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7)토마스 콜레의 ‘로마 제국의 멸망’](//cpbc.co.kr/CMS/newspaper/2020/06/rc/782017_1.0_titleImage_1.jpg)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7)토마스 콜레의 ‘로마 제국의 멸망’몰락의 불길로 뒤덮인 로마, 사람들 비명과 절규가 들리는 듯 토마스 콜레, ‘로마 제국의 멸망’. 캔버스에 유화(100×161㎝), 1836년, New York Gallery of Fine Arts 소장. 서로마 제국의 멸망395년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는 약해진 황제의 통치력으로는 더 이상 로마 제국을 혼자서 통치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제국을 동서로 나누어 통치하도록 유언했다. 서로마 제국은 이때 만들어졌다.서로마 제국의 영토는 서쪽으로는 이베리아반도와 아프리카 북부, 북쪽으로는 갈리아와 브리타니아, 게르마니아, 그리고 본토인 로마를 포함한 이탈리아 반도였으나, 이민족의 침입으로 게르마니아 방위선이 무너져 국경지대는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서로마 제국은 호노리우스 치세에 이르러 알라리크의 로마 약탈과 같은 크고 작은 야만족의 계속되는 공격을 받았고, 훈족의 아틸라 역시 그중 하나였다. 내부적으로는 군인 황제들의 권력 다툼 속에서 훌륭한 장수들이 많이 암살을 당하는 바람에 야만족들을 막아줄 장수가 부족하게 되고, 이에 이탈하는 병사들이 많아져 결국 이민족들을 용병으로 쓰기 시작했다. 특히 게르만 용병들에게는 이민족의 군대라는 지위보다는 제국의 정규군으로 편입시키기까지 했다. 5~9세기에 걸쳐 지중해를 향한 이민족들의 방대한 이동은 이런 상황 속에서 시작되었다. 5세기에 접어들어 아시아 지역에서 발흥한 흉노족은 몽골 지역에서부터 서진하여 로마 제국의 변방까지 밀고 들어 왔다. 날렵한 기마병들을 처음 본 제국의 용병들은 기마병들에 밀려 제국의 영내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시아의 이민족들이 서진한 이유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의견은 다양하다. 정치적인 이유를 들기도 하고, 최근의 헌팅턴 같은 교수는 기후 변화를 들기도 했다. 아무튼, 그로 인해 제국의 변방에 있던 게르만, 슬라브, 반달족, 동고트, 서고트 등의 여러 민족은 동-서 로마 제국의 방대한 영토에서 무수한 전쟁을 일으키며 어떤 민족은 로마까지 밀고 들어오기도 했다. 476년 게르만족의 용병대장 오도아케르는 결국 서로마 제국을 장악하고,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를 강제로 폐위시키기에 이르렀다. 서로마 제국은 이렇게 멸망하였다. 서로마 멸망의 원인서로마 제국 멸망 당시 조시무스는 “로마 제국이 망한 건 전통적으로 섬기던 신들을 버리고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에 당시 교회의 교부들은 즉각 반발했고, 설득력 있는 글과 설교로 맞섰다. 로마 제국 말기의 정치적인 무능과 사회-문화에 걸친 방대한 도덕적 해이를 그리스도교의 탓으로 돌리는 데 가만히 있지 않은 것이다. 476년 오도아케르에 의한 로마 황제의 폐위가 있기 오래전부터 로마는 거의 1세기가 넘게 이민족들의 침입을 받았고, 쇠망의 길은 기정사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410년 게르만족의 침입으로 로마가 함락되고 약탈당하는 것을 본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신국론(De civitate Dei)」을 써서, 제국의 쇠퇴 원인이 그리스도교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리스도교를 수용하기 이전, 이교 시대에도 멸망을 예견하는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갈리아족과 다키아족의 침입과 같은 외부적인 요인이 있었고, 네로 황제의 로마 방화와 같은 내부적인 요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공화정 시대 말기에도 호라티우스는 “로마인들이 날이 갈수록 사악해져 간다”고 한탄했고, 네로 황제 시절, 세네카는 “이제 로마 제국은 병들어 남은 것은 사멸밖에 없다”고 했음을 상기시켰다. 이미 오래전부터, 공화정이 무너지면서부터, 그러니까 제국이 설립되면서부터 멸망은 예견된 일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면서 오히려 그리스도교를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비도덕적인 생활을 이어가는 이교도들 때문에 제국이 망했다고 했다. 5세기 초, 그리스도인 작가 살비아누스 역시 「신정론(De gubernatione Dei)」에서 로마 제국 쇠망의 원인은 죄악과 부정부패가 만연한 로마 사회에 대한 하늘의 심판이라고 했다. 연작 ‘제국의 과정’소개하는 그림은 ‘제국의 과정’이라는 제목의 5개 연작 중 하나로, ‘로마 제국의 멸망’이라는 작품이다.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한 토마스 콜레(Thomas Cole, 1801~1848)의 1833~1836년 작이다. 그는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꽃을 피운 예술 운동 ‘허드슨 강 학파’의 설립자 겸 대표 주자 중 한 사람이다. 허드슨 강 학파는 콜레의 작품들에서 보듯이, 주제의 폭이 방대하지만, 낭만주의와 자연주의를 고수하며 사실적,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특징이 있다. 우화적이고 상징적인 ‘건축가의 꿈’, ‘인생 항해’‘,성경과 종교에 관한 ‘에덴동산’, ‘십자가와 세계에 관한 연구 시리즈’, 역사적인 내용을 담은 ‘시작’, ‘귀환’, ‘과거’, ‘제국의 과정 시리즈’와 같은 것이 그 예다. 1829년 콜레는 이탈리아를 여행한 바 있다. 이후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로마를 중심 주제로 삼고 있다. 대표작인 ‘건축가의 꿈’도 그렇고, 소개하는 ‘제국의 과정’도 그렇다. 이 그림은 ‘제국의 과정’이라는 큰 주제 안에 ‘야만국가’, ‘목가국가 혹은 목자국가’, ‘제국의 완성’, ‘제국의 멸망’, ‘황폐’라는 5개 연작 중 하나다. 네 번째 해당하는 ‘제국의 멸망’은 앞에 있는 세 번째 ‘제국의 완성’과 뒤에 있는 다섯 번째 ‘황폐’와 같은 연장선에 있어 하나만 따로 떼어 언급하기가 곤란해 최대한 간략하게 말하기로 한다. 우선 세 작품의 원근법과 시선이 거의 동일하다. 강을 중심에 놓고 제국이 세워지고, 멸망하고, 황폐화된 과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배경 분위기도 ‘제국의 완성’에는 해가 뜨고, ‘멸망’에는 폭풍이 몰려오고, ‘황폐’에는 노을이 지고 있다. 똑같은 풍경을 각기 다른 시대로 구분하여 표현하고 있다. 강변에는 로마로 추정되는 도시가 있고, 그것이 성장하고 쇠퇴한다는 내용이다. 감정은 강물의 움직임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오른쪽 배경에 있는 절벽과 꼭대기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큰 바위가 세 작품이 같은 도시를 이야기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같은 도시의 흥망성쇠를 말해주고 있다. 작품 속으로이제 작품 ‘파괴(Destruction)’, 곧 ‘로마 제국의 멸망’ 속으로 들어가 보자. 세 번째, 다섯 번째 그림과 비교하면 극적이고 혼란스런 엄청난 행위들이 집약되어 있다. 벌어지는 행위는 도시를 약탈하고 파괴한다. 강은 정면에 있고 물의 움직임은 거세다. 적들이 배를 타고 이동하며 도시의 방어선을 뚫고 들어와 도시를 불태우고, 시민들을 폭행하고 죽인다. 강에는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 던져지고, 승리의 행렬을 잇던 다리는 끊어졌다. 사람들은 다리의 난간에 매달려 있다. 다리 위, 건물 위, 회랑의 기둥 위, 어느 곳 할 것 없이 인파로 가득하고, 모두 아우성이다. 사람들의 절규와 탄식이 캔버스 밖으로 터져 나올 것 같다. 기둥은 깨지고, 오른쪽의 큰 건물 뒤에서 폭발할 듯 터져 나오는 불길은 곧 도시를 집어삼킬 것 같다. 바로 앞 오른쪽에는 그간 숭배해 오던 영웅의 동상이 몸통만 보르게제 검투사 같은 자세로 서 있다. 머리는 바닥으로 떨어져 깨졌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향해 앞으로 전진하려는 듯, 우람한 체구가 처량하기만 하다. 그림은 455년 반달족에 의한 로마 약탈을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콜레는 기번과 달리, 로마 제국의 원인을 수많은 내부적인 원인에서가 아니라, 단 한 가지 외부적인 원인, 이민족의 침입에서 찾았던 것이다. 토마스 콜레, ‘로마 제국의 멸망’. 캔버스에 유화(100×161cm), 1836년, New York Gallery of Fine Arts 소장.김혜경(세레나,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이탈리아 피렌체 거주) cpbc2020.06.24

성경 속 인물 심리에서 지혜의 삶을 배운다영성 심리가 홍성남 신부 성경 인물과 함축적 메시지 심리학적 관점으로 재해석 나로 사는 걸 깜박했어요 나로 사는 걸 깜박했어요 홍성남 신부 지음 / 가톨릭출판사 / 1만 2000원만약 예수님이 자신의 고통에만 얽매여 하느님께 불평만 하는 인물이었다면? 마리아가 하느님 아들을 낳게 될 것이란 천사의 말에 두려움으로 고민하다 거절했다면?그랬다면 하느님의 구원사업이 빛을 못 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과 마리아는 절대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어떤 마음을 지닌 이들이었기에 그것이 가능했던 것일까?성경과 심리학이 만났다. 영성 심리가이자 사제로서 수많은 이들의 응어리진 마음을 신앙과 영성의 힘으로 치유해오고 있는 홍성남(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 소장, 서울대교구) 신부가 신간 「나로 사는 걸 깜박했어요」를 통해 성경 인물과 함축된 메시지를 심리학적으로 분석했다. 루카복음에 나오는 인물의 심리, 얽히고설킨 상황들을 현대 심리학 관점에서 재해석해 올바른 신앙관을 심어주는 책이다. 2일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에서 만난 홍 신부는 “성경은 하나지만, 읽는 사람들은 각기 다른 성장 환경과 심리적 상황을 지녔다. 무의식중에 성경을 주관적으로, 혹은 병적으로 왜곡해 해석하는 경우를 바로 일러주려고 책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즈카르야는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잉태할 것이란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장황한 이유로 이의를 제기했던 즈카르야에겐 겸손보다 교만이 컸다. 즈카르야의 모습을 통해 홍 신부는 “모르는 것에 직면했을 때 아는 척하기보다 자신이 무지함을 겸허히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겸손의 은총을 되새겨준다.흔히 과거의 상처에 얽매여 현실을 개탄할 때가 많다. 그러나 예수님에겐 그런 ‘피해 증후군’이 없었다. ‘과거 집착’은 자신이 행할 하느님 일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음을 잘 알았으며, 말씀을 전하는 데 늘 지혜롭고 당당했다.당차게 하느님 뜻을 받아들인 마리아는 온갖 고통 중에도 하느님 뜻에 따르며 기쁜 마음으로 아들 예수님을 도왔다. 요한 세례자는 자신의 권력과 명예욕보다 믿음을 중시하며 겸손하고 창조적인 성격의 ‘성취형 인간’이었다. 그랬기에 뒤에 오실 메시아를 기쁘게 전했다. 이들은 모두 ‘진짜 나’로 살아갈 줄 아는 ‘건강한’ 이들이었다.홍 신부의 해석은 우리에게 마음 돌보는 법을 제시해 준다.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고 인정하는 방법, 내적 갈등 중에 생각하기를 잠시 멈추는 법, 건강한 죄책감으로 창조적인 삶을 사는 법, ‘나만의 광야’에서 기도하는 법 등 다양한 자가 심리치유법이 연이어 등장한다.홍 신부가 말하는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균형된 삶을 사는 이다. “우리 삶은 영적ㆍ정신적ㆍ육체적 영역이 적절한 균형을 이뤄야 합니다. 영적 영역만 추구하면 허황된 망상에 젖어들 수 있고, 너무 배제하면 유물론에 빠지기 쉽습니다. 육체적 삶만 추구하면 원초적인 생활이 돼버리죠. 늘 말씀과 기도 안에 균형을 이뤄야 합니다.”만약 하느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신다면? 하느님께 화를 내고, 원망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어긋난 듯 보이지만, 심리학에서는 “그럴 땐 맘껏 화풀이하라”고 가르친다. 쌓인 불만이 해소돼야 비로소 마음의 문이 열리는 인간의 보편적 기질을 반영한 것이다.홍 신부는 “분노가 꽉 차 있으면 하느님께서 내 안에 들어오고 싶어도 못 들어오신다”며 “내 안에 있는 어둠마저 나의 일부로 여기고 돌봐야 건강한 생활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답답하고 힘들 땐 기도 중에 주님께 원망도, 할 말도 마음껏 해야 한다”며 “자기 기도를 끝냈다고 곧장 일어나지 말고 성령이 응답해주실 시간을 줘야 한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성체조배 때 답답한 마음을 호소하고 3시간 동안 주님 응답을 기다리셨다”고 전했다.홍 신부는 치유자로서 교회 역할도 피력했다. “심리 치유적 관점에서 현재 남북 정상회담이 불러온 평화의 바람이야말로 ‘한반도 트라우마’를 치유할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다.“우리 국민은 역사적으로 거대한 심리적 트라우마 속에 살아왔습니다. 6ㆍ25전쟁의 고통, 군부독재로 인한 이념 갈등, 1997년 IMF 트라우마 등이 그것이죠. 남북 평화협정은 이 모든 이념 갈등과 경제적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평화의 마음을 안착시킬 기회입니다. 교회가 남북한 국민들의 마음을 돌보고 대화하는 치유자 역할을 하면 좋겠습니다. 정책적 노력은 정부에 맡기고, 교회가 한반도 아픔을 위해 기도하고 국민을 치유하는 장을 만들어 간다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고착된 ‘한반도 트라우마’를 해소할 수 있을 겁니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백영민2018.05.08
![[영화의 향기 with CaFF] (44)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cpbc.co.kr/CMS/newspaper/2019/12/rc/768169_1.1_titleImage_1.jpg)
[영화의 향기 with CaFF] (44)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엄마와 딸 사이 숨겨진 진실과 오해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포스터.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La Vrit, The Truth, 2019)은 가족, 그중에서도 엄마와 딸에게 초점을 맞춘 이야기다. 프랑스에서 영화배우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엄마 파비안느와 미국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는 딸 뤼미르가 그들이다.회고록 출간을 앞두고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파비안느의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그리고 그녀가 인터뷰하는 동안, 그녀의 딸 뤼미르가 남편과 딸을 데리고 파비안느를 찾아온다. 회고록 출간을 축하하기 위해서다.뤼미르는 엄마의 회고록에 줄을 쳐가면서 열심히 읽는다. 그리고 엄마에게 따진다. 여기에 진실은 없다고. 뤼미르가 어릴 때, 엄마는 학교에 데리러 온 적이 없는데, 파비안느는 딸을 기다리는 것이 기쁨이었다고 회고한 것이다. 딸에게 엄마의 애정이 필요할 때, 항상 옆에 있어주었던 것은 죽은 사라였다. 뤼미르는 회고록에 사라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한다. 하지만 파비안느는 뤼미르에게 “기억을 믿지 말라”고 말할 뿐이다.기억은 늘 상대적이다. 나에게 중요한 것이 상대에게는 하찮은 것일 수도 있다. 둘의 기억은 다르다. 과연 누구의 기억이 맞는 것일까? 우리의 기억은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진실과 거짓의 간극은 얼마나 될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있는 것일까?예기치 않은 상황이 생기고, 뤼미르는 파비안느의 매니저 역할을 하게 된다. 두 사람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 다른 기억의 파편들 속에서 진실에 가까워진다.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액자 구조를 그 진실에 다가가는 장치로 사용하고 있다. 파비안느는 현재 출연 중인 SF 영화 속에서 병 때문에 우주에 나가 살고 있는, 그래서 늙지 않는 엄마를 둔 딸의 역할을 한다. 늙어가는 딸로서 여전히 젊은 엄마를 바라보는 역할이다. 그 역할은, 현실에서 여배우인 파비안느를 엄마로 둔 뤼미르의 역할이기도 하다.엄마와 딸은 영화 촬영이 끝날 때까지 함께 지내면서 몰랐던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조금씩 서로를 받아들이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모습으로 바뀌어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말이다.이 영화에는 미움과 갈등이 있지만 따뜻한 시선이 있다. 중요한 것은 언어가 아닌 마음이고, 서로를 어루만지는 일이라는 것을 영화는 말하는 듯하다.육체의 옷을 입고 살아가는 우리는 보이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게 될 때가 많다. 하지만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통해 볼 때 더 많은 것을 보게 되는 게 아닐는지. 그래서 이 성경 구절이 떠오르는 건지도 모르겠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가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2코린 4,18) 12월 5일 개봉 cpbc2019.12.04

성체성사 안에서 느끼는 주님의 무한한 사랑과 생명[미사의 모든 것] (3)미사의 은총 나처음: 21세기 인공지능 시대에 과학 기술의 혁명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는 인간에게 더는 종교가 필요할까요. 이미 인간이 우주의 주인이 아닌가요.라파엘 신부: 과연 인간이 우주의 주인일까? 역설적으로 인간이 과학 기술에 지배당하고 있는 건 아니니. 과학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제어 영역을 넘어섰을 뿐 아니라 인류 문명을 파괴하고 지구 생태계의 기반 자체를 송두리째 무너트릴 수 있는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는데도. 정말 인간이 우주의 주인이고 종교는 무익한 것일까? 언해는 어떻게 생각하니.조언해: 저는 인간이 존엄한 존재로 인정받고 더욱 자유롭고 행복해지며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찾으려면 하느님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간이 하느님을 찾는 종교적인 존재일 때 비로소 세상의 질서가 유지되고 평화가 실현될 것이라고 봐요.라파엘 신부: 좋은 대답이구나. 처음이의 질문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즉위 미사 강론 말씀이 떠오르는구나. 교황님께서는 우리 삶에서 ‘그리스도를 보호하자’고 당부하셨지. 그렇게 할 때에 우리는 다른 이들과 피조물들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교황님께서는 ‘보호자’의 소명은 단지 그리스도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고 모든 인간을 아우르는 인간적인 차원도 지니고 있다고 강조하셨지. 하느님의 창조물 하나하나와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을 존중하라는 말씀이지.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인간이 우주의 주인이 아니라 하느님 선물의 보호자가 되어달라고 당부하신 거야. 나처음: 그럼 하느님의 선물 중 가장 큰 선물은 무엇인가요?조언해: 바로 ‘예수님’이시지. 넌 신부님에게 어떤 답을 듣고 싶니?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시겠지.나처음: 오우, 있어빌리티!(능력있어 보임) 그런데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있나요?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이 대세인데.조언해: 헐! 마상.(마음의 상처 입음) 신부님께 너무 들이대는 거 아냐.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지. 구원받는 거지. 넌, 나랑 성당에 그토록 다녀도 아직 그런 말을 하니. 라파엘 신부: 예수님을 믿으면 많은 복을 받는단다. 신앙은 하느님의 선물이야. 이사야 예언자는 “너희는 믿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하리라”(이사 7,9)고 말씀하셨지. 아하즈 임금이 원수의 세력에 겁을 먹고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고자 아시리아 대제국과 동맹을 맺으려 하자 이사야 예언자가 임금에게 흔들리지 않는 참된 바위이신 이스라엘의 하느님만을 신뢰하라며 이 말을 하셨지. 인간은 본성적으로 하느님을 찾는 종교적인 존재란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어,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도록 부름 받아, 하느님을 찾아 나서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야. 인간은 무엇보다 타고난 이성으로 우리의 창조주이시고 주님이시며 유일하고 참되신 하느님을 그분의 업적을 통해 확실하게 알 수 있단다. 나처음: 그럼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시대에서 예수님을 어떻게 만날 수 있나요.라파엘 신부: 참 좋은 질문이구나. 바로 성경과 성사를 통해 만날 수 있단다. 특히 미사를 통해 우리는 주님이신 예수님을 확실히 만나고 그분과 하나가 되지. 처음이가 예수님을 믿으면 어떤 이득이 있느냐고 물었으니 미사의 은총에 관해 이야기하마.미사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체성사를 통해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심으로써 모든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선물이야. 예수님께서는 성체성사 안에서 당신 몸과 피를 우리에게 주시기까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신단다. 그래서 미사의 가장 큰 은총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당신 생명을 내어주시는 무한한 사랑이야. 즉 우리는 미사 중 영성체를 통해 하느님과 하나 되는 생명의 은총을 받는 것이란다. 이보다 더 큰 은혜와 영광이 어디 있겠니. 그래서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미사를 ‘사랑의 성사’라고 표현하셨지.조언해: 신부님! ‘생명의 은총’도 주셔요.라파엘 신부: 그래. 맞아. 미사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단다. 미사를 통해 하느님 생명 전체가 우리를 만나러 오며 우리는 그 성찬의 선물을 통해 하느님의 생명에 성사적으로 동참하지. 이 생명의 은총은 우리를 ‘영원한 삶’으로 이끈단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요한 6,51)면서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요한 6,57)고 말씀하셨지. 이 영원한 삶은 미사의 선물로 우리 안에 불러일으킨 변화를 통해 지금 우리 안에 이미 시작되었단다. 즉 예수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심으로써 우리는 언제나 더 성숙하고 의식적으로 하느님의 생명에 동참하게 된다는 것이야. 미사의 또 다른 은총은 우리를 죄에서 벗어나게 해준단다. 미사에는 우리에게 참회의 길을 추구하라는 촉구가 포함돼 있단다. 합당하게 성체성사를 통해 예수님과 또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일치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 안에 있어야 해. 성체는 우리를 죄에서 떼어 놓는단다. 우리가 받아 모신 그리스도의 몸은 “우리를 위해 내어 주신” 것이며, 우리가 마시는 주님의 피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신” 것이야. 그러므로 미사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결합시키는 동시에 우리가 전에 지은 죄를 정화하고 앞으로 죄를 짓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준단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우리는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음을 선포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은 곧 죄의 용서를 전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피가 흐를 때마다 그것은 죄의 용서를 위하여 흐르는 것이니, 나는 그리스도께서 늘 내 죄를 용서해 주시도록 언제나 그분을 받아 모셔야 합니다. 늘 죄를 짓는 나는 이 약을 언제나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셨단다.(「성사론」 4,28) 이처럼 미사는 죄가 결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회개를 촉구하게 한단다.조언해: 미사는 ‘일치의 성사’라는 말이 있잖아요.라파엘 신부: 맞아. 하느님께서는 미사를 통해 우리에게 교회를 이루게 하는 은총을 주신단다. 주님께서는 미사를 통해 모든 신자를 결합시켜 한 몸, 곧 교회를 이루시지. 성체성사는 세례 때 이미 교회와 이룬 결합을 새롭게 하고, 굳건하게 하며, 깊게 해요.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빵은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과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1코린 10,16-17)라고 말씀하셨지. 미사의 은총은 또 우리를 가난한 이들을 위해 투신하게 한단다. 우리를 위해 내어 주신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참되게 받기 위해서는 주님의 형제들인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알아보아야 해.(마태 25,40 참조)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영원한 생명의 빵이신 주 예수님께서는 아직도 무수히 많은 사람이 겪고 있는 극심한 빈곤의 상황을 유념하도록 우리를 재촉하신다”면서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흔히 빈부 격차를 더 벌어지게 하는 세계화 과정 앞에서 수동적으로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고 호소하셨지. 성체성사의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처음부터 서로 재화를 공유하고(사도 4,32), 가난한 이들을 돕는데(로마 15,26) 희생을 아끼지 않았지. 그래서 미사를 ‘자비의 성사’라고 부르기도 해요. 미사의 은총은 세상을 거룩하게 하고 피조물을 보호하게 한단다. 우리는 미사를 통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릴 때 세상의 성화를 열망하고 이 목적을 위해 열심히 일하면서 모든 피조물의 이름으로 감사를 드리는거야. 예물을 준비하는 동안 사제는 하느님께 빵과 포도주 위해 축복과 청원 기도를 바치며 “땅을 일구어 얻은 이 빵”, “포도를 가꾸어 얻은 이 술”이라며 감사를 표하지. 이 기도는 인간의 모든 노고와 활동을 하느님께 바칠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이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도록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임을 깨닫게 해 준단다. 이처럼 미사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고 하느님과 일치하며 죄에서 벗어나게 하여 교회를 이루고 가난한 사람과 연대하며 세상의 보호자가 되는 은총을 주신단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0.07.22

“건강하게 커라” 반려 동물 축복식 증가 추세서울 수색본당 동물 축복식… 올해로 세 번째, 20여 명 참석 신자들이 강아지와 고양이를 품에 안고 반려동물 축복식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5일 서울대교구 수색성당(주임 심흥보 신부)에 개와 고양이를 안거나 동물 케이지를 든 이들이 연이어 들어왔다. 반려 동물 축복식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만남의 방에 모여 앉은 20여 명은 평상시와 다르게 성경이나 성가집이 아닌 「축복예식서」 제21장 동물의 축복 예식을 펴들었다. 동물 축복식은 개회식, 권고, 말씀 전례 독서, 보편지향기도, 축복의 기도, 폐회식 순으로 진행됐다. 축복식을 주례한 수색본당 부주임 이승준 신부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동물들은 하늘과 땅과 바다에 살고 있으며 사람들과 함께 변동을 겪으며 우리 생활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파스카의 어린 양은 파스카의 제물과 이집트 귀양살이에서의 해방을 상기시키고, 고래는 요나를 구해 주고, 까마귀는 엘리아에게 먹을 것 갖다 주고, 짐승들도 인간 속죄 행위에 가담하고, 다른 피조물과 함께 그리스도의 구원에 참여합니다”라고 권고의 말씀을 전했다. 반려 동물들에게 성수를 뿌리고 축복 기도로 예식이 끝나자 참여자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의정부에서 온 손혜윰(루치아)씨는 “16살 된 반려견 순돌이가 건강하길 가족 모두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참여했다”고 했다. 윤인영(엘리사벳)씨는 “축복을 받으니까 반려견 별이가 더 건강하게 잘 자랄 거 같다”고 말했다.수색본당이 반려 동물 축복식을 시작한 것은 2017년으로 올해가 3번째다. 부주임 이승준 신부는 “주임 신부님이 미국에서 유학하실 때 동물 축복식을 보고 한국으로 돌아오신 후 시작한 걸로 알고 있다”며 “신자들이 감사하는 것을 보니 기쁘다”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 교회에서는 해마다 10월 4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에 모든 동물을 축복하는 예식을 거행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1980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동물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됐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가난한 이들의 친구’라 불리는 청빈한 생활로 존경받아온 성인이자 동물과 자연 등 창조주의 생태계 모든 피조물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것으로도 유명하다.최근 한국 교회에서도 동물 축복식을 거행하는 본당들이 점차 늘고 있다. 반려 동물을 키우는 국내 인구가 10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어 동물 축복식에 대한 신자들의 관심도 더 높아질 전망이다. 이상도 기자 raelly1@ 평화신문2019.10.22
![[영화의 향기 with CaFF] (43) 클라우스(Klaus, 2019)](//cpbc.co.kr/CMS/newspaper/2019/11/rc/767563_1.1_titleImage_1.jpg)
[영화의 향기 with CaFF] (43) 클라우스(Klaus, 2019)산타클로스 탄생 다룬 따뜻한 상상 영화 ‘클라우스’ 포스터.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마태 5,24)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되고 있는 애니메이션 ‘클라우스’는 산타클로스 탄생의 전설을 다룬 작품이다. 일반적으로 성 니콜라오 주교에서 산타클로스의 기원을 말하는데 이 애니메이션은 우체부인 주인공 제스퍼가 스미어렌스버그라는 외딴 섬으로 부임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특별한 기원을 그린다.우체부에는 소질도 없고 관심도 없던 제스퍼는 아버지의 명령으로 외딴 섬 우체국장으로 부임하고, 1년 이내에 편지 6000통을 처리하는 미션을 받는다. 어렵게 도착한 그곳에는 제대로 된 우체국도 없고, 마을 사람들은 둘로 나뉘어 싸우기에 여념이 없고, 아이들은 학교에도 다니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우체부를 포기하려는 순간 제스퍼는 장난감을 잘 만드는 특별한 손재주를 가진 클라우스를 만나면서 희망의 불씨를 찾는다.우연히 편지를 쓰면 클라우스의 선물을 받게 된다는 걸 알게 된 아이들은 하나둘씩 우체국을 찾아오고, 여기에 착한 일을 하고 편지를 써야 선물을 받게 된다는 조건을 지키기 위해 착한 일을 스스로 하면서 마을은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한다.선한 변화의 시작은 아주 인간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원래의 부유한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정해진 기간 에 편지를 배달해야 하는 제스퍼와 아이를 간절히 원했지만 부인마저 잃고 쓸쓸하게 살다가 장난감 선물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삶의 희망을 되찾게 된 클라우스.두 사람의 우연한 만남과 행위는 아이들의 마음을 돌려놓고, 원래의 착함을 살아가도록 특별한 동기를 부여하고, 아이들의 변화는 그 부모와 다른 어른들에게까지 퍼져나가 반목과 불신의 자리에 화목함과 평화를 채우게 된다.정치적인 신념과 이념의 늪에 빠져 둘로 나뉜 우리의 현실을 마주하면서 예수님의 삶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분은 누구도 단죄하지 않고, 남자건 여자이건, 이방인이건 유대인이건, 죄인이건 열심한 이건, 아픈 이건 건강한 이건, 모든 이들에게 다가가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시고, 구원의 희망을 전하신다.“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는 성경의 말씀처럼, 우리는 세상이 아닌 하느님께 속한 사람으로서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 마음에 담아 우리의 인간적인 말, 판단과 단죄 대신 그분의 사랑과 자비를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클라우스’에서 아이들의 선한 행동이 어른들의 반목을 치유해 가듯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이 먼저 포용과 화해를 추구하면서 어려운 이웃에 나눔을 실천할 때 긍정적인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 전례력으로 새로운 한 해인 대림 시기를 시작하면서 이번 성탄은 우리 함께 아기 예수님 탄생의 기쁨을 나누는 축제의 자리를 만들어 가기를 희망한다. 11월 8일 개봉 넷플릭스 11월 15일 공개 cpbc2019.11.27

교황 사칭한 유사종교에 속지 마세요‘두 교황’ 영화 보고 토론하기 등 노골적으로 천주교 신자 겨냥 최근 유사종교에 속한 한 단체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미지를 활용해 만든 홍보 전단. 문화ㆍ예술 활동을 가장한 사이비ㆍ이단 종교들의 포교 활동이 더욱 다양하고 교묘해져 신자들의 주의가 요망된다. 최근엔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미지까지 포교 활동에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해마다 연초는 이단 종교들이 자신들의 교세를 알리거나 확장하기 위한 대외 홍보 및 포교활동을 가장 활발히 펼치는 시기다. 새내기 대학생들이 개강을 앞두고 부푼 마음으로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많은 이가 새로운 모임이나 동호회 활동에 참여하며 마음의 변화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이맘때다. 이때를 노려 포교활동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 유사 종교들의 패턴이다.그래서 이 시기엔 함부로 거리 설문 조사에 응하면 안 된다. 개인 상담이나 공연, 세미나와 같은 문화 활동에 참여할 때에도 어느 단체가 주최하는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한국 교회는 인문학 강좌나 힐링 콘서트를 가장한 위장 세미나를 비롯해 위장 상담, 설문 조사, 문화 공연, 동호회 모임, 스마트폰 오픈 채팅 애플리케이션 등을 이용할 때 유사종교의 포교 활동이 아닌지 각별히 주의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유사종교들은 이를 통해 개인정보 수집→친분 쌓기→성경공부로 이어지는 포교활동을 펼친다.그런 가운데 최근 한 비종교기관 단체가 ‘두 교황 영화 보고 교황님과 평화나눔 토론하기 서촌으로 오세요’란 주제 행사를 2월에 개최한다고 홍보하고 있다. 영화 ‘두 교황’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화 메시지를 갖고 토론한다는 내용이다. 일간지에 광고도 하고 있다. 그런데 행사를 주관한 업체가 유사종교 관련 위장 단체로 알려졌다.실제 이 업체는 온라인 신청을 통해 다양한 멘토 상담과 독서 토론, 신앙 상담까지 정체가 불분명한 각종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가톨릭교회 기관이 아닌 이 업체는 ‘교황님과 평화 나눔 토론하기’란 행사를 광고하면서 홍보 문구에 ‘평화를 구하는 기도’를 그대로 가져다 아무렇게나 기도문을 변형해 실어놓는가 하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얼굴 삽화까지 버젓이 내걸었다. 그러면서도 이 행사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내용은 없고, 개인 연락처 기재를 통해 참가 신청을 받고 있다. 어떤 단체든 교황, 평화 같은 주제로 토론을 펼칠 수는 있다. 그런데 홍보 문구에 가톨릭교회와 교황이 전하는 말씀과 관련한 것은 일체 없이, 교황이 언급한 적도 없는 엉뚱한 ‘4+3 근무 7일 경제’, ‘삶터 공유’, ‘종교 해방’과 같은 주제가 나열돼 있다.이는 유사종교들이 펼치는 전형적인 포교 활동 전략 가운데 하나다. 자신들의 정체성은 철저히 숨긴 채 ‘평화’, ‘나눔’, ‘인류애’란 좋은 이슈로 현혹한 뒤 결국 자신들의 종교로 포섭하는 방식이다. 특히 이 행사는 ‘교황’이라는 타이틀을 내걸어 천주교 신자를 겨냥하고 있어 주의가 요청된다. 교회 기관은 기도문을 변형해 행사에 이용하거나, 사전에 개인 정보를 얻어 참가자를 모집하는 경우가 없다. 이에 수원ㆍ전주교구 등 각 교구는 이 행사가 문화 활동으로 가장해 펼치는 유사종교의 선교 전략이기에 참여를 자제해줄 것을 신자들에게 알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행사는 유사종교의 위장단체 포교 활동의 전형적인 수법에 해당한다”며 유사종교들이 펼치는 이 같은 위장 수법과 포교 전략을 잘 식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한국 천주교 유사종교 대책위원회 위원장 이금재 신부는 “유사종교들은 이처럼 문화 행사를 통해 한자리에 모인 사람들과 유대감을 쌓고, 경계심이 사라지면 그 관계를 이용해 자신들의 종교로 포섭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행사에 참여할 때엔 반드시 주최하는 곳이 교회 기관인지, 개인 정보를 묻는지를 잘 식별해 참여하길 바란다”고 경각심을 당부했다. 특별취재팀 평화신문2020.01.15

“부디 지치지 말고 자비로운 사람이 되세요”광주, 김홍언·정영달 신부 금경축 서울대교구 사제단이 6월 28일 사제 성화의 날을 맞아 사제직의 직무와 생활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명동대성당 성모동산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신부들. 서울대교구 사제단 500여 명은 6월 28일 사제 성화의 날을 맞아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사제의 직무와 생활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구요비 주교는 ‘아버지,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17)를 주제로, 이어 김영남(의정부교구) 신부가 신약성경의 증언을 바탕으로 ‘불확실 시대에 사제의 정체성 확인하기’를 주제로 강의했다. 강의 후에는 1994년에 사제품을 받은 사제들을 위한 은경축 축하 미사가 이어졌다. 미사를 주례한 염수정 추기경은 은경축을 맞은 사제 23명에게 25주년 기념 영대를 걸어줬다. 염 추기경은 미사 강론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을 인용하며, “그리스도의 직무에 참여하는 사람은 성경을 손에 들고 많이 기도하지 않으면 결코 좋은 강론을 할 수 없다”면서 “부디 지치지 말고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이어 “사제들도 약점이 많은 인간이지만 하느님은 당신의 대리자로 파견하셨다”며 “겸손과 자비, 사랑을 실천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달라”고 요청했다.1994년 수품자 대표로 인사말을 한 김경하(사당5동본당 주임) 신부는 “하느님께 (저희를) 봉헌해주신 부모님들, 등대의 불빛이 되어 이끌어준 선배 신부님들, 사제들을 아끼는 신자들께도 감사하다”며 “본당과 특수 사목지 등 소임지에서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부족했지만 희생하며 애썼던 삶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저희가 좋아하고 아끼고 즐거워하는 것마저 하느님께 봉헌하는 삶을 살겠다”면서 “사제로 한 생을 살다가 관에 들어갈 때까지 순명ㆍ정결ㆍ청빈의 복음삼덕을 충실히 살도록 다짐하겠다”고 밝혔다.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광주대교구는 6월 28일 사제성화의 날을 맞아 가톨릭평생교육원 성당에서 사제 수품 50주년을 맞은 김홍언 신부와 정형달 신부의 금경축 미사를 봉헌했다. 미사 중 열린 축하식에서는 김홍언 신부와 정형달 신부에게 축하 꽃다발과 함께 교우들과 교구 사제단이 마련한 영적 예물을 전달했다. 미사에는 교구장 김희중 대주교를 비롯해 사제와 수도자, 교우 등 250여 명이 참석했다. 김홍언 신부는 미사 전 ‘사제들의 성화’를 주제로 한 특강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사제들의 내면에 살아있는, 나는 없어지고 그리스도만 남을 수 있는 사제로서 살아 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수원교구도 사제성화의 날을 맞아 이용훈 주교 주례로 정자동 주교좌성당에서 축하 미사를 봉헌했다. 앞서 수원교구는 사제들이 말씀 안에서 복음화에 대한 사명을 다하기를 기도하는 등 지난 6월 20일부터 6월 28일까지 9일간 교구가 정한 지향대로 매일 미사를 봉헌했다.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평화신문2019.07.03

시와 음악, 가톨릭적 시각 담긴 프로그램이 듬뿍!6월 홍보 주일을 맞아 가톨릭평화방송 TV와 라디오(수도권 FM 105.3㎒)가 신앙의 깊이를 더한 프로그램을 새롭게 선보인다. TV 프로그램해인글방 시를 통해 메마른 마음에 영성과 감성의 단비를 뿌리는 ‘국민 이모’ 이해인 수녀가 해인글방을 열었다. 수도자와 시인의 길을 걸으며 위로와 희망을 전한 이해인 수녀가 직접 시를 낭송하고 시와 삶의 이야기를 나눈다. 싱어 송 라이터 홍찬미 글로리아가 함께 하여 음악과 영상으로 풍성함을 더했다. 3일(월) 22:30 첫 방송, 매주 월 22:30 화 16:30, 수 23:00, 금 10:30, 토 19:30, 일 23:30 새롭게 만나는 ‘TV 매일 미사’ 아픈 이들과 성당을 찾기 어려운 신자들에게 미사의 은총을 전해 온 ‘TV 매일 미사’도 새로워진 모습으로 시청자들과 함께한다. 새 사제와 수도회 사제, 중견 사제, 은퇴 사제 등 주례 집전 사제가 확대됐다. 사제 혼자 집전하던 미사에 교우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다. TV 매일 미사에 함께 하고 싶은 시청자는 문의 후 참여 가능 요일에 함께 할 수 있다. 미사 참여 문의 : 02-2270-2640, TV 매일 미사 담당자 매일 6:05, 12:05, 18:05 오후 3시 ‘평화의 시간’ 평화로운 오후, 평화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긴다. 매일 15:00 ▷ 평화단상 (월) 15:20 ▷ 평화를 배우다 (화) 15:20 ▷ 콜링 U (수) 15:20 ▷ 평화 톡 (목) 15:20 ▷ 피스 인 더 바이블 (금) 15:20 ▷ 현대영성가 토마스 머튼 현대 영성가 토마스 머튼 : 박재찬 신부의 해설 토마스 머튼의 영성을 통해 우리 삶에서 부딪치는 영성적인 고민을 풀어보는 시간. 머튼의 종교와 사상은 기도와 명상, 관상은 물론 정치, 사회, 평화 등 광범위한 학제적 접근을 포함한다. ‘토마스 머튼과 종교간의 대화’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은 ‘머튼 전문가’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박재찬(분도 명상의 집 책임) 신부가 내면의 평화를 이루는 여정에 함께한다. 6일(목) 20:20 첫 방송, 매주 목 20:20 금 15:20 토 22:00 월 13:40 화 00:20 교회음악 Note 중세부터 현대까지 교회 음악의 거장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 볼 수 있다. 바흐, 모차르트, 헨델 등의 곡 소개와 해설을 통해 교회 음악의 진수를 신자들에게 전한다. 4일(화) 09:00 첫 방송, 매주 화 09:00 수 03:00, 목 17:00, 일 01:00, 22:00, 월 23:00 찬양으로 기도하는 사람들 가톨릭평화방송 사옥 1층에 새로 개관한 바오로홀에서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30분 진행되는 생활성가 공연을 방송으로 만난다. (공연 관람 무료) 6일(목) 23:00 첫 방송, 매주 목 23:00 금 09:00, 토 10:00, 월 03:00 화 17:00라디오 프로그램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 열혈사제는 그만 잊어도 좋다. 열혈 DJ 엄익재 신부가 신자들의 낮 시간을 책임진다.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의 최장수 인기 프로그램 ‘신신우신’을 이제 매일 낮에 만나볼 수 있다. 엄 신부와 함께하는 먹방 ‘라디오 다이닝’, 재미와 배움이 있는 초대석을 비롯한 다양한 코너가 청취자를 찾아간다. 월~금 낮 12:15 cpbc 성경특강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해보면 어떨까. 허영엽 신부의 창세기 강의를 시작으로 사제들의 성경 특강이 이어진다. 신앙에 재미와 깊이를 더한 특강을 들으며 성경에 맛 들이자. 월~토 오전 6:05 황우창의 음악정원 우리에게 친숙한 팝 음악부터 새로움을 전하는 제3세계 음악까지 다양한 음악과 영화, 여행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황우창의 음악정원. 이제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월~토 오전 10:00 열린세상 오늘! ‘열린세상 오늘!’이 오후 5시 청취자들을 찾아간다. 새 앵커 윤재선 기자와 함께 교회와 세상의 이슈를 가톨릭의 눈으로 바라본다. 교회와 세상의 이슈를 전문가와 관계자 인터뷰, 취재 기자들의 리포트를 통해 새롭게 전한다. 사회적 약자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무지개빛 희망을 전하는 뉴스다. 월~토 오후 5:00 cpbc 라디오(수도권 FM 105.3 ㎒) 주간 편성표정리=전은지 기자 eunz@cpbc.co.kr cpbc2019.05.29

“평화 희망하지 않으면 평화 얻을 수 없다”프란치스코 교황, ‘희망의 여정인 평화’ 주제 제53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53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를 발표하고 “평화는 우리 희망의 대상이고 온 인류 가족의 열망”이라며 지구촌 평화의 당위성을 천명했다. 【CNS 자료사진】 프란치스코 교황은 1일 제53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를 발표하고 “평화는 우리 희망의 대상이고 온 인류 가족의 열망”이라며 지구촌 평화의 당위성을 천명했다.교황은 새해 첫날 ‘희망의 여정인 평화 : 대화와 화해와 생태적 회심’ 주제 담화를 통해 “평화를 희망하지 않으면 평화를 얻을 수 없다”며 “평화와 국제적 안정은 미래에 봉사하는 연대와 협력의 세계 윤리에서 시작될 때에만 가능하다”고 밝혔다. 인류 전체를 위한 ‘평화의 사도’인 교황은 지난해 담화 ‘좋은 정치는 평화에 봉사합니다’를 주제로 평화를 위한 정치 활동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올해에는 이기심과 불관용에서 비롯되는 전 세계의 전쟁과 분쟁의 폭력성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나아가 형제애와 용서, 화해의 여정으로 참 평화를 이루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면서 세계 평화와 공존의 이유를 강한 어조로 피력했다.교황은 “전쟁과 분쟁으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수많은 이들의 존엄성, 신체적 온전성, 종교의 자유를 포함한 자유, 공동체 연대, 미래에 대한 희망이 무시당하고 있다”며 “전쟁과 분쟁은 특히 가난한 이들과 힘없는 이들에게 끊임없는 피해를 주고 있다”고도 했다.여전히 핵 위협에 노출된 지구촌 세태도 지적했다. 교황은 “이 세상은 핵의 구렁텅이로 이어지는 벼랑 끝에 매달려 있고 무관심의 장벽에 갇혀 있는 지극히 불안정한 평형 상태에 놓여 있다”고 비판했다. “핵 억제도 신기루 같은 안보만 만들어낼 따름”이라며 냉전 논리에 싸여 자행되고 있는 잘못된 핵확산 억제 정책에 관해서도 꼬집었다.교황은 “평화의 여정은 매우 복잡한 도전 과제이자, 복수심보다 훨씬 강한 공동의 희망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길을 여는 인고의 노력”이라면서 “평화는 언제나 꾸준히 이룩해 나가야 하는 것”이라며 모두가 ‘평화의 일꾼’이 되길 간절히 염원했다. “용서하며 살아가는 법을 익힐 때 평화의 사람이 될 수 있는 역량은 더욱 커진다”며 화해의 중요성도 덧붙였다.아울러 “열린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창조주의 아름다움과 지혜를 반영하는 피조물을 선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며 피조물을 위한 생태적 회심도 세계 평화를 향한 노력이 된다고 강조했다.교황은 무엇보다 형제적 만남을 다시금 요청했다. 교황은 “형제적 만남의 문화는 우리의 좁은 지평의 한계를 넘어서도록 우리를 이끌어,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보편적 형제애로 살아가도록 끊임없이 우리에게 용기를 북돋아 준다”고 했다.특히 그리스도인에게는 “성경 말씀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지배욕을 버리고 우리가 서로를 인격체로, 하느님의 자녀로, 형제자매로 바라보는 법을 배우자”며 “주님께서 베풀어주시는 화해의 성사로 이웃을 향해서든 피조물을 향해서든 모든 폭력 행위를 멀리하자”고 당부했다.교황은 세상 모든 이의 평화로운 삶을 재차 기원했다. “날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생각과 말을 이끄시어 우리가 정의와 평화의 장인이 되게 해주십니다. 이 세상 모든 이가 평화로운 삶을 살고 그들 안에 간직하고 있는 사랑과 생명의 약속을 온전히 실현하게 되길 빕니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평화신문2019.12.26
![[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 (29)이 시대에 요구되는 평신도 영성 9 - 사랑 실천](//cpbc.co.kr/CMS/newspaper/2019/06/rc/756224_1.0_titleImage_1.jpg)
[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 (29)이 시대에 요구되는 평신도 영성 9 - 사랑 실천용서·존경·배려·나눔… 사랑 실천의 지름길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고 성경은 말한다. 인간은 하느님 사랑의 본성을 갖고 태어났으며, 사랑하며 살도록 창조된 피조물이다. 서울대교구 경제인회 회원들이 쪽방촌을 찾아 전달할 도시락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 가톨릭평화신문 DB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첫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의 실천은 교회가 다른 이들에게 맡겨도 되는 일종의 복지활동이 아니라 교회 본질의 한 부분이며 교회의 존재 자체를 드러내는 데에 필수적인 표현입니다.”만약 은행에 예금이 있고 지갑에 돈이 들어있고 집안 어딘가에 잔돈이 굴러다니고 있다면, 100명이 살고 있는 지구 마을에서 가장 부유한 8명 안에 드는 한 사람입니다. 혹시 집에 자가용이 있다면 전 세계 인구 100명 중 7명 안에 들어가고, 컴퓨터가 있다면 엘리트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많이 가지고 있는데도 나눔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습니다.하느님의 본성, 사랑 성경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1요한 4,16)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하느님 사랑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 사랑하며 살도록 창조된 피조물입니다. 하느님의 본성을 닮고 태어난 인간은 그래서 하느님의 본성을 드러내고 살아야 합니다. 인간은 사랑이라는 본성 때문에 하느님과 영적인 통교를 할 수 있고, 그분의 뜻을 알아듣고 순명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요한 13,34-35)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랑하고 살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의 본성은 이미 사랑하며 살도록 되어 있으나, 사탄이 그것을 가려 놓고 교만과 욕심이라는 죄의 본성을 들춰서 우리를 끊임없이 속물화되도록 유혹하여 파멸하게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우리가 가장 먼저 실천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먼저 용서해 주셨듯이 우리도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먼저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 자신도 용서받지 못합니다. 용서는 사랑의 관문입니다. 남을 용서하려면 먼저 자신이 회개해야 하는 등의 아픔이 따르지만, 반드시 이 관문을 통과해야만 합니다.둘째, 다른 사람을 존경하는 것입니다. 내가 존경받고 사랑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남을 존경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음해하고 험담한다면 자신도 똑같이 당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도 “남을 판단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단죄하는 것이다”(로마 2,1 참조)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바오로 사도는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필리 2,3)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남을 존경하는 삶이 바로 겸손한 삶이며, 겸손은 사랑의 반석입니다.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영적 미숙아셋째,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과 배려를 가져 주어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사랑을 실천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남에 대한 관심과 배려의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영적인 미숙아로 비유됩니다. 나이는 들었어도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들은 영적인 미숙아로 머물러 있는 상태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야만 기도를 해줄 수 있고 도와줄 수 있습니다.넷째, 나눔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시간, 지혜, 능력, 물질 등 우리가 가진 것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나눔은 내 것을 쪼개어 주는 것이기에 아픔과 고통이 따릅니다. 사랑은 당신 몸을 쪼개어 주신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입니다. 사랑은 순수해야 합니다. 사심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랑은 본래 인간이 가진 본성입니다. 이러한 본성을 되찾아 살아간다면 하느님 사랑 안에 머물게 되고 하느님의 역사가 드러날 것입니다.석양을 바라보면 곧 밤이 온다는 것을 압니다. 할 일은 많은데 일꾼은 적고, 시간도 자꾸만 지나갑니다. 언젠가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심판받을 때 세상에서 아름다운 사랑을 실천하다 왔노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정치우(안드레아, 새천년복음화학교 교장) cpbc2019.06.25
![[생활속의 복음] 주님 세례 축일 - 그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cpbc.co.kr/CMS/newspaper/2020/01/rc/770576_1.1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주님 세례 축일 - 그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 임상만 신부 “그리스도교는 말씀과 비움의 종교입니다.” 성당에서 세례를 받으면 원하는 것이 다 이뤄지느냐는 입교 신자의 물음에 대한 나름의 대답이다. 하느님을 진실하게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을 얻어내기 위함이 아니라, 매 순간 그 욕심을 버리고 하느님 말씀대로 살며 하느님께서 주시는 참 행복을 얻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은 자기들이 원하는 것들을 다 얻으면 행복해질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하나의 얻음은 또 다른 얻음을 향한 다른 욕심의 연결일 뿐, 행복은 욕심의 채움으로가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자비로 얻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는 우리가 세상의 죄와 욕심에 대해 회개하여 사함을 받고, 오직 말씀으로 하느님 나라 살기를 시작하는 새로운 징표이다.오늘 복음에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을 찾아가 세례를 청하시자 재차 사양하는 그에게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마태 3,15)라고 말씀하신다. 말라키 예언자 이후 인간의 죄악과 허물 그리고 우상 숭배가 극에 달하자 하늘의 문이 닫히고 하느님의 모든 축복과 계시 그리고 소통은 단절되었다. 이때부터 인간은 더이상 하느님의 뜻을 알지 못하여 계시로 주어진 말씀이 아니라 단지 인간의 본성으로만 살아가기에 이른다.성경을 보면, 많은 유다인들이 그릇된 인간의 본성으로 인해 멀어진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갖은 방법으로 노력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자기들 나름대로 율법을 철저히 지켰으며, 하느님의 뜻을 잊지 않기 위해 율법의 내용을 문설주에 쓰거나 성구갑에 넣어 달고 다니기까지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여 지속적인 죄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알지 못한 채 자기의 의로움을 내세우려고 힘을 쓰면서, 하느님의 의로움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로마 10,3)이라며 그들의 어리석음을 질책한다. 하느님과의 관계 회복은 우리가 율법대로 얼마나 열심히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열심의 목적이 오직 하느님의 뜻과 의로움을 드러내는 데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는 예수님의 말씀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방식을 먼저 받아들여 그분의 의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올바른 신앙인의 길임을 확인해주고 있다.하느님의 의로움을 먼저 드러내는 생활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며 낮추신 겸손의 삶 그대로 우리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심으로 닫혀있던 하늘이 열렸다. 그동안 우리의 죄와 허물로 닫혔던 하늘 문을 열어 놓으시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친히 소통의 문, 기도의 문, 만사형통의 문 그리고 영원한 생명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하늘의 문’으로 많은 백성이 들어가고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전교에 더욱 힘써야 하겠다.“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 6,4)임상만 신부(서울대교구 상도동본당 주임) 평화신문2020.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