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63)로마로 가다가 폭풍을 만나다(27,1-20)](//cpbc.co.kr/CMS/newspaper/2020/05/rc/778579_1.3_titleImage_1.jpg)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63)로마로 가다가 폭풍을 만나다(27,1-20)거센 풍랑으로 절망에 빠진 바오로 일행 바오로는 카이사리아를 출발해 배편으로 로마를 향하지만, 그가 탄 배는 크레타 섬 남쪽에서 폭풍을 만나 며칠 동안 표류하다가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다. 그림은 바오로의 로마 여행 경로의 일부. 출처=「주석성경」 바오로가 카이사리아를 떠나 배를 타고 로마로 갑니다. 하지만 도중에 폭풍을 만나 배에 탄 사람들 모두 엄청난 어려움을 겪습니다. 살아날 희망이 사라져 버린 것 같습니다. 로마로 출발하다(27,1-12)마침내 로마로 가기로 결정돼 바오로는 다른 수인들과 함께 ‘황제 부대’의 율리우스라는 백인대장에게 넘겨집니다.(27,1) 사도행전 본문에는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바오로를 로마로 보내기로 결정한 것은 관할권자인 페스투스 총독이었을 것입니다. 바오로가 황제에게 상소한 데 따른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저자는 여기서 “우리가 로마로 가기로 결정되자”라고 복수 1인칭을 사용합니다. 이 복수 1인칭은 바오로가 로마에 들어간 것을 전하는 28장 16절까지 계속됩니다. 사도행전에는 여기만이 아니라 다른 대목(16,10-17; 20,5-15; 21,1-18)에서도 “우리”라는 복수 1인칭이 사용되고 있지요. 이 대목들은 모두 여행 기록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우리’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은 사도행전 저자가 일종의 ‘여행일지’를 자료로 받아서 정리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현장감을 더하기 위한 문학적 기교의 하나라는 주장도 있습니다.사도행전 저자가 ‘우리’라고 표현한 바오로의 일행 중에는 테살로니카 출신인 아리스타르코스도 함께 있었습니다. 아리스타르코스는 바오로가 3차 선교 여행 중 에페소에서 지낼 때 동행한 인물입니다.(19,29; 20,4) 바오로 일행은 아시아 속주 곧 오늘날 터키 서쪽 지방의 여러 항구로 가는 아드라미티움 배를 타고 출발합니다. 아드라미티움은 아시아 속주의 위쪽 지방인 미시아에 있는 항구 도시입니다.배는 다음 날 카이사리아 북쪽 지중해 항구인 시돈에 닿았고 백인대장은 바오로에게 인정을 베풀어 “바오로가 친구들을 방문하여 그들에게 보살핌을 받도록 허락합니다.”(27,2-3) 바오로의 친구들이란 시돈의 그리스도 신자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배는 시돈을 출발하지만, 역풍을 피하고자 키프로스 섬 동쪽 해안을 타고 소아시아 곧 오늘날 터키의 남쪽 지방들인 킬리키아와 팜필리아 앞바다를 가로질러 리키아 지방의 미라에 이릅니다.(27,4-5) 당시 지중해 동쪽 팔레스티나 연안에서 소아시아 서쪽의 에게해 연안 도시들로 가려면 키프로스 섬 남쪽 바다를 거쳐서 가는 것이 거리상으로는 가깝습니다.하지만 늦여름부터 가을까지는 이 해역에 강한 서풍이 불어서 이 뱃길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역풍이 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바오로 일행은 역풍을 피해 키프로스 섬 동쪽 해안을 타고 터키 남부와 키프로스 섬 사이를 항해해 미라까지 간 것입니다. 미라는 로마 제국의 곡창지대 역할을 하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항구에서 곡물을 싣고 이탈리아로 가는 배들이 중간에 들르는 항구 도시였습니다. 백인대장은 이곳에서 이탈리아로 가는 알렉산드리아 배에 바오로 일행을 태웁니다. 배는 이탈리아 쪽으로 항해를 계속하지만, 맞바람인 서풍이 불어서 여러 날 동안 더디게 항해하다가 간신히 소아시아 속주 서남쪽 끝의 크니도스 항구에 도착합니다. 하지만 맞바람 때문에 서쪽으로는 더 이상 가지 못한 채 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크레타 섬 북동쪽에 있는 살모네를 거쳐 섬 남쪽의 ‘좋은 항구들’이라는 곳에 닿습니다.(27,6-8) 그 사이에 많은 시일이 흐릅니다. 단식일도 지나고 항해하기가 위험해지자 바오로가 나서서 “이대로 항해하면 짐과 배뿐만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위험하고 큰 손실을 입을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경고합니다.(27,9-10) 단식일은 유다인들이 9월 말에서 10월 초 사이에 지키는 ‘속죄일’을 가리킵니다. 이 속죄일 이후에는 바람이 거세고 파고가 심해 배편으로 여행하는 것이 위험해져서 이듬해 2~3월까지 뱃사람들은 사실상 항해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바오로는 이 점을 경고한 것입니다. 배의 실제 지휘권자인 백인대장은 바오로의 말보다 선주와 항해사의 말을 더 신뢰했지만(27,11) ‘좋은 항구들’이란 곳이 이름과는 달리 겨울을 나기에 좋지 않은 항구여서 섬 서쪽 끝 항구인 페닉스까지 가서 겨울을 나기로 의견을 모읍니다. 페닉스는 남서쪽과 북서쪽 바다를 다 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27,11-12) 계속된 폭풍으로 희망을 잃다마침 남풍이 부드럽게 불었습니다. 배는 닻을 올리고 크레타 해안에 바짝 붙어서 서쪽으로 항해합니다.(27,14) 해안에서 떨어지면 북풍에 그만큼 배가 더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에우라킬론’이라는 폭풍이 크레타 섬에서부터 몰아칩니다.(27,15) 이 폭풍은 크레타 섬의 이다 산맥에서 부는 거센 바람을 가리키는데, 작은 배들이 이 바람에 휩쓸리면 전복되거나 멀리 아프리카 해안까지 떠밀려 간다고 합니다. 바오로가 탄 배 역시 이 바람에 휩쓸립니다. 배 뒤에 달고 다니던 보조선을 배 위로 끌어올리지도 못한 채 이리저리 휩쓸리다가 ‘카우다’라는 작은 섬을 지나면서 바람이 가려진 틈을 타 간신히 보조선을 끌어올립니다. 그러나 폭풍에 배가 멀리 밀려가지 않도록 닻을 내린 채 떠밀려 다닙니다.(27,16-17) 북아프리카 리비아 앞바다에는 사르티스라는 곳이 있는데, 위험한 모래톱이 있어 배가 좌초되는 일이 잦았다고 합니다. 선원들은 이를 두려워해 닻을 내린 채 폭풍에 배를 내맡긴 것입니다. 그러나 폭풍이 계속되자 선원들은 이튿날 짐을 일부 바다에 던져 버립니다.(27,18) 배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이탈리아까지 가는 큰 배여서 배 안에는 이집트에서 실은 곡물들을 비롯해 이탈리아로 보내는 여러 짐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짐을 다 버릴 만큼 폭풍이 거세게 계속됐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안 되자 사흘째 되는 날 선원들은 배에 딸린 도구들마저 자기들 손으로 직접 바다에 내던져 버립니다.(27,19) 상황이 그만큼 절박했던 것입니다. 여러 날 동안 폭풍에 시달렸는데도 해는 별로 보이지 않고 바람만 거세게 불어댑니다. 사도행전 저자는 “마침내 우리가 살아날 희망이 아주 사라져 버렸다”고 표현합니다.(27,20)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이고 처절한지를 드러내 주는 표현입니다. 생각해봅시다바오로는 이미 세 차례의 선교 여행을 하면서 바다 여행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래서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내는 둘째 편지에서는 이렇게 쓰기도 했습니다. “나는…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입니다. 밤낮 하루를 꼬박 깊은 바다에서 떠다니기도 했습니다.”(2코린 11,25) 그렇다면 바오로는 바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항해를 계속하는 것의 위험성을 직감했고, 그래서 수인의 몸인데도 불구하고 나서서 경고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은 묵살당했고 그로 인해 배에 탄 사람들은 모두 절망적인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대수롭지 않은 듯이 보이는 사람의 말도 경청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가 더 잘 안다고,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이 때로는 더욱 큰 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르 4,9) 하신 예수님 말씀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alfonso84@hanmail.net cpbc2020.05.06
교회, 코로나 확산 막기 위해 적극적 조치 나서 광주·대구대교구 등 사목 지침 발표해 감염증 증상자 주일 미사 면제, 각종 행사도 잇따라 취소 광주대교구와 대구대교구는 5일과 6일 각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 관련 사목 지침을 발표하고, 감염증 주요 증상이 있는 신자들은 확진 판정 여부와 관계없이 주일 미사 의무를 면제한다고 밝혔다.주일 미사에 빠지는 신자들은 묵주기도 5단, 주일 미사의 독서와 복음 봉독, 선행 등으로 주일 미사 의무를 대신하면 된다.(「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74조 4항) 두 교구는 △미사 중 마스크 착용 허용 △양형 영성체 금지 △미사 중 악수, 포옹 등 직접적 신체 접촉 중단 △성수대 폐쇄 △본당과 시설, 기관에 손 소독제, 마스크 비치 △개인 성경과 성가집 사용 등을 권고했다. 대구대교구는 성체분배 때 하는 “그리스도의 몸”과 “아멘” 기도를 생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광주대교구는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 어려움이 하루빨리 진정되고 질병으로 고통받는 분들과 의료진들을 위해서도 함께 기도해 주기 바란다”며 “이번 지침은 정부에서 안정이 됐다고 공식 발표하기 전까지 유효하다”고 설명했다.이와 함께 확진자 발생 지역을 관할하는 서울대교구 몇몇 본당은 어린이 미사와 중ㆍ고등부 미사를 중단했다. 전국 각 교구에서도 예정된 주요 행사와 미사들이 잇달아 취소되거나 미뤄지고 있다. 서울 가락동본당(주임 이찬홍 신부)은 본당 관할 구역인 헬리오시티 아파트 주민 중 확진자가 발생함에 따라 토요일 어린이 미사와 주일 중ㆍ고등부 미사를 당분간 봉헌하지 않기로 했다. 교중 미사와 청년 미사 등 나머지 주일 미사와 평일 미사는 그대로 봉헌된다. 이찬홍 주임 신부는 “본당 통신문을 통해 ‘본당 신부의 관면이 있으니 미사에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고 전했다”며 “어린이 미사와 중ㆍ고등부 학생 미사는 관면을 줬고 성인은 각자 알아서 선택하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조치는 사목적 배려 차원에서 이뤄진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1월 약 1만 가구가 입주한 대단지인 헬리오시티 지역 인근 학교와 학원은 확진자가 발생한 후 휴교와 휴원한 상태다. 확진자가 발생한 서울대교구 제4 종로-성북지구 내 돈암동(주임 주경수 신부)ㆍ정릉4동본당(주임 강사집 신부) 등도 2월까지 어린이 미사를 중단하기로 했다. 성북동본당(주임 장혁준 신부)은 중고등부 겨울 피정을 취소했다. 서울시 교육청은 5일 감염 확산이 우려되는 성북구, 중랑구 내 학교와 유치원에 13일까지 긴급 휴업명령을 내렸다. 수원교구 성소국은 2월 열릴 예정이던 지원반 예비신학생 모임 등 4개 행사를 취소하고 교구 간부 신학생 및 예신 담당 신학생 연수만 정상적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사회복음화국도 상반기 본당 사회복지분과 교육을 4월로 연기하는 등 4개 행사를 연기하고 생명나눔 헌혈·장기기증캠페인 사전교육 등 3개 행사는 취소했다. 대건청소년회도 동아리 연합 봉사캠프 등 2개 행사를 취소했고 지도자 자격연수는 3월로 연기했다. 원주교구는 3월 25일 충북 제천 배론성지 내에 새로 설립된 ‘은총의 성모 마리아 기도학교’ 봉헌식을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일정을 연기하기로 했다. 교구는 7일 긴급회의를 열어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인해 기도학교 일정을 연기, 5월 25일 봉헌식을 거행하기로 했다. 인천교구는 13일 예정된 ‘지구를 위한 미사’를 취소ㆍ연기했다. 복음화사목국이 마련한 ‘새 반장 학교 교육’도 무기한 연기하기로 했다. 청소년사목국이 준비한 신입 교리교사 연수, 유ㆍ청소년부 전례연수와 청소년 전례음악 연수도 취소됐다. 안동교구는 14일~16일 계획한 청소년 견진 캠프를 취소하고 내년으로 연기했다. 2월에 열리는 공소 1일 교육과 구역장 반장 연수 등 교육 행사도 모두 미뤘다. 군종교구도 14일로 예정된 후원회 모임을 6월로 연기했다.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박수정·이지혜·이정훈·이학주 기자 전국 교구에 있는 주요 성지들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영향을 받고 있다. 순례자들이 대폭 감소하고 단체 성지순례 예약이 속속 취소되고 있다. 성지에서도 단체 순례자에게 방문 자제를 요청하는 상황이다. 일부 성지는 성지 안내를 중단하거나 기념관을 폐쇄했다. 또 성지마다 성수대에 성수를 비우고 손 소독제를 비치하며, 마스크를 제공하는 등 감염증 확산 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울 새남터순교성지는 미사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미사 전후 바치던 묵주기도와 성인호칭기도를 생략했다. 전례 때 안수 의식도 생략하고 성가는 기도문으로 대체했다. 또 3일부터 성지 안내를 중단하고 기념관을 폐쇄했다. 서울 절두산순교성지와 서소문 성지역사박물관, 서울대교구 역사관은 단체 순례자에게 성지 방문 예약을 취소하거나 미루기를 요청하고 있다. 세 곳 역시 성지 해설을 중단했다. 대구대교구 관덕정순교기념관은 순례자들에게 마스크를 나눠주고, 손 소독제 사용 후 입장을 요청하고 있다. 또 한 달에 두 차례 국내 성지를 방문하는 ‘관덕정 국내 성지순례’ 프로그램의 3월 일정을 취소했다. 원주교구 배론성지와 청주교구 배티성지는 순례객이 평소보다 절반 이상 줄었다. 손 소독제를 비치하고 직원들은 마스크를 착용한 채 순례객을 맞고 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평화신문2020.02.12
![[사랑이피어나는곳에] “빨리 털고 일어나 주님 말씀 전하고 싶어요”](//cpbc.co.kr/CMS/newspaper/2019/11/rc/767057_1.1_titleImage_1.jpg)
[사랑이피어나는곳에] “빨리 털고 일어나 주님 말씀 전하고 싶어요”2년 전 혈액암 판정받고 투병,,
30년째 우울증도 앓고 있어,,
성탄에 세례 받으려 준비 중 김정임(가운데)씨가 자신을 찾아와 준 자양동본당 임용선(왼쪽), 김해주 분과장과 함께 주님의 기도를 바치고 있다. 김정임(예비신자, 서울 자양동본당)씨가 윗입술을 들어 보이자 이가 없는 휑한 잇몸이 드러났다. 윗니는 모두 빠졌고 썩어가는 송곳니가 위태로워 보였다. 어금니 쪽 잇몸도 무너져내려 한눈에 봐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뭘 제대로 먹을 수가 없어요. 교수님께서 암환자는 몸무게가 빠지지 않도록 잘 먹어야 한다는데…. 한 달 사이에 2kg이 빠져서 너무 무섭습니다. 도와주세요.”김씨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건 저를 주님께 인도해 준 성당 분들이 계셔서”라며 임용선(노엘) 사회사목분과장과 김해주(엘리사벳) 생명분과장 손을 붙잡으며 고맙다, 감사하다며 연신 머리를 숙였다. 2년 전 혈액암 판정을 받은 김씨는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가까스로 마쳤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임대주택 단칸방에서 혼자 사는 그는 혈액암 수술과 항암 치료를 홀로 견뎌내며 날마다 눈물로 지새웠다. 두 달에 한 번씩 병원에 정기 검진을 갈 때면 혹시 암이 재발한 건 아닌지, 다른 곳으로 전이된 건 아닌지라는 생각에 늘 불안했다. 그러다 지난해부터 이가 아프고 흔들리면서 빠지기 시작하더니 더는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치과에선 항암 부작용이라고 했다. 30년째 앓고 있는 우울증은 더 심해져 임대주택 단칸방에서 단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김해주 생명분과장은 “처음 가정 방문을 왔을 땐 자매님 상태가 보기 힘들 정도였다”면서 “이야기도 횡설수설했고, 표정도 너무 어두웠다”고 말했다. 김정임씨는 1980년대 3년간 일본에서 밤무대 가수로 활동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때 번 돈을 정말 한 푼도 안 쓰고 친언니에게 보냈는데, 한국에 돌아와 보니 빈털터리가 돼 있었다”고 흐느꼈다. 그는 일본에서 강도를 당해 칼에 찔렸다가 간신히 살아났다. 강도 트라우마로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됐기에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때부터 정신과 약을 먹으며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나마 뜸하게 연락하던 언니는 그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는 연락을 끊어버렸다.김씨는 “생명분과장님과 사회사목분과장님 덕분에 다시 밖에도 나갈 수 있게 됐다”면서 “주일마다 미사에 참여하고 교리를 배우는 시간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마리아’라는 세례명으로 다가오는 성탄에 세례를 받는다.“최근에 루카복음을 다 썼어요. 성경 필사할 때면 두려움도 불안도 사라지고 오로지 주님 말씀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고통을 잊을 수 있었어요. 빨리 이도 치료하고 몸을 회복해 저도 주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요.”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후견인-임용선(노엘, 서울 자양동본당 사회사목분과장)“아픈 가운데서도 예비자 교리를 열심히 받으며 하느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 김정임씨에게 가톨릭평화신문 독자들께서 꼭 힘이 되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성금계좌(예금주 : 가톨릭평화방송)국민 004-25-0021-108 농협 001-01-306122 우리 454-000383-13-102※김정임씨에게 도움 주실 독자는 24일부터 30일까지 송금해 주셔야 합니다. 이전에 소개된 이웃에게 도움 주실 분은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담당자(02-2270-2421)에게 문의 바랍니다. 평화신문2019.11.20

종교에 자유가 필요한 것처럼 인간의 자유 위해 종교 필요알베르 카뮈와 유발 하라리 종교 비판, 21세기 종교의 블루오션으로 변모될까 「호모데우스」 저자 유발 하라리(왼쪽)와 소설 「페스트」 저자 알베르 카뮈. 전염병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19가 낳은 현상’으로 평가받는 알베르 카뮈(1913~1960)의 소설 「페스트」는 세계 최대 인터넷 서점 아마존의 베스트셀러 목록(6일 기준) 프랑스 문학 1위, 유럽 문학 2위, 그리고 세계 문학 8위를 탈환했다. 카뮈 자신이 “가장 반-그리스도교적인 책”이라 칭한 창조된 세계에 대한 반항의 의미를 다룬 「페스트」. 사람들은 이제 성경보다 이 책을 펼쳐보기 바쁘다. ‘유발 하라리 현상’도 이에 못지않다. 세계 언론은 서로 앞다투어 인류가 직면한 최대의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종교지도자가 아닌 역사학자에게 자문한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제기된다. 코로나19 현상이 낳은 카뮈의 현재성과 하라리의 천재성을 통해 드러난 종교의 과제와 의미는 무엇인가? 대유행 사태 이후 종교가 자신의 추상성에서 내려와 현실의 구체성에 기반을 둔 진리의 보편성을 증명할 수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두 지성의 메시지를 살펴본다. ▨ 연대의식의 문제, 코로나19 속 카뮈의 현재성왜 사람들은 다시 「페스트」(1947)를 읽고 있을까.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최대 걸작’이란 평을 받은 이 소설은 알제리의 항구도시 오랑을 무대로 한다. 「페스트」는 전염병이 휩쓴 잔혹한 현실과 죽음 앞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야말로 이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진정한 반항임을 이야기한다. 이 소설의 번역가 김화영(책세상)은 “「페스트」 착상의 기폭제가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며, 작품의 첫 착상에서부터 페스트는 ‘전쟁’의 내면화 과정을 상징하기 위하여 사용된 것”이라 평가했다. 카뮈는 폐쇄된 도시를 설정함으로써 인간이 이미 갇힌 존재임을 일깨워주며, 이런 현실 속에서 각 개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해 묻는다. 또 다른 번역가 유호식(문학동네)은 “「페스트」는 한 개인이든 아니면 오랑 시민처럼 집단 전체든 위기의 순간에 인간이 향해 가야 할 연대의식의 지평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이어 “카뮈에게 순전히 개인적인 상황은 없다. 한 상황은 우리 모두의 상황이 되고 공동의 해결책을 요구한다”면서 이 작품이 “개인의 일이 집단의 관심사가 되고 집단에 닥친 사건 때문에 개인들이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강조한다. 연대에 대한 중요성은 「사피엔스」와 「호모데우스」의 저자 역시 견해를 같이한다. 지난 4월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와의 인터뷰에서 하라리는 “인류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닌 인간 내면의 악마인 증오와 탐욕, 무지”라고 지적했다. 그는 “연민과 국제적 연대를 통해 현 위기를 타파해나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 하라리, 코로나19 이후 죽음에 대한 인간의 태도 달라질 것하라리는 코로나 이후 죽음에 대한 전통적 인식에 대한 변화를 예측했다. 4월 20일 영국의 일간지 ‘더 가디언’ 기고에서 그는 “모든 기술적 문제에는 기술적 해법이 있다.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예수의 재림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실험실의 과학자 몇 명이면 된다. 과거에 죽음이 성직자와 신학자들의 전문분야였던 반면, 이제는 실험실의 공학자들이 그 권한을 인수받았다”고 지적했다. 이는 2015년 출간된 「호모데우스」를 통해 분석한 내용과 같으며 자신의 견해가 코로나 사태에도 변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같은 책에서 하라리는 “현대의 과학과 문화는 삶과 죽음에 대해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한다. 이 둘은 죽음을 형이상학적 신비로 간주하지 않으며, 당연히 죽음에서 인생의 의미가 나온다고 보지도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더 가디언’에서 그는 “인류 최고의 지성들은 이제 더는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파악하려 애쓰지 않는다. 대신에 그들은 삶을 연장하기에 바쁘다”며 과학기술 발달로 인해 인간이 죽음에 대한 종교적ㆍ형이상학적 의미를 찾기보다 연장에 그 의의를 둘 것임을 예고했다.▨ 미래에도 인간 실존의 문제는 미해결로 남을 것동시에 카뮈와 하라리는 과학이 가져다줄 장밋빛 미래에 열변을 토하기보다, 여전히 남아있게 될 인간사의 문제와 불평등을 인지한다. 사후에 출간된 「작가수첩Ⅱ」에서 카뮈는 “과학은 기능을 설명할 뿐 존재를 설명하지 않는다”며 과학의 범위와 역할에 관한 한계점을 그은 바 있다. ‘더 가디언’에서 하라리는 “의사들은 인간 존재의 수수께끼를 해결하지는 못하며, 단지 연장된 삶을 제공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만일 수세기 안에 인간의 생명이 무한정으로 연장되더라도, 그것은 소수의 억만장자의 자녀들에게나 가능한 것이지 대부분은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며 생명 연장이 실제로는 일부의 특혜로 남을 가능성이 높음을 지적했다. ▨ 카뮈 × 하라리, “정치적 전체주의에 저항하라”두 지성이 전염병 위기 속 의견 수렴이 이루어진 부분은 ‘전체주의’에 대한 경고이다. 평론가들은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카뮈가 전쟁과 전체주의, 나치즘을 마치 페스트와 같은 대재앙으로 여겼음을 지적한다. 지난 3월 ‘파이낸셜 타임스’에 게재된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의 세계’에서 하라리는 시민들은 개인의 사생활과 건강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할 필요가 없으며 이 둘 모두를 누릴 권리가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일부 국가들을 예로 들어 코로나 위기 속 시민의 건강을 위한 명목으로 ‘전체주의적 감시 체제’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는 현상을 경고하며, ‘시민역량 강화’를 통한 상호 간의 불균형을 맞추지 않으면 개인의 사생활과 자유의 침해, 이에 따른 사후적인 피해 또는 습성이 국가에 남아있을 수 있음을 지적했다. ▨ 인간의 의식과 자유에 관한 상호 간의 사상적 일치는 존재종교의 가치와 의미에 타격을 가한 하라리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의식과 자유에 관한 상호 간의 사상적 일치는 존재한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세상의 빛」(2010)에서 “인간이 발전하면서 능력이 커지기는 했지만, 도덕적이고 인간적인 성숙과 잠재력까지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다시 내적 균형을 되찾아야만 하며 정신적인 성장도 필요하다는 것을 시대의 커다란 역경들을 통해 점점 더 절감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는 하라리가 「호모데우스」에서 “의식과 지능은 다른 것이다. 인류가 컴퓨터의 지능을 개발하고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의 의식은 무엇이며, 인간의 의식을 더 개발하고 성장시키기 위해서 연구하고 투자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와 일맥상통한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또 「미래의 도전들」(2005)에서 “과학 발전이 ‘새로운 억압들’과 ‘새로운 지배계층’을 양산하는 것을 우려하고 경고”한 바 있다. 하라리는 전체주의적 감시가 팽배해져 현실의 완벽한 통제가 곧 개인에 대한 완벽한 감시와 통제로 이어질 수 있음을 지적했는데, 이는 인간 자유의 박탈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교황은 “종교에 자유가 필요한 것처럼 자유를 위해 종교가 필요함”을 강조하며 “과학이 인간을 존중하는 데 기여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고유한 척도로서 과학의 성공 자체만을 지향할 때 과학의 진정한 본질은 사라지고 만다”고 주장한다. 과학이 종교를 이미 대체했으며 실리콘밸리가 결국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하라리의 견해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한 과학의 찬양에 대한 건전한 비판세력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여전히 종교의 역할로 남게 된다. 카뮈와 하라리의 견해들을 다각적으로 수용하고 검토한 새로운 사고의 영역 위에 그리스도교를 포함한 종교 분야의 블루오션이 21세기에 탄생할 수 있을까? 그것의 여부는 오늘날 보여지는 종교의 행보에 따라 결정될 소설 「코로나19」에 등장할 사제의 캐릭터가 말해줄 것이다. 「페스트」의 파늘루 신부가 그러했듯이 말이다.정석원 인턴기자 cpbc2020.05.20

풀뿌리와 맹물로 연명했지만 나눔의 기쁨 가득한 신앙 공동체[순교자 성월 특집] 박해 시대 신앙을 지킨 힘, 교우촌 공동체 옹기를 구워 팔며 생계를 유지하던 교우촌 한 가정집. 가톨릭평화신문 DB 천주교 신앙을 믿는 이들이 한데 모여 살며 마을을 이룬 교우촌(敎友村)은 조선 시대 박해 시기 생겨난 신앙 공동체다. 박해를 피해 삶의 터전을 버리고 온 이들은 서로에게 부모, 형제, 자매가 돼주며 서슬 퍼런 칼날 아래에서도 굳건하게 신앙을 지켰다. 순교자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었던 데는 교우촌을 통해 하늘나라의 삶을 지상에서 살았던 체험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선교 사제들은 교우촌 신자들의 삶에서 가진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며 신앙생활을 한 초대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봤다고 고백했다. 순교자 성월을 맞아 혹독한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이어온 교우촌 공동체의 삶을 기억하며, 지금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생활 환경박해를 피해 신자들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길도 나지 않은 산골짜기에서 터전을 일구는 일은 험난했다. 땅이 척박해 아무도 살려고 하지 않는 곳을 찾아다녔다. 밤이면 불빛 하나 없는 암흑이었고 곳곳에 맹수들이 우글거렸다. 호랑이에게 물려 죽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런 곳에서 신자들은 화전(火田)을 일궈 잡곡을 심었다. 산나물과 과일, 약초로 연명했다. 여름 장마철에는 급류에 휩쓸려 가고, 겨울에는 폭설에 파묻히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사람들에게 거처를 들켰다 싶으면 빨리 다른 곳으로 도망가야 했다. 거처를 너무 자주 옮겨 다니다 보니 걸인보다 더 심한 굶주림을 겪었다. 모방 신부는 편지에서 “영하 10~12℃가 되는 한겨울에 거의 벌거벗은 어린애들이 추위로 새파랗게 얼어가는 것을 보았다. 어떤 시기에는 산에서 뜯어 온 풀뿌리와 맹물이 교우들의 유일한 양식”이라고 전했다.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비참한 생활이 이어졌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는 천주교 신앙이 더욱 굳건해지고 전국적으로 퍼지는 계기가 됐다. 여진천(원주교구, 수원가톨릭대 교수) 신부는 2018년 11월 ‘교우촌 믿음살이와 그 지도자들’을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 “박해를 피해 늘 떠나야 하는 특성 때문에 물질 중심주의 삶보다는 하느님의 섭리에 온전히 맡기는 삶이 됐다”고 분석했다. 신앙 생활교우촌 신자들은 함께 모여 기도하고 성경을 읽었다. 또 교리를 서로 가르쳐 주며 신앙을 이어갔다. 주일이면 기도문을 외고, 교우촌 회장의 복음 해설을 들으며 하느님 말씀을 배웠다. 사제가 교우촌에 오는 날이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새 옷으로 갈아입고 설레는 마음으로 사제를 기다렸다. 움막은 성당이 되고 나무판자는 제대가 됐다. 흙벽에 박아 놓은 십자가가 유일한 장식이었다. 사제가 성사를 마치고 돌아가면 아쉬움에 모두가 눈물을 흘리고 통곡했다. 극기와 단식은 일상이었고 사순 시기에는 더욱 엄격한 생활을 이어갔다. 글을 알고 학식이 있던 이들은 이웃들에게 기도문을 알려주고 교리를 가르치는 것을 본분으로 알았다. 이들은 밤낮으로 교회 서적을 필사해서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천주교를 알렸다. 교우촌 신자들은 교리서와 기도서를 소중하게 여겼다. 박해가 극렬했던 때에는 혹시라도 사람들에게 들킬까 봐 성경과 교리서, 성상을 숨겨놓고 지냈다. 교우촌이 발각되고 신자들이 줄줄이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이들은 감옥 안에서 함께 모여 기도를 바치며 신앙생활을 이어갔다.신앙 실천샤를 달레(1829~1878) 신부는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이렇게 전하고 있다. “모든 이가 그 가난한 가운데서도 아무것도 없는 형제들에게 도움을 베풀 줄을 알았고, 과부와 고아들을 거두어 주니 이 불행한 시절보다 우애가 더 깊었던 일은 일찍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일을 목격한 노인들은 그때에는 모든 재산이 정말 공동으로 쓰였다고 말한다.” 교우촌 신자들은 새 신자 가족이 교우촌에 오면 누구라 할 것 없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내줬다. 누구도 받아주지 않는 과부와 고아도 교우촌에선 굶주리지 않고 살 수 있었다. 외교인들은 과부들이 동냥하러 다니면 ‘천주학쟁이들’한테 가보라고 할 정도였다. 하느님 말씀에 따라 궁핍한 가운데서도 애덕을 실천하며 쌀 한 줌, 물 한 모금이라도 나누는 삶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재산이 있는 이들은 자신의 집을 공소로 쓰도록 내놓았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을 도왔다.순교자들의 증언“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면서 함께 천국으로 올라가자 하시는데, 어떻게 배교할 수 있겠습니까. 이 잠시 지나가는 목숨을 보전하려고 참된 생명과 영원한 행복을 잃을 수 있겠습니까.”(이시임 안나)“사람의 가장 큰일은 천주를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고 천국을 얻는 것입니다. 이 큰 본분을 채우지 않고 세월을 허송한다면, 살아서 무엇하겠습니까.”(김종한 안드레아)“제가 아들을 보지 못할지언정 저는 저의 하느님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최 비르지타)“문초를 당하면 모든 것을 나에게 뒤집어씌우시오. 천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최봉한 프란치스코)“예수 그리스도를 위하는 것이라면 비록 사형을 받을지라도 달게 여기겠습니다.”(홍필주 필립보) cpbc2019.09.17

“몸과 마음 오롯이 바쳐 사제 직무에 투신하길”청주 2명·마산 4명·대전 9명 새 사제 탄생… 예수 성심 전교 수도회도 새 신부 2명 배출 대전교구 부제들이 제대에 엎드린 가운데 유흥식 주교와 김종수 주교, 교구 사제단, 교구 하느님 백성들이 다 같이 성인호칭기도를 바치고 있다. 청주교구는 7일 청주체육관에서 교구장 장봉훈 주교 주례로 2020 사제서품식을 거행하고, 박병률ㆍ정준교 새 신부 2명을 배출했다. 이로써 교구 사제는 197명이 됐다.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1코린 13,2)를 수품성구로 정한 새 사제 박병률 신부는 “신학교 입학 전부터 지금까지 10년 동안 교수 신부님들과 한국순교복자빨마수녀회 수녀님들, 은인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분의 도움과 기도가 있었기에 사제품을 받을 수 있었다”면서 “예수님처럼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사제로 살고 싶다”고 밝혔다. 장 주교는 강론을 통해 “한없이 부족하고, 보잘것없고, 아무 자격도 없는 자신을 사제로 불러주신 하느님의 크신 은혜를 마음에 깊이깊이 새기고, 한 생애 동안 그 크신 은혜를 잊지 마시고 몸과 마음을 오롯이 바쳐 사제 직무에 전적으로 투신하시길 바란다”고 새 사제들에게 당부했다. 아울러 “오늘 사제품을 받는 두 분 모두 성경을 늘 읽고, 읽는 것을 믿으며, 믿는 것을 가르치고, 가르치는 것을 삶으로 옮기는 가운데 복음을 선포하는 하느님 말씀의 교역자로서의 사명을 다 하시길 바란다”고 기원했다. 장광동 명예기자 jang@cpbc.co.kr 마산교구는 7일 경남 창원 문성대학교 체육관에서 교구장 배기현 주교 주례로 사제 서품식을 거행하고 서시몬ㆍ조현석ㆍ이승언ㆍ김동윤 등 새 사제 4명을 배출했다. 배 주교는 강론을 통해 “사제는 거룩한 것을 주는 사람”이라며 “이 거룩함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결합되지 않고는 결코 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배 주교는 새 사제들에게 “복음의 가르침을 따르고 주님께 봉사하며 양 떼를 잘 보살피는 거룩한 사제로 살아가 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서품식에는 교구 사제단과 수도자, 신자 2600여 명이 참여, 새 사제 탄생을 축하했다. 손춘복 명예기자 대전교구는 10일 주교좌 대흥동성당에서 교구장 유흥식 주교 주례로 교구 사제들과 수도자, 평신도 등 2000여 명이 함께한 가운데 2020 교구 사제서품식을 거행하고, 새 사제 9명을 배출했다. 이로써 교구 사제는 모두 391명이 됐다. 이날 사제품을 받은 새 신부는 오세건ㆍ김윤재ㆍ황병현ㆍ조해용ㆍ한영인ㆍ염선율ㆍ김동해ㆍ주은빈ㆍ김영민 신부 등 9명으로, 이들은 11일 각자 출신 본당에서 첫 미사를 집전하고, 교구 사제인사에 따라 첫 임지로 부임한다. 오세건 새 신부는 “보잘것없는 저를 당신 포도밭 일꾼으로 불러주신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미를 드린다”면서 “저를 들뜨게 하는 성공이나 좌절케 하는 시련이 다가오더라도, 언제나 저와 함께 모든 것을 곁에서 겪고 함께하시는 하느님 은총과 자비에 의탁하면서 제가 받은 과분한 사랑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겸손되이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유 주교는 강론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사제수품 50주년을 맞으시면서 말씀하신 자비와 시노드성(공동합의성과 연대), 가난, 만남은 오늘의 세상과 교회가 필요로 하고 있고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해 우리 사제들이 먼저 살아야 할 주제이기에 저 자신은 물론이고 여러분께도 똑같이 이 주제로 살아주시길 당부드린다”고 밝혔다. 아울러 “자비로우신 어머니 성모님과 우리의 장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하느님의 종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 한국의 모든 순교자께서 우리 새 사제들과 교구 하느님 백성을 위해 전구해 주시도록 마음을 모아 기도하고, 남북의 통일과 화해, 중동의 평화를 위해서도 기도하자”고 간곡히 당부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예수 성심 전교 수도회 한국관구(관구장 고무찬 신부)는 13일 인천 강화 예수 성심 피정의 집 예수 성심의 어머니 성당에서 서울대교구 보좌 구요비 주교 주례로 2020 사제서품식을 거행하고, 김준정(리차드)ㆍ김진호(비오) 새 신부 등 2명을 배출했다. 이로써 관구 사제회원은 모두 27명이 됐다. 현재 관구 회원은 총 32명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46세 늦깎이로 사제품을 받은 김준정 새 신부는 “언제 어디서든 어떤 일이 있건, 또 무엇을 하건 잠시 멈추고 하느님과 함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평생을 예수 성심의 사랑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오세택 기자 평화신문2020.01.15

바오로 사도, 세계 역사를 바꾼 위대한 지식인[엉클 죠의 바티칸 산책] (6) 로마 세 분수 성당(Chiesa di Tre Fontane) “대사님, 이곳에서 물이 실제로 나왔나요?”“네,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당 이름에 분수라는 말이 들어갔어요. 우리식 표현으로는 분수라기보다 샘입니다.”의문을 가질 만도 합니다.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라도. 멀쩡한 땅에서 샘물이 솟았다니 한 번 정도 의문을 갖는 것은 인지상정 아니겠습니까? 로마에 있는 ‘세 분수 성당’ (Chiesa di Tre Fontane) 이야기입니다. 가톨릭 신자든 개신교 신자든 로마 성지순례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 코스 가운데 하나이지요. 네로 황제 시절, 바오로 사도가 참수된 곳에 세워진 성당입니다. 망나니의 칼에 잘려나간 머리가 땅에 떨어져 세 번 튀었고, 머리가 튄 자리에서 물이 솟았답니다. 성령의 물이! 그래서 세 분수 성당입니다.바오로 참수 후 생겼다는 샘 저도 사실은 의문이 생겼습니다. 바오로의 참수는 약 2000년 전의 일인데, 머리가 튄 자국에서 물이 솟았다면 언제까지 물이 나왔을까? 분수 앞 안내판에는 1950년대까지 물이 나왔다고 애매하게 적혀있습니다. 더 믿을만한 정보는 없을까? 괴테의 「이탈리아 여행기」가 생각났습니다. 괴테는 1787년 이곳을 순례한 뒤 여행기에 비교적 상세히 적어 놓았습니다. “로마의 남쪽 테베레 강에서 멀지 않은 곳에 중간 정도 크기의 성당이 있는데, ‘세 분수’라는 이름의 성당이다. 이 샘들은 바오로가 참수될 때 그의 피가 뿌려지면서 솟아 나왔다고 하는데, 오늘날까지도 샘물이 흘러나온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보지 않은 것을 보았다고 거짓으로 기록해 놓을 리가 없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33년 전에는 분명히 물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저는 순례객들에게 괴테의 여행기를 언급하면서 “분명히 샘물이 나왔다”고 말합니다.1월 25일은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입니다. 바오로의 회심은 교회사는 물론이고 인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오로가 그리스도교의 틀을 만들었고, 그 그리스도교가 인류 역사에 미친 영향과 파장을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현재 세계는 가톨릭 개신교 동방정교회 등 그리스도교에 바탕을 둔 문명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한 지식인의 역할이 인류 역사에 이처럼 큰 영향을 미친 사례가 또 있을까요?저는 가끔 바오로를 신앙인이 아닌 지식인으로 묵상하곤 합니다. 그는 참으로 위대한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리스 철학과 유다교 율법은 물론이고 역사학 수사학 등에 통달했고, 희랍어 아람어 히브리어 라틴어 등 어학에도 능통했습니다. 예수님은 바오로의 이런 재능이 필요했나 봅니다. 바오로를 ‘예수님 박해자’에서 ‘예수님 사도’로 변신(회심)시켜, 누구도 할 수 없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하신 것을 보면 말입니다. 예수님은 공생활 3년 동안 수많은 어록을 남기셨습니다. 모두가 거룩한 말씀이었고 주옥같은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들은 방바닥에 흩뿌려져 있는 구슬과 같았습니다. 예수님과 동고동락한 갈릴래아의 열두 사도들은 말씀 하나하나에 대한 깊은 의미를 미처 깨닫지 못했고, 말씀 간의 연관성도 파악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구슬이 많으면 뭐합니까? 꿰어내야 보배지요.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바오로는 달랐습니다. 바오로는 예수님의 부활과 재림은 물론이고 할례와 구원 등 신학적 쟁점들을 명쾌한 논리로 체계화하였습니다. 구슬을 꿴 사람이 바로 바오로입니다. 바오로는 그리스도교의 기초를 완성한 최초의 신학자입니다. 바오로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그리스도교는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탁월한 국제화 전략바오로의 탁월함은 그리스도교의 국제화(전교 전략)에 있습니다. 바오로는 빌라도 총독의 두목이 있는 악당들의 소굴, 로마에 뛰어들었습니다. 딸랑 십자가 하나 들고서!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굴에 들어간 셈입니다. 그리고 세 분수 성당 자리에서 장렬하게 순교했습니다. 그 후 약 300년이 지나 밀라노칙령이 나왔습니다. 세계의 중심, 제국의 수도, 로마 한복판에 드디어 십자가가 꽂혔습니다. 바오로의 국제화 전략이 적중한 것입니다. 십자가는 민들레 홀씨 되어 세계만방에 흩어져 꽃을 피웁니다. 바오로는 오늘도 왼손에는 성경을, 오른손에는 ‘성령의 칼’을 들고 영원의 도시 로마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구원의 투구를 받아 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에페 6,17)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 cpbc2020.01.15
![[영화의 향기 with CaFF] (34) 뷰티풀 보이 (Beautiful Boy, 2018)](//cpbc.co.kr/CMS/newspaper/2019/09/rc/762985_1.0_titleImage_1.jpg)
[영화의 향기 with CaFF] (34) 뷰티풀 보이 (Beautiful Boy, 2018)약물 중독 아들 구하는 아버지의 사랑 영화 ‘뷰티풀 보이’ 포스터. 큰 무게감을 지닌 말이 있다. ‘중독’. 이미 일정 단계를 넘어선 말로 해결을 위해서는 대단한 용기와 전문성, 시간이 필요할 거라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하지만 그 시작은 얼마나 단순한가. ‘좋아서’, ‘그냥’, ‘하다 보니’. 영화 ‘뷰티풀 보이’. 영화 초반 아빠와 어린 아들 닉은 헤어질 때마다 주먹을 스치며 ‘everything!’이라고 인사를 한다. 애교 있고 활발한 소년, 공부 잘하고 운동도 잘하던 아름다운 소년, 그토록 사랑스럽던 닉이 어느 날부터 거리를 두고 거짓말을 하고 도둑질을 한다. 아빠는 닉이 여전히 어리다고 생각하지만 닉은 아빠의 손길 너머로 가버렸다. 한 번 두 번 기분이 좋아서 해보던 마약의 수렁으로 넘어간 것이다. 영화 ‘뷰티풀 보이’는 미국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셰프와 그의 아들 닉 셰프의 실화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이 영화는 마약 중독이 가지고 있는 비참함을 턱턱 보여준다.부모의 이혼이 마음의 틈을 만든 것인지, 그저 좋아서 시작한 일이 빠져나올 수 없는 지경으로 이끈 것인지 자세한 표현은 없다.안 하겠다고 약속하지만, 그저 말일뿐 다시 빠져버리는 사춘기 소년,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계속 자책하면서 닉을 돌아오게 하려고 애쓰는 아버지의 모습이 끊임없이 교차한다. 다행인 것은 아빠도 엄마도 새엄마와 어린 동생들도 여전히 닉을 사랑한다. 특히 아빠 데이비드는 닉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우선 이 사실을 부끄럽지만 글로 연재하며 전문가의 도움을 요청한다. 당사자로서 죽음 문턱까지 가는 닉의 고통만큼이나 중독자를 둔 가족의 괴로움도 끝이 없다.우리에게 좋다는 것은 시작만 아니라 과정도 결과도 좋아야 하지 않을까? 중독의 특성은 시작은 기분 좋을지 모르지만, 그 과정도 결과도 너무 비참하다. 그 행위로 인해 치를 것은 점점 커지고 무엇보다 소중한 자유와 생명을 잃어버린다.이 영화에서 눈에 띄는 것은 닉을 대하는 아버지의 변화이다. 닉에 관한 모든 것을 도와주려 하지만 실패만 거듭한다. 결국, 그것이 닉을 돕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중독은 누구에 의해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의지와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프지만 냉정하게 닉의 요구를 거절하며 트레이너의 손을 잡도록 권하는 아빠. 닉은 8년째 약을 끊고 살아가고 있다. 영화는 감히 닉이 나았다고 하지 않는다. 중독, 그 위태로움이 보이고 성경 속 인물들이 보인다.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루카 15,24) cpbc2019.09.24
[시사진단] 이라크 시위를 보면서(박현도, 스테파노,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인문한국 연구교수) 이라크는 영국이 만든 나라다. ‘이라크’라는 말은 원래 아랍 지리학자들이 지금의 이라크 남부를 가리키던 말이었는데 영국이 국익을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려고 하다 보니 서쪽과 북동쪽까지 포함해서 오늘날 우리가 아는 이라크라는 나라를 세웠다. 구약성경의 무대인 메소포타미아가 지금의 이라크인데, 지금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이곳을 다스리고 있었다. 오스만튀르크와 제1차 세계대전에서 격돌한 영국은 승리를 예감하고 이곳에 국가를 건립할 계획을 세웠고, 결국 1918년 종전 후 1920년 11월 11일 국제연맹으로부터 이라크 보호통치권을 받았다.이라크는 애초 국민 국가를 만들기 어려운 곳이었다. 아랍어를 쓰는 서부의 순니파(약 20%), 아랍어를 쓰는 남부의 시아파(약 60%), 쿠르드어를 쓰는 북동부의 순니파(약 20%) 등 종파와 언어에 따라 크게 셋으로 분리된 지역이기 때문이다. 쿠르드어를 쓰는 사람과 아랍어를 쓰는 사람으로 나누어 2개 국가를 만들거나, 언어와 종파를 고려해서 아랍 순니, 아랍 시아, 쿠르드로 나누어 3개 국가를 세웠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쿠르드 지역에서 석유가 나자 영국은 쿠르드 독립안을 거두어버렸다. 그리고 아랍 지역에서는 다수인 시아파가 아니라 순니파와 협력하였다. 이라크 국가 설계의 기초를 놓았던 영국의 거트루드 벨이 종교적 광기를 지녀 위험하고 전근대적인 시아파보다는 더 문명인인 소수 순니파가 이 지역의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민주주의 원칙이 통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소수가 다수를 다스리려면 권위주의 철권통치 외에 다른 가능한 방법이 있을까? 1932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라크는 1958년 군사 쿠데타로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서 2003년 미국의 침공으로 사회주의 바으스당의 일당 독재가 끝날 때까지 무력 통치로 일관하였지만, 국민 통합은 이루지 못했다. 사담 후세인은 시아 무슬림과 쿠르드인을 혹독하게 다스렸고, 1988년 할랍자에서는 화학 가스 공격을 감행하여 순식간에 쿠르드인 5000명의 목숨을 앗아갔다.사담 후세인을 제거한 미국은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이식하려고 하였다. 공정한 투표를 거쳐 민의를 반영한 새로운 정부에서 다수인 시아파 무슬림 세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IS가 발흥한 것도 바로 이러한 정치 현실 때문이었다. 사담 후세인 잔당, 반미 세력, 반시아 세력이 총칼로 뭉쳐 부흥을 꾀한 것이다. 미국은 종파 간 충돌을 막기 위해 중요한 자리를 서로 나눠 갖는 할당제를 적용하였다. 법으로 명문화된 것은 아니지만, 대통령은 쿠르드, 총리는 시아, 국회의장은 순니가 맡았고, 그 밖의 주요 자리 또한 정파별로 나누어 가졌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책임을 묻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A라는 장관이 잘못하면 국회에서 신랄하게 비판하여 교체하여야 하는데 A 장관이 속한 정파에서 보호하기 때문에 경질이 힘들다. 또 자리를 두고 부정부패가 심각하다. 이에 젊은이들이 거리로 나와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인을 규탄하고 있다. 정치인들에게 영향력을 끼쳐 이라크 정치에 깊숙이 개입하는 이란에게 나가라고 외치면서 말이다. 물론 시위 배후에는 이란에 반대하는 나라가 개입되어 있을 것이다. 종파, 정파로 나뉘어 외세의 마당이 된 이라크의 현실을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를 돌아보아야겠다. 이라크의 자립과 국민 화합을 기원한다. 평화신문2019.11.13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59)음모를 꾸미는 유다인들과 호송되는 바오로(23,12-35)](//cpbc.co.kr/CMS/newspaper/2020/04/rc/776868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59)음모를 꾸미는 유다인들과 호송되는 바오로(23,12-35)로마 시민 바오로, 카이사리아 총독에게 보내지다 바오로를 죽이려는 유다인들의 음모가 천인대장에게 알려지면서 천인대장은 군사들을 시켜 바오로를 호송해 카이사리아에 있는 유다 총독에게 보낸다. 사진은 지중해 연안에 있는 카이사리아 유적지와 유적지에서 발굴된 빌라도 총독 비문. 유다인들은 바오로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그 계획이 바오로에게 전해집니다. 바오로는 로마 군사들의 보호 속에 카이사리아로 총독에게 호송됩니다. 유다인들이 음모를 꾸미다(23,12-22)바오로가 로마 군대 진지에서 밤을 지낸 다음 날이었습니다. 유다인들은 바오로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밉니다. 바오로를 죽이겠다는 결의가 너무나 확고해서 그들은 “바오로를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고 하느님을 두고 맹세하였다”고 사도행전 저자는 기록합니다.(23,12) 여기서 ‘하느님을 두고 한 맹세’는 지키지 않으면 하느님의 어떠한 저주나 벌도 달게 받겠다는, 아주 강한 의미를 지닌다고 성경학자들은 해석합니다. 그만큼 바오로에 대한 적개심이 강하다는 뜻이겠지요. 그들은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을 찾아가 자기들의 계략을 설명합니다. 다른 최고 의회 의원들과 함께 천인대장을 찾아가 조사할 것이 있다는 이유를 내세워 바오로를 최고 의회로 데려오면 매복해 있다가 도중에 바오로를 없애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이 음모에 가담한 자는 마흔 명이 넘었습니다.(23,13-15) 그런데 바오로의 조카가 이 계획을 듣고는 진지 안에 있는 바오로에게 알려 줍니다. 바오로는 조카를 천인대장에게 보내고, 천인대장은 그에게서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후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지시한 후 돌려보냅니다.(23,16-22)카이사리아로 호송되는 바오로(23,23-35)그러고 나서 천인대장은 즉각 조처를 취합니다. 우선 백인대장 두 사람을 불러 지시를 내립니다. ①“오늘 밤 아홉 시에 카이사리아로 출발할 수 있도록 군사 이백 명에다가 기병 칠십 명과 경무장병 이백 명을” 준비하고 ②바오로를 펠렉스 총독에게 무사히 호송할 수 있도록 바오로를 태울 짐승들을 준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③또 펠릭스 총독에게 전할 편지를 써 건네줍니다.(23,23-25)카이사리아는 헤로데 대왕이 로마 황제(카이사르)를 위해 재건한 지중해변의 도시로, 유다를 다스리는 로마 총독의 관저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따라서 천인대장은 로마 시민인 바오로를 총독에게 보내려고 이런 지시를 내린 것입니다. “오늘 밤 아홉 시에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것은 유다인들 몰래 바오로를 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딸려 보내는 군사가 470명이나 됩니다, 바오로를 죽이려는 음모에 가담한 유다인이 40명이 넘었다는 것과 비교하면 무려 10배가 넘는 숫자입니다. 게다가 바오로를 태울 짐승까지도 준비토록 합니다. 그만큼 바오로의 안전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진정으로 바오로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자기보다 높은 신분인 바오로에게 문제가 생길 경우 자기한테 불똥이 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내린 조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함부로 결박해서는 안 되는 로마 시민 바오로를 결박해 놓은 일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에(22,29) 더욱 그러했을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름이 클라우디우스 리시아스인 이 천인대장은 로마 시민인 바오로에게 죄가 없고 무죄한 로마 시민을 보호하려는 자신의 처신이 정당하다는 것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천인대장이 펠릭스 총독에게 써 보낸 편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펠릭스는 원래 노예였다가 자유민이 된 인물로 기원후 50~59년(혹은 60년)에 유다 총독으로 지냈다고 하지요. 편지 내용은 ①바오로가 유다인들에게 붙잡혀 살해당할 뻔했는데 그가 로마 시민인 것을 알고 천인대장인 자신이 직접 개입해 구출했고 ②유다인들이 무슨 죄목으로 바오로를 단죄하는지 알아보려고 최고 의회로 그를 데리고 갔지만 로마 제국이 관여하지 않는 율법과 관련된 시비로 단죄받는 것 외에 사형을 받거나 투옥될 만한 죄가 없음을 알았으며 ③그런데도 바오로를 해치려는 음모가 있다는 제보를 받았기에 바오로를 총독에게 보내며 ④바오로를 고발한 자들에게도 총독에게 가서 진술하라고 했다는 것입니다.(23,26-30)천인대장의 지시를 받은 군사들은 그날 밤 바오로를 안티파트리스로 데려갑니다.(23,31) 안티파트리스는 예수님 탄생 때 이스라엘 지방 전역을 다스렸던 헤로데 대왕이 그의 아버지 안티파테르를 기리기 위해 이스라엘 중부 비옥한 평야 지대에 세운 도시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카이사리아로 가는 중간 지점에 위치한 안티파트리스는 오늘날 이스라엘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지요. 이튿날 바오로는 기병들에게 인계되고 함께 바오로를 호송했던 다른 군사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진지, 안토니오 성으로 돌아갑니다. 기병들은 바오로를 호송해 카이사리아에 들어가 편지를 총독에게 전달하고 바오로를 인도합니다.(23,31-33) 안티파트리스부터 기병들만 바오로를 호송해 간 것은 이 지역부터는 평지인 데다 비유다인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바오로를 죽이려는 유다인들에게 급습을 당할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펠릭스 총독은 편지를 읽고 나서 바오로에게 출신지를 묻습니다. 킬리키아 출신이라는 말을 들은 총독은 바오로를 고발한 자들이 도착하면 신문하겠다면서 바오로를 헤로데 궁전에 데리고 가서 지키라고 명령합니다.(23,34-35) 바오로는 로마제국의 소아시아 지방 속주인 킬리키아의 수도 타르수스 출신이어서 킬리키아 출신이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헤로데 궁전은 헤로데 대왕이 지은 궁전인데, 당시에는 유다 총독의 관저로 쓰였다고 합니다.생각해봅시다유다인들이 바오로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음모에 가담한 사람이 마흔 명이 넘습니다. 그 음모 계획을 바오로의 조카가 듣고서 바오로에게 전하고 바오로는 이를 천인대장에게 알립니다. 천인대장은 바오로를 총독에게 보내기로 하고 500명 가까운 군사를 보내어 바오로를 호송하게 합니다. 이 모든 일이 불과 이틀 사이에 벌어집니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잠시 생각해 볼 거리들이 있습니다. 우선, 바오로가 로마 시민이기는 하지만 로마 출신이 아니라 제국의 속주 출신인 유다인입니다. 그 한 사람을 호송하기 위해 수많은 군사를 보낸 천인대장의 처사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또 바오로는 자신을 죽이려는 유다인들의 음모를 잘 알면서도 로마 시민으로서 정당한 권리 곧 황제에게 호소해 재판을 받을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의 목숨이 달린 위태로운 순간인데도 말입니다. 바오로의 이런 태도는 또 어떻게 봐야 할까요? 바오로를 죽이려는 유다인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바오로에 대한 적개심이 얼마나 컸으면 바오로를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고 하느님께 맹세까지 했을까요? 섬뜩한 광기마저 느끼게 하는 이런 모습이 2000년 전의 일일 따름이라고 여길 수 있을까요? 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alfonso84@hanmail.net 평화신문2020.04.08
예수회센터, 2019년 ‘봄’ 강좌 시리즈 개설예수회센터는 ‘가톨릭 신앙과 영성’을 주제로 2019년 ‘봄’ 강좌 시리즈를 개설, 오는 3월 12일부터 매월 둘째, 넷째 주 화요일 오전 10시 예수회센터 3층 성당에서 강좌를 진행한다. 강좌는 △사랑, 그 아름다운 역동성-아가서를 따라서(김혜숙 선교사, 신학박사) △나이 듦과 영적 성장(박종인 신부, 예수회 Magis 청년센터) △우리는 왜 성경을 가까이해야 하는가?(송봉모 신부, 서강대 신학대학원) △구약의 하느님, 예수님의 그 마음(주원준, 구약학 박사) △예수 그리스도, 그 삶의 사회적 지평(조현철 신부, 서강대 신학대학원) △우물 밖 개구리 영성-사랑과 봉사를 위한 영적 자유(김미정 수녀, 상트르 세브르 파리 예수회 대학교 교수) △그래… 모두 누군가를 떠나 보낸 경험이 있지!(서근철 신부, 예수회 Grief Care) 등으로 짜였다. 아울러 1∼2월 중 겨울방학 6주간 특강도 마련됐다. △영적 성장을 돕는 신학적 토대(최현순 데레사, 신학박사, 7일 개강) △용서와 화해의 삶 : 가정, 사회 세계 안에서(김미정 아녜스, 상트르 세브르 파리 예수회 대학교 교수, 8일 개강) △구약성경의 하느님과 나(주원준 토마스, 구약학 박사, 8일 개강) △성경 유형과 영성생활 : 심리학적 접근(김정택 신부, 서강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2일 개강)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통한 사랑의 체험(손우배 신부, 교황님 기도 네트워크 한국본부장, 3일 개강) 등이다. 문의 : 02-3276-7733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cpbc2019.01.03

“제 아내가 신천지 복음방에 다녀요!”긴급 진단 / 가족이나 친한 교우가 신천지에 현혹되었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1 양 바오로(43)씨는 아내가 신천지 복음방을 드나드는 사실을 알아채고 까무러치게 놀랐다. 아내 김 헬레나(42)씨는 평소 성가대 활동도 하는 등 신앙생활을 잘 해오던 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문득 “친한 사람들과 새로 성경 공부를 시작했다”고 밝힌 것. 양씨는 당연히 성당에서 하는 공부라 생각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얼마나 흘렀을까. 식사 중 아내가 “성경 공부를 하면서 참 진리를 발견한 것 같다”는 말을 던졌다. 남편은 ‘아내의 신앙이 더 깊어지는구나’ 하고 반가웠지만, 이어진 아내의 말에서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보, 성당 신부님 말씀은 틀린 부분이 많은 것 같아. 예수님 이후 구원자께서 곧 재림하실 건데 말이야.” 양씨는 이후 아내의 뒤를 따라가 봤고, 상가 건물 안에 위치한 그곳은 성당이 아닌, 말로만 듣던 신천지 복음방이었다. #2 ‘설마, 내 딸이….’ 박 스텔라(45)씨는 우연히 딸의 가방에서 신천지 성경(개역 한글판)과 교재를 발견하고 놀랐다. 유아세례를 받고 주일학교까지 다녔던 대학생 딸이 언젠가부터 친구들과의 약속이 잦고, 늦게 들어오는 날도 많아졌던 때였다. 박씨는 우선 딸에게 당장 ‘신천지에 다니느냐’고 묻기보다, 본당 신부를 통해 신천지 피해상담소 문을 두드렸고 딸을 신천지에서 격리할 수 있었다. 가족이나 친한 교우가 신천지에 다니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유사종교 피해 전문가들은 가족이 천주교와 다른 성경 가르침을 운운하거나, 특히 자녀가 평소보다 약속이 많아지고, 용돈과 휴대폰비가 터무니없이 많아진다면 ‘유사종교 주의보’를 발동해야 한다고 전한다.한 신천지 피해 전문상담가는 “그렇다고 절대 유사종교에 빠진 배우자나 자녀에게 ‘신천지 다니지 말라’고 다그치거나, 무턱대고 화를 내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신천지에 다니는 사실을 알아도 먼저 아는 척하지 말고, 먼저 본당 사목자와 유사종교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다.신천지에선 ‘입막음 교리’라고 해서 복음방 단계에서부터 주변에 성경 공부에 관해 이야기하지 말 것을 가르치고 있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조차 ‘핍박하는 사람’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실제 부모가 무조건 화만 내다 자녀가 가출해버리거나 배우자와 관계만 엇나가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전문가들은 “본당 사제뿐만 아니라 각 교구 사목국에도 연락해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사자가 기존 교회 교리를 비판하더라도 올바른 교회 가르침을 차분히 일러주되, 절대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아야 한다. 신천지 전문 상담가는 “당사자가 ‘이젠 신천지 안 다닌다’고 해도 거짓말일 수 있기에 반드시 지속적인 교회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권했다.전문가들은 “본당 사제들도 이처럼 이단에 빠진 가족이 상담을 요청해오면 ‘가족 신심이 깊지 못해서 그렇다’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선 안 된다”며 “본당 사목자들도 이단 가족 관리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교회 내 전문가 도움도 받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특별취재팀 cpbc2019.01.18
“조물주 위 건물주” 무색케 하는 정의·평등 정신 담겨개헌안 토지 공개념, 그 뿌리는 성경이다 토지 공개념을 강화하겠다는 대통령 개헌안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해 필요한 경우 국가가 사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국가의 사유 재산권 침해 가능성을 가장 우려한다. 일각에서는 ‘사회주의 관제 개헌’, ‘국가의 토지 몰수 음모’ 등 거친 표현을 써가며 반발한다. 하지만 토지 공개념은 자유시장 경제의 꽃을 먼저 피운 유럽 선진국들이 이미 100여 년 전에 도입한 데다 우리 헌법(제23조, 제122조)에도 들어 있다. 이번에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이란 문구를 명시해 공개념을 더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땅의 주인은 하느님이다 분명한 사실은 토지 공개념이 사회주의적 발상도 아니고, 미국의 사회경제학자 헨리 조지(1839~1897)가 처음 주창한 이론도 아니라는 점이다. 그 뿌리는 성경이다.땅과 물, 공기 등은 하느님이 창조한 것이다. 인간이 생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갈 수 있도록 창조주가 거저 내려준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온 세상이 나의 것이다”(탈출 19,5)고 선포하셨다. 우리가 터하고 있는 땅이 하느님께 귀속된다는 진리는 레위기에 명확히 기록돼 있다. “땅을 아주 팔지는 못한다. 땅은 나의 것이다. 너희는 내 곁에 머무르는 이방인이고 거류민일 따름이다.”(레위 25,23) 시편 저자도 “주님 것이라네, 세상과 그 안에 가득 찬 것들”(시편 24,1)이라고 노래한다. 주님은 무상으로 땅을 내려주면서 평등과 정의의 실천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부했다. 하지만 인간은 한정적인 선물(땅)을 자꾸만 독점적으로 더 많이 소유하려고 들었다. 그런 탐욕 속에서 지배와 착취, 불평등이 자라났다. 주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심어준 희년의 정신(레위기 25장 참조)은 이러한 문제들을 원래 상태로 회복시켜 주기 위한 것이다. 한국 사회의 “상위 1% 부동산 부자가 전체 토지의 46%를 보유하고 국민의 절반(44%)이 무주택자인 상황”과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을(乙)들의 아우성은 따지고 보면 탐욕과 불평등의 문제다. 토지 공개념 강화는 이런 부의 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한 취지로 이해된다. 부동산 소유와 투기로 인한 부의 쏠림 현상에 법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그만큼 많아지는 것이다. 사유 재산권을 둘러싼 논란 토지 공개념과 관련해 레오 13세 교황의 회칙 「새로운 사태」(1891년, 일명 「노동헌장」)와 이에 대한 헨리 조지의 반박 논란을 빼놓을 수 없다. 레오 13세 교황은 최초의 사회교리 문헌인 이 회칙에서 토지를 비롯한 사유 재산권을 옹호했다. “토지 사유제는 다른 사람의 토지 이용권을 방해하지 않는다”(6항)고 밝혔다. 그러자 빈곤과 경제적 불평등의 원인을 지대(地代) 가치 상승에서 찾았던 헨리 조지는 「노동 빈곤과 토지 정의 : 교황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이라는 책으로 교황을 비난했다. 그에게 토지 사유제는 “기차의 첫 승객이 자기 짐을 모든 좌석에 흩어 놓은 채 뒤에 타는 승객을 세워 둘 권리”(「진보와 빈곤」)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불합리한 제도였다. 서구 지식인들은 교황 회칙과 헨리 조지의 저서를 펴놓고 한동안 격론을 벌였다. 하지만 이를 이분법적으로 보면 곤란하다. 문헌이 발표된 19세기 말은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노동자의 빈곤이 극심해지고, 이런 우울한 현실의 대안으로 마르크스의 사회주의가 발흥하던 시점이다. 지식인과 근로자뿐 아니라 가톨릭 신자들도 이 사상에 매료돼 갔다. 교황은 자본주의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 사유 재산권을 부정하는 마르크스 사상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이 얘기를 한 것이다. 아울러 「새로운 사태」의 핵심은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의 권리 보호에 있고, 바탕에는 재화 사용에 대한 보편적 권리가 깔려 있다. 이 회칙은 오늘날까지 다른 사회교리 문헌의 기둥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각론에는 차이가 있지만, 교황과 헨리 조지는 인류에게 무상으로 주어진 것을 독점하려는 행위의 비윤리성을 공통으로 지적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3년 전 발표한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에도 토지 공개념 정신이 담겨 있다. “그래서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신명 10,14)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절대적 소유에 대한 인간의 청구를 모두 거절하십니다.”(67항)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cpbc2018.04.05
[하느님과 트윗을] (47) 성경 구절로 어떻게 기도하나요마음에 와 닿는 구절 곱씹으며 묵상 문 : 성경을 읽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답 : 하느님은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 말씀하고 싶어 하십니다. 성경은 단지 과거에 하느님이 하신 말씀이나 일에 관한 옛날이야기를 모아 놓은 전집이 아니라, 지금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성경에 마음을 연다면, 하느님이 여러분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구절은 우리에게 말을 건넵니다. 그래서 성경을 자주 읽고, 기도에 성경을 사용하는 것은 정말로 중요합니다. 이런 종류의 독서는 학문적 연구와는 다릅니다. 성경을 읽는 것은 성경 구절의 일부를 조용히 숙고하는 것을 수반합니다. 하느님은 그때 우리가 필요한 것을 이해하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이런 방식의 기도를 ‘거룩한 독서’ 또는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라고 합니다. 렉시오 디비나란 라틴어로 하느님과 함께하는 독서를 의미합니다.문 : 기도하기 위한 성경 구절은 어떻게 선택하나요.답 : 교회가 미사를 위해 선택한 매일의 독서로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러한 성경 구절은 교회가 매일 기념하는 것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성경 구절은 독서집, 본당 주보,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성경 전체에서 매일 몇 줄을 선택해 읽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자신이 좋아하는 성경 구절만 선택하지 않는 것이 좋고, 다른 성경 구절이 가진 풍요로움을 탐색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마태오ㆍ마르코ㆍ루카ㆍ요한 네 복음서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몇 줄을 읽고 그 구절에 대해 생각해 보고, 그러고 나서 기도하세요. 문 : 성경으로 기도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가요. 답 : 예수님을 더 알기 위해 복음에 나오는 상황을 그려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설교하시려고 작은 배 위에 서 계시고 제자들은 호숫가에서 그 말씀을 듣는 일화가 나오는 성경 구절(루카 5,3 참조)을 읽고 그 장면을 상상해 보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 예수님이 서 계신 배를 보세요. 그리고 호숫가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 가운데 있는 당신의 모습도 그려보세요. 그리고 바람을 느껴 보고 호수의 냄새도 맡아 보세요.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가려고 자신이 배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도 상상해 보세요. 그런 다음에 마치 예수님이 직접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 보세요.문 : 예수님과 대화는 어떻게 하나요. 답 : 성경 구절을 천천히 읽다 보면 아마도 나의 마음에 깊이 와 닿는 한 단어나 문장이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온갖 의문을 일으키기도 하고, 어쩌면 화가 나게 할지도 모르고, 아니면 그 구절이 정말 마음에 와 닿아 “바로 이거야!” 할지도 모릅니다. 만약 한 구절에 마음이 끌리면 거기서 멈추세요. 그 낱말을 천천히 반복하며 그 구절을 주의 깊게 곰곰이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고는 그 구절을 통해 하느님이 내게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 왜 이 구절이 내 눈에 들어왔는지, 왜 이 구절이 내 마음에 와 닿았는지, 이 구절이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그다음에 마치 예수님과 대화를 하는 것처럼 내 마음속에 있는 무슨 말이든지 예수님께 전부 말씀드리세요. 기도할 때는 선택한 성경 구절을 다 마치지 않아도 됩니다. 그보다는 하느님을 위해 따로 떼어둔 시간을 온전히 채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정리=서종빈 기자 binseo@cpbc.co.kr 평화신문2018.04.10

여름 더위로 지친 마음… 영성 가득한 책으로 힐링하세요 덥다. 더워도 너무 덥다. 이렇게 더울 땐 밖에서 고생하기보다 집에서 조용히 책과 함께 ‘북캉스’를 즐기는 것이 제격이다. 요즘 유행하는 ‘스테이케이션’(Stay와 Vacation을 합성한 신조어)을 100배 만끽할 수 있는 신앙 서적들을 추천한다.신이 없는 세상 / 안셀름 그린·토마시 할리크 지음 / 분도출판사 / 1만 6000원 독일의 영적 스승 안셀름 그륀 신부와 템플턴상 수상자인 토마시 할리크 신부가 신이 없는 세상에서 하느님에 대한 물음을 던진 책이다. 신의 죽음과 신의 귀환을 다룬 작품으로 여러 평론에서 별 5개 평점을 받았다. 신앙과 불신앙은 분리된 차원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이다. 중요한 것은 삶의 지향, 즉 신뢰와 실존적 책임이다. 이것들은 신과 함께이든, 신이 없든, 신 안에 있든 중요하다. 행여 신을 떠났어도 중요하다. ‘신은 죽었다’는 진술은 오늘날 많은 이에게 상식이 됐다. 안셀름 그륀 신부와 토마시 할리크 신부는 그들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어떤 신이 죽었나요? 그러면 당신의 삶의 의미는 어디에 있나요? 그리고 삶에서 자신을 지탱해 주는 것이 무엇인가요?” 이 책은 이러한 물음에 자신의 체험으로 나름의 답을 내놓으려는 두 사제의 몸짓이다. 발타사르의 지옥 이야기·구원 이야기 /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지음 / 바오로딸 / 1만 원 예수회 신학자 발타사르 신부가 들려주는 지옥에 관한 담론과 하느님 사랑과 구원에 대한 희망을 들려주는 묵상서이다.「지옥 이야기」에서 저자는 성경과 그리스도교 전승 안에는 ‘영원한 벌’을 경고하기도 하지만 또한 ‘이 형벌이 단호하지만 절대 영원하지 않다’는 단서를 찾아냈다. 저자는 예수님 자신도 심판에 대해서 모순적인 말씀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왔다.”(요한 12,47) “나는 이 세상을 심판하러 왔다. 보지 못하는 이들은 보고, 보는 이들은 눈먼 자게 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9,39) 이렇게 심판의 냉혹함이 전면에 나서지만, 성경에는 보편적인 구원을 약속하는 말씀이 부지기수를 이룬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구원 이야기」에서 하느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되기를 바라신다고 강조한다. 인간이 하느님의 자비를 믿고 구원을 희망하는 것이 하느님 경외의 출발점이라고 한다. 연옥 맛·순간 여행·조용한 게 좋아 / 닐 기유메트 글 / 성바오로 / 1만 5000원 예수회 성서학자 닐 기유메트 신부가 현대인들에게 들려주는 우화 시리즈다. 이 시리즈는 연옥 생활이 어떤지, 천국은 누가 들어가며, 기도는 어떻게 하는 것이고, 누가 믿는 사람인지도 간결하고 명료하게 일러준다. 우화의 한 토막이다. 한 사람이 “왜 사람들은 하느님을 믿는 겁니까? 당신이 나자렛 예수를 통해 하느님을 만났다고 단언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하고 따지듯 물었다. “이유는 간단하오. 예수님은 스스로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소. 물론 그 주장은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소. 하지만 당신도 예수님을 면밀히 관찰해 보면 적어도 그분을 사기꾼이나 정신병자로 볼 수는 없을 것이오. 이것은 아주 간단한 문제요. 우리는 삼자 택일의 여지밖에 없기 때문이요. 주님이냐, 거짓말쟁이냐, 아니면 미치광이냐 하는 세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오. 따라서 결론은 그분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믿는 수밖에 없소. 우리는 하느님의 아들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오.”악마를 물리친 베네딕토 / 황중선 글·그림 / 바오로딸 / 1만 3000원바오로딸 만화로 보는 성인 이야기 시리즈 12번째 책으로, 어린이들이 서방 수도생활의 아버지인 베네딕토 성인의 삶에 흥미를 갖고 자연스럽게 본받도록 빠져들게 한다. 이야기 전개 과정이 복잡하지 않아 읽기도 술술, 곳곳에서 웃음이 빵빵, 재치가 넘친다. 또 여동생 스콜라스티카와의 만남이나 유모와 헤어지는 장면에선 애틋한 정이 느껴져 코끝이 찡해진다. 보는 내내 감동과 웃음이 교차한다.용선생 처음 세계사 1·2 / 사회평론 역사연구소 글 / 사회평론 / 각 1만 1000원초등학생과 일반인들에게「용선생의 시끌벅쩍 한국사」 「교양으로 읽는 용선생 세계사」로 유명한 사회평론 역사연구소가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세계 역사의 중요한 줄기를 두 권의 책에 알차게 담았다. 지루한 글과 난해한 설명을 줄이고, 페이지마다 삽화를 담아 세계사의 핵심 장면을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그리스도교 탄생과 그리스도의 사랑 가르침은 물론 카를 대제와 교황의 지원, 중세 교회, 종교 분열 등 교회의 역사에 관해서도 이해하기 쉽게 다루고 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19.07.24

관상으로 하느님 체험하고 사랑 나눠야[토마스 머튼의 영성 배우기] 27. 관상과 명상, 묵상의 차이 그림=하삼두 스테파노 필자가 모 출판사의 북 콘서트에 참여했을 때 “관상과 명상, 묵상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한국인들이 이 세 가지 개념의 차이를 모호하게 느끼는 것은 서구인들과 한자의 영향을 받은 아시아인들의 정서적 언어적 차이에도 그 요인이 있을 것이다. 영어의 Contemplation은 ‘관상’으로 번역된다. 그런데 Meditation은 ‘명상’ 혹은 ‘묵상’으로 번역된다. 서방 그리스도교에서 사용하는 Meditation은 ‘묵상’의 개념에 가깝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이를 ‘명상’이라고 본다. 사실 ‘관상’이란 용어는 동양인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진다.머리로 하는 ‘묵상’ 마음으로 하는 ‘명상’이러한 차이를 갖게 된 배경 중에 하나는 ‘마음’(心)에 대한 이해와 관련이 있다. 서구인들이 말하는 마음을 뜻하는 단어는 ‘mind’인데, 서구인들에게 mind는 ‘머리’에 있으며 이성의 활동을 말한다. 반면, 동양인이 말하는 ‘마음’(心)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heart’(심장)이다. 서구에서 말하는 Meditation은 심장으로서의 마음의 활동이 아니라, ‘머리’로서의 마음의 활동이다. 이는 동양의 ‘명상’이라기 보다는 ‘묵상’으로 보는 편이 더 낫다. 가령 복음서의 구절을 ‘묵상’할 때, 이성적인 추리를 사용하여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이 되어 보거나 그 상황 속에 자신을 대비해 봄으로써 기도하게 되고 자신의 삶과 비교하여 어떤 결실을 보게 된다. 이는 동양에서 말하는 명상과 차이가 난다. 이성을 사용하거나 텍스트를 분석하기보다는 동양의 명상은 마음을 비워내고 ‘그저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관(觀)의 개념과 가깝다. 토마스 머튼은 후기에 이러한 동양의 명상 개념과 그리스도교의 관상 개념의 유사성을 발견하게 되고, 이러한 동양의 명상, 특히 선불교와 티베트 불교의 명상에 대해 배우고자 했다.(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좀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하지만, 불교의 명상과는 달리 그리스도교 관상에서 근본이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라는 측면에서 서로 차이가 있음을 머튼은 잘 알고 있었다.이제 관상과 명상, 묵상의 차이에 대해 이해하였으니 관상(동양에서 말하는 명상)의 보편적인 현상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특별한 자세를 하고 일정한 호흡에 맞춰 ‘명상’하는 것은 힌두교, 불교, 그리스도교 등 대부분의 고등 종교에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절대자 혹은 신(神)의 이름을 부르든, 무(無)를 반복하며 깨달음을 얻고자 하든 상관없이, 깊은 영적인 영역에서 자기 소멸과 참된 자아를 찾고자 하는 열망은 인간의 영원한 갈망이기도 하다. 심지어 플라톤 철학에서도 관상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플라톤은 관상을 통하여 영혼이 절대 선의 형태 혹은 다른 신적 형태의 지식으로 상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네오플라톤 철학자, 플로티누스도 헤노시스(henosis, 신비로운 일치)에 도달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구성 요소가 바로 관상이라고 보았다. 예수님 바라보고 일치되는 ‘관상’신약성경 안에서도 관상은 예수님의 영광을 체험하거나,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 곁에 머물며 그분과 일치하는 길로 묘사되고 있다. 가령,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마태 17,1-9), 예수님을 바라보던 사마리아 여인(요한 4,26), 예수님 곁에 머물던 마리아(루카 10,38-42)는 관상의 예표가 되었다. 동방 교회에서도 관상(theoria)은 ‘하느님을 보는 것’, ‘하느님의 환시 체험’ 등으로 이해되었으며, 하느님과의 일치 상태에 이르는 관상의 과정으로 헤시키즘(Hesychasm)을 가르쳐왔는데 이는 하나 안에서 마음과 정신이 조화를 이루는 금욕적 전통에 따른 수행이다. 7세기의 요한 클리마쿠스는 관상을 죄지은 옛사람이 하느님의 사람으로 새로 태어나는 변화의 과정이며 선과 신성을 지닌 우리 본래의 본성을 회복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누군가가 하느님 현존에 있다면 ‘하느님화’되고, 하느님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하게 되며, 이것이 바로 하느님을 관상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관상의 실제적인 체험을 하는 것이지 이론에 대한 이성적인 이해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깨달은 자의 사랑이 갖는 보편성이러한 동방 교회의 관상에 대한 이해는 토마스 머튼의 관상에 대한 이해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별히 ‘하느님화’라는 개념은 머튼에게 있어, 관상을 통해 하느님을 체험한 이는 세상에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어야 하는 책임감으로 이어진다. 나아가 대승불교의 깨달은 자인 보살이 모든 중생을 구제하기 전에는 열반에 들지 않겠다는 서원을 하며 가르침과 자비를 베푸는 것에 힘쓰는 모습과 비교하는 개념이 된다. 다시 말해 머튼은 깨달은 자의 사랑과 자비의 열매는 종교를 넘어 하느님의 보편성을 드러낸다고 보았다. 다음 호에서는 서방의 관상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도록 하자. 평화신문2020.01.02
![[생활속의 복음] 그리스도왕 대축일 -가시관 쓰신 임금님](//cpbc.co.kr/CMS/newspaper/2019/11/rc/767004_1.1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그리스도왕 대축일 -가시관 쓰신 임금님 한민택 신부 전례력으로 한 해를 마감하는 이때 교회는 그리스도 신앙의 가장 핵심이 되는 것에 대해 묻도록 초대합니다.하느님 하면 사람들은 보통 강한 능력을 지닌 전지전능한 존재를 떠올립니다. 모든 것을 미리 알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줄 알며 어느 곳에든 존재할 수 있는 존재. 그러나 그러한 존재는 인간이 상상 속에 만든 가상의 존재가 아닐까요? 그렇기에 현실의 어려움이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응답하지 못하는 하느님을 원망하고 외면하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이 하느님의 침묵 앞에서 실망하는 이유는 하느님에 대한 그들 자신의 생각에 매여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그리스도 신앙은 그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하느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바라는 것을 즉각적으로 들어주는 하느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한 하느님은 우리가 만들어놓은 우상이며, 성경의 전통에 따라 그리스도 신앙은 그러한 우상숭배를 강하게 거부하였습니다.그리스도인은 인간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모습, 놀라운 방식으로 다가오신 하느님을 믿습니다. 하느님의 놀랍고 새로운 모습은 특별히 구유와 십자가에서 드러납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연약하고 나약하며 보호를 필요로 하는 어린 아기로 오신 하느님을 고백합니다. 또한, 가시관을 쓰고 모욕을 당하며 온몸에 상처를 입은 죄인이 되어 십자가 위에서 죽은 구세주를 고백합니다.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연약한 아기로, 가시관을 쓰신 임금으로 당신을 드러내셨음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난센스입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에게는 기쁨이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저 먼 하늘 위에 홀로 머물러 계시지 않고 우리 안에 오시어, 성부 성자 성령 삼위께서 나누고 계신 사랑의 친교, 신적 생명으로 우리 인간을 초대하고 계심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인류의 구세주는 어둠을 밝히기 위해 어둡고 쓸쓸한 밤에,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마구간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가장 불쌍하고 버림받은 인간을 보살피기 위해 그들과 어울리고 사귀셨으며 그들과 친구가 되셨습니다. 그분은 인간의 죽을 운명까지도 받아들이셨으며, 그 앞에서 고통스러운 번뇌의 순간도 경험하셨습니다. 그분이 지상 생을 마감하신 곳은 철저한 고독 속에 버려진 십자가, 인간이 가장 외롭고 고통스럽게 절규하는 곳이었습니다.무엇이 인간을 구원하는가? 무엇이 인간을 진정 자유롭게 하며, 고통과 슬픔, 좌절과 절망, 죽음과 공포로부터 해방시켜주는가? 그리스도 신앙은 답합니다. 사랑으로 당신의 삶을 온전히 내어주는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시련과 환난 중에도 살아갈 수 있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의 삶 가장 깊은 곳에 들어와 나와 함께 계시고, 나의 고통을 잘 알고 계시며, 나를 위로해주시는 ‘누군가’ 곧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오늘 우리가 봉헌하는 그리스도 왕 대축일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당신 사랑의 힘으로 세상의 모든 권세와 죽음을 이겨내신 승리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분을 왕으로 고백하는 교회의 신앙 안에서, 죽음을 이기신 바로 그 사랑이 우리의 온 존재와 마음을 사로잡고 다스리실 수 있도록, 우리를 온전히 그분 사랑에 내어드릴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한민택 신부(수원가톨릭대 교수, 이성과신앙연구소 소장)※그동안 ‘생활 속의 복음’을 연재해 주신 한민택 신부님과 애독해 주신 독자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평화신문2019.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