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55) 야고보를 비롯한 원로들의 조언 (사도 21,17-26)](//cpbc.co.kr/CMS/newspaper/2020/03/rc/774879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55) 야고보를 비롯한 원로들의 조언 (사도 21,17-26)“유다인을 얻기 위해 유다인처럼”… 정결 예식을 치르다 바오로의 선교 여행 지도. 출처=「주석성경」 마침내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오로는 야고보를 비롯해 예루살렘 교회의 원로들을 만나 그간의 활동을 보고하고 조언을 듣습니다. 바오로 일행이 예루살렘에 다다르자 예루살렘 신자들이 반갑게 맞이합니다.(21,17) 이로써 바오로는 3차 선교 여행을 마칩니다. 여기서 바오로의 선교 여행 전체를 잠깐 정리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3차 선교 여행을 마치다바오로는 1차 선교 여행을 안티오키아 교회의 파견을 받아 떠납니다.(13,1-3) 바오로(당시는 사울)는 안티오키아의 외항 역할을 하는 셀레우키아를 출발해 키프로스 섬으로 건너갔다가 소아시아 남쪽 페르게를 거쳐 내륙 지방인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이코니온, 리스트라와 데르베까지 갔다가 왔던 길을 되돌아 안티오키아로 돌아옵니다.(13,4─14,26) 「주석 성경」의 연표를 따르면, 바오로의 1차 선교 여행은 기원후 45~49년에 이루어집니다. 바오로는 1차 선교 여행에서 많은 사람을 제자가 되게 하는 성과를 거두지만 또한 반대하는 유다인들에게 적지 않은 박해도 받습니다. 1차 선교 여행의 경험은 예루살렘 사도 회의에서 다른 민족 사람들이 모세 율법을 지키는 문제와 관련한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칩니다.(15,12) 바오로의 2차 선교 여행은 1차 선교 여행지들인 소아시아 내륙 데르베와 리스트라 같은 도시뿐 아니라 갈라티아와 프리기아 지방을 다닌 후 에게해와 맞닿은 트로아스까지 갑니다. 그곳에서 환시를 보고는 사모트라케섬을 거쳐 유럽 대륙인 마케도니아의 네아폴리스로 갔다가 바로 필리피로 가서 선교합니다. 그리고 암피폴리스와 아폴로니아를 거쳐 테살로니카와 베로이아에서도 말씀을 전하지요. 거기에서 아테네로 내려왔다가 코린토로 가서 1년 6개월 이상 머물며 선교한 후 에페소를 거쳐 카이사리아로 건너와 예루살렘 교회에 인사하고 안티오키아 교회로 돌아갑니다.(15,36─18,22) 49~52년에 이뤄진 이 2차 선교 여행의 주목할 특징은 유럽 본토에 본격적으로 복음을 전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필리피, 테살로니카, 코린토가 그 대표 도시들이었고, 바오로가 이곳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들에는 그 신자들에 대한 바오로의 애정과 염려가 잘 드러납니다. 바오로는 3차 선교 여행에서 내륙을 통해 갈라티아와 프리기아 지방을 두루 거치면서 1차, 2차 선교 여행 때 찾았던 곳들을 들러 제자들을 격려한 후 에페소에서 3년 가까이 지내지요. 거기에서 다시 트로아스를 거쳐 2차 선교 여행지들인 마케도니아의 여러 도시를 거쳐 코린토에서 3개월을 머뭅니다. 거기서 거꾸로 마케도니아를 거쳐 트로아스로 건너오고 밀레토스를 통해 소아시아 남쪽 항구 도시 파타라에서 배를 타고 시리아 땅인 티로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프롤레마이스와 카이사리아를 거쳐 마침내 예루살렘에 다다름으로써 긴 여정을 마무리합니다.(18,23─21,17) 3차 선교 여행의 기간은 53~58년으로 가장 길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원로들의 인정과 염려예루살렘에 도착한 이튿날 바오로와 일행은 야고보를 비롯한 예루살렘 교회 원로들을 만나 인사합니다.(21,19ㄱ) 이 야고보는 예루살렘 사도 회의 때에 베드로의 의견을 뒷받침하며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지도자입니다. 바오로는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야고보를 “주님의 형제”, “교회의 기둥”이라고 불렀지요.(갈라 1,19; 2,9) 바오로는 원로들에게 자기의 선교 활동을 통해 “하느님께서 다른 민족들에게 하신 일들을 낱낱이 이야기했고” 이야기를 들은 원로들은 “하느님을 찬양”합니다.(21,19ㄴ-20) 원로들이 하느님을 찬양했다는 것은 바오로의 이방인 선교가 하느님의 개입으로 이루어졌음을 인정한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원로들은 바오로에 대한 염려도 함께 표명합니다. “당신이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사는 모든 유다인에게 모세를 배신하라고 가르치면서 자식들에게 할례를 베풀지도 말고 우리 관습을 따르지 말라고 한다는 이야기”를 수만 명이나 되는 유다인 신자들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을 열성적으로 지키고 있는 이 유다인 신자들에게는 바오로의 이같은 가르침이 몹시 거슬렸을 터인데 문제는 그들이 바오로가 예루살렘에 와 있는 것을 알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것입니다.(21,21-22) 바오로에게 생길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 원로들은 대안을 제시합니다. “서원을 한 사람” 넷이 있는데 그들을 데리고 가서 함께 정결 예식을 하고 그들이 머리를 깎을 수 있도록 그 비용을 대면 바오로가 “율법을 정확히 지키며 사는 사람”이라는 것이 알려지게 되어 일이 잘 무마될 수 있으리라는 것입니다.(21,23-25) 여기서 서원을 한 사람이란 ‘나지르인 서원’을 한 사람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지르인 서원을 한 사람들은 서원 기간이 차면 머리를 깎고 그에 따른 예물을 바치는 예식을 해야 했습니다. 바오로 역시 이방인 세계를 다니며 수많은 이방인과 접촉했기에 율법의 관점에서 보면 정결 예식을 치러야 하는 부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바오로도 정결 예식을 치르고 그 비용을 댐으로써 바오로가 율법을 열성적으로 지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라는 것이 예루살렘 교회 원로들의 주문이었습니다. 원로들은 이 말에 이어 이방인 신자들과 관련해서는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 피와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 그리고 불륜을 삼가라는 예루살렘 사도 회의의 결정을 덧붙입니다.(21,25) 바오로는 원로들의 조언을 따라 그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그들과 함께 정결 예식을 치른 다음 성전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정결 예식 기한이 차는 날, 곧 예물을 바칠 날을 신고합니다.(21,26) 생각해봅시다예루살렘의 원로들이 말하는 것처럼 바오로가 정말로 ‘다른 민족들 가운데 사는 모든 유다인에게 모세를 배신하라고 가르치고 자식들에게 할례를 베풀지도 말고 유다인 관습을 따르지 말라’고 했을까요? 바오로가 모든 유다인에게 그렇게 가르쳤다고 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하겠습니다.물론 바오로의 일차적 관심은 율법의 준수가 아니라 “하느님 은총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20,24)이었습니다. 실제로 바오로에게는 율법의 준수가 아니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은총이 훨씬 중요했습니다. 이 점은 특히 바오로가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지만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에서 바오로는 “나는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라면서 “유다인을 얻기 위해 유다인처럼…율법 밖에 있는 이들을 얻으려고 율법 밖에 있는 이들처럼 되었습니다” 하고 밝힙니다. 원로들의 조언을 받아 정결 예식을 치른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오로의 이런 태도가 열성적인 유다인들에게는 배신자로 비쳤을 것입니다. 원로들의 말 속에는 바오로에게 품고 있는 유다인들의 이런 감정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감정이 어떻게 표출되는지 다음 호에서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alfonso84@hanmail.net cpbc2020.03.11

영성 가득한 프로그램으로 떠나는 여름 휴가가톨릭평화방송 TV와 함께 여름철 특별한 휴가를 보내는 건 어떨까? 가톨릭평화방송 TV가 여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7월 cpbc TV 프로그램 안내명쾌한 성경 강좌 ‘최종훈 신부의 사도행전’ 장안의 화제, 명쾌하고 상쾌한 성경강좌.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 성서신학을 전공한 신약성경 전문가, 광주대교구 최종훈(토마스) 신부가 깊고도 재미있는 사도행전의 세계로 안내한다. 성경의 사건과 이야기들이 지금 여기 우리의 이야기로, 우리 가슴 안에, 삶 안에 살아 숨 쉬어야 함을 강조하며 시작된 강좌는 7월 16일 방송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이 갖는 의미와 사도행전의 세 가지 중심 기둥에 대해 살펴본다. 사도들의 행적을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최고의 사도행전 강의를 만나볼 수 있다. 방송 시간 : (화) 13:00 (수) 08:00 (목) 21:00 (토) 07:00 (일) 04:00 (월) 01:00 방청 안내 : 매주 (목) 19:30 서울대교구 이문동성당 사랑 가득한 현장 ‘원목일기’ 치유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질병으로 고통받는 모든 이들과 함께하는 한국 가톨릭의 대표 의료기관인 서울성모병원. 그 삶과 죽음이 교차하고 위로와 사랑이 꽃피는 현장에서 환자와 가족들, 그들을 돌보는 의료진과 교직원까지 모두가 하느님 안에서 치유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영성부 원목자들의 활동을 따라가 보자. 방송 시간 : (목) 09:00 (일) 13:00 (월) 17:00 (화) 03:00, 20:00 아름다운 신앙의 발자취, 미니시리즈 ‘순례’ TV를 통해 전 세계 가톨릭 명소를 순례하는 특별한 시간. 우리 믿음의 뿌리를 찾아 떠나는 해외 성지순례를 통해 하느님을 만나고, 그 안에서 우리의 신앙을 돌아본다. 가톨릭의 중심 바티칸, 유럽의 성모 발현지, 프랑스 솔렘수도원, 그리스의 초기 교회 유적지, 멕시코 과달루페 성모성지 등을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만날 수 있다. 7월 19일 첫 방송 된다. 방송 시간 : (금) 16:30 (일) 23:00 (화) 02:00 (수) 22:30 (목) 10:30 김수환 추기경 선종 10주년 영성 강좌 ‘바보에게 길을 묻다’ 김수환 추기경 선종 10주기를 맞아 김수환 추기경의 삶과 뜻을 되새겨 보는 영성 강좌 ‘바보에게 길을 묻다’. 이 시간에는 ‘바보’라는 말 속에 함축돼 있는 김수환 추기경의 삶과 영성을 되새기며 신앙인으로서 오늘을 사는 법을 모색해 본다. 김수환 추기경 연구소장 박승찬 교수가 ‘삶과 신앙’, ‘정의와 평화’, ‘사랑과 나눔’을 주제로 강의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를 주제로 가톨릭대 신학대 교수 박준양 신부의 강의가 이어진다 방송 시간 : (화) 07:00 (목) 14:00 (금) 01:00 (토) 09:00 (일) 03:00 교회음악 작곡가의 명작을 만나는 시간 ‘교회음악 Note’ 7월 17일 저녁 7시 30분 서울 중림동 가톨릭대학교 교회음악대학원 최양업홀에서 모차르트를 만나보자. 모차르트의 곡 소개와 해설을 통한 교회음악의 진수가 펼쳐진다. 방송 시간 : (화) 09:00 (수) 03:00 (목) 17:00 (일) 01:00, 22:00 (월) 23:00 생활성가의 향연 ‘찬양으로 기도하는 사람들’ 가톨릭평화방송 본사 1층에 새로 문을 연 바오로홀에서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30분 진행되는 생활성가 공연을 방송으로 만난다. (공연 관람 무료) 방송 시간 : (목) 23:00 (금) 09:00 (토) 10:00 (월) 03:00 (화) 17:00 도재진 기자 djj1213@pbc.co.krTV 편성표 cpbc2019.07.10

19세기 초반 천주교 신자들은 ‘야소(耶蘇)’를 ‘녀슈’로 읽었다[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25. 여사울은 예수골이었다 19세기 초반까지의 기록에서 천주교 신자들은 예수의 한자 표기인 야소(耶蘇)를 ‘녀슈’ 또는 ‘여슈’로 발음했다. 사진은 천진암메아리 사이트에 수록된 김학렬 신부의 논문 중 「성경직해」에 보이는 ‘여수’ 표기. ‘야소(耶蘇)’라 쓰고 ‘녀슈’ ‘여슈’로 읽다여사울의 이름에 대해 한 차례 더 써야겠다. 지난 10회 연재 글에서 한자 지명 호동리(狐洞里)에서 보듯 여사울은 여우골이란 의미이며, 당시에는 ‘여수골’ 또는 ‘여수울’로 불렸을 것이란 설명을 했었다. 여기에 한 가지 설명이 더 남았다. 「송담유록」의 발견으로 여사울이 여우골이라는 의미를 넘어 ‘예수골’로 불렸음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예수골은 예수쟁이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홍유한의 편지 등에는 여사울의 한자 표기가 ‘여호(餘湖)’와 ‘여사동(餘事洞)’, ‘여촌(餘村)’ 등으로 나온다. 하지만 「송담유록」은 ‘여소동(余蘇洞)’과 ‘야소동(邪蘇洞)’으로 표기했다. ‘야소(邪蘇)’ 또는 ‘야소(耶蘇)’는 예수의 한자식 표기이다. 당시의 발음으로는 ‘녀슈’ 또는 ‘여슈’로 읽었다. 「송담유록」은 앞에서는 여소동(余蘇洞)이라 적고 나서 뒤에는 두 차례나 야소동(邪蘇洞)으로 표기했다. 둘 다 음은 똑같이 ‘여슈동’이다. 19세기 초반까지의 기록에서 천주교 신자들은 한자 야소(耶蘇)를 ‘야소’로 읽지 않고, ‘여슈’로 발음했다. 그들은 ‘예수’님을 ‘여슈’님으로 불렀다. ‘여슈’가 ‘예수’로 정착한 것은 19세기 중반의 일이다. 그 가장 명확한 증거는 「사학징의」 뒤쪽에 부록으로 실린 「요화사서소화기(妖畵邪書燒火記)」에서 찾을 수 있다. 1801년 신유박해 당시, 5월 22일에 9명의 천주교인을 처형했다. 이때 관련자의 집에서 압수한 각종 천주교 서적과 성화 및 성물을 처형장 바로 곁에서 소각 처리했다. 「요화사서소화기」는 소각하기 전 압수품의 목록을 사람별로 정리해 목록화한 것이다. 한문 서적의 경우는 한자로 적었고, 한글로 언해한 책은 한글로 표기했다. 이 책 중 제목에 예수의 이름이 들어간 책자가 여럿 있었다. 그 표기는 다음과 같다. 「녀슈셩란쳠례(耶蘇聖誕瞻禮)」, 「녀슈셩호(耶蘇聖號)」, 「녀슈슌안도문(耶蘇受難禱文)」, 「공경여수셩심(恭敬耶蘇聖心)」, 「녀슈도문(耶蘇禱文)」, 「녀슈수란도문(耶蘇受難禱文)」. 괄호 안의 한자는 한글 표기를 한자로 유추해 적었다. 모든 책에 예외 없이 예수의 한자 표기 ‘야소(耶蘇)’를 ‘녀슈’로 읽었고 한 차례 ‘여수’로 읽은 예가 보인다. 이 밖에도 초기 교회 필사본에서 예수를 ‘녀슈’ 또는 ‘여슈’로 표기한 문헌은 남은 실물이 적지 않다.(김학렬, 「우리나라에서, 예수님의 이름은 여수님이었다」, 천진암 메아리에 수록된 논문 참조) 이렇게 볼 때, 강세정이 「송담유록」에서 여사울을 야소동으로 표기한 것은 당시 이 지역이 ‘여수동’이었고, 그 속뜻이 예수골임을 밝히려는데 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는 강세정의 악의적 왜곡이 아닌, 당시 은연 중 통용된 표기였을 것으로 본다.여사울의 예수 공동체앞에서 이존창이 1787년 여사울에서 상민과 남녀노소에게 천주학을 전하여 익히게 하다가 예산 현감 신사원에게 검거되어 천안 감옥에 갇힌 일을 말했었다. 「송담유록」의 제8단락은 다시 이렇게 적고 있다. “홍낙민은 또 이기양과 혼인으로 맺어서 몰래 서로 얽혀 호우(湖右) 지역에서 서교(西敎)를 행하였다. 천안 야소동(邪蘇洞)의 이존창은 성품이 자못 교활하고 영리한 데다 문자를 제법 알아 사학에 조예가 깊었다. 이 때문에 이기양과 홍낙민의 무리가 복심(腹心)으로 삼아 그 가르침을 널리 폈다. 또 오석충(吳錫忠)으로 하여금 사서(邪書)를 번역해서 언문 책으로 만들게 해 이존창에게 많이 보내주어, 그로 하여금 어리석은 천인들을 가르쳐 꾀게 하였다.”이기양과 홍낙민이 호우(湖右) 지역, 즉 충청남도 지역 교회의 실질적인 우두머리였고, 이존창이 그의 심복으로 실제적인 가르침을 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문제의 인물이 새로 등장한다. 이기양과 홍낙민이 오석충에게 천주교 서적을 한글로 번역시켜 책자로 만들게 해서 이존창에게 보내주게 했다는 것이다. 당시 이기양은 문의현감으로 현직에 있었고, 홍낙민은 충주로 이주한 상태였다. 오석충은 정약용이 「오석충묘지명」을 따로 남겼고, 그의 첫째 딸이 순교 복자 이경도 가롤로와 결혼하고, 둘째 딸은 권철신의 아들 권상문과 혼인했다. 1801년 천주교 신자로 윤장, 권상문과 함께 임자도로 유배 가서 그곳에서 죽었다. 정약용은 묘지명에서 멀쩡하게 둘인 그의 딸을 외동딸로 만들면서까지 그가 천주교 신자가 아니었다고 극구 변명해 주었으나, 여러 기록이 가리키는 지점에서 오석충은 틀림없는 천주교 신자였다. 그간 교회 서적의 한글 번역에 최창현 등의 이름이 나온 적은 있어도, 오석충이 번역자로 나온 기록은 「송담유록」이 처음이다. 이어지는 다음 단락은 여사울 공동체의 신앙 상황을 보여준다. “야소동은 온 동네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빠져들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 밖에 인근의 6, 7개 고을에서 야소동의 백성과 혼인을 맺은 상민들이 돌아가며 서로 전하여 익히니 몇백 명이 사학을 외워 본받는지 알 수조차 없었다. 그들의 무리는 모두 이문의(李文義:이기양이 앞서 문의 현감을 지냈다)와 홍정언(洪正言:홍낙민을 말한다)을 알았다. 대개 두 사람이 그 교리를 행하는 것을 주장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존창이 상민이었기 때문에 비록 무식하고 어리석은 백성에게 가르침을 행하였지만, 충청도의 사족(士族) 중에는 한 사람도 물든 자가 없었다는 점이다.”충청도 교회가 서울이나 양근, 충주 등지와 달리 양반 신자 없이 일반 백성 중심의 교회로 자리 잡은 이유를 지도자가 속량 노비 출신의 이존창이었던 데서 찾은 것이 흥미롭다. 여사울 공동체에 대한 다른 증언박종악(朴宗岳, 1735~1795)은 1791년 당시 충청도 관찰사로 있었다. 이 시점에 그의 관할 지역에서 진산사건이 터졌다. 「수기(隨記)」는 이 시기를 전후해서 박종악이 정조에게 올린 비공식적 보고 기록이다. 이 기록 속에 여사울과 이존창에 관한 이야기가 무더기로 나온다. 먼저 1792년 1월 3일자 보고다.“이존창은 본래 신창(新昌) 사는 성덕산(成德山) 집안의 사천(私賤)입니다. 어려서부터 홍낙민 형제와 더불어 공부하여, 자못 과거 공부를 익혔고, 가장 먼저 사술(邪術)에 물이 들었습니다. 마음을 쏟아 학습하고, 힘을 다해 꼬드겨서 미혹시켜, 친한 사람이면 요사스럽고 허탄한 주장으로 꾀어, 따라 배울 것을 권하였습니다. 따라 배우는 무리가 쉽게 풀이한 글을 가져다가 진서와 언문으로 베껴 전해, 점점 더 전파되니 따르는 자가 날마다 이르렀습니다. 대개 이존창은 홍씨 집안 제자 중에 문자를 알아 정통한 자로, 호서 사학에서 방서(方書)를 얻어 널리 퍼뜨린 자입니다.”성덕산은 덕산 현감을 지낸 성덕형(成德馨, 1682~?)을 가리키는 듯하다. 이존창이 애초에 성덕형 집안의 종이었다면 앞서 강세정이 홍낙민이 속량시켜준 종의 아들이라고 한 말과는 상치된다. 무언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정이 있을 것이다. 이들의 공동체에 대해서는 또 이렇게 썼다. “종으로 사학을 본받아 배우는 자는 그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대가 없이 양민으로 놓아주었고, 이웃으로 사학을 따르는 자는 그 곤궁함을 불쌍히 여겨 옷과 양식을 마련해주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가까운 데서부터 먼 데까지 이 말을 들은 자들이 문득 기뻐하였습니다.” 신분에서 자유롭고, 차별을 떠난 초기 교회 신앙 공동체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노비가 믿겠다고만 하면 노비 문서를 불태워 양민이 되게 하고, 그 모습을 본 이웃들은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의식주를 도와주며 공동체의 일원으로 기쁘게 받아들였다. 한 번도 본 적 없고, 이전에 상상해본 적도 없는 실험이 이들 내부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같은 일은 입소문을 타고 순식간에 원근으로 퍼져 나갔다. 이어지는 기록은 또 이렇다. “대저 사술을 하는 자들은 서로를 교중(交中)이라 부르면서 종과 주인이 존비의 구분이 없고, 멀고 가까움에 친하고 소원한 구별이 없습니다. 남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반가(班家)의 아낙들도 언문으로 풀이하여 이를 읽고, 상천(常賤)의 어리석은 아낙들은 입으로 가르침을 받아 이를 외워, 노소도 없고 장유(長幼)도 없이, 한번 이 사술에 빠지기만 하면 미혹되지 않음이 없습니다. 시험 삼아 반가의 아녀자로 말한다면, 가령 길가는 사람이 사학을 한다고 제 입으로 말할 경우 성명이나 거주도 묻지 않고, 양반인지 상놈인지도 따지지 않고, 모두 들어와 내실에서 만나보기를 허락하고 큰 손님처럼 공경하며, 가까운 친족같이 아낍니다. 거처와 음식도 달고 쓴 것을 똑같이 합니다. 떠날 때는 또 노자까지 줍니다.” 사학하는 이들에게 투전이나 윷놀이를 하자고 시험해보고, 농담이나 욕설로 도발해도, 아예 하려 들지 않을 뿐 아니라 대꾸조차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보인다. 이들은 도덕적으로도 대단히 엄격한 규율 속에 행동하고 있었다.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 cpbc2020.11.04

중국 가톨릭 자선단체, 보편 교회에 의약품 지원 호소유일한 가톨릭 구호기구 ‘진데 채리티’
의약품 수요 감당 못하는 실정 전해
정부는 비상사태 속 종교 활동 제재
필리핀 마닐라의 한 성당에 모인 신자들이 마스크를 쓰고 미사에 참여하고 있다. 전 세계로 퍼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중국을 비롯한 중화권 교회가 확산 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CNS】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중국 교회 내 상당수 교구가 미사 등 종교 활동을 일시 중단한 가운데, 중국에서 유일한 가톨릭 자선단체인 ‘진데 채리티’(Jinde Charity)가 세계 보편 교회에 마스크 등 의약품 지원을 호소하고 나섰다.진데 채리티는 2일 ‘중국으로부터의 긴급 호소’라는 제목의 메시지를 내고 “중국 내 약품이 심각할 정도로 부족하다. 위험할 정도로 의료 물자도 부족한 상황”이라며 다급한 현지 사정을 전했다. 카리타스(Caritas) 중국지부가 없는 상황에서 중국에서는 2006년부터 진데 채리티가 유일한 가톨릭 국제 구호기구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중국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연일 사망자와 확진자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진데 채리티가 ‘마스크와 의약품 부족’을 겪는 위급한 상황을 보편교회에 알리고 나선 것이다.진데 채리티는 메시지에서 “보편 교회를 통해 중국 내 최전방에서 종사하는 의료진들을 위한 보호복과 마스크, 의약품을 조달받고 싶다”고 전했다. 그는 “중국 정부가 보호장비 생산 등으로 바이러스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급증하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의료진과 의약품 부족으로 이를 돕고자 하는 교회 신자들마저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한편, 중국 정부가 중국 내 가톨릭 교회들에 장례 미사 거행을 금지하라고 지시했다. 중국 정부는 사제들을 향해 특히 종교 시설 외에서 장례 미사를 금지토록 규정했다. 그러면서 유가족 외에 10명이 넘는 인원이 장례 미사에 참석해 성경을 낭독하거나 성가를 부르는 행위를 못하도록 했다. 이 같은 조치는 중국 정부가 2월부터 정식으로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종교 단체들의 활동을 제재키로 한 데 따른 것으로, 중국 교회 신자들은 이번 제재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틈타 중국 정부가 ‘물타기 제재’를 가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이에 중국 허난성과 산둥 지방의 사제들은 “당국의 조치를 지키지 않으면 처벌과 함께 교회를 폐쇄하고 사제 자격증을 반납시키는 조치를 할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가 집에서 성사를 지키고, 장례 미사도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한편, 교황청은 3일 중국에 60만~70만 개에 이르는 보호 마스크를 중국에 기증했다고 밝혔다. 마스크 지원은 교황청과 중국 교회가 함께 기금을 출현해 추진됐으며, 중국 남방항공 등 항공사들은 무료로 물자를 배송했다. 이정훈 기자 평화신문2020.02.12
![[성당에 처음입니다만] (27) 왜 꼭 일요일에 성당에서 미사해야 하나요](//cpbc.co.kr/CMS/newspaper/2019/09/rc/762480_1.0_titleImage_1.jpg)
[성당에 처음입니다만] (27) 왜 꼭 일요일에 성당에서 미사해야 하나요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기념하는 ‘주일’ 주일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주간 첫날’이다. 가톨릭교회 신자들은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인 주일을 거룩히 지내며 미사 안에서 모든 이와 함께 자비와 사랑을 나눠야 바람직하다. 나처음 : 추석 연휴 때 언해랑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일요일에 언해가 성당에 가서 미사를 해야 한다고 해서 낯선 여행지에서 성당을 찾는다고 고생했습니다. 미사 때문에 둘 만의 시간을 빼앗긴 듯해 기분도 상했어요. 가톨릭은 왜 일요일에 신자들을 성당에 꼭 나오게 하나요.조언해 : 글쎄, 지금처럼 종일 여행 와서 성당 미사에 참여한다고 투덜거리는 거 있죠. 까닥하면 싸울뻔했어요. 라파엘 신부 : 모처럼 떠난 여행인데 종교적 문제로 자칫 다툼이 있었을 뻔했구나. 그래서 처음이가 아직도 삐쳐 있구나. 오늘은 가톨릭 신자는 왜 주일에 미사 참여를 해야 하는지 설명할게. 먼저, 주일이 어떤 날인지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겠지. 가톨릭 신자는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해요. 말 그대로 ‘주님의 날’이지. 라틴말로는 ‘디에스 도미니쿠스’(dies Dominicus)라고 해. 주일은 교회가 아무렇게나 택한 날이 아니란다. 또 구약성경에 나오는 유다인의 안식일을 교회가 가져와 단순히 다음날로 이동시킨 것은 더욱더 아니란다. 주일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이야. 하느님께서 6일간의 창조 사업을 마무리하시고 7일째 되는 날 쉬신 ‘안식일’이 아니고 주님께서 부활하신 ‘주간 첫날’(마르 16,2)이 바로 주일이야. 가톨릭교회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이날을 모든 날 중의 첫째 날로 기념한단다. 또 이날을 예수님께서 부활을 통해 새로운 창조를 이루신 ‘첫날’, 부활을 통해 세상의 빛이요 인류의 빛이 되신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빛의 날’, 정의의 태양이 되신 ‘태양의 날’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그래서 주일에는 모든 가톨릭 신자가 의무적으로 성당에서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미사를 봉헌해야 해. 주일에 왜 미사를 봉헌해야 하고 신자들은 참여해야 하는지 그 이유도 궁금하겠구나. 한마디로 정리하면 교회 탄생이 주님의 부활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생일이나 기일을 기념하는 것처럼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을 기념해 그 날을 거룩하게 지내며 미사를 봉헌하는 게 당연하겠지. 그래서 교회는 “주일은 신자들의 신심을 일깨워 주는 최초의 근원적인 축일”(「전례헌장」 106항)이라고 한단다.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에 함께 모여 미사를 봉헌한 것은 교회가 시작한 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중단없이 지속되고 있단다. 교회는 주일 미사를 거행하기 위해 한데 모이기를 결코 게을리한 적이 없어요. 신약성경은 초대 교회 때부터 주일에 신자들이 모여 ‘성경 전체에서 그분에 관한 기록을’(루카 24,27) 읽고, ‘그분 죽음의 승리와 개선을 재현하는’ 성찬례를 거행하고, 동시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말로 다할 수 없는 선물을 주시는 하느님께’(2코린 9,15) 감사를 드리고, 성령의 힘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있다’(에페 1,12)고 증언하고 있지. 또 바오로 사도와 트로아스의 신자들이 주간 첫날에 빵을 떼어 나누려고 모였고(사도 20,7), 또 성도들을 위한 모금을 매주 첫날에 저마다 형편이 닿는 대로 얼마씩을 자기 집에 따로 모아 두었다(1코린 16,1-2)고 전하고 있단다. 주일 미사 참여 의무가 교회법적으로 처음 언급된 것은 300년부터 303년까지 열린 엘비라 교회회의에서야. 엘비라 교회회의에서는 주일에 농사일을 제외하고 모든 일을 금하고 미사에 참여하도록 규정했지. 이를 ‘파공법’(罷工法)이라고 해. 6세기부터 13세기까지 교회는 더욱 엄격하게 파공법을 규정해 주일 미사에 신자들이 참여할 것을 명하고, 파공법을 어길 경우 중죄로 규정하기까지 했단다. 오늘날 교회법은 주일 미사에 참여할 것과 주일에 육체노동을 하지 말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부득이한 경우 이 의무에서 면제해 주고 있단다. 가톨릭 신자는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인 주일을 거룩히 지내며 미사 안에서 모든 이와 함께 자비와 사랑을 나누는 연대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바람직하단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cpbc2019.09.17

그리스도인의 삶 보여주는 거룩한 표징 ‘미사’[미사의 모든 것] (9)미사는 성사이다 미사가 처음 재개됐던 4월 23일, 마스크를 쓴 신자들이 1~2m 간격을 두고 명동대성당 회중석에 자리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조언해: 요즘 가까운 사람들을 만날 수 없어 너무 불행해요. 친구는 물론, 주일학교 교사인데도 올해 아이들을 한 번도 만날 수가 없었어요. 전염병 예방도 중요하지만 만남과 소통이 있어야 사람 사는 사회가 될 것 같아요. 나처음: 코로나 방역이 이젠 일상이 되었어요. 마스크를 하지 않은 사람을 보면 눈살을 찌푸리게 되고, 사람 많은 곳은 아예 가려 하지 않으려 하니까요.라파엘 신부: 20세기 저명한 신학자인 예수회 칼 라너 신부님은 “일상을 일상으로 두라”고 말씀하셨지. 가장 사소한 일에도 하느님의 숨은 은혜와 인간다운 삶의 참다운 본질이 내포돼 있다는 말씀이지. 참으로 인간다운 삶이란 더없이 진지한 자유 안에서 하느님을 향한 믿음과 희망, 사랑으로 드러나는 영원한 하느님의 무게를 지닌 삶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게 중요해. 조언해: 주일 미사 참여가 예전처럼 일상이 되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어요.라파엘 신부: 나도 그러길 바란단다. 일상사가 짜증을 내게 하는 것은 우리가 짜증스럽게 받아들이기 때문이야. 일상이 우리를 무디게 만드는 것 또한 단지 우리가 일상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야. 우리가 주일 미사에 참여하는 것도 우리 힘이 아닌 하느님의 은혜로 우리를 준비시켜 준 것임을 깨달을 때 우리의 일상이 훨씬 소중해지는 것이지. 나처음: 결국, 항상 하느님을 인지하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라파엘 신부: 우리가 주님의 가르침대로 살지 못하고, 현실이 그러하지 못하더라도 하느님의 은총으로 우리의 일상이 거룩해질 수 있다는 것이지. 그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일상적 형태인 인내의 태도, 성실과 공평, 책임감의 태도, 사랑이 깃드는 몰아의 태도야.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전염병이 창궐할 때 사회의 방역 지침을 철저히 지킬 뿐 아니라 근원적으로 하느님이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깊이 고민하고, 교회 안에서 교회를 통해 시대의 징표를 읽고 공동선을 위한 삶을 살아가야 해요. 미사가 바로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삶과 일상을 보여주는 가장 ‘거룩한 표징’이지.나처음: 미사가 그리스도인 일상의 표징이라는 건 억지 아닌가요?라파엘 신부: 사람은 몸을 보고 영혼을 알고, 지상에서 행해지는 것을 보고 영적이고 숨겨진 것을 깨닫지. 하느님을 믿고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안 보이는 것을 은혜로 보고’, ‘거룩한 표징’을 깨치고 받아들여 체현하는 생활을 우선으로 익혀야 해. 이를 교회는 ‘성사’라고 표현한단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사와 같다. 교회는 곧 하느님과 이루는 깊은 결합과 온 인류가 이루는 일치의 표징이며 도구이다. 인간과 하느님의 깊은 일치를 이루는 성사가 되는 것, 이것이 교회의 첫 번째 목적”(775항)이라고 설명하고 있지.조언해: 교회 안에선 ‘신비’라는 말도 쓰는데 성사와 신비는 다른 뜻인가요.라파엘 신부: 초기 교회 신학자들이 사용했던 헬라어 ‘μυστηριον’(미스테리온)은 ‘신비’(mysterium)와 ‘성사’(sacramentum)라는 두 가지 말로 번역된단다. 신학자들은 ‘성사’는 ‘신비’가 가리키는 구원의 감추어진 실재에 대한 표징을 더 눈에 보이도록 표현한다고 설명하지.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신비’를 눈으로 볼 수 있는 표징으로 드러내는 것이 바로 ‘성사’라고 할 수 있지. 그래서 성체, 세례, 견진, 고해, 성품, 혼인, 병자 등 교회의 일곱 가지 성사는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 그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은총을 펼치시는 표지이며 도구라고 교회는 고백하고 있단다. 나처음: 어머니가 자녀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세세히 가르쳐주는 것처럼 교회도 성사를 통해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 그 신비를 가르쳐 준다는 것이군요.라파엘 신부: 바로 그거야. 우리의 인생에는 위대한 신비가 담겨 있단다. 그것이 가장 평범하고 가장 일상적인 행위라 해도 깊은 뜻을 품고 있다고 했지. 우리가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셨다는 현실을 더는 파악할 줄 모르면 어떻게 될까? 아무런 뜻도 없는 말을 하고, 그 뜻을 깨치지 못하는 몸짓만 하게 된다면 우리 인생은 어떻게 될까? 하느님, 은총, 그리스도, 교회, 신앙 이런 말을 하면서 우리가 그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니. 그래서 어머니가 자녀에게 삶의 지혜를 일깨워 주듯이, 거룩한 표징인 성사를 통해서 하느님과 일치하는 길을 제시해 주는 거란다. 나처음: 그러면 미사는 하느님의 어떤 거룩한 표징을 드러내는 성사인가요?라파엘 신부: 주님의 수난과 부활을 기념하는 ‘성체성사’이지. 주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수난 전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하신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성체성사를 세우셨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이 성체성사를 거행할 것을 사도들에게 명하셨지.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세우실 때 하신 말씀은 성경에 잘 기록돼 있단다. 마태오ㆍ마르코ㆍ루카 세 권의 공관 복음서와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에서 우리에게 성체성사의 제정에 관한 주님의 말씀을 전해주고 있지. 그중 루카 복음의 내용을 들려주마. “예수님께서는 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사도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루카 22,19-20) 주님께서 행하신 이 예식은 오늘도 우리가 미사를 거행할 때 이루어지고 있단다.조언해: 신부님, 좀 전에 미사에 참여하는 것도 우리 힘이 아닌 하느님의 은혜로 우리를 준비시켜 준 것이라고 하신 것처럼 성사에 참여하려면 우리 스스로도 그에 합당한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요.라파엘 신부: 아주 중요한 말을 해 주었구나. 성사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려면 몸과 마음의 준비를 잘 갖추어야 한단다. 너희도 입학, 졸업식 때나 데이트를 할 때 가장 예쁘게 꾸미지 않니! 그런데 하느님을 만나러 주님의 집에 가는데 아무렇게나 하고 가면 예의가 아니겠지. 또 우리가 공연이나 전시장을 갈 때도 프로그램을 꼼꼼히 살피는 것처럼, 미사도 마찬가지야. 그 날의 독서와 복음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어떤 지향으로 미사에 참여할 것인지 미리 준비해 가는 것이 중요하단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사에 참여하기 전에 우리 각자의 허물을 살펴 뉘우치고 하느님께 고백하고 이웃과 화해하는 회심의 마음을 갖추어야 한단다. 우리의 마음을 하느님과 이웃을 향해 활짝 여는 겸손의 자세를 갖추어야 해. 우리 몸은 그 전체가 영혼의 도구이며 표현이야. 영혼은 제집에 들어앉아 있는 사람처럼 그저 몸 안에 머물고만 있는 게 아니라 지체 하나하나에서 속속들이 작용해. 영혼은 몸의 모든 선과 자태와 움직임에서 드러나. 그러므로 우리가, 즉 우리의 몸과 영혼이 하느님 앞에서 환희와 감사로 기뻐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선 우리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이 중요해요.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0.09.09
![[사도직현장에서] 주님 사랑,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시기에](//cpbc.co.kr/CMS/newspaper/2020/01/rc/771052_1.1_titleImage_1.jpg)
[사도직현장에서] 주님 사랑,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시기에정월기 신부(서울대교구 광장동본당 주임) 정월기 신부 신자들이 성경을 묵상하고 나누는 것을 볼 때에 발견한 것이다. 말씀으로 오신 주님은 하늘나라의 잔치를 베풀고 초대하지만, 어떤 신자들은 문밖에서 그 잔치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고 들어가지 않는다. 주님은 착한 목자로서 잃어버린 양을 찾아 헤매시고,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과 나병 환자들에게까지도 다가가셔서 하느님 나라의 풍요로움에로 초대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 앞에만 서면 주님의 풍요로운 은총으로 충만해지려는 생각보다는 내가 잘살았는지를 따지고, 죄가 있는지 없는지에 초점을 맞추며, 자신들의 약점과 죄를 살피다가 정작 하느님 사랑에 머물지 못하고 하느님의 풍요로운 사랑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다.명절이 되어 자녀들이 부모님을 방문했다. 한 집은 부모님이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은혜를 뒤돌아 보며 아름다운 이야기꽃을 피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나, 다른 한 집은 자신들이 부모님께 드린 선물이 사랑의 전부인 양 자랑하였고, 반면에 가난한 형제는 내세울 것이 없어 기가 죽어 있었다.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드리는 것은 무엇인가? 부모님께 물적인 선물을 드리는 것보다 부모를 더 기쁘게 하는 것은 부모님의 은혜를 헤아리는 마음이다.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에게 무언가를 해드리는 것보다는 당신이 우리에게 한없이 베푸신 사랑에 머물기를 바라신다.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호세 6,6)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1요한 4,10)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때 비로소 사랑을 알게 된다.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1요한 4,12) 재산을 탕진한 아들이 돌아왔다고 잔치를 베푸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큰아들이 되지 말아야 한다.(루카15,11-32)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양 백마리 중에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게 되면 기뻐하시는 주님의 기쁨에 참여하도록 하자.(루카 15,4-6 참조)정월기 신부(서울대교구 광장동본당 주임) 평화신문2020.01.15
![[교부들의 사회교리] (44)배부른 교회에게](//cpbc.co.kr/CMS/newspaper/2019/11/rc/766088_1.0_titleImage_1.jpg)
[교부들의 사회교리] (44)배부른 교회에게양적 성장에 매달리지 말고 쇄신하라 최원오 교수 신앙인이 늘어날수록 신앙은 줄어듭니다. 자식이 커갈수록 그 어머니는 약해집니다. 교회여, 그대는 번식력이 커질수록 허약해졌습니다. 그대는 나아가면서 뒷걸음질칩니다. 그대 교회는 힘 때문에 약해진다는 말입니다. 그대는 종교의 이름은 달고 있지만, 종교의 힘은 지니지 못한 구성원들을 온 세상에 퍼뜨렸습니다. 신자는 풍성해졌지만, 신앙으로는 가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신자 수가 많아질수록 신심은 더욱 빈곤해집니다. 몸집이 커질수록 영혼은 더 쪼그라듭니다. 더 커졌으나 실상 더 작아졌다는 말입니다. 금시초문의 발전과 퇴보를 거듭하며 그대 교회는 증가하는 동시에 감소합니다. 그대의 훌륭한 모습과 온몸의 아름다움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사도 4,32)는, 그대의 살아 있는 덕행에 관한 가장 거룩한 그 증언은 어디 있습니까? 아, 괴롭고도 안타까워라, 지금 그대 교회는 누구의 것인지! 그대는 성경을 읽기만 할 뿐 덕행은 간직하지 않습니다. 그대는 성경 지식에만 관심이 있을 뿐 양심은 없습니다. 실제로, 지금 그대의 자녀 가운데 많은 이는 죽음을 부르는 일의 장사치들입니다. 장사꾼과 여관 주인처럼 지옥의 것이라 할 세속 일에 매달리고, 허망하고 파멸적인 것에 열을 올립니다. 그들은 번 돈으로 인생의 손실을 구매합니다.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얻기 위해 자기 것은 탕진합니다. 상속자들에게는 잠깐의 기쁨을 줄 뿐 재산을 모은 이에게는 오랜 슬픔을 줄 불행한 보화를 땅에 맡깁니다. 자신은 물론 다른 이들도 현세 재화를 이용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지옥의 부를 지하창고에 몰래 숨기면서, 자기 돈과 함께 자신의 희망도 묻어버립니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 6,21)고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신 대로입니다.(마르세유의 살비아누스, 「 교회에게」 1,4-5)복음화에 관한 비판적 성찰수사 신부였던 마르세유의 살비아누스 교부(400~480년경)가 쓴 「교회에게」의 한 대목이다. 사회적 불의와 온갖 착취에 시달리던 가난한 민중의 삶을 외면한 채 양적 성장에만 매달리던 배부른 교회를 향해 던진 충심의 ‘돌직구’다. 교회의 외적 성장과 통계 수치를 복음화로 착각하지 말라는 교부 시대의 소중한 증언이다. 살비아누스는 복음적 열망에 사로잡힌 나머지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준 다음 한평생 수도승 생활에 투신했다. 이론을 중시하던 신학 풍토에서 오랜 세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그의 사회적 가르침이 지난 50여 년 동안 새롭게 조명되면서 살비아누스는 카파도키아 삼총사(대 바실리우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암브로시우스와 더불어 사회정의를 위한 교회의 책무를 일깨워준 대표적 교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가난한 교회를 향한 꿈가진 것을 가난한 이들과 함께 나누고 공유하는 연대와 환대의 공동체에 관한 사도행전 4장의 증언은 살비아누스의 교회적 이상이었다. 당시 민족대이동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워지고 양극화되자 살비아누스는 부자들의 탐욕을 모질게 꾸짖으며 교회 쇄신을 외쳤다. 성직자·수도자는 물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고자 하는 모든 부자는 재산을 기꺼이 포기하라고 권고했다. 가진 것을 자발적으로 나누는 가난한 교회를 향한 오랜 꿈이 생생하게 보존된 교부 문헌이다.최원오(빈첸시오, 대구가톨릭대 유스티노자유대학원장) 평화신문2019.11.06
![[태아의 생명을 지켜주세요] 생명 지킴이 릴레이 인터뷰 (2)성경자 수녀 (서울시 꿈나무마을 연두꿈터 시설장)](//cpbc.co.kr/CMS/newspaper/2019/03/rc/748279_1.0_titleImage_1.jpg)
[태아의 생명을 지켜주세요] 생명 지킴이 릴레이 인터뷰 (2)성경자 수녀 (서울시 꿈나무마을 연두꿈터 시설장) 아이 미래를 섣불리 판단해 생명 해치는 것이 옳은가25년 동안 엄마로 살아왔다. 누구의 아내도, 누구의 진짜 엄마도 아니면서. 수도복을 입고 밤낮으로 아기들 기저귀를 갈아주고 씻기고 먹였다. 갓 탯줄을 끊고 세상에 나온 따뜻한 아이, 기어 다니는 아이, 걸음마를 하는 아이…. 누구 하나 빠질 것 없이 남녀의 사랑으로 세상의 빛을 본 생명이지만 사랑을 나눈 부모들은 일찌감치 떠났다. 이유는 이랬다. 키울 용기가 없어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학교에 다녀야 해서, 남의 시선이 두려워서…. 그 부모가 떠난 뒤안길에서 성경자(데레사, 마리아수녀회) 수녀는 아기들을 들꽃처럼 정성껏 키워냈다. 아기들의 옹알이를 받아주고, 엉덩이를 토닥이며 수도복으로 파고드는 아이들을 안아줬다. 엄마 수녀, 아이들 크는 모습 보며 생명의 고귀함 느껴 성 수녀는 1983년 입회해 마리아수녀회가 운영해온 부산 마리아영아원에서 영유아를 돌보다가 2014년 서울에 왔다. 서울 관악구에 있는 베이비박스에 한 해 200명이 넘는 아기들이 들어오자, 서울시는 마리아수녀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마리아수녀회는 2014년 12월, 베이비박스로 들어오는 아기들을 돌보기 위해 영유아전담보호생활관을 개원했다. 2016년 1월 연두꿈터로 간판을 바꿔 달았고, 현재 7세 미만의 미취학 아동 48명이 생활하고 있다. 이들은 연두꿈터를 시작으로, 초록꿈터ㆍ파란꿈터로 옮겨 생활하다 만 18세가 되면 자립한다. “아이들은 구김살 없이 잘 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장하면서 부모에게 버려졌다는 사실로 아이들은 심리적 고통을 겪습니다. 하지만 심리적 고통을 피하자고, 태어날 기회를 앗아가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성 수녀는 논란이 되고 있는 낙태죄를 언급하며,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제가 엄마 수녀로 아이들을 많이 키워봐서 엄마 마음을 압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보람과 기쁨은 희생과 극기에서 오는 어려움을 뛰어넘습니다. 누워 있던 아이가 몇 달 사이에 기어 다니고, 또 일어나 걷는 모습을 보면 생명에 대한 고귀함을 느낍니다.” 부산 마리아영아원에서 소임을 맡던 시절 IMF 사태가 터지면서 아이들이 물밀듯 들어왔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아이를 양육할 수 없어 부모들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이었다. 성 수녀는 “직원들을 모두 퇴근시키고 나면 잠들기 전까지 아이들이 내 치맛자락에 다 붙어 있었다”면서 “저녁기도도 못하고 녹초가 돼서 아이들이 잠든 후에야 숨을 돌린 적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성 수녀는 부모에게 버림받고도 꿈나무마을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행복하게 사는 졸업생이 많다고 했다. 여행사를 차린 한 졸업생은 자신을 키워준 엄마 수녀들에게 해외 성지순례를 보내주며 ‘효도’하고 있다. 김병지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도 마리아수녀회 수녀들이 키웠다. 성 수녀는 “임신이 된 상황이 행복하지 않다고 해서 태어날 아이의 행복까지 보장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며 “가끔 온전히 사랑받기 어려운 가정으로 귀가하는 아이들을 보면 이곳에서 키우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고 털어놨다. “여기 오는 애들은 복 받았다고 해요. 불행한 가정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사는 것보다 나으니까요.” 생명존중 의식 약화는 교육 문제와 연결돼 있어 성 수녀를 비롯한 마리아수녀회 수녀들은 수녀회 설립자인 소 알로이시오 몬시뇰(Aloysius Schwartz, 1930~1992)의 육성 강론을 테이프로 듣고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특별했던 몬시뇰의 마음을 수혈한다. 몬시뇰은 수녀들에게 “특별한 사랑은 제일 부족한 아이에게 주라”는 당부를 많이 했다. 사랑이 제일 부족한 아이가 ‘1등 예수님’이라고 강조했다. 성 수녀는 “요즘 세대, 요즘 사람들 마음에 생명 존중 의식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면서 “이건 교육의 문제와 연결된다”고 지적했다. “1960년대 정부가 산아제한정책을 주도한 것도 사실 생명의식을 약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지요.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식의 구호를 써가면서 국민들을 세뇌했지요. 그 여파가 아직도 있다고 봅니다.” 성 수녀는 “돌아보니 힘들어도 내 손으로 아이를 키운 시간이 행복했다”며 “많은 젊은이가 출산과 양육에 대해 부정적인 뉴스를 접하고, 미리 겁먹고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미혼모 요한이 엄마의 편지제가 아이를 살린게 아니라, 아이가 저를 살게 해요처음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제일 먼저 신비로움과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사귀었던 연인과 이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임신은 기쁨의 신비에서 ‘현실의 논쟁’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임신한 지 10주차에 산부인과에 가서 아이의 심장박동 소리를 처음 들은 순간 알 수 없는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너무 벅차고 사랑스러운 그 박동 소리를 들으며 내 배 속에 또 다른 한 생명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저와 하나인 듯하지만, 완전히 다른 신비로운 한 존재였습니다. 처음부터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암암리에 낙태에 대해 허용적이었으며, 그것이 오히려 그 아이를 위하여 더욱 좋은 길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제가 마음만 먹는다면 나를 버린 남자에게 시련 당한 시간도 잊게 될 테고, 더 멋진 인연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속삭였습니다. 그래서 유명 산부인과에 전화해서 예약을 잡았다 취소했던 날들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열 달 동안 아이를 품으면서 많은 갈등과 위험한 생각 속에서 헤매면서 제가 하느님께 드렸던 간절한 기도는 ‘이 아이를 사랑하게만 해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아이를 키우기에 앞서 사랑할 자신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던 출산의 불안함, 출산 이후의 벌어질 일들에 대한 두려움은 아이를 낳고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깨끗이 사라졌습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저는 자연분만을 하게 되었고, 7시간 동안의 진통 끝에 출산해 아기를 가슴 안에 받아 안았습니다. 그 순간 제 아들 요한이는 제 삶 깊은 곳,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와 선물이 되어주었습니다. 의사가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 한마디 하라고 하더군요. 저는 “미안해”라는 말이 가장 먼저 나왔습니다. 엄마 배 속에서 마음 편치 않게 고생시켜서 미안한 마음, 잠깐 고민해서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엄마의 부족함을 보속하는 마음으로 아이의 한평생을 지지해주고 사랑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태어나자마자 계획에도 없던 모유 수유를 했습니다. 출산 후 자연스럽게 젖이 나와 모유 수유를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젖을 물리는 방법도 서툴고, 어색해서 거부감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그 반짝이는 눈을 저와 맞추며, 한입이라도 먹으려고 얼굴과 온몸의 작은 근육들을 사용하여 젖을 먹는 모습을 보며 저는 모유 수유를 지속하게 되었습니다. 모유 수유를 하면서 ‘모유’는 하느님께서 엄마와 아이를 끈끈하게 해주는 사랑의 선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지금 아이를 양육하며 느끼는 바는 제가 아이를 살린 것이 아니라, 아이가 저를 살게 한다는 것입니다. 삶이 때론 고단하지만, 의미 있는 것은 진실한 사랑을 나눌 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갑니다. 단독 양육모라는 가정의 형태도 생명을 돌보는 보금자리입니다. 오히려 주변에서 지나치게 염려하며 바라보는 시선들이 단독 양육모들의 삶을 지치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편안하게 받아들여져야 하기까지는 우리의 시간과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귀한 ‘모성’이라는 아름다운 선물을 삶으로 받아들이고 산다면, 하느님께서는 그 진실에 보답해주심을 믿습니다. 아멘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문채현2019.03.13

구마 사제가 명쾌하게 알려주는 ‘악마와의 싸움’구마 사제 / 체사레 트루퀴·키아라 산토미에로 지음 / 가톨릭출판사 / 1만 3000원 가톨릭교회는 악마가 존재한다고 단언한다. “우리의 첫 조상들이 불순명을 선택하게 된 배후에는, 하느님을 거스르는 유혹의 목소리가 있었다. 그 목소리는 질투심 때문에 그들을 죽음에 빠지게 하였다.”(창세 3,1-5 참조) 성경과 교회의 성전은 그 목소리에서 사탄 또는 악마라 불리는 타락한 천사를 본다. 교회는 그가 본래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선한 천사였다고 가르친다. “악마와 모든 마귀는 하느님께서 본래 선하게 창조하셨지만, 그들 스스로 악하게 되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391항)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에 “악마의 존재는 성경의 맨 첫 페이지에 나와 있고, 성경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하느님이 악마에게 승리하셨음을 선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악마는 존재하고 우리는 악마와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마 의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악마를 내쫓는 의식이다. 이 예식을 담당하는 구마 사제는 주교가 특별히 임명한다. 교황청에서는 2014년 국제구마사제협회를 공식 기구로 인정했고, 현재 30개국 250명의 사제가 이 단체에 소속돼 활동하고 있다.가톨릭출판사가 펴낸 「구마 사제-악령과 싸우는 자」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구마 사제인 체사레 트루퀴 신부의 구마 경험과 교황청 기관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키아라 산토미에로 기자의 취재 경험을 담은 책이다. 저자들은 책 머리에서 ‘악마는 허구가 아니다’라고 밝힌다. 그러면서 이 책을 쓴 이유는 아무리 악마의 힘이 강해도 하느님의 힘 앞에서는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라고 소개한다. 트루퀴 신부는 자기 이름을 “사탄”이라고 밝힌 악마와 또 ‘‘세상의 우두머리인 렉스”라고 한 마귀 등 다양한 악마에 빙의된 수많은 사람을 구한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사람들이 왜 악마에 사로잡히는지, 악마에 대항하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려준다. 아울러 구마 사제는 어떤 사람들인지, 구마 예식은 어떠한 것인지를 설명하면서 악마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 오해를 불식시켜 준다. 또 구마 효력과 본질은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르 9,23)는 주님의 말씀에 잘 녹아 있다고 알려주고 있다. 리길재 기자 cpbc2019.07.03

봄, 명동서 ‘지식의 향연’ 펼쳐진다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 4월 2일 문화학교 개강 올해 봄,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일대에서 인문학과 영성, 미술사, 신학, 예술 등을 품은 ‘지식의 향연’이 펼쳐진다.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국장 유환민 신부)은 4월 2일 저녁 7시 30분 명동대성당 문화관 꼬스트홀에서 ‘현대 미술의 풍경’을 주제로 한 김찬용(비오) 도슨트의 개강 특강을 시작으로, 서울대교구 문화학교를 연다. 김찬용 전시 해설가는 1세대 전업 도슨트로, 풍부한 미술 지식과 전달력으로 미술계에서 아이돌급 인기몰이 중이다. ▨ 신앙, 인문학을 만나다 ‘다신교와 일신교의 차이’, ‘죽은 뒤의 삶’이 궁금하다면 4월 2일~6월 18일까지 저녁 7시 30분 서울대교구청 501호를 두드리자. 송혜경(비아) 고대 근동학 박사와 전호엽(서울대교구 사제평생교육원 부원장) 신부에게 신앙과 인문학에 관한 다양한 강의를 들을 수 있다. 한국가톨릭철학회장 박승찬(엘리야) 교수는 아우구스티누스 주제로 강의한다. ▨ 영적 성숙을 꿈꾼다면 다양한 주제로 기도하고, 삶의 여정에서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발견하는 시간이다. 매월 첫째 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 명동대성당 문화관 소성당에서 다양한 주제로 기도하면서 기도를 배우는 월피정(‘청년 Hello 기도’)을 경험할 수 있다. 청년을 대상으로 ‘성경 통독(역사서, 신약)’과 ‘삶의 역사 쓰기 강좌’가 마련돼 있으며, 영화를 통해 자아 성장과 신앙 성숙을 꿈꾸는 ‘행복한 영화 읽기’ 강좌도 개최한다. ▨ 가톨릭 미술 이야기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장 장긍선 신부와 ‘한국 건축학의 대부’ 김광현(안드레아) 교수, 인천가톨릭대 스테인드글라스연구소장 정수경(가타리나) 교수 등 가톨릭 미술계에서 내로라하는 명사 10명의 미술사 강의다. 4월 6일~6월 8일 매주 월요일 저녁 7시부터 교구청 501호에서 열린다. 미술사를 움직인 예술가들의 이야기 강좌도 개최한다. ▨ 예술가는 되고 싶은데 몸이 뻐근하다면…먼저, 4월 22일부터 6월 17일까지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12시 10분~12시 40분)에 열리는 ‘오피스 요가’를 해보자. 수강료 3만 원에 총 8회에 걸쳐 몸을 풀 수 있는 시간이 제공된다. 문화학교 308호. 스테인드글라스의 유리모자이크(4월반ㆍ5월반 매주 화)와 동테이프기법(5월 26일~6월 16일 매주 화)을 배울 수 있는 강의는 어떨까. 도자기로 성물을 만드는 반도 개설했다. 캘리그리피와 공필화를 비롯해 아이패드 소지자라면 가톨릭 일러스트도 도전해볼 수 있다. 수강료는 5~6만 원이다. 이밖에 가톨릭출판사가 마련한 신학강좌(4월 8일~6월 17일, 매주 수)를 비롯해 손희송(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의 독서힐링 콘서트(5월 30일 오후 2시, 명동대성당 문화관 꼬스트홀)도 열린다. 정호승(프란치스코) 시인의 ‘시인 예수를 찾아서’ 무료 특강(4월 4일, 오후 2시)도 마련돼 있다. 모든 강좌 신청은 24일부터 문화학교 홈페이지(culture.catholic.or.kr)에서 하면 된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평화신문2020.02.19
[사설] 복음의 기쁨 선포하는 2020년 새해 교회 전례력으로 2020년 새해를 맞았다. 예수 성탄 대축일 전 네 번째 주일에 시작되는 대림 시기는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때다. 그리스도인들은 대림 시기를 통해 참회와 회개의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탄생을 기다린다.한국 교회 각 교구장 주교들이 대림 제1주일을 맞아 발표한 2020년 사목교서를 관통하는 주제는 ‘선교와 복음화’다. 성경 읽기와 기도의 생활화, 교리교육, 사회 약자 돌봄, 생태영성 실천 등 한국 교회가 지속해서 다뤄온 사목 이슈를 포함해 특별히 본당 공동체성을 강조했다. 친교와 소통을 바탕으로 복음의 기쁨을 선포하며 사회를 복음화하자고 호소했다. 본당의 공동체성은 복음 선포와 전례, 친교, 봉사를 통해 실현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을 통해 “본당은 공동체들의 공동체이고, 길을 가다가 목마른 이들이 물을 마시러 오는 지성소이며, 지속적인 선교 활동의 중심지”라고 강조했다. 본당은 지역 사회에 살아있는 교회의 현존이며, 하느님 말씀을 듣고 생활하는 그리스도인이 성장하는 장소인 셈이다.새로운 복음화는 교회 자신의 복음화를 전제로 하고(「현대의 복음선교」 15항), 교회의 복음화는 결국 신자 개개인의 복음화에 달렸다. 신자 개개인의 복음화를 위해서는 신앙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 복음 선포, 즉 선교가 그리스도인의 삶과 멀어지지 않으려면 신앙은 기쁨이 되어야 한다. 현대 사회의 무관심한 개인주의적 성향이 본당 공동체에 침투하지 않도록 그리스도인들은 더 깨어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며 복음의 기쁨을 내면화하고, 인내와 온유, 환대를 통해 사랑을 실천하는 대림 시기를 보내자. 평화신문2019.11.27
성경과 함께 익히는 가톨릭교회 교리 교리 전문가 정승현 신부 해설, 자세한 설명에 성경 구절 덧붙여 말씀으로 익히는 가톨릭 교회 교리 문답 말씀으로 익히는 가톨릭 교회 교리 문답 정승현 신부 해설 / 한님성서연구소 / 2만 원“교회는 신앙의 전체성과 온전성을 선포하고, 구원의 충만한 방법들을 받아 관리하며, 그리스도에 의해 전 인류에게 파견되었다.” 가톨릭교회가 ‘보편되다’고 하는 교회 교리다.교회 보편성의 근거는 성경에도 있다. 이사야서는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리라”(이사 2,2)고 밝히고, 에페소서는 “만물 위에 계신 그분을 교회에 머리로 주셨다”(에페 1,22)고 선포한다.그렇다면 개별 교회는 보편적인가? 민수기 11장에는 주님께서 구름 속에서 내려오시어 당신 영을 일흔 명의 원로들에게 내려주신 사건을 통해 교회 안에 사도적 계승이 개별 교회에도 전승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가톨릭교회 교리를 성경과 함께 익힐 수 있는 교리서가 나왔다. 저자는 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 총무와 광주가톨릭대 총장 등 다양한 사목을 두루 거친 ‘교회 교리 전문가’ 정승현(전주교구 원로사목자) 신부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라틴어 최종판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이어 「간추린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집필하기도 했던 정 신부가 이번엔 해설, 용어 설명과 함께 성경 구절까지 덧붙여 짜임새 있는 교리서를 완성했다.△하느님 계시 △성령 △부활 △일곱 성사 △십계명 △기도 △그리스도인의 삶 등 ‘가톨릭교회의 모든 것’이 일목요연하게 담겼다. 6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에 압도될 수 있지만, 평소 궁금했던 교리 지식을 색인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요약된 설명과 관련 성경 말씀을 함께 볼 수 있어 강론을 준비하는 사제는 물론, 교리교육을 하는 신자들에게도 더 없이 유용하다.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백영민2018.06.12

본당 중심 신앙생활 넘어 ‘삶의 미사화’ 위한 상상력 발휘하자코로나 사태에 대한 진단과 이후의 사목 방향 모색 심포지엄 (중)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cpbc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가톨릭신문사 공동 주최 코로나19 확산으로 공동체 미사가 중단됐던 시기에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을 찾은 몇몇 신자들이 드문드문 앉아 기도를 바치고 있다. 텅 빈 성당은 이제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교회가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할지, 변화를 받아들여 새롭게 시작할지는 구성원들에게 달렸다. 가톨릭평화신문 DB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원장 김동원 신부)은 5일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연구원에서 ‘코로나 사태에 대한 진단과 이후의 사목 방향 모색’을 주제로 제11회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 가톨릭신문사와 공동 주최한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개인 영성생활 △신앙공동체 △가정과 청소년 △교회와 사회 △국제 관계 △우주적 생태 관점의 맥락과 흐름 등 6개 분야를 선정, 각 분야 전문가에게 현실 진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살펴봤다. 세 차례에 걸쳐 발표 내용을 요약 정리한다. 제3발표-코로나 사태와 교회 : 인간 구원의 성사인 공동체김정용 신부(광주대교구 사목국장)김정용 신부는 “코로나19가 미치는 영향을 종교 집회와 활동을 위축시키는 차원에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다”면서 “종교 존재의 이유, 종교적 실천 전반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촉구하는 메시지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종교가 코로나19 사태를 스스로 새롭게 성찰하고 새로운 변화를 추구할 기회로 여겨야 한다고 본 것이다.김 신부는 초기 그리스도교가 질병 시대에 직면했던 시절을 상기했다. “그 시대에 그리스도교가 신뢰할만한 종교로 육화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인이 복음 정신을 그 시대 상황 속에서 구체적으로 살고, 당대의 사람들이 겪는 고통과 함께함으로써 가능했다는 관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코로나19 상황에서 교회가 직면한 공동체성에 초점을 둔 김 신부는 “코로나 사태 앞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 신앙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리가 선포하는 희망의 메시지는 과연 무엇인가”를 되물으며 “이런 물음 앞에서 우리가 모든 해법을 명쾌하게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을 겸허하게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말했다. 그러면서 “희망의 탐색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단언했다. 그는 또 미사 중심, 전례 중심, 성직자 중심, 성당 중심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며 “본당이 세상 사람을 위한 구원의 성사, 구원의 공동체로서 현존하기를 지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는 성직자 중심에서 하느님 백성 중심으로, 성당 중심에서 일상(세상) 중심으로, 교회 중심에서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중심이 이동돼야 한다고 했다. 김 신부는 “신자들과 함께하지 않는 미사의 경험은 사제들에게 많은 생각 거리를 남겼으리라 본다”며 비대면 시대에는 성직자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설명했다. 비대면 시대에 사제의 영적 권위는 직무적 권위 자체가 아니라 신뢰와 소통, 인격성과 봉사에 의해서만 비로소 존중받을 수 있다. 더불어 본당이 성직자 중심주의에 좌우되지 않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소통 구조의 확립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신자 중심이 될 수 있도록 본당을 체계화하고 구조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미사 전례의 의미를 본당 영역에만 한정시키는 사고를 경계했다. 그는 “본당은 신앙생활의 시작점이고 신앙은 세상 속에서 완수된다”며 “성체성사는 타인과 이웃을 위한 헌신으로 완성된다”고 했다. 미사에 참여하고 성체를 모시는 것에 그치지 말고, 그리스도의 희생을 이웃과 나눌 때 미사 참여의 의미는 비로소 완전해진다.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 시선, 삶의 방식, 성령의 이끄심을 더욱 체질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김 신부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속해 있는 가정과 직장, 지역과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다움을 삶으로 증언함으로써 하느님 나라와 그 가치를 추구하는 새로운 공동체를 확산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김 신부는 교회가 세상 속에서 타인을 위한 존재로 부름 받았음을 일깨우며 “교회는 세상 한가운데서 ‘나’와 ‘너’의 자유롭고 인격적 만남을 통해 이뤄지는 ‘우리’가 되도록 부르심을 받은 존재”라고 강조했다.제4발표-코로나 시대의 신앙 : 종교사회학적, 교회론적 전망에서정희완 신부(안동교구, 가톨릭문화와신학연구소장)정희완 신부는 일본에서 선교 사제로 사목하는 빌 그림(메리놀회) 신부의 인터뷰 기사를 언급하며 “메리놀 선교 신부의 지적처럼 교회가 다시 시작(restart)할 것인지, 새롭게 시작(renew)할 것인지는 우리 신앙인에게 달려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의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면서 예전 모습대로 교회가 ‘다시 시작’하기만을 기대하고 있는지, 아니면 코로나19의 경험에서 교회의 전반적 모습을 새롭게 성찰하고 ‘새롭게 시작’할 것인지를 말이다. 그는 전례와 성사에 대한 확장된 이해와 상상이 필요할 때임을 강조하며 온라인 미사를 둘러싼 신학적 논쟁을 소개했다. 정 신부는 공동체 미사가 중단된 뒤 대안으로 제시된 온라인 미사에 대해 “텔레비전 미사와 온라인 미사는 보는 것이지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성적 참여, 가상적 참여의 의미를 새롭게 고려해볼 수 있다”고 덧붙이며 “온라인 미사의 유효성과 정당성이 아직 인정되는 것 아니지만, 온라인 전례에서 기술의 사용에 대해 좀 더 열린 태도가 필요한 시대”라고 말했다. 그는 전례를 거행하는 일이 성직자만 가능한 점을 지적하며 “코로나19로 공동체 미사가 중단되면서 결국 전례와 성사에서 배제되는 경험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교회 생활의 핵심인 전례에 신자들이 참여할 수 없는 상황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 신부는 “과연 전례는 누구를 위한, 누가 거행하는 것인가에 대한 뼈아픈 질문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며 “전례는 복합적인 신학적 논의를 포함하고 있어 쉽지는 않겠지만, 코로나 시대에 교회는 이 문제를 전향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례 문제에서 명심해야 할 점은 전례 형식이 아니라 전례가 지향하는, 전례 안에 내포된 궁극적 의미임은 당연하다. 그러나 실제 전례 안에서 그 깊은 의미와 전례의 효과, 힘을 알고 느끼는 신자는 과연 얼마나 되는 것일까. 정 신부는 “코로나 사태가 전례에 던지는 도전은 기존의 전례가 신자들에게 과연 어떤 모습과 의미로 받아들여졌는지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요청한다”고 분석했다.정 신부는 신앙생활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상상을 제안하며 이동과 대규모 모임이 제한됐을 때 “가까운 이웃이 모여 함께 성경 말씀을 듣고 식사의 친교를 나누는 것이 넓은 의미에서 미사의 정신을 영성적으로 수행하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일상의 예식화와 삶의 미사화에 대한 폭넓은 상상이 필요한 때라며 “공소 예절과 말씀의 전례를 다시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는 본당이라는 공간과 장소를 중심으로 수행해 왔던 신앙생활의 한계를 분명히 보여줬다. 코로나19로 기존 본당 생활을 통해 신자들은 자율적이고 능동적으로 자신의 신앙을 성숙시키고 영성을 성장시키는 교육과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현실이 드러났다. 정 신부는 “신앙생활의 무게가 전례와 성사 중심의 교회 생활에서 영성적 차원이 강조되는 방향으로 옮겨지고 있음을 발견한다”며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신앙 성숙과 영적 성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신자들이 깨달아 가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정리=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cpbc2020.09.16

“선교사는 교회의 새로운 역사 쓰는 주인공”제26차 해외 선교사 교육 파견 미사, 사제 3명·수도자 15명 수료 제26차 해외 선교사 교육 파견 미사 입당 예식에서 한 교육 수료자가 필리핀 교회 신앙의 상징이자 유산인 나자렛 성상을 봉헌하고 있다. 한국가톨릭해외선교사교육협의회(회장 남승원 신부)는 7일 서울 성 골롬반 선교센터에서 주교회의 해외선교ㆍ교포사목위원회 위원장 문희종 주교 주례로 제26차 해외 선교사 교육 파견 미사를 봉헌하고, 1월 13일부터 4주간에 걸쳐 해외 선교사 교육을 수료한 사제 3명과 수도자 15명 등 총 18명에게 수료증을 수여했다. 이로써 1999년에 시작해 해마다 진행된 해외 선교사 교육을 거쳐 파견된 선교 사제는 111명, 수도자는 565명, 평신도는 89명 등 모두 765명이 됐다. 올해 교육 수료자들은 아시아에 7명, 아프리카에 1명, 북미에 3명, 남미에 5명이 파견된다. 나머지 2명은 선교지가 확정되는 대로 떠날 예정이다. 해외 선교사 교육을 마친 선교 사제와 수도자 5명은 이날 미사에서 아프리카 전통악기 젬베와 중국어 성경, 일본 전통 인형과 기도서, 볼리비아 십자가, 필리핀 신앙의 상징인 나자렛 성상을 봉헌하고, 주님 말씀을 선포하겠다는 열망을 마음속 깊이 새겼다. 제주교구에서 처음으로 해외 선교사 교육을 받은 부재환 신부는 “교육을 받으며 강좌 하나하나가 어쩌면 이렇게 금싸라기 같은 내용을 모아 준비했을까, 또 주님께서 교육을 통해 이렇게 여장을 꾸려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며 “근심이나 걱정 같은 보이지 않는 짐을 다 내려놓고 준비해야 할 것들은 주님께서 교육을 통해 챙겨주신 만큼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교육 소감을 밝혔다. 볼리비아 선교지로 다시 돌아가게 된 정은희(호영 베드로, 성가소비녀회) 수녀는 “4년간 볼리비아에서 살다가 귀국했는데, 어떻게 다시 돌아가야 하나 하는 힘든 시점에 받게 된 교육을 통해 마음이 무척 편안해졌다”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이젠 잘할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바뀌었다”고 밝혔다. 교육은 해외 선교사로서 살아가기 위한 실질적 준비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해외 선교사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중점을 두고 선교 목적과 선교 이해 및 자세, 선교 실천, 선교 영성을 내용으로 분야별 전문가들의 강의와 나눔, 토론, 현장 방문으로 짜였다. 문희종 주교는 미사 강론을 통해 “선교지에서의 삶은 힘들겠지만,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은총의 기간이 될 것”이라며 “여러분들은 선교지에서 선교 역사를 쓰는 주인공이라는 것, 선배 선교사들이 오늘 교회의 모습을 만들었다는 것, 교회의 또 다른 미래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 한국 교회와 여러분이 소속된 공동체들이 여러분을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겸손한 자세로 멋진 선교사의 길을 걸어가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평화신문2020.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