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신앙체험수기] 특별상 / 야훼이레 하느님을 체험하며](//cpbc.co.kr/CMS/newspaper/2020/02/rc/773964_1.3_titleImage_1.jpg)
[제7회 신앙체험수기] 특별상 / 야훼이레 하느님을 체험하며[학교법인 가톨릭학원상] 이정희 데레사(전주교구 지곡본당) 삽화=장희원 이삭은 제가 첫 번째로 안아본 손주이기에 유난히 예뻐했습니다. 딸이 적령기에 결혼은 했는데 아이가 좀 늦어지자 시댁에서 이렇게 덕담을 해주신다고 했습니다. “넌 아직도 밥값을 못하냐?” 초조한 마음이 들었는지 딸과 사위는 신앙생활을 더욱 성실하게 했고 신앙 안에서 만난 부부답게 기도를 열심히 했습니다.드디어 첫 아들을 낳자 미리 지어놓은 이름이라며 “이삭” 하고 불렀을 때 부모의 그 모습이 어찌나 예쁜지 가족 모두가 기뻐했습니다. 세례명과 이름을 같게 지었다며 이튿날 출생 신고를 하고 행복해하는 딸의 가정에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이삭은 건강하게 잘 자라며 여동생 이다가 태어나고 그의 엄마가 오래도록 근무하던 성심유치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딸은 아이들 다 낳았으니 전공을 살리고 싶다며 어린이집을 설립하고 성심유치원 수녀님과 자모들의 격려와 응원 속에서 영아 전담 어린이집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어린이집 이름을 ‘이삭몬테소리어린이집’이라고 지은 것도 아들 이삭에 대한 애착이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친가나 시가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고 예쁘고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이 부부에게 계속 덕담을 해줬습니다.“아들, 딸 낳아 자녀 문제 해결했으니 너희는 이제 돈 벌 일만 남았구나.”덕담이 축복이 되어 국가 지정 영아 전담 어린이집으로 선정되었고, 지역에서 손꼽는 영아전담시설로 자리 잡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이삭이 여섯 살 되던 해. 상상도 못 했던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체육관에 갔다 오던 이삭이 교통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그날 체육관 승합차 기사가 결근하여 사범이 대신 차를 운전하다가 운전 미숙으로 사고를 냈다고 했습니다. 이삭이를 집 앞에 내려주고 차 앞으로 돌아서 집으로 들어가는 이삭이가 보이지 않아 잘 들어갔으려니 하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들어가는 이삭이를 확인 못 한 실수를 깨닫고 뒤를 돌아보니 피투성이의 아이가 쓰러져있어 응급실로 옮기며 가족에게 전화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출혈이 심했고 뇌와 심장을 밟고 지나가 아이가 사경을 헤매고 있었을 때 저도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제발 생명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부모의 기도를 들으며 응급실은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응급조치를 급히 끝내고 대학병원으로 옮기는 중에도 아이는 의식이 없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 당시 일어났던 상황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눈앞에 어른거려 제 가슴을 울려주고 있습니다. 제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오직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느님의 섭리에 맡기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뼛속 깊이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 주님께서는 제게 말씀으로 강한 힘을 주셨습니다. 남편이 오랜 투병생활 끝에 세상을 뜰 때에도 이렇게 뜨거운 영적 체험을 해보지는 못했던 것 같았습니다.“그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 그에게 아무 해도 입히지 마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나를 위하여 아끼지 않았으니, 네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았다.”(창세 22,12)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삭이의 생명을 살려주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기운이 솟아나고 용기가 났습니다. 대학병원에서 뇌수술 일정이 정해지고 이삭이의 마지막을 보려고 달려온 가족들이 모두 넋을 잃고 있는데 시간은 어느덧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가족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삭이의 생명은 하느님께서 주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치료는 의료진에서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 있어 보아도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이제 돌아가셔서 기도 많이 해 주시고 각자 생업에 임하십시오. 제가 남아서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상태를 전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삭이의 부모에게 따로 일렀습니다. “평정심으로 돌아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어린이집 아이들과 교사들 그리고 자모들을 대하여라. 시설을 운영하려면 표정관리도 중요하다. 원장의 불안한 표정은 아이를 맡기는 자모에게도 안정을 줄 수 없다.” 이렇게 해서 가족들을 모두 돌려보내고 저 혼자 남아 이삭이의 보호자가 되었습니다.어떤 장애를 입어도 좋으니 생명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부모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느님 은총으로 두 번의 뇌수술 끝에 아이는 생명을 건지면서 시신경이 크게 손상되어 전맹의 시각장애를 입게 되었습니다. 뇌 역시 성장을 멈추고 중복장애를 가지게 되었지만, 다리와 심장은 치료가 잘 되어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걷게 된 것만으로도 주님의 크신 은혜라고 감사드리며 휠체어와 이별할 때는 병실에서 가족 파티를 열었습니다.아이를 간병하며 일 년간 병원생활을 하고 퇴원 후 우리 집에서 한동안 통원 치료를 하며 지내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이때가 일생을 통해서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그저 형식적이요 율법적이었던 자신을 발견하면서 깊이 회개하게 되었습니다.“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 그는 너그럽고 자비로운 이 분노에 더디고 자애가 큰이 재앙을 내리다가도 후회하는 이다.”(요엘 2,13)천주교 신자라고 드러내면서 주님의 십자가는 아랑곳없이 겉으로 보이는 활동에만 전전하며 얼마나 교만한 삶을 살아왔는지 부끄럽기 그지없는 저에게 주님께서는 이 말씀을 주시며 내적 치유와 함께 위로를 주셨습니다. 형식적으로 바라만 보던 십자가의 예수님을 가슴으로 만나며 동참할 수 있게 된 것도 이 시기였습니다.그러면서도 순간순간 견디기 힘들었던 십자가는 제게 내공을 키워주는 힘과 용기가 되었기에 더욱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참담하게 무너져가는 딸의 가정을 지켜보면서 극복할 힘을 주시기를 간절히 애원할 때에 믿음이 굳건해 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 살맛을 잃어 가는 부모와 그 틈바귀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어린 손녀가 불쌍하여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이삭이한테서 모든 희망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그의 아빠는 어디에서도 위로를 받지 못하고 인생길을 헤맸습니다. 안 피우던 담배를 피우고 새벽에 휙 어딘가를 나갔다가 만취되어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제가 좋은 말씀을 전해주어도 “어머니는 한 다리 건넜으니 제 마음을 이해 못 해요” 하면서 부정적이었습니다. 저는 기도 중에 가슴을 치며 통곡했습니다.그때 사랑이신 주님께서는 또다시 한 말씀으로 제 눈물을 닦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보니, 덤불에 뿔이 걸린 숫양 한 마리가 있었다. 아브라함은 가서 그 숫양을 끌어와 아들 대신 번제물로 바쳤다. 아브라함은 그곳의 이름을 ‘야훼이레’라 하였다. 그래서 오늘도 사람들은 ‘주님의 산에서 마련된다’고들 한다.” (창세 22,13-14)주님은 이 가정을 그대로 두시는 분이 아니심을 알아차리게 되면서 필요한 모든 것을 예비해 주시는 야훼이레 하느님을 가슴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병원생활과 간병생활을 마치고 가정이 안정을 찾는 데는 3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습니다. 이삭이의 부모도 많은 것이 변했지만, 신앙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은 그대로여서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야훼이레 하느님께 맡기는 삶을 살다 보니 아무 걱정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외가인 우리 집에서 몸조리를 마친 이삭이를 부모에게 데려다 주는 날, 서운했지만 잘 적응해 나갈 수 있도록 가족과 함께 기도하면서 잔치를 열었습니다.세월이 흘러 이삭이가 다친 지도 8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삭이가 보고 싶어 방문했더니 사위의 얼굴이 활짝 펴있고 미소가 계속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제가 놀라 쓰러질 것 같은 답변을 듣게 되었습니다. 진정 “어메이징 그레이스”였습니다. 딸이 임신했다는 것입니다. 제왕절개 수술로 막내를 낳던 날 단산 수술을 권하는 의사에게 거절했다고 했습니다. 혼인강좌 때 자연 피임 외에 의료 기술이나 기구를 이용한 피임은 교리에 어긋난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답니다. 그래서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며 부부가 기쁨에 넘쳐 있었습니다. 얼마 후 초음파 검사를 했는데 아이가 쌍둥이라고 했습니다. 또 한참 지나서 아들 쌍둥이라고 하며 기뻐했습니다. 산모가 노산이라서 위험을 안고 출산했는데 뜻밖에 건강하게 태어났고 형 이삭이를 쏙 빼다 닮은 것이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이름도 이사야서 40장에서 독수리 같은 힘, 솟아나는 샘을 따다가 큰 쌍둥이는 ‘힘’, 작은 쌍둥이는 ‘샘’이라고 지었습니다. 아이들 4명이 북적거리는 딸의 가정을 보면서 동화 속의 한 장면을 그려 볼 때가 많이 있습니다. 맹아학교를 졸업하고 그 학교에서 신설한 전문대에 다니고 있는 이삭이는 언제나 이 가정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이벤트를 이삭이의 취향에 맞춰 진행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대견스럽습니다. 쌍둥이는 신앙생활이 몸에 젖어 있고 성경을 많이 읽게 하는 부모의 교육이 제 마음을 기쁘게 해 줍니다. 이제는 어린 쌍둥이가 제게 종알거리는 말로 위로를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할머니, 하느님께서 저희 가정을 많이많이 사랑하셔서 예수님하고 같이 살게 해 주셨어요. 이삭이 형이 바로 예수님이에요. 저희 쌍둥이는 예수님의 오른쪽 눈과 왼쪽 눈이 되어 줄 거예요” 하면서 이삭이를 부축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습니다. 이삭이의 사고를 겪으며 여러 가지 질병이 찾아와 고생하던 사위는 건강을 회복하고 본당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딸도 쌍둥이와 그의 아빠가 티셔츠를 세트로 입고 자전거로 학교 운동장을 달리는 모습을 보며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하신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한 아브라함처럼 쌍둥이를 예비해 주신 주님의 사랑에 무한 감사를 드리며 살고 있습니다. 저는 이삭이를 간병하면서 큰 자산을 얻었습니다. 올해로 신앙생활 60년을 맞아 74세 할머니가 되어서야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는 부활을 기대할 수 없다는 믿음의 확신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깨달음을 주신 주님께 큰 감사를 드립니다. 성서 백주간 모임을 지속적으로 하며 생명의 양식을 얻고 숨 쉬는 순간들이 기도가 되기를 원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이 양식과 호흡으로 에너지를 충전하여 군산 지역에 하나밖에 없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자원 봉사자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남은 삶은 말씀과 기도와 봉사가 삼위일체 되어 주님 앞에 예쁘게 봉헌되기를 소망하면서 이웃에 장애인을 둔 많은 가정이 주님께서 주시는 야훼이레 축복으로 행복해지기를 기도하며 살고 싶습니다. 긴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면서 혼자 있는 시간도 많았습니다. 이삭이가 중환자실에 있을 때, 잠들어 있을 때 저는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 시간 저를 위로해 주는 것은 말씀밖에 없었습니다. 그 옛날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 지금 저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바리사이에게 하신 말씀이 저를 꾸짖으시는 말씀으로 다가왔습니다.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 고통 속에 교훈이 담겨 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큰 자산을 무엇으로 얻을 수 있을까? 부자가 된 것처럼 행복했습니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36) 이 말씀을 들으며 무심코 흘려보내던 시간이 깨어 기도하는 시간이고 싶어졌습니다. 모든 것을 주님의 손에 맡기고 보니 이렇게 좋은 것들을 이삭이의 사고가 아니었다면 몰랐을 것입니다. 이삭이가 마지막으로 입원해 있던 병원에서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하게 된 것도 야훼이레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치료가 끝나고 죽음을 준비하는 말기 암 환우들에게 필요한 봉사를 해드리면서 제 앞날을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죽음은 삶의 완성이요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는 영적 지지를 하면서 환우들을 얼싸안고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힐링 시낭송’ 봉사를 할 때에는 이삭이에게 동화를 읽어주고 동요를 불러주던 추억이 되살아나서 환우들이 이삭이로 보일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 ‘말벗 되어 드리기’ 봉사를 하면 환우들의 마음이 열리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싶다는 고백을 하셨습니다. 많은 환우에게 비상 세례를 드리면서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참 행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동참하고 계신 환우들을 한 분이라도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것이 저의 사명이 되었습니다. “제 전화는 24시간 열려있습니다. 언제라도 마음이 결정되면 연락해주세요” 하면서 명함을 드리고 오면 한밤중이나 새벽에 연락이 올 때가 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달려가서 대세를 드리고 장례 예절도 안내해 드리면 가족들이 신자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던 중 2020년 교구장 사목 교서가 발표되면서 저는 더욱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제 활동과 관계가 깊은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20) 인생길 걸어가며 힘들고 어려운 고비를 넘길 때에 함께 해준 도반도 많고 스승도 많았지만, 우리 주님 한 분 만난 것은 제 생애 최고의 행운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제 인생 마지막 혁명이었습니다. 어디든 주님 손만 잡고 간다면 두려움도 없고 걱정도 없습니다. 이토록 큰 은혜를 혼자만 누리기가 아까워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이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이삭이와 함께했던 병원에서 호스피스 병동 환우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제 일상 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교구장님 사목 교서의 말씀대로 저는 이 병원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 열심히 협력하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축복해주신 야훼이레 하느님을 체험한 믿음 하나로 제 몸이 움직일 수 있는 그 날까지 병원에서 환우들을 위하여 봉사하리라 다짐하면서 타임머신을 타고 18년 전 기억 속을 여행해 보았습니다. 그때 이삭이를 간병하면서 쓴 시 한 편으로 이글을 마칩니다.이삭을 위하여 이삭! 너와 나의 만남은 내 삶 속에 가장 밝은 빛이었지 네가 무럭무럭 자라며 이쁜짓 한 번 할 때마다 너의 밝은 빛은 내 마음속에 환하게 퍼져 나갔지 이렇게 고작 여섯 해 도대체 너의 빛은 어디로 갔단 말이냐? 풀밭에서 사마귀를 잡았다고 바닷가에서 조개껍질을 주웠다고 경이롭고 신기해하던 너의 맑은 눈동자 지금도 내 마음에 가득히 차오르는구나 그러나 이삭 빛은 여전히 있는 거란다. 어둠은 빛의 부재일 뿐 실제로는 없는 거란다 허상으로 있는 어둠에 매이지 말고 여전히 있는 네 빛을 비추어라 살아가면서 세상의 오염으로 빛이 없어졌다고 느껴지거든 너 스스로 빛이 되거라 너의 삶이 하늘 아버지의 가장 좋은 선물이거든 이웃에게 주는 또 하나의 따뜻한 선물이 아니겠느냐? 사랑하는 이삭 모리야 제단에서 분향같이 올려지는 기도의 향기 속에 곱게 곱게 자라서 가지고 온 하늘씨앗 충실히 가꾸는 하늘 사람되거라 이정희(데레사, 전주교구 지곡본당) cpbc2020.02.26
![[성당에 처음입니다만] (34) 연옥이 뭐예요](//cpbc.co.kr/CMS/newspaper/2019/11/rc/766008_1.2_titleImage_1.jpg)
[성당에 처음입니다만] (34) 연옥이 뭐예요죽은 영혼들이 정화하는 ‘연옥’ 연옥은 하느님 은총 속에 죽었으나 천국을 누릴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하지 못한 영혼들이 천국을 누리기 위해 정화 과정을 거치는 상태를 말한다. 그림은 단테 신곡에 나오는 연옥 이미지. 나처음: 미사 중에 신자 한 분이 나와서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합시다라며 기도를 바치던데 연옥이 뭔가요. 난생처음 듣는 말이어서 지금도 그 단어가 머리에 맴돌고 있어요.조언해: 연옥(燃獄)은 천국 또는 천당이라고 하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전에 생전에 지은 죄에 따른 벌을 정화하는 곳이야. 가톨릭교회만이 연옥 교리를 갖고 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착한 자는 천국에 가고 나쁜 사람은 지옥에 떨어진다는 이분법적인 심판보다 정화의 시기를 거쳐 하느님 나라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 연옥 교리가 참 인간적이고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는 교리라고 생각해.라파엘 신부: 언해가 연옥에 관해 간단명료하게 잘 설명해 주었구나. 가톨릭교회는 11월을 ‘위령 성월’이라 하여 세상을 떠난 이들, 특별히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한단다. 교회가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이유는 현세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들(지상 교회)뿐 아니라 이미 하느님 나라 영광 중에 살아있는 성인들(천상 교회)과 연옥에서 정화 중인 이들(정화 중인 교회)이 함께 친교를 이루고 있는 신앙 공동체이기 때문이란다. 연옥을 이해하려면 죽음 이후의 내세에 관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을 잘 알아야 하겠지. 가톨릭교회는 ‘사말(四末) 교리’라 하여 죽음, 심판, 지옥, 천국에 관해 설명하면서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고 가르친단다. 그 이유는 참 하느님이시며 참 인간이신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시어 승천하셨기 때문이다. 교회는 ‘죽음’을 원죄의 결과라고 정의해. 죽음은 창조주 하느님의 뜻과 어긋나는 것으로 죄의 결과로 세상에 들어왔지. 하지만 이 죽음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소멸이 아니라 구원이라는 새 삶의 시작으로 바뀌었단다. 죽음 후에는 ‘심판’이 반드시 따라요. 심판은 죽음 직후에 이루어지는 ‘개별 심판’(사심판)과 세상 마지막 날에 있을 ‘최후 심판’(공심판)으로 나뉜단다. 개별 심판은 각 개인의 지상 생활의 행실과 믿음을 결산하는 것이야. 그 결과 천국, 연옥, 지옥에 드는 것이지. 최후 심판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있게 될 총체적 심판이야. 이 심판의 기준은 ‘얼마나 사랑하고 살았느냐’가 될 것이라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지. ‘천국’은 하느님과의 완전한 일치, 궁극적인 만남이라고 설명해. 하느님과 일치된 삶을 통해 완전한 행복을 누리는 것이지. 반면 ‘지옥’은 하느님과의 완전한 단절을 뜻해.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최종적 거부로 하느님과 영원히 결별한 상태를 말한단다. 그 결과는 고통과 괴로움이야.천국과 지옥은 ‘이미’ 이 세상에서 경험할 수 있단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시작한 천국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성경과 성사, 그리고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며 천국의 행복을 미리 경험하고 있단다. 지옥도 일상에서 맛보고 있지. 미움과 분노, 다툼, 시기 등을 통해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등지면 얼마나 지옥 같은지 모두 체험하고 있지.‘연옥’은 죽음 후의 정화를 의미해. 하느님 은총 속에 죽었으나 천국을 누릴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하지 못한 영혼들이 천국을 누리기 위해 정화 과정을 거치는 상태를 말하지. 한자어 연옥은 우리말로 ‘불감옥’을 뜻하지만, 이는 단지 라틴말 ‘Purgatorium’(푸르가토리움, 정화하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거란다. 왜 금과 은이 불에 단련돼 불순물을 제거해야 하듯, 완전하지 못한 인간이 하느님과 하나 되기 위해 생전에 지은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구하는 상태가 바로 연옥이라고 해. 이 연옥 상태에서 인간은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개방하고 정화하면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에 기대어 하느님과의 일치를 희망한단다. 교회의 아름다운 전통 중 하나가 이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를 바치는 거란다. 죽은 이들이 영원한 행복에 이르게 하도록 기도로 연옥 영혼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지. 그래서 교회는 특별히 11월을 위령 성월로, 또 11월 2일을 위령의 날로 정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어요.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평화신문2019.11.05

“힘든 이웃 마음 열고 생명의 힘 불어넣어요”서울 자양동본당 생명분과
광진구청과 업무협약 체결
자살 위험자 가정방문 등
구체적 생명 수호 활동 진행 서울대교구 자양동본당 생명분과장 김해주(오른쪽)씨와 봉성체회장 한춘자(왼쪽)씨가 가정방문을 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어르신, 잘 지내셨어요?” “혼자 있으면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데, 이렇게 찾아와줘서 고마워요. 요즘도 무서워서 밤에는 불을 켜고 자요. 여기 내가 그린 그림 좀 봐요.” 서울 광진구 자양동의 한 주택. 홀로 사는 어르신 집 인근에 있는 자양동본당(주임 남일오 신부) 생명분과 위원들이 방문했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당뇨합병증에 우울증을 앓는 박복식(베로니카, 73) 할머니가 이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벽에는 할머니가 그려 놓은 그림 작품들이 걸려있다. 꽃과 나무, 고향 집을 그렸다. 박 할머니에게 붓을 들려준 사람은 생명분과장 김해주(엘리사벳, 59)씨다. 그는 지난겨울, 우울증으로 삶의 의욕을 잃은 할머니를 휠체어에 태워 화방에 가서 미술 도구를 사왔다. 미술에 재능이 있던 할머니는 김씨를 통해 삶의 활기를 얻었고, 서서히 치유되고 있다. 이처럼 자양동본당 생명분과는 지역사회 안에서 생명 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20여 명 위원이 △자살 △낙태 △안락사 △사형 4개 팀으로 나뉘어 활동하고 있다. 생명수호활동을 거시적인 주제로 나눴지만, 실천은 일상적이고 구체적이다. 본당은 2017년 광진구청과 MOU를 체결하고, 본당 전 신자를 대상으로 자살예방 지킴이 교육을 실시했다. 광진구 보건소 자살예방과에서 자살 위험에 있는 대상자들을 연결해주면, 분과 위원들이 정기적인 전화 및 가정방문을 통해 사례 관리를 한다. 낙태 반대 운동의 일환으로는 1년에 두 차례 바자를 열어 미혼모 대안학교인 자오나학교와 낙태 화해 피정을 여는 착한목자수녀회에 후원 물품과 후원금을 보낸다. 생명분과 소속인 봉성체 봉사자들은 몸이 아픈 환자들의 가정의 문턱을 넘나들며, 용기와 힘을 북돋아 준다. 교도소에 가톨릭 잡지 후원도 하고 있다. 또 성당에는 생명나무도 설치돼 있다. 신자들이 생명나무에 기도 지향을 적어놓으면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미사 때 기도 지향들을 모아 봉헌한다. 본당 신자들은 생명분과가 너무 추상적이고 눈에 드러나지 않는다는 불만도 호소했지만, 광진구청과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본당의 생명수호 활동이 지역사회와 동반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생명분과장 김해주씨는 몇 년 전 우울증으로 자살 시도까지 했다가 기적처럼 구조돼 살아났다. 그는 자신이 이렇게 살아있는 것은 “이 땅에서 할 일이 있는 것”이라며 “누구보다 죽고 싶었던 마음을 잘 알기에 힘들어하는 이들이 마음의 문을 열도록 도와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웃 중에 우울증을 앓고 자살을 생각하는 분들이 많고, 삶의 의욕을 잃은 분들을 예수님께 인도하면 생명의 힘을 얻는다”고 밝혔다.생명분과는 전 신자 「생명의 복음」 필사운동과 함께 사형수들에게 편지ㆍ성경 보내기,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는 존엄사에 대한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평화신문2019.08.20
![[이창훈 위원의 사도행전 이야기] (30) 베드로가 코르넬리우스가 보낸 사람들을 만나다(10,9-23ㄱ)](//cpbc.co.kr/CMS/newspaper/2019/08/rc/761109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위원의 사도행전 이야기] (30) 베드로가 코르넬리우스가 보낸 사람들을 만나다(10,9-23ㄱ)“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베드로는 환시를 보고 코르넬리우스가 보낸 사람들을 만난다. 사진은 야포 바닷가에 있는 베드로 사도 기념 성당.베드로의 환시는 지난 호에 살펴본 코르넬리우스의 환시와 밀접히 연결돼 있습니다. 두 환시를 매개로 마침내 베드로와 코르넬리우스가 만나게 됩니다. 이번 호에서는 베드로가 본 환시 내용과 함께 코르넬리우스가 보낸 사람들을 베드로가 맞아들이기까지를 살펴봅니다. 베드로가 환시를 보다(10,9-16) 코르넬리우스가 환시를 본 다음 날이었습니다. 그가 보낸 사람들이 야포 가까이에 이르렀을 무렵에 야포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묵고 있던 베드로는 낮기도를 바치려고 옥상에 올라갑니다. 점심때여서 사람들은 음식 준비를 하고 있었고 베드로는 배가 고팠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무아경에 빠집니다.(10,9-10) 무아경 속에서 베드로는 환시를 봅니다. 하늘이 열리고 큰 아마포 같은 그릇이 내려와 네 모퉁이로 땅 위에 내려앉았습니다. 그 안에는 네발 달린 짐승들과 땅의 길짐승들과 하늘의 새들이 모두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베드로는 “주님, 절대 안 됩니다. 저는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한 번도 먹지 않았습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다시 두 번째로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런 일이 세 번 거듭되고 나서 그 그릇은 갑자기 하늘로 들려 올라갔습니다.(10,11-16) 이것이 베드로가 본 환시의 내용입니다. 여기서 몇 가지 눈여겨볼 것이 있습니다. 우선, 큰 그릇에 담긴 것들인데, 네발 달린 짐승과 길짐승과 하늘의 새들입니다. 이것들이 하늘로부터 내려왔다고 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는 소리에 대한 베드로의 반응입니다. 베드로는 “주님, 절대 안 됩니다. 저는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한 번도 먹지 않았습니다” 하면서 완강히 거부합니다. 구약성경 레위기 11장은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자세히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유다인들은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을 철저히 가렸습니다. 베드로 역시 유다인으로서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에 관한 규정을 철저히 지켰고 그래서 “잡아먹어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을 때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한 번도 먹지 않았습니다” 하면서 완강히 거부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님” 하고 응답한 것은 “잡아먹어라” 하는 소리를 주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셋째로,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하는 두 번째 소리입니다. 이 두 번째 소리는 베드로에게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에 대한 지금까지의 관념에서 벗어날 것을 촉구하는 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일이 세 번이나 반복됐다는 점입니다. 성경에서 셋은 완전함을 뜻하는 숫자라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는 당부의 말씀이 세 번이나 계속됐다는 것은 정(淨)ㆍ부정(不淨)으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하느님의 뜻이 그만큼 강하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학자들은 풀이합니다. 코르넬리우스의 사람들을 만나다(10,17-23ㄱ) 하지만 베드로는 자신이 본 환시가 어떤 의미인지 아직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리둥절해 하면서 환시가 무슨 뜻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코르넬리우스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와서는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이 묵고 있는지를 묻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베드로에게 “지금 세 사람이 너를 찾고 있다. 그러니 일어나 내려가서 주저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거라. 내가 그들을 보냈다” 하고 이르십니다.(10,17-21) 이 대목도 찬찬히 살펴보면 몇 가지 점이 눈에 뜨입니다. 우선 환시를 본 베드로가 환시 내용에 대해 궁금해하는 시점과 코르넬리우스가 보낸 사람들이 베드로를 찾는 시점이 절묘하게 일치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에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라고 이르십니다. 다음으로, 베드로가 환시를 본 내용과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이르신 말씀이 묘하게 짝을 이루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일어나 잡아먹어라”(10,13) 하는 소리와 “일어나 내려가서… 그들과 함께 가거라”(10,20) 하신 말씀이 짝을 이루고,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10,5)는 “내가 그들을 보냈다”(10,20)와 짝을 이룹니다. 결국, 코르넬리우스가 환시를 보고 사람들을 보내고 베드로가 환시를 보고 코르넬리우스가 보낸 사람들을 만나고 하는 모든 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곧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사도행전의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성령께서 이르신 대로 내려가서 사람들을 만납니다. 코르넬리우스가 보낸 세 사람을 만나는 순간 베드로는 그들이 이방인들임을 직감했을 것입니다. 두 사람은 코르넬리우스의 하인이고 한 사람은 그의 부하로 로마 군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는 무슨 일로 자기를 찾아왔는지 묻지요.(10,21) 베드로의 물음에 그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의롭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온 유다 민족에게 좋은 평판을 받는 코르넬리우스 백인대장이, 선생님을 집으로 모셔다가 말씀을 들으라는 지시를 거룩한 천사에게서 받았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그들을 맞아들여 그곳에 묵게 합니다.(10,22-23ㄱ) 베드로는 이방인들의 말을 듣고 나서는 그제야 자신이 본 환시가 무슨 뜻인지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좋게 만드신 것을 두고 정한 음식, 부정한 음식으로 가려서는 안 되듯이,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서 유다인과 이방인을 가려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그들을 맞아들여 묵게 한 것은 그날 카이사리아까지 가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베드로는 자신이 본 환시와 성령께서 하신 말씀을 더욱 깊이 되새기고 곱씹어보지 않았을까요?생각해봅시다“일어나 잡아먹어라” 하는 소리에 베드로는 완강히 거부합니다. “주님, 절대 안 됩니다. 저는 무엇이든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한 번도 먹지 않았습니다.”(10,14) 그러자 하늘에서 다시 두 번째로 소리가 들려옵니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10,15) 이 소리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조상들의 전통과 관련하여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과 논쟁을 벌이신 후 군중들에게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들을 더럽힌다”(마태 15,11)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분명히 예수님에게서 이런 가르침을 배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 승천 후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베드로는 다시 옛 전통에 젖어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두 번째로 들려온 목소리는 베드로에게 이를 깨우치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우리도 살아가면서 자주 되새기며 우리 삶을 성찰하는 토대로 삼아야 할 말씀입니다. cpbc2019.08.28
외적 욕심보다 내적 영성에 눈떠야 할 때탐욕 안셀름 그륀 지음 / 황미하 옮김 / 바오로딸 / 1만 5000원과유불급(過猶不及)의 교훈은 성경에 숱하게 등장한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정녕 낮은 자부터 높은 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부정한 이득만 챙긴다”(예레 6,13)며 사제, 통치자, 부자의 탐욕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시편도 “제 마음을 잇속이 아니라 당신 법으로 기울게 하소서”(시편 119,36)라고 노래했다. 성경은 탐욕이 복음을 왜곡시킨다고 끊임없이 전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돈과 권력을 마음껏 탐하도록 부추겼고, 가부장적 사회는 사람마저 소유하고 그 위에 군림해도 된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인간의 허기는 정신적인 것에서 비롯되는 법. 우리는 마음 안에 일어나는 탐욕을 자라도록 내버려두기만 했지, 무력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세계적 영성가’ 안셀름 그륀 신부의 시선이 ‘탐욕’에 이르렀다. 그는 외적 소유에만 집착한 채 내적 영성을 지닐 욕심을 지니지 못하는 풍조를 꼬집는다. 더 가지려는 욕망은 개인을 고통으로 이끌기도 하고, 공동체 근간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뉴스에 등장하는 사건 사고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누군가의 탐욕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저자는 탐욕을 마구잡이로 근절하기보다, 내면의 욕심과 대화하고, 상대화시켜 내적 자유와 평정심에 이르는 방법을 제시해주고 있다. 그륀 신부는 늘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고, 우리의 가장 큰 갈망을 채워주시는 분을 바라보는 두 가지 일만은 절대 놓치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문채현2018.12.27
색칠하고 틀린 그림 찾으러 성경 속으로 긴긴 겨울밤 재밌는 그림 놀이로 성경을 만날 수 있는 책 두 권을 소개한다. 「필사와 함께하는 구약성경 컬러링북」(구민정 그림 / 성바오로딸수도회 / 1만 원)과「명화 속 틀린 그림 찾기」(펀앤아트랩 / 1만 2800원)를 통해 직접 성경의 한 장면을 색칠도 해보고 성화 속에 담긴 이야기도 들여다보자. 어른, 아이 누구나 즐길 수 있으며 머리를 맞대고 함께 해도 좋다.「필사와 함께하는 구약성경 컬러링북」은 ‘힐링 취미’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컬러링북에 구약성경 내용을 담았다. 구약성경에서 뽑은 10가지 주제의 밑그림에 따라 하느님이 창조한 새로운 하늘, 땅, 세상을 상상하며 노아, 야곱, 모세, 요나 등 등장인물에 색을 입혀볼 수 있다. 그림 설명과 함께 성경 구절 필사도 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색칠하고 성경 구절을 옮겨 쓰다 보면 어느새 평온해진 마음을 발견할 수 있다.「명화 속 틀린 그림 찾기」 시리즈 중 5권과 6권은 각각 신약과 구약성경 내용을 담은 명화에서 그림 찾기를 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부오나로티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수태고지’ 등 주옥같은 명화를 담았다. 5권에서는 동방박사의 경배와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 수난, 부활에 이르는 이야기를, 6권에서는 천지 창조, 아담과 이브, 노아의 방주, 모세와 출애굽기 등 성경 속 결정적 장면들을 만날 수 있다. 총천연색 명화와 숨바꼭질하다 보면 성경을 생생히 접하면서 동시에 집중력과 관찰력을 기를 수 있다. 유은재 기자 you@cpbc.co.kr 평화신문2018.01.03

“청소하든, 밥하든, 숨쉬든 다 매스컴 사도직 위해 봉헌했죠”축성 생활의 날에 만난 사람 / 성바오로딸수도회 우제열 수녀우제열 수녀가 성바오로딸수도회 한국관구의 60년의 발자취를 기록한 사진을 가리키며 설명하다가 환하게 웃고 있다.2일은 주님 봉헌 축일이자 축성 생활의 날이다. 올해로 한국 파견 60주년을 맞는 성바오로딸수도회(관구장 이금희 레티치아 수녀)에서만 오롯이 57년을 살아온 우제열(베네딕다) 수녀를 만났다. 79세 고령에도 기쁘게 수도회 유튜브 채널 ‘성바오로딸’에 출연하는 노수녀의 얼굴은 해맑다. 그리스도의 구원 희생에 한 생애를 기꺼이 동참함으로써 자신을 ‘남김없이 건네고 되돌려드린’ 수도자답다. “수녀님, 기도해 주세요.” 전국 16개 바오로딸 서원에 가면 ‘기도 우체통’이 있다.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을 보내듯’ 사람들은 기도 우체통에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기도 지향을 담은 쪽지를 넣고 총총히 사라진다. 그 기도 지향에서 많은 이들이 청한 기도 주제를 골라 성바오로딸수도회 수도자들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 기도 주제에 어울리는 곡을 만들어 연주하고 노래하고 기도를 바친다. 그 사이에 우제열 수녀는 자신이 바칠 기도문을 작성해 출연한다. 기도는 안세옥(그라시아나), 이민선(마리마들렌) 수녀와 함께 돌아가며 한다. “기도를 청하는 분들의 간절함과 절실함을 알기에 더 열심히 기도하게 돼요. 지난해 대림 시기에 시작돼 8차례 방송됐는데, 제 기도가 큰 위로가 됐다고 댓글이 달리니까 저도 보람이 커요. 구독자는 아직 많지는 않지만, 독자들의 반응이 좋아 기쁩니다.” 우 수녀가 하는 일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18년간 성경 묵상 잡지 「야곱의 우물」과 함께 울고 웃었던 그는 2018년 12월호를 끝으로 잡지가 종간되면서 공동체 봉사 소임을 받았다. 수도회 10개 분원 식구들이 본원에 다니러 올 때마다 쓰게 되는 손님방 6개를 청소하고 침대 시트를 가는 일을 했다. 또, 수도원 구석구석을 다니며 청소하고, 눈비가 올 때면 옥상에 세탁물이 널려 있는지 살피고 거둬들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안내실 사도직도 맡았고, 틈틈이 수도원 화초를 가꾸기도 한다. 드러나지는 않지만, 꼭 필요한 일, 그게 그의 사도직이다. 그래도 그는 공동체를 위해 봉사할 수 있다는 게 너무도 기쁘고 감사하다고 고백한다. 매스컴 사도직 위한 다양한 소임 실천 그렇게 살아온 수도생활 57년을 우 수녀는 어떻게 기억할까? “청소하든, 밥하든, 숨 쉬든 다 매스컴 사도직을 위해 봉헌되는 것”이라는 설립자 알베리오네 신부의 말로 자신의 수도 생활을 대변했다. 소임은 물론 다양했다. 성바오로딸수도회가 한국에 파견된 지 3년 만인 1963년 12월 입회한 그는 한국에서 청원기를 거쳐 당시 한국 공동체가 소속돼 있던 일본 관구로 건너가 1년의 수련기를 보내고 1968년에 첫서원을 했다. 다시 한국에 돌아와 문서 선교를 시작했고, 1976년 종신서원을 했다. 가정 방문 선교 사도직을 시작으로 단체 방문 선교, 전주 바오로딸 서원 사도직, 부산 분원 책임자, 본원 주방 사도직, 중앙보급소, 서원 사도직 등을 두루 거쳤다. 「야곱의 우물」 잡지 발송을 하면서 본당 선교, 독자와 은인ㆍ협력자 관리 등을 했다. 안 해 본 게 없다. 대전교구 공주본당에서 키운 성소 그가 성소를 키운 건 대전교구 공주본당, 지금의 공주 중동본당에서였다. 8세 때 초등학교 입학 직후 첫 영성체를 한 뒤 “수녀님 되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하면 하느님께서 꼭 들어주신다는 본당 수녀의 권고가 그를 수도자로 이끌었다. 매일 새벽 미사에 가면 성당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던 프랑스 선교사 방여종(Blassier Augusde) 신부도 잊지 못한다. “예수님 친구가 돼 드리라”고 늘 당부하던 방 신부의 권고 덕에 그는 수도자로 평생을 살 수 있었다. “저는 4남 3녀의 둘째이자 맏딸인데, 형제들의 신앙은 부모님(우현대 요한 사도ㆍ김종희 아나스타시아)께 물려받았습니다. 어렸을 적 온 가족이 둘러앉아 웃음꽃을 피우고 아침저녁으로 기도를 바치던 추억이 새록새록 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한 해 전, 2017년에 99세로 백수연(白壽宴)을 했는데, 그날 미사 영성체 행렬이 무척 길었어요. 그 긴 행렬에 어머니가 크게 감동을 받으셨지요. 이분들이 다 어머니 영향으로 신자가 되신 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운전대 잡고 누빈 사도직 현장들 그는 ‘운전하는 수녀’로 유명했다. 지금의 짙은 군청색 수도복으로 바뀌기 이전에 검은 수도복을 입은 우 수녀가 운전하면, 가는 데마다 교통경찰들이 거수경례를 했다. 1970년대만 해도 수녀가 운전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운전을 배운 건 일본에서 수련하던 시절이었다. 한 번은 수련장 수녀가 운전을 배워보겠느냐고 묻길래 처음엔 “겁도 많고 멀미도 심해 운전대를 잡을 수 없다”고 했더니 수련장 수녀는 “겁이 많은 게 운전하는 데 더 낫고 핸들을 잡으면 멀미가 없어진다”고 대꾸하더란다. 그래도 말미를 달라고 해 한 달간 기도했는데, 식사 때 영적 독서 중 “나에게 맡겨주신 임무를 다할 수만 있다면, 나는 조금도 목숨을 아끼지 않겠습니다”(사도 20,24)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보고 마음이 뜨거워져 운전할 용기를 냈다. 그렇게 운전대를 잡고 가정 방문을 하고, 사도직 현장도 달렸다. 1977년 선교 사도직을 맡게 되면서 운전과 함께 단체 선교를 참 많이도 했다. 본당과 학교, 공장, 병원 등지를 주로 다녔다. 울산이나 여천 공장 지대나 삼척 탄광지대에 선교를 다니던 기억도 생생하다. 영원히 이어질 문서 선교 서원 사도직도 잊을 수 없다. 1969년 바오로딸에서 첫 번째로 진출했던 전주 분원을 시작으로 부산ㆍ대구 분원 등에서 서원 사도직을 했다. 지난해 분원 진출 50주년 행사를 했던 전주 분원은 바오로적 사명에 대한 관심을 일깨웠던 공동체였다. 이제 교회나 세상을 보면, 문서 선교는 거의 끝나가는 느낌이 없지 않다. 그렇지만, 우 수녀는 “문서 선교는 영원히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며 “성령께 의탁하고 기도와 작은 희생을 봉헌하면서 문서 선교와 함께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고, 음원과 유튜브 등 다양한 미디어 수단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노력을 계속 기울이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새해로 성바오로딸수도회 한국 진출 60주년을 맞는 우 수녀는 “감사를 드릴 것밖에 없다”고 고백한다. “주님의 복음을 전하려는 열정으로 충만한 자매들을 저희 수도회에 보내주신 것이야말로 주님께서 저희를 사랑하신다는 특별한 표지가 아니겠어요? 이제 디지털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자 저희를 높은 설교대에 올려주신 하느님 자비에 감사를 드리며 제 삶을 지금까지 이끌어주신 주님께 찬미를 드립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cpbc2020.01.29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시고 승천하시다(루카 24,36-53)](//cpbc.co.kr/CMS/newspaper/2018/12/rc/741716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위원의 예수님 이야기](91·끝)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시고 승천하시다(루카 24,36-53)성령을 약속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신 후 베타니아 근처에서 승천하셨다. 사진은 올리브산 정상 베타니아 근처에 있는 예수 승천 경당. 가톨릭평화신문 DB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예루살렘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십니다. 그런 다음 하늘로 올라가십니다.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고 사명을 부여하심(24,36-43)엠마오의 두 제자가 다른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일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하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정작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평화를 비는 인사를 하시자 “무섭고 두려워서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합니다.(24,36-37)예수님께서는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하고 마치 질책하는 듯 말씀하시고는 당신이 유령이 아니라 다시 살아난 스승 예수라는 증거를 제시하십니다. 첫 번째 증거는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는 것입니다.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당신에게는 살과 뼈가 있다면서 제자들에게 직접 보여주십니다.(24,38-40)그런데 제자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는” 반응을 보입니다.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셔서 대단히 기쁘기는 한데,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다시 두 번째 증거를 보여주십니다. 이번에는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해서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구운 생선 한 토막을 잡수십니다.(24,41-43) 하지만 제자들로서는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셔서 지금 자기들 가운데 계신다는 것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시면서 제자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주십니다.(24,44-45)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은 곧 구약성경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며 성경에서 당신에 관해 기록한 핵심을 설명해 주십니다.(24,46) 예수님께서는 이를 이미 세 번씩이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지요.(루카 9,22; 9,44; 18,31-33)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믿지 못하는 제자들을 일깨워주시면서, 당신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그리스도, 시몬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바로 그 그리스도이심을 확인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는 활동을 시작하시기 전에 요한 세례자가 광야에서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한 일을 복음서의 앞부분에서 전하고 있습니다.(3,3) 그런데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이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돼야 한다”면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24,47-48) 이 말씀으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증인으로서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를 선포하는 일을 맡기신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제자들이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를 선포하는 일을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너희에게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시면서 “높은 데에서 오는 힘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라”고 당부하십니다.(24,49) 여기서 “높은 데에서 오는 힘”은 예수님 잉태에 관한 기사에서 천사가 마리아에게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루카 1,35)이라고 한 그 힘과 같은 것으로 성령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은 성령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승천하시다(24,50-53)이 말씀을 하신 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베타니아 근처로 데리고 가신 다음에 손을 들어 제자들에게 강복하시며 하늘로 올라가십니다.(24,51-52) 베타니아 근처라고 하면 올리브산 정상 부근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베타니아는 올리브산 정상 동쪽 비탈에 있는 작은 촌락으로 예수님의 친구 라자로와 그의 두 여동생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로써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도성이 내려다보이는 올리브산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강복하시며 승천하셨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제자들이 예수님께 경배하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줄곧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냈다”(24,53)는 문장으로 복음서를 마무리합니다. 생각해봅시다1.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첫 말씀이 “평화가 너희와 함께”였습니다. 제자들은 두렵고 무서워서 예수님의 이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지만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첫 말씀은 분명히 “평화가 너희와 함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매일 매 순간 만나는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분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주님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도 평화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평화를 지니고 사는 이들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누리는 평화가 아니라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화를 지니고 사는 이들입니다. 2. 루카복음서에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활동은 이스라엘 땅이지만 소외된 변방 갈릴래아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활동은 이스라엘의 중심이자 하느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에서 수난과 죽음과 부활로써 정점에 이릅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은 단지 정점이자 끝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모든 민족들에게, 곧 땅끝까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바로 예루살렘인 것입니다. 3. 제자들은 높은 데에서 오는 힘을 입으면 스승이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예루살렘에서부터 땅끝까지 힘차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할 것입니다. 루카 복음서를 쓴 루카 복음사가는 그 여정을 사도행전에서 소개합니다. 예수님 이야기에 이어 사도행전 이야기를 다루고자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예수님 이야기를 쓰면서 참고한 자료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석 성경」,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거룩한 독서를 위한 신약성경 주해 3 루카 복음」 유충희 지음, 바오로딸 △「성경의 세계 신약 9 루카복음 해설」 박영식 지음, 성바오로 △「영적 독서를 위한 신약성서 루카 복음」 알로이스 스퇴거 저, 이창훈 역, 성요셉출판사 평화신문2018.12.18

구세주 오신 기쁜 날, 다양한 cpbc 프로그램들과 함께! 특선 영화 ‘구세주’ 의 한 장면 가톨릭평화방송 TV와 라디오가 성탄의 기쁨을 나누는 다양한 특집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cpbc TV 성탄 특집 프로그램 주님 성탄 대축일 미사 특별 생중계 (TV·유튜브 생중계)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주례하는 명동대성당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를 생중계한다.12월 24일 밤 11시 45분바티칸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주례로 거행되는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를 생중계한다. 12월 25일 새벽 5시 20분 / (재방송) 저녁 7시 40분주님 성탄 대축일 낮 미사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주례하는 명동대성당 주님 성탄 대축일 낮 미사를 생중계한다. 12월 25일 낮 12시 성탄 특집 프로그램성탄 특집 ‘별빛이 내린 마구간의 찬양’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의미는 무엇일까? 신ㆍ구약 성경을 토대로 성탄의 의미를 되새기며 성악가와 배우들의 공연을 통해 성탄의 기쁨을 나눈다.12월 24일 저녁 8시 / (재방송) 25일 오전 8시 20분, 26일 저녁 7시, 28일 오전 7시 성탄 특집 ‘평화 살롱 Salon de la paix’“주님, 당신과의 만남이 없는 크리스마스는 이미 크리스마스가 아니지 않습니까?” 따뜻한 겨울, 작은 몸짓의 거룩한 탄생을 기념하며 오로지 그 사랑만이 취향인 사람들이 깊은 대화 - 시와 노래 그리고 사랑을 나눈다.12월 24일 밤 10시 30분 / (재방송) 25일 오후 1시 30분, 28일 오후 4시, 29일 새벽 0시, 오후 6시 5분특집 다큐멘터리 ‘이스라엘, 그리스도를 만나다’순례단과 함께 2천 년 전 예수의 발자취를 되짚어가며 이스라엘 성지를 취재한 특집 다큐멘터리. 탄생부터 죽음까지 예수님의 흔적을 따라 이스라엘 땅을 한 걸음씩 밟아가며 공생활과 부르심, 수난에 관련된 역사적인 현장에서 2000년 전 이스라엘이 생생히 목격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12월 25일 새벽 4시성탄 특집 앗숨도미네극단 창작뮤지컬 ‘명도’한국 순교자 124위 복자 시성을 위한 창작뮤지컬 ‘명도’-천국에 이르는 길- 는 성탄 시기에 묵상하는 순교의 의미, 신앙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신앙 선조들,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을 기억하며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며 각자 할 수 있는 순교에 대해 함께 생각해본다.12월 25일 오후 5시 / (재방송) 29일 새벽 1시 성탄 특선 드라마 & 영화특선 드라마 ‘첫 성탄절’예수님의 탄생 시대를 배경으로 목동들의 시각에서 성탄을 바라본다. 다리를 저는 양치기는 성전에 제물을 바치러 갔다가 쫓겨난다. 실의에 차 광야로 돌아온 그는 천사들의 성탄 소식을 전해 듣고 달려가면서 아기 예수님이 구원을 위한 흠 없는 제물임을 깨닫게 된다.12월 24일 밤 11시 20분, 25일 오후 2시 30분 / (재방송) 26일 새벽 0시 30분, 28일 오후 5시 30분, 30일 밤 10시 30분, 31일 오전 10시 30분특선 영화 ‘구세주’ 탄생, 공생활, 수난, 죽음, 부활에 이르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이 펼쳐진다.12월 25일 새벽 1시 30분가톨릭 명화극장 ‘찰스와 애니 가족의 성탄절’성탄절을 며칠 앞두고 애니와 찰스는 자녀들과 함께 스키 여행을 떠난다. 산속 도로에서 자동차 고장으로 가족은 전화도 되지 않는 일명 ‘갈 곳 없는 마을’에서 꼼짝없이 갇히게 되고…. 활기를 잃은 마을에서 애니와 찰스 가족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성탄을 준비하며 성탄의 의미를 되새긴다.12월 27일 저녁 10시 30분 / (재방송) 29일 오후 3시, 30일 오후 7시, 1월 1일 새벽 1시 cpbc Radio 성탄 특집 프로그램 주님 성탄 대축일 미사 특별 생중계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주례하는 명동대성당 주님 성탄 대축일 밤 미사를 라디오로 생중계한다.12월 24일 밤 12시 주님 성탄 대축일 낮 미사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주례하는 주님 성탄 대축일 낮 미사를 라디오로 생중계한다. 12월 25일 낮 12시 성탄 특집 프로그램성탄 특집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전국 교구장의 성탄메시지를 성탄 음악과 함께 들어보며 성탄의 기쁨과 영광을 함께한다, 12월 25일 새벽 5시 cpbc FM ‘오픈 스튜디오’서울 명동 가톨릭 회관 앞마당에 가톨릭평화방송(cpbc) 라디오 ‘오픈 스튜디오’가 마련된다. cpbc 라디오의 인기 프로그램의 제작현장을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다.▶‘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성탄 특집으로 마련한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에서는 가수 오왠과 한태민이 출연해 라이브로 노래를 들려준다. 또 cpbc 캐릭터 ‘우리’가 출연해 현장의 생생한 분위기를 전한다.12월 24일 낮 12시 ▶‘그대에게 평화를 장환진입니다’‘그대에게 평화를 장환진입니다’에는 음악선교단 제이팸과 엉클제이가 출연해 현장에서 청취자들과 소통하며 신나는 성탄 분위기를 만들 예정이다. 12월 24일 오후 2시 ▶‘박철의 빵빵한 라디오’유쾌하고 통쾌한 남자 박철. 박철 라우렌시오가 성탄을 맞아 청취자들을 직접 찾아간다. 이날 공개방송에서는 소프라노 신문희와 심퍼시윈드오케스트라, 루체오 섹소폰 앙상블이 출연해 캐럴 연주 음악을 선사할 예정이다.12월 24일~25일 오후 6시 ▶특집 방송 ‘하림의 메리 크리스마스 from 명동’특집 방송 ‘하림의 메리 크리스마스 from 명동’은 가수 하림과 cpbc 신의석 아나운서가 함께 마이크를 잡는다. 이날 공개방송에서는 미혼모와 외국인 노동자 등이 출연한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웃들이 함께 성탄의 기쁨을 나누는 자리로 마련된다. 하림의 라이브와 함께 세계 곳곳의 다양한 성탄 모습 이야기도 함께한다. 12월 25일 오후 2시 ※cpbc FM ‘오픈 스튜디오’는 가톨릭평화방송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서도 시청할 수 있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평화신문2019.12.17
[한국 천주교와 이웃 종교] (11) 부적을 지니거나 집이나 사무실에 붙여도 되나요주술적 도구에 종속되지 않는 주님 활동 이웃집이나 마을에서 열리는 굿에 참석해도 되나요“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종교 전통의 추종자들과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면서도, 평화로운 정신으로 그들에게 그들 신앙의 내용에 대하여 도전을 제기해야 한다.”(「대화와 선포」 32항)굿은 무속의 제례 행위이다. 무당은 굿판을 통해 신령의 뜻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신령과 인간 사이의 화해는 물론 사람들 사이에 맺힌 한(恨)을 풀어 줌으로써 굿판에 함께한 사람들 사이의 흐트러진 관계를 회복시키며, 공동체가 함께 복을 나누도록 인도한다고 한다. 굿은 민속 문화와 이웃 종교의 의식 두 가지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다. 가톨릭 신자는 민속 문화에 대한 관심에서, 또 이웃과 마을 사람들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굿판을 참관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는 안 된다. 직접 굿당을 찾아가 굿을 주문하거나 점을 치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부적을 몸에 지니거나 집이나 사무실에 붙여 놓아도 되나요“필요할 때에는 그리스도교의 어떤 근본 요소들과 다른 종교의 전통의 어떤 측면들이 병립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대화와 선포」 31항)종이에 글씨, 그림, 기호 등을 그린 부적은 악귀를 쫓거나 복을 가져다준다고 여겨지는 주술 도구이다. 일반적으로 부적은 광명을 상징하고 악귀들이 싫어한다는 황색 종이에 생명과 정화의 힘을 상징하고 악귀를 내쫓는 붉은색 글씨로 만들어진다. 무속에서는 부적이 현세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에게 도움을 준다고 여긴다. 그러나 하느님의 활동은 인간이 만든 주술적 도구에 종속될 수 없으며,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사람에게 원하시는 때에 자유로이 은총을 베푸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부적을 만들어 몸에 지니거나 집이나 사무실에 붙여서는 안 된다.그러나 무속을 따르는 이들에게 부적은 종교적 상징이다. 부적을 미신 행위로 여겨 가족 일원이나 동료가 집이나 사무실 벽에 붙여 놓은 부적을 떼어 버리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에 어긋나는 행위이므로 삼가야 한다. 또한, 가톨릭 신자들도 묵주나 십자가, 상본과 기적의 패 등을 액운을 막아주는 부적처럼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야 한다. 그러한 것들은 기도의 도구이지 그 자체로 효과를 발휘하는 물건이 아니다. 민간 신앙에서 금기로 여기는 것을 가톨릭 신자들도 조심해야 하나요“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사도 10,15)금기는 민간 신앙에서 특정 행위를 엄격하게 금지하는 것이며 ‘터부’(taboo)는 위험한 것을 금지하는 강하고 확실한 표시를 뜻하는 폴리네시아어이다.그리스도인은 민간 신앙의 금기나 터부에 괘념하지 않는다. 구약성경은 금기시되는 음식과 제의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하였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 한 번의 예물로 사람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신(히브 10,14) 뒤로 그러한 규정은 효력을 잃었다. 그리스도인은 금기나 터부에 마음을 쓰기보다, 하느님과 이웃 사랑의 계명에 따른 사랑과 자비의 실천을 더 중요시한다.※이 난은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화 위원회가 편찬한 「한국 천주교와 이웃 종교」를 정리한 것입니다. 저작권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 있습니다. 정리= 리길재 기자 평화신문2019.08.27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50) 바오로의 에페소 선교와 기적 (19,1-20)](//cpbc.co.kr/CMS/newspaper/2020/02/rc/772365_1.1_titleImage_1.jpg)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50) 바오로의 에페소 선교와 기적 (19,1-20)에페소에서 성령의 세례 알리고 치유의 기적 행하다 바오로는 에페소에서 2년 넘게 머물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복음을 선포한다. 사진은 에페소 유적. 에페소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아폴로가 유럽 대륙인 아카이아로 떠나가 그 수도인 코린토에 머물러 있을 때 세 번째로 선교 여행을 시작한 바오로가 에페소에 옵니다. 바오로의 에페소 선교 활동을 앞으로 두 차례에 걸쳐 살펴봅니다. 바오로의 에페소 선교(19,1-10) 3차 선교 여행을 위해 안티오키아 교회를 떠난 바오로는 소아시아 내륙 곧 갈라티아 지방과 프리기아를 거치면서 자신이 1차와 2차 선교 여행 때 세운 교회들을 돌아보며 제자들을 격려합니다.(18,23) 그리고 아폴로가 선교했던 에페소까지 내려옵니다. 아폴로가 에페소를 떠나 유럽 대륙인 아카이아로 건너가 아카이아 지방 수도인 코린토에 머물러 있을 때였습니다.(19,1) 소아시아 곧 오늘날 터키의 서쪽 끝 아시아의 수도인 에페소는 바오로가 2차 선교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들른 곳이기도 합니다. 바오로는 코린토에서부터 동행한 프리스킬라와 아퀼라 부부를 에페소에 남겨둔 채 카이사리아를 통해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안티오키아로 귀환했었지요.(18,18-22) 에페소에 도착한 바오로는 제자 몇 사람을 만납니다. 여기서 제자들은 바오로의 제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게 된 신자들, 곧 형제들을 가리킵니다. 그 제자들에게 물어보니 그들은 성령을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성령이 있다는 말조차 듣지 못했다면서 자신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고 대답합니다.(19,1-3) 요한의 세례만 받았고 성령이 있다는 말을 듣지도 못했다는 이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됐을까요?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새로운 길’을 알게 돼 제자가 됐을지 모릅니다. 성령 강림 때에 예루살렘에서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의 설교를 들은 이들 가운데는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는데(2,9), 에페소가 아시아의 수도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에 갔을 당시에는 이미 예수님을 믿는 ‘새로운 길’을 배워 제자가 된 이들이 에페소에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 아폴로의 에페소 선교 활동을 통해서 믿게 된 제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회개를 위한 요한의 세례만 받았기 때문에 세례를 받음으로써 성령을 받게 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오로에게서 요한의 세례와 예수님을 믿고 받는 세례가 어떻게 다른지 설명을 듣고는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바오로가 안수하자 성령이 그들에게 내려와 신령한 언어로 말하면서 예언합니다. 사도행전 저자는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은 제자들의 수가 열둘쯤 됐다고 전합니다.(19,4-7) 성경에서 12라는 숫자가 완전함, 충만함을 나타내며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대표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생각한다면 이제 비로소 에페소에서도 복음이 제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또 열두 사도가 복음 선포하러 나갔듯이 이 제자들도 에페소를 중심으로 아시아 지방에 복음 선포하게 되리라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에페소에서도 주님의 길을 헐뜯으며 바오로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오로가 석 달 동안이나 회당에 드나들며 하느님 나라에 관해 토론하며 담대하게 설교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제자들을 데리고 회당을 떠나 티란노스 학원에서 날마다 토론합니다.(19,8-9) 바오로가 제자들과 날마다 토론을 벌인 것은 당시 그리스 문화권의 교육 방식에 따라 바오로가 제자들을 가르친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가 티란노스 학원에서 토론을 통해 제자들을 가르치는 활동이 두 해 동안 계속되면서 “아시아에 사는 사람들은 유다인 그리스인 할 것 없이 모두 주님의 말씀을 믿게 되었다”고 사도행전 저자는 전합니다.(19,10) ‘모두’라는 표현은 과장된 표현으로, 유다인 그리스인 할 것 없이 많은 사람이 믿게 됐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또한 에페소가 아시아 지방 복음 선포의 중심지가 됐음을 나타낸다고 하겠습니다. 바오로의 기적(19,11-20)사도행전 저자는 하느님께서 바오로를 통해 일으키신 기적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열두 해 동안 하혈하던 여자가 예수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자 즉시 병이 나았듯이(루카 8,43-44), 바오로의 살갗이 닿았던 수건이나 앞치마를 병자들에게 대기만 해도 질병이 사라지고 악령들이 물러갔습니다.(19,11-12) 사도행전 저자는 사도들이 기적을 일으키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사람들이 병자들과 더러운 영에게 시달리는 사람들을 데려와 베드로가 지나갈 때 그림자만이라도 드리워지기를 바랐다고 전하는데(사도 5,15), 베드로를 통해 일어난 치유가 이제 바오로를 통해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구마자로 활동하던 몇몇 유다인들까지 “바오로가 선포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명령한다” 하면서 구마 치유를 시도합니다. 스케우아스라는 유다인 대사제의 일곱 아들이 그렇게 하다가 오히려 악령 들린 사람에게 혼쭐나는 상황이 벌어지지요. 악령 들린 사람이 “나는 예수도 알고 바오로도 아는데 너희는 누구냐?” 하고 달려들어 그들에게 상처를 입힌 것입니다.(19,13-16) 이 놀라운 일은 에페소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로 반향을 불러일으킵니다. ① 유다인 그리스인 할 것 없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② 사람들은 주 예수님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③ 신자가 된 많은 사람은 자기들이 해 온 행실을 숨김없이 고백합니다. 이들이 고백한 행실이 무엇인지 사도행전 저자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으나 문맥으로 보아 마술을 부리는 일과 관련된 행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④ 마술을 부리던 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자기 책들을 모아서 공개적으로 불살라 버립니다. 그 책들을 값으로 따지니 은돈 5만 냥 어치나 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5만 냥은 5만 드라크마로, 일꾼 5만 명의 하루 품삯에 해당합니다. 그만큼 많은 책을 불살랐다는 것인데, 에페소에 마술이 그만큼 횡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19,17-19) 사도행전 저자는 “주님의 말씀은 더욱 힘차게 자라고 힘을 떨쳤다”라는 표현으로 이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19,20)생각해봅시다1. 바오로 사도의 에페소 선교와 기적 이야기는 여러 면에서 베드로 사도의 활동과 대비됩니다. 예루살렘의 많은 병자와 더러운 영에 시달리는 이들이 베드로를 통해 치유됐듯이(5,15-16), 에페소의 병자들과 악령 들린 이들이 바오로를 통해 치유됩니다. 사마리아의 마술사 시몬이 베드로가 안수로 성령을 내리게 하는 것을 보고 돈으로 베드로를 매수하려다가 베드로에게 면박을 당했듯이(8,18-24), 스케우아스라는 대사제의 일곱 아들은 바오로 사도를 따라 하려다가 오히려 악령 들린 사람에게 된통 혼이 납니다. 이렇듯이 에페소 선교와 기적 이야기는 베드로와 대비되는 바오로의 활동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2. 몇몇 유다인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령을 쫓아내려 했지만, 오히려 혼쭐이 난 까닭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정말로 예수님께 대한 굳은 믿음으로 활동하는지요? 아니면 우리 자신의 공명심을 드러내고자 활동하는지요? 대사제의 일곱 아들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믿음과 행동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alfonso84@hanmail.net 평화신문2020.02.05

“우리 삶의 최종 목적지는 하느님 나라”전국 교구, 위령의 날 맞아 세상을 떠난 영혼들 위해 기도 염수정 추기경이 2일 서울 용산 성직자묘역에서 서울대교구 위령의 날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백영민 기자 11월 2일은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이다. 전국 교구장들과 교구민들은 각 교구 묘역에 모여 세상을 먼저 사제와 수도자, 부모, 형제들의 영원한 안식을 기도했다.서울대교구는 서울 용산성당 성직자 묘역에서 ‘위령의 날 미사’를 봉헌하고 세상을 먼저 떠난 영혼들을 위해 기도했다. 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미사에서 “우리의 삶이 이 세상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고, 최종 목적은 하느님 나라”라며 “아직 천당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연옥에서 단련 받는 모든 연령과 성직자 묘역에 잠든 사제들을 기억하며 미사를 봉헌하자”고 말했다. 남학현(서울 응암동본당 주임) 신부는 미사 강론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바라는 하느님과의 일치는 죽음을 통해서 비로소 완성된다”며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모든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자기 죽음을 생각하고 회개의 삶을 살도록 권고한다”고 당부했다.용산성당 성직자 묘역에는 한국 교회 초대 교구장인 브뤼기에르(1792~1835) 주교를 비롯한 4위의 주교와 64위의 신부, 2위의 신학생, 1위의 순교자 등 모두 71위가 안장돼 있다. 수원교구는 수원교구는 안성추모공원에 새로 조성한 성직자 묘역 축복식을 거행하고, 교구 사제단과 신자 800여 명이 위령 미사를 봉헌했다. 교구장 이용훈 주교는 강론에서 “위령 성월을 맞아 주님과 교회를 위해 자신의 일생을 불사르며 주님의 종으로 사셨던 신부님들의 유택을 새로이 마련할 수 있음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 주교는 이어 “사제는 교우와 더불어 세상의 평화와 성숙을 위해 일하는 가운데 고통과 어려움을 만나게 될 수 있지만, 그 십자가를 지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야 하는 골고타 언덕을 향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미리내성지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 기념 성당에서 총대리 이성효 주교 주례로 위령 미사를 봉헌했다. 대전교구는 대전 산내공원묘원에서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 등 1100여 명이 함께한 가운데 교구장 유흥식 주교 주례로 위령의 날 미사를 봉헌했다. 아울러 충남 아산시 성환공원묘원에서도 총대리 김종수 주교 주례로 위령 미사를 봉헌했다. 유흥식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가톨릭교회에는 ‘과거 없는 성인이 없고, 미래 없는 죄인도 없다’는 격언이 있다”면서 “죄인도 다시 시작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유 주교는 “언제든지 죽음을 앞에 둔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면서 “우리는 이미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의정부교구는 경기도 양주시 울대리 묘원에서 교구장 이기헌 주교와 교구 사제단 공동 집전으로 위령 미사를 봉헌했다. 이기헌 주교는 “우리 삶 한가운데는 늘 기쁨과 죽음이 나란히 있고 우리는 그 모두에 의미를 두어야 함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면서 “세상을 떠난 분들이 하느님 나라에서 편안한 안식을 누리도록 기도하자”고 당부했다.청주교구는 충주 성요셉공원에서 교구장 장봉훈 주교와 충주지구 사제단 공동집전으로 1500여 명의 신자가 참여한 가운데 위령의 날 미사를 봉헌했다. 이날 미사 참여자들은 저 우리 곁을 떠난 목자와 수도자들, 또 우리와 함께 신앙생활을 했던 부모와 형제들, 이웃들을 기억하면서 이들 영혼이 하느님 품 안에서 편안한 안식을 누리고, 자신들 또한 이생에서 복된 삶을 무사히 잘 마치고 선종하는 은혜를 주시기를 하느님께 청했다. 충주 연수동본당 주임 김인국 신부는 미사 강론에서 “사람은 누구나 사형수이며, 예수님만 그런 게 아니라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확정판결을 받고 시작하는 미결수”라면서 “그래서 성경은 ‘사람아 너는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분명히 가르쳐 주셨고, 죽음을 잊지 않는 한 우리는 하루하루를 값지게, 그리고 멋지게 살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청주 성요셉공원에선 교구 총대리 손병익 신부 주례로 2700여 명이 함께한 가운데 위령 미사를 봉헌했다. 전주교구도 전주 치명자산성지 장막성당에서 교구장 김선태 주교와 교구 사제단 공동 집전으로 위령 미사를 봉헌했다. 김선태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하고 대화를 나눔으로써 우리는 궁극적으로 가야 할 목적지를 다시금 깊이 새기고 성찰할 수 있다”며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하면서 오늘 하루를 거룩하게 보내도록 하자”고 말했다. 한편, 군종교구(교구장 유수일 주교)는 8일 국립 서울 현충원 내 현충관에서 봉헌할 예정이던 위령 미사를 취소했다. 군종교구는 “국립 서울현충원 현충관 안전진단 평가에서 조명 관련 수리 결정이 내려져 20일까지 공사가 진행됨에 따라 위령미사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군종교구는 매년 사제단과 수도권 지역 유가족 등이 참여한 가운데 국립 서울현충원에서 위령 미사를 봉헌해 왔다. 오세택ㆍ이상도ㆍ도재진ㆍ장현민 기자 장광동 명예기자 평화신문2019.11.06
[담화] 2019년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교황 담화“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창세 1,25). 성경 첫머리에 나타나 있듯이, 하느님께서는 당신 피조물을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십니다. 생명이 살아가는 땅에서부터 생명을 주는 물에 이르기까지, 열매를 맺는 나무에서부터 우리 공동의 집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동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하느님 보시기에 사랑스러운 존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피조물을 인간에게 소중한 선물로 주시어 돌보게 하십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선물에 대한 인간의 응답은 죄와 이기심과, 소유하고 착취하려는 탐욕으로 얼룩져 왔습니다. 자기중심주의와 사리사욕 때문에, 만남과 공유의 자리가 되어야 할 피조물은 경쟁과 분쟁이 펼쳐지는 각축장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환경 자체가 위험에 처하게 되어,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것이 인간의 손에 착취당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최근 몇십 년 동안 환경 훼손은 더욱더 심각해져 왔습니다. 계속되는 오염, 화석 연료의 지속적인 사용, 집약적 농업에 따른 착취, 삼림 파괴로 지구 온도가 안전 수준 이상으로 상승하게 되었습니다. 높은 강도로 빈번히 발생하는 기상 이변과 토양의 사막화로 우리 가운데에 가장 힘없는 이들이 극심한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빙하의 용해, 물 부족, 저수지 방치, 상당량의 플라스틱과 미세 플라스틱의 해양 유입도 마찬가지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책이 더 이상 지체 없이 긴급히 마련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생명을 포함하여 생명 자체와 자연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기후 비상사태를 자초해 온 것입니다.실제로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잊었습니다. 우리는 바로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피조물(창세 1,27 참조)로서 공동의 집에서 형제자매로 살아가라고 부름받았습니다. 우리는 폭군이 되라고 창조된 것이 아니라, 창조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사랑으로 함께 연결해 주신 수많은 종(種)들로 이루어진 생명의 그물 중심에 있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이제 하느님의 자녀, 형제자매, 피조물의 관리자인 우리의 소명을 다시금 발견할 때입니다. 이제 참회하고 회개하여 우리의 뿌리로 돌아갈 때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피조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생명을 사랑하고 다른 피조물들과 친교 안에서 살아가라고 당신 선의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따라서 저는 신자 여러분에게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시의적절한 교회일치운동의 결실로 거행되는 피조물을 위한 기간 동안 기도에 전념해 주십시오. 바로 오늘 9월 1일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에 시작되어 10월 4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에 끝나는 이 기간에, 우리는 우리 공동의 집을 위하여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다른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는 형제자매들과 더욱 일치하고 있음을 느낄 기회입니다. 저는 특히 삼십 년 동안 이 날을 거행해 온 정교회 신자들을 기억합니다. 또한 우리는, 모든 이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이 생태 위기의 상황에서, 우리가 속해 있는 생명의 그물을 지켜 나가도록 함께 부름받은 선의의 다른 모든 이와 깊이 일치하고 있음을 느껴야 합니다. 피조물을 위한 기간은 자연과 친화되어 우리 기도를 새롭게 하는 때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 창조주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가 저절로 우러나오게 됩니다. 프란치스코의 지혜를 노래한 보나벤투라 성인은, 피조물을 하느님께서 우리 눈앞에 펼쳐 주신 첫 번째 “책”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그 질서정연하고 아름다운 다양성에 경탄하며 다시 한번 창조주께 사랑과 찬미를 드리게 해 주십니다(?담화?[Breviloquium], II, 5, 11 참조). 이 책에서 모든 피조물은 우리에게 “하느님 말씀”(?코헬렛 주해?[Commentarius in Librum Ecclesiastes], I, 2 참조)이 됩니다. 기도와 침묵 안에서 우리는 피조물의 교향곡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노래는 우리가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나 하느님 아버지의 부드러운 사랑의 품을 느끼고 우리가 받은 선물을 기쁘게 함께 나누라고 초대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생명의 그물, 곧 하느님을 만나고 우리 서로 만나는 자리인 피조물은 “하느님의 ‘소셜 네트워크’”(유럽 가이드와 스카우트[Guides and Scouts of Europe]의 교황 알현, 2019.8.3.)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이 일러 주듯, 자연은 우리가 창조주께 전 우주의 찬미 노래를 드높이도록 이끌어 줍니다. “땅에서 싹트는 것들아, 모두 주님을 찬미하여라. 영원히 그분을 찬송하고 드높이 찬양하여라”(다니 3,76).이 기간은 우리 생활양식에 관하여 성찰하는 때입니다. 또한 음식과 소비재와 교통수단, 수자원과 에너지와 다른 수많은 물질 재화의 이용에 관하여 우리가 날마다 내리는 선택들이 얼마나 자주 무분별하고 해악을 불러올 수 있는지 성찰하는 때입니다. 우리 가운데 너무나도 많은 이들이 피조물에 대하여 폭군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변화를 위하여 노력합시다! 더욱 소박하고 존중하는 생활양식을 받아들이고자 노력합시다! 이제 화석 연료에 의존하는 데서 벗어나 클린 에너지와 지속 가능한 순환 경제를 향하여 신속하고 단호하게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또한 지역 주민들에게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웁시다. 오랜 전통을 지닌 그들의 지혜는 우리가 환경과 더 나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피조물을 위한 기간은 예언자적 행동에 나서야 하는 때이기도 합니다. 전 세계 많은 젊은이가 소리 높여 용기 있는 결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약속들이 이행되지 않고 사리사욕이나 편의에 따라 간과되어 버리는 현실에 젊은이들은 낙담하고 있습니다. 지구는 함부로 이용해도 되는 소유물이 아니라 대대로 전해 주어야 하는 유산임을 젊은이들은 우리에게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또한 내일에 대한 희망은 고귀한 감정을 품는 것만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에서 구체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과제임을 젊은이들은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우리는 이 젊은이들에게 공허한 말이 아닌 현실적인 응답을, 환상이 아닌 행동을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정치와 국정의 책임을 맡은 이들의 인식 증진을 호소하고 이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저는 특히, 몇 달 뒤에 열리는 회의에서 함께 모일 각국 정부를 떠올립니다. 이 회의에서 그들은 지구가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지향하여 나아갈 수 있도록 확고히 노력하겠다고 새롭게 다짐할 것입니다. 약속된 땅을 눈앞에 두고 일종의 영적 유언처럼 모세가 백성에게 선포한 그 말이 떠오릅니다.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신명 30,19). 이 예언자적 말씀을 우리 자신과 우리 지구의 상황에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생명을 선택합시다! 소비주의의 탐욕과 전능함에 대한 망상에 “아니요.”라고 말합시다. 이러한 것들은 죽음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내일을 위하여 우리는 오늘 책임감을 가지고 희생해 나가야 하는 긴 여정에 나섭시다. 눈앞의 이득만 좇는 그릇된 논리에 굴복하지 말고 우리 공동의 미래를 바라봅시다!이러한 의미에서, 곧 열릴 예정인 ‘국제 연합 기후 변화 정상 회의’는 특별히 중요합니다. 이 회의에서, 파리 기후 협정의 목표에 따라, 각 정부들은 그들의 책무를 다하여, 무엇보다도 온실 가스 배출을 최대한 빨리 제로 수준으로 감축하고, 지구의 평균 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평균 섭씨 1.5도 이하로 제한하고자 과감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정치적 의지를 보여 줄 것입니다. 또한 내달 10월에는 온전한 생태계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아마존 지역을 주제로 하여 주교대의원회의 특별 회의가 열릴 예정입니다. 이러한 만남들이 가난한 이들과 우리 지구의 울부짖음에 응답하는 좋은 계기가 되도록 합시다! 모든 그리스도인, 모든 인류 가족의 구성원은 저마다 가늘지만 유일무이하고 꼭 필요한 한 가닥 실이 되어 모든 이를 감싸 안는 생명의 그물을 엮어 나가는 데에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피조물 보호에 기도와 헌신적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우리의 책무를 마음에 새깁시다. 하느님, “생명을 사랑하시는 주님”(지혜 11,26), 다른 누군가가 시작하기를 기다리다가 너무 늦지 않도록 우리가 먼저 선을 행할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바티칸에서2019년 9월 1일프란치스코cpbc2019.09.06
![[숨은 성미술 보물을 찾아서] (12) 백태원의 ‘성서대’(1954)](//cpbc.co.kr/CMS/newspaper/2019/03/rc/748718_1.0_titleImage_1.jpg)
[숨은 성미술 보물을 찾아서] (12) 백태원의 ‘성서대’(1954)전통 나전기법과 현대적 표현 어우러진 성서대정수경 가타리나 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교수실용성과 예술성 겸비한 성서대 1954년 성미술 전람회에 다양한 분야의 작품이 출품되었다는 것을 이미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출품 분야가 여러 장르를 아울렀음에도 조각 3점, 공예 2점, 건축 설계 1점이었으니 출품작 중 회화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중 공예 분야에는 이순석의 ‘십자가와 촛대’(案)와 백태원의 ‘성서대’가 출품되었다. 두 작품 모두 실용적인 면을 내포하고 있지만 하나의 예술품으로 제시된 만큼 전례 공간의 여러 요소의 품격을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중요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흑백사진상으로는 정확한 재료와 표현 기법의 세밀한 부분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따름에도 불구하고 공을 많이 들인 품위 있는 성미술품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두 점의 공예 분야 출품작 가운데 백태원(白泰元, 1923~2008)의 ‘성서대’를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목공예가인 백태원은 1923년 평안북도 태천군에서 출생했다. 1941년 태천 칠공예학교를 졸업하고 중앙시험소 도안과 교습 연구생을 지내며 공예가의 길을 택한 그는 1957년 신세계백화점 전신인 동화백화점에서 공예가로서 최초로 개인전을 열었다. 이 전시는 한국 최초의 공예 개인전이었다. 백태원은 한국 근현대 공예사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수공예와 산업공예의 두 분야를 모두 아우르는 작품 활동을 펼쳤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백태원은 가리개, 장과 같은 실용성을 겸비한 작품과 장식용 기물을 중심으로 창작 활동에 몰두하는 한편 청와대 본관의 실내 장식, 대한항공 747 점보여객기 제1호기 실내 장식 등 디자인과 실내 장식 분야에서도 역량을 발휘했다. 이렇게 포괄적인 공예 작업을 선보인 백태원은 “평생을 지켜온 신조가 있다면 실용과 예술성이라는 공예의 양 측면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한국미술협회 공예분과 위원장을 역임했고, 한국디자인포장센터 창설에 깊이 관여했으며 서라벌 예술대학,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교수로 후학 양성에도 많은 힘을 기울였다. 나전기법 고유의 질감 살려 공간감 부여 백태원의 출품작 ‘성서대’는 흑백사진으로만 관찰했을 때도 나전기법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작품이다. 전체적인 색감은 작품 하단에 흑색과 백색, 그리고 붉은색이 어우러졌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다. 작품의 크기는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지만 큼직한 성경을 여유롭게 올려놓을 수 있는 정도라고 생각했을 때 길이는 40㎝ 정도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성경을 기대어 놓을 수 있도록 적절한 기울기를 주어 턱을 만들었고 윗부분은 완만하게 둥글려주어 부드러운 이미지를 연출했다. 작품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작품 중앙에 예수 성심 십자가가 놓여 있고 그 아래로는 격정적인 동세를 보여주는 네 명의 인물이 표현되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는 인물을 중심으로 십자가를 향해 두 팔을 높이 들어 올린 인물 세 명이 자리하고 있다. 왼편에 양팔을 V자로 들어 올리고 상체를 뒤로 젖힌 인물, 십자가를 향해 두 팔을 모아 올린 인물 그리고 역시 십자가를 향해 두 팔을 사선방향으로 쭉 뻗은 인물이 화면 전면에 나란히 배치되었다. 언뜻 보면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는 구도인 것 같지만 각 인물의 팔의 위치와 방향, 각도에 변화를 주면서 다양한 표현으로 완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앙의 두 인물은 머리에 베일을 드리운 한복 차림의 여인을 연상시키며 좌우 끝에 자리하고 있는 인물은 양팔에 천을 드리운 채 몸을 활처럼 젖히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화면에 표현된 네 인물은 누구일까? 한국의 여인상을 담은 성모 마리아일까? 양팔에 천을 드리운 인물들은 작가가 재해석하여 한국적으로 표현한 천사의 모습일까? 4라는 숫자는 혹시 성경의 네 복음사가를 상징하는 것일까? 작품의 배경은 첩첩산중인 것 같기도 하고 파도에 휩싸인 바다인 것 같기도 하다. 화면 중심에 놓인 예수 성심 십자가를 에워싼 운무(雲霧)의 표현은 작품의 긴장감을 더해주며 작품의 분위기를 한층 더 고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나전기법의 고유한 질감에서 나오는 음영의 표현은 작품 속 3차원의 공간감을 부여하며 자연스러움을 더해주고 있다. ‘성서대’는 전통적인 나전기법으로 제작되었지만 생략적으로 단순하게 묘사된 인물들과 간략한 선들로 이루어진 산세의 모습 그리고 화면을 과감하게 가로지르는 운무의 표현 등에서 작가의 현대적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백태원의 ‘성서대’는 전통 나전기법과 현대적 표현이 조화를 이루는 품위 있는 성미술의 한 예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말대로 실용성과 예술성이 한데 어우러진 공예작품 ‘성서대’를 실제 색감까지 함께 살펴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제보를 기다립니다※ 가톨릭평화신문과 정수경 교수는 숨은 성미술 보물찾기에서 소개하는 작품들의 소재나 관련 정보를 알고 있는 분들의 적극적인 제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함께 찾아 나서는 진정한 성미술 보물찾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제보 문의 : 02-2270-2433 가톨릭평화신문 신문취재부 문채현2019.03.20