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의 삶은 빛에 의해 유리와 같이 사라짐입니다” [토마스 머튼의 영성 배우기] 47. 머튼의 마리아 영성 ② 그림=하삼두 스테파노 지난 호에서 성모님은 ‘주님의 종’으로서 토마스 머튼에게 관상의 모델이 되셨다는 설명을 하였다. 이번 호에서는 ‘성모님의 순종과 말씀의 오심’, ‘주님과의 일치: 창문의 비유’를 통해 관상의 모델이 되신 머튼의 성모 영성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다룬 다음, 우리가 머튼의 마리아 영성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점을 소개하고자 한다.성모님의 순종과 말씀의 오심성모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전해진 하느님의 말씀에 “왜”라고 하지 않고 “예”라고 응답하셨다. 이 성모님의 “예”라는 순종의 응답을 통해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셨다. 성모님은 ‘말씀’이신 아드님과 태중에서부터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긴 기다림 속에서 함께 하셨다. 관상은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예”라고 응답하는 것이다. 관상은 성모님께서 아드님의 탄생을 위해 기다리셨고, 아드님의 공생활 시작을 기다리셨고, 아드님의 부활을 기다리셨듯이, ‘말씀’이신 그분께서 우리 안에 재탄생하시기 위한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 성경 말씀을 읽고 맛 들이며, 고요한 미풍 가운데 들려오는 침묵의 말씀을 들으며 기다릴 때, 어느 순간 우리가 그분의 말씀과 하나 되어 있는 체험을 하게 된다. 성모님께서 그 누구보다도 철저히 아드님과 일치의 삶을 사셨기에 머튼은 성모님을 ‘유리창’에 비유하며 그분의 자기 비움과 깨끗함을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머튼은 「새 명상의 씨」에서 “이기심이 전혀 없고 아무런 죄도 없는 성모님은 햇빛을 들여보내는 기능 이외에 다른 기능은 전혀 하지 않는 맑은 유리창과 같이 깨끗하십니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성모님은 너무도 맑고 투명한 창문이시기에 성모님을 바라보지만 성모님은 사라지고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머튼은 성모님을 창문에 비유하며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노래했다.저의 뜻은 창문과 같기에,그리고 태초의 탄생이 교만이 아님을 알기에,저의 삶은 빛에 의해 유리와도 같이 사라짐입니다.저는 신랑의 태양의 강렬한 빛 안에서 온전히 사라졌습니다.저의 사랑은 창문과 같기에,그리고 태초의 먼지와 같은 탄생이 수치가 아님을 알기에,저는 저의 죽음의 새벽까지 온 밤을 기다렸습니다.제가 저의 성령과 혼인하던 날,그리고 거룩한 변모에 의해 빛 안으로 온전히 사라졌습니다.주님과의 일치: 창문의 비유머튼은 1962년 강론에서도 “순수함과 겸손의 완전함에 의해 성모 마리아보다 하느님의 빛을 더 완벽하게 소유한 이는 없었다. 그녀는 빛이 비춰지면 온전히 사라지는 듯 보이는 깨끗한 유리창처럼 진리와 충만히 하나 되었다”라고 성모님과 하느님의 일치를 유리창에 비유하여 묘사하고 있다. 머튼은 성모님의 가장 큰 영광은 그녀가 스스로를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성모님께서 완전하게 자신을 비우셨기에 오히려 더 큰 하늘의 영광을 받으신 것이다. “비움 속에 감춰져 있는 것은 성모님이 하느님으로 충만해 있듯 하느님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며 하느님을 사람들에게 모셔오는 성모님의 사명에 동참하는 것이다…. 성모님의 영광은 그저 단순히 하느님의 영광이 그분에게 있는 것뿐입니다. 성모님도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께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새 명상의 씨」) 머튼의 이러한 성모님에 대한 묘사는 우리 인간이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우리 역시 성모님처럼 자신을 완전하게 가난하게 하고, 자신을 완전하게 비우며,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어느 날 하느님의 영광을 받을 것이다. 머튼은 “성모님께서 숨어 계시는 하느님 안에 우리도 숨어든다면 우리는 성모님을 찾아 만날 수 있습니다. 성모님의 겸손과 드러나지 않으심, 그리고 청빈과 드러냄 없는 은거를 함께 나누는 것은 성모님을 아는 가장 좋은 길입니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겸손과 비움을 통해 성모님을 알아갈 때 우리도 성모님의 하느님과의 신비로운 관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과의 신비로운 관계는 성모님 안에 예수님께서 사시듯이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실 때 완성된다.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성모 마리아여, 하느님께서는 당신에게 우리를 하나 되게 하는 사명을 주셨으며,그리하여 한 여인을 통해 우리가 지혜로운 사람들로 변화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당신을 통하여 저는 오직 하느님과 지내는 고독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당신은 하늘나라의 창문으로 창조되셨습니다.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작은 방에서 오로지 당신과 하느님하고만 지내고 있을 제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우리를 당신의 마음속에 품어 주소서.그분의 뜻이 바로 제가 머무는 곳입니다. 그분의 사랑이 저의 고독입니다.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토마스 머튼, 「침묵 속의 만남」) cpbc2020.05.27

“내포의 사도 이존창은 홍낙민이 풀어준 노비의 아들이었다”[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24. 교회, 신분의 벽을 허물다 형의 반대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 이존창이 식솔을 데리고 한겨울에 고향을 떠나고 있다. 그림=탁희성 화백 명례방 집회와 관련한 새로운 기록 강세정의 「송담유록」을 좀더 소개해야겠다. 성립기 조선 교회의 정황에 대한 몇 가지 기록들이다. “계묘년(1783) 겨울에 이동욱(李東郁, 1739~?)이 서장관(書狀官)으로 연경에 들어가게 되자, 그의 아들 이승훈이 수행하였다. 조선관(朝鮮館)에 머물 적에 자주 천주당을 왕래하여 날마다 머물러 자고 돌아왔다고 한다.(당시 다른 사신을 수행했던 막료(幕僚) 비장(裨將)의 말이다.) 사서(邪書) 중에 이전에 나온 적이 없었던 허다한 책자들을 모두 사가지고 왔고, 그들이 가르치고 공부하는 방법까지 다 배워서 왔다. 이때 이후로 그 교법(敎法)이 크게 갖추어졌다.”이승훈이 천주당에서 날마다 머물러 잠까지 자며 천주학을 배웠다는 내용이다. 강세정은 당시 연행에 수행했던 비장의 전언을 직접 들었던 듯하다. 여기에 더해 당시 이승훈이 수많은 천주교 관련 서적을 지니고, 교학 방법까지 다 익힌 채 돌아온 사실을 적었다. 실제 귀국 이듬해인 1785년 3월 명례방 집회 당시, 이들이 모두 예수 상본을 담은 주머니를 들고 있었고, 이미 「성경광익」과 「성년광익」 같은 책을 바탕으로 주일 미사까지 드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승훈이 귀국 시에 가져온 천주교 관련 물품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수준을 훨씬 상회하는 것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부분은 뒤에 따로 살필 기회를 갖겠다.명례방 집회 검거 이후 권일신이 이윤하, 이총억 등 5인과 함께 추조로 들어가서 성상을 돌려달라고 요청했을 때, 형조판서 김화진의 반응과 이후 이총억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누누이 호소하자, 형조판서가 그중 아무개와 아무개를 심문하고는 크게 꾸짖어 말했다. ‘너희들은 모두 이름난 집안의 사대부의 자식인데, 어찌하여 이런 외교(外敎)로 들어갔더란 말이냐? 너희는 상민과는 다르므로 형벌이나 매질을 하지 않고 특별히 놓아 보내 준다. 다시는 이 학문을 하지 말거라.’ 단지 김범우만 엄형에 처하고 귀양 보냈다.” 다음 한 단락이 더 흥미를 끈다. 「송담유록」의 저자인 강세정은 같은 남인으로 이기양과도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하루는 그의 아들 이총억이 이웃에 와서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강세정은 일부러 이총억이 머물던 곳으로 찾아가서 물었다. “네가 추조의 뜨락까지 들어갔다던데, 사대부는 산송(山訟)이 아니고는 그곳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네가 나이 어린 선비로 어찌하여 패악스러운 거동을 하는 게냐?” 이총억의 대답은 이랬다. “성상(聖像)에 재앙이 박두한지라 어쩔 수 없이 고하여 호소하였습니다.(禍迫聖像, 故不得不告訴云.)” 이 말을 듣고 강세정은, “네가 이미 예수를 두고 성상이라 하는 것을 보니 거기에 빠진 것이 심하구나” 하고는, 이후 다시는 그를 보지 않았다고 적었다. 그러고 나서 “총억은 그 숙부인 이기성과 함께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물든 자이다”라는 말을 더 보탰다. 이기성의 놀랍고 해괴한 행동이기성은 이기양의 동생이자, 안정복의 손녀사위였다. 안정복이 이 일로 이기양과 일전을 벌였던 일은 앞서도 살폈다. 이기성은 권일신이 형조에 찾아갔을 때 함께 갔던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막상 당시 관련 기록에서 그의 이름은 빠져 있다. 그가 5명과 함께 간 것이 아니라, 혼자서 따로 찾아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송담유록」에 그 이기성에 관한 기록이 더 나온다. 신사원(申史源)은 1791년 진산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진산 현감으로 있었던 인물이다. 그는 이보다 앞선 1785년 8월에 예산현감으로 부임했다. 1787년 4월, 충청도 암행어사로 나갔던 심환지가 올린 보고를 통해 볼 때, 신사원은 여러 마을을 직접 찾아다니며 사민(士民)의 말을 듣고, 읍리로 들어가 아전과 장교의 정상을 살펴 모든 사람이 입을 모아 훌륭한 사또라고 칭찬했던, 인격적으로 훌륭한 인물이었다. 「송담유록」은 이렇게 말한다. “신사원이 뒤늦게 벼슬에 나아가 예산 현감이 되었다. 그 땅과 접해있는 천안 여소동(余蘇洞)에 이존창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홍낙민(洪樂敏, 1751~1801)이 속량해준 노비로, 자못 문필을 알아 홍낙민에게서 수업했다고 한다. 그는 오로지 사학만 공부하여 근처에서 이름이 있었다. 상민은 말할 것도 없고 남녀노소가 서로서로 전하여 익혔다. 신사원이 공문을 보내 붙잡아서 천안의 감옥에다 가두었다.”여소동은 여사울의 또 다른 표기다. 여사울은 천안에 속한 월경지로 예산군 안에 있었으므로 예산 현감 신사원이 이존창을 체포해서 천안으로 이송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존창이 처음으로 체포된 것은 1791년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이 기록을 통해 그보다 4년 앞선 1787년에 이미 신사원에 의해 이존창이 체포되어 천안 감옥에 이송되었던 사실이 확인된다. 이 일이 1787년의 일인 것을 어찌 알 수 있는가? 다음 이어지는 기록 때문이다.“이기성이 이 말을 듣고는 곧장 옥문 밖에 가서 이존창에게 절을 올린 뒤에, 자기도 함께 죽기를 원하였다. 천안 군수 조정옥(趙鼎玉, 1733~?)은 평소 이기성과 친숙했던 터라 불러와 몹시 꾸짖었지만 듣지 않았다. 온갖 방법으로 달래자 그제서야 떠나갔다. 이존창이 비록 상민이지만, 그의 서학에 대한 조예가 깊고 독실했기 때문에, 사학을 하는 일파들이 마치 스승처럼 높여서 그를 섬겼다. 이기성이 예로써 대한 것 또한 이 때문이었다.(基誠聞之, 直往獄門外, 納拜於存昌, 願與之同死. 主守趙鼎玉, 素所親熟, 故招致切責, 不聽. 萬端開誘, 始爲離去. 盖存昌雖常漢, 其造詣深篤, 故邪學一派, 尊事之如師傅. 基誠之禮待, 亦以此也.)”「일성록」의 기록을 통해 볼 때 조정옥이 천안 군수로 내려간 것이 1787년 2월 4일이고, 그해 11월 9일에 평양 서윤으로 전보되어 천안을 떠났다. 그러니까 이존창이 검거되어 천안 감옥에 갇힌 것은 1787년 2월에서 11월 사이의 일일 수밖에 없다. 신사원은 1785년 8월 10일에 예산현감으로 부임해, 1789년 6월 20일에 진산 현감으로 자리를 옮겼다.이존창에 대한 새로운 사실위 기록에서 우선 이존창이 홍낙민이 속량((贖良)해준 노비였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진다. 사실 그간 그의 신분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많았다. 뒤쪽에는 좀더 구체적으로 “이존창은 천안의 상한(常漢)으로 홍낙민이 속량시켜준 종의 아들이었다. 홍낙민과 이기양에게서 글을 배워, 글씨도 잘 썼고 시에도 능했다. 사학(邪學)에 조예가 깊어 인근을 교화시켰다. 마을 사람 중에 다른 고을의 양민과 혼인한 사람은 남녀 할 것 없이 모두 교화되어 사학을 하니, 덕산과 홍주, 예산과 청양, 정산의 사이가 온통 사학에 빠져들었다. 이에 한글로 전하여 가르쳤다(存昌卽天安常漢, 而樂敏贖奴之子. 學書於樂敏基讓, 能書能詩. 深於邪學, 隣近化之. 洞民之連姻他邑常漢, 毋論男女, 皆化爲邪學. 如德山洪州禮山靑陽定山之間, 一例陷溺, 乃以諺文傳授)”고 적었다. 이존창 자신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가 홍낙민 집안의 종이었고, 홍낙민이 그를 속량시켜 노비의 신분을 면하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이존창은 시문에 능하고 글씨까지 잘 썼을 뿐 아니라, 천주교에 대한 깊은 조예로 내포 일대가 천주학의 진앙지가 되게 했다고 썼다. 이존창이 천안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이기양의 동생 이기성이 보인 행동은 참으로 뜻밖이어서 놀랍다. 우선 그는 명례방 사건 당시 형조에 뛰어들었던 것과 똑같이, 이번에는 멀리 천안 감옥까지 이존창을 찾아갔다. 찾아갔을 뿐 아니라, 옥문 밖에서 옥에 갇힌 이존창을 향해 큰절까지 올렸다. 양반이 종의 자식에게 큰절을 올린 셈이다. 그러고는 천안 군수 조정옥을 찾아가 자기도 이존창과 함께 죽여달라고 요청했다. 정작 기겁을 한 것은 천안 군수 조정옥이었다. 천안 군수 조정옥은 권철신의 매부였던 조정기(趙鼎基)와 가까운 친척이었고, 이기성과도 친숙하게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조정옥은 그런 이기성을 달래고 얼른 끝에야 겨우 돌려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실로 이기성의 행동은 당시의 상식에 비추어 참으로 납득하기 힘든 해괴한 일이었다. 이같은 정황은 당시 교회 내에서 이존창이 지녔던 위상에 대해 좀더 다르게 생각해야 함을 시사해준다. 이존창의 교계 내부에서의 위치는 분명히 신분을 뛰어넘는 그 어떤 아우라가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송담유록」이 적고 있는 다음 기록이다. “홍낙민의 외종질인 조 아무개는 참판 조경진(趙景, 1579~1648)의 후예이고 상사(上舍) 조육(趙堉)의 손자였는데, 이존창의 딸을 취해 며느리로 삼았다. 홍낙민이 권유하여 성사되었다. 그들의 학문은 배움의 깊고 얕음을 가지고 높고 낮음의 차례로 삼을 뿐, 문벌의 고하는 따지지 않았으므로 서로 혼인을 통하기에 이르렀다. 사학이 세상의 도리를 그르치는 것이 이에 이르러 말할 수 없게 되었다.” 홍낙민은 외종질인 조 아무개에게 자기 집 천한 노비 출신인 이존창의 딸을 며느리로 데려갈 것을 권유해, 이 일을 밀어붙여 성사시켰다. 노비 집안의 딸이 명문 대갓집의 며느리로 들어간 것도 놀라운데, 그것을 지체 높은 양반인 홍낙민이 나서서 주선했고, 그의 외종질이 이를 수락했다는 사실도 더 놀랍다. 조 아무개 또한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신분의 벽을 허물고, 말씀으로 하나가 되는 교회 공동체의 꿈이 위태롭게 성장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전에 그 누구도 생각해 보지 못한 평등한 세상을 복음을 통해 열고자 했다.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 cpbc2020.10.28
[교부들의 사회교리] (39) 가난한 나봇 이야기탐욕으로 가난한 이들 착취하는 권력자들 “나봇 이야기는 옛날 일이지만 날마다 벌어지고 있습니다. 날마다 다른 사람의 것을 탐내지 않는 부자가 누구입니까? 어떤 재벌이 가난한 사람을 그 작은 밭에서 내쫓지 않으며, 궁핍한 자를 조상의 땅 끝자락에서 몰아내지 않습니까? 그 누가 자신이 지닌 것만으로 만족합니까? 어떤 부자의 영혼이 이웃의 재산을 차지하려는 열망으로 불타오르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아합 한 사람만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더욱 딱한 것은 아합이 날마다 태어나고 있으며, 이 세상에서 결코 죽어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죽으면 또 다른 많은 자들이 태어나는데, 그들 가운데 잃는 사람보다 훔치는 자들이 더 많습니다. 가난한 나봇 한 사람만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나봇들이 쓰러지고, 날마다 가난한 사람이 죽임을 당합니다.”(암브로시우스, 「나봇 이야기」 1,1, 최원오 옮김)암브로시우스의 대표적 사회교리모든 사람에게 속하는 재화의 공정한 분배와 사유재산권의 한계를 암브로시우스의 「나봇 이야기」처럼 강하게 가르치는 그리스도교 문헌은 드물다. 열왕기 1권 21장에 나오는 나봇의 포도밭 일화에서 암브로시우스는 그 시대를 살아가던 가난한 이들의 짓밟힌 삶을 읽어냈다. 가난한 나봇의 한 줌 밭뙈기마저 손에 넣기 위해 온갖 파렴치한 구실을 꾸며내고 마침내 합법적 살인까지 저지르는 탐욕적인 임금 아합이 날마다 징그러운 새끼를 치며 끊임없이 태어나고 있다고 한다. 가난한 나봇의 비참한 이야기는 구약성경 역사서의 기록으로만 전해지는 먼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나봇 이야기는 이 시대 이 땅에서 억눌리고 착취당하는 민중과 노동자들의 피맺힌 절규이며, 불의하고 불평등한 사회 경제 구조 속에서 날마다 죽음의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의 처절한 비명이다.교황이 사랑하는 교부 문헌 「나봇 이야기」나봇 이야기는 교황 강론의 단골 주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당신 숙소인 산타 마르타 경당 미사에서 여러 차례 나봇에 관해 강론했다. 2014년 교황청 사순 피정에 참석한 성직자들에게는 「나봇 이야기」로 영적 독서를 하라고 직접 권고하기까지 했다. 2016년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수요 일반알현에서는 암브로시우스의 「나봇 이야기」를 꼭 읽어보라며 이렇게 말했다. “「나봇 이야기」는 정말 아름답고 매우 구체적인 책입니다. 이것은 옛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날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더 많은 돈을 갖기 위해 가난한 이들을 착취하고 사람들을 착취하는 권력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인신매매 이야기이고, 노예 노동의 이야기이며, 권력자들을 부유하게 만들어 주기 위하여 어두운 곳에서 최소한의 임금을 받고 일하는 가난한 민중의 이야기입니다. 또한 더욱 더 많은 것을 바라는 부패한 정치인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나봇에 관한 암브로시우스 성인의 책을 읽으면 좋을 것이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이 책은 오늘날에도 시의적절합니다.”(2016년 2월 24일, 수요 일반알현 교리교육 중에서) 암브로시우스의 「나봇 이야기」는 복음의 빛으로 현실을 읽어내는 성경 해석의 탁월한 본보기이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르침은 현대적 교부 문헌 읽기의 훌륭한 길잡이다. 교황의 권고대로 「나봇 이야기」는 교부들의 사회교리를 생생하게 만나게 해 줄 것이다.최원오(빈첸시오, 대구가톨릭대 유스티노자유대학원장) 평화신문2019.10.01

피에타의 성모님은 슬프기만 했을까요?[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 (20)예수님의 주검을 안고 있는 성모님 성 베드로 대성전에 있는 인류의 걸작 ‘피에타’. 아드님의 주검을 안고 있는 성모님의 고통과 그 고통 속에서 잉태된 환희를 잘 표현하고 있다. 피에타! 우리는 미사를 드릴 때는 물론이고 개인 기도를 드릴 때도, 주님에게 수없이 피에타를 간구합니다. 피에타를 입에 달고 기도합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이탈리아어로 “시뇨레, 피에타(Signore, Pieta)” “크리스토, 피에타(Christo, Pieta)”입니다. 피에타는 자비입니다.피에타 하면 머릿속에서 무엇이 떠오릅니까? 바티칸 순례를 한 사람은 성 베드로 대성전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걸작 ‘피에타(La Pieta)’를 생각할 것입니다. 싸늘하게 식은 아드님을 안고 있는 성모님의 슬픈 표정과 함께! 5월 성모 성월이 되면 성모님 모습이 더 애틋하게 다가옵니다. 고통 속에서 잉태된 환희 성모님의 심정은 과연 어떠셨을까. 골고타 십자가 밑에서 예수님의 주검을 안고 있는 성모님 말입니다. 그 슬픔, 그 아픔,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거의 모든 사람이 슬픔만을 이야기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십자가형을 마다치 않고 거룩한 사명을 완수한 아드님, 그 장한 아드님을 껴안고 있는 환희는 없었을까요? 한계 상황의 고통과 그 고통 속에서 잉태된 환희! 극과 극의 상반된 감정이 성모님 마음에 공존하지 않았을까요? 미켈란젤로가 성모님 마음을 정확히 읽었고, 정확히 표현했습니다. 성 베드로 대성전의 ‘피에타’가 바로 그 작품입니다. 고통과 환희를 동시에 표현한다? 대리석 덩어리로? 보통 예술가 같으면 절대 불가능합니다. 미켈란젤로가 천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 예술가로 불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예술가 이전에 신앙심 깊은 신자였고 수준 높은 신학자였습니다. 모든 작품에 그의 신앙심이 배어 있습니다. 신학적 접근 없이 그의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무신론자가 성경을 읽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성모님의 믿음에는 털끝만큼의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수난 후 부활을 수차례 예고했음에도 제자들은 믿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성모님은 골고타에서 이런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수난을 당해야 한다면 가급적 고통이 적은 수난이기를…. 성모님의 이런 소망은 처참하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예수님이 어떠한 고통이라도 받아들이길 기도하고 응원했습니다. 맬 깁슨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이 상황을 잘 그려냈습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소위 ‘마지막 유혹’이 밀어닥칠 때의 장면입니다. 못된 인간들이 조롱과 비아냥을 퍼부어댑니다.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라.”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 그 순간 성모님과 예수님의 시선이 마주칩니다. 성모님은 이런 말을 하셨을 것입니다. “유혹을 이겨내야 합니다. 기적은 안 됩니다. 여기서 죽어야 합니다. 그게 아버지의 뜻입니다.” 예수님은 갖은 유혹을 모두 이겨냅니다. 그리고 “다 이루어졌다”는 말씀을 남기고 숨을 거두십니다. 아드님이 거룩한 사명을 완수하셨는데, 사흘 후면 되살아나시는데, 이 사실을 굳게 믿고 있는데, 성모님이 어찌 슬프기만 했겠습니까. 외유내강 성모님‘피에타’ 앞에서 묵주기도를 드리면 성모님이 커다란 다이아몬드로 보이곤 합니다. 성모님은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전형이거든요. 겉은 솜털처럼 부드럽지만, 속은 다이아몬드처럼 강인합니다. 이 사자성어의 ‘강’은 강철(强鐵)이 아니라 강철도 깨부술 수 있는 금강석(金剛石)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질,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물질, 보석 중의 보석, 다이아몬드입니다. 성모님처럼 아름다운 여성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요? 성모님처럼 강인한 모성애를 가진 어머니가 이 세상에 또 있을까요? ‘피에타’ 자체가 기도입니다. 성모님이 죽은 아드님을 안고 성부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순례객이 성모님 품에 안겨 있는 성자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순례객은 이에 더해 묵주기도를 바칩니다. ‘피에타’를 유심히 보면 예수님의 입이 살짝 열려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엄청난 고통을 받는 그 순간, 우리에게 뭔가를 말씀해 주려 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응답하십니다.(바티칸의 공식해설)“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세상 끝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 cpbc2020.04.28
고3 수험생 “신천지 ‘모략전도’에 속지 마세요” 젊은이 불안심리 악용해 심리 설문·상담하자며 접근… 교회 밖 성경공부는 안 돼 고3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한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 등 사이비ㆍ이단 종교의 조직적 접근이 최근 포착되고 있어 주의가 요망된다.김 베로니카(19)양은 얼마 전 지하철역으로 가던 길에 “설문조사에 응해 달라”는 대학생 두 명을 만났다. “OO대학교 심리학과 학생”이라며 과제에 필요한 설문을 부탁하면서 다가온 이들은 심리 설문이 끝나고 연락처를 물었고, 김양은 별다른 의심 없이 개인 정보를 기재해줬다. 며칠이 흘렀을까. “고민이 많은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며 설문 내용을 토대로 무료 상담을 해주겠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마침 친구 관계와 미래에 대해 고민이 많던 김양은 상담실을 찾았고, 심리 인터뷰, 미술치료, 성격유형검사까지 받았다. 김양의 성격과 장단점 등 ‘신상’을 파악해간 이들은 이후에도 연락을 이어가다 조심스레 ‘다른 말’을 꺼냈다. “바이블 코칭이라는 게 있는데 네가 어떻게 창조됐고, 어떤 미래를 살아가야 할지 알려줄 수 있어. 같이 받아볼래?”수능시험을 막 끝낸 해방감과 설레는 대학생활을 꿈꾸고 있을 고3 수험생들. 그러나 이 시기는 이단 종교들엔 ‘황금 대목’과 같은 때여서 수험생과 학부모의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신천지 ‘추수꾼’들은 전국에서 조직적으로 ‘노방전도’(길거리 선교)를 펼치고 있다. 지하철역 주변, 대학가, 학원가, 심지어 학교 정문에서 버젓이 고3 학생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주로 혼자 다니는 학생을 선택해 2인 1조로 접근하는 게 이들의 특징. 최근엔 대학교 내 시험 및 면접장 주변에서도 활동하고 있다.신천지는 전형적으로 ‘연락처 묻기→친분 쌓기→성경공부 권유→복음방 인도→신천지 센터 유도’와 같은 방식을 취한다. 추수 방법도 더 교묘해지고 있다. ‘입시정보업체’라며 연락처를 묻고, 대학 동아리를 소개해주며 접근하기도 한다. 방송사 명함을 주면서 인터뷰하고 연락처를 묻고, 경품 행사에 당첨시켜주고 번호 제공을 요구한다. 여기서 계속 안부를 묻거나 만남을 지속하려 한다면 신천지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전도 대상자의 고민과 관심사를 파악한 이들은 친분을 쌓은 뒤 모임을 갖자며 상담소로 데려간다. ‘복음방’이다. 이곳에서 3~4명이 모여 2~3개월간 성경공부 모임을 한 뒤 그제야 자신들이 신천지임을 드러내고 신천지 센터에 데려가 포섭한다.신천지가 이 같은 방식으로 고3 수험생이나 젊은이들을 유혹해온 것은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현재 신천지에 유혹된 사람 10명 가운데 2~3명은 천주교 신자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신천지 신자가 한 해 약 2만 명 증가하는데, 이 말대로라면 연간 적게는 4000명 넘는 천주교 신자가 신천지로 넘어가는 셈이다.이금재(한국 천주교 유사종교 대책위원회 위원장) 신부는 “신천지는 ‘모략전도’라고 해서 ‘우연을 가장한 선교전략’으로 젊은이들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해 잘못된 신앙으로 이끌고 있다”며 “낯선 이의 과잉 친절을 경계하고, 교회 밖에서는 성경공부를 하지 않도록 학부모와 본당 사목자들의 특별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특별취재팀 평화신문2018.11.28
고3 수험생 “신천지 ‘모략전도’에 속지 마세요” 젊은이 불안심리 악용해 심리 설문·상담하자며 접근… 교회 밖 성경공부는 안 돼 고3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한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 등 사이비ㆍ이단 종교의 조직적 접근이 최근 포착되고 있어 주의가 요망된다.김 베로니카(19)양은 얼마 전 지하철역으로 가던 길에 “설문조사에 응해 달라”는 대학생 두 명을 만났다. “OO대학교 심리학과 학생”이라며 과제에 필요한 설문을 부탁하면서 다가온 이들은 심리 설문이 끝나고 연락처를 물었고, 김양은 별다른 의심 없이 개인 정보를 기재해줬다. 며칠이 흘렀을까. “고민이 많은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며 설문 내용을 토대로 무료 상담을 해주겠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마침 친구 관계와 미래에 대해 고민이 많던 김양은 상담실을 찾았고, 심리 인터뷰, 미술치료, 성격유형검사까지 받았다. 김양의 성격과 장단점 등 ‘신상’을 파악해간 이들은 이후에도 연락을 이어가다 조심스레 ‘다른 말’을 꺼냈다. “바이블 코칭이라는 게 있는데 네가 어떻게 창조됐고, 어떤 미래를 살아가야 할지 알려줄 수 있어. 같이 받아볼래?”수능시험을 막 끝낸 해방감과 설레는 대학생활을 꿈꾸고 있을 고3 수험생들. 그러나 이 시기는 이단 종교들엔 ‘황금 대목’과 같은 때여서 수험생과 학부모의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신천지 ‘추수꾼’들은 전국에서 조직적으로 ‘노방전도’(길거리 선교)를 펼치고 있다. 지하철역 주변, 대학가, 학원가, 심지어 학교 정문에서 버젓이 고3 학생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주로 혼자 다니는 학생을 선택해 2인 1조로 접근하는 게 이들의 특징. 최근엔 대학교 내 시험 및 면접장 주변에서도 활동하고 있다.신천지는 전형적으로 ‘연락처 묻기→친분 쌓기→성경공부 권유→복음방 인도→신천지 센터 유도’와 같은 방식을 취한다. 추수 방법도 더 교묘해지고 있다. ‘입시정보업체’라며 연락처를 묻고, 대학 동아리를 소개해주며 접근하기도 한다. 방송사 명함을 주면서 인터뷰하고 연락처를 묻고, 경품 행사에 당첨시켜주고 번호 제공을 요구한다. 여기서 계속 안부를 묻거나 만남을 지속하려 한다면 신천지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전도 대상자의 고민과 관심사를 파악한 이들은 친분을 쌓은 뒤 모임을 갖자며 상담소로 데려간다. ‘복음방’이다. 이곳에서 3~4명이 모여 2~3개월간 성경공부 모임을 한 뒤 그제야 자신들이 신천지임을 드러내고 신천지 센터에 데려가 포섭한다.신천지가 이 같은 방식으로 고3 수험생이나 젊은이들을 유혹해온 것은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현재 신천지에 유혹된 사람 10명 가운데 2~3명은 천주교 신자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신천지 신자가 한 해 약 2만 명 증가하는데, 이 말대로라면 연간 적게는 4000명 넘는 천주교 신자가 신천지로 넘어가는 셈이다.이금재(한국 천주교 유사종교 대책위원회 위원장) 신부는 “신천지는 ‘모략전도’라고 해서 ‘우연을 가장한 선교전략’으로 젊은이들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해 잘못된 신앙으로 이끌고 있다”며 “낯선 이의 과잉 친절을 경계하고, 교회 밖에서는 성경공부를 하지 않도록 학부모와 본당 사목자들의 특별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특별취재팀 평화신문2018.11.28

프랑크 샤를에게 황제의 관을! 그리스도교 왕국의 탄생[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13)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폰 쿨바흐의 ‘샤를마뉴의 대관식’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폰 쿨바흐, ‘샤를마뉴의 대관식’, 막스밀리아늄(바이에른 의회 궁), 독일 뮌헨. 800년 성탄,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예순 남짓의 남성이 엄숙한 자세로 들어가고 있었다. 체구가 큰 것으로 봐서 북쪽 지방에서 온 사람으로 보였다. 거대한 덩치는 전사의 몸에서 풍기는 불굴의 힘을 표현하는 것 같고, 흰 머리카락과 수염은 고상한 인품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예사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금세 알 수가 있었다. 프랑크 민족을 이끄는 왕 샤를(이탈리아어 카를로, 영어 칼)이었다. 한겨울의 추운 날씨지만 대성전을 채우고 있는 분위기는 감동적이고 따뜻했다. 왕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흠숭하며, 자신의 잘못에 대해 자비를 청했다. 동정녀 마리아께 전구를 청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때 조용히 그의 곁으로 다가오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 역시 몸에서 풍기는 인품과 성품이 남달랐다. 훗날 ‘성인’ 교황으로 불리게 될 레오 3세였다. 어떤 학자들은 “왕이 미사 도중 기도에 몰입해 있는 사이, 성 베드로의 ‘고백의 제단’에 있던 레오 3세 교황이 그에게 다가가 머리에 관을 씌워주었다. 관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 기존의 ‘왕’의 것이 아니라, ‘황제’의 것이었다”고 말했다.초상화 작가이며 역사 화가 소개하는 작품은 독일의 초상화 작가며 역사 화가인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폰 쿨바흐(Friedrich August von Kaulbach, 1850~1920)가 그린 ‘샤를마뉴의 대관식(Krnung Karls des Großen)’이다. 그는 하노버의 궁정화가로 역사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던 테오도르 쿨바흐(Theodor F.W.C. Kaulbach, 1822~1903)의 아들이다. 그는 아버지한테서 그림을 배웠고, 후에 뉘른베르크 쿤스트게베베슐레에서 아우구스트 폰 크렐링(August von Kreling)의 제자가 되었다. 이 학교는 뒤에 뉘른베르크 벨레아르테 로얄 아카데미가 되었다. 그는 한스 홀베인(Hans Holbein)의 작품을 모방하기도 했다. 1871년, 바이에른 주 뮌헨으로 이주했고, 후에 프란츠 폰 렌바흐(Franz von Lenbach)와 프란츠 폰 스턱(Franz von Stuck)과 함께 뮌헨학파를 정의하는 그룹의 멤버가 되었다. 초상화 작가로 경력을 쌓았기에, 독일 제국은 물론 미국에서까지 사회적으로 신분이 높거나 유명 인사들 사이에서 꽤 인기 있는 초상화 작가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쿨바흐는 파리를 여러 차례 여행했고, 그래서일까, 19세기 말 프랑스 화풍을 연상케 하는 작품을 많이 남기기도 했다. 1886년 바이에른의 뮌헨 벨레 아르테 아카데미 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이 작품은 그의 역사 주제의 작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유럽 전체에 미친 샤를의 영향력 작품 속에 등장하는 샤를은 로마 교황의 요청에 따라 북쪽에 있는 야만 민족들의 왕국에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그리스도교를 중심으로 유럽의 일치를 유지해 달라는 사명을 부여받았다. 이것은 프랑크 왕국의 설립 초기부터 있었던 것으로, 역대 프랑크 왕들의 공통된 사명이었다. 700년대 중ㆍ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 프랑크 왕국의 왕은 이미 아키텐과 롬바르드족을 정복했고, 피레네 산맥을 넘어 아랍인들의 위협을 받고 있던 스페인까지 평정했다. 색슨족과 바이에른족의 반란을 진압했으며, 아바르족과는 전쟁 중에 있었다. 샤를은 단순한 전사가 아니었다. 그의 영향력은 유럽 전체에 예술과 학문을 꽃피게 했다. 카롤링거 문예 부흥은 그의 시절에 일어났다. 그의 존재는 그 자체로 사랑받는 주제였고, 전사들은 그를 존경했으며, 그리스도교의 유익한 것들을 정복하는 땅으로 확장시켰다. 이에 성 레오 3세 교황은 샤를의 머리에 황제의 관을 씌워 주었고, 과거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의 영토지만 더 이상 이교도의 로마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 샤를 역시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의 후계자 아니라, 성경에서 정의한바 왕 중의 왕, 군주들의 군주의 지상 대리자가 영광스럽게 부여한 칭호를 받았다. 로마의 백성은 “샤를 아우구스투스, 위대한 하느님으로부터 관을 받으신 분, 로마인들의 평화의 황제께”라고 환호했고, 프랑크 민족은 칼과 창을 세워 두드리며 “성탄! 성탄!”이라고 소리쳤다. 클로비스 시대부터 이어온 환호였고, 프랑크 민족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다시금 입장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가 있는 성 베드로 좌(座)에서 그 해 성탄, 중세 그리스도교 문화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서구 가톨릭 제국이 탄생한 것이다. 800년 전 같은 날, 아기 예수가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탄생하신 것처럼. 어떤 역사 비평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로부터 내려오는 로마 교회를 설립하시면서 그 안에 큰 문명을 일으킬 씨앗을 하나 마련해 두셨는데, 그것이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8세기 동안 민족들의 회개와 교회의 확장으로 씨앗은 발아될 준비를 마쳤고, 마침내 때가 차서, 성 베드로의 후계자인 한 성인의 손에 의해 샤를의 제국에서 축복과 인정으로 꽃을 피웠다는 것이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샤를마뉴의 대관식 1200주년을 기념하며 “위대한 역사적 인물, 샤를마뉴 황제는 유럽의 그리스도교 뿌리를 상기시키며, 당면한 인간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분야에서 문화적인 개화를 이루었습니다. 연구자들이 그 시대를 연구하는 이유입니다. 유럽은 자기 정체성을 연구해야 합니다. 유럽은 샤를마뉴가 남겼고 1000년 이상 보존되어 온 문화유산을 되찾으려는 힘찬 노력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샤를마뉴는 프랑크 왕국의 최고 전성기를 이끌며 과거 서로마 제국의 거의 모든 영토를 회복함으로써 로마 제국을 기억하는 유럽인들에게 과거의 영광을 느끼게 해 준 인물이었다. 그는 새로 개편된 유럽의 지형학적 구도에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토대로 법과 문화와 예술을 복원했다. 쇠퇴와 혼란이 거듭되던 시대에 그리스도교를 중심으로 유럽을 세운 설립자가 되었다. 그리스도교를 철저하게 수호한 황제로 인해 서구는 처음으로 자기 정체성을 확립했고, 그리스도교와 로마를 하나로 인식하는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샤를의 대관식은 1000년 이상 그리스도교 지배를 의미하며, 그것의 보편적 타당성을 입증하는 공적이고 상징적인 행위였다. 권위의 원천은 지상에서 하느님의 대리자가 주관한다는 데 있었다. 하느님으로부터 오지 않는 권위는 지상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샤를의 대관식은 그리스도교 왕국의 탄생이자 그리스도교 문명의 재건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작품 속으로장소는 성 베드로 대성전이고, 시점은 밤이다. 주님 성탄 전야 미사의 중간에 교황은 샤를에게 도유를 하고 ‘황제’로 칭하며 관을 씌워주고 있다. 그리고 ‘존엄한 자’라는 뜻의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도 부여하고 있다. 오른쪽 앞의 기록관은 이것을 기록하고 있다. 이로써 서로마 제국의 부활이 선언되었다.왼쪽 군중 사이의 한 군인은 관객으로 하여금 이 순간에 집중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오른손을 들어 “저 사람을 보라”고 말하는 듯하다.샤를의 대관식은 로마를 조상으로 둔 유럽에서 프랑크 왕국의 통치권을 분명히 하고, 로마 그리스도 교회와의 유대를 강화하는 동시에 향후 유럽 국가들의 이상적인 통치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폰 쿨바흐, ‘샤를마뉴의 대관식’, 막스밀리아늄(Maximilianeum, 바이에른 의회 궁), 독일 뮌헨. 김혜경 (세레나,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이탈리아 피렌체 거주) cpbc2020.08.11
![[영화의 향기 with CaFF] (53) 울지마 톤즈 2 : 슈크란 바바](//cpbc.co.kr/CMS/newspaper/2020/02/rc/772906_1.2_titleImage_1.jpg)
[영화의 향기 with CaFF] (53) 울지마 톤즈 2 : 슈크란 바바삶의 향기 더하는 이태석 신부의 발자취 영화 ‘울지마 톤즈 2 : 슈크란 바바’ 포스터. 10년 전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가 개봉되고 고(故)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은 이 시대에 예수님의 모습을 본 것 같다고 했다. 아프리카 오지 수단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살다 간 이태석 신부의 모습에 감동했던 것이다. 그리고 2020년, 이태석 신부의 10주기를 맞아 그의 발자취와 흔적을 되돌아보는 ‘울지마, 톤즈 2’가 개봉됐다. 1편에 다 담지 못한 지인들의 인터뷰와 이태석 신부가 생존했을 당시 찍어 두었던 영상이 함께 어우러져 80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 버린다. 이번 영화는 이태석 신부의 어릴 적 성장 과정을 담고 있다. 성당의 오르간을 마음껏 연주하기 위해 열심히 성당을 다니는 어린이 이태석도 만나고, 신부가 되기를 결심한 뒤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힘이 되겠다고 수단으로 가는 과정에서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 어머니보다 고집이 센 청년 이태석의 모습도 상상하게 된다. 가난과 전쟁으로 아무런 희망이 없었던 남수단 톤즈에서 사제이자 의사, 교육자, 음악가, 그리고 건축가로서 스스로 다짐한 자신의 성소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이태석 신부의 모습은 종교를 넘어 깊은 울림과 감동을 준다. 스크린을 통해 살아 움직이는 그의 삶을 바라보며 행복이란 무엇이며, 나의 삶의 방향은 제대로 가고 있는지 되묻게 된다.이태석 신부는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성경 말씀을 항상 마음에 새기며, 톤즈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 자체가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한 것으로 보인다. 처음 톤즈에 갔을 때 말문이 막힐 정도로 문화적 충격이 컸다는 이태석 신부는 너무나도 열악한 환경과 문제점에 이유와 답을 구하는 대신 당장 눈앞에 있는 환자부터 치료하면서 하루 150명이 넘는 환자를 돌보았다고 한다. 가난한 땅 톤즈에서도 가장 소외된 한센인들. 주어진 하루를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가진 것은 없어도 감사할 줄 아는 한센인들을 진료하며 이태석 신부는 이들에게서 고귀함을 보았다고 한다. 놀라운 집중력을 가진 톤즈 아이들을 위해 음계와 음악을 가르치고 학교를 만들어 교육하기 시작한다. 영화의 부제 ‘슈크란 바바’는 2005년 남수단과 북수단의 평화협정으로 내전이 끝난 것을 기념해 이태석 신부가 만든 곡이다. 슈크란 바바는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뜻으로 영화에 이 곡을 합창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후반부 대장암 수술을 받고 항암 치료를 하면서 이태석 신부는 “하느님이 나와 함께 계시지 않은 것 같은 어두운 밤을 체험했다”고 한다. “힘든 순간마다 시련의 의미를 생각하고 고통도 삶을 변화시키는 길이라 여기며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겼다”고 동료 사제가 전하는 이야기는 크게 마음을 울린다. 이태석 신부를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영화는 개봉관이 몇 곳 되지 않아 많은 사람이 아쉬워했다. 성당 등 단체에서의 공동체 상영으로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더 가졌으면 좋겠다. 1월 9일 개봉 cpbc2020.02.12

“성체 공복(空腹), 예수 그리스도 존재 확인하는 계기”공동체 미사 중단 이후 영적 공백 막기 위해 SNS 활용해 신자들과 소통하는 사제 늘어
코로나19 사태로 공동체 미사가 중단되면서 SNS를 통해 강론을 공유하고, 메시지로 신자들의 안부를 묻는 사제들이 많아졌다. “친애하는 상현동본당 신자 여러분, 코로나19 바이러스 확대 방지에 대한 사목적 조치로 미사 중단과 함께 신자들을 만날 수 없게 되어 가슴이 답답합니다. 어쩌면 이러한 위기는 하느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반성하며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로 정체성을 회복하고 새롭게 거듭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중략) 화이팅합시다. 사랑합니다. ♡♡본당 신부 송영오 베네딕토♡♡”코로나19 사태로 전국적으로 회중 미사가 중단된 가운데 신자들의 영적 공백을 막기 위해 강론을 공유하고, 안부 메시지를 보내는 사제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수원교구 상현동본당(주임 송영오 신부) 신자들은 미사가 중단된 이후, 본당 신부에게 3번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신자들이 성당에 안 오니까 사제의 존재 이유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양 떼 없는 목자가 성당을 지키고 있는데 허탈하고, 신자들과 영적인 이별을 한 것 같았습니다. 비록 재의 수요일에 신자들 이마에 재를 얹지 못했지만, 신자들 마음에 재를 얹어 드리며 예수님이 고난에 동참하자고 기도했습니다.” 송 신부가 보낸 두 번째 메시지는 A4용지 2쪽 분량이나 됐다. 신자들의 마음을 울린 메시지는 타 본당 신자들에게도 전달됐다. 지구장인 송 신부는 지구 사제들에게도 공유했다. “많은 신자가 미사, 영성체를 할 수 없음을 속상해하지만, 신앙 안에서 성체의 공복을 느껴보는 것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위장의 공복이 음식에 고마움을 느끼듯이 영적인 성체의 공복이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영적 목마름과 배고픔의 시련도 용기 있게 이겨내는 것도 우리 가톨릭 신앙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송 신부는 “미사 중단으로 하느님과 신자들이 만나는 통교의 장이 사라졌는데 신자들이 얼마나 허망하겠느냐”면서 “영적인 목마름, 성체에 대한 갈망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년 동안 가정사목을 해온 송 신부는 가정 신앙생활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자녀들이 유치원과 학교에 가지 않고, 부모가 재택근무를 하는 시기에 가족이 함께 모여 가정기도를 바친다면 가정기도가 확산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송 신부는 부활을 앞두고 냉담자 명단을 파악해 편지를 보낼 계획이다. 그는 “미사 중단으로 냉담자가 양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교회는 오히려 냉담자들이 돌아올 것을 준비해야 한다”며 “많은 냉담자가 새롭게 시작될 미사성제와 영성체에 함께 초대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이밖에 신자들에게 영적 목마름을 채워주기 위해 SNS를 통해 강론을 공유하며 신자들과 소통하는 사제들이 많다. 인천교구 이우진(불로동본당 주임) 신부는 유튜브와 네이버밴드에 강론과 성경을 한 장씩 낭송해 올리고 있다. 조명연(갑곶순교성지 담당) 신부는 다음 카페와 카카오스토리, 이병근(답동본당 보좌) 신부는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신자들과 소통한다. 인천교구장 정신철 주교는 본당 사제들에게 강론을 작성해 본당 신자들에게 전해 주고, 신자들의 안부를 묻고 위로를 전하는 메시지 등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인천교구 사제들은 돌아가며 ‘코로나19로 어려움 중에 있는 교구민들을 위한 「매일 강론」 코너’를 진행, 강론을 홈페이지에 올리고 있다.주교회의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한 본당 공동체 미사 중단 기간에 교구와 본당 및 사제 개인이 온라인 미사와 강론을 제공하기 위해 개설한 유튜브 영상 채널은 50개가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평화신문2020.03.11

로마 곳곳에 유다꽃이 활짝 피었습니다[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 (19) 사순 시기면 흐드러지게 피는 꽃 바티칸 어귀 리소르지멘토 광장에 피어있는 유다꽃. 사순 시기가 되면 로마 거리거리마다 홍자색 유다꽃이 활짝 피어난다. “너, 참 예쁘구나! 그런데 왜 이 거룩한 사순 시기에 하필이면 바티칸 앞에 서 있니?”유다꽃 이야기입니다. 유다 이스카리옷이 목매어 죽었다는 나무(유다나무)에 피는 꽃입니다. 홍자색 빛깔의 꽃이 무척 화사해 보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세상을 삼켜버린 올해에도 유다꽃은 어김없이 피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순례자들로 붐볐을 바티칸 어귀(리조르지멘토 광장)에, 바티칸으로 가는 큰 도로(콜라 디 리엔조 거리)에, 대사관 근처 동네 공원에도. 로마 시내 곳곳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습니다. 바티칸 안에도? 아닙니다. 혹시 하는 마음에 바티칸 내부를 구석구석 둘러보았으나, 유다나무는 한 그루도 없더군요. 로마살이 첫해에는 유다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꽃의 정체를 몰랐으니까요. 한국의 벚꽃이나 복사꽃처럼 그렇고 그런 봄꽃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지난해 봄에야 알았습니다. 로마 한인본당 신자들과 로마 성지를 순례하던 중이었지요. 한 자매님이 길가에 예쁘게 핀 꽃을 가리키면서 저에게 물어보는 거예요. “대사님, 저 꽃이 무슨 꽃인지 아세요?” “네? 뭘까요? 벚꽃 비슷한데 벚꽃은 아닌 것 같고….” “유다꽃이랍니다. 로마에 많아요. 사순 시기에 피는 유다꽃, 느낌이 좀 그래요.”성경을 찾아봤습니다. “유다는 그 돈을 성전 안에다 내던지고 물러가서 목을 매달아 죽었다.”(마태 27,5) 유다가 ‘셀프 교수형’을 당했다는 사실만 적시되어 있지, 구체적으로 무슨 나무에서 죽었다는 이야기는 없더군요. 예수님의 죽음은 당시 예루살렘 사회에서 충격적 사건이었을 터이니, 사건의 단초를 제공한 유다의 행방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을 것이고, 그가 어떻게 최후의 순간을 맞았는지 세상이 다 알았을 것입니다. 유다나무는 그때부터 유명세(?)를 탔을 것이고, 그 소문이 로마에까지 전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가장 많은 저주를 받은 ‘유다’유다 이스카리옷. 지난 2000년 동안 가장 많은 사람으로부터 저주를 받았고, 앞으로도 이 세상 끝날 때까지 저주를 받을 사람! 그런데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구석이 하나 있습니다. 유다, 이 자는 왜 죽을 때까지 꽃길을 택했을까. 조용히 사라질 일이지. 사순 시기 로마에 유다꽃이 만개하는 자연 현상으로 미뤄 당시 예루살렘에도 꽃이 활짝 피어있었으리라는 것을 쉽게 추론할 수 있습니다. 저를 의아하게 하는 것은 유다의 심리 상태입니다. ‘셀프 교수형’을 당하는 주제에 화려한 꽃을 머리에 이고 저승길을 갔으니, 그의 심리 상태가 괴이하지 않습니까. 지난해 4월 19일 성금요일 오후,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주례하시는 주님 수난 예식에 참여하기 위해 바티칸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유다꽃이 대로변 양쪽에 활짝 피어있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습니다. 1년 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거든요. 특히 바티칸 어귀의 유다꽃이 나름 자태를 뽐내고 있었는데 어찌나 징그럽게 보이던지,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날이 날이었던지라 좀 섬뜩한 이미지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유다꽃 밑에 대롱대롱 달린 유다의 주검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게 아니었겠습니까. 유다 머리 위의 유다꽃과 그 밑에 매달려 있는 유다의 시신이 끔찍한 대조를 이루며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것은 천당과 지옥이었고, 천사와 악마였으며, 믿음과 배신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가시관을 쓰고 돌아가셨는데, 유다는 화관을 쓰고 죽다니! 화관과 ‘셀프 교수형’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유다꽃 밑의 유다를 봐라!” 아마 이거 아닐까요? 유다도 주님이 선택하신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악마적 형질은 가려져 있었습니다. 세상사가 그렇습니다. 악마적 형질은 청산유수 같은 언변 속에, 화려한 의복 속에, 깔끔한 외모 속에, 자비로운 선행 속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잠복기의 코로나바이러스처럼! 내 안에 있을 유다의 형질 예수님이 유다의 정체를 모르고 열두 제자에 포함시켰을까요? 절대 그럴 리가 없지요. 전지전능하신 분인데!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런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너희가 유다를 비난하지만, 너희 모두에게 유다의 형질이 내재되어 있다. 단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내 안에 있을 유다의 형질은 어느 정도나 될까. 그것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순 시기 유다꽃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화두입니다.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 평화신문2020.04.21

누구든 언제든 오셔서 기도에 맛들이세요!15일 봉헌식 앞둔 원주교구 ‘은총의 성모 마리아 기도학교’ 원주교구가 충북 제천 배론성지 내에 건립한 은총의 성모 마리아 기도학교 전경. 윤준환 작가 제공 가톨릭교회는 기도하는 공동체다. 기도를 빼놓고는 신앙을 논할 수도 없고, 각자의 믿음을 성장시키기도 어렵다. 그러나 어느 때부턴가 신앙인들은 기도를 잊고 산다. 바쁘게 사는 동안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물론이고, 하느님께 무언가 한마디 청하는 것조차 망설여지게 됐다.이에 원주교구가 한국 교회 신자들의 기도생활을 돕고자 ‘은총의 성모 마리아 기도학교’를 세웠다. 신앙생활의 바탕을 이루는 기도의 의미를 다시금 익히고, 기도를 통해 각자가 하느님을 만나도록 지어진 새로운 영적 공간이다.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봉헌을 앞두고 있는 충북 제천시 봉양읍 배론성지길 296 배론성지에 자리한 ‘은총의 성모 마리아 기도학교’를 미리 다녀왔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배론성지가 품은 기도 공간“누구든지 언제든지 와서 교회가 가르치는 모든 기도를 배우고 실천하자.”원주교구가 건립한 ‘은총의 성모 마리아 기도학교’의 이념이다. 기도학교는 다양한 종류의 가톨릭 기도를 다시금 깊이 익히고, 묵상하고, 바쳐보며 하느님과 만나고 일치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2018년 원주교구 설정 5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첫 삽을 뜬 기도학교는 지난해 말 완공해 문을 열었다.신해(1791년)ㆍ신유(1801년)박해를 피해 온 교우들이 농사짓고, 옹기를 구우며 생활했던 교우촌 위에 조성된 배론성지가 기도학교를 품고 있는 것 또한 특징이다. 백운산과 구봉산 자락 한가운데 아름드리 자연 풍광과 어우러진 성지는 1801년 황사영(알렉시오)이 토굴 속에서 백서를 쓴 곳이자, 한국 교회 두 번째 사제인 가경자 최양업 신부의 묘소가 있다. 순교자들이 숨어서 바친 기도 소리와 한국 최초의 신학교인 ‘성 요셉 신학당’에서 울려 퍼지던 기도가 이제 기도학교를 통해 이어지게 된 것이다.기도학교는 연면적 약 6800㎡, 건축면적 약 3700㎡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건립됐으며, 성당과 강당, 성체조배실, 기도 정원을 비롯해 한 번에 2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2인 및 4인용 숙소 100여 실과 식당을 갖추고 있다. 설계는 (주)종합건축사사무소 디자인캠프 문박 디엠피가, 시공은 두산건설이 맡았다.기도학교는 △기도 △친교 △교육 공간으로 구분 지어 설계됐다. 가장 중요한 기도 공간을 위해 곳곳에 정원을 두는 여백의 미를 살렸다. 하늘에서 보면 ‘우물 정(井)’ 모양을 띤 기도학교는 가운데 중정(中庭)에 자리한 묵상의 정원을 비롯해 야외 로사리오 정원, 노아의 정원 등 곳곳이 홀로 또 같이 기도와 묵상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중대형 강의실에서는 신자들이 기도가 뭔지부터 각 기도가 지닌 본래 내용과 의미 등 ‘기도의 맛’을 들일 수 있는 교육과 토론의 장을 열 수 있다.작고 고요한 옛 성에 온 듯한 느낌을 자아내는 성체조배실은 옅은 채광을 받으며 24시간 고요함 속에 잘 익힌 기도를 바칠 수 있도록 꾸몄다. 각 숙소에서는 성지의 사계절을 내다보며 묵상할 수 있다. 유럽의 수도원 내부를 연상케 하는 기나긴 복도와 휴게 공간에서는 신자들이 담소와 함께 기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새하얀 백색 공간 성당과 빛이 새어 들어오는 1층 회랑은 신비로움마저 자아낸다.개인·단체, 자유롭게 피정 가능 개인 단체 누구나 원하는 주제와 형식으로 피정을 할 수 있고, 기도와 관련해 교육 프로그램을 의뢰해 참여할 수도 있다. 현재 사제와 수도자가 성경 및 기도 주제로 진행하는 신청형 피정도 접수하고 있다. 또 ‘쉼’, ‘순교자의 길’, ‘인생의 길’ 등을 주제로 개인이나 가족 평일 피정도 가능하다. 기도학교는 내년 가경자 최양업 신부 탄생 200주년과 연계해 순례와 함께하는 기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작 중이다. 가톨릭 기도의 역사와 배경을 깊이 공부하고, 나에게 맞는 기도를 찾도록 돕는다는 계획이다.은총의 성모 마리아 기도학교 주임 배달하 신부는 “기도학교는 우리 한국 교회의 역사와 전통, 신앙을 기도와 연계해 체험하고 익힐 수 있는 곳”이라며 “기도의 성격과 형태가 모두 다르듯이 각 개인에게 잘 맞는 기도를 찾아주고, 기도가 신앙생활에 활력소가 되도록 돕는 기도학교를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은총의 성모 마리아 기도학교는 8월 15일 오전 10시 30분 충북 제천 배론성지에서 원주교구장 조규만 주교 주례로 봉헌식을 거행한다. 피정 접수 및 문의 : 043-651-4563원주교구장 조규만 주교 “기도는 하느님과 우리를 잇는 끈입니다.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존재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입니다.”원주교구장 조규만 주교는 7월 30일 교구청 집무실에서 만난 자리에서 “3만여 명에 이르는 후원자들의 정성으로 지어진 은총의 성모 마리아 기도학교가 진정 하느님을 만나 대화하고, 기도 안에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기도학교가 지어진 과정 또한 “기적과 같다”며 원주교구 사제단과 교구민, 서울대교구 등 도움을 준 이들에게도 감사의 뜻을 표했다.원주교구는 기도학교가 문을 연 올해 ‘기도의 해’를 보내고 있다. 조 주교는 올해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1테살 5,17)를 주제로 한 교구장 사목 교서를 통해 “기도하지 않고서 그리스도인이라 말할 수 없으며 어느 누구도 기도하지 않고서는 구원받을 수 없다”며 기도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조 주교는 “로마 유학 당시 지도 교수님께서 하셨던 ‘한국에 가면 기도학교를 한 번 해보라’는 권유를 늘 가슴에 지녀왔다”며 “누구나 와서 기도하고 성체조배하고 성사에 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그 뜻을 품은 지 30년 만에 이루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도학교’인 만큼 기도를 더 잘 알고 바치기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 주교는 기도학교 설계 단계부터 기도와 교육을 위한 최적의 장소로 만들기 위해 실무자 및 기도학교 건축위원회 사제들과 논의하며 꼼꼼히 신경 썼다. 조 주교는 올해 벌써 두 차례 기도학교에서 신자들과 함께하는 1박 2일 피정을 지도했다.조 주교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많은 말을 하지 않고도 소중한 친교를 나누고, 또 문제 해결도 함께 해나가듯이 우리는 기도로 하느님께 청원하고, 나아가 그분께 감사하며 친교를 나눌 수 있다면 기도의 의미를 더욱 드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조 주교는 기도학교 봉헌식에 맞춰 가톨릭 주요 기도의 내용을 익히고, 스스로 묵상하며 바칠 수 있도록 집필한 「주님, 날마다 기도하게 하소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조 주교는 책에서 “기도는 아름다운 시간 낭비”라고 했다.조 주교는 “현대의 시각으로 보자면 기도하는 시간이 비생산적이고, 시간낭비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아무리 바쁜 삶 속에서도 자기 시간을 기꺼이 주님과 함께한다면 그만큼 아름다운 낭비도 없을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기도는 신앙과 사랑을 성장시키는 최고의 표현입니다. 훗날 저는 하느님을 만날 때 ‘너는 세상에서 무엇을 했느냐’ 하고 질문하신다면 ‘제가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 제 소중한 시간을 낭비했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기도학교에 오셔서 편안히 기도 중에 하느님을 만나고, 주님 사랑 키우는 아름다운 낭비를 함께해봅시다.” 이정훈 기자 cpbc2020.08.04

프랑스 군주, 군사력과 새 영토를 교황에게 바치다[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12)지롤라모 시촐란테 다 세르모네타의 ‘피핀 3세가 스테파노 2세 교황에게 한 기증’ 지롤라모 시촐란테 다 세르모네타, 롬바르드족의 아스톨포 왕을 이긴 프랑크 왕국의 피핀 3세가 스테파노 2세 교황에게 라벤나와 펜타폴리를 기증, 1565~1568년, 바티칸 사도궁. 교황령의 확장 클로비스 왕의 개종으로 프랑크 왕국은 교황의 지지 속에 유럽에서 점차 강력한 국가로 성장했다. 754년 프랑크 왕국의 왕 피핀 3세는 교황의 요청에 따라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들어와 비잔틴 제국의 영토를 차지한 롬바르디아를 물리치고 영토를 모두 평정했다. 라벤나 지방을 비롯한 이탈리아 중부지역 일대였는데, 피핀은 그 땅들을 교황 스테파노 2세에게 기증했다. 역사는 이것을 ‘Promissio Carisiaca’, ‘Donatio Carisiaca’, ‘Quierzy 조약’ 혹은 ‘Quierzy 기증’이라는 여러 가지 말로 표현하는데, 한마디로 ‘피핀의 기증’을 말한다. 이것은 과거 콘스탄티누스가 베드로의 후계자에게 기증한 교황의 영토가 로마 밖으로 확장되는 것을 의미했고, 당시의 국제 관계 속에서 ‘교황령’을 정식으로 인정하는 일이었다. 여기서 ‘콘스탄티누스의 기증’이 재차 언급된다. 교황령이 탄생하는 중대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단순하며 서정적 화풍의 작가 오늘 감상할 작품은 지롤라모 시촐란테(Girolamo Siciolante)의 ‘피핀 3세가 스테파노 2세 교황에게 한 기증’이다. 시촐란테는 1521년 세르모네타에서 태어났다. 일찌감치 피스토이아(Pistoia)와 페린 델 바가(Perin del Vaga) 밑에서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바사리(G. Vasari)가 ‘탁월한 제자’라고 평한 걸로 봐서 바사리 밑에서도 공부한 것으로 보인다. 라파엘로가 기획했던 ‘판테온의 유덕한 사람들 모임’을 1543년에 공동으로 창설했다. 매너리즘이 꽃을 피우던 시절에 대부분의 화가가 미켈란젤로의 화풍을 추종했지만, 그는 처음부터 라파엘로를 추종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주님의 거룩한 변모’이다. 그는 이후 점차 절충주의 매너리즘으로 이동하면서 프레스코화와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미켈란젤로의 추종자들이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조각 효과를 보여준 반면에, 시촐란테는 조용하고 단순하며 서정적인 화풍을 유지했다. 시촐란테가 로마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세르모네타의 군주는 카밀로 카에타니였고, 그의 외사촌 알레산드로 파르네제가 바오로 3세 교황(재임 1534-1549)이었다. 카에타니 가문과 파르네세 가문이 사돈지간이라 시촐란테는 양가에서 후원을 받으며 바티칸 궁과 파르네세 궁에 작품을 남겼다. ‘피핀 3세가 스테파노 2세 교황에게 한 기증’ 작품은 바티칸 사도궁 남쪽 날개 부분, 과거 교황이 각국의 왕들과 제후들을 맞이하던 방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다. 종교 개혁의 여파로 가톨릭 쇄신 운동을 주도했던 바오로 3세 교황은 1534년 교황으로 선출되자 미켈란젤로에게 로마를 재정비하도록 하고, 성 베드로 대성전과 바티칸의 궁들도 다시금 손을 보았다. 도시 재개발이 진행되는 가운데 1545~1563년 트렌토(트리엔트)에서는 공의회가 개최되었다. 사도궁의 이 방은 과거 왕들과 제후들이 공식적으로 교황을 알현하던 곳으로 교황에 대한 순명 서약을 하던 장소이다. 이곳에 가톨릭 쇄신 운동의 분위기 속에서 과거 피핀 3세가 스테파노 2세 교황에게 이탈리아의 영토를 기증하는 이야기를 벽화로 그렸다는 것은 정치적인 의도를 담았다고 하겠다. 한편 트렌토(트리엔트) 공의회는 예술가들에게 성경과 교부들의 가르침에 충실하도록 했고, 예술적 표현에서 전통적인 장식을 준수하고 모호한 방종은 배제하도록 했다. 이것은 예술가들로 하여금 작품을 통해 정통 교회의 수호자라는 강요와 자아비판을 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분위기는 냉랭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가운데 시촐란테의 보수적인 스타일은 하나의 모델이 되었다. 동로마 대신 프랑크 왕국에 도움 요청 작품에 등장하는 역사적 배경은 8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스테파노 2세 교황은 동로마 제국의 황제가 성상 파괴 운동을 벌이자 대립각을 세웠다. 동로마의 황제는 그런 상황에서도 로마에 대한 정치적인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려고 했고, 교황은 황제의 간섭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동로마 황제는 라벤나에 총독부를 두고 로마를 좌지우지했다. 그런 때에 롬바르드족이 동로마 제국의 영토인 라벤나 총독부를 점령하고 로마로 내려오고 있었다. 이에 스테파노 2세 교황은 동로마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프랑크 왕국의 피핀에게 도움을 요청할 목적으로 754년 1월 6일, 직접 프랑크 왕국의 궁정을 찾았다. 프랑크 궁정은 교황을 크게 환대했다. 교황은 생드니 대성당에서 피핀에게 기름 부음 예식을 거행하고, 장엄 축복을 했다. 피핀은 롬바르드족의 위협으로부터 교회를 수호하겠다는 성대한 서약을 했다. 이 예식은 점차 대관식으로 발전했고, 1789년 프랑스대혁명으로 ‘앙시앵 레짐’(‘구체제’, ‘낡은 체제’)이 종식될 때까지 역대 프랑스 군주들의 전통이 되었다.프랑크의 귀족들은 퀴에르지에서 롬바르드족에 대한 군사 행동을 하는 것에 동의했고, 피핀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 반도로 들어와 라벤나에서부터 로마까지 영토를 모두 점령했다. 그리고 그 영토를 교황에게 기증했다. 이로써 교황은 동로마 황제의 간섭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뿐 아니라, 새로운 영토, 곧 교황령을 확보하게 되었다. 오늘날 이 ‘피핀의 기증’ 문서는 전해지지 않지만, 8세기 후반, 이 문서를 출처로 밝힌 인용 문구들이 전해오고 있다. 작품 속으로 가운데 고대 로마 제국의 카이사르를 연상케 하는 옷을 입고 머리에 프랑크 왕국의 권위를 상징하듯 왕관을 쓰고 있는 사람이 피핀 3세다. 왕은 근엄하면서도 카리스마 있게 계단을 오르려고 하고, 바로 뒤에서 동행하는 사제들은 르네상스 시기에 입던 성직자의 평상복을 입고 있다. 피핀의 뒤쪽 배경에는 이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장소가 로마 시대 건물이고, 그곳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들은 프랑크 왕국의 군대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군인들이 들고 있는 깃발에는 메디치 문장이 있는데, 작품을 의뢰한 비오 4세 교황의 문장이다. 그는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먼 친척인 밀라노 메디치 가문 소속이다. 피핀 일행은 확인되지 않은 어떤 건물로 오르고 있다. 피핀 앞에서 계단 하나를 이제 막 오른 사람은 맨발에 망토를 두르고 머리에 왕관을 쓰고 있다. 손이 뒤로 묶인 것으로 봐서 전쟁 포로로 붙잡힌 롬바르드의 왕 아스톨포로 짐작된다. 포로 옆에 있는 사람이 손에 든 작은 동상은 라벤나 관구를 상징한다. 그 땅을 로마 교회에 돌려주기 위해 들고 올라가는 것이다. 이 장면을 더 잘 보겠다고 뒤쪽 기둥 위로 오르는 젊은이도 있다. 이 벽화는 역사적인 사건을 함축하여 재구성했다. 일종의 광고용으로 보인다. ‘피핀의 기증’은 교회사는 물론 그리스도교 서양세계에서 매우 중대한 부분을 차지한다. 교황의 신적, 인간적 권위를 황제로부터 되찾아 왔다는 것뿐 아니라, ‘영토 지배’라는 세속적인 권력이 공식적으로 발의되는 것을 의미했다. 나아가 교황의 요청에 따라 왕이 군대를 움직였다는, 실질적인 권리집행자라는 더 큰 뜻이 함의되어 있는 것이다.지롤라모 시촐란테 다 세르모네타, 롬바르드족의 아스톨포 왕을 이긴 프랑크 왕국의 피핀 3세가 스테파노 2세 교황에게 라벤나와 펜타폴리를 기증, 1565/68년, 바티칸 사도궁.김혜경 (세레나,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이탈리아 피렌체 거주) cpbc2020.08.04
![[영화의 향기 with CaFF] (52) 카잔자키스 (Kazantzakis)](//cpbc.co.kr/CMS/newspaper/2020/02/rc/772384_1.3_titleImage_1.jpg)
[영화의 향기 with CaFF] (52) 카잔자키스 (Kazantzakis)자유를 갈망한 작가의 창작 여정 영화 ‘카잔자키스’ 포스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2)보는 내내 이 성경 구절이 떠올랐던 ‘카잔자키스’는 우리에게 「그리스인 조르바」로 널리 알려진 작가, 니코스 카잔자키스에 대한 전기 영화이다. 평생 자유를 갈구했던 카잔자키스의 삶과 여행의 궤적을 영화는 따라간다. 터키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그리스에서 태어난 그는, 무자비한 그들의 만행을 보며 자랐다. 독립운동을 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는 아버지와 달리 문학으로 독립과 자유에 대한 의지를 표현한다. 그가 자유를 그토록 갈구했던 것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조국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강압적인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의 아버지는 거침없고 직설적인 분이었고, 어린 카잔자키스에게 그것은 상처가 되었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비로소 아버지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진다.아홉 번이나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지만 「미할리스 대장」 「최후의 유혹」 등으로 종교계의 미움을 받던 그는 조국의 방해로 상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에 비견될 정도로 문학성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영화는 그가 남긴 훌륭한 작품들이 탄생하기까지의 배경과 고뇌들을 보여주며, 그의 유약하면서도 섬세한 인간적 면모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행복이란 포도주 한 잔, 밤 한 알, 허름한 화덕, 바닷소리처럼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라는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작은 것들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었다.영화 속에서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세 명이다. 첫 번째 인물은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인 조르바. 조르바는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알려준 사람으로, 그의 삶과 영혼에 깊은 영향을 준 인물이다. 조르바와의 만남을 통해, 그는 비로소 자기가 그렇게 찾아 헤매고 갈구했던 자유가 무엇인지를 깨우치게 된다.두 번째는 그리스의 대표 시인 앙겔로스 시켈리아노스이다. 그는 카잔자키스와의 첫 만남에서 절친이 될 것이라는 걸 직감했으며, 그의 예견은 맞아떨어졌다. 둘은 문학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깊은 교감을 나누면서 서로를 지지하는 사이가 된다. 세 번째는 그의 두 번째 아내인 엘레니 사미우로 카잔자키스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는 데 일조한 인물이다. 그녀는 첫 만남에서부터 그의 작품을 타이핑해주겠다고 했고, 「그리스인 조르바」를 비롯해 「영혼의 자서전」 「프로메테우스」 등 평생 그의 옆에서 많은 작품을 타이핑해준다. 그녀는 그의 작품 활동을 지지하는 열렬한 팬이었다. 그리스에서 가장 큰 섬이자 ‘신들의 섬’이라 불리는 그의 고향, 크레타 섬. 그 섬을 배경으로 그리스의 역사적 유적지와 눈부신 에게해, 유럽 곳곳의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있는 것은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책장에 꽂아두었던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 꺼내 읽고 싶을 것이다. cpbc2020.02.05

한국서 활동하는 스페인 선교사, 청년들과 함께하며 기쁜 삶 [전교주일에 만난 사람] 하느님 자비 복음의 종 선교회 에스텔 팔마 선교사 보편 교회는 올해 10월을 ‘특별 전교의 달’로 보낸다. 새 시대 새로운 열정으로 온 교회가 세상에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 복음을 선포하도록 격려하기 위해서다. 교황청 인류복음화성과 교황청 전교기구는 이를 위해 인터넷 누리집을 개설해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의 활동상을 소개하면서 특별히 한국 교회의 오블라띠 선교 수도회 김하종 신부와 하느님 자비 복음의 종 선교회 에스텔 팔마 선교사를 선교 사례로 선정했다. 전교 주일을 맞아 두 선교사를 만났다. 팔마(앞줄 오른쪽) 선교사 등 5명의 선교사들로 이뤄진 하느님 자비 복음의 종 선교회 한국공동체. 지난해 9월, 특별 전교의 달 공식 누리집(www.october2019.va) 제작을 준비하던 교황청 전교기구 엘레나 그라치니 편집자는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유튜브에서 시선을 멈췄다. 하느님 자비 복음의 종 선교회 에스텔 팔마(Ester Palma, 스페인) 선교사가 자신의 선교회를 소개하는 영상이었다. 선교 활동 사례를 나누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그는 곧바로 팔마 선교사와 연락했고, 그 선교 사례 기고와 영상은 특별 전교의 달을 맞아 전 세계 가톨릭교회에 공개됐다. 10일 팔마 선교사를 만나 그가 생각하는 선교는 뭔지 들어봤다. 그는 “세례받을 때부터 누구나 선교사”라며 “공동체랑 기도하고 함께하며, 젊은이들 안에 들어가 같이 호흡하고 성경 공부하고, 기도하고, 삶을 나누는 일상, 곧 삶 자체가 선교”라고 답변했다. 젊은이들의 고민을 속속들이 ‘들어주고’ ‘같이 기도하고’ ‘함께 노래하고’ ‘밥 먹으며’ 복음과 삶을 나누고 삶에 동반한다는 것. 하느님 자비 복음의 종 선교회는 수도회도, 사도생활단도 아닌 특별한 선교 공동체다. 봉헌생활을 하는 남녀 선교사도 있고 교구 사제, 평신도도 있는 공동체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건 14년째다. 2006년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의 허락을 받아 한밭에서 청년 선교를 시작했다. 중부대나 한밭대, 배재대 등 대전지역 3개 대학에서 매주 기도와 복음 나누기, 생활나눔, 교리교육에 힘쓰며, 입시 준비로 지친 젊은이들이 다시 예수님을 만나 신앙을 되찾도록 했다. 2015년 12월 자비의 특별 희년을 개막하며 시작한 ‘자비의 선교사 학교’도 대표적 사도직으로, 올해로 4기째 시행 중이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선교 영성을 나누고, 1년에 두 번은 시골 본당에서 선교 체험을 한다. 이를 청소년으로 넓혀 ‘청소년 선교사 학교’를 천안 목천성당과 천안 하품(‘하느님의 품’ 줄임말)센터에 개설했고, 이들 청소년을 데리고 교구 청소년사목국과 함께하는 청소년 국제교류봉사활동 ‘코이노니아’(KOINONIA)도 진행해 왔다. 아울러 직장인들과 함께 ‘자비’와 ‘선교’에 대한 영성을 공부하고 나누는 청년 영성 모임 ‘자소공’(자비 소공동체 줄임말)도 진행한다. 자소공 못지않게 재밌는 모임이 ‘디스커버리’(DISCOVERY, ‘발견’)로, 젊은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성소를 스스로 발견하도록 이끈다. 그렇다고 해서 성소자 모임은 아니다. 현재 3명의 젊은이가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성경에 나오는 부르심들, 특히 가정 성소와 수도ㆍ사제 성소를 나눈다. 아이 키우느라 냉담하기 쉬운 젊은 부부들이 분기별로 한 번씩 선교센터에 모여 부부 대화와 기도를 하는 ‘젊은 부부 모임’도 빼놓을 수 없다. 팔마 선교사는 이 같은 사도직에 함께하며 동시에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유튜브 활동도 열심이다. “저도 젊은이들이 사는 세상 안에 들어가 살아야겠다 싶어 시작했어요. 젊은이들과 똑같이 셀카 찍어 올리고 매일의 삶, 선교의 일상을 보여줍니다.” 팔마 선교사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삶의 자리 안에서 실천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줘야 한다”며 “특별 전교의 달 한 달만이라도 선교를 깊이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cpbc2019.10.15

어머니가 남긴 5개국 성경 필사본 ‘신앙유산’에 감동의 눈물 고 박찬희씨 필사본 의정부교구 백석동성당에서 전시한 딸 최원정씨 어머니가 남긴 유작, 5개 국어로 된 성경 필사본을 전시한 딸 최원정씨. 오른쪽 아래 원 안은 어머니 박찬희씨. “어머니는 낮에 아버지를 병간호하시고, 밤엔 성경 필사를 하셨어요. 항상 손목 보호대를 하셨고, 손에서 펜을 놓지 않아 손가락 마디가 다 휘어졌어요.”8월 29일, 의정부교구 일산 백석동성당 만남의 방에서 만난 최원정(헬레나, 56)씨는 어머니가 남기고 간 5개 국어로 쓴 성경필사본 앞에서 눈물을 글썽였다. 어머니가 쓴 성경 필사본은 8월 23일부터 9월 2일까지 성당에 전시됐다. 빈소에서 고인의 성경필사본을 본 용하진 주임 신부가 교우들이 함께 봤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전시회를 열게 해줬다.그의 어머니 박찬희(카타리나, 78, 백석동본당)씨는 1년 5개월간 방광암으로 투병하다 8월 초 세상을 떠났다. 1978년에 세례를 받고, 40년 동안 신자로 살며 틈틈이 써온 성경필사본 5권이 신앙 유산으로 남았다. 1978년부터 쓰기 시작해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써내려갔다. 한국어ㆍ스페인어ㆍ영어ㆍ중국어는 완필했으며 일본어는 끝내 마치지 못했다. “어머니가 평생 주부로 사시면서 어학 공부하는 걸 무척 좋아하셨어요. 5개 국어로 성경 필사하는 게 소원이셨어요.”어머니 박씨는 1989년 세계성체대회에서 스페인어 봉사자로 활동하고, 중국에서 열린 스피치대회에 참가할 만큼 어학에 관심이 많았다. 박씨는 알츠하이머로 9년 가까이 투병한 남편을 간호하며, 본인이 방광암 판정을 받고 수술과 항암치료를 반복하는 순간에도 손에서 펜을 놓지 않았다. 딸 최씨는 “많은 신자가 어머니가 남긴 성경 필사본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며 “처음에는 5개 국어에 놀라고, 두 번째는 한결같은 필체에 놀라고, 마지막으로는 어머니가 하느님께 바친 그 시간에 놀란다”고 말했다. 한동안 냉담도 했던 딸 최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진짜 많이 커졌다”면서 “처음에는 엄마가 돌아가신 게 슬프고 속상했는데, 엄마가 바라는 건 슬픔보다 조용한 기도일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이지혜 기자 cpbc2018.09.05
![[생활속의 복음] 사순 제4주일 - 고통 속에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cpbc.co.kr/CMS/newspaper/2020/03/rc/775313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사순 제4주일 - 고통 속에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 임상만 신부 오늘 복음을 보면,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눈먼 사람을 예수님께서 고쳐주시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자기 탓이나 부모의 탓이 아님에도 날 때부터 눈이 안 보이는 고통을 당했다. 무릇 성경에는 이런 시련과 고통을 당하는 이유가 세 가지로 나온다. 첫째로, 자기가 지은 죄로 인한 대가이다. 예수님께서 벳자타 못 가에 있던 병자를 고쳐주시며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요한 5,14)고 당부하시는 말씀을 들어 알 수 있다. 둘째로, 믿음의 성장을 위한 시련과 고통이다. 욥기를 보면, 그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을 당하며 신앙과 삶의 위기를 맞아 방황한다. 그러나 결국 자기의 고통은 하느님께서 자신을 단련시키기 위한 것임을 깨닫고 이를 기쁨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복음의 말씀처럼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 드러나게 하려고 허락하신 시련과 고통이다.길을 가던 중에 태중 소경을 발견한 제자들이 예수님께 태중 소경이 되는 이유에 대해 물으니 “저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요한 9,3)라고 하신다. 기존 유다인들의 논리대로라면 지금 당하는 고통의 이유가 과거에 있으니 현재는 절망과 낙담만 남게 되지만, 예수님의 새로운 관점의 말씀으로 보면 우리가 겪는 고통 속에 분명한 하느님의 계획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지금은 당장 어렵고 힘든 상황이더라도 하느님께서 나의 고통을 통해 역사하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희망을 가질 수 있고, 어떤 시련과 고통 중에도 주님 안에서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바쿡 예언자가 바빌로니아 침공으로 유다 왕국이 망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에서도 “무화과나무는 꽃을 피우지 못하고 포도나무에는 열매가 없을지라도… 우리에서는 양 떼가 없어지고 외양간에는 소 떼가 없을지라도,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내 구원의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리라”(하바 3,17-18)라고 노래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언제나 하느님께서 그 어려움과 고통의 순간 속에 일하시고 늘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이다.이런 의미에서 우리 고통의 상황은 하느님께서 일하심이 드러나는 은총의 현장이라고 볼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를 변화시켜주시고 우리를 주님 앞에서 성숙한 그리스도인, 쓸모 있는 일꾼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원하는 결과로 드러나지 않았다고 해서 실망할 일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바오로 사도는 자기 몸의 가시로 받는 고통이 너무도 커서 이를 없애주시길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하다가 깨달았다.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2코린 12,9) 비록 자기를 고쳐달라는 기도의 응답을 받지는 못했지만, 주님을 더 의지하고 더 겸손하게 일하라는 주님의 음성으로 도리어 기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때때로 우리도 매번 당하는 시련과 고통이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온전히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봉헌하는 삶을 살면 주님은 연약한 우리를 통해서 하느님의 일을 드러내신다. 어떠한 절망이나, 어떤 고통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먼저 주님 앞에 나서면 바로 그곳이 실로암 못이 된다. 그곳에서 주님의 생명수를 마시고 바르면 눈이 치유되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기적을 보게 될 것이다. 실로암은 예수님께서 그리하도록 ‘파견된 분’이란 뜻이기 때문이다.“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임상만 신부(서울대교구 상도동본당 주임) 평화신문2020.03.18
![[생활속의 복음] 주님 봉헌 축일 - 결국, 우리는 봉헌되는 사람](//cpbc.co.kr/CMS/newspaper/2020/01/rc/771840_1.1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주님 봉헌 축일 - 결국, 우리는 봉헌되는 사람 강석진 신부 ‘주님 봉헌 축일’을 지내는 오늘은 ‘축성 생활의 날’이기도 합니다. 1997년부터 지내기 시작한 이 날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자신을 주님께 봉헌한 수도자들을 위한 날로 지정하셨습니다. ‘주님 봉헌’과 ‘수도자의 봉헌’! 넓은 의미로 생각할 때, ‘봉헌’에 관한 비슷한 개념이라 ‘주님 봉헌’에서 ‘봉헌 생활의 날’의 의미를 살펴볼 수 있겠지만, 다른 측면에서도 중요한 묵상 거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 봉헌’은 주님께서 자신을 봉헌했던 것이 아니라, 부모에 의해 봉헌되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 봉헌’은 요셉과 마리아가 절차 없이 예수님을 봉헌한 것이 아니라, 구약 성경의 레위기(12,1-8)에 있는 정결례 규정을 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의 부모는 아기를 위한 속죄 제물로 ‘산비둘기 한 쌍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쳤습니다. 또한 ‘주님 봉헌’을 위한 여정은 산모였던 마리아와 품에 안긴 아기 예수님이 요셉의 인도에 따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에서부터 150km나 떨어진 먼 길을 걸어간 후 예루살렘 성전에서 봉헌되었습니다.이를 통해 ‘주님 봉헌’은 주님이 양부모에 의해 봉헌된 것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와 함께 수도자들은 주님의 모범에 따라 자신이 잘 봉헌되도록 노력하는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저는 수도 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 ‘나를 주님께 봉헌했다’는 생각에 무척 우쭐거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한 해, 한 해를 넘기면서 점차 목에 힘이 들어가고 삶에도 무게가 잔뜩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무거운 수도자로 10년, 20년 살다 보니, 무게감 때문에 힘들고 거추장스러운 것들이 많았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나를 봉헌하기에도 버거운 수도자’가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중 깨닫게 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봉헌’이라는 말은 능동형이 아니라 수동형이라는 사실을. 또한, 수도자는 자신을 봉헌한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 봉헌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기 예수님이 부모에 의해 봉헌되듯, 우리 또한 공동생활 안에서 형제들에 의해 봉헌되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수도 생활이란 결국 공동체가 형제를 하느님께 봉헌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공동체가 나를 잘 봉헌할 수 있도록 내 힘을 빼는 것입니다. 내 형제들이 나를 주님께 봉헌할 수 있도록 마음의 무게를 줄여나가는 것입니다. 언제부턴가 삶의 힘을 빼고, 마음의 무게를 줄였더니, 공동체 안에서 느끼는 필요 이상의 긴장감도 줄어들고, 사도직에서 만나는 사람들 또한 편안하게 대할 수 있었습니다. ‘봉헌 생활’은 결국 ‘나 중심의 무게’를 줄이고,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사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봉헌되는 사람답게 잘 살아간다면,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삶을 보고 비둘기 한 쌍의 속죄 봉헌물을 하느님께 바쳐줄 것입니다. 아멘.강석진 요셉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평화신문2020.01.28
[하느님과 트윗을](64) 성경은 꾸며낸 이야기인가요주님 사랑 메시지… 역사로도 뒷받침 문 : 성경은 사실인가요, 허구인가요답 : 성경 속 모든 이야기와 비유는 하느님의 영감을 받았으며,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말해 줍니다. 설령 창조 설화(창세 1,1─2,4 참조)나 바벨탑(창세 11,1-9 참조) 이야기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묘사하지 않더라도 그 이야기는 진실입니다. 이야기의 핵심 메시지도 진실입니다. 우리에게는 혼자서 하느님께로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의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벨탑이 보여주는 위험입니다. 이처럼 구약성경의 모든 이야기는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에 주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문 : 성경의 이야기는 그대로 믿어야 하나요답 : 성경에 있는 모든 내용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성경 구절은 저마다 하느님의 사랑에 관한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비유의 표현으로 당신의 메시지를 더 명확히 드러내고자 하셨듯이, 구약성경의 어떤 책에서는 시적인 방식으로 하느님에 관해 더욱 깊은 진리를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성경 이야기를 단지 꾸며낸 이야기로 깎아내려서는 안 됩니다. 문 : 성경에서는 어떤 메시지를 봐야 하나요답 : 구약성경에 나오는 내용 중 많은 부분이 이미 여러 연구에서 입증된 역사적 사실입니다. 고고학자들은 성경 속 인물, 장소, 사건으로부터 연구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특정한 때에 무슨 일이 정말 일어났었는지를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이 당신의 백성과 함께 걸으신 길을 아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의 핵심 메시지는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이 온갖 잘못을 저질러도 끊임없이 그들을 사랑하시며, 언제나 그들에게 기회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성경이 전해 주는 가장 놀라운 메시지이자 사실입니다.문 : 신약성경과는 어떤 연관이 있나요답 : 아담의 갈빗대에서 하와를 창조했다는 것은 하와가 아담보다 열등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들이 동등하며, 일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아담은 하와를 보고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창세 2,23)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장면에서 예수님과의 상징적인 관련성을 봅니다. 예수님의 옆구리가 창으로 찔렸고 그곳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와(요한 19,34 참조) 교회가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수난과 죽음’에 요나가 큰 물고기의 배 속에서 보낸 사흘 밤낮을 연관시키셨습니다.(마태 12,40 참조)이스라엘 민족이 하느님께 불평했을 때 겪은 경험도 다른 연관성을 찾아볼 수 있는 구절입니다. 광야에서 갑자기 독사들이 나타나 이스라엘 백성을 물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간청하자 하느님은 모세에게 구리 뱀을 기둥 위에서 달라고 하신 뒤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민수 21,4-9 참조) 이것은 예수님이 매달리신 십자가, 즉 누구든지 신앙의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면 영원한 삶을 얻을 것(요한 3,14-15 참조)이라는 점과 깊이 관련된 구절입니다.정리=전은지 기자 eunz@cpbc.co.kr 평화신문2018.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