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신앙체험수기] 장려상/ 신앙의 거미열차](//cpbc.co.kr/CMS/newspaper/2020/03/rc/775370_1.0_titleImage_1.jpg)
[제7회 신앙체험수기] 장려상/ 신앙의 거미열차최점순 (헬레나, 서울대교구 용산본당) 일러스트=최단비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대대로 찬미와 영광을 올립니다.”인생의 향기를 가득 실은 기차가 칙칙폭폭 달려간다. 들녘엔 벚꽃이 휘날린다. 내일이 김 토마스 시아버님의 기일에 7남매 형제들이 모이는 날이다. 문경은 선조들이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숨어들어 옹기를 구워 팔아 생활을 했던 곳이다. 구교우 집안에서 태어나신 시아버지는 윗대 어른들로부터 신앙을 물려받아 자식들과 함께 사셨다. 손바닥만 한 구리 십자가를 벽에 걸어 놓고 가족들이 기도드리던 것은 조선 시대에 외국인 신부님이 선물로 주셨다고 했다. 문경 가은이 우리나라 3대 석탄광산이라 땅속에 무연탄을 개발하였다. 사람들이 등 따시게 살았었고 외국 수출도 일등공신이었다. 시골 가는 기차에서 그날의 기억으로 걸어 들어갔다. “형님, 저, 기차 탔어요.”큰동서는 내가 온다는 문자를 받고 유모차를 끌고 역전으로 나왔다. 도회지로 흩어졌던 형제들도 모두 도착했다. 장성한 조카와 손녀들이 넙죽넙죽 절을 했다. 고희를 넘긴 자매 같은 다섯 동서가 반가운 재회를 했다. 점심은 팔도 산해진미로 솜씨 발휘를 했다. 큰형님이 가꾸어 놓은 텃밭에서 냉이와 달래를 캐어 된장국도 끓였다. 대가족이 대청마루에 둘러앉아 모처럼 만에 한솥밥을 맛있게 먹고 성당으로 산책하러 나갔다. 옛날에는 성당으로 가는 길이 구불구불한 논둑길이었다. 지금은 고속도로처럼 뚫려 차들이 씽씽 달린다. 성당 마당에는 변함없이 성모상과 제대 위에 예수님의 십자고상을 모셔놓았다. 수녀님이 낯선 손님들 방문에 깜짝 놀라시며 반가워하셨다. 예수님이 잃어버렸던 양을 찾아 어깨에 메고 환하게 웃으시는 성화에서 시아버지의 얼굴이 겹쳤다. 시아버지는 멀고도 가까운 이웃들을 평생 형제자매로 섬기며 사셨다. 고향 산천의 풍경들과 향수가 서려 있는 기차역, 기와집들, 단골 미용실이 말을 걸어왔다.그 옛날 7남매 형제들이 번성하여 후손들이 40~50명은 족히 넘을 것 같다. 당시에 시아버지는 주일이 되면 하던 일손을 멈추었다. 온 가족이 주일 교중 미사를 드리기 위해 성당으로 향했다. 그분은 증조할머니를 바소쿠리에 짊어지고 앞장을 섰다. 뒤를 따라 아들 며느리, 딸 사위, 손자들로 줄이 이어졌다. 비가 오면 찰흙이 검정고무신에 달라붙어 걸음을 뗄 수가 없었고, 풀숲에 숨어 있던 독사에게 물렸던 아픈 기억도 아렸다. 제일 앞자리에 담요를 깔고 증조할머님을 앉혀드렸다. 혹시 자식들이 빠진 사람이 있나 일일이 인원 파악을 하셨다. 이런 우리 집안 분위기를 동네 사람들은 무척 부러워했다. 대가족이 화목하게 사는 비법이 있는지 물으면 “천주님 덕분”이라고 하셨다. 탄광촌에 취직하러 온 뜨내기 사람들을 따뜻하게 받아들여 대부도 서 주고 영세를 시켰다. 젊은 부부들이 너도나도 아기를 안고 업고 몰려드니 성당 안은 콩나물시루가 되었다. 내가 미사 중에 꾸벅꾸벅 졸면 옷자락을 살짝 당겼다. 돌아보면 시아버님이 빙그레 웃으셔서 얼굴이 홍당무가 되기도 했다. 시댁 가족들은 위계질서를 존중하며 신앙생활을 하며 화목하게 살았다. 겸손한 자세로 성실하게 사는 일상이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길이라고 배웠다. 이런 문화를 보고 불교 신자 부모 밑에서 성장한 내가 천주교에 대해 좋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마음의 자세도 스펀지에 물이 스미듯이 시나브로 젖어들었다.1980년 12월에 서울로 이사를 왔다. 딸은 다섯 살, 아들은 10개월이었다. 1960~70년대에 남편은 군대에 가서 특수 작전 수행 중 돌이킬 수 없는 큰 사고를 당했다. 전쟁의 기억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어둠 속으로 함몰되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부모님의 가슴 위에 다듬잇돌을 올려놓은 것처럼 무겁고 아픈 손가락이 되었다. 남편이 20대에 운동신경이 발달해서 국가대표 사이클 선수였던 프라이버시도 허물어졌다. 매일 아픈 다리와 씨름하는 날들이 힘겨워 “죽고 싶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보다 못한 가족들이 환경을 좀 바꿔보자고 권유를 했다. 마침 막내 시동생이 중장비 회사에 다녔기에 도움을 받아 서울로 이사할 계획을 세웠다. 시아버지는 우리가 서울로 이사 간다는 말을 듣고 불안해서 괴나리봇짐을 걸머지고 버스에 올라타셨다. 다음날 제일 먼저 경로당에 가서 성당이 어디에 있는지 장소를 알아 오셨다. “새 아가, 새 아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라. 저기, 산꼭대기에 성당이 하나 있다고 한다. 아기들 데리고 꼭 찾아가거라. 주님께서 반드시 너희 앞날에 축복을 주실 것이다. 내 말 잘 알아들었지?” 당부하셨다. 긴 겨울이 꼬리를 감추고 봄바람이 훈훈하게 불었다. 아들은 업고 딸을 걸려서 산꼭대기에서 찾은 성당은 무덤들이 즐비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언덕 밑에 71위 무덤에 묘비가 새겨져 있었다. 영어로 출생지, 나이, 이름, 사망한 날짜가 적혀 있었다. 풍선처럼 부푼 내 기대는 허망하게 무너졌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니 낡은 성당 천장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한참 후에 신자들에게 들은 이야기는 한국 천주교회 초석을 놓은 프랑스 선교사들의 묘지였다. 평생 한국인들의 영혼 구령을 위해 살다가 돌아가신 후에 이곳에 묻혔다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선교사들의 일생을 곰곰이 마음속에 되새김질했다. 만약에, 어디엔가 천국이 있다면 이곳이 아닐까 싶었다. 내가 시골 출신이라 서울 생활에 익숙하지 않았다. 이웃들을 내 마음처럼 믿어주고 받아주었지만, 오히려 순진한 나를 이용만 했다.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이방인처럼 30대 중반에 세끼 밥을 먹기도 어려운 현실은 아득했다. 자식들의 앞날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 인생에 무엇이 제일 중요한가? 돈을 많이 벌어 부귀영화를 꿈꾸어 볼까? 아니면, 가난하게 살아도 자식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으로 신앙을 물려 줄 것인가? 긴 장고 끝에 내 발걸음은 선교사들의 무덤으로 향했다. 이국땅에서 평생을 헌신한 삶이 여기서 안식을 누리고 있었다. 무덤 잔디 사이의 잡풀을 뽑아주며 인생에 대해 질문을 드렸다.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니 자기중심적인 욕망들은 떨어졌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우선순위는 첫째 자식들을 위해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사나, 주민등록도 옮기지 않기로 했다. 둘째 아파트 평수를 늘리기 위해 부평초처럼 떠돌지 않기로 했다. 나는 성경 창세기를 공부하는 중이었다. 아브라함의 종이 이사악의 신부를 데려오는 과정을 통해 하느님을 신뢰하는 절대적인 믿음을 느꼈다. 내 가족의 꿈을 실현해 주실 수 있는 주님을 믿고 그곳을 바라보며 달동네에 눌러살았다.서울에는 박해하던 친정엄마도 없고, 남편도 서서히 모르핀에서 빠져나왔다. 직장에서 자주 이직을 하였으나 들어오는 수입으로 입에 풀칠은 했다. 토요일에는 아이들과 손을 잡고 어린이 미사를 드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결혼할 때 관면 혼배를 했지만, 신앙에 대한 교리는 잘 몰랐다. 딸은 시골에서 유아 영세를 시켰고, 아들은 내가 교리를 받고 영세할 때에 나란히 유아세례를 받았다. 내 생에 이런 날이 다 있다니, 혹시 꿈은 아닌지 볼을 꼬집어보기도 했다. 주일학교 어린이 미사에 몇 년 동안 다니다가 딸과 아들이 첫영성체를 했다. 그 날의 의젓한 모습은 온 세상을 다 얻은 듯이 기뻤다. “주님, 감사합니다.” 하루에도 수백 번 감사노래를 불렀다. 내 믿음은 봄볕을 받은 새싹처럼 무럭무럭 자라고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찼다. 매일 새벽 미사 드리며 성체를 모실 수 있었고 복음 말씀도 가슴에 새겼다. 남들 보기에 우리 사는 형편이 기쁘거나 즐거울 조건을 하나도 갖추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어느새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아버지의 품은 항상 따사롭고 든든했다. 내가 선천적으로 단순, 순박해서 주님께서 지혜와 용기를 주셨다고 생각되었다. 달동네에 말뚝을 깊게 박고 어린아이처럼 현실적인 문제를 모두 주님께 의탁 드렸다. 이런 선택이 내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하늘과 가까운 판자촌에는 놀이터가 없었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넓은 성당 마당이 있었고 주일학교 친구도 많이 생겼다. 딸과 아들이 무럭무럭 성장해서 3, 4학년에 올라갔다.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주일학교 자모회 봉사활동, 구역장, 군종후원회 지회장, 레지오 마리애에 입단하고 성령 세미나를 몇 번 받은 후에는 변화되었다. 특히 지인의 추천으로 성 프란치스코의 회개하는 삶과 영성적인 면에 감동받았다. 성인의 발자취를 따라 3회원으로 입회를 했다. 양성교육을 받고 1년 후에 유기 서약을 받게 되니 수도자가 된 기분이었다. 세속에 살면서 ‘복음에서 삶으로, 삶에서 복음으로’ 여정으로 매일 시간 전례를 바치고 프란치스칸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었다. 산비탈 미끄러운 골목길에 꼬마들이 연탄재로 툭툭 공차기를 했다. 이웃 사람들이 누구네 집 밥그릇 숟가락이 몇 개인지 훤하게 알았다. 대문을 열어놓아도 도둑이 가져갈 것이 없었다. “주님, 당신은 제가 가족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우리 가족을 사랑하시고, 제가 우리 형편을 아는 것보다 더 잘 알고 계시지요? 아이들이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축복해주십시오”라는 한 가지 청원만 드렸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내 처지만,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건강한 몸이 큰 재산이었다. “주님, 제 노동력을 봉헌합니다. 받아 주십시오.” 매일 제대 청소와 제의방 성물들을 닦고 주일학교 교사들에게 밥을 해주었다. 엄마가 성당에서 일하는 동안 딸, 아들을 넓은 마당에 풀어놓았다. 또래 친구들과 성직자 묘지 봉분 사이로 숨바꼭질하며 놀았다. 간식이란 말은 모르기 때문에 배가 고프면 밥 달라고 달려왔다. 아침에 준비해 간 전기밥솥을 꽂아 놓고 점심, 저녁을 먹이는 동안 3학년에 올라가서 아들이 첫영성체를 한 후에 복사를 섰다. 긴 복사 옷을 입고 아들이 미소를 지으며 신부님 뒤를 촐랑촐랑 따랐다. 제대 뒤에 앉아 양손을 모으고 바들바들 떨었다. 중3 때까지 복사를 서다가 졸업을 했다. 친구 20명과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예신학교에 입학을 했다. 예신 고3에 올라갔을 때에는 친구들은 모두 떠나고 아들 혼자 남았다. 그리고 성당 전례부에서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봉사했다. 고슴도치 엄마는 자식이 복사 서는 모습만 보아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내가 40대에 부인병인 종양이 생겨서 종합병원에서 큰 수술 후에 퇴원했다. 아침까지 온몸에 약 기운이 퍼져 비몽사몽 했다. 어디선가 은은하게 들려오는 소리, 아들이 새벽 미사에 읽을 성경 말씀을 연습하는 중이었다. 내가 평소에도 가끔 들었지만, 수술용 마취에 취해 필름이 붙었다가 끊겼다가 했다. 예수님께서 고향 마을 회당에서 두루마리를 펴시고 읽으셨던 대목이다. 이사야 예언서 61장 1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에게 해방을 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아들이 이 성경 구절을 읽는 순간 큐피드의 화살처럼 가슴에 꽂혔다. 수십만 개의 은하수가 한꺼번에 머리 위로 쏟아지고 귀가 뻥 뚫렸다. 이 소리가 어디에서 들려오는가? 내가 죽지 않고 살아났단 말인가? 청량하게 낯익은 목소리는 아들 방에서 또박또박 들렸다. 배에 수술한 부위가 실밥에 당겨 일어서지도 못하고 무릎을 질질 끌며 배밀이로 방문에 귀를 대고 들었다. “주님, 이 복음 말씀을 평생 들을 수 있도록 자비를 베푸소서. 저는 오늘 이 말씀이 제게 이루어지시길 믿습니다.” 얼마 후에 아들은 예신학교 3년을 졸업하고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 들어갔다.“사랑하는 아들을, 당신께 봉헌 드립니다.” 아들이 신학교에 입학하는 날이다. 친구와 어깨동무하고 교리실로 들어갔다. 나는 성모상 앞에서 입학 시간을 기다리며 마음을 졸이던 중이었다. 그때 아들 친구 한 명이 달려와서 안절부절못했다. 내가 “무슨 일이야, 어서 말해봐!” “어머니, 큰일 났어요” 했다. 불길한 예감이 적중하듯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여러 명이 학사님 축하 헹가래를 하다가 땅에 떨어졌다”고 했다. 예수님이 가시관을 쓰시고 피를 흘리시던 상황을 재현해놓은 듯, 흰 와이셔츠와 검은 양복 위로 장미꽃처럼 검붉은 피가 줄줄 흘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해맑게 웃었건만 얼굴이 백지장같이 엄마 발 앞에 푹 쓰러졌다. 나는 고장 난 형광등처럼 번뜩번뜩 떠오르는 화살기도로, “주님, 이 고통을 당신께 의탁합니다.” 김OO 베드로 형제님의 도움으로 차에 태워 가까운 병원으로 달려갔다. 찢어진 머리를 몇십 바늘을 꿰매고 아랍인 양머리처럼 붕대를 칭칭 감고 입학식장에 10시까지 도착했다. 입학식을 마치고 다시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갔다. “뇌 손상을 지켜보자”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 수많은 검사는 피를 말리며 죽음의 문턱까지 들락거렸다.‘복은 홀로 오고 고통은 쌍으로 온다’는 말처럼, 남편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병이 재발했다. 현실적인 어려움과 육신을 갉아먹는 통증에 희망을 잃고 온종일 벽만 바라보았다. 나는 일상을 접고 성당에 홀로 앉아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을까? 그이는 결혼할 당시에 성격도 좋고 누구보다 자상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보훈처에서 상이군인들에게 지원해주는 혜택으로는 부족했다. 수시로 후유증에 시달리며 전쟁 같은 날이 이어졌다. 온몸에 박힌 파편들이 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힘들게 했다. 수족을 절단해야 하는 위기에 내몰려 모르핀을 맞지 않으면 견디기가 힘들었다. 아, 내 생에 죄가 있다면 친정엄마의 반대에도 천주교 신자인 남편과 결혼을 했다는 것이다. 서울 올라와서 예수님을 믿고 사는 것이 행복한데도 친정엄마를 뵐 면목이 없어 결혼한 후 10년 동안 발길을 끊었다. 비단이 씨실과 날실이 직조되듯이, 삶의 여정도 때로는 명암이 엇갈리고 고통과 기쁨이 직조되어 인격적으로 성장하는 것 같다. 거미열차 앞에 가족들이 모였다. 고향 방문 기념으로 조카가 ‘문경 석탄박물관’ 입장표를 사주었다. 폐광을 개발하여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거미열차를 운영하며 탄광 굴속으로 안내했다. 표를 받아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추억문을 열었다. 45년 전에 시아버지는 약혼한 나를 성당으로 데리고 갔다. 대자, 대모를 세우고 남편과 관면혼배를 시키셨다. 주례 신부님이 신랑 신부에게 혼인 서약과 사랑의 증표로 반지를 교환하고 혼배 미사를 올렸다. 1년 후에 딸이 태어났고 3년 후에 아들이 태어났다. 시아버지는 손자 이름을 밝을 명(明)으로 짓고 해와 달처럼 비추라는 뜻이라고 하셨다. 내게는 천주교 미사 전례가 낯설었다. 시집살이하는 동안 신앙과 믿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가족들을 따라 성당에 다녔다. 어릴 적 친정엄마에게 예수 믿는다고 혹독한 박해를 받았던 기억이 옹이처럼 박혀 있었다. 신앙이란 무엇일까? 지난 역사가 말해준다. 박해를 받을수록 신자들은 목숨을 바쳐 순교의 꽃을 피우며 후손들에게 물려주었다. 지금도 유년시절에 즐겁게 예배당에 다녔던 그리움을 간직하고 산다. 친정 동네 언덕배기에 작은 예배당이 하나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예배당 신자들이었다. 성탄절에 또래 친구들을 따라가면 돌사탕과 라면땅을 주었다. 그러나 큰오빠가 결혼한 후 집안 분위기가 완전히 살벌하게 바뀌었다. 도회지에서 선생님을 하던 올케는 열렬한 개신교 신자였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문전옥답을 한 떼기씩 팔아 십일조와 감사 헌금을 내면서부터 탄탄했던 살림살이가 거덜이 났다. 그 후에 올케는 큰오빠와 대구로 이사하였고 시부모님 집에는 오지도 않고 소식이 끊겼다. 그때부터 친정엄마는 가족 중에 누구라도 예수를 믿는다는 말만 들어도 입에 거품을 물고 경기를 했다. “이 때려죽일 년, 너, 예배당에 또 갈거야. 대답해.” 내게는 친정엄마가 가혹한 박해자였다. 나이가 어려도 예수님을 믿으면 평화가 온다는 것을 조금은 알고 있었다. 서슬 퍼렇게 다그쳐도 나는 “예수님을 믿겠다”는 말을 했다. 대답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날벼락을 쳤다. 양동이의 얼음물을 머리에 덮어씌우고 밖으로 쫓아냈다. 딸이라도 예수 믿는다고 하면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 다음날 성경과 찬송가를 소죽 끓이는 아궁이에 불살라 버렸다. 엄마의 오랜 박해는 시간이 갈수록 모질어졌다. 동지섣달 문밖에서 추위에 떨다가 손발이 동상에 걸리면 콩비지로 부기를 뺐다. 모녀는 갈등의 골이 나날이 깊어졌다. 우연히 지인의 소개로 남편을 알게 되어 사귀다가 결혼하기로 했다. 딸이 예수 귀신에게 홀렸다며 무당을 불렀다. 무당은 바가지를 대문 앞에 엎어놓고 예수 귀신 쫓아낸다면서 “예수 귀신 썩 물러가라”고 말을 하며 칼을 던져서 꽂아 놓았다. 거미열차는 벌집같이 구멍이 숭숭 뚫린 내 마음을 끌고 캄캄한 터널로 향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굴속을 들락거리며 관광객들을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지점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 시절 광부들의 생활상을 재현해놓은 얼굴에 탄가루로 분칠한 모습이 펼쳐졌다. 갱 바닥에 앉아 양은 도시락으로 허기를 달래며 석탄을 캐내는 과정은 코끝이 쨍했다. 비좁은 양쪽 벽에는 모형 왕거미들이 까만 눈알을 빤짝거리며 꼼지락, 꼼지락 “투 둑, 투 둑” 소름이 확 돋았다. 광부들의 생활상을 해설하는 방송은 흐릿하게 들리고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이 현실처럼 느껴졌다. 어린 시절 엄마의 박해가 악몽처럼 되살아났다. 굴곡진 내 인생을 반영하듯이 두려움과 공포가 엄습했다. “주님, 살려주세요.” 발버둥 칠수록 깊은 수렁으로 빨려들었다. 순간, 어디선가 빛의 속도로 내 몸을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남편의 홀벌이로는 네 식구 먹고살기도 빠듯했다. 학원을 보내는 일은 꿈도 꾸지 못했다. 대신에 아이들이 성장하는 데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안내자 역할을 하기로 하고 인격 형성에 도움이 될 신앙교육을 골고루 접할 기회를 주었다. 주보에 나오는 어린이 피정 프로그램을 잘 활용해서 여름 방학, 겨울 방학에 몇 군데를 신청했다. 비용은 적게 들이고 교육의 효과는 최고로 얻을 수 있었다. 결국은 우리 아이들의 인성교육은 교리 선생님들이나, 피정을 지도하시는 선생님 덕분이었다. 그분들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에 힘입어 구김살 없이 정서적으로 잘 자랄 수 있었다. 주님의 선하신 은총으로 아이들은 도시 환경에 적응을 잘했다. 하지만 남편이 수시로 발병을 하니 회사에 오랫동안 근무를 못 하고 자주 이직을 하게 되어 안정적인 생활을 못 했다. 내가 집에서 할 수 있는 부업, 인형 눈을 붙이기, 전자부품 끼우기, 시장에 물건 나르기 등등 일거리를 찾아서 밤낮으로 열심히 했다. 억척 똑순이로 살다 보니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쨍하고 해 뜨는 날이 찾아왔다. 1980년대 성령 세미나가 유행처럼 번졌다. 지인의 권유로 남편과 나는 OO대학 마리아홀에서 아이린 조지 여사의 세미나에 참석했다. 미사 중에 신자들의 뜨거운 환성이 터져 나왔다. 남편도 온몸에 신비한 변화가 느껴진다고 했다. 그날 성령의 은혜로 영적, 육적 치유를 받았고 세상을 다 얻은 듯이 만사형통이 될 듯했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대로 두 마리 토끼는 잡을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남편의 말과 행동이 180도로 돌변했다. 불같은 열정으로 성당에 봉사와 직장 동료, 친척들, 지인들 아기 돌잔치까지 뛰어다니며 챙겼다. 특히 어려운 직원들이 부모상을 당하면 월급봉투를 통째로 불우이웃돕기라며 기부를 했다. 남편은 새 생명을 다시 얻었다는 감사함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솔선수범했다. 그러나 월급 수입이 1000원이면 지출은 3000원을 쓰고도 모자랐다. 과도한 씀씀이 때문에 가계에 주름이 생기고 부부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 “오늘 걱정은 오늘만 하고, 내일 걱정은 내일 하라는 말씀을 읽어보지 못했느냐?” 성경을 내 얼굴에 들이밀었다. 나는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형편에 맞게 정도껏 해야지. 그이는 내 말을 귓전으로 흘리고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퍼주고 쏟아주며 수십 년을 살았다. 우리 집을 덮었던 먹구름이 서서히 걷혔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돌아간다는 안도의 숨을 쉬는 중이었다. 여름 방학을 앞두고 아들이 신학교 1, 2학기에 연극을 했다. 열광하는 관객들 앞에서 무대 뒤 난간으로 떨어져서 허벅지가 부러졌다. 깁스한 다리에 목발을 짚고 신학생 세 명의 부축을 받으며 대문을 열었다. 이를 어쩌나, 주님 이를 어쩝니까? 방학 동안 엄마 어깨에 부축하고 병원을 오가며 물리 치료를 다녔다. 학교로 복학을 한 후에 부러진 다리가 덜 낳은 상태로 군에 입대했다. 자식이 고된 훈련을 어떻게 견디는지 기도만이 숨 쉴 수 있었다. 마침 내가 군종후원회 지회장 10년 만에 군종교구장 정명조 주교님을 모시고 전방에 위문 방문을 갔다. 대대장 뒤에 까까머리에 군복을 입고 씩씩하게 걸어왔다. 낯익은 모습을 보니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다. 먼저 엄마를 발견한 아들이 입은 귀에 걸고 눈을 찡긋했다. “주님, 당신은 저보다 아들을 더 사랑하시고 잘 돌보십니다. 감사합니다.” 군 복무를 마치고 자랑스럽게 제대했다. 주님의 은혜로 복학한 후 4, 5학년에 독서직, 시종직, 부제품을 받았다. 거룩한 부르심을 받은 아들이 주님의 크신 자비에 힘입어 9년 만에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사제품을 받기 위한 준비를 했다. 동기 사제 26명과 주님의 뜻대로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기 위해 땅에 엎드려 있다. 추기경님과 주교님들, 수백 명 선배 신부님들, 새 신부님들, 부모ㆍ형제 지인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엄숙한 사제 서품식을 했다. 그동안 지도 교수님들과 본당 신자들, 지인들, 학교 선후배 선생님들의 한결같은 사랑과 기도 덕분이었다. 나는 신부 부모님 석에 앉아 장엄한 광경을 바라보며 주님, 감사합니다. 저는 당신의 부르심을 받기 전에는 온갖 허물로 누벼놓은 부끄러운 삶을 살았음을 고백하고 회개를 했다. 주님께서는 제 남은 인생을 더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기도하라고 큰 선물을 주셨음을 감사를 드렸다. 아들 신부가 강남에 있는 성당에 첫 발령을 받았다. 출가한 몸이라 부모가 아무리 보고 싶어도 얼굴 한번 볼 기회가 없었다. 엄마 손으로 따끈한 밥 한 끼를 해 먹이지 못하는 마음은 늘 안타까웠다. 어느 주일 날, 몰래 그 성당에 찾아가서 기둥 뒤에 숨어서 미사를 드렸다. 치마 입은 남자가 되어 수단 자락을 휘날리며 뜨거운 열정으로 강론하는 모습에 꽂혔다. 내 삶 속에 밀려드는 고통이나 슬픔, 기쁨이나 행복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가 버거웠다. 미사를 드리다가 갑자기 몸과 마음이 사시나무 떨리더니 깊은 심연 속으로 몰입되었다. 성모님이 사촌 엘리사벳을 방문한 후에 불렀던 마니피캇이 은은하게 성전 안을 가득히 채웠다. 한 참 후에 정신을 차렸다. 아들 신부가 미사 중에 기둥 뒤에 숨어 있는 엄마를 알아보았다. 신자들과 인사를 나눈 뒤에 점심을 사주었다. 밥맛이 꿀맛 같았던 기억은 언제나 생생하다. 보좌 신부 2년을 마치고 소임을 받고 새 부임지로 갔다. 사제 아들을 둔 엄마의 새가슴은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자나 깨나 조마조마했다. 시집살이 어디 다른 데가 있을까? 새벽에 전화벨이 길게 울렸다. 허둥지둥 달려가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신부님 어머님이세요? 네, 여기 OO성당인데요. OOO 신부님이 장례 미사를 드리다가 쓰러졌어요. 전화기를 손에 든 채 지진에 직격탄을 맞은 듯이 혼줄을 놓아버렸다. “주님이시여, 주님이시여, 제가 무엇을, 더 어디까지 해야 합니까?” 남편이 “여보, 누구 전화야?” “잘못 걸린 전화에요.” 남편을 평소처럼 출근을 시켰다. 사제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사는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영혼 구령을 위해 사람들을 섬기라는 사제직이다. 주님, 이 고통을 당신께 봉헌합니다. 저는 주님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이번에도 주님의 뜻이 있을 거야. 미카엘, 라파엘, 가브리엘 천사들을 부르며 어둠을 몰아냈다. 모심기하던 아낙네같이 부스스한 몰골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실 문에 걸린 팻말에는 절대 금식, 절대 안정이라고 적혀있었다. 문을 살짝 열었다. 아들은 고열에 시달리다가 실눈을 떴다. “괜찮니? 엄마다. 엄마. 모두가 내 기도가 부족한 탓이다.” 아기처럼 엄마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거듭되는 시련 앞에 사제 엄마의 수천, 수만 번의 주모경은 골수를 녹여내는 기도로도 역부족이었다. 그날 이후 사제, 성직자들은 많은 신자의 기도로 살아간다는 말이 뼛속까지 느껴졌다. 벌써, 사제품을 받은 햇수가 15년 차를 넘기고 보니 초심을 잃지 않도록 간절한 엄마의 기도는 다시 첩첩산중으로 향한다. 어느 해인가. 친정엄마가 85세가 되었을 때 치매로 서울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다. 평생 불교 신자였던 엄마가 천주교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무리였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내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확신이 섰기에 이 기회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서울로 모시고 온 다음 날부터 체중 85㎏인 엄마를 껴안고 모녀는 예비자 교리를 받기 위해 일 년 동안 행복한 동행을 했다. 세례받기 일주일 앞두고 주모경, 영광송, 세례명 ‘마리아’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외워도 소귀에 경 읽기였다. 본당 보좌 신부님이 아무리 가르쳐드려도 진전이 없었다. 어머님의 신앙 교리를 잘 시켜드리라는 말씀을 하시고 세례를 주셨다. 천지개벽이 일어났다. 매일 밤, 잠꼬대는 “제 엄마를 구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남편도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머리에 꽃을 꽂은 여자처럼 벽에 걸린 십자가만 보아도 기뻐서 눈물이 쏟아졌다. 나를 그토록 박해했던 엄마가 세례를 받으시고 예수님의 성체를 모시다니…. 주님, 당신은 정말 사랑이시고 자비로우십니다. 모녀의 50년간 쌓인 앙금을 털어내는 회개는 가슴에 박혔던 옹이도 쏙 빠졌다. 이제 주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난 엄마와 마주 앉아 옛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가슴이 먹먹했다. 첫영성체를 입에 받아 모시고 엄마가 처음 한 말은 “예수님이, 부처님보다 힘이 더 센 것 같다”고 했다. 몇 년 후에 마리아 세례명을 달고 편안한 모습으로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지난 수십 년을 돌이켜보니 나를 힘들게 했던 시간들은 모두가 축복의 징검다리가 되었다. 혹독한 신앙의 박해를 통해 기도드리며 예수님께 한 발씩 가까이 갈 수 있었다. 엄마와 남편의 영혼 구원을 위해 바친 40년간 기도와 미사, 성사, 성체조배는 영성적으로 성장시켰다. 그 시간들이 밑거름이 되어 주님과의 사랑의 거리를 한 뼘 간격으로 좁힐 수 있었다. 돈이 많은 것이 행복의 조건은 아닌 것 같다. 나의 주님과 동행하며 사는 삶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싶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말처럼, 내 딸이 엄마의 반대에도 불교 신자인 사위를 만나 결혼을 했다. 사위 사랑은 장모님이라 했던가? 결혼을 반대했던 마음이 무색할 정도로 겪을수록 정감이 가고 어디다 내놓아도 부족함이 없는 속이 꽉 찬 사람이었다. 그리고 연년생 외손주들이 삼남매가 태어났다. 나는 맞벌이하는 딸을 대신해서 사랑스러운 손주들을 키웠다. 그 옛날 시어머니가 손주들을 유아 영세시키는 모습이 떠올랐다. 손자들에게 유아 영세와 첫영성체 시키는 일은 내 몫이었다. 불교 신자인 사돈댁의 구원을 위해 몇 년 동안 기도로 마음의 준비를 했다. 사돈 내외분을 찾아뵙고 손주들에게 유아 세례를 시킬 수 있도록 동의를 구했다. 손주 3명을 한 번에 유아 세례를 시켰던 벅찬 감동은 세월이 흘러도 잊을 수 없다. 몇 년 동안 손주들을 데리고 토요일 저녁 주일 미사를 드렸다. 큰 손녀딸이 3학년에 올라가서 첫영성체를 한 후에 복사를 섰다. 복사 옷을 입고 머리 꽁지를 망으로 씌우니 앙증맞다. 신부님 뒤를 따라 제대 위에 올라갔다. 미사 중에 야무지게 종을 땡, 땡 치는 모습을 보고 눈물이 글썽거렸다. 오래전에 아들이 복사 섰던 그 날의 설렘으로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어쩌면 이리도 사랑스러운지 마음이 뿌듯했다. 아이들 3명을 태우고 폭설을 뚫고 달리는 도로 빙판은 차바퀴가 찌직, 헛돌았다. 손녀가 복사 시간에 맞추어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브레이크와 액셀러레이터를 번갈아 밟으며 힘차게 달려갔다. 거미열차는 탄광 지하 수백㎞를 돌아 나왔다. 시아버지가 손수 지으신 고택에는 서까래가 나팔을 불고 뒤란에는 파란 이끼가 영토를 넓혔다. 사랑채 방문을 여니 어두침침한 방에 흑백사진이 벽에 걸렸다. 추억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장독대와 텃밭에는 봄볕을 받아 파랗게 쏙쏙 올라왔다. 마당 한쪽 우물을 덮은 뚜껑 위에는 두레박이 주인처럼 덩그러니 입을 벌리고 있다. 목을 쭉 빼고 우물 속을 들여다보니 파란 하늘이 통째로 들어앉았다. 시아버지의 휘하에 다섯 동서가 손톱이 빠지도록 밭에 돌을 골라냈던 아린 기억들이 찰랑찰랑 속삭였다. 신앙의 거미열차는 객실을 수없이 늘리며 먼 길을 달려왔다. 주님의 섭리 안에 증조할아버지부터, 시아버지와 7남매의 자식들, 아들 손주들까지 5세대를 이어왔다. 김 토마스 시아버지가 신앙의 뿌리를 튼튼하게 심어 주지 않았다면, 내게 오늘 같은 영광스러운 일이 어찌 있었을까? 대대 물려주신 녹슨 구리 십자가는 하느님이 동행해 주셨다는 증거가 되었다. 바통을 물려받은 자식들도 미래를 향해 칙칙폭폭 힘차게 달릴 것이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만세 대대로 찬미와 영광 올립니다.” 아멘최점순 헬레나(서울대교구 용산본당) cpbc2020.03.18

주님 부활은 우리도 부활할 수 있다는 희망의 근거주님 부활 대축일 /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부활하셨나 빈 무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아니더라도 부활의 중요한 징표임은 분명하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주님 무덤 성당. 가톨릭평화신문 DB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사도 9,5) 바오로 사도가 회심 전 그리스도인을 박해하기 위해 다마스쿠스로 가던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하고 한 질문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 토대이다. 주님의 부활은 신앙으로 완전히 이해할 수 있고, 더욱이 바오로 사도처럼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보았던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아 예수님께서 실제로 부활하셨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성경의 답과 부활 시기 전례에 대해 정리했다.주님의 부활은 빈 무덤과 목격 증인들의 증언에 기초한다. ▨ 빈 무덤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보았던 여인들이 “주간 첫날 매우 이른 아침”(마르 16,2) 예수님께서 묻히신 무덤에 갔다가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목격했다. 빈 무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아니더라도 부활의 중요한 징표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네 복음서는 주님 부활의 첫 표징으로 ‘빈 무덤’을 소개한다. 네 복음서는 주님께서 실제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고, 사도들뿐 아니라 대사제 가야파와 많은 유다인뿐 아니라 로마 총독 빌라도와 로마 군인들조차 예수님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고 명시하고 있다. 주님의 무덤은 골고타 근처에 바위를 깎아 만든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의 새 무덤이었다. 그곳은 무덤이 즐비한 채석장으로 예루살렘 성벽 밖에서(히브 13,12) 도성에 가까운(요한 19,20) 성문에 이르는 큰길(마태 27,39; 마르 15,22)에 있었다. 주님의 시신이 안치된 무덤 입구는 큰 돌로 봉인됐고, 성전 경비병들이 지켰다.사실 주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지만 빈 무덤은 여러 사람이 목격했다. 마리아 막달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와 베드로 사도를 비롯한 제자들이다. 심지어 예수님을 죽인 주동자들인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은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는 경비병들의 보고에 ‘제자들이 훔쳐 갔다고 소문을 퍼뜨려라’고 지시한다(마태 28,11-15). 이는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마저 무덤이 비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 부활하신 주님의 목격자들 부활하신 주님은 사람들에게 직접 나타났다. 복음서와 사도행전,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지상에서’ 40일 동안 사도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시어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수위권과 사명을 부여하셨으며, 함께 음식을 나누셨다고 증언하고 있다. 마리아 막달레나와 베드로를 비롯한 열두 사도, 엠마오의 제자 등이 부활한 예수를 만났다. 또 바오로 사도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한 번에 500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나타났다(1코린 15,6)고 증언하고 있다.부활하신 주님은 시ㆍ공간을 넘어 원하는 곳에, 원하는 때에 나타나셨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시ㆍ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다는 것은 부활이 물리적ㆍ역사적 차원을 넘어서는 초월적 사건임을 알려준다. 초월적 사건이란 하느님께서 일으키신 사건으로, 신앙의 신비에 속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빈 무덤이라는 표징과 부활하신 예수님을 사도들이 만났다는 사실로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확인되지만, 역사를 초월하고 넘어선다는 면에서 부활은 여전히 신앙의 신비의 핵심에 머물러 있다”(646~647항)고 가르치고 있다. 무엇보다 극적인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들이 놀라운 영적 변화를 일으켜 “주님께서 부활하셨다”고 모든 이에게 선포한 사실이다. 그 증거는 예수님 부활의 첫 선포자인 베드로 사도의 오순절 설교(사도 2,14-36)에서 확인할 수 있다. 베드로 사도는 시편 16편 9-11절을 인용하면서 다윗의 시신이 남아 있는 무덤은 부활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증거이듯, 주님의 빈 무덤은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사도 2,32)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 부활은 그리스도인의 희망바오로 사도는 주님의 죽음과 부활에 비춰 그리스도인의 죽음과 부활을 이해했다. 그는 주님께서 부활했기에 우리도 부활할 수 있다고 선포했다.(1코린 15,12-13 참조)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은 한 몸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의 부활은 우리도 부활할 수 있다는 희망의 근거가 된다.주님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시한다. 하느님 안에서 완성될 종말에 희망을 거는 그리스도인은 ‘지금 여기’의 삶에 충실한 가운데 종말에 궁극적으로 완성될 하느님 나라에 희망을 둔다. 이 희망은 그리스도인에게 죽는 순간까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도록 이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현재의 삶의 자리에서 부활을 사는 것이다. 따라서 부활은 매일 일어나는 사건이다. ▨ 부활 시기가톨릭교회는 주님의 부활을 기념해 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부터 부활의 신비를 완성하는 성령 강림 대축일까지 50일간을 부활 시기로 지낸다. 올해는 4월 12일부터 5월 31일까지다. 교회는 이 시기 부활 팔일 축제와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40일 되는 날에 주님 승천 대축일(지역 교회에 따라서 부활 제7주일에 지내기도 함)을, 그리고 주님께서 부활하신 지 50일이 되는 날에 성령 강림 대축일을 지낸다. 부활 시기 전례의 특징은 ‘알렐루야’를 노래하며 하느님께 감사와 기쁨을 드러내는 데 있다. 사순 시기에 금지했던 ‘대영광송’과 ‘알렐루야’를 다시 노래한다. 사제는 ‘기쁨’과 ‘새로 태어남’을 나타내는 백색 제의를 입는다. 부활하신 주님을 상징하는 부활초는 평일에도 전례를 거행할 때마다 제대 옆에 켜 둔다. 또 부활 시기에는 부활한 그리스도를 찬미하며 부활 삼종기도를 서서 바친다. 한편, 부활 제2주일부터 부활 제7주일까지는 주일 복음과 제1독서의 주제가 일치한다. 제1독서는 사도행전을, 제2독서는 전례력으로 가해인 올해엔 베드로의 첫째 서간을 읽는다. 복음은 요한 복음을 봉독한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0.04.08

부활시기, 마음에 꽃피울 ‘시의 향연’화살시편/ 김형영 지음 / 문학과 지성사 / 9000원 외 시(詩)는 세상을 그리는 글이다. 가톨릭 신자 시인들이 그려낸 글은 곧 주님이 창조한 피조물을 새롭게 예찬한 작품이 되겠다. 봄과 함께 찾아온 부활시기, 이들의 작품들을 만나보자.김형영(스테파노) 시인에게 창조의 원동력은 성경적 상상력과 직관의 힘에 있다. 그는 성경 구절 표현과 자신의 삶을 자유로이 조화시켜 작품으로 승화시켜왔다. 한국가톨릭문인회장을 지내기도 한 그는 사도행전에 표현된 스테파노의 순교를 읽고, ‘하늘을 우러러 님을 보았기에 / 자신을 괴롭히는 돌팔매를 / 온몸으로 받아낸 순교의 꽃이여’라며 노래했다. 그는 ‘화살시편’이라 이름 붙인 30여 편을 비롯해 작품 70여 편으로 삶과 신앙의 접점을 찾고 있다.한참 고향의 추억을 반추하던 차갑부(토마스 아퀴나스) 시인은 문득 어머니에게 한 마디 부르짖는다. ‘서울 가려는 막내아들 손을 잡고 / 언제 또 올 거냐고 물으시던 어머니 / 당신은 언제 또 올 것인지 한 말씀만 하소서’라고.2011년 등단한 시인의 문체는 섬세하다. 프라하의 밤을 올려다보며 그곳의 “성당 석탑이 하늘을 찔러 성스러운 별을 만들고 있다”고 읊고, 달리듯 흘러가는 시간을 보며 “세월은 물고기를 미끼로 사람을 낚고 있다”고 적었다. 교육학자로서 30여 년 한결같이 대학 강단에 서왔던 시인은 올해 정년을 맞았다. 그는 고향과 자연, 신앙으로 쓴 작품들로 자신의 생애를 그려내고 있다.“아, 내 안에 노래가 있었구나!” 2001년 가톨릭평화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정주연(베로니카) 시인은 어느 날 자신의 깊은 내면에 세상을 향한 아름다운 시상이 자리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는 자신의 시상을 눈물과 한숨이 변해 터져 나온 ‘나의 기쁜 소리’라고 했다.시인은 “아, 봄은 가벼워지는 것”이란다. 촉촉이 젖은 봄 씨앗의 풍경 다음, 만물이 생의 절정에 이른 여름을 지나, 차창을 때리는 낙엽의 가을에 폭신한 눈 이불 덮은 겨울에 이르기까지, 사계절이 시인의 손끝에서 더욱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cpbc2019.05.02
[일치 기도 주간 담화] “그들은 우리에게 각별한 인정을 베풀었다”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 협의회, 2020년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 담화문? 평화를 빕니다.매년 1월 18일에서 25일까지는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입니다. 이 주간에 온 세상 그리스도인들은 내부의 분열을 극복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고자 함께 기도합니다. 나아가,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통하여 우리는 세상의 많은 아픔을 이겨 나가는 새롭고 평화로운 방법을 터득하기도 합니다. 올해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 자료집은 몰타섬과 고조섬에 있는 그리스도 교회들(‘함께하는 몰타 그리스도인들’: Christians Together in Malta)이 마련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7장과 28장에 기록된 바오로 사도와 몰타인들의 만남은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몰타인들은 복음의 전래를 경축할 뿐만 아니라, 오늘날 온 세상에 닥친 위기를 극복하고자 사람 사이에 있어야 할 선한 마음과 행동을 찾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불의한 권력에 의해 고소당한 바오로 사도가 수인으로 로마에 압송되면서 시작됩니다. 백인대장과 군사들은 권력과 권위를, 선원들은 기술과 경험을 가졌지만, 자연의 무서운 힘 앞에서 탑승자들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탈출을 모의하는 선원들과 수인들을 그들의 결백과는 무관하게 비상시에 즉결 처형할 계획을 세운 군인들을 통하여 집단들 사이의 불신과 의심이라는 또 다른 위기가 고조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바오로 사도는 풍랑 속에서 평화의 중심으로 두각을 드러냅니다. 그의 운명이 자신이 섬기는 하느님 손안에 있음을 알고 있는 사도의 격려와 믿음으로 모든 사람이 용기를 얻게 되었고 마침내 목숨도 건질 수 있었습니다. 몰타섬에 도착한 276명은 섬사람들의 각별한 환대를 받습니다. 비가 내리고 추운 날씨 때문에 섬사람들이 피워 놓은 불 가는 혼란과 공포, 위기와 고통에서 살아난 그들에게 특별한 안식처가 됩니다. 섬사람들의 친절과 환대는 그들에게 여정을 이어갈 힘을 채워 줍니다. 복음을 전하는 여정을 담은 사도행전의 이 기록은 오늘날 인류가 맞닥뜨린 위기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현재 유럽 여러 나라에는 많은 이민자와 난민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자연재해, 전쟁, 빈곤 때문에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정치와 경제, 냉랭한 대우로 또 다른 위험에 놓여 있습니다. 난제는 이것이 유럽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 과제라는 점입니다. 모두의 위기를 인류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가운데, 우리 그리스도인은 사도행전의 이야기가 보여 주듯이 무관심과 냉랭한 힘과 결탁할 것인지, 모든 사람에게 “각별한 인정과 친절”을 보이며 하느님의 사랑을 증언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환대는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추구하고 있는 우리에게 매우 필요한 미덕입니다. 환대를 실천하려면 우리는 어려움에 놓인 이들을 너그럽게 대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와 그의 동료들에게 각별한 인정을 보여 준 몰타섬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였지만, 바로 그들의 각별한 인정 덕분에, 분열되었던 사람들이 서로 가까워졌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일치는 무엇보다도 서로를 환대하는 데서, 그리고 우리와 다른 언어, 문화, 신앙을 지닌 사람들과 사랑으로 만나는 데서 드러날 것입니다. 환대와 친절은 비단 다른 문화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안에서 빈부 격차를 줄이는 일, 대결 위주의 남북 관계를 청산하는 동시에 북한 동포들을 돕는 일, 정의롭고 공평한 제도를 통하여 모든 불의를 종식하는 일에도 우리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인류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현재 인류가 당면한 고통과 난제들은 수 세기 전 인류가 저지른 착취와 정복의 제국주의가 빚어낸 많은 잘못에서 비롯하였습니다. 여기에는 한반도의 분단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2020년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은 각별한 인정과 친절한 마음이 가져올 변화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 안에서만 회자하는 기적이 아니라 현실에 있는, 아니 반드시 있어야만 할 인간됨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바오로처럼 굳은 믿음으로 변화하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2020년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 동안,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에 기꺼이 따라 사는 우리가 될 수 있도록, 주님께 용기와 힘과 지혜를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시다. 2020년 1월 18일 한국천주교회 김희중 대주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이홍정 총무 한국정교회 암브로시오스 대주교 대한예수교장로회 김태영 총회장 기독교대한감리회 윤보환 감독회장 직무대행 한국기독교장로회 육순종 총회장 구세군한국군국 김필수 사령관 대한성공회 유낙준 의장주교 기독교대한복음교회 이양호 총회장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유영희 총회장 기독교한국루터회 김은섭 총회장cpbc2020.01.28

5월의 아픔은 그대로… “다시 그 상황 와도 기꺼이 맞설거에요”[5·18 광주 민주화 운동 40주년] 진실 알리려고 거리 방송 나섰던 차명숙씨 “광주 시민 여러분, 지금 시내로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계엄군의 총칼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를 기억해주세요.” 차명숙(가타리나, 60, 안동교구 송현동본당)씨가 40년 전 광주 시내를 누비면서 거리 방송을 통해 외쳤던 말이다. 5·18 당시 광주 시민들은 신군부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맞서 싸웠다. 하지만 많은 시민이 계엄군의 총칼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갔고, 지금도 많은 이가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광주 민주화 운동 40주년을 맞아 날씨가 유난히 화창했던 7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차명숙씨를 만났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지우고 싶은 5월 기억연두색 스카프에 꽃무늬 브로치를 한 차명숙씨가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5·18의 아픈 기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1980년 5월 광주에 대한 기억을 꺼내기 시작하자 금세 표정이 굳어졌다. 차씨는 “당시 5월의 광주는 기억하고 싶지 않다”며 “기억하는 순간 죽은 사람부터 그 모든 시간이 필름처럼 지나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트라우마에 갇혀 산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도 광주에 가면 옛 전남도청 자리나 금남로에는 머무르기가 힘들다”며 “최근 인터뷰를 위해 광주에서 촬영한 적이 있었는데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할 정도로 감정 조절이 안 됐다”고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5ㆍ18의 아픈 기억은 지독하리만큼 차씨를 떠날 줄 모른다. 사진만 보고도 당시의 상황이 어제 일처럼 떠오를 정도다. 가지 않은 길, 가야만 했던 길1980년 5월 19일 오후 차씨는 사람들과 함께 마이크를 잡았다. 계엄군의 만행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계엄이 선포되고 군인이 시민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총칼을 겨눴다. 직접 실상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군인과 경찰이 언론을 장악하고 있어서 언론은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사람들과 스피커와 확성기를 구해 21일까지 거리방송을 했다. 그렇게 거리방송을 하고 23일 기독병원에서 주검을 수습하고 부상자를 돌보다 기관원들에게 붙잡혔다. 당시 신군부는 ‘광주에 북한 간첩이 들어와 시민들을 선동해 폭동이 일어났다’는 언론 보도를 내보냈다. 차씨는 보안사령부 505보안대로 끌려갔다. 보안대에서 끔찍한 고문을 받았다. 25일 상무대, 6월 4일 광산경찰서, 15년형을 구형받고 9월 16일 광주교도소에 가서도 고문은 계속됐다. 광주교도소에서는 불온한 발언을 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우려 하기도 했다. 차씨는 “형이 확정되고 나서 수인번호 113이 적인 죄수복을 입고 호송차를 타는데 굉장히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났다”며 “잘못한 일도 없는데 죄수복을 입어야 한다는 사실이 분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게 차씨는 10월 29일 10년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나이 20살이었다.포기할 수 없는 신앙신앙은 힘든 교도소 생활에 한 줄기 빛이었다. 예비신자였던 차씨는 성경을 읽으며 교도소 생활을 견뎌냈다. 그러던 중 1981년 12월 형집행 정지가 되면서 성탄절 특사로 풀려났다. 차씨는 풀려난 후 서울로 올라왔다. 광주에서는 살 수가 없었다. 광주에서 그는 이미 간첩이었다. 어딜 가나 경찰이 따라 붙었다. 서울에서의 생활도 만만치 않았다. 그때 알고 지내던 한 신자의 소개로 함세웅 신부를 만났다. 하지만 경찰들은 서울에서도 차씨를 따라다녔다. 함 신부와 차씨를 떼어놓기 위해 이간질도 서슴지 않았다. 그럼에도 함 신부는 물심양면으로 차씨를 도왔다. 함 신부는 “1980년 5월 우리는 다른 지역에 있었지만 우리는 가톨릭 신자이고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가 가는 길은 같다”고 차씨를 위로했다.수도자들과 신자들도 차씨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한 신자의 도움으로 1982년 12월 주님 성탄 대축일에 서울 종로성당에서 세례성사를 받았다. 그리고 1985년 서울 신림동성당에서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1986년 안동 태화동성당에서 혼인성사를 한 뒤 안동에 정착했다. 차씨는 “광주에서 살았으면 정상적으로 살지 못했을 것”이라며 “하느님이 저를 다른 방법으로 쓰시려고 안동에 살게 하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주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차씨는 2001년 5ㆍ18 유공자가 됐다. 그때부터 진실을 알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당시 정부가 당사자가 살아있는데 확인도 하지 않고 기록을 하고 다른 사람을 통해서 들은 내용으로도 기록해 왜곡된 게 많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마침내 재심청구를 통해 2013년 모든 자신의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수도자들과 신자들이 힘을 줬지만, 무엇보다 힘이 됐던 건 남편과 두 아들이었다.몇 번이고 다시 걸어갈 길차씨에게 ‘거리방송 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지, 다시 그 상황이 돼도 마이크를 잡을 건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분명했다. 그는 “후회는 없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서 거리방송을 해야 할 상황이 오면 기꺼이 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다시 질문을 던졌다. “언제쯤 5ㆍ18의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돌아온 차씨의 대답에 기자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차씨가 말한 그때는 자신이 ‘예쁜 치매’에 걸리는 때였다. 그는 “제가 예쁜 치매에 걸려 좋은 기억만 하게 되면 5ㆍ18의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바람은 저뿐만 아니라 5ㆍ18을 겪은 많은 사람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5ㆍ18의 아픈 기억만 떠올리게 될 수도 있을까 봐 두렵다”는 말도 했다.차씨는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진실을 알리기 위해 앞장서려 한다. 그는 “사람들이 제대로 말하고 보고 들을 수 있는 입과 눈, 귀를 가지는 일에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다”며 “나아가 우리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5·18을 왜곡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는 “시간을 갖고 계속해서 진실을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차명숙씨는 현재 대구·경북 5·18동지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그리고 5·18 강연회와 간담회 등을 통해 광주 민주화 운동을 알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2019년 6월에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인권유린을 고발하기 위해 노력한 점을 높게 평가받아 제3회 길원옥 여성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해마다 5월이 되면 5·18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올해는 17일에 안동에서 코로나19 희생자와 5·18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제를 계획하고 있다. 또한,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 나눔 안동지부장을 맡아 연탄 나눔을 하는 등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cpbc2020.05.13
![[신앙단상] 내 신앙의 전환점(임두빈, 안드레아, 생활성가 가수)](//cpbc.co.kr/CMS/newspaper/2019/06/rc/754656_1.0_titleImage_1.jpg)
[신앙단상] 내 신앙의 전환점(임두빈, 안드레아, 생활성가 가수) 어머니께서는 쌍둥이 미숙아를 목숨 걸고 낳으셨고, 전 병원 인큐베이터에서 홀로 살아남았습니다. 저는 삼남매 중 막내입니다.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해서 보약을 입에 달고 살았고, 막내다 보니 어머니 껌딱지가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어릴 적부터 엄격하게 신앙 교육을 하셨는데 매일 새벽 미사에 참여해야 했고, 저녁에는 묵주기도 5단과 「가톨릭 기도서」 전체를 그리고 성경 말씀 1장을 읽어야 했습니다. 행여 반항이라도 하는 날에는 회초리는 기본이요, 밥도 용돈도 주지 않으셨습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어머니의 뜻을 따르는 것이 가정의 평화요, 세계의 평화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인이 된 후 어머니께서는 각자의 기도 생활에 어느 정도 자유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대학에 들어가니 모든 것이 자유로웠고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일상 중에 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왔습니다. 1994년 여름은 기록적인 된더위가 있었고, 많은 사람이 다소 충격적인 김일성의 사망 뉴스를 접하고 있을 때 저는 깊은 한숨과 절망감을 안고 병실에 누워 2차 수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밤낮으로 찾아오는 통증과 앞으로 닥쳐올 수술의 공포감보다 더 힘든 것은 오른쪽 다리를 절단할 수도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진단이었습니다. 1년 동안 지옥 같았던 8차례의 수술이 계속되었고, 평소 운동으로 다져졌던 건장한 몸은 병간호하시느라 피골이 상접하신 어머니가 업고 옮길 정도로 앙상하고 초라한 몸이 되었습니다. 더는 추락할 수 없는 저의 처지에 극단적인 생각도 해보았지만, 철없는 막내아들 때문에 이 고생을 하시는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힘을 내야겠다고 다짐을 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나니, 지루한 병원 생활도 그리 나쁘진 않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해왔던 신앙 교육 덕분인지 자연스레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며 위안도 받았습니다. 저의 신앙을 돌아보며 반성도 하게 되니 죽어있던 마음에 희망의 씨앗이 자라서 소박한 꿈도 꾸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퇴원할 때 의사 선생님께서는 저에게 평생 목발을 짚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희망을 잃지 않고, 꾸준한 재활 운동으로 목발 없이도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걸을 때마다 참기 힘든 고통과 흉터는 남았지만, 하느님의 은총으로 다시 걸을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돌아보니 제 고통의 흔적 속에 하느님께서 늘 함께 계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평상시 소소하고 평범한 지금의 순간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힘들었던 고통의 시간이었지만, 시련을 통해 저의 신앙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6-18) cpbc2019.06.05
[한국 천주교와 이웃 종교] (21) 그리스도인은 무슬림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요종교적 식습관이나 고유의 예배 행위 존중하는 태도 지녀야 무슬림은 아내를 여러 명 두나요쿠란에는 모든 아내를 공평하게 대하고 똑같이 부양할 수 있다는 조건 아래 네 명의 아내까지 허용된다는 구절이 있지만, 동시에 아내를 모두 공평하고 정당하게 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구절도 있다. 따라서 이슬람교에서도 일부일처제가 가장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고, 오늘날 대부분의 이슬람교 국가는 일부일처제를 시행한다.무슬림 여성은 모두 머리를 가리는 히잡 등을 써야 하나요히잡이란 머리를 가리는 스카프, 또는 몸 전체를 가리는 긴옷을 가리킨다. 히잡의 착용이 법률로 의무화된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 같은 국가도 있지만, 무슬림 여성이 모두 히잡 등을 써야 하는 것은 아니며, 개인의 선택에 따른 경우도 많다.쿠란에는 남성, 여성 모두가 단정한 옷차림을 해야 한다고 나오지만, 옷차림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없다.무슬림이 지키는 할랄은 무엇인가요할랄(halal)은 ‘허용된 것’이라는 뜻으로 종교적으로 허용되는 먹거리나 행위를 의미한다. 무슬림에게 허용되지 않는 대표적인 먹거리는 이슬람법에 따른 도축 이외의 방법으로 죽은 동물의 고기와 돼지고기, 동물의 피, 술 등이다. 또 무슬림이 해서는 안 될 행위로는 우상 숭배, 도박, 점술, 고리대금업 등이 있다.무슬림은 왜 돼지고기를 안 먹나요이슬람교에서는 돼지를 부정한 동물이라고 생각해 먹지 않으며, 쿠란에 돼지고기를 금지하는 구절(5,3)이 명시돼 있다. 유다인들도 비슷한 이유에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레위 11,7)유일신 종교인 이슬람교는 하느님 외의 다른 신에게 공물로 바쳐진 음식을 먹는 것 역시 금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무슬림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요무슬림은 그리스도인과 같이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으며 하느님의 계시를 기록한 성경을 가진 유다교와 그리스도교를 매우 친근한 종교로 생각한다.우리나라에서는 무슬림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지만, 최근 이주 노동자, 유학생, 기업인 중에서 무슬림이 늘어나고 있다. 무슬림이 폭력적인 근본주의자라는 선입관도 있지만, 그런 사람은 극히 일부이다. 무슬림의 종교적 식습관이나 날마다 드리는 예배 행위를 존중하는 것이 종교 간 대화의 올바른 자세이다.종교 간 대화는 왜 필요하나요오늘날 운송 수단과 정보 통신의 발달과 교육과 생계를 위한 이주 때문에 전 세계 사람들이 마치 한 마을을 이루듯 함께 살아가는 지구촌 시대가 됐다. 이로써 여러 민족과 종교가 서로 만나고 교류하는 다문화 다종교 시대가 열렸다. 종교 간 대화는 이러한 피할 수 없는 만남에 대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대답이다. 가톨릭교회는 여러 종교가 서로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편견과 오해가 있으며, 그로부터 분쟁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이러한 점을 개선하고자 가톨릭교회는 신자들에게 이웃 종교인과의 만남과 대화를 권고하고 있다. ※이 난은 주교회의 교회 일치와 종교 간 대화위원회가 펴낸 「한국 천주교와 이웃 종교」를 정리한 것입니다. 저작권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 있습니다. 정리= 리길재 기자 평화신문2019.11.13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33주일 - 종말론적 신앙과 삶으로의 초대](//cpbc.co.kr/CMS/newspaper/2019/11/rc/766587_1.1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33주일 - 종말론적 신앙과 삶으로의 초대 한민택 신부 전례력상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시점에, 오늘의 미사 전례는 종말에 대해 그리고 그리스도 신앙이 지닌 종말론적 성격에 대해 묵상하도록 초대합니다.‘종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두려움이 아닐까 합니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 속에서 사람들은 대체로 종말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릇된 종말론을 등에 업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과 두려움을 조장하며 사람들에게 다가와 현혹하는 유사종교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유사종교의 그릇된 종말 신앙에 빠지는 이유는 종말에 관한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종말이나 심판을 막연히 두렵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종말이란 어떤 것일까요? 과연 종말은 존재하는 것일까요? 신앙인은 종말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요?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오늘 복음 말씀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이 허물어질 때가 곧 올 것을 예고하시며, 이에 앞서 당신 이름으로 가장한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어서 전쟁과 반란이 일어날 것이고, 지진과 기근, 전염병이 생기며 하늘에서 무서운 일들과 표징이 일어날 것이고 박해가 일어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말씀 뒤에 덧붙이십니다.“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복음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말씀하시지만, 이는 최종 심판에 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마태 24,3-14; 마르 13,3-13 참조) 잘 살펴보면 예수님은 종말과 심판에 관한 무서운 일을 말씀하신다기보다, 그러한 일을 겪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당신을 따르는 신앙의 길을 굳건히 걸어갈 것을 당부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믿는 이들에게 종말과 심판은 두려움이 아닌 희망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복음은 신앙으로 끝까지 견디어 내면 생명을 얻으리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습니다.한편 복음이 전하는 환난과 시련은 심판 때에 일어날 일만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일들이기도 합니다. 우리 삶에는 전쟁과 반란, 지진과 기근, 전염병, 박해 등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때로 우리의 용기와 자신감을 앗아가고 좌절과 절망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종말을 희망으로 기다리는 신앙은 갖가지 환난에서 주님이 오실 날이 머지않았음을 깨닫도록 합니다. 그분께서 곧 오시어 지금 우리가 겪는 시련과 환난을 없애 주고 영원한 행복과 안식을 주시리라는 희망을 선사하며, 지금 여기서 시련에 맞서 의연하게 살아갈 용기와 힘을 줍니다.그분께서 곧 오십니다. 아니, 그분께서 이미 문 앞에 당도해 계십니다. 문 앞에서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우리와 함께 잔칫상에 자리하고자 하십니다. 우리 삶을 기쁨의 잔치로 초대하고자 하십니다. 이제 그분의 초대에 응해야 할 때입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잔칫집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이제 마음을 다잡고 그분의 초대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어드립시다. 우리 삶이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 찬 하느님의 나라로 변모하도록 말입니다.한민택 신부(수원가톨릭대 교수, 이성과신앙연구소 소장) 평화신문2019.11.13

노년의 지혜와 깨달음, 청년들의 비전 된다세월의 지혜 / 교황 프란치스코와 친구들 공저 / 정제천 신부 옮김 / 이냐시오영성연구소 예수회 한국관구장 정제천 신부가 대학 시험에 떨어져 고향 광주로 돌아가던 때 일이다. 밤 열차에서 우연히 만난 한 노인은 실의에 젖어 있던 그에게 봄에 난초가 피고, 가을에 국화가 핀다는 뜻의 ‘춘란추국’(春蘭秋菊)이라는 고사성어를 하나 남겼다. “다 때가 있는 법이네. 그러니 너무 실망하지 말고 다시 시도해보게. 잘 될 걸세.” 그 이름 모를 어르신의 한 마디로 정 신부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정 신부는 당시 조언을 떠올리며 프란치스코 교황과 친구들이 집필한 「세월의 지혜(Sharing the Wisdom of Time)」를 우리말로 옮겼다. 잠이 안 오면 새벽 두세 시에도 일어나 3개월을 꼬박 번역에 매달렸다. “이 책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기도에서 시작됐어요. 어느 날 기도 시간에 교황님은 성령의 영감을 받아 노인들의 역할이 현시대에 얼마나 필수적인지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품으셨지요. 교황님은 특히 노인들이 세월 속에서 쌓아온 지혜에 주목했는데, 요즘 경쟁에 내몰리는 젊은 세대가 자신들이 겪는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찾고, 인간적인 세상과 하느님 나라를 만드는 데 노인들의 지혜가 큰 도움이 되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노인들의 지혜에 대한 교황의 믿음과 비전은 미국 예수회 출판사인 로욜라 프레스가 「세월의 지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추진하도록 했다. 로욜라 프레스는 세계 곳곳에 있는 지혜로운 노인 250여 명을 찾아가 인터뷰했고, 그중 84명의 이야기를 선택해 노동과 투쟁, 사랑, 죽음, 희망이라는 다섯 장으로 분류해 책으로 묶었다. 교황은 다섯 장에 각각 머리말을 써서 독자들이 그 주제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도록 안내했고, 특별히 31편의 이야기에 대해선 ‘동료 노인’으로서 자신의 고유한 체험과 지혜를 독자들에게 나눠줬다. 교황의 머리말과 응답은 예수회 안토니오 스파다로 신부의 역할이 컸고, 다섯 장의 마지막 부분에는 노인들의 지혜를 체험한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내가 배운 노년의 지혜’라는 꼭지로 수록됐다. 정 신부는 “교황님께서는 ‘노인들은 꿈을 꾸며 젊은이들은 환시를 보리라’(요엘 3,1)는 성경 말씀을 인용하며 지금이 바로 젊은이들이 비전을 갖도록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꿈을 꿔야 할 때라고 말씀하신다”면서 “이 책을 번역하면서 많이 울었는데, 그만큼 노인들의 이야기는 감동적인 대목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cpbc2019.09.17

텅 빈 광장에서 바친 교황의 기도, 13억 그리스도인과 인류를 하나로[코로나19 특별대담] 인류를 위로하는 교황님의 기도 3월 27일 오후 6시(현지 시각). 비 내리는 성 베드로 광장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홀로 모습을 드러냈다.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제단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딘 교황은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특별기도와 축복(우르비 엣 오르비) 전례를 주례했다. 교황은 “우리는 혼자서 나아갈 수 없다는 것, 오로지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면서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한마음으로 기도하자고 요청했다. 교황은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방송으로 생중계된 교황의 모습을 지켜본 전 세계 모든 이들이 교황과 함께했다. 교황은 이날 주님께서 제자들과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는 도중 풍랑을 가라앉히신 내용을 담은 마르코 복음 4장 35-41절 말씀에 관해 강론했다. 교황은 강론에서 풍랑을 만난 제자들의 모습과 코로나19로 혼돈에 빠진 현재의 상황을 연결시키며 현재 위기를 타개할 통찰을 안겨줬다. 더불어 아픔을 겪고 있는 모든 이와 함께한다는 절절한 기도를 통해 깊은 감동을 전해줬다. 가톨릭평화방송은 1일 교황의 인류를 위한 특별기도와 축복에 담긴 의미를 되새겨 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 사장 조정래 신부 사회로 수원가톨릭대 총장 곽진상 신부, 가톨릭대 교수 최준규 신부,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총원장 김혜윤 수녀가 패널로 참여해 이야기를 나눴다. 정리=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조정래 신부(이하 사회) : 프란치스코 교황이 비 내리는 텅 빈 광장을 올라가는 모습부터 인상 깊었다. 인류를 위한 특별기도와 축복 전례를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김혜윤 수녀(이하 김 수녀) : 광장이 비어 있기에 교황이 혼자라는 사실이 더 두드러졌다. 교황은 혼자였지만 13억 명의 가톨릭 신자가 모두 참여했기에 그 어느 때보다 가득 찬 광장이었고, 거룩한 시간이었다는 외신 기사를 봤다. 같은 생각이다. 정말 감동적이었다. 곽진상 신부(이하 곽 신부) : 혼자 뚜벅뚜벅 걸어가는 모습이 이 세상 아픔과 고통을 홀로 짊어지고 가는 것처럼 보였다. 인류 전체의 고통과 함께하는 아버지와도 같았다. 그 모습에서 외로움도 느껴졌다.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외로움을 교황이 진실로 느끼며 걸어가는 듯 보였다. 최준규 신부(이하 최 신부) : 비가 내려 상황이 더욱 애잔했다. 비는 주님의 은총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 어려운 시기에도 주님의 은총이 내리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황의 불편한 발걸음을 보면서 진정한 사목자가 걸어야 하는 길은 외롭고 어려운 길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사회 : 인류를 위한 특별기도와 축복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먼저 제안한 자리다.최 신부 : 복음을 보면 주님께선 어려운 일에 맞닥뜨리거나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늘 기도하셨다. 특별히 오랫동안 기도하시고 밤새워 기도하셨다. 그런 모습이 우리가 닮아야 하는 신앙인의 모습이다. 교황은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지자 전 세계 신자를 향해 함께 기도하자고 청했다. 진정한 신앙인의 모범을 보여줬다는 생각이다. 위기와 절망에서 신앙인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기도다. 교황은 혼자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함께 기도하는 모범을 보여줬다.곽 신부 : 교황은 보편 교회 수장이면서 전 인류의 정신적 지도자다. 전 인류가 아파하는 고통을 하느님 아버지께 솔직히 말씀드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진솔하게 묻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를 통해 위로를 전해주고 희망을 주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사회 : 강론을 통해 위로와 위안을 주는 게 쉽지 않지만, 프란치스코 교황 강론은 특히 좋다. 김 수녀 : 교황 강론은 워낙 뛰어나다. 특히 성경의 언어를 현장의 구체적 언어와 접목시켜 전달하는 데 발군이다.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성경 말씀을 발췌해서 잘 말씀해 준다. 이번에 선택한 복음도 놀라웠다. 최 신부 : 복음 구절 선정도 탁월했다. 교황의 통찰에 놀랐다. 강론 첫 구절이 ‘저녁이 되었다’(마르 4,35)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요즘 저녁이 돼버린 것 같다고 말씀하는데 그걸 들으면서 예수님의 빈 무덤이 생각났다. 이른 새벽 여인들이 찾아갔던 동굴 안 예수님의 빈 무덤 말이다. 아주 어둡지 않은 이른 새벽은 저녁과 비슷하다. 구원과 희망의 빛이 필요한 때다. 강론의 첫 시작이 예수님 부활 시기를 준비하는 시기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마르코 복음 4장 35-41절 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 둔 채, 배에 타고 계신 예수님을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그분을 뒤따랐다.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사회 : 돌풍과 풍랑을 겪은 제자들과 예수님의 상황이 지금과도 꼭 맞는다. 곽 신부 : 마르코 복음 그 구절은 풍랑을 가라앉히신 예수님의 기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제자들은 겁에 질렸는데 예수님은 고물에서 주무시고 계셨다. 예상치 못한 모습이다. 바로 거기에 메시지가 있다. 교황도 그 부분을 짚어 냈다. 고물은 배 뒤편이다. 풍랑이 일 때 물이 가장 먼저 들어오는 부분이다. 예수님이 고물에 누워 계셨으니 풍랑이 일 때 가장 먼저 알아채셨고 가장 먼저 물에 맞으셨을 것이다. 그런데도 하느님 아버지께 모든 것을 맡기고 편안하게 계셨다. 예수님은 우리가 고통받기 전에 먼저 고통받으셨다. 고통과 두려움을 나 몰라라 하고 계신 것이 아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왜 겁을 먹고 있느냐, 왜 믿음이 없느냐”라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상황과 너무 잘 맞는 훌륭한 대목이다. 교황의 강론을 몇 번이나 읽으면서 교황이 예수님과 정말 가깝게 만나고 있음을 느꼈다.사회 : 교황은 강론 후 로마 시민들의 안위이신 성모 이콘과 성 마르첼로 성당의 십자가 앞에서 기도했다. 최 신부 : 천주교 신앙에서 볼 때 신자들에게 큰 위로를 주는 분은 성모님이다. 성모님은 우리가 필요로 할 때 모든 돌봄을 제공하는 자비로운 어머니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위기 때마다 어머니를 부르고 어머니께 전구를 청해왔다.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 성모님께 전구를 청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김 수녀 : 방송을 통해서 전례에 참여했는데 카메라가 계속해서 십자가를 보여줬다. 전례를 주례한 건 교황이었지만 전례의 실질적 주인공은 역시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모 이콘도 십자가 옆에 비켜서 있는 모습이었다. 온전한 주인공이고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중심의 자리를 내어주는 연출이 아닌가 싶었다. 사회 : 성체 현시와 성체 조배도 이어졌다. 우리는 영적인 힘을 얻을 때 성체 앞에 모인다. 최 신부 : 성체 조배는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나를 성찰하며 내가 얼마나 미소한 지를 깨닫는 시간이다.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과 고통을 주님께 말씀드리고, 지혜와 은총을 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성체 조배를 하면 성체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평화와 안정감을 체험하게 된다. 사회 :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의문이 생긴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데 왜 이렇게 수십만 명이 죽는 일이 생기는 것인가. 김 수녀 : 하느님께서 왜 고통을 허락하는가라는 질문을 다르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하느님께서 허락하는 고통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초래한 고통이다. 하느님께서는 고통을 원하지 않으신다. 하느님으로부터 인간이 단절된 데서 이 사태가 발생했다. 생명의 원천이신 하느님을 인간이 스스로 배제한 것이다. 생명이 단절된 상태이니 당연히 죽음과 고통, 억압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 하느님께 책임을 두는 게 아니라 인간에게 무엇이 문제가 있는지를 반성해야 한다. 결국엔 하느님과 어긋난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곽 신부 : 교황 강론에 분명히 나온다. 제자들이 죽을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예수님은 가만히 주무시는 것처럼 보였지만 가만히 계신 것이 아니었다. 우리보다 먼저 고통을 받으시고 고통에 함께하셨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선 고통을 함께하시는 분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최 신부 : 예수님께서 고통을 허락하는가. 오래된 질문이다. 고통을 겪을 때마다 반복하는 질문이다. 주님의 섭리 아래 우리가 고통을 겪고 있다면 그 섭리가 무엇일까. 먼저 우리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고통을 반성과 회심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또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선 많은 이들이 함께해야 한다. 고통은 형제적 협력을 촉구한다. 마지막으로 다시는 이러한 고통이 반복되지 않도록 지혜를 모아 더 좋은 제도와 체계를 만들어 내야 한다. 고통은 이러한 깨달음을 이끌어 내는데 이런 게 모두 주님의 섭리다. 사회 : 신학 안에서도 고통에 대한 질문들을 다루고 있지 않나. 곽 신부 : 고통과 관련된 물음은 비판적이고 이성적이면서도 굉장히 실존적이다. 예수님은 이에 대한 답을 분명하게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어디서 어떻게 고통을 당했는지 묻지 않으셨다. 그저 고통에 함께하며 같이 아파하셨다. 측은지심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고통당하는 이가 자신의 아집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구원해주는 분이다. 철학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예수님은 당신 삶으로 대답해 주셨다. 사회 : 그동안 우리는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고 살았던 것 아닌가 싶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최 신부 : 교황이 강론 중에 평범한 분들을 열거했다. 의사, 간호사, 미화원, 슈퍼마켓 직원…. 한 분 한 분 부르시는데 굉장히 가슴에 와 닿았다.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사고, 차를 마시고,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는 평범한 일이 갑자기 평범하지 않게 됐다. 평범한 것들을 새롭게 보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사소하고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겨야겠다. 김 수녀 : 공동체 수녀들과 나눔을 했는데 한 수녀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특정 나라, 특정 동물, 특정 종교 탓으로 돌렸는데 교황 말씀을 들으면서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됐다고 한다.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집중하지 못한 자기 자신을 반성하게 된 시간이었다는 성찰에 공감했다.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가 아닐 때 나오는 부조리와 악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곽 신부 : 지금의 어려움이 우리 자신을 성찰하게 해주고 있다. 무엇이 정말로 어려운 일인지를 식별하게 해주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듯하다. 이 시대 사목자와 신앙인은 무엇이 내 삶을 이루게 하는 요소인지를 다시 한 번 돌아보고 가족과 이웃의 중요성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삶은 혼자 꾸려나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회 : 그리스도인에게는 희망이 있다. 고통과 어려움에서 놓지 말아야 할 단어가 아닐까 싶다. 최 신부 : 교황 말씀을 들으면서도 내내 희망을 생각했다. 희망의 근거는 아주 사소하고 평범한 데서 찾을 수 있다. 격리된 도시에 사는 주민들이 각자의 집에서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며 서로 격려하는 모습을 봤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자기가 가진 것을 내어 놓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그런 데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 김 수녀 : 희망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이들 가운데 하나로 교황은 슈퍼마켓 직원과 같은 이들을 예로 들었다. 이들이 보여주는 품격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마음이 가난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이들일수록 하느님과 밀접할 수밖에 없다. 하느님께선 가난 속에서 일하신다는 증거다. 가난한 이들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희망, 경외가 있을 때 우리는 분명 호수 저편으로 건너갈 수 있다고 희망한다. 곽 신부 : 희망의 근거야말로 바로 예수님 모습이다. 예수님께선 절망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잊지 말자.정리=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사진=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cpbc2020.04.08

관상, 우리 내면에 이미 와 계신 하느님 깨닫기[토마스 머튼의 영성 배우기] 33. 관상에서의 하느님 찾기 필자가 성소 담당자로 8년간 소임을 할 때, 참 많은 젊은이를 만났다. 그 과정에서 초기에는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을 가진 이는 관상 수도회에 어울리고, 외향적인 이는 활동 수도회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성격과 수도생활은 큰 관련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부르심’인 것이다. 성령에 의해 하느님 신비 안으로이러한 관점에서 관상 역시 마찬가지다. 관상은 수동적이고 조용한 성품을 가진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앉아서 생각에 빠지는 것도 초점을 잃고 멍하니 앉아 있는 것도 아니다. 관상은 기도를 잘하는 것도 아니요, 전례를 통해 평화와 만족을 얻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것들은 관상을 체험하기 위하여 준비하는 과정으로서 필수적이나 이것이 저절로 관상에 이르게 해 주지는 않는다. 때때로 별다른 노력 없이 갑자기 관상을 체험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를 일깨우려 선택한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고 ‘하느님’이시다.머튼이 말하는 관상은 지적인 성취가 아니다. 책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우는 것도 아니다. 하느님에 관한 신학적 통찰력 이상의 것이며, 어떤 황홀이나 무아지경, 감정적 흥분이나 감미로움이 아니다. 관상이 가져오는 깨달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관상은 성령에 의해 하느님의 영역 안으로, 하느님의 자유 안으로, 하느님의 신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때때로 관상을 통해 ‘하느님이 무엇인지를 더 이상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고통이 수반된다. “하느님은 내가 알 수 있는 ‘무엇’이 아니며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순수한 ‘누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나는 있다’입니다.” (「새 명상의 씨」, 28)머튼이 깨달은 관상은 기도의 실천 이상의 것이며, 다음의 세 가지 체험과 연관되어 있다. 하느님을 찾는 체험, 자신의 참된 자아를 깨닫는 체험, 그리고 세상과 자신의 관계를 배우는 체험. 그리고 이 세 가지는 서로 긴밀히 상호 연결되어 있다.먼저, 머튼에게 있어 관상은 하느님을 찾는 체험과 관련되어 있다. 하느님을 찾는 것은 잃었던 무엇을 찾는 것과는 다르다. 하느님은 모든 곳에 계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찾는 것은 내가 아는 모든 곳에 계신 하느님을 찾는 것과 다르다. 그리고 한 번 찾은 하느님이 하느님의 전부도 아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머튼은 관상을 통해 그리스도의 인성 안에서 하느님에 대한 앎과 사랑을 체험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앎은 성경이나 이성 등의 밖으로부터의 앎이 아니라, 내면으로부터의 깨달음이다. 관상은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서 하느님과 우리가 이미 하나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머튼은 관상에 있어 깨달음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앎이 아니라 내면으로부터의 깨달음“관상은 영적 놀라움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생명과 존재가 보이지 않는 초월적이며 무한히 풍요로운 ‘원천’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깨닫는 것입니다… 관상은 우리가 아는 것이나 알지 못하는 것을 모두 초월하여 압니다. 관상은 그 원천의 실재에 대한 깨어남입니다. 관상은 깨어남의 갑작스러운 선물이며, 그것이 실재(real)라는 모든 것 안에서 궁극적인 실재(the Real)를 깨닫는 것입니다.”(「새 명상의 씨」, 15-17)그래서 하느님께서 자신 안에 계시다는 깨어남의 선물을 받기 위해서 관상은 외적이거나 표면적인 것으로부터 내적이고 영적인 것으로의 의식의 전환을 요청한다. 우리 내면의 세상 안에서 궁극적인 실재인 하느님을 발견하기 위해 우리 존재의 표면적 수준 아래를 파고 들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실재의 다른 측면이나 더 깊은 단계에서 하느님과 자아와 창조물을 새롭게 바라보는 것이다. 인간의 한계 절감할 때 하느님 만나그런데 사실 오늘날 우리의 문화는 속도, 생산성, 이익, 외적인 것들을 강조하고 있어 깊은 내면의 영역이나 영적인 체험의 영역에 도달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내면의 세상으로 들어가 자신의 자아를 바라보며 그 안에서 하느님을 찾는 것을 한가한 이들의 사치(?)이거나 비생산적이고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적이고 표면적인 허상을 좇으며 살아가던 어느 날 자신의 내면에 찾아온 공허감과 감당하기 힘든 외적 내적 고통, 혹은 거부할 수 없는 죽음 앞에 우리는 결국 인간의 한계를 절감하게 된다. 이렇게 하느님의 때가 되었을 때 우리는 이미 우리를 찾고 계신 하느님, 이미 우리와 함께하고 계신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쌓아 놓은 그 모든 것이 무너지는 날 우리는 자신을 더 큰 사랑으로 받아 주시는 어진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나 자신이 하느님을 찾았고 그래서 그분을 만난 것이 아니라, 이미 그분은 늘 자신과 함께하고 계셨음을! 다만 자신이 눈이 어두워 그분을 알아뵙지 못했음을! 평화신문2020.02.19
![[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 (38)평신도를 통한 한국 교회의 쇄신, 그 대안은 복음화 8 - 평신도는 무엇을 전해야 하는가](//cpbc.co.kr/CMS/newspaper/2019/09/rc/761551_1.1_titleImage_1.jpg)
[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 (38)평신도를 통한 한국 교회의 쇄신, 그 대안은 복음화 8 - 평신도는 무엇을 전해야 하는가주님 부활과 구세주에 대한 믿음 갖고 복음 선포 그리스도인은 예수 부활과 구원에 대해 확실히 무장돼 있어야 한다. 사진은 예수님 무덤 위에 지어진 주님부활 성당 내부. 가톨릭평화신문 DB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렸다. 그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요한 21,11)그런데 왜 하필이면 153마리였을까요? 요한 복음사가는 왜 정확히 153이라는 숫자를 기록했을까요? 이에 대해 어떤 분들은 이렇게 해석하기도 합니다. 1에서 2를 더하고, 그 2에서 3을 더하고, 다시 4를 더하고…, 이렇게 17까지 더하면 153이 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17은 십계명 등 성경에서 중요한 10이라는 숫자와 일곱성사 등 7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말이죠. 좀 더 신빙성 있는 해설은 성경 전체를 라틴어로 번역(vulgata)한 예로니모(Hieronymus, 348~420) 성인의 주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아마도 예수님 시대에 갈릴래아 호수의 어종이 153종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고기를 다 잡았다는 것이죠. 이 해석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모나미 153 볼펜’입니다. 모든 종류의 문방을 다 갖추겠다는 마음으로 이름을 그렇게 붙인 것이죠.또 153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서울대교구에서 의정부교구가 분가되어 나갈 때, 당시 서울대교구장이셨던 정진석 추기경은 의정부교구로 가길 희망하는 사제들의 신청을 받았습니다. 그때 정확히 153명이 지원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 나는 ‘모든 다양한 성향의 신부님들이 의정부교구로 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하느님의 아들 예수어쨌든, 물고기가 많이 잡히자 순간 베드로는 그제야 눈이 떠지고, 주님을 알아봅니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카를로 마리아 마르띠니 추기경님이 해설하신 요한복음 21장에 따르면 “하느님은 우리가 용서를 청하기도 전에 용서해 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한 것에 대해 용서를 청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먼저 베드로를 찾아가 아침 식사를 준비해 주십니다.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용서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정확히 알아본 시점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생전에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그리고 타볼산에서 거룩한 변모를 통해 제자들에게 당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기적도 수없이 베푸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정확히 안 것은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입니다. 그때야 “아~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이 뜻이었구나” 하고 확신하게 됩니다.결국,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부활’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우리도 부활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이 부활 신앙에 대한 믿음과 전파가 바로 교회의 처음과 끝입니다.200년이 넘은 한국 교회는 아직도 복음화의 시작 단계에 머물고 있습니다. 1980년대 이후 한때 큰 행사들을 치르며 보여줬던 선교 열성이 이제 지나간 역사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2000년대를 지나오면서 복음 선포의 열성이 식어가고 복음화율이 인구증가율에 비해 감소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이 땅의 평신도에게 과연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에 대한 확신과 올바른 구원관이 서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평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가 참으로 죄와 죽음과 악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방시켜 주신 구원자임을 확신하고 있는지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분을 통해 구원에 확신을 갖는 평신도라면, 그리고 구원의 삶을 체험하고 사는 평신도들이라면, 예수님이 구세주임을 증거하고 선포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확실한 구원관 정립돼 있어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분에게로 사람들을 안내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은 평신도가 개인 구원에 대한 불확신과 구원관이 정립돼 있지 않아서입니다. 새천년복음화학교에 오는 많은 신자 중에 나름으로 신앙생활을 충실히 해왔다고 자부하던 분들도 구원에 대한 확신과 구원관이 정립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잘못되거나 편향되고 일방적인 지식만 갖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신앙을 만드는 분들까지 있었습니다.복음화를 위해 먼저 평신도들부터 복음화가 돼야 합니다.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지, 우리가 믿고 신앙하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이 누구신지, 그리고 그분을 믿고 따른다면 우리에게 어떤 결과가 오는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평신도 자신이 먼저 재복음화돼야 복음 전파의 필요성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정치우(안드레아, 새천년복음화학교 교장) 평화신문2019.09.03

귀국 해외선교사 재정착 도와드려요서울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선교센터, 14~18일 진행제6차 해외선교사 귀국 프로그램을 마치며 봉헌된 파견미사 중 오선희 수녀 등이 화분과 성경을 봉헌하고 있다. 25년간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에서 전문대 과정 시각장애인 재활 교육에 투신했던 홍영희(베로니카, 64)씨. 2017년에 귀국했지만, 너무도 변한 한국에 적응하느라 어려움이 컸다. 선교에 투신하느라 남아 있던 집 한 채도 다 팔았기에 재정적 어려움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해외선교사 귀국 프로그램이 있다는 소식에 그는 14∼18일 서울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선교센터에서 한국가톨릭해외선교사교육협의회(KCFMEA) 주최로 열린 제6차 교육에 참석해 기쁘고도 벅찬 4박 5일을 보냈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 오선희(헬레나) 수녀는 2014년부터 올해 4월까지 6년간 캄보디아 프놈펜, 타케오 선교지에서 간호와 가정방문을 하며 살다가 한국에 돌아와 귀국 프로그램을 소화했다. “선교지에서 돌아와 적응하느라 답답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던 참에 교육에 참가해 보니 적응과정에서 당연히 거쳐야 하는 전이 과정이더라고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것, 같은 선교 여정을 걸어온 분들과 공감하는 과정을 거치는 시간은 행복했습니다.”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수녀원 이점선(마욜라) 수녀는 2007년 아프리카 서남부 해안 국가 나미비아로 떠나 병원에서 사도직을 하다가 13년 만에 귀국했다. 이 수녀는 “한국에 돌아오니 편리하고 안전하고 좋으면서도 한국 생활은 굉장한 도전이 된다”며 “사실 한국에서 살았던 시간이 훨씬 길었는데도, 귀국 이후의 삶은 굉장히 서툴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지나온 선교 여정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것이 또 앞으로 선교 여정을 걸어가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내다봤다. 제6차 해외선교사 귀국 프로그램 강사는 호주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말린 힉슨 수녀가 맡아 선교지에서 돌아와 재정착하는 선교사들과의 재적응과 심리상담에 주력했다. 다른 문화 속에서 만난 하느님에 대한 나눔, 선교지의 ‘사막 체험’과 고국에서의 익숙한 문화를 통합하는 과정에서의 문화 충격과 무기력, 혼란에 대한 이해와 수용에 교육이 집중됐다. 이번 교육에는 귀국 선교사 6명, 이들 선교사와 협력 동반했던 동반자 6명 등 12명이 함께했다. 교육을 주관한 오기백(골롬반회 한국지부 신학원장) 신부는 파견 미사 강론을 통해 “바오로 사도가 선교 여정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과 지치지 않고 함께하신 것처럼 우리 또한 선교지에서 만나는 이들과 믿음으로 함께했던 것을 기억하자”면서 “이 자리에서 나가면서 이제는 새로운 출발, 새로운 시작을 위해 우리 자신을 봉헌예절과 기도, 나눔을 통해 하느님께 봉헌하자”고 당부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cpbc2019.10.23
![[생활속의복음] 대림제3주일- 우리가 기다리는 그분입니까](//cpbc.co.kr/CMS/newspaper/2019/12/rc/768699_1.1_titleImage_1.jpg)
[생활속의복음] 대림제3주일- 우리가 기다리는 그분입니까 임상만 신부 얼마 전 여행 중에 부산 자갈치시장을 들른 적이 있다. 번잡하지만 꽤 깨끗한 시장 좌판에 일행이 자리하자 인심 좋게 음식을 건네주는 주인아주머니 손가락에 묵주반지가 끼워져 있다. 반가운 마음으로 “아주머니 어느 성당 다니세요?” 하고 물으니 “무신, 지금은 성당 안 다녀요. 시누이 따라서 한동안 열심히 다녀봤는데 예수님과 나는 잘 안 맞나 봅디다. 예수 믿고부터 장사도 더 안되고, 몸까지 아프고….” 예상치 못한 대답에 매우 당황스러워 “그러면 그 묵주반지는 왜 아직도 끼고 있으세요?” 물으니 “이게 금반지라서 그러지요. 그리고 이걸 버리면 더 재수가 없을 것 같아서…”라며 말을 흐렸지만, 그 눈빛에는 한동안 예수님께 가졌던 기대와 실망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었다.오늘 복음에 옥에 갇힌 요한 세례자가 예수님께 제자들을 보내어 메시아인지 아닌지, 아니라면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하는지 묻는 대목이 나온다.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마태 11,3) 요한 세례자는 예수께서 공생활을 시작한 지도 꽤 되었기에 이제는 신음하는 백성을 구해내기 위해 모종의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제자들을 통해 전해진 소식은 가관이었다. “우리는 메시아가 다스리는 나라를 준비하기 위해 매일 금식하면서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매일 먹고, 마시면서 정치적인 움직임은커녕 쓸모없는 가난한 자, 병든 자들만 상대하고 더욱이 세리와 창녀들과도 노닥거리며 사는데 그가 정말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가 맞는지 모르겠습니다.”구약 성경에 약속된 메시아의 활동은 이방 민족을 심판하시고 영광스러운 다윗 왕조를 온 세계 위에 세우심으로써 그 나라의 모든 병자가 치유되고 희년이 선포되며 낙원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로마의 속국이며 이를 전하는 자신은 오히려 감옥에 갇혀 있으니 마땅히 하느님의 나라, 그리스도의 왕권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고 의심한 것이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행하는 모든 일에서 이미 그 나라가 왔으니 의심하여 넘어지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그리고 당신이 행하신 일을 보고 하느님 나라가 이미 와 있음을 믿고 흔들리지 않는 자가 진정한 복된 자라고 격려하신다.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기대와 교회에 대한 기대가 있다. 그러나 자신들의 방식으로 그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곧 실망과 비난으로 바뀐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믿고 교회에 올인하고 있는데 나의 문제를 전혀 해결해주시지 못하는 예수를 계속 믿어야 하나?’ 하고 불만을 토로하며 교회를 떠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진정 하느님 나라를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통해야만 하고, 예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수용의 문제는 결국 자기가 넘어서야 할 과제라는 것이다.우리는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이 시기에 예수님께 대한 실망감으로 혹은 체념으로 넘어져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한다. 물론 우리의 예수님께 대한 기대와 바람은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님보다 더 소중할 수 없다. 예수님을 소유하지 못하면 우리의 구원도, 하느님의 나라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기대와 기도에 모조리 응답하시는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께서 선포하신 복음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하고, 자신이 지금 예수님과 멀리 있다고 여겨지면 요한 세례자처럼 예수님께 직접 질문해 보는 게 어떨까 한다.“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임상만 신부 (서울대교구 상도동본당 주임) 평화신문2019.12.11

성당 입구에서 성수 뿌리는 예식과 장례 미사 분리해 거행장례 예식서와 상장례에서 주의할 점 주교회의는 최근 2년간 상장례와 관련된 예식서(「상장 예식」,「장례 예식」,「장례 미사」)를 잇달아 새롭게 출간했다. 위령 성월을 맞아 예식서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보고, 상장례 예식에서 주의할 점을 알아본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가톨릭교회는 16세기 중국에서 선교를 시작하면서 장례와 제사 문화를 접했다. 제사를 조상에 대한 감사와 공경을 드러내는 미풍양속으로 인정할지, 미신으로 여길지 100년간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1742년 베네딕토 14세 교황은 제사를 ‘미신 행위’로 규정하고 이를 엄격하게 금지했다.유교 문화가 지배적이던 당시 조선 사회는 제사를 금지하는 교회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신앙 선조들은 박해 속에서도 제사 대신 천주교식 장례를 치렀다. 이때 사용했던 상장례 예식서와 기도서가 바로 「천주성교예규」다. 「천주성교예규」는 로마 예식서와 중국 「성교예규」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우리 장례 문화에 맞게 예식을 재해석한 한국 교회만의 고유 장례 예식서다. 신자들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상장 예식」의 모본(母本)이기도 하다. 흔히 ‘연도책’이라고 불리는 「상장 예식」은 1989년 ‘상장례 토착화 연구 특별위원회’가 구성된 이후 십수 년에 걸쳐 각 분야 전문가의 연구와 검토 끝에 2003년 발간됐다. 연도를 비롯해 우제(초우, 재우, 삼우), 화장, 제사 등 우리나라 장례 문화 특유의 요소들을 가톨릭교회 장례 예식에 맞게 적용시켰다. 이후 새 성경이 나오고 미사경본이 바뀌면서 그에 맞게 수정된 책이 2018년 발간됐다. 수정본은 신자들이 보기 쉽게 책 크기를 키웠고, ‘한국 천주교 가정 제례 예식’을 뒷부분에 첨부했다. 제사를 금지하던 교황청 지침은 1939년 제사를 허용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제사를 미신이나 우상숭배가 아니라 ‘문화 풍속’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제사를 ‘허용’하지만 권장하지 않는다. 제사보다는 성당에서 위령 미사를 봉헌하기를 권고하고 있다. ‘한국 천주교 가정 제례 지침’에 따르면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허락한 제례는 유교식 조상 제사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조상에 대한 효성과 추모의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차원에서 그리스도교적으로 재해석한 예식이다. 따라서 한국 천주교 제례의 의미가 조상 숭배의 개념으로 오해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어본 장례 예식서는 교황청이 발간한 「장례예식 표준판」을 번역하여 1976년 출판됐다. 하지만 라틴어를 그대로 번역한 것이어서 한국의 상장례 문화가 전혀 고려되지 않은 한계를 지녔다. 이후 「상장 예식」이 완성되고 「상장 예식」 안에서 전례 예식 부분만을 따로 뽑아 만든 것이 「장례 예식」이다. 2004년 「장례 예식」(시안)이 만들어지고 나서 2018년이 돼서야 새 성경과 미사경본에 맞게 새롭게 번역, 출간됐다. 새 「장례 예식」은 그동안 관행처럼 행해지던 몇 가지 전례 사항을 수정했다. 우선, 장례 미사 전 성당 입구에서 사제가 시신에 성수를 뿌리고 기도하던 예식과 미사를 분리했다. 이전에는 성당 입구에서 하던 예식을 미사의 시작으로 보고, 사제와 유가족이 모두 성당에 들어오면 미사 시작 예식을 생략하고 본기도로 들어갔다. 새 「장례 예식」에 따르면 장례 미사 전 성당 입구에서의 예식은 ‘죽은 이의 집에서 하는 예식’으로 장례 미사와는 별개다. 성당 입구에서 예식을 했더라도 입당 후 미사 주례자는 제대에 인사하고 십자성호를 긋는 시작 예식부터 빠짐없이 미사를 거행해야 한다. 또 장례 미사 집전이 금지된 날(의무 대축일, 성주간 목요일, 파스카 성삼일, 대림ㆍ사순ㆍ부활 시기 주일)에도 위령 미사 기도문이 아닌 그 날의 전례 기도문을 사용하면 장례 예식을 거행할 수 있다. 장례 미사 때 고별식은 강복과 파견 예식을 대체하므로, 고별식을 했다면 강복과 파견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 「장례 미사」는 2019년 1월 사제들의 장례 미사 집전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간행됐다. 기존 「장례 예식」에서 미사 통상문과 독서 등을 수록했다. 또 장례 미사와 구분되는 ‘사망소식을 들은 뒤에 드리는 미사’ 기도문과 ‘성당 밖에서 거행하는 기일 미사’ 기도문도 포함했다. 가톨릭대 신학대 전례학 교수 윤종식 신부(의정부교구) 설이나 한가위와 같은 명절 때면 각 본당에선 조상을 기억하며 위령 미사를 봉헌한다. 이때 몇몇 본당에선 제대 앞에 제사상을 차린다. 가톨릭대 신학대 전례학 교수 윤종식(의정부교구) 신부는 “하느님께 드리는 흠숭의 공간과 조상께 드리는 공경의 공간은 명확하게 분리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자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가 오히려 신자들에게 미사와 제사가 같은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어서다. 윤 신부는 “미사가 완전히 끝난 뒤 상차림을 하고 연도를 바치거나 다른 장소에서 예식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윤 신부는 또 불교에서 유래한 49재를 지키는 풍습이 가톨릭교회 교리와 맞지 않는다고 했다. 49재는 죽은 뒤 세상에 다시 태어나는 윤회설에서 비롯한다. 죽은 뒤 하늘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한 삶을 누린다고 가르치는 가톨릭교회는 윤회를 인정하지 않는다. “49일에 맞춰 미사를 봉헌하기보다 신자라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성령이 강림한 50일을 기준으로 기일 미사를 봉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전례의 토착화와 사목적 배려를 강조하다가 자칫 교회 정신과 가르침에 어긋날 수 있는 위험이 있음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윤 신부는 이어 보다 토착화된 「장례 예식」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재 우리나라 화장률은 84.6%(보건복지부, 2017)에 이른다. 윤 신부는 “「상장 예식」에는 화장하기 전에 하는 기도가 포함돼 있지만 정작 전례에서 사용하는 「장례 예식」에는 수록돼 있지 않아 이 부분이 좀더 보완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목자에겐 장례 미사 집전뿐만 아니라 화장터, 장지까지도 동반하는 노력이 요청된다”고 말했다. 윤 신부는 상장례 예식에서 죽음이 슬픔이 아니라 하늘나라에서 새롭게 태어난다는 기쁨의 의미가 좀더 드러나기를 바랐다. 초기 가톨릭교회는 죽음을 슬퍼하기보다 파스카 신비를 묵상하며 감사의 노래를 불렀다. 윤 신부는 “연도에서 파스카의 의미가 담긴 시편 24편, 113편, 117편이 앞으로 추가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 시편은 초기 교회에선 불렸지만, 중세를 거치면서 생략됐다. 이와 함께 “죽음의 상징이 된 검은색 상복이 부활을 나타내는 흰색으로 복원돼야 한다”고 했다. “한민족의 상복은 흰색이었고, 삼베옷을 입었죠. 그리스도교 부활의 상징도 흰색입니다. 초기 교회 신자들은 장례식 때 흰옷을 입었고요. 지금 상황에선 현실적으로 흰색 양복을 입기는 어렵겠지만, 흰색을 복원할 방법을 고려해야 합니다.” 박수정 기자 평화신문2019.10.30

주님 부활 대축일 맞아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새단장가톨릭평화방송 TV 편성표(2019.04.21~2019.04.27)가톨릭평화방송 TV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신비가 완성되는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아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그리스도 부활의 참된 의미를 되새길 수 있고 가톨릭교회의 여러 이야기가 담긴 프로그램을 소개한다.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 특별 생중계 가톨릭평화방송 TV는 서울 주교좌 명동대성당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거행되는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를 특별 생중계 한다. 부활의 기쁨을 가톨릭평화방송 TV와 함께 느껴보자. 21일 낮 12시,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 21일 오후 4시 55분, 밤 11시 주님 부활 대축일 특선 영화 ‘부활’ 테러로 가족을 잃고 시골에서 홀로 살던 한 노인. 숲 속에서 숨어 있던 젊은이를 발견하고, 그를 집에 데려와 손님처럼 환대하며 지낸다. 어느 날 경찰들이 방문해 젊은이가 살인자로 쫓기고 있음을 알게 되는데….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 그 사람을 다시 희망으로 이끌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벨기에 영화다. 21일 오후 13시 30분, 밤 9시 다큐멘터리 ‘PURA VIDA’ ‘PURA VIDA’는 스페인어로 아름다운 인생(Beautiful Life)이라는 의미의 인사말이다. 2019 파나마 세계청년대회(WYD) 현장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귀한 시간에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코스타리카와 파나마로 순례 여정을 떠난 청년들의 이야기다. 21일 밤 8시, 22일 저녁 7시, 24일 오후 4시, 25일 밤 9시 가톨릭 명사 특강 가톨릭교회 안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명사들이 들려주는 성경과 신앙, 삶의 이야기 ‘가톨릭 명사 특강’. 홍보위원회 사무국장 이도행 신부의 ‘수난과 부활을 중심으로 한 사진 성지순례’로 문을 연 특강. 문화홍보국 황중호 신부와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허영엽 신부가 ‘광야에서 만난 하느님’, ‘거꾸로 읽는 창세기’ 등 유익한 성경ㆍ신앙 강좌를 선보인다. 또 방송인 이인혜(데레사)씨와 시인 신달자(엘리사벳)씨가 ‘바라지 않던 기적’과 ‘진짜 나로 살아가는 힘’을 주제로 진솔하게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본방 매주 금요일 오후 1시 / 재방 매주 토요일 오후 3시, 일요일 오전 6시 5분, 밤 12시, 월요일 저녁 8시 cpbc2019.04.18
![[성당에 처음입니다만] (12)‘거룩하시도다’를 왜 세 번씩 하나요](//cpbc.co.kr/CMS/newspaper/2019/05/rc/753051_1.0_titleImage_1.jpg)
[성당에 처음입니다만] (12)‘거룩하시도다’를 왜 세 번씩 하나요하느님 거룩함 상징하는 숫자, 전례에 쓰이다 미사 시작과 함께 참회 예식 때 “제 탓이오”를 세 번 반복하며 오른손으로 자기 가슴을 친다. 이는 자기 잘못에 대한 아픔과 뉘우침을 표시하는 것이다. 가톨릭평화신문 DB 나처음: 몇 차례 미사에 참여하다 보니 조금씩 말이 귀에 들리기 시작하네요. 그런데 이상하게 몇몇 기도 말은 꼭 세 번씩 반복하더라고요. 아주 중요한 대목인가 봐요. 지금도 기억에 나는데 “거룩하시도다”와 “제 탓이오”를 세 번씩 반복하고, “제 탓이오”라고 할 때는 손으로 가슴을 치더라고요. 왜 그러는 건가요?조언해: 몰랐니? 영성체 모시기 전 소화가 잘되라고 그러는 거~는 뻥이야! 정말 나도 왜 그럴까 궁금해지네. 그동안 아무런 생각 없이 읊기만 했나 봐. 신부님, 저도 궁금해요. 성부, 성자, 성령 이렇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각각 죄를 통회하고 찬미를 하기 위해 세 번 기도하는 게 아닌가요?라파엘 신부: 모든 전례와 그리스도인 신앙생활에서 ‘3’을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연관 지어 묵상하고 행하려 하는 것은 칭찬할만한 모범이 된 습관이라 생각해. 그 의미가 꼭 맞지 않아도 모든 걸 하느님과 연관 지어 그분 뜻을 헤아리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바람직한 자세라고 할 수 있지. 그래서 언해를 칭찬해 주고 싶어. 신앙인으로 참 잘살고 있는 것 같아. 전례에서 숫자 ‘3’이 갖는 의미를 이해하려면 먼저 성경에 드러난 숫자의 속뜻을 알아야 한단다. 성경에서 ‘3’은 사물과 시간의 시작과 중간, 그리고 마침을 가리켜. 가장 대표적인 예가 언해가 말했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지. 그래서 성경에서 ‘3’은 ‘하느님의 세계’를 가리킨단다. 하느님께서 가장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만군의 주 하느님”(이사 6,3)이라며 천사들이 찬미하지. 예수님께서도 세 차례 유혹을 받으시고, 무덤에 사흘 동안 묻혀 계시다가 부활하시지. 이렇게 하느님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수가 전례에 들어오게 된 것이란다. 전례에서 숫자 ‘3’은 하느님의 거룩함을 환호하고 간청할 때 사용되고 있단다. 먼저 미사 시작과 함께 참회 예식 때 “제 탓이오”를 세 번 반복하며 오른손으로 자기 가슴을 친단다. 이는 자기 잘못에 대한 아픔과 뉘우침을 표시하는 거란다.또 ‘자비송’이라고 하는 “자비를 베푸소서”를 세 번 외친단다. 짧지만 하느님께 죄를 고백하고 자비를 간청하는 아주 훌륭한 기도란다. 이 기도의 대상은 주님이신 그리스도이시지. 첫 번째 “진심으로 뉘우치는 사람을 용서하러 오신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는 루카 복음 4장 18-19절의 말씀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들에게 해방을, 소경들에게 눈뜰 것을 선포하며 억눌린 이를 풀어주시는 주님께 자비를 청한단다. 두 번째 “죄인을 부르러 오신 그리스도님,…”은 마태오 복음 9장 13절의 말씀을 그대로 옮긴 것이란다. 또 마지막 세 번째 기도 “성부 오른편에 중개자로 계신 주님, …”은 요한 복음 16장 26-28절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약속을 상기시켜주는 기도란다. 이처럼 자비송은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주님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환호라고 설명할 수 있지. 파스카성야에 복음 환호송 ‘알렐루야’도 세 번 외치지. 알렐루야는 히브리 말 ‘할흘루야’를 그대로 음역한 전례 환호란다. “너희는 주님을 찬양하라”는 뜻이란다. 알렐루야는 사순시기를 제외하고는 항상 노래해. 성찬 예식 감사 기도 끝 부분에 바치는 “거룩하시도다”도 세 번 반복하는데, 감사송인 이 부분은 미사에 참여하는 모든 회중이 하늘의 천사와 성인들과 결합해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찬양하는 환호란다. 마지막으로, 영성체 예식 때 “하느님의 어린양”을 노래하는 평화의 찬가도 세 번 반복한단다.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 바치는 이 환호는 우리가 모실 성체와 성혈이 단순한 빵과 포도주가 아니라 파스카의 희생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고 주님의 자비를 간청하는 기도야.이처럼 미사 중에 참회 예식과 말씀 전례, 성찬 예식과 영성체 예식도 하느님의 자비와 거룩함을 찬미하기 위해 세 번씩 환호를 외친단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19.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