했으며, 시신이 바티칸 공동묘지에 묻혔다는 이야기는 전승일 뿐입니다. 교황청이 사실 확인에 나섰습니다. 베드로 사도 무덤을 발굴하여 물증을 공개하는 전략을 세운 것입니다. 두 번(1513년과 1683년)에 걸쳐 발굴을 시도했으나 중단되었습니다. 기술적인 문제와 비용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비오 12세 교황(재위 1939년~1958년)이 결단을 내렸습니다. 전임자인 비오 11세 교황의 무덤을 대성전 지하에 만드는 과정에서 유력한 단서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비오 12세 교황은 ‘베드로 무덤 발굴팀’을 극비 구성하여 1940년 발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비밀 유지를 위해 발굴팀은 바티칸 내부 인사로 차출되었고, 삽과 곡괭이 등 재래식 장비로만 작업하도록 했습니다. 전동장비를 사용할 경우 소음으로 인해 외부인들이 눈치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순례자들은 평소처럼 베드로 대성전을 드나들었고 지하에서는 발굴팀이 두더지처럼 흙더미를 파고 있었던 것입니다. 작업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지만 불가피한 조치였습니다. 비용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미국의 석유재벌 조지 스트레이크가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세상은 2차 세계대전으로 시끄러웠지만, 베드로 사도 무덤 발굴 작업은 감쪽같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뉴욕 타임스의 특종 보도가 터진 것입니다.베드로 사도 무덤 발굴 사업은 몇 번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천재 고고학자이자 금석학자인 마르가리다 과르두치의 헌신에 힘입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과르두치는 지하 무덤에서 “베드로가 여기 있다”, “베드로여,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쓰인 명문(銘文)과 1~2세기 로마에서 통용되었던 동전 봉헌물 등을 다수 찾아냈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무덤임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결정적인 물증들입니다. 루터의 주장이 낭설임이 자연스럽게 밝혀진 것이지요.74년 걸린 무덤 발굴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13년 3월 취임 직후 베드로 사도 무덤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해 11월 베드로 광장에서 특별 미사를 집전하면서 베드로 성인의 유해를 공개했습니다. 교황님은 이 자리에서 “이 뼈들이 진실로 베드로 성인의 유해다”라고 광장에 모인 순례자들과 전 세계에 선언한 것입니다. 준비과정에서부터 장장 74년이 걸린 베드로 사도의 무덤 발굴 프로젝트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미국의 작가 존 오닐은 2018년 교황청의 협조를 받아 「어부의 무덤」을 출판했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베드로 무덤 발굴 프로젝트를 흥미진진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한국의 혜윰터 출판(대표 이세연)에서 우리말 번역본을 내놓았습니다. 이세연 대표는 올해 2월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알현하는 자리에서 한국어 번역본을 증정했습니다.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 cpbc2020.09.22
![[제7회 신앙체험수기] 우수상/ 겨자씨 한 알이 큰 나무로 자라나](//cpbc.co.kr/CMS/newspaper/2020/03/rc/774442_1.2_titleImage_1.jpg)
[제7회 신앙체험수기] 우수상/ 겨자씨 한 알이 큰 나무로 자라나원진숙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삽화=장희원 내가 원목으로 일하는 프랑스의 한 병원에 입원한 조엘을 처음 만난 것은, 그가 가슴이 무너지는 의사의 통고를 받고 망연자실해 있던 순간이었다. 그의 방문을 노크했을 때 그 와중에도 조엘은 들어오라고 대답을 했다. 그러나 마음이 산란함을 감추지 않은 채 “다 끝장났다는 통고를 받은 지 10분밖에 안 됐어요”라고 말했다. 내가 말없이 그를 바라보자, 그는 말을 계속했다. “이미 내 주치의가 내가 한 달밖에 더 못 살 거라는 말을 한데다가, 방금 내 혈액 검사 결과 항암 치료마저 받을 수 없다는 소식을 받았어요. 그럼 이제 끝난 거죠, 뭐.”조엘의 나이 50. 아직 젊은데 유방암에서 시작된 암이 이미 다른 데로 많이 퍼진 상태였다. 간호사인 그는 자신의 병과 그 진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의 딱한 사정에 마음이 아파지면서, 그에게 생명이 한 달 남았다고 통고한 의사에 대해 화가 났다. 자기가 하느님도 아니고, 어떻게 그렇게 죽음을 예측할 수 있으며, 예측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렇게 대놓고 말을 하다니! 할 말을 잃고 가만히 있는 나에게, 조엘은 하느님 원망을 하기 시작했다. “2년 전에 아버지가, 작년에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48살밖에 안 된 내 친구도 죽고, 얼마 전에는 그 비슷한 나이의 내 직장 동료도 죽었어요. 이 세상에 부조리한 일들이 너무 많아요. 제대로 살아 보지도 못하고 죽는 사람들, 전쟁으로, 사고로… 죄 없는 어린이들까지…. 그리고, 나도 아직 죽기에는 이른 나이 아니에요?”나는 한동안 그의 계속되는 푸념을 듣다가 “지금 정말 어려운 시기이네요. 그 누구에게도 인생이 쉬운 건 아니지만, 조엘은 지금 특별히 어려운 시기에 있네요. 조엘을 위해 기도할게요” 하며 일어섰다.“그러세요, 하느님이 그 기도를 들어 주실는지 모르지만….” 반쯤 냉소적으로 대답하는 조엘을 뒤로 하고 병실을 나섰다.환자들을 만나면서 나의 무능력을 절감한 적이 수없이 많지만, 이번에도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나의 가난을 절실히 느끼면서, 하느님께 조엘을 맡겨 드리며 그를 위해 기도했다.그다음에 만났을 때도 조엘은 저번과 비슷한 말을 계속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하느님이 내게 해 주신 게 별로 없어요. 난 형제도 없이 쓸쓸하게 자랐고, 지금도 친구가 얼마 없어요.” “그렇다면 조엘은 하느님께 뭘 해드렸나요?”라는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올 뻔했다. 그가 “하느님이 주신 생명으로 지금까지 살아왔고, 살아오는 동안 무수한 은혜를 받았을 거”라는 말도 입술까지 올라왔지만 꿀꺽 삼켰다. 원목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환자의 말을 경청하는 것, 환자의 말을 격려하는 것이라고 배우지 않았던가? 그의 말을 더 들어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하느님이 어떻게 해 주셨으면 좋겠는데요?”“날 좀 더 살게 해 주시든지, 아니 죽어야 하면 죽겠지만 고통이 두려워요. 아, 하느님이 왜 그냥 가만히 계시냐구요?”“그럼 조엘은 하느님이 계시다는 사실은 믿고 있나 보죠?” “아뇨.”“계시지도 않은 분에게 원망을 하는 거예요?”“계실지도 모르지만… 믿은 적도 있었지만… 아무튼 하느님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시지는 않았어요.”“하느님에 대해 화가 나 있군요. 화를 내도 괜찮아요. 하느님께 외쳐도 돼요. 이왕이면 아주 큰 소리로 외치세요. 하늘까지 들리게…. 하느님께 하고 싶은 말을 다하세요. 그것도 기도예요.”“사람들이 내가 미친 줄 알게요?” 하며 조엘이 웃었다. 웃고 나니 마음이 좀 풀리는지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조엘은 어렸을 때 세례를 받았지만, 기억에도 없는 일을 엄마가 말해 주어서 알게 된 것뿐이고, 부모님이 거의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실제로 성당에 다닌 적은 별로 없으며, 20대 초반에 어찌어찌하다가 여호와의 증인으로 7년을 지냈는데, 그 생활이 불행하게 느껴져서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그렇지만 그나마 그때는 성경도 읽고, 영적인 것을 생각하며 살았기에 그게 그런대로 힘이 되었어요.”그렇다면 영적인 목마름이 있는 사람이구나 싶어서, 그다음에 갈 때는 그에게 잡지 몇 권을 들고 갔다. 처음부터 종교적인 것을 들이대면 거부감을 일으킬까 봐서, 가톨릭 잡지이면서도 다른 화제들도 다양하게 다루고 있는 것을 갖다 주었다. 그러면서 그 내용을 주제 삼아 대화를 더 늘려나가는 동안, 조엘은 처음에 비해 한결 부드러워지고 친절해졌다. 그리고 혈액 검사를 다시 한 후 마침내 항암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자 그의 태도는 더욱 누그러졌다. 그에게 성경을 권하고 싶던 참에 마침 조엘이 물었다.“성경이 하느님의 말씀인 거 맞아요?”“그건 조엘이 직접 읽으면서 느껴 보세요. 나는 하느님을 부정하는 사람들도 왜, 무엇을 부정하는지 알기 위해 일단 성경을 읽어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자 조엘이 성경을 빌려 달라고 했다. 성경을 주면서 내가 말했다.“일단 한번 쭉 읽어 보세요. 이해가 안 가거나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은 그냥 지나가세요. 그러다가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이 있으면 잘 새기시고요. 그러다 보면 그 말씀의 빛으로 앞에서 그냥 지나간 부분도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그 후, 나는 조엘에게 “신부님을 한 번 만나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성경에 대해서, 그리고 자기 삶에 대해서 신부님과 대화를 나눠 보면 어떻겠냐고, 나하고만 대화를 하는 것보다 그것이 더 폭넓은 대화가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조엘이 이를 받아들이자, 나의 영적 지도 신부님께 조엘을 만나 주십사 부탁을 하여 만남이 이루어지고, 또 지속되었다. 신부님이 그에게 책 몇 권을 빌려 주시자, 조엘은 그 책들도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어느 날, 조엘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아, 이 책에서 놀라운 것을 발견했어요. 하느님도 고통을 받으셨다는 것을…. 예수님이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껴안으셨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하느님 아버지께서도 함께 고통을 받으셨다는 것을요. 난 여태껏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하느님이 우리의 고통을 아신다는 거군요!”조엘은 이로써 모든 것이 새로워졌다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다음에 만났을 때도 그 말을 또 했다. “하느님이 우리를 알고 계시고 우리의 고통도 아신다는 거지요! 이 사실을 알게 된 게 너무나 기뻐요!”나는 조엘이 이 기회에 하느님께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기를 소망하며, 주일 미사에 한 번 오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미사에 정식으로 참여할 마음이 없으면, 그냥 구경삼아 한 번 와 보세요. 우리 수녀원이 병원 바로 옆이니 생각 좀 해 보고, 내일이 주일이니 이번에는 너무 빠를 것 같고, 다음 주일에….”그런데 조엘은 바로 다음날 미사에 나타났다. 어린 시절에 미사에 참석했던 기억이 난다면서, 그다음 주일에도 미사에 왔다.나는, 내가 좀 너무 성급하게 밀고 나가는 건 아닌가 조심스러우면서도, 그가 살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으니 마냥 기다릴 수도 없었기에, 용기를 내어 그에게 말했다. “조엘, 잔치에 가서 밥을 안 먹는 것은 좀 서운한 일이잖아요. 그러니, 난 조엘이 영성체를 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영성체를 하기 전에 고해성사를 보면 좋은데 고해성사를 본 경험이 있어요?”그는 첫 영성체 전과 그 후에 딱 한 번 고해성사를 본 적이 있을 뿐, 40년 동안 한 번도 고해성사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죄에 대해서만 말하면 조엘을 죄인 취급하는 느낌을 줄까 봐서 말을 골라가면서 했다. “조엘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한 번 되돌아보면서, 은혜로웠던 일에 대해서는 감사를 드리고, 맘에 걸리는 일, 가슴에 얹혀 있는 일, 용서해야 할 것, 용서받아야 할 것 등을 신부님께 말씀드리세요. 그리고 필요한 은혜를 하느님께 청하시고요.”조엘은 순순히 신부님을 만났다. 그리고 고해성사를 본 후, 몹시 기뻐하며 말했다. “이제 내 인생, 새로 시작이에요. 생명이 얼마 안 남은 이제서야 새로 시작하는 게 아쉽지만, 그래도 정말 기뻐요. 아! 이제 새로 시작하는 거예요!”그리고 그다음 주일 미사 때 조엘은 성체를 영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기쁨이란!!그가 매주 항암 치료를 받는 동안, 신부님과 내가 번갈아가며 조엘을 만났다. 조엘은 신부님이 빌려주시는 책들을 열심히 읽고 그에 대해 신부님과 나에게 질문도 하고 토론도 했다. 한 달밖에 못 산다던 조엘은 두 달도 넘게 입원해 있으면서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하루는 조엘이 큰 비밀이라도 털어놓듯이, 자기가 하느님과 성당을 멀리하고 살아오는 동안에도 항상 소망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예루살렘 성지 순례를 가는 것이라고 했다. 건강이 좋아지면 꼭 한 번 성지에 가 보고 싶지만, 지금으로서는 미지수라고….그래서 나는 곧 다가오는 ‘암-희망’ 루르드 순례에 가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이 순례는 암 환자들과 환자의 가족들, 그리고 암에서 치유된 사람들을 위한 순례인데, 자원 봉사자들이 환자들을 동반해 주고 보살펴 주기 때문에 웬만하면 조엘도 이 순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조엘은 관심을 보이며 즉시 신청을 했다. 그런데 이 순례 조직은 매년 한 번 루르드 순례를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순례 참석자들이 지역별로 매달 모임도 하고 있었으므로, 조엘은 신청을 하고 나서 바로 그 모임에 초대를 받았다. 건강도 차츰 나아지고, 그 모임을 통해 좋은 친구들, 더구나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동병상련의 친구들을 얻게 된 조엘은 무척이나 행복해했다. 병 ‘덕분에’ 자신의 삶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고 진심으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었다.조엘은 퇴원한 후에도 주일마다 우리 수녀원으로 미사를 왔고, 미사 후에는 나와 함께 정원을 걸으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신앙생활, 그리고 자기가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신부님과도 가끔 면담을 계속했다.프랑스 루르드 순례를 하고 돌아왔을 때 조엘의 얼굴은 환희로 빛나고 있었다. 잊지 못할 좋은 시간이었다고, 깊은 은혜의 시간이었다고 했다. 그러고 얼마 지나서, 어느 날 오후에 조엘이 갑자기 찾아왔다. 자신이 직접 만든 케이크를 들고 얼굴에는 기쁨의 홍조를 띠고 거의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병원에 검사받으러 갔더니, 의사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암 자국이 다 없어져 안 보인다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너무 기뻐서, 이 기쁨을 나누고 싶어, 얼른 케이크를 만들어서 달려왔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다고,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요!!!!!” 조엘은 외치듯이 이 말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그리고 조엘은 한 달 동안 새 친구들, 새로운 식욕, 새로운 계획들에 가득 차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가 좋아하는 예쁜 연보라색 옷도 사고, 행여 좋은 남자를 만나게 되면 비록 늦은 나이이지만 결혼도 생각해 보고 싶다는 말까지 했다. 그의 소망이 실현되기를 나도 같이 소망했다.그러나 어느 날 조엘은 다시 입원했다. 암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항암 치료를 받기 힘들 만큼 혈액 상태가 다시 나빠졌다고 하면서, 기운이 빠져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그렇지만, 예수님이 절대로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은 확실히 믿어요”라고 힘주어 말하며 “죽기 전에 주님께서 내게 신앙을 주시고, 한 달 동안의 행복도 선물로 주셨어요. 사실 죽는 건 그다지 두렵지 않아요. 저 세상에 가서 부모님과 먼저 간 친구들을 만날 생각을 하면 기쁘기까지 해요. 그런데 아쉬운 건, 내 인생에 내가 별로 보람 있는 일을 한 게 없다는 거예요. 하느님이 내게 시간을 좀 더 주신다면 적어도 2년 정도는 무의촌에 가서 의료 봉사를 하고 싶어요. 그런 생각을 안 해 보았던 건 아닌데, 실천에는 옮기지 못하고 살아왔군요” 하며 말끝을 흐린다. 삶의 끝자락에 와서 지난날들을 되돌아보며 아쉬움이나 회한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되랴. 오늘을 마지막 날인 듯이 살라는 말이 생각나면서, 나도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좀 기운을 회복했다가 다시 상태가 나빠졌다가를 반복하고 있던 조엘은, 어느 날 아주 가라앉은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항암 치료를 마냥 계속할 수는 없어요. 이달 말까지 하면 끝이에요. 내 몸이 이 치료를 더 이상 받아내지를 못하거든요. 한동안 쉬었다 다시 하게 될는지, 이것으로 끝일지 알 수가 없어요. 어쩌면 이달이 내 삶의 마지막 달일지도….” 그러면서 말할 기력도 없다면서 힘없이 대화를 끊었다.그런데 그 무렵, 조엘과 비슷한 나이, 비슷한 상태의 여환자 둘이 입원해 있었는데, 둘이 같이 병자성사를 청했다. 그래서 조엘에게도 그들과 함께 병자성사를 받겠느냐고 물었더니, 거의 반갑다는 듯이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둘과 만나 인사하고 친구가 되어, 셋이 함께 성경 구절과 성가를 선택하는 등 준비를 한 후 기쁘게 병자성사를 받았다. 거의 축제 분위기였다. 그 후에도 조엘은 그들을 자주 만나며, 자신의 고통은 뒷전으로 하고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었다. 병자성사의 은총인 듯, 모처럼 이렇게 기운을 찾은 조엘은 이제 평화의 사도가 되어 있었다. 내가 조엘을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과 얼마나 달라졌는지! 복음 말씀처럼 겨자씨가 큰 나무로 훌쩍 자란 것을 보는 것 같은 감격과 감사가 솟아올랐다.하루는 병실로 들어서는 나를 조엘이 만면에 미소를 띠며 반겼다. 오랫동안 볼 수 없었던 그의 미소!“하느님께 말씀드렸어요. 수채화 20장 그릴 시간을 달라고요. 20장이 안 되면 적어도 12장만이라도…. 제 그림을 주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고. 그다음에는 저를 데리고 가셔도 좋다고요. 지금으로서는 매일 그림 그리는 데만 마음을 쓰고 싶어요.” 모두 꽃 그림만을 그릴 거라면서, 나에게도 한 장 그려 줄 텐데, 무슨 꽃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내가 미모사 꽃을 좋아한다고 하자 “아, 그건 장미나 백합보다 그리기 어려운데 그래도 그려볼게요” 하며 방긋 웃는다. 그의 마음속에 이미 20송이 꽃이 피어난 것만 같았다. 조엘의 현재 상태로서는 불가능한 무의촌 진료의 꿈이 이처럼 실현 가능한 꿈으로 바뀌고, 그리고 이를 실현하는 기쁨으로 생기를 찾은 조엘을 보며 나도 마음이 가벼워졌다.그런데 얼마 안 있어, 조엘과 함께 병자성사를 받은 분 중 한 분이 세상을 떠났다. 이 죽음이 조엘에게 남의 일 같지 않을 게 틀림없었고, 자기 죽음을 보는 것 같았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조마조마했지만, 그래도 나는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조엘은 하늘나라에 친구를 두게 되었으니, 그에게 기도하세요. 그가 도와줄 거예요” 그러자 조엘도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미 하늘나라에 친구가 많아요. 아무튼, 내가 꼭 믿는 것은, 하느님이 우리를 절대로 혼자 버려두시지 않는다는 거예요.”이 깊은 신뢰에까지 조엘을 키워 주신 주님! 주님께서 우리 삶의 골목 골목을 함께 걸으시며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는 것이 깊이 느껴진다. “주님, 앞으로도 조엘, 그리고 우리 모두와 늘 함께 계셔 주소서.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그리고 이 세상과 작별하고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그 시간에, 그 후의 영원한 삶 속에…. ” 원진숙 마르가리타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cpbc2020.03.04

가난한 이웃 우선으로 돌본 한국교회 첫 번째 사회교리 실천가[성 요셉의 해, 우리 시대 요셉을 찾아서] (1)최경환 성인 수리산 성지 최경환 성인 묘소. 최양업 신부는 수리산을 들를 때마다 아버지 묘소를 찾아 정성껏 기도하고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10년 교육보다 10달 태교가 더 중요하고 이보다 수태 전 부모의 마음과 몸가짐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성경에서도 “자식들이 아버지의 훈계를 듣고 그대로 실천하면 구원을 받을 것”(집회 3,1 참조)이며 “자녀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고, 아버지는 자녀들을 성나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라”(에페 6,1-4 참조)고 가르친다. 아울러 예수님께서도 부모에게 순종하며 지내어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를 받았다(루카 2,51-52 참조)고 복음서는 증언하고 있다. 보편 교회의 수호자이신 성 요셉의 해를 맞아 자녀들과 교회, 그리고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아버지들의 삶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 첫 회로 하느님의 종 최양업 신부의 아버지 최경환(프란치스코, 1804~1839) 성인을 소개한다.“(최경환) 프란치스코는 참으로 성교(聖敎)하는 사람이라. 너희도 성교를 하려거든 (최경환) 프란치스코같이 하라.”기해박해 당시 신자들과 함께 옥살이하던 한 도적이 교우들에게 한 말이다. 최양업 신부의 아버지 최경환 성인의 성품이 어떠했길래 도적마저 이런 말을 했을까? 최양업 신부를 알기 위해선 그의 아버지 최경환을 살펴야 하듯이 최경환 성인을 알려면 그의 집안 특히 그의 아버지 최인주의 인물됨을 먼저 보아야 한다. 최경환 성인의 아버지, 즉 최양업 신부의 할아버지 최인주는 고결한 사람이었다. 가정도 부유했다. 그는 1791년 신해박해 때 많은 고초를 겪은 후 석방됐다. 그는 순박하고 신심이 뛰어났다. 가난한 친척들과 이웃에게 미리 알아서 도움을 줬다. 또 자기 종들에게 자신을 “영감님”이라 부르지 말고 “아버지”라 부르라고 했다. 최인주는 세 아들에게 세 가지 유언을 남기고 선종했다. △서로 무엇을 줄 때 거저 주어라 △보증을 서거나 혼인 중매를 절대로 서지 마라 △이웃과 항상 화목하게 지내라.(최양업 신부, 1851년 10월 15일자 서한 참조)최양업 신부의 할아버지는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인 후 주님의 가르침대로 신분 차별을 거부하고 하인을 친자녀처럼 사랑으로 보듬고 가난한 이웃과 친지들에게 자선을 아끼지 않았다. 아버지의 신심을 아들 최경환이 그대로 흡수했다.철저한 신앙인최양업 신부는 “(아버지) 프란치스코는 천성적으로 진정한 신앙의 실천자였고, 정직과 순박을 애호하면서도 강력한 성품을 타고나셨다”고 회고했다. 최경환은 어릴 적부터 세상의 오락을 경멸하고 교리를 듣거나 읽는 것만을 즐겼다. 가장이 된 그는 가족이 신앙생활에 냉담하자 고향과 재물을 버리고 신앙생활을 하기 편한 곳으로 이사했다. 최양업 신부는 “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모범을 더욱 철저하게 따르는 것을 유일한 희망으로 삼고 만족해하며 살았던 분”이라고 했다. 최경환은 교회의 가르침과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남들이 감탄할 만큼 형제들과 화목하게 살았다. 어머니께 효도를 다 했고, 아랫사람들을 자상하게 보살폈다. 매일 규칙을 정해 아무리 바쁜 날이라도 영적 독서를 중단하지 않았고, 가족 모두가 함께하는 아침ㆍ저녁 기도를 빠트리지 않았다. 최경환은 배운 것은 많지 않으나 평소 자주 묵상하고 밤낮으로 열심히 신심서적을 읽으며 회장으로서 교우들을 가르치기에 힘썼다. 교리가 해박한 사람으로 소문이 퍼져 박식한 신자와 유식한 사람들까지 그의 강론을 들으러 왔고, 까다롭게 꼬치꼬치 따지는 비신자들까지도 그의 지식에 설복돼 돌아가곤 했다. 최경환은 밭에서 일할 때나 집에서 가족을 돌볼 때나, 길에서 누구와 담화를 할 때도 항상 교리와 신앙에 대한 이야기만 했다. 육신을 가꾸는 일이나, 세속적인 평판이나 관심, 현세의 사정에 대해선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그를 잡으러 온 포졸들에게 밥을 지어 음식을 대접하고, 남루한 차림의 포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옷을 내어주며 입으라고 하자 포졸들이 “이 사람과 이 가족이야말로 진짜 천주학쟁이”라고 감탄했다. 빼어난 자선가최경환 성인은 ‘한국 교회 첫 번째 사회교리 실천가’라는 평을 들을 만큼 가난한 이웃을 우선으로 돌봤다. 자신도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최경환은 항상 주변의 가난한 이들을 백방으로 도왔다. 그는 살림이 어려운 가운데도 절약하고 아껴서 그 돈이나 물건으로 사회적 약자를 돌보았다. 과일을 추수하면 가장 좋은 것을 골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고, 물건을 살 때면 항상 제일 나쁜 것이나 흠 있는 것을 골랐다. 사람들이 왜 그러냐고 나무라자 그는 “제일 나쁜 물건을 사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하지 않겠소? 그런 사람이 없으면 이 불쌍한 장사꾼들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단 말이오”라고 답했다. 한 번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홍주에 있던 땅을 얼마간 팔아 돈을 마련해 돌아오는 길에 빚을 갚지 못한 사람이 돈을 꿔준 사람에게 봉변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본 최경환은 땅 판 돈으로 빚을 갚아주었다. 또 어느 날 최경환이 시장에 갔다가 진흙 개천에 떡판을 엎지르고 앉아 “이 떡을 팔아 어린 자식과 생명을 보존할 텐데 이 지경이 됐다”며 울고 있는 떡장수 할머니를 보고 그 떡값을 다 물어주기도 했다. 최경환은 또 수리산 교우촌 신자들을 설득해 성금을 거두어, 그들과 함께 50리를 걸어 서울로 올라가서 많은 순교자의 시신을 찾아 매장했고, 순교자 가족들을 돕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닮은 아들들최경환 성인의 신심과 덕행은 자식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됐다. 그의 맏아들 최양업 신부는 부친의 헌신적인 삶을 이어받아 자신을 돌보지 않고 1년 중에 한두 달을 제외한 대부분 시간을 전국에 흩어져 있는 교우촌을 돌면서 신자들에게 성사를 베풀었다. 최양업 신부는 1849년 12월 입국한 직후부터 1861년 6월 15일 과로로 선종하기까지 무려 11년 6개월간 이러한 삶을 지속했다. 최경환 성인의 넷째 아들이자 최양업 신부의 셋째 동생인 최우정(바실리오, 1832~1886)은 병인박해 10년 후 조선에 입국한 블랑 주교의 지시에 순명해 여비도 없이 충청, 전라, 경상도 지방을 구걸하며 도보로 흩어져 숨어 사는 교우들을 찾아가 “선교사들이 입국했으니 교회로 모여와 성사를 받고 신앙생활을 재개하라”는 소식을 전했다. 최우정은 “끼니를 너무 많이 걸러 겨울철에 몇 번이고 굶어 죽을 뻔했고, 곳곳에서 겪는 모욕과 구박을 견디어 내며 끝까지 전교 여행을 수행했다”고 밝혔다.최경환 성인의 신심과 덕행은 지금도 후손들에게 이어지고 있다. 최경환 성인의 현손(玄孫)인 최기식(베네딕토, 원주교구 원로사목자, 한국희망재단 이사장) 신부는 ‘썩은 밀알이 되게 하소서’라는 사목 모토를 정하고 사제로서 한평생 사회 약자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또 성인의 후손으로 10명이 넘는 사제와 10명이 넘는 수도자들이 본당과 사회복지, 해외 선교 사목 등을 통해 복음을 선포하고 최경환 성인의 ‘애주애민’(愛主愛民)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1.01.05
코로나19, 교회 쇄신의 기회 돼야안동교구 정희완 신부, 수원가대 학술발표회서 주장 코로나19로 성사 참여가 물리적으로 차단된 신자들의 입장과 고통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교회는 또 한 번 성직주의의 어리석음을 반복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안동교구 가톨릭문화와신학연구소장 정희완 신부는 6일 수원가대 이성과신앙연구소(소장 한민택 신부) 주관으로 열린 학술발표회에서 이같이 주장하며 “코로나19로 인한 격리의 시기에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와 새로운 상상력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식별’을 주제로 열린 이날 학술발표회에서 정 신부는 “전례와 본당 중심의 신앙생활은 지나치게 성직자 의존적이 될 위험성이 있지만, 격리의 시기에 그저 온라인 미사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최선의 사목적인 태도라고 볼 수 없다”고 우려했다. 정 신부는 “격리 시기에 텅 빈 교회 건물의 모습은 숨겨져 있었던 교회의 잠재적인 쇠락과 교회의 암울한 미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교회가 철저하게 자신을 새롭게 쇄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신부는 “신앙을 산다는 것은 어떤 종교적 관습과 관행, 규범을 기계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하느님의 뜻을 찾고 하느님의 시선으로 세상과 삶을 바라보고 하느님을 닮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라면서 “신앙생활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전례 성사로서의 미사와 삶의 성사로서의 미사는 늘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수원가대 이성과신앙연구소(소장 한민택 신부) 주관으로 열린 이번 학술발표회에는 정 신부를 비롯해 수원가대 교수들인 한민택 신부가 ‘기초신학의 중심 주제로서의 식별’을, 나호준 신부가 ‘식별에 대한 성경신학적 제안: 다윗이 한 짓이 주님의 눈에 거슬렸다’을, 김의태 신부가 ‘세계주교시노드 규정에서 드러난 교회의 식별 자세, 교황령 「주교들의 친교」를 중심으로’를 주제 발표했다. 또 윤주현(가르멜수도회, 수원가대 교수) 신부와 정제천(예수회) 신부가 ‘영성신학에서 본 영적 식별: 식별 기준과 수단 그리고 영의 표지’, ‘성 이냐시오의 영적 식별과 공동 식별: 교회의 ‘공동합의성’을 위한 영성적 기초’를 각각 다뤘다. 이날 학술발표회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학교 자체 행사로 진행됐으며 내용은 유튜브로 중계됐다.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평화신문2020.05.13

악마도 성경 인용할 줄 안다악마 이야기 - 교회를 분열시키려는 악한 영 유럽 교회는 악마를 경계하라는 의미로 성당 지붕 귀퉁이나 빗물받이 출구에 ‘가고일(Gargoyle)’이라 불리는 기괴한 모습의 악마 조각상을 설치했다. 구강 청결액을 머금다가 뱉어내는 가글이란 용어는 이 괴수가 빗물을 토해내는 모습에서 유래한다. 하지만 악마는 이처럼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기괴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는다. 출처= pixabay 악마는 교묘하다. 뿔과 꼬리가 달려 누구나 알아챌 수 있는 악마는 동화책에나 나온다. 악마가 그런 기괴한 몰골로 나타나 유혹하면 거기에 넘어갈 바보는 없다. 악마는 우리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창세 4,7) 기회를 엿보다 틈이 보이면 비집고 들어온다. 때로는 ‘빛의 천사’(2코린 11,14)로 위장하고 다가온다. 성경학자 뺨치는 실력으로 하느님 말씀을 들먹이면서 부와 권력, 명예를 약속한다.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악덕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자신이 쌓은 부는 신의 축복이라며 야곱이 부자가 된 이야기(창세 30)를 늘어놓는다. 그러자 안토니오는 “악마도 제 목적을 위해서 성경을 인용할 줄 안다”고 반박한다. 악마는 광야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유혹할 때도 성경을 인용했다. 악마는 예수를 거룩한 도성 꼭대기에 데리고 가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라고 말했다. 그때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시편 91,11-12)라는 성구로 예수를 안심시키려고 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악마의 유혹은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유혹은 본질적으로 도덕적인 외양을 띠고 있다. 유혹은 우리를 노골적으로 악으로 초대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너무 서툰 짓일 것이다.”(「나자렛 예수」)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도 재미있는 전승으로 악마의 은밀한 공격성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300명의 수도승이 구도하던 어느 수도원에서 수도승들은 악마의 침입을 막아 보려고 아침에는 흰 말, 낯에는 붉은 말, 저녁에는 검은 말을 타고 번(番)을 돌았더니, 그 악마는 대수도원장의 모습으로 들어오더라.”(「영혼의 자서전」) 구약 전통에서 악마는 하느님과 대적하는 악한 영, ‘사탄’으로 불린다. 사탄은 ‘방해하다’, ‘반대하다’라는 히브리어다. 악마의 속셈은 분명하다. 인간을 하느님에게서 떼어놓고, 자신이 그분의 권세와 영광을 차지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얼굴과 수법은 다양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특히 공동체 분열을 조장하는 세력을 악한 영이라고 본다. “뒷담화만 안 해도 성인이 된다”는 유행어는 이러한 인식의 가벼운 표현이다. “분열은 악마가 교회를 내부에서 파괴하려고 손에 쥐고 있는 무기이다. 악마는 두 종류의 무기를 갖고 있다. 분열과 돈이다. 악마는 주머니로 들어와서 혀를 통해, 분열하는 험담을 통해 교회를 파괴한다.”(2016년 신임 주교 세미나 연설)교황은 10월 묵주기도성월에 “교회 공동체를 분열시키려는 악마의 공격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해 달라는” 지향으로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긴급히 요청했다. 이 요청은 최근 교회를 곤혹스럽게 하는 성직자 성추문 사태와 관련이 있다. 교황은 이 사태에 대해 누구보다 무겁게 공동체적 책임을 통감해야 할 고위 성직자 몇 명이 교회 분열을 조장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다니는 데 대해 통탄하고 있다. 교황은 이들을 “추문을 만들려고 트집을 잡는 듯이 보이는 거대한 고발자”라고 비판했다. 또 “우리가 비난하고, 저주하고, 다른 이들에게 해를 입히려고 하면 파괴자가 되고, 자비를 결코 살아본 적이 없는 거대한 고발자(사탄)의 논리에 빠지게 된다”며 이에 대항하는 두 가지 힘을 거론했다. 하나는 기도다. 다른 하나는 세상의 정신과 다른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따르는 것이다. 교황은 “묵주기도는 제 인생을 동반했던 기도이며, 단순한 사람들과 성인들의 기도입니다… 성모님은 우리의 길을 알려주시는 어머니이십니다”라고 트위터를 통해 고백한 바 있다.교황의 이 요청을 듣고 나온 국제 기도 네트워크 사도직 대표 프레데릭 포르노스 신부는 바티칸 뉴스 인터뷰에서 “악은 유혹자이다. 처음에는 좋은 의도와 생각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지만, 천천히 분열과 거짓 등 악한 의지로 사람을 이끈다”고 말했다. 이어 이 힘든 시기에 성모의 도우심을 청하자는 것이 교황의 뜻이라고 전했다. 교황은 묵주기도 끝에 마리아와 미카엘 대천사에게 드리는 전통적 기도(1면 기도문 참조)를 바쳐 달라고 당부했다고 포르노스 신부는 덧붙였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평화신문2018.10.10
말씀의 현재화](//cpbc.co.kr/CMS/newspaper/2019/09/rc/761549_1.1_titleImage_1.jpg)
[수도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5)말씀의 현재화살아계신 하느님을 지금 만나는 길, 성독 허성준 신부 프란치스코 교황은 올해 파스카 성야 미사에서 신자들에게 박물관에 전시된 신앙을 갖지 말라고 강하게 권고했다. 왜냐하면, 주님은 과거의 인물이 아니며 또한 역사책에서 알게 되는 분이 아니라, 삶에서 직접 만나는 구체적인 분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면서 정작 도움이 필요할 때만 주님께 나아간다. 어찌 보면 우리가 찾는 것은 살아 계신 주님이 아니라 우리의 필요들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죽은 이들 가운데서 살아 계신 분을 찾는 것과 같다. 우리는 결코 부활하신 분에게 우리 삶의 중심 자리를 내어드리는 일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이런 측면에서 살아 계신 주님과의 만남을 위해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그 말씀을 우리의 삶에 인격화, 내면화시켜야 한다. 이러한 것을 도와주는 구체적인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수도 전통에서 알려준 렉시오 디비나 수행, 즉 ‘성독(聖讀)’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더 이상 죽은 문자 속에 가두어 두어서는 안 된다. 하느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과 일상의 삶 안으로 가져오고,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 이때 하느님의 말씀은 더 이상 과거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그것을 넘어 현재의 우리의 구체적인 삶으로 다가오게 된다. 바로 이것이 말씀의 현재화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을 현재화하셨는지 살펴볼 수 있다. 다음의 예는 많은 것을 우리에게 깨닫게 한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는 나자렛 회당에 들어가시어 성경을 읽기 위해서 시중드는 이에게 두루마리를 받아들고 이사야서를 찾아 봉독하셨다. 그리고 다시 두루마리를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고 당신 자리에 와서 앉으시자, 모든 사람의 눈이 그분에게로 쏠리게 되었다. 바로 그때 그분께서는 그들을 둘러보시며 다음과 같은 결정적인 한 말씀을 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예수님은 그 옛날 이사야 예언자가 예언했던 말씀을 당신이 머무시는 그 시간과 그곳으로 가져오셨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그 옛날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그리고 지금 이 시간으로(Hic et Nunc) 끊임없이 가져와야 한다. 그래야 말씀은 더 이상 과거라는 무덤에 갇히지 않고 우리에게 다가와 지금 여기에 살아 있게 된다. 이것을 도와주는 구체적인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성독 수행이다.기도를 동반한 성경 독서를 통해서 한 말씀을 선택하고, 그 한 말씀을 온종일 되뇌다 보면, 그 말씀의 깊은 영적 의미가 불현듯 떠오르기도 한다. 때로는 그 말씀이 우리 내면 깊이 다가와 그 옛날 사막 교부들이 체험했듯이, 우리 마음 안에 뜨거움과 통회의 눈물을 가져오기도 한다. 이로써 그 말씀은 2000년 전의 죽은 말씀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새롭게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선포하시는 살아 계신 말씀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렉시오 디비나(성독) 수행을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덧 말씀과의 인격적인 만남도 가능하게 된다. 그때 우리는 더 이상 삶과 영성이 분리되지 않고, 일상 안에서 말씀과 함께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일이 가능하게 된다. 그러므로 렉시오 디비나를 통해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우리는 끊임없이 이와 같은 방법으로 말씀을 우리가 현재 머물고 있는 지금 그리고 이곳으로 가져와야 한다.허성준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평화신문2019.09.03

‘먹보요 술꾼’인 예수님과 막걸리 한 잔![엉클 죠의 바티칸산책] (15)갈릴래아로 관상 순례를 떠나다 예수님은 갈릴래아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사진 속 언덕 어딘가에서 병든 이들을 고쳐주시고, 배고픈 이들을 위해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다. 얼굴에 와 닿는 호숫가 산들바람이 예수님 손길처럼 포근하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아, 갈릴래아! 예수님이 꿈을 키운 땅!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새로운 삶을 시작한 땅!성경 공부에 빠져들면서 저의 버킷리스트 1호가 바뀌었습니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초원에서 이스라엘의 갈릴래아로.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묵상하는 사순 시기, 저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갈릴래아로 갑니다. 관상 기도하는 요령으로 ‘관상(觀想) 순례’를 떠납니다. 2000년 전 그분이 사셨던 갈릴래아를 맘껏 체험해 봅니다. 왜 갈릴래아냐구요? 바로 이 말씀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수난당하기 전 제자들에게 이렇게 예고합니다. “나는 되살아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갈 것이다.”(마태 26,32) 부활하신 다음에도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시어 이렇게 당부하십니다.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8,10) 갈릴래아, 인간 예수 삶의 전부 ‘인간 예수’에게 갈릴래아는 삶의 전부입니다. 부활 이전의 삶도, 부활 이후의 삶도 갈릴래아입니다. 예루살렘은 일시적인 과정일 뿐입니다. 예수님에게 갈릴래아는 무엇이었을까. 사순 시기가 되면 이 화두가 제 머릿속을 지배합니다.갈릴래아는 특별한 공간입니다. 하느님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가 겹쳐 있는 유일한 땅입니다. 예수님은 탄생(베들레헴)과 죽음(예루살렘) 등을 제외한 삶 전체를 여기에서 보냈습니다. 저의 관상 순례는 항상 카파르나움에서 시작합니다. 예수님 공생활의 거점입니다. 기적 대부분이 이 지역에서 일어났습니다. 드넓은 대지에 웅장한 파노라마가 펼쳐집니다. 그분이 보았을 밤하늘 별은 지금도 총총히 빛나고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던 푸른 풀밭에 앉아 봅니다. 많은 사람이 그분에게 몰려들고…. 나도 그 순간 사람들 틈에 끼어 그분이 주시는 빵과 물고기를 얻어먹습니다. 갈릴래아에 가면 ‘인간 예수’를 만날 수 있어 좋습니다. 성경에 잠깐잠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만, 갈릴래아의 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은 인성을 취하셨다는 사실이 큰 위안을 줍니다. 관상 순례가 즐거운 것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믿음이 겨자씨만도 못하다고 야단맞기도 하고, “너 어떻게 그따위로 사느냐”고 호된 질책도 받지만,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습니다. ‘먹보요 술꾼’(마태 11,19)인 예수님을 만나 막걸리 한잔 하며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장면이 펼쳐집니다. 저의 관상 순례에는 고리타분한 엄숙주의가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 ‘시범 지역’ 5년 전 광교산 기슭 ‘말씀의 집’에서 30일간의 영신수련을 마치던 날, 지도신부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갈릴래아로 갑시다.” 갈릴래아로 가자고? 왜 하필 갈릴래아? 신부님에게 물어봤습니다. “신부님께서 가라고 하신 갈릴래아가 대체 어디입니까?” “형제님이 지금 사는 바로 그곳이 갈릴래아 아닐까요? 예수님이 언제 형제님에게 찾아올지 모릅니다. 그분의 가르침을 묵묵히 실천하면서 기다리십시오.” 어이쿠! 내가 또다시 엮이고 말았구나. 이런 질문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 아닌 후회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갈릴래아에서 이루기 위해 이곳에 오셨습니다. 당시 갈릴래아는 하느님 나라 ‘시범 지역’이었습니다. 갈릴래아에 하느님 나라를 우선 건설한 다음, 이곳을 모델 삼아 땅끝까지 하느님 나라를 건설한다는 전략이 있었던 것 아닐까요. 무지한 인간들이 그분의 뜻을 알 턱이 없었지요. 예수님은 그 모진 수난을 당하셨으면서도, 이 땅에 다시 오신다셨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곳은 어디일까요? 다시 갈릴래아? 한반도는 아닐까요? 갖가지 상상을 해봅니다. 예수님께서 세우려 하신 하느님 나라는 어떤 모습일까.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림을 그려 주셨습니다.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뜨겁게 타오르던 땅은 늪이 되고 바싹 마른 땅은 샘터가 되며 승냥이들이 살던 곳에는 풀 대신 갈대와 왕골이 자라리라.… 주님께서 해방시키신 이들만 그리로 돌아오리라. 그들은 환호하며 시온에 들어서리니 끝없는 즐거움이 그들 머리 위에 넘치고 기쁨과 즐거움이 그들과 함께하여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라.”(이사 35,5-7.10)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 cpbc2020.03.25
[장현규 수녀의 사랑의 발걸음] 12. 크고 작은 것이 그리 중요한가?프랑스 성요한 사도 수녀회 장현규(마리스텔라) 수녀 2019년 초의 일이다. 당시 독감으로 한 주 동안 환자들을 방문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다음 주 수요일 환자를 방문하는 날이 되어서는 아침부터 눈이 쉼 없이 내려 한 치 앞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의 날씨였다.베르사유의 수녀원 앞에는 넓은 언덕 위로 수많은 나무가 숲을 이룬 큰 공원이 있다. 나뭇가지마다 은빛 눈이 떨어질 듯 말듯 가느다랗게 쌓여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숲이 온통 눈으로 뒤덮여 마치 이곳이 ‘백설의 나라’로 바뀌어버린 듯 착각마저 들었다. 베르사유 시민들과 우리 수녀들에게 안겨주는 찬란한 아름다움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그러나 찻길과 인도는 걸어 다니기가 위험스러울 정도였다. 베르사유에서 오베흐빌리에까지 먼 거리를 그래도 가야 하는 건가. 환자들을 위해선 가야 하는데…. 망설이던 끝에 자매 수녀들에게 물으니, 즉시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답한다.지난주에도 못 갔고, 이번 주에 또 못 가게 된다는 것이 몹시 안타깝기만 했고, 병상에서 힘들어하는 환자들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20년 가까운 세월을 환자들을 만나온, 나의 수도생활의 큰 부분이 된 환자들과의 만남이 2주 넘게 단절돼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그러다 이틀 후인 금요일이 됐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눈도 더는 오지 않고, 조금 흐리긴 했지만, 밖을 나가기 충분했다. 길을 나서기로 마음먹었다.1시간이 넘는 ‘전철 여행’ 끝에 병원에 도착하니 피로가 좀 몰려오는 듯했다. 그런데 환자 한 명 한 명을 만나고 나면 신기하게도 피로가 확 사라짐을 매번 느낀다. 주님이 주시는 기분 좋은 오묘함이다. 특히 병실로 들어가는 나를 환한 미소로 반기며 기뻐하는 그들의 선한 모습이 나의 피로를 바람처럼 날아가게 해준다. 만남을 통해 좋은 느낌을 받는다는 것은 환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게 결코 아닌 것이다. 주님 안에 서로의 만남이 마냥 좋고, 반가운 일이다.그래서였나. 나는 이날 30여 명의 환자를 만났다. 보통 때보다 훨씬 많은 숫자다. 가톨릭 신자와 개신교인이 각각 1명이었고, 그 외에는 모두 무슬림들이었다. 그중 여든이 넘어 보이는 한 할머니는 불어를 잘 못하는 알제리인이었다. 할머니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계속 하신다. 그러나 기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얼굴이 순수하기만 하다. 실제 말뜻을 알아듣기 어려운데도 할머니와 나는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할머니가 침대 옆 탁자 위에 놓인 귤들을 가리킨다. 내게 주고 싶어 하는 눈치다. 나는 오후 늦은 시간에는 귤을 먹지 않지만, 할머니의 정성스러운 마음을 받아들여 하나를 집어서 보이니 할머니의 표정이 이내 흡족해졌다.무슬림이든, 그리스도인이든, 또는 종교가 없는 이들이라 해도 대화는 우리의 관계를 막지 못한다. 아니, 더욱 풍요롭게 한다. 작은 사과 하나라도 건네고 싶어하는 그 마음 안에 전에는 전혀 몰랐던 사이에서 정이 생긴다. 그 정으로 나도 귤 하나, 동전 한 닢을 기꺼이 받곤 한다. 그것이 그들의 마음이고, 그 안에 담긴 사랑이며, 그 사랑은 곧 내 마음 안에 흡수된다.크고 작은 것이 그리 중요한가. 무엇이든 줄 수 있는 게 없다 해도 따뜻한 웃음 하나라도 건넨다면, 그것이 환자와 나 사이의 큰 나눔이 아닌가. 성경 말씀은 오늘도 내게 꼭 맞는 가르침을 준다.“여러분은 진리에 순종함으로써 영혼이 깨끗해져 진실한 형제애를 실천하게 되었으니, 깨끗한 마음으로 서로 한결같이 사랑하십시오.”(1베드 1,22) cpbc2020.07.22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49) 안티오키아 귀환과 아폴로의 선교 (18,18-28)](//cpbc.co.kr/CMS/newspaper/2020/01/rc/771863_1.3_titleImage_1.jpg)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49) 안티오키아 귀환과 아폴로의 선교 (18,18-28)다시 선교여행 떠나는 바오로, 새로운 복음 선포자 아폴로 바오로는 코린토에서 1년 6개월 이상 지내면서 하느님 말씀을 전한 후 에페소를 거쳐 예루살렘 교회에 가서 인사한 후 안티오키아로 내려감으로써 두 번째 선교 여행을 마무리한다. 사진은 바오로가 코린토를 떠나기 전에 머리를 깎은 켕크레애 항구 유적. 바오로는 예루살렘을 거쳐 안티오키아 교회로 돌아갔다가 세 번째 선교 여행을 시작하고, 에페소에서는 아폴로가 활발하게 선교 활동을 펼칩니다. 안티오키아 귀환과 재출발(18,18-23)바오로는 코린토에서 한동안 더 머물다가 시리아로 갑니다. 시리아는 선교 여행을 출발한 안티오키아 교회가 있는 지역이지요. 바오로는 켕크레애에서 머리를 깎고 프리스킬라와 아퀼라 부부를 데리고 배를 타고 시리아로 향합니다.(18,18) 켕크레애는 코린토에 있던 두 항구 중 하나로 에게해 쪽에 있는 항구입니다. 오늘날에는 많은 부분이 바닷물에 잠긴 유적만 일부 볼 수 있지만, 당시에는 로마제국에서 가장 번잡한 항구에 속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오로는 떠나기 전에 머리를 깎습니다. “서원한 일이 있었으므로… 머리를 깎았다”고 하는데, 학자들은 이 서원을 구약성경 민수기에 나오는 ‘나지르인 서원’으로 보기도 합니다. 민수기 6장 1-21절에 따르면, 자신을 주님께 바치기로 하고 평생 또는 한시적으로 서원하는 것을 나지르인 서원이라고 부릅니다. 이 나지르인 서원을 할 경우, 서원 기간 내내 머리털이 자라도록 내버려 둬야 합니다. 그렇다면 전에 서원한 일이 있었다는 표현은 이제 그 서원 기간이 끝나서 머리를 깎았다는 것이 됩니다. 바오로는 율법에 충실한 바리사이 출신이었기에 회심한 후에도 새로운 길, 곧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율법을 지키는 관습을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리스킬라와 아퀼라 부부와 함께 켕크레애 항구를 떠난 바오로는 에페소에 도착하자 두 사람을 그곳에 따로 남겨두고 혼자 회당으로 가서 유다인들과 토론합니다.(18,19) 당시 에페소는 오늘날의 터키 땅 서쪽 에게해와 맞닿아 있는 지역인 아시아의 수도였습니다. 주민이 20만 명 이상 거주하는 큰 도시로서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였지요. 에페소는 큰 상업도시여서 천막 짜는 일을 생업으로 하는 이 부부에게는 생업을 유지하기에 좋은 곳이었을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바오로는 이 독실한 부부에게 에페소에서 선교 거점을 마련하도록 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 많은 유다인이 살고 있었기에 바오로는 여느 도시에서 선교할 때와 마찬가지로 에페소에 도착하자 회당을 찾아 유다인들과 토론을 벌입니다. 그러나 바오로는 곧 에페소를 떠납니다. 유다인들은 바오로에게 좀 더 오래 머물러주기를 청했지만 “하느님께서 원하시면 여러분에게 다시 오겠습니다” 하고 작별인사를 한 후 배를 타고 에페소를 떠나 카이사리아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교회에 인사한 다음 안티오키아로 내려갑니다.(18,20-22) 예루살렘에 올라간 것은 어머니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자신의 선교 여행에 관해 보고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예루살렘에서 바오로가 구체적으로 누구를 만났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안티오키아로 다시 돌아옴으로써 바오로의 2차 선교 여행은 끝이 납니다. 학자들은 이 두 번째 선교 여행이 기원후 49년 가을부터 52년 가을까지 약 3년에 걸쳐 이뤄졌다고 추정합니다. 바오로는 안티오키아에서 얼마 동안 지낸 뒤에 다시 길을 떠나, 갈라티아 지방과 프리기아를 차례로 거쳐 가면서 모든 제자의 힘을 북돋아 줍니다.(18,23) 바오로가 세 번째 선교 여행을 시작한 것입니다. 바오로가 거쳐 간 갈라티아와 프리기아는 오늘날 터키 땅 내륙 지방입니다. 1ㆍ2차 선교 여행 때에 갔던 곳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3차 선교 여행을 떠나 그곳 신자들에게 힘을 북돋아 준 것입니다. 바오로의 3차 선교 여행은 53년쯤에 시작됐다고 학자들은 추정합니다. 아폴로의 에페소 선교(18,24-28)한편,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인 아폴로라는 유다인이 에페소에 와서 선교 활동을 펼칩니다. 박학하고 성경에 정통한 그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주님의 길’ 혹은 ‘새로운 길’을 배워서 알고 있었기에 열정을 가지고 예수님에 관해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는 요한의 세례만을 알고 있었습니다. 즉 주님께서 사도들을 통해 분부하신 세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 채 예수님에 관해 가르친 것입니다. 아폴로가 회당에서 설교하는 것을 들은 프리스킬라와 아퀼라는 그를 데리고 가서 하느님의 길, 즉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새로운 길에 대해 더 정확하게 설명해 줍니다.(18,24-26) 그 후 아폴로가 그리스 땅인 아카이아로 건너가고 싶어 하자 에페소의 신자들이 그를 격려하면서 아카이아의 제자들에게 아폴로를 영접해 달라는 편지를 써 보냅니다. 아카이아는 코린토가 수도인 그리스 땅 서남쪽 지역입니다. 코린토로 건너간 아폴로는 성경을 바탕으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논증하면서 유다인들을 반박해 이미 신자가 된 코린토의 형제들에게 큰 도움을 줍니다.(18,27-28) 코린토는 바오로가 1년 6개월 이상 머무르면서 선교 활동을 펼쳤던 곳으로 이미 적지 않은 신자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또한 새로운 길을 반대하는 유다인들도 많았기 때문에 특히 바오로가 코린토를 떠난 후에 코린토 신자들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폴로가 와서 예수님이 바로 메시아시라며 확실하고 대담하게 유다인들을 논박하니 코린토 신자들에게는 큰 힘이 됐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폴로의 아카이아 선교 활동은 코린토 신자들에게는 분열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바오로는 에페소에서 코린토 신자들에게 써 보낸 첫째 편지에서 “아폴로 편이다, 바오로 편이다, 베드로 편이다” 하고 갈라져 있는 코린토 교회의 분열을 질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1코린 1,10-17 참조)생각해봅시다1. 아폴로는 성경에 정통한 유다인이었지만 사도들로부터 직접 배운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간접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듣고 새로운 길을 배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부족한 점이 있었지만, 열정을 가지고 새로운 길을 정확하게 가르칩니다. 아폴로의 이런 활동을 보면 자발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여 목숨을 바쳐가며 증언한 우리의 첫 신앙 선조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조금 부족함이 있어도 진리에 대한 깊은 확신과 사랑이 있으면 부족함을 채울 것입니다.2. 프리스킬라와 아퀼라는 아폴로의 부족함을 보았습니다. 이 부부는 자기들보다 새로운 길에 대해 잘 모르는 유다인이 새로운 길을 전파하고 나서는 것을 보았지만 제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들이 아는 바를 더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 아폴로가 코린토 선교를 희망하자 에페소 형제들은 격려하며 편지를 써 주기까지 합니다. 프리스킬라와 아퀼라 부부도 그 형제들 가운데 있었을 것입니다. 프리스킬라와 아퀼라 부부가 보여준 행위는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요한은 낯선 사람이 스승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고 막으려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 요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반대하지 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루카 9,50) 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alfonso84@hanmail.net cpbc2020.01.29

조선의 선비들, 봄비에 속옷 젖듯이 서학에 젖어들다[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1. 칠극(七克) 이야기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로 만나게 되었다. 다산 정약용과 천주교 신앙 문제를 파고들어 지난해에 「파란」이란 책을 펴냈다. 당시, 공부를 위해 초기 교회사 자료를 살피는데, 눈길이 가는 대목이 많았다. 뭔가 분명 앞뒤로 맥락이 있는데, 쉬 알기가 어려웠다. 모든 일에는 행간이 있다. 행간을 뺀 정보는 죽은 정보다. 행간이 정보에 그림자를 드리워야, 그 정보가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중국 천주교회는 조선 교회의 놀라운 성장과 잔혹한 박해에도 꺾이지 않는 정신에 놀라, 「고려주증(高麗主證)」, 「고려치명사략(高麗致命史略)」, 「상재상서(上宰相書)」 같은 한문 책자를 잇달아 펴내며 경이의 눈길을 보냈다. 신앙 선조들이 한문으로 쓴 각종 자료는 아직도 살펴야 할 구석이 많다. 이번 연재가 초기 교회사의 박제된 풍경 위에 몇 개의 그림자를 앉히는 여정이 되었으면 한다.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나오는 북경 풍경해마다 조선의 사절이 북경을 찾았다. 선무문(宣武門) 밖 쇼핑가인 유리창(琉璃廠) 거리로 나서면 없는 물건이 없었다. 서점만 수십 개에다 서점마다 몇만 권의 책들이 천장까지 쌓여있었다. 태엽만 감으면 희한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오르골뿐 아니라 자명종(自鳴鐘)이나 철현금(鐵絃琴) 같은 서양 물건들이 즐비했다. 거리를 빠져나와 조금만 더 가면 고딕식으로 높이 솟은 성당이 나왔다. 처음 들어본 파이프 오르간에서는 천상의 소리가 났다.서양화도 여기서 처음 봤다. 멀리서 보면 그림 속 인물에 정령이 담겨 내 혼을 빨아들일 듯 쏘아보았다. 무서워서 저만치 반대편으로 몰래 가서 흘깃 보면 그림 속 눈동자가 어느새 나를 따라왔다. 가까이 가서 보면 거칠게 물감을 덧칠한 것뿐인데 몇 발짝만 물러서면 요놈하고 그림이 살아났다. 천장 벽화를 올려다보던 사람들은 오색 구름 사이로 살이 포동포동한 아기 천사들이 나는 모습을 보다가, 금세 바닥으로 떨어질 것만 같아 당황해서 손을 뻗어 받으려 들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나오는 풍경이다. 성당 인근 관상감(觀象監) 옥상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천문 의기(儀器)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 신통한 서양의 역법이 다 저기서 나왔을 것이었다. 진작에 조선에서 이미 「기하원본」 같은 서양 책을 읽었던 터라 그 작동의 원리에 호기심이 더 쏠렸다. 금단의 구역인 이곳에 한 번이라도 들어가 보려고 문지기에게 조선에서 가져간 청심환을 찔러주기도 했다. 성당은 조선 사행의 필수 관광 코스였다. 성당에서는 코가 높고 눈이 깊은 서양 신부들이 멀리 조선에서 찾아온 손님을 맞아주었다. 신부는 조선 사행에게 선물로 그림도 주고 책도 주었다. 그렇게 받아온 서양 책을 읽어 보았다. 한문이라 낯설지 않고 재미있었다. 북경을 다녀온 젊은이들은 부쩍 말수가 줄거나, 아니면 말이 많아졌다. 처음엔 서양의 놀라운 문물에 압도되다가 차츰 그 너머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무엇이 저들을 저토록 놀랍게 만들었을까? 그 같은 과학적 진보를 가능케 한 배경 사유가 부쩍 궁금해졌다. 마태오 리치의 「교우론」에 정신 번쩍마태오 리치가 쓴 「교우론(交友論)」은 서양 선비들의 우정에 대해 쓴 책이었다. 첫 장을 열자 “벗이란 남이 아닌 나의 절반이니, 바로 제2의 나다. 그러므로 벗 보기를 자기처럼 대해야 한다.(吾友非他, 卽我之半, 乃第二我也. 故當視友如己言)”는 말이 나왔다. 벗이 제2의 나란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늘 운이 좋아 나쁜 일이 없다면, 어찌 벗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알겠는가?(如我恒幸無禍, 豈識友之眞否哉)” 이런 식의 화법은 낯설어 유난히 귀에 쏙 들어왔다. 안 그래도 마음 붙일 데 없어 몰려다니던 벗 사이에도 지켜야 할 도리가 있음을 처음 알았다. 알렉산더 대왕이 정벌을 가서 전리품을 노획하면 신하들에게 모두 나눠주고 자신은 하나도 갖지 않았다. 적국의 왕 다리우스가 비웃으며 물었다. “그대의 창고는 어디에 있소?” “내 친구의 마음속에 있소.” 책 속의 이런 예화에 그들은 열광했다. 여기에 꽂힌 연암 박지원과 이덕무, 박제가 등의 글에 갑자기 벗과의 우정을 예찬한 글이 넘쳐났다. 박지원은 벗을 ‘비기지제(匪氣之弟)’ 즉 피를 나누지 않은 형제, ‘불실지처(不室之妻)’ 곧 한집에 살지 않는 아내에 견주면서 우정의 논의를 한껏 확장시켰다.서양 과학이 궁금해서 수학이나 기하학, 역법서를 구해 읽으면, 앞쪽 서문에 늘 우주를 주재하는 천주의 이야기가 나왔다. 천주교의 교리를 문답체로 설명한 「천주실의(天主實義)」도 흥미로웠지만, 「칠극(七克)」 같은 책은 어록체 산문으로 구성되어 「논어」를 읽는 느낌에 더 가까웠다. 유가의 수양서로 읽더라도 조금의 손색이 없었다. 책 속에 수없이 등장하는 서양 현자들의 독특한 비유와 생기 넘치는 화법은 조목조목 가슴에 와 닿아 새로운 사유의 문을 열었다. 책 속에 소개한 수많은 일화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권 3 「해탐」 편에는 앞서 「교우론」에서 보았던 알렉산더의 비슷하지만 다른 예화도 나온다. 그는 스스로 “나는 왕이 된 것이 즐겁다. 남에게 베풀 수 있어 기쁘다”고 말하며 아낌없이 나눠주곤 했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얻은 것을 다 남에게 주시면 왕께는 무엇이 남습니까?” 알렉산더의 대답은 이랬다. “남에게 주는 즐거움이 남는다네.” 이 일화를 소개한 뒤 판토하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나라 사람들이 모두 왕을 아끼며 따랐다.”「칠극」은 예수회 판토하(Didace De Pantoja, 1571~1618) 신부가 1614년 북경에서 출판한 책이다. 서문에서 “대저 마음의 병이 일곱 가지요, 마음을 치료하는 약이 일곱 가지다. 핵심은 모두 묵은 것을 없애고 새것을 쌓는 것(消舊積新)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오만(傲)은 겸손으로 이기고, 질투(妬)는 어짊과 사랑으로 극복하며, 탐욕(貪)은 베풂으로 풀고, 분노(忿)는 인내로 가라앉힌다. 욕심()은 절제로 막으며, 음란함(淫)은 정결로 차단하고, 게으름(怠)은 부지런함으로 넘어서야 한다며, 모두 7장으로 구분하여 그 단계와 방법을 적절한 예시와 함께 대증 처방을 내리듯 친절하게 설명했다. 그 내용은 지금 읽어도 깊이 와 닿아 진한 감동을 준다. 이익, “극기복례의 공부에 크게 도움”성호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칠극」이란 것은 서양의 판토하가 지은 것인데 바로 우리 유가의 극기(克己)의 주장이다. 절목이 많고 조목이 차례가 있다. 비유가 절실해서 간혹 우리 유가에서 밝히지 못한 것도 있으므로 극기복례의 공부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했을 정도였다. 대학자 이익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책을 읽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고, 오히려 꼭 읽어야 할 책으로까지 여겨졌다. 「칠극」은 한문본으로 300쪽이 훌쩍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그 속에는 사람을 부끄럽게 하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잠언들이 7개의 죄종(罪宗)으로 갈래를 나눠 빼곡하게 들어있다. “재를 부는 사람은 스스로 제 얼굴을 더럽히고 눈을 어지럽게 만든다. 남을 헐뜯는 사람은 스스로 그 마음을 더럽히고, 그 정신을 어둡게 만든다.(吹灰者, 自汚其面, 迷其目. 毁人者, 自汚其心, 闇其靈神)” “색욕은 젊어서는 즐겨도 늙으면 식는다. 분노는 참으면 없어지고 고요하면 물러난다. 하지만 교만은 한번 마음에 들어오면 언제 어디서고 붙어 다닌다. 몸이 늙어도 교만은 시들지 않는다.(如色慾少則, 老則息. 如忿怒, 忍則去, 靜則却. 惟傲一納於心, 時處附着焉. 身能老而傲不衰)” “비방을 지어내는 사람은 돼지와 같다. 발을 두어야 할 곳에 입을 두기 때문이다.(造者如豕. 置足焉卽置口矣)” “세상의 재물은 거짓된 벗과 같아, 편안할 때는 나를 따르다가, 위태로워지면 나를 버린다.(世財如僞友. 安則從我, 危則遺我矣)” “지혜로운 사람이 귀를 기울여 칭찬하는 말을 들으면 어리석게 되고, 듣고 나서 혼자 기뻐하면 미치광이가 된다.(智者傾耳以聽譽則愚, 聽而自喜則狂也)” 이 같은 지혜의 말씀들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알렉산더 대왕에서 세네카와 그레고리오 성인 등 서양 현자와 성인들의 마음에 콕콕 박히는 잠언과 함께 유가 경전도 인용해서 거부감을 줄였다. 그러다가 끝에는 성경 말씀 한 단락을 끼워 넣는다. “술은 음탕을 부추기는 장작이다. 술을 마구 마시면서 제멋대로 음란하지 않은 경우란 드물다. 그래서 성경에 ‘삼가서 술에 취하지 말라. 음란함이 그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酒淫薪也. 恣酒不恣淫, 鮮矣. 經云: ‘愼勿酒醉, 淫在其中故也)” 성경은 에페소서 5장 18절의 “술 취하지 마십시오. 방탕한 생활이 거기에서 옵니다”라고 한 대목을 인용했다. 이런 잠언들과 예화들을 수신서(修身書)로 알고 거부감 없이 읽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천주교의 교리가 내면화되어 있었다. 서양의 과학이 궁금해서 「기하원본(幾何原本)」이나 「기기도설(奇器圖說)」 같은 책을 찾아 읽고, 그들의 정신세계가 알고 싶어 「칠극」을 읽다가, 조선의 선비들은 봄비에 속옷 젖듯이 서학에 조금씩 젖어들었다.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 cpbc2020.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