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의 빛으로 제시한 세상 모든 영역의 기준과 실천 지침사회교리,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서울 중계양업본당 청소년들이 지역 내 가난한 이들에게 겨울나기용 연탄을 나눠주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다.”(사도 10,34)모든 사람은 하느님과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었기에 동등한 존엄성을 지닌다. 한국 가톨릭교회 주교회의는 모든 존엄한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을 알리고 실천하기 위해 1982년부터 대림 제2주일을 ‘인권 주일’로 지내고 있다. 또 모든 이가 인간답게 살고 구원에 이를 수 있게 하도록 2011년부터 대림 제2주일 한 주간을 ‘사회교리 주간’으로 지내고 있다.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실현할 의무를 지닌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준인 ‘사회 교리’에 관해 간략히 정리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간추린 사회교리」, 서울 정평위 「가톨릭 사회교리」, 박동호 신부의 ‘언론인 신앙학교 강의록’ 등을 참조했다. 가톨릭 사회교리란 무엇인가 가톨릭 사회교리는 교회의 거룩한 전통 안에서 성경의 가르침으로 해석해 제시한 그리스도인의 생활 지침을 말한다. 한마디로 ‘교회의 도덕적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이 가르침은 그리스도인이 사회 안에서 복음의 삶을 살아가는데 기준으로 삼아야 할 원리와 근본 가치를 제시한다. 그래서 교회는 모든 신자가 반드시 사회교리를 배워서 알고 실천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아울러 사회교리는 사회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이다. 사회교리는 정치, 경제, 문화, 노동, 환경, 외교, 가정, 국가, 인권, 정의, 평화의 문제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공식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은 참된 인간화와 참된 사회화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양식들을 제시해 준다. 따라서 사회교리는 인간이 사회 안에서 살아가면서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복음의 빛으로 제시한 세상 모든 영역의 올바른 기준과 실천 지침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주님이 가르치신 사회교리사회교리의 원천은 ‘복음’이다. 예수님의 사명은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여는 것이었다. 주님께서는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여는 두 개의 열쇠를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안겨주셨다. 하나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주님께서는 가난한 이, 굶주린 이, 병든 이, 옥에 갇힌 이, 이방인, 소외된 이 등 모든 사람을 형제로 받아들이시고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준 것이 당신에게 해 준 것이라고 하셨다.(마태 25,40) 이처럼 주님께서는 사회생활을 모든 이를 위한 형제애, 정의, 평화, 존엄의 자리가 되게 하셨다. 아울러 주님께서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 복음을 선포하라”(마르 16,15)고 명하셨다. 여기서 피조물은 인간 삶의 모든 측면에 관련된 것이다. 그래서 이 사랑의 명령은 모든 개인, 공동체 생활의 모든 분야, 모든 민족에게 포함된다. 그리고 인간적인 모든 것이 포함된다. 사회교리 보고인 교회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교회의 삶의 자리는 거룩한 전통이다. 초대 교회 때부터 그리스도인의 주요 관심사는 인간 존엄과 가난한 이들의 권리, 재화의 보편적 목적과 분배 정의, 나눔과 환대의 의무, 연대와 공동선 등이었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했으며 아무도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 하지 않았다.(사도 2,44; 4,32 참조) 하느님께서 주신 세상 재화는 공동의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온유하고 사랑스럽고 점잖고 진실하며 서로 사랑하며, 과부를 얕잡아 보지 않고 고아를 보호했다. 떠돌이를 보면 자기 집에 맞아들이고 마치 친형제처럼 기뻐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이 죽은 것을 보면 힘닿는 대로 너그럽게 매장해 주었고, 그리스도 때문에 감옥에 갇힌 이들이 있으며 기금을 모아 필요한 것을 보내주었다.(아리스티데스 「호교론」 중에서)사회교리 원리들“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 그에게 마음을 닫아 버리면, 하느님 사랑이 어떻게 그 사람 안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1요한 3,17-18)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물질의 유혹에서 벗어나 선을 증진하고 사회 약자에 대한 책임감을 갖는 것이 하느님의 사랑이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가톨릭교회는 인간의 존엄성을 기초로 해 공동선, 재화의 보편적 목적,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 보조성, 참여와 책임, 연대성을 사회교리 원리로 제시한다.1)인간의 존엄성사회교리의 근본 주제는 바로 ‘인간’이다. 인간의 존엄함은 절대적이다. 인간은 하느님과 대화하고 협력할 수 있는 하느님을 닮은 존재로 창조되었으며 하느님이신 그리스도의 벗이며, 성령의 궁전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인간의 존엄성을 역사 속에서 정치ㆍ시민의 권리(자유), 경제ㆍ사회ㆍ문화의 권리(평등), 개발ㆍ환경에 대한 연대의 권리(형제애)들로 발전 실현해 왔다. 이러한 인간의 기본 권리들, 즉 인권은 하느님을 닮은 인간의 존엄성 때문에 보편적이고 절대적이고, 양도할 수 없으며 침해될 수 없다. 2)공동선공동선은 개인이나 집단이 자기완성을 추구하도록 하는 사회생활의 모든 조건을 가리킨다. 인간은 자기 자신 안에서 완성을 얻을 수 없다. 공동선을 구현하기 위한 사회생활의 모든 조건은 인간 삶의 환경과 자연환경 모두 포함한다. 가정, 문화, 정치, 경제, 세계질서뿐 아니라 자연환경이 개인과 모든 이의 자기완성에 기여할 때 공동선이 실현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3)재화의 보편 목적모든 사람은 자기 발전을 위해 지상의 모든 재화를 사용할 권리가 있다. 교회는 이를 ‘재화의 공동 사용권’이라고 한다. 이러한 권리는 창조된 재화는 사랑을 동반하는 정의에 따라 공정하게 모든 사람에게 풍부히 돌아가야 한다는 재화의 보편 목적에 근거한다. 교회는 재화의 공동 사용권이 인간의 기본 권리라고 한다. 이에 교회는 지상의 재화를 선용하라는 당부이다.4)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가난한 이들에게 우선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국경, 인종, 이념, 종교를 넘어서는 것이어야 한다. 또 교회는 사회적 약자 역시 우선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정치와 경제, 권력과 집단이 시민사회를 압도하는 구조는 그 목적과 토대가 인간 존엄성 증진과 공동선 실현에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포용 경제의 실현을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5)보조성보조성은 상위 질서의 사회가 하위 질서의 사회 기능과 역할을 대신하려 하지 말아야 하며 필요하다면 도와야 한다는 원리이다. 보조성의 원리가 제대로 적용되면 상위 사회 질서의 권력 남용이 방지되고 사회 여러 조직이 질서 있고 조화롭게 조정되어야 한다. 6)참여모든 사람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공동선을 위해 참여할 의무가 있다. 참여함으로써 자신뿐 아니라 사회 전체, 나아가 인류 전체가 성장하고 발전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교회는 가장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참여를 장려하고 있다. 7)연대성연대성은 사회 안에서 개인이 전체에게, 전체는 개인에게 책임을 지고 돌보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연대성 원리의 핵심은 서로 주고받는 관계이다. 연대성은 무엇보다도 빈곤의 구조적 원인을 없애고 가난한 이들의 온전한 발적을 촉진하는 일에 인류가 협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생활의 근본 가치가톨릭교회는 인간다운 사회 건설을 이끌어야 할 사회교리의 원리들과 더불어 사회생활의 근본 가치들을 제시한다. 사회의 모든 가치는 인간의 존엄성 안에 내재해 있으며 인간의 진정한 발전을 도모한다. 이러한 가치들은 근본적으로 진리, 자유, 정의, 사랑이다. 1)진리모든 사람은 언제나 진리를 추구하고 존중하며 책임 있게 증언해야 할 의무가 있다. 교회는 특별히 대중매체와 정치ㆍ경제 분야에 관련된 문제에서 진리를 해치려는 시도나 상대화하려는 위험을 경고한다. 2)자유자유는 인간 존엄성의 탁월한 표징이다. 자유를 행사할 권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분리될 수 없으며 도덕과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서 특히 그러하다. 교회는 ‘행사할 권리로서의 자유’뿐 아니라 도덕적으로 그릇된 것을 무엇이든 ‘거부할 수 있는 자유’를 숭고한 가치라고 믿고 있다.3)정의교회는 정의를 “마땅히 하느님께 드릴 것을 드리고 이웃에게 주어야 할 것을 주려는 지속적이고 확고한 의지”라고 한다. 그리고 교회는 교환ㆍ분배ㆍ법적ㆍ사회정의에 대한 존중을 요구한다. 정의는 무엇보다도 도덕적이어야 한다.4)사랑교회는 개인적 사랑뿐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애덕을 가르친다. 이는 상황에 따라 사회의 중개를 활용해 이웃의 삶을 개선하고 이웃의 가난을 초래하는 사회적 요인들을 제거하는 것을 말한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0.12.02

장애인 신자, 연민·동정의 대상 아닌 똑같은 ‘신앙인’서울대교구 ‘장애인들의 신앙생활을 위한 본당의 사목적 배려’ 제안 서울대교구는 제40회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들의 신앙생활을 위한 사목적 배려’가 담긴 제안서를 교구 각 본당에 전달했다. 2019년 5월 19일 주교좌 명동대성당 교중 미사로 봉헌된 발달장애인 가족 미사에서 염수정 추기경이 한 장애인에게 성체를 영해 주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하느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 장애가 있는 신자들도 ‘연민’의 대상이 아닌 동일한 ‘신앙인’으로서 모든 전례에 온전히 참여할 권리가 있다.”서울대교구 사회사목담당 교구장대리 유경촌 주교는 제40회 장애인의 날(20일)을 맞아 이같이 밝히며 ‘장애인들의 신앙생활을 위한 사목적 배려’가 담긴 제안서를 교구 각 본당에 전달했다. 2020년 서울대교구 사목 교서 주제 ‘복음의 기쁨을 선포하는 본당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다. 유 주교는 “본당은 관할 지역 내에서 장애를 가진 신자와 그 가족을 찾아보고, 그들에게 어떤 구체적인 지원이 필요한지 늘 대화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본당에서 시행할 수 있는 4가지 사목 제안을 내놓았다.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장애인 인식개선’ 운동 △장애인 신자들의 활동 기회 마련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 확충ㆍ이동공간 확보 △장애인이 본당에 올 수 있도록 돕는 비장애인 교우들의 안내와 도우미 봉사활동이다.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미사에 참여한 장애인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발달장애인이 미사 중에 소리를 내거나 손뼉을 치는 행동을 하는 것은 감정의 표현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장애인과 함께 미사에 참여한 본당 교우들은 발달장애인들에게 불편한 시선보다는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장애 유무를 떠나서 모든 사람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똑같은 인간이다. 장애인을 대하는 시선과 행동에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아울러 장애인을 ‘동정의 대상’으로만 보는 시각도 경계해야 한다. 장애인은 무조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고, 도움이 필요할 때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야 한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에게 무심코 가하는 언어폭력도 해선 안 된다. 장애인에게 반말하지 말고, 장애인 차별과 편견을 낳는 잘못된 용어를 써서는 안 된다. ▨장애인 신자들의 활동 기회 마련본당에서 장애인들이 전례에 적극적이고 직접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우선 장애인이 전례 봉사자로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가 필요하다. 장애인도 자신의 역량에 따라 복사와 해설자ㆍ독서자ㆍ성가대원으로 충분히 참여할 수 있다. 이는 장애인에 큰 기쁨을 주고 신앙생활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물론 장애로 인해 일반적인 방법으로 전례 봉사를 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 이에 장애 유형에 따른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독서대에 올라가기 힘든 지체 장애인이나 뇌병변 장애인은 독서대 아래나 해설대에서 독서를 하도록 한다. 시각장애인 경우는 점자 성경으로 읽으면 얼마든지 독서를 할 수 있다. 점자를 읽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은 옆에서 도움을 주어야한다. 신체ㆍ발달장애인 역시 전례 봉사를 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연습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들의 전례 봉사 참여는 본당과 당사자에 큰 보람이 될 것이다. 장애인 신자만을 위한 미사보다는 비장애인과 함께하는 미사나 가족 미사에 참여하는 것을 권장한다. 장애별로 분리하여 미사를 만들거나 유아방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것은 편견을 키우는 역효과를 낳을 뿐이다. 아울러 본당은 장애인 신자의 미사 참여를 돕기 위해 안내 자료를 준비하고, 점자 성가책ㆍ성경ㆍ주보와 수어 통역ㆍ확대경 등을 마련해야 한다. 장애인들이 성사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발달장애인의 경우, 어린이 세례에 준해 세례성사를 줄 수 있다.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는 “전면적 정신장애인(발달장애인)에 대한 세례는 어린이의 세례에 준하며 부분적 발달장애인에게는 가능한 대로 교육을 실시하고 의사 표시를 확인한 다음 세례받게 해야 한다”(제57조)고 명시하고 있다. 발달장애인은 교육을 통해 성체성사를 받을 수 있다. 장애인 주일학교나 교리교사의 개별 교리교육을 통해 첫영성체 교육을 받으면 된다. 이렇게 교육을 마친 발달장애인은 스스로 힘으로 영성체할 수 있다. 이동이 불편한 지체장애인은 사제가 직접 와서 성체를 영해줘야 한다. 고해성사도 장애 유형에 따라 다른 방법으로 진행할 수 있다. 청각장애인은 종이에 고백할 내용을 글로 적거나, 면담식으로 성사를 보면 된다. 지체장애인은 드나들기 편한 장소에서 고해성사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발달장애인의 경우, 사제가 후견인과 고해할 내용을 상의해 적어오거나, 면담식으로 고해를 이끌어내야 한다. 보속은 사제나 가족이 함께하면 된다. 장애인의 신앙생활 참여도 중요하다. 모든 신자는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레지오 마리애와 빈첸시오회ㆍ구역반장ㆍ교사회 등 신심 단체에서 활동할 수 있다. 이는 장애인의 신앙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 다만 장애인만으로 구성된 단체를 꾸리는 것보다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활동하는 게 바람직하다. 아울러 지구 내에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장애인 주일학교를 설립ㆍ운영할 필요가 있다. 장애인 주일학교는 발달장애인이 신앙생활을 하고, 성사생활 즉, 세례ㆍ성체ㆍ고해ㆍ견진성사 등에 참여하도록 많은 도움을 준다. ▨본당 내 장애인들을 위한 편의시설 확충 및 이동공간 확보 장애인이 성당에 오기 위해서는 편의시설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경사로와 승강기 설치, 문턱 제거와 복도 손잡이 부착 등이 그 방안이다. 또 신체장애인들이 휠체어와 목발을 사용할 수 있도록 통로와 고해실에 충분한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본당 앞좌석에 장애인 지정 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권장한다. 또 시각장애인 안내견 출입 시 만지기ㆍ간식 주기ㆍ사진 찍기 등 주의력을 떨어뜨리는 행동은 지양해야 한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이 성당에 들어오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 장애인 보조견 표지를 붙인 안내견의 공공장소 출입을 막는 행위는 불법행위다. 성당 좌석에 거치대가 있다면 지체장애인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장애인 화장실도 반드시 필요하다. 성당은 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한 의무설치 대상 시설이다. 설치가 어려운 경우, 가까운 장애인 화장실을 섭외하거나 칸 두 개를 합쳐 장애인 화장실로 삼는 것도 대안이다. ▨비장애인 교우들의 안내와 도우미 봉사활동본당 지역 내 장애인과 가족을 찾아 그들을 신앙생활로 이끄는 것도 중요한 사목 방안이다. 이를 위해서는 장애로 인해 본당에 못 나오는 신자를 파악하고, 이들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살펴야 한다. 또 차량 봉사나 승용차 함께 타기를 통해 이들이 성당에 올 수 있도록 ‘이동 도우미’ 역할도 수행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장애인 가정에 대한 방문 등을 통해 그들을 보살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cpbc2020.04.22

성경을 삼시대로 구분한다면 신천지… 경계해야 유사종교 대책위원장 이금재 신부, 의정부교구 교육에 나서… 신천지 실체와 사목적 대응법 등 설명 한국 천주교 유사종교 대책위원회 위원장 이금재 신부가 의정부교구 사제들과 본당 사무직원을 대상으로 ‘신천지 현장의 이해와 대책’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바빠서 점심을 못 먹는 문구점 주인에게 매일같이 도시락을 싸서 갖다 주며 친교를 쌓습니다. 손주를 돌보는 사람의 집에 1년 동안 찾아가 손주 돌보는 일을 도와줍니다. 그러고 성경 공부하러 같이 가자고 하면, 그 한번을 못 가줄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9월 19일 의정부교구청 신앙교육원. 한국 천주교 유사종교 대책위원회 위원장 이금재(전주교구 사목국장) 신부가 ‘신천지의 실체와 사목적 대응’을 주제로 온갖 방법을 총동원한 신천지의 포교법을 이렇게 소개했다. 의정부교구 유사종교 대책위원회(위원장 이재화 신부)가 교구 사제들과 본당 사무직원 60여 명을 대상으로 마련한 유사종교 문제 예방 및 대책을 위한 연수에서다. 이 신부는 “어제(18일) 인천에서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종교대통합 만국회의가 열렸다”며 행사 영상을 보여줬다. “이단의 패턴은 단합을 위해 대규모 축제를 벌이는 것인데, 성경의 역사를 퍼포먼스로 보여주면서 결론은 ‘교주 이만희’로 끝을 맺습니다. 이만희를 구원자로 세우기 위해 성경의 모든 내용을 끌어다 설명합니다.”이 신부는 “신천지 교인이 1990년대에는 1000명이었는데, 2017년 현재 약 20만 명으로 추정된다”며 “매달 약 2000명씩 증가하는데 이중 절반 이상이 청년들”이라고 언급했다.“신천지에 빠졌던 가톨릭 신자들의 반응은 신천지에서 진짜 하느님을 만나고, 참된 말씀을 알았고, 구원을 얻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느님도, 말씀도, 구원도 없는 성당에서 시간을 낭비했다고도 말합니다.”이 신부는 “청년들을 위한 술사목은 이제 끝났다”며 한국 교회 청소년ㆍ청년 사목의 실태를 꼬집었다. “청년사목의 패턴이 주일에 미사하고, 회의 30분 하고 술 마시러 가고, 보좌 신부 축일이라고 술을 마시는 것”이라는 지적이다.신천지 설문조사를 보면 이런 결과가 있다. 과거 신앙생활 중 불만족을 묻는 질문에 ‘말씀에 대한 갈증’(47%)이 가장 높았으며, 신천지로 옮긴 가장 큰 이유는 ‘성경 말씀의 탁월성’(70%)이 가장 많았다. 과거와 달라진 점으로는, 25%의 비율을 차지하던 성경 묵상이 53%, 성경공부는 12%에서 62%로 증가했다는 점이다.이 신부는 신천지의 잘못된 주장과 단계별 포교법도 소개했다. “신천지는 성경을 삼시대로 구분합니다. 이단 사이비의 전형적인 방법인데, 구약과 신약ㆍ계시록의 시대로 구분하는 겁니다. 우리는 구약과 신약만 있지만 이들이 삼시대론을 주장하는 이유는 교주를 신격화하기 위한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죠.”이 신부는 “가족 중 한 명이 신천지에 빠지면 나머지 가족은 지옥 같은 삶을 살아간다”며 “사제와 본당 사무직원들이 먼저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10년 전 지인의 자녀가 신천지의 피해를 당해 도움을 주면서 신천지에 관심을 두기 시작해 천주교 유사종교 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예방 교육 및 피해자 상담을 맡고 있다. 주교회의는 2011년 신천지에 대응하기 위해 각 교구에 신천지 포교 활동에 대한 주의 공문을 보냈고, 지난해 2월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산하에 한국 천주교 유사종교 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평화신문2018.10.02

“진정한 희망은 슬픔 속에도 하느님 말씀 믿고 기다리는 태도” 그래도 희망 / 프란치스코 교황 지음 / 윤주현 옮김 / 가톨릭출판사초라한 구유에서 작고 연약한 아기 예수가 태어났다. 아기 예수가 다시 태어났고, 또 다른 새해가 밝았다. 여전히 크고 작은 어려움과 부딪힌다. 길거리 전광판의 광고와 휴대전화 속 유튜버들은 물질적 풍요로움을 자랑한다. 이것만 소유하면, 이것만 먹으면 더 행복하다고 손짓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말한다. “세상이 말하는 희망은 물질적인 풍요로움에 가깝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된 희망, 거짓된 낙관주의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곧 희망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희망 메시지를 담은 「그래도 희망」이 발간됐다. 교황을 방문한 전 세계의 신자들을 위해 2016년 12월 7일부터 2017년 3월 15일까지 일반 알현에서 ‘그리스도인의 희망’에 대해 했던 교황의 강론을 엮었다. 전례력으로 이 시기는 대림과 성탄, 사순 시기가 포함된다. 교황은 신ㆍ구약에 등장하는 성경 속 인물들이 어떻게 희망했는지를 이야기한다. 교황은 아브라함과 라헬, 유딧을 통해 슬픔에서 피워올린 희망을 들려준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아브라함이 자신에게 아들을 약속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어떤 태도로 믿었는지 설명한다. 백 세에 가까운 노인으로 아내 사라 또한 임신할 수 없는 몸이지만 아브라함은 모든 어려움을 거슬러서 희망했다. 아브라함의 마음 안에는 실망과 좌절, 난관이라는 어둠이 있었다. 아브라함은 그러나 아들을 청하지는 않았다. 희망을 품기 위해 “주님, 제가 계속 희망할 수 있도록 저를 도우소서”라고 기도했다. 교황은 “믿음이란 아무 대답 없이 그저 맹목적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침묵이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또한, 희망하고 의심하며 당혹스러워하면서 확실한 것에만 마음을 두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많은 경우, 희망은 어둡습니다. 하지만 바로 거기에 여러분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희망이 있습니다. 믿음은 가식적인 경건함 없이 있는 그대로의 괴로움을 하느님께 보여드리며 그분과 더불어 싸우는 겁니다.”(73쪽)교황은 “희망은 인간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라며, “미래를 희망하는 것, 삶을 믿는 것, 이것은 소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이러한 희망이 우리 존재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대답이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사람들은 삶에서 어려움과 맞닥뜨렸을 때, 자신이 나약하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손을 뻗어 가까이 만질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한 보장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을 신뢰함에도, 내가 처한 상황이 불리하게 바뀌면 구체적으로 확실한 그 무언가를 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 위험이 있습니다!”(99쪽) 교황은 그때 우리는 고독이 지닌 공허함을 메꿔 줄 것 같고 믿음의 어려움을 경감시켜 줄 것처럼 보이는 것에 마음을 둔다고 지적한다. 심지어 돈이나 권세가들과의 야합, 세속성 등으로 일시적인 위로를 추구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구체적으로 보장된 상황을 원하는 것이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추천의 말에서 “성경이 말하는 희망은 바로 ‘기다림’”이라며 “그들은 인간적인 희망이 없는 가운데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믿고 희망하며, 그 말씀이 이루어지길 기다렸다”고 말했다. 이어 “(이 책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바라고 지향해야 하는 희망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얻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옮긴 이 윤주현(가르멜수도회 한국관구장) 신부는 “교황님의 탁월한 강론을 따라가며 마음 깊은 곳에서 인류를 향한 주님의 자비와 용서, 사랑을 발견하는 가운데 어느새 희망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책에 썼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평화신문2019.12.26

종교·인종 불문 환자들에게 위로 전하는 천사 수녀프랑스 생드니교구에서 17년째 환자 방문하는 장현규 수녀(프랑스 성요한사도수녀회) 프랑스에서 17년째 병원 환자 방문 사도직을 수행하며 말기암 환자, 임종 환자를 위로하고 하느님 나라로 인도하는 장현규 수녀. 매주 두 차례, 수녀는 이른 점심을 끝내자마자 왕복 전철 승차권만 달랑 손에 쥐고 수녀원을 나선다. 작은 가방 속에 묵주 여러 개와 상본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피부색도, 종교도, 국적도 다른 환자들을 만나기 위한 수녀의 ‘사랑의 발걸음’이다.주인공은 2002년부터 17년째 프랑스 생드니교구의 한 병원에서 ‘환자 방문 사도직’을 수행하고 있는 프랑스 성요한사도수녀회 장현규(마리스텔라, 71) 수녀다. 오랫동안 고통과 죽음 앞에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 말기암 환자, 임종 환자 등에게 위로와 사랑을 전하고 있는 장 수녀가 잠시 귀국해 10월 24일 만났다. 얼굴만 드러낸 베일 위, 안경 너머 따스한 눈빛에서 얼마나 많은 환자에게 큰 위로를 전해왔을지 가늠이 됐다.“그리스도인이든 무슬림이든 유다인이든 제겐 종교, 인종에 어떠한 벽도 없어요. 오로지 하느님 사랑을 전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바치며 병원에 들어섭니다. 그들도 마음을 열어 저를 반기고, 그들의 환대에 저도 위로를 얻습니다. 모두 하느님 은총 안의 만남이니까요.”사도직 이야기 담은 책 「그대들을… 」 출간 장 수녀가 사는 베르사유수도원에서 오베흐빌리에 라호즈레병원까지는 편도로만 꼬박 2시간. 서울과 대전 거리를 매주 이틀씩 17년째 오가고 있다. 특히 생드니 지역은 아프리카인, 동양인, 아랍인 등 80여 개국 사람들과 종교인이 모여 사는 곳. 대부분 타지에서 온 가난한 노동자들이다. 오죽하면 생드니교구 별명이 ‘무지개 교구’다. 유다인이 설립한 라호즈레병원을 장 수녀에게 소개해 준 이는 바로 한국에서 사목했던 오영진(Olivier de Berranger, 전 생드니교구장, 2017년 선종) 주교였다. 1976년부터 17년간 한국에서 ‘가난한 이들의 대부’로 불리며 노동사목을 했던 프랑스인 오 주교는 1996년 주교품을 받은 뒤 생드니교구장이 됐다. 한국 사랑이 넘치던 오 주교를 통해 2002년 새 사도직을 시작한 장 수녀는 이후 때마다 오 주교에게 환자 방문 일지를 상세히 적어 전했고, 오 주교는 그 내용을 불어로 번역해 생드니교구 온라인 홈페이지와 수도 공동체에 널리 알렸다. 주교의 격려에 힘입어 2018년 장 수녀는 사도직 이야기를 담은 책 「그대들을 사랑합니다」를 국내에 출간했다.사도직 이름만 ‘환자 방문’이지, 장 수녀가 수행하는 활동은 종교 일치, 이민자ㆍ난민 환대, 선교, 나눔이 모두 이뤄지는 ‘종합 사도직’이다. 「그대들을 사랑합니다」에는 병원에서 펼쳐진 감동적인 이야기 60여 편이 줄곧 이어진다. 장 수녀는 “300여 명을 수용하는 병원은 그야말로 인생의 축소판”이라며 “모든 이들의 아픔은 이곳에 다 있다”고 했다. 장 수녀는 한 시간이고 말없이 환자 눈을 바라봐주고, 또 한참이나 이야기도 들어준다. 치유에 관한 구절을 찾아 성경을 읽어주고, 성가도 불러준다. 무슬림 환자들에겐 그들 언어로 “인샬라(신의 뜻대로)” 하고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임종을 앞둔 무슬림 환자의 가족 요청으로 장 수녀는 가톨릭 방식으로, 그들은 자신들 방식으로 기도하는 광경도 벌어진다. 홀로 선종한 젊은 무연고자가 유일한 친구였던 장 수녀의 묵주와 상본을 가슴 위에 얹고 떠난 사연 등 감동적인 이야기는 수없이 많다.따뜻한 미소가 갖는 힘“이분들은 모두 마음이 추운 분들이에요. 저는 그들 마음에 하느님의 따뜻한 사랑을 채워줄 뿐이죠. 그들이나 저나 가난한 나그네예요. 긴말 필요없이 따뜻한 미소만으로도 서로 위로를 전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죠.”장 수녀는 신자 환자들에게 묵주와 상본을 건네며 잊지 않고 하는 말이 있다. “남북으로 갈라진 한국을 위해서도 꼭 기도해 달라”는 것이다. 그들도 자신들의 신에게 “남북 통일을 위해 꼭 기도하겠다”고 답한다. 장 수녀는 책 판매 수익금으로 오랜 바람이던 ‘성경 선물하기’를 한 번 했다. “작은 성경 23권을 선물했는데, 직원과 환자들이 그렇게 좋아하더라”고 했다. “‘이렇게 저를 당신 도구로 써주심에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하고 기도해요.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평화를 환자들과 계속 나눌 겁니다. 고독의 자리에 하느님을 모셔가는 것이 제 소명이니까요.” 도서 구입 문의 : 070-7012-0727, 1만 원, 갤러리운수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평화신문2019.10.30
[장현규 수녀의 사랑의 발걸음] 3. 수녀님 볼에 입맞춤해도 되나요? 세상의 거의 모든 민족이 모여 살아가는 도시. 바로 프랑스 생드니 지역의 ‘오베흐빌리에’다. 각국에서 온 이민자와 난민들이 모이는 이곳 라호즈레 병원에서 프랑스인 환자를 마주하는 일은 흔치 않다.그런데 오늘은 첫인상이 매우 밝아 보이는 환자와 마주하게 됐다. 그는 자신이 프랑스인이라고 했다. 나도 “저는 한국인 수녀예요” 하며 다가갔다. “이렇게 당신을 보러오는 것이 혹시 방해되지는 않을까요?” 하고 물으니, “전혀 그렇지 않다”고 흔쾌히 대답하기에 내 마음도 이내 편해졌다. 심장병을 앓고 있는 이 프랑스인과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제 아버지는 프랑스인이고, 어머니는 이탈리아인이세요.”많은 이탈리아, 프랑스 사람들이 그렇듯 이 환자도 유아 세례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신앙생활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우리말로 하면 ‘냉담 상태’인 것이다. 그의 표현 안에 신앙생활을 하지 못함으로 인해 생기는 어떠한 어려움이나 힘든 감정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같은 주님의 자녀이지 않은가. 나는 다른 신자들에게 하는 것처럼 대했다. “성모님 상본 하나 드릴까요?” 하고 용기를 내어 말을 건넸다. 다행히도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수락한다.나는 가르멜수도원의 한 수녀님께서 푸른색과 붉은색 선을 이용해 그린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모님 상본을 꺼내 작은 글귀를 적었다. ‘하느님께 당신의 병이 빨리 낫게 되기를 기도하며, 한국의 남과 북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나는 이렇게 환자들에게도 남북으로 갈라진 한반도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곤 한다. 우리 한국인들에겐 얼마나 기도가 필요한 일인가! 환자를 위해 기도하면서도 오랫동안 크나큰 아픔을 지닌 한반도를 위해서도 기도를 청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이렇게 글귀를 작성한 뒤 상본을 건네니, 그는 성화뿐만 아니라 나의 한 마디 기도까지 유심히 바라보는 모습이다. 덩달아 흐뭇했다. 상본을 내려놓지 않고 계속 바라보는 그의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다.그는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아름다운 성모님 그림과 기도 글을 잘 간직하겠다”고 답해줬다. 얼굴엔 기쁨이 가득해 보였다. 그런데 바로 저를 향해 “수녀님 볼에 입맞춤해도 되느냐”고 천진난만하게 묻는 것이 아닌가. 당시엔 갑작스러웠지만, 지금은 이 글을 쓰면서도 그의 기쁨이 계속 떠올라 미소가 지어진다.프랑스 사람들은 기쁨과 행복감을 느낄 때 이렇게 ‘볼키스’를 한다. 이처럼 기쁨을 표현하는 자연스러운 이들의 행위에 익숙해져 이 분의 진정한 마음의 움직임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물론 이 환자를 만난 것은 코로나19 사태 훨씬 전이다. 더 젊은 시절이었다면, 이런 상황에서 나는 어쩌면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조금은 뛰었을지 모를 것이다. 그런데 고통을 받고 있는 이 환자가 내 양쪽 볼에 두 번씩 네 번이나 키스를 해주다니. 더군다나 양쪽 볼에 한 번씩은 자주 있어도, 네 번은 극히 드물다! 이 단순한 그림이 신앙생활과는 멀고도 먼 이 환자에게 큰 기쁨과 행복감을 안겨 주었다니. 다시금 이런 생각이 든다. ‘이처럼 놀라운 변화는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에 사랑의 불길을 지피신 것이다.’ 진정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정말 놀랍다. 나의 바람은 이 사랑의 불길이 가족과 이웃들에게 뜨겁게 타오르기를 바란다. 그를 만나고 난 뒤 떠오른 성경 말씀이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루카 12,49)장현규 수녀(프랑스 성요한사도수녀회) cpbc2020.05.13

흠집난 지구환경 돌아보고 치유하는 한해 보내자교황청 인간발전부서, 내년 5월 24일까지 ‘찬미받으소서 특별 기념의 해’ 선포… 다양한 캠페인 계획 보편 교회가 내년 5월 24일까지 ‘찬미받으소서 특별 기념의 해’로 보내기로 하고, 공동의 집인 지구의 생태환경 문제를 돌아보고, 실천에 나서기로 했다. 사진은 미국의 한 습지의 아름다운 모습. 【CNS 자료 사진】 공동의 집 살리기 위한 특별 주년으로 지정보편 교회가 내년 5월 24일까지 1년 동안 ‘찬미받으소서 특별 기념의 해’를 지낸다.교황청 온전한 인간발전 촉진을 위한 부서(이하 인간발전부서)는 지난 5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태회칙 「찬미받으소서」 반포 5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찬미받으소서 주간’ 첫날에 이같이 선포하고, 모든 지역 교회의 관심과 참여를 촉구했다. 공동의 집인 지구의 위태로운 상황을 함께 고민해 타개하고, 전 지구적 상호 노력을 촉구하고자 1년 동안 ‘지구 환경을 위한 해’로 보내기로 한 것이다.이에 따라, 인간발전부서는 ‘지구 환경’과 ‘생태적 회심’, ‘지속 가능성’ 등 다양한 주제로 행사와 세미나를 개최하고, 보편 교회 구성원 모두가 공동의 성찰과 실천을 이어가도록 할 계획이다.보편 교회는 지난 5월 16~24일 ‘찬미받으소서 주간’을 보내며 기후위기, 아마존 파괴, 남북극 파괴 등 흠집난 지구의 현주소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5월 24일에는 지구촌 신자 모두가 ‘지구와 인류를 위한 공동 기도’를 바치며, 하느님이 창조한 피조물과 더욱 조화롭게 살기로 다짐했다.인간발전부서는 특별 기념의 해 동안 다양한 사목적 활동과 캠페인을 펼친다. 인간발전부서는 6월 중 「찬미받으소서」에 담긴 내용을 세부 시행 지침으로 옮겨 담은 교황청 부서 간 상호협력 문서를 발표한다. 아울러 18일에는 인간발전부서 주관으로 ‘「찬미받으소서」의 평가와 나아갈 길’을 주제로 웹 세미나도 개최한다.9월 1일부터 10월 4일은 ‘창조의 계절’로 명명했다. 피조물을 위하는 특별 기간이다. 인간발전부서는 이와 관련한 웹 세미나를 시리즈로 연다. 내년 1월 26~29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개최하는 ‘세계경제포럼’(WEF) 기간 중 바티칸에서 제3차 원탁회의가 개최될 예정이다. 비슷한 시기에 생태 환경과 관련한 주제로 각 종교 지도자들의 모임도 예정돼 있다. 국경과 종교를 넘어 교황청이 주도적으로 생태계를 되살리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펼친다는 계획이다.특별 기획들도 있다. 인간발전부서와 협력 부서들은 「찬미받으소서」와 관련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 보급하고, ‘플라스틱 오염과의 투쟁’을 주제로 한 영상 공연도 제작한다. 「찬미받으소서」 연구 네트워크와 피조물 보호를 위한 국제 플랫폼을 구축한다. 「찬미받으소서」 내용에 초점을 맞춰 소셜미디어로 펼치는 제1회 세계 성경 경연대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젊은이들과 함께하는 전 세계 나무 100만 그루 심기 사업도 이미 시작했다.지속 가능한 세계 공동체 위한 7년 계획 추진1년으로 끝이 아니다. 교황청은 특별 기념의 해 다음해인 2022년부터 △가정 △교구 및 본당 △초중고등학교 △대학교 △병원 및 보건소 △기업 및 농업 △수도회 순으로 각기 7년 여정에 주체적으로 동참하는 계획을 추진한다. 「찬미받으소서」의 통합 생태론 정신에 따라, 지속 가능한 세계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7개년 계획이다. 아울러 「찬미받으소서」 우수 지도자상, 「찬미받으소서」 우수 교육기관상, 「찬미받으소서」 우수 신앙 공동체상 등 7가지 「찬미받으소서」상을 제정해 2021년부터 해마다 시상할 예정이다.교황청이 밝힌 계획대로라면, 2028년까지 보편 교회가 이행할 사목 주제의 큰 바탕은 ‘공동의 집인 지구 생태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구의 눈물과 이로 인해 고통받는 가난한 이들의 처지를 돌아보고, 전 지구적 차원의 생태 교육과 영성을 바탕으로 삶의 양식과 인식의 변화가 목표다.인간발전부서 산하 피조물과 생태사목국 조정관 조쉬트롬 쿠리타담 신부는 “코로나19 사태로 인류가 얼마나 상호연결된 존재이며,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선 연대가 필요하다는 점을 현대 세계가 깨닫게 됐다”고 강조했다. 쿠리타담 신부는 “앞으로 10년 동안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과 인류를 위한 희년의 때가 돼야 한다”며 “새로운 시작으로 공동의 집을 새로 건설하고, 생태계를 회복시키며, 우리의 연대를 구축하기 위해 함께 행동에 나서자”고 당부했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평화신문2020.06.09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60)유다인들의 고발과 바오로의 변론(24,1-27)](//cpbc.co.kr/CMS/newspaper/2020/04/rc/777344_1.1_titleImage_1.jpg)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60)유다인들의 고발과 바오로의 변론(24,1-27)유다인의 환심을 얻기 위해 바오로를 가둔 총독 카이사리아 펠릭스 총독 앞에서 변론하고 난 바오로는 그곳 감옥에서 2년을 보낸다. 사진은 카이사리아 해변의 헤로데 궁전터. 뒤편 바다와 연결된 부분이 유다 총독이 관저로 사용했던 헤로데 대왕 궁전 유적이다. 유다인들이 바오로를 고발하고 바오로는 총독 앞에서 변론합니다. 그런 다음에 바오로는 감옥에 갇혀 지냅니다. 유다인들의 고발(24,1-9)바오로가 카이사리아에 도착한 지 닷새가 지나서 하나니아스 대사제가 예루살렘에서 카이사리아로 내려옵니다. 원로 몇 사람과 테르틸로스라는 법률가를 데리고 온 그는 펠릭스 총독에게 바오로에 대한 소송을 제기합니다.(24,1) 바오로가 불려 나오자 테르틸로스가 고발을 시작합니다. 테르틸로스는 먼저 펠릭스 총독에 대한 인사와 칭송을 늘어놓습니다. “우리는 각하 덕분에 큰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하의 선견지명으로 이 민족을 위한 개혁이 이루어졌습니다. 존귀하신 펠릭스님,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언제 어디서나 인정하며 매우 고맙게 여기고 있습니다.”(24,2-3) 그런데 펠릭스 총독에 대한 이런 칭송은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고 성경학자들은 지적합니다. 노예 출신으로 자유민이 돼 유다 지방을 다스리는 로마 총독의 지위에까지 오른 펠릭스는 “난폭하고 졸렬한 총독”(「주석 성경」)으로서 유다인들의 개혁과 평화에 기여했다기보다는 오히려 불안과 공포를 조성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유다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그가 총독으로 다스리던 기간에 폭동이 자주 일어났고,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그는 많은 이를 십자가형에 처했다고 합니다. 테르틸로스는 이어 본격적으로 바오로를 고발합니다. 그의 고발 내용은 바오로가 ①“흑사병 같은 자로서 온 세상에 있는 모든 유다인들 사이에 소요를 부추기는 자며 나자렛 분파의 괴수”이고 ②“성전까지 더럽히려고 시도해 우리가 붙잡았다”는 것입니다.(24,5-6) 나자렛 분파가 나자렛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 신자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보면, 그리스도 신자들의 우두머리로서 나자렛 예수를 믿으라고 하면서 유다인들 사이에 분란을 일으키고 성전을 더럽히려 했다는 것이 바오로를 고발한 핵심 죄목입니다. 테르틸로스는 그런 다음에 이렇게 덧붙입니다. “각하께서 친히 이자를 신문해 보시면 우리가 이자를 고발하는 내용을 모두 아시게 될 것입니다.”(24,8) 그러자 다른 유다인들도 테르틸로스 말에 동조하고 나섭니다.(24,9)일부 사본에는 ‘바오로를 붙잡았다’(24,6)와 ‘각하께서 신문해 보시면’(24,8) 사이에 “그리고 우리의 율법에 따라 재판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리시아스 천인대장이 와서 이자를 우리 손에서 아주 난폭하게 빼앗아 데리고 가서는 이자를 고발하는 사람들에게 각하 앞으로 가라고 명령하였습니다”라는 구절이 들어 있습니다. 이 사본의 내용까지 종합하면 바오로가 어떻게 해서 예루살렘에서 카이사리아의 펠릭스 총독에게까지 와서 재판을 받게 됐는지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곧 나자렛 분파의 괴수인 바오로가 유다인들 사이에 소요를 부추겼을 뿐 아니라 성전까지 더럽히려고 해 유다인들이 붙잡아 율법에 따라 재판하려 했으나 천인대장이 나서서 바오로를 데려가는 바람에 총독이 있는 이곳 카이사리아까지 오게 됐다는 것입니다. 바오로의 변론(24,10-21) 테르틸로스의 고발이 끝나자 바오로가 변론에 나섭니다. 먼저 총독에 대한 간단한 인사치레를 한 후에 본격적인 변론을 펼칩니다. 바오로가 펼친 변론은 이러했습니다. ①내가 예루살렘에 올라간 지 열이틀도 되지 않았고 성전에서든 회당에서든 도시 어디에서든 누구와 논쟁하거나 군중의 소요를 일으키는 것을 본 사람이 없으니 저들은 소요를 부추겼다는 고발을 증명하지 못한다. ②나는 저들이 분파라고 말하는 ‘새로운 길’을 따르지만, 그 길에 따라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을 섬기고 율법과 예언서에 기록된 모든 것을 믿을 뿐 아니라 저들이 품고 있는 것과 똑같은 희망 곧 의로운 이들이나 불의한 자들이나 모두 부활하리라는 희망을 하느님께 두고 있다. ③나는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서 언제나 거리낌없는 양심을 간직하려고 애쓴다. ④나는 동족에게 자선기금을 전달하고 하느님께 제물을 바치려고 여러 해 만에 돌아왔다. ⑤내가 성전 안에 있었지만 정결 예식을 마치고 제물을 바칠 때였는데 그때 곁에는 군중도 없었고 소동도 없었다. ⑥아시아에서 온 유다인 몇 사람이 있었는데 내게 시비를 걸 일이 있으면 그들이 총독에게 와서 고발했어야 마땅하다. ⑦내가 최고 의회에 출두했을 때도 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없다. 다만 죽은 이들의 부활 때문에 여러분 앞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고 한마디 외쳤을 따름이다.(24,11-21)바오로가 펼친 변론에서 몇 가지를 주목할 수 있습니다. 첫째, 재판 원칙에 관한 것으로 유죄는 증명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오로의 변론은 고발자들이 바오로가 유죄임을 증명하지 못한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둘째, 유다교와 ‘새로운 길’인 그리스도교와의 연속성입니다. 바오로는 새로운 길이 유다교와 무관한 또는 유다교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연속선 상에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바오로의 변론은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7)는 예수님 말씀을 반영합니다. 셋째, 부활에 대한 바오로의 언급입니다. 학자들은 유다교의 부활 신앙이 두 가지 형태로 발전해 왔다고 봅니다. 하나는 의인들의 부활을 믿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인이나 악인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의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바오로는 모든 사람의 부활을 믿고 있음을 표방합니다. 바오로는 또 자신이 죽은 이들의 부활 때문에 재판을 받고 있다고 함으로써 자신을 둘러싼 소송이 순전히 유다교 내의 문제임을 부각시키고 있다고 학자들은 풀이합니다. 총독의 조처(24,22-27)펠릭스 총독은 바오로의 변론이 끝나자 천인대장 리시아스가 내려오면 사건을 판결하겠다면서 공판을 연기합니다. 그러면서 바오로를 편하게 해 주고 친지들이 그를 돌보는 것을 막지 말라고 백인대장에게 지시합니다.(24,22-23)총독은 며칠 후 유다인 아내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오로를 불러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 관해 이야기를 듣다가 바오로가 “의로움과 절제와 다가오는 심판”에 관해 설명하자 두려움에 사로잡혀 이야기를 그만두게 합니다.(24,24-25) 펠릭스 총독의 세 번째 아내인 드루실라는 야고보 사도를 처형한 헤로데 아그리파 1세 임금(12,1-2)의 막내딸이었습니다. 드루실라는 에메사라는 왕국의 임금에게 시집갔는데 펠렉스 총독이 계략을 꾸며 자기 아내로 만들었고 합니다. 이로 미루어 보아도 총독은 의로움이나 절제와는 관계가 먼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바오로의 말을 듣고 두려움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하지만 총독은 이후에도 바오로를 자주 불러내어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러나 새로운 길에 대한 관심 때문이라기보다는 돈을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였습니다.(24,26) 바오로가 변론 과정에서 자선기금을 전하려고 예루살렘에 왔다고 말한 것을 듣고는 바오로에게 돈이 많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이렇게 두 해가 흘렀고, 펠릭스 총독의 후임으로 포르키우스 페스투스가 부임합니다. 그때까지 바오로는 감옥에 갇혀 지냅니다. 펠릭스 총독이 유다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바오로를 가둔 채 내버려 둔 것입니다.(24,27) 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alfonso84@hanmail.net cpbc2020.04.16

다윗의 애끓는 부정, 아들 때문에 두 번 통곡하다[엉클죠의 바티칸 산책] (27) 다윗 왕의 부끄러운 과거 고대 이스라엘의 황금기를 이룬 지도자 다윗 왕. 그러나 한편으로는 부하의 부인을 탐하고, 아들의 배반에 통곡한 나약한 인간이기도 하다. 다윗은 어릴 때부터 비파를 잘 타 예술가들은 ‘비파를 연주하는 다윗 왕’을 즐겨 묘사한다. 사진은 예루살렘 시온산에 있는 다윗 왕 청동상. 가톨릭평화신문 DB 다른 종교의 경전도 이럴까요? 신자들이 우러러 받드는 중요 인물의 ‘부끄러운 과거’를 낱낱이 기록해 놓은 것 말입니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성경은 그런 면에서 독보적입니다. 위대한 성인일수록 민망한 수준의 부끄러운 과거가 많습니다. 아들 압살롬의 쿠데타이스라엘의 다윗 왕이 그런 위인 가운데 한 명입니다. “다윗은 올리브 고개를 오르며 울었다. 그는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걸었다.”(2사무 15,30) 명색이 왕인데, 몰골이 말이 아닙니다. 믿었던 아들 압살롬이 쿠데타를 일으켜 예루살렘을 장악한 뒤 아버지 다윗 왕을 쫓고 있었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자칫 반란군에게 잡히면 죽을 위기에 몰렸습니다.아들에게 쫓기는 아버지의 신세, 얼마나 처량하고 비참합니까. 세상 사람들이 볼까 두려워 얼굴을 가리고, 모자를 뒤집어쓴 채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넘었습니다. 얼마나 급했는지 신발도 신지 못하고 맨발로. 벼랑에 몰린 다윗이 주님에게 ‘SOS’를 쳤습니다. 시편 3장의 기도가 바로 그의 애원입니다. “주님, 저를 구하소서. 저의 하느님, 정녕 당신께서는 제 모든 원수들의 턱을 치시고 악인들의 이를 부숩니다. 주님께만 구원이 있습니다.”(시편 3,8-9)다윗이 누구입니까. 이스라엘 민족을 구한 영웅, 국가다운 국가를 세우고 33년을 통치한 최고의 지도자,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성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정치 지도자를 평가할 때 그 기준을 항상 다윗으로 삼았습니다. 다윗을 100점 만점으로 설정해 놓고 다른 지도자들을 평가하는 방식이었지요. 중국의 요순(堯舜)시대 임금과 같은 위상이었습니다. 신약시대에도 다윗의 위상은 절대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래아에서 치유의 기적을 일으키자 사람들이 질겁을 하며 말합니다. “저분이 혹시 다윗의 자손이 아니신가?”(마태 12,23) 갈릴래아 백성들은 다윗을 메시아를 배출할 가문의 원조로 믿고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아뿔싸! 다윗이 큰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인간으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정치 지도자로서도 절대로 짓지 말았어야 할 대죄를 지은 것입니다. 측근 참모(우리야)의 부인(밧세바)을 겁간하는 권력형 성범죄에 이어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게 하는 살인죄를 범했습니다. 주님이 진노하십니다. 다윗은 죗값을 톡톡히 치러야 했습니다. 예언자 나탄이 주님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이제 네 집안에서는 칼부림이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이다.”(2사무 12,10) 다윗은 주님께 용서를 빌었습니다. 시편 51장이 그의 절절한 기도입니다. “우슬초로 제 죄를 없애 주소서. 제가 깨끗해지리이다. 저를 씻어 주소서. 눈보다 더 희어지리이다.”(시편 51,9) 한번 엎질러진 물을 어떻게 주워담을 수 있겠습니까! 압살롬의 쿠데타는 그 칼부림의 시작이었던 셈입니다. 다윗은 우여곡절 끝에 반란군 진압을 목전에 두고 있었습니다. 전세가 역전된 것입니다. 반란군의 수괴 압살롬은 극형에 처할 운명이었지요. 다윗의 눈에 아들이 밟혔습니다. 진압군 총사령관(요압)을 불러 압살롬을 죽이지 말고 생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원칙주의자 요압은 압살롬을 현장에서 처단해버렸습니다. 다윗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비록 반역했지만, 많이 사랑했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통곡했습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2사무 19,1) 아비를 죽이려 한 패륜아, 그런 아들의 죽음을 비통해 하는 다윗, 천하의 다윗이 아들 때문에 두 번 통곡했습니다. 아들의 공격을 피해 도망갈 때에는 저주의 눈물을, 아들이 죽었을 때에는 연민의 눈물을 흘린 것이지요. 그야말로 애끓는 부정(父情)입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거나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을 되뇌게 합니다. 조선 시대 영조 왕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요. 정치적 갈등 관계에 있던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넣어 굶겨 죽인 잔인한 아버지 영조 말입니다. 다윗은 불효자를 용서할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있었지만, 영조는 그런 용기가 없었던 같습니다. 철저한 회개 중요한 것은 다윗의 믿음입니다. 다윗은 잘못을 철저히 회개한 후 모든 것을 주님의 처분에 맡겼습니다. 이것은 온갖 흠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삶을 일궈낼 수 있었던 다윗의 비결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 평화신문2020.06.17

일상에서의 평화, 평화 문화 연구로 시선 확대하고파 서울 민족화해위원회 부설 평화나눔연구소 홍용표 신임 소장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부설 평화나눔연구소 제3대 소장에 위촉된 홍용호(오른쪽) 한양대 교수가 염수정 추기경에게 위촉장을 받은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평화 문제를 인간 존엄의 문제와 연결해 연구해보고 싶습니다.” 2월 20일 자로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부설 평화나눔연구소 제3대 소장으로 위촉된 홍용표(프란치스코, 56)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그간의 평화가 남북 관계라는 틀 안에서 바라본 아주 협소한 평화였다면, 이제는 평화를 넓게 내다보고 일상에서의 평화로 관심을 넓혀야 하겠다”고 말문을 뗐다. 이어 “남북 관계에서 핵이 폐기된다고 해서 평화가 정착되는 게 아니듯, 일상 속에서의 평화와 평화 문화에 대한 연구도 관심을 가져보고 싶다”고 관심 분야를 전했다. 홍 교수는 이어 “그간 평화나눔연구소 연구위원으로 두 차례 DMZ국제청년평화순례에 함께하며 ‘평화’를 주제로 강의와 나눔을 했는데, 청년들과 평화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평화를 인간 존엄성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다”면서 “남북관계나 분단 극복뿐 아니라 북한 인권 문제나 식탁의 평화, 입시와 평화 문제 등 일상에서의 평화를 논의하고 연구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평소 의중을 드러냈다. 홍 교수는 또 “평화학에서 사실 평화교육이 반 이상을 차지하는데, 실은 이게 잘 이뤄지고 있지 못하다”며 “아직 우리 연구소 연구위원들과 깊이 있는 논의는 해보지 못했지만, 기존 평화ㆍ외교ㆍ인권 아카데미에서 이뤄지는 일반적인 평화 교육이 아니라 이를 좀더 특화해서 성경 속의 평화, 교회와 평화 같은 주제의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진행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평화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평화에 대해 좀더 깊이 성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평화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평신도 중심의 평화나눔교육’을 해나가고 싶다”면서 “교회 안에 있는 연구소로서의 정체성과 특징을 살리고 교회에 평화 문화를 확산시켜 나가는 데 공헌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나가겠다”고 희망했다. 홍 교수는 끝으로 “평화학은 기본적으로 학제적 연구”라면서 “따라서 가능하다면 평화 문화나 인류학, 문화학, 종교학, 사회학, 신학, 과학 등 분야별로 다양한 전문가와 학자들을 영입하고 싶다”는 꿈도 비쳤다. 한편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는 같은 날 서울대교구청에서 신임 평화나눔연구소 연구위원 임명식을 열고, 연구위원 겸 부소장에 남궁곤(아타나시오) 동아일보21세기평화연구소 연구위원, 연구위원에 김병태(미카엘) SK네트웍스 전무 겸 한국군사학회 사무총장, 이민영(아기 예수의 데레사) 고려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부교수 등을 임명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평화신문2020.02.26
![[성당에 처음입니다만] (28) 성당과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왜 “아멘” “아멘” 하나요](//cpbc.co.kr/CMS/newspaper/2019/09/rc/763012_1.0_titleImage_1.jpg)
[성당에 처음입니다만] (28) 성당과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왜 “아멘” “아멘” 하나요주님 뜻 이뤄지길 비는 신앙고백 “아멘” “아멘”은 그리스도교와 유다교에서 기도 끝에 하는 말로, 하느님께 정성껏 바친 기도의 내용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곡한 뜻이 담겨 있다. 나처음 : 성당이나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왜 기도할 때마다 “아멘”, “아멘”이라고 말하나요.조언해 : 언젠가부터 미사 강론 때에도 신부님 말씀이 끝날 때마다 큰소리로 “아멘” 하고 답하는 이들이 있어 분심이 들 때가 많아요. 짜증도 나고요. 마치 광신도처럼 보이기도 해요.라파엘 신부 : 회중이 다 함께 조용히 기도하거나 신부님 강론에 집중하고 있는데 그 침묵의 시간을 깨는 방해 요소가 있다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아름답지 못한 행동이겠지. 오늘은 성당이나 개신교회에 다니는 그리스도인들이 왜 “아멘” 하는지 설명해야겠구나. 일단 ‘아멘’은 그리스도교와 유다교에서 기도 끝에 하는 말로, 하느님께 정성껏 바친 기도의 내용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곡한 뜻이 담겨 있단다. 먼저, ‘아멘’이 성경에선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알려주마.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이끄심에 대한 확신이 섰을 때 “아멘”으로 응답했단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지키지 않을 경우 12가지의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선포했을 때 온 백성이 “아멘” 하고 응답한 것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지.(신명 27,14-26 참조)또,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미의 기도를 노래한 후 그 끝을 ‘아멘’으로 마무리하였단다. 이러한 예는 시편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데 흔히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 받으소서. 영원에서 영원까지! 아멘. 아멘!”(시편 41,14)하고 끝맺음을 해요. 아울러 하느님 말씀이 진실하며 영원할 것임을 강조하는 의미로도 사용했단다. 신약성경에서는 ‘아멘’이 크게 3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단다. 먼저, 신앙고백이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아멘” 하고 외쳤지.(1코린 14,16 참조) 또 구약의 시편처럼 기도와 찬미를 ‘아멘’으로 마무리했단다. “창조주께서는 영원히 찬미받으실 분이십니다. 아멘”(로마 1,25)이라고 한 바오로 사도의 기도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지.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아멘’이야.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진실성을 확인시켜 주시기 위해 먼저 “아멘”이라고 하신 다음 말씀하시는 경우가 아주 많았단다. 이렇게 하신 말씀이 마태오 복음서에는 30번, 마르코 복음서에는 13번, 루카 복음서에는 6번, 요한 복음서에는 25번이나 나와. 우리말 성경에는 “아멘”을 “진실로”(마르 3,28)라고 옮겨 놓았단다. 그러면 미사와 전례에서 ‘아멘’의 의미에 대해서도 설명할게. 미사에서도 ‘아멘’이 3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어요. 먼저, 본기도와 예물 기도, 영성체 후 기도 때 사제의 기도에 대해 회중이 “아멘”으로 화답해. 이는 사제의 기도가 그대로 이루어지길 바란다는 뜻이야. 두 번째로, 장엄하게 바치는 감사 기도 끝에 사제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 되어 전능하신 천주 성부 모든 영예와 영광을 영원히 받으소서” 하면 모든 회중이 “아멘”으로 환호하지. 이때 하는 ‘아멘’은 감사 기도 전체 내용에 동의하고, 사제와 일치하여 감사 기도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는 표시로 보통 노래로 응답한단다. 세 번째는 영성체할 때 사제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면 “아멘”이라고 대답해요. 이때의 ‘아멘’은 성체가 진정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심을 믿는다는 신앙고백의 표현이야. 또 인류 구원을 위한 주님의 희생에 동참하겠다는 다짐도 포함되어 있단다. 그래서 영성체를 하는 신자들은 똑똑히, 확신에 찬 목소리로 “아멘”이라고 해야 해. 이처럼은 ‘아멘’은 나를 드러내는 표현이나 의미 없는 추임새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비는 간구이며 그리스도께 대한 진실된 신앙고백이란다. 너희도 앞으로 ‘아멘’을 말할 때 이러한 깊은 뜻을 새겨 정성껏 표현하기를 바란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19.09.24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46) 바오로 사도의 두 번째 선교 여행 Ⅲ (16,35―17,15)](//cpbc.co.kr/CMS/newspaper/2020/01/rc/770178_1.2_titleImage_1.jpg)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46) 바오로 사도의 두 번째 선교 여행 Ⅲ (16,35―17,15)박해에도 유다인 회당 먼저 찾아가 선교하다필리피에서 테살로니카로 온 바오로는 유다인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다가 유다인들의 시기를 받아 다시 베로이아로 가서 선교 활동을 계속한다. 사진은 테살로니카의 중심부에 있는 정교회 성당 전경.필리피 감옥에서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한밤중에 지진이 일어나 감옥 문이 다 열렸고 간수는 자결을 시도하려다 바오로의 만류로 목숨을 건집니다. 바오로는 간수와 그 집안 식구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세례를 베풉니다. 지난호에서 살펴본 내용입니다.(16,25-34) 사도행전 본문에는 언급이 없습니다만, 바오로와 실라스는 간수와 함께 감옥으로 돌아갑니다. 풀려난 바오로와 실라스(16,35-40) 날이 밝았습니다. 바오로와 실라스를 감옥에 가두게 했던 행정관들은 시종들을 보내 그들을 풀어주라고 명령합니다. 그러자 바오로가 ‘로마 시민인 우리를 재판도 하지 않고 공공연하게 매질하고 감옥에 가뒀다가 슬그머니 풀어준다는 것은 말이 안 되니 행정관들이 직접 와서 데리고 나가야 한다’고 항변합니다.(16,5-37) 당시 로마 시민에게는 매질을 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돼 있어서 바오로는 이같이 항변한 것입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행정관들은 겁이 나서 두 사람에게 와서 사과하면서 도시를 떠나 달라고 청합니다. 바오로와 실라스는 감옥을 나와 리디아의 집으로 가 형제들을 격려한 후 필리피를 떠나지요.(16,38-40) 테살로니카 선교(17,1-8) 바오로 일행은 필리피를 떠나 암피폴리스와 아폴로니아를 거쳐 테살로니카에 이릅니다.(17,1) 이들이 테살로니카까지 온 길은 서쪽으로 계속 가면 아드리아 해에 이르고 바다를 건너면 이탈리아 남쪽 도시 브린디시와 연결됩니다. 반대로, 왔던 길을 되돌아 동쪽으로 계속 가면 아시아 땅으로 이어집니다. 로마인들이 놓은 이 길을 ‘에그나티아 길’(Via Egnatia)이라고 부릅니다. 반면에 이탈리아 남쪽 도시 브린디시에서 로마까지 이어지는 길은 ‘아피아 길’(Via Apia)이라고 불렀습니다. 오늘날 그리스 제2의 도시로 테살로니키라고 부르는 테살로니카는 당시 마케도니아를 관통하는 ‘비아 에그나티아’의 중심에 있는 큰 도시였습니다. 그런 만큼 유다인들의 회당도 있었지요. 안식일이 되자 바오로는 회당으로 유다인들을 찾아가 토론을 벌입니다. 이는 바오로가 늘 하던 방식이었습니다. 바오로는 자신이 선포하고 있는 예수님이 성경에서 고난받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그 메시아시라고 열변을 토합니다. 세 안식일에 걸쳐 바오로가 복음을 선포하고 또 유다인들과 토론을 벌이자 감복한 사람들이 생겨나 바오로와 실라스를 따릅니다. 유다교로 개종해 하느님을 섬기던 많은 그리스인들과 적지 않은 귀부인들도 바오로 일행을 따릅니다.(17,2-4) 그런데 유다인들 가운데는 시기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불량배들을 데려다가 군중을 선동해서 도시를 혼란에 빠뜨리게 하지요. 그러면서 바오로 일행을 찾아 끌어내려고 야손의 집으로 몰려갑니다.(17,5) 사도행전 저자는 야손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만, 그는 테살로니카에 살던 유다인으로서 바오로의 설교에 감화를 받아 바오를 따르게 된 형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야손의 집에서 바오로 일행을 찾아내지 못하자 야손을 비롯한 형제들, 곧 그리스도인이 된 이들 몇 사람을 시 당국자에게 끌고 가 고발합니다. 고발 내용은 “온 세상에 소란을 일으키던 자들”이 테살로니카에 왔는데 야손이 그들을 자기 집에 맞아들였다는 것과 그자들이 “예수라는 또 다른 임금이 있다고 말하면서 황제의 법령을 어기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시 당국자들은 보석금을 받고서 야손과 나머지 사람들을 풀어줍니다.(17,6-9) 이 고발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온 세상에 소란을 일으키던 자들”이라는 표현에는 유다인들이 이미 바오로 일행에 대한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저자는 유다인들이 “시기하여”(17,5) 불량배를 동원해 도시를 혼란에 빠뜨렸다고 하지만, 고발 내용으로 미루어 보면 테살로니카의 유다인들로서는 바오로가 골칫거리라는 것을 이미 알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예수라는 다른 임금이 있다면서 황제의 법령을 어기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테살로니카 시 당국자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고발을 심각하고 중대하게 여겼다면 보석금을 받고 풀어줄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베로이아 선교(17,10-15) 야손을 비롯해 붙잡혔던 형제들이 풀려나기는 했지만, 테살로니카의 그리스도인들은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파악하고 그날 밤으로 바오로와 실라스를 베로이아로 보냅니다. 베로이아는 테살로니카에서 서쪽으로 70㎞쯤 떨어진 고대 도시입니다. 당시에는 여러 민족과 종교가 뒤섞여 있던 국제적인 도시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유다인 회당도 있었을 것입니다. 형제들이 바오로 일행을 베로이아로 보낸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고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바오로는 베로이아에 도착해서 유다인 회당으로 갑니다.(17,10) 사도행전 저자는 베로이아의 유다인들이 테살로니카 유다인들보다 점잖아서 바오로가 전한 말씀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날마다 성경을 연구했다고 하지요. 그래서 그들 가운데 많은 유다인이 또 지체 높은 그리스 사람들 가운데서도 적지 않은 이가 믿게 됐다고 기록합니다.(17,11-12) 하지만 테살로니카의 유다인들이 이 사실을 알고는 베로이아까지 가서 군중을 선동합니다. 위험을 느낀 형제들은 바오로를 바닷가로 보내고는 아테네까지 인도합니다. 바오로와 함께 지내던 실라스와 티모테오는 테살로니카에 그냥 남았습니다. 바오로는 자신을 아테네로 인도해준 형제들을 통해 실라스와 티모테오에게 되도록 빨리 오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17,13-15)생각해봅시다바오로는 1차 선교 여행 때 가는 도시마다 유다인들에게 시달림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서도 그랬고, 이코니온에서도 그랬습니다. 리스트라에서는 돌질에 죽을 고비를 넘기기까지 했습니다. 이는 2차 선교 여행 중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필리피에서는 사정이 조금 달랐지만, 테살로니카와 베로이아에서 바오로는 역시 유다인들에게 시달림을 받았습니다. 왜 바오로는 이렇게 박해를 받으면서도 가는 곳마다 먼저 유다인 회당을 찾아 말씀을 전했을까요? 그 이유를 알려주는 단초를 바오로 사도가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동족 사랑’입니다. “사실 육으로는 내 혈족인 동포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로마 9,3) 바오로에게는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박해를 당하면서도 유다인들에게 먼저 말씀을 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유다인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이 복음을 전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점도 고려했을 것입니다. 유다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이라는 같은 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데도 고려해야 할 점들이 아닐지요?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alfonso84@hanmail.net cpbc2020.01.02

바보의나눔에 30억 기부한 부부, 하늘에 보화를 쌓다서울 수유동본당 전종복·김순분씨 부부, 부동산 정리해 전액 쾌척… 평소 레지오 마리애 등 활동 열심히 (재)바보의나눔 이사장 손희송 주교가 전종복ㆍ김순분씨 부부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다. “주님께 받은 건 다시 주님께 돌려 드려야죠.”(재)바보의나눔에 30억 원을 기부한 전종복(욥, 83, 서울 수유동본당)ㆍ김순분(논나, 75)씨 부부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할 수 있어서 기쁘고 뿌듯하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부부는 올해 초 부동산을 정리하기로 하고, 부동산을 판 금액 전액을 기부하기로 결심했다. 평생 아끼고 아껴 모은 재산이었지만, 30억 원을 기부하는 데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매매계약서를 체결하고 곧바로 바보의나눔에 연락해 기부 의사를 밝혔다.남편 전종복씨는 “연도 봉사를 하러 장례식장에 가면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고 쓰여 있는 걸 자주 봤다”면서 “그때마다 빈손으로 왔으면 빈손으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나도 그렇게 살리라 다짐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만큼 먹고 살고 자식들 다 키운 건 모두 주님께서 도와주신 덕분”이라며 “기부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거듭 강조했다.부부는 평소에도 여윳돈이 생기면 교회와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눠왔다. 어느 본당이나 성지가 성전 신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황새바위성지, 줄무덤성지, 문막성당…. 또 어디더라.” 부부 입에선 성지와 성당 이름이 줄줄 흘러나왔다. 교회 시설과 기관 여러 곳도 후원하고 있다고 했다. “주위에선 우리가 이렇게 기부하는 줄 모를 거예요. 남편이 워낙 검소하거든요. 1967년 결혼했는데, 그때 남편 월급이 2만 원이었어요. 1만 8000원 저축하고 2000원 갖다 주더라고요. 2000원으로 한 달을 살았어요.”아내 김순분씨는 “남편이 큰 사업을 한 것도 아니고 병원 총무과장 일을 하면서 한 푼 두 푼 모은 걸 기부하는 것”이라며 “누구든지 나누고 기부할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고 했다. 월급쟁이로 살면서 30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갖게 된 건 오래전 우연한 기회에 투자한 토지가 국가에 수용되면서 보상비를 잘 받았기 때문이다. 그 돈이 지금의 부동산 기초 자금이 됐고 현 시세가 30억 원이 됐다.남편 전씨는 “주님께서 벌어주신 돈이지 우리가 번 돈은 아니다”라고 했다. “딸 셋이 있는데 우리 부부가 물려주지 않아도 될 만큼 잘 살기에 자식에게 줄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아내 김씨는 “남편이 딸들에게 한 푼도 안 준다고 했을 땐 솔직히 엄마로서 섭섭하고 서운하기도 했다”며 “그래도 남편 뜻이 확고하고, 저 역시도 주님께서 주신 건 주님께 돌려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해 남편 뜻을 따랐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옆에 앉은 남편을 보며 “애들한테 조금이라도 주자니까”라며 말끝을 흐렸다. 아내 김씨는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다. 형제와 친척 중엔 사제와 수녀도 있다. 그런 아내와 결혼하기 위해 비신자였던 남편은 세례를 받았다. 혼인을 위한 세례였기에 남편은 곧바로 냉담자가 됐다. 그러다 2007년 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선 30년 냉담을 풀고 누구보다 열심한 신자가 됐다. 아내는 성가대 단장, 구역반장 등을 맡아 수십 년 봉사했고, 남편은 레지오 마리애에서 활동했다. 매일 성당에 가서 미사하고 기도하는 건 부부의 일상이었다. 미사는 물론 아침ㆍ저녁 기도를 빠트리지 않는다는 부부는 “저녁 기도는 항상 같이 바친다”고 했다. 딸들이 가족과 함께 놀러 와도 저녁기도 시간이 되면 온 가족이 모두 둘러앉아 기도한다. “모든 것이 감사하죠. 언제까지 살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지금 사는 집도 모두 기부하고 떠날 생각입니다. 성경에도 있지 않습니까.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쉽다고요. 가지고 있으면 뭐합니까. 어차피 갖고 떠날 것도 아닌데요.”부부는 21일 서울 명동 서울대교구청 손희송(바보의나눔 이사장, 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 집무실에서 손 주교에게 기부 증서와 감사패를 받았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평화신문2020.05.26

꾸준한 집필로 사랑 나누는 원로 사제… “글 쓰는 데 끄떡 없어”말씀의 365일, 삶의 뜨락에서 / 임덕일 신부 지음 / 가톨릭출판사 / 1만 5000원 사제관 한편에 있는 책상에 스탠드 불이 ‘탁’하고 켜졌다. 탈고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긴 손으로 눌러쓴 원고들 위로 빛이 드리워졌다. 수북이 쌓인 책들 사이로 자리를 고쳐앉은 사제가 말을 이었다. “제게는 ‘하면 된다’, ‘베풀자’라는 신념이 늘 자리하고 있어요. 책 읽고 쓰는 일을 하면 된다고 여겼고, 그간 많은 신자들에게 받아온 관심과 사랑에 대해 이것으로 나눔을 하는 거죠.” 그에게 집필 활동은 사랑이자, 나눔이다.2015년 은퇴 후 ‘집필 사목’으로 사제와 신자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전해오고 있는 임덕일(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 신부가 신간 「말씀의 365일, 삶의 뜨락에서」를 펴냈다. 은퇴 후 벌써 두 번째 책이다.임 신부는 고전 속 선현들의 금언(金言)을 신앙의 진리와 적재적소에 연결지어 풀이한 책을 선보여 왔다. 앞서 동양의 잠언으로 불리는 ‘채근담’(菜根譚)과 「명심보감」을 성경 말씀과 짝지어 펴낸 두 권의 책들은 독자들을 동서양 지혜를 한눈에 체득하도록 이끌어줬다.이번 신간은 임 신부가 그간 읽고 쓴 고전과 여러 자리에서 강론했던 원고들을 한데 추려 엮은 묵상집이다. 용서, 고정관념, 덕, 행복 등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일상 주제들을 임 신부가 다시금 성찰하고 요약한 단상과 성경 구절을 함께 담았다. 365가지 묵상글과 성경을 매일 읽고 되새길 수 있고, 관련 구절이 적힌 성경을 함께 펼쳐놓고 읽어도 좋다. 물질만 좇는 세태, 베풀고 이해하기보다는 운전하다가도 끼어드는 누군가에게 화부터 내는 현대인의 심성을 차분히 돌아보게 하는 다양한 글이 재미있게 엮였다. 모든 주제는 곧 ‘사랑’으로 귀결된다.임 신부는 “나름대로 요약하는 재주가 있어서 삶과 신앙의 깊이를 더해주는 내용들로 엮었다”면서 “날짜별로 정리된 매일 묵상을 읽고 새기기 쉽게 구성했다”고 전했다.책으로 더 많은 신자와 소통하게 된 임 신부에게 신자들을 향해 해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답은 “진짜 기도를 하자”로 돌아왔다.“우린 어느새 기복적인 신앙에 참 많이 젖었어요. 원하는 것, 돈, 물질, 그리고 내 삶을 더 풍요롭게 해주십사 하는 바람이 기도의 대부분이 돼버렸죠. 돈, 맛좋은 음식, 보약 속 하느님만 좇지 않습니까? 하느님 방식의 뜻을 인간의 방식으로 끌어내리고 있죠. 이것이야말로 ‘현대판 샤머니즘’이죠. 하느님께서 가진 것은 오직 ‘사랑’뿐인데, 얼토당토않게 다른 것만 달라고 보채는 격이죠. 하느님, 이웃과 사랑의 관계가 먼저죠. 사랑을 청하는 기도를 바치도록 노력합시다.”임 신부가 주머니에서 김수환 추기경 사진이 새겨진 작은 기도문 하나를 꺼냈다. 그는 “김수환 추기경님이야말로 책에서 언급하는 용서와 사랑의 가까운 표본이시다”면서 “지난 10년간 추기경님 삶과 영성을 알리기 위해 기도문을 만들어 전달해오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올해 추기경님 선종 10주년을 맞아 우리 교회가 추기경님 영성을 세계에 더 전하고자 전폭 힘쓰고, 나아가 그분이 가경자로 선포되도록 대대적으로 노력하면 좋겠다”고도 했다.파킨슨병 투병 중에도 매일 기도와 묵상으로 나온 이번 신간은 이미 교구 사제 800여 명에게 선물로 전달됐다. 벌써 내년에 펴낼 원고도 집필을 시작했다. 내년 사제 수품 50주년 금경축을 맞아 그는 자신의 저작권을 교회에 봉헌하겠다고 했다.“손이 점점 더 떨리지만 글 쓰는 데엔 끄떡없습니다. 힘닿는 데까지 후배 사제와 신자들에게 베풀고 싶습니다. 작지만 곰탕 한 그릇, 커피 한 잔 먼저 베푸는 게 제 작은 건강 비결이에요. 그러면 배로 갚아주시더라고요. 그게 사랑이고 나눔 아니겠습니까?”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cpbc2019.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