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해요! 평화방송] 복음 TALK 톡톡 등 TV▨복음Talk 톡톡 노래와 복음, 나눔이 함께하는 소통의 장이 펼쳐진다. 이번 주는 연중 제5주일(다해) 복음(루카 5,1-11)을 '고기잡이 기적-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시다'라는 주제로 함께 나눈다. '복톡수훈' 코너에서는 성경학자가 복음 이야기를 들려주면 패널과 방청객들이 함께 질문을 던지고 삶의 다양한 모습을 이야기한다. 초대 손님으로 그룹 Bard의 김정환(토마스 아퀴나스)씨와 현대 가야금 연주자 정민아(베로니카)씨가 출연한다. 공개녹화 방청은 페이스북(facebook.com/PBCTVTalk), 전자우편(pbctalk@pbc.co.kr), 전화(02-2270-2633)로 신청. ▶방송일시: 5일 오후 3시, 6일 오후 9시, 8일 오전 9시 ▶진행: 박병규(대구대교구)ㆍ고진석(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신부 ▶제작: 최은진 PD라디오 ▨언제나 좋은 하루 노련미 넘치는 진행자 김현주 아나운서<사진>와 각 분야 전문가가 다양한 주제로 실시간 상담을 하고 생활 정보를 나누는 시간. 서울 비폭력대화센터 캐서린 한 대표의 '가정 방정식, 사랑 공식',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이상건 상무의 '경제 톡톡(Talk Talk) 행복한 부자되기', 가톨릭대 의대 교수의 '건강상담', 서울사이버대 심리상담학부 교수의 상담 'Bravo your Life' 등 다채로운 코너가 알차고 유익한 하루를 선물한다. ▶방송일시: 월~토 오전 11시 5분~12시 ▶제작: 박용환 PD조은일2013.01.29
병오박해 180주년 심포지엄, 17일 한국교회사연구소·한님성서연구소 주최, 주제는 ‘박해와 순교’ 한국교회사연구소와 한님성서연구소가 17일 오전 10시 서울대교구청 501호에서 병오박해 180주년을 기념 ‘박해와 순교’ 주제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심포지엄 1부에서는 한님성서연구소 소장 정태현 신부의 기조 강연을 시작으로 △순교의 전사(前史)와 기원 - 구약성경의 순교 연구(주원준, 한님성서연구소) △베드로 행전이 전하는 베드로 사도의 순교 - 역사적 고찰(송혜경, 한님성서연구소) △순교자를 기리는 노래 - ‘임금과 순교자들의 소기타’를 통해 살펴보는 동방 시리아 교회의 순교자들에 대한 기억(김선영, 한님성서연구소) 순으로 진행된다. 2부는 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조한건 신부의 기조 강연에 이어 △범월죄인 우대건, 사학죄인 김대건 - 병오사옥의 형정과 효수, 조율과정 검토(남호현, 공군사관학교) △한국 천주교 금압(禁壓)시기 치명-치명자[순교-순교자]에 대한 인식 - 병오년(1846) 천주교 박해를 중심으로(이석원, 수원교회사연구소)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250년) 연구 - 그 동기와 목적을 중심으로(이상민 신부, 가톨릭대 신학대학) 순으로 진행된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이학주2026.09.09

복음화의 모델, 성모 마리아 [월간 꿈CUM] 위대한 기적 출처: 월간 꿈CUM 가톨릭 교회를 잘 모르는 이들이나 편견을 가진 이들은 ‘가톨릭은 마리아 교회’ 라고 비난하곤 합니다. 마리아 공경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가 마리아를 알고 공경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마리아와 예수님과의 혈연관계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구원 역사 안에서 마리아가 맡으신 몫,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에 으뜸가는 협력자라는 면에서 성모 마리아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복음서는 마리아를 하느님의 말씀에 주의 깊게 귀 기울이시는 분, 하느님의 구원 계획과 그에 따른 하느님의 제안을 받고 ‘그대로 저에게 이루어 지소서’라고 응답하신 분, 하느님의 충만한 은총을 받아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신 분으로 소개합니다. 이를테면 마리아는 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낳은 어머니이면서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가져온 하느님의 구원에 의해 온전히 구원받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교의헌장」의 마지막 부분인 8장 53~69항에서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서 천주의 모친 복되신 동정 마리아’라는 제목으로 마리아에 관한 가르침을 잘 정리해 놓았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복음화 사업에서도 아주 특별한 위치를 갖습니다. 성령의 짝이신 마리아를 통해 말씀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복음화의 주역이요, 마리아는 복음화의 모델이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감도하심 아래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성부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사람들이며,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계시의 절정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고 일치하는 것입니다. 복음화의 중심에 있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은 성경이나 교회의 전통에 근거한 우리 신앙의 보화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마리아는 하느님의 뜻을 단순하고 완전하게 믿어 예수님의 어머니가 될 것을 받아들이셨고 인류에게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낳아 주신 분이십니다. 또한, 마리아는 드러내지 않고 뒤에서 묵묵히 아들의 구원 사업을 뒷바라지하신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어떤 역할이나 직무가 주어지면 마치 대단한 사람처럼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구세주의 어머니께서 우리에게 보여준 겸손은 그래서 우리의 모범이 됩니다. 또한, 마리아의 하느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순 명, 구원의 역사 안에서 묵묵히 진리를 실천하신 모습은 오늘날 복음화 사업에서 분명하게 기억하고 본받아야 할 모델입니다. 성모님의 전구를 통해서 세계의 복음화가 하루빨리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글 _ 정치우 (안드레아, 복음화발전소 이사장) 복음화라는 용어가 생소했던 1990년 5월 새로운 복음화 사업을 시작, 복음화학교를 설립하여 재복음화 및 선교를 위한 예수님의 제자훈련 교육체계를 확립시켜 많은 제자를 양성했으며 평화방송 TV를 통해 복음화학교 강의를 했다. 전의 본당 및 단체의 초대로 수백회의 특강과 견진교리, 피정 등을 했으며 가톨릭신문과 가톨릭평화신문에 많은 글을 연재하는 등 저술 활동에도 매진하고 있다. 복음화학교를 은퇴한 이후 ‘복음화발전소’를 설립, 삶을 통한 새로운 복음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저서로는 「길이 있어 걸어갑니다」 「위대한 기적」 「위기의 대안으로서의 평신도영성」 등이 있다.cpbc2026.11.03
[유학따라 떠나는 신앙여행]21- 예수 마음, 겸손하신 분1겸손 통해 삶 완성하고 주님을 겨외최기섭 신부(가톨릭대 신학대 학장, 동양철학)예수성심 성월이다. 자신의 옆구리를 열어 피와 물을 쏟을 만큼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내주었던 예수의 사랑을 기리며, 그분의 마음과 하나가 되기 위해 기도하는 달이다. 그분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예수는 언젠가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을 초대하면서, 자신의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하니 모두 와서 자신의 멍에를 함께 메고 자신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배우게 되면, 편히 쉬게 되리라고 약속했다(마태 11, 28-30). 그분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터득하고 그분과 함께 머물게 되면 어떤 어려움 중에서도 힘을 얻게 된다는 말씀이다. 이 '온유와 겸손'은 성경에서 늘 짝처럼 붙어 다닌다. 그래서 집회서에서는 이렇게 권고하고 있다. "얘야, 네 일을 온유하게 처리하여라. 그러면 선물하는 사람보다 네가 더 사랑을 받으리라. 네가 높아질수록 자신을 더욱 낮추어라. 그러면 주님 앞에서 총애를 받으리라"(집회 3,17-18). 오늘은 먼저 겸손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자. 겸손은 사실 모든 종교에서 중요한 덕목 중 하나로 간주된다. 공자도 군자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군자는 의(義)로써 바탕을 삼고, 예(禮)로써 그것을 행하며, 겸손한 태도로 그것을 표현하며, 믿음으로써 그것을 이룩하니, 참으로 군자(君子)로다"(君子義以爲質 禮以行之 孫以出之 信以成之 君子哉. 「論語」 衛靈公). 義와 禮 그리고 겸손과 믿음이 군자를 이루는 중요한 덕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유학을 공부하면서 겸손에 대해 깊이 묵상(?)할 수 있었던 것은 주역의 겸괘(謙卦)를 읽을 때였다. 많은 내용이 있지만, 여기서는 단지 겸괘의 괘사(卦辭)를 정이천 선생의 설명으로 들어보자. 겸괘의 괘사는 이렇다. "겸(謙)은 형(亨)하니 군자(君子) 유종(有終)이니라." 이 괘사에 대한 정이천의 해석은 이러하다. " 겸(謙)은 형통하는 도가 있다. 덕이 있으면서도 거처하지 않는 것을 겸손이라고 하니, 사람이 겸손함으로 스스로 처신하면 어디 가선들 형통하지 않겠는가?(謙 有亨之道也. 有其德而不居 謂之謙 人以謙巽自處 何往而不亨乎). 정이천은 계속해서 설명한다. " '군자가 마침이 있다(君子有終)'함은, 군자가 뜻을 겸손한 데 두어서, 이치에 통달했기 때문에 천명을 즐기면서 다투지 않고, 안이 충실하기 때문에 물러나고 양보하면서 자랑하지 않는다. 겸손함을 편안하게 이행해서 종신토록 바꾸지 않으니, 스스로 낮추어도 사람들이 더욱 높이고, 스스로 감추어도 덕이 더욱 찬란히 나타나므로, 이를 두고 '군자가 마침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소인은 욕심이 있으면 반드시 다투고 덕이 있으면 반드시 자랑해서, 비록 억지로 겸손하려 해도, 또한 편안하게 행하지 못해서 굳게 지키지 못하니 마침이 있을 수가 없다(원문 생략. 정이천, 周易 「傳」,'謙卦'). '군자가 마침이 있다'는 것은 군자가 겸손을 통해 마침내 자신의 삶을 완성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러한 겸손은 구약성경에 따르면 하느님께 대한 경외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겸손한 이의 기도는 구름을 꿰뚫으며"(집회 35,21), "겸손과 주님을 경외함에 따른 보상은 부와 명예와 생명"(잠언 22,4)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모든 덕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겸손은 예수 삶에서 보듯, 하느님께 대한 깊은 신뢰와 그분의 뜻에 대한 철저한 순명에서 비롯된다. 어떻게 하면 예수의 겸손한 마음을 배울 수 있을까?조은일2008.06.11
 제4화 한국 교회 건축의 오늘-성미술과 성당건축](//cpbc.co.kr/CMS/newspaper/2012/09/rc/427122_1.1_titleImage_1.jpg)
[교회건축을 말한다](19) 제4화 한국 교회 건축의 오늘-성미술과 성당건축하느님께서 만드신 아름다움, 군더더기 덧칠해선 안 돼 오래 전 한국가톨릭미술가회 모임에서 고 김수환 추기경께서 우리 미술가회 수호자인 이탈리아 화가 프라 안젤리코를 말씀하시면서 그가 산마르코수도원 벽에 그린 '수태고지'(受胎告知) 그림의 성모님 얼굴을 보면 화가가 자신을 한껏 낮춰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렸기에 그 성모님이 더 없이 아름답다고 하셨다. 이 프레스코 연작은 수사들이 묵상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제작됐는데 오랜 세월 많은 화가들이 정성을 쏟아 그린 성모상이 많지만 그 가운데서 그의 그림이 그렇게 감동적인 것은 그가 화가로서의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때 추기경님이 회원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신 것은 매우 적절하고도 단순명료한 설명이었다.앙리 마티스가 도미니코수도회 성당에 그린 14처(그림1). 교회미술, 소위 성미술품을 다루는 화가와 조각가와 공예가, 그리고 건축가들에게 프라 안젤리코의 성모님 이야기는 하나의 귀중한 가르침이다. 기도하는 것은 자신을 낮춰야 성립되는 일이다. 프라 안젤리코는 화가이기 이전에 수도자였다. 저명한 미술평론가 윌리엄 마이클 로세티는 "안젤리코는 열정적으로 기도한 다음에야 그림을 그렸다. 기도 없이는 절대로 붓을 들지 않았다"고 말한다. 프라 안젤리코는 기도 행위로 그림을 그렸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그릴 때는 눈물을 흘렸고, 자주 무릎을 꿇고 그림을 그렸다. 앙리 마티스는 말년에 그가 은퇴해 살고 있던 프랑스 남부 방스(Vence)에서 도미니코수도회 수녀님들 부탁으로 개보수하는 수도회 성당에 성모자상과 14처를 그리게 됐다. 이미 세계적 명성을 얻었고 부유한 노년을 보내고 있던 그는, 그때 갑자기 자신이 그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종교화를 그려온 노(老)대가가 갑자기 십자가에 이르는 고난의 길에서 보인 예수 모습을 자기 마음대로 상상해 그린다는 것에 자신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극심한 고통에 신음하는 예수의 마지막 가는 길을 마치 자기가 본 듯이 그린다는 일은 나름의 과장된 생각을 남들에게도 강요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거나, 아무리 좋게 말해도 마티스 자신의 생각(상상력)에 불과한 것이다. 결국 그는 14점의 예수님 그림을 단순한 몇 개의 선으로 추상화할 수밖에 없었다.(그림 1) 그는 성모자상에서도 성모님과 아기 예수님 얼굴을 윤곽선만으로 그렸다. 그는 십자가상 예수님과 그 아래 성모님 얼굴을 그리지 않았다.(그림 2) 그는 자신의 예술을 종교에 양보했다. 누구든지 그 추상화된 선화(線畵)들에서 스스로, 마음대로, 각자의 예수님과 성모님을 마음속으로 그려볼 수 있게 됐고, 오늘날 방스의 도미니코수도회 성당의 성모자상과 14처 그림은 마티스의 어떤 걸작보다도 더 유명한, 불후의 명작으로 남았다. 위대한 화가 지오토는 '오직 자연의 제자일 뿐'이라고 불릴 만큼 철저히 사실적인 화가였다. 그는 파도바(Padova)의 스크로베니 소성당 벽면과 천장을 가득 채운 36개의 성경 장면들을 그리면서 모든 인물을 그린 다음 대부분의 프레스코 화면 배경을 파란 하늘과 푸른 색깔로 그려 자신의 하느님을 표현했다. 성경의 이야기들 중에서도 예수의 신적(神的) 면모를 보여주는 기적 장면들을 대폭 축소하고 성모 마리아의 일생, 예수의 어린 시절과 수난을 강조해 초자연적 현상보다는 인간적 기록에 관심을 뒀다. 성경 장면을 마치 우리가 보는 듯이 사실적으로 그렸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을 그림으로 그릴 수가 없었다.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가. 그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그림으로 형상화하지 않고 푸른 하늘색으로 추상화했다. 그 하늘색은 파도바 지방에서 늘상 보게 되는 가장 평범한 푸른색이었다. 건축은 본질적 구조 요소들로 이뤄진다. 4개의 기둥 위에 지붕을 얹은 건축의 기본형은 어떤 대규모 성전에서도 같다. 그 뼈대 위에 외벽을 바르고 내벽을 씌우고 그것을 디테일로 마감하는 것은 사실상 건축의 구성과 구조에서 본질이 아니다. 따라서 그 벽 위에 프레스코(벽화를 그릴 때 쓰는 화법)로 성화를 그려 성당 내부를 장식하는 일은 건축을 구성하는 본래적 요소가 아니다. 건축은 벽화 없이도 서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너무 오랫동안 그런 여분의 장식으로 벽화를 그려왔기에 그것에 식상해지기도 했다. 그 다음으로는 벽화 대신에 그림을 그린 액자를 벽에 걸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벽화보다 간편하게 그림을 바꾸거나 치울 수 있어서 좋았다. 단순하고 명쾌한 순수성을 강조하는 현대 성당건축에서 그런 장식 그림들은 조금씩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특히 '현대적'이라고 이야기되는 미니멀 시대 건축에서는 오히려 아무 장식 없는 흰 벽만이 순수한 느낌을 준다는 의미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는 흰 벽은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스스로,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는 여백으로 남는다. 그래서 어쩌면 아시시에 있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작은 기도방은 아무런 장식이 없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가장 기도하기 좋은 방은 아무 장식도 없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가장 깨끗하고 가장 조용한 채로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완전히 자유로운 느낌 속에서 기도하는 분위기가 보장되려면 성당 벽을 장식하는 성미술품들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것이다. 예술은 인간이 만든 최고의 아름다움이다. 종교는 하느님이 만드신 최고의 아름다움이다. 모든 예술가들은 인간이 만든 것이 하느님의 아름다움에 군더더기 덧칠이 되지는 않을지 생각해야 한다.김원(안드레아, <주>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조은일2012.09.25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23)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성령 체험: 성령 하느님항상 성령이 함께 하셨음을!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성령 체험을 했다. 깊은 성령 체험을 했던 초대교회 사도들 이야기는 사도행전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우리는 해마다 성령강림대축일을 맞아 그 사건을 되새기고 있다. **성령은 어떤 분이신가 성부는 아버지의 모습, 성자는 아들의 모습으로 그려볼 수 있는데, 성령은 어떤 모습으로 그려야 할지 막막하다. 성경에서 성령은 비둘기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비둘기는 매우 상징적 표현이다. 도대체 성령은 어떤 분이실까. 제자들은 어떤 분으로 체험했을까. 구약성경에서 살펴보면 성령은 바람, 숨, 생명, 영 등으로 번역될 수 있다. 창세기를 통해 성령 활동을 이해할 수 있다.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위를 감돌고 있었다"(창세 1,2)고 서술하고 있다. 마치 위대한 작가가 대작을 구상할 때 떠오르는 영감과도 같은 느낌이다. 가끔 우리에게도 그런 경우가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쉽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오늘의 내가 될 수 있었을까 의아할 때가 있다. 그런 경우 우리는 하느님 은총을 회상하게 된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의 경우도 그렇다. 내가 그걸 어떻게 생각해냈을까. 문득 예수님 말씀이 생각난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마태 10,19-20). **사도들의 성령 체험을 통한 성령 이해 성령을 받은 사도들은 이제 더 이상 주님을 배반하는 겁쟁이가 아니었다. 겁쟁이에서 용감한 사도로 변신하게 된 것을 성경은 성령의 힘이라고 말한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신자들을 체포하던 사울은 예수님을 만난 다음 바오로 사도로 변신한다. 초대교회 사람들은 성령 체험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세례를 통해 성령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또 견진성사를 통해 성령의 7가지 은혜를 받는다고 가르친다. 하느님의 성령은 우리에게 이미 선사된 것이지만 완성된 소유물일 수 없다. 하느님의 성령은 우리의 자연적 삶과 비슷하다. 우리의 자연적 삶도 한번에 영구히 주어진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매순간 새로워지고, 새롭게 선사됨으로써 비로소 우리 삶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바오로 사도는 분명히 성령의 은총의 선물은 여러 가지라고 말씀하신다. 또 바오로는 자신의 삶이 바로 성령의 은총이라 고백하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된 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위험과 박해, 어려움을 다 견뎌낼 수 있었던 것도 성령의 은총이었다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의 은총이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과 이웃 인간,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용서의 능력 주시는 성령 예수님 말씀에 따르면 성령은 무엇보다 죄를 용서받고, 용서하는 능력을 선사하는 분이시다. 죄를 용서받는다면 우리는 성령의 가장 큰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고해성사만 보면 죄를 용서받는다고 배웠기 때문에 죄의 용서를 아주 쉽고 흔한 일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죄는 고백 때문에, 보속 때문에 사해지는 게 아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회개하는 마음을 보고 용서하신다. 고백은 뉘우치는 마음의 한가지 표현일 뿐이다. 사실 죄가 용서된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다. 죄 때문에 아파본 사람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죄가 용서되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지은 업보는 반드시 갚아야 한다. 다음 생에도 갚지 못하면 다시 또 태어나 갚아야 한다. 용서받을 수 있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할 수 있다면, 우리 역시 하느님의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다. 용서할 수 없어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을 우리는 수없이 보고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은 원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미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도록 하기 위한 은총의 명령이다. **하느님과 친교를 나누게 하시는 성령 성령의 은사로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능력이 언급되곤 한다. 가장 중요한 언어는 하느님과 친교를 나눌 수 있는 마음의 언어다. 하느님 말씀을 마음으로 들을 수 있으면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을 알아들 을 수 있다. 사실 우리는 많은 것을 하느님 은총으로 받고 있다. 우리가 지닌 모든 것, 나의 얼굴, 피부, 재산, 부모, 형제, 친구, 능력, 건강…. 어떤 것이 내 것인가. 내 마음은 과연 내 것인가. 어느 개미와 코끼리가 흔들다리를 건넜다. 다리를 다 지난 다음 개미가 동료들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다. "야! 내가 다리를 지나가니까 다리가 막 흔들리더라구." 우리는 그 개미처럼 마치 자기 힘으로 모든 것을 한 것처럼 잘난 체할 때가 종종 있다. 우리의 어려웠던 순간들을 기억해보자. 내가 그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어쩌면 보이지 않는 코끼리가 우리와 함께 건넜기에 다리가 흔들렸던 것은 아닌지…. 어려울 때마다 코끼리보다 더 큰 하느님 은총이 함께하셔서 오늘의 내가 됐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하느님의 성령을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이런 깨달음조차 성령의 선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박정연 기자 cecil@pbc.co.kr조은일2011.11.15

질투, 이 몹시도 역겨운 악에서 달아납시다[월간 꿈 CUM] 1700년 전의 설교 _ 대 바실리우스 (02) 아벨을 죽이는 카인.(밀라노 대성당 외벽 부조) 카인은 하느님께서 아벨에게 영예를 주시자 질투심에 불탔다. 그 영예를 주신 분에게 타격을 입히고자 그것을 받은 이를 죽였다. 하느님과 싸울 수 없으니 차선책으로 친동생을 죽인 것이다.(창세 4,11-16 참조) 질투, 이 몹시도 역겨운 악에서 달아납시다. 그것은 뱀이 가르쳐 준 것이고, 마귀가 꾸며 낸 것, 불화의 씨앗, 형벌의 보증, 거룩함으로 가지 못하게 하는 장벽, 지옥으로 가는 길, 천국을 잃어버리는 원인입니다. 독수리가 초원과 쾌적하고 향기로운 장소를 모두 내버려 두고 악취가 풍기는 곳에 이끌리듯이, 파리가 신성한 고기를 두고 상처가 썩는 곳에 모여들듯이, 질투하는 사람들은 삶의 밝음과 선행의 고귀함에서 눈을 돌려 썩은 것들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뭔가 잘못하면 사람들 사이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실수이건만, 그들은 그 실수를 사방에 떠들고 그 실수가 그것을 저지른 사람에게 낙인처럼 찍히기를 바랍니다. 질투하는 사람들은 칭찬받을 만한 것을 경멸할 만한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전문가이며, 덕을 그것과 비교되는 악덕으로 중상하는데 능숙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 병에 걸리는 것을 피할 수 있을까요. 또 이 병에 걸렸다면,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요. 인간의 번영과 명성, 육체적 건강 등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위대한 것도 탐낼 만한 것도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질투는 죽음이 우리에게로 흘러들어와 축복을 잃게 하고 하느님한테서 멀어지게 하며 율법을 위반하게 하고 동시에 세속적 번영을 망치니, 우리는 바오로 사도의 말을 따릅시다. ‘헛된 영광을 바라지 말며, 서로 싸우지 말고, 서로 질투하지 말고’(갈라 5,26 참조) 오히려 ‘하느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친절하고 자비롭고 서로 용서합시다.’(에페 4,32 참조) 성부와 성령과 함께 주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이 영원무궁토록 있나이다. 아멘. * 대 바실리우스 : 330년경 카이사리아의 부유하고 신심 깊은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단에 맞서 정통 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으며, 수도 공동체 생활에 관한 지침들을 마련했다. 뛰어난 신학자이자 동방교회 수도생활의 창시자로 불린다. 번역 _ 노성기 신부 (루포, 광주대교구 나주 본당 주임, 교부학 박사) 광주가톨릭대학교와 대학원을 거쳐, 로마 아우구스티누스 대학에서 교부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영국 안셀름 대학에서 영성상담 지도자과정을 수료했다. 광주대교구 풍암동 성당 주임신부를 거쳐 2001년부터 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 2010년부터 2018년까지 같은 대학교 총장으로 봉직했다. 이어 2020년 2월까지 목포가톨릭대학교 총장을 역임했으며, 노대동 본당 주임을 거쳐, 현재 나주 본당 주임 신부로 사목하고 있다. 공저 「내가 사랑한 교부들」 「왁자지껄 교회 이야기」 「교부 문헌 용례집」, 옮긴 책 「교부들의 성경 주해 : 마태오 복음서 1-13장」 「교부들의 성경 주해 : 여호수아기」, 공역 「세계 교회사 여행 Ⅰ, Ⅱ」 등이 있다.cpbc2026.09.20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암 투병 아들 뒷바라지하다 쓰러진 엄마](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10/21/2yO1792541598803.jpg)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암 투병 아들 뒷바라지하다 쓰러진 엄마홀로 생계 책임지다 뇌경색 진단 아들의 혈액암 투병을 뒷바라지하고 홀로 생계를 책임지다 쓰러져 인공판막 수술을 받고 투병 중인 김혜주씨. 그가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은 신앙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는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매일 기도를 바치고 있다. 올해 초 인공 심장판막 수술 받아 대출받은 7000만원 갚을 길 막막 김혜주(루치아, 59, 서울대교구 미아동본당)씨는 결혼 전 무역회사에 다니며 출판사에 근무하는 남편을 만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러운 아들을 낳았다. 부유하진 않았지만 남부럽지 않은 삶이었다. 김씨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린 건 아들이 혈액암 진단을 받으면서부터다. 하나뿐인 아들을 살리기 위해 모아둔 재산을 모두 치료비에 쏟아부었다. 이후 고향인 충북 보은으로 이사했지만, 경제적 어려움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일자리를 찾아 다시 서울로 돌아와야 했다. 남편은 가정에 소홀했고 생활비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가끔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일은 오롯이 김씨의 몫이었다.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남편과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 이후 닥치는 대로 일했다. 목욕탕 관리부터 보험, 데이케어 업무까지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았다. 아들의 치료와 생계를 위해 쉴 틈 없이 달려온 시간이었다. 그러다 그에게도 병마가 찾아왔다. 감기 증세로 병원을 찾았다가 폐렴 진단을 받았다. 치료를 받던 중 갑자기 쓰러져 119구급대의 도움으로 대학병원에 이송됐고, 뇌경색 진단을 받았다. 심장 판막에 문제가 생겨 올해 1월 20일 인공판막을 삽입하는 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수술 이후 김씨는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건강을 회복하고 있지만 당장 일을 다시 시작하기는 어렵다. 경제활동이 중단되면서 생활고도 깊어졌다. 수술과 치료비를 마련하려고 집을 담보로 약 7000만 원을 대출받았지만, 갚을 길은 막막하다. 정부 지원금만으로는 치료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려움 속에서도 그가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신앙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세례받은 그는 한동안 냉담했지만, 아들이 성장하면서 다시 성당을 찾았다. 이후 제대회와 전례회, 레지오 마리애 활동 등으로 신앙생활을 이어왔다. 자신도 돌보기 힘든 환경 속에서 성소후원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고통스러운 순간마다 하느님을 원망할 수도 있지만, 그는 오히려 자신을 원망했던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마저도 성경 말씀을 필사하며 신앙 안에서 조금씩 마음을 다잡아 갔다. 김씨는 “제 상황이 많이 힘들어 보이지요. 하지만 저는 지금 살아있는 하루하루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건강을 회복하고 경제적 여유가 조금 생긴다면 나누면서 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 후견인 : 이연출(타대오) / 미아동성당 빈첸시오협의회 회원. 전 빈첸시오협의회 교구 회장 “김혜주 자매님은 참으로 착한 이웃입니다. 지금도 자신의 어려움보다 더 어려운 이들 걱정을 합니다. 성경 쓰기를 할 때가 가장 기쁘다는 루치아 자매님을 위해 가톨릭평화신문 독자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성금계좌 (예금주 : 가톨릭평화방송) 국민 004-25-0021-108 농협 001-01-306122 우리 454-000383-13-102 김혜주씨에게 도움을 주실 독자는 25일부터 31일까지 송금해 주셔야 합니다. 이전에 소개된 이웃에게 도움 주실 분은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담당자(02-2270-2508)에게 문의 바랍니다.박민규2026.10.21
![[출판] 신앙이 영재를 키운다 - 신앙을 맨 앞에 세우니 인성,학업은 저절로](//cpbc.co.kr/CMS/newspaper/2013/02/rc/442033_1.1_titleImage_1.jpg)
[출판] 신앙이 영재를 키운다 - 신앙을 맨 앞에 세우니 인성,학업은 저절로 여섯 자녀 모두 '영재'로 키워낸 최창섭, 허현순씨 부부가 전하는 교육 비법은 신앙이 영재를 키운다허현순 지음/평화방송 평화신문/ 1만 2000원 주일미사와 자녀의 학원 특강시간이 겹친다면 어느 곳에 보내야 할까. 이 질문에 적지 않은 학부모들은 "기도는 엄마가 할 테니, 너는 가서 공부해라"고 말한다. 그러나 최창섭(아우구스티노, 60)ㆍ허현순(마리아 프란체스카, 58)씨 부부는 "아무리 중요한 공부라도 신앙을 앞설 수는 없다"며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허씨는 최근 저서 「신앙이 영재를 키운다」를 통해 신앙으로 자녀교육에 성공한 비법(?)을 공개했다. 부부는 아이를 6명이나 낳았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다둥이 가족'으로 매스컴에 여러 차례 소개됐다. 하지만 이 부부의 진면목은 17년 터울의 여섯 자녀를 '영재' 소리를 들으며 키워낸 점이다. 그것도 돈이 많아 고액과외를 시키거나 유학을 보내서가 아니라 아예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신앙으로 자녀를 키웠다. 자녀들은 SAT 만점, 6개 국어 능통, 전액 장학금으로 미국 명문대 진학, 각종 수학ㆍ과학 경시대회 우승 등 면면이 화려하다. 그러나 부부가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것은 아이들이 한 번도 주일미사에 빠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부부는 자녀들에게 "신앙 먼저, 공부 나중"이라고 강조해왔다. 신혼 때부터 매일 기도를 바쳐온 부부는 자녀들을 갓난아기 때부터 기도에 참여시켰다. 성당에 가도 유아방 대신 일반 신자석에서 가족이 함께 기도했다. 아이들은 엄숙한 분위기에 이미 익숙해져서인지 다른 신자들이 "어쩜 이리 안 우냐"며 장남 삼아 꼬집어도 얌전했다. 이런 신앙 조기교육 덕분에 아이들은 엄마, 아빠보다 '아멘'이라는 말을 먼저 했다. 3~4살이 되면 묵주알을 굴리며 기도문을 줄줄 외웠고, 쉬는시간에는 '미사 놀이'를 하며 자랐다. 아이들이 글자와 숫자를 익힌 것도 신앙생활 안에서였다. 허씨는 "아이들을 성바오로서원에 우르르 데리고 가서 읽고 싶어하는 책을 한보따리씩 사갖고 왔다"며 "성경이나 성가에 은총과 사랑, 믿음 등 비슷한 단어가 반복되다 보니 아이들이 이를 찾으며 재미를 붙였다"고 말했다. 또 "성경 속 비유와 의미를 고민하는 동안 자연스레 생각하는 힘도 자라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신앙의 맛을 깨달았다. 허씨는 "학교 가기 전 매일 새벽미사에 참례하는 것은 힘드니 그만하는 것은 어떠냐고 물었다가 오히려 타박을 들었다"며 "내심 뿌듯했다"고 말했다. 부부는 신앙이 우선된 공부가 중요한 이유로 '하느님 CCTV 이론'을 들었다. "하느님이 계신다는 것을 믿는 아이들은 하느님이 언제 어디서나 자신들을 지켜보고 계신다는 생각 때문에 유혹에 빠지기 쉽지 않고, 혹시 잘못 들어갔다 하더라도 주님의 사랑을 깨닫는 순간 빨리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허씨는 "우리 부부가 아이들 교육에 특별히 신경 쓴 것은 사실"이라며 "공부도 안 시키고 성당만 다녔다고 하면, 주님께서 주신 축복을 욕되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부부는 "부모가 신앙생활에서 모범을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육 주체는 부모지만 삶의 주체는 아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아이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신앙을 가장 중요한 재산으로 물려줘야 합니다." 허씨는 2월 20일 서울 양천본당, 28일 서울 일원동본당 신앙의 해 사순특강에 이어 12일 오후 8시 서울 둔촌동본당, 14일 오후 8시 서울 방배4동본당 사순특강에서 신앙으로 영재를 키운 자녀교육 비결을 들려준다. 김은아 기자 euna@pbc.co.kr조은일2013.02.26
 평신도, 창의적으로 선교하라!](//cpbc.co.kr/CMS/newspaper/2010/08/rc/347154_1.1_titleImage_1.jpg)
[선교, 할 수 있을까?](32) 평신도, 창의적으로 선교하라!양해룡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선교, 전례사목부 담당)필자가 로마 유학 중일 때다. 박사 학위 논문 초고를 주임 지도교수에게 제출한 뒤 평가를 기다리는 동안 '뭐 특별한 지적은 없겠지'하면서도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마침내 교수가 불러 찾아갔는데, 이게 웬 말인가. 교수는 내가 3년 동안 작업한 논문을 다시 쓰라고 했다. 순간 아찔했다. 3년이라는 세월을 허송세월한 것만 같았다. 교수는 나에게 한 달 동안 아무것도 하지 말고, 논문 주제를 깊게 생각하라고 말했다. 그 한 달 동안 필자는 죽을 맛으로 생각을 짜냈다. 일주일 동안 그 생각의 단초를 잡고 나서 다시 교수를 만났다. 그때 교수는 매우 흡족해 하면서 내 견해를 확장하라고 했다. 필자는 안도의 숨을 내쉬고 논문을 다시 정리했다. 결국 1년 늦어졌지만 이렇게 논문을 작성하면서 교수가 나에게 가르치려 했던 것은 내 생각을 전개해 나가는 훈련이었음을 알게 됐다. 다른 사람의 것을 인용해 논문을 전개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필자의 생각을 논문에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가르친 것이다. '창의력', 이것은 우리가 가장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놀면서 일할 때 그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남이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일의 주인이 돼 놀면서 일할 때 창의성이 제대로 발휘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본당에서 평신도들은 과연 사목과 선교를 자신의 일로 생각하면서 일을 하는 것일까? 교회 구조 특성상 교계제도 아래, 평신도 역할이 제한적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제나 수도자가 시키는 일만 하면, 그 또한 문제가 있다. 그래서 평신도가 자율적으로 자신의 일을 찾아서 재미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예를 들어보자. 어느 본당 총구역장이 아이디어를 내어 유에스비(USB) 메모리 칩에 성경을 입력해 주임신부 허락을 받고, 남성 신자들에게 나눠 줬다. 그는 회사에서나 집에서나 성경말씀을 쉽게 접하고 찾을 수 있게 신자들을 도와 준 것이다. 이런 아이디어는 분명 누가 시켜서 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 평신도는 선교의 첨병이기에 항상 자신에 맞는 창의력을 발휘하여 믿지 않는 이들에게 접근하고, 그리고 복음화에 매진할 수가 있다. 이러한 창의력을 가지려면, 신앙생활이 즐거워야 한다. 그리고 언제나 자율적 마음을 갖도록 해야 한다. 또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갖고, 독서를 통해 다른 사람들 아이디어를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생각의 지평을 열 수 있도록 혼자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다. 아울러 각자 생각해 낸 창의성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다. 나눔은 내 생각을 발전시키고, 풍요롭게 하며 성장시킨다. 그래서 그룹이나 단체에서 자신의 '창의적 생각'을 쉽게 나눌 수 있는 인격적 성숙이 중요하다. 여기에서 성직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신자들의 선교와 사목의 창의적 아이디어에 기를 북돋아주는 것이다. 이렇게 평신도들이 재미있고 참여적인 '노는 분위기'에서 나온 가치 있는 아이디어가 분명 우리 교회의 미래를 결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평신도들이 선교사로서 존재하고 활동하는 범위는 아주 광범하다. 그들의 고유한 분야는 지역적, 국가적, 국제적, 정치, 사회, 경제 등 아주 광범하고 복잡한 세계이다. 교회 안에서는 여러 가지 직무와 의무와 기능과 그리스도교 생활을 활성화하는 방법 등이 있다. (「교회 선교 사명」 72) 조은일2010.08.17
[유학따라 떠나는 신앙여행]31-칠극(七克) 이야기(6)가난을 즐기고 부를 베풀라최기섭 신부(가톨릭대 신학대 학장, 동양철학)셋째주제: 탐욕을 풀다칠극(七克)을 읽다보면 같은 주제를 반복하다보니 사실 지루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한 주제를 이렇게 다양하고 꼼꼼하게 설명할 수도 있구나 하고 감탄하게 된다. 탐욕의 의미, 그 해로움, 다양한 실상, 풍부한 예화, 끊임없이 쏟아내는 성인과 현자들의 명언들 그리고 성경과 그리스도교의 가르침들…. 무엇보다도 해탐(解貪)이라는 단어가 깊이 와 닿는다. 나는 앞의 글들에서 유학의 수양론이 보편적이고 공정한 하늘의 뜻(天理之公)을 어떻게 잘 보존하는가 그리고 사사로운 인간의 욕심(人慾之私)을 어떻게 막는가 하는 두 방면으로 전개됨을 설명한 적이 있다. 여기에서 유학은 '인간의 사사로운 욕심'에 대해 전쟁을 치르듯이 막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빤또하는 그 욕심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즉 세상과 재물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면 욕심이 되지만, 그것을 놓거나 밖을 향해 풀어헤치면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결국 문제와 답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어느 종교가 탐욕을 탐탁하게 여기겠는가? 불교에서도 수도(修道)에 가장 큰 걸림돌(三毒)은 욕심(貪), 성냄(瞋), 어리석음(痴)이라고 말한다. 도가(道家)에서도 수도(修道)의 핵심으로 덜어냄(損)이나 비움(虛)을 제시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 점은 유학도 마찬가지다. 맹자도 일찍이 "수양하는데 욕망을 적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養心 莫善於寡欲, 「孟子」 '盡心 下')고 했는데, 송대의 주렴계 선생은 더 나아가 "聖人은 배워서 이를 수 있는데, 그 핵심은 하나이고, 그것은 바로 무욕이다"(聖可學乎 曰可 有要乎 曰有 請問焉 曰一爲要 一者 無慾也. 「通書」)고 말한다. 칠극을 원문으로 읽거나, 원문과 대조하며 읽노라면 이 글들이 과연 서학서(西學書)가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성경이나 교부들의 말씀을 번역하면서 선택한 용어들이 거의 유학의 용어들이요, 어떤 때는 그 내용까지 흡사하기 때문이다. 빤또하가 탐욕을 설명하면서 인용한 글들 중에, 유교의 가르침과 핵심적으로 맞닿아 있는 것들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하나는 재물을 취할 때 그것이 의(義)에 합당한지 살펴야한다는 것이다. "성 그레고리우스는 어떤 부자에게 가르침을 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당신은 재물을 손에 넣을 기회를 만나면, '이것이 의로운 재물인가 아니면 의롭지 않은 재물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의롭지 않은 재물은 그것을 하나라도 손에 넣으면 하느님(상제)에게 죄를 받기 때문입니다."(聖厄勒臥略 勸一富者曰 爾値取財之勢 宜思非義之財 一取卽得罪於上帝也. 「七克」, '解貪') 또 하나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정신이다. 빤또하는 말한다. "편안한 마음으로 가난을 받아들이는 것은 참아낼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가난을 즐기는 것은 매우 지혜로운 일이다. 왜냐하면 가난과 궁핍을 즐기는 것은 바로 하늘로 올라가는 날개이기 때문이다."(平心受貧 忍也. 樂貧 大智也. 貧廬之樂 昇天之翼. 「七克」, '解貪') 그러나 빤또하는 탐욕의 문제 역시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해석하고 있다. "하느님(天主)이 너희를 가난하게 하였다면 이는 너희가 가난을 참고 견디는 공으로써 보답을 받기를 바란 것이고, 너희를 부유하게 해 주었다면 이는 너희가 가난한 이를 도와주는 공으로써 보답을 받기를 바란 것이다."(원문생략. 「七克」, '解貪')조은일2008.09.23
[유학따라 떠나는 신앙여행]28- 칠극(七克) 이야기(3)고개 숙일수록 주님과는 가까워져최기섭 신부(가톨릭대 신학대 학장, 동양철학)칠극(七克)은 교만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것은 판토하가 성경을 인용해 말하고 있듯이, 교만이 모든 죄의 시작(집회 10,13)이며, 모든 악덕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교만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죄악이기도 하다. 그래서 판토하는 교만의 실마리를 네 가지로 분류한다. "그 첫째는 선(善)이 자기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하느님(天主)께 돌리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선이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공적으로 돌리는 것이고, 셋째는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고, 넷째는 남을 경멸하며 자신을 뭇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원문생략. 「七克」, 1권). 유학에서도 교만은 결정적인 악덕(惡德)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공자는 「論語」에서 이렇게 말한다. "만일 주공과 같은 아름다운 재능을 갖고 있어도 교만하고 인색하다면 그 나머지는 볼 것이 없다"(子曰 如有周公之才之美 使驕且吝 其餘 不足觀也已. '태백편' 11). 공자는 늘 주(周)나라의 문물제도를 예찬하고, 그것을 이룩한 주공(周公)을 흠모해 이상적 인간으로 생각하며, 꿈에서라도 그를 만나고자 했다. 그런데 이러한 주공이 훌륭한 능력을 지녔다하더라도 교만하고 인색하다면 인간으로서 더 볼 것이 없다는 말이다. 놀랍다. 「大學」에서도 "군자에게는 큰 道가 있으니, 반드시 忠과 信으로써 얻고, 교만함과 방자함으로써 잃는다"(君子有大道 必忠信以得之 驕泰以失之. 10장)고 경고한다. 판토하가 겸손을 이야기하면서 인용한 또 하나의 중요한 성경구절은 "훌륭하게 되면 될수록 더욱 더 겸손하여라. 주님의 은총을 받으리라"(집회 3,18)는 말씀이다. 이것은 그가 높은 지위를 얻으려고 마음 쓰지 말도록 권고하기도 하지만, 이미 높은 지위를 얻었다면 더 겸손하라는 충고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가 제시하는 많은 예화들은 대부분 서양의 임금들에 관한 이야기이며, 더 나아가 성덕(聖德)에 출중한 서양의 현인들이 오히려 얼마나 겸손에 힘썼는지를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유학에서도 '크고 넉넉한 모습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교만하지 않는' 사람을 君子라고 말한다(子曰 君子 泰而不驕. 「論語」, 자로편). 이러한 사상은 주역(周易)의 흐름 안에서도 나타난다. 즉 정자(程子)는 주역의 겸괘(謙卦)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겸(謙)은 「서괘전」(序卦傳)에 '크게 소유한 자는 가득차게 할 수 없기 때문에, 겸괘로써 받았다'고 했다. 그 소유한 것이 이미 크면 가득차는 데까지 이르게 할 수 없고, 반드시 겸손하고 덜어내야 하기에, '대유괘'(大有卦) 뒤에 '겸괘'로 받은 것이다"(謙 序卦 有大者 不可以盈 故受之以謙. 其有旣大 不可至於盈滿 必在謙損 故大有之後 受之以謙也. 「周易傳」, 謙卦). 다시 말하면 주역의 64괘의 순서는 아무렇게나 결정된 것이 아니라 자연의 질서와 성덕(成德)의 과정을 일러주는 것인데, '겸괘'가 '대유괘' 다음에 온 이유는 이미 충분히 가진 자는 반드시 겸손하고 덜어내야 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순리(順理)이며, 이상적 경지를 향해 가는 올바른 과정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교만의 시작은 하느님을 무시하는 것(시편10,4;예레 13,5)이며, 모든 것이 하느님에게서 온 것임을 깨닫지 못하는 데 기인한다. 그리고 더욱 높아지려는 욕심과 그것을 통해 주어지는 것이 자기의 것으로 착각함으로 교만은 더욱 커지는 것이다. 자, 어떻게 해야 할까? 조은일2008.08.19

그대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여라 튀르키예 카파도키아 괴레메 야외 박물관 대 바실리우스 성당의 벽화 모든 동물은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자기 보호의 내적 능력을 받았습니다. 주의 깊게 관찰하면, 일반적으로 짐승들은 자신에게 해로운 것에 대해 본능적으로 싫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유익한 것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이끌리며 좋아합니다. 우리는 짐승들이 해로운 먹이를 피하는 것처럼 죄를 피하고, 짐승들이 목초지를 찾는 것처럼 정의를 따르면서 하느님께 카파도키아 괴레메 야외 박물관 대 바실리우스 성당의 벽화서 우리에게 주신 자원을 지키는 관리인이 됩니다. 해로운 것과 유익한 것을 구별할 수 있도록 그대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그러나 주의력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는 점에 주목하십시오. 우리는 육신의 눈으로 눈에 보이는 것을 골똘히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영혼은 영혼의 지적 능력으로 무형의 것들을 관조할 수 있습니다. 만일 “그대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십시오”라는 이 계명이 눈의 활동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즉시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자기 눈으로 자신의 전체를 파악할 수 있겠습니까? 눈은 눈 자체를 보지 못하고 머리도 보지 못하고, 등도 몸속 장기들도 볼 수 없습니다. “그대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곧, 모든 면에서 그대 자신을 주의 깊게 살피십시오. ‘그대는 지금 올가미들 사이를 걷고 있으므로’(집회 9,13) 잠들지 말고 깨어 있으십시오. 원수가 파 놓은 함정이 사방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니 ‘제비가 덫에서, 새가 올가미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당신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잠언 6,5 참조) 사방을 둘러보십시오. 사슴은 시력이 날카로워 올가미에 걸려들지 않습니다. 새는 사냥꾼의 올가미를 벗어나 쉽게 날아갑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신을 보호하는 데 있어서 동물보다 게으르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절대로 마귀의 덫에 걸려들어 그의 먹잇감이 되어 그의 뜻을 따르는 장난감이 되지 마십시오.(2티모 2,26 참조) 번역 _ 노성기 신부 (루포, 광주대교구 나주 본당 주임, 교부학 박사) 광주가톨릭대학교와 대학원을 거쳐, 로마 아우구스티누스 대학에서 교부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영국 안셀름 대학에서 영성상담 지도자과정을 수료했다. 광주대교구 풍암동 성당 주임신부를 거쳐 2001년부터 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 2010년부터 2018년까지 같은 대학교 총장으로 봉직했다. 이어 2020년 2월까지 목포가톨릭대학교 총장을 역임했으며, 노대동 본당 주임을 거쳐, 현재 나주 본당 주임 신부로 사목하고 있다. 공저 「내가 사랑한 교부들」 「왁자지껄 교회 이야기」 「교부 문헌 용례집」, 옮긴 책 「교부들의 성경 주해 : 마태오 복음서 1-13장」 「교부들의 성경 주해 : 여호수아기」, 공역 「세계 교회사 여행 Ⅰ, Ⅱ」 등이 있다.cpbc2026.08.14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75)요셉 피츠마이어 (하)](//cpbc.co.kr/CMS/newspaper/2015/01/rc/551087_1.0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75)요셉 피츠마이어 (하)>75< 피츠마이어 신부가 살고 있는 미국 조지타운대 예수회 공동체. 지난 호에서도 언급했듯 신약성경의 아람어적 배경에 대한 피츠마이어 신부의 연구는 고대 유다교를 공부하는 학자들에게는 보고(寶庫)와 같다. 특히 「‘사람의 아들’이라는 신약성경의 호칭에 대한 문헌학적 고찰」(The New Testament Title ‘Son of Man’ Philologically Considered)이라는 논문은 초기 그리스도교의 중요한 개념과 용어들이 생겨난 배경이 되는 유다교를 이해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욥기 타르굼에 대한 피츠마이어 신부의 연구와 아람어 서간학에 대한 연구는 제2 성전기와 초기 랍비 시대 유다인의 사고와 역사를 이해하는 데 열쇠 역할을 했다. 그래서 유다인 학자 로렌스 쉬프만은 피츠마이어 신부를 두고, 사도행전 5장 34절에 나오는 “온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율법 교사”라고 평했다. 사제로서 사목적 관심과 배려 피츠마이어 신부의 학문적 업적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의 연구 활동은 대학에 국한되지 않았다. 가톨릭 사제로서 그는 신자들을 향한 사목적인 관심과 배려 또한 잊지 않았다. 성경에 관한 지식을 일반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들에게도 나눠주기 위해 노력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폐막하기 이전인 1964년 조지타운대학교에서 여름방학을 이용해 성경 강좌를 개최하는 ‘여름 성경연구소’를 만들었고, 그 후 25년간 이 연구소를 이끌었다. 2013년 이 연구소는 설립 50주년을 기념해 그 이름을 ‘조지타운대학교 요셉 피츠마이어 성경 연구소’로 바꿨다. 가톨릭 교회 내 일반 신자들에게 성경 지식을 나누고자 하는 피츠마이어 신부의 관심은 일반 신자들이 쉽게 참조할 수 있는 주석서를 편찬할 의향을 품게 했다. 그의 바람은 같은 뜻을 지녔던 다른 두 가톨릭 성경학자들과 협력을 통해 결실을 맺게 됐다. 미국 가톨릭 성서학계의 세 거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같은 목적을 위해 뜻을 함께한 것이다. 예수회의 피츠마이어 신부, 슐피츠회의 레이몬드 브라운 신부, 가르멜회의 롤랜드 머피 신부는 「예로니모 성경 주석서」(The Jerome Biblical Commentary, 1968)와「신 예로니모 성경 주석서」(The New Jerome Biblical Commentary, 1990)를 편찬했다. 이외에도 피츠마이어 신부는 여러 본당 단체들의 부탁이 있을 때마다 강의했는데, 팔순을 넘어서도 계속했다고 한다. 종교간 대화 활동 그는 또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라 교파를 초월해 신학적 대화를 하도록 이끌어내는 데 훌륭한 역할을 했다. 그는 1979년부터 1988년까지 교황청 일치평의회 자문위원으로서 다양한 개신교 교파들과 대화에 참여했다. 이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업적을 꼽는다면 1999년 10월 31일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가톨릭 교회와 루터 교회 대표자들이 ‘의화론에 관한 공동 선언’에 서명을 하게 된 기념비적 사건이다. 의화론(義化論)은 가톨릭 교회와 루터교 간의 오랜 쟁점이었다. 루터교는 믿음(신앙)으로만 구원받는다고 주장했고, 가톨릭 교회는 믿음과 함께 선행을 실천해야 구원받는다고 가르쳤다. 두 교회는 공동 선언을 통해 “구원은 하느님의 자유로운 선물이며, 이는 선행을 통해서가 아니라 은총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온다. 그러나 성령께서 주시는 은총은 인간에게 선행할 힘을 주고 또 그렇게 하도록 부르신다”고 합의했다. 공동 선언이 발표된 날은 1517년 마르틴 루터가 독일의 비텐베르그 성당 문에 95개의 주제문을 붙였던 날과 같은 날이다. 공동 선언이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두 교회가 35년간 신학 대화를 주고받은 결과였다. 피츠마이어 신부는 신약 성경 학계의 주도적인 가톨릭 학자로서 거의 30여 년에 걸쳐 가톨릭 교회와 루터 교회 간 대화에 참여했다. 평가와 인간적 면모 지금까지 살펴본 요셉 피츠마이어 신부의 생애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부터 현재까지 약 60년에 이르는 가톨릭 성서학계의 역사를 요약하는 것과 같다. 그는 공의회 이전까지 이뤄진 가톨릭 성경학자들의 연구에 바탕을 두는 동시에 19세기 이후 개신교 성경학자들이 성경 연구에 적용한 방법들을 성경 연구에 도입했다. 이제는 그의 뒤를 이어 훨씬 더 많은 가톨릭 성경학자들이 학문적인 성경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피츠마이어 신부처럼 학문적인 성경 연구가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준 학자들 덕분에 성경 연구에 바탕을 둔 초교파적 신학 대화의 문이 그전보다는 훨씬 더 넓게 열리게 됐다. 그리고 피츠마이어 신부와 같은 학자들의 노력과 더불어 가톨릭 교회 안에서 성경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고, 성경에 대한 지식에 목마른 수천 명의 남녀 수도자들과 평신도들이 피츠마이어 신부가 세운 여름 성경 연구소로 밀려들었다. 피츠마이어 신부를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거의 수도자처럼 생활한다. 매일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미사를 드리고, 저녁 8시 30분이면 잠자리에 들었다. 학문하는 자세에 있어서 피츠마이어 신부는 아주 정확하고 꼼꼼했다. 논문을 쓸 때 사용하는 일차 자료와 이차 자료를 모두 두 번씩 반복 확인했다고 한다. 이렇게 정확성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학문적 논쟁에 참여하게 된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국제적인 모임을 통해 세계의 여러 나라 사람들을 만나고, 세상의 여러 곳을 방문하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이와 함께 그는 성경 연구만큼이나 요리를 즐겼다. 이제 만 94세가 된 피츠마이어 신부는 워싱턴 D.C.에 있는 예수회 대학 조지타운대 예수회 공동체에서 살고 있다. 평생을 교육자로서 가르치고, 미래의 학자들을 길러내는 일에 열정을 쏟았던 그의 모든 노력은 이제 그의 가르침을 받았던 많은 후학을 통해, 하느님 말씀을 어떻게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여름 성경연구소를 통하여 배웠던 수많은 평신도와 성직자, 수도자의 삶의 통해 이어질 것이다. 피츠마이어 신부가 뿌린 씨앗은 온 세상 곳곳에서 오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고 있을 것이다. 요셉 피츠마이어 신부의 저서 중 한국에 번역된 책은 다음과 같다. 「바울의 신학」(솔로몬, 1996). 「바울로의 신학」(분도출판사, 2001), 「로마서를 통한 영신수련」(바오로딸, 2000), ‘예수의 동정 잉태와 신약 성서’(「신학전망」제 36호, 92~116쪽) 김영선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평화신문2026.02.12
![[교회사 속 세계공의회 2부] (4) 제4회가와 공의회 폐막](//cpbc.co.kr/CMS/newspaper/2012/01/rc/402497_1.1_titleImage_1.jpg)
[교회사 속 세계공의회 2부] (4) 제4회가와 공의회 폐막16개 문헌 결실과 함께 새로운 시작 교황 바오로 6세는 1965년 1월 4일 제4회기 개회일을 9월 14일로 정했습니다. 공의회 준비 단계에서 12개 준비위원회가 담당 분야별로 초안을 마련했지만 제3회기까지 진행되는 과정에서 조정돼 의안은 모두 16개로 늘어났습니다. 이 중 제2회기에서 2개 문헌(전례헌장, 사회매체교령)이, 제3회기에서 3개 문헌(교회헌장, 일치교령, 동방교회교령)이 공포됐습니다. 공의회에서 다뤄야 할 의안은 아직 11개나 있었습니다. 1965년 3월 7일 교황 바오로 6세는 로마 시내의 한 본당을 방문, 공의회의 첫 결실인 전례헌장 정신에 따라 미사를 집전했습니다. 신자들을 등지고 드리던 미사에서 신자들을 향해 미사를 드렸고 전례 언어도 상당 부분 모국어인 이탈리아어를 사용했습니다. 교황은 함께한 사제들에게 전례 개혁 이행에 협력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교황은 6월 24일 교황청 기구 개편 및 교회법전 개정에 착수했습니다. ▨제4회기 제4회기 개회 연설에서 바오로 6세는 주교대의원회의(주교시노드)를 공식 기구로 설치하고 유엔 총회에 참석하겠다고 밝혀, 교부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주교대의원회의는 교회헌장에 들어 있는 주교단 단체성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기구였습니다. 교황의 유엔 총회 참석은 처음 있는 일일 뿐더러 교회와 세상의 대화, 특히 평화에 대한 교회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 대단히 상징적인 일이었습니다. 교부들은 9월 15일부터 종교 자유에 관한 의안을 시작으로 계시에 관한 수정안,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안, 현대사회에서의 교회에 관한 안들에 대한 심의에 들어갔습니다. 종교 자유에 관한 안은 스페인과 이탈리아 같은 가톨릭국가 주교들의 반대가 심했습니다만, 공산 치하에서 박해를 받은 주교들의 체험적 고백이 설득력을 지니면서 반대 목소리가 잦아들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의 교회에 관한 의안에서는 가정 문제, 평화 문제가 주요 관심사가 됐습니다. 교부들은 또 사회교리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10월 초 교부들은 '주교들의 사목 임무에 관한 교령' 「주님이신 그리스도」(이하 주교교령)를 통과시켰습니다(찬성 2319/반대 1/기권 1). 교령은 교회헌장 제3장 주교직에서 제시하는 원칙에 따라 주교들의 실제 사목 임무를 다루고 있습니다. 개별 교회인 교구도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참다운 그리스도 교회임을 강조했고, 고령이나 기타 이유로 주교직을 수행할 수 없을 때 자발적 은퇴를 권고했습니다. 이전까지 주교직은 사실상 종신직이어서 그에 따른 문제가 적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어 '사제 양성에 관한 교령' 「온 교회의 열망」(이하 사제양성교령. 찬성 2318/반대 3) '수도 생활의 쇄신에 관한 교령' 「완전한 사랑」(이하 수도생활교령, 찬성 2325/반대4), '그리스도인 교육에 관한 선언' 「교육의 중대성」(이하 그리스도인교육선언, 찬성 2290/반대 35),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관한 선언' 「우리 시대」(이하 비그리스도교선언, 찬성 2221/반대 88/기권 1)이 통과됐습니다. 비그리스도교선언은 "타 종교에서 발견되는 옳고 거룩한 것은 아무것도 배척하지 않는다"고 타 종교에 대해 전향적 태도를 보인 것과 특히 유다인을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으로 보면서 유다인 차별과 박해를 배격한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 불과 한 세기 전인 1870년 교황령(교황에게 속한 교회 영토)이 없어지기 전까지 유다인들을 게토(집단 주거지)로 몰아넣어 격리시켰을 정도로 배타적 입장을 보였던 태도와는 180도 달라진 것이었습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1965년 10월 28일 제7차 장엄 공개회의에서 교부들이 통과시킨 3개 교령과 2개 선언 곧 주교교령과 사제양성교령, 수도생활교령 등 3개 교령과 그리스도인교육선언 및 비그리스도교선언 등 2개 선언을 공식 반포했습니다. 공의회는 약 20일 후인 11월 18일 제8차 장엄 공개회의에서 교부들이 통과시킨 '하느님 계시에 관한 교의 헌장' 「하느님의 말씀」(이하 계시헌장, 찬성 2344/반대 6)과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사도직 활동」(이하 평신도교령, 찬성 2340/반대2) 두 문헌을 공포했습니다. 계시헌장은 16세기 트리엔트 공의회가 "오직 성경만!"을 주장한 프로테스탄트 개혁에 맞서면서 그동안 다소 등한시했던 성경의 중요성을 재인식, 성경과 성전을 똑같은 애정으로 공경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평신도교령은 교회헌장의 평신도 신원을 바탕으로 평신도 사도직의 고유한 측면이 현세 질서의 쇄신에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이제 공의회는 막바지로 치달았습니다. 남은 4개 의안에 대한 위원회들의 마지막 수정 작업과 투표를 거쳐 12월 7일 제9차 장엄 공개회의에서 '종교 자유에 관한 선언' 「인간 존엄성」(이하 종교자유선언, 찬성 2308/반대 70/기권 6), '교회의 선교 활동에 관한 교령' 「만민에게」(이하 선교교령, 찬성 2394/반대 5), '사제 생활과 교역에 관한 교령' 「사제품」(이하 사제생활교령, 찬성2390/반대 4),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 「기쁨과 희망」(이하 사목헌장, 찬성 2309/반대 75/기권 7)이 공포됐습니다. 종교자유선언은 그리스도 신앙의 자유의 토대와 근거를 밝히는 가운데 타 종교들도 고유한 권리가 있음을 확인하고 있으며, 선교교령은 선교가 교회의 본성임을 강조하면서 선교 활동의 쇄신을 위한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목헌장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가장 뜸을 많이 들인 문헌이었습니다. 교부들 사이에서 그만큼 뜨거운 관심과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수정과 보완을 거친 것입니다. 문헌은 세상과 대화를 강조한 공의회의 '백미'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16개 문헌 반포를 마무리한 1965년 12월 7일 공의회는 또 하나의 역사적 선언을 합니다. 동ㆍ서 교회 결별의 결정적 원인이 됐던 1054년의 상호 파문을 철회하는 공동선언을 바티칸과 이스탄불(옛 콘스탄티노플)에서 동시에 발표한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역점을 둔 '교회 일치'를 위한 뜻 깊은 선언이었습니다. ▨페막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튿날인 12월 8일 교황 바오로 6세가 주례한 성대하고 장엄미사로 폐막했습니다. 교황은 폐막 미사 후 공의회에 참가한 교부들 이름으로 국가지도자들을 비롯해 사상가와 학자, 예술가, 여성, 노동자, 가난한 이와 병자와 고통받는 모든 이, 젊은이 등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발표합니다. 이로써 제2차 공의회는 막을 내렸습니다. 그렇지만 그 막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신호였습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조은일2012.01.17

바오로의 죽음 : 로마 성 바오로 대성당과 세 분수의 바오로 성당[월간 꿈CUM] 바오로 사도의 발자취를 따라서 _ 튀르키예, 그리스 성지 순례기 바오로가 순교한 장소, 세 분수의 바오로 성당(San Paolo alle Tre Fontane)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며 돌아다닌 로마 국적의 50대 유대인 바오로가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것은 서기 57년 경이다. 왜 체포되었을까. 기록상으로는 정확한 죄명이 남아있지 않지만, 성경에 따르면 아마도 내란을 모의하고 유대교 회당을 더럽힌 혐의를 받고 있었던 듯하다.(사도 24,5-6 참조) 특히 유대교 회당을 더럽힌 죄목이 가장 컸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이방인 에페소 사람 ‘트로피모스’ (τροφιμος)라는 인물과 관련 있다. 트로피모스는 바오로가 3차 전교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동행한 인물이다.(사도 20,4 참조) 그는 바오로와 함께 예루살렘에 와서 예루살렘 성안에 머물렀다. 이를 본 유다인들은 바오로가 이방인인 트로피모스를 성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성전을 더럽했다고 여겨 그를 고발했다.(사도 21,27-31 참조) 성전 모욕죄는 만만하게 볼 죄가 아니다. 예수도 같은 죄목으로 십자가 사형선고를 받았다. 만약 기소 내용이 소명되지 않는다면, 바오로도 판례에 따라 예수와 같은 십자가 형을 받을 상황이었다. 그러나 바오로는 예수와 다른 점이 있었다. 그는 로마 시민이었다. 십자형은 노예 혹은 야만족들에게만 내려지던 형벌이었다. 로마 시민권자가 사형선고를 받으면 십자형이 아닌, 참수형에 처해졌다. 바오로는 이 점을 파고들었다. “나는 황제에게 상소합니다.”(사도 25,11) 상소할 수 있는 권리가 받아들여졌다. 로마에 한 번도 가본 일이 없는 로마 시민! 바오로는 그렇게 로마로 압송된다. 이 과정에서 바오로는 이미 순교를 각오한 듯 보인다. 바오로는 자신을 경기장에서 죽음에 처해진 사람과 비교하면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하느님께서는 우리 사도들을 사형선고를 받은 자처럼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과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된 것입니다.”(1코린 4,9) 어쨌든, 그는 배를 타고 팔레스타인 해안을 떠났고 오늘날의 레바논, 키프로스, 그리스, 몰타를 거쳐 로마로 가는 파란만장한 여정에 올랐다.(사도 27,1-28,15 참조) 우여곡절 끝에 로마에 도착한 바오로는 재판을 기다리는 2년 동안에도 복음을 전파했다. “바오로는 자기의 셋집에서 만 이 년 동안 지내며, 자기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맞아들였다. 그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히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가르쳤다.”(사도 28,30-31) 사도 바오로에 대한 신약성경의 기록은 여기서 끝난다. 바오로 사도는 이후 로마 네로 황제 치세 기간에 순교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정확한 시기에 63년, 65년 등 여러 학설이 있다. 참고로 히에로니무스 성인은 바오로 사도가 67년에 순교했다고 보고 있으며, 에우세비우스는 그의 책 연대기에서 68년에 순교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바오로 사도의 길은 고난의 길이었다. 45~49년까지 키프로스,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라오디케이아를 전교했고, 이후 49~52년까지 앞서 방문한 곳에 세운 교회들을 다시 방문한 뒤, 최초로 아시아를 넘어 유럽 대륙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이때 바오로가 방문한 곳이 필리피, 테살로니카 등이다. 바오로는 당시 유럽 문명의 중심이었던 아테네에도 교회를 세우고 싶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는 신약성경에 ‘아테네서’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바오로의 복음 선포 활동에는 늘 고난이 함께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교회를 탄압하는 사람들에게 박해와 냉대, 학대를 받았다. 감옥에 갇히는 것은 기본. 유대인들에게 매를 맞기도 했으며, 로마인들에게도 태형을 세 번이나 당했다. 바다를 항해할 때, 배가 난파해 일주일 동안 표류하며 죽음의 공포와 맞닥뜨려야 했던 때도 있었다.(2코린 11,23-27 참조) 이런 고난 속에서 바오로는 3회에 걸쳐 전교 여행을 수행해 냈고, 이를 통해 거대한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기틀을 놓았다. 그 소임을 끝낸 후…. 그는 로마에서 참수당한다. cpbc2026.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