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정, 일상에는 쉼표를 신앙에는 느낌표를주님 부활 대축일 앞두고 주님 맞을 준비는 피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대한 묵상은 피정을 통해 그 깊이를 더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묵상 끝에는 부활에 대한 희망과 믿음이 자리하고 있다. 사순시기, 가시나무로 꾸며진 제대 장식 너머로 보이는 십자가상. 가톨릭평화신문 DB 예수님께도 기도는 하느님과 만나는 시간이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께서 마음속 골방에 들어오시도록 초대하셨고, 그 만남을 통해 새로운 변화를 일으킬 힘을 얻으셨다. 이렇듯 일상을 떠나 기도와 묵상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침묵 속에 하느님 음성에 귀 기울이는 일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신앙의 양식이다.사순 5주일, 주님 부활 대축일이 멀지 않았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으려면 마음속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우리에게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피정의 의미를 되새기며 신앙인을 위해 마련된 다양한 사순과 부활 피정을 소개한다.피정의 의미 우리는 몸을 돌보기 위해 운동을 하고 음식을 섭취하고, 아프면 병원에 간다. 마음을 돌보기 위해 책을 읽고 여가를 즐기며, 행여 아프면 정신과나 심리 상담을 받는다. 그런데 우리는 영혼을 돌보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영혼이 병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문득 영혼에 공허감이 밀려올 때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미사와 전례, 고해성사와 면담, 기도와 봉사 활동 등을 통해 영적인 양육을 받으며, 자신의 영혼을 돌본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성당 활동에 공허감이 밀려오고, 전례와 기도가 의무적이 되어 가며, 자기만족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어떻게 하면 자신의 신앙생활을 쇄신하고 영적으로 더욱 성장하며, 마음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받고 새롭게 변화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심리 상담이나 여가 활동은 마음에 평화나 삶에 즐거움을 주지만, 궁극적인 존재의 변화나 참된 하느님 나라의 삶을 직접 깨닫게 하지는 못한다. 영적 성장과 치유, 신앙의 쇄신, 그리고 자기-초월을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의 모든 형태는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을 잘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와 정화를 돕는다. 성사와 기도, 자선, 고행 등 하느님의 은총을 얻기 위한 준비 방법 가운데 교회는 오랫동안 ‘피정’을 권고해 왔다.주님 안에 머물며 그분과 하나 되기피정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도록 일상을 벗어난 특별한 시간과 공간 안에서 그분께 집중하는 시간이다. 하느님께 집중한다는 것은 많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침묵함을 뜻한다. 마음의 문을 열고, 고요히 그분 곁에 머물며 침묵과 고독 가운데 시간이 정지한 듯한 ‘지금 바로 이 순간’ 그분의 현존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나를 넘어 그분의 시간으로 들어가게 된다. 어머니 품에 안긴 어린 아기처럼 그렇게 주님 영 안에서 나의 영이 쉬며 그분과 하나 되는 시간이다.다음으로 피정은 우리가 순례자임을 자각하는 시간이다. 우리의 삶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와서 하느님께로 되돌아가는 순례의 여정이다. 순례자는 많은 짐을 가지고 갈 수 없다. 결국, 죽음이라는 마지막 순간 앞에 오직 우리의 영이 하느님께로 되돌아감을 알기에 자신을 비우는 특별한 시간이 바로 피정이다. 재물, 관계, 자아에 대한 집착은 우리의 영적 순례 여정에서 무거운 짐들이다. 그래서 피정은 순례자인 우리가 더욱더 영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도록 자신을 비우는 시간이다. 자신을 주님께 내려놓는 순간 우리 내면에 치유가 일어나기도 한다. 피정은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필요하다. 예수님께서 바쁘신 공생활 중에도 외딴곳에서 기도하신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분주한 일상과 세속의 소음과 안락한 삶을 피해 한적한 곳에서 피정을 가져야 한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다양한 피정 프로그램을 마련해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쇄신을 돕고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피정은 지식을 쌓는 강좌나 성경 공부 혹은 머리로 자신을 성찰하고 식별하는 시간과는 다르다. 오히려 온 마음으로, 온 영혼으로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시간이다. 그분 사랑 안에서 내 존재가 변화되지 않을 때 지식은 울리는 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나를 멈추고 하느님께 봉헌하는 시간너무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는 ‘잠시 멈춤’이 필요하다. 심지어 새로운 것을 배워 지식을 쌓는 것만을 피정으로 여기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멈춤이 필요하다. 피정은 나를 위한 시간이 아니라, 나를 멈추고 하느님께 나를 봉헌하는 시간이다. 우리가 그분의 것임을 다시금 자각하며, 그분의 사랑을 느끼고 체험하는 시간이다. 구약의 시편 작가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하다. “너희는 멈추고 하느님 나를 알라.”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박재찬 신부(부산 분도 명상의 집 원장) 다양한 피정 프로그램 수도자들과 함께하는 사순ㆍ부활 피정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피정의 집에서는 18일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수도자들과 함께하는 피정을 마련한다. 또 고등학교 1학년부터 40세 이하 미혼 남녀를 위한 ‘청년 파스카 성삼일 전례’ 피정도 19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마련해 놓고 있다. 성 금요일 주님 수난 예식, 토요일 파스카 성야 미사, 주님 부활 대축일 낮 미사를 수도자들과 함께할 수 있다. 문의 : 054-971-0722, 010-8353-2323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도 수도자들과 함께하는 파스카 성삼일 전례 피정을 18일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부산 은혜의 집에서 실시한다. 미혼 여성과 60세 이하 혼자인 여성이 참가할 수 있다. 문의 : 010-8004-5729 은혜의 집툿찡포교베네딕도 대구수녀원 역시 청년 부활 전례 피정을 19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마련한다. 35세 이하 미혼 청년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문의 : 010-9890-3431피정 장소가 지방이라 부담된다면 서울 도심에서 열리는 피정을 추천한다. 수도자와 함께하는 부활 전례 피정이 20일 오후 3시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서울 장충동 성베네딕도회 피정의 집에서 열린다. 문의 : 02-2273-6394 치유와 인문학이 함께하는 피정낙태의 아픔을 치유하는 피정도 있다. 착한목자수녀회는 26~28일 성 빈센트 환경마을에서 한국 틴스타와 함께하는 낙태 후 화해 피정을 마련한다. 문의 : 010-9318-1366며칠의 피정을 떠날 여유가 없다면 당일 피정이 제격이다. 수원교구 고초골 피정의 집은 9일 전임 교구장 최덕기 주교와 함께하는 1일 피정을 실시한다. 피정은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하는 삶’이란 주제로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3시까지 진행된다. 문의: 031-337-0470 음악과 문학과 함께하는 피정도 있다. 사순 피정과 함께하는 작은 음악회가 8일 오전 10시 서울 새남터순교성지 성당에서 열린다. 주제는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요한 20,18)이며,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강주현ㆍ한진욱ㆍ백남일 신부가 강사로 나선다. 문의 : 070-8672-0327부산가톨릭문인협회는 문학과 함께하는 사순 피정을 13일 오후 2시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경남 양산 정하상바오로영성관에서 마련한다. 염봉덕 신부와 김영욱 신부, 김정자 교수가 지도한다. 문의 : 010-2831-3550대구대교구는 2019 사순 특집 콘서트를 14일 오후 2시 주교좌 범어대성당 대성전에서 펼친다. 네덜란드 DUDOK 앙상블 초청 내한공연으로 ‘바흐 마태 수난곡’이 연주된다. 문의 : 053-744-1394 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cpbc2019.04.03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교회에 전한 서간, 각주·보충 설명 붙여 코린토 1서 강해 코린토 1서 강해 이영헌 신부 지음 / 바오로딸 / 2만 2000원바오로 사도는 ‘바오로 편’, ‘아폴로 편’, ‘케파 편’, ‘그리스도 편’으로 분열돼 파벌 싸움을 일삼는 코린토 교회 사람들에게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코린토인들에게 보내는 첫째 편지(이하 코린토 1서)는 바오로의 실천적 사목 지침을 담고 있는 성경이다. 바오로 서간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시사성이 짙고, 초대 교회 공동체 생활을 현장감 있게 다룬 문헌이다.코린토 교회는 다른 공동체와 달리 신자들의 분열과 갈등, 복음 말씀과 교회 전례에 대한 몰이해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하느님의 지혜를 이해하지 못한 어리석음 때문이었다. 공동체는 윤리적으로 타락해갔고, 그래서 편지에서는 우상숭배, 부활관에 대한 문제 등 신앙생활 전반에 대한 당부가 이어진다.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사람들에게 요청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적 친교, 일치의 공동체였다. 코린토 1서는 바오로 사도가 지향한 ‘하느님의 교회’로서 코린토 공동체가 하나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저자는 광주가톨릭대 총장과 교수를 지낸 이영헌(광주대교구 옥암동본당 주임) 신부. 가능한 많은 각주와 보충 설명을 덧붙이고, 그리스말 본문도 삽입해 바오로 서간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백영민2018.05.22
청소년 예비신자 위한 교리서 발간 교사들과 학생들이 쉽게 가르치고 배우게 풀어 「신앙의 열매-교사용 교안집」,「신앙의 열매-학생용 워크북」 가톨릭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을 연구하는 그리스도의 교육 수녀회 ‘참신나’ 팀에서 청소년 예비신자를 위한 교리서 「신앙의 열매-교사용 교안집」,「신앙의 열매-학생용 워크북」(바오로딸) 발간했다.‘참신나’는 10년 넘게 청소년 신앙학교, 생명교육, 피정 등 다양한 신앙 교육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교사들과 학생들이 단순하고 쉽게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내용을 책에 담았다. 학생들은 총 20과에 걸쳐 ‘한국천주교회사, 성경이란 무엇인가, 창조주이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성사ㆍ미사란 무엇인가, 성모 마리아, 오늘날의 그리스도인’ 등 주제를 배우게 된다. 처음 접하는 가톨릭 교리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워크북은 두꺼운 책자 대신 낱장 20장으로 구성했다. 교리 주제와 관련된 성경 말씀과 핵심 내용을 글ㆍ그림으로 구성해 한눈에 알아보기 쉽고 흥미롭게 짰다. 워크북은 교리 시간마다 한 과씩 배부·회수하며 전체 과정을 마친 후 워크북 케이스에 담아 선물할 수 있도록 했다. 워크북 케이스는 롤링 페이퍼를 쓰면서 전 과정을 마무리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 책은 예비신자 교리뿐만 아니라 본당 주일학교와 청년 교리에도 활용할 수 있다. 유은재 기자 you@cpbc.co.kr 백영민2018.01.17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 (21) 성모님이 미소 짓다](//cpbc.co.kr/CMS/newspaper/2018/12/rc/741188_1.0_titleImage_1.jpg)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 (21) 성모님이 미소 짓다근엄하신 성모님이 웃으시자 아기 예수님도 환한 미소 오타비아노 넬리, ‘하느님의 어머니’, 1407~1422, 프레스코,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아시시, 이탈리아. 성모 마리아가 드디어 웃으십니다. 덩달아 아기 예수도 재롱을 피웁니다. 그리스도교가 생긴 지 1000년의 세월이 흘러서야 성모자를 표현한 성미술 도상(圖像)에 정감이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의 성미술 도상은 예수님의 거룩한 신성을 드러내는 데에 치우쳐 성모자를 초현실적인 존엄한 존재로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마치 로마제국 시대 황제와 황후의 초상처럼 우아하고 고상하지만, 함부로 가까이할 수 없는 근엄한 모습으로 그려졌지요. 인간미 넘치는 표정 담기 시작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표현한 성모자상에 인간미 넘치는 표정이 담기기 시작한 것은 9세기 말부터라고 합니다. 물론 미술사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지만, 성화상논쟁(8~9세기)이 끝난 후 콘스탄티노플에서 처음으로 표정이 담긴 성화가 그려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현재 그리스 아토스섬 필로테오스 수도원에 있는 ‘글리코필루사’(Γλυκοψιλουσα) 입니다. 우리말로 ‘달콤한 입맞춤의 성모’입니다. ‘자비의 성모’라는 뜻의 ‘판아기아 엘레우사’(Παναγια Ελεουσα)라고도 하는데 ‘달콤한 입맞춤의 성모’라는 이름이 더 정겹고 매력적입니다. 성모님은 양팔로 아기 예수를 포근하게 감싸 안고 주님의 뺨에 입을 맞추십니다. 아기 예수도 성모님의 달콤한 입맞춤이 좋은지 어머니 품에 온전히 자신을 내맡긴 채 왼손으로 엄마 턱을 어루만지며 귀여운 표정을 짓습니다. 성모님의 모성애뿐 아니라 아기 예수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물씬 드러나는 그림입니다. 이전의 도상과는 확연히 다른 인간미 넘치는 이러한 도상이 생긴 까닭이 있습니다. 6세기부터 성화상 공경이 대중 신심으로 발전하면서 그 부작용으로 신자들 사이에 미신 행위가 생깁니다. 그 도가 지나쳐 결국 동로마제국의 레오 3세(713~741) 황제는 726년 법으로 성화상 공경을 금지합니다. 이후 100년 가까이 신학자들 사이에서 “성경에 우상을 섬기지 말라 했는데 하느님을 형상화할 수 있느냐?” “인간이 그린 그림을 어떻게 공경할 수 있느냐?”며 논쟁을 벌였고, 과격한 이들은 성화상을 파괴했습니다. 그러다 843년 열린 제2차 니체아 공의회는 “성화상은 단순히 시각 도구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이 사람에게 전해지는 통로 역할도 하는 성사적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하느님의 신비를 담고 있는 기록”이라고 선언하고, 성화상 공경을 허용합니다. 이 결정으로 성미술은 전성기를 누립니다. 도상의 표현 방법도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성모 마리아의 모성을 숨김없이 드러낼 만큼 자유롭고 성숙해졌습니다. 성미술 안에서 참하느님이시며 참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이 온전히 표현되면서 그제야 인간의 미적 가치와 하느님의 신비를 결합하는 새로운 끈을 찾게 된 것입니다. 서방 교회에서 성모님을 주제로 한 성미술 도상은 13세기부터 전성기를 맞습니다. 1253년 봉헌된 이탈리아 아시시 성프란치스코대성당은 성미술의 보고입니다. 이 성당에는 성모자상의 전통 이미지와 풍부한 표정을 담은 도상들이 벽면 곳곳에 장식돼 있습니다. 먼저 오타비아노 넬리의 작품입니다. 1407~1422년에 그려진 ‘하느님의 어머니’ 도상으로 옥좌에 앉아 있는 존엄한 성모님의 모습과 아기 예수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의 오른손에 들려있는 백합은 ‘평생 동정녀’이심을 상징합니다. 또 아기 예수의 왼손에 앉아 있는 새는 ‘제2의 그리스도’로 불리고 있는 성 프란치스코를 연상시킵니다. 다음으로, 피에트로 로렌제티의 작품입니다. 1315~1319년에 그려진 ‘성모자와 성 프란치스코, 요한 세례자’ 도상입니다. 성모님 왼편에 프란치스코 성인이, 아기 예수 옆에 요한 세례자가 서 있는데 성모자의 표정을 읽기 위해 확대했습니다. 아기 예수께서 “어머니는 프란치스코와 세례자 요한 중 누구를 더 사랑하시느냐”고 묻자 당황한 성모께서 눈을 크게 뜨고 말씀을 하지 못한 채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당신 옆에 서 있는 성 프란치스코를 가르치고 있는 모습이라 합니다. 이 그림에서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친밀한 관계를 잘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몸을 성모님을 향해 앞으로 숙인 채 더없는 사랑의 눈으로 성모를 바라보고 말을 걸고 있습니다. 성모님 또한 어린 자식의 당돌한 질문에 감정을 숨기지 않고 지극히 인간적인 표현으로 그 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이끄는 성모 마리아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과 인간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계시는 성모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어려운 교회 용어로 ‘중재자이신 마리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매일 우리가 성모님께 “저희 죄인을 위해 빌어 주소서”라고 기도하는 그 이유를 이 친밀한 성모자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모성애와 인간미 가득한 성모 마리아의 성화는 우리를 그리스도께 이끕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평화신문2018.12.11

인류의 빛 예수님, 모든 민족의 구세주이심 드러내주님 공현 대축일 유래와 의미6일은 주님 공현 대축일이다. 아기 예수가 동방박사들을 통해 자신이 구세주이심을 드러낸 사건을 기념하는 대축일이다. 동박박사 3명이 구유로 이끄는 별빛을 발견하고 여정을 시작했듯이, 그리스도인인 우리도 스스로의 나태함을 이겨내고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주님 공현 대축일의 유래와 의미, 동방박사에 대해 알아본다. 주님 공현 대축일은 강생하신 구세주 예수님께서 경배하고 예물을 바치러 온 동방박사들을 통해 스스로 당신 자신을 공적으로 세상에 드러내보이셨음을 기념하는 날이다. 2세기 동방 교회에서 유래한 주님 공현 대축일은 1월 6일이다. 한국 교회는 사목적 편의에 따라 1월 2~8일 사이의 주일에 축일을 지낸다. 주님 공현을 뜻하는 그리스어 ‘에피파네이아’와 ‘테오파니아’는 ‘드러나게 나타나거나 밝혀지는 것’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 외에도 하느님의 발현이나 기적적인 신의 개입을 가리키는 데 사용했다. 동방 교회에서는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심’을 기리는 주님 성탄 대축일을 이 용어를 사용해 불렀다. 우리가 지내고 있는 주님 공현 대축일은 예수 성탄의 의미가 확대되어 드러난 것이다. 동방 교회에서 이 축일을 기념하게 된 것은 서방의 예수 성탄 대축일이 등장한 것과 같다. 서방에서 동지 축제(태양신 탄생 축제)를 12월 25일에 지냈듯, 이집트와 아라비아에서는 1월 6일에 축제를 지냈다. 그리스도인들은 낮이 밤보다 길어지는 이 날에 그리스도의 탄생과 공현을 기념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구원할 참빛이심을 드러내려 했다. 서방 교회는 4세기부터 주님 공현을 기념했다. 최초로 이 축일을 기념한 것은 361년 갈리아에서 가장 성대하게 공현 축일을 지낸 것으로 확인된다. 동방의 공현 축일이 361년 갈리아에서 전통이 된 것으로 보아, 이 축일의 기원은 로마의 예수 성탄 대축일과 동시대로 여겨진다. 서방 교회는 제1차 니케아 공의회(325년) 이후 예수 성탄 대축일과 함께 주님 공현 대축일을 기념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서방에서는 예수 성탄 대축일을, 동방에서는 공현 축일을 성탄 축일로 지냈다. 동방 교회의 공현 축일이 서방으로 전파됐을 때 의미가 달라졌다. 서방 교회에서는 동방박사들이 탄생한 구세주를 경배하려고 베들레헴에 온 것을 기념한다.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의 탄생에 ‘그분의 탄생을 이방 민족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다’는 의미가 공현 축일에서 강조된 것이다. 또 ‘예수의 세례’와 ‘카나의 첫 기적’을 덧붙여 기념했다. 서방 교회의 성탄 축일이 동방 교회에 도입됨으로써 공현 축일의 본래 뜻은 사라지고, ‘예수의 세례’를 더 기념하게 됐다. 서방 교회들은 동방박사들의 방문을 기념하면서, 이들이 인류를 대표한다고 여겼다. 성탄에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공현에는 온 민족의 경배를 기념하는 것으로 성탄과 경배는 이렇게 구별된다. 오늘날 주님 성탄 때의 전례는 동서방 교회들이 ‘주님 탄생’이라는 동일한 사건을 기념하지만, 주님 공현의 전례는 동방과 서방이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다. 서방 교회는 좁은 의미에서 공현 축일에 ‘현자들의 방문’을 기념하고, 주님 세례 축일에는 ‘주님의 세례’를 기념한다. 그러나 동방 교회는 두 가지를 모두 주님 공현 축일에 기념한다. 동방박사,?예수님을 구세주로 알아본 최초의 이방인 마태오 복음서에 의하면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고 아기 예수를 경배하기 위해 베들레헴을 찾아왔다.(마태 2,1-8 참조)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온 것은 민족들을 대표해 그리스도를 경배하고 예물을 드리기 위해서다. 성경에서 동방박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최초의 이방인으로 등장한다. 동방박사의 경배는 네 복음서 중 마태오 복음서에만 나온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동방박사의 방문을 통해 이사야의 예언(이사 60,3-6 참조)이 실현됐음을 선포했다.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 그들은 모두 스바에서 오면서 금과 유향을 가져와 주님께서 찬미 받으실 일들을 알리리라.” 예수는 다윗의 자손인 메시아로서, 임마누엘로서 세상에 왔다. 그러나 헤로데 대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세주가 오심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들과 달리 동방의 박사들은 메시아의 탄생을 알아보고 경배하러 온 것이다. 점성가들로 생각되는 세 명의 박사는 전승에 따르면 멜키오르, 발타사르, 가스파르로 불린다. 동방에서 온 이들을 요르단,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가운데 어느 한 곳에서 온 점성가로 여긴다. 점성가들의 신분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지만, 유럽의 그리스도인들은 6세기 초부터 그들을 ‘임금’이라고 생각했다. 한편 십자군은 중동 지역에서 삼왕의 유해를 유럽으로 옮겨와 이탈리아 밀라노의 성 에우스토르지오 성당과 독일 쾰른주교좌성당에 안치했다.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을 경배하고 황금과 유향, 몰약을 선물로 바쳤다. 황금은 ‘왕권’, 유향은 ‘그리스도의 신성’, 몰약은 ‘인류를 위해 죽으실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하는 예물이다. 신학자 칼 라너 신부는 “황금은 ‘우리의 사랑’, 유향은 ‘우리의 그리움’, 몰약은 ‘우리의 고통’”이라고 봤다. 동방박사의 경배 이야기를 통해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메시아의 탄생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다. 동방박사의 구세주 방문은 유다인 뿐 아니라 이방인에게까지도 하느님 나라를 드러낸다. 정리=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문채현2019.01.02
![[이창훈 위원의 사도행전이야기] (8) 불구자를 고친 베드로 (3,1-10)](//cpbc.co.kr/CMS/newspaper/2019/03/rc/747697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위원의 사도행전이야기] (8) 불구자를 고친 베드로 (3,1-10)베드로 사도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룬 첫 기적 예루살렘 성전 아름다운 문 곁에 앉아 있던 불구자를 고친 이야기는 베드로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한 첫 기적이다. 그림은 마솔리노(1383~1440), 불구자를 고친 성 베드로, 산타 마리아 델 카미네 성당 브란카치 경당 벽화. 이탈리아 피렌체. 루카는 예루살렘의 첫 신자 공동체 생활을 요약해서 전하고 나서(2,42-47) 베드로를 중심으로 하는 사도들의 예루살렘 활동을 본격적으로 소개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불구자를 고친 이야기가 그 첫 번째입니다. 이 이야기는 “사도들을 통하여 많은 이적과 표징이 일어나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두려움에 사로잡혔다”(2,43)고 루카가 요약해서 전하는 내용의 구체적인 첫 사례이기도 합니다.베드로와 요한이 오후 세 시 기도 시간에 성전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3,1) 오후 세 시는 성경 원문의 ‘제9시’를 우리 식으로 풀어 표기한 것이라고 합니다. 유다인들은 낮을 12등분해서 해가 뜬 뒤 한 시간이 지난 시각을 제1시라고 불렀습니다. 하루를 낮과 밤 절반으로 나눠 새벽 6시에 해가 뜬다고 보면 7시가 제1시가 되지요. 이런 식으로 계산하면 제9시는 오후 3시가 됩니다. 당시 유다인들에게 정해진 기도 시간은 성전에서 제물을 바치는 이른 아침과 오후 3시 그리고 저녁 해 질 무렵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베드로와 요한은 유다인들의 기도 관습에 맞춰서 오후 세 시에 기도하러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다고 하겠지요.그런데 “모태에서부터 불구자였던 사람” 하나가 ‘아름다운 문’이라고 하는 성전 문 곁에 있었습니다. “성전에 들어가는 이들에게 자선을 청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그를 날마다” 그곳에 들어다 놓았던 것입니다.(3,2) “모태에서부터 불구자”라는 표현은 그 사람이 불구가 확실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들이 그 사람을 날마다 성전 문앞에 들어다 놓았다는 것 역시 같은 뜻을 담고 있지만 이와 함께 그 불구자를 사람들이 배려하고 있다는 사실도 함축한다고 하겠습니다. 그 불구자는 성전에 들어가려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자선”을 청하고,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그를 유심히 바라보고 나서 “우리를 보시오” 하고 말하지요. 그 사람은 뭔가를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는 베드로와 요한을 쳐다봅니다.(3,3-5) 그 불구자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베드로와 요한에게 자선을 청합니다.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자선을 청하는 것이 그에게는 일상적인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우리를 보시오” 하고 말했을 때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입니다. 어쩌면 속으로 ‘이 사람들이 얼마나 큰 것을 주려고 하기에 자기들을 보라고 한다는 말인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자 베드로가 말합니다.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 그러면서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킵니다. 그러자 그는 즉시 발과 발목이 튼튼해져서 벌떡 일어나서 걷습니다.(3,6-8ㄱ) 뭔가 주려나 기대했던 그 불구자는 “나는 은도 금도 없다”는 베드로의 말에 실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다음 순간 베드로는 깜짝 놀랄 말을 합니다. 일어나 걸으라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베드로가 손을 잡아 일으키자 그는 벌떡 일어나 걷습니다.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발과 발목에 힘이 생겨 튼튼해져서 벌떡 일어나 걸을 수 있었습니다. 이 기적은 베드로가 사도로서 행한 첫 기적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걷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하느님을 찬미하기도 하면서 베드로와 요한을 따라 성전으로 들어갑니다.(3,8) 껑충껑충 뛴다는 것은 불구였던 몸이 완전히 나았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그 사람으로서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정말로 뜻밖의 선물이자 은총이었습니다. 그것은 또한 기쁨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예상치 못한 값진 선물을 받았을 때 감사하는 마음이 우러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평생 불구로 지내며 구걸하며 살아야 했던 사람이 완전히 낫게 됐다면 껑충껑충 뛰면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할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말입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경탄하고 경악하였다”고 루카는 기록합니다.(3,10) 날마다 성전의 아름다운 문 곁에 앉아 자선을 청하던 불구자가 성하게 되어 걷기도 하고 껑충껑충 뛰기도 하며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을 봤으니 그럴 만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몸이 성하게 된 그 사람처럼 하느님을 찬미한 것이 아니라 경탄하면서도 경악합니다. 그 사람들이 베드로의 치유를 하느님의 업적이라고 여겼다면 하느님을 찬미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경악했다는 것은 하느님의 업적으로 여기기보다는 그냥 ‘소스라치게 놀랐다’는 뜻이 더 강합니다. 뭔가 복선이 깔려 있는 것이지요. 이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계속 살펴볼 것입니다. 생각해봅시다베드로 사도는 오순절 설교에서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 죄를 용서받으라고 설파했습니다. 이제 태생 불구자를 고치는 이야기에서 베드로는 그냥 “일어나 걸으시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촉구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라고 말합니다. 마르코 복음사가에 따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마르 16,17-18) 루카 복음사가는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에서 선포되어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루카 24,47) 여기서 “그의 이름으로”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를 말합니다. 여기서 관건이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입니다.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모든 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는 일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드러나도록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드러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오늘 하는 일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드러나도록 해달라고 기도하고 다짐하면 좋겠습니다. 하루를 마치면서는 그렇게 살았는지 잠깐이라도 짬을 내어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cpbc2019.03.06

예수님 발자취를 따라 - 이스라엘 성지를 가다 (1) 주님 탄생 예고 기념 성당 내 동굴 앞 제대가 성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제대 앞에 라틴어로 ‘이곳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Verbum Caro Hic Factum est)’라고 씌어 있다. 믿음의 선조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후손들이 사는 ‘약속의 땅’. 하느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성지 중의 성지’. 4000년 역사 안에 이민족의 숱한 침략과 유배의 아픈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나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구원의 기쁜 소식이 처음 울려 퍼진 땅. 이스라엘이다. 7월 24일~8월 1일 일주일간 타임머신을 타고 성경 속을 거닐듯 이스라엘을 다녀왔다. 이스라엘 관광청과 공동 기획으로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간 이스라엘 순례기를 4회에 걸쳐 연재한다. 이스라엘=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이스라엘 북부 갈릴래아 지방의 작은 마을 나자렛. 성모 마리아가 천사를 만나 예수님 잉태 소식을 듣고, 이후 예수님이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다. 공관복음은 이 시기 예수님 이야기를 풍부히 다루고 있진 않지만, 예수님이 어린 시절 믿음을 다지며 생활하고, 공생활을 시작하기에 앞서 지혜를 쌓던 고향이다.2000년 전 이 작은 마을은 겨우 150명 남짓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장 가난한 동네였다. 믿음의 성지 예루살렘과는 150㎞ 떨어져 있고, 갈릴래아 호수에서 서남쪽으로 약 25㎞ 지점에 있다. 스코틀랜드의 저명한 화가 데이비드 로버트가 1830년쯤 이곳을 방문한 뒤 그린 나자렛 마을 전경 작품만 들여다봐도 당시 나직나직한 전통 가옥 몇 채만 눈에 들어올 정도였다. 그러나 오늘날 나자렛은 아랍인들이 주를 이루는 인구 8만 명의 제법 큰 도시로 성장했다.나자렛 마을은 해발 600m 언덕 분지 안에 집들이 빙 둘러 자리한 모습을 띠고 있다. 3~4층 높이의 제법 큰 건물들도 곳곳에 자리한 동네가 됐다. ‘주님 탄생 예고 기념 성당’은 나자렛 마을 가장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자동차 한 대가 겨우 다닐만한 좁은 골목을 따라가다 보면 하늘을 찌를 듯한 대형 첨탑이 드리운 성당에 다다른다. 성모 마리아가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며 성령으로 아기 예수를 잉태하리라는 하느님 말씀을 순수하게 받아들인 위대한 신앙 고백의 현장이다. 작고 가난한 유다인 마을에 주님의 천사가 찾아왔고, 마리아의 태중은 이내 찬란하게 빛날 분이 모셔진 성스러운 지성소가 된다. 하느님의 총애 속에 마리아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을 곧 잉태하게 됨을 기꺼이 받아들인다.‘주님 탄생 예고 기념 성당’은 ‘성모님의 집터’로 추정되는 동굴 위에 세워져 있다. 1969년 봉헌된 ‘주님 탄생 예고 기념 성당’ 마당은 전 세계 각국이 봉헌한 성모 성화로 둘러싸여 있다. 육중한 문을 열고 대성전에 들어가면 주님 탄생 예고 동굴 앞 제대가 성스러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Verbum Caro Hic Factum est)’. 제대 정면에는 말씀이 사람이 되신 육화의 신비가 라틴어로 쓰여 있다. 2층 본 성전을 따라 눈길을 올려다보니 첨탑 꼭대기에 성모 마리아의 순결함을 상징하는 백합과 아베 마리아(Ave Maria)를 뜻하는 무수히 많은 ‘A’와 ‘M’이 수놓아져 있다.그런데 마리아의 집이 동굴이라니. 의아할 법도 하지만, 이는 헤로데 대왕 시대의 전형적인 가정집 형태였다. 석회암으로 만든 작은 방과 부엌, 물 저장소, 곡식 창고 등이 1~2평 남짓한 공간에 자리하고 있다. 이처럼 작고 가난한 집에서 성가정을 이뤘을 2000년 전 소박한 예수님 가족이 눈앞에 그려진다.‘주님 탄생 예고 기념 성당’ 바로 옆에는 요셉의 집터 위에 세워진 ‘요셉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요셉과 마리아는 매우 가까운 거리에 살았던 모양이다. 어린 예수는 부모의 손을 잡고 얼마나 즐거운 마음으로 회당을 찾았을까. 또 어린 예수는 목수였던 아버지 요셉이 일하는 것을 얼마나 유심히 지켜봤을까. 물을 길어오는 어머니 마리아의 정성스러운 손길, 철없이 뛰어다니다 이따금 넘어지기도 했던 자신을 일으켜 세워 줬을 요셉과 마리아의 따스함은 얼마나 컸을까. 인근에는 예수님이 드나들었던 유다인 회당 자리의 성당과 마리아가 매일 우물을 길었다고 전해지는 곳에 세워진 가브리엘 성당이 있다.2010년 ‘주님 탄생 예고 기념 성당’ 바로 옆에서 예수님 시대 집터가 새롭게 발견됐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잘 보존된 주거지가 발굴된 것은 이 지역에서 드문 일이다. 새로 발굴된 주거지에서는 기원전 1000년 솔로몬 시대 때 가옥의 벽면과 지하 3층 깊이 저수시설, 점토 항아리 등이 발견됐다.구약성경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 나자렛 마을이 이미 신약의 예수님 시기 이전부터 촌락을 이루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현장이어서 의미가 크다. 이스라엘 문화재청은 이 집터에 국제마리아센터를 건립해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이에게 예수님 시대와 그 이전의 집터를 생생히 감상하도록 돕고 있다. 예수님 관련 영상 감상실과 전시실, 나자렛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경당 등을 갖추고 있다.가장 가난하고 작은 마을 나자렛. 나타나엘이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요한 1,41)하고 필립보에게 보인 시큰둥한 반응이 그럴 법하게도 다가올 만큼 보잘것없는 이곳에 주님의 천사가 찾아왔다. 그리고 성가정은 파스카 축제 때마다 머나먼 예루살렘을 다녀오는 신심 깊은 가족이었다.“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루카 2,40) cpbc2018.08.07

하느님 말씀에 목마른 청년에 수녀회 문 활짝‘말씀과 함께하는 아미드뽈’, 첫째·셋째 주일 오후 1~5시 7일 명동 바오로교육관에서 열린 ‘아미드뽈 청년카페’ 모임에서 수도자들과 청년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하느님 말씀이 고픈 청년들을 위해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 수도자들이 나섰다. 수도자들은 ‘말씀과 함께하는 아미드뽈 청년카페’(이하 아미드뽈)를 운영하며 청년 누구나 수녀회 문을 열고 들어와 삶의 이야기와 복음을 나눌 수 있도록 초대하고 있다. 1월 첫째 주 주일인 7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 성모동산 옆 성바오로교육관을 찾았다. 2018년 첫 모임에 10여 명의 청년이 모였다. 꾸준히 만남을 이어오다 보니 ‘아미드뽈(Amis de Paul, 바오로의 친구들)’ 뜻처럼 담당 수녀들과 청년들은 친구처럼 서로를 반긴다. 청년 미사 전까지 진행되는 모임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다과를 나누며 신앙과 친교의 시간으로 꾸며진다.‘아미드뽈’은 교회 내에서 갈 곳을 잃은 청년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2014년 7월 처음 시작됐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는 명동에서 영세자가 많이 탄생하는 데 반해 정작 세례를 받은 후 냉담한 경우를 안타깝게 여겨 청년 모임을 꾸렸다. 수많은 기도 모임과 차별화하기 위해 ‘수녀들이 전하는 복음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청년들이 복음을 읽고 그들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살아 계시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했다.수도자들의 강의로 처음 시작된 모임은 청년들의 요청에 따라 신앙 고민 나누기, 성경 읽기 등으로 다양하게 발전해 왔다. 각자 삶 속에서 신앙과 현실이 부딪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주제를 정해 이야기를 나누는가 하면, 성경을 제대로 읽어본 적 없는 청년 신자들 눈높이에 맞춰 렉시오 디비나(읽기, 묵상, 기도, 관상을 통해 말씀을 통해 하느님 현존을 깊이 깨닫도록 돕는 독서 수행법), 성경 통독, 나눔, 상담의 시간을 보냈다. 지난해에 바오로 서간을 함께 읽은데 이어 최근엔 마태오복음을 함께 읽고 있다.이미경 수녀는 “아미드뽈은 말씀이 한가운데 놓이는 모임”이라고 했다. 이 수녀는 “종교가 삶이 아닌 취미가 되고, 교회 내 청년 모임도 동아리처럼 변질하는 경우가 많은 현실 속에서 청년들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며 “청년들이 하느님을 ‘관념’이 아닌 ‘우리 안에 살아 계신 분’으로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고민, 아픔, 상처를 열어 보이고 대화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청년들은 모임을 통해 믿음이 성장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유지완(요안나, 명동본당)씨는 “2년 전 예비신자 교리를 받을 때부터 아미드뽈과 함께하고 있는데 기도할 때, 성경 읽을 때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바로 수녀님께 여쭤볼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좋고 마치 ‘신앙 그룹과외’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조성진(프란치스코, 명동본당)씨는 “군대 전역 후 가족같은 아미드뽈을 만나면서 긴 냉담을 풀 수 있었고 꾸준히 신앙과 일상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함도 사라졌다”고 말했다.아미드뽈은 세례를 준비 중인 예비신자와 세례받은 청년(20~36세)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모임은 매월 첫째ㆍ셋째 주일 오후 1~5시 성바오로교육관에서 열린다. 문의 : facebook.com/amisdepaul유은재 기자 you@cpbc.co.kr 백영민2018.01.10

요셉 성인은 누구인가 - 성가정 위해 온전히 헌신한 ‘아버지’성 요셉 성월과 성 요셉 대축일(19일)교회는 매년 3월을 ‘성 요셉 성월’로 지낸다. 그리고 19일은 한국 교회의 공동 수호자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양아버지인 요셉 성인은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이 이뤄질 수 있도록 충실한 도구로 선택돼 성가정을 돌봤다. 요셉 성인에 관한 성경 구절은 예수의 어린 시절을 다룬 마태오복음 1─2장과 루카복음 1─2장뿐이다. 외경 작품들에는 요셉 공경에 대한 내용이 많다. 성경에 그에 대한 언급이나 내용은 별로 없지만, 신앙적으로 보면 요셉은 참으로 많은 일을 남모르게 실천했다. 다윗 왕가의 후손인 요셉은 나자렛에서 목수 일을 했고 의인으로 존경받았다. 약혼자 마리아가 임신하자 파혼하려 했지만, 성령에 의한 잉태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마리아를 아내로 받아들였다. 요셉은 부모로서 아기 예수가 할례를 받도록 하고 아들을 예루살렘 성전에 봉헌했다. 헤로데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난 생활을 해야 했다. 예수가 12살 되던 해에 예수, 마리아와 함께 예루살렘 순례를 갔다가 예수를 잃었으나 아들이 학자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요셉(Joseph)은 ‘하느님을 돕다’, 곧 ‘돕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예수 시대에 매우 흔한 이름이었다. 요셉의 인생은 성실하게 돕는 이의 삶이었다. 요셉은 먼저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가정을 보호했다. 정결한 남편으로서 동정을 원하는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 끝까지 지켜줬다. 자기 희생과 봉헌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요셉은 또 예수의 양부로 아버지 역할을 성실하게 다했다. 예수가 공생활에 나서기 전 30년 동안 예수를 보살피고 가르쳤다. 성경은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루카 2,51-52)고 기록하고 있다. 어린 예수의 지혜와 키를 자라게 한 이가 요셉이다. 이처럼 요셉 성인은 성가정의 수호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를 보호하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3월 19일이 요셉 성인의 축일로 자리 잡은 것은 12세기 무렵이다. 요셉 성인에 대한 공경이 비교적 늦게 시작된 것은 그의 역할이 성모 마리아만큼 명확하지 않아 전례력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12세기 예루살렘 성지를 이슬람에게서 되찾고자 했던 십자군은 요셉 성인을 공경하고자 나자렛에 성당을 세웠다. 이후 요셉 성인에 대한 공경과 축제는 주로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를 통해 유지되고 전파됐다. 작은형제회 출신 식스토 4세 교황은 15세기 말 요셉 성인의 축일을 모든 교회로 확산시켰다.1870년 비오 9세 교황은 성 요셉을 교회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다. 1889년 레오 13세 교황은 요셉을 가장의 모범으로 선포하면서 성인들 가운데 성모 마리아 다음의 위치로 올렸다. 교황은 “성 요셉은 가족들에 대한 보호와 배려의 산 표본”이라면서 “아내들에게는 사랑, 마음의 일치, 충실함의 모범이고, 미혼자, 독신자, 수도자ㆍ성직자에게는 정결의 이상이며 수호자”라고 밝혔다. 이어 “성 요셉은 마리아의 남편이요 예수의 아버지이므로 가톨릭 교회의 가장권을 가지고 계신다”고 했다. 비오 11세 교황은 성 요셉을 공산주의와 싸우는 영적 투쟁의 보호자이며 사회 정의의 수호성인이라고 불렀다. 1955년 비오 12세 교황은 공산주의의 5월 축제에 맞서고자 5월 1일을 ‘노동자들의 수호자 성 요셉 축일’로 정했다. 요한 23세 교황은 성 요셉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보호자로 지정하고 1962년 감사기도 제1 양식에 그의 이름을 넣었다. 성 요셉은 목수, 임종하는 이들, 노동자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백영민2018.03.19
![[숨은 성미술 보물을 찾아서] (6) 남용우의 ‘성모칠고’](//cpbc.co.kr/CMS/newspaper/2019/01/rc/744176_1.0_titleImage_1.jpg)
[숨은 성미술 보물을 찾아서] (6) 남용우의 ‘성모칠고’작가가 살아 있는 성미술 작품… 생생한 증언 들을 수 있어 남용우 작가의 ‘성모칠고’. 작가는 4개의 세로축과 2개의 가로축으로 화면을 나눠 성모 마리아의 일곱 가지 고통을 표현했다. 전람회 출품 작가중 여성 작가는 단 2명 1954년 성미술 전람회에 출품한 23명의 작가 중 여성 작가는 한국화 부문에 출품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안혜택 수녀와 서양화를 출품한 남용우 둘뿐이었다. 그중에서 오늘 소개할 ‘성모칠고’는 남용우(마리아, 1931~)의 작품으로 당시 그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갓 졸업한 최연소 출품 작가였다. 남용우는 1953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한 후 독일에서 스테인드글라스와 모자이크를 공부하고 귀국해 한국 스테인드글라스 1세대 작가로 지금까지 활약하고 있다. 남용우의 성미술 전람회 출품작 ‘성모칠고’ 역시 앞서 소개한 김병기의 ‘십자가의 그리스도’, 김정환의 ‘성모영보’와 함께 가톨릭대학교 전례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어 실물 확인이 가능하며 작가의 증언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성모칠고’는 남용우가 대학을 졸업하고 진명여고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하던 때에 완성한 작품이다. 당시 서울대 미대 학장이던 장발(루도비코)의 추천으로 성미술 전람회에 출품하게 된 남용우는 학창시절 대작(大作)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스승 장발의 가르침에 따라 당시 출품작도 상당히 큰 규모로 제작했다. 그림을 그릴 종이조차 구하기 어려운 때였지만 규모 있는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남대문 시장에서 어렵사리 큰 종이를 구하고 일본에서 공수해온 물감(템페라)으로 작품을 완성했다고 회고했다. 성모님이 아들로 인해 겪게 되는 7가지 고통 표현 작가는 성모성년을 기념하는 전시의 성격에 맞춰 작품의 주제를 ‘성모 마리아의 칠고칠락(七苦七樂)’으로 정했으나 모두 완성하지는 못하고 ‘성모칠고’만 출품했다. ‘성모칠고’는 성모 마리아가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겪게 되는 일곱 가지의 고통을 표현한 작품이다. 즉 △괴로움을 당하리라는 시몬의 예언을 들었을 때 △이집트로 피난을 갈 때 △예수를 잃고 찾아 헤맬 때 △십자가 진 예수를 만났을 때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 앞에 섰을 때 △십자가에서 예수의 주검을 내렸을 때 △숨을 거둔 예수를 묻을 때 겪게 되는 성모의 고통을 한 화면에 담아내고 있다. 작품의 구성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화면의 경계가 뚜렷하게 구분되고 있지는 않지만, 중앙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화면 전체가 4개의 세로축과 2개의 가로축으로 나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화면 중앙 전면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가 자리하고 있고, 그 왼쪽으로는 이집트로 피난을 떠나는 성가족과 피에타, 오른쪽에는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와 무덤 속의 예수 그리스도가 4개로 나뉜 화면에 각각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각 장면은 따로 독립되어 있는 듯하면서도 서로 경계를 넘나들며 화면에 여러 층위를 형성하고 있어 공간에 깊이감을 더하며 상호 연결성이 강조되고 있다. 중앙의 십자가로 나뉜 피에타의 장면과 이집트로 피난을 떠나는 성가족 사이를 관통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른손, 그리고 화면 오른쪽 두 구획에 걸쳐 절반씩 표현된 예수 성심 등이 이와 같은 화면 구성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성모칠고’는 작가의 해석에 따라 비례가 왜곡된 인체 묘사와 십자가를 축으로 한 화면 분할, 그리고 거친 느낌으로 표현된 질감을 통해 현대적인 면모를 드러내면서도 구상적 표현을 기초로 하고 있다. 당시 점ㆍ 선ㆍ 면ㆍ 프리폼(free form) 등 현대 회화의 기초교육이 중요시되고 추상적 경향이 유행하던 때로 남용우 역시 대학 재학 시절 추상 회화에 대한 연구를 많이 진행했지만, 성화를 그리는 데 있어서는 작가 자신의 목소리를 낮추고 신자들이 더 쉽게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구상적인 표현을 도입하고자 노력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성화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경 말씀을 기초로 하여 작품을 대하는 이들이 함께 소통하고 기도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에 끊임없이 나 자신을 낮춰야 한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작가가 작품의 구성 못지않게 깊이 고민했던 부분은 화면의 질감, 즉 마티에르(matiere)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당시 매끈한 비단이나 벨벳의 부드럽고 화려한 질감이 아닌 소박한 무명천이 지닌 질박함과 그 안에 내재된 투명성과 오묘한 깊이감을 일깨워준 스승 장발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화면의 질감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고 한다. 그래서 ‘성모칠고’를 매끈한 붓질 대신 나이프를 이용해 물감을 겹겹이 쌓아올려서 완성했다. 이러한 파토스(Pathos, 주어진 상황에서 표출되는 감정)적인 표현을 통해 작가는 성모 마리아의 일곱 가지 고통을 보다 직접적이면서도 깊이 느낄 수 있게 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작가가 그토록 고민했다는 작품의 마티에르는 지금 제대로 느끼기 어렵게 되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망토와 예수성심을 강조하기 위해서 표현했다는 붉은색도 알아보기가 어렵다. 오랜 세월을 보내면서 작품의 상태가 예전과 달리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증언을 통해 원작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을 따름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작가의 증언을 들을 수 있을 때 작품이 최대한 원작에 가깝게 보수, 복원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래서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여성 작가의 한국 최초의 성미술 전람회 출품작이 오래도록 보존되고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문채현2019.01.16
![[나의 미사이야기] (35)마지못해 나선 순례, 주님 함께하셨네](//cpbc.co.kr/CMS/newspaper/2018/02/rc/711882_1.0_titleImage_1.jpg)
[나의 미사이야기] (35)마지못해 나선 순례, 주님 함께하셨네김광덕(도미니코, 서울대교구 신사동 성베드로본당) 2017년 5월 2~10일 가톨릭평화방송여행사 이스라엘 성지순례단 25명의 일원으로 우리 부부는 인천국제공항을 출발, 장도에 오릅니다. 이스라엘 성지에서 봉헌하는 매일 미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삶을 가장 생생하게 체험시켜주는 여정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언약된 땅의 영화와 함께, 메마른 광야의 옛이야기들까지 더듬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장소마다 말씀과 성전이 있고 신앙 선조들의 유적이 있고, 이들은 실제로 있었던 고고학적 유물로써 살아 있는 하느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길을 걸으며, 그에 관련된 성서를 묵상하며, 매일 성지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부부에게는 오래 간직하고 싶은 미사 이야기가 생겼습니다. 성지순례의 둘째 날 저녁, 순례단은 갈릴래아 호숫가 잔디밭 의자에 둘러앉아서 한사람씩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드디어 우리 부부 차례가 오자 옆자리의 로사리아가 먼저 “사실 저는 성당에 다니기 싫어요. 그래서 이번 성지순례에도 오기 싫었지만 남편이 하도 원하기에 따라나섰어요”라고 했습니다. 나는 자주 듣는 말이었지만 다른 교우들이 많이 당황했을 것입니다.특히 순례단의 한 수녀님은 동행하는 지도 신부님과 면담할 것을 권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순례 칠 일째 되는 날, 예수님이 마지막 숨을 거두신 ‘주님 무덤 성당’을 순례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묻히셨다가 부활하기 전 3일간 계셨던 예수님의 무덤 성당. 빈 무덤 앞에서 순례단은 지도 신부님의 주례로 미사를 봉헌합니다. 은은한 파이프오르간 반주에 맞춰 현지 수사님들이 라틴어로 그레고리오 성가를 부르고, 라틴어 전례 예식으로 창미사가 진행됩니다. 순례단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마음이 타오른 로사리아도 마침내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음날 순례길에서 “그때 왜 눈물을 흘렸던 거야?” 하고 물었더니 생각에 잠겼던 로사리아가 말합니다.무덤 성당으로 향하는 긴 줄에 서서 세계 각국에서 온 수많은 사람을 보며 ‘내가 뭐 그리 잘 났다고 하느님이 하신 일들을 믿지 못한다고 할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나는 놀랐습니다. 뜻밖에도 내가 영세 때 가졌던 생각, 즉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수많은 기적에 의문은 있었지만, ‘전 세계의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 믿으며, 목숨 바쳐 지켜온 신앙을 내가 뭐라고 따질 수 있겠냐’며 세례를 받았는데, 똑같은 말을 로사리아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국내 천주교 성지 111곳과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마무리하면서 돌아보면 국내 성지순례에서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하느님 은총이 있으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믿음이 생겼고, 이스라엘 성지순례에서는 성경 말씀은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무엇보다도 반가운 일은 로사리아가 이스라엘 성지 미사에서 하느님 사랑의 기쁨을 체험했다는 것입니다.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움직이는 우주의 질서 속에서, 알고 보면 우리는 매일매일 기적 속에 살고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해가 뜨고 달이 뜨고, 풀과 꽃과 나무와 바람과 물소리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기적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찌하여 고백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임마누엘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다.(마태 1,24) 평화신문2018.02.21

새 전례서·기도문에 맞춘 「가톨릭 기도서」 새로 나와 주교회의는 「로마 미사 경본」과 「미사 독서」 등 새 전례서를 사용함에 따라 ‘미사 통상문’ 부분을 교체하고, 새로운 전례서들에 맞춰 일부 기도문과 편집 체제를 손질한 「가톨릭 기도서」를 새로 내놓았다. 새 「가톨릭 기도서」는 기도들을 좀 더 찾기 쉽도록, △제1편 주요 기도 △제2편 성월 기도 △제3편 호칭 기도△제4편 여러 가지 기도 △제5편 공소 예식 △제6편 미사 통상문으로 분류해 놓았다. 기도서에 나오는 시편은 「성경」의 시편을 다듬어 모든 전례서에 적용한 ‘전례 시편’을 따랐다. 특히, △위령성월 △비신자들을 위한 기도 △일상적으로 바치는 성인 호칭 기도 △위령기도의 시편을 바꿨다.새 「가톨릭 기도서」는 또 주교회의의 승인을 받은 ‘구원을 비는 기도’와 ‘124위 한국 순교 복자 호칭 기도’를 추가로 수록했다. 아울러 기존 ‘미사 통상문’을 「로마 미사 경본」의 새 ‘미사 통상문’으로 교체했다.호칭 기도 양식도 달라졌다. 전반부와 후반부를 모두 「로마 미사 경본」과 전례서들에서 제시하는 양식으로 통일했다. 일례로 103위 한국 성인 호칭 기도에서 ‘성모 마리아님’ 호칭은 「로마 미사 경본」의 호칭 기도와 통일시켜 ‘천주의 성모님’으로 수정했다.공소 예식도 새 미사 통상문과 일치시키면서 「미사 밖에서 하는 영성체와 성체 신비 공경 예식」의 ‘미사 밖에서 하는 영성체 예식’에 따라 일부를 바로 잡았다. 특히, 복음 낭독 전에 책과 이마, 입술, 가슴에 십자 표시를 하지 않고 “◎주님, 영광 받으소서”라는 환호도 하지 않도록 주의를 일깨우고 있다. 사도좌 추인을 받은 전례서들에서 확정된 기도문과 같은 기원을 비는 기도와 “124위 한국 순교 복자 호칭 기도”를 추가로 수록했다.위령기도는 「장례 예식」과 일치시키고, 시편은 ‘전례 시편’을 적용했다. 설이나 한가위에 할 수 있는 기도문도 추가했다. 그러나 「상장 예식」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상장 예식」의 연도는 계속 유효하다. 이 밖에 일부 기도문들도 「로마 미사 경본」에 따라 통일하고, 변경된 교회 용어들을 적용했으며, 지금까지 써온 기도문들을 존중하면서도 더욱 우리말 예법에 맞게 다듬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평화신문2018.07.10
 15세기 ⑤ - 영성 훈련](//cpbc.co.kr/CMS/newspaper/2018/04/rc/716935_1.0_titleImage_1.jpg)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70) 15세기 ⑤ - 영성 훈련체계적 영성 훈련으로 그리스도 신비에 빠져들다 성경을 체계적으로 묵상하고 그리스도의 인성을 본받고자 한 새 신심 운동은 그리스도의 생애 묵상과 결부되면서 중세 영성생활의 특징으로 자리잡게 된다. 사진은 십자고상을 들고 그리스도 생애를 묵상하는 수도자. 【CNS 자료 사진】 북유럽에서부터 시작해 점점 유럽 전역으로 확산하였던 ‘새 신심 운동(Devotio Moderna)’은 ‘로우랜드(Lowland)’나 ‘라인랜드(Rheinland)’와 같이 사변 신학이 강세였던 지역보다 라틴 민족으로 구성되었던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에서 훨씬 활발하게 실천되었습니다. 특히 성경을 체계적으로 묵상하며 그리스도의 인성을 본받고자 했던 새 신심 운동은 과거와 확연한 차이가 나는 ‘영성 훈련’이라는 방법을 제시했습니다.새로운 기도 방법을 소개하는 몽베어북유럽에서 실천하던 간스포트(Wessel Gansfort, 1419~1489)의 체계적인 성경 묵상 방법이 프랑스에 보급될 수 있었던 것은 얀 몽베어(Jan Mombaer, 1460~1501) 덕분이었습니다. 벨기에 브뤼셀(Brussel) 출신인 몽베어는 간스포트가 저술 활동을 했던 위트레흐트(Utrecht)에 주교좌성당 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1480년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Kempis, 1380~1471)가 수도생활을 했던 즈볼러(Zwolle) 인근에 의전 수도회인 ‘빈데스하임(Windesheim) 수도회’에 속한 ‘성 아녜스 산 수도원’에 입회했으며, 훗날 수도원 원장에 올라서는 새 신심 운동을 익혀 자신의 영성으로 삼았습니다. 1496년 몽베어는 프랑스 내에 빈데스하임 수도회 소속 수도원들을 개혁하자는 프랑스 교회의 요청을 받고 프랑스로 향했는데, 그의 개혁 작업은 성공을 거두기도 했지만 강한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몽베어는 1501년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 지역 리브리(Livry)의 아빠스로 선출되었으나 그 해 연말에 파리에서 사망했습니다.몽베어는 영성 작가로서 엄격한 체계를 지닌 수덕생활을 즐겨 소개했습니다. 특히 몽베어는 그리스도인이 덕행을 발전시켜 완성하고 기도생활을 체계적으로 훈련할 수 있게 하도록 연상 작용을 통해 기억을 쉽게 하는 시구 형태를 이용해서 여러 단계를 묘사했습니다. 몽베어는 저서 「거룩한 묵상과 영성 훈련의 로사이로(Rosetum Exercitiorum Spiritualium et Sacrarum Meditationum)」에서 수도자가 신심생활을 가꾸는 장미 정원에서 성무일도와 성체성사 및 묵상을 어떻게 가꾸어야 하는지 도움을 주고자 특별한 방법을 소개했습니다. 즉, ‘손가락 시편’(chiropsalterium)’이라 불린 기도 방법은 엄지손가락으로 나머지 손가락 안쪽을 문지르며 시편을 읊는 것이었습니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시편 말씀의 내용으로 기도자의 마음을 경건하게 만들어서 성체성사 참여에 도움을 받고 묵상 주제에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간스포트로부터 체계적인 성경 묵상에 영향을 많이 받았던 몽베어의 영성은 훗날 로욜라의 이냐시오(Ignacio de Loyola, 1491~1556)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세 가지 유형의 기도를 소개하는 바르보이탈리아 북동부 베네치아(Venezia) 공화국 상류층 출신인 루도비코 바르보(Ludovico Barbo, 1381~1443)는 1397년 베네치아 석호 섬에 위치한 산 지오르지오(San Giorgio) 아우구스티노회 수도원 임시 원장직을 수행하던 시기에 새 신심 운동을 장려하던 의전 수도회 소속 순회 설교자의 강론을 듣고 새로운 형태의 영성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한편 공동생활 형제회와 같은 삶의 길을 따르던 사람들의 생활 방식에 영감을 받은 바르보는 1404년 그들에게 버려진 수도원을 희사했으며, 곧바로 자신도 그 공동체에 합류했습니다. 모두 성직자로 구성된 새 수도 공동체는 교황 보니파키우스 9세(Bonifacius PP. IX, 재임 1389~1404)에게 승인을 받았으며, 봉쇄 수도회 삶의 모습을 따르려던 수도자들은 수도 서약 없이도 성공적으로 수도생활을 실천했습니다.이 공동체에 합류했고 훗날 베네치아 총대주교가 되는 로렌초 주스티니아니(Lorenzo Giustiniani, 1381~1456)와 성직자와 수도원 개혁 임무를 맡게 되었던 바르보는 그리스도교 묵상과 체계적인 기도를 개혁의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2세(Gregorius PP. XII, 재임 1406~1415)는 개혁 운동의 일환으로 1408년 바르보를 파도바(Padova) 베네딕토회 산타 주스티나 수도원의 아빠스로 임명했습니다. 이때부터 바르보는 베네딕토회 수도자로서 수도원 공동체의 삶을 개혁하는 일을 수행했으며, 그의 노력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결국 다른 수도원들도 그가 제시한 삶의 형태를 따르면서 그의 수도원은 모든 수도회의 중심이 되었습니다.바르보는 저서 「묵상 양식(Modus Meditandi)」에서 세 유형의 기도를 소개했습니다. 즉, 초보 단계에 있는 자들에게 적합한 기도는 소리 기도이고, 진보 단계에 있는 자들에게 적합한 기도는 묵상이며, 완성 단계에 있는 자들에게 적합한 기도는 관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교황 에우게니우스 4세(Eugenius PP. IV, 재임 1431~1447)의 요청으로 바르보가 체계적인 묵상 방법을 가르쳐 주었던 스페인 북부 바야돌리드(Valladolid) 베네딕토회 수도원은 훗날 스페인에서 영성 훈련이 확산되는 출발지가 되었습니다.체계적인 묵상을 가르치는 가르시아바야돌리드 인근 시스네로스 출신인 가르시아 데 시스네로스(Garca de Cisneros, 1455/56~1510)는 1475년 바야돌리드의 산 베니토(San Benito) 수도원에 입회하려고 일찌감치 사회적인 특권의 가능성을 포기했습니다. 1488년 부원장으로 선출된 가르시아는 아라곤의 페르난도(Fernando II de Aragn, 1452~1516)와 카스티야의 이사벨(Isabel I de Castilla, 1451~1504)과 함께 바야돌리드의 수도원이 수도원 의식(儀式)을 개혁하고 중앙집권화하려고 노력하는 동안에 두드러진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하지만 카탈루냐(Catalua)의 몬세라트(Montserrat) 성모 마리아 수도원에 바야돌리드의 수도원 의식을 적용하려고 몬세라트를 방문했던 가르시아는 그곳 수도원은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더 좋다고 판단하고 교황으로부터 자신이 그곳 원장이 될 수 있는 허가를 받고 운영했습니다.가르시아는 1500년쯤 새 신심 운동과 관련된 자료들을 모은 저서 「영성생활을 위한 훈련(Ejercitatorio de la Vida Espiritual)」에서 수도자와 순례자에게 도움이 되는 실천적이고 조직적인 관상 방법을 제공했습니다. 첫째로 정화 주간에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며 거룩한 두려움과 통회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둘째로 조명 주간에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묵상하며 하느님 사랑에 집중하라고 강조했습니다. 셋째로 일치 주간에는 하느님의 속성을 묵상하며 현세를 벗어나 하느님만 섬기기로 결심하라고 언급했습니다. 특히 셋째 주간에 인간 영혼은 사랑의 힘으로 하느님을 향한 상승의 여정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가르시아는 그리스도인이 처음에 그리스도의 인성을 묵상하고, 다음으로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관상하면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신성을 넘어서는 상승의 여정을 체험한다고 했습니다. 결국 가르시아의 노력들은 중세 수도원에서 실천하던 신심생활과 로욜라의 이냐시오가 제시한 심리적이고 분석적인 묵상 체계를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단계를 구분해 실천하던 체계적인 기도 방법은 차차 그리스도의 생애를 묵상하는 것과 결합되면서 근세 영성생활의 특징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체계적인 영성 훈련을 시도하면서 그리스도의 신비에 깊이 들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백영민2018.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