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사·봉사 참여보다 중요한 ‘생각하는’ 신앙 생활내 삶에 열린 하늘 /한민택 지음 / 생활성서사 우리는 왜 미사에 참여하는가. 성경은 왜 읽고, 성탄 때 기뻐하는 마음은 또 어디서 일어나는 것일까.신앙인의 삶은 일면 ‘의미 찾기’다. 하느님을 찾고, 예수님이 비천한 인간에게 왜 오셨는지 알아가는 것,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주님과 자유롭게 대화하는 생활이 그리스도인의 궁극적 삶이다. 한민택(수원가톨릭대 교수) 신부가 신앙의 의미를 되짚고, 재발견하도록 돕고자 엮은 신간 「내 삶에 열린 하늘」을 펴냈다.저자는 끊임없이 하느님과 믿음에 관해 생각하고, 궁리하는 ‘생각하는 신앙’을 권한다. 하느님 나라가 인간 세상의 회복이라면, 회개는 개인의 회복이다. 저자는 회개란 믿음의 또 다른 측면이라고 설명한다. 하느님 사랑의 권능을 믿기에 마음을 여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흔히 세상을 바꾸는 힘은 권력과 무력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저자는 배려와 용서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진짜 원동력임을 재차 인식시켜준다.나는 미사에 잘 참여하고 단체와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지만, 때로 자신의 소원을 놓고 하느님과 ‘주고받기식 기도’를 바치고 있진 않은지. 몸은 성당에 있어도, 마음과 태도는 신앙적이지 않은 ‘잠재적 냉담자’는 아닌지 점검해볼 필요도 있다.이처럼 생각하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한 우리는 진정한 믿음의 여정의 길을 걸을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문이다. 아울러 믿음, 용기, 행복, 사랑과 같은 일상 진리도 다양한 측면에서 고민하고 공부하며 체득할 것을 권유한다. 또 이웃이 겪는 어려움에 관심 갖고, 성경을 벗 삼아 앞으로 나아간다면, 더욱 놀라운 자유와 기쁨의 길이 펼쳐질 것이라고도 조언한다.“평안하냐?”(마태 28,9) 부활하신 예수님이 가장 처음 건넨 질문은 제자들을 향한 위로였다. 절망과 가난, 폭력, 우울함에 빠진 누구에게나 하느님은 다가가신다. 용기만 낸다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그때가 내 삶에 하느님 나라가 열리는 순간이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평화신문2020.02.05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67) 에필로그<2>- 사도행전에 비춰본 바오로의 생애와 서간①](//cpbc.co.kr/CMS/newspaper/2020/06/rc/780599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67) 에필로그<2>- 사도행전에 비춰본 바오로의 생애와 서간①박해자 사울, 회심 후 이방인의 사도로 거듭나다 바오로 사도의 생애는 다마스쿠스 근처에서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그 전과 후가 완전히 달라진다. 사진은 예루살렘 옛 도시 북쪽의 다마스쿠스 문. 이 문을 통해 다마스쿠스로 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CNS 자료 사진】 사도행전을 중심으로 바오로 사도의 생애와 활동을 정리하면서 그가 쓴 서간들을 살펴보는 것이 이 에필로그의 목적입니다. 하지만 그 서간들 자체의 내용을 깊이 들여다보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바오로 사도가 언제 어떤 상태에서 서간들을 썼는지 그의 활동과 서간들과의 관계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교회 박해에 나서던 유다인 사울사도행전에 바오로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스테파노의 순교 때였습니다. 최고 의회에서 스테파노의 설교를 들으면서 화가 치밀어오른 사람들은 그를 성 밖으로 몰아냅니다. 그러고는 그에게 돌을 던지면서 겉옷을 벗어 한 젊은이의 발에 두었는데 그가 바로 바오로였습니다. 그때 그의 이름은 사울이었지요.(7,58)이야기를 계속하기 전에 먼저 이름에 대해 살펴보고 넘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사도행전에는 바오로의 첫 번째 선교 여행 때인 13장 4절까지는 그의 이름이 ‘사울’로 나옵니다. 그렇지만 그다음 13장 9절에는 “그때에 바오로라고도 하는 사울이…”라고 ‘바오로’라는 이름이 처음 언급되고, 그 이후에는 계속 ‘바오로’로 나옵니다. 왜 이름이 바뀌었을까요? 이름이 사울에서 바오로로 바뀐 것은 구약성경 창세기에서 ‘야곱’이 하느님과 씨름한 후 그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뀐 것과는 다릅니다. 단지 ‘사울’은 히브리어-아람어 표기이고 바오로는 그리스식 표기일 따름이라고 학자들은 지적합니다. 그러면 왜 13장에 오면 이름이 바뀌게 될까요?바오로가 바르나바와 함께 1차 선교 여행을 떠나 처음 도착한 곳이 지중해의 키프로스 섬이었는데, 그 섬의 총독 이름이 세르기우스 바오로였습니다.(13,7) 키프로스는 히브리어-아람어를 사용하는 팔레스티나와 달리 그리스-로마 문화권이었고 그래서 이때부터 사도행전 저자는 사울이라는 이름 대신에 바오로라는 그리스식 표기를 하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사울 또는 바오로라는 이 젊은이는 스테파노를 죽이는 일에 찬동했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박해에 앞장섰습니다. “사울은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집마다 들어가 남자든 여자든 끌어다가 감옥에 넘겼다.”(8,3) 그는 어떤 사람이었기에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을 박해하는 데 앞장섰을까요? 사도행전에 따르면 바오로는 로마 제국 속주의 하나로 오늘날 터키 남부 지방인 킬리키아의 수도 타르수스 출신의 유다인입니다(21,39). 혈육은 유다인이지만, 태어날 때부터 로마 시민이었습니다.(22.28) 이 말은 바오로 집안은 부모 또는 그 이전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오로는 타르수스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예루살렘에서 자랐고, 당시 예루살렘의 뛰어난 랍비로 “온 백성에게 존경받는”(5,34)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조상 전래의 엄격한 율법에 따라” 교육을 받았습니다.(22,3) 바오로가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 따르면 그는 태어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고 히브리 사람에게서 태어난 히브리 사람이며 벤야민 지파 출신이고 바리사이였습니다.(필리 3,5) 요컨대 그는 율법을 엄격히 준수하는, 종교적으로 충실한 골수 바리사이 유다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그리스도인들에 관해서는 부정적이었음이 분명했을 것입니다. 예수가 메시아라는 주장, 더욱이 사흘 만에 부활했다는 주장이 바오로에게는 얼토당토않게 들렸을 것입니다. 바리사이들 역시 죽은 이들의 부활을 믿었지만, 그들에게 부활은 종말에 가서야 있을 먼 미래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대역죄인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가 살아났다면서 예루살렘 최고 의회에서 회개를 촉구하는 스테파노의 말은 바오로에게 반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젊음의 혈기가 왕성했던 그는 스테파노의 죽음을 당연하다고 여겼고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교회 박해에 나섰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 바오로의 나이는 어느 정도나 됐을까요? 「주석 성경」에 실린 ‘성경 연대표’에 따르면 스테파노가 순교하고 교회 박해가 시작된 해는 기원후 36년 겨울에서 37년(?) 사이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바오로는 기원후 5~10년 사이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가톨릭교회는 지난 2008년에 바오로 사도 탄생 2000주년을 기념하는 바오로 희년을 지냈었지요. 이를 고려한다면, 바오로가 교회 박해에 나섰을 때는 그의 나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쯤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마스쿠스에서 겪은 회심 사건사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신자들을 잡아들이는 것으로 성이 차지 않았는지 대사제에게 가서 다마스쿠스에 있는 회당들에 보내는 서한을 청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새로운 길’을 따르는 이들을 찾아서 모조리 예루살렘으로 끌고 올 작정이었습니다.(9,1-2) 오늘날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쿠스는 당시에도 그리스-로마 문화가 융성한 대도시였습니다. 유다인들도 많이 살고 있었고, 당연히 회당도 여러 개가 있었겠지요. 그래서 바오로는 다마스쿠스에 있는 회당들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을 색출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신자들은 아직 거의 전부가 유다인이었기에 회당을 통하면 ‘새로운 길’을 따르는 유다인들을 쉽사리 찾으리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마스쿠스 근처에 이르렀을 때 바오로는 놀라운 일을 경험합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고 바오로는 땅에 엎어지고 맙니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는 음성을 듣습니다. 그 음성은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라고 하면서 바오로가 할 일을 일러줍니다. 바오로는 땅에서 일어났으나 아무것도 볼 수가 없어서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 다마스쿠스로 들어갑니다.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한 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지내다가 하나니아스를 만나 눈을 뜨게 되고 세례를 받은 후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립니다. 바오로의 이 회심 사건을 사도행전은 세 번에 걸쳐 소개합니다.(9,1-19; 22,4-21; 26,9-19)바오로는 다마스쿠스에 있는 신자들과 며칠을 함께 지내다가 곧바로 다마스쿠스의 여러 회당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선포하며 활동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수님의 이름을 받드는 이들을 박해하고 그들을 잡아가려고 다마스쿠스까지 왔다고 알려진 사람이 이제는 반대로 예수님은 메시아시라고 증언하는 것을 본 사람들은 당혹스럽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9,20-22)그렇게 “꽤 긴 기간이 지나자” 유다인들은 바오로를 없애려고 공모했고 바오로는 제자들의 도움으로 다마스쿠스를 탈출해 예루살렘에 갔다고 사도행전은 기록합니다.(9,23-26) 사도행전의 이 설명대로라면 바오로는 계속 다마스쿠스에서 지내다가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가 심해지면서 탈출해서 예루살렘으로 갔다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바오로가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는 이와 다른 내용이 나옵니다. “그때에 나는 어떠한 사람과도 바로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이들을 찾아 예루살렘에 올라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마스쿠스로 돌아갔습니다.”(갈라 1,16-17). 이 서간에 따르면 바오로가 예루살렘에 간 것은 “삼 년 뒤”(갈라 1,18)였습니다. 바오로는 왜 아라비아로 갔을까요? 그곳에서는 무엇을 하며 얼마나 지냈을까요? “삼 년 뒤”란 구체적으로 언제부터를 가리킬까요? 다음 호에 계속 살펴봅니다. 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alfonso84@hanmail.net 평화신문2020.06.03

교세 확장 위해 나 몰라라… 이단의 이기심이 초래한 집단 감염[복음의 빛으로 세상보기] 이단의 배타성과 코로나19 확산 신천지는 현재 비대면 온라인 교육 '줌'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들의 교리를 전하고 있다. 그래프는 질병관리청 방역대책본부가 1월 20일 밝힌 코로나19 1년 통계. 질병관리청 제공 ‘대한민국의 교회들이 코로나 전쟁터가 되고 있다.’지난해 11월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이 같은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국에서 여러 종교 집단이 유해병 논란의 중심에 있다”며 종교발 n차 감염의 지속으로 정부와 이단 및 일부 종교단체가 갈등을 빚는 양상을 상세히 다뤘다. 지난 1월 BBC뉴스 코리아도 ‘일부 교회가 대면 예배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란 제목의 기획 기사를 통해 코로나19 대유행 1년 동안 방역 수칙을 두고 정부와 대치를 이루는 일부 교회들의 모습을 소개했다. 이 기사에서 일부 개신교 성직자들은 종교의 자유를 들며 “비대면 예배는 한계가 있고, 정부가 이를 강제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최초 신천지발 집단감염 이후 지난해 10월 대형 교회에서 1000명이 넘는 확진자 발생 등 신규 확진자 그래프가 치솟을 때마다 일부 신앙인 단체들이 근원지가 돼왔다.종교의 자유와 공동선다종교 사회에서 여러 신앙 집단들의 활동은 자유다. 그러나 신흥 종교와 일부 이단 및 유사종교 단체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교세 확장’이 지역사회와 이웃의 가치를 앞서고 있어, 보건 위기를 부추기는 측면이 강하다고 전문가들은 전했다. 이른바 ‘이웃 없는 배타성’과 ‘나 몰라라식 근본주의’를 지닌 이단의 특성 탓이다.정성환(서울 신천동본당 주임) 신부는 “최근 문제가 되는 이단들은 코로나 상황보다 자신들의 생존 문제가 걸린 교세 확장에 모든 활동이 치중돼있다”며 “종교 이념보다 경제논리로 집단을 운영하는 탓에 종교와 상관없이 학원을 차려 운영하는 등 이웃은 없는 활동을 펼치는 것이 집단 발병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정 신부는 또 “이 같은 위기 상황을 계기로 어떤 종교가 사회 순기능 역할을 하는 ‘참된 종교’인지, 사랑 없이 분열과 혼란을 초래하는 거짓 종교인지 드러난 셈”이라고 전했다.김민수(서울 청담동본당 주임) 신부도 “이단들에게 종교의 사회성과 시민사회 공공성이 결여된 점은 기성 종교와 가장 큰 차이”라며 “세상과 함께하고, 이웃과 더불어 살며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이끌기는커녕 태생부터 개인 집단의 이익에 초점을 맞춰 시작했기 때문에 그들에겐 영성도, 희생도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지난해 2월 최초로 집단감염 사태를 일으킨 신천지는 현재 임대받아 운영하던 센터와 복음방을 상당수 철수하고, 온라인 강좌와 SNS 교리로 체제를 변환했다. 과거 친분쌓기→복음방→센터 교육 방식에서 지인 전도로 꼬드겨 바로 온라인 성경공부로 인도하는 ‘오픈된 모략전도’를 취하고 있다. 아울러 신천지는 이만희 총회장과 간부들이 지난해 방역 당국에 협조하지 않고, 증거 인멸 및 교사 혐의에 대해 일부 유죄 판결이 났음에도 공무집행방해 혐의에 대한 ‘무죄’ 판정만 내세우며 도리어 사회에서 핍박을 받았다고 신도들을 세뇌하고 있는 상황이다. IM선교회와 BTJ열방센터를 운영하는 인터콥 또한 설교를 통해 가짜뉴스를 유포하고, 방역 지침을 어겨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구리이단상담소장 신현욱(구리초대교회) 목사는 “코로나19 상황으로 지난해 신천지 탈퇴자는 예년에 비해 2~3배는 많아진 것은 사실이며, 30만 명까지 내다봤던 전체 신도 수는 현재 20~23만 명 정도로 급감했다”며 “그럼에도 온라인 교육을 수료한 이들이 1만여 명이 현재 수료식을 앞두고 있다”고 전했다.신 목사는 “그러나 여전히 많은 신천지 젊은이들이 가족을 속이는 ‘깜깜이 신자’로 신분을 유지하고 있고, 탈퇴했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회심의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상처를 안고 지낸다는 점이 문제”라며 “신천지 생활을 했던 이들은 반드시 상담소를 통해 복음 앞에 진정한 회복을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생명 존중과 이웃 사랑의 대전제“교회의 사명은 본질적으로 복음을 통하여 인간의 양심을 일깨워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더 인간다워지는’ 기회를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데에 있습니다.”(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보편 교회는 2000년 동안 지녀온 유구한 역사 속에 교회 사명과 선교의 개념을 매우 깊이 고찰해왔다. 가톨릭교회는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 밖 사회와 이웃, 타 종교를 위한 교회 역할과 선교 사명의 외연을 폭넓게 확장했다.이를 통해 공의회 교부들은 “인간의 숭고한 소명을 천명하고 인간 안에 심어진 신적인 어떤 씨앗을 긍정하며, 이 소명에 응답하는 모든 이의 형제애를 증진하고자 교회의 성실한 협력을 인류에게 제공한다(「사목헌장」 3항)”는 가치를 정립하고, 하느님의 사랑이 주님을 믿지 않는 비그리스도인과 모든 이웃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교리를 확고히 했다.교황청도 사회를 위한 교회, 이웃 사랑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교회 사명의 연장선 상에서 코로나19 기간 동안 보편 교회에 때마다 긴급 공지를 발표하며, 전 세계 대유행 중 보편적 형제애를 발휘할 것을 끊임없이 주문하고 있다.희생은 곧 사랑의 실천세계보건기구(WHO)는 전 대륙으로 코로나19가 번지던 지난해 4월 ‘코로나19 상황 속 종교와 종교 지도자들의 역할’이란 제목으로 일종의 지침을 발표했다. 각기 지닌 신앙 전통과 사회 서비스망을 기반으로 지역사회를 보호하고, 건강 정보를 공유하면서 교회들이 봉사와 연대의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 골자다. 가톨릭 교회는 보편성과 공동선을 지향하며 최소한의 비대면 신앙생활이 가능한 도구를 갖춰가고 있다. 이단과 일부 교회들이 “정부가 종교를 탄압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인위적인 종교 박해가 아닌, 국가 안전과 생명 보호가 그 이유임에도 현 상황을 대립구도로 보는 것은 지나치게 그릇된 생각”이라고 일축했다.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10월 회칙 「모든 형제들」을 발표하고 “건강한 사랑과는 거리가 먼 일종의 지역적 나르시즘과 폐쇄적인 정신”을 비판하며, 현 위기 상황에서 더욱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에 기초한 연대의 정신을 발휘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김민수 신부는 “우리가 미사에 참여하고, 성체를 모시는 이유도 각자가 성화되고, 이웃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데에 있는 것이지, 이러한 마음과 기도가 빠진 미사는 형식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며 “코로나 시기 모두 고통을 받고 있지만, 우리 신앙인들은 이 고통을 이미 사회와 나누고 있으며, 어찌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 미사’가 이미 세계에서 거행되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한국천주교 유사종교대책위원회 위원장 이금재 신부는 “근본주의를 지향하는 이단들은 자신들만의 절대적 선교와 예배를 고집하지만, 세상과 사람, 지역 사회에 열려 있는 것이 진정한 신앙”이라며 “원래 신앙생활이 직접 만날 수 없는 하느님을 갈망하는 비대면의 측면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비록 비대면 신앙생활을 병행하지만, 이 같은 희생이 동반된 이웃 사랑 실천으로 열린 신앙심과 믿음을 충분히 발휘해나가면 된다”고 조언했다. 특별취재팀 cpbc2021.02.24

삶의 고통마저도… 하느님 은총? 은총 / 최현순 지음 / 바오로딸“신자들은 은총을 좋은 것이라고 오해합니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안락하고 나한테 좋은 것이라고 여기죠. 보호해주시고 위로해주시고, 그래서 사업이 잘되고 건강해지는 거요. 은총을 ‘복덩어리’라고 생각하면 고통 중에는 은총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평신도 신학자 최현순(데레사, 서강대 전인교육원) 교수가 첫 책 「은총」(바오로딸)을 냈다. 하느님이 주신 은총과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과 행동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 고찰했다. “은총을 하느님이 주시는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왜 하느님은 어떤 사람에게는 은총을 ‘가득히’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인색하게’, 아니 때로는 ‘전혀’ 주시지 않을까요?” 최 교수는 신자들에게 은총이란 무엇이며, 삶의 여정 안에서 고통을 겪고 있더라도 여전히 하느님의 은총 안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책을 냈다. 그는 이탈리아 로마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교의신학으로 석사를, 제1, 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로마에서 은총론 수업을 듣고 시험공부를 하는데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옥상으로 올라가 뛰어다녔어요. 은총을 잘못 알았기 때문에 그걸로 내가 옥죄고 있었구나 했죠. 은총에 대해 잘못 알았던 것이 풀리면서 해방감을 체험했어요.” 그는 최근 몇 년간 예수회센터를 비롯한 여러 수도원에서 은총론 강의를 했다. 강의할 때마다 “은총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다, 삶을 기쁘게 살게 됐다”는 피드백을 신자와 수도자들에게 받았다. 최 교수는 은총을 이해하는 신앙 여정에서 ‘나는 은총을 받을 자격이 있다’, ‘내가 열심히 기도했더니 하느님이 이런 은총을 주셨다’는 식의 사고를 버리라고 조언한다.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서 은총을 벌어들인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상에서 정당한 보상을 받는 것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부모 자녀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하느님의 은총을 이해하기가 쉽다. “엄마가 청소를 하는데, 아이가 자기도 하겠다고 나선다. 아이가 한다고 하는 것이 지극히 보잘것없지만 그래도 엄마는 빗자루를 들고 다니는 아이를 보면서 아이를 더욱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그렇지만 아이가 청소를 했기 때문에 엄마가 아이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물론 아이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45쪽) 최 교수는 성경에 나타난 은총을 살폈다. 역사적으로 은총의 이해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구약에 나오는 ‘헨’과 ‘헤세드’, 신약에 나오는 ‘카리스’의 의미를 소개했다.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자유의지가 이루는 아름다운 여정이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여정이라고 끝을 맺었다. “은총론을 공부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내 삶의 체험과 사건들을 하느님 안에서 보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제쳐놓고 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상황에서 하느님이 무엇을 알려주려고 하시는지 보면 우리는 여전히 은총 안에 있게 됩니다.” 이지혜 기자문채현2020.08.05

하느님 존재에 의문이 든다면그런 하느님은 원래 없다 / 한광석 신부 지음 / 가톨릭출판사「그런 하느님은 원래 없다」. 단행본의 표제가 아주 의미심장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세계를 바라보며 하느님은 계신지, 종교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지, 구원은 있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던져진 도전적(?) 명제여서인지도 모르겠다. 11년을 교구청 사제로 살다가 올해 시골 신부로 돌아간 한광석(대전교구 광천본당 주임) 신부가 그 질문을 곱씹으며 나름대로 내놓은 답이 이 단행본이다. 그렇다고 딱딱한 신학서적을 의도한 건 아니다. 신학적 배경 속에서 탄생했지만, 굳이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주제는 다양하다. 하느님은 계신지, 또 무신론 시대의 하느님은 어떤 모습인지, 하느님이 계신다면 왜 악이 있는 것인지, 하느님은 기도를 들어주시는지, 돈이 최고인 시대에 하느님의 자리는 있는지, 가톨릭은 성 문제에 지나치게 보수적인 건 아닌지, 인공지능(AI) 시대에 신앙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차근차근 짚어나간다. 그러면서 신앙이 부정되고 비웃음까지 당하는 시대에 때론 흔들리지만, 그분 안에서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이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주고 싶은 해답, 아니 조언이기도 하다. “신학생 시절, 저를 무척 따랐던 초등부 주일학교 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그 아이가 부모님과 함께 이민 가더니 무신론자가 됐다는 게 아닙니까? 일시 귀국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만났는데, 반가움도 잠시, 무신론자가 된 딸, 그리고 그 딸과 갈등하는 부모님을 보며 한동안 할 말을 잃었지요. 시간이 흐르면서 신앙의 갈등을 겪으며 성당에 다니지 않는 조카들이 보였고, 세례는 받았지만, 더는 신앙생활은 하지 않는다는 분들을 보면서 이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은 그래서 많은 이들이 하느님과 신앙에 대해 갖는 오해를 풀어주려 한다. 돈과 성, 과학과 신앙의 문제를 객관적 시각에서 설명해주며, 신앙생활 전반에 대한 따뜻한 권고도 담았다.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등 신앙생활에 튼튼한 기반이 돼 줄 부분까지 세세히 알려준다. 한 신부는 “신자들도 각자의 생각대로 자기만의 신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면서 “과연 우리가 제대로 하느님을 믿는 것인지 생각해 보고, 또 진정한 하느님의 모습은 무엇인지 의문을 던져봐야 한다”고 주문한다. 또 “하느님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인간의 눈에 다르게 보이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는 진정한 하느님을 찾고 그분과의 관계를 좀 더 올바르게 정립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문채현2020.07.15
코로나19로 교회 공동체 소중함 절감… 위기에 변화하지 못하는 모습에 실망서울대교구, ‘코로나19와 신앙생활’ 긴급 설문조사 결과 가톨릭 신자들은 코로나19로 공동체 미사가 중단된 동안 미사에 참여하지 못하고 성체를 모시지 못한 것을 신앙생활에 가장 큰 어려움으로 생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대부분 가톨릭평화방송 채널과 유튜브 등을 이용해 방송 미사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고, 팬데믹 상황이 다시 발생할 경우에도 온라인을 통해 미사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대교구 사목국(국장 조성풍 신부)은 11일 이 같은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서울대교구 사목 대안 마련을 위한 신자 대상 코로나19와 신앙생활에 대한 긴급 설문조사 결과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7월 17일부터 26일까지 온라인 설문으로 이뤄졌고, 신자 2만 1439명이 참여했다. 질문은 △코로나19로 인한 신앙생활의 어려움 △ 신앙생활과 관련하여 도움을 받고 싶은 것 등 모두 7개 문항이었다.조사 결과 코로나19로 인한 신앙생활의 어려움을 묻는 말에는 ‘미사를 봉헌하지 못하고 성체를 모시지 못하는 게 어렵다’는 대답이 55.4%로 가장 많았다. 이어 ‘신앙생활 전체가 위축될 것 같아 걱정이다’, ‘신심 단체 및 소공동체 모임에 참석하지 못해 생기는 고립감을 느꼈다’ 등의 순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신앙생활의 변화에 대해서는 나이가 많을수록, 그리고 남성보다는 여성이 신앙과 교회 공동체의 소중함을 더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교회 가르침이나 성경을 공부하고 싶다는 욕구는 그다지 높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이후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함께 기도하거나 신앙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늘지 않았다는 답변이 많았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 코로나19 이후 방송 미사 시청이 늘었고, 향후 팬데믹 상황이 올 경우 온라인 송출 플랫폼이 유력한 대안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응답자의 65.9%는 “코로나로 미사가 중단됐을 때 CPBC 또는 인터넷이나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온라인 생미사 또는 녹화 미사를 봉헌했다”고 답했다. 향후 팬데믹 상황에서 본당 및 교구로부터 신앙생활과 관련하여 어떤 도움을 받고 싶은지에 대해서도 59.4%의 신자들은 온라인 미사를 봉헌해주길 바랐다.주관식 답변에서는 팬데믹 위기에 변화하지 못하는 교회와 사목자의 모습에 실망과 우려를 토로한 이들이 많았다. 또 온라인 설문임에도 30대 이하 응답자 비율이 12.8%에 그쳐 교회 일에 관심을 두지 않는 젊은 층의 현실이 드러났다. 서울대교구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앱 개발과 온라인 신앙교육 확대 등 다양한 사목 대안을 검토하고 있다. 사목국 기획연구팀 이영제 신부는 “본당의 사제, 수도자, 단체장, 그리고 본당의 신자들끼리 소통하고 교우들과 친교를 나눌 수 있는 앱을 개발할 계획”이라며 “미사, 강론 등 신앙 콘텐츠뿐 아니라 신자들이 서로 의견을 나누고 소통하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구는 설문조사 결과를 반영해 내년 상반기에 앱을 출시할 계획이다.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cpbc2020.08.19
[사설] 5·18 40주년, 영성화와 대동정신 구현할 때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다. 지난 40년간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국회 청문회, 검찰 수사, 법원 판결 등을 통해 제 자리를 찾아왔다. 최초 발포 명령자 조사 등 일부 미흡한 사안이 남아 있지만, 그동안 노력을 통해 진상이 하나씩 규명되고 있다. 그럼으로써 5ㆍ18은 국가의 폭력에 항거한 학생들의 의거, 그리고 시민들의 궐기를 통해 이 사회에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도록 했다는 확고한 역사의 평가를 받고 있다.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는 본지와의 40주년 인터뷰에서 “5ㆍ18은 거창한 정치적인 투쟁이 아니다”면서 “인권과 정의, 평화를 바탕으로 대동정신과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고 남북이 언젠가 서로 자유롭게 합의하여 평화 통일을 이루는 징검다리를 놓자”고 제안했다. 성경에서 40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홍수로 새 세상을 준비하는 데 40주야,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데 40년,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의 계명을 받기 위해 40주야 단식을 했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40일 동안 지상에 머물렀다. 그래서 40이라는 숫자는 장차 성취할 중대한 사건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시기를 의미한다.광주대교구는 전임 교구장 때부터 5ㆍ18정신의 영성화를 강조했고 이 정신에 따라 광주인권평화재단을 설립했다. 이를 통해 인권과 민주, 정의, 평화에 대해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하고 연대, 나눔에 주력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 화합, 그리고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떼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진상은 진상대로 규명하되 대동정신 그리고 5ㆍ18정신의 영성화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평화신문2020.05.13

십자군의 칼은 절규하는 무슬림과 그리스도인마저 처참히 살육[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19) 구스타브 도레의 ‘안티오키아 학살’ 구스타브 도레, ‘안티오키아 학살’, 삽화, 1877년, 파리. 무슬림 세력에 대항한 십자군 632년 무함마드가 사망한 후 그를 추종하던 세력은 순식간에 아라비아 반도 주변의 이교도들을 소탕하고, 아라비아 반도 북서부에 위치한 비잔틴 제국과 가까운 타부크를 손에 넣었다. 그리고 636년 야르무크 전투에서 무슬림은 비잔틴 제국을 상대로 완승하면서 아나톨리아 남부의 지배권을 확보했다. 이것은 무함마드 이후, 이슬람이 그리스도교 지역인 비잔틴 영내로 진출할 것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그 후 계속해서 몇백 년에 걸쳐 무슬림 세력은 비잔틴 제국을 괴롭혔고, 안티오키아, 예루살렘 등 과거 비잔틴 제국의 땅이었던 메소포타미아 일대를 하나씩 점령했다. 아랍 무슬림들은 이제 아르메니아로 향했고, 동시에 이집트로도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집트 태생의 영국인 이슬람학자 밧 예올(Bat Ye’or)은 저서 「The Decline of Eastern Christianity Under Islam: From Jihd to Dhimmitude」에서 “성당으로 도망간 여성과 어린이들까지 모조리 살해당했다”고 적었다. 이에 비잔틴 제국의 요청에 따라 일어난 서방 교회의 십자군 결성은 나름대로 충분한 당위성이 확보되었다. 복자 우르바노 2세 교황의 성지 해방을 위한 제1차 십자군의 선포는 “하느님의 뜻”(Deus vult)으로 제시되었다. 십자군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모든 빚을 탕감받고, 재산을 보호받으며, 죄를 용서받았다. 이런 혜택은 교황의 부름에 응답한 사람에 대한 대중의 지지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 따라서 참전하는 사람들의 의도는 모두 달랐다. 어떤 사람은 종교적인 열정과 하느님을 향한 사랑으로, 어떤 사람은 빚을 탕감받기 위해, 또 어떤 사람은 모험심에서, 어떤 사람은 약탈을 통해 한몫 잡으려는 의도 등 마음에 품은 의도들은 결코 고상하거나 원대하지만은 않았다. 1097년 십자군은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집결했고, 거기서 알레시오 1세 콤메노의 도움으로 소아시아 반대쪽 해안을 통과했다. 그리고 3개월 후에는 시리아 해안에 도착했고, 9개월 후에는 드디어 아름다운 도시 안티오키아에 이르렀다. 1098년 6월 3일 십자군은 안티오키아를 차지하고 있던 무슬림들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죽이고 안티오키아를 차지했다. 과거 그들이 한 그대로, 이제 십자군이 그들에게 한 것이다. 삽화가, 독창적인 예술적 기조 확립소개하는 작품은 구스타브 도레(Gustave Dor, 1832~1883)의 삽화 ‘안티오키아 학살’(파리, 1877)이다. 구스타브 도레는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하여 6살에 이미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고, 12살에 자기가 그린 그림을 돌에 새겨 석판화를 제작했으며, 15살에 신문에 실었던 만평집과 삽화를 실은 책을 출판하였다. 1847~1854년 루브르 박물관에서 작품들을 보면서 그림을 공부했고, 많은 양의 캐리커처와 석판화를 제작하며 독창적인 예술적 기조를 확립했다. 그는 성경 이야기를 판화로 제작하고 많은 문학 작품에 삽화를 그렸다. 당시 프랑스의 자본가들 사이에서는 그의 작품을 소유하는 것이 유행할 정도였다고 한다. 절충적이고 다면체적인 도레의 예술은 여러 면에서 만화와 영화의 탄생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그의 무한한 상상력과 그래픽 작품들은 20세기 위대한 영화감독들에게 도상학적인 중요한 영감을 주는 한편, 애니메이션 장편 영화에서도 월트 디즈니와 팀 버튼은 물론, ‘슈렉’의 장화 신은 고양이에 이르기까지 그의 삽화는 다양하게 힘을 발휘했다. 대표작으로 1872년에 발표한 런던의 빈민촌의 더럽고 참담한 삶을 묘사한 판화 ‘런던 순례’, 에드가 알란 포우의 ‘갈가마귀’가 있고, 삽화를 넣어 출판한 책들로 밀턴의 「실락원」, 단테의 「신곡」, 영어판 「구ㆍ신약 성경」, 불어판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등이 있다. ‘안티오키아 학살’은 「십자군」이라는 역사서에 담긴 삽화다. 뺏고 뺏기는 안티오키아 공방전비잔틴 제국의 도시였던 안티오키아를 셀주크 왕조가 빼앗은 것은 1085년이었다. 안티오키아 성은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 때, 동로마 제국의 건축 기술로 튼튼하게 잘 지은 성벽이었다. 1088년부터 안티오키아를 통치한 야기 시얀(Yaghi-Siyan)은 1097년 아나톨리아 반도로 들어온 십자군을 의식하고, 주변의 이슬람 세력에 도움을 요청한 상태였다. 야기 시얀은 안티오키아의 정교회 총대주교를 감옥에 가두고 그리스와 아르메니아 정교회 신자들을 모두 추방하는 한편, 그 수가 얼마 안 되는 시리아 정교회 신자들만 거주를 허락했다.십자군과 셀주크 무슬림군이 안티오키아를 두고 공방전을 벌인 것은 모두 두 차례다. 제1차는 이미 무슬림의 도시가 되어 버린 안티오키아를 차지하기 위해 십자군이 벌인 공성전으로 1097년 10월 21일 시작해 1098년 6월 2일 도시를 함락하면서 종료되었다. 제2차는 무슬림 군대가 십자군에 대항해 1098년 6월 7~28일 벌인 공성전으로 여기서도 십자군이 승리했다. 그 과정을 좀 더 들여다보면, 십자군이 처음 안티오키아 성 바깥 오론테스 강변에 모습을 보인 것은 1097년 10월 20일이었다. 군대를 이끈 장수는 3명으로 부용의 고드프루아, 타란토의 보에몽, 톨로사의 백작 레몽 4세였다. 고드프루아와 보에몽은 레몽의 직접 전투를 반대하며 공성전을 주장했다. 생각보다 길어진 공성전은 오히려 십자군을 괴롭혔다. 12월이 되자 고드프루아가 병으로 쓰러졌고, 충분했던 식량도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2월 말 보에몽과 플랑드르 백작 로베르가 병력 2만을 이끌고 식량 조달을 위해 남쪽으로 향하자, 포위 병력이 줄어든 틈을 타서 야기 시얀은 레몽의 야영지를 습격했다. 레몽이 물리치기는 했지만 피해는 적지 않았다. 보에몽과 로베르의 군대도 야기 시얀을 도우러 오던 다마스쿠스의 두카크의 군대와 충돌하여 결국 승리했으나 식량 조달에는 실패한 채 안티오키아로 돌아와야 했다. 안티오키아를 포위한 십자군의 야영지에는 식량 부족으로 기아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사람과 말이 차례로 죽어갔다. 전체 군인 7명 중 1명이 굶어 죽었고, 군마의 수도 급격히 줄었다. 굶주림을 견디다 못한 병사들은 적병의 사체와 죽은 말을 먹었다. 시리아의 그리스도인들과 추방되어 키프로스 섬에 있던 정교회의 총대주교가 약간의 식량을 보내준 것으로 기아를 해결하기란 역부족이었다. 1098년 1월, 기사와 병사 중에서 탈주자가 나오기 시작했고, 그중에 은수자 피에트로도 있어 그의 명성은 추락하고 말았다. 1098년 2월, 비잔틴 제국의 장수이자 황제의 특사로 십자군에 합류하여 아나톨리아 반도의 길 안내 및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던 타티키오스가 돌연 십자군을 떠났다. 알렉시우스 1세의 딸 안나 콤네나가 쓴 역사서에 따르면, 십자군이 계속해서 타티키오스의 조언을 거부했고, 보에몽과 십자군의 장수들은 그를 믿지 못해 암살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문이 결국 그를 떠나게 했다고 전했다. 이에 보에몽은 타티키오스를 욕하며, 안티오키아를 함락해도 그 땅은 비잔틴에 줄 것이 아니라 자기가 차지하겠다고 주장했다. 십자군의 장수들 사이에서 이권 다툼이 시작된 것이다. 1098년 5월 말 모술의 영주 케르부가가 야기 시얀의 요청으로 대군을 이끌고 안티오키아로 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십자군에게는 큰 위협이었고, 어떻게든 케르부가의 대군이 도착하기 전에 안티오키아를 함락시켜야만 했다. 보에몽은 야기 시얀에게 증오를 품고 있던 안티오키아의 한 수비대장을 매수했다. 수비대장은 성문을 열어주기로 했다. 약속한 시간에 성문이 열리자 십자군은 순식간에 시내로 들이닥쳤다. 굶주린 병사들에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십자군은 무슬림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까지 모조리 죽였다. 그림 속으로도레의 작품 속에는 안티오키아 성벽에 매달려 절규하는 무슬림과 그리스도인, 아기를 안은 여성 등이 있다. 날카로운 창끝은 힘없는 그들을 겨누고, 무장한 병사들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시민들을 살육하고 있다. 건물은 과거 비잔틴 제국의 영광을 대변하듯, 이런 처절한 상황 속에서도 아름답고 장엄하다. 이토록 아름다운 건물에서 믿기지 않는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안티오키아 공방전은 이후 유럽에 전해져 전설이 되었고, 여러 무훈시의 소재가 되었다. 12세기에 널리 불리던 ‘안티오키아의 노래’(chanson d’Antioche)도 그중 하나다.구스타브 도레 삽화 ‘안티오키아 학살’, 1877년, 프랑스 파리. 김혜경 (세레나,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이탈리아 피렌체 거주) cpbc2020.09.22
[장현규 수녀의 사랑의 발걸음] 18. 선한 목자만 따라가면!프랑스 성요한 사도 수녀회 장현규(마리스텔라) 수녀프랑스에서 함께 사는 동료 수녀님들은 매년 여름이면 2주 정도 피정 겸 휴가를 떠난다. 원한다면 가족도 방문하는 시기가 이때다. 이때마다 내가 피정 겸 휴가로 머무는 곳은 프랑스 남쪽 시골 마을에 있는 수도원이다. 우리 수도회의 많은 수사님과 수녀님들도 이곳에 머물곤 한다. 자연을 벗 삼은 수도원의 마당에는 넓고 푸른 초원, 포도밭이 펼쳐져 있다.내가 이곳에 맨 처음 왔던 때는 1986년 12월, 그러니까 프랑스에 온 지 불과 몇 달 되지 않은 때였다. 막 예수님 탄생을 준비하는 성탄 시기였다. 프랑스에서 최고의 명절 또한 성탄절이기에, 이곳 수도원이 있는 시골 사람들도 최고의 축일을 보내고 있었다. 성탄의 기쁨은 도시인들의 그것과도 전혀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프랑스에 막 당도했던 당시 나의 마음은 자못 쓸쓸했다.한창 추운 겨울이었던 그때. 이곳 들판에 하얗고도 살포시 내린 눈 속에서 푸른 풀들을 마주했다. 작은 한 순간이었지만, 문득 신비로운 자연의 움직임을 통해 주님께서 새 세상을 보여주시는 것처럼 여겨졌다. 눈을 돌려보니, 영화에서만 보던 양 떼들이 보였다. 회색빛의 작은 몸뚱이가 통통한 데다, 짧은 다리로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모습이 아름답기까지 했다. 양 한 마리가 풀을 뜯어 먹는 모습도 이상하게 나의 눈길을 확 끌었던 기억이다. “주님은 나의 목자”(시편 22장)라는 말씀이 내 입에서 저절로 흘러나왔다.‘파아란 풀밭에 이 몸 뉘어 주시고~♬’ 이어서 요한복음 11장 ‘목자와 양들’의 말씀도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순간 성경 말씀이 바로 눈앞의 현실처럼, 그것도 잔잔히 펼쳐지는 광경이 내 안에 작고 놀라운 감동마저 가져다줬다. 수도자로서 새로운 삶을 막 시작한 나에게 일어난 작은 기쁨이자 체험이었다. 내 마음은 환해졌고, 푸르름으로 물드는듯했으며, 쓸쓸함은 금세 가셨다.나는 계속, 그리고 천천히, 편하게 풀을 뜯어 먹고 있는 양들을 바라봤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등이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착한 목자가 준비해놓은 넓은 물통에는 물이 가득했다. 양들이 목이 마르면, 언제라도 즉시 와서 흡족하게 물을 마셨다. 양치는 목자는 그들의 귀여운 모습을 바라보면서 양들의 행복감을 피부로 함께 느끼는 듯했다.그런데 이 모든 광경이 시편 23장의 이야기가 아닌가!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노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길로 나를 끌어 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시편 23,1-3) 그리고 마지막 6절의 말씀. “저의 한평생 모든 날에 호의와 자애만이 저를 따르리니 저는 일생토록 주님의 집에 사오리다.”해마다 성소자가 많이 줄고 있다. 그러나 선하시고 자비로우신 목자만을 따른다면 이처럼 큰 은혜와 행복이 따라온다는 사실을 나는 삶으로 깨닫고 있다. 시편의 말씀이 우리를 잘 인도해 주고 있다.프랑스에 와서 처음 마주했던 드넓은 초원과 귀여운 양 떼들이 보고 싶을 때면, 다시 이곳을 찾는다. 그리고 나는 다시 시편을 노래한다. 그러면 어느새 나는 초원의 양이 되고, 희망찬 푸름이 솟아오른다. 눈앞에 원대하게 펼쳐진 대자연을 보며, 내 안에 모든 언어는 사라지고, 평화로운 침묵만이 나를 포옹해준다. 이것이 수도자의 기쁨이다.프랑스 성요한 사도 수녀회 장현규(마리스텔라) 수녀cpbc2020.09.09

색의 어우러짐에 따른 맛의 향연[사유하는 커피] (20)심상의 눈으로 커피 색을 느껴라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장 커피잔 위로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이 더욱 정겨운 계절이다. 하늘거리며 적막을 흔들다가 이내 힘에 부친 듯 공간으로 사라지는 향의 흔적들. 커피 향이 색깔을 띤다면 얼마나 좋을까? 커피의 본질이 색(color)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색은 만물의 원천인 ‘빛’과 인과관계에 있다. 커피가 거무튀튀하게 보여도 와인이나 브랜디를 담는 유리잔에 따르면 고운 색을 드러낸다. 잔을 기울여 가장자리를 얕게 만들면 불그스레하기도 하고 노르스름한 색상이 감지된다. 때론 희끄무레하고 여린 풀처럼 푸르레하다. 성질이 다른 커피, 유리, 공기가 만나 서로 경계를 이루는 인터페이스(interface)에서 본성이 반영된 현상을 감지하기가 더 쉬운 법이다. 무리의 한복판에 뭉쳐 있을 때보다 이질적인 영역과 맞닿은 지점에서 참모습을 드러내는 속성은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같은 이치겠다. 향과 맛 역시 커피가 외부와 경계를 이루는 지점에서 더 잘 드러난다. 모든 조건을 같게 한 커피라고 할 때, 가장자리가 노란빛을 띤다면 상대적으로 산미가 두드러진다. 붉은빛이 우세하다면 더 저돌적으로 관능을 자극하고 꽃향기를 선물처럼 길게 남겨준다. 햇사과처럼 녹색이 감돈다면 토마토를 연상케 하는 식물체의 생동감이 입안을 꽉 잡아준다. 색의 어우러짐이 곧 맛의 향연이다. 우리는 이미 일상에서 색과 맛을 무의식적으로 연결해 표현하고 있다. 이채로운 맛을 경험하는 순간, “색다른 맛!”이라고 외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진화론에 따르면 생존과 관련된 정보는 수만 년 세월 속에서 DNA에 깊게 새겨졌다. 커피에서 장미 같은 진한 향이 느껴지면 붉은색, 잘 익은 오렌지처럼 새콤달콤하면 노란색, 박하만큼 화한 기분이 들면 흰색, 달고나가 떠오르면 갈색, 그리고 유칼립투스 향이 풍기면 녹색이 각각 떠오르는 것은 호모사피엔스 종이 오랜 세월 자연 속에서 체득한 결과물들이다. 색은 때론 몸에 해롭다는 사실을 경고해주기도 한다. 고인 물에 찌든 회색빛 흙을 연상케 하거나 아궁이를 훑은 손바닥처럼 거친 질감의 검댕을 떠올리게 하는 커피는 뱉어야 한다. 뇌가 유쾌하지 않은 색과 기억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삼키지 말도록 신호를 보내주는 것이다.색에 관한 이런 사연을 깊이 생각하다가 문득 인간을 아껴주는 절대자의 손길이 느껴졌다. 색은 빛에서 비롯된다. 빛을 과학으로만 풀어내면, 전기장과 자기장이 수직을 이루며 움직이는 파장이자 알갱이 같기도 한 입자이다. 때론 열을 발생시켜 에너지로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인간의 눈으로는 모든 빛을 볼 수 없고 특정 파장의 가시광선만 감지할 수 있다. 특정 물질이 빛을 모두 흡수하면 검은색으로 보이고 통과시키면 투명하게 보인다. 붉은색으로 감지되는 파장만을 반사한다면 그 물질은 붉은색으로 보인다. 색은 마치 지문처럼 물질의 고유한 특성을 표현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빛이 없으면 색이 없고, 색은 빛의 존재를 증언하다. 성경에 따르면 빛은 단지 태양에서 나와 낮과 밤을 가르는 장치에 불과한 게 아니다. 빛은 첫날 만들어지고 태양은 나흘째에야 창조된다. 어둠이 심연을 덮고 있던 태초(창세 1,3)에 빛이 생겨 빛과 어둠을 가른 것을 시작으로 만물의 모든 것에 경계가 생겼고, 그 지점을 색이 알기 쉽게 밝혀준다. 커피가 진한 갈색을 띠는 것은, 정작 그 색을 내는 빛의 파장만이 커피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튕겨져 나오는 탓이다. 색으로 커피의 본성에 다가가려면 뉴턴처럼 과학의 눈으로 보지 말고 괴테처럼 심상의 눈으로 색을 느껴야 한다.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평화신문2020.09.22

인장 받은 이 14만 4000명은 ‘모든 하느님 백성’ 상징적 표현요한 묵시록은 어떤 책이며, 어떻게 읽어야 하나 요한 묵시록은 많은 상징을 담은 환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전달하는 책으로 교회의 권위 있는 주석과 주해를 바탕으로 대해야만 바르게 읽고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림은 1125년에 제작한 스페인 타울 성 클레멘스 성당의 프레스코화로, 요한 묵시록에 등장하는 종말에 오실 그리스도 왕을 묘사하고 있다. 요한 묵시록은 읽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책이라고 많은 신자가 말한다. 맞는 말이다. 요한 묵시록은 성경의 여느 책들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상징을 담은 ‘환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1,1)를 전달하고 있는 책이어서 개인이 혼자서 요한 묵시록을 읽고 그 내용을 제대로, 올바르게 이해하기는 너무나 어렵다. 그래서 항상 교회의 권위 있는 주석과 주해를 바탕으로 「요한 묵시록」을 대해야지만 이 책을 바르게 읽고,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아울러 어렵게만 느껴지는 요한 묵시록의 상징이나 내용이 알게 모르게 친숙한 것이 많다. 일례로 미사 영성체 예식 전에 사제가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하는 말씀도 바로 묵시록(19,1)에 나오는 예수님의 ‘칭호’이다. 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의 사목 표어 ‘아멘. 오십시오, 주 예수님’도 묵시록 22장 28절의 말씀이다. 신천지를 비롯한 유사 종교들이 요한 묵시록을 제시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을 비롯한 현대인들을 현혹하고 있어 무엇보다 묵시록이 어떤 책인지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요한 묵시록이 어떤 책인지 성서학자 허규 신부와 안소근 수녀, 성서신학자 박찬용 신부 등의 저서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해 소개한다. ▨ 요한 묵시록은 어떤 책인가요한 묵시록은 신약성경의 마지막 책이면서 ‘환시’를 통해 종말에 드러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1,1)를 전하는 책이다. 환시를 묘사하는 이야기 틀 안에서 종말의 구원을 강조하며 전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계시’ 또는 ‘묵시’ ‘묵시록’으로 번역된 헬라어 성경 본문은 ‘아포칼립시스’(Αποκαλυφιs)이다. 아포칼립시스는 ‘가려져 있는 것을 열어 보인다’는 뜻이다. 즉 알지 못하는 것을 알려준다는 것이다.교회는 요한 묵시록의 저자를 요한 사도라고 전통적으로 여겨오고 있다. 하지만 현대 성서학자들은 원래 팔레스티나 지역에 살다가 유다 전쟁(66~73년) 후 소아시아 지방으로 이주한 유다인 출신 순회 예언자 중 한 사람으로 추정한다. 그 이유는 요한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육화의 그리스도론이 중심인데 반해 요한 묵시록에는 육화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또 요한 묵시록은 로마의 황제 숭배 의식이 강요되는 도미티아누스 황제 통치 말기의 박해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95년경에 쓰였을 것이라는 게 학계의 일반적 견해이다. ▨ 묵시문학성경에서는 구약의 다니엘서와 신약의 요한 묵시록이 묵시문학에 해당한다. 묵시문학에서는 한 인물에게 어떤 초월적인 내용이 전달된다. 그 내용은 시간적으로는 종말과 관련된 경우가 많고, 공간적으로는 천상의 세계를 보여 주는 경우가 많다. 또 계시받는 사람이 그 받은 내용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천사나 다른 어떤 존재가 해석해 주는 경우가 많다. 묵시문학은 예언서와 유사하지만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예언서에서도 환시가 나타난다. 아모스도 예레미아 예언자도 환시를 보았다. 또 예언서도 ‘주님의 날’인 종말에 관해 말한다. 구약의 아모스와 즈카르야, 말라키 예언자도 종말을 주장한다. 하지만 묵시문학에서 말하는 종말은 예언서의 그것과 전혀 다른 의미이다. 예언서는 종말을 말하지만, 세상이 끝난 것은 아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말하는 종말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왕국의 멸망이다. 그러나 묵시문학에서의 종말은 현재의 세상과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의미한다. 이 세상의 역사의 흐름이 단절되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시작됨을 의미한다.묵시문학의 또 다른 특징은 상징을 통해 표현하고, 과거의 권위 있는 인물을 저자로 내세운다는 점이다. 요한 묵시록에서 환시를 통해 등장하는 여러 동물, 색깔과 숫자 등은 모두 무엇인가를 나타내는 상징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묵시문학에서는 실제 저자가 아닌 인물을 저자로 내세운다. 요한 묵시록도 마찬가지이다. 묵시문학은 미래에 닥칠 종말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역사 전체를 하느님의 시각에서 새롭게 바라보게 함으로써 앞이 보이지 않는 현재를 하느님의 계획 일부로 이해하게 하는 데에 있다. ▨ 요한 묵시록 구성요한 묵시록은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23장)와 ‘환시들’ (4,122,5)로 구성돼 있다. 일곱 교회는 숫자 7의 상징성 때문에 소아시아 전체 교회의 신자를 뜻한다.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의 주된 내용은 첫째, ‘니콜라오스파’(묵시 2,6)를 경계하라는 것이다. 이들은 “사도가 아니면서 사도라고 자칭하는 자들”(2,2), “사탄의 무리”(2,9), “발라암의 가르침을 고수하는 자들”(2,14), “이제벨이라는 여자”(2,20), “사탄의 깊은 비밀”(2,24)로 우상 숭배를 조장하고 불륜을 저지른다. 둘째로,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는 공통으로 ‘사람의 아들’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시작한다. 이는 계시를 전하는 분이 누구인지 알려준다. 마지막으로, ‘승리하는 사람’에게, ‘믿음을 끝까지 지킨 이들’에게 주어지는 약속을 보여준다. 일곱 교회에 약속했던 말씀이 종말과 함께 실현되는 것으로 드러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요한 묵시록의 4장부터는 서로 이어져 있는 환시들을 연속적으로 보여준다. 그 시작은 ‘어좌에 앉은 분’과 ‘어린양’에 대한 환시이다. 어린양은 요한 묵시록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전형적인 상징이다. 이 어린양은 어좌에 앉은 분으로부터 봉인된 두루마리를 건네받는다. 이 봉인된 두루마리는 요한 묵시록에서 환시를 시작하고 종말을 향해가는 중요한 요소이다. 두루마리에는 세상의 재앙과 선택받은 이들에 대한 환시가 소개된다. 신천지를 비롯한 유사종교와 사이비종교에서 자주 인용하는 ‘선택받은 이들에 대한 환시’는 하느님의 인장을 받은 14만 4000명에 대한 내용으로 시작한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에서 온 것으로 표현된다. 우선 여기에 사용된 14만 4000이라는 숫자는 실제적인 의미가 아닌 상징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이 숫자는 두 번의 12와 1000으로(12×12×1000) 이뤄진다. 이것은 하느님의 백성을 나타내는 숫자이다. 결국, 몇 명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인장을 지닌 이들, 곧 하느님을 믿는 모든 이들이 구원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요한 묵시록 바르게 읽기」 저자 허규 신부는 “우리에게 재앙을 소개하고 종말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간직한 이들이 우상숭배에 대한 강요와 박해에서도 신앙을 간직할 수 있도록 종말의 희망을 통해 위로하는 것이 요한 묵시록이 기록된 목적”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요한 묵시록의 저술 목적에 부합하도록 개별적인 내용과 상징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요한 묵시록은 우리에게 희망과 위로를 통해 하느님의 구원을 계시하는 책”이라고 강조했다.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0.03.18

예수님께서는 왜 하필 베드로를 선택하셨을까[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 (10)예수님의 최고 지도자 양성법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 베드로 대성전에 모셔진 베드로 사도 성상 앞에서 축일 예식을 거행하고 있다. 베드로 사도(성상)는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에 중세 때 교황 전통 복장을 하고 순례자를 맞이 한다. 이 성상은 이탈리아 조각가 아르놀포가 13세기에 만들었다. 【CNS 자료 사진】 베드로 사도는 어떤 분일까요? 성경을 한두 번이라도 접해 본 적이 있는 비그리스도인에게 베드로를 아느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이렇게 대답합니다. “예수님을 세 번 배신한 사람 아닙니까?” 베드로에겐 가장 아픈 말입니다. 성경의 맥락을 봐도 그럴까요? 2월 22일은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입니다. 베드로는 가톨릭교회에서 가장 큰 산(山)입니다. 예수님의 지상 대리인이며 초대 교황입니다. 예수님의 ‘최고 지도자 양성’이라는 시각에서 베드로의 삶을 묵상해 봤습니다. 예수님은 왜 당신의 대리인으로 베드로를 선택하셨을까. 예수님은 어떻게 베드로를 최고 지도자로 양성하셨을까. 보통 사람 베드로에 대한 예수님의 큰 믿음첫 번째 화두, 왜 베드로였을까? 예수님은 공생활 초기 일찌감치 갈릴래아의 어부 베드로를 당신의 대리인으로 ‘찜’하셨습니다.(요한 1,42 참조) 당시 갈릴래아 어부는 배운 것도 별로 없고 변변한 사회적 배경도 없는 촌부, 그냥 보통사람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에게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저는 이 대목에서 ‘마리아 사제운동(MMP)’을 창설하신 스테파노 곱비 신부를 떠올립니다. 예수님의 깊은 뜻을 어찌 알겠습니까마는, 곱비 신부가 ‘내적 담화’ 형식으로 받은 성모 마리아의 말씀을 정리해 놓은 책 「성모님께서 지극히 사랑하는 아들 사제에게」(가톨릭출판사)를 읽고 나서 예수님의 마음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곱비는 MMP 활동을 하면서 큰 의문을 하나 갖고 있었습니다. ‘내가 이 운동을 하기에는 너무 부족하고 무능한데…. 성모님은 왜 나에게 이 일을 맡기셨을까?’성모님께서 1973년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에 곱비에게 응답하셨습니다. “아들아, 가장 적합하지 않은 도구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너를 택한 거다. 그래야 이 일을 너의 일이라고 말할 사람이 없지 않겠느냐? 마리아 사제운동은 오로지 나의 사업이어야 한다. 너의 약함을 통해 나의 강함을 드러내고, 아무것도 아닌 너를 통해 나의 능력을 드러낼 작정이다.” 오로지 ‘나의 사업’이어야 한다는 대목이 큰 울림을 줍니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이런 일을 할 때 ‘자신의 사업’으로 착각하곤 합니다. 예수님이 천국의 열쇠를 베드로에게 맡긴 것이나, 성모님이 MMP 운동을 곱비에게 맡긴 것이나 그 취지가 같지 않나 생각됩니다. 두 번째 화두, 어떻게 양성하셨을까? 베드로는 예수님과 처음 만나 하룻밤을 묵은 날부터 로마에서 순교할 때까지 그야말로 형극의 길을 걸었습니다. 외부로부터의 박해와 수모도 고통이었겠지만, 내부에서 벌어진 일로 더 큰 상처를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믿음이 없다고 지적하기도 하셨고, 심지어는 사탄이라고 질책하셨을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예수님은 왜 그렇게 혹독하게 하셨을까요? 유독 베드로에게만!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베드로의 기본 자질(믿음)은 출중하지만, 그것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엄격한 훈육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예수님의 베드로 훈육은 독특합니다. 베드로 스스로 인간적인 결점(죄)을 티끌 하나 남지 않게 노출(고백)하도록 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제자들의 실수 중 대부분은 베드로가 저지른 것입니다. 복음사가들이 다른 제자들의 실수를 의도적으로 기록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열두 사도의 좌장답지 않게 베드로의 실수가 현저히 많습니다. 결점 노출의 프로세스라 봐야 할 것입니다. 용서를 통해 ‘성숙한 인간’이 되게 하시다세 번의 배신행위도 이런 프로세스의 한 과정이 아니었을까요? 예수님은 노출된 결점을 모조리 제거(용서)하여 베드로를 ‘성숙한 인간’으로 만드셨습니다. 결점의 발본색원! 혹독한 담금질이었습니다. 베드로에게는 이 과정이 무척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베드로 훈육은 단순한 담금질이 아니라 치밀한 치유과정이었습니다.‘최후의 담금질’이 극적이고 감동적입니다. 베드로가 네로 황제의 박해를 피해 로마 외곽으로 피신하려 하자, 예수님께서 베드로 앞에 나타나셨다는 전승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주님, 어디로 가시나이까?(Quo Vadis, Domine?)”라고 인사하자, 예수님이 “나는 로마로 간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순간 베드로는 큰 충격을 받고 로마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로마 언덕 처형장에서 십자가형을 받을 때, 예수님처럼 똑바로 매달릴 자격도 없다면서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습니다.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 평화신문2020.02.19
![[수도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3)교회의 가르침](//cpbc.co.kr/CMS/newspaper/2019/08/rc/760484_1.1_titleImage_1.jpg)
[수도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3)교회의 가르침하느님 말씀, 영성의 마르지 않는 샘 허성준 신부 교회는 초세기부터 오늘날까지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있어서 성경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늘 강조해 왔다. 특별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모든 신자가 그리스도교 생활의 완성과 사랑의 완덕에로 초대되었음을 지적하였다. 그리스도교의 완덕은 구체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자주 읽고 묵상함으로써 가능하게 됨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강조하였다. 사실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은 인간의 저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느님의 계시로 이루어진 책으로서, 이것은 구원을 얻는 지혜와 진리를 가르쳐 주고 동시에 올바르게 살아가는 길을 제시해주고 있다. 그래서 교회는 언제나 성경(聖經)과 성전(聖傳)을 신앙의 최고 규범으로 늘 간직해 왔다. 사실 하느님은 성경 안에서 당신 자녀들을 언제나 친절히 만나 주시고 또 기꺼이 그들과 말씀을 나누시는 분이시다. 이러한 하느님의 말씀은 교회를 지탱하는 힘이며, 영성생활의 마르지 않는 풍요로운 샘과 같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히브 4,12)라고 고백하였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경을 떠나서는 온전한 신앙생활, 기도생활을 기대할 수 없다. 교회의 여러 문헌도 한결같이 하느님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성경 독서를 권고하였다. 「계시헌장」에서는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성경을 자주 읽고 배우도록 강력히 권고하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성경과 친숙해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25항) 「사제 직무와 생활에 관한 교령」에서도 사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야 할 교역자이므로, 하느님의 말씀을 매일 스스로 읽고, 듣고, 실천함으로써, 참으로 더 완전한 주님의 제자가 되어야 함을 권고하고 있다.(13항)사제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가까이하지 않을 때, 사제생활 중에 심각한 위기가 언제 다가올지 모른다. 반면에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참된 기쁨과 행복을 맛보게 된다면 그러한 기쁨과 행복은 자연스럽게 신자들에게도 전해지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교회는 특별히 말씀을 선포하는 사제들에게 자신이 먼저 성경을 읽고 들으며 실천할 필요성에 대해서 강조하였다. 비오 10세 교황은 「가톨릭 사제들에게 보내는 권고(Haerent Animo)」에서, 오늘날 성직자 중에는 성경 독서나 영성 서적보다는 오히려 각종 잡다한 서적, 신문, 잡지 등을 더 좋아함으로써 교회의 참된 진리에서 벗어나는 자가 있음을 지적하였다. 교회는 수도자들에게도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다. 수도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뛰어난 지식을 얻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먼저 매일 성경을 손에 잡고 그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한다.(「수도 생활 교령」 6항) 평신도들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에서도, 모든 평신도는 자신을 부르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성령께 기꺼이 응할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하였다.(33항)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봉헌생활」에서 하느님의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 영성의 첫째 원천임을 강조하였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계신 하느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맺도록 도와준다. 이처럼 교회는 언제나 하느님 말씀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하였다. 오늘날 우리의 문제는 주님의 말씀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신뢰하지 않으며, 신앙생활과 삶을 따로따로 사는 데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이런 측면에서 렉시오 디비나에서는 언제나 하느님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허성준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평화신문2019.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