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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앙의 보물들제45회 종말 (박병규 요한보스코 신부)종말, 세상 끝 날에 대한 관심은 종교적인 관심인 동시에 인간 본래의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종말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가리키는 또 다른 표현이다. * 종말의 어원 히브리말 : ''아하리트''(aharit), 그리스어 번역 성경: ''에스카타'' ''에스카타''란 말은 끝을 가리키는 말이다. 시간의 끝을 가리키기도 하고, 한 인간의 운명 지워진 끝을 가리킬 때 사용된 말이다. "누가 먼지처럼 많은 야곱의 자손들을 헤아릴 수 있으리오? 누가 먼지 구름 같은 이스라엘의 수를 셀 수 있으리오? 나도 올곧은 이들처럼 죽을 수 있다면! 내 종말도 그들과 같을 수 있다면!" (민수 23,10) 여기서 종말은 한 인간의 끝, 곧 죽음과 동일시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자네의 시작은 보잘 것 없었지만, 자네의 앞날은 크게 번창할 것이네." (욥 8,7) 이 말은 욥의 친구 발닷의 말인데, 욥이 겪는 고통은 참혹할지라도 하느님께서 앞날, 곧 종말에 보상할 것이라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이다. 동시에 종말이라는 말은 공동체적 운명을 결정적으로 일컬을 때 사용되기도 했다. 선택된 민족인 이스라엘이 구원의 순간으로 접어 들어가는 때를 종말로 이해하고 있다. 종말이라고 할 때 우리들이 흔히 머리에 떠올리는 것이 ''시간의 흐름''에 관련된 것들이다.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 오고 또 그 다음 내일이 와서 시간의 마지막에 다다르는 것이 종말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의 사고방식에는 그러한 물리적 시간의 흐름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의 끝, 혹은 세상의 완전히 새로운 순간을 생각할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야훼 하느님과의 관계를 떠올렸다. * 이스라엘 인들이 이스라엘 인으로 형성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느님의 약속 때문이었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 (창세12,1-2) 이 약속은 시나이산 계약을 거쳐, 가나안 복지에로 향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여정의 방향타가 된 것이다. * 이스라엘 왕실의 영광 "너 유다야, 네 형제들이 너를 찬양하리라. 네 손은 원수들의 목을 잡고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엎드리리라. 유다는 어린 사자. 내 아들아, 너는 네가 잡은 짐승을 먹고 컸다. 유다가 사자처럼, 암사자처럼 웅크려 엎드리니 누가 감히 그를 건드리랴? 유다에게 조공을 바치고 민족들이 그에게 순종할 때까지 왕홀이 유다에게서, 지휘봉이 그의 다리 사이에서 떠나지 않으리라. 그는 제 어린 나귀를 포도 줄기에, 새끼 나귀를 좋은 포도나무에 매고 포도주로 제 옷을, 포도의 붉은 즙으로 제 겉옷을 빤다." (창세 49,8-11) "나는 한 모습을 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나는 그를 바라본다. 그러나 가깝지는 않다.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 그는 모압의 관자놀이를, 셋의 모든 자손의 정수리를 부수리라." (민수24,17) * 예수님에게 등을 돌린 이스라엘에게 하느님은 심판으로 경고를 하시시지만, 하느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느님 약속(복)으로 돌아오길 바라신다. * 하느님을 통한 희망과 행복은 포기될 수 없다. 예레미야를 통행 하느님과의 관계를 다시 한 번 다잡아 놓는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주신다.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