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집, 아름다운 성당을 찾아서] 수원교구 하우현성당](//cpbc.co.kr/CMS/newspaper/2020/07/rc/783871_1.2_titleImage_1.jpg)
[아버지의 집, 아름다운 성당을 찾아서] 수원교구 하우현성당 바닥에 앉아 기도하는...자연 속 조용한 안식처 조선 교회 신자들은 거듭된 박해의 칼바람을 피해 깊은 산 속으로 숨어들었다. 경기도 의왕시 청계동에 자리한 하우현도 박해 시기 형성된 교우촌 중 하나다. 신자들은 화전을 일구고 옹기를 구우며 보리와 열매로 연명했다. 이후 신앙의 자유가 허락되자 신자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일부는 하우현에 정착했다. 서로에게 의지하며 신앙을 지켜가던 하우현 교우촌은 1900년 본당 설립의 기쁨을 누렸다. 수원교구 하우현본당을 소개한다. 박해를 피해 형성된 교우촌차들이 굉음을 내며 달리는 안양판교로 청계 지역을 지나다 보면 ‘하우현성당’ 안내판이 보인다. 안내판을 따라 좁은 길로 들어서면 성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성당 주변은 사방이 산이다. 청계산과 광교산 등 높은 산들과 계곡, 울창한 수목이 박해를 피해 살길을 찾던 천주교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피난처였으리라. 교우들이 박해를 피해 땅을 파 토굴에서 살기도 하여 하우현을 ‘토굴리’라고도 부른다. 성당 마당에 들어서자 본당 수호성인인 루도비코 볼리외 신부의 성상이 반겨준다. 볼리외 신부는 1840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사제품을 받은 후 1865년 5월 충남 내포에 도착해 약 3주에 걸친 여정 끝에 ‘묘루니’, 지금의 판교 운중동에 도착했다. 조정의 눈을 피해 묘루니 산골 교우 집에서 조선말을 익히며 교우들에게 성사를 주고 교리도 가르쳤다. 하지만 전교지 파견을 기다리던 중 1866년 병인박해가 터졌다. 행여 교우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걱정한 볼리외 신부는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며 인근의 자연 굴에서 홀로 생활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한 교우의 밀고로 체포돼 그해 3월에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로서 조선에 들어온 지 9개월, 그의 나이 26세였다.성인상 뒤로는 석조 벽면에 골기와 지붕의 사제관이 보인다. 1906년에 지은 건축물로 20세기 초반 한ㆍ프랑스 절충 건축 양식을 볼 수 있다. 궁실의 법전이나 절의 금당 등 중요 건물에서 볼 수 있는 팔작지붕(까치박공이 달린 삼각형의 벽이 있는 지붕)이 인상적이다. 초대 주한 프랑스 공사가 기증한 종이 사제관 처마에 아직도 달려 있다. 사제관은 2005년 보수 작업을 거쳐 경기도 지정기념물 제176호로 지정됐다. 지금은 본당 신자들의 면담실로 사용 중이다.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초대 수석 아빠스를 지낸 노르베르토 베버 총아빠스가 1911년 3월 하우현을 방문해 남긴 기록에서 2대 주임 샤를르 조셉 르각 신부와 신자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르각 신부는 황폐한 주거 환경과 가난의 고통을 신앙 안에서 신자들과 함께 나누고 있었다.… 신자들이 천진난만하고 친근한 태도로 그들의 영적 목자를 의지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사제관은 신자들에게 개방되어 있었다. 그는 신자들의 아버지였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중에서)친정엄마 같은 성당사제관 왼쪽에는 1965년 지은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사제관과 달리 외관이 평범하다. 가운데 종탑을 기준으로 좌우 대칭 벽돌 구조의 성당은 하얀 벽면에 코발트색 양철 지붕으로 마감돼 마치 그리스 산토리니의 정교회 성당을 보는 듯 단순하고 깔끔한 인상을 준다. 성전 입구에 들어서면 여느 성당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회중석은 장의자 대신 1인용 좌식 등받이 의자와 좌탁이 짝을 이뤄 놓여 있다. 그 수가 40여 개. 평일 오후지만 띄엄띄엄 앉아 성경을 읽거나 묵상하는 이들, 묵주를 든 손을 위로 올려 양팔 묵주기도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성전 내부는 소박하고 깔끔해 군더더기가 없다. 성전 벽은 하얀색, 천장은 짙은 갈색의 목재로 마감돼 조화를 이룬다. 제대와 독서대, 제대 뒤 십자가 모두 나무로 제작해 따뜻함을 준다. 성화로 장식한 십자가의 길 14처는 성전 건립 당시의 것으로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가파른 나무 계단으로 2층에 올라가면 성가대석이 나온다. 10여 명이 앉으면 꽉 찰 정도로 작은 공간이다. 성전은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돼 누구라도 찾아와 성체 조배와 묵상을 할 수 있다.특이한 것은 성당을 찾는 본당 신자가 거의 없다. 신자 총수가 186명에 불과하니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대신 서울이나 경기도 일원에서 찾아오는 이들이 제법 많다. 성당 앞을 우연히 지나다 들어오는 이들, 하우현성당이 아름답다는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이들도 있다. 자연 속 성당이 좋아 자주 온다는 이들이 많았다. 이혜자(아녜스, 서울 동작동본당)씨는 “자연 속에서 묵상과 기도를 할 수 있어 자주 이곳을 찾는다”며 “하우현성당은 신앙의 선물 같은 소중한 곳”이라고 말했다. 한 신자는 “마음이 답답하고 울적할 때 매달려 하소연할 수 있는 친정엄마 같은 성당”이라며 이곳을 찾아 마음의 위로를 얻는다고 했다. 하얀 벽면에 코발트색 양철 지붕으로 마감된 하우현성당. 모든 신자에게 열린 성당성당 곳곳은 기도와 묵상을 하며 하우현본당의 역사를 알 수 있게 꾸며져 있다. 성당 마당 성모상 앞에는 무릎틀이 놓여 있고, 성당 왼편에는 야외 십자가의 길이 설치돼 있다. 본당 사무실에는 역대 주임 사제의 사진과 초가로 된 옛성당의 사진도 볼 수 있다. 옛성당은 1894년 5월 하우현의 모본당인 왕림본당 사제와 하우현 교우들이 모금한 1500냥으로 건축한 10칸짜리 초가 목조 강당 겸 성당이다.그중에서도 성당 옆 소나무밭에 자리한 야외 십자가의 길이 인상적이다. 조각상들로 꾸며진 십자가 길에서 기도하다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속으로 들어간 듯하다. 성당을 나서는 길, 신자들이 삼삼오오 성당으로 들어오고 성당에서 기도와 묵상을 마친 신자들이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하우현성당은 누구나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마음의 안식처 같은 성당, 언제나 찾는 이들을 반겨주는 친정엄마 같은 성당이 아닐까 싶다. 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cpbc2020.07.22

매일 바치는 ‘주님의 기도’ 하루치 양식이 뭐길래[엉클죠의 바티칸 산책] (22)“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마다 청하는 ‘일용할 양식’은 어느 정도면 충분할까? 한 노파가 따뜻한 수프와 갓 구운 빵으로 차린 저녁 식탁에서 일용할 양식을 주신 주님께 감사 기도를 바치고 있다. 니콜라스 마스의 ‘기도하는 노파’(1656년경, 캔버스에 유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레익스박물관) “우리, 날마다 하느님께 거짓말하고 있는 거 아닌가? 기도할 때마다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비는데, 그게 말이 되나. 요새 밥 굶는 사람이 어디 있어? 하루 먹을 양식이 아니라 몇 년 치 양식을 쌓아놓고 있으면서도 하루에도 몇 번씩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니….”그리스도인들은 매일 ‘주님의 기도’를 바칩니다. 항상 이 대목이 걸립니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를 암송할 때 ‘일용할 양식’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물음입니다. 일용할 양식(daily bread), 쉽게 말해 하루 치 양식입니다. 나는 진심으로 하루 치 양식을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는가, 아니면 늙어 죽을 때까지 먹을 평생 양식이나 자자손손이 먹을 양식을 달라고 하는가? 후자라면 매일 기도할 때마다 위선을 떨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하느님께 이렇게 해도 되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저는 이때 나 자신을 약삭빠르게 합리화하기 시작합니다. 하루 치 양식의 현대적 의미가 예수님 시대와 다르겠지 하는 얕은 생각입니다. 저만 이럴까요? ‘주님의 기도’를 드릴 때마다 2000년 전 갈릴래아로 되돌아가 봐야 합니다. 그때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아마도 탈출기 속의 주님을 생각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나 당시 갈릴래아 백성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으니까요. “주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루 치 양식을 주시며 살게 했던 것처럼 저희에게도 하루 치 양식을 주시옵소서!” 아마 이런 뜻이 아니었을까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양식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를 탈출하여 시나이 광야에서 40년을 살았습니다. 풀이 듬성듬성, 모래바람은 쌩쌩, 황량한 벌판입니다. 40년 광야 살이! 지금 생각해 봐도 끔찍한 일입니다. 백성들은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식솔은 오죽 많았겠습니까. 좀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성경에는 장정만 60만이었다고 합니다. 전체 인원은 줄잡아 200만 명 이상이었겠지요. 숫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200명이면 어떻고, 2000명이면 어떻습니까. 그들이 어떻게 살았고, 그들이 어떻게 주님의 사랑을 받았는지가 중요하지요.시나이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은 꼼짝없이 주님에게 매달려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갓 태어난 아이가 엄마에게 매달리는 것처럼! 주님은 날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준 다음 저마다 먹을 만큼만 가져가라고 했습니다.(탈출 16,16 참조) 매일 하루 치 양식만 준 것입니다. 언제 어디에나 욕심꾸러기가 있고, 청개구리가 있습니다. 하루 치 이상의 양식을 가져가는 사람이 그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었지요. 다음날 새벽이 되면 남은 음식에 구더기가 생겨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누구에게나 하루 치 양식! 얼마나 공평한 조치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의 40년 광야 살이는 노예 습성을 털어버리려는 몸부림이었고, 하느님 백성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고난의 행군이었습니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수백 년간 노예로 살았습니다. 영혼이 없는 동물적인 삶이었지요. 주님을 섬길 생각도 없었고, 동족 간의 형제애도 없었고, 독립심이나 자유의지도 없었습니다. 40년 동안의 하루 치 양식은 신묘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한솥밥 효과입니다. 주님이 주는 밥을 40년 동안이나 받아먹었으니 어떤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거룩한 일치입니다. 첫째는 하느님과의 일치이고, 둘째는 백성들 간의 일치입니다. 그리고 강한 공동체 정신과 끈끈한 형제애가 싹텄습니다. 일용할 양식이 주는 메시지 주님은 하루 치 양식을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주었지, 특정 소수의 사람에게만 주지 않았습니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에서 ‘저희’의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요? 우리 가족? 우리 본당 신자들? 우리 동네 사람들? 우리나라 국민들? 아니면 인류 전체? 일용할 양식이 주는 메시지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세상을 정지시켜 버렸습니다. 바티칸도 예외가 아닙니다. 바티칸 광장의 노숙자들은 뭘 먹고 사나? 그들에게 일용할 양식은 있나? 바티칸에서 목요일 저녁마다 음식 봉사를 하는 한국의 꽃동네 수녀님이 걱정되어 전화했습니다. “우리마저 떠나면 이들은 뭘 먹고 살겠어요? 밥 한 끼 드리는 건데…. 자원봉사자들은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하루 치 양식의 의미를 멀리서 찾을 일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 cpbc2020.05.13

“천주교는 아주 공평해서 아무 발에나 다 맞는 버선과 같다네”[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26. 양말론과 빈병론 나열의 <서학>시. 나열의 문집인 「해양유고(海陽遺稿」(일본 동양문고 소장본) 권 1에 실려있다. 우리는 한 형제다양반과 상놈의 구분이 없고 남녀를 차별하지 않는,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던 공동체에 대한 소문은 소곤소곤 금세 원근으로 퍼져 나갔다. 믿기만 하면 노비 문서도 불태운다더라, 가난한 이에게는 옷과 양식도 아낌없이 나눠준다더라고들 했다. 하나라도 더 못 가져 안달하던 사람들이, 제 것을 나눠주면서 행복하다 못해 아련한 표정까지 짓는 것이 좀체 이해되지 않았다. 그 못되고 심술궂던 시어머니가 어느 날 문득 며느리를 친딸 위하듯 하고, 술만 마시면 세간을 부수고 아내를 때리던 술꾼이 그날로 영판 딴사람이 되었다. 이웃들은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충청도 면천 사람 유군명 시메온은 양반 신분이었고, 효자로 이름난 사람이었다. 그는 양친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정성껏 제사를 모셨다. 59세 때 그는 덕산 황모실로 이사해 천주교에 입교했다. 이존창에게 세례를 받고는 다른 사람으로 거듭났다. 유군명은 노비를 모아 놓고 노비 문서를 불태웠다. 우리는 이제 천주 대전에 아무 차별 없는 한 형제라고 선언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재물을 흩어 가난하고 불행한 이들에게 나눠주었다. 이후 그는 속량 노비 출신의 이존창을 도와 천주교를 가르치고 포교하는 일에 오로지 헌신했다. 신유박해가 있던 1801년 5월에 체포된 그는 갖은 고문에도 다른 교우를 한 명도 고발하지 않고, 끝까지 배교도 하지 않았다. 먼 지방으로 귀양 가서도 흔들림 없이 신자의 본분을 지켰다. 다만 성경을 지녀가지 못한 것만 원통스레 여겼다. 그는 82세의 나이로 유배지에서 죽었다. 그가 보인 신앙의 모범이 그 지역 주민들까지 감화시켰다. 그는 그들의 찬양과 감탄을 받으며 꿇어앉아 기도를 드리던 모습으로 세상을 떴다. 달레의 「조선천주교회사」에 나온다.「눌암기략」의 한 단락은 또 이렇다. “사학하는 무리의 법문(法門)은 재물을 함께 나누고 여색을 함께 하는 까닭에 과부와 홀아비 및 가난하여 스스로 먹고살 수 없는 자들이 모두 기꺼이 내달아 가곤 하였다. 비록 천한 종놈이라도 한번 그들의 무리에 들어가면 마치 형제처럼 보아 등급이 있는 줄을 몰랐으니, 이것이 그들이 어리석은 백성을 속여 미혹시키는 꾀였다.” 이 글은 삐딱한 시선으로 천주교를 바라본 언급이고, 내부자들에게 이같은 나눔의 공동체가 어떠한 기쁨과 일체감을 주었을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실제 지역 교회의 하부 조직에는 이존창 외에도 신분이 미천한 지도자들의 존재가 포착된다. 박종악의 「수기」에는 여사울의 천한 부류의 지도자로 최뚝쇠(崔斗古金)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그는 서학을 오래 익혀 교리에 깊이 통달한 사람이었다. 인근의 서학을 믿는 백성들이 대부분 그를 높여 존장(尊長), 즉 어르신으로 불렀다고 했다. 이들에게 신분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교리에 대한 이해도가 훨씬 더 중요했다. 이 버선을 신어보게!1794년 주문모 신부가 조선에 밀입국했을 때, 당시 천주교 신자들의 소원은 오로지 신부를 직접 만나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부의 일거수일투족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져, 결코 아무나 만날 수가 없었다. 1839년에 순교한 신태보 바오로가 감옥에서 쓴 편지는 창립 초기 자료를 수집하던 샤스탕(Chastan) 신부의 명에 따라 작성한 글이었다. 신태보는 친척 이여진 요한과 함께 신부를 한 번이라도 만나보려는 소원을 이루려 애를 썼지만, 끝내 이루지 못했다. 140리 떨어진 서울까지 무려 18번이나 올라왔어도 소용이 없었다. 이를 딱하게 여긴 한 교우가 장에서 버선 한 켤레를 꺼내더니 신어보라고 했다. 어린아이의 발도 들어가지 않을 작은 버선이었다. “어른더러 어떻게 아이 버선을 신으라는 겐가?” “아무 말 말고 한번 신어나 보게.” 그러자 놀랍게도 그 작은 버선이 신태보의 발에 쏙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양말(洋襪), 즉 서양 버선을 처음 접한 조선 사람의 이야기다. 당황한 신태보에게 그 교우가 말했다. “천주교는 아주 공평한 것이라네. 어른도 아이도, 양반도 상놈도 없지. 부드럽고 탄력이 있어서 아무 발에나 다 맞는 이 버선과 같다네. 자네도 열심히 하기만 하면 신부를 만나볼 수 있을 걸세. 조금만 애를 쓰면 누구나 이 버선을 신을 수 있듯이 말이야.” 평면 재단이어서 버선본 없이는 발에 꼭 맞는 버선을 지을 수 없던 당시에, 양털로 만든 신축성 있는 서양 버선은 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문화 충격이었다. 신태보와 함께 갔던 이여진의 경우는 신부를 만나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서울로 이사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신부가 사형당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까지 단 한 번도 신부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천주교인들의 이 같은 공동체는 외부자의 시선에서는 해괴한 변고에 지나지 않았다. 「눌암기략」의 다음 기술을 읽어 보자. “이른바 사학이란 학문은 그 주장이 불교의 남은 투식에서 나왔다. 또 경전의 말을 가지고 서로 꾸며서 이것으로 천하를 바꾸려 드니,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우리 유학이 어찌 일찍이 하늘을 공경하고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도 저들이 하늘을 섬긴다는 것은 도리어 상제를 빌려다가 속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들의 무리는 이것으로 복을 구하려다가 도리어 재앙을 부르고 말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저들이 높은 하늘을 큰 부모로 여기고, 다시 낳고 길러주신 은혜는 알지 못한 채, 벌거벗은 몸으로 한 방에서 섞여 지내며 남녀의 구별조차 없으니, 이는 거의 짐승만도 못한 것이다.” 유학의 입장에서 보면 남녀가 구분 없이 한 방에 앉아 요사스런 서양인의 형상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밤을 새우는 것은 변괴에 가까웠다. 박종악은 「수기」에서 “부자지간이라도 아들이 사학을 하는데 아비가 하지 않으면 아비를 아비로 여기지 않고 다른 무리라고 지목합니다. 아비가 비록 남에게 구타와 모욕을 당하더라도 가만히 보기만 하고 구하지 않습니다. 사학이 사람을 깊이 빠뜨리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라고 적기까지 했다. 관리들의 눈에 그들은 윤리를 무너뜨리는 멸륜패상(滅倫敗常)의 무리였을 뿐이었다. 부모가 빈 병인가?나열(羅烈, 1731~1803)이 1790년에 지은 <서학(西學)>이란 장시가 있다. 그의 문집 「해양유고(海陽遺稿)」에 나온다. 시의 제목을 아예 서학으로 내건 시는 처음 본다. 그런 만큼 내용이 대단히 흥미롭다. 몇 단락만 간추려 읽어보자. “서학은 천주를 위주로 하여, 부모를 빈 병처럼 여기는구나. 자신을 병 속 물건처럼 보거니, 따른 뒤엔 병에 무슨 정이 있겠나.(西學主天帝, 父母視空甁. 自同甁中物, 脫來甁何情.)” 부모는 병이고, 나는 그 병에 담겼던 술과 같다. 술을 잔에 따르고 나면 술이 병에 대해 무슨 애틋한 정이 있겠는가? 이것이 이른바 ‘빈병론’이다. 천주교를 부모와 자식 간의 인륜을 끊는 패륜 집단으로 내몰고, 남녀의 분별을 허무는 난륜(亂倫)의 무리라고 비난하는 것은 당시 박해자들이 입만 열면 하던 얘기였다. 시가 다시 이렇게 이어진다. “학술이야 1천 가지 갈래 있어도, 살기를 좋아함은 한 가지라네. 어이해 목숨을 매개로 삼아, 베여 죽음 즐겨함에 이른단 말가. 줄줄이 감옥에 묶여 들어와, 매질 채질 온갖 형벌 두루 받누나. 처음 한 말 바꾸려 들지 않고는, 그저 빨리 죽기만을 원한다 하네. 묻노라 죽는 것 왜 소원하나? 혼백이 천당에 오른다 하네. 천당은 화려하고 깨끗도 하여, 그 즐거움 몹시도 대단하다고.(學術雖千, 好生則同貫. 云何媒性命, 至乃樂斬斷. 累累繫刑獄, 榜備楚毒. 不肯易初辭, 但願速就戮. 借問戮何願, 魂魄升天堂. 天堂麗且淨, 其樂孔揚揚.)” 박해의 현장에서 지켜본 천주교 신자들의 태도를 묘사한 대목이다. 잔혹한 형벌에도 그들은 배교하지 않고, 그저 ‘예수 마리아’를 외치며 속히 죽여달라고만 했다. 어서 빨리 천당에 올라가 그 끝없는 즐거움을 누리겠다는 소망이었다. 나열의 이 시는 진산사건 이전에 지은 것이어서, 그가 직접 목격한 현장이 어디였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시 이어지는 한 대목이다. “상제가 어이 중치 않으랴마는, 베푸는 바 멀고도 가까움 있네. 가장 먼저 부모 배반 가르치는 건, 천주의 교리에도 어긋난다네. 차례 건너 아첨하여 섬기는 것은, 밝은 신(神)도 틀림없이 옳다 않으리. 오늘날 베어져 죽임당하니, 죄 얻음이 진실로 그럴 수밖에. 스스로 그 구함을 얻는다면서, 슬픔 감춰 하늘을 속이는구나.(上帝豈不重, 所施有遠近. 首敎畔其親, 已非帝所訓. 越序而諂事, 明神必不. 見今受誅鋤, 獲戾固其然. 自言得其求, 匿哀誣上玄.)” 그들은 믿지 않으면 부모조차 원수로 여긴다. 부모를 저버리고 천주를 섬기겠다니, 이는 십계명에도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세상을 떠난 제 부모의 제사는 거부하면서, 노비 문서를 불태우며 만유 위에 모든 이가 평등하다 외친다. 인륜을 저버린 채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가능한가? 남녀의 분별을 잃고 한 방에 떼로 모여 앉아 밤을 새우니, 이런 꼴을 어찌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이러니 베어 죽임을 당해 마땅하다고 했다. 당시 서학에 대한 평균적 시선이 이러했다.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 cpbc2020.11.11

성직자·수도자들이 꼽은 ‘성소의 뿌리가 된 도서들’하느님의 부르심은 책 속 활자에도 숨어 있다. 3일 성소 주일을 맞아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자신의 ‘성소 꿈나무’에 물과 햇빛을 부어준 책들을 소개한다. 레벤북스 편집장 김동주(성바오로수도회) 수사 -헨리나웬 「제네시 일기」(바오로딸) -장 바니에 「공동체와 성장」(성바오로) 헨리나웬의 「제네시 일기」는 제가 수도원에 오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책에 나오는 수도자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살아보고 싶다’고 여겨질 만큼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침묵과 봉헌, 사도직을 통해 하느님을 갈망하는 시간을 저도 가져보고 싶었습니다. 28살, 수도원에 들어올 때 목마른 사슴처럼 무언가를 찾았는데 이 책에 답이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토마스야, 수도생활을 해보겠니?”라고 초대해준 책이었습니다. 장 바니에의 「공동체와 성장」도 수도원에 대한 갈망을 일으킨 책입니다. 공동체를 통해 사람은 성장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줍니다. 가톨릭출판사 사장 김대영 신부- 테오 코부쉬 「그리스도교 철학 : 주체성의 발견」(가톨릭출판사)여러 철학적 관념과 그리스도교 신학의 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독일어권의 대표적인 철학자인 저자는 ‘주체성’이라는 철학적 관념의 원천이 다름 아닌 교부들의 발견, 즉 그리스도교에 있음을 밝히며 이처럼 신학에는 철학적인 의미와 개념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철학과 신학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오늘날 두 학문이 분리되어 독립적인 영역을 만들어가는 현 상황과 철학의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품는 많은 이들을 향해, 저자는 지금이야말로 오히려 철학과 신학에 대한 통합적인 통찰이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 준비하는 신학생들에게 그리스도교 신학을 공부하면서 신앙적 유산을 통찰하는 계기이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신학생 정석원(다니엘, 서울대교구)-성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경세원) 저에게 고백록은 성경을 제외하고 모든 역사를 통틀어 인간이 펜을 쥐고 쓴 책 중에 가장 잘 쓴 책이라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대부분의 성직자와 달리 30대에 자신의 성소를 발견했습니다. 삶의 여정에서 하느님을 더 깊이 만나고 싶은 억누를 수 없는 욕구를 발견한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담은 고백록은 늦게 성소의 길을 발견하고 걷고자 했던 저에게 큰 내적 공명을 일으켰습니다. 신학자가 되고자 하는 꿈을 심어주었고,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는 사제가 되고자 하는 열망도 곁들여 생겼습니다.성바오로딸수도회 김경희 수녀(기획지원팀, 팟캐스트 전 ‘수도원 책방’ 지기) -M.아가다 「빵나무」(바오로딸) 아주 어릴 때 수도자가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보자기 같은 것을 뒤집어쓰고는 곧잘 수녀 흉내를 내곤 했는데요.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한 삶을 하느님과 함께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책은 10살 무렵에 읽은 책 「빵나무」입니다. 주일학교에서 받은 책이었는데요. 집에 가지고 와 단숨에 읽고 마음이 뭉클해져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따뜻한 책이죠. 빵나무에 나오는 가족이 우리 같았고, 어머니 같았어요. 도움을 청하는 이웃에게 항상 베푸셨던 어머니를 보고 자란 까닭일 겁니다. 나그네를 대접한 그 가난한 집에 나그네가 떠나면서 준 세 개의 씨앗으로 빵나무가 열려, 이 가난한 가족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생각하면서 가슴이 뜨거웠던 그때를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책을 수녀원에 입회해 알았네요. 바오로딸이 만들었다는 걸요. 참, 행복하고, 감사했습니다. 지금은 개정되어 예쁜 색깔로 더 곱게 단장한 이 책, 「빵나무」를 우리 아이들과 부모님들께 추천합니다. 코로나19로 힘든 때에 더 소중한 이야기에요. 이 밖에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이태식 부제의 유고집 「태시기가」(가톨릭시보사)를 읽고 사제 성소의 꿈을 키웠다고 밝힌 바 있다. 성바오로수도회 한국관구장 황인수 신부는 한 수녀의 성소 이야기를 1인칭으로 풀어쓴 소설 「떠날 수 있다면 떠나시지요」(가톨릭출판사)를 추천했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cpbc2020.04.28
대송과 함께 ‘TV 매일미사’ 시청부득이한 경우 주일 미사 참여 의무 어떻게 지켜야 하나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 사태가 신자들의 주일 미사 참여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지역 교구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지역 본당 공동체들의 성사 생활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자칫 신자들의 신앙생활이 위축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까지 낳는 상황이다. 이처럼 전국민적 위급 상황에 해당하는 부득이한 경우, 신자들은 주일 미사 참여의 의무를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묵주 기도·성경 봉독·선행 규정한국 교회는 이처럼 ‘부득이한 상황’에 처했을 때, 신자들이 주일 의무를 대신할 수 있는 ‘대송(代誦) 규정’을 마련해두고 있다. 주교회의가 제정한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제74조 4항은 “미사나 공소 예절에도 참례할 수 없는 부득이한 경우에는 그 대신에 묵주 기도, 성서 봉독, 선행 등으로 그 의무를 대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이에 대해 한국 주교단은 2014년 봄 정기총회를 통해 묵주기도 5단을 바치거나, 해당 주일의 복음과 독서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작은 희생과 봉사 활동으로 주일 미사 참여 의무를 대신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주일 미사 참여 의무를 지키지 못해 죄의식으로 방황하거나 무조건 고해성사에 임해야 한다는 부담감 속에 장기적으로 이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는 신자들을 위한 배려 조치이기도 하다. 과거 대송 방법의 하나였던 ‘주님의 기도 33번 바치기’는 현재 대송에 해당하지 않는다.이처럼 공동체 전례와 성사 생활이 위협을 받는 상황 속에서 각 교구도 신자 보호를 위해 관련 지침을 내놓음에 따라, 대송에 대한 신자들의 명확한 이해도 필요해졌다. 확진자가 발생한 지역의 신자들이나 혹은 의심 증세가 있는 이들은 주일 미사에 참여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코로나19에 대한 우려로 주일 미사 참여에 어려움을 느낀다면, 개인 혹은 가족 구성원이 함께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것이 좋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윤종식(가톨릭대 신학대 전례학 교수) 신부는 “전국 교구와 신심 단체가 대부분 집회 활동과 행사를 취소하는 등 코로나19 사태는 교회 공동체 활동이 위협받는 부득이한 재해에 해당한다”며 “주일 미사 참여 의무를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된다면 각 가정에서 대송 규정을 잘 숙지하고 ‘개별 영신 생활’을 지켜야 한다”고 설명했다.코로나19로 신앙생활 위축 경계윤 신부는 아울러 “대신 본당 사목자와 수도자는 미사 참여를 못 하는 신자들에게 메시지나 SNS로 주일 강론 말씀을 전송해주고, 신자들은 대송과 함께 가톨릭평화방송TV 미사 시청이나 가톨릭평화신문 등을 활용해 주일 복음 말씀을 되새기고자 노력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며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것도 좋다”고 했다.분명한 것은 대송이 주일 미사 참여의 의무를 온전히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피치 못하게 발생한 현 상황에서 대송을 포함한 다양한 개별 노력이 신앙생활을 지키는 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정훈 기자 평화신문2020.02.26
신부님이 알려주는 기초 교리, 책값 대신 후원을가톨릭 기본교리 상식
전수홍 지음 / 오륜대 순교자 성지 구원이란 무엇인가? 기도에도 종류가 있다?매우 기본적인 가르침이라고 생각하다가도 막상 설명하기 어려운 용어와 내용이 바로 가톨릭 기본교리다.전수홍(부산교구 오륜대순교자성지 담당) 신부가 「가톨릭 기본교리 상식」을 펴냈다. 35쪽의 작은 책자이지만, 기본 용어해설부터 믿음, 성경, 교회, 성사, 전례 등 교리의 주요 주제별 가르침을 일목요연하게 담았다.성사와 성경, 기도에 관한 기본상식은 물론, 성경을 읽는 태도와 고해성사를 보는 순서, 성가정에 비치해야 할 성물 등 궁금증에도 자세히 답해주고 있다. 예비 신자들뿐만 아니라, 현대 신자들이 무심코 지나쳤던 기초적인 교리를 되새겨볼 수 있어 유용하다. 많은 신자가 틈날 때마다 볼 수 있도록 성당이나 교리실에 비치해두는 것도 좋겠다.오륜대순교자성지는 새 성전 건립 등 성지개발을 한창 추진 중이며, 신자들의 관심을 도모해오고 있다. 현재 부산교구 모든 본당에는 예비신자 및 신자 재교육용으로 30부씩 배포한 상태이다. 새 성전 건립을 위한 작은 관심만 전해준다면, 책자 비용은 따로 받지 않는다. 문의 : 051-515-0030, 오륜대순교자성지 이정훈 기자 평화신문2019.05.02

차별 금지의 이름으로 ‘남녀 혼인’과 ‘생명’의 가치 간과하면 안 돼차별금지법안, 무엇이 문제인가 차별금지법안 제2조에서는 성별을 “남자와 여자, 그 외 분류할 수 없는 성”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교회는 인간의 성별이 남자와 여자로 되어 있다는 근본적인 사실을 바꾸지 못한다고 밝히며, 차별금지법안이 남자와 여자의 성과 사랑, 남녀의 혼인과 가정 공동체가 갖는 특별한 의미와 역할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CNS 자료 사진】 차별금지법안이 2020년 6월 29일 국회에 발의됐다. 이 법안은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을 지향하는 것으로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어떤 누구도 특별한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법안에 대한 반대 목소리 또한 거세다. 차별금지법 반대에 관한 청원은 지난 7월 7일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며 21대 국회의 첫 국민동의청원이 됐으며, 학계와 종교계 내에서도 법안을 바라보는 온도 차가 상당하다. 차별을 금지하자는데, 찬반이 갈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교회 가르침을 바탕으로 차별금지법안을 살펴본다.차별금지법안의 논란점“차별금지법안은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금지하고, 차별로 인한 피해를 효과적으로 구제함으로써 헌법상의 평등권을 보호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함을 목적으로 한다.”(제1조) 차별금지법안 제1조의 내용이다. 사회 전반에 걸쳐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은 총 57조항으로 구성돼 있다. 프로라이프 변호사회 회장 윤형한(야고보) 변호사는 “법령 내용을 보면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표현이 많으며 우리 사회를 이루는 모든 걸 다 써놓고 있어 무엇을 차별 금지하라는 것인지 알 수 없게 규정하고 있다”며 “이런 법은 악용될 소지가 많고 재판부에 갔을 때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이어 “법의 입법 의도는 성소수자의 차별 금지를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보여진다”라며 “성소수자 차별금지법으로 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차별금지법안에 포함된 남녀차별금지와 장애인차별금지 등은 이미 법제화돼 있기 때문이다.차별금지법안이 성소수자의 차별금지법으로 비춰지는 근거는 법안의 제2조 1항, 4항, 5항 등이다. 제2조 1항은 “성별이란 여성, 남성, 그 외에 분류할 수 없는 성을 말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유튜브를 통해 차별금지법안에 반대 목소리를 높여 온 김연준(광주대교구, 피아골 피정의 집 관장) 신부는 “법안에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교묘하게 숨어 있는 성별의 정의 개념과 성별 정체성이라는 표현에 주목해야 한다”라며 “대부분의 사람이 성별하면 남자와 여자만 생각하지만, 차별금지법안에서의 성별은 남자와 여자의 개념을 넘어선다”고 지적했다. 김 신부는 “성소수자란 동성애자뿐 아니라 여성애자, 남성애자, 성전환자, 제3의 성 등을 포함한다”며 “이를 의학적으로 분류하면 크게 20여 가지, 세부적으로 분류하면 60여 가지가 넘는다”고 지적했다.차별금지법안에 대한 교회의 입장교회는 차별을 금지하고 인권 증진 등을 위한 차별금지법안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차별금지법의 일부 조항이 교회가 중요시해 온 남녀의 혼인과 출산, 생명에 대한 가치를 훼손할 수 있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 이용훈 주교는 7일 ‘차별금지법안에 대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성명서’를 통해 “누구든지 성별ㆍ종교 또는 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헌법 제11조 1항)”는 모든 인간의 존엄성에 기반을 둔 차별금지법안의 취지에는 공감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안의 일부 조항에 대한 교회의 우려를 표명했다. △동성애자의 결합을 혼인과 가정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과 유사하거나 비슷하다고 여기는 움직임 △남자와 여자의 성과 사랑, 남녀의 혼인과 가정 공동체가 갖는 특별한 의미와 역할에 대한 간과 △차별 금지라는 이름으로 남녀 혼인과 가정 공동체의 특별한 중요성의 간과나 무시 △생명의 파괴, 인공 출산의 확산, 유전자 조작을 통한 생명의 선별적 선택과 폐기 △성 소수자들의 입양 허용 등이다. 차별금지법안이 기존의 사회 가치를 훼손하고 이를 지키려는 이들을 역차별한다는 지적도 있다.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혼인과 출산의 중요성은 간과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차별받고 낙태되는 태아에 관한 언급은 한 마디도 없기 때문이다. 수원교구는 8월 2일 자 주보를 통해 “차별금지의 이름으로 남자와 여자의 성과 사랑, 혼인과 가정의 특별한 중요성이 간과되거나 무시돼서는 안 될 것”이라며 “차별금지법이 눈에 보이는 생명뿐 아니라, 생명의 시작부터 차별과 배척ㆍ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을 때 온전한 법 정신이 실현되리라 생각한다”고 밝혔다.차별금지법안이 통과되면차별금지법안에 동성혼 허용에 관한 항목은 없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이 동성혼 허용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이 전반적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교회가 강조하는 남자와 여자의 성과 사랑, 남녀의 혼인과 가정공동체의 가치 증진 교육은 차별금지법안 제32조(교육내용의 차별금지)에 위배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하다. 더욱이 동성애와 동성혼을 반대하는 교회의 윤리적 선택이 소수자 차별이라고 낙인 찍힐 수 있다. 차별금지법안이 통과된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면 기우가 아니다.영국은 2005년 동성 커플의 ‘시민결합’을 법적으로 인정했고, 2007년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2009년 초부터 시행됐다. 2013년 동성 혼인도 합법화했다. 차별금지법에 따라 2009년 초부터 입양 기관이 동성 커플 입양을 거부하면 벌금을 물고 정부 지원금도 받지 못하게 되자 결국 영국 가톨릭 입양 기관의 반은 문을 닫았다. 기관이 아닌 개인도 마찬가지다. 미국 콜로라도주의 제빵사 잭 필립스는 2012년 동성결혼 케이크 제작을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거부했다는 이유로 시민평등위로부터 소송을 당해 6년간 법정 싸움을 벌여야 했다. 다행히 2018년 6월 승소했지만 최근 성전환 기념 케이크 제작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또 소송을 당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프랑스 학교에서는 학생과 관련한 모든 서류에 동성부모 차별 금지를 취지로 ‘아버지, 어머니’ 대신 ‘부모 1, 2’로 표기하도록 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는 자녀 성전환을 반대하는 부모의 양육권을 빼앗는 법안이 통과됐다.차별금지법은 17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후 찬반 논란으로 20대 국회까지 입법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정의당을 중심으로 한 차별금지법 지지층은 21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모양새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6월 30일 기자회견을 통해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하고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결과’를 근거로 국민 88.5%가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안의 문제점을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조사한 결과라 논란이 있다.김연준 신부는 “인권이라는 것은 우리 삶에 직결되기 때문에 차별금지법 제목만 보고 찬성할 게 아니라 내용을 공부해야 한다”며 “내 자녀와 교회에 심각한 타격과 윤리의 혼란을 가져올 수 있는 법안을 찬성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가톨릭교회는 동성애를 심각한 타락으로 제시하고 있는 성경에 바탕을 두어 동성애 행위는 그 자체로 무질서라고 천명해 오며 동성의 성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인정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357항 참조) 하지만 교회 밖으로 내쳤던 이들을 ‘율법이 아닌 복음’의 잣대로 불러오기 위한 노력도 계속하고 있다. 2015년 세계주교시노드에서는 ‘교회와 현대 세계에서 가정의 소명과 사명’을 주제로 논의했고 “동성애적 성향을 지닌 사람들과 함께 사는 가정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최종보고서 76항)며 단죄와 비난이 아닌 따뜻한 관심과 격려를 강조했다. 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cpbc2020.09.09

유다는 얼마에 예수님을 팔았을까성경 속 돈 이야기 화폐가 통용되기 이전 구약의 유다인들은 귀금속을 달아 사용했습니다(창세 23,16). 정확한 무게를 보증하기 위해 유다인들은 “올바른 저울과 저울판은 주님의 것이고 주머니 속의 저울추도 그분의 소관이다”(잠언 16,11)라고 강조했죠. 이렇게 돈을 세지 않고 다는 관습은 팔레스티나뿐 아니라 지중해 연안 전역에 퍼져 있었습니다. 그러다 유다인들은 바빌론 유배생활 때 물물교환이나 귀금속을 저울로 달아 주는 것보다 공신력을 가진 화폐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편리하다는 것을 경험했죠. 귀환 후에도 계속해서 헬라와 로마의 지배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갖가지 돈을 통용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발견된 최초의 화폐는 페르시아 다리우스 왕의 금화 ‘다리크’였죠. 그 후 헬레니즘 시대 돈과 셀로이코스가의 안티오쿠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초상이 새겨진 화폐도 통용됐습니다. 로마인들은 팔레스티나를 점령한 후 인두세를 로마 돈으로 내도록 했죠. 복음서에도 예수님 시대 통용되던 ‘드라크마’(루카 15,8) ‘데나리온’(마태 22,19; 마르 2,15; 루카 20,24), ‘아스’(마태 10,29; 루카 12,6), ‘세켈’, ‘미나’, ‘탈렌트’ 등 많은 돈 이야기가 나옵니다. 드라크마는 헬라 화폐이고, 아스ㆍ데나리온는 로마 돈이며, 미나는 페니키아 통화였죠. 1드라크마와 1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1스타테르(마태 17,27)와 1세켈, 은돈 1아르기리온은 4드라크마(데나리온)로 노동자의 ‘나흘 품삯’이었죠.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님을 수석 사제들에게 팔아넘기고 받은 은돈 아르기리온 서른 닢(마태 26,15)은 120데나리온으로, 유다는 노동자의 넉 달 품삯을 받고 주님을 배신한 것이죠. 2021년 우리나라 직장인 평균 월급이 333만 원을 고려한다면, 유다 이스카리옷은 한화 1332만 원을 받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셈이죠. 아울러 복음서에 많이 나오는 은화 1탈렌트는 한화 1억 8250여만 원에 해당합니다. 또 미나의 비유(루카 19,11-27)에 나오는 1미나는 60분의 1 은화 탈렌트 가치였죠. 이 밖에 ‘아스’는 1데나리온의 16분의 1로 예수님 시대 참새 두 마리를 살 수 있는 돈(마태 10,29)이었죠. 우리 말로 ‘닢’으로 번역된 ‘콰드란스’는 1데나리온의 64분의 1 가치였습니다(마태 5,26). 또 ‘가난한 과부의 비유’에 나오는 ‘렙톤’(마르 12,42)은 1드라크마(데나리온)의 128분의 1 가치였죠. 즉 가난한 과부가 헌금한 렙톤 두 닢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입니다. 유다인 화폐도 있었습니다. 시몬 마카베오가 기원전 150년쯤에 주조한 구리 돈으로 유다인의 상징인 ‘레몬나무와 종려나무 가지’를 새기고 ‘해방된 시온’ 또는 ‘대사제와 공동체’라는 글이 새겨져 있죠. 유다인 화폐는 사람의 초상이나 동물의 형상을 새기거나 그리는 것을 금한 십계명 말씀에 따라 주로 식물이나 기하학적 상징을 도안했습니다. “너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든, 땅 아래로 물속에 있는 것이든 그 모습을 본뜬 어떤 신상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탈출 20,4). 감히 이 규정을 어기는 자가 없어 헤로데 대왕조차 화폐에 자신의 얼굴을 새기지 않고 앞면에 ‘헤로데 왕’이란 글자만, 뒷면엔 꽃과 과실, 투구나 방패 등을 새겼다. 하지만 헤로데의 아들인 필리포스만이 자신의 초상을 새긴 화폐를 발행해 유다인들에게서 원성을 샀죠. 유다인들은 율법에 따라 성전세를 바칠 때는 반드시 유다인 화폐를 사용해야 했기에 성전 앞뜰에는 환전꾼(요한 2,14)들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네 복음서 가운데 유독 마태오 복음서에서 다양한 화폐가 소개되는데 아마 그가 세리 출신이어서 돈에 밝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직업은 속일 수 없는 법인가 봅니다. cpbc2018.03.28

예수님의 경제학 ‘약자의 몫을 먼저 챙겨줘라’[엉클 죠의 바티칸산책] (21) 당시 갈릴래아 경제는 노숙 생활을 하는 아버지와 아이가 폭우가 퍼붓자 비닐을 덮어쓰고 보호소로 걸어가고 있다. 국가의 책무 가운데 하나는 사회적 약자들에게도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보장하는 것이다. 【콜카타(인도)=CNS】 현실 문제에 대한 예수님의 메시지는 무서울 정도로 예리합니다. 갈릴래아의 생활상이 투영된 예화를 묵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갈릴래아는 대다수 백성이 절대빈곤 상태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으로선 굶주린 백성들을 배불리 먹이는 게 일차적인 목표였겠지요. 배고픈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들 귀에 들어가기나 했겠습니까. 그렇다고 허구한 날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킬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것은 백성들에게 나쁜 신호를 줄 수 있습니다. 누가 땀 흘려가며 일하려고 하겠습니까. 백성들 스스로 경제 문제를 해결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예수님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 있었을 것입니다. 두 예화 살펴보기 제가 주목하는 예화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탈렌트의 비유’(마태 25,14-30)이고, 다른 하나는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마태 20,1-16)입니다. 제가 이 예화에 대해 신학적 해석을 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것은 저의 영역이 아닙니다. 저는 경제학적 해석을 시도해 보겠습니다. 저의 학창시절 꿈은 경제학자가 되어 세상의 경제적 궁핍을 해소하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것이었습니다. 실로 당찬 포부였지요. 가난한 나라를 잘 살게 하는 개발경제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학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여건이 되지 않아 경제학자의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대신 경제전문기자로 20여 년간 실물경제 현장을 쫓아다녔습니다. 자연스럽게 경제학적 시각에서 세상사를 보는 버릇이 몸에 배었습니다. 성경을 묵상할 때도 이런 기질이 나옵니다.‘탈렌트의 비유’는 시장경제체제의 핵심적 기조인 경쟁 원리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부자 주인이 여행을 떠나면서 세 명의 종에게 거액의 돈을 맡겼는데, 두 명은 두 배 벌었고 한 명은 본전 그대로였습니다. 주인의 평가는 냉정했고 후속 조치는 가혹했습니다. 두 배를 번 종은 크게 치하했고, 본전밖에 못 한 종은 퇴출시켜 버렸습니다. 요즘 증권회사의 펀드 매니저들을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태 25,29)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은 이를 ‘마태오 효과(Matthew Effect)’라 불렀습니다. 승자독식 시스템을 설명한 이론이지요.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만큼 마태오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는 분야도 없습니다. 성적이 저조한 선수와 감독은 눈물을 머금고 보따리를 싸야 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저마다 피나는 노력을 할 수밖에! 생산성이 자연스럽게 높아집니다. ‘탈렌트의 비유’는 치열한 경쟁을 촉발해 파이를 키우는 성장 정책입니다.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는 생산된 파이를 어떻게 분배해야 옳으냐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파이를 아무리 많이 생산해도 소수의 사람이 독과점해 버린다면 백성들은 빈곤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포도밭 주인은 온종일 일한 사람이나 한 시간 일한 사람이나 똑같이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줬습니다. 한 시간 일한 사람은 필시 사회적 약자였을 것입니다. 이들은 정상적인 경쟁이 불가능합니다. 국가가 이들에게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해 주는 적극적인 복지정책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 예화에서 포도밭 주인이 ‘맨 나중에 온 일꾼’ 즉 사회적 약자에게 품삯을 먼저 주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웨덴 등 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 국가들이 이런 복지정책을 잘 구현하고 있습니다.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론도 같은 맥락에서 나왔습니다. 성장과 분배 갈릴래아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세상의 축소판입니다. ‘갈릴래아 현상’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세상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배 터져 죽고, 다른 한쪽에서는 배 곯아 죽고…. 이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까요. 예수님은 성장과 분배를 모두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장이 먼저냐, 분배가 먼저냐 따질 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탈렌트의 비유’에는 시장경제주의(성장), ‘착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에는 사회민주주의(분배와 복지)의 메시지가 숨어 있습니다. 쉽게 요약해 봤습니다. “경쟁을 통해 파이를 최대한 키워라! 그리고 잘 나눠 먹어라! 항상 약자의 몫을 먼저 챙겨 줘라!”예수님의 경제학적 예지력은 정말 놀랍습니다. 21세기에도 유효한 경제원리를 2000년 전에 말씀하셨으니!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 평화신문2020.05.06
청주평협, 가경자 최양업 신부 사제 수품 170주년 기념 도보 성지순례 최양업 신부 사제 수품 170주년 기념 도보 성지순례 중 기도를 바치는 청주교구 성직자와 수도자, 신자들. 장광동 명예기자 청주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회장 길병석)은 9월 28일 충북 진천군 배티성지 일원에서 교구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 1800여 명이 함께한 가운데 가경자 최양업 신부 사제 수품 170주년 기념 도보 성지순례를 하고, 최 신부의 시복과 124위 순교자들의 시성, 하느님의 종 133위와 81위의 시복을 위해 기도했다. 1코스는 배티성지 대성전을 출발해 십자가의 길 14처와 6인묘, 복자 오반지 바오로 묘소, 14인묘, 옛 성당 겸 신학교, 박물관으로 돌아왔고, 2코스는 대성전을 출발한 뒤 반대로 박물관, 복자 오반지 바오로 묘소, 14인묘, 옛 성당 겸 신학교, 십자가의 길을 돌았다. 순례 뒤 묵주기도를 하고, 교구장 장봉훈 주교 주례와 교구 사제 공동 집전으로 파견 미사를 봉헌했다. 미사 뒤 경품 추첨을 통해 장 주교는 신자들에게 교구장 문장이 들어간 묵주와 성경, 최 신부 사제수품 17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최양업 신부 동상 2개를 전달했다. 배티성지 담임 이현로 신부는 미사 강론에서 “가경자 최양업 신부님이 시복되시면, 한국 교회에서 처음으로 순교자가 아닌 증거자가 시복되는 영예를 안게 된다”며 “2년 뒤 탄생 200주년을 맞는 증거자 최양업 신부님의 시복시성을 위해 열심히 기도해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장광동 명예기자 jang@cpbc.co.kr 평화신문2019.10.10

지구 살리기, 탄소저금통 보급 캠페인 펼치기로 프란치스코회 가족 정의평화창조보전위..
탄소발자국 줄이기 2020 평화의 기도 모임..
일상 생활 탄소 줄여 나무 심기 기금 마련 2020 평화의 기도 모임에서 기후위기 비상구 캠페인으로 탄소저금통 활용이 제안되자 프란치스칸들이 탄소저금통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가져가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 총량, 곧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을 어떻게 줄일까? 프란치스코회 가족 정의평화창조보전위원회(JPIC)는 8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탄소발자국 줄이기 2020 평화의 기도 모임을 열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분별한 화석연료 사용과 에너지 낭비 등으로 황폐해지고 피폐해져 가는 지구를 먼저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이날 기도 모임에는 작은 형제회, 꼰벤뚜알 프란치스코수도회, 카푸친 작은 형제회, 재속 프란치스코 한국국가형제회 회원 150여 명이 참여해 기후위기로 고통받는 이들의 울부짖음에 귀 기울이고, 무관심의 장막에서 벗어나 환경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를 이뤄가도록 기도했다. 또한 미사 봉헌 예식 때에는 신앙인들이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겨 시대 징표가 무엇인지 찾고 행동해야 한다는 뜻으로 성경을, 평화를 상징하는 프란치스코 성상을, 기후위기에 대응해 생명을 돌보고 살리는 우리 마음을 상징하는 꽃나무를, 희망을 심고 키워가는 모든 활동가의 노력을 상징하는 씨앗을 봉헌했다. 아울러 푸른아시아 몽골지부장인 성공회 신기호 신부를 초청, ‘기후 위기의 증인들’이라는 주제로 몽골의 사막화 문제에 대한 강연을 들었다. 신 신부는 지난 10년간 이뤄온 몽골 생태복원 활동을 소개하며 “나무를 심었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라 그 나무에 물을 주고 유지 관리하는 데 80%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프란치스코회 가족들은 오는 사순 시기부터 비영리 국제 NGO 푸른아시아와 함께 ‘탄소저금통’을 보급하기로 하는 등 기후위기 비상구 캠페인을 펼치기로 했다. 각자 일상에서 탄소발자국을 줄여 그 금액을 저금통에 모아 그 기금으로 사막화돼 가는 땅에 나무를 심어 기후위기로 피해를 당한 환경 난민들이 환경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자립하도록 돕는 일이다. 탄소저금통인 나무를 심어 내가 배출한 탄소를 저금하면, 30년산 소나무 기준으로 나무 1그루당 연간 6.6㎏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수 있다. 이날 임기를 시작한 양동순(체칠리아) 프란치스코회 가족 JPIC 신임 대표는 “현재 푸른아시아와 함께 환경 영상 씨네톡을 하고 있으니까, 이제 앞으로 단위 형제회들과 협의해 탄소저금통을 보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JPIC 안에서도 피정을 통해 직ㆍ간접적으로 온실가스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알리고, 피조물 공동의 집인 지구를 보호하고 지키는 데 관심을 두고 청지기로서의 실천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평화신문2020.01.15

아마존의 울부짖음에 꿈과 사랑으로 응답프란치스코 교황, 아마존 특별 시노드 후속 교황 권고 「사랑하는 아마존」 발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0월 바티칸에서 개최된 아마존 시노드 회기 중 아마존 원주민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CNS 자료 사진】 프란치스코 교황은 12일 주교대의원회의 범 아마존 특별회의 후속 교황 권고 「사랑하는 아마존(Querida Amazonia)」을 발표했다. 2019년 10월 6~27일 바티칸에서 열린 아마존 시노드에서 논의된 내용에 대한 교황의 응답이다. 아마존 지역의 복음화는 물론 오늘날 아마존이 겪고 있는 사회, 문화, 환경 문제의 해결을 위한 교황의 통찰을 담았다. 4개 장 111개 문항으로 이뤄진 권고는 서론(1~7항), 본론(8~110항), 결론(111항)으로 구성돼 있다. 본론은 제1장 사회적 꿈(8~27항), 제2장 문화적 꿈(28~40항), 제3장 생태적 꿈(41~60항), 제4장 교회의 꿈(60~110항)으로 나뉘어 있다. 교황은 권고를 통해 아마존을 위해 꾸는 자신의 꿈을 펼쳐 보이며 이 꿈에 모든 이들을 초대했다. 교황은 “가난한 이들, 토착 민족들, 가장 보잘것없는 형제자매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존엄을 증진할 수 있는 아마존을 꿈꾼다”고 했다. 또 다양한 문화와 아름다운 생명을 지키고 아마존에 헌신하는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살아 숨 쉬는 아마존을 꿈꿨다. 사회 일각에서 관심이 집중됐던 기혼 사제 허용 문제에 관해서는 “아마존에서 사목할 사제 양성에 전 세계 주교들의 관심을 독려하고, 평신도 활동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사제가 없는 지역에서 신앙 공동체를 보전해 온 여성 신자들의 노력에도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여성이 성품에 받아들여질 때에야 비로소 교회 안에서 더 큰 위상과 참여가 허용되리라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환원주의를 경계하며 여성 성품직 논의를 일축했다.권고의 핵심은 무분별한 개발과 착취로 아마존 토착민과 가난한 이들이 겪는 고통, 파괴되는 환경 문제에 있다. 교황은 아마존의 울부짖음에 각국 정부와 기업인들의 책임을 환기하며 전 세계가 아마존을 지키는 데 함께하기를 촉구했다. 특별히 “교회는 아마존 민족들과 함께 걸어가라고 부름 받았다”며 ‘아마존의 얼굴을 지닌 교회’의 역할과 사명을 분명하게 제시했다.‘사랑하는 아마존’으로 시작하는 권고는 아마존과 전 세계에 보내는 교황의 연서(戀書)로 평가받고 있다. 교황은 권고에서 남미 시인들의 시적 언어를 빌리고, 문학적 표현을 사용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문장마다 아마존을 바라보는 교황의 따스한 시선과 아마존을 향한 사랑이 진하게 배어난다. 이는 교황이 아마존 시노드 기간에 아마존 토착민 대표와 지역 전문가들을 초청해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들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아마존 시노드 특별 서기 마이클 체르니 추기경은 “마치 러브레터처럼 시작하는 권고를 통해 ‘사랑해야 구할 수 있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 교수 아데우손 아라우주 도스 산투수(영성신학과) 신부는 교황이 선택한 ‘꿈’이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산투수 신부는 “성경에서 꿈이란 하느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계시하는 자리”라면서 “교황이 말한 꿈에는 아마존 시노드 최종 문서가 촉구하는 회심의 가치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평화신문2020.02.19

2000년 그리스도교 역사 살펴보며 배우는 ‘영성 생활의 지혜’그리스도교 영성 역사- 근현대편 / 전영준 신부 지음 /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00년 역사의 그리스도교를 보려면 그리스도인이 살아온 영성 생활의 역사를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16세기 종교개혁주의자들의 출현으로 서방 가톨릭교회는 분열을 경험한다. 18세기 프랑스 혁명으로 프랑스 가톨릭 교회는 위축됐으며, 19세기에는 민족주의를 표방한 이탈리아 통일운동으로 교황령이 점령을 당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그 시대를 살았던 영성가의 삶과 영성신학자의 사상은 전례와 성사생활을 비롯해 대중들의 신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2016년부터 2년간 본지에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를 연재해 꾸준한 인기를 끌었던 전영준(가톨릭대 신학대학장) 신부가 「그리스도교 영성 역사」를 전 3권으로 완간했다. 전 신부는 2017년 고대편(초세기~6세기)을 선보인 뒤 이듬해 중세편(7~14세기)을 잇달아 내고, 최근 근현대편을 출간함으로써 2000년 그리스도교 영성 역사를 총망라하는 작업을 끝냈다. 마지막 권에서 다루고 있는 근현대 유럽 역사는 계몽주의, 낭만주의 등 인간 중심의 다양한 사상이 출현한 시기였다. 이 때문에 반종교적 사상들이 난립했고, 과학과 산업의 발달은 그리스도교를 세속적 도전에 직면하게 했다.15~21세기를 다룬 근현대편에는 서방 교회의 분열을 매듭짓기 위해 소집된 콘스탄츠 공의회(1414~1418)에서 활약했던 피에르 다이를 시작으로, 영적 쇄신을 위한 영신 수련을 지도한 로욜라의 이냐시오 등 60여 명의 영성가와 영성신학자들이 등장한다. 이단으로 단죄받은 스페인의 조명주의자(계시로 조명받고 계몽된 사람들이라는 뜻)들을 비롯한 스페인 영성, 오라토리오회 설립자인 필립보 네리 등 이탈리아의 신비체험가들도 소개했다. 바로크 예술과 맞물린 계몽주의 시대의 영성과 이단 사조를 극복했던 이탈리아 영성, 개신교의 경건주의에 직면한 독일 가톨릭 영성 등 지금까지 가톨릭 교회가 위기를 극복하며 신앙 유산을 이어온 흥미진진한 과정을 탐색할 수 있다.저자는 책에서 그리스도교 영성 역사를 볼 때 객관적인 관점으로 다가가기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2000년 그리스도교 역사가 상세히 기록돼 있지 않고, 초자연적 그리스도교 신앙과 관련된 역사는 이미 주관적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전 신부는 2000년 동안 그리스도인이 살아온 영성 생활의 역사를 다양한 측면으로 다가갔다고 밝히고 있다. 평신도 그리스도인의 전례ㆍ성사생활, 수도자의 수도생활과 더불어 대중들의 신심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고 발전됐는지를 다뤘다. 음악과 미술 등 인류의 정신문화와 예술을 통한 영성 역사의 현주소를 두루 살폈다.전 신부는 서문에서 “독자들도 그리스도교 영성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자신의 영적 여정의 현주소를 확인하는 기회를 갖고, 신앙인으로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전 신부는 1991년 사제품을 받고 2007년 그레고리안대학교에서 영성신학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듬해부터 성신교정 영성신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 「성경에서 시작하는 영성 생활」, 「주님과 함께하는 영성생활」이 있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cpbc2020.02.19

샤를마뉴의 ‘카롤링거 르네상스’, 오늘의 유럽을 만들다[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14)장 빅토르 슈네츠의 ‘알쿠이노를 접견하는 샤를마뉴’ 장 빅토르 슈네츠, ‘알쿠이노를 접견하는 샤를마뉴’(1830년), 파리, 루브르 소장. 2018년 월드컵 축구가 러시아에서 열렸다. 이탈리아는 지역 예선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본선에 참가조차 못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결승까지 올라가 크로아티아를 4:2로 누르고 최종 우승의 영예를 누렸다. 그 모든 과정에서 이탈리아는 한 번도 이웃 나라인 프랑스를 응원한 적이 없다. 그만큼 두 나라는 서로를 싫어하고 잘못되면 고소하다고 생각하는 기류가 큰 것이 사실이다. 1500년간 유럽의 역사 속에서, 제2차 세계대전과 같은 전쟁 시에 서로에게 총을 겨누었던 탓도 있지만, 여기에는 근원적인 이유가 있다고 여겨진다. 이탈리아 입장에서 볼 때 프랑스는 프랑크, 곧 북방 야만 민족 중 하나였다. 그런 민족이 종교와 언어와 법률을 모두 로마에서 받아들여 ‘문명’을 가진 민족으로 재탄생하였다. 프랑스의 뿌리를 아는 로마, 곧 이탈리아는 그것이 꼴 보기 싫은 거고, 프랑스는 로마 제국을 쫄딱 망하게 만든 별 볼 일 없는 반도가 기껏 살려주었더니 이제 와서 우리를 무시한다는 것이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과거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절에 꽃을 피웠던 문화가 제국의 멸망과 이민족들의 난입으로 꺼져가는 것을 다시 살려, 이민족들이 일으킨 왕국들에 전수한 일등공신으로 자처하는데, 그것을 전 유럽이 인정하는데, 로마만 무시한다고 울먹이는 것이다. 이번에는 프랑크 왕국이 어떻게 유럽의 종주국이 되었는지, 그들이 이룩한 문화적인 업적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일상적인 주제를 고전적으로 그려내다소개할 작품은 프랑스 출신의 화가 장 빅토르 슈네츠(Jean-Victor Schnetz, 1787~1870)가 그린 ‘알쿠이노를 접견하는 샤를마뉴’이다. 슈네츠는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의 제자며, 테오도르 제리코(Thodore Gricault)의 친구다. 낭만주의에 입각한 신고전주의와 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어릴 적부터 동경했던 이탈리아에서 오래 머물렀고, 로마에서 프랑스 아카데미 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빌라 메디치에 초대된 젊은 예술가 중 눈에 띄는 경력을 이룩한 사람으로 손꼽히기도 했다. 슈네츠는 작업실 안에서 박제된 형태의 모델보다는 자연과 인간의 현실과 일상의 장면들을 화폭에 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로마시의 허락으로 외곽에 거주하는 유목민과 집시촌으로 들어가 그들의 삶의 현실을 화폭에 담았다. 동시에 ‘지중해’ 생활의 풍경과 인물들을 그리는 데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민간의 신심을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연구했고,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을 포착하려고 노력했다. 당시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대립은 상당했다. 공개적으로 서로 다투었는데, 비록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슈네츠 덕분에 둘의 상반된 견해가 심도있는 회화에 대한 지식으로 화해를 모색하기도 했다. 그는 평범한 방식으로, 농부와 전사(戰士)들의 일상적인 주제를 고전적인 방식으로 그려냈다. 이런 방식이 그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다. 1841~1846년 로마의 프랑스 아카데미 원장을 지냈고, 1870년에 파리로 돌아가 83세에 사망했다. 다양한 학문과 예술이 꽃피우다그림 속 이야기는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절 메세나 운동으로 다양한 학문과 예술이 꽃을 피웠던 것처럼, 샤를마뉴로 인해 오늘날 유럽이라고 일컫는 곳에서 고전이 꽃을 피운 것과 관련이 있다. 역사는 이것을 ‘카롤링거 르네상스(Carolingian Renaissance)’라고 부른다. 카롤링거 왕조의 카롤루스(샤를) 시대에 일어난 라틴 문화, 즉 고전의 부흥 운동이다. 이 운동은 샤를이 과거 서로마 제국의 영토를 모두 평정하는 과정에서 로마 문화가 비교적 많이 남아 있던 지역들을 접수하면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샤를이 야만 민족들 사이에서 탄생하는 성직자들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시작한 순수한 교회 운동이었다. 도처에서 ‘라틴어 사투리’(오늘날 유럽어의 기원이 되는 ‘로망스어’)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성직자들에게 정확한 원래 라틴어와 라틴 지식을 전수하려는 목적이었다. 결과적으로는 고전의 부활이었고, 유럽 전역에서 라틴 문화가 꽃을 피우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마뉴(magnus), ‘위대한’이라는 호칭에 걸맞게 그리스도인으로서 강력한 군사력을 기반으로 영토를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지켜내며 체계적인 행정 제도를 도입하여 제국을 안정시키고 문화와 예술이 융성하도록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교황에게 약속한 대로, 그리스도교의 확산을 위해 도처에 많은 성당과 수도원을 지었고, 거기에 딸린 학교와 병원 등을 지어 성직자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학문을 전수하고 연구하도록 했다. 프랑크 왕국은 물론, 주변의 여러 왕국에서 저명한 학자들을 초청하여 제국 내 학문을 장려하고 학자들을 양성하였다. 카롤링거는 교황뿐 아니라 성 베네딕도 수도회와도 깊은 관계를 맺으며 제국 내에 수십 개의 대수도원을 지었고, 교양 있는 성직자들을 왕궁에 모셔 왕실 자녀들의 교육에 힘썼다. 이를 모델로 각 지역에서도 성당과 수도원을 짓고, 백성들을 교육함으로써 지역 문화의 산실로 자리매김하도록 했다. 샤를은 건축, 미학, 문학, 시 등 다양한 문화 분야에서 참되고 진정한 개혁을 시도했다. 그는 왕국의 도처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불러들였다. 요크지방에서 태어난 앵글로색슨족 출신인 알쿠이노, 롬바르드족 출신의 파올로 디아코노, 피사 출신의 문법학자 피에트로, 아랍인들이 스페인을 침입하자 도망쳐 온 고트족 사람 테오돌포 도르레앙스 등이다. 탁월한 문법학자들의 변증법적인 수사학은 당시 궁정에서 발전하고 있던 여러 정책에 힘을 실어 주었다. 샤를은 여러 학문을 통해 기존의 인식을 심화할 수 있는 것들에 큰 흥미를 느꼈다. 그가 일으킨 문예 부흥에 힘입어, 수사학과 문법, 논리학과 음악, 기하학과 수학, 천문학을 ‘일곱 가지 자유 학예(septem artes liberales)’로 자리를 잡게 함으로써 중세 교육의 근간이 되게 했다. 그가 읽기와 쓰기를 거의 하지 못했다는 것은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당시에는 읽고 쓰는 것을 하위 계급에 맡겼기 때문에 그 일은 귀족에게 어울리지 않는 활동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문화는 구전으로, 개인의 기억으로 전수되었던 것이다.작품속으로한편 샤를은 문화 분야만 후원한 것이 아니라 전례와 성경의 텍스트를 확립하고 표준화하며, 고전 라틴어의 사전적이고 문법적인 유려함과 정확함을 취합하여 글쓰기 양식을 장려하기도 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요크의 알쿠이노(Alcuino, 735~804)는 그 선두에 섰던 학자였다. 그는 샤를의 지시에 따라 텍스트를 편집하고, 학사 일정을 마련하여 복사들을 위한 수업을 진행했다.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그는 직접 개발한 서체로 필사한 것들을 샤를에게 보여주고 있다. 황제를 둘러싼 인물들은 실로 다양하다. 왼쪽 앞에는 검은 피부의 학자들이 있고, 그 뒤로 황제의 사람들로 보이는 군인들, 오른쪽에는 터번을 쓴 아랍 학자들과 대상 상인들 및 여러 계층의 성직자, 수도자들이 그룹별로 채워져 있다. 샤를은 제국을 내외적으로 아름답게 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국방을 튼튼하게 하고 국토를 확장하며 도시를 재정비하는 한편, 문화와 예술, 학문을 장려함으로써 중세를 암흑이 아니라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cpbc2020.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