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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bc news3/6 (금) - cpbc 가톨릭뉴스<1> 은평성모병원, 언제 다시 문 열 수 있을까?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잠정 폐쇄된 가톨릭대 은평성모병원. 병원이 폐쇄된 지 오늘로 꼭 보름째입니다. 은평성모병원은 철저한 방역을 거쳐 재개원 준비를 마쳤는데요. 폐쇄 조치가 풀리지 않아, 지역 의료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은평성모병원으로 가보겠습니다. ======================================================================= 학교법인 가톨릭학원 상임이사인 손희송 주교가 은평성모병원을 찾았습니다. 재개원 준비를 마친 은평성모병원 관계자들을 격려하기 위해섭니다. 꼼꼼한 출입 절차를 거쳐 병원으로 들어온 손 주교는 직원들과 함께 기도부터 바쳤습니다. <손희송 주교 / 학교법인 가톨릭학원 상임이사, 서울대교구 총대리> "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보고 있는 의료진들과 가족들을 축복하여 주십시오. 또한 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 분들의 영혼을 받아주시고." 은평성모병원은 지난달 21일 환자 이송업무를 담당하는 협력업체 직원이 코로나19로 확진되면서 잠정 폐쇄됐습니다. 이후 은평성모병원은 대대적인 소독과 방역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의료진과 직원, 환자와 보호자까지 2천7백여 명이 코로나19 검사를 받았고,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습니다. 재개원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마쳤지만, 병원은 2주 넘게 폐쇄된 상태입니다. 모든 진료와 수술이 중단되면서 하루가 급한 중증 환자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만들어진 규정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맹현균 기자> "가톨릭대 은평성모병원은 하루에 3,500명이 진료를 받고 100여 명의 환자가 수술을 받던 그야말로 지역 거점 병원입니다. 하지만 잠정 폐쇄 조치가 내려지면서 외래진료는 물론이고 이렇게 응급실까지 중단된 상태입니다." 은평성모병원을 둘러본 손희송 주교도 안타까운 마음을 나타냈습니다. <손희송 주교 / 학교법인 가톨릭학원 상임이사, 서울대교구 총대리> "저희 병원을 다니시는 환우분들 그 중에 특별히 중증도가 높은 분들이 있잖아요. 예를 들면 신장 투석을 해야 하는데 그런 분들 은평성모병원에서 왔다고 하면 받아주지를 않는다고 해요. 그런 분들 생각하면 정말 하루라도 빨리 재개원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우리 교직원들이 총력을 기울여서 청정 지역으로 만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한 확진자가 코로나19 검사를 빨리 받기 위해 은평성모병원에 다녀왔다고 거짓 진술을 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 때문에 은평성모병원은 감염병 관리에 소홀했다는 오명을 뒤집어 써야 했습니다. 지난해 문을 연 은평성모병원은 최신 음압병동을 갖추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들을 안전하게 치료할 수 있지만, 병원이 폐쇄된 탓에 시설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권순용 / 가톨릭대 은평성모병원장> "대구 지역에 있어서는 환자분들에 대한 입원 시설이 없어서 자가격리 중에 돌아가시는 그런 안타까운 소식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병원 같은 경우에 있어서는 가장 최근에 지어진 최고의 음압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의료계에서는 은평성모병원 폐쇄에 대해 과도한 조치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루 빨리 문을 열고 가용 자원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서울시는 은평성모병원 폐쇄 조치 해제를 전향적으로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지금까지 앵커 리포트였습니다. <2> 한티 피정의 집, 코로나19 치료센터로 운영 [앵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병실이 부족해 입원을 기다리다 숨지는 일이 잇따르고 있죠. 정부가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중증환자와 경증환자를 분리해서 치료하기로 했는데요. 대구대교구가 경증환자들의 격리치료를 위해 한티 피정의 집을 개방했습니다. 김혜영 기자입니다. ================================================================= [기자]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를 피해 고향을 떠나온 신자들이 모여 살았던 한티 교우촌. 해발 600m 첩첩산중이라 몸을 숨기기에 좋았습니다. 하지만 박해의 칼날을 피하지 못하고 이름 없이 죽어간 순교자들이 수 십명에 이릅니다. 대구대교구는 1991년 9월 순교자들이 묻힌 이곳에 한티 순교성지를 조성하고, 한티 피정의 집을 열었습니다. 순교자들의 숨결이 진하게 배어 있는 한티 피정의 집이 어제부터 코로나19 경증환자들의 격리치료 시설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경증환자로 분류된 69명이 한티 피정의 집에 입소하게 됐습니다. 의료진은 별도의 건물에 상주하면서 환자들을 돌보게 됩니다. 종교 시설이 생활치료센터로 운영되는 건 한티 피정의 집이 처음입니다. <조현권 신부 / 대구대교구 사무처장> 우리 교구에서 먼저 (대구)시에 문의를 했습니다. 어떤 도움을 드리면 되겠습니까 했는데, 우리 교구의 한티 피정의 집을 생활치료센터로 썼으면 좋겠다 해서 교구에서 동의를 해서 환자들이 거기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의 종식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도움을 드릴 생각입니다. 대구대교구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지난달 말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와 경북지사에 각각 1억원씩 2억원의 성금을 전달했고, 지난 2일에는 대구대교구 사회복지회가 대구와 경북에 있는 선별진료소 20곳에 700만원 상당의 위로 물품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또 코로나19 확진자 치료를 위해 대구가톨릭대병원에 125병상을 확보하고, 확진자 치료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cpbc 김혜영입니다. <3> 코로나19 최전선, 간호사의 수호성인은?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분투하고 있는 의료진의 모습이 국민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고 있습니다. 신앙인이라면 의료인의 수호성인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것도 의료진을 응원하는 방법이라고 전해드렸는데요. 지난주 의사의 수호성인을 전해드린 데 이어, 오늘은 간호사의 수호성인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이힘 기자입니다. ======================================================================== 간호사의 수호성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성인은 ‘성녀 아가타’ 입니다. 성녀는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부유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집니다. 어려서부터 신심이 남달랐던 성녀는 스스로 정결을 서원했습니다. 아가타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선’ 또는 ‘좋음’을 뜻하는 ‘아가토스’에서 유래했는데, 성녀는 이름처럼 선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지방 총독 퀸티아누스는 성녀의 미모에 반해 청혼했지만, 거절 당하고 맙니다. 그리스도교 박해가 심했던 시절, 온갖 협박과 회유에도 성녀의 마음을 흔들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총독은 성녀의 가슴을 도려내라고 명령했습니다. 성녀는 “육체는 도려낼지라도 영혼을 도려낼 수는 없다”고 말했고, 결국 가슴이 도려내집니다. 이후 성녀는 환시 중에 성 베드로를 보게 됩니다. 베드로 성인은 천사와 함께 나타나 성녀를 치료해줬지만, 총독은 성녀를 석탄불에 태워 죽였다고 전해집니다. ‘성 가밀로 데 렐리스’도 간호사의 수호성인입니다. 군인이었던 성인은 1575년 우연히 들은 설교로 심경에 변화를 일으켜, 프란치스코회 입회를 결심합니다. 하지만 지병인 다리병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환자들을 돌보는 봉사에 나섭니다. 성인은 환자들의 모습에서 그리스도를 보고, 환자들을 극진히 보살폈습니다. 성인은 고해사제의 권고로 1584년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제와 평수사들로 구성된 ‘병자들의 봉사자회’를 설립했습니다. 병자들의 봉사자회는 당시 로마 항구를 통해 전염되는 흑사병 환자들을 돌보는데 힘을 기울였습니다. 성인은 건강이 악화되면서도 죽는 날까지 환자들을 돌봤고, 1746년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1930년 교황 비오 11세는 성인을 간호사와 간호단체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습니다. 코로나19의 최전선에서 무거운 방호복을 입고 사투를 벌이고 있는 간호사들. 간호사들의 수호성인을 기억하고 기도하면서, 간호사들을 위한 축복을 청합니다. cpbc 이힘입니다. <4> 역사 속 그 미사…일제강점기, 6·25 전쟁 중에도 미사 성당에서 봉헌되는 미사에 참여할 수 없는 요즘, 새삼 미사의 소중함을 더 절실하게 느끼는 분들 많으시죠. 일제강점기 때도, 6.25 전쟁 중에도 미사는 중단되지 않았는데요. 한국 천주교회 역사 속 미사들을 전은지 기자가 되짚어봤습니다. ===================================================================== 1784년, 선교사의 도움 없이 자발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인 선조들. 지역별 신앙공동체를 중심으로 교우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지만, 미사는 봉헌할 수 없었습니다. 성직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선조들은 미사를 대신해 십자가의 길과 묵주기도, 교리공부 등으로 신앙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조한건 신부 / 한국교회사연구소장> “교우촌이나 박해시대 때 쉽게 미사를 봉헌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신 기도하는 그 기도문 자체를 ‘첨례경’이라고 불렀거든요. 거기에다가 옛날에 ‘성로선공’이라고 하는 십자가의 길을 했었고, 또 묵주기도. 이런 것들을 하고 교리공부까지 포함해서 신자들은 미사를 대신해서 기도했습니다.” 조선 땅에서 첫 미사가 봉헌된 건, 천주교가 전래된 지 11년이 지나서였습니다. 조선에 입국한 최초의 선교사인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계동에 있는 최인길 마티아의 집에서 역사적인 첫 미사를 집전했습니다. <전은지 기자> “저는 지금 가회동에 나와 있습니다. 이 가회동 일대에서 1795년 한국 천주교회의 첫 미사가 봉헌됐는데요. 조선 교회에 파견됐던 중국인 사제 주문모 신부는 비밀스레 미사를 준비해 ‘예수 부활 대축일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그리고 보시는 이곳이 한국 최초의 미사 봉헌을 기념하는 가회동 성당입니다.” 숨 죽인 채 봉헌한 감격적인 첫 미사. 신앙 선조들은 미사를 봉헌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날 미사는 밀고자에 의해 박해의 도화선이 됐지만, 이후 북촌 일대는 한국 천주교 초기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거점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도 미사는 봉헌됐습니다. 공식 기도를 일본어로 바쳐야 할 때도 있었지만, 미사는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6.25 전쟁 중에도 미사는 이어졌습니다. 1950년 7월 2일, 성모방문축일을 맞아 명동대성당에서 미사와 성체강복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신자 수는 평소의 3분의 1 밖에 되지 않았지만, 공산당원이 지켜보는 앞에서도 신자들은 사제의 강론을 듣고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6.25 전쟁이 2년차에 접어든 1951년 1월 12일엔 대구대목구장 최덕홍 주교가 ‘사제와 신자들에게 특별 권한’을 내려 보냈습니다. “미사를 지내기 어려운 시기, 미사는 본질적 부분만 완수하면 된다”고 전하며, 신자들에게 공심재를 지키고 금주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또 “신자들이 공산당 가입을 피하지 못하더라도, 파문되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밝혔습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미사는 봉헌됐습니다. 6.25 전쟁 당시 군종장교였던 에밀 카폰 신부는 “전장에는 미사가 더욱 필요하다”고 말하며 지프 보닛 위에 십자가를 올려놓고 병사들과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유례없이 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가 금지된 상황. 사제들은 신자 없이 미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조한건 신부 / 한국교회사연구소장> “미사가 중단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신부님들은 본당 신자들을 위해서 또 많은 교우들을 위해서 개인적으로 미사를 봉헌하고 계세요. 그래서 다만 이게 여러 가지 병균이나 이런 것들이 확산되지 않도록 우리가 모여서 하는 공동체 미사를 지금 금지한 거지 미사는 계속 봉헌되고 있다는 것….” cpbc 전은지입니다. <5> TV로 보는 가톨릭평화신문 1554호 이어서 <TV로 보는 가톨릭평화신문> 순서입니다. 오늘은 3월 8일자 가톨릭평화신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서종빈 기자와 함께합니다. 1. 이번 주 가톨릭평화신문에서는 사상 유례가 없는 감염병 사태로 인한 신앙생활의 불편함과 궁금증을 자세히 안내하고 있죠? 그렇습니다. 전국의 성당에서 봉헌하는 미사가 중지된 지 2주가 넘었는데요. 미사 자체가 중단된 것이 아니라 감염병 확산을 방지하지 위해 신자들의 미사 참여를 금지했을 뿐입니다. 성당에 상주하는 사제는 교회 전통과 신자들의 미사 지향에 따라 개인적으로 매일 미사를 봉헌하고 있고요. 가톨릭평화방송 TV의 매일미사 등 대송과 성경필사, 십자가의 길 기도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2. 그러니까 일부 언론에서 보도하는 것처럼 한국 천주교회가 236년 만에 미사를 중단했다는 보도는 엄밀히 말하면 잘못된 표현이네요. 그렇습니다. 교회는 박해나 전쟁,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에도 단 한 차례도 미사를 중단한 적이 없습니다. 6.25 전쟁 때에도 사제들은 신자들을 피난 보내고 홀로 미사를 봉헌하며 성당을 지키다 공산군에게 납치되고 순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만찬 때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라고 명하셨기 때문인데요. 가톨릭 교회는 신자들이 미사에 참여하지 못해 영성체를 할 수 없는 경우 성체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지니고 성체를 모시고자 한다면 성체성사의 효력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데요. 이를 ‘신령성체(神領聖體)’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3. 그럼, 신령성체는 어떤 경우에 할 수 있는지요? 사제가 없어서 미사를 거행하지 못하고 말씀 전례만 거행할 경우, 병고나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미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 대죄 중에 있으면서 고해성사를 받지 못해 영성체를 할 수 없는 경우, 또,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예비 신자일 경우에 해당됩니다. 미사에 참여하지 못할 경우 가톨릭평화방송 TV, 라디오, 유튜브를 통해 미사를 시청취하고 신령성체를 통해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시면 되겠습니다. 4. 부득이하게 미사에 참여할 수 없을 경우 대신 드리는 기도를 말하는 ‘대송 규정’도 자세히 소개하고 있죠? 한국천주교 사목지침서에 따르면 미사나 공소예절에도 참여할 수 없는 경우 묵주 기도, 성경 봉독, 선행 등으로 그 의무를 대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묵주기도 5단을 바치거나 해당 주일의 복음과 독서 말씀을 읽고 작은 희생과 봉사 활동으로 의무를 대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송을 한다고 해서 주일 미사 의무를 온전히 다한 것은 아닌데요. 다만, 대송을 잘 지켰다면 주일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해성사는 하지 않아도 됩니다. 5. 위급한 비상 상황에서 세례 성사나 병자 성사는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도 소개하고 있죠? 교회법에 따르면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주교나 사제, 부제가 세례성사를 집전하지만 위급한 경우에는 어떤 신자라도 비상 세례 즉 ‘대세’를 줄 수 있는데요. 이는 환자에게 주는 병자성사에도 해당됩니다. 또 비신자라도 가톨릭교회와 같은 뜻을 가진다는 지향이 있다면 세례를 베풀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세’는 십자고상과 맑은 물, 대부모 등 예식 준비 사항을 참고해 지키시면 됩니다. 그런데 대세를 받은 뒤 건강이 회복되면 기본 교리 교육을 받는 보충 예식을 해야 하는데요. 이를 ‘보례’라고 합니다. 6. 코로나19 사태로 가장 많이 오르내리고 있는 단어가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 이른바 ‘신천지’인데요. 신천지의 실체를 살펴 본 특집 기사가 실렸죠? 코로나19의 대량 확산에 분기점을 제공한 게 신천지인데요. 어떤 예배 방식을 취하길래 이렇게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는지, 또 신도들이 피해를 입은 사실을 알고도 왜 깜깜이 대응을 했는지, 신천지의 폐단 그리고 독특한 집단성과 폐쇄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있습니다.// 성경과는 전혀 다른 주장을 펼치는 신천지가 이단이 아니고 왜 사이비인지? 설명하고 있고요. 공연이나 상담사 등으로 위장해 접근한 뒤 성경공부 모임에 끌어들이는 일련의 과정도 자세하게 소개해고 있습니다. 아울러 전국의 신천지 교회와 성장세를 그래픽으로 안내하고 있으니까요, 꼼꼼히 읽어보시면 그들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7. 이번주 엉클조 즉 이백만 교황청 주재 한국대사의 바티칸 산책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기 비결’이 실렸던데요. 어떤 내용인가요?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떤 분이고 인기 비결은 무엇인지를, 교황청 주재 한국 대사로서 자신의 경험과 상징적인 3가지 장면으로 소개하고 있는데요. 우선, 교황이 사도궁 관저를 놔두고 교황청 사제들의 공동 숙소인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살고 있는 소박한 삶을 들었습니다. 특히 공동 숙소에서 생활하면서 사제들을 배려해 홀을 등지고 벽을 향해 앉아서 음식을 드신다고 합니다. 두 번째 장면은 간절한 성모 신심을 들었는데요. 교황은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미사를 집전할 때 중앙 제대 한쪽 기둥에 성모상을 모셔 놓고 미사 전후에 성모님께 기도를 드린다고 합니다. 세 번째 장면은 교황 특유의 기도 방식인데요. 축복 기도를 할 때, 또 일반 알현이나 삼종기도를 할 때 늘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세요”라고 마무리합니다. 결국, 프란치스코 교황은 배려와 소통, 경청과 순명, 언행일치와 지행합일에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끝을 맺었습니다. ▷ TV로 보는 가톨릭평화신문, 서종빈 기자와 함께했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클로징 멘트> 대구와 광주, 마산, 인천교구에 이어 수원교구도 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 중단 기간을 연장했습니다. 당초 11일까지 미사를 중단할 예정이었지만, 18일까지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는 대구와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코로나19 상황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고, 수도권 집단감염 우려가 증가되고 있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상으로 가톨릭뉴스를 마칩니다. 시청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