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에 처음입니다만] (29) 미사가 뭐예요?](//cpbc.co.kr/CMS/newspaper/2019/10/rc/763568_1.0_titleImage_1.jpg)
[성당에 처음입니다만] (29) 미사가 뭐예요?주님 수난·부활 기념하는 제사 ‘미사’ 사도들과 교회는 주님의 명을 따라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루고 인간의 구원과 해방을 구현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기념하고 재현하는 제사를 공적으로 바쳐오고 있다. 나처음 : 미사가 무슨 뜻인지, 어떻게 진행되는지 정말 궁금해요. 의미를 알아야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조언해 : 처음이가 미사에 참여할 때마다 저건 뭐야? 왜 저렇게 해? 자꾸만 물어 미사를 제대로 드릴 수 없었어요. 오늘 미사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세요.라파엘 신부 : 그러자꾸나. 처음이가 점차 미사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 같아 무척 기쁘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하느님 아버지께 인류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희생 제물로 바치시기 전에 사도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하셨지. 그러면서 빵과 포도주를 모든 이를 위해 내어줄 당신의 몸과 피라고 하셨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20)고 명하셨지. 사도들과 교회는 주님의 명을 따라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루고 인간의 구원과 해방을 구현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기념하고 재현하는 제사를 공적으로 바쳐오고 있단다. 이를 ‘미사’라고 하지. 이 장황한 설명을 교회는 “주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몸과 피로 제정하신 성찬의 희생 제사를, 사랑하는 신부인 교회에 당신의 수난과 부활의 기념제로 맡기셨다”고 한 문장으로 정의한단다.(「전례헌장」 47항) 참으로 명쾌한 설명이지. 그래서 미사를 가톨릭교회의 중심 전례이며, 가장 완전한 기도라고 한단다. ‘미사’는 선교와 맞물려 교회 안에 자리 잡게 된 전례 용어란다. 그리스도교 공인 이후 5세기부터 이민족에 대한 선교 열기가 교회 안에 확산되었지. 미사의 어원은 라틴말 ‘Missio’(미씨오)인데 우리말로 ‘파견’ ‘떠나 보냄’ ‘해산’을 뜻하지. 교회는 성체성사를 통해 받은 은혜와 축복으로 신자들을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자로 파견한다는 의미로 미사를 전례 용어로 받아들였단다. 그래서 사제는 미사 끝에 신자들을 강복한 후 “Ite missa est”(이떼 미사 에스트)라며 세상으로 파견하지.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 때 미사를 세우셨다고 했지.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 때 하신 말씀과 행동이 미사 형식의 원형이야.(마르 14,22-25; 마태 26,26-29; 루카 22,19-20; 1코린 11,23-26) 주님의 제자들인 사도들이 이끌던 초기 교회에서는 신자들과 함께 모여 식사 때 주님께서 행하신 성찬례를 재현하였단다. 150년 이후 교회는 성찬례를 일반 식사와 분리해 성경을 읽은 다음 성찬례를 거행하기 시작해. 5세기 초부터는 예물 봉헌과 감사 기도, 공동 기도가 고정되었고, 6세기 초에는 입당송, 자비송, 대영광송, 본기도, 봉헌 기도, 거룩하시다, 영성체송, 영성체 후 기도 등이 첨가되었지. 오늘날 같은 미사 형태가 완성된 것은 7세기 중엽부터야. 미사는 크게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로 구분돼 있단다. 이 두 부분 외에 ‘시작 예식’과 ‘마침 예식’이 있지. 시작 예식은 말씀 전례 앞에 오는 예식으로 입당, 인사, 참회, 자비송, 대영광송, 본기도 부분이야. 미사 시작과 인도, 준비의 성격을 지니고 있지. 시작 예식의 목적은 미사 참여자들이 일치를 이루고, 하느님 말씀을 올바로 듣고, 합당하게 성찬례를 거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데 있단다.말씀 전례의 중심 부분은 성경에서 뽑은 독서들과 그 사이에 오는 노래란다. 이후 강론, 신앙 고백, 보편 지향 기도까지 이어지지. 특히 복음 봉독은 말씀 전례의 정점이란다. 성찬 전례는 주님의 마지막 만찬을 그대로 재현해 성체성사를 거행하는 예식이야.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될 예물을 제대에 봉헌하는 것으로 성찬 전례는 시작해. 이어 미사 거행 전체의 중심이며 정점인 감사 기도를 바치지. 이 기도는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축성하는 기도야. 이어 영성체 예식이 거행돼 주님의 기도로 날마다 먹을 양식을 청한 후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지. 미사를 마무리하는 마침 예식은 사제의 인사와 강복, 파견 순으로 진행돼. 미사 각 예식 부분을 다음 기회에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마.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19.10.02

“가난한 이웃에 더 혹독한 시기, 신앙인의 나눔 실천 절실”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신년 대담 신축년(辛丑年) 새해가 밝았다. 2021년 한국 교회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을 지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올해를 ‘성 요셉의 해’로 선포했다. 어느 때보다 ‘사회적 우정’과 ‘이웃을 향한 우애’가 필요한 시기다. 신축년 새해를 열며,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에게 코로나 팬데믹 위기 속에서 한국 교회와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언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새해에도 이어질 것으로 여겨집니다. 한국 교회는 물론, 사회 전반이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교회는 전례 없는 팬데믹 위기를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지요. 2020년은 전 세계가 처음으로 맞이하는 팬데믹 상황에서 매우 어렵고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힘겨움 속에 사목하는 우리 사제, 수도자들, 이 신앙을 굳건히 이어가고 있는 신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우리 교회는 주변이 어두워질수록 위로부터 오는 빛에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신앙인은 어려울 때일수록 하느님께 의탁하며 그분께 희망을 두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비천한 종의 모습이지만, 사랑과 자비를 가득히 안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분을 만나면 어떤 상황에서든 살아갈 힘과 희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분 곁에 머무르면 자신이 받은 힘과 희망을 이웃에게 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마음 안에 모시고, 이웃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면서, 사랑의 손길을 내밀어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에 가득 찬 고통이 줄어들고 그 자리에는 기쁨과 평화가 들어서기 시작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반포하신 회칙 「모든 형제들」에서 교황님은 “형제애의 실현으로 교회를 쇄신하고 사회적 우애를 통해 코로나19뿐 아니라 인류가 겪는 모든 문제를 극복해 나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웃을 배척하고 불신하는 지금, 우리 교회부터 형제애를 실현하며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해야 합니다.▲코로나19는 전례와 성사 참여에 큰 어려움을 초래해 신자가 함께 모여 기도하고 활동하는 신앙생활에 타격을 입고 있습니다. 많은 사제와 평신도가 유튜브와 각종 SNS를 활용해 미사와 교리, 소통 등을 이어가는 추세에 교회의 사목은 비대면과 대면 사이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뤄 나아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코로나19로 전례 없는 상황에서 교회의 활동 중 많은 부분이 비대면으로 전환됐습니다. 교회와 신자 간 소통이 비대면으로 대체되면서 신자들의 성사 생활이 큰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올바른 온라인 콘텐츠를 잘 활용하면 유용한 신앙생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성사는 어떤 방식으로도 대체될 수 없음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방송 미사를 통한 대송은 세계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사목적 배려이고 원칙적으로 비대면 성사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어떠한 방송 미사도 주님과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는 신자들의 직접적인 미사 참례와 대체될 수 없습니다. 사목자들은 작은 규모라도 충실히 미사를 봉헌하고 성사를 거행해야 합니다. 순간순간 우리의 일상이 주님 안에서 신앙인으로서 살아가는 시간임을 깊이 새기면서 사목자 뿐만 아니라 신자들도 일상 속에서 주님을 더 찾고 말씀과 기도를 생활화해야 합니다.▲바이러스의 창궐은 환경의 변화에 기인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현재 전 지구적 생태계 파괴와 기후 위기 등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전 인류적 노력이 시급합니다. 그리스도인이 환경을 지키고, 더불어 살아갈 방법을 일깨우는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코로나19는 인간뿐 아니라 자연에도 막대한 피해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음식물 포장, 배달음식 주문, 온라인 쇼핑 등이 증가함에 따라 일회용품과 쓰레기가 급증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오염, 쓰레기, 버리는 문화에 대한 우려를 전했습니다. 교황님은 “우리의 집인 지구가 점점 더 엄청난 쓰레기 더미처럼 보이기 시작했다”고 하시면서 “버리는 문화는 물건을 쉽게 쓰레기로 만들어 버리는 것처럼 소외된 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이어 “현재와 미래 세대들을 위해 자원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재생 불가능한 자원 사용의 최소화, 소비 절제, 효율 극대화, 재사용, 재활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사람들이 먼저 바뀌지 않는다면, 덜 탐욕적이고 더 평온하며, 덜 걱정하고 더 존중하며, 더 형제적인 또 다른 삶의 양식을 선택하도록 독려하지 않는다면, 무엇인가를 바꿀 수 있는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생태론은 있을 수 없다”라며 생태교육의 필요성과 새로운 습관을 기를 것을 촉구하십니다(「사랑하는 아마존」 58항). 인간이 초래한 기후 변화, 생태계 파괴로 바이러스도 우리 생활권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우리의 공동의 집인 지구를 지키기 위해 그리스도인부터 솔선수범해 노력해야 합니다. ▲추기경님께서는 올해도 가난한 이들에게 직접 도시락을 전달하시며 나눔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신앙인으로서 나눔 실천이 왜 더 중요한지 일깨워 주십시오. 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운 날을 보내고 있지만, 저소득층과 취약계층 등 가난한 이들이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님은 가장 비천한 곳에서 태어나셨고,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일수록 누구보다도 먼저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 주님 탄생의 기쁨을 함께 나눠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이 어려운 시기에 코로나 19 대유행이 아무것도 못 하게 가로막는 상황에 불평하기보다는 적게 가진 이들을 위해 무엇인가 행하고, 우리 자신과 우리 친구들을 위해 많은 선물을 마련할 것이 아니라 아무도 생각해주지 않는 도움이 필요한 이를 위해 선물을 해줍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가진 것이 없는 이들은 더 혹독한 겨울을 보냅니다. 코로나19로 인한 두려움은 개인화된 사람들, 관계를 멀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마저 얼어붙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마음 안에 모시고 이웃을 항해 발걸음을 옮기면서 사랑의 손을 내밀 때 고통이 줄어들고 그 자리에 기쁨과 평화가 들어설 것입니다. 우리 교구도 명동 옛 계성여고 자리에 노숙인을 위한 무료 급식소 ‘명동밥집’을 곧 개소합니다. 우리 모두 가난한 이들에게 더 극심한 고통이 되고 있는 이 상황에서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며 함께 이겨냈으면 좋겠습니다.▲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국회와 여성계는 낙태를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싸움으로 끌고 왔는데요. 결국 낙태죄 개정 입법을 하지 못한 채 해를 넘겼습니다. 한국 교회의 생명운동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태아도 하느님께서 그 존재를 허락하신 귀한 인간 생명입니다. 슬프게도 우리 사회는 지금 가장 연약한 인간 생명인 그 태아를 그 어머니에 의해 죽여도 좋다는 법을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형법이 낙태를 허용해도, 신앙인은 신법과 자연법, 양심법에 따라 낙태가 죄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교회가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것은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려는 것이 아니라 무고한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고 인간 생명의 존엄함을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낙태죄 법 조항이 필요 없도록 양심의 법에 따라 살도록 노력하고 여성들이 낙태를 고민하지 않도록 출산 친화적인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돈보다 사람이 중요하고 더불어 살아가는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코로나 시대에 깊이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본당, 운동 단체, 학교, 교회의 여러 기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가정을 지원하고 가정에 힘을 보태어줄 수 있습니다(「사랑의 기쁨」 229항)”라는 교황님 말씀처럼 교회 전체가 가정과 적극 동반해야 합니다. 교회는 출산과 양육처럼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힌 사람들의 어려운 삶을 돌봐주고 그 안에서 하느님의 계획을 온전히 완수하도록 함께 그 길을 걸어야 합니다. ▲2021년 한국 교회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을 지냅니다. 성인의 영성을 과거의 것이 아닌, 지금 우리의 삶 안에서 본받아 실천할 방법과 격려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자생적으로 천주교의 싹을 틔우고 신앙 공동체를 형성한 전례 없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김대건 신부님을 비롯해 무수히 많은 순교자의 피로 성장해 왔습니다. 비록 현시대에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는 없지만 ‘신앙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겠습니다. ‘피의 순교자 김대건과 땀의 증거자 최양업’, 두 분 신부님의 삶을 본받아 이 세상에서의 유혹과 시련을 이겨내며, ‘복음화되어, 복음화하는 여정’을 충실히 걸어가는 교회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고문과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굳건히 신앙을 고백하시는 김대건 신부님의 마음과 태도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사제들은 성 김대건 신부와 가경자 최양업 신부의 사목적 열정을 본받아 찾아가는 사목, 함께하는 사목을 실현하는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정치권의 여야 대립, 빈부의 양극화로 한국 사회는 갈등과 분열이 거세지고 있고 교회 공동체 역시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종교 지도자로서, 한국 교회의 어른으로서 갈등과 분열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당부하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사회구성원의 생각이나 의견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십인십색이라고 하잖아요. 공동체 안에서 구성원들의 의견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고 상대 자체를 인정하지 않거나 배격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 창세기에 보면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자유의지를 주셨지요. 중요한 것은 공동체 안에서 갈등과 분열이 있지만 그런 간격들을 서로 좁히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를 인정해야 하고 대화를 끊임없이 하면서 소통을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있어야 하고 공동체의 구성원이 공존해야 한다는 생각이 우선되어야 하지요. 정치 지도자들은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소외당하고 억울한 사람들이 없어야 하는 것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해결하는 데 지도자들은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한국 교회는 2021년에도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밤 9시 주모경 바치기’ 기도운동을 이어갑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한반도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드러내 주고 계십니다. 새 미국 대통령 임기 시작 후 한반도 정세가 더 안정화되기를 기원하며, 앞으로 교회가 발맞춰 해나가야 할 사명은 무엇일까요? 지난해 우리는 6ㆍ25전쟁 발발 70주년, 그리고 민족 해방 75주년을 맞았습니다. 또 평양교구장 서리로서 평양교구를 파티마 성모님께 봉헌했던 한 해였습니다. 우리 겨레의 참된 해방을 이루려면, 이와 관련된 남과 북, 국제 사회의 모든 지도자를 비롯한 모든 이의 회개(마르 1,15 등)가 필요합니다. 죄를 극복하기 위해서 회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이 세상 안에서 세상의 평화 건설을 위해 가장 먼저 그리고 모범적으로 실천하도록 소명 받은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평화는 인간의 노력과 실천이 필요하지만, 인간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자주 말씀하시는 대로 끝없는 용서와 조건 없는 나눔을 지닌 자비의 마음입니다. 이 모든 것의 구체적인 실천은 기도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진정한 평화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기도로써 청해야만 확실히 얻을 수 있는 하느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평화로 가는 길이 멀고 험난하더라도 자신의 처지에서 최선을 다하며 인내심을 갖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사람들이 되어 약속하신 그리스도의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추기경님을 80세까지 인류복음화성 위원으로 직무를 수행하시도록 임명하셨습니다. 어깨가 더욱 무거워지셨는데요. 소감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교황님께서 저를 인류복음화성 위원으로 더 일하도록 하신 것은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웃음) 한국 교회는 외국으로부터 도움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 빠른 시간 안에 변화됐습니다. 한국 교회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주변의 나라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런 부분에서 다른 아시아 교회와 더 많은 소통과 대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황님께서도 그런 부분을 강조하시기도 했습니다. 한국 교회는 지난 시절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고 성장했습니다. 이제는 그 은총의 빚을 갚아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시선이 항상 우리 자신을 뛰어넘어 이웃, 특히도움을 필요로 하는 교회를 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족하면서도 나눔을 실천하는 것은 바로 교회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생각을 넘어서 하느님의 은총으로 기적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예들을 많이 체험하기도 했고요. 저 자신부터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겠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2021년 서울대교구 사목교서 주제를 ‘복음을 증거하는 교구 공동체’로 정하셨습니다. 이를 주제로 정하신 이유와 교구민에게 당부하시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리 교구는 신앙의 기초를 다지며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복음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특히 ‘복음의 기쁨을 선포하는 교회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가정과 본당 공동체를 중심으로 힘써오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코로나19로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도 우리 모두는 복음이 가져다주는 큰 기쁨과 행복을 새로운 방식으로 온 세상에 증거해야 합니다. 올 한해 가정과 본당 그리고 세상 안에서, 우리뿐만 아니라 아직 그리스도를 모르는 많은 이들에게도 복음의 기쁨을 전하는 선교적 교구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주시길 바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자기 자신의 이해와 관심에만 갇혀있을 때, 더 이상 다른 이들을 위한 자리가 없어 가난한 이들이 들어오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교구 안에서, 특히 코로나19로 더욱 힘든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관심과 사랑으로 복음의 기쁨을 전해야겠습니다. 가정을 비롯한 학교, 직장, 각종 모임, 본당과 지역, 세상 안에서 복음의 기쁨을 증거하는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복음의 기쁨을 선포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기뻐할 수 있는 모습을 가져야만 합니다. 우리 교구와 교구가 하는 모든 일들, 그리고 구성원들 모두가 세상과 이웃에 걱정이 아닌 기쁨을 주는 모습이 되고자 늘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신자들과 국민 모두에게 격려와 새해 덕담 부탁드립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는 올해 12월 8일까지 ‘성 요셉의 해’를 선포하셨습니다. 교황 교서 「아버지의 마음」(Patris Corde)에서 “모든 신자들이 성 요셉의 모범을 따라 하느님의 뜻을 완수하기 위해 일상에서 신앙생활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하시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가 성 요셉 성인에게 의탁해 현재의 고통을 헤쳐나가야 합니다. 자선과 겸손으로 가정을 위해 봉사한 성 요셉을 생각하며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희생하고 신앙생활을 굳건히 하려 노력한다면 이 고통과 어려움의 시간도 언젠가는 지나갈 것입니다. 정리=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사진=백영민기자 heelen@cpbc.co.kr cpbc2020.12.29
![[대구대교구 사목교서] 새로운 서약, 새로운 희망 - 치유의 해, 성체를 공경하며 성령의 은혜로 충만한 삶을 살아갑니다! -](//cpbc.co.kr/CMS/newspaper/2019/12/rc/768222_1.1_titleImage_1.jpg)
[대구대교구 사목교서] 새로운 서약, 새로운 희망 - 치유의 해, 성체를 공경하며 성령의 은혜로 충만한 삶을 살아갑니다!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
올해 2020년은 ‘치유의 해’로 보내고자 합니다. 저는 먼저 지난 몇 년간 있었던 일련의 일들에 대해서 교구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모든 교구민께 용서를 구합니다. 아울러 우리 교구민들이 대내외적으로 입은 상처에 대해 성모님께서 치유의 은혜를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 가톨릭 신자로서의 자긍심을 회복하기 위하여 한마음으로 노력하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저는 분단된 남북한의 현실과 이념적인 대립, 그리고 끊임없는 여야의 정쟁과 이웃 나라들과의 갈등 등으로 상처받은 우리 국민들의 마음도 하느님께서 치유의 손길로 어루만져 주시길 기도합니다. “주님께서는 영혼을 들어 높이시고 눈을 밝혀 주시며 치유와 생명과 복을 내려 주신다.”(집회 34,20)는 말씀대로, 참된 치유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요한 6,51)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은혜를 신뢰하며 하느님께서 우리 교구민들의 모든 아픔을 낫게 해 주시기를 청합니다.“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주님, 저희가 모신 성체를 깨끗한 마음으로 받들게 하시고 현세의 이 선물이 영원한 생명의 약이 되게 하소서.” 이 미사통상문의 기도처럼, 우리 모두가 주님의 성체와 성혈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치유 받으며, 기본에 충실한 신앙생활로 하느님의 사랑과 복음의 기쁨이 충만한 본당과 단체와 가정을 만들어 나갑시다. 우선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모든 교구민은 자주 성경을 읽고, 매일 1단 이상의 묵주기도를 바치며, 생활 중에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주변의 쓰레기 줍기와 같은 희생 봉사에 힘쓰며,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의 가정 기도, 평일 미사 참례, 성체 조배에 힘쓰기를 권합니다.또한, 우리 주위에는 각종 질병이나 사고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분들, 노환과 질병의 아픔을 겪는 소외된 어르신들, 나름대로 아프고 힘든 정신적인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 이들도 많습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그들의 아픔과 결코 무관할 수 없는 우리는 자신이 입은 치유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또 그들을 형제적 사랑으로 돌보는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지향으로 각 본당에서는 주변의 병원이나 요양시설, 어르신들을 위한 주간보호센터 등과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에 대한 병자 영성체와 방문에 정성을 다하길 바랍니다. 아울러 각 대리구(혹은 각 지역)는 연중 적당한 날에 성체대회나 성체 행렬, 치유의 성령대회, 합동 병자성사 등의 행사를 거행하면 좋겠습니다. 평화신문2019.12.04

‘신령성체’ 가능하지만 미사 참여 의무 대신할 수 없어[미사의 모든 것] (1) 방송 미사 코로나19 확산으로 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가 잠정 중단되면서 서울대교구 주교단에 이어 전국 주교단이 가톨릭평화방송TV 방송 미사를 주례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코로나19로 성당에서의 공동체 미사가 중단되면서 많은 신자가 일상에서 신앙 실천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고 합니다. 반면, 두 달여 이상 미사에 참여하지 못하면서 주일 미사 참여 의무에 대한 신자들의 인식이 상당히 약화된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성체성사를 거행하는 미사가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정점’(「교회 헌장」 11항)인데도 불구하고 미사와 성사생활에 대한 신자들의 의식이 자꾸만 약화되어 간다는 것은 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왜 교회가 성체성사로 살아가는지, 그리스도인은 어디에서 생명을 얻고 유지하는지, 교회의 눈길은 어디로 향해 있는지를 살피기 위해 새 연재 ‘미사의 모든 것’을 시작합니다. 독자들에게 좀더 쉽게 미사에 관해 설명하고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 지난 연재 ‘성당은 처음입니다만’을 이끌었던 나처음, 조언해, 라파엘 신부를 다시 초대했습니다.연재 내용은 성경과 가톨릭교회 교리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교황 문헌, 전례학자와 신학자들의 저서를 참고하였습니다. 나처음: 가톨릭교회에 평소 호감이 많은 대학 새내기.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열혈 청년’조언해: 주일학교 교사로 성당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나처음군의 친구라파엘 신부: 수도회 신부로 가톨릭교회 신앙과 역사에 해박한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전국의 모든 성당에서 공동체 미사가 중단되었을 때 수도원도 봉쇄됐다. 수도원 밖으로 나가는 이도, 들어오는 사람도 없이 수도 공동체는 철저히 봉쇄 생활을 했다. 전국의 성당에서 공동체 미사가 재개되었어도 수도원은 바로 문을 개방하지 않고 지금도 조심스레 방문자를 맞이하고 있다. 대학 새내기로 우여곡절을 겪은 나처음군과 조언해양이 여름 방학을 맞아 모처럼 라파엘 신부가 있는 수도원을 찾았다.라파엘 신부: 정말 반가워. 그동안 아무 탈 없이 모두 잘 지냈지. 하느님께서 여러분 가정을 축복해 주시길 기도해. 그래, 그간 어떻게 지냈어?나처음: 대학 첫 학기를 이렇게 보내다니 너무 어이없어요. 새 친구들과 불소(불타는 소통)하며 대학 생활을 만끽하려 했는데 화상 수업만 했네요. 다행히 대유잼(크게 재미나는) 넷플릭스 바다를 유영하며, 긴급 재난 지원금으로 갓수(갓+백수-일하지 않고 편하게 산다)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라파엘 신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나야말로 소통이 되지 않는구나. 그래 언해는 어떻게 지냈니?조언해: 저도 코로나 때문에 밖으로 나다닐 수 없어 집에만 있었어요. 주일이면 가족과 방송 미사를 함께 시청하고 대송도 바치고 그렇게 지냈죠. 뭐. 무엇보다 성당에서 주일학교 초등부 아이들과 지낼 수 없어서 너무 속상했어요. 그래서 얼마 전부터 함께 교리교사를 하는 친구들과 유튜브 영상을 만들어 주일학교 아이들과 만나고 있는데 나름의 재미도 있고 보람도 느껴요. 라파엘 신부: 언해가 교리교사로서 제법 소명 의식이 있구나. 수도원에서 매일 미사와 기도를 하지만 신자들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지는 궁금해 나도 자주 가톨릭평화방송 미사를 시청했지. 예전에 몰랐는데 요즘엔 교회 안에 가톨릭평화방송 같은 미디어가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고 고마워. 미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신자들을 위해 전국의 주교님들이 방송 미사를 주례하시는 걸 보고 감동을 했지.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텅 빈 성 베드로 광장에서 인류를 위해 특별 기도를 하시고 성체 강복을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큰 위로를 받았어. 우리 수도자들도 모두 깨어 새벽에 가톨릭평화방송 생중계를 시청하면서 교황님과 연대했지. 참 고마운 방송이라고 생각해.조언해: 그런데 신부님. 방송 미사만 시청해도 미사에 참여하는 것과 똑같은 건가요. 제가 아무리 아니라도 설명해도 우리 가족들은 방송 미사만 보면 된다며 요즘 성당에 가려 하지 않아요.라파엘 신부: 방송 미사로 주일 미사 참여 의무를 대신할 순 없어. 사제가 주례하는 미사에 직접 참여해야만 미사의 은혜를 온전히 누릴 수 있단다. 미사는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 때 행하신 예식으로 우리 구원을 위한 가장 완전한 성사란다. 그리고 ‘주일’은 부활하신 주님의 날(묵시 1,10)이며 주님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날이야.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이 주일을 거룩히 지내고 주일 미사에 꼭 참여하는 이유는 주님께서 ‘안식일 다음 첫째 날’ 곧 주간 첫날에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교회는 주님 부활 대축일뿐 아니라 주일마다 주님의 부활을 경축하기 때문에 신자들은 이날 미사에 참여할 의무가 있는 거야. 그래서 미사의 은혜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미사에 몸과 마음으로 온전히 참여해야 해.나처음: 그러면 왜 방송 미사를 하는 거죠?라파엘 신부: 신자들을 위한 교회의 사목적 배려라고 이해하면 돼. 지금처럼 코로나19 바이러스 같은 전염병이 전역으로 확산돼 감염의 위험이 있을 때 신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교황님이나 각 교구장 주교님께서 사목적 배려로 미사 참여 의무를 면해 주시는 거야. 특히 미사에 참여할 수 없는 환자들이나, 수인들, 거동이 불편한 노약자나 출장자 등은 가톨릭평화방송 TV나 라디오, 아니면 각 교구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등을 통해 방송 미사에 함께하는 것은 권장할 만한 일이지. 비록 미사에 몸과 마음이 온전히 참여하지 못하지만, 방송을 통해서라도 미사를 봉헌하는 사제와 신자들과 함께 마음으로 일치하고 성체를 모시고자 하는 열망(신령성체)으로 주님과 일치할 수 있기 때문이야. 비록 몸은 물리적으로 미사 장소에 있지 않지만 말이다. 그래서 우리 교구장 주교님들도 코로나19가 종식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노약자나 환자들에게 방송 미사를 통해 주일 미사 참여 의무를 면해 주시는 거야. 참 고마운 일이지.조언해: 그런데 신부님. 방송 미사를 보면 생중계도 있지만, 녹화로 방송되는 것 같아요. 생중계와 녹화 방송이 차이가 있듯 미사의 은혜도 차이 나는 것 아닌가요.라파엘 신부: 헉! 너무 훅 들어오는데. 미처 그런 것까지 생각해보지 못했구나. 평소에도 사제가 없는 공소에서 그 주일 미사의 독서와 기도로써 공소 예절을 하는 것처럼 방송 미사도 주일이든 평일이든 교회 전례력에 따라 미사 전례서의 독서와 기도, 성찬 예식을 거행한단다. 방송 미사의 목적은 좀 전에 말했듯이 몸과 마음으로 온전히 미사에 참여할 수 없는 물리적 한계에 있는 이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이기 때문에 그것이 생중계이건 녹화 방송이건 차이가 없단다. 그것보다 방송 미사를 시청하면서 주님과 일치하려는 우리의 마음가짐과 정성이 더 중요한 것이지. 총알을 맞았는데 총알의 굵기가 얼마나 되고, 총탄의 종류가 무엇인지 따지는 건 어리석은 일이겠지. 생명을 살리기 위한 응급 치료가 우선이지. 방송 미사도 마찬가지야. 신앙생활의 선익과 유익을 위한 것이란 것만 먼저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구나.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0.07.08

고추장 팔고 한마음으로 기도해 지은 하느님의 집2년 4개월 만에 새 성전 봉헌 앞둔 전주교구 순창본당 순창 읍내가 한 눈에 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한 순창본당 새 성전은 본당 신자들과 전국 각지의 은인들의 노력으로 완공을 앞두고 있다. 전주교구 순창본당이 2년 4개월 만에 새 성당 완공을 앞두고 있다. 교적상 신자는 1500명이지만 미사에 나오는 신자는 320여 명, 1년 교구 납부금 2000만 원인 공동체 규모를 살피면 기적 같은 일이다. 사제와 신자가 하나 되어 신앙의 매운맛을 보여준 고추장의 고장 순창을 찾았다. 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낡은 주님의 집을 새집으로전북 순창군 순창읍에 들어서자 저 멀리 언덕 위에 성당이 보인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 외형이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성당 외부는 친근한 느낌의 고벽돌로 마무리하고, 측면에는 회랑을 만들어 마치 유럽의 중세 수도원을 옮겨 놓은듯한 느낌이다. “저기 신부님 오시네요.” 성당 마당에서 본당 건축위원들과 이야기하기도 잠시, 땡볕이 내리쬐는 큰길을 따라 이사정 주임 신부가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성당으로 들어선다.이 신부는 “2018년 2월에 부임 당시 성당 여기저기에서 돌멩이가 떨어지고 지붕에서 비가 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난한 시골 본당에서 새 성당 봉헌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제 나이가 60이고 기존 성전도 60년이 됐더군요. 우연의 일치일 수 있겠지만 제가 태어날 때부터 하느님께서 이곳에 새 성전을 지으라고 저를 부르신 것 같았습니다.” 이 신부는 평소 점찍어 둔 청주교구 새터성당 사진을 붙인 기도 초를 신자들에게 나눠주며 “이런 성당을 봉헌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본격적인 성당 건축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새 성당 봉헌을 결심하자 막혔던 일도 풀렸다. 교구의 배려로 본당 명의로 된 논을 팔아 성당 건립 종잣돈을 마련했다. 지역 게이트볼협회로부터 성당 앞 게이트볼장 사용을 허락받아 임시 성전도 마련했다. 하지만 작은 공동체가 30억 원이 넘는 공사비를 마련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사제부터 낮은 자세로 모범 보여 이 신부가 먼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 신부는 신자들에게 솔선수범하기 위해 타던 차를 팔아 건축 기금에 보탰다. 그리고 선종한 부모님 이름으로 28개월간 매달 250만 원을 성당 신축기금으로 봉헌했다. 이 신부의 ‘한 달 200만 원 만들기 과정’은 눈물겹다. △담배 안 피우기(15만 원 절약) △술은 막걸리로(25만 원 절약) △밥은 누가 사주면 먹고 나는 절대 안 사주기(50만 원 절약) △자췻집에서 밥 해먹기(50만 원 절약) 등. 이 신부는 이렇게 절약한 돈뿐 아니라 자신의 전 재산과 생활비까지 털어 총 1억 5000만 원을 주님의 집을 짓는 데 봉헌했다. 본당 신자들은 이 신부를 겸손한 사제라고 칭찬한다. 늘 낮은 자세로 먼저 신자들에게 다가가고 어르신들 앞에서 춤을 추며 큰 즐거움을 주는 사제다. 그런 사제가 나서자 신자들도 하나둘 그의 뒤를 따랐다. 본당 사무장인 황인선(아우구스티노, 39)씨가 이 신부를 따라 1억 3300만 원이라는 거금을 봉헌했다. 투자회사에서 일했던 황 사무장은 “하느님의 집을 짓는 데 동참할 수 있어 영광이고 가족들도 흔쾌히 동의했다”고 말했다. 감동적인 사연은 이뿐 아니다. 새 차 살 돈 2000만 원을 봉헌한 자매와 가톨릭평화신문에 난 순창성당 건축기금 모금 광고를 보고 5000만 원을 낸 자매도 있다. 엠마우스를 가던 길에 순창성당을 들른 한 신심단체가 회원 193명의 이름으로 3900만 원을 내기도 했다. 신자들도 가정마다 건축 헌금을 봉헌하고 조를 꾸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웃 본당으로 된장 고추장 장아찌 등을 팔며 성당 신축기금을 마련했다. 본당 공동체는 기도 운동을 펼치고 신약성경을 필사하며 신앙도 다졌다. 이 신부는 매일 묵주기도 50단을 봉헌하고, 지난 5월 31일까지 매일 103위 성인들을 기억하며 103배를 바쳤다. 이 신부가 103배를 바치는 동안 신자들은 자비의 기도를 바쳤다. 2018년 4월부터 밤 9시면 전 신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성전 봉헌을 위한 기도를 바치며 마음을 모았고, 본당의 수호성인인 요셉 성인과 성모님께 힘을 보태 달라고 끊임없이 간구했다. 본당과 전국 신자들의 정성이 모일수록 새 성당도 조금씩 모양을 잡아갔다.반석 위에 지어진 성전 이 신부와 본당 건축위원들을 따라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성당은 대지 4628㎡에 연면적 991㎡로 성전과 교육관, 회합실, 식당, 사제관, 수녀원 등이 있는 부속 건물로 구성돼 있다. 하얀색에 베이지색이 어우러져 따뜻함이 가득한 성전 내부는 단층 429㎡로 210석 규모다. 제대와 제단 의자, 해설대, 독서대는 베이지색 대리석으로 제작했다. 성전의 십자가와 스테인드글라스는 손승희(소벽 막달레나) 작가가 제작 중이다. 서춘식(마티아) 건축위원장은 “전라도와 충청도 지역에 잘 지어진 성당 13곳을 돌아다니며 성당 설계에 반영하고 건축 과정을 투명하게 하려고 노력했다”며 “지역 고령화로 인구가 줄어들 것까지 계산해 작지만 아름답고 실용적인 성당으로 꾸몄다”고 설명했다. 신자들의 정성과 마음이 모이고 도와주는 은인들이 나타났지만, 건축비는 늘 모자랐다. 이 신부는 “건축비 때문에 복권을 사볼까 고민도 했다”면서 “답답한 마음에 삭발하고 제대에 오르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성전 봉헌을 위해 걸어온 2년 4개월의 시간. 이 신부에게는 기쁜 일도 많았고 답답한 일도 많았다. “돌아보니 성전을 지으며 속으로 욕도 하고 누군가를 비난하기도 했고 처지를 비관하기도 했네요. 그래서 성격만 더러워졌습니다. 이제 성당이 완공되면 할부로 근사한 차도 사고 소고기 안주에 소주도 한 잔 사 먹고 싶네요.(웃음)” 성당 곳곳을 둘러보고 문을 나서니 순창읍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언덕 위 반석에 지어진 주님의 집 순창성당은 7월 중 공사를 마무리하고 9월에 전주교구장 김선태 주교 주례로 축복식을 가질 예정이다.이 신부는 “2년 반 성전 봉헌 과정에서 신자들이 저를 칭찬하지만, 신자들과 도움을 주신 분들, 그리고 하느님 은총으로 지어진 것”이라며 “누구라도 들어오면 기도하고 싶은 성당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공사는 스테인드글라스 제작비와 내부에 들어가는 성 요셉상 등 2억 5000여만 원의 비용이 더 필요하다. 이 신부는 “전국의 신자들이 기도와 금전적 정성을 보탠 전국적인 성당이 하느님께 봉헌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라며 멋쩍은 웃음과 함께 도움을 청했다.후원 계좌 : 농협 351-1013-2651-63, 예금주 : 천주교 순창성당문의 : 063-652-1004 cpbc2020.06.17
![[군종교구 사목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cpbc.co.kr/CMS/newspaper/2019/12/rc/769247_1.1_titleImage_1.jpg)
[군종교구 사목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군종교구장 유수일 주교 올해의 사목표어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로 정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야 할 공통의 소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백성에게 “나를 따라라”고 명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주님을 따르는 것이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의 공통 소명입니다.저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감에 있어 길잡이가 될 복음 말씀을 마르코복음 1장 32-39절에서 찾았습니다. 이 복음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생활 곧 복음 선포의 삶이 세 개의 기초 위에서 이루어졌음을 알려줍니다. 첫째, 기도 생활이 주님의 삶에서 최우선을 차지했습니다. 기도가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기초요, 주님을 따라감에 있어 역시 가장 중요한 기초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주님을 따르는 이들은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과의 친밀함과 일치의 관계, 주님의 뜻에 절대 순종하는 것, 주님의 가르침과 명에 충실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요 길이 되어 줍니다.둘째,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삶에서 중요한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복음 선포와 관련해 한 가지 강조하는 것은 복음 곧 구원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성경 말씀을 읽고, 듣고, 쓰고, 외우고, 공부하고, 묵상하는 삶을 추구해야 하겠습니다. 이 노력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보다 충실히 따르게 해줍니다.셋째, 모든 사람, 특히 여러 이유로 고통받는 이들을 사랑하고 돌보아주는 것이 주님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우리의 공통 소명임을 깨닫도록 합시다. 희생을 포함한 무한한 사랑, 항구한 사랑, 순수한 사랑을 보여주신 우리 주님의 사랑을 본받으면서 우리도 무한한, 항구한 그리고 순수한 사랑의 실천으로 나가도록 합시다. 이 사랑이 모든 사람, 모든 피조물 특히 고통받는 이들에게 실천되기를 노력하고 그래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늘 청하도록 합시다. “나를 따라라”(요한 21,19)는 단순히 당신이 맡기신 복음전파의 일을 수행하는 것만이 아니고 당신 때문에 받을 수 있는 박해와 고문과 심지어 죽음의 고통까지 받아들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이 밟아 가신 그 고통의 길을 충실히 따라갈 때 영광의 축복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합시다. 그 영광은 바로 구원의 영광입니다.우리가 공통으로 밟아가야 할 길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충실히 따라가도록 합시다. 이 따름이 충실하면 할수록 우리 각자의 덕망은 증가하고, 이는 하느님과 교회에 대해서만이 아니고 세상에 대해 국가에 대해서도 위대한 기여를 하게 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평화신문2019.12.18

하느님 자비와 사랑의 실현, 성탄의 진짜 의미 되새겨보자 동방박사의 경배, 안드레아 만테냐, 1495~1505년, 게티 박물관(미국 로스앤젤레스). 사람아, 그대의 품위를 깨달으라 / 발터 카스퍼 지음 / 김혁태 옮김 / 생활성서 / 2016예수, 탄생과 어린 시절/ 송봉모 지음 / 바오로딸 / 2013‘주님 성탄 대축일’을 맞아 신앙 서적을 통해 성탄의 의미를 되새겨보는건 어떨까?「사람아, 그대의 품위를 깨달으라」는 발터 카스퍼 추기경의 대림 성탄 강론 모음집이다. 세계적인 교의신학자인 카스퍼 추기경은 성탄은 하느님 자비와 사랑의 실현이자, 실체라고 강조한다. 하느님의 사랑을 바탕으로, 이 시대에 다가오는 자비의 하느님을 이야기한다. 이 시대에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 안에 예수님이 어떻게 다가오시는지, 그 예수님을 우리는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우리가 얼마나 행복하고 사랑받는 존재인지를 거듭 강조한다. 인간은 누구나 다 자비를 입을 자격이 있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다. 우리도 다른 이들에게 자애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귀띔한다. “그리스도인이여, 그대의 품위를 깨달으십시오. 그대가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명심하십시오.”(레오 대교황) 그는 레오 대교황의 강론을 인용하며, 인간이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거듭 강조했다. 카스퍼 추기경은 ‘왜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는가?’라는 질문에 “인간을 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와 함께 계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신앙인의 삶이 무엇인지 묻는 신앙인들에게 희망과 기쁨으로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을 제시한다.예수회 송봉모 신부의 「예수, 탄생과 어린 시절」은 예수의 생애를 쉽고 깊이 있게 다룬 해설서다. 성서학자인 송 신부는 예수의 탄생부터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기까지 삶의 단계를 따라가며 그동안 성서학계에서 이뤄낸 예수의 생애에 대한 학문적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 루카와 마태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 탄생 이야기가 왜 차이가 나는지, 복음서는 예수의 공생활 이전의 삶에 왜 침묵하는지 등 성경을 읽으며 의문이 드는 내용도 다뤘다. 예수의 족보와 함께, 임신 소식을 들은 요셉의 반응, 예수님의 성장 환경, 예수님이 열두 살 때 일어난 일도 다뤘다.저자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단순히 우리에게 윤리의식을 심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고 우리 안에 하느님의 모상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서다. 우리 안에 예수님의 인품이 형성되도록 노력해 예수를 닮아야 한다는 것이다.“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벌거벗은 채 태어난 것은 네 자신을 포기해야 함을 알리기 위해서이며/ 내가 가난하게 태어난 것은 네가 나를 유일한 부로 여기게 하기 위해서이고/ 내가 구유에 태어난 것은 네가 모든 환경이 거룩하다는 것을 배우게 하기 위해서이다.”(람베르트 노벤의 ‘내가 태어난 것은’ 중에서)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평화신문2019.12.17
![[신앙단상] 적응과 포기(양상윤 신부,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전교회 중화관구)](//cpbc.co.kr/CMS/newspaper/2019/12/rc/769089_1.5_titleImage_1.jpg)
[신앙단상] 적응과 포기(양상윤 신부,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전교회 중화관구) 제가 필리핀으로 오기 전까지 경험해온 성탄절은 입김이 나오는 추운 날씨에 대부분의 나무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 놓고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빨간 털모자와 털코트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한겨울 풍경이었습니다.하지만 필리핀에서 맞은 첫 성탄절은 달랐습니다. 거리에서 들리는 캐럴은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보이는 나무들이 모두 초록색이고, 한낮에는 여전히 30℃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에 모두가 여름옷을 입고 있지만, 오직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만 털모자와 털코트를 입고 있는 아주 새롭고 신기하다 못해 어색하기까지 한 풍경이었습니다. 필리핀에 살기 시작하면서 신기하고 어색한 것이 성탄절뿐이었겠습니까? 날씨, 언어, 음식, 문화 등 많은 것들이 새롭고, 신기하고, 어색하고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낯선 것들도 자주 접하다 보면 익숙해지는 법, 시간이 흐르다 보면 하나둘씩 적응되고 편안해집니다. 물론 단지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나 노력함에 있어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동안 내가 익숙했던 것들을 포기하기 위한 노력 또한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힌다 해도 익숙했던 날씨, 음식, 문화 등을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고집하거나 그 속에 머무르려고 한다면 결코 새로운 것에 적응하거나 익숙해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살면서 필리핀 음식에 대해 전혀 거부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플 때 당기는 음식은 여전히 한국 음식입니다. 또한, 한국에 살 때 그렇게 추위를 싫어했음에도 불구하고 문득문득 코끝이 찡하도록 추운 겨울 날씨가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머리로는 잊은 듯해도 이미 몸속 깊이 배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단지 신앙생활을 오래 한다고 해서 저절로 우리들의 신앙이 성숙해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열심한 단체 활동, 자선활동, 성경 공부, 피정 등을 통해서 신앙적으로 부족했거나 몰랐던 것들을 채우고 배워가는 것과 더불어 내 안에 이미 배어 있는 이기심이나 시기심, 부정적인 욕심 등 좋지 않은 나를 하나씩 포기할 때 우리의 신앙은 더욱 성숙해지고 참다운 하느님의 자녀, 예수님의 제자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2019년이 저물어 가고 2020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맘때가 되면 많은 사람이 새해 계획을 세웁니다. 올해에는 ‘무엇무엇을 하겠다’는 계획과 더불어 ‘무엇무엇을 포기하겠다’는 계획과 결심을 세워보는 것도 좋을 듯싶습니다. 평화신문2019.12.17
![[교리 상식] 성경 속 동물](//cpbc.co.kr/CMS/newspaper/2018/01/rc/709064_1.0_titleImage_1.jpg)
[교리 상식] 성경 속 동물고대시대부터 동물은 인간의 사냥 대상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우상숭배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 곳곳에 역사 흔적으로 남아 있죠. 우리나라 단군신화에는 곰과 호랑이가 등장하는데, 이는 곰을 숭배한 부족과 호랑이를 숭배한 부족을 의미합니다. 이집트에서도 고양이 얼굴에 여인의 몸을 하고 있는 바스트(bast)를 사랑과 자비, 다산과 풍요의 여신으로 숭배했습니다. 이처럼 특정 동물에 영적 힘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숭배하는 것을 토테미즘(totemism)이라 하는데, 이러한 형태의 원시종교들은 인간 이상의 어떤 힘에 의지하려는 인간 본능에서 나온 것으로 신앙심(信仰心)과는 다릅니다. 성경에도 많은 동물이 등장합니다. 말, 낙타, 늑대, 메추라기 같이 실제 존재하는 동물뿐 아니라 용(龍), 불말(火馬) 같은 상상의 동물도 등장하죠. "그들이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걸어가는데, 갑자기 불 병거와 불 말이 나타나서 그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그러자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에 실려 하늘로 올라갔다"(2열왕 2,11). 특정 동물은 하느님과도 밀접한 관계를 갖습니다. 어떤 동물은 하느님 대리자로 악마들과 투쟁하는가 하면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서 먹으라고 유혹하는 뱀 같이 악마 앞잡이로 활동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악마 모습이 동물로 묘사되죠. "그때에 나는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예언자의 입에서 개구리같이 생긴 더러운 영 셋이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묵시 16,13). 또한 성경에서는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에 대한 언급을 아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레위 11장 참조). 창세기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와 병행해 제시합니다. 따라서 인간과 짐승의 관계에 윤리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동물들을 다스리도록 위임하셨다(창세 1-2). 따라서 동물은 성경 여러 곳에서 믿음과 충성, 헌신의 상징으로 표현됐습니다. 또 성경에는 동물을 인생에 비유하고 상징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죽은 개는 천한 인생을 상징했죠. "그때 츠루야의 아들 아비사이가 임금에게 말하였다. '이 죽은 개가 어찌 감히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을 저주합니까? 가서 그의 머리를 베어 버리게 해 주십시오.'"(2사무 16,9). 일반적으로 개는 경멸과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었죠. 바오로 사도는 이단 교리를 주장함으로써 신자들을 유혹하는 가짜 사목자를 개들이라 칭하며 경고합니다. "개들을 조심하십시오. 나쁜 일꾼들을 조심하십시오. 거짓된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을 조심하십시오"(필리 3,2). 성경은 종종 인간에게 지혜를 가르칠 때 동물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너 게으름뱅이야, 개미에게 가서 그 사는 모습을 보고 지혜로워져라"(잠언 6,6). 예수님께서는 동물을 하느님 나라를 비유하는 데 사용하기도 했습니다(마태 13,47). 성경은 동물을 하느님을 은유적으로 비유하고 상징하는 데 사용합니다. 하느님은 사자나 표범에 비유되고(호세 13,7), 새끼를 날개 아래 모으는 암탉에도 비유됐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마태 23,37). 성경의 동물은 그 종류만큼이나 아주 다양하고 재미있는 싱징으로 그려집니다.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상징] 중 백영민2018.01.23

주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하느님의 아들’ 선언하고 드러내‘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8월 6일) 의미와 유래 주님의 거룩한 변모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도래한 하느님 나라의 권능을 보여준다. 그림은 라파엘로가 1581~1520년에 그린 ‘주님의 거룩한 변모’ 작품으로 바티칸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교회는 8월 6일에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을 지낸다. 높은 산으로 올라가신 주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이 보는 앞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고 엘리야와 모세와 이야기를 나눈 사건(마태 17,1-9; 마르 9,2-10; 루카 9,28-36)을 기념하는 날이다. 주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해 제자들에게 구세주로서 자신의 신원을 명확하게 보여줌으로써 당신께 대한 제자들의 믿음과 확신을 더욱 확고하게 하셨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을 맞아 이 축일의 의미와 유래를 소개한다. 내용은 「가톨릭교회 교리서」와 「주석 성경」,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나자렛 예수」 등을 참고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베드로의 고백과 초막절 마태오와 마르코, 루카 복음서에 따르면 주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이 있기 전 베드로 사도가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서 주님께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마르 8,30; 루카 9,20)라고 고백합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고백을 듣고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신 다음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엿새 뒤 주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만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오르셔서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십니다. 이 세 제자는 예수님께서 수난을 당하시기 전 올리브 산에서 번민 중에 기도하실 때 다시 한 번 주님과 동행합니다. 이런 이유로 베드로의 고백과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는 주님의 수난과 부활을 예시하는 두 이정표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시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느님을 특별히 가까이 모실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산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일생에서 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공간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년시절을 보냈던 나자렛은 산동네입니다. 주님께서 세례 후 유혹을 당하고, 참행복을 선언하며, 거룩한 신성을 드러내 보이시고, 밤새워 기도하며, 십자가에 매달렸던 곳 모두 산이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주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신 장소는 ‘타보르 산’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일련의 두 사건은 언제 일어났을까요. 학자들은 유다인의 두 축제에 주목합니다. ‘속죄일’(욤 키푸르)과 그다음 엿새 뒤에 한 주간 동안 계속되는 ‘초막절’(수콧) 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속죄일에 있었다고 합니다. 일 년에 단 한 번 속죄일 때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에서 대사제가 “야훼” 하느님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한 베드로의 고백은 이 속죄일을 배경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합니다.‘주님의 거룩한 변모’는 속죄일 엿새 뒤 거행하는 초막절과 관련돼 있습니다. 초막절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키시고 40년 광야 생활 동안 지켜주신 은혜를 기념하며 장차 오실 주님을 마중하는 희망의 축제입니다. 이 축제 동안 주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시고 거룩하게 변모하신 것은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완성하고 모든 피조물이 서로 화해할 것임을 보여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풀이할 수 있겠습니다. 복음서가 전하는 주님의 거룩한 변모 이제 복음서가 전하는 주님의 변모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살펴봅시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는 기도 중에 일어납니다. 아버지 하느님과 말씀을 나누는 동안 일어난 일이 세 제자의 눈에 보이게 나타난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이 우리에게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것은 바로 기도의 중요성입니다. 주님께서는 기도를 통해 당신의 구원사업을 이끌어 나갔습니다. 특별히 어떤 중대한 일을 행하기 전이나 어떤 위기에 처했을 때 주님은 반드시 아버지와 대화하는 시간을 따로 가졌습니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마태 17,2)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루카 9,29; 마르 9,3 참조) 세 복음서가 전하는 거룩하게 변하신 모습입니다. 빛은 주님 자신의 내면에서부터 나온 빛입니다. 주님은 빛에서 온 빛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빛에서 온 빛이신 것은 아버지 하느님과 같은 존재이시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변모 때 하얗게 빛나는 주님의 옷은 우리의 미래를 예시해 줍니다. 흰옷은 하늘에 있는 존재, 곧 천사들과 하느님께 선택받은 이들이 입는 옷입니다.(묵시 7,9.13 참조) 그래서 세례성사 때 영세자는 흰옷을 입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통해 주님과 함께 빛을 옷 삼아 입게 되었고, 우리 스스로 빛이 된 것입니다. 흰옷을 입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으며 또 바뀌어 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은 창조된 우리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 일이자, 지금 여기서 이미 시작된 우리의 현실이며, 부활 때 충만하게 누릴 구원 은총을 미리 맛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거룩한 변모는 십자가 수난과 죽음의 결과인 주님의 부활과 세상 마지막 날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그리스도인의 영광을 미리 보여줍니다. “내가 사랑하는 아들” 주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실 때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태 17,5)라는 소리가 났습니다. 구름은 하느님 현존의 표징입니다. 구름 속에서 난 소리는 주님의 세례 장면을 떠올립니다. 그때도 하늘에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11)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는 구약에서는 천사, 선택된 백성, 이스라엘의 왕들을 지칭해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강조하는 말이었습니다. 신약에서는 주님의 세례(마태 3,17) 때와 거룩한 변모 (마태 17,5) 때에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소리가 들려왔고, 니코데모와의 대화 중에 예수께서 자신을 “하느님의 외아들”(요한 3,16)이라고 하시면서 당신의 신성을 선언하시고 믿음을 요구하십니다.(요한 3,18) 또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보고서 백인대장이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마르 15,39) 했고, 바오로 사도는 주님의 신성을 증거하는 말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씁니다. “거룩한 신성으로 말하자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써 하느님의 권능을 나타내어 하느님의 아들로 확인되신 분입니다.”(로마 1,4)이처럼 주님의 거룩한 변모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도래한 하느님 나라의 권능을 보여줍니다. 주님께서는 모세와 엘리야 두 구약의 증인들과 말씀을 나누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고난의 길이 영광에 이르는 길임을 알려주십니다.(루카 24,26-27 참조) 세 제자는 이 장면을 목격하면서 주님을 통해 진정한 초막절, 곧 메시아 시대가 왔음을 체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순 제2주일 복음이 주님의 거룩한 변모에 관한 내용인 것도 이러한 이유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 이야기는 세 제자가 “침묵을 지켜 자기들이 본 것을 그때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루카 9,36)는 설명으로 끝이 납니다. 제자들의 침묵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께서 내리신 함구령을 그대로 지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함구령은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이후에 풀립니다. 루카 복음서 저자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곧 메시아로 선포하기 시작한 것은 성령 강림 이후부터라고 합니다.(사도행전 2장 참조)왜 8월 6일인가교회는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을 ‘성 십자가 현양 축일’(9월 14일) 40일 전날에 지냅니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 40일 전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서방 교회에서는 9세기 중반 나폴리와 독일, 스페인 지역을 중심으로 이 축일을 처음 기념했고, 10세기부터 로마와 프랑스 등지로 급속히 퍼져 나갔습니다. 이후 1457년 갈리스도 3세 교황이 전례력에 도입해 보편 교회가 이 축일을 지내게 됐습니다. cpbc2020.08.04

돌아앉아 벽 보고 식사하는 교황님의 혼밥(?)[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 (12)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기 비결 프란치스코 교황은 매일 아침 산타 마르타의 집 경당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것으로 하루를 연다. 경당 벽면에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상이 부착돼 있다. 【CNS 자료 사진】 광이불요(光而不曜)! 노자가 도덕경에서 제시한 지도자의 최고 덕목입니다. ‘밝게 빛나지만, 그 빛으로 남의 눈을 어지럽게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지요.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해탈이 이런 것일까요? 광이불요나 해탈, 보통 사람들로서는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의 경지입니다.동서양 철학을 섭렵한 석학이자 개신교 신학자인 도올 김용옥이 유튜브에서 성경을 해설하는 강의를 최근 들은 적 있습니다. 김용옥은 메이렐레스 감독의 영화 ‘두 교황’을 극찬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대해 “해탈하신 분”이라고 말하더군요. 저는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동안 관념적으로만 알고 있던 해탈의 개념이 실증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교황청 대사로서 교황님과 함께 생활하다시피 하는 상황에서, 저명한 인문학자가 교황님을 해탈하신 분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으니 말입니다.3월 13일은 교황청 국경일입니다. 한국으로 치면 개천절과 같은 국가 기념일(공휴일)이지요. 교황청의 국경일은 좀 특이합니다. 교황이 바뀔 때마다 국경일 날짜가 달라집니다. 교황 선출일이 국경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르헨티나의 베르골료 추기경이 2013년 3월 13일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되었고, 베르골료는 자신의 교황 이름을 프란치스코로 정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대체 어떤 분이신가? 시쳇말로 인기 비결이 무엇일까? 교황님을 알 수 있는 ‘상징적인 장면’ 세 가지를 소개합니다. 첫째,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의 소박한 삶입니다. 교황님은 사도궁 관저를 놔두고 교황청 사제들의 기숙사(공동 숙소)인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구내 경당에서, 구내식당에서 교황청 사제들은 물론이고 외부 인사들과 수시로 만납니다. 교황님 특유의 소통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교황님이 구내식당에서 식사하시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식당 입구에서 좀 떨어진 구석에 전용 식탁이 있는데, 음식을 식판에 손수 담아 와서 홀(hall)을 등지고 벽을 향해 앉아 음식을 드십니다. 홀을 보고 식사할 경우 불편해 할 수도 있는 사제들을 배려한 것이겠지요.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의 생활은 교황님의 소통과 배려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둘째, 간절한 성모 신심입니다. 교황님은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미사를 집전할 때 발다키노(baldacchino, 天蓋) 아래 중앙 제대 한쪽 기둥에 성모상을 모셔놓고 미사 전과 미사 후에 성모님께 기도드립니다. 기도하는 모습이 간절하다 못해 처연해 보일 때가 많습니다. 일반적인 전례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광경이지요. 전임 교황들도 이렇게 하지 않았답니다. 교황님은 해외 순방을 할 때 로마에서 출발하기 전 성모 마리아 대성전(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에 들러 성모님께 출국 기도를 드립니다. 귀국했을 때에도 이곳에 들려 성모님께 귀국 기도를 드립니다. 셋째, 특유의 기도 방식입니다. 교황님은 손님들을 만날 때 축복 기도를 해주신 다음 반드시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세요!”라고 부탁합니다. 일반알현 때나 삼종기도 때도 세상의 평화를 위해 먼저 기도하신 다음, 회중에게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세요!”라고 마무리합니다. 좀 특이하지 않습니까? 아마 성모님께도 그렇게 하실 것 같습니다. “성모님이 천사의 말을 경청하셨듯이, 저도 하느님 백성의 말을 경청하겠습니다. 성모님이 하느님 말씀에 순명하셨듯이 저도 하느님 말씀에 순명하겠습니다. 성모님처럼 경청과 순명의 삶을 살겠습니다.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세요.” 성모님과 같은 경청과 순명! 교황님의 모든 것이 이 한마디에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교황님은 성모님 앞에서 전구의 기도를 하는 게 아니라 다짐의 기도를 하는 게 아닐까요? 누구나 좋은 말을 할 수는 있지만 실행하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세상에는 말과 행동이 다르고, 앎과 삶이 다른 지도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교황님은 그런 교활한 위선자들과는 거리가 아주 먼 분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배려와 소통, 경청과 순명, 언행일치와 지행합일에서 세상 모든 사람에게 모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 평화신문2020.03.04
![[대전교구 사목교서] “소통과 친교를 이루는 교구 공동체” - 교구 시노드 정신이 뿌리내리는 해](//cpbc.co.kr/CMS/newspaper/2019/11/rc/767604_1.2_titleImage_1.jpg)
[대전교구 사목교서] “소통과 친교를 이루는 교구 공동체” - 교구 시노드 정신이 뿌리내리는 해 [대전교구 사목교서] “소통과 친교를 이루는 교구 공동체” - 교구 시노드 정신이 뿌리내리는 해 우리 교구는 지난 4년간 시노드의 여정을 함께 걸었습니다. 우리는 시노드를 통해 성령의 인도하에 함께 걸어가는 교회의 신비를 체험하였습니다. 「복음의 기쁨」과 ‘순교자들의 삶’은 교회의 모습을 성찰하도록 이끄는 나침반이었고, ‘공동합의성’의 정신은 대전교구 쇄신을 위한 지침이었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사목을 여는 2020년을 ‘소통과 친교의 해’로 선포합니다! 2020년은 지난 4년간 함께 걸어온 ‘교구 시노드 정신이 뿌리내리는 해’가 될 것입니다. 지나친 성직주의를 지양하고 교회 내 하느님 백성의 책임과 활동을 보장하여, 교회의 변화된 모습이 기쁜 소식으로 선포되는 한 해를 만들어 갑시다.교회는 하느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에 하느님 백성 모두가 경청하고 서로를 위하며 복음 선포를 위해 나아갑니다. 이것이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공동합의성」의 정신입니다. 이는 세례를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 안에 심어진 ‘신앙 감각’을 존중하며 지금의 현상과 의미를 함께 식별하는 데서 실현됩니다. 하느님 백성인 사제ㆍ수도자ㆍ평신도들은 공동합의성을 통해 자신의 영역을 넘어 갈라진 교회와의 일치, 더 나아가 교회와 세상이 성령의 인도하에 함께 완성을 향해 걸어가야 합니다. 교회의 본질은 선교입니다. 선교는 하느님 말씀으로부터 주어지는 기쁨을 나눔에서 시작됩니다. 따라서 복음 선포를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성경의 말씀에 경청하고 말씀의 힘이 우리 생각과 마음과 행동을 이끌도록 우리 자신을 비우는 데 있습니다. 또한, 성사 참여를 통해 하느님 현존 앞에 자신을 가다듬는 시간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대전교구 신앙의 못자리인 순교자들의 삶은 선교의 뛰어난 모범입니다. 성 김대건 신부님과 하느님의 종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2021년도 잘 준비해 갑시다. 초기 한국교회가 보여준 사제와 평신도의 협력, 낯선 이들에 대한 환대와 약자에 대한 우선적 배려, 복음 묵상과 성찰 및 기도의 철저한 생활화는 공동합의성의 주요정신이 실현된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대전교구 시노드를 통해 우리가 함께 확인한 교회의 나아갈 길입니다. 새해에도 우리 교구 하느님 백성이 새로운 사람, 새로운 응답, 새로운 교회로 나아가는 해로 만들어 갑시다. 저는 새로운 복음화의 여정 안에서 사제, 수도자, 평신도가 서로를 돕는 ‘하느님 백성’의 일원임을 잊지 않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느님 백성’ 모두가 각자의 소명과 역할을 통해 풍성한 은총을 체험하는 교구 공동체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특별히 평신도의 다양한 사목적인 참여를 활짝 여는 교구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평화신문2019.11.27
![[이창훈 위원의 사도행전 이야기] (23) 필리포스와 에티오피아 내시 (8,26-40)](//cpbc.co.kr/CMS/newspaper/2019/07/rc/756850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위원의 사도행전 이야기] (23) 필리포스와 에티오피아 내시 (8,26-40)성령의 말씀에 귀 기울여 구원의 기쁨 얻다 필리포스의 복음 선포 여정 예루살렘 북쪽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한 필리포스의 복음 선포 활동이 계속 이어집니다. 필리포스는 에티오피아 여왕의 시종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준 후에 지중해 연안 일대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일곱 봉사자 중 한 사람인 필리포스가 예루살렘을 떠나 사마리아로 간 것은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박해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에티오피아 여왕의 시종을 만나게 된 것은 ‘주님의 천사’를 통해서였습니다. 천사가 그에게 “일어나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남쪽으로 가라. 그것은 외딴길이다”(8,26)라고 알려줬습니다. 가자는 오늘날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의 중심 도시 가자를 말합니다. 사도행전 본문에서는 가자로 내려가는 길이 남쪽이라고 하지만 가자는 예루살렘에서 서남쪽으로 70㎞가량 떨어져 있는 지중해 연안 도시입니다. 가자는 본래 구약에 나오는 필리스티아인들의 도시였습니다. 오늘날 팔레스타인(라틴어로 팔레스티나)이라고 부르는 지명이 바로 이 필리스티아에서 나왔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가자, 아스돗, 아스클론, 갓, 에크론 이 다섯 도시가 필리스티아인들의 중심 도시였습니다.(여호 13,3 참조)주님의 천사 말에 필리포스는 일어나 길을 가다가 ‘에티오피아 여왕 칸다케’의 모든 재정을 관리하는 고관 내시를 만납니다. 그는 하느님께 경배를 드리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면서 수레에 앉아 이사야 예언서를 읽고 있었습니다. 성령께서는 필리포스에게 수레에 바짝 다가서라고 이르십니다.(8,27-29)‘칸다케’는 여왕의 이름이 아니라 이집트 왕을 가리키는 ‘파라오’나 로마 황제를 가리키는 ‘카이사르’처럼 에티오피아 여왕을 가리키는 명칭입니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나일강 상류 청나일강의 발원지가 있는 나라입니다. 에티오피아의 고관 내시가 하느님께 경배를 드리러 예루살렘을 다녀갈 뿐 아니라 이사야 예언서를 읽고 있었다는 것은 아프리카 땅 에티오피아에도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 대한 신앙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유다인들은 이집트뿐 아니라 에티오피아에서도 디아스포라를 이루어 살았습니다. 기원전 7세기에 활동한 스바니아 예언자가 “에티오피아 강 너머에서 나의 숭배자들, 흩어진 이들이 선물을 가지고 나에게 오리라”(스바 3,10)고 예언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령의 지시에 따라 필리포스가 달려가 보니 그 내시는 이사야 예언서를 읽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필리포스가 “지금 읽으시는 것을 알아듣습니까?” 하고 묻자 그는 “누가 이끌어 주지 않으면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느냐”며 필리포스에게 올라와 자기 곁에 앉으라고 청합니다. 내시가 읽던 성경 구절은 다음과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양처럼 도살장으로 끌려갔다.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린 양처럼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굴욕 속에 권리를 박탈당하였다. 그의 생명이 이 세상에서 제거되어 버렸으니 누가 그의 후손을 이야기하랴?”(8,30-33) 이사야서 53장 7-8절을 인용한 이 성경 구절은 예수님의 죽음을 가리키는 말씀이었습니다. 하지만 내시로서는 이 말씀이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필리포스에게 이 말씀이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인지 알려 달라고 청합니다.(8,34) “필리포스는 입을 열어 이 성경 말씀에서 시작해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그에게 전하였다”고 사도행전 저자는 기록합니다.(8,35) 이 대목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고 한 루카 복음 24장 27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엠마오의 두 제자에게 설명하신 것을 이제 필리포스가 에티오피아의 고관 내시에게 그대로 따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엠마오의 두 제자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이 불타올랐듯이(루카 24,32), 내시가 필리포스의 설명을 들었을 때도 똑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물이 있는 곳에 다다르자 내시는 필리포스에게 말합니다.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 두 사람은 물로 내려갔고, 필리포스는 내시에게 세례를 줍니다.(8,36-38)그런데 성경 본문에는 8장 37절이 빠져 있습니다. 각주에 보면 37절에 “‘마음을 다하여 믿으시면 받을 수 있습니다” 하고 필리포스가 대답하자 “‘나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하고 그가 말하였다”라는 부분이 특히 2세기 이후에 서방에서 손으로 베껴 쓴 사본들에 들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는 세례 예식 때에 사용하는 아주 오래된 전례문이라고 학자들은 해석합니다. 내시가 필리포스에게 세례를 받고 두 사람이 물에서 올라오자 “주님의 성령께서 필리포스를 잡아채듯 데려가셨다”(8,39ㄱ)고 사도행전 저자는 전합니다. 필리포스가 내시에게서 갑자기 사라졌음을 의미하는 이 표현은 엠마오의 두 제자가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는 루카복음의 구절(루카 24,31)을 연상하게 합니다. 이 표현은 또한 필리포스가 내시에게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설명하고 세례를 준 것이 모두 성령께서 하신 일임을 알리고 있습니다. 내시는 “그를 더 이상 보지 못하였지만 기뻐하며 제 갈 길을 갔다”(8,39ㄴ)고 사도행전 저자는 전합니다. 사마리아의 고을이 필리포스의 말을 듣고 또 그가 일으키는 표징을 보고 구원이 기쁨에 넘쳤듯이, 내시는 필리포스에게서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전해 듣고 세례를 받아 구원의 기쁨으로 제 길을 갑니다. 사도행전의 이 이야기는 필리포스가 “아스돗에 나타나 카이사리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고을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는(8,40) 서술로 마무리됩니다. 아스돗은 가자 북쪽에 있는 해안 도시이고, 카이사리아는 그보다 더 북쪽에 있는 역시 해안 도시로, 필리포스의 집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일곱 봉사자의 한 사람으로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한 필리포스는 카이사리아에 집이 있고 네 딸을 둔 가장이기도 합니다.(사도 21,8-9)생각해봅시다필리포스와 에티오피아 내시 이야기는 두 가지 관점에서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줍니다. 우선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준 필리포스는 성령께 열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었고 에티오피아의 고관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줄 수 있었습니다. 그는 또한 성령께 열려 있었기에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팔레스티나의 해안 지방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복음 선포자는 성령께 열려 있어야 합니다. 에티오피아의 고관 내시는 하느님을 경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에티오피아에서 온 유다인인지 아니면 이방인으로서 유다교로 개종한 사람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또 그것이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경배하고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가 필리포스에게 복음을 전해 듣고 세례를 받아 구원의 기쁨을 안고 제 갈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을 경배하고 하느님의 뜻을 추구하려는 마음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올바른 마음으로 진리를 찾고 선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하느님께서 가까이 계심을 에티오피아 고관 내시는 우리에게 일깨우고 있습니다 평화신문2019.07.02
![[사도직현장에서] 오순절의 기적](//cpbc.co.kr/CMS/newspaper/2019/10/rc/764516_1.0_titleImage_1.jpg)
[사도직현장에서] 오순절의 기적박태순 (마리아, 제주교구 우도공소 선교사) 박태순 선교사 선교사인 내게는 강론을 할 기회가 일주일에 두 번 찾아온다. 매주 수요일, 그리고 기상 악화로 갑자기 도항선 운항이 중단되는 주일이다. 공소 예절 시간에 강론을 한다. 강론은 우도 신자들에게 거의 유일한 영혼의 양식이기 때문에 항상 자비의 하느님께 의탁의 기도를 드린 후 원고를 쓰고 교정을 거듭하며 철저하게 준비한다. 공소 예절을 시작하기 직전에도 ‘하느님 자비의 초상화’ 앞에서 오순절의 기적이 일어나는 강론을 할 수 있기를 의탁하는 기도를 드리며, 끝난 후에도 감사의 기도를 잊지 않는다. 성경 15독과 영성 일기 17년, 향심기도 3년과 관상기도 10년이 도움이 되고는 있다. 강론 준비를 하다 보면 처음에는 희미하게 보이던 복음 말씀도 환하게 보이며 성령의 인도 안에서 어느 사이에 강론이 기승전결(起承轉結)에 딱 맞게 완성되어 있으니 참으로 신비스럽다. 그리고 지금까지 61회 강론을 하면서 단 한 번도 보지 않고 막힘없이 술술~~ 자신 있게, 확실하게, 힘 있게, 여유 있게, 기분 좋게 하였다. 끝난 다음에도 충만감과 행복감이 밀물처럼 밀려오고 오순절의 기적이 일어나고 있으니 이 또한 신비스럽지 아니한가?“감동하여 눈물을 흘렸다”는 공소 회장님, “꼭 자신에게 하는 말 같다”며 “강론에 꽂혔다”는 시몬 형제님, “신자들에게 길을 밝혀주는 강론”이라는 요셉 형제님, “좋은 강론 계속 듣게 오래오래 계시라”는 베네딕토 형제님, “영혼을 살찌게 한다”는 가브리엘 형제님, “강론을 직접 듣지 못할 때에는 녹음해 달래서 꼼꼼하게 몇 번을 듣는다”며 “유튜브(YouTube)에도 올리라”는 율리안나 자매님, “강론을 들었는데도 녹음을 해서 또 몇 번 더 듣는다”는 필립보 형제님, “자신에게 한 말 같아 밤새 잠을 못 잤다”는 골롬바 할머니….이러한 오순절의 기적은 기도하며 의탁하는 한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리하여 우도 신자들의 갈 길을 환하게 밝혀주는 등불이 되고, 메마른 영혼을 촉촉이 적셔주는 단비가 되기를 소망한다. 박태순(마리아, 제주교구 우도공소 선교사) 평화신문2019.10.15

추상적 개념·종교적 경계 넘어 체험의 영역으로[토마스 머튼의 영성 배우기] 36. 관상에 관한 머튼의 공헌과 평가<2> 그림=하삼두 스테파노 지난 호에서 우리는 전통적 관상을 배운 토마스 머튼이 서서히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살펴보았다. 이제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머튼의 저서들, 가령, 「내적 체험」, 「새 명상의 씨」, 「수도승적 기도의 사조」, 「활동의 세상 안에서 관상」 등의 저서를 통해 어떻게 그가 자신의 전통을 ‘종합’하고 다른 종교적 전통, 특히 동양의 관상 전통들의 영향 아래에서 우리 시대의 언어로 관상을 ‘현대화’하게 되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추상적 하느님 넘어 사랑의 친밀한 포옹으로먼저, 「내적 체험 : 관상에 관한 기록」(1959)이라는 저서는 대부분 1958년 ‘루이빌 영적 체험’ 후 1959년에 기록되었다. (실제로 이 책은 1968년 「내적 체험」이 출판되었지만, 1959년에 기록된 텍스트에 몇몇 부분을 수정하거나 첨가했다). 머튼 자신의 관상 체험이 관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머튼은 관상이라는 주제에 대해, 초기 전통적인 가톨릭 저술들에 따르는 관점으로 표현했던 관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이 책에서 수정하고 있다. 이 책이 기록되는 동안 1959년 7월 12일, 머튼은 자신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이번 주에 나는 「관상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썼다…. 이전의 나의 지나치게 단순화된 모든 생각이 얼마나 빈약했던가….” 그는 또한 “많은 선(禪) 불자들이 나의 장황하고 어떤 면에서는 지나치게 공허한 책이었던 「진리를 향한 상승」을 읽었다”고 후회하고 있다.그는 「관상이란 무엇인가?」 는 관상적 삶에 대해 개발되지 않고 미성숙한 전망에서 기록되었고, 「진리를 향한 상승」 역시 참된 관상은 말들과 개념들을 초월한다는 사실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기 때문에 한계점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머튼 학자 윌리엄 샤논은 1959년 텍스트는 초기 머튼과 후기 머튼 사이의 ‘다리’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또한, 이 책 제목에 붙은 ‘체험’이라는 단어는 관상에 대한 신학적인 접근에서 체험적인 접근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내적 체험에서 그는 논리와 이성을 두드러지게 강조하는 조직신학적 접근으로 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그는 관상가는 추상적인 하느님을 넘어, 사랑의 친밀한 포옹으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하느님의 체험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앞선 두 책의 접근 방식과는 달리, 그는 관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있다. “관상 체험은 어떤 단계적인 과정을 통해 도달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이 ‘보는 것’ 혹은 ‘보이지 않는’ 어떤 것입니다. 그것은 혜성처럼 갑자기 당신에게 나타나 그곳에 있습니다.” 동양 종교에서도 관상적 체험의 보편성 발견토마스 머튼은 획득된 관상과 주입된 관상 사이에 전통적인 구분을 피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러한 나눔의 타당성은 신학자들이 뜨겁게 논쟁해 왔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는 관상을 ‘본성적 관상과 신학 혹은 하느님에 대한 관상으로 나누는 희랍 교부들의 구분’에 기초해 묘사하고 있다. 게다가, 그는 하느님 사랑을 향한 숨겨진 증인으로 세속에서 살아가는 ‘활동적 관상가들’을 존중하고 있다.그는 이 책에서 “‘이 세상에서’ 관상적 삶의 가장 중요한 개발은 남녀의 작은 그룹들의 성장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현존하는 곳에 그리스도께서도 현존합니다… 물론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엄격한 관상적인 관점입니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내적 체험은 교회의 교부들, 성경, 라인강 지방과 스페인 지역의 신비주의자들, 현대 심리학과 실존주의 철학에 기초한 전통적인 관상의 개념들에 대한 머튼의 깊은 이해를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이 책에서 처음으로 머튼은 ‘동양 종교에 관한 생각’을 구축하고 있다. 선(禪) 불교와 도교와 같은 비그리스도교 전통에 관한 그의 발견과 경험 사이의 연결점을 찾고 있다. 그는 동양의 관상적 전통들이 서구의 관상적 전통에 상당 부분 기여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동양 종교의 지식과 진가 안에서 우리가 성장해 나갈 때,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관상의 깊이와 풍부함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내적 체험」이라는 저서를 통해 관상에 대한 그의 견해는 종교적 경계를 넘어, 내면의 자아에 집중하는 것으로부터, 내면의 영적 체험을 통하여 우주적 실재에로 깨어나는 것으로 확장되었다. 게다가 관상적 체험의 보편성을 발견함으로써, 초기의 관상에 대한 로맨틱한 환상이 사라지고, 더 경험적이고 부드러우며 다양하고 풍부해진 모습을 이 책에서 볼 수 있다. cpbc2020.03.11
![[전주교구 사목교서] “믿음은 들음에서 옵니다”(로마 10,17) - 교구 설정 100주년을 향한 새로운 복음화-](//cpbc.co.kr/CMS/newspaper/2018/12/rc/741889_1.0_titleImage_1.jpg)
[전주교구 사목교서] “믿음은 들음에서 옵니다”(로마 10,17) - 교구 설정 100주년을 향한 새로운 복음화-김선태 주교(전주교구장) 지난해 ‘교구 설정 100주년을 향한 새로운 복음화’를 교구의 중장기 목표로 제시했습니다. 이를 위해 지난해를 ‘신앙 쇄신의 해’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실천 사항으로 ‘성경 읽기, 교회의 가르침 배우기, 성찬례 참여, 기도, 사랑의 실천’을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신앙 쇄신은 단기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인내와 계속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지난해 제안했던 다섯 가지를 앞으로 한 해에 한 가지씩 집중적으로 강조하려고 합니다. 2019년에는 첫 번째 요소인 성경 말씀에 역점을 두고 신앙생활을 합시다. 성경은 곧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 성경 안에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씀하시고 궁극적으로는 당신의 ‘유일한 말씀’을 하신다면, 우리는 그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이제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볼 차례입니다.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기 위해 특히 두 가지 점에 주의해야 합니다. 그 하나는 성경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읽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은 ‘죽은 문자’가 될 위험이 있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성경을 “전체 교회의 살아 있는 전통”(계시헌장 12항)에 비추어서 읽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벗어난 개인주의적 성경 해석은 쉽게 오류에 떨어집니다. 따라서 이런 위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성경을 반드시 교회라는 ‘우리’ 안에서 함께 읽어야 합니다.성경 말씀으로 우리의 신앙을 쇄신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사항으로 다음 몇 가지를 제안합니다. 첫째, 전례 거행이 없을 때에도 하느님의 말씀을 담고 있는 책이 성당 안에서 눈에 보이게 공경을 받을 수 있도록 성경을 모셔둡시다. 둘째, 개인적인 차원에서 매일 성경 읽기를 생활화합시다. 셋째, 본당 차원에서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를 시행합시다. 넷째, 본당 차원에서 어르신들을 위한 성경공부를 지속적으로 시행합시다. 다섯째, 지구 차원에서 성경 연수나 특강을 시행합시다. 여섯째, 지구 차원이나 교구 차원에서 ‘성서주간’에 성경 축제를 마련합시다. 일곱째, 교구 차원에서 말씀 피정을 마련합시다. 마지막으로 전주가톨릭신학원이 전주와 군산에서 운영하는 성서연수과에 등록하여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배웁시다.성경은 성전과 함께 “신앙의 최고 규범”(계시헌장 21항)입니다. 앞으로 계속 성모님처럼 주님의 말씀을 귀담아듣고 마음에 간직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을 충만하게 누릴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을 불필요하다거나 낯설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그 기쁨을 나누어 교회와 세상을 새롭게 복음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평화신문2018.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