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49) 안티오키아 귀환과 아폴로의 선교 (18,18-28)](//cpbc.co.kr/CMS/newspaper/2020/01/rc/771863_1.3_titleImage_1.jpg)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49) 안티오키아 귀환과 아폴로의 선교 (18,18-28)다시 선교여행 떠나는 바오로, 새로운 복음 선포자 아폴로 바오로는 코린토에서 1년 6개월 이상 지내면서 하느님 말씀을 전한 후 에페소를 거쳐 예루살렘 교회에 가서 인사한 후 안티오키아로 내려감으로써 두 번째 선교 여행을 마무리한다. 사진은 바오로가 코린토를 떠나기 전에 머리를 깎은 켕크레애 항구 유적. 바오로는 예루살렘을 거쳐 안티오키아 교회로 돌아갔다가 세 번째 선교 여행을 시작하고, 에페소에서는 아폴로가 활발하게 선교 활동을 펼칩니다. 안티오키아 귀환과 재출발(18,18-23)바오로는 코린토에서 한동안 더 머물다가 시리아로 갑니다. 시리아는 선교 여행을 출발한 안티오키아 교회가 있는 지역이지요. 바오로는 켕크레애에서 머리를 깎고 프리스킬라와 아퀼라 부부를 데리고 배를 타고 시리아로 향합니다.(18,18) 켕크레애는 코린토에 있던 두 항구 중 하나로 에게해 쪽에 있는 항구입니다. 오늘날에는 많은 부분이 바닷물에 잠긴 유적만 일부 볼 수 있지만, 당시에는 로마제국에서 가장 번잡한 항구에 속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오로는 떠나기 전에 머리를 깎습니다. “서원한 일이 있었으므로… 머리를 깎았다”고 하는데, 학자들은 이 서원을 구약성경 민수기에 나오는 ‘나지르인 서원’으로 보기도 합니다. 민수기 6장 1-21절에 따르면, 자신을 주님께 바치기로 하고 평생 또는 한시적으로 서원하는 것을 나지르인 서원이라고 부릅니다. 이 나지르인 서원을 할 경우, 서원 기간 내내 머리털이 자라도록 내버려 둬야 합니다. 그렇다면 전에 서원한 일이 있었다는 표현은 이제 그 서원 기간이 끝나서 머리를 깎았다는 것이 됩니다. 바오로는 율법에 충실한 바리사이 출신이었기에 회심한 후에도 새로운 길, 곧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율법을 지키는 관습을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리스킬라와 아퀼라 부부와 함께 켕크레애 항구를 떠난 바오로는 에페소에 도착하자 두 사람을 그곳에 따로 남겨두고 혼자 회당으로 가서 유다인들과 토론합니다.(18,19) 당시 에페소는 오늘날의 터키 땅 서쪽 에게해와 맞닿아 있는 지역인 아시아의 수도였습니다. 주민이 20만 명 이상 거주하는 큰 도시로서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였지요. 에페소는 큰 상업도시여서 천막 짜는 일을 생업으로 하는 이 부부에게는 생업을 유지하기에 좋은 곳이었을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바오로는 이 독실한 부부에게 에페소에서 선교 거점을 마련하도록 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 많은 유다인이 살고 있었기에 바오로는 여느 도시에서 선교할 때와 마찬가지로 에페소에 도착하자 회당을 찾아 유다인들과 토론을 벌입니다. 그러나 바오로는 곧 에페소를 떠납니다. 유다인들은 바오로에게 좀 더 오래 머물러주기를 청했지만 “하느님께서 원하시면 여러분에게 다시 오겠습니다” 하고 작별인사를 한 후 배를 타고 에페소를 떠나 카이사리아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교회에 인사한 다음 안티오키아로 내려갑니다.(18,20-22) 예루살렘에 올라간 것은 어머니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자신의 선교 여행에 관해 보고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예루살렘에서 바오로가 구체적으로 누구를 만났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안티오키아로 다시 돌아옴으로써 바오로의 2차 선교 여행은 끝이 납니다. 학자들은 이 두 번째 선교 여행이 기원후 49년 가을부터 52년 가을까지 약 3년에 걸쳐 이뤄졌다고 추정합니다. 바오로는 안티오키아에서 얼마 동안 지낸 뒤에 다시 길을 떠나, 갈라티아 지방과 프리기아를 차례로 거쳐 가면서 모든 제자의 힘을 북돋아 줍니다.(18,23) 바오로가 세 번째 선교 여행을 시작한 것입니다. 바오로가 거쳐 간 갈라티아와 프리기아는 오늘날 터키 땅 내륙 지방입니다. 1ㆍ2차 선교 여행 때에 갔던 곳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3차 선교 여행을 떠나 그곳 신자들에게 힘을 북돋아 준 것입니다. 바오로의 3차 선교 여행은 53년쯤에 시작됐다고 학자들은 추정합니다. 아폴로의 에페소 선교(18,24-28)한편,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인 아폴로라는 유다인이 에페소에 와서 선교 활동을 펼칩니다. 박학하고 성경에 정통한 그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주님의 길’ 혹은 ‘새로운 길’을 배워서 알고 있었기에 열정을 가지고 예수님에 관해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는 요한의 세례만을 알고 있었습니다. 즉 주님께서 사도들을 통해 분부하신 세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 채 예수님에 관해 가르친 것입니다. 아폴로가 회당에서 설교하는 것을 들은 프리스킬라와 아퀼라는 그를 데리고 가서 하느님의 길, 즉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새로운 길에 대해 더 정확하게 설명해 줍니다.(18,24-26) 그 후 아폴로가 그리스 땅인 아카이아로 건너가고 싶어 하자 에페소의 신자들이 그를 격려하면서 아카이아의 제자들에게 아폴로를 영접해 달라는 편지를 써 보냅니다. 아카이아는 코린토가 수도인 그리스 땅 서남쪽 지역입니다. 코린토로 건너간 아폴로는 성경을 바탕으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논증하면서 유다인들을 반박해 이미 신자가 된 코린토의 형제들에게 큰 도움을 줍니다.(18,27-28) 코린토는 바오로가 1년 6개월 이상 머무르면서 선교 활동을 펼쳤던 곳으로 이미 적지 않은 신자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또한 새로운 길을 반대하는 유다인들도 많았기 때문에 특히 바오로가 코린토를 떠난 후에 코린토 신자들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폴로가 와서 예수님이 바로 메시아시라며 확실하고 대담하게 유다인들을 논박하니 코린토 신자들에게는 큰 힘이 됐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폴로의 아카이아 선교 활동은 코린토 신자들에게는 분열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바오로는 에페소에서 코린토 신자들에게 써 보낸 첫째 편지에서 “아폴로 편이다, 바오로 편이다, 베드로 편이다” 하고 갈라져 있는 코린토 교회의 분열을 질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1코린 1,10-17 참조)생각해봅시다1. 아폴로는 성경에 정통한 유다인이었지만 사도들로부터 직접 배운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간접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듣고 새로운 길을 배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부족한 점이 있었지만, 열정을 가지고 새로운 길을 정확하게 가르칩니다. 아폴로의 이런 활동을 보면 자발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여 목숨을 바쳐가며 증언한 우리의 첫 신앙 선조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조금 부족함이 있어도 진리에 대한 깊은 확신과 사랑이 있으면 부족함을 채울 것입니다.2. 프리스킬라와 아퀼라는 아폴로의 부족함을 보았습니다. 이 부부는 자기들보다 새로운 길에 대해 잘 모르는 유다인이 새로운 길을 전파하고 나서는 것을 보았지만 제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들이 아는 바를 더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 아폴로가 코린토 선교를 희망하자 에페소 형제들은 격려하며 편지를 써 주기까지 합니다. 프리스킬라와 아퀼라 부부도 그 형제들 가운데 있었을 것입니다. 프리스킬라와 아퀼라 부부가 보여준 행위는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요한은 낯선 사람이 스승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고 막으려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 요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반대하지 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루카 9,50) 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alfonso84@hanmail.net cpbc2020.01.29

조선의 선비들, 봄비에 속옷 젖듯이 서학에 젖어들다[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1. 칠극(七克) 이야기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로 만나게 되었다. 다산 정약용과 천주교 신앙 문제를 파고들어 지난해에 「파란」이란 책을 펴냈다. 당시, 공부를 위해 초기 교회사 자료를 살피는데, 눈길이 가는 대목이 많았다. 뭔가 분명 앞뒤로 맥락이 있는데, 쉬 알기가 어려웠다. 모든 일에는 행간이 있다. 행간을 뺀 정보는 죽은 정보다. 행간이 정보에 그림자를 드리워야, 그 정보가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중국 천주교회는 조선 교회의 놀라운 성장과 잔혹한 박해에도 꺾이지 않는 정신에 놀라, 「고려주증(高麗主證)」, 「고려치명사략(高麗致命史略)」, 「상재상서(上宰相書)」 같은 한문 책자를 잇달아 펴내며 경이의 눈길을 보냈다. 신앙 선조들이 한문으로 쓴 각종 자료는 아직도 살펴야 할 구석이 많다. 이번 연재가 초기 교회사의 박제된 풍경 위에 몇 개의 그림자를 앉히는 여정이 되었으면 한다.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나오는 북경 풍경해마다 조선의 사절이 북경을 찾았다. 선무문(宣武門) 밖 쇼핑가인 유리창(琉璃廠) 거리로 나서면 없는 물건이 없었다. 서점만 수십 개에다 서점마다 몇만 권의 책들이 천장까지 쌓여있었다. 태엽만 감으면 희한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오르골뿐 아니라 자명종(自鳴鐘)이나 철현금(鐵絃琴) 같은 서양 물건들이 즐비했다. 거리를 빠져나와 조금만 더 가면 고딕식으로 높이 솟은 성당이 나왔다. 처음 들어본 파이프 오르간에서는 천상의 소리가 났다.서양화도 여기서 처음 봤다. 멀리서 보면 그림 속 인물에 정령이 담겨 내 혼을 빨아들일 듯 쏘아보았다. 무서워서 저만치 반대편으로 몰래 가서 흘깃 보면 그림 속 눈동자가 어느새 나를 따라왔다. 가까이 가서 보면 거칠게 물감을 덧칠한 것뿐인데 몇 발짝만 물러서면 요놈하고 그림이 살아났다. 천장 벽화를 올려다보던 사람들은 오색 구름 사이로 살이 포동포동한 아기 천사들이 나는 모습을 보다가, 금세 바닥으로 떨어질 것만 같아 당황해서 손을 뻗어 받으려 들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나오는 풍경이다. 성당 인근 관상감(觀象監) 옥상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천문 의기(儀器)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 신통한 서양의 역법이 다 저기서 나왔을 것이었다. 진작에 조선에서 이미 「기하원본」 같은 서양 책을 읽었던 터라 그 작동의 원리에 호기심이 더 쏠렸다. 금단의 구역인 이곳에 한 번이라도 들어가 보려고 문지기에게 조선에서 가져간 청심환을 찔러주기도 했다. 성당은 조선 사행의 필수 관광 코스였다. 성당에서는 코가 높고 눈이 깊은 서양 신부들이 멀리 조선에서 찾아온 손님을 맞아주었다. 신부는 조선 사행에게 선물로 그림도 주고 책도 주었다. 그렇게 받아온 서양 책을 읽어 보았다. 한문이라 낯설지 않고 재미있었다. 북경을 다녀온 젊은이들은 부쩍 말수가 줄거나, 아니면 말이 많아졌다. 처음엔 서양의 놀라운 문물에 압도되다가 차츰 그 너머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무엇이 저들을 저토록 놀랍게 만들었을까? 그 같은 과학적 진보를 가능케 한 배경 사유가 부쩍 궁금해졌다. 마태오 리치의 「교우론」에 정신 번쩍마태오 리치가 쓴 「교우론(交友論)」은 서양 선비들의 우정에 대해 쓴 책이었다. 첫 장을 열자 “벗이란 남이 아닌 나의 절반이니, 바로 제2의 나다. 그러므로 벗 보기를 자기처럼 대해야 한다.(吾友非他, 卽我之半, 乃第二我也. 故當視友如己言)”는 말이 나왔다. 벗이 제2의 나란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늘 운이 좋아 나쁜 일이 없다면, 어찌 벗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알겠는가?(如我恒幸無禍, 豈識友之眞否哉)” 이런 식의 화법은 낯설어 유난히 귀에 쏙 들어왔다. 안 그래도 마음 붙일 데 없어 몰려다니던 벗 사이에도 지켜야 할 도리가 있음을 처음 알았다. 알렉산더 대왕이 정벌을 가서 전리품을 노획하면 신하들에게 모두 나눠주고 자신은 하나도 갖지 않았다. 적국의 왕 다리우스가 비웃으며 물었다. “그대의 창고는 어디에 있소?” “내 친구의 마음속에 있소.” 책 속의 이런 예화에 그들은 열광했다. 여기에 꽂힌 연암 박지원과 이덕무, 박제가 등의 글에 갑자기 벗과의 우정을 예찬한 글이 넘쳐났다. 박지원은 벗을 ‘비기지제(匪氣之弟)’ 즉 피를 나누지 않은 형제, ‘불실지처(不室之妻)’ 곧 한집에 살지 않는 아내에 견주면서 우정의 논의를 한껏 확장시켰다.서양 과학이 궁금해서 수학이나 기하학, 역법서를 구해 읽으면, 앞쪽 서문에 늘 우주를 주재하는 천주의 이야기가 나왔다. 천주교의 교리를 문답체로 설명한 「천주실의(天主實義)」도 흥미로웠지만, 「칠극(七克)」 같은 책은 어록체 산문으로 구성되어 「논어」를 읽는 느낌에 더 가까웠다. 유가의 수양서로 읽더라도 조금의 손색이 없었다. 책 속에 수없이 등장하는 서양 현자들의 독특한 비유와 생기 넘치는 화법은 조목조목 가슴에 와 닿아 새로운 사유의 문을 열었다. 책 속에 소개한 수많은 일화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권 3 「해탐」 편에는 앞서 「교우론」에서 보았던 알렉산더의 비슷하지만 다른 예화도 나온다. 그는 스스로 “나는 왕이 된 것이 즐겁다. 남에게 베풀 수 있어 기쁘다”고 말하며 아낌없이 나눠주곤 했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얻은 것을 다 남에게 주시면 왕께는 무엇이 남습니까?” 알렉산더의 대답은 이랬다. “남에게 주는 즐거움이 남는다네.” 이 일화를 소개한 뒤 판토하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나라 사람들이 모두 왕을 아끼며 따랐다.”「칠극」은 예수회 판토하(Didace De Pantoja, 1571~1618) 신부가 1614년 북경에서 출판한 책이다. 서문에서 “대저 마음의 병이 일곱 가지요, 마음을 치료하는 약이 일곱 가지다. 핵심은 모두 묵은 것을 없애고 새것을 쌓는 것(消舊積新)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오만(傲)은 겸손으로 이기고, 질투(妬)는 어짊과 사랑으로 극복하며, 탐욕(貪)은 베풂으로 풀고, 분노(忿)는 인내로 가라앉힌다. 욕심()은 절제로 막으며, 음란함(淫)은 정결로 차단하고, 게으름(怠)은 부지런함으로 넘어서야 한다며, 모두 7장으로 구분하여 그 단계와 방법을 적절한 예시와 함께 대증 처방을 내리듯 친절하게 설명했다. 그 내용은 지금 읽어도 깊이 와 닿아 진한 감동을 준다. 이익, “극기복례의 공부에 크게 도움”성호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칠극」이란 것은 서양의 판토하가 지은 것인데 바로 우리 유가의 극기(克己)의 주장이다. 절목이 많고 조목이 차례가 있다. 비유가 절실해서 간혹 우리 유가에서 밝히지 못한 것도 있으므로 극기복례의 공부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했을 정도였다. 대학자 이익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책을 읽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고, 오히려 꼭 읽어야 할 책으로까지 여겨졌다. 「칠극」은 한문본으로 300쪽이 훌쩍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그 속에는 사람을 부끄럽게 하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잠언들이 7개의 죄종(罪宗)으로 갈래를 나눠 빼곡하게 들어있다. “재를 부는 사람은 스스로 제 얼굴을 더럽히고 눈을 어지럽게 만든다. 남을 헐뜯는 사람은 스스로 그 마음을 더럽히고, 그 정신을 어둡게 만든다.(吹灰者, 自汚其面, 迷其目. 毁人者, 自汚其心, 闇其靈神)” “색욕은 젊어서는 즐겨도 늙으면 식는다. 분노는 참으면 없어지고 고요하면 물러난다. 하지만 교만은 한번 마음에 들어오면 언제 어디서고 붙어 다닌다. 몸이 늙어도 교만은 시들지 않는다.(如色慾少則, 老則息. 如忿怒, 忍則去, 靜則却. 惟傲一納於心, 時處附着焉. 身能老而傲不衰)” “비방을 지어내는 사람은 돼지와 같다. 발을 두어야 할 곳에 입을 두기 때문이다.(造者如豕. 置足焉卽置口矣)” “세상의 재물은 거짓된 벗과 같아, 편안할 때는 나를 따르다가, 위태로워지면 나를 버린다.(世財如僞友. 安則從我, 危則遺我矣)” “지혜로운 사람이 귀를 기울여 칭찬하는 말을 들으면 어리석게 되고, 듣고 나서 혼자 기뻐하면 미치광이가 된다.(智者傾耳以聽譽則愚, 聽而自喜則狂也)” 이 같은 지혜의 말씀들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알렉산더 대왕에서 세네카와 그레고리오 성인 등 서양 현자와 성인들의 마음에 콕콕 박히는 잠언과 함께 유가 경전도 인용해서 거부감을 줄였다. 그러다가 끝에는 성경 말씀 한 단락을 끼워 넣는다. “술은 음탕을 부추기는 장작이다. 술을 마구 마시면서 제멋대로 음란하지 않은 경우란 드물다. 그래서 성경에 ‘삼가서 술에 취하지 말라. 음란함이 그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酒淫薪也. 恣酒不恣淫, 鮮矣. 經云: ‘愼勿酒醉, 淫在其中故也)” 성경은 에페소서 5장 18절의 “술 취하지 마십시오. 방탕한 생활이 거기에서 옵니다”라고 한 대목을 인용했다. 이런 잠언들과 예화들을 수신서(修身書)로 알고 거부감 없이 읽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천주교의 교리가 내면화되어 있었다. 서양의 과학이 궁금해서 「기하원본(幾何原本)」이나 「기기도설(奇器圖說)」 같은 책을 찾아 읽고, 그들의 정신세계가 알고 싶어 「칠극」을 읽다가, 조선의 선비들은 봄비에 속옷 젖듯이 서학에 조금씩 젖어들었다.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 cpbc2020.05.06

집콕 학생들, 온라인 주일학교에 로그인하세요사제와 교사들, 청소년 위해 유튜브 적극 활용 코로나19로 미사가 중단되고 주일학교 개학이 늦춰지면서 본당에서 청소년ㆍ청년을 담당하는 사제와 주일학교 교사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미사도 없고 교리도 없는 느슨해진 신앙생활에 학생들이 익숙해지는 상황을 우려해서다. 몇몇 본당에선 신앙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SNS와 유튜브 등을 활용한 온라인 사목에 발 벗고 나섰다. 부산 이기대본당 청소년분과 홍보팀은 유튜브에 온라인 주일학교를 열었다. 10일에는 ‘2020 첫 만남’을 주제로 초등부와 중고등부 주일학교 교사단을 소개하는 영상을 올렸다. 14일에는 평소 본당 주일학교 교리 시간이 있는 시간에 맞춰 오후 2시 30분엔 초등부 교리 영상을, 오후 5시 30분엔 중고등부 교리 영상을 게재했다. 대본을 만들고, 자료를 준비하고, 교리 내용이 틀린 게 없나 검토한 뒤, 촬영, 편집을 거치는 작업은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본당 사제와 교사들은 주일학교 개학이 연기되는 것을 마냥 손 놓고 볼 수는 없었다. 한상엽 보좌 신부는 “학교와 학원, 대학 등에서 온라인 강의를 하는데 우리도 준비해보자고 교사들과 마음을 모았다”고 했다. “덕분에 교사들도 느슨해진 마음을 다잡을 수 있게 됐다”면서 “위기를 기회로 삼으며 학생들과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시흥5동본당 보좌 김여욱 신부는 4일부터 매일 자신의 유튜브(Yw F Kim)에 ‘신부님과 함께하는 오늘의 미션’ 영상을 올리고 있다. 효도하기, 식사 전ㆍ후 기도하기, 이웃 사랑하기, 화살 기도하기 등과 같은 작은 실천을 미션으로 내준다. 미사와 교리 없이 사순 시기를 지내는 청소년들을 위해 제작했다. 주일학교 교사들은 매일 학생들과 메신저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미션 수행을 확인한다. 김 신부는 “주일학교 교사들과 함께 고민한 결과”라면서 “학생들이 성당에 안 나오지만, 스마트폰은 매일 사용하니 이를 활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울 압구정동본당 부주임 김광두 신부는 8일 유튜브 라이브 방송으로 청년들과 만났다. 평소에도 다양한 장비를 활용해 영상 교리 등을 유튜브에 공개해 온 김 신부는 실시간으로 청년들과 대화하고 주일 복음 말씀도 함께 읽었다. 김 신부는 인터넷 전화 스카이프를 통해 화상 통화로 본당 청년성서모임 요한 그룹모임을 진행하기도 했다. 김광두 신부는 “장비 사용에 익숙하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렇게라도 만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중고등부는 SNS를 통해 ‘포 유스 ON 챌린지’(for youth ON challenge)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코로나19로 함께하는 미사와 모임은 잠시 멈춘 상태지만, 신앙은 계속(ON)된다는 의미다. 포 유스 온 챌린지는 SNS에 각자의 신앙생활 모습을 올리고 공유하면 된다. 캠페인 참여자들은 코로나19 극복을 청하는 기도를 손글씨로 찍어 올리거나, 묵상한 성경 구절을 올리며 참여하고 있다. 또 온라인상에서 친구를 맺고 있는 청소년과 교사를 지목해 캠페인을 이어가도록 독려하며 신앙의 끈을 이어가고 있다. 유튜브 채널 ‘인천교구 청년ㆍ청장년부 1945’를 운영하는 한덕훈ㆍ정희채 신부는 사순 제1주일부터 오후 7시 청년 미사를 유튜브로 진행하고 있다. 또 사순 시기 매주 수요일에는 ‘함께하는 거룩한 독서’를 방송하기로 했다. 이 밖에도 미사 중단 기간이 길어지면서 미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동안 온라인으로 성경 쓰기, 밤 9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주모경을 바친 뒤 코로나19 극복을 청하는 기도 바치기, 하루 묵주기도 5단 바치기 등을 SNS로 공유하며 청소년ㆍ청년들이 신앙생활을 이어가도록 돕는 본당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선 이와 같은 대응은 임시방편일 뿐 장기적으로 비상사태에 대비해 교구나 한국 교회 전체 차원에서 사목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청소년ㆍ청년을 담당하는 보좌나 부주임 사제가 없는 본당은 청소년ㆍ청년들이 방치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3월은 첫영성체 교리반 대상자를 모집하고 학생과 학부모 교육을 시작할 시기지만 대부분 본당이 교육 일정을 잡지 못하는 상황이다. 주일학교의 가장 큰 행사인 ‘여름 신앙 캠프’는 개최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의정부교구 화정동본당 부주임 이종원 신부는 “청소년ㆍ청년들이 신앙생활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하는데, 코로나19를 이유로 미사에 빠지는 데 대해 죄책감조차 사라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여욱 신부는 “모두가 처음 겪는 상황이라 당혹스럽지만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하고, 고민에서 끝나지 말고 무엇이든 시도를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cpbc2020.03.18

예수의 열두 제자 중 첫 순교자이자 스페인의 수호성인성 야고보 사도 축일
대 야고보 사도는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요한 사도의 형이다. 성격이 불같아서 주님으로부터 ‘천둥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으로 활동하며 이스라엘뿐 아니라 스페인 북부 지역까지 복음을 선포하다 42년께(또는 44년께) 순교했다. 그림은 루벤스가 1613년에 그린 ‘성 야고보 사도’ 작품이다. 7월 25일은 성 야고보 사도 축일이다. 그리고 내년은 7년마다 돌아오는 야고보 사도 성년이다. 축일을 맞아 성경과 전승이 전하는 야고보 사도를 알아본다.먼저,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제자들 가운데 열둘을 뽑아 사도로 세우신 이야기(마태 10,1-4; 마르 3,13-19; 루카 6,12-15)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는 산으로 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시다 날이 밝자 제자들을 모으신 다음 그들 가운데 열둘을 뽑으십니다. 그런 뒤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지내시며 가르치시고 병을 고치고 마귀를 쫓아내는 등 여러 능력을 주시면서(마태 10,5-15; 마르 6,7-13; 루카 9,1-6) 복음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루카 복음서 저자는 열두 사도의 이름을 모두 알려줍니다.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6,14-16)루카 복음서 저자가 알려준 대로 열두 사도 가운데 ‘야고보’라는 이름을 가진 사도가 둘 있습니다.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요한의 형 야고보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입니다. 둘을 구별하기 위해 요한의 형을 ‘큰(大) 야고보’, 다른 야고보를 ‘작은(小) 야고보’라 부릅니다.(마르 3,17-18 참조) 7월 25일 축일을 맞는 사도는 큰 야고보입니다.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순례길의 주인공이죠. 성경 속 야고보 앞서 밝힌 대로 복음서는 큰 야고보 가족에 관해 자세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복음서에 따르면 큰 야고보의 아버지는 제베대오이고 어머니는 살로메입니다. 그의 동생은 주님께서 가장 사랑하셨던 제자인 요한입니다.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뜻을 지닌 제베대오 이름처럼 이 집안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가문이라 할 수 있죠. 야고보와 요한은 시몬 베드로의 동업자(루카 5,10)로 어부였습니다. 주님께서 이들을 부르실 때 야고보는 아버지 제베대오와 동생 요한, 삯꾼들과 함께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지요.(마태 4,18-22; 마르 1,16-20) 아버지 제베대오는 삯꾼을 부릴 정도이고, 또 두 아들을 떠나보내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을 만큼 어느 정도 재력이 있었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머니 살로메가 주님께서 제자들과 갈릴래아에서 복음을 선포하실 때부터 함께 따라다니며 뒷바라지를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마태 27,55-56) 살로메는 어느 정도 세상의 앞날을 내다볼 줄 아는 식견이 있는 여인일 뿐 아니라 믿음도 강한 여인이었습니다. 주님의 권위를 깨달은 그녀가 예수님께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마태 20,21) 하고 청을 드리는 모습에서, 또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그 자리를 지키며 성모 마리아를 위로하는 모습(마르 15,40)에서 그녀의 성품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도들입니다. 요즘 말로 주님의 ‘최측근’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열두 사도를 뽑으실 때에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신 것처럼, 야고보와 요한에게는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별명을 붙여주셨습니다.(마르 3,17)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별명은 야고보와 요한의 성격이 다혈질이었음을 짐작케 합니다. 실제로 형제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자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루카 9,54) 하고 말할 정도로 불같은 성격을 드러냅니다. 야고보 사도가 사도들 가운데 제일 먼저 순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가 시몬 베드로와 동생 요한과 함께 열두 제자 가운데서도 주님의 최측근이었다는 사실을 또 다른 장면에서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타보르 산에서 당신의 신성을 드러내시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실 때 야고보와 베드로, 요한만을 데리고 가셨습니다.(마르 9,2) 또 주님께서 수난하시기 전날 밤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실 때에도 이 세 사도만 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마르 14,33) 야고보 형제는 예수님의 각별한 사랑에 어머니 살로메처럼 같은 청을 드립니다.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마르 10,38)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야고보와 요한을 불쾌하게 여기기 시작했다고 마르코 복음은 전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청을 하는 그들에게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마태 20,23)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열두 사도에게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마르 10,43-44)야고보 사도는 예루살렘 교회가 스테파노의 순교와 함께 박해를 받기 시작할 때에도 야고보는 다른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다 야고보 사도는 체포되어 투옥되었습니다.(사도 5,17-41). 그러다가 서기 42년 또는 44년께 파스카 축제 때 헤로데 아그리파 1세 임금에 의해 순교합니다.(사도 12,2) 이로써 야고보는 열두 사도 중 첫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전승에서의 야고보전승에 따르면, 야고보는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러 사방으로 흩어졌을 때에 유다와 사마리아에서 활동하다가 스페인으로 건너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한 채 다시 유다 지방으로 돌아왔다가 순교했다고 합니다.3세기 교부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야고보 사도의 순교 장면을 전합니다. 그에 따르면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야고보 사도에게 그를 고발한 자가 쫓아오면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야고보는 그 고발자를 끌어안고 “평화가 너와 함께”라며 축복해 주고 용서한 다음 순교의 칼을 담대하게 받았다고 합니다. 야고보 사도의 시신은 예루살렘 성전 옆에 방치되었다고 합니다. ‘순교자의 피는 그리스도인의 씨앗’이라는 말처럼 야고보 사도의 순교는 복음 선포의 신호탄이었습니다. 다른 사도들은 약 12년간 팔레스티나에서 사방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서기 49년 제1차 사도 회의 이전에 순교하였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야고보 사도가 스페인에서 돌아온 다음 서기 42년(또는 44년) 예루살렘에서 순교했다고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 옆에 방치돼 있던 그의 시신은 제자들에 의해 수습된 후 야포를 거쳐 스페인 북부 지방 ‘이리아’에 매장되었답니다. 이후 많은 순례자가 야고보 사도의 무덤을 찾았는데 이슬람교도들의 침입 후 사도의 유해 행방이 묘연해졌다가 9세기께 우연히 별빛이 쏟아지는 들판의 한 동굴에서 그 유해를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곳에 성당을 세우고 이름을 ‘야고보 사도의 별의 들판’ 곧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산티아고는 성 야고보의 스페인식 이름입니다.갈리스도 2세(재위 1119~1124) 교황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대교구로 승격하고 7월 25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이 주일에 오면 그해를 야고보 성년(희년)으로 지내도록 제정하였습니다. 또 알렉산데르 3세(재위 1159~1181) 교황은 야고보 사도 성년 때마다 전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칙서를 통해 허락했습니다. 야고보 사도 성년 전대사를 받기 위해서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주교좌 대성당 야고보 사도 무덤을 참배하고, 교황의 지향에 따라 몇 가지 기도문(적어도 주님의 기도, 신경)을 바치고, 고해성사를 하고, 미사에 참여해 성체를 영해야 합니다. 문헌상 확인한 야고보 사도의 첫 성년은 1434년입니다.중세 때 야고보 사도에 관한 또 다른 전승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가 이슬람교도들이 스페인 중북부 지역을 침공했을 때 백마를 탄 투사가 돼 이들을 앞장서서 무찔렀다는 것입니다. 스페인에서는 야고보 사도를 말을 탄 기사의 모습으로 묘사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런 이유로 스페인의 수호성인이기도 합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평화신문2020.07.22

소박하게 음식 준비해 천주교 가정 제례에 따라 차례 지내설 차례 어떻게 지내야 할까 25일은 민족 최대 명절인 설이다. 설 아침 온 가족이 모여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는 것은 오랜 세시풍속이다. 대대로 차례를 지내온 신자 가정도 많다. 가톨릭교회는 이같은 풍속을 존중해 제례를 허용하고 있다. 지역 교회법인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는 사목 배려 차원에서 조상의 기일이나 명절에 제례를 지낼 수 있도록 허용한다고 밝힌다. 물론 조상 숭배가 아닌 조상에 대한 효성과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차원에서다. 따라서 제례를 지낼 때는 유교식 조상 제사를 답습하는 대신 가톨릭교회가 재해석한 예식을 따라야 한다. 이를 위해 주교회의는 2012년 ‘한국 천주교 가정 제례 예식’을 승인했다. 설을 맞아 ‘한국 천주교 가정 제례 예식’에 나온 가정 제례를 간략히 소개한다.제례 준비우선 마음과 몸의 준비를 해야 한다. 고해성사를 통해 마음을 깨끗이 하고 단정한 복장을 갖춘다. 제례상에는 십자고상과 조상(고인)의 사진이나 이름을 모시며 촛불을 켜고 향을 피운다. 그리고 「성경」 「가톨릭 성가」 「상장 예식」(또는 「위령 기도」)을 준비한다. 상차림은 형식을 갖추기보다 평소에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소박하게 차린다. 음식을 차리지 않아도 된다.제례 내용가정 제례 내용은 시작 예식, 말씀 예절, 추모 예절, 마침 예식으로 구성한다. 추모 예절에서는 분향과 절,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바치는 한국 교회의 전통적 기도인 위령 기도(연도)가 주요 예식이다.시작 예식제례 준비가 끝나면 가장은 “지금부터 명절을 맞이하여 설 차례를 거행하겠습니다”라고 시작을 알린다. 시작 성가는 「가톨릭 성가」 50번(주님은 나의 목자), 54번(주님은 나의 목자), 227번(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 436번(주 날개 밑), 462번(이 세상 지나가고) 중 선택할 수 있다. 가장은 이날 거행하는 제례의 취지를 설명하고 가족의 마음을 모아 시작 기도를 바친다.말씀 예절마태 5,3-12(참 행복), 요한 14,1-14(아버지께 가는 길), 로마 12,1-21(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생활과 생활 규범), 1코린 13,1-13(사랑), 에페 5,6-20(빛의 자녀) 중 하나를 골라 봉독한다. 위에 나온 성경 말씀 외에 다른 본문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이어 가장은 조상(고인)을 회고하며 가족에게 가훈과 가풍 등을 설명한다. 아울러 성경 말씀을 바탕으로 신앙 안에서 살아가도록 권고한다.추모 예절가장이 대표로 향을 피우고 참석자는 모두 함께 큰절을 두 번 한다. 이어 위령 기도를 바친다. 기도는 「가톨릭 기도서」 중 위령 기도, 세상을 떠난 부모를 위한 기도, 세상을 떠난 형제, 친척, 친구, 은인을 위한 기도 중에서 선택해 하면 된다. 마침 예식위령 기도를 바친 뒤 마침 성가를 부르며 예식을 마친다. 선택할 수 있는 성가는 시작 성가와 같다. 마지막으로 온 가족이 한데 모여 상에 차린 음식을 나누며 사랑과 친교의 대화를 즐긴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설 차례 지낼 때 유의사항가톨릭교회는 설날을 비롯한 명절에 신자 가정이 차례를 지낼 수 있도록 허용한다. 각 민족의 고유문화를 존중하고 그것을 신앙의 빛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교회 가르침에 따른 것이다. 비오 12세 교황이 승인한 「중국 예식에 관한 훈령」(1939년)은 “시신이나 돌아가신 분의 상(像) 또는 단순히 이름이 기록된 위패 앞에 머리를 숙임과 기타 민간적 예모(禮貌)를 표시하는 것은 가능하고 타당한 일”이라고 밝힌다. 이 훈령에 따라 한국 주교단이 마련한 「상장례와 제례에 대한 상세한 지침」(1958년)은 가톨릭 신자가 유교적 의례를 거행하는 것을 허용한다. 명절의 주된 의미는 돌아가신 조상을 기억하며 살아 있는 가족과 친지가 만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차례도 특정 종교의 예식이라기보다는 전통 미풍양속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떠난 이를 기억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과도 상통하는 면이 있다. 기일이나 위령의 날에 봉헌하는 위령 미사가 그 예다. 따라서 가톨릭 신자들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설날을 가족ㆍ친지들과 함께 뜻깊게 지내야 한다. 한국 교회가 제례를 허용했다고 해서 유교적 관습을 모두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조상 숭배를 연상할 수 있는 행위는 금지했다. 따라서 제례를 지낼 때는 특히 유의해야 한다. 먼저 조상 신령에 고하는 축문(祝文)과 혼령이 제물을 흠향(欽響)하도록 문을 닫고 참석자들이 잠시 물러나는 합문(闔門) 등의 풍습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에 어긋나는 까닭이다. 또 신위(神位), 신주(神主), 위패(位牌), 지방(紙榜) 등 죽은 이의 신원을 표시하는 용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조상에 대한 기억을 넘어 조상 숭배를 연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조상의 이름’이나 ‘조상의 사진’으로 대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위령 미사 봉헌이다.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는 “신자 가정에서는 기일 등 선조를 특별히 기억해야 하는 날에는 가정의 제례보다 우선하여 위령 미사를 봉헌한다”고 밝힌다. 고인을 기억하며 그를 위해 위령 미사를 봉헌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돌아가신 조상과 가족의 종교를 막론하고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이학주 기자 cpbc2020.01.15

가톨릭교회 신앙 내용이 요약된 ‘신앙 고백문’[미사의 모든 것] (21)신경 신경은 가톨릭교회의 신앙 내용을 간추려 놓은 글이다. 사도 시대 초대 교회에서 세례 때 행해진 신앙 고백에서 시작되었다. 조언해: 주일과 대축일 미사 때 강론이 끝나면 모두 일어서서 신앙 고백을 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라파엘 신부: 미사 독서와 강론을 통해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인 신자들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 그리고 하느님을 향한 신뢰와 흠숭으로 닫힌 마음을 열고 신앙 고백을 한단다. 아울러 신자들은 성찬 전례를 시작하기에 앞서 우리의 믿음을 상기하기 위해 신앙 고백을 하지. 하느님의 말씀을 신앙 깊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믿는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예식이라고 할 수 있지.나처음: 신앙 고백은 예비신자 교리 시간에 배운 신경을 말하는 거죠.라파엘 신부: 맞아. 신앙의 유산을 지키고 계승하는 것은 주님께서 당신 교회에 맡기신 사명이란다. 교회는 이 사명을 항구히 수행해 오고 있지. 교회가 미사 중에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지. 그리스도인은 자기 신앙을 사람들 앞에서 고백하고 선포할 의무가 있단다. 우리가 고백하고 선포할 신앙 내용이 모두 신경에 담겨있지. 신경은 전능하신 창조주 성부에 대한 신앙과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세주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 그리고 거룩한 교회 안에 계신 성령에 대한 신앙의 내용을 요약해 놓았단다. 나처음: 신경도 여러 개가 있나요?라파엘 신부: 신앙 고백은 “저는 믿나이다”라는 라틴어 첫 글자를 따서 ‘크레도(Credo)’라고 해. “저는 믿나이다”라는 말로 시작하기에 ‘신경(Symbola fidei)’이라고도 부르기도 하지. 헬라어 ‘σμβολον(심볼론)’은 깨트린 물건의 반쪽을 의미하는 말로 신원을 확인하는 증표를 뜻해.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헤어질 때 훗날 다시 만날 때 신원을 확인하는 징표로 물건을 나누는 것을 심볼론이라고 하지. 이런 의미로 신앙 고백은 가톨릭교회 신앙의 징표이기 때문에 심볼론 또는 라틴말로 ‘심볼라 피데이’, 우리말로 ‘신경’이라고 해. 따라서 신경은 가톨릭교회 신앙의 근본 기준이라 할 수 있지. 초대 교회 때부터 이어진 전통에 따르면 신앙 전체를 사도들의 수로 상징하고자 신경을 열두 절로 구분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해. 사도 신경이 그 대표적이지. 열두 사도들의 신앙을 충실히 요약한 사도 신경은 열두 가지 신앙 고백을 요약해 놓았지. 시대가 흐르면서 지역과 전례에 따라 신경은 여러 양식으로 발전했단다. 그중 가장 오래된 것은 2세기에 나온 ‘예루살렘의 세례 신경’이야. 그러나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은 3세기 초엽 히폴리토 교부가 저술한 「사도 전승」에 수록된 세례 고백문이지. 현존하는 신경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사도 신경’,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아타나시오 신경’, ‘트리엔트 신경’ 등이 있단다. 조언해: 저는 유아 세례를 받아 기억할 수 없지만 대녀의 세례식 때 신앙 고백을 하면서 펑펑 울었어요. 세례 때 첫 신앙 고백을 하잖아요. 라파엘 신부: 맞아. 신경은 무엇보다도 세례 신앙의 고백이란다. 세례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마태 28,19) 베풀어지므로, 세례 때 고백하는 신앙의 진리들은 삼위일체의 세 위격을 중심으로 연결돼 있지. 그래서 신경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단다. 먼저 ‘성부와 그분의 놀라운 창조 업적’, 다음에는 ‘성자와 인간 구원의 신비’, 끝으로 ‘우리 성화의 근본이며 원천이신 성령’에 대한 부분이야. 나처음: 사도 신경은 열두 사도가 만든 건가요.라파엘 신부: 사도 신경은 교회에서 가장 오래된 신앙 고백문이야. 사도 신경은 사도들의 권위를 부여받아 2세기 무렵부터 오늘날과 같은 형식으로 완성돼 사용된 교회에서 가장 오래된 신앙 고백문이지. 따라서 사도 신경 자체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상징이자 표상이라고 할 수 있어. 열두 사도가 사도 신경을 만들었다는 주장은 4세기 말께 나타나. 트란니우스 루피노가 사도 신경에 대한 주석에서 신경의 사도적 기원을 처음으로 주장했지. 성령을 충만히 받은 열두 사도가 복음 전파를 위해 각지로 떠나기 전에 그리스도교 교리의 핵심을 확인하고자 각자 신앙에 대한 관심을 짧은 형식으로 표현해 사도 신경을 만들었다는 것이야. 이 전승에 대해 교회는 별 이의 없이 받아들이고 있단다. 현대 신학자들도 사도 신경의 내용 모두를 성경과 사도적 기원이 있다고 인정하고 있지. 사도 신경이 열두 사도가 직접 만든 것이라고 단언할 수 없으나 사도들의 신앙을 충실히 요약했다는 점에서 이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지극히 마땅해.나처음: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 관해서도 알려주세요.조언해: 교리교사인 내가 설명해줄게. 교회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으로 로마 제국에서 신앙의 자유를 얻은 후 지상 교회가 생기면서부터 신앙에 대한 수많은 이단과 이교의 공격을 받아. 특히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 성령의 신성까지 부정하는 이단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지. 교회는 이에 맞서 325년 니케아 공의회와 381년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를 개최해. 교회는 두 공의회에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성령의 신성에 대한 교리들을 결정하고, 두 공의회에서 결정된 신앙 조문들을 정리해 하나의 신경을 만들었는데 바로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이야. 라파엘 신부: 언해가 잘 설명해 주었구나.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은 현존하는 모든 신경 중 동ㆍ서방 교회 모두가 받아들이고 있는 유일한 신경이란다. 동방 교회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 외 가톨릭교회가 사용하는 사도 신경과 아타나시오 신경 등을 보편 공의회에서 선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는단다.가톨릭교회는 성령께서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신다”고 고백하는 반면 동방교회 즉 정교회는 “성부로부터 발하시며, 그리스도는 성령을 보내신다”고 믿고 있단다. 가톨릭교회는 성부를 성자와 성령의 근원으로 본 것이라 아니라 본질적인 하나의 신성이라고 고백하지만, 정교회는 성부를 다른 두 위격의 근원으로 보아 성자와 성령은 성부로부터 나온 것으로 성자는 성부에게서 태어났고, 성령은 유출된 것이라고 믿고 있지. 그래서 가톨릭교회는 589년 제3차 톨레도 교회 회의를 통해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 ‘성자로부터(filioque)’라는 표현을 삽입해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신다”고 분명히 했지.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 이 표현이 삽입됨으로써 동ㆍ서방 교회가 갈라지게 되는 한 원인이 되었단다. 조언해: 신경이 미사에 도입된 것은 언제부터죠.라파엘 신부: 미사에 신앙 고백문을 도입한 시기는 5세기 후반이야. 동방의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가장 먼저 도입했지. 이후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를 비롯해 비잔틴 전례를 거행하는 대부분의 동방 교회 지역에 미쳤단다. 서방 교회에서는 6세기 말 스페인 톨레도 교회 회의를 통해 도입돼 점차 확산되었단다. 신앙 고백문이 로마 전례에 도입된 것은 11세기 초엽이야. 비교적 늦었지. 신성로마제국 하인리히 2세 황제가 대관식을 거행하기 위해 로마에 방문해 주님 성탄 대축일 미사에 참여하였다가 신앙 고백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교황에게 건의해 도입되었다고 해.그러나 초기에는 지금처럼 주일과 대축일 미사마다 신앙 고백을 하지 않고 주님 성탄부터 성령 강림 사이 주일과 마리아 축일, 사도 축일에 신앙 고백을 했다고 해. 미사에 사용하는 신앙 고백문은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과 사도 신경이야. 가톨릭교회는 미사의 공식 신앙 고백문에 대해서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으로 정하고 있으나, 1967년 주교 시노드의 결정에 따라 지역 교회가 판단해 사도 신경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어. 그러나 교회는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이 단지 길다는 이유로 사도 신경을 선택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가르치고 있단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0.12.08
![[생활속의복음] 연중 제7주일 - 원수를 축복하고 사랑하라](//cpbc.co.kr/CMS/newspaper/2020/02/rc/773405_1.1_titleImage_1.jpg)
[생활속의복음] 연중 제7주일 - 원수를 축복하고 사랑하라 임상만 신부 주일에 피치 못할 일로 미사 참례를 못 한 아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오늘 신부님의 강론 말씀이 무엇이었나요?” 남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다만 아내를 힘껏 껴안아 주었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감격한 아내는 다음날 새벽 미사가 끝난 후 본당 신부에게 물었다. “신부님! 어제 강론 말씀이 너무 좋았나봐요. 저희 남편이 달라졌어요. 무슨 내용이었나요?” 그러자 신부가 대답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 원수에 대한 복수를 미덕으로 삼는 문화 속에서 성장했다. 그래서인지 ‘원수 같은 남편’, ‘원수 놈의 자식’이라는 표현을 자주 들을 수 있다. 가까운 이웃이나 가족에게 얼마나 많은 아픔을 당했을까 싶어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그런데 이 원수라는 대상이 가장 가까운 곳에 함께 살아가는 경우가 아주 많다. 성경을 살펴보면 아담에게는 아내인 하와가 그랬고, 아벨에게는 형 카인이 원수였다. 야곱의 원수는 그의 형 에사오였고, 요셉을 팔아넘긴 형들과 예수를 팔아넘긴 제자 이스가리웃 유다스를 들 수 있다. 사랑해야 할 원수라는 대상이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아니라 가족과 이웃이기에 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원수를 대하는 모습에는 5가지 단계가 있다. 첫째, 원수에 대해 칼을 품고 복수할 날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는 대부분 원수가 망하기 전에 자기가 먼저 망한다. 둘째, 직접 복수하지 않더라도 원수의 멸망을 손꼽아 기다리는 단계다. 하지만 자기 마음만 불편한 상태에서 일도 잘 안 되고 오히려 원수는 더 잘 될 때가 많아 더 속상하다. 셋째, 편한 마음으로 원수의 종말을 지켜보는 단계다. 노자는 말했다. “스스로 원수에게 복수하려고 하지 말고 그의 시체가 강물 위로 떠오를 때까지 기다려라.” 이것은 원수가 정말 나쁜 일을 했다면 반드시 망할 테니 사필귀정을 믿고 편하게 지켜보라는 것이다. 넷째, 원수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잊어버리라는 단계다. 자기 할 일만을 생각하고 원수가 어떻게 될지 지켜보지 말라는 것이다. 사실 원수에게 복수하는 가장 좋은 길은 원수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다섯째,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원수를 축복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가장 어렵다. 그러나 원수가 가까이 있다면 한번 해봄 직하다. 원수를 미워함으로 스스로를 힘들게 해 자신의 영혼까지 파탄 나게 할 것이 아니라, 원수를 위해 기도해줌으로써 자신의 평화를 얻으라는 것이다. 다만, 원수에게 받은 손해와 상처는 어디서 보상을 받느냐의 문제가 남는다. 이것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나는 늘 손해만 보고, 부당한 일을 당해야만 하는지의 문제이다. 바오로 사도는 “스스로 복수할 생각을 하지 말고 하느님의 진노에 맡기십시오. 성경에서도 ‘복수는 내가 할 일, 내가 보복하리라’ 하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로마 12,19)”라고 말했다. 복수는 하느님께 맡기고 우리는 더 큰 사랑을 위하여 원수에게 잘해주고 축복해주면 복수의 쾌감이 아닌 영혼의 행복으로 우리를 채워주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하느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우리가 하느님께 맡기면 모든 일을 가장 선하고 적절하게 처리해주신다는 믿음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원수에게 ‘잘 대해주고, 축복하고, 기도해주는 것’뿐이다. 하느님께서는 선한 사람뿐 아니라 악한 사람에게도 자비를 베푸신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도 마땅히 원수를 사랑하고 잘 대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예수를 통해 보여주신 하느님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마태 5,46)임상만 신부(서울대교구 상도동본당 주임) 평화신문2020.02.19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새 삶을 향한 참생명학교 (4)...남자와 여자, 성적 충동과 사랑... 하성용 신부(서울 사회사목국 부국장)존중과 정결로 완성되는 진정한 사랑 하느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알맞은 협력자”(창세 2,18)가 되기를 바라셨다. ‘알맞은’이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성경 원문에서 말이 없는 대화로도 가능한 직접적인 관계, 눈과 눈이 마주치는 관계를 말한다.(프란치스코 교황, 「사랑의 기쁨」 12항 참조) 남자와 여자는 그토록 친밀한 관계를 맺도록 창조됐다.아담이 하와를 만났을 때 하와가 자신과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몸을 통해서다. 아담은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창세 2,23)라고 외쳤다. 인간의 몸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육화된 영’인 인격의 표현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몸을 보고 그가 우리와 같은 인간임을 알게 된다. 또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바라보고 자신을 발견한다. 남자는 여자 앞에서 자신이 남자임을 분명히 깨닫고 여자는 남자 앞에서 자신이 여자임을 깨닫는다. 남자와 여자의 몸의 차이는 인격의 차이를 나타낸다. 남자의 몸을 가진 이는 남자의 인격을, 여자의 몸을 가진 이는 여자의 인격을 가졌다. 더 나아가 남녀의 몸은 성적 결합으로 일치를 이룰 수 있다. 남녀의 성적 결합은 인격체의 결합이기에 단순히 육체적 결합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몸은 서로가 지닌 육체적 차이를 보완하면서 일치를 통해 완성하도록 이끌어 준다.남녀의 상이성, 상호보완성, 일치를 이루는 소명은 사랑이 인간의 근본 소명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쳐 준다. 사랑은 다양한 의미를 가지지만 혼인으로 맺어지는 남녀의 사랑은 특별하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2항에서 “이 사랑 안에서 나뉠 수 없는 육체와 영혼이 결합되고 마다할 수 없는 행복에 대한 약속이 인간에게 드러난다. 이는 뛰어난 사랑의 원형처럼 보여 다른 온갖 사랑은 그와 비교할 때 빛을 잃어버리는 듯하다”고 했다.남녀의 사랑이 진정으로 사랑의 원형이 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사랑의 바탕이 되는 성적 충동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며 남녀의 사랑이 어떻게 성숙하고 통합돼 가는지도 이해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랑이 이기적인 충동이 되지 않도록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절제도 필요하다. 성적 충동은 서로 다른 성에게 매력을 느끼고 이끌리는 힘이다. 성적 충동을 단순히 쾌락을 향한 욕구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그런 시각은 성행위를 단순히 욕구 충족의 기회로만 보게 하고, 상대방을 나의 욕구 충족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킨다. 성을 쾌락의 수단으로 보는 관점은 인간의 몸을 물건처럼, 인격을 물건처럼 다루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에 반하는 태도다.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랑은 내가 원하는 상대방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그 사람의 삶을 사랑하는 것, 그가 자신의 삶을 실현하기를 바라는 것이 선의로서의 사랑이다. 상대방의 선을 위해 자기 자신까지 주고 싶어하는 것이 부부의 사랑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관능과 감정을 자제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며 교회는 이를 정결이라고 표현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성적인 즐거움보다 소중하기에 참는 것은 적극적인 행위이며 사랑이다. 정리=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cpbc2020.06.24

요셉 성인은 단순한 목수가 아니었다[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 (13)예수님의 감춰진 30년의 신비 평범한 일상 속 예수의 성장 과정을 묘사한 존 에버렛 밀레이의 ‘부모 집에 있는 그리스도’(1848년, 캔버스 위에 유화, 런던 데이트 갤러리) 부분. 어린 예수가 못에 손이 찔리자, 요셉과 마리아가 근심 어린 눈빛으로 상처를 살펴보고 있다. 예수님의 ‘감춰진 30년’이 궁금합니다. 탄생에서 공생활 시작 전까지의 삶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30여 세의 나이가 될 때까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내셨을까요.3월은 성 요셉 성월이고, 3월 19일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입니다. 교황청은 이날을 공휴일로 정하여 하루 동안 성인을 묵상토록 하고 있습니다. 성인의 직업을 실마리 삼아 ‘감춰진 30년’의 신비에 다가가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공생활 3년 동안 복음을 설파하면서 정곡을 찌르는 비유와 피부에 와 닿는 예화를 들려주십니다. 예수님은 이런 비유와 예화의 소재를 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채집하셨을까요? 예수님은 변방 갈릴래아에 살았으면서도 국제 정세에 밝았습니다. 또 갈릴래아 지역 현안에 대해서도 정확히 꿰뚫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국제 감각과 현실 감각을 습득할 수 있었을까요? 잉태되는 순간부터 당신의 신성으로 지복직관(至福直觀)을 누리셨던 예수님이시지만, 인간 세상의 지식을 나중에 습득하신 것도 분명한 사실일 텐데 말입니다.특수한 직업 목수 요셉 성인의 직업이 목수라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하느님이 아기 예수님을 농부나 어부가 아닌 목수에게 입양시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하느님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이 알아주는 효자였다(루카 2,51 참조)는 사실도 중요합니다. 효자 아들과 목수 아버지의 매트릭스에 ‘감춰진 30년’의 신비가 숨어 있는 것 같습니다. 농경 시대에 목수는 특수한 직업이었습니다. 고급 기능인으로서 장인 대우를 받았지만, 일터가 고정되어 있지 않아 이 고을 저 고을 일감을 찾아다녀야 했습니다. 고객층도 부자에서 가난한 사람까지 다양했습니다. 덕분에 목수는 각계각층의 살림살이를 직접 보고, 다양한 여론을 청취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목수의 일은 책상과 걸상 등 가구 만드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집수리와 집짓기, 인테리어 등 주택과 관련된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었습니다. 당일치기 일이 많았겠지만, 때에 따라서는 여러 날 출장을 가기도 했습니다. 무거운 연장 보따리를 둘러메고 갈릴래아 전역을 돌아다녔겠지요. 목수 일은 이래저래 고된 중노동이었습니다. 효자 아들이 이런 아버지를 그냥 두고 봤겠습니까. 틈나는 대로 아버지를 따라가서 일을 도왔을 것이고 작업 현장에서 숙식도 함께했을 것입니다. 바로 이 대목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과정에서 세상 물정을 폭넓게 습득했을 것입니다.지혜롭고 총명한 예수님(루카 2,52 참조)은 목수 일에 머무르지 않고 견문과 학식을 높이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 점에서 세포리스는 최고의 학습장이었습니다. 세포리스는 나자렛에서 불과 6km 떨어진 곳에 있는 인구 3만 명 규모의 국제도시였습니다. 그리스어를 사용했고 국제 무역이 활발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걸어서 불과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이 도시를 예수님은 가셨을까요, 아니면 가지 않았을까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예수회 사제인 제임스 마틴 신부의 견해가 흥미롭습니다. “나는 호기심 많은 이 청년이 나자렛에 살면서, 또 나중에 일거리를 찾으면서, 이런 세계적 도시를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을 리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시 말해 로마 사람들과 그리스 사람들의 다언어와 다문화 세계에 노출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곳을 방문하는 동안 세포리스의 부유하고 호화로운 집들을 보셨을 것이다. 그곳은 나자렛의 가족들과 친구들이 사는 오두막 같은 집과는 상대적으로 아주 달랐을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예수님이 훗날 소득 불균형에 대해 비판하는 말씀을 하시는 데에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른다. 또한, 그분은 약간의 그리스어 단어와 구절들을 어깨너머로 배웠을 것이고, 그것들은 훗날 그분께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예수, 여기에 그가 있었다 1」 가톨릭출판사) 3년을 위한 30년저는 마틴 신부의 이 같은 추론에 동의합니다. 요셉 성인은 예수님이 다양한 분야의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일부러라도 세포리스에 가게 했을 것입니다. 성인은 단순한 목수가 아니었습니다. 어진 아버지였고 유능한 교육자였으며 훌륭한 동반자였습니다. ‘감춰진 30년’은 공생활 3년을 위한 치밀한 준비였습니다. 3년을 위해 30년을 준비했다니, 놀랍지 않습니까.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 평화신문2020.03.11

교황 “인권 수호에 목숨 바친 5·18 희생자 기억”한국 주교단, 광주 민주화 운동 40주년 기념 미사… 5월의 대동 사회 축제로 만들어야 김희중 대주교(가운데)와 염수정 추기경, 알프레드 슈에레브 대주교 등 주교단이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 40주년 기념 미사를 공동 집전하고 있다. 광주대교구 제공 프란치스코 교황이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 40주년 기념 행사가 평화와 화해를 이루는 데 기여하기를 희망했다. 교황은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 40주년 기념 미사를 봉헌하는 광주대교구에 메시지를 보내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모든 젊은이의 희생이 기억되기를 기도한다”고 전했다. 또 광주대교구가 인간 존엄성과 권리를 존중하면서 생명을 보호하는 사회질서를 형성하는 데 노력을 다하기를 당부했다. 교황의 메시지는 17일 광주대교구 주교좌 임동성당에서 봉헌된 5ㆍ18 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미사에서 발표됐다. 주한 교황대사 알프레드 슈에레브 대주교는 교황 메시지를 전하며 “교황께서는 이번 기념 행사가 한국 국민들 마음속에 연대와 형제애를 증진하며 선과 진리와 정의를 향한 열망이 북돋아지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미사를 주례한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는 강론에서 “과거의 아픔을 매듭짓지 못한 5·18 민주화 운동은 현재 진행형”이라며 “역사의 매듭을 짓기 위해 만행의 당사자들이 진심 어린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는 참회와 성찰, 숙고, 충만, 완성을 위해 새롭게 준비하는 기간이라는 의미도 함께 가진다”면서 “5ㆍ18 40주년은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주의 5월이 더 이상 악몽의 트라우마에 갇혀있어서는 안 된다고 한 김 대주교는 “우리나라와 민족을 위한 거룩한 희생의 결과로 오늘의 대동 사회와 민주국가를 이루는데 밑거름이 된 5월의 영령들과 유가족들, 부상자들에게 감사하는 5월의 대동 사회 축제로 만들어가자”고 말했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다시는 이러한 비극적 상황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기억의 지킴이가 되자”며 “우리 모두 희생자들이 하느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길 기도하자”고 말했다. 유가족협의회 대표를 맡았던 안성례 여사는 5ㆍ18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청년들이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했던 일을 회고하며 감사 인사를 했다. 5ㆍ18 당시 아들을 잃은 전계량(안셀모)씨는 “아들의 영혼이 하늘에 있으리라고 믿는다”며 기도를 부탁했다. 이날 미사에는 전 광주대교구장 윤공희ㆍ최창무 대주교, 교구 총대리 옥현진 주교를 비롯해 각 교구 주교와 사제, 유가족 등이 참여했다.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 총대리 김종수 주교,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 부교구장 문창우 주교, 마산교구장 배기현 주교, 전주교구장 김선태 주교, 서울대교구 유경촌ㆍ정순택ㆍ구요비 주교,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장 박현동 아빠스가 미사에 함께하며 5ㆍ18 정신을 기렸다. 코로나19로 미사 참여자는 400명으로 제한됐다.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평화신문2020.05.19

성령을 받아 땅끝까지 복음 전파하는 과정 생생히 전달[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66. 에필로그<1>- 복음 전파의 세 분수령 성령 강림 사건, 스테파노의 순교로 본격화한 교회 박해, 그리고 예루살렘 사도 회의는 사도행전이 전하는 예루살렘에서 땅끝까지 이루어져야 하는 복음 전파 과정에서 분수령이 되는 사건들입니다. 사진은 올리브 산에서 본 예루살렘 모습.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서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사도행전 이야기’에서 살펴봤듯이 사도행전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맡기신 이 복음 전파 사명이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끝에 이르기까지”(사도 1,8) 수행되는 과정을 사실적이고 역동적으로 그려냅니다. 사도행전이 전하는 이 복음 전파 과정에는 관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분수령 또는 전환점이 되는 세 가지 사건과 한 인물이 두드러집니다. 사도행전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에필로그에서는 이 세 가지 사건과 인물을 집중적으로 다루고자 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먼저 이 세 가지 사건에 대해 살펴봅니다. 성령 강림, 스테파노로 인한 교회 박해, 그리고 예루살렘 사도 회의입니다. 1) 성령 강림사도행전 2장이 전하는 성령 강림은 사도들의 복음 선포 활동이 본격적인 막을 올리는 출발점이 됩니다.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사도들은 베드로를 중심으로 대담하게 복음을 선포하면서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와 부활하신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촉구합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의 오순절 설교로 그날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신자는 3000명가량 됐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첫 신자 공동체가 예루살렘에 생겨난 이 날을 교회의 창립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전례력으로 성령 강림 대축일을 교회의 창립일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그런데 오순절에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예루살렘 주민만이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7-11절은 사도들의 첫 오순절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출신 지역 또는 민족 명단을 전하는데 파르티아, 메디아, 엘람은 오늘날 이란 지역에 살던 민족들입니다. 메소포타미아는 오늘날 이라크 지역을 가리키고, 카파도키아와 폰토스와 아시아는 오늘날의 터키 지역입니다. 터키의 동쪽이 카파도키아, 북쪽 흑해 연안이 폰토스, 에게해와 맞닿은 서쪽 연안 지방이 아시아입니다. 프리기아와 팜필리아는 터키의 중부와 남부 지방을 가리킵니다. 리비아와 이집트는 아프리카 북부이고, 지중해 섬인 크레타와 아라비아반도를 가리키는 아라비아와 로마까지 포함한다면 사도행전이 전하는 이 지역들은 로마 제국 전체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로 “땅끝”까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행전이 거명하는 이들 지방 사람들이 실제로 모두 사도들의 오순절 설교를 들었을까요? 그럴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뒷받침할 수 있는 객관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됨을 이 지명들을 통해 제시하려는 것이 사도행전 저자의 의도라는 데에 성경학자들의 견해가 일치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사도들의 설교에 다양한 반응을 보입니다.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가?” 하고 놀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새 포도주에 취했군” 하며 비웃는 사람들도 있었고, 설교를 들은 후 마음에 찔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2,12-13.37) 이런 반응들은 복음이 선포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반응을 예시한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사도행전 2장이 전하는 성령 강림에 이은 오순절 사건은 사도행전 전체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2) 교회에 대한 박해 사도행전은 복음 선포 활동 초기부터 베드로와 요한으로 대표되는 사도들에 대한 박해를 전하고 있습니다만,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본격적 박해는 스테파노의 순교가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사도행전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스테파노가 순교한 “그날부터 예루살렘 교회는 큰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사도들 말고는 모두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다.”(8,1)하지만 신자들은 그저 흩어지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은 “흩어진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8,4)라고 하면서 일곱 봉사자 가운데 하나인 필리포스의 복음 선포 활동을 소개합니다.(8,5-40) 그는 사마리아의 고을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내려가는 길에서는 에티오피아 내시에게까지 복음을 전합니다. 또 지중해 연안 지방인 아스돗에서 카이사리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지방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선포합니다.필리포스에 이어 베드로와 요한도 사마리아의 고을에 갔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마리아의 많은 마을에 복음을 전하지요.(8,25) 이렇게 흩어진 신자들과 사도들의 활동으로 “교회는 유다와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온 지방에서 평화를 누리며 굳건히 세워지고”(9,31) 신자 수도 늘어납니다. 사도행전 8장과 9장에 언급된 이들 지역은 성경의 세계에서 전통적으로 팔레스티나라고 부르던 지역으로 오늘날로 치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지역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스테파노의 일로 일어난 박해 때문에 흩어진 신자들은 팔레스티나에서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페니키아와 지중해의 키프로스 섬, 그리고 시리아의 중심 도시 안티오키아까지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특히 안티오키아에서는 이전까지 주로 유다인들을 대상으로 하던 복음 선포 활동이 그리스계 사람들, 곧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도 확대됩니다.(11,19-20) 박해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팔레스티나의 경계를 넘어서까지 전해지고 복음 선포의 대상도 유다인을 넘어 이방인에게까지 확대되는 계기로 작용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에 대한 복음 선포는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할례와 같은 율법 규정을 다른 민족 출신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이들도 지켜야 하느냐 하는 문제가 불거진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소집된 회의가 예루살렘 사도 회의입니다. 3) 예루살렘 사도 회의 사도행전 15장이 전하는 예루살렘 사도 회의의 결정은 다른 민족 출신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이들은 ①우상에게 바쳐 더러워진 음식 ②불륜 ③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④피를 멀리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다른 민족 출신의 그리스도인들과 엄격한 율법 준수를 강조하는 유다계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논쟁의 불씨가 된 할례 문제가 빠져 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사도 회의가 결정한 네 가지 금기 사항 중 세 가지는 유다계 그리스도인들과 그리스계(다른 민족 출신) 그리스도인들이 한 식탁에서 음식을 나눌 때 바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말하자면 신자 공동체의 친교 자리에서 유다인 신자들을 부정하게 만들지 않도록 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예루살렘 사도 회의의 결정은 다른 민족 사람들이 좀 더 자유로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중요한 동인으로 작용합니다. 또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유다교의 영향력에서 점차 벗어나는 계기가 됩니다.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있으니 그가 바오로 사도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살펴봅니다.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alfonso84@hanmail.net cpbc2020.05.27

집단 환각에 빠진 예멘을 구하다[사유하는 커피] (12)까트의 타락한 쾌락을 치유한 커피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장 주님이 정한 곳에서 자라는 커피나무는 굳이 재배할 필요가 없다. “땅은 푸른 싹을 돋게 하여라. 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땅 위에 돋게 하여라”(창세 1,11)라는 말씀에 따라 저절로 자라는 듯하다. 여기서 ‘제 종류대로’란 와인에서는 테루아(Terroir), 커피에서는 스페셜티(Specialty)의 개념에 닿는다. 테루아에는 토양, 햇살, 바람, 배수 등 포도나무 한 그루를 성장시킨 조건들이 와인의 향미를 결정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이런 가치를 에르나 크누젠이 커피에 적용한 게 ‘스페셜티’이다. 한마디로 한 잔에 담긴 커피를 맛보면 어디에서 어떻게 자랐는지를 알 수 있다는 말이다.‘있어야 할 곳에서 벗어난 존재’들에 대해선 이야기가 좀 복잡해진다. 아프리카 태생지에서 아라비아 반도 끝의 예멘으로 끌려간 커피나무는 일정 장소에 갇혀 자란다. 예멘은 인류가 커피를 처음으로 재배하기 시작한 곳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이처럼 커피가 그리스도교 국가에서 이슬람 국가로 넘어가면서 커피의 본성도 엉뚱한 면에 초점이 맞춰졌다. 커피는 더 이상 그윽하고도 매혹적인 향미로 인간을 행복에 젖어들게 하는 음료에 머무르지 못했다. 많은 무슬림에게 커피는 마약 성분이 들어 있는 까트(Khat)의 대용품이기도 했다. 까트는 멀리서 보기에 크기와 꽃이 피어 있는 모양새가 커피나무와 비슷하다. 커피는 꼭두서니과이고, 까트는 노박덩굴과로 서로 다르지만, 뒤섞여 자랄 수 있을 정도로 재배학적인 성격이 유사하다. 까트는 잎을 날로 씹어 먹는 것으로서, 열매 또는 씨앗만을 가려내 섭취하는 커피보다 앞선 시기부터 인류가 활용해왔다고 추측할 수 있다.까트잎에 들어 있는 카티논(Cathinone)은 카페인과 같은 알칼로이드 계열의 환각 성분이다. 각성과 함께 공복감, 갈증을 느끼지 않게 하는 약효 때문에 더위를 잊거나 끼니를 때우기 위해 염소처럼 까트잎을 종일 씹는 사람들이 숱하다. 카티논은 카페인만큼 지능적이다. 화학구조는 ‘히로뽕’과 유사한 암페타민 계열이지만, 의존도와 독성이 낮고 환각 효과도 심하지 않다. 이런 전략이 사람들에게 경계를 풀게 하면서 계속 잎을 씹게 만들어 정신질환에 빠뜨린다. 일부 이슬람 수피교도들은 아프리카 고산지대의 선선한 그늘에서 자생하던 커피나무를 뙤약볕이 내리쬐는 사막지대로 가져가 억지로 키워내는 바람에 까트로 바뀌었다고 한탄한다.진화생물학에서는 인류가 생잎을 씹어 먹은 것은 초식동물 때의 흔적으로, 잡식 탓에 생긴 기생충이나 병균을 알칼로이드 성분으로 없애기 위한 전략이라고 풀이한다. 일종의 이독치병(以毒治病) 과정에서 인류는 묘한 경험을 한다. 독을 섭취하자 신체에 알 수 없었던 보호기능이 작동했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넣어 주신 고귀한 선물이다. ‘독이 침입했으니 얼마나 아프겠니’ 하는 속삭임과 함께 도파민이 분비돼 고통을 덜어준다. 그러나 인간은 까트를 도파민의 쾌감을 비명처럼 쥐어짜 내는 도구로 악용했다. 항우울제로서 요긴하게 활용되기도 하는 까트 자체가 악마의 식물은 아니다. 그 쓰임새를 벗어나게 한 인간의 탓이 아닐 수 없다.까트로 인해 집단 환각에 빠진 예멘 사회를 구해낸 것이 6~7세기 아프리카에서 건너간 커피였다. 구약 성경의 신앙심으로 무장한 이슬람 수피교도들이 까트를 통째로 뽑아 버리고 무해한 커피를 마실 것을 권했다. 커피 음용이 일부 교파의 의식에 포함됐으며, 커피를 마시면 지옥에 가지 않는다는 믿음도 퍼졌다. 카페인은 심장을 고동치게 하는 각성효과도 적절한 데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몸에서 빠져나간다. 커피는 애초 까트의 타락한 쾌락을 치유하도록 이슬람에게 주어질 선물로 계획된 것인지도….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평화신문2020.07.21

신자들이 신앙의 기쁨 누리도록 돕고 사제단과 소통하며 공동 합의해 나가겠다제8대 춘천교구장 김주영 주교에게 듣다 착좌식 후 일주일 만에 만난 춘천교구장 김주영 주교는 다양한 사목 방안을 전하며 “모든 일은 사제와 교우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며 함께 해나갈 것”이라면서 “사제단과 교우들 중간에 있는 책임감 있는 아버지로서의 역하을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제8대 춘천교구장에 착좌한 김주영 주교는 지난해 11월 21일 교구장 주교로 임명된 뒤 6일 착좌 전까지 한 달 반 동안, 커다란 하느님의 뜻을 매일같이 눈물로 순명하며 ‘받아들이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착좌 후 일주일 만인 15일 다시 만난 김 주교는 그 사이 긴장감 짙게 배었던 모습을 털고, 어느새 춘천교구의 청사진을 촘촘하게 그려놓고 있었다. “멀리 서울에서 오느라 힘드셨겠다”, “우리 악수하자”며 먼저 넉넉한 웃음으로 손을 내밀며 맞이한 김주영 주교를 춘천교구청 주교 집무실에서 만났다. 교구의 새 사목 방향과 현안 등 2시간 인터뷰 내내 미소를 머금고 하나라도 더 전해주려는 모습이 집무실 가득 온기를 선사했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춘천교구 출신 첫 교구장 주교김주영 주교는 올해 설정 82주년을 맞은 춘천교구 역사에서 첫 교구 출신 교구장 주교가 됐다. 한국 교회 현직 주교단 중에서도 가장 젊다. 교구 117명 사제단 중에선 사제 수품 순으로 꼭 중간에 위치한다. 1997년 수품 뒤 지금까지 24년 동안 사제로 살아온 시간만큼 앞으로 교구장 주교로서 춘천교구를 이끌게 됐다.“처음 임명 소식을 듣고 참 마음이 무거웠어요. 주교직을 받아들이는 시간 동안 그렇게 눈물이 흘렀던 이유는, 일단 주교라는 자리가 외롭잖아요. 늘 무엇인가 큰 결정을 해야 하고, 사람을 판단해야 하는 것이 누구나 피하고 싶은 일이거든요. 김운회 주교님께서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지만, 특별히 선종하신 장익 주교님께서 계셨더라면 ‘이 우둔한 제게 평생 갖고 갈 한 말씀 주셨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컸고요. 그간 잘못한 것도 많고, 신자분들 마음 아프게 한 일도 많았기에 복합적인 감정이 계속 일었던 것 같습니다.”거룩했던 비대면 착좌식6일 춘천 죽림동주교좌성당에서 거행된 김주영 주교의 주교 서품식과 교구장 착좌식에는 전국 교구의 주교단 7명과 교구 대표 사제단과 신자 40여 명만 함께했다. 보건 위기로 주교 착좌식이 사실상 비대면으로 진행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착좌식 날짜를 옮기는 이야기까지 거론됐었습니다. 모든 주교님을 모시지 못해 죄송함이 컸지만, 거룩한 전례에 오롯이 임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가톨릭평화방송에서 생중계를 잘해 주신 덕에 더 많은 분이 함께하셨고, 미국에 계신 저희 부모님께서도 생중계를 보시며 기도로 함께해주셨습니다. 방송국 측에 감사드립니다.”그러면서도 김 주교는 “그보다 12월 말 김운회 주교님 퇴임 감사 미사 때 많은 분을 모시지 못한 것이 더 마음에 걸린다”며 “사제 성화의 날 즈음 교구 사제단이 주교님을 다시 찾아뵈려 한다”면서 전임 교구장의 마음을 더 헤아렸다.소통과 만남의 사목김 주교는 교구를 위한 다양한 사목 방향을 제시했다. 우선 새 신자들을 위해 세례성사 후에도 3~5년 동안 신앙에 맛 들일 ‘신앙생활 체득 과정’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김 주교는 “새 신자 교육은 신앙생활 교육이 돼야 한다”며 “앞으로 성당 문을 두드리는 모든 분께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깊고, 길게 체득하도록 도움을 드리는 일종의 규정을 만들 생각”이라고 전했다.김 주교는 ‘1박 2일 사목 방문’ 구상도 전했다. 경기 가평ㆍ포천부터 강원 영북ㆍ영동 지역에 넓게 자리한 62곳에 이르는 본당 사목 방문 시 최소 1박 2일 일정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작은 본당이라도 1박 2일 동안 머물며 신자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단체별로도 만나고, 성당 옆 기관도 방문하며 각기 다른 환경에 있는 본당들의 비전을 나누는 ‘만남의 사목’을 해보려 합니다. 매달 한두 곳씩, 1년 12곳. 5년이면 교구 모든 본당을 사목 방문할 수 있겠네요.”아울러 김 주교는 교구장 사목 교서도 해마다 내진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 주교는 “사제들이 교우들과 본당 안에서 좋은 사목을 일궈가려면 1년이란 시간은 짧게 느껴지곤 한다”며 “3~5년마다 한 번씩 큰 주제로 방향 설정을 하고, 좋은 것은 계승하면서 발전하는 방식으로 해나가고자 한다”고 했다.그러면서도 김 주교는 “모든 일은 사제단과 토론하고 소통하며 공동 합의 하에 해나갈 것”이라며 “사목에서 가장 핵심이 신앙생활의 근간인 ‘말씀’이라면, 교구 운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합의’”라고 말했다. 현재 교구 사제인사를 앞두고 사제들과 면담을 해오고 있는 김 주교는 “많은 신부님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시겠다면서 제가 생각지 못한 조언을 해주실 때면 모두 적어두고 있다”고 했다. 김운회 주교가 때마다 산과 계곡에서 젊은 사제들과 약주 기울이며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온 전통도 계속 이어나갈 것이라고 했다.교구 역사와 열린 교회를 향하여김 주교는 열린 교구, 지역과 함께하는 교회에 대한 구상도 밝혔다. 오랫동안 교구 교회사연구소 소장을 지내며, 교구 사료 보존과 교회사 가치 전파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 주교는 “춘천교구청 옆에 위치한 등록문화재 ‘옛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 춘천 수련소’를 전시관으로 꾸며 신자와 지역민이 가톨릭 정신을 익히고 되새기는 열린 공간으로 삼고 싶다”며 “포천에 광암 이벽 선생을 위한 사업 등 전시관과 박물관을 조성해 선조들의 삶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일깨우는 교회사 연구의 목적도 이루고 싶다”고 밝혔다. 또 한국전쟁 때 순교한 이광재 신부와 고안토니오 신부, 라파트리치오 신부 등 근현대 신앙인들의 넋을 기리는 순례도 장려할 계획이다.북녘 동포 위한 사목은 계속김 주교의 주교 문장에는 ‘하나됨’과 ‘평화’가 새겨져 있다. 남북으로 분단된 춘천교구가 평화로 하나 되길 기원하는 뜻을 넘어, 모두가 주님 안에 평화와 일치를 이루길 염원하는 뜻이 담겼다. “나 자신의 평화가 곧 가정의 평화를 가져오고, 나아가 그것이 우리 사회를 평화롭게 한다면, 이념을 달리하는 같은 민족과도 일치를 이룰 수 있을 겁니다. 그러기 위해선 열린 마음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겠죠.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대화를 통해 접점을 찾는 길도 인정이 바탕을 이룰 때 가능합니다. 하나가 되려면 서로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함흥교구 사제 배출과 신학생 양성, 한솥밥한식구 운동, 새터민 지원 등 북녘 동포를 위한 사목도 계속 전개한다.코로나19와 사회 현실김 주교는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느님께서 이러한 시기를 왜 주셨는지 깊이 돌아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얼마 전 어르신 세 분이 이 위기 중에 교무금을 내러 가시는 모습을 봤습니다. 교구의 어려움을 염려해주시는 신자 여러분께 무척 감사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성경 말씀에 비춰 나와 우리 사회, 교회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내 삶이 너무 소비주의로 치닫진 않는지, 온갖 성장이 우리에게 참 행복을 주는지 말입니다. 물질적 풍요로움을 가난한 이웃과 더욱 나누는 것이 인류의 성장과 발전 아니겠습니까. 돈, 집, 주식…. 모두 인간이 만든 거잖아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사랑과 평화의 가치에 더 눈을 떠가면 좋겠습니다.”전임 교구장들의 목장과 주교복 물려받아김 주교는 교구장 직무만 물려받은 것이 아니다. 주교복은 전임 교구장 김운회 주교의 것을, 주교 목장(지팡이)은 장익 주교가 사용했던 것이다. 앞선 두 주교의 영성과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아 계승해 나아가겠다는 뜻이 엿보인다. 소박함과 검소함 속에 살아온 두 전임 주교 모습을 닮아 평소에도 선물 받은 옷이나 물건이 있으면 주변에 나눠줬던 김 주교는 착좌 기념 선물도 따로 제작하지 않았다. 대신 1997년 교구 한삶위원회가 북녘 동포와 이웃의 눈물을 닦아주자는 의미로 제작한 ‘한삶 수건’을 만나는 이들에게 선물로 주고 있다.“저는 교구 사제단의 일원이며, 좀더 무거운 자리에 있게 된 것뿐입니다. 모든 일은 사제, 교우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면서 계획을 세워나갈 것이고, ‘제 생각에 따라오십시오’ 하는 것은 제 몫이 아닙니다. 다재다능한 신부님들, 열심한 교구민들과 아름다운 하느님 공동체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도와주시고 기도해주시고 함께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정감 어린 고동색 개량한복 위로 김주영 주교의 미소가 따스한 햇살과 겹쳤다. cpbc2021.01.20
[장현규 수녀의 사랑의 발걸음] 8. 사랑과 용서프랑스 성요한사도수녀회 장현규(마리스텔라) 수녀 이곳 프랑스 생드니의 무지개 동네 오베흐빌리는 오늘도 세상의 풍요로움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다. 이 지역의 거리를 걷노라면, 내 발걸음도 가벼워지는 느낌이다.수도원이 있는 마르세유에서 지하철로만 족히 1시간 반. 역에서 내려 환자들이 있는 병원까지는 걸어서 약 10분이 걸린다. 거리 풍경은 이렇다. 왼쪽은 아랍인들의 상점과 식당이 즐비하다. 반대편 오른쪽은 싸구려 옷가게와 아랍계 초등학교와 고등학교가 있다. 시끌벅적하지만, 정겹기 그지없다.우리네 오랜 장터까지 떠올리는 정감을 주는 이곳을 지나면서 자주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곳이 있다. 작은 식당 앞 좁은 공간에서 검은 히잡으로 얼굴과 머리를 꽁꽁 둘러 싸매고 있는 사람. 통통한 외모에 너그러운 인상을 한 중년 여인이 열심히 음식을 만든다. 그들의 전통 음식인데, 우리 부침개 같은 것이다. 이 음식은 인기도 좋다. 그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어선지 많은 아랍인이 이 노릇노릇하게 잘 익은 ‘전’을 사 들고 간다.복스럽게 보이는 아주머니의 손에 노련하게 부쳐진 전이 먹음직스럽다. 바삐 전을 부치는 그 모습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는데도 그녀는 나의 시선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마음속으로는 ‘저 작은 조각이라도 먹어 보고 싶다’는 엉뚱한 소망도 잠깐이나마 즐겁게 가져본다. 이렇게 인간미 넘치는 거리를 걸어 다닌 지도 15년이 넘어가고 있다. 나는 이들을 ‘나의 이웃들’이라 표현하고 싶다. 가난이 안겨주는 단순함과 친근감은 나로 하여금 이들을 전혀 이방인이 아닌, 가까운 이웃으로 느끼게 해준다.무슬림들에게 가장 중요한 때는 라마단 기간이다. 한 달 동안 엄숙하게 보내는 이때로, 우리 가톨릭교회의 사순 시기와도 닮아 금식, 금욕, 기도의 시기로 삼는다. 올해는 4월 23일부터 딱 한 달 동안 라마단 기간이었다. 이들의 삶 중에 라마단 기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열심한 무슬림 환자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아침과 저녁 단식은 기본. 저녁 9시부터 다음 날 해 뜨기 전까지는 단식이 풀린다고 한다. 해가 진 후에는 수많은 무슬림이 이 거리 상점 앞에 진열되어 있는 음식을 먹고 나눈다. 특히 여러 가지 전통 과자들이 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단다. 내가 봐도 알록달록 사고 싶은 유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할 만큼 정말 다양하다. 이 음식과 과자는 각 가정에서 가족들과 즐겁게 나누어 먹는다.무엇보다 라마단 동안 중요한 것은 ‘용서’와 ‘자선’이다. 즉, 가난한 이들에게 베푸는 것이 요구된다. 그래선지 이 시기에는 거리와 지하철 안팎에서 동냥하는 모습을 더 잘 볼 수 있다.단식이 끝나는 날에는 양을 잡아 가족들이 나누어 먹는다. ‘왜 양고기를 먹느냐?’고 굳이 묻진 않았지만, 그들의 조상이 유목민이었기에 이런 전통이 이어지리라 여긴다. 무슬림들은 자신이 하는 노동에 열심히 임하며 산다. 병원 청소부부터 요리사, 건축업자에 이르기까지. 무슬림들은 자기 일만큼 종교적 의무를 충실히 실행하며 산다. 그러면서도 가난한 이웃들에게 사랑을 실천한다는 사실을 전해 들으면서 ‘아, 이슬람교의 핵심도 사랑과 용서에 있구나’ 하는 사실을 조금은 알게 됐다.어느 땐가 무슬림 환자들과 병원에서 평화로운 대화를 나누다 이런 성경 구절을 전한 적이 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1요한 4,12)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계속 머무시도록 그들을 더욱 사랑하고 싶다. cpbc2020.06.17

세상 선교와 교회 복음화 위해 하느님과 이웃 사랑에 충실전국 교구장 사목교서를 통해 본 2020년 한국 교회 사목 방향 한국 교회 각 교구장 주교들은 2020년 사목교서를 통해 그리스도인 생활의 기초가 되는 성경과 기도, 교리교육, 성체와 성사 중심의 삶, 가정과 본당 공동체 활성화, 사회 약자 돌봄과 생태 보존 등을 통해 세상과 교회 안에 복음의 기쁨을 선포하는 신앙인이 되어 달라고 당부했다. 원주교구 신자들이 한국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사목교서는 교구장 주교가 교리ㆍ신앙ㆍ규정에 관해 자신의 교구 내 모든 신자를 대상으로 발표하는 공식 문서이다. 통상 전례력으로 새해가 시작하는 대림 제1주일에 발표한다. 내용은 한 해 동안 교구에서 주력하고자 하는 교구장의 사목 지침이 담겨 있다. 따라서 각 교구장 사목교서 내용을 살피면 한국 교회 한 해의 사목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 2020년 전국 각 교구장 사목교서의 핵심어는 ‘선교’와 ‘복음화’이다. 더불어 한국 교회는 2020년 한 해 동안 생명 수호와 생태 환경 보호, 소득 양극화, 국론분열, 저출산과 인구 고령화, 다문화와 새터민 가정, 이주민과 난민 등 사회 현안에 주목하면서 복음의 빛으로 대사회 활동을 한층 강화해 나갈 전망이다. 선교와 복음화는 교회 사명의 양면이다. 주님의 복음을 세상 끝까지 선포해야 하며 동시에 신앙 안에서 복음의 새로운 기쁨을 누려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음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과 여전히 그분을 거부하는 사람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에게도 선포되어야 한다. 이에 한국 교회 각 교구장 주교들은 2020년 사목교서를 통해 그리스도인 생활의 기초가 되는 성경과 기도, 교리교육, 성체와 성사 중심의 삶, 가정과 본당 공동체 활성화, 사회 약자 돌봄과 생태 보전 등을 통해 세상과 교회 안에 복음의 기쁨을 선포하는 신앙인이 되어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선교의 동력은 신자 각자의 복음화이다. 그래서 교구장 주교들은 신앙의 기본으로 돌아가자고 요청했다. 교구장 주교들은 가정을 비롯한 학교, 직장, 각종 모임뿐 아니라 본당과 지역 안에서 복음의 기쁨을 증거하는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자고 권면했다. 또 “모든 일에 감사하고, 다름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신앙의 언어로 행동하자”고 권고했다. 이를 위해 성경 독서와 기도, 성사 참여와 교리 공부를 통해 신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갈 것을 독려했다. 선교를 위한 교회 구성원 간의 소통과 친교도 잊지 않았다. 주교들은 지난 몇 년간 교회 안에서 일련의 잘못된 일들에 관해 용서를 구하고 상처를 치유하고 신자로서의 자긍심을 회복하기 위해 한마음으로 노력하자고 청했다. 교구장 주교들은 또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한반도의 평화와 생명 수호, 생태보존 등 시대의 징표를 적극 살피고 대응해 나갈 것을 권고했다. 주교들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밤 9시 주모경 바치기 운동에 적극 참여해 줄 것을 희망했다. 또 이산화탄소 배출량 줄이기, 절전 절수 실천하기, 일회용품 사용 않기 등 생태 환경 보호에 앞장서 줄 것을 당부했다. 주교들은 이러한 피조물 보호를 위한 생태 운동이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도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웃 특히 가난한 사람과 사회 약자에 대한 사목에 집중해 나갈 방침이다. 본당 복지 예산을 해마다 늘리고, 본당 구역에 있는 홀몸 노인과 이주민, 새터민 가정을 비롯해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는 사목에 힘을 기울이기로 했다. 해외 선교에도 적극 나설 예정이다. 평신도 해외 선교사를 양성하고, ‘해외선교후원회’ 같은 해외 선교를 위한 인적ㆍ물적 자원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구축해 지원키로 했다. 이처럼 한국 교회 교구장 주교들은 세상 선교와 교회 복음화를 위해 2020년 새해에도 하느님과 이웃 사랑에 더욱 충실해 줄 것을 한목소리로 요청하고 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평화신문2019.11.27

동대문시장 구르마, 십자가 돼 성모님께 봉헌되다[엉클죠의 바티칸 산책](34)첨단시대를 사는 80년 된 손수레 한국 현대사의 애환이 녹아있는 동대문시장의 구르마. 구르마를 해체해 특별 제작한 십자가가 성모 승천 대축일을 맞아 봉헌됐다. 오른쪽 아래 사진은 교황님이 축성한 구르마 십자가. 긴 세월 동대문 시장통을 누비던 낡은 ‘구르마’(손수레) 한 대가 바티칸에 왔습니다. 굴곡진 한국 현대사의 온갖 애환을 싣고 왔습니다. 하느님의 십자가로 재탄생하여 왔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통해 성모님께 헌정되었습니다. 올 8월 15일은 저에게 세 가지 기쁨을 주었습니다. 첫째는 성모님 승천이고, 둘째는 조국 해방입니다. 셋째는 구르마 십자가를 성모님께 헌정한 것입니다. 몰타기사단(Order of Malta)의 한국 대표를 맡은 박용만(실바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 6월 특별한 부탁이 있다면서 연락을 주셨습니다. 구르마 십자가를 성모 승천 대축일에 맞춰서 교황님께 전달해 줄 수 있겠느냐고! 네? 무슨 구르마인데요? 필시 깊은 사연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최첨단을 걷고 있는 요즘, 구르마 얘기를 하면 젊은 세대는 아예 알아듣지도 못할 것이고 나이 지긋한 세대도 구닥다리 운송수단 또는 역사의 골동품 정도로 여길 것입니다. 그러나 80년 전 지게로 짐을 지워 나르던 시절에는 바퀴 달린 구르마가 첨단 운송수단이었습니다. 동대문시장은 한국 현대사의 애환을 고스란히 안고 있습니다. 1905년에 개설되었다고 하니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시장입니다. 구르마의 숭고한 땀방울 “유행도 사조도 기술도, 첨단이 미덕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시의 골목길엔 70~80년 전의 구르마가 여전히 현역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직 짐을 벗지 못한 구르마의 숭고한 땀방울을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박용만 회장은 2년 전 동대문시장을 뒤져 30여 대의 ‘현역 구르마’를 찾았답니다. 이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 족히 80년은 되어 보이는 구르마 한 대를 골랐습니다. 구르마를 해체하여 십자가를 제작했습니다. 이 작업은 공예가 최기 교수(강원대)가 담당했습니다.구르마가 한국 현대사라면, 구르마 십자가는 한국 현대사가 압축적으로 저장된 USB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나라 잃은 설움, 해방의 기쁨과 분단의 비극, 한국전쟁의 상처, 산업화 시대 노동자와 농민의 땀, 민주화 시대 역사의 제단에 뿌려진 숭고한 피, 한국 노동 운동에 불을 댕긴 전태일 열사의 영혼! 이 모든 것이 구르마 십자가에 녹아 있습니다.교황청 의전장 머피 몬시뇰에게 전화했습니다. 머피 몬시뇰은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제입니다. 처음 만났을 때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신 분입니다. “대사님, 목포 아세요?” 제가 까무러칠 정도로 놀랐습니다. 교황청의 고위 사제가 어떻게 한국의 작은 도시를 아는지, 그리고 ‘목포’ 발음이 한국 사람과 어찌 그렇게 똑같은지,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그 배경을 물어봤습니다. 할머니의 남동생이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신부였는데, 목포에서 선교 활동을 하신 관계로 어려서부터 목포 이야기를 많이 들어 그렇다고 하더군요. 머피 몬시뇰에게 구르마 십자가 이야기를 했더니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모님의 간청 때문에 첫 기적을 앞당겨 일으켰습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요한 2,1-12). 하느님께 순종하는 성모님과 어머니에게 효도하는 예수님!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장면을 떠올리면 성모님께 기도드리는 것이 무척 편해집니다. “성모님, 저의 기도를 전해 주소서. 효자 아드님에게!”일치의 십자가십자가는 일치를 의미합니다. 구르마가 땅과 구르마 꾼을 일치시켜 주었듯이, 구르마 십자가는 한반도와 성모님을 일치시켜 주지 않을까요? “성모님, 동대문시장의 구르마가 지상에서의 고달픈 삶을 떨치고 십자가가 되어 어머님 곁에 갔습니다. 한반도의 염원, 통일을 담고 갔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전해 주소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구르마 십자가의 사연이 담긴 8분가량의 영상물 ‘구르마로 만든 십자가’를 다음과 같은 글과 함께 페이스북에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신앙의 경건함과 노동의 경건함이 더해져 지구 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십자가가 되었습니다.”주교황청 한국대사관은 머피 의전장이 보낸 공문을 한 장 접수했습니다. 교황님께서 구르마 십자가를 받고 무척 기뻐하셨고, 십자가를 보내준 박용만 실바노와 가족에게 축복을 드린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감사합니다.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 cpbc2020.08.11

집회 참석자 대부분 얼굴에 분을 바른 채 푸른 두건을 쓰다[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14. 그들은 왜 얼굴에 분을 발랐을까 김태 선생의 ‘명례방 집회’. 명동대성당 소장. 이벽의 설법 장면과 제건(祭巾)의 모양「벽위편」에 실린 이만채(李晩采)의 글이다. “을사년(1785) 봄, 이승훈과 정약전, 정약용 등이 장례원(掌禮院) 앞 중인(中人) 김범우(金範禹)의 집에서 설법하였다. 이벽이란 자가 푸른 두건을 머리에 쓰고 어깨에 드리운 채 정 가운데 앉아 있었고, 이승훈과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3형제와 권일신 부자가 모두 제자를 일컬으며 책을 낀 채 모시고 앉아 있었다. 이벽이 설법하며 가르치는 것이 우리 유가에서의 사제의 예법에 비하더라도 더욱 엄격하였다. 날짜를 약속해서 모인 것이 거의 몇 달이 지났으므로, 사대부와 중인으로 모인 자가 수십 인이었다. 추조(秋曹)의 금리(禁吏)가 그 모임을 도박판으로 의심해서 들어가 보니, 대부분 낯에 분을 바르고 푸른 두건을 썼는데, 손가락을 드는 것이 해괴하고 이상했다.” 1785년 모임에 다산 3형제가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 조금 낯설다. 설법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를테면 미사의 집전과 강론을 한 것일 테고, 당시 이들이 옆에 끼고 있던 책은 앞서 8일간의 피정을 말할 때 설명했던 마이야의 「성년광익」 또는 「성경광익」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당연히 언해본이 아닌 한문 원본이었다. 이 일이 있기 전 이벽 등이 천주교를 믿고 따른다는 말에 이가환이 이를 나무라자, 이벽이 그와 논쟁하여 이가환의 말문을 막은 일이 있었다. 이에 이가환이 천주교 교리를 공부하겠다고 하니, 이벽은 「성년광익」 한 부가 있었지만, 이가환이 성스러운 기적을 믿지 않을까 염려해서 이 책을 빌려주지 않으려 했다는 내용이 황사영의 백서 속에 나온다. 이벽이 이미 「성년광익」 한 질을 갖춰두고 공부하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사제간의 예법이 엄격해 보였다고 한 것은 집전자이자 강론자였던 이벽의 권위가 엄연했음을 보여준다. 실제 사제의 역할을 이승훈이 아닌 이벽이 맡았다는 얘기다. 사실 이벽의 권유에 의해 세례를 받고 돌아온 이승훈의 신심은 당시 북경에서도 영세를 줄 수 있느냐로 논란이 있었을 만큼 확고한 것이 아니었다. 여러 해 전부터 천주교 공부를 집중적으로 계속해온 이벽을 능가할 사람은 당시 조선에는 없었다. 한편 이벽에 대한 묘사에서 청건(靑巾)을 ‘복두수견(覆頭垂肩)’, 즉 푸른 두건을 써서 머리를 덮고 어깨 위에 드리웠다고 적었다. 마태오 리치의 초상화에 나오는 두건처럼 관(冠)을 머리 위에 쓰고, 그 뒤로 두 개의 길쭉한 천을 달아 양어깨로 드리운 모양이었을 것이다. 알레니(Giulio Aleni, 艾儒略, 1582~1649)가 정리한 「미사제의(彌撒祭義)」에 당시 이벽이 썼다는 제건(祭巾)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위는 네모지고 아래는 둥글다. 사방 둘레에 모두 나부끼는 판이 있고, 세 번 꺾은 줄이 있다. 한 모서리는 앞쪽을 향하고, 뒤편에는 두 개의 길게 드리운 띠가 있다. 이것이 바로 제건(祭巾)이다(上方下圓, 四圍俱有飄版, 俱有三折線路, 以一角向前, 後有二長垂帶, 卽祭巾也)”라고 설명했다. 당시 이벽이 썼던 제건의 모양도 이것과 비슷했을 것으로 본다. 분면청건(粉面靑巾)의 이유 위 「벽위편」의 기술에서 더 주목을 끄는 것은 대부분의 참석자가 ‘분면청건(粉面靑巾)’을 하고 있었다는 대목이다. 참석자 모두가 얼굴에 분을 바른 채 푸른 두건을 쓰고 있었다. 미사를 드린 것은 알겠는데, 얼굴에 분은 왜 발랐을까? 앞서 권일신이 이 사건 이후 8일 피정을 진행한 것과, 근거 경전이 바로 「성년광익」과 「성경광익」인 점으로 미루어볼 때, 이날 이들이 얼굴에 분을 바른 것도 분명 교회력에 따른 전례의 일환으로 봄이 타당하다. 이승훈은 1784년 봄에 귀국했다. 그의 북경 체류 기간은 1783년 음력 12월부터 1784년 2월까지이니, 혹 그 기간에 보았을 의례를 본떠 행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짐작이다. 우선 이벽의 제건과 달리, 나머지 사람이 쓴 청건은 아마도 복두(?頭)의 모양이 아니었을까 한다. 굳이 푸른색으로 통일한 것에는 어떤 뜻이 담겼을까? 당시 미사 때 입는 제복(祭服)은 흰색, 빨간색, 검은색, 하늘색, 녹색을 때에 맞춰서 썼다. 「미사제의」에 하늘색의 의미를 설명한 대목이 보인다. “천청(天靑) 즉 하늘색은 하늘의 바른 색이니, 겨울과 봄에 많이 쓰고, 재일(齋日)을 만나 혹 힘들게 공과(功課)를 행하며 천주께 기구할 때 모두 이것을 쓴다. 대개 이 색깔은 하늘과 가깝기 때문에 천주와 통하여 도달하기를 원하는 자가 입는다(天靑者, 天之正色, 冬春多用. 凡遇齋日, 或行苦功, 祈求天主之時, 皆用之. 盖此色近天, 故願通達于天主者衣之)”라 한 대목에 눈길이 간다.(조한건, 「성경직해광익 연구」, 서강대 사학과 박사논문, 2011 참조) 한편 얼굴에 분을 바르는 의식은 아무래도 ‘재의 수요일’ 예식을 행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지 싶다. 재의 수요일을 당시에는 ‘성회예일(聖灰禮日)’로 불렀다.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뜻에서 이마에 재를 바르는 의식을 행했다. 「성년광익(聖年廣益)」의 「성회예의(聖灰禮儀)」 항목에서는 이 의례를 이렇게 설명한다. “대개 성회(聖灰)란 영혼의 거룩한 약제(藥劑)이니, 각 마음의 병을 능히 낫게 해준다.(蓋聖灰爲靈魂之聖劑, 能療各心之病.)” 또 “네가 사람이 됨은 재로 만든 것임을 기억하라. 어제 재에서 나서, 내일에는 반드시 재로 돌아가리라. 천주께서 재로 정신의 병을 치료해주신다…오늘 천주의 약제와 천주의 말을 빌려 재를 써서 이마에 찍으면서, ‘벗이여 너는 처음부터 끝까지 미소(微小)하기가 모두 재와 같을 뿐이라, 천주께서 재를 가지고 사람의 몸을 만드셨으니, 그 몸은 얼마 못 가서 또 재로 돌아갈 것임을 기억하여라’라고 말한다.(可記爾爲人也爲灰也. 昨日生於灰, 翌日必歸於灰. 天主以灰醫其神病… 因今日借天主之劑, 天主之言, 用灰點額, 而云: ‘友憶汝始終之微, 皆灰而已. 天主以灰造成人身, 身未幾且歸灰矣.’)” 이날 이들이 흰 재를 이마에 바르고 있었다면, 영문을 모르는 파수꾼의 입장에서 보면 영락없이 사내들이 얼굴에 분을 발랐다고 착각할만했을 것이다. 다만 교회력으로 확인해 보니, 1785년의 재의 수요일은 양력 2월 9일이었고, 음력으로 환산하면 1월 1일, 정월 초하루로 나온다. 음력 3월 중순과는 도저히 날짜를 맞출 수가 없다. 하지만 초기의 엉성했던 전례 지식과 정보를 고려하면, 이들이 당시에 그레고리안력에 의거해서 정확하게 로마 교회의 전례를 실행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유일하게 교회의 전례를 체험한 이승훈의 기억에 바탕을 둔 전례 적용이었다고 볼 때, 이승훈이 북경에 체류할 당시 1784년 음력 1월에 체험했을 성회예의 행사를 떠올려, 3월에 이를 적용해 보았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당시 이들은 명례방에 모여 회개와 다짐의 의식을 행하면서 「성년광익」 3편에 실린 「성회예의」의 설명에 따라, 이승훈이 북경 체류 당시 직접 보았던 성회예의의 의식을 재현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명동대성당의 ‘명례방 집회’ 성화(聖畵) 현재 명동대성당에 걸려 있는 명례방 집회 모습을 그린 성화는 화가 김태 선생의 작품이다. 정웅모 신부의 그림 해설(2018년 10월 28일 연중 제30주일, 서울주보 5면)에 따르면 장면 하나하나에 깊은 뜻이 담겨 있다. 화가는 이벽이 입고 있는 하늘색 두루마기가 그가 지금 천상의 진리에 대해 가르치고 있음을 나타내고, 책상 위에 놓인 것은 십자고상과 「천주실의」이며, 앞쪽에 공간을 비운 것은 후대에 주님을 믿게 될 사람을 위해 남겨둔 자리라는 뜻을 담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각각의 인물 배치도 구체적 인명을 염두에 두고 그린 섬세한 작품이다. 다만 그 복장이 「벽위편」에서 묘사한 분면청건이나 푸른 두건이 머리를 덮고 어깨에 드리운 모습으로 표현되지 않은 점은 조금 아쉽다. 기록에는 이벽 뿐 아니라 대부분의 참석자가 청건을 쓰고 얼굴에 분을 발랐다고 썼다. 인물들은 청건을 쓰고 있었기에 이마에 묻은 흰 재가 더욱 도드라져서 포졸들 눈에 마치 분을 바른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또 「벽위편」에서는 “마침내 예수의 화상과 서책과 물건 약간을 적발하여 추조에 보냈다(遂捉其耶蘇畵像及書冊物種若干, 納于秋曹)”고 썼다. 적어도 이벽이 앉은 뒤쪽 벽면에 예수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 싶다. 또 ‘거지해이(擧指駭異)’라고도 썼는데, 손가락을 드는 행동이 해괴하고 이상했다는 말이다. 그들이 성호를 긋는 모습이 이렇게 보였던 듯하다. 이 작품은 작가의 깊은 이해와 해석이 담긴 걸작임에 틀림없고, 오랫동안 신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작품이다. 성화는 한 장면을 여러 화가가 나름의 해석을 담아 그리는 것이니, 청건을 쓰고 예수의 성상(聖像)을 걸어둔 형태의 그림도 새로 한번 시도해봄 직하지 않을까 싶다. 어쨌거나 「벽위편」의 명례방 집회 장면에 대한 묘사는 당시 이들이 미사를 드리고 있었고, 청건까지 마련해서 썼을 정도의 열성을 보였음을 보여준다. 분을 바른 것은 재의 수요일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을 개연성이 높다. 이들은 이미 미사 전례나 복식에 대해서도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cpbc2020.08.12
![[아버지의 집, 아름다운 성당을 찾아서] 서울대교구 위례성모승천성당](//cpbc.co.kr/CMS/newspaper/2020/10/rc/788999_1.4_titleImage_1.jpg)
[아버지의 집, 아름다운 성당을 찾아서] 서울대교구 위례성모승천성당장미 꽃잎처럼 피어나 밝고 맑은 성모신심 일으키다위례성모승천성당 전경. 흰색 벽돌로 마감된 성당은 성모를 상징하는 장미꽃잎 모양을 형상화 했다. 우측 하단은 위에서 바라본 위례성모승천성당 모습니다. 왼쪽 사제관과 오른쪽 성전건물이 계단과 2층 통로로 연결된 모습이다. 성전이 장미꽃잎 같다. “근래 지어진 성당 중 꽤 괜찮은 성당이다.” 올해 미수(米壽, 88)를 맞는 한국 미술계의 거장 최종태(요셉) 교수는 최근 지어진 한 성당에 대해 짧지만 강렬한 말을 남겼다. 단순함 속에 깊이가 있고 밝음 속에 편안함이 있는 서울대교구 위례성모승천성당에 대한 평이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주례로 18일 10시 성전 봉헌식을 거행하는 위례성모승천성당을 찾았다.한국적이며 현대적인 성당 단연 눈에 띈다. 서울시 송파구 위례순환로 470에 자리한 위례성모승천성당은 하얀색 벽돌로 외장이 마감돼 있다. 한창 조성 중인 신도시에서 지나가는 이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공원 옆에 자리한 성당이기에 비신자 중에도 그 아름다움에 끌려 성당을 찾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대지면적 1565㎡에 연면적은 4997㎡, 지하 4층 지상 4층(종탑 포함) 규모의 성당은 철근 콘크리트와 철골조로 지어졌다. ‘성모 승천’과 ‘가장 한국적이고 현대적이며 따뜻하고 희망적인’ 주제로 성당 설계를 공모했고, 신자들의 투표 결과 오서원(이냐시오) 건축사의 작품이 선정됐다. 성모님을 상징하는 장미 꽃잎에서 모티브를 얻어 성당을 형상화했고, 앞마당과 중정, 후정을 두어 한국의 건축미를 살렸다는 게 본당 주임 이기양 신부의 설명이다. 교리실과 강당, 주차장 등의 시설은 지하에 배치해 토지 이용을 극대화했고, 지하 공간은 성큰(sunken, 지상과 연결된 지하광장 개념) 방식을 채택해 채광과 환기를 개선했다. 우수처리 시설과 성전 지붕에 태양광을 설치해 환경도 고려했다. 앞마당에서 성당을 바라보면 좌측에 자리한 직사각형 형태의 사제관 건물과 우측에 자리한 꽃잎 혹은 배 모양의 성당 건물이 외부 계단으로 연결돼 있다. 두 건물은 2층 통로로도 연결돼 있으며, 통로에 제의실이 있다. 성당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정박해 있는 배 모양이다. 성당 외관 감상을 마치고 정문에 들어서자 갈림길이 나온다. 외부 계단을 오르면 성전으로 바로 갈 수 있고, 계단을 지나치면 뒷정원으로 갈 수 있다. 계단 오른쪽 입구는 성당 1층 로비로 들어가는 길이다. 외부 계단으로 2층에 올라갔다. 온화한 표정으로 하늘을 쳐다보는 성모 승천상이 찾는 이들을 반긴다. 최봉자 수녀의 작품으로 단순하면서도 곡선미가 빼어나다. 성당 설계 단계에서부터 성당에 설치될 성물도 함께 고려했다. 성모 승천상 옆에 있는 20m 높이의 종탑도 볼거리다. 종탑에 연결된 줄을 잡아당기자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 신부는 “전라도에서 100년 이상 된 낡은 종을 가져와 겉을 갈고 닦아 설치했다”며 “특별한 날에 종을 울릴 것”이라고 말했다. 전례에 가장 적합한 공간 성당의 외형이 전반적으로 밝은 느낌이었다면, 성전 내부의 첫인상은 차분하고 편안하다. 제대 뒤 감실 위에는 최종태 교수가 제작한 십자가가 설치돼 있고, 그 뒤로 아라비아 숫자 ‘1’ 모양의 가늘고 긴 채광창이 보인다. 얇은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강하지 않아 제대를 향한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는다. 성전 벽은 노출콘크리트 방식이지만 가로줄 무늬가 들어가 단조롭지 않다. 바닥은 8㎝ 두께의 나무를 깔아 돌처럼 단단하지만 따뜻함이 전해진다. 432석 규모의 회중석 역시 단풍나무로 만든 흰색의 장의자가 설치돼 있다. 회중석과 성전 벽 사이에 난 통로는 물고기의 옆면을 연상시키듯 곡선 형태로 오솔길을 보는듯하다. 성전 좌ㆍ우측 벽에는 성모 칠고와 칠락을 담은 수묵 유리화가 설치돼 있다. 간결한 선으로 표현한 임현락(야고보, 경북대 예술대) 교수의 작품으로 밤에 조명이 켜지면 성전 외부에서도 성모의 생애를 한눈에 보고 묵상할 수 있다. 유리화 사이에는 최종태 교수가 만든 십자가의 길 16처가 있다. 15처는 예수 부활을, 16처는 성령 강림(교회의 시작)을 상징한다. 3층 성가대석에서 바라본 성전은 어느 하나 두드러지지 않는다. 흔히 시선을 끄는 화려한 색도, 마음을 뺏는 성물도, 시선을 분산시키는 강렬한 빛도 없다. 화려하지 않은 성물과 은은한 조명, 멀리까지 소리가 퍼질 수 있게 한 음향설계까지 오직 말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최적화됐다. 그러기에 감실의 붉은빛이 주님이 우리와 계심을, 성체를 모신 나와 함께 계심을 뚜렷이 전하는 듯하다. 은인들에게 감사, 하느님께 영광 위례성모승천성당이 지어지는 과정은 기적과도 같았다. 2017년 2월 천주교 서울대교구 문정동본당 위례공소로 신설됐고, 그해 8월 초대 주임 사제로 이기양 신부가 부임했다. 2018년 8월 새 성전 조기 착공에 대한 필요성을 논의했다. 투표를 통한 설계 공모에 신자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초등학생들의 의견도 반영했다. 신자들은 묵주기도 100만 단을 봉헌했고, 155명이 신약성경을 완필했다. 주일 미사 참여자가 300여 명인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비율이다. 신자들이 영적으로 성숙해질수록, 신자들의 영적 물적 정성이 모일수록 성전도 조금씩 제 모양을 갖춰갔다. 13개 본당 7000여 명의 신자가 성전 건립에 정성을 보탰다. 성당 지하 1층 교리실 옆 햇볕이 잘 비치는 공간에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은인들께 감사를 전하는 기념 공간이 마련돼 있다. 성당 곳곳과 성당 주변에는 은인들이 후원한 100여 년 된 고목들이 성당과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21세기 서울의 유일한 공소였던 본당은 이제 새 성전을 봉헌하는 기쁨을 맛보고 있다. 그리고 위례신도시의 복음화를 위한 여정의 닻을 올리고 본격적인 출항을 앞두고 있다. 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cpbc2020.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