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라 불러주는 신자들이 있어 ‘아버지’가 된 신부[선교지에서 온 편지] 캄보디아(상) ‘아버지’라는 이름 - 윤대호 신부 캄보디아 소녀에게 고해성사를 주고 있는 필자. 우리나라와 중국, 그리고 일본에서는 사제를 부를 때 ‘신부(神父)’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물론 ‘탁덕(鐸德)’이라는 말도 있고 그냥 ‘사제’라고도 쓸 수 있지만, ‘신부’라는 말이 가장 익숙하고 입에도 잘 붙습니다. 그런데 동북아 3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사제를 ‘아버지(Father)’라고 부릅니다. 이는 서구문화권뿐만 아니라 다른 아시아문화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베트남에서는 ‘짜(Cha)’, 태국에서는 ‘퍼’라고 부르는데, 이는 모두 아버지와 같은 단어입니다.캄보디아에서 신부는 ‘록어으뽁’, 또는 줄여서 ‘록뽁’이라고 부릅니다. 일반적으로 아버지는 ‘어으뽁’이라 부르지만, 앞에 ‘록’이라는 호칭이 붙으면 ‘아버님’ 정도의 높임말이 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사제품을 받고 한동안 ‘다니엘 신부님’으로 불리던 제가 캄보디아에 와서 ‘록뽁 다니엘’로 불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제가 가지고 있던 사제관(司祭觀)이 조금씩 변하게 되었고, 그것은 곧 제 삶을 변화로 이끌었습니다.호칭에서 시작된 변화 처음에는 단지 호칭에 변화가 있었다고만 생각했고, 그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캄보디아어가 익숙해지고 교우분들이 저에게 쓰는 말을 알아듣기 시작하면서부터 제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캄보디아어로 어린이, 자녀를 뜻하는 ‘꼰’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교우분들이 제 앞에서 자기 자신을 지칭할 때, ‘꼰’ 이라고 말하는 것이 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린이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모두가 제 앞에서 자신을 ‘꼰’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굳이 번역하자면 ‘소자가…’, ‘소녀가…’ 이런 식의 말이 되는 건데,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바로 제가 ‘록뽁(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어찌 보면 단순한 언어적 습관이어서 교우분들은 큰 의미를 두지 않는 표현일지도 모르지만, 저에게는 큰 의미가 되는 단어였습니다. 성소에 대해 고민이 많던 시기에, 기왕이면 사제가 부족한 곳에서 살아가며 미사와 성사를 드리고, 복음을 선포하며, 어려운 교우들과 이웃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사제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찾은 곳이 한국외방선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캄보디아의 교우들이 저를 아버지라고 불러주기 시작했을 때, 제 생각의 뿌리 자체가 잘못 내려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더 잘 사는 나라의 체계적인 교회 시스템 안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은 신부이기 때문에 당연히 도움을 주고 많은 것을 베풀어야 한다’는 교만한 생각이 제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버지’ 역할 하려는 열망으로 이 생각은 저를 저의 교우들로부터 스스로 분리해서 ‘나는 한국인, 당신들은 캄보디아인’이라는 경계선을 긋게 하였던 것 같습니다. 특히 영성적으로 많이 부족한 제게 ‘신부’라는 단어는, 내재한 포괄적 의미들보다는 그저 사제와 신자를 구분하는 직분적인 단어로만 받아들여졌던 것 같습니다. 교우들과 화목하게 지내면서도 늘 내면에 그어진 경계선의 범위를 지켜오던 저에게, ‘아버지’라는 호칭은 그 경계선을 관통하여 제 마음 깊은 곳까지 도달한 사랑의 부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작은 깨달음을 얻은 그때부터 저는 아버지의 역할을 다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지금 맡고 있는 세 개의 본당에서, 제가 사목에 중점을 두고 있는 대상은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입니다. 캄보디아에서 서른아홉이라는 나이는 10대 후반 또는 20대 초반의 자녀를 둔 가장의 나이이며, 빠른 경우엔 손주도 보는 나이입니다. 그러므로 저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예쁘기만 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나길 바라며, 더 나은 미래를 계속해서 제시해주고 싶습니다. 저는 아버지이고, 그들은 제 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하여 지금까지는 주로 교육 활동과 체험 활동 중심으로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위한 사목을 해왔습니다. 여러 봉사자의 도움으로 영어 회화, 윤리, 컴퓨터, 사회 인문, 그리고 체육 교육 등을 실시했고, 시청각자료를 활용한 교리와 성경 공부도 시행해왔습니다. 앙코르와트나 박물관, 영화관, 왕립대학교 등을 견학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양육과 성장 과정에서 오는 차이 때문인지, 의도한 만큼의 결과를 얻어내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부분 아이들이 성취감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느껴보지 못해왔고, 그로 인해 목표 의식과 끈기가 많이 부족하지 않은가 싶었습니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제가 추측한 원인이 맞다는 가정하에, 최근 새로운 사목 프로젝트를 시작하였습니다. 윤대호 신부(한국외방선교회 캄보디아 프놈펜대목구 메콩강지구) cpbc2019.07.23

일흔의 베테랑 배우, 늘 기도하며 1인극으로 복음 전해서울가톨릭연극협회 배우 심우창씨 배우 심우창씨가 3월 28일 수원교구 호계동성당에서 성극 ‘예수님을 만난 대장장이 이야기’ 리허설을 하고 있다. 전국 순회공연만 400회 이상. 이번 사순시기에도 수원, 대구, 부산 등 전국 각지를 돌며 혼자 공연하는 배우가 있다. 서울가톨릭연극협회 소속 배우 심우창(세베로, 73, 수원교구 천리요셉본당)씨다. 심씨는 성극 ‘예수님을 만난 대장장이 이야기’를 연기하며 사순시기를 겸허하게 보내고 있다.성극 ‘예수님을 만난 어느 대장장이의 이야기’는 1인극이다. 돈밖에 모르던 대장장이가 예수님을 만나면서 새 삶을 살게 되는 이야기다. 십자가 처형에 사용되는 못을 팔던 대장장이는 자신이 만든 못이 예수님 손에 박힌 것을 보고 통탄한다. 심씨는 예수님 수난의 슬픔을 열연하면서 공연마다 관객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주고 있다.심씨의 배우 경력은 화려하다. ‘요셉 임치백’,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등에서 열연하고, 작년에는 한국 평신도 희년 기념 연극 ‘빛으로 나아가다’에서 주연을 맡기도 했다.연기에 있어서는 베테랑일 법도 한데 심씨는 무대에 오르는 매 순간이 새롭다고 말한다. 공연 전날에는 기도와 깊은 묵상으로 마음을 다잡는다. “성극은 신앙적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돼야 해요. 공연 전날 밤 혼자 십자가의 길을 하거나, 성경, 영성 서적을 읽으면서 묵상합니다. 매 순간 모든 공연의 완성은 주님께서 해주신다는 걸 느끼고 있죠.”심씨는 1인극을 하는 이유가 명성 때문이 아닌, 복음 말씀을 많은 교우에게 전하고 싶다는 사명감 때문이라고 했다. 공연을 올릴 수 있는 전국 성당을 수소문하고, 음향과 조명을 챙기는 일도 모두 심씨의 일이다. 힘들 법도 하지만 주님을 전하면서 얻는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관객들에게 받는 에너지는 더할 나위 없다.“고생스러워도 계속 1인극을 이어가고 싶어요. 어느 날은 외국에서 온 한 자매님께서 말씀하시더라고요. 외국에도 저처럼 1인극으로 복음을 전하는 배우가 있다면서, 저한테도 다리에 힘이 남아 있을 때까지 공연해달라고 하셨어요.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칠순이 지난 지금, 힘들 때마다 그 말씀을 떠올리곤 합니다.”심씨의 공연에는 아내 김춘자(율리타, 71)씨도 늘 함께한다. 든든한 동반자로서 공연마다 음향을 책임지고 있다. 심씨는 앞으로도 아내와 함께 예수님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말한다.“저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데, 주님의 배려로 꾸준히 공연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간절히 기도하며 주님과 가까워질 겁니다.”성극 ‘예수님을 만난 대장장이 이야기’는 9일 부산교구 주교좌 남천성당에서 막을 내린다. 전은지 기자 eunz@cpbc.co.kr 평화신문2019.04.03

태중에서 죽어간 생명, 영원한 안식에 들게 하소서! 서울 생명위, 생명의 피정 열어
낙태로 희생된 태아 위해 기도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가 마련한 생명의 피정에서 신자들이 낙태아의 묘에 태아 이름을 쓴 나무 십자가를 꽂고 있다. “저희의 잘못으로 죽어간 태아들에게는 자비를 베푸시어, 영원한 안식에 들게 하시고, 자녀를 낙태시킨 저희 부모들의 잘못을 진심으로 통회하오니 용서해 주소서.”1일 경기도 용인 천주교 공원묘지 내에 조성된 낙태아의 묘.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위원장 염수정 추기경) 생명분과 위원을 비롯한 신자 100여 명이 태아를 위한 기도를 바친다. 신자들은 낙태로 희생된 태아의 이름을 지어, 나무 십자가에 이름을 적은 다음 낙태아의 묘에 꽂아 기도하는 시간도 가졌다.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가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판결을 앞두고, ‘구요비 주교와 함께하는 생명의 피정- 라헬의 땅 순례’를 개최했다. 라헬의 땅은 자식을 잃고 울부짖는 구약성경의 여인 ‘라헬’(예레 31,15)에서 따온 이름으로, 낙태아의 묘는 서울대교구가 1993년 낙태 관련 형법 개정에 반대하기 위한 100만인 서명 운동을 계기로 조성했다. 신자들은 ‘태아들의 수호자 과달루페 성모님과 함께하는 생명의 묵주기도’를 시작으로, 용인 천주교 공원묘지 내 김수환 추기경 소성당에서 지영현(생명위원회 사무국장) 신부의 생명 강의를 들었다. 김수환 추기경 묘소 앞에서 살아생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특별히 사랑했던 추기경에게 낙태죄 합헌 판결이 나도록 함께 기도해달라며 고개를 숙였다. 용인 천주교 공원묘지 내에 있는 가톨릭대 의대 참사랑 묘역으로 자리를 옮겨 의학발전을 위해 시신을 기증한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했다.신자들은 김수환 추기경 경당에서 낙태로 희생된 태아와 낙태한 여성의 아픔을 치유하고, 헌재의 낙태죄 합헌 판결을 구하는 생명 수호를 위한 미사를 봉헌했다. 미사를 주례한 구요비(서울대교구 생명윤리자문위원회 위원장) 주교는 강론에서 “태아의 생명권은 절대적으로 부모에게 위탁된 가장 나약하고 가난한 존재”라며 “실용주의, 물질주의라는 세상의 논리로 태아의 생명을 무가치한 것으로 낙인찍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구 주교는 이어 “나약하고 가난한 태아를 생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인간의 생명을 보존하고 간직할 때 사회는 인간다운 사회가 된다”고 강조했다. 피정에 참가한 생명위원회 동서울 대표 이윤흠(엘리사벳)씨는 “희생된 태아들을 위해 기도하며 생명과 죽음을 동시에 생각한 날이었다”면서 “헌법재판소가 생명의 문화로 갈 수 있도록 생명의 판결을 내리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소망했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평화신문2019.04.02

청년들 고민과 질문, 신앙에서 답을 찾아주다「하느님과 트윗을」 저자 미헬 레메리 신부와 함께하는 토크 콘서트 열려 네덜란드 로테르담 교구 미헬 레메리 신부(가운데)와 서울대교구 사제, 청년 패널들이 4일 열린 토크 콘서트에서 대화하고 있다. “저는 가톨릭 신자이지만 ‘결혼과 출산을 꼭 해야 할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결혼과 출산을 인생의 목표나 숙제로 생각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진정으로 ‘사랑’의 의미를 깨친다면 어렵지 않은 고민입니다.”청년들의 허심탄회한 질문에 푸른 눈의 네덜란드 신부는 그들 눈높이에 맞춰 답했다. 서울대교구 청소년국(국장 김성훈 신부)은 4일 주교좌 명동대성당 꼬스트홀에서 「하느님과 트윗을」 저자 미헬 레메리(네덜란드 로테르담교구) 신부와 함께하는 토크 콘서트’를 열고 청년들의 신앙 고민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교회 가르침과 현실과의 괴리 청년들은 공통적으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과 현실에서 오는 괴리감을 고민으로 내비쳤다. 생명의 가르침을 실천해야 하는 가톨릭 청년들도 ‘비혼(非婚, 결혼하지 않음)’을 선택하거나 ‘딩크(DINK, 부부가 의도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음)족’으로 살아가는 현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물었다. ▶관련기사 12면룩셈부르크에서 청소년사목을 하는 레메리 신부는 “자신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한다면 홀로 살아가는 삶을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자신이 느끼는 사랑을 가족과 이웃에게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 수 있도록 혼인과 출산의 긍정적인 면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청년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마음을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지도 물었다. 레메리 신부는 “그리스도인도 사람”이라며 “사람은 모두 부정적이고 약한 모습을 가지고 있기에 그리스도인도 유혹에 빠지고 그런 삶을 사는 것은 당연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성경에서 초기 교회 사람들이 서로의 잘못된 점을 고쳐주던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인답지 않은 사람들에게 적절히 반응하고, 그들에게 올바른 삶의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고 조언했다.이번 토크 콘서트에는 청소년국 청년부 담당 이원석 신부, 교구 사목국 기획연구팀 이영제 신부, 교구 청소년국에서 활동하는 박영주(라파엘라)ㆍ손은정(로사리아)ㆍ최유진(스텔라)씨가 패널로 참석했다. ‘두려워하지 말라’ 말씀 새겨야 콘서트 내내 패널과 청중은 자유로운 질문과 답을 주고 받았다. 이영제 신부는 레메리 신부가 ‘열정’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는 점을 언급하며 “열정과 행복감의 근원이 궁금하다”고 묻기도 했다. 이에 레메리 신부는 “당연히 하느님의 사랑”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도 “가톨릭교회의 열정의 근원인 청년들을 많이 만나고 싶지만, 젊은이들이 모두 떠나가는 현실을 마주하면 슬프다”며 “‘두려워하지 말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새기면서 사목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토크 콘서트에 참석한 신희균(마리아, 26, 서울 미아동본당)씨는 “복잡하게 생각했던 일상의 문제를 신앙 안에서 고민해보고 해답을 찾을 수 있어 유익했다”며 “신앙을 성숙하게 키워 하느님과 발맞춰 걸어가는 자녀가 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전은지 기자 eunz@cpbc.co.kr cpbc2019.05.07
![[창간 31주년 연중기획 오늘날의 청년 예수] SNS 채널 ‘성당언니’](//cpbc.co.kr/CMS/newspaper/2019/05/rc/752448_1.0_titleImage_1.jpg)
[창간 31주년 연중기획 오늘날의 청년 예수] SNS 채널 ‘성당언니’SNS 채널 ‘성당언니’를 운영하는 수원교구 청년들이 자신들이 만든 페이지를 소개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현아ㆍ김승희ㆍ손수정ㆍ홍성훈ㆍ강지수ㆍ한건희 씨.재미와 정보 더한 가톨릭 청년들의 사랑방 예수님의 복음 말씀을 전하고자 앞장서는 청년들은 온라인에서도 만날 수 있다. SNS 채널 ‘성당언니(@catholic_sister)’를 운영하는 수원교구 청년들이 그 주인공이다. ‘성당언니’ 채널은 교리ㆍ전례 지식을 쉽게 설명하고, 청년 신자들의 다양한 활동을 전하는 뉴미디어 콘텐츠다. 손 글씨로 예쁘게 적은 성경 구절이나 걸을 만한 순례성지 소개 글도 시선을 끈다. ‘예사담(예수님의 사랑을 담다)’, ‘우성소(우리 성당을 소개합니다)’ 등 고정 코너도 연재된다. 유행어와 재미를 더한 게시글에 SNS를 이용하는 청년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하느님의 사랑을 베푸는 청년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30대 중반에 예비신자가 됐습니다. 좋은 콘텐츠 만들어주세요” 같은 댓글이 달리고, 구독자도 1000명 넘게 생겼다. “8옥타브 성가대, 꿀성대를 가진 전례부를 찾습니다~”라는 재치있는 질문에는 이탈리아 밀라노 한인성당 성가대가 자신들의 공연 영상을 보내오기도 했다. 어느새 청년 신자들이 함께 즐기는 ‘신앙 커뮤니티’가 된 셈이다. 신앙 갈증 해소하고자 직접 커뮤니티 만들어 ‘성당언니’는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겪던 편집장 손수정(가타리나, 28, 수원 고등동본당)씨가 주축이 돼 만들었다. 본당 청년과 소통하고 싶었지만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했던 손씨는 자신이 직접 소통 창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20~30대가 많이 이용하는 SNS 채널을 만들고 누구나 친근감을 느끼도록 이름도 ‘성당언니’라 지었다. 손씨는 “밖에서 보면 성당이 조용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열심히 활동하는 청년들도 있고, 또 활동하고 싶지만, 정보가 없는 청년들도 많다”며 “가톨릭 청년들이 자유롭게 대화하고 뭉칠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현재 ‘성당언니’를 운영하는 청년은 모두 6명. 대부분 직장인인 탓에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 틈내어 하는 활동이지만 청년 사도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온라인 밖에서 가톨릭 청년들을 만날 때는 ‘성당언니 에디터’라 새겨진 명함을 들고 나갈 만큼 책임감과 자부심으로 뭉쳤다. 에디터 강지수(마리나, 24, 수원 정자동 주교좌본당)씨는 “가톨릭 청년들이 주님 안에서 함께 할 수 있는 밑거름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하다”며 “취재하면서 멋진 가톨릭 청년을 만나고 그분들이 ‘성당언니’를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말할 때는 특히 보람차다”고 전했다. 에디터 홍성훈(요한, 27, 수원 정자동 주교좌본당)씨는 “좋은 목소리로 녹음한 성가를 청년들이 좋아해 주셔서 감사하고 더욱 열심히 하고 싶다”고 말했다. ‘성당언니’는 앞으로 전국 지역의 가톨릭 청년을 잇는 커뮤니티로서 영역을 확장할 예정이다. 손씨는 “신앙생활에서 멀어진 가톨릭 청년들이 ‘성당언니’를 통해 용기와 즐거움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전은지 기자 eunz@cpbc.co.krcpbc2019.05.07

가난하고 병든 이들 섬기고 신앙 지키려 기꺼이 목숨 바쳐특별 전교의 달 ‘신앙의 증인’(하) 복자(8명) 특별 전교의 달을 맞아 교황청이 소개한 신앙의 증인 33인 가운데 마지막으로 복자 8명을 살펴본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모리셔스의 사도로 불리는 자크 데지레 라발(1803~1864) 신부는 원래 의사였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의대와 신학대를 고민하다 의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그는 사제의 꿈도 품고 있었다. 의사로서 생명을 살리는 일에 보람을 느꼈지만, 마음은 왠지 모르게 공허했다. 고심 끝에 다시 신학대에 들어간 그는 35세에 뒤늦게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사제라면 선교지에서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성령수도회에 입회했다. 이후 모리셔스로 파견됐는데 모리셔스 사람들은 대부분 노예 출신으로 가난했고 글도 몰랐다. 그는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왔다. 사제로서 의사로서 지역민들의 몸과 마음을 살린 그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한몸에 받았다.사막의 은수자로 알려진 샤를 드 푸코(1858~1916) 신부는 젊은 시절을 방탕하게 보냈다. 예수회가 운영하는 기숙 학교에서 퇴학당한 그는 육군 사관학교에 들어가 군에 입대했지만 역시 제멋대로 지내다 문제를 일으켰다. 제대한 뒤에는 무작정 모로코 사하라 사막으로 떠나 사막에서 생활했는데, 사막이 주는 고독함과 알 수 없는 영적 기운에 매료당했다. 고국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회심했고, 그때부터 기도와 금육의 삶을 시작했다. 관상 수도회인 트라피스트회에 들어가 시리아, 알제리 수도원에서 지냈다. 나자렛에서 수녀원 문지기로 살던 그는 파리로 돌아와 사제품을 받고 다시 사막으로 가서 미사와 성체조배, 관상의 삶으로 신앙을 사는 모범을 보였다. 많은 이들이 사막에서 가난하고 단순하게 살아가는 그의 삶에 큰 영감을 받고 하느님을 체험했다. 안나 마리아 자부헤이(1779~1851) 수녀는 가톨릭 신앙을 탄압하던 프랑스 혁명기에 나고 자랐다. 사제들이 몰래 숨어 미사를 드리는 걸 보면서 자란 그는 자신도 사제들처럼 무슨 일이 있더라도 신앙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10대 때 수녀가 되기로 결심하고 여러 수녀원을 다니며 가난한 이들을 도왔다. 그러다 마음이 맞는 이들과 클루니의 성 요셉회를 설립,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육에 매진했다. 프랑스 전역은 물론 아프리카에까지 선교 영역을 확장했다. 세네갈, 잠비아, 시에라리온 등지에 수도원과 학교를 세웠고, 현지인 사제 양성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아프리카 청년들을 프랑스로 유학을 보내 사제가 되도록 지원했다. 이 가운데 일부는 사제품을 받고 아프리카에서 사목했다. 노예제 폐지를 주장하고 편견에 맞서 싸우며 흑인들의 어머니로 존경받았다. 이탈리아 출신인 마르코 안토니오 두란도(1801~1880) 신부는 어릴 때부터 선교 사제가 되고 싶어 했다. 집 옆 건물이 성빈센트선교회관이어서 선교사들을 자주 보며 자랐다. 중국 선교를 꿈꾸던 그는 빈센트회에 입회해 사제품을 받았다. 그러나 건강이 나빠 중국으로 떠나지 못하고 프랑스 리옹에서 사제 생활을 했다. 그는 다시 이탈리아 토리노로 발령받아 수녀원 영적 지도를 맡았다. 그리고 수녀들과 함께 가난하고 병든 이들, 특히 전쟁 중 다친 군인을 돌보는 일에 헌신했다. 전쟁터로 나가 부상당한 병사를 도우며 ‘야전병원’ 사목을 이끌었다.1994년부터 1996년까지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에게 살해당한 알제리 순교자 19위는 2018년 12월 시복됐다. 시복식은 교황청 시성성 장관 안젤로 베치우 추기경 주례로 알제리 오랑교구에서 열렸다. 순교자들은 그리스도교 신앙과 이슬람교 사이에서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며 평화를 위해 노력했다. 이들 중 7명은 트라피스트회 수도자로 영화 ‘신과 인간’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1991년부터 2002년까지 10년간 알제리 정부와 이슬람 과격 단체 사이에서 무력 충돌이 지속됐다. 과격 단체 만행이 극에 달하던 시기에 사제와 수도자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키고 알제리를 떠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희생됐다. 오랑교구장 피에르 클라베리 주교도 그중 한 명이다. 시복식에는 가톨릭뿐만 아니라 이슬람 신자들도 함께해 순교자들이 목숨을 바쳐 헌신해 온 화합의 결실을 확인하게 했다.린달바 주스투 지 올리베이라(1953~1993) 수녀는 브라질 출신이다. 암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고 임종을 지키면서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도우며 한평생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빈센트수녀회에 입회해 수녀가 됐고 입회할 때의 초심을 잃지 않고 가난한 이들을 섬기며 아픈 이들을 돌봤다. 가까운 친척들과 친구들은 그의 삶에 감동했고 알코올중독자였던 친오빠는 그의 조언에 따라 술을 끊고 새 삶을 살았다. 친구 몇몇은 그를 따라 수녀회에 입회할 정도였다. 그는 요양원에서 아픈 어르신들을 헌신적으로 돌봤다. 항상 정성스럽게 성체를 모시고 친절한 태도와 기도하는 모습으로 말없이 신앙을 전했다. 올리베이라 수녀에게 반한 한 남성이 요양원에 거짓으로 입원해 그를 괴롭혔다. 올리베이라 수녀가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는 이유로 앙심을 품은 남성은 어느 날 새벽 십자가의 길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는 수녀를 칼로 찔러 살해했다. 메르세데스 데 헤수스 몰리나(1828~1883) 수녀는 에콰도르 출신으로 에콰도르 선교사들의 수호성인으로 존경받고 있다. 일찍 고아가 된 그는 많은 유산을 상속받았다. 그는 가진 것을 모두 필요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집 없이 지내며 고아 소녀들을 돌봤다. 예수회 선교사들과 함께 에콰도르 아마존 정글로 들어가 원주민에게 선교했다. 당시 천연두가 퍼져 선교사들이 모두 정글을 떠났지만 몰리나 수녀만 홀로 남아 끝까지 원주민들을 돌보며 하느님 사랑을 실천했다.스탠리 로더(1935~1981) 신부는 미국인으로 내전 중인 과테말라에서 사목하던 중 무장 괴한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사제품을 받은 그는 과테말라에 사제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과테말라 선교를 자원했다. 그는 스페인어와 과테말라 원주민어 중 하나인 추투질(Tz’utujil)어를 배웠다. 그는 현지에서 가톨릭 라디오 방송국을 세우고 학교와 병원 등을 지으며 원주민들 삶을 도왔다. 추투질어로 신약성경을 번역할 정도로 원주민들에게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데 열정적이었다. 과테말라 공산주의자들 탄압에 미국으로 잠시 피신했지만, 고통받는 신자들을 버릴 수 없어 다시 과테말라로 돌아왔다. 그는 어느 날 밤 성당 사제관에 침입한 괴한들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cpbc2019.10.15

성경 읽기, 정답은 없지만 해답은 있다 거룩한 독서수업 거룩한 독서수업스티븐 J. 빈즈 / 전경훈 옮김 루타 포이칸스, 카스파르스 포이칸스 그림 생활성서 / 1만 7000원성경 읽기에 정답은 없다. 하느님의 숨결이 담긴 말씀을 깊이 알고자 정성과 열정을 가진 이라면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묵상과 기도가 따르기 마련이다.‘렉시오 디비나’는 읽기→묵상→기도→관상을 통해 말씀을 통해 하느님 현존을 깊이 깨닫도록 돕는 독서 수행법이다. 가톨릭 교회의 오랜 전통과 함께 발전해온 이 독서법은 많은 수도회와 공동체가 말씀으로 거듭나도록 이끄는 자양분이 돼왔다.반면, ‘비시오 디비나’는 거룩한 독화(讀畵)다. 일명 성경 말씀을 화폭에 옮긴 이콘을 통해 기도하고 묵상하는 법. 동방교회가 실천해온 거룩하게 보는 이 수행법은 이콘을 통해 신자들이 성화 되도록 이끄는 도구가 돼왔다.오감으로 하느님 말씀 이해 도와거룩한 읽기와 보기가 만났다. 「거룩한 독서수업」은 ‘렉시오 디비나’와 ‘비시오 디비나’라는 두 가지 수행법 모두를 통해 오감으로 하느님 말씀을 이해하도록 이끄는 안내서다. 하느님의 뜻을 알고자 한다면 동ㆍ서방 교회의 전통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저자의 뜻이 담겼다. 성경과 이콘을 동시에 보면서 말씀을 풍요롭게 묵상할 수 있는 책이다.책은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다가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고하는 부분부터 천상 모후에 자리하는 성모 마리아의 대관식까지, 예수 그리스도 일생에 해당하는 20가지 말씀과 이콘을 담고 있다.성경 읽을 때 참여자가 될 것저자는 성경을 읽을 때 제삼자가 아닌 참여자가 될 것을 강조한다.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읽기, 보기, 묵상, 기도, 관상, 실천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주고 있다.도미니코 성인은 성경을 들고 자리에 앉는 것이 여덟 번째 기도라고 가르쳤고,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은 렉시오 디비나의 전통 위에 상상, 위안, 식별의 과정을 더해 영신수련으로 발전시켰다. 프란치스코 교황 또한 「복음의 기쁨」을 통해 렉시오 디비나를 “기도하면서 하느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으로 깨치고 새롭게 되는 것”이라며 그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오늘날 한국 교회 신자들은 말씀에 맛 들이는 데 꾸준히 정진하고 있다. 하느님을 닮고자 하는 신자들의 열정이다. 성경 읽기가 ‘공부’ 단계를 넘어 하느님 현존과 하나 되고, 말씀이 실천으로 이어지는 데 이르기 위해선 거룩한 독서의 수행이 동반되면 더욱 빛을 보지 않을까. 저자는 하느님의 영이 담긴 말씀을 자신의 모든 인격과 정신과 마음을 다해 볼 것을 계속 강조한다.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백영민2017.09.13

‘복음의 기쁨’ 선포하는 복음화 여정에 집중미리보는 2019년 한국 교회10년 전, 김수환 추기경 선종을 추모하는 명동대성당 행렬은 지금 봐도 옷깃을 여미게 한다. 고인이 남긴 사랑의 삶, 그 유지를 잇은 것이야말로 김 추기경을 제대로 추모하는 일일 것이다. 가톨릭평화신문 DB2019년 새해, 한국 천주교회는 ‘복음의 기쁨’을 선포하는 교회 공동체로서 복음화 여정에 닻을 올린다. 성경에 중심을 두고 가정과 본당의 공동체성 회복, 믿음ㆍ희망ㆍ사랑의 ‘향주덕’ 실천, 공동체의 쇄신, 평화 실천에 사목 역량을 집중한다. 아울러 3ㆍ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100년이 지나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뜨거웠던 독립 의지와 만세 운동의 열기를 기억하면서 한반도 평화와 민족 화해, 일치의 길로 나아가고자 한다. 전국 각 교구장이 발표한 2019 사목교서와 사목지침서, 교구별 주요 행사 등을 토대로 새해 한국 교회의 흐름을 조망해 본다. ▨가정 복음화와 본당 공동체성 회복에 역점 전국의 교구장 주교들은 새해 사목교서를 통해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교회의 기초인 가정 복음화와 본당 공동체성의 회복에 중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가정이 사랑을 배우고 키우는 학교, 신앙을 이어주는 자리, 세상에 복음의 기쁨을 전하는 도구가 돼야 한다고 권고하고, 본당 공동체성의 회복과 강화를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 것을 주문한다. 또한, 전국의 교구장들은 성경과 교회 가르침을 바탕으로 복음이 삶 안에 굳건히 자리매김되도록 노력함으로써 내적 쇄신과 새로운 복음화에 매진할 계획이다. ▨복음 선포의 새로운 방향 제시 전국의 교구장들은 새해에도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를 지향한다. 수원교구는 모든 세대와 계층을 유기적 관계망 안에 놓고 접근하는 통합 사목에 기반하는 새로운 선교에 나선다. 부산교구는 ‘희망의 해’를 보내며 기도의 생활화와 선교의 일상화, 활동의 다양화를 시도한다. 청주교구 또한 2005년부터 4년간에 걸친 교구 시노드를 통해 수립된 교구 사명선언문에 따라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교구 공동체의 해'로 보낸다. ▨쇄신하는 교회 공동체들 대구대교구와 대전·안동교구 등은 ‘교구 쇄신’에 방점을 찍고 있다. 2018년에 교구 성모당 봉헌 100주년을 지낸 대구대교구는 현재 교구 쇄신위원회의 두 소위원회를 중심으로 교구 시노드의 결의사항을 다시 점검하고 평가 중이다. 지난 4년간 교구 시노드를 진행해온 대전교구는 오는 4, 5월께 최종 문헌을 작성 반포함으로써 교구 시노드 여정을 마무리하고, 복음화의 새로운 방향을 설정하며, 새로운 미래를 위한 교구 신청사 건립에 나선다. 교구 설정 50주년을 맞는 안동교구 또한 교구 희년의 기쁨을 안고 ‘기억, 감사 그리고 다짐’이라는 슬로건 아래 교구의 쇄신을 지향하고 있다. ▨기억과 희망의 지킴이가 되고 새해 춘천교구는 4월 25일로 설정 80주년을, 안동교구는 5월 29일로 설정 50주년을, 군종교구는 10월 23일로 교구 설정 30주년을 맞는다. 한국 교회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목자,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지 올해로 10주년이다. 이에 서울대교구는 오는 2월 16일 선종 10주년 추모 미사 봉헌과 함께 다양한 추모 행사를 준비 중이다. 이 밖에도 전 안동교구장 두봉 주교가 주교 서임ㆍ수품 50주년,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와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가 주교 서임ㆍ수품 20주년, 대구대교구 원로사목자 최봉도 신부가 사제 수품 60주년 회경축을 맞는다. 사제 수품 50주년 금경축은 전 전주교구장 이병호 주교를 비롯해 23명이 맞이한다. 또한,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은 한국 파견 110주년을, 부산교구 범일본당과 전주교구 수류ㆍ전동본당은 설립 130주년을, 제주교구 중앙주교좌본당은 설립 120주년을 맞는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cpbc2018.12.27

바쁜 일상 속, 언제 어디서든 꺼내 읽는 성모님 말씀기쁨이 가득한 매일 성모님 묵상/ 찰스 G. 페렌바흐 지음 / 강대인 옮김 가톨릭출판사 / 1만 원 하느님께서 보낸 가브리엘 천사의 말에 나자렛 여인 마리아는 한치의 주저함 없이 그분 뜻을 받아들였다. 철저한 순종과 무한한 인내, 지극한 겸손으로 살았던 여인. 가톨릭교회는 ‘살아 있는 감실’이자 구세주 예수님을 잉태한 성모 마리아를 공경한다.묵주알을 하나 굴릴 때마다 성모님께서 받은 은총이 우리에게 나눠진다는 말이 있다. 묵주기도가 얼마나 큰 은총의 기도인지 우리는 잘 안다. 특히 한국 교회 신자들은 은총의 성모님, 모든 고통을 품은 성모님에 대한 공경이 각별하다. 「기쁨이 가득한 매일 성모님 묵상」은 365일 성모님을 향한 기도와 말씀을 접하고 익힐 수 있는 성모 서적이다. 성모님과 관련한 모든 성경 구절과 성인들의 말씀, 기도를 매일 바칠 수 있도록 1년 전례력에 맞춰 구성됐다. 간편히 휴대할 수 있는 손바닥 크기 책이지만, 400쪽에 이르는 성모님 관련 말씀과 기도가 담겨 있어 알차다. 성인과 교부들은 다양한 언어로 성모 마리아 신심을 강조했다. 보나벤투라 성인은 “자비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모든 일을 맡겨 드리라”며 “성모님처럼 겸손하고 온유하게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가도록 노력하라”고 당부했다. 요한 외드 성인은 “지극히 거룩하신 성모 성심은 성덕의 보고요, 삼위일체 하느님이 머무시는 지성소”라고 했다.우리는 왜 성모 마리아를 공경해야 할까. 마리아는 온갖 고통을 겪은 여인이었다. 요셉과 혼인을 앞두고서 임신을 하게 된 것도 당시 사회 통념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마리아는 또 아들 예수의 고난과 십자가 고통 앞에 개입하거나 불순종하지 않았다. 마리아가 행한 것은 오직 침묵과 기도, 완벽한 겸손과 덕이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모든 사람의 어머니인 교회는 바로 성모님의 인격 안에서 복음화를 시작한다”고 설파했다.성모님 공경의 의미를 강조했던 베르나르도 성인은 “위험에 처하거나 고뇌나 의혹 속에 있을 때에, 성모님을 생각하고 그분을 부르십시오”라고 했다. 그는 “성모님을 따라가면, 결코 길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확신을 심어줬다.왜 힘들 때 더 성모님을 찾아야 할까? 모두가 아는 이야기이지만, 마리아는 아들의 수난 고통과 죽음을 내내 목격한 어머니였다. 마리아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아무 말 없이 아들 예수의 죽음의 과정에 늘 곁에 있었다. 커다란 십자가를 지고 가는 아들과 마주한 것도 모자라 십자가 위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아들을 볼 때에도 마리아는 철저히 자신의 무력함을 기꺼이 수용하고, 하느님 뜻만 따른 분이다. 성모님의 고통과 기도는 아들 예수님을 천상으로 들어 올리게 한 커다란 저변이었다. 하느님 구원 사업은 마리아의 순종 없이는 이뤄질 수 없었을지 모른다.안셀모 성인은 “하느님은 세상을 세우신 건축의 아버지이시며, 성모님은 그 재건축의 어머니이시다”고 했다. 성령과 성모님의 결합으로 하느님 사랑은 지상에서 영원하고도 온전한 사랑이 된 것이다.프란치스코 성인은 매일 성모님께 인사드리는 것으로 하루 아침을 시작했고, 클라라 성녀는 ‘가난하고 겸손한 주님의 여종’이었던 성모님을 인생 여정의 본보기로 삼고 살았다. 5월 성모 성월을 맞아 ‘성모 신심’을 다시금 드높여 기려보자.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cpbc2019.05.15
![[생활속의 복음] 부활 제5주일 - 절박한 사랑의 계명](//cpbc.co.kr/CMS/newspaper/2019/05/rc/752987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부활 제5주일 - 절박한 사랑의 계명 한민택 신부 신흥 종파에 빠졌다가 가톨릭교회로 돌아온 이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은 이것입니다. “천주교 신자들은 왜 이렇게 하느님 말씀과 예수님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없는가요?”비록 그릇된 교리와 성경 공부에 현혹되어 올바른 신앙을 잃었던 그들이지만, 그들은 ‘남아 있는’ 이들에게 최소한 할 말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하느님을 향한 열정으로 뜨거웠습니다. 세상 종말이 곧 올 줄로 믿고 정신을 차려 깨어 있었으며, 매일을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비록 믿고 기다린 종말의 날이 오지 않았지만 말입니다.종말론을 주장하는 신흥 종파들이 일깨워주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리스도 신앙의 ‘종말론적’ 특성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은 곧 도래할 하느님 나라에 관해서였으며, 당신과 함께 그 나라가 이미 세상에 와 있음을 선포하셨던 것입니다.어쩌면 종말을 너무 먼 훗날로 밀어놓았기 때문에, 지금 여기서 사는 우리의 신앙과 삶이 열정적이지 못한지도 모릅니다. 다음의 묵시록 말씀이 우리에게도 해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묵시 3,15-16)오늘 제2독서의 묵시록 말씀은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새 예루살렘이 도래하면 하느님께서 친히 인간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분께서 인간의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며, 다시는 죽음도,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라는 희망입니다.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그러한 기다림은 신앙을, 그리고 사랑의 계명을 매우 절박하게 받아들이도록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단순히 서로 사랑하라는 윤리적 가르침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다시 오심에 대한 희망에 찬 기다림이며, 지금 여기 존재하는 불의와 부조리, 폭력과 죽음, 상처와 절망에 대한 저항이며 울부짖음입니다.우리는 신앙을 액세서리와 같이 여기지 않는지 물을 필요가 있습니다. 먼 훗날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티켓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절박함’을 발견할 수 있는가요?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3-34)예수님은 당신이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죄와 죽음의 그늘에서, 불의와 부조리의 사슬에서, 슬픔과 절망의 심연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라셨습니다. 그렇기에 당신의 목숨까지 내어주는 사랑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우리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시기 위해서 말입니다.복음은 오늘 나에게 묻습니다. 나는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우리가 형제와 이웃의 삶에서 죽음과 슬픔, 울부짖음과 괴로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우리는 간절히 청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처럼 매일을 간절한 마음으로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아멘. 오십시오, 주 예수님!”(묵시 22,20)한민택 신부(수원가톨릭대 교수, 이성과신앙연구소 소장) 평화신문2019.05.14
![[이창훈 위원의 예수님 이야기] (75) 예루살렘 멸망 예고와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 (루카 21,20-28)](//cpbc.co.kr/CMS/newspaper/2018/08/rc/729119_1.1_titleImage_1.jpg)
[이창훈 위원의 예수님 이야기] (75) 예루살렘 멸망 예고와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 (루카 21,20-28)종말은 구원의 때, 두려워 말고 현실에 충실해야 종말에 관한 예수님 말씀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는 두려움이 아니라 위로와 희망을 주는 말씀이다. 그림은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 있는 최후의 심판. 지난 호에서 살펴봤듯이, 예루살렘 성전 파괴를 예고하시면서 종말에 앞서 시작될 재난에 대해 말씀하신(21,5-19) 예수님께서는 이제 예루살렘 멸망을 예고하시고는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 곧 종말에 관해 이야기하십니다.예루살렘 멸망 예고(21,20-24)루카복음에서는 예루살렘 멸망에 관한 예수님의 예고 말씀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루살렘이 적군에게 포위된 것을 보거든, 그곳이 황폐해질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알아라.”(21,20) 같은 내용을 마르코복음에서는 이렇게 전하지요. “있어서는 안 될 곳에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이 서 있는 것을 보거든─읽는 이는 알아들으라─.”(마르 13,14) 마태오복음도 마르코복음과 비슷합니다.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이 거룩한 곳에 서 있는 것을 보거든─읽는 이는 알아들으라─.”(마태 24,15) 같은 예수님 말씀이 루카 복음서와 마태오 및 마르코 복음서에서 차이가 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일단 이런 물음을 가지고 본문을 더 살펴봅시다. “그때에 유다에 있는 이들은 산으로 달아나고, 예루살렘에 있는 이들은 거기에서 빠져나가라. 시골에 있는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마라.”(21,21) 유다는 예루살렘이 속한 지방 이름입니다. 예루살렘이 적군에 포위당해 함락될 처지라면, 예수님의 이 말씀은 지당합니다.문제는 그다음 말씀입니다. “그때가 바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이루어지는 징벌의 날이기 때문이다. 불행하여라, 그 무렵에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 이 땅에 큰 재난이, 이 백성에게 진노가 닥칠 것이기 때문이다.”(21,22-23) 이 대목을 보자면,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이뤄지는 징벌의 날로 보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구약에서 특히 예레미야와 에제키엘 같은 예언자들은 하느님께 대한 불충한 징벌로 예루살렘의 멸망을 강력히 경고했습니다. 결국 예루살렘은 기원전 587년에 바빌론에 함락당하고 수많은 이스라엘인이 포로로 끌려갔지요. 옛날 예루살렘이 그랬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거부하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신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예수님께서는 이 예언의 마지막 부분에서 “사람들이 칼날에 쓰러지고 포로가 되어 모든 민족에게 끌려갈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21,24) 이 예언은 실제로 기원후 70년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수많은 유다인들을 죽이고 포로로 데려가고 함으로써 역사적 현실이 됐습니다. 다만 마지막에 나오는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라는 말씀에 대해서는 좀더 생각할 여지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역사적으로 예수님을 배척해서 멸망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성경에서 예루살렘은 하느님의 도읍, 하느님의 백성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이 마지막 말씀을 두고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모르는 이민족들에 의해 박해를 받고 시련을 겪으리라는 것으로 풀이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루카복음의 예언과 마태오복음 및 마르코복음의 예언 말씀이 차이를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루카가 복음서를 집필한 시기인 기원후 80년쯤에는 로마군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이 이미 이루어지고 난 후였습니다. 따라서 루카 복음사가는 마태오나 마르코와 달리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이라는 추상적 표현을 쓸 필요 없이 적군에게 포위됐다는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표현을 썼다고 성경학자들은 풀이합니다.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21,25-28)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신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어서 사람의 아들이 오는 날에 대해 이야기하십니다. 이 말씀을 세 부분으로 나눠서 살펴봅니다. 첫 부분은 종말이 왔음을 알리는 표징들입니다. “해와 달과 별들에 표징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일 것이기 때문이다.”(21,25-26) 해와 달과 별에 생기는 표징들, 바다와 거센 파도소리에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이는 것 등은 종말에 관한 구약성경의 표현들입니다. 묵시문학적 표현이라고도 하지요. 둘째 부분은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라는 대목입니다.(21,27) 예수님께서는 자주 당신을 ‘사람의 아들’이라고 표현하시는데, 구약성경 다니엘서에서는 사람의 아들을 하느님께 뭇 민족과 모든 나라를 영원히 다스리는 왕권을 받는 분으로 예언하고 있지요.(다니 7,13-14) 또 구름은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의 권능이나 현존을 묘사할 때 사용됩니다.(탈출 14,20; 34,5; 시편 104,3 등) 셋째 부분은 종말을 대하는 태도와 관련됩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21,28) 하늘에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과 바다가 거세게 뒤흔들린다면 사람들은 공포로 자지러질 것입니다. 그래서 종말은 늘 두려움과 결부됩니다. 하지만 루카복음에서 전하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정반대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종말이 오면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힐 것이 아니라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때야말로 속량이, 곧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생각해 봅시다예루살렘 멸망과 종말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을 두고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당신을 거부하고 배척하는 예루살렘에 재앙이 있으리라고 경고하시는 말씀으로 풀이합니다. 예수님을 거부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처형한 예루살렘은 실제로 기원후 70년에 로마군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종말이 이처럼 재앙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사람들,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는 종말이 재앙이 아니라 구원의 때입니다. 그러니 예수님 말씀처럼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종말은 파국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이 복음의 가치와 상반되는 가치관이 팽배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며 고통과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문채현2018.08.01
![[창간 31주년 연중기획 오늘날의 청년 예수] 가톨릭청년미술가회](//cpbc.co.kr/CMS/newspaper/2019/05/rc/752441_1.0_titleImage_1.jpg)
[창간 31주년 연중기획 오늘날의 청년 예수] 가톨릭청년미술가회 새로운 복음의 씨앗 뿌리며 신앙 키우는 열혈 청년들 연어가 바다로 떠나면 강에는 연어가 없다. 강의 입장에서 보면 연어가 없는 것이요, 연어 입장에서는 강이 너무 좁게 느껴져 바다로 떠난 것인지 모른다. 교회도 비슷하다. 교회에 청년이 없다는 목소리와 청년이 교회에서 활동할 곳이 없다는 목소리가 교차한다. 하지만 마음속 본향인 주님을 따라 교회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이 있다. 환경이 척박해도 자신의 탤런트로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청년 예수’들이다. 힘들 때 서로 힘이 되어주고 지칠 때 서로 위로하며 주님을 따르는 청년 예수의 삶과 신앙을 가톨릭평화신문이 창간 31돌을 맞아 연중 기획으로 소개한다. 신앙의 씨앗을 뿌리며가톨릭청년미술가회(회장 송면근, 이하 가청회)는 40세 이하 청년 미술가 27명으로 구성된 신앙 공동체다. 2016년 창립해 매년 정기전과 아트마켓전 등을 열며 예술로 신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예술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고 했던가. 젊은 미술가 중 전업 작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미술학원 강사나 미술 관련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성미술에 대한 열정을 이어가고 있다. 송면근(실바노, 36) 회장은 “젊은 작가의 삶이 힘들지만, 미술을 통해 신자와 만나고 교회 미술에 청년의 힘을 불어넣고 싶다”며 “홀로 작업할 때 겪는 어려움은 신앙과 공동체 안에서 극복하고 있다”고 밝혔다.작가들의 작품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신앙, 어린 시절의 성당 추억 등 신앙 체험이 바탕이 되기도 한다. 송 회장의 아버지는 성미술 조각을 40여 년 한 원로 작가다. “돈에 연연하지 않고 작업을 해 온 아버지의 모습에 미술가의 길을 걷기 주저하기도 했죠. 지금은 허투루 작업한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아버지의 마음가짐을 떠올립니다.” 김지혜(엘리사벳, 33) 작가도 “어린 시절 성당에서 언니, 오빠들과 어울려 공부하고 놀던 기억을 돌아보면 신앙에 큰 힘이 되는 것 같다”며 “신앙도, 성미술 작업도 어린 시절의 자연스러운 신앙처럼 쉽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작가는 얼마 전 동료 작가들과 창세기 성경 공부를 마치고 함께 기획전을 준비 중이다. ‘행복을 가득 담아 그대에게’ 이금휘 작. 신자들과 소통하는 기회가 늘길 바라두 청년을 비롯한 회원들은 모두 각자의 신앙이 반영된 성미술 작업을 하지만 교회 내 청년 미술가가 설 자리가 없음을 아쉬워한다. 김 작가는 “성미술 작업을 하는 신앙인은 많지만 펼칠 기반이 교회 내에는 거의 없다”며 “명동 갤러리 1898만이 신앙과 예술 세계를 펼칠 유일한 장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22일~27일 갤러리 1898 제2전시실에서 열리는 2019 아트마켓전 ‘네모 안에 담은 세상’은 청년과 관객이 소통할 수 있는 더없이 소중한 기회다. 가로, 세로 25㎝ 정사각형 캔버스 안에 청년 미술가의 세계관과 신앙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기존 작품보다 저렴하게 판매함으로써 예술에 관한 장벽을 낮춘다는 계획이다. 전시할 작품은 서양화, 한국화, 도예, 석조, 금속공예 등 20여 점과 개인 부스의 작품까지 모두 50여 점. 25~26일에는 한국화 그리기와 열쇠고리 만들기를 체험할 수 있는 장도 마련한다. 송 회장은 “4년차를 맞는 가청회가 교회라는 하느님 울타리 안에서 젊고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존재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작가에게 작품 판매는 다른 작품 활동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동기 부여이자 원동력이 된다”며 아트마켓에 대한 관심을 부탁했다. 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cpbc2019.05.07
![[영화의 향기 with CaFF] (15) 생일](//cpbc.co.kr/CMS/newspaper/2019/04/rc/749805_1.0_titleImage_1.jpg)
[영화의 향기 with CaFF] (15) 생일세월호가 남긴 상처, 함께 어루만지는 우리 영화 ‘생일’ 스틸컷. 로스크 제공 주님께서는 마음이 부서진 이들에게 가까이 계시고 넋이 짓밟힌 이들을 구원해 주신다.(시편 34,19)영화 ‘생일’은 세월호 침몰 사고로 아들을 잃은 한 유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슬픔을 절감하는 5년 전의 사고로 304명이 억울한 죽임을 당했고, 아직도 5명의 실종자가 있다. 유가족의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상처는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음을 잘 알기에 사건에 대한 재현 자체만도 고통스럽다.이 영화의 특별한 점은 아들 ‘수호’를 떠나보낸 아빠 ‘정일’과 엄마 ‘순남’, 여동생 ‘예솔’의 관점에서 그들의 감정과 갈등을 담아간다는 것이다. 아들의 사건 소식을 알고도 몇 년이 지나 가족 앞에 나타난 정일. 세상과 심지어 다른 유가족과도 거리를 두며 우울하게 살고 있는 순남. 오빠의 빈자리 때문에 가족 안에서조차 사랑을 갈구하지 못하는 예솔. 이 가족은 해체되어 있고 서로를 보듬지 못하고, 슬픔의 구렁텅이에서 영원히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은 시간이 계속된다.다행인 것은 이 가족 주위에는 착한 이웃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도움을 주려고 찾아오는 이들 그리고 다른 유가족들이 자리하고 있어 슬픔이 북받칠 때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공동체로 가족을 끊임없이 초대하며, 그 닫힌 마음을 조금씩 열어간다는 것이다.영화에 등장하는 수호의 ‘생일잔치’는 상징적이며 실제적인 가치를 지닌다. 성경 안에서 ‘잔치’가하느님과 함께하는 구원의 상징적 자리이고, 예수님은 죄인들과의 식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를 드러내는 것처럼. 수호를 기억하는 모든 이가 모여 슬픔 너머의 희망적 가치를 기대하게 한다.실제 유가족 중 한 분이 세월호 사건에는 한 가지 보편적인 슬픔이 아니라 304가지 각기 다른 슬픔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 한가족이지만 정일과 순남, 예솔이 서로 다른 입장에서 그 슬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그 고유한 슬픔과 고통의 무게는 가늠할 수 없지만, 누군가 함께 해주지 않는다면 그 슬픔은 그대로 가족들의 몫으로 오랫동안 남는다는 것이다.사순시기를 보내면서 신앙인으로서 회개와 보속을 통해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기를 모두가 바란다. 나와 하느님의 관계는 나와 이웃과의 관계를 통해 완성됨을 기억하면서 이웃에 대한 관심, 특별히 시대적 아픔과 고통에 공감하고 마음으로 함께하며 그 짐을 나눌 수 있을 때 우리 안에 하느님 사랑과 자비로 말미암은 공동체적 치유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그 슬픔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조차 사치스러운 표현같이 느껴지지만 세월호 희생자 모두가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과 기쁨을 누리며, 남겨진 가족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그분의 위로와 사랑이 그 상처를 치유해주시기를 간절히 청한다. cpbc2019.04.03
주님 안에서 이뤄지는 거룩한 사랑의 서약](//cpbc.co.kr/CMS/newspaper/2019/01/rc/743462_1.0_titleImage_1.jpg)
[성사풀이](29)주님 안에서 이뤄지는 거룩한 사랑의 서약가톨릭교회의 혼인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주님 안에서 인격적으로 합의하는 결코 철회될 수 없는 계약이다. 가톨릭평화신문 DB혼인성사의 근거는 무엇인가요 하느님께서는 남녀의 사랑이 당신께서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절대적 표상이 되게 하셨고(「가톨릭교회 교리서」 1604항), 그들에게 “자식을 많이 낳아 번성하여라”(창세 1,28) 하셨다. 예수님께서도 첫 기적을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행하시고(요한 2,1-11 참조) 혼인을 축복하셨다. 바오로 사도는 부부의 사랑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베푸신 사랑을 표현한다고 설명했다.(에페 5,31-32 참조) 사랑으로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또한 사랑하도록 인간을 부르셨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바로 “사랑이신” 하느님과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었고,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위해 창조되었다고 말합니다.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몸이 된다.”(창세 2,24) 주님께서는 친히 처음부터 창조주의 계획이 무엇이었는지를 환기시키심으로써 이것이 남녀의 확고한 결합을 의미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604, 1605항 참조) 이처럼 혼인성사는 혼인의 본디 모습인 거룩함을 회복시키고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지 못하도록 하며(마태 19,6), 그리스도인 부부가 평등한 존엄과 상호 헌신으로, 또 사랑의 신적 원천에서 흘러나오는 갈림 없는 사랑으로, 부부 생활을 풍요롭게 가꾸어 나가도록 도와줍니다. 가톨릭교회 혼인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가톨릭교회의 혼인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주님 안에서 인격적으로 합의하는, 결코 철회될 수 없는 계약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신자들이 평생 공동체를 이루어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살아가도록 도와주시고자 이 혼인을 성사의 품위로 들어 올리셨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601-1603항 참조) 남자와 여자의 창조로 시작하는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혼인과 그 신비, 혼인 제정과 목적, 죄로 말미암은 혼인의 어려움,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새로운 계약을 통해 주님 안에서 이루어진 혼인의 새로운 의미에 대해 말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601항 참조) 그러기에 교회는 세례를 받은 신자들의 혼인이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주님 안에서 인격적 합의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계약이며, 이 계약은 결코 풀릴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마태 19,6) 그리스도께서는 신자들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평생 공동체를 이루고 그분의 구원 활동에 협조하며 살아가도록 혼인을 성사의 품위로 올리시어 은총으로 도와주십니다. 혼인성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요 혼인 당사자들은 혼인성사를 받기에 합당한 내적, 영적 준비를 위해 혼인 전 견진성사와 고해성사를 받아야 하며, 적어도 혼인 1개월 전에는 본당 신부와 혼인성사에 대해 의논하고 혼인과 가정에 관한 교리를 받아야 한다.(사목지침서 제104조) 혼인의 전례 거행은 성화하는 성사 행위이므로, 성사가 유효하고 존엄하며 열매를 잘 맺으려면, 며칠만이라도 조용한 시간을 갖고 내적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신랑 신부는 혼인을 거행하기 위한 준비로 고해성사를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622항) 만일 견진성사도 받을 수 있다면 같이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를 통해 혼인을 앞둔 당사자들은 혼인성사로 새로워질 자기 신분의 거룩함을 올바로 이해하고 또 그에 따른 의무를 잘 이행하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외적으로는, 먼저 본인이나 배우자가 속한 본당의 사무실을 방문해 혼인 신청서를 작성하고, 본당 신부와 면담 일정을 정한 다음, 소속 교구에서 시행하는 혼인 교리를 수강합니다. 혼인 교리는 그리스도교 혼인의 의미, 그리스도인 부부와 부모의 임무에 관해 배우므로 빠뜨리지 않고 꼭 받아야 합니다. 그다음, 주임 신부는 혼인 당사자들과 개별로 면담하며 혼인이 온전한 자유 의사에 따른 것인지, 혼인에 방해되는 요소는 없는지 살펴보고, 이를 문서로 작성해 혼인을 거행한 본당 사무실에 영구적으로 보관합니다. 만일 가톨릭 신자가 혼인성사나 관면 혼배를 받지 않고 그냥 일반 혼인만 한다면 성사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이를 과거에는 ‘조당’(阻撞)이라고 불렀지만, 현재는 ‘혼인 장애’라고 합니다. 정리=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cpbc2019.01.09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87) 18세기 ④ - 개신교 경건주의에 직면한 독일 가톨릭 영성](//cpbc.co.kr/CMS/newspaper/2018/08/rc/729748_1.0_titleImage_1.jpg)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87) 18세기 ④ - 개신교 경건주의에 직면한 독일 가톨릭 영성‘개인주의적 신앙’에 영성생활 지침 제시 베스트팔렌 조약의 비준을 담은 그림. 1648년 10월 24일 맺어진 조약으로 유럽 전역은 평화를 맞았고 독일은 종교의 자유를 누리는 나라가 됐다. 하지만 개인적 신심을 지나치게 강조한 개신교의 경건주의는 독일 가톨릭 영성에 악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16세기 종교개혁주의자들의 개혁 운동은 가톨릭교회가 신자들에게 올바른 영성생활을 가르쳐 주기는커녕 오히려 잘못된 신심을 조장한다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17~18세기 개신교는 자신들의 근본주의에 매몰돼 교회 운영 방식과 교리에 대한 논쟁의 양상을 보이거나, 사변 신학에 무관심하면서 개인주의적이고 체계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특히 독일에서 성경 말씀을 엄격하게 준수하려고 했던 개신교가 유연성을 잃고 경직됐을 때, 가톨릭교회는 성경 연구를 비판하고 수용하면서 신비체험과 신비신학을 통해 신자들에게 영성생활의 본보기를 제시하려고 노력했습니다.역사 비평적 성경 연구 방법론의 출현17세기 프랑스에서 많은 영성가와 영성작가들이 이단 사조에 대항하면서 올바른 영성생활을 가르치고자 노력했지만 외적으로 보기에 신자들의 영성생활뿐 아니라, 믿음에까지 혼란을 가져올 것만 같았던 시도도 있었습니다. 성경 비평가인 프랑스 오라토리오회 소속 리샤르 시몽(Richard Simon, 1638~1712)은 1678년에 저서 「구약성경의 비판적 역사(Histoire critique du Vieux Testament)」에서 모세오경의 저자가 모세라고 널리 알려진 내용을 비판했습니다. 보쉬에(Jacques-Bnigne Bossuet, 1627~1704) 주교는 즉시 시몽의 주장에 반대하며 금서 처분을 이끌어냈습니다.하지만 시몽의 주장은 세속 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의대 교수였던 장 아스트뤽(Jean Astruc, 1684~1766)은 1753년에 익명으로 출판한 저서 「모세가 창세기를 쓰는 데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원본 문헌에 대한 추측(Conjectures sur les mmoires originauz dont il paroit que Moyse s’est servi pour composer le livre de la Gense)」에서 저자가 최대 11개의 원전 자료들을 사용해 창세기를 썼는데, 원전 자료들이 연대순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섞여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처음에 비판적인 성경 연구는 가톨릭교회에서뿐만 아니라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를 주장했던 개신교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스트뤽의 주장은 18세기에 들어서 프랑스보다 독일에서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독일 개신교 경건주의와 영국 감리교의 출현종교개혁 이후에 주로 교리 논쟁에 치우친 결과로 영성생활이 메말랐다고 생각한 개신교는 17세기 루터교를 중심으로 생활 쇄신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독일 루터교 신학자였던 필립 슈페너(Philipp Jakob Spener, 1635~1705)는 1675년 저서 「경건한 욕망(Pia Desideria)」에서 신앙인이 영적 쇄신을 통해 개인적으로 변화되는 방법을 강조하면서 개별적인 신심과 경건함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특히 슈페너는 저서에서 6개 항목의 생활 개선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즉, 평신도 신앙인들은 성경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하고 교회 활동에 더 참여해야 하며, 신앙을 실천해야 하고 논쟁보다는 겸손과 사랑으로 토론해야 하며, 종교 지도자는 학식뿐만 아니라 경건함도 지녀야 하고 일반 신앙인의 신앙을 발전시킬 설교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경건주의(Pietism)’의 아버지로 불렸던 슈페너는 개별 신앙인들이 경건해질 때에, 교회도 긍정적으로 쇄신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18세기 절정기를 맞은 경건주의는 개신교 신앙인의 신앙 부흥과 영성생활을 위해 개별적으로 엄격한 윤리 도덕과 경건함을 겸비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결국, 경건주의는 개인 신심의 형태로 발전했습니다.유럽 본토 개신교의 경건주의는 18세기에 영국에서 새로운 종교 부흥 운동이 일어나는 데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교리 논쟁이나 신심생활에 흥미를 잃어버린 영국 성공회에 실망한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와 동생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 1707~1788)는 1729년에 ‘신성회(Holy Club)’를 설립하고 박애주의와 경건주의를 실천했습니다. 성공회 사제였던 존 웨슬리는 1738년 특별한 종교 체험을 한 후에 신앙인들에게 생기 있는 실천적인 신앙심을 불러일으키고자 순회 설교를 시작했으며, 많은 사람이 그의 가르침과 성품에 매력을 느끼고 모여들었습니다. 존 웨슬리를 추종하던 사람 중 일부는 미국으로 이주해 1768년 그곳에서 ‘감리교(Methodist)’를 설립했으며, 영국에서도 1795년 영국 감리교가 성공회로부터 독립했습니다. 존 웨슬리의 가르침에 따르면, 감리교는 개인의 신앙 체험을 중요하게 여기고 애덕 실천을 강조했으며, 하느님의 구원 은총도 개인적인 체험에서 접근했습니다. 또한 신앙인들이 사랑의 완전을 추구하는 것을 강조하면서 사회복지 사업에 관심을 가졌고, 종교개혁주의자들이 주장한 복음주의를 따랐습니다. 물론 존 웨슬리는 평생 성공회를 떠나지 않았고 성공회 사제로서 자의식도 분명했지만, 그의 가르침을 따르던 사람들이 새로운 종교 조직을 만드는 것을 반대하지도 않았습니다.독일 가톨릭 영성에 악영향을 끼친 경건주의의 개인 신심독일 지역은 17세기에 발발했던 30년 전쟁(1618~1648) 때문에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30년 전쟁은 초기 신성 로마 제국을 중심으로 한 가톨릭교회를 지지하는 나라들과 개신교를 지지하는 나라들 사이에서 벌어진 종교적인 요소가 담긴 전쟁이었는데, 점점 각 나라가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독일과 프랑스의 대결 구도 속에서 정치적인 전쟁이 됐습니다. 1648년 체결된 베스트팔렌 조약(Westflischer Friede)으로 30년 전쟁은 끝났으며, 유럽 전역은 평화를 맞았습니다. 18세기 독일은 평화조약 덕분에 평민들이 제후의 종교를 따르지 않고 자신의 종교를 가질 수 있는 종교 자유를 누리는 나라가 됐으나, 개신교 교세가 강한 북쪽 지역의 백성들은 부유하고 가톨릭 교세가 강한 남쪽 지역 백성들은 빈곤하게 됐습니다.따라서 독일 가톨릭교회는 빈곤한 남쪽 지역 신자들에게 신앙 강화를 위한 신앙교육과 영성생활을 시급히 보급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독일 지역 개신교의 경건주의는 신심생활을 지나치게 개인화시킴으로써 가톨릭 신자들에게도 수덕생활과 신비생활을 개인적인 신심의 관점에서 다가가는 오류를 범하게 할 가능성을 높였습니다. 더군다나 18세기 후반에 나타난 낭만주의는 가톨릭교회를 동방 지역 및 동양의 종교들과 유사하게 여기면서 일반인들에게 가톨릭 신앙을 미신 행위의 일종으로 느끼게 했습니다.독일 프란치스코회 소속 멜키오레 베버(Melchiore Weber)는 1714년에 저서 「하느님 말씀의 칼로 자른 경건주의자들의 종파(Secta Pietistarum Dissecta Gladio Verbi Dei)」에서 경건주의를 강력하게 반대했습니다. 또한, 독일 폴링(Polling)의 의전 수도회 소속이었던 신학자 에우세비우스 아모르트(Eusebius Amort, 1692~1775)는 1744년에 저서 「사적 계시, 환시 및 발현에 대한 모든 규범들(De Revelationibus, Visionibus et Apparationibus Privatis Regulæ Tutæ)」에서 경건주의 때문에 혼란을 초래한 신비체험에 대해 종합적이면서도 엄격한 규범을 제시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시도들은 이후에 독일에서 신비신학자와 신비체험가가 출현해 경건주의의 영향으로 자칫 흔들릴 수 있었던 독일 가톨릭 영성의 중심을 잡아주는 출발점이 됐습니다.<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평화신문2018.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