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에 대한 음모와 최후의 만찬 준비(루카 22,1-13)](//cpbc.co.kr/CMS/newspaper/2018/08/rc/730451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위원의 예수님 이야기](77)예수님에 대한 음모와 최후의 만찬 준비(루카 22,1-13)유다는 왜 예수님을 배반하게 됐을까 무교절이 오자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지시를 받아 도성 안 다락방에 파스카 만찬을 준비한다. 사진은 예루살렘 구 시가지 시온산에 있는 최후 만찬 기념 성당. 루카복음은 22장부터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루카복음에서 예수님의 생애는 탄생과 유년기(1,5─2,52), 공생활 준비(3,1─4,13), 갈릴래아 활동기(4,14─9,50), 예루살렘 상경기(9,51─19,27), 예루살렘 활동(19,28─21,38), 그리고 수난과 죽음, 부활과 승천(22,1─24,53)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22장부터는 예수님 지상 생애의 마지막 국면이 시작됩니다. 음모와 유다의 배반(22,1-6)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 생애의 마지막 국면을 “파스카라고 하는 무교절이 다가왔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백성이 두려워 예수님을 어떻게 제거해야 할지 그 방법을 찾고 있었다”(22,1-2)라는 기사로 시작합니다. “파스카라고 하는 무교절”이란 표현은 두 축제가 동일함을 나타내고 있지만 사실은 서로 다른 기원을 갖고 있습니다. 파스카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풀려난 것을 기념하는 축제로 ‘과월절’이라고도 합니다. 파스카 축제는 유다인 달력으로 해마다 첫째 달인 니산달(태양력으로는 3~4월) 14~15일에 지냈습니다. 유다인들은 14일 오후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파스카 양을 잡았고, 이날 밤(유다인들은 해가 지는 저녁부터 하루를 시작하기에 날짜로는 15일이 됩니다) 이 양을 누룩없는 빵, 쓴 나물과 함께 먹으면서 옛 이집트 탈출을 기념했습니다. 반면 무교절은 원래 봄철에 농부들이 보리를 추수하면서 일주일 동안 누룩이 들지 않은 빵을 먹는 축제인데, 해마다 니산달 15일부터 21일까지 지냈습니다. 그렇다 보니 파스카 축제와 무교절이 자연스럽게 연결됐고, 나중에는 두 축제가 동일시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오시어 성전을 정화하신 후부터 예수님을 제거하려 했지만 온 백성이 날마다 예수님께 모여들고 있어서 묘한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19,47-48 참조) 그러던 차에 기회가 생겼습니다. 유다가 스승을 배반한 것입니다. “사탄이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이스카리옷이라고도 하는 유다에게 들어갔다. 그리하여 그는 수석 사제들과 성전 경비대장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예수님을 넘길 방도를 함께 의논하였다.”(22,3-4) 유다는 왜 예수님을 배반했을까요? 루카는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확실한 것은 유다가 사탄의 유혹에 빠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루카는 ‘유다가 사탄의 유혹에 빠졌다’고 쓰지 않고 ‘사탄이 유다에게 들어갔다’고 기록합니다. 사탄이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사탄은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며 광야에서 지내셨을 때 예수님을 줄곧 유혹했던 그 유혹자입니다. 그때 사탄은 여러 가지로 예수님을 유혹하다가 다음 기회를 노리며 물러갔는데(루카 4,1-13), 이제 유다를 통해 그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성경학자들은 22장 4절 “예수님을 넘길 방도를 함께 의논하였다”에서 ‘넘길’이라는 표현에 주목합니다. 이 단어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시면서 “사람의 아들은 … 넘겨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9,44; 18,32)의 ‘넘겨질’과 같은 단어입니다. 그런데 수난과 죽음 예고에서 ‘넘겨질’이라고 수동태가 쓰인 것은 그 일이 하느님에 의한 것임을 나타낸다고 성경학자들은 해석합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 또는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 일이 이제 유다에 의해서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석사제들은 유다를 통해 예수님을 제거할 방도를 얻게 된 것이 기뻤습니다. 그래서 유다에게 돈을 주기로 합니다. 유다는 거기에 동의하고는 군중이 없을 때에 예수님을 넘길 기회를 노립니다.(22,5-6) 예수님을 넘기기로 한 사례로 유다가 받은 돈은 은화 서른 닢이었습니다.(마태 26,15) 은화 서른 닢은 남의 종이 자기 소에게 받혀 죽었을 때에 지불하는 금액이라고 합니다.(탈출 21,32 참조) 이유야 어찌 됐든 유다는 결과적으로 은화 서른 닢에 스승을 팔아넘기는 배반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최후의 만찬 준비(22,7-13)드디어 파스카 양을 잡아야 하는 무교절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파스카 음식을 차리라고 지시하시고, 그들은 어디에 차리면 좋겠냐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도성 안으로 들어가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를 만나 그 사람이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그 집 주인에게 “스승님께서 ‘내가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음식을 먹을 방이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하고 말하면 그 사람이 자리를 깔아놓은 이층 방을 보여줄 것인데 거기에 차리도록 하라고 이르십니다.(22,7-12) 예수님의 설명은 사전에 그 집 주인과 약속을 해놓으신 것처럼 대단히 자세하고 구체적입니다. 실제로 제자들이 가서 보니 예수님께서 일러주신 그대로였고 그래서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고 루카는 기록합니다. 간단한 설명이지만 여기서 당시의 상황을 한 번 그려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파스카 만찬이 제자들과 함께하는 마지막 만찬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으뜸으로 삼으신 베드로와 당신이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 두 사람에게 파스카 음식을 준비하도록 하셨겠지요. 당시 예루살렘 도성은 주민들과 축제에 참여하러 온 순례객들로 혼잡했을 것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주민이 3만 명이었고 파스카 축제를 지내러 온 순례객이 8만 5000명에서 12만 5000명이었다고 추산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게다가 무교절이 시작되는 날 밤에 먹어야 하는 양을 구해 잡아야 했고 그 밖에 누룩이 들지 않은 빵과 쓴 나물 등도 함께 구해야 하니 예루살렘이 얼마나 붐볐겠습니까? 그 와중에 제자들은 물동이를 메고 가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를 따라가서 보니 모든 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였습니다. 파스카 음식을 차리면서 두 제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생각해봅시다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게 된 것은 사탄이 유다에게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유다에게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하느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일까요? 물론 그렇게 여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예수님을 유혹하려다가 실패한 사탄은 다음 기회를 노리며 예수님에게서 물러갔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사탄이 유다에게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유다가 사탄이 들어올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깨어 있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21,36)고 말씀하셨지만, 유다는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깨어 기도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 장애물을 치워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평화신문2018.08.14
고통의 길 밝히는 병자성사의 은총](//cpbc.co.kr/CMS/newspaper/2018/11/rc/738757_1.0_titleImage_1.jpg)
[성사풀이](21)고통의 길 밝히는 병자성사의 은총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은 병자성사를 받음으로써 위로와 용기의 은총을 받고, 그리스도의 수난에 결합돼 자신의 마지막 길을 준비하게 된다. 가톨릭평화신문 DB 병자성사는 몇 번 받을 수 있으며, 어떤 사람이 받을 수 있나요병자성사는 생명이 위급한 지경에 놓인 사람들뿐 아니라 질병이나 노쇠로 죽을 위험이 있는 모든 신자를 위해서 베풀어지는 성사다. 병자성사를 받은 병자가 성사를 받은 이후 건강을 회복했다가 다시 중병에 걸리게 되면 반복해 받을 수 있다. 교회에는 예로부터 축성한 기름을 병자들에게 발라주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병자의 도유는 점차 죽을 위험이 큰 사람에게만 베풀어지게 됐고, 이러한 도유를 ‘마지막 도유’라는 뜻으로 ‘종부성사’(終傅聖事)라고 부르며 병자에게 한 번만 베푼 때도 있었습니다.그러다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병자성사는 위독한 병자들뿐 아니라 여러 질병이나 노쇠로 죽을 위험이 있는 모든 신자에게 베풀었으며, 한 번 병자성사를 받은 신자라 할지라도 건강을 회복했다가 다시 중병에 걸리면 이 성사를 다시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같은 병을 앓다가 병이 더 중해지는 경우는 물론이고, 중한 수술을 받기 전이나, 급격히 쇠약해지는 노인들이 병자성사를 받는 것이 합당하다고 교회는 가르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515항) 따라서 사제와 병자의 친지들은 병자들이 적절한 때에 지체 없이 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보살펴야 합니다.(교회법 제1001조)병자성사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세례를 받은 신자여야 합니다.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은 병자성사를 받을 수 없고, 병자를 위한 기도와 축복만 받을 수 있습니다.병자성사의 은총은 무엇인가요병고에 시달리는 사람은 병자성사를 받음으로써 위로와 평화와 용기의 은총을 받고, 그리스도의 수난에 결합돼 자신의 마지막 길을 준비하게 된다. 이러한 은총은 병자들의 영혼을 치유하려는 것이지만, 주님께서 원하신다면 육체도 치유하며, 병자의 죄도 용서받는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520~1522항)교회는 갖가지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노쇠한 이들에게 힘을 주고자 병자성사를 베풀고 있습니다. 병자성사를 받는 사람이 받게 되는 근본적 은총은 중병이나 노쇠 상태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에 필요한 위로와 평화, 용기의 은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은총은 성령께서 베푸시는 선물로, 이를 통해 병자는 하느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새롭게 하고, 죽음 앞에서 번뇌와 좌절에 빠지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힘을 얻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520항)병자성사를 받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수난에 더욱 가까이 결합될 수 있는 힘과 은혜를 받게 되며, 예수님의 구원사업에 참여하게 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521항) 교회는 병자성사를 거행함으로써 병자들의 선익을 위해 전구하며, 병자들은 나름대로 교회의 성화와 모든 이의 선익에 이바지하게 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522항)이렇게 병자들을 위해 교회가 베푸는 병자성사는 갖가지 질병이나 노쇠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영혼을 치유하고자 성령의 힘을 통해 주시는 주님의 도움으로서, 이는 -물론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병자의 영혼만이 아니라 육체도 치유할 수 있는 하느님의 은혜입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520항)병자성사는, 중세기에 ‘떠나는 이들의 성사’라고도 부른 것처럼, 하느님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기 전에 있을 마지막 싸움에 대비해 지상 생활의 마지막 시점에 있는 병자에게 튼튼한 방패를 마련해 주는 것입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523항)병자성사는 어디에서 어떻게 거행하나요병자성사는 집이나 병원에서 거행되더라도 항상 전례적이고 공동체적 성격을 가진다. 필요에 따라서 병자를 방문해 거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가능하다면 교회의 미사 안에서 거행하는 것이 좋다. 복음과 강론이 끝난 다음 사제는 병자에게 손을 얹고 주교가 축복한 기름을 발라준다.(「병자성사 예식」 82항)병자성사는 병이 위중한 환자나 임종을 앞둔 사람들에게 거행되므로, 병원이나 병자의 집에서 개인적으로 베풀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교회로 나올 수 있다면 가능한 한 미사 안에서 병자성사를 베푸는 것이 좋습니다. 병자성사도 전례적 성격을 드러내며 공동체적으로 베풀어져야 하므로(「가톨릭교회 교리서」 1517항) 가족이나 신자들이 모인 가운데 거행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병자성사는 고해성사나 참회 예식에 이어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말씀 전례로 시작합니다. 말씀 전례가 끝나면 사제는 침묵 중에 병자에게 안수하며 성령께서 함께하시기를 청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그다음 사제는 축복한 성유를 병자의 이마와 두 손에 바르면서 기도를 바칩니다. 도유 기도 후 사제는 병자에게 성체를 모시게 해줍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519항) 정리=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평화신문2018.11.13
한글 성경은 언제부터일까 1790년대 「성경직해광익」, 필사 통해 신자들에게 퍼져 9일은 한글날이다. 여기서 문제, 성경은 언제 한글로 번역 됐을까? 우리나라가 중국을 통해 천주교를 받아들인 것처럼 성경 역시 중국을 통해 전해졌다. 다시 말해 초창기 한국교회 한글 성경은 중국어 성경을 번역한 것이다. 신ㆍ구약 성경이 한꺼번에 번역된 것도 아니었다. 당시 한글 성경은 성경 전체를 놓고 보면 아주 미미한 분량이었고, 그나마 온전한 성경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우리나라 최초 한글 성경은 1790년대 초 역관 출신 최창현(요한)이 펴낸 「성경직해광익」(聖經直解廣益)이다. 「성경직해광익」은 디아즈(예수회) 신부가 1636년 북경에서 펴낸 「성경직해」(聖經直解)와 마이야(예수회) 신부가 1740년 북경에서 펴낸 「성경광익」(聖經廣益)을 취합해서 한글로 옮긴 책이다. 중국에서 한문으로 쓰인 두 책은 주일ㆍ축일의 성경 본문, 본문 주해, 묵상, 실천 덕목 등을 종합적으로 담았다. 한글 신약성경의 효시가 되는 「성경직해광익」은 박해 속에서도 필사를 거쳐 신자들에게 널리 퍼졌습니다. 수록된 성경 본문은 신약성경 4복음서의 30% 분량이었다. 4복음서의 완전한 번역은 1910년에 이뤄졌다. 손성재 신부와 한기근 신부를 비롯한 여러 신부가 마태오ㆍ마르코ㆍ루카ㆍ요한 복음서를 번역한 것으로, 「사사성경」(四史聖經)이라 불린다. 번역 대본은 당시 세계적으로 통용되던 라틴어(불가타 역본) 성경으로, 한국교회 첫 번째 한글 4복음서이다. 한기근 신부는 1911년 사도행전을 우리말로 옮겼고, 조선교구는 1922년 이를 「사사성경」과 합쳐 「사사성경 합부 종도행전」으로 발간했다. 한편 주교회의는 1935년 신약성경 나머지 부분 번역을 덕원 성분도수도원에 맡겼다. 수도원 소속 슐라이허 신부는 라틴어ㆍ그리스어 성서를 토대로 바오로 서간 14편, 기타 서간 7편, 요한묵시록을 번역한 뒤 이를 묶어 1941년 「신약성서 서간ㆍ묵시편」으로 발행했다. 이로써 신약성경 전 권이 완역됐다. 「사사성경 합부 종도행전」과 「신약성서 서간ㆍ묵시편」은 1971년 공동번역 신약성서가 나오기 전까지 한국교회(가톨릭) 유일한 신약성경으로 사용됐다. 구약성경 번역은 신약성경에 비해 매우 늦게 진행됐다. 구약성경 번역에 처음 손을 댄 이는 선종완 신부. 가톨릭대 성서학 교수였던 선 신부는 히브리 성서에서 번역한 구약 낱권 14권을 1958~1963년에 펴냈다. 한국교회 첫 구약성경 번역인 셈이다. 이어 최민순 신부가 시의 운율을 살린 「성경의 시편」을 1968년 냈고, 서인석 신부는 「호세아ㆍ미카」(1977년) 등 소예언서 11권을 번역, 출간했다. 구약 전체가 번역된 것은 「공동번역 성서」가 나온 1977년이다. cpbc2016.10.07
![[대림-그들에게 임하소서] 2. 헤어날 수 없는 빈곤의 굴레](//cpbc.co.kr/CMS/newspaper/2018/12/rc/740822_1.0_titleImage_1.jpg)
[대림-그들에게 임하소서] 2. 헤어날 수 없는 빈곤의 굴레"폐지 주워 입에 풀칠하기도 힘겨운데 쪽방촌 어떻게 벗어나나..."거리에서 모은 폐지와 깡통이 저울에 오른다. 노동의 가치가 ㎏으로 환산되고 천 원짜리 몇 장이 노인에게 주어진다. 빈곤한 노동의 결과는 주거의 빈곤으로 이어진다. 손에 쥔 돈으로는 쪽방에서 살기조차 벅차다. 노동은 생계를 위한 수단이자 인간의 존엄을 표현하고 증진하는 수단이라고 교회는 가르친다. 가정을 이뤄 유지하고 재산권을 갖기 위해, 더 나아가 인류 공동선에 이바지하기 위해 노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새로운 사태」 128항, 「노동하는 인간」 10항 참조) 하지만 노동에 가치를 더하는 일은 가난한 이들 스스로 할 수 없다. 쪽방 거주민과 폐지를 줍는 노인들은 생계를 위해 사투를 벌이지만, 일상은 한 뼘도 나아지지 않은 채 빈곤의 굴레를 맴돌고 있다.수입이 없는 노인들은 하루종일 폐지를 주워 고물상에 내다판다. 쪽방촌만 맴도는 이들 낡은 가방을 메고 쪽방 거리를 거닐던 윤성진(가명, 64)씨는 최근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서 청파동으로 이주했다. 그는 쪽방에서 쪽방으로 옮겨가며 살아온 지 수십 년째다. 윤씨는 당장 다음 달이 걱정이다. 한 달 단위로 내는 월세를 내지 못하면, 지하철 역사에서 노숙 생활을 시작해야 한다. 그는 “당장 이번 달 쪽방 월세를 내지 못하면 서울역으로 가야 하는데 일거리도 없다”고 말했다. 윤씨처럼 ‘집다운 집’에서 살지 못하는 이들은 최소 37만 가구(국토교통부, ‘주택 이외의 거처 주거실태 조사’, 2017~2018)다. 비주택으로 분류된 쪽방이나 고시원, 숙박업소(모텔), 판잣집, 비닐하우스 등에 거주하는 이들은 대부분 고령이다. 숙박업소를 개조해 만든 쪽방에는 50대 이상이 69.7%나 거주하고, 판잣집과 비닐하우스에는 60세 이상이 71.2%나 거주한다. 한국 노인 가구의 상대적 빈곤율은 2016년 기준 46.7%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볼 때 주거 문제와 노인 빈곤 문제는 밀착돼 있다. 쪽방에 한번 들어온 이들은 쪽방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목돈을 모을 수 없다. 정부의 기초생활보장 수급비를 받는 이들은 한 달에 50만 1600원(1인 가구 기준)을 받는다. 장애 여부에 따라 지원금이 추가되지만, 평균 15~27만 원인 쪽방 월세를 내면 남는 돈이 없다. 정부가 추진하는 ‘주거취약계층 지원 사업’은 이들에겐 먼 이야기다. 주거취약계층 대다수는 보증금 자체를 마련하지 못해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에도 들어가지 못한다. 가톨릭평화의집 김남훈(대건 안드레아) 소장은 “대부분의 쪽방 주민들은 노동하고 싶어하는데, 수급비가 끊겨 제대로 된 노동을 할 수 없다”며 “이들은 위한 주거 대책은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물질적 지원뿐 아니라 정신적 아픔을 보듬는 등 다각도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유일한 일자리는 ‘폐지 줍기’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니 열악한 노동, 폐지 줍는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골목길에서 만난 박기훈(가명, 58)씨도 골목길에 앉아 전선을 뜯고 있었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은 그는 시설에서 도망치기를 반복하다가 동자동 쪽방촌에 정착했다. 그는 소일거리를 하며 버틴다. 밤낮으로 손수레를 끌고 주워온 폐지와 전선을 뜯는다. 박씨는 “전선을 뜯어서 고물상에 내다 팔거나, 폐지 주운 걸로 하루를 연장한다”고 말했다. 건강, 장애를 이유로 일하지 못하는 이들이 선택하는 소일거리는 폐지를 줍는 일이다. 우리나라에는 약 180만 명의 노인이 폐지를 줍는다. 손수레나 유모차에 폐지를 가득 싣고 도로를 건너다 후진하는 차에 치이거나, 폐지를 줍기 위해 위험천만한 도로를 건넌다. 소일거리라고 하기에는 힘들고 위험한 직업이다. 쪽방촌에 사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들은 “정부 보조금으로 최소한의 생활조차 유지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이 일하고, 대가를 받는 순간 정부 지원에서 제외된다. 이들이 무료급식소 앞에 줄을 서는 이유다. 쪽방촌 주민 박기훈(가명)씨는 “수급자들에게 정작 일을 할 기회는 없다”면서 “이곳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며 한숨을 쉬었다. ‘땅은 하느님의 것’ 삶의 터전은 생계를 잇는 중요한 문제다. 소외된 이들의 문제는 가장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땅은 주님의 것이며,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주님의 것”(신명 10,14 참조)이라고 강조한다. “하느님께서는 절대적 소유에 대한 인간의 청구를 모두 거절하십니다.(67항) 하느님께 속한 땅에 대한 책임은, 지성을 지닌 인간이 자연법과 이 세상의 피조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정교한 균형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68항) 빈곤한 노동의 결과는 주거의 빈곤으로 악순환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찬미받으소서」에서 안식일의 율법을 거론하며, 하느님이 자연에 새겨 놓은 순환의 재발견과 존중을 강조한다. “율법의 전개는 인간이 다른 이들과 맺은 관계와 그들이 살고 일하는 땅과 맺은 관계에 균형과 공정을 보장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더불어 땅의 결실을 포함하여 땅이 주는 것은 모든 이에게 속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71항) 성경은 땅에서 수확할 때 모조리 거두어들이지 말라고 가르친다. “너희 땅의 수확을 거두어들일 때, 밭 구석까지 모조리 거두어들여서는 안 된다. 거두고 남은 이삭을 주워서도 안 된다. 너희 포도를 남김없이 따 들여서는 안 되고, 포도밭에 떨어진 포도를 주워서도 안 된다. 그것들을 가난한 이와 이방인을 위하여 남겨 두어야 한다.”(레위 19,9-10)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전은지 기자 eunz@cpbc.co.krcpbc2018.12.06
 교회법은 왜 필요한가요](//cpbc.co.kr/CMS/newspaper/2018/07/rc/727516_1.0_titleImage_1.jpg)
[하느님과 트윗을](60) 교회법은 왜 필요한가요신자 구원으로 이끄는 규칙과 법률 교회법은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제약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리스도인으로 올바르게 살도록 돕는 도구이다. 사진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표준 「교회법전」 부분. 문 : 교회법은 무엇인가요답 : 교회의 법체계입니다. 교회법의 목적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올바르게 살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또한, 교회를 통치하도록 도와줍니다. 교회법은 「교회법전」에 기록돼 있습니다. 「교회법전」에는 신정법과 자연법의 원칙이 적용돼 있습니다.교회법에는 수많은 규칙과 법률이 있습니다. 기본 원칙은 같으며, 영원히 유효합니다. 교회법의 가장 마지막 조항대로 영혼들의 구원이 교회에서 항상 최상의 법이어야 합니다.(교회법 제1752항 참조) 교회법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도록 도움으로써, 그리스도가 그들을 구원하실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문 : 「교회법전」에는 무슨 내용이 담겨있나요답 : 교회 생활의 모든 측면을 망라하고 있는 「교회법전」은 총 8권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제1권은 교회법적 규범이 어디서 유래했는지 설명합니다. 제2권은 사제, 주교, 수도자를 포함한 모든 신자의 권리와 의무를 설명합니다. 제3권은 복음을 선포하고 신앙을 가르치는 올바른 길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제4권에서는 성사와 전례를 다룹니다. 마지막으로 제5권부터 제8권까지는 교회의 형법과 법을 위반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룹니다.문 : 신정법과 자연법은 무엇인가요답 : 교회법은 세 가지 유형으로 구별됩니다. 중요도 순서로 신정법, 자연법, 인정법으로 구별됩니다. 신정법은 성경에서 발견하는 하느님의 법입니다. 십계명이 그 예입니다. 자연법은 하느님이 창조계 자체 안에 새겨 놓으신 법입니다. 인정법은 앞서 언급한 법들에 기초한 사람의 법입니다. 그래서 때때로 바뀔 수 있습니다.문 : 시민법이 교회법을 거스를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만약 시민법이 하느님의 법이나 자연법, 즉 교회법을 거스를 때는 가톨릭 신자로서 반대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종교의 자유를 간섭하거나 반대하는 법이 있다면 이에 항의해야 합니다. 종교의 자유는 모든 사람의 기본권이니까요. 또한, 우리는 생명권을 보호하지 않는 법들도 바꾸려고 노력해야 합니다.문 : 교회법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나요답 : 교회법은 모든 가톨릭 신자에게 적용됩니다. 교회법에는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자기의 고유한 조건에 따라 거룩한 삶을 살며 교회의 성장과 줄기찬 성화를 증진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한다”(교회법 210조)고 나와 있습니다. 또한,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의무는 이렇게 언급됩니다.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하느님의 구원 소식이 온 세상 모든 시대와 전 인류에게 전파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교회법 제211조) 우리는 교회법에 따라 올바르게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정리=전은지 기자 eunz@cpbc.co.kr 평화신문2018.07.17
대죄 꼭 고백해야… 숨기면 고해성사 모독 행위](//cpbc.co.kr/CMS/newspaper/2018/10/rc/736222_1.0_titleImage_1.jpg)
[성사풀이](17)대죄 꼭 고백해야… 숨기면 고해성사 모독 행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고해성사를 주는 모습. 【CNS 자료 사진】 양심 성찰은 어떻게 하나요고해성사를 받으려는 참회자는 자신이 지은 죄를 살펴보고자 하느님 말씀에 비추어 양심 성찰을 해야 한다. 양심 성찰을 위한 가장 적당한 성경 본문은 십계명과 산상 설교, 사도들의 윤리적 가르침에서 찾을 수 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454항)예수님께서는 부자 청년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십계명을 실천하는 것으로 부족하고 가진 것을 팔아서 가난한 이들에게 주라고 말씀하십니다.(마르 10,17-27) 또 바오로 사도는 사랑이 없으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으며(1코린 13,2), 요한 사도는 하느님은 사랑이시라고 했습니다.(1요한 4,16)그러므로 양심 성찰에서 핵심은 사랑의 실천 여부입니다. 곧 내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에 사랑이 담겨 있는지, 또는 그러지 않은지 살펴보는 것이 올바른 양심 성찰입니다.양심 성찰은 십계명 외에도 죄를 짓게 하는 원천인 칠죄종(교만, 인색, 질투, 분노, 음욕, 탐욕, 나태)을 주제로 할 수도 있습니다.양심 성찰을 통해 알아낸 죄는 ‘죽을죄’(대죄)와 ‘용서받을 죄’(소죄)로 구분합니다.(1요한 5,16-17) 먼저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이 모두 포함되는 죄는 대죄입니다. 첫째, 중대한 문제를 대상으로 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십계명이 중대한 문제에 해당합니다. 둘째, 중대한 문제라는 사실을 알고 죄를 짓는 경우입니다. 자신의 행위가 중대한 문제를 위반한다는 사실을 몰랐을 때는 소죄입니다. 셋째, 고의로 저지른 죄입니다. 곧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저지른 죄입니다. 타인의 강압처럼 온전히 자기 의지로 행동할 수 없었을 때는 소죄입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857~1862항)소죄는 고백해야 할 의무는 없지만, 악으로 흐르는 나쁜 경향과 싸우는 양심을 더 깨끗하게 만들 수 있으므로 고백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대죄는 반드시 고백해야 하며, 어떤 종류의 죄인지, 자주 그 죄를 지었다면 횟수까지도 고백해야 합니다. 만일 자신이 알아낸 대죄 중에서 하나라도 숨긴다면, 고해성사는 무효가 될 뿐만 아니라, 고해성사를 모독하는 더 큰 죄까지도 짓게 됩니다. 이것을 ‘모고해’라고 합니다.사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모두 알고 계시지만, 우리가 스스로 죄를 인정하고, 그 죄에서 자유롭게 되기를 바라실 뿐입니다. 그러나 양심 성찰을 하였으나 미처 알아내지 못한 대죄를 고백하지 못한 것은 죄가 아닙니다. 나중에 생각나면, 다음 고해성사 때 고백하면 됩니다. 전화나 문자, 화상 매체를 통해 고해성사를 볼 수 있나요고해성사는 전례 행위이므로 고해 사제와 고해성사를 받는 사람이 직접 만나서 거행해야 한다. 따라서 전화나 문자, 화상 매체로 고해성사를 볼 수 없다. 무엇보다도 고해성사는 고해소에서 사제의 말과 환대를 통해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체험하는 성사이다.고해성사가 거행되는 본디 장소는 성당 또는 경당입니다.(교회법 제964조 1항) 때에 따라서는 다른 곳에서도 고해성사를 거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해소는 반드시 공개된 장소에 설치되어야 하고, 고해소 안에는 고해 사제와 고백자 사이에 발을 쳐 놓거나 서로 마주 볼 수 있게 해 어떤 방식으로 고해성사를 받을지 고백자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고해성사 예식」 12항)이러한 규정들로 미루어 볼 때, 고해성사는 고해 사제와 고해성사를 받는 사람이 직접 만나서 거행해야 합니다. 따라서 전화 또는 문자, 다른 매체로 고해성사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말을 할 수 없는 장애인들은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다른 방법, 예를 들어 글이나 손짓으로도 고해성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죄만 간단명료하게 고백하면 은총을 받은 건가요고해성사에서 중요한 것은 실제로 하느님께 죄를 용서받았다는 사실이다. 고해소 안에서 부끄러워 어떤 죄를 숨기거나, 일부러 거짓을 말하지만 않는다면 죄를 용서받고 은총을 받는다. 간단 명료히 죄를 고백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고해소에서 사제에게 죄를 고백할 때는 진솔하게 그리고 간단명료하게 말하는 것이 좋습니다. 간단 명료히 고백한다고 하여 양심 성찰과 진실한 통회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 또 죄를 짓게 된 이유를 우리 자신보다 더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고해소에서 왜 잘못을 하였는지 일일이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말들은 자신의 넋두리이거나,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었다는 변명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길게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면 고해성사보단 면담을 청하는 것이 좋습니다. 정리=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평화신문2018.10.16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여행] (96) “그 뒤에 내가 보니 하늘에 문이 하나 열려 있었습니다”(묵시 4,1)하느님 어좌 옆 네 생물(사자, 황소, 사람, 독수리 )은 네 복음서를 상징 요한 묵시록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짧은 편지 형식으로 된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묵시 2―3장) 그리고 다른 하나는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긴 환시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주요 환시들입니다.(묵시 4,1―22,5) 요한 묵시록의 4장부터는 서로 이어져 있는 환시들을 연속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어좌에 앉은 분’과 ‘어린양’에 대한 환시가 있습니다. 하늘로 들어 올려진 저자는 가장 먼저 어좌에 앉은 분을 봅니다. 환한 빛과 함께 묘사되는 어좌에 앉은 분은 주위에 있는 네 생물이 외치는 내용에서 드러납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또 앞으로 오실 분!”(묵시 4,8) 하늘의 어좌에 앉아 계신, 상징적으로 하늘의 모든 권한을 행사하시는 이분은 하느님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하느님 곁에는 스물네 원로가 있었다고 표현됩니다. 스물네 원로에 대한 표상은 요한 묵시록에서만 찾을 수 있기에 이들이 정확히 누구인지 쉽게 알기 어렵습니다. 우선 요한 묵시록 안에서 이 스물네 원로의 역할을 보면 하느님 곁에서 하느님을 찬양하고 그분께 봉사하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열두 번에 걸쳐 표현되는 스물네 원로의 역할을 중심으로 사람들은 스물넷이라는 숫자가 구약성경에 나오는 성전에서 봉사하던 사제들과 성가대를 나타내는 숫자에서 왔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스물네 개의 조로 나누어 돌아가면서 성전에서 봉사했습니다.(1역대 24―25장) 스물네 원로가 줄곧 하느님의 곁에서 봉사하고 그분의 업적을 찬양한다는 점에서 이런 의견이 가장 설득력을 얻습니다. 아마도 스물네 원로의 정체는 천사들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은 항상 주위에 천사들과 함께 있는 모습으로 표현됩니다.(1열왕 22,19; 욥 1,6; 2,1) 또 이런 천사들은 원로라고 표현되기도 합니다.(이사 24,23) 아마도 요한 묵시록의 환시는 이처럼 하느님 곁의 천사들을 스물네 원로라는 표상으로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 같습니다. 이와 함께 하느님의 어좌 곁에 있는 네 생물도 등장합니다. 네 생물에 대한 이미지는 이미 에제키엘서(1,4-14)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이레네오 교부 이후에 요한 묵시록에서 말하는 네 생물은 복음서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이해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한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전하는 네 복음서는 외아드님을 통한 하느님의 구원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하느님을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네 생물은 사자, 황소, 사람 그리고 독수리의 모습을 가진 것으로 묘사됩니다. ‘사자’는 마르코 복음서의 상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르코 복음서는 요한 세례자를 나타내는 이사야 예언자의 선포로 시작합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마르 1,3)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라는 표현에서 사람들은 포효하는 사자를 연상하고 그것을 통해 마르코 복음서를 나타내게 됩니다.‘황소’는 루카 복음서의 상징입니다. 루카 복음서는 요한 세례자의 출생 예고로 자신의 복음서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요한 세례자의 아버지인 즈카르야입니다. 즈카르야는 사제였고 성전에서 가장 먼저 출생에 대한 예언을 듣습니다. 사람들은 루카 복음서가 성전에서 일하는 사제였던 즈카르야로 시작한다는 점에서 사제가 하느님께 바치는 대표적인 제물인 황소를 루카 복음서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사용합니다. ‘사람’은 마태오 복음서의 상징입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예수님의 족보로 자신의 복음서를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혈통을 가장 먼저 전한다는 점에서 마태오 복음서의 상징을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독수리’는 요한 복음서의 상징입니다. 초기의 교부 때부터 요한 복음서는 다른 복음서와 다르게 생각되었고 심오한 영성을 전하는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래서 요한 복음서는 마치 하늘 높이 날면서 먹잇감을 찾는 독수리의 날카로운 눈으로 예수님의 삶을 꿰뚫어보고 우리에게 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평화신문2018.04.25
![[이창훈 위원의 사도행전 이야기] (5)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 (2,14-36)](//cpbc.co.kr/CMS/newspaper/2019/01/rc/745241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위원의 사도행전 이야기] (5)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 (2,14-36)성령의 힘으로 그리스도 증언한 베드로 성령의 힘을 가득 받은 베드로는 유다인들 앞에서 “여러분이 죽인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다”고 용기있게 설파한다. 그림은 프라 안젤리코(1395~1455)의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 사도들을 비롯한 첫 제자들에게 성령이 내려 그들이 모두 다른 언어로 말하는 것을 본 유다인들은 신기하고 놀랍게 여기지만 더러는 새 포도주에 취했다고 빈정댑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나서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먼저 베드로는 이 이상한 일이 구약 예언의 성취임을 이야기합니다.(2,14-21) 다음으로 다윗을 인용하면서 이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제시합니다.(2,22-36)예언의 성취(2,14-21)베드로 사도는 먼저 서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이 아침 아홉 시”임을 들어 이들이 술에 취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합니다. 오히려 이 일은 요엘 예언자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면서 구약성경 요엘서 3장 1-5절을 인용합니다. 요엘은 기원전 400년 전후에 활동했던 예언자로, 당시에 메뚜기떼로 엄청난 재앙을 겪는 이스라엘에 단식과 참회를 촉구합니다. 그래야 하느님께서 속마음을 보시고 재앙을 멈추게 하시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날인 마지막 날, 곧 종말의 날을 이렇게 예언하지요. “그런 다음에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내 영을 부어주리라. 그리하여 너희 아들 딸들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은 꿈을 꾸며 젊은이들은 환시를 보리라. 그날에 남종들과 여종들에게도 내 영을 부어주리라. 내가 하늘과 땅에 징조를 보여주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다. 그 크고 두려운 주님의 날이 오기 전에 해는 어둠으로, 달은 피로 바뀌리라. 그때에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으리라.”(요엘 3,1-5)베드로 사도는 요엘서의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지금 일어난 이 일이 하느님의 영 곧 성령을 받아서 이루어진 일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베드로의 말을 듣는 이들은 지금이 바로 종말의 때이자 구원의 때임임을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독실한 유다인들”(2,5)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게서 실현된 예언(2,22-36)베드로 사도는 이제 요엘 예언자의 예언과 예수님을 결부시킵니다. 우선 나자렛 사람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여러 기적과 이적과 표징으로 여러분에게 확인해 주신 분”(2,22ㄴ)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확인했다는 것인지 이 말 자체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어 오는 “하느님께서 그분을 통해서 여러분 가운데서 그것들을 일으키셨습니다”(2,22ㄷ)라는 말은 ‘확인했다’는 의미를 좀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말하자면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여러 이적과 기적과 표징을 일으시키심으로써 예수님이 바로 하느님에게서 오신 분,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 하느님의 사람임을 확인해 주셨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하는 그다음 말은 알쏭달쏭합니다.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과 예지에 따라 여러분에게 넘겨지신 그분을, 여러분은 무법자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2,23) 베드로의 이 말은 유다인들이 “무법자” 곧 율법을 모르는 이교인의 손을 빌려, 말하자면 로마 총독과 군사들의 손일 빌려 예수님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베드로는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탓이 유다인에게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의 손에 넘겨지신 것은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과 예지”에 따른 것이라고 하니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계획과 예지가 강조되면 예수님의 죽음도 유다인들의 탓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른 것이라는 이른바 ‘예정설’을 따르는 것이 되고 맙니다. 반면에 예수님을 죽게 한 유다인들의 책임이 강조되면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과 예지에 따라”라는 말은 빈말이 되고 맙니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은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섭리 안에 있지만, 사람은 또한 자기가 한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가지요. 그런데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그다음 말입니다. 베드로는 다윗 왕과 다윗 왕이 노래한 시편을 인용하여 다소 길게 이야기하는데(2,25-31. 34-35), 핵심은 분명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미 다윗 왕이 시편 노래를 통해서 예언한 대로라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에게 다윗 왕은 우리에게 세종 임금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더 친숙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독실한 유다인이라면 베드로가 인용한 시편 내용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베드로는 다윗 왕을 인용해서 예수님의 부활이 다윗 왕이 시편으로 노래한 예언의 성취임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베드로는 “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이라고 설파합니다. 그러면서 일부 유다인들이 새 포도주에 취했다고 여기는 이 이상한 현상이 부활하시어 하느님의 영광에 드신 예수님께서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성령을 부어주신 결과라고 설명합니다.(2,33-35)베드로는 오순절 설교를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온 집안은 분명히 알아두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습니다.”(2,36) 베드로는 예수님 생전에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하는 물음에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루카 9,20) 예수님께서 붙잡히셨을 때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던 했던 제자 베드로는 이제 성령을 가득히 받고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주님이요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고 당당하게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 정리1. 우리가 새 포도주에 취한 것이 아니라 요엘 예언자의 예언대로 된 것이다.2. 그 예언은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게서 실현됐다. 여러분은 그분을 죽였지만, 하느님께서는 다시 살리셨다. 3. 우리는 모두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다. 4. 예수님께서는 약속하신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셨고, 여러분은 그 현장을 보고 있는 것이다. 5. 하느님께서는 그 예수님을 주님이요 메시아로 삼으셨음을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라. 생각해봅시다1.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는 듣는 사람들이 모두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독실한 유다인들이었기에 요엘 예언자와 다윗 왕을 인용한 베드로의 설교가 낯설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2. 베드로는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랐기 때문에 그분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3. 어부 출신인 베드로가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있던 독실한 유다인들에게 확신에 차서 설교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서입니다. 이 세 가지는 복음을 선포할 때 지녀야 할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또는 갖추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줍니다. 첫째, 듣는 사람들에게 친숙한 용어와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가 선포하는 복음 메시지의 핵심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 셋째, 우리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성령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평화신문2019.01.30

하느님의 지혜 전하는 두 수녀의 두 가지 시선 폭력은 더해지고 양심은 점점 자리를 잃어가는 듯한 오늘날. 현대사회는 사랑보다는 경쟁을, 따뜻함보다는 차가운 냉소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그러기에 수도자들의 영성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수녀들이 이런 현실을 절감하고 펜을 들었다. 성경과 그림 작품에 영성을 담아 하느님 지혜를 전하고자 책을 펴냈다. 각기 다른 사도직 현장에서 살아가면서도 오로지 하느님을 따르며 사는 이들은 섬세한 표현으로 공통된 교훈을 전해준다. 우리는 하느님 사랑을 듬뿍 받은 소중한 존재라는 것. 수녀들의 신간을 소개한다. 마음을 치유하는 25가지 지혜 마음을 치유하는 25가지 지혜 김영선 수녀 지음 / 생활성서 / 1만 3000원성경을 읽다 보면 ‘아, 저건 내 얘기인데!’ 하며 무릎을 치게 되는 때가 많다. 성경 속 하느님의 진리가 치유를 선사하는 순간이다.광주가톨릭대 교수 김영선(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수녀는 구약성경 속 인물들과 고대의 사건을 통해 우리가 지녀야 할 마음가짐을 25가지로 추려 전해 주고 있다.저자는 금수저ㆍ흙수저론이 드리운 우리 사회에 판관기 13장 내용을 일러준다. 고대 가부장 사회에 살았던 마노아의 아내 이야기다. 주님은 불임에다 이름조차 없는 여인에게 천사를 보냈고, 그에게 잉태될 아이의 위대한 사명을 계시한다. 버림받은 여인에게 다가간 주님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세상이 말하는 수저론, 우리의 잣대와는 다른 하느님의 사업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그런 주님의 일을 깨어 인지해야 한다.불평등과 불의함은 과거나 오늘이나 인간의 마음을 뒤덮고, 침묵을 강요한다. 저자는 불의하게 강간을 당하고도 가족과 이웃 누구도 눈물을 닦아주지 않았던 야곱의 외동딸 디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는 “우리 사회의 수많은 디나들을 잊지 말자”며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끔찍한 폭력과 불행한 일을 겪은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속고 속이는 사회, 열등감에 사로잡혀 남을 의식하다 못해 지고는 못 사는 본성, 낯선 이방인을 제도권에서 소외시키고 보는 도덕적 결핍 등 저자는 시대가 지닌 아픈 면모를 치유하고자 성경 구석구석에서 지혜를 찾아냈다.“예수님의 치유는 질병의 치유 이상을 의미합니다.” 저자는 매일 인생이라는 바다를 향해 던지는 나의 그물질이 목표를 제대로 향하고 있는지, 나의 행복이 다른 사람의 관점에 매달려있진 않은지, 내가 만나는 이들 안에 주님의 천사를 발견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성찰할 것을 권한다.수녀님, 서툰 그림 읽기 장 요세파 수녀 지음 / 김호석 그림 / 선 / 2만 원장혜경(엄률시토회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수녀회) 수녀는 수묵화가 김호석 화백의 작품에서 영성을 길어올렸다. 장 수녀는 김 화백의 작품을 접하고 “물 만난 고기가 됐다”고 밝힐 정도로 섬세한 묘사에 시대 정신을 담아낸 그의 작품들에 매료됐다. 그렇게 수도자에게 수묵화는 진리를 길어올리는 '영성의 샘터'가 됐다.저자는 김 화백의 사실주의 수묵화가 담고 있는 사람, 사물의 표정들을 깊은 묵상으로 읽어냈다. 아프고 고통스러운 현실, 한 송이 꽃, 아무렇게나 버려진듯 죽은 쥐 한마리…. 화가가 마주한 세상 만물 속엔 오늘날 우리 삶의 각종 혼란과 분열, 병적 증세를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실체를 마주한 듯한 작품들은 그럼에도 고귀한 인간 모습, 피조물의 영성을 다 담고 있었다. 저자는 작품 너머에 있는 신성,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생명의 소중함, 남북의 아픈 현실까지 읽어냈다.저자는 단잠 자는 아기의 모습에서 아빠ㆍ엄마의 사랑의 소중함을 짚어내고, 공격성 가득 품은 독수리에게서 상대와 소통하려면 나의 공격성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통찰을 발휘한다. 흙과 하나가 되어 버린 듯한 농부의 미소, 한껏 허리를 숙여 세숫대야 물에 얼굴을 드리운 성철 스님에 이르기까지. 화백의 힘을 빌린 저자의 단상은 ‘일상을 영성’으로 승화하는 수도자의 참다운 시선을 보여 주고 있다.글과 그림에는 통찰이 담겨 있다. 실제인듯 마주한 그림은 현실 자체일지 모른다. 장 수녀는 책을 통해 세상을 좀 더 따뜻한 생명의 세계로 바라보는 시선을 갖도록 이끌고 있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백영민2017.11.29
잠벌 없애는 전대사의 은총 얻으려면…](//cpbc.co.kr/CMS/newspaper/2018/11/rc/738215_1.0_titleImage_1.jpg)
[성사풀이](20)잠벌 없애는 전대사의 은총 얻으려면… 잠벌을 면제받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미사, 영성체, 기도, 극기, 희생 등이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대사와 잠벌이 무엇인가요대사란 우리가 죄를 짓고 고해성사를 보면 그 죄에 대해서는 용서받지만, 그 죄 때문에 받아야 할 잠시적인 벌을 하느님 앞에서 면제해 주는 것을 말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471항)대사(大赦)란 죄에 대해 용서를 받았지만 남아 있는 잠시적인 벌을 면제해 주는 것으로, 선한 지향을 가진 신자가 일정한 조건을 충족시켰을 때 교회의 행위를 통해 얻는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 안의 대사에 대한 교리와 관습은 고해성사의 효과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습니다. 고해성사로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과 친교를 회복하면 죄는 용서받지만, 그 죄에 따를 벌, 곧 잠벌(暫罰)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잠벌은 ‘잠시적인 벌’이라는 의미로, 영원한 벌, 곧 ‘영벌’(永罰)과는 상반되는 개념입니다.현세에서 잠벌을 면제받지 못할 경우 연옥이라 부르는 정화의 상태를 거쳐야 합니다. 잠벌을 면제받고자 살아 있을 때 할 수 있는 일은 미사, 영성체, 기도, 극기, 희생 등이 있습니다. 이렇게 어떠한 죄에 따른 잠벌을 전부 없애 주는 것을 ‘전대사’(全大赦)라고 하고, 일부를 없애 주는 것을 ‘부분 대사’(部分大赦)라고 합니다. 전대사는 하루에 한 번만 받을 수 있고, 부분 대사는 다른 특별한 지침이 없는 한, 하루에 한 번 이상 받을 수 있습니다.(교황청 내사원, 「대사 편람」 24항) 대사는 어느 신자든지 자기 자신 또는 죽은 이들을 위해 청할 수 있지만, 전통적으로 가톨릭교회 신자들은 죽은 이들의 구원을 위한 대사를 얻으려고 기도합니다. 죽은 이들을 위한 대사는 하루에 한 번 양도할 수 있습니다.병자성사는 어떻게 시작됐나요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힘을 주기 위한 병자성사는 성경에 근거를 두고 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연민하시고, 여러 가지 병을 고쳐 주시며(마태 4,24) 사도들에게 병을 치유하는 능력을 주셨다.(마르 6,13) 그때부터 교회는 병자들을 위해 기도와 도유로 이 성사를 거행해 왔다.(야고 5,14-16)구약부터 인간은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하느님께서 자신의 병을 치유해 주시기를 호소하였고, 그 질병으로 말미암아 회개의 길로 들어서며 치유를 통해 하느님의 용서를 체험하였습니다. 신약에 이르러 인간의 영혼과 육신을 모두 고쳐 주려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병자들을 동정하시고 여러 가지 병을 고쳐 주셨으며, 이는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명백한 표징이 되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치유의 능력뿐 아니라 죄를 용서하는 권한도 가지셨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병자들에게 필요한 의사로서 고통받는 모든 사람에 대한 연민으로 당신을 그들과 동일시하시고(마태 25,36), 당신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사람들에게 회개를 선포할 것과 마귀를 쫓아내고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실 것을 명하셨습니다.(마르 6,12-13)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마르 16,17-18)라고 하시며 이 파견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여러분 가운데에 앓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교회의 원로들을 부르십시오. 원로들은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십시오”(야고 5,14)라고 말하였습니다. 병자들을 돌볼 것을 명한 야고보 사도의 증언대로, 교회는 병자들을 보살피고, 그들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들을 위해 전구의 기도를 드림으로써 이 사명을 수행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병자들을 위한 이러한 특별한 예식이 교회의 일곱 성사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병자성사는 누가 거행하나요사제(주교와 신부)들만이 병자성사를 거행한다. 사제들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직접 병자들을 자주 방문해 넘치는 사랑으로 그들을 돌보아주며, 병자와 가족들이 위안을 받고 희망을 가지도록 믿음을 북돋아주어야 한다.(「병자성사 예식」 35항)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병자들을 돌볼 것을 명하셨습니다.(마르 16,17 이하) 야고보 사도의 말씀(야고 5,14)은 초대 교회에 예수님의 말씀대로 병자들을 위한 예식이 있었다는 것과 그 예식을 원로가 행했다는 것을 증언합니다. 교회는 ‘교회의 원로들’이란 말에서 그 집전자를 ‘주교와 사제’로 규정하고 있습니다.목자들은 신자들에게 병자성사의 선익에 대해 가르칠 의무가 있으며, 신자들은 이 성사를 받기 위해 사제를 청하도록 병자들을 격려해야 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516항) 교회 공동체는 병자들을 기도와 형제적 사랑으로 특별히 감싸주어야 하며, 그들이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이 성사를 받을 준비를 하게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정리=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평화신문2018.11.07

美 성추문 위기, 교황 공동체적 대응과 단식 요청‘하느님의 모든 백성에게’ 보내는 서한에 무슨 내용 담겼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국 교회의 성추문 위기를 공동체적 대응과 단식으로 헤쳐나가자고 호소했다. 사진은 성 베드로 광장에서 일반 알현을 마치고 계단을 내려가는 교황 모습. 【CNS 자료사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검찰의 가톨릭 성직자 성폭력 조사 보고서 발표 엿새 만에 나온 프란치스코 교황 서한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1코린 12,26)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이다. 단식 권유도 서한의 핵심 내용이다.서한은 A4 용지 4장 분량이다. 수신인은 하느님의 모든 백성이다. 교황은 서한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느끼는 슬픔과 비통함을 똑같이 드러내면서도, 한발 더 나아가 공동체적 대응을 주문했다. 보고서에 적시된 성폭력은 멀게는 1940년대, 아무리 가까워도 25년 전에 일어난 과거 사건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비극의 재발을 막으려면 ‘모든 지체의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연대의식이 필요하다는 게 교황 생각이다.교황은 사태 이면에 성직자 중심주의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것을) 성직자 자신들이 강화했건, 평신도들이 배양했건 지금 우리가 비난하는 악이 자행되는 데 일조했다”고 말했다. 가장 큰 책임은 성직자들에게 있지만, 교회 구성원들이 그들의 악행에 침묵하거나 태만하게 대응한 점을 고려하면 누구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교황은 “성추행에 ‘안 돼요(No)’라고 말하는 것이 곧 모든 형태의 성직주의에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의 고통은 우리의 슬픔이기도 하다”며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데 함께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교황은 공동 보속 차원에서 단식을 세 번이나 언급했다.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 전체를 기도와 단식의 보속으로 초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것(마귀)은 기도와 단식이 아니면 나가지 않는다”(마태 17,21)고 한 주님 말씀을 상기시켰다. 이는 일부 수사본에 남아 있는 구절이다. 한국어 성경에는 빠져 있다. 교황은 단식에 내포된 영성적 의미를 여러 차례 확장한 바 있다. 지난 사순 시기 담화에서 “단식은 우리를 깨어 있게 하고, 하느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열망을 다시 불러일으킨다”고 했다. 이번 서한에서도 “하느님 백성으로서 주님 대전과 상처받은 형제자매들에게 나아가는 데” 뿐만 아니라 “죄인으로서 용서를 청하고,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은총을 구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며 단식을 권했다. 단식의 의미는 극기와 절제에 한정되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을 모욕하고, 주님의 법을 어긴 잘못을 자각했을 때 단식을 선포하곤 했다. 속죄와 내적 정화의 상징적 행위가 단식이었다. 하느님의 뜻을 거스른 잘못을 깨달은 이스라엘 자손들은 “자루옷을 입고 흙을 뒤집어쓴 채, 단식하러 모여들었다. 이스라엘의 후예들은 모든 이방인과 갈라선 뒤, 제자리에 서서 자기들의 잘못과 조상들의 죄를 고백했다.”(느헤 9,1-2) 신약으로 넘어오면서 단식은 용서의 기다림과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희망으로 그 의미가 확장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 6,17-18)라고 일렀다. 단식은 수많은 악의 유혹에 노출된 신앙인들에게 그것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도 준다. 그리스도의 광야 40일 단식이 그 모범이다. 교황은 우리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르게’ 만드는 단식은 “진리에 전념케 해서 모든 형태의 권력 남용과 성적 학대, 양심의 남용에 맞서 싸우도록 이끌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평화신문2018.08.29
성경·성체성사 통해 하느님께 더 가까이!전국 각 교구장 2017년 사목교서 발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을 비롯한 전국 교구장들은 27일 대림 제1주일을 맞아 2017년 사목교서를 발표하고, 성체성사와 성경을 중심으로 하느님께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를 기원했다. 또 가정ㆍ청소년ㆍ본당 사목 활성화에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 염수정 추기경은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미사는 새로운 복음화의 중심’이라는 제목의 사목교서에서 “주님 말씀, 공동체의 기도, 교회 가르침이 모두 포함된 미사는 새로운 복음화의 원동력”이라며 교회 생활 전체의 원천이자 정점인 성체성사가 우리 삶과 복음화의 중심임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되기를 희망했다. ▶관련 기사 8면염 추기경은 사제들에게는 매일 미사를 첫 미사 때와 같은 기쁨과 열정으로 거행하기를, 수도자들에게는 성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통해 의미와 충만함을 채우기를, 신자들에게는 삶에 필요한 빛과 힘을 성체성사에서 얻을 수 있도록 미사에 더욱 능동적으로 참여하기를 당부했다. 젊은이들 위한 기도·격려 필요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는 ‘그리스도의 젊은 사도, 청소년과 청년’이라는 교서에서 “청소년 사목의 목표는 청소년들이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체험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도가 되게 하는 것”이라며 “젊은이들이 그리스도의 젊은 사도가 될 수 있도록 모든 교구민이 기도와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는 ‘본당의 해Ⅰ- 세대별 활성화 및 일치를 통한 본당 복음화’ 교서를 통해 “본당은 공동체들의 공동체이면서 목마른 이들이 물을 마시러 오는 지성소, 지속적인 선교 활동의 중심지”라며 본당 활성화를 위한 구성원들의 일치와 활성화를 촉구했다.춘천교구장 김운회 주교는 “다른 무엇보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말씀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성경 사목에 특별한 노력을 기울일 것을 부탁했다.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는 2015년 개막한 교구 시노드와 함께 복음의 기쁨을 사는 해가 되길 기원하고, 가정 복음화와 루카 복음 필사에 힘쓸 것을 요청했다. 인천교구장 정신철 주교는 신자들이 성체성사의 신비를 깨달아 평일 미사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성체조배를 생활화하며, 나눔의 삶을 살 것을 권고했다.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는 말씀과 성사를 통해 쇄신에 앞장설 것을 주문하면서 특별히 쇄신의 출발점인 가정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정의·평화·생태적 통합 제시원주교구장 조규만 주교는 배론성지에 건립하는 ‘은총의 성모 마리아 기도학교’가 기도하고 기도를 배우며 기도를 가르치는 기도의 터전이 되기를 기대했다.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는 자비의 희년은 한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걸어가야 할 중요한 여정이라고 밝힌 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가장 중요한 선택의 나침반으로 정의ㆍ평화ㆍ생태적 통합을 제시했다.부산교구장 황철수 주교는 교회가 정치적 결사체나 이익집단으로 오해받지 않고 인간의 본질적 치유와 구원을 지향하는 신앙 공동체로서 역할을 다하기를 소망했다.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는 가경자 최양업 신부를 본받아 중국과 북한을 비롯한 아시아 선교에 주력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마산교구장 배기현 주교는 사제와 신자 모두 참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알아듣도록 ‘마음의 귀’를 쫑긋 세울 것을 주문했다.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는 “가정의 쇄신을 위해 기도하고, 가정을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들이며, 회개에 힘쓰자”고 말했다. 남정률 기자 njyul@cpbc.co.kr 평화신문2016.11.23

안동, 내년 50돌 앞두고 ‘초심 살리기’ 주력 ‘농민과 함께하는 교구’ 정체성 확인, ‘본당 쇄신의 해’ 맞아 신자 재교육 및 실천 운동 박차 2018년 ‘본당 쇄신의 해’를 보내는 안동교구의 신년 인사회에서 사제와 평신도, 수도자들이 서로 세배를 하고 있다. 안동교구 제공 안동교구가 2019년 교구 설정 50주년을 앞두고 교구 설정 당시의 ‘초심’을 살리기 위해 신자 재교육 및 참여ㆍ실천 운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안동교구는 ‘농촌 교구로서 농민과 함께하는 교구’ ‘작고 소박한 교구’ ‘농촌 문제를 비롯한 사회문제와 생명 문제에 함께하는 교구’를 교구 정신으로 삼고 있다. 교구는 이에 따라 2017년부터 3년간을 ‘쇄신의 해’로 지내고 있다. 첫해인 2017년은 가정 쇄신의 해, 둘째 해인 2018년은 본당 쇄신의 해, 설정 50주년을 맞는 2019년은 교구 쇄신의 해다. 올해 ‘본당 쇄신의 해’를 맞아 교구는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5)는 성경 구절을 표어로 사목활동 지침을 발표했다. 지침은 본당 쇄신을 위한 구체적인 모습으로 △본당은 ‘친교의 집’입니다 △본당은 ‘함께 기도하는 집’입니다 △본당은 ‘동네의 샘’입니다를 제시했다. 아울러 평신도 희년의 기쁨을 나누고자 △평신도 희년의 축복을 함께 나눕니다를 추가했다. 구체적 실천 사항으로 미사 전ㆍ후 인사하기, 1인 1단체 가입하기, 성경 읽고 쓰기, 사회사목에 관심 두고 참여하기, 그리스도인답게 살기 등 10가지를 제시했다. 본당 쇄신에 도움을 주는 영적 도서(총 14권) 「나에게 있어서 하느님은」(성바오로출판사)ㆍ「느낌을 마주하라」(가톨릭출판사) 등도 추천했다.기존 교육도 ‘본당의 쇄신’에 초점을 맞췄다. 1월 9일 시작해 3월 9일까지 이어지는 공소 1일 교육은 ‘본당의 쇄신을 위하여’를 주제로 개편했다. 봉화본당 재산공소와 화령본당 모동공소 등 7개 공소가 신청한 올해 공소 1일 교육은 2018년 교구 사목 방향에 대한 사목국장 김정현 신부 강의와 영상물 상영과 나눔, 새 미사통상문 및 공소 전례 교육, 미사로 진행된다.김정현 신부는 “2018년은 안동교구의 미래의 모습을 가늠하는 중요한 해”라며 “작고 소박하지만 늘 열린 마음으로 모두와 함께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모든 이들과 함께 나누며 기쁨 넘치는 하느님 나라 구현을 위해 기쁘고 떳떳하게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힘 기자 lensman@cpbc.co.kr 평화신문2018.01.09

1년에 책 한 권씩 내겠다는 다짐 56년째 지켜 정진석 추기경의 56번째 신간 「나를 이끄시는 빛」 정진석 추기경은 56번째 신간 「나를 이끄시는 빛」을 펴내고 다시 한 번 성경이 전하는 하느님 진리를 신자들에게 선물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나를 이끄시는 빛 정진석 추기경 지음 / 가톨릭출판사 / 1만 3000원살면서 책 한 권 내기도 쉽지 않은데,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해마다 한 권씩이라니. 누구라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어디서 그런 영감(靈感)이 계속 피어나올까?’ 의문은 책을 펼치면 이내 풀린다. 오로지 하느님을 향한 마음, 세월만큼 깊어진 신앙이 탈고의 고통을 능가하고 있음을. 1961년 사제품을 받은 해부터 지금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책을 펴내고 있는 정진석 추기경 이야기다.정 추기경의 신간 「나를 이끄시는 빛」은 그의 56번째 책이다. 동기였던 고(故) 박도식 신부와 부제 시절 “신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을 1년에 한 권씩 내자”고 했던 약속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교구장 시절을 넘어 오늘날까지 지켜지고 있는 것. 56년 전 다짐한 약속은 이제 신자들과의 약속이 된 듯하다.매년 신간이 나오는 시기도 꼭 이맘때다. 정 추기경의 ‘니콜라오’ 영명축일(12월 6일)을 앞두고서다. 산타클로스(성 니콜라스)처럼 정 추기경은 올해에도 어김없이 하느님의 지혜를 담은 책 선물을 한가득 들고 신자들을 찾아왔다.이번 책은 정 추기경이 40여 년간 서울ㆍ청주교구 교구장직을 수행하던 시절, 앞이 꽉 막히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 헤맬 때마다 한 줄기 빛이 됐던 묵상들을 모은 것이다. 막중한 주교직을 수행할 때 정 추기경은 성경에서 해답을 얻었고, 이번에 성경 속 인물들을 중심으로 지혜를 모아 펴냈다.아브라함, 야곱, 에사우 등 창세기 인물들부터 예언자 엘리야와 유다 민족을 현명하게 구해냈던 에스테르 왕비에 이르기까지. 옆집 할아버지가 들려주듯 믿음의 선조들과 얽힌 구약 이야기를 전해준다. 성경 이야기는 곧 현대를 사는 우리를 향한 덕담으로 옮아간다. ‘사람의 가치’, ‘부르심과 순종’, ‘가정의 전인교육’, ‘은총의 필요성’ 등 다양한 가치들을 담았다.정 추기경은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온 우주에 창조주 하느님을 찬미할 의식을 지닌 존재로 창조됐음을 일러준다. 하느님과 피조물 사이 중개자인 인간은 사랑과 감사를 드리는 의식적인 보답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이를테면 하느님을 따르고 순명하기 위해서 백지 수표를 떼어놓은 것과 같습니다.”(27쪽)정 추기경은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을 버리고 집을 떠난 것처럼 우리는 각자가 싫든 좋든 하느님이 부를 때 내적 소명 의식을 갖고 그에 따르는 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 순명은 오히려 더욱 폭넓은 자유와 성숙한 신앙을 보장해 주는 길이란 것이다.추기경의 덕담은 사제ㆍ신자 구분 없이 모두에게로 향한다.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성체를 모시는데도 영신적 발전이 더디다고 느끼는 이들에겐 “매일의 성체 모시기가 매일 당하는 유혹을 물리치는 막강한 힘이 된다”며 “성사를 위한 합당한 마음의 준비가 늘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감실이 발산하는 그리스도의 향기처럼 우리 행위에도 사랑의 향기가 배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정 추기경은 또 “성직자는 예물봉헌의 중개자로서, 사제에겐 하느님 거실을 지킬 책임이 있다”며 “사제는 하느님의 제단 봉직자일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파수꾼도 겸하는 것”이라고 사제직의 참뜻을 전해준다.정 추기경은 평소 “다른 이들을 행복하게 해주면 행복이 제 발로 찾아온다”며 불변의 사랑 법칙을 자주 전해왔다. 올해에도 교회 어른이 선물한 진리를 가슴 깊이 품고 다가올 예수 성탄을 맞이해보자.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백영민2017.12.06
고민 많은 청년, 탈출기 읽고 위로를가톨릭청년성서모임 새 교재, 현대적 상황 맞게 신앙 재해석 가톨릭청년성서모임(지도 최광희 신부)이 10년 만에 탈출기 새 교재를 출시했다.「젊은이를 위한 탈출기 그룹 나눔 문제집 -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는 기존의 탈출기 교재 개념을 그대로 담되 성경 공부하는 청년들의 이해력을 높이는 데 중점을 뒀다. 특히 청년들이 탈출기 내용을 자신이 처한 현 상황에 비춰 이해하도록 구성했다. 새 교재는 탈출기가 증언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을 향한 부르짖음과 돌보심, 그리고 이스라엘의 신앙 고백을 ‘과거의 사건’이 아닌 ‘지금 나에게 다가오는 이야기’로 묵상할 수 있게 했다. 특히 탈출기에 나오는 법 규정을 지루한 법조문으로 공부하지 않도록 ‘왜 규정이 등장했는지, 계약이 왜 하느님 구원으로 가는 여정인지, 오늘날 청년 신앙인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 등을 생각할 수 있도록 했다.최광희 신부는 “요즘 많은 청년이 힘들다 보니 날카로워지고 화가 많아지고 있는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와 함께하는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라며 “성경을 통해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기도와 묵상을 하고 위로와 평화를 체험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청년성서모임은 하느님 말씀을 나누는 소그룹 공동체다. 구약성경 창세기와 탈출기, 신약 마르코, 요한 등 단계적으로 성서 공부를 한다. 본당, 대학, 직장 등에서 1주일에 한 번씩 약 1~2시간 정도 모임을 진행하고 있으며 연간 약 2,000여 명의 연수생을 배출하고 있다. 유은재 기자 you@cpbc.co.kr 평화신문2017.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