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과 트윗을](66) 재난과 악은 하느님의 벌인가요선과 악의 선택은 인간의 몫 문 : 지진, 쓰나미, 허리케인은 하느님의 벌인가요답 : 이는 전적으로 틀린 생각입니다. 하느님이 날씨에 영향을 주실 수 있는 건 사실입니다.(신명 11,17 참조; 야고 5,17 참조) 구약성경에 나타난 어떤 자연재해는 사람들의 죄에 대한 벌이었습니다. 이를테면 대홍수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건 이스라엘 백성의 일부 역사입니다. 하느님은 예수님의 탄생을 위해 그들을 준비시키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건 하느님이 인류를 사랑하신다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자연재해로 야기된 고통과 슬픔은 사랑에 부합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자연재해를 하느님이 내리신 벌로 여길 수 없습니다.문 : 어째서 하느님은 악을 행하는 사람을 막지 않으실까요답 : 하느님은 사람을 꼭두각시로 만들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선과 악을 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가 있습니다. 우리의 선택에 하느님은 개입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이 개입하시지 않는 걸 그분의 무능함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의 뜻을 행하도록 억지로 강요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의 결과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악을 선택함으로 야기되는 고통을 보며 가슴 아파하십니다.문 : 악에 대응하는 길은 무엇인가요답 : 사람들은 선을 택하기도 하지만 악을 택하기도 합니다. 살인, 절도, 강간, 중상모략과 같이 다른 사람을 희생해 자신이 뭔가를 얻으려 할 때가 그러합니다. 하느님의 뜻이나 남에게 끼치는 해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욕구만을 생각할 때, 우리는 교만으로 가득 찹니다. 아담과 하와는 자신이 “하느님처럼”(창세 3,5) 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 타락했습니다. 악에 대응하는 방법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이 원하시는 걸 선택함으로써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본보기이십니다. 그분은 늘 우리의 인성을 취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성부께 순명하시며 당신 자신을 낮추셨습니다.문 : 하느님의 전능하심은 어떻게 알 수 있나요답 : 하느님은 우리의 나약함을 통해 당신의 전능하심과 자비를 보여주십니다. 아브라함이 늙은 나이에 아버지가 되리라고 믿지 않을 때, 하느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무 어려워 주님이 못 할 일이라도 있다는 말이냐?”(창세 18,14)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잉태를 알렸을 때, 마리아는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을 믿기 어려웠습니다. 그러자 가브리엘 대천사는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37)고 했습니다. 아브라함과 마리아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전능하심을 그들을 통해서 드러내 보이셨습니다.우리가 하느님께 의지할 수 있다면, 하느님은 크나큰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재난과 악은 우리를 짓누를 수 없을 것이며, 희망을 빼앗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선을 행하도록 영감과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정리=전은지 기자 eunz@cpbc.co.kr 평화신문2018.08.28

박해받는 이들 ‘알리고 기도하고 행동해야’ ACN(고통받는 교회 돕기) 국제대표 토마스 하이네 겔던씨 “한국의 박해 역사가 곳곳에서 되풀이되고 있습니다.”교황청 산하 재단 고통받는 교회돕기(Aid to the Church in Need, 이하 ACN)를 이끄는 토마스 하이네 겔던(66) 국제대표는 “박해를 딛고 일어선 한국 교회가 세계 곳곳에서 폭력과 박해에 신음하는 신앙 형제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데서 진한 형제애를 느낀다”고 말했다.지난 4월 국제대표를 맡아 한국지부 순시 차 방한한 그는 “3년 전 아시아에 처음 개설한 한국지부(ACN-Korea)는 충실한 신자들과 협력자들 덕에 빠르게 성장했다”며 한국 신자들의 사랑에 감사했다.ACN은 차별과 폭력, 박해에 고통받는 교회를 돕는 국제 가톨릭 원조기구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네덜란드의 슈트라텐 신부가 굶주리는 독일 난민들을 돕기 위해 옷과 음식을 거두러 다니면서 시작됐다. 슈트라텐 신부는 돼지비계도 가리지 않고 받아 사람들은 그를 ‘돼지비계 신부’라고 불렀을 정도다. 현재 23개국에 지부가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기증받은 명차 람보르기니를 소더비 경매에 부쳐 받은 낙찰금을 최근 ACN에 쾌척한 바 있다.“ACN은 사회복지단체가 아닙니다. 우리는 고통받는 신앙 형제들의 실상을 알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행동합니다. ‘알리고 기도하고 행동한다’, 이것이 ACN을 지탱하는 3개 기둥입니다. 지역교회 주교들을 통해 도움이 필요한 곳과 도움을 줘야 할 곳을 찾는 것도 ACN의 특징입니다.”ACN은 지난해 5350여 개 지원 사업에 1609억 원을 지출했다.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교회 순으로 지원금이 배분됐다. 사업별로는 성당ㆍ수도원ㆍ신학교 건축비 지원이 3분의 1을 차지한다. 난민 긴급지원과 성직자ㆍ수도자 양성 지원이 뒤를 잇는다. “성당 건축부터 아프리카 선교사 자전거 지원까지 사목 활동과 관련된 사업은 모두 지원 대상입니다. 지난해 지원금 중 82.5%가 사목 관련 사업에 쓰였습니다. 또 전 세계 사제 10명 가운데 1명에게 미사 예물을 보냅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 사제들이 21초 간격으로 ACN 후원자들 지향이 담긴 미사를 봉헌하는 셈이죠.”그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을 휩쓴 ‘아랍의 봄’ 이후 이슬람 영토에서 박해받는 중동 교회에 대한 지원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2011년부터 지금까지 988억 원, 지난해만도 228억 원을 중동 교회에 보냈다. 그는 “교황님이 주신 람보르기니 낙찰금도 이라크 니네베 재건사업 측에 잘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니네베 재건사업은 극단 무장조직 이슬람 국가(IS)가 파괴한 니네베 일대 교회를 재건하고, 피란 간 그리스도인들의 고향 귀환을 돕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그는 “성경의 땅에서 그리스도인이 ‘멸종’된 미래는 상상할 수 없다”며 “직접 가서 본 현장은 우리에게 더 부지런히 ‘알리고 기도하고 행동하라’고 재촉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1억 명의 그리스도인이 박해에 노출돼 있다”며 “ACN은 한국 교회와 고통받는 교회를 잇는 사랑의 다리가 되겠다”고 말했다. 한편, 겔던 대표는 5일 ACN-Korea 이사장을 겸하는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을 예방해 환담했다. 그는 “ACN-Korea의 성장은 다른 나라 지부에 귀감이 되고 있다”며 적극적 협력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염 추기경은 “ACN은 고통받는 형제들을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줬다”며 “순교자의 후손인 한국 신자들은 박해받는 형제들을 위한 나름의 역할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평화신문2018.09.11

교회 가르침, 양심적 병역거부자 위한 대체복무제 권고미니 기획 - 양심적 병역거부와 의로운 전쟁은?
가톨릭교회는 정의로운 전쟁을 옹호하면서도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게 대체 복무의 길을 터줄 것을 권고한다. 사진은 한국전쟁에 파견돼 지프 보닛 위에 제단을 차려놓고 병사와 미사를 봉헌하는 미국의 에밀 카폰 신부. 【CNS 자료 사진】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가 쓴 「신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에 신앙적 소신으로 병역을 거부하고 온갖 고초를 겪는 청년이 나온다.경찰과 군 당국은 “모든 폭력에 반대한다”며 버티는 그를 설득하다 지친 나머지 혁명주의자라는 혐의를 씌워 강제입대시킨다. 청년은 정신병원에 끌려가도, 전방 부대로 전출돼도, 감옥에서 학대를 받아도 요지부동이다. 보초를 서라는 명령에는 따르지만, 총은 들지 않는 식의 저항이었다. 결국 군은 형기가 남았는데도 교정 불능의 골치 아픈 병사를 집으로 돌려보낸다. 예수 그리스도의 비폭력 평화의 길을 따르는 신앙인이라면 마땅히 병역을 거부해야 한다는 게 톨스토이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그는 전쟁 자체를 반대했다.그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한 것은 권력의 폭력성에 대한 반발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이유 역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에서 나왔다. 그는 그리스도를 충실히 따르면 비폭력 무저항, 자유와 평화의 삶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단, 톨스토이가 예수의 신성과 부활도 믿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었느냐는 논란은 논외의 문제다. 복음서를 문자 그대로 읽으면 톨스토이의 생각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악에 폭력으로 맞서지 말라는 예수의 가르침은 참 행복 선언(산상설교)에 압축돼 있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어라 …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태 57 참조) 이 때문에 초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전쟁을 거부했다. 초세기 교회 사상가 오리게네스는 “우리는 어떤 민족을 거슬러 결코 무기를 들지 않으며 전쟁을 벌이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머리이신 예수님에 의해 평화의 자녀가 되었다”고 말했다.당시는 이런 평화주의가 그리스도교의 보편적 이념이었다. 하지만 4세기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의 종교가 되면서 ‘그리스도의 평화(Pax Christi)’가 ‘팍스 로마나(Pax Romana)’와 결합됐다. 팍스 로마나는 로마 제국이 추구하는 세상의 질서와 평화를 말한다. 이때부터 교회 교부들은 인간(통치자)의 명령이더라도, 평화를 지키기 위한 정의로운 전쟁이라면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의로운 전쟁론’(正戰論)’이 대표적이다.아우구스티노의 정전론에는 몇 가지 조건이 붙는다.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합당한 정의를 추구하고, 평화 재건을 지향해야 한다 △복수와 잔악 행위, 보복을 피해야 한다 등이다. 13세기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를 심화해 더 명확하게 체계를 세웠다. 오늘날 국제연합(UN) 같은 국제사회도 두 신학자가 정립한 정전론에 기초해 분쟁 사태에 개입한다.하지만 정전론은 현대사회 들어 힘을 잃고 있다. 대량 살상과 파괴를 불러오는 현대전의 참상을 보면서 ‘정의로운’ 전쟁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년 전 바티칸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정의로운 전쟁론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봇물을 이뤘다. 이 명칭을 ‘정의로운 평화’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가톨릭교회는 정의로운 전쟁론을 옹호하지만, 무기를 들고 전장에 나가지 않겠다는 이들의 양심적 결정도 존중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양심의 동기에서 무기 사용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경우를 위한 법률을 인간답게 마련하여, 인간 공동체에 대한 다른 형태의 봉사를 인정하는 것이 마땅하다”(「사목헌장」 79항)고 천명했다.덧붙이면, 신약성경 어디에도 병역 복무자를 비난하거나 단죄하는 장면은 없다. 예수는 백인대장을 만났을 때 군인 신분을 질책하기는커녕 그의 믿음에 감탄해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마태 8,10)고 극찬했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6월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은 헌법 불합치라고 판결한 데 이어 대법원이 1일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처음 무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일률적 병역 의무 강제 행위는 ‘소수자 관용’이라는 민주주의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그렇다고 병역 의무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국방부와 병무청 등은 대체 복무제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국방부는 이 제도가 병역 기피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으려면 복무 기간이 현역병의 2배(36개월)는 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인권단체들은 “과도한 복무는 징벌”이라며 국제 인권기준에 따라 1.5배가 적당하다고 주장한다. 개인의 ‘양심’을 명확하게 검증하는 것도 이 제도 안착의 과제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평화신문2018.11.07
![[평화칼럼]‘아잘레아’, 사랑의 기쁨](//cpbc.co.kr/CMS/newspaper/2018/08/rc/731160_1.0_titleImage_1.jpg)
[평화칼럼]‘아잘레아’, 사랑의 기쁨윤재선 (레오, 보도총국장) 8월 첫날. 때도 아닌데 불쑥 꽃망울을 틔웠다. 신기하기도 하고 다소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저 물을 주고 살랑거리는 바람에 몸을 맡기게 하고 내리쬐는 햇볕에 고개만 내밀어 주었을 뿐인데도 봄을 알리는 전령사 노릇만큼은 톡톡히 해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의아스러웠다. 한편으론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서양 철쭉이려니 짐작만 했지 이 녀석의 이름도, 고향도, 성장 배경도 몰랐다. 알고 보니 이름은 ‘아잘레아’. 진달래과에 속하는 이 꽃의 이름말은 ‘사랑의 기쁨’이다. 고향은 중국 중부인데, 19세기 초 유럽에 건너가서 품종이 개량되어 겨울철 분화식물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겨울도 아닌 한여름에, 그것도 연일 계속된 열대야와 111년 만의 무더위에 마지막 꽃망울을 틔우고 자취도 없이 스러져버리는 것은 아닌지 노심초사했다. 나름의 이유를 따지고 봤더니, 여름내 에어컨 냉기가 나오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던 터라 한겨울이 지나고 이제 봄이 오는 줄 착각했었나 보다. 나의 무지와 무관심과 무감각을 반성하면서 문득 김춘수의 시 ‘꽃’의 한 대목을 떠올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히지 않은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이름을 불러주기도 전에, 폭염의 기세에 눌려 사라져간 뭇 생명의 아픔과 고통을 헤아린다. 함부로 더럽히고 파헤치고 죽이고 꺾어버린, 어리석고 탐욕스런 인간들의 파괴 행위가 결국은 기후 이변을 넘어 기후 붕괴로 치닫고 있음을 목도한다. 비극은 이미 시작됐다. 빙하가 녹아 흘러내리고 모기들이 북극까지 몰려든다. 동식물의 보금자리가 사라지고 삶의 터전을 잃어 달리 갈 곳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이곳저곳을 찾아 헤맨다. 해마다 수백, 수천 명이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는다. 기후 이변은 이미 박탈과 소외, 차별을 낳고 사회적 불평등과 부정의를 증폭시키고 있다. 기후 정의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이유다.돈이 우상이 되고, 시장이 새로운 독재자로 떠오른 시대(「복음의 기쁨」 55~56항), 소비와 낭비, 환경 변화의 속도는 지구의 한계를 넘어섰다.(「찬미받으소서」 161항) ‘지배하고 다스리라’(창세 1,28)는 성경 말씀을 욕망을 채우기 위한 빌미로 삼은 탓이리라. 하느님께서는 ‘그곳을 일구고 돌보는’(창세 2, 15) 임무를 인간에게 맡기셨거늘. 처음부터 모든 피조물의 운명은 그리스도의 신비와 떼어놓을 수 없다.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창조”(콜로 1,16)되었음을 기억한다면. 자연은 사랑의 숨결로 넘치는 기쁨을 선사한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해와 달과 별, 바람과 공기, 물과 불을 형제요 누이라고 부르며 주님께 찬미와 흠숭을 드리지 않았던가. 나의 무지와 무관심, 무감각을 깨우쳐 준 ‘아잘레아’의 꽃망울을 다시 바라보며 기도드린다. “저희가 모든 생명을 보호하며 더 나은 미래를 마련하여 정의와 평화와 사랑과 아름다움의 하느님 나라가 오게 하소서. 찬미받으소서! 아멘.”(‘그리스도인들이 피조물과 함께 드리는 기도’ 중에서) 평화신문2018.08.21
![[방송] 가톨릭평화방송과 함께라면 무더운 여름도 걱정 없죠](//cpbc.co.kr/CMS/newspaper/2018/06/rc/725520_1.2_titleImage_1.jpg)
[방송] 가톨릭평화방송과 함께라면 무더운 여름도 걱정 없죠사진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무더위와 장마로 지친 몸과 마음, 영혼을 달래줄 7월 가톨릭평화방송(cpbc) TV와 라디오의 신규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TV영성의 향기3그리스도교 영성의 역사와 성경, 교회, 교부들의 가르침, 기도 등 신앙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영성생활의 다양한 실천 방법을 소개하는 강좌다. 새롭게 참여한 영성 전문가들이 우리 일상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새로운 방법들을 제시한다.▲ 4일 방송 시작/ 수 오전 8시/ 목 오후 1시/ 금 오후 8시/ 토 오후 2시/ 일 오전 1시김인호 신부의 ‘건강한 그리스도인 되기’신자들이 신앙생활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문제들의 해법을 찾아보고, 그 과정에서 하느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영성적으로 풀어본다. 대전가톨릭대 교수이자 심리학자인 김인호 신부가 지친 현대인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5일 방송 시작/ 목 오전 8시/ 금 오후 1시/ 토 오전 1시/ 일 오전 7시/ 월 오후 8시세상에서 가장 힘든 등굣길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지역에 사는 어린이들이 배움에 대한 열정을 충족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독일의 막시무스 필름에서 제작한 이 다큐멘터리는 히말라야와 케냐, 네팔 등의 어린 학생들이 자연환경의 제약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도전하는 위대한 일상을 보여준다.▲ 13일 방송 시작/ 금 오후 9시/ 토 오후 4시/ 일 오전 10시/ 화 오전 1시/ 목 오전 4시라디오cpbc 창립 30주년 기념 특집 공개 방송 ‘명동성당으로 가자!’cpbc 창립 30주년 기념 특집 공개 방송이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앞마당에서 열린다.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의 간판 프로그램인 ‘박철의 빵빵한 라디오’ 진행자 박철(라우렌시오)씨가 진행하고 대중가수와 생활성가 가수 등이 다수 출연해 방송을 통해 여름휴가와 같은 시원하고 즐거운 시간을 선물한다.▲ 공개 방송 : 14일 오후 8시, 명동 가톨릭회관 앞마당그대에게 평화를, 장환진ㆍ김슬애입니다매일 오후 2시부터 두 시간 동안 주님의 말씀과 생활 성가로 꾸려지는 프로그램. 생활성가 가수 장환진(요한 사도)씨와 김슬애(멜라니아) 아나운서의 찰떡궁합으로 전하는 긍정적인 메시지는 청취자들 마음에 기쁨과 평화를 선사한다.▲ 월~금 오후 2시우리는 코이노니아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건강과 의료, 우리 농산물, 문화에 관한 소식을 풍성하게 전하는 프로그램. 우리의 삶을 그리스도 신앙 안에서 어떻게 알차게 꾸려나갈 수 있을지 청취자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가톨릭평화방송 이정민(데레사) 아나운서가 진행한다.▲ 월~목 오후 4시이힘 기자 lensman@cpbc.co.kr 문채현2018.06.27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 (22) 아기 예수에게 젖을 먹이시는 성모님](//cpbc.co.kr/CMS/newspaper/2019/01/rc/743577_1.0_titleImage_1.jpg)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 (22) 아기 예수에게 젖을 먹이시는 성모님우리 구원의 전구자요 중재자, 성모님전쟁과 흑사병 영향으로 통교 창구 절실 교회 역사를 시대ㆍ시기별로 구분할 때 1세기 말 사도 시대 이후부터 7~8세기까지를 ‘교부 시대’ 또는 ‘고대 교회’라고 합니다. 이 시기 교회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두 가지 믿을 교리를 선포합니다. 바로 성모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평생 동정녀’라는 신앙 고백입니다. 하지만 성모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1854년 교의 선포)와 ‘승천’(1950년 교의 선포)에 관해서는 근대에까지 신학자들 사이에 논쟁의 대상이었습니다. 성경을 근거로 이를 증명하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나 학자들 사이의 논쟁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서는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와 승천에 관한 신심이 널리 퍼져 축일 전례를 거행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12세기부터 15세기까지는 ‘마리아의 시대’라 불릴 만큼 성모 신심이 대중화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성모님께서 교회와 인간을 위해 하느님께 그치지 않고 전구하시며 우리에게 주님의 은총을 전해 주신다는 신심이 확산되었습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요한 2,1-11)에서 볼 수 있듯 자비로우신 성모님께서 당신의 아들 그리스도께 우리 구원을 끊임없이 청하신다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이를 ‘마리아의 중재성’이라고 어렵게 말하고 있습니다. 유럽 전체가 그리스도교 사회인 이 시기에 왜 중세 사람들은 마리아의 전구를 갈구했을까요. 당시 유럽은 전쟁과 흑사병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습니다. 십자군 전쟁이 한창이었고, 흑사병이 수시로 창궐해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또 교회 안에서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고 결혼을 죄악시하는 카타리파 이단이 생겨나는 등 어수선했습니다. 이를 이겨내기 위해선 무엇보다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했습니다. 마치 수도꼭지를 틀면 신선한 물을 바로 받아 마시듯이 주님의 은총을 직관으로 체험할 수 있는 ‘통교’의 창구가 절실했습니다. 그래서 중재자이신 성모 마리아에게 의탁하게 된 것입니다. 이에 중세 사람들은 점차 성모 마리아를 ‘자애로우신 어머니’로, 주님은 종말에 심판자로 오실 ‘그리스도 왕’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타데오 디 바르톨로, ‘아기 예수에게 젖을 먹이시는 성모 마리아’, 템페라, 1400년, 리전 오브 아너 미술관, 샌프란시스코, 미국. 모성애 넘치는 모습으로 그려진 성모 이러한 시대상과 성모 신심은 교회의 성미술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모성애가 넘치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성모 마리아가 표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인간의 너무나 인간적인 표현이 바로 ‘아기 예수에게 젖을 먹이시는 성모 마리아’ 그림입니다. 이 도상(圖像)은 13세기 말에서 14세기 초부터 이탈리아에서 등장합니다. 존엄하신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칭얼대는 자식에게 부끄럼 없이 어디서건 젖을 물리는 여느 어머니처럼 가슴을 드러낸 채 아기 예수에게 젖을 물리십니다. 몇몇 미술사학자는 이 도상이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로마 제국에서 숭배된 이시스 여신이 아들인 태양신 호루스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다수의 미술사학자는 성모 신심을 통해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본고장인 토스카나와 움브리아 지방에서 자생으로 도상이 발전했다고 설명하고 있어 이어 관한 연구는 더 진전되어야 할 듯합니다. 이 도상은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서양 회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1266~1337)와 그의 문하생들이 그린 이탈리아 그레치오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의 구유 동굴 프레스코에서 그 시작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레치오수도원은 프란치스코 성인이 처음으로 구유 예식을 거행한 장소로 유서 깊은 곳입니다. 조토에 관해 여러 차례 설명했기에 이번 호에서는 후대 화가를 소개할까 합니다. 바로 시에나 출신의 화가인 타데오 디 바르톨로(Taddeo di Bartolo, 1363~1422) 입니다. 타데오는 주로 시에나와 피사, 산 지미냐노, 볼테라 등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에서 활동했습니다. 조토의 파도바 아레나 경당에도 작품을 남긴 그는 제단화로 ‘아기 예수에게 젖을 먹이시는 성모 마리아’ 템페라 작품을 1400년도에 남깁니다.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천상 모후의 관을 쓰고 계신 성모님께서 가슴을 드러내시어 아기 예수에게 젖을 먹이시려 하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님은 성모 품에 안겨 왼손으로 젖을 잡고 막 먹으려 합니다. 이 도상에서 눈여겨볼 것은 성모님의 젖무덤이 유난히 작고 비정상적이라 할 만큼 상체 위쪽에 있습니다. 이는 성모님의 몸을 육감적으로 연상하려는 의도를 막으려는 조치라고 미술사학자들은 해석합니다. 또 하나는 초기 르네상스 작품 같지 않게 세밀함과 입체감이 다소 떨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성모님이 앉아 있는 옥좌와 망토의 묘사가 그러합니다. 옥좌는 그 어떤 입체감이나 섬세함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마치 두 천사를 깔고 앉아 있는 듯합니다. 망토의 옷 구김 또한 이전 시대 작품들보다 훨씬 거칠고 탁합니다. 미술사학자들은 이 시기 그림이 이렇게 후퇴한 이유를 ‘흑사병’에서 찾습니다. 흑사병이 그림을 어둡고 칙칙하며 단조롭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양육하고 보호하는 모습으로 묘사 또 다른 작품을 보겠습니다.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으로 로마 시스티나 경당 ‘최후의 만찬’ 벽화 제작에도 참여한 코지모 로셀리(Cosimo di Lorenzo Filippi Rosselli, 1439~1507)가 1490년에 그린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요한 세례자’ 작품입니다. 일단 타데오의 그림보다 훨씬 밝습니다. 원근법을 이용해 입체감을 풍부히 살렸습니다. 성모님과 아기 예수, 요한 세례자의 머릿결과 성모님의 베일, 그리고 배경의 묘사가 아주 세밀합니다. 성모님의 인체 비율도 흠잡을 데 없고 젖무덤도 풍성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성모님의 젖무덤을 크게 묘사한 것은 아기 예수에게 풍부한 영양분을 공급하고 안전하게 보호하고 양육하는 모습을 드러내는 표징입니다. 그래서 암브로시오 성인의 말을 인용해 “그리스도를 키워낸 젖가슴”이라며 성모님께서 우리 구원의 전구자요 중재자이심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성모님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합니다. 젖을 먹는 아기 예수를 바라보면서 앞으로 아들에게 닥칠 수난을 예감해 슬픔에 젖어 계십니다. 하지만 아기 예수는 두 손으로 성모의 가슴을 잡고 젖을 빨면서 어머니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여줍니다. 이렇게 중세 후반, 르네상스 초기 성미술은 아기 예수에게 젖을 먹이시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통해 전구자이시며 중재자이신 성모님을 묘사하였습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문채현2019.01.09

24시간 생생한 복음 전파 위해 상업 광고 빼고 화질은 높이고가톨릭평화방송 TV 초고화질 종일 편성, 라디오도 더욱 알차게 TV 가톨릭평화방송(cpbc) TV가 8월부터 길고 지루한 상업 광고를 없앴다. 대신 그 시간에 영성에 도움이 될 말씀과 기도, 성가 등을 편성해 24시간 하느님 은총을 느낄 수 있도록 새롭게 바꿨다. 화질도 좋아진다. 현재 가톨릭평화방송의 모든 영상은 초고화질(Full HD)이다. 스카이라이프(위성)와 IPTV(Olleh, B TV, U+TV)는 모두 HD 서비스로 전환했지만, 일부 SD 화질 송출 지역이 남아 있어 앞으로 개선할 예정이다.아울러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수도권 FM 105.3㎒)의 알찬 프로그램도 소개한다.신부님과 나누GO! 신나GO!딱딱한 강론, 근엄한 사제의 모습은 이제 그만. 강론대 아래로 내려온 신부들의 본격 수다 한마당이 펼쳐진다. 김정환ㆍ최광희ㆍ김상우ㆍ박종인 신부가 출연해 교리와 교회, 각종 고민 등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나누는 신앙 토크 프로그램.본방송 : 금 오전 9시재방송 : 토 오전 11시, 일 오후 5시, 월 오후 7시, 목 오후 9시예수님을 만난 여인들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윤원진 신부가 신약성경의 인물 가운데 여성들의 삶과 신앙을 중심으로 오늘날 우리의 영성을 들여다본다. 이미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많은 이들에게 기쁨을 준 윤 신부의 재치있는 강의는 훌륭한 영적 선물이 될 것이다.본방송 : 월 오후 5시재방송 : 화 오전 12시, 오후 2시, 목 오전 7시, 토 오전 9시전례 안의 성가“노래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일(Cantare amantis est)”이라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처럼, 전례 안에서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느님께 깊은 사랑과 흠숭을 드리는 방법이 성가다. 주교회의 새 성가집 편찬위원 윤용선 신부가 우리에게 친숙한 성가곡들을 통해 성가와 전례의 의미를 알려준다.본방송 : 수 오전 7시재방송 : 목 오후 4시, 금 오전 1시, 토 오전 12시, 오후 8시RADIOcpbc FM 30주년 특집 빵빵쇼! ‘cpbc FM과 함께 불러요~ 평화의 노래’3일 수원교구 안양 호계동성당에서 열린 cpbc FM 창립 30주년 특집을 녹음 방송한다. 빵빵쇼 두 번째 순서인 이날 공연은 cpbc FM 선교 프로그램의 애청자를 초대해 지난 30년간 보내준 사랑에 보답하고자 마련한 생활성가 토크 콘서트다. ‘행복을 여는 아침’ 진행자 김지현(야고보) 아나운서와 ‘그대에게 평화를’의 김슬애(멜라니아) 아나운서, 생활성가 가수 장환진(요한사도)씨가 진행하며, J-FAM, 김상균(라우렌시오), 김연기(라파엘라), 강훈(바오로)씨가 출연한다.14일 오후 2시기도의 오솔길매주 월~금요일 오후 5시면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수도자의 목소리가 전파를 탄다. 올해부터 마이크를 잡은 이는 전영금(체칠리아, 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 전 수녀는 30분 동안 청취자 사연을 읽고 하느님의 은총을 청한다. 벌써 8개월간 이어온 기도 사연들은 신앙 상담부터 가족 갈등, 진로 고민 등 다양하다. cpbc 라디오 앱 ‘cpbc빵’ 또는 문자 ‘#1053’으로 기도를 청할 수 있다.월~금 오후 7시이힘 기자 lensman@cpbc.co.kr cpbc 라디오(수도권 FM 105.3㎒) 주간 편성표 평화신문2018.08.01

노래로 하나된 ‘하느님 찬양 무대’제18회 cpbc 창작생활성가제 개최본선 12개 참가팀 찬양 기쁨 나눠전국 교구 신자들이 SNS로 홍보가톨릭평화방송 TV 10·11일 방송 부산교구 청년성서모임 ‘익투스’가 ‘어느 날’을 열창하고 있다. 주님께 노래로 기도드리는 찬양 축제 ‘제18회 cpbc 창작생활성가제’가 10월 27일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학교 성의회관 마리아홀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서울ㆍ수원ㆍ전주ㆍ마산 등, 예선을 거쳐 본선에 오른 12개 참가팀은 별 밤을 수놓은 듯한 무대에서 열정으로 노래하며 찬양의 기쁨을 나눴다.대상은 ‘눈을 뜨다’를 부른 수원교구 ‘헤세드(김태건 그레고리오ㆍ박세환 요한 사도ㆍ장영환 요한 세례자)’가 차지해 상금 300만 원과 트로피를 받았다. 눈을 뜨다는 눈먼 거지 바르티메오가 용기 내어 예수님을 부르고, 예수님께서 치유해 주신 성경 말씀(마르 10,46-52)을 묵상하고, 모든 것을 예수님께 의탁하고 찬양하는 마음을 담은 노래다. 헤세드는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고 애절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노래해 청중을 감동하게 했다.최우수상은 ‘우리에게 오신 주’를 부른 연합팀 ‘오라(김태현 소피아ㆍ문영수 루카ㆍ염석준 바오로)’에게 돌아갔다. ‘기도하라’는 뜻의 라틴어인 오라(Ora) 구성원들은 모두가 잠들어 있을 때, 낮은 곳으로 겸손하게 오신 예수님 탄생의 기쁨을 노랫말로 풀어냈다. 우수상은 ‘그늘’을 부른 마산교구 로페카(서혜진 체칠리아ㆍ유인아 세라피아)가 차지했다. 여성 듀엣인 이들은 은은하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늘 우리 곁에 계시는 안식처인 하느님의 위로를 노래했다. 최우수상과 우수상 수상팀은 각각 상금 150만 원과 100만 원의 부상과 트로피를 받았다. 본선 참가자들이 대회 기간 빛나는 우정을 보여준 참가자를 직접 투표해 뽑는 우정상은 팀 익투스의 박참별(마티아, 부산교구)씨가 선정됐다. 이번 창작생활성가제 본선 진출 팀들은 발라드와 댄스, 록 등 완성도 높은 곡들을 다양한 장르로 꾸몄다. 지난 5월 접수 시작부터 대회까지 두 번의 심사와 1박 2일 워크숍을 거치며 더욱 뛰어난 실력으로 무장했다. 지난 대회에 비해 개인 참가자보다는 밴드가 많아 신명 나는 무대가 펼쳐졌다.조정래(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 사장) 신부는 “실력이 뛰어난 참가자들이 모두 멋진 무대를 보여줬다”며 ‘창작생활성가제’로 칠행시를 지어 참가자들을 격려했다. 조 신부는 “‘성’스러움에 아름다움을 입혀서 ‘가’능한 할 수 있는 모든 기량을 펼쳤네요. ‘제’일 잘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아요. 모두 가진 재주를 뽐낸 이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더라”고 전해 관객들에게 큰 박수를 받았다.관객들의 응원전도 색다른 볼거리와 재미를 전했다. 참가자 이름에 희망 사항을 적은 대형 현수막부터 LED 전광판, 응원봉과 노란 풍선 등 다채로운 응원 도구가 등장했다. 생활성가를 사랑하는 전국 교구 신자들이 결성한 ‘위드프레이즈’와 ‘하하호호 서포터즈’는 직접 SNS에 성가제를 홍보하고 참가자들과 찬양사도들을 위한 간식을 선물하며 한국 교회 최대의 창작생활성가 축제에 열기를 더했다. 이날 성가제 실황은 10일 오후 11시, 11일 오후 3시 가톨릭평화방송 TV로 시청할 수 있다.전은지 기자 eunz@cpbc.co.kr “생활성가는 음악 인생의 모든 궤적을 함께한 소중한 선물입니다.”제18회 cpbc 창작생활성가제 대상 수상 팀 ‘헤세드’의 리더 장영환(요한 세례자, 30, 대전교구 신방동본당)씨는 “창작생활성가제 덕분에 앞으로 생활성가 가수로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자신감과 용기를 얻었다”고 입을 열었다. 헤세드는 히브리어로 ‘주님의 조건 없는 자비’를 뜻한다. 장씨를 비롯한 헤세드 멤버 박세환(요한 사도, 38, 수원교구 송서본당)ㆍ김태건(그레고리오, 26, 수원교구 별양동본당)씨는 ‘민들레’라는 이름의 5인조 밴드에서 함께해왔다. 이후 여러 팀원과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한 끝에 3인조로 이번 창작생활성가제에 참가했다.이들은 오직 ‘생활성가’만을 위해 모이고 활동해왔다. 장씨는 “생활성가 가수는 대중음악 가수와 다르게 ‘신앙’과 ‘성가’의 의미를 진지하게 이해해야 한다”며 “팀원들 모두 찬양사도의 역할과 무게를 새기며 이번 대회를 준비했다”고 말했다.이번 대회 참가곡인 ‘눈을 뜨다’는 마르코 복음서의 눈먼 거지 바르티메오 이야기를 담아냈다. 곡을 만들 때는 노래 부르는 이의 감정이 가장 잘 표현돼야 한다는 생각에 보컬 박씨의 묵상 내용을 적극적으로 발전시켰다. 예수님께 의탁하고 찬양하는 마음이 가사에 잘 드러나도록 특히 신경 썼다.리더 장씨는 대상 수상 후 팀원들이 하나같이 “자만하지 말자”며 서로를 격려했다고 말했다. 장씨는 “창작생활성가제 대상 수상팀이라는 수식어는 앞으로 펼쳐질 음악 인생에서 계속 따라다닐 꼬리표이기에 앞으로도 이에 걸맞은 생활성가 가수가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전은지 기자 문채현2018.10.31

기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교회상식 교리상식] 자연법칙과는 달라, 사건 이면의 하느님 뜻 생각해야성경 속 ‘오병이어의 기적’을 타일 조각으로 표현한 그림. 이스라엘 타브가 오병이어 성당에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성경에는 예수님께서 많은 기적을 행하셨다고 기록돼 있는데, 예수님의 기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기적이란 일반적으로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신기한 일, 또는 자연법칙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을 말합니다. 따라서 과학이나 이성적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을 기적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기적은 이와 거리가 멉니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적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알아봅니다. ◇예수님 기적들은 역사적 사실인가 성경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보아서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적들은 상당수가 첨가되거나 보충됐을 가능성이 많다고 합니다. 특히 물 위를 걸으신 기적이라든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 명을 먹이신 기적 같은 것들은 나중에 확대되고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대단히 큽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기적들을 다 엉터리라고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기적들과 관련된 어떤 사건이나 제자들의 체험이 분명히 있었고, 그 내용들은 구전으로 전해지면서 첨가되거나 과장되기도 했을 것이고, 나중에 복음사가들은 이 자료들을 자신들의 신학적 의도에 따라 정리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의 기적 이야기들 중 신빙성이 높은 것만 받아들이고, 역사적 신빙성이 적은 것은 폐기처분해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이 기적 이야기들은 역사적 사실 그대로는 아니지만 '신앙의 언어'로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의 언어가 단지 객관적 사실을 기록하는 언어가 아니라 하느님 체험이라는 신앙의 반성에서 나온 신앙의 언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성경에서는 기적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보는 기적은 성경의 세계는 오늘날 상식이 되고 있는 자연과학의 세계와 거리가 멉니다. 자연과학의 세계에서는 자연법칙이 작용합니다. 그래서 이른바 기적이라는 판단이 내려지려면 이용할 수 있는 온갖 과학적 방법을 다 활용해서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예컨대 치유 기적이 자주 일어나는 곳으로 유명한 루르드 성모성지에서는 1858년 성모 발현 이후 지금까지 약 7000건의 치유 기적이 있었다고 하지만 교회가 실제 기적으로 인정한 사례는 67건뿐입니다. 하지만 성경의 세계에서는 오늘날처럼 기이한 일에 자연법칙을 면밀히 적용한 후 '기적이다' 또는 '아니다' 하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이해하는 기적은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는 하느님의 특별한 행동을 가리킵니다. 하느님께서 어떤 특별한 행동이나 사건을 통해 당신의 뜻을 알리거나 실현하실 때 이를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연법칙을 뛰어넘는 것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실제로 자연법칙은 근대과학의 개념이기 때문에 성경의 세계와는 무관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성경의 세계에서 기적을 이해할 때는 특별히 두 가지가 중요시됩니다. 첫째는 기적이란 언제나 하느님이 주도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놀라운 일의 배후에 하느님이 계실 때에 기적이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기적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그 사건의 외형이 아니라 그 사건을 통해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큰 기적이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그 기적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이 어떻게 드러나며 또 어떻게 실현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예수님 기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성경 저자들이 예수님 기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의 기적은 언제나 예수님께서 당신의 말과 행동으로 당신의 전 인격으로 선포하시는 핵심 메시지인 하느님 나라와 연결돼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기적들은 하느님 나라가 이미 시작됐다는, 하느님의 다스림이 펼쳐지고 있다는 표징들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예수님은 하느님의 능력으로 기적들을 행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느님으로부터 권능을 받고 있음을, 하느님의 권능과 뜻이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음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예수님이 하느님 아들이심을 드러내는 표징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기적들은 이제 사람들에게는 기회가 됩니다. 기적은 사람들을 신앙으로 인도해 주는 표징이 됩니다. 물론 기적 자체가 믿음의 전제 조건은 아닙니다. 믿기 위해 기적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가련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루카 11,29)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기적은 사람들에게 신앙의 결단을 내리도록 하는 자극이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기적뿐 아니라 교회의 많은 성인들의 기적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적들은 사람들을 신앙으로 인도하는 계기가 될 수는 있지만, 기적을 믿음의 조건으로 삼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과 흥정을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cpbc.co.kr김지항2017.09.14
[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33)조금은 둔해도 괜찮아 불편한 감정을 비우려고 호흡을 크게 들이켰다. 천천히 성경을 펼쳤다.“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루카 6,26)깊숙이 감추어 두었던 속내를 들킨 것 같아 마음이 출렁였다. 너무도 사소해서 아닌 척했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소문이 나와 관련된 일이라 신경 쓰였다. 굳이 나 자신과 연결을 하지 않아도 될 일인데 말이다. 소문의 진원지인 당사자 앞에서는 안 그런 척 애썼지만, 이미 나의 마음은 그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 찼다.‘저 사람은 배려라곤 전혀 없군’, ‘게다가 고집까지 세네’, ‘가까이하고 싶지 않아’ 그에게 직접 소문을 듣지도 않았는데 그의 작은 것도 눈에 거슬렸다. 한편으론 내 감정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괜스레 부아가 치밀었다. 소문만 듣고도 이토록 마음이 요동을 치다니.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사람들이 나를 좋게 말하면 오히려 나는 불행할 것’이라고. 좋고 나쁜 정답이 말하는 사람의 입에 있는 것도 아닌데 나의 예민함 탓이리라. 조금은 둔해도 괜찮은 것을.요즘은 넘치다 못해 질식할 것 같은 ‘말’의 홍수에 빠져 사는 것 같다. 대화인지, 잡담이나 험담인지 구분이 안 될 때도 있다. 대면 대화가 힘들고 용기없는 사람은 소셜네트워크로 대화를 중계한다. 이 말은 확성기보다 더 크고 빠르게 퍼진다. 때론 가시가 되고 화살이 되어 누군가의 심장에 아픈 상처도 남긴다.조금은 둔감해야 평화롭다. 상처가 났다고 긁어대면 더 아프다. 불편할 때마다 민감하게 대응하면 스트레스만 커진다.‘신경 좀 끄시지.’ 자신에게 종종 하는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에너지는 빠진다. 게다가 예민하기까지 하면 어쩔 것인가?젊을 때는 에너지가 충만하다. 해보지 못한 일도 해야 하고. 경험이 없으니 부정도 하고 불평도 험담도 해볼 만하다. 그래서 후회도 하고 가던 길을 다시 돌아오기도 하고, 힘들게 올라간 길 다시 내려올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모든 기능이 쇠퇴하면서 사용할 에너지도 많지 않다. 그렇다고 좌절할 이유는 없다. 판단하고 불평하고 부정하는 에너지만 안 쓰면 된다. 자꾸 부정적인 일에 힘을 빼다 보면 스트레스만 쌓일 뿐이다. ‘나는 예민해서 도저히 안 돼!’라고 생각한다면 부정이 긍정되게 하는 방법도 있다.언니가 동장이었을 때였다. 긴급회의를 하는 도중 언니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다음 날 지역신문에 ‘비상회의 때 스마트폰을 만지는 여동장의 불성실한 모습’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언니는 기자에게 무척 화가 났다. 며칠 후 언니는 기자를 만났다. 그리고 대화를 피하려는 기자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말했다. “기자님, 지난번 기사 정말 고마웠어요. 그 이후로 회의 때 절대로 스마트폰을 만지지 않아요. 정말 고마워요”라고 말했다. 그 기자는 얼굴이 붉어졌고, 안절부절못했다. 그 후 언니를 멀리서 보기만 해도 먼저 달려와 반갑게 인사를 하더란다.이렇게 반전의 역전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없다면? 조금은 둔해도 좋다. 과민해서 좋을 게 없으니까.성찰하기1 소소한 일에 감사하고 작은 일도 큰소리로 웃고 즐겨요.2 감사한 마음은 부정을 줄이고 둔감하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처방전입니다. 3 예민해서 스트레스가 생길 때 “조금은 둔해도 괜찮아”라고 나 자신을 위로해요. 4 소문으로 인해 불쾌할 때면 편안한 자세로 앉아 눈을 감고 말씀을 되뇌며 기도해요.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 cpbc2018.09.18

일상 속 진리와 하느님 말씀으로 신앙생활의 깊이를 더하세요「명심보감, 그리고 하느님이 이르기를」 펴낸 임덕일 신부 명심보감, 그리고 하느님이 이르기를 임덕일 신부 엮음 / 가톨릭출판사 / 1만 5000원사제관은 티끌 하나 없이 깨끗했다. 잘 정돈된 탁자 옆 소파에 걸터앉을 때 사제가 말했다. “은퇴하고 이렇게 살아! 하하.” 묵직한 음성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클래식 선율과 절묘하게 어울렸다. 사제 생활 47년. 2015년 은퇴 후에도 신자들의 영성생활을 위해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임덕일(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 신부가 「명심보감, 그리고 하느님이 이르기를」을 펴냈다.책은 임 신부가 은퇴 2년 만에 내놓은 신간이다. 그는 “사제가 영성을 전하는 데 은퇴가 어디 있느냐”며 “이것이 본래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라고 전했다. 그렇게 가장 원하던 일에 1년 넘게 몰두했다. 책상 스탠드 아래엔 성경과 고전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책은 제목 그대로 ‘마음을 밝히는 보배로운 거울’인 「명심보감」에 담긴 옛 선현들의 금언(金言)과 함께 성경 말씀을 주제에 맞게 한데 엮었다. ‘「명심보감」이 성경과 통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지만, 옛 선각자들의 사상은 놀라울 만큼 성경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 공자와 맹자, 장자부터 저 멀리 서양의 나폴레옹과 톨스토이, 괴테에 이르기까지. ‘섬김’, ‘나눔’, ‘친교’의 대주제 아래 170여 가지 동서양 진리를 임 신부가 일일이 찾아 짧은 단상과 함께 엮었다. 고전도 익히고, 성경도 맛들일 수 있다.임 신부는 “예나 지금이나 선과 악에 관한 진리는 변치 않듯이 선현들이 하늘의 뜻을 따르고 복을 받고자 했던 ‘하늘사상’은 성경 말씀과 뜻을 같이한다”며 “일상 속 진리와 하느님 말씀을 함께 익힌다면 신앙생활의 깊이도 더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뉴스에 등장하는 사건·사고와 범죄 수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예와 충효, 겸손, 양심보다는 돈과 권력, 명예, 사리사욕만 삶의 자리를 차지해 가는 게 현실이다. 임 신부는 “마음의 양식은 온데간데없이 그저 보고, 느끼고, 즐기면 그만인 ‘인스턴트 사회’가 돼 가고 있다”며 “빠르고 편한 것만 지향하다 보니 부부도 연인도 점점 ‘인스턴트식 사랑’을 하고 있다”고 안타까워 했다. “이런 때일수록 진리에 귀의하고 탐독해야 한다”고 했다.“선한 일은 모름지기 탐내어야 하며 악한 일은 결코 즐겨하지 말라”는 태공의 말은 “악한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말고 그들과 어울려 하지 마라”(잠언 24,1-2)는 구절과 통한다. 여기에 괴테도 “선을 행하는 데는 나중이라는 말이 필요 없다”고 덧붙인다.「서경(書經)」에 담긴 “가득 차면 손실을 부르고, 겸손하면 이익을 받는다”는 말 또한 “주님의 권능은 크시고 겸손한 이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다”(집회 3,17-22)는 말씀과 연결된다.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하느님 말씀도 공자ㆍ장자의 수려한 표현들과 일치한다. 같은 뜻의 진리를 다양하게 체득하도록 이끈다.임 신부의 반세기 사제 생활은 ‘꾸르실료’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1970년 부제 때 동기인 염수정 추기경, 최용록 신부와 꾸르실료 연수를 받은 뒤 사제가 된 후 평생 꾸르실료 차수 지도와 강의를 했으며, 은퇴 전 약 8년간 교구 꾸르실료 대표담당 사제를 역임했다. 한국 꾸르실료 운동 50년 역사를 동반하며 초석을 다진 성직자다. 그가 늘 강조하는 것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씀이다.“어느 날 한 학생이 ‘신부님, 사랑이 어떻게 생겼어요?’하고 묻더군요. 난감했지만 ‘사랑은 덧셈’이라고 답해줬죠. 사랑은 십자가 모양처럼 무한히 더해가는 겁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오셔서 사랑을 주셨듯이 우리도 서로 다가가 사랑을 더해 가야 합니다. 거기엔 이해와 희생, 용서가 꼭 수반돼야죠.”책은 이미 교구 사제 800여 명에게 전달됐다. 임 신부는 매년 신앙적 가르침을 일깨우는 서적을 출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책상 한편에는 이미 손으로 눌러쓴 다음 원고가 놓여 있었다.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백영민2017.11.08

대림 특강 (1) 말씀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 -정순택 주교(서울대교구 보좌)하느님이 건네시는 말씀, 성경 2013년 선포된 ‘신앙의 해’ 이후 네 번째 해다. 서울대교구는 2017년을 ‘미사로 하나 되는 신앙’의 해로 보낸다. 신앙생활의 정점인 미사를 통해 세상에 파견되는 신앙인의 삶을 되짚어 보기 위한 명동주교좌본당(주임 고찬근 신부) 대림 특강을 3회에 걸쳐 지상 중계한다. 창세기는 “한처음에”라는 단어로 시작한다. 전 세계의 성경 80%가량이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창세 1,1)로 번역돼 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던 한처음에”라는 식으로 번역한다. 미국 가톨릭 교회에서 쓰는 「뉴 아메리칸 성경」(NAB)도 하느님의 첫 동사가 ‘말씀하시다’는 모습이 되도록 해석돼 있다.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성경 안에서 ‘말씀’이 갖는 존재감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요한 1,1)로 시작하는 요한 복음의 로고스 찬미가는 의미심장하다. 복음사가는 말씀이 그토록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말씀은 하느님께서 인간과 통교하시는 몇 개의 길 중 하나다. 하느님은 당신 피조물인 우리와 끊임없이 통교하시는 분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당신을 닮은 존재로 빚으셨고 자유의지도 갖게 하셨다. 자유의지 때문에 인간이 죄를 지을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하신다.하느님과 통교하는 두 방법은 말씀의 성찬인 미사와 기도이다. 하느님께선 죄지은 아담에게까지 통교하신다. 당신 말씀에 불순명한 죄인 아담에게 하느님께서는 말씀을 건넴으로 통교하시고 당신 앞으로 빛 앞으로 이끄셨다.가톨릭 교회가 정통 성경으로 인정한 것은 73권이다. 교회의 전통에 따라 교도권이 인정한 것들이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는 교도권에 순명하는 마음이 전제돼 있다. 교회의 가르침에 귀 기울이고 순명하는 마음이 바탕이 될 때 하느님 말씀을 바르게 읽고, 캐낼 수 있다.성경을 읽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구약 혹은 신약, 아니면 한 권을 통독하는 것이다. 성경 공부를 하는 방법도 좋고, 필사하는 것도 좋다. 그날 미사의 독서와 복음을 매일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의 하나다.또 다른 방법은 그날그날 성경을 펼쳐 눈에 들어오는 구절을 읽는 것이다. 아기 예수의 데레사 방법이다. 성녀는 낙담하고 있을 때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사랑의 송가’를 묵상하고 큰 빛을 받았다. 주의할 점은 선택된 구절을 꼭 실천해야 하는 예언이라는 등 미신적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성경 읽는 태도를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별은 수십 수억 광년 떨어져 있다. 그 별빛은 수십 수억 년 전 별을 출발한 빛줄기인데 그것이 눈에 보이는 것이다. 이 말은 내가 별빛을 바라보는 순간, 내가 우주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그러한 자세로 읽어야 한다. 길게는 3000년, 짧게는 2000년 전에 쓰인 책이지만, 역사 이야기나 신화 같은 이야기로 끝나는 게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한 말씀들이다. 시대가 다른 존재인 별빛이 별을 보는 그 시점에 내 눈에 수렴되는 것처럼, 성경은 펼치는 순간 하느님이 나에게만 들려주는 말씀이 된다. 바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건네주시는 사랑의 통교이다. 우리에게 사랑으로 다가오시고자 하신 하느님을 더 깊이 만나도록 결심해 보자. 정리=이힘 기자 lensman@cpbc.co.kr 평화신문2016.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